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청허당집(淸虛堂集) / 淸虛集補遺

ABC_BJ_H0142_T_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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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집 보유*(淸虛集 補遺)
시詩
김 거사의 딸을 곡하다(哭金居士女)

007_0732_c_14L7)淸虛集補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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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_0732_c_17L8)哭金居士女 [624]

007_0732_c_18L此文無有{甲}{乙}{丙}{丁}「憐」作「怜」{戊}{己}{庚}{辛}
007_0732_c_19L「日」作「月」{戊}{己}{庚}{辛}此文無有{甲}{乙}{丙}{丁}
007_0732_c_20L「徤」作「健」{戊}{己}{庚}{辛}「邾」作「邪」{甲}{乙}{丙}
007_0732_c_21L{丁}
題名編者補入此下諸文底本無有
007_0732_c_22L在二卷本(甲乙丙丁) 或在四卷本(戊己庚辛)
007_0732_c_23L編者集而附載於卷末
「哭金居士女ㆍ天玉
007_0732_c_24L禪子ㆍ示性雲長老ㆍ示碧泉禪子(三首)ㆍ贈性
007_0732_c_25L訥禪子(三首)ㆍ贈落山懷海禪子」 總十首收錄
007_0732_c_26L於甲乙丙丁戊己庚辛本

007_0733_a_01L
日色通天海       햇빛이 하늘과 바다 온통 사무칠 때
龐翁哭一聲       들려오는 방 옹1)의 외마디 호곡 소리
蛻形先父去       꺼풀 벗고 부친보다 먼저 떠났으니
誰與說無生       누구와 더불어 무생을 이야기할까
천옥 선자天玉禪子
晝來一椀茶       낮에는 한 잔의 차
夜來一場睡       밤에는 한바탕의 잠
靑山與白雲       청산에 백운이 찾아와서
共說無生事       무생의 일을 함께 얘기하네
성운 장로에게 보이다(示性雲長老)
聲前相見了       소리 이전에 서로 보았으니
何必望州亭       구태여 주정州亭을 볼 것까지야
一笑無言處       한번 웃고 말이 없는 곳
天邊列嶽靑       하늘가에 산이 줄지어 푸르네
벽천 선자에게 보이다3수(示碧泉禪子三首)
[1]
閃電光中坐       번쩍이는 번갯불 속에 앉아
對人能殺活       사람을 대해 능히 죽이고 살린다
無頭無尾棒       머리도 꼬리도 없는 몽둥이로
打破虛空骨       허공의 뼈다귀를 쳐부수노라

[2]
十年呑栗棘       10년 동안 밤 가시를 삼켰건만
猶是野狐精       아직도 여전히 야호정2)이로세
若欲敵生死       만약 생사를 대적하고 싶다면
寒灰爆一聲       식은 재에서 한 소리 터뜨려야지

[3]
莫要會佛法       불법을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大臥三條椽       삼조연 아래3)에 대자大字로 누워라
道人宜痴鈍       도인은 응당 아둔해야 한다는
令我憶南泉       남전의 말이 새삼 떠오르누나4)
성눌 선자性訥禪子에게 주다3수(贈性訥禪子三首)
[1]
要免三途海       삼악도의 고해에서 헤어나려면
須叅六祖禪       육조 대사의 선을 참구해야지
光陰眞可惜       광음을 참으로 아낄 것이니
愼勿等閑眼       부디 등한히 보지 말기를

[2]
載月悲船子       슬프다 달빛만 실은 선자여5)
勘僧愧木权       중을 심문한 목차에 부끄럽도다
妙香山裏水       묘향산 속을 흐르는 물이여
淘盡幾江沙       얼마나 많은 강모래를 일었던가

[3]
念佛叅禪法       염불하거나 참선하거나
功成理不差       성취하는 도리는 다르지 않나니
身心如放下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면
枯木定生花       고목에 정녕 꽃이 피리라
낙산의 회해 선자에게 주다(贈洛山懷海禪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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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色通天海龐翁哭一聲

007_0733_a_02L蛻形先父去誰與說無生

007_0733_a_03L天玉禪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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晝來一椀茶夜來一塲睡

007_0733_a_05L靑山與白雲共說無生事

007_0733_a_06L示性雲長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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聲前相見了何必望州亭

007_0733_a_08L一笑無言處天邊列嶽靑

007_0733_a_09L示碧泉禪子

007_0733_a_10L
閃電光中坐對人能殺活

007_0733_a_11L無頭無尾棒打破虛空骨(一)

007_0733_a_12L十年呑栗棘猶是野狐精

007_0733_a_13L若欲敵生死寒灰爆一聲(二)

007_0733_a_14L莫要會佛法大臥三條椽

007_0733_a_15L道人宜痴鈍令我憶南泉(三)

007_0733_a_16L贈性訥禪子

007_0733_a_17L
要免三途海須叅六祖禪

007_0733_a_18L光陰眞可惜愼勿等閑眼(一)

007_0733_a_19L載月悲船子勘僧愧木1) [625]

007_0733_a_20L妙香山裏水淘盡幾江沙(二)

007_0733_a_21L念佛叅禪法功成理不差

007_0733_a_22L身心如放下枯木定生花(三)

007_0733_a_23L贈洛山懷海禪子

007_0733_b_01L一生奇特事       일생에 기특한 일은
獨坐大雄峰       대웅봉에 홀로 앉아 있는 것6)
立敎滄海渴       당장 창해를 마르게 하면
攪動幾魚龍       어룡을 몇이나 건져 올릴까
감호대에 제하다(題鑑湖臺)
澗石留奇筆       냇가 바위에 남은 기이한 필적
山花獨送春       산 꽃 홀로 보내는 봄날
鑑湖明月夜       달도 밝은 감호의 이 밤에
猿鶴怨無人       원숭이와 학이 사람 없다 원망하네7)
선조대왕이 서산 대사에게 하사한 묵죽시(宣祖大王賜西山大師墨竹詩)
葉自毫端出       잎사귀가 붓끝에서 나오고
根非地面生       뿌리가 땅 위에서 나오지 않아
月來無見影       달이 떠도 그림자 보이지 않고
風動不聞聲       바람 일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네
휘원 부천 도인輝遠扶天道人
祖師西來意       조사서래의의 물음과
庭前栢樹子       정전백수자의 대답이여8)
問荅甚分明       문답이 매우 분명하나니
龍藏未有底       대장경에는 들어 있지 않도다
咄           억
盡力起疑處       있는 힘껏 의심하다 보면
氷消瓦解去       얼음 녹고 기와 깨지듯 하리라
장벽송墻壁頌
問爾禪和墻壁意     그대 선화에게 장벽의 뜻을 묻노니
非心非道是什麽     마음도 아니고 도도 아닌 이것은 무엇이냐
直須蜜蜜叅詳去     빈틈없이 자세히 참구해야만
始息諸緣見達摩     모든 인연 쉬고서 달마를 보리로다
가정을 지나며 느낌을 적다9)(過柯亭有感)
相思不見幾千里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는 수천 리 먼 길
君我年同五十三     그대와 나의 나이 똑같이 쉰셋
身在北山眠竹枕     몸은 북산에서 죽침 베고 잠들어도
心隨明月到江南     마음은 명월 따라 강남에 가 있다오
사바교주娑婆敎主 석가세존 금골사리金骨舍利 부도비浮圖碑
금강산 퇴은退隱 국일도대선사國一都大禪師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 사자賜紫 부종수교扶宗樹敎 겸 등계보제대사登階普濟大師 병로病老 휴정休靜은 삼가 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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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生奇特事獨坐大雄峰

007_0733_b_02L立敎滄海渴攪動幾魚龍

007_0733_b_03L2)題鑑湖臺 [626]

007_0733_b_04L
澗石留奇筆山花獨送春

007_0733_b_05L鑑湖明月夜猿鶴怨無人

007_0733_b_06L3)宣祖大王賜西山大師墨竹詩 [627]

007_0733_b_07L
葉自毫端出根非地面生

007_0733_b_08L月來無見影風動不聞聲

007_0733_b_09L4)輝遠扶天道人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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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師西來意庭前栢樹子

007_0733_b_11L問荅甚分明龍藏未有底

007_0733_b_12L盡力起疑處氷消瓦解去

007_0733_b_13L5)墻壁頌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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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爾禪和墻壁意非心非道是什麽

