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대승기신론소기회본(大乘起信論疏記會本) / 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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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4권(大乘起信論疏記會本 卷四)

마명보살이 논을 지음(馬鳴菩薩造論)
양나라 천축삼장 진제가 한역함(梁天竺三藏眞諦譯)
해동사문 원효가 소를 지음【『별기』를 병기하였다.】(唐海東沙門元曉疏【幷別記】)

(ㄴ) 생멸의 소의인 인연의 체상을 밝힘
이 아래는 두 번째로 소의所依인 인연의 체상을 거듭 나타냈다. 그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연의 매우 깊음을 간략히 밝혔고, 둘째는 인연의 차별을 자세히 나타냈다.

㉠ 인연의 매우 깊음을 간략히 밝힘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일어난 식이란 범부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이승二乘의 지혜로 깨달을 것도 아니니, 이는 보살이 처음의 정신正信1)에서 발심하고 관찰함으로부터 저 법신을 증득한다면 조금이라도 알게 되며, 보살구경지菩薩究竟地2)에 이른다 하더라도 다 알 수는 없고 오직 부처만이 끝까지 다 알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이 마음이 본래부터 자성이 청정하지만 무명이 있어서 이 무명에 의하여 물들게 되어 그 염심染心3)이 있는 것이니, 비록 염심이 있으나 항상 변하지 아니하므로 이러한 뜻은 오직 부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 세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매우 깊음을 나타냈고, 다음은 해석하였고, 나중은 결론지었다.

A. 매우 깊음을 나타냄

처음에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일어난 식”이라고 말한 것은 위에서 “알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다고 말하니, 불각하여 일어나서” 등이라 말한 것을 거듭한 것이며, 그 나머지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부처만이 끝까지 다 알게 되는 것”이란 매우 깊음을 나타낸 것이다.

별기 만약 이 심체가 한결같이 생멸하기만 하여 다만 염심일 뿐이라면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며, 또 만약 한결같이 상주하기만 하여 오직 정심淨心일 뿐이더라도 이 또한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설사 체體는 실로 깨끗하나 상相이 물든 것 같더라도 쉽게 알 수 있으며, 만약 그 식(제8식)의 체는 움직이지만 공성空性은 고요한 것이라면 무슨 알기 어려움이 있겠는가?

001_0762_b_02L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四

001_0762_b_03L

001_0762_b_04L馬鳴菩薩造論

001_0762_b_05L梁天竺三藏眞諦譯

001_0762_b_06L1)海東沙門元曉疏幷別

001_0762_b_07L
此下第二重顯所依因緣體相於中
001_0762_b_08L有二一者略明因緣甚深二者廣顯
001_0762_b_09L因緣差別

001_0762_b_10L
依無明熏習所起識者非凡夫能知
001_0762_b_11L非二乘智慧所覺謂依菩薩從初正信
001_0762_b_12L發心觀察若證法身得少分知乃至菩
001_0762_b_13L薩究竟地不能盡知唯佛窮了何以
001_0762_b_14L是心從本已來自性淸淨而有無明
001_0762_b_15L爲無明所染有其染心雖有染心
001_0762_b_16L常恒不變是故此義唯佛能知

001_0762_b_17L
初中有三先標甚深次釋後結
001_0762_b_18L中言無明熏習所起識者牒上所說
001_0762_b_19L依阿棃耶識說有無明不覺而起等也
001_0762_b_20L非餘能知唯佛窮了者標甚深也

001_0762_b_21L

若此心體一向生滅直是染心
001_0762_b_22L則非難了又若一向常住唯是淨
001_0762_b_23L亦非離知設使體實淨而相似
001_0762_b_24L染者亦可易解如其識體動而空

001_0762_c_01L그러나 이제 이 마음은 체가 깨끗한 채로 체가 물들어 있으며 마음이 움직이면서 마음이 고요하여 염ㆍ정의 두 가지가 없으며 동ㆍ정의 구별이 없다. 염ㆍ정의 두 가지가 없고 동ㆍ정의 구별이 없지만 또한 하나도 아니니, 이와 같이 절묘하기 때문에 알기 어려운 것이다.

B. 매우 깊은 뜻을 해석함

“어째서인가” 아래는 두 번째 깊은 뜻을 해석한 것이다. “본래부터 자성이 청정하지만……무명에 의하여 물들게 되어 그 염심이 있는 것이니”는 깨끗하지만 항상 물들어 있음을 밝힌 것이고, “비록 염심이 있으나 항상 변하지 아니하므로”는 움직이지만 항상 고요함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도리에 의하여 매우 깊어서 헤아리기 어려우니, 이는 『부인경』에서 “자성청정심을 분명히 알기 어려우며 저 마음이 번뇌에 물드는 것도 분명히 알기 어렵다.”4)라고 하고, 『능가경』에서 “여래장은 청정상淸淨相이고, 객진번뇌客塵煩惱5)는 때(垢)에 물들어 깨끗지 못한 것이니, 내가 이 뜻에 의하여 승만부인과 다른 보살 등을 위하여 여래장알라야식6)이 칠식과 함께 나는 것을 전멸상轉滅相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대혜야! 여래장알라야식의 경계는 내가 이제 너와 모든 보살 가운데 매우 깊은 지자智者와 더불어 이 두 가지 법을 분명히 분별할 줄 알지만, 모든 그 밖의 성문ㆍ벽지불과 외도 등의 이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두 가지 법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7)라고 한 말과 같다.

C. 매우 깊은 뜻을 결론지음

“그러므로 이러한 뜻은 오직 부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라는 것은 세 번째 매우 깊은 뜻을 결론지은 것이다.

㉡ 인연의 차별을 자세히 나타냄

이 아래는 두 번째 인연의 차별을 자세히 나타내었으니 이 중에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심성인心性因의 체상體相을 밝혔고, 둘째는 무명연無明緣의 체상을 나타냈으며, 셋째는 염심의 제연諸緣의 차별을 밝혔다. 넷째는 무명을 다스려 끊는 지위를 나타냈고, 다섯째는 상응과 불상응의 뜻을 해석하였으며,

001_0762_c_01L性靜者有何難了而今此心體淨
001_0762_c_02L而體染心動而心靜染淨無二
001_0762_c_03L動靜莫別無二無別而亦非一
001_0762_c_04L如是之絶故難可知

001_0762_c_05L
何以故下次釋深義從本已來自性
001_0762_c_06L淸淨而無明所染有其染心者是明
001_0762_c_07L淨而恒染雖有染心而常恒不變者
001_0762_c_08L是明動而常靜由是道理甚深難測
001_0762_c_09L如夫人經言自性淸淨心難可了知
001_0762_c_10L彼心爲煩惱所染亦難可了知楞伽
001_0762_c_11L經言以如來藏是淸淨相客塵煩惱
001_0762_c_12L垢染不淨我依比義爲勝鬘夫人及
001_0762_c_13L餘菩薩等說如來藏阿棃耶識共七
001_0762_c_14L識生名轉滅相大慧如來藏阿棃
001_0762_c_15L耶識境界我今與汝及諸菩薩甚深
001_0762_c_16L智者能了分別此二種法諸餘聲聞
001_0762_c_17L辟支佛及外道等執著名字者不能
001_0762_c_18L了知如是二法是故此義唯佛能知
001_0762_c_19L第三結甚深也

001_0762_c_20L
以下第二廣顯因緣差別於中有六
001_0762_c_21L一明心性因之體相二顯無明緣之
001_0762_c_22L體相三明染心諸緣差別四顯無明
001_0762_c_23L治斷位地五釋相應不相應義六辨
001_0762_c_24L「海」上有「唐」{甲}

001_0763_a_01L여섯째는 지애智礙와 번뇌애煩惱礙의 뜻을 구별하였다.

A. 심성인의 체상을 밝힘

이른바 심성이 항상 망념이 없기 때문에 불변이라 이름하며,

처음 중에 위의 “비록 염심이 있으나 항상 변하지 아니하므로”라는 뜻을 해석하였으니, 비록 전체가 움직이나 본래 적정하기 때문에 “심성이 항상 망념이 없기 때문에”라고 한 것이다.

B. 무명연의 체상을 나타냄

하나의 법계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상응하지 아니하여 홀연히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무명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둘째 중에 “마음이 상응하지 아니하여”라고 말한 것은 이 무명이 가장 미세하여 능能ㆍ소所와 왕王ㆍ수數8)의 차별이 아직 없음을 밝힌 것이니, 그러므로 ‘마음이 상응하지 아니하여’라고 말한 것이며, 오직 이것이 근본이 되고 다른 염법으로서 이보다 미세하여 그 앞에 있는 것이 없으니, 이런 뜻에 의하여 ‘홀연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본업경』에서 “사주지四住地9) 전에는 다시 법이 일어남이 없기 때문에 무시의 무명주지라 이름한다.”10)라고 한 것과 같으며, 이것은 그 앞에 다른 시초가 되는 것이 없고 오직 이것이 근본이 됨을 밝힌 것이니, 그러므로 ‘무시’라 말한 것이며, 이 『기신론』의 ‘홀연’의 뜻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세細와 추麤가 서로 의존하는 뜻에 의하여 그 앞이 없다고 말한 것이며 또 ‘홀연히 일어나는 것’이라 말한 것이지, 시간의 차례에 의하여 ‘홀연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이 무명의 모양은 『이장장二障章』에서 자세히 분별한 것과 같다.11) 이는 위의 ‘자성이 청정하지만 무명이 있어서 물들게 되어 그 염심이 있는 것이니’라는 구절을 해석한 것이다.

별기 다만 염심을 제멸함에 있어 거친 것에서 미세함에 이르기까지 근본무명으로 하여금 차례를 따라 점차로 버리게 하는 뜻이 있으니, 이런 뜻에 의하여 무명을 다스려 끊는 것을 바로 이 뒤에서 말할 것이다.

C. 염심의 제연의 차별을 밝힘 : 육염심

염심이란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집상응염執相應染이니, 이승二乘의 해탈한 이와 신상응지信相應地12)의 사람에 의하여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001_0763_a_01L智礙煩惱礙義

001_0763_a_02L
所謂心性常無念故名爲不變

001_0763_a_03L
初中釋上雖有染心而常不變之義
001_0763_a_04L雖擧體動而本來寂靜故言心性常
001_0763_a_05L無念也

001_0763_a_06L
以不達一法界故心不相應忽然念起
001_0763_a_07L名爲無明

001_0763_a_08L
第二中言心不相應者明此無明最
001_0763_a_09L極微細未有能所王數差別故言心
001_0763_a_10L不相應唯此爲本無別染法能細於
001_0763_a_11L此在其前者以是義故說忽然起
001_0763_a_12L本業經言四住地前更無法起故名
001_0763_a_13L無始無明住地是明其前無別爲始
001_0763_a_14L唯此爲本故言無始猶是此論忽
001_0763_a_15L然義也此約細麤相依之門說爲無
001_0763_a_16L亦言忽然起非約時節以說忽
001_0763_a_17L然起此無明相如二障章廣分別也
001_0763_a_18L是釋上言自性淸淨而有無明所染有
001_0763_a_19L其染心之句

001_0763_a_20L

但除染心從麤至細能令根本
001_0763_a_21L無明隨有漸捨漸輟之義爲是義
001_0763_a_22L無明治斷在後方說

001_0763_a_23L
染心者有六種云何爲六一者執相應
001_0763_a_24L依二乘解脫及信相應地遠離故

001_0763_b_01L둘째는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이니, 신상응지에 의하여 방편方便을 수학修學하여 점점 버려서 정심지淨心地13)에 이르러서 끝내는 여의기 때문이다. 셋째는 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이니, 구계지具戒地14)에 의하여 점점 여의며 나아가 무상방편지無相方便地15)에 이르러 끝내 여의기 때문이다. 넷째는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이니, 색자재지色自在地16)에 의하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이니, 심자재지心自在地17)에 의하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이니, 보살진지菩薩盡地18)에 의하여 (점점 여의며) 여래지如來地19)에 들어가서야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염심의 여러 가지 반연들의 차별을 밝혔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총체적으로 나타낸 것과 각각 해석하는 것이다.

A) 총체적으로 해석함

B) 각각 해석함

각각 해석하는 중에 치단治斷(다스려서 끊음)을 겸해서 밝혔으니, 이 가운데 육염六染은 위의 의식과 다섯 가지 의意이다. 다만 앞에서는 인因에 의하여 일어나는 뜻을 밝혔기 때문에 미세한 것으로부터 추현麤顯한 것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설명하였으나, 여기서는 치단의 자리까지 겸해서 밝히려 하기 때문에 추현한 것으로부터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설명하였다.

(A) 집상응염

첫 번째 “집상응염”이란 바로 의식이니 견애번뇌가 증장하는 뜻이며 이는 추분별집착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이승인二乘人이라면 아라한의 자리에 이르러서야 견見ㆍ수修의 번뇌를 끝내 여의기 때문이요, 만약 보살의 경우라면 십해十解 이상에서 멀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상응지”라고 말한 것은 십해의 자리에서 신근信根이 성취되어 퇴실함이 없음을 ‘신상응’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이는 『인왕경』에서 “복인伏忍의 성태聖胎20)는 30인三十人이니 십신十信, 십지十止, 십견심十堅心이다.”21)라고 한 것과 같다. 이 십향十向22)을 견堅이라 하고 십행十行23)을 지止라 하고 십신해十信解를 신信이라 함을 알아야 한다. 이 삼현三賢의 자리에 들어갔을 때 이미 인공人空24)을 얻어서 견수번뇌見修煩惱가 현행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여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니, 이 『기신론』의 위아래에서 밝힌 것은 일어나는 것에 의하여 치단을 설명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001_0763_b_01L二者不斷相應染依信相應地修學方
001_0763_b_02L便漸漸能捨得淨心地究竟離故
001_0763_b_03L者分別智相應染依具戒地漸離乃至
001_0763_b_04L無相方便地究竟離故四者現色不相
001_0763_b_05L應染依色自在地能離故五者能見心
001_0763_b_06L不相應染依心自在地能離故六者根
001_0763_b_07L本業不相應染依菩薩盡地得入如來
001_0763_b_08L地能離故

001_0763_b_09L
第三明染心諸緣差別於中有二
001_0763_b_10L別釋別釋之中兼顯治斷此中
001_0763_b_11L六染卽上意識幷五種意但前明依
001_0763_b_12L因而起義故從細至麤而說次第
001_0763_b_13L欲兼顯治斷位故從麤至細而說次
001_0763_b_14L第一執相應染者卽是意識見愛
001_0763_b_15L煩惱所增長義麤分別執而相應故
001_0763_b_16L若二乘人至羅漢位見修煩惱究竟
001_0763_b_17L離故若論菩薩十解以上能遠離故
001_0763_b_18L此言信相應地者在十解位信根成
001_0763_b_19L無有退失名信相應如仁王經
001_0763_b_20L伏忍聖胎三十人十信十止十堅
001_0763_b_21L當知此中十向名堅十行名止
001_0763_b_22L十信解名信入此位時已得人空
001_0763_b_23L見修煩惱不得現行故名爲離當知
001_0763_b_24L此論上下所明約現起以說治斷也

001_0763_c_01L
별기 종자를 논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다른 경에서 말하는 치단의 지위와 현격하게 다름이 있으니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B) 부단상응염

두 번째 “부단상응염”이란 다섯 가지 의意 가운데 상속식이니 법집과 상응하여 상속하여 생겨나는 것이며, ‘부단(끊어지지 않음)’이란 바로 상속의 다른 이름이다. 십해위十解位로부터 유식관唯識觀25)의 심사방편尋思方便26)을 닦고 초지에 이르러 삼무성三無性을 증득하여 법집분별이 현행하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심지에 이르러서 끝내는 여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C) 분별지상응염

세 번째 “분별지상응염”이란 다섯 가지 의 가운데 네 번째 지식이다. 칠지七地 이하에서는 이지二智27)가 일어날 때엔 현행하지 못하다가 관觀에서 벗어나 사물을 반연하여 제멋대로 마음을 부릴 때엔 또한 현행하게 되기 때문에 “점점 여의며”라고 말하였고, 한편 칠지 이상에서는 오랜 시간 관觀에 들기 때문에 이 말나식이 길이 현행하지 못하므로 “무상방편지에 이르러 끝내 여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제 칠지는 무상관無相觀28)에 가행이 있고 공용이 있기 때문에 ‘무상방편지’라 이름한 것이다.

별기 이 뜻은 『해심밀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29) 그 종자를 논한다면 금강심金剛心에 이르러서야 이에 한꺼번에 끊는 것이니, 이는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 자세히 말한 것과 같다.30) 위로부터의 삼염三染은 그 행상行相이 추하며 삼등三等31)의 뜻을 갖추었기 때문에 상응이라고 한 것이다.

