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무경집(無竟集) / 無竟集文稿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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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집문고無竟集文稿 권3
문文 2
왕축초
재를 행하여 참회하는 것은 일찍이 양무제梁武帝에게서 보았고, 복을 구하되 사특함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공자에게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성을 다하여 우러르며 그윽한 도우심을 바라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재를 지내는 저희는 오백생 기쁜 가정을 이루었고 몇 천 겁의 인연을 심었습니다. 작은 몸을 계림鷄林(우리나라)에 함께 기탁하고 제학鯷壑(우리나라)에서 덧없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검술도 없고 학문의 재주도 없으니 문무의 공업을 바랄 것이며, 옷감을 짜지도 못하고 바느질도 서투르므로 한갓 농사만 지으며 살았습니다. 집안의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이 삶을 도모하기 어렵고 가족이 백 번 대신 죽은들 어찌 정해진 운명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보계寶髻가 한 조각 향을 바치니 곧바로 장자長者가 명성을 드날린다고 느꼈고, 용녀龍女가 구슬 하나를 드리니 그날로 무구無垢의 기별記莂(수기)을 받았습니다. 마야 부인이 생생에 도솔천에 태어난 것은 인연을 깊이 심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으며, 가섭이 대대로 금색신金色身인 것은 대개 발원이 크기 때문입니다. 내재內財를 공양하지 못할진대 차라리 외물의 시주만 못하니 덧없는 세상의 재물을 다 바쳐 감히 공화空花의 불사를 행합니다. 돈이 산처럼 쌓여 금은의 색이 빛나고, 꽃향기 성대하여 바람과 햇빛에 스칩니다. 삼덕三德273)이 알알이 다 정성이요, 육화六和274)가 하나하나 그 사람인지라, 겨자 같은 인연 비록 미약하나 연감蓮鑑은 곧 두루합니다.
바라오니 명부冥府의 성왕 등 여러 분은 품격이 정직하사, 저울에 조그만 그릇됨도 허여하지 않으시고 가풍은 청백하여 달빛과 유리가 서로 비추는 듯합니다. 이미 12명의 여러 목숨을 맡겼으니 억만 겁을 길이 의지하지 않겠습니까. 바라오니 특별히 어리석은 마음을 살피시고

009_0402_b_01L1)無竟集2)文稿卷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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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02_b_03L3)文(二)

009_0402_b_04L王祝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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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齋乞懺曾有見於梁皇求福不回
009_0402_b_06L豈無聞於尼父故竭丹恪仰托玄庥
009_0402_b_07L伏念齋者五百生歡喜家幾千劫因緣
009_0402_b_08L共寄槲於鷄林幸浮芥於鯷壑
009_0402_b_09L無術學無材可望文武之功業織不能
009_0402_b_10L針不善徒務稼穡之生涯家財累鉅萬
009_0402_b_11L而難圖此生眷屬百其身而奚贖㝎
009_0402_b_12L寶髻奉片香而轉身感長者之騰名
009_0402_b_13L龍女獻一珠而卽日蒙無垢之記莂
009_0402_b_14L耶后生生兜率界豈無緣種之深迦葉
009_0402_b_15L波世世金色身盖以發願之大與未能
009_0402_b_16L內財之供養寧不若外物之檀緣故罄
009_0402_b_17L壑舟之世財敢設空花之佛事錢山層
009_0402_b_18L色堆金銀花香氤氳影拂風日
009_0402_b_19L德之粒粒皆悃六和之箇箇其人芥緣
009_0402_b_20L雖微蓮鑑卽遍伏惟冥府聖王等衆
009_0402_b_21L正直標格蚊蠅不許坐於秤頭淸白家
009_0402_b_22L琉璃納交光於月竇旣屬十二生之
009_0402_b_23L群命可乏億萬劫之長依伏望特詧愚

009_0402_c_01L그윽한 도움을 주시어, 우리 부부가 함께 신의 도움을 받아 양양하게 하시고, 자손들도 모두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그리하면 숙원을 이루어 생전에 불평을 막을 것이요, 하는 일을 다 성취하여 천상에서 무위無爲의 낙樂을 누릴 것입니다. 삼가 마땅히 선을 닦고 근본을 지어 불법을 위하여 몸을 잊을 것이니, 한 번 뛰어 곧바로 불도에 들고 속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우나, 삼생三生에 끊임없이 노력하여 차츰 오르기를 원합니다.
영산 별초
음양이 갈리자 흑백이 정편正偏으로 나뉘고, 삼재三才가 비로소 분리되자 성범聖凡이 서로 감응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정성을 다하고 우러러 그윽한 가호를 빕니다. 재를 올리는 저희는 함께 섬부주贍部洲에 태어났는데 모습은 숲속의 연리지連理枝와 같고, 바라문종에 짝하니 연못의 원앙과 동일합니다. 만일 무수한 세월을 함께한 인연이 아니라면 어찌 금생에 해로하는 기쁨이 있겠습니까. 가정과 일을 합당하게 행하여 건곤의 도를 순응하였고, 바깥일을 바르게 하고 집안일을 잘 닦아 마음이 자석과 쇠처럼 맞았습니다. 황상黃裳275)이 뒤집혀 그릇되지 않아 기우奇偶가 합궁하였고, 누구僂句276)가 속이지 않아 음양이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신세를 헤아려 보니 실로 생사보다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세월이 감에 따라 사산四山의 불이 핍박함을 피할 길 없고, 천지가 넓으나 두 쥐가 등나무를 갉아먹는 것을 물리칠 수 없으니, 화택火宅277)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무엇이 불법의 신력神力만 하겠습니까. 이에 얼마 안 되는 의식의 여분을 다 바쳐 영산 법회의 도량을 세웁니다. 설법하는 높은 말씀은 대해의 물결처럼 일렁이고, 불도를 노래하는 범악梵樂은 우레같이 맑은 하늘에 울려 퍼집니다.

009_0402_c_01L俯賜冥隲俾夫婦共獲神扶而揚揚
009_0402_c_02L兼子孫同蒙佛記而栩栩然則宿願方
009_0402_c_03L弭不平於生前能事畢成樂無爲
009_0402_c_04L於天上謹當修善作本爲法忘身
009_0402_c_05L超直入雖愧出籠三生稍登庶效點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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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02_c_07L靈山別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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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儀纔判黑白分於正偏三才肇分
009_0402_c_09L聖凡交於感應故竭丹恪仰丐玄林
009_0402_c_10L齋者等並生4) [1] 部洲邊狀似林中之
009_0402_c_11L連理含配婆羅門種類同池上之䲶鴦
009_0402_c_12L倘非百劫同業之因緣那得今生偕老
009_0402_c_13L之歡喜宜家宜業道順乾坤外飭內
009_0402_c_14L意合磁銕誰言黃裳飜錯已憑奇
009_0402_c_15L偶合宮莫道僂句成欺自分陰陽不悖
009_0402_c_16L然自撫於身世實莫怖於死生寒徃暑
009_0402_c_17L末由避四山之逼火天高地厚
009_0402_c_18L圖壤二鼠之咬藤欲脫火宅之寃臼
009_0402_c_19L如佛法之神力肆罄若干衣食之羡物
009_0402_c_20L敢設靈山法會之道場說法高談波瀾
009_0402_c_21L飜動大海唱道梵樂電霆蕩掣晴空
009_0402_c_22L「無竟集文稿」底本作二卷第二卷之分量
009_0402_c_23L於一卷故此下分卷爲「無竟集文稿卷之三」{編}

009_0402_c_24L「文縞卷之三」五字編者補入「文二」二字
009_0402_c_25L編者補入
「瞻」疑「贍」{編}

009_0403_a_01L흑산黑山 아래에 땅을 진동하며 빛이 뻗어 지혜와 경계가 서로 융통하고, 사수死水 가운데 구름과 안개가 일어 성천性天이 넓게 트입니다. 풍광은 법연法筵을 덮어 주고 여러 정토를 꾸며 줍니다.
바라오니 부처님께서는 무체無體의 체體를 법계에 크게 하시고 무용無用의 용用을 세상에 두루 펴시옵소서. 한량없는 가운데 거처하시니 모두 비로보각毘盧寶閣이 아님이 없으며 두루 만물에 응하시니 곳곳이 다 석가모니의 진신眞身입니다. 바라옵건대 원만하신 자비를 베푸시어 간절히 우러르는 정성을 살피옵소서.
칠성에 기도하는 글
하늘이 비쳐 보는 것은 심히 밝아서 연나라의 추연鄒衍이 통곡하자 서리가 날리고,278)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선한지라 제나라의 서녀庶女가 슬피 부르짖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279) 하늘과 사람이 서로 감응하고 화복은 득실을 따릅니다. 생각하니 저는 선림禪林의 병든 잎이요 법해法海의 부평초라 나월蘿月, 송풍松風과 어울려 살아갈 마음뿐이요 채근菜根과 목과木果는 호구지책입니다. 그러나 성해性海의 삼정三程280)에 통달하지 못하고 심전心田에 사인四忍281)을 품지 못하였습니다. 정성을 다해 도를 사모함은 설산雪山에서 몸을 잊으신 부처님께 부끄러우나, 마음을 가다듬고 가르침을 공경하여 향성에 몸을 바침을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사산四山(생로병사)이 핍박하고 어느덧 구원九原(저승)이 멀지 않아 삼공三空282)의 이치를 깨닫기 전에 오음五陰에 떨어질까 두려웠습니다.
우러러 바라오니 치성광熾盛光 여래와 칠대성군七大星君 등의 신은 신기가 광대하고 성덕이 원명圓明하시니, 천정天庭에 거처하면서 호옹皓翁이 오묘한 이치를 묻고 인간 세상을 다니며 교화하사 순풍淳風을 일으키십니다. 모습을 뵌 자는 생전에 형벌의 고통이 없고 이름을 들은 자는 사후에 지옥에 빠지는 근심이 없습니다. 널리 시방에 임하시어 성대한 빛이 가득하고 사해를 두루 비추어 아름다운 징조가 매우 밝습니다. 바라옵건대 저의 미천한 마음을 살피고 가호를 내리시어, 기력이 날로 더욱 튼튼하게 하시고

009_0403_a_01L黑山下動地放光互融智境死水中興
009_0403_a_02L雲吐霧恢廓性天風光廑合法筵
009_0403_a_03L點庶㨾淨土伏惟大覺慈尊無軆軆大
009_0403_a_04L於法界不用用遍於塵方沒量居中
009_0403_a_05L頭頭無非毘盧寶閣周遍應物處處皆
009_0403_a_06L是釋迦眞身伏望不捨圓回之慈俯察
009_0403_a_07L湯仰之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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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03_a_09L祈禱七星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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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鑑孔昭飛燕霜於慟哭人心最善
009_0403_a_11L振齊風於悲呼感應交於天人祲禎隨
009_0403_a_12L於得失念某禪林病槲法海浮萍
009_0403_a_13L月松風是關心之栖遲茶根木果
009_0403_a_14L糊口之活計然性海未達於三程豈心
009_0403_a_15L田克包於四忍投誠慕道多慚雪山之
009_0403_a_16L勵節欽風幾羨香城之罄骨
009_0403_a_17L而四山催逼俄爾九原不遙常恐三空
009_0403_a_18L之未前遽見五陰之隔後仰惟熾盛光
009_0403_a_19L如來與七大星君等衆神氣嵬蕩聖德
009_0403_a_20L圓明職居天庭皓翁問妙遊化人世
009_0403_a_21L淳風取徵見形者生前無刑囚之苦
009_0403_a_22L聞名者身後不淪沒之憂普臨十方
009_0403_a_23L盛光至密遍照四海休徵孔明伏望
009_0403_a_24L特詧微裏幸垂陰騭俾氣力日以增康

009_0403_b_01L도념道念이 때를 따라 복을 더하게 하소서. 저는 일생 동안 성경誠敬을 다하여 기도하는 마음을 어기지 않을 것이니 만고에 밝게 조림照臨하사 감응하는 마음에 부응하소서. 상향.
고경 스님의 돌아가신 스승을 위하여 대신 지은 복결 별소
혼돈이 나뉘기 전에는 금란金鸞과 옥봉玉鳳을 그대로 분별하지 않지만, 현황玄黃이 이미 갈리니 천지가 함개函盖처럼 들어맞는 데 무슨 방해가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수월水月 도량을 열고 때때로 공화空花의 불사를 행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니 돌아가신 스승님은 해향海鄕의 지푸라기요 법계의 티끌로, 설법과 송경誦經은 비록 경천동지하지 못하나 진용眞容을 그리고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신선의 솜씨에 견주니, 갈마천羯磨天에서 오지 않았다면 반드시 여래께서 보내셨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천지의 조화를 장엄하고 붓 끝으로 천태만상을 그려 냈는데, 멀리 사물에서 취하고 가까이 몸에서 취하니 오묘한 이치가 얼음이 풀리는 듯하고, 마음으로 터득하여 손으로 펼치니 빼어난 생각이 바람처럼 일어났습니다. 명예를 드러내지 않아도 멀리까지 드러났으며 이름을 떨치지 않아도 크게 떨쳤습니다. 제산諸山에 있는 선찰禪刹의 불상은 당신의 솜씨가 아님이 없고, 삼매三昧의 품격을 얻은 오묘한 솜씨는 마땅하지 아니함이 없었습니다.
생각건대 재를 지내는 저는 바라문 종성으로 어려서 스승님께 의탁하였고, 사바세계의 중생으로 자라서는 지극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니 부모님의 은혜와 같았고,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하시니 지독舐犢(송아지를 핥아 줌)의 은혜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밥을 대하면 알알이 은혜에 감사하였고 옷을 입으면 한 올 한 올 은덕임을 생각하였습니다. 골육은 비록 부모가 낳아 주신 골육이지만 피부는 실로 스승의 피부인지라, 항상 백 년 장수를 바랐는데 천명이 칠십뿐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가련타 새우 잃은 수모水母(해파리의 종류) 같은 처지요, 나무에서 떨어지는 목곡화木槲花 신세라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승과 이승의 길이 다르지만 결국은 생사가 한가지 이치인지라,

009_0403_b_01L得道念時來益慶然則一生誠敬之懇
009_0403_b_02L果無忒於所祈萬古鑑臨之明實有恊
009_0403_b_03L於攸應伏惟尙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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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03_b_05L代古鏡師亡師闋服別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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混沌未分從敎金鸞玉鳳之分踈不下
009_0403_b_07L玄黃已判何妨天宇地宙之凾盖相投
009_0403_b_08L日用水月道場時繁空花佛事伏念亡
009_0403_b_09L海鄕一芥法界孤塵說大法誦大
009_0403_b_10L雖未得驚天動地摸眞容成眞像
009_0403_b_11L實可侔步虛騰空若非羯磨天來必是
009_0403_b_12L如來使出莊天地造化於方寸窟內
009_0403_b_13L千態萬像於一尖刀頭遠取物近取身
009_0403_b_14L妙理氷釋得之心應之手銳思風生
009_0403_b_15L譽遠飛於不飛名大振於無振入山禪
009_0403_b_16L刹之聖像無非手材三昧得格之妙工
009_0403_b_17L莫不自肎抑念齋者婆羅門一種
009_0403_b_18L幼托此養師索訶界衆生至壯蒙其至
009_0403_b_19L推食食解衣衣有同吐甘握恐滅吹
009_0403_b_20L恐飛不異舐犢臨食知粒粒咸恩
009_0403_b_21L衣想縷縷皆德骨肉雖是父母之骨肉
009_0403_b_22L肥膚實乃師傳之肥膚常願眉壽百歲
009_0403_b_23L誰知元命七旬可憐水母目之喪蝦
009_0403_b_24L耐木槲花之失卉然幽顯殊途究死生

009_0403_c_01L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한갓 탄식한들 저승길에 보탬이 되지 못하고, 천도로 구제하여 오르게 하는 데에는 깨달음의 피안보다 마땅함이 없습니다.
이에 일생의 남은 재물을 다하여 공경히 삼단三壇의 소략한 예를 진설하니, 연복練服283)의 재齋를 만나 때는 초봄입니다. 종종의 진수는 모두 마음 밖에 나온 것이 아니요, 개개의 물품들은 모두 정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법문을 조목조목 설하니 금성옥진金聲玉振이요, 예악을 번갈아 연주하니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리는 듯합니다. 낮에는 『연화경』의 오묘한 말씀을 연설하고 저녁에는 운수雲水의 수승한 법회를 여니, 제망帝網의 구슬이 천상에서 서로 비추고 영산의 법회가 인간 세상에 펼쳐진 듯합니다.
바라옵건대 대각 자존께서는 원회圓回(원만히 회향함)의 원력을 버리지 마시고 특별히 해탈의 문을 열어 망령을 인도하사 곧바로 구품의 연화대에 오르게 하시고, 재를 지내는 자가 사대四大의 서원284)을 다 이루게 하소서. 그리하여 금색계金色界 내에서 자유로이 소요하고, 진묵겁塵墨劫 가운데 인연 따라 다시 만나도록 해 주시면 비록 범인과 성인이 다르다고 하나 이 또한 반드시 감응할 것입니다. 삼가 두 손 모아 하늘을 받들고 일심으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한 번 부름에 세 번 허락함은 비록 삼평三平에 부끄러우나 거듭 태어나서 다시 만날 것은 문원文園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회문산 만일사 사적사인
서술하건대 현묘한 기틀이 확 트여 우레와 바람이 묘유妙有의 공을 펼치고, 큰 기운이 광대하여 하늘의 맑은 기운을 맺었으니, 왕가의 용수龍首(산맥의 주봉)가 되지 않으면 반드시 불회佛會의 취두鷲頭(영취산)가 되리라. 이 절이 있는 곳은 삼한의 오랜 터며 만고의 복지福地이다. 중수하여 넓게 연 분은 고려 말의 나옹懶翁 스님이고 아울러 인연을 도운 이는 조선 초의 무학無學 대사이다. 대개 두 분이 사찰의 터를 낱낱이 살피시고 함께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삼문三門이 안개에 덮이니 곤륜산의 낭풍閬風이 옥도玉都에 이어지고, 팔동八洞에 구름이 자욱하니 봉래와 영주가 패궐貝闕(용궁)에 나란하다.” 하셨다. 이에 조화옹造化翁이 머무른 곳을 살피니

009_0403_c_01L一理擗踊徒歎奚益於冥途薦拔稍登
009_0403_c_02L莫宜於覺岸肆罄一生羨財敬設三壇
009_0403_c_03L略禮齋丁鍊服 [5] 序屬抄春種種珎羞
009_0403_c_04L皆非心外出箇箇物色盡從誠裡生
009_0403_c_05L法文條陳金聲玉振禮樂迭奏電掣
009_0403_c_06L雷轟晝演蓮華妙詮夜排雲水勝會
009_0403_c_07L帝網珠互融天上靈山會怳設人間
009_0403_c_08L望大覺慈尊不捨圓回之力特開解脫
009_0403_c_09L之門導亡靈直登九品蓮臺俾齋者
009_0403_c_10L畢遂四大矢願然則金色界內如意逍
009_0403_c_11L塵墨劫中隨緣邂逅雖曰凡聖異
009_0403_c_12L是亦感應必然謹當隻手擎天
009_0403_c_13L心向佛一呼三諾縱愧三平再生重
009_0403_c_14L庶效文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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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403_c_16L回門山萬日寺事蹟詞1) [1]

009_0403_c_17L
述夫玄機寥廓雷風驅妙有之功大氣
009_0403_c_18L洪濛淸混結乾元之氣不爲王家之龍
009_0403_c_19L必作佛會之鷲頭玆寺也三韓古
009_0403_c_20L萬古福地重修廣拓麗季懶翁
009_0403_c_21L出助緣漢初無學盖二聖胥宇歷銓而
009_0403_c_22L共唶曰三門韜霧接崑閬於玉都
009_0403_c_23L洞莊雲引蓬瀛於貝闕乃得造化翁偃
009_0403_c_24L「引」下有「孤松子述」編者除之

009_0404_a_01L과연 용신龍神이 보호하는 도량을 얻었다. 건덕建德(이상향)의 세계와 같고 화서華胥(이상향)의 풍경처럼 깨끗하여 필맥畢陌285)의 가기佳氣가 성대하고 기수祇樹의 향기가 가득하니 어찌 불가佛家만 장엄할 것인가. 또한 임금을 안장할 곳이었다.
그러나 만물은 각각 주인이 있으니 어찌 사람 스스로 모를 것인가. 무궁한 세월 동안 가려 있다가 땅도 운수도 때를 기다려 이제야 드러났다. 드디어 먼저 상장上章, 망월望月, 마봉馬峰 등의 세 암자를 세우고 우두牛頭, 감로甘露, 청계淸溪의 물을 마시니 기원紀元은 홍무洪武 갑술년(1394)이었다. 이윽고 특별한 터를 잡아 널리 초제招提를 건립하고 단문檀門에 모연募緣하니 보시布施의 마음이 용솟음치고, 화소化所의 역사를 일으키니 공인工人이 바람처럼 몰려 그해에 시작하여 오래지 않아 일을 마쳤다. 만일사萬一寺의 명성이 널리 퍼져 천년을 빛날 듯하여, 처음엔 백제왕의 원당願堂이 되었다가 영원히 삼보三寶의 높은 법계가 되었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산수의 기이함이 전해지니 비록 호남의 구석에 있으나 나라의 으뜸이었다. 경태景泰 경오년(1450)에 화재가 일어나서 잿더미가 되자 신마神馬가 슬픔을 머금었고 가시덤불만 우거지게 되었다. 그 후에 절의 대중이 분발하여 즉시 중수하였다. 신유년(1561)에 왜구의 해를 입었고 갑자년(1564)에 다시 병화로 불에 탔다.
만력萬歷 계묘년(1603)에 지견智堅, 성천性天, 여간如干 스님 등이 나와 마음과 힘을 합하고 공인工人을 모아 일을 시키니 훌륭한 솜씨가 많았으며, 단문檀門에 모연募緣하자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였다. 법당과 불상을 조성하고 선당과 승당을 세워 근심 없이 편안하게 백여 년을 지냈다. 스님들이 차츰 모여들어 제비가 둥지 트는 것을 기쁘게 보았고, 유람객이 멀리서 와 길을 막는 호랑이를 만날까 두려워하였다. 숭정 후崇禎後 을유년(1705)에 두타승 시책時策이 탱화를 그리고

009_0404_a_01L泊之處果見龍神部擁護之場依俙建
009_0404_a_02L德乾坤瀟洒華胥風色鬱乎畢陌之佳
009_0404_a_03L藹然祗樹之芳林奚啻莊點佛家
009_0404_a_04L亦當壽封王隧然物各有主豈人自不
009_0404_a_05L年無窮世無窮封蔽幾日地有待
009_0404_a_06L數有待發揮此時遂與先搆乎上章望
009_0404_a_07L月馬峯等三庵仍歃其牛頭甘露淸溪
009_0404_a_08L等三水紀元卽洪武甲戌歲也旣而正
009_0404_a_09L點特址廣設招提募緣檀門施心泉湧
009_0404_a_10L蕆役化所杍工風趍濫觴當年覆蕢
009_0404_a_11L不日揚萬日名寺擬千古流光始爲
009_0404_a_12L百濟王願堂永作三寶尊法界載諸輿
009_0404_a_13L地勝覽傳乎山水奇觀雖處湖隅
009_0404_a_14L步海表至景泰庚午歲回祿飛火
009_0404_a_15L爲煨燼神馬含悲忍看荊棘厥後寺
009_0404_a_16L各奮其力重修卽時至於辛酉之年
009_0404_a_17L又被倭火流毒甲子之歲再見兵燹所
009_0404_a_18L粤萬曆癸卯歲有智堅性天如干軰
009_0404_a_19L匪石其心斷金其利聚工役所
009_0404_a_20L手陾陾募緣檀門施心翼翼造法堂
009_0404_a_21L與佛像構禪堂又僧堂自若爲一無憂
009_0404_a_22L安妥過百餘稔緇徒稍集喜見賀厦
009_0404_a_23L之玄禽遊客遠臨恐遭擁道之於菟
009_0404_a_24L崇禎後乙酉有頭陀僧時策乃繪畫佛

009_0404_b_01L법당을 중수하려 하였으나 병으로 갑자기 죽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유년(1717)에 주지승 혜단慧丹이 절의 대중과 함께 도모하여 여러 인연을 모집하고 단재檀財를 모았다. 오래지 않아 공을 이루어 거듭 새롭게 하고 복구한 것은 때가 이르렀고 운수 또한 마땅했던 것이다. 나는 학해學海의 작은 물방울이요 치림緇林의 병든 잎으로 선산仙山의 무리를 이끌고 있어서, 마음만 왕래하는지라 그 자취를 기록함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주저한다. 감히 사를 짓는다.

