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연담대사임하록(蓮潭大師林下錄) / 蓮潭大師林下錄卷之四

ABC_BJ_H0224_T_009

010_0271_b_02L
연담대사임하록 제4권(蓮潭大師林下錄 卷之四)
찬 2贊二
환성 노화상찬喚惺老和尙贊
咄這老和尙             저런, 이 노화상은
曠刼結緣大             오랜 세월 맺은 인연이 크시기도 하네
坐斷海東四十年           이 나라에서 좌선하고 앉은 지 사십 년에
到處自成折床會           곳곳에서 용맹정진하는 좌선 자리가 만들어졌고1)
慈雲徧布慧澤霶霈          자운을 두루 펴고 은혜를 베푸니
眞可謂刹海章程           진실로 땅과 바다의 모범이 되며
法門蓍蔡              우리 법문의 시채蓍蔡2)라고 할 만하구나
如何末後              그런데 어쩌자고 말년에
擔得須彌渡大海           수미首彌를 터득하고 대해를 건넜다고 자부했다가
金山大會作話欛           금산대회에서 얘깃거리가 되고 말았던가
笑看八風括地號           팔풍3)이 땅을 휩쓸고 울부짖는 일 참으로 우스워라
誰道從來償宿債           이 모두가 예전의 묵은 빚을 갚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호암 화상찬虎巖和尙贊
這一軸影子云            이 하나의 두루마리 영정은
是虎岩和尙             호암 화상이라고 하지만
近前仔細看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元非先師像             원래 선사의 형상이 아니네
要識先師麽             우리 선사의 모습을 알고자 하는가
身是光明幢             몸은 광명의 깃발이고
心是神通藏             마음은 신통을 간직했으며
目淸四大海             맑디맑은 눈은 사방 큰 바다 같고
眉毛三千丈             길고 긴 눈썹 터럭 삼천 자나 되었다네
手把漫天網子            손으로 하늘 가득 그물을 펼치고
羅籠百萬龍象            대그릇 벌여서 온갖 용상을 낚더니
一朝大笑金剛去           어느 날 아침 크게 웃고 금강산으로 떠나시어
萬二千峯眞身相           만 이천 봉우리 진실한 법신이 되었다네
또(又)
這介阿師與喚惺師翁         이 스님과 환성 사옹께서는
寃債相聚              원한의 빚을 갖고서 같이 모였는지
如何見解相違            어떻게 서로 이다지도 견해가 엇갈려
同行不同步             같은 길을 가면서 걸음은 달리했던가
北出而南化             한 분은 북쪽 땅에서 태어나 남쪽 땅에서 돌아가셨지만
南出而北了             또 한 분은 남쪽 땅에서 태어나 북쪽 땅에서 마치셨고
一是軆用到底            한 분은 체體와 용用을 철저하게 궁구하셨으나
一是體用交互            또 한 분은 체와 용을 서로 바꾸어 가며 사용하셨네
可謂師賛              그렇기에 우리 스님을 찬贊할 만한 말은
互換機鋒              심기와 봉鋒4)을 서로 바꾸어 쓰면서도
不失臨濟家宗旨           임제가의 종지를 잃지 않으셨다는 것이네
然雖如是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二老漢各與二十棒始得        두 노인네에게 각각 스무 방망이는 때려야 하리라
何故只爲他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未會同條生同條死          같은 가지에서 나서 같은 가지에서 죽는 이치를 몰랐기 때문이네

010_0271_b_02L蓮潭大師林下錄卷之四

010_0271_b_03L

010_0271_b_04L1)(二) [8]

010_0271_b_05L喚惺老和尙贊

010_0271_b_06L
咄這老和尙曠刼結緣大坐斷海東四
010_0271_b_07L十年到處自成折床會慈雲徧布慧澤
010_0271_b_08L霶霈眞可謂刹海章程法門蓍蔡如何
010_0271_b_09L末後擔得須彌渡大海金山大會作話
010_0271_b_10L笑看八風括地號誰道從來償宿債

010_0271_b_11L

010_0271_b_12L虎巖和尙贊

010_0271_b_13L
這一軸影子云是虎岩和尙近前仔細
010_0271_b_14L元非先師像要識先師麽身是光
010_0271_b_15L明幢心是神通藏目淸四大海眉毛
010_0271_b_16L三千丈手把漫天網子羅籠百萬龍象
010_0271_b_17L一朝大笑金剛去萬二千峯眞身相

010_0271_b_18L

010_0271_b_19L

010_0271_b_20L
這介阿師與喚惺師翁寃債相聚如何
010_0271_b_21L見解相違同行不同步北出而南化
010_0271_b_22L南出而北了一是軆用到底一是體用
010_0271_b_23L交互可謂師賛互換機鋒不失臨濟家
010_0271_b_24L宗旨然雖如是二老漢各與二十棒始
010_0271_b_25L何故只爲他未會同條生同條死

010_0271_c_01L
월성 대사찬月城大師贊
月朗孤輪              밝은 달이 홀로 둥근 바퀴를 굴리어
萬國同輝              온 세상 모든 나라가 동시에 환하게 밝아지는
師之心也              이것이 우리 월성 대사의 마음이며
城高千仭              성곽이 천 길 높디높아
六賊難窺              어떤 도적 떼라도 엿보기 어려운
師之氣也              이것이 우리 월성 대사의 기상이네
允矣一幅之影            진실로 이 한 폭의 영정
只從這裡流出            다만 여기에서 풍겨 나오는 대사의 모습으로도
宜乎西河之徒            마땅히 유가5)의 무리들까지
錯然仰止              앞다투어 우러러 사모할 것이라네
자암 대사 진찬慈庵大師眞贊
平生護三四神足           평생 동안 서너 명 제자6)를 거느리고서
皆令學佛              모두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게 하였으니
所謂能護              이른바 능히 부처님 법을 지켜 낸 분이시라
功高所護              그 높은 호불의 공은 보호해야 할 것이다
況晩歲淨業             더구나 말년에 정업을 닦기까지 하였으니
彌勒徃生乎何有           미륵왕생이 어찌 어려울 일이 있겠는가
吾以此兩端             나는 이 두 가지 단서를 가지고
爲賛師之具             우리 자암 대사의 찬을 갖추어 짓노라
설파 화상찬雪坡和尙贊
東國華嚴若存若亡          우리나라에는 『화엄경』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취가 미약하였더니
我師間生整其頹綱          우리 대사께서 그 사이에 태어나 화엄의 무너진 강령을 정리하여 갖추어 놓으셨네7)
十玄法門重得恢張          그렇게 하여 화엄종의 십현법문8)을 거듭 널리 펼 수 있게 되었으니
其誰不曰再來淸凉          그 누구인들 청량9) 스님이 다시 살아 오셨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講說之家以解爲尊          경전을 강설하는 문중에서는 글자나 문구의 해석을 존중하고
靜嘿之徒偏貴行門          조용히 침묵하는 선가의 무리는 계행을 지키는 수행만을 귀하다 하네
倬彼大師言行並存          그러나 우뚝 높으신 우리 대사께서는 언행을 아울러 지니셨으니
君子樞機孰不仰遵          그 군자다운 기틀을 보고서 어느 누가 우러러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과 대사찬佛果大師贊
臨濟頂中髓             임제10)의 머리 가운데에서도 골수이며
楊歧眼中瞳             양기11)의 눈 중에서도 동자로구나
捧頭擒虎兕             한 방 치받아 범과 외뿔소를 사로잡았고
喝下辨蛇龍             할 한 번 내리쳐서 뱀과 용을 분별하였네
本色川䖃苴             본색은 시냇물 요동치는 바닥이어도
用處不雷同             용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셨네
獨立乾坤外             홀로 하늘 땅 저 멀리 세상 밖에 서 계셨으니
那知萬馬空             만 마리 말이 공하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대혜 선사찬大惠禪師贊

010_0271_c_01L月城大師贊

010_0271_c_02L
月朗孤輪萬國同輝師之心也城高
010_0271_c_03L千仭六賊難窺師之氣也允矣一幅
010_0271_c_04L之影只從這裡流出宜乎西河之徒
010_0271_c_05L錯然仰止

010_0271_c_06L

010_0271_c_07L慈庵大師眞贊

010_0271_c_08L
平生護三四神足皆令學佛所謂能護
010_0271_c_09L功高所護況晩歲淨業彌勒徃生乎何
010_0271_c_10L吾以此兩端爲賛師之具

010_0271_c_11L

010_0271_c_12L雪坡和尙贊

010_0271_c_13L
東國華嚴若存若亡我師間生整其
010_0271_c_14L頹綱十玄法門重得恢張其誰不曰
010_0271_c_15L再來淸凉講說之家以解爲尊靜嘿
010_0271_c_16L之徒偏貴行門倬彼大師言行並存
010_0271_c_17L君子樞機孰不仰遵

010_0271_c_18L

010_0271_c_19L佛果大師贊

010_0271_c_20L
臨濟頂中髓楊歧眼中瞳捧頭擒虎兕
010_0271_c_21L喝下辨蛇龍本色川䖃苴用處不雷同
010_0271_c_22L獨立乾坤外那知萬馬空

010_0271_c_23L

010_0271_c_24L大惠禪師贊

010_0271_c_25L「二」一字編者補入

010_0272_a_01L湛堂室中口拑舌佛          담당12)의 방에서 입 다물고 중얼중얼 염불을 하다가
逮見巴勤無出氣處          파근을 보고 나서는 숨기운이 새어 나오지 않네
薰風殿角白汗通流          산들바람 전각 모서리를 스치면 식은땀이 죽 흐르는데
生禽虎項活捉蛇頭          호랑이 목을 산 채로 잡고 뱀 머리를 휘어잡네
黑柒竹篦掀飜海岳          새까만 죽비를 번득이며 바다로 산으로 다니실 제
白日靑天雷霆雪雹          훤한 대낮 맑은 하늘에 우레에 천둥이 울리고 눈과 우박 내렸었네
才高謗起法盛魔强          재주 높으면 헐뜯고 시기하는 말이 생기고 불법이 성대할 때 마귀도 강하게 일어나는 법
本色草料衡陽梅陽          본래 타고난 바탕이 곧고 강직하여 형양13)과 매양에 귀양을 갔었네14)
청허 보제존자찬淸虛普濟尊者贊
汲水歸來              물 길어 돌아오는 길
山靑雲白              산빛 짙푸르고 흰 구름도 둥실 떠 있는데
午雞一聲              낮닭이 뜬금없이 울어 대는 것을 보니
能事方畢              이제야 막 능사를 마치셨나 보다
卸畫墨竹              임금께서 그려 주신 대나무 그림15)
驗龍蛇厄              임진년 왜란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보여 주고
寔繁有徒              여기 번성하게 공덕을 따르는 무리가 있으니
其麗不億              그 어떤 큰 숫자로도 셀 수 없네
사명 홍제존자찬四溟弘濟尊者贊
削髮逃塵世             삭발하고서 먼지 구덩이 속세를 떠나와
十年雲林              십 년 동안을 구름 자옥한 숲속에 살면서
結猿鶴之盟             신선처럼 살겠다는 맹세를 하고
存髯表丈夫             수염을 길게 늘여 깎지 않은 채 대장부 모습을 드러냈네
一朝談笑 解龍蛇之厄         하루아침 짧은 대화로 임진년 왜란의 재앙을
子貢之辯歟 秉忠之迹歟        자공의 말솜씨인가 병충16)의 글솜씨인가
能使柒齒 慕義而讋伏         왜적17)들로 하여금 의를 흠모하여 항복하게 하였으니
迄今二百年來 炎徼息警        지금 이백 년 세월이 지나도록 전쟁을 알리는 경보가 없었다네
噫嘻休哉。是誰之力也        아, 아름답구나. 이 모든 일이 누구의 힘인가
宜乎朝家崇祠宇           조정에서 사우18)를 존숭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니
澗水沼毛甞又禴           깨끗한 시냇물과 상큼한 나물로 때맞춰 제사를 올린다네
환성 노화상찬喚惺老和尙贊
廣顙豊頥 海目鴻耳          넓은 이마와 풍성한 턱선, 그리고 해맑은 눈과 커다란 귀
描得七分 彷佛相似          이렇게 묘사를 하고 보니 거의 부처님의 관상과 흡사하구나
若夫呑却三世佛之口         저 삼세의 부처님을 다 삼켜 버릴 것 같은 입이며
踏殺天下人之足           온 세상 모든 사람을 다 밟아 죽일 것 같은 발이로다
莫道僧瑤吳道子           승요니 오도자19)의 그림은 말할 것도 없고
緃饒目連鶖子徒名邈         목련존자나 사리불20)의 말로도 못 따르리라
噫 法海浩瀚 門庭閙熱        아, 부처님 법 바다가 넓어 법문이 번성하니

010_0272_a_01L
湛堂室中口拑舌佛逮見巴勤無出
010_0272_a_02L氣處薰風殿角白汗通流生禽虎項
010_0272_a_03L活捉蛇頭黑柒竹篦掀飜海岳白日
010_0272_a_04L靑天雷霆雪雹才高謗起法盛魔强
010_0272_a_05L本色草料衡陽梅陽

010_0272_a_06L

010_0272_a_07L淸虛普濟尊者贊

010_0272_a_08L
汲水歸來山靑雲白午雞一聲能事
010_0272_a_09L方畢卸畫墨竹驗龍蛇厄寔繁有徒
010_0272_a_10L其麗不億

010_0272_a_11L

010_0272_a_12L四溟弘濟尊者賛

010_0272_a_13L
削髮逃塵世十年雲林結猿鶴之盟
010_0272_a_14L存髯表丈夫一朝談笑解龍蛇之厄
010_0272_a_15L子貢之辯歟秉忠之迹歟能使柒齒
010_0272_a_16L慕義而讋伏迄今二百年來炎徼息警
010_0272_a_17L噫嘻休哉是誰之力也宜乎朝家崇祠
010_0272_a_18L澗水沼毛甞又禴

010_0272_a_19L

010_0272_a_20L喚惺老和尙贊

010_0272_a_21L
廣顙豊頥海目鴻耳描得七分彷佛
010_0272_a_22L相似若夫呑却三世佛之口踏殺天下
010_0272_a_23L人之足莫道僧瑤吳道子緃饒目連鶖
010_0272_a_24L子徒名邈法海浩瀚門庭閙熱

010_0272_b_01L信知菩薩之重來           참으로 보살이 거듭나신 것임을 알겠구나
不待淸平之短碣           청평사淸平寺에서 나온 짤막한 비갈의 글21)은 볼 것도 없겠네
안빈 선사찬安貧禪師贊
僧達山高              승달산이 높다 하고
獅子峯高              사자봉이 높다 하나
較吾安貧老人鼻孔          우리 안빈 노스님의 콧구멍과 비교하면
猶太虛之一毫            그저 넓은 허공의 털끝밖에 되지 않으리
生前快活兮             살아생전에 쾌활하게 생활하면서
不妨唱歌飮酒            창가며 음주며 거리낌 없이 하셨으니
死後神變兮             죽은 후에 신으로 변하시어
管取入火不燒            불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리라
雙眸四海空蕩蕩           두 눈동자는 사해처럼 확 트여서
下視佛祖爲兒曺           부처와 조사를 어린아이처럼 내려다보는구나
자찬自贊
人皆謂我眞爾假           사람들은 누구나 다 나는 참이고 너는 거짓이라 말하면서도
殊不知兩俱不眞           그 양쪽 모두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영 모르고 있는 것 같구나
若明今日事             만약 오늘의 일만을 밝히려 든다면
昧却本來身             본래의 몸은 깜깜하게 알 수 없게 되리니
門人衲子還多事           문인 납자들이 괜히 쓸데없이
强就丹靑描得新           억지 단청을 꾸며서 엉뚱하게 새로 그려 낼 것 같으면
只可七分相似            그 참모습에 흡사하게 묘사할 수 있으려나
未得脫體傳神            형체를 뛰어넘는 진실한 정신을 전할 수는 없을 것이네
且爾平生無慈悲           또 너는 평생에 자비로운 마음이라곤 없었으니
阿誰與爾好相親           누군들 너와 더불어 친하게 잘 지냈겠느냐
不如歸爾法泉本寺          차라리 그대의 본사 법천사로 돌아가서
掛壁上歲時伏臘           법당 벽에 영정을 걸어 놓으면 세밑이나 복날이나 납일에
殘羹餿飰供有人           먹다 남은 국이나 쉰밥이라도 공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네
我手本如佛手            내 손이야 본래부터 부처님 손처럼 자비롭지만
我脚還同驢脚            내 다리는 도리어 당나귀 다리22)와 같아서
有時講經禮佛            어떨 때는 멀쩡하게 불경을 강설하고 부처님께 예불을 잘 올리다가도
有時辱人罵客            또 어떨 때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손님에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네
只緣多生習氣            단지 여러 생을 거듭해 온 습기 때문일 것이며
未能純一無雜            순일하여 잡됨이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네
縱然描也描得            설령 영정을 그리겠다면 그리지 못할 것이야 없겠지만
阿誰爇香              그러나 누가 여기에 향을 피워 올릴 것이며
阿誰奠酌噓             또 누가 여기에 잔을 부어 올릴 것인가
然雖如是              아,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好將一文錢與匠人          돈 한 닢만 장인에게 갖다 주면
從敎累他眉鬚落           시키는 대로 몇 번이고 눈썹을 그리고 수염을 지우며 영정을 그려 주기는 할 것이라
這漢中無所有            이놈은 마음속에 아무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敢向無佛處稱尊           감히 이 부처님 안 계시는 세계23)에서 존귀하다는 칭송을 받으며
大坐講堂開口喧喧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강당에서 입을 벌려 마구 떠들곤 하였었네
每逢伶俐衲子            매번 좀 영리하다 싶은 납자만 만나면 꼭
盡欲升堂入門            모두 당에 오르도록 하여 나의 문중에 들어오게 하려고 했었네
似這般底 只得帶累先宗        사실 이런 일들은 다만 선종에 누를 끼치는 일이었을 뿐이니
切莫道虎岩肖子喚惺幹孫       절대로 호암 스님의 제자라거나 환성 스님의 손제자라고 말하지 말라
看爾形貌 一箇窮相 眉短眼小     네 형상을 보면 궁상맞은 모습에 짧은 눈썹 자그마한 눈

010_0272_b_01L知菩薩之重來不待淸平之短碣

010_0272_b_02L

010_0272_b_03L安貧禪師贊

010_0272_b_04L
僧達山高獅子峯高較吾安貧老人鼻
010_0272_b_05L猶太虛之一毫生前快活兮不妨
010_0272_b_06L唱歌飮酒死後神變兮管取入火不燒
010_0272_b_07L雙眸四海空蕩蕩下視佛祖爲兒曺

010_0272_b_08L

010_0272_b_09L自贊

010_0272_b_10L
人皆謂我眞爾假殊不知兩俱不眞
010_0272_b_11L明今日事昧却本來身門人衲子還多
010_0272_b_12L强就丹靑描得新只可七分相似
010_0272_b_13L未得脫體傳神且爾平生無慈悲阿誰
010_0272_b_14L與爾好相親不如歸爾法泉本寺掛壁
010_0272_b_15L上歲時伏臘殘羹餿飰供有人我手本
010_0272_b_16L如佛手我脚還同驢脚有時講經禮佛
010_0272_b_17L有時辱人罵客只緣多生習氣未能純
010_0272_b_18L一無雜縱然描也描得阿誰爇香
010_0272_b_19L誰奠酌噓然雖如是好將一文錢與匠
010_0272_b_20L從敎累他眉鬚落這漢中無所有
010_0272_b_21L敢向無佛處稱尊大坐講堂開口喧喧
010_0272_b_22L每逢伶俐衲子盡欲升堂入門似這般
010_0272_b_23L只得帶累先宗切莫道虎岩肖子喚
010_0272_b_24L惺幹孫看爾形貌一箇窮相眉短眼小

010_0272_c_01L口尖鼻仰              그리고 삐쭉 튀어나온 입과 화들짝 들린 들창코가 아니더냐
道眼不明 講法未暢          도안도 밝지 못하고 강법도 유창하지 못하였으니
怪夫諸方歷數宗師          여러 곳으로 많은 종사를 찾아다닌 일이 부끄럽기만 하구나
亦稱                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네
蓮潭和尙 山明水秀古和州       연담 화상은 산 좋고 물 좋은 옛날 화순 땅에서
五百年前國師誕           오백 년 전 옛날의 국사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如今地靈老生            그러나 이제 땅 기운이 그만 쇠했는지
遮擔板漢              꼭 막힌 이 답답한 사람24)
眼目何大凹 鼻孔沒一半        한참 눈은 움푹 꺼져 있고 콧구멍도 반쯤 막혀 있다네
三十年禪講敎講           서른 해 동안 선을 강론하고 교를 강론하며
簡點來祇是杜撰           가려 모은 이것도 단지 허황된 글일 뿐이라네
似這般底 端可一坑活埋        이런 사람은 그냥 구덩이나 하나 파서 산 채로 묻어 버리면 그만인 인물
如何萬庵做模打㨾 與後人看      무엇 하러 많은 암자에 얼굴을 그려 놓고 후인들에게 보라고 한단 말인가
법어法語-6편
영산법어 靈山法語【재齋를 지내기 전의 법어이다.】
꾀꼬리 우짖는 소리 제비 지저귀는 소리 모두가 근본법륜根本法輪을 굴리는 것이며, 노랗게 피어난 꽃과 푸르게 자라난 대나무는 색신삼매色身三昧를 널리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근기의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 중에서 곧바로 알아채서 고향에 도달할 것인데, 오늘 이 산승은 어째서 꼭 법좌에 올라 입으로 이러니저러니 떠들어 대는 것인가.
다만 오늘 이렇게 재를 올리는 사람들이 특별히 돌아가신 선사를 위하여 있는 정성을 다해 재를 마련하고, 이 산승에게 대사를 천도할 수 있는 말 한마디를 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 일은 사실 산승이 감당할 수 없는 중한 일이지만 어차피 이 자리에 올라왔으므로 자꾸만 안 한다고 거절만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이제부터 감히 몇 마디 말을 고하리라.
대개 이 영산작법靈山作法이라는 것은 본 사찰의 석가세존을 위하여 특별히 공양을 차려 놓고, 이어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설법하신 『법화경』을 독송하면서 영가를 천도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영산작법이라고 부른다. 대개 『법화경』의 내용은 사람 사람마다의 실상實相과 묘법妙法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연꽃에 비유하여 설명한 것은,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면서도 청정한 본연을 지키고, 또 연꽃은 꽃을 피울 때에 이미 그 꽃 속에 열매가 맺혀 있어서, 이것은 인연과 과보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영가靈駕(선사의 영혼)는 일체중생들과 함께 육도六道의 더러운 땅을 윤회하면서 그 사이에 받는

010_0272_c_01L口尖鼻仰道眼不明講法未暢怪夫
010_0272_c_02L諸方歷數宗師亦稱蓮潭和尙山明水
010_0272_c_03L秀古和州五百年前國師誕如今地靈
010_0272_c_04L老生遮擔板漢眼目何大凹鼻孔沒
010_0272_c_05L一半三十年禪講敎講簡點來祇是杜
010_0272_c_06L似這般底端可一坑活埋如何萬
010_0272_c_07L庵做模打㨾與後人看

010_0272_c_08L

010_0272_c_09L法語

010_0272_c_10L靈山法語齋前

010_0272_c_11L
鸎吟燕語盡轉根本法輪黃花翠竹
010_0272_c_12L普現色身三昧上根大智於此薦取
010_0272_c_13L到家了也何必山僧今日升座口吧
010_0272_c_14L吧地但今日齋者特爲亡師盡誠設
010_0272_c_15L欲令山僧提說薦師一句山僧不
010_0272_c_16L敢當而旣登此座不可一向違拒
010_0272_c_17L告數語盖此靈山作法者別爲本寺釋
010_0272_c_18L迦世尊以陳供養仍讀靈山會上所說
010_0272_c_19L法華經薦拔靈駕也故云靈山作法
010_0272_c_20L盖法華經中明人人之宲相妙法而以
010_0272_c_21L蓮花爲喩者蓮花處於淤泥之中淸淨
010_0272_c_22L本然又蓮花當於開花時早已結果於
010_0272_c_23L花中因果同時也今靈駕與一切衆生
010_0272_c_24L同一輪廻於六道染土之中其間雖有

