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1488_T_002
- 041_0489_a_01L대승집보살학론 제2권
- 041_0489_a_01L大乘集菩薩學論卷第二法稱菩薩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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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칭보살 지음
법호 등 한역
박상수 번역 - 041_0489_a_02L西天譯經三藏銀靑光祿大夫試光祿卿普明慈覺傳梵大師賜紫沙門臣法護等奉詔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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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보시학품 ② - 041_0489_a_03L集布施學品第一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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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그러므로 자력(自力)으로 모집하는 바를 알고, 그 행상을 따라서 하나의 선도(善道)에 대해서도 또한 응당 수호해야 한다.
『지장십륜경(地藏十輪經)』1)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이와 같은 열 가지 선업도[十善業道]는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과보이다. 만약 진실로 하나의 선업도도 수호하지 않고, 나아가 목숨을 마칠 때 스스로 ‘나는 진실로 대승을 행한 자이고,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한 자이다’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에 대해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헛되고 속이는 것이며, 커다란 망어(妄語)이다. 시방세계의 부처님ㆍ세존의 면전에 대하여 세상을 속이고, 공(空)은 단멸이라는 견해를 말하여 어리석은 자를 유혹하여 속이는 것이다. 육신이 허물어져 목숨을 끝마치고 나서 모든 나쁜 세상에 떨어진다.” - 041_0489_a_04L論曰:故知自力所集,隨其行相於一善道亦應守護。如『地藏十輪經』云:“如是十善業道佛所證果,若不眞實守護一善業道,乃至臨命終時而自稱言:‘我是眞實行大乘者,我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當知是人是極虛詐、是大妄語,對十方界佛世尊前誑惑世間,說空斷見誘誑愚癡,身壞命終墮諸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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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목숨을 끝마칠 때에 이르기까지 능히 잠깐 동안이라도 모든 선한 것[善品]을 모으는 것을 말하고, 또한 응당 닦아 지어야 한다.
『약사유리광경(藥師琉璃光經)』2)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보살의 난행(難行)과 고행(苦行) 및 미묘하고 수승한 지혜를 듣고, 나아가 해탈[發心住]에 들어가 큰 용맹을 발하여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중생을 구호하며,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다하여 예배하고 공양하며, 죄 및 따라 기뻐하는 복(福)을 설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머물러 법을 설할 것을 권청하고, 나아가 보리에 회향하며, 선지식을 위하여 법을 설할 것을 권청하고, 혹은 좋아하여 스스로 설하는 큰 마음을 소유한 중생을 본다면, 마땅히 이를 도를 나타내 보이는 자[示道者]라고 한다.” - 041_0489_a_13L論曰:乃至臨命終時,能須臾說集諸善品,亦應脩作。如『藥師琉璃光經』說:“若見大心衆生,如聞菩薩難行苦行及妙勝智,乃至入解、發大勇猛荷負重擔、捄護衆生盡諸苦本,禮拜供養、說罪及隨喜福、勸請諸佛住世說法,乃至迴向菩提,爲善知識勸請說法或樂自說,當知是名爲示道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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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장엄불찰공덕경(文殊師利莊嚴佛刹功德經)』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세존이시여, 이 묘길상(妙吉祥)보살3)이 옛적에 생존할 때 본래 인연을 행하여 보리심을 발하고, 또 이와 같이 발한 법은 그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 041_0489_a_21L如『文殊師利莊嚴佛剎功德經』云:“世尊!是妙吉祥往昔生時,本行因緣發菩提心,亦如是發,如彼所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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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_0489_b_02L‘……최초에 윤회의 테두리를 멀리 여의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행위를 행한다.
나는 존자의 처소에서 보리심을 발하고, 현전에 권청하여 모든 세간으로 하여금 빈궁한 과보를 면하게 하며, 내가 보리를 얻을 때 분한 마음[忿心]ㆍ원한의 마음[恨心]ㆍ인색ㆍ탐욕[貪]ㆍ질투(嫉妬)가 전부 일어나지 않았다. 항상 범행(梵行)4)을 닦아 모든 죄와 욕망을 벗어나고, 부처님을 따라서 청정한 시라(尸羅)를 배워 애호하고 존중한다. 위대한 보리에 대하여 속히 취하여 증득하지 않고, 나는 나중의 세상에 처하여 모든 중생에게 한 가지 모습으로서 다름이 없다. - 041_0489_b_02L‘乃至最初遠離輪回邊際,利益衆生行如是行。我於尊所發菩提心,現前勸請令諸世間脫貧窮報忿心恨心慳貪嫉妒,我得菩提時悉不現起,乃至常脩梵行脫諸罪欲。於佛隨學淸淨尸羅,愛樂尊重於大菩提,不疾取證,我處後際,於諸衆生一相無異。
- 때로는 시방세계에서 아직 나의 이름을 듣지 못하여도 한량없는 불가사의한 찰토(刹土)5)를 모두 장엄하고 청정하게 한다. 몸[身]과 말[語]과 마음[意]의 업이 청정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모든 하는 일에 있어서도 전부 또한 청정하다. 또 언제나 견고하게 청정한 계율을 지키어 나고 죽는 것을 다할 때까지 모든 과오(過惡)가 없다.’”