法王應運      법왕이 시운에 응하시어
利見天下      천하에 나타나시자
玉毫兌照      옥호玉毫가 서쪽에서 빛나고
雞林震化      계림은 동쪽에서 교화되었다
麗季漢初      고려 말 조선 초에
翁也學也      나옹 화상과 무학 대사께서
萬古一時      만고 일시에 만나
並行同軻      자취를 나란히 하셨다
遍踏山川      산천을 두루 다니며
箇箇遺讖      곳곳에 참언讖言을 남기어
裨補國家      국가를 비보하고
百世垂陰      백세에 그늘을 드리웠다
福國祐世      나라에 복 주고 시대를 도움에
捨此奚適      이를 두고 어디로 갈 것인가
敢把腐毫      감히 하찮은 붓을 잡아
聊札佳蹟      아름다운 자취를 쓴다
성수산 반룡사 사적사인
현기玄機가 은밀히 운행하니 하락河洛의 신령스런 기약이 감응하고, 소건素鍵이 열리자 건곤의 서기가 성대하다. 낭주朗珠를 지혜의 바다에 흩으니 대업이 이미 이루어지고, 자옥紫玉을 선산禪山에서 뽑으니 지극한 도가 바야흐로 탄탄하게 되었다. 드디어 삼천법계가 교화를 따라 법좌의 존귀함을 알게 되었고, 백억의 대왕이 도를 듣고 신분의 귀함을 잃었으니 석가모니의 신묘한 교화가 아니면 누가 여기에 참여하리오. 위음왕威音王의 현묘한 공으로도 실로 어찌할 수 없으리라. 이로부터 비석과 안탑이 사바세계 가운데 다투어 점철되고 종과 북소리가 승금주 밖에까지 들렸다.
대저 이 절은 청우靑牛의 복지福地요 설산雪山의 영지靈地이다. 백두산과 덕유산을 조종祖宗 삼아 홀로 우뚝 솟고, 마령馬嶺을 걸치고 구동狗洞을 보며 가장 밝고 트인 곳에 있어

009_0404_b_01L擬重修晬堂以病遄亡可朕其惜
009_0404_b_02L於丁酉歲主寺僧慧丹與寺僉同謀計
009_0404_b_03L募衆緣鳩檀財不日告功重新復古
009_0404_b_04L時乎至矣數亦當㦲若余者學海微漚
009_0404_b_05L緇林病葉引領仙山徒借魂而徃來
009_0404_b_06L落筆眞蹟還愧心而趦趄敢爲詞曰

009_0404_b_07L法王應運利見天下玉毫兌照

009_0404_b_08L雞林震化麗季漢初翁也學也

009_0404_b_09L萬古一時並行同軻遍踏山川

009_0404_b_10L箇箇遺讖裨補國家百世垂陰

009_0404_b_11L福國祐世捨此奚適敢把腐毫

009_0404_b_12L聊札佳蹟

009_0404_b_13L

009_0404_b_14L聖壽山盤龍寺事蹟詞

009_0404_b_15L
原夫玄機密運肹蠁河洛之靈期素鍵
009_0404_b_16L纔開氤氳乾坤之瑞氣撒郞珠於智海
009_0404_b_17L大業旣成抽紫玉於禪山至道方坦
009_0404_b_18L遂使三千法界向風知袵席之尊百億
009_0404_b_19L大王聞道失巖廓之貴匪釋迦之神化
009_0404_b_20L孰能與於此㦲是威音之玄功實末如
009_0404_b_21L之何也由是龜碑鴈塔爭點索訶界中
009_0404_b_22L鳬鍾鯨桴相聞勝金洲外夫玆寺也
009_0404_b_23L靑牛福地雪山靈區祖白頭宗德裕而
009_0404_b_24L嶐獨尊跨馬嶺頫狗洞而爽塏居最

009_0404_c_01L나란那蘭286)의 가기佳氣가 성대하고 급고독給孤獨의 기림이 창창하다. 김제金堤에 장강이 흘러 현묘함이 월굴과 통하고, 옥협玉峽엔 경풍庚風이 불어 상쾌함이 천근天根에 사무치니 청납靑衲(스님)의 거처가 아니 되면 황건黃巾(도적)의 소굴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영조靈照 국사가 산수를 두루 살피시니 인연 있는 무리가 자식처럼 몰리고, 총림의 터를 잡으니 순식간에 큰 절을 이루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법운이 다하고, 세상은 쇠퇴하고 사람은 게을러 도가 분열되니, 만고의 명승지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었다. 물색은 쓸쓸하니 취령鷲嶺의 푸름을 차마 보겠으며, 풍광은 참담하여 옛 앵림鶯林의 무성함이 아니었다.
만력 경술년(1610)에 고을의 스님 계환戒環 등이 서로 맹세하고 함께 나서 중수를 도모하였다. 이때가 선조 임금이 처음 다스릴 때요 정암靜菴287)이 서원을 지을 때였다. 한음漢陰288)과 오성鰲城289)이 한마음으로 일을 맡았고 감사와 수령이 힘을 합치고 인연을 도와, 절의 스님 종희宗熙, 설형雪浻 등에게 명하여 법당을 창건하고 중사衆舍를 경영하여, 도원道院과 학전學田의 장소가 되게 하고 길이 불가의 복을 비는 터로 삼게 하였다. 역부役夫가 발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불자의 안거가 이미 이루어졌으며, 법회가 성대히 열려 많은 사람이 모였고, 설산의 아름다운 모임이 일시에 이루어져 바늘 꽂을 땅도 없었다. 의룡義龍이 구름에서 뛰니 학해學海의 파란이 일고, 율호律虎가 바람처럼 일어나니 계림의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 금로金爐가 손바닥에 있으니 멀리 담복薝蔔(치자)의 향기 전해지고, 옥경玉鏡이 마음을 맑게 하니 모두 파초의 비유290)를 깨달았다. 또한 부자와 수자壽者가 간간이 태어나 끊이질 않고 강한 자, 힘 있는 자가 대대로 한없이 나왔다. 사방이 가르침을 따라 적번赤幡을 내리고 온 나라가 높은 자취를 원하며 감로에 젖었다.
전각과 방사房舍의 장엄은, 법전法殿이 학의 발돋움하듯 높이 솟고 중방衆房은 벌집처럼 배치되었다. 범루梵樓는 태양을 끌어 희화羲和(태양신)가 고삐를 놓치고, 아름다운 나무가 서로 비쳐

009_0404_c_01L鬱鬱那蘭之佳氣蒼蒼給孤之祗林
009_0404_c_02L長江於金堤玄通月窟引庚風於玉峽
009_0404_c_03L爽徹天根不爲靑衲之居其作黃巾
009_0404_c_04L之窟至高麗世有國師靈照歷銓山
009_0404_c_05L有緣衆爭子來胥宇貧婆不旋踵成
009_0404_c_06L大刹奈何年深歲久法運告窮世降
009_0404_c_07L人怠道術遂裂萬古勝地一朝丘墟
009_0404_c_08L物色蕭條忍見鷲嶺之虛翠風光慘惔
009_0404_c_09L非復鸎林之蔚藍逮萬曆庚戌歲又有
009_0404_c_10L鄕僧戒環輩相矢並出共謀重修
009_0404_c_11L當宣廟御宇之初事靜菴理院之際
009_0404_c_12L陰鰲城同心主事監司守令並力助
009_0404_c_13L即囑寺僧宗熙雪浻等創建法堂
009_0404_c_14L經營衆舍俾爲道院學田之所永作佛
009_0404_c_15L家祝釐之場役夫之走步不移釋子之
009_0404_c_16L安居已就霧市殷開於五里張袂不風
009_0404_c_17L雪山嘉會於一時植錐無地義龍雲躍
009_0404_c_18L汹學海之波瀾律虎風騰蔚戒林之柯
009_0404_c_19L金爐在掌遠傳簷蔔之香玉鏡澄
009_0404_c_20L盡曉芭蕉之喩又有富者壽者而間
009_0404_c_21L生不絕强者力者而世出無窮四隣立
009_0404_c_22L下風而倒赤幡一國願高躡而甘露
009_0404_c_23L若其殿舍之莊點也法殿高峙鶴跂
009_0404_c_24L房密排蜂窼梵樓控陽義和失轡琪樹

009_0405_a_01L병예屛翳(구름신)가 길을 멈추었다. 회상繪像이 옥빛을 머금은 채 빛나고 소상塑像은 금산을 안고 둘러섰다. 창문이 두루 빛나니 불야성이 이어진 듯하고 전우殿宇가 활짝 열려 어두운 밤에서 벗어난 듯하다. 금탁金鐸이 바람에 울리니 사시에 천악天樂이 울리고 옥찰玉刹에 달이 걸리니 두 송이 연꽃이 서리에 젖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우뚝 솟아 기이한데 흡사 초지初地(환희지)와 같고, 가까이 가 보면 상쾌하고 화려한데 낙교樂郊라 할 만하다.
그러나 만물은 성하면 쇠퇴하는 것이 이치요 태평 시절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법이다. 흉년을 많이 겪고 무거운 부역에 시달려서, 치도緇徒가 이로부터 사방으로 흩어지고 법문法門이 공허하게 되었다. 아전鵝殿과 앙려鴦廬 외에 몇 개의 방만 남아 때때로 수리하고, 명부전 정문 외에 암자 둘만 보존하여 안거를 폐하지 않았다. 그 밖의 옛터는 바위 사이 덩굴로 덮이고 숲 밖의 밭으로 들어간 것이 한두 곳이 아니니 참으로 슬프도다. 그러나 천도는 순환하니 옛 모습을 회복하는 운수가 있을 것이요, 지덕은 한없으니 어찌 다시 새로이 하는 기약이 없을 것인가.
주지 법총法聰 스님은 절의 큰 공로자요 산문의 큰스님으로, 이 절에 거주하고 유지하며 남다르게 애를 썼는데 여기에서 자라고 늙었으며 가없는 힘을 쏟았다. 그간의 사적을 지니고 와 한 편의 기문을 구하였다. 내가 거절하기 어려워 글을 엮었으나 도리어 문채만을 따온 것이 부끄럽고, 글귀만을 따다 붙이니 추구하는 것이 몸에 새기는 것보다 심하며, 소라로 바다를 뜨고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니 인내가 뼈를 깎는 것보다 더하다.291) 그러나 문장은 도 때문에 행해지고 저 도는 혹 문장 때문에 말할 수 있으며, 도는 문장 때문에 전해지되 이 문장은 혹 도를 의지하여 불후하게 되니, 도는 문장에 기대어 훗날에 보일 수 있고 글은 도를 의지하여 오늘날에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 사는 다음과 같다.

質判玄黃      현황의 바탕이 나뉘어
氣分淸濁      청탁의 기가 분리되었다
睿塗茵藹      지혜의 도가 성대하자
靈機龕忽      신령한 기가 감응하였다
玉架天都      옥으로 천도를 짓고
金裁地闕      황금으로 지궐을 마름하였다

009_0405_a_01L掩暎屏翳停鏕繪像含玉滋而超輝
009_0405_a_02L容擁金山而圓立房籠匝曜疑連不夜
009_0405_a_03L之城殿宇洞開似出重昏之夜金鐸
009_0405_a_04L吟風兮四時天樂玉刹掛月兮兩朶
009_0405_a_05L霜蓮遠而望峭而奇怳若初地迫而察
009_0405_a_06L爽而麗可謂樂郊然而物盛而衰
009_0405_a_07L之然也時難久泰道之變乎多經大
009_0405_a_08L長苦重役緇徒自爾四散法門以
009_0405_a_09L之一空鵝殿鴦廬餘唯存數房而有時
009_0405_a_10L補翼冥府正門外但保兩庵而無廢安
009_0405_a_11L其他舊墟蒙藤葛於巖間入田地
009_0405_a_12L於林外者不一其所可勝此悲所恃
009_0405_a_13L天道好還會有復古之數地德無限
009_0405_a_14L豈無重新之期有住持曰法聰寺內
009_0405_a_15L元勳山中鉅擘住於寺持於寺用權
009_0405_a_16L非常長於斯老於斯費力無量手中年
009_0405_a_17L之事蹟徵一片之記文余乃重違
009_0405_a_18L用編苫還愧買彩尋竟摘句求甚刻
009_0405_a_19L酌海窺天忍踰刮骨雖然文因道
009_0405_a_20L彼道也或憑文而可稱道因文傳
009_0405_a_21L斯文也或倚道而不朽然則道憑文而
009_0405_a_22L可示於後文倚道而無愧乎今詞曰

009_0405_a_23L質判玄黃氣分淸濁睿塗茵藹

009_0405_a_24L靈機龕忽玉架天都金裁地闕

009_0405_b_01L棟列晴丘      기둥은 맑은 언덕에 이어지고
窓栖霽月      창엔 밝은 달이 걸렸다
金山周暎      금산이 두루 비치고
玉毫騰輝      옥호가 빛을 날린다
人天同會      인천이 함께 모이고
龍象共依      용상이 모두 의지한다
名雖學田      이름은 비록 학전이나
實爲佛國      사실은 불국토이다
隋稱興國      수나라는 흥국사라 칭하였고
陳曰報德      진나라 땐 보덕사라 하였다
孰與家福      무엇이 가정이 복을 받고
崇之國力      국력이 높은 것만 같겠는가
人靈合慶      인령이 함께 축하하고
龍神悅伏      용신이 기뻐하며 복종한다
鰌壑雖渴      추학은 비록 고갈돼도
龍莊不滅      용장은 불멸하리라
추월산 용추사 사적사인
기술하건대 형통하고 좋은 운수가 돌아오니 하늘이 사문斯文을 없애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고, 아름답고 밝은 서기가 열리니 사람이 이 도를 넓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묘한 교화는 선성先聖의 자취를 이었고 큰 업적은 조종祖宗의 빛을 더하였다. 우리의 도는 학국鶴國의 원기요 세존은 교화의 본원이니 문덕을 높이는 자는 천하를 태산같이 편하게 할 것이요, 도를 해치는 자는 누란累卵처럼 신세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상고 이전은 오래되어 의론할 수 없으나 중고 이후는 뚜렷하여 거울삼아 경계할 수 있다. 패일佩日의 꿈에 감응하여 후한의 명제明帝는 가람을 창건하였고, 마음이 지혜의 바람에 취하여 양무제는 사찰에 행차하였으니 모두 석문石文의 뜻으로 치도의 공업을 이루었다.
아도阿度292)가 신라에 건너와 온 나라가 지혜의 은택에 쉬었고, 담시曇始293)가 고구려에 처음 가니 만민이 현묘한 교화에 깨어났다. 드디어 가르침이 크게 행해져 집집마다 심복하고 사람마다 교화되었다. 또한 용상 대덕이 배출되어 불조의 도맥道脈을 크게 여니, 용신이 귀의하고 공경하여 항상 탑사가 이어지고, 인천이 모두 기뻐하며 다투어 아낌없이 국성을 희사하였다. 공적이 크고 문덕이 빛나 삼가三駕(三車)를 함께 달리고, 근본을 세우고 교화를 크게 펴서 천추에 법을 드리웠다.
개사開士 신총信摠과 장로 혜징惠澄이 가람을 세우고자 터를 낱낱이 살피고,

009_0405_b_01L棟列晴丘窓栖霽月金山周暎

009_0405_b_02L玉毫騰輝人天同會龍象共依

009_0405_b_03L名雖學田實爲佛國隋稱興國

009_0405_b_04L陳曰報德孰與家福崇之國力

009_0405_b_05L人靈合慶龍神悅伏鰌壑雖渴

009_0405_b_06L龍莊不滅

009_0405_b_07L

009_0405_b_08L秋月山龍湫寺事蹟詞

009_0405_b_09L
述夫享嘉回運可見天未喪斯文休明
009_0405_b_10L啓瑞果知人能弘此道神化接武於先
009_0405_b_11L大業增光於祖宗惟吾道鶴國之元
009_0405_b_12L實世尊象化之本源崇文者措天
009_0405_b_13L下於泰山害道者阽身世於累卵上古
009_0405_b_14L以上尙矣無以議爲中古以來昭乎
009_0405_b_15L可以鑑戒夢徵佩日漢有明帝之剏藍
009_0405_b_16L心酣慧風梁有武帝之臨寺咸以石文
009_0405_b_17L之志能臻治道之功至若阿度度于羅
009_0405_b_18L一國共休慧澤曇始始之貊萬民咸蘇
009_0405_b_19L玄風肆草偃於風行乃戶服而人化
009_0405_b_20L伊龍象羣喆之輩作寔佛祖道脉之大
009_0405_b_21L龍神歸欽長使塔寺相望人天合慶
009_0405_b_22L爭捨國城無慳巍乎功煥乎文並驅三
009_0405_b_23L立其本大其化垂法千秋有開士信
009_0405_b_24L揔與長老惠澄共胥宇伽藍遂歷銓基

009_0405_c_01L하늘 높고 땅 넓은 곳에 천 년의 자리를 정하니 산 높고 물이 깊어 만고의 서기가 통하였다. 서북쪽 산기슭을 정하여 이에 총림을 설치하니, 금지金地가 용출한 듯 활짝 열렸으나 옥전玉田의 편안함은 화성만 같지 못하였다. 세월이 감에 따라 여러 번 재앙을 만나 끝내는 불길에 재가 되어 덩굴만 무성한 황무지가 되었다.
고려 말에 나옹 국사가 우연히 보리암에서 쉬시다 문득 용추의 풍광을 돌아보시고 절터를 정하고자 목부木鳧294)가 이르는 곳을 살폈다. 과연 을자乙字(龍)가 두담蚪潭의 물결로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예전의 사찰이 이 용의 해를 입었음을 아시고 그 허리를 철 지팡이로 잡아채니 금치金峙에 그 피를 흘렸다. 그리하여 석굴에 몸을 숨겨 금사金沙를 보호하시니 골짜기 길이 층층이 위태로워 겨우 발길이 통하고, 풍경이 소쇄하여 속세의 시끄러움을 멀리 끊었다. 골짜기를 막아 섬돌을 만들고 안찰을 배열하여 경계를 지었다. 남쪽을 향하고 북녘을 등지니 참으로 상쾌하고, 예전과 비교하니 정신을 더욱 일깨워 장엄한 지상의 사찰이 하늘 궁전과 상호 융화하였다. 그러나 성하면 쇠퇴하는 것이 만물의 이치요, 오래 태평하기 어려운지라 도리 또한 변하는 것이다.
만력 임진년(1592)에 이르러 왜구가 침략하여 병화가 닥쳤다. 몇 백 년의 금전이 불타서 하루아침에 옥찰이 폐허가 되니, 잔나비와 새소리도 슬픔을 머금고 산과 시내도 참담한 빛을 띠었다. 경오년(1630) 봄에 소요逍遙 화상이 마음을 분발하여 옛 제도를 회복하고 힘을 다하여 중수하였다. 뜻을 함께하는 자가 다투어 오고 인연을 돕는 자가 몰려들었다. 천각天覺 대덕과 현정玄淨 상인이 법당을 먼저 세우고 이어 단청을 발랐다. 지감智鑑 스님이 장륙존상을 조성하고 연주連珠 스님이 법당에 기와를 덮었다. 계엄戒嚴 선화가 백룡白龍(경진년, 1640)의 여름에 미륵전을 건립하고 계철戒哲 장로가 적호赤虎(병인년, 1686)의 봄에 큰 누각을 세웠다. 흩어진 무리를 모으고 오는 사람을 맞이하여

009_0405_c_01L乾也大坤也廣位㝎千年山之高
009_0405_c_02L澤之深氣通萬古試占乾麓爰設貧
009_0405_c_03L金地豁開雖曰湧出玉田妥安
009_0405_c_04L若化城久歷居諸累逢灾變終爲刼
009_0405_c_05L火煨燼謾見丘墟藤葛至麗季國師懶
009_0405_c_06L偶憇錫菩提練若忽回矚龍湫風光
009_0405_c_07L欲占梵基試木鳬之戾止果見乙字
009_0405_c_08L寫蚪潭之波頭知前剏之爲灾果此龍
009_0405_c_09L之所害拏其腰以鐵笻藻彼血於金峙
009_0405_c_10L潜身石窟護心金沙加以洞逕層危
009_0405_c_11L僅通行履觸境瀟洒夐絕塵喧塡虬
009_0405_c_12L壑而釦階排鴈刹而結界面离背坎
009_0405_c_13L爽塏十分將古況今精神百倍莊嚴
009_0405_c_14L地閣互融天宮然而物盛而衰理固
009_0405_c_15L然也時難久泰道亦變乎至萬曆壬
009_0405_c_16L辰歲倭寇流毒兵燹橫侵幾百載金
009_0405_c_17L田鞠爲焚蕩一朝間玉刹謾作灰丘
009_0405_c_18L猿鳥聲兮含悲山水色兮帶慘粤庚午
009_0405_c_19L有逍遙老和尙奮心復古盡力重新
009_0405_c_20L同志者爭趍助緣輩坌集有曰天覺大
009_0405_c_21L德玄淨上人首創法堂尾墍丹雘
009_0405_c_22L鑑師造像丈六連珠師盖瓦晬宮戒嚴
009_0405_c_23L禪和建彌勒於白龍之夏戒哲長老
009_0405_c_24L樹大樓於赤虎之春集散衆迎來人

009_0406_a_01L여러 건물을 세우고 법물을 갖추었다. 그러나 세월이 감에 따라 법계가 소조하여, 위에는 비가 새고 곁은 바람이 몰아쳐 전각이 떨어져 나갔다.
이에 월봉月峰 대덕이 두류산에서 와서 보계寶界를 중수하고 법당을 세우며, 선법을 설하고 법회를 여니 당시의 두타 해운海雲의 힘보다 컸을 뿐 아니라 훗날의 출신 계운溪雲의 공적보다 많았다. 약간의 무리를 안집安集하게 하여 수십 년 동안 지내니, 쥐가 담을 뚫은 일이 없었고 제비가 둥지를 트는 기쁨이 있었다. 강희 기해년(1719)에 이르러 신사 유대해柳大海가 명부전을 창건하고 비구 명신明信이 각각의 첩을 그렸다. 유대해는 또 대중과 함께 의논하여 법전을 중수하고자 하였으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요절하였으니 누가 뒤를 이을 것이며, 일을 중도에 그쳤으니 차마 말할 수가 없도다.
지원智元 선사가 절의 큰스님과 함께 마음을 변치 아니하고 힘을 모을 것을 맹세하였다. 두루 단화檀貨(시주 재물)를 모으고 아울러 저축한 재물을 다하여 여러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고 많은 공인들을 모아, 구폐를 혁신하고 새 제도를 아름답게 하여 기유년(1729)에 구조를 짓고 경술년(1730) 봄에 기와를 덮었다. 신해년(1731)에 방장 목암牧庵이 있어서 자애로운 마음을 두고 지혜의 힘을 드러내어, 법전이 채색되지 않은 것을 탄식하고 청정한 곳을 두루 장엄하지 못함을 슬피 여겼다. 이에 제자 백붕白朋과 법제자 치호致浩에게 부촉하여 절의 무리와 심력心力을 함께하여 중창의 대역사를 도모하였다. 불전과 누각 문을 단청하고 탱화와 선영先影(선사의 영정)을 그리니, 화려한 용마루와 그림 누각이 탁 트여 엄정하게 서 있고 붉은빛과 황금빛이 성대히 아름다웠다. 살펴보니 옥림玉林이 모두 우뚝하여 마르지 않는 주안珠岸과 같으니, 공업이 성대하고 아름다워 진실로 고금에 보기 드문 것이었다.
나는 치림緇林의 병든 잎이요 법해法海의 작은 물방울이라 백가의 글은 한갓 찌꺼기만 저작咀嚼하였고, 오교五敎295)의 학문은 언어 문자만 연구하였으니

009_0406_a_01L諸舍備法物何其年深歲久法界瀟條
009_0406_a_02L上雨傍風殿閣撲落於是月峯大德
009_0406_a_03L來自頭流修寶界建法幢設禪法開霧
009_0406_a_04L頭陀海雲之力不啻大於當時
009_0406_a_05L身溪雲之功亦有多於後日安集若干
009_0406_a_06L賴過數十年鼠無穿墉之侵燕有
009_0406_a_07L賀厦之慶以至康熙己亥歲信士柳大
009_0406_a_08L剏建冥司苾蒭明信繪畫各帖
009_0406_a_09L也又與大衆同議準擬法殿重修願未
009_0406_a_10L成而夭亡誰可代也事不遂而中廢
009_0406_a_11L尙忍言㦲有智元禪師與寺中鉅擘
009_0406_a_12L矢匪石其心期斷金其利遍鳩檀貨
009_0406_a_13L兼竭留財蕆諸需聚衆工革舊廢美新
009_0406_a_14L結構於乙 [6] 酉歲盖瓦於庚戌春
009_0406_a_15L歲辛亥有牧庵大丈室慈心所存
009_0406_a_16L力自發慨晬殿之未及黏彩悲淨域之
009_0406_a_17L尙欠周莊乃囑神足白朋法胤致浩
009_0406_a_18L與寺衆同心力謨大役施重功丹靑於
009_0406_a_19L佛殿與樓門繪描於聖幀及先影飛甍
009_0406_a_20L畫閣噲噲其嚴渥丹流金森森其懿
009_0406_a_21L是見玉林皆突盍同珠岸不枯嗟功業
009_0406_a_22L之盛休誠古今之罕覩若余者緇林
009_0406_a_23L病槲法海涓流百家之文謾咀嚼乎
009_0406_a_24L糟粕五敎之學徒鑚仰乎筌蹄雖切

009_0406_b_01L비록 크게 변하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나 용맹정진의 공부가 부족함을 어찌하겠는가. 다섯 번 출입하면서 거처하였으니 진실로 인연 있는 곳이요, 육대六代 선사의 진영을 봉안하였으니 어찌 정과 뜻이 없겠는가. 하물며 이 목암 장로는 나의 법사法嗣이니 비록 산문山門은 다르지만 본사本寺와 같기에, 감히 선후의 이름난 사적을 편찬하여 다소의 기특한 공적을 드러낸다. 사는 다음과 같다.

惟道之在天下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은
猶水之在地中    물이 땅속에 흐르는 것과 같으니
先蹟也後蹟也    선인의 자취와 후인의 자취가
一彼此無終始    피차 시종이 없는 것이다
不爲非不能     하지 않는 것이요 못하는 것이 아니니
求之必可得     구하면 반드시 얻으리라
哿矣先後功     훌륭하도다! 선후의 공적이여
昭然今古蹟     빛나도다! 고금의 사적이여
彼蒼者以前     천지가 생기기 전에도
斯道也不滅     이 도는 불멸하였도다
덕유산 영각사 사적사인 병서
기술하건대 월굴月窟에 복장腹藏이 열리자296) 삼십육궁의 황금빛이 인간 세상에 펼쳐지고, 천근天根에 안경眼鏡이 걸리자297) 삼십이상 팔십종호의 대광명이 천하를 두루 비추었다. 법계가 비로소 항사恒沙 세계에 열리고 인문人文이 드디어 세상에 드러났다. 종소리가 적석천積石天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안탑이 승금주勝金洲에 별처럼 펼쳐졌다. 곳곳에 오연五衍298)의 자취가 다투어 치달리고 집집마다 팔정八正299)의 문이 크게 열리니, 산과 바다 가리지 않고 다투어 상진上珍(으뜸 보배)을 줍고 가가호호 모두 대도大道를 보았다. 하물며 대업을 높임은 고려시대가 으뜸이라 이 절의 창건은 저 왕조의 말에 비롯되었다.
일찍이 섭허聶許에게 들으니 태조께서 성신문무聖神文武하사 인의의 공능功能을 창업하셨다. 온갖 무너진 것을 흥하게 하고 중생을 사랑하시어 우양牛羊을 가리지 아니하였고, 경사에 힘입고 생업을 편안히 하도록 하여 산과 들의 온 백성이 소생하였다. 나라에 국사를 두어 선풍을 규찰하고 절에는 스님을 두어 주지하고 비보裨補하게 하였다.

009_0406_b_01L酒變河水之心奈乏箭穿鐵皷之力
009_0406_b_02L度出入栖息固有因緣六代先眞奉安
009_0406_b_03L豈無情意況此牧老是我法嗣雖曰他
009_0406_b_04L自同本寺敢編先後名蹟聯露多
009_0406_b_05L小奇功詞曰

009_0406_b_06L惟道之在天下猶水之在地中

009_0406_b_07L先蹟也後蹟也一彼此無終始

009_0406_b_08L不爲非不能求之必可得

009_0406_b_09L哿矣先後功昭然今古蹟

009_0406_b_10L彼蒼者以前斯道也不滅

009_0406_b_11L

009_0406_b_12L德裕山靈覺寺事蹟詞引并序

009_0406_b_13L
述夫開腹藏於月窟四九眞金色
009_0406_b_14L鋪人間掛眼鏡於天根三八大明光
009_0406_b_15L遍照天下法界肇闢於沙界人文遂著
009_0406_b_16L於塵邦鳬鍾鯨吼落落積石天中
009_0406_b_17L塔星排噲噲勝金洲畔處處竸驅五衍
009_0406_b_18L之轍家家大闡八㝎之門靡山靡海而
009_0406_b_19L爭掬上珍不戶不牖而咸見大道況崇
009_0406_b_20L大業莫加高麗顧惟是寺之濫觴
009_0406_b_21L自彼朝之末業曾聞聶許者曰太祖聖
009_0406_b_22L神文武剏業仁義功能興百廢字羣生
009_0406_b_23L牛羊不擇賴其慶安其業山野咸蘇
009_0406_b_24L國有師而糾察禪風寺有僧而住持裨

009_0406_c_01L당시에 대감大監 국사가 나라의 빼어난 곳을 낱낱이 보고 팔산도량八山道場의 터를 살폈는데, 이 산을 돌아보시고 적이 놀라셨다. 백두산으로부터 내려와 조령을 지나오니 흡사 영취산을 해동에 옮겨온 듯하고, 가야산을 이끌고 두류산에 이르니 마치 생학笙鶴이 날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동쪽을 바라보고 서쪽을 가리키니 달 밝고 바람 맑으며,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마주하니 땅이 평탄하여 하늘이 정한 곳이다. 빼어난 모습은 부처님과 조사의 맑은 기상을 드러내고 아름다운 산세는 복희와 문왕의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간직하였으니, 화서국華胥國인가 건덕향建德鄕인가. 모든 생각이 황홀해지고, 넓고 또 그윽하여 선계의 상쾌한 기운이 감돈다.
이에 뭇 인연을 모아 큰 역사를 일으켰는데 도끼로 정밀하게 깎아 다듬고 단청으로 솜씨 있게 꾸몄다. 봉방蜂房이 바둑알처럼 놓이고 아전鵝殿은 새가 나는 듯 세워져, 황홀하게 법회가 성대히 열린 듯하고 화기가 넘쳐 설산의 아름다운 모임 같다. 이때가 고려 개운開運 3년(946) 병오년으로, 이것이 첫 번째 창건이다. 그러나 곁은 바람이 불고 위는 비가 새어 전각이 썩어 무너지고, 추위와 더위가 오고 감에 따라 사람과 법이 쇠잔하여 금전이 차마 가시덤불로 변하였다. 원경圓瓊 스님이 중수할 마음을 일으켜 여러 시주의 인연을 모아 옛터를 닦고 새 공적을 곧 마치니, 때는 황명皇明 천순天順 6년(1462) 임오년으로 두 번째 중창이었다. 이후로는 중수하여 보전하는 이가 없어 버려진 섬돌에 덩굴만 무성하여 경관이 쓸쓸하고, 푸른 산엔 인적 없어 풍광이 참담하였다.
성묵性黙 스님은 기개가 넘치고 능력이 뛰어나셨다. 많은 재목을 모연하며 풍우를 무릅쓰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여러 부락에서 재물을 옮기며 늘 소와 말로 왕래하였다. 누대와 전각을 중건하고 아울러 승방과 법당을 바로 하였다. 또 학전學田, 법숭法崇 두 장로가 함께 나와 채색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기와를 덮어 비를 막았으며 다른 모든 기물도 옛날과 같이 일신하였다. 이때가 황명 정통正統 14년(1449) 기사년이니

