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 / 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三

ABC_BJ_H0020_T_003

001_0753_b_02L
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3권(大乘起信論疏記會本 卷三)

마명보살이 논을 지음(馬鳴菩薩造論)
양나라 천축삼장 진제가 한역함(梁天竺三藏眞諦譯)
해동사문 원효가 소를 지음【『별기』를 병기하였다.】(唐海東沙門元曉疏【幷別記】)

Ⓑ 본각을 자세히 밝힘

이 아래는 본각을 자세히 풀었으니 이 중에 둘이 있다. 먼저 수염본각隨染本覺1)을 밝혔고 뒤에 성정본각性淨本覺2)을 나타냈다.

a. 수염본각 : 지정상과 부사의업상

또한 본각이 염染을 따라 분별하여 두 가지의 상을 내지만, 저 본각과 서로 버리거나 여의지 아니하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지정상智淨相이고, 둘째는 부사의업상不思議業相이다.
지정상이 법력의 훈습에 의하여 여실히 수행하여 방편을 만족하기 때문에 화합식상和合識相을 깨뜨리고 상속심상相續心相을 없애 법신을 현현하여 지혜가 맑고 깨끗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모든 심식의 상이 다 무명이니, 무명의 상이 본각의 성질을 여의지 않아서 파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파괴할 수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큰 바다의 물이 바람에 의하여 물결이 움직일 때, 물의 특징(水相)과 바람의 특징(風相)이 서로 떨어지지 않지만, 물은 움직임을 본성으로 하지 않는지라 만일 바람이 그쳐서 없어지면 움직이는 특성(곧 물결)은 곧 없어지나 물의 젖는 본성은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의 자성청정심도 무명의 바람에 의하여 움직일 때 마음과 무명이 모두 형상이 없어서 서로 떨어지지 않지만,3) 마음은 움직임을 본성으로 하지 않는지라 만일 무명이 없어지면 상속하는 것이 곧 없어지나 지혜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부사의업상이란 지혜가 맑아짐에 의하여 모든 뛰어난 경계를 짓는 것이니, 이른바 무량한 공덕의 상이 항상 끊어짐이 없어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자연히 상응하여 여러 가지로 나타나 이익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001_0753_b_02L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三

001_0753_b_03L

001_0753_b_04L馬鳴菩薩造論

001_0753_b_05L梁天竺三藏眞諦譯

001_0753_b_06L1)海東沙門元曉疏幷別

001_0753_b_07L
以下廣本覺於中有二先明隨染本
001_0753_b_08L後顯性淨本覺

001_0753_b_09L
復次本覺隨染分別生二種相與彼本
001_0753_b_10L覺不相捨離云何爲二一者智淨相
001_0753_b_11L二者不思議業相智淨相者謂依法力
001_0753_b_12L熏習如實修行滿足方便故破和合
001_0753_b_13L識相滅相續心相顯現法身智淳淨
001_0753_b_14L此義云何以一切心識之相皆是
001_0753_b_15L無明無明之相不離覺性非可壞
001_0753_b_16L不可壞如大海水因風波動水相風
001_0753_b_17L相不相捨離而水非動性若風止滅
001_0753_b_18L動相則滅濕性不壞故如是衆生自性
001_0753_b_19L淸淨心因無明風動心與無明俱無形
001_0753_b_20L不相捨離而心非動性若無明滅
001_0753_b_21L相續則滅智性不壞故不思議業相者
001_0753_b_22L以依智淨能作一切勝妙境界所謂無
001_0753_b_23L量功德之相常無斷絶隨衆生根
001_0753_b_24L然相應種種而現得利益故

001_0753_c_01L
처음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총괄하여 나타냈고, 둘째는 이름을 나열하였으며, 셋째는 상을 분별하였다.

a) 총괄하여 나타냄

처음에 “두 가지의 상을 내지만”이라고 한 것은,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상이 수동문隨動門4)에 있기 때문에 ‘내지만’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성정본각을 여의지 않았기 때문에 “저 본각과 서로 버리거나 여의지 아니하니”라고 말하였다.

b) 이름을 나열함

두 번째 이름을 나열하는 가운데 “지정상”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수염본각의 상을 밝힌 것이고, “부사의업상”은 이 본각이 깨끗함(淨)에 돌아왔을 때의 업용을 밝힌 것이다.

c) 상을 분별함

세 번째 상을 분별하는 가운데 먼저 지정상을 분별하였다.

(a) 지정상을 분별함

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주장(法)과 실례(喩)와 적용(合)이다.

ⓐ 주장

주장(法)에 두 가지가 있으니, 곧바로 밝힌 것과 거듭 나타낸 것이다.

i. 곧바로 밝힘

처음 중에 “법력의 훈습”이라고 말한 것은 진여법의 내훈內熏하는 힘을 이르는 것이니, 이 훈습하는 힘에 의하여 자량資糧을 수습하여 지상地上(십지 이상)의 여실한 수행을 내게 되며, 무구지에 이르러 방편을 만족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화합식 내의 생멸상을 깨뜨리고 그것의 불생불멸의 본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화합식상을 깨뜨리고……법신을 현현하여”라고 말한 것이다. 이때에 상속심 가운데의 업상ㆍ전상을 없애 그 수염본각의 마음으로 하여금 드디어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여 맑고 깨끗한 지혜를 이루게 하기 때문에 “상속심상을 없애……지혜가 맑고 깨끗하게 됨”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중에 상속식이란 오히려 화합식 내의 생멸하는 마음인데, 다만 법신을 밝게 나타내기 때문에 ‘화합식상을 깨뜨리고’라고 말하였고 응신應身의 깨끗한 지혜를 이루기 때문에 ‘상속심상을 없애’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상속심의 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상속심의 상을 없애는 것이니 이는 『십권능가경』에서 “그러므로 대혜야, 모든 식의 자상은 없어지는 것이니, 자상이 없어진다는 것은 업상이 없어지는 것이다. 만약 자상(자상의 체)이 없어진다면 외도의 단견 희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모든 외도가 ‘모든 경계를 여의어서

001_0753_c_01L
初中有三一者總標二者列名
001_0753_c_02L者辨相初中言生二種相者如是二
001_0753_c_03L種相在隨動門故言生也此二不
001_0753_c_04L離性淨本覺故言與彼不相捨離
001_0753_c_05L二列名中言智淨相者正明隨染本
001_0753_c_06L覺之相不思議業相者明此本覺還
001_0753_c_07L淨時業也第三辨相中先辨智淨相
001_0753_c_08L於中有三法喩與合法中有二
001_0753_c_09L直明重顯初中言法力熏習者
001_0753_c_10L眞如法內熏之力依此熏力修習資
001_0753_c_11L得發地上如實修行至無垢地滿
001_0753_c_12L足方便由是能破和合識內生滅之
001_0753_c_13L顯其不生不滅之性故言破和合
001_0753_c_14L識相顯現法身此時能滅相續心中
001_0753_c_15L業相轉相令其隨染本覺之心遂得
001_0753_c_16L歸源成淳淨智故言滅相續心相智
001_0753_c_17L淳淨故此中相續識者猶是和合識
001_0753_c_18L內生滅之心但爲顯現法身故說破
001_0753_c_19L和合識爲成應身淨智故說滅相續
001_0753_c_20L心相然不滅相續心但滅相續心之
001_0753_c_21L相也如經說言是故大慧諸識自
001_0753_c_22L相滅自相滅者業相滅若自相滅者
001_0753_c_23L不異外道斷見戱論諸外道說離諸
001_0753_c_24L「海」上有「唐」{甲}

001_0754_a_01L상속식이 없어지는 것이니 상속식이 없어지고 나면 곧 모든 식이 없어진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대혜야, 만약 상속식이 없어지는 것이라면 무한한 과거로부터 모든 식이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5)라고 하고 이어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ii. 거듭 나타냄
“이 뜻이 무엇인가.” 이하는 앞서 말한 ‘멸滅’과 ‘불멸不滅’의 뜻을 거듭 나타낸 것이다. “모든 심식의 상이 다 무명이니”라는 것은 업식ㆍ전식 등의 모든 식의 상이 무명에 의해 일어난 것이어서 모두 불각임을 이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다 무명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식의 불각의 상이 수염본각의 성질을 여의지 않았기 때문에 “본각의 성질을 여의지 않아서”라고 말한 것이다. 이 무명의 상이 본각의 성질과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니, 다르지 않기 때문에 깨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같지 않기 때문에 깨뜨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만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깨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뜻에 의하여 말한다면 무명이 바뀌어 곧 명明이 될 것이며, 만일 같지 않기 때문에 깨뜨릴 수 없는 것이 아닌 뜻에 의하여 말한다면 무명은 없어지더라도 본각의 성질은 깨뜨려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 글 가운데는 같지 않다는 쪽에 의하기 때문에 ‘상속심상을 없애’라고 말한 것이다.

ⓑ 실례

실례(喩) 가운데서 “물은 움직임을 본성으로 하지 않는지라”라는 것은 지금 움직이는 것이 자성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것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자성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움직이는 특성이 없어질 때 젖는 본성도 따라서 없어져야 할 것이지만, 다른 것을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움직이는 특성은 비록 없어지더라도 젖는 본성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 적용

적용(合) 중에 “무명이 없어지면”이라고 말한 것은 본래의 무명이 없어지는 것이니, 이것은 “바람이 그쳐서 없어지면”이라는 실례에 적용한 것이다. “상속하는 것이 곧 없어지나”라는 것은 업식 등이 없어지는 것이니, “움직이는 특성은 곧 없어지나”라는 실례에 적용한 것이다. “지혜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수염본각의 신해神解한 성질을 지성智性이라 하는 것이니, 이것은 “젖는 본성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실례에 적용한 것이다.

(b) 부사의업상을 해석함

다음으로 부사의업상을 해석하는 가운데 “지혜가 맑아짐에 의하여”라는 것은 앞서 수염본각의 마음이 비로소 맑고 깨끗하여짐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시각의 지혜이며, 이 지혜의 힘에 의하여 응화신應化身을 나타내기 때문에 “무량한 공덕의 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001_0754_a_01L境界相續識滅相續識滅已卽滅
001_0754_a_02L諸識大慧若相續識滅者無始世來
001_0754_a_03L諸識應滅乃至廣說也此義云何以
001_0754_a_04L重顯前說滅不滅義一切心識之
001_0754_a_05L相皆是無明者謂業識轉識等諸識
001_0754_a_06L無明所起皆是不覺以之故言皆
001_0754_a_07L是無明如是諸識不覺之相不離隨
001_0754_a_08L染本覺之性以之故言不離覺性
001_0754_a_09L無明相與本覺性非一非異非異故
001_0754_a_10L非可壞而非一故非不可壞若依非
001_0754_a_11L異非可壞義說無明轉卽變爲明
001_0754_a_12L就非一非不可壞之義說無明滅覺
001_0754_a_13L性不壞今此文中依非一門故說滅
001_0754_a_14L相續心相也喩中言水非動性者
001_0754_a_15L今之動非自性動但隨他動若自性
001_0754_a_16L動者動相滅時濕性隨滅而隨他
001_0754_a_17L故動相雖滅濕性不壞也合中
001_0754_a_18L言無明滅者本無明滅是合風滅也
001_0754_a_19L相續卽滅者業識等滅合動相滅也
001_0754_a_20L智性不壞者隨染本覺神解之性名
001_0754_a_21L爲智性是合濕性不壞也次釋不思
001_0754_a_22L議業相中依智淨者謂前隨染本覺
001_0754_a_23L之心始得淳淨是始覺智依此智
001_0754_a_24L力現應化身故言無量功德之相

001_0754_b_01L여기서 나타난 상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서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끊어짐이 없어서”라고 말하였다. 이는 『금고경』에서 “응신이란 것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생사가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의 불공법不共法이 섭지攝持할 수 있기 때문이며, 중생이 다하지 아니하는지라 업용業用도 다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상주한다고 말한다.”6)라고 하며, 『보성론』에서 “무엇이 자신의 이익을 성취하는 것인가? 해탈을 얻은 것을 말함이니, 번뇌장煩惱障7)과 지장智障8)을 멀리 여의고 장애가 없는 깨끗한 법신을 얻는 것을 자신의 이익을 성취한다고 이름한다. 무엇이 타신他身의 이익을 성취하는 것인가? 이미 자신의 이익을 성취하고 나서는 무한한 과거로부터 자연히 저 두 종류의 불신佛身9)에 의하여 세간의 자재한 위력과 행위를 나타내는 것을 타신의 이익을 성취한다고 이름한다.”10)라고 한 것과 같다.

비로소 자신의 이익을 얻고 나서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행위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으면서, 어째서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것을 무한한 과거(無始)라고 말했는가?

여래는 한 찰나(一念)에 삼세를 두루 응하시니 응하는 대상(所應 : 삼세)이 시초가 없기 때문에 응하는 주체(能應 : 여래의 지혜)도 곧 시초가 없다. 이는 마치 한 찰나의 원만한 지혜가 한없는 삼세의 경계에 두루 이르는 것과 같으니, 경계가 끝이 없기 때문에 지혜도 한이 없고, 한없는 지혜가 나타내는 상이기 때문에 시작도 없게 되며 끝도 없게 되니, 이것은 심식에 의해 사량하여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사의업’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b. 성정본각 : 여실공경ㆍ인훈습경ㆍ법출리경ㆍ연훈습경

다음에 각체상覺體相(성정본각의 체가 지니는 상)이란 것은 네 가지의 큰 뜻이 있어서 허공과 같으며, 이는 마치 맑은 거울과도 같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여실공경如實空鏡이니, 모든 마음의 경계상을 멀리 여의어서 나타낼 만한 법이 없는지라 각조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훈습경因熏習鏡이니, 여실불공을 말한다. 일체 세간의 경계가 모두 그 가운데 나타나되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아니하며, 잃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아서 일심에 항상 머무르니, 이는 일체법이 곧 진실성이기 때문이며,

001_0754_b_01L所現相無始無終相續不絶故言
001_0754_b_02L無斷如金鼓經言應身者從無始生
001_0754_b_03L死相續不斷故一切諸佛不共之法
001_0754_b_04L能攝持故衆生不盡用亦不盡
001_0754_b_05L說常住寶性論云何者成就自身利
001_0754_b_06L謂得解脫遠離煩惱障智障得
001_0754_b_07L無障礙淸淨法身是名成就自身利
001_0754_b_08L何者成就他身利益旣得成就自
001_0754_b_09L身利益已無始世來自然依彼二種
001_0754_b_10L佛身示現世間自在力行是名成就
001_0754_b_11L他身利益始得自利已方起利
001_0754_b_12L他業云何利他說無始耶解云
001_0754_b_13L來一念徧應三世所應無始故
001_0754_b_14L應則無始猶如一念圓智徧達無邊
001_0754_b_15L三世之境境無邊故智亦無邊
001_0754_b_16L邊之智所現之相故得無始亦能無
001_0754_b_17L此非心識思量所測是故名爲不
001_0754_b_18L思議業也

001_0754_b_19L
復次覺體相者有四種大義與虛空等
001_0754_b_20L猶如淨鏡云何爲四一者如實空鏡
001_0754_b_21L遠離一切心境界相無法可現非覺照
001_0754_b_22L義故二者因熏習鏡謂如實不空
001_0754_b_23L切世間境界悉於中現不出不入
001_0754_b_24L失不壞常住一心以一切法卽眞實性

001_0754_c_01L또 일체의 염법이 더럽힐 수 없으니 지체智體는 움직이지 아니하여 무루無漏11)를 구족하여 중생을 훈습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법출리경法出離鏡이니, 불공법이 번뇌애와 지애12)를 벗어나고 화합상을 여의어서 깨끗하고 맑고 밝게 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연훈습경緣熏習鏡이니, 법출리法出離에 의하기 때문에 중생의 마음을 두루 비추어 선근을 닦도록 하여 (중생의) 생각에 따라 나타내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성정본각의 상을 밝혔으니 그 가운데 둘이 있다. 첫째는 총괄하여 나타내었고 둘째는 따로 풀이하였다.

a. 총괄하여 나타냄

처음 중에 “허공과 같으며”라고 말한 것은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고, “마치 맑은 거울과도 같다.”는 것은 얼룩을 없애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네 종류의 뜻 가운데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얼룩을 없앤다는 뜻에 의하여 맑은 거울에 비유하였고, 두 번째와 네 번째는 형상을 나타내는 뜻에 의하여 역시 맑다는 뜻을 둔 것이다.

b. 따로 설명함

따로 설명한 중에는 네 가지를 각각 나타냈으니, 이 가운데 앞의 둘은 인성因性에 있고 뒤의 두 가지는 과지果地에 있다. 앞의 두 가지는 공空과 지智를 밝혔으니, 이는 『대반열반경』에서 “불성이라는 것은 제일의공第一義空13)이며, 제일의공을 지혜라고 이른다. 지혜란 공과 불공을 나타내고 제일의공 (자체는) 공과 불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14)라고 하고 이어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a) 여실공경

이제 여기서 처음 가운데 “모든 마음의 경계상을 멀리 여의어서”라고 말한 것은 곧 『대반열반경』의 ‘제일의공’을 나타낸 것이고, “나타낼 만한 법이 없는지라 각조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공과 불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는 것을 해석한 것이다.

