통합대장경

解脫道論卷第十二

ABC_IT_K0968_T_012
028_1094_b_01L해탈도론 제12권
028_1094_b_01L解脫道論卷第十二


아라한 우파저사양나라 말로 대광 지음
양 부남삼장 승가바라 한역
이태승 번역
028_1094_b_02L阿羅漢優波底沙梁言大光造
梁扶南三藏僧伽婆羅譯


12. 분별제품 ②
028_1094_b_04L分別諦品第十二之二

그 좌선인은 이와 같이 현재 소멸을 관하며, 소멸을 관함으로써 두려움을 이룬다. 음(陰)의 인(因) 역시 두려워하며, 음의 생(生)도 두려워하고, 3유(有)ㆍ5취(趣)ㆍ7식주(識住)ㆍ9중생거(衆生居)에서도 두려움을 이룬다. 그것은 악인이 칼을 쥐고 있어 가히 두려운 바와 같고, 독사와 같으며, 불더미와 같다.
028_1094_b_05L彼坐禪人如是現觀滅以由觀滅成陰因亦畏陰生畏三有五趣七識住九衆生居成畏彼如惡人捉刀可畏如毒蛇如火聚
이와 같이 소멸을 관함으로써 두려움을 이룬다. 음의 인도 두렵고, 음의 생도 두려우며, 3유ㆍ5취ㆍ7식주ㆍ9중생거도 무상(無常)으로써 현재 작의하여 상(想)을 두려워하게 하며, 안온으로써 무상(無想)을 일으키게 한다. 고(苦)로써 현재 작의하여 생(生)에 대한 두려움을 이루며, 안온으로써 무생(無生)을 일으키게 한다. 무아(無我)로써 현재 작의하여 상(相)과 생(生)에 대한 두려움을 이루며, 안온으로써 무상(無相)과 무생(無生)을 일으키게 한다. 과환(過患)을 관하며, 염리(厭離)를 관하며, 상사인(相似忍)을 부드럽게 따른다. 이것이 그 총어(總語)이다.[두려워하는 지혜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마친다.]
028_1094_b_09L如是以由觀滅成陰因畏陰生畏三有五趣七識住衆生居以無常現作意令畏想以安隱令起無想以苦現作意成畏生安隱令起無生以無我現作意成畏相及生以安隱令起無相及無生過患觀厭離軟隨相似忍是其摠令起智怖已竟
그 좌선인이 두려움[怖]으로써 현재 수행하여 지혜를 일으키면 해탈을 즐기는 지혜[樂解脫智]가 일어난다. 그 음의 상(相)을 두려워하면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나며, 음의 생(生)을 두려워해도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난다. 3유ㆍ5취ㆍ7식주ㆍ9중생거를 두려워해도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난다. 마치 불길에 포위된 새가 그로부터의 해탈을 즐기는 것과 같고, 도적에 포위된 사람이 그로부터의 해탈을 즐기는 것과 같다.
028_1094_b_16L彼坐禪人以怖現脩行令起智樂解脫智生彼陰相是怖者樂解脫智起陰生爲怖者樂解脫智起三有五趣七識住九衆生居此怖者樂解脫智如火所圍鳥從彼樂解脫如人爲賊所圍從彼樂解脫
028_1094_c_02L이와 같이 그 좌선인이 음의 인(因), 음의 생(生), 3유ㆍ5취ㆍ7식주ㆍ9중생거를 두려워하면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난다. 무상(無常)으로써 현재에서 인에 대한 두려움을 작의하며, 고(苦)로써 현재에서 생에 대한 두려움 작의하며, 무아로써 현재에서 인과 생에 대한 두려움을 작의하면 해탈을 즐기는 지혜가 일어난다.
028_1094_b_22L如是彼坐禪人陰因陰生三有五趣七識住九衆生居此畏怖者樂解脫智起以無常現作意畏因以苦現作意畏生以無我現作意畏因及生樂解脫智起
여기에서 범부인과 학인은 해탈을 즐기는 지혜에서 두 종류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혹 환희를 관하며, 여기에서 현재 관하며, 여기에서 현재 환희를 관하는데 통달하는 것을 이룬다. 마음이 우뇌(憂惱)를 이루며, 수행의 장애를 이루며, 난견사유(難見思惟)에 통달하는 것을 이루며, 행사(行捨) 중에 상사인(相似忍)을 따른다. 이것이 총어언(總語言)이다.[해탈을 즐기는 지혜를 마친다.]
028_1094_c_05L是凡夫人及學人於樂解脫智二種引心或觀歡喜於是現觀於上成通達現觀歡喜心成憂惱成脩行障碍成通達難見思惟行捨中隨相似忍是摠語言樂解脫智已竟
그 좌선인은 이와 같이 현재 해탈을 즐기는 지혜를 수행하여 일체 모든 행으로부터 해탈니원(解脫泥洹)의 모든 행을 즐긴다. 오직 일상(一相)을 지어 일으키고자 하면 해탈문상사지(解脫門相似智)가 일어난다. 3행으로 상사지(相似智)를 얻고, 3행으로 정취(正聚)를 초월한다. 5음을 무상으로 현재 보아 상사지를 얻고, “5음의 소멸이 영원한[常] 니원이다”고 이와 같이 현재 보아 정취를 초월한다. 5음을 고로 현재 보아 상사지를 얻고, “5음의 소멸이 즐거운[樂] 니원이다”고 현재 보아 정취를 초월한다. 5음을 무아로 현재 보아 상사지를 얻고, “5음의 소멸이 제일의(第一義)인 니원이다”고 현재 보아 정취를 초월한다.
028_1094_c_10L彼坐禪人如是現脩行樂解脫智一切諸行樂解脫泥洹諸行唯作一欲令起解脫門相似智起以三行得相似智以三行越正聚於五陰無常現見得相似智五陰滅常泥洹是現見越正聚於五陰以苦現見得相似智五陰滅樂泥洹現見越正聚於五陰以無我現見得相似智五陰滅第一義泥洹現見越正聚
【문】무엇이 지혜로 현재 정취를 초월하는 것인가? 무엇이 지혜로 이미 정취를 초월한 것인가?
028_1094_c_19L云何以智現越正聚云何以智已越正聚
【답】성제지(性除智)로써 현재 정취를 초월하며, 도지(道智)로써 이미 정취를 초월했다.
028_1094_c_20L以性除智現越正聚以道智已越正聚
【문】상사지(相似智)란 무슨 뜻인가?
相似智者何義
028_1095_a_02L【답】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정도분은 그것과 서로 비슷함으로써 이것을 상사지의 총어언(總語言)이라 한다. 원한이 없고 이익을 보는 상사인(相似忍), 이것이 바로 상사지의 총어언이다.[상사지를 마친다.]
028_1094_c_22L相似者念處四正勤四如意足五根五力覺分八正道分以彼相似此謂相似智摠語言無怨見利相似忍此是相似智㧾語言相似智已竟
상사지는 간단없이 차례대로 일체 모든 행의 상으로부터 일어나며, 니원사(泥洹事)를 지어 성제지(性除智)를 일으킨다.
028_1095_a_03L相似智無間次第從一切諸行相起作泥洹事生性除智
【문】무슨 뜻에서 성제(性除)라 하는가?
云何義名性除
【답】범부법(凡夫法)을 제외하는 것을 성제라 하고, 비범부법이 제외되는 것 또한 성제라 한다. 성(性)이란 곧 니원이다. 또 종자를 니원에 심는 것을 성제라 한다. 아비담에서 “생(生)을 없애는 것을 성제라 하며, 무생(無生)을 뛰어넘는 것도 성제라 한다. 또 생(生)과 인(因)을 없애는 것을 성제라 하고, 무생(無生)ㆍ무상(無相)을 뛰어넘는 것을 성제라 한다”고 설한 바와 같다. 니원에서 이것이 최초의 길잡이이며, 밖으로부터 전혜(轉慧)를 일으킨다. 이것이 성제의 총어언이다.[성제지를 마친다.]
028_1095_a_05L除凡夫法名性除非凡夫法所除亦名性除性者是泥洹復次種殖泥洹者名性除如阿毘曇所說除生名性除度無生亦名性除復除生因名性除度無生無相名性除於泥洹是初引路從外起轉慧此性除摠語言性除智已竟
성지(性智)는 간단없이 차례대로 현재 고를 알며, 현재 집을 끊으며, 현재 멸을 작증(作證)하며, 현재 도를 닦으며, 수다원도지(須陀洹道智) 및 일체 보리법을 일으킨다. 그 좌선인은 이때 적적으로 현재에서 유변(有邊)ㆍ무위(無爲)ㆍ제호계(醍醐戒)를 본다. 1찰나에 1지(智)로써 처음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게 4제를 분별한다. 고를 알아야 할 것[知]으로 분별하고, 집을 끊어야 할 것[斷]으로 분별하며, 멸을 작증해야 할 것[作證]으로 분별하고, 도를 닦아야 할 것[修]으로 분별하여 분별을 성취한다. 비유 게송에서 설하는 바와 같다.
028_1095_a_12L性智無間次第現知苦現斷集現作證滅現脩道生須陁洹道智及一切菩提法彼坐禪人於此時以寂寂見有邊無爲醍醐戒於一剎那以一非初非後分別四諦以知苦分別以斷集分別以作滅證分別以脩道分別成分別如譬喩偈所說

사람이 이 언덕을 버리고
배로 저 언덕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모든 것을 뛰어넘듯
배를 타는 자 번뇌를 없앤다.
028_1095_a_19L如人捨此岸
以船度彼岸
於彼度諸物
乘舡者除漏

배로 물을 건너는 것처럼, 처음도 아니고 나중도 아닌 한 찰나에 4사(事)를 짓는다. 이 언덕을 버리고 번뇌를 없애며, 저 언덕에 도달하고 사물을 뛰어넘는다. 이 언덕을 버리는 것과 같이 지혜로 고를 분별한다. 번뇌를 없애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분별하여 집을 끊는다. 저 언덕으로 건너는 것과 같이 작증하여 멸을 분별한다. 배로 사물을 뛰어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도를 닦고 분별한다.
