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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2_a_01L해심밀경소 권4(解深密經疏卷第四)
서명사 사문 원측 찬술하다(西明寺沙門 圓測撰)백진순 (역)해심밀경소 제4 일체법상품(解深密經疏 一切法相品第四)이 품을 해석하면 그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품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이고, 둘째는 경문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제1장 품명 해석제목에서 ‘일체법상품’이라 한 것에 대해 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1)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성三性2)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일체一切’라고 하였다. 모든 것은 자성을 지니고 있어서 궤범이 되어 사물에 대한 이해를 내게 하므로 그것을 ‘법法’이라 이름한다. ‘상相’이란 체상體相 혹은 상상相狀의 상을 말하니, 말하자면 소집所執 등이 바로 일체법의 체성體性·상상이라는 것이다. 삼성을 ‘일체법’이라 총칭했다면, 이는 지업석에 해당한다.3) 하나하나의 자성을 ‘일체법’이라고 이름했다면, 이는 의주석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하나하나의 성이 일체법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4)≻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체법’에 대해 대략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이른바 유위와 무위 등이다. 이 중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심心·심소법(心法) 등을 말한다. 자세하게는 백법百法이 있으니, 여덟 가지 식 등을 말한다. 그런데 이 삼성이 바로 일체법의 체성·상상이기 때문에 ‘일체법상一切法相’이라고 하였다. 이 해석에 의하면, 삼성 중에 앞의 두 가지 성을 ‘일체법상’이라 한 경우는 지업석에 해당한다. 두 가지 성이 모두 일체법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5) 나중의 원성실성을 일체법상이라 한 경우는 의주석에 해당한다. 원성실성이 ‘일체법의 체상(一切法之體相)이기 때문이다.6)≻비록 두 가지 해석이 있으나 후자의 해석이 뛰어나니, 다음의 경문과 비교해서 이치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다음의 경문에서, 변계소집·의타기에 대해 모두 ‘일체’라고 하였고, 원성실성은 ‘일체법의 평등한 진여’라고 한 것과 같다.이 품에서 일체법상으로서의 삼성三性의 도리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
001_0232_a_02L解深密經疏卷第四經本第二
001_0232_a_03L
001_0232_a_04L西明寺沙門。圓測撰
001_0232_a_05L解深密經一切法相品第四
001_0232_a_06L將釋此品。有其二種。一解品名。二
001_0232_a_07L釋文義。[一解品名]題云一切法相品者。自有兩
001_0232_a_08L釋。一云。三性非一。故言一切。皆持
001_0232_a_09L自性。軌生物解。名之爲法。相謂體
001_0232_a_10L相。或相狀相。謂所執等。是一切法
001_0232_a_11L體性相狀。總說三性。名一切法。卽
001_0232_a_12L持業釋。若一一性。名一切法。是依主
001_0232_a_13L釋。以一一性非一切故。一云。一切法
001_0232_a_14L者。略有二釋。所謂有爲及無爲等。中
001_0232_a_15L卽有五。謂心心法等。廣有百法。謂
001_0232_a_16L八識等。然此三性。是一切法體性相
001_0232_a_17L狀。故名一切法相。若依此釋。於三
001_0232_a_18L性中。前之二性。名一切法相。卽持
001_0232_a_19L業釋。二性皆具一切法故。後圓成實。
001_0232_a_20L名一切法相。是依主釋。是一切法之
001_0232_a_21L體相故。雖有兩釋。後釋爲勝。下經文
001_0232_a_22L不違理故。如下經說。所執依他。皆云
001_0232_a_23L一切。圓成實性。是一切法平等眞如。
001_0232_a_24L此品廣明一切法相三性道理故。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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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2_b_01L‘일체법상품’이라고 하였다.『심밀해탈경』의 제목에서 ‘성자공덕림보살문품’이라 한 것은 범본 경문에 이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제2장 경문 해석
경 이때 덕본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에 대해 말씀하셨듯,
석 두 번째는 경문을 바로 해석하는 것이다. 관해지는 경계(所觀境)에 나아가면 본래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제眞諦·속제俗諦의 경계이고, 둘째는 유성有性·무성無性의 경계이다. 이상으로 이미 진제·속제의 두 가지 경계에 대해 해석하여 마쳤으니, 이하에서는 유성과 무성의 경계를 설명할 것이다.7)처음은 유성에 대해 설명한 것이니, 삼성三性에 해당한다. 나중은 무성에 대해 설명한 것이니, 삼무성三無性에 해당한다. 이 두 품에서는, 유有에 의지해서 무無가 성립하니, 유성이 근본이므로 먼저 설명했고 무성은 지말이므로 나중에 설명하였다. 이런 도리에 따라 세친 보살의 유식삼십송에서는 “이 삼성에 의거해서 저 삼무성을 세운다.”8)고 하였다.이 품에서 경문을 구별하면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보살이 청문한 것이고, 나중은 여래께서 바로 답하신 것이다.1. 보살의 청문청문에서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처음은 물으려는 교를 든 것이고, 나중은 교에 의거해 질문한 것이다.
1) 물으려는 교를 듦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경문에는 두 개의 절이 있다.처음은 시간(時分)에 의거해서 묻는 자와 답한 자를 나타낸 것이다.『심밀해탈경』에서는 ‘공덕림功德林’이라 했는데,9) ‘덕德’이 사람을 이루는 것이 마치 나무가 숲을 이루는 것과 같아서 법과 비유를 짝지어 들어서 ‘공덕림’이라 이름한 것이다. 지금 (이 경에서) ‘덕본德本’이라 한 것은 무량한 겁부터 오랫동안 덕의 근본을 길러 왔음을 말한다.해 이것은 인因을 따라 세운 호칭이니, 복福·지智라는 두 가지 공덕의 근본을 심고 키워 왔기 때문에 ‘덕본’이라 이름한 것이다.10)“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라고 한 것은 물으려는 교법을 든 것이다. ‘제법의 상’이란 ‘관해지는 법(所觀法)’을 밝힌 것이고, ‘선교보살’이란 ‘관하는 사람(能觀人)’을 밝힌 것이다.
2) 교에 의거해 질문함
경 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되어야 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라 하고, 여래께서는 어느 정도 되어야 그에 대해 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라고 시설하십니까?” 이와 같이 말하고 나자, -
001_0232_b_01L一切法相品。深密題云。聖者功德林菩薩
問品者。梵本經文。有此異故。
001_0232_b_02L[二釋文義]爾時。德本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如
001_0232_b_03L世尊說於諸法相善巧菩薩。
001_0232_b_04L釋曰。第二正釋文。就所觀境。自有
001_0232_b_05L二種。一眞俗諦境。二有無性境。上
001_0232_b_06L來已釋眞俗二境。自下當辨有無性
001_0232_b_07L境。初明有性。卽是三性。後說無性。
001_0232_b_08L卽三無性。於二品中。依有立無。有
001_0232_b_09L性是本。所以先明。無性是末。故在
001_0232_b_10L後說。由斯理故。世親菩薩三十頌云。
001_0232_b_11L卽依此三性。立彼三無性。就此品中。
001_0232_b_12L文別有二。初菩薩請問。後如來正答。
001_0232_b_13L[初菩薩請問]就請問中。復分爲二。初擧所問敎。後
001_0232_b_14L依敎發問。初擧所問敎此卽初也。文有兩節。初
001_0232_b_15L約時分。辨問答者。深密經云功德
001_0232_b_16L林者。以德成人。如樹成林。法喩雙
001_0232_b_17L擧。名功德林。今德本者。從無量劫。
001_0232_b_18L久殖德本。解云。此是從因立號。種
001_0232_b_19L殖福智二種德本。故言德本。於諸法
001_0232_b_20L相善巧菩薩者。擧所問敎。諸法相者。
001_0232_b_21L辨所觀法。善巧菩薩者。能觀人也。
001_0232_b_22L[後依敎發問]於諸法相善巧菩薩者。齊何名爲於諸
001_0232_b_23L法相善巧菩薩。如來齊何施設彼爲 [1] 諸
001_0232_b_24L法相善巧菩薩。說是語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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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2_c_01L석 이것은 두 번째로 교에 의거해 질문한 것이다. 경문에 두 절이 있다. 처음은 물으려는 교를 표시해 놓은 것이고, 나중의 “어느 정도 되어야……”라는 것은 묻는 말을 바로 일으킨 것이다.질문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첫째, 보살의 선교善巧란 어느 정도 분위分位가 되어야 하는지를 물은 것이고, 둘째는 ‘선교’라는 명칭을 시설한 것에 대해 물은 것이다. 혹은 전자는 소전의 의미(所詮之義)11)를 물은 것이고, 후자는 능전의 교법(能詮之敎)12)에 대해 물었다고 볼 수도 있다.13)2. 세존의 대답
경 이때 세존께서 덕본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세존께서 바로 설하신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질문을 칭찬하면서 설법을 허락하신 것이다. 나중의 “말하자면 제법의 상에는” 이하는 질문에 대해 바로 설해 준 것이다.
1) 질문을 칭찬하며 설법을 허락함전자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묻는 자와 답한 자를 표시한 것이고, 다음은 질문의 유익함을 칭찬한 것이며, 마지막은 잘 들으라고 권하면서 설법을 허락한 것이다.
(1) 묻는 자와 답한 자를 표시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2) 질문의 유익함을 칭찬함
경 훌륭하다, 덕본이여. 그대는 지금에야 여래에게 이와 같은 심오한 의미를 능히 청문하였다. 그대는 지금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이익과 안락을 주고자 하여, 세간과 모든 천·인·아소락 등을 불쌍히 여겨 이익(義利)과 안락을 획득하게 하려고, 이런 질문을 하였다.
석 두 번째는 질문의 유익함을 칭찬한 것이다. 경문에 두 개의 절이 있다. 처음에는 심오한 의미를 질문한 것을 칭찬하였고, 나중에는 질문의 유익함을 칭찬하였다.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3) 잘 들으라고 권하면서 설법을 허락함
경 그대는 잘 들어야 한다. 내가 그대를 위해 제법의 상을 설할 것이다.
석 세 번째는 잘 들으라고 하면서 설법을 허락하신 것이다.
2) 질문에 대해 바로 설해 줌
경 말하자면 제법의 상에는 대략 세 종류가 있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질문에 대해 바로 설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관해지는 경계(所觀境)에 의거해 제법의 상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나중의 “다시 덕본이여” 이하는 관하는 사람(能觀人)에 의거해 선교보살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1) 관해지는 경계에 의거해 제법의 상을 설명함전자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은 법이고, 뒤는 비유다.
① 법法법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표장으로서 개수를 든 것이고, 다음은 문답으로 이름을 열거한 것이며, 마지막은 차례대로 따로 해석한 것이다.
가. 표장으로서 개수를 듦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그런데 여기서 “대략(略)”이라는 말에는 -
001_0232_c_01L釋曰。此卽第二依敎發問。文有兩節。
001_0232_c_02L初牒所問敎。後齊何等者。正發問辭。
001_0232_c_03L問有二意。一問菩薩善巧齊何分位。
001_0232_c_04L二問施設善巧之名。或可前明所詮
001_0232_c_05L之義。後問能詮之敎。
001_0232_c_06L[世尊對答]爾時世尊。告德本菩薩曰。
001_0232_c_07L釋曰。自下第二世尊正說。於中有二。
001_0232_c_08L初讃問許說。後 [2] 諸法相下。對問正說。
001_0232_c_09L[讚問許說]前中有三。初標問答者。次讃問有益。
001_0232_c_10L後勸聽許說。此卽初也。
001_0232_c_11L善哉。德本。汝今乃能請問如來如是深
001_0232_c_12L義。汝今爲欲利益安樂無量衆生。哀愍
001_0232_c_13L世間乃 [3] 諸天人阿素洛等。爲令獲得義
001_0232_c_14L利安樂。故發斯問。
001_0232_c_15L釋曰。第二讃問有益。文有二節。初
001_0232_c_16L讃問深義。後讃問有益。准上應知。
001_0232_c_17L汝應諦聽。吾當爲汝說諸法相。
001_0232_c_18L釋曰。第三勅聽許說。
001_0232_c_19L[對問正說]謂諸法相。略有三種。
001_0232_c_20L釋曰。自下第二對問正說。於中有二。
001_0232_c_21L初約所觀。 [4] 辨諸法相。後復次德本下。
001_0232_c_22L約能觀人。明善巧菩薩。前中有二。先
001_0232_c_23L法。後喩。法中有三。初標章擧數。次
001_0232_c_24L問答列名。後次第別釋。此卽初也。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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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3_a_01L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첫째는 광廣·약略의 ‘약’이니, 말하자면 일체법은 자세하게는(廣) 백법百法이 있지만 간략하게는(略) 오직 삼성三性이 있으니, 지금은 백법에 대비시켰기 때문에 ‘대략’이라 말한 것이다.둘째는 요략要略의 ‘약’이다. 따라서 『섭대승론』에서는 ‘알아야 할 상(所知相)에는 간략히 세 종류가 있다’고 하였고,14) 무성의 해석에서는 “‘간략히 세 종류가 있다’고 한 것은 일체법에는 요컨대(要) 알아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과 증득해야 할 것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15)라고 하였다.
나. 문답으로 이름을 열거함
경 세 종류란 어떤 것들인가?
석 두 번째는 문답으로 이름을 열거한 것이다. 먼저 징문하였고, 나중에 열거하였다.
가) 징문이것은 징문이다.
나) 열거
경 첫째는 변계소집상이고, 둘째는 의타기상이며, 셋째는 원성실상이다.
석 이것은 이름을 열거한 것이다. 그런데 삼상三相의 이름에는 공통된 이름이 있고 개별적 이름이 있다.
● 공통적 이름‘삼상’이란 그것들의 공통되는 이름이다. ‘삼’은 수를 표시한 것이고, ‘상’이란 체성體性 혹은 상상相狀의 상이니, (삼상이란) 육합석 중에 대수석16)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것은 『별장』에서 설한 것과 같다.
● 개별적 이름 : 『섭론』과 『성유식론』의 해석개별적 이름이라 한 것은 다음과 같다.
◉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첫째는 변계소집이다. 『섭대승론』 제4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17) “어떻게 변계소집이 이루어지고, 어떤 이유에서 변계소집이라 이름했는가? 한량없는 행상은 의식이 변계하고 전도顚倒해서 생긴 상이다. 따라서 변계소집이라 이름한다.18) (그것의) 자상自相은 실로 없고 오직 변계소집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변계소집’이라 이름한다.19)”20)해 이 문장은 두 가지 질문에 한꺼번에 답한 것이거나, 혹은 차례로 앞의 두 질문에 답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세친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한량없는 행상’이란 이른바 모든 경계의 행상을 말한다. ‘의식이 변계한다’는 것은 곧 의식을 일컬어 ‘변계遍計’라고 이름한 것이고, ‘전도해서 생긴 상이다’라는 것은 이것이 능히 허망하게 전도된 소연 경계의 상(所緣境相)을 생한다는 것이다. ‘자상은 실로 없다’는 것은 실제로 그것의 체가 없다는 것이다. -
001_0233_a_01L此略言。自有兩釋。一者廣略略。謂
001_0233_a_02L一切法。廣雖百法。略唯三性。今對
001_0233_a_03L百法。故言略也。二者要略略。故攝
001_0233_a_04L大乘云。謂所知相。略有三種。無性釋
001_0233_a_05L云。略有三種者。謂一切法。要有所
001_0233_a_06L應知所應斷所應證差別故。
001_0233_a_07L何等爲三。
001_0233_a_08L釋曰。第二問答列名。先徵。後列。此
001_0233_a_09L卽徵也。
001_0233_a_10L一者遍計所執相。二者依他起相。三者
001_0233_a_11L圓成實相。
001_0233_a_12L釋曰。此卽列名。然三相名。有通有
001_0233_a_13L別。言三相者。是其通名。三謂標數。相
001_0233_a_14L卽體性。或相狀相。卽六釋中帶數釋
001_0233_a_15L也。具如別章。言別名者。一者遍計
001_0233_a_16L所執。攝大乘論第四卷云。云何成遍
001_0233_a_17L計所執。何因緣故。名遍計所執。無
001_0233_a_18L量行相。意識遍計。顚倒生相。故名遍
001_0233_a_19L計所執。自相實無。唯有遍計所執可
001_0233_a_20L得。是故說名遍計所執也。 [5] 解云。此文雙
答二問。或可
001_0233_a_21L次第答
前兩問。世親釋云。無量行相者。所謂一
001_0233_a_22L切境界行相。意識遍計者。謂卽意識
001_0233_a_23L說名遍計。顚倒生相者。謂是能生虗
001_0233_a_24L妄顚倒所緣境相。自相實無者。實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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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3_b_01L‘오직 변계소집만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은 오직 난식亂識21)에 의해 집착된 것만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22)무성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한량없는 행상’이란 갖가지 아我·법法이라는 경계의 영상을 말한다.한편에서는 다른 인연에 의지하는 아·법이라고 하고, 한편에서는 집착된 아·법이라고 한다.23)‘의식이 변계한다’는 것은 곧 의식을 일컬어 ‘변계’라고 한 것이다. ‘전도해서 생긴 상이다’라는 것은 난식亂識의 소취所取·능취能取를 말하니, 경계(義)의 상이 생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24) 한편에서는 변계소집의 경계(境義)의 상이 전도된 난식을 생하는 원인이라고 하고, 한편에서는 변계소집의 한량없는 행상이 의타기의 상분相分·견분見分에 대해 생하는 원인이라고 한다.25)‘따라서 변계소집이라 한다’는 것은, 곧 변계소집의 경계의 상을 변계소집자성이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자상은 실로 없고 오직 변계소집만 얻을 수 있다’고 한 것은, 실로 아와 법이 없는 데에서 오직 변계에 의해 집착된 ‘영상의 모습(影像相貌)’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계소집이라 이름한다.”26)『성유식론』 제8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두루 계탁하기 때문에 ‘변계’라고 하니, 능변계能遍計로서의 허망분별(識)에 해당한다. (그 허망)분별은 갖가지 소변계所遍計로서의 사물들을 변계한다. 말하자면 허망하게 집착된 온·계·처 등의 법法과 아我의 자성自性·차별差別을 총칭해서 변계소집자성이라 한 것이다.≻27)그런데 능변계에 대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다.28)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팔식八識과 모든 심소법 중에 유루에 속하는 것은 모두 능변계이다. 그것은 허망분별을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고, 모두 마치 파악되는 대상(所取)과 파악하는 자(能取)처럼 현현하기 때문이다. 아뢰야식은 변계소집자성의 망집妄執종자를 소연으로 삼는다고 설하기 때문이다.≻29) 이것은 안혜安慧 논사의 주장이다.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6·제7의 심품으로서 아·법에 집착하는 것은 능변계이다. ‘오직 의식만이 능변계다’라고 설하기 때문이다.30)≻ 자세하게 설하면 저 『성유식론』과 같다.31) 이것은 호법護法 보살의 주장이다.『심밀해탈경』에서는 (세 가지 상을) 허망분별상虛妄分別相·인연상因緣相·제일의상第一義相이라 하였다.32)진제 삼장이 번역한 여러 논에서는 분별성分別性·의타성依他性·진실성眞實性이라 하였고, 『능가경』에서는 망상자성妄相自性·연기자성緣起自性·성자성成自性이라 하였는데, 번역가가 다르기 때문이다.33)지금 ‘변계소집’이라 했는데, ‘변계’라고 거론한 의도는 ‘소집’을 취하려는 것이다.34) ‘변계소집’의 경우는 의주석이고, -
001_0233_b_01L彼體。唯有遍計所執可得者。唯有亂
001_0233_b_02L識所執可得。無性釋云。無量行相者。
001_0233_b_03L謂 [6] 種種我法境界影像。一云。依他因緣我
法。一云。所執我法。
001_0233_b_04L意識遍計者。謂卽意識說名遍計。顚
001_0233_b_05L倒生相者。謂亂識所取能取。義相生
001_0233_b_06L因。一云。遍計所執境義相。生顚倒亂識之因。
一云。所執無量行相。與依他起相見生因。故 [7]
001_0233_b_07L名遍計所執者。謂卽遍計所執義相。
001_0233_b_08L名爲遍計所執自性。自相實無唯有
001_0233_b_09L遍計所執可得者。謂於實無我及法
001_0233_b_10L中。唯有遍計所執影像相貌可得。故
001_0233_b_11L名遍計所執。依成唯識第八卷云。周
001_0233_b_12L遍 [8] 度。故名遍計。卽能計度 [9] 虛妄分別。
001_0233_b_13L分別。 [10] 謂彼所 [11] 執蘊界處等。若法若我
001_0233_b_14L自性差別。總名遍計所執自性。然能
001_0233_b_15L遍計。自有兩說。一云。八識及諸心所
001_0233_b_16L有徧 [12] 攝者。皆能遍計。虗妄分別爲自
001_0233_b_17L性故。皆似所取能取現故。說阿賴耶。
001_0233_b_18L以遍計所執自性妄執種爲所緣故。此
是
001_0233_b_19L安慧論
師義也。有義。第六第七心品執我法者。
001_0233_b_20L是能遍計。唯說意識能遍計故。廣說
001_0233_b_21L如彼。比卽護法
菩薩宗。深密經云。虛妄分別相。
001_0233_b_22L因緣相。第一義相。眞諦三藏所翻諸論。分別
性。依他性。眞實性。楞
001_0233_b_23L伽經云。妄相自性。緣起自
性。成自性者。譯家別故。今言遍計所執
001_0233_b_24L者。擧遍計意。取所執。若遍計所執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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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3_c_01L‘소집’을 ‘성性’과 대망할 경우는 지업석이니, ‘소집이 바로 성이기(所執卽性)’이기 때문이다.35)
◉ 의타기성依他起性둘째는 의타기인데, 『섭대승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타기자성이란 실제로 식識만 있을 뿐이고 사의似義36)가 현현하는 의지처라고 한다면, 어떻게 의타기가 이루어지고, 어떤 이유에서 의타기라고 이름하는가?37) 자기의 훈습종자로부터 생겨나고, 타자(他)로서의 연緣에 의지해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이름한다.38) 생겨난 찰나 후에는 스스로 그렇게 머무는 공능은 없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이름한다.39)”40)세친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자기 인因에서 생기는데, 생기고 나서는 잠시도 안주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한다.41)”42)무성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말하자면 변계소집의 명언훈습종자에서 생긴 것은, 자기 종자(自種)라는 타他에 의지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하니, 이것은 그 체가 타에 의지해서 생겨남을 말한 것이다.43) ‘생겨난 찰나 후에는 스스로 그렇게 머무는 공능은 있지 않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 체가 타에 의지해서 머물게 됨을 말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의타기라고 이름한다.”44)‘머문다’는 것은, 승군勝軍45)의 주장에 의하면, 생겨난 찰나 이후에 별도로 ‘머무는(住)’ 때를 건립하여 ‘타자에 의지해서 머문다(依他住)’고 한 것이다. 호법護法의 주장에 의하면, 생기는 찰나 잠시 작용이 있기 때문에 의미상으로 ‘머문다’고 설한 것이다.유위의 제법은 인에 의지하고 연에 의탁해야 생기할 수 있으므로 ‘의타기’라고 한다. 따라서 『유식삼십송』에서는 “의타기자성인 분별은 연으로 생겨난다.46)”47)고 하였고, 호법은 ‘타자로서의 많은 연들에 의지해야 생기할 수 있으므로 의타기라고 이름한다’고 해석하였다.48)
◉ 원성실성圓成實性셋째는 원성실성인데, 『섭대승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변이성無變異性 때문에……또 청정한 소연성(淸淨所緣性)이기 때문에, 모든 선법 중의 가장 수승한 자성(一切善法最勝性)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에서) 최고의 승의(最勝義)가 됨으로 인해 원성실성이라 이름한다.”49)세친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무변이성 때문’이라고 한 것은 헛된 속임이 없음(無虛誑性)을 말하니, 마치 헛되이 속이지 않는 신하와 같다.50) ‘최고의 승의가 됨으로 인해 원성실성이라 이름한다’고 했는데, 말하자면 청정한 소연성이고 가장 수승한 자성이기 때문에 원성실성이라 이름한다는 것이니, 마치 완전하게 이루어진 옷과 같다.51)≻52) -
001_0233_c_01L是依主釋。若以所執對性。卽持業釋。
001_0233_c_02L所執卽性故。二者依他起。攝大乘云。
001_0233_c_03L若依他 [13] 自性。實唯有識似義顯現之
001_0233_c_04L所依止。云何成依他起。何因緣故。名
001_0233_c_05L依他起。從自薰習種子所生。依他緣
001_0233_c_06L起。故名依他起。生刹那後無有功能
001_0233_c_07L自然住故。名依他起。世親釋云。從
001_0233_c_08L自因緣 [14] 生。生已無能蹔時安住。名
001_0233_c_09L依他起。無性釋云。謂從遍計所執名
001_0233_c_10L言熏習種生。依自種子他所生故。名
001_0233_c_11L依他起。此說彼體依他而生。生刹那
001_0233_c_12L後無有功能自然住者。此說彼體依
001_0233_c_13L而住。由此二因。名依他起。所言住者。依
勝軍義。生刹
001_0233_c_14L那後別立住時。名依他住。依護法宗。
即生刹那。蹔有用故。義說爲住。有爲諸
001_0233_c_15L法。依因託緣。而得生起。名依他起。
001_0233_c_16L故三十唯識云。依他起自性分別緣
001_0233_c_17L所生。護法釋云。依他衆緣而得生起。
001_0233_c_18L名依他起。三者圓成實性。攝大乘云。
001_0233_c_19L由無變異性故。又由淸淨所緣性故。
001_0233_c_20L一切善法最勝性故。由最勝義。名圓
001_0233_c_21L成實。世親釋云。由無變異性故者。謂
001_0233_c_22L無虗誑性。如不虗誑臣。 [15] 由最勝義
001_0233_c_23L名圓成實者。謂由淸淨所緣性故。最
001_0233_c_24L勝性故。名圓成實。如圓成衣。 [16] 無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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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4_a_01L무성은 “원만하게 성취된 진실(圓滿成就眞實)을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다.”53)라고 해석하였는데, 비유는 생략하고 설하지 않았으며 그 밖의 것은 세친의 해석과 동일하다.『성유식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가지 공에 의해 현현된 것54)으로서, ‘원만하게 성취된 제법의 실성(圓滿成就諸法實性)’을 ‘원성실’이라 이름한다. 이것의 편만함(遍)과 영원함(常)과 체가 공허하거나 그릇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고,55) 자상自相·공상共相과 허공과 아我 등을 배제시킨 것이다.”56)해 “두 가지 공에 의해 현현된 것”이라 한 것은 간략하게 체성을 나타낸 것이다. 세 가지 의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원성실이라 이름한다. 첫째는 ‘원만圓滿’이니, 즉 ‘편만하다(遍滿)’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색은 질애’라는 등의 자상과 구별시킨 것이다.57) 둘째는 ‘성취成就’이니, 즉 ‘영원하다(常)’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모든 공상共相의 고苦·무상無常 등과 구별시킨 것이니, 고·무상 등은 비록 공상이지만 무상하기 때문이다.58) 셋째는 ‘제법의 실성實性’이니, 즉 ‘비어 있거나 속이지 않음(非虛誑)’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허공이나 외도가 (말하는) ‘아’ 등과 구별시킨 것이니, (허공·아 등은) 비록 편만하고 영원하다고 해도 공허하고 그릇된 것이기 때문이다.59)또 『성유식론』에서는 “무루의 유위법은 전도를 떠났고(離倒), 궁극적인 것이며(究竟), 뛰어난 작용이 두루 미치므로(勝用周遍) 또한 이런 이름을 얻는다.60)”61)고 하였다.그런데 이 『해심밀경』에서는 전자를 설하되 후자를 설한 것은 아니다.62)(삼성 각각의)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설명하자면 모두 지업석이니, 변계소집 내지는 원성실이 곧 성性이기 때문이다.63)
다. 차례대로 따로따로 해석함
경 제법의 변계소집상이란 무엇인가?
석 이하는 세 번째로 차례대로 따로 해석한 것이다. 세 가지를 따로 해석하였으므로 세 가지로 구분된다.
가)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을 해석함최초의 상을 밝힌 곳에서, 앞은 질문이고 나중은 대답이다.
(가) 질문이것은 질문에 해당한다.
(나) 대답
경 일체법의 명가名假64)로서 자성自性과 차별差別을 안립하고,65) 내지는 그에 따라 언설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석 이것은 대답이다. 말하자면 일체법에는 실재하는 자성은 없고 다만 허망한 정(妄情)을 따라서 명언名言으로 아·법의 자성을 가립하니, 예를 들면 ‘아’라고 말하거나 혹은 색 등의 아·법의 자성을 설하고, 혹은 가아假我를 설하거나 실아實我를 설하며, 혹은 보이는 색(可見色)과 보이지 않는 색(不可見色) 등의 아·법의 차별을 설하는 것과 같다.66) -
001_0234_a_01L釋云。圓滿成就眞實爲性。略不說喩。
001_0234_a_02L餘同世親。成唯識云。二空所顯圓
001_0234_a_03L滿成就諸法實性。名圓成實。顯此
001_0234_a_04L遍常體非虗謬。簡自共相虗空我等。
001_0234_a_05L解云。二空所顯者。略出體性。具三
001_0234_a_06L義故。名圓成實。一者圓滿。卽顯遍滿
001_0234_a_07L義。簡色是質礙等自相。二者成就。卽
001_0234_a_08L顯常義。簡諸共相苦無常等。雖是共
001_0234_a_09L相。卽無常故。三者諸法實性。顯非
001_0234_a_10L虗誑。簡於虗空外道我等。雖說遍常。
001_0234_a_11L是虗謬故。又成唯識云。無漏有爲。
001_0234_a_12L離倒究竟。勝用周遍。亦得此名。然此
001_0234_a_13L經中。說初非後。說得名者。皆持業釋。
001_0234_a_14L遍計所執。乃至圓成。卽是性故。
001_0234_a_15L云何諸法遍計所執相。
001_0234_a_16L釋曰。自下第三次第別釋。別釋三。分
001_0234_a_17L爲三。就初相中。先問後答。此卽問
001_0234_a_18L也。
001_0234_a_19L1)一 [1] 切法名假安立自性差別。乃至爲令
001_0234_a_20L隨起言說。
001_0234_a_21L釋曰。此卽答也。謂一切法無實自
001_0234_a_22L性。但隨妄情。名言假立我諸 [17] 自性。如
001_0234_a_23L說謂我。或說色等我法自性。或說假
001_0234_a_24L我。或說實我。或可見色不可見等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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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4_b_01L이와 같이 자성과 차별을 가립하고 나서 나아가 세상의 유정들로 하여금 그에 따라 언설을 일으키도록 한 것이다.『성유식론』 제8권에서는 다시 “(갖가지 변계되는 사물이란) 허망하게 집착되어진 온·처·계 등의 아와 법의 자성과 차별을 말하니, 이처럼 허망하게 집착된 자성과 차별을 변계소집자성이라고 총칭한다.”67)고 하였다.자성과 차별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면, 세친과 무성의 『섭대승론석』 제4권의 설 및 『유가사지론』 제73권 등의 설과 같다.
나) 의타기상依他起相을 설명함
경 제법의 의타기상이란 무엇인가?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의타기상을 설명한 것이다. 앞은 질문이고, 나중은 대답이다.
(가) 질문이것은 질문에 해당한다.
(나) 대답
경 일체법의 연생하는 자성을 말한다. 즉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무명은 행의 연이 되고 나아가서는 순전한 대고온大苦蘊을 불러내어 쌓는 것이다.
석 이것은 대답에 해당한다. 경문에 두 개의 절이 있다.
㉮ 총상으로 체를 나타냄처음은 총상總相으로 체를 나타낸 것이니, 연을 따라 생긴 모든 번뇌煩惱·업業·생生의 잡염68)을 말한다. 연을 따라 생겼기 때문에 모두 ‘의타依他(타에 의지함)’라고 이름하였다.의타에 대해 일반적으로 논하면 본래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잡염의 의타이고, 둘째는 청정의 의타이다. 따라서 『성유식론』 제8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루와 무루는 모두 의타기이니, 타他로서의 많은 연에 의지해야 생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69) 게송에서 ‘분별은 연으로 생긴 것’이라 한 것은 우선 염분染分의 의타를 설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70)”71) 이 『해심밀경』에서도 또한 이러하니, 염분을 말한 것이지 정분淨分을 말한 것은 아니다.
㉯ 사를 가리켜 따로 해석함
● ‘此有故彼有此生故彼生’에 대한 각 종파의 해석“즉 이것이 있으므로……”라고 한 것은 사事를 가리키며 따로 해석한 것이다.그런데 앞의 두 구에는 차이점이 있다.살바다종은 예를 들어 『구사론』 제9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째서 세존께서는 앞의 두 구, 말하자면 ‘이것에 의지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고 설하셨는가?십이연기가 결정적인 것임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
001_0234_b_01L法差別。如是假立自性差別已。乃至
001_0234_b_02L爲令世間有情隨起言說。依成唯識
001_0234_b_03L第八。復云。謂所妄執蘊處界等。若我 [18]
001_0234_b_04L若法 [19] 自性差別。此所妄執自性差
001_0234_b_05L別。總名遍計所執自性。廣說自性及
001_0234_b_06L差別義。如世親無性攝大乘釋第四
001_0234_b_07L卷說。及瑜伽論七十三等。
001_0234_b_08L云何諸法依他起相。
001_0234_b_09L釋曰。此下第二辨依他起。先問後答。
001_0234_b_10L此卽問也。
001_0234_b_11L謂一切法緣生自性。則此有故彼有。此
001_0234_b_12L生故彼生。謂無明緣行。乃至招集純大
001_0234_b_13L苦蘊。
001_0234_b_14L釋曰。此卽答也。文有兩節。初總相出
001_0234_b_15L體。謂從緣生一切煩惱業生雜染。從
001_0234_b_16L緣生故。皆名依他。汎論依他。自有
001_0234_b_17L二種。一者雜染。二者情淨。故成唯
001_0234_b_18L識第八云。有漏無漏。皆依他起。依他
001_0234_b_19L衆緣而得起故。頌言分別緣所生者。
001_0234_b_20L應知亦 [20] 說染分依他。此經亦爾。說染
001_0234_b_21L非淨。言則此有故等者。指事別釋。然
001_0234_b_22L前二句。有差別者。薩婆多宗。如俱
001_0234_b_23L舍論第九卷云。何故世尊說前二句。
001_0234_b_24L謂依此有故 [21] 彼有。此生故彼生。爲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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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4_c_01L무명에 의지해서 제행이 있을 수 있지만 무명을 떠나서는 제행은 있을 수 없다.또 모든 지支의 전생傳生72)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이 지가 있음에 의해 저 지가 있을 수 있고 저 지가 생김으로 인해 그 밖의 지가 생길 수 있다.또 삼제三際(과거·현재·미래)의 전생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전제前際가 있음에 의해 중제中際가 있을 수 있고 중제가 생김으로 인해 후제後際가 생길 수 있다.또 친연親緣(직접적인 연)과 전연傳緣(간접적인 연)의 두 가지 연을 나타내기 위해서다.73) 말하자면 무명이 있고 무간으로 행을 발생시키거나, 혹은 전전력展轉力74)에 의해 제행이 비로소 생기는 것을 말한다.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명지無明支 이후에 곧 행지行支를 일으키는 것을 일컬어 ‘무간으로 행을 발생시킨다’고 하고, 무명을 일으키고 나서 다음에 무기심無記心을 일으키고 그 후에 행지를 일으키는 것을 일컬어 ‘전전하는 힘에 의해 제행이 비로소 생긴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명을 행과 대망시켰을 때는 ‘무간으로 생한다’고 하고, 무명을 식識 등과 대망시켰을 때는 ‘전전해서 생한다’고 한다.≻어떤 다른 논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이와 같은 두 구는 무인론無因論과 상인론常因論 두 가지 이론을 논파하기 위해 설한 것이다.75)≻이에 논파를 세운 것이 있으니, 구체적인 것은 그 『구사론』의 설명과 같다.76)여러 궤범사軌範師77)들은 해석하길, 이 두 구는 인·과의 부단不斷과 생生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한다. 말하자면 무명이 단절되지 않음에 의해 제행도 단절되지 않고, 무명이 생김으로 인해 제행도 생길 수 있으니, 이와 같은 전전展轉에 대해 자세하게 설해야 할 것이다.78)
이 두 구를 자세하게 분별하면 예를 들어 『순정리론』 제25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유가사지론』 제10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문 어째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고 설했는가? 답 단절되지 않은 연으로 인해 그 밖의 것도 생길 수 있다는 뜻 때문이다.79) 문 어째서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고 설했는가? 답 무상한 연으로 인해 그 밖의 것도 생긴다는 뜻 때문이다.80)”81)『잡집론』 제4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상相’이라 한 것은,82) 말하자면 무작연無作緣으로 생기기 때문이고, 무상연無常緣으로 생기기 때문이며, 세용연勢用緣으로 생기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연생의 상이다. 이러한 상 때문에 박가범께서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고 설하셨다. 말하자면 무명은 행의 연이 되고,……중간 생략……‘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은 ‘작용 없는 연으로 생긴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
001_0234_c_01L緣起知決定故。依無明有諸行得有。
001_0234_c_02L非離無明可有諸行。又爲顯示諸支
001_0234_c_03L傳生。謂依此支有。彼支得有。由彼支
001_0234_c_04L生。 [22] 餘支得生。又爲顯示三際傳生。謂
001_0234_c_05L依前際有。中際得有。由中際有。 [23] 後際
001_0234_c_06L得生。又爲顯示親傳二緣。謂有無明。
001_0234_c_07L無明 [24] 無間生行。或展轉力。諸行方生
001_0234_c_08L一云。無明支後。即起行支。名無間生行。起無明已。
次起無記心。後起行支。名展轉力諸行方生。一
001_0234_c_09L云。無明望行。名無間生。
無明望識等。名展轉生。。有餘師釋。如是二
001_0234_c_10L句。爲破無因常因二論。此有立破。
具如彼論。軌範
001_0234_c_11L諸師釋。此二句爲顯因果不斷及生。
001_0234_c_12L謂依無明不斷。諸行不斷。卽由無明
001_0234_c_13L生故。諸行得生。如是展轉。皆應廣
001_0234_c_14L說。若廣分別。如順正理第二十五。依
001_0234_c_15L瑜伽論第十卷云。問。云何說言此有
001_0234_c_16L故彼有。答。由未斷緣。餘得生義故。問。
001_0234_c_17L云何此生故彼生。答。由無常緣。餘得
001_0234_c_18L生義故。依雜集第四云。相者。謂無作
001_0234_c_19L緣生故。無常緣生故。勢用緣生故。是
001_0234_c_20L緣生相。由此相故。薄伽梵說。此有故
001_0234_c_21L彼有。此生故彼生。謂無明緣行。乃至
001_0234_c_22L廣說。此有故彼有者。顯無作緣生義。
001_0234_c_23L「一」上經有「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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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5_a_01L오직 연이 있기 때문에 과법도 있을 수 있지만, 연에 실체적 작용이 있어서 능히 과법을 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은 ‘무상한 연으로 생긴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니, 무생법無生法을 인으로 삼아 생겨난 법이란 조금도 성립하지 않는다.83)”84)“‘무명은 행의 연이 되고……’라고 한 것은,85) ‘세력이 작용하는 연으로 생긴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비록 다시 제법은 (그 자체에) 작용도 없고 무상한 것임에도 (연이 된다.) 그러나 하나의 법이 연이 됨에 따라서 일체의 과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법의 공능의 차별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명의 힘 때문에 제행이 생길 수 있고 내지는 ‘생’의 힘 때문에 노·사도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86)자세하게 분별하면 예를 들어 『미륵보살소문론』 제5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순전한 대고온大苦蘊을 불러내어 쌓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구사론』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순전한(純)’이라는 말은 오직 행行만 있고 아我·아소我所는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대고온’이라는 말은 고의 적집에는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쌓는다(集)’는 말은 모든 고온이 생겨남을 나타내려는 것이다.”87)『대비바사론』 제24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다시 이 십이지연기법이란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으며 가지가 있고 잎이 있으며 꽃이 있고 열매도 있으니, 마치 큰 나무와 같은 것이다. 이 중에서 뿌리는 무명無明과 행行을 말하고, 줄기란 식識과 명색名色을 말하며, 가지란 육처六處를 말하고, 잎은 촉觸과 수受를 말하며, 꽃이란 애愛와 취取와 유有를 말하고, 열매란 생生과 노사老死를 말한다. 이 십이지연기법이라는 나무는 어떤 경우는 꽃도 있고 열매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꽃도 없고 열매도 없다. 꽃도 있고 열매도 있다는 것은 이생異生(범부)과 유학有學을 말하고, 꽃도 열매도 없다는 것은 아라한을 말한다.”88)『유가사지론』 제10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문 십이연기 중에서 어떤 것들이 고통의 싹이고, 누가 고통의 싹을 지키고 키우며, 어떤 것들이 고통의 나무인가? 답 무명과 행이라는 연에 의해 이끌려 나온 ‘식’에서 ‘수’까지는 고통의 싹이고, -
001_0235_a_01L唯由有緣故果法得有。非緣有實作
001_0235_a_02L用能生果法。此生故彼生者。顯無常
001_0235_a_03L緣生義。非無生法爲因故少所生法
001_0235_a_04L而成得 [25] 立。
001_0235_a_05L無明緣行等者。顯勢用緣生義。雖復
001_0235_a_06L諸法無作無常。然不隨一法爲緣故
001_0235_a_07L一切果生。所以者何。以諸法功能差
001_0235_a_08L1)別。 [2] [26] 如說 [27] 無明力故。諸行得生。乃至
001_0235_a_09L生力故。得有老死。若廣分別。如彌
001_0235_a_10L勒菩薩所問論第五卷說。
001_0235_a_11L招集純大苦薀者。依俱舍論。如是純
001_0235_a_12L言。顯唯有行無我我所。大苦薀言。顯
001_0235_a_13L苦積集無初無後。集言爲顯諸苦薀
001_0235_a_14L生。依大毗婆沙第二十四云。復次。此
001_0235_a_15L十二支緣起法。有根有莖。有枝有葉。
001_0235_a_16L有華有果。猶如大樹。此中根者。謂
001_0235_a_17L無明行。莖者。謂識名色。枝者。謂六處。
001_0235_a_18L葉者。謂觸受。華者。謂愛取有。果者。謂
001_0235_a_19L生老死。此十二支緣起法樹。或有華
001_0235_a_20L有果。或無華無果。有華有果者。謂
001_0235_a_21L異生及有 [28] 學。無華 [29] 果者。謂阿羅漢。依
001_0235_a_22L瑜伽第十云。問。於緣起中。何等是
001_0235_a_23L苦牙。 [30] 誰守養苦牙。 [31] 何等爲苦樹。答。
001_0235_a_24L無明行緣所引識乃至受。是苦牙。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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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5_b_01L‘수’라는 연에 의해 이끌려 나온 ‘애’에서 ‘유’까지는 고통의 싹을 지키고 키우는 것이며, ‘생’과 ‘노·사’는 고통의 나무임을 알아야 한다.”89)
● 『섭대승론』에 나온 열한 종류 의타기의 식識『섭대승론』에 의하면 열한 가지 식을 기준으로 의타기를 설명한다. 따라서 『섭대승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논 이 중에서 무엇이 의타기상인가? 아뢰야식을 종자로 삼는 허망분별에 속하는 모든 식들을 말한다. 이것은 다시 무엇을 말하는가? 신身·신자身者·수자受者의 식識, 피소수식彼所受識, 피능수식彼能受識, 세식世識, 수식數識, 처식處識, 언설식言說識, 자타차별식自他差別識, 선취악취사생식善趣惡趣死生識이다.90) 이 중에서 신·신자·수자의 식, 피소수식, 피능수식, 세식, 수식, 처식, 언설식은 명언훈습종자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타차별식은 아견훈습종자에서 비롯된 것이며, 선취악취사생식이란 유지훈습종자에서 비롯된 것이다.……중간 생략……이와 같은 것을 의타기상이라고 이름한다.”91)세친은 『섭대승론석』 제4권에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신’이란 안 등의 오계를 말한다.신자’란 염오의染汚意92)를 말한다.무성은 “안식 등 오식의 소의所依인 의계意界를 신자식身者識이라 한다.”고 하였다.93)‘능수자能受者(수자)’란 의계를 말한다.무성은 “제6의식의 소의인 의계를 수자식受者識이라 한다.”고 하였다.94)‘피소수식’이란 색계 등 여섯 가지 외적인 계를 말하고, ‘피능수식’이란 육식계를 말한다.95)‘세식’이란 생사가 상속하면서 단절되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무성은 “세식이란 (과거·현재·미래라는) 삼시의 영상이 사현似現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수식’이란 계산성(算計性)을 말한다.무성은 “‘일一’ 따위의 세는 수의 영상이 사현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처식’이란 기세간을 말한다.무성은 “마을·정원 등의 영상이 사현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언설식’이란 견·문·각·지에 의한 네 종류 언설을 말한다. 이와 같은 여러 식들은 모두 ‘알아야 할 소의(所知依)’에서 설했던 명언훈습의 차별을 인因으로 삼는다.‘자타차별식’이란 의지依止의 차별을 말한다.96) 이것은 이전에 설했던 아견훈습의 차별을 인으로 삼는다. -
001_0235_b_01L緣所引愛乃至有。是守養苦牙。生與
001_0235_b_02L老死。當知是苦樹。若依攝論。約十一
001_0235_b_03L識。明依他起。故攝大乘云。論曰。此
001_0235_b_04L中何者。依他起相。謂阿賴耶識爲種
001_0235_b_05L子。虗妄分別所攝諸識。此復云何。謂
001_0235_b_06L身身者受者識。彼所受識。彼能受識。
001_0235_b_07L世識。數識。處識。言說識。自他差別
001_0235_b_08L識。善趣惡趣死生識。此中。若身身者
001_0235_b_09L受者識。彼所受識。彼能受識。世識。
001_0235_b_10L數識。處識。言說識。此由名言熏習
001_0235_b_11L種子。若自他差別識。此由我見熏習
001_0235_b_12L種子。若善趣惡趣死生識。此由有支
001_0235_b_13L熏習種子。乃至云。如是名爲依他起
001_0235_b_14L相。世親攝論第四釋云。身。謂眼等
001_0235_b_15L五界。身者。謂染汙意。無性云。眼等五識所
依意界。名身者識也。
001_0235_b_16L能受者。謂意界。無性云。第六 [32] 識所
依意界。名受者識。彼所受
001_0235_b_17L識者。謂色等六外界。彼能受識者。謂
001_0235_b_18L六識界。世識者。謂生死相續不斷住。 [33]
001_0235_b_19L無性云。世識者。
謂是 [34] 三時影現。數識者。謂算計性。無性云。
謂似一
001_0235_b_20L等算 [35] 數
影現。處識者。謂器世間。無性云。謂似聚
落薗 [36] 等影現。
001_0235_b_21L言說識者。謂見聞覺知四種言說。如
001_0235_b_22L是諸識。皆用所知依中所說名言熏
001_0235_b_23L習差別爲因。自他差別識者。謂依此 [37]
001_0235_b_24L差別。此用前說我見熏習差別爲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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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5_c_01L무성은 “신身 등의 식에서 아집·아소집이 상속하면서 단절되지 않고 ‘나(我)’와 ‘나의 것(我所)’에 대해 집착하는 것을 말하니, ‘남(他)’과 ‘남의 것(他所)’ 등과는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선취악취사생식’이란 태어나고 죽는 취趣의 갖가지 차별을 말하니, 이것은 이전에 말했던 유지훈습의 차별적 종자로 인한 것이다.무성은 “천·인·나락가·방생·아귀의 죽고 태어나는 영상이 사현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97)
자세한 것은 무성과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4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그런데 이 식들은 차별이 있다. 무성에 의하면, 안식 등 오식의 소의인 의계를 ‘신자식身者識’이라 하고, 제6의식의 소의인 의계를 ‘수자식受者識’이라 한다.해 무성의 『섭대승론석』의 뜻은, 안식 등 다섯 가지 식의 소의인 의계란 아뢰야식에 해당하니 이를 신자식이라 하고, 제6의식의 소의인 의계란 말나식에 해당하니 이를 수자식이라 한다는 것이다. 세친에 의하면, 이와는 상반된다. 제7말나식을 신자식이라 하고, 제8아뢰야식은 수자식이라 한다. 따라서 그의 『섭대승론석』에서 ‘신자身者’란 염오의를 말하고, ‘수자受者’란 의계를 말한다고 한 것이다.또 이 식들의 수에 차이가 있다. 양梁 『섭대승론석』과 『성유식론』에 의하면, 모두 열한 개라고 한다. 『섭대승론』에 의하면 본래 두 개의 문장이 있다. 앞 문장에서는 열한 개라고 하였고, 뒤 문장에서는 열두 개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선취악취사생식善趣惡趣死生識을 두 가지로 나누었기 때문인데, 첫째는 선취악취식이고 둘째는 사생식이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업의 과보가 이숙한 것들이 무수하기 때문이고, 받게 되는 죽음과 태어남도 무수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98) (이에 대해) 무성은 ‘선취악취 및 사생’이라고 해석하였다.99)해 (무성이) 일부러 ‘및(及)’이라는 말을 설했기 때문에 열두 개로 여겼음을 알 수 있고, 세친은 해석하지 않았으므로 열한 개로 여긴 것인데,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없다.
다) 원성실상圓成實相을 해석함
경 제법의 원성실상이란 무엇인가?
석 이하는 세 번째로 원성실상에 대해 해석하였다. 이 중에서 앞은 질문이고, 나중은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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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5_c_01L無性云。謂身等識。我我所執相續
不斷。執我我所。他他所等有差別故。善趣惡趣
001_0235_c_02L生死 [38] 識者。謂生死趣種種差別。此由
001_0235_c_03L前說有支熏習差別種子。無性云。謂似天
人及捺落迦傍
001_0235_c_04L生餓鬼死
生影現也。廣如無性世親釋論第四。然
001_0235_c_05L此諸識。有差別者。若依無性。眼等五
001_0235_c_06L識所依意界。名身者識。第六意識所
001_0235_c_07L依意界。名受者識。解云。無性論意。
001_0235_c_08L眼等五識所依意界。卽是賴耶。名身
001_0235_c_09L者識。第六意識所依意界。卽是末
001_0235_c_10L那。名受者識。若依世親。與此相翻。第
001_0235_c_11L七末那。名身者識。第八賴耶。名受者
001_0235_c_12L識。故彼論云。身者謂染汙意。受者
001_0235_c_13L謂意界。又此諸識數有差別。若依
001_0235_c_14L梁論及成唯識。皆云十一。若依攝大
001_0235_c_15L乘。自有兩文。前文十一。後文十二。
001_0235_c_16L謂開善趣惡趣死生識。以爲二故。一
001_0235_c_17L善趣惡趣識。二死生識。故彼論云。
001_0235_c_18L業果異熟無數量故。所受死生無數
001_0235_c_19L量故。無性釋云。善趣惡趣及與死生。
001_0235_c_20L解云。說故及言。故知十二。世親不
001_0235_c_21L釋。故爲十一。於理無違。
001_0235_c_22L云何諸法圓成實相。
001_0235_c_23L釋曰。自下第三釋圓成實。於中。先問
001_0235_c_24L「別」下一有「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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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6_a_01L(가) 질문이것은 질문에 해당한다.
(나) 대답
경 모든 법의 평등한 진여를 말한다.
석 이것은 대답에 해당한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체를 바로 나타낸 것이고, 나중은 뛰어난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
㉮ 체를 바로 나타냄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원성실상은) 앞에서 설한 ‘모든 법에 편재하는 일미의 진여(遍一切法一味眞如)’를 체성으로 삼는다는 것이다.『변중변론』에 의하면, 원성실성은 본래 두 종류가 있다. 따라서 그 논의 제2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원성실성은 모두 두 종류가 있으니, 무위와 유위의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무위의 (원성실성은) 진여·열반을 총괄해서 포함하니, 그것은 변이가 없기 때문에 원성실성이라 한다. 유위의 (원성실성은) 모든 성도聖道를 총섭하니, 그것은 경계에 대해 전도됨이 없기 때문에 또한 원성실성이라 한다.”100)『섭대승론』에 의하면 원성실성은 본래 네 종류가 있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원성실자성이란 어떤 것이라고 알아야 하는가? 네 종류 청정한 법에 대해 설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자성自性의 청정함이니, 진여眞如·공空·실제實際·무상無相·승의勝義·법계法界를 말한다.101) 둘째는 더러움을 떠난(離垢) 청정함이니, 이것(진여)이 모든 장애의 때(障垢)를 떠나 있는 것을 말한다.102) 셋째는 이것(자성·이구의 청정)을 증득하는 도道의 청정함이니, 모든 보리분법菩提分法103)과 (십)바라밀다104) 등을 말한다. 넷째는 이 도를 발생시키는 경계의 청정함이니, 모든 대승의 오묘한 정법의 가르침을 말한다. 이 법의 가르침은 청정한 소연이기 때문에 변계소집자성이 아니고, 가장 청정한 법계에서 동등하게 흘러나온 것이기 때문에 의타기자성도 아니다.105)이와 같은 네 가지 법이 모든 청정한 법을 총괄해서 다 포함한다. 이에 대해 두 개의 게송이 있다.
幻等說於生 (의타의) 생을 환과 같다 설하고
說無計所執 무라고 설한 것은 변계소집이네
若說四淸淨 네 종류 청정함을 설하여
是謂圓成實 원성실상이라 하였으니
自性與離垢 자성과 이구의 (청정)
淸淨道所緣 청정한 도와 소연
一切淸淨法 모든 청정한 법들은
皆四相所攝 모두 그 네 가지 상에 속하네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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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6_a_01L後答。此卽問也。
001_0236_a_02L謂一切法平等眞如。
001_0236_a_03L釋曰。此卽答也。於中有二。初正出
001_0236_a_04L體。後顯勝用。此卽初也。謂前所說
001_0236_a_05L遍一切法一味眞如。以爲體性1)若 [3] 中
001_0236_a_06L邊。圓成實性。自有二種。故第二云。
001_0236_a_07L此圓成實。總有二種。無爲有爲。有差
001_0236_a_08L別故。無爲總攝眞如涅槃。無變異故。
001_0236_a_09L名圓成實。有爲總攝一切聖道。於境
001_0236_a_10L無倒故。亦名圓成實。若依攝大乘。圓
001_0236_a_11L成實性。自有四種。故彼論云。云何
001_0236_a_12L應知圓成實 [39] 性。應知宣說四淸淨法。
001_0236_a_13L一者自性淸淨。謂眞如空實際無相
001_0236_a_14L勝義法界。二離垢淸淨。謂卽此離一
001_0236_a_15L切障垢。三者得此道淸淨。謂一切菩
001_0236_a_16L提分法波羅蜜多等。四者生此境淸
001_0236_a_17L淨。謂諸大乘妙正法敎。由此法敎淸
001_0236_a_18L淨緣故。非遍計所執自性。最淨法界
001_0236_a_19L等流性故。非依他 [40] 自性。如是四法。總
001_0236_a_20L攝一切淸淨法盡。此中有二頌。
001_0236_a_21L幻等說於生。說無計所執。
001_0236_a_22L若說四淸淨。是謂圓成實。
001_0236_a_23L。自性與離垢。淸淨道所緣。
001_0236_a_24L一切淸淨法。皆四相所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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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6_b_01L자세한 것은 무성과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5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이 『해심밀경』에서는 이상으로 따로따로 세 가지 법에 의거해 삼성의 뜻을 해석하였다. 『변중변론』 제2권과 『성유식론』 제8권에서는 사제四諦의 뜻에 의거해 통틀어 삼성을 해석하였다. 『잡집론』 제5권에서는 온·계·처의 삼과법문에 의거해서 통틀어 삼성을 해석하였다.『대반야경』에서는 ‘일체법’에 의거해서 통틀어 삼성을 해석했는데, 무성의 『섭대승론석』 제4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어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한다.부처님께서 자씨보살에게 말씀하셨다.“만약 저 각각의 행상行相의 사事에 대해, 변계하면서 색이라 하고 수라고 하며 상이라 하고 행이라 하며 식이라 하고 내지는 모든 불법의 의지(佛法依止)라고 하거나, 이름(名)·형상(想)으로 시설하고 언설로 변계해서, 모든 색의 자성이라 하고 내지는 모든 불법의 자성이라 한다면, 이것을 변계소집의 색 내지는 변계소집의 모든 불법이라 이름한다.107)만약 다시 그러한 행상의 ‘사’에 대해, 오직 분별법성만 있다고 안립하고, 분별을 연으로 하여 여러 희론들을 일으키고 이름·형상을 가립하고 언설을 시설해서, 그것을 색이라 하고 내지는 그것을 모든 불법이라 한다면, 이것을 분별의 색 내지는 분별의 모든 불법이라 이름한다.108)모든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든 세상에 출현하시지 않든 법성은 안립되어 있고 법계는 안립되어 있다. 저 변계소집의 색으로 인해, 이 분별의 색이 항항시恒恒時에 상상시常常時에 진여성이고 무자성성이며 법무아성이고 실제의 성품(實際之性)인 것을 일컬어 법성의 색이라 한다.109) 내지는 저 변계소집의 모든 불법으로 인해, 이 분별의 모든 불법이 항항시에 상상시에……중간 생략……110)인 것을 일컬어 법성의 모든 불법이라 한다.”자세한 것은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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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6_b_01L廣如無性世親釋論第五卷說。此經
001_0236_b_02L上來。別約三法。釋三性義。若依中邊。
001_0236_b_03L第二。成唯識第八。約四諦義。通釋三
001_0236_b_04L性。若依雜集第五。約蘊界處三科法
001_0236_b_05L門。通說三性。若依大般若。約一切
001_0236_b_06L法。通釋三性。故無性釋論第四卷云。
001_0236_b_07L如大般若彼羅蜜多經中亦說。佛告
001_0236_b_08L慈氏。若於彼彼行相事中。遍計爲色。
001_0236_b_09L爲受爲想。爲行爲識。乃至爲一切佛
001_0236_b_10L法依止。名想施設言說遍計。以爲
001_0236_b_11L諸色自性。乃至一切佛法自性。是名
001_0236_b_12L遍計所執色。乃至遍計所執一切佛
001_0236_b_13L法。若復於彼行相事中。唯有分別法
001_0236_b_14L性安立。分別爲緣。起諸戲論。假立
001_0236_b_15L名想施設言說。謂之爲色。乃至謂爲
001_0236_b_16L一切佛法。是名分別色。乃至分別一
001_0236_b_17L切佛法。若諸如來出現於世。若不出
001_0236_b_18L世。法性安立。法界安立。由彼遍計。
001_0236_b_19L所執色故。此分別色。於常常時。於
001_0236_b_20L恒恒時。是眞如性。無自性性。法無
001_0236_b_21L我性。實際之性是名法性。色乃至由。
001_0236_b_22L彼遍計所執一切佛法故。此分別一
001_0236_b_23L切佛法。於常常時。於恒恒時。乃至
001_0236_b_24L是名法性一切佛法。廣說如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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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6_c_01L㉯ 뛰어난 작용을 나타냄
경 이 진여에 대해 모든 보살중들은 용맹하게 정진한 것이 인연이 되었기 때문에, (또) 이치에 맞게 작의하고 전도 없이 사유한 것이 인연이 되었기 때문에 통달할 수 있고, 이러한 통달을 점차로 닦고 쌓아서 나아가 무상정등보리에 이르러 비로소 원만을 증득하는 것이다.
석 이것은 뛰어난 작용을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진여에 대해, 모든 보살중들은 자량위에서는 용맹하게 정진하고 가행위에서는 전도 없이 사유하니, 이런 인연으로 견도위에서는 통달할 수 있고, 수도위에 머물면서 점차로 닦고 쌓아서, 구경위에 이르면 비로소 원만을 증득한다는 것이다.112)『유가사지론』 제73권에 의하면 그에 세 가지 작용이 있다. 첫째는 청정을 증득하는 작용이고, 둘째는 두 가지 속박에서 해탈하는 작용이며, 셋째는 공덕을 이끌어 내는 작용이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내지는 청정을 증득하게 하고, 모든 상박相縛과 추중박麤重縛113)에서 벗어나게 하며, 또한 모든 공덕을 이끌어 내게 한다.”114)고 하였다.해 순서대로 견도 등의 세 가지 도에 해당한다.115)
● 삼성에 대한 진제의 해석, 그에 대한 원측의 비판그런데 이 삼상(삼성)의 체성을 (법수로 나타내자면 그 범위가) 넓기도 하고 좁기도 하여 여러 설들이 같지 않다.우선 진제 삼장의 설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제8아뢰야식을 의타기라고 하고, 안식 등 일곱 가지 식을 분별성(변계소집성)이라 하며, ‘의타기에서의 생이 없음(依他無生)과 분별성에서의 상이 없음(分別無相)’을 진실성(원성실성)이라 한다.≻해 또 안식 등 여덟 가지 식을 의타기라고 하고, (그 식들이) 변현해 낸 상분(所變相分)을 분별성이라 하며, ‘의타기에서의 생이 없음과 분별성에서의 상이 없음’을 진실성이라 한다.116)해 또 안식 등 여덟 가지 식의 견분·상분을 의타기라고 하고, 허망하게 집착된 경계는 분별성이며, ‘의타기에서의 생이 없음과 분별성에서의 상이 없음’을 진실성이라 한다.117)이상의 두 가지 풀이(해)와 같이, (진제의 해석은) 우선 이치에 맞지 않다. 안식 등 여덟 가지 식과 모든 상분 등은 연을 따라 생기는데, -
001_0236_c_01L2)於此眞如。諸菩薩衆。勇猛精進。爲因緣
001_0236_c_02L故。如理作意。無倒思惟。爲因緣故。乃
001_0236_c_03L能通達。於此通達。漸漸修集。乃至無上
001_0236_c_04L正等菩提。方證圓滿。
001_0236_c_05L釋曰。此顯勝用。謂於眞如。諸菩薩
001_0236_c_06L衆。資糧位中。勇猛精進。於加行位。
001_0236_c_07L無倒思惟。由此因緣。見道位中。乃
001_0236_c_08L能通達。住修道位。漸漸修集。至究竟
001_0236_c_09L位。方證圓滿。若依瑜伽第七十三。有
001_0236_c_10L其三用。一證得淸淨用。二解脫二縛
001_0236_c_11L二縛 [4] 用。三引發功德用。故彼論云。乃
001_0236_c_12L至能令證得淸淨。能令解脫一切相
001_0236_c_13L縛及麤重縛。亦令引發一切功德。解
001_0236_c_14L云。如次卽當見等三道。然此三相體
001_0236_c_15L性寬狹。諸說不同。且依眞諦三藏說
001_0236_c_16L云。第八賴耶。名依他起。眼等七識。
001_0236_c_17L爲分別性。依他無生分別無相。爲
001_0236_c_18L眞實性。又解。眼等八識。爲依他起。
001_0236_c_19L所變相分。爲分別性。依他無生分
001_0236_c_20L別無相。爲眞實性。又解。眼等八識
001_0236_c_21L見分相分。名依他起。妄所執境。爲
001_0236_c_22L分別性。依他無生分別無相。爲眞
001_0236_c_23L實性。如上兩解。理且不然。眼等八
001_0236_c_24L「若」下疑脫「依」。「二縛」疑剩{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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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7_a_01L어째서 편중해서 제8아뢰야식만 의타기라고 설하고 안식 등 일곱 가지 식은 분별성이라고 하는가? ‘분별성에서의 상이 없음과 의타기에서의 생이 없음’은 두 가지 자성과 다르지 않은데, 어떻게 그것을 설하여 진실성이라 하겠는가? 이와 같은 과실들은 모두 다 진술할 수 없다. 그 이외의 여러 설들도 번거로울까 봐 진술하지 않겠다.
● 여러 교에서 설한 삼성의 두 가지 문이제 여러 교에서 설했던 삼성에 대해 진술하면, 총괄해서 두 개의 문이 있다.첫째는 소집所執과 잡염雜染과 부도不倒의 문이다.118) 말하자면 허망하게 집착된 실아實我·실법實法은 전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허망한 정을 따라서 시설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유有’라고 말하니, 이와 같은 모든 것을 변계소집이라 이름한다. 모든 잡염된 유루의 법들로서 연을 따라 생긴 것을 의타기라고 이름하니, 인에 의지하고 연에 의탁해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유위법 중의 무루의 도제道諦 및 모든 무위법을 원성실이라고 이름하니, 두 종류는 모두 전도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둘째는 소집所執과 연생緣生과 불변不變의 문이다.119) 말하자면 허망하게 집착된 실아·실법 등은 정을 따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집성이라 이름한다. 유루·무루의 모든 유위법들은 다 의타기다. 일체제법의 평등한 진여는 변하여 달라짐이 없기 때문에 원성실이라 이름한다.이상의 두 문에 대해 여러 교설이 같지 않다.본래 어떤 성교聖敎에서는 전자를 설하지만 후자는 설하지 않는다.120) 예를 들면 『능가경』 제4권에서는 “대혜여, 정지正智와 여여如如(진여)121)는 파괴될 수 없기 때문에 성자성成自性(원성실성)이라 이름한다.”122)고 하였다. 『변중변론』에서도 또한 이와 동일하게 설한다.본래 어떤 성교에서는 후자를 설하지만 전자를 설하지 않는다.123) 예를 들면 『유가사지론』 제74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두 번째 자성에는 (오법五法 중에) 몇 개가 속하는가? 답 네 개가 속한다. 문 세 번째 자성에는 몇 개가 속하는가? 답 한 개가 속한다.”124)본래 어떤 성교에는 두 종류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125) 예를 들면 『성유식론』 제8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게송에서) ‘분별(의타기의 식)은 연으로 생긴다’고 한 것은 우선 염분染分의 의타를 설한 것임을 알아야 하니, -
001_0237_a_01L識及諸相分等從緣生。云何偏說第
001_0237_a_02L八賴耶。名依他起。眼等七識。爲分別
001_0237_a_03L性。分別無相依他無生。不異二性。如
001_0237_a_04L何說彼。名眞實性。如此等過。不可具
001_0237_a_05L陳。已外諸說。恐繁不叙。今述諸敎
001_0237_a_06L所說三性。總有二門。一所執雜染
001_0237_a_07L不倒門。謂妄所執實我實法。都無所
001_0237_a_08L有。但隨妄情而施設故。說之爲有。如
001_0237_a_09L是皆名遍計所執。一切雜染諸有漏
001_0237_a_10L法。從緣生者。名依他起。依因託緣
001_0237_a_11L而得生故。一切有爲無漏道諦。及諸
001_0237_a_12L無爲。名圓成實。二種皆是不顚倒故。
001_0237_a_13L二所執緣生不變門。謂妄所執實我
001_0237_a_14L法等。隨情有故。名所執性。有漏無
001_0237_a_15L漏一切有爲。皆依他起。一切諸法平
001_0237_a_16L等眞如。不變異故。名圓成實。於上二
001_0237_a_17L門。諸敎不同。自有聖敎。說前非後。如
001_0237_a_18L楞伽經第四卷說。大慧。正智如如者。
001_0237_a_19L不可壞故。名成自性。辨中邊論。亦
001_0237_a_20L同此說。自有聖敎。說後非前。如瑜伽
001_0237_a_21L論七十四云。問。第二自性幾所攝。答。
001_0237_a_22L四所攝。問。第三自性幾所攝。答。一所
001_0237_a_23L攝。自有聖敎。二種俱有。如成唯識第
001_0237_a_24L八卷云。分別緣所生。 [41] 應知且說染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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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7_b_01L정분淨分의 의타는 또한 원성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혹은 염분·정분의 심·심소법들을 모두 ‘분별’이라 한 것이니, (대상을) 능히 연려緣慮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염분·정분의 의타는 모두 여기에서의 의타기에 속하는 것이다.”126)『섭대승론석』 제4권에서는 “둘째로 잡염·청정의 성질이 (일정하게) 성립하지 않는 타他에 의지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세친의 해석에서는 “이와 같은 의타기성은 변계하고 있을 때는 곧 잡염이 되고 분별이 없을 때는 곧 청정이 되므로, 이러한 이분二分으로 인해 하나의 자성으로 성립되지 않는다.”127)고 하였다. 무성이 해석한 뜻도 이 설명과 동일하다.지금 이 한 부의 (『해심밀경』은) 후자를 설한 것이지 전자를 설한 것은 아니니, 오직 진여만을 원성실성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혹은 전자를 설한 것이지 후자를 설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으니, 오직 염법만을 연생緣生이라고 설하기 때문이다. 혹은 통틀어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도 있으니, 앞의 두 가지를 설하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예를 들어 「삼성장三性章」과 같다.
② 비유
경 선남자여, 마치 침침하고 어른거리는(眩翳) 사람 눈에 있는 모든 침침하고 어른거림의 과환過患들과 같이 변계소집상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비유를 들어 거듭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어른거리는 눈(翳眼)과 청정한 눈(淨眼)의 경계로 삼상의 비유를 밝힌 것이다. 나중의 “선남자여……” 이하는 파지가頗胝迦 보배 등 네 가지 사물로 비유를 든 것이다.
가. 예안과 정안의 경계로 삼상의 비유를 밝힘전자 중에 세 가지 비유가 있으니 곧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은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의 과환’으로 비유한 것이고, 다음은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에 (나타난) 여러 형상’으로 비유한 것이고, 마지막은 청정한 눈의 본래 경계로써 비유한 것이다.실례에는 두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은 비유의 말을 바로 밝힌 것이고, 나중은 법동유法同喩128)를 든 것이다.
가)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의 과환으로 비유함이것은 첫 번째로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의 과환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 비유의 뜻을 말하자면, 눈에 어른거림이 있고 곧장 안식 및 그 안식과 동시인 분별의식이 일어나면 이 두 가지 식이 두 번째 순간의 분별의식을 이끌어 냄으로써 ‘털’이나 ‘바퀴’ 등이라는 이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그런데 털·바퀴에는 본래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분별의식에 의해 계탁된 ‘실재의 털·바퀴(實毛輪)’129) 등이니, 곧 이것을 설하여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의 과환’이라 하였고, 이런 과환으로 소집성을 비유한 것이다. 둘째는 저 분별의식이 의지하고 의탁하는 ‘털·바퀴와 유사한 상(似毛輪相)’이니, 곧 이것을 설하여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에 (나타난) 여러 형상들’이라 하였고, -
001_0237_b_01L依他。淨分依他。亦圓成故。或諸染淨
001_0237_b_02L心心所法。皆名分別。能緣慮故。是則
001_0237_b_03L一切染淨依他。皆是此中依他起攝。
001_0237_b_04L攝論第四云。二者依他雜染淸淨性
001_0237_b_05L不成故。世親釋云。由即如是依他起性。若遍計
時。即成雜染。無分別時。即成淸淨。由二
001_0237_b_06L分故。一性不成。無
性釋意。亦同此說。今此一部。說後非前。
001_0237_b_07L唯說眞如圓成實故。或可說前非後。
001_0237_b_08L唯設染法。爲緣生故。或可通有二義。
001_0237_b_09L前二說故。若廣分別。如三性章。
001_0237_b_10L善男子。如眩翳 [42] 人眼中所有眩翳過患。
001_0237_b_11L遍計所執相。當知亦爾。
001_0237_b_12L釋曰。自下第二擧喩重釋。於中有
001_0237_b_13L二。初明翳淨眼境三相喩。後善男子
001_0237_b_14L下。頗胝迦寶四事楡。前中三喩。卽分
001_0237_b_15L爲三。初眩翳過患喩。次眩翳衆相喩。
001_0237_b_16L後淨眼本境喩。例有二節。初正明喩
001_0237_b_17L說。後擧法同喩。此卽第一眩翳過患
001_0237_b_18L喩。此喩意云。由眼有翳。便發眼識
001_0237_b_19L及眼識同時分別意識。由此二識。引
001_0237_b_20L生第二念中分別意識。作毛輪等解。
001_0237_b_21L然毛輪自有二種。一者分別意識所
001_0237_b_22L計實毛輪等。卽設此爲眼翳過患。以
001_0237_b_23L此過患喩所執性。二者卽彼分別意
001_0237_b_24L識所依所託。似毛輪相。卽說此爲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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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7_c_01L의타기를 비유한 것이다. 뒤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 경에서는 ‘과환’으로 변계소집성을 비유하였기 때문에 “변계소집상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130)혹은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과환이란 침침하고 어른거림 (자체를) 과환이라고 설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뜻을 설하자면, 변계소집으로 인해 의타기가 생하는 것은 흡사 침침하고 어른거림으로 인해 털·바퀴 등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131) 따라서 『유가사지론』 제73권에서는 “마치 눈에 어른거림 등의 과환이 있으면 곧 머리털·바퀴 등의 어른거리는 상이 현전할 수 있지만 그런 과환이 없으면 나타날 수 없는 것처럼, 다만 (취取의) 자성은 있어도 전도된 취는 없는 것이다.132)”133)라고 하였다.
문 어째서 의타기로 변계소집성을 비유하는가?134)답 청정함이 없는 색(無淨色)으로 원성실성을 비유하기도 하기 때문에 과실이 없다.
문 어른거리는 눈과 안식이 털이나 바퀴를 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135)해 서방의 여러 논사들은 본래 두 가지로 해석한다. 첫째, 안혜종安慧宗에서는 안근 등 오근도 털이나 바퀴나 두 번째 달(第二月)136) 등을 인식한다고 한다. 따라서 『잡집론』에서는 ‘가말라(ⓢ kāmalā)병으로 안근이 손상되면 청색을 황색으로 본다’고 하였다.137) (둘째,) 호법護法 보살은 안식 등은 실재의 경계를 소연으로 삼아 일어나고 말하니, 이는 현량이기 때문이다.138)구파瞿婆(ⓢ Gopa) 논사의 『이십유식범본기二十唯識梵本記』139)에 따르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식은 오직 실재의 경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비달마경』에서는 “안식 등이 실재의 경계를 소연으로 삼지 않고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의식은 두 종류가 있으니,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를 소연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140) 따라서 오식은 오직 실재의 경계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식도 역시 실재하지 않는 경계를 소연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산란된 안근과 안식으로 인해 산란된 의식이 이끌려 나오고, 산란되지 않은 안근과 안식으로 인해 산란되지 않은 의식이 이끌려 나온다.”고 하였다. 따라서 오식은 두 번째 달 및 허공꽃 등을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경에서 말하는 ‘과환’ 등의 문장은 앞의 세 가지 설에 따른 것이니, 준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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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7_c_01L翳衆相。喩依他起。如後當說。此用
001_0237_c_02L過患喩所執性故。言遍計所執 [43] 當知
001_0237_c_03L亦爾。或可眩翳過患者。卽說眩翳。名
001_0237_c_04L爲過患。此意說言。由所執故。生依
001_0237_c_05L他起。似由眩翳現毛輪等。故瑜伽論
001_0237_c_06L七十三云。如眼若有翳等過患。便有
001_0237_c_07L髮毛輪等翳相。現前可得。若無彼患。
001_0237_c_08L便不可得。但有自性。無顚倒取。問。如
001_0237_c_09L何依他喩所執性。答。無淨色喩圓成
001_0237_c_10L故。故無有失。問。翳眼眼識見毛輪
001_0237_c_11L不。解云。西方諸師。自有兩釋。一安
001_0237_c_12L慧宗。眼等五1)眼。 [5] 亦緣毛輪第二月等。
001_0237_c_13L故雜集云。迦末羅病。損壞眼根。見青
001_0237_c_14L爲黃。護法菩薩說。眼等識緣實境起。
001_0237_c_15L是現量故。瞿婆論師。十二 [44] 唯識梵本
001_0237_c_16L記中。自有二說。一云。五識唯緣實境。
001_0237_c_17L是故阿毗達磨經云。無有眼等識。不
001_0237_c_18L緣實境起。意識有三 [45] 種。緣實不實境。
001_0237_c_19L故知五識唯緣實境。一云。五識亦緣
001_0237_c_20L不實。是故經云。由亂眼根及眼識。引
001_0237_c_21L亂意識生。由不亂眼及眼識。引不亂
001_0237_c_22L意識。故知五識見第二月及空華等。
001_0237_c_23L此中所說過患等文。依前三說。准卽
001_0237_c_24L「眼」疑「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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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8_a_01L나)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의 여러 형상으로 비유함
경 마치 (눈이)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사람에게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의 여러 형상들, 혹은 머리털·바퀴·벌·파리·거승巨勝141) 혹은 다시 청·황·적·백 등의 상이 차별되게 현전하는 것처럼, 의타기상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두 번째는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의 여러 형상들’로 비유한 것이니, 의타기상을 비유하면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눈이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사람에게 마치 털·바퀴처럼 나타난 상은 ‘실재가 아니지만 실재와 유사하니(非實似實)’, 따라서 의타기라는 ‘유가 아니지만 유와 유사한 것(非有似有)’을 비유한다면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 청정한 눈의 본래 경계로 비유함
경 마치 청정한 눈을 가진 사람은 눈의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과환을 멀리 떠나 있어서 곧 이 청정한 눈의 본성이 작용하는 곳(所行)에는 산란된 경계가 없는 것처럼, 원성실상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세 번째는 청정한 눈의 본래 경계로 비유한 것이다. 말하자면 저 청정한 눈의 본래 소행경계(所行境)인 청색·황색 등의 색은 자성이 청정하여 털·바퀴 등과 같은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과환이 없는 것처럼, 원성실성도 이와 같이 자성이 청정하여 ‘의타기에 있어서 소집성이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142)
나. 파지가의 네 가지 사事로 비유를 듦
경 선남자여, 비유하면 청정한 파지가頗胝迦143) 보배가 만약 파란 염색과 합해지면 곧 제청帝靑·대청大靑144) 마니보배의 상像과 유사해지는데, 그릇된 집착으로 (그것을) 제청·대청 마니보배라고 취하기 때문에 유정을 미혹시키고,
석 이하는 두 번째로 파지가 보배의 네 가지 색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네 가지 색의 비유를 자세하게 설명한 것이다. 나중의 “이와 같이 덕본이여” 이하는 법동유를 든 것이다.
가) 네 가지 색의 비유를 자세히 설명함전자 중에 네 가지 비유가 있으니, 곧 네 가지로 나뉜다.
