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송계대선사문집(松桂大禪師文集) / 松桂和上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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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 화상 행장松桂和上行狀
화상의 법휘法諱는 나식懶湜이고, 자는 취화醉花이며, 호는 송계松桂 또는 회암檜巖이다. 속성은 이씨李氏이고, 이름은 수호壽浩이다. 우리 태종대왕太宗大王 둘째 아들 효령대군孝寧大君이 분파의 시조가 되고, 그 후 의성군誼成君과 영신군永新君·함원군咸原君 등 사군四君을 지나 왕족에서 제외되어 출궁하였으니, 화상 대에 이르기까지 6대이다. 5대조의 휘는 제안齊顏, 고조의 휘는 남柟, 증조부의 휘는 상발尙發, 조부의 휘는 시웅時雄, 부친의 휘는 서주瑞柱로 헌릉봉사獻陵奉事였는데, 서울(京師)에서 화산花山으로 옮겨 왔다. 모친은 박씨로 관향은 밀양密陽이며, 찰방察訪 훤暄의 딸이다. 자식으로는 다섯이 있는데, 화상은 그중 다섯째로서 숙종(肅廟) 11년 갑자년에 태어났다.
천품이 호매하고 재주와 그릇이 비범하였다. 그때 천전川前 김 교리金校理 칠탄七灘 선생이 도의의 가르침을 펴자 배우는 이들이 문하에 가득하였다. 화상이 그 문하에서 수업받기를 청하자 선생이 격려하고 아끼는 것이 매우 도타웠고, 화상 또한 부지런히 힘쓰고 게으름 부리지 않으니, 동문들이 그 식취識趣에 감복하였고, 또한 글 짓는 재능(文藻)이 일찍 이루어져 모두 상서로운 나라의 보배(瑞國之寶)가 되어 나라에서 크게 의지하리라 기대하였다. 나이 열여섯에 기산歧山의 절집에서 독서를 할 때 스님들이 청정한 법을 행하는 것을 보고 그로 인해 숙세의 인연을 깨달아 마침내 가선공嘉善公의 법단法壇에서 낙발을 하였다. 이후 화상은 청파당淸波堂 보전 선사諩詮禪師에게서 구족계(毘尼)를 받았다.

009_0589_c_08L松桂和上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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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上法諱懶湜字醉花號松桂
009_0589_c_10L曰檜巖俗姓李氏名壽浩我太宗
009_0589_c_11L大王第二子孝寧大君寔爲分派祖
009_0589_c_12L後歷誼成永新咸原四君而族除出宮
009_0589_c_13L於和上間六代也五代祖諱齊顏
009_0589_c_14L祖諱柟曾祖諱尙發祖諱時雄
009_0589_c_15L諱瑞柱獻陵奉事自京師移花山
009_0589_c_16L朴氏貫密陽察訪諱暄女子男凡
009_0589_c_17L和上於第爲五生於肅廟十一年
009_0589_c_18L甲子天禀豪邁才器殊凡時川前
009_0589_c_19L金校理七灘先生倡敎道義學者盈
009_0589_c_20L和上請業于門先生奬愛甚厚
009_0589_c_21L上勤勵不怠同門服其識趣且文藻
009_0589_c_22L早成咸期瑞國之寶而倚重焉
009_0589_c_23L十六讀書歧山僧舍見僧行淸淨法
009_0589_c_24L因感悟宿因遂剃髮于嘉善公法壇
009_0589_c_25L上受毘尼于淸波堂諩詮禪師金先

009_0590_a_01L김 선생이 이를 듣고는 탄식하여 말하기를, “애석하다. 좋은 자질을 가진 그릇인데 어찌 부도浮屠에게 빼앗길 수 있겠는가?” 하면서 불러오게 하여 꾸짖고 매를 때렸다. 화상은 더욱 스스로 분발하여 힘써 곧바로 금강산金剛山 징신澄神의 승지勝地로 들어가 활구活句 참선을 3년간 한 후에 비로소 자가自家의 본분초료本分草料1)를 깨달았으니, 이로부터 가슴속에 품은 생각이 더욱 트이게 되어 남쪽 길2)을 열었다. 경진년에 전주 송광사松廣寺에서 침굉 장실枕肱丈室을 참학하여 4년을 보냈고, 갑신년에는 춘파 장실春坡丈室을 참학하여 몇 해를 보냈고, 후에 백암 장실栢庵丈室에게 6년을 참학하였고, 대암 장실大庵丈室에게는 5년을 참학하였다. 을사년에는 환성 노사喚醒老師에게 오순五旬을 참학하였다. 낙암 장실落巖丈室은 처음에 배운 스승인데, 전후로 합해 8년을 참학하였다. 이들은 모두 『시사록侍師錄』에 실려 있는데, 다만 공문空門 여기저기에 기록이 흩어져 있어 그 전말을 상세히 다 기록하지는 못한다. 일찍이 지은 시에서 말하였다.

