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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215_a_17L임하록 자서내가 경전을 강설하는 여가 시간에 어쩌다 사대부나 우리 불교계의 도반들과 주고받은 약간 편의 시가 있고, 혹은 불사佛事를 찬양하거나 혹은 세상의 도리를 서술한 편지와 소疏ㆍ서序ㆍ기記 등의 문장이 몇 편 있으며, 학인들을 위해 수집해 모은 것으로는 여러 경전의 중요한 말들을 기록한 것이 약간 있다. 그것을 몇 권으로 엮어서 ‘임하林下’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한 것일 따름이다.아,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아무 소용이 없고, 또 사실 세상에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곤 오직 -
010_0215_a_17L林下錄自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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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215_a_19L余講經之暇。或與士大夫及吾黨儕友
010_0215_a_20L唱酬之若干首。或讃佛事。或叙世諦之
010_0215_a_21L書疏序記等文若干篇。以至爲學人所
010_0215_a_22L裒者諸經要語。亦若干錄之成數卷。以
010_0215_a_23L林下命題。誌其所好也。噫。余以褦襶
010_0215_a_24L之流。無用於世。亦無好於世所好。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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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0215_b_01L숲속뿐이다. 안개와 구름, 그리고 샘물의 자갈돌 따위는 본래부터 숲속에 있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내가 주인이 되었다 하여도 누구 하나 다투고 나서는 사람이 없더라. 새와 짐승, 그리고 크고 작은 사슴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숲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나와 나누어 가지게 되었어도 시기하는 법이 없더라. 이것이 바로 내가 숲속을 좋아하는 일을 도저히 그만둘 줄을 모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어찌 이곳을 나 한 사람만이 좋아하겠는가. 숲속으로 돌아가는 자는 누구이건 그곳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남들이 다들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다면, 그것은 곧 편벽한 마음이거나 아니면 완고한 마음일 것이다.‘임하록林下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숲속의 본래면목을 기록하였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그저 내 몸에 밴 습기가 사라지지 않아서 광대 기질을 억제하기 어려워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웃지 마시고 반드시 병으로 여길 것이라. 그러나 또 공자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기杞나라와 송宋나라의 일을 증험할 수 없는 것은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9)우리 불교의 현묘한 이치야 물론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또한 문자가 아니고는 달리 증험할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문장에 능숙하지도 못한 내가 이렇게 구구하게 글을 엮어 내는 것은, 어쩌면 혹시라도 이 글이 불교의 현묘한 이치를 살짝이라도 엿보는 방편이 되지나 않을까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또 도와 상관이 없는 한가한 이야기와 잡스러운 글들까지 아울러 드러내 기록한 것은, 혹시라도 이것이 외세의 어려운 비판과 불가를 무시하는 말들을 막고 이겨 내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서이다. 그렇기에 여기에 실린 글에는 정밀한 것도 있고 잡스러운 것도 있으며 긴요한 것도 있고 가벼운 것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 우리 불가의 도를 보호하고 드러내 보이는 데에 그 뜻이 귀결되는 것이다.하동자河東子가 이런 말을 하였다.“언제나 나라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되, 문장으로 할 것이라.”내가 그 말을 우러러 사모하기에 나 또한 이렇게 글로써 부처님께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지, 그저 솜씨를 내세워 보이려는 생각으로 책을 펴내는 것은 아니다. 아, 내가 잘했다고 알아줄 일(知我)이나 내가 잘못하였다고 죄를 내릴 모든 일(罪我)들이 이 기록 속에 있도다.30)문집 속에 내 스스로 주석을 단 이유는, 사실 나의 제자들이 듣고 본 것이 적어 출처의 내력을 모를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비웃지 말지어다.갑신년31) 초初 3일에 동림사東林社에서 쓰다. -
010_0215_b_01L林下歟。煙雲泉石。本林下之所有。一
010_0215_b_02L朝爲吾所主。無人爭之。鳥獸麋鹿。先
010_0215_b_03L吾住林下。一朝爲吾所分。亦不猜。此
010_0215_b_04L吾之所以好而不知止也。然豈吾一人
010_0215_b_05L好之。凡歸林下者。莫不好之。好而不
010_0215_b_06L以人之所同。非僻則固矣。但林下錄云
010_0215_b_07L者。非林下之本色。只繇習氣未消。伎
010_0215_b_08L倆難制。觀者不以爲笑。必以爲病。然
010_0215_b_09L余惟孔子曰。杞宋不足徵也。爲文獻不
010_0215_b_10L足故也。吾道之玄機妙旨。非文字所可
010_0215_b_11L摸寫。而亦非文字。不足徵也。故余非能
010_0215_b_12L文。而區區爲此者。或可因此。而庶窺
010_0215_b_13L玄妙之筌蹄也。又閑談雜著。與道不相
010_0215_b_14L關者。並表而錄之。或可因此。而爲拒
010_0215_b_15L外難禦侮之一術也。則一錄所載。有精
010_0215_b_16L有雜。有緊有歇。而畢竟同歸於扶顯吾
010_0215_b_17L道也。河東子有言。每思報國。惟以文
010_0215_b_18L章。余覬而慕之。亦欲以文字報佛也。
010_0215_b_19L非一向伎倆之所使。嗚乎。知我罪我。
010_0215_b_20L惟在斯錄歟。惟在斯錄歟。集中自註者
010_0215_b_21L良由吾黨之小子。寡聞謏見。未知出處
010_0215_b_22L來歷故也。觀者勿哂。
010_0215_b_23L旹閼逢君灘臨之朏日。書于東林社。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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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論語』 「八佾」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하夏나라의 예를 내가 능히 말할 수는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기杞나라에 대해서는 충분히 증험하지 못하며, 은殷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송宋나라에 대해서는 증험하지 못한다. 그것은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라고 탄식하였다.
- 30)『孟子』 「滕文公 下」에 “ 『춘추春秋』는 천자의 일이니, 이런 까닭에 공자가 가로되, ‘나를 알아줄 자도 그 오직 『춘추』일 것이며, 나를 벌할 자도 그 오직 『춘추』이리라.’ 하였다.(春秋。 天子之事也。 是故孔子曰。 知我者。 其惟春秋乎。 罪我者。 其惟春秋乎。 )”라고 하였다. 후대에 ‘지아죄아知我罪我’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비방하거나 칭찬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는 연담 대사의 뜻이 모두 이 책에 있다는 말이다.
- 31)갑신년(閼逢君灘) : 서기 1764년이다. 연담 대사가 1720년에 태어나 1799년에 입적하였으므로, 이 자서는 대사가 45세 되던 해에 쓴 것이다.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하혜정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