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추파집(秋波集) / 秋波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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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집秋波集
추파집秋波集 서序
물결은 경계에서 생긴다. 가벼운 바람과 딱딱한 돌과 울퉁불퉁한 땅과 이리저리 헤엄치는 물고기와 갈매기는 무엇인들 경계가 아니겠으며, 혹은 비단처럼 무늬지고 띠처럼 드리우며, 혹은 구슬처럼 튀어 오르고 바퀴처럼 구르며, 혹은 산처럼 우뚝 솟고 우레처럼 울리며, 나무를 뽑고 언덕을 무너뜨리며, 앞에서는 달려가고 뒤에서는 다그치며, 왼쪽에서는 모이고 오른쪽에서는 터지며, 멈췄나 하면 홀연 일어나고, 가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오며, 기이하여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들 경계와 함께 변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물과 내가 서로 관계하는 것이 경계이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여러 사물과 더불어 산다. 천지도 사물이고 나도 사물이니 사물을 없애려고 한들 되겠는가? 사물이 있으면 서로 관계하게 되는데 어떻게 없앨 수 있겠는가? 있으면서 있음에 집착하지 않으면 있음도 없음이다.
물(水)은 진실로 사물 가운데 정情이 없는 것이다. 여러 경계를 만날 때에 야박하거나 방해하는 정이 없어서 성내거나 원망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저 사물로 경계가 된 것도 물에 정을 두지 않아서 서로 원수 짓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만은 사물 가운데 정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니 그가 물처럼 되는 일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추파秋波 대사는 물결(波)을 호로 삼았으니 경계를 잊었다고 하겠다. 물결을 가을 물(秋水)에서 취한 것은 가을이 되면 맑고 참다운 성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대사의 이름은 산남山南에 높아서 사방의 스님(龍象)들이 많이 따랐다. 세상을 떠나자 문하의 제자들이 그 영정을 그려 회계산會稽山 심적암深寂庵에 안치하고 골짝의 옥류계玉流溪 가에 탑을 세웠다. 관식慣拭 상인은 또 대사의 시문을 수집하여 간행할 계획을 하고 멀리 나에게 서문을 구하였다. 대사가 문하 제자들에게

010_0058_a_01L[秋波集]

010_0058_a_02L1)秋波集序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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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58_a_04L
未水之波生於境也風之薄石之礙
010_0058_a_05L地勢之不平鯢鷗之盤桓孰非境也
010_0058_a_06L或紋如縠或垂如紳或挑如珠或轉
010_0058_a_07L如輪或屹如山吼如雷拔木崩岸
010_0058_a_08L奔而後迫左合而右決旣息而忽興
010_0058_a_09L若徃而復返怪奇不可測者孰非與境
010_0058_a_10L而變也物與我相際是境也我不可
010_0058_a_11L獨存於天地之間而與群物處天地亦
010_0058_a_12L物也我亦物也雖欲無物得乎物旣
010_0058_a_13L有也則其相際也烏可無乎有而無
010_0058_a_14L [1] 於有有亦無也水固物之無情者也
010_0058_a_15L與諸境遇也無情薄之礙之未甞嗔怨
010_0058_a_16L彼物之爲境者亦無情於水不相
010_0058_a_17L爲寃業而惟人也物之中最有情
010_0058_a_18L能如水不亦難乎秋波大師以波爲
010_0058_a_19L則可謂忘乎境也波而取秋水
010_0058_a_20L秋而淸眞性見也師之名高於山南
010_0058_a_21L方龍象多從之其沒門弟子圖其像
010_0058_a_22L以安於會稽深寂庵建塔於洞之玉流
010_0058_a_23L溪上慣拭上人又稡集師之詩文謀鋟
010_0058_a_24L諸梓遠求弁文於余師之於門弟子爲

010_0058_b_01L경계가 됨이 깊고, 문하 제자들이 대사에게 경계가 됨이 길구나. 나도 그 사이에 경계가 되니 기이하구나.
그의 문장은 간단하고 담박하며 우리 유가에서 받은 것들이 많아 후세에 전할 만하나, 모두 경계를 만나 무람없이 응한 자취에 속할 뿐이니 굳이 여기에서 자세하게 말하겠는가.
해는 바야흐로 가을인데, 상인은 산으로 돌아갔구나. 산속의 시내를 보니 깊고 맑은데, 환하게 마치 하얀 유리 같은 것이 대사의 심인心印이구나. 전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무량겁無量刧토록 전해지는 것이 여기에 있었구나.
대사의 이름은 홍유泓宥이니, 종실宗室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자손이며, 화순和順 현감 연관硯寛의 손자이다. 광주廣州에서 태어나 남쪽 방장산方丈山에 들어가 출가하여 40년 동안 좌선하다가 갑오년 5월 13일에 입적하였는데, 세수는 57세였다. 관식은 대사의 의발을 전해 받은 자인데 나이 25세에 입실入室하였고 호는 경암鏡巖이라고 한다.
을미년 9월 전 승지承旨 신경준申景濬1)

