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 / 林下錄自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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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록 자서
내가 경전을 강설하는 여가 시간에 어쩌다 사대부나 우리 불교계의 도반들과 주고받은 약간 편의 시가 있고, 혹은 불사佛事를 찬양하거나 혹은 세상의 도리를 서술한 편지와 소疏ㆍ서序ㆍ기記 등의 문장이 몇 편 있으며, 학인들을 위해 수집해 모은 것으로는 여러 경전의 중요한 말들을 기록한 것이 약간 있다. 그것을 몇 권으로 엮어서 ‘임하林下’라고 제목을 붙였으니,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한 것일 따름이다.
아, 나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에 아무 소용이 없고, 또 사실 세상에 좋아하는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곤 오직

010_0215_a_17L林下錄自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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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講經之暇或與士大夫及吾黨儕友
010_0215_a_20L唱酬之若干首或讃佛事或叙世諦之
010_0215_a_21L書疏序記等文若干篇以至爲學人所
010_0215_a_22L裒者諸經要語亦若干錄之成數卷
010_0215_a_23L林下命題誌其所好也余以褦襶
010_0215_a_24L之流無用於世亦無好於世所好

010_0215_b_01L숲속뿐이다. 안개와 구름, 그리고 샘물의 자갈돌 따위는 본래부터 숲속에 있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내가 주인이 되었다 하여도 누구 하나 다투고 나서는 사람이 없더라. 새와 짐승, 그리고 크고 작은 사슴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숲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나와 나누어 가지게 되었어도 시기하는 법이 없더라. 이것이 바로 내가 숲속을 좋아하는 일을 도저히 그만둘 줄을 모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어찌 이곳을 나 한 사람만이 좋아하겠는가. 숲속으로 돌아가는 자는 누구이건 그곳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남들이 다들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다면, 그것은 곧 편벽한 마음이거나 아니면 완고한 마음일 것이다.
‘임하록林下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숲속의 본래면목을 기록하였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그저 내 몸에 밴 습기가 사라지지 않아서 광대 기질을 억제하기 어려워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웃지 마시고 반드시 병으로 여길 것이라. 그러나 또 공자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기杞나라와 송宋나라의 일을 증험할 수 없는 것은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9)
우리 불교의 현묘한 이치야 물론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또한 문자가 아니고는 달리 증험할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문장에 능숙하지도 못한 내가 이렇게 구구하게 글을 엮어 내는 것은, 어쩌면 혹시라도 이 글이 불교의 현묘한 이치를 살짝이라도 엿보는 방편이 되지나 않을까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또 도와 상관이 없는 한가한 이야기와 잡스러운 글들까지 아울러 드러내 기록한 것은, 혹시라도 이것이 외세의 어려운 비판과 불가를 무시하는 말들을 막고 이겨 내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서이다. 그렇기에 여기에 실린 글에는 정밀한 것도 있고 잡스러운 것도 있으며 긴요한 것도 있고 가벼운 것도 있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 우리 불가의 도를 보호하고 드러내 보이는 데에 그 뜻이 귀결되는 것이다.
하동자河東子가 이런 말을 하였다.
“언제나 나라에 보답할 것을 생각하되, 문장으로 할 것이라.”
내가 그 말을 우러러 사모하기에 나 또한 이렇게 글로써 부처님께 보답하고자 하는 것이지, 그저 솜씨를 내세워 보이려는 생각으로 책을 펴내는 것은 아니다. 아, 내가 잘했다고 알아줄 일(知我)이나 내가 잘못하였다고 죄를 내릴 모든 일(罪我)들이 이 기록 속에 있도다.30)
문집 속에 내 스스로 주석을 단 이유는, 사실 나의 제자들이 듣고 본 것이 적어 출처의 내력을 모를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비웃지 말지어다.
갑신년31) 초初 3일에 동림사東林社에서 쓰다.

010_0215_b_01L林下歟煙雲泉石本林下之所有
010_0215_b_02L朝爲吾所主無人爭之鳥獸麋鹿
010_0215_b_03L吾住林下一朝爲吾所分亦不猜
010_0215_b_04L吾之所以好而不知止也然豈吾一人
010_0215_b_05L好之凡歸林下者莫不好之好而不
010_0215_b_06L以人之所同非僻則固矣但林下錄云
010_0215_b_07L非林下之本色只繇習氣未消
010_0215_b_08L倆難制觀者不以爲笑必以爲病
010_0215_b_09L余惟孔子曰杞宋不足徵也爲文獻不
010_0215_b_10L足故也吾道之玄機妙旨非文字所可
010_0215_b_11L摸寫而亦非文字不足徵也故余非能
010_0215_b_12L而區區爲此者或可因此而庶窺
010_0215_b_13L玄妙之筌蹄也又閑談雜著與道不相
010_0215_b_14L關者並表而錄之或可因此而爲拒
010_0215_b_15L外難禦侮之一術也則一錄所載有精
010_0215_b_16L有雜有緊有歇而畢竟同歸於扶顯吾
010_0215_b_17L道也河東子有言每思報國惟以文
010_0215_b_18L余覬而慕之亦欲以文字報佛也
010_0215_b_19L非一向伎倆之所使嗚乎知我罪我
010_0215_b_20L惟在斯錄歟惟在斯錄歟集中自註者
010_0215_b_21L良由吾黨之小子寡聞謏見未知出處
010_0215_b_22L來歷故也觀者勿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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旹閼逢君灘臨之朏日書于東林社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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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9)『論語』 「八佾」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하夏나라의 예를 내가 능히 말할 수는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기杞나라에 대해서는 충분히 증험하지 못하며, 은殷나라의 예를 내가 말할 수 있으나 그 후손의 나라인 송宋나라에 대해서는 증험하지 못한다. 그것은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夏禮吾能言之。 杞不足徵也。 殷禮吾能言之。 宋不足徵也。 文獻不足故也。)”라고 탄식하였다.
  2. 30)『孟子』 「滕文公 下」에 “ 『춘추春秋』는 천자의 일이니, 이런 까닭에 공자가 가로되, ‘나를 알아줄 자도 그 오직 『춘추』일 것이며, 나를 벌할 자도 그 오직 『춘추』이리라.’ 하였다.(春秋。 天子之事也。 是故孔子曰。 知我者。 其惟春秋乎。 罪我者。 其惟春秋乎。 )”라고 하였다. 후대에 ‘지아죄아知我罪我’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비방하거나 칭찬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는 연담 대사의 뜻이 모두 이 책에 있다는 말이다.
  3. 31)갑신년(閼逢君灘) : 서기 1764년이다. 연담 대사가 1720년에 태어나 1799년에 입적하였으므로, 이 자서는 대사가 45세 되던 해에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