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범해선사문집(梵海禪師文集) / 梵海禪師文集 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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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선사문집 제2권(梵海禪師文集 第二)
두륜산 환여 각안 지음(頭輪山 幻如覺岸 著)
문 2(文 二)
문향각 상량문聞香閣上樑文
나라의 남쪽에서 가장 먼 곳이 당악棠岳(해남)이요, 읍의 남쪽 땅에 웅장하게 서린 것이 두륜산이다. 두 봉우리가 빼어남을 다투고, 구곡이 다투어 흘러 산이 돌아 감싸고, 골짜기가 깊으며 바위가 곧고 땅이 수승하다. 이 때문에 하늘이 동남동녀를 보내어 남미륵南彌勒ㆍ북미륵北彌勒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렸고, 사람들이 고을마다 집집마다 시주를 받아 대법당과 소노전小爐殿의 건물을 지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항상 건물이 오래됨을 탄식하였으나 흉년이 들어 재물이 궁핍하니 혹 공허하게 시절을 보낼 뿐이었다. 임계년에는 큰 흉년이 들어 예의의 절도가 없었으나 병정년에는 풍년이 들어 귀의할 마음이 일어났다.
이제 화주 경문敬文 상인은 훌륭한 옛 스님과 실로 버금가는 분이다. 바람이 깨진 창으로 불어오고 비가 불상에 뿌리자, 마음과 몸이 하나 되어 도모하고 자비심이 어우러져 추위와 더위를 참으며 두루 어진 무리에게 구걸하고 염치를 무릅쓰며 단월에게 하소연하였다. 마침 표충사를 옮겨 봉안하게 되어 금강동의 목재를 함께 벌목하게 되었다. 법당은 그대로 수리하여 기와를 바꾸니 어느 해의 신문信文1)인지 알 수 없었고 노전은 옛것을 깨뜨려 새로 완성하니 상량의 기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만력萬曆 무인년(1578, 선조 11)에 처음 창건하고 순치順治 모월 모일에 중건하였으며 강희康熙 기사년(1689, 숙종 15)에 홍준弘俊이 세 번째 중건하였고 건륭乾隆 무자년(1768, 영조 44)에 등함等咸이 네 번째 중수하였다. 대대로 사람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 누구의 은덕인가, 천년이 하루 같고 만세가 처음과 같았도다.

010_1084_c_02L梵海禪師文集 第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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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84_c_04L頭輪山 幻如覺岸 著

010_1084_c_05L1)文(二)

010_1084_c_06L聞香閣上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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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之南維遐遠者曰棠岳邑之南地
010_1084_c_08L雄盤者曰頭輪雙峯竸秀九曲爭流
010_1084_c_09L山廻洞深巖貞地勝是以天送童男童
010_1084_c_10L畵南彌勒北彌勒之慈容人乞千村
010_1084_c_11L萬家作大法堂小爐殿之院宇歲去月
010_1084_c_12L每多屋老之歎年凶財乏或有空
010_1084_c_13L虛之時壬癸大無無禮義之節丙丁豐
010_1084_c_14L有歸依之心今此化主敬文上人
010_1084_c_15L德名師實可上下者也風射破窓
010_1084_c_16L注聖像心將身議慈與悲和忍寒暑
010_1084_c_17L而徧乞仁族冒廉耻而告訴檀家適値
010_1084_c_18L表忠祠之移安共伐金剛洞之材木
010_1084_c_19L堂因葺而飜瓦未知其何年之信文
010_1084_c_20L殿破舊而新成得見其上梁之記錄
010_1084_c_21L曆戊寅初創順治月日重建康熙己巳
010_1084_c_22L弘俊三建乾隆戊子等咸四修世不乏
010_1084_c_23L是誰之德千載一日萬代如初
010_1084_c_24L「文二」二字編者補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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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하순에 일을 시작하여 3월 중순에 일을 마치니 도사다都斯多(도솔천)의 내원궁內院宮이 도림桃林(우리나라)에 옮겨 왔고 아일다阿逸陁의 용화회龍華會2)가 접역鰈域(우리나라)에 다시 빛났다. 팔방의 용상龍象(고승대덕)이 절문 앞에 폭주하였고 온 나라의 승속僧俗이 암자와 장막에서 설법을 들었다. 이에 육위六偉(여섯 수)3)의 선송善頌을 찬하여 수포數抱(몇 아름)의 맑은 노래를 부른다.

兒郞偉拋梁東   어영차, 들보 동쪽으로 던져라
峯頭杲日一輪紅  산봉우리 떠오른 해 붉게 빛나는데
天冠大士爲隣在  천관산 대사봉이 이웃하여 있으니
佛國梵歌奏碧空  불국토 범패 소리 푸른 허공에 울리네

南        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져라
瀛洲一髮渺如藍  영주가 터럭처럼 아득히 쪽빛인데
滄溟萬里汪洋處  푸른 바다 드넓게 펼쳐진 곳에
沙竭羅王朝暮叅  사갈라왕4)이 아침저녁으로 참배하네

西        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져라
蓮花世界路無迷  연화세계 가는 길 미혹되지 않아
滿山白衲歸依佛  온 산의 승속이 부처님께 귀의하니
何必棄東向彼西  하필 동방 국토 버리고 서방 향하랴

北        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져라
拱北之心何日釋  임금님 그리는 마음 언제나 풀릴까
一望宸宮渺不知  한 번 궁궐 바라보니 아득하기만
懸燈漱洗歌三祝  등 걸고 세수하여 세 번 축원하네5)