(b) 인훈습경

두 번째에 “일체 세간의 경계가 모두 그 가운데 나타나되”라는 것은 저 경(『대반열반경』)의 ‘지혜란 공과 불공을 나타내고’라고 한 것을 풀이한 것이니, 이는 『대반열반경』에서 “공이라는 것은 일체의 생사이고, 불공이라는 것은 대열반을 이르기 때문이다.”15)라고 한 것과 같으며, 이 『기신론』에서는 다만 생사의 경계를 나타낸 것이다. 이미 거울에 나타났기 때문에 “나오지도 않고”라고 말하였고,

001_0754_c_01L又一切染法所不能染智體不動
001_0754_c_02L具足無漏熏衆生故三者法出離鏡
001_0754_c_03L謂不空法出煩惱礙智礙離和合相
001_0754_c_04L淳淨明故四者緣熏習鏡謂依法出離
001_0754_c_05L徧照衆生之心令修善根隨念示
001_0754_c_06L現故

001_0754_c_07L
次明性淨本覺之相於中有二
001_0754_c_08L者總標二者別解初中言與虛空等
001_0754_c_09L無所不徧故猶如淨鏡者離垢
001_0754_c_10L現影故四種義中第一第三依離
001_0754_c_11L垢義以況淨鏡第二第四依現像義
001_0754_c_12L亦有淨義也別解之中別顯四種
001_0754_c_13L此中前二在於因性其後二種在於
001_0754_c_14L果地前二種者明空與智如涅槃
001_0754_c_15L經言佛性者第一義空第一義空名
001_0754_c_16L爲智慧智者見空及與不空 [16] 者不
001_0754_c_17L見空與不空乃至廣說今此初中言
001_0754_c_18L遠離一切心境界相者卽顯彼經第
001_0754_c_19L一義空也無法可現非覺照義者
001_0754_c_20L釋不見空與不空也第二中言一切
001_0754_c_21L世間境界悉於中現者是釋彼經智
001_0754_c_22L慧者見空及與不空如彼經言空者
001_0754_c_23L一切生死不空者謂大涅槃故此中
001_0754_c_24L但現生死境界旣現於鏡故言不出

001_0755_a_01L그러면서도 거울을 더럽히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지도 아니하며”라고 말한 것이며, 곳에 따라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 본각의 양量과 같아서 허공계와 같고, 삼세의 모든 때에 두루하기 때문에 찰나찰나 잃음이 없으며, 또한 멸진하여 파괴됨도 없기 때문에 “잃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아서 일심에 항상 머무르니”라고 말하였다. 이상은 그 맑은 거울의 뜻을 밝혔고 “또 일체의” 이하는 인훈습의 뜻을 풀이하였다.

(c) 법출리경

세 번째에서 “두 가지 장애(번뇌애와 지애)를 벗어나고……깨끗하고 맑고 밝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은 앞서 말한 인훈습경이 번뇌(번뇌애와 지애)에서 벗어났을 때 법신이 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d) 연훈습경

네 번째에서 “법출리에 의하기 때문에 중생의 마음을 두루 비추어”라고 말한 것은, 곧 저 본각이 밝게 나타날 때 중생의 근기를 똑같이 비추어 온갖 교화를 나타내는 것이니, 그런 까닭에 “(중생의) 생각에 따라 나타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부사의업과 어떤 점이 다른가? 저기서는 응신과 시각의 업용을 밝힌 것이고, 여기서는 본각과 법신의 작용을 나타낸 것이니, 하나의 교화를 일으킴에 따라서 이 두 가지 뜻이 있게 되는 것이다. 총괄하여 말하면 그러하지만 그 가운데 분별해 본다면 만일 시각이 일으킨 쪽으로 논하면 연의 상속에 따라서 이익을 얻게 하니, 그 근본인 수염본각은 본래 서로 관련되어 친소가 있기 때문이고, 그 본각이 나타낸 쪽으로 논하면 근기가 성숙된 정도에 따라 널리 이익되게 하여 (연의) 상속을 가리지 않는 것이니, 그 본래의 성정본각은 일체에 고루 통하여 친소가 없기 때문이다. 각의 뜻을 자세히 설명한 것을 마친다.

별기 네 가지의 경鏡 가운데 두 번째 인훈습이라는 것은 이 성공덕性功德이 바른 인연을 지어서 중생의 마음을 훈습하여 염락厭樂(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를 즐겨하는 것)과 모든 가행加行을 일으켜서 이에 불과佛果16)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인훈습’이라고 말한 것이고,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그 가운데 나타나기 때문에 ‘경鏡’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는 『화엄경』에서 “비유하자면 깊고 큰 바다에 보화가 다함이 없어서 그 가운데 중생의 형류상形類像을 모두 나타내는 것과 같이, 매우 깊은 인연의 바다에

001_0755_a_01L而不染鏡故曰不入隨所現像
001_0755_a_02L本覺量等虛空界徧三世際故無念
001_0755_a_03L念之失亦無滅盡之壞故言不失不
001_0755_a_04L壞常住一心等也上來明其淨鏡之
001_0755_a_05L又一切下釋因熏習義也第三中
001_0755_a_06L言出於二礙淳淨明者是明前說因
001_0755_a_07L熏習鏡出纏之時爲法身也第四中
001_0755_a_08L言依法出離故徧照衆生心者卽彼
001_0755_a_09L本覺顯現之時等照物機示現萬化
001_0755_a_10L以之故言隨念示現此與前說不思
001_0755_a_11L議業有何異者彼明應身始覺之業
001_0755_a_12L此顯本覺法身之用隨起一化有此
001_0755_a_13L二義總說雖然於中分別者若論始
001_0755_a_14L覺所起之門隨緣相屬而得利益
001_0755_a_15L其根本隨染本覺從來相關有親疏
001_0755_a_16L論其本覺所顯之門普益機熟不
001_0755_a_17L簡相屬由其本來性淨本覺等通一
001_0755_a_18L切無親疏故廣覺義竟

001_0755_a_19L

四種鏡中第二因熏習者此性
001_0755_a_20L功德能作正因熏衆生心能起厭
001_0755_a_21L樂及諸加行乃至佛果言因熏習
001_0755_a_22L一切諸法悉於中現故名爲鏡
001_0755_a_23L華嚴云譬如深大海珍寶不可盡
001_0755_a_24L於中悉顯現衆生形類像甚深因

001_0755_b_01L공덕의 보배가 다함이 없어서 맑고 깨끗한 법신 가운데 어떤 형상이든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17)라고 한 것과 같으니, 바로 이것을 이른 것이다. 네 번째 연훈습이라는 것은 비로소 원지圓智18)를 일으켜서 증상연增上緣을 지어 중생의 마음을 훈습하여 염락과 모든 가행을 일으키도록 하여 이에 불과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연훈緣熏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이러한 모든 행덕行德이 대원경지를 여의지 않으니 이는 저 지혜의 그림자이며, 따라서 ‘거울’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는 『불지경佛地經』19)에서 “대원경지大圓鏡智20)가 일체 중생의 모든 선법善法의 영상을 일으킨다.”21)라고 한 것과 같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의 경鏡은 뜻이 드러나니 알 수 있을 것이다.

B) 불각을 해석함

다음은 불각을 해석하였다. 그 가운데 셋이 있으니, 먼저는 근본불각을 설명하였고, 다음은 지말불각을 나타내었으며, 세 번째는 본말의 불각을 총괄하여 맺었다.

(A) 근본불각을 설명함

불각의 뜻이라고 말한 것은, 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의 마음이 일어나 그 망념이 있게 된 것을 이른다. 그러나 망념은 자상自相이 없어서 본각을 여의지 않았으니, 마치 방향을 잃은 사람이 방향에 의하기 때문에 혼미하게 되었으나, 만약 방향을 여읜다면 혼미함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각에 의하기 때문에 혼미하게 되었으나, 만약 각의 성질을 여읜다면 불각이 없을 것이다. 불각의 망상심이 있기 때문에 명의名義를 알아서 진각眞覺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만약 불각의 마음을 여읜다면 진각의 자상이라고 말할 만한 것도 없는 것이다.

처음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불각이 본각에 의하여 성립됨을 밝혔고 나중은 본각도 불각에 의지한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 불각이 본각에 의하여 성립됨을 밝힘

처음에 세 가지가 있으니 주장(法)과 실례(喩)와 적용(合)이다.
처음(주장) 가운데 “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은 근본무명인 것이니 마치 방향을 잃은 것과 같으며, “불각의 마음이 일어나 그 망념이 있게 된 것”이라는 것은 업상의 동념이니 마치 방향을 잘못 아는 것과 같다. 만일 올바른 동쪽을 여읜다면 달리 잘못된 서쪽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망념은 자상이 없어서 본각을 여의지 않았으니”라고 말한 것이다. 실례와 적용의 글은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본각도 불각에 의지함을 나타냄


001_0755_b_01L緣海功德寶無盡淸淨法身中
001_0755_b_02L像而不現正謂此也第四緣熏習
001_0755_b_03L始起圓智作增上緣熏衆生
001_0755_b_04L心令起厭樂及諸加行乃至佛果
001_0755_b_05L故名緣熏此諸行德不離圓智
001_0755_b_06L彼智影故名爲鏡如佛地經說大
001_0755_b_07L圓鏡智能起一切衆生諸善法影
001_0755_b_08L之謂也餘二種鏡義顯可知

001_0755_b_09L
次釋不覺於中有三先明根本不覺
001_0755_b_10L次顯枝末不覺第三總結本末不覺

001_0755_b_11L
所言不覺義者謂不如實知眞如法一
001_0755_b_12L不覺心起而有其念念無自相
001_0755_b_13L離本覺猶如迷人依方故迷若離於
001_0755_b_14L方則無有迷衆生亦爾依覺故迷
001_0755_b_15L離覺性則無不覺以有不覺妄想心故
001_0755_b_16L能知名義爲說眞覺若離不覺之心
001_0755_b_17L則無眞覺自相可說

001_0755_b_18L
初中亦二先明不覺依本覺立後顯
001_0755_b_19L本覺亦待不覺初中有三謂法
001_0755_b_20L初中言不如實知眞如法一故者
001_0755_b_21L根本無明猶如迷方也不覺心起而
001_0755_b_22L有其念者業相動念是如邪方
001_0755_b_23L離正東無別邪西故言念無自相不
001_0755_b_24L離本覺喩合之文文相可見也

001_0755_c_01L
다음은 본각도 불각에 의지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 “불각의 망상심이 있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은 무명이 일으킨 망상妄想의 분별이니, 이 망상으로 말미암아 명의名義를 알기 때문에 언설을 두어서 진각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진각이라는 이름이 망상과 상대相待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만약 불각의 마음을 여읜다면 진각의 자상이라고 말할 만한 것도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말한 바의 진각이 반드시 불각을 상대함을 밝힌 것이니, 만약 상대하지 않는다면 자상이 없으며 다른 것(불각)을 기다려서 있는지라 또한 자상이 아니니, 자상이 이미 없는데 어찌 타상他相이 있겠는가? 이는 모든 법이 얻을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니, 아래 문장에서 “염법과 정법이 모두 서로 의지하는 것이어서 말할 만한 자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22)라고 한 것과 같으며, 『대지도론』에서 “만일 세제世諦(속제ㆍ염법)23)가 조금이라도 실상이 있는 것이라면 제일의제第一義諦(진제ㆍ정법)24)도 마땅히 실상이 있을 것이다.”25)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B) 지말불각을 나타냄

이 아래는 지말불각을 자세히 나타내었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세상細相26)을 밝혔고 나중은 추상麤相27)을 나타내었다.

Ⓐ 삼세상을 밝힘

다시 불각에 의하기 때문에 세 가지 상이 생겨서 저 불각과 상응하여 여의지 않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무명업상이니, 불각에 의하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업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깨달으면 움직이지 않으며 움직이면 고통이 있게 되니, 결과가 원인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능견상能見相이다. 움직임에 의하기 때문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니, 움직이지 않는다면 볼 것이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경계상境界相이다. 능견에 의하기 때문에 경계가 거짓되이 나타나는 것이니 견見을 여읜다면 경계가 없어질 것이다.

처음 세상細相을 밝힌 것 중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총괄하여 나타낸 것과 각각 풀이한 것이다.

a. 총괄하여 나타냄

처음 가운데 “저 불각과 상응하여 여의지 않으니”라고 말한 것은 근본과 지말이 서로 의지하기 때문에 ‘상응하여’라고 말한 것이지 심왕과 심수가 상응한다는 뜻과는 같지 않으니, 이것(세 가지의 세상)은 불상응염심不相應染心28)이기 때문이다.


001_0755_c_01L明本覺亦待不覺於中有二初言以
001_0755_c_02L有不覺妄想心者無明所起妄想分
001_0755_c_03L由此妄想能知名義故有言說說
001_0755_c_04L於眞覺是明眞覺之名待於妄想也
001_0755_c_05L若離不覺則無眞覺自相可說者
001_0755_c_06L明所說眞覺必待不覺若不相待
001_0755_c_07L無自相待他而有亦非自相自相
001_0755_c_08L旣無何有他相是顯諸法無所得義
001_0755_c_09L如下文言當知一切染法淨法皆悉
001_0755_c_10L相待無有自相可說智度論云
001_0755_c_11L世諦如毫釐許有實者第一義諦亦
001_0755_c_12L應有實此之謂也
001_0755_c_13L此下廣顯枝末不覺於中有二先明
001_0755_c_14L細相後顯麤相

001_0755_c_15L
復次依不覺故生三種相與彼不覺相
001_0755_c_16L應不離云何爲三一者無明業相
001_0755_c_17L依不覺故心動說名爲業覺則不動
001_0755_c_18L動則有苦果不離因故二者能見相
001_0755_c_19L以依動故能見不動則無見三者境界
001_0755_c_20L以依能見故境界妄現離見則無境
001_0755_c_21L

001_0755_c_22L
初中亦二總標別釋初中言與彼
001_0755_c_23L不覺相應不離者本末相依故曰相
001_0755_c_24L非如王數相應之義此爲不相應

001_0756_a_01L
별기 이 가운데 앞서의 세 가지 상은 미세한 것이니 오히려 알라야식의 자리에 있고, 뒤의 여섯 가지는 추상이니 나머지 칠식이다. 다만 저 근본무명과 비교한다면 모두29) 근본무명이 일으킨 지말이기 때문에 통틀어 지말불각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b. 각각 풀이함

a) 무명업상

각각 풀이한 가운데 “무명업상”이라고 말한 것은 무명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을 ‘업상’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이며, 움직임을 일으킨다는 뜻이 바로 ‘업’의 뜻이니, 그러므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업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깨달으면 움직이지 않으며”라는 것은 깨닫지 못하면 움직인다는 것(不覺則動)의 상대를 들어서 반현反顯30)하는 것이니, 시각을 얻을 때는 곧 동념動念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움직이는 것이 다만 불각으로 말미암았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움직이면 고통이 있게 되니”라는 것은 만약 적정을 얻으면 곧 이것이 극락이기 때문에 여기서 움직임이 곧 고통이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으면) 업상은 고통(苦)이 없는 것이요 무명은 집集31)이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인因과 과果가 때를 같이하여 있기 때문에 “결과가 원인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 업상이 비록 동념이 있으나 매우 미세하여 능能(주체)과 소所(대상)가 아직 나뉘지 않았으니 그 근본무명도 역시 이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무상론無相論』32)에서 말했다.