007_0733_b_15L直須蜜蜜叅詳去始息諸緣見達摩

007_0733_b_16L6)過柯亭有感

007_0733_b_17L
相思不見幾千里君我年同五十三

007_0733_b_18L身在北山眠竹枕心隨明月到江南

007_0733_b_19L

007_0733_b_20L7)娑婆敎主釋迦世尊金骨舍利浮
007_0733_b_21L啚碑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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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山退隱國一都大禪師禪
007_0733_b_23L敎都揔攝賜紫扶宗樹敎兼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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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생각건대 우리 현겁賢劫10)의 존귀한 석가모니불은 바로 천축국 정반왕淨飯王의 태자로서, 과거세에 성도成道하여 진상眞常의 법신을 증득한 지 오래이다. 결訣에 이르기를, “석가는 성姓인데 여기에서는 능인能仁이라고 번역하니, 자비로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모니는 자字인데 여기에서는 적묵寂黙이라고 번역하니, 지혜로 진리를 명합冥合한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자비와 지혜를 아울러 운용하기 때문에 생사와 열반에 모두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는 오로지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기 때문에 시방세계에 수월水月과 같은 응신應身을 나투어 겁劫이 다하도록 중생을 제도濟度하면서 싫어함이 없었다. 그리고 보처補處의 지위에 올라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서는 호명 대사護明大士라는 이름으로 천중天衆을 제도하고 있었다.
『보요경普耀經』에서 이르기를, “석가가 도솔천에서 왕궁으로 내려올 적에11) 몸은 광명을 발하고 발은 연화蓮花를 밟으면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천지를 가리켜 사자후獅子吼를 토하고, 세 가지 방편을 보였다.”라고 하였는데, 이때가 바로 주 소왕周昭王 24년 갑인년이었다.
태자의 이름은 실달悉達인데, 여기에서는 길吉이라고 번역한다. 문무文武에 능하고 음양에 통해서 모든 인천人天의 사법事法을 익히지 않고도 저절로 빠짐없이 통달하였으므로 부왕父王이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7일 기한으로 왕위王位를 전하려고까지 하였다.
태자가 하루는 사문四門에 노닐면서 희비의 일을 목격하고는 출가할 마음을 내었다. 부왕이 이 말을 듣고 놀라서 국인國人으로 하여금 더욱 호위하게 하며 출입을 엄금하고 단지 정거淨居 천인天人만 통하게 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하였으니, 이때 태자의 나이 19세였다.
처음에는 단특산檀特山에 들어가서

007_0733_c_01L階普濟大師病老休靜謹撰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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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_0733_c_03L
恭惟我賢刼尊釋迦牟尼佛乃天竺國
007_0733_c_04L淨飰王太子也徃世成道證眞常法身
007_0733_c_05L已久矣訣曰釋迦姓也此云能仁
007_0733_c_06L悲利物義牟尼字也此云寂默智慧
007_0733_c_07L冥理義悲智並運故生死涅槃俱不住
007_0733_c_08L然佛專以利物爲己任故於十方界
007_0733_c_09L水月應身窮刼度生無厭爾旣位登補
007_0733_c_10L生兜率天名護明大士方度天衆
007_0733_c_11L普耀經云釋迦從兜率降王宮身放光
007_0733_c_12L足踏蓮花四方行七步指天地作
007_0733_c_13L獅子吼示三方便云云乃周昭王二十
007_0733_c_14L四年甲寅歲也太子號悉達此云吉也
007_0733_c_15L能文武善陰陽凡及人天事法不習而
007_0733_c_16L自然一一神解父王愛極限七日欲傳
007_0733_c_17L位也太子一日遊四門見悲喜事
007_0733_c_18L出家心父王聞而駭之令國人尤加衛
007_0733_c_19L洞禁出入只與淨居天人通焉
007_0733_c_20L夜逾城而出時年十九也初入檀特山
007_0733_c_21L「权」作「杈」{丁}此詩只在甲乙丙丁本
007_0733_c_22L此詩只在戊己庚辛本
此詩只在戊己庚辛
007_0733_c_23L
此詩只在戊己庚辛本此詩只在戊
007_0733_c_24L己庚辛本
此碑銘只在戊己庚辛本

007_0734_a_01L세 종류의 선정禪定을 닦았으나 이를 버리고, 마침내 상두산象頭山에 들어가 6년 동안 앉아서 고행하다가 명성明星을 보고 오도悟道하여 천인사天人師의 이름을 얻었으니, 이때 나이 30세였다.
이윽고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憍陳如 등 5인을 위해 도과道果를 논하고, 영취산靈鷲山에 나아가 대법大法을 설하였으며, 49년 동안 세상에 머물면서 설법하였다. 그리고는 미묘한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대가섭大迦葉에게 부촉하는 동시에 아난阿難에게 보좌하여 교화를 전하도록 당부하여 단절됨이 없게 하고 각각 법게法偈를 전하였다.
그 뒤에 구시라拘尸羅 희련熙蓮의 쌍수雙樹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개고 조용히 입적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관棺 속에서 일어나 모친을 위해 설법하며 “일체의 행은 무상하니, 이는 생하고 멸하는 법이다. 생하고 멸하는 이것을 멸한, 적멸이 바로 극락이다.(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라는 내용의 무상게無常偈를 읊었다. 얼마 뒤에 금관金棺이 자리에서 떠오르며 삼매三昧의 불길로 자신의 몸을 태우니, 공중에서 사리舍利가 비 오듯 쏟아져서 여덟 섬 네 말이나 되었다. 이때가 바로 목왕穆王 53년 임신년이었다.
아, 지금도 부처는 세상에 머물면서 중생에게 감응할 때에는 만덕萬德의 몸을 나투어 보여 주고, 감응하지 않을 때에는 삼매의 선정에 들 뿐이니, 가고 오는 것과는 원래 상관이 없다. 처음에 강생降生하고 출가하고 성도成道하고 설법한 이런 일은 노파가 나뭇잎을 가지고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한 것12)과 같다고 할 것이요, 나중에 염화拈花13)하고 분좌分座하고 열반하고 시부示趺한 이런 일은 노부老父가 실성한 아들을 다스리고 의사가 타향으로 떠나며 약을 남겨 둔 것14)과 같다고 할 것이다.
당시에 사리는 회상會上의 보살ㆍ연각緣覺 등 성중聖衆 및 인천人天의 팔부八部 신중神衆이 각각 나누어 수지受持하였다. 그리하여 미진수微塵數의 제찰諸刹에 흩어져 들어가 탑을 세우고 석종石鍾에 봉안하여 공양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연이 없는 국토의 사람들은 이때를 당하여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으니, 예컨대 사위성舍衛城의 3억 가호家戶15)와 지나支那의 한 모퉁이와 같은 곳이 바로 그러하였다.
다만 중국의 경우는 천년이 지난 후한後漢 영평永平 8년에 이르러 명제明帝가 하나의 꿈을 꾸고는 신하를 시켜서 불교를 전하게 하였을 뿐인데,

007_0734_a_01L捨三種㝎遂入象頭山坐六年示苦行
007_0734_a_02L見明星悟道號天人師時年三十也
007_0734_a_03L旣而鹿野苑中爲矯 [90] 陳五人軰論道果
007_0734_a_04L俄就靈鷲山說大法因住世四十九年
007_0734_a_05L以微妙正法眼藏付大迦葉并勅阿難
007_0734_a_06L副貳傳化無令斷絕各付法偈後至
007_0734_a_07L拘尸羅熈蓮雙樹下右脇累足泊然而
007_0734_a_08L復從棺起爲母說法因說無常偈
007_0734_a_09L諸行無常是生滅法生滅滅已寂滅
007_0734_a_10L爲樂已而金棺從座而擧以三昧火自
007_0734_a_11L焚身空中舍利如雨數至八斛四斗
007_0734_a_12L乃穆王五十三年壬申歲也今佛之
007_0734_a_13L住世群生有感則應萬德身無感則入
007_0734_a_14L三昧㝎而已非干徃來也其前際降生
007_0734_a_15L出家也成道也說法也此等法
007_0734_a_16L老婆將葉止兒啼耶其後際拈花也
007_0734_a_17L座也涅槃也示趺也此等法老父治
007_0734_a_18L狂子耶醫師留藥去他鄕耶當時舍利
007_0734_a_19L則會上菩薩緣覺聖衆及人天八部神衆
007_0734_a_20L各分受持散入微塵諸刹建塔安鍾
007_0734_a_21L供養者不知其幾可惜無緣國土人
007_0734_a_22L則當此時不聞不見如舍衛三億家
007_0734_a_23L及支那一隅類是也但支那則過千年
007_0734_a_24L至後漢永平八年帝感一夢使臣傳敎

007_0734_b_01L오직 우리나라의 경우는 영남嶺南 통도사通度寺의 신승神僧 자장慈藏이 일찍이 봉안한 석가세존의 금골사리金骨舍利 부도浮屠에 자못 신기한 효험이 많아서 마침내 천 문門으로 하여금 선善에 들게 하고, 일국一國으로 하여금 인仁을 일으키게 하였으니, 세상의 존귀한 보배라고 이를 만하다.
그런데 불행히도 만력萬曆 20년에 일본 해병이 우리나라 남방에 침입하여 분탕질을 하는 바람에 억조창생이 어육魚肉이 되었다. 그때 재앙이 부도에까지 미쳐서 그 보배를 잃을 위기에 처했으므로 안타깝게 여기고 있던 차에, 마침 승군僧軍 대장인 유정惟政이 수천 군사를 이끌고 와서 진심으로 수호한 덕분에 온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정은 후환이 없지 않으리라고 여겼으므로 금골사리 2함函을 금강산에 봉안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병로病老에게 이 일을 부탁하였다.
이에 병로가 감격하여 받아들고 봉안하려 하였으나, 나름대로 생각해보건대 금강산은 수로水路와 가까운 만큼 뒷날에 필시 이런 환란을 또 당할 것이니, 금강산에 봉안하는 것은 장구한 계책이 못 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전에 일본 해병이 부도를 파헤친 것은 전적으로 금보金寶 때문이지 사리舍利에는 관심이 없어서 보물을 취한 뒤에는 사리를 흙처럼 여겼으니, 이렇게 본다면 차라리 옛터를 보수하여 그곳에 봉안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함函을 유정에게 돌려주었더니, 유정도 그 계책에 동의하여 함을 받아들고 즉시 옛터로 돌아가서 석종石鍾에 봉안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1함은 병로病老 자신이 수지하고 삼가 태백산으로 들어가서 부도를 새로 세우려고 하였으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에 문인 지정智正과 법란法蘭의 무리에게 명하여 그 일을 주관해서 석종에 봉안하게 하였더니, 두 선자禪子가 지성으로 널리 모금한 결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부도를 세우고 봉안하기에 이르렀다. 이 아름다운 공덕에 대해서는 『법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중에 나열되어 있으니, 내가 췌언贅言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우리 동방은 처음에 군장君長이 없었고 제후諸侯도 서 있지 않았는데, 신인神人인 단군檀君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일어나 시조왕始祖王이 되어 요堯와 나란히 섰다. 그러고 보면 태백산은 처음에는 일국의 임금을 배태胚胎함으로써 조선 국민으로 하여금 동이東夷라는 이름에서 길이 벗어나게 하였고, 마침내는 삼계의 스승을 봉안함으로써

