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무경집(無竟集) / 無竟集文稿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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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집문고無竟集文稿 권2
문文 1
사자산 광수암기
주석에 따르면 불佛은 각覺이라 하는데, 각은 기겁祇劫, 무한히 긴 시간 동안 광수廣修한 훈업으로 말미암는다. 붓다의 제자로서 붓다께서 광수하여 깨달음을 이룬 것을 본받고자 하는 이는 누구인들 광수할 곳을 얻기를 원치 않겠는가. 수행처는 진실로 얻기 어렵고 얻더라도 암자를 짓기가 쉽지 아니하니, 얻기 어려운 곳에서 암자를 창건하여 광수암이라고 이른 것이 어찌 쉽겠는가. 대개 보건대 터가 그윽하고 고요하며, 샘은 달고 토지는 비옥하며, 산봉우리와 골짜기는 빼어나고 깊어서 멀리 속세를 벗어났으니 실로 수행을 돕는 땅이요 광수하는 곳이다.
그 초창을 살피건대 어느 시대인지 알지 못하나 근래에 개척한 이는 설민雪敏 스님이다. 그 후로 뛰어난 선사와 훌륭한 강주講主가 수시로 출입하여 학문과 수행을 폐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바람이 치고 비에 씻겨서, 동량이 썩고 기울어지며 서까래와 상인방이 떨어져 나갔고 덮개와 벽돌이 새고 깨졌다. 금벽金碧이 바랬으며 쥐가 담을 뚫고 제비가 이에 떠나 거의 사슴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에 승민勝敏 큰스님이 근심하고 안타깝게 여겨 중수할 것을 발심하여 재물을 모으고 기술자를 고용하였다. 나무를 깎아 상한 곳을 바꾸고 기와를 사서 새는 곳을 막으며 채색하여 퇴색한 것을 빛나게 하니, 벽과 전각이 새가 나는 듯, 금전金田이 일신되어 광명궁光明宮이 연화장세계蓮花藏世界에 환출幻出한 듯하였다.
아아! 하늘이 복지를 내리시고 땅에 수승한 인연이 솟아 광수의 행업이 면면하게 오늘날까지 끊어지지 아니하니, 아마도 땅이 신령하고 사람이 뛰어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듯하다. 만일 땅이 신령하되 사람이 뛰어나지 않다면 靈人不傑

009_0383_c_01L無竟集文稿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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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83_c_03L1)文(一)

009_0383_c_04L獅子山廣修庵記

009_0383_c_05L
釋曰佛曰覺覺由祗劫廣修之勳覺之
009_0383_c_06L擬覺之廣修爲覺者孰不欲得其
009_0383_c_07L所可廣修處處固難得得亦創庵爲
009_0383_c_08L不易之庵之創於難得之處命名以廣
009_0383_c_09L修者亦豈易㦲盖觀盤基幽閴泉甘
009_0383_c_10L土腴峯巒壑洞亦秀媚谽谺逈隔塵
009_0383_c_11L實爲助道之地而廣修之處也
009_0383_c_12L歷銓草荊 [2] 不知自何代而近之改拓者
009_0383_c_13L雪敏師也自爾禪豪講彥隨出隨入
009_0383_c_14L不曾廢也年深歲久風磨雨頮樑棟
009_0383_c_15L朽傾榱楣撲落盖磚破漏金碧漫漶
009_0383_c_16L鼠穿墉而燕斯去垂爲麋鹿之塲矣
009_0383_c_17L有碩德勝敏㦖且惜之發心重葺
009_0383_c_18L財倩工斮木以易其傷市瓦以障其滲
009_0383_c_19L裒彩以煥其黏壁殿翬飛金田一新
009_0383_c_20L怳若光明宮幻出於花藏也天墜
009_0383_c_21L福地地聳勝緣廣修之業綿綿然不
009_0383_c_22L絕於今豈地靈人傑之所交致歟苟地
009_0383_c_23L「文一」編者補入

009_0384_a_01L누가 그 신령함을 알 것이며, 사람이 뛰어나도 땅이 신령하지 않다면 어찌 그 뛰어남을 도울 것인가. 땅이 신령해도 인걸을 얻기가 어렵고 사람이 뛰어나도 지령地靈을 얻기가 쉽지 않으니, 지령과 인걸이 서로 알고 서로 돕는 것은 고금에 만나기 어려운 것이다. 대저 창건하기만 하고 개수하지 않는다면 공적이 길이 전해지기가 어려운데, 개수의 어려움은 창건보다 더하고, 개수하되 거듭 중수하지 않는다면 공적이 반드시 끊어질 것이니 중수의 쉽지 않음은 개수보다 더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승민 스님의 어려움은 옛 설민 스님보다 매우 어렵다고 하리라. 다만 훗날에 다시 중수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할 분이 누구인가는 알지 못하겠다. 이에 기문을 쓴다.
영취산 봉림사 극락전 중창기
전각을 극락이라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전각이 놓여 있는 곳은 첩첩 봉우리가 옥빛으로 서 있고 시냇물이 맑고 차갑게 흐르며, 그 가운데에 한 티끌도 침범함이 없어 불자가 거처하기에 마땅하여 극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리라. 대저 극락은 정토요 극고極苦는 예토穢土이니, 국토에 청정함과 더러움이 있는 것은 국토가 아니고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 또한 청정한 법이니 마음이 청정하지 않은데 국토가 청정하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세상에서는 모두 그릇되게 치우친 말로 마음과 국토를 분별하니 참으로 어리석음이 심하도다.
여기에 사람이 있어 물욕을 제거하고 마음을 씻어서, 마음이 청정하고 국토 또한 청정하여 마음과 국토를 모두 잊는 경지에 이른다면 마땅히 온 대지가 모두 청정국토요 대원각大圓覺이 가람伽藍이 될 것인지라, 자유롭게 조물주와 함께 노닐어 끝 가는 바를 알지 못할 것이니 어디를 간들 극락을 얻지 못하겠는가. 저 소인들은 오직 견백堅白195)의 어리석음으로 논쟁을 하고 첩경을 좋아하여, 국토가 마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말씀을 들으면 매우 괴이하다고 비웃고 믿지 아니하여

009_0384_a_01L靈人不傑誰知其靈人傑地不靈
009_0384_a_02L助其傑地靈而得人傑難人傑而得地
009_0384_a_03L靈不易地靈人傑之所相與知與助
009_0384_a_04L曠世難逢者也夫唯草創而不改拓
009_0384_a_05L不永傳改拓之難尤於草剏改拓而
009_0384_a_06L不重葺績必將絕重葺之不易亦尤
009_0384_a_07L於改拓則今敏之難難於舊敏遠矣
009_0384_a_08L第未知後之復出而難於難難者誰耶
009_0384_a_09L是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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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84_a_11L靈鷲山鳳林寺極樂殿重剏記

009_0384_a_12L
殿以極樂名何以殿之枕倚也複嶂絕
009_0384_a_13L玉立氷涵無一點塵滓或侵於中
009_0384_a_14L宜佛者居而極樂可致故耶夫極樂淨
009_0384_a_15L土也極苦穢土也土之有淨穢非土
009_0384_a_16L而由人之所自致故人之心淨土亦淨
009_0384_a_17L心不淨而土淨者未之聞也世擧窃竊
009_0384_a_18L然皷偏喙心乎土乎甚矣固若是芒乎
009_0384_a_19L能有一人於此刳形洒心以至心亦淨
009_0384_a_20L土亦淨心土俱忘之域則當以盡大地
009_0384_a_21L爲淨土大圓覺爲伽藍翛然與造物者
009_0384_a_22L莫知其所窮安徃而不得極樂㦲
009_0384_a_23L彼杓之人唯以堅白之昧謑髁好逕
009_0384_a_24L聞土之由心造笑以爲弔詭莫或之信

009_0384_b_01L항상 분수 밖에 마음이 치달려 헤매니 어디를 간들 극도의 괴로움을 얻지 않겠는가.
아아! 저 피안을 정토라 하여 극락이라 이르고 차안을 예토라 하여 극고라고 이르는 자는 정예고락淨穢苦樂이 마음으로 말미암은 줄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니 그 어리석음이 마땅하다. 저가 말하는 국토는 저가 주장하는 국토요 내가 말하는 국토가 아니다. 대개 내가 말하는 국토는 성性이요 상相이 아니고, 저가 말하는 국토는 상相이요 성性이 아니니 저와 나의 차이를 반드시 분별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진실로 마음의 질곡에서 벗어난 자가 있어, 저의 상을 버리고 나의 성을 취하여 자유로운 세계에 노닌다면 정토와 예토는 무엇이며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이는 누구이겠는가. 전각을 명명한 것이 과연 이 뜻인가.
중수한 이는 산승인 옥잠玉岑이요, 때는 병신년(1716) 중춘仲春이다.
모악산 은선암기
대저 법당이 창건된 지 오래되었다. 기문을 쓰는 것도 예로부터 부득이한 것이니 이 암자의 창건 기문도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월봉月峰 스님의 제자 중에 태휘太輝 스님이 있는데 실로 선문의 지도자이다. 나를 찾아와 팔을 잡으며 말하였다. “제가 모악산에 오르니 그 위에 은선암이 있었습니다. 그 터를 보았는데 높고 밝게 트이고, 보이는 경치가 맑고 깨끗하여 속인들이 거처할 곳이 아니었습니다. 노인에게 어느 시대에 지어졌느냐고 묻자 들은 바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말하기를 ‘진묵震黙 대사가 일찍이 여기에 당간을 세웠는데 훗날 산불에 탔습니다. 갑자기 백마가 와서 울고 검은 소는 멀리 떠났으며 담은 무너지고 주춧돌은 깨어졌습니다. 황폐한 터에 등나무와 덩굴만이 무성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였습니다.

009_0384_b_01L長火馳劵外而倀倀安徃而不得極苦
009_0384_b_02L彼以彼岸爲淨土曰極樂此岸
009_0384_b_03L爲穢土曰極苦殊不知淨穢苦樂之未
009_0384_b_04L甞不由於心其芒也則宜然則彼所謂
009_0384_b_05L土其所土非吾所謂土也盖吾所
009_0384_b_06L謂土性也非相也彼所謂土相也
009_0384_b_07L性也彼吾之間必有將辨者矣苟有
009_0384_b_08L隳天袠解帝懸者捨彼相而取吾性
009_0384_b_09L汗漫建德之鄕則淨穢何土苦樂何
009_0384_b_10L殿之命名果以此也歟重葺者誰
009_0384_b_11L山之僧玉岑也何年月耶丙申仲
009_0384_b_12L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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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84_b_14L母岳山隱仙庵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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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晬堂之創尙矣而從而記之者亦自
009_0384_b_16L古不得不爾此庵之剏記亦可已耶
009_0384_b_17L月峯之役有曰太輝實禪門中執筳者
009_0384_b_18L踵門而掣肘曰我登母岳其上盖
009_0384_b_19L有隱仙庵云觀其盤基爽塏觸境瀟洒
009_0384_b_20L非烟火食者所能栖也問古老以肇闢
009_0384_b_21L何代曰未有聞但有人言震默大師
009_0384_b_22L曾建幢於此後爲山熢所燬遽令白馬
009_0384_b_23L來嘶玄牛去遠陒墉破礎蒙藤葛於
009_0384_b_24L朽境者久矣以歲乙亥有頭陀信海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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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1695)에 신해信海 스님이 도인들이 거처하여 수행할 수 있음을 보고 이에 작은 암자를 창건하니 스님들이 다투어 오게 돼 향성香城이 저절로 좁았습니다. 마땅히 더 늘리고 많은 스님들이 모여 안선安禪할 수 있도록 해야 했지만, 때가 맞지 않고 사람의 일 또한 쉽지 아니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여태껏 이루지 못하였으니 어찌 뜻있는 자의 마음에 개연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비록 매우 어리석으나 그 말씀을 듣고 분발하여 거듭 중창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마땅히 병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해야 하지만 진실로 홀로 이루기 어려웠습니다. 드디어 뜻있는 원준元俊 스님과 올봄에 함께 나서 여러 인연을 모집하고 많은 기술자를 고용하여 봄에 시작하여 여름에 끝냈는데, 예와 지금을 헤아리고 증명하여 그 규모를 약간 늘렸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감히 내세우지 못하나 원준의 공적은 포상하여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으니 원컨대 그대는 한마디 말씀을 아끼지 마시고 기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대저 진묵 스님은 옛날의 훌륭한 스님으로, 평생 괘탑掛塔(안거를 이르는 말)할 적에 명산의 청정한 곳만을 기약하였는데, 이 암자 또한 당시에 머물러 수행하던 곳이라 그 빼어남을 알겠습니다. 신해 스님이 그 승경勝景을 보고 먼저 암자를 열었고 그대와 원준 스님이 뒤를 이어 넓혔으니 신해 스님도 진실로 쉽지 않았거니와 그대와 원준 스님 또한 형제가 함께 나서 훈지塤篪196)가 화답하듯 이루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대의 간곡한 청을 어기기 어려워 감히 기문을 씁니다.”
추줄산 숭암사 주종기
대저 종은 악기이다. 명구鳴球, 분고賁鼓와 유사하지만 쓰임은 더 크니, 실로 예나 지금이나 나라와 선문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왕이 거虡(원래는 종이나 경쇠를 걸어 놓는 나무인데, 여기서는 종이나 경쇠를 뜻한다.)를 두드려 벽옹辟雍197)에서 연주하였고 주공周公도 업業(종ㆍ북을 거는 나무틀 장식)을 설치하여 청묘淸廟198)에서 울렸다. (전국시대) 제 선왕齊宣王이 홀로 음악을 즐길 때와 (춘추시대) 초 장왕楚莊王이 주야로 즐길 때에도 어찌 이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겠는가. 오늘날의 제왕가帝王家에 이르러서도 종을 매달아 팔일무八佾舞와 육일무六佾舞199)를 출 때에 간주하고, 음악을 거둘 때는 옥경으로 하고 시작할 때는 종으로 하며,

009_0384_c_01L名者顴道者可居而成爰創小庵
009_0384_c_02L侶風趨香城自隘宜廣拓俾海衆大
009_0384_c_03L集安禪而時不遇人且未易迨未爲
009_0384_c_04L可爲豈不慨於志者心乎儂雖愚甚
009_0384_c_05L聞而且奮準擬重闓而歲迫崦嵫命臨
009_0384_c_06L悲谷當力疾爲此而誠難可獨辦
009_0384_c_07L與有志者元俊同出於今春募諸緣
009_0384_c_08L羣工濫觸於春覆蕢於夏推前證後
009_0384_c_09L稍增其制如我不敢云俊不可褒揚其
009_0384_c_10L願子母 [3] 吝一虀臼以志可乎余曰諾
009_0384_c_11L夫默古散賢也生平掛搭未嘗不必於
009_0384_c_12L名山淨界而此庵亦當年止息之一所
009_0384_c_13L則其勝可見也海觀其勝而首闓輝俊
009_0384_c_14L繼其闓而廣黃海固不易而如輝俊
009_0384_c_15L亦可謂伯仲氏同出而塤箎相應者也
009_0384_c_16L重違盛請敢書爲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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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84_c_18L崷崒山崇巖寺鑄鐘記

009_0384_c_19L
夫鐘樂器也與鳴球賁皷類而爲用則
009_0384_c_20L實古今國家禪門所不可闕如也
009_0384_c_21L故文王虡摐樂於壁雍周公設業樂於
009_0384_c_22L淸廟以至齊王之獨樂樂楚莊之日夜
009_0384_c_23L何莫非用此器也逮今帝王家
009_0384_c_24L栒是鏞間以八六佾玉振而金聲之

009_0385_a_01L시각을 알릴 때나 율려律呂를 조화할 때에도 이 종을 썼는데 이는 나라에도 크게 쓰여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 법좌에 오르시면 문수사리보살이 백추白搥하고, 라후라가 북채를 치면 아난존자가 돌아갈 줄을 알았다. 양 무제가 꿈속 영어囹圄에서 벗어나고 당나라 스님이 총요匆擾에게 질문할 때에도 이 악기를 썼다. 오늘날 사찰에서도 육시六時200)에 창도唱道하고 삼단三壇에서 법석을 열 때에도 종소리를 우레처럼 울려 부처님께 공양하고 복을 빈다. 백팔정 십육추百八井十六搥201)를 크게 울려 모든 중생들의 미혹된 마음을 깨우쳐 줄 때에도 이 종을 쓰니, 이는 선문에서도 크게 쓰여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이 절에는 모든 기물이 갖추어졌으나 오직 빠진 것은 종이었다. 뜻있는 스님 성환性幻이 개연히 분발하고 나서 화계火鷄(정유년, 1717) 여름에 시작하여 목룡木龍(갑진년, 1724) 봄에 주종을 마쳤다. 황금빛 둥근 몸체 위에 구유九乳가 아름답게 솟고 부처님과 보살, 금강역사의 상이 둘레에 아로새겨졌으니, 그 주조한 법은 동라국東羅國의 3만 6천 근 무게가 나가는 종을 만든 기특한 법도를 본뜬 듯하다. 한 번 종을 치니 웅장한 소리가 울려 퍼져 위로는 하늘을 울리고 아래로는 땅을 진동하며, 사생四生이 꿈을 깨고 온갖 중생이 숨을 쉬며, 또한 여환如幻의 공부를 이 종에 길이 의지하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절의 취기就機 스님이 나한테 와서 일을 이야기하고 기록을 청하므로 드디어 나라와 선문에서 빠뜨릴 수 없다는 점을 적고, 이 절에서 종을 주조한 공적을 조금이나마 기리고자 한다.
모악산 귀신사 팔상전기
대저 상相을 만드는 자는 기이한 자취가 매우 많지만 부처님의 일대환상一大幻相만을 소중하게 여기고 취하는데, 환상이 비록 많으나 팔상은 그릴 수 있는 것이다.

009_0385_a_01L以至待漏之鳴律呂之應亦莫非用此
009_0385_a_02L器也則此爲用於國家者大而所不可
009_0385_a_03L闕如也金仙氏昇座室利白搥羅候
009_0385_a_04L羅撞桴慶喜知歸以至梁皇夢脫囹圄
009_0385_a_05L唐僧質問匆擾皆用此器也逮今梵皇
009_0385_a_06L六時唱道三壇設席鯨吼雷震
009_0385_a_07L佛祝釐以至百八井十六搥鍠鍠激動
009_0385_a_08L使雜趣含識頓惺滯魄亦皆用此器也
009_0385_a_09L則此爲用於禪門者大而所不可闕如
009_0385_a_10L之寺也凡百物俱備而唯所欠者
009_0385_a_11L有有志者性幻慨然奮出權輿於
009_0385_a_12L火雞斷手於木狗 [4] 金輪圓體上九乳
009_0385_a_13L丰出佛菩薩金剛像亦皆斑斑然四圍
009_0385_a_14L其模出表法怳若東羅國三萬六千斤
009_0385_a_15L鑄鐘奇度矣一搥撞唇雄吼壯激
009_0385_a_16L盪霄漢下震地牢四產驚夢萬類竦
009_0385_a_17L亦於是器永賴如幻之功可謂豊
009_0385_a_18L寺僧就機來言事請誌遂敢書國
009_0385_a_19L家禪門所不可闕如者以褒此寺鑄鐘
009_0385_a_20L之績之萬一也

009_0385_a_21L

009_0385_a_22L母岳山歸信寺八相殿記

009_0385_a_23L
夫造相者異跡極愽唯取重於金仙氏
009_0385_a_24L一大幻相幻相雖夥八相可邈也

009_0385_b_01L대저 팔상을 서적에 기록한 것이 해와 별처럼 밝으나, 한갓 그 책이 상자에 보관되어 있다면 어찌 함 속의 구슬과 창고 속의 칼이 지극한 보배인 줄 알고 취하여 쓰리오.
두심斗㻣 스님은 실로 선림 가운데 뛰어난 스님으로, 강원에서 가르치면 어두운 자의 눈과 귀가 열리고, 선원에서 말을 여의면 마음이 명경지수와 같았다. 사람을 인도할 때는 산에서 나무를 재는 듯하였고, 사물의 이치를 깨친 것은 부싯돌에서 불을 얻은 듯하였으며, 덕은 맹수를 순종시키고 수행의 공은 오묘하였다. 일찍이 범왕의 집을 훌륭하게 짓고 다듬어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했는데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으나 오직 이 절에 더욱 힘을 쏟았다.
정해년(1707)에 보방寶坊을 장엄하고 아울러 부처님의 모습을 꾸미니, 화려한 당과 그림의 모습이 모두 지극히 정미하여 옥찰玉刹과 금전金田을 화려하게 비추었다. 산과 시내도 빛을 더하여 성대하게 화성化城 가운데 머무르는 듯하였는데, 다만 빠진 것이 팔상이었다. 스님이 이에 개연히 다시 나와서 을미년(1715) 여름에 전각을 짓고 병신년(1716) 가을에 팔상을 만들었으니, 청정한 곳이 이 때문에 더욱 아름다움을 다투어 제망帝網의 구슬 빛이 천궐天闕에서 상호 비추는 듯하였다.
아! 장차 세상 사람들이 연꽃 보좌 아래에 나아가 절하고 손으로 가리키며 “이것은 아무 상이요, 저것은 아무 상이다.”라고 말하게 하고, 차례대로 음미하며 감격하게 하고, 자기의 팔상을 돌이켜 보게 할 것이니, 그 크고 성대한 공덕은 구슬과 칼이 지극한 보배임을 알고 사람들이 취하여 쓰게 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에 기문을 쓴다.
모악산 비장암 침허루기
암자에 있는 누각은 오래되었다. 예전에 기문이 있었는데 작자는 백곡白谷과 단하丹霞 두 사람이다. 백곡은 기문에서 “누각은 을사년(1689)에 이루어졌는데 상운祥雲 스님이 일을 맡았다.”고 하였고, 단하는 기문에서 “형계浻溪 스님이 창건했다.”고만 하고 을사년은 기록하지 않았다.

009_0385_b_01L八相之載籍者昭然星日而徒卷軸藏
009_0385_b_02L諸篋笥中則孰能知廡裏珠庫中刀爲
009_0385_b_03L至寶而取用㦲有曰斗㻣實禪林中秀
009_0385_b_04L士也遊刃敎苑混沌逢鑿捨筏禪池
009_0385_b_05L止水偉漪誘人也度木於山悟笏也取
009_0385_b_06L火於燧德幾馴虣功妙承蜩曾修飭
009_0385_b_07L梵王家犖犖然駭人耳目者不一其
009_0385_b_08L而唯於此寺用力尤多矣龍集丁亥
009_0385_b_09L重莊寶坊並儼神儀華堂繪容皆極
009_0385_b_10L精微輝煌玉刹照暎金田山若增
009_0385_b_11L若增蔚然若一化城中止而但所欠者
009_0385_b_12L八相也師乃慨然復出樹殿於乙未夏
009_0385_b_13L造相於丙申秋淨界以之倍增鬪媚
009_0385_b_14L帝網珠光互融天闕也將使世人
009_0385_b_15L造菡萏寶座下拜手而指曰此某相也
009_0385_b_16L彼某相也次第歷玩以至激感而回
009_0385_b_17L就自己八相則其豊功盛德不趐如知
009_0385_b_18L珠刀爲至寶使人取用而止矣何其佳
009_0385_b_19L是爲記

009_0385_b_20L

009_0385_b_21L母岳山臂長庵枕虛樓記

009_0385_b_22L
庵有樓舊矣舊亦有記而作者亦有二
009_0385_b_23L曰白谷與丹霞也谷之記曰樓成乙巳
009_0385_b_24L而祥雲主役霞之記但曰浻溪所創

009_0385_c_01L상운, 형계 두 스님이 을사년에 힘을 합쳤는데 백곡의 기문에는 형계를 빠뜨리고 단하의 기문에는 을사년을 빠뜨린 듯하다. 그러나 백곡의 기문에는 사람과 해를 갖추어 싣고 한 사람만을 빠뜨렸지만, 단하의 기문에는 해를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것으로 말하자면 백곡의 기문이 낫고 단하의 기문은 못하다고 할 만하다. 또 백곡의 기문에는 독의루獨倚樓라 하고 단하의 기문에는 침허루枕虛樓라 일렀다. 대저 이름이란 실제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대개 이 누각은 산의 상방上方에 지어졌는데 밝게 트인 것이 으뜸이다. 높은 난간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면 골짜기가 멀리 펼쳐져 푸른 바다까지 뻗어 있고, 또한 섬들이 아득히 바닷가를 덮고 있다. 가까이 보고 가리키면 산악이 높이 솟고 포구가 둘렀으며, 들판의 푸른빛이 멀리 이어지고 마을과 사람들이 아주 작게 뒤섞여 발아래 펼쳐지는데, 마음이 유유자적하고 몸이 편안하여 흡사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듯하다. 유람하는 이들이 많고 끊임없이 왕래하므로 그곳에 사는 사람만 홀로 기대는 것이 아니요, 외부 사람들도 모두 기대어 본다. 홀로 기댈 때도 누각은 허공에 누워 있고, 또한 여럿이 기댈 때도 저절로 허공에 기대어 있으니 침허루의 풍경이 홀로 기댈 때나 여럿이 기댈 때나 어찌 다르겠는가.
‘침허’라는 이름은 명실상부하고 ‘독의’라는 이름은 명실이 서로 맞지 않으며, ‘침허’의 뜻은 넓고 ‘독의’의 뜻은 협소하여 ‘독의’라는 이름이 ‘침허’보다 못하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대저 문장으로 말하면 백곡의 문장은 뛰어나고 단하의 문장은 못하며, 명칭으로 말하면 단하의 명칭은 넓고 백곡의 명칭은 협소하여

009_0385_c_01L乙巳盖雲溪二人同一力於乙巳
009_0385_c_02L谷之記忘其浻溪霞之記忘其乙巳
009_0385_c_03L然則谷之記具載人與歲而但忘
009_0385_c_04L其一人霞之記不惟忘其歲亦忘其
009_0385_c_05L一人也以此論之谷之記優而霞之
009_0385_c_06L記劣也又谷之記以獨倚名霞之記
009_0385_c_07L以枕虛名夫名者實之賔也盖觀斯
009_0385_c_08L樓之作在山之上方而爽塏居最
009_0385_c_09L危檻而縱遠目則瀰漫鯷壑浩淼於鵬
009_0385_c_10L搏之外蒼茫島嶼掩藹於鼉戱之邊
009_0385_c_11L至若近盱而指點則山岳之嶙峋浦溆
009_0385_c_12L之縈回郊原綠蕪之迢遞聚落人物之
009_0385_c_13L醯雞無不殽然披露於履舃之下
009_0385_c_14L悠悠然洋洋然心凝軆釋恍若搏扶搖
009_0385_c_15L而凌太虛九萬里之上矣有遊賞者
009_0385_c_16L磨肩接踵而憧憧不絕則不但居人之
009_0385_c_17L獨倚亦有外人之僉倚獨倚之時樓自
009_0385_c_18L枕虛也僉倚之時樓自枕虛也枕虛
009_0385_c_19L中景物何曾不同於獨倚僉倚間㦲
009_0385_c_20L知枕虛之名名實相符獨倚之名名實
009_0385_c_21L不合枕虛之名寬而獨倚之名狹
009_0385_c_22L倚之名不若枕虛之名于焉可見也
009_0385_c_23L夫以文言之谷之文優而霞之文劣
009_0385_c_24L以名言之霞之名寬而谷之名狹

009_0386_a_01L문장의 우열과 명칭의 넓고 좁음이 같지 않으나 누각의 형승은 그대로이다. 아아! 두 개의 기문이 지어져서 감히 다시 지을 수 없으나, 다만 백곡의 기문은 문장은 뛰어나나 명칭은 좁고, 단하의 기문은 명칭은 넓으나 문장은 못하니, 서로 승부가 되어 절충을 얻지 못해 모두 먼 훗날에까지 보일 만하지 못하기로 다시 기문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설 징사의 이락정기
예로부터 맑은 절개를 지닌 선비는 세속의 굴레에서 벗어나 시골에 은둔하고, 세상에 함께할 즐거움이 없으면 시내와 산을 즐기기도 하고 풍월風月과 죽석竹石을 즐기기도 하며 느긋하고 여유롭게 자득하여 타고난 삶을 다한다. 수성 산인水性山人을 보니 푸른 산과 시내에 노닐며 즐기는 사람이다. 방에 찾아오는 것은 오직 맑은 바람이요 함께 마시는 것은 밝은 달뿐이니 바람과 달을 즐기는 자요, 관복과 홀笏로 기이한 돌에 절하고 항상 대나무와 어울리니 대나무와 돌을 즐기는 분이라, 옛사람의 즐거움을 참으로 즐긴다.
이제 주인이 푸른 산과 시내 사이에 정자를 엮고, 시내를 굽어보고 산을 우러러보니 시내와 산에 흥을 기탁하는 즐거움이 넉넉하며, 북창에서 바람 쐬고 동창에서 달맞이를 하니 바람과 달을 취하는 즐거움이 넉넉하고, 또한 석대를 높이 쌓고 푸른 대를 많이 심어 곧은 덕을 대와 돌에 의탁하는 즐거움이 넉넉하니 주인의 즐거움은 더욱 넘친다. 이 태평시대에 태어나 능히 영화와 부귀를 버리고 산수 사이에 소요하여 시골의 즐거움을 만끽하니, 옛사람과 비교해도 넘치고 세상일에 치달려 부침하는 자와는 참으로 차이가 큰 것이다. 즐거움이 이와 같이 하나둘이 아닌데도 다만 이락정二樂亭이라 이름 지은 것은 아마도 산수의 즐거움이 이런저런 즐거움 중에 으뜸이요, 이런저런 즐거움은 산수의 즐거움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009_0386_a_01L劣寬狹之不同而樓之形勝則自若也
009_0386_a_02L二記已述不敢更作而但谷之記
009_0386_a_03L文優而名狹霞之記名寬而文劣互爲
009_0386_a_04L勝負未得折中俱不可遠示於來者
009_0386_a_05L故不得不更爲之記

009_0386_a_06L

009_0386_a_07L薛徵士二樂亭記

009_0386_a_08L
自古有淸節之士脫屣名韁幽遯鄕谷
009_0386_a_09L無人世可與樂則或樂溪山或樂風月
009_0386_a_10L或樂竹石優遊自得以終其千年
009_0386_a_11L見天水性山人遊碧峯樂溪山者也
009_0386_a_12L吾室者唯有淸風對吾飮者唯當明
009_0386_a_13L樂風月者也袍笏拜奇石何可無
009_0386_a_14L此君樂竹石者也古人之樂眞可樂也
009_0386_a_15L今主人構亭於靑嶂碧溪之間頫臨智
009_0386_a_16L仰對仁山興寄溪山之樂足矣
009_0386_a_17L納北牗月迎東牎節取風月之樂足矣
009_0386_a_18L高累石臺多樹菉竹貞托竹石之樂
009_0386_a_19L足矣主人之樂尤可樂也生此聖明
009_0386_a_20L之世乃能棄榮利日偃仰山水間爛熳
009_0386_a_21L鄕曲之樂與古人較亦多有之與世
009_0386_a_22L之役役乾沒者相去奚但萬萬樂如是
009_0386_a_23L不一而但名以二樂者盖以山水之樂
009_0386_a_24L最諸樂而諸樂亦在其中者耶夫溪山

009_0386_b_01L
대저 시내와 산은 천지가 열릴 때부터 흐르고 솟았다. 예전에는 무성한 초목에 가려져서 높게 솟은 것은 다만 산이요 잔잔히 흐르는 것은 시내인 줄만 알고, 훌륭한 경치가 그 안에 숨은 줄 몰랐다가 한번 주인을 만나니 인자仁者와 지자智者의 터가 되어 그 터의 사물도 모두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맑은 바람, 밝은 달, 하얀 돌, 푸른 대가 청산녹수 사이에 맑고 깨끗하게 비치고 서로 어우러져서 인자仁者와 지자智者의 터가 되니 이런저런 즐거움이 참으로 두 가지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옛사람은 천지를 장막과 자리로 여기고 일월을 등불과 촛불로 생각하며, 팔황八荒을 나의 방에 들이고 만물을 도야陶冶하여, 천지 사이의 만물이 나의 소유가 아님이 없으니 어찌 꼭 그 정신을 수고롭게 하여 산수 사이에 정자를 엮고 나서야 즐겁겠는가. 다만 주인이 인지仁智의 경지에 소요하고 만물과 하나 되어 그 마음을 넓혀 간다면 마땅히 천지의 기운을 타고 넓은 세계에 자유롭게 노닐 것이니 어찌 산수 사이에서 방황하며 두 가지 즐거움만 자랑했겠는가.
운주산 용장사 사적기
부처님의 덕은 성대하도다. 자취 없이 행하시고 천하로 하여금 공경하고 엄숙하게 하니 참된 교화가 성대하지 않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 동방은 본디 인의의 고을이라고 일컬었는데, 선에 나아가기를 물 흐르듯 하니 다른 나라들이 숭상하였다. 학국鶴國을 세우고 안찰鴈刹을 높이는 것이 중국보다 매우 성대하였으니, 마땅히 오묘한 교화가 만년을 지나도록 새로운 것이다.
내가 추월산秋月山으로부터 와서 용장사 백운암에 쉬고 있는데, 어느 날 주지인 취옥翠玉 스님이 찾아와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다.

