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寶要義論 卷第九

ABC_IT_K1475_T_009
040_0882_c_01L대승보요의론 제9권
040_0882_c_01L大乘寶要義論 卷第九


유정 등 한역
박용길 번역
040_0882_c_02L譯經三藏朝散大夫試鴻臚少卿光梵大師賜紫沙門臣 惟淨 等奉 詔譯


『입능가경(入楞伽經) 』 안에서 말한 것과 같다.
“대혜보살(大慧菩薩)이 여래장(如來藏)에 대해 여쭙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그대는 지금 어떤 까닭으로 여래께서는 자성이 밝고도 밝고 청정하시며 본래부터 청정하시다는 이러한 말에 대해 묻느냐? 여래께서는 서른두 가지의 모습을 갖추시고 일체 유정들의 육신 가운데에 머무르신다. 비유하자면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배가 낡고 때 묻은 옷에 뒤덮여 있는 것과 같다. 온(蘊)ㆍ처(處)ㆍ계(界)의 옷에 뒤덮여 있는 것도 역시 그러하니, 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은 실답지 않고 헤아려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은 때에 물드는 것이며, 이것은 무상한 법이다. 이것은 단단하지 않으며 이것은 궁극의 경지가 아니다.’
040_0882_c_03L如『入楞伽經』中大慧菩薩問如來藏佛言大慧何故汝今問於如來自性明亮淸淨本來淸淨如是之說如來具三十二相在一切有情身中如無價寶爲獘垢衣之所纏覆蘊處界衣纏覆亦然彼貪瞋癡不實計執此之垢染是無常法是不堅牢是不究竟
대혜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외도(外道)들이 말하는 신아(神我)라는 말은 어떤 까닭에서 능히 이 여래장(如來藏)이라는 말과 더불어 비교할 수가 없습니까? 신아(神我)는 영원하고 나는 능히 만들고[造作] 묶임[繫]을 여의고 자재(自在)하여 영원히 멸하지 않는다고 저 외도들은 이와 같이 신아라는 말을 설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외도가 말하는 나라는 말은 가히 여래장이라는 말과 더불어 비교할 수가 없다.
대혜여, 그러나 내가 설하는 바의 실제(實際)와 열반과 생겨남이 없음과 공(空)과 모양 없음[無相]과 바람 없음[無願] 등의 모든 어구(語句)의 뜻은, 여래(如來)ㆍ응공(應供)ㆍ정등정각(正等正覺)께서 어리석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없다는 놀랍고 두려운 법을 여의도록 하기 위한 까닭에 방편으로써 분별이 없고 맞서 가로막음이 없는 여래장의 문을 설하신 것이다. 이 안에서는 역시 미래와 현재의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내가 지었다고 집착하지 않는다.
040_0882_c_10L大慧白佛言世尊外道所說神我之何故不能等比如來藏語以外道說神我是常我能造作離繫自在而永不滅彼說如是神我之語佛言外道我語不可等比如來藏語然我所說實際涅槃無生無相無願等諸句義如來應供正等正覺爲諸愚者令離無我驚怖之法故以方便說無分別無所對礙如來藏門此中亦非未來現在諸菩薩摩訶薩著我所作
040_0883_a_02L대혜여, 비유하자면 도공(陶工)이 흙을 가져다가 물로 반죽을 만든 다음, 노끈과 그 도구들을 써서 부지런히 힘껏 만들어 여러 가지 그릇들을 만드는 것과 같다. 여래께서도 역시 이와 같으셔서 만유에 실다운 체성(體性)이 없음에 머물러 분별의 모양을 여의시는 까닭에 여러 가지 훌륭한 지혜와 방편과 훌륭하고 교묘한 상응(相應)으로써 혹은 여래장을 설하시기도 하고 혹은 내가 없다는 법을 설하시기도 하여 미묘하고 교묘한 수많은 문구(文句)와 말씨로써 비유하여 설하신다. 이러한 연(緣) 때문에 외도가 말하는 나라는 말은 가히 여래장이라는 말과 더불어 비교할 수가 없다.