028_1095_a_21L如船度水非初非後於一剎那作四事捨此岸除漏到彼岸度物如捨此岸如是智分別苦如除如是分別斷集如度彼岸如是作證分別滅如以船度物如是脩道分
028_1095_b_02L등(燈)에서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생기는 것처럼, 한 찰나에 처음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게 4사를 짓는다. 작은 등불이 타오르면서, 어둠을 없애고, 기름을 소비하고, 광명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태양에서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생기는 것처럼, 처음도 아니고 나중도 아닌 한 찰나에 4사를 짓는다. (태양은) 색을 드러나게 하고, 어둠을 없애고, 추위를 없애고, 광명을 일으킨다. (태양이) 색을 드러나게 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지혜로 고를 분별하며, 어둠을 없애는 것처럼 그와 같이 분별하여 집을 끊으며, 추위를 없애는 것처럼 그와 같이 작증하여 멸을 분별하며, 광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그와 같이 도를 닦아 분별한다. 태양처럼 그와 같은 성지(聖智)는 있다.
028_1095_b_03L如燈共生於一剎那不初不後作四事如小燈炷除闇令油消令光明如日共生非初非後於一剎那作四事令現色除闇令滅寒令起光明如令現色如是智分別苦如除闇如是分別斷集如令滅寒如是作證分別滅如令起光明如是脩道分別如日是聖智
【문】여실히 현재 고를 보아 고인 줄 알고, 집을 끊고, 멸을 작증하고, 도를 닦는 이 상(相)은 무엇인가? 만약 고를 보지 못하면 네 가지 전도가 생긴다. 이때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이 유변ㆍ무위ㆍ제호계를 적적으로 현재 보며, 처음도 아니고 나중도 아닌 1지로써 4제를 분별한다는 이 뜻은 무엇인가?
028_1095_b_10L如實現見苦知苦斷集脩道此相云何若不見苦四顚倒爾時如所說有邊無爲醍醐戒寂寂現見以一智非初非後分別四此義云何
【답】생멸지(生滅智)에서 이때 아직 고루(苦漏)를 보거나 여실히 모든 행의 과환을 보는 것을 성취하지 못하며, 모든 행의 상으로부터 마음을 일으켜 무행(無行)에서 도(度)를 성취한다. 이러한 까닭에 여실히 모든 행의 과환을 보며, 모든 행의 상으로부터 마음을 일으켜 무행에서 도(度)를 성취한다. 여기에서 고루를 보는데 최후에 다다른 까닭이다.
028_1095_b_14L於生滅智是時未成見苦滿及至如實見諸行過患從諸行相令起心於無行成度是故如實見諸行過患從諸行相以令起心於無行成度是處見苦漏到最後故
또 설하기를 만약 이와 같다면 적적으로, 성제지로 제(諦)의 분별을 성취한다. 성제지는 행상(行相)으로부터 일어나 무행(無行)으로 건너가는 것을 성취한다. 만약 성제지가 행상으로부터 일어나 무행에 이르는 것을 성취한다면 니원에 이르는 것을 성취한다. 오직 원인[因]에 집착하는 것이 그 일이다. 그 일에 집착함으로써 정심(定心)을 얻는다.
028_1095_b_18L說若如是以寂寂性除智成分別諦性除智者從行相起成度無行若性除智從行相起成度於無行成度於泥洹唯著因是其事以著事得定心
028_1095_c_02L만약 정을 얻지 못하면 사마타ㆍ비바사나를 일으키지 못하고, 또한 보리법의 원만도 얻지 못한다. 이리한 까닭에 성제지로써 제의 분별을 성취한다. 그 성제지로부터 간단없이 도지(道智)가 생기게 된다. 이때 니원정(泥洹定)을 얻는다. 마음이 정을 얻으면 사마타ㆍ비바사나를 일으키게 되며, 보리분법의 원만을 성취한다. 이러한 까닭에 오직 도지로 제의 분별을 성취한다. 마치 사람이 불타는 성으로부터 다리를 뻗어 문턱에 걸친 것과 같다.
028_1095_b_22L若不得定不生奢摩他毘婆舍那不得菩提法滿是故以性除智成分別諦從彼性除智無間道智成生此時得於泥洹定心得定成起奢摩毘婆舍那成滿菩提分法是故唯以道智成分別諦如人從燒城出跨門閫
성으로부터 이미 한 발이 나와 있어도 이때는 아직 출(出)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성제지는 그 행상으로부터 일어나 무행에 이르는 것을 성취한다. 이때는 아직 번뇌를 벗어났다고는 하지 않는다. 모든 법이 아직 원만하지 않은 까닭이다. 사람이 불타는 성으로부터 두 발이 이미 나온 것과 같은 때, 불타는 성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성제지가 간단없이 도지를 일으키는 것을 성취한 이때를 번뇌의 성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니, 모든 법이 원만한 까닭이다. 이러한 까닭에 성제지로 제의 분별을 성취한다.
028_1095_c_06L從城已出一腳是時未名出如是性除智從彼行相起成度無行是時未名度煩惱諸法未滿故如人從所燒城兩腳已出是時名出燒城如是性除智無閒成生道智起是時名從煩惱城出諸法滿故是故以性除智成分別諦
【문】제를 분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分別諦者何義
【답】4성제가 한 찰나에 화합한다고 설하는 것을 제를 분별하는 것이라 한다.
028_1095_c_12L四聖諦於一剎那說和合名分別諦
이때 도지(道智)는 화합의(和合依)의 뜻이고, 모든 근(根)은 평등을 이루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며, 힘[力]의 뜻이며, 승(乘)의 뜻이다. 보리분(菩提分)은 인의 뜻이며, 도분(道分)은 머물게 한다[令住]는 뜻이며, 염처(念處)는 승(勝)의 뜻이며, 정근은 편(便)의 뜻이며, 여의족은 실(實)의 뜻이며, 제(諦)는 불란(不亂)의 뜻이다. 사마타는 수관(隨觀)의 뜻이며, 비바사나의 뜻이며,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不相離]는 뜻이며, 쌍(雙)의 뜻이며, 부(覆)의 뜻이다. 계청정(戒淸淨)은 불란(不亂)의 뜻이다.
028_1095_c_13L於此時道智和合依義諸根成平等不動力義乘義菩提分因義道分令住念處勝義正勤便義如意足實義諦不亂義奢摩他隨觀義毘婆舍那不相離義雙義覆義戒淸淨不亂
심성(心性)은 정견(淨見)의 뜻이며, 견청정(見淸淨)의 뜻이며, 탈(脫)의 뜻이다. 해탈은 통달의 뜻이며, 명사(明捨)의 뜻이며, 탈단(脫斷)의 뜻이며, 멸지근(滅智根)의 뜻이며, 욕을 일으킨다[欲令起]는 뜻이며, 작의평등(作意平等)의 뜻이다. 촉(觸)ㆍ수(受)의 멸은 출리(出離)의 뜻이며, 현전(現前)의 뜻이다. 정(定)은 의(依)의 뜻이며, 염(念)은 진실의 뜻이며, 혜는 심승(深勝)의 뜻이며, 제호는 최후의 뜻이며, 니원은 최후평등의 뜻이다.
028_1095_c_19L心性淨見義見淸淨義脫義解脫通達義明捨義脫斷義滅智根義令起義作意平等義觸受滅出離義現前義定依義念眞實義慧深勝義醍醐最後義泥洹最後平等義
좌선인은 이와 같이 현재 알며, 이와 같이 현재 보고, 3결(結)을 끊으니, 소위 신견(身見)ㆍ의(疑)ㆍ계취(戒取) 및 그것에 상응하는 번뇌이다.
028_1095_c_23L坐禪人如是現智如是現見斷三結所謂身戒取及彼相應煩惱
028_1096_a_02L【문】무엇이 신견(身見)인가?
028_1096_a_02L云何身
【답】여기에서 법문을 듣지 못한 범부는 “색이 나[我]이다. 나는 색을 소유한다. 색은 나의 것[我所]이다. 색에 내가 있다. 수ㆍ상ㆍ행도 마찬가지며, 식이 나이다. 나는 식을 소유한다. 식은 나의 것이다. 식에 내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신견이다. 이 신견이 끊어지고 나면, 그것이 끊어진 까닭에 62견 또한 끊어진다. 신견을 처음으로 하는 것이 62견이다.
028_1096_a_03L於此無聞凡夫見色爲我我有色爲我所於色我如是受想行識爲我我有識識爲我所於識我此謂身見此身已斷彼斷故六十二見亦爲身見所初六十二見
【문】무엇이 의(疑)인가?
云何疑
【답】혹은 고에 대해, 혹은 집에 대해, 혹은 멸에 대해, 혹은 도에 대해, 혹은 불법승에 대해, 혹은 초변(初邊)에 대해, 혹은 후변(後邊)에 대해, 혹은 초후변에 대해 의혹을 품고, 또 인연으로 일어난 법에 대해 그가 의혹을 품는 것이다. 이것을 의라 하며, 그것 역시 끊는다.
028_1096_a_07L或於苦或於集或於滅或於道於佛法僧或初邊或後邊或初後邊或於因緣所起法彼疑惑此謂疑亦斷
【문】무엇이 계도(戒盜)인가?
云何戒盜
【답】계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갈애(渴愛)와 치(癡)이다. “나는 이 계로써, 이 행으로써, 이 고행으로써, 이 범행으로써, 나는 마땅히 천상에 오르리라. 나는 하나하나의 천처(天處) 모두에 태어날 것이다”고 하는 이것을 갈애계도라 한다. 이외에 사문ㆍ바라문이 계로써, 청정으로써, 청정계행으로써 그것을 이와 같이 보는 것을 치계도(癡戒盜)라 하며, 그것도 또한 끊는다.
028_1096_a_11L戒盜二種渴愛及癡我以此戒以此行以此苦行此梵行我當上天我皆當生一一天此謂渴愛戒盜從此外沙門婆羅以戒以淸淨以淸淨戒行彼如是此謂癡戒盜彼亦斷
【문】무엇이 그 일처주(一處住)의 번뇌인가?
028_1096_a_16L云何彼一處住煩惱
【답】그로 하여금 악취에 나아가게 하는 음욕ㆍ진에ㆍ어리석음, 이것을 그 일처주의 번뇌라 한다. 그것도 또한 끊는다. 이 사이에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고, 작증하여 향(向)을 성취한다. 아직 수다원을 얻지 못했다면 수다원향(須陀洹向)의 지(地) 혹은 제8지, 견지(見地), 정(定)에 머물며, 그 둘로부터 전혜(轉慧)를 일으킨다. 이것이 수다원도지(須陀洹道智)의 총어언이다.