- 041_0489_b_09L時十方界未聞我名無量不思議剎土悉皆嚴淨,由身語意業淸淨故,於諸所作悉亦淸淨。又一切時堅持淨戒,盡生死際無諸過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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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촉여래본원수결경(阿閦如來本願授決經)』에서 말한다.
“저 아촉여래가 옛적에 보살이었을 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만약 내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출가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일체의 모든 부처님ㆍ여래를 속이는 것이다.’
사리자(舍利子)야, 이와 같이 보살은 아촉여래에게서 또한 응당 따라 배워야 한다.
또 사리자야, 모든 보살마하살은 세세생생에 출가한다. 혹은 모든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거나 혹은 나오시지 않아도, 필경에 집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사리자야, 만약 보살이 집을 버리고 출가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최상으로 친다. 나아가 남자와 여자의 권속에 애착을 생하지 않는다. 나의 다른 생애에서처럼 모든 과오가 없었다.” - 041_0489_b_13L又『阿閦如來本願授決經』云:“彼阿閦如來往昔爲菩薩時,作如是說:‘若我生生世世不出家者,是則虛誑一切諸佛如來。’舍利子!如是菩薩於阿閦如來亦應隨學。又舍利子!諸菩薩摩訶薩生生出家,或諸如來出世或不出世畢竟捨家出家,亦如是學。所以者何?舍利子!若謂菩薩捨家出家是爲最上,乃至男女眷屬不生愛著,如我生時無諸過失。”
- 041_0489_c_02L論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일단 이 일을 멈추라. 만약 계(戒)를 시설함을 말하면,6) 죄상(罪相)이 동등하거나 죄상에 상응하는 등의 일에 대해서는 응당 스스로 버려야 한다. 만약 별도의 행상(行相)이라도 또한 죄가 있다. 별도의 행상에 있어서도 그러하여 거두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041_0489_b_22L論曰:如上所說,且止斯事。若說施戒罪相同等,及於罪相相應等事,應自棄捨。若別別行相亦非無罪,於別行相然不攝故。
- 그러므로 보살은 모든 중생이 갖고 있는 미래의 일체 고뇌에서 해탈을 얻게 하고, 일체의 미묘한 즐거움을 부여하여 그것을 증장하게 한다. 만약 몸과 말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방편으로서 순일하게 능숙하지 않고, 인연의 집합에 대하여 즐겁게 힘써 교화하지 않고, 혹은 흩어져 소멸하는 처소에서도 살피어 추구하지 않고, 번뇌가 많거나 적거나 그 대치를 하지 않고, 큰 의리(義利)나 작은 의리 혹은 의리가 아닌 것에서 손해와 이익을 생하지 않고 찰나에 함께 버린다. 이것을 죄(罪)라고 말한다.
- 041_0489_c_03L而菩薩於諸衆生所有未來一切苦惱令得解脫、一切妙樂令其增長,若身語意不勤精進方便純熟,於緣合集不樂勸化,或散滅處亦不尋求,多分煩惱少分煩惱不起對治,於大義利及少義利或非義利不生損益,剎那俱捨,此說是罪。
- 간략하게 무죄(無罪)를 설명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경계의 경우는 과보가 없다. 혹 이와 같이 배움에 대하여 표상과 체성을 집착하면 죄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하는 경계와 상응하는 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동일하게 죄 등을 설하는 양태에서 해탈할 것이다. 이것이 보살이 배우는 평등한 몸이다. 자세하게는 한량없는 겁이 다하여야 말할 수 있다.
- 041_0489_c_09L略說無罪,謂自力能於境界事都無果報。或執如是於學表相體性是罪。若自力能境界相應罪處無有,同說罪等於相解脫。是菩薩學於平等身廣太無量劫後際說。
- 또 다음에 간략하게 보살의 이 두 가지 죄에 대하여 말한다. 그 판별하여 성립되는 것과 같이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음과 지을 수 있고 지을 수 없음을 도무지 간택하지 않고 버리기 때문에 이것은 죄이다. 말하는 바가 필경에 헤아려 살피는 범위를 벗어나서 전다라(旃陀羅) 노예7) 등과 같이 그 의미를 그릇되게 이해하기 때문에 이것은 죄이다. 그것은 또 어찌하여 그러한가?
- 041_0489_c_14L復次略說菩薩此二種罪,如其成辦相應非相應、可作不可作都無揀擇,捨故是罪。謂言畢竟超出尋伺,如旃陁羅奴等謬解義故是罪。彼復云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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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교계경(深心敎誡經)』에서 말한다.