(가) 파란색과 상응하는 경우의 비유이것은 첫 번째로 파란색과 상응하는 경우로써 비유한 것이다. 경문에 다섯 개의 구절이 있고, 네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뜻은 삼성을 비유하는 것이다.경문에 다섯 개의 구절이 있다. 첫째, “청정한 파지가”란 의타기를 비유한다. 둘째, “만약 파란 염색과 합해지면”이라 한 것은 언설습기를 비유하는데, 이것은 의타기가 언설습기와 합해짐을 밝힌 것이다. -
001_0238_a_01L可知。
001_0238_a_02L如眩翳 [46] 人。眩翳衆相。或髮毛輪蜂蠅巨
001_0238_a_03L勝。或復靑黃赤白等相。差別現前。依
001_0238_a_04L他起相。當知亦爾。
001_0238_a_05L釋曰。第二眩翳1)衆 [6] 喩。喩依他相。當
001_0238_a_06L知亦爾。謂眩翳人。似毛輪相。非實似
001_0238_a_07L實。故喩依他起非有似有。當知亦爾。
001_0238_a_08L如淨眼人。遠離眼中眩翳 [47] 過患。卽此淨
001_0238_a_09L眼本性所行。無亂境界。圓成實相。當知
001_0238_a_10L亦爾。
001_0238_a_11L釋曰。第三淨眼本境喩。謂彼淨眼本
001_0238_a_12L所行境。靑黃等色。自性情淨。無毛
001_0238_a_13L輪等眩翳過患。圓成實性。當知亦爾。
001_0238_a_14L自性淸淨。於依他起無所執性。
001_0238_a_15L善男子。譬如淸淨頗胝迦寶。若與靑染
001_0238_a_16L色合。則似帝靑大靑末尼寶像。由耶 [48] 執
001_0238_a_17L2)耶 [7] [49] 帝靑大靑末尼寶故。惑亂有情。
001_0238_a_18L釋曰。此下第二頗胝迦寶四色喩。於
001_0238_a_19L中有二。初廣辨四喩。後如是德本下。
001_0238_a_20L擧法同喩。前中四喩。卽分爲四。此卽
001_0238_a_21L第一靑色相應喩。文有五節。義含四
001_0238_a_22L種。意喩三性。文五節者。一淸淨頗
001_0238_a_23L胝迦者。依 [50] 他起。二若與靑染色合者。
001_0238_a_24L喩言說習氣。此明依他起與言說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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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8_b_01L셋째, “곧 제청·대청 (마니보배의 상과) 유사해지는데”라고 한 것은 의타기에서 아·법을 분별함으로써 (훈성된) 명언종자의 힘으로 인해 내식內識에 있는데도 마치 외경外境처럼 현현하는 것을 비유한다. 넷째, “그릇된 집착으로 제청(·대청 마니보배라고) 취하기 때문에”라고 한 것은 그릇된 집착으로 인해 (제청 등이) 실유한다고 집착하는 것을 비유한다. 다섯째, “유정을 미혹시키고”라고 한 것은 그릇된 스승이 자기가 집착한 것을 가지고 유정을 미혹시켜서 실재라는 이해를 내게 하는 것을 비유한다.네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고 했는데, 이하의 결합시킨 문장에 준해 보면, 비유에는 네 가지 (의미가) 있다.145) 첫째, “파지가”는 의타기를 비유한다. 둘째, “파란 염색과 합해지면”이라 한 것은 명언훈습이 의타기와 합해진 것을 비유한다. 셋째, “그릇된 집착으로……”라고 한 것은 저 집착하는 자(能執)를 비유한다. 넷째, 곧 저 집착된 대상(所執)이 정 속에서는 있지만 이치상으로는 없으니(情有理無), 이는 원성실을 비유한 것이다.(비유의) 의취는 삼성이라고 했는데, 말하자면 “파란 염색과 합해지면……중간 생략……유정을 미혹시키고”라는 것은 변계소집성을 비유한 것이고, “파지가 보배”는 의타기성을 비유한 것이며, ‘실재하는 제청은 없다’는 것은 원성실성을 비유한 것이다.이하의 세 가지 색의 비유도 모두 (앞에서 말한) 모든 의미를 갖추고 있으니,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비유하면 청정한 파지가 보배”라고 한 것은 보배의 체를 나타낸 것이다. 이곳에는 그 이름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번역하지 않았다. 현응玄應 스님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서는 “여기 말로 수옥水玉(수정)이라 하거나 혹은 흰색 진주(白珠)라고 한다.”146)고 하였고, 『심밀해탈경』에서 ‘청정한 유리瑠璃’라고 하였는데, 번역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묘고산왕妙高山王147)은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졌으니, 금·은·폐유리·파지가를 말한다.148) 이 파지가는 붉은색에 해당한다.149) 또 그 논에서는 ‘일륜日輪 아랫면의 파지가 보배는 화주火珠로 이루어졌고 월륜月輪 아랫면의 파지가 보배는 수주水珠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150)이런 문장들에 준해 보면 그 파지가는 또한 여러 가지 색을 갖추고 있지만, 지금 이 경에서는 우선 흰색을 들어서 네 가지 색과 대조시켰고, 이로 인해 다음의 문장에서는 흰색을 설하지 않은 것이다.151)“만약 파란 염색과 합해지면”이라고 한 것은 색의 전변轉變을 밝힌 것이다. -
001_0238_b_01L氣合。三卽似帝靑大靑等者。喩依他
001_0238_b_02L起。由我法分別名言種子力故。雖在
001_0238_b_03L內識。而似外現。四由耶 [51] 執耶 [52] 帝靑等
001_0238_b_04L者。此喩由邪執故執爲實有。五惑亂
001_0238_b_05L有情者。此喩邪師將已 [53] 所執。惑亂有
001_0238_b_06L情。令生實解。義含四者。准下合文。
001_0238_b_07L喩中有四。一頗胝迦者。喩依他起。二
001_0238_b_08L與靑染色合者。喩名言熏習與依他
001_0238_b_09L合。三由*耶 [54] 執耶 [55] 等。喩彼能執。四卽
001_0238_b_10L彼所執。情有理無。喩圓成實。言意三
001_0238_b_11L者。謂靑染色合乃至惑亂有情。喩
001_0238_b_12L所執性。頗胝迦寶。喩依他起。無實
001_0238_b_13L帝靑。喩圓成實。下三色喩。皆具諸
001_0238_b_14L義。准此應知。譬如淸淨頗胝迦寶者。
001_0238_b_15L此出寶體。此處無名。故不翻之。應
001_0238_b_16L師經音云。此云水玉。或云白珠。深
001_0238_b_17L密經云。淸淨瑠璃者。譯家別故。若
001_0238_b_18L依俱舍。妙高山王。四寶所成。謂金銀
001_0238_b_19L吠瑠璃頗胝迦。此頗胝迦。卽當赤色。
001_0238_b_20L又卽彼云。日輪下面頗胝迦寶。火珠
001_0238_b_21L所成。月輪下面頗胝迦寶。水珠所成。
001_0238_b_22L淮此等文。其頗胝迦。亦具衆色。今
001_0238_b_23L於此經。且擧白色。以對四色。由此
001_0238_b_24L下文。不說白色。若與靑染色者。明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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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8_c_01L말하자면 파지가가 파란색과 합해지면 곧 제청(파란색)이나 대청(검푸른색) 마니보배의 상과 유사해진다는 것이다.“제청……”이란 제석천帝釋天의 파란색 및 검푸른색 보배를 말한다.“마니보배”라는 것은 여기 말로 여의주如意珠라고 하니, 곧 파지가를 여의如意라고 이름한 것이다. 혹은 닮는 대상(所似)인 제청 등이 ‘마니’에 해당한다고 할 수도 있다.“그릇된 집착으로……”라고 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유사한 것(似)을 실재라고 집착하여 타인에게 설해 주면서 유정들을 미혹시킨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 경문의 뜻을 설하자면, 아뢰야식이 아집·법집의 습기의 힘으로 인해 전변하여 아·법과 유사하게 나타나면 모든 유정의 부류들은 실아實我라고 집착하여 (다른) 유정들을 미혹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파지가에는 실재하는 파란색 등은 없으니, 아뢰야식에 변계소집성이 없는 것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나중에 가서 분별할 것이다.
(나) 붉은색과 상응하는 경우의 비유
경 붉은 염색과 합해지면 곧 호박 마니보배의 상과 유사해지는데, 그릇된 집착으로 (그것을) 호박 마니보배라고 취하기 때문에 유정들을 미혹시키며,
석 두 번째는 붉은색과 상응하는 경우로 비유한 것이다.『심밀해탈경』에서는 “(저 청정한 유리를) 붉은색 가운데 놓아두면 붉은 파두마波頭摩152) 마니보배의 광명이 현전한다.”153)고 하였다.
(다) 녹색과 상응하는 경우의 비유
경 만약 초록 염색과 합해지면 곧 말라갈다 마니보배의 상과 유사해지는데, 그릇된 집착으로 (그것을) 말라갈다 마니보배라고 취하기 때문에 유정들을 미혹시키고,
석 세 번째는 녹색과 상응하는 경우로써 비유한 것이다.“말라갈다末羅羯多(ⓢ marakata)”는 이곳에는 그 이름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번역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곳에서는 살색煞色의 보배라고 한다. 이 보배로 인해 모든 색깔들이 다 죽고 파괴되기 때문이다.≻154) 『심밀해탈경』에서는 단지 ‘녹색’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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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8_c_01L轉變。謂頗胝迦與靑色合。卽似帝靑
001_0238_c_02L大靑末尼寶像。帝靑等者。謂天帝釋
001_0238_c_03L靑及大靑。末尼寶者。此云如意珠。卽
001_0238_c_04L說頗胝迦。名爲如意。或可所似帝靑
001_0238_c_05L等。卽是末尼。由耶 [56] 執等者。顯諸世間
001_0238_c_06L執似爲實。爲他宣說。迷亂有情。此意
001_0238_c_07L說云。阿賴耶識。由我法執習氣力故。
001_0238_c_08L變似我法。諸有情類。執爲實我。惑
001_0238_c_09L亂有情。據實頗胝迦上。無實靑等。於
001_0238_c_10L賴耶上。無所執性。應知亦爾。後當分
001_0238_c_11L別。
001_0238_c_12L若與赤染色合。則以 [57] 虎魄 [58] 末尼寶像。由
001_0238_c_13L耶 [59] 執耶 [60] 虎魄末尼寶故。惑亂有情。
001_0238_c_14L釋曰。第二赤色相應喩。深密經云。置
001_0238_c_15L赤色中。卽出赤波頭摩尼 [61] 摩尼 [62] 寶光
001_0238_c_16L明現前。
001_0238_c_17L若與綠染色合。則似末羅羯多末尼寶
001_0238_c_18L像。由耶 [63] 執取末羅羯多末尼寶故。惑亂
001_0238_c_19L有情。
001_0238_c_20L釋曰。第三綠色相應喩。末羅羯多。此
001_0238_c_21L處無名。故不翻之。有說。此云煞色
001_0238_c_22L寶。由此寶故。煞一切色盡壞故。依
001_0238_c_23L深密經。但言綠色。
001_0238_c_24L「衆」下疑脫「相」。「耶」異作「取」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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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9_a_01L(라) 노란색과 상응하는 경우의 비유
경 만약 노란 염색과 합해지면 곧 금金의 상과 유사해지는데, 그릇된 집착으로 (그것을) 진짜 금의 상이라고 취하기 때문에 유정을 미혹시키는 것과 같다.
석 네 번째로 황색과 상응하는 경우로써 비유한 것이다. 『심밀해탈경』과는 차별이 있는데, 이 경에서는 ‘금의 상(金像)’이라고 하였고 그 경에서는 ‘금색 마니보배’라고 하였다.나중의 세 종류 비유는 처음 것에 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법동유法同喩를 듦
경 이와 같이 덕본이여, 마치 저 청정한 파지가에서 모든 염색染色들이 상응하듯, 의타기상에서 변계소집상의 언설습기가 (상응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법동유法同喩를 든 것이다.이상의 네 가지 의미와 결합시키므로 (법동유도)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이전의 비유를) 종자와 결합시킨 것이고, 둘째는 상(변계소집상)에 대한 집착과 결합시킨 것이며, 셋째는 의타기와 결합시킨 것이고, 넷째는 원성실과 결합시킨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의미와 (결합시켰는데,) 이전의 비유에서 경문은 다섯 구절이 있어도 의미는 네 가지를 함축하기 때문에 네 가지 의미를 앞의 비유의 문장과 결합시킨 것이다.
(가) 종자와 결합시켜 말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그런데 이 네 가지 의미에 대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의 한 개는 집착의 연(執緣)을 비유한 것이고, 다음의 세 개는 차례대로 그 삼성을 비유한 것이다.≻155)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의 두 개는 소집성을 비유한 것이니, 종자와 현행의 집착으로 말미암아 소집성을 이루기 때문이다.≻156)이 경문은 처음 설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파지가에서 모든 염색들이 상응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파지가에서 청색과 유사한 형상이 현행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의타기에 있는 망집종자가 인연이 되기 때문에 아뢰야식에서 마치 색色·성聲 등과 유사한 의타기의 상이 현행한다는 것이다.
(나) 상집相執과 결합시켜 말함
경 마치 저 청정한 파지가에 있는 모든 제청·대청과 호박과 말라갈다와 금 등에 그릇되게 집착하는 것처럼, 의타기상에서 변계소집상에 집착하는 것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현행現行(변계소집상)에 대한 집착과 결합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앞서 말한 집착의 종자로 인해 -
001_0239_a_01L若與黃染色合。則似金像。由耶 [64] 執取眞
001_0239_a_02L金像故。惑亂有情。
001_0239_a_03L釋曰。第四黃色相應喩。與深密經。有
001_0239_a_04L差別者。此云金像。彼云金色摩尼之
001_0239_a_05L寶。後三種喩。准初可知。
001_0239_a_06L如是德本。如彼淸淨頗胝迦上所有染色
001_0239_a_07L相應。依他起相上遍計所執相言說習
001_0239_a_08L氣。當知亦爾。
001_0239_a_09L釋曰。自下第二擧法同喩。合上四義。
001_0239_a_10L卽分爲四。一合種子。二合相執。三
001_0239_a_11L合依他。四合成實。此之四義。於前
001_0239_a_12L喩中。文雖有五。義合有四。故以四
001_0239_a_13L義。合上喩文。此卽初也。然此四義。
001_0239_a_14L自有兩說。一云。初一 [65] 執緣。次三如
001_0239_a_15L次。喩其三性。一云。初二喩所執性。
001_0239_a_16L1)白 [8] 種現執。成所執故。此卽初也。謂
001_0239_a_17L於頗胝迦上。所有染色相應義故。頗
001_0239_a_18L胝迦上。似靑色像現。如是由依他上
001_0239_a_19L妄執種子。爲因緣故。於賴耶上。似色
001_0239_a_20L聲等依他相現。
001_0239_a_21L如彼淸淨頗胝迦上。所有帝靑大靑虎魄 [66]
001_0239_a_22L末羅羯多金等耶 [67] 執。依他起相上遍計
001_0239_a_23L所執相執。當知亦爾。
001_0239_a_24L釋曰。此下第二合現行執。謂由前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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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9_b_01L의타기로서의 색 등과 유사한 상들이 생길 수 있고, 현행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그것이 실재라고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 때문에, 이상의 두 단락의 뜻은 삼성 중에 변계소집성을 나타낸 것이다.
(다) 의타기와 결합시켜 말함
경 마치 저 청정한 파지가 보배와 같이 의타기상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세 번째는 의타기와 결합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파지가가 곧 청색 등과 유사해지듯이, 이와 같이 의타기는 종자로 인해 색·성 등과 유사한 갖가지 상으로 현현한다는 것이다.
(라) 원성실과 결합시켜 말함
경 마치 저 청정한 파지가에서의 모든 제청·대청과 호박과 말라갈다와 진금 등의 상相은 상상시에 항항시에 진실함이 없고 무자성성인 것처럼,
석 네 번째는 원성실과 결합시킨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앞의 비유를 거듭해서 든 것이고, 나중은 법동유를 해석한 것이다.
㉮ 앞의 비유를 거듭해서 듦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파지가에는 실재의 청색 등이 없음을 일컬어 “진실함이 없고”라고 하였고, 또한 “무자성성無自性性”이라 하였다. 혹은 ‘진실함이 없다’는 것은 청색 등의 실재함을 부정한 것이고 ‘무자성성’이란 비록 청색 등의 실재는 없지만 파지가의 자성은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157)
㉯ 법동유를 해석함
경 곧 의타기상에 있어서 변계소집상은 상상시에 항항시에 진실함이 없고 무자성성이니, 원성실상은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법동유를 해석한 것이다. 의타기에는 변계소집의 실아實我 등의 자성은 없으니, 이것을 무자성성이라 이름한다. 혹은 의타기에 변계소집의 실재는 없지만 무자성성은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158)“상상시에 항항시에”라고 한 것에 대해 -
001_0239_b_01L執種子故。能生依他似色等相。由現
001_0239_b_02L執故。執彼爲實。由此義故。此上二段
001_0239_b_03L意。顯三中遍計所執。
001_0239_b_04L如彼淸淨頗胝迦寶。依他起相。當知亦
001_0239_b_05L爾。
001_0239_b_06L釋曰。第三合依他起。謂頗胝迦。卽似
001_0239_b_07L靑等。如是依他。由種子故。似色聲等
001_0239_b_08L種種相現。
001_0239_b_09L如彼淸淨頗胝迦上。所有帝靑大靑虎魄 [68]
001_0239_b_10L末羅羯多眞金等相。於常常時。於恒恒
001_0239_b_11L時。無有眞實。無自性性。
001_0239_b_12L釋曰。第四合圓成實。於中有二。初
001_0239_b_13L重擧前喩。後釋法同喩。此卽初也。於
001_0239_b_14L頗胝迦上。無實靑等。名無有眞實。亦
001_0239_b_15L名無自性性。或可無眞實者。遮靑等
001_0239_b_16L實。無自性性者。雖無靑等實。而有
001_0239_b_17L頗胝迦性。
001_0239_b_18L卽依他起相上。由遍計所執相。於常常
001_0239_b_19L時。於恒恒時。無有眞實。無自性性。圓
001_0239_b_20L成實相。當知亦爾。
001_0239_b_21L釋曰。此卽第二釋法同喩。於依他上。
001_0239_b_22L無有所執實我等性。卽此名爲無自
001_0239_b_23L性性。或可於依他上。無有所執實。而
001_0239_b_24L有無自性性。於常常時及恒恒時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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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39_c_01L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전(前前)에도 없었으므로 ‘상상常常’이라는 말을 설했고, 이후(後後)에도 없을 것이므로 ‘항항恒恒’이라는 말을 설했다.≻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실함이 없음을 나타내려고 ‘상상시’라고 하였고, 무자성성임을 나타내려고 ‘항항시’라고 하였다.≻
문 이 삼성三性과 칠진여七眞如는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가?해 『성유식론』 제8권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그 논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이와 같은 삼성은 칠진여와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가? 칠진여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첫째는 유전진여流轉眞如159)이니, 유위법의 유전이라는 진실한 성품(實性)을 말한다. 유위법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생·주·이·멸의) 네 가지 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유위라고 한다. 둘째는 번뇌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유위라고 한다. 이것은 번뇌로 이루어진 것에 해당한다.둘째는 실상진여實相眞如160)이니, (인·법) 두 가지의 무아에 의해 현현된 진실한 성품을 말한다.셋째는 유식진여唯識眞如161)이니, 염법·정법의 ‘유식’이라는 진실한 성품을 말한다.지금 이곳에서는 ‘염법·정법이 오직 식일 뿐임을 능히 관하는 지智’를 취해서 곧 진여라고 한 것이다.넷째는 안립진여安立眞如이니, 고제苦諦의 진실한 성품을 말한다. 다섯째는 사행진여邪行眞如이니, 집제集諦의 진실한 성품을 말한다. 여섯째는 청정진여淸淨眞如이니, 멸제滅諦의 진실한 성품을 말한다. 일곱째는 정행진여正行眞如이니, 도제道諦의 진실한 성품을 말한다.162)이 일곱 가지 진실한 성품은 원성실성에 속하니, 근본지와 후득지라는 두 가지 지혜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상相에 따라서 소속시키면,163) 유전·고제·집제 세 가지는 앞의 두 가지 자성에 속하니, 허망한 집착이거나 잡염이기 때문이다.164) 그 이외의 네 개는 모두 원성실성에 속한다.165)
『변중변론』 제2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차별진실差別眞實166)에는 대략 일곱 종류가 있으니, 유전과 실상과 유식과 안립과 사행과 청정과 정행을 말한다. 이 일곱 가지 진실이 세 가지 근본진실根本眞實에 의거해 건립된 것에 대해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유전과 안립과 사행은 처음의 두 가지에 의거해서 (건립되고,) 실상과 유식과 청정과 정행은 나중의 하나에 의거해서 (건립되네).”167)『현양성교론』 제3권과 『유가사지론』 제77권에서도 이에 준해서 소속시켰는데,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없다.168)그 다음에 또 묻는다.169)
삼성三性과 오사五事170)는 어떻게 서로 포섭되는가? -
001_0239_c_01L自有兩釋。一云。依 [69] 前前無故。說常
001_0239_c_02L常言。於後後無故。說恒恒言。一云。
001_0239_c_03L顯無有眞實故。說常常2)有。 [9] 無自性性。
001_0239_c_04L故。言恒恒時。問。此三性與七眞如。如
001_0239_c_05L何相攝。解云。如成唯識第八卷說。彼
001_0239_c_06L云。如是三性。與七眞如。云何相攝。七
001_0239_c_07L眞如者。一流轉眞如。謂有爲法流
001_0239_c_08L轉實性。有爲有二種。一四相所爲。故名有爲。二
煩惱所爲。故名有爲。此即煩惱所爲。
001_0239_c_09L二實相眞如。謂二無我所顯實性。三
001_0239_c_10L唯識眞如。謂染淨法唯識實性。今此所
取能觀
001_0239_c_11L染淨唯識觀智。
即是眞如也。四安立眞如。謂苦實性。
001_0239_c_12L五邪行眞如。謂集實性。六淸淨眞如。
001_0239_c_13L謂滅實性。七正行眞如。謂道實性。此
001_0239_c_14L七實性。圓成實攝。根本後得二智境
001_0239_c_15L故。隨相攝者。流轉苦集三。前二性
001_0239_c_16L攝。妄執雜染故。餘四皆是圓成實攝。
001_0239_c_17L辨中邊論第二卷云。差別眞實。略有
001_0239_c_18L七種。謂流轉。實相。唯識。安立。邪
001_0239_c_19L行。淸淨。正行。云何應知。此七眞實。
001_0239_c_20L依三根本眞實立耶。頌曰。流轉與安
001_0239_c_21L立。邪行依初二。實相唯識淸。 [70] 正行
001_0239_c_22L依後一。顯揚論第三。瑜伽七十七。應
001_0239_c_23L准此攝。於理無違。次後又問。三性五
001_0239_c_24L「白」異作「由」。「有」疑「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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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0_a_01L여러 성스런 가르침에서 상호 포섭 관계를 설했는데, 일정하지 않다.첫째, 『유가사지론』 제74권의 설에 따르면 의타기성은 저 상相·명名·분별分別·정지正智를 포섭하고, 원성실성은 저 진여를 포섭하며, 변계소집성은 다섯 가지 사를 포섭하지 않는다.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유루의 심법·심소법이 소전所詮과 유사하게 변현된 것을 ‘상’이라 이름하고, 능전能詮과 유사하게 변현된 것을 ‘명’이라 시설하며,171) 변현해 내는 마음(能變心)을 ‘분별’이라 건립하였다. 무루의 마음 등은 희론을 떠나 있기 때문에 다만 ‘정지’라고 총칭하였고 능전·소전이라 설하지는 않는다. 네 가지(상·명·분별·정지)는 연을 따라 생기기 때문에 모두 의타기성에 속한다.≻172)둘째, 『변중변론』 제2권의 설에 따르면, 의타기성은 상·분별을 포섭하고, 변계소집성은 오직 저 ‘명’만 포섭하며, 정지와 진여는 원성실성에 포섭된다.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유루의 심·심소의 상분을 ‘상’이라 하고 그 밖의 것은 ‘분별’이라 한다. 변계소집성은 전혀 체가 없기 때문에, 비실재(非有)임을 나타내기 위해 ‘명’이라 가설한다. 정지·진여 두 가지는 전도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원성실에 속한다.≻173)셋째, 『능가경』 제7권의 설에 따르면, 의타기성은 오직 ‘분별’만 포섭하고, 변계소집성은 저 상·명을 포섭하며, 정지와 진여는 원성실성에 포섭된다. 그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루의 심과 심소의 상분·견분 등을 ‘분별’이라 총칭하니, 그것들은 허망분별을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변계소집의 능전·소전은 정情을 따라서 ‘상’과 ‘명’이라는 두 가지 사事로 건립된 것이다.≻174)넷째,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5권의 설에 따르면, ‘명名’은 의타기성에 속하고 ‘의義(대상·경계)’는 변계소집에 속한다. 저 유루의 심법·심소법의 상분·견분 등은 ‘명’의 세력으로 인해 변계의 대상(所遍計)을 이루기 때문에 ‘명’이라 하였다. 변계소집은 ‘명’을 따라서 멋대로 (대상을) 헤아린 것인데, 체가 실제로 있지 않으므로 ‘의’라는 이름을 가립한 것이다.175)
앞의 네 가지 교에서 설해진 오사와 삼성의 상호 포섭 관계에 대해 문장은 비록 차이가 있어도 의미가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
001_0240_a_01L事相攝云何。諸聖敎說相攝不定。一
001_0240_a_02L瑜伽七十四說。依他性攝彼相名分
001_0240_a_03L別正智。成圓實性攝彼眞如。遍計所
001_0240_a_04L執不攝五事。彼設有漏心心所法。變
001_0240_a_05L似所詮。說名爲相。似能詮現。施設
001_0240_a_06L爲名。能變心等。立爲分別。無漏心
001_0240_a_07L等。離戲論故。但總名正智。不說能
001_0240_a_08L所詮。四從緣生。皆依他攝。二依辨中
001_0240_a_09L邊第二卷說。依他起性。攝相分別。遍
001_0240_a_10L計所執。唯攝彼名。正智眞如。圓成實
001_0240_a_11L攝。彼說有漏心及心所相分名相。餘
001_0240_a_12L名分別。遍計所執。都無體故。爲顯非
001_0240_a_13L有。假說爲名。二無倒故。圓成實攝。三
001_0240_a_14L依楞伽經第七卷說。依他起。唯攝分
001_0240_a_15L別。遍計所執。攝彼相名。正智眞如。圓
001_0240_a_16L成實攝。彼說有漏心及心所相見分
001_0240_a_17L等。總名分別。虗妄分別爲自性故。遍
001_0240_a_18L計所執能詮所詮。隨情立爲名相二
001_0240_a_19L事。四依世親攝大乘論第四 [71] 卷說。名
001_0240_a_20L屬依他起性。義屬逼 [72] 計所執。彼有漏
001_0240_a_21L心心所法相見分等。由名勢力成所
001_0240_a_22L遍計。故說爲名。遍計所執。隨名橫
001_0240_a_23L計。體實非有。假立義名。如前四敎
001_0240_a_24L所說五事三性相攝。文雖有異。而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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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0_b_01L호법 보살은 처음의 설을 뛰어난 것으로 선택했으니, (삼성이 서로) 잡란되지 않기 때문이다.176)다시 묻는 말이 나온다.
여러 성교에서는 오상五相이 있다고 설하는데, 이것과 삼성은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가?177)소전所詮·능전能詮178)은 각기 삼성을 갖추고 있다.말하자면 허망하게 계탁된 대상은 최초의 자성(변계소집)에 속한다.179)상相·명名·분별分別은 그 대응되는 경우에 따라 소전이기도 하고 능전이기도 하며, 의타기성에 속한다.180)진여眞如·정지正智는 그 대응되는 경우에 따라 소전이기도 하고 능전이기도 하며, 원성실성에 속한다. 왜냐하면 후득지가 능전의 상을 변사變似해 내기 때문이다.181)(소전과 능전) 두 가지가 ‘서로 소속되는 상(相屬相)’은 오직 처음의 성(변계소집성)에 속하니,182) 의義와 명名은 고정적으로 서로 소속된다고 허망하게 집착하기 때문이다.그 ‘집착하는 상(執著相)’은 오직 의타기이니, 허망분별을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다.183)‘집착하지 않는 상(不執著相)’은 오직 원성실이니,184) 무루지無漏智 등을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다.185)
『유가사지론』 제81권에서는 두 가지 성은 소전이고 변계소집성은 능전이라고 하였고,186) 그 논의 제74권과 『현양성교론』 제16권에서는 능전과 소전이 모두 삼성에 통한다고 하였다.187) 자세하게(委細) 분별하면, 구체적인 것은 가령 『성유식론』 제8권의 소疏와 같다.188)
(2) 관하는 사람에 의거해 선교보살에 대해 설명함
경 다시 덕본이여, 상·명의 상응을 연으로 해서 변계소집상을 알 수 있고,
석 이하는 두 번째로 관하는 사람에 의거해서 ‘선교보살’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장행으로 자세히 해석한 것이고, 나중은 게송으로 간략히 설한 것이다.
① 장행으로 자세히 해석함전자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삼상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서 중생들에게 알라고 권한 것이다. 나중은 앞서 말한 삼상에 의거해 관문을 바로 나타낸 것이다.또 해석을 구분하면 두 가지가 된다. 처음은 관문을 바로 설명한 것이고, 나중의 “이와 같이 덕본이여” 이하는 이전의 관문을 거듭 표시해 놓고 앞의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전자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보살이 삼성에 대해 앎을 밝힌 것이다. 다음의 “선남자여” 이하는 삼성에 대해 알기 때문에 삼상도 안다는 것이다. 마지막의 “선남자여” 이하는 삼상을 알기 때문에 염법을 끊고 정법을 증득한다는 것이다. -
001_0240_b_01L無違。護法菩薩。取初爲勝。不雜亂
001_0240_b_02L故。復有問言。諸聖敎中。說有五相。
001_0240_b_03L此與三性相攝云何。所詮能詮。各具
001_0240_b_04L三性。謂妄所計。屬初性攝。相名分別。
001_0240_b_05L隨其所應。所詮能詮。屬依他起。眞
001_0240_b_06L如正智。隨其所應。所詮能詮。屬圓
001_0240_b_07L成實。後得變似能詮相故。二相屬相。
001_0240_b_08L唯初性攝。妄執義名定相屬故。彼執
001_0240_b_09L著相。唯依他起。虛妄分別爲自性故。
001_0240_b_10L不執著相。唯圓成實。無漏智等。爲
001_0240_b_11L自性故。瑜伽八十一。二性是所詮。遍
001_0240_b_12L計所執性是能詮。第七十四。顯揚十
001_0240_b_13L六。能詮所詮。皆通三性。委細分別。
001_0240_b_14L具如唯識第八卷疏。
001_0240_b_15L復次德本。相名相應以爲緣故。遍計所
001_0240_b_16L執相。而可了知。
001_0240_b_17L釋曰。自下第二依能觀門。 [73] 明善巧菩
001_0240_b_18L薩。於中有二。初長行廣釋。後以頌
001_0240_b_19L略說。前中有二。初略辨三相。勸物
001_0240_b_20L令知。後依前三相。正顯觀門。又釋
001_0240_b_21L卽分爲二。初正辨觀門。後如是德本
001_0240_b_22L下。重牒前觀。以答前問。前中有三。
001_0240_b_23L初明菩薩了知三性。次善男子下。知
001_0240_b_24L三性故了知三相。後善男子下。知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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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0_c_01L비록 두 가지 과목이 있기는 하지만, 우선 후자에 의거해 해석하겠다.
가. 관문을 바로 설명함
가) 보살이 삼성을 아는 것에 대해 설명함이것은 첫 번째로 (보살이) 삼성에 대해 앎을 밝힌 것이다. 삼성이 구별되기 때문에 (경문도) 세 가지로 구분된다.
(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아는 것에 대해 해석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말하자면 소전의 상相과 능전의 명名이 서로 소속되는 것(相屬)을 연으로 해서 허망하게 집착된 상이 변계소집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189) 따라서 『유가사지론』 제73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변계소집자성은 어떤 것을 연으로 해서 알아야 하는가? 답 상과 명의 상호 결합을 연으로 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190)자세하게 분별하면 『삼무성론』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그 논의 제1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별성(변계소집성)이란 체상體相이 있지 않으니, 명名 등의 다섯 가지 법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인이 말한다. 체상이 없다면 어떻게 분별하는가?191) 답한다. 단지 이름(名)만 있고 대상(義)은 없다. 어째서인가? 예를 들면 세상 사람들이 대상에 대해 이름을 건립하면 범부들은 이름에 집착해서 대상의 자성(義性)을 분별하여 ‘이름이 곧 대상의 자성이다’라고 말하니, 이것을 전도라고 한다. 다만 분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것이다.192) 어째서인가? 이 이름과 대상은 서로에게 객客이기 때문이다.193)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세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이치를 알 수 있다. 첫째는 이름 이전에는 앎(覺)이 생기지 않는다.194) 둘째는 체가 여럿이 되는 모순이 생기는 과실이 있다.195) 셋째는 체가 뒤섞여 버리는 모순이 생기는 과실이 있다.196)≻197) 구체적인 것은 그 논에서 설한 것과 같다.『섭대승론』에서도 『삼무성론』과 동일하게 설한다.198)
(나) 의타기성依他起性을 아는 것에 대해 해석함
경 의타기상에서 변계소집상에 집착한 것을 연으로 해서 의타기상을 알 수 있으며,
석 이것은 의타기성에 대해 (아는 것을) 해석한 것이다.말하자면 변계소집상에 집착하는 분별을 연으로 해서 의타기성이 생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199) 따라서 『현양성교론』 제16권에서는 “의타기자성에서 처음의 자성(변계소집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훈습을 일으키고 곧 잡염을 이룬다.”200)고 하였다.또 ‘변계소집상에 대해 일으킨 집착 때문에 이 의타기상을 알 수 있다’고 하였는데, -
001_0240_c_01L相故斷染證淨。雖有兩科。且依後釋。
001_0240_c_02L此卽第一了知三性。三性別故。卽分
001_0240_c_03L爲三。此卽初也。謂所詮相與能詮名。
001_0240_c_04L互相繫屬。以爲緣故。妄所執相。遍
001_0240_c_05L計所執。而可了知。故瑜伽七十三云。
001_0240_c_06L遍計所執自性。緣何應知。答。緣於相
001_0240_c_07L名相屬應知。若廣分別。如三無性論。
001_0240_c_08L彼第一云。分別性者。無有體相。名
001_0240_c_09L等五法所不攝故。外曰。無體云何分
001_0240_c_10L別。答。但有 [74] 無義故。何以故。如世間
001_0240_c_11L於義中立名。凡夫執名。分別義性。謂
001_0240_c_12L名卽義性。此爲顚倒。但有名 [75] 分別無
001_0240_c_13L實體故。 [76] 何以故。此名及義。互爲客
001_0240_c_14L故。云何知然。由三義故。此理可知。
001_0240_c_15L一名前覺不生。 [77] 二多體相違失。 [78] 三雜
001_0240_c_16L體相違過。 [79] 具如彼論。攝大乘論。同
001_0240_c_17L三無性。
001_0240_c_18L依他起 [80] 上遍計所執相執。以爲緣。 [81] 依他
001_0240_c_19L起相。而可了知。
001_0240_c_20L釋曰。此釋依他。謂執遍計所執相分
001_0240_c_21L別。以爲緣故。依他起性。而得生起。故
001_0240_c_22L顯揚第十六云。於依他起自性。執著
001_0240_c_23L初自性故。起於熏智。 [82] 。則成雜染。又
001_0240_c_24L云。於所執相所起執故。應可了知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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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1_a_01L‘집착하는 마음(能執)’은 연을 따라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성론』 제2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의타기성은 어떤 인연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 답 분별성(변계소집성)에 집착하는 것을 연으로 해서 현현할 수 있는 것이다.”201)
문 의타기는 염染과 정淨에 통하는데, 어째서 단지 ‘변계소집상에 대한 집착을 연으로 해서 의타기성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가?(답) 이 힐난을 회통시켜 해석하자면 예를 들어 『유가사지론』 제74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만약 의타기자성이 또한 정지正智에 속하기도 한다면, 어째서 앞에서는 ‘의타기자성은 변계소집자성에 대한 집착을 연으로 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했는가?202) 답 그 뜻은 오직 의타기자성의 잡염분을 설한 것이지 청정분을 설한 것은 아니다. 청정분은 저 집착 없음을 연으로 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203)
(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을 아는 것에 대해 해석함
경 의타기상에서 변계소집상에 대한 집착 없음을 연으로 해서 원성실상을 알 수 있다.
석 이것은 원성실성을 (아는 것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204)말하자면 ‘의타기에서 변계소집상의 없음’이라는 것으로써 진실(원성실)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음(無執)’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유가사지론』 제73권에서는 “‘변계소집자성이 의타기자성에는 끝내 실재하지 않음’을 연으로 해서 (원성실성을) 알아야 한다.”205)고 하였다.혹은 ‘집착 없음’이란 성도聖道에 해당하니,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집착 없음’이라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말의 뜻은, 집착하지 않는 도를 인因으로 해서 청정한 원성실성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사지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존께서 그 밖의 경에서 ‘변계소집자성에 집착하지 않음을 연으로 해서 이 자성을 알아야 한다’고 설하신 것은 청정을 증득하는 (도道에) 의거해 설한 것이지 상相에 의거해 설한 것은 아니다.”206)해 “그 밖의 경”이란 이 경(『해심밀경』)을 말한다. “청정을 증득하는 (도에) 의거해 설한 것”이란 내적으로 진여를 증득하는 성도聖道에 의거해서 증득되는 이치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
001_0241_a_01L依他起。若能執者。從緣生故。故佛性
001_0241_a_02L論第二卷云。問曰。依他起性。緣何因
001_0241_a_03L故得成耶。答曰。緣執分別性。故得顯
001_0241_a_04L現。問。依他起通染及淨。如何但言。
001_0241_a_05L所執相執。以爲緣故。依他起性。而可
001_0241_a_06L了知。會釋此難。如瑜伽論第七十四
001_0241_a_07L說。故彼云。問。若依他起自性。亦正
001_0241_a_08L智所攝。何故前說。依他起自性。緣遍
001_0241_a_09L計所執自性執。應可了知。答。彼意唯
001_0241_a_10L說依他起自性雜染分。非淸湲分。若
001_0241_a_11L淸淨分。當知緣彼無執。應可了知。
001_0241_a_12L依他起相上遍計所執相無執。以爲緣故。
001_0241_a_13L圓成實相。而可了知。
001_0241_a_14L釋曰。此釋圓成實。謂於依他起上無
001_0241_a_15L所執相。以顯眞實。故言無執。故瑜
001_0241_a_16L伽七十三云。緣遍計所執自性。於依
001_0241_a_17L他起自性中。畢竟不實。應知。或可
001_0241_a_18L無執。卽是聖道。不執著故。名爲無執。
001_0241_a_19L此意說云。不執著道。以爲因故。證得
001_0241_a_20L淸淨圓成實性。故瑜伽云。世尊。於
001_0241_a_21L餘經中。說緣不執著遍計所執自性
001_0241_a_22L應知此性者。依得淸淨說。不依相說。
001_0241_a_23L解云。餘經者。卽此經也。依得淸淨者。
001_0241_a_24L依內證得眞如聖道。顯所證理。或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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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1_b_01L혹은 성도의 힘으로 염법을 끊고 청정한 진여를 증득하니, 증득하는 도(能證道)에 의거해 증득되는 이치(所證理)를 나타냈다고 볼 수도 있다. “상에 의거해 설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 문장은 ‘변계소집상을 버림에 의해서 원성실을 나타낸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이전의 설에 따르면, ‘그 밖의 경’이란 그 밖의 다른 경을 가리킨다.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집착 없음’이란 집착하는 마음(能執)으로서의 의타기성과 집착되는 대상(所執)으로서의 분별성(변계소집성)이 없기 때문에 ‘집착 없음’이라 하였다. 따라서 『불성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진실성(원성실성)은 어떤 인연으로 성립할 수 있는가? 답 분별성과 의타기성이 끝내 있는 바가 없음으로 인해 현현하는 것이다.”207)≻해 번역가의 오류다. 의타기를 버리는 것은 자기가 종지로 삼는 『유가사지론』 등과는 위배되기 때문이다.
나) 삼성을 알기 때문에 삼상도 앎
경 선남자여, 만약 보살들이 제법의 의타기상에서 여실하게 변계소집상을 알 수 있다면, 곧 여실하게 모든 무상無相의 법을 알 수 있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삼성三性을 알기 때문에 삼상三相을 안다는 것이다. 세 가지 상이 같지 않으므로 곧 (경문도) 세 가지로 구분된다.
(가) 소집성을 알기 때문에 무상을 앎이것은 첫 번째로 소집성을 알기 때문에 ‘상이 없음(無相)’을 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에 설했던 것처럼 상相·명名의 상응을 연으로 해서, 변계소집의 명·상은 가립된 것이고 실재의 자성은 없다는 것을 여실하게 알고, 이로 인해 곧 모든 변계소집이라는 무상無相의 법에 대해 여실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208)
(나) 의타기성을 알기 때문에 잡염상을 앎
경 만약 보살들이 여실하게 의타기상을 안다면, 곧 여실하게 모든 잡염상의 법을 알 수 있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의타기성을 알기 때문에 잡염상을 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상집相執에서 일어난 것이 모두 의타기임을 알 수 있다면 곧 잡염법이 바로 의타기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209)전자는 총괄적으로 관한 것이고 후자는 개별적으로 관한 것이니, 전후의 두 가지 상도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210) -
001_0241_b_01L由聖道力。斷染證得淸淨眞如。依能
001_0241_b_02L證道。顯所證理。不依相說者。此文
001_0241_b_03L不依遣所執相顯圓成實。若依前說。
001_0241_b_04L言餘經者。指所餘經。有云。無執者。
001_0241_b_05L無能執依他及所執分別。故言無執。
001_0241_b_06L故佛性論云。問曰。眞實性緣何因得
001_0241_b_07L成。答曰。由分別依他。極無所有。故
001_0241_b_08L得顯現。解云。譯家謬也。遣依他起。
001_0241_b_09L違自所宗瑜伽等故。
001_0241_b_10L善男子。若諸菩薩。能於諸法依他起相
001_0241_b_11L上。如實了知遍計所執相。卽能如實了
001_0241_b_12L知一切無相之法。
001_0241_b_13L釋曰。此下第二知三性故。了知三
001_0241_b_14L相。三相不同。卽分爲三。此卽第一
001_0241_b_15L知所執故了知無相。謂如前說相名
001_0241_b_16L相應。以爲緣故。如實了知遍計所執
001_0241_b_17L名相假立無實自性。由此。卽能如實
001_0241_b_18L了知一切所執無相之法。
001_0241_b_19L若諸菩薩。如實了知依他起相。卽能如
001_0241_b_20L實了知一切雜染相法。
001_0241_b_21L釋曰。此卽第二了依他故知雜染
001_0241_b_22L相。謂能了知從相執起皆是依他。卽
001_0241_b_23L能了知雜染是依他起。前是總觀。後
001_0241_b_24L是別觀。前後二相。淮此應知。又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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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1_c_01L또는 처음은 자성自性에 의거해서 의타를 관觀하는 것을 설명하였고, 나중은 차별差別에 의거해서 의타를 관하는 것을 설명했다고 한다.211)또는 전자는 진소유성盡所有性에 의거한 것이고, 후자는 여소유성如所有性에 의거한 것이라 한다.212)
(다) 원성실성을 알기 때문에 청정상을 앎
경 만약 보살들이 여실하게 원성실상을 안다면, 곧 여실하게 모든 청정상의 법을 알 수 있다.
석 이것은 세 번째로 원성실성을 알기 때문에 청정상을 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변계소집에 대한 집착 없음을 연으로 해서, 곧 모든 청정한 법들이 모두 원성실성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 삼상을 알기 때문에 염법을 끊고 정법을 증득함
경 선남자여, 만약 보살들이 의타기상에서 여실하게 무상의 법을 안다면, 곧 잡염상의 법을 끊어 없앨 수 있다.
석 이하는 세 번째로 삼상을 알기 때문에 염법을 끊고 정법을 증득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무상’을 알아서 잡염법을 끊는 것이고, 나중은 잡염법을 끊기 때문에 청정법을 증득하는 것이다.
(가) 무상을 알기 때문에 잡염법을 끊음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그런데 무상법無相法에 대해 본래 세 가지 해석이 있다.213)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집성은 정情을 따라서 ‘있다’고 말하지만 이치상으로는 없는 것이니, 그 상相은 언제나 없기 때문에 ‘무상’이라 한다. 따라서 『변중변론』에서는 “변계소집은 이것의 상이 본래 없기 때문에 무상이라 한다.”214)고 하였다.≻이 해석에 따르면, 무상법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의타기성의 잡염상雜染相의 법이 곧 생길 수 없으니, 따라서 ‘잡염상의 법을 끊을 수 있다’고 설한 것이다. 집착된 것(所執)이 없으면 잡염상의 법은 생길 수 없기 때문이다.215) 따라서 『유가사지론』 제74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변계소집자성은 몇 가지 작용(業)을 할 수 있는가? 답 다섯 가지다. 첫째는 의타기자성을 생기게 하고, 둘째는 그 자성에 대해 능히 언설을 일으키며, 셋째는 보특가라집(인집人執)을 생기게 하고, 넷째는 법집法執을 생기게 하며, 다섯째는 그 두 가지 집착의 습기와 추중을 섭수하는 것이다.”216) -
001_0241_c_01L初約自性。辨依他觀。後約差別。辨
001_0241_c_02L依他觀。又云。前依盡所有性。後是
001_0241_c_03L如所有性。
001_0241_c_04L若諸菩薩。如實了知圓成實相。卽能如
001_0241_c_05L實了知一切淸淨相法。
001_0241_c_06L釋曰。此卽第三了圓成實知淸淨相。
001_0241_c_07L謂遍計所執無執。以爲緣故。卽能了
001_0241_c_08L知諸淸淨法皆圓成實。
001_0241_c_09L善男子。若諸菩薩。能於依他起相上。如
001_0241_c_10L實了知無相之法。卽能斷滅雜染相法。
001_0241_c_11L釋曰。此下第三知三相故斷染證
001_0241_c_12L淨。於中有二。初了知無相。斷雜染
001_0241_c_13L法。後斷雜染故證得淸淨。此卽初也。
001_0241_c_14L然無相法。白 [83] 有三釋。一云。卽所執
001_0241_c_15L性。隨情說有。據理卽無。相常無故。
001_0241_c_16L故名無相。故中邊云。遍計所執。此相
001_0241_c_17L本無。故名無相。若依此釋。謂能了
001_0241_c_18L知無相法故。依他起性雜染相法卽
001_0241_c_19L不得生。故說能斷雜染相法。若無所
001_0241_c_20L執。雜染相法。不得生故。故瑜伽論七
001_0241_c_21L十四云。問。遍計所執自性。能爲幾業。
001_0241_c_22L答。五。一能生依他起自性。二卽於彼
001_0241_c_23L性能起言說。三能生補特伽羅執。四
001_0241_c_24L能生法執。五能攝受彼二種執習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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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2_a_01L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타기에서의 변계소집성의 없음’에 의해 현현되는 진여는 모든 상들을 떠났으므로 ‘무상’이라 한다. 따라서 『섭론』에서는 ‘진여는 모든 색 등의 상을 영원히 떠났으므로 무상이라 한다’고 하였다.217) 또 『광백론』에서는 “또 참된 공(眞空)의 이치는 있음과 없음 등 일체법의 상을 떠났으므로 ‘무상’이라 한다.”218)고 하였다.≻이 해석에 따르면, (진여의) 무상법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곧 의타기성의 잡염상의 법을 끊어 없앨 수 있다는 말이다.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을 모두 ‘무상’이라 한 것이다. 이전의 두 가지 의미에 따르기 때문이다.≻이 해석에 따르면, 변계소집인 무상법을 알기 때문에 원성실성인 무상의 법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고, 원성실성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으므로 곧 의타기성의 잡염상의 법을 끊어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사지론』 제74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관행하는 자가 진실 그대로 변계소집자성에 대해 깨달아 들어갈 때라면, (그에) 수순해서 어떤 자성을 깨달았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원성실자성이다. 문 관행하는 자가 (그에) 수순해서 원성실자성을 깨달았을 때는 어떠한 자성을 제거해 버린다고 말해야 하는가? 답 의타기자성이다.”219)
(나) 잡염법을 끊기 때문에 청정법을 증득함
경 만약 잡염상의 법을 끊어 없앨 수 있다면, 곧 청정상의 법을 증득할 수 있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잡염을 끊기 때문에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잡염법을 끊어 없앴기 때문에 곧 청정한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문답으로 삼상관을 거듭 설명함문 이 삼상관三相觀은 어떤 지위에 의거해서 설한 것인가? 지전地前에 있다면 어떻게 잡염상의 법을 끊을 수 있겠는가? 반드시 무루의 도道라야 비로소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地上에 있다면 초지에 들어갈 때 이공二空의 이치를 증득하는데, 어떻게 먼저 두 가지 자성에 대한 관을 일으키겠는가?해 이 삼상관은 두 가지 지위로 구분된다. -
001_0242_a_01L麤重。一云。依他起上無所執性所顯
001_0242_a_02L眞如。離諸相故。名爲無相。故攝論
001_0242_a_03L云。眞如永離一切色等相故。故名無
001_0242_a_04L相。又廣百論云。眞如空理。 [84] 離有無
001_0242_a_05L等一切法相。故名無相。若依此釋。謂
001_0242_a_06L能了知無相法故。卽能斷滅依他起
001_0242_a_07L性雜染相法。一云。所執圓成。皆名無
001_0242_a_08L相。前二義故。若依此釋。謂能了知
001_0242_a_09L遍計所執無相法故。卽能悟入圓成
001_0242_a_10L實性無相之法。由能悟入圓成實故。
001_0242_a_11L卽能斷滅依他起性雜染相法。故瑜
001_0242_a_12L伽七十四云。問。若觀行者。如實悟入
001_0242_a_13L遍計所執自性時。當言隨入何等自
001_0242_a_14L性。答。圓成 [85] 自性。問。若觀行者。隨入
001_0242_a_15L圓成 [86] 自性時。當言除遣何等自性。答。
001_0242_a_16L依他起自性。
001_0242_a_17L若能斷滅雜染相法。卽能證得淸淨相
001_0242_a_18L法。
001_0242_a_19L釋曰。此卽第二斷雜染故證得涅槃。
001_0242_a_20L謂由斷滅雜染法故。卽能證得淸淨
001_0242_a_21L涅槃。問。此三相觀。依何位說。若在
001_0242_a_22L地前。如何能斷雜染相法。要無漏道。
001_0242_a_23L方能斷故。若在地上。入初地時。證二
001_0242_a_24L空理。如何先起二性觀耶。解云。此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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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2_b_01L처음의 두 가지 자성에 대한 관찰은 가행위加行位에 의거해 사심사四尋思·사여실지四如實智를 짓고,220) 세 번째 원성실성에 대한 관찰은 십지의 지위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착의 『섭대승론』에서는 삼성관三性觀을 건립해서 이 경의 뜻을 해석하였는데, 그 논의 제6권에서 다음과 같이 논한다.221)논 이와 같이 보살은 ‘의언사의상意言似義相’222)을 깨달아 들어가기 때문에 변계소집성을 깨달아 들어가고, ‘유식唯識’을 깨달아 들어가기 때문에 의타기성을 깨달아 들어간다.223)원성실성을 깨달아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만약 ‘의언意言은 법을 청문함으로써 훈습된 종류이고 오직 식만 있다’는 생각(想)마저 이미 제거했다면, 이때 보살은 이미 ‘의義’라는 생각마저 제거하였으므로 일체의 ‘사의似義’가 생겨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사유식似唯識’ 또한 생겨날 수 없다.224) 이런 인연으로 인해, ‘모든 대상의 무분별적 이름(一切義無分別名)’225)에 머문다면,‘무분별적 이름’이란 능전能詮으로서의 진제라는 평등법의 이름이다. 소전所詮으로서의 진여는 ‘모든 대상의 무분별적 이치(一切義無分別理)’이다. 지금 그 능전의 이름은 소전(진여)을 따라 이름 붙였기 때문에 ‘무분별적 이름’이라 하였고, 이 소전의 진여는 능전(이름)을 따라 지목되기 때문에 ‘무분별적 이름’이라 하였다.법계 안에서 곧 현견現見을 얻고 (그와) 상응하며 머물게 된다.226) 이때 보살에게는 ‘평등하고 평등한 소연·능연의 무분별지’227)가 이미 생기하였으니, 이로 인해 보살이 원성실성을 이미 깨달아 들어갔다고 이름한다.
이 문장에 준해 보면, 원성실관圓成實觀은 오직 초지 이상에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유식론』 제9권의 게송에서는 “만약 이때 소연에 대해 정지正智가 전혀 얻는 바가 없다면, 이때 유식에 머무는 것이니 이취二取의 상을 떠났기 때문이네.228)”229)라고 하였다.
나. 앞의 관문을 거듭 표시해 놓고 앞의 질문에 답함
경 이와 같이 덕본이여, 보살들이 변계소집상과 의타기상과 원성실상을 여실하게 알기 때문에, 모든 무상의 법과 잡염상의 법과 청정상의 법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관문을 거듭 표시해 놓고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230)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관문을 거듭 표시한 것이고, 나중의 “이 정도는 되어야” 이하는 두 가지 질문에 바로 답한 것이다.
가) 관문을 거듭 표시함전자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삼성을 알기 때문에 삼상을 안다’는 것을 표시해 놓았고, -
001_0242_b_01L相觀分成兩位。初二性觀。依加行位。
001_0242_b_02L作四尋思四如實智。第三圓成。在十
001_0242_b_03L地位。是故無著攝大乘論。立三性觀。
001_0242_b_04L釋此經意。彼第六卷。論云。如是菩
001_0242_b_05L薩。悟入意言似義相。故悟入遍計所
001_0242_b_06L執性。悟入唯識故。悟入依他起性。云
001_0242_b_07L何悟入圓成實性。若已滅除意言聞
001_0242_b_08L法熏習種類唯識之想。爾時菩薩。已
001_0242_b_09L遣義想。一切似義。無容得生。故似唯
001_0242_b_10L識。亦不得起。 [87] 由是因緣。住一切義無
001_0242_b_11L分別名。無分別名者。能詮眞諦平等法名。以所
詮眞如。是一切義無分別理。今能詮名
001_0242_b_12L從所詮立名。名無分別名。此所詮
眞如從能詮立目。故云無分別名。於法界中。
001_0242_b_13L便得現見相應而住。爾時菩薩。平等
001_0242_b_14L平等所緣能緣無分別智。已得生起。
001_0242_b_15L由此菩薩。名已悟入圓成實性。卽准
001_0242_b_16L此文。圓成實觀。唯在地上。故成唯識
001_0242_b_17L第九頌云。若時於所緣。智都無所得。
001_0242_b_18L爾時住唯識。離二取相故。
001_0242_b_19L如是德本。由諸菩薩。如實了知遍計所
001_0242_b_20L執相依他起相圓成實相故。如實了知
001_0242_b_21L諸無相法雜染相法淸淨相法。
001_0242_b_22L釋曰。自下第二重牒觀門。以答二
001_0242_b_23L問。於中有二。初重牒觀門。後齊此
001_0242_b_24L已下。正答二問。前中有二。初牒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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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2_c_01L나중에는 ‘삼상을 알기 때문에 곧 염법을 끊고 정법을 증득한다’는 것을 표시해 놓았다.
(가) 삼성을 알기 때문에 삼상을 안다는 것을 표시해 놓음이것은 첫 번째로 ‘삼성을 알기 때문에 삼상을 안다’는 것을 앞에 표시한 것이니, 위에 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삼상을 알기 때문에 염법을 끊고 정법을 증득함을 표시해 놓음
경 무상의 법을 여실하게 알기 때문에 모든 잡염상의 법을 끊어 없애고, 모든 잡염상의 법을 끊어 없애기 때문에 모든 청정상의 법을 증득하는 것이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삼상을 알기 때문에 염법을 끊고 정법을 증득한다’는 것을 표시해 놓은 것이다. 말하자면 ‘변계소집의 무상’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전전하여 점차 원성실성을 증득하게 되고, 이로 인해 청정한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다.해 또는 변계소집의 무상이 진여임을 알기 때문에 잡염법을 끊고 열반의 과를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나) 두 가지 질문에 바로 답함
경 이 정도는 되어야 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라 이름하니, 여래는 이 정도는 되어야 그에 대해 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라고 시설한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앞의 관문에 의거해서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한 것이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앞서 말한 삼성을 잘 아는 보살중들에 의거해서 ‘선교보살’이라 이름하였고, 여래는 이 선교보살에 의지해서 성교를 시설하여 ‘선교보살’이라 이름하였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보살의 선교의 분한分限에 대해 여러 설들이 같지 않다.한편에서는 십신十信 이상을 모두 선교보살이라고 한다.한편에서는 십회향十迴向 중의 열 번째 회향은 가행도加行道라고 하니, 곧 그 지위에 의거해서 사심사四尋思와 사여실지四如實智를 일으키기 때문에 (선교보살이라고 한다).한편에서는 초지 이상은 청정한 진여와 세속의 상을 증득하기 때문에 (선교보살이라고 한다).
② 게송으로 간략히 설함
경 이때 세존께서 이런 의미를 거듭해서 펼치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
001_0242_c_01L三性故了知三相。後牒知三相故卽
001_0242_c_02L斷染證淨。此卽第一牒上知三性故
001_0242_c_03L了知三相。准上可知。
001_0242_c_04L如實了知無相法故。斷滅一切雜染相
001_0242_c_05L法。斷滅一切染相法故。證得一切淸淨
001_0242_c_06L相法。
001_0242_c_07L釋曰。自下第二牒上知三相故斷染
001_0242_c_08L證淨。謂由了知遍計所執無相義故。
001_0242_c_09L展轉漸證圓成實性。由斯證得情淨
001_0242_c_10L涅槃。又解。了知遍計所執無相眞如
001_0242_c_11L故。能斷雜染證涅槃果也。
001_0242_c_12L齊此。名爲於諸法相善巧菩薩。如來齊
001_0242_c_13L此。施設彼爲於諸法相善巧菩薩。
001_0242_c_14L釋曰。此卽第二依上觀門以答二
001_0242_c_15L問。謂佛依上了知三性諸菩薩衆。卽
001_0242_c_16L說名爲善巧菩薩。如來依此善巧菩
001_0242_c_17L薩施設聖敎。名爲善巧菩薩。然此菩
001_0242_c_18L薩善巧分限。諸說不同。一云。十信已
001_0242_c_19L上。皆名善巧。一云。十迴向中第十迴
001_0242_c_20L向。名加行道。卽依彼位。起四尋思如
001_0242_c_21L實智故。一云 1)初 [10] 已上。證淸淨如及
001_0242_c_22L俗相故。
001_0242_c_23L爾時世尊。欲重宣此義。而說頌曰。
001_0242_c_24L「初」下疑脫「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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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3_a_01L석 이하는 두 번째로 게송으로 간략히 설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송문을 발기한 것이고, 나중은 게송으로 간략히 설한 것이다.
가. 송문을 발기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나. 게송으로 간략히 설함
경
若不了知無相法 무상의 법을 알지 못하면
雜染相法不能解 잡염상의 법을 끊을 수 없고
不斷雜染相法故 잡염상의 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壞證微妙淨相法 미묘한 청정상의 법의 증득을 무너뜨리네不觀諸行衆過失 제행의 여러 과실을 관하지 못하면
放逸過失害衆生 방일231)의 과실이 중생을 해치고
懈怠住法動法中 해태232)로 인해 주법住法에 없고 동법動法에 있으니
無有失壞可憐愍 놓쳐서 무너뜨림을 가엾다 하리라
석 이것은 두 번째로 게송으로 간략히 설한 것이다. 이상의 장행에서는 ‘삼성을 아는 공덕’을 순석順釋233)하였는데, 이 게송은 ‘무상을 알지 못하는 과실’을 반현反顯234)한 것이다. 어째서 이러한 반석·순석을 설하였는가? 이치상 실제로는 장행과 게송에 모두 반석과 순석이 있지만 간략하게 하려고 각기 한쪽만을 들어서 영략影略의 방법으로 서로 나타낸 것이다.235) 『심밀해탈경』에 따르면 게송과 장행이 모두 순석인데, 이는 번역가가 다르기 때문이다.두 개의 게송이 있으므로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에 한 송이 있는데, 이것은 ‘무상을 알지 못한 과실’을 바로 읊은 것이다. 뒤의 한 송은 ‘온갖 행의 과실을 관하지 못함’에 대해 거듭 해석한 것이다.
가) 무상을 알지 못함에 따른 과실을 바로 읊음앞의 게송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의 두 구는 ‘알지 못함’을 들어서 ‘잡염을 끊지 못하는 과실’을 나타낸 것이다. 나중의 두 구는 ‘염법을 끊지 못함’에 의거해서 ‘원성실성을 증득하지 못하는 과실’을 나타낸 것이다.‘무너뜨린다(壞)’는 것은 ‘놓쳐서 무너뜨린다(失壞)’는 말이다. 말하자면 염법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미묘한 진여라는 청정상의 법의 증득을 놓쳐서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놓쳐서 무너뜨린다’는 것은 ‘증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 온갖 행을 관하지 못함에 따른 과실을 거듭 해석함뒤의 게송을 해석한 곳에 가면 문장은 두 가지로 구별된다. 처음의 두 구는 방일放逸의 과실을 밝힌 것이고, 나중의 두 구는 해태懈怠의 과실을 밝힌 것이다.“제행의 여러 과실을 관하지 못하면……”이라 한 것은, 말하자면 우치愚癡로 인해 제행의 과실을 관찰하지 못하고 마침내 방일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중생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해태로 인해 주법에 없고 동법에 있으니……”라고 했는데, -
001_0243_a_01L釋曰。自下第二以頌略說。於中有
001_0243_a_02L二。初發起頌文。後擧頌略說。此卽
001_0243_a_03L初也。
001_0243_a_04L若不了知無相法。雜染相法不能解。 [88] 不
001_0243_a_05L斷雜染相法故。壞證微妙淨相法。不觀
001_0243_a_06L諸行衆過失。放逸過失害衆生。懈怠住
001_0243_a_07L法動法中。無有失壞可憐愍。
001_0243_a_08L釋曰。此卽第二以頌略說。上來長
001_0243_a_09L行。順釋了知三性德。此頌反顯不了
001_0243_a_10L無相失。如何說此反順釋者。理實長
001_0243_a_11L行及頌。皆有反順。爲存略故。各據
001_0243_a_12L一邊。影略互顯。依深密經。頌及長行。
001_0243_a_13L皆順釋者。譯家別故。有其二頌。卽
001_0243_a_14L分爲二。初有一頌。正頌不了無相失。
001_0243_a_15L後之一頌。重釋不觀衆行失。前中有
001_0243_a_16L二。初之二句。擧不了知。顯不斷雜染
001_0243_a_17L失。後有二句。約不斷染。顯不證圓
001_0243_a_18L成失。壞謂失壞。謂不斷染故。失壞證
001_0243_a_19L得微妙眞如淨相法也。失壞者。是不
001_0243_a_20L能證義。就釋後頌。文別有二。初之二
001_0243_a_21L句。明放逸失。後有二句。明懈怠失。
001_0243_a_22L言不觀諸行衆過失等者。謂由愚痴。
001_0243_a_23L不能觀察諸行過失。遂起放逸。傷害
001_0243_a_24L衆生。言懈怠住法動法中等者。此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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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3_b_01L이것은 두 번째로 해태의 과실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해태’란 과실의 원인이자 공덕의 장애이다. ‘주법住法’이란 열반에 해당하니, 상주하면서 멸하지 않기 때문에 ‘주住’라고 하였다. ‘동법動法’이란 생사의 법이니, 전에 생겼다가 후에 멸하면서 삼유三有에서 유전하기 때문에 ‘동법’이라 하였다.해 또는 ‘주법’이란 선정(定)이고, ‘동법’이란 산란散亂이다.“(주법에) 없고 (동법에) 있으니 놓쳐서 무너뜨림을 가엾다 하리라.”라고 했는데, 말하자면 해태로 인해 ‘주법’에는 없고 ‘동법’에만 있게 되고, 이러한 ‘없고 있음’으로 인해 (청정법의 증득을) 놓쳐서 무너뜨리게 되며, 놓쳐서 무너뜨리기 때문에 심히 가엾다 할 만하다는 것이다. ‘놓쳐서 무너뜨림(失壞)’에 대해 자세히 해석하면, 예를 들어 『유가사지론』 제36권과 제73권의 설과 같다.『심밀해탈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실하게 제법을 알면 곧 염법의 상을 버리고, 염법의 상을 버리고 나서 청정법을 증득하네. 유위의 과실을 관하지 못하면 해태와 방일이 해를 끼치니, 제법이 항상 부동하여 상을 떠났음을 안다면 보살이라 하네.”236)해심밀경 제5 무자성상품(解深密經無自性相品第五)이 품을 해석하겠으니, 그에 두 가지 내용이 있다. 첫째는 품의 이름을 해석하는 것이고, 둘째는 경문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제1장 품명 해석제목에서 ‘무자성상품無自性相品’이라 했는데, ‘무자성’은 대략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이고, 둘째는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이며, 셋째는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이다. ‘무자성’이라는 말로 삼무성三無性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무자성이라 하였다. ‘상相’이란 체상體相이니, 혹은 상상相狀을 말한다. 이 삼무성은 그 차례대로 삼성을 체상으로 삼는다.1) 이 품에서 세 종류 무자성의 체상이나 상상을 자세하게 설명하였기 때문에 ‘무자성상품’이라 한 것이다.『심밀해탈경』에서 ‘성취제일의보살문품成就第一義菩薩問品’이라 한 것은 사람을 따라서 품명을 건립한 것이니, 번역가가 다르기 때문이다.2)
제2장 경문 해석경 이때 승의생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석 이하는 경문의 뜻을 바로 해석한 것이다. 유성有性ㆍ무성無性의 경계를 해석하는 가운데, 이상으로 삼성三性의 경계에 대해 다 해석하였고, -
001_0243_b_01L第三 [89] 懈怠過失。謂懈怠者。過失之
001_0243_b_02L因。功德之障。言住法者。卽是涅槃。
001_0243_b_03L常住不滅。故名爲住。言動法者。是
001_0243_b_04L生死法。前生後滅。流轉三有。故名
001_0243_b_05L動法。又解。住法者是定。動法者是
001_0243_b_06L散亂。言無有失壞可憐愍者。謂由懈
001_0243_b_07L怠故。於住法無。於動法有。由是無有。
001_0243_b_08L故成失壞。由失壞故。甚可憐愍。廣
001_0243_b_09L釋失壞。如瑜伽論第三十六及七十
001_0243_b_10L三。深密經云。如實知諸法。即捨染法相。捨染法
相已。證於淸淨法。不觀有爲過。懈怠放逸
001_0243_b_11L害。諸法常不動。
離相名菩薩也。
001_0243_b_12L解深密經無自性相品第五
001_0243_b_13L將釋此品。有其二義。一解品名。二
001_0243_b_14L釋文義。題云無自性相品者。謂無自
001_0243_b_15L性。略有三種。一相無自性性。二生無
001_0243_b_16L自性性。三勝義無自性性。無自性言。
001_0243_b_17L顯三無性。故言無自性也。相卽體相。
001_0243_b_18L或謂相狀。此三無性。如其次第。卽用
001_0243_b_19L三性。以爲體相。此品廣明三無自性
001_0243_b_20L體相相狀。故言無自性相品。深密經云。
成就第一
001_0243_b_21L義菩薩問品者。1)人
從 [1] 立名。譯家別故。
001_0243_b_22L爾時。勝義生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
001_0243_b_23L釋曰。自下正釋文義。就釋有情 [90] 無性
001_0243_b_24L境中。上來已釋三性境訖。自下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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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3_c_01L이하에서 두 번째로 삼무성三無性에 대해 해석하겠다.이 품 안에 다섯 개의 분分이 있다. 첫째는 보살청문분이다. 둘째 “이때 세존께서” 이하는 여래정설분이다. 셋째 “이때 승의생이” 이하는 영해수지분이다. 넷째 “이때 승의생보살이” 이하는 교량탄승분이다. 다섯째 “이때 승의생이” 이하는 의교봉행분이다.
1. 보살청문분菩薩請問分3)청문분에서 경문을 구별하면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물은 자와 답한 자를 표시한 것이다. 다음의 “저는 일찍이” 이하는 물으려는 일을 진술한 것이다. 마지막의 “아직은 잘 모르겠으니” 이하는 교에 의거해서 물은 것이다.
1) 물은 자와 답한 자를 표시함이것은 첫 번째로 물은 자와 답한 자를 표시한 것이다.“승의생勝義生”이라 했는데, ‘승의勝義’란 바로 증득되는 경계(所證之境)이니 뛰어난 지혜의 경계를 승의라고 하였고, ‘생生’이란 증득하는 지혜(能證之智)가 승의를 소연으로 삼아 생겨나니 그것을 ‘생’이라 하였다. 따라서 『섭대승론석』에서는 “이것에 대해 증회證會하였기 때문에 ‘생’이라 하니, 이 소연所緣(승의)에 대해 뛰어난 지혜가 생하였기 때문이다.”4)라고 하였다. 증득하는 것(能證)과 증득되는 것(所證)에 의거해서 그 명호를 건립하여 ‘승의생’이라 한 것이다.5)
2) 물으려는 일을 진술함경 저는 일찍이 홀로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심사尋思6)를 냈습니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물으려는 일을 진술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자기의 의문을 진술하였고, 나중에는 물으려는 교를 들었다.
(1) 자기의 의문을 진술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예전에 내가 일찍이 홀로 숲속의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세존께서는 어째서 예전에는 자성 있음(有性)을 설하시고 나중에는 자성 없음(無性)을 설하셨을까’ 하고 심사尋思했다는 것이다.7)『심밀해탈경』에서는 “한적한 곳에서 각覺ㆍ관觀8)의 마음을 내었습니다.”9)라고 하였는데, 이전에 분별했던 것처럼 이는 번역가가 다르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심사尋思’에 대해 논하면 네 종류가 있다.첫째는 삼계의 유루有漏의 분별分別에 (속하는) 심ㆍ심소법을 가리킨다.10)둘째는 심尋ㆍ사伺11)를 가리킨다. 따라서 『심밀해탈경』에서는 “한적한 곳에서 각ㆍ관의 마음을 내었습니다.”라고 한다.12)셋째는 오직 ‘심尋’만 가리킨다. 따라서 『집론』 제6권에서는 -
001_0243_c_01L釋三無性。於此品內。有其五分。一
001_0243_c_02L菩薩請問分。二爾時世尊下。如來正
001_0243_c_03L說分。三爾時勝義生下。領解受持分。
001_0243_c_04L四爾時勝義生菩薩下。校量歎勝分。
001_0243_c_05L五爾時勝義生下。依敎奉行分。就請
001_0243_c_06L問中。文別有三。初標問答者。次我
001_0243_c_07L曾下。申所問事。後未審下。依敎發問。
001_0243_c_08L此卽第一標問答者。言勝義生者。勝
001_0243_c_09L義卽是所證之境。勝智之境。名勝義。
001_0243_c_10L生者。能證之智。緣勝義生。名之爲生。
001_0243_c_11L故攝論云。於此證會。故名爲生。於此
001_0243_c_12L所緣。勝智生故。就能所證。以立其
001_0243_c_13L號。名勝義生。
001_0243_c_14L我曾獨在靜處。心生如是尋思。
001_0243_c_15L釋曰。自下第二申所問事。於中有
001_0243_c_16L二。初陳已 [91] 疑思。後擧所問敎。此卽
001_0243_c_17L初也。謂昔我曾獨在山林閑房靜。如
001_0243_c_18L是尋思。世尊如何。先說有性。後說無
001_0243_c_19L性。深密經云。空閑之處。生覺觀心
001_0243_c_20L者。如前分別。譯家別故。汎論尋思。
001_0243_c_21L有其四種。一者三界有漏分別心心
001_0243_c_22L所法。二者尋伺。故深密云。空閑之
001_0243_c_23L處。生覺觀心。三者唯尋。故集論第六
001_0243_c_24L「人從」疑寫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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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4_a_01L“심사尋思를 행하는 자는 입출식념入出息念13)의 경계를 반연한다.”14)라고 하였다. 『구사론』 제22권에서는 “‘심’이 많아서 마음이 산란한 이를 심행자尋行者라고 하니, 그는 (입출)식념에 의지해서 수修에 올바로 들어갈 수 있다.”15)라고 하였다. 혹은 심尋과 사伺를 통틀어 설하여 ‘심사행자尋思行者’라고 했다고 볼 수도 있다.16)넷째는 혜 심소(慧數)를 가리키니, 예를 들면 사심사四尋思를 곳곳에서 설하기 때문이다.17)지금 이 중에서 네 번째 설이 뛰어나다.18)
(2) 물으려는 교를 듦경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모든 온蘊들의 모든 자상, 생상ㆍ멸상, 영단ㆍ변지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물으려는 교를 진술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자성 있음을 설한 교를 들었고, 나중의 “세존께서는 다시 설하시길” 이하에서는 자성 없음을 설한 교를 나타내었다.
① 자성 있음(有性)을 설한 교를 듦전자의 경문에는 열세 개의 문이 있는데, 다섯 단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오온의 교를 밝힌 것이고, 둘째는 사제의 교를 밝힌 것이며, 셋째는 모든 계를 밝힌 것이고, 넷째는 사념주를 밝힌 것이며, 다섯째는 팔성도를 밝힌 것이다.
가. 오온五蘊의 교를 밝힘이것은 첫 번째로 오온의 교를 설명한 문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오온의 교를 바로 밝힌 것이고, 나중은 세 가지 교를 견주어 나타낸 것이다.
가) 오온의 교를 바로 밝힘이것은 다섯 가지 상으로 오온에 대한 성스런 가르침을 설명한 것이다.19)“한량없는 문”이라 했는데, 이에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한편에서 말하길, 오온에 있는 모든 자상自相ㆍ공상共相20) 등의 여러 문들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한량없다’고 한다. 한편에서 말하길,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유색有色ㆍ무색無色21) 등의 여러 문들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한량없다’고 한다.“모든 자상”이란 곧 (오온의) 개별적 상(別相)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색의 (자상은) ‘질애’라고, 이와 같이 식의 (자상은) ‘요별’이라고 설하는 것과 같다.“생상ㆍ멸상”이란 (오온의) 공통된 상(通相)에 해당한다. 색 등은 모두 생하고 멸하는 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영단ㆍ변지”란 고제ㆍ집제의 상이다.22) 집제를 영원히 끊어야 하니, 고苦의 (인因이 되는) 번뇌이기 때문이다. 고제를 두루 알아야 하니, 생사의 과果이기 때문이다.혹은 “모든 자상”이란 자성상自性相과 차별상差別相에 해당하고, 이와 같은 두 가지 상이 생ㆍ멸과 영단ㆍ변지에 두루 있다고 해도 된다. 예를 들어 다음의 ‘영해수지분’에서 설한 것과 같다.23)
나) 세 가지 교를 견주어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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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4_a_01L云。尋思行者。緣入出息念境。俱舍
001_0244_a_02L論第二十二云。尋多亂心。名尋行者。
001_0244_a_03L彼依息念。能正入修。或可通說尋伺。
001_0244_a_04L名尋思行者。四者慧數。如四尋思。處
001_0244_a_05L處說故。今於此中。第四爲勝。
001_0244_a_06L世尊。以無量門曾說。諸蘊所有自相。生
001_0244_a_07L相滅相。永斷遍知。
001_0244_a_08L釋曰。自下第二申所問敎。於中有
001_0244_a_09L二。初擧有性敎。後世尊復說下。顯
001_0244_a_10L無性敎。就前文中。有十三門。攝爲
001_0244_a_11L五段。一明蘊敎。二明諦敎。三明諸
001_0244_a_12L界。四明念住。五八聖道。此卽第一辨
001_0244_a_13L蘊敎門。於中有二。初正明蘊敎。後
001_0244_a_14L類顯三敎。此卽五相辨蘊聖敎。無量
001_0244_a_15L門者。此有兩釋。一云。蘊中所有自
001_0244_a_16L共相等。諸門非一。故名無量。一云。
001_0244_a_17L可見不可見有色無色等。諸門非一。
001_0244_a_18L故名無量。所有自相。卽是別相。如說
001_0244_a_19L色是質礙。如是識是了別。生相滅相。
001_0244_a_20L卽是通相。色等皆有生滅相故。永斷
001_0244_a_21L遍知。卽苦集相。永斷集諦。苦煩惱故。
001_0244_a_22L遍知苦諦。生死果故。或可所有自相
001_0244_a_23L者。卽是自相差別相。如是二相。遍
001_0244_a_24L於生滅永斷遍知。如下領解中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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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4_b_01L경 마치 오온에 대해 설하신 것처럼, 십이처十二處ㆍ십이연기十二緣起ㆍ사식四食 또한 이러합니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세 가지 문을 견주어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오온에서 설했던 다섯 가지 상은 십이처의 가르침과 십이연기, 사식의 (가르침에서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십이처의 자상은 (다음과 같다.) 색色을 볼 수 있으므로 그것을 ‘안眼’이라 하고 눈에 보이는 대상이므로 그것을 ‘색’이라 하고……중간 생략……법法을 알 수 있으므로 그것을 ‘의意’라고 하고 의에 알려지는 대상이므로 그것을 ‘법’이라 한다.십이연기의 자상은 (다음과 같다.) 지智에 의해 대치되는 법으로서 별도의 심소법이 있으니, ‘덮고 가리는 것(覆蔽)’을 자성으로 삼는 것을 일컬어 무명無明이라 한다. 예를 들어 『유가사지론』 제56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24)……중간 생략……점차로 쇠하다가 단박에 멸하는 것을 ‘노사老死’라고 한다.25)사식의 자상은 (다음과 같다.) 나누고 조각내서 삼키는 것을 단식段食이라 하고……중간 생략……요별하고 집지執持하는 것을 식식識食이라 한다.26)생상ㆍ멸상 두 가지 상과 영단ㆍ변지는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문 어째서 「승의제상품」에서는 여섯 가지 상으로 오온 등을 분별하면서 사제四諦를 갖추어 설했었는데, 이 품에서는 다만 고제ㆍ집제만을 설하고 멸제ㆍ도제는 설하지 않았는가?해 이전 품에서는 현관現觀에 차별이 있음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에 사제를 갖추어 설하였다. 지금 이 품에서는 자성 있음을 설한 교(有性敎)와 자성 없음을 설한 교(無性敎), 두 가지의 차별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해서 ‘오온의 멸滅과 작증作證을 증득했기 때문’이라는 (문구를) 설하지 않은 것이다.27)
나. 사제四諦의 교를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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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4_b_01L如說諸蘊。諸處緣起諸食亦爾。
001_0244_b_02L釋曰。此卽第二類釋二 [92] 門。謂如蘊中
001_0244_b_03L所說五相。十二處敎緣起諸食。應知
001_0244_b_04L亦爾。謂處自相。能見1)色 [2] 。名之爲眼。
001_0244_b_05L眼所見故。名之爲色。乃至能知法故。
001_0244_b_06L名之爲意。意所知故。名之爲法。緣
001_0244_b_07L起自相。智所對法。別有心所。覆弊 [93] 爲
001_0244_b_08L性。名爲無明。如瑜伽論五十六說。乃
001_0244_b_09L至漸衰頓滅。名爲老死。諸食自相。分
001_0244_b_10L段而呑。名爲段食。乃至了別執持。名
001_0244_b_11L爲識食。生滅二相。永斷遍知。准上應
001_0244_b_12L知。問。如何勝義諦 [94] 品。以六相分別
001_0244_b_13L蘊等。具說四諦。於此品中。但說苦
001_0244_b_14L集。而非滅道。解云。前品欲辨現觀
001_0244_b_15L有差別故。具說四諦。今此品中。有
001_0244_b_16L性無性二敎差別。是故此中。略而不
001_0244_b_17L說由得蘊故 [95] 滅及依 [96] 證。
001_0244_b_18L以無量門。曾說諸諦所有自相。遍知永
001_0244_b_19L斷作證修習。
001_0244_b_20L釋曰。第二辨四諦敎。有其五句。所
001_0244_b_21L有自相。自有兩說。淮上應知。謂逼
001_0244_b_22L迫2)名 [1] 。召集名集。滅盡名滅。能通名
001_0244_b_23L道。遍知等四。別顯四諦。遍知苦諦。
001_0244_b_24L永斷集諦。作證滅諦。修習道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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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4_c_01L경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사제의 모든 자상, (그것의) 변지ㆍ영단ㆍ작증ㆍ수습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석 두 번째로 사제의 교를 설명하였다. 그에 다섯 구가 있다.“모든 자상”이라 한 것에 대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으니,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28) 말하자면 핍박하는 것을 고제라고 하고, 불러 모으는 것을 집제라고 하며, 멸하여 다하는 것을 멸제라고 하고, 오갈 수 있는 것을 도제라고 한다.‘변지’ 등의 네 가지는 각기 사제를 나타낸 것이다. ‘변지’는 고제고 ‘영단’은 집제며 ‘작증’은 멸제고 ‘수습’은 도제다.29)
다. 십팔계十八界의 교를 밝힘
경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십팔계의 모든 자상自相, 종종계성種種界性과 비일계성非一界性,30) (그것의) 영단ㆍ변지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석 세 번째로 십팔계의 문을 설명하였다.“모든 자상”이라 한 것은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다음의 두 구에서는, 십팔계의 전전하는 이상(展轉異相)들을 “종종계種種界”라고 하였고, 십팔계의 한량없는 유정의 소의의 차별(所依差別)들을 “비일계非一界”라고 하였으니, 예를 들면 『유가사지론』 제56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31) 그 논의 제83권에 따르면 앞의 경우와는 상반되니, 이는 제1권의 기記와 같다.32)영단과 변지는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라. 사념주四念住의 교를 밝힘
경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염주念住의 모든 자상, 대치시키는 것과 대치되는 것, 수습해서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하고, 생기고 나면 견고히 머물게 하며, 잊지 않고 믿고 닦아서, 증장하고 광대해지도록 하는 것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석 네 번째로 사념주四念住의 교를 설명하였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염주에 대해 해석하였고, 나중에는 다섯 가지 문을 견주어 해석하였다.