上        어영차, 들보 위로 던져라
慈氏威容誰不仰  자씨6)의 위용 뉘라 우러르지 않으리
何必當來會上看  하필 미래의 회상에서 볼 것인가
聊將心識多時想  애오라지 마음으로 항상 생각하네

下        어영차, 들보 아래로 던져라
名動南中秪桓舍  명성이 남녘 기원정사 진동하노니
碧眼高僧衆決疑  벽안의 고승 무리 의심 결단하여
能行轍跡談般若  능히 교화 행하고 반야를 설하누나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 불법이 중흥하고 국조國祚가 편안하고 태평하소서. 사찰의 운이 열려 수달다須達多7)의 보시의 문이 크게 열리고 스님의 풍습이 순하고 두터워져서 우바국優波毱8)의 화주化籌(교화하는 일)가 다시 돌아오소서.
두륜산 진불암 법당 상량문頭輪山眞佛庵法堂上梁文
가만히 생각건대 색금塞琴은 백제 시대의 현縣 이름이요 침명浸溟은 신라 이후 읍의 호칭이다.9) 천문은 기성箕星과 미성尾星10)의 분야에 나뉘어 있고 땅의 경계는 영광과 강진에 인접하였다. 남으로 큰 바다에 가까우니 신룡神龍이 창해의 명주를 바치고, 북으로 신령한 산악에 근거하니 도사道士가 곤륜산의 품은 옥을 가리킨다. 층층 봉우리가 푸르게 솟아 은하수에 닿으니 멀리 허공 밖의 두륜산이 들려오고 번찰幡刹이 높이 걸려 구름을 스치니

010_1085_a_01L役於地天之下澣告功於澤天之中旬
010_1085_a_02L覩斯多內院宮移來於桃林阿逸陁龍
010_1085_a_03L華會重煥於鰈域八表龍象輻湊於
010_1085_a_04L寺門之前一國白緇聽說於菴帳之內
010_1085_a_05L乃撰六偉之善頌用唱數抱之淸歌
010_1085_a_06L郞偉拋梁東峯頭杲日一輪紅天冠大
010_1085_a_07L士爲隣在佛國梵歌奏碧空瀛洲
010_1085_a_08L一髮渺如藍滄溟萬里汪洋處沙竭羅
010_1085_a_09L王朝暮叅西蓮花世界路無迷滿山
010_1085_a_10L白衲歸依佛何必棄東向彼西
010_1085_a_11L北之心何日釋一望宸宮渺不知懸燈
010_1085_a_12L漱洗歌三祝慈氏威容誰不仰
010_1085_a_13L必當來會上看聊將心識多時想
010_1085_a_14L名動南中秪桓舍碧眼高僧衆決疑
010_1085_a_15L行轍跡談般若伏願上樑之後佛法重
010_1085_a_16L國祚安泰寺運開通須達多之檀
010_1085_a_17L門大闢僧習淳厚優婆毱之化籌復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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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85_a_19L頭輪山眞佛庵法堂上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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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以塞琴百濟時縣名浸溟新羅後邑
010_1085_a_21L天文分於箕尾地界接於靈康
010_1085_a_22L近大洋神龍獻滄海之明珠北據靈岳
010_1085_a_23L道士指昆山之蘊玉層巒聳翠而磨漢
010_1085_a_24L遠聞空外之輪山幡刹揭標而拂雲

010_1085_b_01L숲 사이 대둔사를 멀리서도 알겠도다. 산 아래를 왕래하며 터를 살펴 아도阿道 화상이 소蕭씨의 양梁나라 시대에 처음 창건하였고 나라 안을 두루 다니며 진경을 찾아 도선道詵 스님이 이李씨의 당唐나라 시대에 거듭 열었다.
진불암은 두륜산의 정맥이 겹쳐 맺힌 곳이요 대둔사의 빼어난 곳 중에 으뜸이다. 따로 뒤에 대웅전을 건립하니 갑좌甲坐ㆍ경향庚向이요, 좌우는 임병壬丙이다. 자주 음양의 소장消長을 겪으니 도현道玄11)의 신묘한 그림은 학이 되어 날아갔고 자주 풍우가 몰아치니 곤오昆吾12)의 기와는 반쯤 원앙이 되어 날아갔다. 어찌 거주하는 스님만 안타까워했겠는가. 또한 지나가는 나그네의 탄식을 자아내었다. 비록 어찌해 보고자 하였으나 재물과 힘이 어쩔 수 없었다.
암자에는 몇 분의 장로가 있어 무위無爲와 안인安忍은 임계년 이래로 이 암자에 거주하면서 나갈 때 반드시 돌아보고 돌아와서는 마주하여 자나 깨나 깊이 생각하였고 한 홉, 한 푼을 아끼고 거두어 시종 밝게 고하였다. 벽해碧海와 채홍采泓은 구름이 용을 따르듯 바람이 호랑이를 따르는 것처럼 서로 함께하니 서원이 지극히 크고, 어려운 일도 쉽게 괴로운 일도 달게 받아들여 일편단심이 더욱 컸다. 춘파春坡와 유찬宥粲은 안으로 감독하고 밖으로 맡아서 몸과 마음이 모두 수고로웠고, 동쪽으로 눈을 치켜뜨고 서쪽으로 눈썹을 낮추어 자애로움과 위엄을 함께 썼다. 대중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져 불시에 종사하게 되었고 한 푼 두 푼 모아 축적하여 경영할 날을 기약하였다. 기수祇樹13)를 영하鈴下(고을 수령)에 청하니 묵은 과제처럼 들어 주었고, 들보 사이에 아름다운 송을 얻으니 글이 새로 지은 듯하였다. 옛 글을 보니 대강을 서술하였는데 처음 창건한 이는 빠뜨리고 없다. 강희 49년 경인년(1710, 숙종 36)에 중수하고 건륭 42년 정유년(1777, 정조 1)에 세 번째 중창하였다. 이제 을축년(1865, 고종 2) 모월 경진일에 뭇 인연들이 마음을 합쳐 만사가 뜻대로 되었다. 요선을 눌러 기둥을 지으니 교룡이 꿈틀거리고 태부太夫를 걸어 들보를 얹으니 무지개가 길게 뻗쳐 있다. 좋은 날이 이르러 몇 아름 긴 들보를 도와 올림에 나의 마음을 다 쏟아 감히 육위六偉의 짧은 송을 노래한다.