010_0273_a_01L괴로움과 즐거움의 차이가 있었어도, 한결같은 심성은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더러움 없이 청정하여 여러 부처님이나 여러 조사님들과 비교하여도 조금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었으니, 이것은 이른바 연꽃이 더러운 곳에서 살면서도 언제나 청정한 것과 같다. 또 이 영가는 탐내는 마음(貪心)과 성내는 마음(嗔心)의 번뇌 가운데서도 덕상德相과 신통을 완연히 구족하여 여러 부처님의 과덕果德과 비교하여도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연꽃이 막 피기 시작할 때 바로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이 영가는 진점겁塵點劫25) 전에 수행을 모두 마쳤으며 성불 또한 마친 것인데, 지금 다시 이렇게 억지로 재를 마련하여 천도를 위한 기도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치가 홀로 행하는 법이 없고 일도 한결같지는 않은 법이다. 이 영가가 비록 본래 그대로 청정하고 본래 그대로 구족하긴 하였지만, 맑고 평온한 세계에 무명無明의 바람이 갑자기 일어나면 삼세三細26)와 육추六麤,27) 삼독三毒과 사상四相이 어지럽게 다투어 일어나 업業을 따라 윤회하면서 육도六道를 왕래하고 삼도三途를 기어 다니는 것을 어쩌지 못할 것이니, 그 고통은 말로는 차마 형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청정한 본연과 여러 부처님의 과덕果德이란 것은 과연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단정하고 부유하고 존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잠깐 잠이 들었고, 잠이 들었기 때문에 꿈을 꾸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낯선 고장을 떠돌아다니며 가난과 비천한 신분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진 고통을 당하지만, 그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본래는 단정하고 부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오늘 이 영가는 본래 그대로 청정하고 본래부터 부처님의 덕상을 갖추었으니, 저 단정하고 부귀한 사람과도 같다. 그런데 지금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무명無明의 혹업惑業으로 인하여 업에 미혹되어 잘못된 고통의 과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저 부귀한 사람이 꿈속에서 비천한 신분에 떨어져 가난으로 인하여 온갖 모진 고통을 당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렇게 재를 마련하여 천도하는 일은 이 영가를 그 잠 속의 꿈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것이니, 바라건대 이제 재를 올리는 자들은 생각을 극진히 하고 정성을 다하도록 할 일이다. 위로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여 아래로 모든 중생에게 미치게 되어야 모든 잡념이 한꺼번에 공해지니,28) 능소能所29)의 망상이 낱낱이 소멸된 다음에라야 부처님께서 감응하시며, 여러 부처님께서 감응한 다음에라야 영가를 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영가로 하여금 무명의 꿈에서 영원히 깨어나

010_0273_a_01L苦樂之不同而一眞心性常不變易
010_0273_a_02L淸淨無染與諸佛諸祖小無增減
010_0273_a_03L所謂蓮花之處染常淨也又此靈駕
010_0273_a_04L嗔煩惱之中德相神通宛然具足
010_0273_a_05L諸佛果德分毫不謬此所謂蓮花之方
010_0273_a_06L花即果也然則靈駕塵點刼前修行
010_0273_a_07L亦竟成佛亦竟何必今日强爲設齋
010_0273_a_08L以祈追薦乎然理無獨行事非一向
010_0273_a_09L靈駕雖本自淸淨本自具足爭奈淸平
010_0273_a_10L世界無明風忽起三細六麁三毒四
010_0273_a_11L紛然競起隨業輸廻徃返六道
010_0273_a_12L匐三途其爲痛苦不可形言向之所
010_0273_a_13L謂淸淨本然諸佛果德果安在哉
010_0273_a_14L如端正富貴之人在自家室中忽然而
010_0273_a_15L睡故有夢夢中流離他鄕見貧賤
010_0273_a_16L極苦等事而自不知端正富貴也今日
010_0273_a_17L靈駕本自淸淨本具佛德如彼端正
010_0273_a_18L富貴人也今日因無明惑業枉受苦報
010_0273_a_19L如彼富貴之人夢中見貧賤極苦等事
010_0273_a_20L然則今日設齋追薦之事欲爲靈駕
010_0273_a_21L覺悟睡夢也願諸齋者克念盡誠
010_0273_a_22L供諸佛下及衆生之時一空雜念
010_0273_a_23L所妄想一一寂滅然後諸佛感應
010_0273_a_24L佛感應然後靈駕可薦令其永覺無明

010_0273_b_01L부귀한 본래의 집에 돌아가 앉게 하고 자신이 부귀한 사람임을 깨닫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알겠느냐. 만약 사람이 여러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자기의 뜻을 허공처럼 깨끗이 하여 망상과 모든 집착을 멀리 여의고 마음이 향하는 곳마다 어디나 구애됨이 없게 해야 할 것이다.
또(又)
대도大道는 형상이 없고 자심自心은 허공과 같다. 참된 법은 본디 이와 같으니, 참된 법이 어찌 설법과 그 설법을 듣는 가운데에 뚝 떨어지겠는가. 옛날 수보리 존자가 바위에 편안히 앉아 있는데 천제석이 공중에서 꽃을 뿌리니, 수보리 존자가 물었다.
“꽃을 뿌리는 이는 누구시오?”
제석이 대답하였다.
“나는 제석이라 합니다. 존자께서 반야에 대해 설법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꽃을 뿌려 찬탄한 것입니다.”
수보리 존자는 말했다.
“내가 본래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가 반야에 대해 설법을 잘했다고 하십니까?”
제석이 말하였다.
“존자가 설법을 하지 않았으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곧 진정한 설법인 것입니다. 저 또한 존자의 설법을 들은 적이 없으니, 들은 게 없는 것이 곧 진정한 들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자가 반야에 대해 설법을 잘했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회주는 설법을 하지 않아야만 ‘진정한 설법’을 하는 것이 될 것이고, 또 오늘 재를 올리는 여러분들도 듣는 것이 없어야만 ‘진정한 들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꼭 이렇게 당나귀 같은 입술을 나불거려서 함곡관30)을 빠져 나오는 데 썼던 닭 울음소리를 빌려 시끄럽게 울면서 미치광이 같은 담론을 하고 허망한 말을 늘어놓은 후에 설법을 했다고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경지는 달통한 사람들끼리 만나 문자를 넘어선 경지를 서로 알아보아서 마음과 마음이 저절로 전해지는 이심전심의 신묘한 뜻이다. 그렇기에 오늘 나는 말을 안 하는 ‘진정한 설법’을 할 수는 없고, 오늘 재 올리는 자들도 또한 들음이 없는 ‘진정한 들음’을 들을 수는 없으리라. 반드시 어언삼매語言三昧31)를 빌린 다음에라야 비로소 설법도 있게 되고 설법을 듣는 일도 있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능엄경』에서는 “이 진실한 부처님 가르침의 체는 청정하게 소리를 듣는 데에 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로 하는 것은 만에 하나만큼도 부처님의 설법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 둔다.
지금 이 『법화경』에는 우리 불세존께서 문수보살과 미륵보살 등의 여러 대보살과 성문제자인 수보리와 사리불 등에게 사람마다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일승묘법一乘妙法32)을 설법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오늘 이 영가가

010_0273_b_01L之睡夢歸坐富貴之本家還會麽
010_0273_b_02L人欲識諸佛境界當淨其意如虛空
010_0273_b_03L離妄想及諸取令心所向皆無碍

010_0273_b_04L

010_0273_b_05L

010_0273_b_06L
大道無形相自心等虛空眞法本如
010_0273_b_07L肯落說聞中昔須菩提尊者岩中
010_0273_b_08L宴坐天帝釋空中散花尊者曰散花
010_0273_b_09L者誰也帝釋曰我帝釋也見尊者善
010_0273_b_10L說般若散花賛歎也尊者曰我本無
010_0273_b_11L何謂善說般若帝釋曰尊者無說
010_0273_b_12L無說眞說我亦無聞無聞眞聞故云
010_0273_b_13L善說般若然則今日會主無說然後
010_0273_b_14L方爲眞說今日齋者無聞然後方爲
010_0273_b_15L眞聞何必鼓驢唇而發凾關假鷄之聲
010_0273_b_16L喃喃忉忉狂談妄說然後方爲說法也
010_0273_b_17L然此乃達者相逢文外相見以心傳心
010_0273_b_18L之妙旨也今日山僧不能以無說爲眞
010_0273_b_19L今日齋者亦不能以無聞爲眞聞
010_0273_b_20L必假語言三昧然後方可有說有聞也
010_0273_b_21L故楞嚴經云此方眞敎體淸淨在音聞
010_0273_b_22L然有一說我之有說萬不及於佛
010_0273_b_23L今法華經中吾佛世尊與文殊彌
010_0273_b_24L勒諸大菩薩及聲聞弟子須菩提舍利弗
010_0273_b_25L說人人本具之一乘妙法則今日靈

010_0273_c_01L본래 스스로 수용하고 있는 일상적인 일이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 모인 대중들이 다 함께 입을 모아 『법화경』 한 권을 읽는다면, 그 속의 문장이 곧 세존께서 얼굴을 가릴 만큼 긴 혀로 연설하신 것과 똑같은 것이 된다. 지금 이 산승이 떠들어 대는 쓸데없는 말(野干說)33)을 어찌 경전의 말씀과 비교하여 이러니저러니 논할 수 있겠는가. 오늘 이 영가는 살아생전에는 육근六根과 육진六塵에 얽매여 있었기에, 비록 신묘한 불법을 들었다 하더라도 듣지 않은 것과 같았을 것이며, 비록 불신佛身을 보았다 하더라도 마치 보지 못한 것과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대四大가 각각 분리되어서 육근과 육진을 멀리 벗어나고 오직 오로지 참된 신령한 깨달음만이 홀로 형체의 밖으로 드러나 있으므로, 모든 색色이 부처님의 법신이며 모든 소리가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대중이 『법화경』을 읽을 때에, 보통 사람의 평범한 눈으로 본다면 그저 무의미한 쓸데없는 말 같겠지만 오직 영가만은 홀로 밝게 드러난 지혜의 눈으로 볼 수 있으리니, 이렇게 본다면 어느 하나 부처님 말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한 구절 한 글자에서 일승의 묘법을 보아 깨뜨려서, 흰 소34)가 끄는 큰 수레를 몰고 바로 저 열반의 고향에 도착할 것이니, 오늘 이 재를 마련한 의미가 어찌 크다 하지 않겠는가.
이 자리에 모인 대중들은 부디 청정한 마음으로 경전을 읽도록 하고, 재 올리는 자들은 마음을 비우고서 듣고 받아들이기 바란다.
수륙법어水陸法語 【재가 끝난 뒤의 법어이다.】
사성四聖과 육범六凡35)이 한 법계에 함께 있어 자줏빛 비단 장막 속에 흩뿌려 놓은 진주와 같으니, 오늘 이 평등무차회平等無遮會36)를 여는 시주의 정성스런 마음에 어찌 동참하는 사람이 없겠는가. 오늘 이 재를 지내기에 앞서 회주會主 화상께서 이미 영가에게 자세히 설명하시어, 영가로 하여금 그 한 말씀을 듣고서 곧바로 자기가 돌아갈 길을 깨달아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 그러니 지금 재를 집행하는 이 사람(秉法)37)이 어떻게 감히 그 사이에 다른 말을 더 보탤 수가 있겠는가. 부처님 법을 알지도 못하는 자가 어찌 두렵지 않겠으며, 곁에서 보는 사람들도 역시 비웃지 않겠는가. 그러나 사람마다 각각 가지고 있는 뜻이 있는 법이라, 미친 사람의 말 가운데도 성인聖人이 배워야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이제 주위 사람들이 보고 비웃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감히 일장 연설(貝闕)을 올리겠노라.
수륙水陸이라는 것을 설명하면 이러하다. 십법계 중에서 여러 부처님과 보살과 연각과 성문, 이 네 성인은 성스럽기 때문에 청정하다.

010_0273_c_01L本自受用之家事也今大衆異口同
010_0273_c_02L共讀法華一卷則其中文句皆世
010_0273_c_03L尊覆面之所演豈與今日山僧之野干
010_0273_c_04L說同日而論其高下哉今靈駕生時爲
010_0273_c_05L六根塵所拘雖聞妙法而宛如不聞
010_0273_c_06L雖見佛身而宛如不見今則四大各離
010_0273_c_07L逈脫根塵唯有一眞靈覺獨露於形骸
010_0273_c_08L之外能知一切色是佛身一切聲是佛
010_0273_c_09L則今日大衆之讀經以凡眼觀之
010_0273_c_10L則似乎喧雜無意味而靈駕之獨露慧
010_0273_c_11L無非是佛說也必于一句一字下
010_0273_c_12L覻破一乘之妙法長御白牛之大車
010_0273_c_13L到涅槃之家鄕今日設齋豈不大哉
010_0273_c_14L願大衆澄心讀經齋者虛心聽受

010_0273_c_15L

010_0273_c_16L水陸法語齋後

010_0273_c_17L
四聖六凡一法界紫羅帳裡撒眞珠
010_0273_c_18L今平等無遮會檀信誠心豈可孤今日
010_0273_c_19L齋前會主和尙盡底掀飜令靈駕一言
010_0273_c_20L之下頓悟自己之歸路離苦得樂了也
010_0273_c_21L今者秉法何敢措語於其間哉豈不識
010_0273_c_22L法者可惧傍觀亦不笑我耶然人各有
010_0273_c_23L狂夫之言聖人澤焉今當不顧傍
010_0273_c_24L觀之哂敢呈一場敗闕水陸者十法
010_0273_c_25L界中諸佛菩薩緣覺聲聞此四聖

010_0274_a_01L그래서 물에 비유한다.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와 수라修羅와 방생傍生과 아귀餓鬼와 지옥地獄의 여섯 종류 범부는 평범하기 때문에 더럽다. 그래서 육지에 비유한다. 이 사성과 육범이 다 같이 일진법계一眞法界38) 중에 있으면서 하나하나가 다 본래 참되고 하나하나가 다 밝고 신묘하여, 어느 하나 더하거나 덜함이 없고 어느 하나 더 높고 더 낮음의 차이도 없다. 그렇기에 진주를 뿌린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오늘 재를 올리는 자들은 크게 신심을 내어 두루 공양거리를 마련하여 갖추고, 시방 법계의 모든 국토와 모든 장소에 있는 모든 성인과 범인들을 빠뜨리지 않고 두루 청하였다. 그러므로 평등무차대회平等無遮大會라고 말하는 것이다. 귀의하는 마음이 이처럼 넓고도 크니, 그 과보 또한 넓고도 클 것이다. 비단 오늘의 영가가 사성의 가피를 입어 육범의 고해를 벗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시방세계의 육도 중생들도 다 같이 이익과 복락의 은택에 젖지 않는 이가 없으리니, 이 어찌 위대하지 않은가.
그러면 사성이 강림하시고 육범이 와서 모이는 것을 무엇으로써 알 수 있겠는가. 사성과 육범은 본래 한마음이므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는 각 사찰에서 도를 인도하는 스님들이 아무 절에 사는 아무개가 돌아가신 자기 선사를 위해 재를 마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거리가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고 다들 찾아와 주었다. 그리고 여러 고을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이와 어린아이들도 아무 절에서 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경을 하려고 다들 모여 왔다. 또 그리고 사방의 걸인들도 한번 배불리 먹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곳으로 찾아왔다. 앞에서 말하기를 인도의 마음은 다른 다섯 세계의 마음과 같고, 육범의 마음이 곧 사성의 마음이라고 하였다. 대개 이 신령하고 밝게 지각하는 마음은 공간으로는 시방세계에 두루 뻗어 있고 시간으로는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제三際에 다하여, 여기에도 온전히 있고 또 저기에도 온전히 있는 것이어서 결코 분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줏빛 비단 장막 속에 흩뿌려진 진주와 같다.’고 한 말은 그 자줏빛 비단 장막의 그림자가 이 진주에도 온전히 있고 저 진주에도 온전히 있어서, 낱낱의 모든 진주가 각각 하나씩의 자줏빛 비단 장막 그림자를 다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 개의 인도가 올 때에는 나머지 아홉 세계39)도 동시에

010_0274_a_01L故淨也喩之以水天道人道修羅傍生
010_0274_a_02L餓鬼地獄此六凡凡故染也喩之以
010_0274_a_03L陸也此四聖六凡同在一眞法界中
010_0274_a_04L一一天眞一一明妙不增不減無高
010_0274_a_05L無下故云撒眞珠也今日齋者發大
010_0274_a_06L信心廣備供具十方法界塵塵刹刹
010_0274_a_07L一切聖凡無不普請故謂之平等無遮
010_0274_a_08L大會也歸依之心旣如是廣大其果
010_0274_a_09L報亦得廣大非但今日靈駕得蒙四聖
010_0274_a_10L之加被超脫六凡之苦海亦令十方世
010_0274_a_11L六道含靈無不同沾利樂豈不偉
010_0274_a_12L然四聖之降臨六凡之來會何由
010_0274_a_13L以知之以四聖六凡元是一心故可
010_0274_a_14L以知也今者各寺引導道者等聞某寺
010_0274_a_15L某人爲其亡師設齋皆不計遠近而來
010_0274_a_16L各處老翁老婆壯者幼者聞某寺有
010_0274_a_17L皆爲賞玩而來會四方乞人亦欲
010_0274_a_18L一飽而來到上來人道之心即餘五道
010_0274_a_19L之心也六凡之心即四聖之心也
010_0274_a_20L此靈明知覺之心橫徧十方竪窮三際
010_0274_a_21L全在此而全在彼不可以分也如紫羅
010_0274_a_22L帳裡撒眞珠則紫羅帳之影全在此珠
010_0274_a_23L全在彼珠一一眞珠無不各具一紫羅
010_0274_a_24L帳影也故一介人道來時餘九界同時

010_0274_b_01L함께 오는 것이니, 이는 사성과 육범의 마음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십법계가 한 폭 종이에 함께 그려져 있을 때 그 가운데 인도가 그려진 자리를 끌어당기면 나머지 아홉 가지를 그린 곳도 동시에 끌려오는 것과 같은데, 그것은 이 그림이 한 장의 종이에 함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재를 올리는 이 자리에는 사성과 육범이 모두 다 와서 공양을 받으실 것이니, 사성은 받음이 없이 받을 것이며, 육범은 기뻐하면서 받을 것이다. 이렇게 십법계가 다 감응하게 되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영가는 이 십법계의 가피를 동시에 입어서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며, 더러움을 바꾸어 청정하게 될 것이니, 마치 언약의 좌부左符40)를 찬 것과 같으리라. 또 오늘 재를 거행하는 사람도 또한 십의 칠 정도는 공덕을 함께 받았을 것이니, 그 과보가 어찌 크다 하지 않겠는가.
작법作法할 시간이 늦었으므로 이 정도로 말을 마치겠다.
불상 점안 법어佛像點眼法語
대나무 한 가지를 땅에 꽂자 여래의 궁전41)이 그 자리에서 바로 눈앞에 나타나고, 풀 한 줄기를 뽑아 들자 그대로 부처님 장륙금신丈六金身42)이 되었네.
어쩌다가 사람들의 근기가 이렇게 낮아지고 법문法門도 따라서 막혀서, 저 화주 스님이 바람 속을 헤치고 다니며 이슬 아래 잠을 자는 수고를 하게 되었을까. 동으로 서로 시주를 빌러 다니며 여러 시주들에게 권하고 청하면서 발원하여 신심을 일으키게 하여 각기 자신의 형편에 따라 물건을 보시하게 하였고, 조심스레 뛰어난 장인을 청하여 극진한 정성으로 신묘한 여래 몸의 형상을 조성하여 환하게 드러내었으니, 누군들 달려와 우러러 경례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보시를 베푼 이와 보시를 받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인연과 공덕과 과보는, 광대하기가 온 법계와 같으며 극진하기는 저 허공과도 같도다. 위대하구나, 정말 위대하구나. 무어라 찬탄을 하여도 다할 수가 없구나. 여러 대중들은 이제 알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만들어진 불상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아쉬웠다. 어째서 삼계의 이십팔천二十八天43)을 모두 가져다 불상의 머리를 만들지 않았는가. 어째서 백억의 수미산須彌山과 사대주四大洲44)를 가지고 불상의 몸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리고 맨 아래 금륜金輪45)과 수륜水輪46)의 경계까지로 불상의 발을 만들지 않았는가. 만약 그렇게 불상을 만들었다면 이 사바세계 천상천하의 모두가

010_0274_b_01L同來以同是一心故也比如十法界
010_0274_b_02L同畫於一幅紙中牽其人道之畫處
010_0274_b_03L餘九畫處同時牽來以同在一紙中故
010_0274_b_04L然則今日齋筵四聖六凡咸來受
010_0274_b_05L四聖無受而受六凡歡喜而受
010_0274_b_06L法界皆能感應則今日靈駕蒙此十法
010_0274_b_07L界之同垂加被離苦得樂轉染成淨
010_0274_b_08L如佩左符也今日齋者亦同受七分功
010_0274_b_09L其果報豈不大哉作法時晩姑置
010_0274_b_10L是事

010_0274_b_11L

010_0274_b_12L佛像點眼法語

010_0274_b_13L
揷一竹枝如來宮殿當處現前拈一
010_0274_b_14L莖草丈六金身秪遮便是奈何人根
010_0274_b_15L斯下法門隨閉勞他化主風行露宿
010_0274_b_16L東乞西化勸諸檀那發願起信隨分
010_0274_b_17L施物敬請良工極盡精妙如來身相
010_0274_b_18L煥然顯露誰不駿奔瞻仰敬禮然則
010_0274_b_19L施受諸緣功德果報廣大同法界
010_0274_b_20L竟如虛空偉哉偉哉讃嘆莫窮大衆
010_0274_b_21L還會麽以我觀之造成聖像恨其太
010_0274_b_22L何不以三界二十八天爲佛頭百億
010_0274_b_23L須彌四大洲爲佛身最下金輪水際爲
010_0274_b_24L佛足耶然則娑婆世界天上天下

010_0274_c_01L다 하나의 불상이 될 터이니, 어찌 장엄하지 않겠으며 어찌 크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화주와 시주, 별좌와 화원畵員, 그리고 온 세상의 백성들 전부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사람들이 어느 곳에 있더라도 몸을 편안히 하고 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니, 여러 부처님 몸 안에서 중생이 생각마다 성불을 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만약 어떤 사람이 나와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해 보자.
“스님의 설법은 어떻게 그렇게도 허황합니까?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사람들의 생각과는 영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한 걸음 물러나 또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섬부주南贍部洲47)로 하나의 불상을 만들고, 서구다니西瞿陀尼48)로 또 하나의 불상을 만들며, 동승신주東勝身洲49)로 다시 하나의 불상을 만들고, 북구로주北俱盧洲50)로 또다시 하나의 불상을 만든다고 합시다. 그리고 움직이는 생명으로도 각각 불상을 만들고, 우거진 숲속의 풀과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로도 다 불상을 만든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사주四洲라고 하고 무엇을 중생이라고 하며, 또 무엇을 초목총림이라고 부르겠습니까?”
그러면 또 어떤 사람이 말하리라.
“이 말도 너무 허황하여 실정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나는 바로 또 이렇게 말하리라.
“남섬부주는 도로 남섬부주에 돌려주고, 북구로주는 도로 북구로주에 돌려주며, 움직이는 모든 생명들은 도로 중생에게 돌려주고, 총림의 풀과 나무는 도로 무정물無情物51)에게로 돌려주어, 각각 자기 위치에 돌아가 모두가 전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말하리라.
“만약에 그렇다면 이 세상에는 하나의 불상도 없게 됩니다. 그건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면, 곧바로 또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불도 만들고 미타불도 만들고, 관음보살도 만들고 지장보살도 만들고, 십육나한도 만들고 시왕의 상도 만들며, 범왕제석梵王帝釋도 만들고 천룡팔부天龍八部도 만들어서, 아래위로 여러 분들을 각각 구분을 해 놓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대중들은 말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사상事相에 해당되니, 오늘날 여러 사찰에서 만들어 받들고 있는 것이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가 말하리라.
“앞의 삼도三度가 바로 법문의 대절大節인데, 대중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부득이 시시콜콜한 설명으로 대중을 위해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첫째,

