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寶要義論 卷第八

ABC_IT_K1475_T_008
040_0879_a_01L대승보요의론 제8권
040_0879_a_01L大乘寶要義論 卷第八


유정 등 한역
박용길 번역
040_0879_a_02L譯經三藏朝散大夫試鴻臚少卿光梵大師賜紫沙門臣 惟淨 等奉 詔譯


“이 때 아사세왕은 값어치가 백천이나 되는 최고의 미묘한 털옷을 묘길상보살에게 바쳐 올렸으나 보살은 이것을 반겨 받지 않았다. 그 왕은 곧 이 미묘한 털옷을 묘길상보살의 몸에 걸쳐 주었으나, 옷이 몸에 걸쳐지지 않았다. 보살이 즉시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왕은 미처 보살의 몸을 보지 못했다. 다만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040_0879_a_03L爾時阿闍世王持以價直百千上妙㲲衣獻施妙吉祥菩薩而菩薩不肯受之其王卽以此妙㲲衣被妙吉祥菩薩之身衣未著身菩薩卽時隱而不現
‘대왕이시여, 그대가 만약에 능히 묘길상보살의 몸뚱이 모습을 본다면 곧 그대가 지은 악한 일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악한 일을 본다면 이와 같이 저 일체 법도 볼 것이며, 일체 법을 보는 것과 같이 또한 보시한 털옷도 가히 볼 수 있습니다. 설령 그대가 능히 보지 못한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대왕이시여, 그대가 혹시 능히 본다면 몸의 형상을 가진 자마다 이와 같이 털옷을 받들어 보시해야 합니다.’
040_0879_a_08L王旣不見菩薩之身但聞空中聲曰大王汝若能見妙吉祥菩薩身卽能見汝所有惡作若見惡作是卽見彼一切法如見一切法亦然可見所施㲲衣若汝不能見亦然如是見大王汝若能見有身相者如是乃以㲲衣奉施
그 왕은 즉시 각각 일체의 보살과 성문 스님들과 아울러 그 궁인(宮人)들과 시녀들과 친척들에게 거듭 털옷을 두루 보시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몸뚱이 모습은 한결같이 보이지 않았다. 왕은 즉시 선정(禪定)에 들어 살펴보았으나 하찮은 물건조차 전혀 눈에 띄는 바가 없었으며, 주위의 모습도 가히 나타남이 없었다. 여기에서 오직 자신만이 존재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다시 공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이와 같이 말했다.
‘만약에 그대가 능히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이와 같이 자신에게 털옷으로써 받들어 보시하십시오.’
왕은 즉시 스스로 살펴보았지만 역시 자신의 모습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으며, 이 때 이에 일체의 물질적인 생각을 여의었다.
040_0879_a_14L其王卽時復以㲲衣各各徧施一切菩薩聲聞大衆及其宮人婇女眷屬而悉不見彼彼身相其王卽時入定觀察都無少色爲眼所見無境相可現是中唯存自身想又聞如是空中聲曰汝若能見自身相者如是乃以㲲衣奉施王卽自亦不見有自身之相爾時乃離一切色想
040_0879_b_02L다시 공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말했다.
‘만약에 그대가 혹시 거칠든 미세하든 이와 같이 하찮은 물건의 모습조차 가히 보는 일이 없다면, 역시 그러한 것과 같이 마땅히 악한 일도 보고 또한 그러한 것과 같이 일체 법을 보십시오. 만약에 그대가 그들을 보지 않는다면 즉시 보는 것을 여읜 것입니다. 저 보는 것을 여읜 와중에 만약에 그대가 가히 볼 수 있다면, 이것은 곧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만약에 보는 것도 아니고 보지 않는 것도 아니라면 이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일체 법을 이와 같이 본다면 역시 곧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이 보는 것이 아닌 것을 정견(正見)이라고 합니다.’
이 때 아사세왕은 일체 법에 대한 의혹을 모두 여의었다. 선정에서 일어나 다시 저 일체의 대중들을 거듭 바라보았지만 역시 일체 보이지 않았다.”