007_0734_b_01L而已唯嶺南通度寺神僧慈藏古所安
007_0734_b_02L釋迦世尊金骨舍利浮啚頗多神驗
007_0734_b_03L使千門入善又令一國興仁可謂世之
007_0734_b_04L尊寶也不幸至萬曆二十年日本海兵
007_0734_b_05L入國之南焚之蕩之億兆爲魚肉
007_0734_b_06L及浮啚其寶將爲散失悶欝之際適蒙
007_0734_b_07L僧大將惟政領兵數千盡心守護得完
007_0734_b_08L然政不無後慮故以金骨舍利二凾
007_0734_b_09L密似乎金剛使病老安焉病老感受
007_0734_b_10L欲安之然病老念金剛近水路後必
007_0734_b_11L有此患安金剛非長久計也向海兵之
007_0734_b_12L撥浮啚全在金寶不在舍利也取寶
007_0734_b_13L後視舍利如土也然則不若寧修古基
007_0734_b_14L而安焉云云即以一凾還付于政
007_0734_b_15L然其計受凾即還古基而安鍾焉其一
007_0734_b_16L凾則病老自受持謹入太白山創建浮
007_0734_b_17L靜獨力無何命門人智正法蘭之軰
007_0734_b_18L幹其事使安鍾二禪子至誠廣募不數
007_0734_b_19L鍊浮啚而安之美矣其功德蓮經
007_0734_b_20L壽量品中已開列余何贅焉且我東方
007_0734_b_21L初無君長不列諸侯神人檀君出興
007_0734_b_22L於太白山神檀樹下爲始祖王與堯并
007_0734_b_23L立也然則太白 [91] 太白始胎于一國王
007_0734_b_24L使朝鮮國民永脫東夷之號終安于三

007_0734_c_01L동방의 백성으로 하여금 성불成佛의 인연을 잃지 않게 하였으니, 이 어찌 산의 영험 덕분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위대하도다. 산만 중해진 것이 아니라 나라도 또한 중해졌고, 나라만 중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도 또한 중해졌으니, 그 품질을 논한다면 유정 선자惟政禪子는 자장慈藏 법사에 못하지 않다고 할 것이요, 태백산은 영취산靈鷲山보다 못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이튿날 지정과 법란 두 선자가 부도를 낙성落成하는 대재大齋를 개설하였다. 이에 병로病老가 법석에 올라 제인諸人에게 말하기를, “오늘 이 회상의 사람 가운데 우리 세존이 탑묘 안에 들어가 있지 않음을 아는 장부가 있는가. 만약 부처가 탑묘 안에 있지 않음을 안다면, 인천人天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하였다.
옛사람이 견고한 법신에 대해서 묻자, 조사는 산꽃(山花)과 시냇물(澗水)이라고 대답하였다.16) 오늘 병로는 한 소리 외치고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컨대 대중이여, 이곳에 와서 세존에게 참례할지어다. 만약 석가의 진신眞身을 거론한다면, 지극히 적요하면서도 지극히 오묘하며, 지극히 크면서도 지극히 작으며,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으니, 백억 성중聖衆의 찬탄도 허공을 헤아리는 것과 같고, 8만 마군魔軍의 훼방도 바람을 잡아 묶는 것과 같다. 그렇긴 하지만 오늘의 회상에는 이익도 있고 손해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신자信者는 부처를 공경하기 때문에 결단코 극락의 언덕에 오르겠지만, 불신자不信者는 불법을 비방하기 때문에 분명히 고통의 바다에 떨어질 것이니, 이는 유가儒家의 경전에서 말한바,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17)라는 것이다. 억! 각자 빛을 돌이켜 살펴볼지어다.
옛날에 공부자孔夫子가 상商나라 태재太宰의 물음에 답하기를, “서방의 대성인大聖人은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으니, 지극히 광대해서 사람들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18) 그러고 보면 오직 성인이라야 성인을 알아본다고 말할 수 있겠다.
휴정休靜은 지금 나이가 84세라서 정신은 혼미하고 눈은 어두우며 손은 떨리는데, 외인外人의 간청에 못 이겨 비문碑文을 짓고 쓰게 되었으나, 문자가 모두 거칠어서 후세의 기롱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모쪼록 통달通達하신 군자君子들은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007_0734_c_01L界師亦使東方羣氓不失成佛之因
007_0734_c_02L此非山之靈也耶偉哉非徒山重國亦
007_0734_c_03L重也非徒國重人亦重也論諸品秩
007_0734_c_04L則惟政禪子不下慈藏法師也太白山
007_0734_c_05L不下靈鷲山也翌日正蘭二禪子開設
007_0734_c_06L浮啚落成大齋病老陞座法席謂諸
007_0734_c_07L人曰今日會中其有丈夫還知我世尊
007_0734_c_08L不入塔廟中者麽若知佛不在塔廟中
007_0734_c_09L則堪受人天供爾古人問堅固法身
007_0734_c_10L師荅曰山花澗水今日病老咄1) [631]
007_0734_c_11L請大衆叅禮世尊若擧釋迦眞身
007_0734_c_12L則至寂至竗至大至小無爲無不爲
007_0734_c_13L億聖衆之讃歎如量空也八萬魔軍之
007_0734_c_14L毁謗如繫風也雖然今日會中有益有
007_0734_c_15L還知麽信者敬佛故決登樂岸
007_0734_c_16L信者謗法故必落苦海如儒典所謂出
007_0734_c_17L乎爾者反乎爾各回光斷看昔孔
007_0734_c_18L夫子荅啇太宰問曰西方大聖人不治
007_0734_c_19L不亂蕩蕩乎民無能名焉云則可謂唯
007_0734_c_20L聖能知聖也休靜今年八十四歲精神
007_0734_c_21L恍惚眼昏手戰拘於外人之懇撰文
007_0734_c_22L書石文字俱荒不免後譏惶愧惶愧
007_0734_c_23L惟通達君子幸垂恕

007_0734_c_24L「茟」通用「筆」{編}

007_0735_a_01L
금강산 퇴은退隱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사자賜紫 부종수교扶宗樹敎 겸 등계보제대사登階普濟大師 청허당의 행장行狀
대사의 휘諱는 휴정休靜이요, 호는 청허淸虛이다. 오래도록 향산香山에 머물렀기 때문에 서산西山이라고 칭한다. 속성은 최씨崔氏이니, 완산인完山人이다.
부친 세창世昌은 기자전감箕子殿監을 사직하였으나 끝내 향관鄕官을 맡았다. 증고조가 태종조太宗朝에 용호방龍虎榜에 급제하여 창화昌化로 이주했으므로 역시 창화를 고향으로 삼았다. 외조外祖인 현윤縣尹 김우金禹가 연산군燕山君에게 죄를 얻어 안릉安陵으로 유배당했으므로 마침내 서관西關의 백성이 되었다.
대사는 정덕正德 경진년(1520, 중종 15)에 태어났다. 이에 앞서 기묘년에 모친 김씨金氏의 꿈에, 한 노파가 읍揖하면서 “장부인 남자를 배태胚胎하였기에 축하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임신을 하였다.
대사는 태어나면서부터 기골이 청철하고 기신機神이 비범하였다. 나이 겨우 9세 때에 벌써 사장辭章을 잘 지었으므로 고을 수령인 이 공李公이 경사京師로 데리고 가서 반궁泮宮에 입학시켰다. 3년 동안 성균관成均館에서 기예를 겨루었으나 두 번이나 사람들에게 밀려 낙제하였다.
이에 발분하여 남쪽으로 지리산을 유람하며 두루 산천을 돌아다니다가 석씨釋氏의 글을 보던 중에 심공급제心空及第를 해야 대장부가 된다는 글을 접하고는, 종전에 배운 것은 그저 하나의 허명虛名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능인 장자能仁長者에게 나아가 삭발을 하고, 영관靈觀 대사에게 법문을 들었다.
나이 30세에 선과禪科에 합격하여 선교禪敎 양종兩宗의 판사判事를 겸했다. 하루는 탄식하기를, “내가 출가한 본래의 뜻이 어찌 여기에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금강산으로 들어가서 미륵봉彌勒峯 아래에 홀로 거하였다. 이때 산월山月이 공중에 떠올라 천지가 밝게 빛나는 것을 보고 희열에 잠겨 투기시投機詩를 지었는데, 그중에 “발이 셋인 금 까마귀가 한밤중에 날아오른다.(三足金烏半夜飛)”라는 시구가 있었다.
기축년(1589, 선조 22)에 역적을 도왔다는 누명을 쓰고 잡혀 왔으나, 상上이 초사招辭에 털끝만큼도 죄가 없음을 보고서 이르기를, “상인上人이 어찌 운림雲林의 객의 신분으로 이와 같은 요망한 일을 행하겠는가.”라고 하였다.

