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 白雲和尙語錄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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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화상어록 하권(白雲和尙語錄 卷下)
시자 석찬 기록(侍者 釋璨 錄)
지정 신묘년(1351) 5월 17일에 백운 선사가 호주 하무산 천호암에 이르러 석옥 화상께 여쭌 문제(至正辛卯五月十七日 師詣湖州霞霧山天湖庵 呈似石屋和尙語句)
“화상께 여쭙니다. 어떤 학인이 제게 ‘육조 혜능이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당신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한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렇게 물었을 때 저는 참된 마음은 모든 곳에 두루 있다1)고 알아 곧바로 ‘모든 상相이 전적으로 자기 마음’이라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답해 준 이 뜻이 진실한지 진실하지 못한지 스승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의심을 풀어 주십시오.” “참된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또 물었다. “경전에 ‘존재하는 상들은 모두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닌 줄 안다면 부처님의 뜻을 알 것이다’,2) ‘모든 현상(行)은 무상하니 일체가 공空인 이치가 여래의 대원각大圓覺이다’,3) ‘모든 현상은 무상하니, 생겨났다가는 없어지는 법이로다.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법이 없어지고 나면, 고요함이 즐거움이리라’,4) ‘모든 법은 본래부터 항상 스스로 적멸한 모습일세.5) 이 법이 법의 위치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상도 변함없이 머문다’,6) ‘신구의 삼업 항상 청정하며, 모든 현상과 국토 또한 그러하다. 이와 같은 지혜 가진 이를 보현이라 하니, 나도 그와 더불어 모두 동등하기를 바라네.’7)라 합니다. 이러한 구절에 의거해 마음을 비추어 관찰해 보건대, ‘모든 법이란 오로지 참된 마음이 드러난 것’일 뿐임을 깨닫고 나면 모든 것이 허깨비 같은 꿈이나 그림자와 같을 것입니다. 이 뜻이 진실합니까, 진실하지 못합니까? 스승께서는 멀리서 온 제자를 가엾이 생각하시어 마음의 의심을 풀어 주십시오.” “상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또 물었다. “어떤 학인이 조주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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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656_c_02L白雲和尙語錄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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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656_c_04L侍者釋璨錄

006_0656_c_05L至正辛卯五月十七日師詣湖州
006_0656_c_06L霞霧山天湖庵呈似石屋和尙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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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_0656_c_08L
學人諮和尙有僧問我六祖云不是
006_0656_c_09L風動不是幡動仁者心動義旨如何
006_0656_c_10L恁麽問來時弟子即知眞心徧一切
006_0656_c_11L答直諸相全是自心便恁麽道
006_0656_c_12L義眞耶非眞耶願師慈悲決疑師見云
006_0656_c_13L眞心不動又問經云凡所有相皆是
006_0656_c_14L虛妄若見諸相非相即見如來又云
006_0656_c_15L諸行無常一切空即是如來大圓覺
006_0656_c_16L諸行無常是生滅法生滅滅已
006_0656_c_17L滅爲樂又云諸法從本來常自寂滅相
006_0656_c_18L是法住法位世間相常住又云身口意
006_0656_c_19L業恒淸淨諸行刹土亦復然如是智慧
006_0656_c_20L號普賢願我與彼皆同等據此等頌
006_0656_c_21L照心觀時了見諸法唯是眞心所現
006_0656_c_22L皆如幻夢影像此義眞耶非眞耶乞師
006_0656_c_23L愍念遠來決擇心疑師見云莫着相
006_0656_c_24L僧問趙州狗子還有佛性也無

006_0657_a_01L조주가 ‘없다’라고 하였는데, 모든 법이 법마다 각각 자성이 없이 오로지 하나의 성품이기 때문에 조주가 ‘없다’고 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 일(此事)이 물속에 녹아 있는 짠맛이나 오색단청에 숨어 있는 아교 성분과 같아8) 분명 있기는 있지만 그 형체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없다’라고 한 것입니까? 아니면 조주가 ‘없다’라고 한 말은 유무의 무도 아니요 허무의 무도 아닌 바로 온전히 살아 있는 하나의 무라는 뜻인지 스승께서 의심을 풀어 주십시오.” 스승은 말없이 있다 결단하고 게송을 주었다.

八千餘許里 來爲謁尊顔  8천여 리 되는 길을, 찾아와 존안을 뵈었네.
願借本三昧 令心究竟安  근본 삼매를 빌려, 마음 지극히 편안해지기를.
獨耀天心月 光呑萬相明  하늘의 달 오롯이 빛나니, 그 빛 만상의 밝음 삼키네.
古今唯一色 淸白妙難名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한 빛으로 빛나니, 밝고 묘하여 이름 붙일 수 없네.

백운 선사가 계사년(1353) 정월 17일에 하무산 기행을 기록하고 암자의 몇몇 형제에게 보이다【불각선사에 계시면서 쓰신 글이다.】(師於癸巳正月十七日 記霞霧山行 示同菴二三兄弟【在佛覺禪寺述】)
이별한 이래 8천 리로 멀리 떨어져 이제 해도 바뀌어 새봄이 되었다. 지난해 임진년(1352) 정월 상순에 천호암에 계신 스승을 다시 찾아가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마음속 의심을 여쭈어 풀었다.
음력 정월 12일9) 에 무심·무념의 참된 종지에 은밀히 계합하여 선상을 내려가 삼배하고 자리에 그대로 서 있자 스승께서 물으셨다. “그대 마음이 기쁜 듯한데 어떠한가?” 내가 바로 “대단히 기쁩니다.”라고 하자 스승께서도 바로 다그쳐 물으셨다. “어떤 도리를 깨달았기에 그대 마음이 기쁜 것인가?” 내가 또 “어떻게 마음이 절로 기쁜 줄 알겠습니까!”라고 하자 스승께서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내가 그대의 기쁨을 도와주리라. 그대 마음이 기쁘면 나 또한 기쁘고, 내가 또한 기쁘면 시방의 모든 불보살께서도 기뻐하고 기뻐하며 또 기뻐하시리라.” 이와 같이 세 번 설해 주시고 세 번 거듭 찬탄의 말씀을 해 주심에 내 마음의 의심이 돌연 얼음이 녹듯이 풀리고

006_0657_a_01L州云無者一切諸法各無自性唯是
006_0657_a_02L一性故州云無邪若是此事如水中
006_0657_a_03L鹽味色裏膠精決定是有不見其形
006_0657_a_04L故云無邪若然則趙州無字不是有無
006_0657_a_05L之無不是虛無之無正是一介活無字
006_0657_a_06L願師決疑師默決呈偈曰

006_0657_a_07L八千餘許里來爲謁尊顔

006_0657_a_08L願借本三昧令心究竟安

006_0657_a_09L獨耀天心月光呑萬相明

006_0657_a_10L
古今唯一色淸白妙難名卷下第一張

006_0657_a_11L

006_0657_a_12L師於癸巳正月十七日記霞霧山
006_0657_a_13L示同菴二三兄弟在佛覺
禪寺述

006_0657_a_14L
自從別來路隔八千星霜已換又一
006_0657_a_15L年春去年壬辰正月上旬再造天湖師
006_0657_a_16L傳身邊勤意旦夕諮決心疑上元前三
006_0657_a_17L十有三日密契無心無念眞宗下床三
006_0657_a_18L依位而立師即問曰汝心如何莫
006_0657_a_19L有喜否我即答曰心大歡喜師即徵
006_0657_a_20L得何道理汝心歡喜我又答曰
006_0657_a_21L他如何心自歡喜師即囑曰吾助汝
006_0657_a_22L汝心歡喜吾亦歡喜吾亦歡喜
006_0657_a_23L方諸佛菩薩歡喜歡喜歡喜如是三說
006_0657_a_24L三復嗟歎即我心疑頓然永釋深信

006_0657_b_01L무심·무상의 참된 종지를 깊이 믿게 되어 이틀 밤을 더 머무르며 진실하고 간절하게 마음을 터놓고 말씀을 나누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존안을 눈물로 이별하고 나서 절에서 내려와 배를 탔는데 순풍을 만나 사흘 만에 일찌감치 휴휴선암休休禪菴에 이르렀다. 이때에 홍건적이 도처에서 마구 소란을 피워 뱃길도 육로도 모두 막히고 거취가 어려워져 배회하였다. 1월 동안 휴휴선암에서 객식구로 지내다가 2월 그믐날에 대창大倉에서 배를 타고 3월 보름에 바다를 건너 3월 스무이튿날(念二) 뭍에 올라 본국으로 들어왔다. 4월 8일에 성문을 나와 성 남쪽 문 밖으로 30여 리쯤 가니 ‘성각性覺’이라는 한 정사精舍가 있었다. 스승을 찾아다니며 법을 묻기도 지쳐 이 절에 머무르며 주장자도 꺾어 버리고 봇짐(複子)10)도 내려놓았다. 아침 점심으로 죽반을 먹으며 참선하고 염송하며 크고 작은 일을 대중을 따라 하며, 대중 속에 몸을 숨기고 마음의 자취를 드러내지 않으며, 행동거지에 조금의 어지러운 짓도 일으키지 않고 말을 함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하루 어느 시각에나 사위의四威儀 안에서 무심과 무위를 조금의 끊어짐도 없이 빈틈없이 들고서 수행하고 또 수행하였다.
계사년(1353) 정월 17일 낮에 좌선하고 있으려니 자연스럽게 영가 현각永嘉玄覺 대사의 『증도가』 가운데 “망상을 쓸어 없애지도 않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노니, 무명의 진실한 성품 그대로 불성이요, 허깨비같이 허망한 육신 그대로가 법신이로다.”11)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생각이 여기에 미쳐 그 말을 깊이 음미하니 홀연 바로 무심하게 되어 일념도 일어나지 않고 앞과 뒤의 경계도 끊어져12) 무엇에도 전혀 의지할 것 없이 깊고 고요한 경지에 이르렀다. 문득 삼천대천세계가 온통 하나로 밝게 드러나니 바로 그 온전한 자기의 심신이 하나로서 몸 밖에 별도의 아무것도 없이13) 산하와 대지, 명·암, 색·공, 범·성 그리고 심·신의 구별이 깨끗이 사라져 저절로 온통 평등해졌다. 평등하고 원만하게 밝으면서 모두 뒤섞여 있어 마음을 애써 쓰는 일 없어도 온전한 본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꿰뚫고 고금을 모두 넘어섰다. 본래 움직인 것도 없으며 지금에야 비로소 고요해진 것도 없으니, 평등하고 또 평등하여 처음부터 본래 다르지 않았다.14)
이 일(此事)은 말이나 구절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대상과 주관 모두에서 멀리 벗어나 안팎에도 있지 않고

006_0657_b_01L無心無上眞宗更留二宿欵欵論心
006_0657_b_02L上元燈夕泣別尊顔下山上舩來得
006_0657_b_03L順風三日早到休休禪菴時有紅頭
006_0657_b_04L隨處橫閙水旱路塞去住難便徘徊
006_0657_b_05L一月客食休休二月月盡發舩大倉
006_0657_b_06L三月月半渡海而來三月念二上岸
006_0657_b_07L入國四月八日又出城門城南門外
006_0657_b_08L三十許里有一精舍名曰性覺倦於
006_0657_b_09L叅問寓居此寺拗折拄杖放下複子
006_0657_b_10L粥飯禪誦精麤隨衆潜藏衆底不露
006_0657_b_11L心跡行不動塵語不驚人二六時中
006_0657_b_12L四威儀內無心無爲綿綿密密養去
006_0657_b_13L養來至於癸巳正月十七日午端坐
006_0657_b_14L自然思念永嘉大師證道歌中不除妄
006_0657_b_15L想不求眞無明實性即佛性幻化空身
006_0657_b_16L即法身念到這裏深味其言卷下第二
006_0657_b_17L忽正無心不生一念前後際斷
006_0657_b_18L無依倚到冥然地驀爾明見三千世界
006_0657_b_19L都盧是箇一箇自己身心一如身外無
006_0657_b_20L山河大地明暗色空凡聖身心泯然
006_0657_b_21L自盡平等平等圓明混成無心力用
006_0657_b_22L體現成透頂透底超今邁古本無所
006_0657_b_23L今無始寂平等平等無始本異
006_0657_b_24L信此事不在言句逈脫塵根不在內

006_0657_c_01L중간에도 있지 않으니, 참되고 변함없는 실상이 몸통째 남김없이 드러나 고요하고 흔들림 없지만 미묘한 작용은 갠지스강의 모래와 같이 무수함을 깊이 믿게 되었다. 또한 스승의 은혜가 부모의 은혜보다 더하니 산악처럼 무겁고 바다처럼 깊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에 만약 내게 ‘무념無念’이라는 참된 종지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 이렇게 크게 해탈할 수 있었으랴!
‘무심無心’이라는 한 구절은 그 모든 것의 궁극이니,15) 스승과 제자 간의 인연을 결코 등한히 해서는 안 되리라. 어찌하면 우러러 그 큰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 것인가?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있는 힘을 다한다 해도 은혜를 갚을 수 없으리라. 내 이미 이와 같이 이 무심의 이치를 통달하고 또한 이처럼 체달하였으니,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에게 전해 주고 권면하여 그들이 나와 같이 증득하게 되기를 바란다. 여러 형제들이여, 조금 전에 이와 같이 도를 깨달아 들어간 인연을 설하였는데, 그 뜻을 잘 알겠는가? ‘이 깊은 마음으로 티끌처럼 무수한 불국토를 받드니, 그것을 가리켜 부처님 은혜에 보답한다고 한다.’16)

지정 갑오년(1354) 6월 초나흗날에 법안 선인17)이 강남 호주 하무산의 천호암에서 석옥 화상의 사세송을 모셔 왔다. 14일에 백운 선사가 해주 안국사에서 재를 베풀고 설하셨다(至正甲午六月初四日 禪人法眼 自江南湖州霞霧山天湖庵 石屋和尙辭世陪來 十四日 師於海州安國寺設齋小說)
사세송辭世頌은 이러하다.

白雲買了賣淸風       백운을 사고 맑은 바람은 팔았더니,
散盡家私澈骨窮       가산은 온통 흩어져 뼈가 시리도록 가난하구나.
留得一間茅草屋       한 칸의 띠풀 집은 남겨 두었으니,
臨行付與丙丁童       떠나려는 이 순간 병정동자에게 전해 주노라.18)

선사께서 향을 사르고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 스승의 재를 베풀었노라. 대중이여, 스승께서 오셨는가? 말해 보라! 오셨는지 오지 않으셨는지를 무엇으로 증험할 수 있을까?” 곧 다시 “백운을 샀으니 비를 몰고 이르실 것이며, 맑은 바람을 팔았으니 얼굴에 불어오시리니, 대중이여 이로써 증험을 삼으라.” 하시고 결정지어 말씀하셨다. “길을 열어라, 길을 열어라, 우리 스승께서 오셨다.” 이와 같이 축향19)하니 그 즉시로 비가 물동이를 기울인 듯이 내리더니 이튿날 오후에야 그쳤다. 올해는 봄부터 7월에 이르도록 크게 가물었는데, 이 비로 풍년이 들었다.

006_0657_c_01L不在中間體露眞常湛然凝寂
006_0657_c_02L用恒沙又信師恩過於父母重如山岳
006_0657_c_03L深如大海當時若不誨示於我無念眞
006_0657_c_04L何有今日大解脫事無心一句
006_0657_c_05L超百億師資緣會決不等閑何以仰報
006_0657_c_06L莫大之恩粉骨碎身未足爲酬我旣
006_0657_c_07L如是達此無心亦能如是轉勸未悟
006_0657_c_08L令未悟亦如我證諸兄弟適來恁麽
006_0657_c_09L說入道因緣還委悉麽將此深心奉塵
006_0657_c_10L是即名爲報佛恩

006_0657_c_11L

006_0657_c_12L至正甲午六月初四日禪人法眼
006_0657_c_13L自江南湖州霞霧山天湖庵石屋和
006_0657_c_14L尙辭世陪來十四日師於海州安
006_0657_c_15L國寺設齋小說辭世頌曰

006_0657_c_16L
白雲買了賣淸風散盡家私澈骨窮

006_0657_c_17L留得一間芧草屋臨行付與丙丁童

006_0657_c_18L
師拈香云今日設我師齋大衆我師
006_0657_c_19L還來否且道來不來以何爲驗便云
006_0657_c_20L買了白雲拖雨至賣了淸風拂面來
006_0657_c_21L以此爲驗決云開却路開却路
006_0657_c_22L師來也卷下第三張如是祝香即時雨
006_0657_c_23L似盆傾至翌日午後雨止其年自春至
006_0657_c_24L夏半大旱因此雨禾糓大登

006_0658_a_01L
선사께서 사세송의 핵심을 짚어 말씀하셨다. “스승께서는 평소 꼿꼿하신 성품에 안목은 사해를 내려다볼 만큼 높고 기개는 제방을 압도하셨다. 40여 년간 산림에 자취를 감추고 그림자조차 산문 밖을 나가지 않게 하며 확고하고 빈틈없이 수행하며 일찍이 다른 사람들과 모여 지내며 일언반구도 한 적이 없으신데, 어째서 입멸에 즈음하여 한바탕 어리석은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러하다고는 하지만 이 결정적 소식은 선사께서 임종 시에 요충이 되는 통로를 단단히 지키고20) 활구活句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다 제시해 보이신 것이다. 대중이여, 절박한 마음으로 핵심을 참구해야 할 것이다. 말해 보라! 어떤 것이 궁극적인 한 구절인가?” 결정지어 말했다. “바람이 불어도 들어가지 못하고 물로 씻어도 젖지 않는다.21) 천지를 환히 비추고 고금의 진실을 밝혀 드러내도다. 깨끗한 벌거숭이요 한 점의 때도 없는 알몸 그대로 드러났지만 붙잡을 방법은 전혀 없다.”
예를 행하는 법식을 마친 뒤에 축언 회향하며 말씀하셨다. “궁극적인 한 구절은 말로 표현하기 이전에 벌거벗은 알몸을 모조리 드러내었으니, 하늘을 덮고 땅을 덮으며 색과 소리를 마음대로 부린다. 황면노자께서는 이 결정적인 하나의 소식을 얻고서 ‘도솔천을 떠나기도 전에 이미 왕궁에 강림하였고, 모태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중생제도를 벌써 마쳤다.’라고 하셨다. 또한 예로부터 모든 성현이 이 결정적인 하나의 소식을 얻고서 왕궁에 강림하여, 모태에 머물다 모태에서 나오시어 출가하여 성도하고 마구니를 항복시키고 법륜을 굴리신 후에 열반에 드시는 것22) 을 차례대로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다. 대중이여, 예로부터 모든 성현이 이와 같은 법23) 을 깨닫고 이와 같이 나타내 보이셨다. 나 또한 오늘 이와 같이 법을 설한 것은 다만 이와 같은 법으로써 돌아가신 석옥 노화상을 받들고, 열반에 드신 길을 장엄하기 위해서이다. 엎드려 바라건대, 선사께서는 자성만을 고수하지 마시고 시방의 무수히 많은 국토에서 색신삼매色身三昧를 두루 나타내시어 예로부터의 다른 모든 성현들과 함께 부사의해탈不思議解脫 경계에 드소서. 그리운 마음이 이와 같습니다.”
갑오년(1354) 6월 초나흗날, 법안法眼 선인이 하무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석옥 화상의) 편지 한 통을 제자인 나24)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무릎을 꿇고 받아서 자세히 펼쳐 보니, 나의 스승이신 하무산 천호암의 석옥 노화상께서

006_0658_a_01L
師拈辭世頌云者介尊慈平昔强項
006_0658_a_02L眼高四海氣壓諸方四十餘年晦跡
006_0658_a_03L山林影不出山穩密履踐未甞有一
006_0658_a_04L言半句與人湊泊爲什麽臨滅之際
006_0658_a_05L一場瞞盰 [30] 然雖如是這箇消息先師
006_0658_a_06L末後把斷要津全提活句大衆急須
006_0658_a_07L著眼且道作麽生是末後一句決云
006_0658_a_08L風吹不入水酒不着輝天鑑地耀古
006_0658_a_09L騰今淨裸裸赤酒酒沒可把作法後
006_0658_a_10L祝言回向云末後一句子聲前露裸裸
006_0658_a_11L盖天盖地盖色騎聲黃面老子得這一
006_0658_a_12L着子道未離兜率已降王宮未出母
006_0658_a_13L度人已畢抑亦從上諸聖得這一
006_0658_a_14L着子次第示現降王宮住胎出胎
006_0658_a_15L家成道降魔軍轉法輪入涅槃大衆
006_0658_a_16L從上諸聖得如是法示現如是我今
006_0658_a_17L亦說如是法只將如是法奉爲先師石
006_0658_a_18L屋老和尙用莊嚴覺路伏願先師
006_0658_a_19L守自性於十方塵塵刹刹普現色身三
006_0658_a_20L與他從上諸聖入不思議解脫境界
006_0658_a_21L爲如上緣念

006_0658_a_22L
甲午六月初四日禪人法眼自霞霧山
006_0658_a_23L航海而來授以一通書予小師白雲跪
006_0658_a_24L而受披而覽乃吾師霞霧山天湖庵石

006_0658_b_01L열반에 들기 전에 세상과 작별하며 지은 게송(辭世頌)이었다. 그 게송은 다음과 같다.

白雲買了賣淸風       백운을 사고 맑은 바람은 팔았더니,
散盡家私澈骨窮       가산은 온통 흩어져 뼈가 시리도록 가난하구나.
留得一間茅草屋       한 칸의 띠풀 집은 남겨 두었으니,
臨行付與丙丁童       떠나려는 이 순간 병정동자에게 전해 주노라.25)

내가 두 번 세 번 거듭 읽으며 그 뜻을 자세히 궁구해 보니, 이는 선사께서 세상과의 인연이 이미 다함에 교화를 거두고 입적 즈음하여 한평생 쌓아 두었던 맑은 바람26)을 나에게 법게法偈로 전하여 주신 것이라. 아, 하늘이 나를 돕지 않으시는구나! 법의 깃발은 꺾이고 법의 대들보는 부러졌으며, 법의 바다는 마르고 법의 등불은 꺼졌다. 이렇기는 하지만, 대중이여! 이것은 선사께서 마지막으로 친밀하게 전하신 소식이다. 여러분, 정신을 바짝 차려라, 정신을 바짝 차려라! 대중이 특별히 도모할 일이란 없다. 나도 본래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으나,27) 가섭으로부터 점차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황면노자의 정법안장28)과 최상의 법보가 오늘 자연스럽게 나에게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제자로서 자못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왜 그런가? 달마대사로부터 대대로 이어지다가 분양 선사에게까지 전수되었는데, 분양은 세 종류의 사자를 비유로 든 구절을 다음처럼 제시했다.29) “첫째는 종지도 넘어서는 남달리 뛰어난 눈을 가진 사자이고, 둘째는 눈썹을 나란히 하고 같은 길을 밟아 가는 사자이며, 셋째는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이 남을 모방만 할 뿐 진실하지 못한 사자이다.30) 종지도 넘어서는 남달리 뛰어난 눈을 가진 학인의 경우, 그 견해가 스승을 뛰어넘으니 종지를 전수받을 자격이 있으며,31) 이 자가 바로 종초種草32)이다. 눈썹을 나란히 하고 같은 길을 밟아 가는 학인의 경우에는 그 견해가 스승의 수준과 같아서 스승의 덕을 반으로 깎아 먹으니, 전수받을 자격이 없다.” 분양 화상은 본래 순수하고 바르며 큰 역량을 지니고 있어서 옛사람들도 “이와 같다.”라고 그 말에 동감했던 것이다. 하물며 말법의 오탁악세五濁惡世33)에 열등한 근기와 얄팍한 지혜로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남들을 그대로 따르기나 하는 진실하지 못한 학인들로서 허세를 부리는 여우 도깨비 같은 무리들34)이야 언급할 가치가 있겠는가! 나처럼 지혜롭지 못한 자가 또한 어찌 최상의 법왕이 전하는 최상의 법보法寶를 전수받을 자격이 있겠는가! 내가 쌓은 덕과 행위를 헤아려 보면 보여 줄 만한 덕도 없고 훌륭한 행위도 없다. 행위는 행위를 억지로 꾸미지 않는 행위여야 하고, 마음은 마음에 집착이 없는 마음이어야 하며, 상념은 상념을 조작하지 않는 상념이어야 하고,

006_0658_b_01L屋老和尙臨入涅槃辭世頌也頌曰

006_0658_b_02L白雲買了實淸風散盡家私澈骨窮

006_0658_b_03L留得一間芧草屋臨行付與丙丁童

006_0658_b_04L
予小師再三披閱審詳其義乃先師世
006_0658_b_05L緣旣畢卷下第四張收化歸寂之際
006_0658_b_06L生所薀之淸風傳付於我之法偈也
006_0658_b_07L天不祐我法幢摧法樑折法海枯法燈
006_0658_b_08L然雖如是大衆此是先師末後密
006_0658_b_09L付底消息諸仁者快着精彩快着精
006_0658_b_10L大衆不圖我本無心有所希求
006_0658_b_11L迦葉轉轉相承底黃面老子正法眼藏
006_0658_b_12L無上法寶今日自然而至於我余小師
006_0658_b_13L良難當克何也自達磨遞代相承
006_0658_b_14L至汾陽汾陽示有三種師子句云一超
006_0658_b_15L宗異目底師子二齊肩 [31] 躅底師子
006_0658_b_16L影響不眞底師子若超宗異目者智過
006_0658_b_17L於師方堪傳授正爲種草也若齊肩並
006_0658_b_18L躅者智與師齊減師半德不堪傳授
006_0658_b_19L汾陽和尙本自純正有大力量古人
006_0658_b_20L尙曰如是況末法五濁惡世劣機淺智
006_0658_b_21L如影響不眞底狐魑勢類如我無智者
006_0658_b_22L豈堪傳授豈堪傳授 [32] 無上法王無上法
006_0658_b_23L寶也忖我德行無德可覽無行可觀
006_0658_b_24L行是無行行心是無心心念是無念念

006_0658_c_01L말은 말에 걸리지 않는 말이어야 하며, 수행은 수행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이 되어야 하거늘, 내가 어찌 최상의 법보를 전수받을 자격이 되겠는가! 법보의 은혜를 전수받기를 바라는 것은 그래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지만, 법왕의 진실한 아들로서 인가받는 것은 옳지 않다.35)
그러나 옛사람은 “그가 장부라면 나 또한 그렇거늘 어찌 스스로 경멸하며 비굴하게 물러날 것인가!”36)라 하였고, 또한 부처님께서는 “나의 이 법은 상념을 조작하지 않는 상념을 하고, 행위를 억지로 꾸미지 않는 행위를 하며, 말에 걸리지 않는 말을 하고, 수행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37)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이라야 부처의 종자가 될 자격이 있으니, 스스로 경멸하거나 스스로 속이지 않아야 법을 전수받을 만하다. 그러나 법은 본래 형체가 없고 마음도 본래 흔적이 없으니,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받을 것이며, 무엇을 사고 무엇을 팔 것인가? 하하하! 깨끗한 벌거숭이요 한 점의 때도 없는 알몸 그대로 드러났지만 붙잡을 방법은 전혀 없다.38) 비록 이렇다고는 하지만 표현할 수 있는 법도 없고 전할 수 있는 마음도 없다고 말하지 마라. 표현할 수 있는 법이 없다는 말이 바로 법에 대해 설명한 것이며, 전할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그대로가 친밀하게 전하고 친밀하게 받은 것이다. 전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無傳無說)는 뜻을 모르는가? 화창한 봄빛이요, 물에 비친 달그림자로다. 현재 이곳과 인도에 찬란하게 꽃 한 송이에 다섯 잎이 열렸다.39) 게송으로 전한다.

世尊拈花示上機       세존께서 꽃을 집어 상근기에게 보이시자,
金色頭陁破顔笑       금색두타40)가 활짝 웃어 응답했고,
達磨壁面接利根       달마는 면벽한 채 영리한 근기를 대했으니,
斷臂神光雪中立       팔을 자른 신광41)이 눈 속에 서 있었다네.
世尊達磨不說說       세존과 달마는 말에 집착하지 않고 말했고,
迦葉神光不聞聞       가섭과 신광은 들음에 집착하지 않고 들었다.
於焉一物大分明       여기서 일물42)은 아주 분명히 드러나,
如是同天亦同地       이와 같이 하늘과 함께하고 땅과 함께한다.
同天同地作麽形       하늘이나 땅과 함께하는 형상은 어떤 것인가?
作麽形兮無不是       어떤 형상이 되었건 일물이 아닌 것은 없다.
無去無來無障㝵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아 어떤 장애도 없으며,
無名無相絶一切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일체가 끊어졌다.
孤超威音之前        위음왕불 이전의 시기43)로 홀로(孤) 넘어서고,
獨步劫空之後        공겁空劫 이후의 경계를 홀로(獨) 거닌다.
是稱正法眼藏涅槃妙心    이것을 정법안장·열반묘심이라 하고,
亦謂之本地風光本來面目   또한 본지풍광44) ·본래면목이라고도 한다.
是諸佛阿耨菩提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아뇩보리45)이고,
是諸佛祖轉轉心燈      이것이 모든 부처님과 조사가 대대로 전한 마음의 등불이다.

006_0658_c_01L言是無言言修是無修修豈堪傳授無
006_0658_c_02L上法寶也叨沐猶吾之納謬當眞子之
006_0658_c_03L [33] 然古人云彼旣丈夫我亦爾何得
006_0658_c_04L自謾 [34] 而退屈又佛云我此法者念無
006_0658_c_05L念念行無行行言無言言修無修修
006_0658_c_06L如是之人堪爲佛種則不可以自輕自
006_0658_c_07L乃可受法也然法本無形心本無
006_0658_c_08L且傳箇什麽得箇甚麽買箇什麽
006_0658_c_09L賣介什麽阿呵呵淨裸裸赤酒酒
006_0658_c_10L可把然雖如是且莫道無法可說
006_0658_c_11L心可傳無法可說卷下第五張是名說
006_0658_c_12L無傳無得親傳親得不見無傳無
006_0658_c_13L春容水月至今此土與西天粲然
006_0658_c_14L一花開五葉偈曰

006_0658_c_15L世尊拈花示上機金色頭陁破顔笑

006_0658_c_16L達磨壁面接利根斷臂神光雪中立

006_0658_c_17L世尊達磨不說說迦葉神光不聞聞

006_0658_c_18L於焉一物大分明如是同天亦同地

006_0658_c_19L同天同地作麽形作麽形兮無不是

006_0658_c_20L無去無來無障㝵無名無相絶一切

006_0658_c_21L
孤超威音之前獨步劫空之後是稱
006_0658_c_22L正法眼藏涅槃妙心亦謂之本地風光
006_0658_c_23L本來面目

006_0658_c_24L
是諸佛阿耨菩提是諸佛祖轉轉心燈

006_0659_a_01L是故此土與西天       그러므로 이곳과 인도에,
至今一花開五葉       지금 꽃 한 송이에 다섯 잎이 핀 것이다.
我師首謁及菴祖       나의 스승은 먼저 급암 조사46)를 친견하고,
契此三昧受傳燈       이 삼매와 하나로 들어맞아, 전수되어 온 등불을 받은 다음,
穩密履踐超過量       신중하고 치밀하게 실천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경지로 넘어섰으나,
晦跡山林四十年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산림에 묻혀서 40년간 살았고,
未曾一言及人知       한마디도 남에게 그 경지를 전하여 알린 적이 없었기에,
是故無人明辨出       아무도 분명히 가려내지 못했다.
我於壬辰正月春       나는 임진년(1352) 정월 봄에,
躬造室中受熏煉       몸소 조실에 들어가 그 지도를 받아 익히고 단련한 끝에,
上元前三十三日       음력 정월 12일에,
密契無心無上宗       무심이라는 최상의 종지와 빈틈없이 일치했다.47)
烹佛烹祖大爐鞴       부처를 불리고 조사를 담금질하는 거대한 화로48)와,
煆凡煆聖惡鉗鎚       범부를 성인으로 단련하는 지독한 집게와 망치로써,
燒我億劫顚倒想       억겁 동안 쌓았던 나의 전도된 망상을 태우고,
不歷僧祗獲法身       승기49)의 수행도 거치지 않고 법신을 얻었다.
我今亦受傳法偈       나도 이제 전법게50)를 받았으니,
轉敎未悟如我證       깨닫지 못한 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어 나와 같이 증득하게 하리라.
將此深心奉塵刹       깊이 깨달은 이 마음으로 티끌같이 무수한 국토를 받든다면,
是則名爲報佛恩       이것을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한다.51)
惟願佛祖大慈悲       원하건대 부처님과 조사의 큰 자비심으로,
希更甚除微細惑       또다시 미세하게 남은 번뇌를 온전히 제거하시어,
令我早登無上覺       제가 조속히 위없는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
於十方界坐道場       시방세계에서 도량에 앉도록 해 주시기 바라나이다.
舜若多神可消亡       허공의 신52) 은 소멸할지라도,
定慧圓明終不失       정혜定慧의 원만하고 밝은 본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신묘년(1351)에 지공 화상에게 올린 송(辛卯年上指空和尙頌)
희유하고 희유하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심은 우담화優曇花가 3천 년에 한 번 피어나는 것과 같네.53) 이제 말세의 운에 맞닥뜨리니 오탁악세에 성현은 자취를 감추고 삿된 법만 치성하게 늘어나고 말았네. 희유하고 희유하며, 대단히 희유하여라. 서천의 스승이시여, 이 어찌 복이 많으신 분이 아닌가. 지공 화상은 중천축中天竺에서 태어나 석가족의 왕궁에서 여덟 살에 출가하셨네.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 발걸음을 옮겨 세간을 넘어서고54) 불법의 근본에 마음을 떨쳐 일으켜 역량을 넓고 크게 기르며 수행에 용맹 정진하더니 곧장 남쪽으로 가 길상산吉祥山에서 먼저 보명普明을 배알하고는 한마디 말씀에 단박에 현묘한 뜻을 깨달아 불과佛果의 덕에 계합하시니 조금의 어긋남도 없으셨네.
좌갈라파제 삼과법문55)을 얻고

006_0659_a_01L是故此土與西天至今一花開五葉

006_0659_a_02L我師首謁及菴祖契此三昧受傳燈

006_0659_a_03L穩密履踐超過量晦跡山林四十年

006_0659_a_04L未曾一言及人知是故無人明辨出

006_0659_a_05L我於壬辰正月春躬造室中受熏煉

006_0659_a_06L上元前三十三日密契無心無上宗

006_0659_a_07L烹佛烹祖大爐韛煆凡煆聖惡鉗鎚

006_0659_a_08L燒我億劫顚倒想不歷僧祗獲法身

006_0659_a_09L我今亦受傳法偈轉敎未悟如我證

006_0659_a_10L將此深心奉塵刹是則名爲報佛恩

006_0659_a_11L惟願佛祖大慈悲希更甚除微細惑

006_0659_a_12L令我早登無上覺於十方界坐道場

006_0659_a_13L舜若多神52)可消亡定慧圓明終不失

006_0659_a_14L

006_0659_a_15L辛卯年上指空和尙頌

006_0659_a_16L
希有希有佛出於世如優曇花時一
006_0659_a_17L現爾今當末運五濁惡時賢聖隱伏
006_0659_a_18L邪法增熾希有希有卷下第六張甚爲
006_0659_a_19L希有西天師傳者那福多指空和尙
006_0659_a_20L出自中天釋種王宮八歲出家脫煩
006_0659_a_21L惱索發足超方奮發根本廣大力量
006_0659_a_22L勇猛操修直往南方吉祥山中首謁
006_0659_a_23L普明一言之下頓悟玄旨契佛果德
006_0659_a_24L分毫不謬得左羯羅波帝三科法門

006_0659_b_01L이 법 가운데서 삼현과 십지,56) 등각과 묘각57) 등 모든 지위의 법문法門을 하나하나 구족하시니, 한 번 깨달음에 영원히 깨달아 다시 깨달을 일이 없으셨네.58) 적寂과 지知를 자유자재하게 운용하며 원래 스스로 무심하니, 망상의 대상을 잊는 힘으로 더 이상 대응하여 끊어 버릴 것도 없으셨네.59) 돈오돈수하여 행行과 해解가 상응하니60)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꿰뚫고 고금을 모두 넘어서셨노라. 널리 관찰하는 눈(普眼)을 활짝 열어 대단히 자비로운 그 눈으로 중생이 본래 청정함을 두루 보시고, 큰 지혜의 눈으로 모든 법이 본래 청정함을 두루 보고 조사의 심인心印을 높이 드셨네. 커다란 화로를 열어 부처도 조사도 담금질하며 지독한 집게와 망치를 들고 범부도 성인도 단련하셨네.
오랜 세월 쌓은 원력에 의지해 큰 자비심을 일으키고 슬하의 외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어떤 조건도 없는 자비심을 일으키셨네. 이 중국 땅에 인연을 두고 있는 중생이 대승의 근성根性을 가지고 있음을 보시고, 10만 8천여 리를 떠나 위험을 돌아보지 않고 특별히 서쪽에서 오셨네. 구름 뚫고 산봉우리 넘으며, 산을 헤치고 물을 건너며, 바람 맞고 이슬에 자면서도 험준한 관문과 산악을 꺼리지 않고 갖은 고생을 달게 여기며 처음에는 운남雲南에, 다음에는 대원大元에, 마지막에는 고려高麗에 이르셨네.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근기를 관찰하여 가르침을 베풀고61) 법을 설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고 다시 대원으로 돌아가 묘총통妙總統과 함께 근 10년을 각고의 노력을 하며 애쓰셨네. 또 10여 년 동안 문을 닫아걸고 침묵하며 기미를 관찰하고 법을 살피셨으나 그 적합한 사람을 반 사람도 얻지 못함에 오래도록 침묵 좌선하며62) 엄정한 법령을 남김없이 들어 보이니, 그 기세 하늘을 찌를 듯하셨도다.
무슨 행운이 이른 까닭인지 나는 본래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는데,63) 법왕과 법보라는 최상의 법을 곡진히 설해 내게 전해 주셨네. 그러나 이 제자의 근기 비천하고 졸렬하며 지혜 또한 없어 감당할 만하지 못하니, 참으로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입니다. 귀중한 가르침을 주신 은혜 이기지 못하여 향 사르며 백배를 올립니다. 제자로서 스승을 옆에서 모시기64)를 원하옵니다. 원컨대 자비를 베푸시어 천안으로 멀리 관찰하시어 지극한 정성을 받아 주십시오. 이 서원誓願을 이루어 주소서, 이 서원을 이루어 주소서. 화상께서 곡진히 설해 주신 법과 세 차례의 큰 법을 들었기에 다시 칠구의 게송을 지어 올립니다.