028_1096_a_17L彼令往惡趣婬欲瞋恚此謂彼一處住煩惱亦斷於此間爲須陁洹果作證成向未得須陁洹住須陁洹向地或第八地或見地或定從兩起轉慧此須陁洹道智摠語言
028_1096_b_02L수다원은 간단없이 차례대로 3결을 끊는 까닭에 무위사(無爲事)를 이루며, 도(道) 등의 법과 다르지 않은 방편은 수다원의 과지(果智)ㆍ과심(果心)을 일으킨다. 그는 2생이나 3생을 간단없이 차례대로 후분으로 건너가고, 마음이 후분으로부터 일어나 도를 관하고, 과를 관하고, 니원을 관하며, 관하고 나서는 번뇌를 끊고, 나머지 번뇌를 관한다.
028_1096_a_21L須陁洹無閒次第三結斷故作無爲事與道等法無異方便起須陁洹果智果心或二或三生無閒彼次第度後分心從後分起觀道觀果觀泥洹觀已斷煩惱觀餘煩惱
이것을 수다원ㆍ불퇴법ㆍ정향(定向)ㆍ보리향ㆍ미래과ㆍ욕분별이라 한다. 이것은 세존의 가슴으로부터, 입으로부터, 법으로부터 생긴 법이 만드는 것이며, 법분(法分)을 얻고 물분(物分)과는 함께하지 않는다. 이것을 소위 견을 구족하고 잘 수행하여 성법(聖法)을 통달하고 제호의 문에 이르러 머무는 것이라 한다.
028_1096_b_03L此謂須陁洹不退法定向菩提向未來果欲分別是世尊胸生口生法生法所造得法分不與物分此謂見具足善脩行通達聖法至醍醐門住
견을 구족하여 이 오묘한 법에 이르고, 이 오묘한 법을 보고 나서 각지(覺智)를 성취하며, 각을 분명히 성취하고 나서는 법류(法流)의 성스러움에 들어 혜를 통달하고, 제호의 문을 열어 그곳에 머문다. 이러한 까닭에 이 게송을 설한다.
028_1096_b_07L見具足到此妙法見此妙法已覺智成就已覺明成就入法流聖通達慧開醍醐門住是故說此偈

지상에서의 한 국왕과
천당에서의 한 왕이
일체 세간을 다스리는 것보다
수다원과가 더 뛰어나다.
028_1096_b_10L於地一國王
於天堂一王
領一切世閒
須陁洹果勝

그 좌선인은 이 지(地)에 머물러 위로 정진을 계속한다. 사다함과(斯陀含果)를 증득하기 위하여 생멸을 처음으로 하는 견을 짓는다. 현재 관찰하는 것은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현재 수행하는 것도 앞에서의 견도(見道)와 같다. 모든 근(根)ㆍ력(力)ㆍ보리각(菩提覺)에 의지해 이와 같이 제를 분별한다. 그는 이와 같이 수행하여 멸로 향하며, 거친 욕[麤欲]ㆍ진에 및 그 일처주의 번뇌를 끊고, 그 길로부터 간단없이 사다함과1)를 작증한다.
028_1096_b_12L彼坐禪人於此地住於上作精進作斯陁含果證作見生滅所初現觀如初所說現脩行如已見道依諸根菩提如是分別諦彼如是修行滅斷麤欲瞋恚及彼一處住煩惱彼道無閒作證須陁洹果
그 좌선인은 이 지에 머물러 위로 정진을 계속한다.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하기 위하여 생멸을 처음으로 하는 견을 짓는다. 현재 보는 것은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현재 수행하는 것은 견도와 같다. 모든 근ㆍ력ㆍ보리각에 의지해 이와 같이 제를 분별한다. 그는 이와 같이 멸을 향해 미세한 욕[細欲]ㆍ진에 및 그 일처주의 번뇌를 끊고, 그 길로부터 간단없이 아나함과를 작증한다.
028_1096_b_18L彼坐禪人於此地住於上作精進爲作阿那含果證作見生滅爲初現見如初所說現脩行如見道依諸根菩提是分別諦彼如是向滅斷細欲瞋恚及彼一處住煩惱從彼彼道無閒作證阿那含果
028_1096_c_02L그 좌선인은 이 지에 머물러 위로 정진을 계속한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기 위하여 생멸을 처음으로 하는 견을 짓는다. 현재 보는 것은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현재 수행하는 것도 앞에서의 견도와 같다. 모든 근ㆍ력ㆍ보리각에 의해 이와 같이 제를 분별한다. 그는 이와 같이 색욕(色欲)ㆍ무색욕(無色欲)을 끊는 것을 향하고, 만(慢)ㆍ조(調)ㆍ무명(無明)과 나머지 번뇌를 남김없이 끊는다.
028_1096_b_24L彼坐禪人於此地住於上作精進爲作證阿羅漢果作見生滅爲初現見如初所說現脩行如己見依諸根菩提如是分別諦如是向斷色欲無色欲慢調無明煩惱無餘斷
그것으로부터 좌선인은 아라한과를 작증하고, 그 도를 관하며, 과니원(果泥洹)을 관하며, 단번뇌(斷煩惱)를 관한다. 그 비구는 아라한을 이루며, 누(漏)가 멸하며, 짓는 바가 확립되고, 짐을 내려놓고, 묘의(妙義)에 도달해 유결(有結)을 끊으며, 정지(正智)로 해탈하여 5분ㆍ6분을 벗어나며, 일수호(一守護)를 성취하고, 죽음에 얽매이지 않고, 나머지 제(諦) 등의 멸을 없애며, 믿음으로 무탁(無濁)을 찾으며, 의신행(猗身行)을 사유하고, 선해탈심(善解脫心)과 선해탈혜(善解脫慧)로 범행이 이미 섰으며, 장부(丈夫)ㆍ최승장부(最勝丈夫)가 되며, 제1의 소득을 얻는다.
028_1096_c_06L從彼坐禪人作證阿羅漢果彼觀道觀果泥洹觀斷煩惱丘成阿羅漢滅漏所作以立置擔妙義斷有結正智解脫離五分六分成就一守護不爲死所繫除餘諦等信覓無濁思惟猗身行善解脫善解脫慧梵行已立成丈夫最勝丈得第一所得
이를 진에를 제거한 자[除瞋恚者]ㆍ저 언덕으로 건너간 자[度岸者]ㆍ번뇌를 벗어난 자[離煩惱者]ㆍ결박과 장애가 없는 자[無結碍者]ㆍ성인으로 바뀐 자[得聖飜者]ㆍ짐을 제거한 자[除擔者]ㆍ상응하지 않는 자[不相應者] ㆍ사문인 자[沙門者]ㆍ바라문인 자(婆羅門者)ㆍ이미 목욕한 자[已浴者]ㆍ위타2)를 건넌 자[度韋陀者]ㆍ최상의 바라문인 자[最上婆羅門者]ㆍ아라한인 자[阿羅漢者]ㆍ건너간 자[度者]ㆍ벗어난 자[說者]ㆍ굴복시킨 자[伏者]ㆍ고요한 자[寂寂者]ㆍ고요하게 한 자[令寂者]라 한다. 이것이 아라한의 총어언이다.
028_1096_c_13L此謂除瞋恚者度岸離煩惱者無結碍者得聖翻者擔者不相應者沙門者婆羅門者浴者度韋陁者最上婆羅門者阿羅漢者度者脫者伏者寂寂者令寂者是阿羅漢摠語言
여기에서 만약 수다원이 그 생(生)으로부터 더욱 위로 나아가 정진을 하지 않으면 세 종류로 견을 얻는다. 세 종류의 수다원이란 1생ㆍ7생ㆍ가가(家家)의 수다원이다.
028_1096_c_18L於是若須陁洹其生於上不更作精進以三種得見三種須陁洹一七生家家須陁洹
한 번 수다원에 태어나 거기서 둔한 근기는 7생을 이루며, 중근은 가가를 이루며, 예리한 근기는 1생을 이룬다. 7생이란 일곱 차례 천당을 가고 오며 여기에서 고변(苦邊)을 짓는다. 가가수다원은 두 차례 혹은 세 차례 그 집에 가며 가고 나서 고변을 짓는다.
028_1096_c_20L生須陁洹於是鈍根成七生中根成家家利根成一生七生者七時往天堂來此作苦邊家家須陁洹或二時或三時往彼家已往作苦邊
028_1097_a_02L1생 수다원은 이미 인간으로 태어나 고변을 짓는다. 만약 사다함인 사람이 그 생으로부터 위로 나아가 정진을 하지 않으면, 한 차례[一時] 이 세상에 와 고변을 짓는다. 만약 아나함인 사람이 그 생에서 위로 정진을 하지 않으면 이로부터 결국 정거(淨居)에 태어나며, 그는 모든 근이 수승하여 5종으로 견을 얻고, 5아나함을 이룬다. 즉 중간반열반(中間般涅槃)ㆍ생반열반(生般涅槃)ㆍ불행반열반(不行般涅槃)ㆍ행반열반(行般涅槃)ㆍ상류왕아가니타천(上流往阿迦尼吒天)이다.
028_1096_c_24L一生須陁洹已令生人有作苦邊若斯陁含從其生於上不作精進一時來此世作苦邊若阿那含從其生於上不作精從此終生淨居彼由諸根勝以五種得見成五阿那含中間般涅槃生般涅不行般涅槃行般涅槃上流往阿迦尼咤天
여기에서 중간반열반이란 도착지에 아직 이르지 않은 무간중간(無間中間)에서 수명시(壽命時)에 의지하여 나머지 결사(結使)를 없애기 위해 성도(聖道)를 일으키게 한다. 생반열반이란 중(中)3)의 수명을 초월해 나머지 결사를 없애기 위해 태어나고 나서 성도(聖道)를 일으키게 한다. 불행반열반이란 특별한 수행[異行] 없이 나머지 결사를 없애기 위해 성도를 일으키게 한다. 행반열반이란 특별한 수행이 있고4) 나머지 결사를 없애기 위해 성도를 일으키게 한다.
028_1097_a_08L於是名中間般涅槃者未至所著無閒中間依壽命時爲除殘結使起聖道生般涅槃者越中壽命爲除殘結使已生令起聖道不行般涅槃者異行爲除殘結使令起聖道行般涅槃無異行爲除殘結使令起聖道
상류아가니타천은 불번천(不煩天)으로부터 마침내 불열천(不熱天)로 가며, 불열천로부터 마침내 선견천(善見天)으로 가며, 선견천으로부터 마침내 선현천(善現天)으로 가며, 선현천으로부터 마침내 아가니타천에 태어나며, 아가니타에서 나머지 결사를 없애기 위해 성도를 일으킨다
028_1097_a_13L上流阿迦尼咤天從不煩終往不熱從不熱終往善見從善見終往善現從善現終生阿迦尼咤天於阿迦尼咤爲除殘結使起聖道
여기에서 불번천은 1만 겁의 수명이며, 불열천은 2만 겁의 수명이며, 선견친은 4만 겁의 수명이며, 선현천은 8만 겁의 수명이며, 아가니타천은 16만 겁의 수명이다. 4지에서는 각각 5인(人)을 이루며, 아가니타천에서는 4인으로 상류인(上流人)은 없다. 이와 같이 그것은 24인을 이룬다.