010_0274_c_01L盧個一佛像豈不壯哉豈不大哉
010_0274_c_02L則今日化主施主別座畫員乃至天下
010_0274_c_03L人民在於何處安身立命可謂諸佛
010_0274_c_04L身中衆生念念成佛也若有人出來謂
010_0274_c_05L我曰師之說法何其虛遠耶大甚逕
010_0274_c_06L不近人情即當退一步更曰然則
010_0274_c_07L以南贍部洲作一佛西瞿陁尼作一佛
010_0274_c_08L東勝身洲作一佛北俱盧洲作一佛
010_0274_c_09L動含靈各各爲佛草木叢林一一爲
010_0274_c_10L然則喚甚麽爲四洲喚甚麽作衆生
010_0274_c_11L喚甚麽作草木叢林又有人曰此語亦
010_0274_c_12L迂濶即當更曰南贍部洲還他南贍
010_0274_c_13L部洲乃至北俱盧洲還他北俱盧洲
010_0274_c_14L蠢動含靈還他衆生草木叢林還他
010_0274_c_15L無情之物各還其位捴不動着則如何
010_0274_c_16L有人曰若然則世界都無一佛太不足
010_0274_c_17L即當更曰然則或成釋迦佛或成
010_0274_c_18L彌陁佛或成觀音菩薩或成地藏菩薩
010_0274_c_19L或成十六羅漢或成十王等像或成梵
010_0274_c_20L王帝釋或成天龍八部上下諸位
010_0274_c_21L有分限則如何大衆曰此正相當於事
010_0274_c_22L今諸刹承奉不出於此也余曰
010_0274_c_23L之三度乃法門大節而大衆皆不知
010_0274_c_24L余不得已拖泥帶水爲大衆注脚最初

010_0275_a_01L‘사바세계 전체가 하나의 불상이 된다.’는 말은 『능엄경』에서 이른바 ‘산하대지와 명암색공明暗色空이 하나로 둥글게 뭉쳐진 청정보각淸淨寶覺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전체 대지가 하나로 우뚝 솟은 금덩어리와 같아서 그대로 여래선如來禪이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 ‘사주四洲가 곧 불상이고 움직이는 생명체가 다 불상이 되며, 나무와 풀도 모두 불상이 된다.’는 말은 『법화경』에 이른바 ‘만법萬法이 하나하나 실상實相을 가지고 있어서 법마다 온전한 참이고 기器마다 다 금金이다.’라는 것이니, 이 또한 여래선입니다. 그리고 셋째, ‘사주는 도로 사주에 돌려주고 움직이는 생명체는 도로 생명체에 돌려주며, 초목은 도로 초목에 돌려준다.’는 말은 『법화경』에 이른바 ‘이 법은 법의 자리에 머무르며 세간상 그대로 상주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각각 완연하다는 말입니다. 그런즉 조사선祖師禪52)은 법문에 자연히 단계와 등급이 있는 것이니, 따라서 공덕과 과보도 또한 깊고 얕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이 말을 허황하고 요원하며, 혹은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으니, 이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중에 『화엄경』을 공부한 자가 나와서 말할 것이다.
“화상은 『능엄경』과 『법화경』의 한 실상 도리를 인용하여 설명하였고, 또 여래선과 조사선을 덧붙여 설명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비록 진선진미盡善盡美하지만, 그래도 화엄원교華嚴圓敎의 일다원융一多圓融과 대소무애大小無碍의 현문玄門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화엄경』에 말하기를, ‘한 터럭 끝에도 미진수의 세계가 나타나고, 하나의 작은 티끌에도 말할 수 없이 많은 여러 부처님이 나타난다. 이 세간의 국토(依) 가운데 우리의 몸(正)이 드러나고, 53) 또 그 몸 가운데 일체 세간의 국토가 드러나니, 한 분 부처님과 하나의 세계에 온 법계가 두루 다 펼쳐지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비록 단지 하나의 불상과 하나의 보살상을 만들었지만, 이미 미진수만큼의 모든 불상과 모든 보살상을 완성한 것이고, 또 미진수의 국토를 완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공덕의 넓이와 크기는 전체 법계와 같고 그 지극함은 허공과도 같을 것이니, 이 어찌 위대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내가 말하리라.
“그 말이 참으로 훌륭합니다. 다만 그 생각의 폭을 미루어 넓히지 못했을 뿐입니다. 앞에서 내가 한 말도 역시 어찌 여기에서 벗어나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나의 일과 하나의 모습인들 어떻게 이 원융한 법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만든 이 불상이 비록 작지만 또한

010_0275_a_01L娑婆世界都盧一佛身者楞嚴所謂山
010_0275_a_02L河大地明暗色空一圓融淸淨寶覺
010_0275_a_03L謂盡大地一挺金也爲如來禪次言四
010_0275_a_04L洲是佛蠢動皆佛草木皆佛者法華
010_0275_a_05L所謂萬法一一宲相法法全眞器器皆
010_0275_a_06L金也亦如來禪第三云四洲還他四
010_0275_a_07L蠢動還他蠢動草木還他草木者
010_0275_a_08L法華所謂是法住法位世間相常住
010_0275_a_09L謂山山水水各宛然也即祖師禪法門
010_0275_a_10L自有堦級則功德果報亦有深淺
010_0275_a_11L諸君以爲虛遠以爲不足豈不惜哉
010_0275_a_12L介中有華嚴學者出來道和尙引楞嚴
010_0275_a_13L法華一宲相道理又配屬如來禪祖師
010_0275_a_14L雖盡善盡美而猶不及華嚴圓敎一
010_0275_a_15L多圓融大小無碍之玄門也華嚴經云
010_0275_a_16L一毛端現微塵數世界一微塵中現不
010_0275_a_17L可說諸佛依中現正正中現依而一
010_0275_a_18L佛一刹皆周徧法界則今雖但成一佛
010_0275_a_19L一菩薩而已成微塵數諸佛諸菩薩
010_0275_a_20L成微塵數國土矣其爲功德廣大同法
010_0275_a_21L究竟如虛空豈不大哉余曰斯言
010_0275_a_22L善矣但不知推而廣之也向來余言
010_0275_a_23L豈外於是也何者豈有一事一相
010_0275_a_24L於圓融法界之中耶今之造成雖少

010_0275_b_01L크고 작음에 구애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방금 불상이 작아서 아쉽다고 한 말은, 그러한 사람의 마음에 나아가서 그 마음을 미루어 넓히고자 한 말입니다. 원컨대 여러 시주들께서는 다 이와 같이 보아주기 바랍니다.”
가사 법어袈裟法語
무명 옷감 위로 촘촘히 떠가는 바늘이, 한 땀 한 땀이 그대로 관세음이라
사나운 짐승도 공경할 마음이 절로 생기고, 원한 품은 새도 독한 마음을 풀게 되네
상품과 중품의 과보는 장엄 바다까지 나아가고, 길고 짧은 바느질 자국은 공덕의 숲을 만들었네
시주에게 보답이 있다는 것을 진실로 믿어야 하니, 가을 강물 맑고 깨끗한 그 위에 달이 와서 임했구나

대중들이여, 위의 네 구절의 게송에서 나는 가사를 만드는 공덕을 다 말했다. 그러나 이 게송 중에 밝힌 가사 공덕의 뜻과 이치를, 아는 자는 물론 알겠지만 아마 모르는 자도 있을 것이다. 여기 대략의 내용을 해설하겠다.
첫 구절은 바느질하는 장인이 바늘로 무명천을 꿰매는 광경을 말한 것이다. 한 땀 한 땀 옷깃을 꿰매어 가노라면 바느질한 모양이 마치 오솔길과 같게 되니, 그렇게 많은 바느질 자국을 내며 촘촘하게 꿰맬 때에 바느질하는 사람과 시주한 사람들은 다 함께 매번 한 땀씩 뜰 때마다 관음보살의 명호를 생각하게 된다. 한 바늘 한 바늘 꿰맬 때마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바느질을 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음보살을 생각하는 것이 몇 천 번이 될지 모를 일이다. 다만 이 공덕만 해도 또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둘째 구절은 다음과 같다. 사냥꾼이 몸에 가사를 걸치고 사자를 쏘려고 하자, 사자가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들어 사냥꾼을 죽이려고 하다가, 사냥꾼이 입고 있는 가사를 보고는 공경의 예를 갖추고 물러갔다는 말이다. 또 금시조金翅鳥가 매양 용자龍子54)를 잡아먹기에 용왕이 이 일을 부처님께 고하니, 부처님께서는 가사 한 벌을 용자에게 입히라고 하셨고, 그러자 금시조는 독한 마음을 풀고 다시는 잡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모두 다 가사의 공덕인 것이다.
셋째 구절의 상품ㆍ중품ㆍ하품의 세 가지 품品은 각자 복덕과 지혜를 장엄하는55) 광대한 과보를 말한다. 바느질할 때에 네 번을 길게 뜨고 한 번은 짧게 뜨거나 또 세 번은 길게 뜨고 한 번은 짧게 뜬다는 것 등이 다 공덕을 수풀처럼 무성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넷째 구절에서는 시주가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여러 부처님들이 오셔서 임하시게 되니, 마치 맑은 강에 달빛이 비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새나 짐승들까지도 공경하고 존중할 줄 아는데,

010_0275_b_01L大小無碍而今說恨其小者就其人情
010_0275_b_02L欲推而廣之也願諸施主咸作如是觀

010_0275_b_03L

010_0275_b_04L袈裟法語

010_0275_b_05L
綿蹊密密度金針一一針針觀世音
010_0275_b_06L獸能生恭敬意寃禽亦解毒傷心上中
010_0275_b_07L品就莊嚴海長短條成功德林爲報檀
010_0275_b_08L那須諦信秋江澄淨月來臨大衆
010_0275_b_09L來四句頌中說盡袈裟功德其中義理
010_0275_b_10L知者能知而恐有不知者今畧爲解釋
010_0275_b_11L初句工手以金針貫線條條縫袵
010_0275_b_12L形如蹊而多條密密之際工人與施主
010_0275_b_13L每於一擧針之時念觀音菩薩名號
010_0275_b_14L針皆然則自始洎終念觀音名不知
010_0275_b_15L幾千徧也只此功德亦無量第二句
010_0275_b_16L士身着袈裟1) [9] 師*子張口馳入
010_0275_b_17L欲殺獵士見其着袈裟乃敬禮而止
010_0275_b_18L又金翅鳥每捉龍子而食之龍王告佛
010_0275_b_19L佛令以袈裟一縷置之龍子身中金翅
010_0275_b_20L解其毒心不捉此皆袈裟之功德也
010_0275_b_21L三句上中下三品各自莊嚴福慧之果
010_0275_b_22L海也四長一短三長一短等皆成功
010_0275_b_23L德之如林也第四句施主心淨則諸
010_0275_b_24L佛來臨如江淸月映也禽獸亦知敬重

010_0275_c_01L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더구나 이 가사를 만든 사람은 그 공덕이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러나 이것은 형상이 있는 가사인지라 그 과보 또한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차라리 형상이 없는 가사 한 벌을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 만약 이 형상이 없는 가사를 만들려고 한다면, 시방의 허공을 옷감으로 삼고, 각각 한쪽의 허공을 가지고 끈을 삼으며, 토끼의 뿔로 가위를 만들고, 거북의 털로 재봉 선을 삼으며, 귀 없는 바늘을 가지고 손 없는 재봉사가 옷깃을 꿰맬 것이다. 그러면 눈 없는 스님이 밝음을 증명하고, 입 없는 스님이 진언을 욀 것이다. 쌀 없이 지은 밥으로 날마다 공양을 올리면서 이 형상이 없는 가사를 완성하여 형상이 없는 법신의 여래께 바친다면, 이것이야말로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이 그대로 성품에 걸맞은 크나큰 복이 된다. 이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형상이 있는 것을 떠나서 따로 형상이 없는 것이란 없다. 지금 화주와 시주와 편수片手들이 하나같이 모두들 무념無念 중에 시주를 베풀고 화주를 하고 또 가사를 만들었으니, 이 하나하나 모두가 다 형상이 없는 가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일체의 행법을 다 갖추었더라도 하나하나 다 무념無念으로 종주宗主를 삼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부디 바라건대 오늘 이 자리에 같은 인연으로 모인 여러분들은 하나하나 모두 무념으로 생각을 삼으시기를 바란다.
성일 수좌 칠재 법어性日首座七齋法語
오늘 재를 올리는 한현罕玄 스님 등은 돌아가신 은사 성일性日 스님의 영가를 위하여 칠재七齋를 마련해 놓고서, 나에게 약간의 법어를 강설하여 은사의 왕생의 길을 도와주도록 청하였다. 경전에 이런 말이 있다.
“인연이 화합하면 허망한 유有가 생겨나게 되고, 인연을 여의면 허망한 이름이 없어진다.”
허망한 유가 생겨나니 생겨나도 그것은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허망한 이름이 없어지니 없어졌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생겨남과 없어짐이 없고 또 이것과 저것의 구별도 없으니, 생겨남과 없어짐이 없으면 예로부터 지금까지 십세十世 동안 시작과 끝이 현재의 생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고,

010_0275_c_01L况於人乎况此造成者其功德不可思
010_0275_c_02L議也然此乃有相袈裟也其果報亦未
010_0275_c_03L免有漏也不如成無相袈裟一領秪遮
010_0275_c_04L無相袈裟若爲造成當以十方虛空爲
010_0275_c_05L基布各以一方虛空爲纓子以兎角爲
010_0275_c_06L剪刀以龜毛爲線穿於無孔之針
010_0275_c_07L手之工人縫袵無眼之師證明無口之
010_0275_c_08L師誦呪以無米之飯日日供養而造成
010_0275_c_09L獻于無相法身如來則其爲功德爲無
010_0275_c_10L住稱性之大福豈不大哉然離此有相
010_0275_c_11L別無無相也今者化主施主片手等
010_0275_c_12L一無念之中施之化之造之則一一領
010_0275_c_13L皆是無相袈裟也故云雖備萬行
010_0275_c_14L一一以無念爲宗今日壇中諸同緣
010_0275_c_15L一以無念爲念是所望也

010_0275_c_16L

010_0275_c_17L性日首座七齋法語

010_0275_c_18L
今日齋者罕玄等爲其亡師性一靈駕
010_0275_c_19L設辦七齋使余畧說法語以助徃生之
010_0275_c_20L經云因緣和合虛妄有生因緣別
010_0275_c_21L虛妄名滅虛妄有生生即無生
010_0275_c_22L妄名滅滅即無滅旣無生滅亦無彼
010_0275_c_23L無生滅則十世古今始終不離於當
010_0275_c_24L「師」當作「獅」{編}次同

010_0276_a_01L이것과 저것의 구별이 없으면 끝없는 찰해刹海에 나와 남이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이미 예로부터 지금까지 시작과 끝이 현재의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영가가 죽는 때가 곧 태어나는 때인 것이니, 원래 나고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서 이미 나와 남이 털끝만큼의 간격도 없다면 이 사바세계가 곧 극락세계인데, 무엇 때문에 꼭 따로 왕생정토를 구한단 말인가. 따로 왕생하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또 무엇 때문에 재를 마련해 베풀어서 영가를 천도한단 말인가. 혹시 그게 아니라면, 사해의 번뇌 파도를 멈추어 용龍을 평온히 잠들게 하고 아홉 하늘의 무명 구름이 걷히어 학이 높이 날게 하려는 것이리라.
지금 재를 올리는 이들은 지극한 정성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예를 올려서, 저 부처님 가피를 입어 영가의 번뇌 물결이 정지되고 무명의 구름이 걷히게 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되면 지혜 바다가 깨끗해지고 성천性天이 고요해져서, 영가는 삼덕三德56)을 갖춘 집에 편안히 잠들고 구품의 연대57)에 높이 오르게 될 것이다. 이 어찌 위대하지 않은가.
시중示衆-8편
동짓날 대중들에게 내리는 훈시(至節示衆)
어두운 기운이 아직 열리지 않았을 때에 본래 천지는 없었는데, 깊고 오묘한 조화가 시작되고 나서 드디어 음양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맑고 탁한 기운이 나뉘고, 높고 낮은 자리가 정해졌다. 그러나 운수가 다하면 변화하고 사물이 극도에 이르면 본래로 돌아가는 법이니, 땅도 때에 따라 기울기도 하고 하늘도 때에 따라 막히기도 하며, 음陰도 때가 되면 쇠약해지고 양陽도 때가 되면 움츠러들게 된다. 지나친 것을 다스려 가다듬되 도道에 머물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어찌하여 이치를 바꾸고 법도를 어그러뜨리는가.
오늘은 뭇 음들이 자라나 극에 이르렀다가 다시 하나의 양이 회복되는 날, 이른바 땅(地, ☷)에 우레(雷, ☳)가 내리쳐 천근天根이 꿈틀대는 때이다. 우리들이 혼미함을 따르다가 혼미함을 쌓아서 업에 얽매이는 고통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이것은 마치 모든 음이 자라나 극에 이른 것과 같다. 이제 이번 겨울 결제도 이미 반이나 지났다. 모든 고생을 다 겪어 내면 능히 광명을 돌려 비출 수 있으니, 본래면목의 한쪽이라도 엿볼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의 양이 돌아와 회복된 것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010_0276_a_01L無彼此則無邊刹海自他不隔於
010_0276_a_02L豪端旣古今始終不離於當念則靈
010_0276_a_03L駕之死時即是生時元無生死旣世
010_0276_a_04L界自他不隔於豪端則即此娑婆
010_0276_a_05L是極樂何必別求徃生淨土乎旣不別
010_0276_a_06L求徃生則又何設齋追薦乎其或未然
010_0276_a_07L四海浪停龍穩睡九天雲卷鶴飛高
010_0276_a_08L今齋者至誠盡力供佛禮佛仗彼加
010_0276_a_09L使靈駕煩惱浪停無明雲卷則智
010_0276_a_10L海澄淸性天寥廓靈駕穩睡於三德家
010_0276_a_11L高飛於九品蓮臺豈不偉哉

010_0276_a_12L

010_0276_a_13L示衆

010_0276_a_14L至節示衆

010_0276_a_15L
冥運未開本無天地玄機旣兆遂有
010_0276_a_16L陰陽由是淸濁殊分高卑定位然數
010_0276_a_17L窮則變物極斯還地有時而傾天有
010_0276_a_18L時而塞陰有時而慘陽有時而伏
010_0276_a_19L貴裁成在道豈得變理虧方今日群陰
010_0276_a_20L剝盡一陽來復所謂地逢雷處躡天根
010_0276_a_21L吾徒從迷積迷以至業繫之苦
010_0276_a_22L如群陰之剝盡今者冬制已半歷盡萬
010_0276_a_23L般辛苦能有回光返照窺得本來面目
010_0276_a_24L之一斑如一陽之來復者乎若也未然

010_0276_b_01L이 어찌 눈과 귀가 총명한 남자의 몸으로 완전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크게 골고루 베푼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시절이 다가오면 그 이치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나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니 참으로 애석하다.
원컨대 나의 도반들이여, 이제 동짓날을 맞아 더욱 감흥을 일으켜 더더욱 정진하라. 이 하나의 양이 회복됨으로 말미암아 12월(臨卦)58)이 되고 1 월(泰卦)59)이 됨을 기약할 수 있으리라. 부디 힘쓸지어다.
입춘에 대중들에게 내리는 훈시(立春示衆)
봄 절기를 맞아 아직 양陽의 기운이 넉넉하지 않아도 만 골짜기 천 산봉우리에 눈은 벌써 다 녹았고, 양기陽氣가 생겨나는 것은 남쪽 지방부터 시작이라 냇가의 버드나무에도 새 가지에 움이 돋았다. 양이 회복되는 일 신통하고도 묘한 작용이니, 음양의 운행법에 의하여 어김없이 그리되는 것이다.
대중들이여, 양기 하나가 회복되던 동짓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오늘이 또 동지로부터 59일이 다하는 날이로구나. 앞으로는 붉은 복숭아꽃이며 하얀 자두꽃, 목단과 작약이 앞다투어 꽃을 피울 것인데, 다만 여러분들의 마음의 꽃은 언제나 피어날지 알 수가 없구나. 만약 피어나지 못할 것 같다면, 이 산승이 대략의 방편을 마련하여 속히 피어나도록 도와주겠다.
어떻게 하느냐. 산승은 일찍이 제갈공명이 조조曹操와 적벽赤壁에서 싸울 때에 주공근周公瑾60)이 불로 공격하고자 동남풍이 일어나기를 비는 제법祭法을 빌리는 것을 보았었는데, 지금도 한번 제사를 올리는 일을 면할 수는 없겠다.

上天皇皇             위에 계시는 황황한 하늘이시여
下土茫茫             아래에 계시는 망망한 땅이시여
即有朝鮮國云云 某寺某乙 一心虔請  이제 조선국 아무 절 아무개는 한마음으로 정성을 모아
司風使者 主風神王         바람을 맡은 사자와 바람을 주관하는 신왕을 청하옵니다
盤中有饌 壺中有漿         여기 소반에는 음식이 담겨 있고 병에는 차가 담겨 있으니
惟願尊神 俯歆一觴         존귀하신 신께서는 부디 굽어살피시어 한잔 흠향하시고
號令東風 火速發揚         동풍을 호령하여 따뜻한 양의 화기를 속히 발하여 주시어
令我大衆心花芬芳         우리 대중의 마음을 향기롭게 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대중들이여, 이미 바람을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 올려 동풍을 빨리 불게 해 달라고 기원을 하였으니, 만약 마음의 꽃이 아직도 밝게 피어나지 않았다면, 이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니라. 부디 더욱 삼가고 힘쓸지어다.