007_0735_a_01L1)金剛山退隱國一都大禪師禪敎
007_0735_a_02L都揔攝賜紫扶宗樹敎兼登階普濟
007_0735_a_03L大師淸虛堂行狀 [632]

007_0735_a_04L
師諱休靜號淸虛久住香山故稱西
007_0735_a_05L俗姓崔氏完山人父世昌辭箕子
007_0735_a_06L殿監卒任鄕官曾高祖得龍虎榜於太
007_0735_a_07L宗朝移居昌化故亦以昌化爲鄕
007_0735_a_08L祖金縣尹禹得罪燕山謫居安陵
007_0735_a_09L爲西關之氓師生於正德庚辰先是己
007_0735_a_10L母金氏夢一老婆揖曰胚胎丈夫
007_0735_a_11L男子故來賀因以有娠及生肌骨淸
007_0735_a_12L機神異常年纔九歲能爲辭章
007_0735_a_13L倅李公携徃京師就泮宮居三年
007_0735_a_14L藝于舘下再屈於人發憤南遊智異
007_0735_a_15L窮盡山川因覽釋氏書至心空及第者
007_0735_a_16L須大丈夫漢乃覺從前所學徒一虛名
007_0735_a_17L於是削髮於能仁長者聽法於靈觀大
007_0735_a_18L年三十中禪科兼判禪敎兩宗事
007_0735_a_19L一日歎曰吾出家本志豈在於此乎
007_0735_a_20L去入金剛山獨居彌勒峯下見山月昇
007_0735_a_21L天地晃然怡然自得作投機詩
007_0735_a_22L三足金烏半夜飛之句歲在己丑誤被
007_0735_a_23L賊援旣至上見招辭無毫毛罪曰上
007_0735_a_24L人豈以雲林之客爲此妖妄事乎取詩

007_0735_b_01L그리고 시집詩集을 가져다가 친히 열람하고는 어필御筆로 죽묵竹墨을 하사하며 위로하였다.
임진년(1592, 선조 25)에 왜적이 삼경三京을 함락하자, 대가大駕가 서쪽 용만龍灣(義州)으로 거둥하였다. 상이 홀연히 대사를 떠올리며 좌우에게 하문하기를, “모某 상인上人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가 어찌 나를 잊겠는가. 얼른 불러서 오게 하라.”라고 하였다. 대사가 도착하자 주렴 밖에 앉히고서 “지금 상황이 이처럼 위급하니 얼른 국난 극복을 도와주면 좋겠다.”라고 하고는 즉시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에 임명하였다.
대사가 울면서 하직하고 물러나온 뒤에 역마驛馬를 치달려 순안順安 법흥사法興寺에 이르러서 승도僧徒를 모아 천병天兵(중국 군대)과 왕사王師(관군)를 도와 서경西京(평양)을 수복하게 하였다. 왜적이 남쪽으로 달아나자 송도松都까지 추격하며 성세聲勢를 도왔고, 남쪽으로 한강漢江 나루를 건너 안성安城에 진을 쳤다.
이때 자신이 연로하여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문도인 유정惟政과 처영處英 등을 불러 도중徒衆을 맡기며 “나의 마음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시석矢石 속에서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 다만 나이가 80에 가까우니 어떻게 군대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대들에게 대신 지휘를 맡기는 바이니, 모쪼록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라.”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총섭摠攝의 인印을 봉하여 상납上納한 뒤에 향산香山의 옛 은거지로 물러나 들어갔다. 국난을 평정하고 공을 논할 적에 조정에서 의논하기를, “비록 산인山人이지만, 공이 있으니 상을 주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고는 국일도대선사國一都大禪師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 부종수교보제등계扶宗樹敎普濟登階의 호를 내렸다.
대사가 사람들에게 언구言句를 보일 때에는 임제臨濟의 종풍을 잃지 않았으니, 이는 본원本原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동방의 태고太古 화상이 중국 하무산霞霧山에 들어가서 석옥石屋의 법사法嗣가 된 뒤에 이를 환암幻庵에게 전하였고, 환암은 귀곡龜谷에게 전하였고, 귀곡은 등계 정심登階正心에게 전하였고, 등계 정심은 벽송 지엄碧松智嚴에게 전하였고, 벽송 지엄은 부용 영관芙蓉靈觀에게 전하였고, 부용 영관은 서산 등계西山登階에게 전하였는데, 석옥은 바로 임제의 적손이었다.
이 8대代 중에서 오직 서산西山이 미친 물결을 잠재우고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는 힘을 발휘하였으니, 이는 이른바 뼈대를 바꾸는(換骨) 영방靈方이요, 눈의 백태를 긁어내는(刮膜) 금비金鎞라고 할 만하였다. 선교禪敎가 어수선하게 뒤섞임에 옥석을 구분하여 가르고, 보검을 휘둘러서 칼날을 감히 범하지 못하게 하고,

007_0735_b_01L集親覽御筆賜竹以慰之際壬辰倭賊
007_0735_b_02L陷三京大駕西幸龍灣上忽自憶
007_0735_b_03L左右曰某上人今在何處豈忘我耶
007_0735_b_04L亟使召來來則坐簾外傳諭時危如此
007_0735_b_05L幸相急難即拜八道十六宗禪敎都捴
007_0735_b_06L師泣而辭退馳傳至順安法興寺
007_0735_b_07L聚僧徒助天兵王師復西京及賊南走
007_0735_b_08L追進松都聲勢相助南渡漢津陣安城
007_0735_b_09L自思年老不能乘銳召其徒惟政處英
007_0735_b_10L付以徒衆曰吾爲國之心雖死矢
007_0735_b_11L無所恨但年將八十豈可任將
007_0735_b_12L代將而軰須戮力爲之乃封捴攝印上
007_0735_b_13L退入香山舊隱旣平難論功朝廷
007_0735_b_14L議曰雖山人有功不可無賞賜聀號
007_0735_b_15L國一都大禪師禪敎都捴攝扶宗樹敎普
007_0735_b_16L㴉登階凡示人言句不失臨㴉宗風者
007_0735_b_17L有本有原吾東方太古和尙入中國霞
007_0735_b_18L霧山嗣石屋而傳之幻庵幻庵傳之龜
007_0735_b_19L龜谷傳之登階正心登階正心傳之
007_0735_b_20L碧松智嚴碧松智嚴傳之芙蓉靈觀
007_0735_b_21L蓉靈觀傳之西山登階石屋乃臨㴉嫡
007_0735_b_22L孫也此八代中唯西山大有回狂瀾正
007_0735_b_23L頹綱之力所謂換骨靈方刮膜金鎞
007_0735_b_24L而禪敎混雜剖分玉石者寶釼當揮

007_0735_c_01L입을 다물고 정관靜觀하며 불 꺼진 재처럼 되지 않게 한 것은 그 누구의 공인가. 살활殺活의 겸추鉗鎚를 손에 쥐고서 많은 영재英材를 길러내고, 불조佛祖의 광명을 새로 밝혀 인천人天의 안목을 열어 준 것이 이처럼 성대한 때는 있지 않았다.
대사가 지은 글로는, 「석가여래비문釋迦如來碑文」 1통統과 『선가귀감禪家龜鑑』 1권과 『선교석禪敎釋』 1권과 『운수단雲水壇』 1권과 『선교결禪敎訣』 3지紙와 시영詩詠 및 제소기문祭疏記文 도합 3권이 세상에 전해진다.
아, 왕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불조를 거듭해서 빛낸 이 공로를, 개국 이래로 그 누가 미칠 수 있겠는가. 나이 85세에 향산에서 입적하니, 갑진년(1604, 선조 37) 정월 23일이었다. 입실 제자인 원준元俊과 인영印英 등이 다비를 행하여 유골 몇 조각을 수습하였다. 한 조각은 원준 등이 금강金剛의 사리 두 개를 청하여 부도를 세우고 보현사普賢寺 서쪽 안심사安心寺의 왕사王師 나옹懶翁의 위차位次에 봉안하였으며, 한 조각은 자휴自休 등이 금강산으로 가져와 분향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역시 신주神珠 몇 매枚와 함께 유점사楡岾寺 북쪽의 석종石鍾에 봉안하였다.
문인 편양 언기鞭羊彥機는 몸을 씻고 삼가 쓰다.
정종대왕正宗大王이 지은 서산 대사 화상당畫像堂의 명문銘文병서并序
석가를 일반적으로 사미沙彌라고 칭하는데, 사미는 식자息慈라는 뜻이니, 자비의 땅에서 안식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불교의 삼장三藏 중에서는 수다라修多羅(經藏)가 으뜸이 되고, 불교의 10회향十回向 중에서는 중생을 구하는 것이 으뜸이 된다. 대개 계율과 선정과 지혜 역시 구경究竟에는 자비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007_0735_c_01L不犯鋒鋩者杜口靜觀不落寒灰者
007_0735_c_02L其誰之功歟秉殺活鉗鎚陶鑄群英
007_0735_c_03L洗佛祖光明開人天眼目無如此之盛
007_0735_c_04L其所作制釋迦如來碑文一統禪家
007_0735_c_05L龜鑑一卷禪敎釋一卷雲水壇一卷
007_0735_c_06L敎訣三紙詩詠及祭䟽記文并三卷
007_0735_c_07L于世保安王室重輝佛祖者自開
007_0735_c_08L國以來誰能及之年八十五入寂于香
007_0735_c_09L甲辰正月二十三日也入室弟子元
007_0735_c_10L俊印英等闍維奉骨數片一片則元俊
007_0735_c_11L等乞得金剛舍利二介樹浮圖安之
007_0735_c_12L普賢西安心寺王師懶翁之級一片則
007_0735_c_13L自休等取來金剛山焚香恳禱亦以
007_0735_c_14L神珠數枚應之窆石于楡岾之北焉
007_0735_c_15L人鞭羊彥機盥沐謹狀