040_0879_a_22L又聞空中聲曰大王汝若如是無少色相若麤若細而可見者然如是應見惡作亦然如是見一切若汝不見彼卽離見彼離見中若汝可見此卽非見大王若非見若非不見此爲正見若如是見一切法者亦卽非見大王此非見者是爲正見爾時阿闍世王於一切法所對疑惑悉得遠離從定起已重復觀彼一切大衆亦悉不見
『환사인현경(幻士仁賢經)』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네 가지의 법이 있어서 경전의 뜻을 사유(思惟)한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법을 연하여 생기고 일어나는 것에는 지어내는 원인이 없지 않다. 둘째는 법이 가히 생겨남이 없으면 윤회하는 유정의 성품도 없다. 셋째는 만약에 법이 연하여 생겨나면 저 생겨난 것에는 성품이 없다. 넷째는 심히 깊은 법 안에는 차별의 문이 없고 또한 보리(菩提)를 허물지도 않는다.”
040_0879_b_09L『幻士仁賢經』云菩薩有四種法思惟經義何等爲四一者緣法生起非無作因二者無法可生亦無補特伽羅性三者若法緣生彼生無性四者於甚深法中無差別門亦不壞菩提
『보살십주경(菩薩十住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모든 보살에게는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능히 평안함과 호젓함을 얻게 하고 시작하는 경지에 있는 사람들을 청정하게 한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첫째는 마음의 대상이 없는 해탈의 지혜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마음의 대상이 없는 해탈의 지혜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040_0879_b_14L『菩薩十住經』云佛言吉祥諸菩薩有五法令得安隱能淸淨初地何等爲五一者若於無所緣解脫智中自安住已復令佗人亦悉安住無所緣解脫智中是爲菩薩得安隱法
040_0879_c_02L둘째, 이 마음의 대상이 없는 해탈의 지혜는 곧 둘이 없다. 둘이 없는 청정함은 법을 대상으로 하여 생겨나지 않는다. 이러한 해탈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법을 연하여 생겨나지 않는 해탈의 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셋째, 법을 대상으로 하여 생겨남이 없다는 것은, 즉 모든 연(緣)의 자성(自性)은 일체 법을 낳음도 없고 있는 장소도 없다. 이러한 해탈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일체 법이 있는 장소가 없는 해탈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040_0879_b_19L二者此無所緣解脫智無二無二淸淨緣法無生此解脫中自安住已復令佗人亦悉安住緣法無生解脫法中是爲菩薩得安隱三者彼緣法無生卽諸緣自性無生一切法無所有處此解脫中自安住已復令佗人亦悉安住一切法無所有處解脫法中是爲菩薩得安隱
넷째, 저 일체 법이 있는 장소가 없다는 것은, 즉 모든 분위(分位)의 분별은 한결같이 자성이 없으니, 지혜와 관(觀)은 마치 허공과 같다. 이러한 해탈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허공과 같은 지혜와 해탈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다섯째, 허공과 같은 이 지혜는 곧 잡되고 혼란함도 없고, 기대어 머무름도 없는, 마음과 뜻과 의식을 여읜 지혜이다. 이러한 해탈 안에 이미 스스로 평안하게 머물러 있으면서 다시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한결같이 마음과 뜻과 의식을 여읜 지혜와 해탈법 안에 평안히 머무르도록 한다. 이것을 보살이 평안하고 호젓함을 얻는 법이라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그 가운데 마음과 뜻과 의식을 여읜 지혜란, 곧 깨달음을 발(發)함이 없이 얻는 바가 있는 지혜이다. 이것을 다섯 가지 법이라고 한다.’”
040_0879_c_04L四者彼一切法無所有處卽諸分位分別悉無自性智觀如虛空此解脫中自安住已復令佗人亦悉安住如虛空智解脫法中是爲菩薩得安隱法五者此如虛空智卽無雜亂無依止離心意識之智此解脫中自安住已復令佗人亦悉安住離心意識之智解脫法中是爲菩薩得安隱法知彼中離心意識之智卽是無發悟有所得智是爲五法
『승사유범천소문경(勝思惟梵天所問經)에서 말하였다.
“범천(梵天)이 광망(光網)보살에게 말했다.
‘일체 법은 매우 단단합니까, 매우 단단하지 않습니까?’
보살이 말했다.
‘그대 범천의 말대로, ≺다시 일체 법은 매우 단단합니까, 매우 단단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범천이 말했다.
‘만약에 사유(思惟)가 아니라면 곧 일체 법은 단단하지만, 만약에 마음이 사유와 더불어 어우러져 합하는 바가 있으면 곧 매우 단단하지 않습니다.