010_1085_b_01L知林間之芚寺往來山下而相地阿老
010_1085_b_02L初創於蕭梁之時徧歷國中而採眞
010_1085_b_03L師重闢於李唐之世眞佛庵頭輪正幹
010_1085_b_04L之重結芚寺靈秀之上頭另建大雄殿
010_1085_b_05L於後坐向甲庚左右壬丙屢經陰陽
010_1085_b_06L之消長道玄之神畵將化鶴飛頻見
010_1085_b_07L風雨之飜驚昆吾之陶瓦半爲鴦去
010_1085_b_08L豈惟居僧之愍迫亦興過客之咨嗟
010_1085_b_09L欲云爲其奈財力庵有二三長老
010_1085_b_10L爲安忍壬癸以來居此庵出必顧
010_1085_b_11L必面寤寐羹墻龠亦靳分亦收始終
010_1085_b_12L昭告碧海釆泓雲從龍風從虎誓願
010_1085_b_13L極長難可易苦可甘赤心益大春坡
010_1085_b_14L宥粲內也監外也董身心俱勞東弩
010_1085_b_15L西低眉慈威并用衆口合於一口
010_1085_b_16L從事不時百金起於一金經營有日
010_1085_b_17L乞秪樹於鈴下聽若宿題得錦頌於梁
010_1085_b_18L文如新製觀其舊作著干大凡
010_1085_b_19L初創人是所欠者康熙四十九載庚寅
010_1085_b_20L重修乾隆四十二年丁酉三剏今則歲
010_1085_b_21L在乙丑月建庚辰百緣同心萬事如意
010_1085_b_22L壓䐲仙而作棟兮連蛟龍之蜷蜷掛太
010_1085_b_23L夫而爲梁兮亘虹霓之蜿蜿糓日是至
010_1085_b_24L助擧數抱之修梁蔬膓盡傾敢陳六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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兒郞偉拋梁東   어영차, 들보 동쪽으로 던져라
萬丈頭輪杲日紅  만 길 두륜산에 붉은 해 떠오르니
險阻江山皆不動  험준한 강산 모두 여여부동하네
是知阿閦大神通  아축불14)의 대신통력임을 알리로다

西        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져라
爐峯屹立與天齊  노봉이 우뚝 솟아 하늘과 나란하니
蓮花佛國在何處  연화의 불국토는 어디에 있는고
近在悟人遠在迷  깨달은 이 가깝고 미혹된 자 멀도다

南        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져라
瀛洲一點杳如藍  영주가 아득히 한 점 쪽빛인데
老星耿耿南來照  노인성 반짝이며 남으로 와 비추니
上壽比丘一二三  무병장수의 비구가 하나, 둘, 셋

北        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져라
巖雲盡被吾君澤  바위와 구름 모두 임금의 은택 입으니
登高望美宸宮遙  높이 올라 멀리 북궐의 미인 바라보고
更向佛前祈福德  다시 부처님 전에 복덕을 기도하네

上        어영차, 들보 위로 던져라
諸天護法頻來往  제천의 호법이 자주 내왕하니
借來鉢飯衆香城  중향성에서 발우의 밥 빌려와
不絶四時長供養  사시공양을 항상 끊이지 않네

下        어영차, 들보 아래로 던져라
擅名洞府大蘭若  으뜸가는 신선세계 큰 난야에
古今不撤老禪錐  고금에 끊이지 않는 노선객들
一國諸山來售賈  온 나라 산문에서 와 값을 매기네

원하오니 상량한 후에 땅의 운이 다시 열리고 하늘의 복이 다시 내려와 팔해八海의 용상이 한 법당에 회향하여 이선二禪(여래선, 조사선)을 아울러 희롱하고 시방의 단월이 삼보에 귀의하여 사사四事15)가 길이 풍성하여지소서. 법성法性의 산중에 불일佛日이 억겁에 원만하고 옥촉玉燭(사시四時의 화기)의 빛 아래 성수聖壽가 만년을 이으소서.
두륜산 신건 영산전 상량문頭輪山新建靈山殿上梁文
가만히 생각하건대 금강산金剛山(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산)이 고을을 안으니 봉래산과 월출산에 버금가고, 두륜산이 절을 둘러싸니 백두산과 두류산의 조손祖孫이로다. 다섯 현인이 아울러 태어나니 땅이 기른 웅장한 고을이요, 세 성인이 배출되니 하늘이 점지한 보방寶坊이다. 땅이 쇠잔하단 말도 요망하고 운이 쇠퇴했다는 것도 거짓인지라, 종지種智(바른 지혜)로만 알 수 있으니 육안肉眼으로 어찌 논하랴. 이 때문에 봄바람에 영혼이 교감하면 꿈결에도 불일佛日을 받들고, 여름날의 달빛에 정이 감응하면 원당願堂에서 서상瑞像(상서로운 불상)에 절을 한다. 쾌년각快年閣의 병상에서 서원을 세워 영결하였고 각월覺月의 복사服舍에서 회포를 펼쳐 잘 이루었다. 한 자리에서 마음을 펴니 모두 고개를 끄덕여서, 울창한 남녘 산에서