028_1097_a_17L於是不煩天萬劫壽命不熱天二萬劫壽命善見天四萬劫壽命善現天八萬劫壽命阿迦尼咤天十六萬劫壽命於四地成五五人於阿迦尼咤四人無上流人如是彼成二十四人
아라한은 이미 모든 번뇌를 끊어 나머지가 없는 까닭에 후유(後有)의 인(因)이 성립되지 않는다. 인이 없는 까닭에 아라한은 이미 수명을 벗어나며, 행이 멸하고, 이 고가 끊어지고, 나머지 고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고변(苦邊)이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게송을 설한다.
028_1097_a_22L阿羅漢已斷一切煩惱無餘故不成後有因因無故阿羅漢已免壽形命行滅此苦斷不起餘苦此謂苦邊是故說此偈
028_1097_b_02L
비유하면 추(槌)로 철을 치며
화성(火星)이 물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이
차례대로 적적(寂寂)에 이르며
그 가는 곳을 가히 알지 못한다.
028_1097_b_02L譬如槌打鐵
火星流入水
次第成寂滅
彼趣不可知

이와 같이 올바로 해탈하고
이미 욕망에 속박된 번뇌를 끊고
움직임이 없는 즐거움에 이르면
그 경지도 가히 알지 못한다.
028_1097_b_04L如是正解脫
已度欲縛漏
至於無動樂
彼趣不可知

【문】여기에 대해 어떤 스승은 “차례대로 도를 닦으며, 차례대로 번뇌를 끊으며, 차례대로 제를 분별한다”고 설하였다.
028_1097_b_05L於此有師說次第脩道次第斷煩次第分別諦
【답】혹은 12로써, 혹은 8로써, 혹은 4로써 도지(道智)는 과를 작증한다.
028_1097_b_07L或以十二或以八或以四道智作證果
【문】무엇이 이 견(見)에 상응하지 않는 것인가?
028_1097_b_08L云何於此見不相應
【답】만약 차례대로 수행하고, 차례대로 번뇌를 끊는다면 이러한 까닭에 차례대로 작증한다. 이로써 차례대로 과(果)를 작증하고 가히 즐겨야 한다. 왜냐하면, 도과(道果)와 상응하는 까닭이다. 만약 이와 같이 가히 즐긴다면 하나의 수다원과를 성취하는가. 만약 이와 같이 가히 즐기지 못한다면 차례대로 도를 닦고, 차례대로 번뇌를 끊는 자 또한 그렇다.
028_1097_b_09L若次第脩行次第斷煩惱是故次第作證以是次第作證果可與道果相應故若如是可樂一須陁洹果者成耶若如是不可樂次第脩道次第斷煩惱者亦然
또 두 번째 과환이 있다. 만약 고를 보고, 고를 끊어야할 것으로 봄으로써 번뇌가 단멸하는 것을 가히 즐긴다면, 이러한 까닭에 이미 고를 보고 고를 끊어야할 것으로 봄으로써 번뇌가 이미 끊어져 4분(分)의 수다원과를 작증하며, 작증하여 마땅히 즐겨야 한다. 방편을 성취한 까닭이다.
028_1097_b_13L復次第二若以見苦見苦所斷煩惱滅斷可樂是故已見苦見苦所斷煩惱已斷證四分須陁洹果作證應可樂方便成就故
만약 이와 같이 가히 즐긴다면 4분의 수다원을 작증하며 4분의 칠시생(七時生)ㆍ4분의 가가생(家家生)ㆍ4분의 일생(一生)ㆍ4분의 과에 머무르지만 여기에 상응하지 않는다. 만약 이와 같이 가히 즐기지 않는다면 고를 보고, 고를 끊어야할 것으로 봄으로써 번뇌가 끊어지는가. 이것은 상응하지 않는다.
028_1097_b_17L若如是可樂作證四分須陁四分七時生四分家家生四分一生四分住於果於此不相應若如是不可樂以見苦見苦所斷煩惱斷耶不相應
또 세 번째 과환이 있다. 만약 고를 보고, 고를 끊어야할 것으로 봄으로써 번뇌가 끊어지는 것이 즐기는 바라면, 현재 고를 봄으로써 4분의 수다원도주(須陀洹道)에 머물고 4분의 신행(信行)ㆍ4분의 법행(法行)을 성취해 마땅히 즐겨야 하며, 나머지 3제는 보지 않는다.
028_1097_b_21L復次第三過若以見苦見苦所斷煩惱斷者所樂是以現見苦分須陁洹道住四分信行四分法行應可樂不見餘三諦
028_1097_c_02L만약 이 즐기는 바가 4수다원도에 머물고, 4신행을 성취하고, 4법행을 성취하는 것이라면 여기에 상응하지 않는다. 만약 이와 같이 가히 즐기지 않으면, 고를 보고 고를 끊어야할 것으로 봄으로써 번뇌가 끊어진다.
028_1097_b_24L若此所樂住於四須陁洹道成四信行成四法行於此不相應若如是不可樂以見苦見苦所斷煩惱斷
또 네 번째 과환 역시 상응하지 않는다. 만약 현재 도를 보고, 향(向)을 이루어, 도를 봄으로써 과에 머무르는 것을 성취하면, 이것은 가히 즐겨야 한다. 이로써 현재 고를 보고, 향을 이루며, 보는 까닭에 과에 머무는 것을 성취하니, 마땅히 즐겨야 한다. 왜냐하면, 1종을 보는 까닭이다.
028_1097_c_04L復次第四過亦不相應若現見道成向以見道成住果此可樂以是現見苦成向以見故成住果應可樂見一種故
만약 이와 같이 가히 즐긴다면 향 및 과에 머무르는 것은 많은 과환을 이룬다. 여기에서 이것은 상응하지 않는데 만약 이와 같이 가히 즐기지 않는다면, 현재 도를 보고 증(證)을 이루며, 도를 봄으로써 과에 머무는 것을 성취한다. 그런데 이것 또한 상응하지 않는다.
028_1097_c_07L若如是可樂向及住果成多過於此此不相應如是不可樂現見道成證以見道成住於果此亦不相應
또 다섯 번째 과환이 있다. 만약 도를 봄으로써 과를 작증하고, 아직 고의 집(集)과 멸(滅)을 보지 못하고 과의 작증을 이루어 가히 즐기는 자는 고집과 고멸을 의미 없는 것으로 본다.
028_1097_c_10L復次第五過以見道作證果未見苦集滅成作證果可樂者以見苦集苦滅是無義
또 여섯 번째 과환이 있다. 만약 12나 8이나 4의 도지(道智)로써 수다원과를 작증하고, 가히 즐기는 자는 이로써 12나 8이나 4의 수다원과를 작증하고 마땅히 가히 즐기는 바를 성취하면 도지가 과가 없음을 이룬다.
028_1097_c_12L次第六過若以十二或以八或四道智作證須陁洹果可樂者以是作證或十二或八或四須陁洹果應成可樂者成道智無果
만약 이와 같이 지(地)를 가히 즐기면 과환을 이룸으로써 여기에서 이것은 상응하지 않는다. 만약 이와 같이 즐긴다면 12나 8이나 4의 도지가 수다원과를 작증하는가. 이것도 또한 상응하지 않는다.
028_1097_c_16L若如是可樂地以成過於此此不相應若如是可或以十二或以八或以四道智作證須陁洹果者耶此亦不相應
또 일곱 번째 과환이 있다. 만약 12나 8이나 4의 도지가 1수다원과를 일으키는 것을 가히 즐긴다면, 이것도 또한 상응하지 않는다. 다사(多事)가 1과(果)를 일으키는 것은 많은 암바과(菴婆菓)가 1과(果)를 생기게 하는 것과 같다.
028_1097_c_19L復次第七過若或十二若八若四道智令起一須陁洹果者可樂此亦不相應多事令起一果如多菴婆菓令生一果
028_1098_a_02L【문】만약 1지(智)로써 앞도 없고 뒤도 없는 한 찰나에 4제의 분별을 성취하면, 1지는 마땅히 4견을 이루며 사(事)를 취해야 할 것이다. 만약 고를 봄으로써 4제를 보는 것을 성취하면, 4제는 고제가 된다. 만약 이 두 뜻이 무(無)라고 한다면 이것은 상응하지 않는다. 한 찰나에 1지로써 앞도 없고 뒤도 없이 4제의 분별을 성취한다.
028_1097_c_22L以一智一剎那無前無後成分別四一智應成四見取事若以見苦成見四諦四諦成苦諦若此二義無不相應一剎那以一智無前無後成分別四諦
【답】1지가 4견을 이루거나 사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4제가 고제로 되는 것도 아니다. 좌선인은 오직 처음부터 4제의 갖가지 상과 1상을 미리 분별하는 까닭이다.
028_1098_a_04L非一智成四見取事非四諦成苦諦坐禪人唯從初四諦種種相一相以前分別故
그때 성행(聖行)의 고제를 이와 같은 상으로 통달함으로써, 사제여기상(四諦如其相)의 통달을 성취한다. 4제는 여(如)의 뜻으로 1상을 이루니, 5음의 종종상을 1상으로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다. 색음을 무상하다고 보고 나서 5음의 무상을 보고, 또 항상 무상을 보아 색음을 5음이라 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입(入)ㆍ계(界)도 이와 같이 이것을 알아야 한다.
028_1098_a_06L爾時以聖行苦諦如是相以通達成通達四如其相四諦以如義成一相如五陰種種相一相以前分別爲色陰無常已見五陰無常亦常見無常色陰爲五陰如是入界如是於此可
여기에서 산법(散法)을 알아야 하니, 이와 같은 관(觀)ㆍ각(覺)ㆍ희(喜)ㆍ수(受)ㆍ지(地)ㆍ근(根)ㆍ해탈(解脫)ㆍ번뇌(煩惱)ㆍ정수이정(正受二定)이다.
028_1098_a_12L於是散法可知如是觀覺喜受地解脫煩惱正受二定
여기에서 관은 2관이니, 선관(禪觀)과 조관(燥觀)이다.