이 식(알라야식)이 어떤 행상과 어떤 경계를 가지는가?
(식의) 행상과 경계를 분별할 수 없으니, 일체一體여서 다름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그 식이) 있다는 것을 알겠는가?
행사行事로 인하여 이 식이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이 식이 모든 번뇌와 업과 과보의 일을 일으킴이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즉, 무명이 항상 일어나지만 이 무명을 분별할 수 있느냐 없느냐? 만약 분별할 수 있다면 무명이라고 말하지 아니하였을 것이고, 만약 분별할 수 없다면 마땅히 있는 것이 아니로되 실은 있는 것이요, 없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욕欲33)ㆍ진瞋34) 등의 행사로 말미암아 무명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본식도 역시 마찬가지다.35)

그러므로 이러한 글의 뜻은 바로 업상에 의하여 본식本識36)을 드러낸 것이다.

b) 능견상

두 번째 “능견상”은 곧 전상轉相이니, 앞의 업상에 의하여 점차 능연能緣을 이루기 때문에

001_0756_a_01L染心故

001_0756_a_02L

此中先三相是微細猶在阿棃
001_0756_a_03L耶識位後六麤相是餘七識
001_0756_a_04L望彼根本無明皆是所起之末
001_0756_a_05L名枝末不覺也

001_0756_a_06L
別釋中言無明業相者依無明動
001_0756_a_07L爲業相故起動義是業義故言心動
001_0756_a_08L說名爲業也覺則不動者擧對反顯
001_0756_a_09L得始覺時則無動念是知今動
001_0756_a_10L由不覺也動則有苦者如得寂靜
001_0756_a_11L卽是極樂故今云動卽是苦也業相
001_0756_a_12L是無苦無明是無集如是因果俱時
001_0756_a_13L而有故言果不離因故然此業相雖
001_0756_a_14L有動念而是極細能所未分其本
001_0756_a_15L無明當知亦爾如無想 [17] 論云
001_0756_a_16L識何相何境相及境不可分別
001_0756_a_17L一體無異若爾云何知有
001_0756_a_18L事故知有此識此識能起一切煩惱
001_0756_a_19L業果報事譬如無明常起此無明可
001_0756_a_20L欲分別不若可分別非謂無明
001_0756_a_21L不可分別則應非有而是有非無
001_0756_a_22L亦由欲瞋等事知有無明本識亦爾
001_0756_a_23L故此等文意正約業相顯本識也
001_0756_a_24L二能見相者卽是轉相依前業相轉

001_0756_b_01L“움직임에 의하기 때문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성정문性靜門37)에 의한다면 능견이 없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볼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니, 도리어 능견은 움직임에 의하여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전상이 비록 능연이 있으나 반연하는 바의 경계의 상을 아직 나타낼 수 없으니, 이는 다만 밖으로 향하는 것일 뿐 경계에 의탁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이는 『섭대승론』에서 “의식은 삼세와 비삼세非三世38)의 경계를 반연하니 이것은 알 수 있지만”39) 이 식이 “반연하는 바의 경계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40)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알 만한 경계가 없기 때문이니, 십이인연十二因緣41)을 말할 때 처음(무명)은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이것(이 능견식의 경계)도 이와 같다. 이것은 전상에 의하여 본식을 나타낸 것이다.

c) 경계상

세 번째 “경계상”이라는 것은 곧 현상現相이니, 앞의 전상에 의하여 경계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능견에 의하기 때문에 경계가 거짓되이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말하였다. 이는 『사권능가경』에서 “대혜야,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 식이 있고 자세히 말하면 여덟 가지 상이 있다. 어떤 것들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진식眞識과 현식現識과 분별사식分別事識이니, 비유하자면 맑은 거울이 모든 물체의 형상을 지니는 것과 같이 현식이 (대상을) 드러내는 바도 역시 이와 같다.”42)라고 하며 또 아래 문장(『사권능가경』)에서 “비유하자면 장식은 자심自心이 나타내는 몸과 몸을 안립安立하는 것과 수용受用되는 경계를 한꺼번에 분별하여 아는 것과 같다.”43)라고 한 것과 같다.

별기 ‘한꺼번에 분별하여’라는 것은 능견상이고, ‘자심이 나타내는’ 등은 경계상이다. 『유가사지론』에서도 이 말과 같으니,44) 이와 같은 『능가경』과 『유가사지론』의 글들은 뒤의 두 가지 상(능견상ㆍ경계상)에 의하여 말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비록 둘의 구분이 있으나 업상을 여의지 아니하니 이는 유량문唯量門45)이고, 업상은 비록 능能(주체)과 소所(대상)가 없으나 능ㆍ소 두 가지를 함유하고 있으니 이는 유이문唯二門46)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이숙식異熟識에 포섭되지만, 다만 업번뇌에 의하여 미혹된다는 뜻의 측면에서는 업상이 동전動轉(움직이면서 전변함)ㆍ차별되어 전상轉相 등으로 다르게 된 것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에 총괄하여 이숙식이라고 말하였고,

001_0756_b_01L成能緣故言以依動能見依性靜門
001_0756_b_02L則無能見故言不動則無見也反顯
001_0756_b_03L能見要依動義如是轉相雖有能緣
001_0756_b_04L而未能顯所緣境相直是外向非託
001_0756_b_05L境故如攝論云意識緣三世及非
001_0756_b_06L三世境是則可知此識所緣境不可
001_0756_b_07L知故此言不可知者以無可知境故
001_0756_b_08L如說十二因緣始不可知此亦如是
001_0756_b_09L是約轉相顯本識也第三境界相者
001_0756_b_10L卽是現相依前轉相能現境界故言
001_0756_b_11L能見故境界妄現如四卷經言大慧
001_0756_b_12L略說有三種識廣說有八相何等爲
001_0756_b_13L謂眞識現識分別事識譬如明
001_0756_b_14L鏡持諸色像現識處亦復如是又下
001_0756_b_15L文言譬如藏識頓分別知自心現身 [18]
001_0756_b_16L及身安立受用境界

001_0756_b_17L

頓分別者是能見相自心及現 [19]
001_0756_b_18L是境界相瑜伽論中亦同此說
001_0756_b_19L如是等文是約後二相說此二雖
001_0756_b_20L有二分不離業相是唯量門
001_0756_b_21L相雖無能所含有二分是唯二門
001_0756_b_22L此三皆是異熟識攝但爲業煩惱
001_0756_b_23L所惑義邊不別業相動轉差別轉
001_0756_b_24L相等異是故總說爲異熟識爲無

001_0756_c_01L무명의 바람에 의하여 움직여진다는 뜻의 측면에서는 미세한 것으로부터 거친 데 이르기까지 동전하여 차별되기 때문에 자세히 구분하여 세 가지의 상을 세웠다. 또한 이 세 가지가 다만 무명에 의하여 움직여지기 때문에 제8식에 있으며, 뒤의 여섯 가지(추상)는 경계(경계상)에 의하여 움직여지기 때문에 칠식에 있으니, 곧 이런 뜻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칠식은 한결같이 생멸하기만 한다.’라고 말하여 알라야식이 이 두 뜻(생멸ㆍ불생멸)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것과는 같지 아니한 것이다.

이 논의 아랫글에서 현식現識을 설명하기를, “이른바 일체의 경계를 나타냄이 마치 밝은 거울이 물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 현식도 그러하여……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기 때문이다.”47)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글들은 현상現相에 의하여 본식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현상이 이미 본식에 있거늘 어찌 하물며 그 근본인 전상과 업상이 도리어 육ㆍ칠식 가운데 있다고 말하겠는가?

Ⓑ 육추상을 밝힘

경계의 연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섯 가지의 상을 내는 것이니,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지상智相이니, 경계에 의하여 마음이 일어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상속상相續相이니, 지상에 의하기 때문에 그 고락을 내어서 각심覺心48)으로 망념을 일으켜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집취상執取相이니, 상속에 의하여 경계를 반연하여 생각해서 고락에 주지住持하여 마음이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넷째는 계명자상計名字相이니, 잘못된 집착에 의하여 거짓된 명언의 상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기업상起業相이니, 명자에 의하여 이름을 따라가면서 집착하여 여러 가지 업 등을 짓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업계고상業繫苦相이니, 업에 의하여 과보를 받아서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추상麤相을 밝혔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총괄하여 나타낸 것과 각각 풀이한 것이다.

a. 총괄하여 나타냄

처음에 “경계의 연이 있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은, 앞의 현식이 나타낸 경계에 의하기 때문에 칠식 가운데 여섯 가지의 추상을 일으킨 것이니,

001_0756_c_01L明風所動義邊從細至麤動轉差
001_0756_c_02L是故細分立三種相又此三但
001_0756_c_03L爲無明所動故在第八後六乃爲
001_0756_c_04L境界所動故在七識卽由是義
001_0756_c_05L故說七識一向生滅不同棃耶俱
001_0756_c_06L含二義也

001_0756_c_07L
此論下文明現識云所謂能現一切
001_0756_c_08L境界猶如明鏡現於色像現識亦爾
001_0756_c_09L以一切時任運而起常在前故如是
001_0756_c_10L等文約於現相以顯本識如是現相
001_0756_c_11L旣在本識何況其本轉相業相反在
001_0756_c_12L六七識中說乎

001_0756_c_13L
以有境界緣故復生六種相云何爲六
001_0756_c_14L一者智相依於境界心起分別愛與
001_0756_c_15L不愛故二者相續相依於智故生其
001_0756_c_16L苦樂覺心起念相應不斷故三者執
001_0756_c_17L取相依於相續緣念境界住持苦樂
001_0756_c_18L心起著故四者計名字相依於妄執
001_0756_c_19L分別假名言相故五者起業相依於名
001_0756_c_20L尋名取著造種種業故六者業繫
001_0756_c_21L苦相以依業受果不自在故

001_0756_c_22L
次明麤相於中亦二總標別釋
001_0756_c_23L言以有境界緣者依前現識所現境
001_0756_c_24L起七識中六種麤相是釋經言境

001_0757_a_01L이것은 경(『능가경』)에서 “경계의 바람에 의해 움직여서 칠식의 물결이 전전한다.”49)라고 말한 뜻을 풀이한 것이다.

별기 “경계의 연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섯 가지의 상을 내는 것이니”라고 한 것은, 앞의 세상 가운데서는 능견에 의하여 경계를 나타낸 것이지 경계가 능견을 움직인 것이 아니며, 이 뒤의 여섯 가지 상은 저 나타낸 바의 경계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이지 이 여섯 가지 상이 저 경계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뜻을 분별하면 이와 같지만, 통하여 말하면 저것(능견상)도 도리어 자신(능견상)이 나타낸 경계(경계상)에 의하고, 이것(육추상)도 도리어 자신(육추상)이 의지하는 경계(경계상)를 지을 수가 있다. 이제 이 논 가운데서는 분별의 쪽에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경계의 연이 있기 때문에 여섯 가지의 상을 내는 것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b. 각각 풀이함

다음에 각각 풀이하는 중에 처음의 한 가지 상(지상)은 제7식이고 다음의 네 가지 상(상속상ㆍ집취상ㆍ계명자상ㆍ기업상)은 생기식生起識에 있으며, 나중의 한 가지 상(업계고상)은 저것들50)이 낸 과보이다.

a) 지상

처음에 “지상智相”이라고 말한 것은 제7식이니, 추상 가운데의 처음이다. 비로소 혜수慧數51)가 있어서 이가 아我와 진塵을 분별하기 때문에 지상이라고 이름한 것이니 『승만경』에서 “이 육식과 심법지心法智에 이 칠법七法이 순간도 머무르지 않는다.”52)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심법지’라고 한 것은 혜수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선도善道53)에 있다면 좋아할 만한 법을 분별하여 아와 아소라고 계탁하고 악도惡道54)에 있을 때에는 좋아하지 않는 법을 분별하여 아와 아소라고 계탁하기 때문에 “경계에 의하여 마음이 일어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분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갖추어 말한다면 본식을 반연하여 아라고 계탁하고 본식이 나타낸 경계를 반연하여 아소라고 계탁하지만, 이제 이 가운데서는 추상에 의하여 나타내기 때문에 ‘경계에 의하여 마음이 일어나’라고 말하였다. 또한 이 경계가 현식을 여의지 아니함이 마치 영상影像이 거울의 면을 여의지 않은 것과 같다. 이 제7식은 곧바로 안으로 향하여 아와 아소를 계탁하지만 마음 밖에 경계가 있음을 따로 계탁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도리어 저 식(본식 중의 현식)을 반연한다고 말하였다.

별기 다만 아집我執의 경계에 의거하기 때문에 식(현식)을 반연한다고 말하였고, 아소집我所執의 경계를 제외하였기 때문에 또한 경계를 반연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001_0757_a_01L界風所動七識波浪轉之意也

001_0757_a_02L

以有境界緣故生六相者前細
001_0757_a_03L相中依能見現境界非境界動能
001_0757_a_04L此後六相爲彼所現境界所動
001_0757_a_05L非此六種能現彼境別義如是
001_0757_a_06L而言之彼亦還依自所現境此還
001_0757_a_07L能作自所依境今此論中宜就別
001_0757_a_08L故言有境界故生六種相

001_0757_a_09L
次別釋中初之一相是第七識
001_0757_a_10L四相者在生起識後一相者彼所
001_0757_a_11L生果也初言智相者是第七識麤中
001_0757_a_12L之始始有慧數分別我塵故名智相
001_0757_a_13L如夫人經言於此六識及心法智
001_0757_a_14L七法刹那不住此言心法智者慧數
001_0757_a_15L之謂也若在善道分別可愛法
001_0757_a_16L我我所在惡道時分別不愛法
001_0757_a_17L我我所故言依於境界心起分別愛
001_0757_a_18L與不愛故也具而言之緣於本識
001_0757_a_19L計以爲我緣所現境計爲我所
001_0757_a_20L今此中就其麤顯故說依於境界心
001_0757_a_21L又此境界不離現識猶如影像不
001_0757_a_22L離鏡面此第七識直爾內向計我我
001_0757_a_23L而不別計心外有塵故餘處說還
001_0757_a_24L緣彼識別記云但就我執之境故說緣識
除我所執境故不說亦緣境界

001_0757_b_01L

제7말나식이 식을 반연할 뿐만 아니라 육진六塵도 반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의 증명이 있으니, 첫째는 비량比量55)에 의한 것이고, 두 번째는 성언량聖言量56)에 의한 것이다. 비량이란 다음과 같다. 이 의근意根57)이 반드시 의식意識과 경계를 같이하니【주장(宗)을 세운 것이다.】, (의근은 의식의) 불공소의不共所依58)이기 때문이다.【이유(因)를 분별한 것이다.】 모든 이러한 불공소의가 반드시 능의能依(여기서는 의식을 말함)와 경계를 같이함이 안근 등과 같다.【이는 긍정적 실례(同品)59)를 따라 말한 것이다.】 어떤 때에는 (안근과 안식이) 경계를 같이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반드시 불공소의가 아닌지라 차제멸의근次第滅意根(無間滅意) 등을 없앨 것이니 이것은 부정적 실례(遠離言)60)이다. 이와 같이 주장(宗)ㆍ이유(因)ㆍ실례(喩)61)가 과실이 없기 때문에 의근은 역시 육진도 반연함을 알아야 한다.

별기 만약 이 의意(의근)가 의식과 반드시 경계를 똑같이 반연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면 안眼(안근)도 안식과 반드시 경계를 같이하지 않을 것이니, 의意와 안眼은 모두 불공소의이기 때문이다. 안 등의 식과 근은 이미 그렇게 (경계를 같이하지 않게) 될 수 없으니, 이처럼 동류同類(동품)가 없기 때문에 뜻이 성립되지 않는다. 만약 이 의근이 (의식의) 불공소의가 아니라고 한다면 (의식은) 불공의가 없을 것이니 의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이는 안식 등에서도 같은 것이니, 다만 이것은 자교상위自敎相違62)에 해당하는 과실이다. 이는 불경에서 “안眼(안근)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식眼識이 생길 수 있으며,……의意(의근)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의식이 생길 수 있다.”63)라고 하고 이어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또한 논에서 “이것(의근)이 불공의”64)라고 하니 이 의(의근)가 다만 식(본식)만을 반연하고 나머지 경계(육진)를 반연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뜻은 성립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뜻에 의한다면 능의能依인 의식이 의근을 반연할 때에 소의所依인 의근도 자체를 상대하니, 자증분自證分65)이 있기 때문에 과실이 없고, 역시 (의근) 스스로의 상응하는 바의 심법心法을 반연하니, 장애할 만한 법이 없기 때문에 반연할 수 있게 된다. 이리하여 모든 심과 심소법이 모두 자체를 증명하니 그러므로 동일하게 반연하는 것(의근과 의식이 육진경계를 다 같이 반연함)을 폐하지 아니한다. 이 뜻은 오직 오식五識에 대해서는 통하지 않으니,

001_0757_b_01L云何得知第七末那非但緣識亦緣
001_0757_b_02L六塵此有二證一依比量二聖
001_0757_b_03L言量言比量者此意根必與意識同
001_0757_b_04L是立宗也不共所依故是辨因
001_0757_b_05L諸是不共所依必與能依同境
001_0757_b_06L如眼根等是隨同品言也或時不同
001_0757_b_07L境者必非不共所依如次第滅意根
001_0757_b_08L是遠離言也如是宗因譬喩無過
001_0757_b_09L故知意根亦緣六塵也

001_0757_b_10L

若言此意與意識不必同緣者
001_0757_b_11L亦可眼與眼識不必同境俱是不
001_0757_b_12L共所依故眼等識根旣不得爾
001_0757_b_13L同類故義不得成若言此意非不
001_0757_b_14L共依者則無不共依識不應起
001_0757_b_15L眼識等只是自敎相違過失如佛
001_0757_b_16L經說眼不壞故眼識得生乃至
001_0757_b_17L意不壞故意識得生乃至廣說
001_0757_b_18L又論說此不共依故知此意但緣
001_0757_b_19L於識不緣餘境是義不成

001_0757_b_20L
若依是義能依意識緣意根時所依
001_0757_b_21L意根亦對自體以有自證分故無過
001_0757_b_22L亦緣自所相應心法以無能障法故
001_0757_b_23L得緣諸心心所法皆證自體是故不
001_0757_b_24L廢同一所緣此義唯不通於五識

001_0757_c_01L(오식은) 색근色根(오근)에 의해 일어나서 두루 반연하지는 않기 때문에 다만 색진色塵에만 상대하고 나머지 경계는 상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별기 『대승장엄경론』에서 말했다.

이미 염정染淨을 구하는 것을 설명하였으니 다음은 유식唯識을 구하는 것을 설명하겠다.