(D) 현색불상응염

네 번째 “현색불상응염”이란 다섯 가지 의 가운데 세 번째의 현식이니, 이는 맑은 거울 중에 색상色像을 나타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현색불상응염이라고 하였다. “색자재지色自在地”는 제8지이니 이 8지에서 이미 정토淨土32)의 자재함을 얻어서 예토穢土33)의 추색麤色이 나타나지 못하기 때문에 “여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E) 능견심불상응염

다섯 번째 “능견심불상응염”이란 다섯 가지 의 가운데 두 번째 전식轉識이니, 동심動心에 의하여 능견을 이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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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論種子是故與餘經所說治
001_0763_c_02L斷位地亦有懸殊不可致怪

001_0763_c_03L
第二不斷相應染者五種意中之相
001_0763_c_04L續識法執相應相續生起不斷卽是
001_0763_c_05L相續異名從十解位修唯識觀尋思
001_0763_c_06L方便乃至初地證三無性法執分別
001_0763_c_07L不得現行故言得淨心地究竟離故
001_0763_c_08L第三分別智相應染者五種意中
001_0763_c_09L第四智識七地以還二智起時
001_0763_c_10L得能行出觀緣事任運心時亦得
001_0763_c_11L現行故言漸離七地以上長時入觀
001_0763_c_12L故此末那永不現行故言無相方便
001_0763_c_13L地究竟離此第七地於無相觀有加
001_0763_c_14L行有功用故名無相方便地也

001_0763_c_15L

此義如解深密經說論其種子
001_0763_c_16L至金剛心方乃頓斷如集論中之
001_0763_c_17L所廣說上來三染行相是麤
001_0763_c_18L三等義故名相應

001_0763_c_19L
第四現色不相應染者五種意中第
001_0763_c_20L三現識如明鏡中現色像故名現色
001_0763_c_21L不相應染色自在地是第八地
001_0763_c_22L地已得淨土自在穢土麤色不能得
001_0763_c_23L故說能離也第五能見心不相應
001_0763_c_24L染者是五意內第二轉識依於動心

001_0764_a_01L“심자재지心自在地”는 제9지이니, 이 9지에서는 이미 사무애지四無礙智34)를 얻어서 장애를 가진 능연能緣이 일어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여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F) 근본업불상응염

여섯 번째 “근본업불상응염”이란 다섯 가지 의 가운데 첫 번째 업식業識이니, 무명의 힘에 의하여 불각하여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보살진지菩薩盡地”란 제10지이니 그 무구지無垢地가 이 지地에 속하기 때문이며, 실제로 논하자면 제10지에서도 미세한 전상轉相과 현상現相이 있지만, 다만 지상地相을 따라 점차 여읨을 말한 것뿐이다.35) 이는 아래 글에서 “업식에 의한 것이니……보살구경지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본 것을 보신이라 한다.”36)라고 한 것과 같으니, 만약 업식을 여의면 견상見相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업식이 다 없어지지 않았을 때에는 능견能見과 능현能現도 다 없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D. 무명을 다스려 끊는 지위를 나타냄

일법계一法界의 뜻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는 것은 신상응지信相應地로부터 관찰하여 치단함을 배우고 정심지淨心地에 들어가 분수에 따라 여의게 되며 여래지如來地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무명의 치단을 밝혔다. 그러나 무명주지無明住地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만약 작득주지作得住地37)의 측면에서 논한다면 초지 이상에서 점차 끊게 될 것이지만, 만약 생득주지生得住地38)의 측면에 의한다면 오직 부처의 보리지菩提智라야 끊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 『기신론』 중에서는 생득과 작득을 구분하지 않고 이 두 가지를 합해서 말하여 통틀어 무명이라 하였기 때문에 “정심지에 들어가 분수에 따라 여의게 되며 여래지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E. 상응과 불상응의 뜻을 해석함

상응의相應義라 한 것은 심心과 염법念法이 달라서 염정에 의하여 차별하매 지상知相과 연상緣相이 같음을 말하기 때문이며, 불상응의不相應義란 곧 심과 불각이 항상 별 다름이 없어서 지상과 연상이 같지 않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상응”과 “불상응”의 뜻을 밝혔으니, 여섯 가지 염심 중 앞의 세 가지 염은 상응이고

001_0764_a_01L成能見故心自在地是第九地
001_0764_a_02L地已得四無礙智有礙能緣不得現
001_0764_a_03L故說能離也第六根本業不相應
001_0764_a_04L染者是五意內第一業識依無明力
001_0764_a_05L不覺心動故菩薩盡地者是第十地
001_0764_a_06L其無垢地屬此地故就實論之第十
001_0764_a_07L地中亦有微細轉相現相但隨地相
001_0764_a_08L說漸離耳如下文言依於業識
001_0764_a_09L至菩薩究竟地心所見者名爲報身
001_0764_a_10L若離業識則無見相當知業識未盡
001_0764_a_11L之時能見能現亦未盡也

001_0764_a_12L
不了一法界義者從信相應地觀察學
001_0764_a_13L入淨心地隨分得離乃至如來地能
001_0764_a_14L究竟離故

001_0764_a_15L
第四明無明治斷然無明住地有二
001_0764_a_16L種義若論作得住地門者初地以上
001_0764_a_17L能得漸斷若就生得住地門者唯佛
001_0764_a_18L菩提智所能斷今此論中不分生作
001_0764_a_19L合說此二通名無明故言入淨心地
001_0764_a_20L隨分得離乃至如來地能究竟離也

001_0764_a_21L
言相應義者謂心念法異依染淨差別
001_0764_a_22L而知相緣相同故不相應義者謂卽心
001_0764_a_23L不覺常無別異不同知相緣相故

001_0764_a_24L
第五明相應不相應義六種染中

001_0764_b_01L뒤의 세 가지 염과 무명(근본무명)은 불상응이다. 상응 중 “심과 염법이 달라서”라고 한 것은 심법(심왕ㆍ심소)을 이름이니, 『가전연론迦旃延論』39)에서는 “심과 심소념법心所念法”40)이라고 이름하였다. “염정에 의하여 차별하매”라는 것은 염정의 모든 법을 분별하여 견見ㆍ만慢ㆍ애愛 등으로 차별하는 것이다.41) “지상이 같음을”42)이라는 것은 능지상能知相이 같은 것이고, “연상이 같음을”43)이라는 것은 소연상所緣相이 같은 것이니, 이 중에 삼등三等의 뜻에 의하여 상응이라고 하는 것이다.
‘심과 염법이 달라서’라고 한 것은 체가 같다44)는 뜻이니, 여러 번뇌수煩惱數가 각각 하나의 체(一體)가 있어서 모두 제이第二가 없기 때문이다.45) ‘지상이 같음을’이라는 것은 지知가 같다는 뜻이고, ‘연상이 같음을’이라는 것은 연緣이 같다는 뜻이니, 저 앞의 삼염三染이 이 세 가지 뜻(體等ㆍ知等ㆍ緣等)을 갖추었으며, 심과 심소가 동시에 있기 때문에46) 상응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는 “모든 심과 심법이 소연所緣은 같지만(緣等) 행상行相은 같지 않으며, 동시에 함께 있지만(時同) 따로따로 전변한다(體等).”47)라고 하고, 이제 이 『기신론』에서는 지상知相도 같다고 말하니, 이와 같이 서로 어긋나는데 어떻게 화합하겠는가?

두 가지 뜻48)이 함께 있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지 않으니 왜인가? 아견我見은 견성見性의 작용이고, 아애我愛란 애성愛性의 작용과 같으니, 이처럼 작용이 다른 것을 동일하지 않은 작용이라 이름하지만, 견見ㆍ애愛 등이 모두 나의 알음알이49)를 이루는 것이다. 이런 뜻에 의하여 지상이 같다고 하는 것이니, 따라서 두 설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불상응 중에 “곧 심과 불각이 항상 별 다름이 없어서”라고 말한 것은 체가 같다는 뜻이 없음을 밝힌 것이니, 마음(心)을 떠나서 별도로 심수법心數法의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체의 같음이 없으니, 나머지 둘이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그러므로 지知가 같고 연緣이 같은 뜻이 없으며, 따라서 지상ㆍ연상이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니, 이 중에 “(같지) 않음”이라는 것은 ‘없다(無)’는 말인 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알라야식이 오수五數50)와 상응하여 두 가지 경계51)를 반연한다.”52)라고 하였으며,

001_0764_b_01L三染是相應後三染及無明是不相
001_0764_b_02L相應中言心念法異者心法之
001_0764_b_03L名也迦旃延論中名爲心及心所念
001_0764_b_04L法也依染淨差別者分別染淨諸法
001_0764_b_05L見慢愛等差別也知相同者能知相
001_0764_b_06L緣相同者所緣相同也此中依
001_0764_b_07L三等義以說相應謂心念法異者是
001_0764_b_08L體等義謂諸煩惱數各有一體
001_0764_b_09L無第二故知相同者是知等義緣相
001_0764_b_10L同者是緣等義彼前三染具此三義
001_0764_b_11L俱時而有故名相應瑜伽論說
001_0764_b_12L諸心心法同一所緣不同一行相
001_0764_b_13L一時俱有一一而轉今此中說知相
001_0764_b_14L亦同如是相違云何和會二義
001_0764_b_15L俱有故不相違何者如我見是見
001_0764_b_16L性之行其我愛者愛性之行如是行
001_0764_b_17L名不同一行而見愛等皆作我解
001_0764_b_18L依如是義名知相同是故二說不相
001_0764_b_19L違也不相應中言卽心不覺常無別
001_0764_b_20L異者是明無體等義離心無別數法
001_0764_b_21L差別故旣無體等餘二何寄故無
001_0764_b_22L同知同緣之義故言不同知相緣相
001_0764_b_23L此中不者無之謂也瑜伽論說
001_0764_b_24L阿棃耶識五數相應緣二種境

001_0764_c_01L이는 바로 이 『기신론』 중의 현색불상응염이니, 무슨 까닭으로 이 『기신론』에서는 불상응이라 하였는가?

이 『기신론』의 뜻은 번뇌수가 차별하여 전변하는 뜻에 의거하여 상응이라 말한 것이니, 현식現識 중에는 번뇌수가 없으므로 이 뜻에 의하여 불상응이라 한 것이다. 저 『신론』의 뜻은 변행수徧行數53)에 의거하였기 때문에 상응이라 하였으니, 이런 도리에 의하여 또한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F. 지애와 번뇌애의 뜻을 구별함

또 염심의 뜻이란 번뇌애煩惱礙54)라 이름하는 것이니 진여의 근본지根本智55)를 막기 때문이요, 무명의 뜻이란 지애智礙56)라 이름하는 것이니 세간의 자연업지自然業智57)를 막기 때문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염심에 의하여 볼 수 있으며 나타낼 수 있으며 잘못 경계를 집착하여 평등성을 어기기 때문이며, 일체법이 항상 고요하여 일어나는 상이 없으나 무명불각이 법과 거짓되게 어긋나기 때문에 세간의 모든 경계에 수순하는 여러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는 두 가지 장애의 뜻을 밝혔다. 현료문顯了門58) 중에서는 이장二障59)이라 하고 은밀문隱密門 내에서는 이애二礙60)라 하였으니, 이 뜻은 자세히는 『이장장』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이제 이 『기신론』 중에서는 은밀문을 말하였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는 두 가지 번뇌를 나누었고, “이 뜻” 이하는 그 까닭을 풀이하였다.

A) 두 가지 번뇌를 나눔

처음 중에 “염심의 뜻”이라고 한 것은 여섯 가지 염심을 나타낸 것이다. “근본지”란 조적혜照寂慧61)니, 적정과 어그러지기 때문에 번뇌애라고 하는 것이다. “무명의 뜻”이란 근본무명62)이고, “세간의 (자연)업지”란 후득지이다. 무명이 (법성을) 혼미하게 하여 분별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세간의 분별지63)와 어긋나며 이런 뜻에 의하여 지애라 하는 것이다.

B) 까닭을 풀이함

까닭을 풀이하는 중에 바로 이 뜻을 나타냈으니 “염심에 의하여 볼 수 있으며 나타낼 수 있으며 잘못 경계를 집착하여”라는 것은 간략히 전식ㆍ현식ㆍ지식을 든 것이고,

001_0764_c_01L此論中現色不相應染何故此中說
001_0764_c_02L不相應此論之意約煩惱數差
001_0764_c_03L別轉義說名相應現識之中無煩
001_0764_c_04L惱數依是義故名不相應彼新論
001_0764_c_05L約徧行數故說相應由是道理
001_0764_c_06L亦不相違也

001_0764_c_07L
又染心義者名爲煩惱礙能障眞如根
001_0764_c_08L本智故無明義者名爲智礙能障世
001_0764_c_09L間自然業智故此義云何以依染心
001_0764_c_10L能見能現妄取境界違平等性故
001_0764_c_11L一切法常靜無有起相無明不覺
001_0764_c_12L與法違故不能得隨順世間一切境界
001_0764_c_13L種種知故

001_0764_c_14L
第六明二礙義顯了門中名爲二障
001_0764_c_15L隱密門內名爲二礙此義具如二障
001_0764_c_16L章說今此文中說隱密門於中有二
001_0764_c_17L初分二礙此義以下釋其所以
001_0764_c_18L中言染心義者是顯六種染心也
001_0764_c_19L本智者是照寂慧違寂靜故名煩
001_0764_c_20L惱礙也無明義者根本無明世間
001_0764_c_21L業智者是後得智無明昏迷無所分
001_0764_c_22L故違世間分別之智依如是義
001_0764_c_23L名爲智礙釋所以中正顯是義
001_0764_c_24L依染心能見能現妄取境界者略擧

001_0765_a_01L“평등성을 어기기 때문이며”라는 것은 근본지의 능소평등能所平等을 어긴 것이니, 이는 번뇌애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일체법이 항상 고요하여 일어나는 상이 없으나”라는 것은 무명에 의해 혼미해진 법성64)을 든 것이고, “무명불각이 법과 거짓되게 어긋나기 때문에”라고 한 것은 무명이 법성을 혼미하게 한 뜻을 나타낸 것이다. “세간의 모든 경계에 수순하는 여러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바로 세간의 지혜에 어긋나는 뜻을 밝힌 것이다.

별기 그러나 이장二障의 뜻에 대략 이문二門이 있다. 첫째는 이승二乘의 통장通障(이승에 모두 해당되는 장애)이니, 십사번뇌十使煩惱65)가 마음을 유전66)케 하여 열반의 과果를 장애하는 것이며, 이를 번뇌장이라 한다. 보살의 별장別障(보살에게만 해당되는 장애)으로는 법집 등의 번뇌가 소지所知의 경계를 잘 몰라서 보리과菩提果를 장애하는 것이며, 이를 소지장所知障67)이라 한다. 이러한 문은 여타의 경론에서 설한 것과 같다.
둘째는 일체의 망념을 일으키고 상相에 집착하는 따위의 마음이 여리지如理智68)의 적정한 본성을 어기는 것을 번뇌애라 하고, 근본무명으로 혼미하고 깨닫지 못하여 여량지如量智69)의 각찰覺察하는 작용을 어기는 것을 지애라 한다. 이제 이 『기신론』에는 후자의 뜻에 의하므로 여섯 가지 염심을 말하여 번뇌애라 하고 무명주지를 지애라 한 것이다. 그러나 상相으로 말한다면 무명은 여리지(理智)를 장애해야 할 것이고 염심은 여량지(量智)를 장애해야 할 터인데 이 『기신론』에서는 어째서 그렇지 아니한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니, 반드시 그렇지 않은 뜻은 『기신론』에서 스스로 말한 것과 같다.

위에서부터 두 번째 생멸인연의 뜻을 자세히 풀이하기를 마쳤다.

ㄷ) 생멸상

세 번째는 위의 입의분 중 생멸상生滅相을 자세히 풀이한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생멸의 추세麤細의 상을 밝혔고 뒤에는 추세의 생멸의 뜻을 나타냈다.

(ㄱ) 생멸의 추세의 상을 밝힘

다시 생멸상을 분별한다는 것은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001_0765_a_01L轉識現識智識違平等性者違根本
001_0765_a_02L智能所平等是釋煩惱礙義也以一
001_0765_a_03L切法常靜無有起相者是擧無明所
001_0765_a_04L迷法性無明不覺妄與法違故者
001_0765_a_05L顯無明迷法性義故不能得乃至種
001_0765_a_06L知者正明違於世間智義也

001_0765_a_07L

然二障之義略有二門一二乘
001_0765_a_08L通障十使煩惱能使流轉障涅槃
001_0765_a_09L名煩惱障菩薩別障法執等
001_0765_a_10L迷所知境障菩提果名所知障
001_0765_a_11L此門如餘經論所說二一切動念
001_0765_a_12L取相等心違如理智寂靜之性
001_0765_a_13L煩惱礙根本無明昏迷不覺違如
001_0765_a_14L量智覺察之用名爲智礙今此論
001_0765_a_15L中約後門義故說六種染心名煩
001_0765_a_16L惱礙無明住地名爲智礙然以相
001_0765_a_17L無明應障理智染心障於量智
001_0765_a_18L何不爾者未必爾故未必之意
001_0765_a_19L如論自說

001_0765_a_20L
上來第二廣釋生滅因緣義竟
001_0765_a_21L第三廣上立義分中生滅之相於中
001_0765_a_22L有二先明生滅麤細之相後顯麤細
001_0765_a_23L生滅之義

001_0765_a_24L
復次分別生滅相者有二種云何爲二

001_0765_b_01L첫째는 추麤니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세細니 마음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추 중의 추는 범부의 경계요, 추 중의 세와 세 중의 추는 보살의 경계요, 세 중의 세는 부처의 경계이다.