010_0276_b_01L則豈可謂耳目聰明男子身洪均賦與
010_0276_b_02L不全貧者乎時節若至其理自彰
010_0276_b_03L敢望也可不惜哉願我同袍因時起
010_0276_b_04L更加精進由此一陽之復爲臨爲
010_0276_b_05L庶可期也勉旃哉

010_0276_b_06L立春示衆

010_0276_b_07L
東君節令不相饒萬壑千峰雪盡消
010_0276_b_08L氣發生南地始溪邊楊柳又抽條爲復
010_0276_b_09L是神通妙用爲復是法爾如然大衆
010_0276_b_10L陽來復如昨日五九盡時又今朝將看
010_0276_b_11L桃紅與李白 𦱒䒟芍藥花爭嬌第未知
010_0276_b_12L諸人心花幾時發明若也未得發明
010_0276_b_13L山僧略設方便令得速發何者山僧
010_0276_b_14L曾見諸葛公與曺操鏖兵赤壁時因周
010_0276_b_15L公瑾欲用火攻爲渠借東南風之祭法
010_0276_b_16L今者不免舉行一上上天皇皇下土茫
010_0276_b_17L即有朝鮮國云云某寺某乙一心
010_0276_b_18L虔請司風使者主風神王盤中有饌
010_0276_b_19L壺中有漿惟願尊神俯歆一觴號令
010_0276_b_20L東風火速發揚令我大衆心花芬芳
010_0276_b_21L大衆今者旣祭主風神願令東風早吹
010_0276_b_22L若也心花尙未發明非吾所知愼之
010_0276_b_23L勉之

010_0276_c_01L
섣달 그믐밤에 대중들에게 내리는 훈시(除夜示衆)
폭죽은 초하룻날 전에 터지고, 매화는 섣달 후에 가지마다 피어난다. 금년 오늘 밤이 다하면 내년 내일이 오는 것, 이 또한 시절의 변천이며 만고 세월 동안 변치 않는 법칙이니, 따로 생각하고 헤아릴 필요도 없다. 다만 북선北禪61)은 제야에 노지백우露地白牛62)를 삶아 온갖 맛깔스런 진수珍羞를 다 구족하였고, 고봉高峯63)은 제야에 고개에 걸린 구름을 가늘게 저미고 연못에 비친 달을 손으로 치면서 무無를 가지고 유有를 만들어 온통 구멍투성이에 상처뿐이었으니, 한쪽은 극도로 부유하고 한쪽은 극도로 가난한 것임을 알겠는가. 하지만 오늘 나는 이 두 가지를 다 허락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우리 불세존께서는 살생을 금하시고 육식을 금하셨으니, 소를 삶을 수도 없고 고기를 먹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 선가의 조사께서는 허깨비 따위를 허락하지 않았고 망언도 또한 허락하지 않았으니, 구름을 가늘게 저미고 달을 치는 이 일은 만약 실상(實)이라고 한다면 도깨비나 허깨비에 가깝고 허상이라면 바로 거짓말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두 가지 다 채택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떡과 밥, 그리고 차와 과일을 수북하게 담고 고사리와 산채들을 삶아서 앞에 쫙 펼쳐 놓고, 사람마다 배불리 먹게 하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굶주림과 목마름을 면하게 하여 줄 것이다. 어디 말해 보아라. 이렇게 섣달 그믐밤을 보내는 방법은 두 분 고덕의 의식과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만약 점검해 볼 것 같으면, 이것은 두 분 고덕의 의식을 취한 것도 아니고, 또 두 고덕의 의식을 저버린 것도 아니다. 내가 이미 입이 닳도록 말을 했으니 옆에 있는 사람들이여, 내 눈썹이 있는지 없는지 보아라.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훈시(示念佛人)
옛 성인이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한 것은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입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 그 마음이 부처님을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입으로 부처님을 외는 것이 반연하는 마음을 도와서 정인正因을 생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염불하는 무리들은 다 그저 입으로만 외울 뿐이다. 입으로 외울 때에도 마음속에서는 천 가지 생각 만 가지 생각이 치열하게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니, 어떤 사람은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재물과 여색을 생각하며, 어떨 때는 어디에 살 것인가 거처를 생각하고 또 어떨 때는 먹고 입는 것을 생각하며,

010_0276_c_01L除夜示衆

010_0276_c_02L
竹爆春先節梅開臘後枝今歲今宵盡
010_0276_c_03L明年明日來亦是時節遷變亦是萬古
010_0276_c_04L常規不必商量但北禪分歲烹露地
010_0276_c_05L白牛百味珍羞悉皆具足高峯分歲
010_0276_c_06L細切嶺雲薄批潭月將無作有百孔
010_0276_c_07L千瘡還會麽一是富到底一是貧到
010_0276_c_08L今日山僧二俱不落何者吾佛世
010_0276_c_09L禁殺禁肉牛不可烹肉不可食
010_0276_c_10L家祖師不許幻怪不許妄言切雲批
010_0276_c_11L若宲則近於幻怪若虛則乃是妄言
010_0276_c_12L所以山僧俱不取也然則如之何而可
010_0276_c_13L餠飰茶果鬪鬪飣飣煮蕨燷蔬雜然
010_0276_c_14L前陳人人盈膓充腹箇箇免飢慰渴
010_0276_c_15L且道與二古德同耶別耶若能點撿
010_0276_c_16L不落二古德不離二古德山僧已滿口
010_0276_c_17L道了傍人看我眉毛在也無

010_0276_c_18L

010_0276_c_19L示念佛人

010_0276_c_20L
先聖勸人念佛者以心念之口則呼名
010_0276_c_21L令其心不忘也則口誦助緣心念正因
010_0276_c_22L今之念佛者類皆口誦而已當口
010_0276_c_23L誦之時心則千思萬想熾然起滅
010_0276_c_24L念名利或念財色或念居處或念衣

010_0277_a_01L또는 사소한 은혜를 갚을 생각을 하기도 하고 더러는 털끝만 한 원한을 갚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옆의 사람이 보기에는 마치 염불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그저 어지럽게 잡념만 일으키면서 염불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정토에 왕생한다는 것은 애당초 생각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현세의 선善에 대한 화보華報64)조차도 기대할 수 없다. 대개 부처님을 낭송하던 입은 죽은 뒤 불 속에 들어가면 타서 재가 되고 말지만, 부처님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죽은 뒤에도 초연히 홀로 드러나서 생사의 고뇌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이미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부처님의 나라로 향해 가게 될 것은 단연코 의심할 것이 없거니와, 현세에서도 마음을 밝혀 견성할 것을 거의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참선하는 사람은 다만 화두만을 견고하게 응결하여 털끝만큼의 잡념도 없으므로 그 마음이 마치 장벽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한 기미65) 한 경지에서 홀연히 통하게 된다. 염불하는 사람은 입마다 마음마다 오직 미타만을 생각하고 낭송하여 털끝만큼도 다른 생각이 없으므로 그 마음이 또한 장벽과 같다. 이처럼 30년이나 20년 세월을 하루 한 시도 이렇게 하지 않는 때가 없기 때문에 문득 한 기미 한 경지를 깨달아 그 마음이 그대로 정토가 되고 그 성품 그대로가 미타가 되어 당장 눈앞에 환하게 나타나며 최후의 찰나에는 서방의 여러 성인들이 금수레를 타고 와서 영접할 것이다. 이것이 본분 안의 일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바라건대 모든 염불하는 사람과 참선하는 사람들은 부처님 명호를 낭송할 때에 잡념이 어지럽게 일어날 것 같으면 힘써 싸워서 잡념을 없애고, 그 어지러운 생각을 돌이켜 깨끗한 생각으로 회복시키도록 하여라. 처음에는 잡념과 정념이 서로 다투겠지만 그렇게 오래오래 순수하게 익히노라면, 잡념은 적어지고 정념은 많아져서 순수하고 깨끗하여 전혀 섞임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부디 힘쓰고 또 힘쓸지어다.
섣달 그믐밤에 대중들에게 내리는 훈시(除夜示衆)
오늘은 묵은해의 끝이고, 내일은 새해의 시작이다. 묵은해의 끝에 있으나 묵은해가 떠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새해의 시작에 있어도

010_0277_a_01L或念絲恩而欲酬或念髮怨而欲報
010_0277_a_02L使傍人觀之似乎念佛而自己則只是
010_0277_a_03L雜念紛亂未得一念念佛也徃生淨土
010_0277_a_04L初不假論而現今華報之善不可得也
010_0277_a_05L盖誦佛之口死後入火成灰而已念佛
010_0277_a_06L之心死後超然獨露不隨生死旣是
010_0277_a_07L念佛之心故即向佛國斷然無疑
010_0277_a_08L現在明心見性亦可庶幾也何者
010_0277_a_09L禪之人但堅凝話頭無一毫雜念
010_0277_a_10L如墻壁故一機一境上忽然透得
010_0277_a_11L佛之人口口心心惟是彌陁無一毫
010_0277_a_12L雜想亦心如墻壁如是三十年二十年
010_0277_a_13L無一日無一時不如是故忽於一
010_0277_a_14L機一境上自心淨土自性彌陁朗然
010_0277_a_15L現前最後刹那西方諸聖金轎來迎
010_0277_a_16L自是分內也豈不休哉願諸念佛禪
010_0277_a_17L當於口誦之時雜念紛起力戰勦除
010_0277_a_18L回雜念歸淨念初則雜淨相爭久久純
010_0277_a_19L雜小淨多以至於純淨無雜勉之
010_0277_a_20L勉之

010_0277_a_21L

010_0277_a_22L除夜示衆

010_0277_a_23L
今日正是舊年尾明日正是新年頭
010_0277_a_24L年尾下不見舊年之去新年頭上

010_0277_b_01L새해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다 ‘묵은해는 오늘 밤에 지나가고 내일 새벽에는 새해가 온다.’고 말하면서, 집집마다 도부桃符66)를 새로 바꿔 붙이고, 또 집집마다 폭죽을 터뜨리며 묵은해를 보낸다.
나는 여기서 북을 치고 종을 치며 향불을 피우고 촛불을 밝히고서, 위로는 삼보를 공양하고 아래로는 육도六道에 보시를 베풀어 묵은 재앙을 다 소멸하고 새로운 복을 맞게 해 달라고 빈다. 이것은 평상시의 본분의 일이니 특별히 기이한 점이라고는 없다. 그러므로 옛날 어떤 산승은 고덕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한 해가 다 가는 제야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고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동쪽 마을 왕 노인이 제야에 돈을 태웠단다.”
이것도 역시 당시에 마침 일어났던 평범한 일을 들어서 대답한 것이다. 지금 나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부연해서 게송을 읊어 주겠다.

東村王老夜燒錢           동쪽 마을 왕 노인이 제야에 돈을 불에 태운 것이
那管人間歲月迁           인간 세상 세월의 변천과 무슨 상관이 있나
佛法不存玄妙解           불법에는 제야에 어떻게 했다는 현묘한 해석이 전하지 않으니
拈來只在口唇邊           다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말들뿐이란다
대중들에게 내리는 훈시(示衆)
옛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다른 사람이 머물던 자리에 나는 머물지 않을 것이며, 다른 사람이 갔던 곳에는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남과 함께 모여 살기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아마도 승려와 속인을 분명하게 구별하려고 그런 것이라.”
그러나 이 늙은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머물던 곳에 나도 머물고 다른 사람이 갔던 곳에 나도 또한 갈 것이다. 언뜻 잠깐 기뻐하고 잠깐 성내면서 이치를 이해하지 못하니, 남주南洲 67)에는 한밤중에도 해가 밝구나.”
어디 말해 보아라. 옛사람과 같은가, 다른가.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또(又)
물에 들어가면 교룡을 피하지 않는 것이 어부의 용기이고, 산에 가서 범과 표범을 피하지 않는 것이 사냥꾼의 용기이며, 시퍼런 칼날이 눈앞에 닥쳐도 죽음 보기를 산 것처럼 하는 것은 장군의 용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납승의 용기인가. 담이 큰 사람은 수레 머리에 부딪치며 지나가고, 담이 작은 사람은 경유할 곳을 분명하게 알리고 가는 것이다.

010_0277_b_01L見新年之來然而世人皆云舊年今夜
010_0277_b_02L新年明晨來戶戶桃符換新家家
010_0277_b_03L爆竹送舊我這裡伐皷撞鍾焚香點燭
010_0277_b_04L上供三寶下施六道消盡舊灾迎來
010_0277_b_05L新福此乃平常本分事也別無奇特道
010_0277_b_06L所以古者有僧問古德歲盡年窮時
010_0277_b_07L如何德云東村王老夜燒錢此亦擧
010_0277_b_08L當時適有之平常事以答也今者老僧
010_0277_b_09L特爲諸人敷衍頌出也東村王老夜燒
010_0277_b_10L那管人間歲月迁佛法不存玄妙解
010_0277_b_11L拈來只在口唇邊

010_0277_b_12L

010_0277_b_13L示衆

010_0277_b_14L
古人道他人住處我不住他人行處我
010_0277_b_15L不行不是與人難共聚大都緇素要分
010_0277_b_16L老漢即不然他人住處我亦住
010_0277_b_17L人行處我亦行瞥喜瞥嗔無理會南洲
010_0277_b_18L夜半日頭明且道與古人同別試道看

010_0277_b_19L

010_0277_b_20L

010_0277_b_21L
入水不避蛟龍漁父之勇也山行不避
010_0277_b_22L虎豹獵士之勇也白刃當前視死若
010_0277_b_23L將運之勇也如何是衲僧之勇也
010_0277_b_24L大膽駕頭衝突過小膽哀明告所由

010_0277_c_01L
참선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훈시(示㕘禪人)
아, 선림禪林에 가을은 저물어 가는데 사람의 근기는 이렇게 낮아서, 곳곳 총림에는 참선하는 사람이 매우 적구나. 설사 어쩌다 있다 하더라도 길고 유구한 장원심長遠心도, 굳게 흔들리지 않는 결정지決定志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유유자적 한가하게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며 하루 참선하면 또 열흘은 쉬곤 한다. 이렇게 하여서야 어떻게 조그마한 힘을 얻을 곳이라도 있겠는가.
옛사람은 말하였다.
“대사大事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때에 마치 부모를 잃은 것같이 슬프더니, 대사가 이미 밝혀진 때에도 또한 부모를 잃은 것같이 슬프구나.”
하루 온종일 전전긍긍하면서, 마치 깊은 못 앞에 서 있는 듯 엷은 얼음 위를 밟고 서 있는 듯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천湧泉은 40년 만에 한 조각이 되는 경지를 이루었고, 또 조주趙州는 30년 만에 마음 씀씀이가 번잡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그만큼 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그 옛 성인들의 몸가짐을 본받아야 할 것이니, 절대로 거칠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지혜의 칼을 잡아 들고 일체의 연緣을 모두 잘라 단절하면, 온갖 꽃이 만발한 숲속을 지나더라도 이파리 하나에도 젖지 않을 것이니, 그래야 바야흐로 일부분이나마 상응하는 곳이 있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진흙 소가 입김을 토해 내는 것을 알아야만 아름다운 것이고, 마른 나무에 꽃이 피는 소식을 알아야만 비로소 기이하다 하리라.
어디 말해 보아라. 대도大道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때에는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프겠지만, 대도가 이미 밝혀진 다음에는 무엇 때문에 부모를 잃은 것같이 슬프다는 것인가. 앞으로 갈 길이 더욱 멀기만 하구나.
편지(書)-12편
용암 노인께 올리는 편지(上龍巖老人)
중춘仲春68)에 한번 뵈었을 때에는 돌아올 길이 바빠서, 조용히 모시고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였습니다. 돌아와서 생각하니 아쉽고 그리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삼가 안부를 여쭙겠습니다. 산속의 절 생활은 두루 평안하시며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저는 몸에 체증과 냉증이 수시로 발작하여 잘 먹고 마시지도 못합니다. 기력이 허약해서 학인을 맞아 가르치는 일에도 걱정과 괴로움이 없지 않으니, 그 민망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10여 년 동안 남북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얻은 것이라곤 그저

010_0277_c_01L示叅禪人

010_0277_c_02L
嗚乎禪林秋晩人根斯下處處叢林
010_0277_c_03L叅禪之人甚小雖或有之不辦長遠心
010_0277_c_04L決定志悠悠泛泛一暴十寒如是而
010_0277_c_05L豈有些子得力處乎古人云大事未明
010_0277_c_06L如喪考妣大事已明如喪考妣二六
010_0277_c_07L時中戰戰兢兢如臨深淵如履薄氷
010_0277_c_08L所以湧泉四十年方成一片趙州三十
010_0277_c_09L不雜用心豈似如今容易行者當
010_0277_c_10L須體容不可草草提起智慧刀萬緣
010_0277_c_11L俱勦絶百花林裡過一葉不沾身
010_0277_c_12L可有小分相應處也須知泥牛吐霧方
010_0277_c_13L爲美枯木生花始是奇且道大道未
010_0277_c_14L如喪考妣大道已明爲甚麽如喪
010_0277_c_15L考妣前頭路更賖

010_0277_c_16L

010_0277_c_17L1)

010_0277_c_18L上龍巖老人

010_0277_c_19L
仲春一拜以歸期之忙未能從容陪話
010_0277_c_20L歸來悵仰不已伏惟淸和大法候神扶
010_0277_c_21L萬福某身中滯冷乘時發作不善食
010_0277_c_22L氣力尫弱而提接學人不無苦惱
010_0277_c_23L伏悶何喩十餘年奔南走北所得只是
010_0277_c_24L「書」一字編者補入

010_0278_a_01L문자뿐이니, 저 심지법문心地法門에는 털끝만치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끝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이제 훌훌 다 벗어 버리고 고요한 곳을 찾아 깊이 들어가, 한편으로 몸을 다스리고 추스르며 또 한편으로는 조용히 참구하여서, 헛되이 살다 헛되게 죽는 신세를 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대자大慈께서는 어떻게 충고를 해 주시겠습니까. 아낌없는 채찍질을 해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다 갖추어 쓰지 못하고 이만 줄입니다. [1]
기 장형께 보내는 편지(與猉丈兄)
깊은 산속과 바다 끝 후미진 땅으로 서로 떨어져 살다 보니 주고받는 소식도 따라서 자연히 드물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그리며 보고 싶던 생각이 가을 들어 더욱 간절하던 차에, 너무나 뜻밖에도 바닷가에 사는 친구가 편지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편지를 읽고서 새로 옮겨 가 사시는 곳에서 도를 닦으며 지내시는 생활이 편안하고 좋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기쁘고 위로되는 마음을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예전에 형께서 보다굴普多窟에 계실 때에는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고 형께서 이끌어 교화하심에도 막힘이 없어서 꼭 영남 하늘을 끌어당겨 날아오르려는 것 같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슬픕니다. 우리 선사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누구 한 사람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알아서 살아갈 방도를 세워야 할 사람, 오직 형과 이 아우 두 사람뿐인지라, 그 텅 빈 듯 쓸쓸한 마음 가히 알 만합니다. 그리고 서로 깊이 이해하는 것 또한 우리 두 사람뿐인지라, 서로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아마도 형이나 저나 피차일반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몸과 걸음이 별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 가지에서 난 형제의 정을 나누지 못하고 있으니,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어찌 사는 고을이 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가만히 사람들 마음과 세상의 도리를 살펴보노라면, 세월이 바뀌어 가면 갈수록 본래 갖추고 있는 덕성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면 실로 타인의 모범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더구나 저처럼 손이 굼뜨고 느려서 무슨 일에나 마냥 서툴기만 한 이런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또 사람을 가깝게 접하는 스승 자리에 있는 사람을 볼 것 같으면,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대중의 근기에 맞게 여러 가지 선교방편을 쓸 줄 알고, 또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정성스럽게 돌보아 주는 친절한 태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아우는 하늘에서 받은 본래의 성품이 임시방편이나 좋은 기교 따위라곤 없으며 또 사람에게도 덕으로 대하지를 못하니, 어느 누군들 기꺼이 저를 따라다니려고 하겠습니까. 더구나 배우러 오는 자들 중에도 함께 말을 나눌 만한 사람이 드물어서, 어쩌다 혹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그저 스스로 그럴듯하게 겉치레만 할 줄 알지 도무지 불도의 무리에 젖어 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설사 도심道心에 깊이 젖어 든 사람일지라도 대개 다 거기서 거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대하는 데에 전혀 흥이 나지 않고, 흥이 나지 않으므로

010_0278_a_01L文字而已其於心地法門毫無入頭處
010_0278_a_02L未知究竟將何如也以此擺脫深入
010_0278_a_03L靜處一以調身一以靜究庶免虛生
010_0278_a_04L浪死之歸未知大慈何以䂓箴也
010_0278_a_05L望不恡下錍也不備

010_0278_a_06L

010_0278_a_07L與猉丈兄

010_0278_a_08L
山深海僻音聞隨踈悠悠瞻想逢秋
010_0278_a_09L益切料外海友奉牘來訪披審新居
010_0278_a_10L道味佳安喜慰不可言曾聞兄住普多
010_0278_a_11L學者多會攝化無障引領南天
010_0278_a_12L欲飛耳先師長徃無人接引而自
010_0278_a_13L作活計者惟兄與弟則其寥寥可知
010_0278_a_14L而相知之深又惟吾兩人則不欲相離
010_0278_a_15L之心想彼此一般而形迹星離未遂
010_0278_a_16L連枝之會靜言思之豈不於邑窃觀
010_0278_a_17L人心世道日更月變自非道德崇重者
010_0278_a_18L宲難爲人模範況我踈慵手生凡事耶
010_0278_a_19L且觀接人之師家於事有方便善巧
010_0278_a_20L人有慇懃眷戀之態所以聚人多矣
010_0278_a_21L弟天賦素無權巧亦無德於人其誰肯
010_0278_a_22L從我遊也且學者可與語者鮮矣脫或
010_0278_a_23L有之自以華鱗不肯淹於虀瓮之中
010_0278_a_24L其入虀瓮來者其類可知所以提接無

010_0278_b_01L게을러지게 됩니다. 제가 게을리하니까 상대편에서도 또 딴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편에서 설사 다른 마음을 갖는다 하더라도 저도 또한 별 유감이 없습니다.
저는 늘 남의 문에 붙어사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만, 그나마 따를 만한 사람이라고는 스승으로는 설파 노스님이 계시고 벗으로는 우리 사형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은사 스님 병든 노인네를 버려두고 멀리 떠날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그저 깊은 산 허물어진 암자에 살며 몸가짐을 삼가고 정결하게 하는 것만이 그나마 문정門庭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방법일 것이니, 그렇게 하여 선사의 은혜에 만에 하나라도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불가의 도를 전수하는 데 이르러서는 이미 설파 스님의 큰 교화가 있으셨고, 그 외에도 각각 능력 되는 대로 교화를 펼친 사람도 몇몇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형께서도 또 재주가 고상하고 바탕이 신실하니, 반드시 도처에 그 이름이 쟁쟁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저같이 덕이 박한 사람이야 이름을 날리지 못한다 한들 무어 한스러울 것이 있겠습니까.
슬픕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나 자신을 따르게 하고자 하나 그럴 만한 덕이 없고, 그렇다고 제가 남을 따르자니 은사 스님에게 얽매이게 됩니다. 지금 이 아우는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으니, 저희 노스님이 100세가 넘은 후에나 제 마음 내키는 대로 살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 사형이 아니 계신다면 이 구구한 생각을 누구에게 말하겠습니까.
붓이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다 보니 그만 말이 길어지는 것도 몰랐습니다. 우리 사형께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완월에게 보내는 답장(答玩月)
통도사通度寺에서 이별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사는 땅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소식 한 자 서로 전하지 못했으나 언제나 보고 싶은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뜻밖에도 스님의 편지가 이 바닷가 산속으로 날아오니, 아직 펴 보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 미간이 훤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편지를 보고 소임을 맡아 남쪽으로 오셔서 객지에서의 근황이 좋으시다는 것을 알았으니, 얼마나 위로가 되고 기쁜지 모릅니다. 함월涵月 노화상께서는 지금 어느 산에 계시는지, 또 건강은 좋으신지, 그리운 마음 자못 간절합니다.
이 아우는 참으로 외람되게도 불가에 몸을 담고 염불을 하고 있으니, 마치 메뚜기가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69)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또 두렵습니다.
선사의 비석을 세우는 일은 우리 문중에서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커다란 불사입니다. 그러나 같은 문중의 여러 사형과 사제들이 동쪽 서쪽 여기저기로 흩어져 있어 한자리에 모여 의논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010_0278_b_01L無興則倦倦則彼亦携貳彼雖携貳
010_0278_b_02L我亦無憾玆以每欲擺脫傍人門戶
010_0278_b_03L可以從遊者於師有雪老於友有吾兄
010_0278_b_04L而恩老病老不可廢遠奈何但當塊處
010_0278_b_05L窮山謹潔持身毋使帶累門庭則庶
010_0278_b_06L報先師萬一之恩也至於斯道之傳授
010_0278_b_07L已有雪老之王化其餘隨方開化者
010_0278_b_08L若干而兄又才高質宲想必到處不寂
010_0278_b_09L寞也如弟薄德雖不能助揚何恨
010_0278_b_10L欲人從己則無德以致欲己從人則拘
010_0278_b_11L於恩老弟之進退宲爲惟谷然則待
010_0278_b_12L我老百歲後從吾心所好也世無吾兄
010_0278_b_13L區區此懷向誰道耶所以信筆覼縷
010_0278_b_14L不覺其言之長惟兄諒之

010_0278_b_15L

010_0278_b_16L答玩月

010_0278_b_17L
通度一別已逾廿年而地分南北
010_0278_b_18L息契濶尋常瞻注如箭注弩料外華
010_0278_b_19L飛落海山未及開緘黃浮眉間
010_0278_b_20L審帶任南來客況淸佳慰喜何等
010_0278_b_21L月老和尙今在何山氣體萬安否
010_0278_b_22L慕殊切弟濫吹空門蝗蠧桂玉可愧
010_0278_b_23L可怖先師樹碑之事門庭未了之一大
010_0278_b_24L而諸同門散在東西未得一場會