010_1085_c_01L之短頌兒郞偉拋梁東萬丈頭輪杲日
010_1085_c_02L險阻江山皆不動是知阿閦大神通
010_1085_c_03L西爐峯屹立與天齊蓮花佛國在何處
010_1085_c_04L近在悟人遠在迷瀛洲一點杳如藍
010_1085_c_05L老星耿耿南來照上壽比丘一二三
010_1085_c_06L巖雲盡被吾君澤登高望美宸宮遙
010_1085_c_07L向佛前祈福德諸天護法頻來往
010_1085_c_08L借來鉢飯衆香城不絕四時長供養
010_1085_c_09L擅名洞府大蘭若古今不撤老禪錐
010_1085_c_10L國諸山來售賈伏願上梁之後地運重
010_1085_c_11L天福復降八海龍象廻向於一堂
010_1085_c_12L二禪兼弄十方1) [5] 歸依於三寶
010_1085_c_13L事長豊法性山中佛日圓於億却
010_1085_c_14L燭光下聖壽延於萬年

010_1085_c_15L

010_1085_c_16L頭輪山新建靈山殿上梁文

010_1085_c_17L
伏以金剛抱州蓬萊月出之伯仲頭輪
010_1085_c_18L遶寺白頭頭流之祖孫五賢並生
010_1085_c_19L毓之雄邑三聖係出天點之寶坊
010_1085_c_20L老言妖運衰亦妄種智可鑑肉眼何
010_1085_c_21L是以春風魂交奉佛日於思夢
010_1085_c_22L月情感揖瑞像於願堂快年困床
010_1085_c_23L誓言而長訣覺月服舍攄懷抱而善成
010_1085_c_24L抑爲一席抒情四座點額蜀山鬱鬱
010_1085_c_25L「擅」疑「檀」{編}

010_1086_a_01L노나라 공수반16)이 벌목하였다.
대개 이 땅은 초의草衣에게서 시작되었으니 삼장三藏17)의 부전頫硂18)이요, 견향見香에게서 마쳤으니 감동監董의 앙규仰揆19)로서 장춘동의 으뜸이요 두륜산의 본줄기이다. 왼쪽은 광명光明이요 오른쪽은 보련寶蓮이니 불조佛祖의 묘우廟宇가 윤환輪奐(밝고 빼어남)하고, 남극을 등지고 북궐을 향하니 군신의 위차位次가 분명하다. 6월 상순에 일을 시작하여 7월 중순에 끝마쳤다. 죽산竹山이 만대에 길이 장춘동의 세 성인이 남긴 터로 옮겨 오고, 탑영과 불광佛光은 항상 당악 다섯 현인의 발자취를 비춘다. 사가謝家의 보수寶樹20)는 풍상을 겪으며 춤을 추고, 소씨蘇氏의 목가산木假山21)은 세대를 지나며 우뚝 솟았다. 진나라 소나무22)를 옮겨 높이 세우니 들보는 하늘에 걸린 무지개 같고, 촉나라 잣나무23)를 빌려 멀리 비껴 놓으니 마룻대는 용이 허공에 꿈틀대는 듯하다. 일자日者(택일하는 사람)에게 좋은 날을 골라 마루 신에게 맑은 술을 올리고 육위의 송을 편찬하여 몇 곡의 노래를 부른다.

兒郞偉拋梁東   어영차, 들보 동쪽으로 던져라
雙峯揷漢玉芙蓉  쌍봉이 은하수에 솟아 옥빛 연꽃인데
諸天花雨聽般若  제천의 꽃 빗속에 반야를 들으니
萬木千巖善說同  온갖 나무와 바위가 함께 법을 설하네

南        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져라
纔上峴頭眼入庵  고개에 오르면 암자가 한눈에 들어와
朝暮焚修鐘滿壑  주야로 분수하고 골에 종소리 가득하니
飛禽走獸盡玄談  나는 새 들짐승도 현묘한 도리 얘기하네

西        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져라
賜額表忠奉御題  어제로 표충이라 편액 받드니
截彼華山多少岳  우뚝 솟은 화산의 많은 봉우리
▣朝佛國各高低  조회하여 불국토에 머리 조아리네

北        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져라
景福通開論至德  경복 크게 열어 지덕을 논하고
三十里程檀氏家  30리 길 여정 단월의 집에
題名鴈塔光南極  그 이름 안탑에 남극성이 빛난다

上        어영차, 들보 위로 던져라
三十三天分位張  삼십삼천이 자리 나누어 펼쳐지니
風伯雨師職事多  풍백과 우사의 일들이 많아서
陰晴變化萬千狀  비 오고 개는 변화 천태만상이라네