006_0659_b_01L此法中三賢十地等妙二覺諸位法門
006_0659_b_02L一一具足一悟永悟更不復悟任運
006_0659_b_03L寂知元自無心更無對治忘緣之力
006_0659_b_04L頓悟頓修行解相應透頂透底超今
006_0659_b_05L邁古豁開普眼大悲普眼普見衆生
006_0659_b_06L本來淸淨大智普眼普見諸法本來
006_0659_b_07L淸淨高提祖印啓大爐韛烹佛烹祖
006_0659_b_08L提惡鉗鎚煆凡煆聖乘宿願力興大悲
006_0659_b_09L生一子想起無緣慈觀此震旦
006_0659_b_10L緣衆生大乘根性發足十萬八千餘里
006_0659_b_11L不頋危亡特特西來穿雲渡嶺撥山渉
006_0659_b_12L風飡露宿不憚關山喫盡艱辛
006_0659_b_13L到雲南次到大元終到高麗遍歷名
006_0659_b_14L觀根逗敎說法利生還歸大元
006_0659_b_15L妙總統僅一十年鬪諍勞苦又十餘
006_0659_b_16L掩關杜詞觀機審法未得其人
006_0659_b_17L箇半箇久默冷坐全提正令鼻孔遼
006_0659_b_18L何幸所致我本無心有所希求
006_0659_b_19L [35] 法寶無上法伊曲說授我而我弟
006_0659_b_20L根機微劣智慧鮮少不能荷擔
006_0659_b_21L心慙愧誠心慙愧不勝珎感焚香百
006_0659_b_22L願爲弟子執侍巾瓶惟願慈悲
006_0659_b_23L眼遙觀下應虔誠滿我願心滿我願心
006_0659_b_24L聞和尙曲說法伊及三去大法故復作

006_0659_c_01L
只這平常心是佛       바로 이 평상심이 부처이니,
十方世界最靈物       시방세계에서 가장 신령하도다.
世間所有皆虛妄       세간의 모든 것이 다 허망일 뿐이니,
一切不如心眞實       무엇이건 마음 진실함보다 못하네.
三世間法皆虛妄       삼세간의 법이 모두 허망하니,
但有假名無實體       단지 가명일 뿐이요 실체란 없네.
了斯無體生滅滅       실체 없음 깨닫고 나면 생멸도 사라지리니,
生滅滅已寂滅樂       생멸 자체도 사라지고 나면 적멸의 기쁨 느끼리.65)
敎化東方卅二年       동방에서 교화한 지 서른두 해인데,
西來祖意有誰傳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 누구에게 전하리오!
願爲弟子叅執侍       제자로서 곁에서 모시기 원하오니,
慧眼他心鑑下情       혜안으로 그 마음 헤아려 살피소서.
十萬八千餘許里       10만 8천여 리 머나먼 길을,
喫盡艱辛底事來       갖은 고생 감수하며 무슨 일로 오셨는가.
只爲傳法救迷情       법을 전해 미혹한 중생 구제하기 위함일 뿐이니,66)
衆生薄福甚可哀       박복한 중생들이여 참으로 가엾어라.
看他從上諸佛祖       예로부터의 모든 부처와 조사들 보건대,
實無一法與人傳       실제로 한 법도 전하신 적 없어라.
若欲傳法救迷情       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 구제하고자 한다 하나,
非但謾人亦自謾       남을 속였을 뿐 아니라 자신도 속았다네.
一性圓明滿大虛       한 성품 원만히 밝아 허공에 충만하니,
千差萬別體不殊       천차만별의 본체는 다르지 않다네.
人人箇箇皆具足       사람마다 모두 갖추고 있으니,
擬將何法付與誰       장차 어떤 법을 누구에게 부촉하려 하는가.
卽心卽佛佛卽心       마음 그대로가 부처요 부처 그대로가 마음이니,
不須將佛更求彿       부처를 가지고 다시 부처를 구할 필요 없다네.
若人欲識西來意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을 알고자 하는가,
九九元來八十一       구구는 원래 팔십일이라네.67)

갑오년(1354) 3월 모일에 안국사에서 지공 화상에게 올린 글(甲午三月日 在安國寺 上指空和尙)
제자 향을 사르고 백배 올립니다. 제자 과거세에 훈습한 경지가 뛰어났던지 스승께서 세상에 나오신 때를 만나 뵈올 수 있었습니다. 종지와 격식을 모두 뛰어넘어서 활구活句를 온전히 들어 주시니 그 지극하고 귀한 가르침의 은혜 이기지 못하여 한두 구의 송을 기꺼이 지어 대화상의 법좌 아래에 올립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존자께서는 살펴보시고 한번 웃어넘기십시오. 백운 선사의 송은 다음과 같다.

尸得一夕夢         송장이 하룻밤 꿈을 꾸고 나서,
向塑人相語         흙으로 빚은 인형과 말을 나누네.
絶後復再甦         완전히 죽었다 다시 살아나,68)
所言皆是路         하는 말마다 모두 이 도라네.


006_0659_c_01L七偈呈似卷下第七張

006_0659_c_02L
只這平常心是佛十方世界最靈物

006_0659_c_03L世間所有皆虛妄一切不如心眞實

006_0659_c_04L三世間法皆虛妄但有假名無實體

006_0659_c_05L了斯無體生滅滅生滅滅已寂滅樂

006_0659_c_06L敎化東方卅二年西來祖意有誰傳

006_0659_c_07L願爲弟子叅執侍慧眼他心鑑下情

006_0659_c_08L十萬八千餘許里喫盡艱辛底事來

006_0659_c_09L只爲傳法救迷情衆生薄福甚可哀

006_0659_c_10L看他從上諸佛祖實無一法與人傳

006_0659_c_11L若欲傳法救迷情非但謾人亦自謾

006_0659_c_12L一性圓明滿大虛千差萬別體不殊

006_0659_c_13L人人箇箇皆具足擬將何法付與誰

006_0659_c_14L即心即佛佛即心不須將佛更求彿

006_0659_c_15L若人欲識西來意九九元來八十一

006_0659_c_16L

006_0659_c_17L甲午三月日在安國寺上指空和
006_0659_c_18L

006_0659_c_19L
弟子焚香百拜弟子宿熏種勝値師
006_0659_c_20L出世得覩和尙超宗越格全提活
006_0659_c_21L不勝珎感之至下得一兩句呈似
006_0659_c_22L大和尙法座下伏望尊慈賜覽一咲

006_0659_c_23L
和尙頌曰

006_0659_c_24L尸得一夕夢向塑人相語

006_0659_c_25L絶後復再甦所言皆是路

006_0660_a_01L
화상은 살아 계신 분인데 무슨 까닭에 이와 같은 송을 감히 올리겠습니까. 옳다면 옳고 비슷하다면 비슷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을 죽이려면 완전히 죽여야 살아나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을 완전히 살리고 나면 죽은 사람과 같다.’69)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완전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경계70)는 옛 부처도 이르지 못한 경계이고, 천하의 노화상들 또한 이르지 못한 경계입니다. 석가노자와 천하의 노화상일지라도 다시 참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마대사일지라도 아는 것(知)만 허용될 뿐, 달마대사라 해도 이해하는 것(會)은 허용되지 않는다.’71)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는 활구活句를 참구할 뿐, 사구死句는 참구하지 않겠습니다.72) 백운 선사가 다시 송으로 읊었다.

啞子高聲說妙法       벙어리가 소리 높여 미묘한 법을 설하자,
聾人遠處聽微言       귀머거리가 먼 곳에서 그 미묘한 말을 듣고,
無情萬物皆讚歎       생명이 없는 만물이 모두 찬탄하며,
虛空趺坐夜來叅       허공은 가부좌 틀고 앉아 밤새 그 뜻 참구하네.73)

제가 읊은 이 네 구절 가운데 한 구절은 붉게 타는 화로에 떨어진 한 점의 눈과 같아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여기에서 알아차린다면 조사는 원래 지음知音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74) 비록 그러하나 화상께서는 3천 리 밖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오. 돌! 돌!

다시 12수의 송을 지어 뜻을 보이시다(又作十二頌呈似)
學人無他術         학인에게 별다른 솜씨 필요 없으니,75)
直似大死人         완전히 죽은 사람과 같아야 하리라.
一點氣也無         한 점 숨기운도 없어야,
方與那人合         비로소 저 사람과 하나가 되리라.76)

但有分別念         분별하는 생각을 가지고서,
自心見量隱         자기 마음의 현량現量77) 숨기네.
絶無情識念         집착 분별하는 의식 끊어 버려야,
本心全體現         본래 마음 온전히 드러나리라.

古人契證處         옛사람이 계합하여 깨달은 경지 보건대,
佛法無多子         불법에 군더더기란 없네.78)
正要絶情量         바로 사량 분별을 끊어 버리고자 한다면,
當陽便承當         분명하게 곧 알아차리리라.

本心本空寂         본래 마음은 본래 공적하며,
本法本無生         본래 법은 본래 생멸이 없다네.
作此智慧觀         이러한 지혜로 관찰한다면,
是明見佛性         불성을 분명히 보리라.


006_0660_a_01L
和尙是却活底人所以如是敢頌是即
006_0660_a_02L是似即似弟子不恁麽道何不道
006_0660_a_03L盡死人方見活人活盡死人還同死人
006_0660_a_04L若是大死底人却活處卷下第八張
006_0660_a_05L佛不曾到天下老和尙亦不曾到
006_0660_a_06L是釋迦老子天下老和尙也須再叅
006_0660_a_07L始得所以云只許老胡會不許老胡
006_0660_a_08L弟子但叅活句不叅死句

006_0660_a_09L
又和尙頌曰

006_0660_a_10L啞子高聲說妙法聾人遠處聽微言

006_0660_a_11L無情萬物皆讃歎虛空趺坐夜來叅

006_0660_a_12L
我道此四句中有一句如紅爐上一
006_0660_a_13L點殘雪亦能殺人亦能活人若人於
006_0660_a_14L此薦得祖師元是好知音然雖如是
006_0660_a_15L請和尙三千里外莫謾人好

006_0660_a_16L又作十二頌呈似

006_0660_a_17L
學人無他術直似大死人

006_0660_a_18L一點氣也無方與那人合

006_0660_a_19L但有分別念自心見量隱

006_0660_a_20L絶無情識念本心全體現

006_0660_a_21L古人契證處佛法無多子

006_0660_a_22L正要絶情量當陽便承當

006_0660_a_23L本心本空寂本法本無生

006_0660_a_24L作此智慧觀是明見佛性

006_0660_b_01L飢食困來眠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자며,
無心萬境閑         무심하여 어떤 대상 만나든 한가롭다네.
但依本分事         오로지 본분사에 의지하여,
隨處守現成         어디에서나 눈앞에 드러난 도리 지킬 뿐.

吾心似秋月         내 마음 가을 달과도 같아,
任運照無方         움직이는 그대로 일정한 방소 없이 비춘다네,
萬相影現中         삼라만상 비춰 드러난 가운데,
交光獨露成         서로 빛나지만 그 빛만이 우뚝 빛나네.79)

了了無可了         분명하여 깨달을 것도 없으니,
無佛亦無人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네.
如何無一物         어째서 하나의 그 무엇도 없는데,
淨智體自空         청정한 지혜의 본체가 특별히 공이겠는가.

平常心是道         평상심이 도요,80)
諸法覿體眞         모든 법 드러난 그대로 참모습이라.81)
法法不相到         법과 법82) 서로 간여 않으니,83)
山山水是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라.84)

道本無形色         도는 본래 형색이 없으며,
不在內外中         안과 밖이나 중간에도 있지 않다.
佛眼覷不見         부처의 눈으로도 보지 못하니,
凡愚豈易明         어리석은 범부가 어찌 쉽게 알리오.

無爲閑道人         할 일 모두 마쳐 한가롭고 자재한 도인,85)
在處無蹤跡         어디에서도 종적을 남기지 않는다네.
經行聲色裏         소리와 색 가운데 수행하지만,
聲色外威儀         소리와 색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풍모 갖추었네.86)
石女忽生兒         석녀가 홀연 아기를 낳고,87)
木人暗點頭         목인은 남몰래 고개 끄덕이네.88)
崑崙騎鐵馬         곤륜이 철마에 올라타니,
舜若着金鞭         순야다신舜若多神이 금 채찍 잡네.

兩箇泥牛鬪         두 마리 진흙 소가 싸우며,
哮吼走入海         바다로 울부짖으며 들어가더니,89)
過去現未來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料掉無消息         헤아려 봐도 알 수 없네.90)
정유년(1357) 9월 모일에 선지宣旨에 답하여 서신을 올리다(丁西九月日 答宣旨書)
신승臣僧 모는 전하께옵서 극진한 지위에서 부귀를 누리면서도 부귀에 미혹되지 않고 제왕의 지위를 한낱 매미의 날개처럼 가벼이 여기고 이 도를 독실하게 믿으며 온갖 정무政務로 바쁘신 와중에도 지극한 도를 부지런히 구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 모는 그 기쁨 망극하여 날마다 무병장수를 축원합니다. 신승은 다행히도 태평성대를 만나 조사祖師의 문에 참예하였으나 질병으로 인해 최상승법과는 멀어진 채로 늙도록 이룬 일도 없고 복덕과 이익도 아무런 공효 없이, 그저 헛되이 성은만 입었습니다. 오늘 사신 편에 보내신 조서를 받잡고 그 지극하신 감은에 몸 둘 바 몰랐으나

006_0660_b_01L飢食困來眠無心萬境閑

006_0660_b_02L但依本分事隨處守現成

006_0660_b_03L吾心似秋月任運照無方

006_0660_b_04L萬相影現中交光獨露成

006_0660_b_05L了了無可了無佛亦無人

006_0660_b_06L如何無一物淨智體自空

006_0660_b_07L平常心是道諸法覿體眞

006_0660_b_08L法法不相到山山水是水

006_0660_b_09L道本無形色不在內外中

006_0660_b_10L佛眼覷不見凡愚豈易明

006_0660_b_11L無爲閑道人在處無蹤跡

006_0660_b_12L經行聲色裏聲色外威儀

006_0660_b_13L石女忽生兒木人暗點頭

006_0660_b_14L崑崙騎鐵馬舜若着金鞭

006_0660_b_15L兩箇泥牛鬪哮吼走入海

006_0660_b_16L過去現未來料掉無消息

006_0660_b_17L

006_0660_b_18L丁西九月日答宣旨書卷下第九張

006_0660_b_19L
臣僧某獲聞殿下享極等之富貴
006_0660_b_20L爲富貴之所迷蟬翼九五篤信此道
006_0660_b_21L萬機之餘勤求至道臣某喜慶罔極
006_0660_b_22L日益祝延臣僧幸遭聖代得預祖門
006_0660_b_23L疾病所阻於最上乘法到老無成
006_0660_b_24L利無効虛受聖恩今承遣使詔之

006_0660_c_01L질병으로 인해 궐하로 속히 나아가 뵙지 못하니 대단히 낙담스럽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현명하고 자애로우시며 또한 나라 안에는 뛰어난 선승들이 숲처럼 많으니 자문하시기에 족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최상승법에 더욱더 정진하여 황실皇室의 기틀을 복되게 하고 조사의 도를 떨쳐 일으키며 외환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일을 잊지 말고 백성들의 형편(民情)을 헤아려 적실하게 부합하옵소서. 삼가 서신을 받들어 올리며 송을 지어 아룁니다.

摧殘病木臥多時       꺾여 못쓰게 된 병든 나무처럼 누워 있기 다반사나,
不被風吹霜雪欺       부는 바람과 서리와 눈에도 괴롭힘 당하지 않네.
樵子見之猶不採       나무꾼도 보고서 오히려 베어 가지 않는데,
聖朝何以苦招之       성스러운 조정에서 어찌하여 애써 부르십니까.91)

을사년(1365) 8월 모일에 신광사 주지를 사양하는 서신을 올리다(乙巳八月日 神光辭狀書)
예전에 연화봉 상祥 암주92)가 주장자를 들고 “옛사람은 여기(這裏)에 이르러 어찌하여 머물고자 하지 않았을까?”라 묻고는 스스로 대신하여 말했습니다. “그들이 수행 과정에서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깨에 주장자를 가로 걸치고는 “주장자를 아무렇게나 멘 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무수한 봉우리 깊은 산속으로 가노라.”93)라고 하였습니다.94) 또 태원 부孚 상좌95)는 “평생을 운수납자로 떠돌며 지낼지언정, 하루라도 주지로 지내지는 않겠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불도를 깊이 수행한 옛사람들도 오히려 이와 같이 말씀하셨는데, 하물며 말법시대에 처한 하열한 근기에다 도력도 충분치 못하여 마음의 번뇌를 없애지 못한 자가 어찌 감히 주지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노승을 가엾게 여기시어 젊으면서도 불도를 닦아 갖춘 분으로 주지를 바꾸어 청규淸規를 크게 진작하고 조사의 도를 떨쳐 일으켜 주십시오. 송을 지어 아룁니다.

病深年老身無力       병 깊고 나이도 들어 기력 없으니,
隨衆淸規一日難       대중 따라 청규 지키기 하루도 버겁네.
願聖慈悲可憐見       성군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엾게 여기시고,
遞差年壯住持人       젊고 원기 왕성한 이로 주지를 바꾸어 주소서.

山僧拙直難爲世       산승은 고지식하고 우직해 세상일 맞지 않으니,
更入千峯萬峯去       다시금 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不是聖恩辜負去       성은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옵고,
願明大法報君恩       대법을 밝혀 군은을 갚고자 함입니다.


006_0660_c_01L勝珎感以疾病故不得趨進𨷂下
006_0660_c_02L望千萬伏惟殿下聖慈寬宥且國內
006_0660_c_03L禪儁如林足可以諮問伏望殿下
006_0660_c_04L最上乘法勤加精進以福皇基光扶
006_0660_c_05L祖道無忘外護的副下淸謹狀奉聞
006_0660_c_06L頌曰

006_0660_c_07L摧殘病木臥多時不被風吹霜雪欺

006_0660_c_08L樵子見之猶不採聖朝何以苦招之

006_0660_c_09L

006_0660_c_10L乙巳八月日神光辭狀書

006_0660_c_11L
古有蓮花峯祥菴主擧拄杖云古人到
006_0660_c_12L這裏爲什麽不肯住自代云爲他途路
006_0660_c_13L不得力肩上橫擔拄杖云楖標橫擔不
006_0660_c_14L顧人直入千峯萬峯去又大原孚上座
006_0660_c_15L寧作百年雲水客不爲一日住持人
006_0660_c_16L有道古人尙曰如是況末法劣機
006_0660_c_17L力未充心漏未盡者豈敢當作住持人
006_0660_c_18L伏望陞下慈愍老僧改差年壯有道之
006_0660_c_19L大振淸䂓光扶祖道頌曰

006_0660_c_20L病深年老身無力隨衆淸䂓一日難

006_0660_c_21L願聖慈悲可憐見遞差年壯住持人

006_0660_c_22L卷下第一○張

006_0660_c_23L山僧拙直難爲世更入千峯萬峯去

006_0660_c_24L不是聖恩辜負去願明大法報君恩

006_0661_a_01L願君早證無上覺       성군께서 속히 무상각을 증득하시기를 기원하며,
懇竭丹誠禱佛天       간절히 정성을 다하여 부처님께 빕니다.
祝壽深誠論甲乙       지극한 정성으로 장수를 기원하는 순서를 가린다면,
何人敢在老僧前       누가 노승 앞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기유년(1369) 정월 모일에 고산암에 우거할 때 지공 화상 진영에 찬한 2수의 송(己西正月日 寓孤山菴 指空眞讚頌二)
來也來從何所        오셨으나 어디서 오신 것이며,
去也去至何所        가셨으나 어디로 가신 것인가.
本無有一衆生        본래 한 중생도 없건만,
何處五葉花生        어디에서 다섯 잎 꽃이 피어났나.96)

莫謂無傳無得        전한 것도 얻은 것도 없다 하지 말지니,
夫是親傳親得        이것이 친히 전하고 친히 얻은 것이니라.
己酉火前春月        기유년 한식寒食 전 봄밤 달 아래,
孤山老衲話月        고산의 늙은 중 달을 이야기하네.97)
산속에 살며(居山)
夢幻年光過耳順       몽환 같은 세월에 이순도 넘었으니,
孤山村塢也相宜       고산 산골 마을 살기에 적합하네.
飢來喫食困來睡       배고프면 밥 먹고 곤하면 잘 뿐,
李四張三都不知       이러저런 사람들 일은 전혀 모른다네.
一念不生全體現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면 몸통째 드러나리니,98)
此體如何得喩齊       그대로의 이 실상을 무엇에 비유해 견줄 수 있을까.
透水月華虛可見       물에 비친 달빛은 허공에서도 볼 수 있으니,
無心鑑象照常空       무심히 대상을 비춰 받아들이지만 항상 공이라네.
洞中流水如藍染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물은 쪽빛 물들인 듯,
門外靑山畫不成       산문 밖 청산은 그림으로도 그리지 못한다네.
山色水聲全體露       산 빛과 물소리에 온통 다 드러나 있건만,
箇中誰是悟無生       그중에서 무생의 이치 깨달은 이 누구인가.

주장자를 들고 말했다. “예전 그대로라고 알고 말 뿐이라면 도리어 옳지 않다.”

山靑靑水綠綠        산은 푸르디푸르고 물은 맑디맑으며,
鳥喃喃花蔟蔟        새 지저귀고 꽃 무리 지어 피었네.
盡是無絃琴上曲       이 모두 줄 없는 거문고에서 나온 곡조이건만,99)
碧眼胡僧看不足       벽안의 달마가 들으려 해도 충분치 못하네.
黃花翠竹非他物       누런 국화와 푸른 대나무 별다른 무엇 아니요,
明月淸風不是塵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은 자취 남기지 않는다네.
頭頭盡是吾家物       이 모든 것이 내 살림살이니,
信手拈來用得親       손 가는 대로 집어도 쓰임에 딱 들어맞는다네.
孤山山下好養身       고산 산 아래 생활하기 딱 좋으니,
米賤柴多足四隣       쌀도 땔나무도 흔하여 사방 이웃 모두 풍족하다네.
無心野老機關少       무심한 촌 늙은이 재주 모자라,
家火從他乞與人       남에게 가재도구100) 빌리고 구걸하네.

006_0661_a_01L願君早證無上覺懇竭丹誠禱佛天

006_0661_a_02L祝壽深誠論甲乙何人敢在老僧前

006_0661_a_03L

006_0661_a_04L己酉正月日寓孤山菴指空眞讃
006_0661_a_05L頌二

006_0661_a_06L
來也來從何所去也去至何所

006_0661_a_07L本無有一衆生何處五葉花生

006_0661_a_08L莫謂無傳無得夫是親傳親得

006_0661_a_09L己酉火前春月孤山老衲話月

006_0661_a_10L居山

006_0661_a_11L
夢幻年光過耳順孤山村塢也相冝

006_0661_a_12L飢來喫食困來睡李四張三都不知

006_0661_a_13L一念不生全體現此體如何得喩齊

006_0661_a_14L透水月華虛可見無心鑑象照常空

006_0661_a_15L洞中流水如藍染門外靑山畫不成

006_0661_a_16L山色水聲全體露箇中誰是悟無生

006_0661_a_17L擧杖云認着依前還不是

006_0661_a_18L山靑靑水綠綠鳥喃喃花蔟蔟 [36]

006_0661_a_19L盡是無絃琴上曲碧眼胡僧看不足

006_0661_a_20L黃花翠竹非他物明月淸風不是塵

006_0661_a_21L頭頭盡是吾家物信手拈來用得親

006_0661_a_22L孤山山下好養身米賤柴多足四隣

006_0661_a_23L無心野老機關少家火從他乞與人

006_0661_a_24L卷下第一一張

006_0661_b_01L黃面瞿曇不良久       부처님도 오래도록 침묵하지 않으셨고,
室中維摩亦不默       방 안의 유마거사도 침묵하지 않았다네.
恰似吹毛新發研       흡사 방금 갈아 예리한 취모검과 같아,
外道天魔覰不得       외도와 천마는 쳐다보지도 못한다네.
結芧於孤山山下       고산 산 아래에 띠풀집 짓고서,
飢來喫食困來臥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누워 잔다네.
冬夜夜寒覺夜長       긴긴 겨울밤 추워 잠에서 깨어,
煨取柴頭三兩箇       두세 개비 땔나무에 불 지피네.
橫擔楖標入山菴       주장자 가로 메고 산속 암자로 들어가려니,101)
行脚多年事罷叅       여러 해 행각하며 수행한 공부 마쳤도다.
欲識山僧親切處       산승의 딱 들어맞는 소식을 알고자 하는가,
前三三與後三三       앞에도 빽빽이 들어차 있고, 뒤에도 빽빽이 들어차 있다.102)
風吼松窓雪滿山       바람은 송창에 불고 온 산엔 눈 가득,
入夜靑燈照寂寥       밤 되어 푸르스름한 등불103) 고요함을 더하네.
衲衣蒙頭休萬事       납의 걸치고 이불 뒤집어쓴 채104) 온갖 일 쉬니,
此是僧山得力時       이때가 바로 산승이 힘을 얻는 때로다.
飢來喫食因來眠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누워 자니,
一種平懷萬境閑       한결같이 평온하여 모든 경계 고요하다.105)
莫把是非來辨我       시비를 따지는 마음으로 이내 생활 분별하지 말지니,
浮生人事不相干       뜬구름 같은 인생살이와는 상관없다네.
向上機關何足道       향상의 경계로 이끄는 수단 따위 말해 무엇 하랴,
困來閑臥渴卽茶       곤하면 한가히 눕고 목마르면 차 마신다네.
臨濟德山特地迷       임제와 덕산도 미혹하셨을 뿐이니,
枉用功夫施棒喝       헛되이 공부하여 방할만 시행했을 뿐이라네.

白日江山麗         한낮의 강과 산 수려하고,
靑春花草榮         푸른 봄 화초 싱싱하구나.
何須重話會         거듭 말해 무엇 하랴,
萬物本圓成         만물은 본래 원만히 이루어져 있거늘.
三界上下法         삼계 천하 고금의 법이 모두,
我說識所變         식識이 변화한 것이라 나는 설하리.
念體本來空         생각의 본체가 본래 공이니,
所變何有實         변화한 것에 어찌 실체가 있으리오.
若欲忘前境         이전의 대상 경계 잊고자 한다면,
先當忘汝心         먼저 그대 마음을 잊어야 하리라.
心若不强名         마음에서 억지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면,
境物從何起         경물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는가.
推眞眞無體         진실을 미루어 밝히고자 해도 진실은 그 본체가 없고,
窮妄妄無蹤         망념의 본질 헤아려 궁구하려 해도 망념은 자취가 없다.106)
眞妄了無殊         진실과 망념이 다르지 않으니,
平等同一體         평등하여 동일한 본체임을 알리라.
白日不照夜         밝은 태양도 밤에는 비추지 못하고,
明鏡不照後         맑은 거울도 뒤는 비추지 못한다.
焉得如我心         그런데 어떻게 내 마음,
圓明常寂照         원만하고 밝아 항상 고요할 수 있을까.
釋迦不出世         석가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으셨고,
達磨不西來         달마는 인도에서 오지 않으셨다네.107)
佛法遍天下         불법이 천하에 두루 퍼지고,
春風花滿開         봄바람에 온갖 꽃들 활짝 피었구나.

006_0661_b_01L黃面瞿曇不良久室中維摩亦不默

006_0661_b_02L恰似吹毛新發研外道天魔覰不得

006_0661_b_03L結芧於孤山山下飢來喫食困來臥

006_0661_b_04L冬夜夜寒覺夜長煨取柴頭三兩箇

006_0661_b_05L橫擔楖標入山庵行脚多年事罷叅

006_0661_b_06L欲識山僧親切處前三三與後三三

006_0661_b_07L風吼松窓雪滿山入夜靑燈照寂寥

006_0661_b_08L衲衣蒙頭休萬事此是僧山得力時

006_0661_b_09L飢來喫食因來眠一種平懷萬境閑

006_0661_b_10L莫把是非來辨我浮生人事不相干

006_0661_b_11L向上機關何足道困來閑臥渴即茶

006_0661_b_12L臨濟德山特地迷枉用功夫施棒喝

006_0661_b_13L白日江山麗靑春花草榮

006_0661_b_14L何須重話會萬物本圓成

006_0661_b_15L三界上下法我說識所變

006_0661_b_16L念體本來空所變何有實

006_0661_b_17L若欲忘前境先當忘汝心

006_0661_b_18L心若不强名境物從何起

006_0661_b_19L推眞眞無體窮妄妄無蹤

006_0661_b_20L眞妄了無殊平等同一體

006_0661_b_21L白日不照夜明鏡不照後

006_0661_b_22L焉得如我心圓明常寂照

006_0661_b_23L釋迦不出世達磨不西來

006_0661_b_24L佛法遍天下春風花滿開

006_0661_c_01L孤山山下寺         고산 산 아래 절,
冷落似村居         궁벽한 시골 마을처럼 쓸쓸하고 적막하네.
隔林聞犬吠         숲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들려오는데,
慙愧道人居         한가롭게 지내는 이 사람 부끄러울 뿐.
孤山山下寺         고산 산 아래 절,
居僧亦是常         거처하는 중 또한 늘 그러하다네.
土砌隨高下         섬돌은 높고 낮음을 따라 나 있고,
芧茨任短長         띠풀로 이은 지붕은 짧은 대로 긴 대로 둔다.108)
一物先天生         하나의 그 무엇 천지보다 앞서 생겨났으니,109)
無名亦無相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다네.
應緣能屈伸         인연에 응해 이리저리 변화하니,
方便號爲智         방편상 지혜라 부를 뿐.
本色住山人         본분이 원래 산에 사는 중이라,
貌古語亦少         옛사람 본받아 말 또한 적다네.
相逢不苟顔         서로 만나 면목을 소홀히 하지 않고,
論心秋月皎         마음을 논하니 가을 달도 밝구나.
了知諸法空         모든 법이 공임을 분명히 안다면,
無一法當情         대상에 딱 들어맞는 한 법도 없으리라.
是諸佛用心         이는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 쓰신 일이니,
汝等勤修習         그대들은 부지런히 닦고 익혀야 하리라.
一切有爲法         모든 유위법이,
如夢幻泡影         꿈·허깨비·물거품·그림자 같다 하신,110)
佛語雖眞實         부처님 말씀 진실하긴 하나,
錯會觀者多         잘못 알고 있는 자들 많구나.
天生石師子         천연 그대로 이루어진 돌사자,
背上松風聲         등 뒤로는 솔바람 소리.
好箇西來意         달마 서쪽에서 오신 뜻 딱 들어맞게 알고 싶다면,
諸禪子細聽         여러 선 수행자들이여, 귀 기울여 들어라.

위의 송은 성불암에 계실 때 지은 것이다. 남산에 큰 바위가 있는데 사자 형상에 그 뒤로는 큰 소나무가 자라 있었기에 이 게송을 짓고 돌에 쓰신 것이다.

백운이라는 별호를 지어 주심에 감사하며(謝道號白雲)
元來卓卓靑山父       원래 우뚝한 청산의 사내,
下咲白雲隨處飄       어디든 떠다니는 백운 내려다보며 웃네.
跡雖隨處飄然去       발걸음 어디를 가나 표연히 떠나가니,
心與靑山常寂寥       마음은 청산과 함께 늘 고요하도다.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나옹 화상에게 부침(寄懶翁和尙入金剛山)
奉別尊顔又一年       존안을 뵌 지도 또 한 해가 지났구려.
喜聞山裏且安禪       산사에서 좌선한다는 소식 듣고 기뻤소.
三家村漢踈慵甚       작은 촌구석의 이 사람은 너무 게을러,
飢卽加飡困卽眠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잘 뿐이외다.
사대 화상에게(思大和尙 )
可咲思大老古錐       우스워라, 사대 늙은이,111)
三世諸佛一口呑       삼세의 모든 부처를 한입에 삼켰다 하였네.