009_0386_b_01L自開闢流峙昔爲蓁莾所蒙翳嶙峋而
009_0386_b_02L高者但知爲山潺湲而流者但知爲水
009_0386_b_03L不知形勝之藏於中一遇主人而爲仁
009_0386_b_04L智境境中諸物無一或不樂也淸風
009_0386_b_05L明月白石翠竹瀟洒掩暎於靑山綠水
009_0386_b_06L之間而互融爲一仁智境信乎諸樂
009_0386_b_07L之不出於二樂中也雖然古之人以天
009_0386_b_08L地爲幕席日月爲燈燭八荒入我房闥
009_0386_b_09L萬物鑄我陶鈞則大地間萬物無一不
009_0386_b_10L我有何必勞役其精神搆亭於山水間
009_0386_b_11L然後乃可樂也但主人逍遙仁智境
009_0386_b_12L物委蛇擴充其心則當驂莾眇而汗漫
009_0386_b_13L壙埌之域何帠長彷徨山水間而邴邴
009_0386_b_14L乎二樂而已㦲

009_0386_b_15L

009_0386_b_16L雲住山龍藏寺事蹟記

009_0386_b_17L
佛氏之德其盛矣乎無爲而無不爲
009_0386_b_18L使天下莫不靡然肅敬非眞風窢罭而
009_0386_b_19L然乎㦲矧我動方素稱仁義鄕也
009_0386_b_20L騶善如流逈與諸列國相尙排鶴國
009_0386_b_21L崇鴈刹比中國爲甚盛宜其玄化之歷
009_0386_b_22L萬禩長新也余自秋月山來憇錫于龍
009_0386_b_23L藏寺之白雲庵一日有主寺僧翠玉其
009_0386_b_24L名者踵門而諗懇曰之寺之草創

009_0386_c_01L
“이 절의 창건은 신라 박씨 왕조에서 시작되었소. 조통照通 스님이 산의 경치가 금전金田을 크게 열 수 있다고 보고 장차 인연을 기다려 공적을 이루고자 하였지요. 그리하여 층층 절벽 동굴에서 참선하셨는데 그곳은 땅에서 만 길이나 떨어져 있고 사방에 오르는 길이 끊겨 있으며 상서로운 구름만 산꼭대기에 머무르며 덮어 주었소. 신룡神龍은 골짜기에 웅크려 있으면서 수호하고 청학靑鶴은 바위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스님을 뒤따랐소. 사물의 감응이 이에 이르고 사람들이 사모함이 한이 없어서 명성과 향기가 멀리 퍼지자, 왕의 마음도 크게 기뻐하고 멍에를 재촉하며 멀리 달려 곧바로 산에 이르렀지요. 스님께서는 왕과 인연이 있었고 또 왕이 위태로운 곳을 오르지 못한다고 여기시며, 비로소 굴에서 내려와 석단石壇 위에서 맞이하니 말을 나누기도 전에 마음이 이미 맞아 왕이 곧 절을 올리고 향화香火의 인연을 맺었소. 송씨와 고씨 성의 두 신하가 스님을 따르기를 원하자 이에 산 남쪽과 북쪽 기슭에 각각 암자 하나씩을 지었는데, 왕은 북쪽에 거처했으며 신하는 남쪽에 거처하니 스님께서 평상시에 학을 타고 왕래하면서 함께 지극한 도를 논하였소. 이에 멀리 사방에서 도를 묻고 등에 마위麻葦202)를 가득 지고 와서 산중에서 각각 역사를 맡아서 향성香城을 우뚝 세웠으며, 아당鵝堂, 앙사鴦舍, 안실鴈室, 봉방蜂房이 모두 스무 군데를 헤아릴 만큼 화려함과 웅장함을 다하였으니 오늘날의 운주산 용장사라오. 박씨인 왕과 신하인 송씨와 고씨가 모두 당시의 사람과 물자를 빌려서 지었소. 산 안팎으로 나열된 것은 장경암長慶庵, 묘덕암妙德庵, 백운암白雲庵, 향일암向日庵, 은신암隱神庵, 석탄암石灘庵 등 여러 암자이니 모두 뜻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신라 이후로는 흥폐를 거듭하였으나 향화는 면면히 이어져 끊이지 않았소. 만력萬曆 정유년(1597)에 전쟁의 해를 입어 잿더미가 되었으며 청정한 사찰이 헛되이 황폐한 곳이 되었소. 경오년(1630)에 지전智全 장로가 뜻을 같이하는 경칙敬則 스님과 친분이 깊고 마음이 서로 화합하여, 많은 재물을 모으고 여러 기술자를 소집하여 새롭게 중흥하였고, 이로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뒤를 이어 때때로 나와 보수하여

009_0386_c_01L於新羅朴氏朝代也和尙照通觀山之
009_0386_c_02L勝可大闢金田將擬待緣立功且冥
009_0386_c_03L禪於層巖孔裏去地萬仞四絕攀躋
009_0386_c_04L只有瑞雲住冡頂而覆蔭神龍藏壑湫
009_0386_c_05L而守護靑鶴巢巖頭而隨從物感斯至
009_0386_c_06L人慕可量聲馨遠播王心大悅趣駕
009_0386_c_07L遠驅直走山中和尙以與王有緣
009_0386_c_08L未能躡危始降窟而迎坐於石壇上
009_0386_c_09L未接心已入王即拜手結爲香火因
009_0386_c_10L輔臣宋高二姓者亦願從和尙
009_0386_c_11L於南北麓上各搆一庵使王居北而臣
009_0386_c_12L處南尋常鶴背上徃來與論至道於是
009_0386_c_13L四遠問津背彌麻葦於山中各自主
009_0386_c_14L儼設香城鵝堂鴦舍鴈室䗦房
009_0386_c_15L廾許數計皆極宏麗今所謂山雲住寺
009_0386_c_16L龍藏庵王朴宋高者皆假當時人物
009_0386_c_17L而作山內外所列曰長慶妙德白雲向
009_0386_c_18L日隱神石灘等諸庵亦皆有寓意存焉
009_0386_c_19L從可想也自羅以還隨廢隨興綿綿
009_0386_c_20L然不絕香火至萬曆丁酉歲兵燹流毒
009_0386_c_21L鞫爲熾燼淸淨寶坊空作瓦礫之地
009_0386_c_22L以歲庚午長老智全與同志者敬則
009_0386_c_23L蘭其契塤篪相應鳩羣財聚衆工
009_0386_c_24L興一新自此志人軰尾繼間出逐旋

009_0387_a_01L오늘에 이르니 다행이었소. 그러나 기문을 짓는 사람을 오래도록 찾고 얻기가 어려웠소. 이제 불문에 문사에 능한 자가 그대만 한 이가 없으니 원컨대 말씀을 아끼지 마시고 그 자취를 불후하게 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소.”
내가 말했다.
“기문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전후의 사적을 알고 이와 같이 자세히 말씀하시는가.”
취옥 스님이 말했다.
“기문은 있지 않은데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 이와 같지요.”
내가 말했다.
“조통 스님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여 년 동안 문장에 의지하지 않고 이와 같이 전하였으니, 이제 문장을 짓지 않더라도 오늘날 전하는 것이 또 예전처럼 전해진다면 비록 다시 천년만년을 지나더라도 오히려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니 또 어찌 기문을 구하는가.”
취옥 스님이 말했다.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쉽게 와전되고 문장에 실린 것은 어긋나지 아니하니, 예전에 전해진 것이 비록 다행히 잘못됨이 없으나 훗날에도 더욱 잘못되지 않게 전해진다고 이치상 기필할 수가 없으니 그대는 굳이 사양하지 마시오.”
내가 부득이하여 드디어 글을 쓰려다가 또한 스스로 생각하기를,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므로, 마땅히 몸소 가서 두루 본 연후에 쓰리라 하면서 취옥 스님에게 천천히 쓰겠다고 말하니, 취옥 스님이 대답하고 물러갔다.
내가 다음날 옷자락을 떨치고 석장을 날려서 석굴로부터 왕박암王朴庵에 이르기까지 두루 보고 마음껏 음미했는데 절과 암자는 혹 전후로 다르나 풍광과 경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었다. 운주산 위엔 구름 빛이 상주하고 용주사 안엔 용의 기운이 여전히 서려 있었다. 왕박암에는 ‘왕박王朴’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고 송고대宋高臺는 송고의 옛터에 서 있었다. 천 년 전의 유적이 어제인 듯 빛나니 조통 스님의 도가 진겁塵劫을 비추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부처님의 현묘한 교화가 천지를 한없이 진동하기 때문인가. 드디어 백운선실白雲禪室에 돌아와 글을 써서 취옥 스님의 수고에 보답한다.
청량산 원암사 명부전기

009_0387_a_01L補缺至于今日則幸而文未得其人
009_0387_a_02L其人久今聞緇林能文辭者莫如子
009_0387_a_03L不惜一語使其蹟不朽可乎余曰文旣
009_0387_a_04L不有何由知其前後事而詳言之若是
009_0387_a_05L玉曰不有文而置于人之傳之若是
009_0387_a_06L自照通至于今千餘載不待文而傳之
009_0387_a_07L若是今雖不爲之文今之傳又如前
009_0387_a_08L之所以傳則雖更過千萬祀猶可以傳
009_0387_a_09L又奚以文爲曰傳於口者易訛載於文
009_0387_a_10L者不舛前之傳也雖幸而無訛後之愈
009_0387_a_11L傳而無訛理之所未可必也子母膠讓
009_0387_a_12L余不獲已遂擬操觚却自惟耳聞
009_0387_a_13L不如目覩宜親履周覽然後下筆
009_0387_a_14L玉曰徐玉唯然而退余於翌明乃拂
009_0387_a_15L衣飛笻自石窟至王朴歷徧恣玩
009_0387_a_16L宇庵社或相勝負於前後風光景物
009_0387_a_17L固無變態於古今雲住山上雲光常住
009_0387_a_18L龍藏寺裏龍氣猶藏王朴庵掛王朴字
009_0387_a_19L宋高臺斑宋高墟千餘載遺跡煥乎如
009_0387_a_20L昨日豈照通照通塵劫而不滅耶
009_0387_a_21L果佛氏玄風掀天地無疆耶遂還白雲
009_0387_a_22L禪室中書以賽玉公之勤焉

009_0387_a_23L

009_0387_a_24L淸凉山圓巖寺冥府殿記

009_0387_b_01L
불상佛相은 모두 받드는 것인데 어느 부처님인들 받들지 않겠으며, 인성人性은 모두 선한 것인데 어떤 사람인들 착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불상을 받들지 않는 경우가 있고 성품이 착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부처님의 교화가 응하고 응하지 않으며, 인욕人慾을 방종하고 방종하지 않는 차이 때문이다. 부처님의 교화가 감응하고 하지 아니하며 인욕을 방종하고 방종하지 않는 차이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피차가 느끼고 느끼지 아니하며, 선후로 깨닫고 깨닫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느끼면 여기로 응하고 저기에서 느끼면 저기로 응하게 되며, 먼저 깨닫게 되면 먼저 착하게 되고 뒤에 깨달으면 뒤에 착하게 된다. 느낌은 피차가 있으나 응함은 피차가 없고, 깨달음에는 선후가 있으나 선善은 선후가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 명산이 있으면 반드시 가람을 세우고 가람을 세우면 반드시 불상을 모시며, 가람과 불상을 세우고 모시는 것은 모두 선인에게 달렸으니 어찌 피차에 감응하고 감응하지 아니하며, 선후로 깨치고 깨치지 아니하는 것으로써 불상을 모시고 모시지 않으며 인성의 선불선善不善을 삼겠느냐.
대저 진표 율사眞表律師는 신라 때의 사람이다. 일찍이 낭주浪洲의 천층굴千層窟에서 하안거를 결제하였는데, 선정의 여가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이 산중에 응신應身을 나타내심을 멀리서 바라보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그러고 나서 바로 가람을 창건하고 모시어 만세에 복을 비는 도량으로 삼았다. 만력 임진년(1592)에 병화에 소실되었다가, 그 후 착한 무리가 간간이 나와 거듭 보방을 열었으나 명부전만 여전히 중건하지 못하였다. 강희 경오년(1690)에 현주玄珠 장로가 개연히 분발하여 오래지 않아 완성하였으니 장로의 공이 참으로 크도다.
대저 지장은 큰 성인이요, 진표는 율사이다. 율사가 느끼고 성인이 그윽이 감응하여 가람을 창건하고 불상을 봉안하였으니, 진표는 반드시 지장의 제자일 것이다. 진표는 선각자요, 장로는 후각자이다. 후각자가 선각자의 큰 공적을 본받고 뜻을 이어 명부전을 창건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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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相皆奉何佛不而不奉人性皆善
009_0387_b_02L何人不人而不善然相或有不奉者
009_0387_b_03L或有不善者何也以其佛化之應不
009_0387_b_04L人欲之肆不肆故也佛化之應不應
009_0387_b_05L人欲之肆不肆何也以其感不感於
009_0387_b_06L彼此而覺不覺於先後故也是以此感
009_0387_b_07L則此應也彼感則彼應也先覺則先善
009_0387_b_08L後覺則後善也感有彼此應無彼
009_0387_b_09L此也覺有先後善無先後也故天下
009_0387_b_10L凡有名山必創伽藍創伽藍必奉佛相
009_0387_b_11L伽藍佛相之剏奉皆在於善人奚以彼
009_0387_b_12L此之感不感先後之覺不覺爲佛相之
009_0387_b_13L奉不奉人性之善不善㦲夫律師眞表
009_0387_b_14L新羅時人嘗結夏於浪洲之千層窟
009_0387_b_15L㝎暇遙望地藏佛現應身於此山中
009_0387_b_16L然奔到即創伽藍而奉之爲萬歲祝釐
009_0387_b_17L之場至萬歷壬辰歲爲兵熢所燬
009_0387_b_18L後善人軰間相出重拓寶坊而冥府一
009_0387_b_19L迄未改建以康熙庚午歲長老玄
009_0387_b_20L慨然奮出不日告成長老之功可
009_0387_b_21L謂韙矣夫地藏大聖也眞表律師也
009_0387_b_22L律師感大聖冥應而剏藍奉相眞表必
009_0387_b_23L地藏之徒地眞表先覺也長老後覺也
009_0387_b_24L後覺效先覺丕績而繼志剏殿長老必

009_0387_c_01L장로는 진표의 무리일 것이다. 그러한즉, 진표의 느낌이 저기에 있은즉 저기의 감응도 반드시 이같이 응하고 저기에 받드는 것도 반드시 이같이 받들어지는 것이다. 장로의 깨침이 먼저 있었으니 먼저 선한 것은 반드시 뒤에 선한 것과 같고, 먼저 창건한 것도 반드시 뒤에 창건한 것과 같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느낌은 피차가 있으나 응함은 피차가 없다는 것이요, 깨침은 선후가 있으나 선은 선후가 없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훼손되고 이루어지며 이루어지고 다시 훼손되는 것은 만물의 이치인데 훗날의 후각자로서 선각자를 본받아 장로와 같이 행할 자는 누구인가. 이에 기문을 짓는다.
추월산 보리암기
신묘년(1711, 이하의 내용으로 볼 때 1712년 이후여야 한다.) 봄에 출신出身203) 신공申公이 나를 찾아와 기문을 구하면서 말했다.
“추월산 보리암은 참으로 깨달음을 증득證得하는 곳이요, 무학 국사無學國師께서 터를 잡고 창건하신 곳이다. 창건 이래로 많은 세월이 흘렀으나 향화香火의 인연은 폐하지 않았다. 만력萬歷 정유년(1597)에 왜구가 침범하여 산림에 해를 끼쳤는데 만고의 복지福地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고 한갓 고라니와 사슴의 놀이터가 되었다. 병오년(1666)에 신찬信贊 스님이 마음으로 맹세하고 분발하여, 뛰어난 기술자를 부르고 큰 나무를 깎았다. 봄에 시작하여 가을에 마치어 공을 이루고 나니 형세가 새가 나래 펴는 듯하였다. 세월이 지나자 들보와 전각이 좀먹어 썩고 비바람에 흔들려 흙벽이 바랬다. 나는 산 아래 사는 사람으로 이를 보면서 안타깝게 여겼다. 경인년(1710) 봄에 중수하여 임진년(1712) 가을에 단청을 마치니 겨우 쥐가 담을 뚫고 제비가 떠나는 근심이 없게 되었다. 유명한 사찰에 기문이 없을 수 없으므로 원컨대 한마디 말을 얻고 벽에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이는 것이 좋겠다.”
내가 말했다.
“아아! 옛날 소동파는 계戒 스님의 후신으로,

009_0387_c_01L眞表之儔也然則眞表之感在彼則彼
009_0387_c_02L應必如此應而彼奉亦必如此奉也
009_0387_c_03L老之覺在先則先善必如後善而先剏
009_0387_c_04L亦必如後創也所謂感有彼此應無彼
009_0387_c_05L此也覺有先後善無先後也者是也
009_0387_c_06L然毁復成成復毁物之常也後之後
009_0387_c_07L覺之效先覺如長老者誰耶是爲記

009_0387_c_08L

009_0387_c_09L秋月山菩提庵記

009_0387_c_10L
辛卯春有出身申公踵門而徵余記曰
009_0387_c_11L秋月山之菩提庵眞所謂證菩提處
009_0387_c_12L國師無學所胥宇草創者也剏以來多
009_0387_c_13L易穀燧香火之緣初不曾廢也粤萬歷
009_0387_c_14L丁酉歲倭寇隳突毒流山林萬古福
009_0387_c_15L一朝丘墟空爲麋鹿之場逮丙午
009_0387_c_16L苾蒭信賛矢心奮出召般倕斮大
009_0387_c_17L權輿於春斷手於秋功由鳩僝
009_0387_c_18L若翬飛歲月旣久杗閣蠹朽風雨漂
009_0387_c_19L赭堊漫漶老拙是山下人見且惜
009_0387_c_20L重修於庚寅春丹雘於壬辰秋
009_0387_c_21L無患墉鼠之穿廈燕之去拙之功不敢
009_0387_c_22L而知名寶坊不可無文願得一言
009_0387_c_23L而記諸壁以示於後人可乎余敬諾曰
009_0387_c_24L昔蘇太宰乃戒師之後身出已俸

009_0388_a_01L자신의 봉록을 내어 가람을 창건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는데 사대부로서 불도에 귀의하여 큰일을 이루는 자는 대개 전생의 공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이제 신 공申公은 산서山西의 으뜸가는 선비로 공문空門에 심력을 다하여 이같이 일을 주관하니 반드시 전생의 공적이 있었을 것이나 누구의 후신인지 모를 뿐이다. 그러나 흥폐는 늘 있는 일인지라, 이 암자가 무학無學의 창건만 있고 신찬信贊의 중수가 없으며 신찬의 중수만 있고 신 공申公이 다시 중수하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는가. 신 공申公은 신찬의 뒤에 나왔지만 공을 세운 것이 무학의 뒤에 나온 신찬보다 뛰어나므로 흥폐는 거듭해도 마땅히 만년을 지나도록 항상 새로운 것이다. 그러니 어찌 흥폐를 근심하겠는가.”
신 공의 이름은 계운溪雲으로 선을 닦아 세상에 이름났다.
영취산 상운암기
쌍현雙玄 스님은 도 있는 수행자이다. 계사년(1713) 동짓달에 한 스님이 대신 백 리 길을 달려왔는데 나에게 기문을 청하며 말했다.
“옛날 신묘년(1651)에 선학善學 스님이 뜻을 일으켜 공을 세우고 영취산 제일봉 아래에 암자를 창건하였으니 상운암의 옛터다. 이 때문에 그대로 이름을 지었으니 원컨대 그대는 붓을 휘둘러 기록해 주는 것이 좋겠다.”
내가 생각하니 수행자는 이치를 추구해 나가야지 글에 빠져서는 안 된다. 나 또한 문장에 솜씨가 없으니 번거로이 꾸밀 필요 없이 그 이름만 해석할 것인데 그대의 청에 합당한지 알지 못하겠다.
대저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뜻이 있다. 그러므로 중장통仲長統204)은 ‘락樂’ 자를 취하여 정원의 이름으로 삼고 유종원柳宗元205)은 ‘우愚’ 자를 취하여 시내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이름이 있고서 뜻이 깃들지 않은 것이 있지 않다.

009_0388_a_01L創伽藍不一其所則士夫之歸心佛道
009_0388_a_02L成就大事者盖以宿勳之所使然也
009_0388_a_03L申公以山西巨擘盡心力於空門而幹
009_0388_a_04L事若是則果信其亦必有宿勳而第未
009_0388_a_05L知前身之是誰耶然有成有毁物之常
009_0388_a_06L此庵也唯有無學之草剏而不有
009_0388_a_07L信賛之重修唯有信賛之重修而又不
009_0388_a_08L有申公之又重修則焉有今日而申公
009_0388_a_09L出於信賛之後立功不趐如信賛之出
009_0388_a_10L於無學之後則宜其成復毁毁復成
009_0388_a_11L歷萬祀長新也何患乎昭琴之皷不皷
009_0388_a_12L申公名溪雲以修善名於世云

009_0388_a_13L

009_0388_a_14L靈鷲山上雲庵記

009_0388_a_15L
頭陀雙玄釋之有道者也癸巳年一之
009_0388_a_16L差一衲走百里請記於余曰曩於
009_0388_a_17L辛卯歲化士善學發意立功創一庵
009_0388_a_18L於靈鷲山之第一峯底即古曰上雲庵
009_0388_a_19L之遺址也故仍名焉願子一揮就以
009_0388_a_20L記之可乎余惟頭陀以理自勝不耽於
009_0388_a_21L余亦於文無工不須繁餙粉繪
009_0388_a_22L解其名未知愜於請否如何夫有名者
009_0388_a_23L必有意故仲長統取樂名園柳宗元取
009_0388_a_24L愚名溪有名而意不寓者未之有也

009_0388_b_01L상운암으로 명명한 것도 어찌 유독 그렇지 않겠는가. 대개 구름이라는 것은 자연의 기이니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자연스럽게 걷히며 자연스레 푸른 봉우리 위에 출입하는데 도연명이 이른바 오고 감에 무심한 것206)이다. 그 무심하여 한가로운 모습이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느끼게 하니 과연 이러한 점을 취하여 이름으로 삼았는가. 이 암자에 거처하는 자가 이에 의지하여 그 마음을 풀어 헤치고, 비우고 또 비워 한 점의 티끌도 흉중을 침범함이 없다면 만물의 밖에 깨끗하고 우주 사이에 자유롭게 노닐어 담담하고 적적하게 자연에 합치될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나를 잊고 마음은 절로 무심해져서 구름은 모이고 흩어짐이 있되 이 마음은 변화가 없으며 구름은 출입을 하되 이 마음은 출입이 없어서,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소요하며 구름의 번거로움을 도리어 웃으며 바라보리라.
그러니 암자를 창건하는 공은 댓가지 하나로 가람을 창건한 공에 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속인들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이니 함께 이를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쌍현 두타가 바로 그 사람이다. 쌍현 두타가 이것으로써 선학 스님을 격려하고 선학 스님은 이것으로써 거주하는 사람을 인도한다면 좋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암자의 이름만 풀이하여 쌍현 두타의 청에 부응한다.
사묘에서 부모를 제사 지내는 글
천하에 누가 부모가 없겠느냐마는 엄하고 자애로움이 소자의 부모만 한 분이 없었고, 누구인들 생사가 없겠느냐마는 생사의 애통함이 소자의 부모 같은 분이 없습니다. 슬하에서 키워 주신 은혜가 하늘보다 높고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보살펴 주신 덕은 대지보다도 큽니다. 스승을 구하여 가르치시니 공자孔子의 정훈庭訓207)보다 나으시고,

009_0388_b_01L庵之命名胡獨不爾盖雲者自然之
009_0388_b_02L氣也自然而舒自然而卷自然而出
009_0388_b_03L入於碧峀之上豈陶靖節所謂去來無
009_0388_b_04L心者耶其無心閑閑之態可使人莫不
009_0388_b_05L激感其心果取此爲名耶居斯庵者
009_0388_b_06L藉乎此而銷釋其心以至於損之又損
009_0388_b_07L則無一點俗塵或侵於胸中而洒落形
009_0388_b_08L噐之表牢籠宇宙之間澹乎寂乎
009_0388_b_09L乎自然我自忘我心自無心雲有舒
009_0388_b_10L卷而此心無舒卷也雲有出入而此
009_0388_b_11L心無出入也逍遙於無何有之鄕而却
009_0388_b_12L笑看彼雲之有多事也然則創庵之功
009_0388_b_13L可與一枝竹創伽藍相誰何然此難與
009_0388_b_14L膩膓肚者道也可與道此者誰耶
009_0388_b_15L陀是也頭陀以此而勉諸化士化士以
009_0388_b_16L此而侑諸居人則可故但釋其名以副
009_0388_b_17L頭陀之請云

009_0388_b_18L

009_0388_b_19L祠廟祭父母文

009_0388_b_20L
天下誰無父母父母之嚴慈莫如小子
009_0388_b_21L之父母也人間誰無生死生死之哀痛
009_0388_b_22L亦莫如小子之父母也夫膝下掌上之
009_0388_b_23L昊天上更昊天嚥苦吐甘之德大地
009_0388_b_24L下更大地易子而敎之不趐庭訓之尼

009_0388_c_01L베틀을 끊어 훈계하시니208) 어찌 마을을 가렸던 맹자孟子의 어머님만 그리하셨겠습니까.
소자의 나이 겨우 10여 세 때에, 부모의 권유를 어기기가 어려워 심중한 은혜와 사랑을 끊고 비록 산중에서 배우고 익혔으나 마음은 항상 부모님을 그리워하였습니다. 때때로 문안드리면 하루도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곧바로 보내며 말씀하셨습니다.
“배우는 아이는 촌음을 아껴야 하니 자주 왕래하면 학업을 놓칠까 두렵다. 학업을 이루기 전에는 집을 생각하지 말고 학업에 전념하며 일취월장하여 큰 성취를 이루어라. 그런 후에 한양에서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님께 관록을 받고 금의환향하여 뜰에서 색동옷 차림으로 춤춘다면 가문의 명성이 절로 무거워지고 세업世業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비록 어리지만 나의 바람이 이 같으니 힘쓰고 힘쓰라.”
소자 이때에 여전히 어려 인사를 알지 못하나 어버이의 말씀이 간곡하신지라 마음에 감격하여 눈물을 거두고 하직하자마자 산당山堂으로 달려가 형창螢窓에서 부지런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학업을 이루기 전에 집안에 하늘의 화가 연달아 닥치고 가업이 갑자기 곤궁해져 살아갈 계책도 없었는데 입신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불문의 스승에 귀의하고 출가했는데 비록 이 한 몸 따뜻하고 배부르나 어버이의 춥고 배고픔은 차마 어찌하리오. 어버이도 실로 소중하고 스승도 저의 스승인지라 피차 누구를 두터이 대하고 누구를 박하게 대하리오. 항상 산과 집을 오가니 부모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집안이 몰락하고 네가 스님이 된 것도 하늘의 뜻이니 한탄한들 무엇하리. 다만 너는 이미 스님이 되었고 불도를 닦지 아니하면 내세의 업이 황당하리니 이제 왕래를 끊고 불도를 부지런히 닦아 우리를 괴로움에서 구해 주라.”
이렇게 항상 부촉하셨으니 그 엄하고 자애로움이 남의 부모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가르침이 비록 지극하시나 은혜를 잊기 어려워서, 평상시에 불편한 심사를 말이나 시로 드러내면 나를 아는 사람은 측은히 여기고 모르는 자는 괴이하게 생각했습니다.