040_0879_c_13L『勝思惟梵天所問經』云梵天問光網菩薩言一切法深固邪一切法非深固邪菩薩言汝梵天復云何說一切法是深固非深固邪梵天言若非思惟卽一切法深固若心與思惟有所和合卽非深
또한 일체 법이 모양을 여의면 이것은 매우 단단한 것이지만 만약에 다시 여읜 가운데 어우러져 합하는 바가 있으면 이것은 곧 차별이 있다는 것이니, 만약에 차별 안에서 일어나는 바가 있으면 곧 지어낸 모든 것은 한결같이 매우 단단하지 않습니다.’
보살이 말했다.
‘만약에 그렇다면, 모든 법은 가히 어떻게 생겨납니까?’
범천이 말했다.
‘선남자시여, 자신의 경계(境界)가 청정한 실제(實際)를 여읜 가운데에 있어야만 모든 법은 생겨납니다.’”
040_0879_c_19L又一切法離相此卽深固若復離中有所和合此卽是爲差別所行若差別中有所行者卽諸所作皆非深固菩薩言若爾者云何諸法而可生梵天言善男子若自境界離淸淨實際中諸法乃生
040_0880_a_02L『칠백송반야바라밀다경(七百頌般若波羅蜜多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그대가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 마땅히 어느 곳에 머물러 반야바라밀다를 닦아야 하겠느냐?’
묘길상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는 전혀 머무르는 바가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닦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머무름이 없이 어떻게 반야바라밀다를 닦느냐?’
묘길상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는 참으로 가히 머무를 법이 없습니다.’
040_0879_c_24L『七百頌般若波羅蜜多經』云佛言妙吉祥汝修般若波羅蜜多時當何所住而修般若波羅蜜妙吉祥白佛言世尊我修般若波羅蜜多時都無所住而修般若波羅蜜多佛言妙吉祥無住云何修般若波羅蜜多邪妙吉祥言世尊我修般若波羅蜜多時實無法可住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그대가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는 어떤 선근이 있어서 혹은 늘어나거나 혹은 줄어들기도 하느냐?’
묘길상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선근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혹은 늘어나거나 혹은 줄어드는 일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를 닦는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떤 법이 있어서 혹은 늘어나거나 혹은 줄어드는 일이 없습니다.’”
040_0880_a_08L佛言吉祥汝修般若波羅蜜多時有何等善根若增若減妙吉祥言世尊我於彼時無少善根若增若減世尊諸修般若波羅蜜多者悉無有法若增若
「묘길상보살신변품(妙吉祥菩薩神變品)」에서 말하였다.
“어떤 천자(天子)가 묘길상보살에게 말했다.
‘그대가 말하는 것과 같이 능히 그 뜻을 모두 아는 사람들은 조금뿐입니다.’
묘길상이 말했다.
‘천자여, 내가 말하였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어서 설령 적든 많든 능히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지혜는 집착도 없고 분별도 없고 가히 기록할 수도 없고 가히 설할 수도 없고 지어내 쓰일 것도 아니고 언어로 말할 것도 아니며, 마음과 생각과 의식을 여의었습니다. 설령 적게 알든 설령 두루 알든, 쉽게 모두 알 만한 것이 아닙니다.’
040_0880_a_13L「妙吉祥菩薩神變品」云有天子白妙吉祥菩薩言如汝所說少能有人解了其義妙吉祥言天子以我所說佛智甚深若少若多不能解了何以佛智無著無分別不可記不可說非作用非語言道離心意識若少知若徧知非易解了
040_0880_b_02L천자가 말했다.
‘만약에 부처님의 지혜를 능히 알 수 없다면, 모든 성문(聲聞)들은 어떻게 능히 모두 알 수 있으며, 보살들은 어떻게 물러나 되돌아감이 없는 경지에 머무릅니까?’
묘길상이 말했다.
‘천자여, 여래께서는 훌륭한 방편으로써 문자를 빌어 지혜를 따라 깨달음을 열어 주시지만, 이 지혜는 문자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불 속에서 불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얻겠습니까?
천자여, 여래께서도 역시 이와 같으셔서 설령 처음부터 부처님의 넓고 큰 지혜를 문득 설하시더라도, 곧 유정들 가운데 능히 부처님의 지혜를 아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이와 같은 여러 종류의 말씀을 널리 설하시어 그 지혜를 열어 보이시지만, 이 지혜는 문자가 없습니다.’
040_0880_a_19L天子言若佛智不能知者而諸聲聞何能解了菩薩云何住不退轉妙吉祥言天子如來以善方便假文字智隨爲開覺是智無文字譬如火中求火其何所得如來亦復如是若最初便說廣大佛智卽無有情能知佛智是故如是宣說種類之語開示彼智是智無文
천자가 말했다.