028_1098_a_13L於是觀者二禪觀燥觀
무엇이 선관인가.
云何禪觀
이미 정을 얻어 정의 힘으로 개(蓋)를 조복하고, 명비(名比)로 색을 분별하고, 선분(禪分)을 관견(觀見)한다. 사마타를 처음으로 하여, 비바사나를 닦는다. 조관이란 분별의 힘으로 개를 조복하고, 색비(色比)로 명을 분별하고, 모든 행(行)을 관견한다. 비바사나를 처음으로 하여 사마타를 수행한다.
028_1098_a_14L已得定定力伏蓋以名比分別色觀見禪分奢摩他爲初脩毘婆舍那燥觀者分別力伏蓋以色比分別名見觀諸毘婆舍那爲初脩行奢摩他
각(覺)이란 조관이다. 초선(初禪) 및 관자(觀者), 관도(觀道) 및 과(果)는 유각(有覺)을 이룬다. 3선에서 비바사나 내지 성제(性除)는 유각을 이룬다. 도(道) 및 과(果)는 무각을 이룬다. 각지(覺地)에서 도는 8분의 도를 이루며, 무각지에서 7분은 사유(思惟)를 제외한 것이다.
028_1098_a_18L覺者燥觀初禪及觀者觀道及果成有覺於三禪毘婆舍那乃至性除成有覺道及果成無覺於覺地道成八分道於無覺地七分除思惟
028_1098_b_02L희(喜)란 조관으로 고행을 얻고, 비바사나(毘婆舍那)와 상사지(相似智)를 구족하고, 무고(無苦)를 이루며, 성제(性除)를 일으키며, 도 및 과는 함께 희를 일으킨다. 조관은 낙행(樂行)의 구족을 얻으며, 제2선에서 비바사나 및 도ㆍ과는 함께 희를 일으킨다. 제3선, 제4선에서 비바사나, 도 및 과는 함께 희를 일으키지 않는다. 희지에서 도 및 과는 7각분을 일으킨다. 무희지(無喜地)에서 6보리각은 희보리각을 제외한 것이다.
028_1098_a_22L喜者燥觀得苦行具足毘婆舍那相似智成無苦性除道及果共起喜燥觀得樂行具足於二禪毘婆舍那及道果共起喜於第三禪於第四禪毘婆舍那道及果不共起喜於喜地道及果七覺分於無喜地六菩提覺除喜菩提覺
수(受)란 조관으로 고행을 얻고, 비바사나 내지 상사지를 구족하여 함께 사(捨)를 일으킨다. 성제의 도 및 과는 함께 희를 일으킨다. 조관은 낙행의 구족을 얻으며, 제3선에서 비바사나의 도ㆍ과는 함께 희를 일으킨다. 제4선에서 비바사나의 도ㆍ과는 함께 사를 일으킨다.
028_1098_b_05L受者燥觀得苦行具足毘婆舍那乃至相似智共捨起性除道及果共喜燥觀得樂行具足於三禪毘婆舍那道果共喜起於第四禪毘婆舍那道果共捨起
지(地)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견지(見地)와 사유지(思惟地)이다. 여기에서 수다원도는 견지이다. 나머지 3도와 4사문과는 사유지이다. 일찍이 보지 못하다가 지금 보는 것을 견지라 한다.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닦는 것을 사유지라 한다. 또 두 가지 지가 있으니, 학지(學地)와 불학지(不學地)이다. 여기에서 4도와 3사문과(沙門果)는 학지이다. 아라한과는 무학지이다.
028_1098_b_10L地者二地見地思惟地於是須陁洹道見地餘三道四沙門果思惟地未嘗見今見名見地如是見如是脩是思惟地復次二地學地不學於是四道三沙門果學地阿羅漢無學地
근(根)이란 3출세간의 근이 있다. 즉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내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근[未知我當知根]과 이미 알고 있는 근[已知根], 완전히 안 근[知已根]이다. 여기에서 수다원의 도지는 처음엔 모르다가 지금 아는 것으로 미지지(未知智)를 이룬다. 3도지와 3과지는 이지법(已知法)이다. 안다는 것을 다시 아는 근[更知知根]이란 아라한의 과지로 다른 것은 없다. 이지법을 아는 것이 이지근이다.
028_1098_b_15L根者三出世閒根未知我當知根已知根知已根於是須陁洹道智初未知今知者成未知智三道三果智已知法更知知根阿羅漢果智無餘已知法知者已知根
해탈에는 세 가지 해탈이 있으니, 무상해탈(無相解脫)ㆍ무작해탈(無作解說)ㆍ공해탈(空解脫)이다. 여기서 도상사지(道相似智)는 상(相)을 만들지 않으므로 이것이 무상해탈이다. 원(願)을 만들지 않으므로 이것이 무작해탈이다. 집착하지 않으므로 이것이 공해탈이다. 또 이 3해탈은 관견(觀見)으로 종종도를 이루며, 득(得)으로 일도(一道)를 이룬다.
028_1098_b_19L解脫三解脫無相解脫無作解脫空解於是道相似智不作相是無相解不作願是無作解脫不作執是空解脫復次此三解脫以觀見成於種種道以得成於一道
【문】무엇이 관견으로 종종도를 이루는 것인가?
028_1098_b_24L云何以觀見成於種種道
028_1098_c_02L【답】이미 무상(無常)을 관견함으로써 무상해탈을 이룬다. 고(苦)를 관견함으로써 무작해탈을 이룬다. 무아(無我)를 관견함으로써 공해탈을 이룬다.
028_1098_c_02L已觀見無常成無相解以觀見苦成無作解脫以觀見無成空解脫
【문】무엇이 무상을 관견함으로써 무상해탈을 이루는 것인가?
028_1098_c_04L云何以觀見無常成無相解脫
【답】무상으로써 현재 작의하여 모든 행을 소멸함으로써 마음을 일으켜 다수의 해탈을 이루고, 신근(信根) 및 4근을 얻는다. 그 종류에서 여실하게 그 상(相)을 알면 그 종류의 일체 모든 행은 무상(無常)하게 일어나는 것이 된다. 이로써 상(相)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켜 상의 행으로부터 지(智)가 생기면 상으로부터 마음이 일어나 무상(無相)으로 마음이 초월하며, 무상해탈로써 몸이 해탈을 얻는다. 이와 같이 무상을 관함으로써 무상해탈을 성취한다.
028_1098_c_05L以無常現作意以滅諸行起心成多解脫得信根及四根種類如實智相彼種類一切諸行成無常起令起相怖畏從相行生智相心起於無相心越以無相解脫身得脫如是以觀無常成無相解脫
【문】무엇이 고를 관견함으로써 무작해탈을 이루는 것인가?
028_1098_c_10L云何以觀見苦成無作解脫
【답】고로써 현재 작의하여 모든 행을 두려워함으로써 마음을 일으켜 마음에 많은 적적(寂寂)을 이루며, 정근(定根) 및 4근을 얻는다. 그 종류에서 여실하게 그 생(生)을 알면 그 종류의 일체 모든 행은 고로 보이게 된다. 이렇게 생을 두려워함으로써 생의 지[生智]를 일으키면 생으로부터 마음이 일어나 무생(無生)으로 마음이 초월하며, 무작해탈로써 몸이 해탈을 얻는다. 이와 같이 고를 관견함으로써 무작해탈을 성취한다.
028_1098_c_11L苦現作意以怖畏諸行令起心成心多寂寂得定根及四根彼種類如實知生以彼種類一切諸行成苦所見以怖畏生令起生智從生心起於無生心越以無作解脫身得脫如是以觀見苦成無作解脫
【문】무엇이 무아를 관견함으로써 공해탈을 이루는 것인가?
028_1098_c_17L云何以觀見無我成空解脫
028_1099_a_02L【답】무아로써 현재 작의하여 공으로써 모든 행을 일으키며, 마음에 다수의 염오(厭惡)를 성취해 혜근(慧根) 및 4근을 얻는다. 그 종류에서 여실하게 그 상(相)과 생(生)을 알면 그 종류의 일체 모든 법이 무아로 보이게 된다. 이렇게 두려움으로써 상과 생을 일으키면 상과 생에 의지해 오직 지(智)가 생겨나고, 상과 생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게 되고, 무상 무생의 멸니원심(滅泥洹心)으로 초월해 공해탈로써 몸이 해탈을 얻는다. 이와 같이 무아를 관견함으로써 공해탈을 성취한다. 이와 갈이 이 3해탈은 관으로써 종종도를 이룬다.
028_1098_c_18L以無我現作意空令起諸行心成多厭惡得慧根及四根彼種類如實知相及生以彼種類一切諸法成無我可見以怖畏令起相及生依相及生智唯起從相及生心成離於無相無生滅泥洹心越以空解脫身得脫如是以觀見無我成空解脫如是此三解脫以觀成於種種道
【문】3해탈을 얻음으로써 1도를 이룬다는 것은 무엇인가?
云何以得三解脫成於一道
【답】이미 무상해탈을 얻었다면 3해탈을 얻은 것이 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상으로써 그 마음에 해탈을 얻는다. 해탈하더라도 그가 이미 짓고[作], 그것에 집착[執]하는 까닭에 그는 이미 무작해탈을 얻고 3해탈을 이루어 얻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지음으로써 그 마음이 해탈을 얻고, 해탈함으로써 그는 상(相)과 집착[執]으로써 공해탈을 얻으며, 3해탈도 얻는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집으로써 마음에 해탈을 얻으면, 해탈로써, 상으로써, 지음으로써 이와 같이 이미 3해탈을 얻고, 1도를 이룬다.
028_1099_a_03L已得無相解脫成得三解脫何故人以無相其心得脫雖解脫彼已作以執其已得無作解脫三解脫成所何故以作其心得脫以解脫彼以相以執得空解脫三解脫亦得何故其以執心得脫以解脫以相以作是已得三解脫成於一道
【문】해탈과 해탈문은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028_1099_a_10L解脫者脫門者何差別
【답】오직 그 도지(道智)로써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 한다. 그로써 제호(醍醐)의 문으로 들어간다는 뜻에서 해탈문이라 한다. 또 해탈은 오직 도지이며, 그 니원이 되는 일[事]을 해탈문이라 한다.
