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화엄경소 권삼 병서(華嚴經疏 卷三 幷序) / 晋譯華嚴經疏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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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소花嚴經疏
진역晋譯『화엄경소華嚴經疏』 서序
아무런 걸림이 없는 법계의 법문이란 법이 없으면서도 법이 아님도 없고 문이 아니면서도 문이 아님도 없다. 그래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으며, 움직이지도 않고 고요하지도 않으며, 하나이지도 않고 여럿이지도 않다. 크지 않기 때문에 극미極微가 되고도 남음이 없고, 작지 않기 때문에 태허太虛1)가 되고도 남는다. 빠르지 않으므로 삼세의 겁파刦波(ⓢ kalpa, 겁)를 품을 수 있고, 느리지 않으므로 전체가 한 찰나에 들어간다. 움직이지도 않고 고요하지도 않으므로 생사가 열반이 되고 열반이 생사가 된다. 하나이지도 않고 여럿이지도 않으므로 한 법이 모든 법이고 모든 법이 한 법이다.
이와 같이 아무런 걸림이 없는 법으로 법계 법문의 도술道術을 만드니, 모든 대보살이 들어가는 곳이고 삼세의 모든 부처가 나오는 곳이다. 이승二乘과 사과四果는 귀먹고 눈멀며, 범부와 하사下士는 비웃고 놀란다. 이 법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순간이 지나기 전에 무한한 삼세를 두루 나타낼 수 있고, 시방세계를 작은 티끌 하나 안에 모두 넣을 수 있으니, 이러한 도술을 어떻게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저 법문에 의지하여 세상일을 본다면, 하루에 세 번 문밖을 나가고 열 사람이 함께 방 안에 앉는 것과 같으니, 쉽게 하는 것에 무슨 기이하고 특별함이 있겠는가. 더욱이 수미산이 겨자씨로 들어가는 것은 돌피2)가 커다란 (곡식) 창고에 들어가는 것이며, 방장3)이 여러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주가 만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받아들이고 들어가는 일이 매우 거리낌이 없는데 어찌 어려울 수 있겠는가.
봉황새가 푸른 구름까지 날아오르면 산악의 나직함을 내려다보고, 하백河伯이 큰 바다에 이르면 하천의 좁음을 되돌아 부끄럽게 여기는 것4)처럼,

001_0495_a_01L[華嚴經疏]

001_0495_a_02L1)晋譯華嚴經疏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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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_0495_a_04L釋元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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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夫無障無碍法界法門者無法而無
001_0495_a_06L不法非門而無不門也爾乃非大非小
001_0495_a_07L非促非奢不動不靜不一不多由非
001_0495_a_08L大故作極微而無遺以非小故爲大虛
001_0495_a_09L而有餘非促之故能含三世劫 [2] 非奢
001_0495_a_10L之故擧體入一刹不動不靜故生死爲
001_0495_a_11L涅槃涅槃爲生死不一不多故一法
001_0495_a_12L是一切法一切法是一法如是無障無
001_0495_a_13L礙之法乃作法界法門之術諸大菩薩
001_0495_a_14L之所入也三世諸佛之所出也二乘四
001_0495_a_15L果之聾盲凡夫下士之所笑驚若人得
001_0495_a_16L入是法門法 [3] 卽能不過一念普現無邊
001_0495_a_17L三世復以十方世界咸入一微塵內
001_0495_a_18L等道術豈可思議然依彼門用看此
001_0495_a_19L猶是一日三出) [4] 門外十人共坐堂內
001_0495_a_20L俓然之域有何奇特況乎須彌入於芥
001_0495_a_21L子者稊來 [5] 入於大倉也方丈內乎衆座
001_0495_a_22L宇宙內於萬物也內入甚寬何足
001_0495_a_23L爲難乎哉若乃鳳皇翔于靑雲下觀山
001_0495_a_24L岳之卑河伯届乎大海顧羞川河之狹

001_0495_b_01L배우는 이가 이 경의 보문普門5)에 들어오면 비로소 배운 것이 편협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날개가) 짧은 새는 산림에 의지하여 형체를 기르고, 작은 물고기는 시냇물에 잠겨서 본성을 편안히 하니, 이런 까닭에 얕고 친근한 교문敎門도 그만둘 수 없을 뿐이다.

지금 이 경은 바로 원만하고 위없는 돈교頓敎의 법륜法輪으로 법계의 법문을 널리 펼쳐 끝없는 행덕行德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행덕에는 두려울 것이 없지만 그것을 드러내 보여 단계를 밟게 하였으니 단계를 밟기 때문에 닦아 나아갈 수 있으며, 법문에는 끝이 없지만 그것을 펼쳐 표적을 삼게 하였으니 표적을 삼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저 문에 나아가 들어간 자는 곧 들어갈 것이 없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도 없으며, 이 덕을 수행한 자는 곧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얻지 않을 것도 없다. 이에 삼현三賢6)과 십성十聖7)의 어느 행行이나 원만하지 않음이 없고, 삼신三身8)과 십불十佛9)의 어느 덕德이나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없다. (이 경의) 그 문장은 빛나고 빛나며 그 의미는 넓고 넓으니,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대방광불화엄大方廣佛華嚴’이란, 법계가 무한無限함이 ‘대방광’이며 행덕이 무변無邊함이 ‘불화엄’이다. 대방大方이 아니면 불화佛華를 넓힐(廣) 수 없고, 불화佛華가 아니면 대방大方을 장엄(嚴)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쌍으로 방方과 화華의 일을 들어 그 광廣과 엄嚴의 뜻(宗)을 나타내었다. ‘경經’이란 원만한 법륜이 (공간적으로) 시방의 남음 없는 세계에까지 두루 들리고 (시간적으로) 삼세의 경계 없는 유정有情에게까지 널리 퍼져, 궁극의 변함없는 법칙이기 때문에 경經이라고 하였다. 이런 대의를 들어 제목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말하였다.