가) 염주에 대해 해석함전자 중에 다섯 구가 있다.“모든 자상”이라 한 것에 대해 본래 두 가지 해석이 있으니, 오온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이 사념주는 ‘혜慧’를 체로 삼으니, (그 혜가) 신身 등의 경계에 머물기 때문에 마땅히 ‘혜주慧住’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염주念住’라고 한 것은, ‘염念’과 상응해서 신 등의 경계에 머물기 때문에 염주라고 하였다. 이는 육석六釋33) 중에 인근석隣近釋에 해당한다.34)뒤의 네 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네 가지 전도를 대치하는 것이고, 둘째는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생기고 나면 견고히 머물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잊지 않고 갑절로 닦아서 증장시키고 광대해지게 하는 것이니, 첫 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35)
나) 다섯 문을 견주어 해석함
경 마치 사념주에 대해 설한 것처럼, 사정단四正斷과 사신족四神足과 오근五根과 오력五力과 칠각지七覺支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다섯 문을 견주어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사념주에 -
001_0244_c_01L以無量門。曾說諸界所有自相。種種界
001_0244_c_02L性。非一界性。永斷遍知。
001_0244_c_03L釋曰。第三辨諸界門。所有自相。准
001_0244_c_04L上應知。次之二句。謂十八界展轉
001_0244_c_05L異相。名種種界。卽十八界無量有
001_0244_c_06L情所依差別。名非一界。如瑜伽論
001_0244_c_07L五十六說。若依八十三。與上相反。如
001_0244_c_08L初卷記。永斷遍知。准上應知。
001_0244_c_09L以無量門。曾說念住所有自相。能治所
001_0244_c_10L治。及以修習未生令生。生已堅住。不
001_0244_c_11L忘信修。增長廣大。
001_0244_c_12L釋曰。第四辨念住敎。於中有二。初
001_0244_c_13L釋念住。後類五門。前中五句。所有
001_0244_c_14L自相。自有二釋。准蘊應知。此四念住。
001_0244_c_15L以慧爲體。住身等境。應言慧住。而
001_0244_c_16L言念住。與念相應。住身等境。故名
001_0244_c_17L念住。此六釋中。隣近釋也。後四句
001_0244_c_18L者。一能治四倒。二未生令生。三生
001_0244_c_19L已堅住。四不忘倍修增長廣大。如初
001_0244_c_20L卷說。
001_0244_c_21L如說念住。正斷神足根力覺支。亦復如
001_0244_c_22L是。
001_0244_c_23L釋曰。此卽第二類釋五門。謂如念住
001_0244_c_24L「色」下疑脫「苦」。「名」下疑脫「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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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5_a_01L다섯 구가 있었던 것처럼, 사정단四正斷의 문, 사종신족四種神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칠등각지七等覺支에도 모두 다섯 구가 있다. 앞에 준해 알아야 한다.
마. 팔성도八聖道의 교를 밝힘
경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팔지성도의 모든 자상, 능히 대치하는 것과 대치되는 것, 그리고 수습해서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을 생기게 하고, 생기고 나면 견고히 머물게 하며, 잊지 않고 갑절로 닦아서, 증장시키고 광대해지게 하는 것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석 다섯 번째 팔성도지에도 다섯 구가 있으니,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뒤에 나온 이 일곱 문은 삼십칠품관三十七品觀이니,36) 그 뜻은 『별장』에서 설한 것과 같다.
② 자성 없음(無性)을 설한 교를 나타냄
경 세존께서는 다시 ‘모든 법들은 다 자성이 없으니,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셨습니다.
석 두 번째는 자성 없음을 설한 교를 나타낸 것이다.뒤의 경문에 의하면,37) 삼시의 법륜(三時法輪) 중에 첫 번째 시時에는 사제교四諦敎를 설하였고, 두 번째 시에는 무상교無相敎를 설하였다. 세 번째 시에는 요의교了義敎를 설하였으니,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는 무자성성無自性性을 설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경문에서는 두 번째 시를 첫 번째 시와 대비시킴으로써 질문을 일으킨 근거로 삼은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유상有相을 설하였고 이후에는 무상無相을 설하였는데, 이 ‘무상’이라는 말이 이전의 ‘유상’과는 어긋나기 때문에 무상을 질문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38)
문 이 경에 준하면 처음에는 오직 ‘유有’를 설하였고 나중에는 다만 ‘무無’를 설하였는데, 『무량의경無量義經』에 따르면 전후의 두 시기에 모두 공空과 유를 설한 것이다. 따라서 그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남자여, 내가 보리수 아래서 일어나 바라나의 녹야원에 가던 중에 아약구린39) 등의 다섯 사람을 위해서 사제의 법륜을 굴렸을 때도 또한 ‘제법이 본래 공적함’을 설하였고,……중간에 여기 및 -
001_0245_a_01L有其五句。四正斷門。四種神足。五
001_0245_a_02L根。五力。七等覺支。皆有五句。淮上
001_0245_a_03L應知。
001_0245_a_04L以無量門。曾說八支聖道所有自相。能
001_0245_a_05L治所治。及以修習未生令生。生已堅住。
001_0245_a_06L不忘倍修。增長廣大。
001_0245_a_07L釋曰。第五八聖道支。有其五句。准
001_0245_a_08L上應知。此後七門。卽是三十七品觀。
001_0245_a_09L義如別章。
001_0245_a_10L世尊復說。一切諸法。皆無自性。無生無
001_0245_a_11L滅。本來寂靜。自性涅槃。
001_0245_a_12L釋曰。第二顯無性敎。謂依下經。三
001_0245_a_13L時法輪。於第一時。說四諦敎。於第
001_0245_a_14L二時。說無相敎。第三時中。說了義
001_0245_a_15L敎。說一切法。皆無自性。無生滅。本來
001_0245_a_16L寂靜。自性涅槃。無自性性。而今此中。
001_0245_a_17L約第二時。對第一時。以爲發問所依。
001_0245_a_18L前說有相。後說無相。此無相言。違
001_0245_a_19L前有相。故以無相。爲問所依。問。若
001_0245_a_20L准此經。初唯說有。後但說無。無量
001_0245_a_21L義經。前後兩時。皆說空有。故彼經云。
001_0245_a_22L善男子。我起樹王。詣波羅奈鹿野園
001_0245_a_23L中。爲阿若拘隣等五人。轉四諦法輪
001_0245_a_24L時。亦說諸法本來寂 [97] 靜。中間於此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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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5_b_01L곳곳에서 여러 비구들과 많은 보살들을 위해서 십이인연과 육바라밀을 분명하게 설해 주면서 또한 ‘제법이 본래 공적함’을 설하였다.”40) 구체적으로 설하면 그 경과 같다. 이 두 경을 어떻게 회통시켜 해석하겠는가?해 예를 들면 『대지도론』에서는 모든 부처님의 설법에는 두 가지 사事가 있다고 하였다. 첫째는 비밀秘密이고, 둘째는 현시顯示다. 『무량의경』은 비밀문에 의거하여 설하였고, 지금 이 경에서는 현시문으로 설한 것이다.41) 각기 한쪽에 근거하였으므로 서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3) 교에 의거해서 질문함경 아직은 잘 모르겠으니, 세존께서는 어떤 밀의에 의거해서 이와 같이 ‘모든 법들은 다 자성이 없으니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셨습니까?
석 세 번째로 교에 의거하여 질문하였다.42)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자기의 의심을 진술하였고, 다음에는 해석해 주길 청원했으며, 마지막에는 해석될 경문을 진술하였다.
(1) 자기의 의심을 진술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부처님께서 먼저 온ㆍ처ㆍ계 등의 13법문으로 모두 자성이 있음을 설하셨고,43) 나중에 다시 ‘모든 법들은 모두 자성이 없고 생멸이 없음’ 등을 설하셨다. 이전에는 자성 있음(有性)을 설하였고, 이후에는 자성 없음(無性)을 설하였으니, 두 가르침이 서로 어긋난다. 세존께서 어떤 비밀스런 의미에서 이와 같은 ‘무자성無自性’ 등을 설하셨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심밀해탈경』에 의하면 다섯 절이 있다. 첫째로 모든 법은 본래 실체가 없고, 둘째로 모든 법은 본래 생함이 없으며, 셋째로 모든 법은 본래 멸함이 없고, 넷째로 모든 법은 본래 적정하며, 다섯째로 모든 법은 본래 자성열반이다.44)
(2) 해석해 주시길 청원함경 저는 지금 여래께 이 의미에 대해 청문하오니, 오직 원컨대 여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해석해 주십시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해석해 주시길 청원한 것이다.
(3) 해석될 경문을 진술함경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으니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신 모든 밀의에 대해.”
석 세 번째는 해석될 교를 진술한 것이다.
2. 여래정설분如來正說分45) -
001_0245_b_01L以處處。爲諸比丘幷衆菩薩。辨演宣
001_0245_b_02L說十二因緣。六波羅蜜。亦說諸法本
001_0245_b_03L來空寂。具說如波 [98] 。卽此二經。如何會
001_0245_b_04L釋。解云。如智度論。諸佛說法。有其
001_0245_b_05L二事。一者秘密。二者顯示。無量義經。
001_0245_b_06L依秘密門。今依此經。是顯示門。各
001_0245_b_07L據一邊。互不相違。
001_0245_b_08L未審世尊。依何密意。作如是說。一切諸
001_0245_b_09L法。皆無自性。無生無滅。本來寂靜。自
001_0245_b_10L性涅槃。
001_0245_b_11L釋曰。第三依敎發問。於中有三。初
001_0245_b_12L陳已 [99] 疑情。次請願解釋。後申所釋經。
001_0245_b_13L此卽初也。謂佛先說。蘊處界等十三
001_0245_b_14L法門。皆無 [100] 自性。後復說言。一切諸法。
001_0245_b_15L皆無自性。無生滅等。前說有性。後說
001_0245_b_16L無性。二敎相違。未審世尊。依何密意。
001_0245_b_17L作如是說無自性等。若依密經。有其五節。
一一切法本來無體。
001_0245_b_18L二一切法本來不生。三一切法本來無滅。四
一切法本來寂靜。五一切法本來自性涅槃。
001_0245_b_19L我今謂問如來斯義。唯願如來哀愍解
001_0245_b_20L釋。
001_0245_b_21L釋曰。此卽第二諸願解釋。
001_0245_b_22L說一切法。皆無自性。無生無滅。本來
001_0245_b_23L寂靜。自性涅槃。所有密意。
001_0245_b_24L釋曰。第三申所釋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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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5_c_01L경 이때 세존께서 승의생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여래께서 바로 설하신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질문을 칭찬하면서 설법을 허락한 것이고, 나중의 “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이하는 질문에 의거해서 바로 설한 것이다.
1) 질문을 칭찬하며 설법을 허락함전자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질문의 유익함을 칭찬한 것이고, 나중은 잘 들으라고 하면서 설법을 허락한 것이다.
(1) 질문의 유익함을 칭찬함전자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능히 설법한 자를 밝힌 것이고, 둘째는 질문이 이치에 맞음을 칭찬한 것이며, 셋째는 심오한 의미를 물었음을 칭찬한 것이고, 넷째는 질문의 유익함을 칭찬한 것이다.
① 설하는 자를 밝힘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② 질문이 이치에 맞음을 칭찬함
경 “훌륭하다, 훌륭하다, 승의생이여. 그대가 심사尋思한 바는 매우 이치에 맞도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질문이 이치에 맞음을 칭찬한 것이다.
③ 심오한 의미를 물었음을 칭찬함
경 훌륭하다, 훌륭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지금 능히 여래에게 이와 같은 심오한 의미를 청문하였도다.
석 이것은 세 번째로 심오한 의미를 물었음을 칭찬한 것이다. 이상의 두 종류 (질문의) 문文ㆍ의義가 모두 훌륭하기 때문에 “훌륭하다, 훌륭하다.”라고 중복해서 말한 것이다.
④ 질문의 유익함을 칭찬함
경 그대는 지금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이익과 안락을 주기 위해, 세간 및 모든 천ㆍ인ㆍ아소락 등을 가엾게 여겨 이익(義利)과 안락을 얻도록 하려고 이런 질문을 하였도다.
석 이것은 네 번째로 물음이 유익함을 칭찬한 것이니, 준해서 알아야 한다.
(2) 잘 들으라고 하면서 설법을 허락함경 그대는 자세히 들어야 한다. 내가 그대를 위해 ‘모든 법들은 다 자성이 없으니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했던 바의 모든 밀의를 해석해 줄 것이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잘 들으라고 하면서 설법을 허락한 것이다.
2) 질문에 의거해서 바로 설함경 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세 종류 무자성성46)에 의거해서 밀의로 ‘모든 법들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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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5_c_01L爾時世尊。告勝義生菩薩曰。
001_0245_c_02L釋曰。自下第二如來正說。於中有
001_0245_c_03L二。初讃問許說。後勝義生當知下。依
001_0245_c_04L問正說。前中有二。初讃問有益。後
001_0245_c_05L勅聽許說。前中有四。一辨能說者。二
001_0245_c_06L讃問應理。三讃問深義。四讃問有益。
001_0245_c_07L此卽初也。
001_0245_c_08L善哉善哉。勝義生。汝所尋思。甚爲如
001_0245_c_09L理。
001_0245_c_10L釋曰。此卽第二讃問應理。
001_0245_c_11L善哉善哉。善男子。汝今乃能請問如來
001_0245_c_12L如是深義。
001_0245_c_13L釋曰。此卽第三讃問深義。此上二種。
001_0245_c_14L文義俱善。是故重言善哉善哉。
001_0245_c_15L汝今爲欲利益安樂無量衆生。哀愍世
001_0245_c_16L間及諸天人阿素洛等。爲令獲得義利
001_0245_c_17L安樂。故發斯問。
001_0245_c_18L釋曰。此卽第四讃問有益。淮應知。
001_0245_c_19L汝應諦聽。吾當爲汝解釋。所說一切諸
001_0245_c_20L法。皆無自性。無生無滅。本來寂靜。自
001_0245_c_21L性涅槃。所有密意。
001_0245_c_22L釋曰。此卽第二勅聽許說。
001_0245_c_23L勝義生。當知。我依三種無自性性。密意
001_0245_c_24L說言一切諸法皆無自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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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6_a_01L석 이하는 두 번째로 물음에 의거해서 바로 설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장행으로 자세히 해석한 것이고, 나중은 게송으로 거듭 설한 것이다.
(1) 장행長行으로 자세히 해석함전자 중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삼무성三無性에 의거해서 경의 문구들을 해석한 것이다. 둘째 “다시 승의생이여” 이하는 삼성관三性觀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한 뜻을 설명한 것이다. 셋째 “다시 승의생이여” 이하는 지위(位)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한 뜻을 설명한 것이다. 넷째 “다시 승의생이여” 이하는 삼무성관三無性觀에 의거해서 일승一乘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다섯째 “다시 승의생이여” 이하는 무성교無性敎에 의거해서 이해가 부동함을 설명한 것이다.47)
① 삼무성三無性에 의거해서 경의 문구들을 해석함48)
이것은 첫 번째로 삼무성에 의거해서 경의 문구들을 해석한 것이다.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삼무성에 의거해서 여러 경들에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한 것에 대해 해석하였고, 나중의 “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이하에서는 처음과 마지막의 무성(상무성, 승의무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생함도 멸함도 없다’는 등을 해석하였다.
가. 삼무성에 의거해서 ‘일체법개무자성一切法皆無自性’을 해석함49)
전자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표장으로서 간략히 설한 것이다. 다음의 “선남자여” 이하는 문답으로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마지막의 “선남자여” 이하는 해석하고 나서 총결지은 것이다.
가) 표장으로서 간략히 설함전자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삼무성에 의거해서 경의 밀의를 나타낸 것이고, 나중은 개수에 맞춰 삼무성의 이름을 열거한 것이다.
(가) 삼무성에 의거해서 경의 밀의密意를 나타냄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세존께서는, ‘모든 법들이 자성이 없다’고 한 것에 대해 내가 이제 구체적으로 삼무자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다 자성 없음’을 설한 것이라고 하였다.“모든 법들”이란 삼성三性에 해당하니, 삼성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하였기 때문에 여러 경들에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유식론』의 30송에서는 “이 삼성에 의거해서 저 삼무성을 건립하였기 때문에 부처님은 밀의로 모든 법의 자성 없음을 설하셨네.”50)라고 하였다.
(나) 개수에 맞춰 삼무성의 이름을 열거함
경 이른바 상무자성성, 생무자성성, 승의무자성성이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개수에 맞춰 이름을 열거한 것이다. -
001_0246_a_01L釋曰。此下第二依問正說。於中有
001_0246_a_02L二。初長行廣釋。後擧頌重說。前中
001_0246_a_03L有五。一約三無性。釋經諸句。二復
001_0246_a_04L次勝義生下。約三性觀。辨立三無性
001_0246_a_05L意。三復次勝義生下。約位。辨立三無
001_0246_a_06L性意。四復次勝義生下。約三無性觀。
001_0246_a_07L辨一乘義。五復次勝義生下。約無性
001_0246_a_08L敎。辨取解不同。此卽第一約三無
001_0246_a_09L性。釋經諸句。於中有二。初約三無性。
001_0246_a_10L釋諸經中說一切法皆無自性。後勝
001_0246_a_11L義生當知下。約初後無性。釋一切法
001_0246_a_12L無生滅等。前中有三。初標章略說。次
001_0246_a_13L善男子下。問答廣釋。後善男子下。釋
001_0246_a_14L已總結。前中有二。初依三無性。顯經
001_0246_a_15L密意。後依數列三無性名。此卽初也。
001_0246_a_16L謂世尊言一切諸法無自性者。我今
001_0246_a_17L具依三無自性。說一切法皆無自性。
001_0246_a_18L一切諸法。卽是三性。卽三性立三無
001_0246_a_19L性。故諸經言。一切諸法皆無自性。是
001_0246_a_20L故成唯識三十頌云。卽依此三性。立
001_0246_a_21L彼三無性。故佛密意說。一切法無性。
001_0246_a_22L所謂相無自性性。生無自性性。勝義無
001_0246_a_23L自性性。
001_0246_a_24L釋曰。此卽第二依數列名。謂卽三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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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6_b_01L말하자면 세 종류 상무자성(ㆍ생무자성ㆍ승의무자성) 등이다.
나) 문답으로 자세히 해석함
경 선남자여,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상무자성성인가?
석 이하는 두 번째로 문답으로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교법에 의거해서 바로 설한 것이고, 나중은 비유를 들어 거듭 해석한 것이다.
(가) 교법에 의거해서 바로 설함앞서 교법을 설하는 중에 세 종류 무성을 (밝히면서 경문을)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 중에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질문이고, 둘째는 대답이며, 셋째는 징문이고, 넷째는 해석이며, 다섯째는 결론이다.
a. 질문이것은 질문이다.
b. 대답
경 모든 법의 변계소집상을 말한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질문에 의거해서 바로 답한 것이다. 말하자면 (상무자성성은) 삼성 중에 변계소집遍計所執을 자성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c. 징문
경 어째서인가?
석 세 번째는 징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소집상所執相을 상무성이라 설하는가?
d. 해석
경 이것은 가명으로 말미암아 상으로 안립된 것이지 자상으로 말미암아 상으로 안립된 것은 아니니,
석 네 번째는 징문에 의거해서 따로 해석한 것이다.“이것은 가명으로 말미암아 상으로 안립된 것이지”라는 것은 ‘상相’이라는 말을 해석한 것이니, 말하자면 (변계소집상은) 명언에 의해 안립된 상이기 때문이다.51)“자상으로 말미암아 상으로 안립된 것은 아니니”라고 한 것은 ‘무성無性’이라는 말을 해석한 것이다.52)총괄해서 그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변계소집은 (범부의) 정 속에 있는(情有) 상일 뿐 이치상으로는 없기(理無) 때문에 ‘무성’이라 설하였고,53) 이로 인해 (상무자성성은) ‘저 소집상을 자성으로 삼는다’고 설한 것이다.≻따라서 『현양성교론』에서는 ‘소집성은 체상體相이 없기 때문에 무자성성이라 한다’고 하였다.54) 또 『삼무성론』에서는 “현현된 바와 같은 이러한 상相은 실로 무無이다. 따라서 분별성(변계소집성)은 ‘무상無相’을 자성으로 삼는다.”55)라고 하였다. 『유가사지론』 제73권에서는 “상무자성성이란 무엇인가? -
001_0246_b_01L相無自性等。
001_0246_b_02L善男子。云何諸法相無自性性。
001_0246_b_03L釋曰。此下第二問答廣釋。於中有
001_0246_b_04L二。初依法正說。後擧喩重釋。前法
001_0246_b_05L說中。三種無性。卽分爲三。此卽初也。
001_0246_b_06L於中有五。一問。二答。三徵。四釋。五
001_0246_b_07L結。此卽問也。
001_0246_b_08L謂諸 [101] 遍計所執相。
001_0246_b_09L釋曰。此卽第二依問正答。謂三性
001_0246_b_10L中遍計所執。以爲自性。
001_0246_b_11L何以故。
001_0246_b_12L釋曰。第三徵也。以何義故。說所執
001_0246_b_13L相。名相無性。
001_0246_b_14L此由假名安立爲相。非由自相安立爲
001_0246_b_15L相。
001_0246_b_16L釋曰。第四依徵別釋。此由假名安立
001_0246_b_17L爲相者。此釋相言。謂依名言所立相
001_0246_b_18L故。非由自相安立爲相者。釋無性言。
001_0246_b_19L總解意云。遍計所執。情有之相。以理
001_0246_b_20L無故。說爲無性。由此卽說彼所執相
001_0246_b_21L以爲自性。故顯揚云。謂所執性體相
001_0246_b_22L無故。名無自性性。又三無性云。如所
001_0246_b_23L顯現是相實無。故分別性。無 [102] 相爲性。
001_0246_b_24L瑜伽七十三云。云何相無自性性。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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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6_c_01L모든 법의 세속언설자성世俗言說自性56)을 말한다.”57)라고 하였다.
e. 결론
경 그러므로 ‘상무자성성’이라 이름한다.
석 이것은 다섯 번째로 결론지은 문장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
경 모든 법들의 생무자성성이란 무엇인가?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생무성生無性을 해석한 것이다. 경문에 다섯 단락이 있으니, 앞에 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a. 질문이것은 질문이다.
b. 대답
경 모든 법들의 의타기상을 말한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질문에 의거해 바로 답한 것이다. 말하자면 (생무자성성이란) 삼성 중에서 의타기성을 자성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c. 징문
경 어째서인가?
석 세 번째는 징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의타기성을 ‘생무성’이라 설했는가?
d. 해석
경 이것은 다른 연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지 자연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석 이것은 네 번째로 징문에 대해 따로 해석한 것이다.“이것은 다른 연의 힘에 의지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란 ‘생生’이라는 말을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연의 힘에 의지함으로써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이라 설한다는 것이다.“자연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것은 ‘무성無性’을 해석한 것이다.58)총괄적으로 그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의타의 제법은 인연에 의지해서 (생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한다(生)’고 하는데, 그러나 자연적으로 자재천自在天 등의 그릇된 인(邪因)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님을 일컬어 ‘무생無生’이라 한다.59) ≻따라서 『현양성교론』에서는 의타기성은 연의 힘에 의해 생긴 것이지 자연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생함이 없다’고 하였다.60) 또 『삼무성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타기성이란 연의 힘으로 생겨난 것이지 스스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의타기는 ‘무생無生’을 자성으로 삼는다.≻61) 『유가사지론』 제73권에서는 “어떤 것이 생무자성성인가? 말하자면 일체행一切行은 여러 연들에 의해 생겨나니, 연의 힘 때문에 있는 것이지 자연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62)라고 하였다.
e.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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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6_c_01L一切法世俗言說自性。
001_0246_c_02L是故說名相無自性性。
001_0246_c_03L釋曰。此卽第五結文可知。
001_0246_c_04L云何諸法生無自性性。
001_0246_c_05L釋曰。自下第二釋生無性。文有五
001_0246_c_06L段。准上可知。此卽問也。
001_0246_c_07L謂諸法依他起相。
001_0246_c_08L釋曰。此卽第二依問正答。謂三性中。
001_0246_c_09L依他起性。以爲自性。
001_0246_c_10L何以故。
001_0246_c_11L釋曰。第三徵也。以何義故。說依他
001_0246_c_12L起。名生無性。
001_0246_c_13L此由依他緣力故有。非自然有。
001_0246_c_14L釋曰。此卽第四依徵別釋。此由依他
001_0246_c_15L緣力故有者。此釋生言。謂由依他緣
001_0246_c_16L力故有。故說爲生。非自然有者。釋
001_0246_c_17L無性也。總解意云。依他諸法。依因
001_0246_c_18L緣故。說之爲生。而非自然自在天等
001_0246_c_19L邪因所生。說名無生。故顯揚云。依
001_0246_c_20L他起性。緣力所生。非自然生故無生。
001_0246_c_21L又三無性云。依他性者。由緣力生。不
001_0246_c_22L由自生。是故依他。無生爲性。依瑜伽
001_0246_c_23L七十三云。云何生無自性性。謂一切
001_0246_c_24L行。衆緣所生。緣力故有。非自然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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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7_a_01L경 그러므로 ‘생무자성성’이라고 이름한다.
석 다섯 번째는 결론짓는 문장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승의무자성성勝義無自性性
경 모든 법들의 승의무자성성이란 무엇인가?
석 이하는 세 번째로 승의무성勝義無性을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의타기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해석하였고, 나중의 “다시(復有)” 이하에서는 원성실성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해석하였다.63)
a. 의타기依他起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해석함전자 중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a) 질문이것은 질문이다.
b) 대답
경 모든 법은 ‘생무자성성’이기 때문에 ‘무자성성’이라 이름하는데, 곧 연생법을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고도 이름한다.
석 두 번째는 질문에 의거해서 바로 답한 것이다. 경문에 두 개의 절이 있다.처음에는 장차 세 번째 것(승의무자성성)을 해석하려고 이전의 두 번째 것(생무자성성)을 표시해 놓았으니, 의미를 해석하면 이전과 같다.64)이후에 “곧 연생법을……”이라 한 것은 두 번째 자성에 의거해서 세 번째 무성無性을 건립한 것이다. 말하자면 의타기에는 원성실이 없으니, 따라서 연생법(의타기)을 ‘생무자성성’이라 이름할 뿐만 아니라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고도 이름한다는 것이다.65)따라서 『현양성교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타기자성에서는, 이상異相으로 인해,66) 또한 승의무성을 건립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의타기자성에는) 승의의 성질이 없기 때문이다.”67)
c) 징문
경 어째서인가?
석 세 번째는 징문이다. 어째서 연생법을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이름하는가?
d) 해석
경 모든 법들 가운데서 만약 이것이 청정한 소연경계라면 나는 그것이 ‘승의무자성성’이라고 현시하겠지만, 의타기상은 이런 청청한 소연경계가 아니다.
석 네 번째는 징문에 의거해서 따로 해석한 것이다. 경문에 두 구절이 있다. -
001_0247_a_01L是故說名生無自性性。
001_0247_a_02L釋曰。第五結文可知。
001_0247_a_03L云何諸法勝義無自性性。
001_0247_a_04L釋曰。此下第三釋勝義無性。於中有
001_0247_a_05L二。初約依他起。解勝義無性。後復
001_0247_a_06L有下。約圓成實。解勝義無性。前中
001_0247_a_07L有五。准上應知。此卽問也。
001_0247_a_08L謂諸法由生無自性性故。說名無自性
001_0247_a_09L性。卽緣生法。亦名勝義無自性性。
001_0247_a_10L釋曰。第二依問正答。文有兩節。初
001_0247_a_11L將釋第三。牒前第二。釋義如前。後
001_0247_a_12L卽緣生法等者。依第二性。立第三無
001_0247_a_13L性。謂依他起上。無圓成實。故緣生法。
001_0247_a_14L非但說名生無自性性。亦名勝義無
001_0247_a_15L自性性。故顯揚云。依 [103] 他起 [104] 性。由異
001_0247_a_16L相故。亦得建立爲勝義無性。何以故。
001_0247_a_17L由無勝義性故。
001_0247_a_18L何以故。
001_0247_a_19L釋曰。第三徵也。何故緣生。亦名勝義
001_0247_a_20L無自性性。
001_0247_a_21L於諸法中。若是淸淨所緣境界。我顯示
001_0247_a_22L彼以爲勝義無自性性。依他起相。非
001_0247_a_23L是淸淨所緣境界。
001_0247_a_24L釋曰。第四依徵別釋。文有二節。初
-
001_0247_b_01L처음에는 (정지淨智의) 소연所緣인 청정한 승의에 대해 해석하였고,68) 뒤의 구는 의타기에 저 청정한 승의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69)이것은 ‘진여’라는 정지의 소연(淨智所緣)을 ‘청정한 승의’라고 이름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현양성교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승의는 곧 청정한 소연성所緣性임을 알아야 한다. 어째서인가? 이 경계를 반연하여 마음의 청정을 얻기 때문이다.≻70)
e) 결론
경 그러므로 또한 ‘승의무자성성’이라 설한 것이다.
석 다섯 번째는 결론짓는 문장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b. 원성실圓成實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해석함
경 다시 모든 법들의 원성실상이 있으니 또한 (이것을) ‘승의무자성성’이라고 한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원성실에 의거해서 세 번째 무성(승의무성)을 해석한 것이다.71) 이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표장이고, 둘째는 징문이며, 셋째는 해석이고, 넷째는 결론이다.
a) 표장이것은 표장이다. 말하자면 (이 승의무성은) 삼성 중에서 원성실성을 자성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b) 징문
경 어째서인가?
석 두 번째는 그 이유를 따진 것이다. 어째서 다시 원성실성을 ‘승의’라고 이름하고, 또한 ‘무성’이라 이름한다고 설했는가.
c) 해석
경 일체 제법의 법무아성을 ‘승의’라고 하고 또한 ‘무자성성’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이것은 일체법의 승의제이기 때문이고, 무자성성에 의해 현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석 세 번째는 징문에 의거해서 바로 해석한 것이다. 경문에 두 개의 절이 있다. 처음은 표장이고, 뒤는 해석이다.말하자면 법무아성法無我性에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승의勝義라고 하고 둘째는 무자성성無自性性이라 한다. 이것은 모든 법 중에 있는 승의제勝義諦이기 때문이고, 모든 법의 무성無性에 의해 현현되는 이치이기 때문이다.72) 따라서 『현양성교론』에서는 원성실은 승의무성勝義無性이니, “이 자성의 체가 승의이고 또 제법의 무성이기 때문이다.”73)라고 하였다. 또다시 그 논에서는 -
001_0247_b_01L釋所無 [105] 淸淨勝義。後明依他無彼淸
001_0247_b_02L淨勝義。此釋眞如淨智所緣。名爲淸
001_0247_b_03L淨勝義。故顯揚云。當知。勝義卽是
001_0247_b_04L淸淨之所緣性。何以故。由緣此境得
001_0247_b_05L心淸淨故。
001_0247_b_06L是故亦說名爲勝義無自性性。
001_0247_b_07L釋曰。第五結文可知。
001_0247_b_08L復有諸法圓成 [106] 相。亦名勝義無自性性。
001_0247_b_09L釋曰。此下第二約圓成實。釋 [107] 三無性。
001_0247_b_10L於中有四。一標。二徵。三釋。四結。此
001_0247_b_11L卽標也。謂三性中。圓成實性。以爲
001_0247_b_12L自性。
001_0247_b_13L何以故。
001_0247_b_14L釋曰。第二徵所由也。何以復說圓成
001_0247_b_15L實性。名爲勝義。亦名無性。
001_0247_b_16L一切諸法法無我性。名爲勝義。亦得名
001_0247_b_17L爲無自性性。是一切法勝義諦故。無自
001_0247_b_18L性性之所顯故。
001_0247_b_19L釋曰。第三依徵正釋。文有二節。初標。
001_0247_b_20L後釋。謂法無我性。有其二義。一名
001_0247_b_21L勝義。二名無自性性。是諸法中勝
001_0247_b_22L義諦故。諸法無性所顯理故。故顯揚
001_0247_b_23L云。謂圓成實勝義無性。由此自性體
001_0247_b_24L是勝義。又是諸法無性性 [108] 故。又復彼
-
001_0247_c_01L“이 자성이 곧 승의이고 또한 무성이니, 희론과 아ㆍ법이 없는 성질이기 때문이다.”74)라고 하였다.『삼무성론』에 의하면 이와는 같지 않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실성眞實性(원성실성)에 있어서는 진실眞實 (그 자체가) 무성無性이기 때문에 무성이라 설한다’고 했는데, 이 진실성에 다시 별도의 자성은 없고 도리어 이전의 두 가지 자성의 무無가 바로 진실성이다. 진실 (그 자체가) 바로 ‘무상無相’이고 ‘무생無生’이기 때문이다. 모든 유위법은 이 분별성(변계소집성)ㆍ의타성이라는 두 종류 자성을 벗어나지 않고, 이 두 가지 자성이 이미 진실로 무상이고 무생이다.75) 이런 도리에 따르면, 모든 법들은 ‘동일한 무성(同一無性)’이고, 이 동일한 무성에 있어서는 진실이 바로 무無이자 진실이 바로 유有이다. 진실로 ‘무’인 것은 이 분별성ㆍ의타성 두 가지의 ‘유’이고, 진실로 ‘유’인 것은 이 분별성ㆍ의타성 두 가지의 ‘무’이니,76) 따라서 ‘무’라고도 말할 수 없고 또한 ‘유’라고도 말할 수 없다.……이하 생략……”77)해 (『삼무성론』은) 통틀어 의타성까지 부정하기 때문에 이 경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78)
d) 결론
경 이런 인연으로 ‘승의무자성성’이라고 한다.
석 이것은 네 번째로 결론짓는 문장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의 문제들을 문답으로 결택함문 이 『해심밀경』에 따르면 승의무성勝義無性에는 본래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의타기성이고, 둘째는 원성실성이다. 그런데 어째서 유식30송에서는 후자만 설하고 전자는 설하지 않았는가?79)해 실제로는 두 가지 의미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경문과 『현양성교론』에서는 모두 이와 같이 설하길, ‘의타기성에는 승의가 없기 때문에 또한 승의무성이라고도 설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 논들에서 전자를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성유식론』 제9권에 나온 호법護法의 해석에서 말하길, “두 번째 것과 혼동될까 해서 여기서는 설하지 않았다.”80)라고 하였다.81)
문 이 『해심밀경』의 뜻은 삼성三性에 의거해서 삼무성三無性을 건립하려는 것이니, (삼무성의) 체는 곧 삼성이다. 어째서 『삼무성론』에서는 하나의 진여에서 삼무성을 안립하고, -
001_0247_c_01L云。由此自性。卽是勝義。亦是無性。由
001_0247_c_02L無戲論我法性故。依三無性論。與此
001_0247_c_03L不同。故彼云。約眞實性由眞實無
001_0247_c_04L性故說無性者。此眞實性。更無別性。
001_0247_c_05L還卽前兩性之無。是眞實性。眞實是
001_0247_c_06L無相無生故。一切有爲法。不出此分
001_0247_c_07L別依他兩性。此三 [109] 性旣眞實無相無
001_0247_c_08L生。由此理故。一切諸法。同一無性。
001_0247_c_09L此一無性。眞實是無。眞實是有。眞
001_0247_c_10L實無。此分別依他二有。眞實有。此
001_0247_c_11L分別依他二無。故不可說無 [110] 。不 [111] 可說
001_0247_c_12L有 [112] 。乃至廣說。解云。通遣依他。故不
001_0247_c_13L同此。
001_0247_c_14L由此因緣。名爲勝義無自性性。
001_0247_c_15L釋曰。此卽第四結文可知。問。若依
001_0247_c_16L此經。勝義無性。自有二種。一依他
001_0247_c_17L起。二圓成實。如何三十唯識。說後
001_0247_c_18L非前。解云。據實具有二義。故此經
001_0247_c_19L文及顯揚論。皆作是說。依他起性無
001_0247_c_20L勝義故。亦得說爲勝義無性。而諸論
001_0247_c_21L中不明前者。成唯識第九卷中。護法
001_0247_c_22L釋云。而濫第二。故此不說。問。此經
001_0247_c_23L意。卽依三性。立三無性。體卽三性。
001_0247_c_24L何故三無性論。於一眞如。立三無性。
-
001_0248_a_01L따라서 『삼무성론』 제1권에서 “이 삼성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설하였다. 삼무성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무성의 이치(一無性理)임을 알아야 한다. 분별성에 의거할 경우는 상의 자성 없음(相無性)으로 인해 ‘무성無性’이라 하고, 의타기성에 의거할 경우는 생의 자성 없음(生無性)으로 인해 ‘무성’이라 하며, 진실성의 경우는 진실 그 자체가 자성 없음(眞實無性)으로 인해 ‘무성’이라 한다.”82)라고 하였는가? 구체적인 것은 그 논에서 설한 것과 같다.해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첫째, 진제 삼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의 진여에서 삼성을 버리기 때문에 세 종류 무자성성을 설한 것이다. 이 중에 원성실성은 안립제安立諦에 속하고 삼무성은 모두 비안립제非安立諦에 속하니,83) 예를 들면 『삼무성론』에서 설한 것과 같다.≻둘째, 대당 삼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를 들면 『현양성교론』 등에서 ‘삼성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한다’고 했는데, 이것을 정의로 삼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세친 보살은 『유식삼십론송』에서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어 말한다. “이 삼성에 의거해서 저 삼무성을 세웠기 때문에 부처님은 밀의로 모든 법의 자성 없음을 설하셨네.”84) (이에 대해) 호법은 해석하길, 유와 무에 대해 총괄해서 ‘자성 없음’을 설하였기 때문에 ‘밀의’라고 이름한 것이라 하였다.85) 또 『현양성교론』은 무착이 지은 것인데, 『섭대승론』 등과 더불어 동일한 의미를 똑같이 나타내었다. 또 『유가사지론』에서는 이 『해심밀경』과 『삼무성론』을 자세히 인용했는데, (‘무성’이란) 유有(원성실, 의타기)와 무無(변계소집)에 공통되는 것이다.따라서 『삼무성론』의 (말은) 번역가의 오류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삼십유식三十唯識」(유식30송)과 『삼무성론』은 세친이 지은 것인데, 어떻게 두 논에 이런 차이가 있겠는가? 또 저 세친은 미륵종과 무착 등에 의거하고 있다. 따라서 ‘동일한 무성(同一無性)’이라 한 것은 진제의 오류일 뿐임을 알 수 있다.86)혹은 지금 진제가 (번역한) 『삼무성론』을 살펴보면 이것은 무착이 지은 『현양성교론』 「무자성품無自性品」에 해당하는데,87) 저 진제 역은 별본別本이라 볼 수도 있다.88)목록과 『현양성교론』을 살펴보라. 아직 명료하지가 않다.89)
(나) 비유를 들어 거듭 해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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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8_a_01L故三無性論第一卷云。約此三性。說
001_0248_a_02L三無性。由三無性。應知。是一無性理。
001_0248_a_03L約分別者。由相無性。說名無性。依 [113]
001_0248_a_04L他起者。由生無性。說名無性。眞實
001_0248_a_05L性者。由眞實無性。故說無性。具如
001_0248_a_06L彼說。解云。此有兩釋。一眞諦三藏
001_0248_a_07L云。於一眞如。遣三性故。說爲三種
001_0248_a_08L無自性性。於中。圓成實性。安立諦攝。
001_0248_a_09L三無性者。皆非安立。如三 [114] 性論。二大
001_0248_a_10L唐三藏云。如顯揚等。卽依三性。立
001_0248_a_11L三無性。以此爲正。所以者何。世親
001_0248_a_12L菩薩。三十唯識。作此頌言。卽依此
001_0248_a_13L三性。立彼三無性。故佛密意說。一
001_0248_a_14L切法無性。護法釋云。於有及無。總
001_0248_a_15L說無性。故名密意。又顯揚論。無著
001_0248_a_16L所造。與攝大乘等。同顯一義。又瑜
001_0248_a_17L伽論。廣引此經及三無性。通有及無。
001_0248_a_18L故知三無性論。譯家謬也。所以者何。
001_0248_a_19L三十唯識。三無性論。世親所造。如何
001_0248_a_20L二論。有此差別。又彼世親。依彌勒宗
001_0248_a_21L及無著等。故知同一無性者。眞諦謬
001_0248_a_22L耳。或可今勘眞諦三無性論。卽無著
001_0248_a_23L所造顯揚論無自性品。然彼眞諦譯
001_0248_a_24L爲別本。須勘目錄及
顯揚。未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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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8_b_01L경 선남자여, 비유하면 허공 꽃과 같아서 ‘상무자성성’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비유를 들어 거듭 해석한 것이다. 삼무성을 해석하므로 (경문도) 세 가지로 구분된다.
㉮ 상무자성성을 해석함이것은 첫 번째로 ‘상무자성성’을 해석한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 꽃과 같아서 어른거리는 눈병(眩翳)으로 인해 허공 가운데서 꽃과 흡사한 모양이 나타나지만 실제로 허공에는 본래 꽃은 없으니, 변계소집도 또한 이와 같다. 즉 변계소집을 최초의 무성無性으로 삼았기 때문에 ‘상무자성성’이라 한 것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 생무자성성 및 일부의 승의무자성성을 해석함
경 비유하면 마치 환의 형상과 같아서, 생무자성성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하고, 일부의 승의무자성성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석 두 번째는 생무성生無性 및 일부의 승의무성(一分勝義無性)을 해석한 것이다.90) 예를 들면 『아비달마경阿毗達摩經』에서 ‘환幻’ 등의 여덟 가지 비유를 설하여 의타기성을 나타낸 것과 같다.91) 지금 이 두 번째 생무자성성 및 일부의 승의무자성성이 모두 의타기를 자성으로 삼기 때문에 환의 형상과 같다는 것 또한 그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문 『대반야경』 등에서는 ‘환’ 등을 들어서 그 공空의 의미를 비유했는데, 어째서 이 『해심밀경』에서는 (그 ‘환’으로) 의타기를 비유했는가?해 ‘환’ 등에는 본래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실유하지 않음에도 마치 실유처럼 나타난 것(非有似有),92) 둘째는 실유하지 않는 상像 등이다. 그러므로 두 경은 각기 하나의 뜻에 의거하였으니, 따라서 서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 일부의 승의무자성을 해석함
경 비유하면 허공이 오직 많은 색들의 자성 없음에 의해 현현되고 모든 곳에 편재하는 것처럼, 일부의 승의무자성성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법무아성에 의해 현현되기 때문이고, 모든 것에 편재하기 때문이다.
석 이것은 세 번째로 일부의 승의무자성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93)‘비유하면 허공과 같다’고 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허공은) 색의 없음에 의해 현현되고, 둘째로 -
001_0248_b_01L善男子。譬如空華。相無自性性。當知
001_0248_b_02L亦爾。
001_0248_b_03L釋曰。自下第二擧喩重釋。釋三無
001_0248_b_04L性。卽分爲三。此卽第一釋相無自性
001_0248_b_05L性。譬如空華。由眩翳故。於虛空中。
001_0248_b_06L似華相現。據實空中。本來無華。遍計
001_0248_b_07L所執。亦復如是。卽用所執。爲初無
001_0248_b_08L性。故言相無自性性。當知亦爾。
001_0248_b_09L譬如幻像。生無自性性。當知亦爾。一分
001_0248_b_10L勝義無自性性。當知亦爾。
001_0248_b_11L釋曰。第二釋生無性及一分勝義無
001_0248_b_12L性。如阿毗達摩經。說幻等八喩。顯
001_0248_b_13L依他起。今此第二生無自性性。及
001_0248_b_14L一分勝義無自性性。皆用依他。以爲
001_0248_b_15L自性。故如幻像。當知亦爾。問。大般
001_0248_b_16L若等。卽用幻等。喩其空義。如何此經。
001_0248_b_17L喩依他起。解云。幻等自有二義。一
001_0248_b_18L非有似有。二無實像等。是故二經各
001_0248_b_19L據一義。故不相違。
001_0248_b_20L譬如虗空。唯是衆色無性所顯。遍一切
001_0248_b_21L處。一分勝義無自性性。當知亦爾。法
001_0248_b_22L無我性之所顯故。遍一切故。
001_0248_b_23L釋曰。此卽第三釋一分勝義無自性。
001_0248_b_24L譬如虗空。有其二義。一無色所顯。二
-
001_0248_c_01L모든 곳에 편재한다는 것이다. ‘진여라는 승의무자성성(眞如勝義無自性性)’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하니, 첫째는 법무아성法無我性에 의해 현현되기 때문이고, 둘째는 모든 법에 편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지경론』에서는 ‘첫 번째 허공의 비유는 청정한 법계를 비유한 것’이라 하였는데,94) 이 (경문도) 또한 이와 같다.문 『대법론』과 『유가사지론』에서는 ‘색이 없는 곳’을 비유하여 허공이라 설했고, 『불지경론』과 『성유식론』에 의하면 ‘오온이 없는 곳’을 허공이라 설했는데, 어떻게 회통시켜 해석하겠는가?해 『유가사지론』과 『대법론』 등은 수전리문隨轉理門으로 설하였으니 살바다종과 동일하고, 『성유식론』 등의 논은 진실리문眞實理門으로 설한 것이다.95) 각기 하나의 의미에 의거하였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다) 해석하고 나서 총결지음
경 선남자여, 나는 이와 같은 세 종류 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밀의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하였다.
석 이것은 세 번째로 해석하고 나서 총결한 것이다.
나. 처음ㆍ마지막의 무성에 의거해서 ‘일체법무생一切法無生’ 등을 해석함96)
경 승의생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상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밀의로 ‘모든 법들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였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처음과 마지막의 무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생함이 없다’는 등의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상무자성성에 의거해서 ‘생함이 없다’는 등의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나중의 “선남자여” 이하는 승의무자성성에 의거해서 ‘생함이 없다’는 등의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가) 상무자성에 의거해서 ‘무생無生’ 등의 문구를 해석함전자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표장이고, 둘째는 징문이며, 셋째는 해석이고, 넷째는 결론이다.
(가) 표장이것은 첫 번째로 이치로써 종지를 표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여러 경들에서 ‘모든 법들은 생함이 없다’는 등의 말을 설한 것은, 삼무성 중에 상무성에 의거해서 ‘생함이 없다’는 등을 설한 것이다.
(나) 징문
경 어째서인가?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외인이 되물은 것이다.
(다)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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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8_c_01L遍一切處。眞如勝義無自性性。當知
001_0248_c_02L亦爾。一法無我性之所顯故。二遍一
001_0248_c_03L切法故。故佛地經。一虗空喩。喩淨法
001_0248_c_04L界。此亦如是。問。對法瑜伽。喩色無
001_0248_c_05L處。說爲虗空。依佛地論及成唯識。五
001_0248_c_06L蘊無處。說爲虗空。如何會釋。解云。瑜
001_0248_c_07L伽及對法等。隨轉理門。同薩婆多。唯
001_0248_c_08L識等論。眞實理門。各據一義。故不
001_0248_c_09L相違。
001_0248_c_10L善男子。我依如是三種無自性性。密意
001_0248_c_11L說言。一切諸法。皆無自性。
001_0248_c_12L釋曰。此卽第三釋已總結。
001_0248_c_13L勝義生。當知。我依相無自性性。密意說
001_0248_c_14L言。一切諸法。無性 [115] 。無生無滅。本來寂
001_0248_c_15L靜。自性涅槃。
001_0248_c_16L釋曰。自下第二約初後無性。釋一切
001_0248_c_17L法無生等句。於中有二。初約相無自
001_0248_c_18L性性。釋無生等句。後善男子下。約勝
001_0248_c_19L義無自性性。釋無生等句。前中有四。
001_0248_c_20L一標。二徵。三釋。四結。此卽第一以
001_0248_c_21L理標宗。謂諸經說一切諸法無生等
001_0248_c_22L言。三無性中。約相無性。說無生等。
001_0248_c_23L何以故。
001_0248_c_24L釋曰。此卽第二外人反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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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9_a_01L경 만약 자상自相들이 전혀 있지 않다면 곧 생함이 있지 않고,97) 생함이 없다면 곧 멸함도 없으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면 곧 본래 적정하고, 본래 적정하다면 곧 자성열반이다. 이 중에 조금이라도 어떤 것이 있어서 다시 그로 하여금 반열반하게 하는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석 이것은 세 번째로 해석한 것이다. 경문에 네 구절이 있다. 첫째는 ‘생함이 없음’을 해석한 것이고, 둘째는 ‘멸함이 없음’을 해석한 것이며, 셋째는 ‘본래 적정함’을 해석한 것이고, 넷째는 ‘자성열반’을 해석한 것이다.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으므로 번거롭게 해석하지 않겠다.
(라) 결론
경 그러므로 나는 상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밀의로 ‘모든 법은 생함이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였다.
석 이것은 네 번째로 결론짓는 문장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승의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무생’ 등의 문구를 해석함
경 선남자여, 나는 또한 법무아성에 의해 현현된 승의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밀의로 ‘모든 법들은 생함이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였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승의무자성성에 의거해서 ‘생함이 없다’는 등의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표장이고, 둘째는 징문이며, 셋째는 해석이고, 넷째는 결론이다.
(가) 표장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원성실성이라는 승의제에는 네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생함이 없고, 둘째는 멸함이 없으며, 셋째는 본래 적정하고, 넷째는 자성열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경에서 또한 원성실성이라는 승의무성에 의거해서 ‘생함이 없다’는 등을 설한 것이다.
(나) 징문
경 어째서인가?
석 두 번째는 외인이 되물은 것이다. 말하자면 외인이 되묻기를, ‘네 가지 뜻을 설하기는 했지만 아직 그 이유(因)를 설명한 것은 아니니, 어떤 이유에서 무생無生 등이라 하는가’라고 한 것이다.
(다) 해석
경 법무아성에 의해 현현된 승의무자성성은 상상시常常時에 -
001_0249_a_01L若諸自相都無所有。則無有生。若無
001_0249_a_02L有生。則無有滅。若無生無滅。則本來
001_0249_a_03L寂靜。若本來寂靜。則自性涅槃。於中
001_0249_a_04L都無少分所有更可令其般涅槃故。
001_0249_a_05L釋曰。此第三釋。文有四節。一釋無
001_0249_a_06L生。二釋無滅。三釋本來寂靜。四繹
001_0249_a_07L自性涅槃。如經可知。故不繁釋。
001_0249_a_08L是故我依相無自性性。密意說言。一切
001_0249_a_09L諸法。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
001_0249_a_10L釋曰。此卽第四結文。可知。
001_0249_a_11L善男子。我亦依法無我性所顯勝義無
001_0249_a_12L自性性。密意說言。一切諸法。無生無滅。
001_0249_a_13L本來寂靜。自性涅槃。
001_0249_a_14L釋曰。自下第二約勝義無自性性。釋
001_0249_a_15L無生等句。於中有四。一標。二徵。三
001_0249_a_16L釋。四結。此卽初也。謂圓成實實 [116] 勝
001_0249_a_17L義諦中。有其四義。一者無生。二者
001_0249_a_18L無滅。三本來寂靜。四自性涅槃。故諸
001_0249_a_19L經中。亦依圓成勝義無性。說無生等。
001_0249_a_20L何以故。
001_0249_a_21L釋曰。第二外人反徵。謂外反徵。雖說
001_0249_a_22L四義。未辨其因。依何因故。名無生
001_0249_a_23L等。
001_0249_a_24L法無我性所顯勝義無自性性。於常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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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9_b_01L항항시恒恒時에98) 모든 법들의 법성으로 안주하기 (때문이고), 무위이기 (때문이며), 모든 잡염99)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석 이하는 세 번째로 징문에 의거해서 바로 해석한 것이다. 경문을 구별하면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세 가지 이유를 총괄해 표명함으로써 징문에 답한 것이고, 나중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생함이 없다’는 등의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 세 가지 이유를 총괄해서 표명함으로써 징문에 답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경문에 두 구절이 있다.처음에는 승의무성의 체體를 나타냈다. 그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의타기이고 둘째는 원성실이다. 지금 이 경에서는 후자를 취한 것이지 전자를 취한 것은 아니다.100)뒤의 “상상시에……”란 세 가지 이유를 바로 밝힌 것이다. 첫째, 상상시에 항항시에 제법의 법성으로 안주하기 때문에 무위이다. 둘째, 무위이기 때문에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 이것은 곧 “안주하기 때문에” 및 “무위이기 때문에”라는 두 가지 이유로써 ‘생함이 없다’거나 ‘멸함이 없다’는 두 가지 의미를 성립시킨 것이다. “모든 잡염과는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세 번째 이유로써 경에서 말한 ‘본래적정 및 자성열반’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성립시킨 것이다. 하나의 ‘때문(故)’이라는 글자가 세 가지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에 세 가지 이유가 되는 것이다.101)
㉯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무생’ 등을 해석함
경 상상시에 항항시에 제법의 법성으로 안주하기 때문에 무위이고, 무위이기 때문에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것이다.102)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세 가지 인因을 거듭 해석함으로써 ‘무생’ 등을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두 가지 이유로써 ‘무생’ 등을 해석한 것이고, 나중은 ‘모든 잡염법과는 상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써 ‘본래적정 및 자성열반’이 성립함을 해석한 것이다.
a. 두 가지 이유로써 무생 등을 해석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법무아法無我라는 승의제勝義諦의 이치는 상상시에 항항시에 모든 법의 법성으로 안주하기 때문에 (그것은) ‘무위’임을 성립시킬 수 있고, 무위이기 때문에 ‘생함이 없고 멸함도 없다’는 두 가지 의미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b. ‘모든 잡염과 상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써 ‘본래적정ㆍ자성열반’이 성립함을 해석함
경 모든 잡염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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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9_b_01L時。於恒恒時。諸法法性安住無爲。一
001_0249_b_02L切雜染不相應故。
001_0249_b_03L釋曰。自下第三依徵正釋。文別有二。
001_0249_b_04L初總標三因。以答徵詰。後擧三因。釋
001_0249_b_05L無生等。此卽初也。文有二節。初出
001_0249_b_06L勝義無性體。有其二種。一者依他。二
001_0249_b_07L圓成實。今於此中。取後非前。後於
001_0249_b_08L常常時等者。正明三因。一於常常時。
001_0249_b_09L於恒恒時。諸法法性安住故無爲。二
001_0249_b_10L無爲故無生無滅。此卽安住故及無
001_0249_b_11L爲故二因。成立無生無滅二義也。一
001_0249_b_12L切雜染不相應故者。以第三因。成
001_0249_b_13L立經中本來寂靜及自性涅槃二義也。
001_0249_b_14L以一故字。含有三義故。成三因也。
001_0249_b_15L於常常時。於恒恒時。諸法法性。安住故
001_0249_b_16L無爲。由無爲故。無生無滅。
001_0249_b_17L釋曰。自下第二重釋三因。釋無生等。
001_0249_b_18L於中有二。初以二因。釋無生等。後一
001_0249_b_19L切雜染不相應因。釋成本來寂靜及
001_0249_b_20L自性涅槃。此卽初也。謂法無我勝義
001_0249_b_21L諦理。於常常時。於恒恒時。諸法法性
001_0249_b_22L安住故。得成無爲也。由無爲故。無
001_0249_b_23L生無滅二義得成也。
001_0249_b_24L一切雜染。不相應故。本來寂靜。自性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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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49_c_01L석 이것은 두 번째로 ‘모든 잡염과 상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써 두 가지 의미, 첫째 본래적정과 둘째 자성열반을 성립시킨 것이다.
● ‘삼무성’의 교설이 부동한 이유를 문답으로 결택함문 경에서 설했던 ‘생하지 않음(不生)’ 등의 말은 어째서 오직 처음의 무성無性(상무성)과 마지막 무성(승의무성)에 의거해서 설했는가?103)답 일반적으로 ‘무성’에 대해 논하자면 본래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대승ㆍ소승의 두 가지 장藏에서 공통으로 설해진 무성이다. 둘째는 오직 보살장에서만 설해진 무성이다.‘공통으로 설한 것’이란, 예를 들면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5권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모든 법은 자성이 없다’고 설한 뜻을 이제 현시해 보겠다. ‘자연무自然無’란, 모든 법에 여러 연緣을 떠나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성질(自然有性)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 종류의 무자성의 뜻이라 한다.104) ‘자체무自體無’라는 것은, 법은 멸하고 나면 다시 생기지 않기 때문에 무자성이다. 이것을 다시 한 종류의 무자성의 뜻이라 한다. ‘자성은 견고하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법은 잠깐 생겨나면 한 찰나 후에도 능히 머무는 힘은 없기 때문에 무자성이다. 이와 같은 제법의 무자성의 이치는 성문과도 공유하는 것이다.”105)‘공통되지 않은 것’에 대해 그 논(『섭대승론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집착한(執取)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성이 없음을 인정한다’고 했는데, 이러한 무자성은 성문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은 범부에 의해 집착된 그대로의 변계소집자성이 이와 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뜻을 따르기 때문에, 대승의 이치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한 것이다.106)”107) 『집론』과 『잡집론』 및 『무성론無性論』(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의 뜻도 이와 동일하다.108)
두 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이 경에서는 ‘공통되지 않은 문’에 의거해서 ‘자성 없음’ 등을 설한 것이다.그런데 ‘공통되지 않은 문’으로 ‘자성 없음’ 등을 설한다 해도, 세 종류 무성에 의거해서 (설하는지 아닌지는) 여러 경들이 같지 않다.
본래 어떤 성스런 가르침에서는 처음의 무성(상무자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다’는 등을 설한다. 예를 들면 『광백론』 제10권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부처님께서 스스로 판정하시길, ‘나는 변계소집자성에 의거하여 -
001_0249_c_01L槃。
001_0249_c_02L釋曰。此卽第二一切雜染不相應因。
001_0249_c_03L成立二義。一者木來寂靜。二者自性
001_0249_c_04L涅槃。問。經所說不生等言。如何唯
001_0249_c_05L依初後無性。答。汎論無性。自有二種。
001_0249_c_06L一者大小二藏共說無性。二唯菩薩
001_0249_c_07L藏所說無性。言共說者。如世親攝
001_0249_c_08L論第五卷說。說一切法無自性意。今
001_0249_c_09L當顯示。自然無者。由一切法。無離衆
001_0249_c_10L緣自然有性。是名一種無自性意。自
001_0249_c_11L體無者。由法滅已。不復更生。故無自
001_0249_c_12L性。此後 [117] 一種無自性意。自性不堅住
001_0249_c_13L者。由法纔生。一刹那後。無力能住。故
001_0249_c_14L無自性。如是諸 [118] 無自性理。與聲聞共。
001_0249_c_15L言不共者。卽彼論云。如執取不有故
001_0249_c_16L許無自性者。此無自性。不共聲聞。以
001_0249_c_17L如愚夫所取。遍計所執自性。不如是有。
001_0249_c_18L由此意故。依大乘理。說一切法皆無
001_0249_c_19L自性。集論雜集及性 [119] 論意亦同此。雖
001_0249_c_20L有二說。今此經中。依不共門。說無性
001_0249_c_21L等。然不共門說無性等。依三無性。諸
001_0249_c_22L經不同。自有聖敎。依初無性。說一切
001_0249_c_23L法皆無自性無生滅等。如廣百論第
001_0249_c_24L十卷云。佛自決判。我依遍計所執自
-
001_0250_a_01L그 밖의 경에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라고 설하였다’고 하셨다.”109) 또 『유가사지론』 제74권과 『대승장엄경론』 제5권, 무성과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5권에서도 모두 이 논(『광백론』)과 동일하게 설한다.110) 양본梁本 『섭대승론석』에서는 통틀어 세 종류 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무자성 등을 설명하니, 이 논과는 같지 않다.
본래 어떤 성스런 가르침에서는 삼무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다’고 설하거나, 처음의 무성(상무자성)에 의거해서 ‘자성 없음’ 등을 설한다. (예를 들면) 『유가사지론』 제73권이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세존께서는 어떤 밀의에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하셨는가? 답 저 각각의 교화되는 대상의 세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세 종류 무자성성을 설하셨다.”111)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세존께서는 어떤 밀의에서 ‘모든 법은 생함이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셨는가? 답 상무자성성에 의거해서 이와 같은 말을 설하셨다.”112)
본래 어떤 성스런 가르침에서는 삼무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하거나, 처음과 마지막의 두 가지 (무성에) 의거해서 ‘생함이 없음’ 등을 설한다. 예를 들면 이 경과 『심밀해탈경』에 해당한다.
본래 어떤 성스런 가르침에서는 삼무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모두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다’는 등을 설한다. 예를 들면 『잡집론』 제12권에서 설한 것과 같으니,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가령 방광분方廣分113)에서는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라고 설하였는데, 이것은 어떤 밀의에 의거해서 설한 것인가?……)114) ‘모든 법’이란 삼자성三自性이니, 변계소집자성과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을 말한다. 변계소집자성은 결정코 자상自相이 없고, 자상이 없기 때문에 ‘상무성相無性’이라 이름하니, 상이 자성 없기 때문에 ‘무성’이라 이름한 것이다. 의타기자성은 많은 연을 기다렸다 (생겨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고, 자연적으로 생기는 성질이 없기 때문에 ‘생무성生無性’이라 이름하니, 생이 자성 없기 때문에 ‘무성’이라 설한 것이다. 원성실자성은 청정한 소연이기 때문에, -
001_0250_a_01L性。於餘經中。說一切法。皆無自性。無
001_0250_a_02L生無滅。本來寂靜。1)自 [1] 涅槃。又瑜伽論
001_0250_a_03L第七十四。莊嚴第五。無性世親攝論
001_0250_a_04L第五。並同此說。梁本攝論。通依三種
001_0250_a_05L無自性性。說無自性等。與此不同。自
001_0250_a_06L有聖敎。依三無性。說一切法皆無自
001_0250_a_07L性。依初無性。說無性等。瑜伽論第
001_0250_a_08L七十三。故彼論云。問。世尊依何密
001_0250_a_09L意。說一切法皆無自性。答。由依彼
001_0250_a_10L彼所化勢力故。說三種無自性性。又
001_0250_a_11L云。問。世尊依何密意。說一切法。無
001_0250_a_12L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答。依相
001_0250_a_13L無自性性。說如是言。自有聖敎。依
001_0250_a_14L三無性。說一切法皆無自性。依初後
001_0250_a_15L二。說無生等。如卽此經及深密經。自
001_0250_a_16L有聖敎。依三無性。說一切法皆無自
001_0250_a_17L性無生滅等。如雜集論第十二說。彼
001_0250_a_18L云。一切法者。卽三自性。謂遍計所
001_0250_a_19L執自性。依他起自性。圓成實自性。遍
001_0250_a_20L計所執自性。定無自相。自相無故。名
001_0250_a_21L相無相 [120] 。相無相 [121] 故。名爲無性。依他
001_0250_a_22L起自性。待衆緣故。非自然生。無自然
001_0250_a_23L生 [122] 。無自然生性故。名生無性。生無
001_0250_a_24L性故。說爲無性。圓成實自性。淸淨所
-
001_0250_b_01L의타기에서 변계소집상을 없앰으로써 현현되는 그 자체이기 때문에, 승의가 그 자체이고 또 ‘자성 없음’에 의해 현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승의무성勝義無性’이라 이름하니, 승의 (그 자체가) 자성 없음이기 때문에 ‘무성’이라 이름한 것이다. 이런 도리를 따르기 때문에 여래께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하신 것이지, 모든 종류의 성性과 상相이 모두 없다는 뜻에서 ‘자성 없음’을 설하신 것은 아니다.〔2〕 또 그곳(방광분)에서는 “모든 법들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였다. 이것은 어떤 밀의에 의거해 설한 것인가? (이전의) ‘자성 없음’에 대해 (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함이 없음’ 또한 이러하고, ‘생함이 없음’과 마찬가지로 ‘멸함이 없음’ 또한 이러하며,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음’과 마찬가지로 ‘본래 적정’ 또한 이러하고, ‘본래 적정’과 마찬가지로 ‘자성열반’ 또한 이러하다.115)또 그 논에서는 “상비밀相秘密116)이란 삼자성에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다’는 등을 설한 것이다.”117)라고 하였다.양梁 『섭대승론석』 제6권도 또한 『잡집론』과 동일하다.
이와 같이 여러 교에서 다르게 말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이 ‘버려야 할 자성(所遣性)’은 오직 변계소집성임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광백론』 등에서는 오직 변계소집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다’는 등을 설한 것이다.‘인연생因緣生’의 의미는 없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려 하였다. 그러므로 이 경에서는 통틀어 삼무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고 설하거나, 단지 처음과 마지막의 두 종류 무성(상무성과 승의무성)에 의거해서 ‘생함이 없다’는 등의 문구를 설한 것이다.그런데 의타기는 비록 다른 것에 의지하여 생기하지만, ‘자연적으로 생긴다거나 원인 없이 생긴다’는 의미는 없다. 따라서 『잡집론』 등에서는 갖추어서 삼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다’는 등을 설하였다.삼무성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별장』에서 설한 것과 같다.
(라) 결론경 그러므로 나는 법무아성에 의해 현현되는 승의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밀의로 ‘모든 법은 생함이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고 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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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0_b_01L緣故。於依他起中。無遍計所執相所
001_0250_b_02L顯自體故。勝義爲自體。又無性所顯
001_0250_b_03L故。名勝義無性。勝義無性故。名爲
001_0250_b_04L無性。由此道理。是故如來說一切
001_0250_b_05L法皆無自性。非一切種性相俱無。說
001_0250_b_06L爲無性。又彼說云。一切諸法。無生無
001_0250_b_07L滅。本來寂靜。自性涅槃。此依何密意
001_0250_b_08L說。如無自性。無性 [123] 亦爾。如無生。無
001_0250_b_09L滅亦爾。2)無 [5] 生無滅。本來寂靜亦爾。
001_0250_b_10L如本來寂靜。自性涅槃亦爾。又卽彼
001_0250_b_11L云。相秘密者。謂於三自性。說一切法
001_0250_b_12L皆無自性。無生滅等。梁論第六。亦同
001_0250_b_13L雜集。所以如是諸敎異者。此所遣性。
001_0250_b_14L唯所執性。故廣百論等。唯約遍計所
001_0250_b_15L執。說一切法皆無自性。無生滅等。欲
001_0250_b_16L顯因緣生義不無。是故此經。通依三
001_0250_b_17L無性。說一切法皆無自性。但約初後
001_0250_b_18L二種無性。說無生等句。然依他起。雖
001_0250_b_19L依他起。而無自然無因生義。故雜集
001_0250_b_20L等。具約三性。說一切法無自性。無生
001_0250_b_21L滅等。三無性義。具如別章。
001_0250_b_22L是故我依法無我性所顯勝義無自性
001_0250_b_23L性。密意說言。一切諸法。無生無滅。本來
001_0250_b_24L寂靜。自性涅槃。
-
001_0250_c_01L석 이것은 네 번째로 결론지은 문장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 무성을 설한 밀의密意문 이상에서 설한 것과 같은 모든 밀의의 말은 사비밀四秘密118) 중에서 어떤 밀의에 의거하는가?
해 『잡집론』의 설에 의하면 네 종류 비밀이 있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는 영입비밀令入秘密이고, 둘째는 상비밀相秘密이며, 셋째는 대치비밀對治秘密이고, 넷째는 전변비밀轉變秘密이다. 이와 같은 네 종류가 대승 안에서 여래가 설하신 모든 비밀스런 도리를 간략하게 포섭한다.‘영입비밀’이란 성문승에게 ‘색 등의 모든 법들은 다 자성이 있다’고 설한 것을 말하니, 두려움을 없애어 점차로 성스런 가르침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다.‘상비밀’이란 삼자성에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함이 없고 멸함도 없다’는 등을 설하는 것이다.‘대치비밀’이란 과실이 있는 모든 자들을 조복시키기 위해서 여래가 갖가지 비밀의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덟 종류 장애를 대치시키기 위해서 최상승最上乘을 설하는 것과 같다. 어떤 것들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부처님을 경시하는 것이고, 둘째는 교법을 경시하는 것이며, 셋째는 게으름(懈怠)이고, 넷째는 작은 선행에 희족喜足을 내는 것이며, 다섯째는 탐하는 행(貪行)이고, 여섯째는 거만한 행(慢行)이며, 일곱째는 악작惡作이고, 여덟째는 종성이 일정하지 않은 것(不定性)이다.119)
(해)120) 부처님을 경시하는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지난날 비바시불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 설해 준다. 법을 경시하는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한량없고 항하사처럼 많은 부처님들의 처소에서 대승을 수행해야 이해를 낼 수 있다고 설해 준다. 게으름의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어떤 중생이 안락국安樂國(극락세계)에 태어나길 원한다면 모두 왕생할 수 있고, 무구월광불無垢月光佛의 이름을 칭념稱念하면 결정코 미래에 무상보리를 얻을 수 있다고 설해 준다. 작은 선행에 만족하는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보시 등의 행을 어떤 때는 칭찬해 주고 어떤 때는 헐뜯기도 한다. -
001_0250_c_01L釋曰。第四結文可知。問。如上所說
001_0250_c_02L諸密意言。四秘密中。依何密意。解
001_0250_c_03L云。依雜集說。有四秘密。故彼論云。
001_0250_c_04L一令入秘密。二相秘密。三對治秘密。
001_0250_c_05L四轉變秘密。如是四種。於大乘中。略
001_0250_c_06L攝如來一切所說秘密道理。令入秘
001_0250_c_07L密者。謂於聲聞乘。說色等諸法皆
001_0250_c_08L有自性。爲令無怖畏。漸入聖敎故。相
001_0250_c_09L秘密者。謂於三自性。說一切法皆無
001_0250_c_10L自性。無生無滅等。對治秘密者。謂爲
001_0250_c_11L調伏諸過失者。如來宣說種種秘密 [124] 。
001_0250_c_12L如爲對治八種障故。說最上乘。何等
001_0250_c_13L爲八。一者輕佛。二者輕法。3)三 [2] 懈怠。
001_0250_c_14L四者少善生喜足故。五者貪行。六者
001_0250_c_15L慢行。七者惡作。八者不定性。爲對治
001_0250_c_16L輕佛障故。說往昔毗婆尸佛卽我身
001_0250_c_17L是。爲對治輕法障故。說於無量恒沙
001_0250_c_18L佛所。修行大乘。乃得生解。爲對治懈
001_0250_c_19L怠障故。說有衆生。願生安樂國。一切
001_0250_c_20L得往生。稱念無垢月光佛名。決定當
001_0250_c_21L得無上菩提。爲對治少善喜足障故。
001_0250_c_22L於施等行。或時稱讃。或時毁呰。爲對
001_0250_c_23L「自」下疑脫「性」。「無」上疑脫「如」。「三」
001_0250_c_24L下疑脫「者」。
-
001_0251_a_01L탐하는 행의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불토佛土의 부富ㆍ낙樂의 장엄을 칭찬한다. 거만한 행의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제불을 칭찬하거나 혹은 더욱 수승한 자가 있음을 (칭찬한다.) 후회하는 행(悔行)의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121) 간혹 어떤 중생이 불보살에게 불이익을 주었을 때 그 유정이 비록 경훼輕毀를 행했지만 또한 천天에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종성이 일정하지 않은 장애를 대치시키기 위해, 성문聲聞의 하열한 의요意樂를 버리게 하고 ‘대성문으로서 미래에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기별해 주며, 또 일승 외에 다시 두 번째 승은 없음을 설해 준다.122)
‘전변비밀轉變秘密’이란 경에서 설한 은밀한 언어(名言)를 말한다. 예를 들면 ‘견고하지 않은 것에서 깨달아 견고해지고, 전도에 잘 머물며, 극한 번뇌로 시달린 자가 최상의 보리를 얻는다’고 설하는 것과 같다.123)이 말의 밀의는, 말하자면 산동되지 않은 것(不散動)에서 견고하고 뛰어난 깨달음(堅固勝覺)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견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진실이고 둘째는 산동이다.124) 이 산동으로 인해 마음이 억세게 치닫기(剛逸)125) 때문에 또한 그것을 ‘견고’라고 한다.126)‘전도에 잘 머문다’고 했는데,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의 네 가지 전도를 뒤집어서 ‘무상’ 등이라 여기기 때문에 ‘전도’라고 이름하였고, 여기에서 물러나지 않기 때문에 ‘잘 머문다’고 하였다.127)‘극한 번뇌로 시달린 자’라 한 것은, 오랫동안 정근하고 고행한 자는 극도로 피로에 괴롭혀지고 시달렸기 때문이다.‘최상의 보리를 얻는다’는 것은, 앞에서 설했던 것과 같은 세 가지 일을 갖추면,128) 결정코 빠르게 무상보리를 증득할 것이라는 말이다.129)
지금 이 경(『해심밀경』)에서 밀의를 밝혔으니, 가령 세존께서 말씀하셨듯이 한량없는 문으로 일찍이 온蘊 등의 열세 가지 법문으로 모두 자상이 있음을 설하셨던 것은 네 가지 중에 영입비밀에 해당한다.130)세존께서 다시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고 생함도 멸함도 없다’는 등을 설하셨던 것은 네 가지 중에 상비밀에 해당한다. 무성과 세친의 『섭대승론석』 제5권에서는 삼자성에 의거해서 상비밀을 설했다고 하였다. 『잡집론』 제12권과 『대승장엄경론』 제6권에서는 삼무성에 의거해서 ‘생함이 없다’는 등을 설하신 것은 -
001_0251_a_01L治貪行障故。稱讃佛土富樂莊嚴。爲
001_0251_a_02L對治慢行障故。稱讃諸佛。或有增勝。
001_0251_a_03L爲對治悔行障故。或有衆生。於佛菩
001_0251_a_04L薩。起不饒益。說彼有情。雖行輕毁。
001_0251_a_05L亦得生天。爲對治不定種性故。令捨
001_0251_a_06L聲聞下劣意樂。記大聲聞當得作佛。
001_0251_a_07L又說一乘更無第二。轉變秘密者。謂
001_0251_a_08L經所說隱密名言。如說。覺不1)堅 [1] 。善 [125]
001_0251_a_09L住於顚倒。極煩惱所惱。得最上菩提。
001_0251_a_10L此中密意 [126] 。於 [127] 不散動。起堅固勝覺。所
001_0251_a_11L以者何。堅有二義。一者 [128] 眞 [129] 實。二者✽散
001_0251_a_12L動。由此散動。令心剛逸。故亦名堅。善
001_0251_a_13L✽住於顚倒者。翻 [130] 常樂我常 [131] 四倒。爲無
001_0251_a_14L常等。故名顚倒。於此不退。故名善
001_0251_a_15L✽住。極煩惱所惱者。謂於長時精勤苦
001_0251_a_16L行。極爲勞倦所逼惱故。得最上菩提
001_0251_a_17L者。若具如上所說三事。定速當證無
001_0251_a_18L上菩提。今此經中明密意者。如世尊
001_0251_a_19L說。以無量門。曾說蘊等十三法門。皆
001_0251_a_20L有自相。卽當四中令入秘密。世尊復
001_0251_a_21L說。一切諸法皆無自性。無生滅等。卽
001_0251_a_22L是四中相秘密也。無性世親攝論第
001_0251_a_23L五。約三自性。說相秘密。雜集十二。
001_0251_a_24L莊嚴第六。依三無性。說無生等。名
-
001_0251_b_01L상비밀이라 하였으니, 곧 저 『잡집론』과 『대승장엄경론』의 (설명은) 이 경문과 잘 맞는다.131)
② 삼성관三性觀에 의거해서 삼무성三無性을 건립한 뜻을 설명함132)
경 다시 승의생이여, 유정계에서 모든 유정 부류들이 별도로 변계소집을 관觀해서 자성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세 종류 무자성성을 건립한 것이) 아니고, 또한 저들이 별도로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을 관해서 자성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내가 세 종류 무자성성을 건립한 것도 아니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삼성문三性門133)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한 뜻을 밝힌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반석反釋134)이고, 나중의 “오히려(然由)……” 이하는 순해順解135)이다.
가. 반석反釋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관觀”이란 ‘관대觀待’를 말하거나, 혹은 ‘관찰觀察’을 뜻한다.이 경문의 뜻은 다음과 같다. ≺모든 유정들이 세 종류 자성을 따로따로 관하여 그 차례대로 삼성을 버리기 때문에 삼무성을 건립한 것은 아니다. 어째서인가? 오직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만이 변계소집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두 가지(생무성과 승의무성)도 또한 변계소집성을 버리기 때문이다.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을 버리고서 뒤의 두 종류 무자성성(생무성과 승의무성)을 건립한 것은 아니니,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136)해 또는 이 중에서 세 가지 (무성을) 건립한 뜻은 다음과 같다. ≺유정들이 집착하는 바의 과환을 제거하기 위해서 삼무성을 건립하였지, 저 유정들이 삼성에 대해 하나하나 따로따로 세 가지 자성이 있다고 집착하여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삼무성을 건립한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유정들이 의타기성 및 원성실성을 알지 못하고, 두 가지 자성에서 증익增益의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세 종류 무성을 건립한 것이다.≻137)두 가지 설명 중에서 후자의 설명이 뛰어나니, 경문 구조(文相)와 잘 맞기 때문이다.138) 『심밀해탈경』에 의하더라도 이 경과 어긋나지 않는다.