能取及所取    능취能取와 소취所取
此二唯心光    이 둘은 오직 심광心光66)이다.
貪光及信光    탐광貪光67)과 신광信光68)
二光無二法    이 두 광光은 두 법이 아니다.

위의 반절은 유식을 구하는 사람은 능취와 소취가 오직 심광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의 반절은 이와 같이 탐 등의 번뇌광과 신 등의 선법광이니, 이러한 두 광은 역시 염과 정의 두 가지 법이 없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심광을 여의고서는 따로 탐 등이나 신 등의 염정법이 없기 때문이다.69)

이러한 글로써 증명해 보면, 모든 심수법心數法도 또한 심광에 의해 비추어지며, 그러므로 심광을 여의지 않았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심광을 여의지 않았기 때문에 곧 이것이 심광인 것이다. 마치 거울 가운데의 형상이 거울빛에 비춰지기 때문에 이 형상이 거울빛을 여의지 않았으며, 여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거울 가운데의 형상)이 곧 거울빛인 것과 같으니, 이 가운데의 도리도 역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 그처럼 비록 영상影像70)과 같이 본법에 의해 반연되지 않는 것이 따로 없더라도, 가령 본법의 심수71)가 영상의 심수와 다른 것이라면, 동일한 소연所緣의 뜻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성언량’은 경에 있는 것이니, 『금고경』에서 “안근은 색을 받아들이고, 이근은 소리를 분별하며, 내지 의근은 일체의 모든 법을 분별한다.”72)라고 하니, 대승의 의근은 곧 말나이기 때문에 일체의 법을 두루 반연함을 알 수 있다. 또 『대법론』의 십종분별十種分別73)에서 “첫째 상분별相分別은 몸(身)과 (몸이) 머무는 처소와 (몸이) 수용하는 것74)의 뜻을 말하는 것이니, 저것은 또한 그 차례대로 모든 색근色根과 기세계器世界와 색 등의 경계로써 상을 삼는다.

001_0757_c_01L色根起不通利故但對色塵非餘境
001_0757_c_02L

001_0757_c_03L

莊嚴論云已說求染淨次說求
001_0757_c_04L唯識偈曰能取及所取此二唯
001_0757_c_05L心光貪光及信光 [20] 光無二法
001_0757_c_06L釋曰上半者求唯識人應知能取
001_0757_c_07L所取唯是心光下半者如是貪等
001_0757_c_08L惱煩光及信等善法光如是二光
001_0757_c_09L亦無染淨二法何以故不離心光
001_0757_c_10L別有貪等信等染淨法故以此文
001_0757_c_11L故知諸心數法亦爲心光所照
001_0757_c_12L故不離心光以不離心光故卽是
001_0757_c_13L心光也如鏡中像鏡光所照
001_0757_c_14L故此像不離鏡光以不離故卽是
001_0757_c_15L鏡光當知此中道理亦爾然雖似
001_0757_c_16L影像無別本法所不緣者設有本
001_0757_c_17L法心數異影像心數者則同一所
001_0757_c_18L緣之義不成故

001_0757_c_19L
聖言量者有經有金鼓經言眼根受
001_0757_c_20L耳根分別聲乃至意根分別一切
001_0757_c_21L諸法大乘意根卽是末那故知徧
001_0757_c_22L緣一切法也又對法論十種分別中
001_0757_c_23L第一相分別者謂身所居處所受
001_0757_c_24L用義 [21] 彼復如其次第以諸色根器世

001_0758_a_01L두 번째 상현현분별相顯現分別은 육식신六識身과 의意를 말하는 것이니,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상을 취하여 밝게 나타내기 때문이다.”75)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오식은 다만 색 등의 오진만을 나타내고 의식과 의(의근)는 색근과 기세계의 색 등의 경계를 통틀어 나타낸다. 가령 말나가 색근이나 기세계 등을 반연하지 않는다면 현현분별함에 있어 오직 육식만을 취해야 할 것이지만 ‘……과 의(及意)’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통틀어 반연함을 알 수 있다. 우선 방론傍論은 그만두고 다시 본문을 풀이하겠다.

b) 상속상

두 번째 “상속상”이라는 것은 생기식이요, 식온識蘊76)이다. 이것은 추분별이므로 모든 법을 두루 계탁하여 길이 상속하게 된다. 또한 애취愛取를 일으켜 과거의 모든 행위를 인지引持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며, 또한 윤생潤生77)하여 미래의 과보로 하여금 상속하게 하니, 이러한 뜻에 의하기 때문에 ‘상속상’이라고 이름한 것이며, 이는 앞서 말한 상속심과는 같지 아니하다.78) “지상에 의하기 때문에”라는 것은 앞의 지상이 근이 됨에 의하여 생기기 때문이니, 소의는 세상(지상을 말함)인지라 오직 한결같이 사수捨受79)일 뿐이나 능의(상속상)는 추상인지라 고락을 함께 일으키니, 그 때문에 “그 고락을 내어서”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소의인 지상은 안으로 반연하여 머무르고 바깥 경계라고는 계탁하지 않기 때문에 잠자는 것과 같으나, 이 상속식은 안과 밖을 두루 계탁하여 각관覺觀하여 분별함이 마치 깨어 있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각심으로 망념을 일으켜”라고 말한 것이니, 망념을 일으킨다는 것은 곧 법집분별法執分別80)이다. 식온識蘊이 거친 집착과 상응하여 모든 경계로 두루 달려가기 때문에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c) 집취상

세 번째 “집취상”은 곧 수온受蘊81)이니, 식온에 의하여 위違(싫어하는 것)와 순順(좋아하는 것)을 분별하여 고락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상속에 의하여……고락에 주지하여” 등이라고 말한 것이다.

d) 계명자상

네 번째 “계명자상”은 곧 상온想蘊82)이니, 앞의 수온에 의하여 위ㆍ순 등의 명언名言83)의 상을 분별하기 때문에 “잘못된 집착에 의하여……명언의 상을 분별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001_0758_a_01L界色等境界爲相第二相顯現分別
001_0758_a_02L謂六識身及意如前所說取相而
001_0758_a_03L顯現故此中五識唯現色等五塵
001_0758_a_04L意識及意通現色根及器世界色等境
001_0758_a_05L設使末那不緣色根器世界等
001_0758_a_06L能現分別唯應取六識而言及意
001_0758_a_07L知通緣也且置傍論還釋本文
001_0758_a_08L二相續相者是生起識識蘊是麤分
001_0758_a_09L徧計諸法得長相續又能起愛取
001_0758_a_10L引持過去諸行不斷亦得潤生能令
001_0758_a_11L未來果報相續依是義故名相續相
001_0758_a_12L不同前說相續心也依於智者依前
001_0758_a_13L智相爲根所生故所依是細唯一捨
001_0758_a_14L能依是麤具起苦樂故言生起
001_0758_a_15L苦樂也又所依智相內緣而住
001_0758_a_16L計外塵故是似眠此相續識徧計內
001_0758_a_17L覺觀分別如似覺悟以之故言
001_0758_a_18L覺心起念起念卽是法執分別識蘊
001_0758_a_19L與此麤執相應徧馳諸境故言相應
001_0758_a_20L不斷故也第三執取相者卽是受蘊
001_0758_a_21L以依識蘊分別違順領納苦樂
001_0758_a_22L言依於相續乃至住苦樂等也第四
001_0758_a_23L計名字相者卽是想蘊依前受蘊
001_0758_a_24L分別違順等名言相故言依妄執乃

001_0758_b_01L
e) 기업상

다섯 번째 “기업상”은 곧 행온行蘊84)이니, 상온이 취한 바의 명상名相에 의하여 사수思數85)를 일으켜 선과 악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명자에 의하여……여러 가지 업을 짓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f) 업계고상

여섯 번째 “업계고상”은 앞의 행온이 만든 업에 의하여 삼유三有(삼계)와 육취六趣의 고통의 과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업에 의하여 과보를 받아서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C) 본말의 불각을 총괄하여 맺음

무명이 모든 염법을 내고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왜냐하면 일체의 염법이 모두 불각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총괄하여 맺은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여섯 가지 추상은 현상現相이 나타낸 경계에 의하여 일어나고 세 가지 세상細相은 직접 무명에 의하여 일어나니, 이와 같이 육추상六麤相과 삼세상三細相이 모든 염법을 포괄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무명주지無明住地86)가 모든 염법을 내는 근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염상染相이 비록 거친 것과 세밀한 것이 있으나 모두 제법의 실상을 깨닫지 못한 것이니, 이 불각의 상이 바로 무명의 기운이며, 그러므로 “일체의 염법이 모두 불각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두 번째 뜻에 의하여 각각 풀이한 것에87) 세 가지 구분이 있는 가운데 첫째는 공능을 간략히 밝혔고, 두 번째는 체상體相을 자세히 나타냈으니, 이와 같은 두 부분을 이상으로 마친다.

㉢ 동상과 이상을 밝힘

다시 각과 불각에 두 가지의 상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동상同相이고, 둘째는 이상異相이다.
동상이라고 말한 것은 비유하자면 여러 가지의 와기瓦器가 모두 똑같은 미진微塵의 성상性相인 것처럼 무루와 무명의 여러 가지 업환業幻도 다 똑같은 진여의 성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이 진여의 뜻에 의하기 때문에 “일체의 중생은 본래 열반ㆍ보리의 법에 상주하여 들어가 있다.”88)라고 하였으니 이는 닦을 수 있는 상이 아니며 지을 수 있는 상이 아닌지라

001_0758_b_01L至名言相故也第五起業相者卽是
001_0758_b_02L行蘊依於想蘊所取名相而起思數
001_0758_b_03L造作善惡故言依於名字乃至造種
001_0758_b_04L種業故也第六業繫苦相者依前行
001_0758_b_05L蘊所造之業而受三有六趣苦果
001_0758_b_06L言依業受果不自在故也

001_0758_b_07L
當知無明能生一切染法以一切染法
001_0758_b_08L皆是不覺相故

001_0758_b_09L
第三總結如前所說六種麤相依於
001_0758_b_10L現相所現境起三種細相親依無明
001_0758_b_11L如是六三總攝諸染是故當知無明
001_0758_b_12L住地能生一切染法根本以諸染相
001_0758_b_13L雖有麤細而皆不覺諸法實相不覺
001_0758_b_14L之相是無明氣故言一切染法皆是
001_0758_b_15L不覺相故

001_0758_b_16L
第二依義別解有三分內第一略明
001_0758_b_17L功能第二廣顯體相如是二分竟在
001_0758_b_18L於前

001_0758_b_19L
復次覺與不覺有二種相云何爲二
001_0758_b_20L者同相二者異相言同相者譬如種
001_0758_b_21L種瓦器皆同微塵性相如是無漏無明
001_0758_b_22L種種業幻皆同眞如性相是故脩多羅
001_0758_b_23L依於此眞如義故說一切衆生本來
001_0758_b_24L常住入於涅槃菩提之法非可修相

001_0758_c_01L끝내 얻을 수 없다. “또한 색상色相을 볼 만한 것이 없으되 색상을 봄이 있는 것이다.”89)라고 하니, 오직 염법의 업환에 따라 지은 것이지 지색불공智色不空90)의 성질은 아니니 지상智相은 볼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상異相이라고 말한 것은 여러 가지의 와기가 각기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이와 같이 무루와 무명이 수염환隨染幻의 차별91)이며 성염환性染幻의 차별92)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동상과 이상을 밝혔다. 이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총괄하여 나타낸 것과 이름을 열거한 것과 차례대로 상을 분별한 것이다.

A. 총괄하여 나타냄

B. 이름을 열거함

C. 상을 분별함

A) 동상을 밝힘

상을 분별하는 가운데 먼저 동상同相을 밝혔으니, 그 가운데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실례를 인용하였고, 둘째는 실례를 적용하였고, 셋째는 인용하여 증명하였다.

(A) 실례를 인용함

(B) 실례를 적용함

두 번째 가운데 “무루”라고 말한 것은 본각과 시각이고, “무명”이라는 것은 근본과 지말의 불각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업의 작용으로 나타난 것이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환”이라고 말한 것이다.

(C) 인용하여 증명함

세 번째 가운데 “본래 열반ㆍ보리의 법에 상주하여 들어가 있다.”라고 말한 것은 『대품반야경』에서 “이 지혜로써 모든 결사結使(번뇌)를 끊고 무여열반無餘涅槃93)에 들어가니, 본래 이것은 세속법이지 제일의제는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공 가운데는 멸함이 없고 또한 멸하게 하는 것도 없으니, 모든 법이 결국에는 공한 것이며 곧 이는 열반이기 때문이다.”94)라고 하고, 또 “어떤 뜻이 보리인가? 공의 뜻이 보리의 뜻이며, 여如의 뜻과 법성法性의 뜻과 실제實際의 뜻이 보리의 뜻이며, 또한 모든 법의 실상이 거짓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 이것이 보리의 뜻이기 때문이다.”95)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 가운데에는 성정보리性淨菩提96)와 본래청정열반本來淸淨涅槃97)에 의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이 본래 (열반ㆍ보리의 법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닦을 수 있는 상이 아니며”라고 한 것은 인행因行98)이 없기 때문이고, “지을 수 있는 상이 아닌지라”라고 한 것은 과보가 일어남이 없기 때문이며, “끝내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얻을 때도 없고 얻을 곳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없으되(亦無)” 이하는 여전히 경의 글이지만 여기서 증명할 요체는 아니니,

001_0758_c_01L可作相畢竟無得亦無色相可見
001_0758_c_02L有見色相者唯是隨染業幻所作非是
001_0758_c_03L智色不空之性以智相無可見故言異
001_0758_c_04L相者如種種瓦器各各不同如是無
001_0758_c_05L漏無明隨染幻差別性染幻差別故

001_0758_c_06L
第三明同異相此中有三總標
001_0758_c_07L次第辨相辨相之中先明同相
001_0758_c_08L於中有三一者引喩二者合喩
001_0758_c_09L者引證第二中言無漏者本覺始覺
001_0758_c_10L無明者本末不覺也此二皆有業
001_0758_c_11L用顯現而非定有故名業幻第三
001_0758_c_12L中言本來常住入於涅槃菩提法者
001_0758_c_13L如大品經言以是智慧斷一切結使
001_0758_c_14L入無餘涅槃元是世俗法非第一義
001_0758_c_15L何以故空中無有滅亦無使滅者
001_0758_c_16L諸法畢竟空卽是涅槃故又言
001_0758_c_17L義故爲菩提空義是菩提義如義
001_0758_c_18L法性義實際義是菩提義復次諸
001_0758_c_19L法實相不誑不異是菩提義故
001_0758_c_20L知此中約於性淨菩提本來淸淨涅
001_0758_c_21L故諸衆生本來入也非可修相者
001_0758_c_22L無因行故非可作相者無果起故
001_0758_c_23L畢竟無得者以無能得者無得時無
001_0758_c_24L得處故亦無以下猶是經文而非

001_0759_a_01L다만 한곳에 서로 이어진 글이기 때문에 서로 따라서 인용하였을 따름이다.

B) 이상을 밝힘

이상異相을 밝힌 가운데 먼저는 실례(喩)이고 나중은 적용(合)한 것이니, 적용한 가운데 “수염환隨染幻의 차별”이란 무루법이고, “성염환性染幻의 차별”이란 무명법이니, 왜 그런가? 근본ㆍ지말무명은 평등성을 어긴 것이니 그러므로 그 본성이 스스로 차별이 있으며, 한편 모든 무루법은 평등성을 따라 바로 그 본성을 두어서 마땅히 차별이 없을 것이지만 다만 염법의 차별의 상을 따르기 때문에 무루법에 차별이 있다고 말하였을 따름이다. 업식 등의 염법의 차별을 대하기 때문에 본각의 무한한 성공덕을 말하였고 또한 이 모든 법의 차별을 대치하기 때문에 시각의 온갖 덕의 차별이 이루어진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별기 그러므로 무루가 다만 저 염에 따라 차별이 있는 것이지, 자성自性으로 말미암아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염과 정이 모두 서로 의지하여 밝게 나타남이 없지 않으나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통틀어 ‘환의 차별(幻差別)’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이상으로 위에서부터 입의분 중 이 심생멸의 부분을 자세히 해석한 것을 마친다.

ㄴ) 생멸인연

이 아래는 두 번째 그 인연(심생멸의 인연)을 풀이한 것이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생멸이 인연에 의하는 뜻을 밝혔고, 나중은 소의所依인 인연의 체상을 밝혔다.

(ㄱ) 생멸이 인연에 의하는 뜻을 밝힘

처음 가운데 역시 두 가지가 있으니, 총괄하여 나타낸 것과 각각 풀이한 것이다.

㉠ 총괄하여 나타냄

다음 생멸인연이라는 것은 이른바 중생이 마음에 의하여 의와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이다.