040_0882_c_21L大慧譬如窯師取土成泥用水及繩幷其工具勤力所作成種種器如來亦復如是住法無我離分別相故以種種勝慧方便善巧相應或說如來藏或說無我法以多妙巧文句言詞譬喩而說以是緣故外道我語不可等比如來藏語
대혜여, 또한 내가 말하는 바의 여래장이라는 말은 단지 모든 외도들의 무리와 나의 말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항복받기 위한 방편으로써 여래장을 설한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어떤 까닭에 실다운 주재(主宰)가 없는 것을 헤아려 집착하는 견해 안에 빠져서 즐거워하느냐? 만약에 세 가지 해탈문(解脫門)에 대해 즐거운 생각이 고루 갖추어지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신속히 얻는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여래ㆍ응공ㆍ정등정각께서 설하시는 여래장법(如來藏法)은 외도가 말하는 나라는 말과 더불어 비교할 수가 없다.
040_0883_a_05L大慧又我所說如來藏語但爲降伏諸外道輩執我語者故以方便說如來藏如是等輩何故意樂墮在無實主宰計執見中若於三解脫門意樂具足卽能速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果以是義故如來應供正等正覺所說如來藏法與外道我語不可等比
이러한 까닭에 대혜여, 외도들로 하여금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여의도록 하며 마땅히 여래의 무아장(無我藏)의 법을 순순히 따라 얻도록 하라. 이렇게 펼쳐 말하는 이것은 위없는 성취의 구경법(究竟法)이다. 이것은 모든 보살의 공(空)과 생겨남 없음과 둘 없음과 자성 없음의 법이라고 하며, 이것은 심히 깊은 법이라고 한다. 만약에 펼쳐 설하거나 아울러 받아 지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능히 일체 대승경전 안의 심히 깊은 뜻을 널리 거두어들인다. 왜냐하면 이 심히 깊은 법은 일체 법과 일체의 경전 안에서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이 경전에서 다시 말한다.
“대혜여, 이 공(空)과 생겨남 없음과 둘 없음과 자성 없음의 모양은 널리 일체의 모든 부처님들과 아울러 일체의 경전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040_0883_a_12L是故大爲令外道離諸見執使其當得隨順如來無我藏法此所宣說是謂無上成就究竟之法是謂諸菩薩空無生無二無自性法是謂甚深之法有宣說及受持者卽能普攝一切大乘經中甚深之義何以故此甚深法於一切法一切經中攝故此經又云大慧此空無生無二無自性相普攝一切諸佛及一切經典故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 안에서 여래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40_0883_a_21L『月燈三昧經』中如來說偈云

삼천대천세계 안에서
내가 펼쳐 설한 바의 모든 경전의
온갖 문구는 모두 한 뜻이기 때문에
다시 능히 두루 설할 것이 없다.
040_0883_a_22L三千大千世界中
我所宣說諸經典
種種文句皆一義
故復不能周徧說
040_0883_b_02L
나아가 일체 모든 여래들께서는
더불어 온갖 법을 널리 펼쳐 설하셨으나
한 구(句) 안에서 이미 배움을 닦으면
일체를 닦아서 성취를 얻네.
040_0883_a_24L乃至一切諸如來
及廣宣說多種法
於一句中修學已
一切修習得成就

일체의 모든 법은 한결같이 공의 성품이므로
만약에 누군가 그 뜻을 밝게 안다면
이 말뜻 안에서 배워 이룰 수 있으니
모든 불법은 얻기가 어렵지 않다.
040_0883_b_03L一切諸法皆空性
若人於義明解了
此句義中學所成
而諸佛法不難得

심히 깊은 법을 능히 믿고 알면
일체의 훌륭한 복이 생겨남을 얻고
모든 유(有)의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
할 일을 갖추고 성불(成佛)에 이르네.
040_0883_b_05L於甚深法能信解
獲得一切勝福生
諸有世閒出世閒
辦所作事至成佛

『보수경(寶授經)』에서 말하였다.
“또다시 묘길상이여, 설령 보살이 백천의 겁(劫)이 지나도록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잘 닦아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을 갖추더라도,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정법(正法)을 부지런히 구하여 받아 듣는다면 앞의 복덩어리에 비해 이것이 거듭 배가 많거늘, 하물며 구하는 바가 없는 마음으로써 받아 듣고 베껴 쓰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널리 설함이겠느냐?”
040_0883_b_07L『寶授經』云復次妙吉祥若菩薩經百千劫善修六波羅蜜多具善巧方便若有人於此正法勤求聽受者比前福蘊此復倍多何況以無所求心聽受書寫爲佗廣說
『금강반야바라밀다경(金剛般若波羅蜜多經)』에서는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긍가하(殑伽河) 안에 있는 모래알 수의 그 하나하나의 모래알을 긍가하라 하면, 이 모든 강 안에 있는 모래알 수는 정녕 많겠느냐, 적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모든 긍가하가 이미 많아 헤아릴 수가 없는데, 하물며 어찌 그 모래이겠습니까?’