‘묘길상이여, 어떤 것을 이와 같은 종류의 말씀이라고 합니까?’
묘길상이 말했다.
‘천자여, 지계(持戒) 및 제지(制止)의 법을 설하시거나 혹은 반야바라밀다에 서로 따르는 법을 설하시거나 혹은 입해보리분법(入解菩提分法)을 설하시니, 이러한 것을 설하신 이것을 여러 종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천자여, 혹은 생겨남도 여의고 스러짐도 여의는 법이나, 잡스러움과 잡스럽지 않음을 여의었다는 말씀이나, 더러움도 여의고 청정함도 여의었다는 말씀이나, 삶과 죽음을 여의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는 말씀이나, 열반을 기꺼워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나, 앎도 없고 끊음도 없고 닦음도 없고 증험(證驗)도 없고 얻음도 없으며, 또한 지금 당장 가히 돌아갈 삼매(三昧)도 없다는 이러한 말씀들입니다. 이들은 청정하고 진실한 말씀이며 부사의(不思議)한 음성이라고 합니다.’”
040_0880_b_04L天子言妙吉祥何等是爲種類之妙吉祥言天子若說持戒及制止或說般若波羅蜜多相應之法說入解菩提分法此等所說是爲種類之語天子若說離生離滅之法雜非雜之語離染離淨之語不厭離生死之語不忻樂涅槃之語無知無斷無修無證無得亦無現前三昧可轉此等所說是爲淸淨眞實之語不思議音聲
『일체법결정무소득경(一切法決定無所得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묘길상에게 물으셨다.
‘모든 여래들께서 설하신 바는 부사의(不思議)하고 부사의한 경지라고 하는데, 마땅히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묘길상이 말했다.
‘이 부사의하고 부사의한 경지는 모든 여래들께서 설하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지는 사유(思惟)를 여의며 마음이 행하는 바가 아니며 마음이 헤아리는 바가 아니며 심법(心法)이 간택(揀擇)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마음은 이와 같기 때문에, 이것이 곧 부사의한 경지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가히 사유함이 없으니 이 마음은 사유를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곧 마음의 자성(自性)도 역시 있는 바가 없기에 이 사유하는 마음조차도 없습니다. 이것이 마음의 그대로 실다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이것을 부사의한 경지라고 합니다.’”
040_0880_b_13L『一切法決定無所得經』云問妙吉祥言諸如來所說不思議不思議界當云何是妙吉祥言此不思議不思議界者是諸如來說世尊離思惟非心所行非心所量非心法揀擇世尊此心如是是卽不思議界何以故無心可思惟此心離思惟故卽心自性亦無所有而此無思惟心是心如實世尊此乃是爲不思議界
040_0880_c_02L이 경전에서는 다시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너는 마땅히 문득 유정들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데에 이 갑옷을 입지 말라.’
묘길상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유정들의 세계가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유정들 가운데 어떤 것을 가히 교화하고 제도하여 열반에 들어가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약에 누군가 저 허공을 능히 제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유정들의 세계도 또한 가히 교화하여 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보리의 마음으로써 교화하여 제도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유정들도 역시 가히 발하여 일으켜서 교화하여 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040_0880_b_21L此經又云佛言妙吉祥汝勿應便被此鎧化度有情妙吉祥言世尊若知有情界不增不減是中何有有情而可化度令入涅槃世尊若彼虛空有人能度者彼有情界亦可化度又欲以菩提心有所化度者而彼有情亦可發起爲作化度
세존이시여, 일체 법이 보리이며 또한 보리는 더러움이나 청정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세존께서는, 너는 유정들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데에 이 갑옷을 입지 말라고 설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유정은 더러움이 아니며 저는 또한 유정들을 제도한다는 마음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만약에 유정들이 있는 것이라면 곧 더러움과 청정함이 겉으로 보이겠지만, 이미 유정들이란 없는데 어찌 더러움과 청정함이 있어서 가히 겉으로 보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만약에 법이 있는 것이라면 연(緣)을 따라 생겨나더라도 곧 서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연하여 생겨나는 법 안에서는 실로 가히 붙잡을 수 있는 더러움도 없고 청정함도 없습니다. 일체 법의 자성은 실로 연하여 생겨나는 성품이 없는 까닭에, 설령 연(緣) 안에서라도 역시 연의 뜻에는 가히 붙잡을 수 있는 청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습니다.
