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무경집(無竟集) / [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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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나는 병이 많고 기력이 일찍 고갈되었다. 올해 비로소 흰 구레나룻이 몇 가닥 생기니 슬프게도 생사의 근심이 있게 되었다. 더욱더 눈앞에 사소한 일들이 다 지나가는 소리요 흘러가는 구름과 같아, 진실로 마음에 둘 가치가 없음을 깨달았는데, 어찌 다시 쥐 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같이 하찮은 것을 사후의 영예로 삼겠는가. 드디어 평생에 저술한 것을 모두 먼지 낀 상자에 넣어 두고, 무릇 세상에서 칭찬하는 학사와 사대부의 작품도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고자 하지 아니하여, 쓸쓸하게 은퇴한 병사나 늙은 학자와 같이 자각동紫閣洞에서 문을 닫고 날마다 바둑과 술로써 한가로이 지냈다.
문득 시승 자간慈侃이 그의 스승 무경의 문집을 지니고 와서 끝에 몇 글자 적어 주기를 청하였다. 문집을 편집한 자는 정헌靜軒 이 봉하李奉賀와 양강楊江 이 상서李尙書요, 머리에 실린 글은 약산藥山 시랑侍郞 오영백吳永伯의 문장이다. 이들은 모두 당대 문장의 거장으로서 그 추린 것이 정밀하고 헤아려 드러낸 것이 마땅하니 문장의 모범으로 남아 진실로 선림禪林을 빛낼 것이다. 자간이 두루 다니면서 정성을 다하니 또한 가상하다. 그런데 어찌 게으르고 쓸데없는 자의 보잘것없는 글을 구하는가. 여러 번 사양하여 보냈으나 자간의 요청이 더욱 간절하였다. 이제 출판이 거의 끝나감에 더욱 재촉하였다. 아아! 나도 세상 문단의 인연을 끊고

009_0420_b_11L[跋]
余多病早竭今年得數莖白髭悵然有
009_0420_b_12L九泉之愁益悟目睫營營者等是過音
009_0420_b_13L歸雲固不足嬰懷則豈復以鼠喞蛩唫
009_0420_b_14L之微留作人骨之餘光哉遂取平生所
009_0420_b_15L著述並錮之塵麁中而凢世所稱學士
009_0420_b_16L大夫之作亦不欲耳食目論蕭然如退
009_0420_b_17L兵老宿閉戶紫閣洞中日以棊酒消閒
009_0420_b_18L忽有韵釋慈侃袖其師無竟集來乞尾
009_0420_b_19L題數字其删選者靜軒李奉賀曁楊江
009_0420_b_20L李尙書而弁卷則藥山吳侍郞永伯之
009_0420_b_21L文也是皆當世之名公巨匠其刊擇之
009_0420_b_22L必精揚礭之必當留作正眼寶藏
009_0420_b_23L可生色禪林侃之周流效勤亦可尙矣
009_0420_b_24L又奚用懶散者寂寥一語哉謝而遣之
009_0420_b_25L者數而侃之請弥勤今以剞劂將訖
009_0420_b_26L督之尤急余已刊落世間文緣

009_0420_c_01L다시 입에 올리려 하지 않거늘, 하물며 그대들은 이 세계를 공화空花와 양염陽焰같이 여기면서 여전히 부질없는 문장으로 세상에 빛을 빌고자 이와 같이 부지런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곁에 있던 어린 아우가 이 말을 써서 이와 같이 자간 스님에게 보내 주었다.

무오년戊午年(1738) 중춘仲春에 양천陽川 허채許采가 자각동의 선두헌仙蠧軒에서 쓰다.

009_0420_c_01L不欲置齒牙間況尔輩付此界於空花
009_0420_c_02L陽燄而猶螸以殘螢冷蠧借輝於塵俗
009_0420_c_03L若是靳靳奚㦲稚弟之在傍者以是語
009_0420_c_04L筆而歸之如是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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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舍戊午仲春陽川許采題於紫閣
009_0420_c_06L之仙蠧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