040_0883_b_12L『金剛般若波羅蜜多經』云佛言須菩提於汝意云何伽河中所有沙數彼一一沙爲殑伽是諸河中所有沙數寧爲多不菩提言諸殑伽河尚多無數何況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내가 이제 참으로 너에게 일러 말하겠다. 만약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모든 긍가하 안에 있는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를 가득 채울 만한 일곱 가지 보배로써 모든 부처님ㆍ여래에게 보시한다면, 이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이러한 연(緣) 때문에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씀드렸다.
‘심히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심히 많습니다. 선서(善逝)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설령 어떤 사람이 이 정법에서 나아가 하나의 사구게(四句偈)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설해 준다면 그 복은 그것을 뛰어넘는다.’”
040_0883_b_17L佛言須菩提我今實言告汝若善男子善女人於諸殑伽河中所有沙數如是沙等世界以七寶滿爾所世持用布施諸佛如來是善男子善女人以是緣故得福多不須菩提言甚多世尊甚多善逝佛言須菩提有人於此正法乃至受持一四句偈爲佗說者其福勝彼
040_0883_c_02L『범왕문경(梵王問經)』에서는 말한다.
“인자(仁者)여, 만약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여래에 대해 복된 일을 즐거이 닦아서 마땅히 이 정법을 귀 기울여 듣고 믿고 이해하며 아울러 받아 지니거나 하면, 곧 능히 재산을 얻어 부자가 되고 법에 대해 자재(自在)하여 많은 권속들을 거느리고 인간과 천상의 세계 안에서 온갖 쾌락을 받는다.”
040_0883_b_24L『梵王問經』云若善男子善女人於如來所樂修福事者應當於此正法聽聞信解及受持等卽能獲得色相富盛廣多眷於法自在人天之中受諸快樂
『사리자설반야바라밀다경(舍利子說般若波羅蜜多經)』에서 말하였다.
“사리자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다를 설하는 것을 얻어 듣고 이미 들은 대로 믿고 이해한다면, 이 사람은 곧 보리에 대해 물러나 되돌아가지 않음을 얻습니다.’
자씨(慈氏)보살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이 반야바라밀다를 설하는 것을 듣고 이미 들은 대로 믿고 이해한다면, 이 보살은 곧 부처님의 과보를 이루는 자리에 가까워짐을 얻습니다.’
묘길상보살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약에 이 반야바라밀다를 설하는 것을 듣고 이미 들은 대로 믿고 이해한다면, 이 보살 보기를 마땅히 부처님처럼 생각하며, 일체의 죄와 더러움과 악한 일이 한결같이 풀려 없어지며, 일체의 업장(業障)이 한결같이 청정함을 얻으며, 심히 깊은 법에 대해 능히 훌륭한 이해를 낳습니다.’”
040_0883_c_05L『舍利子說般若波羅蜜多經』云舍利子白佛言世尊若復有人得聞說此般若波羅蜜多聞已信解者是人卽於菩提得不退轉慈氏菩薩言世尊有聞說此般若波羅蜜多聞已信解是菩薩卽得近佛果位妙吉祥菩薩言世尊若有聞說此般若波羅蜜聞已信解者見是菩薩當如佛想一切罪染惡作而悉解除一切業障皆得淸淨於甚深法能生勝解
『여래장경(如來藏經)』에서는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섭아, 가장 극심한 열 가지 선하지 않은 업(業)이 있다. 첫째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연각(緣覺)을 아버지라고 하면서도 이를 살해(殺害)한다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살생의 죄라고 한다. 둘째는 삼보(三寶)의 재물을 침범하여 빼앗으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불여취(不與取)의 죄라고 한다. 셋째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아라한을 어미라고 하면서도 물들어 집착함을 낳는다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사염(邪染)의 죄라고 한다. 넷째는 설하여 말하기를 ≺나는 여래와 같다≻고 하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망어(妄語)의 죄라고 한다.