“자씨(慈氏)의 원인 가운데 네 가지 변재(辯才) 같은 것은 곧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다.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의리(義利)가 있는 것을 택하고 의리가 없는 것을 가리는 것이다. 둘째는 이 바른 법을 택하고 저 그릇된 법을 가리는 것이다. 셋째는 번뇌를 부숴버리고 번뇌를 증장시키지 않는 것이다. 넷째는 즐거이 열반의 공덕을 보고 즐거이 윤회의 공덕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네 가지라고 한다. - 041_0489_c_18L『深心教誡經』說:“如慈氏因中四種辯才卽諸佛語。何等爲四?一者擇有義利揀非義利、二者擇此正法揀彼非法、三者破遣煩惱非增長煩惱、四者樂見涅盤功德不樂見輪回功德,是名四種。
- 041_0490_a_02L 요약하여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자씨의 원인 가운데 이 네 가지 변재를 말하는가? 말하자면 믿음 있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생각하고, 논의(論議)에 대하여 생각하며, 선한 법을 듣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말하자면 자씨에게 여러 선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곧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자씨의 변재에 대하여 비방하고, 모든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악인 무리들은 곧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변재를 비방하고 선한 법을 훼멸한 것으로 말미암아 죄의 업보를 초래하여 여러 나쁜 세상에 떨어진다.”
- 041_0489_c_23L以要言之,若爾云何慈氏因中說是四種辯才?謂信善男子善女人生諸佛想、作議論想,聞善法故。所以者何?謂若慈氏有諸善說卽諸佛語故。若於此慈氏辯才而生誹謗,非諸佛語起不尊重,是惡人輩卽是誹謗諸佛所說辯才,由毀減善法招罪業報墮諸惡趣。”
- 論 또 다음에 선교(善巧)8)를 수습하고 애락(愛樂)을 일으키는 것은, 이 행문(行門) 가운데 배움을 모으는 가장 수승한 작용이 있으니, 응당 수학하여야 한다. 큰 과보를 바라고 구하기 때문이다.
- 041_0490_a_07L論曰:復次修習善巧發起愛樂,此行門中集學最勝作用,應當修學,希大果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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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결정신변경(寂靜決定神變經)』9)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또 다음에 문수사리여, 가령 보살이 긍가사(殑伽沙)10) 수(數)와 같은 부처님들에게 이 모든 부처님께서 소유하는 긍가사 수의 불찰(佛刹), 또 이와 같은 긍가사수의 겁 동안 자재왕마니보(自在王摩尼寶)를 가지고 충만하게 지니어 사용하며 보시한다고 하자. 가령 모든 보살이 이와 같은 법의 특성에 대하여 듣고 나서 한마음으로 사유하며, ‘나는 마땅히 수학하여야 한다’고 하자. 문수사리여, 앞의 수학하지 않은 보살이 소유하는 복의 과보에 비하여 아직 설사 보시하지 않았어도 이 수학하는 자리[學地]를 즐거이 원하는 보살의 복이 훨씬 많다.” - 041_0490_a_10L如『寂靜決定神變經』云:“復次文殊師利!若菩薩於殑伽沙數等諸佛,是諸佛所有殑伽沙數佛剎,復於如是殑伽沙數劫,以自在王摩尼寶滿中持用布施。若諸菩薩於如是法相,聞已,一心思惟我當修學。文殊師利!比前無學所有福報,未若施此樂欲學地菩薩,其福甚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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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그 보살은 비록 이 공덕을 보아도 아직 말하지 않는다. 그 수습 등과 같이 또한 말한다.
“문수사리여, 가령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미진과 같은 중생을 교화하여 하나하나의 중생이 염부제11)의 왕[閻浮王]이 되고, 만약 모든 음성으로써 대승경전을 찬탄하고 받아 지니어 읽고 외우고 말한 바와 같이 수행하는 것을 하루 저녁에 신체와 손가락과 발가락이 절단되어 목숨이 끊어지기에 이르기까지 한마음으로 받들어 행한다고 하자. - 041_0490_a_17L論曰:是菩薩雖見此功德,未言如其修習等。復如彼說:“文殊師利!假使教化三千大千世界微塵等衆生,一一衆生得閻浮王。若以諸音聲讚歎受持讀誦如說修行大乘經者,於一日夜斷割身肉指爪,乃至命終一心奉行。
- 041_0490_b_02L 문수사리여, 이 보살은 보시하는 마음에 겁이 많지 않음으로 인하여 놀라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결국에는 한마음으로 친근한 생각을 내어 후회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또한 분별하지 않으며, 이 최상의 바른 법을 거두어 들이고 상응하여 마음으로 좋아하여 읽고 외우며 말한 바와 같이 수행한다.
