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월성집(月城集) / 月城大師文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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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대사문집 서문
내가 충청도 관찰사로 있을 때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매우 근심하였다. 그래서 임무를 맡아서 정신을 쏟아 가며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간혹 아전과 빈객들이 흩어진 후 누각에 올라 바라보면 서남쪽 명산들이 서안 앞에 있는 듯 가까이 보였다. 그럴 때면 느긋하게 높은 봉우리에 오르고 어두운 굴에 이르러 선승禪乘의 오묘한 뜻을 생각하고 도추道樞1)의 보배를 찾을 듯했으나, 아직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어느 날 문지기가 어떤 승려가 문에 있다고 말하였다. 납의는 눈처럼 하얗고 지팡이는 등나무로 만든 것이요, 머리를 숙인 채 말이 능숙하였다. 눈썹 사이에는 은은하게 산천의 기운이 어려 있으니 필시 범상한 외도外道 행각승行脚僧은 아니었다. 내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이고 보니, 관음사의 홍준鴻俊이었다. 일찍이 표충사 주지 징오憕旿의 편지를 가지고 왔던 자였다.
자리로 맞아들였는데 몇 마디 말을 나누고는 합장하고 계단을 내려가 말하였다.
“제가 온 것은 제 스승 때문입니다. 제 스승은 월성月城이신데, 속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비은費隱2)입니다. 13세에 출가하시어 16세에 삭발하셨고,

010_0390_a_11L月城大師文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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余在湖臬適歲大侵民憂攅眉王事
010_0390_a_14L鞅掌弊精勞神迨無暇給有時吏退
010_0390_a_15L賓散登樓遐想西南諸名山森在几
010_0390_a_16L案間每逌然若陟穹巘躡冥窟叅禪乘
010_0390_a_17L之竗旨深道樞之秘寶尙庶幾焉而無
010_0390_a_18L繇也閽人介余有釋在門雪其衲
010_0390_a_19L其杖貌頫而辭嫺眉睫隱隱有煙霞
010_0390_a_20L必非凡夫外道之行脚也余犁然延
010_0390_a_21L迺觀音徒鴻俊嘗以表忠寺主憕旿
010_0390_a_22L書來者也邀之座語數轉旋叉手降
010_0390_a_23L階曰某之來爲吾師也吾師月城也
010_0390_a_24L金其姓費隱其名十三出家十六剃

010_0390_b_01L27세에 작실作室하셨습니다. 경인년(1710)에 태어나시어 무술년(1778)에 입적하셨습니다. 스승께서는 나면서부터 지혜로웠으니 전생에 선근善根을 심으셨던 겁니다. 그 유파는 성덕聖德3)의 일행에 이름이 났습니다. 태허 극초泰虛極初에게 의발을 전수받으니(授衣),4) 6조祖를 올라가면 서산 대사西山大師가 됩니다. 그 생애는 물병 하나와 발우 하나요, 그 가풍은 언덕 위 구름(塢雲)이요 물에 비친 달(水月)입니다. 그 도는 듣되 들음이 없으며 들음이 없되 듣지 않음이 없음이요, 있어도 있지 않으며 있지 않아도 있지 않는 바가 없음입니다. 그 문채는 색色이 상相이요 상이 색이니, 색 중에 상이 있고 상 중에 색이 있음입니다. 그 문집 몇 권을 호남과 영남의 종풍宗風 선신善神5)들에게 널리 배포하려고 하니, 세상 위대한 인물들의 손을 빌려 서문을 꾸며 그 전함이 영원히 가도록 해야 마땅할 듯합니다. 그래서 아룁니다.”
내가 적당한 사람이 아니요 또 월성을 알지도 못하지만, 홍준을 알므로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거듭 그 부탁을 거절하다가, 그 말을 따라서 선선히 세상 굴레를 벗어나 티끌 생각을 풀어 버리려는 뜻이 있어서 즐거이 서문을 짓는다.
을묘년(1795) 4월 충청도 관찰사 동해자東海子6)는 쓴다.

010_0390_b_01L二十七作室庚寅其降戊戌其寂
010_0390_b_02L吾師生知慧性宿植善根其派則
010_0390_b_03L名於聖德之一行授衣於泰虛之極初
010_0390_b_04L六祖而爲西山之大師也其生涯則一
010_0390_b_05L瓶一鉢也其家風則一塢雲一水月也
010_0390_b_06L其道則聞而無聞無聞而無所不聞
010_0390_b_07L而不有不有而無所不有也其文則色
010_0390_b_08L是相相是色色中有相相中有色也
010_0390_b_09L其集若干𢎥將廣之湖嶺之宗風諸
010_0390_b_10L善神必藉世之偉人巨手而弁之宜壽
010_0390_b_11L其傳敢以告余顧非其人且不知月
010_0390_b_12L旣知鴻俊審其不夸也重違其勤
010_0390_b_13L聆其言僊僊有脫世覊而解塵慮之意
010_0390_b_14L遂樂爲之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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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乙卯維夏湖西觀察使東海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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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도추道樞 : 사물의 상대적인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의 대립을 넘어선 절대적인 도道의 경지. 『장자』 「제물론」.
  2. 2)비은費隱 : 『中庸』에 나오는 말. “군자의 도는 크고 은미하다.(君子之道。 費而隱。)”라 하였고, 주석에서 “비費는 활용이 넓음이요, 은隱은 본체가 은미함이다.(費用之廣也。 隱體之微也。)”라 하였다.
  3. 3)성덕聖德 : 성스러운 덕. 또는 관음사가 있는 성덕산으로 볼 수도 있다.
  4. 4)의발을 전수받으니(授衣) : 전법수의傳法授衣를 말한다. 세존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가섭迦葉에게 정법正法을 부촉하시고 금루승가려의金縷僧伽黎衣를 주시면서 자씨불慈氏佛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 없어지지 않도록 잘 전하라 하셨다. 그래서 가섭이 선종禪宗의 1조祖가 되고, 보리달마菩提達磨는 28조가 된다. 『景德傳燈錄』 권1.
  5. 5)선신善神 : 신도들을 가리킨다. 송宋나라 때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극력 옹호한 여혜경呂惠卿을 당시 사람들이 호법선신護法善神이라고 한 데서 나왔다. 『宋史』 「王安石傳」.
  6. 6)동해자東海子 : 이형원李亨元의 호號. 1792년에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고, 1793년 6월13일(갑술)에 옥사를 잘못 처리한 탓에 잠시 파직되었다가 복직되었다. 1795년 5월 11일(신유)의 실록 기사에는 ‘호남 도백道伯’으로 나오므로 홍준鴻俊과의 만남은 그해 상반기에 이루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