처음 가운데 “인연”이라고 말한 것은 알라야식의 심체가 모든 법을 변작變作하는 것이니 이것이 생멸인이고, 근본무명이 심체를 훈습하여 움직이게 하니 이것이 생멸연이다. 또한 무명주지는 모든 염법의 근본으로 모든 생멸을 일으키기 때문에 ‘인’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육진의 경계는 칠식의 물결의 생멸을 요동시키니,

001_0759_a_01L此中所證之要但是一處相續之文
001_0759_a_02L是故相從引之而已明異相中先喩
001_0759_a_03L後合合中言隨染幻差別者是無漏
001_0759_a_04L性染幻差別者是無明法何者
001_0759_a_05L本末無明違平等性是故其性自有
001_0759_a_06L差別諸無漏法順平等性直置其
001_0759_a_07L應無差別但隨染法差別之相
001_0759_a_08L故說無漏有差別耳謂對業識等染
001_0759_a_09L法差別故說本覺恒沙性德又對
001_0759_a_10L治此諸法差別故成始覺萬德差別
001_0759_a_11L別記云是故無漏但隨彼染
而有差別不由自性有差別也
然如是染淨
001_0759_a_12L皆是相待非無顯現而非是有
001_0759_a_13L故通名幻差別也

001_0759_a_14L
上來廣釋立義分中是心生滅竟在於
001_0759_a_15L

001_0759_a_16L
此下第二釋其因緣於中有二先明
001_0759_a_17L生滅依因緣義後顯所依因緣體相
001_0759_a_18L初中亦二總標別釋

001_0759_a_19L
復次生滅因緣者所謂衆生依心
001_0759_a_20L識轉故

001_0759_a_21L
初中言因緣者阿棃耶心體變作諸
001_0759_a_22L是生滅因根本無明熏動心體
001_0759_a_23L生滅緣又復無明住地諸染根本起
001_0759_a_24L諸生滅故說爲因六塵境界能動七

001_0759_b_01L이것이 생멸연이며, 이 두 가지의 뜻에 의하여 인연을 나타낸다. 모든 생멸의 상이 모여서 생기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체가 없고 오직 심체에 의하기 때문에 “마음에 의하여”라고 말하였으니, 곧 알라야의 자상심自相心99)이다. 능의能依100)인 중생은 의와 의식이니 그렇기 때문에 “의와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 각각 풀이함

이 아래는 각각 풀이한 것이다. 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마음에 의하여”라는 것을 풀이하였고, 다음은 “의가 전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풀이하였고, 나중은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풀이하였다.

A. “마음에 의하여”라는 것을 풀이함

이 뜻이 무엇인가? 알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다고 말하니,

처음 가운데 “알라야식”이라고 말한 것은 위에서 말한 “마음”이니 곧 생멸의 인因이고, “무명이 있다”고 한 것은 (이 무명이) 알라야식에 있는 것이니 곧 생멸의 연이다. 이 인연에 의하여 의와 의식이 전변함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알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다고 말하니”라고 한 것이다. 위의 총괄하여 나타낸 것 가운데서는 간략히 그 인을 나타냈기 때문에 다만 ‘마음에 의하여’라고 말하였고, 여기의 각각 해석한 가운데서는 인연을 갖추어 나타냈기 때문에 또한 알라야식과 그 안에 있는 무명에 의한다고 말한 것이다.

별기 무명주지는 칠식이 포섭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저것(칠식)에 의하여 훈습되는 종자도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B. “의가 전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풀이함

불각하여 일어나서101) 볼 수 있고 나타낼 수 있으며 경계를 취할 수 있어서, 망념을 일으켜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의意’라고 말하였다. 이 의는 다시 다섯 가지의 이름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는 업식이라고 이름하니, 무명의 힘으로 불각하게 되어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니, 이를 말한 것이다. 둘째는 전식이라고 이름하니, 움직여진 마음에 의하여 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현식이라고 이름하니, 이른바 일체의 경계를 나타냄이 마치 밝은 거울이 물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 현식도 그러하여 그 오진五塵102)을 따라서 대상이 이르면 곧 나타내서 앞뒤가 없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지식智識이라고 이름하니, 염법과 정법을 분별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상속식이라고 이름하니, 망념이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001_0759_b_01L識波浪生滅是生滅緣依是二義以
001_0759_b_02L顯因緣諸生滅相聚集而生故名衆
001_0759_b_03L而無別體唯依心體故言依心
001_0759_b_04L卽是棃耶自相心也能依衆生是意
001_0759_b_05L意識以之故言意意識轉

001_0759_b_06L
以下別釋於中有三先釋依心
001_0759_b_07L釋意轉後釋意識轉

001_0759_b_08L
此義云何以依阿棃耶識說有無明

001_0759_b_09L
初中言阿棃耶識者是上說心卽是
001_0759_b_10L生滅之因說有無明者在棃耶識卽
001_0759_b_11L是生滅之緣欲明依此因緣意意識
001_0759_b_12L故言以依阿梨耶識說有無明
001_0759_b_13L總標中略標其因是故但言依心
001_0759_b_14L別釋中具顯因緣故說亦依棃耶識
001_0759_b_15L內所有無明也 別記云當知無明住地
七識攝亦非爲彼所熏種子

001_0759_b_16L
不覺而起能見能現能取境界起念
001_0759_b_17L相續故說爲意此意復有五種名
001_0759_b_18L何爲五一者名爲業識謂無明力不覺
001_0759_b_19L心動故二者名爲轉識依於動心能見
001_0759_b_20L相故三者名爲現識所謂能現一切境
001_0759_b_21L猶如明鏡現於色像現識亦爾隨其
001_0759_b_22L五塵對至卽現無有前後以一切時任
001_0759_b_23L運而起常在前故四者名爲智識謂分
001_0759_b_24L別染淨法故五者名爲相續識以念相

001_0759_c_01L과거 한량없는 기간의 선악의 업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또 현재와 미래의 고락 등의 과보를 성숙시켜 어긋남이 없게 하기 때문에103) 현재 이미 지나간 일을 문득 생각하게 하고 미래의 일을 자기도 모르게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三界는 거짓된 것이요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니, 마음을 여의면 육진의 경계가 없어진다. 이 뜻이 무엇인가? 일체법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나 잘못 생각하여 생긴 것이어서 일체의 분별은 곧 자심自心을 분별하는 것이니,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여 얻을 만한 상相이 없기 때문이다. 세간의 모든 경계는 다 중생의 무명망심에 의하여 머물러 있게 되니, 그러므로 일체법은 거울 가운데의 형상과 같아서 얻을 만한 실체가 없고, 오직 마음일 뿐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의 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의意가 전변함을 설명한 것이다. 그 가운데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의가 전변함을 간략히 밝혔고, 둘째는 전변하는 상을 자세히 나타냈고, 셋째는 마음에 의한다는 뜻을 결론지었다.

A) 의가 전변함을 간략히 밝힘

처음 가운데에는 곧 다섯 가지 식의 상을 밝혔다. “불각하여 일어나서”라는 것은 소의所依인 심체가 무명의 훈습으로 말미암아 전체가 일어나 움직이는 것이니, 곧 이것은 업식이다. “볼 수 있고”라고 말한 것은 곧 저 심체가 차츰 능견을 이루는 것이니 이는 전식이다. “나타낼 수 있으며”라고 말한 것은 곧 저 심체가 다시 능현을 이룬 것이니 곧 현식이다. “경계를 취할 수 있어서”라는 것은 현식이 나타낸 경계를 취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지식이다. “망념을 일으켜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라는 것은 취한 바의 경계에 대하여 모든 추념麤念을 일으키니 이것은 상속식이다. 이 다섯 가지의 뜻이 차례로 전성轉成함에 의하여 모든 경계에 대하여 의식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를 의意라고 말한 것이다.

별기 이 가운데 다섯 번째(상속식)는 오히려 의식이지만 뒤의 것(의식)을 낸다는 뜻에 의하여 의意 가운데 함께 넣어 포함시켰다.

B) 전변하는 상을 자세히 밝힘

“이 의는” 이하는 둘째로 자세히 밝힌 것이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총괄하여 나타낸 것과 각각 풀이한 것이다. 각각 해석한 가운데 “무명의 힘으로”라고 말한 것은

001_0759_c_01L應不斷故住持過去無量世等善惡之
001_0759_c_02L業令不失故復能成熟現在未來苦樂
001_0759_c_03L等報無差違故能令現在已經之事
001_0759_c_04L然而念未來之事不覺妄慮是故三
001_0759_c_05L界虛僞唯心所作離心則無六塵境界
001_0759_c_06L此義云何以一切法皆從心起妄念
001_0759_c_07L而生一切分別卽分別自心心不見
001_0759_c_08L無相可得當知世間一切境界
001_0759_c_09L依衆生無明妄心而得住持是故一切
001_0759_c_10L如鏡中像無體可得唯心虛妄
001_0759_c_11L心生則種種法生心滅則種種法滅故

001_0759_c_12L
次釋意轉於中有三一者略明意轉
001_0759_c_13L二者廣顯轉相三者結成依心之義
001_0759_c_14L初中卽明五種識相不覺而起者
001_0759_c_15L依心體由無明熏擧體起動卽是
001_0759_c_16L業識也言能見者卽彼心體轉成能
001_0759_c_17L是爲轉識言能現者卽彼心體
001_0759_c_18L復成能現卽是現識能取境界者
001_0759_c_19L能取現識所現境界是爲智識起念
001_0759_c_20L相續者於所取境起諸麤念是相續
001_0759_c_21L依此五義次第轉成能對諸境而
001_0759_c_22L生意識故說此五以爲意也別記云
中第五
001_0759_c_23L是意識而約生後
通入意中攝
此意以下第二廣明
001_0759_c_24L於中有二總標別釋別釋中言無

001_0760_a_01L소의所依인 연緣을 든 것이고, “불각하게 되어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니”라는 것은 업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일어나 움직인다(起動)’는 뜻이 업의 뜻이기 때문이다. 전식 가운데 “움직여진 마음에 의하여 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은 앞의 업식이 움직임에 의하여 능견의 상을 전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식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만약 무명에 의해 움직여져서 능견을 전성한다는 뜻에 의한다면, 이는 본식에 있는 것이고, 만일 경계에 의하여 움직여져서 능견을 전성하는 것이라면 이는 칠식104)을 이르는 것이니, 이 가운데 전상은 처음의 뜻에 의한 것이다.

별기 또한 어떤 곳에서는 모든 이런 능견을 통틀어 전식이라고 이름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는 곧 팔식에 상통하는 것이다.

현식 가운데에 “일체의 경계를 나타냄”이라고 말한 것은 앞의 전식의 견見에 의하여 다시 능현能現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니, 윗글에서 “능견에 의하기 때문에 경계가 거짓되이 나타나는 것이니”105)라고 한 것과 같다. 현식은 전식에 의하지만 능견의 작용이 곧 능현이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그러므로 앞에서 “볼 수 있고 나타낼 수 있으며”라고 말한 것이다. 다음은 실례이고, 나중은 적용한 것이다. 적용한 가운데 “오진五塵”이라고 말한 것은 우선 거칠게 나타나는 것을 들어서 물체의 형상에 적용하였으나 실제로 논한다면 일체의 경계를 통틀어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제6ㆍ7식이 어떤 때에는 끊어지고 멸하는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니, 이 글로써 증명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모두 본식 내의 다른 작용임을 알아야 한다.

별기 세 번째 현상現相은 위의 세 가지 상 가운데 경계상과 같으니, 다만 이 가운데서는 전식을 여의면 따로 경계상이 없음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능현을 들어서 나타난 경계를 밝힌 것이다. “마치 밝은 거울이 물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라고 말한 것은 『사권능가경』에서 “대혜야! 간략히 말하면 세 가지의 식이 있고, 자세히 말하면 여덟 가지 상이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진식眞識, 현식現識 및 분별사식分別事識을 말함이니, 예를 들면 밝은 거울이 모든 물체의 형상을 간직하는 것과 같아서 현식이 (대상을) 나타내는 바도 또한 이와 같다.”106)라고 한 것과 같다.

001_0760_a_01L明力者擧所依緣不覺心動者
001_0760_a_02L其業義起動之義是業義故轉識中
001_0760_a_03L言依於動心能見相故者依前業識
001_0760_a_04L之動轉成能見之相然轉識有二
001_0760_a_05L若就無明所動轉成能見者是在本
001_0760_a_06L如其境界所動轉成能見者是謂
001_0760_a_07L七識此中轉相約初義也別記云又有
處說諸是能
001_0760_a_08L通名轉識
則通八識
現識中言能現一切境界
001_0760_a_09L依前轉識之見復起能現之用
001_0760_a_10L如上文言以依能見故境界妄現
001_0760_a_11L知現識依於轉識非能見用卽是能
001_0760_a_12L是故前言能見能現次喩後合
001_0760_a_13L合中言五塵者且擧麤顯以合色像
001_0760_a_14L實論通現一切境故以一切時任運
001_0760_a_15L而起常在前故者非如第六七識有
001_0760_a_16L時斷滅故以是文證當知是三皆在
001_0760_a_17L本識之內別用也

001_0760_a_18L

三現相者猶是上三相中境界
001_0760_a_19L但此中爲明離轉識無別境相
001_0760_a_20L故擧能現明所現境言猶如明鏡
001_0760_a_21L現色相者如四卷經云大慧
001_0760_a_22L說有三種識廣說有八相何等爲
001_0760_a_23L謂眞識現識及分別事識
001_0760_a_24L如明鏡持諸色像現識處現亦復

001_0760_b_01L
또 이 글(『기신론』) 가운데 ‘현現’의 뜻을 말하기를 “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현식은 반드시 제8식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업식 등이 이것(현식)과 더불어 본식이 되어 그 상이 더욱 미세하니, 어떻게 억지로 가져다가 제7식 가운데 두는 것이 옳겠는가? “그 오진을 따라서 대상이 이르면 곧 나타내서”라고 말한 것은 오진을 따라 일어난 상이 모두 능견을 여의지 아니하여, 오직 능견의 거울 가운데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대상이 이르면 곧 나타내서’라고 말한 것이니, 실제로 말한다면 법진法塵107)도 나타내지만 우선 거칠게 나타내는 것을 잡아서 간략히 들었을 따름이다.

이 식(현식)108)의 경계의 범위는 어떠한가? 이 『기신론』에서는 다만 오진을 말했지만, 『능가경』에서는 “알라야식이 그가 나타낸 경계인 자기의 신체와 경험의 대상(資生)과 기세간器世間109) 등을 분별함에 있어 일시에 아는 것이지 전후가 있는 것이 아니다.”110)라고 하며, 『유가사지론』에서는 “알라야식은 두 가지의 반연하는 경계에 의하여 전변한다. 첫째는 내집수內執受111)를 분별함에 말미암는 것이니, 이는 변계소집의 자성을 잘못 집착하는 습기習氣112)와 모든 색근과 근이 의지하는 처소(몸)를 분별하여 알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유색계有色界113)의 경우에 대해서이고, 만약 무색계라면 오직 습기집수習氣執受114)의 요별了別만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외무분별기상外無分別器相115)을 요별함에 말미암는 것이니, 이는 내집수內執受를 반연하는 알라야식에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때에 있어서 끊어지는 일이 없는 기세간상器世間相116)을 분별할 수 있음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등잔의 불꽃이 일어날 때 안으로는 기름심지를 잡고, 밖으로는 빛을 발하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알라야식이 내집수경內執受境을 반연하고 외기상外器相을 반연하여 생기는 도리도 역시 그러함을 알아야 한다.”117)라고 하였다. 『중변분별론』에서는 “이 식이 취하는 네 가지 경계는 진塵과 근根과 아我와 식識을 말하니, (이 네 가지가) 포섭하는 것은 실로 체상이 없다. 소취所取(진ㆍ근ㆍ아ㆍ식)가 이미 없다면

001_0760_b_01L如是又此文中說現義云以一切
001_0760_b_02L時任運而起常在前故當知現識
001_0760_b_03L定在第八其業識等與此作本
001_0760_b_04L相彌細如何强將置七識中其可
001_0760_b_05L言隨其五塵對至卽現者隨所
001_0760_b_06L起相皆不離見唯於能見鏡中而
001_0760_b_07L故言對至卽現就實而言
001_0760_b_08L現法塵且約麤顯略擧之耳
001_0760_b_09L識境界寬狹云何此論中但說五
001_0760_b_10L楞伽經云阿棃耶識分別現境
001_0760_b_11L自身資生器世間等一時而知
001_0760_b_12L是前後瑜伽論說阿賴耶識由於
001_0760_b_13L二種所緣境轉一由了別內執受
001_0760_b_14L謂能了別徧計所執自性妄執
001_0760_b_15L習氣及諸色根根所依處此於有
001_0760_b_16L色界若在無色唯有習氣執受了
001_0760_b_17L二由了別外無分別器相者
001_0760_b_18L能了別依止緣內執受阿棃耶識故
001_0760_b_19L於一切時無有間斷器世間相
001_0760_b_20L如燈燄生時內執膏炷外發光明
001_0760_b_21L如是阿棃耶識緣內執受境緣外
001_0760_b_22L器相生起道理應知亦爾中邊
001_0760_b_23L論云是識所取四種境界謂塵根
001_0760_b_24L我及識所攝實無體相所取旣無

001_0760_c_01L능취能取인 난식亂識118)도 또한 없는 것이다.”119)라고 하였다.
만약 『중변분별론』과 『능가경』에 의한다면 습기習氣 등은 이 식의 경계가 아닐 것이고, 만약 『유가사지론』에 의한다면 성진聲塵과 일곱 가지 식 등은 이 식의 반연하는 바가 아닐 것이며, 이 『기신론』의 설명에 의한다면 근과 식 등을 나타내는 것은 또한 이 식이 나타내는 경계가 아니다.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니 어떻게 화합시킬 수 있겠는가?