040_0883_c_15L『如來藏經』云佛言迦葉最極十不善業者所謂:一者假使有人緣覺爲父而興殺害是爲最極殺生之罪二者侵奪三寶財物是爲最極不與取罪三者假使有人阿羅漢爲母而生染著爲最極邪染之罪四者或有說言我是如來等是爲最極妄語之罪
040_0884_a_02L다섯째는 거룩한 스님들에 대해 이간질을 부리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양설(兩舌)의 죄라고 한다. 여섯째는 거룩한 스님들을 흠잡아 헐뜯으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악구(惡口)의 죄라고 한다. 일곱째는 정법에 대해 잡되게 꾸며 장애를 일으키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기어(綺語)의 죄라고 한다. 여덟째는 그 정취(正趣)와 정도(正道)의 이익이 있는 바에 대해 침범하여 빼앗으려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탐욕의 죄라고 한다. 아홉째는 오무간업(五無間業)을 칭찬하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진에(瞋恚)의 죄라고 한다. 열째는 간교하고 악한 견해를 일으키면 이것을 가장 극심한 사견(邪見)의 죄라고 한다.
040_0883_c_22L五者於聖衆所而作離間是爲最極兩舌之罪六者毀呰聖衆是爲最極惡口之罪七者於正法欲雜飾爲鄣是爲最極綺語之罪八者於其正趣正道所有利養起侵奪心是爲最極貪欲之罪九者稱讚五無間業是爲最極瞋恚之罪十者起僻惡見是爲最極邪見之罪
가섭아, 이러한 것들을 열 가지의 선하지 않은 업이라고 하는 것으로 모두가 더없이 큰 죄이다. 가섭이여, 설령 한 유정이라도 이와 같은 죄를 갖춘 열 가지의 선하지 않은 업을 행하는 자가 있으면 여래께서는 곧 인연(因緣)이 서로 어우러져 합하는 법을 펼쳐 설하시어 이해하고 들어가도록 하신다. 이때는 역시 나라는 생각도 없고 인간이라는 생각도 없고 중생이라는 생각도 없고 일정한 목숨이 있다는 생각도 없다.
만약에 능히 이러한 법을 모두 알아서 마치 마술과 같은 법을 지어내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으며, 더러움을 여의고 청정하여 자성이 밝고도 밝으며, 일체 법이 본래부터 청정하다는 것을 알며, 일체 법에 대해 청정하게 믿고 훌륭히 이해한다면, 나는 저 유정들이 악한 업에 따라 나아가는 곳에 떨어진다고 설하지 않는다.
040_0884_a_07L迦葉此等是爲十不善業皆極大罪迦葉若一有情有如是罪具行十不善業者如來卽爲宣說因緣和合之法使令解入爾時亦無我人有情壽者之想若能解了此法無作無爲如幻之法離染淸淨自性明解一切法本來淸淨於一切法淨信勝解者我不說彼有情墮於惡趣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번뇌의 덩어리라는 성품은 가히 붙잡을 수가 없으니, 이미 생겨난 즉시 일체가 깨어져서 흩어진다. 따라서 모든 번뇌의 덩어리는 인연이 어우러지고 합하여 이미 생겨난 바이므로 생겨나는 대로 곧 멸한다. 만약에 마음을 일으켜서 보내거나 나누어 주면 모든 번뇌도 따라서 즉시 생겨난다고 알아야 한다.
만약에 이와 같이 믿고 아는 사람이라면 어찌 다시 그에게 죄의 분위(分位)가 있겠는가? 받아들일 곳이 없는 까닭이다. 만약에 모든 죄장(罪障)이 있더라도 가히 머물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040_0884_a_14L何以故無諸煩惱聚性可得生已卽時一切破散故知諸煩惱一聚因緣和合所生生已卽滅若起心遣除而諸煩惱隨卽有生若如是信解者復何有罪之分位無處容受故若言有諸罪障而可住者無有是處
040_0884_b_02L「지율우바리존자문항마품(持律優波離尊者問降魔品)」에서는 말하였다.
“‘너희 모든 악마들은 어떻게 하는 것을 이 모든 비구들이 진실로 계율의 행을 지킨다고 말하느냐?’
악마가 말했다.
‘존자시여, 만약에 비구가 일체 법은 끝내 조복(調伏) 받으며 모든 죄는 본래 앞의 때와 뒤의 때가 없으니 끝 간 곳을 여의기 때문이라고 온통 알면, 설령 지옥에 떨어지는 죄 및 다른 악한 짓을 범했더라도 한결같이 풀어 없어져 굳은 집착을 낳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법을 남을 위해 열어 보여서 저들이 가진 5무간죄(無間罪)도 이미 모두 말끔히 없어지는데, 하물며 다시 약간의 계를 범하고 더러움에 물듦이겠습니까?