006_0661_c_01L孤山山下寺冷落似村居

006_0661_c_02L隔林聞犬吠慙愧道人居

006_0661_c_03L孤山山下寺居僧亦是常

006_0661_c_04L土砌隨高下芧茨任短長

006_0661_c_05L一物先天生無名亦無相

006_0661_c_06L應緣能屈伸方便號爲智

006_0661_c_07L本色住山人皃古語亦少

006_0661_c_08L相逄不苟顔論心秋月皎

006_0661_c_09L卷下第一二張

006_0661_c_10L了知諸法空無一法當情

006_0661_c_11L是諸佛用心汝等勤修習

006_0661_c_12L一切有爲法如夢幻泡影

006_0661_c_13L佛語雖眞實錯會觀者多

006_0661_c_14L天生石師子背上松風聲

006_0661_c_15L好箇西來意諸禪子細聽右一頌在成佛
菴作南山有大


006_0661_c_16L形如師子背生大
故作此偈書其石

006_0661_c_17L謝道號白雲

006_0661_c_18L
元來卓卓靑山父下咲白雲隨處飄

006_0661_c_19L跡雖隨處飄然去心與靑山常寂寥

006_0661_c_20L寄懶翁和尙入金剛山

006_0661_c_21L
奉別尊顔又一年喜聞山裏且安禪

006_0661_c_22L三家村漢踈慵甚飢即加飡困即眠

006_0661_c_23L思大和尙

006_0661_c_24L
可咲思大老古錐 三世諸佛一口呑

006_0662_a_01L若有可呑之諸佛       삼킬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豈無可度之衆生       어찌 제도해야 할 중생은 없겠나.112)
낙가산으로 향하는 이를 전송하며(送人洛迦山 )
妙體由來無處所       미묘한 본체 본래 처소 따로 없거늘,
觀音豈在海門東       관음보살이 어찌 바다 동쪽에만 계시겠나.
何處靑山不道場       청산 어디든 도량이 아니리오,
何須特禮洛迦山       특별히 낙가산에 가 예배해야 할까.
若能轉物卽如來       외물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여래이리니,113)
何處靑山不圓通       청산 어느 곳이든 원만히 통하지 않으리오.
若無一隻頂門眼       진실을 꿰뚫어 보는 하나의 눈114) 없다면,
洛迦空到又空廻       낙가산만 공연히 왔다 갔다 하는 형국이리라.
門門盡是觀世音       문마다 어디든 관세음보살 계시거늘,
何必寶陀巖上尋       구태여 보타암에서 찾으려 하는가.
直路不行行曲路       지름길로 가지 않고 구불구불 길을 돌아가니,
喫盡艱辛枉用心       갖은 고생만 맛보며 헛되이 마음 쓰는구나.
無爲心內起悲心       무위의 마음에서 자비심 일으키니,
無相光中有相身       무상의 광명 가운데 차별상 있는 몸 있네.115)
欲識圓通眞境界       원만히 통하는 참된 경계를 알고자 하는가,
落花啼鳥一般春       꽃잎 떨어지고 새 우는 똑같은 봄이로다.
以我爲隱乎         내가 무엇을 숨긴다고 생각하는가,
吾無隱乎爾         나는 그대들에게 숨기는 것 없노라.116)
若人欲識西來意       달마가 서쪽에서 오신 뜻 알고자 하는 이 있다면,
颯颯松風長擧示       솔바람 솨솨 불어온다고 말해 주리라.
마을을 떠나 산으로 돌아오며(出州廻山)
去時一溪流水送       갈 때는 한 줄기 시냇물이 떠나보내 주더니,
來時滿谷白雲迎       올 때는 골짜기 가득한 흰 구름이 맞이해 주네.
一身去來本無意       이 한 몸 오가는 데 본래 아무 뜻 없었건만,
二物無情却有情       무정한 두 사물에 도리어 정감이 이는구나.
流水出山無戀志       흐르는 물은 산을 벗어나도 그리워하는 마음 없고,
白雲歸洞亦無心       흰 구름은 골짜기로 되돌아와도 무심하기만 하네.
一身去來如雲水       이 한 몸 오고 감도 저 구름과 시내와 같으니,
身是重行眼是初       몸은 거듭해 움직이지만 눈은 새로워라.
뜻을 읊다(言志 )
入聖超凡不作威       성인 경지에 들어가 범부 초월해도117) 위의威儀118)는 일으키지 않으니,
一似三家村裏人       흡사 궁벽한 촌마을 사람처럼 우직할 뿐이라네.
如是介中能自守       이처럼 이 가운데서 자신의 분수 잘 지키니,
不是癡頑法如然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것이 아니라 법이 그러하다네.
廻光返照念佛人       지혜의 빛을 돌이켜 자신을 비추며 염불하는 이여,
阿彌陁佛自呼名       아미타불 명호 스스로 부르네.
覰破如今念佛人       지금 염불하고 있는 이를 간파한다면,
覰破如今覰底人       지금 간파한 사람의 본성도 간파하리라.119)
絶牧蒙山曾有言       최고의 목수牧叟 몽산120)이 일찍이 말하지 않았는가,
吹毛提起眼惺惺       취모검 드니 눈 또릿또릿하네.

006_0662_a_01L若有可呑之諸佛豈無可度之衆生

006_0662_a_02L送人洛迦山

006_0662_a_03L
妙體由來無處所觀音豈在海門東

006_0662_a_04L何處靑山不道場何須特禮洛迦山

006_0662_a_05L若能轉物即如來何處靑山不圓通

006_0662_a_06L若無一隻頂門眼洛迦空到又空廻

006_0662_a_07L門門盡是觀世音何必寶陀巖上尋

006_0662_a_08L直路不行行曲路喫盡艱辛枉用心

006_0662_a_09L無爲心內起悲心無相光中有相身

006_0662_a_10L欲識圓通眞境界落花啼鳥一般春

006_0662_a_11L卷下第一三張

006_0662_a_12L以我爲隱乎吾無隱乎爾

006_0662_a_13L若人欲識西來意颯颯松風長擧示

006_0662_a_14L出州廻山

006_0662_a_15L
去時一溪流水送來時滿谷白雲迎

006_0662_a_16L一身去來本無意二物無情却有情

006_0662_a_17L流水出山無戀志白雲歸洞亦無心

006_0662_a_18L一身去來如雲水身是重行眼是初

006_0662_a_19L言志

006_0662_a_20L
入聖超凡不作威一似三家村裏人

006_0662_a_21L如是介中能自守不是癡頑法如然

006_0662_a_22L廻光返照念佛人阿彌陁佛自呼名

006_0662_a_23L覰破如今念佛人覰破如今覰底人

006_0662_a_24L絶牧蒙山曾有言吹毛提起眼惺惺

006_0662_b_01L解道衲僧親切處       납승의 딱 들어맞는 소식을 말할 줄 안다면,
始知眞是箇中人       진실로 근본적 도리를 깨달은 사람121)임을 알리라.
신광 장로에게 준 구호122)(與神光長老口號)
師子窟無異獸        사자 사는 굴에 다른 짐승은 없으니,123)
百八箇皆龍象        백팔이 모두 뛰어난 선 수행자들이라.
喫粥了洗鉢㿻        죽 먹고는 발우 씻을 뿐이니,
好箇西來榜㨾        서쪽에서 오신 뜻의 딱 들어맞는 본보기로세.
금강산 내산의 석불상(金剛山內山石佛相)
深山佛法石頭是       깊은 산속 불법이란 돌덩어리일 뿐이니,
大底大圓小底圓       큰 것은 큰 원상이고 작은 것은 작은 원상이네.
假名慈眼虛費力       자안124)이란 이름 빌려 붙이고 헛되이 힘만 들여,
鑿破蒼崖喪法身       절벽 깎아 법신만 상하게 했구나.
학인에게(示僧)
出家須了出家事       출가했으면 출가자로서의 본분사를 마쳐야 하니,
未了徒名爲出家       마치지 못한다면 한갓 이름만 출가일 뿐이다.
憶昔毗陵忘下脚       옛날 비릉125)을 떠올리건대 발 디디는 것도 잊었으니,126)
忽然碓觜也生花       홀연 돌절구에서 꽃이 피었느니라.127)
망인을 애도하다(悼亡人)
漚生漚滅一何速       물거품처럼 일어났다 사라지니 한평생 어찌 이리 빠른가,
法燈已滅法梁傾       법의 등불도 꺼지고 법의 대들보도 기울었네.
因思扣請當年事       가르침을 청했던 그해의 일을 생각하니,
哭不成兮笑不成       울음도 나오지 않고 웃음도 나오지 않네.
재상【연안부사】 정설의 시운을 따라 화답함 (答鄭偰宰臣詩韻【延安府使】 )
無爲大化門大開       무위라는 큰 교화의 문 활짝 연 것은,
意在金鱗透網來       금린이 그물 뚫고 나오기 바라서이네.128)
莫道水寒魚不食       물이 차서 고기 물지 않으리라 말하지 말지니,
如今釣得滿舩廻       이제 낚아 올려 배에 가득 채워 돌아오노라.129)
古也逼塞虛空        옛날에도 허공을 빈틈없이 채웠고,
今也逼塞虛空        지금도 허공을 가득히 채우고 있네.
縱然逼塞滿虛空       빈틈없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해도,
看時不見如虛空       살펴보면 허공처럼 보이지 않는다네.
법을 청함에 오언시로 다시 화답하다(復答請法以五言示之 )
本來眞面目         본래의 참다운 면목,
髣髴若虛空         허공과 방불하구나.
又如一點雪         마치도 한 점 눈이,
落在烘爐中         붉게 타는 화로에 떨어진 것과 같다.

離念眞如性         망념을 여읜 진여의 성품,
如日處虛空         해가 허공에 뜬 듯 환하지만,130)
六根才一動         육근이 한 번 움직이자마자,
如日入雲中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간 듯 어두워지네.

本來淸淨道         본래 청정한 도,
其量等虛空         그 한량은 허공과 같이 무한해,

006_0662_b_01L解道衲僧親切處始知眞是箇中人

006_0662_b_02L與神光長老口號

006_0662_b_03L
師子窟無異獸百八箇皆龍象

006_0662_b_04L喫粥了洗鉢㿻好箇西來榜㨾

006_0662_b_05L金剛山內山石佛相

006_0662_b_06L
深山佛法石頭是大底大圓小底圓

006_0662_b_07L假名慈眼虛費力鑿破蒼崖喪法身

006_0662_b_08L示僧卷下第一四張

006_0662_b_09L
出家須了出家事未了徒名爲出家

006_0662_b_10L憶昔毗陵忘下脚忽然碓觜也生花

006_0662_b_11L悼亡人

006_0662_b_12L
漚生漚滅一何速法燈已滅法梁傾

006_0662_b_13L因思扣請當年事哭不成兮笑不成

006_0662_b_14L答鄭偰宰臣詩韻延安
府使

006_0662_b_15L
無爲大化門大開意在金鱗透網來

006_0662_b_16L莫道水寒魚不食如今釣得滿舩廻

006_0662_b_17L古也逼塞虛空今也逼塞虛空

006_0662_b_18L縱然逼塞滿虛空看時不見如虛空

006_0662_b_19L復答請法以五言示之

006_0662_b_20L
本來眞面目髣髴若虛空

006_0662_b_21L又如一點雪落在烘爐中

006_0662_b_22L離念眞如性如日處虛空

006_0662_b_23L六根才一動如日入雲中

006_0662_b_24L本來淸淨道其量等虛空

006_0662_c_01L乾坤在其內         하늘과 땅도 그 안에 있고,
日月處其中         해와 달도 그 안에 있다네.

靈光色非色         신령한 광명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요,
神用空不空         신묘한 작용은 공이면서 공이 아니니,131)
徧現周沙界         온 세계에 두루 나타나며,
收攝一塵中         티끌 하나에 거두어들이네.132)

靈知一段空         신령한 지혜는 하나의 공이니,
寂照含虛空         고요히 비춰 허공을 다 품고,133)
萬相影現中         삼라만상 비춰 드러난 가운데,
獨露萬相中         삼라만상에서 그 빛만이 우뚝 빛나네.134)

無生亦無滅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니,
一物鎭長空         하나의 그 무엇은 언제나 공일세.
施爲渾大有         무수한 존재와 하나로 어울리지만,135)
逈脫根塵中         육근과 육진136)에서 멀리 벗어났다네.

無始塞大虛         처음부터 허공을 채우고,
無終塞大空         끝없이 허공을 채우지만,
縱然塞大空         설령 허공을 채운다고 해도,
如鳥跡空中         허공에서 새의 자취 찾는 것 같네.137)
서해 관풍사觀風使 권거중에게 답함(答西海權觀風【居中】 )
宰官信落吾手        재상께서 참으로 제 권역으로 들어오시어,
深崖陋止生光        깊고 험준한 곳에서 궁벽한 견해138) 그치고 빛을 발하시네.
德及無知山老        그 덕이 무지한 산골 늙은이에게까지 미치니,
定應令壽無疆        반드시 천수를 길이길이 누리시리라.
예원 선교도총통 찬영139)에게 올림(上芮院禪敎都摠統【璨英】)
奉別尊顔輕屈指       존안과 이별하고 손꼽기도 바쁘게,
光陰倐忽已三年       세월은 순식간에 세 해가 지났습니다.
雖然三界獨尊貴       삼계에 홀로 존귀하시다고는 하나,
爭似長蘆一味禪       어찌 장로의 일미선만 하리오.140)
을사년(1365) 6월 신광사로 들어가며 나옹대141) 시에 차운하여 지음(乙巳六月入神光次懶翁臺詩韻)
炎天六月到神場       유월 염천에 신광사 도량에 이르니,
臺上淸風分外凉       대 위로 부는 맑은 바람 유달리 시원하네.
堪咲懶翁移住錫       우습구나, 나옹 주석하던 곳을 옮기니,
此臺何罪彼何祥       이 대에 무슨 허물 있으며 무슨 상서로움 있는가.
此地由來福國場       이곳은 원래 나라를 복되게 하는 도량이라,
歲寒松柏蔚蒼凉       추운 겨울에도 소나무 잣나무 푸르고 맑다네.
半千羅漢披襟處       오백 나한 옷섶 풀어 헤치고 마음 다 드러낸 곳,
一道神光大古祥       한 줄기 신령한 빛 고색창연하게 상서롭도다.
사위의송(四威儀頌)
闃寂安居餞         고요히 안거하며 보내다가,
殘生興來時         남은 생에 흥취 일어,
隨意上山行         마음 내키는 대로 산에 올라 거니네.【行】
衲衣蒙頭休         머리까지 납의 뒤집어쓰고 하던 좌선 그치고,

006_0662_c_01L乾坤在其內日月處其中

006_0662_c_02L靈光色非色神用空不空

006_0662_c_03L徧現周沙界收攝一塵中

006_0662_c_04L靈知一段空寂照含虛空

006_0662_c_05L萬相影現中獨露萬相中

006_0662_c_06L無生亦無滅一物鎭長空

006_0662_c_07L施爲渾大有 逈脫根塵中

006_0662_c_08L無始塞大虛無終塞大空

006_0662_c_09L縱然塞大空如鳥跡空中

006_0662_c_10L答西海權觀風

006_0662_c_11L
宰官信落吾手深崖陋止生光

006_0662_c_12L德及無知山老定應令壽無疆

006_0662_c_13L上芮院禪敎都摠統

006_0662_c_14L
卷下第一五張

006_0662_c_15L奉別尊顔輕屈指光陰倐忽已三年

006_0662_c_16L雖然三界獨尊貴爭似長蘆一味禪

006_0662_c_17L乙巳六月入神光次懶翁臺詩韻

006_0662_c_18L
炎天六月到神場臺上淸風分外凉

006_0662_c_19L堪咲懶翁移住錫此臺何罪彼何祥

006_0662_c_20L此地由來福國場歲寒松柏蔚蒼凉

006_0662_c_21L半千羅漢披襟處一道神光大古祥

006_0662_c_22L四威儀頌

006_0662_c_23L
𨶑寂安居餞殘生興來時

006_0662_c_24L隨意上山行衲衣蒙頭休

006_0663_a_01L萬務正得力         모든 일에서 힘을 얻으니,
不依有無住         머무르거나 머무르지 않음에 의지하지 않는다네.【住】
一切善惡都         일체의 선악을 모두 아울러,
放過須彌山         수미산에 내버려 두고,
兀然無事坐         우뚝하니 아무 일 없이 앉아 있을 뿐이노라.【坐】
靑山綠水藤         푸른 산 맑은 물에 등나무 덩굴,
蘿下放四大         그 담쟁이덩굴 아래 이 몸 그대로 맡긴 채,
飢食困來臥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눕노라.【臥】
무심가無心歌
白雲澹泞出沒於大虛之中   흰 구름은 티 없이 고요히 떠다니며 드넓은 하늘에서 출몰하고,
流水潺湲東注於大海之心   잔잔히 흐르는 물은 동쪽 바다 깊숙이 흘러든다.142)
水也遇曲遇直        물은 굽은 계곡 만나면 돌아 흐르고 곧은 계곡 만나면 똑바로 흐를 뿐,
無彼無此          저곳과 이곳을 구분하여 흐르지 않는다.
雲也自卷自舒        구름은 저절로 걷히고 저절로 펼쳐지거늘,
何親何踈          무엇과 가깝고 무엇과 멀단 말인가!143)
萬物本閑不言我靑我黃    만물은 본래 한가하여 스스로 푸르다거나 시들었다고 말하지 않건만,
惟人自鬧强生是好是醜    사람만이 스스로 시끄럽게 굴며 억지로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거나 생각을 일으킬 뿐이다.144)
觸境心如雲水意       경계를 맞닥뜨리고도 마음이 구름이나 물의 뜻과 같다면,
在世縱橫有何事       세상에서 종횡 어디로 가나 무슨 일이 있겠는가!
若人心不强名        만약 사람이 억지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면
好醜從何而起        아름답고 추한 차별이 어디서 일어나겠는가!
愚人忘境不忘心       어리석은 사람은 경계를 잊지만 마음에 대한 집착은 잊지 못하고,
智者忘心不忘境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잊지만 경계에 대한 집착은 잊지 못한다.145)
忘心境自寂         마음을 잊으면 경계는 저절로 고요해지고,
境寂心自如         경계가 고요해지면 마음은 저절로 여일하게 되리니,
夫是之謂無心眞宗      이것을 가리켜 무심의 진실한 종지라 한다.

태고 화상에게 부치는 편지(寄大古和尙書)
지난 임진년(1352)에 보법사普法寺에서 헤어진 뒤로 여러 해가 바뀌고 길은 동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있다 보니 항상 마음은 먼 곳으로만 향한 채 그저 멀리서 그리워하며 애태울 뿐입니다. 날은 늦봄의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하니, 대화상大和尙의 귀하신 몸도 일상생활에서 온갖 복을 누리시고 병도 괴로움도 없기를 멀리서 바랍니다. 저는 오로지 불법의 그늘에 의지하여 졸렬함을 가리고 세 칸 산촌에서 손발을 떨면서 몹시도 볼품없고 형편없는 꼴을 한 채로 이렇게 세월이나 죽이며 남은 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화상의 문하에서는 어떻게 보임146)하는지요? 저는 전생에 종자를 익힌 결과가 뛰어난 덕이었던지

006_0663_a_01L萬務正得力不依有無住

006_0663_a_02L一切善惡都放過須彌山

006_0663_a_03L兀然無事坐靑山綠水藤

006_0663_a_04L蘿下放四大飢食困來臥

006_0663_a_05L

006_0663_a_06L無心歌

006_0663_a_07L
白雲澹泞出沒於大虛之中流水潺湲
006_0663_a_08L東注於大海之心水也遇曲遇直無彼
006_0663_a_09L無此雲也自卷自舒何親何踈萬物
006_0663_a_10L本閑不言我靑我黃惟人自閙强生
006_0663_a_11L是好是醜觸境心如雲水意在世縱橫
006_0663_a_12L有何事若人心不强名好醜從何而起
006_0663_a_13L愚人忘境不忘心智者忘心不忘境
006_0663_a_14L心境自寂境寂心自如夫是之謂無心
006_0663_a_15L眞宗

006_0663_a_16L

006_0663_a_17L寄大) [37] 古和尙書

006_0663_a_18L
往者歲在壬辰於普法寺辭違已來
006_0663_a_19L霜屢換路隔東西久阻音問時復遙心
006_0663_a_20L望風悒怏即辰季春盛暄緬惟大和
006_0663_a_21L尙尊體起居萬福少病少惱弟子全承
006_0663_a_22L法蔭藏拙三家村塢跛跛挈挈百醜
006_0663_a_23L千拙且恁過時以餞殘生未審大和尙
006_0663_a_24L丈下如何保任卷下第一六張弟子宿

006_0663_b_01L대화상과 함께 같은 스승 아래서 공부147)를 하였으니 우리 두 사람 모두 석옥 선사의 제자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같은 스승 아래서 함께 배우고 공부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들에게 이 사실을 들려준 적이 있으십니까? 지금 세상에 지공指空 선사 한 분을 제외하고는 석옥 선사와 비견할 인물은 매우 드물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스승은 비록 입적하셨으나 공안은 남아 있습니다. 화상께 엎드려 바라건대, 번거롭더라도 저에게 그 공안들에 대하여 각각 가르침의 손길을 내려 주십시오. 그에 따라 한 달이나 반 달 동안 이 일(공안)을 헤아린다면 마치 스승을 친견한 것과 같아서 그 은혜에 보답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화상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일전에 듣자 하니 화상께서는 임금의 명령으로 조정에 들어가 하루 동안 용안龍顔을 대하고 종승宗乘148) 중의 일149) 을 들어 임금께서 문명文明의 교화를 펼치시는 데 도움을 주셨다더군요. 저는 기쁨에 넘쳐 마음속 깊이 감사하였습니다. 화상께서는 아주 좋은 운이 트이셨는데, 어리석은 저와 인연이 이어져 황공하고 또 황공한 심정입니다. 지금은 말법의 운을 맞이하여 정법은 쇠락하고, 불조佛祖가 전하신 지혜의 생명은 위기에 처하여 제 마음 몹시도 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라던 대로 대화상과 같은 분이 이제 세상에 나타나 인간과 천상 두 세계의 중생을 이끄는 지도자150)가 되어 원나라와 우리나라에 위엄을 떨치고 계시니, 어찌 우리의 종지가 사라질까 걱정하겠습니까!
지극히 축원하고 또 축원드리옵니다. 구차하게도 번잡하게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요즘은 장안에 사는 인재들151)에게 풍류를 값싸게 팔지152) 않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한번 웃어넘기십시오. 이만 줄이고153) 삼가 올립니다.154)

정승 윤환에게 올리는 편지(上尹政承書【桓】)
어제 어떤 선객이 경성京城에서 한 통의 서신을 모셔 가지고 왔기에 꿇어앉아 받아 펼쳐 보니 대인께서 『원각수증의圓覺修證儀』155)를 빌려 달라 청하신 편지글이었습니다. 노안老眼을 문지르며 재차 보고서야 서신을 보내신 뜻을 완전히 알고는 소중한 뜻에 감사함을 이기지 못하여 계신 곳을 향해 흠모해 마지않으며 서둘러 구해 받들어 보냅니다. 저의 생각으로 밝게 비추어 본 것이니 (다음에 제가 드리는 말씀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156)
세상 사람으로서 귀하거나 천하거나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간에 누구도 피해 가지 못하는 공통된 길이 있으니,

006_0663_b_01L熏種勝且與大和尙同叅俱是石屋之
006_0663_b_02L且道同叅底事作麽生還曾擧似
006_0663_b_03L人麽在今天下除是指空一人如先
006_0663_b_04L師和尙者甚爲希有先師雖入滅
006_0663_b_05L案遺在伏望和尙枉與1) [7] 於公案
006_0663_b_06L各出隻手若一月半月商量箇事
006_0663_b_07L則如親見先師報恩足矣未審尊意如
006_0663_b_08L何如何昨聞和尙詔入天庭日對龍顔
006_0663_b_09L擧揚宗乘中事以助文明之化弟子喜
006_0663_b_10L脑襟感荷和尙好生命快命快
006_0663_b_11L有愚私惶恐惶恐今當末運正法凌
006_0663_b_12L佛祖慧命懸危弟子直得心痛
006_0663_b_13L果大和尙今旣出世已爲人天眼目
006_0663_b_14L威振大元三韓何患吾宗寂寥哉至祝
006_0663_b_15L至祝姑此 [38] 葛藤即辰長安桃李賤賣
006_0663_b_16L風流少不得一笑不宣拜上

006_0663_b_17L

006_0663_b_18L上尹政承書桓

006_0663_b_19L
昨日有一禪客自京城陪來一統書
006_0663_b_20L跪而受披而覽乃大人之借請圓覺修
006_0663_b_21L證儀之信字也熨老眼而再見備諳來
006_0663_b_22L不勝珎感向方望風不已傍求奉
006_0663_b_23L然意洞照休罪夫人之世上若貴
006_0663_b_24L若賤若智若愚逃逭無路之公道

006_0663_c_01L그것은 바로 오로지 생사라는 큰 근심거리입니다. 대인께서는 생사를 두려워하십니까, 두려워하지 않으십니까? 『원각경』에 “말세의 중생이 생사에서 벗어나 갖가지 윤회를 면하고자 한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갈을 없애야 할 것”157)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인께서 생사의 문제에서 벗어나고자 하신다면 가장 걱정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일일 것입니다. 『원각경』에서도 ‘영원히 탐욕을 끊고 애갈을 없애야 한다.’고 하였으니 생사윤회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야말로 ‘참된 말, 실다운 말, 여법한 말, 속이지 않는 말, 진실과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진실이 아닌 빈말을 하지 않으셨다.”158)라고 하는 것이며, 이는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어떤 말을 믿으리오.’라는 말뜻과도 같습니다.

군수 담당 재신 이구에게 올리는 편지(上軍須李宰臣【玖】書)
노승은 일찍이 ‘예전에 양문공159)이 무주無住 선사에게서 득법했을 때에 한림의 신분이었고, 장무진160)이 동림 상총東林常總161)에게서 득법했을 때에 강서의 운사運使162)였으며, 한문공163)이 대전 보통大顚寶通164) 화상의 시자에게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165) 에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좌천 가 있던 중이었으며, 배휴166) 상국이 황벽 희운의 한마디 말에 그 자리에서 득도하였을 때에 관풍사觀風使였다.’고 들었습니다. 이들 네 분의 대노유大老儒께서는 모두 유위有爲 변화하는 현상(世相:世間相)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진실 그대로의 상相을 말씀하셨습니다.167) 그러면서도 어찌 일찍이 처자식을 버리거나 관직을 그만두거나 육신과 정신을 괴롭히면서 도과道果를 얻은 적이 있습니까!168)
당부하옵건대, ‘옛날의 천하와 오늘날의 천하에서 저들도 대장부요 나도 대장부’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각하께서는 근기와 뜻이 평범치 않고 복덕과 지혜는 남들보다 뛰어나시니 학식과 문장을 스스로 자랑하지 마시고 반드시 옛사람의 풍모를 따르고 흠모하시어 평소 대장부의 뜻을 저버리지 마시며 이 못난 사람의 생각에 부합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인의 존귀하신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대인의 존귀하신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006_0663_c_01L生死大患也未審尊意畏生死麽
006_0663_c_02L畏生死麽圓覺經云末世衆生欲脫
006_0663_c_03L生死免諸輪廻先斷貪欲及除愛渴
006_0663_c_04L若也大人欲脫生死大患也當事
006_0663_c_05L覺經云永斷貪欲及除愛渴超脫生
006_0663_c_06L決無疑矣此是眞語者實語者
006_0663_c_07L語者不誑語者卷下第一七張不異語
006_0663_c_08L故云佛不虛言如云佛語不信
006_0663_c_09L言可信也

006_0663_c_10L

006_0663_c_11L上軍須李宰臣

006_0663_c_12L
老僧甞聞昔有楊文公得法於無住禪
006_0663_c_13L師處身居翰林張無盡得法於東林總
006_0663_c_14L作江西運使韓文公得悟於大巓和
006_0663_c_15L尙侍者邊時鎭湖 [39] 裴休相國得道
006_0663_c_16L於黃蘗語下時作觀風使只這四大老
006_0663_c_17L皆是箇不壞世相而談實相又何
006_0663_c_18L曾去妻孥休官罷職苦形勞神而得道
006_0663_c_19L囑曰古天下與今天下彼丈夫兮我
006_0663_c_20L丈夫伏惟閣下根思不凡福慧過人
006_0663_c_21L莫以識學文章爲自矜要須追慕古人
006_0663_c_22L之風不辜負平生丈夫之志的副下情
006_0663_c_23L未審尊意如何尊意如何

006_0663_c_24L第」通「弟」{編}

006_0664_a_02L
재신 인안에게 올리는 편지(上印宰臣【安】書)
어제 오 상국께서 입으로 전하신 말씀을 듣고서야 물으신 뜻을 완전히 알고는 저도 모르게 실소하고 또 실소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건대, 각하께서는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노승을 보지 마시고 또한 예전에 보던 대로 보고 예전에 알고 있던 대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노승을 보지 마십시오. 어째서 그러해야 할까요? 『금강경』에 “ ‘여래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시며,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시는 분이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여래는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다.”169)라고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또한 각하께서 난야蘭若를 지으셨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금 실소하였습니다. 무슨 까닭에서이겠습니까? 자기 심왕心王의 궁전이 바람 맞고 햇볕에 노출되어 벗겨 떨어지고 퇴색하여 대단히 어지러운데, 어째서 밖에서 이루려 하시는 것입니까? 이 무슨 말이십니까, 이 무슨 말이십니까? 진실로 한쪽만 보고 또 한쪽만 보는 자170) 와 같다 하겠습니다그려.

다시 편지를 올림(又書)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마치 축융171)이 화룡172)을 채찍질하여 온 세상이 활활 타는 화로에 떨어진 것 같으며 삼계가 불안한 것이 마치 불난 집 같습니다. 일상의 생활은 어떠하신지요? 공부하시면서 무더위에 꺼둘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무더위를 시원하게 바꾸고 계십니까? 세간에 거처하심을 허공에 있는 듯이 하십니까? 늘 세간에 있으면서도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으십니까? 예컨대 사령운173)이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의 이런저런 분별 작용을 잊은 것처럼 하십니까?
경전에 “세간에서 꾸려 가는 살림살이 일체가 실상과 위배된 적이 없다.”174)라고 하였는데 이 도리를 아십니까? 공께서 이 이치를 확실히 파악하여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진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신다면 바로 방온거사龐蘊居士가 “성현이 아니라 진실로 본분사를 끝마친 범부의 경지”175)라 한 그 경우에 해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것은 그 반대로 익도록 하고 익은 것은 그 반대로 날것이 되도록 해야만176) 이 본분사에 조금이나마 상응할 것입니다.
나찬 화상의 산송山頌을 떠올려 몇 마디 부칩니다. “복잡하게 얽힌 세상일이여! 산 풍경만 못하구나. 푸른 소나무가 해를 가리고, 맑은 계곡물은 아득히 흐른다. 산 구름을 장막으로 삼고, 밤에 뜬 달을 등불로 삼으며, 등나무 아래 누워

006_0664_a_01L上印宰臣安書

006_0664_a_02L
昨聞吳相國口傳備諳來風不覺失咲
006_0664_a_03L失咲伏惟閣下莫向四威儀中見老僧
006_0664_a_04L亦莫將見見識識見老僧始得何以故
006_0664_a_05L不見金剛經云如來若來若去若坐若
006_0664_a_06L是人不解我所說義如來者無所
006_0664_a_07L從來亦無所去亦聞閣下修成蘭若
006_0664_a_08L亦得失咲何故自家心王殿風吹日
006_0664_a_09L莨藉不少不少爲什麽向外修成
006_0664_a_10L作麽作麽眞可謂擔板漢擔板漢

006_0664_a_11L又書

006_0664_a_12L
時當溽暑祝融鞭火龍乾坤墮烘爐
006_0664_a_13L三界不安猶如火宅未審日用如何
006_0664_a_14L做功夫莫被熱惱所使麽使得淸凉
006_0664_a_15L熱惱麽卷下第一八張處世間如虛空
006_0664_a_16L常在世間不染世間法麽如在家
006_0664_a_17L靈運已忘機麽又經云治生産業
006_0664_a_18L與實相未甞違背還知此理麽公若
006_0664_a_19L此理把得定作得主信得無疑則正
006_0664_a_20L是龐公所謂不是聖賢眞介了事凡夫
006_0664_a_21L然要須生處反敎熟熟處反敎生始與
006_0664_a_22L此事小分相應去因憶瓉和尙山頌寄
006_0664_a_23L悠悠世事不如山丘靑松蔽日
006_0664_a_24L澗長流山雲當幕夜月爲燈臥藤蘿

006_0664_b_01L돌덩이를 베개로 삼는다.”177) 앉고 싶으면 앉고 가고 싶으면 가며,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잡니다. 오늘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마음 가는 그대로 맡겨 두고, 내일은 마음 가는 대로 맡겨 두고서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178) 온갖 볼품없고 형편없는 꼴 그대로 이렇게 세월을 보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납자의 산중 생활에서의 본분 소식을 아시겠습니까? 스스로 즐거울 수 있을 뿐, 그대에게 몸소 가져다드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179)

신광사 총장로께서 보내온 부채에 답하는 편지(答神光聰長老扇子書)
어제 받은 진귀한 부채는 훌륭한 솜씨를 가진 사람이 만든 것이니, 정밀한 부챗살은 견줄 데가 없고 자루는 자연히 이루어져 마디가 빽빽하지도 성글지도 않고 몸체는 두껍지도 가늘지도 않으며 빛깔은 검으면서 아롱지며 크기 또한 적당할 뿐 아니라, 마음 달은 고고하고 원만하며 마음 꽃은 곱게 피어 장엄함을 완전히 갖추었습니다.
저는 천만 개 중에 이와 같은 부채를 하나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궁벽한 촌에 사는 자가 이처럼 훌륭한 물건을 갖는다는 것이 실로 분에 넘치는 일임이 근심스러울 따름입니다. 남들이 보면 빼앗아 갈까 깊이 감추어 두었습니다. 진귀한 하사품에 감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두 수의 송을 지어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180) 살펴보고 한번 웃어넘기십시오.

團扇落吾手         둥글부채 내 손에 들어와,
淸風分外吹         분에 넘치는 맑은 바람 맞네.
煩蒸熱惱滅         번뇌로 찌는 듯이 덥던 더위 사라지고,
坐我洞庭秋         가을 동정호에 나를 앉히누나.

團團扇月輪         달처럼 둥근 부채,
是箇明心月         이것이 바로 밝은 마음 달이로세.
獨露萬相中         만상 가운데 우뚝하니 홀로 드러나,181)
圓明常皎潔         원만하게 늘 휘영청 밝고 맑구나.