009_0406_c_01L時有國師大監歷銓一國奇境
009_0406_c_02L宇八山道場回矚此山橫駭彼目
009_0406_c_03L白頭行島 [7] 恰見靈鷲之移來海東
009_0406_c_04L伽耶控頭流怳聞笙鶴之飛過頭上
009_0406_c_05L震指兌月白風淸輩坎面离地平天
009_0406_c_06L標秀朶佛祖脫洒之氣象形勝苞羲
009_0406_c_07L文河洛之圖書華胥耶建德耶怳惚凢
009_0406_c_08L曠如也奧如也爽氣仙區爰蕆衆
009_0406_c_09L即辦大役風斤月斧撲鑿窮精
009_0406_c_10L金流丹莊點罄巧蜂房碁錯鵝殿翬
009_0406_c_11L怳若霧市之殷開藹然雪山之佳會
009_0406_c_12L時即麗祖開運三年丙午歲是初創也
009_0406_c_13L然而傍風上雨殿閣朽頹寒徃暑來
009_0406_c_14L人法殘末忍見金田遽爲荊麓有山
009_0406_c_15L人圓瓊發心重葺募緣諸檀仍修舊
009_0406_c_16L立畢新績時即皇明天順六年壬午
009_0406_c_17L是二重創也自後無人更修有誰
009_0406_c_18L將保葛蔓遺砌物色蕭條虛翠空山
009_0406_c_19L風光慘惔有曰性默食牛其氣承蜩
009_0406_c_20L乃能募緣千材不嫌櫛沐風雨輸財
009_0406_c_21L萬落長驅徃來蹄角重營臺殿兼飭
009_0406_c_22L房堂又有學田法崇兩長老同時出
009_0406_c_23L丹雘以美觀盖瓦以備雨若他百物
009_0406_c_24L如古一新時即皇明正統十四年己巳

009_0407_a_01L세 번째 중창이다. 그 뒤를 이어 차례로 보수한 자는 선옥禪玉, 지감智鑑, 도천道天 세 사람으로, 명나라 경태景泰 병자년(1456)으로부터 경진년(1460)까지 이르렀으니 네 번째 중창이다. 또 화사 선혜善惠가 홀로 경영하고 보수하였는데 때는 청나라 강희康熙 21년(1682) 임술년으로 다섯 번째 중창이다. 그 후에 절의 모든 무리가 마음을 합쳐 수리하니 때는 옹정雍正 12년(1734) 을묘년으로, 여섯 번째 중창이었다.
또 적이 보건대 부묵자副墨子가 말하기를, “산등성이에 봉황사와 봉황대가 있고 봉황대 앞엔 덕주암과 덕치사가 있었다고 하니, 절 이름이 영봉이고 산 이름이 덕유인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 밖으로 동촌桐村이 둘러 안으니 이른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는다’는 말에 부합된다. 안으로는 남치覽峙를 안고 있으니 아마도 봉황은 아름다운 덕을 보고 내려온다는 뜻인 듯하다. 산 이름과 절 이름은 이로써 생각하여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단속비斷俗碑에 기재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이곳 영각동靈覺洞에 경瓊 선사가 사는데, 꿈에서 노인의 지시를 받았으며 깨어나 부처님을 모실 터를 얻었다. 옛것을 버리고 새로움을 취함에 시비가 없었고, 옛날을 끌어 오늘을 증거함에 높고 낮음이 없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갈천葛川의 가문에서 밝힌 바이다.
대개 비는 지명에서 취하였고 기문은 뜻에서 취하였다. 그러나 이름과 뜻은 다르나 산사山寺는 그대로이니 없애면 모두 그릇된 것이요 보존하면 이치가 같은 것이다. 오묘하다 이치여! 비록 오색의 붓이라 할지라도 그 사이에 한 글자도 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령 삼척의 입이라도 여기에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니, 만일 모든 이가 깊은 이치를 깨치고 곧바로 근원에 도달한다면 산은 어디에 있고 절은 어디에 둘 것인가, 이름도 붙이지 못하고 뜻도 없을 것이다. 산도 그릇되고 절도 그릇되어 그릇되다 함도 그릇되며,

009_0407_a_01L是三重創也鱗次而出相繼修補
009_0407_a_02L者曰禪玉智鑑道天三人時即自皇明
009_0407_a_03L景泰丙子至庚辰歲是四重剏也
009_0407_a_04L有化士善惠獨力修營時即淸胡康熙
009_0407_a_05L二十一年甲子 [8] 是五重剏也厥後擧
009_0407_a_06L寺衆同心修理時即雍正十二年乙卯 [9]
009_0407_a_07L是六重剏也又竊觀副墨子曰
009_0407_a_08L脊有鳳凰寺與鳳凰臺臺面有德住庵
009_0407_a_09L與德峙寺寺名靈鳳意以此也山名
009_0407_a_10L德裕志在彼乎外繞桐村果所謂鳳非
009_0407_a_11L梧桐而不食者也內抱覽峙豈所謂
009_0407_a_12L鳳覽德輝而必下者耶山名以之可觀
009_0407_a_13L寺名以之可想此斷俗碑所載者也
009_0407_a_14L曰靈覺洞在此瓊禪師居中夢得老叟
009_0407_a_15L之指揮覺占大雄之基趾取新去舊
009_0407_a_16L何是非援古證今不相高下此葛川記
009_0407_a_17L所明者也盖以碑取於地名爾記取於
009_0407_a_18L意趣然名趣雖殊山寺自若泯之則
009_0407_a_19L齊楚俱失存之則胡越一家鶻突㢤理
009_0407_a_20L雖以五彩毫非但不能下隻字於其
009_0407_a_21L設令三尺喙亦乃難可措一辭於這
009_0407_a_22L若使介衆洞徹奧理直到窮源
009_0407_a_23L山何安寺何安名不得趣不得山也錯
009_0407_a_24L寺也錯錯錯俱錯錯名亦忘趣亦忘

009_0407_b_01L이름도 잊고 뜻도 잊어 잊었다 함도 잊을 것이다. 그리하여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자유로이 노닐고 아득한 들판에서 훨훨 날 것이니 비기碑記와 명록銘錄이 어찌 헛된 것이랴. 전후로 편액을 건 것이 과연 뜻이 있으니, 한 이치 밖에서 지리支離할 것 없이 두 이름 사이에서 오묘하게 보존함을 취할 것이로다. 다만 보고 들은 것을 잡아 거친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쓴다. 사詞는 다음과 같다.

皇矣能仁      위대하신 부처님께서
應運降迹      시운을 따라 오시어
四生爲子      사생四生300)을 자식으로
三界作宅      삼계三界301)를 집으로 삼으셨다
無住大方      무주無住의 큰 방편으로
不捨一物      한 중생도 버리지 않으셨다
散滿華莊      수많은 국토마다
塵塵刹刹      화엄으로 장엄하고
平等實相      평등 실상으로
頭頭物物      모든 중생을 제도하시네
矧此名區      하물며 이 명승지는
南國第一      남쪽의 으뜸이라
一眞法界      일진 법계가
萬古昭廓      만고에 밝게 드러났다
隨毁隨成      훼손과 완성이 이었으나
不生不滅      끝내는 생멸이 없는 법
刼灰雖飛      겁회가 날려도
靈山長卓      영산은 영원히 우뚝하리라
추줄산 위봉사 사적사 병서
하늘이 어두워지면 비궁秘宮에 달이 바라보이고, 희화羲和가 새벽을 알리면 창합閶闔에 맑은 기운이 불어온다. 사해가 온통 일색으로 빛나고 수많은 숲에 바람이 불면, 만물이 화서華胥의 바람에 깨어나고 모든 중생이 감로의 은택에 젖는다. 하물며 법계를 높임은 우리나라만 한 곳이 없으니 사찰과 비석이 산과 계곡마다 있고 금종金鍾과 옥경玉磬이 날마다 울려 퍼진다. 32봉우리에 어찌 작은 법회만 열리겠는가, 팔만대장엄이 흡사 한때의 화성化城과 같도다.
이 절은 고려 말 나옹懶翁 왕사께서 창건한 곳이다. 나옹 화상께서 지정至正 기해년(1359)에 여러 산을 살펴 이 땅에 터를 잡았다. 새 천지가 열리니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기운이 울창하고, 귀신이 보호하고 아껴 불전과 궁궐의 노래가 사람마다 자자하였다. 첩첩한 산악이 둘러 안았고

009_0407_b_01L忘忘亦忘忘快然放蕩於何有之鄕
009_0407_b_02L乎翩飜於曠浪之野碑記銘錄豈徒然
009_0407_b_03L前後揭扁果有以也不須支離於
009_0407_b_04L一理之表領取妙存於二名之間但把
009_0407_b_05L見聞聊札荒詞詞曰

009_0407_b_06L皇矣能仁應運降迹四生爲子

009_0407_b_07L三界作宅無住大方不捨一物

009_0407_b_08L散滿華莊塵塵刹刹平等實相

009_0407_b_09L頭頭物物矧此名區南國第一

009_0407_b_10L一眞法界萬古昭廓隨毁隨成

009_0407_b_11L不生不滅刼灰雖飛靈山長卓

009_0407_b_12L

009_0407_b_13L崷崪山威鳳寺事蹟詞并序

009_0407_b_14L
渾元告夕望圓魄於秘宮羲和報曉
009_0407_b_15L引淸氣於閶闔皛一色於四海吼百竅
009_0407_b_16L於千林物物齊蘇華胥之風色色咸沐
009_0407_b_17L甘露之澤況崇法界莫加仁方鴈刹
009_0407_b_18L龜碑山山谷谷金鍾玉磬日日時時
009_0407_b_19L二別峯奚啻五里之霧市八萬大莊
009_0407_b_20L怳若一時之化城夫此寺者麗季王
009_0407_b_21L師懶翁之所創也翁也於至正己亥歲
009_0407_b_22L胥宇諸山歷銓此地天開地闢河圖
009_0407_b_23L洛書之氣鬱鬱䓗葱鬼秘神慳佛宇
009_0407_b_24L帝闕之謠人人藉藉重重障岳縈廻

009_0407_c_01L굽이굽이 시내가 안팎으로 흐른다. 효산殽山과 함곡函谷의 험준한 곳에 자리하고 태산泰山과 화산華山의 풍연風烟을 독점하였다. 도솔천의 구첨毬簷(혈맥)은 손바닥 위에서 사주四洲의 세계를 보는 듯하고, 권렴동卷簾洞의 비폭飛瀑은 높은 하늘에서 만 길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하다. 신령한 거북이 문채를 등에 지고 나오니 진흙 소가 파도 위에 밭을 갈고, 나는 봉황이 알을 품으니 오계烏鷄가 눈 가운데 떨어진다. 위봉사를 보면 후지後地 낙서 구주九疇의 문장을 안았고, 추줄산의 산세를 보면 선천先天 팔괘의 효상爻象을 머리에 이었다. 비록 섬부주贍部洲 가에 있으나 구경천究竟天에 부끄러움이 없으니 형승이 이와 같이 으뜸이다.
이에 큰 자비심을 일으켜 큰 사찰을 널리 여셨다. 먼저 석판石坂을 축조하여 물 입구를 막고 드디어 금전을 창건하여 명당을 독점하였다. 동서의 연못에 하늘빛이 거꾸로 비치고 비석과 석탑이 지세에 따라 배치되었다. 법전과 승방이 열여덟 곳이요 선풍과 혜월慧月이 억만년을 길이 빛나니 사찰의 창건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천도는 바뀌고 지덕도 자주 변하니 본래 고산현高山縣의 남산이었던 것이 전주全州의 동령東嶺으로 바뀌었다.
강희康熙 갑인년(1674)에 방백方伯 권복야權僕射가 만세의 원대한 계획을 세웠는데, 주지 초행楚行 스님이 도와 때를 같이하여 내응하였다. 주위를 빙 둘러 30리의 성을 축조하고 천만년을 장구히 보호하게 하였다. 진시황은 수많은 백성을 괴롭혀 만리장성을 쌓다 가련하게 되었고, 대부 전단田單302)은 한 조각 성채로 제나라의 70여 성을 회복하였으니 귀하게 여길 만하다. 이 때문에 성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데, 덕에 있지 험준함에 있지 않으니, 만약 주장主將이 덕을 닦는다면 적국도 귀항歸降하게 할 것이니 성을 축조하는 것이 어찌 헛된 일이겠는가. 적을 제압하는 것이 반드시 방법이 있으니 축성의 견고함이 이와 같았다.
또한 특별히 재능 있는 별장과 승장을 선발하고 무기고와 군수품을 각각 미리 갖추었으니, 급박한 난이 있더라도 어찌 방어할 능력이 없겠는가. 천 명, 만 명이 무리를 지어 벌과 개미처럼 주둔하고,

009_0407_c_01L作襟曲曲溪川表裏爲帶據殽凾之
009_0407_c_02L擅泰華之風烟兜率毬簷掬一
009_0407_c_03L掌四洲之世界卷簾飛瀑落九天萬丈
009_0407_c_04L之銀河靈龜負文泥牛起耕於波上
009_0407_c_05L飛鳳抱卵烏雞落點於雪中觀地形之
009_0407_c_06L圍鳳兮苞後地九疇之文書望目勢之
009_0407_c_07L崷崒兮戴先天八卦之爻象雖處贍部
009_0407_c_08L洲畔寧慚究竟天中形勝之最有如此
009_0407_c_09L於是始奮大慈廣開巨刹先築石
009_0407_c_10L坂而厭之水口遂創金殿而擅其明堂
009_0407_c_11L東池西塘天光倒影巖龜石塔地理順
009_0407_c_12L法殿僧房共計十八餘所禪風慧月
009_0407_c_13L長淸億萬斯年寺宇之創有如此也
009_0407_c_14L然天道互換地德屢荐雅以高山治南
009_0407_c_15L飜爲全州地東嶺盖以康熙甲寅歲
009_0407_c_16L方伯權僕射方興萬世之遠圖住持釋
009_0407_c_17L楚行助爲一時之內應築城周廻三十
009_0407_c_18L保障長久千萬年萬里長城可憐
009_0407_c_19L秦皇帝酷民億千許衆一片孤堞
009_0407_c_20L貴田大夫復齊七十餘城故守城則難
009_0407_c_21L在德不在險若主將修德使敵國歸降
009_0407_c_22L設城豈徒然㦲制賊必有以也築城
009_0407_c_23L之固有如此也抑有別將僧將特選
009_0407_c_24L其材武庫軍裝預備各色倘有警急
009_0407_c_25L之亂豈無防禦之能千萬爲羣蜂屯蟻

009_0408_a_01L열 명, 다섯 명씩 대오를 갖추어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리는 듯하였다. 진초晉楚가 칼날을 다투고 오월吳越이 진법을 익히니 무예의 방략이 이와 같았다.
옹정擁正 기유년(1729)에 안렴사按廉使 이상국李相國이 금용성金墉城303)의 견고함을 본떠 아름다운 별궁을 경영하니, 새가 나래를 펴는 듯 화려하고, 단청하고 조각한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기산岐山304)을 깎아 축조하니 인심이 이미 귀의하고, 봉천奉天의 이궁離宮(별궁)엔 왕기王氣 또한 성대하였다. 문무백관들이 자리하는 단과 섬돌을 화려하게 꾸미고, 낭관郎官이 숙직하는 창과 계단을 엄연하게 세웠다. 기둥과 처마가 크고 아름다워 용릉舂陵305)의 좋은 기운을 이끌어 오고, 용마루가 빛나서 패읍沛邑306)의 아름다운 징조를 품었다. 성신城神은 임금님을 향하여 작은 정성을 드러내고 산신령은 하늘에 짝할 만한 큰 업적을 축하하니 행궁을 지음이 이와 같았다.
위대하도다. 왕국과 불국이 하나의 도리로 융합되고 승가와 속가가 두 마음이 없도다. 요풍堯風과 선풍禪風이 나란히 맑고 순일舜日과 불일佛日이 한 빛이다. 향상向上의 천궐天闕은 범부의 입으로 논할 수 없으나 신선의 세계는 이곳을 두고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감히 사를 짓는다.

氣分淸濁      청탁의 기가 나뉘고
質判玄黃      현황의 바탕이 갈라져
天宇地宙      하늘은 둥글게 푸르고
方圓荒蒼      땅은 모나게 펼쳐졌다
戴圓履方      하늘을 이고 땅을 밟아
龜毛起刹      귀모의 사찰을 세우니
刹種塵沙      수많은 국토가
一一建德      하나하나 건덕국이로다
今日圍鳳      오늘의 위봉사는
昔時靈鷲      예전의 영취산이라
西竺王舍      서축의 왕사성이요
東邦鳳城      동방의 봉성이로다
有寺有城      이에 절을 짓고 성을 쌓아
取氣取靈      신령한 기를 취하였다
寒來暑徃      추위와 더위가 바뀌고
日落月出      해가 지고 달이 떠도
一氣循環      원기는 순환하여
萬古無極      만고에 끝이 없으리
쌍계암 중창 상량문
한없는 지축을 장엄하니 법계가 널리 드러나고, 말없이 신묘한 기틀이 움직이니 원기가 크다. 상전桑田은 여러 번 변해도 설산은 항상 고요하다.

009_0408_a_01L什伍作隊電掣雷奔爭鋒晋楚之强
009_0408_a_02L習陣吳越之戰用武之略有如此也
009_0408_a_03L至雍正己酉歲按廉李相國爰仍金墉
009_0408_a_04L之固卽擧瑤宮之營輪奐翬飛丹刻
009_0408_a_05L離立岐山剷築人心旣歸奉天離宮
009_0408_a_06L王氣且大侈侯伯序列之壇砌儼寢郞
009_0408_a_07L守直之軒階棟宇碩曼引舂陵之佳氣
009_0408_a_08L甍攏炫燿葆沛邑之休徵城神呈拱星
009_0408_a_09L之蟻忱山靈賀配天之鴻造行宮之作
009_0408_a_10L有如此也大㦲王國耶佛國耶互融
009_0408_a_11L一道僧家也俗家也自無二心堯風
009_0408_a_12L與禪風齊淸舜日共佛日一色向上天
009_0408_a_13L非凡喙可論壺裏乾坤捨此地奚覔
009_0408_a_14L敢爲詞曰

009_0408_a_15L氣分淸濁質判玄黃天宇地宙

009_0408_a_16L方圓荒蒼戴圓履方龜毛起刹

009_0408_a_17L刹種塵沙一一建德今日圍鳳

009_0408_a_18L昔時靈鷲西竺王舍東邦鳳城

009_0408_a_19L有寺有城取氣取靈寒來暑徃

009_0408_a_20L日落月出一氣循環萬古無極

009_0408_a_21L

009_0408_a_22L雙溪庵重創上樑文

009_0408_a_23L
原夫莊地軸於無極法界廓如運神
009_0408_a_24L機於不言元氣大也桑田累變雪山

009_0408_b_01L금종金鍾은 학의 날개를 따라 울려 퍼지고 옥찰玉刹은 거북이 털(龜毛)307) 위에 깨끗하다. 이 암자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후로 중간에 네 번의 중수를 거쳤다. 흥폐가 거듭되면서 실낱같이 이어졌으나 세월이 흘러도 항상 예전처럼 새롭게 하였다. 이에 대중이 함께 착한 마음을 일으켜서, 법당과 누각이 황폐하려 함을 슬퍼하여 불시에 경영을 시작하였다.
드디어 일꾼을 모으고 장인을 선발했으며, 서까래를 뽑고 기와를 치웠으며, 기둥을 바꾸고 들보를 바로잡았다. 솜씨와 재주를 다하여 깎고 다듬어 시설하니 마치 선기璇璣(혼천의)가 법도를 품은 듯하고, 흡사 와후媧后308)가 하늘을 땜질하는 것 같았다. 봉래를 내려다보니 학을 탄 신선의 피리 소리가 구름 밖에서 들려오고, 도솔천을 올려다보니 오계烏鷄가 눈 속에 내려앉는다. 고야姑射(신선세계)의 맑은 풍광을 독차지하고, 기상은 태산에 올라 소요하는 듯하다. 창건의 공을 다 마치고 상량의 송을 이에 부른다.

拋樑東       들보를 동쪽으로 던져라
金色重重世界通   금색의 세계 중중히 통하니
空裏蟾光誰得撮   허공의 달빛을 누가 잡을꼬?
紅輪赫赫出冥蒙   붉은 해가 어둠 속에서 밝게 솟는다
拋樑西       들보를 서쪽으로 던져라
華莊分明路不迷   화장세계의 길이 뚜렷하니
稻竹彌陀常現格   도죽미타稻竹彌陀가 항상 나타나네
只緣多障隔天倪   다만 업장이 많아 천애에 막혔네
拋樑南       들보를 남쪽으로 던져라
石馬回頭出紫龕   석마石馬는 고개 돌려 붉은 감실龕室에서 나오고
湛刹萬國淸似鏡   만국의 사찰은 거울처럼 맑은데
可憐童子百城叅   가련타 선재동자는 백성百城을 참배하네
拋樑北       들보를 북쪽으로 던져라
空莊掩容渾大默   공장空莊은 모습을 감추어 침묵에 싸였으나
密用潜行合本源   밀용密用은 가만히 운행하여 본원에 합치되니
金鸞玉鳳元難測   금란과 옥봉은 본래 헤아리기 어렵도다
拋樑上       들보를 위로 던져라
仰望蒼蒼無臭響   푸른 하늘을 보면 냄새와 소리도 없어서
千聖元來不得傳   천성千聖도 원래 전할 수 없다네
性天無極難爻象   성천性天은 끝이 없어 그려 내기 어렵네
拋樑下       들보를 아래로 던져라
土地龍神從密化   토지와 용신이 비밀한 교화를 따라
福物自然助善緣   복물福物로 자연스레 착한 인연 도우니
百靈歡喜捨精舍   온갖 신령이 환희하며 정사精舍를 에워싸네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 법계에 금빛이 서리고 선중禪衆이 많이 모여, 경풍庚風(맑은 바람)과 병월丙月(밝은 달)이 항상 남쪽과 북쪽에 불고 비추며, 목자木子(日)와 옥동玉童(月)이 항상 아침과 저녁에 오르내리기를 바라노라.

009_0408_b_01L長寥金鍾落落鶴趐之邊玉刹噲噲龜
009_0408_b_02L毛之上是庵也一自新羅之俶創
009_0408_b_03L閱中間之重修隨廢隨興不絕如縷
009_0408_b_04L日居月諸永新依前肆乃一僉自發
009_0408_b_05L性善傷堂閣之將廢奮經始之不時
009_0408_b_06L遂聚役夫特選匠氏抽椽撒瓦更棟
009_0408_b_07L整樑撲鑿窮奇擧錯罄巧怳若璇璣
009_0408_b_08L之含度恰似媧后之補天俯瞰蓬萊
009_0408_b_09L聞笙鶴之飛過雲外昂枕兜率直看烏
009_0408_b_10L雞之落點雪中洒落擅姑射之風光
009_0408_b_11L遙登泰山之氣象剏功旣畢樑頌斯興
009_0408_b_12L拋樑東金色重重世界通空裏蟾光誰
009_0408_b_13L得撮紅輪赫赫出冥蒙拋樑西華莊分
009_0408_b_14L明路不迷稻竹彌陀常現格只緣多障
009_0408_b_15L隔天倪拋樑南石馬回頭出紫龕湛刹
009_0408_b_16L萬國淸似鏡可憐童子百城叅拋樑北
009_0408_b_17L空莊掩容渾大默密用潜行合本源
009_0408_b_18L鸞玉鳳元難測拋樑上仰望蒼蒼無臭
009_0408_b_19L千聖元來不得傳性天無極難爻象
009_0408_b_20L拋樑下土地龍神從密化福物自然
009_0408_b_21L助善緣百靈歡喜捨精舍

009_0408_b_22L
伏願上樑之後法界金盤禪衆螽聚
009_0408_b_23L庚風丙月恒掃北而霽南木子玉童
009_0408_b_24L每登朝而降夜

009_0408_c_01L
종가의 선사에게 협제를 지내는 축문
옹정雍正 10월 신해 삭 16일 갑자에 법자法子 아무개는 삼가 청다淸茶와 진수珍羞를 차려 임제종臨濟宗 정맥 29세 대화상 추계당秋溪堂 각령覺靈, 원응당圓應堂 각령, 임성당任性堂 각령, 정관당靜觀堂 각령, 청허당淸虛堂 각령, 부용당芙蓉堂 각령, 벽송당碧松堂 각령, 벽계당碧溪堂 각령, 구곡당龜谷堂 각령, 환암당幻庵堂 각령, 태고당太古堂 각령, 그리고 모든 상세上世의 일문一門 및 법제자의 존령尊靈의 신위에 협제합니다.
오호라. 선각先覺께서 이미 떠나시니 후생이 누구를 의탁하겠습니까.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자리도 자취를 감춥니다. 어두운 밤이 길기만 하니 누가 가을 햇살을 비춰 주며 백 가지 변괴가 잇따르니 누가 막아 주겠습니까. 중생들이 부르짖으니 누가 구해 주며 원각圓覺의 가람을 누가 보수하겠습니까. 여러 조사들을 추억하니 백세百世의 원로이셨으며, 생사에 오고 가심에 바르고 곧았습니다. 그 용모가 옥같이 맑고 부드러웠으며 행동은 추수와 같이 깨끗하고 마음은 밝은 태양을 꿰뚫었습니다. 오묘한 생각으로 정밀히 연구하여 미묘한 이치를 분석하였고 현묘한 관문을 통찰하여 도를 보고 깨치셨습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순역順逆에 따라 자유로이 교화를 행하시어 사생四生을 자식으로, 삼계三界를 집으로 삼으셨습니다. 여러 가지 학설들과 크고 작은 의리를 절충하여 한 도를 생각하여 자양紫陽309)을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세속의 흐름에서 용감히 물러나시어 무리에서 벗어나시고, 외물 밖에 소요하시어 부귀를 뜬구름같이 여기시니, 속세에 화한 덕이 넘쳤고 세상 밖에 명망이 높아 불가의 사표요, 선문禪門의 맹주였습니다. 불교의 의리가 진작되었고, 율법이 성대하여 천하 사람을 답살踏殺하니310) 위엄이 인간 세상을 떨쳤습니다.

009_0408_c_01L宗家先師祠祭祝

009_0408_c_02L
維雍正十月辛亥朔十六日甲子法子
009_0408_c_03L某甲謹以淸茶珎羞之奠祫祭于臨
009_0408_c_04L濟宗正脉二十九世大和尙秋溪堂覺靈
009_0408_c_05L圓應堂覺靈任性堂覺靈靜觀堂覺靈
009_0408_c_06L1) [1] 虛堂覺靈 2) [2] 蓉堂覺靈碧松堂覺
009_0408_c_07L碧溪堂覺靈龜谷堂覺靈幻庵堂
009_0408_c_08L覺靈太古堂覺靈各各上世一門
009_0408_c_09L眷諸大尊靈之位

009_0408_c_10L
嗚呼哀㦲先覺旣逝後生疇托日月
009_0408_c_11L沉輝星斗收跡長夜漫漫誰曝秋陽
009_0408_c_12L百恠變出誰設嚴防赤子嗷嗷誰援
009_0408_c_13L其溺圓覺伽藍誰葺其闕追惟諸祖
009_0408_c_14L百世蓍龜如來直便正去突馳有晬
009_0408_c_15L其容温然如玉行潔秋水心貫白日
009_0408_c_16L妙思精硏毫分縷析洞徹玄關道存
009_0408_c_17L目擊來向別地行恣順逆四生爲子
009_0408_c_18L三界作宅參差衆說洪纎異宜析衷
009_0408_c_19L念一紫陽是師急流勇退出類離羣
009_0408_c_20L逍遙物表富貴浮雲寰中和德塞外
009_0408_c_21L家聲佛家矜式祖門宗盟義龍振振
009_0408_c_22L律虎邦邦踏殺天下威震人間降及
009_0408_c_23L▣疑「淸」{編}ㆍ「▣虛…覺靈」十字底本作小文
009_0408_c_24L編者作本文活字
▣疑「芙」{編}

009_0409_a_01L
소자에 이르러 인법人法이 모두 쇠잔하여 언어 문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논쟁만 다투었습니다. 크고 작은 논쟁만을 일삼아 올빼미가 야밤에 우는 듯하고 초나라 사람들이 사방에서 떠들어 대는 것 같았습니다.311) 시비의 기괄機括이 날마다 쉬지 아니하여 사람들은 작은 도리에 안주하고 외도들은 큰 도를 비난하였습니다. 그 모습은 원숭이가 주공의 복장을 입은 듯하여 우리 총림이 황무지로 변하였습니다. 큰스님들께서 이미 돌아가시니 남은 생애 어디로 가겠습니까. 달빛과 같은 풍골을 뵐 길이 없어 부질없이 남겨진 영정을 엿보고, 특별히 선사들의 진영을 그려서 상실像室에 봉안하니 신명이 강림하는 듯한지라, 정종正宗의 바른 맥이 다시 활시위처럼 곧게 빛났습니다.
사람은 전후가 있으나 도는 고금이 없으니 이승의 가호는 그쳤지만 저승에서나마 적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공왕空王의 궁궐에서 특별히 뛰어난 재주를 선발하여 종가에 점지해 주시고 장래에 법을 베푸소서. 오미五味를 융통하여 계율을 한결같이 행하게 하시고, 적문迹門312)에 출입하시며 본문本門에도 자유자재로 노니십시오. 진종眞宗이 아름다운 자취를 열어 하늘에서 내려올 때를 아시고, 부처님께서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인욕선인으로 태어난 것을 징험해 주소서. 근본과 자취가 서로 어우러져 이 도가 크게 드러났습니다. 항상 일념으로 평생을 지키며 살려고 맹세하였으나 마음에 기약한 것이 모두 어긋나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선조께서 만약 무심하시다면 종문을 누가 열겠습니까. 피눈물을 흘리며 제문을 지으니 법은이 망극하옵니다. 아아! 밝게 내려오시어 흠향하소서.
고경 스님이 돌아가신 스승의 쇄골에 제사 지내는 글
숭정 기원 후 갑인(1674) 춘삼월 16일, 고경 스님이 입실하고 간청하여 말하기를, “은사께서 타도에서 입적하였는데 당시에 뒤따르던 사형제의 말을 들으니 즉시 다비를 하였는데, 그 뼈 색깔이 괴이하여 암석 사이에 묻고 표시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곧바로 달려가 예법대로 쇄골하고자 하였으나 다만 3년 동안 700재와 대소상의 여러 일을 행해야 했기 때문에 여태껏 마음만 있었습니다.

