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영허집(暎虛集) / 暎虛集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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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허집 권3(暎虛集 卷之三)
칠언율시七言律詩
혼자 생각함(自意)
杖鉢生涯獨出羣   석장과 바리때의 삶 홀로 무리에서 벗어나
時時按劒立當門   때때로 검 어루만지며 문 앞에 섰네
暫聞是句還空地   잠시 이 글귀를 들으면 도리어 공지가 되지만
纔說伊麽便斬根   이렇게 말하자마자 곧 육근이 베어지네
千聖未能留眼界   모든 성인을 안계에 머물게 할 순 없거늘
一眞那得着心君   하나의 진실을 어찌 마음에 붙여두랴
東西南北渾無碍   동서남북 그 어디든 아무런 장애가 없어야 하니
如是方稱大丈夫   그래야 비로소 대장부라 일컬으리
오대산강릉五臺山江陵
山勢淸高眼轉新   산세는 맑고 높아 시야가 점차로 새로와
四圍蒼翠鎭長春   사방이 긴 봄의 푸르름으로 가득하구나
天連金夢通銀漢   금몽1)과 이어진 하늘은 은하수와 통하고
地接白頭隔世塵   백두와 접해 있는 땅은 속진과 막혀있네
千丈石橋獰老虎   천 길 돌다리는 노련한 호랑이도 힘들고
萬年松塔揖仙人   만년 솔탑은 선인에게 읍을 하네
僧言此處毗盧佛   스님이 이곳의 비로불에 대해 말하기를
八萬文殊共說眞   팔만 문수가 진실을 설파한다 하네
술회述懷
未識龍媒白髮侵   용매2)에 백발이 침범한 줄도 모르고
南華一榻老雲林   남화3)의 일탑은 구름 숲에서 늙어가네
曾於自己成眞見   일찍이 자신안에서 진견을 이루었으니
肯向虛名役此心   어찌 헛된 명성을 향해 이 마음을 쓰랴
氷炭念消春睡重   빙탄의 생각4)사라져 봄잠이 달고
人天業盡夜禪深   인천의 업이 다함에 밤중 선정이 깊어지네
無心正是安身術   무심이 바로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이거늘
笑却東風百舌吟   봄바람에 지빠귀 울 듯 읊조림이 우습노라
신라 회고新羅懷古5)
瞻星臺近鳳凰臺   첨성대는 봉황대에 가깝게 있고
虎珀盃連鸚鵡盃   호박잔은 앵무잔과 이어졌어라6)
天柱寺成王業久   천주사7)는 왕업 이룬 지 오래고
流沙江向帝門回   유사강8)은 대궐문 향해 흘러드네
三千歌舞雲烟冷   삼천가무는 구름 연기에 차가워졌고
十二宮庭禾黍開   십이궁정은 기장만 무성하구나
怊悵當時榮盛地   슬퍼라 당시 영화롭던 이곳엔
荒城片月暮猿哀   무너진 성의 조각달에 잔나비 울음 애달프니

008_0038_c_01L暎虛集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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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_0038_c_03L七言律詩

008_0038_c_04L自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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杖鉢生涯獨出羣時時按劒立當門

008_0038_c_06L暫聞是句還空地纔說伊麽便斬根

008_0038_c_07L千聖未能留眼界一眞那得着心君

008_0038_c_08L東西南北渾無碍如是方稱大丈夫

008_0038_c_09L五臺山江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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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勢淸高眼轉新四圍蒼翠鎭長春

008_0038_c_11L天連金夢通銀漢地接白頭隔世塵

008_0038_c_12L千丈石橋獰老虎萬年松塔揖仙人

008_0038_c_13L僧言此處毗盧佛八萬文殊共說眞

008_0038_c_14L述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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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識龍媒白髮侵南華一榻老雲林

008_0038_c_16L曾於自己成眞見肯向虛名役此心

008_0038_c_17L氷炭念消春睡重人天業盡夜禪深

008_0038_c_18L無心正是安身術笑却東風百舌吟

008_0038_c_19L新羅懷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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瞻星臺近鳳凰臺虎珀盃連鸚鵡盃

008_0038_c_21L天柱寺成王業久流沙江向帝門回

008_0038_c_22L三千歌舞雲烟冷十二宮庭禾黍開

008_0038_c_23L怊悵當時榮盛地荒城片月暮猿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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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상인의 해서 길을 전송하면서-천지 운을 차운함(送昱上人之海西步天池韻)
香山瀟洒絶喧囂   소쇄한 묘향산엔 세상의 시끄러움 끊어져
講罷蓮經坐寂寥   법화경 강의 마치고 고요함 속에 앉았노라
仙鶴繞烟鳴喨喨   선학은 안개에 싸인 채 낭랑하게 울고
天花和雨落蕭蕭   천화9)는 비와 섞여서 쓸쓸하게 떨어지네
浮盃北渡三湘遠   잔 띄워 북으로 건너니 삼상10)과 멀어지고
飛舄西歸萬木凋   신발 날려 서쪽으로 돌아가니 나무들 시들 때라네
遙想首陽君到日   멀리서 생각해보니 수양산11)에 그대 도착한 날
二人應邀白雲橋   두 사람이 틀림없이 백운교에서 맞이하리라
도를 논함(道話)
天眞面目是何文   천진면목을 무엇으로 꾸미랴
性自聦明露見聞   성품은 저절로 총명하여 견문에 드러나는 법
覺察尋常元有路   평상적인 걸 살펴야 길이 있으니
睽離日用別無門   일상적인 걸 떠나서는 달리 문이 없지
須知濕體波全水   습체는 파도가 그대로 바다임을 알아야 하고12)
###莫恠珠形影異分   주형은 그림자와 다르게 나뉨을 괴이치 말라
認得色空無二道   색과 공이 다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百年身世等浮雲   백년 인생의 이 몸이 뜬구름과 같으리라
오상인을 권면함(勉悟上人)
不必仙區在浪洲   선구가 꼭 낭주13)에 있을 필요는 없거늘
君何僻地久淹留   그대는 어찌 벽지에 오래 머물러 있는가
屢聞紫色迷朱色   자색이 주색을 어지럽힌다는 말 자주 들리고
長恨淸流混濁流   청류가 탁류에 혼탁해짐을 늘 한하노라
楓岳禪僧思再會   풍악의 선승은 다시 만날 것을 바라고 있고
香山雲鶴憶重遊   향산의 운학은 다시 노닐 것을 생각하네
況今風雨初停日   하물며 지금 비바람이 막 그친 날이니
逸翮飄然宜及秋   굳센 날개로 표연히 가을에 미쳐야 함에랴
마니주摩尼珠
瑩淨圓明一顆珠   맑고 영롱하며 밝고 둥근 한 낟알의 구슬
非離形色別他求   형색을 떠나서 달리 다른 데서 구할 게 아니라네
精光外現祥光散   정묘한 빛 밖으로 나타나 서광이 흩어지고
溫潤中含瑞氣流   온윤한 갸운데 상서로운 기운을 머금고 있네
物象雖然分皂白   물상은 비록 희고 검은 것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眞容元不混丹朱   진짜 모습은 원래 붉은 색깔 등과 섞이지 않았지
要知無價天生寶   요컨대 무가지보는 하늘이 낸 보물인바
萬相之間獨自由   만상 사이에서 홀로 자유로움 알아야하리
온갖 새들이 꽃을 머금어 공양 올림(百鳥含花供)
天近斗牛手可摩   하늘은 가까워 두우성에 닿을 듯하고
五雲飛起接靑霞   오색구름은 날아가서 푸른 노을과 접했네
苔封石逕人行少   이끼 낀 돌길은 사람이 다니는 게 드물고
露滴藤床鳥語多   이슬 맺힌 등나무 평상은 새소리 요란스럽네
一棒忽然開正眼   한 방망이에 홀연 정안14)이 열리고
三明豁爾作傳家   삼명15)이 활연하여 전가16)를 이루네

008_0039_a_01L送昱上人之海西步天池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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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山瀟洒絶喧囂講罷蓮經坐寂寥

008_0039_a_03L仙鶴繞烟鳴喨喨天花和雨落蕭蕭

008_0039_a_04L浮盃北渡三湘遠飛舄西歸萬木凋

008_0039_a_05L遙想首陽君到日二人應邀白雲橋

008_0039_a_06L道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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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眞面目是何文性自聦明露見聞

008_0039_a_08L覺察尋常元有路睽離日用別無門

008_0039_a_09L須知濕體波全水莫恠珠形影異分

008_0039_a_10L認得色空無二道百年身世等浮雲

008_0039_a_11L勉悟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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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必仙區在浪洲君何僻地久淹留