010_0278_c_01L이렇게 오래 시간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행히 여러 동문 원로들이 원院의 제사에 참여하는 모임이 있어서 이 일을 의논하게 되었으니, 말하자면 적당한 때가 도래한 모양입니다. 다만 이 산에다 선사의 비석을 세우라는 말씀은 아무래도 선사의 고상한 뜻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아닐까 염려됩니다. 이 절은 금년 봄에 화재를 만나 요사채 두 채가 다 타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복구를 하느라 1년을 꼬박 고생을 했는데, 또 이 비석 세우는 일을 한다고 하면 대중들이 반드시 눈살을 찌푸릴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어려움입니다. 또 이곳은 올해 농사가 잘못되어 모든 물가가 다 비쌉니다. 그래서 얼마 안 되는 소소한 재물로 값비싼 물건을 바꾸어 사 오려면 반드시 뜻하지 않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어려움입니다. 또 이곳에는 비석으로 쓸 만한 곧고 견고한 돌이 없습니다. 전에 이 절의 사적비를 바닷가에서 주워 온 돌로 깎아 세웠더니 오래지 않아 다 벗겨지고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막중한 선사의 행업行業을 비석으로 세워 기리려는데 쉽게 부서지는 약한 돌로 올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어려움입니다. 듣자 하니 금강산 백화암白華庵 옆에는 역대 조사들의 비탑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산은 나라 안에서도 유명한 산이며 팔도에서 찾아오는 관광지입니다. 산의 이름부터 벌써 금강金剛인 것을 보면 분명 비석 돌이 많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곳은 금년 농사도 풍년이 들었으니, 이 세 가지 어려움을 한꺼번에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다시 의논하여 그 장소를 금강산으로 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혹 반드시 이 산에 세워야 하고 절대 다른 산에 세워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잠시 보류했다가 풍년을 기다려 그때 세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경성의 한강 변에서 다듬어 놓은 돌을 많이 거래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돌을 사서 배에 싣고 돌아와 비석을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스님의 고견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더 잘 생각하셔서 돌아오는 편에 일러 주십시오.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자리에 모여 의논을 하지 못하니, 한탄스럽고 한탄스럽습니다. 다 쓰지 못하고 이만 줄입니다.
또(又)
인편이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보내 주신 편지를 받고서 쌀쌀한 가을에 강경하시는 스님의 건강이 좋으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으니, 우러르는 마음에 지극히 위안이 됩니다.
저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
지난번 편지에 드린 말씀은 모두가 다

010_0278_c_01L致此遷就之久今幸諸門老因院
010_0278_c_02L中叅祀之會論及此事云似時緣到來
010_0278_c_03L但設此山之示恐未副高義也
010_0278_c_04L寺春逢火灾兩寮成灰趂時修復
010_0278_c_05L年喫苦又設此役則衆必攅眉此一
010_0278_c_06L難也此處年事不有凡百價貴以收
010_0278_c_07L合零星之財貿用價貴之物必多苟艱
010_0278_c_08L此二難也又此處無貞堅之石前者此
010_0278_c_09L寺事蹟刻之海石非久剝落則莫重
010_0278_c_10L先師之行業不可登之易壞之石此三
010_0278_c_11L難也伏聞金剛山白華庵畔有列祖碑
010_0278_c_12L而彼乃國中名山八道觀光之處
010_0278_c_13L彼山旣云金剛則必多貞珉年事又豊
010_0278_c_14L可免此三難也望須更議彼山如何
010_0278_c_15L或必於此而不於他則姑留之以待年
010_0278_c_16L豊而聞京城漢江邊多有鍊置之石
010_0278_c_17L通買賣云買其石載船而來以立爲良
010_0278_c_18L計也未知高意如何更加覃思以示
010_0278_c_19L回便相去云遠未能合席面議可歎
010_0278_c_20L可歎不宣

010_0278_c_21L

010_0278_c_22L

010_0278_c_23L
便回再承下書以審秋凉講候萬相
010_0278_c_24L仰慰之至弟姑依昨樣耳前書所告

010_0279_a_01L실제 그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온 편지를 보니, 스님께서는 아마도 그대로 믿지 못하시는 듯하여 아쉬울 뿐입니다.
이 절에 비석을 세우기로 이미 확실하게 결정을 하였다면 일은 마땅히 내년 봄에 시작해야 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문중에서 돈을 모으기가 매우 바쁠 것입니다. 호중湖中 지방은 여기에서 독촉해서 걷고 북쪽과 영남 지역은 원院에서 재촉해서 걷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석에 쓸 돌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산 40리쯤 들어간 곳에 돌을 캘 만한 곳이 있습니다. 색깔은 비록 썩 좋지는 않지만 돌이 견고해서 칼로 새겨 비석을 만들 만하다고 하니, 돌에 대한 염려는 그나마 덜게 된 셈입니다. 다만 서울의 석공을 불러다 일을 시키는 것은 매우 불편할 것 같습니다. 이 절에도 솜씨 좋은 석수장이가 많은데, 가까운 곳에 있는 석공을 두고 멀리서 석공을 불러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서울 석공이 왔을 때 이곳에도 석공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쩌면 나중에 서로 반목이 생기는 폐단도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저희 절에서는 그 점을 매우 염려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서울의 석공은 그냥 물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봄에는 꼭 일찌감치 이곳에 왕림하시어 친히 비석 세우는 일을 주관하여 주십시오. 이곳의 저희들은 당연히 스님의 지휘를 받겠습니다.
다 쓰지 못하고 이만 줄입니다.
설파 화상께 올리는 편지(上雪坡和尙)
엎드려 안부를 여쭙사오니, 혹독한 추위에 지내시는 생활은 두루 편안하십니까. 북쪽에 살고 있는 우리 문중의 스님들이 돌아가신 환성喚惺 스님의 비석을 이 절에 세우고, 또 그 비석의 뒷면을 빌려서 호암虎巖 선사의 비를 새기겠다고 합니다. 두 분 선사의 고명하심은 이미 총림에서 입에서 입으로 알려져 와서 굳이 따로 비석을 새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 일을 하자고 나선 이들이 있기에 스님의 아들 손자뻘 되는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따르려고 합니다. 다만 환성 선사의 비석 뒷면에 호암 선사의 비석을 새긴다는 것은 너무나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 듯합니다. 우리 문중의 사형 사제들이 근래에 비록 힘이 떨어져 힘들기는 하지만, 마땅히 있는 힘을 다하여 주선해서 두 분 스님의 비석을 각각 따로 세우기 위해 바야흐로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평소 비석 세우는 일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시므로, 이 일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문중에서 자꾸 설득을 해서만이 아니라, 그저 자식 된 도리로만 보아도 참여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바라건대 시원하게 마음을 돌리어서 이 일에 함께 손을 거들어 기필코 성취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십시오.
비용을 모으는 일 또한 깊이 생각하여서 각자의 형편에 따라 내도록 할 것이니,

010_0279_a_01L是實際而今觀來書似有不信之意
010_0279_a_02L可歎旣牢定此寺則始事當在明春
010_0279_a_03L而門庭收錢忙矣湖中則自此處督之
010_0279_a_04L北方與嶺南自院以促可也石則此山
010_0279_a_05L四十里許有可採處而色雖不美
010_0279_a_06L固可受刀云姑可除念而但京工之使
010_0279_a_07L甚爲不便此寺亦多良手不可棄近取
010_0279_a_08L且京工來到知有匠工則恐有日
010_0279_a_09L後相侵之弊此寺甚慮之伏望却之如
010_0279_a_10L正春早爲枉駕親自主管此處之
010_0279_a_11L當受指揮而已不宣

010_0279_a_12L

010_0279_a_13L上雪坡和尙

010_0279_a_14L
伏惟寒酷起居神相萬安北方同門
010_0279_a_15L欲樹喚惺先翁碑於此寺而借其後面
010_0279_a_16L以爲虎岩先師之碑云云兩先師高名
010_0279_a_17L已在叢林口中不必鐫於他山而旣有
010_0279_a_18L倡事者其在兒孫樂從可矣但先師
010_0279_a_19L後面之借甚爲踈禮吾兄弟近雖零落
010_0279_a_20L當盡力周旋以營各碑方盡誠也伏聞
010_0279_a_21L每以立碑之事爲不緊而欲不從
010_0279_a_22L但有說於門庭亦兒孫之道如何也
010_0279_a_23L望飜然改思同出隻手以期成就爲念
010_0279_a_24L收錢之事亦當深思各從其勢

010_0279_b_01L이 일에 필요한 각자의 몫을 정하여 자신의 성의를 다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렇게 하여서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것 같으면, 부득이 친지들 사이에라도 부탁하여 얻어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시주를 권하는 모연문 두루마리를 들고 여러 절과 시주할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모금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돌아가신 두 분 선사들께 적지 않은 누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이런 뜻을 동문들에게 단단히 부탁하여 주실 것을 바랄 뿐입니다.
다 갖추지 못하고 이만 줄입니다.
홍 판서께 올리는 편지(上洪判書)
산인 아무개 등은 삼가 대감 합하閤下70)께 두 번 절하며 인사 올립니다. 저희들은 호암虎岩 대사 아무개의 법자法子이며, 환성喚惺 대사 아무개의 법손입니다.
선옹先翁(喚惺)과 선사先師(虎岩)께서는 비록 유가 밖에서 이름을 낸 사람이긴 합니다만, 우리 불가의 도에 있어서는 옛 조사들의 법을 이어서 미래의 학인을 가르치고 이끌어 주신 공이 참으로 큰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불가의 사람들은 두 분을 우리 법문의 존귀한 분이라 일컫고 있습니다. 그러니 입적하신 후에는 전례에 따라 탑을 세우고 행업을 새겨서, 두 분의 자취를 드러내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희 산인들은 운수행각으로 생을 이어 가는 처지라 살림살이가 빈궁하기만 합니다. 탑만은 근근이 어떻게 세울 수 있겠으나 비석에 글을 새기는 일은 아직 손댈 겨를이 없었으니, 참으로 법도에 어긋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던 차 이번에 궤홍軌弘 산인이 다행히도 합하와 잘 알고 지내게 되어, 외람되게도 탑에 새길 명문을 합하閤下의 빛나는 글씨로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소승들이 마땅히 천 리 길이라도 달려가 머리 조아려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산인들이 다 함께 멀리 서울까지 올라가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이렇게 삼가 저희 문중의 승려 한 사람을 뽑아서 보내어 저희들의 고마운 심정을 전합니다.
송구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삼가 다 갖추지 못하오니,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심 방백71)께 올리는 편지(上沈方伯)
산인 아무개는 두 번 절하고 말씀 올립니다.
한낱 아둔한 중인 소승은 멀리 떨어진 궁벽한 산속에서 사슴과 벗하며 사는 것이 분수에 맞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난날 합하께서 산사를 방문하시어 특별히 불러 주신 덕택에, 외람되게도 미천한 제가 대군자大君子의 풍류를 뵈올 수 있었고

010_0279_b_01L分定此事當盡已之有不能成事
010_0279_b_02L不得已求乞於親知之間爲可若持勸
010_0279_b_03L軸募得於各寺與檀家則帶累先宗不
010_0279_b_04L此意叮囑諸同門爲望耳不備

010_0279_b_05L

010_0279_b_06L上洪判書

010_0279_b_07L
山人某等謹再拜大監閤下伏以某等
010_0279_b_08L虎岩大師某之法子喚惺大師某之
010_0279_b_09L孫也先翁先師雖名敎外人其於自家
010_0279_b_10L之道繼徃祖開來學大有功焉故釋
010_0279_b_11L家者類稱以法門蓍蔡則入寂之後
010_0279_b_12L例當塔而銘之此旌其跡而山人等
010_0279_b_13L以雲水生涯計活淸寒僅能立塔
010_0279_b_14L銘則尙未之遑甚爲闕典今者軌弘山
010_0279_b_15L幸得知愛於閤下猥以塔上之銘
010_0279_b_16L籍重於大監彩毫小僧等即當千里奔
010_0279_b_17L稽首頌謝而多數山人遠涉京輦
010_0279_b_18L極爲艱難謹差同門一介僧走達輿情
010_0279_b_19L無任悚仄之至謹不備伏惟

010_0279_b_20L

010_0279_b_21L上沈方伯

010_0279_b_22L
山人某再拜言伏以小釋一箇魯鈍
010_0279_b_23L分守窮山與麋鹿同伍曩者閤下
010_0279_b_24L山時特賜召見猥以微賤獲覩大君

010_0279_c_01L고상한 말씀을 직접 듣고 말씀을 나누기까지 하였으니, 뛰어오를 듯 기쁜 마음 그지없었습니다. 민간을 돌며 민생을 살피는 여정을 마치고 감영으로 돌아가셔서는 건강이 좋으신지, 우러러 그리는 마음 간절합니다.
소승은 납자들과 날마다 불경을 강론하면서 다른 어려운 일은 없으니, 이 또한 조물주께서 어여삐 보아 주신 덕택일 뿐입니다. 지난번에 한번 감영으로 찾아오라고 하신 하교는 마음 깊이 새겨 감히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인이 감영에 왕래하는 일은 본래 본분에 맞는 일이 아닌 데다가 또 그 외에 어려운 일이 많기도 하여서, 늘 지팡이만 만들어 놓고 갈까 말까 주저하게 된 적이 자주 있었습니다. 옛날 송나라 때 정황우政黃牛 72)라고 하는 사람은, 관가에서 부르는 일이 있으면 시를 써서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지금 소승이야 물론 옛사람의 행업에 크게 못 미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제 스스로 처신하는 자잘한 도리는 역시 고인의 행업을 엿보고 우러러 흠모하여 따르려 합니다. 이에 감히 정황우의 시운을 차운하여 절구 한 수를 지어 올리며, 가서 뵙고 싶으나 감히 가지 못하는 이 마음을 피력하려 합니다. 또 따로 사운四韻의 시를 지어서 우러러 흠모하는 정성을 적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이 거친 사람을 감싸 주시어 멀리 내치지 마시고, 하명을 어긴 죄를 용서하여 주시면 너무나 다행이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소승이 스스로 절개가 높다고 교만해서가 아니며, 다만 승려의 도리가 이러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황송한 마음에 다 갖추어 쓰지 못합니다.
영남의 남악 장로께 보내는 편지(與嶺南南岳長老)
비록 법맥은 같으나 태어난 인연이 각각 달라서, 20년 전부터 소문만 서로 들어오면서 아직 한번 만나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마음이 자꾸 쏠리는 것이 저 동해 바다만큼이나 깊고도 넓을 듯합니다. 지난해에 보내 주신 두 번의 편지는 모두 중간에 잃어버리는 일 없이 잘 받아 보았습니다. 덕분에 천 리 밖 멀리 계시는 어르신의 면목을 글로나마 엿볼 수 있었으니, 세상 어떤 일이 이렇게 기쁠 수 있었겠습니까마는, 인편이 없어서 아직껏 답장 한 번도 하지 못했으니 아무리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번에 또 어르신의 문인이 찾아온 길에 어르신께서 강론을 하시며 보내시는 생활이 두루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또 위로가 됩니다. 이 보잘것없는 수좌는 강론할 때마다 그저 빨리 시간이 끝나 종이 울리기나 바라니, 이 나쁜 습관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난해에 원院에서 있었던 일은 제가 본래부터 그런 일에는 뜻을 두지 않았었기 때문에

010_0279_c_01L子風流親炙高談緖餘不勝歡喜踴躍
010_0279_c_02L之至伏惟巡旆還營氣體候神衛萬安
010_0279_c_03L伏切瞻仰小釋與衲子輩日講葉書
010_0279_c_04L無諸沮嬈亦造物見憐耳向者一來
010_0279_c_05L門之下敎不敢忘懷但山人之營府徃
010_0279_c_06L自非本色亦多難事每理藜而趑
010_0279_c_07L趄者數矣昔宋政黃牛爲號者亦有官
010_0279_c_08L家之召以詩遞其行今小釋與古人行
010_0279_c_09L大相不同而區區自處之道亦欲
010_0279_c_10L覬而慕之玆敢依其韵構成一絶
010_0279_c_11L申欲進不敢之下情又別呈四韵
010_0279_c_12L述慕仰之忱伏望包荒不遐遺下恕方
010_0279_c_13L命之罪幸甚小釋非矯節自高只在爲
010_0279_c_14L僧之道如是也惶悚不備

010_0279_c_15L

010_0279_c_16L與嶺南南岳長老

010_0279_c_17L
法脉雖同生緣各異相聞於二十年前
010_0279_c_18L而尙未接私心嚮徃可以東海量也
010_0279_c_19L去年兩牘俱免石頭之浮湛 [79] 得替千里
010_0279_c_20L外面目何喜如之而魚鳥無階一未
010_0279_c_21L裁謝浩歎何及即此門人又到憑審
010_0279_c_22L大講候連享萬嘏喜慰不可言拙白
010_0279_c_23L首坐講應招鍾嗚漏盡之譏而習氣所
010_0279_c_24L使奈何年前院事本無意於彼等事故

010_0280_a_01L그저 한바탕 웃음에 부쳐 버리고 상대하여 따지지는 않았습니다.
청암의 시운에는 시키시는 대로 화답을 하여 보냅니다만, 잘 쓰지 않는 생소한 운(强韻)인 데다 또 시 짓는 솜씨 또한 사람 따라 함께 늙어 가는지 영 잘 지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저 심심할 때 한바탕 웃음거리 생각하시고, 그냥 한바탕 웃은 뒤 불에 태워 버리시기 바랍니다.
금강산에 갈 일이 머지않아 곧 있을 것이니 한번 방문하여 그리운 회포를 풀고 싶지만, 뒷일을 어찌 꼭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이곳 영곡靈谷 사형께서 2월 8일에 입적하셨으니, 얼마나 슬픈지 모르겠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인편이 있어 몇 자 적어 보냅니다. 나머지 말들이야 편지로 다할 수 없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박 석사께 보내는 답장(答朴碩士)
가을바람이 쓸쓸한 시절에 홀연 편지를 받으니, 산골짜기 숲속에 광채가 다 나는 듯 못내 그리던 마음이 크게 위로되었으며, 편지를 읽고서 지내시는 생활과 건강이 별 탈 없이 좋으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보내 주신 아름다운 시편을 읽어 보니, 너무나 찬란하여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붓 끝에 눈이 달려서 어디 하나 손을 댈 곳이 없는 경지라고 할 것입니다. 본래 타고난 천품이 고상하고 밝아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렇게 좋은 시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감탄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산인은 가죽나무처럼 버려진 쓸모가 없는 물건인 데다 또 이렇게 쇠약하기까지 하니, 어찌 비교할 만한 상대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보내온 편지에서는 사실과 다르게 너무 칭찬을 하셨으니, 이게 바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질 따름입니다. 주옥같은 시를 받아 놓고 화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라, 나물만 먹고 사는 산인의 좁은 생각을 끌어모아 보잘것없는 글을 겨우 지어서 보내니, 책상을 덮는 먼지 가리개로나 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냥 한바탕 웃으시며 보시고는 지워 버리시길 바랍니다. 옛날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하였을 때에도 서로 마음이 소홀해진 적이 없었는데, 게다가 지금은 서로 살고 있는 곳이 멀지도 않으니 순박한 풍도에 어찌 끊김이 있겠습니까.
그저 몸조심하시어 제가 진심으로 비는 이 마음에 부응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탄 장로께 부치는 편지(寄綻長老)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도 저 맑은 바람이야 끊김이 있겠으며, 산골짜기는 오래 막혀 있어도 이 도는

010_0280_a_01L付之一呵而不與相較也靑岩韵依示
010_0280_a_02L和送而韵頗强且詩與人老未能善
010_0280_a_03L聊爲閑中一粲具也幸一笑後付與
010_0280_a_04L丁童金剛之行當在非久來徃間
010_0280_a_05L一委訪以解如渴之懷而後事亦安
010_0280_a_06L可必乎此處靈谷師兄於二月初八入
010_0280_a_07L痛悼何及因便付及也餘非幅紙
010_0280_a_08L可旣只此即惟

010_0280_a_09L

010_0280_a_10L答朴碩士

010_0280_a_11L
秋風蕭索忽沐手澤林壑生光大慰懸
010_0280_a_12L仍審體履淸休及覽佳什燦燦眩
010_0280_a_13L可謂筆端具眼斤斧無痕自非天
010_0280_a_14L禀高明得之自然曷以臻此欽服罔
010_0280_a_15L山人樗散之物又此衰朽豈足齒錄
010_0280_a_16L而來書過情稱譽無乃私其所好肱不
010_0280_a_17L外屈耶還切愧赧旣蒙珍墨不可無
010_0280_a_18L謹搜蔬膓搆成荒詞仰塵淸案
010_0280_a_19L一粲而爻周如何古者不以形踈致淡
010_0280_a_20L况川陸非遙眞風何間惟冀珍頥
010_0280_a_21L副眞禱不宣

010_0280_a_22L

010_0280_a_23L寄綻長老

010_0280_a_24L
歲月奔流淸風何間溪山脩阻斯道

010_0280_b_01L언제까지나 통하는 법이니, 혼자 떨어져 산다고 개의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금년 농사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날씨까지 농사일에 도움을 주지 않으니, 우리들의 수행 공덕으로야 어찌 저 하늘 하시는 일에 대적하겠습니까. 그저 하늘의 명을 따를 뿐이니, 아무리 깊이 염려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옛사람이 오석령烏石嶺 꼭대기에서 만났던 일이나 망주정望州亭 위에서 만났던 그런 일73)들은, 이 모두가 다 형기形器 이외의 것을 서로 기약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비록 고인의 행行을 그대로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고인의 지知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로께서도 종종 찾아와 보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마음에 있는 것을 글로 다 쓰지 못하니, 속으로 그냥 알아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편지의 격식을 다 갖추지 못했습니다.
보경 총섭74)께 보내는 편지(與寶鏡捴攝)
남북으로 서로 헤어진 뒤로 그림자도 접하지 못하던 차에,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오니 보고 싶은 나머지 너무나 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지봉智峯 형께서 입적하셨을 때에 먼 곳이지만 상喪을 치르러 오시리라 생각했었는데, 끝내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랏일에 매여서 오지 못하셨을 것이니, 어쩌겠습니까. 중간에 편지는 뜸했으나 오고가는 소식이 끊이지 않아서, 늘 번을 서는(儤)【음은 ‘포’이니, 계속 숙직을 서는 것이다.】 중한 직책을 맡으면서 조금도 막히는 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스스로 수양을 쌓아 복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기쁨과 위로됨이 진실로 깊습니다.
저는 예순이 넘은 이후로는 대중 생활을 그만두고 조용한 곳을 찾아 혼자 생활하고 있는지라, 이제 늙고 쇠약해진 모습과 궁핍한 모양새가 일상의 일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금년에는 만의萬義의 스승 두 분까지 잃었으니, 법운이 다한 비통함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먼 곳에서 특별히 위문하여 주시니 더구나 슬픈 심정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듣자 하니 조정에서는 스님께 종신 녹봉을 따로 내려 주었다 하니, 망극한 성은을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그런데 옛 조사들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받은 은혜가 큰 자리에서 마땅히 먼저 물러나야 하며, 얻은 뜻이 많을 때가 바로 그만둘 좋은 시기이다.”
이 말씀은 바뀌지 않는 말입니다. 가사75)를 걸친 스님의 몸으로 직접 임금의 얼굴까지 뵈었으니, 이렇게 교지를 받고 관직에 임명된 일은 고려 때에는 혹 있었을지 모르나,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통 들은 적도 없는 일입니다. 어르신께서는 어떤 선업의 인연으로 이리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큰 공을 이루고 이름을 드날림이 지극한 정도에 이르렀으니, 족함을 알고