009_0409_a_01L小子人法俱殘未出筌蹄爭論指馬
009_0409_a_02L閑閑大者間間小者梟鳴夜半衆楚
009_0409_a_03L四咻是非機括逐日不休蛙肎泥甃
009_0409_a_04L鷃誚鵬翼態同猿生周公章服嗟我
009_0409_a_05L叢林却變樲棘大家已殁殘生安適
009_0409_a_06L月精風骨視覩無因謾窺遺影特邈
009_0409_a_07L先眞奉于像室格思明神正宗一脉
009_0409_a_08L煥乎弦直人有前後道無今昔已矣
009_0409_a_09L顯加願乎冥騭空王闕內特拔高材
009_0409_a_10L降迹宗家施法將來五味融通三唱
009_0409_a_11L一行迹門出入本家縱橫眞宗開美
009_0409_a_12L悟天降時仁皇止啼驗仙誕處本迹
009_0409_a_13L相資斯道大著永矢一念慷慨平生
009_0409_a_14L心期百違事無一成先祖若恝宗門
009_0409_a_15L誰闢瀝血緘辭法恩罔極於昭陟降
009_0409_a_16L庶幾歆格伏惟尙饗

009_0409_a_17L

009_0409_a_18L古鏡師祭亡師碎骨文

009_0409_a_19L
崇緽 [10] 紀元後甲寅春三月旣望古鏡師
009_0409_a_20L入室懇徵曰恩師之棄世在於他道
009_0409_a_21L聞當時從行師兄弟則即時茶毘而恠
009_0409_a_22L其骨色有表封骨巖石間云即擬奔徃
009_0409_a_23L碎骨如法而但馽於三年間七百齋
009_0409_a_24L大小祥行度諸事故迨稽寸懷今已

009_0409_b_01L이제 복을 마쳤으니 곧 행장을 꾸려 쇄골을 하고 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문이 없을 수 없어 슬픈 마음을 세세히 아룁니다. 문장을 짓는 것은 스님의 솜씨를 따를 이가 없으니 원하건대 참선의 여가에 괴로이 여기지 마시고 지어 주십시오.”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를 글은 반드시 스스로 지어야 마땅한데, 나에게 구하니 이른바 동기同氣가 서로 구하는 것이고 손을 빌려 주먹을 쓰는 것이라 하겠다. 드디어 슬픔에 감동되어 대신 쓴다.
아 슬프다. 생각하니 선령先靈께서는 바라문종으로 사바세계에 태어나셨습니다. 성품은 편안하시며 기개와 도량은 넓고 맑았습니다. 그 모습은 의젓하시어 속세의 정을 잊은 듯하셨고, 마음은 따뜻하여 진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청년 시절에 출가하여 백발이 되어 삶을 마치실 때까지 평생 날마다 자신의 업에 힘을 다하셨습니다. 불조佛祖의 상을 그리니 그 미소가 허공에 환했으며, 나라 안의 여러 사찰에 손수 그린 그림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명실名實이 널리 알려져 원하는 곳에 즐거이 나아갔으며, 한 해에도 몇 번씩 한자리에 안주하지 못하셨습니다.
슬프다, 저 소자는 일찍이 지극한 은덕을 입고 제자가 되었으니 어찌 숙세의 인연이 없겠습니까. 스승과 제자가 서로 마음을 이해하고 의기투합했으며, 자애와 은의를 받드니 바람과 구름이 용과 호랑이를 따르는 듯하였습니다.313) 노년에 먼 곳으로 뜻밖에 행각하신다 하셔서 만류하였으나, 어찌할 수 없어 홀로 간절히 우려하였습니다. 가고 오시는 길에 탈 없이 좋으시기만을 바랐는데 뜻밖에 망극한 생사의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우 잃은 수모水母의 처지이니 무엇으로 눈을 삼으며, 곡화槲花가 나무에서 떨어지니 어디에 의탁하겠습니까. 살아서 반함飯含314)하지 못했으니 죽어서도 피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이 천지에 이런 이별을 하다니요. 객사하고 수문랑이 되어 비록 조화의 이치를 깨쳤다고 하나, 피눈물을 흘리며 촉으로 돌아가심에 긴 밤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부고를 받은 즉시 달려가서 곡을 해야 하였으나 다비한 지 오랜지라, 서림逝林의 허공 빛만 아득하여 북쪽을 바라보며 멀리서 통곡하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슬피 울며 한탄만 한들 저승길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7일마다 각각 재를 올리고 3년간 상복을 입었으며 일일이 규정에 따라

009_0409_b_01L闋服即當治行準擬碎骨而來然不
009_0409_b_02L可無祭文告此哀哀之纎悉文之粧精
009_0409_b_03L亦莫如師表之手段願禪㝎餘毋苦一
009_0409_b_04L揮就可乎余惟文必自當而敢於余有
009_0409_b_05L豈所謂同氣相需借手行拳者耶
009_0409_b_06L感哀替草云

009_0409_b_07L
嗚呼痛㦲伏惟先靈婆羅門種索訶
009_0409_b_08L界生性宇泰㝎氣度廓淸亢乎其容
009_0409_b_09L邈若無情温乎其中肺腑悉傾靑年
009_0409_b_10L出家白首厭生平生所業日用其功
009_0409_b_11L佛祖摸像莞爾騰空國中群刹莫非
009_0409_b_12L手跡名實普聞樂處就樂一年數度
009_0409_b_13L坐不恒席哀我小子早蒙至德託爲
009_0409_b_14L神足豈靡宿緣師資知音峩洋別絃
009_0409_b_15L針芥共投箭鋒相拄接承慈義雲風
009_0409_b_16L龍虎衰年遠地不意行脚諫止不得
009_0409_b_17L私慮殊切但祝徃反無故皆吉生離
009_0409_b_18L死別誰料罔極水母喪蝦以何爲目
009_0409_b_19L槲花失卉誰與將托生不飯含死痛
009_0409_b_20L驗血此地何地此別何別客死修文
009_0409_b_21L雖云達化泣血歸蜀不忍長夜承訃
009_0409_b_22L即時義當奔哭茶毘已久逝林空色
009_0409_b_23L北望懸慟五情如割悲呼徒歎冥路
009_0409_b_24L奚益七日各齋三年重服一一依䂓

009_0409_c_01L모든 일에 힘을 다하였습니다. 먼 길을 마다 않고 묻어 둔 뼈를 뵙고 피를 뿌리며 정성을 다하여 법도에 따라 쇄골하였습니다. 혼령은 심히 밝으시니 유택에 내려오소서. 공경히 소박한 제물을 차리오니 강림하여 흠향하소서. 오호통재라. 상향.
추줄산 쌍계암 사적사인
대저 산수가 빼어난 곳은 나라 안에 드물고, 산수가 비록 아름답더라도 암자가 터를 잡는 것은 더욱 드물다. 암자가 빼어난 곳에 자리하여 천지와 흥폐를 같이하는 것은, 진실로 나라 안에 거의 없거나 요행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추줄산의 쌍계암은 산수의 크기와 암자의 웅장함이 비록 천하제일은 되지 못하나 터와 경치가 탁 트이고 맑아 신령함과 기이함이 일찍부터 호남 밖에까지 드러났으니, 나라 안에 거의 없는 행운이라고 할 만하다.
노인들이 전하는 말씀으론 신라시대부터 이 암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자세히 고찰할 만한 사적이 없으니 안타깝다. 다만 이를 중수할 때에 상량의 인연이 적힌 글을 보니, 만력 을묘년(1615) 여름에 화사化士 희감熙鑑 등 세 사람이 두 번째 중창을 하였고, 강희 계묘년(1663) 여름에 화사化士 경잠敬岑 등 세 사람이 세 번째 중창을 하여 웅장하고 화려하게 여니 호우湖右 지역에 으뜸이라, 아전鵝殿과 구각鳩閣이 새가 나래를 펴듯 엄연하여 천궐과 융화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월이 감에 따라 들보와 기둥이 기울고 서까래가 떨어져 나가, 분발하여 진작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무너지게 됐는지라 뜻있는 사람이라면 보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 은사께서 본사에서 오시고 오래지 않아 중수하셨는데, 저는 추계秋溪 대화상을 따라 대둔산에 있다가 또한 와서 일을 마치는 것을 도왔으니 그때가 강희 갑자년(1684) 봄이었다. 이것이 네 번째 중창이다.

009_0409_c_01L箇箇盡力不遠百舍來覲封骨瀝血傾
009_0409_c_02L碎骨如則爽靈孔昭盍降幽宅
009_0409_c_03L陳薄奠庶幾歆格嗚呼痛㦲伏惟尙饗

009_0409_c_04L

009_0409_c_05L崷崒山雙溪庵事蹟詞

009_0409_c_06L
夫地有山溪之勝者於國爲鮮山溪雖
009_0409_c_07L而庵舍之直其地者尤鮮庵舍之跨
009_0409_c_08L勝地而與天地同廢興者誠國中之絕
009_0409_c_09L無而幸有者也今夫崷崒山之雙溪
009_0409_c_10L其山溪之大庵舍之壯雖未爲天
009_0409_c_11L下第一而盤基觸境爽塏瀟洒靈異
009_0409_c_12L宿著於湖外豈所謂國中之絕無而幸
009_0409_c_13L有者耶盖古老相傳自新羅代已有
009_0409_c_14L此庵云而無實蹟可詳稽惜㦲但此
009_0409_c_15L重修時見上樑緣化秩萬歷乙卯夏
009_0409_c_16L化士熙鑑等三人二重創康熙癸卯夏
009_0409_c_17L化士敬岑等三人三重創其廣拓雄
009_0409_c_18L甲乎湖右鵝殿鳩閣翬飛致翼
009_0409_c_19L然若互融天闕也然而日居月諸樑棟
009_0409_c_20L傾斜椽梠撲落若不奮然振作則墜
009_0409_c_21L廢指日可待志士所見莫不有此顙者
009_0409_c_22L惟我恩師自本寺來不日而重葺之
009_0409_c_23L余時從秋溪大和尙在於大芚山亦來
009_0409_c_24L助畢功時即康熙甲子春也是爲四重

009_0410_a_01L
이해 가을 대화상을 청하여 대법당大法幢을 세우고 여러 해를 보냈다. 저도 화상의 법자法子로서 문하에서 수업하여 일찍 학문을 마쳤으니 사람들은 모두 지령地靈의 도움이라고 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화상께서 입적하시자 다비와 부도 건립을 마치고 나서, 전후로 괘탑掛塔하여 출입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스스로 종가의 본 암자라 생각해서, 화연化緣 때문에 여러 산문을 두루 다녔으나 이제 본사의 요청으로 본 암자에 돌아오게 되었다. 병인년(1686)에 문우門友 옥찬玉瓚이 이미 회상繪像을 중수하였고, 또 소상塑像도 개금改金하였다. 병술년(1706)에 암자의 장로 찬휘贊輝가 전각을 단청하고 다음 해에 이어서 기와를 다시 올렸다.
이에 산과 시내가 더욱 빼어나고 전각과 법물의 아름다움이 예전에 비하여 몇 배나 더하니 지령의 도움일 것이다. 산과 시내가 이와 같이 빼어나다면 마땅히 산계라고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쌍계라고 한 것은, 암자의 좌우로 시내와 샘이 달고 차서 홍수나 가뭄에도 증감하지 않기 때문이니 현규玄竅(지맥, 수맥의 뜻)가 서로 통하는 땅이라 이를 만하다. 암자를 쌍계라 이른 것은 뜻이 깃들어 있으니 암자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가끔 글 읽는 선비가 오면 반드시 말하기를, “공자의 『주역』 「계사전」에 ‘천지가 자리를 정하자 산택이 기를 통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히며, 물과 불이 서로 해치지 않는다’고 하였다.”고 하니 과연 이것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대저 이 암자에 거주하는 후인들은 한편으론 산과 시내의 승경을 보고 한편으론 선인들의 자취를 이어서 참선하는 이는 참선하고, 교학을 하는 자는 교학을 공부하며, 참선도 교학도 하지 않는 자는 법계를 장엄할지어다. 그리하여 모름지기 일상 중에 천지天地, 산택山澤, 뇌풍雷風, 수화水火가 모두 자신의 천지, 산택, 뇌풍, 수화임을 알아서, 천지, 산택,

009_0410_a_01L創也是秋請大和尙建大法幢數閱
009_0410_a_02L我於其時以和尙法子摳衣於講下
009_0410_a_03L早遂學工人皆謂地靈之助也居無何
009_0410_a_04L和尙入寂設闍維建浮屠纔罷仍作
009_0410_a_05L掛塔前後出入亦不一以此自謂宗家
009_0410_a_06L本庵以化緣之故汗漫諸山今以本
009_0410_a_07L寺之請又刀折本庵則於丙寅歲
009_0410_a_08L友玉賛已重修繪像又兼改金塑像
009_0410_a_09L至丙戌歲庵老賛輝丹靑殿閣越明
009_0410_a_10L年尾改盖瓦於是山益勝溪亦勝殿
009_0410_a_11L閣法物之勝況乎前倍簁則亦豈地靈
009_0410_a_12L之助耶然山溪之旣若是俱勝則宜名
009_0410_a_13L山溪而曰雙溪者以其庵之左右溪泉
009_0410_a_14L甘冽水旱未甞增減是豈謂玄竅相通
009_0410_a_15L之地耶庵以雙溪名盖有寓意存焉
009_0410_a_16L則庵之勝亦可見也徃徃佔畢者來
009_0410_a_17L唶曰孔夫子繫辭曰天地㝎位山澤通
009_0410_a_18L雷風相撲水火不相射果是之謂
009_0410_a_19L夫可畏之居此庵者一以觀山溪之
009_0410_a_20L一以踵先人之跡禪者禪敎者敎
009_0410_a_21L不禪不敎者莊點法界須於日用中
009_0410_a_22L諦觀天地是自己之天地也山澤是自
009_0410_a_23L己之山澤也雷風是自己之雷風也
009_0410_a_24L火是自己之水火也天地也山澤也

009_0410_b_01L뇌풍, 수화가 서로의 분별이 사라지고 하나하나 자취가 없어져 소리 없고 냄새도 없는 경지에 이른 연후에, 돌이켜 천지, 산택, 뇌풍, 수화가 저절로 천지, 산택, 뇌풍, 수화임을 본다면 이 경계에 이르러 선인은 누구이며 후인은 어떤 사람이겠는가. 나는 종문의 후손으로 종문의 옛일을 기록하여 감히 장안이 천태天台의 옛 사적을 서술한 것을 본뜨는 바이다. 은사의 법휘法諱에서 위 글자는 문文이요 아래 글자는 식式이다. 화사化士로 세상에 이름났다. 사는 다음과 같다.

特地乾坤      특별한 세계에
諸天日月      제천의 일월이 빛난다
壁殿噲噲      전각이 시원하게 열리고
金鍾落落      금종은 울려 퍼진다
俯臨南斗      남두성을 굽어보고
高枕北極      높이 북극성을 머리에 이었다
鳳去鸞來      봉황과 난새가 오고 가니
天根月窟      천근과 월굴이오
洪鈞造化      홍균이 조화를 부려
弄巧奇絕      기특한 솜씨를 다하였다
萬古禪闕      만고의 선궐禪闕이
煥乎如昨      어제인 듯 빛나니
盍知地靈      지령地靈의 도움이요
盖見人傑      인걸을 보리로다
却愧後生      부끄럽다 후생으로
濫編先蹟      외람되게 선인의 자취를 기록한다.
석교 중수 권선문
사람이 왕래할 때에 어찌 이 길을 따르지 않겠는가. 길 중에서 통하기 어려운 것은 하늘이 가장 으뜸이다. 대저 푸른 파도나 흰 물결도 청작靑雀을 띄우거나 채익彩鷁315)을 타고 달린다면 그 또한 건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큰 강이나 넓은 시내가 길을 막고 있어 조각배나 옷을 걷고 건너지 못할 경우, 누워 있는 창룡蒼龍이나 가로지른 흰 무지개와 같은 다리가 없다면 어찌 건널 수 있겠는가.
운수현雲水縣의 치소治所 남쪽 1인一引(10丈) 쯤에 큰 시내가 가로질러 남북으로 왕래하는 요로를 막고 있다. 읍을 설치한 이래로 석교 열네 칸을 건설하였는데,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무너지고 세우는 것을 반복하여,

009_0410_b_01L雷風也水火也互奪雙亡一一掃蹤
009_0410_b_02L滅跡至於無臭無聲然後飜觀天地自
009_0410_b_03L天地山澤自山澤雷風自雷風水火
009_0410_b_04L自水火則到此境界先人也何人也
009_0410_b_05L後人也何人也我以宗門後昆記宗門
009_0410_b_06L舊事敢斆長安之述天台故蹟也恩師
009_0410_b_07L法諱上字文下字式以化士名於於
009_0410_b_08L世焉詞曰

009_0410_b_09L特地乾坤諸天日月壁殿噲噲

009_0410_b_10L金鍾落落俯臨南斗高枕北極

009_0410_b_11L鳳去鸞來天根月窟洪鈞造化

009_0410_b_12L弄巧奇絕萬古禪闕煥乎如昨

009_0410_b_13L盍知地靈盖見人傑却愧後生

009_0410_b_14L濫編先蹟

009_0410_b_15L

009_0410_b_16L石橋重修勸善文

009_0410_b_17L
人之所徃來者何莫由斯道而道之所
009_0410_b_18L難通者唯天一爲最也夫蒼波白浪之
009_0410_b_19L浮靑雀飛彩鷁其亦至矣而若夫大川
009_0410_b_20L濶溪之欄路阻逕而不可以刳木厲揭
009_0410_b_21L之所能渡則苟欠蒼龍之偃臥白虹之
009_0410_b_22L橫駕而可能飛渡㦲夫雲水治南一引
009_0410_b_23L有大川橫帶而截南北徃來之要路
009_0410_b_24L設邑以來駕石橋十四間閱幾多載

009_0410_c_01L대소의 사신들과 상하로 오가는 행객들이 건너는 것이 괴로워 지체하는 폐단을 면하였다. 이제 오뉴월 사이에 비가 세차게 내려 물살이 성대하여, 주춧돌과 받침돌이 사나운 물결에 그 터와 함께 휩쓸려 가서 상양商羊316)의 환난을 만난 듯하였다. 만일 연성燕星의 용龍317)이 있지 않다면 누가 몸이 젖는 것을 면할 것인가.
본 읍의 태수가 드디어 널리 구제하는 길을 열어, 특별히 전 승통 삼순三淳을 선발하여 그로 하여금 모연하고 중수하게 하니 참으로 위대하다. 태수는 한 읍의 부모요 삼순 스님은 경내의 덕인으로 부모가 명령하고 덕인이 교화하니, 온 읍의 백성들이라면 누구인들 상자를 기울이고 창고를 열어 대천을 건너는 막중한 역사에 다투어 혜시하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한다면 양자강의 14교나 당계唐階의 은색교銀色橋조차도 거의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니 하물며 이 한 석교이겠는가. 선을 짓는 길은 많지만 사람을 구제하는 공이 으뜸이요 또한 옛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으니 뜻있는 군자는 반드시 이 글에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십이원불을 조성하는 권선문
혼돈 이전에 어찌 불佛이라는 글자가 있었겠는가. 다만 음양이 나뉘고 오위五位(오행)의 상이 세워지자, 삼교의 모든 책에서 각각 가르침을 다하여 그 자세한 것을 나타냈다. 이제 이른바 십이원불도 아마 음양오행의 오묘한 이치가 각각 그 처지를 주관하는 것이다. 유학의 태극太極과 노자의 천하모天下母318)와 불가의 일법계一法界가 각각 그 이름을 세워서, 만고의 십이지十二地 일체의 수행인으로 하여금 자기의 본분 중에도 또한 스스로 십이불이 있어 도에 합치되는 줄 알게 한즉, 삼교가 자상하게 분별한 것을 대개 볼 수 있다.

009_0410_c_01L隨圯隨成以免夫大小別星上下行客
009_0410_c_02L病涉稽滯之弊矣今五六月之間霈然
009_0410_c_03L淼然水柱砌駕石爲顚波虐浪所
009_0410_c_04L蹴突和基址而割蕩捺眹如遇商羊之
009_0410_c_05L而未有燕星之龍其孰能免濡尾㦲
009_0410_c_06L本邑太守遂紵普濟之道特甄前僧統
009_0410_c_07L三淳使其募緣而重修之大矣㦲
009_0410_c_08L守一邑之父母三淳一境之德人父母
009_0410_c_09L令之德人化之則一邑境民俗誰不
009_0410_c_10L欲傾箱散廪爭施惠於涉大川莫重之
009_0410_c_11L役㦲夫如是則雖楊江之十四橋唐階
009_0410_c_12L之銀色橋庶幾成就也而況此一石橋
009_0410_c_13L作善之路靡一而濟人之功居最
009_0410_c_14L著乎古典有識君子必將有感於斯文

009_0410_c_15L

009_0410_c_16L造成十二願佛勸善文

009_0410_c_17L
混沌以前豈有佛字但自二儀才判
009_0410_c_18L五位立像三敎諸書各盡悉檀以視
009_0410_c_19L其詳今所謂十二願佛者豈其二五之
009_0410_c_20L而各主其地者耶儒之本太極
009_0410_c_21L之天下母佛之一法界各立其名使
009_0410_c_22L萬古十二地一切行人各知其自己上
009_0410_c_23L行年中亦自有十二佛而反常合道也
009_0410_c_24L則三敎之所以分踈纎悉者槩可見也

009_0411_a_01L
대개 심왕心王의 미묘한 형상은 마음의 눈 속에 있고, 지극한 도가 자리한 곳은 소리와 냄새 이전에 있다. 만약 지위도 없고 이름도 없이 무無 가운데 덕을 이루고, 관문을 열어 정치를 묻고 지극한 이치를 드러내며, 지극한 지혜의 빛을 발하여 인광印光이 융통하면, 주반主伴이 함께 말하고 들으며 같이 불도를 이루고, 주반이 구공俱空하여 별지別地에 이르러 저 십이시처十二時處의 부처님을 만나 모든 시처에 마땅하지 아니함이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크게는 겁겁에 일겁도 그치거나 빠뜨림이 없을 것이요, 작게는 일시라도 그치거나 결함이 없어서 조화의 쓰임이 드러나고 눈으로 도의 이치를 볼 것이다. 만약에 여기에 사람이 있어 자기의 시처를 돌이켜 본다면 십이시처의 부처님이 자기시처의 부처님일 것이다.
나는 대략 그 뜻을 알고 동지와 함께 십이원불을 조성하며, 아울러 그림을 갖추고 불상을 금전金殿의 옥단玉壇 위에 봉안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아무 불상을 보고 가리키며 “이는 과연 자신의 불상이요, 저것도 자신의 불상이오.”라고 말하게 하여, 다투어 흠경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날로 선을 닦아서 수행도 없고 부처도 없는 경지에 이르게 한다면, 가히 십이불과 더불어 일상을 함께할 것이다. 원컨대 여러 단월은 각각 빈부를 따라 곡식을 바치기도 하고 비단을 바치기도 하여 불후한 인연에 혜시하기를 간절히 권하노라.
숭암사 개와 모연문
어찌 법전에 기와가 덮이지 않은 것을 보지 못하느냐. 기와를 덮지 않으면 반드시 허물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9층의 높은 대를 훌륭한 기술자가 솜씨를 다하여 짓는다 할지라도 기와를 덮지 않으면 풍우가 몰아쳐 동량이 모두 썩고, 수년도 되지 않아 건축의 공을 헛되이 할 것이니 어찌 우연이겠는가?

009_0411_a_01L夫心王妙相三星半月之時處也居位
009_0411_a_02L至道無聲無臭之時處也若其無位無
009_0411_a_03L無中成德開關問政用印至理
009_0411_a_04L光至智印光融通主伴說聽同成佛
009_0411_a_05L主伴俱空以至于別地逢渠十二
009_0411_a_06L時處佛無不各當其時處而大則劫劫
009_0411_a_07L無一劫或止或闕小則時時無一時
009_0411_a_08L或息或缺化用披露目轍道存若有
009_0411_a_09L人於此反觀自己之時處則十二時處
009_0411_a_10L之佛即自己時處之佛也山時粗識其
009_0411_a_11L欲使同志共造其十二願佛而兼
009_0411_a_12L備蘇繪奉像于金殿玉壇之上將使人
009_0411_a_13L觀其某像而指之曰此果自己之
009_0411_a_14L佛也彼果自己之佛也爭欲欽敬而
009_0411_a_15L回觀自己修善日漸以至于無修無佛
009_0411_a_16L則可與十二佛同駈駕於日用中矣
009_0411_a_17L諸檀越各隨豊儉糓者糓帛者帛
009_0411_a_18L施惠於不朽之緣至勸

009_0411_a_19L

009_0411_a_20L崇巖寺盖瓦募緣文

009_0411_a_21L
盍觀夫樹殿不盖者乎不盖必廢故
009_0411_a_22L臺九層雖使倕材架窮精終無盖孤立
009_0411_a_23L則方風雨滂上棟樑俱朽不數年間
009_0411_a_24L空覆盖之功豈偶然㦲寺之法殿也

009_0411_b_01L절의 법전은 창건된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덮개와 벽이 거의 모두 썩고 깨졌다. 이와 같은데도 분발하고 진작하여 덮개를 바꾸지 않으면 들보와 서까래가 썩고 기둥과 마루가 무너지는 것이 머지않을 것이니, 불상은 어디에 봉안하며 스님은 어디에서 조석으로 향을 사르고 불을 밝힌 것인가.
나는 기와를 바꾸는 일에 개연히 뜻을 두었으나 일이 막중하고 힘이 약하여 홀로 이룰 수가 없었다. 이에 단문에 모연募緣하여 변화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아! 옛사람이 갈대 삿갓으로 부처님의 이마를 덮어 주어 만승천자의 지위를 누렸다. 만일 기와를 굽는 일에 혜시惠施하여 넓고 깊은 금벽金碧의 법전을 덮는다면 단나의 복이 삿갓 하나를 보시하여 만승을 누리는 복에 그치지 않을 것이니 청컨대 이 글에 서명할지어다.
큰북을 조성하는 모연문
하늘에 현묘한 조화는 일정함이 없으나 우레가 아니면 중생을 고무시킬 수 없고, 부처님의 진기眞機는 헤아릴 수 없으나 큰 소리가 아니면 큰 꿈을 깨울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모든 총림에서는 큰북을 만들어 운뢰각雲雷閣에 걸어 두니 그것이 법기法器임을 밝힌 것이다. 대저 법회에 한 번 치면 삼천계三千界를 진동하고, 청정한 곳에서 때때로 울리면 팔만문八萬門에 퍼지니 이에 사생四生이 숨을 죽이고 만물이 소생하여 깨우친다. 위로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고 아래로 공륜空輪319)까지 가득하여 산해山海의 중생들이 모두 어리석음을 깨치고 번뇌를 제거하여 만겁의 꿈에서 깨어나니, 부처님이 법기를 빌려 법음을 울리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데 무엇이 이보다 더 크겠는가!
이 절은 모든 기물이 거의 갖추어졌으나 오직 북만 성취하지 못했으니 어찌 뜻있는 자의 마음에 창피하지 않겠는가? 이에 단문에 권선하지 않을 수 없으니 원컨대 여러 군자들은

009_0411_b_01L創來久矣盖障垂皆朽破如此而不奮
009_0411_b_02L然振作更盖則杗桷蠹朽棟顚屋摧
009_0411_b_03L指日可待佛安得存像而僧安得朝夕
009_0411_b_04L焚點於其間㦲山野慨然志于更盖
009_0411_b_05L務重力綿難可獨辦此不可不募緣於
009_0411_b_06L壇門而求化也昔人以蘆笠覆佛頂
009_0411_b_07L享萬乘天子之位倘有惠施於燔瓦之
009_0411_b_08L而盖潭潭金碧法殿則檀那之福祿
009_0411_b_09L不啻如捨一笠享萬乘而止矣請署斯
009_0411_b_10L

009_0411_b_11L

009_0411_b_12L造大皷募緣文

009_0411_b_13L
天之玄化固無方而非大壯則不能皷
009_0411_b_14L於群動佛之眞機亦叵測而非大音
009_0411_b_15L則不能覺於大夢故凢有叢林莫不爲
009_0411_b_16L大皷而懸於雲雷之閣以昭其法器也
009_0411_b_17L夫法會一振盪激三千界淨居時吼
009_0411_b_18L動八萬門於是四生竦息萬類蘇惺
009_0411_b_19L至上極有頂下彌空輪陸海神識
009_0411_b_20L皆發冥蒙袪塵滯而覺萬劫之魂夢
009_0411_b_21L佛之假法器振法音度生類含識者
009_0411_b_22L孰大於是也㦲惟玆寺也凢百垂備而
009_0411_b_23L唯皷也尙未能成就豈不昌披於志者
009_0411_b_24L心乎此不可不勸善於檀門願諸君子

009_0411_c_01L베틀의 비단을 끊고 창고의 곡식을 기울여 이 역사를 도울지어다. 법기를 조성하고 법음을 울려서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으로 하여금 감동케 하며, 큰 꿈에서 깨어날 수 있도록 우레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고무하는 것처럼 한다면 단나가 복을 얻는 것이 이 북에 영원히 의뢰할 것이니 소홀하지 않기를 바라노라.
천불의 그림을 그리는 모연문
불상佛像을 짓는 것은 우전왕于闐王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로 초상을 설치하고 받들어 모시는 것은 한두 분의 부처님이 아니면 서너 분의 부처님뿐이었다. 열 분의 부처님, 스무 분의 부처님 그리고 백 분의 부처님도 그려 내지 못하거늘 하물며 천 분의 부처님이겠는가. 이제 아무개가 천불千佛을 그리고자 하는데 천불을 그려서 한 전각에 엄숙히 모두 모신다면, 사람들이 차례로 예족禮足하면서 “이분은 아무 부처님이요. 저분은 아무 부처님이다.”라고 하며 천 분의 부처님께 이른다면 그 공덕은 한두 분의 부처님만 그려 모시는 자의 공덕보다 한량없을 것이다.
불경에 “한 번만이라도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말하면 모두 불도를 이룬다.”고 하였으니 하물며 천불의 이름을 칭하고서 불도를 이루지 못할 것인가. 불상을 조성하는 공덕은 경문에 갖추어 기록되어 사람마다 익히 들은 바이니 내 말을 기다리지 않고도 알 것이다. 원하노니 여러 시주는 내 말을 의심하지 말고, 모두 기쁜 마음으로 다투어 금고를 열고 좋은 인연을 맺는다면 천불에 한 분을 더하리라는 것을 단연코 의심할 바 없으니 힘쓸지어다.
문수암 화불 권선문
대저 절은 부처님의 집이요 부처님은 절의 주인이다.