008_0039_a_13L屢聞紫色迷朱色長恨淸流混濁流

008_0039_a_14L楓岳禪僧思再會香山雲鶴憶重遊

008_0039_a_15L況今風雨初停日逸翮飄然宜及秋

008_0039_a_16L摩尼珠

008_0039_a_17L
瑩淨圓明一顆珠非離形色別他求

008_0039_a_18L精光外現祥光散溫潤中含瑞氣流

008_0039_a_19L物象雖然分皂白眞容元不混丹朱

008_0039_a_20L要知無價天生寶萬相之間獨自由

008_0039_a_21L百鳥含花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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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近斗牛手可摩五雲飛起接靑霞

008_0039_a_23L荅封石逕人行少露滴藤床鳥語多

008_0039_a_24L一棒忽然開正眼三明豁爾作傳家

008_0039_b_01L靈光獨照圓通界   신령스런 빛이 홀로 원통계를 비추니
無復山禽供百花   산새들 더 이상 꽃 바치지 않았네
문장대文藏臺
都將湖海與丘山   호수와 바다, 산언덕을 모두 거느리고
共入凌虛指顧間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아오른 듯
西濟龍臺江雨暗   서쪽으로 용대를 지날 제 강에 어두운 비 내리고
東羅鳳閣夕陽殘   동으로 봉각에 이르는데 석양이 지는구나
英雄萬古豪華盡   만고의 영웅은 그 호화로움 없어졌고
澤國千秋草樹閑   천년의 택국엔 풀과 나무가 외롭네
獨立輕風生兩腋   홀로 서니 산들바람 겨드랑이서 일어나
不知身已上天關   문득 이 몸이 하늘 문에 오른 것도 몰랐네
장안사에서 느낌이 있어서(長安寺有感)
一瓢單衲世間賓   표주박 하나 납의 한 벌 세상 손님일 뿐이나
對水看山弄一眞   물 대하고 산보며 일진17)을 완상하네
人靜畵樓明月夜   인적 고요한 화려한 누각엔 밝은 달밤
鳥啼深院落花春   새 우는 깊은 사원엔 봄꽃이 지누나
楞伽萬里傳雙淚   능가산은 예서 만 리라 눈물로 보내고
楓岳千峯寄一身   천 봉우리 풍악에 이 한 몸을 맡겼네
遙想雪眉安定處   적이 노승이 편히 쉴 곳을 생각하다 보니
不堪南向望風塵   남쪽을 향해 풍진을 바라볼 수가 없구나
스스로 축하함(自慶)
宴坐山林一事無   산림에서 좌선하니 한 가지 일도 없고
忘機終日信如愚   기심을 잊어 하루종일 어리석은 이처럼 지내네
至人敦厚非從釋   지인은 돈후하나 석가를 따르지 않고
塵世猖狂謾老儒   진세는 미쳐 날뛰어 노유를 속이는구나
寂寂寥寥何洗耳   적적하고 고요하니 귀 씻을 필요 있겠으며
綿綿密密豈工夫   세밀하고 치밀하니 따로 공부하랴
自從認得眞空樂   진공의 즐거움을 터득하고부터는
旅泊寰中道味腴   속세를 떠돌아다녀도 도의 맛 깊어진다오
이별의 한(別恨)
心爲形役去留難   마음이 형체에 부림을 당하면 가고 머묾이 어려운 법
送盡東風獨倚䦨   봄바람을 다 보내고 홀로 난간에 기대어 섰네
方外風流長寂寞   방외의 풍류는 늘 적막하거늘
客中身世久盤桓   객중의 신세 오래도록 머뭇머뭇 서성거리네
間關海岸魂應斷   바닷가를 전전하니 혼이 아득해지고
漂泊天涯夢幾寒   하늘가를 표박하니 꿈은 몇 번이나 서늘한지
北去又違鄕國路   북으로 가느라 또 고향길과 어긋나고
不堪西向淚潸潸   서쪽을 향하니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네
원철사께 드림(上圓徹師)
圓通何法徹何心   무슨 법에 원만하게 통하고 무슨 마음을 꿰뚫으셨는지
捱拶將來不得尋   막고 짓누르면 뒤에는 찾지 못하시리
眼下施爲常的歷   눈앞에 펼쳐져 항상 분명하고
面前推出轉幽深   면전에 황홀하여 더욱 깊어집니다

008_0039_b_01L靈光獨照圓通界無復山禽供百花
 

008_0039_b_02L文藏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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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將湖海與丘山共入凌虛指顧間

008_0039_b_04L西濟龍𡋛江雨暗東羅鳳閣夕陽殘

008_0039_b_05L英雄萬古豪華盡澤國千秋草樹閑

008_0039_b_06L獨立輕風生兩腋不知身己上天關

008_0039_b_07L長安寺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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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瓢單衲世間賔對水看山弄一眞

008_0039_b_09L人靜畫樓明月夜鳥啼深院落花春

008_0039_b_10L楞伽萬里傳雙淚楓岳千峯寄一身

008_0039_b_11L遙想雪眉安定處不堪南向望風塵

008_0039_b_12L自慶

008_0039_b_13L
宴坐山林一事無忘機終日信如愚

008_0039_b_14L至人敦厚非從釋塵世猖狂謾老儒

008_0039_b_15L寂寂寥寥何洗耳綿綿密密豈工夫

008_0039_b_16L自從認得眞空樂旅泊寰中道味腴

008_0039_b_17L別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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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爲形役去留難送盡東風獨倚䦨

008_0039_b_19L方外風流長寂寞客中身世久盤桓

008_0039_b_20L間關海岸魂應斷漂泊天涯夢幾寒

008_0039_b_21L北去又違鄕國路不堪西向淚澘澘

008_0039_b_22L上圓徹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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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通何法徹何心捱拶將來不得尋

008_0039_b_24L眼下施爲常的歷面前推出轉幽深

008_0039_c_01L佳山勝水春鶯囀   아름다운 경관에선 봄 꾀꼬리 지저귀고
霽月光風蜀魄吟   밝은 달과 맑은 바람 속에선 두견새가 웁니다
妙道自然如是矣   묘한 도는 자연히 절로 이와 같으니
更於何處透威音咄  다시 그 어느 곳에서 위음18)에 통하리요
廓然自己娘生面   어머니께서 낳아주신 본래 얼굴 깨달으면
圓徹本來無古今   원만하게 꿰뚫어서 본래 고금이 없습니다
無古無今是什麽   고금이 따로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金烏東上月西沉   해가 동쪽에서 뜨면 달은 서쪽으로 지는 것이지요
부賦
오대산부강원도五臺山賦江原道
나는 일원一元의 빼어난 기운을 갖추었고, 지령至靈의 오묘함을 품수 받아 이렇게 말한다. 나의 감정과 생각은 균형을 잃지 않아, 사랑함은 크고 밝으며 성품은 천명을 즐긴다네. 하물며 인간 세상의 소허巢許19)가 평소의 기심機心을 산천에서 씻어냄에 비기겠는가.
우뚝 솟은 오대산五臺山을 바라보며 지팡이 짚고 올라 굽어보니, 백두白頭의 지나온 줄기에 이어져 있고 하늘의 은하銀河와 접했도다. 대지는 만여 리에 걸쳐 서려 있고, 하늘 끝과는 겨우 일심一尋20)이 떨어져 있을 뿐. 상왕象王은 달리다가 다시 돌아보고, 기린猉獜은 읍하고서 다시 노래하며, 만월滿月은 밝게 계곡에 가득하고, 장령長嶺은 울창하여 긴 숲을 이루었네.21)월정사月精寺의 금연金淵에서 놀다가 상원사上院寺의 옥전玉殿으로 올라가니, 솔바람 소리 우레처럼 요란하고 구름 계곡은 번개처럼 빠른 물살이라. 사방 바다의 삼도三島22)를 굽어보고, 한쪽으로 삼한三韓 땅을 가리키네.
만 겹의 산은 높이 솟았고 굽이굽이 도는 물길은 영롱하며, 등나무 덩굴은 얼기설기 서려 있고 춤추는 소나무와 회나무는 선옹仙翁 같구나. 잔나비의 밤 울음소리 애닯고 소나무에 깃든 청학靑鶴은 가엾어라. 좌선하는 범승梵僧에게 공경함을 표하면서 임궁琳宮의 부처께 절을 올리네. 맑은 시내의 밝은 달을 마시고, 옥루玉樓의 맑은 바람을 쐬노라.
향로香爐를 밤낮으로 피우고 종고鍾鼓를 아침저녁으로 두드리네. 눈 덮인 산은 가파르게 솟아있고, 향등香藤은 진한 향기를 뿜어내네. 영험한 못의 물길을 터주고, 금수가 무리 짓는 것을 막는다네. 팔만의 문수보살을 보고 진여眞如의 묘문妙門을 설법하네.
지존至尊의 석가를 우러르니 불멸의 영산靈山, 영취산 법회 만나며,

