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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29_b_02L3. 설담집 서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적멸寂滅일 뿐이다, 이미 적멸뿐이거늘, ‘적寂이다’, ‘멸滅이다’라고 하는 것은 유독 글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글이 아니면, 또한 어떤 것에 의지하여 현재의 중생을 교화하며 후세의 중생에게 전달하는 가르침의 방편을 삼겠는가. 넓디넓은 법해法海5)와 8만의 용장龍藏6)이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부득이 생겨난 것이다. 대사의 시문집 또한 적료寂寥한 것인데, 그 문도들이 시문집이 사라져 버릴 것을 참지 못하고, 이내 나에게 가져와 글을 다듬고 정리하고는 기궐씨剞劂氏7)에게 맡기려고 하였다. 이는 억지로 한마디 말을 지어 여래의 정수리를 더럽히는 것이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로다.대사와 나는 방외方外8)의 벗으로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였으니, 대사와 이야기하는 동안 어지러운 것이 고요해지고, 치열했던 번뇌가 식어 없어졌다고 말했으나,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었으니 실상의 허울이런가. 이에 인사하여 감사드리고, 언덕에서 돌아온 후에는 거의 적멸의 가르침에 가까웠다. 그 가르침의 수단으로 글을 택하셨다. 글씨를 써서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표현하셨으며, 시에서도 또한 자질구레하지 않게 옛사람들의 시풍을 본받아 한마디 말로 진경眞境과 실정實情을 표현하였으니, 그로 인해 자연히 맑아지고, 그로 인해 번뇌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경전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는 이전의 틀에 박힌 해석을 벗어나 지루하고 과장되고 허황된 풀이를 하지 않았다. 이는 내가 직접 마음으로 느낀 것으로, 이는 공문空門의 최고 수준이었으며, 더욱이 문장은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 이 문집을 보는 자가 혹 대사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대사가 열반하신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대사의 법휘法諱는 자우自優이고, 설담雪潭은 대사의 호號이다.성상(英祖) 49년인 계사년(1773) 중추中秋(음력 8월) 하한下澣9)에 송음松陰 노인(金福鉉)이 삼방산거蔘坊山居에서 쓰다. -
009_0729_b_02L雪潭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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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_0729_b_04L佛氏之敎。寂滅而已。已而寂滅矣。焉
009_0729_b_05L用文爲。曰寂曰滅。獨非文乎。則非文
009_0729_b_06L也。又焉託乎。化今傳後。以爲其敎
009_0729_b_07L㦲。法海浩浩。龍藏八萬。自其所以
009_0729_b_08L不能已也。師之詩文集者。故寂寥。而
009_0729_b_09L其徒不忍其泯滅。旣就余删㝎。將以
009_0729_b_10L付諸剞劂氏。强以一言。着穢如來頂
009_0729_b_11L上。是亦不可以已乎。師余方外友也。
009_0729_b_12L間與論心。自言紛然者靜。熾然者熄。
009_0729_b_13L猶有未釋然者。其實之賔乎。方且揖
009_0729_b_14L而謝之。自厓而返而後。庶幾乎寂滅
009_0729_b_15L之敎歟。是以其爲文也。操紙筆立就
009_0729_b_16L不屑自好也。詩亦不䂓䂓古作者一發
009_0729_b_17L之眞境實情。因其自然澹乎。其少塵
009_0729_b_18L染焉。獨其經解。超脫傳襲。不爲支
009_0729_b_19L離夸幻之說。此余所心賞。而空門之最。
009_0729_b_20L文章尤有聲焉。覽斯集者。或以爲曷
009_0729_b_21L如其名。是則師之去瓢也久矣。師法
009_0729_b_22L諱自優。雪潭其號也。
009_0729_b_23L上之四十九年歲在癸巳。中秋下澣。
009_0729_b_24L松陰老人書于蔘坊山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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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법해法海 :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 6)용장龍藏 : 대승경전大乘經典을 말한다. 대승경이 용궁에 있었다고 하는 고사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 7)기궐씨剞劂氏 : 인쇄할 목적으로 나무 판에 글자를 전문적으로 새기는 사람을 말한다.
- 8)방외方外 : 어느 종파나 학파에서 다른 쪽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유가儒家인 작자가 불가佛家인 대사를 일컫는 말이다.
- 9)하한下澣 : 한 달 가운데서 21일에서 그믐날까지의 동안을 말한다. 한 달 30일을 셋으로 나누어 초하루부터 10일까지는 상한上澣, 11일부터 20일까지는 중한中澣, 21일부터 30일까지는 하한下澣이라고 한다. 같은 말로 상순上旬·중순中旬·하순下旬이 있다.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윤찬호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