010_0280_b_01L常通不必以離索介懷也但年事稍儉
010_0280_b_02L時氣乖和吾儕功行豈能敵彼亦順
010_0280_b_03L命而已不用深慮古人烏石嶺頭相見
010_0280_b_04L了也望州亭上相見了也斯皆相期形
010_0280_b_05L器之外今人雖不行古人之行亦能知
010_0280_b_06L古人之知長老亦不以種種不來見爲
010_0280_b_07L念也不盡所懷嘿照是望耳不具

010_0280_b_08L

010_0280_b_09L與寶鏡捴攝

010_0280_b_10L
一分南北形影莫接而榮聞休暢
010_0280_b_11L想之餘賛歎何極智峯兄之入寂
010_0280_b_12L謂奔喪而竟絶笻音盖拘於國事奈何
010_0280_b_13L中間音信雖阻而徃來絡繹每聞儤
010_0280_b_14L音布
直也
直重地小無魔妖自非疇離有
010_0280_b_15L祉然乎喜慰良深拙六秩以後
010_0280_b_16L衆靜處其衰老之形赤窮之狀乃是
010_0280_b_17L常事而今年萬義二喪法運垂盡
010_0280_b_18L痛何堪遠地特賜唁問尤不任傷感也
010_0280_b_19L聞朝家另下終身之俸聖恩罔極何以
010_0280_b_20L報答古師有云受恩深處宜先退
010_0280_b_21L意濃時便好休不可改也畦衣之下
010_0280_b_22L親奉天顔帶得敎旨之任勝國或有
010_0280_b_23L而入我朝寂無所聞不知吾丈以何善
010_0280_b_24L緣而然耶功成名立至矣盡矣知足

010_0280_c_01L그칠 줄을 알아야 합니다.76) 지금 가장 시급한 바람은 여러 차례 사직소77)를 올리고 물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남쪽으로 돌아오는 일이니, 이것이 삼십육계 가운데 제일가는 방책입니다. 치밀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마음에 꽉 찬 생각을 종이가 좁아서 다 쓰지 못합니다. 그렇게 알고 보아주십시오.
한 능주 필수78)께 올리는 장문 편지(上韓綾州 【必壽】長書)
병술년(1766, 영조 42) 10월에 천태산인天台山人 유일은 삼가 두 번 절하고, 명부明府79) 합하께 편지를 올립니다.
산인이 어제 동각東閣에서 합하를 뵈었을 때에, 합하께서는 불서의 내용 가운데 인과응보의 설에 대하여 의심하면서, 사람이 죽은 뒤에 단멸斷滅하는가 단멸하지 않는가, 서방 극락세계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얘기들을 모두 거짓(子虛)80)이라 여기고 믿지 않으셨습니다. 산인이 몽매한 사람이라 그 자리에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또 낱낱이 변론해서 말하려고 하여도 존엄한 어른께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아무 말없이 그냥 자리를 물러났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 선방 창문 아래 누워 있자니, 산 위로 달은 훤하게 비추었습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일어나 방석에 앉아 있자니, 문득 어제 합하께서 불법을 깎아내리신 일이 생각났습니다. 마음이 영 편안하지 않아 엎치락뒤치락 생각을 하다가, 간략하게나마 이렇게 말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디 살펴보아 주십시오.
무릇 불법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마치 허공이 쭉 펼쳐져 있는 것과도 같아서, 크기로 말하면 더 이상의 밖이 없을 만큼 크고, 작기로는 더 이상의 안이 없을 만큼 작습니다. 그러나 허공을 보기 싫어하는 자가 집을 만들어서 문을 닫아걸고 허공과 단절하고서는, 자신이 문지방을 넘어 방에 들어갔다는 것과 자신의 이목구비 하나하나에 다 허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이와 같이 한다고 끝내 허공과 단절할 수 있겠습니까. 사대부들이 총명한 재능과 지혜로 배워서 도를 알게 되는 것이 다 불법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반야의 신령한 깨달음이 천지를 진동하며 홀로 존재하기에, 예로부터 지금까지 도에 어둡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릇 이 세상에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모든 물질은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크고 작고 짧고 긴 것 등 모두가 다 달라 고르지 않은 이것들이 다 부처님의 도에 힘입어 세상에 심어져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도를 버리고서는 따로 법이 없는 것입니다.

010_0280_c_01L知止自今急務願頻上乞骸之狀
010_0280_c_02L脫南歸當爲三十六策之第一思之密
010_0280_c_03L密矣思之意滿楮狹不盡所懷
010_0280_c_04L惟諒照

010_0280_c_05L

010_0280_c_06L上韓綾州必壽長書

010_0280_c_07L
丙戌十月日天台山人有一謹再拜
010_0280_c_08L書于明府閤下伏以山人昨拜東閣時
010_0280_c_09L閤下有疑於佛書中因果報應之說
010_0280_c_10L後斷滅不斷滅西方極樂世界之有無
010_0280_c_11L以爲子虛而不信山人蒙昧未能酧對
010_0280_c_12L且欲論卞一二而盡言尊前有失禮貌
010_0280_c_13L含嘿自輸而退歸臥禪窓山月皎然
010_0280_c_14L中夜起坐蒲團忽思閤下昨日之貶剝
010_0280_c_15L心不自安轉側究索畧有所陳伏乞
010_0280_c_16L少垂察焉夫佛法之在世間如虛空之
010_0280_c_17L周徧其大無外其小無內然厭見虛
010_0280_c_18L空者塡室塞戶以絶之而不知越閫入
010_0280_c_19L及自身之耳目口鼻皆有虛空也
010_0280_c_20L若是而其終絶之乎窃謂士大夫聦明
010_0280_c_21L才智學而知道皆由佛法之力以般
010_0280_c_22L若靈覺振天地而獨存亘古今而不昧
010_0280_c_23L凡天地生生之物無不圓具洪纎短長
010_0280_c_24L有萬不齊者皆資之而植立舍是無別

010_0281_a_01L
소자첨蘇子瞻81)이 말하였습니다.
“구양영숙歐陽永叔82)과 사마군실司馬君實83)은 다 부처님의 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비추어 낸 총명함과 성취해 낸 덕행은 진실로 부처님의 법이었다.”
소자첨이 어찌 세상을 속였겠습니까. 다만 한나라 때에 불서가 나왔다고는 하나 일찍이 세상에서 잘 볼 수 없었던 까닭에, 마치 부처님의 도가 세상에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듯 반신반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나라 방관房琯84)과 백낙천白樂天,85) 그리고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와 황정견黃庭堅86) 같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고명한 재주와 뛰어난 견문으로 부처님의 도를 독실히 믿고 높이 받들었습니다. 그리고 원나라와 명나라에 와서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믿는 무리들을 칭송하고 집집마다 불교 경전을 소장하였으니, 부처님 도를 받들어 숭상하는 풍속이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성대했겠습니까. 염계와 낙양(濂洛)87)의 여러 명철한 학자들은 유학(洙泗學)88)을 주장하면서도, 또한 그 유학이 부처님의 도와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일찍부터 부처님의 말씀을 궁구하여 도를 터득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염계濂溪가 조각照覺 선사와 사귀면서 불도의 지극한 이치의 의논을 깊이 밝힌 것이며, 이천伊川89)이 영원靈源 선사에게 물어 오묘한 자성의 뜻을 깨달은 것이며, 고정考亭90)이 대혜大惠91) 선사를 사모하여 심법心法의 요체를 깨달은 것들이 바로 그러한 일입니다. 이런 사실들은 전기에 실려 있어 바로 징험해 보일 수 있는 일이니, 속임이 없습니다.
또 고정은 말년에 집에서 불경을 외면서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閑居獨無事            홀로 한가하게 별일 없이 살면서
聊披釋氏書            그저 불교 경전이나 펼쳐 보니
暫息塵累牽            잠시나마 세속 번뇌의 얽매임을 쉬고
超然與道俱            초연히 도와 더불어 함께하겠네
門掩竹林密            문을 닫아걸면 대나무 숲만 빽빽하고
禽鳴山雨餘            산비 그친 틈을 타 새들이 우는데
了此無爲法            이 무위법無爲法을 깨달으니
身心政晏如            몸과 마음이 정말 편안하구나

이것으로 본다면, 그가 불법에서 깨달은 바가 얕은 것이 아니며, 그저 사사로이 마음이 기울었던 것만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도 불교에 대해 이理에는 매우 가깝다고 하겠지만 진眞을 크게 어지럽히고 있다는 말을 한 것은, 몸은 도학道學을 맹세한 사람이지만 인륜을 굳건히 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가르칠 때에는 부득불 불가의 도를 억제하고, 유가의 도를 드러내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불가의 법이 비단과 옥돌 같다면, 유가의 도는 베와 좁쌀과 같구나.”
아마도 비단과 옥은 비록 귀하긴 하지만 일상생활에 쓰는 물건이 아니고, 베와 좁쌀은 비록 천하긴 하나 일상생활에 절실히 필요하기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비록 불법을 알지 못하고 또 일상에서 유가의 도를 떠나지 못했으나, 불법의 고귀함은 인정하였습니다. 어찌 우리나라 유학자들처럼 불교의 가르침을

010_0281_a_01L法也子瞻曰歐陽永叔司馬君實
010_0281_a_02L不喜佛法然其聰明之所照了德行之
010_0281_a_03L所成就眞佛法也子瞻豈欺世者哉
010_0281_a_04L其書出於漢世曾所不見故若存若亡
010_0281_a_05L疑信相半至於唐之房
宋之蘇
010_0281_a_06L以高明之才超詣之見篤信崇奉
010_0281_a_07L至元明之時人人稱瞿曇之徒家家藏
010_0281_a_08L貝葉之書其承奉之道一何盛哉
010_0281_a_09L洛羣哲主張洙泗之學而亦知其大同
010_0281_a_10L未甞不究其說而有得焉濂溪之交照
010_0281_a_11L而深明至理之論伊川之問靈源
010_0281_a_12L而妙達自性之旨考亭之慕大惠而契
010_0281_a_13L悟心法之要載乎傳記可徵不誣又考
010_0281_a_14L亭末年有齋居誦經詩云閑居獨無
010_0281_a_15L聊披釋氏書暫息塵累牽超然與
010_0281_a_16L道俱門掩竹林密禽鳴山雨餘了此無
010_0281_a_17L爲法身心政晏如觀此則其所得於佛
010_0281_a_18L者不淺非獨私心嚮徃而已然云彌近
010_0281_a_19L理而大亂眞者以身爲道學主盟扶植
010_0281_a_20L人倫故其誨人之際不得不抑揚彼此
010_0281_a_21L又云佛法如錦玉儒道如布粟盖謂
010_0281_a_22L錦玉雖貴而不可常用布粟雖淺
010_0281_a_23L切於日用雖不知佛法亦不離日用
010_0281_a_24L而亦許其高貴也烏有東儒之以釋敎

010_0281_b_01L한결같이 허무하다고만 하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경지로 치부하였겠습니까. 우리나라 유학자들은 누구나 다 이렇게 말합니다.
“불씨佛氏의 교리는 모두 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이라 믿기 어렵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요임금ㆍ순임금ㆍ우임금ㆍ탕임금의 일은 누가 보고 누가 들었기에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요임금ㆍ순임금ㆍ우임금ㆍ탕임금의 일도 역시 심히 요원한 일입니다. 지역적인 거리도 몇 천 리가 더 넘지만 세월도 벌써 몇 천 년이 지났으니,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보거나 들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전 시대의 말과 지난 시대의 행적이 경서와 역사서에 실려 있기에 항상 배우고 또 익히는 것이며, 또 그 익힌 것을 실천하는 일을 집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듯 일상적으로 하기 때문에 믿어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석씨의 도로 말할 것 같으면 지역적인 거리가 십만 리나 되고 시대도 삼세三世를 지났는데도, 그 경전이 한나라 때에 나왔다고 이단이라 생각하며 즐겨 읽거나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어쩌다 불서를 읽어 섭렵한 사람이 있다 해도 그저 기이한 말이나 묘한 구절을 뽑아서 문장을 꾸미는 이야깃거리로 사용하였을 뿐, 불서 속에 숨어 있는 말씀과 오묘한 이치는 소홀히 하여 궁구하려 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터득하여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유가 사람들이 불도를 알지 못하는 것은 이미 하나도 괴이할 게 없는 일입니다. 유가에서 불가를 불신하는 것은, 하북河北 사람은 강남江南에 2만 섬을 실을 수 있는 큰 배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으며 강남 사람은 하북에 천 명의 사람을 덮을 수 있는 큰 장막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유씨儒氏들로 하여금 자신을 비우고 마음을 닦아 불서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그 뜻을 연구하기를 마치 유서를 익힐 때처럼 하게 한다면, 그렇게 순수하고 밝은 자질을 가지고서 어찌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이것은 불도를 연구하지는 않고 오직 공격만 하면서 혹시라도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애석함을 어쩌겠습니까.
저 인과의 설은 석전釋典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논어』에서도 항상 말했던 것인데, 다만 말로 드러내서 인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주역』에서는 말합니다.
“선善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고, 불선不善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다.” 92)
여기서 선善과 불선不善은 인因이며, 경사와 재앙은 과果입니다.
『서전』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선한 행동을 하면, 상서로운 일이 있으리라.” 93)
또 『서전』에서는 말합니다.
“하늘의 도리는 선한 사람에게 복福을 내려 주고, 음탕한 사람에게는 화禍를 내린다.” 94)
공자도 말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보답해 준다.”
이와 같은 말들은 제자백가서와 역사책에도 실려 있으니, 일일이 다 거론하기도 어렵습니다.

010_0281_b_01L爲一向虛無而歸之何有之鄕哉東儒
010_0281_b_02L皆曰佛氏所說皆不見不聞之事
010_0281_b_03L可信余曰堯舜禹湯之事孰見而孰
010_0281_b_04L乃能信也夫堯舜禹湯之事亦甚
010_0281_b_05L綿邈地之相去數千餘里世之相後
010_0281_b_06L數千餘年固非見聞之可及而前言徃
010_0281_b_07L布在經史常所學而習之習而行
010_0281_b_08L爲家常茶飯故信之不疑至於釋
010_0281_b_09L氏之道地隔十萬時歷三世其書出
010_0281_b_10L於漢時故以爲異端而不爲讀誦玩索
010_0281_b_11L雖或涉獵而惟摘奇言妙句以資鈆槧
010_0281_b_12L之用其微言奧義略不尋繹安得而知
010_0281_b_13L旣不能知無恠夫不信也河北人不
010_0281_b_14L信江南有二萬斛船江南人不信河北
010_0281_b_15L有千人氊帳政謂此也果使儒氏
010_0281_b_16L己刳心就於佛書潜心玩繹如服習
010_0281_b_17L儒書之時則以如彼粹明之資豈有不
010_0281_b_18L知不信之理乎顧此不爲惟攻駮
010_0281_b_19L恐不及可勝惜哉夫因果之說非特
010_0281_b_20L在於釋典亦魯誥之常所談但不顯言
010_0281_b_21L名因也易曰積善有慶積不善有殃
010_0281_b_22L善不善因也慶與殃果也書曰作善有
010_0281_b_23L又云天道福善禍婬子曰爲善者
010_0281_b_24L天報之以福如此語類布在子史

010_0281_c_01L
또 좌씨左氏가 말하였습니다.
“난무자欒武子95)가 덕행이 있으니, 하늘이 그 아들을 도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무자의 아들 염黶이 비록 악했으나 화를 면할 수 있었고, 또 염의 아들 영盈이 비록 선했으나 아버지 염의 악행에 연루되어 환란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어려서 열심히 공부하여서 장성하여 과거시험에 합격하기도 하고, 혹 은혜로운 행동을 하고 덕행을 펼친 덕에 관직에 발탁되기도 하며, 혹 간사한 행동이나 범죄를 저질러서 형벌을 받거나 사형을 받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몸에 나타나는 인연과 과보임이 분명합니다.
우보于寶에게 참새가 가락지를 갚아 주었고 수후隋侯에게 뱀이 구슬을 갚아 주었으니,96) 미미한 동물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야 어떻겠습니까.
전傳97)에서는 말합니다.
“곡식은 심은 지 1년 만에 수확하고, 나무는 심은 지 10년 만에 거두며, 덕은 베푼 지 100년 만에 돌아온다.”
이 말 또한 인과의 도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슬픕니다. 지금 운세가 길한 사람은 이전 세상에서 무언가 복을 베풀었기에 이렇게 좋은 보답으로 감응하는 것인데, 지금 세상에서 복을 베풀면 내세에도 또한 지금 세상에서처럼 복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어찌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그 죽은 뒤에 생전의 행적이 단멸斷滅한다는 생각은 더욱 깨뜨리기가 어렵습니다.
유씨儒氏들은 다들 말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음陰과 양陽이 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양이라는 것은 기氣이며 혼魂이고, 음이라고 하는 것은 질質이며 백魄이다.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이나 궁핍하고 부유한 것은 다 천명天命에 달려 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음과 양도 흩어지게 되는데, 양기陽氣는 올라가 하늘로 돌아가고, 음질陰質은 내려가 땅이 된다. 그런데 어찌 다른 무엇이 더 있어서 바뀌어 다음 생의 몸이 되겠는가?”
이것이 유가 사람들이 말하는 바꿀 수 없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가의 학설은 이런 유가의 학설과는 크게 다릅니다. 대개 사람이나 가축을 막론하고 무릇 혈기血氣가 있는 무리는 다 지知가 있습니다. 그래서 배고픔과 목마름과 추위와 더위를 알고, 보고 듣고 움직이며 일어날 줄을 알며, 사랑과 미움과 고통과 즐거움을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범인이나 성인, 사람이나 가축이 다 같습니다. 허철虛徹 영명靈明하여 우뚝하게 홀로 존재하면서 불생不生 불멸不滅하며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니, 마치 허공처럼 어느 곳에나 다 있어서 잠시도 끊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마음이 인연을 따라 인식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나고 죽고 가고 오며, 현생의 몸을 버리고 내생의 몸에 의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性의 식심識心98)과 진지眞知99)

010_0281_c_01L以備擧又左氏謂欒武子有德可以
010_0281_c_02L庇其子故其子黶雖爲惡而能免禍
010_0281_c_03L黶之子盈雖善而黶之惡累之而及於
010_0281_c_04L又世人幼而做工壯而登科或行
010_0281_c_05L恩布德得蒙薦拔或作奸犯科以受
010_0281_c_06L刊戮此則現身因果昭然也于寶之雀
010_0281_c_07L隋侯之蛇珠微物尙然而况人乎
010_0281_c_08L傳曰一歲種之以穀十歲樹之以木
010_0281_c_09L歲來之以德此語亦不出因果也
010_0281_c_10L今之吉人前世何福感斯好報而獨
010_0281_c_11L不思今亦作福則來世亦如今世耶
010_0281_c_12L其死後斷滅之義尤難劈破儒氏皆云
010_0281_c_13L人之生也陰陽合成陽者氣也魂也
010_0281_c_14L陰者質也魄也壽夭貧富皆繫於天
010_0281_c_15L及其死也陰陽渙散陽氣上而歸
010_0281_c_16L陰質下而爲地更有何物轉爲後
010_0281_c_17L身也此儒家不易之論也吾佛所說
010_0281_c_18L與此大相不同盖不問人畜凡有血氣
010_0281_c_19L之屬皆有知知飢渴寒熱知視聽動
010_0281_c_20L知愛惡苦樂此之所知聖凡人畜
010_0281_c_21L皆同虛徹靈明卓然獨存不生不滅
010_0281_c_22L亘古亘今比如虛空無處不在無時
010_0281_c_23L間斷也但以此心隨緣爲識故受生
010_0281_c_24L滅去來捨此托彼之身然此識心

010_0282_a_01L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데, 어찌 단멸하여 남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진성眞性은 본디 선악의 인과가 아니라, 식심의 훈습薰習이 같지 않음에 따라 선이 있고 악이 있으며 염染도 있고 정淨도 있게 되는 것이니, 그것으로써 범부와 성인의 인과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식심이 진성과 동체여서 진성에는 선과 악이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식심에는 도리어 선악이 있다는 것입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훈습이 같지 않아서 선과 악이 생기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마치 향기로운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더라도 오래 있으면 난초의 향기를 느끼지 못하고, 어물전에 오래 있다 보면 생선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인仁한 곳을 택하여 살라고 하였으니, 이는 훈습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고정考亭 또한 말하였습니다.
“하늘이 백성을 태어나게 할 때에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는데, 다만 기질氣質의 품稟이 같지 않기 때문에 그 하늘이 부여해 준 본성을 온전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에게는 다 인의예지의 성품이 있어서 사람은 누구나 다 응당 선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숙세夙世의 훈습이 선한 자는 기가 깨끗하고 질이 순수하여 하늘이 내린 본래의 성품을 온전히 할 수 있으니 요임금과 순임금, 주공周公과 공자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며, 반면에 전세의 훈습이 악한 자는 기가 탁하고 질이 혼잡하여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잃게 되는 것이니 걸桀이나 주紂, 도척盜跖100)과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렇듯 사람이 지혜롭고 어리석고, 선하고 악한 것은 모두가 다 전세 훈습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인데, 유가에서는 이것을 다 천명에 의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논합니다. 그렇다면 천명은 왜 그렇게 고르지 못한 것입니까. 요임금과 순임금에게는 뭐 얼마나 친근하다고 선한 성품을 주고, 걸과 주에게는 뭐가 얼마나 소원하여서 악한 성품을 주었던 것입니까.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오래 살고 일찍 죽고, 가난하고 부유한, 이 모두가 다 천명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하늘이 내려 준 명命이 어째서 그렇게 부유한 이는 적고 빈궁한 이는 많으며, 천한 이는 많고 귀한 이는 적게 한 것입니까. 안연顔淵같이 어진 사람은 궁핍하게 살다 일찍 죽게 하였으면서, 도척처럼 악한 사람은 부유하게 오래 살도록 하였습니다. 하늘의 도리가 어째서 그렇게 악한 사람에게는 부유함과 장수를 주고, 어진 사람에게는 궁핍함과 요절을 주었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성인의 가르침에는 늘 사람만을 질책할 뿐 하늘을 질책하지는 않으며, 사물의 잘못만을 탓하였지 천명을 탓하지 않는 것은 왜입니까.
또 이런 말도 합니다.
“모든 일은 다 자연에서 나온다.”