- 041_0490_a_24L文殊師利!緣是菩薩布施心無怯弱、不驚不怖不畏,畢竟一心發親近想,無悔無疑亦無分別,於此最上正法攝受相應,意樂讀誦如說修行。
- 문수사리여, 이 보살은 마음이 용맹하기 때문에 곧 보시에 용맹하고, 지계(持戒)에 용맹하고, 정진(精進)에 용맹하고, 선정(禪定)에 용맹하고, 지혜(智慧)에 용맹하고, 일체 삼마지(三摩地)에 용맹하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은 설사 나쁜 사람들이라도 역시 성내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 및 기타의 과실을 생하지 않는다. 문수사리여, 이 보살은 제석천과 범천왕 등처럼 동요하는 일이 없다.”
- 041_0490_b_04L文殊師利!是菩薩心勇猛故,則布施勇猛、持戒勇猛、精進勇猛、禪定勇猛、智慧勇猛、一切三摩地勇猛。文殊師利!是菩薩設使於惡人輩,亦復不生瞋心厭心及餘過失。文殊師利!是菩薩如釋梵王等無所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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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지금이 바로 그때로서 마땅히 한마음으로 수학하여 큰 과보를 바라고 구하여야 한다.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12)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 041_0490_b_10L論曰:今正是時,當一心學,希大果報。『月燈三昧經』所說偈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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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항하사의 많은 억겁 동안
백억나유타(百億那由陀)부처님을 공양하고,
청정한 믿음과 마음으로 음식을 베풀고,
또한 등(燈)13)과 만(鬘)14)과 당기[幢]15)와 일산[蓋]16)을 보시한다고 하자. -
041_0490_b_12L若於河沙多億劫,
供養百億那由佛,
淸淨信心施餚膳,
亦施燈鬘及幡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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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바른 법이 쇠퇴하는 말법 세상에서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소멸하려고 할 때,
하루 밤에 이러한 행위를 배우면,
앞과 비교할 때 복의 과보가 그것보다 수승하다. -
041_0490_b_14L若於正法衰末世,
如是佛法欲滅時,
於一日夜學是行,
比前福報勝於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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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그러므로 한마음으로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불경(佛經) 가운데 보살이 배우는 의미를 설한 바와 같다.
“선남자야, 보살은 보살의 배움에 있어서 견고하게 청정한 계율을 지키며 다음과 같이 살펴보아야 한다. 보살의 별해탈계(別解脫戒) 중에서 나는 어찌하여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여래의 모든 대승경전의 법 가운데 시설하는 보살행과 모집한 보살의 배움에 능하지 못하는가?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이 광대하게 수습해야 한다.” - 041_0490_b_16L論曰:是故一心勤修,如佛經中所說菩薩學義。如『寶雲經』說:“善男子!菩薩於菩薩學堅持淨戒,如是尋伺:‘若不於菩薩別解脫戒中,我云何能得成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又何不於如來大乘諸經法中所詮菩薩行所集菩薩學?我當如是廣大修習。’”
- 041_0490_c_02L論 우리들은 아는 것이 없어, 이 보살의 제지(制止)를 자세하게 설하는 것에서 잘못된 착각을 일으키는 것을 허용하는데, 어찌 이것이 이 이치가 아닌가? 수습하는 자리[修習處]에서 알아차리면 과실이 없을 것이다. 어떠한 것이 수습하는 자리인가? 말하자면 혹은 육신이 소유하는 것과 3세(世)에 수용하는 것에서 청정하게 포기함을 행하고, 모든 중생을 보호하여 청정함이 증장하게 한다. 이 보살계(菩薩戒)를 받고 나서, 혹은 이 보살이 수습하는 자리에 머물러 그 죄상(罪相)을 말한다.
- 041_0490_b_23L論曰:我等無知,於此廣說菩薩制止容起惡覺,何非此理,於脩習處了無過失。云何脩習處?謂若於身所有三世受用行淸淨捨,護諸衆生令淨增長,受是菩薩戒已,若此菩薩住修習處說是罪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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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별해탈경(菩薩別解脫經)』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보살도(菩薩道)에 있어서 일체의 중생을 거두어들여 괴로운 세상을 다하게 한다. 그 보살도를 거두어들여 편안히 머무르며 구지 겁을 경과한다. 오직 한 번 안온한 마음과 친근한 마음을 일으킨다. 보살이 이 마음을 일으킨다면 모든 중생에 대하여 전적으로 여러 가지 머무르는 자리를 거두어들임을 응당 알아야 한다.” - 041_0490_c_06L如『菩薩別解脫經』云:“於菩薩道攝受一切衆生令盡苦趣。彼菩薩道攝受安住過俱胝劫,唯一發起安隱之心及親近心。菩薩發是心者,應知於諸衆生一向攝受多種住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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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청정률(文殊淸淨律)』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그때 문수사리가 적음천자(寂音天子)에게 말하였다.