忘報師恩限百歲  스승 은혜 보답하길 망각하고 백 세를 살려 하고
永離父愛歎生平  부모 사랑 영원히 이별 후 평생토록 탄식하네.
覺心未展身先變  깨달은 마음 펼치기 전 몸이 먼저 변하나니
羞執經論訓學星  부끄러워라, 경론 가지고 학인들 가르침이.

부모와 스승에 보답하고자 하는 정성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화상은 환성喚醒의 적손嫡孫인 대암 화상大庵和上에게서 의발을 전해 받았으니, 옛 연원을 살펴보면 서산西山으로부터는 7세요, 태고太古로부터는 13세요, 달마達磨로부터는 42세요, 세존世尊으로부터는 70세이니, 곧 남종南宗 정맥正脈이 흘러 내려온 것이다. 화상은 처음에 계림鷄林의 백련사白蓮寺에서 개당開堂하였고, 이후 축서산鷲棲山의 통도사通度寺, 황학산黃鶴山의 용담사龍潭寺, 태백산太白山의 부석사浮石寺와 고운사孤雲寺·불국사佛國寺·오대五臺·청량淸凉,3) 주왕산의 대전사大典寺, 기산歧山의 봉황사鳳凰寺 등이 모두 화상이 오래 주석하며 대중을 교화한 곳이다. 청구靑丘의 승지가 일을 다스리고 지휘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화상의 성품과 도량은 진실하며 과묵하고, 검박하고 소탈하여 구속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시속과 다투지 않았으니,

009_0590_a_01L生聞而嘆曰可惜好箇資器其可
009_0590_a_02L失之浮屠哉因召致責撻之和上愈
009_0590_a_03L自奮厲直入金剛澄神勝地叅詳活
009_0590_a_04L句三年而后始得自家本分草料
009_0590_a_05L此襟懷益豁南路轉開歲庚辰
009_0590_a_06L全州松廣寺叅枕肱丈室限四稔
009_0590_a_07L申叅春坡丈室限數稔後於栢庵丈
009_0590_a_08L叅六祀於大庵丈室限五祀
009_0590_a_09L巳喚醒老師限五旬落巖丈室
009_0590_a_10L初學師前後八稔云俱載侍師錄中
009_0590_a_11L而第恨空門散籍未盡詳其顚末也
009_0590_a_12L有詩曰忘報師恩限百歲永離父愛
009_0590_a_13L歎生平覺心未展身先變羞執經論
009_0590_a_14L訓學星其報答父師之誠可見于此
009_0590_a_15L得傳鉢於喚醒嫡孫大庵和上
009_0590_a_16L古淵源於西山七世於太古十三世
009_0590_a_17L於達磨四十二世於世尊七十世
009_0590_a_18L南宗正脉有自來矣始開堂於鷄林
009_0590_a_19L白蓮而彼鷲棲之通度黃鶴之龍潭
009_0590_a_20L太白之浮石孤雲佛國五臺淸凉
009_0590_a_21L周之大典歧之鳳凰皆和上之久住
009_0590_a_22L化人之塲而靑丘勝地無不爲其管
009_0590_a_23L攝領略之資也和上之性度眞默儉
009_0590_a_24L不屑拘束不竸時俗雖在倉卒