말씀해 보십시오! “만상 가운데 우뚝하니 홀로 드러난 몸”182)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만상을 털어버렸다는 말일까요, 만상을 털어버리지 않았다는 말일까요? 장로의 뛰어난 생각으로는 어떠십니까? 저는 만상을 털어 없애는 것도 옳지 않고 만상을 털어 없애지 않는 것도 옳지 않으며, 그 두 가지 모두 관계치 않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어떻게 이해해야 딱 들어맞겠습니까?
“만상 가운데 우뚝하니 홀로 드러난 몸”이란 큰 화롯불 속의 얼음과도 같습니다. 여기에서 알아차린 사람이 있다면 단계를 밟아 올라가지 않고도 단번에 곧바로 여래의 지위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006_0664_b_01L塊石枕頭要坐即坐要行即行
006_0664_b_02L來喫食困來即眠今日騰騰任運
006_0664_b_03L日任運任百觀千拙且恁過時且道
006_0664_b_04L還知衲子山中本分消息麽只可自怡
006_0664_b_05L不堪持贈君

006_0664_b_06L

006_0664_b_07L答神光聰長老扇子書

006_0664_b_08L
昨日所奉珎品扇子非唯出自好手
006_0664_b_09L究無雙柄自天成節不促稀肉不豊
006_0664_b_10L色烏而斑大小得中心月孤圓
006_0664_b_11L花粲發備體莊嚴吾知千萬中如此一
006_0664_b_12L也難得第恐三家村裏漢得此長物
006_0664_b_13L實是分外見人奪却深而藏之不勝
006_0664_b_14L珎感之至謹作二頌和南敬謝伏希
006_0664_b_15L賜覽一咲頌曰團扇落吾手淸風分
006_0664_b_16L外吹煩蒸熱惱滅坐我洞庭秋又曰
006_0664_b_17L團團扇月輪是箇明心月獨露萬相中
006_0664_b_18L圓明常皎潔且道萬相之中獨露身
006_0664_b_19L合作麽生會撥萬相是耶不撥萬相是
006_0664_b_20L未審尊意如何我道撥萬相不是
006_0664_b_21L不撥萬相不是不渉二途又却不是
006_0664_b_22L作麽生合好去曰萬相之中獨露身
006_0664_b_23L一似烘爐火裏冰卷下第一九張若人
006_0664_b_24L於此薦得不歷階梯一超直入如來地

006_0664_c_01L이미 이 정체正體를 꿰뚫어 속속들이 알아차렸다면 사대·오온과 육근·육진 외에 산하·허공·대지 등 일체 만유가 곧 자기 목숨을 버릴 경계183)일 것입니다. 수많은 경론도 단지 이 이치를 설한 것일 뿐이요, 모든 부처와 조사들이 갖가지 작용과 방편으로 행한 미묘한 법문도 이 이치를 지시한 것일 뿐입니다. 마치 열쇠를 가지고 보배 창고를 열듯이 닫혔던 문이 이미 열린 것과 같습니다. 마주치는 온갖 대상들이 천차만별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진기한 보배 아닌 것이 없으니 손 가는 대로 집어도 모두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당부하여 말씀드리거니와, “나면서부터 석가이거나 자연히 이루어진 미륵불이란 있지 않습니다. 그 누가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깨달아 나왔단 말입니까!”184)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할 것입니다, 정신을 반짝 차려야만 할 것입니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신광사 장로가 『능엄경』을 구함에 답하는 편지(答神光長老求楞嚴經書)
어제 어떤 선객이 찾아와 말하기를 화상께서 『능엄경』을 보고 싶다고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다기에, 그날로 바로 꾸려 받들어 보내고 이어 제 생각을 아룁니다.
출가한 자의 직분이란 마땅히 생사의 문제를 결단하고 부처의 종자를 이어받아 높이며 도를 넓히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경전에 정신을 빼앗기고 글의 뜻에 구애되어 애면글면하십니까!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리는 것처럼 한갓 자신만 수고롭게 하고 괴롭히는 일185)임을 아셔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종일토록 남의 재물을 아무리 세어도 자기 몫은 반 푼도 없다.”186)라고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또 덕산 화상이 “경론의 교설에 속임이나 당하면서 한평생을 보낼 뻔했다.”187)라고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또 “그림의 떡으로는 배고픔을 채울 수 없다.”188)라 하고 소초䟽鈔를 불태워 버린 일화를 알지 못하십니까!
가만히 생각건대, 대화상 장하丈下께서는 근기와 뜻이 평범치 않고 기지가 남들보다 뛰어나시니 경론의 학식으로 문의文義를 푸는 것을 스스로 자랑삼지 마십시오. 또한 ‘총명한 분별로는 업을 대적할 수 없고, 메마른 지혜로는 생사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입니다.’189) 가령 재주는 계환戒環과 나란하고 이해는 고산孤山과 비슷하다 할지라도 단지 금생今生이나 내생來生에서 사람의 몸을 잃지 않는 정도일 뿐, 납승이 궁극적으로 안락하게 처할 곳은 아니며 도와도 전적으로 거리가 멉니다. 천경 초남千頃楚南 선사가,

006_0664_c_01L旣透澈此正體則四大五薀六根六塵
006_0664_c_02L及山河虛空大地一切萬有皆是
006_0664_c_03L自己放身命處千經萬論只說此
006_0664_c_04L佛諸祖種種作用方便妙門只指此
006_0664_c_05L如將鑰匙開寶藏鎖門旣得開觸目遇
006_0664_c_06L千差萬別無非自己本有底珍奇
006_0664_c_07L信手拈來皆可受用囑曰未有天生釋
006_0664_c_08L迦自然彌勒阿那箇在娘肚裏便會出
006_0664_c_09L要須快着精彩快著精彩時不待人

006_0664_c_10L

006_0664_c_11L答神光長老求楞嚴經書

006_0664_c_12L
一昨有一禪客來言承聞和尙有言
006_0664_c_13L看楞嚴經即日收拾奉送繼白下情
006_0664_c_14L夫出家之職應須決擇生死紹隆佛種
006_0664_c_15L弘道利生何乃孜孜經卷役役拘文
006_0664_c_16L悉入海筭沙徒自勞困不見佛言
006_0664_c_17L日數他寶自無半錢分又不見德山和
006_0664_c_18L尙云洎被經論賺過一生又云畫餅
006_0664_c_19L不可充飢燒却䟽鈔伏惟大和尙丈下
006_0664_c_20L根思不凡機智過人莫以經論識學詮
006_0664_c_21L文爲自矜且聰明不能敵業乾慧未免
006_0664_c_22L生死假使才並戒環解似孤山只是
006_0664_c_23L一生兩生不失人身未是衲僧究竟安
006_0664_c_24L樂處與道全遠不見千頃楚南禪師曰

006_0665_a_01L“여러 불제자들이 설령 삼세 부처님들의 교설을 이해하여 병에서 물이 쏟아지듯이 유창하게 설법하고 백천 가지 삼매와 한량없는 묘의를 얻었더라도 일념으로 번뇌가 없는 도(無漏道)를 닦아서 저 인천의 인과에 속박되는 잘못에서 벗어나는 것만 못하다.”190)라고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대화상께서 훗날 어느 때라도 근본적인 가르침(宗敎)을 널리 드날리고자 하신다면 하나하나가 모두 자기 마음속으로부터 흘러나와 하늘과 땅을 뒤덮어야 곳곳 어디에서나 그것을 실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191) 당부하여 말씀드리건대,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나, 어찌 마음에 새겨 두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원 선교총통 찬영에게 답하는 편지(答芮院禪敎摠統【璨英】書)
이별한 이래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섯 해가 되었습니다. 멀리서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때때로 그리움에도 지쳤었습니다. 어제 법지法旨를 받들어 받고서 보내신 글 뜻을 완전히 알고 나니 마음에 기쁨이 넘쳐흐르고 그리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또 새롭습니다. 저의 생각으로 밝게 비추어 본 것이니 (다음에 제가 드리는 말씀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서신에 말씀하시기를, ‘다만 푸른 산과 흰 구름을 바라볼 뿐’이라고 하셨는데 그 존귀하신 말씀에 담긴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말 가운데 여운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자신의 신분을 낮추어 다른 사람을 속인다’는 말씀이신가요? 영가 현각이 “먼저 도를 깨닫고 나서 그런 뒤에야 산에 살아야 한다. 도를 깨닫지도 못하고서 먼저 산에 산다면 단지 그 산만 알고 필시 그 도는 잊을 것이며, 산에 살지 않으면서 먼저 도를 깨달으면 단지 그 도만 알고 필시 그 산은 잊을 것이다. 도만 알고 산을 잊는다면 세간사에 적막할 것이고, 산만 알고 도를 잊는다면 산중 생활이 시끄러우리라.”192)라고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선교총통 대종장이시야말로 바로 그러한 분이신데, 어찌하여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교법으로써 말씀드리자면 ‘보살은 항상 세간에 있으면서도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193)라고 하니 보살은 세간법의 허망함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사 문하에서는 세간법과 불법이 한 덩어리로서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자연 그대로 맡길 뿐이니, 이것이 바로 대장부의 본분사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수행 도중의 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심오한 이치로 들어가는 것으로 말하자면 이 본분사는 “생사라는 바다에 던져져 있어도 검은 용의 구슬이 바다에서 홀로 빛나는 것과 같고,

006_0665_a_01L諸子設使解得三世佛敎如瓶注水
006_0665_a_02L得百千三昧無量妙義不如一念修無
006_0665_a_03L漏道免彼人天因果繫絆若也大和尙
006_0665_a_04L他時後日播揚宗敎須一一從自己胷
006_0665_a_05L襟流出盖天盖地卷下第二○張觸處
006_0665_a_06L現成矣囑曰忠言逆耳豈不銘心者哉

006_0665_a_07L

006_0665_a_08L答芮院禪敎摠統璨英

006_0665_a_09L
自別已來經今五載遙心眷想時復
006_0665_a_10L成勞昨奉法旨備諳來意喜溢胷襟
006_0665_a_11L望風不弛日新日又新然意洞照休罪
006_0665_a_12L且書中云但望靑山白雲者未審尊意
006_0665_a_13L如何莫是言中有響麽莫是貶己欺人
006_0665_a_14L不見永嘉云先須悟道後乃居山
006_0665_a_15L若未識道而先居山者但見其山必忘
006_0665_a_16L其道若未居山而先識道者但見其道
006_0665_a_17L必忘其山見道忘山者人間亦寂
006_0665_a_18L山忘道者山中亦喧禪敎總統大宗長
006_0665_a_19L是介中人爲甚如是言歟以敎言之
006_0665_a_20L則菩薩常在世間不染世間者菩薩明
006_0665_a_21L了世間虛故不染世間法祖門下人
006_0665_a_22L世法佛法打成一片這邊那邊任運
006_0665_a_23L自在是大丈夫事然此人意途中之說
006_0665_a_24L入理言之若是此事處生死海驪珠獨

006_0665_b_01L열반의 언덕에 걸터앉아 있으니 달이 푸른 하늘에 홀로 밝은 것과 같습니다.”194) 그런 까닭에 ‘법이 이와 같으므로 깨달아 들어가는 길도 이와 같고, 마음껏 자재하게 써먹는 수단도 이와 같으며, 일상의 수행도 이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구차하나마 삼가 아뢰었습니다.

신광사 장로 축탄에게 올린 편지(上神光長老【竺坦】書)
삼가 아룁니다. 지난해 가을 8월, 당신께서는 동쪽으로, 저는 서쪽으로 향하여 각자 아득한 타향에서 서로 소식도 모른 채 지냈습니다. 홀연 금년 여름이 이르기 전 봄에 대장로께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오신다는 말을 풍문으로 듣고 마음에 기쁨이 흘러넘쳐 오래도록 서서 그 모습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날마다 새롭고 날마다 또 새로웠습니다. 길 떠나셨다는 날이 오래되었는데도 끝내 모습을 뵙지 못하니, 어리석은 제 생각에 오시다가 중도에 그만두셨는지 걱정스러워 마음이 불안하고 황망하였습니다.
어떤 수행자가 암자를 지나다 들러 장로께서 11일에 한 절의 주지가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감사함과 경사스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였습니다. 장로께서는 참으로 좋은 운이 트이셨습니다, 좋은 운이 트이셨습니다. 곧장 나아가 뵙고 싶은 생각 간절하나 이미 결제 기간이라 처음 먹었던 마음을 결정짓지 못하고 그리움에 울적하기만 합니다.
저의 생각으로 밝게 비추어 본 것이니 (다음에 제가 드리는 말씀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저는 수행하는 사람195)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삼가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아뢰고자 합니다. 장로께서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 드러나는 것처럼 재주 빼어나시고 과실이 익어 향기 날리듯이 이름이 나셨으니, 세상에 나오시어 이미 인간계와 천상계의 중생을 이끄는 핵심으로서 방장의 지위에 오르셨습니다. 그러하오니 다만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이끄시며196) 주지로서의 일이 번거롭다 하여 겨우 한 삼태기 흙이 모자라 공을 허물어뜨리는 것197) 과 같은 일은 하지 마십시오.
동산 양개洞山良价 화상이 동산에서 30여 년 동안 주지를 하셨는데 토지신이 한동안 몰래 지켜보았지만 동산을 보지 못하였다198)고 하니, 동산이 이와 같이 실천 수행하고 지향했던 뜻이 그와 같았습니다. 이 어찌 납승이 추구해야 할 본분초료199)가 아니겠습니까! 장로께 바라건대 의당 동산의 풍모를 추모하여 밖으로는 모든 견해를 잊고 안으로는 마음의 지해知解를 끊어 망상을 그치고 그 길을 따라 실행하면 용산龍山200) 도인이 ‘한 줄기 신령한 빛에 모든 대상 경계를 마주해도 한가로웠다.’201)라고 한 경지에 이르게 되실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고 보면

006_0665_b_01L耀於蒼海踞涅槃岸桂輪孤朗於碧天
006_0665_b_02L故云法如是故得入如是受用如是
006_0665_b_03L行李如是向下文長姑此謹啓

006_0665_b_04L

006_0665_b_05L上神光長老竺坦

006_0665_b_06L
謹啓去年秋八月君東我亦西各在一
006_0665_b_07L天涯音問不相知忽於今年火前春月
006_0665_b_08L側聞大長老從東過西喜溢胷襟佇望
006_0665_b_09L行色日新日又新啓途日久了無行
006_0665_b_10L愚心將恐半前落後心不安遑
006_0665_b_11L有一禪人歷入山菴聞說長老十有一
006_0665_b_12L入院住坐不勝珎感喜賀長老好
006_0665_b_13L生命快卷下第二一張好生命快即進
006_0665_b_14L切意這裏已結制未果初心向風悒
006_0665_b_15L然意洞照休罪余不揆蔬荀 [40] 之腸
006_0665_b_16L警助敬白長老囊錐已露果熟飄香
006_0665_b_17L旣出世已爲人天眼目方丈之職
006_0665_b_18L以隨家豊儉毋以住持事繁功虧一簣
006_0665_b_19L不見良价和尙住於洞山三十餘年
006_0665_b_20L得土地神一度潜覰不見看他洞山恁
006_0665_b_21L麽履踐趣向如是豈不是衲僧本分草
006_0665_b_22L料耶望長老宜乎追慕洞山之風
006_0665_b_23L忘諸見內絶心智休心履踐便可詣
006_0665_b_24L龍山道人一道神光萬境閑脫若到

006_0665_c_01L다시 또 무슨 별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궁극의 일인 것입니다.

선 선인에게 주는 편지(示禪禪人書)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했다고 옛날에 알던 사이라고만 여기지는 마십시오. 노숙老宿202)께서는 옛날부터 걸어왔던 잘못된 길을 바꾸셨는지요? 만약 바꾸었다면, 이전부터 알고 있던 경계에 눌러앉지 말고, 재빠르게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불조佛祖의 정수리에 있는 묘한 이치를 궁구하여 밝히고, 어떤 행동거지도 한결같이 허위虛僞에 떨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편안히 앉아 머무는 방법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백척간두에서 반드시 한 발 더 나아가 시방의 세계에 온몸을 드러내야 한다.”203)라고 한 말을 모르십니까! 또한 선덕이 “깨닫고 나면 반드시 사람을 만나야 한다.”204)라고 한 말도 아실 것입니다.
만약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면 꼬리 없는 원숭이가 기교를 부리자마자 곧바로 비웃음을 사는 것과 흡사할 것입니다. 당부하여 말씀드립니다. 깨닫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사람을 만나 그 경지를 전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면 향상하는 안목을 터득하지 못하고, 또한 왜곡된 견해의 가시205)에 미혹당하여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떠돌게 될 것입니다. 만약 보잘것없는 느낌을 얻고서 충분히 깨달았다고 여기며 스스로 삿된 견해에 집착하여 결코 한 걸음도 더 나아가려 하지도 않고 또한 사람을 만나 전하지도 않는다면, 치명적인 결점이 되어 스스로 속을 뿐만 아니라 불조佛祖까지 속이는 결과가 될 것이니, 생각하고 또 살펴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만약 향상하는 종승 중의 일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과 마주칠 방법을 자세히 알려 드리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나의 비결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이 서신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요선 선인에게 부치는 편지(寄示了禪禪人書)
집을 떠나고 속세를 벗어나는 목적은 다만 도를 넓히고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남들을 제도하거나 도를 얻은 흔적이 전혀 없어야 비로소 불조佛祖의 경지로 향상한 사람이 걸어간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다음의 문답206)을 모르십니까! 석두石頭가 (좌선하고 있는) 약산藥山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할 일도 없이 앉아 있는 것이로구나.”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것도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006_0665_c_01L這介田地更有什麽事便是究竟

006_0665_c_02L

006_0665_c_03L示禪禪人書

006_0665_c_04L
多年不相見莫作舊時看未審老宿
006_0665_c_05L換却舊時行李處麽若也換得莫坐
006_0665_c_06L在已見上急宜竿頭進步究明佛祖頂
006_0665_c_07L𩕳上妙致凡所擧止悉不落虛僞
006_0665_c_08L解穩坐不見古人云百尺竿頭須進步
006_0665_c_09L十方世界是全身又不見先德云悟了
006_0665_c_10L須遇人若不見人如無尾巴猢猻相似
006_0665_c_11L才弄出便取咲囑曰悟了須見人
006_0665_c_12L不見人不得向上眼又被見刺惑
006_0665_c_13L前流浪去其或得小分覺觸便以爲足
006_0665_c_14L自執邪見更不進步亦不見人即成
006_0665_c_15L大患非唯自謾亦謾佛祖思之諦思
006_0665_c_16L若也要會向上宗乘中事枉垂相訪
006_0665_c_17L不惜眉毛爲君一訣姑此書覆

006_0665_c_18L

006_0665_c_19L寄示了禪禪人書

006_0665_c_20L
夫出家離俗只要弘道利生然絶無度
006_0665_c_21L得道之跡卷下第二二張方可詣向
006_0665_c_22L上人行李不見石頭問藥山汝在這裏
006_0665_c_23L作什麽山云一切 [41] 不爲頭云恁麽則
006_0665_c_24L閑坐也山云閑坐則爲也頭云汝道不

006_0666_a_01L무엇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어떤 성인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에 석두가 게송 한 수를 읊었습니다.

從來共住不知名       본래부터 함께 살았으나 이름조차 모르고,
任運相將只麽行       마음 가는 대로 서로 도우며 그렇게 해 왔을 뿐이라네.
自古聖賢猶不識       예로부터 성현들도 알지 못했거늘,
造次凡流豈易明       짧은 시간에 얕은 식견의 범부가 어찌 쉽게 밝히겠는가!

저들 스승과 제자가 이렇게 밟아 간 길과 이와 같이 지향했던 뜻을 살펴보십시오. 이 어찌 향상하는 본분사가 아니겠습니까! 선로禪老207)께서는 이 경지에 들어선 분이시지만 제가 본분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앞서간 조사들의 선풍禪風을 되새기며 그 뜻을 우러름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망상을 그치고 그 길을 따라가며 예로부터 이어 온 선풍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자기의 본분사가 명백하게 될 것입니다. 꽃 핀 산에 봄의 정취를 조금도 느낄 수 없습니다. 한번 웃어넘기시기 바랍니다.

희심 사주208)에게 보내는 편지209)(示希諗社主書)
장로의 법휘210)를 처음 접하는 순간 마음속 깊이 진실로 놀라고 또 진실로 놀랐습니다. 장로의 ‘희심希諗’이라는 법명은 조주趙州의 어떤 면모와 같이 되기를 희망하여 붙인 것입니까? 백세의 춘추를 누렸던 조주와 같이 장수하기를 바라서입니까? 아니면 여든의 나이에도 참선한 조주의 정진력을 본받고 싶어서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조주의 선禪을 사모하는 것이로군요.
조주는 “나는 무수한 사람을 만났지만 그들은 모두 부처를 찾는 사람들일 뿐, 그들 중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른 도인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211)라고 말했습니다. 조주가 사람들에게 준 공안은 비록 대단히 많았지만, 이 한마디로 그것을 다 포괄할 수 있습니다. 저 고불古佛212) 조주가 이렇게 밟아 간 길과 이와 같이 지향했던 뜻을 살펴보십시오. 이 어찌 부처의 경지로 향상하는 본분사가 아니겠습니까! 장로는 법명이 희심인 이상 마땅히 (법명의 뜻과 어울리게) 조주의 옛 선풍을 사모하여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할 것입니다. 하루 어느 때나 모든 행위 방식 안에서 이 말을 깊이 음미하며 망상을 그치고 그 길을 따라간다면, 어떤 경계를 만나고 어떤 인연을 마주치더라도 자연히 하늘과 땅을 뒤덮는 기세로 어느 곳에서나 조주의 선풍을 눈앞에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옛사람이 “마음에서 ‘바라는 것’이 없어야 도道라 한다.”213)라고 하였으니, 바랄 희希 자 한 자가 온갖 화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214) 생각하고 또 깊이 생각하십시오.


006_0666_a_01L且不爲箇什麽山云千聖亦不會
006_0666_a_02L頭乃有頌云

006_0666_a_03L從來共住不知名任運相將只麽行

006_0666_a_04L自古聖賢猶不識造次凡流豈易明

006_0666_a_05L看他師資恁麽履踐趣向如此可不是
006_0666_a_06L向上本分事耶禪老是箇中人不可不
006_0666_a_07L說箇中事宜乎追慕先祖之風休心履
006_0666_a_08L使古風不墜乃自己事明白也
006_0666_a_09L山春興少不得一咲

006_0666_a_10L

006_0666_a_11L示希諗社主書

006_0666_a_12L
直觸長老法諱深心誠恐誠恐未審長
006_0666_a_13L老法名希諗者希箇趙州什麽邊事耶
006_0666_a_14L希趙州百歲春秋耶希趙州八十更叅
006_0666_a_15L禪耶若是希慕趙老禪也趙州道
006_0666_a_16L見千萬人只是覔佛底人其中一箇無
006_0666_a_17L心道人難得趙州爲人公案雖千萬言
006_0666_a_18L此一言弊之看他古佛趙老恁麽履踐
006_0666_a_19L趣向如是豈不是向上事也長老旣是
006_0666_a_20L希諗宜乎希慕趙州古風十二時中
006_0666_a_21L威儀內深味此言休心履踐 [42] 境遇緣
006_0666_a_22L自然盖天盖地觸處現成然古人云
006_0666_a_23L心無所希名之曰道則希之一字
006_0666_a_24L衆禍之源思之諦思之

006_0666_b_02L
승통 공선에게 부치는 편지(寄【公宣】僧統書)
이별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해인가요. 성상은 두 번이나 바뀌었건만 길은 동서로 막혀 있습니다. 존체 기거하심은 어떠하신지요? 멀리서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때때로 그리움에 지쳐 갑니다. 저는 이곳에 이른 후로 세상과의 인연은 절로 물러가고 도업은 날로 새로우며 심신은 편안하여 되어 가는 그대로 맡겨 두고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존귀하신 당신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출가한 자의 직분이란 마땅히 생사의 문제를 결단하고 부처의 종자를 이어받아 높이며 도를 넓히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삼분의 세월에서 이분이 이미 지났는데도 마음(靈臺)215)은 한 점도 아직 닦지 못하고서 오로지 경전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글의 뜻에 구애되어 애면글면하십니까!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리는 것처럼 한갓 자신만 수고롭게 하고 괴롭히는 일임을 아셔야 할 것이니, 끝내는 아무 이익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종일토록 남의 재물을 아무리 세어도 자기 몫은 반 푼도 없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존숙께서는 경론을 스스로 자랑하지 마시고 평생의 행각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안목이 총명하다 해도 그러한 지혜 분별로는 업을 대적할 수 없고, 메마른 지혜로는 생사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입니다. 가령 재주는 마명馬鳴과 나란하고 이해는 용수龍樹와 비슷하다 할지라도 단지 금생今生이나 내생來生에서 사람의 몸을 잃지 않는 정도일 뿐, 납승이 궁극적으로 안착할 곳은 아니며 도와도 전적으로 거리가 멉니다.216)
주금강周金剛217) 덕산 화상이 서촉에서 발분하여 남쪽으로 오다가 처음 용담에 이르러 용담 숭신龍潭崇信218)을 한번 뵙고는 현묘한 뜻을 단박에 깨닫고 지금까지의 수행이 잘못이었음을 알고는 “경론의 교설에 속임을 당하면서 한평생을 보낼 뻔했다.”라 하였고, 또 “그림의 떡으로는 배고픔을 채울 수 없다.”라 하며 그때까지 지어 왔던 경론의 소초를 모두 불태워 버린 일화를 모르십니까!219)
존숙께 바라건대, 연로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마음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조주는 여든의 나이에도 참선하여 대장부의 일을 성취하셨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존숙께서는 마땅히 조주 노한의 옛 선풍을 사모하여 그렇게 되기를 바라셔야 할 것입니다.220) 지금까지 입과 귀로 전해진 학식과 지견과 이해 그리고 일체의 물들고 무젖은 망령된 생각을 내던지시고, 본래의 정견正見에 한길로 곧장 매진한다면 자연히 원만하게 성취하여 눈에 마주치는 대상마다 모두 진실하게 될 것입니다.

006_0666_b_01L公宣僧統書

006_0666_b_02L
自別已來經今數載星霜再換路隔東
006_0666_b_03L西不委尊體起居若何遙心眷想
006_0666_b_04L復成勞余自到于玆卷下第二三張
006_0666_b_05L緣自退道業日新身心安樂任運過
006_0666_b_06L未審尊意如何夫出家之職應須
006_0666_b_07L決擇生死紹隆佛種弘道利生
006_0666_b_08L乃三分光陰二早過靈臺一點未曾磨
006_0666_b_09L一向孜孜經卷役役拘文悉入海筭沙
006_0666_b_10L徒自勞疲終無所益故佛言終日數
006_0666_b_11L他寶自無半錢分伏希大尊宿莫以
006_0666_b_12L經論自矜辜負平生行脚眼且聰明
006_0666_b_13L不能敵業乾慧未免生死假使才並馬
006_0666_b_14L解似龍樹只是一生兩生不失人
006_0666_b_15L未是衲僧究竟落着處與道全遠
006_0666_b_16L不見周金剛德山和尙自西蜀發憤
006_0666_b_17L來初到龍潭一見頓悟玄旨知非便道
006_0666_b_18L洎被經論賺過一生又云畫餅不可充
006_0666_b_19L盡燒却從前所造經論䟽抄望尊宿
006_0666_b_20L毋以年老辜負己靈又不見趙州八十
006_0666_b_21L更叅禪成就大丈夫事伏惟尊宿
006_0666_b_22L乎追慕趙老之風放捨從前口耳相傳
006_0666_b_23L識學知見解會及一切妄染情習一往
006_0666_b_24L直前本來正見自然圓成觸目皆眞

006_0666_c_01L존숙께서 젖내 나는 이 사람의 말을 믿고서 헛걸음한다 생각하고 찾아와 주신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온 힘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온 힘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내불당의 감주221) 천호 장로에게 부치는 편지(寄內佛堂監主長老【天浩】書)
임진년壬辰年(1352)에 성각사性覺寺에서 헤어진 뒤로 세월은 벌써 스무 해나 바뀌었습니다. 서로 갈라진 길이 천 리 사이로 떨어져 각자 하늘 한 끝에 처해 있으며 오래도록 소식이 막힌 채 세월만 흘렀습니다. 이따금 스님의 풍모 그리워 당신이 계신 먼 곳으로 가고픈 마음에 때로 거듭 힘들어집니다.
얼마 전 장로께서 임금의 명령으로 조정에 들어가 임금을 친견하고 조사의 맑은 선풍을 널리 펼침으로써 문명의 성스러운 교화를 도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스님은 아주 좋은 운이 트이셨으니 이 노승은 감사한 마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의 생각으로 밝게 비추어 본 것이니 (다음에 제가 드리는 말씀을)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222) 게송으로 저의 그 심정을 읊겠습니다.

奉別尊顔輕屈指       존경하는 이와 헤어진 뒤 손꼽기도 바쁘게,
光陰倏忽念餘年       시간은 홀연 흘러가니 남은 삶을 생각해 보았다네.
雖然已得通方眼       비록 시방 어디에나 통하는 눈을 이미 얻었더라도
爲人須透祖師禪       남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조사선을 꿰뚫어야 하노라.

말해 보십시오! 조사선이란 무엇일까요? 도오道吾가 “나에게 하나의 기틀이 있으니, 눈을 깜박거려 그것을 보이노라. 만일 누군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특별히 그를 사미沙彌라고 부르리라.”223)라고 한 말을 모르십니까! 또한 옛사람들의 방편은 갠지스강의 모래알처럼 무수합니다. 가령 뜰 앞의 잣나무, 삼 세 근, 마른 똥막대기 등의 화두에 대하여 조사 문하의 선객禪客으로서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바르게 이해한다면 대단히 예사롭지 않은 경지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과보를 모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오조 법연五祖法演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부처를 죽이거나 조사를 죽인 결과로 오무간五無間의 지옥에 떨어지는 업224) 을 지었다가도 한 찰나에 마음을 돌리면 참회가 허용되지만, 오로지 배워서 이해하거나 전수받은 것을 익히면서 입으로 떠들고 귀로 듣기만 하는 무리들은 그 근거에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무거운 과보를 피하지 못한다.”225) 엎드려 바라건대, 대장로께서는 한창 왕성한 나이인 장년壯年이시고 기민한 지혜는 누구보다 뛰어나니, 마땅히 법연 선사의 이 말씀을 받아들여 깨달음을 근본적인 법도로 삼으십시오.
만약 대장로께서

006_0666_c_01L若尊宿倘信孺子之言枉垂相訪
006_0666_c_02L死爲期竭力奉事竭力奉事

006_0666_c_03L

006_0666_c_04L寄內佛堂監主長老天浩

006_0666_c_05L
歲在壬辰於性覺寺辭違已來星霜
006_0666_c_06L已換於廿秋歧路俄隔於千里各在
006_0666_c_07L天涯久阻音問日去 [43] 月諸往往望風
006_0666_c_08L遙心眷想時復成勞近聞長老詔入
006_0666_c_09L天庭 [44] 覲天顔擧揚祖師之淸風
006_0666_c_10L助文明之聖化好生命快命快予老僧
006_0666_c_11L不勝珎感然意洞照休罪休罪頌曰
006_0666_c_12L下第二四張


006_0666_c_13L奉別尊顔輕屈指光陰倐忽念餘年

006_0666_c_14L雖然已得通方眼爲人須透祖師禪

006_0666_c_15L
且道作麽生是祖師禪不見道吾云
006_0666_c_16L我有一機瞬目視伊若人不會別喚
006_0666_c_17L沙彌且古人方便數如恒沙只如庭
006_0666_c_18L前柏樹子麻三斤乾屎橛祖門下客
006_0666_c_19L作麽生會會則甚奇特不會則難免果
006_0666_c_20L何故演祖云世人殺佛殺祖造五
006_0666_c_21L無間業一念廻心却許懺悔唯學解
006_0666_c_22L傳習口耳之流未達其由無間重報
006_0666_c_23L難逃難逃伏希大長老春秋鼎盛
006_0666_c_24L智過人當事斯語以悟爲則若也大長

006_0667_a_01L근본적 가르침(宗敎)을 널리 퍼뜨리려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깨달음으로 하늘과 땅을 뒤덮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하지 못하면서 조사선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염송』 11권 26폭226) 에 나오는 다음 공안을 살펴보십시오. “어떤 학인이 조주의 뜰 앞의 잣나무 화두를 들고서 섭현 귀성葉縣歸省227) 화상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귀성이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해 주지 못할 것은 없지만 내 말을 믿겠느냐?’ ‘화상의 소중한 말씀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느냐?’ 이 말을 듣고 그 학인은 탁 트인 듯이 크게 깨닫고는 절을 올렸다. ‘그대는 어떤 도리를 알았기에 절을 하느냐?’ 그 학인이 게송으로 대답했다. ‘처마 끝의 빗방울, 똑똑 떨어지는 소리 분명하구나! 하늘과 땅을 때려 부수고, 그 자리에서 마음을 쉬었도다.’ 귀성이 기꺼이 그의 경지를 인정하며 ‘그대는 조사선을 이해했구나.’라고 말했다.”228)
만약 장로께서 이 공안을 밑바닥까지 철저히 꿰뚫지 못하여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다 여기지 않으신다면,229) 선종의 이빨과 발톱230)이자 납승의 본분 수단231)인 조사선과 마주칠 방법을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노승은 잘못 말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의 비결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세존께서 아난의 잘못을 꾸짖으며 “네가 천 일 동안 배운 지혜가 하루 동안 도를 배우는 것만도 못하다. 만약 도를 배우지 않는다면 물 한 방울도 소비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232)라고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또 말하면 길어지게 되니 이만 줄입니다. 구차하게 늘어놓은 말을 삼가 올립니다.