028_1099_a_11L唯彼道智從煩惱名解脫以入醍醐門義名解脫門復次解脫者唯道智彼事爲泥洹謂解脫門
번뇌는 134번뇌이다. 즉 3불선근(不善根)ㆍ3멱(覓)ㆍ4루(漏)ㆍ4결(結)ㆍ4류(流)ㆍ4액(厄)ㆍ4취(取)ㆍ4악취행(惡趣行)ㆍ5간(慳)ㆍ5개(蓋)ㆍ6쟁근(諍根)ㆍ7사(使)ㆍ세간 8법[世間八法]ㆍ9만(慢)ㆍ10번뇌처(煩惱處)ㆍ10불선업도(不善業道)ㆍ10결(結)ㆍ10사변(邪邊)ㆍ12전도(顚倒)ㆍ12불선심기(不善心起)이다.
028_1099_a_14L煩惱者一百三十四煩惱是三不善根三覓四漏四結四流四取四惡趣行五慳五蓋六諍根七使世閒八法九慢十煩惱處十不善業道十結十邪邊十二顚倒十二不善心起
여기에서 3불선근은 탐(貪)ㆍ진(瞋)ㆍ치(癡)이다. 이 셋에서 진은 2도(道)로써 엷어지며, 아나함에 이르러 남김없이 멸한다. 탐ㆍ치는 3도로써 엷어지며, 아라한도로써 남김없이 멸한다.
028_1099_a_19L於是三不善根者於此三瞋者以二道成薄以阿那含無餘滅貪癡者以三道成薄以阿羅漢道無餘滅
3멱은 욕멱(欲覓)ㆍ유멱(有覓)ㆍ범행멱(梵行覓)이다. 이 셋에서 범행멱은 수다원도로써 남김없이 멸하고, 욕멱은 아나함도로써 멸학, 유멱은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a_22L三覓者欲覓有覓梵行於此三中梵行覓者以須陁洹道無餘滅欲覓者以阿那含道滅有覓以阿羅漢道滅
028_1099_b_02L4루란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견류(見漏)ㆍ무명루(無明漏)이다. 여기에서 견루는 수다원도로써 멸하고, 욕루는 아나함도로써 멸하며, 유루ㆍ무명루는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b_02L四漏者欲漏有漏無明漏於此見漏者以須陁洹道欲漏者以阿那含道滅有漏無明漏者以阿羅漢道滅
4결이란 탐욕신결(貪欲身結)ㆍ진에신결(瞋恚身結)ㆍ계도신결(戒盜身結)ㆍ차제집신결(此諦執身結)이다. 여기서 계도신결ㆍ차제집신결은 수다원도로써 멸하며, 진에신결은 아나함도로써 멸하며, 탐신결은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b_05L四結者貪欲身瞋恚身結戒盜身結此諦執身結於此戒盜身結者此諦執身結以須陁洹道滅瞋恚身結以阿那含道滅貪身結以阿羅漢道滅
4류는 욕류(欲流)ㆍ유류(有流)ㆍ견류(見流)ㆍ무명류(無明流)이다.
028_1099_b_09L四流者欲流有流見流無明流
4액은 욕액(欲厄)ㆍ유액(有厄)ㆍ견액(見厄)ㆍ무명액(無明厄)이다.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이 멸한다.
028_1099_b_10L四厄者欲厄有厄見厄無明厄如初所說滅
4취는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취(戒取)ㆍ아어취(我語取)이다. 여기서 3취는 수다원도로써 멸하며, 욕취는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b_11L四取者見取戒取我語取於此三取以須陁洹道滅欲取以阿羅漢道滅
4악취행은 욕악취행(欲惡趣行)ㆍ진악취행(瞋惡趣行)ㆍ포외악취행(怖畏惡趣行)ㆍ치악취행(癡惡取行)이다. 이 넷은 수다원도로써 멸한다.
028_1099_b_13L四惡趣行欲惡趣行瞋惡趣行怖畏惡趣癡惡趣行此四以須陁洹道滅
55)간은 주처간(住處慳)ㆍ가간(家慳)ㆍ이양간(利養慳)ㆍ색간(色慳)ㆍ법간(法慳)이다. 이 다섯은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028_1099_b_15L慳者住處慳家慳利養慳色慳法慳此五以阿那含道滅
5개는 욕욕(欲欲)ㆍ진에(瞋恚)ㆍ해태수면조(懈怠睡眠調)ㆍ만(慢)ㆍ의(疑)이다. 여기서 의는 수다원도로써 멸하며, 욕욕ㆍ진에ㆍ만은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해태와 조는 아라한도로써 멸하며, 수면은 색을 따른다.
028_1099_b_17L五蓋者欲欲懈怠睡眠調慢疑於此疑者以須陁洹道滅欲欲瞋恚以阿那含道懈怠調以阿羅漢道滅睡眠隨色
6쟁근은 분(忿)ㆍ부(覆)ㆍ질(嫉)ㆍ첨(諂)ㆍ오락(惡樂)ㆍ견촉(見觸)이다. 여기에서 첨ㆍ오락ㆍ견촉은 수다원도로써 멸하며, 분ㆍ부ㆍ질은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028_1099_b_20L六諍根者忿惡樂見觸於此惡樂見觸以須陁洹道滅忿以阿那含道滅
028_1099_c_02L7사는 욕염사(欲染使)ㆍ진에사(瞋恚使)ㆍ만사(慢使)ㆍ견사(見使)ㆍ의 사(疑使)ㆍ유욕사(有欲使)ㆍ무명사(無明使)이다 여기에서 견사와 의사는 수다원도로써 멸한다. 욕염사와 진에사는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만사ㆍ유욕사ㆍ무명사는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b_23L七使者欲染使瞋恚使慢使見使疑使有欲使無明使見使疑使以須陁洹道滅欲染使瞋恚使以阿那含道滅慢使有使明使以阿羅漢道滅
세간 8세법은 이(利)ㆍ쇠(衰)ㆍ훼(毁)ㆍ예(譽)ㆍ칭(稱)ㆍ기(譏)ㆍ고(苦)ㆍ락(樂)이다. 여기에서 4불애처(不愛處)의 진에는 아나함도로써 멸하고, 4애처(愛處)의 사(使)는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c_04L世閒八世法者於此四不愛處瞋恚以阿那含道滅於四愛處使阿羅漢道滅
9만은 그가 훌륭한데 내가 훌륭하다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 훌륭한 것과 내가 같다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 훌륭한 것보다 내가 아래라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 동등한 것보다 내가 훌륭하다6)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 동등한 것과 내가 동등하다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 동등한 것보다 내가 아래라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 하열한 것보다 내가 훌륭하다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 하열한 것과 내가 같다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 하열한 것보다 내가 하열하다고 교만을 일으키는 것이다. 9만은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c_07L九慢者從彼勝我勝生與勝我等生慢從勝我下生慢等我等生慢從等我下生慢從下我勝生慢從下我等生慢從下我下生九慢者以阿羅漢道滅
10뇌처는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견(見)ㆍ의(疑)ㆍ해태(懈怠)ㆍ조(調)ㆍ무참(無慙)ㆍ무괴(無愧)이다. 여기서 견ㆍ의는 수다원도로써 멸하며, 진에는 아나함도로써 멸하며, 나머지 7은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c_11L十惱處者懈怠調無慚無愧疑以須陁洹道滅瞋恚以阿那含道滅餘七以阿羅漢道滅
10뇌처는 다음과 같다. 이 사람이 아(我)에 대하여 비의(非義)를 이미 짓고, 현재 지으며, 앞으로 지음으로써 번뇌를 일으킨다. 아소(我所)를 애념하는 사람이 그 비의를 이미 짓고, 현재 지으며, 앞으로 지음으로써 번뇌를 일으킨다. 아소를 애념하지 않는 사람이 비처(非處)를 이미 짓고, 현재 지으며, 앞으로 지음으로써 번뇌를 일으킨다. 10뇌처는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028_1099_c_14L十惱處此人於我已作現作當作非義生我所愛念人彼人已作現作當作其非義生惱我所不愛念人彼人已作現作當作者於非處生惱十惱處以阿那含道滅
10불선업도는 살생(殺生)ㆍ불여취(不與取)ㆍ사행(邪行)ㆍ망어(妄語)ㆍ악구(惡口)ㆍ양설(兩舌)ㆍ기어(綺語)ㆍ탐(貪)ㆍ진(瞋)ㆍ사견(邪見)이다. 여기서 살생ㆍ불여취ㆍ사행ㆍ망어ㆍ사견은 수다원도로써 멸한다. 악구ㆍ양설ㆍ진은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기어ㆍ탐은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c_19L十不善業道者殺生不與取邪行妄語惡口兩舌綺語邪見於此殺生不與取邪行妄語以須陁洹道滅惡口兩舌以阿那含道滅綺語以阿羅漢道滅
028_1100_a_02L10사는 욕염사(欲染使)ㆍ진에사(瞋恚使)ㆍ만사(慢使)ㆍ견사(見使)ㆍ의사(疑使)ㆍ계취사(戒取使)ㆍ유염사(有染使)ㆍ질사(嫉使)ㆍ간사(慳使)ㆍ무명사(無明使)이다. 여기에서 견사ㆍ의사ㆍ계취사는 수다원도로써 멸한다. 욕염사ㆍ진에사ㆍ질사ㆍ간사는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만사ㆍ유염사ㆍ무명사는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099_c_23L十使者欲染使瞋恚使慢使見使使戒取使有染使嫉使慳使無明使於此戒取使以須陁洹道滅欲染瞋恚慳使以阿那含道滅有染無明使以阿羅漢道滅
10사변은 사견(邪見)ㆍ사사유(邪思惟)ㆍ사어(邪語)ㆍ사업(邪業)ㆍ사명(邪命)ㆍ사정진(邪精進)ㆍ사념(邪念)ㆍ사정(邪定)ㆍ사지(邪智)ㆍ사해탈(邪解脫)이다. 여기서 사견ㆍ사어[망어ㆍ사업ㆍ사명ㆍ사지ㆍ사해탈은 수다원도로써 멸한다. 사사유ㆍ사어악어ㆍ양설은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사어기어ㆍ사정진ㆍ사념ㆍ사정은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100_a_05L十邪邊者邪思惟邪語邪業邪命邪精進邪念邪定邪智邪解脫於此邪見邪語妄語業邪命邪智邪解脫以須陁洹道邪思惟邪語惡語兩舌以阿那含道滅邪語綺語邪精進邪念邪定阿羅漢道滅
12전도는 다음과 같다. 무상(無常)를 상(常)이라고 하는 상전도(想顚倒)ㆍ심전도(心顚倒)ㆍ견전도(見顚倒)가 있고, 고(苦)를 낙(樂)이라 하고, 부정(不淨)을 정(淨)이라 하고, 무아(無我)를 아(我)라 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무상을 상이라 하는 3전도, 무아를 아라 하는 3전도, 부정을 정이라 하는 견전도, 고를 낙이라 하는 견전도는 수다원도로써 멸한다. 부정을 정이라 하는 상전도ㆍ심전도는 아나함도로써 멸한다. 고를 낙이라 하는 상전도ㆍ심전도는 아라한도로써 멸한다.