009_0388_c_01L斷機而警之奚獨擇里之孟母
009_0388_c_02L子年甫十餘重違父母之眷誘忍割恩
009_0388_c_03L愛之深重學雖習於山房心常懸於庭
009_0388_c_04L有時省謁則不留日即送曰學家兒
009_0388_c_05L寸陰可惜數徃數來恐失其業業未
009_0388_c_06L成前勿須思家專心學業日漸月新
009_0388_c_07L以至於軒然大成然後觀光日下
009_0388_c_08L祿天上晝錦還鄕綵衣舞庭則地望
009_0388_c_09L自重世業不絕汝雖穉弱我望如此
009_0388_c_10L勉諸勉諸小子是時尙幼未諦人事
009_0388_c_11L親言丁寧心自激感收涙拜辭立走
009_0388_c_12L山堂懸髻螢牎着工温尋學未成
009_0388_c_13L天不門禍連綿家業遽爾一空
009_0388_c_14L資生無策立身可望得師空門許身
009_0388_c_15L落髮雖得一身温飽忍念兩親飢寒
009_0388_c_16L親實我親師亦我師以此以彼誰厚
009_0388_c_17L誰薄長徃長來半山半野父母曰
009_0388_c_18L之敗家汝之爲僧是天非人恨之奈
009_0388_c_19L但汝旣爲僧僧道不修來業荒唐
009_0388_c_20L要絕徃來勤修佛道拔我苦聚其付
009_0388_c_21L囑每每如是也則父母之嚴慈可不
009_0388_c_22L謂異於人之父母乎眷誨雖至恩義難
009_0388_c_23L尋常不平之鳴或發於言語吟哦之
009_0388_c_24L知者爲之惻隱不知者以爲恠焉

009_0389_a_01L
저번 기사년(1689) 가을에 죄가 하늘을 거슬러 화가 선고先考에게 미치니 참으로 애통하고 슬펐습니다. 천년백년 장수하시기를 바랐는데 어찌하고 반백 년 만에 환몽幻夢에서 깨어나지 못하셨습니까. 선산에 유택幽宅을 정하여 친히 묻으니 이승과 저승이 멀리 떨어져 모자만 남았으니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형제도 의지할 수 없고 친척도 돕는 이가 적어 풍년에도 배가 고팠고 겨울이 따뜻해도 추위를 근심하였습니다. 심원동深院洞에서 한여름 기식하고 지리산에서 겨울을 지냈습니다. 여러 곳을 전전하며 오가 어머님과 자식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 한목숨이 되어 새끼와 어미 사슴인 듯 반포反哺의 까마귀처럼 지낸 지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무인년(1698)에 어머님을 누이 집에 모셔 드리고 저는 돌아와 스승을 모시게 되니 비록 다행히 살 곳을 얻었으나 돌이켜 생각하면 서로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서 어머님과 자식 간에 서로의 그리움이 항상 간절하였습니다. 무자년(1708) 5월 초순 어느 날 고향에서 심부름꾼이 와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급히 달려갔으나 문 앞에 이르기 전에 이미 운명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자식이 왔는지 물으시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고 하니 천지 세상에 이같이 애통하고 참혹함이 어디 있겠습니까. 곧 선영에 부장하려다 택조宅兆가 불길하여 우선 사돈집 옛 밭을 빌리고 그 곁에 임시로 안장했습니다. 장래에 길지吉地를 택하고 부모의 묘소를 한곳에 모시어 영원히 안장할 곳으로 삼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터를 쉽게 얻지 못해 이제껏 일이 어긋나서 부모로 하여금 오래도록 각각 동서 먼 곳의 외로운 영혼이 되게 하였으니 생사의 애통함이 남과 다르지 않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집안이 쓰러질 때에 형님은 필부로서 타향에서 객사하였고 어버이를 여읜 후에는 누이가 전염병으로 온 가족과 함께 죽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익산군益山君 일파의 쇠잔한 가문이

009_0389_a_01L在己巳之秋罪戾逆天禍及先考
009_0389_a_02L呼痛㦲嗚呼痛㦲將願千百世眉壽
009_0389_a_03L無窮如何半百年幻夢不覺卜宅先
009_0389_a_04L親自壽藏幽明逈隔母子疇依
009_0389_a_05L肉無賴親戚寡助年豊而苦飢冬暖
009_0389_a_06L而憂寒深院洞裡寄食一夏智異山中
009_0389_a_07L採薪半冬轉展諸處隨徃隨來母依
009_0389_a_08L子子依母更相爲命類與子母鹿反
009_0389_a_09L哺烏相似者多有年矣以歲戊寅
009_0389_a_10L親奉去妹家小子侍來師室雖幸各當
009_0389_a_11L其居却慮相隔遠處一在天之南
009_0389_a_12L在地之北倚門之望望雲之思未曾
009_0389_a_13L不相切於彼此也至戊子五月初旬日
009_0389_a_14L鄕伻來報愆信走未及門命已臨終
009_0389_a_15L三問子來一息奄盡窮天地之痛
009_0389_a_16L人世之慘又有甚於此者乎即擬附葬
009_0389_a_17L先塋而宅兆不吉且僦婚家舊隴
009_0389_a_18L厝其側將卜吉地俱遷新舊兩宅於一
009_0389_a_19L以爲永窆之計而得地不易至今
009_0389_a_20L蹉跎久使父母各作孤魂於東西遠地
009_0389_a_21L則生死之哀痛可不謂異於人之生
009_0389_a_22L死乎抑念敗家之初兄以匹夫客死
009_0389_a_23L他鄕喪親之後妹以時疾合家俱殁
009_0389_a_24L內外骨肉終無噍類益山君一統殘緖

009_0389_b_01L거의 끊어지게 되었으니 하늘은 어찌하여 저에게 해를 끼치며 선조는 어찌 차마 돌보지 않으시는고. 마음 같아선 머리를 기르고 환속하여 후손을 잇지 못하는 큰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나이도 이미 들었고 계책도 궁합니다. 집안도 쇠잔해지고 신세도 그르쳐 모든 일이 무산되어 세상의 큰 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눈을 들어 보아도 동서남북에 친척도 없어 홀로 그림자만 짝하여 위로하니 병들어 누운들 누가 보살펴 주고 굶어 죽은들 누가 슬퍼하며, 사당의 제사는 어찌하며 선산의 들불은 뉘라서 막겠습니까. 오호통재라.
애통하면 부모를 부르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감히 부모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저의 한없는 애통한 마음을 아뢰어 부모의 영혼을 불러 봅니다. 대저 몸은 비록 떠나셨으나 영혼은 어둡지 않으므로 말 한마디 외치지 않더라도 마땅히 밝게 아실 것인데, 하물며 이렇듯 슬픔에 겨운 말로써 영혼께 부르짖으니 어찌 저승에서도 측은히 여기시고 강림하지 않겠습니까. 삼가 소박한 차림으로 부모님께 제사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천장하고 부모에게 제사 올리는 글
강희康熙 61년 임인년(1722) 병진 삭丙辰朔 21일 병자丙子에 출가한 자식 아무개는 감히 부모님의 존령尊靈께 밝게 아룁니다. 생각하옵건대 천지간의 그릇된 자손이 예나 지금이나 어찌 한限이 있겠습니까마는 누가 소자만큼 심하겠습니까. 저는 숙세의 인연이 심히 비박하고 세상에 태어나면서 불우하였습니다. 나이 겨우 10여 세에 뜻밖에 집안이 몰락하고 익산군益山君 일파의 쇠잔한 후손은 곤궁해져서 하늘에 부르짖어도 의탁하여 먹을 곳이 없었습니다. 차마 부모께서 남겨 주신 몸을 손상하고 불조佛祖의 빛에 의탁하여 얻는 대로 먹었으나 멀리 계신 부모를 모시지 못하여 한스러워하였고 오고 가며

009_0389_b_01L不絕無幾彼蒼者天我獨何害先祖
009_0389_b_02L匪靈胡寧忍子意欲長髮歸俗以免
009_0389_b_03L無後莫大之罪而年已晩矣計亦窮矣
009_0389_b_04L家殘身敗萬事瓦裂爲世大僇之南
009_0389_b_05L之北擧目無親或東或西形影相弔
009_0389_b_06L雖病而臥誰爲之拊或餓而死誰爲
009_0389_b_07L之哀祠廟時祭誰爲之主先隴野火
009_0389_b_08L誰爲之禁嗚呼痛㦲嗚呼痛㦲哀痛
009_0389_b_09L之極必呼父母人之情也故敢陳嚴
009_0389_b_10L慈之罔極哀痛之無窮以呼父母之靈
009_0389_b_11L夫形雖已徂靈必不昧不敢呼一言
009_0389_b_12L而靈應明知況以此悽多說呼於靈
009_0389_b_13L則靈安忍不惻然於冥冥中而格思乎
009_0389_b_14L謹具薄奠仰瀆先靈伏惟尙饗

009_0389_b_15L

009_0389_b_16L遷葬祭父母文

009_0389_b_17L
維康熙六十一年歲次壬寅丙辰朔二
009_0389_b_18L十一日丙子出家子某敢昭告于考妣
009_0389_b_19L尊靈伏以天地間敗子孫古今何麗
009_0389_b_20L如小子之烈宿緣甚薄生世不遇
009_0389_b_21L才十餘橫遭父母之敗家益山君一派
009_0389_b_22L殘流處涸方急嗷嗷蒼天寄食無地
009_0389_b_23L忍傷父母之遺體虛托佛祖之末光
009_0389_b_24L得隨食恨闕百里爲負米或徃或來

009_0389_c_01L삼생三牲209)으로 봉양하지 못함을 슬퍼하였습니다. 한 번 인간 세상에 불효하게 되니 방외方外에서 수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항상 스스로 묵묵히 맹세하기를 반드시 좋은 때를 만나 두 어버이를 오래오래 봉양하려 했는데 아버님께서 기사년(1689) 가을에 세상을 먼저 뜨시고 뒤이어 어머님도 무자년(1708) 여름에 운명하시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참으로 슬픕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해에 저는 본래 지리地理를 전혀 알지 못하고 또한 밝은 안목의 술사術士를 얻지 못했습니다. 선영에 예법대로 안장하였으나 선산이 불길하다는 것은 인사에 비추어 보아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선조의 자손들이 나이도 쇠잔하고 날로 일을 그르쳐 열 스물에 한둘만 남아서 선군의 정맥이 실낱과 같이 위태로웠고, 게다가 소자의 몸에 이르러서는 일가의 골육이 모두 쇠잔하여 죽었으며 오직 소자 한 사람만 생존하였을 뿐입니다. 공문에 의탁하였으나 병들고 또 쇠퇴하니 가문의 제사가 끊어지는 것을 방술方術을 기다리지 않고도 징험할 수 있었습니다. 마땅히 급히 천장하여 부모의 체백體魄을 지하에 편히 모셔야 했던 것이니 감히 세상에 소자의 자손이 많기를 바라겠습니까.
여러 해 동안 경영하였으나 터를 잡기가 쉽지 않아서 여태껏 행해야 되는 것을 하지 못해 통탄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또 어머님이 돌아가시던 날에 비로소 지술地術에 밝은 자를 만났는데 과연 아버님의 택조가 불길함을 징험하였습니다. 그러하니 또 어찌 무심하게 부모의 뼈를 좋지 않은 터에 버려두겠습니까. 우선 임시로 벽골제의 창산에 안장하고 저녁볕 드는 곳을 얻기를 기다렸다가 부모님의 묘를 옮길 때 함께 안장할 계획이었습니다. 이제 15년 만에 처음으로 한 조각 조그만 산기슭의 땅을 얻었는데 성봉星峰이 떨어지는 형국이요, 현규玄竅(지맥)가 격에 맞아 영혼이 안주하겠기에, 이에 길일을 택하고 한곳에 옮겨서 영원히 안장합니다. 이것은 소자의 공이 아니요, 모두 동료 스님들의 도움이니 이보다 큰 다행이 없습니다.
돌이켜 생각건대 내외의 손이 끊어져 장차 꼴 베고 방목하는 자를 금할 수 없어, 두려운 마음으로 탄식하고 슬퍼하니 칼날이 에는 듯하여

009_0389_c_01L傷背三牲之奉養一不孝於人間幾洒
009_0389_c_02L涙於物外常自默矢須得一時好運
009_0389_c_03L養生雙親於眉壽矣豈知嚴父先逝於
009_0389_c_04L己巳之秋慈母繼殞於戊子之夏嗚呼
009_0389_c_05L痛㦲嗚呼痛㦲先喪當年元不識地
009_0389_c_06L理之糟粕亦不得術士之神目依葬先
009_0389_c_07L而先隴之不吉依人事可想同先
009_0389_c_08L隴子孫年殘日敗存一二於十廿先君
009_0389_c_09L正脉不絕如縷而況至於小子之身
009_0389_c_10L家骨肉皆已殘殁唯小子一箇生存而
009_0389_c_11L委空門疾又衰矣宗祀之覆絕
009_0389_c_12L待方術而可徵宜亟亟遷葬但使父母
009_0389_c_13L安體魄於地下敢望小子多子孫於人
009_0389_c_14L經營累歲卜地不易迄未爲於可
009_0389_c_15L痛歎憂懼不已于中則後喪當日
009_0389_c_16L始遇善地術者果驗先兆之不吉又安
009_0389_c_17L忍恝然而委白骨於水火中也且權厝
009_0389_c_18L於碧骨之倉山待得斜陽之處俱遷前
009_0389_c_19L後葬同封之計于今十有五載始得一
009_0389_c_20L片殘麓星峯落局玄竅合格庶使神理
009_0389_c_21L宜安乃涓吉辰同遷一所而永窆
009_0389_c_22L非小子之力皆是玄侶之助則幸莫大
009_0389_c_23L而却念內外絕孫將無禁蒭牧者
009_0389_c_24L懔懔然噓唏痛傷若受鋒刃此誠人人

009_0390_a_01L진실로 사람들이 모두 가련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집안에서 조그마한 여분의 터를 빌려서 양친을 안장하고 산소를 함께하여, 그 자손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만세의 뒤에도 지키게 하였으나, 이것 또한 절박한 가운데 한 가지 슬픈 일이니 어찌 친골육이 직접 모시는 것만 같겠습니까. 그러나 일찍이 곽자郭子210)에게 들으니 천지는 한 근원이라 친소親疎의 차이가 없다고 하였으니, 만일 계속 염려를 하고 제사 지내는 일을 폐하지 않는다면 비록 이성異姓인 승도僧道가 사속嗣續한다고 할지라도 마땅히 가호를 얻을 것입니다. 가령 곽자가 어리석은 사람이면 그만이거니와 만일 조금이라도 지리를 안다면 소자의 생각으론 명분이 바르고 이치가 순하여 거의 여한이 없을 듯합니다. 오직 부모의 존령이 만세토록 안녕하시기를 바라옵니다. 상향.
죽은 제자 금화를 화장하고 제사 지내는 글
강희康熙 무술년(1718) 신유 삭辛酉朔 23일 무진일은 망제자亡弟子 금화錦花를 화장한 날이다. 늙은 스승은 눈물을 닦고 제문을 지어 차린 술과 먹을 것을 권하고 영결하며 말한다. 오호라. 금화여! 너는 이제 어디로 갔느냐. 사람의 삶에 죽음이 있는 것은 밤과 낮 같은 필연의 이치인 것이니 누구인들 없겠느냐마는, 너와 같이 슬픈 경우는 예로부터 드문 일이다. 빼어난 모습과 뛰어난 기개는 일찍 성취되어 드러났고, 사람으로 하여금 마주하면 자신도 모르게 비린鄙吝한 마음이 문득 사라지게 하여 너를 한없이 애지중지하였다.
학문을 권장하면 이해가 날로 새로워 일취월장하되 가장 뛰어난 것은 그림이었다. 그림은 여가의 일인데도 틈나는 대로 붓을 휘두르면 원기가 물씬하고 신괴함이 움직여서, 저절로 옛 격식을 이루어 천지간 만물이 하나라도 붓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이른바 일단一團의 마음이 능히 조화의 소굴이 된 것이라 이를 만하다.

009_0390_a_01L所共憐㦖者也故許僦一席剩局於神
009_0390_a_02L足家葬其兩親而同山所使其子孫
009_0390_a_03L轉轉主守於萬世之下此亦切迫中一
009_0390_a_04L悲事曷若親骨肉之的恃乎然嘗聞郭
009_0390_a_05L天地一原踈親無間苟念慮之相
009_0390_a_06L祀事之不廢則雖僧道之異姓人
009_0390_a_07L嗣續者當獲其庇陰使郭子愚人也
009_0390_a_08L則可郭子而少知地理小子所計
009_0390_a_09L名正理順庶無遺恨矣唯願父母尊靈
009_0390_a_10L萬世安寧伏惟尙饗

009_0390_a_11L

009_0390_a_12L焚葬祭亡弟子錦花文

009_0390_a_13L
維康熙歲次戊戌辛酉朔二十三日戊辰
009_0390_a_14L亡弟子錦花焚葬之辰老師抆涕爲文
009_0390_a_15L以侑酒食之奠而與之訣曰嗚呼錦花
009_0390_a_16L汝今惡乎徃矣人之生之有死也猶夜
009_0390_a_17L朝之必然理固有之人孰無㦲如汝
009_0390_a_18L可哀終古所罕夫耿介之姿英邁之
009_0390_a_19L夙成早發使人對之不覺吝萠頓消
009_0390_a_20L我之於汝愛重何歇奬進學苑妙解
009_0390_a_21L日新駸駸乎驟長而最奇者畫也
009_0390_a_22L是餘事而暇戱揮筆元氣淋漓神怪
009_0390_a_23L變動自成格古天地間萬物無一或
009_0390_a_24L逃於筆底豈所謂一團方寸能爲造化

009_0390_b_01L그러나 그림이라는 것은 이른바 삼절三絶 시서화 중에 끝이라 너에게 귀함이 되지 못하고, 귀한 것은 자기의 본분사本分事를 밝게 비추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 너는 그 이치를 아느냐고 하였더니, 너는 즉시 깨달아서 공경히 가르침을 받아 도에 들어가고자 하였다.
마침 불평스러운 일이 있어 봉성鳳城에서 숭암崇巖으로 가게 되었는데, 겨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해수병咳嗽病을 앓게 되고 날로 심해져서 침상에 누워 있었으니, 너의 병이 이와 같아 내 마음을 견디지 못하였다. 무당을 불러 점을 쳐 보니 “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이 병이 생겼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심히 미혹되어 말을 구해 너를 싣고 사자산獅子山의 정수사淨水寺로 옮겼다. 그때 장맛비가 내려 골짜기와 시내가 가득 차서 어렵게 지나오니 행색이 가련하였다. 가산歌山은 높고 가파른 고개여서 말이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사자산 허리는 겨우 발걸음만 옮길 만큼 좁아 두 산을 오르내리는 데 고생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쉬어 가며 조금씩 머무를 곳으로 나아갔는데 노독路毒으로 몸을 상하게 해 증세가 더 심해졌다. 한 달 남짓 머무르다가 점친 말 때문에 신흥사 동암東庵으로 옮겨서 백방으로 치료하였으나 하나도 효험을 보지 못하였다. 몸은 마르고 뼈는 앙상하여 숨만 헐떡거리며 실낱같이 이어 갔으니 죽을 것이 분명하여 다시 희망이 없었다. 8월 초사흘 저녁 오경에 이르러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오호라. 금화여! 너는 이제 정녕 죽었느냐. 꿈인가 생시인가. 이 어찌된 일인고. 너를 안고 통곡하니 마음이 다 무너지는구나! 너를 서림逝林에 안장하고 홀로 빈방에 돌아오니 황홀하고 아득하며 어리석은 듯 미친 듯하고 다시 살아갈 뜻이 없도다. 오호라. 너의 나이 16세에 비로소 나에게 의탁하였고, 내 나이 42세에 너를 만났으니, 너와 내가 이곳에서 함께한 지 14년이라 너의 나이는 겨우 28세요, 나는 이제 55세가 되었다. 항상 어느 날 먼저 죽어서 네가 바라는 뜻을 저버릴까 두려웠는데 누가 알았겠는가.

009_0390_b_01L窟者耶然畫者所謂三絕中末技
009_0390_b_02L汝不足爲貴貴莫如洞明自己事也
009_0390_b_03L亦會耶汝即改悟避席而願受敎方
009_0390_b_04L準擬入道適有不平之事自鳳城抵崇
009_0390_b_05L纔經數月海卒得咳嗽之症日滋
009_0390_b_06L月劇委頓床席汝病如此我心如何
009_0390_b_07L迎巫問卜枚曰由山緣不合以致此祟
009_0390_b_08L聞且惑甚索馬載汝移向獅子山之淨
009_0390_b_09L水寺時方霈雨成霖壑川瀰漫間關
009_0390_b_10L跋涉行色可憐歌山峻嶺馬不接足
009_0390_b_11L獅子峯腰僅通行履上下兩山辛苦
009_0390_b_12L可狀寸進尺歇轉向所止路毒添傷
009_0390_b_13L舊症倍劇留連月餘又以卜說避徙
009_0390_b_14L新興寺之東庵百般治療一不得效
009_0390_b_15L形銷骨稜氣息奄奄不絕如綫自分
009_0390_b_16L必死更無所望至八月初四日夜五皷
009_0390_b_17L泊然而逝嗚呼錦花汝今其死也耶
009_0390_b_18L夢耶眞耶此何事也抱汝大哭五情
009_0390_b_19L分崩殯汝逝林獨還虛室忽忽茫茫
009_0390_b_20L如痴如狂無復有生人意思也嗚呼
009_0390_b_21L年二八始投于我我年六七又逢于
009_0390_b_22L汝我之同㞐于玆十有四年則汝
009_0390_b_23L年今纔二十八我年今已五十五我恐
009_0390_b_24L一日先朝露以孤汝所望之意也誰謂

009_0390_c_01L네가 먼저 떠나 저 세상으로 갈 줄이야.
오호라. 너의 그림이 조화의 솜씨를 빼앗았다고 조화의 신이 하늘에 호소하고 하늘이 아마도 노하여 너를 급히 데려갔느냐. 너의 어짊과 효성스러움은 마땅히 하늘의 도움을 받아야 함에도 하늘이 어리석어 보답할 줄 모르는 것이냐. 너는 항상 나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는데 이제 어디로 가서 영원히 떠났느냐. 만일 하늘이 너를 좀 더 살게 해 주어 소원을 이루었다면 무엇을 한하겠는가. 너의 재주로도 이같이 참혹하게 요절하였기 때문에 나는 항상 통곡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다 죽고 죽어 다시 태어나는 것은 필연의 이치이니 너는 죽어 어느 곳에서 태어나려고 하느냐. 무상한 몸뚱이를 벗어던지고 곧바로 불국토에 가서 내가 죽어 돌아가기를 기다려 다시 금생에 다하지 못한 인연을 이어가기를 날마다 바라노라. 오호! 상향.
부도를 세우고 추계 법사를 제사 지내는 글
태어날 때에도 기이하고 죽을 때도 평범하지 않으니 진인의 출몰은 세상이 진실로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하니 선사先師께서는 덕업이 짝이 없고, 문로門路가 엄정하며 규모가 크신 데다 마음은 조화를 궁구하고 학문은 천인을 꿰뚫었습니다. 인의仁義로 무장하고 명성을 하찮게 여기며, 어리석은 이를 깨우쳐 주시고 지극한 이치를 드러내셨으니 선림禪林의 원로요 교문敎門의 목탁이셨습니다. 천하의 넓은 거처에 우뚝 서서 큰길을 당당히 걸으시며 불자拂子를 세우고 옥척玉尺을 휘두르니, 젊은이부터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을 입은 자가 많았고 그중에 제가 가장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곳곳에서 가르침을 받들고 20년을 지나는 동안 사제이자 지기로서 마음과 뜻이 화합하여 어수魚水의 낙樂을 함께하였는데 하루아침에 병마病魔가 도모할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저를 불러 입실入室케 하고 손을 잡으며 뜻을 말씀하셨는데, 훗날의 일을 간곡히 부촉하시고 조용히 입적하셨습니다.
이로부터 영결하고 소렴小斂을 마치자마자, 고향에서 심부름꾼이 와서

009_0390_c_01L汝遽去我而早逝乎嗚呼汝之畫格
009_0390_c_02L奪造化造化之神上訴天天必怒而取
009_0390_c_03L汝之速耶以汝之仁孝宜獲天佑
009_0390_c_04L老而不知報耶汝常不忍離我之側
009_0390_c_05L何去而永離耶若使汝天假之年以畢
009_0390_c_06L所願則何憾焉以汝之才夭折若是
009_0390_c_07L之慘是我之所以長慟而永懷者也
009_0390_c_08L生而死死而生理之然也汝死而當
009_0390_c_09L生於何處耶快脫幻殼直徃蓮臺
009_0390_c_10L待我之遷神以歸更續今生未盡之緣
009_0390_c_11L唯我日夕之願也嗚呼尙饗

009_0390_c_12L

009_0390_c_13L建浮屠祭秋溪法師文

009_0390_c_14L
生也有異死亦非常眞人出沒世固
009_0390_c_15L叵量丕惟先師德業無疋門路嚴整
009_0390_c_16L䂓模宏濶情窮造化學貫天人甲胄
009_0390_c_17L仁義糠粃聲名開喩顓蒙發揮至頥
009_0390_c_18L禪林蓍龜敎門木鐸卓立廣居平步
009_0390_c_19L大道竪拂揮尺自少至耄蒙渥者衆
009_0390_c_20L唯我最多隨處摳衣廿閱歲華師資
009_0390_c_21L知己心意不逆膠漆其情魚水其樂
009_0390_c_22L何期一夕兩竪謀灾召我入室握手
009_0390_c_23L談懷百歲後事千叮萬囑泊然入寂
009_0390_c_24L從此永訣小歛纔罷鄕伻忽入告我

009_0391_a_01L아버님의 명이 위태롭다고 하였습니다. 빈소에서 곡을 하고 물러나서 서둘러 고향으로 달려갔으나 집에 이르기 전에 아버님이 이미 돌아가셨는데 삶이 이에 이르면 참으로 망극하다 할 것입니다. 입관하고 돌아와서 슬픈 마음으로 다비茶毘를 하니 눈 같은 피부는 재가 되었고 옥빛 뼈는 다 쓰러졌습니다. 통곡하고 배알하니 마음을 저미는 슬픔을 가누기 어렵습니다. 깃발은 반쯤 찢겨 푸른 솔에 걸리고 영골 한 조각을 그 안에 보관하였는데 세상을 감동시키고 복은 해동海東에 넘쳤습니다. 사리를 받들어 청하니 과연 1과를 얻었습니다. 위대하신 선사께서는 생사에 여일히 힘쓰셨으나 슬픈 나의 마음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합니다. 이에 청묘淸廟를 세우고 아울러 소박한 제물을 차리니 영혼이 어둡지 않거든 흠향하러 오소서. 상향.
도학설
군자의 학문은 그 스승을 얻는 일보다 마땅한 것이 없고 그 오묘함을 자득하는 것도 이보다 마땅한 일이 없다. 대저 어릴 적에 도 있는 스승을 얻지 못하면 배운 것이 정밀하지 못하고 옳지 않은 것을 추종하게 되니, 비록 다섯 수레의 책을 읽었다 해도 시비를 고찰하여 그 요체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도를 깨친 선각자를 만나, 돈독하게 믿고 깊이 기뻐하며 학업을 묻고 정도를 구한 연후에야 그 귀의처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가르치고 인도하는 방법이었으니, 올바른 스승을 얻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묘한 이치에 대해서는 이치에 통달하여 마음에 쌓는 것이므로 도를 구하는 자는 외면으로 치달리지 말고 반드시 순서에 따라 점차적으로 나아가 단계를 뛰어넘지 말아야 하며, 여유롭게 푹 젖어 억지로 구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며, 스스로 내 마음에 얻은 연후에야 묵묵히 깨닫고 마음으로 통하는 오묘함이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맹자가 도의 묘처를 깨닫는 도리를 밝힌 것이니 묘처를 자득함이 또한 마땅하다고 이를 만하지 않은가!
그 스승을 얻어서 지향하는 바가 바르게 되고

009_0391_a_01L嚴親命在今夕哭退靈帳顚倒奔鄕
009_0391_a_02L未及門庭父即已亡人生到此天地
009_0391_a_03L罔極入棺還來茶毘慘目雪膚已灰
009_0391_a_04L玉骨將頹痛哭拜謁傷割難裁幡裂
009_0391_a_05L其半掛在蒼松靈骨一片貯在于中
009_0391_a_06L欽動人間慶溢海東奉乞舍利果得
009_0391_a_07L一粒皇矣先師死生俱懋哀我心事
009_0391_a_08L悲喜莫究肆建淸廟兼陳菲薄覺靈
009_0391_a_09L不昧庶幾欽格尙饗

009_0391_a_10L

009_0391_a_11L道學說

009_0391_a_12L
君子之學莫宜於得其師而自得其妙
009_0391_a_13L亦莫宜焉夫初年不得有道之師則所
009_0391_a_14L學不精而趨向匪正雖讀盡車書
009_0391_a_15L以考是非而得其要矣故須得先覺
009_0391_a_16L之有道者信之篤悅之深問業而求
009_0391_a_17L正然後可得其依歸矣此孔子所以語
009_0391_a_18L敎迪之方也可不謂得其師之宜耶
009_0391_a_19L若妙者達於理而蘊諸心者也故求道
009_0391_a_20L不可外騖而須循序漸進
009_0391_a_21L優遊厭飫不待力求自有得於吾
009_0391_a_22L心然後有默識心通之妙矣此孟子所
009_0391_a_23L以著悟道之妙也可不謂得其妙亦莫
009_0391_a_24L宜焉耶得其師而所向得以正得其妙