008_0039_c_01L佳山勝水春鶯囀霽月光風蜀魄吟

008_0039_c_02L妙道自然如是矣更於何處透威音咄

008_0039_c_03L廓然自己娘生面圓徹本來無古今

008_0039_c_04L無古無今是什麽金烏東上月西沉

008_0039_c_05L

008_0039_c_06L

008_0039_c_07L五臺山賦江原道

008_0039_c_08L
余惟具一元之秀氣禀至靈之妙圓
008_0039_c_09L情想之得均字大明兮性樂天況人間
008_0039_c_10L之巢許愜素機於山川望五䑓之岧嶤
008_0039_c_11L羌策杖而登臨連白頭之來脉接銀河
008_0039_c_12L之交侵盤坤維兮萬里去乾端兮一尋
008_0039_c_13L象王走而又顧猉獜揖而還吟滿月明
008_0039_c_14L兮滿壑長嶺鬱兮長林弄月精之金淵
008_0039_c_15L昇上院之玉殿松籟轟兮若雷雲溪疾
008_0039_c_16L兮飛電俯三島於四海指三韓於一面
008_0039_c_17L山萬疊兮偃蹇水千回兮玲瓏盤藤蘿
008_0039_c_18L兮纓絡舞松檜兮仙翁哀白猿之夜啼
008_0039_c_19L憐靑鶴之眠松欽梵僧之坐禪禮金仙
008_0039_c_20L之琳宮飮淸溪之明月納玉樓之淸風
008_0039_c_21L香爈列於晝夜鍾鼓奏於晨昏雪嶽聳
008_0039_c_22L兮崢嶸香藤茂兮芳芬濶靈沼之汍瀾
008_0039_c_23L絕禽獸之成羣聞八萬之文殊說眞如
008_0039_c_24L之妙門仰至尊之釋迦會不滅之靈山

008_0040_a_01L자비의 관음觀音을 참배하니 중생들을 여러 가지로 인도해주시고, 대원大願의 지장地藏을 흠모하니 유명幽冥 앞에 걱정하고 계시며, 극락極樂의 미타彌陁를 생각하니 구품九品의 연대蓮臺23)로 인도한다네.
산을 보고 물을 보고는 자성自性의 여래如來를 생각하고, 불佛을 듣고 법法을 듣고는 자심自心의 본회本懷를 관觀하노라. 고금의 신령스런 자취는 필설로 다 말할 수 없고, 성현聖賢의 기이한 기록은 견문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도다. 바람이 솔솔 불고 달빛이 밝게 비추니 제불諸佛의 오묘한 설법은 항상 있는 법이며, 산은 우뚝 솟아있고 물은 차고 시원하니 승려들의 선원禪源도 쉬이 밝혀지노라. 지감智鑑이 밝게 비춤이여, 꽃과 풀에도 감정이 들고, 혜심慧心이 높고 신령함이여, 종소리와 북소리에도 무생이라네.
쌍룡雙龍이 날아 산기슭으로 내려가니 언뜻 보고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라. 희고 긴 눈썹의 노스님과 이별하는데, 명산이 머물기 좋다고 말씀하시네. 솔 사립문 밀치고 머리 끄덕이면서 훗날 다시 여기로 올 것을 다짐하노라.
아아! 길게 탄식하며 이르노라.
빨리 가는 인생, 호흡보다 빠른 법이며, 오늘 밤은 어떤 밤이기에 흘러가는 물은 저리도 급한가. 잘 있으시오 산신령이시여, 뒷날을 기약하리니 뒷날 만약 이 약속 저버리면 그 죄가 장차 어디로 돌아갈지? 산을 좋아하는 나의 이 벽을 누가 감히 막을 것인가. 금하지도 막지도 않으니 청산에서 내 생을 마치리라.
낙천가樂天歌
浩浩浩艶艶艶    넓디 넓디 넓고 곱디 곱디 고우며
無爲無作又無念   억지로 함도 없고 또 생각함도 없네
縱橫處處自圓通   종횡으로 곳곳에서 저절로 원만히 통하고
歷歷明明常不染   또렷하고 밝디 밝아서 늘 물들지 않네
折慢憧證眞常    게으름과 흔들림 끊고 진상을 깨달으면
菩提煩惱自忘羊   보리든 번뇌든 본래 양을 잃어버리는 노릇24)
從來一句無言說   종래로 한 마디의 무언설로
假立虛名作道塲   허명을 거짓 세워 도량을 일으켰지
天不回地不轉    하늘도 돌지 않고 땅도 구르지 않지만
茅茨瓦缶我回轉   띠집에서 질장군 두드려가며 내가 돈다네
古今聖賢未能知   고금의 성현도 알지 못하고
拘得身心辛苦鍊   구차하게 몸과 마음 고달프게 단련했구나

008_0040_a_01L叅慈悲之觀音導羣生之多般慕大願 
008_0040_a_02L之地藏立幽冥而愁顏念極樂之彌陁
008_0040_a_03L引九品之蓮𡋛見山見水兮念自性之
008_0040_a_04L如來聞佛聞法兮觀自心之本懷
008_0040_a_05L今靈跡1)茟舌之所未載聖賢異記
008_0040_a_06L聞之所難解風蕭蕭兮月耿耿諸佛之
008_0040_a_07L妙說常在山矗矗兮水泠泠衆僧之禪
008_0040_a_08L源易明智鑑朗照兮花花草草亦有情
008_0040_a_09L慧心高靈兮鍾鍾鼓鼓皆無生飛雙龍
008_0040_a_10L而下麓强睇眄而涕流別厖眉之老衲
008_0040_a_11L囑名山之好留叩松扉而點額誓後日
008_0040_a_12L之來遊吁然長嘆曰人生迅速疾於
008_0040_a_13L呼吸今夕何夕逝水太急好在山靈
008_0040_a_14L後日相期後日若負罪將何歸愛山
008_0040_a_15L之癖孰敢禦之無禁無禦終余世于
008_0040_a_16L翠微

008_0040_a_17L

008_0040_a_18L樂天歌

008_0040_a_19L
浩浩浩艶艶艶無爲無作又無念

008_0040_a_20L縱橫處處自圓通歷歷明明常不染

008_0040_a_21L折慢憧證眞常菩提煩惱自忘羊

008_0040_a_22L從來一句無言說假立虛名作道塲

008_0040_a_23L天不回地不轉茅茨瓦缶我回轉

008_0040_a_24L古今聖賢未能知拘得身心辛苦鍊

008_0040_b_01L寶鏡臺金剛劒    보경대와 금강검은
光芒出甲勿收歛   번쩍번쩍하는 빛 거두어들이지 말지니
千差萬化當人用   그 천차만화 응당 사람이 이용한다면
一顆圓明自焰焰   한 낟알의 둥근 빛이 절로 맹렬하리
無一物莫三昧    일물도 삼매 아님이 없건마는
家風冷淡無人愛   가풍이 냉담하여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구나
天眞無事更何爲   천진무사하니 다시 무엇을 하리요
飢即松茶困即寐   배고프면 솔차 마시고 피곤하면 잠들면 그뿐
這百衲這一瓢    이에 해진 가사와 표주박 하나로
騰騰任運自逍遙   자연스럽고 한가롭게 소요한다네
逍遙去住無抱絆   소요하면서 얽매임 없이 가고 머문 것이
闊闊靑霄一快鷂   탁 트인 창공의 새매 한 마리 같도다
心無事勿修治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任意優游千萬里   마음 가는 대로 천만리를 유유자적하네
歷盡天台與洞庭   천태산과 동정호를 다 돌아보니
靈臺妙性常完爾   마음의 신묘함은 항상 온전하다네
孃生面瑩寒冷    어머니께서 낳아주신 면목 밝고도 차가워
物物頭頭現一乘   물물마다 일승을 드러내네
眞性坦然無染汚   진성은 편안하여 오염되지 않으니
無生歌唱老山僧   산승 나에게 무생의 노래 들려주네
부설전浮雪傳
신라新羅 진덕여왕眞德女王이 즉위한 연초의 일이다. 왕도王都(즉 경주) 남내南內의 향아香兒 고을에 진씨陳氏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광세光世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여 이해력이 천부적이었다. 아이들과 소꿉놀이를 할 적에도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가끔 서쪽을 향해 해가 지는 것을 보기도 하고, 숲속에서 한가하게 앉아 있기도 하였다. 스님을 만나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살생하는 것을 보면 얼굴을 찡그리며 슬퍼하였다. 마침내 그는 불국사佛國寺로 가서 원정선사圓淨禪師를 섬기면서 구거鳩車25)의 나이에 삭발하였으며 죽마竹馬26)의 나이에 현묘한 이치에 통하게 되었다.
법명은 부설浮雪이며, 자字는 천상天祥이다. 서리 내려도 푸른 소나무처럼 고결한 지조와 물에 비친 달처럼 가슴을 비웠으며 계주戒珠27)는 빛나고 온전하였으며, 정문定門은 그윽하고 고요하였다. 그릇은 깊고 원대하며, 식견은 민첩하니, 영남嶺南 지방의 고승대덕高僧大德들은 모두 법기法器라고 여겼다. 밖으로는 승법僧法의 옷을 입고 안으로는 용맹하게 학문을 넓혀가더니, 이윽고 뒤웅박처럼 한 곳에만 매여 있는 현실을 통탄하게 되었다. 이에 사방으로 노승들을 뵈러 다니다가 홀연 동지同志인 영조靈照ㆍ영희靈熈와 서로 벗하게 되었다. 저들은 모두 자비와 용서로 몸가짐을 잘하고, 공손하고 화평을 성품으로 삼아 마음은 도 밖에 있지 아니하였고