사민四民2)을 내가 날마다 교유하지만 농부는 저울질을 하고 공업과 상업을 하는 사람은 약삭빠르며 선비 된 자는 또한 투박하기가 심하여 다들 나의 뜻에 충분히 걸맞는 자가 없었다. 뜻에 맞는 자로 뛰어난 재주와 특별한 능력이 곤궁하게 막혀 있어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자들은 서교西敎에 흘러드는 일이 많았는데 근세 총림에 추파 대사 홍유가 있었다.대사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상사上舍 유숙지柳肅之에게서 대사가 지은 시문詩文 한 권을 얻게 되었다. 내가 대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그 글을 읽고 그 뜻을 서글프게 생각하게 되었다.
영사榮師3)라는 자가 유가에서 태어났는데도 치문緇門에 몸을 맡겼기 때문에 세도世途가 변천하여 영욕이 서로 따르는 것을 개탄하고, 부처(瞿曇氏)가 설산에서 수행했던 고사로 권면하여 그의

010_0058_b_01L境也深矣門弟子之於師爲境也長矣
010_0058_b_02L余亦爲境於其間異哉其文簡淡得之
010_0058_b_03L吾家者多因可傳於後然而皆屬遇境
010_0058_b_04L謾應之陳迹耳何必區區於是哉歲方
010_0058_b_05L秋季矣上人歸於山而觀之山中之溪
010_0058_b_06L潭盡淸瑩然若白瑠璃即師之心印也
010_0058_b_07L不待傳而傳於無量刼者其在斯歟
010_0058_b_08L師名泓宥宗室孝寧大君之裔和順縣
010_0058_b_09L監硯寛孫生於廣州南入方丈山
010_0058_b_10L髮坐禪四十年甲年五月十三日入寂
010_0058_b_11L壽五十七慣拭傳師之衣鉢者也年廿
010_0058_b_12L五入室號鏡巖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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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乙未九月前承旨申景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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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民吾日與遊處也農權而工商儇爲
010_0058_b_17L士者偸薄亦已甚俱無足尙余意者
010_0058_b_18L意者高材異能之困阨不能自拔者
010_0058_b_19L多流入西敎近世叢林之上乃曰秋波
010_0058_b_20L大師泓宥師順世之三年從柳上舍肅
010_0058_b_21L得師所著詩文一卷師吾未嘗識也
010_0058_b_22L而讀其書竊悲其志焉有榮師者儒產
010_0058_b_23L而托於緇故慨然於世途變遷榮辱相
010_0058_b_24L而勉以瞿曇氏雪山故事庶令其先

010_0058_c_01L선대인先大人이 눈을 감도록 바란 것은 그의 자취가 자기와 비슷함을 슬퍼하고 여기에서 업을 버린 만큼 저기에서 공을 거두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김 동자金童子 형제가 대사에게 글을 배웠는데 그들에게 주는 편지4)에 이렇게 말하였다.
“남자의 사업은 부모를 섬기고 인군을 섬기며 부지런히 공부하여 이름을 내는 데에 있다. 부모의 마음을 저버리지 마라.”
대사는 자신이 그 나이 열 살 때에 수백 권의 글을 읽었음에도 늙어서 중(枯禪)노릇을 면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여 그 자신이 얻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바란 것이리라.
다른 척독이나 짧은 서문들도 인군과 부모의 도리(誼)에 간곡하고 사람과 짐승의 본분에 대해 두려워하는 글 아닌 것이 없으니 한마디 말에 세 번은 눈물을 떨어뜨릴 정도이다. 이러니 그의 뜻이 어찌 애초부터 공적空寂에 빠져 머물려고 한 것이겠는가? 대사의 지체와 문벌이 저와 같고 어려서의 깨달음이 또 이와 같은데 한번 공문空門에 떨어지고는 평생토록 후회하지 않은 것은 왜일까? 관리에 선발되는 것이 부처가 되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부딪친 상황이 불행했기 때문인가?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척전陟顚에게 보낸 편지5)에서 또 “교목喬木의 잎이 기수祇樹 덤불 속으로 날아든 것이 어찌 그대 혼자뿐이겠는가?”라는 말을 하였다. 안타깝구나. 대사와 같은 무리들이 또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내가 사농공상士農工商을 다 찾아봐도 대사처럼 세상에 유익하면서도 한 번도 존숭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글을 깎아 내고 차서를 매기며, 또 글을 써서 그 책머리를 더럽히니 어쩌면 이른바 세상에서 말하는 업연業緣이 아니겠는가?
산남山南의 관식慣拭 상인이 대사의 현지玄旨의 요령을 얻어서 대사의 도를 크게 드러내고 있다고 하니, 내가 참선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관식을 만나서 추파의 가풍이 어떤 것인지를 물어보고 싶다.
여와餘窩 목만중睦萬中6)이 제題하다.