‘보살이 이 다섯 가지 간단없음[五無間]을 구족하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얻을 것이다. 어떤 것들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보살이 깊고 굳게 마음을 먹고 위없는 도[無上道]를 구하여 발심(發心)하고, 성문지(聲聞地)와 연각지(緣覺地)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처음의 간단없는 발심이다. 스스로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인색한 마음에 함께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이 둘째의 간단없음이다. - 041_0490_c_11L如『文殊淸淨律』云:“時文殊師利語寂音天子言:‘菩薩具足此五無間,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果。何等爲五?菩薩深固作意求無上道,發心不墮聲聞緣覺之地,是初無間發心。自捨一切所有,於慳悋心而不共住,是二無間。
- ≺나는 마땅히 일체 중생을 구제하여 제도하겠으며, 그 중에서 게으른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한다. 이것이 셋째의 간단없음이다. 일체의 법이 공(空)도 아니고 유(有)도 아니며 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음을 알고, 그 중에서 여러 견해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넷째의 간단없음이다. 모든 법지(法智)에 있어서는 화합하는 한 가지 모습이다. 이와 같이 발심하는 가운데 머무르는 곳이 없고, 머무르는 곳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일체지(一切智)에 있어서도 얻는 바가 없다. 이것이 다섯째의 간단없음이다.’”
- 041_0490_c_17L我應救度一切衆生,於中不起懈退之心,是三無間。了一切法非空非有無生無滅,於中不墮諸見,是四無間。於諸法智和合一相,如是發心中無所住,由無所住於一切智悉無所得,是五無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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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_0491_a_03L論 말하자면 육신의 소유와 수용하는 것과 복의 과보를 단절하지 않는 자는 포기하고 보호하는 일에서 청정함을 증장시킨다.
유가의 관상[瑜伽觀想] 중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그 포기하는 것의 의미는 과실을 거두어들이고, 관상문(觀想門) 중에서 탐욕을 여의는 상념을 일으킨다. 포기의 공덕을 관하기 때문이다.” - 041_0490_c_22L論曰:謂身所受用福報不斷者,於捨護事令淨增長。如『瑜伽觀想』中說:“彼所捨義攝受過失,觀想門中起離貪想,觀捨功德故。”
- 『월등삼매경』의 게송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 041_0491_a_04L如『月燈三昧經』所說偈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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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견고하지 않은 육신을
어리석은 자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바가 있으나,
어찌 수명 가운데 항상하겠는가?
그것은 찰나로 환상이나 꿈과 같다. -
041_0491_a_05L“如是不堅身,
愚者心所樂,
何常壽命中,
剎那如幻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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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나쁜 업[惡業]을 짓기 때문에
죄의 과보가 항상 따라다니고,
이 무명(無明)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죽어서는 많이 나쁜 세상[惡道]에 떨어진다. -
041_0491_a_06L造諸惡業故,
罪報常隨逐,
由是無明因,
死多墮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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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량문다라니경(無量門陀羅尼經)』17)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어찌하여 중생은 투쟁하는 원인을 얻는가? 말하자면 재물과 이익을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으니, 응당 포기하고 버려야 한다. 만약 탐욕과 애욕을 여의면 곧 이 다라니를 얻을 것이다.”
또 『보살별해탈경』에서 말한다.
“또 다음에 사리자여, 보살은 일체 법의 지극히 미세한 부분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취착(取着)18)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041_0491_a_07L又如『無量門陁羅尼經』說:“云何衆生得鬪諍因?謂計執財利而爲根本。應當棄捨,若離貪愛卽得是陁羅尼。”又『菩薩別解脫經』云:“復次舍利子!菩薩於一切法極微細分不生他想。所以者何?怖取著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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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수소문경(最上授所問經)』에서 말한다.
“말하자면, 만약 보시하면 모든 인색함이 없어지고, 집착하면 항상 지킨다. 또 보시는 탐욕과 애욕을 다하게 하고 집착은 탐욕과 애욕을 증장하게 한다. 보시는 여러 변계(遍計)가 없고 집착은 여러 변계를 갖는다. 보시는 공포가 없고 집착에는 그 공포가 많다. 보시는 보살도에 머무르고 집착은 마군의 경계에 머무른다. 보시는 다함이 없는 생각[無盡想]을 만들고 집착은 다함이 있는 생각을 만든다. - 041_0491_a_13L『最上授所問經』云:“謂若布施者無諸慳悋,執著者而常守護。又布施者爲盡貪愛,執著者增長貪愛。布施者無諸徧計,執著者有諸徧計。布施者無有恐怖,執著者彼多恐怖。布施者住菩提道,執著者住魔境界。布施者作無盡想,執著者作有盡想。
- 또 보시는 여러 미묘한 즐거움을 얻고 집착은 항상 핍박을 받는다. 보시는 번뇌를 버리어 여의고 집착은 번뇌를 증장하게 한다. 또 보시는 크게 부유함을 얻으며 집착은 크게 곤궁함을 얻는다. 보시는 선한 사람의 행위이고 집착은 나쁜 사람의 행위이다. 보시는 모든 부처님께서 칭찬하고 집착은 어리석은 자들이 칭찬한다.……보시는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지나치게 좋아하는 애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나머지 중생에게 연민을 일으키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 041_0491_a_20L又布施者得諸妙樂,執著者而常逼迫。布施者捨離煩惱執,著者增長煩惱。又布施者得大富饒,執著者得大貧乏。布施者善人事業,執著者惡人情計。布施者諸佛稱讚,執著者愚夫稱讚。乃至布施者自所生子不起樂著,非如於餘衆生起憐愍故。
- 041_0491_b_02L 마땅히 알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에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것들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보살은 보살도에 있어서 바르고 고른 것[正等]에 상응하고 삿되고 잘못된 것[邪謬]에 상응하지 않는다. 둘째는 보살은 보리도(菩提道)에 있어서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고, 귀하거나 천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셋째는 보살은 보리도에 있어서 여러 가지 행위가 없으며 여러 가지 행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세 가지 자신의 마음을 말한 것이다.”