008_0040_b_01L寶鏡䑓金剛劒光芒出甲勿收歛

008_0040_b_02L千差萬化當人用一顆圓明自焰焰

008_0040_b_03L無一物莫三昧家風冷淡無人愛

008_0040_b_04L天眞無事更何爲飢即松茶困即寐

008_0040_b_05L這百衲這一瓢騰騰任運自逍遙

008_0040_b_06L逍遙去住無抱絆闊闊靑霄一快鷂

008_0040_b_07L心無事勿修治任意優游千萬里

008_0040_b_08L歷盡天台與洞庭靈臺妙性常完爾

008_0040_b_09L孃生面瑩寒冷物物頭頭現一乘

008_0040_b_10L眞性坦然無染汚無生歌唱老山僧

008_0040_b_11L

008_0040_b_12L浮雪傳

008_0040_b_13L
新羅眞德女主啓祚年初王都南內之
008_0040_b_14L香兒有陳氏之子名曰光世生而頴
008_0040_b_15L解自天然羣童戱嬉不侔凡流
008_0040_b_16L西向移晷或林間燕坐逢僧則悅豫
008_0040_b_17L見殺則嚬慼遂往佛國寺投圓淨禪師
008_0040_b_18L鳩車之齡落髮竹馬之齒通玄法名浮
008_0040_b_19L字曰天祥霜松潔操水月虛襟
008_0040_b_20L珠光而全㝎門幽而靜器宇冲遠
008_0040_b_21L度通敏嶺南高德咸用器之外示僧
008_0040_b_22L佉之服內弘龍猛之學矣旣以慟繫瓟
008_0040_b_23L叅方耆宿忽與同志靈照靈熈相友
008_0040_b_24L彼皆慈恕立身恭和成性心非道外

008_0040_c_01L행동은 말에 앞서 행하였다. 욕심을 줄이고 바깥에서 구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단정히 거처하면서 세사에 번거롭지 않은 것을 좋아하였다.
계수나무 노로 남해南海 건너 두류산頭流山, 지리산에 발자취를 의탁하여 사함四含28)의 경전을 밝게 하고, 오명五明29)의 강론에 정통하게 되었다. 또 송화松花를 먹으면서 고요함을 관하고, 죽실竹實을 먹으면서 도를 즐겼다. 그렇게 3년이 흘러 천관사天冠寺30)에서 건巾을 걸고 머물면서 5년 동안 좌선 수행하였다. 그 뒤 능가산楞迦山으로 석장을 날려 두루 유람을 한 끝에 가장 빼어난 곳을 찾아 법왕봉法王峯 아래로 가서 마침내 띠집 한 칸을 짓고서 편액을 ‘묘적妙寂’이라 이름하니, 이는 선정의 고요함에 오묘하게 든다는 뜻이다. 세 스님은 같이 거처하며 한마음으로 도를 닦아 입을 굳게 다물고 참선 수행하면서 마갈摩渴31)에서 문을 굳게 잠그고 부처님이 수행한 것처럼 수행하니 십 년 동안 세상의 인연이 끊어지고 삼생三生의 환몽幻夢이 없어졌다. 학문은 이미 만자滿字32)를 궁구하였고, 계행戒行은 구슬보다 고결해졌다. 각자 지난날 함양했던 참다운 도를 한 편의 시로 읊었으니, 영조靈照가 제일 먼저 읊었다.

占得幽居地     그윽하게 거처할 곳을 얻었나니
萬松嶺上庵     소나무 우거진 산마루 암자라네
入禪看不二     참선에 들어가 불이를 깨달았고
探道喜成三     도를 탐구하여 삼승의 기쁨 이루었네
采玉人誰到     옥을 캐었으니 그 누구일까
含花鳥自喃     꽃을 머금은 새만 지저귀네
蕭然無外事     깔끔하니 세속의 일이 없으니
一味法門參     일미의 법문을 참구할 뿐이네

영희靈熈가 이어서 읊었다.

雲收歡喜嶺     환희의 고갯마루엔 구름이 걷히자
月入老松庵     노송의 암자에 달빛이 들어오네
慧劒精千萬     지혜의 칼날은 천만번 빛이 나고
心源蕩再三     마음의 샘물은 두세 번 솟구치네
洞天春寂寂     깊은 골짜기의 봄은 고요하건마는
山鳥語喃喃     산새는 조잘조잘 잘도 지저귀네
咸佩無生樂     이 모두 무생의 즐거움을 누린지라
玄關不用參     현관33)을 참구할 필요 있으랴

부설浮雪은 기쁜 마음으로 화답하였다.

共把寂空雙去法   함께 적멸의 공으로 불법을 찾아
同棲雲鶴一間庵   구름과 학이 머무는 한 칸 암자에서 함께 했지
已知不二歸無二   이미 불이의 소식 알고 무이의 경지에 귀의했으니
誰問前三與後三   누구에게 전삼삼과 후삼삼34)을 물으랴
閑看靜中花艶艶   뜨락에 아름답게 핀 꽃이 한가로이 눈에 들어오며
任聆窓外鳥喃喃   창밖의 새 지저귀는 소리 무심히 들리네

008_0040_c_01L行在說前貴寡欲而息求好端居而簡 
008_0040_c_02L務者也桂棹南海託跡頭流經洞四
008_0040_c_03L論精五明餌松花而觀寂食練實
008_0040_c_04L而樂道奄過三祀掛巾天冠畢坐五
008_0040_c_05L飛錫楞迦周遊覽罷歷銓奇境
008_0040_c_06L就法王峯底遂葺草廬一間額曰妙寂
008_0040_c_07L是乃妙入禪寂之稱也三士同巢一心
008_0040_c_08L爲道杜口禪那掩關摩竭十載緣消
008_0040_c_09L三生夢斷學已窮於滿字行乃潔於圓
008_0040_c_10L各述養眞詩一章靈照首唱曰

008_0040_c_11L占得幽居地萬松嶺上庵

008_0040_c_12L入禪看不二探道喜成三

008_0040_c_13L采玉人誰到含花鳥自喃

008_0040_c_14L蕭然無外事一味法門叅

008_0040_c_15L靈熈繼吟曰

008_0040_c_16L雲收歡喜嶺月入老松庵

008_0040_c_17L慧劒精千萬心源蕩再三

008_0040_c_18L洞天春寂寂山鳥語喃喃

008_0040_c_19L咸佩無生樂玄關不用叅

008_0040_c_20L浮雪怡然繼和曰

008_0040_c_21L
共把寂空雙去法同棲雲鶴一間庵

008_0040_c_22L已知不二歸無二誰問前三與後三

008_0040_c_23L閑看靜中花艶艶任聆窓外鳥喃喃

008_0040_c_24L「茟」通用「筆」{編}

008_0041_a_01L能令直入如來地   곧장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게 해주니
何用區區久歷參   뭐 구구하게 오랜 시간 참구할 필요 있으랴

이윽고 생각하기를 오대산五臺山은 문수보살의 도량이라, 가서 참배하려고 하여 발길을 북쪽으로 돌렸다. 가는 길에 두릉杜陵35)의 백련지白蓮池 옆에 있는 구무원仇無寃이란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이 집의 주인 노인은 청신淸信 거사였다. 그는 평소 청허淸虛한 삶을 좇고자 하여 도를 구함이 매우 간절하였다. 그래서 법문의 일단만 들어도 자신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던 터라 이들을 상좌上座에 모시고 예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정성스레 대접하였다. 벌여놓은 제구들과 음식의 맛은 예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지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드문 일이었다.
정답게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새벽에 길을 떠나려 하는데 봄비로 길이 진창이 되어 길을 나설 수 없자 이틀을 더 묵게 되었다. 주인의 불법을 묻는 마음이 늙어갈수록 더욱 독실해지고 오래될수록 더욱 견고한지라 물음에 따라 답하기를 밤낮없이 하여 마치 마명馬鳴36)의 지혜로운 말씀과 용수龍樹37)의 현하懸河의 설법 같았다. 사람과 귀신이 모두 기뻐하고 멀고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여, 파리가 다리를 비비며 무릎을 꿇듯이 하여 마치 지극한 보배를 얻은 듯이 하였다.
이 주인에게 딸이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이 묘화妙花로 꿈에 연꽃을 보고서 낳았다고 한다. 미모와 재능이 당시 독보적이었으며, 사랑스러우면서도 유순하고 엄정하면서도 절의와 지조가 있었다. 비록 초라한 집에서 성장하였지만 남들이 그녀를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이날 설법하는 소리를 듣고는 갑자기 정신이 홀연히 복받쳐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흡사 아난阿難에게 마등摩登이38), 양왕襄王에게 무신巫神이 반한 것39)같았다. 부설 곁에서 가까이 모시면서 잠시도 떠나지 않으면서 맹서하기를, ‘바로 이 자리에서 영원히 부부의 연을 맺으면 이 몸 죽어도 여한이 없으며 만약에 버림을 받게 되면 결단코 목숨을 끊겠다.’라고 하였다. 부모는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법사法師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딸을 제도해줄 것을 천번 만번 빌었다. 그러나 부설은 밤이나 낮이나 뜻을 굽히지 않고, 쇠와 돌보다 견고한 마음으로 일찍이 욕심에 심취하지 않았으니 어찌 여색에 미혹되겠는가. 그렇지만 구무원仇無寃 집이 도에 방해된다는 경계를 깊이 두려워한 데다 보살菩薩의 자비스런 뜻을 생각하여 마침내 육례六禮를 갖추지는 않았으나 한 마디 진실한 말로 약조하니, 담박하기가 밀랍을 씹는 것처럼 무미하여 연꽃이 물에 떠 있는 것에 비할 만하였다.
영희靈熈와 영조靈照 두 법사는