처음 중에 역시 두 가지이니, 첫째는 바로 추麤ㆍ세細를 밝혔고 둘째는 사람에 대하여 분별하였다.

㉠ 바로 추세를 밝힘

처음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것과 각각 풀이함이다.

A. 총체적으로 나타냄

B. 각각 풀이함

각각 풀이하는 중에 “첫째는 추니 마음과 상응하기 때문이고”라고 한 것은 여섯 가지 염심 중 앞의 삼염三染이 마음과 상응하는 것이니, 그 상이 거칠게 드러나는 것이며, 경에서는 ‘상의 생멸’이라 말하는 것이다.
“둘째는 세니 마음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뒤의 세 가지 염심이 상응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심과 심법70)의 거칠게 드러나는 상이 없고 그 체가 미세하여 항상 유전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으로, 경에서는 ‘상속의 생멸’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십권능가경』에서 “식에 두 가지의 멸함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가? 첫째는 상의 멸이고 둘째는 상속의 멸이다.”71)라고 하니, 생生과 주住도 이와 같다. 또 『사권능가경』에서 “모든 식에 두 가지 생生ㆍ주住ㆍ멸滅이 있으니,……소위 유주생流注生72)과 상생相生이다.”73)라고 하니, 멸도 이와 같다. 경에서 다만 두 가지 이름만 들고, 따로 추세麤細라는 상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기신론』의 저자가 상응과 불상응의 뜻에 의하여 두 가지 추세의 상을 구분한 것이다.

㉡ 사람에 대하여 분별함

사람에 대하여 분별하는 중에 “추 중의 추”라는 것은 앞의 세 가지 중 처음 둘이 이것이고, “추 중의 세’란 바로 이 세 가지 중 뒤의 하나가 이것이다. 앞의 것 중 처음 둘은 모두 의식意識에 있어서 행상行相이 거칠기 때문에 범부가 아는 것이요, 앞의 것 중 뒤의 하나는 제7식이며 행상이 거칠지 않아 범부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뒤의 것 중 처음 둘은 능현能現(현식)과 능견能見(전식)으로서 능能ㆍ소所가 차별되므로 보살이 아는 것이고, 맨 나중의 하나는

001_0765_b_01L一者麤與心相應故二者細與心不
001_0765_b_02L相應故又麤中之麤凡夫境界麤中
001_0765_b_03L之細及細中之麤菩薩境界細中之
001_0765_b_04L是佛境界

001_0765_b_05L
初中亦二一者正明麤細二者對人
001_0765_b_06L分別初中亦二總標別解別解中
001_0765_b_07L言一者麤與心相應故者六種染中
001_0765_b_08L前之三染是心相應其相麤顯
001_0765_b_09L中說名爲相生滅也二者細與心不
001_0765_b_10L相應故者後三染心是不相應
001_0765_b_11L心心法麤顯之相其體微細恒流不
001_0765_b_12L經中說名相續生滅也如十卷經
001_0765_b_13L識有二種滅何等爲二一者相
001_0765_b_14L二相續滅生住亦如是四卷經
001_0765_b_15L諸識有二種生住滅所謂流注生
001_0765_b_16L及相生滅亦如是經中直出二種名
001_0765_b_17L不別顯相故今論主約於相應不
001_0765_b_18L相應義以辨二種麤細相也對人分
001_0765_b_19L別中麤中之麤者謂前三中初二是
001_0765_b_20L麤中之細者卽此三中後一是也
001_0765_b_21L以前中初二俱在意識行相是麤
001_0765_b_22L凡夫所知也前中後一是第七識
001_0765_b_23L相不麤非凡所了也後中初二能現
001_0765_b_24L能見能所差別故菩薩所知最後

001_0765_c_01L능소가 아직 나뉘지 않았으므로 오직 부처만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ㄴ) 추세의 생멸의 뜻을 나타냄

이 두 가지 생멸이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있는 것이니, 이른바 인에 의하며 연에 의하는 것이다. 인에 의한다는 것은 불각의 뜻이고, 연에 의한다는 것은 잘못 경계를 짓는 뜻이다. 만약 인이 멸한다면 연이 멸하는 것이니, 인이 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멸하고 연이 멸하기 때문에 상응심이 멸하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멸한다면 어떻게 상속하며, 만약 상속한다면 어떻게 마침내 멸해 버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멸한다는 것은 오직 심상心相만 멸하는 것이요 심체心體가 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바람이 바닷물에 의지해서 움직임의 특징(動相 : 파도)을 만드는 것이니, 만약 바닷물이 없어지면 바람의 특징(風相)이 단절되어 의지할 바가 없지만 바닷물이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바람의 특징이 상속하는 것이며, 오직 바람이 멸하기 때문에 움직임의 특징이 따라서 멸하지만 바닷물이 멸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무명도 또한 그러하여 심체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니, 만약 심체가 멸하면 중생이 단절되어 의지할 바가 없지만 심체가 멸하지 아니하므로 마음이 상속하는 것이며, 오직 치癡(무명)가 멸하기 때문에 심상이 따라서 멸하지만 심지心智74)가 멸하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는 생멸의 뜻을 밝혔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생하는 원인(生緣)을 밝혔고 뒤에는 멸하는 뜻을 나타냈다.

㉠ 생하는 원인을 밝힘

처음 중에 역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보편적 원인(通緣)을 밝혔고 나중에는 개별적인 원인을 나타냈다.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추와 세의 이식이 모두 무명주지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두 가지 생멸이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있는 것이니”라고 말한 것이고, 개별적으로 말한다면 무명인無明因에 의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생기고 경계연境界緣에 의하기 때문에 상응심이 일어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인에 의한다는 것은 불각의 뜻이고 연에 의한다는 것은 잘못 경계를 짓는 뜻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별기 “불각의 뜻”이란 근본무명이고, “잘못 경계를 짓는다”는 것은 현식이 나타내는 경계이다.

만약 뜻을 자세히 말한다면 각각 두 가지 원인이 있으니, 이는 『사권능가경』에서 “대혜야, 부사의훈不思議熏과 부사의변不思議變은 현식의 인因이고,

001_0765_c_01L一者能所未分故唯佛能了也

001_0765_c_02L
此二種生滅依於無明熏習而有所謂
001_0765_c_03L依因依緣依因者不覺義故依緣者
001_0765_c_04L妄作境界義故若因滅則緣滅因滅
001_0765_c_05L不相應心滅緣滅故相應心滅
001_0765_c_06L若心滅者云何相續若相續者
001_0765_c_07L何說究竟滅答曰所言滅者唯心相滅
001_0765_c_08L非心體滅如風依水而有動相若水滅
001_0765_c_09L則風相斷絶無所依止以水不滅
001_0765_c_10L風相相續唯風滅故動相隨滅非是
001_0765_c_11L水滅無明亦爾依心體而動若心體
001_0765_c_12L則衆生斷絶無所依止以體不滅
001_0765_c_13L心得相續唯癡滅故心相隨滅非心
001_0765_c_14L智滅

001_0765_c_15L
第二明生滅義於中有二先明生緣
001_0765_c_16L後顯滅義初中亦二先明通緣
001_0765_c_17L顯別因通而言之麤細二識皆依無
001_0765_c_18L明住地而起故言二種生滅依於無
001_0765_c_19L明熏習而有別而言之依無明因故
001_0765_c_20L不相應心生依境界緣故相應心得
001_0765_c_21L故言依因者不覺義故依緣者妄
001_0765_c_22L作境界義故別記云不覺義者根本無明
妄作境者現識所現境也

001_0765_c_23L若具義說各有二因如四卷經云
001_0765_c_24L不思議熏及不思議變是現識

001_0766_a_01L여러 가지 경계를 취하는 것과 무시의 망상훈(無始妄想熏)은 분별사식의 인이니라.”75)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를 풀이해 보면 부사의훈이란 무명이 진여를 훈습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훈습할 수 없는 곳에 훈습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생각할 수 없는 훈습(不可思議熏)’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부사의변이란 이른바 진여가 무명의 훈습을 받아서 변이할 수 없는데도 변이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생각할 수 없는 변화(不思議變)’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러한 훈습과 변이가 매우 미세하고 은미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어난 현식의 행상行相이 미세하며, 이 중에 또한 전식과 업식이 있지만, 추한 것을 들어서 미세한 것을 겸했기 때문에 단지 현식이라고만 말한 것이다. ‘여러 가지 경계를 취하는 것’이라는 것은 현식이 취하는 여러 가지 경계가 마음 바다(心海)를 요동시켜서 칠식의 물결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무시의 망상훈’이란 바로 저 현식을 망상이라고 하는 것이니, 본래부터 망상을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시의 망상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이는 윗글에서 “본래부터 망념을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무시무명이라 한다.”76)고 한 것과 같으니, 여기서의 망상도 그러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십권능가경』에서 “알라야식은 명식상名識相77)을 알며, 가지고 있는 체상體相은 허공 중에 모륜毛輪78)의 머무름이 있는 것과 같으니, 정지淨智가 행하는 경계가 아니다.”79)라고 한 것과 같으니, 이러한 도리에 의하므로 망상인 것이다. 저 여러 가지의 경계와 이 망상이 자상심해自相心海80)를 훈습하여 칠식의 파랑을 일으키게 하니, 망상과 육진六塵의 경계가 거칠고 또 드러나기 때문에 거기에서 일어난 분별사식의 행상이 거칠고 드러나서 상응심을 이루는 것이다. (결국 『사권능가경』과 『십권능가경』에서) 현식이 부사의훈에 의하기 때문에 생기게 되고 부사의변에 의하므로 머무르게 되며, 분별사식은 여러 가지 경계를 반연하기 때문에 생기게 되고 망상의 훈습에 의하므로 머무르게 됨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제 이 『기신론』 중에서는 다만 생하는 원인(生緣)만을 취하였기 때문에 세細 중에서는 오직 무명의 훈습만 말하고 추麤 중에서는 단지 경계연境界緣만을 든 것이다.


001_0766_a_01L取種種塵及無始妄想熏是分
001_0766_a_02L別事識因解云不思議熏者謂無
001_0766_a_03L明能熏眞如不可熏處而能熏故
001_0766_a_04L名不可思議熏也不思議變者所謂
001_0766_a_05L眞如受無明熏不可變異而變異故
001_0766_a_06L故名不思議變此熏及變甚微且隱
001_0766_a_07L故所起現識行相微細於中亦有轉
001_0766_a_08L識業識然擧麤兼細故但名現識也
001_0766_a_09L取種種塵者現識所取種種境界
001_0766_a_10L動心海起七識浪故無始妄想熏者
001_0766_a_11L卽彼現識名爲妄想從本以來未曾
001_0766_a_12L離想故名無始妄想如上文言
001_0766_a_13L從本來未曾離念故名無始無明
001_0766_a_14L中妄想當知亦爾如十卷經云阿棃
001_0766_a_15L耶識知名識相所有體相如虛空中
001_0766_a_16L有毛輪住不淨智所行境界由是道
001_0766_a_17L理故是妄想彼種種塵及此妄想
001_0766_a_18L於自相心海令起七識波浪妄想及
001_0766_a_19L麤而且顯故其所起分別事識
001_0766_a_20L相麤顯成相應心也欲明現識因不
001_0766_a_21L思議熏故得生依不思議變故得住
001_0766_a_22L分別事識緣種種塵故得生依妄想
001_0766_a_23L熏故得住今此論中但取生緣故細
001_0766_a_24L中唯說無明熏麤中單擧境界緣也

001_0766_b_01L
별기 또 『사권능가경』에서 “대혜야, 만약 또한 저 진식眞識81)의 여러 가지 불실不實한 모든 허망한 것이 멸하면, 모든 근식根識82)이 멸하는 것이니 이를 상멸相滅이라 이름한다. 상속이 멸한다(相續滅)는 것은 상속의 원인이 멸하면 상속이 멸하니, 소종所從(원인)이 멸하고 소연所緣(연)이 멸하면 상속이 멸하는 것이다. 까닭이 무엇인가? 이것이 소의所依이기 때문이다. 의依란 무시의 망상으로 훈습하는 것을 말하며, 연緣이란 자심自心이 보거나 해서 알게 되는 경계의 망상을 말한다.”83)라고 말하니, 이 경은 통상문通相門84)에 의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며, 『기신론』에서는 별도의 뜻85)에 의거하므로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생生의 인연을 널리 논한다면 모든 식(팔식)에 각각 네 가지 인연이 있다. 이는 『십권능가경』에서 “네 가지 인연이 있어야 안식眼識이 생기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자내신自內身임을 깨닫지 못하고 경계를 취하기 때문이요,86) 둘째는 무한한 과거로부터 허망하게 색경계色境界를 분별하고 훈습하여 희론에 집착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식의 자성체自性體가 이러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여러 가지 색상色相을 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87)라고 하였으며, 『사권능가경』에서는 “네 가지 인연 때문에 안식眼識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자심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경계를) 섭수하며, 무한한 과거로부터 거짓되게 경계(色)를 경험하는 습기를 헤아려 집착하며, 식성識性의 자성인 것이며, 여러 가지 색상色相을 보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을 네 가지 인연이라 하니 물이 흐르는 곳인 장식藏識에서 전식轉識의 물결이 생기는 것이다.”88)라고 한 것과 같다.
‘자심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경계를) 섭수하며’라고 하는 것은 근본무명의 인因을 밝힌 것이니, 그 색 경계가 거친 모양이어서 현식에서 나타난 것이며 식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자심이 섭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무명으로 색진色塵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안식을 내어 취하여 밖을 삼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인이다. ‘무한한 과거로부터 거짓되게 경계를 경험하는 습기를 헤아려 집착하며’라고 하는 것은 무시망상훈습의 인因을 나타낸 것이니,

001_0766_b_01L

又四卷經大慧若覆彼眞識種
001_0766_b_02L種不實諸虛妄滅則一切根識滅
001_0766_b_03L是名相滅相續滅者相續所因滅
001_0766_b_04L則相續滅所從滅及所緣滅則相
001_0766_b_05L續滅所以者何是其所依故依者
001_0766_b_06L謂無始妄想熏緣者謂自心見等
001_0766_b_07L識境妄想此經就通相門故作是
001_0766_b_08L論約別義故如前說也若汎
001_0766_b_09L論生因緣諸識各有四種因緣
001_0766_b_10L十卷經云有四因緣眼識生何等
001_0766_b_11L爲四一者不覺自內身取境界故
001_0766_b_12L二者無始世來虛妄分別色境界熏
001_0766_b_13L習執著戱論故三者識自性體如
001_0766_b_14L是故四者樂見種種色相故四卷
001_0766_b_15L經云四因緣故眼識轉謂自心現
001_0766_b_16L攝受不覺無始虛僞過色習氣計
001_0766_b_17L識性自性欲見種種色相是名
001_0766_b_18L四種因緣水流處藏識轉識浪生
001_0766_b_19L言自心現攝受不覺者是明根本
001_0766_b_20L無明因其色麤相現識所現
001_0766_b_21L在識外自心所攝故言不覺者
001_0766_b_22L無明不覺色塵非外故能生眼識
001_0766_b_23L令取爲外是爲初因言無始虛僞
001_0766_b_24L乃至計著者是顯無始妄想熏習

001_0766_c_01L이는 현식이 본래 색진에 집착함을 말하며 이러한 습기에 의하여 안식을 내어 색진에 집착하게 하는 것이다. ‘식성識性’이라 말하는 것은 자류인自類因89)을 나타내는 것이니, 앞서의 안식의 자성으로 인하여 분별하는 것이다. 이러한 훈습에 의하여 뒤에 안식을 내는 것이 앞서의 자성과 같다. ‘여러 가지 색상을 보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은 명언훈습名言熏習90)의 인因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는 앞서의 안식이 색상을 보고 의식意識은 이 색상을 보는 안식을 반연하여 의언분별意言分別91)로 집착하여 보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안식을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나머지의 여러 식도 여기에 준거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 멸하는 뜻을 나타냄

“만약 인이 멸한다면” 이하는 두 번째 멸하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바로 밝힌 것이고, “문” 이하는 문답하여 의심을 제거한 것이다.

A. 바로 밝힘

처음 중에 “만약 인이 멸한다면 연이 멸하는 것이니”라는 것은 어느 지위에서나 대치하게 될 때 무명인無明因이 멸하면 경계연境界緣이 따라서 멸하는 것이다. “인이 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멸하고”라는 것은 세 가지 불상응심이 직접 무명인에 의하여 생기기 때문에 무명이 멸할 때 또한 따라서 멸하는 것이다. “연이 멸하기 때문에 상응심이 멸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세 가지 상응염심이 직접 경계연에 의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경계가 멸할 때 또한 따라서 멸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종의 생멸 도리92)에 의하여 두 가지 생멸의 뜻93)을 밝힌 것이지, 찰나생멸刹那生滅94)의 뜻에 의거한 것은 아니다.