009_0590_b_01L비록 창졸간에 급할 때라도 조용하고 한가로워 아무 일 없는 때와 다름없었다. 시율詩律에 이르러서는 곧 절대 꾸미거나 갈고 다듬는 태도로 세속의 감식안에 아첨하는 일이 없었으며, 붓의 필력 또한 부드럽고 매끄럽게 획을 긋는 데 힘써서 세속의 명성 길을 구하지 않았다. 남을 가르칠 때는 더욱 평등하게 대하였으며, 자애함에 멀고 가까움이 없이 한결같이 정성스럽게 가르쳤다. 어느 날은 사형을 찾아가서 인사하는데 사형이 탁자 위의 술을 스스로 찾아서 마시라 하였는데, 화상은 잘못하여 간수干水를 몇 그릇이나 마시고는 돌아갔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야 사형은 비로소 이를 알고 곧 크게 놀라 가서 보니, 안색이 태연하였고 평소와 같이 정진하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모두 삼매의 힘(定力)4)으로 이룬 것이라 하였다. 만년에는 기산歧山에 주석하였다. 임종할 때(啓手之日5)) 문하의 제자들을 불러 “나는 이제 떠나련다.” 하고는 게송 하나6)를 즉석에서 입으로 불렀다.

乾坤無面目    건곤은 본래부터 면목 없으니
能道有形端    겉 드러난 형상이 있다 하리오.
永別浮虛體    허깨비 몸과 영별하노니
孤明渾大閒    온전한 대도만 홀로 밝도다.
 
말을 마치고는 입적하였으니, 곧 영조(英廟) 42년(1766) 을유 8월 8일로, 향년은 82세요, 법랍은 66세였다. 적통을 전한 제자가 여섯 명이요, 아사리阿闍利7)가 두 명이요, 스님에게서 계율을 받은 이가 수백여 명이다. 입적하던 날 밤에 신령스런 빛이 크게 발하여 3일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다비하던 날 저녁에는 천지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바람과 구름이 크게 회오리쳤는데, 장지에 모인 치소緇素 천여 명이 모두 “겉 드러난 형상이 있다 하리오?” 하니, 서풍이 크게 이르러 다비 불이 꺼지다가 다시 타오른 게 두 번이다. 두 조각의 정골精骨을 얻어 미타번彌陁幡으로 인도하고 바위 위에 안치시켰다. 그리고는 설월 법사雪月法師를 초대하여 기산岐山 정암淨菴에 사리를 봉안하기를 청하였다. 정근精勤한 지 7일 만에 기산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세 번 울리자 새와 짐승들이 놀라 날뛰지 않는 것이 없었다. 갑자기 화살촉 나는 소리가 서쪽에서부터 들려오면서 밝았던 등불들이 일시에 다 꺼졌다가 잠시 후에 다시 밝아졌다. 다음날 새벽에 사리함을 열어 보니,

009_0590_b_01L急遽之際從容閒暇一如無事時
009_0590_b_02L如詩律則絕無粉餙雕琢之態而以
009_0590_b_03L媚於俗眼筆勢則亦無强勉軟柔之畫
009_0590_b_04L而以要於名路敎人尤用平等慈無
009_0590_b_05L親踈一是諄諄誨也一日徃拜釋兄
009_0590_b_06L兄令自酌卓上酒和上錯飮干水數器
009_0590_b_07L而還日旣暮釋兄始覺乃大驚徃視
009_0590_b_08L神色自若精進如常人皆以爲定力
009_0590_b_09L所致也晩住岐山啓手之日呼門
009_0590_b_10L弟子曰吾將逝矣卽口點一偈曰
009_0590_b_11L坤無面目能道有形端永別浮虛體
009_0590_b_12L孤明渾大閒言訖寂卽英廟四十二
009_0590_b_13L年乙酉八月八日享年八十二法臘
009_0590_b_14L六十六得嫡傳六人闍利二人
009_0590_b_15L律儀數百餘人唱滅之夜大放靈光
009_0590_b_16L三日不絕茶毘之夕天地晦瞑
009_0590_b_17L雲大作會葬緇素千餘人皆言能道
009_0590_b_18L有形端▣ [14] 因西風大至火滅而復燃
009_0590_b_19L者再有二片精骨引彌陁幡坐於
009_0590_b_20L巖上因邀雪月法師請舍利於岐山
009_0590_b_21L淨菴精勤七日岐山三鳴於菟唬吼
009_0590_b_22L飛禽走獸無不驚騰忽有矢鏃之聲
009_0590_b_23L自西而入煌煌火燭一時盡滅
009_0590_b_24L頃復明翌日昧爽見舍利器則紙