- 041_0491_b_02L應知自心說有三種。何等爲三?一者菩薩於菩提道正等相應,非邪謬相應。二者菩薩於菩提道起平等心,非高下心。三者菩薩於菩提道無種種行,非有種種行。是名三種自心所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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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 말하자면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좋은 벗[善友]이 아니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이미 좋은 벗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벗이 아니다. 만약 이익을 위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배움의 힘겨운 짐을 짊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낳은 자식에게 좋아하는 애정을 생하지 않는다. 그 밖의 중생에게 연민을 일으키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마음을 일으켰음을 응당 알아야 한다.
‘나의 자식에게 자애로운 애정이 발생하는 것처럼, 곧 나는 일체의 중생에게도 수순하여 자애로운 애정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심원한 마음으로 관찰하여 깨닫고 이해한다. 나의 자식이 이미 일체 중생과 다름이 없으며, 곧 일체 중생이 모두 나의 자식이다. 중생은 혹은 자신이고 혹은 타인이다.’ - 041_0491_b_07L論曰:謂於自所生子起非善友想,旣非善友故非我友。若爲利益隨佛教勅學負重擔故,於自所生子不生樂著,非如於餘衆生起憐愍故。應知發是心已。‘如於我子發生慈愛,則我於一切衆生亦復隨順發生慈愛。如是深心觀察悟解,我子旣無異於一切衆生,則一切衆生皆是我子。所有衆生若自若他。’
- 나아가 거사(居士), 재가(在家)의 보살은 그 재물의 이익에 의하여 중생을 거두어들이지 말고 출리(出離)의 법이 아닌 것을 응당 취착하지 말아야 한다. 또다시 응당 좋아하여 오염된 욕망을 수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다음에 재가의 보살에게 혹은 구걸하는 걸인이 찾아와서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따라서 용감하고 굳센 마음을 발하여 베풀고는, 또 생각하기를, ‘내가 이 재산과 이익을 버리거나 버리지 않아도 필경에는 흩어져 소멸한다. 어떻게 베풀고 받는 때에 욕망이 없음을 얻겠는가’라고 한다. 말하자면, 자아[我]와 자아의 소유[我所]에서 필경에 인(忍)을 얻고 베풀어 버리는 물건에 의하여 태내에 소장되는 괴로움[胎藏苦]을 여의며, 마음이 바른 생각에 머물러 환희하고 좋아하여 따라서 윤회하며 도는 것을 생하지 않는다.
- 041_0491_b_16L乃至居士在家菩薩,於其財利或非攝受衆生,勿應耽著非出離法。又復不應愛樂隨順染欲。復次在家菩薩或有行來乞丐,隨何所須發勇悍心而爲給與。又作是念:“我此財利若捨不捨畢竟散滅。”云何於捨受時而得無欲?謂我我所得畢竟忍,於所捨物離胎藏苦,心住正念歡喜愛樂不生隨轉。
- 041_0491_c_02L또 다음에 이와 같이 능히 베푼다. 말하자면, 베풀어 버리는 물건과 구걸하는 자에 대하여 응당 네 가지 생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겁이 많기 때문에 선근으로 먼저 지은 업을 순수하게 익게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대승 중에서 마음이 자재하지 않다. 취하고 버리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또 혹은 자아와 자아의 소유에 대하여 안온한 인의 힘[安忍力]에 머무른다. 스스로 선한 사람에게 베풀어 후회하는 번민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수습하고, 이와 같이 뛸 듯이 좋아하고, 이와 같이 정진한다. 일체 중생이 바라고 구하는 바를 원만하게 하기 때문이다.