007_0735_c_16L

007_0735_c_17L2)正宗大王御製西山大師畵像堂
007_0735_c_18L并序 [633]

007_0735_c_19L
釋家之通稱曰沙彌沙彌者息慈也
007_0735_c_20L謂安息於慈悲之地也故佛有三藏
007_0735_c_21L修多羅爲首佛有十回向而救衆生爲
007_0735_c_22L盖戒律也禪㝎也智慧也無一不
007_0735_c_23L此行狀只在戊己庚辛本此銘只在戊己
007_0735_c_24L庚辛本

007_0736_a_01L법계의 공덕이 여기에 있고, 항사恒沙의 복전福田이 여기에 있으니, 자비의 가르침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고 하겠다.
후세의 사미는 그렇지 않아서 운천雲天과 수병水甁으로 실상實相의 밖에서 마음을 노닐고,19) 취죽翠竹과 황화黃花로 무정無情의 물체에 몸을 비긴다.20) 그래서 우리 유자儒者가 마침내 고목枯木 사회死灰라고 기롱하게 되었으니, 이는 우리 유자가 기롱하려 해서가 아니요, 후세의 사미가 그런 기롱을 자초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서산 대사 휴정休靜과 같은 사미로 말하면, 역시 식자息慈의 뜻에 부끄러운 점이 없다고 할 것이다. 처음에는 바랑과 석장錫杖 차림으로 제방을 두루 참례하며 법당法幢을 세워 인천人天의 안목이 되었다. 그리하여 운장雲章과 보묵寶墨을 하사하는 제왕의 은총이 우악優渥하였으니, 도솔兜率과 난야蘭若 사이21)에서 지금 정관貞觀과 영락永樂의 서序22)와 함께 영광을 다투고 있는 터이다.
중간에는 종풍을 발현하고 국난을 구제하며 의병을 일으켜 근왕勤王의 원훈元勳이 되었다. 그리하여 비린내 나는 요기妖氣가 그의 손을 따라서 말끔히 없어졌으니, 세상을 구제한 그 공을 지금 염부제閻浮提에서 무량겁토록 길이 의지하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인연을 따라 몸을 나투었다가 인연이 다함에 몸을 거두어 인과의 원리대로 상승上乘의 교주敎主가 되었다. 그리하여 매실이 익고23) 연꽃이 피어나면서 홀연히 피안에 이르렀으므로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가까이 나아가면 온화한(望儼卽溫)24) 그의 초상화가 지금 서쪽과 남쪽의 영당影堂에서 정례頂禮를 받고 있는 터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만 대천세계大千世界를 구제하고 속진俗塵의 세상에 은혜를 베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벽을 마주하고서 염주를 굴리거나25)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것26)을 어떻게 자비라고 할 수 있겠으며, 탑묘塔廟나 널리 세우고 경률經律이나 많이 베끼는 것을 어떻게 자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서쪽과 남쪽 도신道臣의 요청에 따라 그 영당影堂에 편액扁額을 내리되, 남쪽은 표충表忠이라 하고 서쪽은 수충酬忠이라고 하는 한편, 관원에게 명하여 제수祭需를 지급해서 매년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 금년이 갑인년(1794, 정조 18)이므로 홍무洪武 갑인년(1374, 공민왕 23)에 선세善世 선사27)에게 시를 하사한 고사를 추억하며 서序와 명銘을 지어서 영당에 걸게 하는 바이다.
내가 비록 불가佛家의 진제眞諦를 익히지는 않았으나,

007_0736_a_01L慈悲乎究乘而法界之功德在此恒沙
007_0736_a_02L之福田在此無上哉慈悲之爲敎也
007_0736_a_03L後世之沙彌則不然雲天水瓶遊心於
007_0736_a_04L實相之外翠竹黃花比身於無情之物
007_0736_a_05L而吾儒遂以枯木死灰譏之非吾儒譏
007_0736_a_06L之也即後世沙彌自詒其譏也若西
007_0736_a_07L山大師休靜之爲沙彌也其亦不愧夫
007_0736_a_08L息慈之義乎始焉腰包杖錫徧叅諸
007_0736_a_09L樹法幢爲人天眼目則雲章寶墨
007_0736_a_10L寵賚優異至今與貞觀永樂之序爭耀
007_0736_a_11L於兜率蘭若間中焉顯發宗風弘濟
007_0736_a_12L國難倡義旅爲勤王元勳則腥羶妖氛
007_0736_a_13L應手廓淸至今使方便度世之功永賴
007_0736_a_14L於閻浮提無量刼終焉隨緣現身
007_0736_a_15L過攝身尋因果爲上乘敎主則梅熟蓮
007_0736_a_16L倐到彼岸至今有望儼即溫之像
007_0736_a_17L受頂禮於西南香火之所如此然後
007_0736_a_18L庶幾乎濟大千而惠塵境曾面壁數珠
007_0736_a_19L磨磚作鏡之謂慈悲乎曾廣建塔廟多
007_0736_a_20L寫經律之謂慈悲乎予因西南道臣之
007_0736_a_21L請其影堂額賜南曰表忠西曰酬忠
007_0736_a_22L命官結祭需歲祀之以今歲甲寅追洪
007_0736_a_23L武甲寅賜詩善世禪師之故事爲之
007_0736_a_24L序若銘俾揭諸堂予雖未習佛諦

007_0736_b_01L일찍이 『법화경』의 의해義解를 들어 보건대, “게偈의 뜻은 중국에서 서序 뒤에 붙이는 명銘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고 보면 이 명銘은 실로 서축西竺의 게偈인 셈이다. 명은 다음과 같다.

佛日初照        불일이 처음 비침에
慈雲爲經        자비가 바로 경이었네.
浩刧單傳        오랜 세월 단전單傳28)을 하며
囑付丁寧        부촉함이 정녕하였나니
問其誓願        그 서원을 물으면
孰非施捨        누군들 보시가 아니라 하랴.
義海茫茫        의리의 바다가 망망해서
津逮者寡        건너는 이들이 드물었는데
福國多祐        복된 나라를 하늘이 보우하사
高僧應期        고승이 때맞춰 출현하였네.
卓錫一喝        석장을 세우고 한 소리 외치니
魔軍離披        마귀의 군졸이 흩어져 사라지고
天晶月朗        하늘 맑고 달 밝은 가운데
波恬浪平        거센 물결이 조용히 가라앉았네.
優曇鉢華        우담바라 꽃이
涌現東瀛        동해에 피어났다가
歸慶赤縣        경사는 적현29)으로 돌려주고
返眞靑蓮        진신眞身은 연화세계로 돌아갔다오.
肅穆鍾魚        숙연하도다 쇠북과 목어여,
禪燈孤懸        고적孤寂하여라 선찰의 등불이여.
名流竹簡        이름은 죽간에 전하고
道存貝葉        도는 패엽에 남기고서
寂鄕鉢寺        적막한 시골의 발사鉢寺30)
交暎看睫        그 모습 어리비치나니31)
報祀伊何        보은의 제사 어떻게 할까.
蒲饌自官        관에서 보찬32)을 지급하리라.
倘布靈貺        신령스러운 복을 내리면
長蔭旃檀        길이 전단33)을 비호하리니
麻稻竹葦        마치 마도죽위34)처럼
匝域蓊若        온 나라가 번성하여
匹周冨康        부유했던 주나라를 짝하고35)
媲唐耕鑿        경착의 당나라와 견주면서36)
八萬四千        8만 4천 세 동안
子孫同樂        자자손손 함께 즐기게 해주시라.