040_0884_a_20L「持律優波離尊者問降魔品」云汝諸惡魔云何是苾芻眞持律行魔言尊者苾芻了知一切法畢竟調伏諸罪本來無前後際離邊際故若犯墮罪及餘惡作而悉解除勿生堅著以如是法爲佗開示彼之所有五無間罪尚悉蠲除況復少略破戒垢染
이렇게 법과 율을 아는 사람은 떠도는 먼지와 같은 번뇌에 물드는 바가 되지 않고 벗어나 여의는 생각을 일으키며, 모든 번뇌는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 있지도 않음을 압니다. 더러움을 여읜 지혜라도 능히 번뇌를 없애지 않으며 더러움을 여읜 성품이라도 역시 가히 버리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으로 이와 같이 관찰하니, 모든 번뇌는 마치 뜬구름과 같이 바람에 날려 흘러가고 흩어져서 향하는 바의 방향을 따라 어디든지 가서 어디든지 머무릅니다.
또한 모든 번뇌는 물속의 달과 같아서 망상의 그림자가 그 앞에 마주 나타난 것입니다. 또한 모든 번뇌는 캄캄하고 어두운 대상물이니 지혜의 등불의 광명이 능히 비추어 깨뜨립니다.
040_0884_b_04L解是法律者不爲客塵煩惱所染生出離想知諸煩惱非內非外亦非中閒非離染智能除煩惱離染之性亦不可遣智者如實觀諸煩惱猶如浮雲風飄流散隨所向方何適何住又諸煩惱如水中月徧計影像對現其前又諸煩惱是黑暗境界慧燈光明而能照
또한 번뇌는 육신을 도둑질하고 몰래 해치니 마치 야차(夜叉)나 나찰(羅刹)과 같지만, 만약에 깊고 단단하게 뜻을 세워서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곧 머무르는 바가 없습니다. 또한 모든 번뇌는 항상 그 편리함을 엿보아 살피다가 만약에 뜻을 깊고 단단하게 세우지 않으면 즉시 번뇌가 불어나고 자라나지만, 공(空)하고 모양 없고 바람 없는 지혜의 법 안에서는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모든 번뇌 안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써 저 번뇌에 물들고 집착하는 모든 유정에 대해 그 앞에 마주하고 머물러서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나도 없고 유정도 없는 법을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러움을 여의도록 합니다. 이것을 바로 진실하게 계율을 지킨다고 합니다.’”
040_0884_b_12L又煩惱賊竊害色相如夜叉羅剎若深固作意如實觀察卽無所住諸煩惱常伺其便若不深固作意卽煩惱增長於空無相無願智慧法中卽不違害又於如是諸煩惱中智者以智於彼染著煩惱諸有情所對住其前起悲愍心爲說無我無有情法令其離染此卽是爲眞實持律
040_0884_c_02L『아사세왕경(阿闍世王經)』에서는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이제 내가 너에게 진실한 말을 일러 주겠다. 만약에 오무간죄를 지었더라도 이와 같은 정법을 이미 듣고 능히 훌륭한 이해를 낳는다면, 나는 저 사람이 업이나 업장이 있다고 설하지 않는다.
아난이여, 요점을 들어 이것을 말하자면, 이 펼쳐 설한 심히 깊은 정법은 마땅히 훌륭한 이해를 낳고 널리 크게 칭찬해야 하며, 수많은 저 경전들 중에서 오로지 부지런히 받아 들어서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을 여의지 않아야 한다.
보살은 마땅히 심히 깊은 법을 이와 같이 부지런히 행하고 설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지혜와 방편의 두 법은 떨어지지 않으므로 이것을 보살의 상응정법(相應正法)이라고 한다.’”
040_0884_b_19L『阿闍世王經』云佛言阿難我今實言告汝若有造五無閒罪者得聞如是正法已能生勝解我不說彼人有業及業阿難以要言之此所宣說甚深正應生勝解廣大稱讚數於彼彼經中專勤聽受不離善巧方便菩薩當如是勤行說甚深法是故慧及方便二法不離是爲菩薩相應正法
『유마힐경(維摩詰經)』에서 말하였다.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매이고 방편이 있는 지혜는 풀려납니다.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매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약에 보살이 공(空)과 모양 없음과 바람 없음의 법 안에서 그 마음을 다스려 항복받고서도 상호(相好)로써 불국토를 아름답게 꾸미고 유정들을 성숙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곧 방편이 없는 지혜는 얽매인다고 합니다.’