040_0880_c_05L世尊一切法是菩亦非菩提染淨可得是故世尊作如是說汝勿被此鎧化度有情世尊有情非染我亦不住度有情心何以世尊若有有情卽有染淨而爲表旣無有情豈有染淨可表示邪
세존이시여, 이 있는 바가 없다는 뜻이 연하여 생겨난다는 뜻이라는 것을 지혜로운 사람은 모두 압니다. 또한 다시 연하여 생겨난다는 이와 같은 뜻을 지혜로운 사람들은 한결같이 분별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뜻을 분별하지 않는 가운데에 있으면 곧 더러움도 없고 청정함도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술사나 혹은 마술사의 제자가 마술을 부려 누각이나 혹은 집을 만들어 놓으니, 모두 불꽃이 넓고 크게 한껏 타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용맹스럽고 능력이 있어서 저 누각 안의 불구덩이 속에서 멈추어 쉴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이에 그 육신을 허물고 다치기에 이르러 단지 고달픔만 더없이 생겨날 뿐 끝내 능히 이루지 못합니다.’
040_0880_c_10L若法有者從緣而生卽不相違緣生法中而實無染無淨可得一切法自性無實緣生性故若於緣亦無緣義染淨可得世尊此無所有義緣生之義智者了知又復如是緣生之義智者於中悉無分別若於無分別義中卽無染無淨譬如幻師或幻師弟子幻出樓閣或復舍宅有光焰廣大熾盛或有人言:我能勇力於彼樓閣光焰聚中而爲止息人乃至損壞其身徒生疲極終不能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그러하고 그러하다.’
묘길상이 말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정진(精進)의 갑옷을 입고 유정들을 교화하여 제도한다면, 역시 이와 같이 단지 더없이 고달플 뿐 끝내 능히 얻는 바가 없습니다.’”
이 경전에서는 또한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묘길상이여, 너는 반드시 이 어떤 법을 부풀려 말하는지 있는 그대로 엿보아 살펴야 한다.’
040_0880_c_22L佛言妙吉祥如是如是妙吉祥言世尊若被精進鎧化度有情亦復如徒自疲極終無所得此經又云妙吉祥汝當如實伺察爲是何法增語
040_0881_a_02L묘길상이 말했다.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 엿보아 살피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있는 그대로 살피는 것 안에는 한 성품도 없으며, 여러 가지의 성품을 가히 조작할 수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종류도 없고 분별도 없는 가운데 있는 그대로 엿보아 살핀다면 곧 있는 그대로 엿보아 살피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바로 이 있는 그대로 엿보아 살피지 않는 것을 부풀려 말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만약에 이미 있는 그대로 엿보아 살피는 일을 이루었다면, 이 안에서 나는 범부라느니 나는 성인이라느니 하는 견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관찰할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법에 범부와 성인이라는 견해를 세우지 않는다면, 바로 있는 그대로 엿보아 살피는 일의 성취를 얻습니다.
040_0881_a_03L妙吉祥言此謂如實伺察者如實伺察中彼無一性無種種性而可造作世尊若無種類無分別中作如實伺察卽非如實伺察世尊卽此非如實伺察是爲增語是故若如實伺察成已是中不起我是凡夫我是聖人之見何以故諸法無所觀若法不立凡夫聖人之見卽得如實伺察成
세존이시여, 만약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능히 이와 같이 머무른다면 바로 법계(法界)와 상응할 수 없습니다. 이 안에는 사소한 법조차 없어서 혹은 평등이든 혹은 차별이든 가히 붙잡을 것이 없기 때문에, 설령 범부의 법은 차별이 있다고 해도 분별을 낳음이 아니며, 설령 성인의 법은 평등하다고 해도 분별을 낳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대상을 가히 붙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마음의 대상 안에서 혹시 평등이나 차별을 붙잡아 집착하는 바가 있다면 이것은 곧 분별이지만, 이 분별의 성품은 전혀 있는 바가 없습니다. 만약에 저들 마음의 대상 안에 평등이나 차별이 있어서 가히 붙잡을 수 있다면, 곧 나의 법이니 그의 법이니 하여 이에 차별이 있을 것입니다. 무릇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하니, 결정코 가히 붙잡을 수 있는 법이란 없습니다.’”