제자 대선사 자원에게 부치는 편지(寄第子大禪師【資遠】書)
출가한 사람은 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으로 봉양하지 못하니 육친을 이미 버리고 떠난 때문이며, 나라를 다스리거나 가업을 돌볼 수도 없다. 후사를 일시에 버리고 발걸음을 옮겨 세간을 벗어나 머리 깎고 스승을 모시며 납의를 입기로 뜻을 굳힌 것은 무엇을 뛰어넘고자 해서인가?
안으로는 온갖 사려 분별을 이겨 내는 공부에 부지런히 힘쓰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을 넓혀서233) 부처의 종자를 이어받아 높이며 마구니를 두려워 떨며 항복하도록 하고, 위로는 네 가지 은혜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악도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해야 하리라. 지금 단지

006_0667_a_01L播揚宗敎從自己胷襟流出盖天盖
006_0667_a_02L若不如是要會祖師禪看取拈頌
006_0667_a_03L十一卷二十六幅葉縣省和尙因僧請
006_0667_a_04L擧趙州庭前柏樹子話省曰我不
006_0667_a_05L辭與汝說汝還信否僧云和尙重言
006_0667_a_06L敢不信省曰汝還聞簷頭雨滴聲麽
006_0667_a_07L僧豁然大悟禮拜省曰汝見介什麽道
006_0667_a_08L理禮拜其僧便以頌對曰簷頭雨滴
006_0667_a_09L分明歷歷打破乾坤當下心息省大
006_0667_a_10L忻然曰汝會得祖師禪也若也長老
006_0667_a_11L此公案上未得透澈不恥下問枉垂
006_0667_a_12L相訪宗門牙瓜衲僧巴鼻祖師禪
006_0667_a_13L僧不惜眉毛爲君一訣不見世尊訶
006_0667_a_14L嘖阿難曰汝千日學慧不如一日學道
006_0667_a_15L若不學道滴水也難消向下文長
006_0667_a_16L此謹啓

006_0667_a_17L

006_0667_a_18L1) [8]

006_0667_a_19L
夫出家者旣父母不供甘旨六親固以
006_0667_a_20L棄離卷下第二五張不能安國治邦家
006_0667_a_21L頓捐繼嗣發足超方剃髮禀師
006_0667_a_22L志被緇意欲等超何所內勤剋念之功
006_0667_a_23L外弘不諍之德紹隆佛種震攝魔軍
006_0667_a_24L上報四重恩下濟三途苦未審至今只

006_0667_b_01L세상사가 눈앞의 일을 좇아 지나는 것만 알 뿐, 늙음이 머리끝에서부터 이르는 줄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세상일에 연연해하며 어리석고 몽매하여 성찰할 줄 모른다면 그 까닭이 어디에 있는 것이겠는가? 한평생을 헛되이 보내고 나서 후회해도 따라잡을 수 없으리니, 안타까운 일이로다. 부처님께서 “바닷속에 던져진 바늘 하나는 오히려 찾을 수 있지만 사람의 몸은 다시 얻기 어렵다.”234)라고 하신 말씀을 모르는가! 이 경우보다도 정도가 더 심하므로 당부하여 말하겠다.
그대가 쉬고자 한다면 그대로 바로 쉴 일이요, 깨달아 마칠 때를 기다린다면 그런 날은 오지 않으리라.235) 금생에 노력하여 깨닫기를 마쳐야 하며 겁을 계속하도록 재앙을 받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236) 또 ‘하루아침에 무상한 죽음에 이르면, 그때야 비로소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이었음을 알리라. 그 무엇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오직 자신이 지은 업만이 몸을 뒤따르리라.’237) 업력으로 인해 무수한 억겁의 세월을 생사라는 바다에 빠져서 깨달아 마칠 기약이 없을 것이다. 금생에 도를 보는 안목을 밝히지 못한다면 과보를 면하기 어려우리니 생각하고 또 살펴 신중히 생각하라. 노승이 그대에게 이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라. 그대가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을 뿐이다. 내가 그대를 저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그대가 나를 저버리는구나.238) 간곡히 당부하는 바이다.

이 상공에게 부치는 편지(示李相公書)239)
예로부터 부처와 조사가 어찌 하나의 법이라도 사람들에게 준 일이 있었겠습니까! 만약 하나의 법이라도 전하거나 받은 일이 있었다면 불법이 어찌 오늘날에까지 이르렀겠습니까!
옛날 남인도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복업240)을 믿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14조 용수龍樹241)가 특별한 뜻을 품고 가서 그들을 교화했습니다. 그 나라 대중이 용수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에게 복업은 세간에서 가장 좋은 일인데 한갓 불성佛性만 말씀하시니 누가 그것을 본다는 말씀입니까?” “당신들이 불성을 보고자 한다면 먼저 아만我慢242)을 없애야 합니다.” “불성은 큽니까, 작습니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으며, 복도 없고 과보도 없으며, 죽지도 않고 살지도 않습니다.”243)
이것이 바로 마음의 본체를 곧바로 보여 준 실례이니, 그 일단의 대중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바른 이치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당사자에게 달려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006_0667_b_01L知事從眼前過不知老從頭上來貪戀
006_0667_b_02L世事愚迷不省其故安哉可惜一生
006_0667_b_03L空過後悔難追不見佛言一針投海
006_0667_b_04L尙有可得且夫人身後難復甚於
006_0667_b_05L囑曰汝欲休去便休去若待了時無
006_0667_b_06L了時努力今生須了悟免敎累劫受餘
006_0667_b_07L又一朝無常至方知夢裏人萬般
006_0667_b_08L將不去唯有業隨身以業力故塵沙
006_0667_b_09L億劫淪沒生死海無有了期若也今
006_0667_b_10L生道眼不明難免果報思之諦思之
006_0667_b_11L莫道老僧與你不恁麽道汝若不聽
006_0667_b_12L [45] 如之何也已矣將謂吾辜負汝却是
006_0667_b_13L汝辜負吾至囑

006_0667_b_14L

006_0667_b_15L示李相公書

006_0667_b_16L
從上來諸佛諸祖豈可有一法與人哉
006_0667_b_17L若一法有傳有授佛法豈到今日也
006_0667_b_18L南印度彼國之人多信福業十四祖龍
006_0667_b_19L特往化之彼衆曰人有福業世間
006_0667_b_20L第一徒言佛性誰能見之龍樹曰
006_0667_b_21L欲見佛性先須除我慢彼衆曰佛性
006_0667_b_22L大小祖曰非大非小非廣非狹無福
006_0667_b_23L無報不死不生此乃直示心體也
006_0667_b_24L一衆聞之皆悟正理然悟在當人

006_0667_c_01L그러므로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타나시고, 달마대사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왔지만 하나의 법도 사람들에게 준 적은 없었다.”244)라고 한 말이 그 도리를 가리킵니다. 불법에는 대단한 것이 없으나245)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것을 아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상공께서는 다행히 연세가 많지도 적지도 않아 적절하며, 기민한 지혜도 넘치거나 모자라는 잘못이 없고,246) 매일같이 대상과 응하는 경계에서 스스로 경각警覺하여 세간의 망념에 물든 마음을 돌려 최상의 불과佛果인 보리菩提를 익히며 배우고 있으니, 과거세에 반야의 종지種智를 심지 않았다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247) 경전에서 “한 분의 부처님이나 두 분의 부처님 또는 셋이나 넷이나 다섯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선한 원인을 심은 것이 아니고, 이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온갖 선한 뿌리를 심은 결과로 청정한 믿음을 일으킨 자”248)라 하고, 또한 “부처님께서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일체종지一切種智249)를 성취했다고 한다.”250)라고 한 말씀을 아실 것입니다.
바라건대 공께서 이 뜻을 견고하게 다져 일상생활에서 행위하는 모든 반경에서 다만 무심無心하게만 하신다면 자연히 도道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추기만 한다면 결코 (자신도 다른 사람도) 속지 않을 것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그렇게 되기를 축원하고 또 축원합니다.

나도 모르는 결에 붓을 들어 몇 마디 말을 신광 화상에게 제시하다(因筆不覺葛藤如許示神光和尙)
규봉 종밀圭峯宗密251) 화상께서는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으면 깨달음에 합치하며 깨달음에 합치하면 저절로 망심은 사라질 것이니, 온갖 망심이 사라지고 나면 하는 일마다 딱 들어맞아 모래를 쌓거나 땅에 그림을 그리든, 합장하거나 고개를 숙이든 모두 불도를 이루는 일이 되리라.”252)라고 하셨습니다. 대화상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말인즉슨 대단히도 거창하나253) 납승 문하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목적지로 가는 길 중간쯤에나 있으면서 아직도 분별을 완전히 끊어 없애 버리지 못한 말일 뿐입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옛사람은 “낱낱의 대상마다 참되고 낱낱의 대상마다 참되니, 티끌 하나하나까지 모두 본래인이다.”254)라고 하였으며, 또한 “도가 있지 않은 곳이란 없으니 눈에 마주치는 대상마다 모두 참되다. 참된 대상을 떠나 별도로 머무를 곳은 없으며 머물러 있는 그대로 참되다. 예컨대 교설에서 ‘세간에서 꾸려 가는 살림살이

006_0667_c_01L從他得故云諸佛出世祖師西來
006_0667_c_02L有一法與人便是這箇道理佛法無多
006_0667_c_03L久長難得人相公幸自春秋不老不
006_0667_c_04L機智無過不及之差卷下第二六張
006_0667_c_05L於日用應緣處能自警覺廻世間妄染
006_0667_c_06L底心習學無上佛果菩提非夙植般若
006_0667_c_07L種智焉能如是乎不見經云非於一
006_0667_c_08L佛二佛三四五佛而種善因已於無量
006_0667_c_09L千萬佛所種諸善根生淨信者又云
006_0667_c_10L佛說是人名爲成就一切種智願公堅
006_0667_c_11L固此志於日用四威儀內但自無心去
006_0667_c_12L自然合道但辦肯心決不相賺至祝
006_0667_c_13L至祝

006_0667_c_14L

006_0667_c_15L2) [9] 不覺葛藤如許示神光和尙

006_0667_c_16L
圭峯和尙云不興心處即合覺心
006_0667_c_17L覺心時自無妄想無諸妄已所作相
006_0667_c_18L聚沙畫地合掌低頭皆成佛道
006_0667_c_19L審大和尙作麽生會道則大殺道
006_0667_c_20L衲僧門下猶在半途未得勦絕何也
006_0667_c_21L古人云處處眞處處眞塵塵盡是本來
006_0667_c_22L又云道無不在觸處皆眞非離眞
006_0667_c_23L而立處立處即眞者如敎中所謂治生
006_0667_c_24L「第」通「弟」{編}「茟」疑「筆」{編}

006_0668_a_01L일체가 실상과 위배되지 않는다.’255)라고 한 말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방거사龐居士는 다음과 같이 읊었던 것입니다.

日用事無別         일상사에 특별한 점은 없으니,
唯吾能自諧         나 스스로 짝하여 함께할 뿐이라네.
頭頭非取捨         모든 현상에서 취하거나 버리지 않고,
處處勿張乖         어느 곳에서나 어긋나는 일도 없다네.
朱紫誰爲號         주색과 자색256)은 누가 이름을 붙였을까?
丘山絶點埃         산악에는 한 점의 티끌조차도 없노라.
神通幷妙用         신통 그리고 묘용이여!
運水及般柴         물 긷고 땔나무 나르는 일이로다.257)
그러나 이러한 뜻이라고만 잘못 알고 미묘한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없는 경계258)에 떨어져 있는 꼴이요, 또한 무위無爲라는 구덩이에 떨어져 있는 꼴이나 같습니다. 위부魏府의 노화엄老花嚴259)께서 “불법은 그대가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있으니 가거나 머물거나 앉았거나 누워 있거나 어느 때든, 죽을 먹거나 밥을 먹는 어느 때든, 대화하며 서로 묻고 답하는 어느 때든 있지만, 조작된 행위를 하거나 억지로 무엇을 하거나 마음이나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 또한 옳지 않다.”260)라고 하신 말씀을 모르십니까! 또 진정 극문眞淨克文261) 화상께서는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으면 하나하나가 분명하고 오묘하며 하나하나가 천진하리니 하나같이 모두 연꽃이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으리라.”262)라고 하셨습니다.263) 또 옛사람(진정 극문)은 “분별하지 않으면 텅 비고 밝아 저절로 비추리라.”264)라고 하였으니, 그 무엇도 일으키지 않으면 밝고 고요하게 저절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마음의 현량現量이요, 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는 본체인 것입니다.’265)
“자기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중생이 되는 것이요 자기 마음을 깨달으면 성불하는 것이니, 미혹함과 깨달음의 차이로 말미암아 중생과 부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또한 석가노자께서는 ‘이 법은 사량으로 분별하여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266)라고 하셨으니, 이 또한 마음으로 헤아리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는 뜻을 다르게 하신 말씀일 뿐입니다. 진실로 대상에 응하는 경계에서 안배하지도 조작하지도 않으며, 이리저리 마음속으로 사량 분별하며 헤아리지도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밝고 고요함이 저절로 드러나고 천기天機(하늘로부터 받는 본래적인 기능)가 저절로 펼쳐져 구애됨도 없고 머무름도 없이 천지와 덕을 나란히 하고 일월과 밝음이 합하며 드넓게 트여 모든 것에 통하리니 천진에 딱 들어맞을 뿐, 그 외의 별다른 현묘한 도리란 없는 것입니다.”267) 이 도리는 물을 직접 마셔 보아야 그 물이 차가운지 따뜻한지 스스로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노승은 일평생 단지 이와 같이 수행하여

006_0668_a_01L産業皆與實相未相違背是故龐居
006_0668_a_02L士有言曰

006_0668_a_03L日用事無別唯吾能自諧

006_0668_a_04L頭頭非取捨處處如張乖

006_0668_a_05L朱紫誰爲號丘山絶點埃

006_0668_a_06L神通并妙用運水及般柴

006_0668_a_07L
然便伊麽認着不求妙悟則墮在無事
006_0668_a_08L甲裏又落無爲坑中不見魏府老花嚴
006_0668_a_09L佛法在你日用處行住坐臥處
006_0668_a_10L粥喫飯處語言相問處所作所爲擧心
006_0668_a_11L動念又却不是又眞淨和尙云不擬
006_0668_a_12L心時一一明妙一一天眞一一如蓮
006_0668_a_13L花不着水又古人云不分別時虛明
006_0668_a_14L自照一切莫作明寂自現此正是自
006_0668_a_15L心現量不動不變之體也迷自心故作
006_0668_a_16L衆生卷下第二七張自心成佛由迷
006_0668_a_17L悟故有彼此也又釋迦老子云此法
006_0668_a_18L非思量分別之所能知此亦不許擬心
006_0668_a_19L之異名苟能於應緣處不安排不造作
006_0668_a_20L不擬心思量分別計較自然明寂自現
006_0668_a_21L天機自張無拘無執匪住匪着與天
006_0668_a_22L地齊德與日月合明唯蕩蕩然大通之
006_0668_a_23L只合天眞別無玄妙這介道理如人
006_0668_a_24L飮水冷暖自知老僧一生只如此修

006_0668_b_01L일상의 어떠한 행위 동작 중에도 본래면목과 본지풍광에 어둡지 않았으니, 이것이야말로 불도를 이룬다는 말의 뜻일 것입니다. 덕산 선감德山宣鑑이 “그대가 다만 마음에 일을 두지 않고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공허하여도 신령한 움직임이 있고 텅 비었어도 미묘한 작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털끝만큼이라도 말에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의 차별이 있다면 이 모두가 스스로를 속이는 원인이 될 뿐이다.”268)라고 한 말씀을 모르십니까!
화상께서는 다행히도 춘추가 한창때이고 기지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니 다만 이 말씀에 의지하여 마음을 쓰되 밖을 향해 구하지 마십시오. 일상을 떠나 별도로 현묘한 도리를 구한다면 물결을 휘저어 떨쳐 버리면서 물을 구하는269) 잘못과 같으니 구할수록 더욱더 멀어질 뿐일 것입니다.270) 용이 승천할 때에 구름이 자연스럽게 따르거늘,271) 하물며 신통한 광명을 본래 스스로 갖추고 있음에야 어떠하겠습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할 것이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해주의 목백272)에게(示海州牧伯)
금일 다행히 본로本路 목백 합하께서 몸을 굽혀 찾아와 주시니 영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일부러 이렇게 와 주심에 기거만복273)하시길 빕니다. 하물며 귀관께서는 숙세에 성불하리라는 기별을 받으셨고 현세에는 재상의 신분으로서 백성을 자비심으로 위무하며 지금 성군의 다급한 정무274)를 대신하시어 출가자나 속인이나 신분이 귀하거나 천하거나 한결같이 모두 은덕을 입고 있으니, 그 복덕과 그 수명을 어찌 말로 이루 다 기원할 수 있겠습니까! 광림해 주신 은혜를 입고 또 여기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소중히 품어 주시어 이제 서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만, 노승에게는 설할 만한 하나의 법도 없고 합하께서는 들을 만한 하나의 법도 없습니다.
설한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어야 바로 진실로 서로 만난 것(眞相見)275)이요, 털끝만큼이라도 말에 주요한 것과 부차적인 것의 차별이 있다면 이것은 모두 작위적인 거짓 만남(爲見)이니, 이것이 바로 예로부터 찾아온 이를 서로 만나보는 도리인 것입니다. 공자께서 온백설溫白雪을 오래전부터 만나 보고 싶어 하셨는데 하루는 말을 타고 가다 멈춰 있던 중에 길에서 만났으나

006_0668_b_01L於日用四威儀中不昧本來面目
006_0668_b_02L本地風光夫是之謂皆成佛道不見德
006_0668_b_03L山有言汝但無事於心無心於事
006_0668_b_04L虛而靈空而妙若毫端許言之本末
006_0668_b_05L皆爲自欺和尙幸自春秋鼎盛機智過
006_0668_b_06L但依此說用心不向外求若離日
006_0668_b_07L別求妙道則是撥波求水求之逾
006_0668_b_08L遠矣眞龍行處雲自相隨況神通光
006_0668_b_09L本自具足要須快着精彩時不待人

006_0668_b_10L

006_0668_b_11L示海州牧伯

006_0668_b_12L
今日多幸伏蒙本路牧伯閤下枉垂相
006_0668_b_13L光生陋止特特而來起居萬福
006_0668_b_14L況貴官承宿佛記現宰官身以慈撫
006_0668_b_15L代今聖主宵旴之急若僧若俗
006_0668_b_16L貴若賤悉皆受賜其福其壽曷勝道
006_0668_b_17L旣沐光臨且寬尊抱如今兩得相
006_0668_b_18L老僧無一法可說閤下無一法可聞
006_0668_b_19L無說無聞是眞相見若有毫端許言之
006_0668_b_20L本末則皆爲見此是從上來人相見底
006_0668_b_21L道理也不見仲尼與溫白雪久欲相
006_0668_b_22L一日稅駕相逄於道路間彼此無
006_0668_b_23L卷下第二八張各自廻去洎後門人
006_0668_b_24L問曰夫子久欲相見溫白雪及乎相見

006_0668_c_01L서로 아무 말도 없이 각자 돌아갔습니다. 이후에 문인이 ‘부자께서는 오랫동안 온백설을 만나 보고 싶어 하셨는데 급기야 만났을 때에는 한 말씀도 나누지 않으셨으니 어떤 뜻이십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는 ‘군자의 만남은 눈만 마주쳐도 (그가) 도가 있는 사람인지 아는 법이다.’276)라고 하셨다277)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하셨습니까! 속세의 유자도 오히려 이와 같은 말을 하거늘, 하물며 납자이겠습니까!
우리는 말없음을 근본으로 하니 실제로 하나의 법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278) 합하께서는 스스로 마음으로 납득하셔야 합니다, 마음으로 납득하셔야 합니다.

임종게臨終偈
백운 선사가 세상을 떠날 시기가 닥치자 몇몇 제자들에게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항상 모든 것이 공空이라는 이치를 알아차리고, 하나의 법이라도 분별의 틀(情)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마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을 쓰는 경지이니, 그대들은 부지런히 수행하도록 하라.’279)라고 하였다. 나는 이제 물거품처럼 사라지겠지만 슬픈 생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人生七十歲 古來亦希有  인생 70세는 예부터 드문 일.
七十七年來 七十七年去  77년 전에 왔다가 77년 뒤에 가노라.
處處皆歸路 頭頭是古鄕  곳곳마다 돌아갈 길이요, 하나하나가 모두 고향이거늘,
何須理舟楫 特地欲歸鄕  어찌 반드시 배를 타고 굳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가!
我身本不有 心亦無所住  이 몸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니,
作灰散四方 勿占檀那地  재를 만들어 사방에 뿌리고, 신도들의 땅을 차지하지 마라.280)

무오년(1378) 7월 모일 전호군 연창 박총이 김 판각을 위해 쓰다
천령 취암사에 판을 모셨다.
종탁, 참여, 신명 등이 간행하다.
문인 법린이 모연하다.
연화(法緣勸化)를 도운 문인들은, 비구니 묘덕, 북원군 부인 원씨, 구성군 부인 이씨, 정순대부 판통예문사 김계생이다.

006_0668_c_01L不交一言其意如何仲尼答曰君子
006_0668_c_02L相見目擊道存俗儒尙曰如是況衲
006_0668_c_03L子乎我宗無語句實無一法與人
006_0668_c_04L當自肯心肯心

006_0668_c_05L

006_0668_c_06L臨終偈

006_0668_c_07L
師臨行示二三兄弟曰古人云常了
006_0668_c_08L一切空無一法當情是諸佛用心處
006_0668_c_09L汝等勤而行之我今漚滅不可興悲
006_0668_c_10L人生七十歲古來亦希有七十七年來
006_0668_c_11L七十七年去處處皆歸路頭頭是古鄕
006_0668_c_12L何須理舟楫特地欲歸鄕我身本不有
006_0668_c_13L心亦無所住作灰散四方勿占檀那地
006_0668_c_14L白雲和尙語錄卷下