001_0495_b_01L學者入乎此經普門方知會 [6] 學之齷齪
001_0495_b_02L然短翮之鳥庇山林而養形微▼((着-目)+魚)
001_0495_b_03L之魚潜涓流而安性所以淺近敎門
001_0495_b_04L不可已之耳今是經者斯乃圓滿無上
001_0495_b_05L頓敎法輪廣開法界法門顯示無邊行
001_0495_b_06L行德無畏而示之階階故可以造修
001_0495_b_07L法門無涯開之的的故可以進趨矣
001_0495_b_08L趨入彼門者卽無所入故無所不入也
001_0495_b_09L修行此德者卽無所得故無所不得也
001_0495_b_10L於是三賢十聖無行而不圓三身十佛
001_0495_b_11L無德而不備其文郁郁其義蕩蕩
001_0495_b_12L可得而稱焉所言大方廣佛華嚴者
001_0495_b_13L界無限大方廣也行德無邊佛華嚴也
001_0495_b_14L非大方無以廣佛華非佛華無以嚴大
001_0495_b_15L所以雙擧方華之事表其廣嚴之宗
001_0495_b_16L所言經者圓滿法輪周聞十方無餘世
001_0495_b_17L遍轉三世無際有情極䡄窮常故名
001_0495_b_18L2) [2] 擧是大意以標題目故言道大
001_0495_b_19L方廣佛華嚴經也

001_0495_b_20L{底}東文選第八十三卷所載序文「徑」疑
001_0495_b_21L「經」{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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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원문은 ‘대허大虛’이나 일반적으로 ‘태허太虛’로 사용한다. ‘대大’와 ‘태太’는 통용된다. 태허太虛는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편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 만물의 근원인 무형의 도道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고요하고 현묘한 경지나 우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2. 2)원문은 ‘대허大虛’이나 일반적으로 ‘태허太虛’로 사용한다. ‘대大’와 ‘태太’는 통용된다. 태허太虛는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편에 나오는 말이다. 천지 만물의 근원인 무형의 도道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고요하고 현묘한 경지나 우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3. 3)방장 : 방장方丈은 사방으로 1장丈(약 3m)이 되는 방이라는 뜻인데, 특히 총림의 최고 어른을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보통 유마거사가 신통을 부려 문병 온 이들을 위해 방 안에 3만 2천 자리를 마련했다는 『維摩經』의 내용(T14, 546b)에 따라 ‘방장’의 기원이 『維摩經』이라고 한다. 하지만 『維摩經』에서 유마거사의 방이 사방 1장이라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다. 670년에 지어진 『法苑珠林』 권29에 “당나라 현경顯慶(656~661) 때에 칙사 왕현책王玄策이 인도에 가서 유마의 집을 지나다가, 홀笏로 그 집터를 재 보았더니 10홀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집을 방장실이라 했다.”(T53, 501c)는 기록이 보인다.
  4. 4)하백河伯이 큰~여기는 것 : 하백은 황하黃河의 수신水神이다. 『莊子』 「秋水」편에, 가을이 되어 모든 냇물이 황하로 흘러들자 천하의 아름다움이 모두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던 황하의 신 하백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자 바다의 무한함에 스스로 탄식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5. 5)보문普門 : ✽ samanta-mukha. 화엄을 가리킨다. 화엄종에서는 하나의 문 안에 원융한 법계를 포섭하므로 보문이라고 한다. 『華嚴經探玄記』 권2(T35, 138b).
  6. 6)삼현三賢 : 성자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세 가지의 수행 단계. 일반적으로 대승의 삼현은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의 셋을 든다.
  7. 7)십성十聖 : 십지위十地位의 보살을 가리킨다. 보통 삼현三賢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8. 8)삼신三身(ⓢ trikāya) : 부처의 세 가지 유형이다. 법신法身은 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나타낸 우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 보신報身은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를 의미한다. 응신應身은 때와 장소,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나타나 그들을 구제하는 부처를 의미한다.
  9. 9)십불十佛 : 『華嚴經』에서 설하는 열 종류의 부처님이다. 화엄종에서는 십불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행경行境의 십불은 『華嚴經』 「離世間品」에 나오는 열 종류의 부처님이며, 해경解境의 십불은 「十地品」에 나오는 열 종류의 부처님이다. 『華嚴經孔目章』 권2(T45, 560a)
  1. 1){底}東文選。第八十三卷。所載序文。
  2. 2)「徑」疑「經」{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