008_0041_a_01L能令直入如來地何用區區久歷叅
 
008_0041_a_02L
尋念五䑓乃文殊道塲也要往拜之
008_0041_a_03L啓足向北因宿杜陵白蓮池側仇無寃
008_0041_a_04L之家家翁乃淸信居士也素尙淸虛
008_0041_a_05L求道甚切一聞緖餘不覺吐舌迎之
008_0041_a_06L上座欵若舊識鋪陳之物飮膳之味
008_0041_a_07L無不盡禮世所云稀團欒竟夜翌日
008_0041_a_08L黎明春雨泥濘上道無便淹留信宿
008_0041_a_09L況乃主翁問法之情老而彌篤久而尤
008_0041_a_10L隨問而荅日夜往復宛若馬鳴之
008_0041_a_11L智辯龍樹之懸河人神胥悅遠近同
008_0041_a_12L蠅手屈膝如獲至寶主有一女
008_0041_a_13L曰妙花盖夢見蓮花而生也色貌才藝
008_0041_a_14L獨步一時惠而柔和嚴而節操雖生
008_0041_a_15L長白屋人罕見之是日聞說法之音
008_0041_a_16L神忽慨然悲啼莫已恰似阿難之摩登
008_0041_a_17L襄王之巫神昵押左右未甞睽離
008_0041_a_18L從即度永遂于飛殄身無怨若見棄
008_0041_a_19L斯決殞命矣父母愛女之故稽首
008_0041_a_20L法師惟願濟度千祈萬祝於日於夜
008_0041_a_21L浮雪抗志金石方堅未敢爲欲所醉
008_0041_a_22L詎能色塵所迷深恐寃家防道之戒
008_0041_a_23L念菩薩慈悲之意六禮未備一言宜誠
008_0041_a_24L淡無味於嚼蠟比蓮花之着水熈照二

008_0041_b_01L본래 도를 구하려다가 서쪽 외진 곳에서 벗을 잃게 되자 서울로 올라갈 면목이 없어 행색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게송을 써서 주는데 영조가 먼저 읊었다.

但智成空見     치우친 지혜는 부질없는 견해를 이루고
偏悲涉愛緣     치우친 자비는 애욕의 인연에 걸려드네
雙行常樂矣     둘이서 가는 길은 항상 즐거운 법
一道自天然     하나의 도가 저절로 이루어진다네
月運因雲駃     흘러가는 저 달은 구름 따라 달리고
風飄識幡懸     나부끼는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는 법
干將如在手     간장40)이 손에 쥐어져 있거늘
安爲色留連     어찌 여색에 매어 머물 수 있으리오

영희靈熈가 이어서 읊었다.

一簣成臺力     한 삼태기로 누대를 쌓은 힘이요
九皐翹足緣     깊은 못에서 날개짓 할 인연이라
修行破竹爾     수행은 대나무를 쪼개듯 정진하고
得道着鞭然     득도는 채찍을 가한 듯 해야하리
未免三生累     삼생에 얽매임을 면치 못하여
寃家一念懸     구무원 집에 한 생각이 매달렸네
他年瓶返水     훗날 엎질러진 물을 병에 담으려면
追後跡相連     추후 서로 발걸음이 이어져야하리

부설선사浮雪禪師도 원만한 도인의 일화로 차운하여 답하였다.

悟從平等行無等   깨달음은 평등을 따르면 실행함이 비할 바 없고
覺契無緣度有緣   깨우침이 무연에 합하면 인연 있는 이들을 제도할 수 있다네
處世任眞心廣矣   세상에 있으면서 진성에 맡기면 마음이 넓어지고
在家成道體胖然   재가 생활하면서 도를 이루면 몸이 넉넉해진다네
圓珠握掌丹靑別   둥근 구슬 손바닥에 쥐니 단청이 구별되고
明鏡當臺胡漢懸   경대의 밝은 거울 보니 호인과 한인이 또렷하네
認得色聲無罣碍   색과 소리가 걸릴 것이 없음을 깨친다면
不須山谷坐長年   산골짜기에서 오래 앉을 필요 없다네

마침내 솔잎차를 가득 담아 들고 서로 권하며 작별을 하였다.
“도는 승려의 검은 옷과 속인의 흰옷에 있지 아니하며, 또 번화로운 거리와 조용한 초야에 있는 것도 아니지요. 모든 부처님의 뜻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있으니, 우리 도반道伴들께서는 멀리 가서 법유法乳41)를 실컷 먹고 와서 이 노부老夫를 경책해주시오.”
선사는 그 모습이 크고 거룩하여 몸은 티끌 세상에 묻혀 있으나 마음은 늘 물외物外에 있었다. 삼업三業을 정밀하게 닦고, 육도六度를 널리 행하였으며, 안팎의 경전을 두루 통하여 말씀이 제도와 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에 사방의 이웃들이 기쁜 마음으로 팔방에서 서로 옷깃을 당기면서, 치료를 원하는 선비가 바람처럼 달려들고 약을 복용하려는 사람들이 폭주했다. 그리하여 귀머거리와 어리석은 이도 모두 깨우치고, 마른 고목조차도 윤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법을 널리 펴서 떨친 지 15년이 되었다.
오묘하게 악기를 타고 글을 읽는 법윤法胤42)

008_0041_b_01L本以道懷失朋西陲無顏上洛行 
008_0041_b_02L色慘惔寫偈以贈靈照先成曰

008_0041_b_03L但智成空見偏悲涉愛緣

008_0041_b_04L雙行常樂矣一道自天然

008_0041_b_05L月運因雲駃風飄識幡懸

008_0041_b_06L干將如在手安爲色留連

008_0041_b_07L靈熈繼和曰

008_0041_b_08L一簀成䑓力九皐翹足緣

008_0041_b_09L修行破竹爾得道着鞭然

008_0041_b_10L未免三生累寃家一念懸

008_0041_b_11L他年瓶返水追後跡相連

008_0041_b_12L
浮雪禪師亦以圓融道話步韻而答曰

008_0041_b_13L悟從平等行無等覺契無緣度有緣

008_0041_b_14L處世任眞心廣矣在家成道體胖然

008_0041_b_15L圓珠握掌丹靑別明鏡當臺胡漢懸

008_0041_b_16L認得色聲無罣碍不須山谷坐長年

008_0041_b_17L
遂把松茶引滿相屬以與訣曰道不
008_0041_b_18L在緇素道不在華野諸佛方便志在
008_0041_b_19L利生道侶遠叅飽飡法乳來警老夫
008_0041_b_20L師之軒昻身在塵勞心懸物外精修
008_0041_b_21L三業廣行六度解通內外語涉典章
008_0041_b_22L四鄰歡心八表引領求醫之士風趍
008_0041_b_23L服藥之人輻輳聾騃盡醒稿枯悉潤
008_0041_b_24L法施敷揚十有五年妙指書帳法胤