009_0391_b_01L그 묘처를 얻어 지키는 바가 견고하게 된 연후에야 군자의 학문이라 할 만하다. 만약 학문하는 도리에 시비와 득실의 다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여, 어리석게도 따르는 바를 알지 못하고 선진先進에게 정도를 구하지 않는다면, 시비가 뒤섞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 모르고, 득실이 어지러워 무엇이 이로움이고 손해임을 몰라서 끝내는 거칠게 되어 배움의 요체를 얻지 못한다. 도리를 깨치는 묘처에 심心과 기氣를 존양存養하는 분별이 있음을 알지 못하며, 어리석게 언어의 겉으로만 치달리고 자신을 돌이켜 구하지 않는다면 심기가 복잡해져서 무엇이 마음이고 기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마음을 보존하고 기를 기르는 것이 혼돈되어 그 무엇을 보존하고 길러야 하는지 분별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끝내는 허탕함에 이르게 되어 도의 묘처를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면 배우는 자가 도가 있는 선비에게 나아가 지향하는 바를 바르게 하고 자신에게 있는 도의 오묘함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군자의 학문은 그 스승을 얻고 그 오묘함을 얻는 일을 마땅히 하여 잘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선설
사람은 대개 나를 적대하면 나를 해친다고 생각할 뿐 나를 해치는 자가 나를 돕는 것임을 알지 못하니 어찌 미혹됨이 그리도 심한가! 대저 선을 좋다고 여기지 않으면 어떤 해로움이 이보다 크겠는가! 대저 불선한 자는 인륜을 따르지 않고 사사로운 지혜를 멋대로 쓰는데 적대하고 해침이 견줄 것이 없다. 내가 만약 적대하지 않고 다만 내 마음을 돈독히 하고 선을 다하여 남에게까지 미치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뒤를 따라서 뒤처질까만을 두려워할 것이니, 불선한 자가 과연 나를 돕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대저 나를 괴롭히거나 돕는 것은 나에게 달린 것이지 남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저 포학함을 벗어나고 저 도움을 얻고자 하면 저 포학함을 기회로 나의 큰 선을 성취할 뿐이다.
대개 저 불인不仁함을 보고 그 그릇됨을 안다면 나의 인을 더욱 더해가고,

009_0391_b_01L而所守得以固然後乃可謂君子之學
009_0391_b_02L若不知學之爲道有是非得失之異
009_0391_b_03L倀倀然莫適所從而不求正於先進
009_0391_b_04L則是非混淆而莫知其何是何非得失
009_0391_b_05L紛亂而莫知其何得何失終至於魯莽
009_0391_b_06L而不得爲學之要矣不知悟道之妙
009_0391_b_07L心氣存養之別蚩蚩乎馳騁言語之表
009_0391_b_08L而不反求諸己則心氣駁雜而不卞其
009_0391_b_09L何心何氣存養渾圇而不卞其何存何
009_0391_b_10L終至於虛蕩而不得悟道之妙矣
009_0391_b_11L然則爲學者可不正趨向於有道而悟
009_0391_b_12L道妙於在己乎故君子之學宜其得其
009_0391_b_13L師得其妙而不宜其不維持也

009_0391_b_14L

009_0391_b_15L修善說

009_0391_b_16L
人皆以埓我爲虐我不知虐我爲助我
009_0391_b_17L何惑之甚夫不善於善虐孰此大彼
009_0391_b_18L不善者不順人倫逞其私智埓虐無
009_0391_b_19L我苟不敵但篤于我心當盡善以及
009_0391_b_20L於人天下皆從唯恐直後不善者
009_0391_b_21L不爲助我耶夫虐助我由我而不由彼
009_0391_b_22L欲免彼虐而得彼助不如因彼肆虐
009_0391_b_23L我大善而已盖觀彼不仁而知其不仁
009_0391_b_24L之非則宜其萬萬加我之仁觀彼不義

009_0391_c_01L저 불의不義함을 보고 그 그릇됨을 안다면 더욱 나의 의를 더하여, 인의를 자신에게 충족하고 나머지를 미루어서 남에게 미친다면 사람마다 나의 추종자가 되고 싶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저 비록 대악인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감히 유독 나를 괴롭히기만 하고 돕지는 않겠는가!
다만 어리석은 자는 물욕에 빠지고 지혜로운 자는 이기기 좋아함에 익숙하여, 작은 이익을 따지고 마음은 칼날처럼 다투기를 생각한다. 때때로 배움에 다만 인아人我가 모순되고 일상에선 항상 인의仁義가 어긋나는데도, 한 사람도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으니 천하가 모두 요순堯舜이라고 해도 어찌 나를 적대하지 않겠는가!
만약 대장부가 뜻을 맹렬히 떨쳐 마음을 간절히 닦으며, 안택安宅(仁)에 거처하고 정로正路(義)에 서서, 명덕明德을 닦고 지선至善으로 교화를 다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도척盜跖이라 해도 어찌 나를 돕지 않겠는가! 포학함과 도움은 모두 자신에 근거한 것이지 타인에게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아! 세상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포학함과 도움을 맞으면 애초에 그 포학함과 도움이 포악함과 도움이 되는 까닭을 살피지 못하고, 포학함은 벗어나고 도움만을 얻고자 하여 시끄럽게 시비 다투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 만약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의 선을 힘써 돈독히 하기를, 진실로 시비를 다투는 것을 그치지 않는 것처럼 하여 지선의 영역에 이른다면 천하가 과연 나를 학대하겠는가, 나를 돕겠는가?
시비설
천지가 개벽할 때에 시비가 홀연히 생겨났다. 하늘을 가리켜 “하늘이지 땅이 아니니, 땅이라 하면 그르고 하늘이라 하면 옳다.”고 하고, 땅을 가리켜 “땅이지 하늘이 아니니, 하늘이라 하면 그르고 땅이라 하면 옳다.”고 한다. 천지에도 시비가 있는데 하물며 천지간에 생겨난 자에게 시비가 없겠는가! 사람을 가리켜 “사람이지 사물이 아니니, 사물이라 하면 그르고 사람이라 하면 옳다.”고 하고,

009_0391_c_01L而知其不義之非則宜其萬萬加我之
009_0391_c_02L仁義充足於己推己之餘以及於
009_0391_c_03L人人莫不欲爲我之成妾矣彼雖大
009_0391_c_04L安敢獨虐我而不欲助我乎但愚
009_0391_c_05L者溺於物欲智者狃於好勝利爭錐
009_0391_c_06L念鬪鋒端時習者直矛盾物我
009_0391_c_07L用者永鑿枘仁義一箇無反己者天下
009_0391_c_08L雖皆堯舜安知其不或敢埓我乎苟有
009_0391_c_09L大男子志奮猛烈喫緊灑濯居安宅
009_0391_c_10L立正路修明德敎化極至善則天下
009_0391_c_11L雖皆盜跖安知其必不助我乎虐助之
009_0391_c_12L由我而不由彼其是之謂歟世人
009_0391_c_13L臨秋毫虐助之際初不審其虐助之所
009_0391_c_14L以爲虐助徒自欲逭其虐而得其助
009_0391_c_15L呶呶然爭是非不已如反諸己强勉
009_0391_c_16L篤我善固如爭是非不已以至至善之
009_0391_c_17L則天下果虐我耶助我耶

009_0391_c_18L

009_0391_c_19L是非說

009_0391_c_20L
自天地開闢是非忽生指天而謂之曰
009_0391_c_21L是天非地地非天是指地而謂之曰
009_0391_c_22L是地非天天非地是天地尙有是非
009_0391_c_23L而況天地間有生者其無是非乎指人
009_0391_c_24L而謂之曰是人非物物非人是指物

009_0392_a_01L사물을 가리켜 “사물이지 사람이 아니니, 사람이라 하면 그르고 사물이라 하면 옳다.”고 한다. 사람과 사물에 이미 시비가 있으니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에도 어찌 시비가 없겠는가!
황제를 가리켜 “황제이지 왕이 아니니, 왕이라 하면 그르고 황제라 하면 옳다.”고 하고, 왕을 가리켜 “왕이지 황제가 아니니, 황제라 하면 그르고 왕이라 하면 옳다.”고 한다. 이에 선비와 서인, 남녀에 대해서도 선비이지 서인이 아니고, 서인이지 선비가 아니며, 남자이지 여자가 아니고, 여자이지 남자가 아니라고 하여 시시비비를 끝없이 되풀이하니 사람들마다 각각 시비가 있다고 이르지 않겠는가!
산을 가리켜 “산이지 물이 아니니, 물이라 하면 그르고 산이라 하면 옳다.”고 하고, 물을 가리켜 “물이지 산이 아니니, 산이라 하면 그르고 물이라 하면 옳다.”고 한다. 이에 금수초목에 대해서도 날짐승이지 들짐승이 아니고, 들짐승이지 날짐승이 아니며, 풀이지 나무가 아니고, 나무이지 풀이 아니라고 하여 시시비비를 끝없이 반복하니 사물들마다 각각 시비가 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하늘에는 맑은 하늘과 어두운 하늘이 있고, 땅에는 척박한 곳과 비옥한 곳이 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천지를 시비하는 것이 수없이 많다. 사람에게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고, 사물에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과 사물을 시비하는 것 또한 무수히 많으니 천지 인물의 시시비비가 어찌 괴이하다 할 것인가! 그러나 옳다 그르다 여기는 것은 애초에 정해진 것이 없으니 이것이 옳으면 저것이 그르고 저것이 옳으면 이것이 그르니 옳은 것이 과연 있으며 그른 것이 과연 있는가! 이에 근거하면 이것이 옳고 저기에 근거하면 저것이 옳으니 시시비비가 진실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또 옳으면서도 그르고 그르면서도 옳으며, 옳다고 해도 옳은 것이 아니고 그르다고 해도 그른 것이 아니니, 옳다 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며 그르다 한들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아! 지금 사람들은 옳다 하면 기뻐하고 그르다 하면 노하지만, 시비에 기뻐하고 노여워함은 지인至人은 취하지 않으니 사람의 어리석음이 진실로 이와 같다는 말인가!

009_0392_a_01L而謂之曰是物非人人非物是人物
009_0392_a_02L旣有是非人與人物與物亦豈無是
009_0392_a_03L非乎指皇而謂之曰是皇非王王非
009_0392_a_04L皇是指王而謂之曰是王非皇皇非
009_0392_a_05L王是乃至士庶男女是士非庶是庶
009_0392_a_06L非士是男非女是女非男是是非非
009_0392_a_07L轉輾無窮則不可謂人與人各有是非
009_0392_a_08L者乎指山而謂之曰是山非水水非
009_0392_a_09L山是指水而謂之曰是水非山山非
009_0392_a_10L水是乃至禽獸草木是禽非獸是獸
009_0392_a_11L非禽是草非木是木非草是是非非
009_0392_a_12L轉輾無窮則可不謂物與物各有是非
009_0392_a_13L者乎非但此也天有晴天陰天地有
009_0392_a_14L瘠地肥地故愚夫愚婦之是非天地者
009_0392_a_15L不一而足人有善人惡人物有佳物醜
009_0392_a_16L故古徃今來之是非人物者亦不一
009_0392_a_17L而足天地人物之是是非非何足恠㦲
009_0392_a_18L然而是之非之初無有㝎此是彼非
009_0392_a_19L彼是此非是者果有乎非者果有乎
009_0392_a_20L自此此是自彼彼是是是非非固未
009_0392_a_21L足㝎也又方是方非方非方是是不
009_0392_a_22L非不非是之何益非之何傷
009_0392_a_23L今世之人是則喜非則怒是非喜怒
009_0392_a_24L至人之所不取也而人之芒乎固若是

009_0392_b_01L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가. 온 나라 사람들이 옳다고 해도 기뻐하지 말고, 온 나라 사람들이 그르다고 해도 노여워하지 말아야 한다. 시비를 가려야 할 때에 처해서는 그 시비의 근거를 구하여 안으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고, 밖으로 남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마땅히 스스로 시비가 하나인 곳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면 종일토록 시비를 말해도 무방하고 종일토록 시비를 들어도 무방하리니, 시비를 말하고 들음에 무방한 자는 누구인가!
성정설
이치를 따르고 성性을 다하는 자는 성인이고, 욕심을 쫓고 정情을 멋대로 하는 자는 보통 사람이다. 이치와 성을 따르느냐 욕심을 쫓고 정을 멋대로 하느냐의 차이 때문에 시비 득실의 결과가 서로 멀어지니, 그렇다면 주자의 “터럭 끝의 차이가 천 리千里를 어긋나게 한다.”는 말이 이 뜻일 것이다. 그러나 리理와 성性 외에 따로 욕심과 정이 있지 않으며, 욕심과 정은 곧 리와 성 속에 없지 않기 때문에 양구산楊龜山211)이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사이에 터럭 끝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대개 요순의 조정에 오른 자는 보이는 것이 모두 덕치德治이고 공맹의 가르침을 받드는 자는 듣는 것이 모두 덕음德音인지라, 종횡으로 교차하는 것이 이 이치요 좌우를 둘러보아도 역시 이 이치가 아님이 없으니 이는 성인이 천리를 따른다는 밝은 징표가 아니겠는가! 주紂 임금의 조정에 오른 자는 보이는 것이 모두 포학한 정치이고 도척의 무리를 따르는 자는 듣는 것이 모두 악한 소리인지라, 종횡으로 교차하는 것이 이 욕심이요 좌우를 둘러보아도 역시 이 욕심이 아닌 것이 없으니 이는 보통 사람이 인욕을 따른다는 큰 증험이 아니겠는가!
아! 사람들은 모두 성인의 덕을 좋아하되 본받을 줄 모르며, 사람들은 모두 보통 사람의 행동을 싫어하되 고칠 줄을 모른다. 다만 성인은 천리를 보존하고 보통 사람은 인욕을 따르니, 성인은 절로 성인이요 보통 사람은 보통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009_0392_b_01L然則如之何其可也擧一國而是之
009_0392_b_02L勿喜擧一國而非之不怒當是非之際
009_0392_b_03L求其所以是非之故而內不媿心外不
009_0392_b_04L愧人當自進是非一源之域則終日說
009_0392_b_05L是非無妨終日聞是非無妨說聞是非
009_0392_b_06L之無妨者誰耶

009_0392_b_07L

009_0392_b_08L性情說

009_0392_b_09L
循理盡性者聖人也縱欲肆情者
009_0392_b_10L人也循盡縱肆之間是非得失之歸
009_0392_b_11L相去遠矣則豈朱子所謂毫釐之差
009_0392_b_12L里之謬耶然理性外無別有欲情欲情
009_0392_b_13L乃理性中所不無則豈楊氏所謂天理
009_0392_b_14L人欲間不容髮耶夫登唐虞之朝者
009_0392_b_15L目皆德政陪洙泗之席者入耳皆德音
009_0392_b_16L縱橫交錯無非此理左顧右眄亦無
009_0392_b_17L非此理此非聖人循天理之明效耶
009_0392_b_18L帝辛之朝者擧目皆虐政從盜跖之門
009_0392_b_19L滿耳皆惡音縱橫交錯無非此欲
009_0392_b_20L左顧右眄亦無非此欲此非衆人縱人
009_0392_b_21L欲之大驗耶人皆知好聖人之德
009_0392_b_22L而不知效聖人之德人皆知惡衆人之
009_0392_b_23L而不知改衆人之行徒以爲聖人存
009_0392_b_24L天理衆人縱人欲聖人自聖人衆人

009_0392_c_01L어리석게 자포자기自暴自棄하여 불멸의 이치를 알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가!
한 번 논해 보건대 천하 고금에 일찍이 잠깐이라도 없어진 적이 없는 것은 ‘리’이다. 요순의 덕정이 이 리이고, 공자의 덕음도 이 리이며, 주 임금의 포악한 정치가 이 리이고, 도척의 악한 소리도 이 리이다. 그러므로 요임금이 순에게 명하기를 “진실로 그 중도中道를 잡으라.”고 했고, 순임금이 우禹에게 명할 때는 곧 세 마디212)를 더 보탰으며, 공자는 그 제자들을 훈계하며 “그 덕德을 항상 하지 않으면 혹 부끄러운 일이 생긴다.”고 하였으니 요ㆍ순ㆍ공자가 같은 ‘리’임을 대개 알 수 있다. 주 임금은 핑계 대면서 “내 삶은 운명이 하늘에 달려 있지 않은가”라고 하였고, 도척은 궤변을 늘어놓으며 “어디든 도가 없는 곳은 없다.”고 하였다. 주 임금은 항상 하늘과 어긋나면서 하늘을 핑계 삼아 이야기하였고, 도척은 항상 도를 어기면서 궤변으로 도를 이야기하였으니 주 임금과 도척도 같은 ‘리’임을 또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일理一을 잡아 말한 것이지 분수分殊를 잡아 말한 것이 아니다. 만약 분수를 잡아 말한다면 주 임금을 가리켜 요순이라 하고 도척을 가리켜 공자라 하는 것이 옳겠는가! 이처럼 핑계와 궤변은 많으나 핑계와 궤변을 하는 이유는 하나이니, 주자가 말한 ‘천리의 어긋남’과 양구산의 “천리와 인욕의 차이가 터럭 끝도 용납할 수 없다.”고 한 것은 과연 이 때문일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기에서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면서, 날로 전전긍긍하고 하루도 그침이 없다면 요순과 공자와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니 주 임금과 도척이 어찌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
삼교설

009_0392_c_01L自衆人蚩蚩乎自伏自屈之地不識不
009_0392_c_02L滅之理何其惜㦲盖甞論之亘古今
009_0392_c_03L通天下未甞少須臾或滅者理也夫唐
009_0392_c_04L虞之德政此一理也孔子之德音
009_0392_c_05L一理也帝辛之虐政此一理也盜跖
009_0392_c_06L之惡音此一理也故堯之命舜曰
009_0392_c_07L執厥中舜之命禹乃復益之以三言
009_0392_c_08L孔子戒其徒曰不恒其德或承之羞
009_0392_c_09L堯舜孔子之一理盖可見也帝辛託辭
009_0392_c_10L我生不有命在天盜跖詭辯曰
009_0392_c_11L適而無道帝辛常與天違而言天一言
009_0392_c_12L忽生於託辭盜跖常與道違而言道一
009_0392_c_13L忽出於詭辯帝辛盜跖之一理亦可
009_0392_c_14L見也然此約理一之謂也非約人一之
009_0392_c_15L謂也若約人一之謂也則指帝辛爲堯
009_0392_c_16L舜可乎指盜跖爲孔子可乎是謂詭託
009_0392_c_17L非一而所以詭託者一也則朱子所謂
009_0392_c_18L千里之謬楊氏所以間不容髮果以此
009_0392_c_19L也歟若有一人於此遏人欲而存天
009_0392_c_20L兢兢業業一日二日無一日或間
009_0392_c_21L則可與堯舜孔子同驅駕矣帝辛盜跖
009_0392_c_22L安敢拒轍也㦲

009_0392_c_23L

009_0392_c_24L三敎說

009_0393_a_01L
가르침은 비록 셋(儒佛道)이나 이치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병산李屛山213)은 “세 성인이 모두 주周나라에서 나온 것은 황하黃河와 한수漢水가 모두 큰 바다로 모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장무진張無盡214)은 “삼교가 세상을 선하게 하고 세속을 도야함은 마치 솥발이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어찌 지금 사람들은 세 종교의 본체가 다르다고 말하며 각기 그 익힌 것만을 중시하는가.
대저 하남河南ㆍ하북河北ㆍ하내河內의 사람들이 경사京師로 가려 할 때, 하내 사람이 그가 익숙한 곳의 길만을 취하고서 하남ㆍ하북 사람을 질책하며 “서울로 가려면 반드시 하내를 경유해야만 하는데 어찌 이 길을 경유하지 않는가.”라고 말한다면 하남과 하북 사람이 긍정하겠는가. 만약 흉포하게 억지로 믿게 한다면 불신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저들의 노여움에 봉착할 것이다. 하내 사람이 이미 그리하고 하남ㆍ하북 사람도 각기 하내 사람과 같이 하여 삼하三河의 사람이 각기 그 익숙한 길만을 편안히 여겨 그 삼하의 길이 다른 것만을 알고, 경사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삼하의 길은 경사에 이르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삼교의 시발점과 자취는 비록 다르지만 귀착점은 한 이치이니, 삼하의 시발점과 가는 길은 비록 다르지만 도착하는 곳은 같은 경사인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
대개 그 자취만을 살펴본다면 유교는 인의를 숭상하고, 도교는 자연을 숭상하며, 불교는 적멸을 숭상하니 비록 그 숭상하는 바도 다르고 익히는 바도 각기 달라서, 마치 해와 달과 별이 숨고 드러남이 같지 않고 비추는 것도 각기 다른 것과 같다. 그러나 이치로써 살펴본다면 저 세 빛이 모두 한 하늘에서 나온 것과 같아서 하늘 밖에 따로 해와 달과 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삼교가 모두 하나의 이치에서 나온 것이니 어찌 이치 밖에 따로 삼교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인의, 자연, 적멸이라고 하는 것은 셋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셋인지라, 더불어 행해도 서로 어긋나지 않은즉 삼교의 출발과 자취는 다르지만 귀착점은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어찌 궤변으로 시끄럽게 종일토록 시비를 따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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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雖三理則一也故李屏山曰三聖之
009_0393_a_02L同出於周如河漢之同滙於尾閭張無
009_0393_a_03L盡曰三敎之善世礪俗猶鼎足之不可
009_0393_a_04L缺一胡今之人謂三敎異軆而各權其
009_0393_a_05L所習耶夫三河之人將適京也河內
009_0393_a_06L之人取路於渠所習之處而責河南河
009_0393_a_07L北之人曰適京須由河內爾何莫由斯
009_0393_a_08L路云則兩河之人其信乎若戾而强
009_0393_a_09L欲信之則不惟不信亦必有逢彼之怒
009_0393_a_10L河內之人旣爾兩河之人亦各如河內
009_0393_a_11L之人則三河之人各安其所習而但
009_0393_a_12L知其三河之路不同適京然後始知其
009_0393_a_13L三河之路是適京之不異也三敎之發
009_0393_a_14L跡雖殊所歸一理也何異三河之發行
009_0393_a_15L雖殊所適一京也㦲盖以其跡而觀之
009_0393_a_16L儒敎崇仁義老敎崇自然釋敎豈寂滅
009_0393_a_17L雖其所崇不同所習各異也猶彼三光
009_0393_a_18L之隱現不同而照曜各異也以其理
009_0393_a_19L而觀之猶彼三光之同出於一天不有
009_0393_a_20L天外別有三光則三敎同出於一理
009_0393_a_21L有理外別有三敎㦲其仁義也自然也
009_0393_a_22L寂滅也三而一一而三相如並行而
009_0393_a_23L不相悖則三敎之發跡殊而所歸同于
009_0393_a_24L焉可見豈可堅白而呶呶然終日指非

009_0393_b_01L만약 삼교의 귀착점이 하나의 이치임을 알고자 한다면 삼하의 길이 다다르는 종착점이 경사 한 곳임을 점검해 볼 일이다.
회동시집 서문
대저 시는 성정性情에 근본하고 음운의 고하도 자연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없는 것이다. 시 삼백三百은 사람의 정을 극진히 하고 사물의 이치에 널리 통하며, 생각에 사특함이 없고 뜻이 정대하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착한 마음을 일으키고 악한 마음을 징계하게 하니 천기天機의 온전한 곳에서 얻은 자가 아니라면 이럴 수 있겠는가.
사미승 도징道澄이 『회동집』 한 권을 나에게 보여 주고 서문을 청하였다. 내가 펼쳐 보고 그 시들을 감상해 보았는데 세상의 속된 습기가 없으니 또한 일찍 깨닫고 마음으로 통하여 자연히 시를 이루는 자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도를 깨친 자는 말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문필가들은 수후隋侯의 구슬과 곤륜산의 옥은 드물수록 더욱 귀하다고 말하지만 문사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만 급급한 것이 여전하니 하물며 이보다 큰 일은 어떠하셨겠는가.
말세 이후로 종문宗門의 쇠퇴함이 지금보다 심한 적이 없었는데, 오직 회동 스님이 나오시어 학문은 삼교三敎를 꿰고 도는 일극一極, 태극에 이르렀다. 그 평일의 일자반구一字半句도 자연에서 나와 꾸밈을 벗어났으니, 만일 보는 자가 성정性情을 노래하고 청화한 기운을 펼쳐 가슴속의 찌꺼기를 씻어 낸다면 또한 마음을 조존성찰操存省察함에 일조가 될 것이다. 이 시집의 간행은 산수와 같이 영원할 뿐 아니라 또한 일월처럼 빛날 것이니 수후의 구슬과 곤륜의 옥이야 어찌 헤아릴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글이 속되어서 한 글자도 여기에 써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회동의 문장과 도덕이 빛나고 성대함을 기뻐하여 권 머리에 쓴다.

009_0393_b_01L指㦲如欲知三敎之所歸一理試觀三
009_0393_b_02L河之所適一京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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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393_b_04L會同詩集序

009_0393_b_05L
夫詩本性情音韻高下出乎自然
009_0393_b_06L無一毫矯僞於其間詩三百皆曲盡人
009_0393_b_07L旁通物理思無邪而志有正使
009_0393_b_08L人莫不感懲其心非天機混然處得者
009_0393_b_09L其能是㦲沙彌道澄袖會同集一卷
009_0393_b_10L來示余請其序余披閱激賞其詩如
009_0393_b_11L干首皆風格奇健無世間羶蓮習氣
009_0393_b_12L非亦夙悟神透自然天成其詩者耶
009_0393_b_13L乎有道者必有言也世之操觚者有言
009_0393_b_14L隋珠崑玉愈寡而愈珎彼徒䂓䂓於葩
009_0393_b_15L藻繪餙之來者尙爾況有大於此者乎
009_0393_b_16L葉末以來宗門之寥落莫烈於此
009_0393_b_17L有會同師出學貫三敎道臻一極
009_0393_b_18L平日隻字片句出乎自然而脫陶冶
009_0393_b_19L見者吟咏性情宣暢淸和以滌胸次
009_0393_b_20L中滓穢則亦存省之一助也斯集之行
009_0393_b_21L非特山高水長亦可與日月爭光隋珠
009_0393_b_22L崑玉奚足數㦲余以文俚知莫能措
009_0393_b_23L一辭其間而喜文章道德之彬且蔚
009_0393_b_24L諸卷面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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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곡집 속권 서문
우리나라의 시승은 고금에 수가 많지만 문장과 도덕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사람의 이목을 놀라게 하신 분은 오직 백곡白谷 스님뿐이다. 어려서는 동회東淮(신익성申翊聖의 호) 선생에게 수학하고 자라서는 벽암 스님에게 법을 얻었으니, 동회는 유학의 으뜸가는 스승이요 벽암은 나라의 큰스님이다. 이미 그 오묘한 학문을 전수받고 깊은 불법에 이르렀으니 문장은 넓어 강하江河가 세차게 바다로 흘러가는 듯하고 도덕은 충만하여 천지와 하나가 되었다. 그 도덕의 기운이 사람을 몰아 문장을 구사하게 하니 마땅히 한 글자 반 구절이라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태어나고 돌아가신 사이에 기이한 자취가 신출귀몰하여 하늘의 별들처럼 빛났으며, 그 유풍과 여운은 하늘을 떠받치고 우주에 뻗어서 한없는 곳에 미쳤으니 그 문장과 도덕이 큰 기운을 얻었다고 이를 만하다.
문인 회선懷善 스님이 유고를 모으고 출판하면서 식암息菴(김석주金錫胄의 호)과 동명東溟(정두경鄭斗卿의 호)의 서문을 취하여 글머리에 달았다. 또 비석을 세우고 훌륭한 행적을 드러내고자 최 상국崔相國과 신 참판申參判 두 대가에게 나아가 명문銘文을 받았다. 돌을 갈고 다듬는 일을 마쳤으나, 재물과 힘이 다하여 책을 간행하고 비석을 세우는 일을 하지 못했다. 또한 어버이를 모실 사람이 없어서 환속하고 집에서 수행한 지 십여 년이었다. 항상 분발하지 못함을 탄식하다가 다시 머리를 깎고 본명을 바꾸어 희원希遠이라 하고, 그 일을 마치기를 맹세하였으나 병고가 심하여 어쩔 수 없었다.
하루는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평생에 마음먹고 있는 것은 오직 선사先師의 비문 한 가지 일인데 계책이 궁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사라지지 않게 출판하여 훗날에 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동문 일명一明 스님과 힘을 합하여 이 역사를 행하고자 하니 청컨대 그대는 서문을 지어서 책머리에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백곡 스님을 소중히 여기고

009_0393_c_01L白谷集續卷序

009_0393_c_02L
韻釋之出於東邦者若古若今何限其
009_0393_c_03L而文章道德之兼全而聳動人耳目
009_0393_c_04L其唯白谷歟幼受學於東淮長得
009_0393_c_05L法於碧巖盖東淮百代之儒宗碧巖一
009_0393_c_06L國之禪仗旣學傳其妙法臻其粤
009_0393_c_07L章之浩汗若決江河注于海道德之
009_0393_c_08L充備可與天地合其軆宜其道德之氣
009_0393_c_09L逼人敺遣入文章而隻字片言皆出於
009_0393_c_10L自然也時順間異跡奇蹤鬼出神沒
009_0393_c_11L犖犖星繁遺風餘韻亦能軒天地
009_0393_c_12L宇宙施及無疆其文章道德可謂得氣
009_0393_c_13L之大者也門人懷善裒遺篇繡梓
009_0393_c_14L取息菴東溟之序以弁其文亦擬樹豊
009_0393_c_15L石㫌景行僦銘於崔相國申叅判兩大
009_0393_c_16L方琢磨石畢資力隨盡未能刊樹
009_0393_c_17L又緣養其親無人因還俗而爲在家行
009_0393_c_18L盖十有餘年矣常慨然不憤還薙
009_0393_c_19L髢而改本名曰希遠矢畢其役而奈癃
009_0393_c_20L疾艱苦之甚何一日來謂余曰平生所
009_0393_c_21L唯先師碑一事而計窮至此地下
009_0393_c_22L之目將不瞑矣與其泯滅宜鋟榟而傳
009_0393_c_23L於後與同門人一明同力方張此役
009_0393_c_24L請子爲之引弁卷面可乎余旣重白谷