009_0411_c_01L截機素傾廪紅以助此役而成法器
009_0411_c_02L振法音使大千含靈感動而覺大夢
009_0411_c_03L如大壯之皷於羣動則檀那之獲福
009_0411_c_04L於是皷乎永賴矣幸勿忽諸

009_0411_c_05L

009_0411_c_06L畫成千佛募緣文

009_0411_c_07L
佛像之作昉於于闐王自後設肖像而
009_0411_c_08L承奉者非一佛則二佛非二佛則或三
009_0411_c_09L四佛而已不能寫十佛二十佛至於百
009_0411_c_10L況千佛乎今某準擬繪畫千佛
009_0411_c_11L畫千佛而儼然咸奉一殿中使人次
009_0411_c_12L第禮足而稱之曰此某佛也彼某佛也
009_0411_c_13L以至於千佛之多則與只寫一二三四
009_0411_c_14L佛者功德奚但萬萬經曰一稱南無佛
009_0411_c_15L皆以成佛道況稱之至於千佛而有未
009_0411_c_16L成佛道者乎造像功德備載經文
009_0411_c_17L人人素所稔聞不待余之喋喋而知矣
009_0411_c_18L願諸檀那不嚇我而擧欣欣然爭相胠
009_0411_c_19L篋倒籐以結良緣則加一數於千佛
009_0411_c_20L斷無疑矣勉諸

009_0411_c_21L

009_0411_c_22L文殊庵畫佛勸善文

009_0411_c_23L
夫寺佛之家也寺之主也有家而
009_0411_c_24L不可無主有主而不可無家故有家必
009_0411_c_25L有主有主必有家有家無主謂之家

009_0412_a_01L집만 있고 주인이 없을 수 없고 주인만 있고 집이 없을 수 없으니, 집이 있으면 반드시 주인이 있고 주인이 있으면 반드시 집이 있는 법이다. 주인 없는 집이나 집 없는 주인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이제 절을 지었는데 불상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비록 절이 있다 해도 절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불상을 조성하여 절에 모시고 주인이 있게 할 뜻이 있었으나 혼자 힘으로 이루지 못하니 어찌 힘이 약하다는 탄식이 없겠는가! 대저 길가에 작은 집을 짓더라도 오히려 그 일을 돕거늘 하물며 불상을 조성하는 인연에 은혜를 베푸는 이가 없겠는가. 불경에 “만일 불상을 조성하거나 보수하면 부처가 되거나 천신이 되는 좋은 인연이 된다.”고 하였다. 원하노니 여러 시주는 청동을 시주하고 황윤黃潤(고급 직물)을 잘라 이 역사를 이루어, 절에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께 절이 있게 하면 그 공덕이 반드시 부처가 되거나 천신이 되는 데에 가까우리니 힘쓸지어다.
수보 권선문
수리할 것이 있고 수리하지 못 할 것이 있으며, 보수할 것이 있고 보수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수리할 수 있으면 수리해야 하고 보수할 수 있으면 보수해야 한다. 권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권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선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있고 선으로 여길 수 없는 것이 있다. 권할 수 있는 것은 권하지 않을 수가 없고, 선으로 여기는 것은 선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수리하고 보수할 수 있는 것은 권해야 하고, 수리하고 보수할 수 없는 것은 권할 수 없다. 선으로 여기는 것은 권해야 하고 선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권하지 말아야 한다.
이 암자는 모든 기물이 다 결여되고 위아래의 칠과 벽이 모두 벗겨지고 깨졌으니, 수리하고 보수하며, 또 권하고 선하게 할 만하지 아니한가. 만약 결여되거나 깨지지 않았는데 보수한다면 권할 수도 없고 선하다고 여길 수도 없다. 이 네 가지가 가능한데, 가능하다고 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옳지 못하다. 무릇 한 가지 가능한 것도 불가하다고 하면 안 되는데, 네 가지 가능한 것을 불가하다고 하겠는가. 한 가지 가능한 것도 얻기 어려운데 네 가지 가능한 것을 얻음이겠는가. 한 가지 가능한 것을 가하게 하여도 복이 한없는데 하물며 네 가지 가한 것을 가하게 함이겠는가. 이 때문에 산승이 권할 만한 것을 권하노니

009_0412_a_01L有主無家謂之主者未之有也今夫寺
009_0412_a_02L已創而佛未能成就雖有寺可謂之寺
009_0412_a_03L山野志于造佛奉于寺使家有主主
009_0412_a_04L有家而未能以一力獨辦豈無弱轅之
009_0412_a_05L嘆乎夫路傍院宇之創猶可助其役也
009_0412_a_06L況於造佛之緣可無惠施者乎經曰若
009_0412_a_07L造若修之妙利乃佛乃天之良因願諸
009_0412_a_08L檀那散靑銅截黃潤以成此役使寺
009_0412_a_09L有佛佛有寺則其功德必幾於乃佛
009_0412_a_10L乃天者矣勉諸

009_0412_a_11L

009_0412_a_12L脩補勸善文

009_0412_a_13L
修有可修不可修補有可補不可補
009_0412_a_14L可修不可不修有可補亦不可不補
009_0412_a_15L有可勸不可勸善有可善不可善有可
009_0412_a_16L勸不可不勸有可善亦不可不善勸可
009_0412_a_17L修可補可勸勸不可修不可補不可勸
009_0412_a_18L善可勸可善善不可勸不可善是庵也
009_0412_a_19L凡百什物俱缺上下塗壁皆破可不謂
009_0412_a_20L可修可補可勸可善若不缺破擬修補
009_0412_a_21L不可勸不可善有此四可而不四可誠
009_0412_a_22L不可凡一可不可不可況不可四可
009_0412_a_23L一可難可得況可得四可可一可
009_0412_a_24L不可量況可四可故山野勸可勸

009_0412_b_01L여러 군자들은 선하다고 여기는 일을 행할지어다.
불기 권선문
부처님을 모시려면 반드시 기물을 만들어야 한다. 기물을 만들지 않고 부처님을 모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 암자는 창건된 지 오래되지 않아 불상은 겨우 이루고 봉안하였으나 기물은 결여되었으니 어찌 창피하지 않은가? 대저 이 기물은 변두籩豆와 호련瑚璉320)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옛날 네 왕이 부처님께 바친 유리 발우나, 유마 거사가 보살에게 공양한 향적香積 세계의 발우가 곧 이제 말하는 이 기물의 종류일 것이니 부처님께 받들어 공양하는 자는 이 기물이 없을 수 없다. 모든 착한 선비는 각각 단문을 열어 이 기물을 이루면 복을 얻지 못한다고 어찌 의심할 것인가. 힘쓸지어다.
불상 수보문
완산부 북쪽 추줄산崷崒山 남쪽에 은선암隱仙庵이 있는데, 경계가 우뚝하고 맑아서 한 티끌도 이르지 않으니 수월水月 같은 부처님의 모습을 연좌 위에 모셨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도금이 벗겨지고 뱃속의 진장珍藏도 모두 흩어져 텅 비게 되었다. 아아! 지인至人의 경계는 본래 영허소장盈虛消長의 이치가 없으니, 금강의 진체眞體가 어찌 훼멸毁滅하겠느냐마는 범부의 눈으로 보매 어찌 마음이 슬프지 않겠는가. 하물며 나는 불도를 공경하여 우러르는 정성이 일찍부터 마음에 쌓인지라, 이제 이렇게 훼상毁傷됨을 보고 어찌 남보다 더욱 애통해 하며 용감하게 보수하지 않겠는가! 이에 단문에 모연하노니 원컨대 여러 군자는 각각 빈부에 따라 혜시하여,

009_0412_b_01L君子善可善

009_0412_b_02L

009_0412_b_03L佛器勸善文

009_0412_b_04L
佛乎佛必器乎器不器乎器欲佛乎
009_0412_b_05L佛者未之可也之庵也創未久矣
009_0412_b_06L纔成就奉安而器則闕如也豈無昌披
009_0412_b_07L者乎夫斯器也非籩豆瑚琿之謂也
009_0412_b_08L昔者四王之所獻佛琉璃鉢維摩之供
009_0412_b_09L菩薩香積鉢即今之所謂此器者流歟
009_0412_b_10L則奉佛獻供者不可無此器也凡百善
009_0412_b_11L各開檀門以成此器則方可爲器
009_0412_b_12L乎器而佛乎佛佛乎佛而胡疑乎福
009_0412_b_13L或不得者也勉諸

009_0412_b_14L

009_0412_b_15L佛像修補文

009_0412_b_16L
夫完府之北崒山之南有庵曰隱仙
009_0412_b_17L觸境凛然一塵不到水月睟容奉安
009_0412_b_18L于蓮座之上而多經歲月軆脫其金
009_0412_b_19L腹中珍藏亦皆散頓枵然其空嗟呼
009_0412_b_20L至人境界本無盈虛消長之理金剛眞
009_0412_b_21L寧且有毁滅耶在凡人所見安得不
009_0412_b_22L㤷然而傷心㦲況如山野敬仰佛道之
009_0412_b_23L夙蘊于中矣今見此毁傷能不倍
009_0412_b_24L痛於人而勇爲之補理耶是用募緣於
009_0412_b_25L檀門願諸君子各隨豊儉惠施於此

009_0412_c_01L금신金身을 보수하기를 달빛이 이지러졌다가 다시 둥글게 빛나듯이 한다면, 산승의 마음에 슬픔이 사라지고 여러 군자의 복도 한이 없을 것이니 힘쓸지어다.
괘불탱 권선문
대개 석교釋敎에서 망상罔像의 초상을 세우는 것은 『주역』에서 무상無象의 대상을 세우는 것과 같다. 상象을 세우지 않으면 뜻을 다하지 못하고, 상像을 모시지 않으면 진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우전왕이 신령한 위의를 그리고 그 상을 모셔서 만세토록 착한 마음을 흥기하게 하고, 가상假像을 빌려 황홀한 가운데 진리를 드러냈으니 상을 모시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절에 괘불이 없은 지 오래되었다. 이에 두타 잠공岑公이 개연히 분발하여 새로 조성할 것을 뜻하니 단문에 모연하지 않을 수 없고 권선문이 없을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애써 백 리 밖으로 나에게 청하였으니 내가 비록 재주 없으나 어찌 감히 미혹되어 못난 솜씨나마 발휘하지 않겠는가.
대저 손톱으로 그림을 그려서 깨달음을 이룬 것은 『연화경』에 보이고, 불상을 이루어서 복을 얻은 일은 불경에서도 들어 보았다. 하물며 이 괘불의 그림은 오채五彩로써 부처님의 위의를 그려 허공에서 걷는 듯하게 함이랴. 만약 마음 있는 단나가 베틀의 비단을 자르고 창고의 곡식을 기울이며, 기쁜 마음으로 상을 모시고 진리를 드러내는 역사에 조연한다면 성불도 머지않을 것이요 무궁한 복을 얻을 것이니 힘쓸지어다.
권선문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한 말씀을 증자曾子에게서 들었고321) 여앙여경餘殃餘慶의 말씀은 『주역』에 보인다.322) 선악의 인과응보는 서로 잇따르니 만일 물욕物欲을 변화시킨다면 요순의 성선性善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안택安宅(仁)을 비워 두고 거처하지 않는다는 전 시대의 교훈이 있고, 평탄한 길을 닦아 편안히 걸으라는

009_0412_c_01L而俾得修補金身煥如月斯缺而未幾
009_0412_c_02L復圓則非惟山野之心無傷君子之福
009_0412_c_03L祿亦必無疆矣勉旃

009_0412_c_04L

009_0412_c_05L掛佛幀勸善文

009_0412_c_06L
盖觀釋敎之設肖像於罔像有如易道
009_0412_c_07L之立大象於無象象不立則意不盡
009_0412_c_08L不設則眞不顯也故闐王描靈儀而
009_0412_c_09L設其像使萬世無不油然而藉假顯眞
009_0412_c_10L於恍惚中像之設豈偶然㦲寺無掛
009_0412_c_11L佛久矣爰有頭陀岑公慨然奮出
009_0412_c_12L于新成不可不募緣於檀門而亦不可
009_0412_c_13L無勸文故强而百里外請余余雖不才
009_0412_c_14L安敢迷藏而不效嚬㦲夫爪畫成覺
009_0412_c_15L於蓮花成獲福聞于貝葉況此掛
009_0412_c_16L佛之繪五彩邈金儀煥若天中天步虛
009_0412_c_17L者乎若乃有心檀那截機素傾廪紅
009_0412_c_18L隨喜助緣於設像顯眞之役則成佛不
009_0412_c_19L獲福無窮矣勉諸

009_0412_c_20L

009_0412_c_21L勸善文

009_0412_c_22L
出乎返乎曾有聞於曾子餘殃餘慶
009_0412_c_23L豈不見於周書善惡因緣報應承襲
009_0412_c_24L物欲倘變於齊魯性善可期於唐虞
009_0412_c_25L安宅而不居前代覆轍修坦途而平步

009_0413_a_01L선성先聖의 유훈이 있으니, 원컨대 여러 단월檀越은 인인仁人이 재물을 나누어 주는 풍모를 생각하고 군자가 선을 즐겨하는 의리를 본받아 각각 즐겨 혜시하여 좋은 인연을 심을지어다.
송광사 연화당 중창 모연문
대저 사람들은 복이 복인 줄만 알지 복이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며, 재앙이 재앙인 줄만 알지 재앙이 되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만일 복이 되는 까닭을 알려고 한다면 오직 선일 뿐이요, 재앙이 되는 까닭을 알려고 한다면 불선일 뿐이다. 이 때문에 『주역』에 경앙慶殃의 설이 있고 『맹자』에 출반出返의 이야기가 있으니, 선하고 복을 받지 않는 경우는 없으며, 불선하고 재앙을 입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다. 사람으로서 이미 복과 재앙을 안다면, 어찌 복과 재앙의 까닭을 알아서 오직 선을 행하고 불선을 행하지 않으려 하지 않는가.
이 절은 나라의 명찰이요, 이 연화당은 절의 빼어난 건물이다. 뜻밖에도 작년 봄에 불길에 소실되었다. 거주하는 사람들이 슬퍼했을 뿐 아니라 지나가는 나그네들도 안타까워하였다. 나는 개연히 분발하여 다시 새롭게 하기를 꾀했으나 여러 군자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일을 마치기 어렵기 때문에 감히 짧은 글을 꺼내어 사성四性의 어진 이에게 고한다. 원컨대 군자들은 이 여경여앙餘慶餘殃의 설을 수긍하고, 힘이 되는 대로 혜시한다면 복이 반드시 가까워지고 화는 멀어질 것이니 힘쓸지어다.
봉향산실 서
천지간에 가장 높은 것은 태산이요, 가장 큰 것은 창해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태산이 높은 것 중에 으뜸이요, 창해가 큰 것 중에 으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태산의 높이를 사람들에게 “이는 높다고 할 수 없다.” 하고,

009_0413_a_01L先聖遺謨願諸檀越思仁人散財之風
009_0413_a_02L效君子樂善一義各肎惠施幸樹良因

009_0413_a_03L

009_0413_a_04L松廣寺蓮花堂重剏募緣文

009_0413_a_05L
夫人皆知慶之爲慶而不知慶之所以
009_0413_a_06L爲慶知殃之爲殃而不知殃之所以爲
009_0413_a_07L如欲知慶之所以爲慶唯善而已
009_0413_a_08L知殃之所以爲殃唯不善而已故易有
009_0413_a_09L慶殃之說傳有出返之談夫善而不
009_0413_a_10L慶者未之有也不善而不殃者亦未之
009_0413_a_11L有也人而旣知慶殃之爲慶殃則盍欲
009_0413_a_12L知慶殃之所以爲慶殃唯善是爲唯不
009_0413_a_13L善是不爲㦲惟玆寺也國中名刹
009_0413_a_14L玆堂也亦寺之勝舍也豈知客年之春
009_0413_a_15L遽爲回祿之所燬者乎不唯居人之所
009_0413_a_16L爲過客之所惜山野慨然奮出
009_0413_a_17L復一新而不藉衆君子之助緣則難可
009_0413_a_18L以蕆役故敢袖一軸短䟽仰諭四性
009_0413_a_19L仁門願君子頷此慶殃之說而隨力
009_0413_a_20L惠施則慶必近而殃斯遠矣勉諸

009_0413_a_21L

009_0413_a_22L奉香山室序

009_0413_a_23L
穹壤間最高者泰山也最大者滄海
009_0413_a_24L故人皆知泰山之高高之長也滄海
009_0413_a_25L之大大之宗也以泰山之高語人曰是

009_0413_b_01L창해의 크기를 사람들에게 “이는 크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우활迂闊하다고 여겨서 듣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
대저 믿지 않는 자는 한갓 태산의 높이와 창해의 크기만을 보고, 태산 외에 또한 태산보다 높은 것이 있고 창해 밖에 또한 창해보다 더 큰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높은 것은 태산보다 높은 것이 없되 높은 것이 되지 못하니 제가 말하는 높은 것 중에 높은 것이요, 큰 것은 창해보다 큰 것이 없되 큰 것이 되지 못하니 이것이 제가 말하는 큰 것 중에 큰 것입니다. 진실로 사람이 높은 것 중에 높은 것을 보고 큰 것 중에 큰 것을 본다면 비록 태산 위에 앉더라도 높지 않다고 여길 것이요, 창해를 건너더라도 크지 않다고 안타깝게 여길 것이니, 누가 듣고 믿지 않겠습니까. 그러한즉, 저들이 높다고 말하는 것은 저들이 높다고 한 것을 높다고 여길 뿐이요, 제가 말하는 높은 것은 아닙니다. 저들이 크다고 말하는 것은 저들이 크다고 한 것을 크다고 여기는 것이요, 제가 말하는 큰 것은 아닙니다.
대저 제가 높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크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넓은 거처(仁)에 살며 바른 길(義)에 서서, 행동은 천하를 도와 덕이 되며, 그 도는 높아 사람이 헤아리지를 못하고, 그 덕은 커서 사람들이 짐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제가 높고 크다고 하는 것입니다. 대저 높이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은 태산의 높이요,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창해의 크기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태산이 높다는 것을 아니 높이를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으며, 사람들이 모두 창해가 크다는 것을 아니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이 도와 덕은 그렇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그 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그 끝을 엿보지 못하니 이는 참으로 높은 것 중에 높은 것이요, 큰 것 중에 큰 것이라고 이를 만합니다.
아아! 오도吾道의 쇠잔함이 오늘처럼 지리멸렬한 때가 없었습니다. 오직 자실慈室께서 우뚝 한번 나오셔서 이 도를 진작시키고 이 덕을 드러내시어

009_0413_b_01L不足高以滄海之大語人曰是不足大
009_0413_b_02L人皆爲迂濶不聽信也夫不聽信者
009_0413_b_03L見其泰山之高滄海之大而未見其泰
009_0413_b_04L山之外亦有高於泰山者滄海之外
009_0413_b_05L亦有大於滄海者也高莫高於泰山
009_0413_b_06L爲不足高焉則吾所謂高高之高也
009_0413_b_07L莫大於滄海而爲不足大焉則吾所謂
009_0413_b_08L大大之大也苟人果見其高之高大之
009_0413_b_09L則雖使之坐泰山之上而猶嫌不高
009_0413_b_10L涉滄海之中而猶惜不大夫孰不聽信
009_0413_b_11L然則彼所謂高高其所高非吾所
009_0413_b_12L謂高也彼所謂大大其所大非吾所
009_0413_b_13L謂大也夫吾所謂高也何高也大也何
009_0413_b_14L大也居廣居立正路動爲天下道
009_0413_b_15L爲天下德其道也高而人莫測其高
009_0413_b_16L德也大而人莫酌其大者是吾所謂高
009_0413_b_17L也大也者也夫測其高者泰山之高也
009_0413_b_18L酌其大者滄海之大也人皆知泰山之
009_0413_b_19L高高之長也非高之有測乎人皆知滄
009_0413_b_20L海之大大之宗也非大之有酌乎夫是
009_0413_b_21L道也是德也則不然人莫能覰其罅隙
009_0413_b_22L窺其涯涘是可謂高之高大之大者也
009_0413_b_23L吾道之殘缺莫有今日之裂也
009_0413_b_24L惟大慈室傑然一出寔振斯道誕顯斯

009_0413_c_01L현묘한 교화를 성대하게 펼치고, 지혜의 횃불을 빛나게 하셨으니 참으로 위대합니다. 이 도는 태산의 높이로도 짝이 되기 어려우며 이 덕은 창해의 크기로도 비유할 수가 없으니, 높은 것 중에 높으며 큰 것 중에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중국은 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땅이요, 우리나라 또한 부처님께서 교화하시는 곳입니다. 섭등攝騰이 온 뒤로 중국에 지혜의 빛이 크게 밝아졌고, 자실이 나온 뒤로 동국에 현묘한 교화가 다시 진작되었습니다. 예전에 자실이 중국에 나오셨다면 자실이 곧 섭등이요, 이제 섭등이 우리나라에 오신다면, 섭등이 자실일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섭등과 시대가 멀고 또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그 풍격을 듣고 기뻐하니, 하물며 우리 자실께서는 우리나라에 태어나셨으니 그 풍격을 듣는 자가 누군들 앞다투어 뵈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저 또한 풍격을 들은 지 오래되어 한번 친히 훈도를 받고자 하였으나, 길이 남북으로 떨어져 뵈올 길이 없어 저의 간절한 마음만 가슴속에 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뜻밖에 당신께서 남쪽으로 거동하셔서 한 번 뵙고 회포를 풀게 되었으니 이렇게 좋은 날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시경』에서 “우연히 만나니 내 마음에 딱 들어맞는다.”고 하는 격입니다. 이 때문에 감히 부질없는 말로 태산의 높이와 창해의 크기를 묘사하여 당신의 높은 도와 큰 덕에 만분의 일이나마 견주어 보았습니다.
남계에게 보내는 편지
사람들은 모두 교분이 친밀한 것을 좋아하고 소원한 것을 싫어합니다. 저는 반대로 소원한 것이 친밀한 것보다 낫다고 여깁니다. 옛사람의 시에 “친밀하게 믿음을 맺는 것은 소원한 것만 못하다.

009_0413_c_01L使玄風窢罭俾慧炬熠煌大㦲
009_0413_c_02L道也泰山之高難與爲逑也是德也
009_0413_c_03L滄海之大無足爲喩也非所謂高於高
009_0413_c_04L之高大於大之大耶盖中國能仁之化
009_0413_c_05L土也東國亦能仁之化土也攝騰來後
009_0413_c_06L中國之慧月大朗慈室出後東國之玄
009_0413_c_07L風再振向使慈室出於中國則慈室即
009_0413_c_08L攝騰也今使攝騰來於東國則攝騰
009_0413_c_09L即慈室也且今人之於攝騰也世未知
009_0413_c_10L幾千年地未知幾千里而聞其風而悅
009_0413_c_11L況我慈室生於東國長於東國
009_0413_c_12L東國之人也則居東國而聞其風者
009_0413_c_13L不欲預謁之爭先乎余亦聞其風久矣
009_0413_c_14L願一親炙而地隔南北莫由得接區區
009_0413_c_15L一念尖尖滿載於心腑間而已不意今
009_0413_c_16L幸遇鳳儀之一涉南天承顏劈懷
009_0413_c_17L今夕何夕可謂邂逅適願者也故敢以
009_0413_c_18L寒談冷語摸泰山之高畫滄海之大
009_0413_c_19L比道之高德之大之萬一云

009_0413_c_20L

009_0413_c_21L寄南溪書

009_0413_c_22L
人皆以交密爲好交踈爲惡我則反彼
009_0413_c_23L以爲交密不如交踈之爲愈也古人有
009_0413_c_24L詩云信之相結密不以相結踈踈別

009_0414_a_01L소원하면 이별할 때 한이 작지만 친밀하면 이별의 시름을 억누르기 어렵다.”고 하니, 바로 제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교분이 친밀한 가운데서 더욱 친밀한 사람이 있더라도 누가 형만 하겠습니까. 이제 봄도 삼월이 됐는데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멀리서나마 위로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저는 문자에만 빠져 심전心田이 거칠고 미세한 법박法縛을 벗어나지 못해, 해진 솜옷을 입고 가시덤불을 지나는 듯 이리저리 이끌리는데, 형의 맑고 높은 안목으로 보면 한 번 웃고 꾸짖을 것입니다. 언제나 청풍백월헌淸風白月軒에서 다시 만나서 이 친밀한 회포를 풀어 볼까요. 화암花巖을 바라보니 마음이 더욱 아득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한암에게 답하는 편지
청춘에 고향을 떠나고 나서 늙어 고향에 돌아오니 요동의 학323)과 같은지라, 누가 나를 알아보겠습니까. 승속僧俗에 가까운 친척도 없고, 다만 도반道伴 중에 한두 지기와 함께 한적한 가운데 일상의 삼선三禪을 희롱할 뿐입니다. 뜻밖에 편지를 보내어 이 적적함을 위로해 주니, 두세 번 읽어 보고 음미하는데 황금보다 더 귀합니다. 저는 예전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용추사에 있을 때에 어수魚水의 즐거움을 다하지 못하고 갑자기 운우雲雨처럼 헤어졌으니 인간사 뜻 같지 않다는 말이 이를 말하는 듯합니다. 나머지 말씀은 다하지 못합니다.
형계에게 보내는 편지
용추사에 있을 때 비록 침상을 함께하지 못하였으나 때때로 뵐 수는 있었습니다. 이제는 멀리 이별하여 이 회포를 다시 풀 길 없으니 슬픈 마음은 피차 같을 것입니다. 요즈음 수도하시는 생활이 좋으신 듯하니 참으로 위로됩니다. 저는 노환이 날로 심하니 마음만 어지러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여생을 힘써 근본사를 참구할 뿐이니, 이것이 구하면 얻는다는 도리인 것입니다.