나. 순해順解
경 그런데 유정들이 의타기자성 및 원성실자성에다 변계소집자성을 증익시키기 때문에 나는 세 종류 무자성성을 건립하였다.
-
001_0251_b_01L相秘密。卽彼雜集及莊嚴論。順此
001_0251_b_02L經文。
001_0251_b_03L復次。勝義生。非由有情界中。諸有情類。
001_0251_b_04L別觀遍計所執 [132] 。爲自性故。亦非由彼別
001_0251_b_05L觀依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爲自性故。
001_0251_b_06L我立三種無自性性。
001_0251_b_07L釋曰。自下第三 [133] 約三性門。立三無性
001_0251_b_08L意。於中有二。初反釋。後然由下順
001_0251_b_09L解。此卽初也。觀謂觀待。或觀察義。
001_0251_b_10L此中意云。謂諸有情。非由別觀三種
001_0251_b_11L自性。如其次第。遣三性故。立三無
001_0251_b_12L性。所以者何。非唯相無自性性遣遍
001_0251_b_13L計所執。餘二亦遣所執性故。不遣依
001_0251_b_14L他及圓成實。立後二種無自性性。依
001_0251_b_15L他圓成不可遣故。又解。此中立三意
001_0251_b_16L者。爲除有情所執過患。立三無性。非
001_0251_b_17L彼有情。於三性中。一一別執有三自
001_0251_b_18L性。爲除彼故。立三無性。但諸有情。
001_0251_b_19L不了依他及圓成實。於二性上。起增
001_0251_b_20L益執。由此。建立三種三 [134] 無性。於二說
001_0251_b_21L中。後說爲勝。順文相故。依深密經。
001_0251_b_22L不違此經。
001_0251_b_23L然由有情。於依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
001_0251_b_24L上。增益遍計所執自性故。我立三種無
-
001_0251_c_01L석 이하는 두 번째로 순해順解(도리에 수순해서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앞은 표장이고, 나중은 해석이다.
가) 표장이것은 표장이다.이 경문의 뜻은 다음과 같다. ≺두 가지 자성에서 (증익된)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은 자상自相으로 말미암아 상相으로 안립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무자성성’이라 건립하였고,139) 의타기에는 ‘자연생自然生’이라는 증익이 없기 때문에 ‘생무자성성’을 건립하였으며,140) 원성실에는 이러한 변계소집성이 없기 때문에 ‘승의무자성성’을 건립한 것이지,141) 따로따로 세 종류 자성을 자성으로 관하기 때문에 (그 차례대로) 세 종류 무자성성을 설했다는 말은 아니다.≻
나) 해석
경 변계소집자성의 상相으로 말미암아 저 모든 유정들은 의타기자성 및 원성실자성에 대해 (그 상을) 따라서 언설을 일으킨다.
석 이것은 해석이다.그 뜻을 총괄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집착된 상(所執相 : 변계소집자성의 상)으로 인해 능히 언설을 일으키고, 언설로 인해 세 가지 인(三因)을 이루며,142) 세 가지 인으로 말미암아 모든 집착을 일으키고, 집착으로 인해 의타기의 세 종류 잡염雜染과 육취생사六趣生死에서 유전하는 과실을 생하는 것이다.143)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변계소집상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하였다.≻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집착된 상으로 말미암아 능히 집착을 생한다는 것이고, 나중의 “이러이러한(如如)” 이하는 집착으로 말미암아 유전법을 생하는 것이다.
(가) 소집상所執相으로 인해 집착을 생함전자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집착된 상(所執相)으로 인해 능히 언설을 일으키는 것이고, 나중의 “이러이러한” 이하는 언설로 인해 능히 집착을 낸다는 것이다.
㉮ 소집상으로 인해 언설을 일으킴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치상 실로 두 가지 자성自性(의타기와 원성실)은 모두 언어를 떠나 있지만 변계소집상으로 인해 두 가지 (자성의) 상相에서 언설을 일으키게 된다.
㉯ 언설로 인해 집착을 생함
경 이러이러한 것을 따라 언설을 일으키니,144)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언설에 의해 훈습된 -
001_0251_c_01L自性性。
001_0251_c_02L釋曰。此下第二順解。於中有二。先
001_0251_c_03L標。後釋。此卽標也。此意說云。於二
001_0251_c_04L性上遍計所執相。非由自相安立爲
001_0251_c_05L相故。立相無自性性。於依他起上。無
001_0251_c_06L自然生增益故。立生無自性性。於圓
001_0251_c_07L成實上。無此所執性故。立勝義無自
001_0251_c_08L性性。非謂別觀三種自性爲自性故。
001_0251_c_09L故說三種無自性性。
001_0251_c_10L由遍計所執自性相故。彼諸有情。於依
001_0251_c_11L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中。隨起言說。
001_0251_c_12L釋曰。此卽釋也。總說意云。由所執
001_0251_c_13L相。能起言說。由言說故。成三種因。
001_0251_c_14L由三因故。起諸執著。由執著故。生依
001_0251_c_15L他起三種雜染。流轉六趣生死過失。
001_0251_c_16L是故。此中約所執相。立三無性。於中
001_0251_c_17L有二。初由所執相。能生執著。後如如
001_0251_c_18L下。由執著故。生流轉法。前中有二。初
001_0251_c_19L由所執相。能起言說。後如如 [135] 。由言說
001_0251_c_20L故。能生執著。此卽初也。理實二性。皆
001_0251_c_21L離名言。而由遍計所執相故。於二相
001_0251_c_22L中。有言說起。
001_0251_c_23L如如隨起言說。如是如是。由言說熏習
001_0251_c_24L「堅」異有「爲堅」。
-
001_0252_a_01L마음 때문에,145) 언설을 따라 자각하기 때문에,146) 언설이 수면하기 때문에,147)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언설로 인해 능히 집착을 생한다는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언설로 인해 세 종류 인因을 이룬다는 것이고, 나중은 세 가지 인으로 말미암아 집착을 생한다는 것이다.
a. 언설로 인해 세 가지 인因을 이룸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이러이러한 것(如如)”이란 언설되는 법(所說法)을 나타낸 것이니, 언설되는 것이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것”이라 하였다. 그 ‘이러이러한 것’을 따라서 모든 언설을 일으키기 때문에 거듭해서 “이와 같이 이와 같이(如是如是)”라고 하였다.모든 언설로 말미암아 세 종류 인因을 이루게 된다. 첫째로 “언설에 의해 훈습된 마음 때문에”라는 것은 세 종류 훈습(三熏習)148) 중에서 명언훈습名言熏習을 밝힌 것이다.149) 둘째로 “언설을 따라 자각하기 때문에”라고 한 것은 명언名言을 이해하여 그에 따라 알아차리고 분별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사람(人)ㆍ천天 등처럼 언어를 이해하는 자이다. 셋째, “언설이 수면하기 때문에”라고 한 것은 명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면隨眠(명언이 잠재된 상태)으로 인해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니, 예를 들면 소나 양 등이 언설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수면으로 인해 분별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이것은 곧 언설을 일으키기 때문에 세 종류 인을 이루게 됨을 나타낸 것이다.
b. 세 가지 인으로 인해 집착을 생함
경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에서 변계소집자성의 상을 집착하는 것이다.
석 이것은 세 가지 인 때문에 능히 집착함을 밝힌 것이다. 세 가지 인 중에 앞의 한 가지 인은 집착의 인연因緣(직접적 원인)을 나타낸 것이고, 뒤의 두 가지 인은 증상연增上緣(보조적 원인)을 나타낸 것이다. 이 세 가지 인으로 인해 두 가지 자성에서 변계소집자성을 집착하는 것이다.
(나) 집착으로 인해 유전법流轉法을 생함
경 이러이러한 것에 집착하면서, 이와 같이 이와 같이,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자성에서 변계소집자성을 집착하니,
석 이하에서는 두 번째로 집착으로 인해 유전법流轉法을 생한다는 것을 밝혔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이전의 집착(能執)을 표시해 놓음으로써 유전의 인因을 나타낸 것이고, 나중은 집착이 유전의 과果를 냄을 바로 밝힌 것이다.
㉮ 이전의 집착을 표시해 놓음으로써 유전流轉의 인因을 나타냄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이러이러한 것”이란 집착되는 경계를 나타낸 것이니, -
001_0252_a_01L心故。由言說隨覺故。由言說隨眠故。
001_0252_a_02L釋曰。此卽第二由言說故能生執著。
001_0252_a_03L於中有二。初由言說故。成三種因。後
001_0252_a_04L由三因故。能生執著。此卽初也。言如
001_0252_a_05L如者。顯所說法。所說非一。故曰如如。
001_0252_a_06L隨彼如如。起諸言說。是故重言如是
001_0252_a_07L如是。由諸言說。成三種因。一由言說
001_0252_a_08L熏習心故。此明三熏習中名言熏習。
001_0252_a_09L二由言說隨覺故。此解名言隨覺分
001_0252_a_10L別。如人天等解言說者。三由言說隨
001_0252_a_11L眠故。此不解名言。隨眠分別。如牛羊
001_0252_a_12L等。不解言說。但由隨眠。而起分別。此
001_0252_a_13L卽顯由起言說故成三種因。
001_0252_a_14L於依他起自性及圓成實自性中。執著
001_0252_a_15L遍計所執自性相。
001_0252_a_16L釋曰。此明由三因故能執著。於三因
001_0252_a_17L中。前之一因。顯執因緣。後之二因。
001_0252_a_18L顯增上緣。由此三因。於二性中。執
001_0252_a_19L著遍計所執自性。
001_0252_a_20L如如執著。如是如是。於依他起自性及
001_0252_a_21L圓成實自性上。執著遍計所執自性。
001_0252_a_22L釋曰。此下第二由執著故。生流轉法。
001_0252_a_23L於中有二。初牒前能執。顯流轉因。後
001_0252_a_24L正明能執生流轉果。此卽初也。言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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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2_b_01L집착되는 것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러이러한 것’을 따라서 모든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거듭해서 “이와 같이 이와 같이”라고 말하였다. 이 집착으로 인해 두 가지 자성에서 변계소집자성을 집착하게 되니, 이 집착이 유전의 인因이다.
㉯ 집착이 유전流轉의 과果를 냄을 바로 밝힘
경 이런 인연으로 인해 미래세의 의타기자성을 생하는 것이다.
석 이하에서는 두 번째로 유전의 과를 나타내었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의타기를 생하는 것이고, 나중은 세 가지 잡염을 생하는 것이다.
a. 의타기依他起를 생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문 의타와 잡염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150)답 총總과 별別 간의 차이가 있다. 혹은 광범위한 것(寬)과 협소한 것(狹) 간의 부동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의타기는 광범위한 것이니, 연을 따라 생기는 것은 모두 ‘의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가지 잡염 중에는 장양오근長養五根 등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151)
b. 세 가지 잡염雜染을 생함
경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혹은 번뇌잡염으로 오염되고, 혹은 업잡염으로 오염되며, 혹은 생잡염으로 오염되어, 생사에서 오랫동안 치달리고 오랫동안 유전하면서 그치는 적이 없는 것이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세 가지 잡염을 생함을 밝힌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세 가지 잡염으로 인해 생사에서 유전하는 것이고, 나중은 세 가지 잡염으로 인해 육취에서 유전하는 것이다.
a) 세 가지 잡염으로 인해 생사生死에서 유전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 집착이 인연이 되기 때문에 세 가지 잡염을 생겨나게 하니, 세 가지 잡염이란 혹惑ㆍ업業ㆍ생生152)을 말한다. 소연박所緣縛ㆍ상응박相應縛153)이라는 두 가지 속박에 묶이기 때문에 ‘잡염’이라 한다. 이 잡염으로 말미암아 분단생사分段生死ㆍ변역생사變易生死154)라는 두 가지 생사에서 치달리고 유전하면서 그치는 적이 없다.두 종류 생사의 의미는 『별장』에서 설한 것과 같다.
b) 세 가지 잡염으로 인해 육취六趣에서 유전함
경 혹은 나락가 중에서 혹은 방생(축생) 중에서 혹은 아귀 중에서 혹은 천에서 혹은 아소락 중에서 혹은 사람 중에서 모든 고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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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2_b_01L如者。顯所執境。所執非一。故曰如如。
001_0252_b_02L隨彼如如。起諸執著。是故重言如如
001_0252_b_03L是是 [136] 。由此執著。於二性中。執著遍
001_0252_b_04L計所執自性。以此執著。爲流轉因。
001_0252_b_05L由此 [137] 因緣。生當來世依他起自性。
001_0252_b_06L釋曰。此下第二顯流轉果。於中有二。
001_0252_b_07L初生依他起。後生三雜染。此卽初也。
001_0252_b_08L問。依他雜染。有何差別。答。總別有
001_0252_b_09L異。或可寬狹不同。依他是寬。從緣
001_0252_b_10L生者。皆依他故。三雜染中。不攝長養
001_0252_b_11L五根等故。
001_0252_b_12L由此因緣。或爲煩惱雜染所染。或爲業 [138]
001_0252_b_13L染所染。或爲生雜染所染。於生死中。長
001_0252_b_14L時馳騁。長時流轉。無有休息。
001_0252_b_15L釋曰。此下第二生三雜染。於中有二。
001_0252_b_16L初由三雜染。流轉生死。後由三雜染。
001_0252_b_17L流轉六趣。此卽初也。謂由此執爲因
001_0252_b_18L緣故。生三雜染。三雜染者。謂或 [139] 業
001_0252_b_19L生。所緣相應二縛所縛。故名雜染。由
001_0252_b_20L此雜染。分段變易二生死中。馳騁流
001_0252_b_21L轉。無有休息。二種生死。
義如別章。
001_0252_b_22L或在那落迦。或在傍生。或在餓鬼。或
001_0252_b_23L在天上。或在阿索洛。或在人中。受諸
001_0252_b_24L苦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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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2_c_01L석 이것은 두 번째로 세 가지 잡염으로 인해 육취에서 유전하는 것이다.‘나락가那落迦(ⓢ naraka)’라는 것은, 『순정리론』 제21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가迦’는 ‘낙樂’의 다른 이름이고 ‘나那’는 ‘없음(無)’을 말하며 ‘락落’은 ‘준다(與)’는 뜻이니, 즐거움을 서로 나누어 줌이 없는 것(無樂相與)을 나락가라고 한다. 혹은 다시 ‘락가’는 ‘구제救濟’를 뜻하고 ‘나’는 ‘불가不可’를 말하니, 구제할 수 없는 것을 나락가라고 한다.”155) 『대비바사론』 제172권에서는 “‘나락’은 ‘사람’을 말하고, ‘가’는 ‘악惡’을 말하니, 악인이 그곳에 태어나기 때문에 나락가라고 한다.”156)라고 하였다. 『잡아비담심론』 제8권에서는 “즐거워할 수 없기 때문에 지옥이라 한다.”157)라고 하였다.‘방생傍生’이라 한 것에 대해, 『잡아비담심론』에서는 “몸을 가로누워서 다니기 때문에 축생이라 한다.”158)라고 하였다. 『순정리론』에서는 “그 취에서는 대부분 몸을 가로누워서 살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 취에서는 간혹 일부가 옆으로 다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159)라고 하였다. 『대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형체가 옆으로 되어 있으므로 다니는 것도 옆으로 다니고, 다니는 것이 옆으로 다니기 때문에 형체도 옆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방생’이라 한다.……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루 모든 곳에 퍼져 있기 때문에 방생이라 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오취五趣에 두루 다 존재하는 것이다.≻”160)‘아귀餓鬼’라고 한 것에 대해, 『잡아비담심론』에서는 “다른 이에게서 희구하기 때문에 아귀라고 한다.161)”162)라고 하였다. 『순정리론』에서는 “대개 겁약한 마음을 품고 그 외형은 초췌하며 몸과 마음이 경박하기 때문에 아귀라고 한다.”163)라고 하였다. 『대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갈이 늘기 때문에 ‘귀鬼’라고 한다.164)……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림을 당하기 때문에 ‘귀’라고 하니, 언제나 모든 천天을 위해 곳곳에서 부림 당하면서 언제나 질주하기 때문이다.≻”165)
‘천天(ⓢ deva)’이란, 『잡아비담심론』에서는 “광명光明 때문에 천이라 한다.166)”167)라고 하였다. 『순정리론』에서는 “천이란 존고尊高를 말하니, 신묘한 작용이 자재하여 많은 이들이 기도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천이라 한다.”168)라고 하였다. 『대비바사론』에서는 “광명이 증가하기 때문에 천이라 하니, 그들의 자연신自然身의 광명이 항상 밤낮으로 똑같이 비추기 때문이다.”169)라고 하였다.‘아소락阿素洛(ⓢ asura)’이란,170) 『순정리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락’은 천天인데, 이는 ‘자재’를 뜻한다. -
001_0252_c_01L釋曰。此卽第二由三雜染流轉六趣。
001_0252_c_02L言那落迦。依順正理二十一云。迦 [140] 是
001_0252_c_03L樂 [141] 名。那者言無。落是與義。無樂相
001_0252_c_04L與。名那落迦。或復落迦。是救濟義。那
001_0252_c_05L名不可。不可救濟。名那落迦。依大
001_0252_c_06L婆沙百七十二云。捺落名人。迦名爲
001_0252_c_07L惡。惡人生 [142] 處 [143] 。名捺落迦。依毗曇論
001_0252_c_08L第八卷云。不可樂故名地獄。言傍生
001_0252_c_09L者。毗曇論云。身橫行故名畜生。順
001_0252_c_10L正理云。彼趣多分身橫住故。或彼趣
001_0252_c_11L中。容有少分傍行者 [144] 。婆沙論云。其
001_0252_c_12L形傍故行亦傍。以行傍故形亦傍。故 [145]
001_0252_c_13L名傍生。有說。遍 [146] 諸處。故名傍生。謂
001_0252_c_14L此遍於五趣有故 [147] 。言餓鬼者。毗曇論
001_0252_c_15L云。從他悕 [148] 求。故名餓鬼。順正理云。
001_0252_c_16L多懷 [149] 法 [150] 劣。其形瘦悴。身心輕躁。故
001_0252_c_17L名餓鬼。婆沙論云。飢渴增故。名爲
001_0252_c_18L餓 [151] 鬼。有說。被驅役故名鬼。恒爲諸
001_0252_c_19L天處處驅役。常馳走故。所言天者。毗
001_0252_c_20L曇論云。光明故名天。順正理云。天
001_0252_c_21L謂 [152] 尊高。神用自在。衆所祈告。故名
001_0252_c_22L爲天。婆沙論云。光明增故名天。以
001_0252_c_23L彼自然身光。恒照晝夜等故。阿素洛
001_0252_c_24L者。正理云。素洛名天。是自在義。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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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3_a_01L‘아’는 ‘아님(非)’을 뜻한다. 그들은 천이 아니고 자재함이 천보다는 덜하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아소락’이라 이름한다.”171) 『대비바사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락’은 천天이다. 그들은 천이 아니기 때문에 아소락이라 한 것이다. 다시 ‘소락’은 단정端政이라 한다. 그들은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소락이라 한 것이다.172)”173)‘인人’이라 한 것은, 『잡아비담심론』에서는 “마음(意)이 고요하기 때문에 사람이라 한다.”174)라고 하였다. 『순정리론』에서는 “사려가 많기 때문에 사람이라 한다.”175)라고 하였다. 『대비비사론』에서는 “‘마음(意)’을 고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 하니, 오취 중에서 능히 마음을 고요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만 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176)라고 하였다. 자세하게 해석하면 저 『순정리론』과 『대비바사론』과 같고, 구체적인 것은 『별장』에서 설한 것과 같다.
③ 지위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한 뜻을 설명함177)
경 다시 승의생이여, 만약 유정들 중에 본래부터 아직 선근을 심지 못했고, 아직 장애를 청정하게 하지 못했으며, 아직 (선근의) 상속을 성숙시키지 못했고, 아직 승해를 많이 닦지 못했으며, 아직 능히 복덕ㆍ지혜의 두 종류 자량을 쌓지 못한 자라면,
석 이하는 세 번째로 지위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한 뜻을 설명한 것이다.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오위五位에 의거해서 ‘생무자성성’을 설명한 것이다.178) 나중의 “그들이 비록 이와 같이” 이하는 가행위 등의 계위에 의거해서 뒤의 두 종류 무자성성을 설명한 것이다.관문觀門에 대해 논하자면 그에 오위가 있으니, 예를 들면 『성유식론』 제9권에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무엇을 일컬어 유식을 깨달아 들어가는 오위라고 하는가? 첫째는 자량위資粮位이니, 대승의 순해탈분順解脫分179)을 닦는 것을 말한다.해 십신十信에서 시작해서 십회향十迴向까지다.180)둘째는 가행위加行位이니, 대승의 순결택분順決擇分181)을 닦는 것을 말한다.해 십회향에서 열 번째 종심終心이다.182)셋째는 통달위通達位이니, 보살들이 머무는 견도를 말한다.183)넷째는 수습위修習位이니, 보살들이 머무는 수도를 말한다.184)다섯째는 구경위究竟位이니, 무상정등보리에 머무는 것을 말한다.185)지금은 이 경에 의거하면 두 단락으로 구분된다.처음은 오위에 의거해서 ‘생무자성성’을 설명한 것이니, 곧 유식의 최초의 자량위 및 십신 이전에 -
001_0253_a_01L是非義。顯彼非天。自在減天。名阿
001_0253_a_02L素洛。婆沙論云。素洛是天。彼非天
001_0253_a_03L故。名阿素洛。復次。素洛名端政。彼
001_0253_a_04L非端政 [153] 。名阿素洛。所言人者。毗曇
001_0253_a_05L論云。意寂靜故名人。順正理云。多
001_0253_a_06L思慮故名 [154] 人。婆沙論云。能寂靜 [155] 故名
001_0253_a_07L人。以五趣中。能寂靜意。無如人者。廣
001_0253_a_08L釋如彼正理婆沙。具如別章。
001_0253_a_09L復次。勝義生。若諸有情。從本已來。未
001_0253_a_10L種善根。未淸淨障。未成熟相讀。未多
001_0253_a_11L修勝解。未能積集福德智慧二種資粮。
001_0253_a_12L釋曰。自下第三約位辨立三無性意。
001_0253_a_13L於中有二。初約五位。說生無自性性。
001_0253_a_14L後彼雖如是下。約加行等位。說後二
001_0253_a_15L種無自性性。夫論觀門。有其五位。如
001_0253_a_16L成唯識第九卷說。何謂悟入唯識五
001_0253_a_17L位。一資粮位。謂修大乘順解脫分。解
001_0253_a_18L云。始從十信。至十迴向。二加行位。謂
001_0253_a_19L修大乘順決擇分。解云。在十迴向第
001_0253_a_20L十終心。三通達位。謂諸菩薩所住見
001_0253_a_21L道。四修習位。謂諸菩薩所住修道。五
001_0253_a_22L究竟位。謂住無上正等菩提。今依此
001_0253_a_23L經。分爲兩段。初約五位。辨生無自
001_0253_a_24L性性。卽當唯識初資粮位及十信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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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3_b_01L해탈분의 선근을 심는 지위에 해당한다.186)나중은 가행위 등의 지위에 의거해서 뒤의 두 종류 무성(相無性과 勝義無性)을 건립한 뜻을 설명한 것이니, 유식의 (오위에서) 중간의 세 가지 지위에 해당한다.187)무학위를 제외하였으니, (설법의) 대상(所爲)이 아니기 때문이다.188)
가. 오위五位에 의거해서 생무자성성을 설명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에는 교의 대상(所爲 : 교설을 듣게 될 근기)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나는 그들을 위해” 이하는 근기에 맞춰 바로 설한 것이며, 마지막의 “그들은 듣고” 이하는 교의 뛰어난 이익을 나타낸 것이다.
가) 교의 대상(所爲)을 밝힘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그런데 그것의 대상에는 다섯 지위가 있다.189)첫째는 선근善根을 심는 지위이니, 즉 십신十信 이전에 해탈분解脫分의 선근을 심는 지위를 말한다. 해탈분의 선근을 심는 방법은 예를 들면 『우바새계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둘째는 청정한 지위이니, 즉 십신을 말한다. 능히 나름대로 죄업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밀해탈경』 제2권에서는 “아직 죄업을 청정하게 하지 못한 자는 죄업을 청정하게 한다.”190)라고 하였고, 『연기경』에서는 ‘내법이생內法異生(불교 내의 범부)은 불공무명不共無明191)을 이미 영원히 끊었기 때문에 죄업을 짓지 않는다’고 하였다.192)셋째는 상속을 성숙시키는 지위이니, 즉 십해十解를 말한다. 능히 신信 등의 상속을 성취시키기 때문이다. 『심밀해탈경』에서는 “그에 의지해서 선근의 힘을 성숙시키기 때문이다.”193)라고 하였다.넷째는 승해勝解194)를 많이 닦는 지위이니, 즉 십행十行을 말한다. 결정적 승해가 많이 현전하기 때문이다.다섯째는 복덕ㆍ지혜의 자량을 적집하는 지위이니, 즉 십회향十迴向이다. 복덕ㆍ지혜라는 두 가지 자량을 구족하기 때문이다.이 경문의 뜻을 말하자면, 아직 선근을 심지 못한 자가 선근을 심게 하고, 내지는195) 아직 자량을 갖추지 못한 자로 하여금 (그것을) 구족하게 하는,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생무성生無性’을 설했다는 것이다.해 또는 이 경문은 자량위의 오사五事의 차별을 설명한 것이지, 오위五位를 건립하여 40심心에 배당시킨 것은 아니다.196) 오사의 차별은 이전에 분별했던 것과 같다.
나) 근기에 맞춰 바로 설함
경 나는 그들을 위해 ‘생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에 대해 설하였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근기에 맞춰 바로 설한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유정들은 -
001_0253_b_01L種解脫分善根位也。後約加行等位。
001_0253_b_02L辨立後二無性。卽當唯識中間三位。
001_0253_b_03L除無學位。非所爲故。此卽初也。於
001_0253_b_04L中有三。初明說敎所爲。次我爲彼下。
001_0253_b_05L對機正說。後彼聞下。辨敎勝利。此
001_0253_b_06L卽初也。然彼所爲。有其五位。一種
001_0253_b_07L善根位。謂十信前種解脫分善根位
001_0253_b_08L也。種解脫分善根之法。如優婆塞戒
001_0253_b_09L經中說。二淸淨位。謂卽十信。謂能
001_0253_b_10L隨分淨罪業故。故深密經第二卷云。
001_0253_b_11L未 [156] 淸淨罪業者。淸淨罪業。緣起經云。
001_0253_b_12L內法異生。不共無明。已永斷故。不造
001_0253_b_13L罪業也。三成熟相續位。謂卽十解。能
001_0253_b_14L令信等相續成就故。深密云。依彼成
001_0253_b_15L熟善根力故。四多修勝解位。謂卽十
001_0253_b_16L行。決定勝解多現前故。五積集福智
001_0253_b_17L資粮位。即十廻向。具足福智二資粮
001_0253_b_18L故。此中意說。未種善根。令種善根。乃
001_0253_b_19L至未具資粮。令得具足故。爲此等故。
001_0253_b_20L說生無性。又解。此文辨資粮位。五
001_0253_b_21L事差別。非立五位配四十心。五事差
001_0253_b_22L別。如前分別。
001_0253_b_23L我爲彼故。依生無自性性。宣說諸法。
001_0253_b_24L釋曰。此卽第二對機正說。謂諸有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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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3_c_01L본래부터 ‘제법이 연으로 생기는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릇되게 ‘원인 없이(無因) 자연自然으로 (말미암아) 생긴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생무자성성’에 의거해서 ‘모든 법은 다 인因에서 생기고 자연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라고 설하신 것이다.197)
다) 교의 뛰어난 이익을 나타냄
경 그들은 이것을 듣고 나면 능히 일체의 연생하는 행에 대해 나름대로 ‘항상됨이 없는 것(無常無恒)은 안은하지 않으며 변하여 허물어지는 법이다’라고 이해하고 나서,
석 이것은 세 번째로 가르침을 듣는 것의 뛰어난 이익을 밝힌 것이다. 네 종류 뛰어난 이익이 있으므로 (경문은) 네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무상을 이해하게 되는 이익이고, 둘째는 두려워하면서 염환厭患하게 되는 이익이며, 셋째는 악을 그치고 선을 닦게 되는 이익이고, 넷째는 오사五事를 갖추게 되는 이익이다.
(가) 무상無常을 이해하게 되는 이익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세존께서는 ‘무명無明이 행行의 연이 되는 데서부터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 자재천 등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라고 설하셨고, 이로 인해 유정들은 각자 나름대로, ‘일체의 제법은 항상됨이 없고, 항상되지 않으므로 곧 안온安穩하지 않으니, 마치 열반이 생멸을 떠났으므로 곧 평안히 머무는 것과는 같지 않고, 또 모든 유위법은 전의 것이 사라지면 후의 것이 생겨나며 점차로 쇠하여 허물어지거나 변하여 허물어지는 법이다’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나) 두려워하거나 염환厭患하게 되는 이익
경 일체행에 대해 마음에 두려움을 내고 깊이 염환을 일으키니,
석 이것은 두 번째로 두려워하거나 염환하게 되는 이익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다) 악을 그치고 선을 닦게 되는 이익
경 마음에 두려움을 내고 깊이 염환을 일으키고 나서, 모든 악을 막아 그치고 모든 악법을 능히 짓지 않으며, 모든 선법을 능히 부지런히 수습하는 것이다.
석 이것은 세 번째로 악을 그치고 선을 닦게 되는 이익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라) 오사五事를 갖추게 되는 이익경 선인善因을 수습하기 때문에, 아직 선근善根을 심지 못했어도 능히 선근을 심게 되고, 아직 장애를 청정하게 하지 못했어도 능히 청정해지게 하며, 아직 상속을 성숙시키지 못했어도 능히 성숙시킨다. 이러한 -
001_0253_c_01L從本已來。未悟諸法緣生道理。妄執
001_0253_c_02L無因自然而生。是故。世尊依生無
001_0253_c_03L自性性。說一切法。皆從因生。不由
001_0253_c_04L自然。
001_0253_c_05L彼聞是已。能於一切緣生行中。隨分解
001_0253_c_06L了。無常無恒是不安隱變壞法已。
001_0253_c_07L釋曰。此卽第三聞敎勝利。四種勝利。
001_0253_c_08L卽分爲四。一解了無常利。二怖畏厭
001_0253_c_09L患利。三止惡修善利。四五事具足利。
001_0253_c_10L此卽初也。謂世尊說。從無明緣行。乃
001_0253_c_11L至老死。不從自在天等所生。由斯。有
001_0253_c_12L情隨分解了。一切諸法。無常無恒。是
001_0253_c_13L無常故。卽不安穩。非如涅槃離生滅
001_0253_c_14L故卽是安住。又諸有爲。前滅後生。
001_0253_c_15L漸次衰壞變壞之法。
001_0253_c_16L於一切行。心生怖畏。深起厭患。
001_0253_c_17L釋曰。此卽第二怖畏厭患利。如文可
001_0253_c_18L知。
001_0253_c_19L心生怖畏。深厭患已。遮止諸惡。於諸
001_0253_c_20L惡法。能不造作。於諸善法。能勤修習。
001_0253_c_21L釋曰。此卽第三止惡修善利。如文可
001_0253_c_22L知。
001_0253_c_23L修 [157] 習善因故。未種善根。能種善根。未淸
001_0253_c_24L淨障。能令淸淨。未熟相續。令 [158] 成熟。由此
-
001_0254_a_01L인연으로 인해 승해를 많이 닦고, 또한 복덕ㆍ지혜라는 두 종류 자량을 많이 적집하는 것이다.
석 이것은 네 번째로 오사五事를 갖추게 되는 이익을 밝힌 것이다. 오사의 상相을 해석하자면, 앞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198)
나. 가행위加行位 등에 의거해서 뒤의 두 종류 무자성성을 설명함
경 그들이 비록 이와 같이 모든 선근을 심고 내지는 복덕ㆍ지혜 두 종류 자량을 쌓았다고 해도, 생무자성성 가운데서 아직 상무자성성 및 두 종류 승의무자성성을 여실하게 알지 못한다면,
석 이하는 두 번째로 가행위 등의 지위에 의거해서 나중의 두 종류 무자성성(상무성과 승의무성)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교의 대상(所爲)을 밝힌 것이고, 다음의 “여래는 그들을 위해” 이하는 근기에 맞춰 바로 설하신 것이며, 마지막의 “그들은……듣고(彼聞)” 이하는 교의 뛰어난 이익을 설명한 것이다.
가) 교의 대상(所爲)을 밝힘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아직 두 종류 무성無性을 알지 못함을 밝힌 것이다. 나중은 (두 종류) 무성을 알지 못함으로 인한 과실을 나타낸 것이다.
(가) 두 종류 무성無性을 알지 못함을 밝힘말하자면 모든 유정들이 ‘제법이 연을 따라 생기는 것이지 자재천 등에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하는 것을 듣고서 이로 인해 ‘무상無常’ 등의 의미를 이해하여 복덕ㆍ지혜 두 가지 자량 등을 적집하기는 했어도, 아직 모든 유위행有爲行이 모두 환 등과 같아서 실유성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다시 제법에 결정코 실유성이 있다고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개 상무자성성을 알지 못하거나, 혹은 다시 앞에서 설했던 두 종류 승의무자성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 무성을 알지 못함으로 인한 과실을 밝힘
경 일체의 행에 대해 아직 진정으로 싫어하지 못하고, 아직 진정으로 이욕하지 못하며, 아직 진정으로 해탈하지 못하고, 아직 두루 번뇌잡염에서 해탈하지 못하며, 아직 두루 모든 업잡염에서 해탈하지 못하고, 아직 두루 모든 생잡염에서 해탈하지 못한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알지 못함’으로 인한 과실을 밝힌 것이다. 말하자면 -
001_0254_a_01L因緣。多修勝解。亦多積集福德智慧二
001_0254_a_02L種資粮。
001_0254_a_03L釋曰。此卽第四五事具足利。釋五事
001_0254_a_04L相。准上應知。
001_0254_a_05L彼雖如是種諸善根。乃至積集福德智
001_0254_a_06L慧二種資粮。然於生無自性性中。未能
001_0254_a_07L如實了知相無自性性及二種勝義無自
001_0254_a_08L性性。
001_0254_a_09L釋曰。此下第二約加行等位。說後二
001_0254_a_10L種無自性性。於中有三。初明說敎所
001_0254_a_11L爲。次如來爲彼下。對機正說。後彼
001_0254_a_12L聞已下。辨敎勝利。此卽初也。於中
001_0254_a_13L有二。初明未了二種無性。後辨不了
001_0254_a_14L無性之性 [159] 。謂諸有情。聞說諸法從緣
001_0254_a_15L而生。不從自在天等所生。由斯解了
001_0254_a_16L無常等義。積集福智二資粮等。而
001_0254_a_17L未能了諸有爲行皆如幻等非實有性。
001_0254_a_18L便執諸法定有實性。此多不了相無 [160]
001_0254_a_19L性性。或復不了如上所說二種勝義
001_0254_a_20L無自性性。
001_0254_a_21L於一切行。未能正厭。未正離欲。未正
001_0254_a_22L解脫。未遍解脫煩惱雜染。未遍解脫諸
001_0254_a_23L業雜染。未遍解脫諸生雜染。
001_0254_a_24L釋曰。此卽第二明不了失。謂未能了
-
001_0254_b_01L상무자성相無自性을 아직 알지 못하는 업 때문에 일체의 행에 대해 진정으로 싫어하는 것 등을 못한다는 것이다.‘진정으로 싫어한다’는 것은 가행도加行道이고, ‘진정으로 이욕한다’는 것은 무간도無間道이며, ‘진정으로 해탈한다’는 등은 해탈도解脫道 및 승진도勝進道이다.199)번뇌煩惱ㆍ업業ㆍ생生의 세 종류 잡염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섭대승론』 및 『성유식론』 등에서 설한 것과 같다.200)
나) 근기에 맞춰 바로 설함
경 여래는 그들을 위해 다시 법요를 설하였으니, 상무자성성 및 승의무자성성을 말한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근기에 맞춰 바로 설하신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교를 바로 설한 것이고, 나중은 교를 설한 뜻을 밝힌 것이다.
(가) 교를 바로 설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십회향의 마지막 가행위 등은 이 교법을 마땅히 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설하는 것이다.201)
(나) 교를 설한 뜻을 밝힘
경 그들로 하여금 모든 행에 대해 진정으로 싫어하도록 하고, 진정으로 이욕하도록 하며, 진정으로 해탈하도록 하고, 모든 번뇌잡염을 넘어서도록 하고, 모든 업잡염을 넘어서도록 하며, 모든 생잡염을 넘어서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교를 설한 뜻을 밝힌 것이다. 그 가행위 등의 지위에서 빨리 가행도 등의 도를 능히 성취하도록 하려고, 또 세 종류 잡염을 넘어서도록 하려고, 따라서 다시 두 종류 무성을 설하셨다는 것이다.
다) 교의 뛰어난 이익을 나타냄
경 그들은 이와 같이 설해진 법을 듣고 나서, 생무자성성 가운데서, 상무자성성 및 승의무자성성을 진정으로 신해할 수 있고 (그에 대해) 간택하고 사유해서 여실하게 통달하여,
석 이하는 세 번째로 교의 뛰어난 이익을 설명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다. 처음은 가행위에서 얻는 뛰어난 이익을 밝힌 것이다. 나중의 “의타기자성에서” 이하는 지상地上의 두 지위(통달위ㆍ수습위)에서 얻는 뛰어난 이익을 설명한 것이다.
(가) 가행위에서 얻는 뛰어난 이익을 밝힘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이 경문에서는 가행위에서 얻는 뛰어난 이익을 바로 밝혔다. -
001_0254_b_01L相無自性業故。於一切行。未能正厭
001_0254_b_02L等。言正厭 [161] 。是加行道。正離欲者。是
001_0254_b_03L無間道。正解脫等是解脫道。及勝進
001_0254_b_04L道。煩惱業生三種雜染。如攝大乘及
001_0254_b_05L唯識等。
001_0254_b_06L如來爲彼。更說法要。謂相無自性性。及
001_0254_b_07L勝義無自性性。
001_0254_b_08L釋曰。此下第二對機正說。於中有二。
001_0254_b_09L初正說敎。後明說敎之意。此卽初也。
001_0254_b_10L謂十迴向終加行位等。宜聞此敎。故
001_0254_b_11L爲說之。
001_0254_b_12L爲欲令其於一切行能正厭故。正離欲
001_0254_b_13L故。正解脫故。超過一切煩惱雜染故。超
001_0254_b_14L過一切業雜染故。超過一切生雜染故。
001_0254_b_15L釋曰。此第二明說敎之意。爲欲令其
001_0254_b_16L加行等位。速能成辦加行等道。及令
001_0254_b_17L超過三種雜染。是故更說二種無性。
001_0254_b_18L彼聞如是所說法已。於生無自性性中。
001_0254_b_19L能正信解相無自性性及勝義無自性
001_0254_b_20L性。簡擇思惟。如實通達。
001_0254_b_21L釋曰。此下第三辨敎勝利。於中有二。
001_0254_b_22L初明加行位中所得勝利。後於依他
001_0254_b_23L起下。辨地上二地所得勝利。此卽初
001_0254_b_24L也。此中正明於加行位所得勝利。然
-
001_0254_c_01L그런데 가행위에 대해 여러 학설들이 같지 않다.202)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제2승기僧祗203)에 속하니, 극환희지極歡喜地(십지 중 제1지)에 근접한 방편도方便道이기 때문이다. 마치 미지정未至定204)이 초선初禪에 속하는 것과 같다.≻205)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바로 열 번째 회향으로서 첫 번째 아승기에 있는 것이니, 아직 초지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206) 비록 두 가지 학설이 있지만, 호법 보살은 두 번째 해석을 지지하였으니, 『성유식론』 제9권에서 “견도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가행이라는 이름을 세웠다.”207)라고 한 것과 같다.208)이 가행위에서는 뒤의 두 종류 무성의 가르침을 들었기 때문에 사심사四尋思ㆍ사여실四如實의 관觀209)을 지어서, 능연식能緣識은 보존하고 소취공所取空은 버린다.210) 이것이 ‘상무자성성’이고, 그 무성에 의해 현현되는 승의勝義를 ‘승의무자성성’이라 한다. 자세하게 분별하면, 『성유식론』 제9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따라서 지금 경문에서 ‘두 가지 무성에 대해 간택하고 사유한다’고 설한 것은 사심사에 해당하고, ‘여실하게 통달한다’고 한 것은 사여실지四如實智에 해당한다.해 또는 ‘간택하고 사유한다’는 것은 사심사위四尋思位이고, ‘여실하게 통달한다’는 한 것은 초지初地 이상의 통달위通達位다.
(나) 지상地上의 두 지위에서 얻는 뛰어난 이익을 나타냄
경 의타기자성 가운데서 능히 변계소집자성의 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지상地上의 두 지위(통달위ㆍ수습위)에서 얻는 뛰어난 이익을 나타낸 것이다.211) 여섯 가지 뛰어난 이익이 있으므로 (경문은) 여섯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소집상을 버리는 것이고, 둘째는 세 가지 인因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의타기를 소멸시키는 것이고, 넷째는 미래의 고통의 원인을 끊는 것이며, 다섯째는 능히 세 가지 도를 이끌어 내는 것이고, 여섯째는 세 가지 잡염을 떠나는 것이다.
㉮ 소집상所執相을 버림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지상의 두 지위에서는 앞서 말했던 두 종류 무성(상무성ㆍ승의무성)에 대해 들었기 때문에 능히 변계소집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세 가지 인因을 일으키지 않음
경 언설로 훈습되지 않은 지智로 인해, 언설을 따라 지각하지 않는 지로 인해, -
001_0254_c_01L加行位。諸說不同。有說。卽屬第二僧
001_0254_c_02L祗。極歡喜地近方便故。如未至定。卽
001_0254_c_03L屬初禪。有說。正在第十迴向第一僧
001_0254_c_04L祈。未入地故。雖有兩說。護法菩薩
001_0254_c_05L存第二解。如成唯識第九卷說。近見
001_0254_c_06L道故。立加行名。於此位中。聞後二
001_0254_c_07L種無性敎故。作四尋思四如實觀。存
001_0254_c_08L能緣識。遣所取空。卽是1)相 [1] 自性性。
001_0254_c_09L卽彼無性所顯勝義。名爲勝義無自
001_0254_c_10L性性。若廣分別。如成唯識第九卷說。
001_0254_c_11L故今說云。於二無性。簡擇思惟。卽四
001_0254_c_12L尋思。如實通達。卽四如實智也。又
001_0254_c_13L解。簡擇思惟者。四尋思位。如實通
001_0254_c_14L達者。初地已上通達位也。
001_0254_c_15L於依他起自性 [162] 。能不執著遍計所執自
001_0254_c_16L性相。
001_0254_c_17L釋曰。此下第二辨地上二位所得勝
001_0254_c_18L利。有六勝利。卽分爲六。一遣所執
001_0254_c_19L相。二不起三因。三滅依他起。四斷
001_0254_c_20L當苦因。五能引三道。六離三雜染。此
001_0254_c_21L卽初也。謂地上二位。聞前所說二無
001_0254_c_22L性故。能不執著遍計所執。
001_0254_c_23L由言說不熏習智故。由言說不隨覺智
001_0254_c_24L「相」下疑脫「無」。
-
001_0255_a_01L언설의 수면을 떠난 지로 인해,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세 가지 인因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세 가지 인이 성립하지 않고, 인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세 종류 지智가 생긴다는 것이다. ‘세 종류 지’란 첫째는 언설로 훈습되지 않은 지이고, 둘째는 언설을 따라 지각하지 않는 지이며, 셋째는 언설의 수면을 떠난 지이다.212)그런데 이 세 종류 지에 대해 본래 두 가지 설이 있다.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계로부터 이름을 얻은 것이다. 말하자면 후소득지後所得智213)는 세 가지 경계를 반연해서 생겨나므로 세 종류 지의 이름을 세운 것이다.≻214)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因으로부터 이름을 얻은 것이다. 말하자면 두 종류 무자성에 대한 지는 세 종류 인으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세 종류 이름을 세운 것이다.≻215)
㉰ 의타기依他起를 소멸시킴
경 의타기상을 소멸시킬 수 있고,
석 이것은 세 번째로 의타기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세 가지 인因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세 종류 지智를 성취하고, 세 종류 지로 인해 의타기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미래의 고통의 인을 끊음
경 현법 중의 지력智力에 의해 유지되므로 미래세의 인因을 영구히 단멸시킬 수 있다.
석 이것은 네 번째로 미래의 고통의 인을 끊은 것이다. 이전의 세 종류 지智로 의타기를 소멸시켰기 때문에216) 현재의 몸 가운데 방편지方便智217)가 있고, 방편지에 의해 섭지攝持되기 때문에 저 근본지根本智218)가 능히 미래의 인을 영구히 끊어 없애는 것이다.
㉲ 세 가지 도道를 이끌어 냄
경 이런 인연으로 인해 일체의 행에 대해 진정으로 염환할 수 있고, 진정으로 이욕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해탈할 수 있고,
석 이것은 다섯 번째로 세 가지 도를 이끌어 내는 것이니, 이른바 가행도와 무간도와 해탈도이다.219)
㉳ 세 종류 잡염雜染을 떠남
경 두루 번뇌ㆍ업ㆍ생 세 종류 잡염에서 해탈할 수 있다.
-
001_0255_a_01L故。由言說離隨眠智故。
001_0255_a_02L釋曰。此即第二不起三因。謂不執故。
001_0255_a_03L三因不成。因不成故。生三種智。言
001_0255_a_04L三智者。一言說不熏習智。二言說不
001_0255_a_05L隨覺智。三言說離隨眠智。然此三智。
001_0255_a_06L自有二說。一> [163] 從境得名。謂後所得智。
001_0255_a_07L緣三境生。立三智名。一云。從因得
001_0255_a_08L名。謂卽二種無自性智。從三種因之
001_0255_a_09L所生故。立三種名。
001_0255_a_10L能滅依他起相。
001_0255_a_11L釋曰。此卽第三滅依他起。謂不起三
001_0255_a_12L因。成三種智。由三智故。能滅依他
001_0255_a_13L也。
001_0255_a_14L於現法中智力所持。能永斷滅當來世
001_0255_a_15L因。
001_0255_a_16L釋曰。此卽第四斷當苦因。由前三智
001_0255_a_17L滅依他故。於現身中。有方便智。以
001_0255_a_18L方便智所攝持故。彼根本智。能永斷
001_0255_a_19L除當來世因。
001_0255_a_20L由此因緣。於一切行。能正厭患。能正
001_0255_a_21L離欲。能正解脫。
001_0255_a_22L釋曰。此卽第五引三道。所謂加行無
001_0255_a_23L間解脫也。
001_0255_a_24L能遍解脫煩惱業生三種雜染。
-
001_0255_b_01L석 이것은 여섯 번째로 세 종류 잡염을 떠나는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④ 삼무성관三無性觀에 의거해서 일승一乘의 의미를 설명함220)
경 다시 승의생이여, 모든 성문승종성聲聞乘種姓의 유정들 또한 이 도道와 이 행적行迹으로 말미암아 위없는 안은한 열반을 증득하고, 모든 독각승종성獨覺乘種姓의 유정들과 모든 여래승종성如來乘種姓의 유정들 또한 이 도와 이 행적으로 말미암아 위없는 안은한 열반을 증득한다.
석 이하는 네 번째로 삼무성관三無性觀에 의거해서 일승一乘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성도聖道에 의거해서 일승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다음의 “선남자여” 이하는 취적성문趣寂聲聞은 결정코 성불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마지막의 “만약 회향” 이하는 회향성문迴向聲聞은 결정코 성불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경문의) 뜻을 총괄해서 해석하겠다.〔1〕 첫 번째 단락에서는 세 가지 종성에 의거해서 여래가 방편으로 일승을 설하셨는데, 진실한 정리正理에 의하면 삼승이 갖추어져 있고 각각의 무여구경열반無餘究竟涅槃221)을 증득하는 것이다.222) 『승만경』의 뜻도 이 설과 동일하다.〔2〕 두 번째 단락의 뜻은, 정성이승定性二乘223)은 오직 이승의 무여열반(二乘無餘涅槃)224)을 증득할 뿐 결코 ‘이후의 시기에 성불할 수 있다’는 뜻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사지론』에서는 ‘이승에 의해 증득된 무여열반이란 (결국) 오직 진여라는 청정한 법계가 있을 뿐’이라 하였다.〔3〕 세 번째 단락의 뜻은, 부정종성不定種姓의 회향성문은 반드시 미래에 성불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화경』 「방편품」에서는 이승종성을 위해 이치상 실로 결정코 성불의 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하였다. 이 설에 의하면 방편으로 삼승을 설하였지만 실제로는 일승이다.225) 따라서 『법화경』에서는 “시방의 불토에는 오직 일승법만 있으니, 부처님의 방편설을 제외하면 두 번째도 없고 세 번째도 없다네.”226)라고 하였다.『법화경』과 『승만경』은 각기 하나의 의미에 의거하였고, 지금 이 한 부(『해심밀경』)는 (두 가지) 의미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
001_0255_b_01L釋曰。此卽第六離三雜染。如文可
001_0255_b_02L知。
001_0255_b_03L復次。勝義生。諸聲聞乘種姓有情。亦由
001_0255_b_04L此道此行迹故。證得無上安隱涅槃。諸
001_0255_b_05L獨覺乘種姓有情。諸如來乘種姓有情。
001_0255_b_06L亦由此道。此行迹故。證得無上安隱涅
001_0255_b_07L槃。
001_0255_b_08L釋曰。此下第四約三無性 [164] 。辨一乘義
001_0255_b_09L1)義 [2] 。於中有三。初約聖道。辨一乘義。
001_0255_b_10L次善男子下。明趣寂聲聞定不成佛。
001_0255_b_11L後若迴向下。明迴向聲聞定得成佛。
001_0255_b_12L總釋意云。第一段中。約三種姓。如
001_0255_b_13L來方便。說爲一乘。就實正理。具有
001_0255_b_14L三乘。各證無餘究竟涅槃。勝鬘經意。
001_0255_b_15L亦同此說。第二段意。定性二乘。唯
001_0255_b_16L證二乘無餘涅槃。必無後時得成佛
001_0255_b_17L義。故瑜伽云。二乘所證無餘涅槃。唯
001_0255_b_18L有眞如淸淨法界。第三段意。不定種
001_0255_b_19L姓迴向聲聞。必當成佛。是故法華方
001_0255_b_20L便品說。爲二乘種姓。理實決定得成
001_0255_b_21L佛果。若依此說。方便說三。就實爲
001_0255_b_22L一。故法華云。十方佛土中。唯有一乘
001_0255_b_23L法。無二亦無三。除佛方便說。法華
001_0255_b_24L勝鬘。各據一義。今此一部義俱有。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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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5_c_01L『해심밀경』이 최상의 요의(最了義)다.227) 의미는 『별장』에서 설한 것과 같다.
가. 성도聖道에 의거해서 일승의 의미를 설명함처음 단락에서는 다시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처음은 삼승이 각기 자승自乘의 무여열반을 증득함을 밝힌 것이다. 다음은 성도에 의거해서 방편으로 일승을 설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이치상 실로 삼승이 차별됨을 밝힌 것이다.
가) 삼승이 각기 자승自乘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증득함을 밝힘이것은 첫 번째이다. 말하자면 삼승의 종성은 각기 ‘자성 없음이라는 오묘하고 청정한 도道’로써 무여의無餘依의 오묘한 열반계를 증득한다는 것이다.그런데 저 성도聖道는 능히 ‘다닌다(通)’는 뜻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도(길)’라고 하였다. 곧 저 성도는 모든 성인들이 밟아 간 길이므로 또한 ‘행적行迹’이라고도 한다. 이 도의 행적을 따라서 모든 번뇌와 유루의 고신苦身을 떠나서 상주하는 적멸의 즐거움을 증득하였기 때문에 ‘안은한 열반’이라 설한 것이다.
나) 성도에 의거해서 방편으로 일승을 설함
경 모든 성문과 독각과 보살은 모두 이 하나의 오묘하고 청정한 도를 함께하고, 모두 이 궁극의 청정을 함께하며, 다시 두 번째 승이란 없으니, 이에 의거해서 밀의로 오직 일승만 있다고 설하였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방편으로 일승을 설하였다는 것이다.‘성문’이라 한 것은, 모든 부처님의 성스런 가르침은 음성(聲)을 우선(上首)으로 삼는데 스승과 벗이 있는 곳에서 이 가르침의 음성을 듣고 전전展轉하면서 수증修證하여 영원히 세간을 벗어나게 되는 소행小行ㆍ소과小果의 (사람이기) 때문에 성문이라 한다. ‘독각’이라 한 것은, 항상 적정함을 즐기고 섞여 살려 하지 않고 가행을 닦아 원만해지면 스승과 벗의 가르침이 없이도 자연히 홀로 깨달아서 영원히 세간을 벗어나게 되는 중행中行ㆍ중과中果의 (사람이기) 때문에 독각이라 한다. 혹은 연에 상대해서(觀待) 성스런 과를 깨달으므로 또한 연각緣覺이라고도 한다. ‘보살’이라 한 것은, 대각을 희구하면서 유정을 가엾게 여기고, 혹은 보리를 구하면서 뜻과 원이 굳세고 오랫동안 수증하여 영원히 세간을 벗어나는 대행大行ㆍ대과大果의 (사람이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 구체적인 것은 『유가석론瑜伽釋論』에서 자세하게 해석한 것과 같다.228)(경문의) 뜻을 총괄해서 말하겠다. ≺저 삼승이 -
001_0255_c_01L解深密是最了義。義如
別章。就初段中。復
001_0255_c_02L分爲三。初明三乘各證自乘無餘涅
001_0255_c_03L槃。次約聖道方便說一。後明理實三
001_0255_c_04L乘差別。此卽第一。謂三乘種姓。各
001_0255_c_05L以無性妙淸淨道。證無餘依妙涅般
001_0255_c_06L界。然彼聖道。能通義故。名之爲道。
001_0255_c_07L卽彼聖道。諸聖遊履。亦名行迹。由此
001_0255_c_08L道迹。離諸煩惱有漏苦身。證得常住
001_0255_c_09L寂滅之樂。是故說爲安隱涅槃。
001_0255_c_10L一切聲聞獨覺菩薩。皆共此一妙淸淨
001_0255_c_11L道。皆同此究竟淸淨。更無第二乘。依
001_0255_c_12L此故密意。說言唯有一乘。
001_0255_c_13L釋曰。此卽第二方便說一。言聲聞者。
001_0255_c_14L諸佛聖敎。聲爲上首。從師友所。聞
001_0255_c_15L此敎聲。展轉修證。永出世間。小行
001_0255_c_16L小果。故名聲聞。言獨覺者。常樂寂
001_0255_c_17L靜。不欲雜居。修加行滿。無師友敎。
001_0255_c_18L自然獨悟。永出世間。中行中果。故
001_0255_c_19L名獨覺。或觀待緣而悟聖果。亦名緣
001_0255_c_20L覺。言菩薩者。怖求大覺。悲愍有情。
001_0255_c_21L或求菩提。志願堅猛。長時修證。永
001_0255_c_22L出世間。大行大果。故名菩薩。具如
001_0255_c_23L瑜伽釋論廣解。總說意云。謂彼三乘。
001_0255_c_24L「義」疑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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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6_a_01L모두 이 하나의 오묘한 무성無性의 도를 함께하니, 이 도를 설하여 ‘궁극의 청정’이라 한 것이다. 오직 이 도가 있을 뿐 다시 두 번째 도는 없기 때문에 ‘하나의 도’라는 점에서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 따라서 『심밀해탈경』에서는 “오직 하나의 청정한 도가 있을 뿐 다시 두 번째는 없다.”229)라고 하였고, 별도로 ‘궁극의 청정’이라 설하지 않았다. 따라서 ‘궁극의 청정’이란 바로 이 오묘하고 청정한 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 말하면 다음과 같다.230) ≺‘하나(一)’라는 말은 본래 세 종류가 있다. 첫째, 도道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한다. 둘째, 과果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한다. 셋째, 이치(理)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한다. 지금 이 경문에 의하면 그에 두 종류가 있다. “오묘하고 청정한 도”란 도가 하나라는 것이고, “궁극의 청정”이란 과가 하나라는 것이다. 이 두 종류의 ‘하나’에 의거하되 다시 두 번째 것은 없기 때문에 심오한 밀의로 ‘오직 일승만 있다’고 설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다음의 제4권에서 ‘이치에 차별이 없다는 점에서 일승이라 설한다’고 한 것과는 같지 않다.231)≻
✽두 종류 일승一乘232)〔1〕 그런데 일승이란 오직 하나의 불승佛乘이다. 따라서 『승만경』에서는 ‘성문과 연각은 모두 대승에 들어가니, 대승이 곧 불승이다’라고 하였고,233) 또 『법화경』에서는 “시방의 불국토 중에는 오직 일승법만 있을 뿐 둘도 없고 또한 셋도 없다.”234)라고 하였다. 〔2〕 혹은 법신으로써 일승을 밝혔다고 볼 수도 있으니, 따라서 『법화론』에서는 “여래의 법신은 저 성문의 법신과 차이가 없으므로 수기를 준 것이다.”235)라고 하였다. 일승에 대해서는 뒤에서 분별하겠다.이것은 육합석六合釋236) 중에서 대수석帶數釋에 해당한다.237)(일승의) 체성을 논하겠다. 수용신이라면 사지심품四智心品238)에 속하는 온蘊 등을 체로 삼고, 법신이라면 진여를 체로 삼는다.239) 총상總相으로 체를 나타내면, 일승문에서는 교敎ㆍ이理ㆍ행行ㆍ과果를 일승으로 삼는다.240)
● ‘일승一乘’에 대한 해석241)그런데 이 ‘일승’의 성교聖敎는 매우 많고, 번역자도 한 사람이 아니며, (일승을 설하는) 의취意趣도 심원하다. 그러므로 신新ㆍ구舊의 (학자들이) 다투어 논쟁을 일으켰다.
◉ 진제 등의 일체개성설一切皆成說242)첫째, 진제 등의 한 부류 논사들은 『법화경』 등 여러 경과 논에 의거해서 모두 다음과 같이 -
001_0256_a_01L皆1)其 [1] 此一妙無性道。即說比 [165] 道。名
001_0256_a_02L究竟淨。唯有此道。更無第二。故約
001_0256_a_03L一道。說爲一乘。故深密云。唯有 [166] 一
001_0256_a_04L淸淨道。更無第二。而不別說究竟淸
001_0256_a_05L淨。故知究竟淸淨卽是妙淸淨道也。
001_0256_a_06L又云。一言自有三種。一道一故名
001_0256_a_07L一。二果一故名一。三 理一故名一。
001_0256_a_08L今依此文。有其二種。妙淸淨道。卽是
001_0256_a_09L道一。究竟淸淨。卽是果一。依此二一。
001_0256_a_10L更無第二。故深密意說唯有一乘。而
001_0256_a_11L不同下第四卷中約理無別故說一乘。
001_0256_a_12L然一乘者。唯一佛乘。故勝鬘經云。聲
001_0256_a_13L聞緣覺。皆入大乘。大乘卽佛乘也。又
001_0256_a_14L法華經云。十方佛土中。唯有一乘法。
001_0256_a_15L無二亦無三。或可法身以明一乘。故
001_0256_a_16L法華論云。以如來法身。與 [167] 聲聞法身
001_0256_a_17L法身 [168] 無異。故與授記。後當分別。此
001_0256_a_18L卽六中帶數釋也。論體性者。若受用
001_0256_a_19L身。四智心品所攝蘊等。以爲體性。若
001_0256_a_20L就法身。眞如爲體。總相出體。於一乘
001_0256_a_21L門。敎理行果。以爲一乘。然此一乘聖
001_0256_a_22L敎甚多。譯者非一。意趣深遠。是故新
001_0256_a_23L舊競興諍論。一眞諦等一類諸師。依
001_0256_a_24L法華等諸經及論。皆作此說。一切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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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6_b_01L‘일체의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는 설을 제기한다.
◎ 경전적 근거243)❶244) 따라서 『열반경』 제7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십오유二十五有245)에는 아我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아’라는 것은 여래장을 뜻한다. 모든 중생은 다 불성이 있으니, 이것이 ‘아’의 뜻이다.”246)라고 하였다. 또 제27권에서는 “중생의 불성은 하나인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제불은 평등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니, 모든 중생들이 똑같이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247) 이것은 이성理性을 말한 것이다. 또 제27권에서는 “사자후獅子吼란 결정설決定說248)이라 하니, (예를 들면) ‘모든 중생들은 다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249)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비유하면 어떤 사람의 집에 유乳ㆍ낙酪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소蘇가 있느냐’고 물으면 ‘나에게 낙은 있어도 실제로 소는 있지 않다’고 답하는 것과 같다.250) 교묘한 방편으로써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소가 있느냐’라고 말한 것이다. 중생도 이와 같아서 모두 마음을 갖고 있으니, 무릇 마음을 갖고 있는 자는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결정해서 ‘모든 중생들은 다 불성을 갖고 있다’고 설하였다.”251)라고 하였다.이것은 행성行性을 말한 것이다. 또 제32권에서는 “모든 중생은 똑같이 불성을 갖고 있어서, 모두 동일한 승乘이고 동일하게 해탈하며 동일한 인因으로 동일한 과果를 (얻고) 동일한 감로甘露를 (얻으며), 모두 상ㆍ락ㆍ아ㆍ정을 얻을 것이다. 이것을 일미一味라고 한다.”252)라고 하였다.이것은 이성理性과 행성行性을 통틀어 설한 것이다.❷253) 또 『법화경』에서 “시방의 불토에는 오직 일승법만 있으니, 부처님의 방편설을 제외하면 둘도 없고 또한 셋도 없다.”254)라고 하였고, 또 말하길, “오직 이 하나의 사실이 있을 뿐 그 밖의 두 가지 승은 진실이 아니다.”255)라고 하였다. 또 『승만경』에서는 “성문승ㆍ연각승은 모두 대승에 들어간다.”256)라고 하였다.또 『수진천자소문경須眞天子所問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일체가 다 마땅히 부처가 될 수 있으니,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이라 알고 그대는 의심하지 말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체가 여래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257) 자세히 설하면 그 경과 같다.또 『입능가경』 제2권에서는 오승五乘의 종성種性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001_0256_b_01L生皆有佛性。故涅槃經第七卷云。二
001_0256_b_02L十五有。有我不耶。佛言。善男子。我
001_0256_b_03L者卽是如來藏義。一切衆生悉有佛
001_0256_b_04L性。卽是我義。又第二十五 [169] 云。衆生
001_0256_b_05L佛性不一不異。諸佛平等。猶如虛空。
001_0256_b_06L一切衆生。同共有之。此說
理性。又第二十
001_0256_b_07L七云。師子吼者。名決定說。一切衆生
001_0256_b_08L悉有佛性。又云。譬如有人。家有乳
001_0256_b_09L酪。有人問言。汝有蘇耶。答言。我有
001_0256_b_10L酪實非蘇。以巧方便。定當得故。故言
001_0256_b_11L有蘇。衆生亦爾。悉皆有心。凡有心
001_0256_b_12L者。定當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1_0256_b_13L以是義故。我定 [170] 說一切衆生悉有佛
001_0256_b_14L性。此說
行性。又三十三 [171] 云。一切衆生。同有
001_0256_b_15L佛性。皆同一乘。同一解脫。一因一
001_0256_b_16L果。同一甘露。一切當得常樂我淨。是
001_0256_b_17L名一味。通說
理行。又法華經云。十方佛土
001_0256_b_18L中。唯有一乘法。無二亦無三。除佛
001_0256_b_19L方便說。又云。唯此一事實。餘二則
001_0256_b_20L非眞。又勝鬘經。聲聞緣覺 [172] 。皆入大
001_0256_b_21L乘。又須眞天子所問經云。文殊師利
001_0256_b_22L言。一切皆得 [173] 。審當作佛。卿莫疑也。所
001_0256_b_23L以者何。一切當得如來覺故。廣說如
001_0256_b_24L彼。又入楞伽第二。明五乘性云。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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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6_c_01L≺천제闡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모든 선근을 태워 버린 자이고, 둘째는 모든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중생계를) 다하겠다고 원을 세운 자이다. 둘 중의 하나에 따르므로 결코 성불하지 않는 것이다.≻258) 구체적으로 설하면 그 경과 같다. 4권 『능가경』 제1권의 설도 언어는 비록 차이가 있지만 뜻은 이전 판본과 동일하다. 이러한 경들에 준해 보면, 종성이 없는 유정도 또한 성불할 수 있다.
◎ 각 논서에 나온 전거들259)❸260) 또 양梁 『섭대승론석』 제15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섯째는 승乘을 구제救濟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중간 생략……261) 아직 근성이 정해지지 않은 성문들을 위해 능히 그것(不定種性)을 안립하여 대승을 수행하게 하기 때문이다.262)석 ……중간 생략……만약 신근信根 등의 다섯 가지 근을 얻었다면 결정된 근기(定根)라고는 하지 않으니, 아직 성도聖道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 등 세 가지 근을 얻었다면 결정된 근기라고 하니, 성도를 얻었기 때문이다.263) 만약 정위頂位에 이르렀다면 결정된 종성(定性)이라 하지 않으니, 네 가지 악도惡道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264) 만약 인위忍位에 이르렀다면 결정된 종성이라 하니, 네 가지 악도를 면하기 때문이다.265)소승의 해석에 의하면, 아직 근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는 곧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환될 수 있다. 만약 결정된 근성을 얻었다면 전환될 수 없으니, 이와 같은 성문은 소승에서 대승으로 바뀐다는 의미가 있지 않은데, 어떻게 일승을 설할 수 있겠는가? 지금 대승의 해석에 의하면, 아직 보살도를 전념해서 닦지 않는 자를 모두 ‘아직 근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라고 한다. 따라서 모든 성문들이 다 소승에서 대승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대승ㆍ소승의 사람을 안립해서 대승을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266)❹267) 『대지도론』 제84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종류 도가 있다. 인천도人天道와 삼승도三乘道를 (합하면) 네 종류다. 보살법菩薩法(보살의 법기를 가진 자)은 중생을 인도하면서 대도大道 안에 머물러야 한다. 대도에 들어갈 수 없는 자라면 이승에 머문다. 열반에 들어갈 수 없는 자라면 인천의 복락에 머물면서 열반의 인연을 짓는다.”268)❺269) 또 『법화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문은 네 종류가 있다. -
001_0256_c_01L提二種。一者焚燒一切善根。二者憐
001_0256_c_02L愍一切衆生。作盡 [174] 願。二中從一定不
001_0256_c_03L成佛。具說如彼。四卷楞伽第一卷說。
001_0256_c_04L言雖有異。意同前本。准此等經。無
001_0256_c_05L姓有情。亦得成佛。又梁攝論第十五
001_0256_c_06L云。五救濟乘爲業。乃至彼云。未定
001_0256_c_07L根性聲聞。能安立彼。爲修行大乘故。
001_0256_c_08L釋曰。乃至。若得信等五根。不名定根。
001_0256_c_09L以未得聖故。若得未知欲知等三根。
001_0256_c_10L則名定根。以得聖故。若至頂位。不
001_0256_c_11L名定性。以不2)勉 [1] 四惡道故。若至忍
001_0256_c_12L位。名爲定性。以免四惡道故。若依
001_0256_c_13L小乘解。未得定根性。則 [175] 轉小爲大。若
001_0256_c_14L得定根性。則不可轉。如此聲聞。無
001_0256_c_15L有改小爲大義。云何 [176] 說一乘。今依大
001_0256_c_16L乘解。未專修菩薩道。悉名未定根性。
001_0256_c_17L故一切聲聞。皆有可轉小 [177] 爲大義。安
001_0256_c_18L立如此大小乘人。令修行大乘。智度
001_0256_c_19L論八十四云。有四種道。人天道並三
001_0256_c_20L乘道爲四。菩薩法。應引導衆生。著大
001_0256_c_21L道中。若爾 [178] 任入大道者。著三 [179] 乘中。若
001_0256_c_22L不任入涅槃者。著人天福樂中。作涅
001_0256_c_23L槃因緣。又法華論云。聲聞有四種。一
001_0256_c_24L「其」疑「共」。「勉」「免」音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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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7_a_01L첫째는 결정성문決定聲聞이고, 둘째는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이며, 셋째는 퇴보리심성문退菩提心聲聞이고, 넷째는 응화성문應化聲聞이다.270) 두 종류 성문에게는 여래는 수기를 내려 주니, 응화성문과 퇴전했다가 다시 보리심을 낸 자를 말한다. 결정ㆍ증상만 두 종류 성문은 근기가 미숙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수기를 주지 않고, 보살이 수기를 준다. 보살이 수기를 주는 것은 방편으로 발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271)
✽총결이러한 문장들에 준해 보면, 결정코 종성이 없는(無性) 유정이란 있지 않고 또한 종성이 결정된(定性) 성문ㆍ독각이라도 결코 성불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심밀해탈경』과 『유가사지론』 등에서 ‘결코 성불하지 못한다’고 한 것은, 근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시기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지, 결정코 성불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보성론寶性論』 제3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전에 ‘일천제는 언제나 열반에 들지 못하고 열반의 종성이 없는 자’라고 설했는데, 이 의미는 무엇인가? 대승을 비방하는 인因을 보여 주려 하였기 때문이고,……중간 생략……(열반하기까지) 한량없는 시간이 (든다는 데) 의거해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272) (그러나) 그들은 실로 청정한 성품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끝내 청정한 마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273)
◎ 일체개성의 난제를 문답으로 결택함274)
문 『유가사지론』 제80권에 의하면 “무여의열반계無餘依涅槃界에서는 모든 사업의 발기發起를 멀리 떠나고 일체의 공용功用이 모두 다 그친다.”275)라고 하였는데, 만약 상술했던 것처럼 ‘결정성문도 또한 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유가사지론』의 문장과 어떻게 회통시켜 해석하겠는가?답 ❻276) 『법화경』 제3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멸도한 후에 다시 어떤 제자가 이 경(『법화경』)을 듣지 못하고 보살이 행해야 할 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 채 스스로 획득된 공덕에 대해 ‘멸도滅度한다’는 생각(想)을 내어 열반에 들 것이다. 나는 다른 나라에서 부처가 되어 다시 다른 이름을 갖게 되고, 이 사람은 비록 ‘멸도한다’는 생각을 내어 열반에 들었다고 해도 그 땅에서 부처의 지혜를 구할 것이다.”277) 『대지도론』 제93권에서도 또한 이와 동일하게 설한다.❼278) 또 『열반경』 제23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001_0257_a_01L者決定。二者增上慢。三者退菩提 [180] 。
001_0257_a_02L四者應化聲聞。二種聲聞。如來與授
001_0257_a_03L記。謂應化聲聞。退已還發菩提心者。
001_0257_a_04L決定增上 [181] 二種聲聞。根未熟故。如來
001_0257_a_05L不與授記。菩薩與授記 [182] 者。方便令發
001_0257_a_06L心故。准此等文。決定無有無性有情。
001_0257_a_07L亦無定性聲聞獨覺必不成佛。而深
001_0257_a_08L密經及瑜伽等。定不成者。約根未熟
001_0257_a_09L時分而說。非謂決定不成佛也。故寶
001_0257_a_10L性論第二 [183] 卷云。向說一闡提常不入
001_0257_a_11L涅槃無涅槃性者。此義云何。爲欲
001_0257_a_12L示現謗大乘因故。乃至。依無量時。故
001_0257_a_13L如是說。以彼實有淸淨性故。不得說
001_0257_a_14L言彼常畢竟無淸淨心。問。依瑜伽第
001_0257_a_15L八十云。於無餘依涅槃界中。遠離一
001_0257_a_16L切發趣 [184] 事業。一切功用。皆悉止息。若
001_0257_a_17L如上說。決定聲聞。亦得成佛。彼瑜
001_0257_a_18L伽文。如何會釋。答。依法華第三卷
001_0257_a_19L云。我滅度後。復有弟子。不聞是經。
001_0257_a_20L不知不覺菩薩所行。自於所得功德。
001_0257_a_21L生滅度想。入於 [185] 涅槃。我於餘國作佛。
001_0257_a_22L更有異名。是人雖生滅度之想入於
001_0257_a_23L涅槃。而於彼土。求佛智慧。大智論
001_0257_a_24L第九十三。亦同此說。又涅槃經二十
-
001_0257_b_01L“성문ㆍ독각이 8만ㆍ6만ㆍ4만ㆍ2만ㆍ1만 (겁 동안) 머무는 곳(住處)은 열반이라 이름하고, 무상법주無上法主이신 성왕聖王이 머무는 곳이라야 대반열반이라 이름할 수 있다.”279)❽280) 또 『능가경』 제4권의 게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譬如海浮木 비유하면 바다에 떠 있는 나무가
當隨波浪轉 파도를 만나서 떠돌듯이
諸聲聞亦爾 모든 성문들 또한 이러하여
相風所漂蕩 상相의 바람에 표류하나니
離諸隨煩惱 모든 수번뇌를 떠나고
薰習煩惱縛 훈습번뇌의 속박을 떠났어도
味著三昧樂 삼매의 즐거움에 애착하며
安住無漏界 무루의 세계에 편안히 머무네
無有究竟趣 궁극에로 나아감도 없고
亦復不退還 또한 다시 물러나지도 않으며
得諸三昧身 모든 삼매의 몸을 얻어서
無量劫不覺 무한한 겁 동안 깨닫지 못하니
譬如昏醉人 비유하면 술 취한 사람이
酒消然後寤 술기운 사라진 후에야 깨어나듯
得佛無上體 부처님의 위없는 몸을 얻어야
是我眞法身 이것이 나의 참된 법신이라네281)
또 『법화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로 없는데도 있다고 하면 증상만을 가진 사람이다. 세간의 삼매三昧ㆍ삼마발제三摩跋提282)는 있지만 실로 열반은 없는데도 ‘열반’이라는 생각을 내니, 이것을 대치시키기 위해서 ‘화성化城의 비유’283)를 설하였음을 알아야 한다.”284)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번째 사람은285) (여래가) 방편으로써 열반의 성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열반의 성이란 모든 선삼매禪三昧의 성이니, 그 성을 지나서 대반열반의 성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286)이러한 문장들에 준해 보면, 『유가사지론』에서 설했던 무여열반이란 저 『능가경』에서 설했던 삼매락정三昧樂定에 해당한다. (그것이) 분단생사分段生死를 떠났기 때문에 ‘무여’라고 한 것이지, 진실한 무여열반은 아니니, 변역생사變易生死가 있기 때문이다.287)『승만경』에서는 ‘무여는 없다’고 설하니, 따라서 그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아라한과 벽지불은 ‘유여有餘의 생법生法(변역생사)’이 다하지 않았으므로 생이 있고, 유여의 범행梵行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순수하지 않으며, 사事가 궁극적이지 않으므로 마땅히 지어야 할 것이 있고, -
001_0257_b_01L三云。聲聞獨 [186] 覺。八萬六萬四萬二萬
001_0257_b_02L一萬住處。名爲涅槃。無上法主聖王
001_0257_b_03L住處。乃得名爲大般涅槃。又楞伽第
001_0257_b_04L四頌云。
001_0257_b_05L譬如海浮木。當隨渡浪轉。
001_0257_b_06L諸聲聞亦爾 [187] 。相風所漂蕩。
001_0257_b_07L離諸隨煩惱。薰習煩惱縛。
001_0257_b_08L味著三昧樂。安住無漏界。
001_0257_b_09L無有究竟趣。亦復不退還。
001_0257_b_10L得諸三昧身。無量劫不覺。
001_0257_b_11L譬如昏 [188] 醉人。酒消然後寤。
001_0257_b_12L得佛無上體。是我眞法身。
001_0257_b_13L第二1)第二 [6] 亦同此意。又法華論云。
001_0257_b_14L實無而有。增上慢人。以有世間 [189] 三摩
001_0257_b_15L跋提。實無涅槃。而生涅槃想。對治此
001_0257_b_16L故。說化城譬喩應知。又云。第四人者。
001_0257_b_17L方便令入涅槃城故。涅槃城者。諸禪
001_0257_b_18L三昧城。過彼城已。令入大般涅槃城
001_0257_b_19L故。准此等文。瑜伽所說無餘涅槃。卽
001_0257_b_20L彼楞伽所說三昧樂定。離分段故。名
001_0257_b_21L爲無餘。非實無餘。有變易故。勝鬘經
001_0257_b_22L說無無餘。故彼經云。是故阿羅漢辟
001_0257_b_23L支佛。有餘生法不盡故有生。有餘梵
001_0257_b_24L行 [190] 成故不純。事不究竟故。當有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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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7_c_01L그것을 제도하지 못했으므로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이 있으며, 끊지 못했으므로 열반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288)……중간 생략……(그러나 이승이) ‘열반을 얻는다’고 한 것은 부처님이 방편으로 (설한 것이니), 오직 여래만이 반열반을 얻을 수 있다.”289)이에 준해 보면, 8만 겁 등 (동안에) 삼매락에 드는 것을 ‘무여’라고 가짜로 이름한 것이지, 몸(身)과 지智가 둘 다 소멸한 무여열반은 실재하지 않는다.290)그런데 수다원須陀洹 등은 근본을 따라 이름한다면 실로 무학無學이다.그러므로 이승도 결정코 성불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여러 경들에서는 실제로 일승을 설하면서 이승을 가설한 것이다.291)
◉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292)둘째, 대당 삼장은 여러 경론에 의거해서 다섯 가지 종성이 있다고 건립하였다. 종성이 없는 유정은 열반의 성품이 없고, 종성이 결정된 이승은 결코 성불할 수 없다.