B. 문답하여 의심을 제거함

이 아래는 두 번째 문답해서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니, 먼저는 묻고 나중은 답하였다.

A) 질문함

물음 중에 “만약 마음이 멸한다면 어떻게 상속하며”라고 한 것은 외도의 주장에 대하여 이러한 물음을 한 것이다.
이는 『십권능가경』에서 “만약 알라야식이 멸한다면 외도의 단견희론斷見戱論95)과 다르지 아니하다. 모든 외도가 말하기를 ‘모든 경계를 여의면 상속식相續識96)이 멸하며, 상속식이 멸하고 나면 곧 모든 식을 멸하게 된다.’고 하니,

001_0766_c_01L謂現識本來取著色塵由此習
001_0766_c_02L能生眼識令取色塵也言識性
001_0766_c_03L是顯自類因由前眼識自性分
001_0766_c_04L由此熏習後生眼識如前自性
001_0766_c_05L言欲見種種色相者是顯名言
001_0766_c_06L熏習因謂前眼識能見色相意識
001_0766_c_07L緣此能見眼識意言分別取著欲
001_0766_c_08L見也如說眼識其餘諸識準之可
001_0766_c_09L

001_0766_c_10L
若因滅下次顯滅義於中有二
001_0766_c_11L者直明問曰以下往復除疑始中
001_0766_c_12L言若因滅則緣滅者隨於何位得對
001_0766_c_13L治時無明因滅境界隨滅也因滅故
001_0766_c_14L不相應心滅者三種不相應心親依
001_0766_c_15L無明因生故無明滅時亦隨滅也
001_0766_c_16L滅故相應心滅者三種相應染心親
001_0766_c_17L依境界緣起故境界滅時亦隨滅也
001_0766_c_18L依是始終起盡道理以明二種生滅
001_0766_c_19L之義非約刹那生滅義也此下第二
001_0766_c_20L往復除疑先問後答問中言若心
001_0766_c_21L滅者云何相續者對外道說而作是
001_0766_c_22L如十卷經云若阿棃耶識滅者
001_0766_c_23L不異外道斷見戱論諸外道說離諸
001_0766_c_24L境界相續識滅相續識滅已卽滅

001_0767_a_01L대혜야! 만약 상속식이 멸한다면 무한한 과거로부터의 모든 식도 마땅히 멸할 것이다.”97)라고 한 것과 같다. 이 뜻은 바로 모든 외도의 주장, 즉 만약 무상천無想天98)에 나거나 무상정無想定99)에 들어갈 때 모든 경계를 여의면 상속식이 멸하는 것이니 근본이 멸하기 때문에 지말도 따라서 멸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여래가 이를 깨뜨려 말하기를, 만약 저 중생이 무상정에 들어갈 때 중생의 근본인 상속식이 멸한다면 육식, 칠식 등의 종자가 따라서 멸하여 저 무상정에 들어간 후로는 다시 모든 식을 일으키지 않아야 할 것이나, 저 무상정으로부터 나와서는 다시 모든 식을 일으킨다고 하니, 무상정에 들어갈 때 그 상속식이 멸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논파한다.
이제 이 『기신론』에서는 이에 의하여 물은 것이니, 만약 무상정ㆍ멸진정滅盡定100)에 들어갈 때 심체가 멸한다면 어떻게 다시 상속하겠는가? 그러므로 “만약 마음이 멸한다면 어떻게 상속하며”라고 한 것이다. 만약 저 (무상정)에 들어갈 때 심체가 멸하지 아니하여 다시 상속한다면 이 상속상이 어떻게 해서 영구히 멸하겠는가? 그러므로 “어떻게 마침내 멸해 버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것이다.

B) 답변함

답에 세 가지가 있으니, 주장과 실례와 적용이다.

(A) 주장

처음 주장에서 “멸한다는 것은”이라 함은, 저 무상정 등에 들어갔을 때 모든 식이 멸한다고 한 것은 단지 추식麤識의 상을 멸한 것이지 알라야의 심체를 멸한 것은 아닌 것이니, 그러므로 오직 심상心相만 멸한다고 한 것이다. 또한 위에서 ‘인이 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멸하고’라고 말한 것은 다만 심중에 업상業相 등이 멸함을 말한 것이지 자상自相의 심체가 멸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B) 실례

실례에서는 이 두 가지 멸하는 뜻을 각각 나타냈다. “바람이 바닷물에 의지해서 움직임의 특징을 만드는 것이니”라는 것은 무명의 바람이 심에 의지하여 움직임을 비유한 것이다. “만약 바닷물이 없어지면 바람의 특징이 단절되어 의지할 바가 없지만 바닷물이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바람의 특징이 상속하는 것이며”라는 것은 무상정에 들어갈 때 심체가 멸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식이 상속함을 비유한 것이니, 이는 처음 물음에 답한 것이다. “오직 바람이 멸하기 때문에 움직임의 특징이 따라서 멸하지만”이라는 것은

001_0767_a_01L諸識大慧若相續識滅者無始世
001_0767_a_02L來諸識應滅此意正明諸外道說
001_0767_a_03L生無想天入無想定時離諸境界
001_0767_a_04L相續識滅根本滅故末亦隨滅也
001_0767_a_05L如來破云若彼衆生入無想時衆生
001_0767_a_06L之本相續識滅者六七識等種子隨
001_0767_a_07L不應從彼還起諸識而從彼出還
001_0767_a_08L起諸識當知入無想時其相續識不
001_0767_a_09L如是破也今此論中依此而問
001_0767_a_10L若入無想定滅盡定時心體滅者
001_0767_a_11L何還續故言若心滅者云何相續也
001_0767_a_12L若入彼時心體不滅還相續者此相
001_0767_a_13L續相何由永滅故言云何說究竟滅
001_0767_a_14L答中有三謂法喩合初法中所
001_0767_a_15L言滅者如入無想等時說諸識滅者
001_0767_a_16L但滅麤識之相非滅阿棃耶心體
001_0767_a_17L言唯心相滅又復上說因滅故不相
001_0767_a_18L應心滅者但說心中業相等滅非謂
001_0767_a_19L自相心體滅也喩中別顯此二滅義
001_0767_a_20L如風依水而有動相者喩無明風依
001_0767_a_21L心而動也若水滅者則風斷絶無所
001_0767_a_22L依止以水不滅風相相續者喩於入
001_0767_a_23L無想等之時心體不滅故諸識相續
001_0767_a_24L是答初問也唯風滅故動相隨滅

001_0767_b_01L불지佛地에 도달했을 때 무명이 영구히 멸하기 때문에 업상 등의 움직임도 또한 따라서 다 멸하여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상의 심체는 멸하지 않기 때문에 바닷물이 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며, 이는 뒤의 물음에 답하여 끝내 멸함을 밝힌 것이다.

(C) 적용

적용에서는 차례로 앞의 두 가지 뜻에 맞추었다. “심지가 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은 신해神解의 성질을 ‘심지’라 이름하는 것이며, 윗글에서 “지혜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101)라고 한 것과 같으니, 이는 자상의 멸하지 않는 뜻을 밝힌 것으로 나머지 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식의 자상이 한결같이 염연染緣102)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해야 하는가, 또한 연을 따르지 않는 뜻이 있다고 해야 하는가? 한결같이 염연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염법이 다 없어질 때 자상自相이 마땅히 멸해야 할 것이며, 그 자상이 염연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멸하지 않는 것이라면 자상 그대로 있을 것이다. 또 가령 (앞의 경우가) 자상이 또한 멸하여 단견斷見과 같은 것이라면, 이 경우에는103) 자상이 멸하지 아니하여 도리어 상견常見104)과 같아질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알라야 심체는 이숙법異熟法105)으로서 다만 업혹業惑106)에 의하여 주선되어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업혹이 다 끝날 때 본식本識이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불과佛果에서는 또한 복福ㆍ혜慧의 이행二行107)으로 결과된 대원경지大圓境智와 상응한 정식淨識108)이 있으니, 이상의 두 곳109)에서의 심의 뜻이 같으며, 이런 뜻에 의하여 심이 불과에까지 이른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자상 심체의 전체가 저 무명에 의하여 일어났으나, 정靜을 움직여 일어나게 한 것이지 무無를 주선하여 유有가 되게 한 것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니, 그러므로 이 마음의 움직임이 무명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을 업상業相이라고 한다. 이 움직이는 마음이 본래 스스로 마음(心體)이며, 또한 자상自相110)이니, 자상의自相義의 문門이 무명에 말미암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곧 이 무명에 의하여 움직여진 마음에도 또한 자류상생自類相生111)의 뜻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본래부터 있다는 허물은112) 없으면서 멸하지 않는 뜻이 있으니, 무명이 다할 때 동상은 따라서 멸하지만 심心은 시각始覺을 따라 본원에 돌아가는 것이다.

001_0767_b_01L到佛地時無明永滅故業相等動
001_0767_b_02L亦隨滅盡而其自相心體不滅故言
001_0767_b_03L非是水滅也是答後問明究竟滅
001_0767_b_04L中次第合前二義非心智滅者神解
001_0767_b_05L之性名爲心智如上文云智性不壞
001_0767_b_06L是明自相不滅義也餘文可知
001_0767_b_07L識自相爲當一向染緣所起爲當亦
001_0767_b_08L有不從緣義若是一向染緣所起
001_0767_b_09L法盡時自相應滅如其自相不從染
001_0767_b_10L緣故不滅者則自然有又若使自相
001_0767_b_11L亦滅同斷見者是則自相不滅還同
001_0767_b_12L常見或有說者棃耶心體是異
001_0767_b_13L熟法但爲業惑之所辨生是故業惑
001_0767_b_14L盡時本識都盡然於佛果亦有福
001_0767_b_15L慧二行所1) [9] 大圓鏡智相應淨識
001_0767_b_16L於二處心義是同以是義說心至佛
001_0767_b_17L果耳或有說者自相心體擧體爲
001_0767_b_18L彼無明所起而是動靜令起非謂辨
001_0767_b_19L無令有是故此心之動因無明起
001_0767_b_20L名爲業相此動之心本自爲心
001_0767_b_21L爲自相自相義門不由無明然卽此
001_0767_b_22L無明所動之心亦有自類相生之義
001_0767_b_23L故無自然之過而有不滅之義無明
001_0767_b_24L盡時動相隨滅心隨始覺還歸本源

001_0767_c_01L
어떤 사람은 말한다. 두 논사의 말이 모두 도리가 있으니, 모두 성전聖典에서 말한 것에 의거하였기 때문이다. 처음 논사의 말은 『유가』의 뜻에 맞고【『별기』에 따르면 현료문에 의한 것이다.】 뒤 논사의 뜻은 『기신론』의 뜻에 맞으나【『별기』에 따르면 은밀문에 의한 것이다.】, 또한 말 그대로 뜻을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까닭은 만약 처음의 주장대로 뜻을 취한다면 곧 이는 법아집法我執113)이며, 뒤의 주장대로 뜻을 취한다면 이는 인아견人我見114)을 말하는 것이다. 또 만일 처음의 뜻을 고집한다면 단견斷見에 떨어질 것이며,115) 뒤의 뜻에 집착한다면 상견常見에 떨어질 것이니,116) 두 가지 뜻이 모두 옳지 않은 주장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비록 옳지 않은 주장이지만 또한 옳은 주장이니, 비록 그러하지는 않으나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생멸문을 자세히 해석한 이분二分 중 처음 바로 자세히 해석함을 이상으로 마친다.

ㄴ. 말에 의하여 거듭 나타냄

이 아래는 두 번째로 말에 의하여 거듭 밝히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이는 윗글에서 “이 식에 두 가지 뜻이 있어서, 일체법을 포괄하며 일체법을 낼 수 있는 것이다.”117)라고 한 말과 같다. 그러나 섭의攝義는 앞에서 이미 자세히 말하였고 생의生義는 아직 분명치 않으니, 이 때문에 이 아래에서 자세히 이 생의를 밝힐 것이다.
글 가운데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를 들어 전체적으로 표시한 것이요, 둘째는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하였고, 셋째는 훈습의 뜻을 전체적으로 밝혔으며, 넷째는 훈습의 상을 각각 나타냈고, 다섯째는 다함과 다하지 않음의 뜻을 밝혔다.

ㄱ) 수를 들어 전체적으로 표시함

ㄴ)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함

다시 네 가지 법의 훈습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염법과 정법이 일어나 단절하지 않는 것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정법淨法이니 진여라 이름하며, 둘째는 일체의 염인染因이니 무명이라 이름하며, 셋째는 망심妄心이니 업식이라 이름하며, 넷째는 망경계妄境界니 이른바 육진六塵이다.

수를 들어 (전체적으로 표시하고,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하였으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001_0767_c_01L或有說者二師所說皆有道理皆依
001_0767_c_02L聖典之所說故初師所說得瑜伽意
001_0767_c_03L別記云
依顯了門
後師義者得起信意別記云
依隱密門

001_0767_c_04L而亦不可如言取義所以然者若如
001_0767_c_05L初說而取義者卽是法我執若如後
001_0767_c_06L說而取義者是謂人我見又若執初
001_0767_c_07L墮於斷見執後義者卽墮常見
001_0767_c_08L當知二義皆不可說雖不可說而亦
001_0767_c_09L可說以雖非然而非不然故

001_0767_c_10L
廣釋生滅門內有二分中初正廣釋
001_0767_c_11L竟在於前

001_0767_c_12L
此下第二因言重明何者如上文言
001_0767_c_13L此識有二種義能攝一切法生一切
001_0767_c_14L然其攝義前已廣說能生之義猶
001_0767_c_15L未分明是故此下廣顯是義文中有
001_0767_c_16L一者擧數總標二者依數列名
001_0767_c_17L者總明熏習之義四者別顯熏習之
001_0767_c_18L第五明盡不盡義

001_0767_c_19L
復次有四種法熏習義故染法淨法起
001_0767_c_20L不斷絶云何爲四一者淨法名爲眞
001_0767_c_21L二者一切染因名爲無明三者妄
001_0767_c_22L名爲業識四者妄境界所謂六塵

001_0767_c_23L
擧數列名文相可知

001_0767_c_24L「感」作「惑」{甲}

001_0768_a_01L
ㄷ) 훈습의 뜻을 전체적으로 밝힘

훈습의 뜻이란 세간의 의복이 실제로는 향기가 없지만 만약 사람이 향으로 훈습하면 그 때문에 곧 향기가 있는 것과 같이, 이 또한 이러하여 진여정법에는 실로 염染이 없지만 다만 무명으로 훈습하기 때문에 곧 염상染相이 있으며, 무명염법에는 실로 정업淨業이 없으나 다만 진여로 훈습하기 때문에 정용淨用이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중에서 먼저는 실례이며, 나중은 적용이다. 적용에서 “진여정법”이라 한 것은 본각의 뜻이며, “무명염법”이란 불각의 뜻이니 진실로 하나의 식이 이 두 가지 뜻을 함유하여 번갈아 서로 훈습함에 의하여 두루 염정을 내는 것이며, 이 뜻은 바로 경본(『능가경』)에서 말한 부사의훈과 부사의변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118)

『섭대승론』에서는 네 가지 뜻119)을 갖추어야 바야흐로 훈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그러므로 상법常法은 훈습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120) 무슨 까닭으로 여기서는 진여를 훈습한다고 하였는가?

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저 『섭대승론』은 우선 생각할 수 있는 훈습(可思議熏)에 의하므로 상법은 훈습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이고, 이 『기신론』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훈습(不可思議熏)을 밝혔기 때문에 무명이 진여를 훈습하며 진여가 무명을 훈습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처럼 나타내는 뜻이 같지 않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신론』의 글에서 생멸문 내의 성정본각性淨本覺을 진여라고 하였으니, 따라서 훈습의 뜻이 있는 것이며, 이는 진여문 중의 진여를 말한 것은 아니다. 진여문 중에서는 생의生義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ㄹ) 훈습의 상을 각각 나타냄

이 아래는 네 번째 따로 밝힌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염染이고 뒤는 정淨이다.