‘방편이 있는 지혜는 풀려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약에 보살이 상호로써 능히 불국토를 아름답게 꾸미고 유정들을 성숙하게 하며 공과 모양 없음과 바람 없음의 법 안에서 그 마음을 다스려 항복받아서 능력을 익히고 부지런히 행하되 싫증내고 게으르지 않다면, 이것을 방편이 있는 지혜는 풀려난다고 합니다.’
040_0884_c_04L『維摩詰經』云無方便慧縛有方便慧解何謂無方便慧縛若菩薩於空無相無願法中調伏其心不以相好莊嚴佛土成熟有情此卽是爲無方便慧何謂有方便慧解若菩薩能以相好莊嚴佛土成熟有情於空無相無願法中調伏其心習力勤行而不疲此卽是爲有方便慧解
‘지혜가 없는 방편은 얽매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약에 보살이 모든 것을 볼 때마다 번뇌가 생겨 일어나며 뒤따라서 머물러 집착하는 바가 있지만, 그러나 다시 일체의 선근을 발하여 일으켜서 위없는 보리(菩提)에 회향한다면 이것을 곧 지혜가 없는 방편은 얽매인다고 합니다.’
‘지혜가 있는 방편은 풀려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만약에 보살이 모든 것을 볼 때마다 번뇌가 생겨 일어나더라도 뒤따라 있는 모든 집착을 끊으며 일체의 선근을 발하여 일으켜서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되 한결같이 붙잡는 바가 없다면, 이것을 곧 지혜가 있는 방편은 풀려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 지혜와 방편의 두 법은 서로 어우러져 합하므로 반드시 이 모든 것은 보살의 행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040_0884_c_12L何謂無慧方便縛若菩薩於諸見煩惱生起隨逐有所住著然復發起一切善根迴向無上菩提此卽是爲無慧方便縛何謂有慧方便解若菩薩於諸見煩惱生起隨逐斷諸有著而發起一切善根迴向無上菩提悉無所取此卽是爲有慧方便解此等慧及方便二法和合當知皆是菩薩之行
040_0885_a_02L‘보살의 행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말하자면 범부의 행도 아니고 성인과 현인의 행도 아닙니다. 이 보살의 행은 죽음과 삶 안에 있더라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며, 열반 안에 있더라도 영원히 스러져 고요하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네 가지 진리[四諦]의 지혜를 구하더라도 역시 때가 아니면 열반을 깨달아 얻지 않으며,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안이 공(空)함을 관찰하더라도 언제나 삼유(三有:欲有ㆍ色有ㆍ無色有) 안에서 태어남을 받고 드러내 보이고자 생각합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생겨남이 없음을 관찰하더라도 열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040_0884_c_20L云何是菩薩行所謂非凡夫行非賢聖行菩薩行在於生死不爲染污在於涅槃不永寂滅是菩薩行雖求四諦智亦不非時取證涅槃是菩薩行雖觀內空而常思念於三有中示現受生是菩薩行雖觀無生而不入正位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일체 유정을 받아들이더라도 물들어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공(空)을 행하더라도 언제나 부지런히 모든 모양의 공덕을 구합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지어냄이 없음을 행하더라도 일체의 선행을 부지런히 닦아 홀가분하고 평안함을 얻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지관(止觀)의 행을 닦더라도 끝내 적멸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비록 법의 바퀴를 굴려 대열반(大涅槃)을 나타내 보이더라도 보살이 행할 바의 행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 보살의 행은 무릇 이와 같은 것으로 한결같이 보살이 행할 바의 행입니다.’”
040_0885_a_03L菩薩行雖攝一切有情而不染著菩薩行雖行於空而常勤求諸相功是菩薩行雖行無作而勤修一切善行獲得輕安是菩薩行雖修止觀之行而不畢竟墮於寂滅是菩薩行雖轉法輪示現大般涅槃而不捨菩薩所行之行是菩薩行凡如是等皆是菩薩所行之行
『항마경(降魔經)』에서 말하였다.
“다시 다음으로, 있는바 모든 보살마하살들의 최상의 정행(正行)이 있다. 곧 승혜지(勝慧智)로 불어나고 향상(向上)함에 서로 응함이며, 또한 방편지(方便智)로 일체 선법(善法)의 행을 널리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승혜지(勝慧智)는 곧 나도 없고 인간도 없고 유정도 없고 정해진 수명도 없고 유동(儒童)1) 따위도 없으며, 방편지(方便智)는 곧 일체의 유정들의 행을 성숙시킨다.