028_1100_a_11L十二顚倒者於無常常想顚倒心顚倒見顚倒如是於苦樂於不淨淨於無我我於此無常常三顚倒於無我我者三顚倒於不淨淨者見顚倒於苦樂者見顚倒須陁洹道滅於不淨淨者想顚倒顚倒以阿那含道滅於苦樂者想顚心顚倒以阿羅漢道滅
12불선심기는 희(喜)와 함께 일어나는 견상응(見相應)의 무행심기(無行心起)ㆍ유행심기(有行心起), 희와 함께 일어나는 견불상응(見不相應)의 무행심기ㆍ유행심기, 사(捨)와 함께 일어나는 견상응의 무행심기ㆍ유행심기, 사와 함께 일어나는 견불상응의 무행심기ㆍ유행심기, 우(憂)와 함께 일어나는 진에상응(瞋恚相應)의 무행심기ㆍ유행심기, 조(調)와 함께 일어나는 심기, 의(疑)와 함께 일어나는 심기이다.
028_1100_a_18L十二不善心起者與喜共起見相應無行心起有行心起與喜共起見不相應無行心起有行心起與捨共起見相應無行心起有行心起與捨共起見不相應無行心起有行心起與憂共起瞋恚相應無行心起有行心與調共起心起與疑共起心起
028_1100_b_02L여기서 견상응의 심기 넷과 의와 함께 일어나는 심기는 수다원도로써 멸한다. 이와 함께 일어나는 심기 둘은 2도7)로써 엷어지고, 아나함도로써 남김없이 멸한다. 견불상응의 심기 넷과 조와 함께 일어나는 심기는 3도로써 엷어지고, 아라한도로써 남김없이 멸한다.
028_1100_b_02L於此四見相應心起與疑共起心起以須陁洹道滅二共起心起以二道成薄以阿那含道無餘滅四見心不相應起及調共起心起以三道成薄以阿羅漢道無餘滅
2정수(正受)란 두 가지 정수로, 범부와 공유하지 않는 과성취(果成就)와 상수멸(想受滅)의 정수이다.
028_1100_b_07L二正受者二正受不與凡夫共及果成就想受滅正受
【문】무엇이 과정수(果正受)인가? 왜 과정수라 하는가? 누가 닦고, 누가 일으키며, 왜 닦는가? 어떻게 닦고, 어떻게 작의하가? 그것을 성취하는데 몇 가지 연(緣)이 있고, 몇 가지 연이 머물게 하며, 몇 가지 연이 깨어나게 하는가? 이 정수는 세간인가, 출세간인가?
028_1100_b_08L云何果正何故名果正受誰修誰令起何故云何脩云何作意彼成就幾緣緣住幾緣爲起此正受世閒耶出世閒耶
【답】무엇이 과정수인가. 이것은 사문과(沙門果)로서 마음이 니원에 안주하는 것이다. 이것을 과정수라 한다. 왜 과정수인가. 선(善)도 아니고, 불선(不善)도 아니고, 사(事)가 아닌 출세도(出世道)의 과보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것이 과정수이다. 아라한 및 아나함이 이 정에서 원만하게 짓는다.
028_1100_b_12L云何果正受者此沙門果於泥洹安此謂果正受何故果正受非善非不善非事出世道果報所是故此果正受阿羅漢及阿那含於此定作滿
또 설이 있다. 일체 성인이 그것을 일으키는데, 비담에서 “수다원도를 얻기 위하여 생(生)을 없애는 것을 성제(性除)라 한다”고 설한 바와 같다. 이와 같은 일체이다.
028_1100_b_16L復有說一切聖人得令如毘曇所說爲得須陁洹道除生名性除如是一切
또 설이 있다. 일체 성인이 이를 성취하여 이 정에서 원만하게 짓으니, 나라다(那羅陀) 장로가 여러 비구에게 다음과 같이 설한 바와 같다. “장로여, 산 속에 우물이 있지만 거기에 물을 긷는 줄도 없고, 물을 뜨는 기구도 없다. 그때 뜨거운 햇볕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그 우물을 보고 물이 있는 것을 알지만, 그는 몸으로 만지지도 못하고 머물지도 못한다. 이와 같이 장로여, 나는 유(有)의 소멸이 니원임을 여실히 바르게 알고 잘 보지만 나는 아라한도 누진(漏盡)도 아니다.”
028_1100_b_18L復說一切聖人成就於此定作滿唯彼令起如長老那羅陁說諸比丘如是長老於山林井於彼無繩取水爾時人來爲日所曝熱乏渴愛彼人見井知有水彼不以身觸住如是我長老有滅爲泥洹實正智善見我非阿羅漢漏盡
【문】왜 일으키는가?
028_1100_b_24L故令起者
028_1100_c_02L【답】현재 법을 보고, 즐겁게 머물기 위하여 일으킨다. 세존께서 아난에게 가르치신 것과 같다.
“이때 아난이여, 여래는 일체 모든 상을 작의하지 않고, 오직 수(受)를 멸하며, 무상심정(無相心定)을 일으켜 머문다. 이때 아난이여, 여래의 몸은 안온을 성취한다.”
028_1100_c_02L爲現見法樂住令起世尊敎阿難是時阿難如來不作意一切諸相唯一受滅無相心定令起是時阿難如來身成安隱
【문】어떻게 일으키는가?
028_1100_c_05L云何以令起者
【답】그 좌선인은 적적에 들어가 머물며, 혹은 머물며, 혹은 누워서, 과정수를 얻기를 즐겨 생멸견을 처음으로 하는 관제행(觀諸行) 내지 성제지(性除智)를 짓는다. 성제지로 간단없이 니원에서 과를 정수하며 편안케 하고, 그 선(禪)에 의지해 수도(修道)를 이룬다. 이 선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것을 과정수라 한다.
028_1100_c_06L彼坐禪人入寂寂住或住或臥樂得果正受作生滅見所初觀諸行乃至性除智性除智無閒於泥洹果正受令安依其禪成脩道是禪成所作是名果正受
【문】어떻게 작의하는가?
云何作意者
【답】무위(無爲)인 제호의 세계를 적(寂)으로써 작의한다.
028_1100_c_10L無爲醍醐界以寂作意
【문】그것을 성취하는데 몇 가지 연(緣)이 있고, 몇 가지 연이 머물게 하며, 몇 가지 연이 깨어나게 하는가?
028_1100_c_11L彼成就幾幾緣爲住幾緣爲起
【답】그것을 정수하는데 두 가지 연이 있으니, 일체 모든 상을 작의하지 않는 것과 무상계(無相界)를 작의하는 것이다. 세 가지 연이 머물게 하니, 일체 모든 상을 작의하지 않는 것, 무상계를 작의하는 것, 초행이다. 두 가지 연이 깨어나게 하니, 일체 상을 작의하는 것과 무상계를 작의하지 않는 것이다.
028_1100_c_12L彼正受二不作意一切諸相於無相界作意三緣爲住不作意一切諸相於無相界作意及初行二緣爲起作意一切及無相界不作意
【문】이 정은 세간인가, 출세간인가?
028_1100_c_16L云何此定世閒出世閒耶
【답】이것은 출세의 정수이지, 세간의 정수가 아니다.
028_1100_c_17L此出世正受非世閒正
【문】아나함인 사람은 과정(果定)을 위해 현관(現觀)하고, 왜 성제무격(性除無隔)으로 아라한도를 생기게 하지 않는가?
028_1100_c_18L問阿那含人爲果定現觀何故性除無隔阿羅漢道不生
【답】낙처(樂處)가 아닌 까닭이며, 관견(觀見)이 생기지 않고, 힘이 없는 까닭이다. 여기 두 종류의 승과(勝果)를 알아야 한다. 유도(有道) 및 성제과(性除果)를 이루며, 현재 도무간과(道無間果)를 작증한다. 무도(無道) 및 성제과를 이루며, 과정(果定)에 들어가는 것을 성취한다. 무도 및 성제과를 이루어 멸정으로부터 일어나 무도ㆍ무성제과(無性除果)를 이룬다.[과정수를 마친다.]
028_1100_c_19L非樂處故不生觀見無力故於是二種勝果可知成有道及性除果現作證道無閒果成無道及性除果成入果定成無道及性除果從滅定起成無道無性除果正受已竟
028_1101_a_02L【문】무엇이 상수멸의 정수인가? 누가 일으키며, 몇 가지 힘을 성취해야 일으키는가? 몇 가지 행이 제거되어야 일으키는가? 처음에 할 일은 몇 가지인가? 어떤 뜻으로 일으키는가? 어떻게 일으키는가. 어떻게 깨어나는가. 어떤 마음으로 깨어나는가. 깨고 나서는 그 마음이 무엇에 집착하는가? 몇 가지 촉(觸)에 접촉되는가? 무엇이 최초로 모든 행을 일으키는 것인가? 죽은 사람과 멸상정에 든 사람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이 정은 유위인가 무위인가?
028_1100_c_24L云何想受滅正受誰令起幾力成就令起幾行所除令起幾初事何義爲云何起云何從彼起云何心以起以起心何所著幾觸所觸云何初起諸行死人及入滅想受定何差別定有爲無爲
【답】심법(心法)ㆍ심수법(心數法)이 생기지 않는 것을 멸상수정(滅想受定)이라 한다.
028_1101_a_07L不生心心數法此謂滅想受定
【문】누가 정을 일으키는가?
誰令起定者
【답】아라한 및 아나함이 이 정에서 원만을 짓는다.
028_1101_a_08L阿羅漢及阿那含於此定作滿
【문】누가 일으키지 않는가?
誰不令起者
【답】범부인 사람 및 수다원ㆍ사다함, 무색계에서 태어나는 사람이다. 이것은 그들의 경계가 아닌 까닭이다. 범부는 능히 일으키지 못하니, 정을 장애하는 번뇌를 아직 끊지 못한 까닭이다. 수다원ㆍ사다함도 능히 일으키지 못하니, 반복해서 일으키고자 하지만 그 처가 아닌 까닭이다. 무색계에 드는 사람도 능히 일으키지 못한다.
028_1101_a_09L凡夫人及須陁洹斯陁含及生無色界人於是非其境界故凡夫不能起煩惱障礙定未斷故須陁洹斯陀含不能起爲更起非其處故入無色界不能起
【문】몇 가지 힘을 성취해야 일으키는가?