010_0058_c_01L大人瞑目者悲其跡商有已相類
010_0058_c_02L其隳業於此而收功於彼也有金童子
010_0058_c_03L兄弟從師問字貽之書曰男子事業
010_0058_c_04L在事親事君勤學成名毋負父母之心
010_0058_c_05L師自悼其十歲讀盡數百卷文字
010_0058_c_06L而老不免爲枯禪以其不得於身者
010_0058_c_07L於人也其他隻牘短序莫不拳拳於君
010_0058_c_08L親之誼兢兢於人獸之分幾乎一言而
010_0058_c_09L三涕此其志初豈欲淪於空寂而止哉
010_0058_c_10L師地閥旣如彼幼悟又如此而一落空
010_0058_c_11L終身不悔何哉抑以爲選官不如
010_0058_c_12L選佛耶亦將由所遭値有不幸耶是未
010_0058_c_13L可得而知也其贈陟類 [2] 書又曰喬木之
010_0058_c_14L飛入秖枝 [3] 叢中豈獨君哉惜也
010_0058_c_15L師等輩又非止一二人而已吾求之於
010_0058_c_16L士農工商而旣無所遇與師益世而又
010_0058_c_17L不得一尙然旣爲之删次其書又爲文
010_0058_c_18L以汚其頂倘所謂有世緣業非耶聞山
010_0058_c_19L南有慣拭上人領師玄旨大闡師道
010_0058_c_20L吾雖不解叅禪願邂逅拭試問如何是
010_0058_c_21L秋波家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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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窩睦萬中題

010_0058_c_23L{底}正祖四年有璣後叙本(東國大學校所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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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 대사는 사명四明한 이름난 선사이다.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제자 관식이 대사의 시문을 모아서 나에게 서문을 청하였다. 백 리가 넘는 길을 찾아오기도 하고 또 편지로 간곡하게 청하기를 그치지 않아 그 성의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 원고를 들어 아래위로 살펴보니 어찌 글뿐이겠는가, 대사를 알 수 있었다. 그 임종에 시7)를 지어 “납자 평생의 강개한 뜻으로 시시때때 반야도를 곧추들어라.(衲子平生慷慨志, 時時竪起般若刀.)”라고 하였다. 아마도 대사는 손안에 든 지혜의 칼을 곧추세우지 않은 때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악한 마군을 베어 없애려는 뜻을 막 세상을 뜨려는 시간에까지 발한 것이리니 대사가 스스로를 닦는 데에 용감함이 어떠했겠는가? 우리 유가의 무리를 돌아보면 이와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참으로 한탄스럽다.
대사는 벼슬하던 집안의 자손으로 10세에 백 권의 책을 다 읽었다고 하니 그 재주가 참으로 빼어난 사람이다. 17세에 표연히 남해南海로 가서 산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속진의 연을 끊었으니, 이는 필시 곤액하고 궁박하였기 때문이고 그 성품이 아마도 속되지 않아서였으리라. 깊이 묻혀 살면서 입정入定하기를 거의 40년이나 하였으니 그 계를 지킴이 또한 오래이며, 경전을 열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강의를 듣는 무리가 모여들었다. 관식 같은 자가 나이 25세에 입실하여 고개를 숙여 가르침을 청할 정도였으니 그 조예가 참으로 높다 하겠다.
그러나 배움을 끊었다(絶學)는 말로 볼 때에는 그 베어 없앰에 오히려 미진한 바가 있다. 어찌하여 강개하기를 그치지 않고 법게法偈를 문도에게 보이려 하였을까? 아! 마음을 다스리기 어렵기가 진실로 이와 같은가? 이는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만 경계가 될 뿐이 아니구나.
전 익위翊衛8) 유광익柳光翼9)