009_0394_a_01L또한 희원 스님의 뜻이 측은하여 이에 서문을 짓는다.
소촌 선생께 올리는 편지
모월 모일 선생께 편지를 올립니다. 저는 신세가 처량하고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불문에 의탁하고 산수에 두루 노닌 지 이십여 년이 지났습니다. 천성이 배움을 좋아하나 곤궁하여 아뢸 곳이 없으니, 스스로 경서와 역사서, 백가의 설을 취하여 보았습니다. 그 뜻에 침잠하며 읽기를 반복하였고, 사업事業을 갈고 닦으며 문장에 발휘하고 날마다 부지런히 궁구하였습니다. 저는 본디 아둔하여 한 치를 나아가면 한 자를 물러서니, 문장이 그 바른 도리에 들지 못하고 도는 그 궁극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나이가 이미 찼으나 성취한 것이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지기知己를 만나 의마依麻의 보탬을 이루기를 매번 바랐으나 자질이 좋지 않고 말이 어눌하므로, 물러나 산림 사이에 거처하며 한갓 스스로를 가련히 여길 뿐입니다.
엎드려 듣건대 선생께서는 마음은 조화를 다하고 학문은 천인天人을 관통하며, 현묘한 이치를 찾고 은미한 무극無極의 도리를 모았습니다. 인을 도타이 하고 의를 넓히며 행동은 높고 덕은 크셨습니다. 곤궁하고 낮은 자를 가련히 여기시어 밝게 들어 주시고 애써 진작하시니 뛰어난 선비들이 선생의 문하에서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나라의 훌륭한 선비들도 모두가 용문龍門에 올라 값을 정하고자 하였습니다.215) 저는 비록 출가한 미천한 몸이지만 어찌 분주히 달려가 여파餘波에 목욕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가까운 암자에 머무르며 하루에 세 번씩 선생의 집에 갔는데도, 여전히 한마디의 가르침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선생이 반드시 저를 방외인方外人이라 하여 가르치지 않은 듯합니다. 예전에 구양수가 혜근惠勤 스님을 맞이하여 주었고 한문공은 문창文暢 스님을 물리치지 않았으므로,

009_0394_a_01L又隱遠公是爲序云

009_0394_a_02L

009_0394_a_03L上素村先生書

009_0394_a_04L
某月日某上書于大先生軒屏之下
009_0394_a_05L身世悽凉不中以自活托跡桑門
009_0394_a_06L流山水間凢二十有餘年矣然性好學
009_0394_a_07L因困厄無所告語遂自取覽於經書史
009_0394_a_08L記百家之說沉潜乎訓義反覆乎句讀
009_0394_a_09L磨礱乎事業而奮發乎文章庫不日孜
009_0394_a_10L孜究極而素是鄙鈍寸進尺退文未
009_0394_a_11L能入其方道未得臻其極年已晩而無
009_0394_a_12L所成就每願一遇知己以成倚麻之益
009_0394_a_13L而態甚踈言又吶退而處林薄之間
009_0394_a_14L徒自憐咄而已伏聞先生情窮造化
009_0394_a_15L貫天人索衆妙於重玄纂群微於無極
009_0394_a_16L敦仁而愽義行高而德鉅哀窮而悼屈
009_0394_a_17L聽之有明振之有力龍蟠鳳逸之士
009_0394_a_18L多出於先生之門一邦豪俊莫不願登
009_0394_a_19L龍門而㝎價者矣某雖物外微蹤亦安
009_0394_a_20L得不奔走而忝沐餘波㦲故今來駐近
009_0394_a_21L日三徃先生之門而猶未得蒙一言
009_0394_a_22L之惠是先生必以某爲方外人之不可
009_0394_a_23L敎以先生之道也昔者歐陽子引進惠
009_0394_a_24L韓文公不拒文暢至今士林中

009_0394_b_01L이제껏 사림들이 두 분의 풍모를 칭송하는데 진실로 청한다면 가르친들 무슨 해가 되겠습니까.
원컨대 선생께서는 저를 어리석다 마시고 선생의 도로써 가르치시어 인의에 마음껏 노닐게 하사, 바른 문장의 길로 들게 하시고 극진한 도에 이르게 하신다면 누가 옳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천하의 선비가 선생께서 저를 이와 같이 대한다고 듣게 되면 모두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선생이 이같이 곤궁한 자를 슬퍼하고 낮은 자를 가련히 여기시어 밝게 들어 주시고 애써 진작하신다.”
또 장차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방외인도 이같이 대우받고 사랑받고 도움을 받는데 하물며 우리들이 어찌 따르지 않으리오.”
그러면서 서로 이끌고 와서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청하며 뒤처질까 두려워할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다면 저에게 의마依麻의 보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선생의 덕택 또한 이제부터 멀리까지 미칠 것이니 조금이나마 살펴 주십시오.
우 석사에게 올리는 편지
대저 스님으로서 유학자의 문하에 출입한 자가 고금에 한없이 많으나 예전에 오직 회소懷素 스님과 이적선李謫仙(이태백), 여만如滿 스님과 백향산白香山(백거이)만이 겉을 잊고 마음을 합쳐서, 간절히 진리를 논하며 한 시대에 방외方外에서 정신적으로 교유하였고, 그 나머지는 모두 아부로 세상에 영합하여 교유를 맺고 명예를 구하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이 맞지 않으면 길 가는 사람보다도 못하게 여기고 도리어 백세의 원수처럼 배척하였으니 논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저는 품성이 어리석고 자질이 비천하며,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불문에 기탁하였습니다. 부모의 가업을 잇지 못하였고, 성인의 경전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여 행실이 빼어나지 못하니 누가 인도하여 가르쳐 주겠습니까.

009_0394_b_01L稱二公之風苟有所請敎之何傷願先
009_0394_b_02L生不以某爲愚甚敎之以先生之道使
009_0394_b_03L得恣遊仁義之門而文入其方道臻其
009_0394_b_04L其誰曰不然乎天下之士聞先生
009_0394_b_05L於某如此必皆曰先生之哀窮也如此
009_0394_b_06L悼屈也如此聽之有明也如此振之有
009_0394_b_07L力也如此又將曰方外之人蒙接也
009_0394_b_08L如此得幸也如此成益也如此況吾
009_0394_b_09L盍徃從之相率而來陳順風之請
009_0394_b_10L唯恐居後苟如是不惟於某有倚麻之
009_0394_b_11L先生之德澤亦自此遠被無疆矣
009_0394_b_12L小垂察焉

009_0394_b_13L

009_0394_b_14L上禹碩士書

009_0394_b_15L
夫釋子之出入儒雅門者若古若今
009_0394_b_16L限其麗而唯如昔者懷素之於李謫仙
009_0394_b_17L如滿之於白香山忘形合心勤勤懇懇
009_0394_b_18L於論道之間爲一世方外之神契其餘
009_0394_b_19L皆以阿諛求容於世竊竊然納交要
009_0394_b_20L而少有不合則不惟視之如路上人
009_0394_b_21L反爲刺斥如百世讐不足論也伏念不
009_0394_b_22L朱愚禀性白痴賤質生自蓬蓽
009_0394_b_23L入桑門業不承父母之箕裘口不咀賢
009_0394_b_24L聖之糟粕節行自非支鶴引接誰是

009_0394_c_01L다만 원거爰居216)처럼 세상의 풍파를 피하고 문표文豹217)를 짝하여 안개 속에 숨었습니다. 물과 구름 사이에 외로운 몸을 기탁하고 바랑과 발우 외에는 한 물건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배고프면 솔을 줍고 목마르면 시냇물을 마시며 스스로 자적하고 바람과 달을 노래하며 스스로 즐거워하였습니다. 둥근 머리에 가사 하나 걸치고 남의 모욕도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삼베옷과 짚방석도 저에게는 충분하였습니다. 요즈음 들어 노쇠한 병이 날로 더욱 심하여 겨울이 아닌데도 머리엔 눈이 가득하고 밤이 아닌데도 귀밑머리는 서리로 덮였으며, 봄날이 아닌데도 눈앞에는 안개와 꽃이 난만爛漫하고 구성九成218)의 음악을 듣지 않더라도 피리와 북소리가 귓가에 떠들썩합니다. 정신과 기력이 이미 소모되었고 심사가 더욱 졸렬하여 차라리 우물 속에서 즐겨 안주할지언정, 차마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지 못하겠습니다. 천명을 따라 분수를 지키고자 하고, 좁은 옹기 같은 세상 속에서 도모할 이익이 없으니 산림에서 칩거하여 여생을 마칠 계획입니다.
듣건대 대아大雅께서는 선을 쌓아 복이 넘치고 널리 사랑하여 인을 행하십니다. 재주와 그릇이 넓어 천경의 창파滄波와 같고, 우뚝 모범이 되어 줄기가 만장萬丈이나 뻗었습니다. 학문은 삼동三冬의 쓰임에 넉넉하고 독서는 오거五車의 책을 다 읽어서, 마음을 씻어 아름다운 문장을 토해 내면 문단에 서기가 빛나고, 붓을 휘둘러 글씨를 쓰면 먹물에서 오색의 용이 솟구칩니다. 오늘날의 석상席上의 기이한 보배요 훗날 조정의 선랑仙郞이 될 것인지라, 명성이 북두성보다 높고 값은 황금보다도 무거워서 이적선李謫仙 같은 호걸도 앞서지 못하고 백향산白香山의 풍류조차도 오히려 한 걸음 양보할 것입니다.
저는 병을 무릅쓰고 간절히 석장을 날려 달빛 아래 그대의 거처로 찾아가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생각하니 대아의 호매한 풍격은 이태백과 백거이보다 뛰어난데, 저의 행실은 회소懷素와 여만如滿보다도 못하니 회소와 여만보다도 못한 절행節行으로써 이태백과 백거이보다 뛰어난 품격을 지닌 당신을 만나는 것은 황곡黃鵠과 양충壤蟲(지렁이)이 함께할 수 없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멀지 않은 곳에서 칩거하면서

009_0394_c_01L但逐爰居之避風長伴文豹之隱
009_0394_c_02L寄隻身於水雲之間掃片物於囊鉢
009_0394_c_03L之表飢拾松渴歃溪自適其適吟於
009_0394_c_04L咏於月自樂其樂圓頂方袍任他
009_0394_c_05L爲辱麻依草座於我爲足而況比年
009_0394_c_06L以來衰病日益甚頭渾非冬之雪
009_0394_c_07L滿不夜之霜不須三春之節而烟花爛
009_0394_c_08L熳於眼中無待九成之樂而簫皷喧動
009_0394_c_09L於耳裏神氣已耗心事益拙寧甘容
009_0394_c_10L膝於甃底不忍曳尾於途中唯命是守
009_0394_c_11L於分內無利可圖於瓮裏蟄藏巖薄
009_0394_c_12L以爲終餘年之計矣伏聞大雅積善餘
009_0394_c_13L愽愛爲仁材噐汪洋千頃滄波
009_0394_c_14L萬丈聳幹學足三冬之用
009_0394_c_15L盡五車之書浣膓吐鳳耀瑞毛於詞林
009_0394_c_16L落筆驚龍騰彩鱗於墨池今日席上之
009_0394_c_17L奇塵他年日下之仙郞聲高北斗
009_0394_c_18L重南金李謫仙豪傑未足誇先白香
009_0394_c_19L山風流猶堪讓後不侫力疾延頸
009_0394_c_20L擬飛錫杖徃敲月下門而却自念大雅
009_0394_c_21L之豪風過於李白不侫之節行輸於
009_0394_c_22L素滿以輸於素滿之節行欲叅乎過於
009_0394_c_23L李白之豪風也不啻若黃鵠壤虫之未
009_0394_c_24L可同年而語也故跧伏不甚遠之地

009_0395_a_01L여태껏 한 번도 뵙지 못하고 다만 밤마다 빈산에서 덕성德星이 남쪽 하늘에 나타나기만을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아의 뛰어난 품격은 이태백, 백거이보다 나으나 작위는 낮고 저의 행실은 회소와 여만보다 못하나 정성은 더 나으니, 그대의 작위와 저의 정성을 그대의 뛰어난 품격과 저의 못난 행실에 비긴다면, 그 형세가 서로 더불어 모임을 맺어 일평생 지기知己의 즐거움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노니 대아께서는 제가 아부하여 명예를 구하는 무리가 아님을 살피시어, 마땅히 맞아들여 이태백과 백거이가 회소와 여만에게 대하듯 하신다면 제가 비록 용렬하고 하찮으나 어찌 이태백과 백거이에 대한 회소와 여만의 정성을 게을리하겠습니까. 이만 줄입니다.
유 석사에게 올리는 편지
저번에 암사巖寺에 있을 때에 장문의 편지를 받았는데 위로하고 가르쳐 주심이 간곡하고, 돌보고 사랑해 주시는 것이 깊고 절실하였습니다. 마땅히 문하에 달려가 맑은 모습을 뵙고, 군후君侯(상대방의 존칭)의 조정 소식을 묻고 겸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아뢰어야 하나, 여태껏 머뭇거리다 이에 이르니 어찌 우리 불자들이 마음을 쓰지 않아 그리하겠습니까. 대개 늙은 스승님이 병이 깊고 운명하실 날이 멀지 않아 탕약을 여러 달 받들며 차마 조금도 곁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올봄 초에 이르러 끝내 돌아가셨으니 제 마음이 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는 백 일이 이미 지났고 대상大祥, 소상小祥 제사 외에 다른 큰 일이 없으니 한가로울 때에 달려가 알현해야 하지만, 임천林泉의 고질병이 상중喪中 수척한 가운데 더 심하여져서 서리와 바람을 무릅쓰고 높은 산과 큰 시내를 건너 수십 리의 여정을 가지 못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슬프게 바라만 보니 관산을 넘기 어려운 것과 같아서, 아침저녁으로 그리워하며 스스로 안타까워할 뿐입니다.

009_0395_a_01L未得一奉顏色唯是夜夜空山仰見德
009_0395_a_02L星現南天而已然而大雅之豪風過於
009_0395_a_03L李白而爵位則㑋不侫之節行輸於
009_0395_a_04L素滿而誠悃則勝將此㑋勝贖彼過
009_0395_a_05L則其勢可以相與結社而盡一生知
009_0395_a_06L己之樂矣幸大雅察不侫不是阿容要
009_0395_a_07L譽者比而肎接之如李白之於素滿
009_0395_a_08L則不侫雖庸且憊奚慵勤懇之如素滿
009_0395_a_09L之於李白也㦲不宣

009_0395_a_10L

009_0395_a_11L上柳碩士書

009_0395_a_12L
向在巖寺時蒙辱惠長牋慰誨勤款
009_0395_a_13L眷愛深切即當趨晋軒屏之下忝對玉
009_0395_a_14L樹淸標仰問大君侯日邊消息兼吐蒙
009_0395_a_15L眷感篆之懷而猶因循至此者豈空門
009_0395_a_16L不用情而然也盖以有老師衰病重甚
009_0395_a_17L命臨悲谷供藥湯累箇月不忍少須臾
009_0395_a_18L癈離於側至今春抄仍而不起私情
009_0395_a_19L悲痛昂有其極今則百日已過將有
009_0395_a_20L大少祥外無他大故得間趨謁此其
009_0395_a_21L時也而林泉痼疾增劇於欒欒之中
009_0395_a_22L不可以犯霜風踰峻嶺涉大川而行數
009_0395_a_23L十圼之程引領悵望有若關山之難
009_0395_a_24L夙夜興懷窃伏自憐而已倘開春

009_0395_b_01L만일 봄기운이 따스해지고 병세가 차도가 있으면 찾아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고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토로하겠습니다. 이것이 항상 저의 큰 바람입니다. 이만 그칩니다.
이 석사에게 올리는 편지
전傳에 이르기를 “마음이 정성스러우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하였으니, 정성이 이미 마음에 쌓이면 말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저절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무릇 정성이 있는 자는 혹은 말로 혹은 글로써 자기의 마음을 펼칩니다. 저는 당신에게 마음이 경도傾倒된 지가 오래입니다. 매번 제 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으나 서로 어긋나 한 번도 만나지 못해 마음이 답답하였습니다.
마침 몇 달 전에 송광사 스님의 권유로 근처 암자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암자와 당신의 거처는 다만 시내 하나를 사이하였으니 제 마음을 알릴 때라 여기고 편지 하나를 품에 지니고 찾아갔는데 마침 당신께서는 영남으로 떠나셨습니다. 오직 부친께서 관을 높이 쓰시고 별장에 앉아 계셔서 뵙고 절하니, 부친께서 가련히 여기시고 (부친께서) 지으신 시와 문장 십여 편과 당신께서 지으신 글 한 폭을 내보이셨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보니 맑고 깨끗하여 묵은 병이 몸에서 떠나는 듯하니 이제부터 왕래하여 자주 가르침을 받는다면 천만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직 당신을 뵙지 못하니 평생 사모하는 마음이 여전히 가슴속에 쌓여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감히 제 마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진술하여 당신에게 제가 당신의 문장을 남보다 깊이 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합니다.
대개 맹자의 문장은 호연지기를 길렀으므로 전아典雅하고 온순溫醇합니다. 이는 걸주桀紂의 포악함을 탕무湯武의 인으로 천명을 따라 정벌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유의 문장은 유연하고 웅혼雄渾하며 반복되고 백 번 굴절합니다. 이는 조조와 손권의 거짓 왕조를 유비와 제갈량의 정통이 대의를 세워 토벌하는 것과 같습니다.

009_0395_b_01L日氣和煦病勢間差則徃敲月下門
009_0395_b_02L以吐蒙欵感仰之懷是日夕所大計耳
009_0395_b_03L不宣

009_0395_b_04L

009_0395_b_05L上李碩士書

009_0395_b_06L
傳曰誠於中形於外誠旣蘊中言必
009_0395_b_07L形外者自不得不爾故凡有誠者
009_0395_b_08L以言或以書區區自售焉愚碩士
009_0395_b_09L傾心久矣每欲售愚衷而緣相左不一
009_0395_b_10L鯁鯁于中矣適數月前爲松寺僧
009_0395_b_11L所奬來憇近菴菴與仙居只隔一水間
009_0395_b_12L自謂售吾誠此其時也袖一書以進
009_0395_b_13L時碩士適爲嶺南之行唯大先生峩弁
009_0395_b_14L而坐於墅頫顖跪謁先生恤甚出示
009_0395_b_15L以所爲詩若文十餘篇曁碩士所著書
009_0395_b_16L一幅留神注目灑然若沉痾去體
009_0395_b_17L此徃來亟薰敎誨私幸萬萬然於上
009_0395_b_18L殆未得面其平生景慕之懷猶自
009_0395_b_19L尖築於胸次中矣故敢陳吾心之所欲
009_0395_b_20L而將使碩舍知愚之知碩士之文之
009_0395_b_21L愈於人也盖孟子之文養氣浩然
009_0395_b_22L典雅温醇有若桀紂之暴湯武之仁
009_0395_b_23L順天命征者也韓子之文油然渾雄
009_0395_b_24L徃覆百折有若曺孫之僞備亮之正

009_0395_c_01L반고의 문장은 말이 높고 간결하며 비근하고 적당합니다. 이는 장우張禹와 공광孔光의 간사함을 주운朱雲과 유향劉向219)이 충성으로 조정에서 간쟁하여 꺾는 것과 같습니다. 사마천의 문장은 옛 자취를 찾아 노닐어 굳건하고 기특합니다. 이는 항우項羽와 용저龍且의 어리석음을 한신과 팽월의 지혜로 승승장구하여 쫓는 것과 같습니다.220)
당신의 문장은 강하고 깨끗하며, 침잠하고 굴곡이 있어 맹자, 한유, 반고, 사마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재주도 남보다 뛰어납니다. 당신의 문장은 맹자, 한유, 반고, 사마천의 문장이 아니요, 바로 당신의 문장인 것입니다. 저는 방외의 천한 사람으로 문장은 짧고 말은 어눌하여, 진실로 당신의 성대한 재주를 만분지일이라도 찬양할 길 없으나 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문사가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에 감히 간곡한 마음으로 아룁니다. 상사上舍께서는 여러 해에 걸친 당신을 향한 저의 마음이 우연이 아님을 생각하시고 살펴 주십시오.
홍 감사에게 올리는 글
곤륜산의 옥이 화씨和氏를 만나 열두 성의 값어치를 지니게 되었고, 기주冀州221)의 준마가 백락伯樂을 만나 천리마로 칭해졌으니 하물며 사람이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그 재주를 펼치고 그 값을 높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공자와 맹자께서도 천하를 주유하셨으나 주인을 만나지 못하여 공자께서는 칠 일간을 진陳나라에서 어려움을 겪으셨고 맹자께서는 주晝 땅에서 삼 일을 머무르신 후에 떠나셨던 것입니다. 또한 가의賈誼의 밝은 지혜와 사마상여의 넓은 학식, 사마천의 고준高峻함, 양웅揚雄의 전일함으로도 모두 세상에서 두터운 대우를 받지 못하였으니 하물며 보통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저는 본디 남양의 미천한 사람으로서 가세家世가 영락零落하여 한번 입신에 실패하자, 모든 일이 어그러져 공문에 의탁하여 세상에 큰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어찌 감히 대군자께서 사람으로 위로하고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옛날에 종의鍾儀222)가 초나라 음악을 연주하여 마침내 귀국할 수 있었고,

009_0395_c_01L仗大義討者也班固之文鉤言簡高
009_0395_c_02L切近的當有若禹光之侫朱劉之忠
009_0395_c_03L面折廷爭也馬遷之文訪古遨遊
009_0395_c_04L剛奇偉有若項龍之愚韓彭之智乘
009_0395_c_05L勝逐北也碩士之文剛悍泬寥沉潜
009_0395_c_06L屈伸與孟韓班馬相上下而碩士之才
009_0395_c_07L又自有過人者上舍之文非孟韓班馬
009_0395_c_08L之文而乃碩士之文也愚以方外鄙人
009_0395_c_09L文狹言吶固末足賛揚其盛才之萬一
009_0395_c_10L而售盡誠心非文辭不能故敢忉怛如
009_0395_c_11L伏惟上舍思其累年傾心不偶然
009_0395_c_12L也而察之

009_0395_c_13L

009_0395_c_14L上洪監司書

009_0395_c_15L
崑玉物也遇和氏而價十二之連城
009_0395_c_16L冀駿馬也遇白樂而翻千里之霜蹄
009_0395_c_17L而況人而不遇主而能展其才重其價
009_0395_c_18L故孔孟轍環天下猶不遇或七日厄
009_0395_c_19L三宿出晝至如明如價誼愽如相
009_0395_c_20L峻如馬遷專如揚雄亦皆不曾不薄
009_0395_c_21L於世而況凡散者乎不侫本以南陽微
009_0395_c_22L家世零替立身一敗萬事瓦解
009_0395_c_23L跡空門爲世大僇何敢望大君子撫尉
009_0395_c_24L收置於人數中耶然昔鍾儀南音卒獲

009_0396_a_01L숙향叔向223)은 노나라에서 어려움을 당하였으나 반드시 벗어나리라 기약하였으며, 범좌范座224)는 위기를 이용하여 죽음을 삶으로 바꾸었고, 예관兒寬225)은 배척당하였으나 훗날에 대부의 지위에 올랐으니 이것이 주인을 만나야 자신의 재능을 드러낸다는 분명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천하고 재주 없는 몸으로 이단異端에 들어가 세상에 죄가 크고, 팔을 걷고 분발하여 스스로 옛사람과 같고자 하나 더욱 이룰 길이 없는데도 믿는 바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저는 합하閤下께서도 남양의 거족으로 화락한 군자라고 들었습니다. 예전 소공召公이 남국을 다스림에 한 사람도 그 은택을 입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문옹文翁226)이 서쪽 촉 지방을 교화하자 모든 사람이 제자리를 얻었다고 하니 이것이 널리 사랑하고 인을 실천하며 선을 쌓아 후손에게까지 복이 넘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때문에 제가 감히 당돌하게 뵙기를 구하여 저의 비천함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듣건대 예전에 소동파蘇東坡가 유간惟簡 대사에게 상복喪服이 없는 형이라 칭하며, 그 마음속에 두터운 정이 있어 소원疎遠하지 못함을 밝혔습니다. 모름지기 동성同姓의 의리로 헤아리고 맞아 주시어, 제 도리를 다하게 하여 훗날 보는 자로 하여금 효우孝友의 마음이 샘솟게 한다면 이 또한 합하께서 넓은 마음으로 측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분이 얕은데 말이 깊은 것은 허물을 초래하는 길입니다. 제가 합하를 일찍이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도 감히 구구하게 이와 같이 말씀드리는 것은 어찌 다른 까닭이 있겠습니까. 다만 합하께서 특별히 헤아리시고 맞이하는 의리를 돌이켜 어루만져 거두어 주시는 은택을 베푸시어, 사람들이 근본이 유래한 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주인을 잘 만나 사람 축에 끼는 즐거움을 얻을 뿐만 아니라 차별 없는 인과 분별하는 의가 아울러 행해져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니 바라옵건대 합하께서는 잘 살펴 주십시오.

009_0396_a_01L返國叔向困魯自期必脫范座騎危
009_0396_a_02L以生易死兒寬被擯後至大夫此非
009_0396_a_03L遇其主而得自明之明驗耶不佞以下
009_0396_a_04L賤末技沒入異端罪極人世欲慷慨
009_0396_a_05L攘臂自同古人尤極踈濶而有所自
009_0396_a_06L負者存焉何也伏聞閤下亦南陽巨
009_0396_a_07L而愷悌君子也召公主峽南國
009_0396_a_08L一人不蒙其澤文翁化蜀西方無一物
009_0396_a_09L不得其所此非愽愛而爲仁積善餘慶
009_0396_a_10L者乎是不佞所以敢唐突求進而不
009_0396_a_11L知嫫母之醜者也盖甞聞之昔蘇東坡
009_0396_a_12L於惟簡大師稱之曰無服之兄以明其
009_0396_a_13L中自有情之厚而不可踈者須以同
009_0396_a_14L姓之義裁之取之盡其道焉使後之
009_0396_a_15L觀者孝愷之心可油然而生矣則此亦
009_0396_a_16L閤下之所以廣度中當可惻隱者也
009_0396_a_17L交淺而言深者招尤之道也不佞之於
009_0396_a_18L閤下也曾無目擊之分而敢區區如此
009_0396_a_19L豈有他㦲只欲使閤下特回裁取
009_0396_a_20L之義幸垂拊收之澤使人知根本之有
009_0396_a_21L自也而已然則非但賴遇主而得與人
009_0396_a_22L數之樂至矣亦有一氣之仁殊分之義
009_0396_a_23L未甞不並行而不相悖也伏惟閤下
009_0396_a_24L垂察焉

009_0396_b_01L
오 상사가 공문에 인연 맺음을 축하한 글
교유의 믿음이 두터워 일찍이 옷을 주신227) 은혜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불도로 맺은 정이 깊어 함께 동숙同宿하게 되니 가슴에 감격이 일어나고 기쁨이 마음에 넘칩니다. 생각건대 큰 재주는 무리를 뛰어넘고 높은 풍모는 세속을 벗어나셨습니다. 문단에서 호랑이처럼 포효하니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창도唱導하고, 글씨는 봉황이 나는 듯 종요鍾繇,228) 왕희지王羲之와 다투어 달립니다. 한림원에선 재주가 높고 조정에서는 명망은 막중하기만 합니다. 요행히 도연명陶淵明과 사안謝安에 의탁하였으나 혜원慧遠과 도안道安이 아님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작은 정성으로 주야로 오매불망 그리워하며, 백 리 길에 끊임없이 자주 찾아 주신 것에229) 감사드립니다.
조 지촌이 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한 것에 대한 감사 편지
새가 장차 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나무를 선택하는데 이미 바람을 피하려고 마음을 결정하였고, 사람이 바라는 것은 하늘이 어기지 않는지라 다행히 은거의 허락을 얻었으니, 은혜는 동해보다도 깊고 선물은 황금보다도 더 값집니다. 생각건대 저는 바위와 골짜기에 마음이 있고 발자취는 물과 구름 사이에 있었습니다. 안개와 노을에 그리움이 사무쳐 운산의 석실 높은 곳에 머물렀고, 속세의 꿈은 사라져 청라 장막의 죽탑竹榻만 깨끗하고 고요하였습니다. 진토가 어찌 저를 더럽히겠습니까. 사슴과 함께 장차 몸을 마칠 것입니다.
일찍이 산문에서 이별하고 이제 율리栗里의 오류五柳 선생을 방문하니 암자는 대낮에도 비어 있고 잔나비와 학만 청산에서 슬퍼합니다. 옥빛 술잔에 항상 취하니 스스로 거칠고 게으름이 부끄럽고, 풀 자리에 홀로 누우니 마음은 진실로 한적하여 편안합니다. 이 때문에 구구히 간절한 말씀으로 제 마음을 드러냈더니, 뜻밖에도 깊은 산으로 돌아가게 하여 숙원을 끝내 이루게 하였습니다. 벽계의 맑은 흐름에 목욕함은 그대의 은혜요, 푸른 잣나무 우거진 향기로운 숲은 그대의 은덕입니다. 솔바람과 청라 덩굴의 달빛에 뜻을 자적하고, 명아주 지팡이와 풀잎 옷으로 생애를 지내게 되었으니 백 년의 크신 은혜에 천 번 절합니다.
생각건대 관대하고 어진 군자께서는 화락한 풍류로 만물을 다친 듯 보시어

009_0396_b_01L賀吳上舍空門契詞

009_0396_b_02L
交遊信腆曾聞留衣之錫恩道契情深
009_0396_b_03L今見携被之接宿感激胸海喜溢心田
009_0396_b_04L恭惟大才超倫高摽拔俗虎攫詞場
009_0396_b_05L並韓柳而互唱鳳翻筆海駕鍾王而爭
009_0396_b_06L翰苑才高廊廟望重窃念幸托陶
009_0396_b_07L愧非遠安耿耿一心那堪晝思而
009_0396_b_08L夜夢源源百里深謝小徃而大來

009_0396_b_09L

009_0396_b_10L謝趙芝村許還山表

009_0396_b_11L
鳥將息必擇木已決避風之懷人所欲
009_0396_b_12L天不違幸獲隱霧之許恩深東海
009_0396_b_13L越南金伏念其嵓壑襟期水雲名跡
009_0396_b_14L烟霞痼疾雲山之石室嵯峨人世夢殘
009_0396_b_15L蘿帳之竹榻蕭寂顧塵土焉能浼我
009_0396_b_16L麋鹿若將終身曾因三笑於虎溪
009_0396_b_17L訪五柳於栗里菴院空於白日猿鶴愁
009_0396_b_18L於靑山長醉玉罇愧自多於踈慵
009_0396_b_19L眠草座心固甘於閑適故將區區酸語
009_0396_b_20L敢陳切切私情豈意許放深山使得終
009_0396_b_21L成宿願碧溪淸流長是沐浴恩波
009_0396_b_22L栢香林莫非優遊德蔭適意松風蘿
009_0396_b_23L生涯黎杖草衣百年鴻私千拜蠅
009_0396_b_24L伏遇寬仁君子愷悌風流視萬物

009_0396_c_01L한 물건도 자적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시며, 조그만 선도 다 거두고 버리지 않으시어 모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드디어 미천한 저도 이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감히 단심丹心을 변치 않고 늙어서도 처음 마음을 지니지 않겠습니까. 편주로 적벽에 노닐 때에 참료參寥 스님처럼 그곳에 가서 함께 타진 못하지만, 백련사의 그윽한 약속은 저버리지 마시고 백낙천처럼 오시기를 바랍니다.
선생께 올리는 편지
유학과 불교가 나뉘어 비록 귀천의 분별이 있으나, 한 천지 사이에 함께 거처하여 본디 존비의 차이가 없으니 도로써 묵묵히 교유하고 말을 헛되이 꾸미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선생께서는 풍류의 문아와 서릿발 같은 지조로, 조정의 벼슬을 그만두고 낙포洛浦의 봉황을 좇았고, 외물 밖에 참된 마음을 보존하여 영천潁川의 소보巢父를 뒤따랐습니다. 아롱진 풀길에 삼도三島의 노을빛을 답파하고, 펄럭이는 은자의 옷을 십주十洲의 물결에 비추었습니다. 수사洙泗의 연원을 접하며 인지仁智의 산수를 즐겼거늘, 명추鳴騶230)는 자주 높은 나무의 꾀꼬리를 번거롭게 하였으며, 연주하는 음악은 한갓 바람을 피한 새를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육경을 공부하는 뜻은 전일하여 중장통仲長統처럼 정원을 엿보지 아니하였고, 정좌하여 마음을 집중하니 관유안管幼安처럼 자리를 뚫을 듯하였습니다. 뜻을 능히 다스리니 어찌 칠정七情이 혹 날뛰겠으며, 가슴엔 영원히 파란이 그치고 마음엔 어지러운 다툼이 그쳤습니다. 한 손가락 같은 천지에 기탁하여 강당에서 천하를 살펴보시니, 부귀공명은 분수에 지나치면 화를 초래하고, 강산의 풍월은 많이 취하여 가난하지 않습니다. 염두에 부질없는 생각과 우려가 없고, 천하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시니 어느 누가 선생을 모시기를 원하지 않겠으며 세상이 다투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저는 불해佛海의 작은 물방울이요, 치림緇林의 병든 잎으로, 그릇은 작은 조개와 같으니 각해覺海의 넓음을 헤아릴 수가 없고, 견문은 대롱을 엿보는 것과 같으니 성천性天의 넓음을 궁구할 수가 없습니다.