승혜지가 곧 모든 법을 두루 거두어들이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정법(正法)을 받아 거두는 행이다. 승혜지가 곧 일체 불법계(佛法界)의 분별 없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일체의 불법을 존중하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 행이다.
040_0885_a_11L『降魔經』云:復次所有諸菩薩摩訶薩最上正行謂卽勝慧智增上相應若方便智卽普攝一切善法之行勝慧智者卽無我無人無有情無壽者無儒童等方便智者卽成熟一切有情之行勝慧智者卽徧攝諸法之行方便智者卽正法攝受之行勝慧智者卽一切佛法界無分別行方便智者卽一切佛法尊重供養承事之行
040_0885_b_02L승혜지가 일체의 부처님 세계를 허공처럼 행한다면 방편지는 일체의 부처님 세계의 공덕을 장엄하게 꾸미는 도구이고 장엄함을 청정하게 하는 행이다.
승혜지가 곧 일체의 성인과 현인의 함이 없는 닦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일체 스승의 존귀함에 대해 일어나는 존중하는 마음을 펴서 여러 가지 일을 만드는 행이다.
승혜지가 곧 부처님 몸의 유루(有漏)가 없음을 관찰하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부처님의 상호(相好)를 닦는 행이다.
승혜지가 곧 일체의 행이 생겨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음을 관찰하는 행이라면, 방편지는 곧 삼유(三有) 안에서 항상 생겨남을 받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사유하는 행이다.”
040_0885_a_20L勝慧智者卽一切佛剎如虛空行方便智者卽一切佛剎功德莊嚴之具作淸淨莊嚴之行慧智者卽一切賢聖修無爲行方便智者卽於一切師尊所起尊重心施作種種作用之行勝慧智者卽觀察佛身無漏之行方便智者卽修佛相好之行勝慧智者卽觀察一切行無生無起之行方便智者卽常思惟於三有中示現受生之行
『무진의경(無盡意經)』에서 말하였다.
“어떤 것들을 보살의 방편이라고 하는가? 다시 어떤 것들을 보살의 승혜(勝慧)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만약에 선정(禪定)에 들어 있을 때, 크게 불쌍히 여기는 것에서 연(緣)하는 바의 깊고 단단한 마음을 일으켜서 유정들을 관찰하면 이것이 바로 방편이다.
만약에 선정 안에서 고요하게 머물러 두루 고요하다면 이것이 바로 승혜이다. 만약에 선정에 들었을 때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서 불도(佛道)에 순순히 따른다면 이것이 바로 방편이다.
만약에 있는 바가 없음에 의지하여 관찰한다면 이것이 바로 승혜이다. 만약에 선정에 들었을 때 저 일체 법을 널리 관찰하여 거두어들인다면 이것이 바로 훌륭한 방편이다.
만약에 법계(法界)를 관찰하여 분별하는 바가 없다면 이것이 바로 승혜이다. 만약에 선정에 들어 있을 때 부처님의 몸을 아름답게 꾸미고 지어낸 바를 앞에 드러내면 이것이 바로 방편이다.
만약에 법신(法身)의 분위(分位)를 관찰하면 이것이 바로 승혜이다.”
040_0885_b_06L『無盡意經』云何等是爲菩薩方便復何等是菩薩勝慧所謂若入定時起大悲所緣深固之心觀察有情此卽方便若於定中住寂徧寂此卽勝慧若入定時起大悲心隨順佛道此卽方便若無所有依止觀察此卽勝慧若入定時觀察普攝彼一切法此卽方便若觀法界無所分別此卽勝慧若入定時佛身莊嚴所作現前此卽方便若觀察法身分位此卽勝慧
『유마힐경』에서는 말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씨(慈氏)여, 보살은 두 가지 모양이 있다. 첫째는 잡된 어구(語句)로 문장을 꾸민 것을 믿고 즐기는 것이며, 둘째는 심히 깊은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들어가는 일이다. 이것을 두 가지 모양이라고 한다.