009_0414_a_01L恨應少密離愁難抑者政通此漢心事
009_0414_a_02L夫相結之密復密誰如吾兄乎
009_0414_a_03L者春月已三未審法候如何遠慰殊切
009_0414_a_04L老漢汨沒筌蹄蕪穢心田微細法縛
009_0414_a_05L未能撥脫猶若衣破絮行棘中不免爲
009_0414_a_06L左右牽碍以兄脫灑高眼見之則當一
009_0414_a_07L笑一唾矣何當更會於淸風白月軒
009_0414_a_08L此密懷耶引領花巖情更悠悠不宣

009_0414_a_09L

009_0414_a_10L答寒巖書

009_0414_a_11L
靑春去鄕白首歸來事同遼鶴孰能
009_0414_a_12L我知僧俗家並無大小功之親戚法侶
009_0414_a_13L中唯有一二人之知己相與安寂中閑
009_0414_a_14L弄日用三禪而已何來一札慰此岑寂
009_0414_a_15L披玩再三貴越雙金也老漢一似舊
009_0414_a_16L但在龍湫日未盡魚水之樂遽作雲
009_0414_a_17L雨之散人間事不如意者可謂此也
009_0414_a_18L餘萬不究

009_0414_a_19L

009_0414_a_20L寄荊溪書

009_0414_a_21L
在龍湫日雖未得被穿同床而有時副
009_0414_a_22L覿面之緣今已作遠別人此懷末由更
009_0414_a_23L悵缺應一般也即惟此時道況珍
009_0414_a_24L慰慰不已老漢衰病日甚憒憒何
009_0414_a_25L但隨餘年力持本叅是爲求則得

009_0414_b_01L그러나 음양의 적이 침범하여 노쇠함이 바야흐로 예전보다 열 배나 심하여, 수행이 온전하고 전일하지 못하니 회한한들 어찌하겠습니까. 바라건대 장실丈室께선 노년에 이르기 전에 일상의 수행에 힘써 끊임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목암에게 보내는 편지
남쪽과 북녘 각자의 소식을 여러 달이 지나도록 막연하여 듣지 못하니 그리운 마음이 자철磁鐵보다 더합니다. 이제 가을도 어느덧 9월이 되었는데 가르치는 생활은 어떠하신지요. 멀리서 그립습니다. 병든 저는 두 해 연속 흉년을 만나 곤궁함이 더욱 심하고, 본래 병골이라 배고픔을 참거나 고통에 익숙지 못합니다. 게다가 온 산의 풍경을 한 발우에 채울 도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름부터 가을까지 하루에 두 번씩 5홉의 식사는 거르지 않으니 아마도 그대가 정성으로 보살펴 준 덕분일 것입니다. 바라노니 불도佛道를 위하여 실중室中의 일을 더욱 간절히 하기를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운수 명장실에게 보내는 편지
사람의 마음은 목석과 같기 어려운지라, 항상 고개 너머를 바라보며 떨어져 사는 근심을 없애려고 해도 없애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는 속세에서 이별하고 만나는 관문을 벗어나지 못하여 저절로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지요. 요즈음 스님께서 수행하시는 생활이 좋으시다 하니 멀리서나마 위로됩니다. 저는 나이가 이미 칠십이 되어 노쇠함이 심하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번에 보내 준 과책科冊은 기일에 맞추어 온전하게 돌려 드립니다. 서로 백 리나 떨어져 있고 또 이같이 흉년이 들게 돼 오가기가 자유롭지 않아서 자연히 지연되었습니다. 이제 알맞은 인편이 있어 비로소 보내 드리니 기한을 어겼다고 꾸짖지 마시고 받았다는 회신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009_0414_b_01L之之道也而陰陽賊闖衰隙方劇
009_0414_b_02L前日十倍之侵業不全一悔恨何及
009_0414_b_03L唯希丈室及其年光未甚暮須叅日用
009_0414_b_04L事無間幸甚餘不縷縷

009_0414_b_05L

009_0414_b_06L寄牧庵書

009_0414_b_07L
各南北消息閱累朔而漠然無聞懸懸
009_0414_b_08L一念劇於磁鉄即者秋月已九未審
009_0414_b_09L講況甚似遠戀遠戀病老連値荒年
009_0414_b_10L旣百倍本以病骨未曾忍饑習苦
009_0414_b_11L無道力能化滿山風景於一盂飯而自
009_0414_b_12L夏徂秋無一日不兩時尙不絕五合
009_0414_b_13L此豈吾丈室輩相與顧助眷眷之惠
009_0414_b_14L統希室中事爲道益切耳不宣

009_0414_b_15L

009_0414_b_16L寄雲水明丈室

009_0414_b_17L
人心難與木石同頑每引領嶺外鏖却
009_0414_b_18L離索憂不得豈此情界中未透出離合
009_0414_b_19L關者自不得不爾耶遠惟此時道體珍
009_0414_b_20L懸尉不已病老年登七十衰甚何
009_0414_b_21L但前來科册即當依期完璧而相
009_0414_b_22L去宿舂地年荒又如此去來行色不可
009_0414_b_23L任意於此間自爾稽延玆仍適便始得
009_0414_b_24L送似望須母 [11] 還失期之讓而回示領
009_0414_b_25L納至企

009_0414_c_01L
도 대사에게 보내는 편지
백향산白香山324)과 원미지元微之325)가 서로 만나지 못한 것이 3년이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한 것도 몇 해나 지났는지 아득하여 격세의 일인 듯합니다. 그리운 마음이 그지없었는데, 멀리서나마 수도하시는 생활이 좋으시다 생각되니 위로됨이 한량없습니다. 저는 묵은 병으로 누운 채, 정신이 날로 어지러워 성현의 경전도 엿볼 길이 없고, 나이도 이미 많아 뜻을 이루지 못하니 어찌 더욱 탄식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스님께서는 안팎의 일들에서 벗어나서 현묘한 길을 두루 밟고, 쇄탁의 공부가 무르익어 불도를 이루었으니 숙세의 공덕이 아니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부럽습니다. 일 년 전에 남쪽으로 오신다는 기약이 있는 듯하여 눈을 씻고 기다렸는데, 발자국 소리가 이제껏 조용하니 무슨 까닭이 있는지요. 바라노니 석장을 날려 한번 찾아 주시어 의마依麻326)의 즐거움을 얻게 하신다면 어떠할는지요. 나머지는 인편이 바빠 많이 말씀드리지 못합니다.
정자 윤주상께 올림
지척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한번 뵙지 못하니 존비尊卑의 차이가 크고 승속僧俗의 도가 다르기 때문입니까. 산 너머를 바라보며 뒤늦었다는 탄식을 할 뿐입니다. 초가을에 생활이 좋으시리라 생각되니 간절히 위로됩니다. 저는 이 바람 부는 추위 때문에 묵은 병이 다시 도졌습니다. 백일白日에 신선 되어 조정으로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도 받들어 이별하지 못합니다. 다만 영 스님을 대신 보내 저의 불민함을 사죄하고, 겸하여 시 한 수를 지어 평생에 사모하는 마음을 나타낼 뿐입니다. 바라오니 보잘것없다고 버리지 마시고 한 수 차운하여 보내시어, 쓸쓸히 신음하는 중에 마음을 위로하는 보배로 삼게 해 주신다면 참으로 행복하겠습니다. 나머지는 인편이 바빠 다 쓰지 못합니다.

009_0414_c_01L寄道大師

009_0414_c_02L
白香山與元微之不見面三年矣惟我
009_0414_c_03L之不相覿亦幾閱寒暑離濶杳如
009_0414_c_04L向遡之懷未甞或弛逖惟道況冲裕
009_0414_c_05L仰沒岸不轂跧伏宿痾日唯憒睯
009_0414_c_06L賢經籍末由窺斑年已多而志不遂
009_0414_c_07L寧不爲之憎慨然耶惟忻吾師韄脫內
009_0414_c_08L蹐遍玄路工熟洒濯成得天鈞
009_0414_c_09L宿勛然乎㦲健羨健羨年前似有南向
009_0414_c_10L之期拭眸以俟而跫音猶至今寂然
009_0414_c_11L不瑕有故望須惠然一飛錫使獲依麻
009_0414_c_12L之樂如何餘急武不多及

009_0414_c_13L

009_0414_c_14L奉寄尹正字周相

009_0414_c_15L
相去咫尺猶稽一候豈雲泥逈隔
009_0414_c_16L粉道殊引領山外祗費直後之嘆
009_0414_c_17L惟杪秋舉居蔓福伏慰殊切山人當
009_0414_c_18L此颷寒宿痾萌起聞還昇白日仙
009_0414_c_19L翻霄漢之行有日而亦未能奉辭但仍
009_0414_c_20L英頭陀替徃謝不敏而兼書一首詩
009_0414_c_21L攄平生慕悅之情而已伏望不以不足
009_0414_c_22L觀爲永擲而猥自步韻以送俾作呻吟
009_0414_c_23L索寞中開慰之寶玩則其幸如何餘急
009_0414_c_24L足不能罄

009_0415_a_01L
희경 대사에게 보내는 편지
여전히 추운 날씨에 수도하시는 생활이 좋으시다 생각되니 참으로 위로됩니다. 저는 깊은 골짜기에 거처하며 머뭇거리니, 나아가 당신을 찾아 이 마음을 위로받고자 하나 되겠습니까. 근래에 큰일을 맡아서 단문에서 모연하시매, 사서인士庶人이 다투어 공경하며 믿고 따른다고 하니 큰 덕이 아니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나머지는 인편이 바빠서 다 말하지 못합니다.
관천 대사에게 보내는 편지
서로 수백 리나 떨어져 있어 만나서 이야기할 기약이 없고 오직 그리운 마음만 있었는데, 문득 스님의 제자가 오매 그리운 사람을 마주하는 듯합니다. 인하여 스님의 기거를 이야기하니 이 마음이 풀어짐을 느낍니다. 게다가 법회를 성대히 열어 사방에서 학인들이 찾아온다고 하니 더욱 기쁨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저는 갈 길 모르는 신세로 나이가 이미 찼으니 장차 어디로 가겠습니까. 바라건대 스님께서는 늙기 전에 크게 종풍을 떨치시어 저같이 무용한 박 신세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잘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혜영 대사에게 답하는 편지
주자朱子의 시327)에 “이제 함께 늙었으니, 다시 이별할 때가 아니다.(及此同衰暮。 非復別離時。)”라고 하였는데, 우리들이 헤어진 지도 어느덧 5년을 헤아립니다. 항상 고인의 시를 읊조리면서 때때로 한탄하지 아니함이 없었습니다. 문득 인편에 정겨운 편지를 받고서, 건강이 좋으심을 알고는 매우 위로되었습니다. 저는 작년 가을 초에 섭생을 잘못했는지 병을 이기지 못하고 7개월 동안 누워 있었으며 목숨이 실낱처럼 위태로웠습니다. 하늘의 도움을 입어 겨우 몇 달 전에 나아지긴 했으나, 여태껏 가슴을 치며 탄식을 하고 있으니 인간사 큰 액운이

009_0415_a_01L寄晞景大師

009_0415_a_02L
恭惟猶寒道體黃中用慰萬萬台僻
009_0415_a_03L處幽谷乘馬班如欲拔茅茹以慰此心
009_0415_a_04L得乎就審邇來任大任募緣檀門
009_0415_a_05L庶爭相顒若莫不有孚比之非大德
009_0415_a_06L能乎㦲健羨不已餘萬亟武不能罄

009_0415_a_07L

009_0415_a_08L寄貫天大師

009_0415_a_09L
相去數百里奉晤無期唯有一懷如懸
009_0415_a_10L忽見師神足來如對念中人仍與談師
009_0415_a_11L起居此情稍覺傾瀉況審霧市殷開
009_0415_a_12L不寧方來耶尤不任栢悅之至儂即鹿
009_0415_a_13L幽谷月旣望將何徃㦲惟希五師趁光
009_0415_a_14L陰未甚晩暮誕振宗風母與儂瓠落
009_0415_a_15L無用幸甚餘統希慧照

009_0415_a_16L

009_0415_a_17L答慧英大師

009_0415_a_18L
子朱子有詩及此同衰暮非復別離時
009_0415_a_19L惟我之契濶年已過指五箇屈長詠
009_0415_a_20L古人詩未甞不以時悵歎也忽因便承
009_0415_a_21L情札憑諳道體珍重慰豁十分儂客
009_0415_a_22L年秋首昧於攝理不能與病爲敵
009_0415_a_23L困七閱月命危如綫蒙天隲纔數月
009_0415_a_24L幸得向蘓而迨不無窹辟有標

009_0415_b_01L또 이와 같이 참혹하단 말입니까. 또 그대가 연이어 형제의 상을 만났다고 하니 저의 슬픔이 참으로 작지 않습니다. 가을에 아주 돌아갈 계획이 있으니 그대와 정겹게 만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바라노니 그간에 참선하시는 생활이 좋기를 바랍니다.
취기 스님에게 보내는 편지
한번 헤어진 뒤로, 길이 멀어 소식이 이어지지 아니하니 슬프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거듭 인편이 와서, 고요히 지내시는 생활이 여유롭다는 것을 알고 실로 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만 한스럽기는 떠도느라 의지할 곳이 없어 돌아갈 마음이 일어납니다. 스님께서 또한 찾아오실 생각이 있다면 바라건대 한번 나오셔서 다시 현담玄談을 토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월이 가면 훗날 반드시 탄식하리니 모름지기 제 말을 믿으십시오. 나머지는 인편이 바빠서 다 쓰지 못합니다.
영 두타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세상과 교유를 끊었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마음을 서로 비추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입니다. 한번 헤어진 뒤로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자나 깨나 있었습니다. 뜻밖에 정겨운 편지가 와서 저의 쓸쓸함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또 두루 진귀한 선물을 받으니 감사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저는 병으로 지루하게 열흘간이나 고통을 겪다가, 이제 대략 나아가긴 하나 여전히 가슴을 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나그네의 시름이 잇따라 침범하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서, 묵묵히 산창에 기대어 혼미한 마음으로 누워 날을 보내는데 이때에 서로 만나면 즐거움이 어떨까요. 먼 산을 바라보며 부질없이 시 구절만 읊어 봅니다. 나머지 저의 마음은 인편이 급해서 다하지 못합니다.
선갑사 스님에게 보내는 편지

009_0415_b_01L間大厄又有如是之慘耶又審君連遭
009_0415_b_02L棣零之歎令人感惻實不淺淺也
009_0415_b_03L來大有歸歟之計作芳隣會有其時
009_0415_b_04L希未間習靜黃中

009_0415_b_05L

009_0415_b_06L寄就機師

009_0415_b_07L
一自我圍道遠不嗣音悵黯不已
009_0415_b_08L朔間再仍便來習悉靜履伴奐實慰
009_0415_b_09L我心第恨漂泊管管杖杜起懷師亦
009_0415_b_10L噬肯瞿瞿唯希一出來更吐玄談如
009_0415_b_11L日月其滔後必有慨須信我員
009_0415_b_12L餘便忙不究

009_0415_b_13L

009_0415_b_14L寄英頭陀

009_0415_b_15L
卬與世抹摋識面曾不無其人照肝膽
009_0415_b_16L唯有君一從詒阻傾溯之懷未甞不
009_0415_b_17L寤寐何來情緘一慰岑寂匝受珍況
009_0415_b_18L謝懷塞淵某一病支離浹旬痛楚
009_0415_b_19L纔得略蘓猶有窹辟苦㦲又況覊愁交
009_0415_b_20L無人晤語嘿隱山窓昏倒過日
009_0415_b_21L際相對其樂如何引領龍峀謾吟胡
009_0415_b_22L不佽而已自餘衷曲急足不究

009_0415_b_23L

009_0415_b_24L寄仙岬寺僧

009_0415_c_01L
수일 전에 과객過客의 말을 들었는데, 선갑사의 인印 대사께서 입적하여 장사를 지냈다고 하였습니다. 놀라는 한편 그에게 제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제자가 있었다면 반드시 부고를 하였을 것이고, 사람이 없다면 스님의 가족이나 본사의 스님이 일을 처리하였을 것이니, 반신반의하며 바로 제자를 대신 가게 해서 허실을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소식이 잘못 전해졌다면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그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습니까. 혹 사실인 듯합니다. 그에게 본디 병이 있어 이렇게 된 것입니까. 어느 날 죽었으며 언제 장례를 지냈는지요. 별로 멀지도 않은 곳인데 끝내 소식도 듣지 못하였습니까. 예전에 금화가 요절한 것을 보고 이제 또 인 대사가 먼저 죽은 것을 들었습니다. 몇 년 사이에 제자 잃은 슬픔으로 눈물이 늘그막에 마를 겨를이 없습니다. 실로 죽어서 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데도 어쩔 수 없으니, 하늘의 이치가 망망하기만 하여 슬픔과 괴로움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인편이 돌아와서 과객의 말이 거짓임을 알려 주기만을 묵묵히 바랄 뿐이지만, 그리 쉽게 될는지요.
우 대사의 청을 거절함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백 리도 되지 않는데,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합니다. 오늘 편지를 받고서, 약한 추위에 강론하시는 생활이 여유롭다는 것을 알고 참으로 기뻤습니다. 저는 노환이 날로 심해지고 정신과 기력이 거의 다하여, 죽어서 이 고통을 면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물주가 나를 놓아주지 않아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 삶이 슬프기만 합니다. 다만 편지에서 지시하신 것은 저도 평소에 마음에 담아 둔 것이었으나, 병고가 이와 같아 당신의 성의에 부응하지 못하니 탄식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나고 헤어짐은 운수에 달렸으니, 인연이 있으면 선탑禪榻에 함께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곧바로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을 허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일 선승에게 보내는 편지

009_0415_c_01L
數日前聞過客言仙岬寺印大師死已
009_0415_c_02L驚以爲已知渠無神足如其役有
009_0415_c_03L必即馳訃無人或僧族若本寺僧
009_0415_c_04L亦必有變通將信將疑即替門人
009_0415_c_05L探實虛虛妄聽何傷烟不生不爨突
009_0415_c_06L或恐爲實也渠有本疾由此耶死亦何
009_0415_c_07L葬於何時終不聞可聞於不甚遠地
009_0415_c_08L耶已乎徃年見錦花夭折今又聞印師
009_0415_c_09L先逝不數年間喪予之涙連不乾於
009_0415_c_10L雪鬂邊實欲溘然昧此景狀而不可得
009_0415_c_11L神理茫茫悲疚難裁默禱便還報客
009_0415_c_12L言之虛而其然易乎

009_0415_c_13L

009_0415_c_14L謝愚大師請

009_0415_c_15L
相去不宿舂地而悵望如隔弱水即承
009_0415_c_16L嵬札披諗薄寒講味伴奐雀躍不任
009_0415_c_17L台老痾日以增劇精神氣力什去八九
009_0415_c_18L只待溘然昧此生受而化翁不我
009_0415_c_19L遲回至此傷㦲此生但來書所示
009_0415_c_20L糓平生所蘊而患苦如許未副殷款
009_0415_c_21L歎不已然合散在數有緣則同榻會
009_0415_c_22L有其時須休以即不惟命爲咎焉幸甚

009_0415_c_23L

009_0415_c_24L謝日禪子

009_0416_a_01L
보내 주신 편지를 읽으니 정성스러운 마음이 문자에 넘쳐서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케 합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곤궁한 이후에 은혜를 안다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스님이 옛정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저는 병든 몸으로 깊은 골짜기에서 머뭇거리며 늙어 가고 있습니다. 연못의 꿩328)처럼 분수에 맞게 여생을 살아가기를 바랄 뿐, 이 밖에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바라지 않으니 하물며 박과 같이 무용한 신세이겠습니까. 이에 당신의 뜻에 부응하지 못하니 개탄스럽습니다.
인 대사를 대신하여 봉 대사에게 부친 편지
가까운 곳에서도 막 이별하면 사람이 슬퍼지는데, 하물며 영외嶺外에 오랫동안 떨어져 있고 첩첩 운산雲山에 가로막히게 되면 그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저번 인편에 정겨운 편지를 받고 여러 번 읽어 보았는데 상쾌하기가 열해熱海 가운데서 감로수를 만난 듯합니다. 저는 작년에 은사의 초상을 만나 다비하고 탑을 세우는 것을 겨우 마쳤습니다. 올여름 막바지에 외람되게 무경의 문중門中을 열었고 이어서 모악산 성불암成佛庵으로 옮겼으나, 대체로 그렇듯 학업이 한 걸음 나아가면 열 걸음을 물러나는지라 가련한 모습을 어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대사께서는 안팎을 벗어던지고 용문龍門에 자유롭게 노닐어, 선교禪敎의 맛을 다 음미하시고 쇄탁의 공이 무르익었으니 남보다 크게 뛰어나지 않다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부럽고 부럽습니다. 배움을 마치고 돌아갈 날이 어느 때나 될는지요. 다시 만나 한 선탑에서 심지心地의 찌꺼기를 씻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간에 수행하시면서 몸을 소중히 하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에 답한 편지
일찍이 한 번도 뵙지 못하였으나 당신의 명성은 귀에 익히 들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문득 편지를 받고 거듭 읽어 보았는데 마음이 상쾌하여 옥수玉樹 곁에 있는 듯합니다. 저는 근래에 중암中庵에 머무르고 있는데

009_0416_a_01L
偶讀來書懇懇至懷溢於詞表令人
009_0416_a_02L感歎古云窮而後知惠今而後有
009_0416_a_03L見師之不忘於舊情也病老班馬窮峽
009_0416_a_04L月旣望矣只望澤雉隨分以爲餘年
009_0416_a_05L之計而已此外一毫不願乎他而況
009_0416_a_06L瓠落何所用㦲玆未副盛意慨歎

009_0416_a_07L

009_0416_a_08L代印大師寄封大師

009_0416_a_09L
咫尺間乍違猶令人悵然如失況嶺外
009_0416_a_10L長別阻以萬重雲山則當如何懷也
009_0416_a_11L曩者仍便獲承情訊披閱三四爽若熱
009_0416_a_12L海中甘露洒也罪人客年遭養師喪患
009_0416_a_13L闍維建塔纔得成辦今夏末窃吹無
009_0416_a_14L竟之門隨移母岳之成佛庵而大故如
009_0416_a_15L許學業一暴十寒自憐之狀曷形喩
009_0416_a_16L第大師韄脫內外汗漫龍門嚼盡禪
009_0416_a_17L敎味工熟灑濯非大過人能乎㦲
009_0416_a_18L健羨健羨實而歸知何時更會一榻
009_0416_a_19L俾洗心地上滓穢是所望也統希未
009_0416_a_20L間爲道自玉

009_0416_a_21L

009_0416_a_22L答人請敎子

009_0416_a_23L
曾蔑一傾盖華聲雷耳者久忽承嵬帖
009_0416_a_24L披閱再三爽然如在玉樹傍也不糓近

009_0416_b_01L나그넷길에 별다른 일이 없으니 실로 그대의 도타운 은혜입니다. 아뢰올 것은 편지에서 이르신 당신의 명을 따르고자 하나 닭이 황곡黃鵠의 알을 품지 못함을 어찌하겠습니까. 기어코 원하신다면 그믐께 송광사에 가서 동료 스님을 방문할 계획인데, 갔다 올 때를 기다려서 자제들을 권하여 함께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머지는 오래지 않아 만날 터이니 이만 그칩니다. 살펴 주십시오.
친구에게 보낸 편지
하루를 만나지 못해도 삼추三秋보다 더 흐른 듯한데, 양쪽에서 서로 마음으로만 그리워하며 꿈에서나 오갈 뿐입니다. 요즘 당신의 건강은 좋으신지요. 산천이 멀어서 만날 기약이 없으니 달이 하늘에 뜨면 그리움만 더합니다. 나머지는 만나지 않고서는 다 말씀드리기 어려우니 이만 줄입니다.
양 대사를 대신하여 종형에게 부친 편지
어렸을 때 서로 이별하고 지금까지 몇 년이 흘렀는지요. 우러러 그리워하는 마음이 항상 당신 곁을 맴돕니다. 요즈음 기거가 좋으시다 여겨지니 위로가 되어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일찍 흉한 일을 만나 공문에 의탁하였습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요 수운水雲 사이에 수척한 모습으로, 서검書劍의 뜻을 다 그르치고 충효를 이루지 못하여 스스로 신세를 생각하니 한탄만 절로 나옵니다. 다만 기쁜 것은 형께서 일찍이 청운에 올라 두루 관직을 거치니 대장부의 행락이 이보다 더함이 없습니다. 비록 길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듣고 크게 기뻐할 것이니 하물며 골육지간이겠습니까. 똑같은 형제인데 어찌 복은 형에게만 치우치고 재앙은 동생에게만 있는 것입니까. 만일 남쪽으로 부임하는 날이 있다면 동파東坡가 유간惟簡 스님을 찾듯이 한번 방문해 주는 것이 어떨는지요. 나머지는 바라옵건대 항상 임금 곁에서

009_0416_b_01L駐中庵旅裏無他故實仰賴腆賜也
009_0416_b_02L就喋所示即擬唯命而奈越鷄不能伏
009_0416_b_03L鵠卵何無已則晦際當有松寺之行
009_0416_b_04L其時訪一揩靑爲計待去而來時奬令
009_0416_b_05L胤偕送如何餘在匪久只此伏惟

009_0416_b_06L

009_0416_b_07L寄故人

009_0416_b_08L
一日不見奚啻三秋相思兩地
009_0416_b_09L使夢魂徃來而已即不審尊候淸勝否
009_0416_b_10L山川乍遠會面無期月印天心我思
009_0416_b_11L悠悠餘非面難旣只此

009_0416_b_12L

009_0416_b_13L代陽大師寄從兄

009_0416_b_14L
兒時相別于今幾翻寒暑瞻溯一念
009_0416_b_15L未甞不懸懸於玉樹傍也恭惟此時
009_0416_b_16L止神相仰慰區區不任遠誠弟宿遭
009_0416_b_17L愍兇托跡空門人世上一贅物水雲
009_0416_b_18L間隻枯容書劒俱退忠孝未遂自撫
009_0416_b_19L身世咄咄奈何但喜兄也早登靑雲
009_0416_b_20L歷職翩翩丈夫行樂莫加於此雖貊
009_0416_b_21L路人聞且大喜而況骨肉之間耶
009_0416_b_22L是骨肉之間而胡慶之偏於兄而殃之
009_0416_b_23L偏於弟耶倘有南官之日一訪相見
009_0416_b_24L如東坡之於惟簡如何餘祝常近五尺

009_0416_c_01L천하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현도관 도사 이희에게 답한 편지
눈이 골짜기를 막아 새도 지나기 어려운데 뜻밖에도 당신의 편지가 제 책상에 이르렀습니다. 재삼 읽어 보고 참으로 기쁜 마음을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병든 저는 어려서부터 섭생을 잘못하여 음양의 적이 일어나, 항상 한질을 앓아 심난하게 누워만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나이가 칠십이라 정력이 예전에 비해서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생각건대 당신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모르시고 간곡히 초대하시기를 그치지 않는 듯합니다. 만약 억지로 길을 떠난다면 50리 거리에 걸음이 매끄럽지 못하고 기가 막혀 중도에 반드시 죽을 것이니 진퇴양난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에 감히 문인을 대신 보내 저의 불민한 마음을 사죄합니다. 그러나 자고로 겉치레를 떠나 마음으로 묵묵히 계합하는 자가 적지 아니하니, 이제 저도 옛사람의 그러한 교유에 끼고자 합니다. 다만 그대가 수긍하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나머지는 황공한 마음으로 다 쓰지 못합니다.
경재 이 참봉에게 답한 편지
작년 겨울에 산문山門에서 서로 이별하고 나서 다섯 달이 지났는데, 평상시 흠모하는 마음이 날마다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저께 문득 봉서사鳳栖寺의 스님이 편지를 전하여 공경히 읽어 보았는데 과연 항상 그리워하던 분의 친필이라 보배보다 더 소중하였습니다. 편지로 근래에 경기전에 추천되어 갔다는 것과 생활이 다복하시다는 것을 알게 돼 기쁘고 위로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지난달 초부터 계절이 바뀌자 풍기風氣가 일어나 음양의 조화가 흐트러지고, 섭생을 잘못하여 괴로이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가련함을 어찌하겠습니까.