幾力成就令起者
【답】두 가지 힘을 성취함으로써 일으키니, 사마타의 힘과 비바사나의 힘이다. 여기서 사마타의 힘으로 일으킨다는 것은 8정을 말미암아 자재를 얻는 것이며, 비바사나의 힘으로 일으킨다는 것은 자재를 말미암아 일곱 가지를 따라서 관하는 것[隨七觀]이다. 무엇이 7수관(隨觀)인가. 무상관(無常觀)ㆍ고관(苦觀)ㆍ무아관(無我觀)ㆍ염환관(厭患觀)ㆍ무염관(無染觀)ㆍ멸관(滅觀)ㆍ출리관(出離觀)이다. 사마타의 힘은 멸선분(滅禪分)이 되며, 또 부동해탈(不動解脫)이 된다. 비바사나의 힘은 생(生)의 과환을 보게 하며, 무생해탈(無生解說)이 된다.
028_1101_a_14L以二力成就令起以奢摩他力以毘婆舍那力於是以奢摩他力者由八定得自在以毘婆舍那力者由自在隨七云何七隨觀無常觀苦觀無我觀厭患觀無染觀滅觀出離觀奢摩他力爲滅禪分及爲不動解脫毘婆舍那力爲見生過患及爲無生解脫
【문】몇 가지 행이 제거되어야 정을 일으키는가?
028_1101_a_21L行所除令起定
028_1101_b_02L【답】3행을 제거함으로써 정을 일으키니, 즉 구행(口行)ㆍ신행(身行)ㆍ심행(心行)이다. 여기서 2선에 들어 각(覺)ㆍ관(觀)의 구행이 제거되며, 제4선에 들어 출식ㆍ입식의 신행이 제거되며, 멸상수정에 드는 사람은 상ㆍ수의 심행이 제거된다.
028_1101_a_22L以除三行令起定口行身行心行於是入二禪覺觀行成所除入第四禪出息入息身行成所除入滅想受定人想受心行成所除
【문】처음에 할 일[初事]은 몇 가지인가?
初幾事者
【답】처음에 할 일은 네 가지이니, 일박(一縛)ㆍ불란(不亂)ㆍ원분별(遠分別)ㆍ관사비사(觀事非事)이다.
028_1101_b_03L初四事一縛不亂遠分別觀事非事
여기서 일박이라고 하는 것은 발우와 가사를 한 곳에 포개서 수지하는 것이다. 불란이란 모든 방편으로써 이 몸에 어지러움[亂]이 생기지 않기를 소원하며, 수지하는 것이다. 원분별이란 그 몸의 힘을 헤아려 날짜로 분별을 지어 수지하고, 이보다 오래 지나 기한을 넘기면 반드시 깨어나는 것이다. 관사비사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을 분별하고 “혹 대중이 승사(僧事)를 위해 화합하면 그 소리로써 나는 마땅히 깨어나리라”고 수지하는 것이다.
028_1101_b_04L於是名一縛者袈娑一處受持不亂者以所有方便此身願莫生亂受持遠分別者其身力以日作分別受持於此久遠過期當起觀事非事者未至時分別或衆僧爲事和合以彼聲我當起受
여기서 일박이란 가사를 수호하기 위함이며, 불란 및 구원분별은 몸을 수호하기 위함이며, 관사비사는 중승의 화합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무소유처에 머무르며 혹 처음에 할 일을 하고 초선에 들기도 한다.
028_1101_b_10L於是一縛者爲守護袈裟不亂者及久遠分別爲守護身觀事非事者爲不妨衆僧和合住無所有處或初作事入初禪
【문】왜 일으키는가?
何故令起
【답】법을 나타내어 즐겁게 머물기 위함이다. 이것은 성인의 최후 무동정(無動定)이다. 또 신통을 일으켜 광정(廣定)에 들기 위함이니, 정명나한(正命羅漢) 장로와 같다. 이 몸을 수호하기 위함이니, 사리불 장로와 같고, 백로자저사(白鷺子底沙) 장로와 같다.
028_1101_b_13L爲現法樂住者是聖人最後無動定復爲起神通入廣定如長老正命羅漢爲守護如長老舍利弗如長老白鷺子底沙
어떻게 일으키는가.
云何令起者
그 좌선인은 적적에 들어가 머물며, 혹은 앉아서 혹은 누워서 의(意)의 소멸을 즐기고 멸을 즐겨 초선에 든다. 들고 나서는 편안하고 상세하게 나와 간단없이 그 선(禪)의 무상ㆍ고ㆍ무아를 보며, 내지 행사지(行捨智)로써 제2선, 제3선, 제4선, 허공처, 식처, 무소유처에 들어갔다가 편안하고 상세하게 나와 간단없이 정정(正定)의 무상ㆍ고ㆍ무아를 보며, 내지 행사지로써 그때 간단없이 비비상처에 든다. 그로부터 혹은 두 번, 혹은 세 번 비비상심(非非想心)을 일으키고, 일으킨 뒤에는 그 마음을 소멸시키고, 마음이 소멸하고 나서는 불생(不生)ㆍ불현(不現)에 들어간다. 이것을 멸상수정에 드는 것이라 한다.
028_1101_b_17L彼坐禪人入寂寂或坐或臥樂滅意樂滅入初禪已安詳出無閒見彼禪無常苦無我乃至行捨智如第二禪第三禪第四虛空處識處無所有處入已安詳無閒見正定無常苦無我乃至行捨智爾時無閒入非非想處從彼或二或三令起非非想心起已令心滅心滅已不生不現入此謂入滅想受
028_1101_c_02L어떻게 그것으로부터 깨어나는가.
云何從彼起者
그것은 “나는 마땅히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이와 같이 작의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정에 들 때 지었던 분별이 성취되는 것이다.
028_1101_c_03L彼非如是作意當起已至於初時所作分別成
어떤 마음으로 깨어나는가.
028_1101_c_04L云何心以起者
만약 아나함인 사람이라면 아나함과의 마음으로 깨어나며, 만약 아라한인 사람이라면 아라한과의 마음으로 깨어난다.
028_1101_c_05L若阿那含人以阿那含果心起若阿羅漢人以阿羅漢心起
【문】깨고 나서는 그 마음이 무엇에 집착하는가?
028_1101_c_06L已彼心何所著
【답】마음은 오로지 적적을 반연한다.
心專緣寂寂
【문】몇 가지 촉에 접촉되는가?
028_1101_c_07L幾觸所觸者
【답】 가지 촉에 접촉된다. 즉 공촉(空觸)ㆍ무상촉(無相觸)ㆍ무작촉(無作觸)이다.
028_1101_c_08L三觸所觸以空觸無相觸無作觸
무엇이 최초로 모든 행을 일으키는 것인가.
云何初起諸行
그 신행(身行)으로부터, 그 구행(口行)으로부터 일으킨다.
028_1101_c_09L彼從身行從彼口行
죽은 사람과 멸상정에 든 사람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死人及入滅想定人何差別者
죽은 사람은 3행이 없어져 나타나는 것이 없으며, 수명이 끊어지고, 온기도 끊어지고, 모든 근이 끊어진다. 수상정에 든 사람은 3행이 끊어져 없어지지만 수명은 끊어지지 않고, 온기도 끊어지지 않고, 모든 근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 차별이다.
028_1101_c_10L死人三行沒無現壽命斷煖斷諸根入受想定人三行斷沒壽命不斷煖不斷諸根不異此彼差別
【문】이 정은 유위인가, 무위인가?
028_1101_c_13L云何此定有爲無爲者
【답】이 정은 유위라고도 무위라고도 말할 수 없다.
028_1101_c_14L不可說此定有爲無爲
【문】왜 이 정이 유위인지 무위인지 말할 수 없는가?
何故此定不可說有爲無爲
【답】유위법은 이 정에 있지 않으며, 무위법의 입출(入出)은 가히 알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이 정이 유위인지 무위인지 말할 수 없다.[멸선정을 마친다.]
028_1101_c_15L有爲法於此定無有無爲法入出不可知是故不可說此定有爲無爲滅禪定 已竟
해탈분별제(解脫分別諦) 12품을 마친다.
028_1101_c_18L解脫分別諦十二品已竟
여기서 품수(品數)는 인연(因緣)ㆍ계(界)ㆍ두타(頭陀)ㆍ정(定)ㆍ구선우(求善友)ㆍ분별행(分別行)ㆍ행처(行處)ㆍ행문(行門)ㆍ오신통(五神通)ㆍ분별혜(分別慧)ㆍ오방편(五方便)ㆍ분별제(分別諦)의 12품이다. 이것이 해탈도품의 차제이다.
028_1101_c_19L於此品數因緣頭陁求善友別行行處行門五神通分別慧五方便分別諦此十二品是解脫道品次第
028_1102_a_02L
끝이 없고, 칭할 수 없으며, 사려할 수 없는
한량없는 선재(善才)ㆍ선어언(善語言)이 있다.
이 법 속을 누가 능히 알 수 있겠는가.
오직 좌선인만이 능히 수지할 수 있다.
미묘한 승도(勝道)는 선행(善行)을 위한 것
가르침에 미혹하지 말고 무명을 벗어나라.
028_1101_c_23L無邊無稱不可思
無量善才善語言
於此法中誰能知
唯坐禪人能受持
微妙勝道爲善行
於敎不惑離無明
解脫道論卷第十二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1. 1)원문은 “수타원과(須陀洹果)”이나 내용 상 ‘사타함과(斯陀含果)’라야 옳다. 송ㆍ원ㆍ명 3본에도 ‘사타함과(斯陀含果)’로 되어 있다. 수정하였다.
  2. 2)veda의 음역이다. 인도 바라문교의 근본 성전으로 폐타(吠陀). 비타(毘陀ㆍ鞞陀)ㆍ피다(皮陀)ㆍ폐다(吠駄ㆍ薛陀)로 음역하기도 한다.
  3. 3)곧 중유(中有)를 의미한다.
  4. 4)“특별한 수행이 있고”의 원문은 “무이행(無異行)”이다. 문맥 상 ‘무(無)’는 ‘유(有)’의 오자로 추정되어 수정해 번역하였다.
  5. 55)원문은 “오(五)”이나 ‘사(四)’의 오자로 추정되어 수정하였다.
  6. 6)원문은 “등(等)”이나 문맥으로 보아 ‘승(勝)’의 오자로 추정된다.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7. 7)수다원도와 사다함도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