내가 즉위한 지 18년째 되는 갑인년 4월 초파일에 표충사와 수충사에 봉안하노라.
수충사酬忠祠 사제문賜祭文
건륭乾隆 59년(1794, 정조 18) 갑인년 4월 초파일에 국왕은 공조정랑工曹正郞 겸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 승응조承膺祚를 보내 국일도대선사國一都大禪師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 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 증표충선사贈表忠禪師 휴정休靜의 영靈에 제사하노라.

在家忠孝        집에 있으면 충효요
出世慈悲        출가해서는 자비라.

007_0736_b_01L甞聞法華之義解矣曰偈之義如此方
007_0736_b_02L之序後銘則此之銘固梵之偈也
007_0736_b_03L

007_0736_b_04L
佛日初照慈雲爲經浩刼單傳

007_0736_b_05L囑付丁寧問其誓願孰非施捨

007_0736_b_06L義海茫茫津逮者寡福國多祐

007_0736_b_07L高僧應期卓錫一喝魔軍離披

007_0736_b_08L天晶月朗波恬浪平優曇鉢華

007_0736_b_09L涌現東瀛歸慶赤縣返眞靑蓮

007_0736_b_10L肅穆鍾魚禪燈孤懸名流竹簡

007_0736_b_11L道存貝葉寂鄕鉢寺交暎看 [92]

007_0736_b_12L報祀伊何蒲饌自官倘布靈貺

007_0736_b_13L長蔭旃檀麻稻竹葦匝域蓊若

007_0736_b_14L匹周冨康 [93] 媲唐耕鑿八萬四千

007_0736_b_15L子孫同樂

007_0736_b_16L
予即阼之十有八年甲寅四月八日
007_0736_b_17L于表忠酬忠之祠1)

007_0736_b_18L

007_0736_b_19L2)酬忠祠賜祭文

007_0736_b_20L
維乾隆五十九年歲次甲寅四月初八日
007_0736_b_21L國王遣臣工曺正郞兼春秋館記注官承
007_0736_b_22L膺祚諭祭于國一都大禪師禪敎都揔
007_0736_b_23L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贈表忠禪師
007_0736_b_24L休靜之靈在家忠孝出世慈悲

007_0736_c_01L緣或異遇        만나는 인연은 혹 달라도
根豈殊歧        뿌리야 어찌 다른 갈래리오.
師惟鍾靈        선사는 영기를 한 몸에 받아
拔類之姿        자질이 특별히 뛰어났나니
淸猶跡應        청허하면서도 세상일에 응하며
虛不倫遺        중생을 저버리지 않았도다.
雲章墨畫        운장과 묵화를 내려
聖祖寵之        성조가 총애하였나니
歸鎭山門        산문에 돌아가 거해도
敢忘洪私        어찌 감히 은혜를 잊겠는가.
現我世法        세간을 위해 몸을 나투어
奮我義旗        의로운 깃발을 떨치니
氛䘲斯廓        요기가 말끔히 사라지고
天日昭披        하늘의 해가 다시 빛났네.
宗社功存        종사에 공을 세우며
大邦名馳        대국에 이름을 날렸는데도
返照回光        스스로 돌이켜 반성하며
寂若無爲        적막 무위의 경지를 보였나니
如唐鄴侯        당나라 업후37)와 같은
迹又何奇        그 자취 얼마나 또 기이한고.
弟子飛錫        제자가 석장을 날려
鯨海之湄        거친 바다를 건너감에
蠻酋旣讋        오랑캐 추장이 겁을 내어
國步再綏        국운이 다시 안정되었네.
衣鉢之傳        의발을 전하며
仗義匡時        정의를 펴고 시대를 바로잡았으니
寔賴禪宗        실로 선종에 힘입어
光我民彛        우리의 윤리를 세웠기에
始予曠感        처음에 내가 감동하여
南紀之祠        먼 남쪽 지방의 사당에
貤以華誥        고명誥命을 내려
有煌扁楣        현판이 빛나게 하였어라.
岹嶤香岳        우뚝 솟은 묘향산에
遺像聯帷        초상화 고이 모셨는데
生長老寂        더구나 이 서쪽 지방은
矧在西陲        나고 자라고 늙고 입적한 곳임에랴.
即祠于是        즉시 여기에 사당을 세우도록
爰命有司        유사에게 명령하여
載新棟宇        건물도 새롭게 하고
載琢豊碑        비도 크게 새겼어라.
二字嘉號        두 글자 아름다운 호는
偉績是追        위대한 공적을 추모함이니
將以樹風        장차 풍성風聲을 세우려 함에
豈嫌疊施        어찌 거듭 베풂을 꺼리리오.
太歲維甲        지금은 갑인년
浴佛屆期        관불灌佛하는 4월 초파일
金花日暎        금화에 태양이 빛나고
寶蓋雲移        보개에 구름이 흘러가네.
是日降香        오늘 향을 내려
倣皇朝儀        황조의 의식을 본받나니
茫茫幻劫        길이 인간 세상에서
聲烈昭垂        그 명성 환히 전해지리.
靈之如水        신령은 물과 같으니38)
彷佛來思        부디 와서 흠향하시라.
자찬自贊
八十年前渠是我     80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650]      80년 후에는 내가 그로구나

007_0736_c_01L或異遇根豈殊歧師惟鍾靈拔類之姿
007_0736_c_02L淸猶跡應虛不倫遺雲章墨畵聖祖
007_0736_c_03L寵之歸鎭山門敢忘洪私現我世法
007_0736_c_04L奮我義旗氛䘲斯廓天日昭披宗社
007_0736_c_05L功存大邦名馳返照回光寂若無爲
007_0736_c_06L如唐鄴侯迹又何奇弟子飛錫鯨海之
007_0736_c_07L蠻酋旣讋國步再綏衣鉢之傳
007_0736_c_08L義匡時寔賴禪宗光我民彛始予曠
007_0736_c_09L南紀之祠貤以華誥有煌扁楣
007_0736_c_10L嶤香岳遺像聯帷生長老寂矧在西
007_0736_c_11L即祠于是爰命有司載新棟宇
007_0736_c_12L琢豊碑二字嘉號偉績是追將以樹
007_0736_c_13L豈嫌疊施太歲維甲浴佛屆期
007_0736_c_14L花日暎寶盖雲移是日降香倣皇朝
007_0736_c_15L茫茫幻刼聲烈昭垂靈之如水
007_0736_c_16L佛來思

007_0736_c_17L

007_0736_c_18L3)自賛 [634]

007_0736_c_19L
八十年前渠是我八十年後我是4) [635]

007_0736_c_20L此下戊己庚辛本有國一大師淸虛堂像編者
007_0736_c_21L除之
此祭文只在戊己庚辛本此自賛文
007_0736_c_22L只在戊己庚辛本卷頭編者移置於卷末
丁本
007_0736_c_23L刊記如下「禪師三忍明元智云刻手惟性
007_0736_c_24L守仁勝悅大暎一元普熏三綱法機施主
007_0736_c_25L金斗挨兩主通政大夫李允己崔夢亨兩主