009_0416_c_01L天邊將援率土溺子不具

009_0416_c_02L

009_0416_c_03L答玄都觀李都事熹

009_0416_c_04L
雪梗塞壑鳥路難通誰料這際一封
009_0416_c_05L辱札忽落雲床伏讀再三鰲抃區區
009_0416_c_06L不任賤忱病釋自少衛生失經陰陽發
009_0416_c_07L常患寒疾跧伏憒憒況今年當七
009_0416_c_08L精力較昔日猶兩人乎想恐閤下
009_0416_c_09L不知此情狀而恳招之不已也若强發
009_0416_c_10L半百里之許脚澁氣塞中途必死
009_0416_c_11L羊藩狼狽罔知所措玆敢使門僧替徃
009_0416_c_12L謝不敏之衷而然古有默契於形器表
009_0416_c_13L不一而足而今不糓亦欲叅古契
009_0416_c_14L之一數也第未知閤下之肯否如何
009_0416_c_15L萬主臣不備

009_0416_c_16L

009_0416_c_17L答慶齋李叅奉

009_0416_c_18L
客冬三笑別于今五閱月尋常艶慕之
009_0416_c_19L未甞一朝夕或已再昨忽有鳳栖僧
009_0416_c_20L來傳一緘伏承跽閱果是恒念中玉
009_0416_c_21L人手滋奚啻百朋爲貴憑審屬耳
009_0416_c_22L薦慶殿動止萬福喜慰區區不任下
009_0416_c_23L小釋自前月初替節風起陰陽發
009_0416_c_24L衛生失術硂伏憒憒唯是朝夕人

009_0417_a_01L다만 멀다면 말하지 않겠으나 이제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이와 같이 병들어서 정겨운 만남을 이을 길이 없으니 아마도 조물주가 시기하는 것일까요. 옛말에 “도가 합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곳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으니 마음으로 묵묵히 헤아려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에 제자를 대신 보내 제 답답한 마음을 아뢰니, 인사가 이쯤 되고 보면 더욱 죄스럽고 한스러울 뿐입니다.
쌍계암雙溪庵 제영題詠과 기문記文은 솜씨를 아끼지 마시고 완성하여 보내 주시어 사적이 훗날에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전에 사생査生이 건명사乾明寺의 기문를 지었고 두보杜甫가 진제사眞諦寺의 시를 지었는데 이 기문과 시가 서책에 기록되어 두 사람의 글을 성대히 칭송하였고 두 절의 이름도 만고에 유전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저의 작은 정성을 살피시어 은혜를 내려 주신다면 두 사람의 작품만 아름다움을 독점하지 않을 것이요, 이 절의 사적도 반드시 저 두 절과 같이 훗날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조만간 크게 시혜施惠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병으로 마음이 아득하여 이만 줄입니다.
부 안부 편지
지난겨울 이틀간 정담을 나눈 일을 여태껏 행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별 후에도 꿈은 항상 쌍계의 벗을 맴도는데 스님께서도 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는지요. 저는 세속 일에 시달리다 올봄에 작은 관직을 얻고 지난달에 경기전 참봉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제 막 재소齋所에 도착하니 쌍계암과 불과 사십 리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곧 말을 달려 회포를 풀고자 하였으나 병으로 여의치 않아 한탄만 하고 있으니 어찌해야 됩니까. 바라건대 잠시 암자를 떠나 이곳으로 왕림하시어 한바탕 정담을 나누는 것이 어떨는지요. 제추霽秋 스님 등도 아무 일 없습니까. 늘 그리워하나 다만 승속僧俗의 길이 멀어 이같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니 흰 구름 깊게 덮인 곳을

009_0417_a_01L自憐柰何但恨遠則不可言今之相去
009_0417_a_02L不過一莾蒼間而病魔如許末由更續
009_0417_a_03L揩靑豈造物多猜歟古云道契則霄壤
009_0417_a_04L一處只望默契於形器之表耳玆令神
009_0417_a_05L足替徃叙鬱鬱之懷人事到此尤極
009_0417_a_06L罪歎雙溪庵題詠及記文毋惜一揮
009_0417_a_07L以送使事蹟不泯於後亦善事也古有
009_0417_a_08L査生作乾明寺記杜老製眞諦寺詠
009_0417_a_09L記若詩載在方册盛稱二子之風
009_0417_a_10L二寺之名亦流傳萬古伏望特察微懇
009_0417_a_11L幸垂德惠則二子之作不獨專美於前
009_0417_a_12L此寺之蹟亦必如二寺之不泯於後
009_0417_a_13L望施惠於早晩也餘萬病懷茫然不備

009_0417_a_14L

009_0417_a_15L附問書

009_0417_a_16L
昨冬兩日相話尙今爲幸別來一夢
009_0417_a_17L長繞於雙溪間未知師亦有眷眷之
009_0417_a_18L情耶俗客爲塵所惱今春得一命
009_0417_a_19L昨月拜慶基殿叅奉今方來到齋所
009_0417_a_20L與雙溪相距不過四十里即欲一鞭
009_0417_a_21L馳叙而病未如意恨歎當如何幸望
009_0417_a_22L暫離沙門枉臨此處以爲一場討論
009_0417_a_23L之地如何霽秋等亦無恙耶尋常思
009_0417_a_24L想而第仙凢路隔阻濶此久白雲深

009_0417_b_01L부질없이 멀리서 바라볼 뿐입니다. 마침 이 스님을 만나 여기에 편지를 보내니 조만간 방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쌍계암 서문은 일찍이 간절한 부탁을 받았으나 문장을 짓기가 쉽지 않아 우선 쉬고 있습니다.
다시 답함
작년 늦겨울에 송광사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 정담을 나누고 두 마음이 맞았습니다. 이별 후에 사모하는 마음이 하루도 그치지 않았는데, 뜻밖에 편지를 보내 주시어 쓸쓸함을 위로해 주시니 재삼 읽어 봄에 마음이 맑아져 묵은 병이 사라지는 듯합니다. 게다가 재각에서의 생활이 좋으시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뻤습니다. 저는 암혈에서 칩거하면서 겨우 무상한 육신을 보존하고 있으니 실로 당신 덕분입니다. 아뢰올 것은 예전에 말씀드린 쌍계암 기문과 제영을 지어 보내 주시어 벽 위에 새겨 걸어 두면, 암자의 사적이 이 글에 의지하여 장차 훗날까지 사라지지 아니할 것이니 그 다행스러움이 어떠하겠습니까. 옛날에 소동파가 「보살각기菩薩閣記」를 짓고 두보가 우두사牛頭寺의 시를 지었으니 두 분이 현자賢者가 아니면 그만이거니와 두 분의 문명文名이 세상에 성대히 칭송되니, 이제 기문과 제영을 그대에게 구하는 것도 어찌 당돌하다 하겠습니까. 참으로 간곡히 바랍니다. 봄이 오면 병세가 약간 나아질 것이니 한번 지팡이를 짚고 가서 당신의 집을 방문할 계획입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고송 형제에게 답한 편지_2편
소식이 막혀 답답하던 차에 그대의 편지를 보고 마음이 탁 트였습니다. 게다가 타지의 진미와 새로 수확한 쌀로 저의 주린 배를 채워 주시다니요. 가을 들어 여러분의 생활이 좋으시다는 것을 알고 기쁘고 위로됨이 그지없습니다. 저는 저번에 병이 계속되고

009_0417_b_01L徒勞遠望而已適逢此僧玆送
009_0417_b_02L陋札更須早晩間來訪焉雙溪庵序
009_0417_b_03L曾荷勤托而屬文未易姑闕之耳

009_0417_b_04L

009_0417_b_05L又答

009_0417_b_06L
客年冬杪邂逅松寺一宵軟話兩心相
009_0417_b_07L別後仰慕之忱未甞一朝夕或已
009_0417_b_08L于中何來一札慰此岑寂圭復再三
009_0417_b_09L然若沈痾去軆況審齋履珍嗇不覺雀
009_0417_b_10L躍之至病老蟄藏巖叢1)僅保 [1] 幻殼
009_0417_b_11L賴腆賜也就恐向所謂雙溪庵記文若
009_0417_b_12L題詠莫惜一揮就而送使得刊懸於壁
009_0417_b_13L則庵之蹟賴乎此而將不絕於後
009_0417_b_14L其幸爲如何㦲昔蘇子作菩薩閣記
009_0417_b_15L老題牛頭寺詠使二公不賢則已若二
009_0417_b_16L公之以文名盛稱於世今僦記詠於高
009_0417_b_17L明之下亦何甞唐突乎至企至企
009_0417_b_18L來當得病稍間一拂雲笻徃扣彭澤
009_0417_b_19L是計耳餘不具

009_0417_b_20L

009_0417_b_21L答古松聯棣

009_0417_b_22L
積阻鬱伊際獲見一書尙多感豁
009_0417_b_23L異地佳味新出香粳慰沃饑肚耶
009_0417_b_24L審秋來僉況佳勝喜慰罔岸此漢前病

009_0417_c_01L생계가 곤궁하던 차에 또 참혹한 일을 만났으니 장래에 살아갈 계책이 없습니다. 듣자니 그대가 계신 곳의 전야도 제대로 곡식이 여물지 못했다고 하는데 개탄스럽습니다. 크게 한스러운 것은 노병이 날로 더욱 심하고 도반도 날로 멀어지는 것인데 숙연이 이미 다해서 그런 것입니까. 홀로 깊은 골짜기를 지키며 남은 봄을 보내는 것이 제 본마음이요, 이외에 추호도 다른 마음이 없습니다. 어찌 보름께에 갈 수 없겠습니까. 인연 따라 조만간 만나게 되기를 믿을 뿐입니다. 나머지 말은 다하지 못합니다.
추운 날 먼 길에 아이만 보내 주어도 충분하거늘 하물며 선물까지 과분하게 보내 주셨으니 감사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이곳은 새해를 맞아 별일이 없습니다.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머지는 편지로 다 말씀드리지 못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그만두겠습니다. 만날 때까지 더욱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고경 스님에게 답한 편지_2편
우연히 그리워하는 사람을 통하여 그리워하는 편지를 얻은 것으로 충분하거늘 게다가 장요長腰(쌀의 한 종류) 네 말을 선물로 받았으니 감사하고 부끄러워서 실로 죽기 전에는 마음에 잊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상중의 생활이 아직 좋으시다고 하니 위로됩니다. 저는 죽을 날이 가까웠는데도 여전히 큰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날마다 길게 탄식할 뿐인데 이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상상하실 것입니다. 나머지 종문의 일을 훗날에 처리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만 믿겠습니다. 또 문중에 이루어야 할 일이 있으면 바라건대 권장하고 보호하여 그르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삼성반월三星半月329) 중에 있으니 갖추지 못합니다.

009_0417_c_01L綿綿生計窘敗中又値慘凶來頭活
009_0417_c_02L計無望也聞貴處田野亦多失稔
009_0417_c_03L所大恨者老病日益甚同榻日
009_0417_c_04L益遠宿緣已盡而然耶塊守窮谷
009_0417_c_05L終餘春是吾本懷此外一毫無他念
009_0417_c_06L豈月望無可徃耶只恃因緣會合之早
009_0417_c_07L晏也餘萬不一

009_0417_c_08L

009_0417_c_09L

009_0417_c_10L
寒天遠路送兒猶足況信物之大過望
009_0417_c_11L深謝不任此處迎新無餘故知荷
009_0417_c_12L自餘非筆所旣姑闕縷縷未間統希
009_0417_c_13L益佳

009_0417_c_14L

009_0417_c_15L寄答古鏡師

009_0417_c_16L
偶仍念中人得念中書猶曰足矧匝
009_0417_c_17L受四㪷長腰之貺耶且感且愧心實難
009_0417_c_18L忘於黃壤以前也俄惟哀履尙安慰慰
009_0417_c_19L老漢日迫崦嵫尙未得裂大網是我之
009_0417_c_20L所以日夜長太息者也此不言可想
009_0417_c_21L餘宗門事專恃處置於將來也又門中
009_0417_c_22L有可成者望須奬護使無蘸菹瓮也
009_0417_c_23L幸甚餘在三星半月中不具

009_0417_c_24L「僅保」底本作小文字編者改作本文活字

009_0418_a_01L
또 답함
편지로도 만족한 데다 선물까지 넉넉히 보내 주시고 또 먼 곳으로 사람을 소개해 주시다니요. 오늘 새해를 맞아 수행하시는 생활이 줄곧 좋으시다는 것을 알고 기쁘고 위로됨이 한량없습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만 바라건대 실중의 일용사日用事를 갈수록 더욱 절실하게 하고 이 밖의 여러 가지 일들은 다만 상황에 따라 헤아려 행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나머지는 편지에 다 쓰지 못하니 이만 줄입니다.
밀 화상에게 보낸 편지
봄이 돌아와 만물이 화락한데 멀리서 수행하는 생활이 좋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리워하고 위로되는 마음이 한량없습니다. 저는 나이가 칠십이 되어 법력이 쇠퇴하고 마장이 마음을 엿보아 괴이한 경계가 자주 이릅니다. 뜻밖에 고향을 떠나 먼 곳에 오니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봐도 생소한 사람만 가득한지라, 비록 철석간장鐵石肝腸을 지니고 장벽墻壁과 같은 마음이라도 어지러운 향수를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한스럽기는 그대나 나나 여생이 멀지 않아서, 간절하게 참선함을 일상의 큰일로 삼아야 할 것이니, 한결같은 마음으로 마음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머지 이야기는 만나서 하겠습니다.
무경당 대사 행장
문인 회경 기록
스님의 휘諱는 자수子秀요, 자는 고송孤松, 호는 무경無竟이다. 전주인全州人이고 성은 남양 홍洪씨이다. 아버지의 휘는 세창이요, 어머니는 김씨이다. 어머님이 꿈을 꾸었는데 석불이 스님으로 변하여 와서 “모자간이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임신을 하여 강희康熙 갑진(1664) 2월 13일 해시에 태어났다.

009_0418_a_01L又答

009_0418_a_02L
書足況物物足又況使紹介於蒼莾之
009_0418_a_03L外耶即審迓新鍊味一向珍嗇喜慰
009_0418_a_04L不已老漢新猶舊知賴知賴但望室
009_0418_a_05L中日用事去而尤著喫緊此外萬般
009_0418_a_06L但隨應用權而已可也會麽餘不在書
009_0418_a_07L只此

009_0418_a_08L

009_0418_a_09L寄密和尙

009_0418_a_10L
律回震宮物登春臺遠惟道履珍重
009_0418_a_11L向慰沒岸台年登七十法力衰敗
009_0418_a_12L賊窺賤怪境荐至不意去鄕曲來遠地
009_0418_a_13L擧目四顧滿座生面雖鐵石膓墻壁
009_0418_a_14L不能耐鄕愁之攪動也但恨彼此之
009_0418_a_15L餘年不遠並莫如以喫緊叅念爲日用
009_0418_a_16L一大事即宜得無一般懷做心工乎
009_0418_a_17L餘萬只待面叙

009_0418_a_18L

009_0418_a_19L1)無竟堂大師行狀 [1]

009_0418_a_20L
門人懷瓊錄

009_0418_a_21L
和尙諱子秀字孤松號無竟全州人
009_0418_a_22L姓南陽洪氏父諱世昌母金氏金夢石
009_0418_a_23L佛化僧而來告曰願爲母子仍有身
009_0418_a_24L以庚熙甲辰二月十三日亥時生幼而

009_0418_b_01L어려서부터 맑고 아름다웠다. 열 살 무렵에 관상을 보는 자가 “네모진 얼굴에 눈썹이 빼어나니 응진應眞의 상이다.”라고 하였고, 술사術士가 “일생 동안 만종의 녹을 누릴 것이니 진실로 공문空門에서 입신할 운명이다.”라고 하였다. 열두 살이 되자 출가를 청하였으나 부모가 굳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핑계를 대면서 “학업은 마땅히 산에서 해야 합니다.”라고 했더니 부모가 막지 않았다.
드디어 종남산終南山 송광사松廣寺 문식文式 장로에게 의탁하였는데, 무릇 배움에 큰 뜻에 통하고 부지런히 독송하자 사람들이 기동奇童이라고 칭송하였다. 열여섯 살이 되자 머리를 깎고 징파澄波 큰스님께 계를 받았다. 부모에게 와서 문안을 드리자 어머님이 비로소 옛날의 꿈을 이야기하고 훈계하면서 “네가 이미 출가하였으니 불도를 부지런히 닦아 우리를 괴로움에서 구원해 주라.”고 하셨다. 그 부탁이 이와 같으니 더욱 분발하였다. 드디어 추줄산 운문사雲門寺에서 추계 유문秋溪有文 대사를 뵙고 출가의 업을 닦았다. 부모의 부탁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나날이 학문의 과정에 부지런히 힘썼다. 문하에 처한 지 십여 년 만에 선교禪敎의 글을 다 배웠으며 인가를 받아 전법 제자가 되고 부용 영관芙蓉靈觀을 6세조로 삼았다. 【6세는 청허 휴정淸虛休靜부터 정관 일선靜觀一禪, 임성 충언任性冲彦, 원응 지근圓應智根, 추계 유문秋溪有文을 거쳐 스님에 이른다.】 그로부터 물러나 사실私室에 거처하면서 여러 서적을 두루 읽어 그 지견을 넓혔다.
숙종조肅宗朝에 팔도의 고승 49인을 선발하여 사나사舍那寺에서 큰 불사를 행할 때에 추계 스님도 거기에 참여했는데 스님이 사미로 모임에 따라가셨다. 49인의 대덕大德이 스님의 재기才氣를 보고 모두 추계 대사가 큰 법기法器를 얻었다고 축하하고 부러워하였다. 그 후에 다시 멀리 행각하여 참결參決하려고 했는데, 먼저 호남과 영남으로 훌륭한 학자들을 방문하고 큰 뜻을 물었으며 구주九疇, 십익十翼, 하도河圖, 낙서洛書로부터 노장老莊의 현담玄談, 비결에 이르기까지 글과 이치를 통달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때때로 여러 시체와 문장의 여러 격식을 저술하여 오묘한 경지를 얻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추계 스님을 따랐는데

009_0418_b_01L淸美十餘歲時有相者曰方面秀眉
009_0418_b_02L應眞其像術者曰空手去來自祿萬
009_0418_b_03L眞空門立身之命年及十二請出
009_0418_b_04L父母礭不許乃託辤曰學業宜在
009_0418_b_05L父母不拒遂投於終南山松廣寺文
009_0418_b_06L式長老凢所學通大義勤讀誦人稱奇
009_0418_b_07L至十六歲祝髮受戒於澄波大德
009_0418_b_08L來少于父母則母始言曩日之夢誡之
009_0418_b_09L海旣出家勤修佛道拔我苦聚
009_0418_b_10L付囑如此心益激發遂訪秋溪有文大
009_0418_b_11L師於崷崒山雲門寺修出家業恐不效
009_0418_b_12L父母之付托勤勤日課處其門十餘載
009_0418_b_13L學盡禪敎文蒙印可而傳法法胤以芙
009_0418_b_14L容靈觀爲六世祖焉六世者淸虛休靜靜觀
一禪任性冲彥圓應智

009_0418_b_15L秋溪有
至于師
自爾退處私室讀盡群籍
009_0418_b_16L其知見粤在肅宗朝摺選八道高僧
009_0418_b_17L四十九人設大佛事於舍那寺時秋溪
009_0418_b_18L和尙與其選師以沙彌從會中七七大
009_0418_b_19L見師才氣皆賀秋溪得大法器稱羨
009_0418_b_20L不已然後更擬遠遊叅決先於湖嶺兩
009_0418_b_21L訪高門大家扣決其旨趣自九疇
009_0418_b_22L十翼河洛圖書以至老莊玄談秘訣
009_0418_b_23L不通其文而達其理有時著述詩之衆
009_0418_b_24L文之諸格皆得其妙焉旣還從秋

009_0418_c_01L여러 산문山門의 스님들이 삼교에 모두 능통하고 문장에 독보적임을 탄복하여 가르침을 늦게 받을까 저어하였다. 무진년(1688)에 추계 스님을 받들고 추줄산 쌍계암에 돌아와 주석駐錫했는데 쌍계암은 스님께서 학업을 성취하신 곳이다.
기사년(1689) 9월 2일에 추계 스님의 열반을 곡하고 염습을 겨우 마치자, 또 아버님의 부고를 듣고 집으로 달려가 통곡하고 예법대로 상례를 행하였다. 빈장을 마치자마자 산으로 돌아와 추계 스님의 다비를 한결같이 승가의 예대로 행하였다. 성흡性恰 장로와 함께 뼈를 받들고 사리를 구하여 송광사의 북쪽 기슭에 부도를 세웠다. 【훗날 동봉 언덕에 옮겨 세웠다.】 부친상을 치를 때 가까운 친척이 없어서 여러 동료 스님들의 힘을 빌려 선산에 안장하였다. 사람들은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였으므로 양가兩家(승가僧家와 속가俗家)의 효자라고 칭찬하였다.
복을 마친 후에 멀리 불령산佛靈山으로 모운慕雲 큰스님을 참배하고 『화엄원각초華嚴圓覺鈔』와 『기신론起信論』에 대해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또 진허 경정震虛敬淨 스님이 덕유산에서 선문禪文에 힘쓴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가서 여름 한 철 참구하였으나 기봉機鋒이 맞지 않아서 드디어 옛 산으로 돌아왔다. 추줄산 숭암사를 지나다가, 스님들의 만류로 절의 백련사에서 비로소 개당開堂했는데 그해가 계유년(1693)이요, 스님의 나이 삼십이었다. 원근에서 배우는 무리들이 차츰 모여들었다. 그해 가을 그 산의 내원암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큰 강연이 성대히 열렸다. 을해년(1695)과 병자년(1696)에 큰 흉년을 만났다. 가형家兄이 가난하여 어머님을 모실 수 없게 되자, 어머님을 모시고 심원동에 들어가 곡식을 구걸하고 채소를 캐면서 정성을 다해 봉양했는데 사람들이 반포反哺의 정성이 지극하다고 말하였다. 정축년(1697)에 어머님의 명에 따라 형의 집에 모셔 드리고 스님은 쌍계암으로 돌아왔다.
기묘년(1699)에 화연化緣에 부득이 사자산獅子山 용화암龍華庵으로 옮기셨다. 그로부터 모악산 장불암長佛庵, 청량산 서운사瑞雲寺, 추줄산 서굴西窟,

009_0418_c_01L諸山學衆咸服其三敎之具通
009_0418_c_02L章之獨步唯恐親炙之居後也以歲戊
009_0418_c_03L奉和尙還駐於崷崒山雙溪庵
009_0418_c_04L師之學業成功地也至己巳九月初二
009_0418_c_05L哭和尙喪收歛纔罷又遭嚴親訃
009_0418_c_06L哭奔家庭哀毁如禮殯事方畢即還
009_0418_c_07L于山和尙闍維一依僧禮與性冾長老
009_0418_c_08L奉超骨乞舍利樹浮屠於松廣寺之坎
009_0418_c_09L後移建于
東峯之崖
至於親喪親無期功力藉諸
009_0418_c_10L壽封於先山人稱能人所難兩家孝
009_0418_c_11L闋服後遠叅慕雲大知識於佛靈山
009_0418_c_12L請益華嚴圓覺鈔與起信論又聞震虛
009_0418_c_13L敬淨在德裕山方工禪文徃叅一夏
009_0418_c_14L鋒未契遂反故山過于崷崒山崇岩寺
009_0418_c_15L爲寺僧所挽始開堂於寺之白蓮社
009_0418_c_16L歲癸酉師年三十遠近學侶稍集焉
009_0418_c_17L其秋移駐於山之內院庵藹然爲一大
009_0418_c_18L講市至乙丙大無家兄貧不能供母
009_0418_c_19L扶慈堂入深院洞乞粟採蔬竭誠奉養
009_0418_c_20L人謂反哺之誠至矣至丁丑歲從慈命
009_0418_c_21L奉還于兄家師歸于雙溪庵至己卯
009_0418_c_22L迫於化緣移錫于獅子山龍華庵自其
009_0418_c_23L遍遊母岳之長佛庵淸凉之瑞雲崷崒
009_0418_c_24L此行狀底本在序文之後編者移置於此

009_0419_a_01L추월산 용추사龍湫寺, 운주산 용장사龍藏寺, 광덕산의 여러 난야蘭若를 두루 편력하셨다. 머무르는 곳마다 선교의 글을 강론하였는데 배우는 무리들이 실로 많았다. 경인년(1710)에 용추사의 요청에 따라 이 절에 머물렀으니 대개 네 번째라 인연이 있다고 할 것이다. 신묘년(1711) 5월 10일에 어머님의 상을 만나 가까운 곳에 임시로 안치하였다. 선산이 이롭지 않아 새로이 터를 정하고자 하여 정성으로 구하였다. 임진년(1712) 가을에 청량산 원암사圓岩寺의 요청에 따르니 학중學衆이 거의 백 명을 채웠다. 여기에서 종남산으로 가셨다. 을묘년(1735, 전후 내용으로 볼 때 오기인 듯하다.) 3월 14일에 은사 문식 장로의 상을 만나 다비를 마치고 나서 위봉사威鳳寺로 옮기고 추줄산과 사자산 사이를 전전하셨다. 신축년(1721) 봄에 신흥사의 적조암寂照庵에 머물렀는데 우연히 수절봉 아래에 터 한 곳을 잡고 임인년(1722) 봄에 부모님 묘를 옮겨 함께 안장하였다. 사람들이 “지극한 정성에 감응되어 능히 좋은 묏자리를 얻었다.”고 하였다. 적조암은 묘가 있는 산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때때로 성묘省墓하여 유가儒家에서 여묘廬墓하는 예와 같이 하였다.
이로부터 여러 산문에서 요청해도 가지 않고 암자의 서북쪽 모퉁이에 몇 칸의 집을 짓고 보경실寶鏡室이라 편액하였다. 이곳에 거처한 이후로 법계관法界觀에 전념하며 침식을 잊었다. 계묘년(1723) 4월 초하루 저녁에 꿈을 꾸었는데, 몸이 연못에 빠져 수영을 자유롭게 하다가 용솟음치는 물과 함께 몸을 솟구쳐 나오니, 마음이 쾌활하여 의심하고 막혔던 것이 풀어져서 중도中道에 듦이 뒤에서 채찍질하여 밀어 주는 것 같았다. 이후로 지혜가 절로 일어나 법설이 막힘이 없어서, 삼선三禪, 삼관三觀과 향상일로向上一路가 각각 근기에 마땅하고 이끌어 주시어 빠뜨림이 없었다. 또, 이교도나 다른 지역 사람들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근기에 맞추어 널리 제도하셨으니, 막힘없는 융통한 지혜의 힘이 없다면 능히 이와 같겠는가. 화엄중의 백십공망계百十孔網界와 이십중二十重의 광대찰廣大刹, 그리고 그 나머지 선가의 일가삼왕一家三王,

009_0419_a_01L之西窟秋月之龍湫雲住之龍藏
009_0419_a_02L德之諸蘭若隨所駐設講禪敎文
009_0419_a_03L衆寔蘩庚寅還赴龍湫之請栖息此寺
009_0419_a_04L盖四度可謂有緣辛卯五月初十日
009_0419_a_05L慈母喪權厝近地以先山不利將欲
009_0419_a_06L新卜以誠求之至壬辰秋赴淸凉山
009_0419_a_07L圓岩寺之請學衆盛且盈百自此徃于
009_0419_a_08L終南至乙卯三月十四日遭恩乎喪茶
009_0419_a_09L毘已移錫於威鳳寺轉遊於崷崒獅子
009_0419_a_10L之中至辛丑春駐新興寺之寂照庵
009_0419_a_11L於數節峰底占得一地壬寅春遷前後
009_0419_a_12L喪而同窆焉人謂至誠所感能得吉兆
009_0419_a_13L庵去墳山牛鳴間時時省護若儒
009_0419_a_14L家廬墓之禮自此頓不赴諸山之請
009_0419_a_15L於庵之乾隅架室數間扁曰寶鏡
009_0419_a_16L此以來專精法界觀廢寢忘味至癸
009_0419_a_17L卯四月初吉夜夢身投潭底游泳自若
009_0419_a_18L回旋湧中而出神心快活疑滯釋然
009_0419_a_19L入於中道若有驅策之者云自後慧解
009_0419_a_20L自發法說無碍三禪三觀向上一路
009_0419_a_21L各當其機提接不遺至於異道殊俗之
009_0419_a_22L亦莫不逗機普濟其無無障碍融通
009_0419_a_23L智力而能如是乎若其華嚴中百一十
009_0419_a_24L孔網界二十重廣大刹其餘禪家一家

009_0419_b_01L오위편정五位偏正, 삼요현三要玄, 사조용四照用과 고금의 불조佛祖의 일체 기이한 방편을 모두 자신의 일상에서 쓰는 진부한 추구芻狗로 삼았으니 정력定力에서 발현됨이 아니라면 이와 같겠는가.
스님이 일찍이 제자들에게 “훌륭한 스승과 잘 가르치는 아버지가 어찌 따로 종자가 있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실로 믿음을 두면 거의 성취할 것이다.”라고 훈계하셨다. 또 “너희들이 비록 출가했으나, 어버이도 계시고 임금도 계신다. 신하 되고 자식 된 자가 어버이 봉양하는 도리를 다하지 아니하고, 임금을 향한 정성을 애쓰지 않는다면 패역을 범하는 것이 되니 함께 거처할 수 없다.”고 훈계하셨다. 그래서 문하에 처하는 자들이 모두 감화되어 이익 보기를 분토와 같이 여기고 불법을 보배로 믿었으며, 손님을 맞이하고 대중을 접할 때에도 친소간에 평등하게 대하였다. 무릇 그 실천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참 보살이 세상에 나왔다고 말하였다. 마음은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여러 절에서 괘탑掛塔할 때에, 오는 무리가 많을 경우 이름을 거두고 다른 산으로 옮겼으나 무리들이 또 추종하였다. 또 세상에서 명예를 구하지 않았는데 사대부가 뵙기를 청하면 굳이 사양하고 피하였으나 그 명성은 저절로 드러났다.
경술년(1730)에 쌍계사의 요청에 따라 돌아갔는데 학중이 매우 많았다. 신해년(1731) 봄에 제자 목암이 스님의 명에 따라 정관靜觀, 임성任性, 원응圓應, 추계秋溪 네 분 스님의 진영을 공경히 그리고 용추사에 봉안하였다. 임자년(1732)에 사대부의 추중推重을 피하여 병을 핑계 대고 명성을 피하여 용추사에 주석하셨다. 그때 목암이 판전板殿에 있었는데 스님을 상실上室로 맞이하여 선교의 깊은 뜻을 묻자, 말후일게末後一偈를 주시며 종지를 전하시고 아울러 법제자로 삼고 『화엄경』을 강설하셨다. 계축년(1733) 가을에 사자산 적조암 보경실에 돌아와 주석하시면서 법려法侶를 위하여 선교의 글을 강론하셨는데 대화 한마디 말씀 한마디 일상 중의 자신의 본심사가 아님이 없었다. 갑인년(1734) 봄에 고경 등에게 명하여 부용 스님으로부터 추계 스님에 이르기까지 5대의 진영을 그리게 하고 송광사에 봉안하였다.