008_0041_c_01L둘 있었으니, 사내는 등운登雲이고 딸은 월명月明으로 둘 다 길몽吉夢으로 얻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석가모니께서 보낸 자식으로 용모와 거동이 자상하고 단정하였으며, 은근한 절개와 높은 기상을 지녔다. 학문은 생각지 않고도 스스로 생지生知로 이해하여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알고 바람을 따라 소리를 아는 등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다. 삼장三藏의 넓은 가르침에 노닐었고 육경六經의 문장 속에서 익혔다. 지인至人의 내린 자취라 만물이 병들지 아니하고 비바람이 제때 내려 곡식이 풍년이 드니, 하루를 계산해 보면 부족한 것 같지만 한 해를 헤아려 보면 오히려 남았다.
선사는 이 고을의 어른 이승계李承桂와 상사上舍 김국보金國寶 공 등과 함께 방외方外의 교분을 맺어 한가한 가운데 즐거움을 얻어, 나이의 많고 적음을 잊고서 내외가 하나가 되어 날마다 함께 모여 경전의 이치를 강론하였다. 비바람치고 눈과 서리가 내려도 소식이 끊이지 않아, 마치 원공遠公의 연꽃에 심취한 듯43), 한자韓子가 옷을 남겨 준 듯44)하였다. 이에 번잡한 속세의 일은 모두 두 아이에게 맡기고 따로 별채를 엮어 지난날의 업을 정밀하게 단련하는 데 정진하면서, ‘나의 귀중함을 손상시키는 강도强盜는 본래 육문六門45)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견二見46)을 없애고 듣는 것을 돌이켜 제 본성의 소리를 들어 일진법계一眞法界를 홀로 드러냄은 방편을 빌리지 않는다’라고 기약하였다. 그러면서 걷지 못한다고 하여 병부病夫라 칭하면서 죽이나 약을 남보고 가져오게 하고, 대소변도 기력이 없어서 누지 못한다고 하면서까지 공부에 잠심하며 도를 이루고자 결심하였다. 비야毗耶의 존자尊者가 말하지 않은 것47)을 사모하고 소림사少林寺의 달마대사가 면벽面壁한 것을 흠모하였다. 기약한 5년이 되자 밝게 통하기가 빛난 별과 같았으며, 다시 남은 찌꺼기를 깨끗이 하고 거듭 지혜의 봉우리는 높이 솟게 되었다. 이에 화엄華嚴의 법계法界에 고삐를 내려놓고 원각圓覺의 묘도량(妙場)에 편안히 앉아 다만 스스로 기뻐할 뿐 남에게 이를 설파하지는 않았다.
지난날 옷깃을 함께하던 영희靈熈, 영조靈照 두 법사는 그동안 명산들을 두루 다니면서 수행을 하다가 인연을 따라서 다시 두릉杜陵 땅의 신심이 깊은 구씨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사와 파이波夷48)는 죽은 지 이미 오래여서 그간의 사정을 물어볼 데가 없었는데, 홀연 이제 막 갓을 쓰고 비녀를 꽂은 단정한 남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부설浮雪의 안부를 물으면서 예전 같이 수행하였던 벗으로서의 인연을 말해주자, 두 남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집으로 들어가 아뢰었다. 부설선사는 이내 말하기를, “내 벗이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을 들으니 오랜 병이

008_0041_c_01L二人男曰登雲女曰月明是皆吉夢
008_0041_c_02L所感之稱也釋氏抱送之雛容儀詳正
008_0041_c_03L懃節高猛學不加思解自生知見影
008_0041_c_04L追風聞一知十游三藏之敎海翫六
008_0041_c_05L籍之詞林至人降跡物不疵病風雨
008_0041_c_06L順時禾糓豊登計日不足計年有
008_0041_c_07L本縣高人李公承桂上舍金公國寶
008_0041_c_08L結爲方外之交相與閑中之樂
008_0041_c_09L老少一內外日與講論經理風雨雪霜
008_0041_c_10L不輟音信譬遠公之賞蓮喩韓子之留
008_0041_c_11L於是毛塵人事掃委二兒別搆一
008_0041_c_12L精鍊舊業傷財劫賊本由六門
008_0041_c_13L滅二見返聞聞性一眞獨露非假方
008_0041_c_14L便陽不能行故稱病夫粥藥須人便
008_0041_c_15L利無氣潜心做工決意成道慕毗耶
008_0041_c_16L之杜口戀少林之面壁期及五秋
008_0041_c_17L徹明星再淨餘塵重崇智嶽頓轡於
008_0041_c_18L華嚴法界宴坐於圓覺妙塲只自怡悅
008_0041_c_19L莫能說破昔日同袍熈照二師叅禮日
008_0041_c_20L遍遊名山隨緣受用重到杜陵淸
008_0041_c_21L信之家居士與波夷仙化已久無能
008_0041_c_22L問者忽逢端正男女纔冠簪者問浮
008_0041_c_23L雪安否宣昔日同友之緣相顧泫然入
008_0041_c_24L浮雪乃曰余喜聞故人之歸沉痾

008_0042_a_01L갑자기 나아 버렸구나. 기운과 몸이 거뜬하여 편안하니 대청에 편안한 자리를 마련하고 벗들을 접대할 음식을 장만하여라. 저분들은 뛰어난 도인道人이고 사물의 이치에 널리 통한 군자들이시니 받들어 모심에 조금도 거슬리거나 소홀히 하지 말라.” 라고 하면서, 곧장 일어나 환영하였다. 서로 간에 쌓인 옛정을 푸니 선사는 근진根塵이 씻은 듯 사라져 밝은 달이 신령스레 비추는 듯하였다. 두 자식들도 두 상인上人의 법력法力을 입어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고 생각하고 온몸을 땅에 굽혀 하늘에 계신 신보다 더 공경하였다.
선사는, “병 세 개에다 물을 담아오라. 그동안 벗들의 공부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시험해 보아야겠다.”라고 하면서 들보 위에 병을 달아 놓고 각자 병을 하나씩 쳤는데, 영희 영조 두 법사는 병이 부서지고 물도 쏟아졌다. 그러나 부설선사가 치자 병은 깨졌어도 물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다시 부설선사는 두 법사에게 말했다.
“신령스런 빛이 홀로 빛나서 근진을 멀리 벗어나게 되면 몸에 본성의 진상眞常49)이 드러나 생과 멸滅에 얽매이지 않게 되는 법이오. 그러나 이것이 옮겨지고 흘러가 버린 사람은 저 물병이 부서진 것과 같고, 진성眞性은 본래 밝고 신령하여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은 물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지요. 그대들이 높은 식견이 있는 사람들을 두루 찾아가 오랫동안 사찰에서 보냈거늘, 어찌 생과 멸을 다스려 진상이 되게 하고 환화幻化를 공空으로 하여 법성法性을 지키지 못하였소? 다가오는 업業이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못한가를 증험해보고자 한다면 곧 상심常心이 평등한가 평등하지 못한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오. 그런데 지금 이미 그렇지 못하니 지난날의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는다는 경계는 어디에 있단 말이오? 함께 행하자는 맹서는 아득히 멀어졌구려.
이어서 게偈를 읊었다.

目無所見無分別   눈에 보는 게 없으면 분별이 끊어지고
耳聽無聲絶是非   귀는 무성을 들으면 시비가 끊어지네
分別是非都放下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버릴지니
但看心佛自歸依   다만 마음의 부처를 보고 스스로 귀의할지어다

이때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 깔리고, 신선의 음악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마음을 집중한 채 단정히 앉아서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열반을 하니, 향기는 바닷가까지 날아가고 꽃비는 하늘에서 내렸다. 두 법사는 추모하면서 다비를 거행하는데, 불꽃 속에서 학이 춤을 추고 빗방울은 사리 구슬에 떨어졌다. 사리를 거두어 보병寶甁에 넣고서 묘적봉妙寂峰의 남쪽 기슭에 묻고 부도浮圖를 세웠다. 이어서 명양冥陽의 법회50)를 여니 호남 지역의 선비들이 구름처럼 도량으로 모여들었다. 또 위북渭北 지역51)에서 선을 강하자 신령스런 산에 바람처럼 몰려들었다. 이때 도문道文, 도전道全, 범해法海,

008_0042_a_01L頓除氣宇淸泰可於正堂設鋪安坐
008_0042_a_02L具膳尊享彼是格外道人愽物君子
008_0042_a_03L承之奉之勿逆勿怠即起歡迎相叙
008_0042_a_04L舊情根塵明敏朗月神錐二子之心
008_0042_a_05L謂蒙上人法力厥父疾愈五體投地
008_0042_a_06L敬逾天屬浮雪云取三甁盛水來
008_0042_a_07L工夫生熟掛於樑上各打一甁熈照
008_0042_a_08L二人甁水倶碎雪亦打之甁碎水懸
008_0042_a_09L因謂二人曰靈光獨曜逈脫根塵
008_0042_a_10L露眞常不拘生滅遷流者似瓶之破碎
008_0042_a_11L眞性本靈明常住者如水之懸空公等
008_0042_a_12L遍叅知識久曆叢林豈不攝生滅爲眞
008_0042_a_13L空幻化守法性乎欲驗來業自由不
008_0042_a_14L自由便知常心平等不平等今旣不然
008_0042_a_15L曩日返水之戒安在雙行之警邈矣
008_0042_a_16L偈示云

008_0042_a_17L
目無所見無分別耳聽無聲絕是非

008_0042_a_18L分別是非都放下但看心佛自歸依

008_0042_a_19L
于時天雲密布仙樂盈空端坐一念
008_0042_a_20L示同蟬蛻香飛海表花雨天中二師
008_0042_a_21L追慕擧龕闍維鶴飄火中雨滴靈珠
008_0042_a_22L收舍利入寶甁瘞干妙寂南麓建浮圖
008_0042_a_23L因設㝠陽之會湖南士庶雲集道塲
008_0042_a_24L渭北禪講風驅靈嶽時道文道全法海