이것은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니 어째서인가? 오직 이와 같은 법만을 반연한다고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나머지 법은 경계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서로 어긋나는 것은 없더라도 같지 아니한 것은 있으니, 같지 아니한 뜻을 들어 볼 수 있겠는가?

같지 아니한 뜻에는 각각 도리가 있다. 『중변분별론』 같은 데서는 현기現起한 모든 법은 다 본식이 나타낸 것이어서 식을 여읜 밖에 다시 따로 법이 없음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에 오직 현행現行하는 모든 법만을 말하였고, 습기 종자種子120)는 그 상이 나타나지 아니하나 식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아니하였다. 『유가사지론』 등에서는 모든 상이 견見을 여의고서는 스스로 상속하는 것이 없음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에 심과 심법을 제외한 모든 나머지 상속하는 법이 이 식에 의하여 요별됨을 말하였고, 모든 심과 심법은 진塵을 여의고서는 성립되지 아니하니 이는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나기 때문에 따로 말하지 아니하였다. 모든 나머지 논에서의 드러내고 드러내지 않은 뜻은 이를 준거하여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니, 한쪽에 치우쳐 집착하여 두루 통하는 법의 말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

네 번째 “지식”은 제7식이요 위의 육상六相 중 처음의 지상智相이니, 뜻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의 과보를 염정법이라 이름하니, 저 법(염정법)을 분별하여 아와 아소라고 계탁하기 때문에 “염법과 정법을 분별함”이라고 말한 것이다.
다섯째 “상속식”은 곧 의식意識이니, 위의 여섯 가지 상 중에 상속상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망념이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001_0760_c_01L能取亂識亦復是無若依中邊論
001_0760_c_02L及楞伽經則習氣等非此識境
001_0760_c_03L依瑜伽論聲塵及七種識等非其
001_0760_c_04L所緣依此論說現根及識等
001_0760_c_05L非此識所現境界如是相違云何
001_0760_c_06L和會此非相違何以故不以
001_0760_c_07L言唯緣如此法故不言餘法非境
001_0760_c_08L界故雖無相違而有不同
001_0760_c_09L同之意可得而聞乎不同之
001_0760_c_10L各有道理如中邊論欲明現起
001_0760_c_11L諸法皆是本識所現離識之外更
001_0760_c_12L無別法是故唯說現行諸法習氣
001_0760_c_13L種子其相不顯與識無異是故不
001_0760_c_14L瑜伽論等爲顯諸相無有離見
001_0760_c_15L自相續者故除心心法以外諸餘
001_0760_c_16L相續之法說爲此識所了別諸心
001_0760_c_17L之法離塵不立其義自顯故不
001_0760_c_18L別說諸餘論顯沒之意準之可知
001_0760_c_19L不可偏執一隅以謗通法之說也

001_0760_c_20L
第四智識者是第七識上六相內初
001_0760_c_21L之智相義如前說愛非愛果名染
001_0760_c_22L淨法分別彼法計我我所故言分
001_0760_c_23L別染淨法也第五相續識者卽是意
001_0760_c_24L識上六相中名相續相以念相應不

001_0761_a_01L법집法執이 상응하여 오래 상속하게 되는 것이니 여기서는 (의식) 자체가 끊어지지 아니함에 의하여 상속의 뜻을 풀이한 것이고, “간직하여(住持)” 이하는 그 공능에 의하여 상속의 뜻을 풀이하였다. 이 식이 애취번뇌愛取煩惱121)를 일으키므로 과거에 무명에서 일으킨 모든 행위를 인지引持하여 미래의 과보가 있도록 감당케 하기 때문에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라고 말한 것이고, 또한 윤생번뇌潤生煩惱122)를 일으켜 업의 과보가 계속 생겨서 끊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성숙시켜 어긋남이 없게 하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삼세의 인과가 유전하여 끊어지지 아니함은 그 공능이 의식에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상속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다음에 “이미 지나간 일을 문득 생각하게 하고 미래의 일을 (자기도 모르게)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 식의 작용의 거칠게 나타나는 분별이 지식의 미세한 분별과 같지 아니함을 나타낸 것이니, 이 식은 오직 의식에 있으며 위에서 말한 상속심相續心123)과는 같지 아니함을 알아야 한다.

C) 마음에 의한다는 뜻을 결론 맺어 밝힘

“그러므로” 아래는 세 번째 ‘마음에 의한다’는 뜻을 결론 맺어 밝혔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간략히 말한 것이고 나중은 자세히 말한 것이다.

(A) 간략히 말함

처음에 ‘그러므로’라고 말한 것은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식 등이 마음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런 뜻에 의하므로 삼계의 모든 법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며, 이는 『십지경十地經』124)에서 “불자야! 삼계는 다만 일심이 지은 것이다.”125)라고 한 것과 같으니,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B) 자세히 해석함

“이 뜻이 무엇인가?” 이하는 자세히 해석한 것이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모든 법이 없지 않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고, 나중은 모든 법이 있지 않지만 아주 없지는 않다는 것을 나타냈다.

Ⓐ 모든 법이 없지 않지만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힘

처음 가운데에 “일체법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나 잘못 생각하여 생긴 것이어서”라고 말한 것은 모든 법이 현현함이 없지 않음을 밝힌 것이고, “일체의 분별은 곧 자심을 분별하는 것이니,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여 얻을 만한 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모든 법이 있지 않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는 『십권능가경』에서 “몸과 경험의 대상과 기세간(住持)이 마치 꿈 가운데 살아 있는 것과 같아서 마땅히 두 가지의 마음이 있을 것이나 마음은 두 가지의 상이 없다.

001_0761_a_01L斷故者法執相應得長相續此約
001_0761_a_02L自體不斷以釋相續義也住持以下
001_0761_a_03L約其功能釋相續義此識能起愛取
001_0761_a_04L煩惱故能引持過去無明所發諸行
001_0761_a_05L令成堪任來果之有故言住持乃至
001_0761_a_06L不失故又復能起潤生煩惱能使業
001_0761_a_07L果續生不絶故言成就無差違故
001_0761_a_08L是三世因果流轉不絶功在意識
001_0761_a_09L是義故名相續識次言念已經事慮
001_0761_a_10L未來事者顯此識用麤顯分別不同
001_0761_a_11L智識微細分別是知此識唯在意識
001_0761_a_12L不同上說相續心也是故以下第三
001_0761_a_13L結明依心之義於中有二先略後廣
001_0761_a_14L初言是故者是前所說五種識等依
001_0761_a_15L心而成以是義故三界諸法唯心所
001_0761_a_16L如十地經言佛子三界但一心
001_0761_a_17L此之謂也此義云何以下廣釋
001_0761_a_18L於中有二先明諸法不無而非是有
001_0761_a_19L後顯諸法不有而非都無初中言以
001_0761_a_20L一切法皆從心起妄念而生者是明
001_0761_a_21L諸法不無顯現也一切分別卽分別
001_0761_a_22L自心心不見心無相可得者是明諸
001_0761_a_23L法非有之義如十卷經言身資生住
001_0761_a_24L若如夢中生應有二種心而心無

001_0761_b_01L이는 마치 칼이 스스로를 베지 못하고 손가락도 스스로를 가리키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스스로를 보지 못하는 것 같은 것도 그 일이 또한 이와 같다.”126)라고 한 것과 같다.
해석해 보면, 만약 꿈에서 보는 모든 일처럼 이와 같은 소견所見127)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능견과 소견의 두 가지 상이 있을 것이나, 그 꿈에서는 실로 두 가지 법이 없다. 삼계의 모든 마음은 다 이 꿈과 같으니 마음을 떠난 밖에는 분별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일체의 분별은 곧 자심을 분별하는 것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스스로 볼 수 없는 것이 칼이나 손가락 등이 스스로 자르거나 가리키지 못함과 같기 때문에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여’라고 말한 것이다. 이미 볼 만한 대상이 없으며 또한 스스로 볼 수도 없으니, 소견所見이 없기 때문에 능견能見128)도 성립하지 못하는 것이다. 능ㆍ소의 두 가지 상이 모두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얻을 만한 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 가운데 질문한 것을 풀이하여 새것(『십권능가경』)과 옛것(『십지경』)을 회통시킨 것은 『별기』 가운데 자세히 분별한 것과 같다.

별기 이는 저 (『십권능가경』에서) 게송으로 말한다.

非他非因緣    다른 것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며,
分別分別事    분별(분별성)과 분별한 일(의타성)과
五法及二心    오법五法129)과 이심(능취ㆍ소취)은
寂靜無如是    적정하여 이와 같은 것이 없다.130)

『집량론集量論』131)에서 “모든 심과 심법은 다 자체를 증득하니, 이를 현량現量132)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일찍이 보지 못한 경우에는 마땅히 억념憶念(기억)하지 못할 것이다.”133)라고 하고, 여기 『십권능가경』에서는 ‘스스로 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떻게 회통하겠는가?

여기에는 같지 않은 뜻이 있어서 서로 어긋나지 않게 하니, 어째서인가? 이 『능가경』과 『기신론』의 뜻은 견분見分과 별도로 따로 상분相分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 것으로 상분의 나타남이 볼 바가 없어서 또한 (상분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니, 곧 이 견분이 도리어 견분을 보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작용이 아니기 때문이며,134) (견분이) 밖을 향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칼과 손가락으로써 긍정적 실례(同法喩)를 삼은 것이다. 『집량론』의 뜻은 비록 그 견분이 스스로를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자증분의 작용이 있어서 견분의 체를 증명할 수 있으니, 그 작용에 다름이 있기 때문135)이며 (견분이) 안을 향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001_0761_b_01L二相如刀不自割指亦不自指如心
001_0761_b_02L不自見其事亦如是解云若如夢
001_0761_b_03L中所見諸事知是所見是實有者
001_0761_b_04L有能見所見二相而其夢中實無二
001_0761_b_05L三界諸心皆如此夢離心之外無
001_0761_b_06L可分別故言一切分別卽分別自心
001_0761_b_07L而就自心不能自見如刀指等故言
001_0761_b_08L心不見心旣無他可見亦不能自見
001_0761_b_09L所見無故能見不成能所二相皆無
001_0761_b_10L所得故言無相可得也此中釋難會
001_0761_b_11L通新古如別記中廣分別也

001_0761_b_12L

如彼偈云非他非因緣分別分
001_0761_b_13L別事五法及二心寂靜無如是
001_0761_b_14L如集量論說諸心心法皆證自體
001_0761_b_15L是名現量若不爾者如不曾見
001_0761_b_16L不應憶念此中經說云不自見
001_0761_b_17L如是相違云何會通此有異
001_0761_b_18L欲不相違何者此經論意
001_0761_b_19L明離見分外無別相分相分現無
001_0761_b_20L所見亦不可說卽此見分反見見
001_0761_b_21L非二用故外向起故故以刀指
001_0761_b_22L爲同法喩集量論意雖其見分不
001_0761_b_23L能自見而有自證分用能證見分
001_0761_b_24L之體以用有異故向內起故故以

001_0761_c_01L그러므로 등과 불꽃으로 긍정적 실례를 삼은 것이니,136) 이러한 뜻에 의하므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또한 이 『능가경』과 『기신론』 가운데에는 실상을 나타내고자 했기 때문에 있지 않음(非有)의 뜻에 나아가 스스로를 볼 수 없다고 말한 것이고, 『집량론』의 저자는 가명假名을 세우고자 했기 때문에 없지 않음(非無)의 뜻에 의하여 스스로 증명함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가명은 실상을 움직이지 못하고 실상은 가명을 깨뜨리지 아니한다. 깨뜨리지 않고 움직이게 하지 않으니 어찌 서로 어긋남이 있겠는가? 이 가운데에는 견분을 떠나서는 상분이 없기 때문에 견분은 상분을 보지 못한다고 말하였으나, 다른 곳에서는 상분은 견분이 아니기 때문에 견분은 상분을 볼 수 있다고 말하였으니,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찌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것도) 앞서와 같이 역시 서로 깨뜨리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 말하기를 가유假有를 나타내려 하기 때문에 상분도 있고 견분도 있다고 하였고, 가무假無를 나타내려 하기 때문에 상분도 없고 견분도 없다고 말하였다. 가유는 (참)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무를 움직이지 않고, 가무는 (참)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유를 깨뜨리지 않는다. 유를 깨뜨리지 않기 때문에 의연히 있는 것이요, 무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의연히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매우 깊은 인연의 도리가 고요하여 의거하는 것이 없으며 환하여 막힘이 없으니, 어찌 어긋나는 논쟁을 그 사이에 용납하겠는가?

Ⓑ 모든 법이 있지 않지만 아주 없지는 않음을 밝힘

“알아야 한다.” 이하는 다음으로 있지 않으나 없지도 않다(非有而不無)는 뜻을 밝힌 것이다. 처음에 “세간의 모든 경계는……, 얻을 만한 실체가 없고, 오직 마음일 뿐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있지 않음(非有)을 밝힌 것이고, 다음에 “왜냐하면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 이하는 그 없지 않음(非無)을 밝힌 것이다. 무명의 힘에 의하여 불각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내지 일체의 경계 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무명의 마음(불각심)이 없어진다면 경계가 따라서 없어져 모든 분별식이 다 없어지기 때문에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의 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이니, 찰나를 가지고 생멸을 밝힌 것이 아니다. 의意를 자세히 해석함을 마친다.


001_0761_c_01L燈燄爲同法喩由是義故不相違
001_0761_c_02L又復此經論中爲顯實相故
001_0761_c_03L非有義說無自見集量論主爲立
001_0761_c_04L假名故依非無義說有自證然假
001_0761_c_05L名不動實相實相不壞假名不壞
001_0761_c_06L不動有何相違如此中說離見無
001_0761_c_07L故見不見相而餘處說相分非
001_0761_c_08L見分故見能見相分如是相違
001_0761_c_09L不致怪當知如前亦不相壞又說
001_0761_c_10L爲顯假有故說有相有見爲顯假
001_0761_c_11L故說無相無見假有不當於有
001_0761_c_12L故不動於無假無不當於無故不
001_0761_c_13L壞於有不壞於有故宛然而有
001_0761_c_14L不動於無故宛然而無如是甚深
001_0761_c_15L因緣道理蕭焉靡據蕩然無礙
001_0761_c_16L豈容違諍於其間哉

001_0761_c_17L
當知以下次明非有而不無義初言
001_0761_c_18L當知世間乃至無體可得唯心虛妄者
001_0761_c_19L是明非有次言以心生則法生以下
001_0761_c_20L顯其非無依無明力不覺心動乃至
001_0761_c_21L能現一切境等故言心生則種種法
001_0761_c_22L生也若無明心滅境界隨滅諸分別
001_0761_c_23L識皆得滅盡故言心滅則種種法滅
001_0761_c_24L非約刹那以明生滅也廣釋意竟

001_0762_a_01L
C.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풀이함

다음에 의식이라고 말한 것은 곧 이 상속식이 모든 범부의 집착함이 점점 깊어짐에 의하여 아와 아소를 계탁하여 여러 가지 망집妄執으로 일에 따라 반연하여 육진六塵을 분별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한 분리식分離識137)이라고도 이름하고 다시 분별사식(사물을 분별하는 식)이라고도 이름하니, 이 식이 견애번뇌見愛煩惱138)의 증장되는 뜻에 의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의식을 해석하였다. 의식은 곧 앞에서의 상속식이니, 다만 법집분별로 상응하여 뒤의 것을 낸다는 뜻에 의한다면 의意라고 말하고, 그것이 견애번뇌見愛煩惱를 일으켜서 앞의 것에 따라 생긴다는 뜻에 의한다면 의식意識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의식이라고 말한 것은 곧 이 상속식이……육진을 분별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이름한다.”고 한 것이다. 이 『기신론』은 그 하나의 의식의 뜻에 의하기 때문에 안식眼識 등의 오식五識을 따로 내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의식이 육진을 분별하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분리식이라고도 이름하고”라는 것은 육근에 의하여 각각 육진을 취하는 것이니, 말나(제7식)가 각각의 근에 의하지 않는 것과는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분리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또 과거와 미래, 안과 밖의 여러 가지 사상事相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분별사식이라고도 이름하니”라고 하였다. “견애번뇌의 증장되는 뜻에 의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분별사식의 뜻을 해석한 것이니, 왜냐하면 견수번뇌見修煩惱139)가 증장됨에 의하여 여러 가지의 일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육상六相140) 내의 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이 이 의식 중에 서로 좇아 들어가 포함된다.
위에서부터 생멸이 인연에 의한다는 뜻을 자세히 설명하여 마쳤다.