下        어영차, 들보 아래로 던져라
兩朝堂上伽藍者  두 조정에 걸친 당상의 가람은
渠渠廈屋捨財誰  크고 넓은 집 누가 재물 희사했나
甲午懸弧金匡祐  갑오년에 태어난 김광우라네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 황천皇天이 복을 내리고 후토后土가 상서로움을 드러내며 조야가 태평하고 강산에 경사가 많아지이다. 구층탑 삼존불이 연화대를 여의지 않아

010_1086_a_01L魯班丁丁盖此地也濫觴於草衣
010_1086_a_02L藏之頫硂覆蕢於見香監董之仰揆
010_1086_a_03L長春之領袖頭輪之幹龍左光明
010_1086_a_04L寶蓮佛祖之廟宇輪奐背南極面北
010_1086_a_05L君臣之位次分明董役於天遯之上
010_1086_a_06L竣功於地否之中浣然而竹山萬代
010_1086_a_07L全移於長春三聖之遺基塔影佛光
010_1086_a_08L長照於棠岳五賢之踵武謝家寶樹
010_1086_a_09L閱風霜而婆娑蘇氏假山度世代而岌
010_1086_a_10L寫秦松而高厭兮虹彎天之梁兮
010_1086_a_11L借蜀栢而遙橫兮龍蜿虛之棟兮差糓
010_1086_a_12L日於日者奠淸酌於屋神撰六偉之頌
010_1086_a_13L唱數抱之歌曲兒郞偉拋梁東
010_1086_a_14L峯揷漢玉芙蓉諸天花雨聽般若萬木
010_1086_a_15L千巖善說同纔上峴頭眼入庵
010_1086_a_16L暮焚修鐘滿壑飛禽走獸盡玄談西
010_1086_a_17L賜額表忠奉御題截彼華山多少岳 [5]
010_1086_a_18L朝佛國各高低景福通開論至德
010_1086_a_19L三十里程檀氏家題名鴈塔光南極
010_1086_a_20L三十三天分位張風伯雨師職事多
010_1086_a_21L晴變化萬千狀兩朝堂上伽藍者
010_1086_a_22L渠渠廈屋捨財誰甲午懸弧金匡祐
010_1086_a_23L願上梁之後皇天降福后土呈祥
010_1086_a_24L野太平江山多慶九層塔三尊佛

010_1086_b_01L단월의 집에 광명을 빛내시고 열한 암자와 여덟 승방이 사상事相을 어기지 말아 범우梵宇에서 이행理行을 닦기를 원합니다.
두륜산 시왕전 상량문頭輪山十王殿上梁文
가만히 생각건대 두륜산 대둔사는 신라의 명산이요, 해남의 거찰로서 아도阿度 화상이 신안神眼으로 창건하였고 도선道詵 스님이 비술秘術로 중흥하였다. 쌍봉이 하늘을 떠받쳐 수미산須彌山과 마주하여 지속하고, 구곡이 땅을 안아 무이武夷와 함께 빛을 날린다. 북으로 신궁宸宮(궁궐)을 우러르니 천 리의 역로驛路가 길게 이어지고, 남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니 만경의 창파가 아득하다. 하늘이 사문四門을 지으니 흰 구름이 열고 닫으며 땅은 세 읍과 인접하니 청개靑蓋(사신의 수레)의 사신이 오고 간다. 네 성인의 부도는 지위地緯(지리)에 근거하여 굳게 지키고 세 스승의 묘우廟宇(사당)는 어필御筆과 나란히 신명神明하다.
『대둔지』와 『죽미서竹迷書』는 신구新舊의 사적을 기록하였고 주지의 지위와 총섭의 직책은 문무文武로 절을 수호한다. 윤금양尹琴陽과 이송파李松坡는 진불암에 읊은 시를 기재하였고 이 부사李府使와 김 아사金雅士는 법당에 성명을 기록하였다. 초의草衣와 철선鐵船의 여향餘香이 산에 가득하고 치암痴庵과 풍암豊庵의 그늘은 절을 덮었다.
상원上元의 갑자년이 다시 이르고 여덟 번째의 임신년이 다시 임하였다. 이때에 스님은 비록 적으나 지혜로운 자는 많았고 재물은 매우 고갈되었으나 모으기가 쉬웠다. 시왕전의 기와는 원앙이 되어 날아가고 벽의 춤추는 학이 떠나가서, 덥지 않은데도 바람이 항상 불고 구름이 없는데도 비가 쏟아져, 삼존三尊의 부처님이 불안한 근심이 있는 듯하고 시왕의 위의는 위엄의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전에 의관誼寬, 긍률亘律, 장률仗律 등이 산과 들에 두루 구걸하여 저축하고 때를 기다리며 함께 논의하고 일을 일으켰다. 이제 각안覺岸, 장률, 심여心如 등이 두루 고을과 마을에 구하고