009_0590_c_01L곧 종이로 네 겹을 쌌는데, 적연히 아무 흔적이 없었고, 물이 세 구멍을 뚫은 곳에 진주 세 개가 영롱하게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그날로 부도浮屠에 봉안하고서 석종石鍾을 위동渭洞에 세우고자 다듬기 시작하여 일을 마치자, 저절로 가루처럼 부서졌으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워했다. 다음날 무량수전無量壽殿에서부터 상서로운 기운이 곧장 고천高川의 갈석碣石에 비쳤는데, 가서 보니 곧 석종이 천연스레 완성되어 있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비로소 그 신이한 도움을 알게 되어 원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모여 힘을 다해 이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아, 화상은 왕손이시고 재주 또한 훌륭하시니, 어찌 무슨 일이든 못하셨으며, 무슨 관직이든 얻지 못하였겠는가? 스스로 어둠에 빠지는 것을 달게 여겨 유자의 옷을 벗고 승복을 입으셨고, 무루無漏의 묘과妙果를 이루셨고, 돌아가실 때 신령한 자취를 보이셨다. 또한 돌에 점안하고 구전으로 새긴 것은 곧 이 소자의 대롱 같은 좁은 안목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생각건대 소자는 비록 화상의 법전法詮을 받들지 못하였지만 은택을 입은 것은 곧 5세世에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영험한 깨우침이 나날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남은 게송 약간 편을 찾아 모으고, 사실에 근거해 그려 내어 산문에서 만에 하나라도 채택할 것을 갖추어 놓는다.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195년(1822) 임오 윤삼월 일 문손門孫 전홍展鴻은 손을 씻고 삼가 쓰다.

009_0590_c_01L封四疊寂然無痕而水穿三穴
009_0590_c_02L珠三箇玲瓏呈光卽日奉安浮屠
009_0590_c_03L磨石鍾於渭洞功旣訖自碎如粉
009_0590_c_04L方驚惶翌夜自無量壽殿瑞氣直抵
009_0590_c_05L高川碣石徃視之則石鍾天成
009_0590_c_06L風者始知其神相無遠近咸臻致力
009_0590_c_07L以竣厥功和上摺自天枝兼以
009_0590_c_08L材萃抑何做不成何官不得而迺
009_0590_c_09L甘自晦淪釋素被緇以成無漏妙果
009_0590_c_10L而寄歸靈跡且石頭點眼銘在口碑
009_0590_c_11L則不必待小子蠡管之窺測而自念小
009_0590_c_12L縱未承和上法詮以澤則亦可謂
009_0590_c_13L五世不斬矣惧靈諦之日晦搜輯遺
009_0590_c_14L偈若干條且敢據實摸葫以備山門
009_0590_c_15L採擇之萬一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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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禎紀元後一百九十五年壬午
009_0590_c_17L三月門孫展鴻盥手謹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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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본분초료本分草料: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끔 하는 데 쓰이는 먹이. 학인을 우마牛馬에, 스승의 지도를 여물(草料)에 비유한 말이다.
  2. 2)『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법을 구하기 위해 남방을 편력하면서 110성의 53선지식을 찾아다닌 것에 비추어 보면, 여러 선지식을 참방하러 떠난 대사의 행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3. 3)오대五臺·청량淸凉 : 오대는 오대산, 청량은 청량산으로 추정된다.
  4. 4)삼매의 힘(定力) : 오력五力의 하나. 선정禪定의 힘이란 뜻이니, 곧 선정으로 마음을 적정寂靜케 하는 힘을 일컫는 말이다. 오력은 신력信力·진력進力·염력念力·정력定力·혜력慧力 등이다.
  5. 5)계수지일啓手之日 : 임종이 다가옴을 말한다. 『논어』 「태백」에서 “증자가 병이 들어 제자를 불러 모아 말하기를, ‘나의 다리를 펴 보아라, 나의 손을 펴 보아라’라고 하였다.(曾子有疾。召門弟子曰。啓予足。啓予手。)”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6. 6)문집의 권1에 ≺임행게任行偈≻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7. 7)아사리阿闍利 : 본 서 제2권의 주 3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