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3권


001_0762_a_01L
復次言意識者卽此相續識依諸凡夫
001_0762_a_02L取著轉深計我我所種種妄執隨事
001_0762_a_03L攀緣分別六塵名爲意識亦名分離識
001_0762_a_04L又復說名分別事識此識依見愛煩惱
001_0762_a_05L增長義故

001_0762_a_06L
次釋意識意識卽是先相續識但就
001_0762_a_07L法執分別相應生後義門則說爲意
001_0762_a_08L約其能起見愛煩惱從前生門說名
001_0762_a_09L意識故言意識者卽此相續乃至分
001_0762_a_10L別六塵名爲意識此論就其一意識
001_0762_a_11L故不別出眼等五識故說意識分
001_0762_a_12L別六塵亦名分離識者依於六根別
001_0762_a_13L取六塵非如末那不依別根故名分
001_0762_a_14L又能分別去來內外種種事相
001_0762_a_15L復說名分別事識依見愛煩惱增長
001_0762_a_16L義故者是釋分別事識之義以依見
001_0762_a_17L修煩惱所增長故能分別種種事也
001_0762_a_18L上六相內受想行蘊相從入此意識中
001_0762_a_19L上來廣明生滅依因緣義竟

001_0762_a_20L
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三

001_0762_b_01L
  1. 1)수염본각隨染本覺 : 유전문流轉門, 즉 염染을 따라 분별하는 생멸문에서 본각의 성질을 여의지 않은 마음이다.
  2. 2)성정본각性淨本覺 : 환멸문還滅門, 즉 진여문에 있는 본래부터 자성청정한 본각이다.
  3. 3)마음과 무명이~떨어지지 않지만(俱無形相。 不相捨離) : 법장, 『大乘起信論義記』 권중(T44, 260b)에서는 이를 상의相依라는 뜻으로 보았다.(俱無形相不相離者。 合相依也。)
  4. 4)수동문隨動門 : 무명에 따라서 움직이는 면, 즉 생멸문.
  5. 5)『入楞伽經』 권2(T16, 522a).
  6. 6)『合部金光明經』 권1(T16, 363c).
  7. 7)번뇌장煩惱障 : ⓢ kleśāvaraṇa. 인간의 몸은 오온이 화합한 존재에 불과한 것인데 영구성이 있는 ‘나’라고 집착하는 번뇌. 128근본번뇌와 20수번뇌가 이에 속한다. 이는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을 장애하고 생사에 유전케 하므로 번뇌장이라 한다.
  8. 8)지장智障 : ⓢ ñeyāvaraṇa. 소지장所知障과 같다. 탐욕ㆍ진에ㆍ우치 등의 번뇌가 소지所知의 진상을 그대로 알지 못하게 하므로 이들 번뇌를 소지장이라 하며, 진지眞智가 발현함을 장애하는 점에서 지장이라 한다. 여기에 분별기分別起와 구생기俱生起가 있다.
  9. 9)불신佛身 : ⓢ buddha-kāya. 불교 최상의 이상을 실현한 부처님의 몸. 무상정각을 얻고 보리ㆍ열반을 증득한 부처님의 과체果體를 논하는 것이 불신론이다. 무상정각ㆍ보리ㆍ열반이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는 대승ㆍ소승ㆍ학파ㆍ종파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므로 그의 실현인 불신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그중 이신설二身說에는 『大智度論』의 법신ㆍ생신生身, 『瓔珞經』의 무극신無極身ㆍ응화신應化身, 『大乘義章』의 법성신法性身ㆍ실보신實報身 등이 있다.
  10. 10)『究竟一乘寶性論』 권4(T31, 841c).
  11. 11)무루無漏 : ⓢ anāsravaḥ. ‘누漏’는 객관 대상에 대하여 끊임없이 육근에서 허물을 누출한다는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무루란 소승에서는 번뇌를 증상하지 않음을 말하고, 대승에서는 번뇌와 함께 있지 아니함을 말한다.
  12. 12)번뇌애와 지애 : 일반적으로 현료문에서는 번뇌장ㆍ소지장의 이장을 말하나 은밀문에서는 번뇌애ㆍ지애의 이애二礙로 말한다. 은밀문에서 번뇌애는 번뇌장과 소지장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근본지를 막는 번뇌이고, 지애는 후득지를 막는 번뇌이다. 『大乘起信論』은 은밀문의 입장이기 때문에 번뇌애와 지애를 말했다. 이 중 번뇌애란 여섯 가지 염심, 즉 지말무명으로, 근본무명에 의해 움직인 염심(무명업상)이 전식, 현식, 지식으로 전변해 근본지의 능ㆍ소 평등을 어기므로 진여의 근본지를 막는다고 한다. 지애란 근본무명을 말하며 본래의 법성자리는 항상 고요하여 일어나는 상이 없으나 무명불각(근본무명)이 법성을 혼미케 하여 세간의 후득지를 얻을 수 없으므로 이를 세간의 후득지를 막는다고 한 것이다. 흔히 번뇌장과 소지장을 각기 번뇌애와 지애에 배대시키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은정희 교수의 대승기신론강의』, 예문서원, 2008, pp.99~100 참조.
    은밀문: 번뇌애-번뇌장/소지장-근본지를 막는 번뇌
    은밀문: 지애-후득지를 막는 번뇌
  13. 13)제일의공第一義空 : ⓢ paramārtha-śūnya. 18공空의 하나. 진실공眞實空ㆍ진경공眞境空이라고도 하며, 대승의 열반이다. 대승에서 제법의 제1원리인 열반은 소승에서 말하는 편진단공偏眞但空이 아니고 공한 것까지도 공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공이므로 제일의공이라 한다.
  14. 14)북본 『大般涅槃經』 권27(T12, 523b), 남본 『大般涅槃經』 권25(T12, 767c).
  15. 15)남본 『大般涅槃經』 권25(T12, 767c).
  16. 16)불과佛果 : 수행한 인因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 부처님의 지위이다.
  17. 17)60권본 『華嚴經』 권60(T9, 788a4).
  18. 18)원지圓智 : 원만한 지혜. 곧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말한다.
  19. 19)『불지경佛地經』 : 당나라 현장 한역. 1권. 부처가 묘생妙生 보살을 위하여 불지佛地의 오상을 설한 내용으로 청정법계淸淨法界와 사지四智를 밝힌다.
  20. 20)대원경지大圓鏡智 : 사지四智의 하나. 유루有漏의 제8식을 뒤쳐서 얻는 무루의 지혜. 이것은 거울에 한 점의 티끌도 없이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쳐 모자람이 없는 것과 같이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므로 대원경지라 한다. 불과佛果에서 처음으로 얻는 지혜이다.
  21. 21)『佛地經論』 권5(T26, 312a).
  22. 22)『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5(H1, 774c).
  23. 23)세제世諦 : ⓢ saṃvṛti-satya. 속제俗諦라고도 한다. 세속의 사람들이 아는 바 도리, 곧 세간 일반에서 인정하는 도리를 말한다.
  24. 24)제일의제第一義諦 : 이 진리는 모든 법 가운데 제일이라는 뜻. 진제眞諦ㆍ성제聖諦ㆍ승의제勝義諦라고도 한다. 열반ㆍ진여ㆍ실상實相ㆍ중도中道ㆍ법계法界ㆍ진공眞空 등 깊고 묘한 진리이다. 특히 법상종에서는 유식의 실성인 진여를 제일의제라 하고, 변계遍計의 제법과 의타인 식을 속제俗諦라 한다.
  25. 25)『大智度論』 권89(T25, 688c).
  26. 26)세상細相 :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마음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 여기서는 무명업상無明業相, 능견상能見相, 경계상境界相 세 가지를 말한다.
  27. 27)추상麤相 : 경계연에 의하여 마음이 거칠게 움직이는 모습. 여기서는 지상智相, 상속상相續相, 집취상執取相, 계명자상計名字相, 기업상起業相, 업계고상業繫苦相 여섯 가지를 말한다.
  28. 28)불상응염심不相應染心 : 무명업상, 능견상, 경계상의 세 가지 세상은 근본불각인 무명과 상응하나 이 미세념에서는 아직 심왕과 심수가 차별되어 있지 않으므로 불상응염심이라 한다.
  29. 29)“모두”란 삼세三細와 육추六麤를 가리킨다.
  30. 30)반현反顯 : 반결反結ㆍ반해反解ㆍ반석反釋과 같다. 순결順結ㆍ순석順釋의 상대어이다. 후자는 “A이면 B이다.”는 논리 형식이고, 전자는 “A가 아니면 B가 아니다.”라는 논리 형식이다.
  31. 31)집集 : 고苦의 이유ㆍ근거, 혹은 원인이라고도 한다. 고의 원인은 번뇌인데 특히 무명無明과 애욕을 말한다.
  32. 32)『무상론無相論』 : 『三無性論』, 『顯識論』, 『轉識論』을 합하여 일컫는 말. 이하 인용은 『轉識論』에 나오는데, 『轉識論』은 『唯識三十論頌』을 진제眞諦가 번역한 것이다.
  33. 33)욕欲 : 구사俱舍에서는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오별경五別境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자기가 좋아하는 대경對境에 대하여 그것을 얻으려고 희망하는 정신 작용이다.
  34. 34)진瞋 : ⓢ dveṣa. 근본번뇌의 하나. 오개ㆍ십악의 하나. 진에瞋恚라 한다.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고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을 편안치 못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35. 35)『轉識論』(T31, 61c).
  36. 36)본식本識 : 제8식. 이 식이 일체 제법의 근본이 되므로 이렇게 부른다.
  37. 37)성정문性靜門 : 수염문隨染門의 상대이니, 즉 진여문이다.
  38. 38)비삼세非三世 : 불성ㆍ허공ㆍ무위ㆍ제일의제를 말하니 항상하여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이다.
  39. 39)『攝大乘論』 권3(T31, 170a).
  40. 40)『攝大乘論』 권3(T31, 170a).
  41. 41)십이인연十二因緣 : 삼계三界에 대한 미혹의 인과를 열두 가지로 나눈 것. ① 무명無明은 미혹의 근본인 무지이다. ② 행行은 무지로부터 다음의 의식 작용을 일으키는 의지 작용이다. ③ 식識은 의식 작용이다. ④ 명색名色은 이름만 있고 형상이 없는 마음과 형체가 있는 물질이다. ⑤ 육처六處는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의 오관五官과 의근意根이다. ⑥ 촉觸은 사물에 접촉함이다. ⑦ 수受는 외계로부터 받아들이는 고苦ㆍ락樂의 감각이다. ⑧ 애愛는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구함이다. ⑨ 취取는 자기가 욕구하는 물건을 취함이다. ⑩ 유有는 업의 다른 이름이니 다음 세상의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 업이다. ⑪ 생生은 이 몸을 받아 태어남이다. ⑫ 노사老死는 늙고 죽음이다. 연기의 해석에 1찰나에 십이연기를 갖춘다는 학설과 시간적으로 3세에 걸쳐 설명하는 양중인과兩重因果설이 있다. 곧 식識에서 수受까지의 다섯 가지를 현재의 오과五果라 하고 무명無明ㆍ행行을 현재의 과보를 받게 한 과거의 이인二因이라 하며 다음에 애愛ㆍ취取는 과거의 무명과 같은 혹惑이요 유有는 과거의 행行과 같은 업이니, 이 현재의 삼인三因에 의하여 미래의 생ㆍ노사의 과果를 받는다고 한다.
  42. 42)『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
  43. 43)『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6a), 『大乘入楞伽經』 권2(T16, 596b) 참조.
  44. 44)전거 미상.
  45. 45)유량문唯量門 : 유량唯量이란 오직 식일 뿐 바깥 경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攝大乘論釋』 권5(T31, 184c) 참조.
  46. 46)유이문唯二門 : 유이唯二란 상相과 견見 곧 소취所取(경계상)와 능취能取(능견상)가 오직 식일 뿐이라는 뜻이다.
  47. 47)『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9b).
  48. 48)각심覺心 : 각관심覺觀心을 말한다. 자세히는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추사麤思를 각覺, 분석적으로 상세히 관찰하는 세사細思를 관觀이라 한다.
  49. 49)『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4b).
  50. 50)저것들 : 앞의 다섯 가지 상, 즉 지상ㆍ상속상ㆍ집취상ㆍ계명자상ㆍ기업상을 말한다.
  51. 51)혜수慧數 : 혜慧라는 심소. 구사에서는 십심소대지법十心所大地法 중 하나고, 유식에서는 오심소별경五心所別境 중 하나다. 어리석고 우매한 마음에는 이 심소가 없다고 하며 바깥 경계에 대하여 사邪ㆍ정正과 득得ㆍ실失을 판단하여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52. 52)『勝鬘經』(T12, 222b).
  53. 53)선도善道 : 현재ㆍ미래에 걸쳐 자기와 남을 순익順益하는 상태.
  54. 54)악도惡道 : 현재ㆍ미래에 걸쳐 자기나 남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성질의 상태.
  55. 55)비량比量 : 삼량三量의 하나. 진비량眞比量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이미 아는 사실을 가지고 추리해서 아직 알지 못하는 사실을 추측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 아래에 불이 있는 줄을 미루어 아는 것과 같다.
  56. 56)성언량聖言量 : 삼량의 하나. 성인, 즉 석가모니불의 말씀을 경 또는 논을 표준 삼아 추리하는 것이다.
  57. 57)의근意根 : 오식에는 오근이 있는 것과 같이 의근은 특히 제6의식의 의지할 데를 말한다. 또 유식에서는 제7말나식을 제6의식의 가장 가까운 근거라는 의미로 의근이라 한다.
  58. 58)불공소의不共所依 : 다른 것과 공통하지 않는 소의란 뜻. 예를 들면 안근은 안식만의 의지할 데가 되고, 이근耳根은 이식만의 의지할 데가 되는 것과 같다.
  59. 59)긍정적 실례(同品) : 동유同喩ㆍ동법同法이라고도 한다. 삼지작법三支作法 중의 유喩가 종宗이나 인宗과 동품同品ㆍ동류同類인 경우를 말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장관도 한국의 법률을 지켜야 한다(종). 대한민국의 국민이므로(인). 다른 시민과 같다(유).”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논법은 인因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종宗이 있음을 말한 것이므로 그 유喩에는 반드시 인因이 되는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점과, 종宗이 되는 한국의 법률을 지켜야 한다는 것과 같은 점이 있어야 한다. 앞의 것을 인동품因同品, 뒤의 것을 종동품宗同品이라 한다. 곧 다른 시민의 인因이 되는 대한민국 국민의 뜻이 있는 것은 인동품, 한국의 법률을 지켜야 한다는 종宗의 뜻이 있는 것은 종동품이다. 완전한 동품은 반드시 이 두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60. 60)부정적 실례(遠離言) : 『因明入正理論』(T32, 11b)에 따르면 ‘원리언’은 부정적 실례 명제에 해당한다.
  61. 61)주장(宗)ㆍ이유(因)ㆍ실례(喩) : 인명에서 삼단논법과 비슷한 삼지작법三支作法을 말한다. ① 종宗은 단안斷案이니, 입론하는 이의 주장이다. ② 인因은 이유이니, 종으로 나타내는 도리를 논술한 것이다. ③ 유喩는 종과 인이 잘못됨이 없음을 입증하는 실례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소리는 무상하다(종). 소작성所作性이기 때문이다(인). 마치 병과 같다(유).” 이 비유에 동유同喩와 이유異喩의 구별이 있다.
  62. 62)자교상위自敎相違 : 자종상위와 같다.
  63. 63)『顯揚聖敎論』 권1(T31, 480c) 참조.
  64. 64)전거 미상.
  65. 65)자증분自證分 : 법상종에서는 인식 과정을 설명하면서 사람의 의식 작용을 네 부분으로 나눈다. 이 중 상분相分을 인식하는 작용을 견분見分이라 한 것에 대해 다시 통각적統覺的 증지證知를 주는 작용을 자증분이라 하며, 다시 그 자증분을 증명하는 작용을 증자증분證自證分이라 한다.
  66. 66)심광心光 : 색광色光의 상대. 내광內光ㆍ지혜광智慧光이라고도 한다. 지혜의 밝음을 광명에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는 심왕心王의 뜻이다.
  67. 67)탐광貪光 : 6번뇌의 하나인 탐貪을 말한다.
  68. 68)신광信光 : ⓢ śraddha. 구사의 10대선지법十大善地法의 하나이고 유식에서는 11선심소十一善心所의 하나이다. 심왕ㆍ심소로 하여금 대경對境을 올바르게 인식케 하며, 마음에 의혹이 없게 하는 정신 작용이다.
  69. 69)『大乘莊嚴經論』 권5(T31, 613b).
  70. 70)영상影像 : 영상의 실제적인 근거이며 영상이 의지하는 대상인 물자체物自體, 즉 본질本質에 비하여 심과 심소가 대상을 인식할 때 내심內心에서 인식 대상의 모습을 나타내 직접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즉, 영상은 본법과 동일 소연이다.