(ㄱ) 염법훈습

어떻게 훈습하여 염법을 일으켜 단절되지 않는가? 이른바 진여법에 의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 무명염법의 인因이 있기 때문에 곧 진여를 훈습하며,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 망심이 있어서 곧 무명을 훈습하여 진여법을 요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001_0768_a_01L
熏習義者如世間衣服實無於香
001_0768_a_02L人以香而熏習故則有香氣此亦如是
001_0768_a_03L眞如淨法實無於染但以無明而熏習
001_0768_a_04L則有染相無明染法1) [10] 淨業
001_0768_a_05L但以眞如而熏習故則有淨用

001_0768_a_06L
第三之中先喩後合合中言眞如
001_0768_a_07L淨法者是本覺義無明染法者
001_0768_a_08L不覺義良由一識含此二義更互相
001_0768_a_09L徧生染淨此意正釋經本所說不
001_0768_a_10L思議熏不思議變義也攝大乘說
001_0768_a_11L要具四義方得受熏故言常法不能
001_0768_a_12L受熏何故此中說熏眞如解云
001_0768_a_13L習之義有其二種彼論且約可思議
001_0768_a_14L故說常法不受熏也此論明其不
001_0768_a_15L可思議熏故說無明熏眞如眞如熏
001_0768_a_16L無明顯意不同故不相違然此文
001_0768_a_17L中生滅門內性淨本覺說名眞如
001_0768_a_18L有熏義非謂眞如門中眞如以其眞
001_0768_a_19L如門中不說能生義

001_0768_a_20L
以下第四別明於中有二先染後淨

001_0768_a_21L
云何熏習起染法不斷所謂以依眞如
001_0768_a_22L法故有於無明以有無明染法因故
001_0768_a_23L卽熏習眞如以熏習故則有妄心
001_0768_a_24L有妄心卽熏習無明不了眞如法故

001_0768_b_01L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나 망경계를 나타낸다. 망경계의 염법의 연緣이 있기 때문에 곧 망심을 훈습하여 그로 하여금 염착念着케 하여 여러 가지 업을 지어서 일체의 신심身心 등의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 망경계 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증장념훈습增長念熏習이며, 둘째는 증장취훈습增長取熏習이다. 망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업식근본훈습業識根本熏習이니, 아라한과 벽지불과 일체 보살의 생멸고生滅苦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요, 둘째는 증장분별사식훈습增長分別事識熏習이니, 범부의 업계고業繫苦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명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근본훈습이니, 업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소기견애훈습所起見愛熏習이니, 분별사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이기 때문이다.

염染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묻고 뒤에는 답했다.

㉠ 질문함

㉡ 답변함

답에 두 가지가 있으니, 간략히 밝히는 것과 자세히 나타낸 것이다.

A. 간략히 밝힘

간략히 밝히는 것에 “진여법에 의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라고 한 것은 능훈能熏과 소훈所熏의 체를 나타낸 것이다. “무명(염법의 인)이 있기 때문에 곧 진여를 훈습하며”라는 것은 근본무명이 훈습한다는 뜻이다.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는 것은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업식심業識心이 있는 것이다. 이 망심으로 도리어 무명을 훈습하여 그 요달하지 못함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전식과 현식 등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나 망경계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별기 “불각하여 망념이 일어나”라는 것은 전상轉相이고, “망경계를 나타낸다”는 것은 현상現相이다.

이 경계로 도리어 현식을 훈습하기 때문에 “망심妄心121)을 훈습하여”라고 하는 것이다. “그로 하여금 염착케 하여”라는 것은 제7식을 일으키는 것이고,122) “여러 가지 업을 지어서”라는 것은 의식을 일으키는 것이고, “일체의 (신심 등의)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다.”는 것은 업에 의하여 과보를 받는 것이다.

B. 자세히 말함

다음 자세히 말하는 중에는 앞의 세 가지 뜻을 자세히 설명하되 뒤에서부터 말하였으니,123)

001_0768_b_01L不覺念起現妄境界以有妄境界染法
001_0768_b_02L緣故卽熏習妄心令其念著造種種
001_0768_b_03L受於一切身心等苦此妄境界熏習
001_0768_b_04L義則有二種云何爲二一者增長念熏
001_0768_b_05L二者增長取熏習妄心熏習義有二
001_0768_b_06L云何爲二一者業識根本熏習
001_0768_b_07L受阿羅漢辟支佛一切菩薩生滅苦故
001_0768_b_08L二者增長分別事識熏習能受凡夫業
001_0768_b_09L繫苦故無明熏習義有二種云何爲二
001_0768_b_10L一者根本熏習以能成就業識義故
001_0768_b_11L者所起見愛熏習以能成就分別事識
001_0768_b_12L義故

001_0768_b_13L
染中亦二先問後答答中有二
001_0768_b_14L廣顯略中言依眞如法有無明者
001_0768_b_15L是顯能熏所熏之體也以有無明熏
001_0768_b_16L習眞如者根本無明熏習義也以熏
001_0768_b_17L習故有妄心者依無明熏有業識心
001_0768_b_18L以是妄心還熏無明增其不了
001_0768_b_19L故成轉識及現識等故言不覺念起
001_0768_b_20L現妄境界別記云不覺念起是轉相
現妄境界是現相也
以是
001_0768_b_21L境界還熏現識故言熏習妄心也
001_0768_b_22L其念著者起第七識也造種種業者
001_0768_b_23L起意識也受一切苦者依業受果也
001_0768_b_24L次廣說中廣前三義從後而說

001_0768_c_01L먼저 경계를 밝혔다. “증장념”이란 경계의 힘으로 사식事識(분별사식) 중의 법집분별념法執分別念을 증장하는 것이며, “증장취”란 사취四取124)의 번뇌장煩惱障을 증장하는 것이다. 망심훈습에 “업식근본훈습”이란 이 업식으로 무명을 훈습하여 상相이 없는 것임을 잘 모르고 전상ㆍ현상을 일으켜 상속하는 것이니, 저 삼승인三乘人125)이 삼계를 벗어날 때 사식事識의 분단추고分段麤苦126)는 여의었으나 아직 변역變易127)의 아리야행고阿梨耶行苦128)를 받기 때문에 삼승의 “생멸고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다. 통틀어 논하자면 이 고苦129)가 무한한 과거로부터 있는 것이지만 다만 추麤ㆍ세細 두 가지의 훈습을 분간하기 위하여 이미 추고麤苦를 여읜 때에 의거하여 말한 것이다. “증장분별사식훈습”이란 범부의 자리에서의 분단고分段苦를 말한다. 무명훈습 중에 “근본훈습”이란 근본불각이며, “소기견애훈습”이란 무명에서 일어난 의식의 견애見愛130)이니 곧 지말불각의 뜻이다.

별기 “증장분별사식훈습”이라고 한 것은 의식의 견애번뇌가 증장된 것을 말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삼계三界의 업業에 매인 과보를 받기 때문에 “범부의 업계고”라 말하였다. 무명훈습 중에 “근본훈습”이라고 한 것은 근본무명이 진여를 훈습하여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 것을 업식이라 함을 이르는 것이며, 그러므로 “업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이라 말하였다. “소기견애훈습”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무명에서 일어난 견애見愛가 그 의식을 훈습하여 추분별을 일으키기 때문에 “분별사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이라 말한 것이다.

(ㄴ) 정법훈습

어떻게 훈습하여 정법을 일으켜 단절시키지 않는가? 이른바 진여법이 있기 때문이다.

001_0768_c_01L明境界增長念者以境界力增長事
001_0768_c_02L識中法執分別念也增長取者增長
001_0768_c_03L四取煩惱障也妄心熏習中業識根
001_0768_c_04L本熏習者以此業識能熏無明迷於
001_0768_c_05L無相能起轉相現相相續彼三乘人
001_0768_c_06L出三界時雖離事識分段麤苦猶受
001_0768_c_07L變易梨耶行苦故言受三乘生滅苦
001_0768_c_08L通而論之無始來有但爲簡麤細
001_0768_c_09L二種熏習故約已離麤苦時說也
001_0768_c_10L長分別事識熏習者在於凡位說分
001_0768_c_11L段苦也無明熏習中根本熏習者
001_0768_c_12L本不覺也所起見愛熏習者無明所
001_0768_c_13L起意識見愛卽是枝末不覺義也

001_0768_c_14L

言增長分別事識熏習者所謂
001_0768_c_15L意識見愛煩惱之所增長故能受三
001_0768_c_16L界繫業之果故言凡夫業繫苦也
001_0768_c_17L無明熏中言根本熏習者謂根本
001_0768_c_18L無明熏習眞如令其動念是名業
001_0768_c_19L故言成就業識義也言所起見
001_0768_c_20L愛熏習者根本無明所起見愛
001_0768_c_21L其意識起麤分別故言成就分別
001_0768_c_22L事識義也

001_0768_c_23L
云何熏習起淨法不斷所謂以有眞如
001_0768_c_24L「無」作「法」{甲}

001_0769_a_01L이 진여가 무명을 훈습하는 것이며, 훈습하는 인연의 힘에 의하여 곧 망심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를 좋아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망심에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 좋아하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 곧 진여를 훈습하여 스스로 자기의 본성을 믿어서 마음이 거짓되이 움직이는 것일 뿐 앞의 경계가 없음을 알아 멀리 여의는 법을 닦는다. 이리하여 앞의 경계가 없음을 여실히 알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편으로 수순행隨順行을 일으켜 집착하지도 아니하고131) 잘못 생각하지도 아니하며,132) 이어서 오랫동안 훈습한 힘 때문에 무명이 곧 멸한다.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마음에 일어나는 것이 없고 일어남이 없기 때문에 경계가 따라서 멸한다. 인과 연이 다 멸하기 때문에 심상心相이 다 없어지니, 이를 열반을 얻어 자연업自然業133)을 이룬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정훈淨熏을 밝혔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묻고 나중은 답하였다.

㉠ 질문함

㉡ 답변함

답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간략히 밝히고 자세히 나타냈다.

A. 간략히 밝힘

간략히 밝히는 중 먼저 진여의 훈습을 밝혔고, 두 번째는 망심의 훈습을 밝혔다.

A) 진여의 훈습을 밝힘

B) 망심의 훈습을 밝힘

이 중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 “이 망심에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기 좋아하는 인연이 있기 때문에……자기의 본성을 믿어서”라고 한 것은 십신위十信位 중의 신信을 밝힌 것이다. 두 번째 “마음이 거짓되이 움직이는 것일 뿐 앞의 경계가 없음을 알아 멀리 여의는 법을 닦는다.”라고 한 것은 삼현위三賢位 중의 수행을 나타낸 것이다. “앞의 경계가 없음을 여실히 알기 때문에”라는 것은 초지의 견도見道134)에서 유식관이 이루어짐을 밝힌 것이다. “여러 가지 방편으로……오랫동안 훈습한 힘 때문에”라는 것은 십지十地의 수도위修道位135)에서 만행萬行을 닦음을 나타낸 것이다. “무명이 곧 멸한다.” 이하는 다섯 번째 과지果地에서 열반을 증득함을 나타냈다.

B. 자세히 밝힘

A) 망심훈습

망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분별사식훈습이니, 모든 범부와 이승인 등이 생사의 고통을 싫어함에 의하여 힘이 닿는 대로 점차 무상도無上道136)에 나아가기 때문이다. 둘째는 의훈습意熏習이니, 모든 보살이 마음을 용맹하게 발하여(發心勇猛) 속히 열반에 나아감을 말하기 때문이다.


001_0769_a_01L法故能熏習無明以熏習因緣力故
001_0769_a_02L則令妄心厭生死苦樂求涅槃以此妄
001_0769_a_03L心有厭求因緣故卽熏習眞如自信已
001_0769_a_04L知心妄動無前境界修遠離法
001_0769_a_05L如實知無前境界故種種方便起隨順
001_0769_a_06L不取不念乃至久遠熏習力故
001_0769_a_07L明則滅以無明滅故心無有起以無
001_0769_a_08L起故境界隨滅以因緣俱滅故心相
001_0769_a_09L皆盡名得涅槃成自然業

001_0769_a_10L
次明淨熏於中有二先問後答
001_0769_a_11L中亦二略明廣顯略中先明眞如
001_0769_a_12L熏習次明妄心熏習此中有五初言
001_0769_a_13L以此妄心乃至自信已性者是明十
001_0769_a_14L信位中信也次言知心妄動無前境
001_0769_a_15L界修遠離法者是顯三賢位中修也
001_0769_a_16L以如實知無前境界故者是明初地
001_0769_a_17L見道唯識觀之成也種種以下乃至
001_0769_a_18L久遠熏習力故是顯十地修道位中
001_0769_a_19L修萬行也無明卽滅以下第五顯於
001_0769_a_20L果地證涅槃也

001_0769_a_21L
妄心熏習義有二種云何爲二一者分
001_0769_a_22L別事識熏習依諸凡夫二乘人等厭生
001_0769_a_23L死苦隨力所能以漸趣向無上道故
001_0769_a_24L者意熏習謂諸菩薩發心勇猛速趣涅

001_0769_b_01L
두 번째 자세히 설명하는 중에서 먼저 망훈妄熏을 밝혔다.

(A) 분별사식훈습

이 중에 “분별사식”137)이란 통틀어 말하면 칠식을 다 분별사식이라 하지만, 강한 쪽으로 말하면 다만 의식만을 취하는 것이니, 이는 분별의 작용이 강하여 모든 일을 통틀어 반연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기신론』)에서는 강한 쪽으로 말하였다. 이 식(의식)이 모든 경계가 오직 식뿐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 밖에 실제로 경계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범부와 이승은 열반에 나아가고자 하지만 아직도 생사는 싫어할 것, 열반은 기뻐할 것이 있는 줄 계탁하며, 이는 또 분별사식의 집착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분별사식훈습이라 하는 것이다.

(B) 의훈습

“의훈습意熏習”이란 또한 업식훈습이라고도 한다. 통틀어 말하자면 다섯 가지 식을 모두 의意라 이름하니, 그 뜻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근본 쪽으로 말한다면 다만 업식만을 취한다. 업식은 가장 미세하여 모든 식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이 중에서 업식을 의라 하며, 이러한 업식은 견분見分138)과 상분相分139)이 아직 나뉘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보살은 마음이 거짓되이 움직일 뿐 따로 경계가 없음을 알며 일체법은 오직 식識의 헤아림인 줄 알아서, 앞의 경계가 밖에 있다는 집착을 버리고 업식의 뜻에 따르기 때문에 업식훈습이라 이름하며 또한 의훈습이라 이름한다. 이는 무명에서 일어난 업식이 바로 발심하여 모든 행을 닦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B) 진여훈습

진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자체상훈습自體相熏習이며, 둘째는 용훈습用熏習이다. 자체상훈습이란 무한한 과거로부터 무루법을 갖추고 부사의업不思議業140)을 갖추며 경계성境界性141)을 짓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뜻142)에 의하여 항상 훈습하여 그 훈습의 힘이 있기 때문에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여 스스로 자기의 몸에 진여법이 있는 줄 믿어 발심하여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뜻과 같다면 모든 중생에게 모두 진여가 있어서 똑같이 훈습해야 할 터인데,

001_0769_b_01L槃故

001_0769_b_02L
次廣說中先明妄熏於中分別事識
001_0769_b_03L通而言之七識皆名分別事識
001_0769_b_04L就强而說但取意識以分別用强
001_0769_b_05L通緣諸事故今此文中就强而說
001_0769_b_06L識不知諸塵唯識故執心外實有境
001_0769_b_07L凡夫二乘雖有趣向而猶計有生
001_0769_b_08L死可厭涅槃可欣不異分別事識之
001_0769_b_09L故名分別事識熏習意熏習者
001_0769_b_10L亦名業識熏習通而言之五種之識
001_0769_b_11L皆名爲意義如上說就本而言
001_0769_b_12L取業識以最微細作諸識本故於
001_0769_b_13L此中業識名意如是業識見相未分
001_0769_b_14L然諸菩薩知心妄動無別境界解一
001_0769_b_15L切法唯是識量捨前外執順業識義
001_0769_b_16L故名業識熏習亦名爲意熏習非謂
001_0769_b_17L無明所起業識卽能發心修諸行也

001_0769_b_18L
眞如熏習義有二種云何爲二一者自
001_0769_b_19L體相熏習二者用熏習自體相熏習者
001_0769_b_20L從無始世來具無漏法備有不思議業
001_0769_b_21L作境界之性依此二義恒常熏習以有
001_0769_b_22L力故能令衆生厭生死苦樂求涅槃
001_0769_b_23L信己身有眞如法發心修行問曰
001_0769_b_24L如是義者一切衆生悉有眞如等皆熏

001_0769_c_01L어찌하여 믿음이 있기도 하고 믿음이 없기도 하여 한없는 전후의 차별이 있는가? 모두 동시에 스스로 진여법이 있음을 알아서 방편을 부지런히 닦아 똑같이 열반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진여는 본래 하나지만 한량없고 가없는 무명이 있어, 본래부터 자성이 차별되어 후박厚薄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항하恒河143)의 모래보다 많은 상번뇌上煩惱144)가 무명에 의하여 차별을 일으키며 아견애염번뇌我見愛染煩惱145)가 무명에 의하여 차별을 일으키니, 이와 같은 일체의 번뇌가 무명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어서 전후의 한량없는 차별이 있는 것이며, 오직 여래만이 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모든 불법에 인因이 있고 연緣이 있는 것이니, 인연이 구족하여야 법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나무 중의 화성火性이 불의 정인正因이지만 만약 사람이 알지 못하여 방편을 빌리지 못하면 스스로 나무를 태울 수 없는 것과 같이 중생도 그러하여 정인正因의 훈습하는 힘이 있으나 만약 모든 부처ㆍ보살ㆍ선지식 등을 만나 그들로 연을 삼지 못한다면 스스로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외연의 힘이 있으나 안으로 인因의 정법淨法이 아직 훈습의 힘을 갖지 못한 사람이라면 또한 끝내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인연이 구족한 이라면 이른바 스스로 훈습하는 힘이 있고 또 모든 부처ㆍ보살 등의 자비와 원호願護함을 받기 때문에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열반이 있음을 믿어 선근善根146)을 닦아 익히며, 선근을 닦는 일이 성숙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와 보살이 보여 주고 가르쳐 주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함을 만나 차츰 일을 이루어 나아가 열반의 도에 향할 수 있는 것이다.