009_0396_c_01L如傷恐一箇不適其適錄伊善無棄
009_0396_c_02L俾群情各安其安遂令微蹤獲此殊渥
009_0396_c_03L敢不丹心不改皓首如初赤壁扁舟
009_0396_c_04L雖不效寥公之徃載白社幽約須不負
009_0396_c_05L樂天之來遊

009_0396_c_06L

009_0396_c_07L上先生啓

009_0396_c_08L
儒釋分歧雖有貴賤之別霄壤共處
009_0396_c_09L本無尊卑之差道存默交言不虛飾
009_0396_c_10L伏惟先生風流文雅耿介霜摽謝笏
009_0396_c_11L朝端追洛浦之聞鳳葆眞物表躡頴
009_0396_c_12L川之按牛斑斑草蹊踏破三島之霞彩
009_0396_c_13L翩翩芰製暎帶十洲之波光接洙泗之
009_0396_c_14L淵源樂山水於仁智鳴騶幾煩遷谷之
009_0396_c_15L進樂徒眩避風之鳥治經志一
009_0396_c_16L窺仲長之園靜坐心專欲穿幼安之榻
009_0396_c_17L旣志帥之能御胡情卒之或奔胸海永
009_0396_c_18L息波瀾心田罷閧蠻觸寄一指之天地
009_0396_c_19L睠八極於堂壇富貴功名過分焉則招
009_0396_c_20L江山風月多取之而不貧念頭何慮
009_0396_c_21L何思天下無適無莫人孰不願爲妾於
009_0396_c_22L夫子世皆爭立下風於先生若余者
009_0396_c_23L佛海微漚緇林病槲器同蠡酌叵量
009_0396_c_24L覺海之汪洋見等管窺莫窮性天之寥

009_0397_a_01L심불心佛의 이치에 어둡고 성상性相의 종지에 모순되니, 두 마리 쥐가 먼저 침범하여 눈동자는 어두워지고, 네 마리 뱀을 억제하기 어려워231) 흰머리엔 화기和氣가 사라졌습니다. 꾀꼬리는 느릅나무 가지에만 오를 뿐이니 감히 북명의 붕새처럼 우화羽化하기를 바라겠으며, 검은 나귀는 들에만 엎드려 있으면서 부질없이 준마의 날램을 부러워할 뿐입니다. 두 곳에서 그리워하는 마음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한 가지 도리로 멀리서 계합契合하니 간담을 기울이는 것을 아끼겠습니까. 이에 답례로 글을 지어 길이 지란芝蘭에 견주고자 합니다.
이부상서에게 올리는 편지
유교와 불교의 가르침이 같다고 일찍이 옛말에서 들었으며, 천지 사이에 함께 거처하니 어찌 옛글에 눈을 두지 않았겠습니까. 음률의 조습燥濕을 잘 분별하시기 때문에 감히 저의 곡조를 아룁니다. 생각건대 합하閤下(상대방에 대한 존칭)께서는 백옥白屋(가난한 집)에서 출세하여 청요의 직을 두루 거쳤고, 백옥당白玉堂(궁궐)에 오르내리며 조정의 반열에 참여하였으며, 궁문을 출입하면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났습니다. 이미 은대銀臺(승정원)를 두루 맡으니 한림의 풍류요, 이제 옥서玉署(홍문관)에 추천받아 오르니 언부讞部(형조)의 표상으로, 봉황의 문채가 성대하여 원로鵷鷺232)의 반열에서 빼어났습니다. 운대芸臺(비서성)에 기대어 읊조리니 밝은 보름달이 주발에 스며들어 비추고, 조정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봉래산 오색구름의 기운이 소매에 젖어 펄럭입니다. 새벽에 이르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니 간절히 임금을 사랑하는 일념이요, 종일 게을리하지 아니하니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뿐입니다.
봉궐鳳闕에 나아가 조회를 기다리고 주책奏策으로서 임금님의 마음을 움직이며, 문무의 온전한 재주들이 각각 그 직책을 수행하고 억조의 백성들이 모두 생업에 안주합니다. 여론은 왕좌王佐의 재주와 기예를 다투어 인정하고, 도덕의 공정한 명망은 빈사賓師를 받드는 듯합니다.233) 한나라 장량張良234)도 당신의 계책에는 한 걸음 양보할 것이요, 제나라 관중管仲235)도 자신의 그릇 적음을 도리어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공으로 사를 잊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여 기개는 주운朱雲236)이 칼을 청한 것을 압도하고, 현신賢臣을 친애하고 소인을 멀리하여 제갈량의 「출사표」처럼 정성이 간절하니,

009_0397_a_01L鑿枘心佛之理矛盾性相之宗
009_0397_a_02L鼠先侵眼月向晦四蛇難制鬂雪埋
009_0397_a_03L榆鸎控枝敢望溟鵬之羽化黔驢
009_0397_a_04L偃野謾羨冀駿之驕兩地相思
009_0397_a_05L嫌山河之隔一道懸契可惜肝膽之傾
009_0397_a_06L是用木李編詞永以芝蘭爲喩

009_0397_a_07L

009_0397_a_08L上吏部尙書啓

009_0397_a_09L
儒釋同風曾有耳於古語霄壤共處
009_0397_a_10L豈不目於陳篇爲辨燥濕之音敢奏峩
009_0397_a_11L洋之曲伏惟閤下抽身白屋曆職淸
009_0397_a_12L頡頑白玉堂宛叅十八之列出入
009_0397_a_13L靑瑣闥快逢千一之期旣歷典銀臺
009_0397_a_14L翰林之風流今登薦玉署讞部之摽致
009_0397_a_15L離披鳳凰之彩秀出鵷鷺之班吟倚芸
009_0397_a_16L大明一輪月窺珠箔而鬪暎朝廻
009_0397_a_17L燕寢蓬萊五雲氣襲仙袂而婆娑
009_0397_a_18L曙無眠耿耿愛君之念終日不解
009_0397_a_19L忡憂國之心趨鳳闕以待朝回龍瞳於
009_0397_a_20L奏策文武全材各當其職億兆羣民
009_0397_a_21L咸安自生才譽物論爭歸於王佐
009_0397_a_22L德公望共戴於賔師漢張良自讓謀多
009_0397_a_23L齊管仲還慚器小公忘私忠盡國氣壓
009_0397_a_24L朱雲之乞力親賢臣遠小人誠丹諸葛

009_0397_b_01L진실로 백성의 부모요 나라의 동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저는 쓰러진 가문의 자손이요 불문에서 버림받은 몸으로, 배고프면 솔을 먹고 목마르면 시냇물을 마시며 헛되이 백 년 인생을 보내고, 저녁에는 선을 하며 낮에는 책을 보면서 스스로 일생의 공부로 삼았습니다. 느릅나무 숲에 기탁한 매미처럼 날아오르더라도 장척丈尺을 벗어나지 못하고, 개구리처럼 진흙 우물에 갇혀 견문이 우물 벽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설수雪樹의 그리움이 가련하고 부질없이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향할 뿐이었습니다. 바라옵건대 고산유수의 음을 알아주시기를 마다하지 마시고, 백설과 양춘의 곡조로 화답하여 주십시오. 그렇다면 도를 보존하는 것이 어찌 중니仲尼의 경개傾蓋를 기다릴 것이며, 지음도 반드시 백아伯牙의 탄금彈琴을 기약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주 부사에게 감사하는 편지
산림에 홀로 칩거하면서 항상 병을 안고 있다가 그대의 편지와 선물을 두루 받고서 여러 번 읽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으니, 돌보아 주신 은혜는 구정九鼎237)보다 무겁고 선물은 백붕百朋238)보다 더 소중합니다. 저는 생각하니 하찮은 생애요 떠도는 신세로, 정성을 다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설산에서 몸을 잊은 동자보다 못하고, 청고한 절개로 마음을 단련하는 것은 향성香城에 뼈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넓은 각해覺海를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였고 밝은 성천性天을 약간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심불心佛의 이치에 어둡고 선교禪敎의 글에 멀어서, 동림東林에 숨는 것만을 배우며 인간의 세월을 허송하였고, 남곽南郭에 은둔하는 것을 익히며 한갓 세상 밖의 연하煙霞를 희롱할 뿐이었습니다. 네 마리 뱀이 침범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두 마리의 쥐가 나무를 갉아먹는 것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쭈글쭈글한 피부와 앙상한 뼈로 돌아다니니 스스로 가증스럽고, 사나운 새가 봉황 울음소리를 내는 듯하니 누가 겉치레를 좋아하겠습니까.
이미 속세에서 몸을 빼서 부질없이 금전金田에 산보하며, 무위도식하면서 임금님의 은덕을 알지 못하고, 군역을 피하여 불가의 사서社鼠239)와 같으니 유문儒門의 죄인일 뿐 아니라 승가의 도적입니다.

009_0397_b_01L之奉表良可謂爲民父母豈不曰作國
009_0397_b_02L棟梁念某敗家餘生空門棄物飢食
009_0397_b_03L松渴歃溪虛送百年之朝暮夜冥禪
009_0397_b_04L晝閱敎自作一生之工夫蜩投榆林
009_0397_b_05L決起不過丈尺之上蛙跧泥甃見聞奚
009_0397_b_06L出瓮甓之間自憐雪樹之起思謾作露
009_0397_b_07L葵之向日伏望高山流水休辭別音
009_0397_b_08L白雪陽春幸肎和曲然則道存何必待
009_0397_b_09L仲尼之傾盖知音不須期伯牙之彈琴

009_0397_b_10L

009_0397_b_11L謝茂朱府使啓

009_0397_b_12L
塊跧巖薄永抱採薪之憂匝受嵬緘
009_0397_b_13L不勝復圭之喜眷重九鼎貺越百朋
009_0397_b_14L念某槲子生涯水母身世投誠學道
009_0397_b_15L自屈雪山之忘身苦節鍛心大怯香城
009_0397_b_16L之磬骨汪洋覺海曾未足以蠡傾
009_0397_b_17L廓性天亦豈能以管側柄鑿心佛之理
009_0397_b_18L楚越禪敎之文學遁東林虛消人間之
009_0397_b_19L歲月習隱南郭徒弄象外之烟霞
009_0397_b_20L解四蛇之侵人豈救二鼠之咬本象皮
009_0397_b_21L狗骨自增攘袂之形鷙翰鳳鳴誰愛
009_0397_b_22L效嚬之態旣抽身於塵世謾散步於金
009_0397_b_23L遊食遊衣忂老帝力避軍避役
009_0397_b_24L鼠佛家非但爲儒門之罪人亦自作僧

009_0397_c_01L천지 가운데 홀로 서서 유불의 도리에 다 어둡고, 게다가 운명이 기구하고 세상 인연이 흉하여 승문僧門에 가까운 반열도 없으며 속가俗家에 골육의 친척도 없습니다. 한 조각 쇠잔한 선영에 슬픈 눈물을 뿌리는 이도 없고, 천 리 곤궁한 길에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합니다. 「소민小旻」의 〈육아蓼莪〉240)편을 몇 번이고 덮었으며, 「당풍唐風」의 〈체두杕杜〉241)의 노래도 길이 그만두었습니다. 부모를 방문할 곳도 없고 누이도 어느 집에서 찾겠습니까. 백일에 승천하여 목련目連이 어머니를 구한 것을 부질없이 부러워하고, 두보杜甫가 맑은 밤에 달빛을 거닐면서 고향 생각하는 것을 탄식하였습니다. 제사를 끊은 죄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어렵고 후손을 잇는 무거움은 실낱같이 거의 끊어졌으니 죄가 우주 사이에 용납되지 못하고 음양陰陽의 도적을 스스로 불렀습니다. 섭생의 방법이 없음이 한탄스럽고 양성養性의 법도를 잃은 것을 어찌 견디겠습니까.
뜻밖에도 거듭 편지를 보내 주시어 드디어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기쁘게 부응하여 주시니, 감사하는 마음 둘 데가 없고 기뻐서 미칠 듯하니, 실로 병을 치유하는 신단神丹이요 번뇌를 씻어 주는 감로입니다. 생각건대 중니의 경개傾蓋는 만나기 전에는 있지 아니하였고 종자기의 지음知音도 반드시 소리를 빌린 이후라야 하는데, 이제 얼굴을 보지 않고도 묵묵히 계합하며 소리가 없어도 그윽이 부합되니 유종원과 호초浩初 스님의 교유도 이보다 더 하지 못할 것이요, 도연명과 혜원 스님의 친분도 어찌 여기에 미치겠습니까. 생각건대 풍류 넘치는 이은吏隱이요 관대하고 어진 군자로서 강촌과 산골짜기 마을을 모두 화락한 교화로 고무시키고 재야의 은자와 산승에게도 청아菁莪242)의 교화를 실천합니다. 이에 침상에 누워 있는 병객도 밝게 위문하여 주시니 감히 생전에 그대를 흠모할 뿐만 아니라 죽은 후에도 결초보은할 것입니다. 평소의 마음을 변치 아니하여 비록 보답하는 정성은 부족하나 황천에 미치기 전에는 모두 감사하며 지낼 것입니다.
상국께 올리는 편지

009_0397_c_01L家之裨賊中天地而孑立面儒釋而俱
009_0397_c_02L又況命途崎嶇世緣凶愍僧門無
009_0397_c_03L緦功之列俗家沒骨肉之親一片殘塋
009_0397_c_04L誰洒栢葉之涙千里窮路不忍風樹之
009_0397_c_05L小旻幾掩蓼莪之篇唐風長廢杖杜
009_0397_c_06L之咏訪庭闈之無處尋弟妹於何家
009_0397_c_07L日昇天謾感目連之化母淸宵步月
009_0397_c_08L堪嗟子美之思家覆絕之殃難逃自作
009_0397_c_09L嗣續之重不絕如毫罪不容於宇宙之
009_0397_c_10L賊自招於陰陽之隙可歎衛生之罔
009_0397_c_11L曷堪養性之失經豈意再辱寄鴻之
009_0397_c_12L惠書遂令重副占鵲之喜待感極罔措
009_0397_c_13L喜深欲狂實爲慰病之神丹可作洗煩
009_0397_c_14L之甘露窃惟仲屍傾盖不在面前
009_0397_c_15L期知音必假聲後而今不面而默契
009_0397_c_16L無聲而冥符比之柳子之於浩初不是
009_0397_c_17L過也陶翁之於慧遠何能及㦲伏遇吏
009_0397_c_18L隱風流寬仁君子江鄕峽俗盡皷於
009_0397_c_19L凱悌之風野逸山僧亦蹈於菁莪之化
009_0397_c_20L爰令臥床之病客忝被垂問之煦光
009_0397_c_21L不生前嚮葵死後結草無渝素節
009_0397_c_22L乏報酬之忱不及黃泉皆是感激之日

009_0397_c_23L

009_0397_c_24L上相國啓

009_0398_a_01L
혼돈이 열리고 피차 고하의 신분이 나뉘었으나 한 기운은 간단이 없으니 어찌 유교와 불교의 이동異同을 논하겠습니까. 지음知音이라고 여기고 문득 보잘것없는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 어두운 곳에 문득 야광주를 던지겠습니까. 생각하오니 합하閤下께서는 직稷과 설契 같은 덕을 지니시고 기夔와 용龍243) 같은 지위에 계시어, 어수魚水처럼 군신이 계합하고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아 태평시대를 다스리니 도타운 교화와 맑은 풍속은 흡사 장자방이 한나라를 도울 때요, 예악의 문물은 공부자孔夫子가 노나라를 섭정할 때입니다.
토포악발吐哺握髮244)로써 현자를 우대하며 생사에 변치 않고 임금을 섬겨서, 사시를 따르고 육기六氣245)를 다스리니 만물이 각각 삶을 이루고, 팔개八凱246)를 등용하고 사흉四兇247)을 물리치니 백관이 모두 직책을 수행합니다. 용맹한 자를 거두어 주니 관우와 장비가 능력을 펼치며, 준걸들을 망라하니 심약沈約과 사령운謝靈運이 재주를 드러냅니다. 드디어 국경에 연진烟塵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산간의 암혈이 비게 되니, 조승趙勝248)의 집에 타향의 식객이 있고, 인걸仁傑249)의 문하에 먼 곳의 사람도 많아서, 주머니 속에 처하기를 청하여250) 오는 자가 바람처럼 몰려들고, 농중籠中에 약을 보태기를 원하여 따르는 자들이 운집합니다. 풍속이 다른 사람과 도를 달리하는 선비로서 작은 기예가 있는 자를 모두 거두어 주시고, 조그마한 선이라도 기록해 주시니 이는 합하의 저울이 치우침이 없고 헤아리는 마음이 관대하고 여유로운 것입니다.
저는 방외의 비천한 사람으로 평소에 직접 뵌 적이 없었으나 항상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라오니 특별히 묵묵히 계합하는 가르침을 돌이켜 지기知己로 의탁함을 기쁘게 받아 주십시오. 고산유수의 음을 분별해 주는 것을 마다하지 마시고 백설白雪과 양춘陽春251)의 소리로 화답하여 주신다면, 목마를 때 맑은 시냇물을 마시듯 모두 은혜의 물결이요, 한가로이 그윽한 골짜기에 누운 것이 모두 그대의 은덕이 될 것입니다. 삼가 문을 닫고 침묵하며 면벽하고 마음을 보면서, 부처님의 빛 속에서 조정에 계시는 대감의 장수를 묵도黙禱하며, 또 금파金波의 선정 속에서도

009_0398_a_01L
七鑿有開雖分高下之彼此一氣無間
009_0398_a_02L奚論儒釋之異同爲知音而輙奏巴歌
009_0398_a_03L豈以暗而忽投明月伏惟閤下德侔稷
009_0398_a_04L位極䕫龍魚水一堂洒落君臣之
009_0398_a_05L風雲千載賁飾都兪之治敦化醇
009_0398_a_06L怳若張子房佐漢之時禮樂文物
009_0398_a_07L依然孔夫子相魯之日三握吐而待賢
009_0398_a_08L一死生而事主順四時御六氣萬物各
009_0398_a_09L遂其生進八凱退四兇百僚咸得其職
009_0398_a_10L牢籠驍勇開張效能網羅俊髦沈謝
009_0398_a_11L呈枝遂使塞上之烟塵不起山間之巖
009_0398_a_12L穴一空趙勝堂中不無他鄕之客
009_0398_a_13L傑門下亦多遠地之人請錐處囊裡
009_0398_a_14L來者風趨願藥補籠中附者雲集
009_0398_a_15L如殊俗之人異道之士有小藝必收
009_0398_a_16L無片善不記斯盖閤下之秤於手而無
009_0398_a_17L偏無儻鑑於心而寬矣綽矣者歟不佞
009_0398_a_18L亦方外鄙人也平日雖無目擊之分
009_0398_a_19L時不弛心慕之忱伏望閤下特回默契
009_0398_a_20L之風喜納知己之托高山流水休辭
009_0398_a_21L別音白雪陽春幸須答唱然則渴掬
009_0398_a_22L淸溪水皆是恩流閑眠幽谷雲依如
009_0398_a_23L德宇謹當掩門杜口面壁觀心玉毫
009_0398_a_24L光中默禱紫垣之台壽金波㝎裏

009_0398_b_01L황각黃閣(대신)의 풍류를 잊지 않겠습니다.
전주 모악산 귀신사 사적사인
살피건대 가섭이 아발牙髮을 상계上界에서 예배하자 금전金田이 크게 열렸고, 무우왕無憂王252)이 남주南洲에서 담탑壜塔을 건립하자 옥찰玉刹이 널리 펼쳐졌다. 상화象化를 다투어 높이는 것은 계림보다 성대한 때가 없었으니 생각건대 이 절은 또한 옛 신라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원명圓明 큰스님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시면서 기특한 터를 살피셨는데, 곤륜산의 정맥이 모악산에 이르고 영취산의 신령한 근원이 굴령崛嶺에 사사로움이 없어서, 경계마다 팔백八百의 비보처가 될 뿐 아니라 넓은 터가 삼천三千의 안거가 될 만하였다.
이에 바위를 파고 계단을 쪼니 반석처럼 견고하고, 들보를 놓고 기둥을 세우니 높은 봉우리와 나란히 하였다. 많은 불전과 첩첩한 처마가 참으로 웅장 화려하고 여러 별궁과 합사合舍가 차례로 높이 솟아, 적석積石의 천궁天宮이 웅장함에 부끄러워하고, 낭풍閬風253)의 궁궐도 화려함에 수줍어하였다. 불이不二의 법문이 이에 열리고 삼귀의三歸依의 정성이 저절로 일어났으며, 멀리는 신라의 복지福地가 되었고 가까이는 백제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향화香火의 인연이 해마다 끊이지 아니하고 종과 북소리가 날마다 울려 퍼졌다. 만력萬曆 임진년(1592)에 왜구가 날뛰어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위아래로 포학하게 죽이고 해치며, 산림을 노략질하고 분탕焚蕩이 더욱 심하였다. 청정한 사찰이 연기와 재가 되고 불에 덴 스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국운이 바뀌고 천도가 돌아오자 우리 원종元宗 대왕254)께서는 천지의 큰 덕을 품으시고 일월의 서기를 여셨으며, 정도를 회복하고 자리를 잡으시어 폐단을 혁신하고 새롭게 일으키셨다. 추로鄒魯255)의 유풍을 거듭 진작하시니 문물이 성대하였고,

009_0398_b_01L昧黃閣之風流

009_0398_b_02L

009_0398_b_03L全州母岳山歸信寺事蹟詞引

009_0398_b_04L
原夫迦葉波禮牙髮於上界金田大闓
009_0398_b_05L無憂王建壜塔於南洲玉刹廣闢爭崇
009_0398_b_06L象化無殷雞林顧惟是寺之權輿
009_0398_b_07L自昔日之羅代有曰碩德厥號圓明
009_0398_b_08L乃歷銓名山遍胥宇奇境崑崙正脉
009_0398_b_09L直落母岳之中鷲頭靈源靡私崛嶺之
009_0398_b_10L觸境不趐八百裨補盤基可設三千
009_0398_b_11L安居於是劚巖鐫堦共磐石而等固
009_0398_b_12L架樑植棟與危岑而爭高九晬殿八複
009_0398_b_13L窮極壯麗衆別宮諸合舍次第嶒
009_0398_b_14L積石天宮飜慚輪奐閬風地闕
009_0398_b_15L愧雕華不二之法門斯開歸三之誠敬
009_0398_b_16L自發遠爲新羅福地近作百濟願堂
009_0398_b_17L香火之緣不絕於年年月月鐘皷之響
009_0398_b_18L鎭吼於日日時時至萬歷壬辰歲杌隉
009_0398_b_19L我邦隳突彼醜憑陸上下殺伐殘傷
009_0398_b_20L鹵掠山林焚盪滋甚淸淨寶刹鞠爲
009_0398_b_21L煤炲麋爛緇徒各自分散邦運旣換
009_0398_b_22L天道好還惟我元宗大王苞天地之大
009_0398_b_23L啓日月之殊瑞返正登極革弊重
009_0398_b_24L再振鄒魯之遺風文物殷地率修

009_0398_c_01L문무의 자취와 사업을 따르니 명성이 하늘을 진동하여 모든 백성이 마땅함을 얻고 만물이 제자리를 잡았다. 팔도에 지검芝檢256)을 날려 일시에 청정 사찰을 보수하였다.
갑오년(1594)에 인연 있는 무리가 함께 와서 옛터를 옮기고 새 자리를 잡으니, 산세가 첩첩하여 기상이 훨씬 빼어나고 시냇물이 콸콸 흘러 정신을 더욱 일깨웠다. 오늘을 헤아려 옛날을 견주니 연하의 기이함이 넉넉하고, 옛것을 끌어 새것을 증거하니 신룡神龍이 기뻐하여, 곧바로 덤불을 베고 암벽을 자르며 흙을 쌓고 섬돌을 높였다. 먼저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을 세우고 그 다음 스님들이 머무르는 요사채를 세웠는데, 수놓은 서까래와 조각된 상인방은 난새와 학이 발돋움하여 날아오르는 듯하고, 중첩한 난목欒木(가름대)과 기둥은 안개와 구름처럼 펼쳐졌다. 금탁金鐸은 계수나무의 청풍에 울리고 옥화로엔 솔 사이 노을이 맺혀서, 금사하金沙河 세계인 듯 화기가 넘치고 천상의 옥빛 궁궐처럼 상쾌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흘러 아전鵝殿의 들보와 서까래가 무너지고 풍우가 몰아쳐서 봉방蜂房의 들보와 기둥이 기울었다.
순치順治 정유년(1657)에 선인善人이 간간히 나와서, 여러 건물을 다투어 꾸미고 지사志士가 뒤를 이어 보전寶殿을 중수하였다. 이미 여러 일을 이루고 나자 여러 세대에 걱정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뜻밖에도 사찰의 운이 어렵고 산문이 위태로워 청정한 곳이 날로 쇠퇴하고 재물이 해가 갈수록 남음이 없었다. 모든 일이 어긋나 황폐할 날이 닥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보존할 계책이 없었다. 이에 두심斗㻣 큰스님이 계셨는데 법문法門의 큰 공로자요 승단의 빼어난 분으로, 어려서부터 기개가 뛰어나고 자라서는 훌륭한 능력을 지녔다. 보방寶坊의 쇠잔함을 차마 보지 못하고 절 대중의 간청을 어기기 어려워 석장을 짚고 골짜기를 나섰다. 교화의 힘을 바람처럼 일으켜 사방 멀리 모연募緣하니 보시布施의 마음이 샘처럼 솟아, 비단을 바치기도 하고 곡식을 시주하기도 하여 빈부를 헤아리지 않고 앞을 다투었으며, 소에 싣기도 하고 수레로 옮기기도 했는데 헌납이 뒤늦을까 저어하였다.
여러 일을 마칠 무렵 많은 공인工人이 다투어 와서

009_0398_c_01L文武之緖業聲明動天而使群情各得
009_0398_c_02L其宜萬物不失其所飛芝檢於八路
009_0398_c_03L淨刹於一時以天造甲午歲有緣之衆
009_0398_c_04L相率而來爰遷舊基更卜新址重重
009_0398_c_05L山勢氣象萬千汃汃溪流精神百倍
009_0398_c_06L推今況昔適足烟霞之奇引舊證新
009_0398_c_07L必得龍神之悅即乃芟榛刲巖土峻
009_0398_c_08L先創晬容法殿次建方袍衆寮
009_0398_c_09L桷琱楣鸞翻鶴跂重欒複棟霧緝雲
009_0398_c_10L金鐸鳴桂上之淸風玉爐結松間
009_0398_c_11L之細靄藹然爲金沙地界快矣如玉架
009_0398_c_12L天都歲月旣深鵝殿之杗桷撲落風雨
009_0398_c_13L爭打䗦房之樑棟朽傾至順治丁酉嵗
009_0398_c_14L善人間生竸飭諸廬志士尾出重修寶
009_0398_c_15L殿旣庶績克濟謂累代何憂誰知寺
009_0398_c_16L運奇蹇山門臲淨居日漸有斁資力
009_0398_c_17L歲計無餘左枝右梧空廢指日可待
009_0398_c_18L千思萬度保存末由其謀爰有碩師斗
009_0398_c_19L法門元勳緇林秀士幼健食牛之
009_0398_c_20L壯妙承蜩之能旣不忍寶坊之彫殘
009_0398_c_21L亦重違寺衆之懇乞一笻出洞化力風
009_0398_c_22L四遠募緣施心泉湧帛者帛糓者
009_0398_c_23L不計貧富而爭先駄於角輦於輿
009_0398_c_24L唯恐獻納之居後衆役方之蕆百工竸

009_0399_a_01L전각과 승방에 단청을 하고 그림과 불상을 그렸는데 이때가 강희康熙 정해년(1707)이었다. 봄에 대역사를 시작하여 여름에 일을 마치자 법계法界가 다시 빛나서 천화天花가 날리는 듯하고, 도량道場이 빛을 더해 서기瑞氣가 비추어, 청정한 곳이 이로써 편안해지고 참선하는 스님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또한 천운이 있었도다.
나는 어려서 뛰어난 재주는 없었으나 다행히 숙세의 인연이 있었다. 석장을 날려 문단의 높은 선비를 찾고 홀로 빈 배를 띄워 교해敎海의 넓은 물결을 타서, 옛 서적을 낱낱이 읽고 묵은 자취를 두루 살펴보았는데 천지가 열린 이래로 부처님만한 분이 없었다. 그러나 먼 나라에서 태어나고 말세의 시운을 만나 백만 리 밖에서 천축天竺을 바라보니 멀기만 하고, 삼천 년 전의 부처님 시대를 회상하니 아득하기만 하여, 인천人天의 사이에 팔을 걷어 부치고 보살의 틈에서 가르침을 받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다만 불가佛家의 흥쇠興衰를 따라 창건과 중수의 시말을 서술하여 감히 사를 짓는다. 사詞는 다음과 같다.