007_0737_a_01L政大夫崔係男孫得帝宋貴希曺大興曺敬興
007_0737_a_02L趙廷漢呂仁录金應生金命生思學趙廷录
007_0737_a_03L權以衡尙希崔長命義行金秋男金史惠
007_0737_a_04L哲卞戒訥通政大夫吳順生戒林助緣者
007_0737_a_05L丁勒比丘尙希印奇坦寶德粦彥玄淸允
007_0737_a_06L坦海隱梅德孤省傳明海印玉禪哲
007_0737_a_07L康熙五年丙午仲夏桐裡山泰安寺開板」
  1. 1)방 옹龐翁 : 당대唐代의 저명한 재가在家 선자禪者인 방온龐蘊을 가리킨다. 후세에 양양襄陽의 방 대사龐大士 혹은 방 거사龐居士로 칭해지고, 동토東土의 유마維摩로 일컬어졌으며, 양대梁代의 부 대사傅大士와 병칭되었다. 강서江西의 마조 도일馬祖道一을 참알하여 “만법과 벗이 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이냐?(不與萬法爲侶者。 是甚麼人。)”라고 물었다가, “네가 한 입으로 서강의 물을 다 마시면 말해 주겠다.(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即向汝道。)”라는 대답을 듣고 대오大悟하여 “시방에서 다 함께 모여들어 낱낱이 무위를 배우누나. 여기가 바로 선불장이라, 심공급제하여 돌아가노라.(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라는 게송을 읊었다. 그의 처와 1남 1녀도 모두 깨달음을 얻었으며, 특히 딸 영조靈照는 죽기竹器를 팔아서 조석朝夕을 공양하였는데, 그의 게에 “아들은 장가를 가지 않고, 딸은 시집을 가지 않네. 온 가족이 단란히 모여 함께 무생의 이야기를 나눈다네.(有男不婚。 有女不嫁。 大家團圝頭。 共說無生話。)”라는 말이 나온다. 그가 입적할 즈음에 딸 영조에게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하니, 영조가 돌아와서 “해가 벌써 중천에 떴는데, 일식이 있습니다.(日已中矣。 而有蝕也。)”라고 하였다. 이에 방온이 나가서 살펴보는 사이에 영조가 아버지의 자리에 올라가 앉아서 합장하고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방온이 이를 보고 웃으며 “내 딸의 기봉이 예리하구나.(我女鋒捷矣)”라고 감탄하고는 다시 날짜를 미뤄 7일 뒤에 입적했다고 한다.〔『佛祖綱目』 권32 「馬祖道一傳法龐蘊」(X85, 0627a13), 『景德傳燈錄』 권8 「襄州居士龐蘊」(T51, 0263b03), 『居士傳』 권17(X88, 0214c11), 『碧巖錄』 제42칙(T48, 0179b15) 참조〕
  2. 2)야호정野狐精 : 야호野狐의 정매精魅가 변환하여 사람을 잘 속이는 것처럼,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으면서 깨달은 것처럼 행세하는 사이비 선승禪僧을 말한다.
  3. 3)삼조연三條椽 아래 : 선방禪房에서 좌선하는 상위床位를 말한다. 그 상床의 너비가 3척이고, 그 위에 세 개의 서까래(三條椽)가 있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좌선하는 자를 삼조연하객三條椽下客이라고 칭하기도 한다.〔『碧巖錄』 「제25칙」(T48, 0165c08) 참조〕
  4. 4)도인은 응당~새삼 떠오르누나 : 『불조강목佛祖綱目』 권32 「보원선사개법남전조普願禪師開法南泉條」에 당唐나라 남전 보원南泉普願이 “요즈음 선사가 무척 많기도 하다마는, 그중에 아둔한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近日禪師太多。 覔箇癡鈍人不可得。)”라고 탄식한 말이 나온다.(X85, 0630c23)
  5. 5)슬프다 달빛만 실은 선자船子여 : 이 시 3수는 이미 앞에 나왔다. 이 대목의 주석은 제2권 주 81과 82를 참조하기 바란다.
  6. 6)일생에 기특한~있는 것 : 당唐나라 백장 회해百丈懷海 선사에게 어떤 중이 “무엇이 기특한 일입니까?(如何是奇特事)”라고 묻자, 백장이 “대웅봉에 홀로 앉아 있는 것.(獨坐大雄峰)”이라고 답변한 ‘백장독좌대웅봉百丈獨坐大雄峰’의 선종禪宗 공안公案이 전한다. 대웅봉은 강서江西 백장산百丈山의 이칭異稱이다. 회해가 이 산에서 선풍禪風을 떨쳤기 때문에 세상에서 백장 회해라고 칭하였다.〔『五燈會元』 권3(X80, 0071a09), 『碧巖錄』 제26칙(T48, 0166c26) 참조〕
  7. 7)원숭이와 학이 사람 없다 원망하네 : 이 시도 이미 앞에 나와 있다. 이 대목의 주석에 대해서는 제2권 주 118을 참조하기 바란다.
  8. 8)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의 물음과 정전백수자의 대답이여 : 제1권 주 49 참조.
  9. 9)가정을 지나며 느낌을 적다 : 이 시는 〈임신년 가을에 정 동경을 생각하며(壬申秋憶鄭同庚)〉라는 제목으로 이미 앞에 나와 있다.
  10. 10)현겁賢劫 : 석가불釋迦佛 등 1천 부처가 세상에 출현하는 현재겁이라는 뜻의 불교 용어이다. 과거장엄겁過去莊嚴劫ㆍ미래성수겁未來星宿劫과 합쳐서 삼대겁三大劫이라고 한다.
  11. 11)석가가 도솔천에서~내려올 적에 : 『불본행경佛本行經』 권1에 호명護明보살이 상아 여섯 개의 흰 코끼리를 타고 도솔천兜率天에서 내려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마야부인摩耶夫人이 꾸고서 석가를 잉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T03, 0676b10)
  12. 12)노파가 나뭇잎을~한 것 : 선종禪宗에서는 부처의 8만 4천 법문이 모두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일시적인 방편 설법으로서, 『북본대열반경北本大般涅槃經』 권20 「영아행품嬰兒行品」과 『종용록從容錄』 제7칙(T48, 0231c12)에 마치 어린아이가 울 적에 부모가 나무의 누런 잎사귀를 황금이라고 속여서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黃葉止啼)과 같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나온다.
  13. 13)염화拈花 : 석가모니가 수제자 가섭迦葉에게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해 주었다는 선종禪宗 전설의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이다. 참고로 삼처전심은 영산靈山에서의 이 염화미소拈花微笑와 다자탑多子塔에서 자리의 반을 나누어 앉게 했다는 분반좌分半座와 쌍림수하雙林樹下의 관 속에서 두 발을 내밀었다는 곽시쌍부槨示雙趺 혹은 관중출족棺中出足을 말한다. 본문의 시부示趺는 곽시쌍부의 준말이다.
  14. 14)노부老父가 실성한~둔 것 : 법화法華 칠유七喩의 하나인 의자유醫子喩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법화경法華經』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 어떤 양의良醫가 타국에 간 사이에 여러 아들이 독약을 잘못 먹었는데, 그 아비가 돌아와서 양약良藥을 주니 모두 먹고 나았으나 실성한 아들만은 거부하고 복용하지 않았다. 이에 그 아비가 타국으로 다시 떠나며 거짓으로 죽었다고 말하니, 그 아들이 지극히 슬퍼하다가 정신이 깨어 약을 먹고 낫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T09, 0043a07)
  15. 15)사위성舍衛城의 3억 가호家戶 : 『대지도론大智度論』 권9에 사위성의 9억 민중 가운데 3억은 부처가 출세出世한 시대에도 인연이 없어서 불법을 전연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T25, 0125c05)
  16. 16)옛사람이 견고한~시냇물(澗水)이라고 대답하였다 : 송宋나라 대룡 지홍大龍智洪 선사에게 어떤 중이 “색신이 무너지고 난 뒤에 어떤 것이 견고한 법신입니까?(色身敗壞。 如何是堅固法身。)”라고 물으니, “산꽃은 비단처럼 울긋불긋 피어 있고, 시냇물은 쪽빛처럼 푸르게 고여 있다.(山花開似錦。 澗水湛如藍。)”라고 대답한 일화가 전한다. 선종禪宗에서 견고법신堅固法身 혹은 대룡패괴법신大龍敗壞法身의 공안으로 칭해진다.〔『碧巖錄』 제82칙(T48, 0208a26), 『五燈會元』 권8(X80, 0178b19) 참조〕
  17. 17)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 : 제6권 주 63 참조.
  18. 18)옛날에 공부자孔夫子가~라고 하였다 : 상商나라 태재太宰 비嚭가 공자에게 “선생님은 성자聖者이십니까?”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박학강기博學強記할 뿐 성인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또 삼왕三王과 오제五帝와 삼황三皇이 성자인지 물었으나, 각각 잘한 점이 있긴 하나 성인인지는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태재가 크게 놀라면서 그렇다면 누가 성인이냐고 묻자, 공자가 “내가 듣기에 서방에 대성인이 계시는데, 그분은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절로 펴지고, 교화하지 않아도 절로 행해지니, 지극히 광대해서 사람들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가 없습니다.(丘聞西方有大聖焉。 不治而不亂。 不言而自信。 不化而自行。 蕩蕩乎人無能名焉。)”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전한다.〔『佛祖綱目』 권10 「震旦國孔丘示寂」(X85, 0575a16) 참조〕
  19. 19)운천雲天과 수병水甁으로~마음을 노닐고 : 당唐나라 이고李翱가 약산 유엄藥山惟儼 선사에게 도道를 묻자, 유엄이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다.(雲在青天水在瓶)”라고 대답하니, 이고가 흔연히 계오契悟했다는 고사가 전한다.〔『佛祖綱目』 권32 「李翱居士參惟儼禪師」(X85, 0630b02) 참조〕
  20. 20)취죽翠竹과 황화黃花로~몸을 비긴다 : 남조南朝의 도생道生이 무정물에도 불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푸르게 우거진 대나무 숲도 모두 진여요, 누렇게 피어난 국화꽃도 반야 아닌 것이 없다.(靑靑翠竹。 盡是眞如。 鬱鬱黃花。 無非般若。)”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祖庭事苑』 권5(X64, 0387b13) 참조〕