010_0282_a_01L眞知之性一而二二而一豈可謂斷
010_0282_a_02L滅無餘耶則眞性本非善惡因果
010_0282_a_03L隨識心熏習之不同有善有惡有染有
010_0282_a_04L以致凡聖因果之升沈也問識心旣
010_0282_a_05L與眞性同體而眞性無善惡何以識心
010_0282_a_06L却有耶答前不云熏習之不同乎如入
010_0282_a_07L芝蘭之室久而不聞其香入鮑魚之肆
010_0282_a_08L久而不聞其臭故君子擇必處仁愼其
010_0282_a_09L所習也考亭亦曰天降生民莫不與
010_0282_a_10L之以仁義禮智之性而但氣質之禀
010_0282_a_11L能齊故不能全其所有也盖人皆有是
010_0282_a_12L則應人人皆善而但夙世熏習之善
010_0282_a_13L其氣淸其質粹能全固有之性
010_0282_a_14L舜周孔是也其熏習之惡者其氣濁
010_0282_a_15L其質䮕迷失天賦之本性桀紂盜跖是
010_0282_a_16L然則人之智愚善惡皆由前習之因
010_0282_a_17L而儒氏所論皆天命之自然也
010_0282_a_18L命何其不均堯舜何親而與之善桀紂
010_0282_a_19L何踈而與之惡耶又云壽夭貧富皆繫
010_0282_a_20L天命天之賦命奚其富少貧多賤多
010_0282_a_21L貴少乎以顏淵之賢而貧且夭以盜
010_0282_a_22L跖之惡而富且壽天道何其惡者與之
010_0282_a_23L賢者奪之乎然而聖人設敎責人不責
010_0282_a_24L罪物不罪命何哉又萬事皆出自然

010_0282_b_01L
정말 그렇다면 어찌하여 인의와 충효를 반드시 꼭 배워야만 실행할 수 있고, 어찌하여 문장과 육예六藝를 반드시 꼭 가르쳐서 익히게 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 불가의 가르침에 의하면 훈습에 인연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안연은 선행을 훈습하였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한 기질을 받아 성자 버금가는 현인의 자질이 되었으나, 다만 장수와 부유함의 인연만은 만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에 비하여 도척은 악행을 훈습하였기 때문에 탁하고 복잡한 기질을 받아 패역悖逆한 사람이 되었으나, 다만 장수와 부유함의 인연만은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의 주소(經疏)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에 하늘이 응한다.”
또 『시경』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민下民의 재앙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들은 천명만 믿고서 두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이미 인연과 과보가 있는 것이라면, 단멸론斷滅論은 공격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어지게 마련입니다.
왜 듣지 못하셨습니까. 허순許詢101)이 죽어 소찰蕭察102)이 되고 소찰이 죽어 배휴裵休103)가 되었으며, 청초당靑草堂이 증노공曾魯公이 되고 안탕승雁蕩僧104)이 진회秦檜105)가 되었다 합니다. 지영智永106)이 방관房琯이 되었고 계戒 선사가 동파東坡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 장방평張方平107)이 낭야瑯耶108) 벽 위의 경전을 계속 이어서 썼고, 형화박邢和璞109)은 하구夏口의 항아리 속에서 나온 상像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전신과 후신이 되는 이치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와 같은 인연을 따르게 되는 법인데도, 다만 이전의 인연에 어둡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씨儒氏들은 어쩌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믿지를 않고, 일단 죽은 뒤에는 영원히 단멸한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극락세계의 설에 이르면, 유가에서만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여 의심하는 자가 더러 있기도 하니, 지금 대략 밝혀 두겠습니다.
대개 천하의 세계는 본디 이치에 근거하여 이치가 성립되는데, 이치가 이미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세계도 또한 무궁무진해서 헤아려 알 수 없고, 그 가운데 만 가지 다른 차별도 또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바다 밖 동쪽의 작은 나라이지만, 풍수와 풍속은 사방팔방 지역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남쪽 지방에서는 문인이 많이 배출되고 북쪽 지방에서는

010_0282_b_01L則仁義忠孝何必學而行之文章六藝
010_0282_b_02L何必敎而習之乎故吾佛設敎則莫非
010_0282_b_03L因緣熏習也顏淵熏習善行故受淸粹
010_0282_b_04L之氣質爲亞聖之資而但壽富之因不
010_0282_b_05L作也盜跖熏習惡行故受渴 [80] 䮕之氣質
010_0282_b_06L爲悖逆之人而但壽富之因能作也
010_0282_b_07L經䟽云人作之天應之詩云下民之
010_0282_b_08L匪降自天職意由人然則吾人不可
010_0282_b_09L恃天命而拱手無爲也旣有因緣果報
010_0282_b_10L則斷滅之論不攻自破也豈不聞乎
010_0282_b_11L許詢死爲蕭𧦴蕭𧦴死爲裵休靑草堂
010_0282_b_12L爲曾魯公鴈蕩僧爲秦檜不但智永爲
010_0282_b_13L房琯戒禪師爲東坡也又張方平續書
010_0282_b_14L瑯耶壁上之經邢和璞指夏口瓮中之
010_0282_b_15L則前後身之理分明可見人皆如
010_0282_b_16L而但迷昧前因故不能記儒氏以
010_0282_b_17L爲或然而不信以爲旣死之後永爲斷
010_0282_b_18L滅云云至如極樂世界之說非但儒家
010_0282_b_19L不信釋子之不得其意者亦多疑之
010_0282_b_20L今當略卞盖天下之世界本依理而成
010_0282_b_21L旣無窮盡故世界亦無窮盡不可
010_0282_b_22L以數知也其中差別萬殊亦不可測知
010_0282_b_23L吾東乃海外之蕞爾小邦而水土風
010_0282_b_24L隨八路而各異南方多出文北方

010_0282_c_01L무인이 많이 배출되며, 영남의 풍속은 질質이 문文보다 우세하고 호남 사람은 문이 질보다 우세합니다. 북쪽 사람들의 의식생활은 남쪽만 못해서,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좁쌀만 먹기도 하고 옷도 개가죽으로 만들어 입고 삽니다. 거기에 비하여 남쪽 사람은 생산한 곡식을 다 먹지 못하여 남아돌고, 면과 모시로 옷을 만들어도 다 입지 못하여 남을 만큼 넉넉합니다. 지방마다 그 살아가는 방법의 괴로움과 즐거움, 검소함과 사치스러움을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이 하늘 아래 세계는 무한히 넓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니, 그 사이에 어떻게 지극히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과 지극히 안락하게 사는 사람, 혹은 고통과 즐거움을 고르게 받으면서 사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근래 서양의 지도를 보니, 『사기史記』에 실려 있지 않은 나라가 매우 많았고, 중원中原은 동쪽 한 구석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사기』에서 중국의 서울 낙양洛陽이 천하의 중심이라고 말한 것은 다만 중국만 가지고서 말한 것이고, 실제로는 서역西域이 천하의 중심지입니다. 주자朱子도 또한 곤륜산崑崙山을 천하의 중심지라 하였는데, 서역은 바로 그 곤륜산 아래에 있는 땅입니다. 바로 이 중국에서 서역이라고 일컬었던 것은, 중원 사람이 스스로를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 서쪽을 가리켜 서역이라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서역 사람이 중원을 가리켜 동진東震이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방에 고망국古莽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의 백성들은 옷도 안 입고 음식도 안 먹고 항상 잠만 잔다고 합니다. 그러다 50년 만에 한 번 깨어나게 되므로 그들에게는 꿈을 꾸는 동안이 실實이 되고 깨어났을 때가 허虛가 된다고 합니다. 또 어떤 나라에는 마시면 미치게 되는 샘물이 있다고 합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다 그 샘물의 물을 마셨기에 미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유독 그 나라의 임금만 따로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기에 임금 한 사람만 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나라의 신하와 백성은 미치지 않은 자기 임금을 미쳤다고 하면서 서로 침을 놓아서 미치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 임금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함께 그 마시면 미치는 샘물을 마시고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신하와 백성들은 아주 기뻐하면서 자기 임금의 미친병이 다 나았다고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또 우리는 다만 요임금의 눈썹이 여덟 가지 색으로 빛났고 순임금의 눈동자가 둘이었다는 말만 들어 왔지만, 그것 말고도 눈썹이 길고 눈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만 사는 나라도 있습니다. 또 우리는 단지 한나라 고조高祖110)의 가슴이 넓다는 말만 들었지만, 그 말고도 가슴이 비어 있는 사람만 사는 나라까지도 있습니다. 또 우리는 단지 주공周公111)이 현인이 찾아오면 머리를 감다가도 몇 번이나 머리칼을 움켜쥐고 나가서 맞이하였다112)는 말을 들어왔고, 또 중이重耳 113)가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는 말만 들어 왔지, 또 교지국交趾國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렇게 다른 사례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010_0282_c_01L多出武嶺南之俗質勝文湖南之人文
010_0282_c_02L勝質北方之衣食不如南方或有純
010_0282_c_03L食粟而衣狗皮者南方之人稻粱不
010_0282_c_04L可勝食綿苧不可勝衣其生道之苦樂
010_0282_c_05L儉奢可知也况天下之世界無限難測
010_0282_c_06L則其間豈無極樂極苦或苦樂相均者
010_0282_c_07L近觀西洋國地圖史記中不載之國
010_0282_c_08L甚多而中原僻在東邊史記以洛陽爲
010_0282_c_09L天下之中者只約中國而言也其實西
010_0282_c_10L域爲天下之中朱子亦以崑崙爲天下
010_0282_c_11L之中而西域在崑侖之下正是中國
010_0282_c_12L稱西域者中原之人自以爲中故
010_0282_c_13L彼爲西例如西域之人以中原爲東震
010_0282_c_14L西方有古莽國其民不衣不食而常
010_0282_c_15L五十年一覺故以夢中爲宲以覺
010_0282_c_16L時爲虛又有一國有狂泉其國人皆飮
010_0282_c_17L此水無不爲狂獨其君別鑿一井
010_0282_c_18L飮故不狂其臣民以其君之不狂爲狂
010_0282_c_19L相與針灸欲醫其狂其君不勝痛楚
010_0282_c_20L乃同飮狂泉而爲狂其臣民歡喜以爲
010_0282_c_21L其君狂歇又只聞堯眉八彩舜幅重瞳
010_0282_c_22L而又有長眉一目之國只聞漢高斗胷
010_0282_c_23L而又有胷虛之國只聞周公反握重耳
010_0282_c_24L騈肩而又有交趾之國豈非差別異事

010_0283_a_01L유독 극락국極樂國만을 믿지 않는 것입니까.
요사이 어떤 유학자 한 사람이 ‘극락에는 순전히 남자만 있고 여자는 없다.’는 말을 듣고는, 비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만물에는 다 음과 양이 있게 마련인데, 사람으로서 어떻게 순전히 양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허망한 거짓이 어찌 그렇게 심하단 말입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통감사단通鑑史斷』에 보면 여인국女人國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은 순전히 여자만 살고 남자는 없는 곳이랍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여자가 물에 비추어 보기만 하면 아이를 낳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또 무슨 이치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그러자 그 유학자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제 비로소 천하의 일에는 반드시 대對가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땅의 상대가 되는 것이며 해는 달의 상대가 되는 것입니다. 저기 꿈을 현실로 여기고 깨어 있는 상태를 허실로 여기는 나라는, 여기 깨어나 있는 상태를 현실로 여기고 꿈을 허실로 여기는 나라와 상대가 됩니다. 저기 미친 사람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미치지 않은 것을 미친 것으로 여기는 나라는, 여기 미친 것을 미쳤다 하고 미치지 않은 것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나라와 상대가 됩니다. 눈이 하나인 사람은 눈이 두 개인 사람과는 상대이며, 가슴이 빈 사람은 가슴이 꽉 찬 사람과 상대가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순전히 남자만 있는 것이 순전히 여자만 있는 것에 상대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여자만 있는 나라는 역사 기록을 보고 믿으면서, 순전히 남자만 사는 나라가 있다는 말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어찌 허망하다고 합니까.
시험 삼아 일찍이 극락국에는 순수하고 선한 사람만 왕생한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진실로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으로 인의仁義와 자선慈善의 마음이 지극한 사람이라면 극락국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이지, 염불한 사람만 극락국에 왕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불충不忠한 사람이나 불효不孝한 사람으로서 간사하고 패역한 사람은 다 지극히 고통스러운 지옥에 들어가는 것이니, 불법을 헐뜯는 사람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였습니다.
“천당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만약에 있다면 군자만이 갈 것이고, 지옥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만약에 있다면 소인이 들어갈 것이다.”
이 말이 바로 실제로 맞는 말입니다. 경經에서도 말하였습니다.
“비록 십악十惡을 저지른 사람이라 해도 임종에 이르러 미타彌陀를 열 번 외우면 극락국에 왕생할 수 있다.”
합하께서 지난번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나 평생 동안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모든 하고 싶은 욕심을 다하고 살다가, 나중에 죽을 때에 미타를 열 번 염불하기만 하면 그냥 극락에 갈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무엇 하러 꼭 그렇게 곤욕을 참고 고행苦行을 하면서 극락에 가기 위하여 일생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까?”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었지요.
“그것이 바로 『서전』 「다방편多方篇」에서 말한, ‘오직 광인狂人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維狂也。 剋念作聖。)’고 한 그 뜻입니다.”
평생 십악을 행한다는 것은 ‘오직 광인’이라는 뜻이며,

010_0283_a_01L而獨不信極樂國何哉近有一儒
010_0283_a_02L極樂純男無女之說笑曰萬物皆有陰
010_0283_a_03L豈可以人而純陽乎誕妄何甚
010_0283_a_04L曰通鑑史斷有女人國純女無男照水
010_0283_a_05L而生之言此又何理儒士杜口始知
010_0283_a_06L天下之事無有不對天者地之對
010_0283_a_07L者月之對彼以夢爲宲以覺爲虛之國
010_0283_a_08L對此以覺爲實以夢爲虛也彼以狂爲
010_0283_a_09L不狂以不狂爲狂者對此以狂爲狂
010_0283_a_10L以不狂爲不狂也一目爲二目之對
010_0283_a_11L虛爲胷全之對亦何恠純男爲純女之
010_0283_a_12L而信純女而書之史誕純男而謂
010_0283_a_13L之無何哉試甞論之極樂之國純善
010_0283_a_14L徃生之苟能忠君孝父仁義慈善之
010_0283_a_15L心至極則可以徃生非但念佛也
010_0283_a_16L則不忠不孝奸凶悖逆者皆入地獄之
010_0283_a_17L極苦非但謗佛也故古人有曰天堂
010_0283_a_18L無則已有則君子陞之地獄無則已
010_0283_a_19L有則小人入之定實際語也經云雖十
010_0283_a_20L惡之人臨終十念彌陁能得徃之
010_0283_a_21L下曩曰然則人皆平生窮耳目之所欲
010_0283_a_22L但於死時十念足矣何必忍辱苦行
010_0283_a_23L以送一生也汙愚對曰此乃書所謂
010_0283_a_24L狂克念作聖之義也平生作十惡惟狂

010_0283_b_01L임종에 이르러 열 번 염불을 한다는 것은 곧 ‘능히 생각한다’는 뜻이며, 극락에 왕생한다는 것은 곧 ‘성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평생 악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그릇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고 온갖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없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불현듯 과거의 그릇됨을 깨닫고 진실한 성품만 유독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천 년 동안 빛 한 점 없었던 어두운 방에 어느 날 밤에 갑자기 밝은 등불을 높이 매달면, 온 방 안을 환하게 비추어 어둠이 한 점도 남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천 년 동안 어두운 방이라는 것은 평생 십악을 행하는 것과 같으며, 어느 날 밤에 등불을 매달았다는 것은 한마음에 문득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유가의 법에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온갖 죄를 저지르던 사람이라 해도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하면, 앞의 죄과는 기억하지 않고 나중에 개과천선한 것만 기억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십악을 행하던 사람이 부처님을 열 번 염불함으로써 극락에 왕생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만약 합하의 말씀처럼 평생 동안 실컷 악한 행동을 하다가 죽음에 임박하여 일부러 열 번 염불을 하는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바로 억지로 간교하게 속이는 마음을 만들어 낸 것이니, 어찌 마음의 청정함을 얻어 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마치 위魏나라 조조曺操가 평생을 간사하고 거짓된 행동만 하다가 죽을 때에야 진성眞性을 깨달았는데, 남이 엿듣는 것을 알고는 다시 다른 말을 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심機心이 하는 짓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이 찌르는 듯한 고통과 두려움을 면하지 못했던 것일 터이니, 아마도 진성은 깨달았으나 아직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슬픕니다. 평생 악을 행했더라도 죽음에 임박해서 열 번만 부처님을 염불하면 오히려 극락에 왕생할 수 있는데, 하물며 30년이나 20년 동안을 전념하여 염불을 한 사람이라면 더욱더 쉽게 극락왕생을 성취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소동파는 황주黃州로 좌천되어 가는 날에 미타부처님의 형상을 그린 그림 한 축을 가지고 갔었답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왜 가지고 가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었습니다.
“이분은 우리 서방공西方公이십니다.”
그러고는 이어서 게송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念念彌陁佛            미타불을 염송하고 또 염송하여도
人生七十稀            사람이 태어나 칠십 세를 사는 사람 드문데
徃來三界苦            삼계三界의 괴로움을 오가면서
幾介解知歸            몇 사람이나 도를 깨닫고 돌아갔는가
念念彌陁佛            미타불을 염송하고 또 염송하면서
平生只靠他            평생을 오직 그에게만 의지하여
此心淸淨了            이 마음 청정하게 깨달았으니
即是白蓮花            이것이 바로 백련화라네

그리고 임종할 때에는 좌선한 채로 유유히 열반에 들었다고 합니다. 소동파와 같이 병자년에 태어나 동갑이었던 경산徑山 임琳 선사禪師가 가서 소동파의 좌탈한 모습을 보고는, 그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고 합니다.
“서방 극락세계로 간다는 말을 확실하게 밝히도록 힘써 보아라.”
그러자 소동파가 눈을 뜨고 말하였답니다.

010_0283_b_01L臨終十念即剋念也徃生極樂
010_0283_b_02L作聖也盖斯人平生作惡不知其非無
010_0283_b_03L所不爲及其死也能頓覺前非眞性獨
010_0283_b_04L比如千年暗室無一點明忽於一
010_0283_b_05L高懸明燈一室洞照無一點暗
010_0283_b_06L年暗室如平生十惡也一夜懸燈
010_0283_b_07L一念頓覺也又如儒家之法人有無狀
010_0283_b_08L罪過一朝改過遷善則不錄前過
010_0283_b_09L取遷善今十惡之十念徃生亦此義也
010_0283_b_10L若如閤下之言平生故意作惡臨死故
010_0283_b_11L意十念此乃强作機心也烏得心淨而
010_0283_b_12L生淨土耶如曺操平生奸僞死見眞性
010_0283_b_13L而知人窃聽更作他言此乃機心所作
010_0283_b_14L故不免如鬼之刺盖雖見眞性
010_0283_b_15L未能頓覺也平生作惡臨終十念
010_0283_b_16L猶能徃生況三十年二十年專意念佛
010_0283_b_17L尤易成就可不勉旃昔東坡迁黃
010_0283_b_18L州日帶彌陁像一軸或問之則曰此
010_0283_b_19L吾西方公據也仍有頌曰念念彌陁佛
010_0283_b_20L人生七十稀徃來三界苦幾介解知歸
010_0283_b_21L念念彌陁佛平生只靠他此心淸淨了
010_0283_b_22L即是白蓮花臨終坐脫徑山琳禪師
010_0283_b_23L與之同生丙子徃見坐脫拊其背曰
010_0283_b_24L端明西方之說正好着力公開目曰

010_0283_c_01L
“힘을 쓰면 바로 어긋나느니라.”
그러고는 다시 눈을 감고 떠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임종할 때에 정념正念이 흩어지지 않은 것이니, 극락에 왕생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이치李豸114)가 이렇게 조문弔文을 지어 문상을 하였습니다.

道大難名              도가 너무 크면 이름나기 어렵고
才高衆忌              재주가 너무 높으면 대중의 시기를 받게 되나니
皇天后土              하늘이여 땅이시여
知平生忠義之心           평생 동안 충성하며 의리를 지켜 온 마음을 아는가
名山大川              명산대천에
還千載英靈之氣           천 년 가도록 꽃다운 신령한 기운으로 환생하리라

사대부들은 이치의 이 글귀가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였으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유학자나 스님들 사이에 소동파가 이렇게 임종하였던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렇기에 여기 이렇게 써 보았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백성을 다스리시고 남는 시간에 한편으로 이 일을 실행하시어 소동파처럼 여러 해를 계속하시옵소서. 그리하시면 마침내 임종할 때에 이르러 소동파와 같이 어지럽지 않은 정념을 얻을 수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당나라와 송나라 사이에 고명한 사대부들이 여럿 소동파의 좌탈법에 따라 임종을 하였으니, 비루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위에서 번잡하게 말씀드린 내용은, 어떤 것은 유가나 불가의 전적에서 뽑아 인용한 것도 있고, 또 어떤 부분은 제 나름대로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한 것입니다. 아, 뇌문雷門115)에 북(布鼓)을 울려 온 세상에 제 생각을 드러내었으니, 참으로 주제 넘는 일인 줄 알고 있습니다. 공자도 문하의 제자들에게 각자의 뜻을 말하도록 권하였었고, 옛사람들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것이 있다고 한 일이 있습니다. 저의 이 어리석은 생각을 다하여 소견을 말씀드리오니,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특별히 받아들여 취해 주십시오.
너무나 송구한 마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연담대사임하록』 제4권 끝
간기刊記
문인 계신誡身이 간행을 맡고 교정校正을 보았으며, 낭암 시연朗岩示演이 글씨를 썼다.

010_0283_c_01L着力便差還瞑目而逝此乃臨終正念
010_0283_c_02L不散其徃生乎何有李豸爲文以吊曰
010_0283_c_03L道大難名才高衆忌皇天后土知平
010_0283_c_04L生忠義之心名山大川還千載英靈之
010_0283_c_05L士大夫稱其辭該而美今吾東儒釋
010_0283_c_06L罕知此事故兼爲錄之伏願閤下
010_0283_c_07L撫字之餘旁行此事積之多年則安
010_0283_c_08L知臨終不亂亦如坡翁耶唐宋間高明
010_0283_c_09L士大夫亦多依而行之勿以爲卑事
010_0283_c_10L幸甚右陳葛藤或援引於內外典中
010_0283_c_11L或間附迃愚左見鳴布鼓於雷門照爝
010_0283_c_12L火於日下誠知僣越而各自言志
010_0283_c_13L子推於門下千慮一得古人亦許
010_0283_c_14L竭愚覃思以伸管見伏惟閤下特加
010_0283_c_15L去取無任悚仄之至