◎ 경전적 근거293)따라서 『선계경善戒經』 제1권에서는 “보살 종성이 없는 자는 비록 다시 발심하여 부지런히 닦아 정진한다 해도 끝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없다.”294)라고 하였다. 또 『지지론地持論』 제1권에서는 “종성을 갖지 않은 사람은 종성이 없기 때문에 비록 다시 발심하여 부지런히 닦아 정진한다 해도 결코 궁극의 아뇩보리阿耨菩提(무상보리)를 얻지 못한다.”295)라고 하였다.『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35권에서도 『지지론』과 동일하게 설한다.또 이 경에서는 “한결같이 적멸에로 나아가는 성문종성의 보특가라는 비록 여러 부처님들이 시설해 주신 갖가지 용맹스런 가행방편의 교화ㆍ인도를 받더라도 끝내 미래에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할 수는 없다.”296)라고 하였다. 또 『심밀해탈경』 제2권에서도 “제일의第一義의 적멸을 성취한 성문종성의 사람은 모든 부처님들이 온 힘을 다해 교화하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도량에 앉아 무상보리를 증득하게 할 수 없으니,……나는 (그들을) 적멸성문이라 이름한다.”297)라고 하였다.또 『대보살장경大菩薩藏經』298) 제5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정正定의 중생은 바른 법기法器이니, 여래가 설법해 주든 설법해 주지 않든 -
001_0257_c_01L不度彼故。當有所斷。以不斷故。去涅
001_0257_c_02L槃界遠。乃至。言得涅槃者。是佛方便。
001_0257_c_03L唯有如來得般涅槃。准此應知。八萬
001_0257_c_04L劫等。入三昧樂。假名無餘。無實身
001_0257_c_05L智俱滅無餘涅槃。然須陀洹等者。從
本爲名。實是無學。是故
001_0257_c_06L二乘定得成佛。由此諸經。實說一乘。
001_0257_c_07L假說二乘。二者。大唐三藏。依諸經
001_0257_c_08L論。立有五姓。無姓有情。無涅槃性。定
001_0257_c_09L性二乘。必不成佛。故善戒經第一卷
001_0257_c_10L云。若無菩薩性 [191] 。雖復發心勤修精進。
001_0257_c_11L終不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又
001_0257_c_12L地持論第一卷云。非種姓人。無種性
001_0257_c_13L故。雖復發心勤修精進。必不究竟阿
001_0257_c_14L耨菩提。瑜伽第三十五。亦同地持。又
001_0257_c_15L此經云。一 [192] 向趣寂靜 [193] 聲聞種姓補特
001_0257_c_16L伽羅。雖蒙諸佛施設種種勇猛加行
001_0257_c_17L方便化導。終不能令當坐道場證得
001_0257_c_18L阿耨多羅三藐三菩提。又深密解脫
001_0257_c_19L經第二云。成就第一義寂滅聲聞性
001_0257_c_20L人。一切諸佛盡力敎化。不能令其坐
001_0257_c_21L於道場得無上菩提。我說名爲寂滅
001_0257_c_22L聲聞。又大菩薩藏經第五卷云。正定
001_0257_c_23L衆生。是正法器。如來說法。若不說
001_0257_c_24L「第二」疑寫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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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8_a_01L다 해탈할 수 있다. 사정邪定의 중생은 바른 법기가 아니니, 여래가 그를 위해 설법해 주든 설법해 주지 않든 끝내 해탈을 증득할 수 없다. 여래는 그 유정이 법기가 아님을 여실하게 알기에 그냥 내버려 둔다.299) ≻300)『앙굴마라경』 제2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 무리의 중생을 구별하는 것은 성문승이다.301) 대승은 오직 두 무리로 나누니, 치유될 수 있는 자와 치유될 수 없는 자이다. 이른바 사정邪定이란 저 일천제를 말하고, 정정正定이란 여래와 보살과 이승을 말한다.≻302)
또 『선계경』 제3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생을 조복調伏시키는 데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성문종성이 있는 자는 성문도聲聞道를 얻는다. 둘째, 연각종성이 있는 자는 연각도緣覺道를 얻는다. 셋째, 불성이 있는 자는 불도佛道를 얻는다. 넷째, 인천人天의 종성이 있는 자는 인천의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을 네 종류라고 이름한다.”303)『승만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대지大地가 네 가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네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큰 바다이고, 둘째는 모든 산이며, 셋째는 초목이고, 넷째는 중생이다. 이와 같이 정법을 섭수하는 선남자와 선여인을 ‘대지’라고 건립하니, 네 종류 무거운 짐을 질 수 있으므로 그 대지에 비유한 것이다. 네 종류 (무거운 짐이란) 어떤 것들인가? 말하자면 선지식을 떠나서 (정법을) 듣지 못한 비법非法의 중생에게는 인천人天의 선근으로써 그들을 성숙시키고, 성문을 구하는 자에게는 성문승을 가르쳐 주며, 연각을 구하는 자에게는 연각승을 가르쳐 주고, 대승을 구하는 자에게는 대승을 가르쳐 준다.”304)또 『대반야경』 제593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유정의 부류 중에 성문승의 종성에 결정된 자라면 이 법을 듣고 나서 빠르게 자승自乘(성문승)의 무루지無漏地를 증득할 것이다.……독각승의 종성에 결정된 자라면 이 법을 듣고 나서 빠르게 자승(독각승)에 의지해서 출리出離할 수 있다.……무상승無上乘의 종성에 결정된 자라면 이 법을 듣고 나서 빠르게 -
001_0258_a_01L法。皆得解脫。邪定衆生。非正法器。若
001_0258_a_02L使如來爲彼說法。若不說法。終不堪
001_0258_a_03L任證於解脫。如來如實知彼有情非
001_0258_a_04L法器已。而便棄捨。央堀摩羅經第三 [194]
001_0258_a_05L卷云。三聚衆生別。卽是聲聞乘。大
001_0258_a_06L乘唯二聚。可治不可治。所言邪定者。
001_0258_a_07L謂彼一闡提。正定謂如來菩薩及二
001_0258_a_08L乘。 [195] 又善戒經第三卷云。衆生調伏。有
001_0258_a_09L其四種。一者有聲聞性。得聲聞道。二 [196]
001_0258_a_10L緣覺性。得緣覺道。三 [197] 有佛性。卽得
001_0258_a_11L佛道。四者有人天性。得人天樂。是名
001_0258_a_12L爲四。勝鬘經云。又如大地。持四重
001_0258_a_13L擔。何等爲四。一者大海。二者諸山。
001_0258_a_14L三者草木。四者衆生。如是攝受正法
001_0258_a_15L善男子善女人。建立大地。堪能荷負
001_0258_a_16L四種重任。喩彼大地。何等爲四。謂
001_0258_a_17L離善知識無聞非法衆生。以人天善
001_0258_a_18L根而成就 [198] 之。求聲聞者。授聲聞乘。求
001_0258_a_19L緣覺者。授緣覺乘。求大乘者。授以
001_0258_a_20L大乘。又大般若五百九十三云。若有
001_0258_a_21L情類於聲聞乘性決定者。聞此法已。
001_0258_a_22L速能證得自無漏地。於獨覺乘性決
001_0258_a_23L定者。聞此法已。速依自乘而得出離。
001_0258_a_24L於無上乘性決定者。聞此法已。速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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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8_b_01L무상정등보리를 증득할 것이다. 만약 유정의 부류 중에 아직 정성리생正性離生(견도)에 깨달아 들어가지 못했지만 삼승의 (종성에) 결정되지 않은 자라면 이 법을 듣고 나서 모두 무상정등각심을 발할 것이다.”305) 『십륜경十輪經』 제9권에서 설한 뜻도 『대반야경』과 동일하다.『보살지지경』 제3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사람을 성숙시키는 것에 대해 대략 네 가지로 말한다. 성문종성이 있으면 성문승으로써 그를 성숙시킨다. 연각종성이 있으면 연각승으로써 그를 성숙시킨다. 불종성이 있으면 무상대승無上大乘으로써 그를 성숙시킨다. 종성이 없는 자는 선취善趣(천ㆍ인ㆍ아수라)를 통해 그를 성숙시킨다.”306)『유가사지론』 제37권에서도 『보살지지경』과 동일하게 설한다.
◎ 유식학 논서들의 전거307)또 『유가사지론』 제2권에서는 ‘열반법이 없는 자(無涅槃法)’란 곧 세 종류 보리 종자가 결여된 자라고 하였다.308) 또 『유가사지론』 제67권에서는 “무종성에 머무는 사람을 ‘끝내 반열반법이 없는 자(畢竟無般涅槃法)’라고 하니,……이하 생략……”309)라고 하였다. 또 제52권에서는 “진여라는 소연연을 통달하는 데 있어 끝내 장애의 종자가 있는 자를 ‘반열반법의 종성이 없는 보특가라(不般涅槃種性補特伽羅)’라고 건립하고, 이렇지 않은 자를 ‘반열반법종성의 보특가라’라고 건립한다.”310)라고 하였다.또 『대승장엄경론』 제1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성이 없는 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일시적으로 반열반법이 없는 자(時邊無般涅槃)이고,311) 둘째는 끝내 반열반법이 없는 자(畢竟無般涅槃)이다.312) ‘일시적으로 반열반법이 없는 자’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한결같이 악행을 저지르는 자이다. 둘째는 널리 모든 선법을 끊어 버린 자이다. 셋째는 해탈분解脫分의 선근이 없는 자이다. 넷째는 선근을 조금도 구족하지 않은 자이다. ‘끝내 완전한 열반법이 없는 자’는 (열반의) 인因이 없기 때문에 반열반의 종성이 없는 것이니, 단지 생사만을 구하고 열반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다.≻313)또 양조梁朝 『섭대승론석』 제14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彼障因不具 장애를 받았거나 인을 갖추지 못했거나
一切衆生界 모든 중생계에서
住二種定中 두 종류 결정314)에 머무는 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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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8_b_01L無上正等菩提。若有情類。雖未證 [199] 人 [200]
001_0258_b_02L正性離生。而於三乘不定者。聞此法
001_0258_b_03L已。皆發無上正等覺心。十輪經第九
001_0258_b_04L意。同大般若。依菩薩地持第二 [201] 卷云。
001_0258_b_05L人成就 [202] 者。略記 [203] 四種。有聲聞種性。以
001_0258_b_06L聲聞乘。而成就✽之。有緣覺種性。以緣
001_0258_b_07L覺乘。而成就✽之。有佛種性。以無上大
001_0258_b_08L乘。而成就✽之。無種性者。則以善趣。而
001_0258_b_09L成就✽之。瑜伽三十七。亦同地持。又瑜
001_0258_b_10L伽論第二卷云。無 [204] 涅槃法者。便闕三
001_0258_b_11L乘 [205] 菩提種子。又瑜伽六十七云。住無
001_0258_b_12L種性人。是名畢竟無般涅槃法。乃至
001_0258_b_13L廣說。又五十二云。若於通達眞如所
001_0258_b_14L緣緣中。有畢竟障種子 [206] 。建立 [207] 不般涅
001_0258_b_15L槃種性補特伽羅。若不爾者。建立爲
001_0258_b_16L般涅槃法種性補特伽羅。又莊嚴論
001_0258_b_17L第一卷云。無性有二。一時邊無 [208] 般涅
001_0258_b_18L槃。二畢竟無般涅槃。時邊無✽般涅槃
001_0258_b_19L法有四。一者一向行惡行。二者普斷
001_0258_b_20L諸善法。三者無解脫分善根。四者善
001_0258_b_21L因 [209] 少不具足。畢竟無涅槃法者。以無
001_0258_b_22L因故。無般涅槃性。但求生死。不求
001_0258_b_23L涅槃人。又梁朝攝論第十四云。彼 [210] 障
001_0258_b_24L因不具。一切衆生界。住二種定中。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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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8_c_01L諸佛無自在 제불도 자재하지 못하네315)
천친天親(世親)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중생에게 열반의 종성이 없다면 ‘인을 갖추지 않았다’고 하고, 제불도 이런 상태에서는 그를 반열반에 들게 할 수 없고 신통ㆍ지혜로 또한 자재할 수 없으니,……말하자면 (그는) 생사에 탐착하면서 대승을 믿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316)또 대당大唐 『섭대승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有情界周遍 유정계에서 두루
具障而闕因 장애를 갖추었고 인이 결여되었으며
二種決定轉 두 종류 결정에서 전전하는 자라면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 두 종류가 결정된 자.(造業受果二種決定。)
001_0258_c_01L諸佛無自在 제불도 자재할 수 없네317)
세친世親(天親)의 『섭대승론석』 제10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정들 중에 열반법이 없는 자를 ‘인이 결여되었다’고 한다. 이 뜻을 말하자면, 저 열반의 인이 없는 자는 종성이 없기 때문에 제불도 그에 대해서는 자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318) 또 『대업론大業論』319)의 (해석도) 이 뜻과 동일하다. 또 무성無性은 (해석하길), “말하자면 번뇌ㆍ업ㆍ이숙의 장애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장애를 갖추었다’고 하고,……열반의 인이 없고 종성이 없기 때문에 ‘인이 결여되었다’고 하니,……제불은 앞에서 말한 유정들에 대해서는 모두 자재하게 열반을 얻도록 할 수가 없다.”320)라고 하였으니, 자세하게 설하면 그 논과 같다.『불지경론』에 의하면 다섯 가지 종성이 있는데 그 의미는 일반적으로 설하는 것과 같다. 나아가 그 논에서는 “다섯 번째 종성은 세간을 벗어날 공덕의 인이 없기 때문에 끝내 멸도할 기약이 없다.”321)라고 하였다.또 『십지경론』 제11권에서는 사정취邪定聚를 ‘반열반의 종성이 없는 자’라고 하였다.322)
◎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 일체개성의 전거들을 재해석함323)이상의 문장들에 준해 보면, 종성이 없는 유정은 열반의 인이 없고, 종성이 결정된 이승은 결코 성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일승이라고 설할 수 있고, 이전에 인용했던 교설들과 어떻게 회통시켜 해석하겠는가?해 ❶324) 예를 들어 『열반경』에서 “선남자여, 아我라는 것은 여래장을 뜻한다.”325)라고 하였고, 또 “모든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있고 여래는 상주하며 변함이 없다.”326)라고 하였다. 또 『보성론』 제1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어떻게 모든 중생들에게 여래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답 모든 부처님들의 평등한 법성신法性身에 의거해서 -
001_0258_c_01L佛無自在。天親釋曰。衆 [211] 生無涅槃性。
001_0258_c_02L名因不具。諸佛於此位中。不能令 [212] 般
001_0258_c_03L涅槃。神通 [213] 亦無自在。諸 [214] 貪著生死。不
001_0258_c_04L信樂大乘。又大唐攝論云。
001_0258_c_05L有情界周遍。具障而闕因。
001_0258_c_06L二種決定轉。造業受果
二種決定。諸佛無自在。
001_0258_c_07L世親釋論第十卷云。若諸有情界 [215] 無
001_0258_c_08L涅槃法。名爲闕因。此意說。彼無涅槃
001_0258_c_09L因。無種姓故。諸佛於彼無有自在。又
001_0258_c_10L大業論。亦同此意。又無性云。謂具煩
001_0258_c_11L惱業異熟障。故名具障。無涅槃因。無
001_0258_c_12L種姓故。名爲闕因。諸佛於上所說有
001_0258_c_13L情。皆無自在令得涅槃。廣說如彼。依
001_0258_c_14L佛地論。有五種姓。義如常說。乃至彼
001_0258_c_15L云。第五種姓。無有出世功德因故。畢
001_0258_c_16L竟無有滅度之 [216] 期。又十地論第十一
001_0258_c_17L云。邪定聚。名無般涅槃性。准此等文。
001_0258_c_18L無性有情。無涅槃因。定性二乘。必不
001_0258_c_19L成佛。若爾。如何說爲一乘。前所引敎。
001_0258_c_20L如何會釋。解云。如涅槃云。善男子。
001_0258_c_21L我者卽是如來藏義。又 [217] 。一切衆生悉
001_0258_c_22L有佛性。常 [218] 住無有變易。又寶性論第
001_0258_c_23L一卷云。問。云何得知一切衆生有如
001_0258_c_24L來藏。答。依一切諸佛。平等法性身。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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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9_a_01L모든 중생들에게 다 여래장이 있음을 알 수 있다.≻327) 이와 같은 문장들에서는 모두 진여법신의 불성을 (설하는데,) 이것은 곧 다섯 종성들이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또 『열반경』에서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중간 생략……반드시 결정코 획득할 것이기 때문이다.”328)라고 했는데, 이와 같은 교설은 모두 행성行性을 (설한 것이니, 이것은) 결정코 획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부정종성不定種姓이라는 일부분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329)
❷330) 또 『법화경』에서는 “시방의 불토에는 오직 일승법만 있으니, 부처님의 방편설을 제외하면 둘도 없고 또한 셋도 없다.”331)라고 하였는데, 이 경문에 대한 해석에서 여러 설들이 부동하다.구마라집 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이 없다(無二)’는 것은 성문ㆍ연각이 없다는 것이다. ‘셋도 없다’는 것은 성문과 연각, 그리고 대승 가운데 육도六度(육바라밀)만을 치우쳐 행하는 독선보살獨善菩薩이 없다는 것이다.≻다시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둘이 없다’는 것은 두 번째 승 곧 연각이 없다는 것이다. ‘셋도 없다’는 것은 세 번째 성문승이 없다는 것이다.≻332)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앞의 두 종류 해석은 오직 인승因乘에 대한 것이니, 그래서 불승佛乘에는 극과極果의 성품이 있다고 보고 일부러 논파하지 않았다.≻333)지금의 사람들은 ‘둘도 없고 셋도 없다’는 것에 대해 바로 판석하면서, 부처님의 세 가지 몸에 의거해서 이 의미를 나타낸다. 이른바 ‘둘이 없다’는 것은 오직 여래보불如來報佛의 일승만 있을 뿐 저 성문ㆍ연각의 이승은 없다는 것이다. 『승만경』에서 “성문승과 연각승은 모두 대승에 들어간다.”334)라고 한 것은 이 불승을 말한 것이고, 『법화경』에서도 “오직 이 하나의 사실만 있을 뿐 그 밖의 이승은 진실이 아니다.”335)라고 하였다.336) 이른바 ‘셋도 없다’는 것은 오직 여래법신如來法身의 일승만 있을 뿐 성문승ㆍ연각승ㆍ불승의 세 가지 승은 없다는 것이다. 『섭대승론석』에서는 “보살이 아직 제2지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이와 같이 ‘삼승인은 세 가지 행의 차별이 있다’는 생각을 내니, 이는 일승의 이치에 미혹한 것이다.337)”338)라고 하였고, 『법화경』에서는 “오히려 이승도 없는데 하물며 삼승이 있겠는가.”339)라고 하였으며, 『열반경』에서는 여래와 성문과 연각은 동일한 불성이고 동일한 무루라고 하였다.340) 앞의 (‘무이無二’는) -
001_0259_a_01L一切衆生。皆有如來藏。如此等文。皆
001_0259_a_02L是眞如法身佛性。此卽五性皆有佛
001_0259_a_03L性。又涅槃云。譬如有人乃至定當
001_0259_a_04L得故者。如此等敎。皆是行性。定當
001_0259_a_05L得故。約不定姓少分而說。又法華經
001_0259_a_06L云。十方佛土中。唯有一乘法。無二
001_0259_a_07L亦無三。除佛方便說者。釋此經文。諸
001_0259_a_08L說不同。羅什等云。言無二者。無聲
001_0259_a_09L聞緣覺。無三者。無聲聞緣覺及大乘
001_0259_a_10L中偏行六度獨善菩薩。復有人云。言
001_0259_a_11L無二者。謂無第二卽是緣覺。言無三
001_0259_a_12L者。謂無第三聲聞乘也。一云。此前
001_0259_a_13L兩解唯因乘。仍見佛乘有極果性。不
001_0259_a_14L故破焉。今者正判無二無三。約佛三
001_0259_a_15L身。以顯此義。所言無二。唯有如來
001_0259_a_16L報佛一乘。無彼聲聞緣覺二乘。勝鬘
001_0259_a_17L經云。聲聞緣覺乘皆入大乘者。卽是
001_0259_a_18L佛乘。法華經云。唯此一事實。餘二
001_0259_a_19L則非眞。所言無三。唯有如來法身一
001_0259_a_20L乘。而無聲聞緣覺及佛三乘。攝大乘
001_0259_a_21L云。菩薩未入二地。生如是 [219] 想。謂三
001_0259_a_22L乘人三行差別。迷一乘理。法華經云。
001_0259_a_23L尙無二乘。何況有三。涅槃云。如來
001_0259_a_24L聲聞緣覺。同一佛性。同一無漏。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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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9_b_01L‘이二’를 논파하여 ‘일一’에 귀속시킨 것이니, 이는 소승(성문ㆍ연각)을 논파하여 대승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뒤의 (‘무삼無三’은) ‘삼三’을 논파하여 ‘일一’에 귀속시킨 것이니, 이는 사事를 없애고 이理에 돌아간 것이다.비록 세 가지 해석이 있으나 두 번째 설이 바르다.341) 따라서 『법화론』 끝에서 ‘두 번째 방편품은 이승을 논파하고 일승을 밝혔음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하였다.342) 혹은 어떤 판본에는 삼승을 논파하고 일승을 밝힌 것이라고 하지만, 여러 판본에서 대부분 이승을 논파하고 일승을 밝힌 것이라고 하였다. 또 『화엄경』 제12권, 제18권, 제60권 등에서는 다 ‘이승의 이름은 없다’고 하였다. 또 『법화경』 제3권에서는 “세간에서 이승이 멸도를 얻는 일은 없고 오직 하나의 불승이 멸도를 얻을 뿐이다.”343)라고 하였고, 또 “오직 하나의 불승만 있으니, 식처息處이기 때문에 이승의 (열반을) 설한 것이다.344)”345)라고 하였다.
❸346) 양梁 『섭대승론석』에서는 “신근信根 등의 오근五根을 얻었더라도 결정된 근기(定根)라고 하지 않고……”347)라고 했는데, 『대업론』과 대당의 두 본本의 『섭대승론석』에는 모두 이런 말이 없기 때문에 의거할 만한 것은 아니다.
❹348) 『대지도론』에서는 “열반에 들어갈 수 없는 자는 인천人天의 복락 가운데 머물면서 열반의 인연을 짓는다.”349)라고 했는데, 인천의 즐거움에 (머무는 자는) 본래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끝내 열반의 종성이 없는 자(畢竟無涅槃性)이니, 다만 인ㆍ천의 도道로써 그를 성취시킨다. 둘째는 일시적으로 열반의 종성이 없는 자(蹔時無涅槃性)이니, 인ㆍ천의 도로써 성취시키고 열반의 인을 짓게 한다. 비록 두 종류가 있지만 그 논에서는 우선 ‘일시적으로 종성이 없는 자’라는 한 측면에 의거해서 설한 것이다. 혹은 그 논은 보살이 비원悲願으로 다 무여열반에 들게 하고 싶어 함을 나타낸 것이지, (실제로) 일체가 다 열반에 든다는 것은 아니다.
❺350) 『법화론』에서 “결정ㆍ증상만 두 종류 성문은 근기가 미숙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수기를 주지 않고, (보살이 수기를 준다.) 보살이 수기를 내려 주는 것은 방편으로 발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351)라고 했는데, 보살이 성불의 기약을 내려 준 것은 그로 하여금 대승에 대해 신심을 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방편이지, (그 성문이) 진실로 성불하는 것은 아니다.
● 문답에서 인용되었던 전거들에 대한 재해석352)❻353) 『법화경』에서 “이 사람이 비록 ‘멸도’의 상想을 내고 열반에 든다 해도 그 나라354)에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할 것이다.”355)라고 한 것은, 『정법화경』 -
001_0259_b_01L破二皈一。是破小入大。後破三皈一。
001_0259_b_02L是泯事歸理。雖有三釋。第二爲正。故
001_0259_b_03L法華論末云。第二方便品。示現破二
001_0259_b_04L明一。或有本云破三明一。然
諸本中多云破二明一。又華嚴經第
001_0259_b_05L十二十八第六十等。皆云無二乘之
001_0259_b_06L名。又法華經第三卷云。世間無有二
001_0259_b_07L乘而得滅度。唯一佛乘得滅度耳。又
001_0259_b_08L云。唯有一佛乘。息處故說二。梁攝
001_0259_b_09L論云。信 [220] 等五根不名定根等者。大業
001_0259_b_10L大唐二本攝論。皆無此言。故不可依。
001_0259_b_11L智度論云。若不任入涅槃者。著人天
001_0259_b_12L福樂中。作涅槃因緣者。人天樂中。自
001_0259_b_13L有二種。一者畢竟無涅槃性。但以人
001_0259_b_14L天而成就之。二者蹔時無涅槃性。人
001_0259_b_15L天成就。作涅槃因。雖有二種。彼論且
001_0259_b_16L依蹔時無性一邊而說。或可彼顯菩
001_0259_b_17L薩悲願。欲令盡無餘涅槃。非悉一切
001_0259_b_18L皆入涅槃。法華論云。決定增上 [221] 二種
001_0259_b_19L聲聞。根未熟故。如 [222] 不與授記。菩薩
001_0259_b_20L與授記者。方便令發心故者。菩薩與
001_0259_b_21L授成佛之記。爲欲令彼於大乘中發
001_0259_b_22L信心故。此卽方便。非實成佛。法華
001_0259_b_23L經云。是人雖生滅度之想。入於涅槃。
001_0259_b_24L而於餘 [223] 國。求佛智慧者。依正法華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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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59_c_01L제4권에서는 “모든 뜻이 무위無爲에 대한 생각(想), 말하자면 ‘마땅히 멸도하여 아무개는 다른 부처님의 세계에 갈 것이다’라는 (생각에) 있는 것이다.”356)라고 하였고, 또 제3권에서는 “멸도하려 할 즈음 부처님이 그 앞에 머물면서 중요한 법을 가르쳐 주면 보살의 뜻을 발하여 생사에 있지 않고 멸도에 머물지도 않으면서 삼계의 공함을 이해한다.”357)라고 하였다. 제4권 문장의 의미는 이것과 동일하다. 이 문장에서 이미 “멸도하려 할 즈음”이라고 했으니, 이에 준해 보면 무여의無餘依358)에 머물며 무여열반에 들려 할 즈음에 보리심을 발한 것이지, 이미 (열반에) 들고 나서 발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대지도론』의 문장을 해석하여 회통시키는 것도 이에 준해서 알아야 한다.
❼359) 또 『열반경』에서 “8만 겁 동안 머무는 곳(八萬劫住處)” 등이라 한 것에 대해, 삼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예류 등의 지위에서 대승으로 회심하여 변역생變易生360)을 받고서 보살행을 행하다가 십신위十信位에 이르러 8만ㆍ6만 겁 등을 머무는 것을 ‘머무는 곳(住處)’이라고 한 것이다.≻ 진제 삼장은 『구식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대본大本에서는 연각은 만 겁에 도달한다고 했는데,361) 어떤 지위에 도달하고 이는 어떤 종宗인가? 답 이것은 객종客宗362)의 뜻이니, 삼계의 미혹을 제거하고 회심하여 대승을 배워서 십신의 지위에 들어가 법法의 여여함을 믿는 것이다.≻ 이에 준해 보면, 진제도 또한 십신의 지위를 ‘도달되는 곳’이라고 설했음을 알 수 있다.문 그렇다면 어째서 ‘열반’이라고 설했는가?답 부처님께서 대승으로 회심한 성문의 (몸에) 의지해서 불로 몸을 태워 열반을 시현하신 것을 열반이라고 설하셨지만 진실한 열반은 아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유가사지론』 제80권에서 설한 것과 같다. “그는 이미 이와 같이 수명(壽行)을 늘리고 나서 유근신有根身(감각기관을 가진 몸)을 머물게 하고, 별도로 화신을 지어서 동법자同法者 앞에서 방편으로 무여의반열반계에서 반열반하는 것을 시현한다. 이 인연으로 모두 다 ‘아무개 존자가 무여의반열반계에서 이미 반열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수명을 늘림으로써) 남겨진 유근실신有根實身(근이 달린 실재의 몸)으로 -
001_0259_c_01L四卷云。一切志在無爲之想。謂當滅
001_0259_c_02L度。甫當往至他佛世界。又第三云。臨
001_0259_c_03L欲滅度。佛在前住。誨以要法。發菩
001_0259_c_04L薩意。不在生死。不住滅度。解三界
001_0259_c_05L空。第四卷文意同此也。此文旣云臨
001_0259_c_06L欲滅度。准此應知。住無餘依。臨入無
001_0259_c_07L餘。發菩提心。非是已入而能發心。釋
001_0259_c_08L通智度。准此應知。又涅槃云。八萬
001_0259_c_09L劫住處等者。三藏釋云。預流等位。迴
001_0259_c_10L心向大。受變易生。行菩薩行。至十
001_0259_c_11L信位。住於八萬六萬劫等。名爲住處。
001_0259_c_12L眞諦三藏九識章云。問。大本云。緣
001_0259_c_13L覺十千劫到。到何位。是何宗。答。此
001_0259_c_14L是1)客 [1] 宗意。除三界或 [224] 。迴心學大乘。
001_0259_c_15L入十信。信法如如。准知眞諦亦說十
001_0259_c_16L眞爲所到處。問。若爾。如何說爲涅槃。
001_0259_c_17L答。佛依迴心向大聲聞。以火燒身。示
001_0259_c_18L現涅槃。說爲涅槃。非實涅槃。此如
001_0259_c_19L瑜伽論第八十云。彼旣如是增壽行
001_0259_c_20L已。留有根身。別作化身。同法者前。方
001_0259_c_21L便示現。於無餘 [225] 涅槃界。而 [226] 涅槃。由此
001_0259_c_22L因緣。皆作是念。其 [227] 名尊者。於無餘
001_0259_c_23L依 [228] 涅槃界。已般涅槃。彼以所留有根
001_0259_c_24L「客」異作「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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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0_a_01L이 세계의 섬부주 안에서 그가 원하는 대로 멀리 떠나서 머무니, 모든 천天조차 오히려 (그것을) 볼 수 없는데 하물며 그 밖의 중생들이 볼 수 있겠는가?”363)이 말의 뜻을 설하자면, 의심을 없애기 위해 동법자 앞에서 무여열반에 드는 것을 시현했기 때문에 ‘열반’이라 한 것이지, 그가 실제로 무여열반을 감당한 것은 아니다. 혹은 여러 불보살들이 화현해서 무여열반에 든 것은, 한 부류를 이끌어 주기 위해 또 그 밖의 부류를 맡아 지키기 위해364) 그 두 가지 과果가 궁극이 아님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수능엄삼매경』에서 “사리불이여, 보살은 이와 같이 벽지불승(연각승)의 몸으로 열반에 들지만 영원히 멸도한 것은 아니다.……이하 생략……”365)라고 하였다.
❽366) 『능가경』 제2권과 제4권에서 설한 바에 따르면, ‘삼매락문三昧樂門’이란 예류 등이 대승으로 회심하여 몸을 오랫동안 머물게 하면서, 변제정邊際定(색계 사정려의 최상품)에 의지해서 유루업有漏業을 자량으로 삼아 변역생變易生을 받고, 8만 겁이나 6만 겁 등을 거쳐서 십신의 지위에 이르면, 곧 그 선정을 삼매락이라 이름한 것이지, 이미 무여열반에 머무는 것을 삼매락이라 이름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이치와 교설에 따르면, “8만 겁……중간 생략……만 겁 동안 머무는 곳”이라 한 것은 이미 무여열반에 들어서 발취發趣가 사라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유가사지론』 제80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보리로 회향한 성문은 무여의열반계에 머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발심하여 나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유여의열반계에 머물면서 (그렇게 하는가?) 답 오직 유여의열반계에 머물 때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무여의열반계에서는 모든 사업의 발기發起를 멀리 떠나고 일체의 공용功用이 모두 다 그친다.”367)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무여의열반계에서 획득된 전의轉依는 어떤 상相이라 말해야 하는가? 답 -
001_0260_a_01L實身。卽於此界贍部洲中。隨其所樂。
001_0260_a_02L遠離而住。一切諸天。尙不能覩。何況
001_0260_a_03L其餘衆生能見。此意說云。爲除疑情。
001_0260_a_04L同法者前。示現入於無餘涅槃。故名
001_0260_a_05L涅槃。非彼實任無餘涅槃。或可諸佛
001_0260_a_06L菩薩化入無餘。爲引攝一類及任持
001_0260_a_07L所餘。顯彼二果非究竟。如首楞嚴三
001_0260_a_08L昧經云。舍利弗。菩薩如是。以辟支
001_0260_a_09L佛乘。入於涅槃。而不永滅。乃至廣
001_0260_a_10L說。楞伽第二第四所說。三昧樂門者。
001_0260_a_11L謂預流等。迴心向大。令身久住。依
001_0260_a_12L邊際定。資有漏業。受變易生。經八
001_0260_a_13L萬劫。或六萬等。至十信位。卽說彼
001_0260_a_14L定。名三昧樂。而非已住無餘涅槃名
001_0260_a_15L爲三昧。由此理敎。言八萬劫乃至
001_0260_a_16L十千劫住處者。卽非已入無餘涅槃
001_0260_a_17L而沒癈 [229] 趣。故瑜伽第八十云。問。回向
001_0260_a_18L菩提聲聞。爲住無餘依涅槃界中。能
001_0260_a_19L發趣阿耨多羅三貌三菩提耶。爲住
001_0260_a_20L有餘依涅槃界耶。答。唯住有餘依涅
001_0260_a_21L槃界中。可有此事。所以者何。以無
001_0260_a_22L餘依涅槃界中。遠離一切發趣 [230] 事業。
001_0260_a_23L一切功用皆悉止息。又云。問。於無餘
001_0260_a_24L依涅槃界中。所得轉依。當言何相。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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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0_b_01L희론이 없는 상이고, 또 아주 청정한 법계를 상으로 삼는다.≻368) 또 『해심밀경』 제3권과 『심밀해탈경』에서도 모두 “무여의열반계에서 모든 수受는 남김없이 영원히 멸한다.”369)라고 하였으니, 자세하게 설하면 그 경과 같다. 그러므로 삼승의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370)
◉ 일승ㆍ삼승의 가假ㆍ실實가假와 실實을 판별해 보자면 여러 교설이 같지 않다.어떤 곳에서는 진실로 일승을 설하고 가짜로 삼승을 설한다. 예를 들면 『법화경』에서는 “시방의 불토에는 오직 일승법만 있으니, 부처님의 방편설을 제외하고는 둘도 없고 또한 셋도 없다.”371)라고 하였고, 또 “오직 이 하나의 사실만 있을 뿐 그 밖의 이승은 진실이 아니다.”372)라고 하였다. 또 『승만경』에서는 “성문승과 연각승은 모두 대승에 들어간다.”373)라고 하였다. 또 『열반경』 제25권에서는 “모든 중생은 다 하나의 도道에 돌아가니, 하나의 도란 대승을 말한다. 불보살들은 중생을 위해서 그것을 삼승으로 구분하였다.……”374)라고 하였다.어떤 곳에서는 진실로 삼승을 설하고 가짜로 일승을 설한다. 예를 들면 이 『해심밀경』 제2권에서 “모든 성문과 연각과 보살은 다 이 하나의 묘하고 청정한 도를 함께하므로……”375)라고 하였고, 또 제4권에서는 “가령 세존께서는 ‘성문승이든 또 대승이든 오직 일승이다’라고 설하셨는데 이것은 어떤 밀의입니까.……”376)라고 하였다. 또 『출생보리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때 가섭 바라문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해탈과 해탈은 차별이 있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해탈은 해탈과는 차별이 없고 도는 도와는 차별이 없지만, 승은 승과는 차별이 있다. 비유하면 왕로王路에 코끼리 수레를 가진 자도 있고 말 수레를 가진 자도 있으며 당나귀 수레를 가진 자도 있는데, 그들이 차례로 그 길을 가서 똑같이 하나의 성에 이르는 것과 같다.”377) 이와 같은 교설의 진실한 증거는 하나가 아니다.
◉ 일승을 설한 의취그런데 일승을 설한 의취意趣가 같지 않기 때문에 여러 성스런 가르침에 갖가지 차이가 있다.『현양성교론』 제20권에 의하면 -
001_0260_b_01L無戲論相。又善淸淨法界爲相。又解
001_0260_b_02L深密經第四 [231] 。及深密解脫。皆云。於
001_0260_b_03L無餘依涅槃界中。一切諸受。無餘永
001_0260_b_04L滅。廣說如經。是故三乘非無差別。辨
001_0260_b_05L假實者。諸敎不同。有處。實說一乘。假
001_0260_b_06L說三乘。如法華經云。十方佛土中。唯
001_0260_b_07L有一乘法。無二亦無三。除佛方便說。
001_0260_b_08L又云。唯此一事實。餘二則非眞。又
001_0260_b_09L勝鬘云。聲聞緣覺 [232] 。皆入大乘。又涅槃
001_0260_b_10L經第二十五云。一切衆生。皆歸一道。
001_0260_b_11L一道者。謂大乘也。諸佛菩薩。爲衆生
001_0260_b_12L故。分之爲三等。有處。實說三乘。假說
001_0260_b_13L一乘。如卽此經第二卷云。一切聲聞
001_0260_b_14L獨覺菩薩。皆共此一妙淸淨道等。又
001_0260_b_15L第四卷云。如世尊說。若聲聞乘。若
001_0260_b_16L復大乘。唯是一乘。此何密意等。又
001_0260_b_17L出生菩薩 [233] 心經。爾時。迦葉波羅門白
001_0260_b_18L佛言。世尊。解脫解脫有差別不。佛
001_0260_b_19L言。解脫於解脫無有差別。道於道無
001_0260_b_20L有差別。乘於乘而有差別。譬如王路。
001_0260_b_21L有象轝 [234] 者。有馬轝✽者。有驢轝✽者。等 [235] 次
001_0260_b_22L第。行於彼路。同至一城。如是等敎。誠
001_0260_b_23L證非一。然說一乘意趣不同。故諸聖
001_0260_b_24L敎。種種有異。若依顯揚第二十卷。以
-
001_0260_c_01L여섯 가지 이유로 일승을 설한 뜻을 해석한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 어째서 여래께서는 일승을 설하셨는가?답 여섯 가지 이유 때문이다.첫째, 저 제법은 차별적 모습이 없다는 데에 의거했기 때문이다.이것은 증득되는 일미의 진여(所證一味眞如)가 차별이 없다는 데 의거했기 때문이다.둘째, 무분별의 행상行相에 의거했기 때문이다.이것은 증득하는 평등한 지혜(能證平等智)에 의거해서 설한 것인데, 그 뜻은 이 『해심밀경』에서 ‘도가 하나이므로 일승이라 설한다’고 했던 것과 동일하다. 이상으로 말한 하나의 의미는 『섭대승론』에는 없다.378)셋째, 중생무아(인무아)와 법무아가 평등하기 때문이다.이것은 두 종류 무아에 의거해서 일승을 설한 것이다. 이것은 『섭대승론』에서 ‘법이 평등하고(法等) 무아가 평등하다(無我等)’고 한 것을 합해서 세 번째 이유로 삼은 것이다.379)넷째, 해탈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차별적으로 구하는 자가 유사번뇌有事煩惱ㆍ허망분별번뇌虛妄分別煩惱를 대치對治해서 (증득하는) 소연법성所緣法性은 상위하지 않기 때문이다.이것은 『섭대승론』에서 말한 ‘해탈의 평등’에 해당한다. ‘차별적으로 구하는 자’란 증득하는 사람(能證人)을 든 것이니, 삼승이 같지 않으므로 ‘차별적으로 구한다’고 하였다. ‘유사번뇌’란 수도에서 끊어지는 번뇌이고 ‘허망분별번뇌’란 견도에서 끊어지는 번뇌이며, 두 가지 미혹을 끊는 견도ㆍ수도를 ‘대치’라고 하였다. 증득되는 해탈을 ‘소연법성’이라 하였다. 이 말의 뜻을 설하자면, 구하는 자로서의 삼승은 비록 차별이 있지만 견도ㆍ수도에 의해 증득되는 열반은 차별이 없기 때문에 ‘상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다섯째, 잘 변화하면서 머물기 때문이다.이것은 『섭대승론』에서 ‘변화에 의거해서 일승을 설한다’고 한 것에 해당한다.380)여섯째, 행이 구경究竟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섭대승론』에서 ‘구경이므로 일승이라 설한다’고 한 것과 동일하다.381)382)
『장엄경론』에 의하면 열 가지 의미로 일승을 해석한다. 그 『장엄경론』의 게송을 지은 이는 자씨慈氏(미륵보살)이고 해석한 이는 세친인데, 함께 묶어 한 부로 만든 것이다.383) 예로부터 서로 전해 오길, 무착 보살이 (이 논의) 저자라고 한 것은 오류이다.그런데 그 논에서는 먼저 여덟 가지 의미로 여러 경에서 부처님이 일승이라 설한 뜻을 해석하고 나서,384) 다음에 ‘이끌어 들이고(引攝) 맡아 지킨다(任持)’는 두 가지 의미로 모든 여래가 일승을 설했던 뜻을 해석하였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와 같이 경전 곳곳에서 여덟 가지 의취로 부처님은 일승을 설하셨지만, 그러나 또한 삼승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 그렇다면 다시 어떤 의미가 있기에 그러그러한 의취를 가지고 일승을 설하셨는가? 게송으로 말한다.
引接諸聲聞 모든 성문들을 이끌어 주기 위해
攝住諸菩薩 모든 보살들을 거두어 머물게 하기 위해
於此二不定 이 두 가지 승에 결정되지 않은 자에게
諸佛說一乘 모든 부처님은 일승을 설하셨네385)
자세한 설명은 그 논과 같다.
나중에 무착 보살이 『섭대승론』을 지으면서 -
001_0260_c_01L六因釋說一乘意。故彼論云。問。何以 [236]
001_0260_c_02L故如來宣說一乘。答。由六因故。一卽
001_0260_c_03L彼諸法。約無差別相 [237] 故。故 [238] 約所證一味
眞如無差別故。二
001_0260_c_04L約無分別行相 [239] 故。此約能證平等智說。意同
此經道一故說一乘。此上
001_0260_c_05L一義攝
論所無。三衆生無我及法無我平等故。
001_0260_c_06L此依二種無我故說一乘。此即
攝論法等無我等。合爲第三。四解脫平等
001_0260_c_07L故。謂差別求者。有事虛妄分別煩惱
001_0260_c_08L對治。所緣法性。不相違故。此當攝論解脫
平等。差別求
001_0260_c_09L者。擧能證人。三乘不同。名差別求。有事煩惱者。
即修所斷。虗妄分別煩惱者。即見所斷。能斷二
001_0260_c_10L惑見修二道。名爲對治。所證解脫。名所緣法性。
此意說云。能求三乘。雖有差別。而見修所證涅
001_0260_c_11L槃。無差別故。
名不相違也。五善能變化主 [240] 故。此即攝論依
變化故。說
001_0260_c_12L爲一
乘。六行究竟故。此同攝論究
竟說一乘。依莊嚴
001_0260_c_13L論。以十種義。以釋一乘。其莊嚴論。
001_0260_c_14L頌是慈氏。釋卽世親。共成一部。舊相
傳云。
001_0260_c_15L無著菩薩
造者謬也。然彼論中。先以八義。釋諸
001_0260_c_16L經中佛說一乘。後以引攝任持二義。
001_0260_c_17L釋諸如來說一乘意。故彼論云。如是
001_0260_c_18L處處經中。以此八意。佛說一乘。而
001_0260_c_19L亦不無三乘。問。若爾。復有何義。以
001_0260_c_20L彼 [241] 意而說一乘。偈曰。
001_0260_c_21L引接諸聲聞。攝住諸菩薩。
001_0260_c_22L於此二不定。諸佛說一乘。
001_0260_c_23L廣說如彼。後無著菩薩造攝大乘論。
-
001_0261_a_01L『장엄경론』의 게송을 인용해서 열 가지 의미를 설명하였고, 그 후에 세친과 무성이 각기 『섭대승론석』을 지어서 열 가지 의미를 해석하였다.따라서 무착 보살의 『섭대승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 만약 이러한 공덕의 원만함과 상응하는 제불의 법신을 성문승ㆍ독각승과는 공유하지 않는다면, 어떤 의취에서 부처님은 일승이라 설하셨는가? 이에 대해 두 송이 있다.
爲引攝一類 한 무리 사람들을 이끌어 들이기 위해
及任持所餘 또 그 밖의 사람을 맡아 지키기 위해
由不定種姓 부정종성으로 인해
諸佛說一乘 제불은 일승을 설하였네.
法無我解脫 법과 무아와 해탈이 평등하기 때문에
等故姓不同 종성이 같지 않기 때문에
得二意樂化 두 가지 의요를 얻었고, 변화이기 (때문에)
究竟說一乘 궁극이기 (때문에) 일승을 설하였네386)
(이에 대해) 세친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석 여기서의 두 송은 제불이 일승을 설한 의취를 설명한 것이다.“한 무리 사람들을 이끌어 주기 위해”라는 것은, 부정종성의 모든 성문 등을 끌어들여서 대승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마땅히 부정종성의 모든 성문 등이 다 대승을 따라 반열반하게 할 수 있을까? “또 그 밖의 사람을 맡아 지키기 위해”라는 것은 부정종성의 모든 보살중을 맡아 지키면서 대승에 머물게 하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부정종성의 모든 보살중이 대승을 버리지 않고 성문승으로서 반열반하지 않도록 할까?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은 일승을 설하신 것이다.387)“부정不定” 등의 구의句義로 이미 “법과 무아와 해탈이……중간 생략……”를 설한 것이다.388)이상의 두 가지 의미는 『대업론』과 무성無性의 (『섭대승론석』)과 『장엄경론』에서도 또한 동일하게 말한다. 『양론梁論』(진제 역 세친의 『섭대승론석』)의 뜻은 다르다. 따라서 그 논의 본송本頌에서는 “아직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성문과 그 밖의 모든 보살들을 대승에 끌어들여 거두기 위해, 종성이 결정된 이를 위해 일승을 설하셨네.”라고 하였다. (세친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성문들 중에 소승에 근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가 있으니, (그들을) 끌어들여서 대승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고, 거두어서 대승을 수행하도록 하려는 것이다.……중간 생략……부처님은 일승을 설하여 (그들을) 끌어들여서 대승에 들어가 머물게 한다. 보살들 중에 대승에 근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가 있으니, 어떻게 하면 그를 대승에 안립하고 대승을 버리지 않게 할까?……중간 생략……부처님은 일승을 설하여 (그들을) 끌어들여 거두어서 대승에 들어가 머물게 한다. 보살들 중에 대승에 종성이 이미 결정되어서 물러나려는 다른 뜻이 없는 자가 있으니, 이 보살을 위해 일승을 설한 것이다.”389) 해 본론 및 해석에 따르면, 부처님은 세 사람을 위해서 일승을 설한 것인데, 앞의 둘은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이고 세 번째는 이미 결정된 자이다. (이 내용은) 여러 논들에 모두 없기 때문에 의거할 만한 것은 아니다.390)
여기에서 다시 ‘별도의 의취력(別意趣力)’으로 오직 일승이라고 설하였다. 어떤 것이 별도의 의취인가? “법이 평등하기 때문”이라 한 것 등을 말한다.양梁 『섭대승론석』에서는 “일승을 설한 뜻을 나타내기 위해 게송을 설하였으니, 앞의 게송은 요의了義로 일승을 설하였고, 뒤의 게송은 -
001_0261_a_01L引莊嚴頌。以明十義。後世親無性。各
001_0261_a_02L造釋論。以釋十義。故無著菩薩攝大
001_0261_a_03L乘論云。論曰。若此功德圓滿相應諸
001_0261_a_04L佛法身。不與聲聞獨覺乘共。以何意
001_0261_a_05L趣。佛說一乘。此中有二頌。爲引攝一
001_0261_a_06L類。及任持所餘。由不定種姓。諸佛
001_0261_a_07L說一乘。法無我解脫。等故姓 [242] 不同。得
001_0261_a_08L二意樂化。究竟說一乘。世親說云。釋
001_0261_a_09L曰。此中二頌。辨 [243] 諸佛說一乘意趣。爲
001_0261_a_10L引攝一類者。謂爲引攝不定種姓 [244] 聲
001_0261_a_11L聞等。令趣大乘。云何當令不定種姓
001_0261_a_12L諸聲聞等。皆由大乘而般涅槃。及任
001_0261_a_13L持所餘者。謂爲任持不定種姓諸菩
001_0261_a_14L薩衆。令住大乘。云何當令不定種姓
001_0261_a_15L諸菩薩衆。不捨大乘。勿聲聞乘而般
001_0261_a_16L涅槃。爲此義故。佛說一乘。由不定
001_0261_a_17L等句義。已說法無我解脫。乃至廣說。
001_0261_a_18L已上二義。大業及無性。莊嚴論亦同。梁論意別。故
彼論本頌云。未定姓聲聞。及諸餘菩薩。於大乘
001_0261_a_19L引攝。定姓說一乘。釋曰。有諸聲聞等。於大 [245] 乘根
姓未定。攝 [246] 引令信受大乘。攝令修行大乘。乃至。佛
001_0261_a_20L說一乘。引攝令入住大乘。有諸菩薩。於大乘根姓
未定。云何安立彼於大乘。令不捨於大乘。乃至。
001_0261_a_21L佛說一乘。引攝令入住大乘。有諸菩薩。於大乘
根性已定。無退異意。爲此菩薩。故說一乘。解云。
001_0261_a_22L本論及釋。佛爲三人。說爲一乘。前二未
定。第三已定。諸論皆無。故不可依也。此中
001_0261_a_23L復由別意趣力。唯說一乘。何別意趣。
001_0261_a_24L謂法等故等。梁論。爲顯論 [247] 一乘意。是故說偈。
前偈以了義說一乘。後偈以秘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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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1_b_01L밀의密義로 일승을 설하였다.”391)라고 하였다.“법이 평등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법은 진여를 말한다. 이는 모든 성문들이 똑같이 돌아가야 할 곳이니, 돌아가야 할 곳이 평등하기 때문에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392)“무아가 평등하기 때문”이라 했는데, 말하자면 성문 등의 보특가라는 ‘아’가 모두 없고, 아가 없기 때문에 ‘이는 성문이다, 이는 보살이다’라고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무아의 평등’이라는 의취에서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해탈이 평등하기 때문”이라 했는데, 말하자면 성문 등은 번뇌장에서 똑같이 해탈할 수 있기 때문에 일승이라 설하였다. 예를 들어 세존께서 ‘해탈과 해탈은 차별이 없다’고 설한 것과 같다.이상의 세 가지 의미는 여러 논에서 다 똑같이 설한다.
“종성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종성이 차별되기 때문에 부정종성의 모든 성문 등도 마땅히 성불할 수 있다.393) 이런 의취에서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대업론』과 무성의 (『섭대승론석』)의 뜻도 이 논과 동일하다. 양梁 『섭대승론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승인 중에 자승自乘의 지위에서 근성이 부동한 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비록 이승의 도를 구하면서도 아직 이승의 도를 얻지 못하였고 아직 이승의 근성도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승의 근성에로 전환될 수 있다. 이런 사람을 교화하기 위해 일승을 설한 것이다.”394) 『장엄경론』에서는 “대승에 끌어들이기 위해 일승을 설한다.”395)라고 했는데, 뜻은 양梁 『섭대승론석』과 동일하다. 해 이 뜻은 ‘부정의 (종성을) 끌어들인다’는 것인데, 즉 첫 번째 구인 ‘한 무리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것과 동일하다. 여러 논과는 차이가 나므로 의거할 만한 것은 아니다.396)
“두 가지 의요를 얻었기 때문”이라 한 것은, (다음과 같은) 두 종류 의요를 얻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섭취평등의요攝取平等意樂이다. 이로 인해 모든 중생을 거두어들이면서 ‘그가 바로 나이고, 내가 바로 그이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거두고 나서, 이 사람(자기)이 이미 성불하였으니 그 사람 또한 성불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취에서 일승이라 설한다.여러 판본들이 거의 동일하다. 그런데 양梁 『섭대승론석』에서는 ‘성문 등의 사람은 모든 중생에 대해 평등의요를 얻었다’고 하였고,397) 무성의 (『섭대승론석』과) 『장엄경론』에서는 ‘제불은 모든 중생에 대해 자체평등의自體平等意를 얻었다’고 하였으며,398) 『대업론』과 당본唐本에서는 ‘제불 및 성문’ 등이라 하지 않았다.399)둘째는 법성평등의요法性平等意樂이다. 모든 성문들은 법화회法華會에서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부처님의 법성평등의요를 얻는다. 아직 법신을 얻지 못했지만 이와 같은 평등의요를 얻음에 따라 다음과 같이 사유한다. ‘제불의 법성이 곧 나의 법성이다.’여러 논이 모두 동일한데, 오직 『장엄경론』에서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문은 ‘부처가 되려는 뜻(作佛意)’을 얻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문들은 옛적에 대보리를 수행하던 무리였을 때는 결정코 부처가 될 성품(作佛性)이 있었다. 그때 부처님의 가호가 있었기 때문에, 수승하게 거두어 주셨기 때문에, 스스로 ‘부처가 되려는 뜻’을 알 수 있었으니, 이 사람이 전후로 상속하면서 달라짐이 없기 때문에 -
001_0261_b_01L密義說
一乘。法等故者。法謂眞如。諸聲聞
001_0261_b_02L等同所歸趣。所趣平等。故說一乘。無
001_0261_b_03L我等故者。謂聲聞等補特伽羅。我皆
001_0261_b_04L無有。由無我故。此是聲聞。此是菩薩。
001_0261_b_05L不應道理。由此無我平等意趣。故說
001_0261_b_06L一乘。解脫等故者。謂聲聞等。於煩惱
001_0261_b_07L障。同得解脫。故說一乘。如世尊言解
001_0261_b_08L脫解脫無有差別。已上三義。
諸論皆同。姓不同故
001_0261_b_09L者。種姓差別故。以不定姓諸聲聞等。
001_0261_b_10L亦當成佛。由此意趣。故說一乘。大業無
性意同
001_0261_b_11L此論。梁論云。有二乘人。於自乘位。根性未 [249] 同。
此人雖求二乘道。未得二乘。根 [250] 性未定故。可轉作
001_0261_b_12L大乘根性。爲化此人。故說一乘。若莊嚴論。引入
大乘。故說一乘者。意同梁論。解云。此意引攝不
001_0261_b_13L定。大同第一引攝一類。
與諸論異。故不可依也。得二意樂故者。得
001_0261_b_14L二種意樂故。一攝取平等意樂。由此。
001_0261_b_15L攝取一切有情。言彼卽是我我卽是
001_0261_b_16L彼。如是取已。此 [251] 旣成佛。彼亦成佛。由
001_0261_b_17L此意趣。故說一乘。諸本大同。然梁論云。聲
聞等人。於一切衆生。得
001_0261_b_18L平等意。無性莊嚴。諸佛於一切衆生。得自
體平等意。大業唐本。不云諸佛及聲聞等也。二
001_0261_b_19L法性平等意樂。謂諸聲聞。法華會上。
001_0261_b_20L蒙佛授記。得 [252] 法性平等意樂。未得法
001_0261_b_21L身。由得如是平等意樂。作如 [253] 是思惟。
001_0261_b_22L諸佛法性卽我法性。諸論皆同。唯莊嚴論
云。聲聞得作佛意 [254] 。謂
001_0261_b_23L諸聲聞。昔行大菩提聚時。有定作佛性。彼時佛加
故。勝攝故。得自知作佛意。由此人前後相續無
-
001_0261_c_01L일승이라 설한 것이다.”400) 해 번역가가 같지 않아서 회통시킬 수가 없다. 다시 별도의 뜻이 있다. 말하자면 그 대중들 가운데서 어떤 보살들은 그 (성문과) 이름이 똑같은 자이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게 되니, 이 법여法如(법성진여)의 평등의요로 인해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401)여러 논들이 모두 동일한데, 오직 『장엄경론』에만 이 단락이 없는 것 같다.
“변화이기 때문에”라고 한 것은 부처님이 성문승 등으로 화작하신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세존께서 ‘내가 옛날에 한량없이 여러 번 반복해서 성문승에 의지해서 반열반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하신 것과 같다. 이런 의취에서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 성문승으로 교화되는 유정들은 이것을 보았기 때문에 반열반을 증득한다. 따라서 이런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여러 논이 모두 동일하다. 양梁 『섭대승론석』에서는 “다시 부처님이 사리불 등의 성문을 화작해 내어 그에게 수기하셨으니, 이미 근성이 결정된 성문은 더욱 근성을 단련해서 보살이 되게 하고, 아직 근성이 결정되지 않은 성문은 곧장 불도를 닦아서 불도를 따라 반열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402)라고 하였는데, 그 밖의 판본에는 없는 문구다.“궁극이기 때문”이라고 한 것은 오직 이 일승이 가장 궁극적이고 이것을 벗어나서 그 밖의 더 뛰어난 승乘은 없기 때문이다. 성문승 등에게는 그 밖의 더 뛰어난 승이 있으니, 이른바 불승이다. 이런 의취에서 제불세존은 일승이라 설하신 것이다.여러 본이 모두 동일하다. 『대업본大業本』에서는 “이것은 바로 이 일승이니, 궁극적인 것으로서 달리 나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별이 있으니, 성문승 등은 불승과는 다르기 때문이다.”403)라고 하였다. 해 이는 번역가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404)
다) 이치상 실로 삼승이 차별됨을 밝힘
경 모든 유정계 안에 갖가지 유정의 종성의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혹은 둔한 근성이고 혹은 중간 근성이며 혹은 예리한 근성으로서 유정은 차별된다.
석 이것은 세 번째로 삼승의 차별을 설명한 것이다. 경문에는 두 구절이 있다. 처음은 (종성이) 하나가 아님을 표명한 것이고, 나중은 근성에 의거해서 셋으로 나눈 것이다.
✽첫 번째 구절(이 경문에서 ‘종성은) 하나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모든 유정수有情數 가운데 다섯 종성의 차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섯 종성이란 이른바 삼승三乘(성문ㆍ연각ㆍ보살)과 부정不定과 무성無性이다. ‘무성’이란 몸에 삼승의 열반의 종성이 없는 자를 말한다. ‘유성’에도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성문종성이니, 몸에 오직 성문의 열반의 종성만 있는 자이다. -
001_0261_c_01L別。故說一乘。解云。
譯家不同。不可會也。復有別義。謂彼衆中。
001_0261_c_02L有諸菩薩與彼名同。蒙佛授記。由此
001_0261_c_03L法如平等意樂。故說一乘。諸論皆同。唯莊
嚴論。似無此段。
001_0261_c_04L言化故者。謂佛化作聲聞乘等。如世
001_0261_c_05L尊言。我憶往昔。無量百返。依聲聞乘。
001_0261_c_06L而般涅槃。由此意趣。故說一乘。以
001_0261_c_07L聲聞乘所化有情。由見此故。得般涅
001_0261_c_08L槃。故現此化。諸論皆同。梁論云。復次。佛化 [255] 舍
利弗等聲聞。爲其受記。欲令已
001_0261_c_09L定根性聲聞。更練根性 [256] 爲菩薩。未得定根性
聲聞。令直修佛道。由佛道般涅槃。餘本無也。究
001_0261_c_10L竟故者。唯此一乘最爲究竟。過此更
001_0261_c_11L無餘勝乘故。聲聞乘等有餘勝乘。所
001_0261_c_12L謂佛乘。由此意趣。諸佛世尊。宣說
001_0261_c_13L一乘。諸本皆同。大業本云。此即是一乘。以究竟
無有別趣故。然有差別。以聲聞乘等。異於
001_0261_c_14L佛乘。解云。
譯家不同。
001_0261_c_15L非於一切有情界中。無有種種有情 [257] 性。
001_0261_c_16L或鈍根性。或中根性。或利根性。有情
001_0261_c_17L差別。
001_0261_c_18L釋曰。此卽第三辨三乘差別。文有二
001_0261_c_19L節。初標非一。後約根分三。言非一
001_0261_c_20L者。謂於一切有情數中。非無五種種
001_0261_c_21L性差別。言五姓者。所謂三乘不定無
001_0261_c_22L性。言無性者。謂於身中。無有三乘
001_0261_c_23L涅槃種性。就有性中。有其四種。一
001_0261_c_24L聲聞種性。謂於身中。唯有聲聞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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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2_a_01L둘째는 독각종성이고, 셋째는 보살종성이니, 이 두 종성은 오직 성문종성의 경우와 같다. 넷째는 부정종성이니, 몸 안에 삼승의 열반의 종성이 갖추어 있어서 그가 회심하면 결정코 불과佛果로 나아가는 자이다. 불보살의 대비大悲의 방편으로 거두어지기 때문이다.그런데 저 종성에는 본래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성종성性種姓이고 둘째는 습종성習種姓이다. 이 종성을 해석하는 데 있어 서방의 여러 논사들의 여러 설들이 같지 않다.405)첫째는 (종성은) 오직 본래 있는 것이지 새로 습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호월護月 보살은 또한 월장月藏이라 불리는데, 그는 오직 법이종자法爾種子(자연적으로 타고난 종자)가 있을 뿐 신훈종자新熏種子(새로 훈습된 종자)는 없다고 건립하였다.406)둘째는 오직 새로 습득된 것이지 본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난타難陀와 승군勝軍 등의 (설이니), 그들은 오직 신훈종자만 있을 뿐 법이종자는 없다고 건립하였다.407)셋째는 본래 있는 것도 있고 새로 습득된 것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호법護法 보살은 신훈ㆍ법이라는 두 가지 종자를 둘 다 건립하는데, (본래 있는 종자는) 성종성이고 새로 훈습된 종자는 습종성이다.408) 자세하게 분별하면, 예를 들어 『성유식론』 제2권의 설과 같다.409) 이와 같은 다섯 종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별장』과 같다.혹은 이 경문에서 ‘종성은 하나가 아니다’라고 한 것은 삼승三乘과 부정不定을 말한다고 볼 수 있으니, 네 가지 종성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경문에서) “갖가지”라고 한 것이다.
✽두 번째 구절근성에 의거해서 세 종류로 나누었다고 했는데, 모든 성자들 중에는 근기의 예리함과 둔함에 따라 상ㆍ중ㆍ하가 있기 때문에 삼승을 건립한다. 이런 도리에 따라 밀의로 ‘일승’이라 설한 것이지, 삼승의 (차별이) 없기 때문에 일승이라 설한 것은 아니다.『심밀해탈경』의 뜻도 이와 동일하다.
나. 취적성문趣寂聲聞은 결코 성불하지 못함을 밝힘
경 선남자여, 한결같이 적멸로 나아가는 성문종성의 보특가라는 비록 제불이 시설해 주신 갖가지 용맹스런 가행ㆍ방편의 교화ㆍ인도를 받는다 해도 끝내 미래에 도량에 앉아서 야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도록 할 수가 없다.
석 이하는 두 번째로 취적성문은 결정코 성불하지 못함을 밝힌 것이다. 이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처음은 표장이고, 둘째는 징문이며, 셋째는 해석이고, 넷째는 -
001_0262_a_01L種性。二獨覺種性。三菩薩種姓。此
001_0262_a_02L二種姓。唯同聲聞。四不定種姓。謂於
001_0262_a_03L身中。具有三乘涅槃種姓。而彼迴心。
001_0262_a_04L定趣佛果。由佛菩薩大悲方便所攝
001_0262_a_05L受故。然彼種姓。自有二種。一性種姓。
001_0262_a_06L二習種姓。釋此種姓。西方諸師。諸說
001_0262_a_07L不同。一唯本非新。如護月菩薩亦名
001_0262_a_08L月藏。彼立唯有法爾種子而無新熏。
001_0262_a_09L二唯新非本。如難陀及勝軍等。彼立
001_0262_a_10L唯有新熏種子。而無法爾。三亦本亦
001_0262_a_11L新。如護法菩薩。具立新熏法爾二種
001_0262_a_12L子。爲 [258] 性種姓。新所熏種爲習種性。若
001_0262_a_13L廣分別。如成唯識第二卷。如是五姓。
001_0262_a_14L具如別章。或可此云非一種姓者。三
001_0262_a_15L乘不定。四性非一。故言種種。約根
001_0262_a_16L分三者。謂諸聖者。隨根利鈍。有上
001_0262_a_17L中下。故立三乘。由此道理。密意說一。
001_0262_a_18L非無三乘故說一乘。深密解脫
意亦同此。
001_0262_a_19L善男子。若有 [259] 一向趣寂聲聞種性補特
001_0262_a_20L伽羅。雖蒙諸佛施設種種勇猛加行方
001_0262_a_21L便化導。終不能令當坐道場。證得阿耨
001_0262_a_22L多羅三藐三菩提。
001_0262_a_23L釋曰。此下第二明趣寂聲聞定不成
001_0262_a_24L佛。於中有四。一標。二徵。三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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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2_b_01L결론이다.
가) 표장이것은 표장이다. 말하자면 저 취적성문은 결정된 종성이기 때문에 비록 제불이 교화한다 해도 결정코 성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징문
경 어째서인가?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징문한 것이다.
다) 해석
경 그는 본래부터 오직 하열한 종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하기 때문이며, 한결같이 온갖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석 이것은 세 번째로 해석한 것이다. 이 중에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은 세 가지 이유를 총괄해서 표명한 것이다. 다음은 앞의 두 가지 이유를 표시해 놓고 두 가지 과실을 나타낸 것이다. 마지막은 앞의 두 가지 과실을 들어서 성불하지 못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가) 세 가지 이유를 총괄해서 표명함이것은 처음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저 정성이승定性二乘의 종성은 모두 본래부터 하열한 종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총괄적 이유다.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하기 때문’이란 독각의 장애이고, ‘한결같이 온갖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란 성문의 장애이다. 따라서 『무상의경無上依經』 제1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종류 장애가 있다. 첫째는 대승을 저버리는 것이니, 이는 일천제의 장애다. (둘째는) 아견에 집착하는 것이니, 이는 외도의 장애다. (셋째는) 피로의 극심함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니, 이는 성문의 장애다. (넷째는) 남에게 이익 주는 일을 저버리는 것이니, 이는 연각의 장애다.≻410) 따라서 뒤의 두 가지는 이승의 장애임을 알 수 있다.411) 이치상 실로 이승은 모두 두 가지 장애를 갖추고 있지만, 『무상의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相이 현저한가에 따라 각기 하나의 장애를 설한 것이다.
(나) 앞의 두 가지 이유를 내걸어 놓고 두 가지 과실을 나타냄
경 그는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하기 때문에 한결같이 모든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저버린다. 그는 한결같이 온갖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한결같이 제행을 발기해서 지어야 할 바를 저버린다.
석 이것은 두 번째로 두 가지 과실을 나타낸 것이니, 경문 그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다) 앞의 두 가지 과실을 들어 성불하지 못한다고 해석함
경 나는 끝내 한결같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들을 저버린 자와 한결같이 -
001_0262_b_01L結。此卽標也。謂彼趣寂。是定性故。雖
001_0262_b_02L諸佛化。定不成佛。
001_0262_b_03L何以故。
001_0262_b_04L釋曰。此第二徵。
001_0262_b_05L由彼本來。唯有下劣種性故。一向慈悲
001_0262_b_06L薄弱故。一向怖畏衆苦故。
001_0262_b_07L釋曰。此第三釋。於中有三。初總標
001_0262_b_08L三因。次牒前二因。顯二過失。後擧前
001_0262_b_09L二失。釋不成佛。此卽初也。謂彼定
001_0262_b_10L性二乘種性。皆是本來劣種性故。此
001_0262_b_11L節 [260] 總因。一向慈悲薄弱故者。是獨覺
001_0262_b_12L障。一向怖畏衆苦故者。此是聲聞障。
001_0262_b_13L故無上依經第一卷云。有四種障。一
001_0262_b_14L棄背大乘。是闡提障。執著我見。是
001_0262_b_15L外道障。厭畏疲極。是聲聞障。背利
001_0262_b_16L益他。是緣覺障。故知後二是二乘障。
001_0262_b_17L理實二乘。皆具二障。無上依經。具依
001_0262_b_18L相顯。各說一障。
001_0262_b_19L由彼一向慈悲薄弱。是故一向棄背利
001_0262_b_20L益諸衆生事。由彼一向怖畏衆苦。是故
001_0262_b_21L一向棄背發起諸行所作。
001_0262_b_22L釋曰。此卽第二顯二過失。如經可
001_0262_b_23L知。
001_0262_b_24L我終不說一切 [261] 棄背利益衆生事者。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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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2_c_01L제행을 발기해서 지어야 할 바를 저버린 자가 미래에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다고는 설하지 않는다.
석 세 번째는 성불하지 못함을 밝힌 것이다. 두 가지 과실 때문에 끝내 정각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설하지 않는다.
라) 결론
경 그러므로 그를 일컬어 ‘한결같이 적멸로 나아가는 성문’이라 이름하였다.
석 네 번째 총괄적 결론이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 회향성문迴向聲聞은 결정코 성불할 수 있음을 밝힘
경 보리로 회향한 성문종성의 보특가라라면 나는 또한 다른 문에서 (그를) 보살이라 설하였다.
석 이하는 세 번째로 회향성문은 반드시 성불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 중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표장이고, 둘째는 징문이며, 셋째는 해석이고, 넷째는 결론이다.
가) 표장이것은 표장이다. 말하자면 회향성문은 바로 『유가사지론』에서 말한 다섯 종성 가운데 부정성不定性(부정종성)에 해당하고, 혹은 점漸ㆍ돈頓 두 보살 중에 점오보살漸悟菩薩에 속하는 자이니, 그는 결정코 성불하기 때문이다.412) 『법화경』에서는 “그대들이 행한 것이 바로 보살도이다.”413)라고 한 것은, 모두 이 (두 보살) 중에 부정종성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414) 또 『장엄경론』 제6권에서는, 부정의 장애를 대치하기 위해 대승 경전에서는 ‘제불은 성문에게 마땅히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수기하신다’고 설하였고 또 ‘일승일 뿐 다시 두 번째 승은 없다’고 설했다고 한다.415) 『잡집론』 제12권에서도 똑같이 설한다.
나) 징문
경 어째서인가?
석 이것은 두 번째로 징문한 것이다.
다) 해석
경 그는 이미 번뇌장에서 해탈하였으니, 제불 등의 깨우쳐 주심을 받을 때라면 소지장에서 그 마음이 또한 마땅히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
석 세 번째는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말하자면 부처님이 (그 회향성문을) 교화ㆍ인도하면 소지장을 끊고 점차로 무주열반을 증득하게 되니, 이런 도리 때문에 결정코 -
001_0262_c_01L向棄背發起諸行所作 [262] 。當坐道場。能得
001_0262_c_02L阿耨多羅三藐三菩提。
001_0262_c_03L釋曰。第二 [263] 顯不成佛。申二過故。終
001_0262_c_04L不說言得成正覺。
001_0262_c_05L是故說彼。名爲一向趣寂聲聞。
001_0262_c_06L釋曰。第四總結可知。
001_0262_c_07L若回向菩提聲聞種性補特伽羅。我亦
001_0262_c_08L異門說爲菩薩。
001_0262_c_09L釋曰。此下第三回向聲聞定得成佛。
001_0262_c_10L於中有四。一標。二徵。三釋。四結。此
001_0262_c_11L卽標也。謂回向聲聞。卽是瑜伽五種
001_0262_c_12L姓中不定性者。或是漸鈍 [264] 二菩薩中
001_0262_c_13L漸悟所攝。彼定成佛故。法華云。汝
001_0262_c_14L等所行。是菩薩道。皆依此中不定者
001_0262_c_15L說。又莊嚴論第六卷云。爲對治不定
001_0262_c_16L障故。大乘經說諸佛授記聲聞當得
001_0262_c_17L作佛。及說一乘更無第二。雜集十
001_0262_c_18L二亦同。
001_0262_c_19L何以故。
001_0262_c_20L釋曰。此第二徵。
001_0262_c_21L彼旣解脫煩惱障已。若蒙諸佛等覺悟
001_0262_c_22L時。於所知障。其心亦可當得解脫。
001_0262_c_23L釋曰。第三廣釋。謂佛化導。斷所知障。
001_0262_c_24L漸次證得無住涅槃。由斯理故。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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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3_a_01L성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 결론
경 그는 처음에는 자기 이익을 위해 수행하고 가행하여 번뇌장에서 해탈하니, 이로 인해 여래는 그를 ‘성문종성’이라고 시설한 것이다.
석 이것은 네 번째로 그의 본명本名에 대해 결론 내린 것이다.그런데 성문에 대해 설하자면, 여러 교설들이 같지 않다.어떤 곳에서는 두 종류를 설하니, 이른바 취적성문趣寂聲聞과 회향성문回向聲聞이다. 예를 들면 이 『해심밀경』과 『심밀해탈경』이다.어떤 곳에서는 세 종류를 설하니, 퇴보리성문退菩提聲聞과 적멸성문寂滅聲聞과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입능가경』 제7권에서 단지 그 이름을 열거하고 해석하지는 않았다. 혹은 (또 다른) 세 종류가 있는데 이른바 변화성문變化聲聞과 서원성문誓願聲聞과 법성성문法性聲聞이니, 예를 들면 『유가사지론』 제73권이다. 따라서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시 어째서 성문승을 건립하는가? 말하자면 세 가지 인연 때문이다. 첫째는 변화 때문이고, 둘째는 서원 때문이고, 셋째는 법성 때문이다.‘변화 때문’이라 한 것은, 저 각각의 교화 대상의 세력에 수순해서 여래가 변화성문을 화작해 낸 것을 말한다.‘서원 때문’이라 한 것은, 어떤 보특가라가 성문승에서 이미 서원을 발했다면 그를 ‘성문’이라 건립하는 것을 말한다.‘법성 때문’이라 한 것은, 어떤 보특가라는 본성에서부터 자비가 박약하고, 모든 고통스런 일에 대해 깊이 두려움을 낸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을 깊이 좋아하지도 않고, 이 일을 위해 즐겁게 생사에 처하지도 않으며, 그는 이 법성에만 안주하기 때문에 (그를) ‘성문’이라 건립한 것이다. 또는 법성을 깨닫기 때문이니, 모든 안립제 안에서 대부분 수습하면서 포외행怖畏行을 굴리고 이런 인연으로 증득이 원만해지는 것을 말한다.성문승과 마찬가지로 독각승도 이와 같다. (다만 독각은) 부처님이 없는 세상에 태어나 정각을 증득한다는 것이 이 성문과는 차별된다. 곧 이상과 상반되는 세 가지 인연 때문에 ‘보살’이라 함을 알아야 한다.416)
어떤 곳에서는 네 종류를 설하니, 첫째는 -
001_0263_a_01L成佛。
001_0263_a_02L由彼最初。爲自利益。修行加行。脫煩惱障。
001_0263_a_03L是故如來施設彼爲聲聞種性。
001_0263_a_04L釋曰。此卽第四結其本名。然說聲聞。
001_0263_a_05L諸敎不同。有處說二。所謂趣寂回向
001_0263_a_06L聲聞。如卽此經深密解脫。有處說三。
001_0263_a_07L謂退菩提寂滅聲聞及增上慢。如入
001_0263_a_08L楞伽第七。但列其名。而不解釋。或
001_0263_a_09L有三種。所謂變化誓願法性。如瑜伽
001_0263_a_10L論第七十三。故彼論云。復次。云何立
001_0263_a_11L聲聞乘。謂三因緣故。一變化故。二
001_0263_a_12L誓願故。三法性故。變化故者。謂隨
001_0263_a_13L彼彼所化勢力。如來化作變化聲聞。
001_0263_a_14L誓願故者。謂有補特伽羅。於聲聞乘。
001_0263_a_15L已發誓願。卽建立彼以爲聲聞。法
001_0263_a_16L性故者。謂有補特伽羅。本性已來。慈
001_0263_a_17L悲薄弱。於諸苦事。深生怖畏。由此
001_0263_a_18L二因。於利他事。不深愛樂。非爲是
001_0263_a_19L事樂處生死。彼由安住此法性故。立
001_0263_a_20L爲聲聞。又覺法性故。謂於一切安立
001_0263_a_21L諦中。多分修習。怖畏行縛 [265] 。由此因緣。
001_0263_a_22L證得圓滿。如聲聞乘。獨覺亦爾。出無
001_0263_a_23L佛世。而證正覺。與此差別。卽上相
001_0263_a_24L違三因緣故。應知菩薩。有處說四。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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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3_b_01L결정성문決定聲聞이고 둘째는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이며 셋째는 퇴보리성문退菩提聲聞이고 넷째는 응화성문應化聲聞이다. 예를 들면 『법화론』에서 이름만 나열하고 해석하지 않았다.혹은 네 종류를 설하니, 첫째는 변화성문이고 둘째는 증상만성문이며 셋째는 회향보리성문迴向菩提聲聞이고 넷째는 일향취적성문一向趣寂聲聞이다. 예를 들면 『유가사지론』 제80권이니, 그 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종류 성문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는 변화성문이다.『법화론』에서는 응화성문應化聲聞이라 하였고, 『보적론』에서는 응성문應聲聞이라 하였다. 둘째는 증상만성문이다.『보적론』에서는 아만성문我慢聲聞이라 하였다. 셋째는 회향보리성문이다.『법화론』에서는 퇴보리심退菩提心이라 하였고, 『보적론』에서는 작보리원作菩提願이라 하였다. 넷째는 일향취적성문이다.『법화론』에서는 결정성문決定聲聞이라 하였고, 『보적론』에서는 정멸성성문定滅性聲聞이라 하였다.‘변화성문’이란, 교화하기 위해서 저 교화되는 유정들을 따르기 때문에, 혹은 보살들이나 혹은 여래들이 성문을 화작해 낸 것이다.제73권에서는 단지 ‘여래들’이라 하였고 ‘보살’을 말하지 않았다.‘증상만성문’이란, 다만 보특가라무아지補特伽羅無我智 및 사견에 집착하는 법무아지(執著邪法無我智)로 말미암아 ‘청정하다’고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417)‘회향보리성문’이란, 본래부터 지극히 자비심이 미열한 종성이지만 친히 여래 가까이에 머물기 때문에 광대한 불법 안에서 위대한 공덕의 상想을 일으키고 (그것을) 훈습하여 닦아서 상속시킨 자를 말한다. (그는) 비록 구경究竟에 이르러 무루계無漏界에 머물지만 제불들이 깨우쳐 주고 이끌어 주며 방편으로 개도해 주심을 받는다. 이런 인연으로 인해 곧 광대한 보리에 발심하여 나아갈 수 있지만, 적멸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가행에 있어 지극히 느리고 둔해서, 처음 비로소 발심한 불종성佛種性의 소유자만은 못하다.‘일향취적성문’이란, 본래부터 지극히 자비심이 미열한 종성이기 때문에, 한결같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저버리기 때문에, 생사의 고통을 극히 두려워하기 때문에, 오직 열반에 안주하려는 의요만 있을 뿐 끝내 대보리에 나아가지 못하는 자를 말한다.418)
혹은 네 종류를 설하니, 응성문應聲聞과 아만성문我慢聲聞과 -
001_0263_b_01L者決定。二增上慢。三退菩提。四者
001_0263_b_02L應化。如法華論。列名不釋。或說四
001_0263_b_03L種。一者變化。二增上慢。三迴向菩
001_0263_b_04L提。四一向趣寂。如瑜伽八十。彼云。
001_0263_b_05L云何名爲四種聲聞。一者變化聲聞。
001_0263_b_06L法華論應化。寶
積論應聲聞。二者增上慢聲聞。寶積論
云。我慢
001_0263_b_07L聲
聞。三者迴向菩提聲聞。法華退菩提 [266]
寶積作菩提 [267] 。四
001_0263_b_08L者一向趣寂聲聞。法華決定聲聞。
寶積寂 [268] 滅性。變化聲
001_0263_b_09L聞者。爲欲化度。由彼所化諸有情故。
001_0263_b_10L或諸菩薩。或諸如來。化作聲聞。七十
三。但
001_0263_b_11L云諸如來。不
言菩薩也。增上慢聲聞者。謂但由
001_0263_b_12L補特伽羅無我智。及執著耶 [269] 法無我智。
001_0263_b_13L計爲淸淨。迴向菩提聲聞者。謂從本
001_0263_b_14L來。是極微劣慈悲種性。由親近如來
001_0263_b_15L住故。於廣大佛法中。起大功德想。熏
001_0263_b_16L修相續。雖到究竟住無漏界。而蒙諸
001_0263_b_17L佛覺悟引入方便開導。由此因故。便 [270]
001_0263_b_18L發趣廣大菩提。由樂寂故。於此加行。
001_0263_b_19L極成遲鈍。不如初始發心有佛種姓
001_0263_b_20L者。一向趣寂聲聞者。謂從本來。是最
001_0263_b_21L極微劣慈悲種姓故。一向棄背利益
001_0263_b_22L衆生事故。於生死苦。極怖畏故。唯
001_0263_b_23L有安住涅槃意樂。究 [271] 竟不能趣大菩
001_0263_b_24L提。或說四種。謂應聲聞。我慢聲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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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263_c_01L작보리원성문作菩提願聲聞과 정멸성성문定滅性聲聞을 말한다. 예를 들면 『보적론』 제3권의 설과 같다.해 차례대로 『유가사지론』에서 말한 네 종류 성문에 해당한다.419) 이름은 차이가 있지만 의미는 『유가사지론』과 동일하므로 번거롭게 서술하지 않겠다.