040_0881_a_11L世尊若善男子善女人能如是住卽得法界相應是中無有少法若平等若差別可得若謂凡夫法差別亦無分別生若謂聖人法平等亦無分別生何以故所緣不可得故若於所緣中或平等差別有所取者卽分別是分別性都無所有若彼彼所緣中有平等差別而可取者我法彼法乃有差別凡如是等應知決定無法可取
『유마힐경(維摩詰經)』에서 말하였다.
“‘무엇이 병의 근본이 됩니까?’
‘이끌리어 연(緣)하는 것이 바로 병의 근본이 됩니다. 만약에 이끌리어 연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그 병이 있습니다.’
‘무엇에 이끌리어 연합니까?’
‘삼계(三界)입니다.’
‘만약에 이끌리어 연하는 것이 없다면, 그것이 어디에 드러나겠습니까? 만약에 이끌리어 연하는 것을 붙잡을 수 없다면, 곧 얻을 것도 없습니다.’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두 가지를 보되, 얻을 것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040_0881_a_20L『維摩詰經』云何爲病謂有攀緣卽爲病本若有攀緣卽有其病何所攀緣謂之三界若無攀緣彼何所表若攀緣不可得卽無所得云何無所得謂二見無所得
040_0881_b_02L‘두 가지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안을 보는 것과 밖을 보는 것을 말하니, 저들은 얻을 것이 없습니다.’”
이 경전에서는 다시 말한다.
“애견(愛見)보살이 말했다.
‘색(色)과 공(空)을 두 가지라고 하니, 색이 곧 공이며 색이 멸한 것이 공은 아닙니다. 색의 성품은 스스로 공합니다. 이와 같이 나아가 식(識)도 곧 공하되 식이 멸한 것이 공은 아닙니다. 식의 성품은 스스로 공합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 온(蘊)을 만약에 모두 안다면 이것을 불이(不二)의 법문(法門)으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040_0881_a_24L何謂二見謂內見外見彼無所得此經又云愛見菩薩言色空爲二色卽是空色滅空色性自空如是乃至識卽是空非識滅空識性自空此等五蘊若解了者是爲入不二法門
『반야바라밀다경』에서 말하였다.
“사리자가 수보리존자에게 말했다.
‘만약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는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을 능히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수보리가 말했다.
‘사리자존자시여, 만약에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는 색(色)도 행하지 않고,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행하지 않으며, 색의 모양 있음도 행하지 않고, 나아가 수ㆍ상ㆍ행ㆍ식의 모양 있음도 행하지 않으며, 색의 항상함도 아니고 항상함이 없음도 아닌 것,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것, 나도 아니고 내가 없음도 아닌 것, 고요함도 아니고 움직임도 아닌 것, 공도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닌 것, 모양도 아니고 모양 아님도 아닌 것, 바람[願]도 아니고 바람 없음도 아닌 것, 여읨도 아니고 여읨 없음이 아닌 것도 행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식(識)의 항상함이 아닌 것과 항상함이 없음도 아닌 것과 나아가 여읨도 아니고 여읨 없음이 아닌 것도 행하지 않습니다.
040_0881_b_06L『般若波羅蜜多經』云舍利子問尊者須菩提言菩薩摩訶薩修行般若波羅蜜多云何能知善巧方便須菩提言者舍利子若菩薩摩訶薩修行般若波羅蜜多時不行色不行受想行識不行色有相乃至不行受想行識有相不行色非常非無常非苦非非我非無我非寂非動非空非不非相非無相非願非無願非離非不如是乃至不行識非常非無常乃至非離非不離
다섯 가지 온(蘊)은 이와 같이, 있는 바의 계처(界處)에 연하여 생겨나는 것과 보리분법(菩提分法)1)과 신통바라밀다력(神通波羅蜜多力)과 무외무애해(無畏無碍解)와 불공불법(不共佛法)2) 등과 나아가 여읨도 아니고 여읨 없음도 아닌 것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리자존자시여, 색과 공은 다르지 않고 공과 색은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며, 나아가 식(識)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식과 다르지 않으며, 식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식이며, 이와 같이 하여 계처에 연하여 생겨나는 것과 나아가 불공불법(不共佛法)은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은 불공불법과 다르지 않으며, 불공불법이 곧 공이고 공이 곧 불공불법입니다.