“진여훈습”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수를 들어 총괄적으로 나타냈으며, 둘째는 수에 의하여 이름을 열거하였고, 셋째는 상相을 분별하였다.

(A) 수를 들어 총괄적으로 나타냄

(B) 수에 의해 이름을 열거함

(C) 상을 분별함

상을 분별하는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각각 밝혔고 둘째는 합해서 풀이하였다.

Ⓐ 각각 밝힘

a. 자체상훈습

처음 각각 밝히는 중에서 먼저 “자체상훈습(自體熏習)”을 밝혔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곧바로 밝혔고

001_0769_c_01L云何有信無信無量前後差別
001_0769_c_02L應一時自知有眞如法勤修方便等入
001_0769_c_03L涅槃答曰眞如本一而有無量無邊
001_0769_c_04L無明從本已來自性差別厚薄不同
001_0769_c_05L過恒沙等上煩惱依無明起差別
001_0769_c_06L我見愛染煩惱依無明起差別如是一
001_0769_c_07L切煩惱依於無明所起前後無量差別
001_0769_c_08L唯如來能知故又諸佛法有因有緣
001_0769_c_09L緣具足乃得成辦如木中火性是火
001_0769_c_10L正因若無人知不假方便能自燒木
001_0769_c_11L無有是處衆生亦爾雖有正因熏習之
001_0769_c_12L若不遇諸佛菩薩善知識等以之爲
001_0769_c_13L能自斷煩惱入涅槃者則無是處
001_0769_c_14L若雖有外緣之力而內淨法未有熏習
001_0769_c_15L力者亦不能究竟厭生死苦樂求涅槃
001_0769_c_16L若因緣具足者所謂自有熏習之力
001_0769_c_17L爲諸佛菩薩等慈悲願護故能起厭苦
001_0769_c_18L之心信有涅槃修習善根以修善根
001_0769_c_19L成熟故則値諸佛菩薩示敎利喜乃能
001_0769_c_20L進趣向涅槃道

001_0769_c_21L
眞如熏習中有三一者擧數總標
001_0769_c_22L者依數列名三者辨相辨相中有二
001_0769_c_23L一者別明二者合釋初別明中
001_0769_c_24L明自體熏習於中有二一者直明

001_0770_a_01L둘째는 의심을 제거하였다.

a) 곧바로 밝힘

처음 중에 “무루법을 갖추고 부사의업을 갖추며”라고 한 것은 본각불공本覺不空의 문에 있는 것이며, “경계성을 짓는 것이다.”라는 것은 여실공문如實空門의 경계에서 말한 것이니, 이러한 본래 가지고 있는 경지境智147)의 힘에 의하여 암암리에 망심을 훈습하여 (생사의 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아하는 마음 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b) 의심을 제거함

“문”의 아래는 문답하여 의심을 제거하는 것이니, 묻는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답”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번뇌의 후박厚薄에 의하여 열반에 들어감이 똑같지 않음을 밝혔고, 뒤에서는 연의 만남이 가지런하지 않음을 들어 그 같지 않음을 나타내었다.
처음 중에 “항하의 모래보다 많은 상번뇌”라고 한 것은 모든 법문法門을 잘 몰라서 사事에 대하여 앎이 없는 것이니,148) 이는 소지장所知障에 포섭되는 것이요, “아견애염번뇌”란 번뇌장에 포섭되는 것이다. 답의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모든 부처” 이하는 연의 만남이 가지런하지 않음을 밝히는 것이며, 주장ㆍ실례ㆍ적용이 있으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b. 용훈습

용훈습用熏習이란 곧 중생의 외연外緣의 힘이니, 이러한 외연에 한량없는 뜻이 있으나 간략히 말하자면 두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차별연差別緣이고, 둘째는 평등연平等緣이다.
차별연이란 이 사람이 모든 부처와 보살 등에 의하여 처음 발의發意하여 비로소 구도求道할 때로부터 부처가 되기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에서 혹은 부처를 보기도 하고 혹은 생각하기도 함에 있어, 어떤 경우는 권속ㆍ부모ㆍ친척이 되며, 어떤 경우는 심부름꾼(給使)이 되며, 어떤 경우는 지우知友가 되며, 어떤 경우는 원수가 된다. 또 어떤 경우는 사섭四攝을 일으키며, 내지 일체의 한량없는 행위를 짓는 연이 되는 것이니 이는 대비大悲로 훈습하는 힘을 일으켜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증장케 하여 혹은 보거나 혹은 들어서 이익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이 연에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근연近緣이니 빨리 도탈을 얻기 때문이고, 둘째는 원연遠緣이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도탈을 얻기 때문이다. 이 근원의 두 연을 분별하면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증장행연增長行緣이고,

001_0770_a_01L二者遣疑初中言具無漏法備有不
001_0770_a_02L思識業者是在本覺不空門也作境
001_0770_a_03L界之性者是就如實空門境說也
001_0770_a_04L此本有境智之力冥熏妄心令起厭
001_0770_a_05L樂等也問曰以下往復除疑問意
001_0770_a_06L可知答中有二初約煩惱厚薄明其
001_0770_a_07L不等後擧遇緣參差顯其不等初中
001_0770_a_08L言過恒沙等上煩惱者迷諸法門事
001_0770_a_09L中無知此是所知障所攝也我見愛
001_0770_a_10L染煩惱者此是煩惱障所攝也答意
001_0770_a_11L可知又諸佛以下明緣參差有法
001_0770_a_12L喩合文相可見也

001_0770_a_13L
用熏習者卽是衆生外緣之力如是外
001_0770_a_14L緣有無量義略說二種云何爲二
001_0770_a_15L者差別緣二者平等緣差別緣者
001_0770_a_16L人依於諸佛菩薩等從初發意始求道
001_0770_a_17L乃至得佛於中若見若念或爲眷
001_0770_a_18L1) [11] 母諸親或爲給使或爲知友
001_0770_a_19L爲怨家或起四攝乃至一切所作無量
001_0770_a_20L行緣以起大悲熏習之力能令衆生增
001_0770_a_21L長善根若見若聞得利益故此緣有二
001_0770_a_22L云何爲二一者近緣速得度故
001_0770_a_23L者遠緣久遠得度故是近遠二緣
001_0770_a_24L別復有二種云何爲二一者增長行緣

001_0770_b_01L둘째는 수도연受道緣이다.
평등연平等緣이란 일체의 모든 부처와 보살이 일체 중생을 도탈시키고자 하여 자연히 이들을 훈습하여 항상 버리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는 동체지력同體智力으로써 중생의 견문見聞에 따라 응하여 업용業用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른바 중생이 삼매三昧149)에 의하여야 평등하게 모든 부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용훈습” 중에서 그 글에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총체적으로 표시한 것과 이름을 열거한 것, 특징을 분별한 것이다.

a) 총체적으로 표시함

b) 이름을 열거함

두 번째 이름을 열거한 것 중에 “차별연”이란 저 범부와 이승의 분별사식훈습을 위하여 연을 짓는 것이니, 연을 짓는 자는 십신十信 이상에서 모든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두 연을 짓게 되는 것이다. “평등연”이란 모든 보살의 업식훈습을 위하여 연을 짓는 것이니, 연을 짓는 자는 초지 이상에서 모든 부처에 이르기까지 동체지력에 의하여서야 바야흐로 평등연을 짓기 때문이다.

c) 특징을 분별함

(a) 차별연을 밝힘

세 번째 특징을 분별하는 중에 먼저 차별연을 밝혔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합하여 밝히고 펼쳐서 해석하였다.

ⓐ 합하여 밝힘

ⓑ 펼쳐서 해석함

펼쳐서 해석하는 중에 또한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는 근원近遠의 두 가지 연을 열었고, 뒤에는 행해行解의 두 가지 연을 열었다. “증장행연”이란 보시布施, 지계持戒150) 등의 모든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며, “수도연”이란 문聞ㆍ사思ㆍ수修151)를 일으켜 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b) 평등연을 밝힘

평등연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연을 짓는 자를 밝혔고, “이른바” 이하는 평등의 뜻을 풀이하였다. “삼매에 의하여야 평등하게……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십해十解 이상의 모든 보살이 부처의 보신報身의 무량한 상호相好가 모두 한계가 없어서 분제상分齊相을 떠났음을 보기 때문에 평등하게 모든 부처를 본다고 한 것이다. 만약 산심散心152)에서라면, 이와 같은 상호가 분제상을 떠나 있음을 볼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삼매에 의하여야’라고 말하였다. 이상으로 체ㆍ용의 훈습에 대한 각각의 설명을 마친다.


001_0770_b_01L二者受道緣平等緣者一切諸佛菩薩
001_0770_b_02L皆願度脫一切衆生自然熏習恒常不
001_0770_b_03L以同體智力故隨應見聞而現作業
001_0770_b_04L所謂衆生依於三昧乃得平等見諸佛
001_0770_b_05L

001_0770_b_06L
用熏習中文亦有三所謂總標
001_0770_b_07L辨相第二列名中差別緣者
001_0770_b_08L彼凡夫二乘分別事識熏習而作緣也
001_0770_b_09L能作緣者十信以上乃至諸佛皆得
001_0770_b_10L作緣也平等緣者爲諸菩薩業識熏
001_0770_b_11L習而作緣也能作緣者初地以上乃
001_0770_b_12L至諸佛要依同體智力方作平等緣
001_0770_b_13L第三辨相中先明差別緣於中
001_0770_b_14L有二合明開釋開釋中亦有二
001_0770_b_15L開近遠二緣後開行解二緣增長行
001_0770_b_16L緣者能起施戒等諸行故受道緣者
001_0770_b_17L起聞思修而入道故平等緣中有二
001_0770_b_18L先明能作緣者所謂以下釋平等義
001_0770_b_19L依於三昧平等見者十解以上諸菩
001_0770_b_20L薩等見佛報身無量相好皆無有邊
001_0770_b_21L離分齊相故言平等見諸佛也若在
001_0770_b_22L散心不能得見如是相好離分齊相
001_0770_b_23L以是故言依於三昧也上來別明體
001_0770_b_24L用熏習竟

001_0770_c_01L
Ⓑ 합하여 풀이함

이 체ㆍ용의 훈습을 분별함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미상응未相應이니, 범부와 이승과 초발의보살 등은 의와 의식의 훈습으로 신력信力에 의하기 때문에 수행을 잘하지만 아직 무분별심無分別心153)이 체와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아직 자재업自在業154)의 수행이 용과 상응하지 못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상응已相應이니, 법신보살이 무분별심을 얻어 모든 부처의 지용智用과 상응하여 오직 법력에 의하여 저절로 수행하게 되어 진여를 훈습하여 무명을 멸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체ㆍ용을 합하여 해석하였다. 이 중 두 가지가 있으니 전체적으로 나타냈고 각각 풀이하였다.

a. 전체적으로 나타냄

b. 각각 풀이함

a) 미상응을 밝힘

각각 풀이하는 중에 먼저 “미상응”을 밝히는 가운데 “의와 의식의 훈습”이라고 한 것은 범부와 이승을 의식훈습이라 하는 것이니 곧 이는 분별사식훈습이고, 초발의보살 등 십해十解 이상을 의훈습이라 하는 것이니 곧 이는 업식훈습의 뜻이며 전에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별기 이 중에서 저 법신보살이 법신을 증득할 때 능견상을 여의는 것이기 때문에 지전地前(십지 이전)의 보살을 의훈습이라 한다고 말하였으니, 업식에 의하여 능견상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세속지로 보불報佛을 보는 뜻에 의한다면 금강심金剛心155) 이하에서 모두 견상見相이 있음을 통틀어 업식훈습이라 하는 것이니, 아래에서 말한 것과 같다.

“아직 무분별심이 체와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직 모든 부처의 법신의 체와 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아직 자재업(의 수행)이 용과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직 부처의 응신ㆍ화신의 이신의 용과 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b) 이상응을 밝힘

“이상응”을 밝히는 가운데 “법신보살”이란 십지 보살이요,

001_0770_c_01L
此體用熏習分別復有二種云何爲二
001_0770_c_02L一者未相應謂凡夫二乘初發意菩薩
001_0770_c_03L以意意識熏習依信力故而能修行
001_0770_c_04L未得無分別心與體相應故未得自在
001_0770_c_05L業修行與用相應故二者已相應
001_0770_c_06L法身菩薩得無分別心與諸佛智用相
001_0770_c_07L唯依法力自然修行熏習眞如滅無
001_0770_c_08L明故

001_0770_c_09L
第二合釋體用於中有二總標
001_0770_c_10L別釋中先明未相應中言意意
001_0770_c_11L識熏習者凡未二乘名意識熏習
001_0770_c_12L是分別事識熏習初發意菩薩等者
001_0770_c_13L十解以上名意熏習卽是業識熏習
001_0770_c_14L之義如前說也

001_0770_c_15L

此中對彼法身菩薩證法身時
001_0770_c_16L離能見相故說地前菩薩名意熏
001_0770_c_17L以依業識有能見相故若依俗
001_0770_c_18L智見報佛義則金剛已還皆有見
001_0770_c_19L通名業識熏習如下說也

001_0770_c_20L
未得無分別心與體相應者未得與
001_0770_c_21L諸佛法身之體相應故未得自在業
001_0770_c_22L與用相應故者未得與佛應化二身
001_0770_c_23L之用相應故已相應中法身菩薩者
001_0770_c_24L「父」作「火」{甲}

001_0771_a_01L“무분별심을 얻어”라는 것은 체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의 지용智用과 상응하여”라는 것은 여량지가 있기 때문이요, “저절로 수행하게 되어”라는 것은 팔지八地156) 이상에서는 공용이 없기 때문이다.157)
말에 의하여 거듭 나타냄에 다섯 가지 부분이 있는 중에서 이상으로 네 번째 두 가지 훈습을 각각 밝힘을 마친다.

ㅁ) 훈습이 다함과 다하지 않음의 뜻을 밝힘

또한 염법은 무한한 과거로부터 훈습하여 단절되지 않다가 부처가 된 후에는 곧 단절함이 있으나, 정법훈습은 곧 단절함이 없어서 미래에까지 다하는 것이니, 이 뜻이 무엇인가? 진여법이 항상 훈습하기 때문에 망심이 곧 멸하고 법신이 밝게 나타나 용의 훈습을 일으키므로 단절함이 없는 것이다.

이 아래는 다섯 번째로 두 가지 훈습이 다함과 다하지 않음의 뜻을 밝혔다. 염법훈습은 진여(理)에 어긋나 일어나기 때문에 멸진함이 있으나 정법의 훈습은 진여에 순응하여 일어나 진여와 상응하기 때문에 멸진함이 없음을 밝히고자 한 것이니, 글의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시정의분 내에 바로 풀이한 중에 크게 두 부분이 있으니, 이상으로 첫 번째 법장문을 해석함을 마친다.