006_0668_c_15L
006_0668_c_16L
1) [10] 午七月日前護軍延昌朴叢爲金判閣書

006_0668_c_17L留板于川寧鷲岩寺

006_0668_c_18L宗▼(卓+卜)旵如信明等刊

006_0668_c_19L門人法厸募緣

006_0668_c_20L助緣門人等比丘尼妙德

006_0668_c_21L北原郡夫人元氏駒城郡夫人李氏

006_0668_c_22L正順大未判通禮門事金繼生

006_0668_c_23L戌」疑「戊」{編}
  1. 1)『普菴印肅語錄』 권1(X69, 372a1), “그러므로 『金剛經』에 ‘설할 수 있는 법이 없는 것을 참된 설법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무상無相을 상으로 삼는 것을 진실한 상이라 하며, 얻을 법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얻은 것이요, 얻을 마음이 없는 것이 참된 마음이다. 참된 마음이 모든 곳에 두루 존재하나 두 가지 체란 없으니 ‘머무름 없는 근본에서 일체법을 건립한다.’라고 한 것이다.(是故金剛經云, ‘無法可說, 是名說法.’ 無相爲相, 是名實相, 無法可得, 是名眞得, 無心可得, 是名眞心. 眞心徧一切處而無二體, ‘於無住本, 建立一切法.’)”; 같은 책, 권2(X69, 395b10), “달마대사가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라고 하자 2조 혜가가 마침내 깨달았다. 무시이래로부터 소유하고 있다가 지금에 이르도록 생사의 문제를 절단하지 못한 것이 모두 망심이다. 과거심도 미래심도 현재심도 모두 얻을 수 없으니, 지금 참된 마음이 모든 곳에 두루 존재하며 실정에 딱 들어맞는 어느 한 법도 없음을 알고서 그 자리에서 홀연히 크게 깨달았던 것이다. 이심전심으로 제2조가 되었고 이심전심으로 육조 대사에까지 이른 후에야 비로소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었으나 이 뜻을 얻은 자는 드물다.(達磨云, ‘與汝安心竟.’ 二祖便悟. 從無始以來所有, 至今生死不絶, 皆是妄心. 過去未來現在, 皆不可得, 便知卽今眞心, 遍一切處, 更無一法可當情, 當下忽然大悟. 以心傳心, 作第二祖, 以心傳心, 至六祖大師之後, 方始天下聞知, 得者不少.)”; 『唯心訣』(T48, 998a3), “그러므로 『起信論』에서 ‘모든 대상 경계가 마음이 망령되이 움직여 나타난 것일 뿐’이라고 한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대상 경계도 따라서 사라질 것이니 참된 마음만이 모든 곳에 두루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 전체는 거짓이요 마음이 지어낸 것일 뿐이므로 마음을 떠나면 육진의 경계도 없으며, 모든 분별이란 곧 자기 마음을 대상으로 하여 분별하는 것이니 마음으로 마음을 보지 않는다면 대상으로 취할 만한 상도 없다.’(故起信論云, ‘一切境界, 唯心妄動.’ 心若不起. 一切境界相滅, 唯一眞心, 遍一切處. 是故‘三界虛僞, 唯心所作, 離心卽無六塵境界, 乃至一切分別, 卽分別自心, 心不見心, 無相可得.’)”
  2. 2)『金剛經』(T8, 749a24) 참조.
  3. 3)『證道歌』(T48, 395c19) 참조.
  4. 4)일명 ‘설산게雪山偈’ 또는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라 불리는 게송. 『大般涅槃經』 권하(T1, 204c22~29) 참조. 상권 주 486 참조.
  5. 5)『法華經』 권1 「方便品」(T9, 8b25) 참조.
  6. 6)위의 책(T9, 9b10) 참조.
  7. 7)『華嚴經』 권40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T10, 847c28) 참조.
  8. 8)『景德傳燈錄』 권30 「傅大士心王銘」(T51, 456c28)에 나오는 구절.
  9. 9)“ ‘上元前三十有三日’이라 한 것은 상원절上元節(1월 15일)을 맞이하는 30일 중의 3일 전前, 즉 ‘1월 12일’로 보아야 할 것”이라는 김성수의 견해를 따라 번역함. 김성수, 「백운화상의 ‘無心’에 관한 서지적 연구」, 『한국문헌정보학회지』 제46권 제4호(한국문헌정보학회, 2012), p.127 참조. 다음 문단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이별하였다’는 구절과도 상응한다.
  10. 10)봇짐(複子) : 운수 행각할 때 짊어지는 짐. 복포複包·후부後付라고도 한다.
  11. 11)『證道歌』(T48, 395c9).
  12. 12)영가 현각永嘉玄覺의 다음 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禪宗永嘉集』 「奢摩他頌」(T48, 389c12), “여기서 말하는 지知란 아는 것을 (대상으로 삼아) 아는 지가 아니라 오로지 아는 그 자체인 지일 뿐이다. 곧 앞에서는 뒤를 이어서 소멸하지 않고 뒤에서는 앞을 끌어들여 일어나지 않으니, 앞과 뒤의 접속이 끊어지고 중간만 우뚝할 뿐이다.(今言知者, 不須知知, 但知而已. 則前不接滅, 後不引起, 前後斷續, 中間自孤.)”
  13. 13)남양 혜충南陽慧忠의 말. 『雲門廣錄』 권2(T47, 555b21), “남방에서 온 선객이 남양 혜충 국사에게 ‘이곳의 불법은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국사가 ‘심신이 하나이니 몸 밖에서 달리 구할 것은 없다.’라고 답한 문답을 제기하고 말했다. ‘그렇다면 산하대지는 어디에 있는가!’(擧南方禪客問國師, ‘此間佛法如何?’ 國師云, ‘身心一如, 身外無餘.’ 師云, ‘山河大地, 何處有也!’)”
  14. 14)『圓覺經略疏』 권하(T39, 554c13), “점차로 마음의 근원으로 나아가 비로소 멸滅이라는 상도 끊고 생生이라는 상마저 끊어 환히 대오하여 마음의 근원을 깨닫고 나니 본래 마음이 움직인 적도 없고 지금에야 마음이 고요해진 것도 아니며 평등하고 또 평등하여 시각始覺의 차이가 다름이 없다.(漸向心源, 始息滅相, 終息生相, 朗然大悟, 覺了心源, 本無所動, 今無始靜, 平等平等無別始覺之異.)”
  15. 15)한 구절은~것의 궁극이니 : ‘초백억일구超百億一句’라고 한다. 그 모든 것의 궁극인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 동산 삼구洞山三句 중 한 구절. 『曹洞五位顯訣』 권하(X63, 210b22), “동산 삼구에는 향상일구, 문두일구, 초백억일구가 있다.……초백억일구란, (번뇌의) 연속을 끊는 구절이요, (번뇌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구절이요, 구극의 구절이요, 한 사람이 천 명을 대적할 만한 구절이요, 어떤 경계나 기틀과도 상응하는 구절이다.(洞山三句, 向上一句, 門頭一句, 超百億一句.……超百億一句例者, 卽絶續句也, 亦云不來之句, 亦云倒底一句, 亦云一人當千人, 亦云相應之句也.)”
  16. 16)상권 주 143 참조.
  17. 17)선인禪人 : 선수행자. 오로지 참선을 일로 삼는 수행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18. 18)이구 온보李玖溫甫의 서序 참조. 「石屋珙禪師語錄』에는 이 게송이 실려 있지 않다. 다만 권하에 다음과 같은 ≺辭世偈≻가 수록되어 있다. 『石屋珙禪師語錄』 권하 ≺辭世偈≻ (X70, 675c17), “청산에 냄새나는 주검 묻지 말지니, 죽고 난 후에 땅 파서 묻을 필요 없느니라. 생각건대 내게는 삼매의 불도 없으니,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한 무더기 섶만 남으리.(靑山不著臰尸骸, 死了何須掘土埋. 顧我也無三昧火, 光前絶後一堆柴.)”
  19. 19)축향祝香 : 축성상당祝聖上堂이나 강탄회降誕會 등에서 법을 설하기에 앞서 축하의 뜻을 표하며 향을 사르는 의식.
  20. 20)요충이 되는~단단히 지키고(把斷要津) : ‘요진要津’은 강을 건너 통행하고자 할 때 반드시 지나야 하는 나루터이며, ‘파단把斷’이란 이곳에 가로막고 서서 아무도 지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지킨다는 뜻이다.
  21. 21)아주 작은 빈틈도 없이 굳건하고 견고함을 비유한 말. 바늘을 꽂을 틈도 없다는 ‘침차불입針劄不入’과 같은 말. 어떠한 사려 분별로도 파고들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22. 22)세존께서 중생제도를 위해 도솔천에서 강림하시어 열반에 드실 때까지의 일대기를 여덟 가지로 나타낸 것. ‘팔상성도八相成道’라고 한다.
  23. 23)이와 같은 법(如是法) : 차별 그대로 평등한 진실상이라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 진실한 불법 그 자체를 뜻한다.
  24. 24)나(予小師) : ‘여’와 ‘소사’는 동격으로 쓰였다. ‘소사’란 원래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지만 아직 10하夏를 채우지 못한 수행자를 가리키지만, 뜻이 확장되어 ‘제자’ 또는 자신을 겸손하게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서는 스승으로부터 전해 온 편지를 받는 입장이므로 제자라는 뜻과 동시에 자신을 낮추는 말로 쓴 것이다. 『南海寄歸內法傳』 권3(T54, 220a21), 『大宋僧史略』 권3(T54, 251a29) 등 참조.
  25. 25)이구 온보李玖溫甫의 서序 참조.
  26. 26)석옥 청공의 청정한 선풍禪風을 말한다. 석옥의 게송에서 ‘백운을 샀다’라고 한 말은 백운 경한을 제자로 받아들여 법을 전했던 사실에 대한 암시이고, ‘맑은 바람을 팔았다’라고 한 말은 백운 경한에게 청정한 자신의 선풍을 전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7. 27)『法華經』 「信解品」의 비유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릴 때 집을 나가 타향을 떠돌며 빈곤하게 지내던 아들이 부자인 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본래 자신이 부족한 것이 없는 부자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한 말이다.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아들과 같아서 일승一乘의 법과 지혜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을 비유한다. 『法華經』 권2(T9, 17b16), “나는 본래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으나, 지금 이 보배 창고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我本無心, 有所希求, 今此寶藏, 自然而至.)”
  28. 28)정법안장正法眼藏 : 진리를 꿰뚫어 보는 눈. 선종의 초조 가섭이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받은 지혜의 눈. ‘정법’은 최상의 진리, ‘안’은 그 정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눈, ‘장’은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 줄여서 ‘정법안’이라고도 한다.
  29. 29)이하에서는 법을 전수할 만한 자격이 있는 학인을 판별하는 기준에 대한 분양 선소汾陽善昭의 견해가 서술된다. 이 분양의 말은 부산 법원浮山法遠에 의하여 알려진 것이다. 『人天眼目』 권2 「三種師子」(T48, 307a5), 『五家宗旨纂要』 권상 「汾陽三種獅子」(X65, 264a3) 등 참조.
  30. 30)『續燈正統』 권35(X84, 607c4~8), 『請益錄』 권하(X67, 488a24~b3), 『緇門警訓』 권8(T48, 1086a20~24) 등에 실린 글과 같다. 『人天眼目』 권2(T48, 307a7)와 『五家宗旨纂要』 권상(X65, 264a10) 등에는 “影響不眞”이 “影響音聞”으로 되어 있다. 그림자와 메아리가 본래의 형체와 소리를 본뜨듯이 스승의 자취를 모방하여 그대로 답습하는 제자를 말한다. ‘음문音聞’이란 ‘음성을 전파한다’는 말로 전수받은 내용을 답습하여 그대로 옮긴다는 뜻이다.
  31. 31)『臨濟語錄』(T47, 506a5)에 위산 영우潙山靈祐의 말로 나온다. “견해가 스승과 같으면 스승의 덕을 반으로 깎아 먹는다. 견해가 스승을 넘어서야 스승의 법을 전수할 자격이 있다.(見與師齊, 減師半德. 見過於師, 方堪傳授.)”; 『景德傳燈錄』 권16 「巖頭全奯傳」(T51, 326b12) 참조.
  32. 32)종초種草 : 동족同族·동류同類 등과 같은 말. ‘동일한 종자에서 자라난 풀’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선종의 정통을 계승한 선사를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33. 33)오탁악세五濁惡世 : 오탁에 물든 악한 세상. 오탁이란 겁탁劫濁·견탁見濁·번뇌탁煩惱濁·중생탁衆生濁·명탁命濁을 말한다.
  34. 34)『人天眼目』과 『五家宗旨纂要』 등에는 “셋째는 스승을 모방하여 그 소리를 그대로 전파하는 사자(학인)이다. 이리가 호랑이의 기세에 의지하는 꼴이니 금수와 어떻게 구분하겠는가!(三, 影響音聞. 野干倚勢, 異類何分!)”라고 되어 있다. 『人天眼目』 권2(T48, 307a9), 『五家宗旨纂要』 권상(X65, 264a10) 참조.
  35. 35)그래도 내가~옳지 않다 : 종밀宗密의 말. 『圓覺經略疏』 「序文」(T39, 524b26) 참조.
  36. 36)귀종 혜성歸宗慧誠의 말. 『景德傳燈錄』 권26(T51, 429a21) 참조. 『阿彌陀經』 권하(T12, 340a7)에는 두 번째 구절이 “스스로 경멸하며 비굴하게 물러나서는 안 된다.(不應自輕而退屈)”라고 되어 있다.
  37. 37)『四十二章經』(T17, 723a14),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면 도를 생각하고, 내가 무엇을 행하느냐 하면 도를 행하며, 내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도를 말한다. 나는 참된 도를 생각에 두고 잠시 잠깐도 잊지 않는다.’(佛言, ‘吾何念念道, 吾何行行道, 吾何言言道. 吾念諦道, 不忘須臾也.’)”; 『四十二章經註』(X37, 663a8), “부처님께서는 ‘나의 법은 상념을 조작하지 않는 상념을 하고, 행위를 억지로 꾸미지 않는 행위를 하며, 말에 걸리지 않는 말을 하고, 수행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 뜻을 이해한 자는 그 경지에 가까워지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자는 멀어지리라.’라고 하셨다.(佛言, ‘吾法念無念念, 行無行行, 言無言言, 修無修修. 會者近爾, 迷者遠乎.’)”; 『古林淸茂語錄』 권3 「示巖維那」(X71, 243c1), “말에 걸리지 않는 말을 하고, 행위를 억지로 꾸미지 않는 행위를 하며, 수행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어도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 뜻을 이해한 자는 그 경지에 가까워지겠지만 미혹하여 알지 못하는 자는 멀어지리라. 이는 석가노자께서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설하신 네 가지 참된 법이다. 후에 배우는 이들 중에 이 구절을 읽은 자가 대단히 많지만 이해한 자는 드물고, 이해하고서 실천하는 자는 더욱 극히 드물다.(言無言言, 行無行行, 修無修修, 證無證證. 會者近爾, 迷者遠乎. 此是釋迦老子, 在鹿野苑中, 爲五比丘, 初說四諦法也. 後之學者, 讀之甚多, 會之甚少, 會而行之, 亦復少矣.)”
  38. 38)상권 주 6 참조.
  39. 39)초조初祖 달마대사가 2조 혜가慧可에게 전했던 전법게傳法偈 중 한 구절. 달마대사 이후로 2조 혜가로부터 육조 혜능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선종의 종지가 전개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또는 선종이 후대에 5가家로 나뉘어 꽃을 피울 것이라는 예언으로도 해석된다. 이 게송은 敦煌本 『壇經』에서 최초로 전한다. 敦煌本 『壇經』(T48, 344a26), “내가 본래 중국에 온 뜻은, 교敎를 전하여 미혹한 중생 구하려 함이었네. 꽃 한 송이에 다섯 잎 피어나, 자연스럽게 열매 맺게 되리라.(吾本來唐國, 傳敎救迷情. 一花開五葉, 結菓自然成.)”; 『景德傳燈錄』 권3 「菩提達磨傳」(T51, 219c17) 참조.
  40. 40)금색두타金色頭陁 : 마하가섭摩訶迦葉을 말한다. 금색가섭金色迦葉이라고도 한다. 과거세에 수행할 때 단금사鍛金師였던 가섭이 금색으로 된 비바시불毘婆尸佛의 사리탑이 낡은 것을 보고 어떤 여인과 함께 이것을 수리한 공덕으로 91겁劫 동안 온몸이 금빛이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타라는 명칭은 가섭이 출가한 후 12두타頭陀를 잘 행하여 부처님으로부터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는 찬탄을 받은 것에서 유래한다. 『佛祖統紀』 권5(T49, 169b19), 『佛祖歷代通載』 권3(T49, 496b16) 참조.
  41. 41)신광神光 : 2조 혜가를 가리킨다. 달마로부터 도를 얻기 위해 한 팔을 잘라 구도의 뜻을 보였던 고사를 말한다. 『景德傳燈錄』 권3 「菩提達磨傳」(T51, 219b11) 참조. 그 뒤 달마는 신광에게 혜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景德傳燈錄』 권3 「菩提達磨傳」(T51, 219b18), “달마가 그를 불법을 깨우칠 그릇이라 여기고 ‘모든 부처님이 처음에 도를 구할 때에 법을 위하여 육신에 대한 집착을 잊었는데, 그대가 지금 내 앞에서 팔을 잘라 보이니 법을 구할 만하다(可).’라고 말한 뒤 마침내 ‘혜가’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師知是法器, 乃曰, ‘諸佛最初求道, 爲法忘形, 汝今斷臂吾前, 求亦可在.’ 師遂因與易名曰慧可.)”
  42. 42)일물一物 : 근원적인 ‘하나의 그 무엇’을 가리킨다. 『壇經』에서 쓰기 시작한 선종 특유의 용어이다. 敦煌本 『壇經』에서 혜능의 게송 중 “불성은 항상 청정하다.(佛性常淸淨)” 또는 “밝은 거울은 본래 청정하다.(明鏡本淸淨)”라는 구절이 敦煌本 이후의 『壇經』에서는 “본래 하나의 그 무엇조차 없다.(本來無一物)”라는 말로 바뀌면서 ‘일물’의 개념이 등장한다. 불성이 일물로 전환되면서, 불성·진여 등 어떤 교학적 개념으로도 대체하지 못하는 선종 특유의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다. 또한 혜능과 회양懷讓의 다음 문답에도 나온다. 宗寶本 『壇經』(T48, 357b21), “ ‘어떤 것이 이렇게 왔는가?’ ‘하나의 그 무엇이라 말해도 맞지 않습니다.’ ‘닦아서 깨달을 수 있는가?’ ‘닦아서 깨닫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오염되어서는 안 됩니다.’(師曰, ‘什麽物恁麽來?’ 曰, ‘說似一物卽不中.’ 師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43. 43)위음왕불 이전의 시기(威音之前) : 위음왕불威音王佛이 세상에 출현하기 이전의 시기. 위음왕불은 헤아릴 수 없는 과거세에 최초로 출현한 부처님이다. ‘위음이전威音已前’은 ‘공겁이전空劫已前’ 또는 ‘부모미생이전父母未生已前’ 등과 동의어로 쓰이며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해 있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가리킨다. 고孤·독獨 등이 나타내는 의미가 그것이다.
  44. 44)본지풍광本地風光 : 오염되지 않은 자기 본래의 심성(本地)이 고스란히 드러난 세계(風光)를 가리킨다. 본래면목과 통한다. 풍광은 풍경·경치 등을 나타내는데, 자신의 본래 모습과 같은 뜻이다. 『圜悟語錄』 권5(T47, 735a1), “만약 진실로 바른 견해를 가지고 고요한 진여眞如와 딱 들어맞는다면, 비록 하루 어느 시각에나 생각하며 헤아리지 않고 억지로 꾸미지 않더라도, 움직이거나 조용히 있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깨어 있거나 잠자는 등 그 어떤 순간에도 본지풍광·본래면목이 아닌 경우가 없을 것이다.(若以眞實正見, 契寂如如, 雖二六時中, 不思不量, 無作無爲, 至於動靜語黙覺夢之間, 無不皆是本地風光本來面目.)”
  45. 45)아뇩보리阿耨菩提 :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약칭. ‘아뇩다라’는 무상無上, ‘삼먁삼보리’는 정변지正遍知의 뜻. 무상정변지無上正遍智·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 등으로 한역한다. 그 이상이 없는 최고의 깨달음이며(無上), 가장 바르고 평등하며(正等), 모든 것을 포용하는(遍) 지혜·깨달음이라는 뜻이다.
  46. 46)급암 조사 : 급암 종신及菴宗信을 높여 부르는 말. 호주湖州 도량사道場寺에서 출가한 후에 설암 조흠雪巖祖欽의 법을 이었다.
  47. 47)음력 정월~빈틈없이 일치했다 : 주 9 참조.
  48. 48)방장을 대장간의 화로(鑪:爐)와 풀무질하는 통(鞴)에 비유한 말. 장인匠人이 쇠를 담금질하여 물건을 만들듯이 학인을 단련하는 가르침을 이렇게 비유한다. 팽烹은 쇠를 불리고 정련한다는 뜻의 야련冶煉이다. 부처와 조사를 만들기 위해 거친 범부를 달구고 삶는다는 뜻이다. 『大慧語錄』 권5(T47, 830a6), “주지가 되어 처음으로 절에 들어가 방장을 가리키며 ‘대중이여!’ 하고 부른 다음 말했다. ‘이곳은 부처를 불리고 조사를 담금질하는 화로이며, 생사生死를 단련하는 지독한 집게와 망치이다.’(入院指方丈, 召大衆云, ‘這裏, 是烹佛烹祖大鑪韝, 鍛生鍛死惡鉗鎚.’)”
  49. 49)승기僧祗 : 삼아승기겁三阿僧祇劫의 줄임말. 보살이 수행하여 궁극적인 깨달음(佛果)을 얻기까지의 기간.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을 뜻한다. 이 뜻에 따라 무량수無量數·무앙수無央數 등으로 한역한다.
  50. 50)전법게傳法偈 : 스승이 자신의 종지를 이을 자격이 있는 제자에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전하는 게송. 여기서는 석옥이 백운에게 보낸 앞의 게송을 가리킨다. 선종사에서 달마대사로부터 면면히 이어지는 조사의 징표는 가사와 발우였으나, 육조 혜능이 이것이 투쟁의 실마리가 된다고 하여 전법게로 대체함으로써 전통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敦煌本 『壇經』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敦煌本 『壇經』(T48, 344a19), “내가 입적한 뒤 20여 년이 지나면 삿된 법이 분란을 일으켜 우리의 종지를 미혹시킬 것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교의 시비를 확정하여 종지를 굳건히 세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바른 법이니 가사는 전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 그대가 믿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가 이전 5대 조사들이 가사를 전하면서 함께 전한 부법송付法頌(傳法偈)을 읊어 주겠다.(吾滅後二十餘年, 邪法遼亂, 惑我宗旨. 有人出來, 不惜身命, 定佛敎是非, 竪立宗旨, 卽是吾正法, 衣不合傳. 汝不信, 吾與誦先代五祖傳衣付法頌.)”
  51. 51)나도 이제~것이라 한다 : 「백운 선사가 계사년(1353) 정월 17일에~암자의 몇몇 형제에게 보이다(師於癸巳正月十七日, 記霞霧山行, 示同菴二三兄弟.)」 참조.
  52. 52)허공의 신(舜若多神) : ‘순야다’의 한역어는 ‘공성空性’이다. 순야다신이라 하면 허공을 주재하는 신神을 가리킨다. 『祖庭事苑』 권7(X64, 409c22), “순야다신:공空이라 한역한다. 이는 허공을 주재하는 신이다. 무색계천無色界天 또한 이러한 종류이다.(舜若多神:此云空, 卽主空神也. 無色界天, 亦是此類.)”
  53. 53)『大般涅槃經』 권2 「壽命品」(T12, 372b18), “순타여, 우담화가 꽃을 피우는 것이 세간에 희유한 일이듯이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타나심 또한 대단히 어려운 일이요, 부처님을 만나 믿음을 일으키고 법문을 듣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며,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에 최후로 공양하여 일대사를 밝히는 일은 이보다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純陀, 如優曇花世間希有, 佛出於世亦復甚難, 值佛生信聞法復難, 佛臨涅槃最後供養, 能辦是事復難於是.)”
  54. 54)발걸음을 옮겨 세간을 넘어서고(發足超方) : 제방諸方의 뛰어난 선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는 것. 또는 발걸음을 옮겨 세간의 영역(方)을 초월한다는 말로서, 수행하여 세간의 속박을 넘어선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55. 55)삼과법문三科法門 : 일체의 모든 법을 오음五陰(五蘊), 십이입十二入(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세 부류로 나눈 것. 음입계陰入界·온처계蘊處界라고도 한다. 宗寶本 『壇經』(T48, 360b1), “삼과법문이란, 오음·십팔계·십이입이다. 음은 오음이니 색수상행식이 그것이요, 입은 십이입이니 밖의 육진六塵인 색성향미촉법과 안의 육문六門인 안이비설신의가 그것이요, 계는 십팔계이니 육진과 육문과 육식이 그것이다.(三科法門者, 陰界入也. 陰是五陰, 色受想行識是也, 入是十二入, 外六塵色聲香味觸法, 內六門眼耳鼻舌身意是也, 界是十八界, 六塵六門六識是也.)”
  56. 56)삼현과 십지(三賢十地) : 삼현십성三賢十聖이라고도 한다. 삼현은 수행의 계위를 가리키는데, 대승에서는 보살 수행 계위 42위 가운데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의 30위를 삼현 또는 삼십심三十心이라고 한다. 십지十地(十聖)는 보살 수행 계위 52위(十信, 十住, 十行, 十迴向, 十地, 等覺, 妙覺) 가운데 제41위부터 제50위까지를 가리킨다. 삼현은 범부의 계위에 있는 자를, 십성은 성자의 계위 이전에 있는 자를 가리킨다.
  57. 57)등각과 묘각(等妙二覺) : 등각과 묘각을 아울러 이르는 말. 등각은 보살 수행 계위 52위 가운데 제51위를 가리킨다. 제십지第十地 법운지法雲地의 위, 최고의 불지위佛地位인 묘각지妙覺地 바로 아래의 위位이다. 즉 부처를 이루기 바로 직전의 지위로서 일생보처一生補處, 유상사有上士, 금강심金剛心이라고도 한다. 묘각은 보살 수행 계위 52계위 가운데 52위, 42계위 가운데 42위에 해당한다. 즉 보살이 수행하여 도달한 최후 최상의 불과위佛果位로서 번뇌를 끊어 지혜가 원만 구족한 지위이다. 묘각위妙覺位 또는 묘각지라고도 한다.
  58. 58)한 번~일이 없으셨네 : 상권 주 147 참조.
  59. 59)『修心訣』(T48, 1008b8), “그대에게 판정한 바를 들어 주겠다. 깨달은 뒤의 수문修門 가운데 ‘정혜를 모두 고루 평등하게 지닌다(定慧等持)’는 뜻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성정혜自性定慧요, 둘째는 수상정혜隨相定慧이다. 자성문이란 ‘적지寂知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면서 원래 스스로 조작하는 일이 없는 것(無爲)이다. 단 하나의 존재도 대상으로 조작하는 일이 없으니, 어찌 수고롭게 대상을 없애는 공을 들이겠는가! 한 생각도 망정을 일으킴이 없으니 망상의 대상을 잊는 힘도 빌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돈문頓門이며, 자성의 정혜를 떠나지 않고 고루 평등하게 지닌다는 뜻이다. 수상문隨相門이란 ‘도리를 헤아려 산란함을 거두고 법을 간택하여 공空을 관찰하는 것으로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을 균등하게 조절하여 무위無爲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점문이며, 하열한 근기가 행하는 것이다.(據汝所判. 悟後修門中, ‘定慧等持’之義有二種. 一, 自性定慧, 二, 隨相定慧. 自性門則曰, 任運寂知, 元自無爲. 絶一塵而作對, 何勞遣蕩之功! 無一念而生情, 不假忘緣之力. 判云, 此是頓門, 箇者不離自性定慧等持也. 隨相門則曰, 稱理攝散, 擇法觀空, 均調昏亂, 以入無爲. 判云, 此是漸門, 劣機所行也.)”
  60. 60)행行과 해解가 상응하니(行解相應) : 행해行解는 실제적 수행과 이론적 이해 또는 실천과 이론을 뜻한다. 이 둘을 상대적인 관계로 보지 않고 둘 모두에 응하여 일치한다는 뜻이다. 선문禪門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정사正師’라고 하는데, 단지 호칭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조사祖師의 면모는 바로 이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景德傳燈錄』 권3 「菩提達磨傳」(T51, 220a5), “부처님의 심종心宗을 밝혀 수행과 이해가 일치하는 사람을 조사라 한다.(明佛心宗, 行解相應, 名之曰祖.)”
  61. 61)근기를 관찰하여 가르침을 베풀고(逗敎) : 상대의 근기에 딱 들어맞는 가르침을 주는 것. ‘두’는 ‘투投’와 음이 통하여 혼용하는 글자.
  62. 62)침묵 좌선하며(冷坐) : 산란한 열기를 식히고 오로지 좌선하는 것. ‘정념단좌正念端坐’·‘정신단좌正身端坐’ 등과 같은 말.
  63. 63)나는 본래~마음이 없었는데 : 주 27 참조.
  64. 64)스승을 옆에서 모시기 : 건병巾甁. 깨끗한 수건과 청결한 병. 수행자는 심신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항상 이들 물건을 가까이에 두는데, 이로써 스승을 좌우에서 시중드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65. 65)세간의 모든~기쁨 느끼리 : 상권 주 486 참조.
  66. 66)동방에서 교화한~위함일 뿐이니 : 주 39 참조.
  67. 67)구구는 원래 팔십일이라네(九九八十一) : 너무도 명백하고 분명하여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의미한다.
  68. 68)완전히 죽었다 다시 살아나(絶後再甦) : 완전히 한번 죽고 난 후에 처음으로 진짜 살아남. 종래 가지고 있던 번뇌나 집착 그리고 사려 분별 등을 모두 절단하여 버리고 난 후에 조금의 걸림도 없는 경지, 진실한 삶을 얻는다는 말. ‘대사일번大死一番’·‘대사대활大死大活’과 같은 뜻이다.
  69. 69)『碧巖錄』 41則(T48, 179a27), “사람을 죽이려면 완전히 죽여야 살아나는 것을 보고, 죽은 사람을 완전히 살리고 나면 죽은 사람을 보게 되리라.(殺盡死人, 方見活人;活盡死人, 方見死人.)”
  70. 70)완전히 죽은~살아나는 경계 : 대사저인大死底人은 일체의 모든 감각지각에 대한 의존과 정식情識에서 벗어나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순·역順逆이든 어떤 분별도 하지 않는 크게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조주와 투자 대동投子大同이 이를 소재로 문답을 나눈 공안이 전한다. 『景德傳燈錄』 권15 「投子大同傳」(T51, 319a12), “조주가 투자에게 물었다. ‘죽음에서 살아났을 때는 어떠한가?’ ‘밤길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지만 날이 밝으면 틀림없이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상수相手인 줄 알았는데 그대가 더 상수이군.’(趙州問, ‘死中得活時如何?’ 師曰, ‘不許夜行, 投明須到.’ 趙州曰, ‘我早侯白, 伊更侯黑.); 『碧巖錄』 41則(T48, 178c16) 참조.
  71. 71)『雪竇語錄』 권3(T47, 691b8), 『碧巖錄』 1則(T48, 141b18), 『無門關』 1則 「大通智勝」(T48, 294a19) 등 참조.
  72. 72)이 말의 경전적 근거는 『楞伽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楞伽經』 권4(T16, 506c14), “모든 보살마하살은 뜻에 의지하여야지 문자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諸菩薩摩訶薩, 依於義不依文字.)”; 『圜悟語錄』 권11(T47, 765b13), “활구를 참구할 일이며 사구를 참구하지 마라. 활구에서 알아차리면 영겁토록 잊지 않겠지만 사구에서 알아차리면 저 자신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他參活句不參死句. 活句下薦得, 永劫不忘;死句下薦得, 自救不了.)”; 『瑯琊覺語錄』 古尊宿語錄46(X68, 311c3); 『五燈會元』 권15 「德山緣密章」(X80, 308a21) 등 참조.
  73. 73)상권 「흥성사 입원소설」 15번 상당 법문 참조. 이곳에는 지공指空 화상의 말로 제시되어 있다.
  74. 74)『景德傳燈錄』 권26 「瑞鹿本先傳」(T51, 426a23), “바람도 깃발도 움직인 것 아니요 마음이 움직였을 뿐이라 하니, 자고이래로 대대로 이어져 지금에 이어졌네. 이후로 운수납자들 헛되이 이 뜻 깨닫고자 하나, 조사는 진실로 지음을 좋아한다네.(非風幡動唯心動, 自古相傳直至今. 今後水雲徒欲曉, 祖師眞實好知音.)”
  75. 75)『大慧語錄』 권20 「示眞如道人」(T47, 895a21), “도를 배움에는 특별히 별다른 솜씨 필요 없으니, 다만 깨달음을 법도로 삼을 뿐이다.(學道無他術, 以悟爲則.)”; 『密菴語錄』 권1(T47, 981c18), “참선 공부를 함에 별다른 수단이란 없다. 모름지기 이와 같이 화두를 들어 놓치지 않고 궁구하다 보면 비로소 밝게 깨달을 시절이 있을 것이다.(參禪做工夫無他術. 須是恁麽提掇, 方可有明悟底時節.)”
  76. 76)‘나인那人’은 궁극적인 경지를 성취한 사람, 즉 견성인 또는 본래면목 등을 나타낸다. 『宏智廣錄』 권5(T48, 63a1), “게다가 겁의 세월 동안 쌓은 공을 운용해야, 비로소 저 사람과 하나가 되리라.(更須轉劫功, 方與那人合.)”
  77. 77)현량現量 : ‘량量’은 척도尺度라는 말로 인식의 방식 또는 앎의 진위를 판단하는 기준 등을 뜻한다. 현량은 개념이 개입되지 않고 어떤 사유 분별의 작용도 떠나 바깥 대상 경계를 그대로 지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心賦注』 권3(X63, 129a21), “현량은 법의 자성을 터득하지만 개념과 말에 얽매이지 않아 헤아리는 마음이 없는 인식이다. 이것은 원만하게 이루어진 말로서 외부의 대상을 조작하여 이해하지 않기에 비량比量이나 비량非量에 떨어지지 않는다.(現量者, 得法自性, 不帶名言, 無籌度心. 是圓成語, 不作外解, 不落比非之量.)”; 『華嚴經』 권6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T10, 688a8), “어리석은 범부들은 부처님의 방편에 미혹되어 삼승법이 있다고 고집하며 삼계가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삼세의 모든 불법이 자기 마음의 현량인 줄도 알지 못하여 바깥의 오진五塵이 실재한다고 집착하니 마치 소와 양이 지각하지 못하여 생사윤회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一切凡愚, 迷佛方便, 執有三乘, 不了三界由心所起, 不知三世一切佛法自心現量, 見外五塵執爲實有, 猶如牛羊不能覺知, 生死輪中無由出離.)”; 『大慧語錄』 권22 「示張太尉」(T47, 905c7), “부처님의 경계란 바로 그 당사자의 자기 마음의 현량이요,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도 않는 본체입니다.(佛境界卽當人自心現量, 不動不變之體也.)”
  78. 78)불법에 군더더기란 없네(佛法無多子) : 임제 의현臨濟義玄이 대우大愚와의 문답에서 황벽黃蘗의 선법禪法을 알아차리고 평가한 말이다. ‘다多’는 불필요하게 많다 또는 쓸데없이 남아돈다는 말. 불법은 불필요한 방편이나 조작이 없어 간단명료하게 진실에 부합한다는 의미이다. 『臨濟語錄』(T47, 504c19), “임제가 대우를 만나러 갔을 때 대우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황벽 문하에서 왔습니다.’ ‘황벽이 어떤 말로 가르치던가?’ ‘제가 세 번 불법의 핵심적인 뜻을 물었다가 세 번 다 얻어맞았으나, 저에게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황벽이 그토록 친절하게 그대에게 사무치도록 가르쳐 주었는데 다시 여기까지 와서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묻는가!’ 이 말에 임제가 크게 깨닫고 말했다. ‘원래 황벽의 불법에는 대단한 것이 없었군요.’ 대우가 임제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이 오줌싸개야! 조금 전에는 허물이 있는지 없는지 묻더니 지금은 황벽의 불법에는 대단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구나! 그대는 어떤 도리를 알았느냐? 빨리 말해라! 빨리 말해!’ 임제가 대우의 옆구리를 세 번 주먹으로 찌르자 대우가 잡은 멱살을 놓으며 말했다. ‘그대의 스승은 황벽이니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師到大愚, 大愚問, ‘什麽處來?’ 師云, ‘黃檗處來.’ 大愚云, ‘黃檗有何言句?’ 師云, ‘某甲, 三度問佛法的的大意, 三度被打, 不知某甲有過無過.’ 大愚云, ‘黃檗與麽老婆, 爲汝得徹困, 更來這裏, 問有過無過!’ 師於言下大悟云, ‘元來黃檗佛法無多子.’ 大愚搊住云, ‘這尿床鬼子! 適來道有過無過, 如今却道, 黃檗佛法無多子! 爾見箇什麽道理? 速道! 速道!’ 師於大愚脅下築三拳, 大愚托開云, ‘汝師黃檗, 非干我事.’)”
  79. 79)『月磵語錄』 권하 「印月」(X70, 527a5), “성품이라는 바다는 고요하고 마음이라는 달은 밝게 빛나네. 물과 달이 어우러지고 달과 물이 서로 거두네. 물과 달이 서로 비추며 무늬를 드러내는구나. 산하대지와 삼라만상에, 한번 찍어 뚜렷이 무늬 남기니 맑고 빈 듯이 꿰뚫어 환히 밝구나. 확 트이고 밝디밝으니 증득하고 나서 살펴보라.(性海湛如, 心月皎如. 水與月融, 月與水攝. 水月交光, 印文呈露. 山河大地, 萬象森羅, 一印印定, 虛徹洞明. 廓兮烱兮, 以證來觀.)”
  80. 80)평상심이 도요(平常心是道) : 마조 도일馬祖道一이 말한 후로 공안의 소재로 많이 활용되는 어구. 상권 주 478 참조.
  81. 81)모든 법~그대로 참모습이라(覿體全眞) : 본 그대로, 드러난 그대로가 모두 진실이라는 말. 『圜悟語錄』 권9(T47, 753c7), “그러므로 운문은 ‘화상들이여, 망령되이 생각하지 마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며, 승은 승이고 속은 속이다.’라 하고 또 ‘주장자를 보고는 단지 주장자라고 부를 뿐이며, 집을 보고는 단지 집이라 부를 뿐이니, 이를 두고 드러난 그대로 온통 진실이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是故雲門道, ‘和尙子, 莫妄思. 山是山水是水, 僧是僧俗是俗.’ 又道‘見拄杖子但喚作拄杖子, 見屋但喚作屋, 謂之覿體全眞.’)”
  82. 82)법과 법 : 낱낱의 법. 모든 법. 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83. 83)『法華經』 권1 「方便品」(T9, 9b10)의 “이 법이 법의 위치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상도 변함없이 머문다.(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라는 구절의 뜻과 맥락이 통하는 말. 법마다 실상마다 각각의 차별성 그대로 드러난 모습의 진실성을 말한다. 『天聖廣燈錄』(X78, 453b19), “법과 법, 서로 간여 않으니 법은 스스로 공적할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바로 그 자리에 스스로 머물며, 지금의 바로 그 자리에서 스스로 진실하다.(法法不相到, 法自寂故. 當處自住, 當處自眞.)”; 『碧巖錄』 40則(T48, 178b27) 참조.
  84. 84)산은 산이요~물일 뿐이라(山是山水是水) :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맥락에서 만법이 제각각 독립하여 그 자체로 완결하여 있으면서 그 근원은 통한다는 뜻을 표현한 말.