040_0881_b_17L五蘊如是所有界緣生菩提分法神通波羅蜜多無畏無礙解不共佛法等乃至非離非不離而悉不行何以故尊者舍利子不異空空不異色色卽是空空卽是乃至識不異空空不異識識卽是空空卽是識如是界緣生乃至不共佛法不異空空不異不共佛法不共佛法卽是空空卽是不共佛法
040_0881_c_02L보살마하살이 만약에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한다면 이것은 곧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을 능히 아는 것이기 때문에, 저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대하여 역시 ≺나는 행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행하지 않는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나는 역시 행하기도 하고 역시 행하지 않기도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나는 행함도 아니고 행하지 않음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품이 없는 자성(自性)이 곧 반야바라밀다이기 때문입니다.’”
040_0881_c_02L菩薩摩訶薩若如是修行般若波羅蜜多是卽能知善巧方便而彼菩薩於般若波羅蜜多亦不念我行不念我不不念我亦行亦不行不念我非行非不行何以故無性自性卽是般若波羅蜜多故
이 경전에서는 다시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시가(礬尸迦)여, 선남자와 선여인이 반야바라밀다를 널리 설할 때 혹시 반야바라밀다를 헐뜯어 말함이 있는데, 어떤 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헐뜯어 말하는 것이겠느냐? 말하자면, 만약에 색(色)은 항상됨이 없으며 괴로우며 내가 없으며 청정하지 않다고 말하거나, 이와 같이 하여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과 계처(界處)와 선정(禪定)과 무량무색정(無量無色定)과 염처(念處)와 정근(正勤)과 신족(神足)과 근력(根力)과 각도성제(覺道聖諦)와 무소외무애해(無所畏無碍解)와 불공불법(不共佛法)과 나아가 일체상지(一切相智)에 이르기까지, 항상됨이 없고 고통스럽고 내가 없고 청정하지 않다고 만약에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거나 이러한 말을 지어낸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다를 헐뜯어 말한다고 한다.
040_0881_c_08L此經又云佛言憍尸迦善男子善女人宣說般若波羅蜜多或有誹謗般若波羅蜜多者何等是爲誹謗般若波羅蜜多邪所謂若說色是無常是苦無我不淨如是受想行識及界禪定無量無色定正勤神足根力聖諦無所畏無礙解不共佛法乃至一切相智無常是苦無我不淨若如是行是行般若波羅蜜多作此說者是爲誹謗般若波羅蜜多
040_0882_a_02L어떤 것이 반야바라밀다를 헐뜯어 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말하자면, 만약에 설하여 말하되, ≺선남자여, 그대가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는 색(色)은 항상됨이 없다고 관찰하지 말 것이며, 색은 고통스럽고 내가 없고 청정하지 않다≻고 관찰하지 말 것이며, 나아가 일체상지(一切相智)도 역시 다시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색의 자성은 공(空)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색의 자성이 공이라면 곧 반야바라밀다이다. 만약에 반야바라밀다 안에 언제나 가히 붙잡을 수 있는 색이 없다면 저 색은 이와 같이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다시 혹은 항상됨이든 혹은 항상됨이 없음이든 가히 붙잡을 수 있겠느냐? 수ㆍ상ㆍ행ㆍ식과 나아가 일체상지도 역시 이와 같다. 이렇게 말을 한다면 이것을 반야바라밀다를 헐뜯어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040_0881_c_18L何等是不謗般若波羅蜜多謂若說言善男子汝修般若波羅蜜多時勿觀色無常勿觀色苦無我不淨乃至一切相智亦復如是何以故色自性空故若色自性空卽般若波羅蜜多若般若波羅蜜多中無色爲常可得彼色如是無所有況復若常若無常而可得邪受想行識乃至一切相智亦復如是作此說者是卽不謗般若波羅蜜多
또한 만약에 설하여 말하기를, ≺선남자여, 그대가 반야바라밀다를 닦을 때는 가히 넘어가야만 하는 법이 있다≻고도 하지 말 것이며, ≺가히 평안히 머물러야만 하는 법이 있다≻고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반야바라밀다는 일체 법 안에서 있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법이 넘어가지도 않고 머무르는 바도 없다면 곧 일체 법의 자성은 한결같이 공하며, 만약에 법의 자성이 공하면 곧 법은 성품이 없으며, 만약에 법이 성품이 없으면 곧 반야바라밀다이다. 이 반야바라밀다 안에는 혹시 나오거나 혹시 들어가거나 혹시 생겨나거나 혹시 멸하는 어떤 법도 있지 않다. 이와 같이 설하면 곧 반야바라밀다를 헐뜯어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040_0882_a_04L又若說言善男子汝修般若波羅蜜多時勿謂有法而可過越勿謂有法而可安住何以故般若波羅蜜多於一切法中無所有故若法不過越無所住卽一切法自性皆空若法自性空卽法無性若法無性是卽般若波羅蜜此般若波羅蜜多中卽無有法若出若入若生若滅如是說者是卽不謗般若波羅蜜多
또 수보리(須菩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반야바라밀다는 얻은 바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며, 얻은 바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약에 법이 둘이 있으면 얻은 바가 있고 만약에 법이 둘이 없으면 얻은 바가 없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둘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눈과 색(色)을 둘이라 하고 의식(意識)과 법을 둘이라 하고, 나아가 보리법(菩提法)과 불법(佛法)을 둘이라 한다.’