대승기신론소기회본 제4권


001_0771_a_01L十地菩薩得無分別心者與體相應
001_0771_a_02L與諸佛智用相應者以有如量智
001_0771_a_03L自然修行者八地以上無功用故
001_0771_a_04L因言重顯有五分中第四別明二種
001_0771_a_05L熏習竟在於前

001_0771_a_06L
復次染法從無始已來熏習不斷乃至
001_0771_a_07L得佛後則有斷淨法熏習則無有斷
001_0771_a_08L盡於未來此義云何以眞如法常熏習
001_0771_a_09L妄心則滅法身顯現起用熏習
001_0771_a_10L無有斷

001_0771_a_11L
此下第五明二種熏盡不盡義欲明
001_0771_a_12L染熏違理而起故有滅盡淨法之熏
001_0771_a_13L順理而生與理相應故無滅盡文相
001_0771_a_14L可知

001_0771_a_15L
顯示正義分內正釋之中大有二分
001_0771_a_16L第一釋法章門竟在於前

001_0771_a_17L
大乘起信論疏記會本卷四

001_0771_b_01L
  1. 1)처음의 정신正信 : 올바른 십신十信 중 처음 단계, 곧 신심信心이다.
  2. 2)보살구경지菩薩究竟地 : 보살계위 50위 중 마지막 제10지인 법운지法雲地를 말한다. 이는 수혹修惑을 끊고 끝없는 공덕을 구비하고서 사람에 대하여 이익되는 일을 행하여 대자운大慈雲이 되는 지위이다.
  3. 3)염심染心 : 염오심染汚心의 준말. 악惡ㆍ유부무기有覆無記에 의하여 더럽혀진 마음이니 곧 악심ㆍ유부무기심의 총칭이다.
  4. 4)『勝鬘經』(T12, 222c).
  5. 5)객진번뇌客塵煩惱 : 객진과 같은 말. 객진은 번뇌를 가리킨다. 번뇌는 모든 법의 체성體性에 대하여 본래의 존재가 아니므로 객客이라 하고, 미세하고 수가 많으므로 진塵이라 한다.
  6. 6)『楞伽經』에서는 여래장과 알라야식이 하나라고 보는 입장과 둘로 보는 입장이 있는데, 여기서는 하나로 보고 있다.
  7. 7)『入楞伽經』 권7(T16, 557a).
  8. 8)왕王ㆍ수數 : 심왕과 심소.
  9. 9)사주지四住地 : 오주지번뇌 중 무명주지無明住地를 제외한 네 가지 주지를 말한다. 오주지번뇌는 견혹見惑ㆍ사혹思惑ㆍ무명無明의 번뇌를 다섯 가지로 나눈 것이다. ①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는 일체견주지一體見住地라고도 한다. 견은 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견혹이다. 이것은 지적인 미혹으로서 견도見道에 들어갈 때 일시에 끊으므로 견일처見一處라 하고, 주지住地는 이 번뇌가 근본이 되어 온갖 번뇌의 의지가 되며, 또 번뇌를 내는 것이므로 주지라 한다. ② 애욕주지愛欲住地는 욕은 욕계, 애는 탐애이니, 곧 사혹이다. 사혹은 탐貪, 진瞋, 치癡, 만慢 네 가지에 통하거니와 탐애는 다음 생을 받는 뜻이 가장 강하므로 탐애로써 사혹을 나타낸다. ③ 색애주지色愛住地는 색은 색계色界, 애愛와 주지는 위와 같다. 색계의 사혹이다. ④ 유애주지有愛住地는 유有는 무색계無色界이니 무색계의 사혹이다. ⑤ 무명주지無明住地에서 무명은 유치하고 암둔한 마음의 자체이니 온갖 번뇌의 근본이다. 주지는 위와 같다. 『勝鬘經』에서는 아라한ㆍ벽지불 등은 무명주지를 끊지 못하고 부처님만이 끊었다고 한다.
  10. 10)『菩薩瓔珞本業經』 권하(T24, 1022a).
  11. 11)원효의 『二障義』(H1, 801a~802b) 참조.
  12. 12)신상응지信相應地 : 십주 이후 신근信根이 성취되어 퇴실함이 없는 단계이다. 곧 신信과 상응하는 지전地前의 보살지를 말한다. 신행지信行地ㆍ신지信地라고도 한다.
  13. 13)정심지淨心地 : 십주 이후에서 초지 환희지까지를 말한다.
  14. 14)구계지具戒地 : 제2지로부터 제6지까지를 말한다. 즉, 이구지離垢地, 발광지發光地, 염혜지焰慧地, 난승지難勝地, 현전지現前地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15. 15)무상방편지無相方便地 : 제7 원행지遠行地를 말한다.
  16. 16)색자재지色自在地 : 제8 부동지不動地를 말한다.
  17. 17)심자재지心自在地 : 제9 선혜지善慧地를 말한다.
  18. 18)보살진지菩薩盡地 : 제10 법운지法雲地를 말한다.
  19. 19)여래지如來地 : 부처님의 자리를 말한다.
  20. 20)성태聖胎 : 십주ㆍ십행ㆍ십회향의 삼현위를 성태라 한다. 자종自種을 인因으로 하고 선우善友를 연緣으로 하여 정법正法을 듣고 수습하고 장양長養하여 초지에 이르러 도道를 봄으로써 불가佛家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仁王般若波羅蜜經』 권상 「菩薩敎化品」 참조.
  21. 21)『仁王般若波羅蜜經』 권상(T8, 827b).
  22. 22)십향十向 : 십회향十廻向과 같은 말이다. 삼현위三賢位의 마지막 계위이다.
  23. 23)십행十行 : 보살수행의 52계위 중 제21위부터 제30위. 이 십위는 보살의 십신ㆍ십주에서의 자리自利 수행에서 나아가 이타利他 수행을 완수하기 위하여 중생제도에 노력하는 지위이다. 60권본 『華嚴經』 권11(T9, 466b)에 따르면 환희행歡喜行, 요익행饒益行, 무에한행無恚恨行, 무진행無盡行, 이치란행離癡亂行, 선현행善現行, 무착행無着行, 존중행尊重行, 선법행善法行, 진실행眞實行이다.
  24. 24)인공人空 : 아공我空이라고도 한다. 오온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몸을 마치 실아實我가 있는 듯이 생각하는 아집我執을 공하다고 하는 것이다.
  25. 25)유식관唯識觀 : 갖추어서는 유식삼성관唯識三性觀이라 한다. 삼성을 분별하여 변계소집성은 심외心外의 법으로서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심내心內에 있어서 공이 아니라고 관조하는 것을 유식삼성관이라 한다. 이 유식삼성관을 닦을 때 얕은 데서 깊은 차례로 세운 5중重의 관법觀法이 있다. 즉, 견허존실식遣虛存實識, 사람유순식捨濫留純識, 섭말귀본식攝末歸本識, 은열현승식隱劣顯勝識, 견상증성식遣相證性識이다.
  26. 26)심사방편尋思方便 : 심사尋思의 방편. 심사란 심구사찰尋求思察의 뜻으로 유위일체제법有爲一切諸法을 명名ㆍ의義ㆍ자성自性ㆍ차별差別 4법에 총섭하여 이 4법은 자심自心이 변작한 가유실무假有實無한 것이라고 심구사찰하나 아직 확실한 지혜가 생기지 못하였다. 방편이란 수단, 가행加行의 뜻이다. 김동화, 『유식철학』, 보련각, 1973, pp.373~376 참조.
  27. 27)이지二智 : 견도見道에서의 2종의 지혜. 즉, 법공지法空智와 아공지我空智이다.
  28. 28)무상관無相觀 : 이공관二空觀(無生觀ㆍ無相觀) 중 하나. 성性은 체가 없고 상相은 곧 무상無相이니, 상이 있다고 봄은 범부의 망정妄情이며, 망법을 여의고는 상이 없음이 명안明眼에 공화空華가 없는 것과 같다.
  29. 29)『解深密經』 권4(T16, 704a~b) 참조.
  30. 30)『大乘阿毘達磨集論』 권5(T31, 685b).
  31. 31)삼등三等 : 체등體等ㆍ지등知等ㆍ연등緣等을 말한다.
  32. 32)정토淨土 : 부처님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 성불을 말하는 대승불교에서 인정하는 국토이다.
  33. 33)예토穢土 : 부정한 것이 가득 찬 국토. 삼계 육취를 말한다.
  34. 34)사무애지四無礙智 : 사무애변四無礙辯, 사무애해四無礙解라고도 한다. 마음의 방면으로는 지智 또는 해解라고 하고 입의 방면으로는 변辯이라 한다. ① 법무애法無礙는 온갖 교법에 통달한 것이다. ② 의무애義無礙는 온갖 교법의 요의要義를 아는 것이다. ③ 사무애辭無礙는 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치 못함이 없는 것이다. ④ 요설무애樂說無礙는 온갖 교법을 알아 기류機類가 듣기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데 자재한 것이다.
  35. 35)논에서는 제8지에서 현상現相이 없어지고, 제9지에서 전상轉相이 없어진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제10지에서도 미세한 전상ㆍ현상이 남아 있어 업상이 다 없어질 때에야 전상ㆍ현상도 완전히 없어진다. 따라서 논에서 제8지와 제9지에서 현상ㆍ전상을 여읠 수 있다고 한 것은 다만 10지의 상을 따라 단계적으로 여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따름이다.
  36. 36)『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5(H1, 772b).
  37. 37)작득주지作得住地 : 무명사주지無明四住地 중 욕계주지欲界住地, 색계주지色界住地, 무색계주지無色界住地를 말한다.
  38. 38)생득주지生得住地 : 무명사주지 중 견일처주지見一處住地를 말한다.
  39. 39)『가전연론迦旃延論』 : 『阿毘達磨發智論』의 구역인 『阿毘曇八犍度論』을 가리킨다.
  40. 40)『阿毘曇八犍度論』 권1(T26, 772b).
  41. 41)『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7a), 권3(H1, 760c) 참조.
  42. 42)“지상이 같음을”이라는 것은 지등知等이니, 능지상의 심왕과 심소의 소의근所依根이 동일한 것을 말한다.
  43. 43)“연상이 같음을”이라는 것은 연등緣等이니, 능지상의 심왕과 심소의 소연경所緣境이 동일한 것을 말한다.
  44. 44)“체가 같다(體等)”는 것은 심心의 체가 하나라면 심소心所의 체도 하나임을 말한다. 심소의 체가 하나라는 것은 오직 한 개의 심소만이 심왕과 구기俱起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최소한 심소는 반드시 한 개씩 심왕과 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受의 심소에는 고苦ㆍ락樂ㆍ사捨 등 삼수三受가 있는데 이수二受가 병기하는 일이 없는 것을 말한다.
  45. 45)“제이第二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고苦의 심소가 일어날 때 낙樂의 심소가 병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46. 46)“심과 심소가 동시에 있기 때문에”란 심왕과 심소가 동일한 시간에 현기現起함을 말한다. 이로써 심왕과 심소의 상응의相應義는 삼등三等과 동시同時 등 네 조건이 다 갖추어진 것이다.
  47. 47)『瑜伽師地論』 권1(T30, 279b).
  48. 48)“두 가지 뜻”이란 행상의 같지 않음(不同一行相)과 지상의 같음(知相同)을 뜻한다.
  49. 49)“나의 알음알이”란 지상知相을 말한다.
  50. 50)오수五數 : 오변행심소五遍行心所를 말한다. 일체의 심心, 일체의 시時, 일체의 장소에 두루 일어나는 심소心所로서 촉觸ㆍ작의作意ㆍ수受ㆍ상想ㆍ사思 다섯 가지 심소를 말한다.
  51. 51)두 가지 경계 : 순경계順境界와 위경계違境界를 말한다.
  52. 52)『瑜伽師地論』 권51(T30, 580a).
  53. 53)변행수徧行數 : 변행심소를 말한다.
  54. 54)번뇌애煩惱礙 : 번뇌가 몸과 마음을 번거롭고 뇌란케 하여 진여평등한 이치를 증득할 근본지혜를 장애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하므로 번뇌애라 한다. 지말무명의 육염심을 가리킨다.
  55. 55)근본지根本智 : 근본무분별지根本無分別智, 무분별지無分別智, 여리지如理智라고도 한다. 바로 진리에 계합하여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의 차별이 없는 절대의 참지혜이다. 이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이며 또 후득지를 내는 근본이 되므로 이같이 말한다.
  56. 56)지애智礙 : 근본무명根本無明을 말한다. 이것은 그 체가 무지하고 혼미하여서 세간의 자연업지自然業智를 장애하여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지애이다.
  57. 57)세간의 자연업지自然業智 : 후득지後得智를 말한다. 근본지에 의하여 진리를 깨달은 뒤에 다시 분별하는 얕은 지혜를 일으켜서 의타기성依他起性의 속사俗事를 요지了知하는 지혜이다.
  58. 58)현료문顯了門 : 여래의 설법에 현료顯了와 은밀隱密의 2문이 있는데 그중 하나다. 현료는 문면文面에 분명히 나타난 것이고, 은밀은 설자의 본의가 문내文內에 은밀하게 있는 것이다. 현설顯說은 방편이 되고, 밀의密意는 진언眞言이 된다.
  59. 59)이장二障 : 혹장惑障을 두 가지로 나눈 것. 번뇌장과 소지장을 말한다.
  60. 60)이애二礙 : 번뇌애와 지애를 말한다.
  61. 61)조적혜照寂慧 : 육혜(聞慧ㆍ思慧ㆍ修慧ㆍ無相慧ㆍ照寂慧ㆍ寂照慧)의 하나. 조照는 중도中道의 용이며, 적寂은 중도의 체니 등각위의 보살이 중도의 관혜觀慧로써 중도의 이체理體를 비추는 지혜이다.
  62. 62)근본무명根本無明 : 지말무명의 상대. 근본불각根本不覺ㆍ무시무명無始無明ㆍ원품무명元品無明이라고도 한다. 진여의 실성을 알지 못하는 불각, 미망의 마음을 말한다.
  63. 63)세간의 분별지 : 세간업지, 후득지와 같다.
  64. 64)이때의 “법성”이란 무명에 의해 혼미해지기 이전의 원래의 법성을 뜻한다.
  65. 65)십사번뇌十使煩惱 : 오리사五利使와 오둔사五純使를 말한다. 이는 그 성품이 예리하고 우둔함에 의하여 항상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번뇌이다. ① 오리사五利使는 신견사身見使ㆍ변견사邊見使ㆍ사견사邪見使ㆍ견취사見取使ㆍ계취사戒取使이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여 일어나고 성질이 날카로워 중생의 마음을 구사驅使하므로 오리사라 한다. 오견五見과 같다. ② 오둔사五純使는 탐욕사貪欲使ㆍ진에사瞋恚使ㆍ무명사無明使ㆍ만사慢使ㆍ의사疑使이다. 이 번뇌는 곳을 따라 멋대로 동하는 것으로 성품이 둔하고 또 수행자의 마음을 구사하는 것이므로 오둔사라 한다.
  66. 66)유전流轉 : 유流는 상속이고, 전轉은 헤매는 것이다. 우리가 끝없는 옛적부터 무명 번뇌로 말미암아 선악의 업을 지어 점차로 육도六道의 고락을 받으면서 그치지 않는 것이다.
  67. 67)소지장所知障 : 이장二障의 하나. 지장智障이라고도 한다. 탐貪ㆍ진瞋ㆍ치癡 등의 번뇌가 소지所知의 진상을 그대로 알지 못하게 하므로 이들 번뇌를 소지장이라 하며, 진지眞智가 발현함을 장애하는 점에서 지장智障이라 한다. 여기에 분별기分別起, 구생기俱生起가 있다. 제3권 각주 8 참조.
  68. 68)여리지如理智 : 진제지眞諦智를 말한다. 절대이고 둘이 아니어서 평등한 진리에 계합하는 불ㆍ보살의 지혜다.
  69. 69)여량지如量智 : 속제지俗諦智를 말한다. 현상계의 수량과 차별에 응하여 그 차별상을 명백히 아는 불ㆍ보살의 지혜다.
  70. 70)심과 심법 : 심왕과 심소법을 말한다.
  71. 71)『入楞伽經』 권2(T16, 521c).
  72. 72)유주생流注生 : 유위법이 인연에 의하여 찰나찰나에 전멸후생前滅後生하여 상속부단함이 물이 끊임없이 흘러들어 가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73. 73)『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
  74. 74)심지心智 : 엄밀히 심은 체體, 지는 용用이니, 체용을 함께 말하여 심지라 한다. 여기서는 신해神解의 성질을 말한다.
  75. 75)『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
  76. 76)『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2(H1, 752b).
  77. 77)명식상名識相 : 허망하게 분별된 경계상. 이는 명名ㆍ구句ㆍ문文으로 표시되는데, 제6식은 이 명ㆍ구ㆍ문에 의해 허망하게 분별된 경계상을 변화시켜 종자를 제8식에 훈부한다. 『入楞伽經』 권2(T16, 516~518) 참조.
  78. 78)모륜毛輪 : ⓢ keśūṇḍuka. 눈을 감았을 때 나타나는 망상網狀의 환영幻影을 말한다.
  79. 79)『入楞伽經』 권2(T16, 518b), 『大乘入楞伽經』 권1(T16, 590a).
  80. 80)자상심해自相心海 : 본식本識, 즉 제8식을 말한다.
  81. 81)진식眞識 : 『楞伽經』에서 말한 삼식의 하나. 진眞과 망妄에 통한 제8식의 정분淨分, 곧 자성청정심이다.
  82. 82)근식根識 : 『十卷楞伽經』에서는 제근諸根이라 하였으니, 곧 육근이다.
  83. 83)『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
  84. 84)통상문通相門 : 『楞伽經』에서는 생生ㆍ주住ㆍ멸滅의 인연을 모두 말하고 있으므로 통상문이라 한다.