法王利見      법왕이 나오시자
虬宮瘞月      규궁에 달이 숨었네
轉及雞林      계림에 미쳐서
增崇鶴國      사찰을 높이 세웠네
兵燹流灾      병화의 해로
福地燬滅      복지가 불타 사라졌으나
惟天降詔      임금의 명으로
再拓淨居      다시 청정처를 열었네
月觀龍躍      월관이 용처럼 솟고
雲軒鶴舒      운헌은 학 나래처럼 펼치니
寶莊交輝      보장이 서로 빛나고
人靈合慶      인신人神이 모두 기뻐하네
前後丕績      전후의 큰 공적을
不敢殫說      말로 다하지 못하네
전주 종남산 송광사 사적사서
살피건대 학림鶴林에서 적멸을 나타내시자 금관金棺이 빛을 감추고, 규실虯室에서 현묘한 이치를 말하자 옥축玉軸이 밝게 드러났다. 용장龍藏이 이미 열리자 계림이 교화되어, 군신君臣은 육도六度의 뜻을 밝히고 사서士庶는 삼귀의三歸依의 정성을 높였다. 안찰이 구름처럼 펼쳐져 거의 빈 터가 없고, 북소리가 우레처럼 울려 제천諸天이 멀지 않으니

009_0399_a_01L丹雘於殿廬措畵於繪像此乃康
009_0399_a_02L熙丁亥嵗也春昉大役夏畢神功
009_0399_a_03L界重輝怳見天花之散落道場增輝
009_0399_a_04L欣覩瑞旭之照臨淨域以之安閑禪衆
009_0399_a_05L于焉遊集何其幸矣其亦數㦲若余
009_0399_a_06L少乏逸材幸有宿種逈飛枯杖
009_0399_a_07L詞場之高門獨泛虛舟乘敎海之洪浪
009_0399_a_08L歷覽遺牘遍考陳蹤自開闢以來
009_0399_a_09L有如佛氏者也生値邊邦運逢末
009_0399_a_10L百萬里外望天竺而杳茫三千年
009_0399_a_11L遡佛世而恍惚恨未得攘臂於天人
009_0399_a_12L之際摳衣於薩埵之間但依佛家之興
009_0399_a_13L聊叙剏葺之始末敢爲詞曰

009_0399_a_14L法王利見虬宮瘞月轉及雞林

009_0399_a_15L增崇鶴國兵燹流灾福地燬滅

009_0399_a_16L惟天降詔再拓淨居月觀龍躍

009_0399_a_17L雲軒鶴舒寶莊交輝人靈合慶

009_0399_a_18L前後丕績不敢殫說

009_0399_a_19L

009_0399_a_20L全州終南山松廣寺事蹟詞序

009_0399_a_21L
原夫示寂滅於鶴林金棺掩耀誦玄微
009_0399_a_22L於虬室玉軸騰耀龍藏旣開雞林即
009_0399_a_23L君臣鏡志於六度士庶翹誠於三歸
009_0399_a_24L鴈刹雲排將無隙地鯨桴雷震不遠

009_0399_b_01L이로써 알지니 태평국가를 이루는 것은 실로 불도佛道를 이어받아 높임에 있도다.
이 송광사는 보조 국사普照國師가 정하신 곳이다. 국사께서 기이한 경계를 두루 보시고 빼어난 터를 낱낱이 살피시다, 이 산을 보셨는데 산수가 수려하여 눈을 놀라게 하는지라 감탄하고 배회하시다가 드디어 동서 두 모퉁이에 초석을 놓고 가람의 경계 표지를 세우셨다. 천계天啓 임술년(1622)에 덕림德林 스님이 혜력慧力을 떨쳐 비로소 법당을 세웠다. 10년 걸려 완성하였으니 큰 역사라고 상상할 수 있고, 7칸을 층층이 높이 올렸으니 거대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도인들이 바람처럼 따르고 승도僧徒가 구름처럼 모였으며, 성대한 법회가 열리고 영산靈山의 아름다운 모임이 일시에 이루어졌다. 향기로운 채색을 바르고 푸른 기와를 덮어 방변方辯257) 같은 뛰어난 솜씨꾼을 불러 불상을 요단에 모시고, 장승요張僧繇258)의 훌륭한 재주를 빌려 불화를 채색된 벽에 걸었다. 앙당鴦堂이 좌우로 나뉘어 서고, 봉방蜂房이 동서에 사이사이 들어서며, 전각과 문루가 법도에 맞게 경영되고, 탑비와 암사가 어울리게 설치되었다. 전후의 담이 높이 솟고 안팎의 문들이 크게 세워져, 불국佛國이 새로워지고 법물法物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성대하도다.
이곳의 상쾌하고 트인 경계를 보니 산은 옥빛을 머금어 여산廬山의 천봉千峰이 둥근 하늘을 이고 솟았고, 시냇물은 구슬을 품은 듯 조계의 한 물줄기가 대지를 가로질러 흐른다. 바람이 골짜기에서 불어오면 아름다운 나무에서는 향기가 풍겨 오고, 비가 성긴 숲을 지나면 가지의 그림자가 살랑살랑 흔들리니 실로 동천洞天의 빼어난 곳이요, 복지福地 중의 으뜸이다. 향성香城을 새롭게 하니 호계虎溪의 다리가 구름 가에 누운 무지개처럼 가로놓여 있고, 해탈문은 하늘 밖에 나래 펴는 학인 듯 멀리 보인다. 푸른 두공과 붉은 용마루가 층층 누각에 무지개인 듯 걸려 있고, 금륜金輪과 옥경玉鏡은 일월처럼 회랑을 둘렀다. 들보와 기둥은 하늘에 우뚝하고 단청은 달빛에 빛난다.

009_0399_b_01L諸天是知太平仁邦實在紹隆佛道
009_0399_b_02L惟玆松廣寺者國師普照所占處也
009_0399_b_03L國師胥宇奇境歷銓勝基回矚此山
009_0399_b_04L岳瀆秀麗橫駭我目感唶徘徊遂鎭
009_0399_b_05L石東西之隅乃樹標伽藍之界至於
009_0399_b_06L天啓壬戌歲有曰德林爰奮慧力
009_0399_b_07L剏法堂功十年而告成可想厥役之大
009_0399_b_08L層七間而架逈又見斯作之宏於是玄
009_0399_b_09L侶風追緇徒雲集霧市殷開於五里
009_0399_b_10L雪山嘉會於一時䕫彩黏香吳瓦覆碧
009_0399_b_11L召方辨之妙手奉塑儀於瑤壇倩僧繇
009_0399_b_12L之良材掛繪容於繢壁鴦堂分峙
009_0399_b_13L右䗦房間設東西殿閤門樓合度經
009_0399_b_14L塔碑菴舍隨宜施設矗矗前後之
009_0399_b_15L將將表裏之門佛國維新法物咸備
009_0399_b_16L盛矣㦲觀此觸境之爽塏也山容蘊玉
009_0399_b_17L廬岳之千峯戴圓空而出頭磵勢懷珠
009_0399_b_18L1) [1] 之一派列厚坤而橫帶風生絕
009_0399_b_19L琪樹飛香雨過踈林瓊柯動影
009_0399_b_20L洞天之勝府實福地之名區至若香城
009_0399_b_21L之儼新也虎溪喬橫看雲邊之偃虹
009_0399_b_22L脫門遙望天外之跂鶴翠拱朱甍起虹
009_0399_b_23L霓於層閣金輪玉鏡環日月於廻廊
009_0399_b_24L樑棟坱圠雲衢丹靑炳煥月竇玉毫

009_0399_c_01L
옥호玉毫의 빛이 퍼지자 신령한 자태가 허공을 걷는 듯하고, 금산이 둥글게 서니 상서로운 기운이 바다에 일렁인다. 쟁쟁한 금탁소리는 날이 갠 후 맑은 바람에 퍼지고, 가느다란 동화로의 연기는 소나무 사이의 아지랑이와 어우러진다. 용발우는 향적香積에 쌓여 있고 종소리는 먼 하늘에 울려 퍼진다. 뜰의 전나무는 푸른빛을 띠어 장춘원長春苑259)에 들어온 듯하고, 등불 창은 두루 비추어 불야성不夜城260)이 이어진 듯하다. 비록 바다 밖 멀리 있으나 호남의 사찰 중에 으뜸이다. 주륜朱輪(귀인의 수레)의 왕래가 끊임없으니 조개皂盖(태수의 수레)가 와서 유람하는 것이요, 청금靑衿(선비)이 성대하니 백책白幘(선비)이 이르러 구경하는 것이다. 계극棨戟(태수 혹은 자사)이 멀리 바라보니 녹수에 붉은 연꽃 그림자가 일렁이고, 첨유幨帷(군수 혹은 자사)가 잠시 머무르니 하늘에 흰 구름 빛이 열린다. 창을 열고 붓을 잡으니 문인文人의 호기豪氣가 배가되고, 실창에 기대어 시구를 찾으니 시인의 일흥逸興이 날아오른다. 멀리서 사모하는 자는 생각만 수고롭거니와 몸소 찾아오면 마음이 탁 트이니, 웅장하게 꾸미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겠는가.
그러나 법전法殿이 창건된 지 오래되었다. 바람이 치고 비에 씻겨 구조가 위태롭고, 먼지가 쌓이고 이끼가 끼어 칠이 더러워져서, 둥지의 제비가 떠나고 쥐가 담을 뚫어 의탁하니 개수하지 않는다면 지탱하기 어려웠다. 이에 신열信悅 스님이 있었으니 실로 공문空門의 큰 스님이다. 코끼리처럼 선림禪林에 나와 삼거三車261)의 길을 고르게 하셨으며, 교해敎海에 독수리처럼 날아 팔해탈八解脫의 근원을 다하였다. 법력이 자약하여 곳곳에서 선을 쌓고 자비심을 일으켜 이르는 곳마다 공을 이루었다. 법당이 무너지려 함을 개탄하고 보수할 큰 뜻을 분발하니 때는 숭정 후崇禎後 정해년(1647)이었다. 구름 밖에 석장을 날리고 가면 온갖 마을에서 다투어 혜시惠施하고, 술잔 띄워 강을 건너면 배에 실린 재물을 다 희사하였다. 여러 재물을 소와 말로 옮기고 뭇 재목을 수레에 실어 날랐다. 큰 역사를 비로소 시작하니 훌륭한 목공이 몰려들었다.

009_0399_c_01L散煥依俙步虛之靈儀金山立圓
009_0399_c_02L髴泛海之瑞相鏘鏘寶鐸聲傳霽後之
009_0399_c_03L光風裊裊銅爐氣結松間之細靄
009_0399_c_04L鉢堆於香積鳬鍾吼於泬寥庭栝擁靑
009_0399_c_05L似入長春之苑燈靈匝耀疑連不夜之
009_0399_c_06L雖處海外一方獨步湖中諸刹故繁
009_0399_c_07L憧憧朱輪皂盖之遊躅彭彭靑衿
009_0399_c_08L幘之來儀棨戟遙臨蕩綠水紅蓮之影
009_0399_c_09L襜帷蹔駐披丹霄素雲之光拓牎搦毫
009_0399_c_10L墨客之豪氣倍作隱攏搜句騷人之逸
009_0399_c_11L興遄飛遠慕者勞煩其思親臨則發越
009_0399_c_12L其志匪取易之大壯奚媚人之多觀
009_0399_c_13L然而法殿之剏久矣風侵雨頮杌隉其
009_0399_c_14L埃凝蘚襍䵝昧其塗賀厦之鷰斯
009_0399_c_15L穿墉之鼠是托倘不改葺誠難枝
009_0399_c_16L爰有信悅其名者實空門巨擘也
009_0399_c_17L象出禪林平三車之路鵰飜敎海
009_0399_c_18L扇渴八解之源法力自如逢塲作善
009_0399_c_19L慈心激發隨處成功慨此晬堂之將頹
009_0399_c_20L奮彼修飭之大意時即崇禎後丁亥歲
009_0399_c_21L錫飛雲外萬落之檀門爭開盃渡
009_0399_c_22L江中一船之寶貨頓捨輸群財於角鬣
009_0399_c_23L運衆材於車輿大役方張良工坌集
009_0399_c_24L「奚」疑「溪」{編}

009_0400_a_01L옛 건물을 들어내면서 굽은 것은 버리고 온전한 것만 골랐으며, 새 기둥을 세우면서 곧은 것을 세워 견고하게 이루었다. 솜씨를 다하여 새기고 다듬으니 규구規矩의 흔적이 없고, 정밀하게 채색하니 금벽金碧이 아름답게 빛났다. 깎고 다듬은 공을 예전에 견주니 승경勝景을 더하여, 초제招提가 이제부터 더욱 새로워질 것이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버금가는 이가 드물리라.
나는 재주가 없고 쓸모가 없다. 거북이처럼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도룡屠龍의 솜씨가 쓰이지 못함을 항상 한탄하고, 용문龍門에 이마를 찧어 호랑이 그림을 이루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였다. 문학의 뛰어난 작품을 음미하지 못하고 다만 술 단지 곁에서 취할 뿐이었는데, 뜻밖에 서술하는 일이 맡겨졌다. 의지할 바는, 공덕은 말로 인해 전해지니 저 공덕은 혹 말을 의지하여 말할 수 있고, 말은 덕을 의지하여 드러나니 이 말이 혹 덕을 기대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훌륭한 공적을 서술하여 대중에게 보이노라. 감히 사를 지었다.

鵠林兌閟      곡림이 서쪽에 닫히자
虬藏震襞      규장이 동쪽에 열렸다
爭崇鴈塔      다투어 안탑을 높임은
無殷鰈域      해동보다 성대한 곳 없다
惟此貧婆      이 총림은
湖南鉅刹      호남의 큰 사찰이니
卜銓歲久      터를 잡은 지 오래되어
剏設葉末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
星嶠月瀆      별빛 아래 산악이 둘러치고
列黛流金      시내엔 달빛이 흐른다
列宇翬飛      여러 건물이 나래 펴고
複攘龍馳      복도가 용처럼 달린다
莊點斯偉      장엄을 크게 하니
遊賞寔繁      유람하는 자가 많아
貴賤賔客      귀천의 길손이
不絕其群      그 무리가 끊이지 않았다
重修一新      중수하여 새롭게 하니
萬古長存      만고에 길이 보존되리라
文難消藁      원고를 없애기 어려워
榛枯勿伐      거친 글을 그대로 둔다
鰌壑雖渴      바닷물은 다하여도
丕績不滅      큰 공적은 영원하리라
임실 신흥사 사적사인
서술하건대 학림이 서쪽에서 닫히자 규궁虯宮과 정법이 함께 잠기고, 상화象化는 동쪽으로 흐르자 안탑이 신성한 위의에 의탁하여 아울러 드러났다. 법계가 비로소 천하에 열리고 불사가 세상에 두루 펼쳐졌다. 이로부터 동방에서 지혜의 물결이 안정되게 흐르고

009_0400_a_01L擺出舊構錯枉取完竪植新楹擧直
009_0400_a_02L成固雕礱罄巧䂓矩無斧鑿之痕
009_0400_a_03L雘窮精金碧有璀璨之美撲鑿況前
009_0400_a_04L增勝招提自此彌新何其韙㦲鮮能
009_0400_a_05L及矣若余者瓠落無用樗散非材
009_0400_a_06L尾曳途長嗟屠龍之勿用龍門點額
009_0400_a_07L深慚畫虎之不成未能咀雋於章句之
009_0400_a_08L唯自酣暢於衢罇之側誰知序述
009_0400_a_09L遽及吾人所賴德因言傳彼德或憑言
009_0400_a_10L而可說言托德擧此言或倚德而不湮
009_0400_a_11L是述哿功永示可畏敢爲詞曰

009_0400_a_12L鵠林兌閟虬藏震襞爭崇鴈塔

009_0400_a_13L無殷鰈域惟此貧婆湖南鉅刹

009_0400_a_14L卜銓歲久剏設葉末星嶠月瀆

009_0400_a_15L列黛流金列宇翬飛複攘龍馳

009_0400_a_16L莊點斯偉遊賞寔繁貴賤賔客

009_0400_a_17L不絕其群重修一新萬古長存

009_0400_a_18L文難渭藁榛枯勿伐鰌壑雖渴

009_0400_a_19L丕績不滅

009_0400_a_20L

009_0400_a_21L任實新興寺事蹟詞引

009_0400_a_22L
述夫鶴樹兌閟虬宮與正法同沉象化
009_0400_a_23L震流鴈塔托神儀並現法界肇闢天
009_0400_a_24L佛事遍達人間由是鰈水之慧水安

009_0400_b_01L계림에서 선정의 숲이 빼어나게 드러났다. 상선上仙이 머리를 깎고 공동崆峒262)에 자유롭게 노닐고, 궁중의 귀인은 몸을 바치고 기원의 청을 은근히 하였으며, 온 나라가 교화를 따르고 만백성이 높였다. 산천의 승경勝景을 선택하고 토목의 기특한 공을 다했으며, 안찰雁刹이 바위와 골짜기에 펼쳐지고 규장虯藏(대장경)은 감궁龕宮에 구름처럼 쌓였다. 강단의 계단과 뜰을 나누자 용상龍象의 발자취가 성대하게 이르고, 언로言路에 구혁溝洫을 다스리자 토끼 굴이 고르게 되었다. 불도를 창도하니 옥처럼 다투어 맑고, 법을 수지修持함은 관주貫珠인 듯 깨끗하여 넓은 비유로도 다 논할 수가 없다.
대저 이 신흥사는 신라 진감眞鑑 국사가 점지한 곳이다. 국사께서 우연히 지나시다가 놀라면서 돌아보셨는데, 산이 병풍처럼 둘러 봉황이 글을 물고 안개 속에서 일어나는 듯하고, 시내가 주위를 흘러 옥룡이 일렁이는 물결을 마시는 것 같았다. 황금으로 된 지상의 궁궐이 지어지지 않으면 옥으로 만든 천도天都가 될 터였다. 이에 터를 살피고 정하여 절을 창건할 사람을 기다렸다. 만력 기미년(1619)에 인화印和, 청옥淸玉 등이 합심하고 서원하여 단문의 재물을 모았는데 보시하는 마음이 정성스러웠다. 공인工人을 모아 일을 하니 솜씨 좋은 자가 넘쳤으며, 이에 금전을 열고 범찰을 크게 건립하였다. 별전과 합사의 채색된 두공이 모여 나열되고, 첩첩한 누관과 줄지은 승방의 용마루를 깎아 조각하였다. 비록 호남의 한 곳에 있으나 사방 이웃 산문 중에 으뜸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구조가 위태롭고 비에 씻기고 바람을 맞아 칠이 바랬으므로, 만일 보수하지 않으면 반드시 지탱하여 보존되기 어려웠다.
이에 두심 큰스님이 계셨는데 뛰어난 근기는 일찍부터 열려 임기응변에 뛰어나셨다. 오천五天(인도)의 신비한 자취와 깊은 말씀을 여유 있게 풀어헤치고, 백가의 기이한 말과 묘한 이치를 분석하여 남김이 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길 세제世諦는 번뇌라 자신에게 무익하다 하여, 고개 위 오백 리 넘은 곳에 자취를 숨겼고, 호남에서 빛을 감추고 일생 나가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명성을 피하였으나 저절로 드러나

009_0400_b_01L雞林之㝎林標秀上仙剔髮汗漫
009_0400_b_02L崆峒之遊中貴捐慇懃祗桓之請
009_0400_b_03L擧國歙化簇姓咸崇選勝槩於山川
009_0400_b_04L奇功於土水鴈刹星列巖壑虬藏雲
009_0400_b_05L堆龕宮分階墄於講壇象踏霍副
009_0400_b_06L溝洫於言路兎穴唱道則瑑玉爭
009_0400_b_07L修持則貫珠聯潔如斯愽喩不可殫
009_0400_b_08L夫此新興寺者新羅國師眞鑑所占
009_0400_b_09L處也盖國師偶爾經過愕然回矚
009_0400_b_10L屏四列紫鳳啣書掀嵐水帶一圍
009_0400_b_11L龍飮墨蕩磵不爲金裁地闕其作玉
009_0400_b_12L架天都遂歷銓占基待有人建刹
009_0400_b_13L萬曆己未歲有印和淸玉等斷金爲約
009_0400_b_14L匪石其心鳩財檀門施心翼翼聚工
009_0400_b_15L役所巧手陾陾爰闡金田大建梵刹
009_0400_b_16L別殿合舍畫栱櫕羅疊觀聯房雕甍
009_0400_b_17L撲斵雖處湖左一界獨步山中四隣
009_0400_b_18L然而烏兎飛奔其搆霖飈頮撲
009_0400_b_19L漫漶其塗倘不修飭必難支保爰有
009_0400_b_20L碩師斗㻣風機夙頴應變多奇五天
009_0400_b_21L之秘跡幽筌遊刃有裕百氏之奇言
009_0400_b_22L妙理柝薪無遺自念世諦有勞自己
009_0400_b_23L無益遂遁跡嶺之上里半千有强
009_0400_b_24L韜光湖以南矢一生不出避聲聲自露

009_0400_c_01L함 속의 옥이 빛나듯 하였고, 명예에서 달아났으나 스스로 뒤따라 궤짝의 보배를 숨기기 어려웠다. 이에 절의 대중이 스님을 좇아 달려가 손 모아 간청했다.
“쇠잔한 절의 흥폐가 큰스님의 호응에 달려 있으니 원컨대 큰 자비를 내리시어 흔쾌히 나오심을 번거롭게 여기지 마소서.”
때는 숭정 후 임진년(1652)이었다.
스님이 이에 짧은 글을 내시고 제방諸方에 모연하자 보시가 앞을 다투어 재물이 구름처럼 쌓였다. 기술자가 솜씨를 발휘하고 뭇 공인이 바람처럼 몰려들었으며 초봄에 시작하여 초여름에 끝났는데 하나도 흠 없이 모든 것이 새로 중흥됐다. 그 법전의 박로欂櫨는 교차하여 성풍成風의 묘한 솜씨263)로 이루었고, 동량은 우뚝하여 규일揆日의 신공으로 결단하였다. 단청이 칠해지고 금벽이 빛나니 이용면李龍眠264)의 재주가 솜씨를 발휘하고, 고호두顧虎頭265)의 필적이 기특함을 다하였다. 그 그림과 불상은 장승요張僧繇의 오묘한 그림이 빛나고 오도사吳道士266)의 신묘한 묘사가 찬란하다. 삼십이상三十二相이 옥좌에 임하여 엄숙하고 팔십사의八十四儀가 금산을 안고 둥글게 서서, 보방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법물法物은 거듭 새로워졌다. 멀리서 바라보니 우뚝 서 기이하여 영산의 모임을 오늘 마주한 듯하고, 가까이서 살펴보니 상쾌하고 아름다워 도솔천궁을 이 산으로 옮겨 온 것 같았다. 아아, 명성은 덕을 인하여 빛나 천 리 밖에서도 감응하고, 이름은 덕으로써 드러나 만세 후에도 전해진다. 이에 변변찮은 붓을 잡아 감히 아름다운 사적을 기록하고 이어 사를 짓는다.

滿月蘸西      보름달이 서쪽으로 지고
佩日驚東      패일이 동쪽을 놀라게 하니
虬藏之奉      규장을 받들고
鴈刹之崇      안찰을 높이 세웠다
轉及雞林      계림에 이르러
尤尙鶴國      더욱 학국을 숭상하여
雲張梵刹      범찰이 골짜기에 구름처럼 펼쳐지고
星排巖壑      별처럼 배열되었다
曰此新興      이 신흥사는
剏自中年      중고시대에 창건되어
雖處一隅      비록 모퉁이에 처해 있으나
可侔諸天      제천에 필적할 만하다
功曷纎擧      공적을 자세하게 들 수 없고
蹟實難論      사적도 논하기 어려워
聊叙萬一      만분지일이나마 서술하여
永貽來昆      후손에게 남겨 준다

009_0400_c_01L廡玉射輝逃名名我隨䢱珎難掩於是
009_0400_c_02L寺之衆僉逐臭奔到叢手懇祈顧殘
009_0400_c_03L寺之將興廢在大德之一應不願垂洪
009_0400_c_04L毋煩快出時即崇禎後壬辰嵗也
009_0400_c_05L師乃袖䟽短軸募緣諸方舍施爭先
009_0400_c_06L衆財雲委技能逞巧群工風騶濫觴
009_0400_c_07L於首春覆蕢於抄夏一事無欠百廢俱
009_0400_c_08L若其法殿欂櫨權枒練成風之妙
009_0400_c_09L樑棟坱圠斷揆日之神功丹靑抹
009_0400_c_10L金壁璀璨龍眠之手材罄巧虎頭
009_0400_c_11L之筆跡窮奇抑其繪像張僧繇之妙畫
009_0400_c_12L炳然吳道士之神邈煥矣三十二相
009_0400_c_13L臨玉座而交儼八十四儀擁金山而圓
009_0400_c_14L寶坊增麗法物重新遠而望峭而
009_0400_c_15L靈山會如對今日迫而察爽而麗
009_0400_c_16L覩史宮疑移此山聲因德華千里
009_0400_c_17L外應名爲德擧萬歲後傳是走腐毫
009_0400_c_18L敢札哿績繼爲詞曰

009_0400_c_19L滿月蘸西佩日驚東虬藏之奉

009_0400_c_20L鴈刹之崇轉及雞林尤尙鶴國

009_0400_c_21L雲張梵刹星排巖壑曰此新興

009_0400_c_22L剏自中年雖處一隅可侔諸天

009_0400_c_23L功曷纎擧蹟實難論聊叙萬一

009_0400_c_24L永貽來昆

009_0401_a_01L
금구현 모악산 금산사 사적사인
기술하건대 주나라가 불홍拂虹을 감응하자267) 옥호玉毫가 학수鶴樹에서 빛을 감추고, 한나라가 패일佩日을 징험하자268) 황금 탱화가 홍려鴻臚(한나라 때의 관청 이름)에 빛을 드러냈다. 상화象化(교화)가 신주神州(중국)를 두루 덮고, 규장이 먼저 도림桃林의 들판에 반포되었다. 사방의 백성에게 심주心珠를 뿌리자 산과 바다 없이 다투어 으뜸의 보배를 줍고, 팔방의 군생에게 혜일慧日을 비추자 집집마다 큰 도를 보았다. 학국鶴國이 제학鯷壑(우리나라)에 별같이 배열되고 안탑이 계림에 바둑알처럼 교차되었다. 법음이 종횡하여 바람이 만뢰萬籟를 울리고 소도蘇塗269)의 자취는 달이 백천百川에 비친 듯하였다. 작은 우리나라는 비록 승금주勝金洲 가에 있으나 찬란한 법물法物은 어찌 적석천積石天에 부끄럽겠는가.
이 절은 예전 우리나라가 삼국으로 정립할 때에 창건한 것이다. 백제 법왕法王 원년(599)은 수隋나라 문제文帝 개황開皇 19년으로, 왕이 이에 터를 정하여 사찰을 창건하고 스님을 배출하니, 정방淨坊의 시작은 용출한 것과 같으나 향성은 이제 막 지어져서 화성만 못하였다. 신라 선덕여왕 인평仁平 3년(636)은 당나라 태종 정관貞觀 10년이다. 이때에 자장慈藏 법사가 동쪽 모퉁이에 매여 있음을 부끄러워하다가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갔다. 옛 자취를 찾아 문수의 성상聖像을 청량산에서 알현하고 참 스님을 찾아 향원香圓 국사를 운제사雲際寺에서 참배했다. 불법이 세상에 펼쳐지리라는 은밀한 참언讖言(예언)을 받고 산천의 진맥鎭脈의 비언祕言을 받들었다.
스님께서 이에 지혜의 검으로 붕명鵬溟(중국)을 교화하고 바다를 건너 돌아와 총림을 세우고 승가리를 받들었는데 곧 취서산의 통도사요, 가람을 중수하고 사리를 모셨는데 용황사와 금산사이다. 위대하도다. 붕새가 북명으로 날아가니 요당坳堂의 엎어진 잔을 개탄하였고, 학이 동도로 돌아오니 합포合浦에 구슬이 돌아온 것270)을 기뻐하였다. 왕공은 가르침을 청하여 따르고 백성들은 법회를 열기를 기약하였다. 난기鸞旗와 봉가鳳駕는 수나라의 황제가

009_0401_a_01L金溝縣母岳山金山寺事蹟詞

009_0401_a_02L
述夫周感拂虹玉毫掩彩於鶴樹漢徵
009_0401_a_03L佩日金幀揭輝於鴻臚象化遍被神
009_0401_a_04L虬藏先頒桃野撒心珠於四極蔟姓
009_0401_a_05L靡山海而爭掬上珎照慧日於八紘
009_0401_a_06L生不戶牖而咸見大道鶴國星排鯷壑
009_0401_a_07L鴈塔碁錯雞林蹤橫法音風號萬籟
009_0401_a_08L蘇塗像跡月落百川蕞爾褊邦雖處
009_0401_a_09L勝金洲畔燦然法物寧慚積石天中
009_0401_a_10L夫惟此寺昔我東表鼎峙之秋所創也
009_0401_a_11L盖百濟法王初一年即惰文開皇十九
009_0401_a_12L王乃占址胥宇建刹度僧淨坊權
009_0401_a_13L輿雖同踴出香城草昧未若化城
009_0401_a_14L新羅善德仁平三年迺皇唐太宗貞觀
009_0401_a_15L十載爰有法師慈藏自愧匏繫東隅
009_0401_a_16L迺奮杯渡西笑跡之占須訪謁曼殊聖
009_0401_a_17L像於淸凉僧之眞必叅拜香圓國師於
009_0401_a_18L雲際受佛法頒世之冥讖奉山川鎭脉
009_0401_a_19L之祕言師乃劒化鵬溟刀折鰈海
009_0401_a_20L貧婆奉伽梨者一曰鷲栖之通度脩伽
009_0401_a_21L藍安舍利者二曰龍皇與金山韙㦲
009_0401_a_22L鵬搏北溟慨盃覆坳堂之上鶴返東島
009_0401_a_23L喜珠還合浦之中王公陳請於順風
009_0401_a_24L庶慶期於開霧鸞旗鳳駕有同1) [1] 皇帝

009_0401_b_01L천태天台에게 계를 받은 것과 같고, 용절龍節과 호부虎符는 진나라의 대장이 길우吉友에게 도를 물은 것과 다르지 않았다. 승려의 발자취가 많으니 소매를 펼침에 바람이 불지 않았고, 시주의 발걸음이 성하여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었다. 이에 나라의 성문에 이르기까지 아낌이 없어 종과 북 소리가 서로 들리니 이른바 상제가 흠향하고 백성이 화합하며 화락한 군자는 복을 구함에 사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덕왕 19년(760), 당나라 상원上元 2년에 진표眞表 율사가 있었는데 어릴 때 이 금찰산金刹山에 들어와 출가를 맹세하고 자라서 저 선계산仙溪山에 들어가 심계心戒를 이루기를 원하였다. 지장 대성과 미륵 자존에게 간절히 기도하여 과연 본마음을 이루고 본사로 돌아왔다. 중창을 발심하고 여러 단문檀門에 모연하니 훌륭한 기술자가 자식처럼 와서 각각 그 능력을 다하였다. 청정한 재물이 구름처럼 쌓이고 모든 일을 갖추니, 일꾼들이 쉬지 않고 일하여 불자의 안거가 이루어졌다.
크도다! 아전鵝殿이 높이 솟아 바람과 달이 지나가고, 안당鴈堂이 크고 넓어 구름과 안개를 스치니, 도솔천궁이 인간 세상에 내려온 듯하고 난타사蘭陀寺가 해상으로 옮겨 온 것 같았다. 교의敎義가 구름같이 일어나고 율법이 바람처럼 펼쳐졌다. 원효元曉는 매이지 않는지라 해당海堂을 지나 곧바로 떠났고, 의상義湘은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장전藏殿에 와 오래 머물렀으며, 도선道詵은 산천의 비보처裨補處를 낱낱이 살폈고, 혜덕慧德은 주지로서 거느리고 보살폈다. 이때 대소의 건물이 그 수가 천 칸이었고 산수도를 살피면 500곳의 으뜸이었다. 절의 장엄이 엄숙하여 신검神劒이 부왕을 금궁金宮에 유폐하였으나 부처님이 자비를 베푸시어 견훤은 금부錦府에서 자식의 역모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온 나라가 다투어 삼단三檀의 보시에 달려가고 사속四俗이 이전二田의 보수를 간구하였다. 이로부터 우로雨露가 고르고 풍뢰風雷가 순하였다. 해마다 풍년이 들어 경작하는 코끼리를 볼 수 있었고 사시가 조화로우니 누가 헐떡이는 소를 물을 것인가. 드디어 봉해蓬海의 한 모퉁이가 나란히 인수仁壽의 경지에 오르고 상진桑津(우리나라)의 경내가 모두 화서華胥의 바람에 목욕하였다.