홍유 대사가 열반하고 세 해 후에 그의 문도 관식이 흩어진 원고를 거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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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波師四明之名禪也順世之翼年
010_0059_a_02L弟子慣拭集師之詩文以請序於余
010_0059_a_03L一百有餘里旣踵門又以書懇不已
010_0059_a_04L其誠不可孤試取其藁而上下之豈惟
010_0059_a_05L文乎有可以知師者其臨終有詩曰
010_0059_a_06L衲子平生慷慨志時時竪起般若刀
010_0059_a_07L師之手中慧刀無時不竪故其剗除邪
010_0059_a_08L魔之志至發於垂死之際師之勇於自
010_0059_a_09L修何如哉回顧吾黨如斯者有幾乎
010_0059_a_10L嘅也已聞之師以冠冕家孫十歲讀
010_0059_a_11L盡書百卷其才固絕類矣十七飄然之
010_0059_a_12L南海上山中遂斷塵緣是必由於阨窮
010_0059_a_13L而其性盖不俗矣捿深入定殆四十年
010_0059_a_14L其守戒亦久矣開經 [4] 徵破講徒坌集
010_0059_a_15L如慣拭者行秊廿五入室而能俛首請
010_0059_a_16L其造詣可謂高矣 然而以絕學語覲
010_0059_a_17L其所剗除猶有所未盡者歟何其
010_0059_a_18L慷慨之不已也將示以法偈於門徒歟
010_0059_a_19L心之難治固如是夫是不但爲學
010_0059_a_20L竺敎者戒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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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翊衛柳光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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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059_a_23L
010_0059_a_24L
泓宥大師涅槃後三臈其徒慣拭

010_0059_b_01L천 리를 달려 서울에 와서는 벼슬하는 선비들을 찾아다니며 글로 소문난 사람에게 그 편질編袠의 차서를 정하게 하고 문장을 빌어서 서문을 붙였다. 나도 선비의 뒤를 따르고 있기에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글은 거리낌 없이 광활하고 시는 씩씩하면서도 고독하고 담박하여 그 문장만 보아도 그 사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15년 전에 벼슬길에 실의하여(賦鵩)10) 색금塞琹11)에 갔을 때에 연담 유일蓮潭有一12) 주실籌室이 두륜산頭輪山에 주석하고 있다가 미남眉南 유배지로 나를 방문하였다. 스님은 눈썹이 짙고 골격이 빼어나며 박학하고 맑은 대화가 일반적인 참선하는 사람들과는 크게 달랐다. 그 후로 왕래가 끊어지지 않고 현리玄理와 유무有無를 따지고 분석하였다. 나는 이런 시 한 편을 주었다.

북에서 남으로 온 나그네라 오랜 친구가 적은데
그대의 불법佛法 덕에 이마에 기쁨이 번지네.
한유(潮州)13)의 문장과 소동파(黃州)14)의 글이
참료叅寥15)와 철사澈師16)에게 많이 있었지.
이렇게 적어서 다음에 만날 때를 기약하였다. 얘기가 선종禪宗에 미쳤을 때에 대사는 추파秋波가 있다고 대답하였다. 내가 한 번 만나 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였는데 지금의 홍유가 옛날 그 추파임을 어찌 알았겠는가? 아! 세월이 여러 번 바뀌어 육근과 육진이 변하여 없어지니 유일 대사의 생사가 삼생三生이나 떨어진 것 같으며, 지금 나도 수염이 하얗게 늙어 가고 있구나.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滄桑)17) 느낌이 곧 노년이 닥치려고 하니 더욱 깊어지는구나.
지금 이 추파라는 자가 만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또 멸도滅度하였으니, 옛날 유일 대사에게서 그 이름을 들은 것이 다행이면서도 슬프도다. 떠나기 전에 나를 만나서 성인의 공부를 강구하여 유학儒學의 영역으로 들어왔더라면 지난 것을 좇을 수 있었을 터이니, 지혜로운 마음과 성품으로 어찌 부처(鵝王)18)의 불법을 택하였겠는가(擇乳)?19) 나는 이것을 거듭 유감으로 생각하노라.
전 교리校理 윤숙尹塾20)