  85. 85)별도의 뜻 : 『大乘起信論』에서는 생生ㆍ멸滅의 인연만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86. 86)『入楞伽經』 권2(T16, 523a)에는 “자내신임을 깨닫지 못하고 경계를 취하기 때문이요(不覺自內身取境界)”라고 되어 있으나 『大乘入楞伽經』 권2(T16, 594b)에는 “자심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집착하여 취하기 때문이요(不覺自心現而執取)”로 되어 있고, 『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4a)에는 “자심이 나타낸 것임을 섭수하여 깨닫지 못하고(自心現攝受不覺)”로 되어 있다. 『능가경회역』 권상 p.137 참조.
  87. 87)『入楞伽經』 권2(T16, 523a).
  88. 88)『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4a).
  89. 89)자류인自類因 : 등류과等流果를 내는 동류인同類因을 말한다. 인과 관계에서 원인이 그 결과와 동류인 것을 말한다. 예컨대 결과로 나타나는 선의 원인이 또한 선인 때에나 악의 원인이 또한 악인 때에는 그 인을 동류인이라 한다.
  90. 90)명언훈습名言熏習 : 명언종자名言種子ㆍ명언습기名言習氣ㆍ등류습기等流習氣라고도 한다. 온갖 법을 낳는 직접 인연이 되는 종자다. 명언名言에 따라 훈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명언훈습이라 한다. 명언에 표의명언表義名言과 현경명언顯境名言 2종이 있다. 표의명언은 모든 법을 말하여 표시하는 명名ㆍ구句ㆍ문文으로 제6식은 이 명언에 의하여 모든 법을 변화시켜 종자를 제8식에 훈부熏付하는 것이다. 현경명언은 제7식의 견분見分이 직접으로 대상경계를 반연하여 지금 있는 모든 법의 종자를 제8식에 훈성熏成함을 말한다. 이것을 명언이라 함은 심과 심소가 경계를 반연하여 나타내는 것과 같으므로 비유하여 명언이라 한다.
  91. 91)의언분별意言分別 : 의식의 심사尋思 작용을 말한다.
  92. 92)시종의 생멸 도리 : ‘시’는 무명인無明因을 말하고, ‘종’은 경계연境界緣을 말한다.
  93. 93)두 가지 생멸의 뜻 : 세생멸細生滅과 추생멸麤生滅, 즉 불상응염심의 생멸과 상응염심의 생멸을 말한다.
  94. 94)찰나생멸刹那生滅 : 시간의 최소 단위, 즉 찰나로 생멸을 논할 때 찰나찰나 생멸이 있으니 이를 찰나생멸이라 한다. 이에 대해 유정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생애 중의 생멸을 일기생멸一期生滅이라 한다.
  95. 95)단견희론斷見戱論 : 만유는 무상한 것이어서 실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도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없어져서 공무空無에 돌아간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소견을 말한다.
  96. 96)상속식相續識 : 상속심을 말한다.
  97. 97)『入楞伽經』 권2(T16, 522a).
  98. 98)무상천無想天 : 색계 사선천의 제4선천에 8천이 있는데 그중 제3 광과천廣果天 가운데 있는 하늘을 말한다. 이 하늘에 태어나면 모든 생각이 없으므로 이같이 이른다.
  99. 99)무상정無想定 : 대승 이십사불상응법二十四不相應法의 하나. 소승 십사불상응법의 하나. 이무심정二無心定의 하나. 무상천에 태어나는 인이 되는 선정이다. 모든 심상心想을 없애므로 이같이 이른다. 외도는 이 정을 닦아 무상과無想果를 얻으면 참 열반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00. 100)멸진정滅盡定 : 대승에서는 이십사불상응법의 하나. 소승에서는 십사불상응법의 하나. 또는 이무심정二無心定의 하나. 성자聖者가 모든 심상을 죄다 없애고 적정하기를 바라며 닦는 선정이다. 소승에서 불환과不還果와 아라한과의 성자가 닦는 것은 유루정有漏定으로, 육식과 인집人執을 일으키는 말나末那만을 없애는 것이고, 대승의 보살이 이를 닦는 것은 무루정無漏定으로 법집을 일으키는 말나까지 없앤다.
  101. 101) 『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3(H1, 753b).
  102. 102)염연染緣 : 무명 등의 염법소연染法所緣을 말한다.
  103. 103)이 경우에는 : 곧 염연을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104. 104)상견常見 : 사람은 죽으나 자아는 없어지지 않으며 오온은 과거나 미래에 상주불변하여 간단間斷하는 일이 없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105. 105)이숙법異熟法 : 이숙식과 같다.
  106. 106)업혹業惑 : 악업과 번뇌. 업결業結, 업뇌業惱와 같다.二
  107. 107)복福ㆍ혜慧의 이행二行 : 복지이행福智二行이라고도 한다. 보살의 만행 가운데서 지혜를 본체로 한 것은 지행智行, 다른 행은 모두 복행福行이다. 육바라밀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는 복행이니 이타利他에 속하고, 뒤의 한 가지는 지행이니 자리自利에 속한다.
  108. 108)정식淨識 : 아마라식阿摩羅識(ⓢ amala-vijñāna)을 말한다. 무구無垢ㆍ백정白淨ㆍ청정식淸淨識이라고도 한다. 구역에서는 제9식이라 하고 신역에서는 제9식을 따로 세우지 않고 제8식의 청정한 부분을 말한다.
  109. 109)이상의 두 곳 : 이숙법으로서의 알라야식과 불과佛果에 이르는 정식의 두 곳이다.
  110. 110)자상自相 : 알라야의 삼상三相의 하나. 삼상은 자상自相ㆍ과상果相ㆍ인상因相을 말하며, 제8식 자체에 모든 법의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되는 뜻을 갖추었으므로 자상의 상은 체상體相, 나머지 2상은 의상義相이라 한다. 자상은 제8식 자체의 상, 곧 모든 종자를 간직하고 7전식에 의하여 모든 종자를 훈장熏藏하여 제8식에 집장執藏되는 것을 말한다.
  111. 111)자류상생自類相生 : 알라야식 내의 종자種子는 자류인과自類因果, 즉 선ㆍ악ㆍ무기無記의 각자가 일류상속一類相續하여 전역轉易하지 않는 것으로서, 대치도對治道의 자리인 구경위究竟位까지 상속함을 말한다.
  112. 112)“자연히 본래부터 있다는 허물은”이란 알라야식의 자상이 염연染緣에 따르지 않기 때문에 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앞서의 주장을 말한 것으로, 이를 허물이라 함은 이 주장이 상견常見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이런 허물이 없다는 것은 알라야식 자상이 무명에 물들기 때문이다.
  113. 113)법아집法我執 : 법집과 같다. 여기서는 업혹에 의하여 생긴 이숙법으로서의 본식에 대한 집착을 말한다.
  114. 114)인아견人我見 : 인아집人我執ㆍ아집我執ㆍ인집人執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는 자류상생自類相生하는 자상自相을 말한다.
  115. 115)알라야식의 심체가 업혹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업혹이 다 없어질 때 이숙법으로서의 알라야 본식本識도 다 없어진다고 한다면 이는 단견에 떨어지는 것이다.
  116. 116)상견에 떨어진다는 것은 자상 심체가 무명에 의하여 일어났으나, 무명이 다할 때 마음은 시각을 따라 본원에 돌아가는 것이므로, 이는 상견에 떨어지는 것이다.
  117. 117)『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2(H1, 747b).
  118. 118)『楞伽阿跋多羅寶經』 권1(T16, 483a), 『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4(H1, 765c) 참조.
  119. 119)『攝大乘論』의 소훈사의所熏四義를 말한다. 종자의 소훈처所熏處가 되는 제8식에는 다음 네 가지 속성이 있어야 한다. ① 견주성堅住性은 시종始終이 동일한 성류性類의 것으로, 또 항상 부단하고 상속하는 성질이어야 한다. ② 무기성無記性은 선악에 치우치지 아니한 중성이어야 한다. ③ 가훈성可熏性은 그 자체가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지 않고 자재한 세력이 있으며 또 견밀하지 아니한 성질이어야 한다. 즉, 무위법은 그 성性이 상주하는 것이며 견밀한 것이므로 수훈受熏의 여지가 없다. ④ 화합성和合性은 훈습하는 것(능훈식)과 화합(상응)하는 성질이어야 한다. 『攝大乘論釋』 권2(T31, 166a) 참조.
  120. 120)소훈사의所熏四義 중 세 번째 가훈성을 말한다.
  121. 121)망심妄心 : 여기서의 망심은 현식現識을 지칭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앞 문장에서 망심을 업식이라고만 하였으나 이는 세細를 들어 추麤까지 겸한 것이다.
  122. 122)법장, 『大乘起信論義記』 권하(T44, 270c10)에 따르면 염念은 지상智相과 상속상相續相에 해당하고, 착著은 집취상執取相과 계명자상計名字相에 해당한다.
  123. 123)간략하게 밝힌 것에서 설한 세 가지 뜻을, 세 번째 뜻에서부터 거꾸로 자세히 설명했다는 말이다.
  124. 124)사취四取 : 삼계三界의 번뇌를 네 가지로 나눈 것.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ㆍ아어취我語取다. 이것은 십이인연 중의 취지取支를 자세히 구별한 것이니 ‘취’는 집취執取, 집지執持의 뜻으로 삼계의 허망한 상에 집착하여 육취六趣의 태어남을 취하므로 번뇌를 취라 한다.
  125. 125)삼승인三乘人 : 성문ㆍ연각ㆍ보살을 말한다. 성문ㆍ연각은 자리만 있고 이타가 없으므로 소승이라 하고, 보살은 자리와 이타를 구족하므로 대승이라 한다. 제2권 각주 135 참조.
  126. 126)분단추고分段麤苦 : 분단생사에서 받는 거친 고통. 이는 범부들의 생사이므로 거친 것이다.
  127. 127)변역變易 : 변역생사를 말한다. 삼계에 생사하는 몸을 여읜 뒤로 성불하기까지 성자聖者가 받는 삼계 밖의 생사. 변역은 그전 형상을 변하여 다른 모양을 받는 것이니, 이 성자들은 무루無漏의 비원력悲願力으로 말미암아 분단생사하는 추열麤劣한 몸을 변하여 세묘무한細妙無限한 몸을 받으며, 무루의 정원력定願力의 도움으로 묘용妙用이 헤아릴 수 없으므로 변역생사 또는 부사의변역생사不思議變易生死라 한다.
  128. 128)아리야행고阿梨耶行苦 : 변역생사하는 변역신變易身은 세묘무한細妙無限하여 그 영묘한 작용을 헤아리기 어려우므로 이처럼 불사의하다는 뜻에서 아리야행고라 한다. 즉, 변역행고變易行苦이다.
  129. 129)이 고苦 : 변역의 아리야행고이다.
  130. 130)견애見愛 : 아견我見과 사견邪見 등 일체 미리迷理의 혹惑을 견見이라 하고, 탐욕ㆍ진에 등 일체 미사迷事의 혹을 애愛라 한다.
  131. 131)“집착하지도 아니하고”란 곧 사취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132. 132)“잘못 생각하지도 아니하며”란 바로 법집분별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말한다.
  133. 133)자연업自然業 : 부사의업용不思議業用을 말한다. 법장, 『大乘起信論義記』 권3(T44, 271b9) 참조.
  134. 134)견도見道 :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한다. 온갖 지식으로 잘못 아는 소견을 여읜 자리이다. 소승에서는 삼현三賢ㆍ사선근四善根의 수행을 마치고 세제일위世第一位의 직후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십육심十六心으로써 욕계와 색계ㆍ무색계의 4제의 이치를 관찰하고 지식으로 잘못된 소견을 여의어 처음으로 성자라 칭하는 위位이다. 대승유식종에서는 5위 중 통달위通達位에 해당한다. 가행위加行位의 맨 나중인 세제일위의 직후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유식의 성품인 진여의 이치에 체달하여 후천적으로 일어나는 번뇌장ㆍ소지장의 종자를 끊고 선천적으로 갖춘 번뇌장의 활동을 아주 눌러 버리는 자리이다. 십지의 처음인 환희지에 해당한다.
  135. 135)수도위修道位 : 견도위見道位에서 온갖 지적인 미혹을 벗어나고, 다음에 정情ㆍ의意로부터 일어나는 온갖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려는 수양을 쌓는 기간이다. 소승에서는 사향사과四向四果 중에서 일래향一來向ㆍ일래과一來果ㆍ불환향不還向ㆍ불환과不還果ㆍ아라한향阿羅漢向의 기간이고, 대승에서는 초지에서 제10지까지의 기간이다.
  136. 136)무상도無上道 : 위가 없는 보리란 뜻으로 불과佛果를 말한다. 부처님이 얻은 보리는 최상의 것이므로 이같이 이른다.
  137. 137)분별사식 : 분리식과 같다.
  138. 138)견분見分 : 심법心法 사분四分의 하나. 객관의 사물이 인식하기에 적합하도록 주관에 나타나는 영상影像인 상분相分을 인식하는 작용이다.
  139. 139)상분相分 : 심법 사분의 하나. 심식이 인식 작용을 일으킬 때, 그와 동시에 인지할 그림자를 마음 가운데 떠오르게 하여 대상을 삼는다. 이것을 상분이라 한다.
  140. 140)부사의업不思議業 : 불가사의한 행동이나 작용. 진실한 지혜로써 증득한 진여본각 위에 갖추어 있으면서 다른 이를 교화하고 이익케 하는 불사의한 작용을 말한다.
  141. 141)경계성境界性 : 여실공문如實空門의 경계를 말한다. 『대승기신론소기회본』 권4(H1, 770a) 참조.
  142. 142)두 가지 뜻 : 무루법을 갖추고(具無漏法) 부사의업을 갖추는 것(備有不思議業)을 말한다.
  143. 143)항하恒河 : 인도의 설산雪山, 곧 히말라야 산맥에서 근원을 발하여 동으로 흘러 뱅골만에 들어가는 갠지스강을 말한다.
  144. 144)상번뇌上煩惱 : 세 가지 뜻이 있다. ① 근본무명에 의하여 생긴 지말번뇌이다. ② 10근본번뇌가 강성한 것이다. ③ 현재 일어난 번뇌를 말한다. 여기서는 세 번째 뜻이다.
  145. 145)아견애염번뇌我見愛染煩惱 : 견애번뇌와 같다.
  146. 146)선근善根 : 온갖 선을 내는 근본이란 뜻. 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를 삼선근이라 일컬음과 같은 것이다.
  147. 147)경지境智 : 경境은 경계성, 곧 여실공문如實空門의 경계를 말하며, 지智는 무루법을 갖추고 부사의업을 갖춘 것으로 곧 본각불공本覺不空 문에 있는 것을 말한다.
  148. 148)“모든 법문을 잘 몰라서”는 일체법의 법성을 잘 모른다는 것이니, 이는 『大乘起信論疏記會本』 권4(H1, 764c)에서 “일체법이 항상 고요하여 일어나는 상이 없으나 무명불각이 법과 거짓되게 어긋나기 때문에(一切法常靜。 無有起相。 無明不覺妄與法違。)”라는 말과 같으며, “사事에 대하여 앎이 없는 것이니”라는 것은 위의 말에 이어서 “세간의 모든 경계에 수순하는 여러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故不能得隨順世間一切境界種種知。)”라고 한 말과 같다.
  149. 149)삼매三昧 : ⓢ samādhi. 삼마제三摩提ㆍ삼마제三摩帝ㆍ삼마지三摩地라 음사하고, 정定ㆍ등지等持ㆍ정수正受ㆍ조직정調直定ㆍ정심행처正心行處라 의역한다.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망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150. 150)지계持戒 : 육바라밀의 하나. 계율을 지켜 범하지 않는 것이다. 계상戒相에는 비구의 250계, 비구니의 500계가 있다.
  151. 151)문聞ㆍ사思ㆍ수修 : 문혜聞慧ㆍ사혜思慧ㆍ수혜修慧의 삼혜三慧를 말한다. ① 문혜는 보고 듣고서 얻는 지혜이다. ② 사혜는 고찰하여 얻는 지혜이다. ③ 수혜는 고찰을 마치고 입정入定한 뒤에 수득修得하는 지혜이다.
  152. 152)산심散心 : ⓢ vikṣipta-citta. 정심定心의 상대. 산란한 마음. 마음이 육진 경계에 치달려 한곳에 머물 수 없는 것이다.
  153. 153)무분별심無分別心 : 무분별지를 체득한 마음이다.
  154. 154)자재업自在業 : 아무 장애가 없는 자유스러운 업용이다.
  155. 155)금강심金剛心 :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라고도 한다. 보살이 제10지의 만심滿心, 곧 마지막 한 찰나에 불과佛果의 장애를 끊어 없애고 바로 묘각妙覺의 자리에 들어가는 위位를 말한다. 제2권의 각주 94 참조.
  156. 156)팔지八地 : 십지 중 제8 부동지不動地를 말한다. 여기서는 수혹을 끊고 이미 전진여全眞如를 얻었으므로 다시 동요되지 않는 지위이다.
  157. 157)“공용이 없기 때문(無功用)”이라는 말은 『孟子』 「盡心章」의 “대이화지大而化之”의 경지이니, 이는 곧 주희朱熹의 소위 “생각하지 않고 힘쓰지 않아도 절로 도에 딱 맞는다.(不思不勉。 從容中道。)”라는 것이다.
  1. 1)「海」上有「唐」{甲}。
  2. 1)「感」作「惑」{甲}。
  3. 1)「無」作「法」{甲}。
  4. 1)「父」作「火」{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