010_1086_b_01L離蓮臺放光明於檀家十一庵八房
010_1086_b_02L無違事相修理行於梵宇

010_1086_b_03L

010_1086_b_04L頭輪山十王殿上梁文

010_1086_b_05L
切以頭輪山大芚寺者新羅之名山
010_1086_b_06L南之巨刹阿度之神眼創建道詵之秘
010_1086_b_07L術重興雙峯擎天對須彌而齊壽
010_1086_b_08L曲抱地與武夷而騰輝北拱宸宮
010_1086_b_09L千里之驛路南望瀛海渺萬頃之蒼波
010_1086_b_10L天作四門白雲爲之開閉地接三邑
010_1086_b_11L靑盖使之去來四聖之浮屠按地緯而
010_1086_b_12L固守三師之廟宇並御筆而神明
010_1086_b_13L芚志竹迷書事蹟之新舊也住持位
010_1086_b_14L摠攝職守護之武文乎尹琴陽李松
010_1086_b_15L載吟咏於眞佛李府使金雅士
010_1086_b_16L姓名於法堂草衣鐵船之餘香滿山
010_1086_b_17L庵豐庵之殘蔭覆寺上元甲子復到
010_1086_b_18L回壬申更臨於是僧雖小而智多財甚
010_1086_b_19L匱而聚易至於十王殿瓦化鴦而飛去
010_1086_b_20L壁舞鶴而騰歸風不暑而長吹雨不雲
010_1086_b_21L而大澍三尊之位似有不安之愁
010_1086_b_22L王之儀疑多無威之氣曾者誼寬亘律
010_1086_b_23L仗律等徧乞山野貯蓄而待時共論
010_1086_b_24L而起端今日覺岸仗律心如等周求邑

010_1086_c_01L보합補合하여 날을 정하고 함께 일하여 협력하였다. 영하鈴下(고을 수령)에게 재목을 얻고 거처로 공장工匠을 불렀다. 성상聖像을 축원하여 옮겨 봉안하고 마루 신께 제사하여 집을 헐어 멀쩡한 것은 그대로 쓰고 썩은 것은 대신하였다.
그 옛 상량문에 이르기를 “강희康熙 39년(1700, 숙종 26) 경진 3월에 문신文信, 시찬時贊, 성호省浩가 중수하고, 옹정雍正 13년(1735, 영조 11) 을묘 5월에 운수雲水, 법명法明, 지택智澤이 세 번째 중건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이제 정월 30일에 일을 시작하여 2월 28일에 준공하였다. 지옥문을 활짝 열고 금빛 석장을 휘둘러 전도된 사람을 구하며, 업경業鏡24)을 높이 들고 옥홀玉笏을 놓아 마땅함을 행하였다. 하소연할 데 없는 원혼이 오도五道25)에 나뉘어 기뻐 뛰고, 오갈 데 없는 슬픈 혼백이 팔한八寒26)을 면하여 손뼉을 치며 노래한다. 삼계의 하늘에 갇혀 있으니 변변찮은 붓으로 빼어난 글씨를 쓰기 어렵고, 곧바로 문장을 지으니 소순蔬筍의 짧은 글을 면하기 어렵다. 좋은 날을 선택하여 아름다운 들보를 올린다.

兒郞偉拋樑東   어영차, 들보 동으로 던져라
鍾嗚飯熟日輪紅  종이 울려 밥 익으니 해가 붉은데
北庵挽日諸禪子  북암과 만일암의 여러 선화자
念佛看經奏膚功  염불하고 간경하며 큰 공 이루네

南        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져라
一抹靑山處處庵  한 줄기 청산 곳곳이 암자인데
竹路松陰行客子  대나무 길 솔 그늘의 나그네가
臨溪漱洗禮三三  시내에 세수하고 삼보에 예를 올리네

西        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져라
大雄寶殿二層梯  대웅보전은 2층의 계단
爐峯不火香烟起  노봉엔 불도 없이 향연이 일어
萬樹千巖各自迷  온갖 나무와 바위에 길을 잃노라

北        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져라
遙望都城何可得  멀리 도성 바라보니 어찌 갈 수 있으랴
千里長程咫尺如  천 리 먼 길도 지척인 듯하니
吾君敎化時多識  우리 임금의 교화 아는 이 많구나

上        어영차, 들보 위로 던져라
日月星辰朝暮仰  일월성신을 아침저녁으로 우러르니
牛女無由一處居  견우직녀 한곳에 거처할 수 없어
照臨七夕銀河向  칠석날 밝게 빛나며 은하수 향하네

下        어영차, 들보 아래로 던져라
點點重重皆廣厦  점점이 장중한 것 모두 넓은 집인데
世利經營問汝何  묻노라 세상의 이익 경영함 어떠한고
無量賓客供車馬  한없는 빈객이 수레와 말을 바치네

바라오니 상량한 뒤에 국운이 영원히 화통하고 백성의 업이 항상 즐거우며 산문이 고요하고 사찰이 편안하여지이다. 손바닥 위의 명주明珠가 남방의 죄악을 비추어 없애고 책상 위의 업경은 음부陰府(저승)의 슬픔을 비추어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010_1086_c_01L補合而定日同事而協力得材木
010_1086_c_02L於鈴下召工匠於扉居祝聖像而移安
010_1086_c_03L祭屋神而破屋成之因用朽之代新
010_1086_c_04L其舊上梁文曰康熙卅九年庚辰三月
010_1086_c_05L文信時贊省浩重修雍正十三年乙卯
010_1086_c_06L五月雲水法明智澤三建於是正月三
010_1086_c_07L十日董役二月廿八日竣功通開獄門
010_1086_c_08L揮金錫而救倒高擧業鏡放玉笏而權
010_1086_c_09L無告怨魂兮分五道而踴躍留滯
010_1086_c_10L悲魄兮免八寒而抃歌限在三天
010_1086_c_11L遑腐毫之神筆立趣虀臼難逃噴筍之
010_1086_c_12L短章糓日是差玉棟乃擧兒郞偉拋
010_1086_c_13L樑東鍾嗚 [6] 飯熟日輪紅北庵挽日諸
010_1086_c_14L禪子念佛看經奏膚功一抹靑山
010_1086_c_15L處處庵竹路松陰行客子臨溪漱洗禮
010_1086_c_16L三三西大雄寶殿二層梯爐峯不火
010_1086_c_17L香烟起萬樹千巖各自迷遙望都
010_1086_c_18L城何可得千里長程咫尺如吾君敎化
010_1086_c_19L時多識日月星辰朝暮仰牛女無
010_1086_c_20L由一處居照臨七夕銀河向點點
010_1086_c_21L重重皆廣厦世利經營問汝 [7] 無量賓
010_1086_c_22L客供車馬伏願上樑之後國運永通
010_1086_c_23L民業長樂山門寂靜寺內安閒掌上
010_1086_c_24L明珠照滅南方之罪惡案前業鏡