어째서 여러 교설에서 개수(多少)의 차이가 있는가?실제로는 네 종류를 갖추고 있으니, 예를 들어 『유가사지론』 등과 같다. 그런데 차별점이 있다.『유가사지론』 등에서 설한 네 종류는 성문을 다 포괄하지만, 『법화론』에서는 ‘보리에서 물러나는 자(退菩提者)’를 설하고 ‘본래 물러나지 않는 자(本不退者)’는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보적론』과 『유가사지론』의 설이 뛰어나다고 한다. 혹은 『법화론』에서 말한 ‘퇴보리’란 개별을 들어 전체를 나타낸 것이라 할 수도 있으니, 그는 회향한 자들 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420) 이는 마치 사수思數(사심소)라고 설함으로써 행온行蘊을 포괄하는 경우와 같다.421)『능가경』의 세 종류는 변화성문을 제외한 것인데, 실재의 성문이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고 설하지 않은 것이다.422)그런데 『유가사지론』 제73권의 ‘변화성문’은 여러 논의 변화성문에 해당하고, ‘법성성문’은 결정성문에 해당하며, ‘서원성문’은 회향성문에 해당한다. 성문승에서 이미 서원한 후에 아직 대원을 발하지 않은 자를 서원성문이라 하고, 또한 회향성문이라고도 한다. 이미 대보리심을 발한 자라면 곧 보살의 서원에 포함되므로 성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증상만성문’은 서원성문에 포함되거나 혹은 서원ㆍ법성 두 종류 성문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으니, 따라서 이 논에서는 설하지 않았다.이 『해심밀경』에서는 변화성문과 증상만성문을 설하지 않았는데, 뜻은 이전의 해설과 동일하다.423) -
001_0263_c_01L作菩提願聲聞。及定滅性聲聞。如寶
001_0263_c_02L積論第三。解云。如次卽當瑜伽四種
001_0263_c_03L聲聞。名雖有異。義同瑜伽。故不繁
001_0263_c_04L述。如何諸敎多少異。據實具四。如
001_0263_c_05L瑜伽等。而差別者。瑜伽等四。攝聲
001_0263_c_06L聞盡。法華論說退菩薩 [272] 者。便不攝
001_0263_c_07L本不退者。故今寶積瑜伽爲勝。或可
001_0263_c_08L法華退菩提者。擧別顯總。以迴向中
001_0263_c_09L是一分故。如說思數。以攝行蘊。楞伽
001_0263_c_10L三中。除變化者。非實聲聞。故略不
001_0263_c_11L說。然七十三。變化卽是諸論變化聲
001_0263_c_12L聞。法性卽是決定聲聞。誓願卽當迴
001_0263_c_13L向聲聞。於聲聞乘。已誓願後。未發
001_0263_c_14L大願。名爲誓願。亦名迴向。若已發
001_0263_c_15L大菩提者。卽是菩薩誓願所攝。不名
001_0263_c_16L聲聞。增上慢者。卽誓願攝。或可誓
001_0263_c_17L願法性二攝。故此不說。此經不說變
001_0263_c_18L化增上 [273] 。義同前說解。
001_0263_c_19L解深密經疏卷第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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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이하의 두 가지 해석은 ‘일체법상一切法相’이라는 복합어를 삼성에 의거해서 해석한 것이다.
- 2)삼성三性 : 이 「一切法相品」에서 설해진 유식학파의 주요한 교의敎義로서, 일체법의 성상性相을 유무有無와 가실假實의 관점에 따라서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parikalpita-svabhāva)과 의타기성依他起性(ⓢ paratantra-svabhāva)과 원성실성圓成實性(ⓢ pariniṣpanna-svabhāva) 등 세 종류 자성自性으로 구분한 것을 말한다. 변계소집성이란 실재하지 않는 것임에도 ‘실재’라고 집착된 존재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실아實我·실법實法’ 등은 그것을 헤아리는 정情 속에는 있어도 이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타기와 원성실은 가유假有와 진실眞實이라는 차이는 있어도 모두 ‘유’로 간주되는 반면, 변계소집자성은 단지 언어상으로만 있고 실체는 전혀 없는 ‘무無’이다. 의타기성이란 타他에 의지해서 생기한 것, 즉 각종의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을 가리킨다. 영원불변의 실재는 아니지만, 연이 합하면 생하고 연이 다하면 멸하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실재성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가유假有’라고 한다. 원성실성이란 의타기자성의 진실한 체體, 즉 진여眞如를 가리킨다. 이것은 일체법에 두루 편만하고(圓滿) 생함도 멸함도 없으며(成就) 체성體性이 참된 실재이기(眞實) 때문에 ‘원성실’이라고 한다.
- 3)이 해석에 따르면, 삼성三性을 일컬어 ‘일체’라고 하였고, 그 삼성을 지닌 모든 법의 체성體性·상상相狀을 일컬어 ‘일체법상’이라 한 것이다. 그런데 ‘일체법과 상’이라는 복합어를 분석할 때, 만약 삼성을 총칭해서 ‘일체법’이라 했다면, ‘一切法相’이라는 복합어는 ‘一切法卽相’ 즉 ‘일체법 그 자체가 삼성’이라는 동격 관계에 있으므로 지업석持業釋에 해당한다.
- 4)삼성 중에 하나하나의 자성을 ‘일체법상’이라 했다면, ‘一切法相’이라는 복합어는 ‘一切法之相’, 다시 말하면 일체법(삼성) 중의 한 자성을 가리키므로 의주석依主釋에 해당한다.
- 5)이 해석에 따르면, ‘일체법’이란 이른바 유식의 오위백법五位百法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상’이란 그 일체법의 체상, 즉 삼성이다. 그런데 ‘일체법상’이 삼성 중에서 변계소집성·의타기성을 뜻할 경우, 이때 ‘일체법상’이라는 복합어는 ‘일체법’과 ‘상’이라는 두 단어가 동격 관계에 있는 지업석持業釋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두 가지 자성이 일체법을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 6)‘일체법상’이 삼성 중에서 원성실성만 뜻할 경우, ‘일체법상’이라는 복합어는 두 단어가 격이 다른 관계에서 전자가 후자를 수식하는 의주석依主釋에 해당한다. 이때의 ‘일체법(오위백법)’과 ‘상’(원성실성, 진여)은 동격이 아니라 ‘일체법의 체상(一切法之體相)’이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 7)이전의 「勝義諦相品」과 「心意識相品」은 유가수행자들이 관해야 하는 두 가지 경계(境)를 논한 것인데, 전자가 진제眞諦(勝義諦)의 차원에서 궁극적 진리에 대해 논한 것이라면 후자는 속제俗諦의 차원에서 제법의 차별적 상을 설명한 것이다. 이후의 「一切法相品」과 「無自性相品」은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을 포괄하는 모든 법들에 이 삼성三性과 삼무자성三無自性이 갖추어져 있음을 논하는데, 전자가 유성有性의 경계라면 후자가 무성無性의 경계이다. 이 두 품에서 설해지는 삼성설과 삼무성설은 유식학파의 독특한 사유를 보여주는 학설로서, 유가행자들은 모든 법에 갖추어진 이러한 세 가지 상을 관함으로써 ‘공空’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궁극적인 이해에 도달하려 했다.
- 8)세친 조 『唯識三十論頌』(T31, 61a22). 이 게송은 ‘유식삼십송’에서는 제23송의 일부다.
- 9)『深密解脫經』 권2(T16, 669c6) 참조.
- 10)이 보살의 명칭은 그가 인위因位에서 닦고 쌓은 복덕과 지혜라는 두 가지 공덕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말이다.
- 11)소전의 의미(所詮之義) : 교법에 의해서 나타내고자 했던 의미 혹은 이치를 말한다.
- 12)능전의 교법(能詮之敎) : 어떤 의미나 이치를 드러내기 위해 시설된 언어 자체로서의 교법을 말한다.
- 13)이 품에서도 이전의 「心意識相品」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두에서 유사한 질문을 두 번 던지고 있다.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첫 번째 질문의 초점은 선교보살이라면 ‘제법의 상’에 대해 어느 수준까지 알아야 하는가에 있다. 따라서 이후에는 보살로서 알아야 할 일체법상一切法相에 대해 삼성三性에 의거해서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의 의도는 여래가 성스런 가르침(聖敎)에서 시설해 놓은 ‘선교보살’이라는 교敎 자체도 마찬가지로 그 삼성에 대해 잘 아는 보살에 의거한 것임을 분명히 하려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앞의 질문은 ‘선교’라는 말이 가리키는 소전의 의미 혹은 실질적 내용을 물은 것이고, 뒤의 질문은 ‘선교’라는 능전의 교 자체에 대해 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14)『攝大乘論本』 권2(T31, 137c27) 참조.
- 15)무성의 『攝大乘論釋』 권4(T31, 398c17).
- 16)대수석帶數釋 : 두 단어 이상의 복합어에서 앞의 수식어가 숫자로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 17)이하의 인용문은 무착無著의 『攝大乘論本』 권2(T31, 139b2), 세친世親의 『攝大乘論釋』 권4(T31, 341a13)와 무성無性의 『攝大乘論釋』 권4(T31, 403b7)에 나온다. 원측 소에서 “『섭대승론』 제4권”이라 한 것은 세친·무성의 『攝大乘論釋』을 기준으로 말한 것이다.
- 18)여기서 ‘한량없는 행상(無量行相)’이란 경계의 상을 말하고, 의식은 그 자체가 두루 계탁하는 것(遍計)이다. 그런데 의식이 두루 계탁할 때 ‘아我’나 ‘법法’ 등과 같은 전도된 경계의 상들이 생하는데, 그것들을 ‘변계소집遍計所執’, 즉 ‘변계(의식)에 의해 집착된 것’이라 한다. 자세한 해석은 이하의 세친과 무성의 해석 참조.
- 19)‘실아實我’나 ‘실법實法’이라는 전도된 상들은 그 실체(자상)는 존재하지 않고 마음(변계)속에 집착된 것으로만 있으므로 ‘변계소집’이라 명명한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이하의 세친과 무성의 해석 참조.
- 20)『攝大乘論本』 권2(T31, 139b2).
- 21)난식亂識 : ‘분별分別’의 다른 이름으로서, 곧 의타기의 식識을 가리킨다. ‘식’ 자체는 인연으로 생겨난 것(因緣所生)이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하고, 이 식의 본성은 허망한 분별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허망분별虛妄分別’이라고도 한다.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181c25) 참조.
- 22)세친의 『攝大乘論釋』 권4(T31, 341a19).
- 23)『攝大乘論』 본문에서 ‘한량없는 행상’이라 한 것은 아我나 법法 등과 같은 상을 말하는데, 이 아법의 상에 대해 한편에서는 ‘타他로서의 인연에 의지하는 아·법’, 즉 의타기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집착된 아·법’, 즉 변계소집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 24)무성은 ‘전도해서 생긴 상’이란 의타기의 식識(허망분별) 상에 나타난 능히 파악하는 자(能取)와 그에 의해 파악되는 대상(所取)이라는 이분적 구조를 말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식의 능취·소취의 구조가 변계소집의 경계의 상을 발생시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 25)협주에 제시된 두 가지 해석은 표현의 차이는 있어도 공통적으로 ‘변계소집의 경계의 상이 의타기의 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식의 능취·소취가 경계의 상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보았던 무성無性의 해석과는 상반된다.
- 26)무성의 『攝大乘論釋』 권4(T31, 403b17).
- 27)이 논에서는 능변계能遍計와 소변계所遍計로 나누어 변계소집자성의 뜻을 정의하였다. ‘능변계’란 능히 두루 계탁하는 식識, 즉 ‘허망분별’을 가리키고, ‘소변계’란 그 허망분별에 의해 계탁되는 대상을 가리킨다. 이처럼 ‘변계’를 본성으로 하는 마음이 온·처·계 등에서 실아實我·실법實法이나 그것의 자성自性·차별差別이 있다고 계탁한다. 여기서 자성이란 어떤 사물 자체의 체성體性을 가리키고, 차별이란 그것에 부여된 차별적인 의미(義)를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변계소집의 언어로써 시설된 개념에 해당한다. 이러한 언어적 시설은 크게 유정에 관한 용어들과 그 밖의 다른 존재들에 대한 용어로 구분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아’와 ‘법’이다. 이처럼 가립된 아·법의 자성과 차별이 다시 유정들의 마음에서 허망한 집착의 대상(所妄執)이 될 때 그것들을 총칭해서 ‘변계에 의해 집착된 것(遍計所執)’이라 이름한다. 이상은 『成唯識論』 권8(T31, 45c14), 『成唯識論述記』 권9(T43, 540b6) 참조.
- 28)이하에서는 안혜와 호법의 설이 진술되는데, 이는 ‘변계’에 의해 집착된 대상을 ‘변계소집’이라 할 때 그런 집착을 일으킬 수 있는 능변계의 식은 몇 종류인가를 논한 것이다. 두 해석의 차이점은 제8식도 변계소집의 대상을 산출해 내는 식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 29)이것은 『成唯識論』에 진술된 안혜 등의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오식과 제8식에는 법집만 있고 제7식에는 인집만 있으며 제6식에는 두 가지가 다 있다. 유루의 마음이라면 모두 집착이 있기 때문에 ‘허망분별’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 유루의 마음은 언제나 마치 파악하는 주체(能取)와 파악되는 대상(所取)이 있는 것처럼 이분적 구조를 띠고 현현하는데, 이러한 이취二取 자체가 ‘집착(執)’에 해당한다. 또 『瑜伽師地論』 제67권이나 『解深密經』 등에서 ‘아뢰야식은 망집습기의 종자를 소연으로 삼는다’고 설한 것을 전거로 삼아서, 제8식도 능취와 소취의 구조로 현현하고, 그래서 또한 집착이 있는 식이다. 따라서 ‘능변계’에 속한다고 하였다. 『成唯識論』 권8(T31, 45c22), 『成唯識論述記』 권9(T43, 540c17) 참조.
- 30)이것은 『成唯識論』에 진술된 호법 등의 해석이다. 호법은 ‘오직 제6식과 제7식만 능변계’라고 주장하는 교리적 전거로서 『攝大乘論』 제4권에서 ‘오직 의식만이 능변계다’라고 설했음을 예로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식意識’이라는 말은 어원적으로 ‘의의 식(意之識)’을 뜻할 수도 있고 또한 ‘의 그 자체인 식(意卽識)’을 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의식’이란 제6의식과 제7말나식(意)을 통칭한 말이기 때문에 아법에 집착하는 제6·제7식의 심품을 능변계라고 한다고 하였다. 『成唯識論』 권8(T31, 45c26), 『成唯識論述記』 권9(T43, 541a11) 참조.
- 31)호법 등의 논사는 열 가지 이유를 들어서 ‘제6식과 제7식만이 능변계’라고 주장하였는데, 그 열 가지는 논리적으로 차례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직 의식만을 능변계라고 설하기 때문이고, 의意 및 의식意識을 의식意識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며. 계탁하고 분별하는 것이 능변계이기 때문이다. 아집과 법집은 반드시 혜慧와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고, 두 가지 집착은 반드시 무명과 함께 일어나기 때문이다. 무명을 선성善性이라고 설하지는 않기 때문이고, 치癡와 무치無癡는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착이 있음에도 공지空智에 도달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유에 대한 집착과 무에 대한 통달이 함께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며, 일찍이 집착이 있음에도 훈습하는 것(能熏)이 아닌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成唯識論』 권8(T31, 45c25), 『成唯識論述記』 권9(T43, 541a11) 참조.
- 32)『深密解脫經』 권2(T16, 669c17) 참조.
- 33)구나발타라 역 『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7c5) 참조.
- 34)‘변계소집’이라는 복합어는 ‘소집所執(집착된 대상)’을 지시하는 말이고, 앞의 ‘변계’는 뒤의 말을 한정하는 수식어일 뿐이다.
- 35)‘변계소집성’이라는 복합어를 ‘변계+소집+성’의 관계로 분석했을 때, ‘변계+소집’의 관계는 ‘변계의 소집(遍計之所執)’으로 해석되므로 의주석依主釋에 해당하고, 다시 ‘소집+성’의 관계는 ‘소집이 곧 성(所執卽性)’으로 해석되므로 지업석持業釋에 해당한다.
- 36)사의似義 : ‘의義’란 식에 현현된 대상(경계)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의似義’라고 한 것은, 그러한 ‘대상’이 실재하지 않는데(非有) 마치 그것이 실재하는 것처럼(似有)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대상과 유사한 것’, 즉 ‘사의’라고 하였다.
- 37)유식唯識의 종지에 따르면, 대상(義 : 경계)의 영상은 변계소집이고, 그 대상이 현현하는 의지처로서의 ‘식識’ 자체는 의타기이다. 그런데 오직 식만 있고 식이 그런 대상의 영상들이 현현하는 의지처로 간주된다면, 여기에는 ‘타에 의지한다(依他)’는 의미는 없는 듯하다. 따라서 ‘의타기’ 자체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또 어떤 이유에서 ‘의타기’라는 명칭을 부여했는지를 물은 것이다.
- 38)이전의 변계소집의 항목에서 원측이 협주에서 진술했듯, 이하의 두 가지 대답은 모두 의타기 자체의 성립과 의타기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 총괄해서 답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차례대로 전후의 질문에 답한 것일 수도 있다. 먼저 ‘자기 종자에서 생겨나고 타연他緣에 의지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한다’고 대답하였는데, 이것은 논리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자기 종자에서 생겼는데 왜 타에 의지해 일어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타他’ 혹은 ‘타에 의지한다(依他)’는 말의 의미가 중요하다. 자세한 것은 이하의 세친과 무성의 해석 참조.
- 39)두 번째 대답은 ‘어떤 것도 자기 스스로 머무는 공능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인연으로 생긴 것은 찰나생멸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머물 수는 없고 반드시 다른 연들에 의지해서 머물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한다는 것이다.
- 40)『攝大乘論本』 권2(T31, 139a26).
- 41)세친은 매우 간결하게 본문의 요지만 제시하였다. 의타기 자체는 비록 자기 종자에서 생긴 것이긴 해도, 그 ‘머묾(住)’에 있어서는 타연他緣에 의지하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이름한 것이다.
- 42)세친의 『攝大乘論釋』 권4(T31, 341a9).
- 43)무성에 따르면, ‘자기 종자에서 생겨난다(自種所生)’는 것이 바로 ‘타자로서의 연에 의지해서 일어난다(依他緣起)’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변계소집의 훈습종자는 그 의타기의 식을 발생시키는 인因이고, 이 ‘인’은 식 자체에 대해서는 ‘타’이다. 그 체體가 자기 종자라는 ‘타’에 의지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의타기’라고 이름한다는 것이다.
- 44)무성의 『攝大乘論釋』 권4(T31, 403b1).
- 45)승군勝軍(ⓢ Jayasena) : 서인도의 소랄타국蘇剌佗國 출신의 유식학자다. 계현戒賢에게서 『瑜伽師地論』을 배우고 안혜安慧에게서 성명聲明 및 대·소승의 논을 배웠다. 특히 무착無著의 『攝大乘論』에서 세웠던 ‘대승불설大乘佛說’의 논증식(量)에 과오가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 논증식을 세워 모든 대승경전이 부처님의 설임을 입증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것을 승군비량勝軍比量이라고 한다.
- 46)여기서 말한 ‘분별分別’이란 ‘대상을 인식하는 작용(緣慮)’에 속하는 모든 심·심소법을 가리킨다. 이러한 ‘분별’ 자체는 다른 여러 연들에 의지해서 생기하는 것이므로 ‘의타기’라고 한다. 『成唯識論』 권8(T31, 46b6) 참조.
- 47)이것은 유식삼십송 중에서 제21송에 해당한다. 『唯識三十論頌』 권1(T31, 61a16) 참조.
- 48)이상은 『成唯識論』 권8(T31, 46b6) 참조.
- 49)『攝大乘論本』 권2(T31, 139b7).
- 50)‘마치 속이지 않는 신하와 같다(如不虛誑臣)’는 문구는 현장 역 『攝大乘論釋』 권4(T31, 341b2)에는 ‘如不虛誑性’이라고 되어 있다. ‘臣’을 ‘性’의 오기로 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헛되이 속이지 않는 것’의 실례를 든 것이기 때문에 원측 소의 문장 그대로 번역하였다. 참고로 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186c10)에는 ‘진실성眞實性(원성실성)’을 해석하면서 ‘마치 세간에서 말하는 진실한 친구와 같다(如世間說眞實友)’는 비유가 추가되어 있다.
- 51)‘마치 완전하게 이루어진 옷과 같다(如圓成衣)’는 비유는 이전의 ‘마치 속이지 않는 신하와 같다(如不虛誑臣)’는 비유와 마찬가지로 진제 역과 현장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도 ‘원만하게 성취된 것’의 실례를 든 것이므로 원측 소의 문장 그대로 번역하였다.
- 52)세친의 『攝大乘論釋』 권4(T31, 341b1) 참조.
- 53)무성의 『攝大乘論釋』 권4(T31, 403c1).
- 54)“두 가지 공에 의해 현현된 것(二空所顯)”이란 아공我空·법공法空에 의해 현현된 ‘진여’를 말한다. 여기서 ‘이공소현’이란 말은 대승적 ‘공空’의 의미를 대변하는 것이다. 구역 경론에서는 ‘공 그 자체가 이치(空卽是理)’라는 의미에서 ‘공’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신역 경론을 중심으로 하는 법상학자들은 ‘공’과 ‘공성’을 구분한다. 말하자면 ‘진여’는 단지 아·법의 공함 혹은 아·법의 무無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공二空에 의해 비로소 현현되는 진실한 자성 혹은 이공의 이치(二空之理)이다. 따라서 ‘공(ⓢ śūnya)’과 구별해서 ‘공성空性(ⓢ śūnyatā)’이라고 표현한다. 원측의 『仁王經疏』 권1(T33, 379c12), 규기의 『成唯識論述記』 권1(T43, 234c17) 참조.
- 55)‘원성실圓成實’이라는 단어는 아공·법공에 의해 현현되는 진여가 원만圓滿하고 성취成就되었으며 제법의 실성(諸法實性)이라는 것을 나타낸 말이고, ‘원만’이란 ‘편만하다’는 뜻과 같고, ‘성취’란 ‘영원하다’는 뜻이며, ‘실성’이란 체가 진실하여 공허하거나 그릇되지 않음을 뜻한다. 이하의 원측의 풀이(해)에서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 56)『成唯識論』 권8(T31, 46b10).
- 57)예를 들어 색은 ‘물리적 부피를 가짐으로써 서로 가로막는 성질’, 즉 ‘질애質礙’를 자상으로 하는 것처럼 제법은 각자의 고유한 자상을 갖는다. 이 자상은 그 법체에 국한되지 그 밖의 것에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진여가 모든 것에 편만하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의 자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 58)원성실성은 모든 법에 관철되는 상이라는 점에서는 가령 ‘모든 것은 고이다’ 혹은 ‘모든 것은 무상하다’고 할 때 그 모든 법에 공통되는 ‘고’나 ‘무상’ 등과 같은 보편상(共相)들과 유사하기는 해도, 진여의 체가 ‘영원하다(常)’는 점에서 그런 무상한 공상들과는 구별된다.
- 59)무위법無爲法 중의 하나인 ‘허공’이나 외도들이 말하는 ‘영원한 아’ 등도 모든 것에 편만하고 또 영원하다고 하지만, ‘편만하는 허공’은 실로 텅 빈 것이고, 외도들의 ‘영원한 아’는 그릇된 분별에 의해 생긴 그릇된 관념일 뿐이다. 그러나 ‘제법의 실성’은 실로 ‘모든 것에 편만하고 또 영원하다’는 점에서 허공이니 아와는 구별된다.
- 60)여기서 ‘무루의 유위법’이란 염정染淨의 아뢰야식 중에서 청정분을 가리키며, 이것을 삼성에서는 ‘정분의 의타(淨分依他)’라고 한다. 이 정분의 의타를 또한 원성실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이 ‘전도를 떠난다(離倒)’는 등의 세 가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 정분의타로서의 ‘원성실’은 ‘이공소현의 진여’와는 의미상 구별된다. 자세한 설명은 『成唯識論述記』 권9(T43, 545b26) 참조.
- 61)『成唯識論』 권8(T31, 46b12).
- 62)『成唯識論』에서 인용된 이전의 두 가지 해석 중에서, ‘원성실’이란 전자의 경우에는 ‘진여’에 해당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무루의 유위법’, 즉 ‘청정분의 의타(淨分依他)’에 해당한다. 『成唯識論』에서는 위의 인용문에 이어서 “지금 이 제21송에서는 전자를 설한 것이지 후자를 설한 것은 아니다.”〔같은 책 권8(T31, 46b13)〕라는 해석을 덧붙이는데, 원측 소에서도 이 문구를 그대로 적용해서 이 『解深密經』에서 말하는 ‘원성실’이란 진여를 가리킨 것이지, 청정분의 의타를 가리킨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 63)‘변계소집이 곧 성이고(遍計所執卽性), 의타기가 곧 성이며(依他起卽性), 원성실이 곧 성이다(圓成實卽性)’라는 의미에서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이라 이름한다. 이처럼 ‘성’이라는 단어와 그 앞의 수식어들의 관계가 모두 동격의 관계에 있는 복합어이므로 그 세 단어는 모두 지업석持業釋에 해당한다.
- 64)명가名假 : 모든 법의 이름은 상相에 의거해서 가짜로 시설된 것이므로 ‘명가’라고 한다.
- 65)여기서 말하는 ‘자성自性과 차별差別’이란 바로 변계소집의 언어로 시설된 개념으로서, 자성이란 어떤 사물 자체의 체성體性을 가리키고, 차별이란 그것에 부여된 차별적인 의미(義)를 가리킨다. 변계소집의 언어로 시설된 것들은 크게 유정에 관한 용어들과 그 밖의 다른 존재들에 대한 용어로 구분될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아’와 ‘법’이다. 이 아와 법의 자성(체)과 차별(의)의 구분은 가령 판단에서의 주어와 술어 관계를 통해 분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은 파랗다’라는 단순한 지각 판단에서, ‘이것’은 아직 분별이 가해지기 이전의 개별적인 법 자체(自性)를 가리키고, ‘파랗다’는 ‘이것’을 한정함으로써 차별시키는(差別) 역할을 한다. 그런데 어떤 개념이 주어와 술어 자리 중에서 어디에 놓이는지 정해진 것은 아니다. 동일한 개념이 자성이 되기도 하고 차별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 꽃은 파랗다’와 ‘파랑은 색깔이다’라는 진술에서, ‘파랑’은 술어 자리에 놓일 때는 다른 것에도 통하는 보편 개념(共相)으로서 ‘이 꽃’을 한정하는 말이지만, 주어 자리에 놓일 때는 아직 분별되지 않는 그 자체로서 뒤의 술어에 의해 한정된다. 또 모든 존재를 다르마(dharma : 法)로 해체시킨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이 꽃’도 파랑과의 관계에서는 자성이지만 그것을 이루는 극미와의 관계에서는 극미를 한정시키는 차별이다. 자성과 차별에 대해서는 규기의 『成唯識論述記』 권2(T43, 287c20)와 같은 책 권9(T43, 540b6) 참조.
- 66)불교도들처럼 색 등 오온五蘊의 상속에 대해 ‘가아假我’를 가립하거나 혹은 외도들처럼 영원불변의 실아實我를 가립하거나, 또 ‘색’이나 ‘성’이나 ‘향’ 등처럼 제법의 자성에 해당하는 이름을 시설하는 것을 일컬어 ‘아법의 자성을 가립한다’고 한다. 한편, ‘색’ 상에서 ‘보이는 색(可見色)’과 ‘보이지 않는 색(不可見色)’ 등의 차별적 상을 시설하거나, 혹은 ‘성’ 상에서 ‘듣기 좋은 소리(可意聲)’나 ‘듣기 싫은 소리(不可意聲)’ 등의 차별적 상을 시설하는 것을 ‘색 등의 아법의 차별을 가립한다’고 하였다.
- 67)『成唯識論』 권8(T31, 45c16).
- 68)번뇌煩惱·업業·생生의 잡염 : ‘번뇌잡염’은 사실과 이치에 미혹한 번뇌를 가리키고, ‘업잡염’은 몸·입·마음으로 지은 선업과 악업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며, ‘생잡염’은 태어나서 늙어 죽는 것을 말한다. 이 세 종류 잡염은 미혹의 인과를 나타낸 것으로, 번뇌에 의지하여 선악의 업을 짓고 업에 의지하여 삼계에서 고락의 과보를 받으면서 나고 죽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세 종류 잡염은 뒤의 「無自性相品」에서 삼성관三性觀에 의거해 삼무성三無性을 건립한 뜻을 해석하면서 다시 자세히 다루어진다.
- 69)많은 연에 의해 생기한 심·심소의 체體와 상분相分·견분見分들은, 범부(異生)·이승二乘의 유루의 심·심소인 경우든 무루의 심·심소인 경우든 모두 의타기에 속한다. 그것들은 다른 많은 연들에 의지해서 생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成唯識論述記』 권9(T43, 544c25) 참조.
- 70)유식삼십송 중 제21송에서 “의타기자성의 분별은 연으로 생기한 것이고,……(依他起自性。 分別緣所生。……)”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게송에서 ‘분별分別’이라 한 것은 유루·무루의 식識 중에서 ‘유루식’을 가리키며, ‘인연으로 생긴 것(緣所生)’이란 그 식 자체가 ‘타에 의지하는 것(依他)’임을 나타낸 말이다. 다시 말하면 유루와 무루의 식은 모두 의타기라고 불릴 수 있지만, 여기서는 우선 염분(유루)을 일컬은 것이니, 정분(무루)의 의타기의 식은 또한 원성실이라고도 이름하기 때문이다. 『成唯識論述記』 권9(T43, 544c25) 참조.
- 71)『成唯識論』 권8(T31, 46b5).
- 72)전생傳生 : 서로 의지해서 연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 73)십이연기에서 무명無明은 바로 다음의 행지行支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연(親緣)이 되어 주지만, 상호 간에 영향을 주며 연속적으로 일어난다(展轉)는 측면에서 보면 무명은 ‘행’ 다음의 식識 등 제행諸行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연(傳緣)이 된다.
- 74)전전력展轉力 : 상호 간에 영향을 주어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힘을 말한다.
- 75)제법의 인과에 대해 연기론과 가장 대조되는 이론이 무인론無因論과 상인론常因論이다. 무인론이란 원인이 없이 생겨난다는 주장이고, 상인론이란 영원하고 유일한 원인에서 생겨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두 가지 극단적 관점과 달리 다른 많은 연들에 의지해서 생겨난다고 주장한 것이 연기설이라는 것이다.
- 76)『俱舍論』에는 이 문장 뒤에 “즉 원인이 없이 제행은 있을 수 없으며, 영원한 자성自性이나 자아는 생인生因이 없기 때문에 제행을 낳을 수 없다.”는 문장이 덧붙어 있는데, 원측 소에서는 생략되었다. 보광普光의 주석에 의하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은 ‘원인이 없이 제행이 있다’고 하는 무인론無因論을 비판한 것이다.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는 것은 ‘영원한 인에서 제행이 생긴다’고 하는 상인론常因論을 비판한 것이다. 여기서 ‘영원한 인’이란 수론數論에서 말하는 자성自性(ⓢ prakṛtī)이나 승론勝論의 아我(ⓢ ātman) 등을 가리키는데, 이런 인에는 생인生因의 의미가 없다고 비판하였다. 보광의 『俱舍論記』 권9(T41, 171c12) 참조.
- 77)궤범사軌範師 : 범어 아사리阿闍梨(ⓢ ācārya)를 음역한 말로서, 제자를 가르치면서 자기 스스로는 제자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 78)이상은 『俱舍論』 권9(T29, 50c18) 참조.
- 79)둔륜의 『瑜伽論記』 권3(T42, 373a25)에 따르면, 처음 구는 ‘작용 없는 연으로 생한다(無作緣生)’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오직 연이 있음으로 인해 과법果法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연에 실체적 작용이 있어서 능히 과법을 생하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일컬어 “단절되지 않는 연으로 인해 그 밖의 것이 생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둔륜의 해석은 다음에 인용된 『雜集論』의 해석과 동일하다.
- 80)둔륜의 『瑜伽論記』 권3(T42, 373a25)에 따르면, 두 번째 구는 ‘무생법無生法이 인因이 되어 생겨난 법이란 전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인용된 『雜集論』의 해석 참조.
- 81)『瑜伽師地論』 권10(T30, 326a27).
- 82)이 논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연생을 관하는 것인가?(爲何義故觀緣生耶)”라는 질문에 대해 “상 때문에(相故)”라는 이유를 포함해서 열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위의 인용문은 ‘상 때문에’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 83)모든 유위법有爲法들이 무상한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이라면, 무위법無爲法은 그런 무상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하는 것도 아니고, 생하지 않기 때문에 멸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불생불멸’ 혹은 간단히 무생법無生法이라고 한다. 그런데 연생의 도리에서는 이런 무위법이 인이 되어 생한다는 의미는 성립하지 않는다.
- 84)『雜集論』 권4(T31, 711b9).
- 85)이 문장은 바로 앞에 있는 『雜集論』의 인용문에 이어지는 것이다. 전후로 인용된 문장들은 모두 어떤 경에 나온 ‘박가범의 말씀(薄伽梵說)’을 해석한 부분인데, 그 말씀이란 지금 해석하려는 『解深密經』의 경문과 동일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말하자면 무명은 행의 연이 되고……(謂無明緣行乃至……)”라는 문구에 대한 해석이고, 이하에서 원측이 별도로 이 경문을 해석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인용문의 문장을 분리하였다.
- 86)『雜集論』 권4(T31, 711b15).
- 87)『俱舍論』 권9(T29, 51b24).
- 88)『大毘婆沙論』 권24(T27, 122b18).
- 89)『瑜伽師地論』 권10(T30, 328a20).
- 90)이 『攝大乘論』의 문장은 「心意識相品」 가운데 ‘일체종자식’을 설명하면서 이미 인용되었다. 여기서 열거된 열한 가지 식을 다시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신身·신자身者·수자受者의 식識’이란 각기 몸과 몸을 가진 자와 수용하는 자에 대한 표상을 가리키는데, 법수로 나타내면 그 차례대로 신체를 이루는 안·이·비·설·신 등의 오계, 염오의染汚意 그리고 의계意界에 해당한다. ‘피소수식彼所受識’이란 육식에 의해 수용되는 대상에 대한 표상을 가리키는데, 법수로 나타내면 색·성·향·미·촉·법 등의 육경에 해당한다. ‘피능수식彼能受識’이란 육경을 수용하는 작용에 대한 표상을 가리키는데, 법수로 나타내면 안식 등의 여섯 가지 식을 가리킨다. ‘세식世識’이란 시간에 대한 표상을 말하고, ‘수식數識’이란 ‘1’ 등과 같이 셈하는 수에 대한 표상을 말하며, ‘처식處識’은 마을·정원 등과 같은 공간에 대한 표상을 말한다. ‘언설식言說識’이란 각종 언어적 표상을 말하고, ‘자타차별식自他差別識’이란 자기와 타인의 차이에 대한 표상을 말하고, ‘선취악취사생식善趣惡趣死生識’은 천·인·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중생들의 나고 죽음에 대한 표상을 말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하에 인용된 세친과 무성의 『攝大乘論釋』 참조.
- 91)『攝大乘論本』 권2(T31, 137c29).
- 92)염오의染汚意 : 유식종에서 세운 제7말나식의 별칭이다. 이 식은 항상 상속하는 식으로서 제8아뢰야식의 견분見分을 대상으로 해서 아집我執을 일으키고, 항상 아치我癡·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 등 네 가지 번뇌와 상응하기 때문에 염오의 토대가 된다.
- 93)신자식身者識에 대한 세친과 무성의 해석이 다른데, 인용문 다음에 이에 대한 원측의 풀이가 나온다.
- 94)수자식受者識에 대한 세친과 무성의 해석이 다른데, 인용문 다음에 이에 대한 원측의 풀이가 나온다.
- 95)피소수식彼所受識과 피능수식彼能受識에 대한 무성無性의 해석은 세친과 동일하다.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4(T31, 399a17) 참조.
- 96)각기 의지하는 신체(所依身)가 차별되는 것을 일컬어 ‘의지가 차별된다’고 하였다. 몸이 각기 개별적이기 때문에 ‘나’와 ‘나의 것’이라는 집착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자타가 차별된다는 생각이 몸과 더불어 상속하게 된다.
- 97)이상은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4(T31, 338a12),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4(T31, 399a16)에서 인용된 것이다.
- 98)앞의 『攝大乘論』 인용문에서는 열한 번째 식을 ‘선취악취사생식善趣惡趣死生識’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같은 책 권2(T31, 138c6)에서는 세식世識 등을 비롯하여 뒤의 여섯 식의 차별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마지막 ‘선취악취사생식’에 대해서는 “① 모든 좋은 업과와 좋지 않은 업과의 이숙을 수용함에 있어서의 차별은 무수하기 때문이고, ② 수용하게 되는 죽음과 태어남의 갖가지 차별이 무수하기 때문이다.(諸愛非愛業果異熟受用差別無數量故。 所受死生種種差別無數量故。)”라고 하였다. 여기서 ① 선취악취의 차별과 ② 사생의 차별을 따로따로 설명하였으므로 ‘선취악취사생식’이라 한 것도 ‘선취악취식과 사생식’ 두 가지를 가리킨다고 본 것이다.
- 99)무성은 ‘선취악취사생식’에 대해 ‘선취·악취’와 ‘사생’의 두 가지 식으로 구분해서 보았다는 것이다.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4(T31, 401b17) 참조.
- 100)『辯中邊論』 권2(T31, 469c6).
- 101)진여는 자성에 변이變異가 없으므로 범부의 지위에서도 역시 청정하다. 따라서 ‘자성청정’이라 한다. 이 진여는 공空 등과 같이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의타기 상上에서의 변계소집의 무無’에 의해 현현되는 진실한 이치(理性)이므로 ‘공’이라 하고, 진실로(實) 궁극적인 것(究竟)이므로 ‘실제實際’라고 하며, 영원히 일체의 색 등의 상을 떠났으므로 ‘무상無相’이라 하고, 수승한 지혜(勝智)로 증득된 대상(義)이므로 ‘승의勝義’라고 하며, 일체의 정법淨法의 인因이기 때문에 ‘법계法界’라고 한다.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5(T31, 406b25) 참조.
- 102)이 진여가 번뇌장과 소지장이라는 더러움을 멀리 떠나 있는 것을 일컬어 ‘이구청정’이라 한다.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344a5) 참조.
- 103)보리분법菩提分法 : ‘보리분’이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원인을 뜻하며,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 서른일곱 가지 법은 모두 보리(깨달음)에 수순해서 나아가기 때문에 보리분법이라 부르는데, 구체적으로는 사념처四念處와 사정근四正勤과 사여의족四如意足과 오근五根과 오력五力과 칠각분七覺分과 팔지성도八支聖道 등을 가리킨다.
- 104)십바라밀다十波羅蜜多 : 시施·계戒·인忍·정진精進·선禪·반야般若의 육바라밀에다 방편方便·원願·력力·지智의 네 가지를 추가한 것인데, 이는 뒤의 「地波羅蜜多品」에서 상세하게 설해진다.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5(T31, 406c5) 참조.
- 105)계경契經 등의 십이분교十二分敎는 가장 청정한 법계에서 동등하게 흘러나오는 것으로서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을 떠난 것이기 때문에 ‘원성실’이다. 이 정법의 교敎를 듣고서 앞서 말한 보리분법 등과 같은 청정한 도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 교를 일컬어 “이 도를 내는 경계의 청정함”이라고 하였다.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344a9) 참조.
- 106)『攝大乘論本』 권2(T31, 140b4).
- 107)이상의 장문은 매우 번쇄하지만 그 취지는 변계소집의 일체법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이다. 각자가 경험하는 다양한 행상行相의 사물들에 대해, ‘색’ 내지는 ‘불법’과 같은 다양한 언어적 시설들에 의거해서 일체법을 두루 헤아릴 때, 그 모든 법들은 다 변계소집에 해당한다.
- 108)이 문장의 취지는 의타기의 일체법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각자가 경험하는 다양한 행상의 사태들에 대해, ‘오직 분별 자체만 있다’고 아는 자가 어쨌든 그 분별을 계기로해서, 색에서부터 내지는 불법에 이르는 다양한 언어적 시설들에 의거해서 일체법을 분별하는 경우, 그 일체법들의 본질은 모두 분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분별’이란 유식학 내에서는 특히 허망분별, 즉 의타기의 식識에 해당한다.
- 109)이 문장의 취지는 원성실성의 일체법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변계소집의 색 등과 대비해서 이 분별의 색 등은 언제 어디서나 진여성·무자성성·법무아성·실제라고 하는 측면에서는 이것을 일컬어 ‘법성의 색’ 등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언제 어디서나 진여성·무자성성 등이라는 점에서는 일체법은 모두 법성이고, 이 법성은 삼성 중에서 원성실성에 해당한다. 다음의 문장도 동일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 110)“중간 생략(乃至)”이라 한 것은 앞에 나왔던 “진여성이고 무자성성이며 법무아성이고 실제의 성품”이라는 문구가 생략된 것을 말한다.
- 111)무성의 『攝大乘論釋』 권4(T31, 399b28).
- 112)여기서는 진여의 수승한 작용을 대승보살의 오위五位에 의거해서 해석하였다. 이 중에서 자량위資糧位란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迴向이라는 보살의 삼현위三賢位를 가리키며, 복덕福德·지혜智慧라는 조도助道의 자량資糧을 닦는 지위다. 가행위加行位란 난煖·정頂·인忍·세제일世第一의 지위에 있는 보살로서, 복덕과 지혜의 자량을 획득하여 더욱 공용을 가하여 수행하는 지위다. 견도위見道位란 통달위通達位라고도 하며 초지初地보살이 처음으로 진여의 이치를 깨닫고 무루의 지혜를 증득하는 지위다. 수도위修道位란 수습위修習位라고도 하며, 제2지에서 제10지까지의 보살들이 진여의 이치를 통달하고 나서 다시 반복해서 수습하면서 장애를 제거해 가고 근본지根本智를 닦는 지위다. 구경위究竟位란 지극히 청정하여 그보다 위가 없는 불과佛果의 지위다.
- 113)상박相縛과 추중박麤重縛 : ‘박’이란 번뇌를 뜻한다. ‘상박’이란 ‘대상(相分)’의 영상이 인식하는 마음(見分)을 구속하여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상박으로 인해 인식되는 경계가 마치 환과 같음을 깨닫지 못한다. ‘추중박’이란 그 성질이 매우 단단하고 무거운 번뇌가 중생들의 몸과 마음을 속박하여 생사의 세계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것이 환과 같음을 깨닫지 못한다.
- 114)『瑜伽師地論』 권73(T30, 703b4).
- 115)진여의 세 가지 수승한 작용 중에, 견도見道에서는 청정을 증득하게 하고, 수도修道에서는 두 가지 속박에서 해탈하게 하며, 구경도究竟道에서는 모든 공덕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다.
- 116)이 풀이에 따르면, 인연으로 생기는 식識 자체를 의타기라고 하고, 실재라고 허망하게 집착되는 경계의 상相을 분별성(변계소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의타기의 ‘생’이라는 것도 뭇 인연의 화합으로 생하는 것이라서 자성이 없으므로 ‘무생無生’이라 하고, 분별성의 ‘경계의 상’은 본래 그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무상無相’이라 한다. 이러한 의타기의 무생과 분별성의 무상을 일컬어 ‘진실성’이라 한다는 것이다.
- 117)이 풀이(해)에 따르면, 여덟 가지 식들이 현행하여 견분見分·상분相分으로 변현된 상태는 의타기로 간주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이전의 풀이에서는 ‘분별’을 본질로 하는 식識 자체는 의타기이고 견見·상相의 구조로 현현되면 이미 변계소집이다.
- 118)첫 번째 문은 어떤 법이 집착되어진 것인가, 잡염된 것인가, 전도되지 않은 것인가를 기준으로 해서 변계소집과 의타기와 원성실을 구분한 것이다.
- 119)두 번째 문은 어떤 법이 집착되어진 것인가, 연으로 생긴 것인가, 변함없는 것인가를 기준으로 해서 변계소집과 의타기와 원성실을 구분한 것이다.
- 120)이하의 『楞伽經』의 인용문은 명名·상相·분별分別·정지正智·진여眞如라는 다섯 가지 법을 삼성에 배당시켜 설명한 것이다. 다섯 가지 법 중에 앞의 셋은 미법迷法이고, 뒤의 둘은 오법悟法인데, 특히 ‘정지’란 진여에 계합契合하는 지혜이고 ‘진여’란 그런 성인의 지혜에 의해 인식된 모든 언설을 떠나 있는 이치를 말한다. 이것을 삼성에 각기 배당시키면, 명과 상은 망상자성妄想自性(변계소집성)이고, 분별은 연기자성緣起自性(의타기성)이며, 정지와 진여는 성자성成自性(원성실성)이다. 원측에 따르면, 이런 『楞伽經』의 설명은 첫 번째 소집·잡염·부도의 문에서 삼성을 설한 것이다.
- 121)정지正智와 여여如如 : 미혹과 깨달음을 이루는 다섯 가지 법(五法) 중에서 정지正智·진여眞如를 가리킨다. 오법五法에 대해서는 앞의 각주 참조.
- 122)『楞伽阿跋多羅寶經』 권4(T16, 511b6).
- 123)이하의 『瑜伽師地論』의 인용문은 명·상·분별·정지·진여라는 다섯 가지 법들은 각기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 중에 어디에 속하는가를 묻고 답한 것이다. 이 중에 명·상·분별·정지는 의타기에 속하고, 진여는 원성실에 속하며, 변계소집에 속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원측에 따르면, 이런 『瑜伽師地論』의 해석은 두 번째 소집·연생·불변의 문에서 삼성을 설한 것이다.
- 124)『瑜伽師地論』 권74(T30, 704c24).
- 125)이하의 『成唯識論』의 인용문은 유식삼십송에서 ‘의타기자성의 분별은 연으로 생긴 것이다’라는 제21송의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여기에는 의타기에 대한 두 가지 학설이 나오는데, 한편에서는 염분의 의타에 속하는 심·심소법만을 의타기라고 하고, 한편에서는 염·정의 의타에 속하는 모든 심·심소법들을 의타기라고 한다. 원측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는 모든 잡염된 유루의 법들을 의타기라고 하고 모든 유위有爲의 무루의 도제道諦 및 모든 무위無爲를 원성실이라고 한 것인데, 이는 첫 번째 소집·잡염·부도의 문에 의거해서 삼성을 설한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유루·무루의 모든 유위법들을 의타기라고 하고 모든 법의 평등한 진여를 원성실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두 번째 소집·연생·불변의 문에 의거해서 삼성을 설한 것이다.
- 126)『成唯識論』 권8(T31, 46b6).
- 127)세친의 『攝大乘論釋』 권4(T31, 341c26).
- 128)법동유法同喩 : 원측 소에서는 ‘합合’이라고도 하며, 경문 중에서 이전의 비유들에다가 마지막으로 본래 주장하려 했던 교법을 결합시키는 대목을 가리킨다.
- 129)‘실재의 털·바퀴(實毛輪)’란 ‘실재한다’고 집착되었지만 사실은 비존재(無)인 변계소집성의 털·바퀴를 말한다. 이에 대조해서 그러한 집착의 대상(所緣)이 된 실질적 근거로서의 의타기의 영상들은 변계소집의 존재처럼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마치 털·바퀴와 유사한 상(似毛輪相)’이라고 하였다.
- 130)‘털이나 바퀴’는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허구를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털·바퀴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분별의식에 의해 ‘털’ 혹은 ‘바퀴’라고 집착되었을 때는 그것은 변계소집성이다. 『解深密經』에서는 그것을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의 과환’이라고 했다. 여기서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 자체가 변계소집이 아니라 그 눈에 생긴 과환이 변계소집성이다. 둘째, 분별의식에 의해 ‘털’ 등이라고 집착되기 위해서는 그런 집착의 토대가 되는 어떤 영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털과 유사한 상’이라고 한다. 『解深密經』에서는 그것을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눈에 나타난 여러 형상들’이라 했다. 이 형상들은 의타기의 식識 안에 현현된 영상影像을 비유하는데, 이 영상 자체는 의타기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 131)이 견해에 따르면,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병 자체가 과환이고, 이는 변계소집성에 해당한다. 그 침침하고 어른거리는 병으로 인해 ‘털’이나 ‘바퀴’ 같은 허구가 나타나는데, 이는 의타기성에 해당한다. 이 비유에 따르면, 변계소집성으로 인해서 의타기성이 일어나는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 이것은 의타기의 ‘유사한 상’에 의지해서 변계소집의 ‘털’ 등이라고 집착한다고 했던 이전의 해석과는 대조된다.
- 132)여기서 ‘취取’는 능취能取와 소취所取의 취를 가리킨다. 이 논에서는 취의 자성을 밝히는 가운데 무상취無相取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만 ‘파악한다(取)’는 사실만 있을 뿐 그 외의 전도된 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瑜伽師地論』 권73(T30, 701a12) 참조.
- 133)『瑜伽師地論』 권73(T30, 701a16).
- 134)바로 앞에서 진술된 견해를 염두에 둔 질문이다. ‘침침하고 어른거림’ 자체는 의타기이고 그로 인해 나타난 ‘털’ 등은 변계소집의 허구라고 보는 것이 순리인데, 오히려 ‘어른거림’ 등으로써 변계소집을 비유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 135)감각 기관에 의지하여 발생한 오식은 직접 지각(現量)으로서 실재의 경계를 대상으로 삼는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 136)두 번째 달(第二月) : 정상적인 상태에서 눈은 하나의 달을 보지만, 눈을 무엇으로 압박하면 이중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때 본래의 달 옆에 나타난 두 번째 달을 가리킨다. 그것은 가상의 달이지 실재의 달이 아니다. 이 두 번째 달의 비유는 인식에 그 형상은 나타나지만 실재가 아닌 것을 가리킬 때 곧잘 인용된다.
- 137)안혜의 주장에 따르면, 감각 기관에 이상이 있다 해도 ‘털’ 등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한에서는 눈과 안식이 그것을 본 것이라고 한다. 그 근거로서 ‘눈이 손상되면……본다’는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雜集論』 권2(T31, 703b6) 참조.
- 138)호법의 주장에 따르면, 오식은 오직 실재하는 경계만 인식하므로 눈앞에 아른거리는 가짜 ‘털’이나 ‘바퀴’의 모양들은 의식의 차원에서 인식된 것이다.
- 139)구파瞿婆 논사의 『이십유식범본기二十唯識梵本記』 : 『唯識二十論』에 대한 범본 주석서인 듯하다.
- 140)이와 동일한 문구가 규기의 『唯識二十論述記』 권1(T43, 983a20)에 인용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인용문은 『阿毘達磨經』에 나오는 게송인데, 이 경이 어떤 경인지 알 수 없다.
- 141)거승巨勝 : 호마胡麻의 다른 이름으로서, 참깨나 검은깨를 총칭하는 말이다.
- 142)인연을 따라 생하는 의타기의 식에 마치 아법我法과 유사하게 현현된 상들에 대해 언어를 시설하여 실아實我·실법實法이라고 집착할 때 그러한 집착된 대상은 ‘변계소집자성’이고, 의타기에 그러한 변계소집이 없음으로 인해 현현되는 참된 실재를 ‘원성실성’이라 한다.
- 143)파지가頗胝迦(ⓢ sphaṭika) : 이하의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그에 해당하는 이름이 없다. 그런데 『一切經音義』 권48(T54, 625a2) 등에 따르면, 이것은 수정水精의 일종으로서 흰색이나 적색을 띠는 보배다.
- 144)제청帝靑·대청大靑 : 제석의 푸른 보석들을 가리킨다. 이 중에서 ‘제청’이란 인다라니라因陀羅尼羅(ⓢ indra-nīla) 또는 인다니라因陀尼羅라고 하며, 의역하면 천주대주天主黛珠·골청鶻靑·제석청帝釋靑이라 한다. 범어 니라尼羅(ⓢ nīla)는 청색이나 녹색 또는 검은 청색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둔륜의 해석에 따르면, 서방의 푸른 보석 중에 어떤 것의 색은 제석의 파란색 보석과 유사한데, 이것은 흐린 청색(殘靑色)을 가리킨다. ‘대청大靑(ⓢmahā-nīla)’은 그 중에서도 검푸른색(紺靑色)을 가리킨다. 둔륜의 『瑜伽論記』 권20(T42, 774a17) 참조.
- 145)이전에 언급했던 비유들과 본래 주장하려 했던 교법을 결합시키는 문장, 즉 법동유法同喩의 경문을 가리킨다. 뒤의 “이와 같이 덕본이여, 마치 저 청정한 파지가에서 모든 염색染色들이 상응하듯, 의타기상에서 변계소집상의 언설습기가 상응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는 경문에 해당하는데, 이에 준해 볼 때 비유에 네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 146)『一切經音義』 권48(T54, 625a2). 이 책의 제48권부터는 현응玄應 스님이 신역 『瑜伽師地論』의 용어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 147)묘고산왕妙高山王 : 묘고산은 ‘산 중의 산’이기 때문에 ‘왕王’자를 붙여 ‘묘고산왕’이라 하였다. 이 산은 『俱舍論』 권11(T29, 57b7)의 게송에서 ‘소미로蘇迷盧(ⓢ Sumeru)’라고 하였는데, 곧 수미산須彌山을 가리킨다.
- 148)『俱舍論』에 따르면, 묘고산은 산 자체가 네 가지 보배로 되어 있다. 북·동·남·서의 사면이 각기 차례대로 금과 은과 폐유리吠琉璃(청색 보석)와 파지가頗胝迦(수정)의 보배로 되어 있는데, 이 같은 보배의 위덕에 따라 그 색채가 허공에 나타난다. 따라서 섬부주贍部洲의 허공은 폐유리의 색깔(청색)과 유사하다. 또 이와 같은 보배들은 물(水)에서 생겨난 것이다. 말하자면 많은 유정들의 업의 증상력으로 인해 다시 큰 구름이 일어나 금륜 위에 비를 뿌리게 되면, 그 물방울은 수레바퀴만 하다가 쌓이고 쌓인 물이 세차게 파도치면 이윽고 여러 보배들의 종자 창고(種藏)가 되었다. 물이 보배를 능히 생기게 하므로 ‘종자’라고 하고, 물에서 보배가 출토되기 때문에 ‘창고’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위덕을 갖춘 맹렬한 바람이 불어 그것을 뚫을 정도로 세차게 침에 따라 보배 등으로 변하여 생겨나게 된다. 『俱舍論』 권11(T29, 57b14), 『俱舍論記』 권11(T41, 185c19) 참조.
- 149)원측은 『俱舍論』에서 말한 ‘파지가’는 물에서 생긴 수정의 일종으로서 붉은색을 띤 것으로 간주했다.
- 150)일륜日輪(태양) 아랫면의 파지가 보배는 화주火珠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능히 뜨겁게 하고 능히 비추며, 월륜月輪(달) 아랫면의 파지가 보배는 수주水珠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능히 차갑게 하고 능히 비춘다. 이로 인해 능히 눈(眼)·몸(身)·열매(果)·꽃(花) 등에 대해 이익과 손해를 줄 수 있다. 『俱舍論』 권11(T29, 59a29) 참조.
- 151)이상의 여러 논들의 해석을 보면 파지가의 색깔은 흰색이나 붉은색 등 색이 일정하지 않은 보석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 『解深密經』에서는 이 보석이 상응하는 색깔에 따라 색깔이 달라짐을 말하기 위해서 상응하는 색으로서 푸른색·붉은색·녹색·노란색 등을 들고 흰색은 들지 않았다. 따라서 이 경에서는 흰색의 파지가를 예로 든 것이다.
- 152)파두마波頭摩(ⓢ padma) : 붉은 연꽃(赤蓮)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붉은 색깔을 말한다.
- 153)『深密解脫經』 권2(T16, 670a5).
- 154)둔륜의 『瑜伽論記』 권20(T42, 774a22)에 실린 태泰 스님의 해석에서는 “이 지역의 살색 보배는 그 색이 녹색이다.(此方殺色寶。 其色綠也。)”라고 하였다.
- 155)이 해석에 따르면, 법동유의 경문에서 이전의 비유를 ‘언설습기(종자)’와 결합시킨 것은 집착의 연을 나타내려는 것이고, 상집相執과 의타기와 원성실과 결합시켰다는 것은 차례대로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 156)이 해석에 따르면, 법동유의 경문에서 ‘언설습기’와 ‘상집’을 언급한 것은 종자와 현행으로 나누어 변계소집성에 대한 집착을 비유한 것이고, 그 뒤의 두 가지 법동유는 이전의 해석과 동일하다.
- 157)이 경에서 단지 ‘자성 없음(無自性)’이라 하지 않고 ‘무자성성無自性性’이라 한 것은 그러한 자성 없음에 의해 현현되는 진여의 이치, 즉 공성空性을 나타낸다. 이러한 공성은 단순한 ‘무無’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실재(眞實)’이다. 따라서 위의 비유는 ‘청색 등의 실체는 없어도 그에 의해 현현되는 파지가의 참된 자성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158)이전(㉮ 앞의 비유를 거듭해서 듦)과 동일한 문장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앞의 각주 157 참조.
- 159)유전진여流轉眞如 : 생사윤회의 세계에서 모든 행行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초기불교에서부터 한결같이 받아들인 불교적 진리를 말한다.
- 160)실상진여實相眞如 : 모든 법에 내재한 인人·법法의 무아성無我性을 말한다. 이것은 대승의 반야사상에서 확립된 이공二空의 진리를 말한다.
- 161)유식진여唯識眞如 : 요별진여了別眞如라고 하며, 모든 유위법은 오직 식일 뿐이라는 ‘유식’의 진리를 가리킨다. 이것은 『解深密經』과 이 경의 사상을 받드는 요가행파에서 내세운 진리를 말한다.
- 162)이상의 안립安立·사행邪行·청정淸淨·정행正行의 네 가지 진여는 각기 고제苦諦·집제集諦·멸제滅諦·도제道諦의 진리를 나타낸다.
- 163)‘상相에 따라서 소속시킨다’고 했는데, 앞의 일곱 가지 진여의 실성 자체는 언어를 떠난 원성실성이지만, 이 진여를 계탁의 대상으로 삼을 때는 그것들은 ‘증익된 상相’, 즉 마음에 의해 관념적으로 구축된 상으로 나타나므로 이 ‘상’과 삼성과의 연관을 다시 논하는 것이다.
- 164)일곱 가지 진여가 모두 삼성에 통한다고 해도 이치상으로 어긋나지는 않지만, 여기서는 특히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를 앞의 세 가지 진여에 국한시켰고, 그 외의 네 가지 진여는 모두 원성실성에 속한다. 유전·고제·집제의 진여는 특히 허망한 집착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는 변계소집성에 속한다. 이때 그렇게 집착하는 마음 자체는 오직 염분의 의타기이고, 또 그 마음에 나타나는 세 가지 진여의 모습(相)은 잡염된 것이기 때문에 의타기성에 속하기도 한다. 규기의 『成唯識論述記』 권9(T43, 548c26) 참조.
- 165)『成唯識論』 권8(T31, 46c19).
- 166)차별진실差別眞實 : 이 논에서는 변계소집자성과 의타기자성과 원성실성 등 세 가지를 ‘근본진실根本眞實’이라고 하였고, 이 세 가지 근본진실에 의거해서 일곱 가지 ‘차별진실差別眞實’을 건립한다. 그것이 이하에서 열거된 일곱 가지 진실이다. 이 중에서 유전·안립·사행은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에 의거해 건립된 것이고, 실상·유식·청정·정행은 원성실성에 의거해 건립된 것이다.
- 167)『辯中邊論』 권2(T31, 470a2).
- 168)『顯揚聖敎論』 권3(T31, 493b10), 『瑜伽師地論』 권77(T30, 725b17) 참조.
- 169)이하에서는 질문과 그에 대한 네 종류 해석이 제시된다. 여기에서 가령 “『瑜伽師地論』 제74권의 설에 따르면”이라든가 “『辯中邊論』 제2권의 설에 따르면” 등과 같이 출처를 밝히는 문구를 제외하면, 그 밖의 문장은 『成唯識論』 권8(T31, 46c29)과 대부분 일치한다.
- 170)오사五事 : 미혹과 깨달음의 본바탕을 이루는 다섯 가지 법으로서 명名·상相·분별分別·정지正智·진여眞如를 가리킨다. 이 중에 앞의 셋은 미혹의 세계를 이루는 미법迷法이고, 뒤의 둘은 깨달음의 세계를 이루는 오법悟法이다. ‘명’이란 현상계에 안립된 가명假名을 말한다. ‘상’이란 유위법이 각기 인연으로 생겨나서 현상적으로 차별적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분별’이란 앞에서 말한 상과 명의 두 가지로 인해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허망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정지’란 진여에 계합契合하는 지혜를 말하고, ‘진여’란 성인의 지혜에 의해 인식되는 것으로서 모든 언설을 떠나 있는 이치를 말한다. 『瑜伽師地論』 권72(T30, 696a1) 참조.
- 171)번뇌 있는 마음에 언어에 대한 표상이 나타나면 이것을 능전能詮, 즉 명名이라 하고, 그 언어에 의해 지시되는 대상의 표상이 떠오르면 이것을 소전所詮, 즉 상相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172)이상의 내용은 『瑜伽師地論』 권74(T30, 704c23) 참조.
- 173)이상의 내용은 『辯中邊論』 권2(T31, 469c27) 참조.
- 174)이상의 내용은 『入楞伽經』 권7(T16, 557c23) 참조.
- 175)『成唯識論』에 인용된 이 문구는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343b9)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 의거한 것이다. “명은 의타기이고 의는 변계소집이다. 의타기는 명의 세력으로 인해 소변계所遍計(변계되는 대상)를 이루기 때문이다.(名爲依他起。 義爲遍計所執。 以依他起。 由名勢力。 成所遍計故。)” 세친은 의타기와 변계소집의 관계를 ‘이름(名)’과 그에 의해 지시되는 ‘대상(義)’의 관계에 의거해서 설명하였다. 그런데 『成唯識論』에서는 세친이 말한 ‘명’이란 단지 명언名言 자체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유루의 심법·심소법의 상분·견분 등”을 총칭한다고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모두 ‘명언의 세력(名勢力)’에 의해 대상(義)을 현현해 내어 계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은 의타기의 식識과 명언습기名言習氣(명언종자)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유식학적 교리를 전제로 한 것이다. 여기서 말한 ‘언어의 세력’이란 바로 명언습기에 해당하며, 『成唯識論』 등에서는 이름(名)을 매개로 사유하는 제6식의 활동뿐만 아니라 이름을 매개로 하지 않는 그 밖의 7식의 활동으로 형성된 습기들을 총칭해서 ‘명언습기’라고 한다.(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이전의 「心意識相品」의 ‘삼습기三習氣’에 대한 해석과 역주 참조.) 유식의 교리에서 제6식뿐만 아니라 그 밖의 7식의 비언어적 인식 활동들도 ‘명名의 세력’에 규정되는 것으로 보는 이유는, 그것들이 경계를 현현시키는 작용이 마치 말(言說)이 그 지시 대상(所詮法)을 현현시키는 작용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친은 유루의 식들의 견분·상분들이 일차적으로는 모두 ‘명언의 세력’을 따라 대상(義)를 현현해 내는 작용이고, 그것을 모두 ‘명’이라 통칭하였으며, 또한 그것은 인연으로 생한 것이므로 의타기라고 이름한다고 한 것이다.
- 176)『成唯識論』 권8(T31, 47a18) 참조.
- 177)성교에서 설한 오상五相이란 ① 능전能詮의 상, ② 소전所詮의 상, ③ 상속相屬의 상, ④ 집착執著의 상, ⑤ 불집착不執著의 상을 말한다. 이 인용문에서는 이 오상을 앞의 인용문에서 말한 상相·명名·분별分別·정지正智·진여眞如 등의 오사五事, 그리고 변계소집·의타기·원성실 등의 삼성三性과 연관시켜 다시 상호 간의 포함 관계를 논하였다. 먼저 오사를 오상과 연관시켰을 때, 오사는 ① 어떤 것은 능전의 상이고 ② 어떤 것은 소전의 상이다. 또 ③ 이 능전과 소전이 서로 소속되는(相屬) 상이 있고, 그 소속 관계에 대해 ④ 집착하는 상과 ⑤ 집착하지 않는 상의 차이가 있다. 이하의 인용문에서는 오사가 오상 중에서는 어디에 소속되고, 또 삼성 중에서는 어디에 소속되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 178)소전所詮·능전能詮 : 능전이란 무엇을 현현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언어 자체를 가리키고, 소전이란 그 언어에 의해 현현되는 대상(의미)을 가리킨다.
- 179)허망하게 계탁된 것(妄所計)이면 소전의 모든 법(所詮諸法)과 능전의 모든 명(能詮諸名)은 다 변계소집성에 해당한다.
- 180)이전의 오사五事 중에서는 분별分別이란 인연으로 생기는 식識에 해당하고, 또 이 식은 명·상의 결합 관계에 의거해서 작동하기 때문에 분별·명·상은 모두 의타기라고 하였다. 이 세 가지는 어떤 경우에는 능전이고 어떤 경우에는 소전인데, 이에 대해 규기는 “상·명·분별이라는 세 가지 사 중에서 분별의 전부(全)는 (소전의 상이다.) 상·명의 일부(少分)는 소전의 상이니, 명도 역시 소전이기 때문이다. 상·명의 일부는 능전의 상이니, 명도 역시 상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먼저 분별의 전부를 소전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분별이란 모든 식識들, 즉 심·심소법의 총칭이다. 이 심·심소법들은 반드시 ‘명’에 의거해 작동하는데, 명이 능전이라면 이 명의 세력하에 있는 분별은 소전이다. 가령 ‘식의 자성은 요별了別이다’라고 할 때 능전의 명으로 인해 이 요별이 현현될 수 있기 때문에 요별 자체는 소전이라고 하였다. 다음에 명과 상의 경우, 본래적 의미에서는 명은 대상(義)을 현현시키므로 능전이고 상은 그에 의해 현현되는 영상이므로 소전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명이 또한 소전이기도 하고 상이 또한 능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세간에서 아무개(某甲)는 매우 명리名利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처럼, 이름이 또한 현현되는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명도 역시 소전이다(名亦所詮)’라고 하였다. 또 능전의 명을 상분相分·견분見分에 대응시켜 보면 명은 ‘상분’에 속하는데, 이때는 능전의 명 그 자체가 상이기 때문에 ‘명도 역시 상이다(名亦是相)’라고 하였다. 규기의 『成唯識論述記』 권9(T43, 550a12), 여리如理의 『成唯識論疏義演』 권11(X49, 821b21) 참조.
- 181)오사五事 중에서 진여眞如와 정지正智는 원성실성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중 어떤 것은 능전이고 어떤 것은 소전이다. 이에 대해 규기는 “진여眞如 전부와 정지正智의 일부는 소전이다. 정지의 일부는 능전이니, 근본지는 능·소를 떠난 것이지만 후득지는 또한 능전의 상을 변사變似해 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진여 그 자체는 정지에 의해 현현되는 대상이므로 진여의 전부가 소전이라고 하였다. 또 그 진여를 증득한 정지의 체體는 진여와 분리되지 않고 평등하기 때문에 정지의 일부는 소전이라고 하였다. 또 정지 중에서 후득지의 경우는 분별이 있는 지智로서 명名·구句·문文과 같은 언어적 표상을 변현해 내기 때문에 능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규기의 『成唯識論述記』 권9(T43, 550a16), 여리如理의 『成唯識論疏義演』 권11(X49, 821c12) 참조.
- 182)이것은 위에서 말한 오상 중에서 ③ 상속相屬의 상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하나의 이름(名 : 能詮)과 그에 해당하는 의미(義 : 相, 所詮)가 고정적으로 서로 소속된다(相屬)고 집착하는 것은 오직 변계소집성에 속한다.
- 183)이것은 위에서 말한 오상 중에서 ④ 집착執著의 상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명名과 의미(義 : 相)가 고정적으로 소속된다(相屬)고 허망하게 집착한다고 할 때(③), 이러한 집착 자체(能執著)는 허망분별虛妄分別의 식識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고, 그 허망분별 자체는 의타기에 속한다. 『成唯識論述記』 권9(T43, 550a25) 참조.
- 184)이것은 위에서 말한 오상 중에서 ⑤ 불집착不執著의 상을 말한다. 무루의 이지二智와 그와 동시에 현행한 심품의 상분·견분 및 무위법들에는 능전의 명과 소전의 법이 필연적으로 소속된다고 하는 집착의 상이 없으므로 원성실에 속한다. 『成唯識論述記』 권9(T43, 550a29) 참조.
- 185)『成唯識論』 권8(T31, 47a20).
- 186)『瑜伽師地論』 권81(T30, 751a21) 참조.
- 187)『瑜伽師地論』 권74(T30, 706a15)와 『顯揚聖敎論』 권16(T31, 559b19) 참조.
- 188)『成唯識論述記』 권9(T43, 550a7) 참조.
- 189)가령 ‘소’라는 단어가 소의 형상을 떠올리게 하듯이, 하나의 이름(名)은 특정한 형상(相)과 결합됨으로써 무엇을 지시하는 언어적 기능을 한다. 모든 사물은 이러한 명과 상의 결합 관계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지지만, 이러한 결합 관계는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범부의 정情에서는 이러한 명과 상의 결합을 필연적이고 고정된 것이라고 집착된다. 따라서 보살은 이러한 명과 상의 결합 관계를 계기로 하여 허망하게 집착된 상들의 본질은 결국 변계소집성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190)『瑜伽師地論』 권73(T30, 703b5).
- 191)이 논에서 ‘분별성分別性’이라 한 것은 변계소집성, 즉 두루 분별된 대상(所分別)을 말한다면, 이 질문에서 ‘분별’이라고 한 것은 분별하는 작용(能分別), 즉 의타기의 허망분별로서의 식識을 가리킨다. 분별되는 대상의 실체가 전혀 없다면 ‘분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 192)가령 ‘소’라는 이름을 매개로 하여 ‘소’라는 대상을 분별할 때, 그 ‘소’에 해당하는 실체는 없고 다만 ‘소’라고 분별하는 식識만 있다는 말이다.
- 193)이름(名)과 대상(義)이 서로에게 객客이라는 것은 이름과 대상 간에는 서로 간에 필연적인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일시적 편의에 따라 결합시킨 것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 194)첫 번째 이유로 『三無性論』에서는 “이름에 앞서 지가 생기지 않는다.(先於名智不生。)”고 하였고, 원측 소에는 “이름 이전에는 앎이 생기지 않는다.(一名前覺不生。)”고 하였다. 의미는 동일하다. 이름과 대상의 결합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첫 번째 근거로서, 우리의 모든 분별은 본질적으로 이름을 매개로 하여 작동하는 것으로서 이름을 알기 전에는 어떤 앎(覺)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었다. 가령 갓난아기나 짐승처럼 언어를 잘 모르는 부류들에게는 그런 지식이 생겨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지식은 무엇보다 이름과 결부된 어떤 것에 대한 것이지 대상 자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195)두 번째 이유로는 『三無性論』에서는 “하나의 대상에 여러 이름이 있기 때문(一義有多名故)”이라고 하였고, 원측 소에서는 “체가 여럿이 되는 모순이 생기는 과실(多體相違失)”이라고 하였다. 의미는 동일하다. 만약 하나의 이름과 대상이 필연적 결합 관계에 있다면, 가령 하나의 대상을 가리키는 이름들이 여러 개일 경우에는 각각의 이름들에 해당하는 별개의 대상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 196)세 번째 이유로는 『三無性論』에서는 “이름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名不定故)”이라 하였고, 원측 소에서는 “체가 뒤섞여 버리는 모순이 생기는 과실(雜體相違過)”이라고 하였다. 의미는 동일하다. 이것은 앞의 두 번째 경우와 상반되는 예를 들어서, 하나의 이름이 여러 대상을 가리키는 경우에 생기는 모순점을 지적한 것이다. 만약 이름과 대상이 필연적 결합 관계에 있다면, 이 경우에 하나의 이름에 해당하는 여러 대상들의 혼합체가 존재해야 한다는 모순이 생긴다.
- 197)이상은 『三無性論』 권1(T31, 867c29)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198)『三無性論』에서 이름과 대상의 불일치 관계를 논하기 위해 제시된 세 가지 이유는 『攝大乘論本』 권2(T31, 140a14)에서도 동일하게 언급된다.
- 199)변계소집상에 집착하고 분별한 것을 연으로 해서 훈습이 이루어지고 언어적 종자가 성취되면, 이 종자가 다시 허망분별虛妄分別, 즉 의타기의 식識을 생기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처럼 의타기상에서의 변계소집상에 집착하고 분별한 것이 연이 됨으로써 의타기상이 생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200)『顯揚聖敎論』 권16(T31, 559c12).
- 201)『佛性論』 권2(T31, 794b18).
- 202)오사五事 중에서 진여眞如와 정지正智는 원성실성에 속한다. 그런데 이 『解深密經』 등에서는 ‘정분의 의타(淨分依他)’를 또한 원성실이라고 하는데, 가령 성도聖道 등과 같은 무루의 유위법들은 이 정분의타이면서 동시에 원성실이라고도 이름한다. 이처럼 성도에서 일으킨 무루의 ‘정지’ 등은 의타기에 속하고, 전도나 집착을 멀리 떠남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의타기상도 ‘변계소집성에 대한 집착을 연으로 해서 생기한다’고 알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하였다.
- 203)『瑜伽師地論』 권74(T30, 704c25).
- 204)이하에는 ‘원성실성을 안다’는 것에 대해 세 가지 해석이 제시되었다. 원측의 평가에 따르면, 마지막 해석은 교리적으로 어긋난다. 그리고 첫 번째와 두 번째 해석의 차이는 ‘상相’에 의거해서 해석했는가 혹은 ‘도道’에 의거해서 해석했는가에 따른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 해석의 전거로 제시된 『瑜伽師地論』 인용문에서 “청정을 증득하는 (도道에) 의거해 설한 것이지 상相에 의거해 설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에 의거해 볼 때, 첫 번째 해석은 ‘상’에 의거한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의타기에서 변계소집상의 없음(無)’을 통해서 현현되는 진실한 상이 바로 원성실상이고, ‘집착 없음’이라 한 것도 그러한 ‘변계소집된 상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도’에 의거한 해석이다. 그에 따르면, ‘의타기에서 변계소집상에 대한 집착 없음’이라는 것은 바로 무루의 성도聖道를 가리키는 말이고, 그런 성도를 연으로 해서 증득되는 것이 바로 원성실상이다.
- 205)『瑜伽師地論』 권73(T30, 703b9).
- 206)『瑜伽師地論』 권73(T30, 703b10).
- 207)『佛性論』 권2(T31, 794b20).
- 208)집착의 대상이 되는 상相을 모두 변계소집이라 하는데, 본래 그러한 상이 없음(無相)을 알 때 ‘변계소집을 여실하게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09)상相(변계소집)에 집착하는 분별들에 의해 종자가 훈습되고, 다시 이 종자로부터 의타기의 허망분별虛妄分別, 즉 식識이 생기한다는 것을 안다면 ‘의타기의 잡염법에 대해 여실하게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10)‘전자’란 “만약 의타기상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면”이라는 경문이고, ‘후자’란 그 다음의 경문인데, 전자는 총괄적 관이고 후자는 개별적 관이라고 하였다. ‘전후의 두 가지 상’이란 변계소집과 원성실을 가리키고, 전후로 진술된 변계소집과 원성실에 관한 경문도 이에 준해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11)이 해석에 따르면, “만약 의타기상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면”이라는 경문이 의타기 자체(自性)에 의거한 진술이라면 다음 문구는 그 의타기에 부여된 차별적 의미(差別)에 의거해서 진술되었다는 것이다.
- 212)이 해석에 따르면, “만약 의타기상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면”이라는 경문은 전체로서의 제법, 즉 진소유성盡所有性에 대한 진술이고, 뒤의 문장은 그것들의 내적 본질을 뜻하는 여소유성如所有性에 대한 진술이다. 진소유성과 여소유성은 뒤의 「分別瑜伽品」에서 지관止觀의 네 종류 소연所緣을 설하면서 다시 자세히 해석한다.
- 213)이하에서는 경문에서 “무상無相의 법”이라 한 것에 대해 세 가지 해석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 해석에 의하면, 변계소집상에 있어서 본래 상이 없음을 일컬어 ‘무상’이라 한 것이다. 두 번째 해석에 의하면, 진여는 일체의 차별적 상이 없음을 일컬어 ‘무상’이라 한 것이다. 세 번째 해석에 의하면, 앞의 두 가지 의미의 무상을 모두 취하여 ‘무상’이라 한 것이다.
- 214)『辯中邊論』 권2(T31, 469b1).
- 215)‘소집이 없으면 의타의 잡염법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은, 이전에 이미 설명했듯, 변계소집의 상에 집착하는 분별로 인해서 잡염법의 습기習氣(종자)가 훈습되어 이루어지고, 이 습기로부터 다시 의타의 잡염법들이 생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하 『瑜伽師地論』에서도 변계소집의 다섯 가지 업業 중의 하나로 ‘의타기자성을 생기게 한다’고 하였다.
- 216)『瑜伽師地論』 권74(T30, 705c4).
- 217)무성의 『攝大乘論釋』 권5(T31, 406c2) 참조.
- 218)『大乘廣百論釋論』 권6(T30, 217a27).
- 219)『瑜伽師地論』 권74(T30, 705b4).