만약에 보살이 잡된 어구로 문장을 꾸민 것을 존중하고 믿어 즐긴다면, 반드시 이것은 처음으로 배우는 보살이라고 알아야 한다. 만약에 다시 이 청정하고 심히 깊은 경전에 대해 여러 가지 글 뜻의 서로 다른 문(門)을 널리 거두어들이고 받아 듣고 펼쳐 설하여 훌륭한 이해를 낳는다면, 반드시 이 보살은 오랫동안 범행(梵行)을 닦아 온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040_0885_b_16L『維摩詰經』云慈氏菩薩有二相一者信樂雜句文飾二者不畏甚深之法如實解入是爲二相若菩薩信樂尊重雜句文飾者當知是爲初學菩薩若復於此淸淨甚深經典普攝種種文義差別之門聽受宣說生勝解者當知是菩薩久修梵行
040_0885_c_02L다시 두 가지 법이 있다. 이것은 곧 처음으로 배우는 보살이 스스로 허물고 상처 입어서 심히 깊은 법에 대해 그 마음을 조복(調伏)받지 못하는 일이다. 첫째는 옛날에 미처 심히 깊은 경전을 들은 적이 없다가 듣고 나서는 놀라고 두려워하면서도 역시 의심을 내고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서 오히려 얕보고 헐뜯기를, ≺나는 옛날에 이 법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미처 들은 적이 없다≻고 이와 같이 말한다. 둘째는 대법기(大法器)로서 심히 깊은 법을 펼쳐 설하는 사람은 선남자가 기꺼이 친하여 가까이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간혹 때때로 안에서 은밀히 그 허물을 설한다. 이것을 두 가지 법이라고 한다.
040_0885_b_23L復有二法是卽初學菩薩爲自毀傷不於甚深法中調伏其一者於昔未聞甚深經典聞已驚怖生疑亦不隨順返生輕謗作如是我昔未聞此法從何所來二者於大法器宣說甚深法者善男子所樂親近亦不尊重或時於中密說其是爲二法
다시 두 가지 법이 있다. 보살이 비록 심히 깊은 법을 믿고 이해하더라도 스스로 허물고 상처 입으면 능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속히 깨닫지 못한다. 첫째는 처음으로 배우는 보살을 얕보고 허물어서 거두어들이지 않으며 가려서 붙들어 주지 않고 가르쳐 타이르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비록 심히 깊은 법을 믿고 이해하더라도 익혀 배우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재물을 보시하거나 법을 보시하거나 유정들을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두 가지 법이라고 한다.
이 안에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설령 모든 유정들이 모든 불보살(佛菩薩)들의 커다란 위덕력(威德力)을 알고 들어간다고 해도 이것은 더없이 얻기 어렵다.’”
040_0885_c_07L復有二法菩薩雖信解甚深之法亦自毀傷不能速證無生法忍一者輕毀初學菩薩不爲攝受不爲決擇復不教誨二者雖信解甚深之法而不習學亦不尊重不行財施法施攝受有情是爲二法此中應若諸有情解入諸佛菩薩大威德斯極難得
보살의 이 커다란 위덕력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유마힐경』에서는 말한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대가섭(大迦葉)이시여, 시방세계에 나타나 활동하고 있는 마왕(魔王)들은 한결같이 이 불가사의해탈보살(不可思議解脫菩薩)에 머무르며 훌륭한 방편으로 유정들을 성숙시키기 위한 까닭에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시방세계에는 간혹 어떤 보살이 있어서 그에게서 손이나 발이나 귀나 코나 피나 살이나 근육이나 뼈나 머리나 눈이나 몸뚱이나 아내나 자식이나 노비나 백성이나 나라나 마을이나 코끼리나 말이나 전차나 수레를 구걸합니다.
040_0885_c_14L何等是爲菩薩大威德『維摩詰經』云維摩詰言大迦葉有十方世界現作魔王者皆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以善方便成熟有情故現魔相又十方世界或有菩薩從其求乞手足耳鼻血肉筋骨頭目身分妻子奴婢人民國邑象馬車乘
040_0886_a_02L무릇 이와 같은 것들을 혹시 구하러 오는 것이 있으면 한결같이 모든 것을 베풀어 줍니다. 보살은 이와 같은 모양이기 때문에 핍박을 받더라도 이들은 한결같이 불가사의해탈보살에 머무릅니다.
가섭이시여, 비유하자면 용과 코끼리가 발로 차거나 짓밟으면 당나귀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범부도 역시 그러해서 이와 같이 보살을 핍박할 수는 없지만, 보살은 이에 역시 이와 같이 보살을 핍박할 수가 있습니다.’”
040_0885_c_20L凡如是等或來求者皆悉給施菩薩以如是相故行逼迫此等皆是住不可思議解脫菩薩迦葉譬如龍象蹴非驢所堪凡夫亦復如是不能如是逼迫菩薩而菩薩者乃能如是逼迫菩薩
大乘寶要義論卷第九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석존이 전생에 보살이 되어 연등불을 공양할 때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