  85. 85)할 일~자재한 도인(閑道人) : 할 일을 마쳐 더 이상 할 일도 없고 억지로 조작할 일도 없는 사람. 일체의 속박과 번뇌를 벗어나 자재한 경지를 얻은 사람.
  86. 86)성색聲色은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 가운데 앞의 두 가지를 들어 대상 경계를 대표적으로 나타낸 말로서 언구言句나 속진俗塵을 비유하기도 한다. 대상 경계 속에 있으면서도 그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운 풍모를 펼친다는 뜻이다. 상권 「흥성사 입원소설」 14번 상당 법문 가운데 향엄 지한香嚴智閑의 오도송 참조.
  87. 87)석녀石女는 돌로 만든 여자 또는 돌에 조각한 여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자를 가리킨다. 분별 정식情識에서 벗어난 경지를 석녀에 비유한다. ‘석녀가 밤에 아기를 낳다.(石女夜生兒)’라는 말로도 흔히 쓰이는데, 밤은 지각 분별 이전의 경계를, 아기는 현실의 사물이나 현상을 뜻한다. 드러나 있는 사물과 현상 그대로가 곧 진여실상眞如實相이 현현한 것임을 의미한다.
  88. 88)지각知覺하거나 사유할 리 없는 나무로 만든 인형인 목인木人이 살아 움직이는 사람처럼 어떤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인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앞의 석녀나 목인이나 모두 분별에서 벗어난 경계를 비유한다. 그 어떤 작위도 없는 천진한 묘용妙用을 드러낸 말이다. ‘목인이 노래하고 석녀가 일어나 춤을 춘다(木人方歌, 石女起舞.)’, ‘목인이 한밤중에 신을 신고 떠나고 석녀가 날이 밝아 올 무렵 모자를 쓰고 돌아온다.(木人夜半穿靴去, 石女天明戴帽歸.)’, ‘석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노주가 박수 친다(石人點頭, 露柱拍手.)’는 등의 구절 모두 같은 맥락이다.
  89. 89)니우泥牛는 분별이나 번뇌를 비유하는 말. 두 마리 니우가 물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범凡·성聖이나 시是·비非와 같이 두 가지 상대를 오로지 차별적으로만 보는 이변 대대의 분별적 관념이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90. 90)어림짐작이나 분별로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몰종적沒蹤跡·단소식斷消息의 경계를 표현한 말이다.
  91. 91)백운 경한은 조정의 부름에 겸허하게 거절하는 뜻을 내비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선사로서 자신의 본분사를 이루고 싶은 큰 포부 내지는 그의 담백한 선풍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莊子』 「人間世」의 산목散木과 문목文木의 비유를 연상케 한다. 쓸모없는 나무(散木)와 재목으로서 훌륭한 나무(文木) 중에 오히려 쓸모가 없는 산목이 장수를 누리며 나무로서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역설적 이야기이다. 또 같은 책 「逍遙遊」에는 나무를 다루는 목수조차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저樗나무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역시도 재목으로서 쓸모가 없어 도끼질당할 일도, 누군가 잘라 갈 일도 없지만 나무로서는 괴로움을 당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로, 백운의 이 게송에서 연상되는 비유이다.
  92. 92)연화봉 상祥 암주(蓮花峯祥菴主) : 연화상蓮華祥이라고도 한다. 송나라 때 스님으로 봉선심奉先深에게서 참구하여 법을 이었다. 평생 산속에 지내면서 산을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93. 93)깨달음의 경계에도 머무르지 않는 자재무애한 사람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주장자를 어깨에 메고 조금의 한눈도 팔지 않고 곧장 산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경계를 펼치는 삶을 뜻한다.
  94. 94)상 암주가 입적에 즈음하여 대중에게 설한 이야기이다. 여기(這裏)란 바로 암주 자신이 살아온 생애를 뜻한다. 그곳이 바로 시방세계이자 바로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는 뜻을 표현한 말이다. ‘천봉만봉, 무수한 봉우리 깊은 산속으로 가노라.’라고 한 말은 입적이 별다른 곳으로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좌선坐禪 그 자체임을 말해 준 것이다. 『聯燈會要』 권27(X79, 236a9), 『碧巖錄』 25則(T48, 165c8), 『大慧語錄』 권8(T47, 845a18) 참조.
  95. 95)태원 부孚 상좌(太原孚上座) : 당말 오대唐末五代 때 스님. 출가 후 제방의 선지식을 찾아 유력하였고 설봉산의 설봉 의존을 찾아가 그 법을 이어받았다.
  96. 96)‘오엽五葉’은 달마의 전법게에서 비롯한 말. 선종禪宗이 후에 다섯 분파로 나뉘게 되리라는 예언으로 보는 해석도 있으나, 여기서는 달마 이후로 5대를 거쳐 육조에 이르기까지를 표현한 말로 보인다. 전해 주고 전해 받을 법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닌데 5대까지 거쳐 내려온 뜻이 있겠느냐는 반문인 동시에 둘째 수에서 읊은 것과 같이 바로 그와 같이 전해 준 법도 전해 받은 법도 없었기에 전해질 수 있었다(親傳親得)는 의미이다. 주 39 참조.
  97. 97)『汾陽無德語錄』 권상(T47, 599b14), “ ‘부처님께서는 달에 대해 말씀하시고 육조 혜능은 달을 가리켰다’고 한다. 달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라.(所以靈山話月, 曹溪指月. 月在什麽處? 與我指出看.)”
  98. 98)장졸張拙 상공의 게송의 한 구절.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 진실 그대로 드러난다는 뜻. 적체현성覿體現成·탈체현성脫體現成 등과 같은 뜻이다. 상권 주 533 참조.
  99. 99)『續傳燈錄』 권13 「靈山彥文傳」(T51, 550a19), “ ‘부처란 어떤 것입니까?’ ‘가장 친숙한 문제를 묻는구나.’라 하고 곧 ‘산은 푸르디푸르고 물은 맑디맑으며, 바람은 남쪽 봉우리에 드리운 구름에 불고 이슬은 동쪽 울타리에 핀 국화를 적시는구나. 게다가 추운 겨울에도 세한심을 간직한 소나무와 대나무로다. 이 모든 것이 줄 없는 거문고에서 나오는 곡조이건만, 푸른 눈의 달마대사도 박자를 맞추지 못하는구나, 박자를 맞추지 못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이라 하였다.(又問, ‘如何是佛?’ 師曰, ‘問得最親.’ 乃曰, ‘山靑靑水綠綠, 風吹南嶺雲, 露滴東籬菊. 更添松竹歲寒心. 盡是無絃琴上曲, 碧眼胡僧拍不足, 拍不足. 一二三四五六!’)”
  100. 100)가재도구(家火) : 집에서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불. 이로부터 뜻이 확장되어 집안 살림에 필요한 가재도구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101. 101)주장자 가로~암자로 들어가려니 : 주 93 참조.
  102. 102)무착 문희無着文喜가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과 나눈 문답에서 비롯한 구절. 이 공안을 ‘문수전후삼삼文殊前後三三’·‘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이라 한다. ‘三三’은 3 곱하기 3과 같으므로 9가 되며 9는 만수滿數로서 극치를 상징하는 수이자 무수無數함을 나타낸다. 이런 뜻에서 문수가 말한 삼삼은 앞뒤로 대중이 가득 들어찼다는 말로서 ‘삼삼森森’과 통한다. 그러나 이 공안의 핵심은 ‘불법은 대중의 수에 달린 것이 아니다.’, ‘수량으로 측정할 수 없는 불법의 근본 뜻을 제시한 것이다.’와 같은 분별을 불살라 없애는 데 있다. 『碧巖錄』 35則(T48, 173b29), “문수가 무착에게 물었다. ‘최근 어디를 떠나 여기에 왔는가?’ ‘남방입니다.’ ‘남방의 불법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말법시대여서 계율을 받드는 이들이 적습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가?’ ‘삼백 내지 오백 정도입니다.’ 이번에는 무착이 문수에게 물었다. ‘이곳에서는 불법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습니까?’ ‘범부와 성인이 함께 거하고 용과 뱀이 섞여 살고 있다.’ ‘그 수가 얼마나 됩니까?’ ‘앞에 삼삼, 뒤에 삼삼.’(文殊問無著, ‘近離什麽處?’ 無著云, ‘南方.’ 殊云, ‘南方佛法, 如何住持?’ 著云, ‘末法比丘, 少奉戒律.’ 殊云, ‘多少衆?’ 著云, ‘或三百或五百.’ 無著問文殊, ‘此間如何住持?’ 殊云, ‘凡聖同居, 龍蛇混雜.’ 著云, ‘多少衆?’ 殊云, ‘前三三後三三.’)”; 『頌古聯珠通集』 권27(X65, 640c22~641a13); 『禪門拈頌說話』 1436則(H5, 913b7) 참조.
  103. 103)푸르스름한 등불(靑燈) : 푸른빛의 등. 이로써 고즈넉하고 빈한한 생활을 표현한다.
  104. 104)납의 걸치고~뒤집어쓴 채(衲衣蒙頭) : 납피몽두納被蒙頭라고도 한다. 추운 겨울에 이불이나 천 등을 머리에까지 뒤집어쓰고 좌선坐禪하던 데에서 나온 말. 달마대사의 좌상坐像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로부터 좌선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며, 외부와 차단한다는 뜻도 있다.
  105. 105)평온무사하여 모든 대상에 대한 분별이나 망상이 사라진 경계. 『信心銘』(T48, 376b26), “한결같이 마음 평온하니, 자취도 없이 절로 다 사라지네.(一種平懷, 泯然自盡.)”; 『眞心直說』 「眞心妙體」(T48, 1000a20), “한결같이 마음 평온하니, 터럭 끝만큼의 티나 흐릿하게 가림도 없네. 모든 산하대지와 초목총림과 삼라만상 그리고 온갖 더럽고 깨끗한 법이 모두 이로부터 나온다네.(一種平懷, 無纖毫瑕翳. 一切山河大地, 草木叢林, 萬象森羅, 染淨諸法, 皆從中出.)”
  106. 106)『景德傳燈錄』 권5 「司空本淨傳」(T51, 243b18), “진실을 미루어 밝히고자 해도 진실은 그 상相이 없고, 망념의 본질 헤아려 궁구하려 해도 망념은 형체가 없네. 밝히고 궁구하는 마음 돌이켜 관찰하면, 마음 또한 가명假名임을 알리라. 도道 또한 이와 같음을 알고 나니, 결국에는 단지 이뿐이로구나.(推眞眞無相, 窮妄妄無形. 返觀推窮心, 知心亦假名. 會道亦如此, 到頭亦只寧.)”; 『淸虛集』 「祖師心要」(H7, 702b23), “그러므로 진실과 망념 그리고 얻었다거나 잃었다고 여기는 차별된 견해 모두 망상일 뿐임을 알아야 하리니, 그것은 마치 저 연야달다가 어리석게 날뛰었던 마음과 같다. 망념이 있기 때문에 진실로써 망념을 대치하는 줄 알아야 한다. 망념의 본질을 헤아려 궁구해 보면 망념의 본질은 본래 없거늘 어떻게 얻을 수 있는 진실이 있겠는가? 만약 진실과 망념 중 어느 하나도 얻을 수 없다는 도리를 안다면, 얻을 것이 없다는 바로 그 도리 또한 얻을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이렇게 안다면 아주 먼 과거부터 이름이 실재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상에 집착해 왔던 병통이 그 자리에서 봄날 얼음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故知眞妄得失之見, 但自妄想, 如彼發狂也. 當知爲有妄故, 將眞治妄. 推窮妄性, 妄性本無, 何有眞可得? 若知眞妄一無所得, 知無所得者, 亦無所得也. 如是則平昔認名執相之患, 當下氷銷矣.)”
  107. 107)‘달마는 동토에 오지 않았고, 2조는 서천에 가지 않았다(達磨不來東土, 二祖不往西天.)’라는 상용구와 통한다. 진실한 불법에는 전할 법도, 구할 법도 없다는 의미이다.
  108. 108)높은 것은 높은 그대로 낮은 것은 낮은 그대로, 긴 것은 긴 그것 그대로 짧은 것은 짧은 그것 그대로 진실을 구현하고 있다는 맥락이다. ‘오리 다리를 늘이고 학 다리를 잘라서는 안 된다.(不可續鳧截鶴)’, ‘소나무는 곧은 대로 가시나무는 구부러진 대로 각각에 진실이 드러나 있다.(松直棘曲)’, ‘산은 산이요 물은 물(山是山水是水)’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맥락과 같다. 『無準師範語錄』 권5 「高下隨宜」(X70, 267a2), “큰 나무, 작은 나무, 긴 가지, 짧은 가지 있지만, 꽃은 때를 따라 그에 맞는 곳에 피어나네. 세세한 풍취조차 모두 미묘하니, 이리저리 쓸리고 넘어져도 좋구나.(樹有高低枝短長, 花開隨處恰相當. 都緣妙得毫端趣, 豎抹橫拖總不妨.)”
  109. 109)『老子』의 다음 구절을 취한 말. 『老子』 25장, “뒤섞인 그 무엇이 천지보다 앞서 생겨났다.(有物混成, 先天地生.)”
  110. 110)『金剛經』(T8, 752b28). 상권 주 69 참조.
  111. 111)늙은이(老古錐) : 송곳은 본래 날카로운 물건이지만 오래되면 그 날카로움을 잃고 무디게 된다. 늙어서 예리한 기봉機鋒을 잃어버린 사람 또는 예리한 기봉은 다소 없으나 원숙한 종사宗師를 비유하기도 한다. 늙은 스승을 애정을 담아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112. 112)『從容錄』 73則(T48, 256c5), “사대思大 선사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나의 한입에 남김없이 삼켰으니, 어디에 또다시 제도할 중생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는 물 한 방울 샐 틈도 없이 틀어막는 수법이니, 범부의 길도 성인의 길도 모두 끊어진 경계를 나타낸다.(思大云, ‘三世諸佛, 被我一口吞盡, 何處更有衆生可度!’ 此水洩不通, 凡聖路絕也.)”; 『景德傳燈錄』 권27(T51, 435a15) 참조.
  113. 113)『楞嚴經』 권2(T19, 111c25), “모든 중생이 무시이래로부터 외물에 미혹되어 본심을 잃어버리고 외물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이 중에서 크다고 보기도 하고 작다고 보기도 하는 것이다. 외물을 움직일 수 있다면 여래와 같으리니, 심신이 밝고 뚜렷하여 도량을 움직이지 않고도 한 터럭 끝에 시방세계의 국토를 두루 품어 들이리라.(一切衆生, 從無始來, 迷己爲物, 失於本心, 爲物所轉, 故於是中觀大觀小. 若能轉物, 則同如來, 身心圓明, 不動道場, 於一毛端, 遍能含受十方國土.)”; 『大慧語錄』 권11(T47, 856c15), “외물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여래와 같으리라. 쯧쯧, 부처님께서 어리석은 자들을 속이시다니.(若能轉物, 卽同如來. 咄哉, 瞿曇誑諕痴獃.)”
  114. 114)진실을 꿰뚫어~하나의 눈(一隻頂門眼) : 일척안一隻眼·정문안頂門眼·정안正眼·활안活眼과 같은 말. 두 개의 육안肉眼과 구별하여 제삼의 눈이라고도 한다. 진실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안목 또는 그러한 뛰어난 식견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115. 115)유상신有相身은 차별상을 떠난 무상신無相身과 반대되는 말이지만, 선禪 문헌에서는 유상有相·무상無相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유상신 가운데 무상신이 있고 무상신 가운데 유상신이 있다는 선적禪的 사유와 통찰을 제시한다. 『景德傳燈錄』 권12 「魯祖敎傳」(T51, 298b9), “ ‘쌍림수의 일(부처님의 열반)은 어떤 것입니까?’ ‘상이 있는 몸 안에 상이 없는 몸이 있다.’ ‘상이 있는 몸 안에 상이 없는 몸이 있다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황금 향로 아래에 그것을 바치고 있는 쇠로 조각된 곤륜노崑崙奴이다.’(問, ‘如何是雙林樹?’ 師曰, ‘有相身中無相身.’ 曰, ‘如何是有相身中無相身?’ 師曰, ‘金香爐下鐵崑崙.’)”; 『圜悟語錄』 권2(T47, 719b27), “깨달음 이후의 수행을 한 구절로 어떻게 말해야 할까? 터럭 끝만큼이라도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무상의 광명 속에서 늘 자재하리라.(長養聖胎一句作麽生道? 不起纖毫修學心, 無相光中常自在.)”; 『無異元來廣錄』 권20 「淨土偈」(X72, 315a22), “청정한 마음이 곧 서방정토라. 무상의 광명 가운데 차별상 있는 몸 있네. 마음에 번뇌 끌어들여 괴이한 짓거리하니, 누가 나이고 누가 남인가.(淨心卽是西方土. 無相光中有相身. 心境牽纏成鬼戲, 誰爲我也孰爲人.)”
  116. 116)『論語』 「述而」, “공자가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숨긴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子曰, ‘二三子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117. 117)성인 경지에~범부 초월해도(入聖超凡) : 초범입성超凡入聖·전범성성轉凡成聖·전범입성轉凡入聖이라고도 한다. 전미개오轉迷開悟의 뜻. 범부의 경계를 초월하여 성현의 지위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118. 118)위의威儀 : 위엄 있는 몸가짐. 사람들로부터 공경심을 일으키는 모습. 수행자로서 일상의 생활에서 올바른 행동거지를 수행하는 것.
  119. 119)‘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되묻는 방법은 조사선의 선법에서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자신의 본성이 아미타불이라는 생각에 근거하여 간단없이 화두를 참구하듯이 자성의 아미타불을 염하면서 ‘염불하는 자는 누구인가?’라고 의심하는 방법이 제시된다. 『趙州語錄』 古尊宿語錄13(X68, 80c17), “조주가 대중에게 ‘한가하게 세월을 보내서는 안 되니 염불하고 염법念法하라.’고 하자 어떤 학인이 물었다. ‘저의 자신을 염한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염하는 당사자는 누구인가?’ ‘상대할 짝이 없습니다.’ 이에 조주가 ‘이 나귀 같은 놈아!’라고 질책했다.(師示衆云, ‘不得閑過, 念佛念法.’ 僧乃問, ‘如何是學人自己念?’ 師云, ‘念者是誰?’ 學云, ‘無伴.’ 師叱, ‘者驢!’)”
  120. 120)몽산蒙山 : 원나라 때 스님. 법명은 덕이德異(1231~?). 고균古筠 비구라고도 불린다. 강서성江西省 고안高安 출신. 고섬 여형孤蟾如瑩, 허당 지우虛堂智愚 등을 찾아가 법을 배웠고 복주福州 고산鼓山에서 환산 정응皖山正凝에게서 깨달음을 인가받아 법을 이었다. 1290년에 『六祖壇經』을 재편再編하여 유포하는 데 힘썼다. 이를 일반적으로 덕이본德異本이라 한다.
  121. 121)근본적 도리를 깨달은 사람(箇中人) :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 그동안의 사정이나 도리를 잘 아는 사람. 또는 근본적 도리를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122. 122)구호口號 : 고시古詩의 표제標題 중 하나. 즉석에서 시를 지어 읊거나 글로 써서 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 전달하는 형식에 붙이는 표제.
  123. 123)흔히 ‘코끼리 지나간 자리에 여우 발자취 끊어진다.(象王行處絶狐蹤)’라는 구절과 짝을 이루어 쓰인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거하는 곳에 어리석은 이들은 범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124. 124)자안慈眼 : 관세음보살을 이름. 『法華經』 권7 「觀世音菩薩普門品」(T9, 58b1), “일체공덕을 구족하고, 자비로운 눈길로 중생을 보살피고, 복덕이 바다와 같이 무량하니, 마땅히 머리 숙여 예를 올릴지어다.(具一切功德, 慈眼視衆生, 福聚海無量, 是故應頂禮.)”
  125. 125)비릉毗陵 : 옛 지역 이름.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상주시常州市 일대. 『法華經玄籤證釋』 권1(X28, 558a2), “비단은 즉 비릉을 가리킨다. 진秦나라 때는 연릉, 진晉나라 때는 비릉, 동진 때는 진릉, 수·당·송 대에는 상주라 하였다.(毗壇卽毗陵. 秦曰延陵, 晉曰毗陵, 東晉曰晉陵, 隋唐宋曰常州.)”
  126. 126)육조 혜능이 오조五祖 문하에 들어가 8개월여 디딜방아를 찧었는데, 방아를 밟다가 삼매에 들어 방아 찧던 다리를 떼지 못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를 가리켜 ‘석실도대石室蹈碓’ 또는 ‘석실답대石室踏碓’라 하는데, 혜능을 석실행자라 부르던 데서 만들어진 말이다. 위 시의 이 구절은 선禪 수행은 좌선이나 간경看經에 한정되지 않으며 일상을 떠나지 않는다는 뜻을 보여 주는 혜능의 이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127. 127)돌절구에서 꽃이 피었느니라(碓觜生花) : 대碓는 발로 디뎌 밟는 디딜방아, 자觜는 그 디딜방아에서 빻은 가루가 나오는 입구를 가리킨다. 방아에서 빻은 가루가 나오는 것을 꽃이 피어나는 것에 견주어 생명이 없는 것에서 생명이 태어난다는 뜻을 담은 말이다. ‘천화생대자千華生碓觜’라고도 하며, ‘고목에서 꽃이 핀다.(枯木生花)’는 말과 같다. 생각이나 말로는 알 수 없는 단적인 경계를 뜻한다.
  128. 128)금린이 그물~나오기 바라서이네(透網金鱗) : 삼성 혜연三聖慧然과 설봉 의존雪峰義存이 서로의 견지를 펼쳐 보인 문답에서 나온 말. 『碧巖錄』 49則(T48, 184c11), “삼성이 설봉에게 물었다. ‘그물을 뚫고 달아난 황금빛 잉어는 무엇을 먹이로 삼습니까?’ ‘그대가 그물을 뚫고 나오는 순간 바로 말해 주겠다.’ ‘천오백 학인을 이끄는 선지식께서 이야기의 핵심도 모르시는군요.’ ‘노승은 주지 소임이 번거롭다.’(三聖問雪峯, ‘透網金鱗, 未審以何爲食?’ 峯云, ‘待汝出網來, 向汝道.’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 話頭也不識.’ 峯云, ‘老僧住持事繁.’)”
  129. 129)야보 도천冶父道川의 게송 구절과 비슷하다. 『金剛經五家解說誼』 권하(H7, 101a7), “천 척 낚싯줄 곧게 드리우니, 한 물결 일 때마다 모든 물결 따라 이누나. 밤 고요하고 물 차가워 고기 물지 않으니, 빈 배 가득 달빛만 싣고 돌아오노라.(千尺絲綸直下垂, 一波纔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130. 130)『華嚴經』 권2 「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T10, 668b28), “해가 허공에 떠서 광명이 항상 비치듯이 부처님의 지혜 또한 이와 같아서 삼세의 모든 어둠을 거두신다네.(如日處虛空, 光明恒遍照, 佛智亦如是, 能除三世暗.)”
  131. 131)『證道歌』(T48, 395c22), “여섯 종류의 신묘한 작용은 공이면서 공이 아니요, 한 덩이 원만한 광명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다.(六般神用空不空, 一顆圓光色非色.)”
  132. 132)『修心訣』(T48, 1006a20), “예전에 이견왕이 바라제존자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부처라 합니까?’ ‘성품을 본 이가 부처입니다.’……‘성품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품은 작용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기에 지금 보지 못합니까?’ ‘지금 작용하고 있으나 왕께서 보지 못하시는 것일 뿐입니다.……‘작용할 때는 몇 곳에서 나타납니까?’ ‘나타날 때는 여덟 곳에서 나타납니다.’ ‘그 여덟 곳을 나에게 설해 주시오.’ ‘태 안에 있으면 몸이라 하고 세상에 나오면 사람이라 하며,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고, 코에 있으면 냄새를 맡는다 하고 혀에 있으면 말을 한다 하고, 손에 있으면 붙잡으며 발에 있으면 걷습니다. 두루 나타나면 온 세계를 다 감싸 안으며 거두어들이면 하나의 티끌 속에 있습니다. 아는 자는 그것이 곧 불성인 줄 알지만 모르는 자들은 정혼이라 합니다.’(昔異見王, 問婆羅提尊者曰, ‘何者是佛?’ 尊者曰, ‘見性是佛.’……‘性在何處?’ 尊者曰, ‘性在作用.’ 王曰, ‘是何作用今不見?’ 尊者曰, ‘今見作用, 王自不見.’……‘若當用時幾處出現?’ 尊者曰, ‘若出現時, 當有其八.’ 王曰, ‘其八出現, 當爲我說.’ 尊者曰, ‘在胎曰身, 處世曰人, 在眼曰見, 在耳曰聞, 在鼻辨香, 在舌談論, 在手執捉, 在足運奔. 遍現俱該沙界, 收攝在一微塵. 識者知是佛性, 不識者喚作精魂.’)”; 『景德傳燈錄』 권3(T51, 218b18) 참조.
  133. 133)『楞嚴經』 권6(T19, 131a23), “번뇌 사라지고 깨달음 원만하게 청정해지면, 지극히 밝은 지혜의 광명이 온 세상을 남김없이 비추리라. 고요히 관조하며 허공 품고, 다시 돌아와 세간을 보노라니, 마치 꿈속의 일과 같네.(塵銷覺圓淨, 淨極光通達. 寂照含虛空, 却來觀世間, 猶如夢中事.)”
  134. 134)『證道歌』(T48, 396a26), “삼라만상의 그림자가 그 가운데 나타나니, 한 덩이 원만한 광명은 안도 밖도 없네.(萬象森羅影現中, 一顆圓光非內外.)”
  135. 135)『景德傳燈錄』 권29 「寶誌和尙十二時頌」(T51, 450b28), “닭이 우는 축시丑時에 대한 송:한 알의 둥근 빛(태양) 이미 밝아, 안팎으로 그 빛 받으면 찾아보지만 그 어디에도 없다네. 경계에서 움직이며 무수한 존재와 하나로 어울리지만, 머리도 보이지 않고 손도 볼 수 없구나.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그것은 소멸하지 않으리니, 아직 모르겠는 사람은 한마디 들어 보라. 바로 이렇게 지금과 같거늘 누가 입을 놀리는가?(鷄鳴丑:一顆圓光明已久, 內外接尋覓總無. 境上施爲渾大有, 不見頭又無手. 世界壞時渠不朽, 未了之人聽一言. 只遮如今誰動口?)”
  136. 136)육근과 육진(根塵) :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일체의 모든 상대되고 대립되는 것을 표현할 때 이 말을 쓴다. 근진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주主와 객客·인人과 경境 등의 대대 관계에서 벗어나 적연부동寂然不動한 상태가 되었음을 말한다.
  137. 137)존재하지 않는 것, 무익한 일을 ‘허공에서 새의 자취를 찾는다.’는 말에 비유한다. 『大般涅槃經』 권2 「壽命品」(T12, 377b5), “비유하자면 새의 자취가 공중에 남아 있을 리 없는 이치와 같이 무아라는 상을 닦고 익힌 이에게 어떤 견해가 남아 있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譬如鳥跡空中現者, 無有是處, 有能修習無我想者而有諸見, 亦無是處.)”
  138. 138)『荀子』 「修身」, “보고 들어 많이 아는 것을 한閑이라 하고, 그 견해가 적은 것을 누陋라 한다.(多見曰閑, 少見曰陋.)”
  139. 139)‘이구 온보李玖溫甫의 서序’에서도 언급된 인물.
  140. 140)『禪門拈頌說話』 256則 본칙에 귀종 지상歸宗智常과 학인이 일미선을 소재로 나눈 공안이 실려 있고 그 본칙 설화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禪門拈頌說話』 256則(H5, 242a7), “옛사람이 말하였다. ‘눈앞에 미세한 티끌 하나도 아른대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만이 쓸쓸하도다. 담담함 가운데 숨은 맛을 그대는 아는가? 이것이 바로 장로의 일미선이라네.’ 또 옛사람이 ‘해인삼매 가운데 삼종세간이 드러나니, 삼종세간이 모두 다함이 없구나. 다함없는 본성의 바다가 한맛을 머금었으나, 그 한맛 또한 침몰시키는 것이 나의 선禪이다. 그런즉 한맛조차 던져 버리는 것이 바로 장로의 일미선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장로가 말한 그 일미선이다.(古人云, ‘不見纖塵到眼前, 淸風明月兩蕭然. 淡中有味君知否? 箇是長蘆一味禪.’ 又古人云, ‘海印定中三種現, 三種世間皆無盡. 無盡性海含一味, 一味尙沉是我禪. 則一味尙沈處, 是長蘆一味禪也.’ 此是長蘆所謂一味禪也.)” 귀종의 일미선 공안에 대해서는 『宛陵錄』 古尊宿語錄3(X68, 19a21), 『雪竇語錄』 권2(T47, 683c1) 등 참조.
  141. 141)나옹대懶翁臺 : 『牧隱集』 「金剛山潤筆菴記」, “금강산에 선주암이 있는데, 절에 사람이 살지 않은 지 근 30년이 되었다. 보제존자 나옹이 하안거를 지내면서 돌을 쌓아 대를 만들었는데 주위의 뭇 봉우리들이 내려다보였다. 사람들이 이 대를 나옹대라 불렀다.(金剛山善住菴, 有屋無人者, 近三十年. 普濟居一夏, 累石爲臺, 俯視衆峯. 人稱之曰懶翁臺.)”
  142. 142)무사無事·무심無心의 경지를 구름이 떠다니고 물이 흐르는 자연현상에 비유하여 제시하였다. 『大川普濟語錄』(X69, 764c22), “법좌에 올라앉아 ‘담쟁이덩굴은 줄줄이 이어져 소나무 꼭대기까지 올라타고, 흰 구름은 티 없이 고요히 떠다니며 드넓은 하늘에 출몰한다.’라고 말했다. 【주장자를 잡고】 ‘국사가 오셨다, 오셨어.’라고 한 다음 【올렸다가 내려치면서】 ‘길은 평탄한 곳에서 험해지고, 사람은 고요한 곳에서 바쁘다.’라고 말했다.(上堂, ‘靑蘿夤緣, 直上寒松之頂, 白雲澹泞, 出沒太虛之中.’ 【拈拄杖】 ‘國師來也來也.’ 【卓一下】 ‘路從平處險, 人向靜中忙.’)”; 『五燈全書』 권25 「大潙慕喆章」(X81, 636b7), “흰 구름은 티 없이 고요히 떠다니며, 강물은 바다로 흐른다. 모든 존재가 본래 한가롭거늘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白雲澹泞, 水注滄溟. 萬法本閒, 復有何事!)”; 『聯燈會要』 권3 「光宅慧忠章」(X79, 33b7); 『黃龍慧南語錄』(T47, 637c28); 『法演語錄』 권하(T47, 664b5) 참조.
  143. 143)『黃龍慧南語錄』(T47, 633a5), “높디높은 산 위의 구름은 저절로 걷히고 저절로 펼쳐지거늘 무엇과 가깝고 무엇과 멀단 말인가! 깊디깊은 골짜기 물은 굽은 계곡을 만나면 돌아서 흐르고 곧은 계곡을 만나면 똑바로 흐를 뿐 저곳과 이곳을 구분하여 흐르지 않는다.(高高山上雲, 自卷自舒, 何親何疎! 深深澗底水, 遇曲遇直, 無彼無此.)”; 『修心訣』(T48, 1008a20), “모든 시각 중에 하나하나가 이와 같으니, 흡사 빈 배가 물결을 탈 때 그 흐름에 따라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과 같다. 또한 마치 흐르는 물이 산을 감돌 때 굽은 계곡을 만나면 돌아서 흐르고 곧은 계곡을 만나면 똑바로 흐를 뿐 마음마다 분별이 없는 것과 같다.(一切時中, 一一如是, 似虛舟駕浪, 隨高隨下. 如流水轉山, 遇曲遇直, 而心心無知.)”
  144. 144)『紫柏老人集』 권9(X73, 217c16), “만물은 본래 한가한데 시끄럽게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무슨 일이 있겠는가!(萬物本閒, 鬧之者人耳. 人而不鬧, 天下何事!)”; 『聯燈會要』 권3 「光宅慧忠章」(X79, 33b7); 『圜悟心要』 권2(X69, 472a13) 참조.
  145. 145)『建中靖國續燈錄』 권12 「寶覺祖心章」(X78, 715a1),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대상 경계를 버리지만 마음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의 집착을 잊지만 대상 경계는 버리지 못한다. 마음이나 대상 경계가 본래 여여하여 눈에 들어오거나 마주치는 어떤 인연이거나 아무런 장애가 없음을 알지 못해서이다.’(上堂云, ‘愚人除境不除心, 智者忘心不忘境. 不知心境本如如, 觸目遇緣無障礙.’)”
  146. 146)보임保任 :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줄임말. ‘보保’는 ‘잘 보호하여 지키다.’라는 뜻이고, ‘임任’은 ‘등에 지다.’라는 뜻이다. 잘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것,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선종에서는 주로 견성見性한 뒤에 그것을 잘 함양하여 운용하는 것을 말한다.
  147. 147)같은 스승 아래서 공부(同參) : 동문同門·법속法屬·법권法眷·법친法親·법연法緣·도우道友·도구道舊 등과 같은 말이다.
  148. 148)종승宗乘 : 달마 이래로 이어져 온 선종의 근본 취지. 선禪의 극치로 실어 나르는(乘) 종지를 가리킨다.
  149. 149)종승宗乘 중의 일(宗乘事) : 본분사本分事와 같은 뜻.
  150. 150)인간과 천상~이끄는 지도자(人天眼目) : 일반적으로 선종의 종지를 깨닫고 학인을 지도할 지위에 도달한 선사를 가리킨다.
  151. 151)인재들(桃李) : 복숭아와 자두. 인재를 비유한다.
  152. 152)풍류를 값싸게 팔지(賤賣風流) : 높은 품격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한다는 말. 자신이 터득한 심오한 경지를 중생의 입장에서 쉽게 펼친다는 뜻이다.
  153. 153)이만 줄이고(不宣) : 하나하나 상세히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편지 끝에 상투적으로 붙이는 말. 바로 앞에서 ‘한번 웃어넘기십시오.(一笑)’라고 한 말도 자신의 편지를 소중히 여길 것 없다는 겸손의 뜻이다.
  154. 154)삼가 올립니다(拜上) : 앞의 말과 마찬가지로 편지 끝에 붙이는 인사말.
  155. 155)『원각수증의圓覺修證儀』 : 『원각경도량수증의圓覺經道場修證儀』를 가리킨다. 실제적 수행과 종교적 행사에서 지켜야 할 참회멸죄懺悔滅罪의 법과 좌선관법坐禪觀法의 작법作法 차례를 밝히고, 이하에서는 각종 악업을 참회하고 여러 부처에 귀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56. 156)나무라지는 마십시오(休罪) : 나무라지 마라 또는 잘못이라고 여기지 말라는 뜻.
  157. 157)『圓覺經』(T17, 916b14) 참조.
  158. 158)『長阿含經』 권2(T1, 15c18) 참조.
  159. 159)양문공楊文公 : 양억楊億(974?~1020?). 송나라 때 거사居士. 자는 대년大年. 시호는 문文. 광혜 원련廣慧元璉과 수산 성념首山省念 등에게서 참구하였고 원련의 법을 이어받았다. 진종眞宗의 칙명을 받고 이유李維·왕노王瑙 등과 함께 『景德傳燈錄』을 재정裁定하고 그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160. 160)장무진張無盡 : 장상영張商英(1043~1121). 송나라 때 정치가. 자는 천각天覺. 호는 무진거사無盡居士. 시호는 문충文忠. 1091년에 여산廬山의 동림 상총東林常總을 찾아가 만났으며 소식蘇軾과도 교유하였다. 황룡파黃龍派의 도솔 종열兜率從悅, 회당 조심晦堂祖心, 각범 덕홍覺範德洪, 진정 극문眞淨克文 등의 선승들과도 교유하였으며 특히 원오 극근圜悟克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宗門武庫』(T47, 952c1) 참조.
  161. 161)동림 상총東林常總(1025~1091) : 출가 후 황룡 혜남黃龍慧南 밑에서 근 20년을 참구하여 득법하였다. 후에 강소성江西省 강주江州 동림사東林寺로 옮겨 거하였다. 광혜선사廣慧禪師, 조각선사照覺禪師 등의 호를 하사받았다.
  162. 162)운사運使 : 고대의 관명官名. 수륙운사水陸運使, 전운사轉運使, 염운사鹽運使 등을 간략하게 부르는 칭호.
  163. 163)한문공韓文公 : 한유韓愈(768~824). 당나라의 문인·정치가. 자는 퇴지退之. 배불론排佛論을 선구적으로 펼쳐 이후 불교 비판의 초석을 다졌다. 형부시랑刑部侍郞 자리에 있을 때 올린 상소문 「論佛骨表」에 그러한 생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164. 164)대전 보통大顚寶通(732~824) : 석두 희천石頭希遷의 법을 이어받았다.
  165. 165)한유가 815년에 헌종憲宗에게 「論佛骨表」를 올렸다가 노여움을 사서 조주 자사로 좌천되어 가 있을 때, 대전 보통大顚寶通을 찾아가 문답을 나누다가 대전의 침묵(良久)과 그 시자인 삼평 의충三平義忠과의 기연機緣에서 깨달음을 얻은 일. 이 공안을 ‘대전양구기연大顚良久機緣’이라고 한다. 『聯燈會要』 권20 「三平義忠章」(X79, 171b12), “시랑 문공 한유:한문공이 조주에 좌천되어 있을 때 짬이 있는 날 대전을 찾아와서는 ‘저는 군주軍州의 일이 많아 바쁘오니 핵심이 되는 내용을 스님께서 한마디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청하였다. 대전이 아무 말 없이 기대어 앉아 있자 한문공은 어찌할 줄 몰랐다. 그때 삼평 의충이 대전의 시봉을 드느라 곁에 있다가 선상을 세 번 두드렸다. 이 소리를 듣고 대전이 돌아다보며 ‘무슨 뜻이냐?’라고 물으니 삼평은 ‘먼저 선정禪定으로 번뇌의 뿌리를 흔들어 놓고, 다음에 지혜로써 뽑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한문공이 절을 올리며 말했다. ‘화상의 문풍門風이 높고 험준하여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제가 시자에게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侍郎文公韓愈:公鎭潮州, 暇日謁大顚, 問, ‘弟子軍州事多, 省要處, 乞師一言.’ 顚據坐, 公罔措. 時三平義忠禪師侍立, 乃敲繩床三下. 顚回顧云, ‘作麽?’ 忠云, ‘先以定動, 後以智拔.’ 公作禮云, ‘和尙門風高峻, 弟子, 於侍者邊, 得箇入處.’)”
  166. 166)배휴裴休(797~870) : 하동대사河東大士라고도 하며 흔히 배상국裴相國·배상공裴相公·배공裴公 등으로 불린다. 규봉 종밀圭峯宗密에게서 화엄을 배웠으며, 황벽 희운을 자신의 임지 내의 용흥사龍興寺나 개원사開元寺에 맞아들여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문답하였다. 그 문답을 『宛陵錄』으로 만들어 황벽의 선禪을 널리 세상에 알리는가 하면 황벽의 어록을 모은 『傳心法要』를 편찬하기도 했다.
  167. 167)심담실상深談實相. 진실 그대로의 실상을 남김없이 설하다. 실상實相은 제법실상諸法實相·진여眞如와 같은 뜻이다.
  168. 168)대혜의 다음 글과 전체적인 내용이나 전개가 비슷하다. 『大慧語錄』 권21 「示徐提刑」(T47, 899c26), “예전에 이문화 도위는 부귀한 가운데서도 선禪을 참구하여 철저하게 대오하였고, 양문공은 참선할 때 한림의 신분이었으며, 장무진은 참선할 때 강서의 전운사였다. 이 세 분 대로大老는 세간의 상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진실 그대로의 상을 말씀하신 모범이다. 어찌 일찍이 처자식을 버리고 관직도 그만둔 채 풀뿌리나 씹으며 몸과 마음을 수고롭게 괴롭히며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을 찾아 메마른 선과 귀신 굴속에 들어가 망상을 일으켜 도를 깨달았겠습니까!(昔李文和都尉, 在富貴叢中, 參得禪大徹大悟;楊文公參得禪時, 身居翰苑;張無盡參得禪時, 作江西轉運使. 只這三大老, 便是箇不壞世間相, 而談實相底樣子也. 又何曾須要去妻孥, 休官罷職咬菜根, 苦形劣志, 避喧求靜, 然後入枯禪鬼窟裏作妄想方得悟道來!)”
  169. 169)『金剛經』(T8, 752b3) 참조.
  170. 170)한쪽만 보는 자(擔板漢) : 한쪽 어깨에 널빤지를 메고 있어 다른 한쪽을 보지 못하는 사람.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는 사람. 견해가 한편으로 치우친 사람을 비유한다.
  171. 171)축융祝融 : 화신火神. 남방南方과 여름철을 주관하는 신. 불 자체나 화재를 가리키기도 한다.
  172. 172)화룡火龍 : 온몸에 불을 두르고 있다는 전설상의 용.
  173. 173)사령운謝靈運(385~433) : 남북조시대 시인. 사강락謝康樂이라고도 불린다.