010_1087_a_01L
두륜산 상원암 신건 칠성전 상량문頭輪山上院庵新建七星殿上梁文
생각건대 왕토王土의 남쪽 끝에서 임금을 받드는 신민臣民이 기쁘게 명당明堂을 받들고, 소해少海(세자)를 우러러 이에 기복祈福의 터를 여니, 경영의 신속함이 볼만하여 천년만년 동안 귀신이 아껴 두었던 땅이 한 해도 되지 않아 시운이 돌아와 열렸다. 이 산은 해현海縣에서 북쪽으로 30리 떨어진 두륜산이요, 절은 남쪽으로 천 리 멀리 영주瀛洲를 바라보는 대둔사이다.
이 절은 아도阿度 화상이 신라 진흥왕眞興王 때에 처음 창건하였고 도선道詵 국사가 신라 헌강왕憲康王 때에 중흥하였다. 정조正祖의 운장雲章과 보묵寶墨이 만고에 걸쳐 빛나며 서산西山 대사의 충훈忠勳의 기연이 천년을 전하여 놀라게 한다. 상원암에는 삼세의 부처님이 의젓하시고 우화루雨花樓엔 사방의 스님들이 불법을 강론한다. 이 암자는 백운대 아래 장춘동 위에 있으니 호암虎巖과 연담蓮潭이 여래의 선나禪那를 희롱하여 드러내고, 도솔봉 동쪽 진불암 남쪽에 있어 연파蓮坡와 철선鐵船이 문자반야를 설하였다. 사람은 가려다 멈추어 서고 새도 날아가려다 깃들이니, 그윽함으로 이름을 독점하고 상개爽塏(높고 시원함)한 터가 으뜸이다.
서울에 사는 배천白川의 후손 조붕근趙鵬根이 이 암자에 와서 계속 돌아보고 절에 앉아 말하기를 “북두칠성단을 세워 동군東君(봄의 신)에게 오복五福을 비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니 총섭總攝과 주지가 절을 하고 일어나 알았다고 하니 노소의 대중도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앉아 좋다고 하였다. 관가에 일을 고하니 관가가 찬양하고 고을에 사유를 알리니 고을이 모두 즐거워하였다. 관과 고을이 외호外護하고 빈주賓主가 안으로 경영하니 여러 물품은 하늘에서 보낸 듯하고 재물은 시내가 흐르듯 이르렀다.
이에 집사를 나누어 정하니

010_1087_a_01L現陰府之哀憐

010_1087_a_02L

010_1087_a_03L頭輪山上院庵新建七星殿上梁文

010_1087_a_04L
伏以極南王土拱北臣民欣戴明堂
010_1087_a_05L渴仰少海爰開祈福之地可觀不日之
010_1087_a_06L鬼慳於千萬年之中運回於三百日
010_1087_a_07L之內盖此山北距海縣三十里之頭輪
010_1087_a_08L南望瀛洲一千里之大芚寺此寺
010_1087_a_09L度和尙初創於羅眞興王之朝道詵國
010_1087_a_10L重衍於羅憲康王之日正廟朝雲
010_1087_a_11L章寶墨歷萬古而騰輝西山師忠勳
010_1087_a_12L機緣傳千䆋而駭矚庵名上院三世
010_1087_a_13L佛之儼然樓稱雨花四山師之講矣
010_1087_a_14L此庵白雲臺下長春洞上虎巖蓮潭
010_1087_a_15L弄顯如來禪那兜率峰東眞佛庵南
010_1087_a_16L蓮坡鐵船演說文字般若人欲去而延
010_1087_a_17L鳥將飛而棲遲旣窈窕而擅名
010_1087_a_18L塽嵦而居㝡京居白川后人趙鵬根
010_1087_a_19L到此庵顧而更顧回而復回坐寺而
010_1087_a_20L言曰建北斗七星壇祝東君五福瑞
010_1087_a_21L何如摠攝住持鞠躬而起曰諾老少大
010_1087_a_22L俯首而跪曰嘉告事于官官自贊揚
010_1087_a_23L布由于鄕鄕咸樂易官鄕外護賓主
010_1087_a_24L內營物非天來財似川至於是分定

010_1087_b_01L바람에 쏠리듯 한뜻으로 총섭이 선발하고 주지가 담당을 정하였다. 조붕근이 교율敎律을 주관하고 화주 관준寬俊이 감독하여, 공인工人을 부르니 공인이 오고 터를 여니 터가 밝게 열렸다. 좌향坐向은 인좌신향寅坐申向이고 좌우는 임좌병향壬坐丙向이며 경좌신향庚坐申向에서 보필하고 정오방丁午方은 태양이다. 도끼가 북풍과 어울려 소리를 내고 기둥과 들보의 빛깔은 흰 눈과 함께 빛났다. 사자가 초석礎石을 밟으니 오대부五大夫 벼슬을 받은 진나라의 소나무요, 비룡이 들보를 감싸니 삼장군三將軍을 받은 한나라의 잣나무27)다. 숭화嵩華에서 축원을 외치니28) 고금을 생각함에 다르지 않고, 근폭芹曝의 정성을 바치니29) 멀고 가까운 곳이 일체로다. 11월 하순에 첫 경영을 시작하여 12월 중순에 공사를 마쳤다. 공경히 좋은 날을 택하여 몇 아름 되는 긴 들보를 올리고 애써 메마른 마음을 열어 감히 육위의 짧은 송가를 노래한다.