- 220)유식의 다섯 종류 계위 중에 두 번째인 가행위加行位에서는 사심사四尋思을 닦아서 사여실지四如實智를 획득한다. ‘사심사’란 가행위에서 명名·의義·자성自性·차별差別 등의 네 가지 법이 ‘가립된 존재이고 실제로는 없음(假有實無)’을 관찰하는 관법을 말한다. 명名이란 색色·수受 등과 같은 능전能詮으로서의 이름을 가리키고, 의義란 그런 이름에 의해 드러나는 소전所詮의 체사體事를 가리킨다. 자성自性이란 색色·수受 등의 각각의 체를 가리키고, 차별差別이란 색·수 등이 갖는 차별적 상相과 용用을 가리킨다. 보살은 이 사심사관을 통해 네 가지 법이 단지 가립된 것일 뿐임을 관함으로써 인발된 네 종류 지혜를 ‘사여실지’라고 한다. 원측에 따르면, 초지 이전(地前)의 단계에서 닦는 이러한 사심사관과 사여실지는 삼성 중에서 변계소집자성과 의타기자성을 관찰하는 것이다.
- 221)이하의 인용문은 본래 무착의 『攝大乘論本』 권2(T31, 143a9)에 나오는데, 원측 소에서 “저 논의 제6권”이라 한 것은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6(T31, 351c11)과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6(T31, 415c15)을 가리킨다.
- 222)의언사의상意言似義相 : 변계소집의 상을 가리킨다. 의언이란 ‘언어’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언제나 ‘의식’과 결합되어 작동하기 때문에 앞에 ‘의意’라는 글자를 붙였다.〔‘의언’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규기의 『成唯識論述記』 (T43, 468a1) 참조.〕 변계소집의 상이란 바로 이 언어의 지시 대상으로 현현한 것인데, 그것은 마치 대상(義)과 유사하게 현현하지만 그런 대상이 실재하지는 않기 때문에 ‘사의似義’라고 하였다.
- 223)원측에 따르면, 이 논에서 말한 의언사의상意言似義相과 유식唯識에 대한 관찰은 초지 이전의 가행위의 단계에서 변계소집자성과 의타기자성을 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단계에서도 만법유식萬法唯識의 관점에서 명名·의義 등 네 가지 법이 ‘가립된 존재이고 실제로는 없음(假有實無)’을 관하여 여실지如實智를 획득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유루의 지혜로서 아직은 참된 유식의 이치(眞唯識理)에 머무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원성실자성을 관하는 것은 아니다.
- 224)초지 이전의 단계에서는 사심사관을 닦아서 ‘언어적 표상들은 법을 들음으로써 훈습된 종류들로서 실제로 오직 식만 있다’고 하는 여실지를 획득하는데, 아직은 관하는 마음(觀心)에 무엇을 증득했다는 생각이 남아 있으므로 유소득有所得의 관이다. 그러나 초지 이상에서는 ‘대상(義)들은 오직 식이 변현해 낸 표상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제거해 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사의似義가 현현하지 않고 또한 ‘사유식似唯識’도 현현하지 않는다. ‘유식’이라는 생각도 사라진 무소득無所得의 경지를 진유식眞唯識이라고 한다면, ‘유식’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는 유소득有所得의 경지는 단지 ‘유식과 유사한 것’일 뿐이므로 ‘사유식似唯識’이라고 하였다.
- 225)모든 대상의 무분별적 이름(一切義無分別名) : 이것은 ‘진여’라는 이름을 가리킨다. 일체법은 이름이 시설되는 의지처로서 그 이름들에 의해 지시되는 대상(의미)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一切義)’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모든 이름들은 일반적으로 그에 의해 분별되는 것(所分別)이 있지만, ‘진여’라는 이름에 의해서는 전혀 분별되는 것이 없다. 따라서 ‘모든 대상의 무분별적 이름’이라고 하였다.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6(T31, 416a3)과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6(T31, 351c28) 참조.
- 226)‘현견을 얻어서 상응하며 머문다’는 것은 진여를 내적으로 증득하여 그와 상응해서 승해勝解를 일으킨다는 말이다.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6(T31, 416a9) 참조.
- 227)평등하고 평등한 소연·능연의 무분별지 : 원성실성을 증득한 보살의 무분별지에는 인식하는 마음(能緣)과 인식되는 대상(所緣)의 차별에 대한 관념이 더 이상 현전하지 않기 때문에 ‘평등하고 평등하다(平等平等)’고 하였다.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6(T31, 416a10) 참조.
- 228)이 게송은 유식삼십송 중의 제28송으로서, 보살의 통달위通達位에 대한 설명이다. 보살이 무분별지로 소연의 경계에 대해 어떠한 언어적 희론의 심상들도 일으키지 않으니, 이때를 일컬어 그가 유식唯識의 참된 승의성(眞勝義性)에 진실로 머문다고 한다.
- 229)『成唯識論』 권9(T31, 49c16).
- 230)두 가지 질문이란 이 품 서두에 제시된 덕본보살의 두 가지 질문, 즉 “어느 정도 되어야 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라 하고, 여래께서는 어느 정도 되어야 그에 대해 제법의 상을 잘 아는 선교보살이라고 시설하십니까?”라는 질문을 가리킨다.
- 231)방일放逸 : 수번뇌의 하나로서, 방탕하거나 방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방일로 인해 염품染品을 막고 정품淨品을 닦지 못하게 된다. 『成唯識論』 권6(T31, 34b17) 참조.
- 232)해태懈怠 : 수번뇌의 하나로서, 선품善品을 닦고 악품惡品을 끊는 일을 게을리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을 말한다. 『成唯識論』 권6(T31, 34b11) 참조.
- 233)순석順釋 : 뒤의 반현反顯과 대비되는 말로서, 설정된 주제에 대해 바른 이치에 수순해서 차례대로 해석해 주는 방식을 말한다. 지금까지 장행의 해석에서는 제법의 상에 대해 잘 알고 관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를 순리대로 해석해 주었기 때문에 ‘순석’이라고 하였다.
- 234)반현反顯 : 반석反釋과 같은 말이다. 앞의 순석順釋과는 반대로 설정된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를 가정해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부당한 결과에 이르게 됨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 게송에서는 이치와는 어긋나게 제법의 상에 집착하고 행동할 경우 그로 인해 초래될 부정적 결과를 설했기 때문에 ‘반석’이라고 하였다.
- 235)장행에서는 이치에 맞는 경우에 대해 해석하고 이치에 반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생략했으며, 게송에서는 이치에 반하는 경우를 해석하고 이치에 맞는 경우는 생략하였다. 이처럼 장행과 게송에서 각기 한쪽은 들고 한쪽은 생략한 것은 영략影略이므로 사실상 순석과 반석을 모두 제시했다는 것이다.
- 236)『深密解脫經』 권2(T16, 670b12).
- 1)상무자성은 변계소집성을 체로 삼고, 생무자성은 의타기성을 체로 삼으며, 승의무자성은 원성실성을 체로 삼는다.
- 2)보리유지 역 『深密解脫經』 「聖者成就第一義菩薩問品」은 현장 역 『解深密經』 「無自性相品」에 해당한다. 현장 역에서는 세존에게 질문하는 보살의 이름을 ‘勝義生菩薩’이라 번역하였는데, 보리유지 역에서는 ‘成就第一義菩薩’이라 번역하였고, 또 그 보살의 이름을 따라서 이 품의 이름을 붙였다.
- 3)이 보살청문분菩薩請問分의 서두에는 승의생勝義生보살의 의문이 상세히 진술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삼무성三無性의 교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보살의 의문은 다음과 같다. ≺세존께서 이전의 제1시時에는 온·처·계 등 13가지 법문에서 모두 ‘자성 있음(有性)’을 설하였고, 이후의 제2시에는 ‘일체법은 다 자성이 없다(一切法皆無自性)’고 설하였다. ‘자성 있음’을 설한 이전의 유교有敎와 ‘자성 없음’을 설한 이후의 공교空敎가 모순된다. 따라서 어떤 밀의에서 ‘무자성법은 모두 자성이 없다’고 설하셨는가라고 묻는다.≻ 이에 대한 원측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삼시교三時敎 중에 제2시의 무상법륜無相法輪이 제1시의 사제법륜四諦法輪과는 모순되기 때문에 다시 제2시에 설한 ‘자성 없음’의 참된 의미를 물었다.≻ 이 해석에 따르면, 『解深密經』 「無自性相品」에서 설한 삼무성의 교설은 일차적으로는 ‘공’ 혹은 ‘무자성’의 감춰진 의미를 더 명료하게 해석하는 데 초점이 있지만, 그 저변에는 제1시와 제2시의 설법 간의 모순을 회통시키려는 의도에서 설해진 것이다. 이 점을 기억해 두면, 이 품의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로 뒤의 여래정설분如來正說分은 그와 같은 보살의 의문에 세존이 곧바로 대답한 것이고, 그 다음의 영해수지분領解受持分은 보살이 이해한 내용을 진술하는데, 여기에서 제1시의 온·처·계 등의 법문을 제2시의 무성의 교설과 회통시켜 진술하였다.
- 4)무성無性의 『攝大乘論釋』 권6(T31, 416b5).
- 5)이 해석에 따르면, ‘승의생勝義生’이라는 세 글자에서 ‘승의’는 증득되는 경계를 가리키고, ‘생’은 증득하는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수승한 대상에 대해 지혜가 생하였기 때문에 이 보살은 ‘승의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 6)심사尋思 : 넓은 의미에서는 일반적 사유 활동을 총칭하는 말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심尋이나 사伺나 혜慧와 같은 특정한 심소법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하의 원측의 해석 참조.
- 7)여기서 말하는 ‘자성 있음(有性)을 설했다’는 것은 오온五蘊·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 등 일체법의 자성이나 차별 등에 대해 설한 제1시時의 유교有敎를 가리키고, ‘자성 없음(無性)을 설했다’는 것은 ‘일체법은 모두 자성이 없다(一切法皆無自性)’고 설했던 제2시의 공교空敎를 가리킨다.
- 8)각覺·관觀 : 심尋·사伺의 구역舊譯. 뒤의 각주 11 참조.
- 9)『深密解脫經』 권2(T16, 670b18).
- 10)첫 번째 해석에 따르면, ‘심사’란 본질적으로 ‘분별’ 활동에 속하는 모든 마음의 작용과 그에 수반되는 모든 정신 작용을 총칭하는 말이다.
- 11)심尋·사伺 : ‘심’은 대상을 거칠게 분별하는 정신 작용이고, ‘사’는 대상을 미세하게 분별하는 정신 작용이다.
- 12)두 번째 해석에 따르면, ‘심사尋思’란 특별히 ‘심尋’과 ‘사伺’라는 두 가지 심소법을 가리킨다. 이 두 심소법은 본질적으로 사유(思) 작용에 해당하므로 이 경에서는 둘을 총칭하여 ‘심사(尋思)’라고 한 것이다.
- 13)입출식념入出息念 : 오정심관五停心觀의 하나인 수식관數息觀(ⓢ ānāpāna-smṛti), 안나반나관安那般那觀을 가리킨다. 자기의 들숨(入息)과 날숨(出息)의 수를 세면서 산란된 마음의 작용을 대치시키면서 염念을 하나의 경계에 멈추고서(止) 지속시키는(持) 것이기 때문에 ‘지식념持息念’이라고도 한다.
- 14)『集論』 권6(T31, 687a6).
- 15)『俱舍論』 권22(T29, 117b11).
- 16)세 번째 해석은 ‘심사행자尋思行者’ 혹은 ‘심행자尋行者’라는 표현에서 ‘심사尋思’의 용례를 찾았다. 가령 심사의 작용이 많아서 마음이 산란해진 행자들은 입출식념入出息念 등에 의지해서 마음의 산란을 대치對治시키는데, 이 경우 ‘심사가 많다’는 것은 특히 대상을 거칠게 분별하는 ‘심尋’의 활동이 왕성한 것을 말한다. 혹은 ‘사伺’의 활동까지 포괄하는 말일 수도 있다.
- 17)네 번째 해석에 따르면, ‘심사尋思’란 가령 사심사관四尋思觀에서의 ‘심사’와 같은 것이다. ‘사심사’란 명名·의義·자성自性·차별差別 등 네 가지 법에 대해서 ‘가립된 존재이고 실제로 없는 것(假有實無)’이라고 관찰하는 관법을 말한다. 여기서 ‘심사’는 아직 인가·결정하는 지智가 생기기 이전에 여전히 혜慧에 의거해서 이름과 그 의미 등에 대해 심구尋求·사찰思察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심사’는 ‘혜’를 체로 삼는다고 하였다.
- 18)가령 구역 『深密解脫經』에는 ‘각관覺觀의 마음을 내었다’고 하였는데, 신역에서 ‘각관’에 해당하는 ‘심사尋伺’로 번역하지 않고 ‘심사尋思’라고 번역했던 것은 아마도 역자가 사심사四尋思의 ‘심사’와 유사한 맥락에서 ‘혜慧’의 활동을 강조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 19)여기서 다섯 가지 상이란 경문에서 언급된 자상自相·생상生相·멸상滅相·영단永斷·변지遍知를 가리킨다.
- 20)자상自相·공상共相 : 어떤 사물 자체의 특수상을 자상이라고 하고, 여러 사물들에 공통되는 보편상을 공상이라 한다.
- 21)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유색有色·무색無色 : 물리적 질애를 갖는 것을 유색有色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무색無色이라 한다. 무색은 모두 보이지 않는 것(不可見)이다. 유색은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가를 기준으로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 안근에 의해 이것과 저것의 차별이 인식되는 것으로서 물리적 질애를 갖고 있으면 유견유대有見有對 혹은 가견유대可見有對라고 한다. 둘째, 오근五根이나 성·향·미·촉처럼 물리적 질애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색을 무견유대無見有對 또는 불가견유대不可見有對라고 한다. 셋째, 업에 의해 훈발熏發된 힘, 즉 무표색無表色 등은 보이지도 않고 질애도 없는 색법이므로 무견무대無見無對 혹은 불가견무장애不可見無障礙라고 한다.
- 22)집제集諦(번뇌)가 인因이 되어 고제苦諦(생사의 과보)를 받게 되니, 고과苦果에 대해 두루 알고 그 원인이 되는 번뇌를 영원히 끊는다. 따라서 고제의 상相은 두루 알아야 할(遍知) 상이고, 집제의 상은 영원히 끊어야 할(永斷) 상이라 하였다.
- 23)「無自性相品」의 세 번째 ‘영해수지분領解受持分’에서는 승의생보살이 세존의 설법을 듣고 자기가 이해한 내용을 진술한다. 거기서는 ‘모든 자상(所有自相)’이라는 표현 대신에 ‘자성상自性相과 차별상差別相’이라는 표현을 쓴다. 말하자면 색온의 자성상과 차별상을 안립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색온의 생生의 자성상·차별상, 색온의 멸滅의 자성상·차별상 등을 안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 24)『瑜伽師地論』 권56(T30, 611c20~27) 참조.
- 25)이상으로 십이연기의 자상을 설명하면서 첫 번째 무명지無明支와 마지막 노사지老死支만을 간단히 언급했다.
- 26)여기서는 단식段食·촉식觸食·사식思食·식식識食 등 네 가지 중에 중간의 둘은 생략하고 단식과 식식만 설명하였다. 단식은 향香·미味·촉觸 등의 색법으로 된 음식으로서, 몸의 근들을 이익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촉식이란 마음이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취할 때 주·객이 접촉하여 생기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이 촉에 의해 감각·의지 등을 기를 수 있고 혹은 육체에 이익을 주기 때문에 이를 식이라 한다. 사식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의지(思)의 작용인데, 이것이 생존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식이라 한다. 식식이란 신명身命을 존속시킬 수 있는 심식心識 그 자체를 말하는데, 이것이 신명을 유지시키므로 식이라 한다.
- 27)『解深密經』 「勝義諦相品」에 따르면, 증상만增上慢을 가진 비구들은 대부분 ‘유소득의 현관(有所得現觀)’에 의거해서 갖가지 법들 중의 어느 하나를 증득하고 나서 자신이 진짜 깨달았다고 자만한다. 이 품에서는 그 유소득의 현관을 설명하기 위해 오온五蘊·십이처十二處·십이연생十二緣生 등의 관문觀門을 설했는데, 각 법문마다 각기 여섯 가지 상으로 나누어 설하였다. 예를 들면 오온에 대해서는 ① 오온, ② 오온의 상相, ③ 오온의 일어남(起), ④ 오온의 다함(盡), ⑤ 오온의 멸滅, ⑥ 오온의 멸을 작증作證함 등 여섯 가지 상으로 설명하였다. 이 여섯 구句 중에 다섯 번째 ‘오온의 멸’이란 멸제를 가리키고 여섯 번째 ‘오온의 멸을 작증함’이란 도제를 가리킨다. 앞의 네 구는 고제·집제와 연관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원측에 따르면, 이전의 「勝義諦相品」에서는 ‘현관現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사제四諦를 갖추어 설했지만, 이 「無自性相品」에서는 제1시時의 유성교有性敎와 제2시의 무성교無性敎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온선교蘊善巧를 거론한 것이므로 도제와 멸제에 해당하는 문구는 생략했다고 하였다. ‘여섯 가지 상’과 사제와 관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원측/백진순 옮김, 『해심밀경소 제2 승의제상품』(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3), pp.405~415 참조.
- 28)“모든 자상(所有自相)”에 대한 두 가지 해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법의 개별적 상(別相)을 뜻한다는 것이다. 둘째 뒤의 ‘영해수지분領解受持分’에서 설한 것처럼 ‘자성상自性相과 차별상差別相’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전의 오온문五蘊門 참조.
- 29)두루 알아야하는 것(遍知)은 고제고, 영구히 끊어야 할 것(永斷)은 집제며, 작증作證해야 할 것은 멸제고, 수습修習해야 할 것은 도제다.
- 30)종종계성種種界性과 비일계성非一界性 : ‘종종種種’과 ‘비일非一’은 모든 계들의 차별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더 상위 차원에서 다른 종류들 간의 차별성을 가리킬 때 ‘종종’이라 하고, 더 하위 차원에서 세부적 다양성을 가리킬 때 ‘비일’이라 한다. 또 어떤 경우는 그와 반대로 쓰이기도 한다. 이에 관해서는 이하에 진술된 원측의 해석과 해당 주석 참조.
- 31)『瑜伽師地論』 제56권에서 ‘종종이란 십팔계의 전전이상展轉異相을 나타낸 것’이라 하였는데, 즉 좀 더 상위 차원에서 각각의 계들을 서로 대비시켰을 때 상호간에(展轉) 다른 상(異相)을 갖는 상태에서 각기 자류自類로서 상속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비일’은 좀 더 하위 차원에서 그 하나하나의 계의 업취業趣와 유정의 종류들 간의 무수한 다양성을 가리킨다.
- 32)‘제1권의 기記’란 원측의 『解深密經疏』 「勝義諦相品」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解深密經』 「勝義諦相品」에서는 “다시 한 부류는 계界를 증득했기 때문에, 계의 상을 증득했기 때문에, 계의 종종성種種性을 증득했기 때문에, 계의 비일성非一性을 증득했기 때문에……”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원측은 『瑜伽師地論』 제56권과 제83권을 인용하여 두 용어의 차이를 설명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제83권은 제56권과는 정반대로 설명한다. 즉 십팔계에 대해 잘 아는 지智를 ‘비일계지非一界智’라고 하고 그 계의 갖가지 품류에 대해 잘 아는 지를 ‘종종계지種種界智’라고 하였다. 원측/백진순 옮김, 『해심밀경소 제2 승의제상품』(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3), pp.421~423 참조.
- 33)육석六釋 : 육합석六合釋 혹은 육리합석六離合釋이라고도 하며, 범어의 복합어를 해석하는 여섯 가지 방식을 말한다. 의주석依主釋과 지업석持業釋과 상위석相違釋과 대수석帶數釋과 인근석隣近釋과 유재석有財釋이다. 이 중에서 의주석이란 두 개 이상의 명사로 이루어진 합성어에서 두 단어가 주반主伴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한다. 가령 ‘산사山寺’ 혹은 ‘왕신王臣’이라 할 때, ‘산의 절’과 ‘왕의 신하’를 뜻한다. 이것은 협의의 의주석이고, 광의에서는 앞 단어에 의해 뒤 단어가 제한되는 관계에 있는 복합어인 지업석과 대수석(앞 단어가 숫자로 된 경우)은 모두 의주석에 해당한다. 상위석이란 가령 ‘강산江山’을 ‘강과 산’으로 해석하는 경우처럼 두 단어가 병렬 관계에 있는 복합어를 가리킨다. 유재석이란 가령 ‘황의黃依’를 ‘황의를 입은 사람’으로 해석하는 경우처럼 어떤 복합어가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유한 제3의 대상을 가리키는 경우를 말한다. 인근석이란 본래 범어 문법에서는 두 단어 이상으로 이뤄진 복합어가 부사 역할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데, 중국의 한역에서는 가까운 것을 따라 이름을 건립한 복합어를 뜻하게 되었다.
- 34)신身·수受·심心·법法 등 네 종류 경계를 관찰하는 사념주의 관은 혜慧의 작용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여기서 ‘염念’은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이고, 혜는 간택하면서 비추는 것인데, 사념주관을 행할 때 이 둘이 함께 ‘신身’ 등의 경계에 머물게 되므로 그 둘의 의미가 서로 가깝다. 따라서 혜주慧住라는 이름 대신에 염주念住라는 이름을 썼다는 것이다. 이런 복합어는 의미상으로 가까운 것을 따라 건립된 것이다. 이러한 복합어의 해석 방법을 ‘인근석鄰近釋’이라 한다. ‘인근석’에 대해서는 앞의 각주 33 참조.
- 35)‘사념주’의 교법은 「勝義諦相品」에서 승의제의 네 번째 상, 즉 ‘모든 것에 편재하는 일미상(遍一切一味相)’을 설하면서 이미 언급되었다. 그에 따르면, 위의 네 구 중에서 첫 번째 구는 사념주에 의해 ‘네 가지 전도를 대치함’을 나타낸 것인데, 즉 신身·수受·심心·법法에 대해 일으키는 네 가지 전도된 견해를 대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신념주身念住는 몸(身)의 부정함(不淨)을 관하여 ‘깨끗하다(淨)’는 전도된 견해를 대치시키고, 수념주受念住는 수受에 즐거움이 없음을 관하여 ‘즐겁다(樂)’는 전도된 견해를 대치시키며, 심념주心念住는 마음의 무상함(無常)을 관하여 ‘영원하다(常)’는 전도된 견해를 대치시키고, 법념주法念住는 법에 ‘아我가 없음’을 관하여 ‘아가 있다’는 전도된 견해를 대치시킨다. 또 제2구, 제3구, 제4구는 사념주의 닦음(修)에 대해 설한 것인데, 대승의 전통에서는 이것을 득수得修·습수習修·제거수除去修·대치수對治修 등 네 종류 수修에 의거해서 해석해 왔다. 이 네 가지 수는 사정단四正斷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이다. 즉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善法을 수습해서 생기도록 하는 것을 ‘득수’라고 하고, 이미 생긴 선법을 수습해서 견고하게 머물게 하고 잊지 않고 갑절로 되풀이해서 증상되고 광대해지게 하는 것을 ‘습수’라고 하며, 이미 생긴 악한 불선법不善法을 수습해서 영원히 끊어지도록 닦는 것을 ‘제거수’라고 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한 불선법을 수습해서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대치수’라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원측/백진순 옮김, 『해심밀경소 제2 승의제상품』(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3), pp.425~437 참조.
- 36)나중에 열거된 사념주와 사정단·사신족·오근·오력·칠각지의 5문과 팔지성도 등 일곱 개의 문은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에 해당한다.
- 37)「無自性相品」의 네 번째 교량탄승분校量歎勝分에서는 삼전법륜三轉法輪교의 승勝·열劣이 부동함을 설하면서 세존의 설법을 삼시三時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 38)이러한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이 「無自性相品」의 삼무성三無性은 일차적으로는 제2시時에 설했던 ‘무성無性·공空’의 은밀한 의미를 더 명료하게 밝힌 교설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그와 동시에 제2시의 무상법륜無相法輪을 제1시의 사제법륜四諦法輪과 회통시킨 교설이라는 의미도 갖는 것이다. 이 점에 특별히 주목한다면, 이 「無自性相品」의 전체적 논리 구조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보살청문분에 이어지는 여래정설분如來正說分에서는 우선 세 종류 무성을 통해 ‘무성’의 밀의密意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영해수지분領解受持分에서 다시 그러한 세존의 설법을 듣고 보살이 영해領解한 내용을 진술한다. 그런데 이 영해수지분은 보살의 입을 통해 이전에 설한 교설을 다시 진술한 것인데, 특이한 점은 여기서 그러한 삼무성의 의미를 제1시의 온·처·계 등의 법문들에 각기 적용시켜 진술한다는 것이다. 이에 의거해 볼 때, 이 품에서 삼무성을 설했던 중요한 의취意趣 중의 하나는 바로 제1시의 교와 제2시의 교를 회통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39)아약구린阿若拘鄰(ⓢ Ājñāta-Kauṇḍinya) : 교진여憍陳如라고도 하며,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최초로 설법해 준 다섯 비구 중의 한 명이다. 그 외에 아설시阿說示(ⓢ Aśvajit), 바사파婆師波(ⓢ Vāṣpa), 바제婆提(ⓢ Bhadrika), 마하남摩訶男(ⓢ Mahānāma) 등이 있다.
- 40)『無量義經』 권1(T9, 386b12).
- 41)『無量義經』에서 ‘초기의 사제법륜을 설할 때도 또한 공空을 설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직 공의 이치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설한 것이기 때문에 ‘비밀문秘密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解深密經』에서는 삼무성三無性에 의거해서 대승적 의미의 공을 명료하게 드러내어 자세히 설했기 때문에 ‘현시문顯示門’에 해당한다.
- 42)여기서부터는 『解深密經』에서 삼무성三無性의 교敎를 설한 취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보살은 세존께서 이전에는 온·처·계 등 13가지 법문에서 모두 자성 있음(有性)을 설했고 이후에는 다시 일체법은 다 자성 없음(無性)을 설했던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원측의 해석을 따르면, 삼시교三時敎 중에 제2시의 무상법륜無相法輪이 제1시의 사제법륜四諦法輪과는 모순되기 때문에 다시 제2시에 설한 ‘무성無性’의 진정한 의미를 물은 것이다. 여기서 말한 사제법륜은 일체법의 유상有相·유성有性을 설하므로 유교有敎에 해당하고, 무상법륜은 일체법의 무상無相·무성無性을 설하므로 공교空敎에 해당한다. 제3시의 요의교了義敎는 제2시에 설해진 ‘무성’의 은밀한 뜻을 더 자세하고 명료하게 해석한 것으로, 그것이 바로 『解深密經』의 삼무성설三無性說이다.
- 43)원문에 ‘謂佛先說蘊處界等十三法門皆無自性’으로 되어 있는데, ‘皆無自性’은 ‘皆有自性’의 오기인 듯하다. 이 경에 따르면, 세존께서 먼저 ‘오온’ 등을 비롯한 13개의 법문으로 유자성有自性의 법문을 설하셨고, 이후에는 무자성無自性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이 두 법문이 모순되기 때문에 보살의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皆有自性’이라는 문구가 나와야 한다.
- 44)『深密解脫經』 권2(T16, 670b25)에는 “世尊復說。 一切法本來無體。 一切法本來不生。 一切法本來不滅。 一切法本來寂靜。 一切法本來自性涅槃。”이라 되어 있다.
- 45)여래정설분如來正說分은 삼무성三無性의 교설을 본격적으로 설명한 곳이다. 삼무성이란 대승불교에서 이미 확립되었던 ‘공空’의 의미를 유식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 삼무성설은 변계소집遍計所執·의타기依他起·원성실圓成實 등 삼성三性에 의거해서 ‘무성·공’의 차별적 의미를 설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변계소집의 상무성相無性, 의타기의 생무성生無性 (혹은 일부의 승의무성勝義無性), 그리고 원성실의 승의무성 등 세 가지 무성의 의미를 알아야 ‘무성·공의 요의了義’를 이해할 수 있다. 『解深密經』 「無自性相品」에서는 특히 “〔1〕 一切諸法皆無自性。 〔2〕 無生無滅。 本來寂靜。 自性涅槃。”이라는 문구를 중심으로 ‘무성’의 뜻을 해석하였다.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여러 경론들마다 혹은 동일한 경전 내에서도 경우에 따라 세 종류 무성, 혹은 두 종류 무성, 혹은 한 종류 무성에 의거해서 설하기도 하는데, 그 어떤 경우이든 모두 세 종류 무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비록 생략한다 해도 반드시 ‘상무성’을 설한다는 점에서 대승적 공사상의 특징이 있다. 이 『解深密經』에서는 〔1〕 皆無自性의 문구를 세 종류 무성에 의거해서 해석하였고, 〔2〕의 문구를 처음의 상무성과 마지막 승의무성에 의거해서 해석하였다.
- 46)무자성성無自性性 : 이 품에서는 무성無性 혹은 무자성無自性이라는 말 대신에 특히 ‘무자성성無自性性’이라는 네 자를 사용하였다.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네 글자를 쓴 의취는 제3시時의 요의교了義敎에서는 ‘공의 밀의密意’를 밝히면서 별도로 삼무성의 이치(三無性理)가 있음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하의 설법에 따르면, ‘무성’이라는 말은 삼성三性에 대해 각기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말의 두 가지 용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원측에 따르면, 범어 ‘공’의 의미를 어원적으로 분석할 때 크게 두 가지를 뜻할 수 있다고 한다. 첫째는 범음 순야舜若(ⓢ śūnya)는 ‘공’이라 번역되는데, 이는 어떤 것이 ‘없음(無)’을 뜻한다. 둘째는 범음 순야타舜若多(ⓢ śūnyatā)는 ‘공성空性’이라 번역되는데, 어떤 것의 없음에 의해 현현되는 것, 즉 인공人空·법공法空에 의해 현현되는 참된 본성(眞性) 혹은 이치를 뜻한다. 이상은 원측/백진순 옮김, 『인왕경소』(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 p.59 그리고 pp.230~231 참조.
- 47)뒤의 원문에는 다섯 번째 과목을 ‘다섯 번째는 밀의의 교에 대한 이해가 차별됨을 해석한 것이다(第五釋密意敎意解差別)’라고 하였다.
- 48)이하에서는 “〔1〕 一切諸法皆無自性。 〔2〕 無生無滅。 本來寂靜。 自性涅槃。”이라는 문구의 의미를 세 종류 무성(三無性)에 의거해서 본격적으로 해석한다. 『解深密經』 「無自性相品」의 경우, 첫 번째 구(〔1〕)의 뜻에 대해서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상무성相無性,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생무성生無性, 원성실성圓成實性의 승의무성勝義無性 등 세 종류 무성에 모두 의거해서 설명하였고, 두 번째 구(〔2〕)의 뜻에 대해서는 처음의 상무성과 마지막의 승의무성 두 가지 무성에 의거해서 설명하였다. 원측에 따르면, 대승의 경론에서 ‘무성’을 설할 때 세 종류 무성을 모두 갖추어 설하지는 않지만 변계소집상의 ‘상무성相無性’만은 반드시 설한다. 이런 이유에서, 오직 대승에서만 설한 특별한 의미는 바로 ‘변계소집상의 무無’, 즉 상무성이라고 하였다.
- 49)이하에서는 ‘一切諸法皆無自性’이라는 문구에 대해 세 종류 무성 모두에 의거해서 해석하였다. 여기서 삼무성에 대한 기본 정의가 이루어지는데, 이 정의는 이전의 「一切法相品」에서 설한 삼성三性의 정의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 품에서는 ‘일체법一切法’을 크게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의타기성依他起性과 원성실성圓成實性 등 삼성으로 구분하였는데, 다시 이 「無自性相品」에서는 그 삼성에 의거해서 세 종류 무성을 건립하였다. 이로써 삼성에 따라서 ‘자성 없음’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하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무성(공)이라는 말은 크게 두 가지 용례가 있다. 첫째는 ‘어떤 것이 없다’는 의미다. 이 경우 ‘X 그 자체가 없다’는 뜻이거나 ‘X에 Y가 없다’는 뜻인데, 변계소집의 상무성相無性은 전자의 의미로 쓰였고 의타기의 생무성生無性·승의무성勝義無性은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 말하자면 ‘변계소집상은 그 체가 본래 없다’는 의미에서 ‘상무성’이라 하고, 또 ‘의타기상에는 자연생自然生이 없다’는 의미에서 ‘생무성’이라 하거나 ‘의타기상에는 승의勝義가 없다’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이라 한 것이다. 둘째는 ‘무성’은 어떤 것의 없음에 의해 현현되는 참된 본성을 가리키는 말일 수 있는데, 즉 원성실圓成實의 승의무성勝義無性을 말한다. 이에 관해서는 해당 경문을 해석하면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 50)『成唯識論』 권9(T31, 47c26). 이것은 유식30송에서 제23송에 해당한다.
- 51)이 경문에서는 변계소집상의 본질은 ‘가립된 이름(假名)’임을 밝힌다. 가령 ‘색온色蘊’처럼 사물 자체의 상(自性相)이나, 혹은 ‘보이는 색(可見色)이나 보이지 않는 색(不可見色)’ 등처럼 사물들의 차별적 상(差別相)들은 모두 가명으로 시설해 놓은 것이다. 이처럼 본래 가립된 언어로만 존재하는 상相이지만 이것은 두루 헤아리는 마음(遍計)에 의해 실재(有)라고 집착되기 때문에 ‘변계소집’이라 하였다.
- 52)‘자상’이란 직접 지각(現量)으로 경험되는 하나의 사물 자체의 특수상을 말하고, 이처럼 직접 지각에 의해 알려지는 상은 실재와 연관된다. 반면에 두루 헤아리는 마음(遍計)에 의해 언제나 ‘실재(有)’라고 집착되는(所執) 상들은 언어에 의해 가립된 상이지 자상에 근거해서 안립된 것이 아니다.
- 53)범부의 정情 속에서 ‘실재(有)’라고 집착된 상들은 본래 가립된 이름과 결합되는 상이고, 그 상에 대응하는 실체는 ‘실로 존재하지 않는다(實無)’는 의미에서 ‘상무성相無性’을 설한 것이다. 말하자면 변계소집의 상들은 본래 가짜 이름만 존재하고 그 실체는 없다는 의미에서 첫 번째 상무성을 설한 것이다. 이 경우 ‘무성’이라는 말은 ‘없다(無)’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후의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소승과는 공유하지 않고(不共) 오직 대승만 공유하는 ‘무성無性’의 특별한 의미는 바로 ‘상무성’, 즉 변계소집의 무無이며, 이것이 이 경에서 설하는 ‘공’의 밀의密意를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 이에 관한 자세한 것은 p.112 ‘b) 징문’ 이하에 나오는 문답 참조.
- 54)『顯揚聖敎論』 권16(T31, 557b18)에서는 “一相無性。 謂遍計所執自性。 由此自性體相無故。”라고 하였다.
- 55)『三無性論』 권1(T31, 867c4).
- 56)세속언설자성世俗言說自性 : 단지 세속의 가명假名으로만 존재할 뿐 그에 해당하는 실체는 없는 것, 즉 변계소집의 상相을 가리킨다.
- 57)『瑜伽師地論』 권73(T30, 702b20).
- 58)이 경문에서 말한 ‘자연自然(ⓢ svayambhāva)’이란 ‘자유自有’와 같은 의미로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존재한다(自然有)’거나 ‘자연적으로 생한다(自然生)’는 것은 인도 철학 내에서는 불교의 연기緣起 혹은 연생緣生과는 가장 대조적인 개념이다. 의타기의 존재는 여러 가지 다른 연들이 모여서 생기는 것이므로 ‘생生’에 있어서 그런 의미의 자연성은 없다는 의미에서 ‘자성 없음(無性)’을 설한 것이다. 여기서 ‘생무성生無性’에서 쓰인 ‘무성’이라는 말은 ‘의타기 자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의타기에는 자연생이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자연’의 구체적 의미는 뒤의 주석 59 참조.
- 59)경문에서 ‘자연유自然有’라는 문구에 대해, 원측은 대자재천大自在天과 같은 그릇된 원인(邪因)을 상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원측은 오위五位에 의거해서 생무자성성을 해석할 때는 ‘원인 없이 자연적으로 생한다’는 집착을 막기 위해 ‘생무성’을 설했다고 하였다.〔p.168 ‘나) 근기에 맞춰 바로 설함’ 참조.〕 예를 들어 규기窺基의 『成唯識論掌中樞要』 권2(T43, 654a17)에 따르면, ‘의타기에 자연생自然生이 없다’고 할 때 외도들이 말하는 ‘자연생’ 혹은 ‘자연유’에는 본래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원인 없이(無因) 자연적으로 생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쁘라끄리띠(ⓢ prakṛti, 冥性)나 대자재천과 같은 수승한 인(勝因), 즉 불평등인不平等因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삼무성이란 유有(의타기·원성실)와 무無(변계소집) 모두에 의거해서 설해진 것이고, 특히 인과因果의 세계에서 ‘유’를 ‘무’로 손감損減시키거나 반대로 ‘무’를 ‘유’로 증익增益시키는 집착을 막기 위해 설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유가 아니다(非自然有)’라는 말은 대자재천과 같은 궁극의 원인을 증익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무인론無因論과 같이 원인을 손감시키는 것 또한 부정한 것이기도 하다.
- 60)『顯揚聖敎論』 권16(T31, 557b19)에서는 “二生無性。 謂依他起自性。 由此自性緣力所生非自然生故。”라고 하였다.
- 61)『三無性論』 권1(T31, 867c5)에서는 “約依他性者。 由生無性說名無性。 何以故。 此生由緣力成。 不由自成。 緣力卽是分別性。 分別性體旣無。 以無緣力故生不得立。 是故依他性。 以無生爲性。”이라고 하였다.
- 62)『瑜伽師地論』 권73(T30, 702b21).
- 63)이 경에서는 삼성三性에 의거해서 세 종류 무성無性의 의미를 밝히는데, 일반적으로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의타기성依他起性과 원성실성圓成實性에 의거해서 그 차례대로 상무성相無性과 생무성生無性과 승의무성勝義無性을 건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세 번째 승의무성은 통틀어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에 의거해서 건립하였기 때문에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즉 의타기성에 의거해서 일부의 승의무성을 건립한 경우는 ‘의타기에 승의勝義가 없다’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이라 설한 것이고, 원성실성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건립한 경우는 ‘원성실(승의) 그 자체가 무성(공)’이라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이라 설한 것이다.
- 64)“모든 법들은 생무자성성이기 때문에 무자성성이라 이름하는데”라는 문구는, 이제 의타기에 의거해서 승의무성勝義無性을 해석하기 위해서 이전에 언급했던 ‘의타기의 생무성生無性’을 앞에 표시해 놓은 것이다. 이전에 설했듯, ‘생무성’이란 ‘생함에 있어서 자연적 생은 없다’는 뜻이다.
- 65)이전의 논의에 따르면, 모든 법들은 생함(生)에 있어서 유일한 승인勝因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많은 연에 의지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생무성生無性’을 설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다른 연(他緣)에 의지해서 생하는 유위법有爲法에는 ‘원성실성이라는 승의勝義가 없다’는 의미에서 또한 의타기의 제법을 ‘승의무성勝義無性’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 66)“이상異相으로 인해”라는 말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의타기성에는 원성실성과는 다른 상(異相)이 있기 때문에 ‘무성’을 설했다는 말인 듯하다. 즉 앞의 해석과 같은 맥락에서, ‘의타기성에는 그런 승의의 상相이 없다’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이라 한다는 것이다.
- 67)『顯揚聖敎論』 권16(T31, 559b17).
- 68)원문은 ‘初釋所無淸淨勝義’라고 되어 있는데, ‘所無’의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진술, 즉 “이것은 진여眞如라는 정지의 소연(淨智所緣)을 청정승의淸淨勝義라고 이름한다고 해석한 것”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이에 따르면, 아마도 ‘所無’는 ‘所緣’의 오기인 듯하다.
- 69)여기서는 의타기성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건립한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승의란 청정한 지혜에 의해 인식되는 가장 청정한 경계를 가리킨다. 가립된 언어에 불과하고 본래 실체가 없는 변계소집의 상들과는 달리 의타기의 제법들은 인연에 의지해서 생하기는 해도, 이러한 연생법들 가운데는 청정한 지혜의 경계인 ‘승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승의(진여)가 없다’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이라 한 것이다.
- 70)『顯揚聖敎論』 권16(T31, 559b7) 참조.
- 71)삼무성 중에 ‘승의무성’은 의타기와 원성실에 의거해서 건립된 것이다. 두 번째 자성(의타기)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설한 경우는 ‘의타기에 승의가 없다’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이라 한다. 이하부터는 세 번째 자성(원성실)에 의거해서 ‘승의 그 자체가 무성’이라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을 건립한 경우를 논한 것이다.
- 72)일체법을 세 가지 자성으로 포괄해서 설명할 때, 원성실성이란 일체법에 내재된 가장 수승한 의미(勝義)를 가리킨다. 그 가장 수승한 의미란 모든 법의 법무아성法無我性에 의해 현현되는 진실을 말하는데, 이때 진실 그 자체가 바로 ‘무성無性’이다. 이런 의미에서 ‘승의무성’이라 했다는 것이다.
- 73)『顯揚聖敎論』 권16(T31, 557b20).
- 74)『顯揚聖敎論』 권16(T31, 559b15).
- 75)이 논에 따르면, 분별성(변계소집성)과 의타성에 의해 일체법을 포괄하는데, 분별성이 본래 무상無相이고 의타성이 본래 무생無生이며, 이 두 자성의 ‘무無’가 바로 진실성이다.
- 76)이 논에 따르면, 분별성·의타성의 실재성(有)은 진실로 없다(無)고 부정되지만, 그 두 자성이 ‘무’라는 사실 자체는 진실로 있다(有)고 긍정된다. 따라서 진실성眞實性(원성실성)에 대해서는 ‘무’ 혹은 ‘유’로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 77)『三無性論』 권1(T31, 867c13).
- 78)앞의 『三無性論』에 따르면, 진실성眞實性(원성실성)에 의거해서 진실무성眞實無性(승의무성)을 설하는 경우, 의타성과 분별성(변계소집성) 두 가지의 무無에 의해 현현되는 것을 ‘진실무성’이라 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解深密經』 등에서는 ‘변계소집성(분별성)’은 본래 ‘무’로서 부정되지만 ‘의타기성’ 자체를 ‘무’라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원성실의 승의무성은 변계소집의 무無에 의해 현현되는 것이고, 이러한 무성 그 자체가 승의이기 때문에 승의무성이라 한다. 또 이 경에서는 의타기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도 의타기 자체는 인연생因緣生으로서 유有라고 인정되며, 다만 ‘그 의타기에는 승의(청정한 소연)가 없다’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이라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三無性論』에서 진실무성(승의무성)은 변계소집과 의타기의 무에 의해 현현된다고 한 것과는 다르다.
- 79)이 『解深密經』 「無自性相品」과 마찬가지로 『成唯識論』에서는 유식30송 중 제23송~제25송과 장행을 통해 ‘일체법개무자성一切法皆無自性’이라는 교설의 밀의密意를 설한다. 여기서도 이 경과 마찬가지로 삼성에 의거해서 상相·생生·승의勝義의 세 종류 무성을 밝히는데, 처음의 상무성과 마지막의 승의무성에 대해서는 거의 동일하게 설한다. 단, 두 번째 ‘생무성生無性’에 대해 ‘무자연성無自然性’이라고만 하였는데, 말하자면 의타기의 제법 중에 자연생自然生 혹은 자연유自然有와 같은 것은 없다는 의미에서 ‘생무성’을 설한 것이다. 그런데 이 『解深密經』에서는 의타기와 원성실에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설했다면, 『成唯識論』에서는 오직 원성실성에만 의거해서 승의무성을 설하였다. 이상은 『成唯識論』 권9(T31, 47c26~48a19) 참조.
- 80)『成唯識論』 권9(T31, 48a17).
- 81)호법에 따르면, 의타기성은 비록 체가 존재하는 법(有體法)이지만 ‘승의는 아니다(非勝義)’라는 의미에서 또한 (의타기의) 승의무성을 설할 수도 있지만, 두 번째 것과 혼동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호법이 ‘두 번째와 혼동될 수 있다’고 한 말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다. ① 삼무성 중의 두 번째인 의타기의 생무성生無性과 혼동될 수도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혹은 ② 두 종류 승의무성 중에 두 번째 원성실의 승의무성과 혼동될 수도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규기의 『成唯識論述記』 권9(T43, 555a8), 혜소의 『成唯識論了義燈』 권7(T43, 791c6) 참조.
- 82)『三無性論』 권1(T31, 867c2).
- 83)언어나 개념 등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차별적 상들을 시설하는 것을 안립제安立諦라고 하고, 그와 반대로 모든 상대적 차별을 넘어서 있고 언어와 개념 등으로 표시될 수 없는 것을 비안립제非安立諦라고 한다. 진제에 의하면, 삼성의 차원에서 건립된 승의勝義로서의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안립제로서 시설된 것이고, 삼성을 버림으로써 드러나는 하나의 진여는 언어로 시설될 수 없는 비안립을 나타낸 것이다.
- 84)『唯識三十論頌』 권1(T31, 61a22).
- 85)호법의 해석에 따르면, 삼성 중에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비록 가假·실實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체가 있는 것(有體)이고, 변계소집성은 본래 체가 없는 것(無體)이다. 이처럼 유有와 무無에 모두 의거해서 ‘자성 없음(無性)’을 총괄적으로 설했기 때문에 ‘비밀스런 의미(密意)’라고 한다. 이러한 호법의 해석을 앞의 진제의 해석과 비교해 보면, 전자가 의타기와 원성실의 유有를 부정하지 않은 반면 후자는 세 가지 자성을 모두 부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成唯識論』 권9(T31, 48a8) 참조.
- 86)『三無性論』에서 “……이 두 가지 자성이 이미 상도 없고 생도 없는 것이라면, 이런 도리에 따라서 모든 법은 ‘동일한 무성(同一無性)’이다.”라고 하거나, 혹은 제1권에서 “삼무성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무성의 이치(一無性理)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 87)현존하는 『顯揚聖敎論』 권16(T31, 557b4)에는 「無自性品」이 아니라 「成無性品」으로 되어 있다. 이 품에 삼무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 88)진제 역 『三無性論』은 『顯揚聖敎論』 「成無性品」의 별도 이역본異譯本이라는 견해는 현장 문하의 법상종 학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견해인 듯하다. 따라서 두 논이 본래 같은 문헌인데, 판본의 문제 혹은 역자의 오류로 인해서 ‘승의무성’에 대해 해석이 다른 것이라고 하였다.
- 89)진제 역 『三無性論』 권1(T31, 867b3)의 서두에는 “『無相論』에서 역출함(出無相論)”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따라서 예로부터 이 『三無性論』은 『無相論』이라는 한 책의 일부를 독립시켜 별도로 역출한 것이라는 학설이 있기는 했지만, 이 『無相論』이 어떤 문헌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三無性論』이 『顯揚聖敎論』 「成無性品」의 별역본이라고 볼 경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顯揚聖敎論』은 게송과 장행으로 이루어졌으나 『三無性論』에는 게송이 나오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들 때문에, 원측은 목록과 『顯揚聖敎論』 등을 살펴보아도 『三無性論』이 그 논의 별역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결론지은 듯하다.
- 90)여기서 말한 ‘일부의 승의무성(一分勝義無性)이란,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에 의거해서 건립된 두 종류 승의무성 중에서 의타기에 의거해서 건립된 승의무성을 가리킨다.
- 91)『阿毗達摩經』은 현존하지 않고 다만 이 경의 주석으로 알려져 있는 『攝大乘論』이 전해진다. 이 논에서는 다른 연들에 의지해서 생하는 의타기의 제법들은 가유假有일 뿐 실체성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여덟 가지 비유를 말하였다. 이것을 의타팔유依他八喩라고 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① 환사유幻事喩 : 경계라는 것이 마치 환술사가 마술로 지어낸 갖가지 사물과 같음을 말한다. ② 양염유陽炎喩 : 심·심소법의 작용이 마치 아지랑이의 흔들림과 같음을 말한다. ③ 몽경유夢境喩 :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들을 수용하는 것이 마치 꿈속에서 본래 없는 것을 수용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④ 영상유影像喩 : 업의 차별에 따라 과의 차별을 내는 것이 마치 거울에 영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⑤ 광영유光影喩 : 갖가지 식들을 일으키는 것이 마치 그림자를 갖고 노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⑥ 곡향유谷響喩 : 갖가지 언설희론을 일으키는 것이 마치 빈 골짜기에 실체 없는 메아리가 울리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⑦ 수월유水月喩 : 맑고 깨끗한 선정의 마음(定心)에서 여실한 지혜가 일어나는 것이 마치 깨끗한 물에 달이 비친 것과 같음을 말한다. ⑧ 변화유變化喩 : 진리를 증득한 보살들이 중생들을 가엾게 여겨 여러 가지 변화로 모든 일을 지어내는 것을 말한다. 자세한 것은 『攝大乘論』권2(T31, 140b17) 참조.
- 92)유식종에서는 언어를 매개로 하여 집착된 변계소집의 상相들은 이름만 있을 뿐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인 반면, 인연으로 생겨난 의타기의 식識은 전혀 없는 것(全無)이 아니라 임시적인 존재성(假有)을 갖는다고 인정된다. 이러한 의타기의 유有를 일컬어 ‘유는 아니지만 마치 유와 같은 것(非有似有)’이라고 한다. 『解深密經』에서는 이러한 의타기의 유를 비유하기 위해서 ‘환’ 중에서도 ‘유는 아니지만 마치 유와 같은 것’을 비유로 들었는데, 앞의 주석에서 언급된 ‘의타팔유依他八喩’가 대표적이다.
- 93)여기서는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에 의거해서 건립된 두 종류 승의무성 중에서, 원성실성에 의거해서 건립된 승의무성 즉 진여에 대해 설한다.
- 94)『佛地經論』 권3(T26, 304c6) 참조.
- 95)수전리문隨轉理門이란 교화되는 대상의 근기에 따라서 방편으로 설한 교법을 가리키고, 진실리문眞實理門이란 불보살의 본래 뜻을 설한 진실한 교법을 말한다. 원측에 따르면, 색법이 없는 빈 공간을 허공이라 한 것은 단지 교화 대상의 근기에 따라(隨機) 방편으로 설한 것이고, 오온이 없는 곳을 허공이라 한 것은 ‘무자성공’이라는 진실한 의미(實義)를 설한 것이다.
- 96)이하에서는 ‘〔1〕 一切法皆無自性, 〔2〕 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이라는 문구 중에서, ‘〔2〕 無生無滅……’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경에서는 이전의 문구(〔1〕)를 세 종류 무성 모두에 의거해서 해석했던 데 비해, 이 문구(〔2〕)에 대해서는 상무성相無性과 승의무성勝義無性 두 종류에 의거해서 해석하였다. 이에 관한 경문들은 비교적 명료하다. 여기서는 무엇보다 ‘무생無生’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 요지는 ≺본래 생한 적이 없다면 멸할 것도 없고, 생멸이 없는 것은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라는 것이다.
- 97)먼저 ‘상무성相無性’에 의거해서 ‘무생무멸無生無滅’ 등의 문구를 해석하였다. 이 중에서 “만약 자상自相들이 전혀 없다면”이라는 문구는 ‘생함이 없다(無生)’고 말하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이전 경문에서 언급했듯, 변계소집의 상들은 가립된 언어에 의해 안립된 상이지 ‘자상’에 의거해서 안립된 상이 아니다. ‘자상이 전혀 없다’는 것은 본래 실재하지 않는 것(本無)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변계소집의 상무성을 설하였다. 그런데 본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생한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자상들이 전혀 있지 않다면 생함도 없고”라고 하였다.
- 98)원측에 따르면, “상상시에 항항시에”라고 한 것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있었다. 첫 번째 해석에 따르면, 이전(前前)에도 늘 그러했다는 의미에서 ‘상상常常’이라 하였고, 이후(後後)에도 늘 그러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항항恒恒’이라 한 것이다. 두 번째 해석에 따르면, 진실함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상상시’라고 하였고, 무자성성임을 나타내기 위해 ‘항항시’라고 한 것이다. 원측/백진순 옮김, 『해심밀경소 제3 심의식상품·제4 일체법상품』(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3), p.283 참조.
- 99)‘모든 잡염’이라 한 것은 번뇌煩惱(惑)·업業·생生 등 세 종류 잡염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뒤의 ‘② 삼성관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건립한 뜻을 설명함(約三性觀辨立三無性意)’에서 자세히 설한다.
- 100)위의 경문은 승의무성勝義無性에 의거해서 ‘무생무멸無生無滅’ 등의 문구를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경에서는 ‘의타기依他起에는 승의勝義가 없다’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을 설하기도 하고, ‘원성실圓成實의 승의 그 자체가 무성無性이다’라는 의미에서 승의무성을 설하기도 한다. 지금 위의 경문은 후자의 의미로 ‘무생무멸’ 등을 해석하였다.
- 101)“安住無爲一切雜染不相應故”라는 경문에는 ‘고故’라는 글자를 한 번만 사용했지만, “안주하기 때문이고, 무위이기 때문이며, 잡염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주와 무위’는 ‘생함이 없고 멸함도 없다’고 설하는 이유이고, ‘잡염과 상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본래적정과 자성열반’이라고 설하는 이유에 해당한다.
- 102)이전의 경문에서는 변계소집상은 자상이 없기(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생무멸’이라 했다면, 반대로 이 경문에서는 궁극적 진리(勝義諦)는 언제나 법계에 안주安住하는 무위법無爲法이기 때문에 ‘무생무멸’이라 하였다. ‘무위’란 인연因緣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무위법은 인연에 의지해서 생하는 것이 아니고, 생하지 않으므로 멸하는 일도 없다. 따라서 이 무위법을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한다.
- 103)지금까지 이 「無自性相品」에서는 “〔1〕 一切法皆無自性, 〔2〕 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이라는 문구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앞의 〔1〕에 대해서는 통틀어 세 종류 무성에 의거해서, 뒤의 〔2〕에 대해서는 첫 번째 상무성相無性과 세 번째 승의무성勝義無性에 의거해서 해석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이 질문한 것이다. 이하에서는 그에 대해 긴 지면을 할애하여 답하고 있다. 이하에서 원측은 소승·대승이 공통으로 설하는 무성의 뜻과 대승에서만 설하는 무성의 특수한 뜻을 자세히 소개하는데, 여기에는 삼무성의 교설에 내포된 매우 중요한 내용이 진술된다. 원측에 따르면, 오직 대승에서만 밝힌 ‘공空’의 특별한 의미는 ‘변계소집상의 무無’, 즉 상무성相無性이다. 대승의 여러 경론들에서는 무성無性·공空을 설할 때 통틀어 삼무성에 의거해서 자세히 설한 경우도 있고 두 종류 무성이나 한 종류 무성에 의거해서 설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어떤 경우이든 반드시 상무성相無性을 설한다는 것이다. 호법종護法宗에 따르면,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본래 실체가 없는(本無) 것으로서 반드시 부정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104)‘자연무自然無’란 자연유自然有 혹은 자연생自然生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일체법은 여러 인연을 따라서 생겨나는 것이지 대자재천大自在天과 같은 유일한 승인勝因에서 생겨나거나 원인 없이(無因) 저절로 생겨나지 않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의미는 삼무성설에서는 의타기의 생무성生無性이라 표현되었다.
- 105)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345c23).
- 106)여기서는 ‘무성無性’의 일반적 의미 이외에 좀 더 특수한 의미를 설하고 있다. 범부들에 의해 실재한다고 집착된 상相들은 사실은 가짜 이름(假名)에 의거해서 안립된 상들의 세계이다. 이것을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이라 한다. 이 변계소집상은 그것의 실재성에 집착하는 범부의 정情 속에서만 있는 것일 뿐, 집착된 그대로의 것이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변계소집상에 대해서는 ‘본래 없다(本無)’는 의미에서 ‘무성’을 설한다. 이와 같은 무성의 의미는 소승에서는 설한 적이 없고 오직 대승의 보살에게만 설해진 것이다.
- 107)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345c29).
- 108)『集論』 권6(T31, 687c29), 『雜集論』 권12(T31, 751c25), 무성無性의 『攝大乘論釋』 권5(T31, 408a27) 등 참조.
- 109)『大乘廣百論釋論』 권10(T30,248a19).
- 110)『瑜伽師地論』 권74(T30, 706a15), 『大乘莊嚴經論』 권5(T31, 614c29),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345c23),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5(T31, 408a28) 참조.
- 111)『瑜伽師地論』 권73(T30, 702b17).
- 112)『瑜伽師地論』 권73(T30, 702c4).
- 113)방광분方廣分(ⓢ vaipulya) : 십이분교十二分敎 중의 하나로서, 특히 광대하고 심오한 교의를 설한 것을 가리킨다.
- 114)원측이 인용한 『雜集論』의 문장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1〕)은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다.(一切法皆無自性)”라는 문구에 대한 해석이고, 둘째 단락(〔2〕)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본래 적정하여 자성열반이다.(無生無滅本來寂靜自性涅槃)”라는 문구에 대한 해석이다. 위 인용문 중 전반부는 첫 번째 문구(〔1〕)에 나온 해석임을 나타내기 위해 앞에 『雜集論』의 문구를 추가하였다.
- 115)『雜集論』 권12(T31, 752a8).
- 116)상비밀相秘密 : 십이분교의 방광분方廣分 등에서 설해진 네 종류 비밀 중의 하나이다. 특히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 등 삼성 또는 삼무성에 의거해서 무성無性·공空의 밀의를 설한 것을 말한다. 이 네 종류 비밀에 대해서는 이하의 ‘㉱ 결론’의 문답에 자세한 해석이 나온다.
- 117)『雜集論』 권12(T31, 752b16).
- 118)사비밀四秘密 : 여래가 어떤 교법을 설할 때의 비밀스런 의취·의도 등을 네 종류로 구분한 것으로, 영입비밀令入秘密과 상비밀相秘密과 대치비밀對治秘密과 전변비밀轉變秘密을 말한다. 네 종류 비밀의 구체적 의미는 이하의 『雜集論』 인용문에서 다시 자세히 진술된다.
- 119)이상은 『雜集論』 권12(T31, 752b12~21) 참조.
- 120)『雜集論』을 인용하여 네 가지 비밀(四秘密)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중간에 원측의 해설이 추가되었다. 이 해설(해)은 앞의 인용문 말미에서 거론된 ‘대치비밀對治秘密’에 대해 부연해서 설명한 것이다. 이 단락을 제외하면 전후의 인용문은 모두 『雜集論』의 문구다. 따라서 원측이 보완적 설명을 추가한 내용임을 나타내기 위해 중간에 ‘해’를 추가하였다.
- 121)‘후회하는 행(悔行)을 대치한다’는 것은 이전의 『雜集論』 인용문에서 언급된 일곱 번째 ‘악작惡作’을 대치하는 것을 말한다.
- 122)이상의 원측의 해설은 모두 『大乘莊嚴經論』 권6(T31, 621a4~20)에 의거한 것이다.
- 123)전변비밀이란 일종의 밀어密語와 유사한 것으로, 언어의 다의성을 이용해서 표면적 의미와는 다른 그 밖의 의미를 설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밀스런 언어는 쉽게 이해되지 않고 얼핏 보면 매우 혼란스러운 문구들로 여겨진다.
- 124)앞에 나온 “견고하지 않은 것에서 깨달아 견고해지고(覺不堅爲堅)”라는 문장의 밀의를 해석하면서, “산동되지 않은 것(不散動)에서 견고하고 뛰어난 깨달음(堅固勝覺)을 일으킨다.”라는 말과 같다고 하였다. 이 해석에 따르면, 본래의 게송 문구에서 ‘견고(堅)’라는 말이 두 번 사용되었는데, 전후로 상이한 의미로 쓰인 것이다. 〔1〕 앞의 ‘견고하지 않은 것(不堅)’은 ‘산동되지 않은 것(不散動)’을 뜻하므로, 이때의 ‘견堅’은 ‘산동散動’의 의미와 같다. 〔2〕 뒤의 ‘견고해진다’는 것은 ‘견고하고 뛰어난 깨달음을 일으킨다’는 뜻이므로, 이때의 ‘견’은 ‘진실眞實’과 같은 뜻이다. 이처럼 한 문구 안에서 상반되는 밀의를 담아서 동일한 단어를 썼기 때문에 그 문구의 의미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 125)여기에 나온 ‘剛逸’의 정확한 의미는 이 논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가령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346b28)에 “覺不堅爲堅者。 不堅。 謂定由不剛强馳散難調。 故名不堅。”이라는 해석이 나오는데, 이에 준해 보면 ‘剛逸’은 구체적으로는 ‘剛强馳散難調’를 뜻한다. 말하자면 마음이 산동되어 억세게 밖으로 치달리므로 조율되기 힘든 상태를 나타낸다.
- 126)이것은 밀의密意로 ‘산동散動’을 일컬어 ‘견堅’이라 말했던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산동’이란 마음이 산란되어 외부 경계로 억세게 치달려 가서 조율하기 힘든 상태이기 때문에 ‘견고하다’고 한다. 이런 의미로 ‘견’이라 할 경우, ‘견고하지 않은 것’이란 ‘산동되지 않는 것’, 즉 선정(定)을 뜻한다.
- 127)‘전도에 잘 머문다’는 말은 표면적 의미와는 다르다. 여기서는 상常·낙樂·아我·정淨이라는 네 가지 전도顚倒를 능히 뒤집는 것을 ‘전도’라고 이름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정不淨한 몸(身)을 깨끗하다(淨)고 보거나, 감각(受)이란 고苦인데도 낙樂이라고 여기거나, 마음(心)은 무상한데도 영원하다(常)고 보거나, 법法에는 실체가 없는데도(無我) ‘실체가 있다(我)’고 여기는 등을 네 가지 전도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그 네 가지 전도된 생각을 뒤집어서 부정不淨·고苦·무상無常·무아無我 등이라고 관할 수 있는 것을 일컬어 ‘전도’라고 표현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전도에 잘 머무는 자가 최상의 보리를 얻는다고 하였다.
- 128)앞에서 설했던 세 가지 일이란, ① 견고하지 않은 것(선정)에서 깨달아 견고해지고, ② 네 가지 전도를 역전시켜서 무상無常 등을 관하며, ③ 온갖 고행을 다 감수하는 것을 가리킨다.
- 129)이상은 『雜集論』 권12(T31, 752b21~c1) 참조.
- 130)제1시時의 유성有性의 교설은 성문승에게 두려워하지 않고 점차로 성스런 가르침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설한 것이기 때문에 성문승의 영입을 위해 밀의로 설한 것이다.
- 131)제2시의 무성의 교설은 모두 ‘상비밀’이라는 밀의로 설한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상비밀’에 의해 설하는 경우에도 경론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세친과 무성의 『攝大乘論釋』 등에서는 관행자들이 알아야 할(所知) 모든 법상(諸法相)으로서 변계소집遍計所執·의타기依他起·원성실圓成實 등 삼자성三自性에 대해 설한 것을 일컬어 ‘상비밀’이라 한다. 반면에 『雜集論』과 『大乘莊嚴經論』은 이 『解深密經』과 마찬가지로 삼무성三無性을 설한 것을 ‘상비밀’이라 한다. 말하자면 상무성相無性에 의거해서 변계소집의 상相은 본래 없음을 설하고, 또 ‘생무성生無性’ 및 ‘승의무성勝義無性’ 등에 의거해서 의타기와 원성실에는 그와 같은 변계소집의 증익된 상(增益相)이 없음을 현시하기 때문에 ‘상비밀’을 설한 것이다.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5(T31, 346b24),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5(T31, 408c19), 『雜集論』 권12(T31, 752b16) 참조.
- 132)이하에서는 삼성관三性觀에 의거해서 삼무성을 설한 뜻을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다시 삼무성설을 설한 비밀스런 의도를 밝힘으로써 이 교설의 참다운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그에 따르면, 변계소집상의 언설이 원인(因)이 되어 집착이 일어나고 다시 그 집착은 결국 미래의 의타기의 잡염법을 생하기 때문에 생사의 세계에서 쉬지 않고 유전流轉하게 된다. 이러한 생사유전의 인과因果를 끊도록 하기 위해서 삼성에서 삼무성을 시설하고 그것을 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無自性相品」에서 설한 삼성관을 이전의 「一切法相品」의 그것과 대조해 보면 그 특징이 드러난다. 이 품에서는 미래의 의타기의 잡염법을 생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서 ‘가립된 언어(假名)’를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변계소집상의 무無를 안다는 것은, 가립된 언어가 본래 실체 없는 가명에 불과함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삼무성을 설하는 취지도 일차적으로는 그러한 가립된 언어에 대한 실재론적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 133)앞의 과목 분류에는 ‘삼성문三性門’이 ‘삼성관三性觀’으로 되어 있다.
- 134)반석反釋 : 반해反解라고도 하며 뒤의 순해順解와 대칭되는 말이다. 도리와는 상반되는 사례를 들어 그것이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해석 방식이다.
- 135)순해順解 : 순석順釋이라고도 하며 앞의 반석反釋과는 대칭되는 말이다. 이전의 반석과는 달리, 이 순석은 처음부터 도리와 사실에 수순해서 해석함으로써 그로부터 합당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을 말한다.
- 136)위의 경문의 뜻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여기서 진술된 것은 그중 첫 번째 해석이다. 이 첫 번째 해석에 따르면, 변계소집성은 범부의 정情 속에서 실재라고 집착되지만 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무無’이기 때문에 반드시 ‘버려야할 것(所遣性)’이지만,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무無’라고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세 종류 무성(三無性)은 단순히 세 종류 자성(三性)의 실재성을 각기 따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세 종류 무성이 모두 변계소집성의 무無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 137)이 두 번째 해석(해)에서는 변계소집성의 증익增益된 상相과 의타기·원성실의 관계를 더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중생들이 의타기·원성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함으로써 두 자성에다 변계소집상을 증익시킨다. 다시 말하면 범부들은 의타기성과 원성실에는 ‘두루 분별하는 마음속에 집착된 상(遍計所執相)’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도 그에 대해 실재론적 집착을 일으킨다. 따라서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에서 증익增益의 집착을 막기 위해’ 삼무성을 설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이 『解深密經』의 전후 경문과도 잘 맞는다.
- 138)두 번째 해석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유정들이 의타기자성 및 원성실자성에다 변계소집자성을 증익시키기 때문에 나는 세 종류 무자성성을 건립하였다.”라는 경문과 일치하기 때문에 더 뛰어난 해석이라고 하였다.
- 139)변계소집의 상들은 ‘자상自相으로 말미암아 상으로 안립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본래 실재하지 않고 가립된 이름만 있다’는 말과 같다. 이러한 상들은 ‘본래 무(本無)’라고 부정하는 맥락에서 ‘상무성相無性’을 설한 것이다. 자세한 것은 이전의 p.99 ‘㉮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 참조.
- 140)예를 들어 제법은 대자재천大自在天과 같은 유일한 인因으로부터 자연적으로 생한다(自然生)고 여기는 경우, 이것은 다른 연들에 의지해서 생기하는(依他起) 제법에 대해 그것들의 승인勝因이 있다고 증익시킨 것이다. 따라서 생무성生無性을 설하여 연생법緣生法 가운데는 그와 같은 유일한 승인이 없다고 부정하였지만, 연생법 자체가 없다고 부정한 것은 아니다. 자세한 것은 p.103 ‘㉯ 생무자성성生無自性性’ 참조.
- 141)아공我空·법공法空에 의해 현현된 무성無性의 이치 그 자체가 진여이고, 이러한 진여는 언어를 넘어선 참된 실재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언진여離言眞如’에 대해 ‘진여’라는 이름으로 어떤 언어적 표상을 떠올리거나, 혹은 본질적으로 무자성無自性인 제법에 대해 가명假名에 의거해서 두루 헤아림으로써 집착된 상(遍計所執相)들 그 자체가 원성실성(진여)에 대해 증익을 일으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원성실성(진여)에서 변계소집성을 증익시키기 때문에 ‘승의무성’을 설한 것이지, 원성실성을 ‘없다(無)’고 부정하기 위해 승의무성을 설한 것은 아니다.
- 142)이후의 경문에서 언급되듯, 언설훈습言說熏習과 언설수각言說隨覺과 언설수면言說隨眠 등 세 가지 인因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 143)이후의 경문에서 언급되듯, 번뇌煩惱(惑)의 잡염, 업業의 잡염, 생生(苦)의 잡염에 의해 더럽혀져 육취의 생사에서 유전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 144)이하 원측의 해석을 보면, ‘如如隨起言說’이라는 문구는 “隨彼如如。 起諸言說。”로 풀이되고, ‘如如’는 다수의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 145)이것은 마음에 내재된 명언훈습종자名言熏習種子를 가리킨다. 무시이래 반복되어 온 언어적 분별 활동이 마음을 훈습함으로써 그 흔적을 남기는데, 이것이 명언훈습종자다. 이러한 인因이 마음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다시 마음에 언어와 결합되는 제법의 상들이 현현하는 것이다. 이하의 ‘b. 세 가지 인으로 인해 집착을 생함’에서 진술하듯, 이 명언종자는 집착을 일으키는 직접적 원인(因緣)에 해당한다.
- 146)‘언설을 따라 자각한다(言說隨覺)’는 것은 예를 들어 육도중생 중에 인人·천天처럼 언어를 이해하는 유정들이 언어를 매개로 하여 사물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 147)‘언설이 수면하고 있다(言說隨眠)’는 것은 예를 들어 갓난아이(嬰兒)나 짐승들의 경우처럼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언어가 잠재된 상태(隨眠)에서 분별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
- 148)세 종류 훈습(三熏習) : 세 종류 습기(三習氣)라고도 하며, 일체법을 내는 종자種子를 세 종류로 구분한 것이다. 즉 명언훈습종자名言熏習種子(혹은 ‘명언습기’라고 칭함), 아집훈습종자我執熏習種子(혹은 ‘아집습기’라고 칭함), 유지훈습종자有支熏習種子(혹은 ‘유지습기’라고 칭함)를 말한다. 원측은 이전의 『解深密經疏』 「心意識相品」에서 ‘종자식種子識’에 대해 설명하면서 세 종류 습기를 자세히 해석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원측/백진순 옮김, 『해심밀경소 제3 심의식상품·제4 일체법상품』(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3), pp.107~116 참조.
- 149)유정들이 집착을 내고 생사에서 유전하게 되는 첫 번째 인因은 세 종류 종자 중에서 명언훈습종자名言熏習種子이다. 이 명언훈습종자는 언어적 분별을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훈습되어 이루어진 종자를 말하는데, 이것이 일체법을 생하는 직접적 원인(因緣)으로 간주된다.
- 150)위 경문에서는 의타기를 설하면서 잡염법에 국한해서 논하였지만, 이전의 「一切法相品」에서 언급되었듯, 의타기란 잡염법뿐만 아니라 무루無漏의 도제道諦 등과 같은 청정법淸淨法도 포괄하는 용어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원측은 이 경의 「一切法相品」에서 설한 삼성설의 차이에 근거해서 두 문을 도출한 바 있는데, 첫째는 소집所執·잡염雜染·부도不倒의 문이고, 둘째는 소집所執·연생緣生·불변不變의 문이다. 두 문은 ‘집착된 것’을 모두 변계소집으로 본다는 점은 동일한데, 다만 의타기와 원성실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만약 연생하는 유위법 중에서 오직 잡염법만을 의타기라고 하고, ‘전도되지 않은 것(不倒)’이라는 포괄적 관점에서 청정한 유위有爲의 도제道諦 및 무위無爲의 진여 등을 모두 ‘원성실’로 간주하면 첫 번째 문(소집·잡염·부도)이다. ‘인연에 의지해서 생겨난다(緣生)’는 점에서 모든 유위법有爲法들을 ‘의타기’로 간주하고 청정한 법 중에서도 오직 변치 않는 무위의 진여에만 국한시키면 두 번째 문(소집·연생·불변)이다. 이 경의 「一切法相品」에서는 삼성의 기본 정의에서는 두 번째 문에서 설했지만, 특히 삼성의 관법觀法을 설명할 때는 첫 번째 문에 의거해서 변계소집상의 언어들이 시설되는 실질적 근거(所依)로서의 잡염법만을 의타기라고 하였다. 지금 이 「無自性相品」에서는 후자와 같은 맥락에서 설하였다. 원측/백진순 옮김, 『해심밀경소 제3 심의식상품·제4 일체법상품』(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3), pp.261~263 참조.
- 151)오근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이숙오근異熟五根이니, 이것은 업業으로 인해 감득된 선천적인 것을 말한다. 둘째는 장양오근長養五根이니, 이것은 음식이나 음식과 자조資助(몸에 이로운 오일을 바르거나 목욕하는 것)와 수면睡眠과 등지等持(선정) 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을 말한다. 의타기법에는 이숙오근뿐만 아니라 장양오근도 포함되지만, 세 종류 잡염법에는 장양오근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 152)혹惑(번뇌)·업業·생生 : 이 세 종류를 ‘삼잡염三雜染’이라고 한다. 이 중에, 혹잡염은 번뇌잡염이라고도 하며, 모든 번뇌 및 수번뇌를 총칭한 것이다. 업잡염이란 번뇌가 인因이 되어 생겨나거나 혹은 번뇌가 인이 되고 선법의 조장助長이 연緣이 되어 생겨난 것, 즉 삼계의 신업·어업·의업 등을 가리킨다. 생잡염이란 이전의 번뇌와 업이 원인이 되어서 생겨나고 생함이 원인이 되어서 고苦가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세 종류 잡염은 미혹의 인과因果를 나타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번뇌에 의해 선악의 업을 짓고, 업에 의해 삼계에서 고락의 과보를 받으며 나고 죽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 153)소연박所緣縛·상응박相應縛 : 심식에 의해 인식되는 경계를 소연所緣이라 하고, 이 심식이 경계 때문에 그 작용이 제약되어 속박되는 것을 ‘소연박’이라 한다. 예를 들면 안식은 색만 인식할 뿐 그 외의 성·향 등을 대경으로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상응박’은 마음이 그와 상응해서 일어나는 견혹見惑이나 수혹修惑에 속박되는 것을 말한다.
- 154)분단생사分段生死·변역생사變易生死 : ‘분단생사’란 유루의 선악업을 지은 중생들이 수명의 장단이나 육체의 대소 등에 의해 제약되는 ‘몸’을 과보로서 받으면서 삼계 안에서 생사유전하는 것을 말한다. ‘변역생사’란 아라한·벽지불·대력보살 등이 삼계 밖에서 뛰어나고 미묘한 과보신 즉 의생신意生身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 몸은 자비와 원력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수명이나 육체를 모두 자유롭게 변화시키거나 뒤바꿀 수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없다.
- 155)『順正理論』 권21(T29, 461a15).
- 156)『大毘婆沙論』 권172(T27, 865b27).
- 157)『雜阿毘曇心論』 권8(T28, 936b7).
- 158)『雜阿毘曇心論』 권8(T28, 936b7).
- 159)『順正理論』 권21(T29, 461a19).
- 160)『大毘婆沙論』 권172(T27, 866c16) 참조.
- 161)오취五趣 중에서 다른 유정에게 많은 것을 갈망하는 자는 이보다 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아귀餓鬼’라고 한다는 것이다.
- 162)『雜阿毘曇心論』 권8(T28, 936b8).
- 163)『順正理論』 권21(T29, 461a23).
- 164)이 아귀는 기갈飢渴의 과보를 감득해 내는 업을 쌓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경과해도 ‘물’ 이름조차 듣지 못하거나, 혹은 배는 산만큼 큰데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해서 비록 마실 것을 마주해도 넘길 수가 없다고 한다. 『大毘婆沙論』 권172(T27, 867a27) 참조.
- 165)『大毘婆沙論』 권172(T27, 867a27).
- 166)천天을 광명光明이라 한 것에 대해, 몇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뒤의 『大毘婆沙論』의 인용문에서 ‘천의 자연신自然身 자체가 광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 것처럼, 천은 다른 무엇보다도 광명이 증상增上된 존재임을 뜻할 수 있다. 한편 『順正理論』 권21(T29, 461a25)에서는 “천은 광명을 말하니, 위덕이 치성하고 담론을 놀이 삼아 즐기면서 용감하게 서로 능가한다.(天謂光明。 威德熾盛。 遊戲談論。 勇悍相陵。)”라고 하였는데, 이때 ‘광명’이란 천의 정신적 자질과 능력을 표현한 말일 수도 있다.
- 167)『雜阿毘曇心論』 권8(T28, 936b8) 참조.
- 168)『順正理論』 권21(T29, 461a27).
- 169)『大毘婆沙論』 권172(T27, 868a20).
- 170)이하 『順正理論』과 『大毘婆沙論』 등에 따르면, 아소락阿素洛은 본래 천취天趣에 속하는 부류인데 천天과 비교하면 행실과 능력이 천답지 않기 때문에 ‘비천非天’이라고 부른다. 이는 마치 사람이 사람답지 않을 때 ‘사람이 아니다(非人)’라고 하는 경우와 같다. 그런데 아소락은 천취나 귀취鬼趣 또는 축생畜生에 속한다는 설이 있다. 따라서 살바다종의 『大毘婆沙論』이나 유식종의 『瑜伽師地論』 등에서는 육취六趣에서 아소락을 빼고 오취五趣(혹은 오도五道)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원측/백진순 옮김, 『해심밀경소 제3 심의식상품·제4 일체법상품』(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13), pp.117~119 참조.
- 171)『順正理論』 권21(T29, 461b21).
- 172)아소락의 부류들은 대개 용모가 단정端正하지 못하고 추하기 때문에 ‘부단정不端正’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 173)『大毘婆沙論』 권172(T27, 868b4).
- 174)『雜阿毘曇心論』 권8(T28, 936b8) 참조.
- 175)『順正理論』 권21(T29, 461a25) 참조.
- 176)『大毘婆沙論』 권172(T27, 867c18).
- 177)이하에서는 자량위資糧位·가행위加行位·통달위通達位·수습위修習位·구경위究竟位 등 유식오위唯識五位에 의거해서 삼무성三無性을 설한 뜻을 설명하였다. 오위 중에 최초의 자량위(十信에서 十廻向까지)와 십신 이전의 지위에서 해탈분의 선근을 심는 사람들에게는 ‘생무성生無性’을 설해 준다. 이 지위의 사람들은 복덕·지혜의 선근을 아직 충분히 쌓지 못했기 때문에 먼저 ‘인연에 의지해서 생기한 법들은 자성이 없다’는 것을 설해 준다. 그런데 이미 선근을 심었다고 해도 제법이 환과 같음을 아직 알지 못하면, 진정으로 그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낼 수 없다. 따라서 가행위 이후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변계소집상이 가립된 언어에 불과함을 일깨워 주기 위해 ‘상무성相無性’ 및 ‘승의무성勝義無性’을 설해 준다. 이하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유식오위 중에 가행위·통달위·수습위에 의거해서 상무성·승의무성을 관하고, 마지막 통달위(無學位)에서는 인위적으로 닦는 것이 없다.