  71. 71)본법의 심수 : 본식本識의 심수를 말한다.
  72. 72)『金光明經』 권1(T16, 340a), 『金光明最勝王經』 권5(T16, 424b), 『合部金光明經』 권4(T16, 379b).
  73. 73)십종분별十種分別 : 『大乘阿毘達磨雜集論』 권14(T31, 764a26)에 따르면, 허망분별虛妄分別에 대략 열 가지가 있으니, 근본분별根本分別, 상분별相分別, 상현현분별相顯現分別, 상변이분별相變異分別, 상현현변이분별相顯現變異分別, 타인분별他引分別, 불여리분별不如理分別, 여리분별如理分別, 집착분별執着分別, 산란분별散亂分別 등이다.
  74. 74)“(몸이) 수용하는 것”이란 경험의 대상을 뜻한다.
  75. 75)『大乘阿毘達磨雜集論』 권14(T31, 764b) 참조.
  76. 76)식온識蘊 : ⓢ vijñāna-skandha. 오온의 하나. 식은 요별了別한다는 뜻이니, 외계外界에 대하여 사물의 총상을 식별하는 마음의 본체이다. 곧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ㆍ의식을 통틀어 식온이라 한다.
  77. 77)윤생潤生 : 윤생혹潤生惑의 작용. 비나 이슬이 식물의 종자를 축여 싹을 트게 하듯이 번뇌 악업이 우리의 신식神識(중생의 심식은 영묘, 불사의하다는 뜻)을 도와 미계迷界의 생을 받게 하는 것. 윤생혹이란 구생기俱生起의 번뇌로, 그중 제6식과 상응하는 탐애의 번뇌를 주로 하여 임종 시에 자기와 자기의 경계에 연착戀着하여 중유中有의 생을 윤潤하는 세력을 가진 번뇌이다.
  78. 78)『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3c)에서의 상속심은 수염본각의 마음을 말하니, 수염본각의 마음이 상속심 중의 업상ㆍ전상을 없애 마음으로 하여금 근원으로 돌아가 지혜를 이루게 된다. 여기서의 상속상은 육추 중 두 번째 추분별을 말한다.
  79. 79)사수捨受 : 삼수三受 또는 오수五受의 하나.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라고도 한다. 몸과 마음에 고통도 즐거움도 느끼지 않는 일종의 감각 작용이다.
  80. 80)법집분별法執分別 : 법집에서 나오는 분별계탁이다.
  81. 81)수온受蘊 : 오온의 하나. 수受는 받아들인다는 뜻. 고苦ㆍ락樂ㆍ사捨를 감수하는 정신 작용이다. 육식과 육경이 접촉함에 의하여 생기는 수受의 무더기이다.
  82. 82)상온想蘊 : 오온의 하나. 사람에게는 사물을 상상하는 선ㆍ악, 사邪ㆍ정正의 온갖 정상情想이 있다. 이것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83. 83)명언名言 : 이에는 표의명언表義名言과 현경명언顯境名言 2종이 있다. 표의명언은 모든 법을 말하여 표시하는 명名ㆍ구句ㆍ문文으로 제6식은 이 명언에 의하여 모든 법을 변화시켜 종자를 제8식에 훈부熏付하는 것이다. 현경명언은 제7식의 견분이 직접 대상 경계를 반연하여 지금 있는 모든 법의 종자를 제8식에 훈성熏成함을 말한다. 이것을 명언이라 함은 심과 심소가 경계를 반연하여 나타내는 것이 마치 이름이 법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므로 비유하여 명언이라 한다.
  84. 84)행온行蘊 : ⓢ saṃskāra-skandha. 오온의 하나. 행의 취집聚集이란 뜻. 인연에 의하여 만들어지고 시간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종류대로 모아서 한 뭉치를 이룬 것이다. 유위법인 오온에는 모두 이 뜻이 있으며, 행온 가운데는 다른 4온보다 이 조작造作, 천류遷流하는 행의 뜻을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특히 행온이라 한다. 설일체유부에서는 46심소에서 수受ㆍ상想을 제외한 44법과 불상응법不想應法 14법을 합한 58법을 총칭하여 행온이라 한다.
  85. 85)사수思數 : 구사에서는 심소 십대지법十大地法 중 하나이며 유식에서는 심소 오변행五遍行 중 하나이다. 심왕과 심소로 하여금 조작케 하는 것을 성용性用으로 하고, 선악품의 경境에서 심심소心心所를 구사驅使하여 선악 등의 일을 일으키게 하는 것을 업용으로 한다.
  86. 86)무명주지無明住地 : 오주지의 하나. 근본무명을 말한다. 무명은 모든 번뇌의 소이所以ㆍ소주所住가 되고 또 번뇌를 내는 근본이 되므로 주지住地라 한다.
  87. 87)『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2(H1, 747b).
  88. 88)여기서 인용된 경은 이하의 『소』에 따르면, 『摩訶般若波羅蜜經』 권25(T8, 401b), 권22(T8, 379a)의 내용을 가리킨다.
  89. 89)“또한 색상을……색상을 봄이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하의 『소』에 따르면, 바로 앞의 경에 이어진 내용이라 하였으나 출처를 찾지 못했다. 그 뜻은 법성 자체는 본래 볼 만한 색상이 없어서 보신報身ㆍ화신化身 등의 색色을 내지 않지만 중생들이 제불의 여러 가지 색 등을 보는 것이니, 이는 중생들의 염환심에 따라 여러 가지로 현현한다는 것이다. 법장, 『大乘起信論義記』 권중(T44, 264a) 이하 참조.
  90. 90)지색불공智色不空 : 지색智色은 지상智相과 같은 말로 부처님의 광명이란 뜻이니, 지색불공이란 본각지상本覺智相의 항사성덕恒沙性德을 말한다.
  91. 91)수염환차별隨染幻差別 : 무루법無漏法을 말한다. 모든 무루법은 평등성平等性을 어기지 않아 원래는 차별이 없는 것이지만 다만 염법의 차별상에 따라 차별이 있게 되는 것이다.
  92. 92)성염환차별性染幻差別 : 무명법無明法을 말한다. 근본ㆍ지말의 무명은 평등성을 어겨서 그 본성 스스로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93. 93)무여열반無餘涅槃 :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이라고도 한다. 사종열반 중 하나로 생사의 괴로움을 여읜 진여이다. 번뇌장을 끊고 얻은 것이다. 이숙異熟의 고과苦果인 현재의 신체까지 멸해 없어진 곳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같이 이른다.
  94. 94)『摩訶般若波羅蜜經』 권25(T8, 401b).
  95. 95)『摩訶般若波羅蜜經』 권22(T8, 379a).
  96. 96)성정보리性淨菩提 : 혜원慧遠의 『大乘義章』 권18(T44, 830a)에 따르면 무상보리를 성정보리와 방편보리方便菩提 두 가지로 분별하였다.
  97. 97)본래청정열반本來淸淨涅槃 : 법상종의 사종열반 중 하나. 자성청정열반ㆍ성정열반이라고도 한다. 일체법의 실성이 곧 진여의 이理이며, 일체제법이 객진번뇌에 덮여 있으나, 본래 자성이 청정한 것을 말한다.
  98. 98)인행因行 : 원인이 되는 행위. 곧 인업因業이다.
  99. 99)자상심自相心 : 본식本識, 즉 제8식을 말한다.
  100. 100)능의能依 : 소의인 알라야식의 자상심自相心에 대하여 중생은 능의能依이다.
  101. 101)“알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다고 말하니, 불각하여 일어나서”라는 해석은 원효의 『二障義』(H1, 795b)에 의하면 “알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다고 말한다.(以依阿利耶識。 說有無明不覺而起故。)”라고 해석해야 한다.
  102. 102)오진五塵 : 육진에서 의경意境을 제한 것. 즉,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오경. 오종의 대경은 우리의 진성眞性을 더럽혀 번뇌를 일으키므로 진塵이라 한다.
  103. 103)어긋남이 없게 하기 때문에 : 이 상속식이 과거의 업을 주지住持한 것과 현재ㆍ미래의 고락苦樂 등의 과보가 서로 어긋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104. 104)칠전식七前識을 말한다.
  105. 105)『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5c).
  106. 106)『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
  107. 107)법진法塵 : 육진 중 의意의 대상이 되는 법을 말함. 거칠게 나타내는 것을 잡아서 간략히 들었다는 것은 오진五塵만 언급한 것을 뜻한다.
  108. 108)이 식 : 알라야식 중의 현식現識, 현식으로서의 알라야식을 말한다.
  109. 109)자기의 신체와~대상(資生)과 기세간器世間 : 『入楞伽經』 권9(T16, 567a)에 “몸과 주지(기세간)와 자생(경험 대상)이라는 세 가지 경계를 취한다. 식은 식의 경계들을 취하니 의식은 셋을 분별한다.(身住持資生。 可取三種境。 識取識境界。 意識分別三。)”라고 하였다.
  110. 110)『入楞伽經』 권2(T16, 525b), 『능가경회역』 권상 p.182 참조.
  111. 111)내집수內執受 : 집수란 바깥 경계를 접촉할 때 그것을 받아들여 잃어버리지 않고, 고ㆍ락 등의 감각을 내는 것이다. 알라야식의 집수에 내집수와 외집수 두 가지가 있다. 내집수란 안으로 종자種子와 오근신五根身을 집수하는 것이고, 외집수란 밖으로 기세간을 집수하는 것이다.
  112. 112)습기習氣 : ⓢ vāsanā. 번뇌의 체를 정사正使라 함에 대하여 습관의 기분으로 남은 것을 습기라 한다. 곧 향을 담았던 그릇은 향을 비웠어도 여전히 향기가 남아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또한 유식에서는 습기를 종자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는데, 일체 유위법을 낳는 능력을 지녀서 알라야식에 함장시키기 때문이다. 습기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명언습기名言習氣는 명언(언어의 표상)에 의거하여 훈성되는 종자로 일체 유위법 각각을 생겨나게 하는 직접 원인이며, 명상 개념이 알라야식을 훈습함으로써 형성되는 종자이다. 둘째, 아집습기我執習氣는 아집에 의거하여 훈성하는 습기로, 아견我見이 알라야식을 훈습함으로써 형성되는 종자이다. 나와 너, 기타 갖가지 차별의 원인이 된다. 셋째, 유지습기有支習氣는 유지, 즉 삼유三有의 원인으로 훈성되는 선악업의 종자이다. 자신이 짓는 선악업이 알라야식을 훈습하여 이루는 종자이다. 본문 중 “변계소집의 자성을 잘못 집착하는 습기”란 두 번째 아집습기를 말한다.
  113. 113)유색계有色界 : 욕계欲界와 색계色界를 말한다.
  114. 114)습기집수習氣執受 : 변계소집의 자성을 잘못 집착하는 습기이니 유색계와 무색계에 공통한다.
  115. 115)외무분별기상外無分別器相 : 분별성이 없는 외부의 기세간상을 말한다.
  116. 116)기세간상器世間相 : 기세계의 모습. 삼종세간(器世間ㆍ衆生世間ㆍ智正覺世間)의 하나. 중생을 수용하는 세간이란 뜻. 우리가 살고 있는 산하山河ㆍ대지大地 등의 세계를 말한다.
  117. 117)『瑜伽師地論』 권51(T30, 580a), 규기窺基의 『瑜伽師地論略纂』 권13(T43, 173a) 참조.
  118. 118)난식亂識 : 착란된 식. 허망분별虛妄分別과 같다. 알라야식의 의타기성依他起性의 국면을 말한다.
  119. 119)여기서 ‘진塵’은 색법, ‘근根’은 오근, ‘아我’는 제7식, ‘식識’은 육종식을 말한다. 『中邊分別論』 권상(T31, 451b) 참조.
  120. 120)종자種子 : 유식에서는 알라야연기설(賴耶緣起說)의 견지에서 만유의 물심현상物心現象은 알라야식에서 발생하고 전개된다 하여 이것을 내는 마음의 세력이 알라야식 가운데 갈무려 있다고 한다. 이를 종자라 하고, 다시 본래 알라야식에 있는 본유종자本有種子와 갖가지 짓는 일이 있을 때마다 훈습하는 신훈종자新熏種子를 말한다.
  121. 121)애취번뇌愛取煩惱 : ‘애愛’는 은애恩愛ㆍ친애親愛의 뜻이고 ‘취取’는 집착ㆍ염착의 뜻이니, 은애에 몹시 집착하여 뗄 수 없는 정情을 말한다.
  122. 122)윤생번뇌潤生煩惱 : 윤생혹潤生惑과 같은 말이다.
  123. 123)상속심相續心 : 알라야식 본체를 말한다. 『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3c) 참조.
  124. 124)『십지경十地經』 : 당나라 시라달마尸羅達摩 한역. 9권. 『華嚴經』 「十地品」의 이역본이다.
  125. 125)『十地經』 권4(T10, 553a), 60권본 『華嚴經』 권25(T9, 558c), 80권본 『華嚴經』 권37(T10, 194a).
  126. 126)『入楞伽經』 권10(T16, 578c).
  127. 127)소견所見 : 보여지는 것. 즉, 대상이다.
  128. 128)능견能見 : 보는 자. 즉, 인식 주관이다.
  129. 129)오법五法 : 온갖 법의 자성을 분별하여 5종으로 나눈 것. 곧 상相(삼라만상의 모양), 명名(만상의 이름), 분별分別(망상이라고도 하니 모양과 이름의 근본되는 허망한 마음), 정지正智(허망분별을 여의고 온갖 법의 자성이 없는 진리를 아는 바른 지혜), 여여如如(진여라고도 하니, 정지로 증득하는 모든 법의 본체)이다.
  130. 130)『入楞伽經』 권10(T16, 578c). 『大乘入楞伽經』 권7(T16, 634b)에 따르면 “무영상에서는, 의타기도 없고 망계성도 없으며 오법과 이심도 전혀 없다.(無有影像處。 則無依他起。 妄計性亦無。 五法二心盡。)”라고 하였으니, “다른 것도 아니고 인연도 아니며”는 의타기의 번역어인 것 같다.
  131. 131)『집량론集量論』 : ⓢ Pramāṇasamuccaya. 진나陳那(400~480) 지음. 진나는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의 불교 논리학자로 옛 인명을 개혁하여 새로운 인명을 확립했다. 즉, 유식설을 배경으로 하여 인식 근거(量)에 관한 종래의 학설을 일신하여 직각直覺과 추론推論의 2종만을 인정하고, 또 논증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이유理由 개념의 세 가지 조건(因의 三相) 중 제2, 제3의 조건을 분석 음미하여 비론적比論的인 오지작법五支作法을 폐기하고 연역적인 삼지작법의 추론을 확립하였다. 이 『集量論』은 『正理門論』과 함께 이상과 같은 그의 논리학 체계를 상설한 것으로, 운문의 시구와 산문의 자주自註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범본과 한역 모두 없고 티베트역만 현존하는데 2종이 있다.
  132. 132)현량現量 : 인명 삼량三量의 하나. 심식心識 삼량의 하나. 비판하고 분별함을 떠나서 외계의 사상事象을 그대로 각지覺知하는 것. 예를 들면 맑은 거울이 어떤 형상이든 그대로 비추는 것같이 꽃은 꽃으로 보고, 노래는 노래로 듣고, 냄새는 냄새로 맡고, 매운 것은 매운 대로 맛보고, 굳은 것은 굳은 대로 느껴서 조금도 분별하거나 미루어 구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133. 133)『佛地經論』 권3(T26, 303a)에서 『集量論』의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十卷楞伽經』에서는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心不見心)”라고 하였고, 『集量論』에서는 “모든 심ㆍ심법은 다 자체를 증득한다.”라고 하였다. 만약 심ㆍ심법이 자체를 증득하지 못한다면 이는 일찍이 마음(심ㆍ심법)이 마음(자체)을 보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요, 따라서 마땅히 억념 작용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누구에게나 억념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심ㆍ심법은 다 자체를 증득하고 있음에 틀림없으며, 이는 곧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한다는 말과는 서로 어긋난다.
  134. 134)두 가지~아니기 때문이며 : 견분見分의 작용과 상분相分의 작용이 두 가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135. 135)그 작용에~있기 때문 : 자증분과 견분의 작용에 다름이 있음을 말한다.
  136. 136)『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60b).
  137. 137)분리식分離識 : 제6의식을 말한다. 분별식 또는 분별사식이라고도 한다. 이 식은 육근에 의하여 각각 육진을 취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이와 같이 이른다.
  138. 138)견애번뇌見愛煩惱 : 견혹見惑과 사혹思惑(특히 탐애)을 말한다. 견혹은 견도위見道位에서 사제의 이치를 볼 때에 끊는 번뇌이다. 여기에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탐貪, 진瞋 치痴, 만慢, 의疑 등 10종이 있다. 사혹思惑은 수혹修惑이라고도 하며 낱낱 사물의 진상을 알지 못하므로 일어나는 번뇌이니, 정情ㆍ의意에 관한 것이어서 이를 끊기는 쉽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를 닦아서 끊는 것이다.
  139. 139)견수번뇌見修煩惱 : 견애번뇌와 같다.
  140. 140)육상六相 : 육추를 말한다. 상속상은 식온, 집취상은 수온, 계명자상은 상온, 기업상은 행온에 해당한다.
  1. 1)「海」上有「唐」{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