- 041_0491_b_24L復次如是能捨,謂於所捨物及乞丐者應知有四種想。何等爲四?謂怯弱故,不能純熟善根先所造業;於大乘中心不自在,見取捨故。又若我及我所住安忍力,自與善人不起悔惱。如是修作、如是踊躍、如是精進,圓滿一切衆生所希求故。
- 이와 같이 재가 보살은 저 구걸하는 자에 대하여 응당 이와 같은 생각을 지어야 한다. 혹은 구걸하는 자가 도리어 과실을 증대하면, 이 보살은 마땅히 좋은 말로 위로하여야 한다. 또 구걸하는 자가 은혜를 알지 못한다고 하여도 이 보살 역시 또한 질투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무죄라고 한다. 이것을 세존께서 하층 부류의 보살들이라고 하셨다.
- 041_0491_c_08L如是在家菩薩於彼乞丐者應作是想。或乞丐者返增過失,是菩薩應當善言慰諭。又乞丐者而不知恩,是菩薩亦復不起慳嫉。是爲無罪。此世尊爲下種諸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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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별해탈경』 중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사리자여, 보살에게는 네 가지 법이 없다. 어떤 것들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보살에게는 믿지 않는 마음이 없다. 둘째는 보살에게는 인색한 탐욕이 없다. 셋째는 보살에게는 두 말을 하는 것[양舌]과 질투가 없다. 넷째는 보살에게는 게으른 마음이 없으니, 말하자면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과보를 증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 041_0491_c_13L如『菩薩別解脫』中說:“舍利子!菩薩無有四法。何等爲四?一者菩薩無不信心;二者菩薩無有慳貪;三者菩薩無有兩舌嫉妒;四者菩薩無懈怠心,謂言我不能成證阿耨多羅三藐三菩提果。
- 사리자여, 만약 나에게 이 네 가지 법이 있음을 저 지혜로운 자가 이에 알고서 곧 삿된 생활을 함, 아첨을 요구함, 잘못된 법이며 오염된 법임, 세상의 재물과 이익을 중시함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첫째로 믿음과 보시하는 것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또 다음에 사리자여, 보살은 이와 같이 마음이 용맹하기 때문에 머리와 눈, 손과 발, 신체 부분, 남자와 여자, 권속, 마음으로 좋아하는 지극히 미묘하고 즐거운 일, 주택, 나라의 마을, 일체의 소유를 전부 능히 포기하여 보시한다.”
- 041_0491_c_18L舍利子!若我有是四法,彼有智者於此了知,便謂邪命謟求非法染法重世財利,是爲第一偸食信施。復次舍利子!菩薩如是心勇猛故,乃至頭目手足身體支分、男女眷屬心所愛樂極妙樂事、舍宅國邑一切所有,悉能棄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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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_0492_a_02L또 『나라연소문경(那羅延所問經)』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만약 재물과 보배에서 이 포기하는 마음을 발한다면, 응당 재물의 이익에 취착을 생하지 말아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래도 포기가 아직 지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거두어들이는 데에서 포기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거두어들이지 않는 데에서도 또한 항상 집착한다. 만약 구걸하는 자의 뜻에 따르면, 거두어들이는 데에서 지혜를 발생하기 때문에, 곧 권속에 대해서도 또한 취착이 없고, 가장 숭고하고 귀한 것에도 또한 취착이 없고, 수용하는 진귀한 보배에도 또한 취착이 없다. 그리하여 보살이 만약 재물과 이익에 대하여 포기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 이에 지극히 미세한 부분에 이른다면 응당 취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041_0491_c_24L又如『那羅延所問經』云:“若於財寶發是捨心,應知財利不生取著。然捨未起智故若於攝受不起捨心,則於非攝受亦常執著。若隨乞丐者意,於攝受發生智故,則於眷屬亦無取著,最上崇貴亦無取著、受用珍寶亦無取著。而菩薩若於財利不起捨心,乃至極微細分,應知取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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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음에 선남자야, 그래도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와 같은 마음을 발해야 한다.