008_0042_b_01L법운法雲 등은 모두 부처의 제자 중에 용상龍象의 덕을 갖추었고 세간의 사표師表가 된 이들이었다. 흐르는 물처럼 맑은 설법은 단단한 돌덩이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법회가 끝나기도 전에 부설선사의 두 남매는 동시에 머리를 깎고 띠집을 엮어 떨어져 거처하며 눈물로 가래나무를 적시고,52)마음으로 연지蓮池53)를 생각하였다. 삶을 가볍게 여기고 괴로이 절개를 지키면서 구구九丘54)의 묘리를 탐구하고, 불법을 위하여 제 한 몸 잊고서 팔장八藏55)에서 그 깊은 뜻을 궁리하였다. 아버지와의 세속에서 함께 닦은 덕을 그리워하며, 등에 불을 밝히고 부처님을 이르려는 마음을 품은지라 보소寶所56)에서 한가롭게 노닐면서 부처님 덕에 흠씬 무젖어, 반주삼매般舟三昧57)의 경지를 단련하고 정토淨土의 구련九蓮58)을 항상 생각하였다.
구슬 구르듯 세월이 흘러 어느새 늘그막에 이르게 되자, 고을의 도인과 선비들에게 두루 알리고 산문山門의 승려들을 불러서 열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이제껏 닦아왔던 방편方便의 문을 여니, 사람들이 풍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승려와 선비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월명씨月明氏는 온전한 몸으로 자색 구름을 타고 문득 서천을 향하였고, 등운법사는 손에 푸른 구슬을 떨치며 보배로운 게송을 물 흐르듯이 썼다.

覺破三生夢     삼생의 꿈에서 깨어나
神遊九品蓮     정신이 구품의 연지에서 노니누나
風潜淸智海     바람은 맑은 지혜의 바다에서 잠잠하고
月上冷秋天     달은 차가운 가을 하늘에서 떠오르네
輦路盈仙樂     떠나는 길에는 신선의 풍악이 가득하고
瑤池駕法船     요지59)에 법선을 타고 가네
般若三昧熟     반야 삼매의 경지 완숙해지니
極樂去怡然     극락 가는 길이 기쁘기만 하여라

글을 다 쓰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웃음을 머금은 채 영원히 돌아가니, 상서로운 빛이 방에 가득하고 기이한 향기는 여름 내내 그치지 않았다. 원근에서 이를 보고 들은 사람들이 길을 오가면서 이로움이 매우 크고 공덕이 무궁함을 찬미하였다.
그의 어머니 묘화妙花는 장수하여 110년을 살았는데, 운명하려 할 적에 집을 희사하여 사원을 만들어 ‘부설浮雪’이라 이름하였다. 이에 산사의 큰 스님들이 두 자식의 이름으로 암자를 명명하여, 지금도 등운암登雲庵과 월명암月明庵이 있다.

008_0042_b_01L法雲皆是法中龍象世間師表迅流
008_0042_b_02L淸辯頑石點頭法會未罷聖嗣二人
008_0042_b_03L同時祝髮結屋星居淚沾檟樹神想
008_0042_b_04L蓮池輕生苦節閱筌蹄于九丘爲法
008_0042_b_05L忘軀探幽旨于八藏戀慈父同塵之德
008_0042_b_06L懷燃燈續佛之心優游寶所沐浴毗尼
008_0042_b_07L鍊得般舟三昧繼念淨土九蓮跳丸歲
008_0042_b_08L限迫桑楡遍告州縣道儒普召山
008_0042_b_09L門釋子示涅槃相開方便門聆風普
008_0042_b_10L黑白蟻慕月明氏全身乘紫雲
008_0042_b_11L向西天登雲師印手拂碧瑤流書寶
008_0042_b_12L偈云

008_0042_b_13L
覺破三生夢神遊九品蓮

008_0042_b_14L風潜淸智海月上冷秋天

008_0042_b_15L輦路盈仙樂瑤池駕法船

008_0042_b_16L般若三昧熟極樂去怡然

008_0042_b_17L
書罷歛容含笑長歸祥光滿室異香
008_0042_b_18L一夏遠近見聞稱讃道路利益甚深
008_0042_b_19L功德無窮其母妙花壽考百有十年
008_0042_b_20L將啓手足捨家爲院以浮雪爲名
008_0042_b_21L門碩德以二子名名庵至今有登雲月
008_0042_b_22L明云爾