- 178)여기서 ‘오위’라 한 것은, 자량위資糧位·가행위加行位·통달위通達位 등의 유식오위唯識五位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 종류 무성 중에 ‘생무성’을 설해 주어야 할 다섯 부류들을 가리킨다. 이하 원측의 해석에 나타나듯, 가행위 이전에 순해탈분을 닦는 다섯 계위를 가리킨다. 자세한 것은 다음 주석 179 참조.
- 179)대승의 순해탈분(大乘順解脫分) : 복덕과 지혜라는 조도助道의 자량資糧을 쌓는 단계, 즉 자량위資糧位를 가리킨다. 이 지위에서 선근을 닦아서 해탈의 과果에 수순해 가기 때문에 ‘순해탈분’이라고 한다.
- 180)원측은 보살의 52계위 중에 자량위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밝히면서, “십신十信에서 십회향十迴向까지”라고 하였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십회향의 아홉 번째 마음까지’이고, ‘십회향의 열 번째 종심終心’은 제외된다. 이 열 번째 종심은 다음의 가행위에 배대시켰다.
- 181)대승의 순결택분(大乘順決擇分) : 소승에서는 견도 이전에 닦는 난煖·정頂·인忍·세제일법世第一法의 사선근위四善根位 등을 총칭하는데, 이 단계는 진실한 결택(眞實決擇 : 견도)에 수순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순결택분’이라 한다. 대승에서는 초지初地에 들기 직전, 즉 십회향의 마지막 마음(終心)에 해당한다.
- 182)원측은 보살의 52계위 중에 가행위는 십회향의 열 번째 종심終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종심이란, 십회향 중에 열 번째 회향인 ‘법계무량회향法界無量迴向’을 가리키는데, 이는 수많은 모든 선근을 수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후의 해석에서 다시 언급되듯, 가행위에 대해 여러 학설들이 있었던 듯하다. 이것이 보살 수행의 완성에 걸리는 삼아승기겁 중에 제1아승기겁에 속한다는 해석도 있고, 제2아승기겁에 속한다는 해석도 있다. 원측이 말한 ‘십회향의 열 번째 종심’은 제1아승기겁에 속하는 것이고, 이것이 호법종護法宗의 일반적 해석이다.
- 183)통달위通達位는 보살의 견도見道에 해당하며, 보살의 계위 중에서는 처음으로 초지初地에 든 마음(初入地心)에 해당한다.
- 184)수습위修習位는 보살의 수도修道에 해당하며, 보살의 계위 중에서는 초지初地 이상에서 제10지地의 마지막 금강심金剛心까지를 말한다.
- 185)이상의 인용문 중에서 자량위와 가행위에 추가된 해설(해)을 제외하면, 모두 『成唯識論』 권9(T31, 48b11)의 문장과 일치한다.
- 186)위의 『解深密經』 경문에서는 생무성生無性을 설해 주어야 할 대상들을 모두 다섯 부류로 구분하였는데, 그들은 모두 자량위(십신에서 십회향까지) 및 십신 이전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해당한다.
- 187)뒤의 경문에서 상무성相無性과 승의무성勝義無性에 대해 설해 주는 대상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유식의 오위 중에서는 가행위加行位·통달위通達位·수습위修習位에 해당한다.
- 188)무학위無學位의 성자들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삼무성의 교설을 설해 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소위所爲’란 ‘위하는 대상’, 즉 교설을 설해 주는 대상을 가리킨다.
- 189)여기서 ‘그 대상(彼所爲)’이라고 한 것은 ‘생무성生無性’의 교敎를 설해 줄 대상으로서 자량위資糧位의 사람들을 가리키고, ‘다섯 가지 지위’란 그 자량위를 다시 다섯 부류로 구분한 것이다.
- 190)『深密解脫經』 권2(T16, 671b20).
- 191)불공무명不共無明 : 독두무명獨頭無明이라고도 하며, 그 밖의 탐貪 등의 근본 번뇌와 상응하지 않고 일어나는 무명을 말한다.
- 192)『分別緣起初勝法門經』 권2(T16, 841c28) 참조.
- 193)『深密解脫經』 권2(T16, 671b22).
- 194)승해勝解 : 유식종唯識宗에서는 오별경심소五別境心所 중의 하나로서, 대상 경계에 대해 확정해서 판단하는 정신 작용을 가리킨다. 소승의 살바다종의 경우, 지혜의 간택력에 의해 번뇌를 끊고 해탈을 얻는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이 승해를 유위해탈有爲解脫의 자성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 195)중간의 “내지는”이라는 말로 생략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직 장애를 청정하게 하지 못한 자가 청정하게 하고, 아직 선근의 상속을 성숙시키지 못한 자가 성숙시키게 하고, 아직 승해를 많이 닦지 못한 자가 많이 닦게 하고, (아직 자량을 갖추지 못한 자가……)≻
- 196)여기서 말하는 ‘오사五事’란 앞의 경문에서 언급되었던 다섯 가지 사항, 즉 선근을 심고, 장애를 청정하게 하며, 선근의 상속을 성숙시키고, 승해를 많이 닦으며, 복덕·지혜라는 두 가지 자량을 적집하는 것을 말한다. 이 해석(해)에 따르면, 위의 경문에서는 단지 자량위에서의 차별적 수행들을 다섯 가지로 구분한 것일 뿐, 오위五位에 대응시켜 설한 것은 아니다. 반면 이전의 해석에 따르면, 이 오사는 십신十信 이전의 지위, 십신과 십해十解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廻向의 네 가지 지위(40심心)에 각기 대응되는 것이다.
- 197)이 해석에 따르면, 제법의 발생에 대한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생무성生無性을 설한 것이다. 그중 하나는 ‘모든 것이 원인 없이 생긴다’고 하는 무인론無因論을 차단하기 위해 ‘제법은 인연에 의지해서 생기한다’는 것을 설한다. 또한 이러한 인연에 의지해서 생기하는 제법 중에는 ‘자연으로 말미암은 것은 없다.’ 여기서 ‘자연으로 말미암아 생하는 것이 아니다(非自然生)’라고 할 때는 특히 ‘모든 것이 대자재천大自在天과 같은 승인勝因에서 생겨난다’고 하는 집착을 부정한 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많은 인연들에 의지해서 생기하는 제법 중에는 대자재천과 같은 그릇된 원인에서 생겨난 것은 없다’는 의미에서 ‘생무성’을 설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의 p.104 ‘d.해석’의 해당 번역문과 주석 참조.
- 198)오사五事란 순해탈분順解脫分의 선근善根을 심고, 죄업罪業과 같은 장애를 청정해지게 하며, 신信 등의 선근의 상속相續을 성취하고, 결정적 승해(決定勝解)가 많이 현전하며, 복덕과 지혜 두 종류 자량이 쌓여서 구족되는 것을 말한다.
- 199)무간도無間道란 번뇌의 현행을 바로 제거하는 지위로서 해탈도의 직전의 지위를 가리키고, 무간도에서 번뇌를 끊음과 동시에 무간으로 한 순간 정지正智가 생겨나는데 이 정지에 의해 진리를 깨닫는 지위를 해탈도解脫道라고 한다. 이 두 가지 도에다 견도 이전에 선근을 닦는 가행도加行道, 그리고 견도의 해탈도 이후에 다시 진일보하여 수승한 행을 일으켜 해탈을 완성하는 것을 승진도勝進道라고 한다.
- 200)세 종류 잡염에 대해서는 p.157 ‘a) 세 가지 잡염으로 인해 생사生死에서 유전함’ 해당 번역문과 주석 참조.
- 201)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대승보살의 계위에서 가행위란 십회향十廻向의 열 번째 종심終心에 해당한다. 이 지위에 도달하면 상무성과 두 종류 승의무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교법을 설해 준다.
- 202)이전의 원측의 해석에서 이미 언급되었듯, 유식오위唯識五位 중에 자량위資糧位는 십신十信·십해十解·십행十行·십회향十迴向 등의 40위에 해당하고, 가행위加行位는 십회향의 종심終心에 해당한다. 그런데 진제 역 『攝大乘論』 권3(T31, 126c2) 등에 따르면, 지전보살地前菩薩에 해당하는 십신·십해·십행·십회향 등의 40위는 제1아승기겁에 속하고, 십지十地 중 초지初地에서 제7지까지는 제2아승기겁에 속하며, 제8지에서 제10지까지는 제3아승기겁에 속한다고 한다. 이런 구분에 따를 때, 가행위에 해당하는 ‘십회향의 종심’은 제1아승기겁과 제2아승기겁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 애매해진다. 따라서 가행위가 제1겁에 속하는지 제2겁에 속하는지에 대해 이견이 생긴 것이다.
- 203)제2승기僧祗 : 보살의 수행이 원만해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삼아승기겁三阿僧祗劫’이라고 하는데, 그중에 두 번째 아승기겁을 말한다. 아승기(ⓢ asaṃkhya)란 여기 말로 ‘무수無數’라고 번역한다.
- 204)미지정未至定 : 색계4선과 무색계4선에는 모두 근본정根本定에 들기 직전의 예비 단계인 근분정近分定이 있는데, 초선初禪의 근분정의 경우는 욕계를 벗어나서 본격적인 선정 단계에 들어간 상태는 아니므로 특별히 ‘미지정’이라 한다.
- 205)이 해석에 따르면, 십회향의 열 번째 종심終心은 극환희지極歡喜地(십지 중의 초지)에 아주 근접해 있는 방편도方便道이고, 극환희지가 제2아승기겁에 속하기 때문에 십회향의 종심도 제2아승기겁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색계의 4선 중에 이제 막 초선初禪에 들기 직전의 예비적 단계인 ‘미지정未至定’을 초선에 소속시키는 경우와 같다.
- 206)이 해석에 따르면, 십회향 중에서 열 번째의 종심終心은 어쨌든 아직 초지初地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다. 초지에 들어가야 제2아승기겁에 해당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제1아승기겁에 속한다는 것이다.
- 207)『成唯識論』 권9(T31, 49a29).
- 208)『成唯識論』의 해석에 따르면, 이전의 자량위에도 전혀 가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견도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따로 ‘가행위’라는 이름을 건립했을 뿐, 실제로는 자량위나 가행위나 모두 제1아승기겁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호법종은 두 번째 해석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 209)사심사四尋思·사여실四如實의 관觀 : 두 번째 가행위加行位에서 닦는 관법을 말한다. 『成唯識論』 권9(T31, 49b2)에 따르면, “사심사란 명名·의義·자성自性·차별差別이 가립된 존재일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유하는 것을 말한다. 이 네 가지 법이 식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고) 또 그 식도 존재하지 않음을 여실하게 두루 아는 것을 일컬어 여실지라고 한다.(四尋思者。 尋思名義自性差別假有實無。 如實遍知此四離識及識非有。 名如實智。)” 사심사관의 대상이 되는 네 가지 법 중에, ‘명’이란 가령 ‘색色’이나 ‘수受’와 같이 모든 법을 언표하는(能詮) 명칭을 가리키고, ‘의’란 그런 명칭들에 의해 언표되는(所詮) 사물 자체를 가리킨다. ‘자성’이란 가령 색色·수受 등과 같은 각각의 고유한 체를 가리키고, ‘차별’이란 그러한 색·수 등이 갖는 상相과 용用을 가리킨다. 또 이와 같은 명·의·자성·차별 등 소취所取의 네 가지 법이 식識을 떠나서는 실유하지 않고 또 능취能取의 식도 실유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하게 관하는 것을 일컬어 사여실관四如實觀 혹은 사여실지四如實智라고 한다.
- 210)사심사·사여실의 관에서는 그 파악되는 대상(所取)인 명名·의義·자성自性·차별差別 등 네 종류 법은 식識이 변현해 낸 것이므로 불가득不可得이라 관하고, 나아가서는 그 파악되는 대상이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능히 파악하는(能取) 식識 또한 실체가 없음을 관한다. 그런데 가행위加行位에서는 능히 파악하는 식마저 실체가 없다는 것까지는 완전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능연식能緣識은 보존하고 소취공所取空을 버린다.”라고 하였다.
- 211)십지十地 중 초지初地에 들면 보살의 견도見道에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지상地上의 두 지위’란 유식오위唯識五位 중에서는 견도에 해당하는 통달위通達位와 수도修道에 해당하는 수습위修習位를 가리킨다.
- 212)이 세 종류 ‘지智’는 이전의 경문에서 언급했던 세 가지 원인을 떠남으로써 획득된 지혜를 말한다. 이전의 경문에 따르면, 변계소집의 집착을 일으키는 직접적 원인은 ‘언설로 훈습된(言說熏習)’ 종자, 즉 명언훈습종자名言熏習種子가 마음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령 사람처럼 언어를 이해하는 중생들은 ‘언설을 따라서 알아차리고(言說隨覺)’, 가령 짐승들이나 갓난아이처럼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정들은 ‘언어가 잠재된 상태(言說隨眠)’에서 사물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언설을 분명하게 이해하면서 분별하든 혹은 언설의 수면 상태에서 분별하든 이것은 모두 ‘언어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이 경문에서 말한 세 종류 지는 모두 그런 언어적 분별을 떠난 지를 가리킨다.
- 213)후소득지後所得智 : 후득지後得智라고도 하고, 근본지根本智와 대칭되는 말이다. 진리에 계합하여 능연能緣(인식하는 마음)과 소연所緣(인식되는 대상) 간의 차별을 떠난 무분별지無分別智가 생겨나면, 이것을 근본지라고 하고 이 근본지 이후에 획득되는 지를 일컬어 ‘후소득지’라고 한다. 이 후소득지에는 분별 작용이 있어서 세속적 사事의 차별들에 대해 잘 분별한다.
- 214)이 해석에 따르면, 세 종류 지智는 모두 ‘후소득지後所得智’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상보살地上菩薩은 이미 견도見道에 들고 나서 곧바로 후소득지를 일으켜 변계소집·의타기·원성실의 경계를 반연한다. 그 각각의 경계에 대응해서 세 종류 지의 이름을 건립하였으므로, 그 순서대로 변계소집상의 언어에 집착함이 없는 지를 일컬어 ‘언설로 훈습되지 않은 지’라 하였고, 언설을 따라 분별(의타의 식識)을 일으키지 않는 지를 일컬어 ‘언설을 따라 지각하지 않는 지’라 하였으며, 명언으로 훈습된 종자까지 소멸시켜서 모든 종류의 잡염에서 해탈한 지를 일컬어 ‘언설의 수면을 떠난 지’라 한 것이다.
- 215)이 해석에 따르면, 세 종류 지智는 초지初地 이상의 보살이 획득한 두 종류 무성(相無性·勝義無性)을 터득한 지혜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두 종류 무성에 대한 지혜는 앞서 말한 세 종류 인因을 관해서 그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획득된 지혜이기 때문에 세 가지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 216)현재의 의타기의 식識(분별)이 훈습하여 미래의 과보果報를 낼 명언종자名言種子를 이루는데, 세 종류 지혜로 의타기의 분별을 소멸시킴으로써 영구히 미래의 과를 낼 인因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 217)방편지方便智 : 여기서는 뒤의 ‘근본지根本智(無分別智)’와 대칭되는 후소득지後所得智를 가리키며, 현상 세계의 차별을 잘 아는 지혜를 말한다.
- 218)근본지根本智 : 앞의 주석 213 참조.
- 219)이전의 해석에 따르면, ‘진정으로 환난을 싫어하는 것(正厭患)’은 가행도加行道에 해당하고, ‘진정으로 이욕하는 것(正離欲)’은 무간도無間道에 해당하며, ‘진정으로 해탈한다(正解脫)’는 것은 해탈도解脫道에 해당한다.
- 220)이하에서는 원측교학의 주요한 주제들의 하나, 즉 ‘일승一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원측은 이 부분을 크게 〔1〕 성도에 의거해서 일승의 뜻을 설명한 부분(約聖道辨一乘義), 〔2〕 취적성문은 결코 성불하지 못함을 밝힌 부분(明趣寂聲聞定不成佛), 〔3〕 회향성문은 반드시 성불할 수 있음을 밝힌 부분(明迴向聲聞定得成佛)으로 구분하였다. 원측의 해석에 따르면, 첫 번째 단락에서는 ‘방편일승方便一乘과 진실삼승眞實三乘’을 설하였고, 세 번째 단락에서는 ‘진실일승眞實一乘과 방편삼승方便三乘’을 설하였는데, 이처럼 가假·실實의 일승·삼승을 모두 갖추어 설했기 때문에 이 경의 일승 사상이 최상의 요의(最了義)라고 총평하였다. 나아가 원측은 일승의 두 가지 의미를 논란의 소지 없이 명료하게 해석하기 위해 오히려 가장 논쟁이 될 만한 두 학설을 자세히 검토하였다. 그것이 바로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설一切皆成說과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이다. 두 학설은 각기 위의 진실일승眞實一乘과 진실삼승眞實三乘을 강조하는데, 두 학설을 회통시켜 해석함으로써 이 경에서 설한 ‘일승’의 총체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다.
- 221)무여구경열반無餘究竟涅槃 : 이승二乘에서는 의지하는 몸(所依身)마저 사라진 회신멸지灰身滅智의 경지를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 하는데, 이와 구별해서 대승大乘의 무여열반을 일컬어 무여구경열반이라 하였다. 뒤의 『瑜伽師地論』에서도 언급하듯, 진여眞如라는 청정한 법계(淸淨法界)를 가리키는 말이다.
- 222)첫 번째 단락에서는 성문·연각·보살 등 세 종류 종성 ‘일체一切’에 의거해서 일승·삼승을 논하였다. 이 경우, 세 종류 종성은 실제로는 차별되지만 ‘하나의 성도聖道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방편으로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단락에서는 진실삼승眞實三乘·방편일승方便一乘을 설한 것이다.
- 223)정성이승定性二乘 : 종성이 성문聲聞·독각獨覺 등 이승二乘에 결정되어 있는 자를 말한다.
- 224)이승의 무여열반(二乘無餘涅槃) : 이승의 경우 열반에 들었으나 아직 소의신所依身이 남아 있는 상태를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 하고, 이미 목숨이 끊어져 소의신마저 사라진 상태를 무여열반이라 한다.
- 225)세 번째 단락에서는 부정종성不定種性이라는 ‘소분少分의 일체’에 의거해서 일승·삼승을 논하였다. 이 경우, 부정종성은 각각의 이문異門들에서 때로 성문·연각으로 불리고 때로 보살로 불리지만 그들은 궁극에는 성불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하나의 불승佛乘(대승大乘과 동의어)만 있고 삼승의 이름은 방편으로 설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단락에서는 진실일승眞實一乘·방편삼승方便三乘을 설한 것이다.
- 226)이 문구는 『妙法蓮華經』 권1 「方便品」(T9, 8a17)에 나온다. 이 게송에서 특히 ‘無二亦無三’이라는 문구에 대해 고래로 해석이 분분하였다. 그런데 원측은 이 게송은 부정종성에 의거해서 진실일승眞實一乘·방편삼승方便三乘을 설했던 대표적 사례로 간주하였다. 말하자면 부정종성은 결국 성불하는 자이기 때문에 ‘성문승’ 혹은 ‘연각승’이라 불리긴 해도 실제로 하나의 불승佛乘(一乘)만 있음을 설한 것이다. 이러한 원측의 관점에 따르면, ‘無二亦無三’에서 ‘無二’와 ‘無三’은 각기 성문승과 연각승을 부정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편의상 “두 번째도 없고 세 번째도 없다네.”라고 번역하였다.
- 227)첫 번째 단락에서는 성문종성·연각종성·불종성 등 세 종성에 대해서 ‘방편일승方便一乘·진실삼승眞實三乘’을 설했는데, 이는 『勝鬘經』의 설과 같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부정종성’에 대해서 ‘진실일승眞實一乘과 방편삼승方便三乘’을 설하였는데, 이는 『法華經』 「方便品」의 설과 같다. 이 『解深密經』은 가假·실實의 일승·삼승을 모두 구비해서 일승의一乘義를 설하였기 때문에 최상의 요의了義라고 하였다.
- 228)이상 성문聲聞·독각獨覺·보살菩薩에 대한 설명은 모두 『瑜伽釋論』, 즉 최승자最勝子 등이 짓고 현장이 번역한 『瑜伽師地論釋』 권1(T30, 887b20)에 의거한 것이다.
- 229)『深密解脫經』 권2(T16, 671c18).
- 230)이 해석에 따르면, 위 경문에서는 삼승의 도道와 그들에 의해 증득된 과果 두 가지가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 즉 “이 하나의 오묘하고 청정한 도”라고 한 것은 성도聖道를 말하고, “이 궁극의 청정”이란 증득된 과果를 말한다. 이러한 해석은 ‘오묘하고 청정한 도’와 ‘궁극의 청정’이 모두 성도를 뜻한다고 보았던 이전의 해석과는 차이가 난다.
- 231)이것은 『解深密經』 권4(T16, 708a13~18)에서 “觀自在菩薩復白佛言。 如世尊說。 若聲聞乘。 若復大乘。 唯是一乘。 此何密意。 佛告觀自在菩薩曰。 善男子。 如我於彼聲聞乘中。 宣說種種諸法自性……於大乘中。 卽說彼法同一法界。 同一理趣。 故我不說乘差別性。”이라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 232)여기서 언급된 일승의 두 가지 용법은, 이후의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설一切皆成說과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에 대한 논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원측에 따르면, 〔1〕 ‘이승(성문·연각)이 모두 불승(대승)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일승이라 한다. 이러한 의미의 ‘일승’은 부정종성不定種性이라는 일부(少分)의 종성에 의거해서 설해진 것이다. 부정종성은 ‘궁극에 성불하는 자’이므로 실제로는 하나의 불승佛乘이지만 임시방편으로 성문·연각이라 부르거나 혹은 보살이라 부른다. 이 경우 일승은 진실이고 삼승은 방편이다. 그런데 이런 맥락에서 진제의 일체개성설이 진술되었다면, 원측의 오성각별설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삼승의 종성 전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삼승의 차별이 진실이고 일승은 방편의 설이다’라는 주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2〕 또 ‘평등한 진여법신眞如法身은 오성각별한 모든 유정들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일승이라 한다. 이러한 의미의 일승은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이나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의 관점에서 모두 인정되는 것이다.
- 233)『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권1(T12, 220c19)에서는 “聲聞緣覺乘。 皆入大乘。 大乘者卽是佛乘。 是故三乘卽是一乘。”이라고 하였다.
- 234)이 『法華經』 권1 「方便品」(T9, 8a17)의 문구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여기서는 ‘無二亦無三’이라는 문구를 ‘두 번째 승(연각승)도 없고 세 번째 승(성문승)도 없으며 오직 하나의 대승(불승)만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 235)『妙法蓮華經論憂波提舍』 권1(T26, 18a25).
- 236)육합석六合釋 : 앞의 각주 33 참조.
- 237)‘일승一乘’이라는 단어는 수식하는 앞 단어가 수數로 되어 있는 복합어이므로 대수석帶數釋에 해당한다.
- 238)사지심품四智心品 : 사지와 상응하는 심품(四智相應心品)이라고도 하고, 간단히 ‘사지四智’라고도 한다. 유식종에 의하면, 전의轉依를 이루고 불과佛果를 획득했을 때 제8식과 제7식과 제6식과 전오식前五識이 각기 순서대로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 등 네 종류 무루지無漏智로 전환된다고 한다.
- 239)수용신의 차원에서 ‘일승’이라 했다면, 그때의 일승이란 ‘사지四智와 상응하는 심품’을 법체로 삼는 것이다. 법신의 차원에서 ‘일승’이라 했다면, 그때의 일승이란 ‘진여’를 법체로 삼는 것이다.
- 240)위의 경문에서는 성도聖道에 의거해서 ‘일승’을 설했지만, 총괄적으로는 교敎와 이치(理)와 행行과 과果의 차원에서 ‘일승’을 설할 수 있다는 말인 듯하다.
- 241)이하에서 원측은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설一切皆成說’과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소개하였다. 이 두 학설은 각기 진실일승眞實一乘과 진실삼승眞實三乘을 강조하였고, 그로 인해 정성이승定性二乘과 무종성無種性에게 성불의 의미가 있는가라는 문제에서 상반된 주장을 펼친다. 이하에서 원측은 진제 삼장처럼 ‘일승’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에서 정성이승이나 무종성도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지, 이와는 반대로 대당 삼장처럼 ‘오성이 각기 차별되며 성불하지 못하는 중생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과연 ‘일승’의 의미와 조화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검토하였다.
- 242)이하에서는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一切皆成’의 교리적 근거를 검토한다. 원측은 먼저 〔1〕 ‘일체가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하는 여러 경론의 문구들을 제시하고, 그 다음에 〔2〕 ‘무종성과 정성이승도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교리적 근거들을 검토해 보았다.
- 243)이하에서 인용된 ‘일체개성一切皆成’의 경전적 근거는 다시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五性各別의 관점에서 하나하나 회통시켜 해석하기 때문에 이후에 다시 거론되는 문장들에 각기 일련번호 ❶, ❷ 등을 부여하였다.
- 244)이하의 단락 ❶에서 원측은 『涅槃經』 제7권과 제27권에 의거해서 ‘불성佛性’을 이성理性과 행성行性으로 구분하였다. 이성이란 진여법신眞如法身으로서의 불성을 가리키고, 행성이란 수행을 통해 발현되는 불성을 가리킨다. 이성으로서의 불성은 모든 유정들에게 본래 갖추어진 것이므로 진제는 이런 의미에서 ‘일체개성’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행성은 현실적으로 없는 자도 있으므로, 단지 부정종성이라는 ‘소분少分의 일체’에 대해서만 ‘일체가 다 불성(행성)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일체개성’을 주장할 수 있다. 원측이 여기서 두 가지 불성을 구분한 것은,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과 대당 현장의 오성각별이 동일한 경전적 근거에 의거해서 양립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다. 이 점은 뒤에서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 경문 ❶을 재해석할 때 분명해진다.
- 245)이십오유二十五有 : ‘유有’란 각기 인因에 반드시 과果가 뒤따르는 생사윤회의 세계에서 획득되는 이숙의 과체를 가리키며, 그것을 25종류로 나눈 것을 말한다. 육취 중에서 지옥유地獄有, 축생유畜生有, 아귀유餓鬼有, 아수라유阿修羅有 등 사취 중에 각기 하나의 유가 있고, 인취人趣 중의 사주四洲에 불파제유弗婆提有, 구야니유瞿耶尼有, 울단월유鬱單越有, 염부제유閻浮提有 등의 네 가지 유가 있다. 또 그 이외에 사천처유四天處有, 삼십삼천처유三十三天處有, 염마천유炎摩天有, 도솔천유兜率天有, 화락천유化樂天有, 타화자재천유他化自在天有, 초선유初禪有, 대범천유大梵天有, 이선유二禪有, 삼선유三禪有, 사선유四禪有, 무상유無想有, 정거아나함유淨居阿那含有, 공처유空處有, 식처유識處有, 불용처유不用處有, 비상비비상처유非想非非想處有 등이 있다. 이것은 천취天趣 중에서 육욕천六欲天과 사선四禪과 사무색四無色에 각기 하나의 ‘유’가 있고, 특별히 세분해서 초선의 대범, 사선의 무상·정거를 각기 하나의 유로 삼았다. 따라서 욕계에는 모두 14종류, 색계에는 7종류, 무색계에는 4종류가 있게 된다.
- 246)『大般涅槃經』 권7(T12, 407b7).
- 247)『大般涅槃經』 권27(T12, 784a25).
- 248)결정설決定說 : 사자후라는 표현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결정설’로서, 부처님께서 궁극의 이치에 의거해서 설하신 궁극적인 말씀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이 그 결정설에 해당한다.
- 249)『大般涅槃經』 권27(T12, 522c23).
- 250)여기서 말하는 유乳·낙酪·소蘇(酥) 등은 우유를 숙성 단계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유’는 소에서 나온 젖을 말하고, 유에서 추출된 것이 ‘낙’이고, 낙에서 나온 것이 ‘소’다. 소는 특히 생소生酥와 숙소熟酥 등으로 구분되고 그 마지막 최상품을 제호醍醐라고 한다. 이것을 오미五味라고 하는데, 유는 성문, 낙은 연각, 생소와 숙소는 보살, 제호는 불세존을 비유한다.
- 251)『大般涅槃經』 권27(T12, 524c5).
- 252)『大般涅槃經』 권32(T12, 559a21).
- 253)단락 ❷에서 인용된 『法華經』 「方便品」과 『勝鬘經』에서는 모두 ‘일승一乘’이라는 말을 대승大乘(佛乘)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특히 『法華經』의 “오직 일승법만 있으니 둘도 없고 또한 셋도 없다.(唯有一乘法無二亦無三)”라는 문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원측은 이 게송에서 ‘이승二乘(성문·연각)이 불승(대승)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일승을 설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전에 언급했듯, 이런 의미의 일승은 오직 부정종성에 의거해서 설해진 것이다.
- 254)『妙法蓮華經』 권1(T9, 8a17).
- 255)『妙法蓮華經』 권1(T9, 8a21).
- 256)『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권1(T12, 220c19).
- 257)『須眞天子經』 권3(T15, 104c26) 참조.
- 258)마지막 『楞伽經』의 인용문은 특히 보살천제菩薩闡提 개념을 도입하여 ‘무종성의 일천제一闡提도 성불할 수 있음’을 설한 것이다. 이 경에서 ‘두 번째 천제闡提’라고 한 것은 ‘보살’을 가리킨다. 보살은 모든 법이 본래 열반에 들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한 그들은 모든 중생들이 다 열반에 들기 전까지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서원하였기 때문에 열반에 들지 않는다. 이처럼 보살은 언제까지나 열반에 들지 않는다는 점에 의거해서 ‘천제’라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본래 성불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상은 『入楞伽經』 권2(T16, 527b2) 참조.
- 259)이하는 특히 정성이승定性二乘이나 무성유정無性有情도 성불한다고 말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여러 논서들을 통해 상세하게 고찰한 것이다. 그런데 이하의 인용문들도 뒤에서 다시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의 관점에서 회통시켜 해석한다. 따라서 그에 해당하는 인용문에 ❸, ❹, ❺ 등의 일련번호를 부여하였다.
- 260)단락 ❸에서 인용된 진제 역 『攝大乘論釋』 문구는 종성이 결정된 이승(定性二乘)이 성불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한 것이다. 그 논에 따르면, ‘결정된 종성(定性)’이란 사선근위四善根位 중 인위忍位에 의거해서 안립된 것이다. 또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라는 것도 아직은 보살도를 전념해서 닦지 않는 자를 가리키며,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대승을 수행하게 하려고 이러한 부정종성을 안립하였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종성이란 단지 도道의 단계에 의거해서 안립되었기 때문에 모든 성문종성들은 다 대승종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승종성에 결정되었다 해도 끝내 성불하지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 261)원문은 ‘乃至彼云’이라 되어 있는데, 전후의 문장이 모두 『攝大乘論釋』의 본문이기 때문에 “……중간 생략……”으로 처리하였다.
- 262)이것은 『攝大乘論』 본문에서 제불여래諸佛如來가 항상 현시하는 다섯 가지 공동의 업業 중에서 그 다섯 번째에 해당한다. 그에 따르면, 제불여래는 아직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보살이나 성문들이 대보리를 얻도록 하기 위해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를 안립해서 그들로 하여금 대승의 수행에 전념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263)신信·근勤·염念·정定·혜慧의 다섯 가지는 무루의 성도聖道에 들어가게 해 주는 역할을 하므로 ‘근根’이라 한다. 그런데 오근의 단계에서는 아직 성도를 얻지 못했으므로 ‘결정된 근기(근성)’라고 할 수 없고, 미지당지근未知當知根·이지근已知根·구지근具知根의 세 가지 무루근을 획득했을 때는 이미 성도의 지위에 들어간 상태이므로 ‘결정된 근기’라고 이름한다.
- 264)견도 이전에 닦는 사선근위四善根位의 두 번째를 정위頂位(ⓢ mūrdhāna)라고 한다. 아직 불안정한 선근을 닦는 가운데 최상의 선근을 내는 절정의 지위를 말한다. 수행하여 이 지위에 이르고도 다시 퇴락하여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는데, 그러나 선근은 단절되지 않는다고 한다.
- 265)견도 이전에 닦는 사선근위의 세 번째를 인위忍位(ⓢ kṣānti)라고 한다. 사제四諦의 이치를 확인하게 되고 선근은 이미 확정되어 더 이상 동요하지 않는 지위다. 이 지위에 이르면 다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 266)진제 역 『攝大乘論釋』 권15(T31, 264c22).
- 267)단락 ❹에서 『大智度論』 문구를 인용한 이유는, 무성유정無性有情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인용문 마지막에서 “열반에 들어갈 수 없는 자라면 인천의 복락에 머물면서 열반의 인연을 짓는다.”라고 한 것은, 곧 무성유정이라 불리는 자도 언젠가 열반에 들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 268)『大智度論』 권84(T25, 649a6).
- 269)단락 ❺에 인용된 『法華論』의 문구는 결정성문決定聲聞과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도 결국 성불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문구에서 “결정·증상만 두 종류 성문은 근기가 미숙하기 때문에 여래께서 수기를 주지 않고 보살이 수기를 준다.”라고 한 것은, 어쨌든 결정성문 등도 미래에 성불할 수 있음을 뜻한다.
- 270)여기에 나열된 네 종류 성문은 『法華論』과 『瑜伽師地論』 등에서 분류한 것이다. 첫째, 결정성문決定聲聞은 일향취적성문一向趣寂聲聞·종성성문種性聲聞이라고도 한다. 오랫동안 소승의 법만을 익히고 닦아 소승의 과를 증득하지만 대승의 법에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성문을 말한다. 둘째, 퇴보리성문退菩提聲聞이란 회향보리성문迴向菩提聲聞이라고도 한다. 이는 본래 보살이었지만 보리심을 낸 이후 오래 수도하다가 생사의 세계에 염증을 느끼고 대도의 마음을 잃고 소과를 증득한 사람을 말한다. 셋째, 응화성문應化聲聞은 변화성문變化聲聞이라고도 한다. 이 성문은 본래 불보살이었는데 내면으로는 비밀스럽게 진실한 행을 하면서도 밖으로는 성문의 몸을 나타내는 자인데, 이전의 두 종류 성문을 인도해서 대승으로 귀의시킬 수 있는 자이다. 넷째,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이란 스스로 증상된 법을 얻었다고 다른 이를 경시하는 자를 말한다. 이 성문은 계·정·혜를 닦아서 조금 얻은 것이 있으면 ‘과를 증득했다’고 말하므로 증상만성문이라 한다.
- 271)늑나마제勒那摩提와 승랑僧朗 등 역 『妙法蓮華經論優波提舍』 권1(T26, 18b9) 참조.
- 272)어떤 유정들은 대승을 믿지 않고 비방하기만 하고, 그런 이유로 열반에 이르기까지 무량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천제는 열반의 종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들에게 진실로 열반의 종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하였다.
- 273)『究竟一乘寶性論』 권3(T31, 831b5).
- 274)이하의 문답은 ‘종성이 결정된 이승의 성불 가능성’과 연관된 난제를 결택한 것이다. 비록 정성이승定性二乘이 대승종성으로 전환된다는 의미가 있음을 인정한다 해도, 만약 그가 이미 회신멸지灰身滅智의 무여열반에 들었다면 이후로는 끝내 무상보리에 대한 발심 등을 일으킬 수가 없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성불의 의미가 성립하는가라는 물음이 생길 수 있다. 이하의 문답에서는 『瑜伽師地論』의 문구를 발단으로 삼아서 그 문제를 다루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인용문들도 뒤에서 다시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의 관점에서 회통하여 해석하였기 때문에 서로 대조하기 위해 이전과 마찬가지로 일련번호 ❻, ❼, ❽을 부여하였다.
- 275)『瑜伽師地論』 권80(T30, 749a8).
- 276)단락 ❻의 『法華經』과 『大智度論』의 문구는 ‘성문이 무여열반에 든 후에도 성불할 수 있는 이유’를 나타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문이 비록 ‘멸도滅度한다’는 상想을 내어 무여열반에 들었다 해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른 곳에 다시 태어나 다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들의 무여열반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태어나서 여래의 대반열반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 277)『妙法蓮華經』 권3(T9, 25c14).
- 278)단락 ❼의 『涅槃經』의 문구는 앞의 『法華經』의 논리를 보완한 것이다. 『法華經』에서는 성문의 열반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여래의 대열반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그 논리를 보완하기 위해 다시 『涅槃經』을 인용해서 이승의 열반涅槃과 여래의 대반열반大般涅槃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 279)『涅槃經』 권23(T12, 502b27).
- 280)단락 ❽에서 인용된 『楞伽經』·『法華論』 등의 문구는 앞의 『涅槃經』과 마찬가지로 이승의 열반과 여래의 대반열반의 차이를 논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승이 삼매락정三昧樂定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을 일컬어 ‘이승의 무여열반’이라 가립한 것이고, 여래가 참된 법신에 머무는 것을 대열반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승은 반드시 다시 대열반을 구하게 되고, 결국에는 성불하게 된다는 것이다.
- 281)『入楞伽經』 권4(T16, 540b1).
- 282)삼매三昧·삼마발제三摩跋提 : 삼매(ⓢ samādhi)는 등지等持·정定·정정正定 등으로 의역하며,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 용어는 정위定位와 산위散位에 모두 통용되고 다만 유심위有心位에 국한되고 무심위無心位에는 통용되지 않는다. 삼마발제(ⓢ samāpatti)는 등지等至·정수正受·정정현전正定現前 등으로 의역하며, 혼침惛沈·도거掉擧의 상태를 멀리 떠나서 심신이 안락해진 경지를 말한다. 이 용어는 유심有心·무심無心에 모두 통용되지만 오직 정위定位에 국한해서 사용되고 산위散位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 283)화성化城의 비유 : 『法華經』에 나오는 일곱 가지 비유 중의 하나다. ‘화성化城’이란 ‘변화해 낸 성읍(變化之城邑)’이라는 뜻으로 이승의 열반을 비유한다. 어떤 사람들이 오백 유순由旬의 험난한 악도를 거쳐서 보처寶處에 도달할 즈음에 피로가 극에 달해 되돌아가려 하자, 그 인도자가 사람들을 분발시키기 위해 방편력으로 도중에 삼백 유순되는 곳에다 변화로 하나의 성을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끝내 보처를 향해 전진하게 했다. 이 화성의 비유는 이승이 얻은 열반이 진실이 아니고 부처님이 방편으로 그들을 위대한 열반의 성에 도달하게 하려는 방편의 가설임을 말한다.
- 284)『妙法蓮華經論憂波提舍』 권1(T26, 17c6).
- 285)여기서 ‘네 번째 사람’이라 한 것은 『法華經』의 일곱 가지 비유 중에서 네 번째 ‘화성’의 비유라는 방편의 가설을 통해 열반으로 이끌려고 했던 대상, 즉 이승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 286)『妙法蓮華經論憂波提舍』 권1(T26, 18a4).
- 287)삼매락정三昧樂定의 상태에서 수명·크기 등에 제약되는 ‘신체’를 업의 과보로서 받지 않기 때문에 ‘무여열반’이라는 가명假名을 세웠지만, 이 삼매락정에서도 여전히 미세한 의생신意生身을 받으며 생사유전하기 때문에 참다운 대열반은 아니라고 하였다.
- 288)소승의 성자인 아라한과 벽지불은 비록 분단생사는 떠났어도 변역생사의 인과因果 속에 있기 때문에 ‘범행이 순수하지 않다’고 하였고, 마찬가지로 분단생사는 대치시켰지만 변역생사는 대치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마땅히 지어야 할 것이 있다’고 하였으며, 변역의 인因을 아직 끊지 못했기 때문에 ‘끊어야 할 것이 있다’라고 하였다.
- 289)『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권1(T12, 219c1).
- 290)원측은 이전의 『涅槃經』 인용문에서 “성문·독각이 8만·6만·4만·2만·1만 (겁 동안) 머무는 곳(住處)은 열반이라 이름하고, 무상법주無上法主이신 성왕聖王이 머무는 곳이라야 대반열반이라 이름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승에서 말하는 이른바 ‘회신멸지灰身滅智의 무여열반’이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8만 겁 동안 삼매락에 드는 상태에 대해 ‘무여열반’이라는 이름을 가립한 것이라고 하였다.
- 291)이상으로 각 논서들을 인용해서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의 교리적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요컨대, ‘일정한 시기(時分) 동안에 여전히 근기가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에 의거해서 무종성無種性과 정성이승定性二乘은 성불하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결국에는 그들도 모두 성불할 수 있다. 또 이승의 무여열반이란 단지 삼매락의 가명일 뿐이며, 오직 여래의 대열반이 구경열반究竟涅槃이다. 이상의 경론에 의거할 때, 삼승의 차별이란 가설假說이고 실제로는 일승一乘만 있는 것이다.
- 292)이하에서는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의 타당성을 검토하였다. 먼저 〔1〕 ‘무종성과 정성이승은 성불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경론의 전거들을 제시하고, 다시 〔2〕 오성각별설의 관점에서 어떻게 일승의 의미가 성립하는가를 모색해 본다. 그런데 원측은 이 부분에서 진제의 일체개성의 전거로서 인용했던 경론의 문구들을 다시 검토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서 동일한 경론의 문구에 근거해서 일체개성과 오성각별의 관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 293)이하의 인용문들은 모두 ‘오성각별설’의 교리적 근거들을 고찰한 것이다. 먼저 ‘무종성과 정성이승은 결코 성불하지 못한다’고 설하는 경문들을 인용하였고, 그 다음에는 ‘종성의 차별이 엄연하여 각기 자승自乘의 과果를 증득한다’고 설하는 경문들을 인용하였다.
- 294)『菩薩善戒經』 권1(T30, 962c4).
- 295)『菩薩地持經』 권1(T30, 888a23).
- 296)『解深密經』 권2(T16, 695a22).
- 297)『深密解脫經』 권2(T16, 671c20).
- 298)『대보살장경大菩薩藏經』 : 이 경은 당대唐代의 보리유지菩提流志가 번역한 『大寶積經』 권35~권54 안에 편입되어 있는 「菩薩藏會」를 가리킨다.
- 299)이 경에서는 중생을 크게 ‘정정正定·사정邪定·부정不定’의 세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중간의 ‘부정’에 관한 내용은 생략되었다. 모든 번뇌를 다 끊고 반드시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이를 ‘정정’이라 하고, 무간지옥에 떨어질 큰 죄를 지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자를 ‘사정邪定’이라 하며, 그 나머지 사람들은 인연에 따라 깨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므로 ‘부정不定’이라 한다.
- 300)『大寶積經』 「菩薩藏會」 권38(T11, 219c8) 참조.
- 301)세 무리(三聚)의 중생을 구별한다는 것은 세간의 병자의 비유를 들어 중생을 세 부류로 구별했던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의사가 있으면 치유되는 자, 의사를 만나지 못해도 치유되는 자, 의사를 만나도 치유될 수 없는 자 등의 세 종류 병자로 중생을 구별하는 것은 성문승의 관점이라는 말이다. 『央掘魔羅經』 권2(T2, 529c1) 참조.
- 302)『央堀摩羅經』 권2(T2, 529c7) 참조.
- 303)『菩薩善戒經』 권3(T30, 974a19).
- 304)『勝鬘經』 권1(T12, 218b7).
- 305)『大般若波羅蜜多經』 권593(T7, 1066a29).
- 306)『菩薩地持經』 권3(T30, 900a16).
- 307)이하에서는 특히 유식학 논서들을 인용해서 ‘무종성無種性에게 성불의 의미가 없음’을 논하였다.
- 308)『瑜伽師地論』에서는 열반의 종성이 없는 자들(無涅槃法)에 대해 ‘세 종류 보리 종자가 결여된 자’라고 했는데, 여기서 ‘세 종류’란 욕계·색계·무색계를 말한다. 그 논에 따르면, 삼계 중에 어떤 처소에 태어나든 자기가 태어난 계의 일체종자식의 체에는 그 밖의 계의 일체종자가 뒤따라 다닌다(隨逐). 따라서 열반의 종성이 없다는 것은 결국 이 삼계의 보리 종자가 없다는 말과 같다. 『瑜伽師地論』 권2(T30, 284b1) 참조.
- 309)『瑜伽師地論』 권67(T30, 669b9).
- 310)『瑜伽師地論』 권52(T30, 589a22).
- 311)‘時邊無般涅槃’은 『大乘莊嚴經論』 원문에는 ‘時邊般涅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일정기간 동안 종성이 끊어진 사람을 가리키므로, 의미를 완전하게 진술할 경우에는 ‘無’ 자를 넣어도 무방하다. 예를 들어 규기의 『成唯識論掌中樞要』 권1(T43, 610c13)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이 중에 ‘시변時邊’은 ‘잠시暫時’라고 해야 한다. 범어로 ‘열가라아파리닐박남달마涅迦羅阿波利暱縛喃達磨’라고 하는데, ‘열涅’은 ‘잠暫’이고 ‘가라迦羅’는 ‘시時’이며 ‘아阿’는 ‘무無’를 말하고 ‘파리波利’는 ‘원圓’이며 ‘닐박남暱縛喃’은 ‘적寂’이고 ‘달마達磨’는 ‘법法’이니, 즉 ‘잠시 원적법(열반법)이 없어진 자(暫時無圓寂法)’이다.”
- 312)‘시변무반열반時邊無般涅槃’이란 ‘잠시暫時’ 동안 어떤 이유로 인해 반열반의 가능성이 없어진 것을 말하고, ‘필경무반열반畢竟無般涅槃’이란 아예 열반의 인因이 없어서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대로 열반하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 313)『大乘莊嚴經論』 권1(T31, 595a24) 참조.
- 314)두 종류 결정(二種定) : ‘정定’은 결정의 뜻이다. 두 가지 결정이란, 첫째는 짓는 업의 결정(所作業定)이고, 둘째는 받는 과보의 결정(受果報定)이다. 전자는 범부들이 짓는 십악十惡 등의 업을 말하는데, 이 업은 결정적으로 사악도四惡道를 초감해 낸다. 후자는 지극히 둔한 근기를 가진 전도(顚狂)된 중생의 몸을 받거나 사악도의 과보를 바로 받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두 가지 결정에 제약되어 있는 모든 중생들에 대해서는 여래라고 할지라도 자재하게 구제할 수 없다.
- 315)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4(T31, 261c13).
- 316)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4(T31, 261c17).
- 317)현장 역, 『攝大乘論本』 권3(T31, 150c24). 이 게송은 앞서 인용한 구역舊譯 『攝大乘論釋』(梁朝 『攝論』)의 게송과 동일한 것이다.
- 318)현장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0(T31, 376b12).
- 319)『대업론大業論』 : 급다笈多와 행구行矩 등이 번역한 세친의 『攝大乘論釋論』 권10을 가리킨다.
- 320)무성의 『攝大乘論釋』 권10(T31, 445b5).
- 321)『佛地經論』 권2(T26, 298a17).
- 322)『十地經論』 권11(T26, 189a18)에서 “論曰。 衆生三聚行稠林差別有五種。 一有涅槃法無涅槃法三乘中一向定差別。 如經是菩薩如實知衆生三聚正定相邪定相離此二不定相故……”라고 했던 것을 말한다.
- 323)이하에서는 진제의 일체개성설一切皆成說의 전거들을 다시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그 본래의 목적은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 어떻게 ‘일승의 의미’가 성립하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원측은 이전의 일체개성설의 전거들을 검토의 대상으로 채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체개성의 전거들이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과 배치되지 않고 양립할 수 있음을 드러내게 된다. 이하의 단락 ❶~❽에 진술된 경론의 인용문들은 모두 진제의 일체개성설의 전거로서 제시되었던 것이고, 이전과 대조하기 위해 동일한 일련번호 ❶~❽을 부여하였다.
- 324)단락 ❶에서 거론된 『涅槃經』 제7권과 제27권의 문구는 모두 진제의 일체개성설의 첫 번째 전거 ❶로서 인용되었던 것이다. 원측은 이 『涅槃經』에 의거해서 불성佛性을 이성理性으로서의 불성과 행성行性으로서의 불성으로 구분한 바 있다. 그 둘을 구분한 의도는 여기서 분명해지듯 두 삼장의 학설이 동일한 경문에 근거해서 양립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다. 『涅槃經』 제7권과 제27권 및 『寶性論』 제1권의 문구는 ‘모든 중생이 본래 갖추는 이성을 설한 것이다. 이러한 불성은 본래부터 상주하는 진여법신眞如法身을 말하기 때문에 다섯 종성도 모두 갖추고 있다. 따라서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과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의 관점에서도 모두 인정될 수 있다. 한편, 행성은 수행을 통해 발현되는 불성으로서, 현재 일시적으로 결여된 자도 있다. 진제 삼장의 일체개성이 행성의 차원에서 설해진 것이라면, 이는 부정종성이라는 ‘소분少分의 일체’에 의거해서 말한 것이다. 이 경우 일승은 진실이고 삼승은 방편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진제의 일체개성은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과는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삼승의 종성 (혹은 오성) 일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삼승(오성)의 차별이 진실이고 일승은 방편이다’라는 주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325)『大般涅槃經』 권7(T12, 407b9).
- 326)『大般涅槃經』 권27(T12, 522c24).
- 327)『究竟一乘寶性論』 권1(T31, 813c23) 참조.
- 328)이것은 『大般涅槃經』 권27(T12, 524c5)에서 “어떤 사람의 집에 유락乳酪이 있는데 누군가 ‘당신에게 소蘇가 있느냐’라고 물으면 ‘나에게 낙은 있지만 실로 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교묘한 방편으로 결정코 장차 획득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소가 있느냐’라고 말한 것이다. 중생 또한 이러하여, 모두 다 마음이 있다. 무릇 마음이 있는 자는 장차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항상 ‘일체중생은 다 불성이 있다’고 설하였다.(譬如有人家有乳酪。 有人問言。 汝有蘇耶。 答言。 我有酪。 實非蘇。 以巧方便定當得故。 故言有蘇。 衆生亦爾。 悉皆有心。 凡有心者。 當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以是義故。 我常宣說一切衆生悉有佛性。)”라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 329)이 『涅槃經』 제27권의 비유 또한 일체개성설의 첫 번째 전거(❶)로 인용되었던 것이다. 이 비유에서 ‘소蘇’는 ‘행성行性으로서의 불성’, 즉 성도聖道의 수행을 통해 장차 발현될 불성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의 이치(理)로서의 이성理性(진여법신)은 모든 중생들에게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는 반면, 그러한 행성은 현실적으로 갖추지 못한 자도 있다. 그럼에도 ‘일체가 다 성불한다’고 했다면, 이때의 ‘일체一切’란 삼승의 종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소분少分의 일체’, 즉 부정종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부정종성에 대해 ‘일체가 다 성불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가령 경문에서 ‘회향성문은 이문異門에서 보살이라 불린다’고 했듯이, 실제로는 하나(一)이지만 방편으로 성문·연각·보살 등의 세 가지를 구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涅槃經』의 경문도 반드시 오성각별설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 330)단락 ❷의 『法華經』의 게송은 진제의 일체개성설의 전거 ❷로 인용했던 것이다. 이 게송에서 특히 ‘無二亦無三’이라는 구가 ‘일승’의 의미와 직결된다. 여기에서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소개되었는데, 원측은 최종적으로 그 문구는 이승(성문·연각)을 논파하여 일승을 밝힌 것이지 삼승을 논파한 것은 아니라고 평하였다. 그런데 ‘이승이 불승佛乘(대승)에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일승이라 할 경우, 일승이란 불승을 가리킨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의미의 ‘일승’은 부정종성不定種性이라는 ‘소분少分의 일체’에 대해서만 설해질 수 있다. 말하자면 부정종성은 궁극에 성불할 수 있으므로 실제로는 하나의 불승만 있지만, 방편으로 때로는 성문·연각이라 부르고 때로는 보살이라 부른다. 그런데 진제의 일체개성이 이런 맥락에서 설해졌다면, 이것은 대당 삼장의 오성각별설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삼승의 종성 (혹은 오성) 전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삼승(혹은 오성)의 차별이 진실이고 일승은 방편이다’라는 주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331)『妙法蓮華經』 권1(T9, 8a17).
- 332)길장吉藏의 『法華遊意』 권1(T34, 647b6)에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온다. “若爾。 則一乘猶是三乘中之佛乘也。 故文云。 十方佛土中。 唯有一乘法。 無二亦無三。 此以一二三爲數。 則以一乘爲一。 緣覺爲二。 聲聞爲三。 則知一乘猶是三中一也。”
- 333)이것은 제3의 해석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앞의 구마라집과 유인有人의 해석에 대한 총평인 듯하다. 앞의 두 해석에 따르면, 모두 ‘無二亦無三’이라는 경문은 오직 인승因乘에 해당하는 성문승聲聞乘·연각승緣覺乘 혹은 독선보살獨善菩薩 등을 부정한 것이지, 극과極果에 해당하는 ‘불승佛乘’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 334)『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권1(T12, 220c19).
- 335)『妙法蓮華經』 권1(T9, 8a21).
- 336)여기서 거론된 『勝鬘經』과 『法華經』의 문구 또한 모두 진제의 일체개성설의 전거 ❷로서 인용되었던 것이다. 모두 공통적으로 ‘이승은 없고 일승만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 337)이것은 인법人法의 무아성無我性을 깨달아서 초지初地에 들어간 보살이 여전히 신업身業 등에 의거해서 모든 중생들에 대해 사행邪行을 일으키는 장애를 말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성문·연각·보살이라는 삼승의 사람들이 각각 차별된 수행을 한다’라는 견해를 갖는데, 이는 아직 일승의 이치에 미혹했기 때문이다.
- 338)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0(T31, 221b22).
- 339)『妙法蓮華經』 권1(T9, 7b22).
- 340)『大般涅槃經』 권9(T12, 664a15)에는 “聲聞緣覺菩薩亦爾。 同一佛性。 猶如彼乳。 所以者何。 同盡漏故。”라는 문구가 나온다.
- 341)이상으로 ‘無二亦無三’이라는 『法華經』의 문구에 대해 “비록 세 종류 해석이 있지만 두 번째가 바르다.(雖有三釋第二爲正)”라고 했는데, 이 문장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우선 〔1〕 예전의 해석이 세 종류이고 지금의 해석이 한 종류라고 간주하면 모두 ‘네 종류 해석이 있다’고 해야 한다. 이 경우 ‘三’은 ‘四’의 오기일 수 있다. 그러나 오기가 아니라면, 앞의 네 가지 중에 세 번째 “한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의 내용은 이전의 두 해석에 대한 총평이기 때문에 별도의 해석으로 간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총평을 중간에 삽입한 것은, 이것의 전후 해석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전의 두 해석에 따르면 『法華經』 문구는 오직 인승因乘에 해당하는 이승을 부정한 것이지만, 당시(今者)의 해석자들에 따르면 이승뿐만 아니라 불승佛乘(혹은 大乘)까지 부정한 것이다. 〔2〕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가 바르다(第二爲正)”고 할 때 어떤 해석을 가리키는가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두 번째’를 오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원측의 해석을 살펴보면, 오자는 아닌 듯하다. 원측의 평가와 부합하는 해석은 위에서 언급된 두 번째, 즉 “‘둘이 없다(無二)’는 것은 두 번째 연각승을 부정한 것이고 ‘셋이 없다(無三)’는 것은 세 번째 성문승을 부정한 것이다.”라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원측은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다음에 진술하였다. 『法華論』 등에 따를 때, ‘無二亦無三’이라는 문구는 결국 이승을 논파하여 일승을 밝힌 것이지, 대승(佛乘)까지 포함해서 삼승을 모두 논파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첫 번째 해석에서는 ‘성문·연각·독선보살’을 부정했다고 보았고 마지막에 진술된 지금의 해석자들은 ‘성문과 연각과 대승(불승)’을 모두 부정한 것이라 보았기 때문에, 원측의 견해와는 어긋난다.
- 342)보리유지 역 『妙法蓮華經論憂波提舍』 권2(T26, 10b22) 참조.
- 343)『妙法蓮華經』 권3(T9, 25c22).
- 344)이 문장은 이승二乘의 멸도滅度 즉 열반에 대해 진술한 것이다. 여기서 ‘식처息處’란 소식처蘇息處 즉 소승에서 말하는 회신멸지灰身滅智의 경지를 가리키는데, 소승은 그것을 참된 열반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승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이승의 열반은 방편으로 시설한 화성化城에 불과해서 다시 오랜 수행을 거쳐야 불도에 들어갈 수 있다.
- 345)『妙法蓮華經』 권3(T9, 27b2).
- 346)단락 ❸의 진제 역 『攝大乘論釋』의 문구는 이전의 일체개성설의 전거 ❸으로 인용되었던 것이며, 여기서는 그중의 일부 문구만 거론하였다. 그에 따르면, 종성이란 도道에 의거해서 안립된 것이고, 부정종성을 건립한 의도는 대승의 수행에 더욱 전념하게 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선근위四善根位 중 인위忍位에 의거해서 ‘결정된 종성(定性)’을 안립하였고, ‘아직 보살도를 전념해서 닦지 않는 자’를 일컬어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승종성에 결정된 자라 해도 결정코 성불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은 진제가 번역한 세친의 『攝大乘論釋』에만 나오고, 현장이 번역한 무성과 세친의 『攝大乘論釋』이나 급다笈多 등이 번역한 『攝大乘論釋論』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전거로 삼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 347)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5(T31, 265a8).
- 348)단락 ❹에서 진술된 『大智度論』의 인용문은 이전의 일체개성설의 전거 ❹로 인용되었던 것이며, 여기서는 그중 마지막 문구만 거론하였다. 이 인용문에서 특히 ‘무성유정無性有情도 인천人天의 복락을 누리면서 열반의 인을 짓는다’고 했기 때문에 무성유정도 성불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원측은 무성유정을 ‘끝내 열반의 종성이 없는 자(畢竟無涅槃性)’와 ‘일시적으로 열반의 종성이 없는 자(蹔時無涅槃性)’ 두 부류로 구분하고, 『大智度論』에서는 후자에 의거해서 설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 ‘무성유정은 열반에 들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 349)『大智度論』 권84(T25, 649a9).
- 350)단락 ❺의 『法華論』의 문구는 이전의 일체개성설의 전거 ❺로 인용되었던 것이다. 그 인용문에 따르면, ‘결정성문決定聲聞과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은 여래가 아니라 보살이 수기를 내려 준다’고 하는데, 이것이 결정성문도 성불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 반론하자면, ‘보살이 결정성문 등에게 성불의 수기를 준다’고 한 것은 방편으로 설한 것이지 실제로 성불한다는 말은 아니다.
- 351)『妙法蓮華經論憂波提舍』 권1(T26, 18b13) 참조.
- 352)이하의 단락 ❻, ❼, ❽에서 재해석되는 경론의 문구들은 일체개성설의 난제를 회통시키는 문답에서 인용되었던 것들이다. 원측은 『瑜伽師地論』 제80권의 교설에 의거해서 ‘가령 무여열반에 든 결정성문의 경우는 무상보리 또는 대열반을 구하려고 발심하는 일 따위가 없을 텐데 그가 장차 성불한다는 의미가 있는가’라고 묻고서, 그 대답으로서 이하의 『法華經』과 『涅槃經』과 『楞伽經』 등의 문구를 제시한 바 있다.
- 353)단락 ❻의 『法華經』 문구는 진제의 관점에서 ‘무여열반에 든 결정성문도 성불할 수 있다’는 주장의 첫 번째 전거(❻)로 제시되었다. 그에 따르면, 결정성문이 무여열반에 들었다 해도 그것은 궁극적인 여래의 대열반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는 미래에 다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 그런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우선 진제가 인용한 그 『法華經』의 문구를 『正法華經』의 내용과 대조해 보면, 그것은 ‘이미 무여열반에 든 성문이 발심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 막 무여열반에 들어가기 직전에 성문이 발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경문을 전거로 해서 무여열반에 든 결정성문까지도 성불한다고 할 수 없다.
- 354)‘그 나라’란 이 경의 앞 문구에서 언급된 나라, 즉 지금 이 법문을 설하는 부처님이 다시 태어나서 다른 이름을 가진 불佛로서 계시게 될 나라를 가리킨다.
- 355)『妙法蓮華經』 권3(T9, 25c17).
- 356)『正法華經』 권4(T9, 92b14).
- 357)『正法華經』 권3(T9, 85c14).
- 358)여기서 말한 ‘무여의無餘依’란 『瑜伽師地論』 권80(T30, 749a8)에서 언급된 ‘무여의열반계無餘依涅槃界’를 가리킨다. 이 무여의열반계에서는 일체의 사업事業을 전혀 발기發起하지 않고 모든 공용功用이 그친다.
- 359)단락 ❼의 『涅槃經』의 문구는, 진제의 관점에서 앞의 『法華經』의 교설을 보완하기 위해 인용되었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성문이 8만 겁 동안 머무는 삼매락三昧樂을 열반이라 하고, 오직 부처님이 머무는 법신法身을 대열반이라 이름한다. 이처럼 이승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은 여래의 대반열반大般涅槃과는 다르기 때문에 무여열반에 든 이승이라도 언젠가 다시 대반열반을 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당 삼장의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이 경에서 말한 ‘8만 겁 동안 머무는 곳’이란 이승의 열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십신十信의 지위에 불과하다.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 반론하면 다음과 같다. ≺이승의 무여열반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여열반에 든 결정성문’이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따라서 ‘무여열반에 든 결정성문도 성불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 360)변역생變易生 : 아라한·벽지불·대력보살 등이 삼계 밖에서 뛰어나고 미묘한 과보신 즉 의생신意生身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 몸은 자비와 원력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에 수명이나 육체를 모두 자유롭게 변화시키거나 뒤바꿀 수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없다.
- 361)‘대본大本’은 아마도 『大般涅槃經』을 가리키는 듯하다. 예를 들면 『大般涅槃經』 권21(T12, 491c1) 등에는 “須陀洹者。 八萬劫到。 斯陀含者。 六萬劫到。 阿那含者。 四萬劫到。 阿羅漢者。 二萬劫到。 辟支佛者。 十千劫到。”라는 문장이 나온다.
- 362)‘객종客宗’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아마도 오탈자가 있는 듯하다.
- 363)『瑜伽師地論』 권80(T30, 749a20).
- 364)‘한 부류를 이끌어 준다’는 것은 부정성문不定聲聞을 이끌어 들여서 대승에 의지해서 반열반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그 밖의 부류를 맡아 지킨다’는 것은 부정보살不定菩薩을 책임지고 맡아서 대승에 정진하며 퇴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攝大乘論釋』 권10(T31, 447a25) 참조.
- 365)『首楞嚴三昧經』 권2(T15, 642c13).
- 366)단락 ❽에서 언급된 『楞伽經』 제2권과 제4권도 진제의 관점에서 ‘이승의 열반과 여래의 대반열반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인용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 이 문구를 다시 해석한다면, 그 요지는 앞의 단락 ❼과 동일하다. 말하자면, ‘이승이 오랜 겁 동안 머무는 곳’으로서의 ‘삼매락三昧樂’은 무여열반이 아니라 결국은 십신十信의 지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삼매락에 머무는 성문이 여래의 대열반을 구한다 해도, 그것은 무여열반에 든 성문이 다시 대열반을 구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 367)『瑜伽師地論』 권80(T30, 749a5).
- 368)『瑜伽師地論』 권80(T30, 748b12) 참조.
- 369)『解深密經』 권3(T16, 702c24).
- 370)이상으로 일체개성설의 문답에서 인용되었던 전거들을 다시 재조명하고 나서 그에 대해 총평하였다. 그 문답에서는 ‘무여열반에 든 결정성문도 결국 성불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결같이 이승의 열반이 여래의 대열반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특히 ‘이승의 열반’을 설명하기 위해 “성문·독각이 8만·6만·4만·2만·1만 겁 머무는 곳(住處)은 열반이라 이름한다.”라는 『涅槃經』의 문구를 인용하였다. 그런데 대당 삼장의 관점에서는 이 경에서 말한 ‘8만 겁 동안 머무는 곳’이란 십신十信의 지위에 해당할 뿐, 뒤의 『瑜伽師地論』 제80권에서 말하는 이른바 ‘모든 사업의 발기發起가 사라진 무여의열반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결정성문이 무여열반에 들고 나서도 성불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전거로는 부적절하다. 그렇다면 여전히 ‘결정성문은 성불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따라서 ‘삼승의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총결지었다.
- 371)『妙法蓮華經』 권1(T9, 8a17).
- 372)『妙法蓮華經』 권1(T9, 8a21).
- 373)『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 권1(T12, 220c19).
- 374)『大般涅槃經』 권25(T12, 515b11).
- 375)『解深密經』 권2(T16, 695a18).
- 376)『解深密經』 권4(T16, 708a13).
- 377)『出生菩提心經』 권1(T17, 893c1).
- 378)『攝大乘論本』 권3(T31, 151b19)의 게송에서는 ‘일승을 설한 뜻’을 일곱 가지 이유로 해석하였다. 그 논에서는 “① 법과 ② 무아와 ③ 해탈이 평등하기 때문에, ④ 근성이 같지 않기 때문에, ⑤ 두 가지 의요를 얻었기 때문에, ⑥ 변화이기 때문에, ⑦ 궁극적인 것이기 때문에, 일승이라 설한다.(法無我解脫。 等故性不同。 得二意樂化。 究竟說一乘。)”고 하였다. 이 일곱 가지 이유 중에서 『顯揚聖敎論』에서 말한 두 번째 이유, 즉 “무분별의 행상行相에 의거했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그 『攝大乘論』의 일곱 가지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 밖에 『攝大乘論』에서 “① 법이 평등하기 때문에”라고 한 것은 『顯揚聖敎論』에서 “첫째, 저 제법은 차별적 모습이 없다는 데 의거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동일하고, “④ 근성이 같지 않기 때문에”라고 한 것은 『顯揚聖敎論』에는 없으며, 나머지 그 밖의 것은 동일하다.
- 379)앞의 각주 참조.
- 380)‘변화’라는 것은 부처님이 성문승 등으로 화작한 것을 말한다. 가령 세존께서는 ‘나는 과거에 무수히 성문승으로서 반열반했던 일이 기억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런 점에서 성문승도 불승佛乘과 다름없으므로 일승이라 설하셨다는 것이다.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0(T31, 378a16) 참조.
- 381)성문승 등은 그 이외에 더 뛰어난 승이 있지만 불승은 그 이외에 더 뛰어난 승이 없는 가장 궁극적인 것이므로 ‘일승’이라 설했다는 말이다.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0(T31, 378a19) 참조.
- 382)『顯揚聖敎論』 권20(T31, 581b20).
- 383)『大乘莊嚴經論』은 송頌과 석釋을 합하여 총 13권으로 되어 있는 논서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무착 보살의 저술로 알려져 있는데, 원측은 그것은 오류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 논의 게송은 자씨보살이 지었고 해석은 세친이 지은 것이다.
- 384)이하에서는 『大乘莊嚴經論』의 열 가지 의미 중에서 여덟 가지는 생략하고 이후에 추가된 두 가지만 설하였다. 생략된 여덟 가지는 “법과 무아와 해탈이 같기 때문에, 근성이 다르기 때문에, 두 가지 의意와 변화 때문에, 구경이기 때문에 일승이라 설한다.(法無我解脫。 同故性別故。 得二意變化。 究竟說一乘。)”라는 게송에 나타나 있는데, 이 중에 ‘두 가지 의意’를 둘로 간주했기 때문에 여덟 가지라고 한 것이다. 이 여덟 가지 의미는 다시 뒤에 진술된 『攝大乘論』에서 자세히 소개된다.
- 385)『大乘莊嚴經論』 권5(T31, 615b21). 이 게송에 따르면,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성문승과 보살승을 각기 인도하려고 일승을 설하셨다. 말하자면 부처님은 성문승을 ‘이끌어 들여서(引接)’ 대승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또 보살승을 ‘거두어 머물게 하여(攝住)’ 다시 퇴전하지 않도록 하려고 일승을 설하신 것이다.
- 386)현장 역 『攝大乘論本』 권3(T31, 151b15).
- 387)이 문장에 따르면,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성문승과 보살승들이 모두 대승에 의지해서 반열반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에서 부처님이 모두 ‘하나의 승(一乘)’이라고 설한 것이다.
- 388)본론의 제2송頌에서 “법과 무아와 해탈이 평등하기 때문에, 종성이 같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의요를 얻었고 변화이기 때문에, 궁극이기 때문에 일승을 설하였네.”라고 했던 것은, 모두 제1송의 두 번째 구句 “부정종성으로 인해 제불은 일승을 설하였네.(由不定種姓。 諸佛說一乘。)”라는 말에 의해 이미 총괄적으로 설해졌다는 것이다. 이하의 세친의 해석을 보면, “법과 무아와 해탈이 평등하기 때문에……” 등의 일곱 가지 의취는 모두 부정종성을 성불시키려는 부처님의 의취와 연관되어 있다.
- 389)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5(T31, 265b23).
- 390)다른 논들에서는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성문’과 ‘보살’을 위해 일승을 설한다고 하는 반면에, 양梁 『攝論』에는 세 종류 대상이 나오는데 아직 종성이 결정되지 않은 성문과 보살들은 이전의 경우와 같고 세 번째 부류로서 보살들 중에 ‘종성이 결정된 자(定姓)’가 추가되어 있다. 원측은 이것이 다른 논들에는 나오지 않는 문구이므로 의거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 391)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5(T31, 265b20).
- 392)성문승과 연각승이 대승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기반하고 있는 토대가 바로 진여라는 점에서 모두 일승이라고 설했다는 것이다.
- 393)세친의 해석을 통해서는 본론의 “종성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는 문구의 의미가 분명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다음에 나온 원측의 협주에 따르면, 이 세친의 해석은 무성의 해석과 취지가 같다. 그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10(T31, 447b8)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성이 같지 않기 때문’이라 한 것은, 성문들 중에 부정종성은 차별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보리로 회향한 성문의 몸에는 성문종성과 불종성이 갖추어져 있으니, 이런 도리에서 일승이라 설한 것이다.(性不同故者。 謂諸聲聞不定種性有差別故。 謂迴向菩提聲聞身中。 具有聲聞種性及佛種性。 由此道理故說一乘。)”
- 394)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5(T31, 265c17).
- 395)『大乘莊嚴經論』 권5(T31, 615b11).
- 396)양梁 『攝大乘論釋』과 『大乘莊嚴經論』 권5(T31, 615b11) 등에서는 ‘종성이 같지 않기 때문에 일승을 설한다’고 한 것에 대해, 모두 ‘부정종성을 대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승을 설하였다’는 식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첫 번째 “한 부류의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라는 문구에 대한 해석과 거의 동일하다. 이러한 해석은 다른 논들의 해석과는 차이가 있으므로 의거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 397)‘모든 중생에 대해 평등의요平等意樂를 얻었다’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가 바로 나이고, 내가 바로 그이다(彼卽是我我卽是彼)’라고 보는 의요를 가리킨다. 단, 양梁 『攝大乘論釋』에서는 이러한 평등의요를 획득한 주체를 ‘성문’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0(T31, 378a11) 참조.
- 398)‘모든 중생에 대해 자체평등의自體平等意를 얻었다’는 것은, 중생과 나를 동체同體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무성의 『攝大乘論釋』 권10(T31, 447b11)에서는 “諸佛於一切有情得同自體意樂”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동자체의요同自體意樂를 얻었다’는 것은 ‘그가 바로 나이고 내가 바로 그’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또 『大乘莊嚴經論』 권6(T31, 615b12)에서 “諸佛得同自意故”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동자의同自意을 얻었다’는 것은 ‘중생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두 논에서는 이러한 평등의요를 획득한 주체를 ‘제불諸佛’이라고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399)여기에 인용된 당본唐本(현장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그리고 『大業論』(급다笈多 등이 번역한 세친의 『攝大乘論釋論』) 권10(T31, 319a24)에서는 섭취평등의요를 획득한 주체를 표기하지 않았다.
- 400)『大乘莊嚴經論』 권5(T31, 615b14).
- 401)부처님은 법화회에 있던 보살들 중에서 성문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보살들에게 수기를 주신다. 이로 인해 동명의 성문들도 덩달아 ‘부처가 되려는 의요’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처럼 성문들이 부처가 되려는 평등의요를 획득했다는 점에서는 그들도 일승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 402)진제 역,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5(T31, 266a3).
- 403)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0(T31, 319b5).
- 404)이상은 ‘일승을 설한 취지’에 대한 세친의 해석이다. 세친의 『攝大乘論釋』 권10(T31, 377c19).
- 405)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근성을 성종성性種姓이라 하였고,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근성을 습종성習種姓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종성이라는 것은, 유식설의 ‘종자種子’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成唯識論』에 나온 본유종자本有種子와 신훈종자新熏種子에 관한 논쟁을 중심으로 ‘종성’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을 소개하였다. 이 세 가지 해석을 간략히 ‘본호本護·신난新難·합호법合護法’이라고 한다. 그 차례대로 종자는 오직 본유本有일 뿐이라는 호월護月 등의 주장, 종자는 오직 새롭게 훈습되어(新熏) 생성된다는 난타難陀 등의 주장, 종자는 본유도 있고 신훈도 있다는 호법護法의 주장을 가리킨다.
- 406)호월護月 등의 주장에 따르면, 종자 혹은 종성이란 본래 존재하는 것이고, 훈습의 힘에 의해서는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증장할 뿐이라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成唯識論』 권2(T31, 8a21) 참조.
- 407)난타難陀 등의 주장에 따르면, 종자는 무시이래로 이어져 온 능훈能熏·소훈所熏의 상호 관계를 통해 생성되는 것이다. 또 종자의 다른 이름인 ‘습기習氣’에서도 나타나듯, 종자란 본래부터 훈습에 의해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자세한 설명은 『成唯識論』 권2(T31, 8b6) 참조.
- 408)호법護法에 따르면, 무시이래 이숙식異熟識 안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면서 온蘊·처處·계界를 발생시키는 차별적 공능이 내재해 있다. 이것이 ‘본유本有’에 해당하며, ‘본성으로서 머무는 종자(本性住種)’이다. 이에 대조해서, 자주 반복적으로 현행하여 훈습됨으로써 존재하게 된 것은 ‘시유始有’에 해당하며, 이것은 ‘훈습에 의해 이루어진 종자(習所成種)’이다. 자세한 설명은 『成唯識論』 권2(T31, 8b23) 참조.
- 409)종자의 본유本有·신훈新熏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成唯識論』 권2(T31, 8a21) 참조.
- 410)『無上依經』 권1(T16, 471b24) 참조.
- 411)앞의 경문에서는 단지 ‘일향취적성문一向趣寂聲聞은 미래에 도량에 앉아 무상보리를 증득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어지는 경문에서 “한결같이 자비가 박약하기 때문”이라 하고 또 “한결같이 온갖 고통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 한 것은, 『無上依經』에 의거해 보면 연각과 성문의 장애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경에서는 실은 ‘정성이승定性二乘이 모두 성불할 수 없음’을 설한 것이다.
- 412)본래 보살종성으로서 보리를 구하는 자를 일컬어 돈오보살頓悟菩薩이라 하고, 부정종성不定種性의 회향성문回向聲聞을 일컬어 점오보살漸悟菩薩이라 한다. 부정종성의 성문은 본래 성문이었다가 대승으로 회심하여 보리를 구하게 되기 때문에 ‘점오보살’이라고 하였다.
- 413)『妙法蓮華經』 권3(T9, 20b23).
- 414)『法華經』에서 “그대들이 행한 것이 바로 보살도이다.”라고 할 때 ‘그대들’이란 바로 대승으로 회심한 부정종성의 회향성문回向聲聞 혹은 점오보살漸悟菩薩을 가리킨다.
- 415)『大乘莊嚴經論』 권6(T31, 621a18) 참조.
- 416)『瑜伽師地論』 권73(T30, 702a8).
- 417)대승의 교설에 의하면 성문승의 지위에서는 인무아지人無我智(보특가라무아지)의 증득을 만족시켰어도 법무아지法無我智를 배우는 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견에 집착하는 법무아지(執著邪見法無我智)’라고 하였다. 그래서 실로 아직 청정하지 않은 것을 ‘청정함이 있다’고 헤아리니, 즉 이것이 아직 증득하지 않았는데도 ‘증득했다’고 말하는 증상만增上慢이다. 『瑜伽論記』 권21(T42, 797b3) 참조.
- 418)『瑜伽師地論』 권80(T30, 744a19).
- 419)응성문應聲聞과 아만성문我慢聲聞과 작보리원성문作菩提願聲聞과 정멸성성문定滅性聲聞은, 그 차례대로 위의 『瑜伽師地論』 제80권에서 언급했던 변화성문變化聲聞과 증상만성문增上慢聲聞과 회향보리성문回向菩提聲聞과 일향취적성문一向趣寂聲聞에 해당한다. 『大寶積經論』 권3(T26, 220a28) 참조.
- 420)엄밀하게 말하면 『法華論』의 퇴보리성문은 『瑜伽師地論』의 회향성문 중 일부에 해당하는데, 이 『法華論』에서는 회향성문의 일부(퇴보리성문)를 거론함으로써 실제로는 회향성문 전체를 가리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 421)오위백법五位百法을 오온五蘊에 배대시키면 모든 심소법과 불상응법不相應法 등은 행온行蘊에 포함된다. 그런데 심소법 중에서 조작하는 작용을 하는 것이 ‘사思’이고, 행온이란 본래 무엇인가를 조작해 내는 힘을 가리키기 때문에 사수思數를 들어서 행온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퇴보리’를 언급함으로써 실제로는 대승으로 회심한 성문 전체를 지칭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 422)『瑜伽師地論』의 네 종류와 비교해 보면, 『入楞伽經』 제7권에서 열거한 ‘퇴보리성문과 적멸성문과 증상만성문’ 등 세 종류는 『瑜伽師地論』에서 변화성문을 제외시킨 것이다.
- 423)『瑜伽師地論』의 네 종류와 비교해 보면, 『解深密經』에서는 일향취적성문一向趣寂聲聞과 회향보리성문回向菩提聲聞만 설하고 변화성문과 증상만성문을 설하지 않았다. 변화성문을 설하지 않은 뜻은, 『入楞伽經』 제7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재의 성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증상만성문’을 설하지 않은 뜻은, 『瑜伽師地論』 제74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원성문誓願聲聞(회향성문)에 포함되거나, 혹은 서원성문과 법성성문(결정성문) 두 종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 1)「一」上經有「謂」。
- 1)「別」下一有「故」。
- 1)「若」下疑脫「依」。
- 2)「二縛」疑剩{編}。
- 1)「眼」疑「根」。
- 1)「衆」下疑脫「相」。
- 2)「耶」異作「取」次同。
- 1)「白」異作「由」。
- 2)「有」疑「時」。
- 1)「初」下疑脫「地」。
- 1)「人從」疑寫倒。
- 1)「色」下疑脫「苦」。
- 2)「名」下疑脫「苦」。
- 1)「自」下疑脫「性」。
- 2)「無」上疑脫「如」。
- 3)「三」下疑脫「者」。
- 1)「堅」異有「爲堅」。
- 1)「相」下疑脫「無」。
- 1)「義」疑衍。
- 1)「其」疑「共」。
- 2)「勉」「免」音通。
- 1)「第二」疑寫誤。
- 1)「客」異作「寂」。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백진순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