  21. 21)도솔兜率과 난야蘭若 사이 : 도솔천과 사찰 사이, 즉 하늘과 땅 사이라는 말이다.
  22. 22)정관貞觀과 영락永樂의 서序 : 불교의 고승을 우대한 중국 황제의 글이라는 말이다. 정관은 당 태종唐太宗의 연호이고, 영락은 명 성조明成祖의 연호이다. 정관 19년(645) 정월에 현장玄奘이 서역 천축에서 귀국하자 그에게 삼장법사三藏法師의 호를 하사하고, 조서詔書를 내려 그의 역경譯經 작업을 적극적으로 돕게 한 고사가 있다.(「大唐三藏聖敎序」, 「大唐西域記序」, 『續高僧傳』 卷4, 『佛祖統紀』 권39) 또 영락 5년(1407) 3월에 서장西藏의 라마교喇嘛敎 고승高僧인 갈리마오사噶里麻烏斯를 대보법왕大寶法王에 봉하고, 종산鍾山 영곡사靈谷寺에서 7일 동안 보도대재普度大齋를 열며 성조 자신이 친히 분향한 고사가 있다. 갈리마오사는 합리마哈里麻ㆍ합립마哈立麻ㆍ갈리마葛哩麻 등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釋鑑稽古略續集』 권3, 『補續高僧傳』 권19 참조)
  23. 23)매실이 익고 : 당 덕종唐德宗 때 마조 도일馬祖道一 선사가 그의 법사法嗣인 대매법상大梅法常을 인가하면서 “매실이 익었다.(梅子熟也)”라고 말한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법상이 대매산大梅山에 거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景德傳燈錄』 권7(T51, 0254c14)〕 그런데 『송고승전宋高僧傳』 권11(T50, 0776a14)과 『조당집祖堂集』 권15에는 이 말을 법상의 동문인 염관 제안鹽官齊安이 평한 말로 기록하고 있다.
  24. 24)멀리서 바라보면~나아가면 온화한 : 『논어』 「자장子張」의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하고 가까이 나아가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어 보면 명확하다.(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厲。)”라는 말을 발췌한 것이다. 이는 자하子夏가 군자에 빗대어 공자의 덕을 표현한 말이다.
  25. 25)벽을 마주하고서 염주를 굴리거나 : 제5권 주 30 참조.
  26. 26)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것 : 당唐나라 마조 도일馬祖道一이 형악衡嶽에서 좌선을 할 적에 남악 회양南嶽懷讓이 그의 법기法器를 알아보고는 그를 찾아가서 좌선하는 목적을 물어보니, 부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이에 남악이 그의 암자 앞에 벽돌 하나를 가지고 와서 갈기 시작하였는데, 도일이 그 이유를 묻자 거울을 만들려 한다고 하였다. 도일이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느냐?(磨磚豈得成鏡耶)”라고 묻자, 회양이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을 해서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느냐?(磨磚既不得成鏡。 坐禪豈得作佛。)”라고 반문하고는 그를 깨달음의 길로 이끈 마전磨磚의 고사가 전한다.〔『佛祖綱目』 권30 「懷讓禪師傳法馬祖道一」(X85, 0615c09) 참조〕
  27. 27)선세善世 선사 : 명明나라 초기의 인도印度 선승禪僧이다. 범명은 Sahajaśrī로, 음역은 살갈찰실리薩曷拶室哩이고, 구생길상具生吉祥으로 의역된다. 명 태조 홍무 7년(1374)에 도성에 들어오자 태조가 봉천문奉天門에서 소견召見하고 선세 선사라는 호를 내렸으며, 특별히 은장銀章을 반포하여 천하의 석교釋敎를 총령摠領하게 하였다.〔『補續高僧傳』 권1(X77, 0373a22), 『新續高僧傳』 권18(X77, 0373a22) 참조〕
  28. 28)단전單傳 : 선종禪宗의 용어로, 교외별전敎外別傳ㆍ불립문자不立文字ㆍ견성성불見性成佛의 심인心印을 불조佛祖끼리만 서로 전해 온 것을 가리킨다.
  29. 29)적현赤縣 :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 추연鄒衍이 화하華夏의 땅을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 칭한 고사에서 나온 말로, 보통 중국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인간 세상의 뜻으로 쓰였다.(『史記』 「孟子荀卿列傳」 참조)
  30. 30)발사鉢寺 : 고승이 입적한 사원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서산의 영당影堂의 뜻으로 쓰였다. 송宋나라 중원 문혜重元文慧 선사가 노국공潞國公 문언박文彦博에게 떠나겠다고 하자, 문언박이 늙은 몸으로 또 어디를 가려느냐고 웃으면서 물었는데, 잠시 뒤에 알아보니 천발사天鉢寺에 앉아서 입멸하였으며, 무더위 속에서도 향기가 진동하고 사리가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천발사는 불발사佛鉢寺라고도 한다〔『佛祖綱目』 권36 「契嵩禪師進傳法正宗記」(X85, 0721c12) 참조〕
  31. 31)그 모습 어리비치나니 : 대본의 원문은 ‘交暎看睫’으로 되어 있으나, 정조正祖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권53의 원문에 의거하여 ‘看’을 ‘眉’로 바꿔 번역하였다.
  32. 32)보찬蒲饌 : 이보새伊蒲塞의 찬수饌需, 즉 이보찬伊蒲饌의 준말로, 재齋를 올릴 때 바치는 음식 등을 말한다. 이보새는 범어 upāsaka의 음역으로, 오계五戒를 받은 재가 남자 불교 신도를 말한다. 우바새優婆塞라고도 하며, 근사남近事男ㆍ근선남近善男ㆍ청신남淸信男ㆍ청신사淸信士 등으로 의역된다. 여자 신도는 우바이優婆夷라고 한다.
  33. 33)전단栴檀 : 전단서상栴檀瑞像의 준말로, 전단의 향나무로 조각한 불상佛像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서산의 초상肖像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34. 34)마도죽위麻稻竹葦 : 만물이 번창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법화경』 「방편품」의 “마치 벼와 삼과 대와 갈대처럼 시방세계에 가득 차기를.(如稻麻竹葦。 充滿十方剎。)”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T09, 0005c14)
  35. 35)부유했던 주나라를 짝하고 : 대본의 원문은 ‘匹周富康’으로 되어 있으나, 『홍재전서』의 원문에 의거하여 ‘康’을 ‘庶’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36. 36)경착耕鑿의 당唐나라와 견주면서 : 태평 시대를 가리킨다. 당나라는 도당씨陶唐氏, 즉 요堯임금의 시대를 뜻한다. 경착은 밭 갈고 샘을 판다는 뜻인데, 요임금 때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샘을 파서 물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을 뿐이니, 임금님의 힘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37. 37)업후鄴侯 : 업현후鄴縣侯에 봉해진 당唐나라 이필李泌을 가리킨다. 당 숙종唐肅宗으로부터 빈우賓友의 대우를 받으면서 들어와서는 국사國事를 의논하고, 나가서는 대가大駕를 호종하면서 중흥의 방략方略을 논의하였으며, 덕종德宗이 봉천奉天의 행재소行在所에 있을 당시에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여 사직을 안정시킨 공이 많다. 그가 스스로 산인山人이라고 칭하며 관직을 고사하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를 사양하며 화禍를 피해 형악衡嶽에 은거한 고사가 있기 때문에 그를 서산에 비유한 것이다.(『舊唐書』 권130 「李泌傳」 참조)
  38. 38)신령은 물과 같으니 : 송宋나라 소식蘇軾이 지은 「조주한문공묘비潮州韓文公廟碑」에 “공의 신령이 천하에 있는 것은 마치 물이 땅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어디에 간들 있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公之神在天下者。 如水之在地中。 無所往而不在也。)”라는 말이 나온다. 한문공은 당唐나라 한유韓愈를 가리킨다.
  1. 1)此文無有{甲}{乙}{丙}{丁}。
  2. 2)「憐」作「怜」{戊}{己}{庚}{辛}。
  3. 3)「日」作「月」{戊}{己}{庚}{辛}。
  4. 4)此文無有{甲}{乙}{丙}{丁}。
  5. 5)「徤」作「健」{戊}{己}{庚}{辛}。
  6. 6)「邾」作「邪」{甲}{乙}{丙}{丁}。
  7. 7)題名。編者補入。此下諸文。底本無有。只在二卷本(甲乙丙丁) 或在四卷本(戊己庚辛)。編者集而。附載於卷末。
  8. 8)「哭金居士女ㆍ天玉禪子ㆍ示性雲長老ㆍ示碧泉禪子(三首)ㆍ贈性訥禪子(三首)ㆍ贈落山懷海禪子」 總十首收錄於甲乙丙丁戊己庚辛本。
  9. 1)「权」作「杈」{丁}。
  10. 2)此詩。只在甲乙丙丁本。
  11. 3)此詩。只在戊己庚辛本。
  12. 4)此詩。只在戊己庚辛本。
  13. 5)此詩。只在戊己庚辛本。
  14. 6)此詩。只在戊己庚辛本。
  15. 7)此碑銘只在戊己庚辛本。
  16. 1)「茟」通用「筆」{編}。
  17. 1)此行狀。只在戊己庚辛本。
  18. 2)此銘。只在戊己庚辛本。
  19. 1)此下戊己庚辛本。有國一大師淸虛堂像。編者除之。
  20. 2)此祭文。只在戊己庚辛本。
  21. 3)此自賛文。只在戊己庚辛本卷頭。編者移置於卷末。
  22. 4)丁本刊記如下「禪師三忍。明元智云。刻手惟性。應全。守仁。勝悅。大暎。一元。普熏。三綱法機。施主秩。金斗挨兩主。通政大夫李允己。崔夢亨兩主。通
  23. 4)政大夫崔係男。孫得帝。宋貴希。曺大興。曺敬興。趙廷漢。呂仁录。金應生。金命生。思學。趙廷录。權以衡。尙希。崔長命。義行。金秋男。金史惠。惠倫。哲卞。戒訥。通政大夫吳順生。戒林。助緣者。丁勒比丘。尙希。印奇。坦寶。德粦。彥玄。淸允。濕。坦海。隱梅。德孤。省傳。明海。印玉。禪哲。康熙五年丙午。仲夏。日。桐裡山泰安寺開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