008_0042_b_23L
普應堂暎虛集卷之終
  1. 1)금몽金夢 : 미상. 혹시 강릉 일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싶으나 구체적인 사례를 찾을 수 없다.
  2. 2)용매龍媒 : ‘용마龍馬’라고도 하며 준마의 별칭이다. 여기서는 영허暎虛 자신을 이렇게 빗댄 것으로 판단된다.
  3. 3)남화南華 : ‘남화지회南華之悔’. 즉 상관의 비위를 거슬러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일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영허 자신이 과거에 과거 공부를 했던 사실을 이렇게 언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4. 4)빙탄氷炭의 생각 :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의미로, 얼음과 숯불은 성질이 정반대여서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인바, 여기서도 뜻이 조화롭지 못한 잡념을 말한다.
  5. 5)이 시는 망국의 슬픔을 표현한 『詩經』「黍離」를 원용함.
  6. 6)호박잔과 앵무잔 모두 화려한 술잔을 뜻하는바, 신라 말기 경애왕 때 포석정鮑石亭에서 술잔을 띄워 유상곡수流觴曲水를 즐기다가 견훤에게 기습을 당했던 사건을 회상한 것으로 판단된다.
  7. 7)천주사天柱寺 : 신라 진평왕이 세웠다고 하는 사찰이다. 『삼국유사』권1「天賜玉帶」에 진평왕이 내제석궁內帝釋宮에 행차한 사항을 기록하고서 그 주에 이 내제석궁을 또한 ‘천주사’라 하며, 왕이 창건했다(亦名天柱寺, 王之所創)는 내용이 병기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이 시기 왕실 내의 사찰로 판단된다. 현재 경북 문경시 천주산에도 동명의 사찰이 있는데 이는 별개이다.
  8. 8)유사강流沙江 : 현재 그 위치는 불명확하나 울진에서 경주 사이에 있었던 하천 이름을 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삼국유사』권3 「溟州五臺山寶叱徒太子傳記」에, “보질도태자가 항상 골짜기의 신령스러운 물을 마시더니 육신이 공중에 떠서 유사강에 이르러 울진대국의 장천굴로 들어가 도를 닦았다.(寶叱徒太子常服于洞靈水, 肉身登空, 到流沙江, 入蔚珍大國掌天窟修道.)”는 내용이 나온다.
  9. 9)천화天花 : 눈을 미화하여 표현한 말.
  10. 10)삼상三湘 : 원상沅湘, 소상瀟湘, 증상蒸湘. 또 상향湘鄕, 상담湘潭, 상음湘陰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 모두 중국에서 승경지로 말려져 있다.
  11. 11)수양산首陽山 : 황해도 해주시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욱상인昱上人이 묘향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을 들리는 것으로 판단해서 이렇게 적은 것이다.
  12. 12)원효元曉의 『大乘起信論疏別記』권2.
  13. 13)낭주浪洲 : 즉 신선 세계.
  14. 14)정안正眼 :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준말로,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진리.
  15. 15)삼명三明 : 아라한의 지혜에 갖추어 있는 세 가지 묘한 작용으로, 숙명명宿命明, 천안명天眼明, 누진명漏盡明.
  16. 16)전가傳家 : 법을 전수할 만한 사람.
  17. 17)일진一眞 : ‘진여眞如’와 같은 뜻으로, 우주 만유萬有의 실체로서 현실적이며 무차별한 절대의 진리.
  18. 18)위음威音 : ‘위음왕불威音王佛’. 과거 최초의 불명佛名으로 다수의 부처를 통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19. 19)소허巢許 : 중국 요순시대의 은자인 허유許由와 소보巢父. 허유는 요堯 임금이 천하를 그에게 양여하려 하자 거절하고 기산箕山에 은거하였으며, 다시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 하자 영수潁水에서 귀를 씻었다고 한다. 소보 역시 임금이 천하를 맡기고자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20. 20)일심一尋 : 심尋은 거리의 단위로, 보통 8척尺에 해당한다.
  21. 21)상왕象王은 달리다가~숲을 이루었네 : 오대산의 큰 봉우리의 형세를 표현한 대목으로, 중앙이 지로봉地爐峰, 동쪽은 만월봉滿月峰, 남쪽은 기린봉麒麟峰, 서쪽은 장령봉長嶺峰, 북쪽은 상왕봉象王峰이라 한다.
  22. 22)삼도三島 : 자라 등에 얹혀 동해에 떠 있다는 삼신산으로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 원래 신선 세계를 일컫는데, 여기서는 오대산이 동해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23. 23)구품九品의 연대蓮臺 : 구품은 극락왕생極樂往生의 아홉 등급으로 상·중·하의 삼품三品으로 분류한다. 연대는 즉 연화좌蓮華座로 불상을 놓는 자리.
  24. 24)『장자』「騈拇」에 장臧과 곡穀 두 사람이 양을 치다가, 장은 책을 보느라 양을 잃고 곡은 도박하느라 양을 잃었으니, 양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는 이야기가 있음.
  25. 25)구거鳩車 : 나무로 만든 비둘기를 수레 위에 싣고서 소꿉놀이를 한다는 말로, 보통 네다섯 살을 가리킨다.
  26. 26)죽마竹馬 : ‘죽마고우竹馬故友’의 그 죽마로, 보통 일곱 살 경을 가리킨다.
  27. 27)계주戒珠 : 몸을 계율하고 결백하게 하며 장엄하게 하기를 주옥처럼 한다는 뜻.
  28. 28)사함四含 : ‘사아함경四阿含經’. 석가모니의 언행록을 엮어 만든 초기 불교의 근본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네 가지 아함경阿含經. 즉 『長阿含經』ㆍ『中阿含經』ㆍ『雜阿含經』ㆍ『增一阿含經』.
  29. 29)오명五明 : 다섯 가지 분야를 밝히는 학문으로, 내명內明 ㆍ 의방명醫方明 ㆍ 성명聲明 ㆍ 인명因明 ㆍ 공교명工巧明이다. 이들 학문은 각각 불교 교리, 의학, 문법학, 논리학, 기술천문학에 해당한다.
  30. 30)천관사天冠寺 :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에 위치한 사찰로, 655년 통령대사通靈大師가 창건하였다. 신라 때에는 당나라의 승려가 수도한 것으로 유명하다.
  31. 31)마갈摩渴 : 부처가 수도하였던 도량.
  32. 32)만자滿字 : 불가에서 의미가 완전하게 갖추어진 문자를 말한다. 불가의 문자는 반자半字와 만자로 나누는데, 반자는 글자가 완전하지 못해 그 의미를 충족하지 못한 소승의 가르침, 만자는 대승의 가르침을 말함.
  33. 33)현관玄關 : 선학禪學으로 들어가는 관문. 여기서는 따로 선가에 들어가서 참선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쓰였다.
  34. 34)전삼삼前三三과 후삼삼後三三 : 무착 문희無着文喜 선사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이 화한 노인을 만나 대화하는 중에 묻기를 이곳의 승려가 얼마나 되느냐고 하자 위와 같이 대답함. 『神僧傳』권8.
  35. 35)두릉杜陵 : 홍양洪陽, 즉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었던 지명. 18세기 초 정각선鄭覺先, 1660~?이 지은 『杜陵漫筆』이라는 필기가 있는데, 이 역시 이곳에 있으면서 엮은 책이다.
  36. 36)마명馬鳴 : 고대 인도 마갈타국 출신으로, 석가가 입적한 지 600년 만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 그는 바라문교婆羅門敎의 신자였으나, 뒤에 불교에 입문하여 대승大乘의 논사論師가 되었다. 저서로 「大乘起信論」이 있다.
  37. 37)용수龍樹 : 고대 인도의 고승으로 남천축국南天竺國 출신이다. 석가가 입적한 지 700년 후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며, 마명보살馬鳴菩薩의 제자인 가비마라迦毘摩羅의 제자로, 삼론종三論宗을 열었다. 그는 『中觀論』, 『大智度論』 등의 불교 저서를 남기기도 하였다.
  38. 38)아난은 석가모니의 종제從弟이면서 십대제자十代弟子 중 한 사람이다. 천민 마등가摩登伽에 속한 음녀婬女인 발길제鉢吉帝, prakṛti가 아난을 보고, 음탕한 마음을 내어 어머니에게 청하자, 그 어머니는 주문을 외워서 아난을 유혹하였다. 아난이 주문의 힘에 걸리어 음녀에게 파계하려 할 때 부처님이 아시고 아난을 구해오고, 음녀도 승려가 되었다.
  39. 39)초楚나라 양왕襄王이 꿈에 무산巫山의 신녀神女를 만나 운우지정을 나누었다.
  40. 40)간장干將 : 중국 춘추시대의 보검 이름으로 막야莫邪와 함께 일컬어진다. 원래 간장은 오나라의 도장刀匠이며 막야는 그의 아내였는데, 오왕吳王 합려闔閭를 위해서 음양의 두 명검을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41. 41)법유法乳 : 즉 불법. 스승에게 불법佛法을 받는 것이 어린애가 어머니에게 젖을 받아먹음과 같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42. 42)법윤法胤 : 법사의 자식이란 뜻으로 부설거사의 두 자식을 말한다.
  43. 43)원공遠公의 연꽃에 심취한 듯 : 원공遠公은 중국 진晉나라의 고승 혜원慧遠을 말한다. 그가 여산廬山 동림사東林寺에서 백련사白蓮社를 결성한 뒤 산문山門을 나서지 않고 문도들과 정토 수행에 전념했던바, 이를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44. 44)한자韓子가 옷을 남겨 준 듯 : 한자韓子는 즉 당나라 때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주도했던 한유韓愈로, 불교를 배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일찍이 조주자사潮州刺史로 폄적되었을 적에 태전선사太顚禪師와 교분이 두터웠던바, 그곳을 떠날 때 한유는 태전선사에게 자신이 입던 옷을 남겨 우의의 정표로 삼았다.
  45. 45)육문六門 : 즉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 이는 불가에서 번뇌煩惱를 야기하는 여섯 가지 문으로 본다.
  46. 46)이견二見 :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즉 자신과 외물의 본성이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없어진다고 보는 단견과 그와 반대라는 상견. 여기서는 이 두 가지 견해를 초월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47. 47)비야毗耶의 존자尊者는 유마거사維摩居士로, 그가 『維摩經』을 설한 곳이 비야였다. 유마거사가 비야성에서 질병을 보이자 보살들이 모여서 각자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설하였는데, 문수보살이 유마에게 묻자 유마거사는 묵묵히 말이 없었다. 이는 불이법문이 언전言詮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표시한 것이다.
  48. 48)파이波夷 : 불가에서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이다.
  49. 49)진상眞常 : 생사에 해탈하고 항상 진실하여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경계로, 곧 진여眞如ㆍ열반涅槃의 세계이다.
  50. 50)명양冥陽의 법회 : 명冥은 명계冥界의 아귀중이고 양陽은 양계陽界의 바라문 등 외도중이다. 이 명계와 양계의 온갖 무리에게 널리 공양하는 법회이다.
  51. 51)위북渭北 지역 : 미상. 원래 위수渭水는 중국의 감숙성에서 발원하여 황하로 흘러 들어가는 강 이름으로, 혼탁한 강물을 지칭할 때 대표적인 강인데, 여기서는 부설선사가 강론했던 전라도 지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되나 섬진강이나 금강을 이렇게 지칭하는 예가 없어서 정확한 규명이 불가능하다.
  52. 52)가래나무를 적시고 : 옛날 무덤을 쓸 때 가래나무로 무덤 주위를 둘렀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53. 53)연지蓮池 : 곧 불교의 극락정토.
  54. 54)구구九丘 : 전설상의 책 이름으로, 중국 본토인 구주九州에 관한 기록이 들어 있다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55. 55)팔장八藏 : 부처님이 말씀한 법문을 8종으로 나눈 것으로, 첫째는 부처가 태 안에서 현화한 태화장胎化藏, 둘째는 현세와 명도冥途의 중간에 있다는 중음中陰에 관한 중음장中陰藏, 셋째는 대승경大乘經인 마하연방등장摩訶衍方等藏, 넷째는 율전인 계율장戒律藏, 다섯째는 십주보살장十住菩薩藏, 여섯째는 소승경小乘經인 잡장雜藏, 일곱째는 금강장金剛藏, 여덟째는 제불諸佛의 설법과 신통에 관한 불장佛藏을 말한다.
  56. 56)보소寶所 : 부처님이 계시는 보배로운 곳이란 뜻으로, 일체중생이 성불成佛하는 곳이다.
  57. 57)반주삼매般舟三昧 : 7일이나 혹 90일로 미리 일정한 기간을 정하고, 그동안에 몸ㆍ입ㆍ뜻의 3업業으로 마음을 가다듬어 온전히 하고, 정행正行을 가지면서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는 수행을 말한다. 이 삼매를 닦으면 눈앞에서 모든 부처님을 뵙고서 교화를 받는다고 한다.
  58. 58)구련九蓮 : ‘구품연대九品蓮臺’의 준말로 불가의 정토를 말한다.
  59. 59)요지瑤池 : 원래는 고대 전설 속의 곤륜산崑崙山에 있던 연못 이름이나 여기서는 아름다운 연못을 뜻한다.
  1. 1)「茟」通用「筆」{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