010_0283_c_16L
蓮潭大師林下錄卷四終

010_0283_c_17L[刊記]
門人誡身管刊校正
010_0283_c_18L朗岩示演書

010_0283_c_19L
010_0283_c_20L
  1. 1)좌선 자리(折床會)가 만들어졌고 : 절상折床은 사람들이 많아서 평상이 부서진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환성 노화상이 가는 곳마다 용맹정진하는 좌선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2. 2)시채蓍蔡 : 시귀蓍龜라고도 한다. 시초(蓍)와 거북(龜)은 고대에 점을 치는 도구였다. 여기서는 법문을 이끄는 종주宗主라는 뜻이다.
  3. 3)팔풍八風 : 또는 팔법八法이라고도 한다. 세상에 여덟 가지 법이 있어서 세간의 애증이 된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선동하는 이利·쇠衰·훼毁·예譽·칭稱·기譏·고苦·락樂을 말한다.
  4. 4)심기와 봉(機鋒) : 기機는 수행에 따라 얻은 심기心機이고 봉鋒은 심기의 활용이 날카로운 모양을 뜻한다. 선객禪客이 다른 이를 대할 때 응대하는 날카로움을 말한다.
  5. 5)유가儒家(西河) : 『禮記』 「檀弓 上」에 “자하가 물러나 서하 위에서 노년을 보냈다.(退而老於西河之上)”라는 말이 있는데, 후에 서하西河라는 말로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의 대칭代稱, 혹은 유학자를 이르는 말로 쓰게 되었다.
  6. 6)제자(神足) : 신족神足은 역량과 덕행이 함께 뛰어나 많은 수행승의 모범이 되는 승려, 또는 문제門弟를 가리키는 말이다.
  7. 7)설파 화상은 1775년 을미년에 『華嚴經』 경판을 완성하여 영각사靈覺寺에 장경각(經閣)을 세워 이 경판을 보관하였다. 그때 「重刊華嚴經序」를 연담 대사가 썼다.
  8. 8)십현법문十玄法門 : 십현연기十玄緣起 또는 현문玄門이라고 한다. 십현연기무애법문十玄緣起無礙法門이라고도 하니, 화엄종에서 세운 것이다. 현문은 현묘한 법문이란 뜻으로 불교를 뜻한다.
  9. 9)청량淸凉 : 화엄종華嚴宗의 4조祖이며, 이름은 징관澄觀이다.
  10. 10)임제臨濟 : 당나라 사람으로, 황벽黃檗을 이어서 임제종의 개조開祖가 되었다.
  11. 11)양기楊歧 : 송나라 원주袁州 양기산楊岐山의 방회方會 선사를 가리킨다. 황룡산黃龍山 혜남慧南과 더불어 모두 임제臨濟의 제6세 자명원慈明圓 선사의 법사가 되었다.
  12. 12)담당湛堂 : 고려 때의 승려로, 고려 조계曹溪의 제9세 조사이다. 송광사松廣寺 16국사國師 중 9번째 국사를 지냈다.
  13. 13)형양衡陽 : 옛날 중국 형주衡州를 말한다. 천태종 제2조 혜사惠思가 살았던 곳이다.
  14. 14)형양과 매양에 귀양을 갔었네 : 송나라 간신인 진회秦檜가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권력을 빙자하여 대혜大慧 스님을 매양梅陽과 형양衡陽으로 귀양 보냈었다.
  15. 15)대나무 그림(墨竹) : 선조가 서산 대사에게 대나무를 그려 하사하신 일이 있다.
  16. 16)병충秉忠 : 명나라 원충袁衷의 자이다. 정통 연간에 벼슬을 하였으며, 공명정대하고 청렴하기로 유명했다. 시문에 매우 능했다고 한다.
  17. 17)왜적(漆齒) : 칠치漆齒는 검게 칠한 이빨이란 뜻으로, 왜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 풍습에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은 이빨을 검게 만들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다.
  18. 18)사우祠宇 : 사당. 밀양 표충사에 배향하였다.
  19. 19)오도자吳道子 : 중국 당나라 때 천재 화가인 오도현吳道玄(700~760)을 말한다. 현종에게 그림 재주를 인정받아 궁정화가가 되었다. 원래 이름은 도자道子였는데, 현종이 도현道玄이란 이름을 내려 주었다.
  20. 20)사리불(鶖子) : 추자鶖子는 추로자鶖鷺子라고도 한다. 사리불舍利佛의 별명이다.
  21. 21)청평사淸平寺에서 나온~비갈의 글 : 청평사에서 땅속에 묻혔던 비갈이 나왔는데, 거기에는 “유충관부천리래儒衷冠婦千里來”라고 쓰여 있었다. ‘유자의 마음(儒衷)’이란 ‘지志’를 말하는 것이고, ‘관을 쓴 여자(冠婦)’는 ‘안安’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 비갈은 지안志安 대사의 것이었다고 전한다. 지안 대사의 자는 삼낙三諾이고, 호는 환성喚惺이다.
  22. 22)당나귀 다리(驢脚) : 선을 수행하는 사람이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세 가지 관문인 삼관三關 가운데 하나이다. 예를 들어 황룡산黃龍山 혜남慧南 선사는 이 세 가지를 스님들에게 질문하길 “사람마다 다 인연이 있는데(人人盡有生緣) ‘상좌의 인연은 어디 있는가(上座生緣在何處)’, ‘내 손은 어째서 부처님 손 같은가(我手何似佛手)’, ‘내 다리는 어째서 당나귀 다리 같은가(我脚何似驢脚)’이다.”라고 하였다. 『五燈會元』에 나온다.
  23. 23)부처님 안 계시는 세계(無佛處) : 무불처無佛處는 부처님이 머물지 않는 세계를 말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이미 입멸하고 미륵불이 아직 출현하지 아니한 동안을 말한다. 이때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출현하여 중생을 교화한다고 한다.
  24. 24)답답한 사람(擔板漢) : 담판한擔板漢은 널을 메고 가는 놈이라는 뜻이다. 널을 메고 가자면 한쪽밖에 보지 못하므로 사물의 한쪽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25. 25)진점겁塵點劫 : 지극히 오랜 시간을 표현하는 말로, 『法華經』에 삼천진점겁과 오백진점겁, 두 종류의 진점겁이 나온다. 예를 들면, 삼천진점겁은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갈아서 먹물을 만든 다음, 일천 국토를 지날 때마다 작은 티끌만 한 물방울을 한 방울 떨어뜨려 그 먹물이 다 없어졌을 때, 그 지나온 국토를 모두 모아 부수어 다시 티끌로 만들고, 그 티끌 하나를 1겁으로 세어 그 수효를 모두 계산하는 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26. 26)삼세三細 : 『起信論』에서 설한 것으로, 근본무명根本無明의 상을 셋으로 나누어, 지말무명枝末無明의 육추六麤에 대비시킨 것이니, 무명업상無明業相·능견상能見相·경계상境界相을 말한다.
  27. 27)육추六麤 : 중생의 미망迷妄이 생기는 차례를 근본무명根本無明과 지말무명枝末無明으로 나누는데, 육추는 근본무명 삼세三細에 대하는 여섯 가지 무명상을 말한 것이니, 지상智相·상속상相續相·집취상執取相·계명자상計名字相·기업상起業相·업계고상業繫苦相을 말한다.
  28. 28)한꺼번에 공해지니(一空) : 『三藏法數』 4조에, “일공一空은 일체제법이 모두 자성自性이 없고 색심의정色心依正 내지 성범인과聖凡因果의 법이 비록 여러 가지여서 같지 않으나, 그 본체본성을 찾는다면 필경은 모두 공空임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29. 29)능소能所 : 두 법이 마주할 때에 능동으로 동작하는 것을 능能, 동작을 받는 것을 소所라 한다. 마치 능연能緣과 소연所緣, 또는 능견能見과 소견所見 등과도 같다.
  30. 30)함곡관函谷關 : 함곡函谷에 있던 험준하기로 유명한 관문關門이다.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의 고사로 유명하다. 맹상군이 함곡관에서 도망할 때에, 한밤중에 종에게 닭 울음소리를 흉내 내게 하였다. 그러자 문지기가 새벽닭 우는 소리인 줄 알고 관문을 열었기에, 진秦나라에서 무사히 도망쳤다고 한다.
  31. 31)어언삼매語言三昧 : 자유자재로 말하거나 써도 그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는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언어의 세계를 말한다.
  32. 32)일승묘법一乘妙法 : 우주의 통일적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 『法華經』에서 말하는 공空의 진리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33. 33)쓸데없는 말(野干說) : 야간野干은 여우 비슷한 짐승으로, 색은 청황색이며, 크기는 개만 하다. 밤에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우는데, 그 울음소리는 이리와 같다. 체형은 작으나 꼬리는 길고, 나무에 잘 오르지만 가지가 썩었을까 의심이 많아 나무에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34. 34)흰 소(白牛) : 『法華經』에 나오는 세 가지 동물, 양과 사슴 그리고 흰 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 흰 소로써 최상승인 일승법一乘法에 비유한다.
  35. 35)사성四聖과 육범六凡 : 십계十界를 범부와 성자의 두 종류로 나누는데,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은 육범이고, 성문·연각·보살·불佛은 사성이다.
  36. 36)무차회無遮會 : 현성賢聖과 도속道俗, 귀천貴賤, 상하上下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를 행하는 대법회를 말한다.
  37. 37)재를 집행하는 이 사람(秉法) : 병법秉法은 부처님 앞에서 예식이나 기도, 재齋 등을 집행하는 사람의 직명이다.
  38. 38)일진법계一眞法界 : 화엄종에서 쓰는 지극한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천태가天台家에서 말하는 제법실상諸法實相과 같다.
  39. 39)아홉 세계(九界) : 사성과 육범의 십계十界 가운데 인도人道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계를 말한다.
  40. 40)좌부左符 : 부절符節을 반으로 나누었을 때 우부右符의 짝이 되는 나머지 반쪽을 말하는 것으로, 언약의 징표로 쓰인다.
  41. 41)여래의 궁전 : 왕사성王舍城 옆 가란타迦蘭陀 죽림에 있었던 죽림정사竹林精舍를 말한다. 가란타 장자가 부처님께 귀의한 뒤에 죽림을 부처님께 바쳤으므로 이곳에 정사를 세웠는데, 인도 사찰의 효시가 되었다.
  42. 42)장륙금신丈六金身 : 부처님 몸(佛身)을 말한다. 『傳燈錄』에 “서방에 부처님이 계시니, 그 형상이 여섯 길(丈六)이나 되고, 황금색이다.”라고 하였다.
  43. 43)이십팔천二十八天 : 삼계三界 제천諸天의 총칭으로, 곧 욕계欲界의 육천六天과 색계色界의 십팔천十八天, 그리고 무색계無色界의 사천四天을 합하여 말하는 것이다.
  44. 44)사대주四大洲 : 수미산에 있는 서방함해西方醎海의 사대주를 말한다. 남섬부주南贍部洲, 동승신주東勝身洲, 서구다니西瞿陀尼, 북구로주北俱盧洲를 말한다.
  45. 45)금륜金輪 : 세계의 사륜四輪 가운데 하나이다. 제일 아래층인 공륜空輪 위에 풍륜風輪이 있는데, 그 위를 수륜水輪이라 하며, 다시 그 위에 금륜이 있다 한다. 그리고 이 금륜 위에 구산九山과 팔해八海가 있으니, 그것을 지륜地輪이라 한다.
  46. 46)수륜水輪 : 세계의 사륜 가운데 하나로, 풍륜 위에 있는 광음천光音天에서 비가 내려 11억 2만 유순의 깊은 수층水層이 생기는데, 이것을 수륜이라 한다. 이 수륜의 상층이 응결하여 금륜제金輪際가 되는 것이다.
  47. 47)남섬부주南贍部洲 : 염부제閻浮提와 같다. 옛날에 염부주琰浮洲, 염부제비파閻浮提鞞波라고 하였던 곳으로, 수미산의 남방에 있는 큰 섬의 이름이다. 곧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을 이른다.
  48. 48)서구다니西瞿陀尼 : 서대주西大洲의 이름이다. 수미산의 서쪽에 있다.
  49. 49)동승신주東勝身洲 : 수미산 사주四洲의 하나로, 수미산 동쪽 칠금산七金山과 철위산鐵圍山 사이 짠물 바다 가운데 있으며,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몸이 매우 훌륭하므로, 승신주勝身洲라고도 한다.
  50. 50)북구로주北俱盧洲 : 수미산 사주 가운데 하나로, 수미산 북방에 있다.
  51. 51)무정물無情物 : 돌·산·바위 등과 같은 정신의 작용이 없는 것들의 총칭이다.
  52. 52)조사선祖師禪 : 문자를 세우지 않고 조사祖師가 근본을 전하는 선禪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원래 『楞嚴經』에서 말한 여래선如來禪에 반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래선은 교敎 안에서 완전 통달하지 못한 선이며, 조사선은 교 밖에서 따로 전해진 지극한 선이라고 한다.
  53. 53)세간의 국토(依)~몸(正)이 드러나고 : 바로 과거의 업에 따라 나의 심신을 받는 것을 정보正報라고 하고, 그 심신이 의지하는 일체 세간의 사물을 의보依報라고 한다.
  54. 54)용자龍子 : 큰 바다에 사는 용자는 항상 금시조한테 잡아먹혔는데, 용왕이 부처님께 청하여 가사를 얻어 입히자, 그 난을 모면했다고 한다. 『海龍王經』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55. 55)복덕과 지혜를 장엄하는(莊嚴福慧) : 복덕福德과 지혜 두 가지가 모두 장엄함을 말한다.
  56. 56)삼덕三德 : 부처님의 덕을 세 방면에서 말한 것으로, 지덕智德·단덕斷德·은덕恩德을 말한다.
  57. 57)구품九品의 연대蓮臺 : 아홉 종 연꽃의 대좌臺座를 말한다. 행업의 우열에 따라 정토에 왕생하는 자가 앉는 아홉 종의 연화대蓮花臺이다.
  58. 58)12월(臨卦) : 임괘臨卦는 음력 12월에 해당한다. 아래 두 양陽이 점점 자라면서, 음陰을 차츰 침해하기 때문에 양기가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59. 59)1월(泰卦) : 태괘泰卦는 음력 1월에 해당한다. 아래 세 양이 자라면서 천지天地가 어울리고 음양陰陽이 화합하면, 만물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60. 60)주공근周公瑾 :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명신名臣인 주유周瑜(175~210)를 말한다.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가 이끄는 위魏나라 군사를 대파하였다.
  61. 61)북선北禪 : 북선 지현北禪知賢. 송나라 선사. 형주衡州 북선사北禪寺에 주석하였다. 운문종 복엄 양아福嚴良雅의 제자이다. ‘북선세진北禪歲盡’이라는 공안을 남겼다.
  62. 62)노지백우露地白牛 : 『法華經』 「譬喩品」에서 설한 것으로, 문밖의 노지露地에 세워 둔 대백우거大白牛車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승법大乘法, 일불승一佛乘에 비유한 말이다.
  63. 63)고봉高峰 : 원나라 스님 원묘原妙의 법호이다. 육조 혜능의 제22대 적손인 설암 조흠雪巖祖欽의 제자로, 천목산天目山 서봉西峰의 장공동張公洞에 들어가 ‘사관死關’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15년 동안 문밖을 나가지 않으며 수행하였다.
  64. 64)화보華報 : 사람이 과실을 얻기 위해 나무를 심으면, 그 과실을 얻기 전에 먼저 꽃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이, 현재에 지은 업이 미래에 과보로 나타나기 전에 현세에 바로 과보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과보를 화보라고 한다.
  65. 65)한 기미(一機) : 동일한 종류의 기연機緣으로 마땅히 동일한 교敎를 받아야 하는 동기를 말한다. 『碧巖錄』에 “고인이 일기일경一機一境을 드리워 보이시어 긴요하게 사람들을 대하여 인도한다.”라고 했다.
  66. 66)도부桃符 : 새해 아침, 악귀를 쫓기 위하여 문짝에 붙이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작은 나뭇조각을 말한다.
  67. 67)남주南洲 : 염부제閻浮提를 말하는 것으로, 수미산 남방 함해鹹海 가운데 있는 대주大洲이다. 우리 인간이 사는 곳을 말한다.
  68. 68)중춘仲春 : 음력 2월을 말한다.
  69. 69)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桂玉) : 계옥桂玉은 타지에서 계수나무보다 비싼 땔감을 때고, 옥보다 비싼 음식을 먹고 사는 괴로움이라는 뜻으로, 물가物價가 비싼 도회지에서 힘들게 지내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70. 70)합하閤下 : 각하閣下와 같은 의미.
  71. 71)방백方伯 : 본래는 고대 중국의 제후諸侯를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는 관찰사觀察使를 달리 이르는 말로 쓰였다.
  72. 72)정황우政黃牛 : 여항 유정餘杭惟政 선사는 항상 노란 소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호를 정황우라고 하였다. 장당蔣堂과는 친구였지만, 장당이 여러 번 오라고 청하여도 절대 응하지 않았었다.
  73. 73)오석령烏石嶺 꼭대기에서~그런 일 : 설봉雪峰(832~908) 대사가 고을에 갔다 와서 대중들에게 훈시하길 “망주정에서 그대들을 다 만났고, 오석령에서도 그대들을 다 만났으며, 지금 큰방에서도 그대들을 다 만났다.(望州亭與汝相見了也。 烏石嶺與汝相見了也。 僧堂前與汝相見了也。)”라고 하였다. 나중에 설봉 대사의 제자인 보복保福이 아호鵝湖에게 묻기를 “큰방 앞에서 대중을 만난 것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망주정과 오석령에서 대중을 보는 것인가?”라고 하자, 아호는 걸음을 재촉하여 방장으로 들어갔고, 보복은 승당으로 들어갔다.
  74. 74)총섭摠攝 : 조선 시대 승려의 직책이니, 조선 후기에는 대체로 사찰의 주지를 이르는 말로도 쓰였다.
  75. 75)가사(畦衣) :휴의畦衣는 휴복畦服이라고도 한다. 밭두둑이 나뉘어 있는 모양으로 조각을 이은 옷이란 뜻에서 가사의 별칭으로 쓴다.
  76. 76)족함을 알고~알아야 합니다 : 『老子』에 “분수에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하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라고 하였다.
  77. 77)사직소(乞骸) : 사직상소辭職上疏를 올리는 것을 걸해乞骸라고 한다. 관리가 공무에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죽어 그곳에 묻히겠다는 뜻이다.
  78. 78)한 능주 필수 : 능주綾州(화순) 수령 한필수韓必壽(1715~1776)를 말한다. 본관은 청주, 자는 인수仁叟, 호는 지봉砥峯이다. 1756년 문과에 합격하고 대동찰방, 대사간, 대사헌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79. 79)명부明府 : 한위漢魏 이래 군수郡守·목윤牧尹의 존칭으로 쓰였고, 한대에는 현령縣令을 칭했다. 당 이후로는 현령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80. 80)거짓(子虛) :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子虛賦」에 자허子虛·오유선생烏有先生·망시공亡是公, 세 사람의 문답이 나온다. 이 때문에 후에 허구, 혹은 사실이 아닌 일을 자허라고 부르게 되었다.
  81. 81)소자첨蘇子瞻 : 송나라 때 문장가文章家 소식蘇軾을 말한다. 자가 자첨이고 호는 동파東坡이다.
  82. 82)구양영숙歐陽永叔 : 송나라 학자로서, 이름은 수修, 자는 영숙이다. 호는 취옹醉翁 또는 육일거사六一居士라 하였다. 군서群書에 널리 통달하고 시문詩文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서로는 『新唐書』·『新五代史』, 그리고 기타 시문집詩文集 등이 있다. 『宋史』 제319권에 나온다.
  83. 83)사마군실司馬君實 : 송나라 명신으로, 이름은 광光, 자는 군실이다. 태사온국공太師溫國公을 증직贈職 받았으므로, 사마온공司馬溫公이라 한다.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반대하다가 실각失脚되었고, 철종哲宗 때 정승이 되어 왕안석의 신법을 모두 폐지하였다. 저서로는 『資治通鑑』·『通鑑異考』·『獨樂園集』 등이 있다. 『宋史』 제336권에 나온다.
  84. 84)방관房琯 : 당唐나라 하남河南 사람으로, 자는 차율次律이다. 처음에는 육혼산陸渾山에 은거하다가 개원開元 연간에 노씨령盧氏令이 되었다. 『舊唐書』 제111권에 나온다.
  85. 85)백낙천白樂天 : 당나라 시인으로, 태원太原 사람이고, 이름은 거이居易, 자는 낙천이며,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唐書』 제119권에 나온다.
  86. 86)황정견黃庭堅 : 송나라 시인으로,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이다. 강서시파江西詩派의 개조로서, 시는 소동파蘇東坡와 병칭幷稱되었으며, 서가書家로서도 송대 사대가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87. 87)염계와 낙양(濂洛) : 염락濂洛은 송나라 신종神宗과 철종哲宗 때 있었던 염계濂溪와 낙양洛陽의 유명한 유학자들을 말한다. 곧 주돈이周敦頤·소옹邵雍·사마광司馬光·정호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이를 정주학파程朱學派라고도 한다.
  88. 88)유학(洙泗學) :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는 강의 이름인데, 공자가 이 근처에서 도를 가르쳤으므로 유학을 수사학洙泗學이라 한다.
  89. 89)이천伊川 : 정이程頤의 호이다.
  90. 90)고정考亭 : 주희朱熹를 말한다.
  91. 91)대혜大惠 : 대혜 종고大慧宗杲(1089~1163) 스님은 송대 임제종 양기파에 속한 분으로, 효종제孝宗帝로부터 대혜선사大慧禪師라는 호를 받았다. 저서로 『大慧語錄』 12권과 『大慧法語』 3권 등이 있다.
  92. 92)『周易』 곤괘坤掛에 나온다.
  93. 93)『書經』 「伊訓」에 나온다.
  94. 94)『書經』 「湯誥」에 나온다.
  95. 95)난무자欒武子 : 춘추春秋 진晉나라 사람으로, 경대부를 지냈다. 이름은 서書, 시호는 무자武子이다. 검소한 생활과 덕행으로 명성이 자자하였고,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96. 96)수후隋侯에게 뱀이~갚아 주었으니 : 초楚나라 수후가 길을 가다 소 모는 아이들이 뱀을 잡으려 때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후가 아이들에게서 뱀을 구해 치료해 주었는데, 며칠 후 달이 뜨지 않았는데도 마당이 훤해 내다보니, 뱀이 입에 야광주를 물고 있었다고 한다.
  97. 97)전傳 : 『史記』 「貨殖列傳」을 말한다.
  98. 98)식심識心 : 제6식第六識 혹은 제8식第八識의 심왕心王을 식심이라 한다. 즉 의식 작용의 본체가 되는 것으로, 대상을 향하여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을 말한다.
  99. 99)진지眞知 : 진지眞智의 지知를 말한다.
  100. 100)걸桀이나 주紂, 도척盜跖 :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세상에서 가장 포악무도한 임금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도척은 춘추시대 노魯나라 유하혜柳下惠의 제자로, 그를 따르는 무리가 9천 명이나 되었다. 그는 남의 우마牛馬를 훔쳐 타고, 부녀를 잡아갔으며, 제후왕諸侯王을 침해하고 천하를 횡행하면서 포악무도한 행위를 서슴없이 했던 사람이다.
  101. 101)허순許詢 : 진晉나라 사람으로, 자는 원도元度이며, 산수山水를 유람하길 좋아했다. 당시 사람이 말하기를, “허순은 한갓 승정勝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제승지구濟勝之具가 있다.”라고 했다. 『尙友錄』 제15권에 나온다.
  102. 102)소찰蕭察 : 북주北周 사람으로, 소통蕭統의 셋째 아들이며, 학문을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다고 한다. 또한 불교의 이치에 통달하였고, 대통大通 연간에 악양왕岳陽王에 봉해졌다. 묘호는 중종中宗, 저서로는 문집과 『華嚴般若法華金光明義疏』가 있다. 『周書』 제18권에 나온다.
  103. 103)배휴裵休 : 당나라 사람으로, 배숙裵肅의 아들이며, 자는 공미公美이다. 대중大中 연간에 병부시랑兵部侍朗,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를 지낸 다음, 선정善政을 많이 펼쳤다. 『新唐書』 제182권에 나온다.
  104. 104)안탕승雁蕩僧 : 안탕은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산 이름인데, 태평흥국太平興國 초에 사문 전료全了가 이 산에 영암사靈巖寺라는 절을 지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전료를 지칭하여 안탕승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105. 105)진회秦檜 :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 재상宰相으로, 자는 회지會之이다. 악비岳飛를 무고誣告하여 죽이고, 주전파主戰派를 탄압하여 금金나라와 굴욕적인 화약和約을 체결하였으므로, 후세에 대표적인 간신姦臣으로 꼽힌다. 『宋史』 제473권에 나온다.
  106. 106)지영智永 : 남북조南北朝 때 영흔사永欣寺의 스님인데, 호는 영선사永禪師이며, 회계會稽 사람이다. 속성은 왕王 씨이고, 서예에 능하여 여러 서체를 다 잘 썼다.
  107. 107)장방평張方平 : 송나라 남경南京 사람으로, 자는 효달孝達, 호는 낙전거사樂全居士이다.
  108. 108)낭야瑯琊 : 산동성山東省 제성현諸城縣 동남쪽 낭야대瑯琊臺 위에 있는 비석이다. 진시황 28년에 세운 송덕비로, 비문에는 청 함풍咸豊 동치同治 연간까지의 대신과 종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109. 109)형화박邢和璞 : 당나라 사람으로, 『穎陽書』를 지었다. 『唐書』 제204권에 나온다.
  110. 110)한나라 고조高祖 : 한漢나라 시조로, 성은 유劉, 이름은 방邦이다. 초楚나라 항우項羽를 해하垓下에서 격파하고, 제위에 올라 4백여 년의 왕조를 창업하였다.
  111. 111)주공周公 : 성은 희姬씨이며, 주周 무왕武王의 아우이다. 무왕을 도와 은殷나라 주紂를 토벌하였다.
  112. 112)주공周公이 현인이~나가서 맞이하였다 : 주공이 인재를 구하기에 힘쓴 것을 표현한 말로, 『史記』 「魯周公世家」에 “내가 한 번 머리를 감을 동안에 세 번 머리를 잡고 나가고, 한 번 밥을 먹는 동안에 세 번 밥을 뱉고 일어나 선비를 맞으면서도, 오히려 천하의 현인을 잃을까 두려워한다.(我一沐三捉髮。 一飯三吐哺。 起以待士。 猶恐失天下之賢人。)”라고 하였다.
  113. 113)중이重耳 :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이름이다.
  114. 114)이치李豸 : 소동파의 제자로 소동파 문하의 여섯 군자(蘇門六君子) 중 하나이다.
  115. 115)뇌문雷門 : 고대 회계會稽의 성문 이름인데, 큰 북을 달아 놓아 우레와 같은 소리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1. 1)「二」一字。編者補入。
  2. 1)「師」當作「獅」{編}次同。
  3. 1)「書」一字。編者補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