  174. 174)『法華經』 권6 「法師功德品」(T9, 50a18), “여래께서 멸도하신 후에 이 경을 수지하고서 독송하며 해설하고 서사한다면 천이백억 공덕을 얻으리라.……설한 모든 법이 그 의취義趣를 따르니, 실상과 위배되지 않는다. 속세의 경서나 세상을 다스리는 언어나 생업을 도모하는 일 등 어느 것을 설하더라도 정법에 맞으리라.(如來滅後, 受持是經, 若讀若誦, 若解說, 若書寫, 得千二百意功德.……諸所說法, 隨其義趣, 皆與實相, 不相違背. 若說俗間經書, 治世語言, 資生業等, 皆順正法.)”; 『法華經玄義』 권3(T33, 714b26), “세간에서 꾸려 가는 살림살이 일체가 실상과 위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治生產業, 皆與實相, 不相違背.)”
  175. 175)『龐居士語錄』 권상(X69, 134a22), “방거사가 게송으로 읊었다. ‘마음이 한결같으면 대상 경계 또한 그러하니, 진실(實)도 없고 거짓(虛)도 없어라.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없어도 얽매이지 않노라. 이는 성현이 아니라 본분사를 끝마친 범부의 경지로다.’(士有偈曰, ‘心如境亦如, 無實亦無虛. 有亦不管, 無亦不拘. 不是賢聖, 了事凡夫.’)”
  176. 176)『大慧語錄』 권26 「答趙待制」(T47, 924a24), “무시이래로부터 쌓인 번뇌의 인연은 얕고 반야의 인연은 깊은 자라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점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깊은 부분은 얕게 되도록 두고 얕은 부분은 깊게 되도록 두며, 날것은 익도록 두고 익은 것은 날것이 되도록 두며, 번뇌가 이는 무엇을 사량 분별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 애써 힘들여 해결하려 할 필요 없이 다만 그렇게 사량 분별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기관機關에 얽매이지 않고 활발하게 화두를 궁구하다 보면 한없이 힘을 덜고 또한 한없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공께서 다만 이렇게 끝까지 밀고 나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깨달을 날이 언제일지 기다리지 않는다면 홀연히 스스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若是無始時來, 塵勞緣淺, 般若緣深者, 有甚難會處? 但深處放敎淺, 淺處放敎深;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 纔覺思量塵勞事時, 不用著力排遣, 只就思量處, 輕輕撥轉話頭, 省無限力, 亦得無限力. 請公只如此崖將去. 莫存心等悟, 忽地自悟去.)”; 『圜悟心要』 권2 「示張直殿」(X69, 474a12), “익은 것은 날것이 되도록 두고 날것은 익도록 두기를 오래되면 대기와 대용을 얻을 것입니다.(但熟處放敎生, 生處弄令熟, 悠久得大機大用.)”
  177. 177)상권 주 414 참조.
  178. 178)상권 주 411 참조.
  179. 179)양나라 때 도홍경陶弘景의 시 ≺詔問山中何所有賦詩以答≻에 나오는 구절. “산중에 무엇이 있느냐 하오니, 산마루에 흰 구름 무수히 떠다닙니다. 저 홀로 즐길 뿐, 가져다드릴 수는 없군요.(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只可自怡悅, 不堪持贈君.)”
  180. 180)감사의 뜻을 전합니다(和南敬謝) : 화남和南은 산스크리트를 한역한 말로, 반제畔睇(伴題)·바남婆南·반담槃談(伴談) 등으로도 음사되고, 경례敬禮·공경恭敬 등으로 의역한다. 존경의 뜻을 표시하는 것, 또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하는 말이다.
  181. 181)만상 가운데~홀로 드러나 : 주 134 참조.
  182. 182)장경 혜릉長慶慧稜의 송 가운데 나오는 구절. 『景德傳燈錄』 권18 「長慶慧稜傳」(T51, 347b27), “만상 가운데 우뚝하니 홀로 드러난 몸, 오직 자신이 알아차리고 수긍해야 비로소 그와 하나가 되리라. 이전에는 착각하여 도중(수행)에서 찾았는데, 지금 보니 불 속의 얼음과 같구나.(萬象之中獨露身, 唯人自肯乃方親. 昔時謬向途中覓, 今日看如火裏氷.)”
  183. 183)자기 목숨을 버릴 경계(放身命處) : 일체의 모든 집착을 버린 경지.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진 경계. 『景德傳燈錄』 권11 「仰山慧寂傳」(T51, 283a9), “앙산이 제일좌에게 말했다. ‘선이라고도 생각하지 말고 악이라고도 생각하지 마라! 바로 이럴 때 어떠한지 말해 보라.’ ‘바로 이럴 때란 제가 목숨을 버릴 기회입니다.’(師謂第一坐曰, ‘不思善, 不思惡! 正恁麽時, 作麽生?’ 對曰, ‘正恁麽時, 是某甲放身命處.’)”
  184. 184)『圜悟心要』 권상 「示倫上人」(X69, 472c9), “나면서부터 석가이거나 자연히 이루어진 미륵불이란 있지 않다. 그 누가 어머니 배 속에서 깨달았단 말인가!(未有天生釋迦自然彌勒. 阿那箇在娘肚裏便會!)”
  185. 185)『證道歌』(T48, 396c6)에 나오는 구절. 언어 문자에 집착하여 정작 근원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말.
  186. 186)아무런 소득이 없는 일 또는 헛수고를 비유하는 말. 『華嚴經』 권13 「菩薩問明品」(T10, 68a25), “어떤 사람이 남의 재물을 세어도 자기 몫은 반 푼도 없는 것과 같다. 불법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많이 듣기만 하는 것 또한 이와 같다.(如人數他寶, 自無半錢分.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같은 책, 권5 「菩薩明難品」(T9, 429a3) 참조.
  187. 187)덕산 화상의 말이라고 하였으나, 마곡 보철麻谷寶徹과의 문답에서 양수良遂 좌주座主가 한 말이다. 『聯燈會要』 권7 「良遂座主章」(X79, 71c18) 참조.
  188. 188)향엄 지한香嚴智閑이 위산 영우潙山靈祐 회하에서 위산의 물음을 받고 궁구하던 끝에 한 말. 위산이 “그대가 평소에 배워 안 것이나 경권 등 책을 읽어 기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 그대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 동서도 분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를 한 구절로 말해 보라.(吾不問汝平生學解及經卷冊子上記得者, 汝未出胞胎未辨東西時, 本分事試道一句來.)”고 하였고 향엄이 자신의 생각을 몇 번 말했으나 모두 계합하지 못하였다. 『景德傳燈錄』 권11 「香嚴智閑傳」(T51, 283c29) 참조.
  189. 189)상권 주 365 참조.
  190. 190)상권 주 369 참조.
  191. 191)천경 초남~있을 것입니다 : 이 부분은 상권 「흥성사 입원소설」 60번 시중 내용과 동일하다.
  192. 192)『禪宗永嘉集』 「大師答朗禪師書」(T48, 394b2), “그러므로 먼저 도를 알고 나서 그런 뒤에야 산에 살아야 합니다. 도를 알지도 못하고서 먼저 산에 산다면 단지 그 산만 알고 필시 그 도는 잊을 것이며, 산에 살지 않으면서 먼저 도를 알면 단지 그 도만 알고 필시 그 산은 잊을 것입니다. 산을 잊으면 도의 본성이 심신만 편안케 할 것이고, 도를 잊으면 산의 형세가 눈을 어지럽힐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도만 알고 산을 잊는다면 세간사에 적막할 것이고, 산만 알고 도를 잊는다면 산중 생활이 시끄러울 것입니다.(是以先須識道, 後乃居山. 若未識道而先居山者, 但見其山, 必忘其道;若未居山而先識道者, 但見其道, 必忘其山. 忘山則道性怡神, 忘道則山形眩目. 是以見道忘山者, 人間亦寂也;見山忘道者, 山中乃喧也.)”
  193. 193)『大聖文殊師利菩薩讚佛法身禮』(T20, 937c6), “부처님은 항상 세간에 계시나, 세간법에 물들지 않으시네.(佛常在世間, 而不染世法.)”
  194. 194)『圓覺經略疏』 「序」(T39, 524a20), “생사의 흐름에 던져져 있어도 검은 용의 구슬은 바다에서 홀로 빛나고, 열반의 언덕에 걸터앉아 있으니 달은 푸른 하늘에서 홀로 밝게 빛난다.(處生死流, 驪珠獨耀於滄海;踞涅槃岸, 桂輪孤朗於碧天.)”; 『柏堂雅和尙語』 續古尊宿語要5(X68, 491b18), “생사의 흐름에 던져져 있어도 검은 용의 구슬은 바다에서 홀로 빛나고, 열반의 언덕에 걸터앉아 있으니 달은 푸른 하늘에서 홀로 밝게 빛난다. 이런 때가 되면 생사라는 두 글자가 어디에 붙어 있겠는가.(處生死流, 驪珠獨耀於滄海;踞涅槃岸, 桂輪孤朗於碧天. 當恁麽時, 生死兩字, 甚處安著.)”
  195. 195)수행하는 사람(蔬筍) : ‘소순蔬筍’은 나물과 죽순. 육식을 하지 않는 수행자를 대유代喩한 말.
  196. 196)넉넉하면 넉넉한~대로 이끄시며(隨家豊儉) : 본분에 상응하여 대한다는 뜻. 스승이 제자의 근기根機에 상응하여 지도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풍豊’은 방행放行을, ‘검儉’은 파주把住의 수단을 비유한다.
  197. 197)일을 이루려면 사소한 일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書經』 「旅獒」, “사소한 행위라도 신중히 하지 않으면 끝내 큰 덕에 누를 끼치고 마니, 아홉 길 산을 쌓으면서 한 삼태기 흙으로 인해 공을 이루지 못함과 같다.(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 『論語』 「子罕」, “배움은 비유하자면 산을 이루는 데 한 삼태기 흙을 더하지 않아 산을 이루지 못하고 중지하는 것도 내가 중지하는 것이며, 산을 이루고자 평지에 비록 고작 한 삼태기를 부은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나아감은 내가 나아가는 것과 같다.(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
  198. 198)『碧巖錄』 97則(T48, 221a5), “동산 화상은 일평생 절에 주석하였으나 토지신이 그를 찾으려 해도 발자취조차 볼 수 없었다. 하루는 공양간 앞에 누군가 쌀가루를 함부로 흩어 버린 것을 보고 동산이 이에 분별의 마음을 일으켜 ‘상주물을 어떻게 이와 같이 소홀히 하느냐!’라고 하여 토지신이 마침내 한 번 볼 수 있게 되어 절을 올렸다.(洞山和尙, 一生住院, 土地神覓他, 蹤跡不見. 一日厨前, 拋撒米麫, 洞山起心曰, ‘常住物色, 何得作踐如此!’ 土地神, 遂得一見, 便禮拜.)”; 『請益錄』 권하(X67, 504b8) 참조.
  199. 199)본분초료本分草料 : 본분의 식량. 본래인으로서 면목을 유지하기 위한 근본적인 가르침. 또는 스승이 제자를 궁극적 경지로 인도하는 수단.
  200. 200)용산龍山 : 당나라 때 스님. 호남성湖南省 담주潭州 출신. 마조 도일의 법을 이어받았다. 일평생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201. 201)동산 양개洞山良价와의 문답에서 용산이 읊은 송 가운데 한 구절. 『景德傳燈錄』 권8 「潭州龍山傳」(T51, 263a27), “동산이 다시 용산에게 물었다. ‘화상께서는 어떤 도리를 보셨기에 이 산에 주석하고 계십니까?’ ‘진흙 소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구나.’ 용산이 게송으로 다시 말했다. ‘이제껏 초가삼간에 사노라니, 한 줄기 신령한 빛에 모든 경계가 한가롭구나. 시비를 따지며 나를 분변하려 들지 말지니, 덧없는 일생 동안 분별로 천착한들 본질과는 관련 없다네.’(洞山又問, ‘和尙見箇什麽道理, 便住此山?’ 師云, ‘我見兩箇泥牛鬪入海, 直至如今無消息.’ 師因有頌云, ‘三間茅屋從來住, 一道神光萬境閑. 莫作是非來辨我, 浮生穿鑿不相關.’)”
  202. 202)노숙老宿 : 수행한 경력이 오래되고 덕이 높은 스님을 존칭하는 말.
  203. 203)장사 경잠長沙景岑의 말. 백장간두百丈竿頭라고도 한다. ‘백척’이란 100이라는 숫자에 해당하는 높이가 아니라 더 이상이 없는 가장 큰 수 곧 만수滿數를 나타내며, ‘간두’는 그러한 높이를 가진 장대의 꼭대기를 가리킨다. 고요함의 극치를 나타내지만 이곳에 머물기만 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속박에 불과하므로 한 발 더 나아가서 모든 세계에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다. 『景德傳燈錄』 권10 「長沙景岑傳」(T51, 274b7), “백척간두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비록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기는 하였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백척간두에서 반드시 한 발 더 나아가 시방의 세계에 온몸을 드러내야 한다.(百丈竿頭不動人, 雖然得入未爲眞. 百丈竿頭須進步, 十方世界是全身.)” 마지막 구절 ‘是全身’은 문헌에 따라 ‘現全身’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더 적절하다.
  204. 204)『應菴曇華語錄』 권7 「示湛禪人」(X69, 534a20), 『宗範』 권상(X65, 317b1) 등에 응암 담화應菴曇華가 백운 수단白雲守端의 말이라고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은 자신이 가르침을 내려 줄 사람들을 의미한다. 『白雲守端語錄』 권상(X69, 294c10), “여기에 이르면 반드시 깨달아야 하고, 깨달은 다음에는 또한 반드시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그대는 ‘이미 깨달았다면 그만이지, 무엇 때문에 다시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가?’라고 의심한다. 만약 깨닫고 난 후에 사람을 만나 가르침을 주는 자라면 방편의 손길을 내려 주는 순간 하나하나에 속박된 몸을 벗어날 길이 있어 학인의 눈을 멀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깨닫기만 하고 무미건조하게 자신에게만 머무는 자라면 학인의 눈을 멀게 할 뿐만 아니라 움직이기만 하면 먼저 칼날을 범하여 자신의 손을 다치게 될 것이다.(到者裏, 直須悟始得, 悟後, 更須遇人始得. 汝道, ‘旣悟了便休, 又何必更須遇人?’ 若悟了遇人底, 當垂手方便之時, 著著自有出身之路, 不瞎卻學者眼. 若祇悟得乾蘿蔔頭底, 不唯瞎卻學者眼, 兼自已動, 便先自犯鋒傷手.)”; 올암 보령兀菴普寧은 깨달은 다음 종사를 만나야 한다는 뜻으로 쓴다. 『兀菴普寧語錄』 권상(X71, 7c21), “그래서 ‘참선한다면 반드시 깨달아야 하고, 깨닫고 나면 반드시 (점검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라고 말한다. 만약 밝은 눈을 가진 종사로부터 인증印證을 구하지 않는다면, 마치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여 급제는 했지만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과 흡사할 것이다.(所以道, ‘參禪須是悟, 悟了須遇人.’ 若不求明眼宗師印證, 譬如讀書發解及第了, 不得轉官相似.)”
  205. 205)왜곡된 견해의 가시(見刺) : 삿된 견해를 가시에 비유한 말. 『長阿含經』 권8(T1, 50c7)에서는 욕자欲刺·에자恚刺·견자見刺·만자慢刺 등 사자四刺를 제시하고 있다.
  206. 206)이 문답은 『五祖法演語錄』 권하(T47, 664c23), 『圜悟語錄』 권12(T47, 767b29) 등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 문답은 상권 「흥성사 입원소설」 11번 상당 법문에서도 이미 언급되었다.
  207. 207)선로禪老 : 이 편지를 받는 요선 선인了禪禪人을 가리킨다. ‘老’는 존칭.
  208. 208)사주社主 : 결사結社 등에서 주가 되는 사람.
  209. 209)‘희심希諗’의 ‘심’은 조주 종심趙州從諗을 가리킨다. 곧 ‘희심’이란 조주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希)는 뜻이다. 이 법명을 가진 희심 사주에게 그 법명에 어울리도록 조주의 몇 가지 법문을 활용하여 적은 편지이다.
  210. 210)법휘法諱 : 법명法名·법호法號·계명戒名 등과 같은 말이다. 불법에 귀의한 사람에게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으로 붙여 주는 이름이다.
  211. 211)『趙州語錄』 古尊宿語錄13(X68, 80c2), “대중에게 말했다. ‘팔백의 불자를 만들기는 하지만, 한 사람의 도인을 얻기는 어렵다.’(師示衆云, ‘八百箇作佛漢, 覓一箇道人難得.’)”; 『趙州語錄』 古尊宿語錄14(X68, 83b22), “천만 사람이 모두 부처를 찾는 자들일 뿐, 한 사람의 도인은 찾아도 없구나.(一千人萬人, 盡是覓佛漢子, 覓一箇道人無.)”; 『圜悟心要』 권하 「示元賓」(X69, 481b5), “조주가 ‘나는 백천의 무수한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일 뿐, 그들 중 무심의 경지에 이른 도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그 말씀을 깊이 음미하며 망상을 그치고 그 길을 따라간다면 훗날 어느 때라도 어떤 경계를 만나든 어떤 인연을 마주하든 힘을 얻을 것입니다. 응당 삼가 진실로 이를 잘 지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비결입니다.(趙州道, ‘我見百千箇漢子, 只是覓作佛底, 中間覓箇無心道人難得.’ 但熟味其言, 休心履踐, 它時異日, 逢境遇緣, 乃得力也. 要當愼護, 勿令滲漏, 乃祕訣也.)”; 『圜悟語錄』 권10(T47, 758a29); 『宗範』 권상(X65, 301a20); 『眞歇淸了語錄』(X71, 783c19) 참조.
  212. 212)고불古佛 :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이전의 부처님. 또는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아 석가모니불과 버금간다는 뜻을 나타내며, 부처님의 경지를 나타내는 최고의 찬사로 쓰이는 말이다. 조주를 고불이라 부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따른다. 『趙州語錄』 古尊宿語錄13(X68, 76b4), “남방에서 어떤 학인이 와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설봉雪峰에게 ≺옛 산골 물이 차갑게 샘솟을 때는 어떠합니까?≻라고 물었는데, 설봉이 ≺아무리 보려 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대답했고, ≺마시는 자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입으로 들이켜지 못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주가 그 말을 듣고 ‘입으로 들이켜지 못한다면 콧구멍으로 들이켠다.’라고 말했다. 그 학인이 다시 ‘옛 산골 물이 차갑게 샘솟을 때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조주가 ‘쓰다.’라고 답했고, ‘마시는 자는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죽는다.’라고 대답했다. 그 뒤 설봉이 조주의 이 말을 전해 듣고 ‘고불이로다! 고불이로다!’라고 찬탄했다.(因有南方僧來, 擧問雪峰, ‘古澗寒泉時如何?’ 雪峰云, ‘瞪目不見底.’ 學云, ‘飮者如何?’ 峰云, ‘不從口入.’ 師聞之曰, ‘不從口入, 從鼻孔裏入.’ 其僧却問師, ‘古澗寒泉時如何?’ 師云, ‘苦.’ 學云, ‘飮者如何?’ 師云, ‘死.’ 雪峰聞師此語, 讚云, ‘古佛! 古佛!’)”
  213. 213)서천西天 제21조 사야다闍夜多의 말. 『景德傳燈錄』 권2(T51, 213a27), 『佛祖歷代通載』 권4(T49, 508b5) 등에 나온다. “도를 구하지도 않고 전도顚倒되지도 않으며, 부처님께 절을 올리지도 않고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만족할 줄도 모르고 탐욕을 부리지도 않는다.”라는 등의 내용이 “마음에서 바라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제시된다.
  214. 214)문장의 형식으로 보면, 규봉 종밀圭峯宗密의 “지知라는 한 글자는 온갖 미묘함이 출입하는 문이다.(知之一字, 衆妙之門.)”라는 말을 역으로 활용한 황룡 사심黃龍死心의 “지라는 한 글자는 온갖 화가 출입하는 문이다.(知之一字, 衆禍之門.)”라는 말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내용상으로 보면, 조주가 “불佛이라는 한 글자조차도 나는 듣고 싶지 않다.(佛之一字, 吾不喜聞.)”라고 한 말과 연관되는 구절로도 보인다. 불佛이라는 최고의 경지를 비롯하여 어떤 분별도 허용하지 않고 모두 물리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都序』 권상(T48, 403a1), 『大慧語錄』 권16(T47, 879b9), 『趙州語錄』 古尊宿語錄13(X68, 80c9) 참조.
  215. 215)마음(靈臺) : 『宛陵錄』(X68, 21c9), “이 마음 그대로가 바로 신령한 지혜(靈智)이며, 또한 영대라고도 한다.(卽心便是靈智, 亦云靈臺.)” 『雪峯義存語錄』 권하(X69, 78c3)에서는 ‘진여眞如’의 다른 명칭으로 ‘불성佛性·진여·현지玄旨·청정법신계淸淨法身界·영대·진혼眞魂·적자赤子·대원경지大圓鏡智·공종空宗·제일의第一義·백정식白淨識’ 등을 제시하고 이것은 모두 ‘일심一心’의 명칭이라고 하였다.
  216. 216)출가한 자의~거리가 멉니다 : 「신광사 장로가 『능엄경』을 구함에 답하는 편지(答神光長老求楞嚴經書)」의 내용과 거의 대동소이하다.
  217. 217)주금강周金剛 : 덕산 선감德山宣鑒의 별명. 덕산의 속성이 주周씨이고 특히 『金剛經』에 정통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景德傳燈錄』 권15 「德山宣鑒傳」(T51, 317b15) 참조.
  218. 218)용담 숭신龍潭崇信 : 당나라 때 스님. 천황 도오天皇道悟에게서 출가하였다. 후에 호남성湖南省 예주澧州 용담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거처하였다. 문하에서 덕산 선감이 배출되었다.
  219. 219)주금강周金剛 덕산~일화를 모르십니까 : 「신광사 장로가 『능엄경』을 구함에 답하는 편지(答神光長老求楞嚴經書)」의 내용 참조. 이 편지에서는 이 문단이 앞의 문단의 중간 부분에 서술되어 있다.
  220. 220)조주는 여든의~할 것입니다 : 「희심 사주에게 보내는 편지(示希諗社主書)」의 내용 참조.
  221. 221)감주監主 : 절의 사무를 맡아보는 소임.
  222. 222)비록 임금의 인정을 받아 사회적 지위는 높아졌지만 선사로서의 본분을 확고히 하려면 “조사선의 근본을 알아야 한다.”는 조언을 상대에게 하기에 앞서 그렇게 말하는 자신을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는 뜻으로 겸손하게 한 말이다.
  223. 223)도오의 말이 아니라, 향엄 지한香嚴智閑의 게송이다. 상권 「조사선祖師禪」 참조.
  224. 224)오무간五無間의 지옥에 떨어지는 업(五無間業) : 오역죄五逆罪를 지은 업에 따라 죽은 다음에 떨어지는 지옥을 말한다. 무간지옥은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한다. 오역죄란 어머니를 살해한 죄(害母·殺母), 아버지를 살해한 죄(害父·殺父), 아라한을 살해한 죄(害阿羅漢·殺阿羅漢), 부처님의 몸에서 피를 흘리게 한 죄(惡心出佛身血·出佛身血), 승단의 화합을 깨뜨린 죄(破僧·破和合僧·鬪亂衆僧) 등을 가리킨다.
  225. 225)『五祖法演語錄』에는 나오지 않는 구절이며, 응암 담화應菴曇華가 오조 법연의 말로 인용한 것이다. 백운 경한이 『應菴曇華語錄』 권9 「示珣禪人」(X69, 544b9~12)의 내용을 축약하여 실은 것이다.
  226. 226)『禪門拈頌說話』 421則(H5, 352c22)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을 가리킨다. 『禪門拈頌』은 역대 선사들의 문답과 기연機緣 및 경전의 내용들에 이르기까지 간화선看話禪의 관점에서 타당한 해설과 게송을 선별하여 모아 놓은 문헌이다. 따라서 백운 경한이 말하는 조사선은 화두를 참구하여 깨달음에 이르려는 간화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葉縣歸省語錄』 古尊宿語錄 23(X68, 155b12)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227. 227)섭현 귀성葉縣歸省 : 생몰 연대 미상. 송대宋代 임제종 선사로 하북성河北省 기주冀洲 출신이고, 속성은 가賈씨이다. 역주易州 보수원保壽院에서 출가한 다음, 남쪽으로 돌아다니다 여주汝州에서 수산 성념首山省念(926~993)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
  228. 228)상권 주 455, 456, 524 참조.
  229. 229)아랫사람에게 묻는~여기지 않으신다면(不恥下問) : 『論語』 「公冶長」에 나오는 구절.
  230. 230)선종의 이빨과 발톱(宗門牙爪) : 선사로서의 결정적인 수단과 방편. 사자가 먹이를 잡기 위해 이빨과 발톱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사로서의 본분을 발휘할 수 있는 핵심적인 수단을 말한다.
  231. 231)본분 수단(巴鼻) : 파비把鼻라고도 한다. 어떤 대상을 포착하는 수단을 가리킨다. ‘巴’는 ‘把’와 통용되는 글자로 손잡이 또는 근거를 잡는다는 뜻이며, ‘파비’란 소의 코를 묶어 붙드는 고삐로 ‘파비把臂’라고도 한다.
  232. 232)『傳心法要』(T48, 384a10)에 나오는 구절. 상권 주 337 참조.
  233. 233)부모님께 맛있는~덕을 넓혀서 : 『潙山警策註』(X63, 225a21~b8) 참조.
  234. 234)『菩薩從兜術天降神母胎說廣普經』 권6 「定意品」(T12, 1047b19), “바닷속에 던져진 바늘 하나는 그것을 구하여 오히려 찾을 수 있지만, 한 번 잃어버린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려움이 이보다 더하다.(一針投海中, 求之尙可得, 一失人身命, 難得過於是.)”
  235. 235)『寶王三昧念佛直指』 권상(T47, 366b18), 『大慧語錄』 권15(T47, 873c21), 『圜悟心要』 권하(X69, 482a24), 『建中靖國續燈錄』 「潙山懷秀章」 권12(X78, 716b10) 등 참조.
  236. 236)『大慧語錄』 권17(T47, 884b12), “이는 한맛의 청정하고 평등한 법문이니, 이 안에서 각 사람의 본지풍광과 본래면목을 밝힌다면 일대장교 5048권의 구절구절 하나하나가 별다른 일을 설한 것이 아니라, ‘무상하여 한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신속하게 지나가니 소홀히 보내지 말라.’고 한 뜻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금생에 노력하여 깨닫기를 마쳐야 하며, 영겁토록 남은 재앙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려우며, 귀인이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라고 말한 것이다.(此是一味淸淨平等法門, 若向這裏, 明得各人本地風光本來面目, 方知一大藏敎五千四十八卷句句不說別事, 無常迅速, 莫作等閑. 所以道, ‘努力今生須了却, 莫敎永劫受餘殃. 人身難得, 爲貴人復難.’)”; 『傳心法要』(T48, 384a19), “금생에 전력을 다해 깨닫는다면 겁을 계속하도록 재앙을 받을 일이 있겠는가!(著力今生須了却, 誰能累劫受餘殃!)”; 『無門關』 「禪箴」(T48, 299b5) 참조.
  237. 237)『龍舒增廣淨土文』 권3(T47, 259c8) 참조.
  238. 238)남양 혜충南陽慧忠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불렀고 시자는 세 번 모두 그때마다 ‘예’ 하고 응답하자 혜충이 한 말. 『景德傳燈錄』 권5 「光宅慧忠傳」(T51, 244a25) 참조.
  239. 239)이 편지는 시작되는 부분부터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 말까지 『大慧語錄』 권23 「示太虛居士」(T47, 909c24~910a7)의 내용과 동일하다. 그 뒤 백운은 경전을 인용하여 선한 뿌리를 심은 인연에 대하여 설명한 다음 일상의 반경에서 무심無心의 이치를 터득할 것을 권하고 있다. 반면 대혜 종고大慧宗杲는 조주趙州의 ‘뜰 앞의 잣나무’ 화두를 제시하면서 일상의 반경에서 ‘어떤 찰나에서도 빈틈이나 끊어짐이 없이 이 화두를 붙잡고 놓치지 않으며 항상 붙들고 알아차리고 있어야 한다.(念念不間斷, 時時提撕, 時時擧覺.)’라고 하는 화두 참구의 일반적 방법을 들려준다.
  240. 240)복업福業 : 천계天界나 인계人界 등에 태어나는 복을 받는 선한 업을 말한다. 『瑜伽師地論』 권9(T30, 319c21), “복업이란 선한 윤회의 길(천계나 인간계)에 태어나는 과보에 감응하거나 다섯 종류의 윤회(五趣)를 따라 태어나면서 선한 업을 받는 것을 말한다.(福業者, 謂感善趣異熟, 及順五趣受善業.)”; 『百論疏卷』 권상(T42, 239a3), “복이란 재물이 많아 풍요롭다는 뜻이다. 선한 업을 일으켜 천계나 인계에 태어나는 즐거운 과보를 불러일으키므로 복이라 한다.(福是富饒爲義. 起於善業, 招人天樂果, 故稱爲福.)” 이러한 복업은 번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상대적으로 선한 것이므로 윤회의 고통을 모두 제거할 수 없는 유루有漏의 속성을 가진다.
  241. 241)용수龍樹 : 인도 대승불교인 중관학파中觀學派의 창시자. 선종에서 인도로부터 중국에 이르는 일련의 전등설傳燈說이 만들어지면서 용수가 계보상 제14대 조사로 편입되었다.
  242. 242)아만我慢 : 오온五蘊으로 구성된 것을 자아 또는 자기 자신의 소유라고 착각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기중심의 교만한 집착을 일으키는 것이다. 헛된 자아를 진실한 것으로 오해함으로 말미암아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大毘婆沙論』 권43(T27, 225c18), “아만이란 오취온五取蘊을 자아와 자아의 소유라고 여겨서 이를 근거로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我慢者, 於五取蘊, 謂我我所, 由此起慢.)”; 『成唯識論』 권4(T31, 22b1), “아만이란 무엇인가? 거만한 태도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며 마음을 높이 들뜨게 하므로 아만이라 한다.(我慢者, 謂踞傲恃所執我, 令心高擧, 故名我慢.)”
  243. 243)『景德傳燈錄』 권1 「龍樹傳」(T51, 210b2) 참조.
  244. 244)『碧巖錄』 28則(T48, 168c17)에는 수산주修山主(龍濟紹修)의 말로 제시되어 있고, 『聯燈會要』 권28 「法昌倚遇章」(X79, 245b10)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실려 있다.
  245. 245)불법에는 대단한 것이 없으나(佛法無多子) : 임제 의현臨濟義玄의 말. 겉으로 드러난 말에 따르면, 불법에 특별한 점이 없어 별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불법에는 잡다한 군더더기가 없이 핵심을 찌르는 간명한 도리만 있으므로 그것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역설적 뜻을 담고 있다. 『佛眼語錄』 古尊宿語錄32(X68, 207c20),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을 어째서 모르는 것일까? 불법에는 잡다한 군더더기가 없으니, 다만 간명한 지름길이 필요할 뿐이다.(本有之性, 因什麽不會? 法無多子, 祇要省徑也.)” 주 78 참조.
  246. 246)『大慧語錄』 권23 「示太虛居士」(T47, 910a4)에는 “한창 나이인 장년(春秋鼎盛之時)”으로 되어 있다.
  247. 247)이 부분까지는 대혜 종고의 말을 답습하여 적은 것이다. 주 239 참조.
  248. 248)『金剛經』(T8, 749b1) 참조.
  249. 249)일체종지一切種智 : 모든 존재의 공통적 특징인 적멸상寂滅相과 각각의 존재들이 별도로 가지는 특징인 차별상差別相을 빠짐없이 아는 지혜. 오로지 불과佛果를 터득한 경지에서만 알 수 있으므로 불지佛智 또는 일체지一切智라고도 한다.
  250. 250)『圓覺經』(T17, 917b15) 참조.
  251. 251)규봉 종밀圭峯宗密(780~841) : 어려서부터 유학儒學과 불교를 공부하였다. 25세 때 도원道圓을 만나 제자가 되었고 그 무렵 『圓覺經』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징관澄觀에게서 화엄교학華嚴敎學을 배웠으며, 821년에 규봉의 초당사草堂寺에 머물면서 저술 활동에 전념하는 한편 교선일치敎禪一致 사상을 고취하였다.
  252. 252)『圓覺經略疏』 권하(T39, 569a2) 참조.
  253. 253)이 뒤에 “열에 여덟 정도만 말했을 뿐이다.(只道得八成)”라는 구절이 따라붙는 상투어.
  254. 254)『天聖廣燈錄』 권29 「大梅居煦章」(X78, 567c20), 『圜悟語錄』 권9(T47, 753b28) 등 참조.
  255. 255)주 174 참조.
  256. 256)주색과 자색(朱紫) : ‘주朱’는 정색正色, ‘자紫’는 간색間色 중 아름다운 것. 두 가지 색은 바른 것과 삿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선과 악 등을 비유하는 말로서 여기서도 그러한 차별의 관념을 대표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257. 257)『龐居士語錄』 권상(X69, 131a15) 참조.
  258. 258)아무 일도 없는 경계(無事甲裏) : 갑리甲裏는 갑을甲乙 2단으로 된 함궤函櫃 가운데 자주 쓰지 않거나 쓸모없는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을 뜻한다. 이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 또는 추구하거나 이루어야 할 그 무엇도 없어진 경계를 비유한다. 간화선에서는 일정한 화두를 궁구할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경우 그 두 가지를 다 버리고 어떤 곳으로도 마음을 지향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간화십종병看話十種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259. 259)노화엄老花嚴 : 휘는 회동懷洞. 하북성河北省 대명현大名縣 위부魏府 출신. 화엄의 교의敎義를 세상에 널리 알렸으며, 만년에는 흥화 존장興化存獎을 찾아가 교외별전의 선지를 얻었다. 후에 압사선원圧沙禪苑에 머물렀으며 하북의 도속道俗이 모두 그를 존경하는 뜻에서 ‘노화엄’이라 불렀다고 한다.
  260. 260)『景德傳燈錄』 권30 「魏府華嚴長老示衆」(T51, 466b17) 참조.
  261. 261)진정 극문眞淨克文(1025~1102) : 호는 운암雲庵. 늑담 극문泐潭克文·보봉 극문寶峰克文이라고도 한다.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법을 이어받았다. 회당 조심晦堂祖心·동림 상총東林常總과 함께 임제종 황룡파가 발전하는 데 기초를 구축하였다. 저서에 『雲庵眞淨禪師語錄』이 있다.
  262. 262)『宗範』 권상(X65, 300b14), 『指月錄』 권26(X83, 690c18), 『林間錄』 권하(X87, 274a24) 참조.
  263. 263)도가 있지~라고 하셨습니다 : 이 부분은 『大慧語錄』 권23 「示妙明居士」(T47, 911a29~b10)의 내용에서 한두 구절을 제외하고는 그대로이다.
  264. 264)『眞淨語錄』 古尊宿語錄42(X68, 274b11), 『大慧語錄』 권26 「答陳少卿」(T47, 923c11) 참조.
  265. 265)『大慧語錄』 권22 「示張太尉」(T47, 905c7), “부처님의 경계란 각각의 당사자들이 당장 헤아리고 있는 그것이니, 움직이지도 변화하지도 않는 본체를 가리킵니다. 부처라는 한 글자는 자기 마음의 본체에도 집착하지 않는 경지에서 이 글자를 빌려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佛境界, 卽當人自心現量, 不動不變之體也. 佛之一字, 向自心體上亦無著處, 借此字以覺之而已.)”
  266. 266)『法華經』 권1(T9, 7a20) 참조.
  267. 267)자기 마음이~없는 것입니다 : 이 부분은 『大慧語錄』 권23 「示妙明居士」(T47, 911b10~18)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268. 268)『景德傳燈錄』 권15 「德山宣鑑傳」(T51, 317c11) 참조.
  269. 269)물결을 휘저어~물을 구하는(撥波求水) : 무수한 세월이 지나더라도 영원히 얻지 못한다는 뜻.
  270. 270)『無準師範語錄』 권3 「示求堅上人」(X70, 253c20), “도는 일상생활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중에서 막히면 도적을 자식으로 착각하는 꼴이 될 것이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별도의 살길을 찾는다면 물결을 휘저어 떨쳐 버리면서 물을 구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과 같으니, 이 안(일상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다하지 못함이 있게 된다면 곧 번뇌를 이루고 말 것이다.(道在日用. 若滯在日用處, 則認賊爲子;若離日用, 別討生涯, 則是撥波求水, 這裏絲毫及不盡, 便成滲漏.)”
  271. 271)‘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는 구절과 통한다. 동류同類가 상응하는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원인과 결과가 일치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272. 272)목백牧伯 : 주군州郡의 장관長官.
  273. 273)기거만복起居萬福 : ‘언제 어디서나 행복이 깃드소서.’라고 기원하는 말. 기거는 ‘어느 때나’의 뜻으로, 일야日夜·시종始終 등과 통한다.
  274. 274)다급한 정무(宵旰) : 소의간식宵衣旰食의 줄임말. 날이 밝기 전에 옷을 입고 해가 지고 나서야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천자天子가 새벽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정사政事에 몰두함을 이른다. 천자나 제왕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275. 275)진실로 서로 만난 것(眞相見) : 선문에서 ‘상견相見’이라 하면 단지 그저 맞대면하였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가 능能과 소所, 빈賓과 주主 등의 상대적 관계에서 벗어나 완전히 마음으로 일치하고 서로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음을 의미한다.
  276. 276)눈만 마주쳐도~아는 법이다 : 목격도존目擊道存. 촉목보리觸目菩提와 통하는 말.
  277. 277)『莊子』 「田子方」에 나오는 일화.
  278. 278)『法演語錄』 권중(T47, 660a5), “설봉이 덕산에게 물었다. ‘예로부터 성현들은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까?’ ‘우리는 말없음을 근본으로 하니, 다른 이에게 전할 법 또한 하나도 없다.’ 설봉이 이에 깨달은 점이 있었다.(雪峯問德山, ‘從上諸聖, 以何法示人?’ 山云, ‘我宗無語句, 亦無一法與人.’ 雪峯從此有省.)”
  279. 279)마조 도일馬祖道一의 제자인 분주 무업汾州無業(760~821)이 임종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佛祖歷代通載』 권15(T49, 627a2), 『釋氏稽古略』 권3(T49, 835c3) 참조.
  280. 280)마지막 두 구절은 석옥 청공이 남긴 ≺辭世偈≻의 취지와 비슷하다. 주 18 참조.
  1. 1)第」通「弟」{編}。
  2. 1)「第」通「弟」{編}。
  3. 2)「茟」疑「筆」{編}。
  4. 1)戌」疑「戊」{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