009_0401_b_01L禀戒於天台龍節虎符不異晋大將問
009_0401_b_02L道於吉友玄趾蟄蟄張袂不風檀跡
009_0401_b_03L彭彭植錐無地乃至國城無惜能令
009_0401_b_04L鐘皷相聞豈所謂上帝時歆下民祗恊
009_0401_b_05L愷悌君子求福不回逮景德王十九年
009_0401_b_06L是唐上元初二載有曰律師眞表
009_0401_b_07L齡投此金刹山矢薙頂毫壯歲入彼仙
009_0401_b_08L溪山願遂心戒懇禱於地藏大聖
009_0401_b_09L祈於彌勒慈尊果成雅懷還歸本寺
009_0401_b_10L發心重構募緣諸檀良工子來各精
009_0401_b_11L其能淨財雲委咸蕆衆務役夫之走
009_0401_b_12L武不轉釋子之安居已成大㦲鵝殿
009_0401_b_13L呑吐風月鴈堂坱圠蕩磨雲烟
009_0401_b_14L覩史宮恐落人間蘭陀寺疑移海上
009_0401_b_15L龍雲躍律虎風勝元曉不覊過海堂
009_0401_b_16L而即去義相傳敎來藏殿而久留
009_0401_b_17L詵裨補而曆銓慧德住持而統察于是
009_0401_b_18L計大小屋其數也一千間按山水圖
009_0401_b_19L居一於五百所寺莊嚴密神劒幽父王
009_0401_b_20L於金宮佛賜神慈甄萱免子逆於錦府
009_0401_b_21L一邦爭趨三檀之施四俗咸懇二田之
009_0401_b_22L由是以來雨露同均風雷順軌
009_0401_b_23L稔而可見耕象時和而誰問喘牛使我
009_0401_b_24L蓬海一隅齊登仁壽之域桑津四境

009_0401_c_01L
선조 31년(1598), 황명 26년에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웠다. 왜구가 날뛰고 병화가 불어닥쳐 옥찰이 참혹하게 불타고, 살기가 해를 끼쳐 금계金界가 폐허가 되었다. 다행히 황제가 특별히 돌보고 왕의 덕이 넘쳐, 명나라 군대가 용호처럼 날래게 달리니 간악한 적장이 견양犬羊처럼 두려워하였다. 드디어 팔도가 다시 청명해지고 변방의 봉화가 그쳤다. 이에 산승 수문守文, 천택天澤 등이 태평시대에 눈을 씻고 법계에 팔을 떨쳐, 사방 먼 곳에서 모연하고 십문十門의 여러 시주에게 구하였다. 안개 낀 마을과 비 내리는 성곽에서 여러 번 스님의 무릎을 굽혔고, 산의 남쪽과 시내 북쪽으로 항상 수중의 지팡이를 재촉하였다. 크게는 소와 말을 사양하지 않았고 작게는 두승斗升의 곡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옛 제도를 따라 주춧돌을 번거롭게 옮기지 아니하고, 새 설계를 그만두어 신물神物의 거처를 수고롭게 바꾸지 않았다. 고금을 비교해 보면 규모는 5분지 2, 3은 줄었지만 전후를 증명해 보니 화려함은 열에 여덟아홉은 보존되었다.
살펴보니 시내의 전각은 햇빛을 받아 놀란 학이 날아오르는 듯하고, 석문石門은 구름 위로 솟아 무지개가 누워 있는 것 같다. 안팎의 행랑이 반듯하고 좌우의 건물이 나래를 폈다. 7칸의 법당은 빛나 아름다운 솜씨를 다하고, 삼층의 보전이 웅장함과 화려함을 다하였다. 석감石龕의 신령께 다투어 예배하고 송대松臺의 모습을 다투어 구경하였다. 영상전影像殿은 법도에 맞게 경영하고 응진당應眞堂을 마땅하게 지었다. 대장전大藏殿과 명부전冥府殿이 모두 빼어남을 자랑하며 들쭉날쭉 서 있고, 천왕문天王門과 석범문釋梵門이 화려함을 다투며 높이 솟았다. 원근의 암자와 전각이 골짜기에 배열되고 고금의 탑과 비석이 산을 지탱하고 있다. 아름답게 솟아 상쾌하고 기이하니 마치 죽림정사가 백로지 곁에 나타난 것 같고, 멀리서 바라보고 가까이서 살펴보니

009_0401_c_01L咸沐華胥之風粤宣祖三十一年屬皇
009_0401_c_02L明二十六歲邦運杌隉倭寇陸梁
009_0401_c_03L熢扇蕢慘遭玉刹之煨燼殺氣流毒
009_0401_c_04L忍看金界之丘墟所賴帝眷靡常王德
009_0401_c_05L有裕皇師之輕銳龍奔虎馳賊帥之
009_0401_c_06L奸雄羊慄犬讋遂使塞塵淸於八路
009_0401_c_07L邊燧熄於三垂於是山之僧守文天澤
009_0401_c_08L拭目昌辰奮臂法界募諸緣於四
009_0401_c_09L僦群檀於十門烟村雨郭幾屈物
009_0401_c_10L外之雙膝山南水北永催手中之一笻
009_0401_c_11L大則角鬣不辞小則斗升無讓遵循古
009_0401_c_12L無煩柱礎之移基屏去新䂓不勞神
009_0401_c_13L物之改窟將今比古宏䂓雖五去二三
009_0401_c_14L援前證後奢華或十存八九觀夫溪閣
009_0401_c_15L倚日訝驚鶴之欲飛石門凌雲怳偃
009_0401_c_16L虹之不起表裏之廊廡繩直左右之房
009_0401_c_17L宇翬飛七間法堂輪奐罄巧二層寶
009_0401_c_18L殿壯麗窮精石龕靈神人頂謁之恐
009_0401_c_19L松臺景狀世目覩之爭先影像殿
009_0401_c_20L合度經營應眞堂隨宜締構大藏殿冥
009_0401_c_21L府殿咸誇勝而參差天王門釋梵門
009_0401_c_22L爭鬪麗而縹緲遠近之庵殿排壑古今
009_0401_c_23L之塔碑撑岑峭而麗爽而奇怳若竹
009_0401_c_24L林舍幻出白鷺池側遠而望迫而察
009_0401_c_25L「惰」與「隋」通{編}

009_0402_a_01L급고독원給孤獨園이 사위성 안에 건설된 듯하였다.
사찰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경치도 다 아름답다. 비단결 같은 여울물이 발을 펼치듯이 여덟 골짜기에 흐르고, 옥빛의 봉우리가 은하수에 닿을 듯 모악산을 둘렀다. 천왜泉娃(샘의 요정)는 지기地祇(地神)의 서적을 바치고 임갑林甲(숲의 요정)은 하늘이 감추어 둔 지도를 받들었다. 벼랑에 비가 지나가니 비단 같은 노을빛과 구름이 어우러지고, 바람이 깊은 골짜기에서 불어오자 소나무와 시냇물 소리가 함께 화음을 이루어, 영취산에 오른 듯하고 앵림에 들어간 것 같다. 이미 사찰의 빼어남이 있으니 향화香火의 귀의가 없겠는가. 전 시대에 재를 올린 것이 해마다 번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복을 비는 것도 날로 성대하다. 도주道主의 유념도 얕지 않고 주목州牧의 사랑도 매우 깊으니, 태전 스님의 기원祇園에 자사刺史 한유의 옥절玉節이 항상 임하고, 혜원 스님의 정사精舍엔 현령 도연명의 동장銅章이 자주 머물렀다. 승려와 속인의 유람이 빈번하고 남녀의 보시하는 마음이 샘처럼 솟아, 아름다운 여인들이 범찰을 희구하며 비녀를 바치고, 재야의 선비와 성읍의 호걸이 법석을 바라보며 재물을 바쳤다. 납승은 머물러 눈을 씻고 허공을 바라보며, 문인들은 수레를 멈추고 흥에 겨워 기뻐하였다.
아아 이 절은 삼국시대에 창건하고 만력 연간에 중흥하여 훼손될 때마다 다시 이루었으니 때때로 황폐함을 어찌 근심할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영원하여 어느 시대이건 새롭게 하지 아니함이 없었다. 마땅히 산수와 나란히 높고 유장할 것이요 천지와 짝하여 장구할 것이다. 나는 타고난 재주도 모자라고 세 치의 장점도 없다. 바다를 헤아리고 하늘을 엿봄에 말이 도협倒峽271)에 부끄럽고, 붓을 놀림에 장애가 많아 글은 묵지墨池272)에 부끄럽다. 감히 오능五能의 잔재주를 본떠 한편의 단인短引을 쓰고 이어 송頌을 짓는다.

知名一國金山寺   온 나라에 이름난 금산사는
創自羅麗煥蔚藍   신라 고려 때 개창되어 성대하게 빛났다
天費繁華開海上   하늘은 번화함 과시하며 바닷가에 세우고
地誇形勝闢湖南   땅은 형승을 자랑하며 호남에 열었다
嵬然寶塔看如聳   우뚝 선 보탑은 용솟음친 듯하고
莞爾慈容對若談   부처님은 미소 지으며 설법 하시는 듯
把筆東風傳勝事   동풍에 붓을 잡고 훌륭한 자취 전하니
祗林春色滿毫耽   기림의 봄빛이 붓 끝에 가득하다

009_0402_a_01L渾疑給孤園化設舍圍城中奚刹宇之
009_0402_a_02L獨佳又觸境之兼美錦湍蘭瀆爭流
009_0402_a_03L八洞之捲簾玉嶂瓊岑重圍五岷之拂
009_0402_a_04L泉娃獻地祗之籍林甲奉天藏之圖
009_0402_a_05L雨過斷崖霞綺與雲錦齊拂風生絕壑
009_0402_a_06L松瑟共溪琴交鳴如登鷲嶺之中
009_0402_a_07L入鶯林之上旣有刹境之勝麗可無香
009_0402_a_08L火之依歸不惟前代之設齋年繁亦乃
009_0402_a_09L今朝之祝釐日殷道主之留念不淺
009_0402_a_10L牧之遺愛偏深犬顚祗園每臨韓刺史
009_0402_a_11L之玉節慧遠精舍幾駐陶縣令之銅章
009_0402_a_12L緇素之遊躅螽繁男女之施心泉湧
009_0402_a_13L姝趙美希梵刹而投釵野彥城豪
009_0402_a_14L法席而解犢衲僧留鉢洗眼鑑空騷客
009_0402_a_15L停驂乘興雀躍寺也創起於三國之
009_0402_a_16L重興於萬曆之時隨毁隨成何患
009_0402_a_17L有時或廢恒今恒古從想無代不新
009_0402_a_18L齊於山高水長可配於天長地久若余
009_0402_a_19L才蔑八字之解口輸三尺之長酌海窺
009_0402_a_20L語愧倒峽掣肘揮翰墨慚變池
009_0402_a_21L效五能瑣材聊書一篇短引繼爲公曰

009_0402_a_22L知名一國金山寺創自羅麗煥蔚藍

009_0402_a_23L天費繁華開海上地誇形勝闢湖南

009_0402_a_24L嵬然寶塔看如聳莞爾慈容對若談

009_0402_a_25L把筆東風傳勝事祗林春色滿毫耽
  1. 195)견백堅白 :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공손룡公孫龍이 주장했는데 하나의 희고 단단한 돌에서 단단한 돌의 성질과 돌의 흰 빛깔을 독립할 수 있다는 궤변.
  2. 196)훈지壎篪 : 형제나 친구 사이의 화목과 조화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 『시경詩經』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에 “맏형은 훈을 불고 둘째 형은 지를 분다.(伯氏吹壎。 仲氏吹篪。)”고 했다.
  3. 197)벽옹辟雍 : 주周나라 천자의 학교를 말한다.
  4. 198)청묘淸廟 : 주나라의 종묘.
  5. 199)팔일무와 육일무 : 일佾이란 종묘에서 춤을 출 때의 열을 말하는데, 팔일무는 여덟 명씩 여덟 줄이고, 육일무는 여섯 명씩 여섯 줄이다. 팔일무는 천자의 춤곡이고, 육일무는 제후의 춤곡이다.
  6. 200)육시六時 : 불가佛家에서 일주야를 여섯으로 나눈 시각으로 그 명칭은 신조晨朝ㆍ일중日中ㆍ일몰日沒ㆍ초야初夜ㆍ중야中夜ㆍ후야後夜로, 절에서는 종을 울려서 이 여섯 시각을 알렸다.
  7. 201)백팔정 십육추 百八井十六搥 : 미상.
  8. 202)마위麻葦 : 미상.
  9. 203)출신出身 : 과거에 급제하고 아직 출사하지 못한 사람.
  10. 204)중장통仲長統 : 후한시대의 학자이다.
  11. 205)유종원柳宗元 : 자 자후子厚. 장안長安 출생. 유하동柳河東ㆍ유유주柳柳州라고도 부른다. 관직에 있을 때 한유韓愈ㆍ유우석劉禹錫 등과 친교를 맺었다. 왕숙문王叔文의 신정新政에 참획하였으나 실패하여 변경으로 좌천되었다. 이러한 좌절과 13년간에 걸친 변경에서의 생활이 그의 사상과 문학을 더욱 심화시켰다. 고문古文의 대가로서 한유와 병칭되었다.
  12. 206)오고 감에 무심한 것 :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구름은 무심하게 산에서 피고, 새는 날다가 지쳐 돌아온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고 하였다.
  13. 207)공자孔子의 정훈庭訓 : 어느 때 공자가 뜰에 서 있자 아들 백어伯魚가 지나갔다. 공자가 시와 예를 배웠느냐고 묻자 백어가 배우지 않았다고 대답했는데, 시를 배우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한 인격체로 바로 설 수 없다고 하였다.
  14. 208)베틀을 끊어 훈계하시니 : 맹자가 학문을 게을리하자 어머니가 베틀의 비단을 끊으면서 “네가 학문을 게을리하는 것은 내가 베틀의 비단을 끊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15. 209)삼생三牲 : 희생으로 쓰는 소, 양, 돼지.
  16. 210)곽자郭子 : 동진시대의 풍수지리학자인 곽박郭璞이다.
  17. 211)양구산楊龜山 : 양시楊時(1053~1135). 중국 북송北宋 말의 유학자. 정호ㆍ정이 이정자二程子의 도학을 전하여 낙학洛學(이정자의 학파)의 대종大宗이 되었다. 그 학파에서는 주자朱子, 장식, 여조겸呂祖謙 등 뛰어난 학자가 많이 배출되었다.
  18. 212)세 마디 : 『서경』에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미약하니, 정결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하였다.
  19. 213)이병산李屛山 : 금나라의 학자. 이순보李純甫, 자는 지순之純.
  20. 214)장무진張無盡 : 장상영張商英, 북송北宋 휘종徽宗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지냈다. 자字가 천각天覺이고, 호가 무진거사無盡居士이다. 『송사宋史』 권351 「장상영 열전張商英列傳」.
  21. 215)용문에 올라~정하고자 하였습니다 : 황하의 용문에 삼단 폭포가 있는데 잉어가 이곳을 뛰어오르면 용이 되어 승천한다고 한다. 후한시대의 높은 선비 이응李應은 훌륭한 선비가 아니면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응의 접견을 받게 되면 일약 명망이 높아져서 용문에 올랐다고 하였다.
  22. 216)원거爰居 : 바닷새의 이름이다. 춘추시대에 태풍을 피하여 노나라 성문에 앉았는데 장문중이 신조神鳥인 줄 알고 백성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자 죽었다고 한다.
  23. 217)문표文豹 : 종남산의 표범이 안개 속에 숨어 자기의 문채를 가꾼다고 한다.
  24. 218)구성九成 :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가 9악장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25. 219)주운朱雲과 유향劉向 : 전한 성제 때의 장우가 권력을 오로지하자 주운이 황제에게 참수하기를 청하였다. 광과 유는 공광과 유향인 듯한데 자세하지 않다. 장우와 공광은 자주 병칭된다.
  26. 220)항우項羽와 용저龍且의~것과 같습니다 : 용저는 항우의 부하 장수인데 초한전에서 한고조 유방의 장수인 한신과 팽월의 계략 때문에 크게 패했다.
  27. 221)기주冀州 : 명마의 산지.
  28. 222)종의鍾儀 : 『좌전左傳』 성공成公 9년 조에 실려 있다. 진후晉侯가 군부軍府를 순시하다가 종의鍾儀를 보고서 유사有司에게 “남관南冠을 쓴 채 묶여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유사가 “정인鄭人이 잡아 바친 초수楚囚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진후가 관직을 묻자 음악을 맡았다고 하였다. 연주를 시키자 남음南音(초나라 음악)을 연주하였다.
  29. 223)숙향叔向 :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이다. 노나라에서 어려움을 당했다는 사적은 자세하지 않다.
  30. 224)범좌范座 : 범수范睢. 자는 숙叔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으로 고향에서 불우하게 살다가 진秦나라에 들어와 재상이 된 인물이다. 범수는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을 도와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을 세웠고, 양후穰侯의 권한을 빼앗았다.
  31. 225)예관兒寬 :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대부이다.
  32. 226)문옹文翁 : 전한 경제景帝 때 사람으로,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있으면서 크게 교화를 일으켰는데, 이 영향을 받아 무제武帝 때 군국郡國에 학교를 세웠다.
  33. 227)옷을 주신 : 당나라 한유가 조주潮州로 좌천되었을 때 태전 스님과 교유하였다. 훗날 이임할 때 옷을 남겨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34. 228)종요鍾繇 :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정치가, 서가書家(151~230). 위나라 건국 후 조조 이후로 3대를 섬겨 중용되었다. 팔분八分ㆍ해서楷書ㆍ행서行書에 뛰어난 당대의 명필이었다.
  35. 229)자주 찾아 주신 것에 : 원문 “小往而大來”는 『주역』에 나오는 말로 음기가 가고 양기가 도래한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전후 문맥으로 이렇게 풀었다.
  36. 230)명추鳴騶 : 임금의 사신을 가리키는 말.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다는 뜻.
  37. 231)두 마리~억제하기 어려워 : 두 마리 쥐는 일월을 뜻하고, 네 마리 뱀은 사시를 가리키는데, 세월이 사람을 핍박하여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38. 232)원로鵷鷺 : 신하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말한다. 조정의 문무 관원을 가리킨다.
  39. 233)여론은 왕좌王佐의~받드는 듯합니다 : 공자의 제자 안연이 왕좌의 재주와 덕이 있다고 송유宋儒들이 허여하였고, 맹자는 제나라에서 빈사의 지위로 받들었다.
  40. 234)장량張良 : 한나라 고조의 군사 참모로서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41. 235)관중管仲 :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환공을 보좌하여 천하의 맹주가 되게 하였다. 공자는 『논어』에서 그의 공적은 인정하면서도 그릇이 작다고 비판하였다.
  42. 236)주운朱雲 : 한나라의 주운이 황제에게 상방尙方의 참마검斬馬劒을 요청하면서 간신을 참수하겠다고 하였다.
  43. 237)구정九鼎 : 하夏나라의 시조 우禹임금이 홍수를 다스리고 나서 구정을 만들어 공적을 나타냈다.
  44. 238)백붕百朋 : 붕朋은 고대 화폐의 단위로 1붕은 5패五貝이다. 백붕은 많은 재물을 뜻한다.
  45. 239)사서社鼠 : 사당에 기탁하고 사는 쥐라는 뜻으로 무위도식함을 가리킨다.
  46. 240)〈육아蓼莪〉 : 효자가 부모를 봉양하지 못함을 슬퍼하는 시이다.
  47. 241)〈체두杕杜〉 : 골육이 흩어지고 형제도 없어 홀로 사는 신세를 슬퍼하는 시이다. 『시경』.
  48. 242)청아菁莪 : 『시경』의 〈청청자아菁菁者莪〉라는 시인데, 인재를 즐겨 기르는 것을 노래했다.
  49. 243)기夔와 용龍 : 모두 요순시대의 명신들이다.
  50. 244)토포악발吐哺握髮 : 주공周公이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만나느라 급급할 때 “머리를 한 번 감는 동안에 세 번이나 젖은 머리를 움켜쥐고 나갔고 밥 한 끼를 먹는 동안에 입 안의 음식을 세 번이나 뱉어 냈다.(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51. 245)육기六氣 : 음陰, 양陽, 풍風, 우雨, 회晦, 명明.
  52. 246)팔개八凱 : 중국 고대 고양씨高陽氏의 여덟 아들로 훌륭한 현인을 뜻한다.
  53. 247)사흉四兇 : 중국 고대의 네 명의 악인으로, 순임금에게 처벌받은 곤, 공공, 환도, 삼묘를 가리킨다.
  54. 248)조승趙勝 :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 재상으로서 현인과 재사를 우대하여 문하에 식객이 삼천이었다고 한다.
  55. 249)인걸仁傑 : 인걸은 당나라 측천무후 때의 재상인 적인걸狄仁傑인 듯하다.
  56. 250)주머니 속에 처하기를 청하여 : 전국시대에 평원군平原君은 한단이 진나라에 포위를 당하자 초나라의 구원을 요청하기 위하여 식객들 중에 호걸들을 모집하였다. 모수毛遂가 자신을 추천하였는데 평원군이 “훌륭한 선비는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곧 드러난다.”고 말하자 모수가 “진작에 나를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게 했다면, 송곳 끝이 삐져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송곳 자루 전체가 튀어나왔을 것이다.(使遂早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라고 하면서 자신의 재주를 과시하였다.
  57. 251)백설白雪과 양춘陽春 : 백설과 양춘은 초楚의 고상한 사곡詞曲 이름. 송옥宋玉이 초왕에게 “한 사람이 영중郢中에서 양춘과 백설 같은 고상한 곡조를 부르니 화답한 자가 겨우 수십 명뿐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58. 252)무우왕無憂王 :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 왕인 아육왕을 말한다. 그의 치세 중에는 불교를 비롯해 갠지스 강 유역에서 발달한 고도의 문화가 다른 지방에 급속히 퍼져 문화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또한 불교도들은 그를 이상적 군주로 추앙하였고, 많은 설화를 탄생시킨 주인공이 되었다.
  59. 253)낭풍閬風 : 신선이 산다는 곤륜산崑崙山의 지역.
  60. 254)원종元宗 대왕 : 선조宣祖의 다섯째 아들로, 인조仁祖의 부친인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을 가리킨다.
  61. 255)추로鄒魯 : 공자의 나라 노魯와 맹자의 나라 추鄒를 병칭한 것.
  62. 256)지검芝檢 : 어인御印, 즉 옥새玉璽, 어명御命의 뜻으로 쓰인다. 지니芝泥, 이검泥檢 등의 이칭이 있다.
  63. 257)방변方辯 : 뛰어난 화가인 듯하다.
  64. 258)장승요張僧繇 : 중국 남조 양나라의 화가. 양의 무제는 당시 융성해진 불교를 장려하여 절을 짓고 그 탑묘塔廟를 장식하였는데, 그 장식화를 그린 이가 장승요였다. 그는 불화, 도석 인물道釋人物을 장대한 규모로 그렸다. 인도와 서역에서 들어온 음영법을 받아들였으며 요철화凹凸花라는 색면色面에 의한 입체 표현도 하였다. 산수화에서도 윤곽선을 쓰지 않는 몰골적沒骨的인 준법皴法을 채용하였다고 한다.
  65. 259)장춘원長春苑 : 장춘원은 후주 무제 때에 건축한 것인데, 원림에 꽃과 나무가 다 갖추어져 있어 항상 봄날 같았다고 한다.
  66. 260)불야성不夜城 : 『한서』 「지리지」에 불야현이 있는데 밤에도 해가 떠 있어 밝았다고 한다.
  67. 261)삼거三車 : 양거羊車, 녹거鹿車, 우거牛車로서, 성문ㆍ연각ㆍ보살이 받는 가르침을 비유한다.
  68. 262)공동崆峒 : 옛날 황제黃帝가 공동산崆峒山에서 신선인 광성자廣成子를 만나 도를 닦았다.
  69. 263)성풍成風의 묘한 솜씨 : 장석匠石이 도끼를 휘둘러서 사람의 코끝에 살짝 묻힌 흙만 교묘하게 떼어 내고 사람은 다치지 않게 하였는데, 흙을 묻힌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뒤에 송원군宋元君이 그 말을 듣고는 장석을 불러 솜씨를 보여 주기를 청하자, 장석이 “예전에는 잘했지만 지금은 나의 짝이 오래 전에 죽어서 더 이상 솜씨를 발휘할 수가 없다.(臣則嘗能斲之。 雖然。 臣之質死久矣。)”고 하였다. 운근성풍運斤成風의 약자로 『장자』 「서무귀徐无鬼」에 나온다.
  70. 264)이용면李龍眠 : 송대宋代의 저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의 별호이다.
  71. 265)고호두顧虎頭: 유명한 화가인 고개지顧愷之. 동진東晉 무석無錫 사람으로 일찍이 호두장군虎頭將軍을 지내서 사람들이 고호두顧虎頭 또는 호두공虎頭公이라 불렀는데 단청丹靑을 잘하였다.
  72. 266)오도사吳道士 : 당대唐代의 유명한 화가인 오도현吳道玄으로, 산수山水와 불상佛像에 독보적인 경지를 보여 주었는데, 도자는 그의 자字이다.
  73. 267)불홍拂虹을 감응하자 : 『춘추좌전』에 의하면 노나라 장공 7년(687년) 4월 신묘일에 저녁이 대낮같이 밝아서 항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가 주나라 장왕 때의 일이다. 불홍은 자세하지 않다.
  74. 268)패일佩日을 징험하자 : 모자牟子가 “후한 명제明帝가 꿈에서 신인神人을 만났는데, 몸에 일광日光이 있어 전각 앞으로 날아왔다. 군신에게 묻자 부의傅毅가 천축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아마도 그 신이 나타난 듯하다.”라고 하였다.
  75. 269)소도蘇塗 : 천신天神에게 제사 지내던 일정한 지역인데 국도國都와 방읍方邑에 각각 한 사람씩 두고 천신에게 제사 지내게 하고 그를 천군天君이라 하였으며, 큰 나무를 세워 방울을 달아 놓고 두드리면서 제사 지내던 곳이다. 여기서는 신성한 곳이라는 뜻.
  76. 270)구슬이 돌아온 것 : 후한後漢 때 합포에서 구슬이 생산되었다. 탐관오리가 줄줄이 수령으로 오면서 잠시 구슬이 나오지 않았는데, 맹상孟嘗이 태수로 부임하여 청렴한 정사를 행하자, 다시 구슬이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고사가 전해 온다. 『후한서後漢書』 「맹상전孟嘗傳」. 여기서는 불법의 진리가 다시 돌아왔다는 뜻.
  77. 271)도협倒峽 : 두보杜甫의 〈취가행醉歌行〉에 “문장은 삼협의 물을 기울인 듯하고, 필력은 천군을 쓸어 낼 기세로다.(詞源倒流三峽水。 筆陣獨掃千人軍。)”라고 하였다.
  78. 272)묵지墨池 : 왕희지王羲之가 글씨를 배울 때에 붓을 연못에 씻어 물이 검게 변했다고 한다.
  1. 1)「文一」編者補入。
  2. 1)「奚」疑「溪」{編}。
  3. 1)「惰」與「隋」通{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