‘나의 이 신체의 부분조차 중생에게 능히 포기하여 베푸는데, 하물며 소유하는 그 밖의 재물과 도구임에랴. 또 혹은 중생의 자리에서 그 원하는 바와 같은 것을 전부 능히 베풀어 준다. 말하자면 찾아와서 구걸할 때, 손을 요구하면 손으로써, 발을 요구하면 발로써, 눈을 요구하면 눈으로써 베풀어 주고, 나아가 비계[脂]ㆍ골수[髓]ㆍ혈액[血]ㆍ살[肉]과 나머지 신체의 부분을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각각 베풀어 준다. - 041_0492_a_08L復次善男子!而菩薩摩訶薩應當發如是心,謂我此身分於諸衆生尚能棄捨,何況所有外財資具!又若於衆生所,如其所須悉能施與,謂有來乞丐須手以手須足以足須眼以眼,乃至脂髓血肉及餘身分,隨各施與。
- 무엇을 다시 그 밖의 재물과 도구라고 하는가? 말하자면 혹은 창고에 저장된 것, 자양하는 데 필요한 곡물, 금과 은, 진귀한 보배, 수승하게 미묘한 장식품, 코끼리와 말, 수레 등의 탈 것, 국토ㆍ궁전ㆍ성읍ㆍ취락, 심부름하는 사람, 노복, 작업하는 사람, 남자ㆍ여자ㆍ권속, 혹은 모든 중생이 소유하는 일에서 그 각 중생이 소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는 마땅히 베풀어 주고, 후회와 고뇌를 생하지 않고, 또한 퇴보하여 굴복하지 않으며, 과보와 그 밖의 아첨과 사기를 바라고 구하지 않는다. 또 다음에 나의 이 보시는 일체 중생에 수순하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연민하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일체 중생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에, 내가 중생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은 것은 이와 같이 법의 보리[法菩提]를 얻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041_0492_a_14L云何復名外財資具?謂若庫藏孳生之物、金銀珍寶勝妙莊嚴、象馬車乘國土宮殿、城邑聚落吏民僮僕、作業士夫男女眷屬。若諸衆生於所有事,彼彼衆生如其所有,我當給與,不生悔惱亦無退屈,不希果報及餘謟詐。復次我此施者,隨順一切衆生故、悲愍一切衆生故、饒益一切衆生故、攝受一切衆生故。如我攝受衆生,知如是法得菩提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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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_0492_b_02L요약하여 말한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약이 되는 나무의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ㆍ껍질ㆍ씨앗을, 혹은 전부이든 혹은 일부이든 그 취하는 자에 따라서 분별을 생하지 않고, 또다시 모든 중생의 병고(病苦)의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는 때에도 또한 상ㆍ중ㆍ하의 성질을 분별하지 않는다. 선남자야, 이 보살마하살도 역시 또한 그와 같다. 응당 알아야 한다. 4대종(大種)19)으로 구성된 신체에 대하여 약이 되는 나무를 생각하고, 그 중생에게서 이로움을 지어야 한다. 손을 요구하면 손으로써 하고, 발을 요구하면 발로써 하며, 그 취하는 자에 따라서 앞의 약이 되는 나무처럼 분별을 생하지 않는다.” -
041_0492_a_23L以要言之,善男子!譬如藥樹根莖枝葉花果皮核,若全若分,隨其取者不生分別。又復脫諸衆生病苦難時,亦不分別上中下性。善男子!是菩薩摩訶薩亦復如是,應知於四大種身生藥樹想,於彼衆生可作饒益,須手以手須足以足,隨其取者如前藥樹不生分別。”
大乘集菩薩學論卷第二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 1)한역으로는 역자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397~439년에 역출된 『대방광십륜경(大方廣十輪經)』과, 651년 현장이 번역한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이 있다.
- 2)한역으로는 달마급다가 615년에 역출한 『불설약사여래본원경(佛說藥師如來本願經)』,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如來本願經)』의 정이 707년에 번역한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七佛本願功德經)』 등이 있다.
- 3)문수사리보살을 가리키며, 줄여서 문수보살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 4)범(梵)은 청정한 의미로서, 욕망을 단절하는 청정한 수행을 말한다.
- 5)ksetra의 음사. 국토(國土)ㆍ영토(領土)ㆍ불국토(佛國土)라는 의미. 찰(刹)에 한자(漢字)인 토(土)를 첨가한 형태.
- 6)이하의 문장은 제대로 해석되지 않으며, 범본과도 다소 다르다.
- 7)인도에 존재하는 네 가지 계급 밖의 최하층의 천민. 살생ㆍ수렵 등을 직업으로 한다.
- 8)중생의 근기에 상응하여 교묘하게 수단을 구사하여 교화하는 것.
- 9)한역으로는 현장(玄장)이 663년 역출한 『적조신변삼마지경(寂照神變三摩地經)』이 있다.
- 10)갠지스 강, 곧 강가 강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갠지스 강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래를 의미한다. 보통 항하사(恒河沙)라고 번역한다.
- 11)남섬부주(南贍部州)를 말한다.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의 남쪽에 있는 대륙. 오늘날 인간들이 사는 곳을 말한다.
- 12)한역으로는 나련제야사(那連提耶舍)가 557년에 번역한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이 있다.
- 13)불전(佛殿)을 밝히는 등불을 말한다.
- 14)인도에서 사용한 머리꾸미개.
- 15)불전을 장식하는 기(旗).
- 16)귀한 사람이 타는 수레 위에 세우는 일산(日傘)과 덮개.
- 17)한역으로는 지겸(支謙)이 223~253년에 번역한 『불설무량문미밀지경(佛說無量門微密持經)』과, 불공(不空)이 746~774년에 번역한 『출생무변문다라니경(出生無邊門陀羅尼經)』 등의 열 가지가 있다.
- 18)집착(執着)하는 것.
- 19)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네 가지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