010_0059_b_01L散藁走千里來京都歷過搢紳章甫
010_0059_b_02L以文鳴者序其編袠乞文弁之余亦
010_0059_b_03L從學士之後得賞焉文肆而汪洋詩遒
010_0059_b_04L而孤澹見其文可知其人余十五年
010_0059_b_05L賦鵩塞琹蓮潭籌室有一住錫頭
010_0059_b_06L訪余于眉南謫舍厖眉秀骨宏詞
010_0059_b_07L淸談與凡例叅禪者大異自後來不
010_0059_b_08L剖玄理劈有無贈以一詩云北客
010_0059_b_09L南來少舊知喜君梵韵露踈眉潮州詞
010_0059_b_10L翰黃州筆多在叅與澈師以識後來
010_0059_b_11L之面于時語及禪宗師以秋波對
010_0059_b_12L欲見而不得安知今之泓宥昔之秋波
010_0059_b_13L乎哉歲月屢更根塵變滅一師之
010_0059_b_14L存沒如隔三生秖今余亦于思白種種
010_0059_b_15L滄桑之感老將至而罙深今夫秋
010_0059_b_16L波者不待相見而又歸滅度追惟疇昔
010_0059_b_17L從一師聞其名亦幸而悲哉若使逢
010_0059_b_18L余於未化之前講究聖人之學進之斯
010_0059_b_19L文之域則徃者可追而其靈竅慧性
010_0059_b_20L豈止於鵝王之擇乳乎哉余於是重有
010_0059_b_21L感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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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校理尹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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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신경준申景濬 : 1712~1781.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순민舜民이며, 호는 여암旅庵이다.
  2. 2)사민四民 : 옛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백성을 말한다.
  3. 3)영사榮師 : 『추파집』 권2 「수영사서酬榮師序」에 영사는 관식慣拭의 초명初名이라고 하였다.
  4. 4)『추파집』 권2의 「김수팽·김수대 두 사촌 아우에게 주는 편지(與金壽彭壽大兩從弟書)」를 가리킨다.
  5. 5)『추파집』 권2에 수록된 「척전 대사께 드리는 편지(與陟顚大師書)」를 말한다.
  6. 6)목만중睦萬中 : 1727~?. 본관은 사천泗川이고, 자는 공겸公兼 혹은 유선幼選, 호는 여와餘窩이다.
  7. 7)『추파집』 권1에 수록된 ≺임종게臨終偈≻를 말한다.
  8. 8)익위翊衛 : 조선 시대 세자의 시위를 맡았던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5품 벼슬로, 좌우 각 1명씩 두었다.
  9. 9)유광익柳光翼 : 1713~1780.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사휘士輝, 호는 풍암楓巖 또는 항재恒齋이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유춘囿春의 아들로, 일찍부터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심하였다.
  10. 10)부복賦鵩 : 벼슬길에서 실의失意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漢나라 때 가의賈誼가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가 된 지 3년 만에 복새가 날아와서 가의의 곁에 앉았다. 복새는 불길한 조짐의 새였기에 가의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 슬퍼하면서 ≺복조부鵩鳥賦≻를 지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윤숙이 유배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11. 11)색금塞琹 :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이다.
  12. 12)유일有一 : 1720~1799. 조선 후기의 승려로 속성은 천씨千氏이고, 자는 무이無二, 법호는 연담蓮潭이다.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다. 문집인 『임하록林下錄』 외에도 『서장사기書狀私記』 1권, 『도서사기都序私記』 1권, 『선요사기禪要私記』 1권, 『절요사기節要私記』 1권, 『기신사족起信蛇足』 1권, 『금강하목金剛蝦目』 1권, 『원각경사기圓覺經私記』 2권, 『현담사기玄談私記』 2권, 『대교유망기大敎遺忘記』 5권, 『제경회요諸經會要』 1권, 『염송착병拈頌着柄』 2권 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13. 13)조주潮州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조주의 자사가 된 적이 있다. ‘조주의 문장(潮州詞)’은 한유의 문장과 같이 뛰어난 문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14. 14)황주黃州 :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는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과 뜻이 맞지 않아 황주로 좌천된 적이 있다. ‘황주의 글씨(黃州筆)’는 소동파의 문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15. 15)참료叅 : 송宋나라 승려인 도잠道潛의 별호이다. 도잠은 시를 잘하여 소식蘇軾·진관秦觀과 시우가 되었다.
  16. 16)철사澈師 :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한유와 교유하였던 승려의 이름으로 보인다.
  17. 17)창상滄桑 :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한 말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상벽桑碧·상전창해桑田滄海·상해桑海·상해지변桑海之變·창해상전滄海桑田·창상지변滄桑之變이라고도 한다.
  18. 18)아왕鵝王 : 부처님의 삼십이상 가운데 하나로, 손가락과 발가락의 사이에 거위와 같은 물갈퀴가 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19. 19)택유擇乳 : 물과 우유를 하나의 그릇에 담아 놓으면 아왕은 우유만 마시고 물은 남긴다(鵝王擇乳)는 말이다. 이 말은 상승上乘의 정화精華를 택한다는 비유이다. 『조정사원祖庭事苑』 권5에 나온다.
  20. 20)윤숙尹塾 : 1734~1797.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수汝受,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1. 1){底}正祖四年有璣後叙本(東國大學校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