009_0419_b_01L三王五位偏正三要玄四照用古今
009_0419_b_02L佛祖一切異方便皆爲自己上日用已
009_0419_b_03L陳之蒭狗其無定力所發亦若是乎
009_0419_b_04L師甞戒徒導師敎父寧有種乎人固
009_0419_b_05L有信庶幾㦲又誡曰壐雖出家有親
009_0419_b_06L有君爲人臣子者不盡養親之道
009_0419_b_07L勤向君之誠爲犯悖逆不與同居云
009_0419_b_08L故處門下者莫不感化矣視利如糞
009_0419_b_09L信法爲寶待賔接衆親踈平等凢所
009_0419_b_10L實行如此人謂眞菩薩出世心不好爲
009_0419_b_11L人師諸寺掛塔來徒或煩則捲移他
009_0419_b_12L山而衆或追從又不欲干名於世如有
009_0419_b_13L士大夫之求見固辭退避而名或自彰
009_0419_b_14L至庚戌歲還赴雙溪之請學衆且蘩
009_0419_b_15L至辛亥春上足牧菴依命敬繪靜觀任
009_0419_b_16L性圓應秋溪四和尙眞奉安于龍湫寺
009_0419_b_17L至壬子避冠盖之推重稱疾逃名
009_0419_b_18L錫于龍湫寺時牧菴在板殿迎入上室
009_0419_b_19L問決禪敎奧旨仍授末後一偈以傳宗
009_0419_b_20L兼爲法眷講說華嚴經癸丑秋
009_0419_b_21L駐獅子山寂照庵寶鏡室爲法侶講禪
009_0419_b_22L敎文一話一言莫非日用自己上本心
009_0419_b_23L事而已甲寅春命古鏡輩繪自芙蓉
009_0419_b_24L至秋溪五代眞影奉安于松廣寺禪㝎

009_0419_c_01L선정의 여가에 『불조선격佛祖禪格』과 『자기삼궁보경삼매自己三宮寶鏡三昧』를 일 편씩 편집하여 뛰어난 근기를 가르치시고, 아울러 『이학류편理學類編』과 『하락주설河洛註說』을 모아 한 편으로 만들어, 한편으로는 이근利根들이 널리 보아 막힘이 없게 하고, 한편으로는 우둔한 학자들이 가까운 데서 먼 곳으로 차근차근 오르게 했는데, 사람들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마음이 늙어서도 더욱 간절하다.”고 하였다. 젊었을 때에 지은 시문은 문인인 고성과 고경이 흩어진 것들을 수습하여 네 편으로 엮었는데, 두 편은 세속의 문장이요, 두 편은 출세간의 법어이다.
을묘년(1735)에 나이가 들어 유화遊化하는 일을 마치고 문도들에게 “돌아가자, 돌아가자. 어찌 근본을 잊겠는가. 쌍계암은 선사께서 출입하시면서 자취를 남기신 곳이라, 종가의 근본 암자이니 내가 장차 그곳에 가서 마치리라.”라고 하셨다. 9월 10일에 쌍계암에 돌아오셨는데 전각이 기울어 옛 모습이 사라진 것을 보시고는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정사년(1737) 봄에 양성과 선월 등이 나와 신속하게 중수를 마쳤는데 대개 열반이 다가왔음을 미리 아시고 재촉하여 마치게 한 것이다. 7월 21일에 경미한 병을 보이시더니 시자를 불러 붓을 잡게 하고 입으로 두 게송을 불러 주셨다. 첫 번째는 이러하다.

刹海虛空都撲落   찰해와 허공이 모두 부서져 떨어지니
廓然天地未分前   확연히 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이로다
欲識三空空處轉   삼공의 공이 전전함을 알고자 하느냐
越峰看取昫三千   봉우리를 넘어 구삼천昫三千을 보거라

다음은 이러하다.

一星揮破三眚夢   별 하나가 삼생三眚의 꿈을 깨뜨리니
隻劒撞開大寂關   한 자루 검이 대적관을 쳐 열도다
萬古堂堂眞面目   만고에 당당한 진면목이 드러나니
何時何處不相看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만나지 않으랴

22일 사시에 무리를 모아 놓고 영결하시면서 “이 무상한 몸을 보고 각자 힘쓸지어다.”라고 하셨다. 말씀을 끝내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는데, 향년 74세요, 법랍法臘 58년이었다. 이때에 가뭄이 들어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는데, 갑자기 공중에 서기가 어리면서 빛나고 흰 구름이 산을 덮었으며 저녁에 단비가 내려 사방 백 리의 전야를 모두 적셨다. 사람들이 “스님께서 속세의 티끌을 씻어 주는 비를 내려 주셨다.”라고 했으며, 또 “죽어서도 여전히 만물을 구제하셨다.”라고 하였다.

009_0419_c_01L纂集佛祖禪格自己三宮寶鏡三昧
009_0419_c_02L各一篇直被俊機兼撮理學類篇河洛
009_0419_c_03L註說各集爲一編一使利根博覽無滯
009_0419_c_04L一使鈍學自邇陟遐人謂二利之心
009_0419_c_05L而益勤也少時所著詩若文則門人古
009_0419_c_06L松古鏡收拾散帙成四篇二篇即世俗
009_0419_c_07L文章二篇出世法語乙卯歲以年老
009_0419_c_08L遊化事畢謂徒曰歸歟歸歟何能忘
009_0419_c_09L雙溪庵是先師出入留跡之處
009_0419_c_10L宗家本庵吾將就彼而終九月初十日
009_0419_c_11L還到雙溪見殿宇傾斜無復舊觀
009_0419_c_12L憫焉越丁巳春養性船月輩出
009_0419_c_13L修不日盖預知大限之在邇趣令爲之
009_0419_c_14L至七月二十一日示微疾喚侍者
009_0419_c_15L命筆口占二偈一曰刹海虛空都撲落
009_0419_c_16L廓然天地未分前欲識三空空處轉
009_0419_c_17L峰看取昫三千又曰一星揮破三眚夢
009_0419_c_18L隻劒撞開大寂關萬古堂堂眞面目
009_0419_c_19L時何處不相看至二十二日巳時集衆
009_0419_c_20L而訣曰觀此無常各自勉旃聲盡坐滅
009_0419_c_21L報年七十四積夏五十八于時枯旱
009_0419_c_22L天無纎翳忽於空中瑞氣蟠渙白雲
009_0419_c_23L盖其山日暮甘雨方百里田野普洽
009_0419_c_24L人謂爲師滌塵雨或云死猶濟物前數

009_0420_a_01L수일 전에도 종남산에서 대낮에 큰 우렛소리가 한 식경쯤 천지를 울렸다. 그 다음 날 밤 삼경에 암자에서 스님 두 사람이 침상에 누워 있었지만 잠이 들지 않았는데, 중당이 기울어져 무너지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이 동시에 크게 외치며 놀라 달아났다. 온 대중들이 크게 놀라면서 그 스님을 붙잡고 당을 살펴보았는데 당은 손상이 없었고 스님은 “꿈이었다.”라고 말하였다. 대개 또한 불법의 대들보가 꺾이고 덕산德山이 무너지는 징조였던 것이다.
3일 후에 종남산 서쪽 기슭에서 다비를 하였는데 밤마다 서기가 빛났다. 그 다음 날 세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였는데, 첫 번째로 문인 회경이 “청룡이 불속에서 나와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고 하였고, 두 번째로 본사의 스님 태유가 “소대燒臺 위에 물병 하나를 걸어 놓았는데 병이 깨지고 물만 허공에 걸려 있었다.”고 하였으며, 세 번째로 호상護喪 태밀 스님이 “명당의 물그릇 속에 영주 2과顆가 연잎에 맺힌 둥그런 이슬 같았다.”고 하였는데, 대중들은 믿지 않았다. 향을 올리는 밤에 오색 채운이 소대 위에 모여서 하나의 화성化城을 이루었다가 한참 후에 좌우로 나뉘어 둘러싸고, 재 속에서 신광이 하늘에 뻗치면서 떠오른 해처럼 빛났는데 뭇 별이 빛을 잃고 여러 봉우리도 무색하였다. 뜰에 가득한 스님과 속인들이 흠앙하고 떠들썩하였으며, 원근의 사람들이 모두 보고 기이하게 여겼다. 아침에 유골을 수습하러 가서 보았더니 정수리뼈가 북쪽 깃발을 덮으며 날아갔는데 뼈 색깔이 순수한 황색이었고 명당의 그릇 가운데에 과연 영주 1과가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참 사리라고 말하며 비로소 태밀 스님의 꿈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청룡이 허공에 올랐다는 것은 스님이 갑진년에 태어나서 열반 후에 도솔천으로 간다는 표시인 듯하다. 병이 깨졌는데 물만 걸려 있다고 한 것은 색신色身은 땅에 떨어졌으나, 진신眞身은 변하지 않는다는 표시일 것이다. 영주를 단에 모셨는데 초를 사르지 않아도 저녁이 밝았으며 뼈를 산 위에 뿌리자 일곱 밤 동안 빛이 났다. 유독 그곳만 운무에 가려 어둡고 풍우가 크게 일어난 것이 두 번이었다. 사람들이 “용신이 와서 사리를 보호한다.”고 하였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시주의 재물을 쓰지 않고

009_0420_a_01L終南山白晝大震聲動天地者
009_0420_a_02L餉間居後夜三更庵僧二人寢未眠
009_0420_a_03L見中堂傾覆二人同時大呼驚走一塲
009_0420_a_04L衆大駭執其僧而覽其堂堂無傷而僧
009_0420_a_05L云夢也盖亦先徵法樑之摧德山之頹
009_0420_a_06L三日茶毘于終南之西麓無夜不瑞
009_0420_a_07L氣放火翌日三人獻夢一門人懷瓊曰
009_0420_a_08L靑龍從火裏出乘雲登空二本寺僧太
009_0420_a_09L裕曰燒臺上懸一水瓶而瓶破水懸
009_0420_a_10L三護喪釋太密曰明堂水器中明珠二
009_0420_a_11L如蓮露團圓衆猶未之信逮薦香
009_0420_a_12L之夕五色彩雲集于燒臺上作一化
009_0420_a_13L移時而後分擁左右自灰中神光
009_0420_a_14L亘天晃朗如杲日衆星奪耀群峰慙
009_0420_a_15L滿庭緇白欽仰唶唶遠邇之人
009_0420_a_16L覩異之朝將拾骨徃視之頂骨冒北幡
009_0420_a_17L超去骨色純黃明堂器中果有靈珠
009_0420_a_18L一顆人皆謂眞舍利也始知密師之夢
009_0420_a_19L信不誣矣靑龍登空者師生甲辰化
009_0420_a_20L徃兜率之標歟瓶破水懸者色身謝落
009_0420_a_21L眞身不變之表歟靈珠置壇不燃燭而
009_0420_a_22L夜明散骨山上七夜放光獨其處
009_0420_a_23L霧晦冥風雨大作者二度人謂龍神來
009_0420_a_24L拾舍利也遵師戒不用檀信之財門弟

009_0420_b_01L제자들이 분수에 따라 힘을 합쳐 전주 송광사의 동쪽 언덕에 있는 추계 스님의 탑 오른쪽에 부도를 세웠는데, 참으로 등등燈燈이 서로 이어졌다고 이를 만하다. 식자들이 스님의 일생을 “네모난 얼굴과 빼어난 눈썹을 갖추었으니 응진應眞이 세상을 초탈한 모습이다.”라고 논하였다. 초년에 박학한 것은 자량위資粮位요, 꿈에 연못에서 목욕했다는 것은 이치의 물에 젖는다는 뜻이며, 융통한 지력은 인지행을 일으켜서 과위로 향한다는 뜻이요, 제방을 유력하면서 교화한 것은 겸중지兼中至요, 본 암자에 돌아온 것은 겸중도兼中到이다. 회경懷瓊 나는 지혜가 부족하고 말이 둔하니 어찌 감히 입을 놀려 스님을 만분의 일이나마 그려낼 수 있겠는가. 다만 사람들이 찬미하는 기이한 자취와 빼어난 모습을 취하여 스님의 행장을 지었다.


009_0420_b_01L子隨分合力樹浮屠於全州松廣寺之
009_0420_b_02L東崖秋溪和尙塔右可謂燈燈相續
009_0420_b_03L者論師一生曰具體方面秀眉應眞
009_0420_b_04L世之相初年愽學資粮位也夢沐潭
009_0420_b_05L沾理水也融通智力起行向果也
009_0420_b_06L遊化諸方兼中至也還歸本庵兼中
009_0420_b_07L到也懷瓊慧闕談鈍安敢容喙而彷彿
009_0420_b_08L其萬一㦲直取奇蹟異表之人所賛美
009_0420_b_09L爲師行狀

009_0420_b_10L
  1. 273)삼덕三德 : 법신法身ㆍ반야般若ㆍ해탈解脫의 세 가지 덕.
  2. 274)육화六和 : 육화경六和敬의 준말. 즉, 수행자가 서로 화합하고 경애하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 1. 신업동身業同. 행동을 같이함. 2. 구업동口業同. 말이 서로 일치함. 3. 의업동意業同. 뜻을 같이함. 4. 동계同戒. 계戒를 함께 지킴. 5. 동시同施. 베풂을 같이함. 6. 동견同見. 견해를 같이함.
  3. 275)황상黃裳 : 황색의 치마. 『주역』 곤괘의 육오 효사에 ‘황상원길黃裳元吉’이라고 보인다. 황색은 중앙의 색이요 치마는 아래옷이니 부부가 음양의 도를 따라 서로 순응했다는 뜻이다.
  4. 276)누구僂句 : 점을 치면 영험하게 맞추는 거북 껍질의 이름. 춘추시대 노나라의 장소백이 진나라에 가자, 그의 종제인 장회가 이 거북 껍질을 훔쳐 점을 쳐 보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이 길하다 하였다. 이에 장회는 권모술수를 부려 장씨의 지위를 차지하고는 “누구가 나를 속이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여기에서는 혼인의 점으로서, 부부 사이가 길하다는 말이다.
  5. 277)화택火宅 : 『법화경法華經』에 이르기를, “삼계는 불안하여 불타는 집과 같다.(三界無安。 猶如火宅。)”고 하였다.
  6. 278)연나라의 추연鄒衍이~서리가 날리고 : 전국시대에 추연은 연나라 혜왕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혜왕이 참소를 믿고 옥에 가두었다. 추연이 하늘을 우러러보고 통곡하자 한여름인데도 하늘에서 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논형』.
  7. 279)제나라의 서녀庶女가~세차게 불었습니다 :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젊어서 과부가 된 평범한 여인이 시어머니를 모셨는데, 시누이가 시어머니의 재산을 탐내서 죽인 뒤에 관가에 무고하였다. 과부가 스스로 무죄를 밝히지 못하게 되자 그 원통함을 하늘에 하소연했는데 바람이 불고 우레가 쳐서 제나라 임금인 경공의 전망대를 쓰러뜨렸다.
  8. 280)삼정三程 : 미상.
  9. 281)사인四忍 : 인忍은 인가忍可ㆍ안인安忍의 뜻으로, 보살이 도리에 안주安住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 무생법인無生法忍ㆍ무멸인無滅忍ㆍ인연인因緣忍ㆍ무주인無住忍. ① 무생법인은 만유 제법의 자성이 공공적적空空寂寂하여 본래 무생無生이라고 인가하는 것. ② 무멸인은 무생과 함께 무멸無滅이라고 인가하는 것. ③ 인연인은 만유는 모두 인연이 화합하여 가假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본래 자성이 없다고 인가하는 것. ④ 무주인은 만유 제법은 본래 무주無住라고 인가하여 마음에 집착이 없고, 다른 생각이 섞이지 않은 것.
  10. 282)삼공三空 : 집착한 바에 따라 공을 세 종류로 나눈 것. 즉, 아공我空(혹 인공人空), 법공法空, 구공俱空(혹은 공공空空). 아공은 중생의 몸은 오온五蘊의 화합이며, 상常ㆍ일一ㆍ주主ㆍ재宰의 아我가 없다는 것. 법공은 개인 존재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가 실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를 부정하는 것. 자기가 자기로서 자재로 활동하는 것. 구공은 아집과 법집法執의 두 가지 집착을 모두 여의고, 다시 아공, 법공까지도 버려 비로소 모든 법의 진의眞義에 도달한 것.
  11. 283)연복練服 : 소상小祥.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를 마치고 입는 상복.
  12. 284)사대四大의 서원 : 사홍서원四弘誓願으로,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이다.
  13. 285)필맥畢陌 : 주周나라의 성군이었던 문왕이 묻힌 곳.
  14. 286)나란那蘭 : 나란타사那爛陀寺. 愥 Nālanda. 중인도 마갈타국 왕사성의 북쪽에 있던 절. 시무염사施無厭寺라 번역. 405년 이후에 지은 것으로, 7세기 초 현장玄奘이 인도에 유학할 무렵에는 인도 불교의 중심지였다. 이 절에서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밀교를 중국에 전한 금강지金剛智와 선무외善無畏는 모두 이 절에서 수학하였고, 또 북송北宋 초(980) 중국에 온 법현法賢ㆍ보타흘다補陀吃多 등도 이 절의 승려이다.
  15. 287)정암靜菴 : 조광조趙光祖(1482~1519). 조선 중종 때의 성리학자.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 시호는 문정文正. 왕도 정치를 주창하고 향약을 시행하였으며 현량과의 실시를 건의하여 많은 신진 사림을 조정에 진출시켰으나 훈구파와의 대립으로 실각하여 전라도 능주(오늘날 화순)로 유배된 뒤 사사賜死되었다. 선조 때에 문묘에 배향되었다.
  16. 288)한음漢陰 : 이덕형李德馨(1561~16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 특히 이항복李恒福과는 죽마고우로 기발한 장난을 잘하여 많은 일화를 남겼다. 1601년 행판중추부사로 경상도ㆍ전라도ㆍ충청도ㆍ강원도 4도 체찰사를 겸하여 전란 뒤의 민심 수습에 힘썼고, 그 다음 해에 영의정이 되었다.
  17. 289)오성鰲城 : 이항복李恒福(1556~1618). 조선 중기의 문신.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를 지내면서 많은 공적을 세웠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본관은 경주慶州. 일명 오성대감鰲城大監.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
  18. 290)파초의 비유 : 『유마경』에 “이 몸은 파초와 같아서 속에 견고함이 없다.(是身如芭蕉。 中無有堅。)”고 하였다.
  19. 291)인내가 뼈를~것보다 더하다 : 작은 재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
  20. 292)아도阿度 : 고구려 스님. 또는 아도我道ㆍ아두阿頭. 위나라 정시 연중에 위나라 사람 아굴마가 왕명으로 고구려에 왔다가 고도령과 통정하여 아도가 태어났다. 5세에 출가하고 16세에 위나라에 갔으며 현창玄彰에게 수학했다. 19세에 귀국했다. 263년(신라 미추왕 2)에 궁궐에 나아가 불교 선전하기를 청했는데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속림 일선현 모록의 집에서 3년 동안 은거했다. 마침 공주가 병이 나서 사방으로 의사를 구할 때, 스님이 왕성에 들어가서 병을 치료하자 왕이 기뻐하며 절을 짓고 불교를 일으키게 하였다. 그 후에 미추왕이 죽자, 백성들이 스님을 해치려 하므로 모록의 집에 돌아와서 무덤을 만들고 들어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21. 293)담시曇始 : 중국 관중關中 사람. 출가한 뒤부터 이상한 행적이 많았으며, 발이 얼굴보다 희었으므로 백족白足이라 한다. 고구려 광개토왕 5년(396) 진晉나라에서 경ㆍ율 수십 부를 가지고 요동遼東에 와서 교화하였다. 이것이 고구려에서 처음으로 불법을 들은 것이라 한다.
  22. 294)목부木鳧 : 신라시대 체징體澄(804~880) 스님은 나무로 오리를 만들어 날려 보낸 뒤 오리가 앉은 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23. 295)오교五敎 : 부처님의 일대교설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 것.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당나라 현수 법장의 설은 다음과 같다. 소승교, 대승시교, 종교, 돈교, 원교.
  24. 296)월굴月窟에 복장腹藏이 열리자 : 부처님 말씀이 천지 사이에 펼쳐진 것을 비유한 것이다.
  25. 297)천근天根에 안경眼鏡이 걸리자 : 지혜의 눈이 천하를 비춘 것을 말한다.
  26. 298)오연五衍 : 인人, 천天, 성문, 연각, 보살.
  27. 299)팔정八正 :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28. 300)사생四生 :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29. 301)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30. 302)전단田單 : 전국시대 제나라의 대부이다. 연나라의 공격을 받아 모든 성읍이 함락되고 전단이 지키고 있는 성만 남았으나 기지를 발휘하여 제나라를 구하였다.
  31. 303)금용성金墉城 : 중국 삼국시대의 위주魏主 조방曹芳과 진晉나라의 혜제惠帝 등이 각각 폐위된 뒤 금용성金墉城으로 옮겨졌다. 여기에서는 견고한 성이라는 뜻이다.
  32. 304)기산岐山 : 주나라 문왕의 할아버지인 태왕이 도읍하여 왕업을 닦은 곳이다.
  33. 305)용릉舂陵 : 후한 광무제光武帝의 고향이다.
  34. 306)패읍沛邑 : 전한 고조高祖의 고향이다.
  35. 307)거북이 털(龜毛) : 거북이는 털이 없기 때문에, 없는 것을 비유한다.
  36. 308)와후媧后 : 중국 고대의 여신이다. 하늘과 땅을 떠받치는 축이 무너지자 이를 기웠다고 한다.
  37. 309)자양紫陽 : 송나라 때의 이학자인 주희朱熹의 별칭. 전설에 나오는 고대의 신선을 일반적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지칭하는 듯하다.
  38. 310)천하 사람을 답살踏殺하니 : 육조 스님이 예언하기를 후대에 천리마(마조 도일 선사를 뜻함.)가 나와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라고 하였다. 이단을 물리치고 정법을 세운다는 뜻이다.
  39. 311)떠들어 대는 것 같았습니다 :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자식에게 제나라 말을 가르치는데 초나라 사람들이 떠들어 대면 결코 배우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단이 난립하는 것을 말한다.
  40. 312)적문迹門 : 교화의 자취, 부처님의 세계에 있는 문.
  41. 313)용과 호랑이를 따르는 듯하였습니다. : 『주역』에 “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雲從龍。 風從虎。)”고 하였다.
  42. 314)반함飯含 : 망자의 입에 쌀이나 구슬을 물리는 일.
  43. 315)채익彩鷁 : 청작과 익은 같은 물새인데 배 앞에 장식을 한다. 그래서 빠른 배라는 뜻으로 쓰인다.
  44. 316)상양商羊 : 도깨비 이름인데 비가 오려고 하면 춤을 춘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홍수의 뜻으로 쓰였다.
  45. 317)연성燕星의 용龍 : 다리를 뜻한다. 출처는 미상.
  46. 318)천하모天下母 : 『도덕경』 25장에 “한 물건이 혼연히 이루어져 천지 이전에 생겨났다. 적료하게 홀로 우뚝 서서 변함이 없고, 두루 운행하면서 위태롭지 않으니 가히 천하의 모가 된다.(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고 하였다.
  47. 319)공륜空輪 : 이 세계의 가장 밑에 있는 허공.
  48. 320)변두籩豆와 호련瑚璉 : 모두 종묘에 쓰이는 귀한 제기祭器이다.
  49. 321)증자에게서 들었고 : 『맹자』에 “증자께서 말씀하셨다. ‘경계하고 경계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가리라.(戒之戒之。 出乎爾者。 反乎爾者也。)’”라고 하였다.
  50. 322)『주역』에 보인다 : 『주역』에 “선을 쌓는 집안엔 반드시 복이 넘치고, 불선을 쌓는 집안에는 재앙이 넘친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고 하였다.
  51. 323)요동의 학 : 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신선이 되고 나서 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다시 고향을 찾아왔다.
  52. 324)백향산白香山 : 백거이白居易(772~846). 당나라 시인. 자 낙천樂天. 호 취음선생醉吟先生ㆍ향산거사香山居士. 800년, 29세로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32세에 황제의 친시親試에 합격하였으며, 「장한가長恨歌」와 「비파행」이 유명하다.
  53. 325)원미지元微之 : 원진元稹(779~831). 당나라 시인. 자는 미지微之이며,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신악부 운동新樂府運動을 주도하였다. 시가 일찍 알려져 백거이와 함께 원ㆍ백元白으로 불렸다.
  54. 326)의마依麻 : 『순자』 「권학문」에 “쑥이 삼 가운데 자라면 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된다.(蓬生麻中。 不扶而直。)”고 하였다. 그 곁에 있으면 바르게 되는 친구로 훌륭한 친구를 둔 것을 말한다.
  55. 327)주자朱子의 시 : 이 시는 주자의 시가 아니고, 남북조시대 송나라와 제나라에서 벼슬하였던 문학자인 심약沈約의 시구이다. 아마도 주자가 어떤 글에 인용했던 듯하다.
  56. 328)연못의 꿩 : 『장자』에 “연못의 꿩이 열 번 걸음에 한 번 쪼아 먹고, 백 번 걸음에 한 번 물을 마신다.(澤雉十步一啄。 百步一飮。)”고 하였다.
  57. 329)삼성반월三星半月 : 마음 심心 자의 형상을 비유한 것. 마음 심心 자는 반달과 별 세 개로 형상화된 것이다.
  1. 1)「無竟集文稿」底本作二卷。第二卷之分量。倍於一卷故。此下分卷爲「無竟集文稿卷之三」{編}。
  2. 2)「文縞卷之三」五字。編者補入。
  3. 3)「文二」二字編者補入。
  4. 4)「瞻」疑「贍」{編}。
  5. 1)「引」下有「孤松子述」編者除之。
  6. 1)▣疑「淸」{編}ㆍ「▣虛…覺靈」十字底本作小文字。編者作本文活字。
  7. 2)▣疑「芙」{編}。
  8. 1)「僅保」底本作小文字。編者改作本文活字。
  9. 1)此行狀。底本在序文之後。編者移置於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