040_0882_a_13L又須菩提白佛言世尊般若波羅蜜多云何有所得何無所得佛言須菩提若法有二卽有所得若法無二卽無所得須菩提世尊云何爲二佛言須菩提:眼色爲二意法爲二乃至菩提法佛法爲
040_0882_b_02L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얻은 바가 있음이 얻은 바가 없음입니까, 얻은 바가 없음이 얻은 바가 없음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저 얻은 바가 있음은 얻은 바가 없음이 아니며, 역시 저 얻은 바가 없음도 얻은 바가 없음이 아니다. 수보리야, 설령 얻은 바가 있든 설령 얻은 바가 없든 한결같이 평등하다. 이것을 바로 얻은 바가 없다고 한다.’
또다시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승의제(勝義諦) 안에 머무르지도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깨닫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전도(顚倒)된 법 안에 머무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040_0882_a_19L須菩提言世尊有所得是無所得無所得是無所得邪佛言須菩提非彼有所得是無所得亦非無所得是無所得須菩提若有所得若無所得而悉平等此卽是爲無所得復次須菩提言世尊豈不住勝義諦中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果邪佛言須菩提言住顚倒法中邪佛言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만약에 승의제 안에 머무르지도 않고 또한 전도된 법 안에 머무르지도 않고 정각을 이룬다면, 여래께서는 어떻게 보리의 과보를 증득하지 못하심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나는 보리의 과보를 증득하였다. 그러나 함이 있는 세계든 함이 없는 세계든 한결같이 머무르는 바가 없다.’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나는 성품 없는 가운데 성품 없음을 가지고 능히 정각을 이룰 수는 없다.’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성품 있는 가운데 성품 없음을 가지고 능히 정각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040_0882_b_04L須菩提言若不住勝義諦中又不住顚倒法中成正覺者豈非如來不證菩提果邪佛言須菩提我證菩提果然於有爲界中無爲界中悉無所住又復佛言須菩提我不能以無性中無性而成正覺須菩提言世尊不以有性中無性能成正覺不佛言不也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만약에 성품 없는 가운데 성품 없음으로써 능히 정각을 이룰 수는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또한 수보리야, 나는 『금강반야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蜜多經)』 안에서 이미 너에게 일러 말했다.
수보리야, 너의 생각은 어떤지 말해 보거라. 여래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느냐, 여래께서 설하시는 바의 법이 있느냐?’
040_0882_b_11L須菩提言若以無性中無性能成正覺不佛言不也又須菩提我於『金剛般若波羅蜜多經』中曾謂汝言:須菩提於汝意云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邪如來有所說法邪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알기로는, 여래께서는 어떤 법이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이 없으시며, 마찬가지로 여래께서는 어떤 법도 가히 설하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설령 여래께서 설하신 바의 법이 있더라도 그것은 가히 붙잡을 수도 없고 가히 설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고 법 아닌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일체의 현인과 성인들은 한결같이 함이 없는 법으로써 차별을 두시기 때문입니다. 여래께서는 단지 유정들을 교화하여 제도하시기 위한 까닭에 훌륭한 방편으로써 여러 가지 문을 여시어 이와 같이 심히 깊고 바른 법을 펼쳐 설하실 뿐입니다.’”
040_0882_b_15L須菩提言如我解佛所說義無有法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亦無有法如來可說何以故若有法如來所說者彼不可取不可說非法非非所以者何一切賢聖皆以無爲法而有差別如來但爲化度有情故善方便開種種門宣說如是甚深正法
大乘實要義論卷第八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7覺支)ㆍ8정도(正道)의 일곱 가지를 합한 37도품(道品)을 말한다.
  2. 2)부처님과 보살에게만 갖추어져 있고 범부나 2승(乘)에게는 갖추어져 있지 않은 훌륭한 특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