兒郞偉拋梁東   어영차, 들보 동쪽으로 던져라
萬仭頭輪聳碧空  만 길 두륜산 푸른 하늘에 솟으니
安得借來獅子座  어찌하면 여래의 사자좌를 빌려
獻吾當宁願堂中  우리 임금님 원당에 바칠까

南        어영차, 들보 남쪽으로 던져라
峻嶺衡平障海嵐  높은 고개 가로질러 바다 안개 막아 주니
瀛室仙風西北起  영실의 신선바람 서북에서 일어나
順吹漕運上供帆  조공하는 조운선의 돛에 불어오네

西        어영차, 들보 서쪽으로 던져라
蓮葉峯頭新月低  연엽봉 머리에 초승달 낮게 뜨니
向彼樂邦無量壽  저 극락세계 무량수불 향하여
祝吾邸下萬年齊  우리 저하 만년의 수를 축원하네

北        어영차, 들보 북쪽으로 던져라
望美何時庸報德  임금님 우러르니 언제 은혜 갚을꼬
擇地占開北斗壇  땅 가려 북두칠성단을 열었나니
拄香遙祝前星福  향 들어 멀리 전성前星30)의 복 축원하네

上        어영차, 들보 위로 던져라
七曜森羅分位張  칠요七曜31)가 자리 잡아 삼연히 펼쳤는데
奉請來臨新建壇  간청 받들고 와 새로 단을 세우니
降吾世子東君旺  우리 세자에게 동군의 기운 내리네

下        어영차, 들보 아래로 던져라
繽紛花雨談般若  어지러운 꽃비 속에 반야를 설하니
題詩滿壁儘朝官  벽 가득한 시는 조정 관리의 것
名振江南禪敎舍  이름이 강남 선교의 절을 진동하네

바라오니 상량한 후에 불일佛日이 길이 비추어 나라가 항상 편안하며 황하가 다시 맑아 우담화가 다시 피어지이다. 높이 새 편액을 걸어 옛 숲을 빛나게 하여 대둔의 도량이 천하에 다시 무겁게 되고 한양의 기업基業의 운이 만년에 창성하소서.

010_1087_b_01L執事靡若從風摠攝印差住持望定
010_1087_b_02L趙鵬根主管敎律化主寬俊監董召工
010_1087_b_03L工至開基基明坐向寅申左右壬丙
010_1087_b_04L庚申輔弼丁午太陽斧斤之聲和北
010_1087_b_05L風而丁丁棟梁之色共朔雪而皎皎
010_1087_b_06L行猊踏礎兮五大夫之秦松飛龍纏梁
010_1087_b_07L三將軍之漢柏嵩華呼祝兮憶古
010_1087_b_08L今而不殊芹曝獻誠兮問遐邇而一軆
010_1087_b_09L經始勿亟地雷復之下弦竣役告功
010_1087_b_10L地澤臨之中澣敬差糓日方擧數抱之
010_1087_b_11L修梁掀倒枯膓敢陳六偉之短頌
010_1087_b_12L郞偉拋梁東萬仭頭輪聳碧空安得借
010_1087_b_13L來獅子座獻吾當宁願堂中峻嶺
010_1087_b_14L衡平障海嵐瀛室仙風西北起順吹漕
010_1087_b_15L運上供帆西蓮葉峯頭新月低向彼
010_1087_b_16L樂邦無量壽祝吾邸下萬年齊
010_1087_b_17L美何時庸報德擇地占開北斗壇拄香
010_1087_b_18L遙祝前星福七曜森羅分位張
010_1087_b_19L請來臨新建壇降吾世子東君旺
010_1087_b_20L繽紛花雨談般若題詩滿壁儘朝官
010_1087_b_21L振江南禪敎舍伏願上樑之後佛日長
010_1087_b_22L國界恒安黃河再淸曇花重顯
010_1087_b_23L掛新扁光透舊林大芚道場價還重
010_1087_b_24L於八域漢陽基業運載昌於萬年

010_1087_c_01L
『선문만어』 서禪門謾語序
선교 양종은 모두 세존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세존께서 49년 설하신 교는 아난阿難에게 전해졌고 49년 증득하신 선은 가섭迦葉에게 전해졌다. 가섭은 선의 주체이면서 교를 겸하였고 아난은 교의 주체이면서 선을 겸하였다. 이로써 천축의 28대 조사와 중국의 6대 조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일우一愚와 백파白坡, 초의草衣도 모두 선교를 갖추었다. 선은 무설無說로 참된 설을 삼고 교는 유설有說로 참된 설을 삼는다. 이 때문에 하택荷澤32)은 “지知라는 한 글자가 중묘衆妙의 근원이다.”라고 하였고 고봉高峯33)은 “지라는 한 글자가 중화衆禍의 문이다.”라고 하였으니 역대의 여러 존숙尊宿과 천하의 노고추老古錐가 교문敎文의 해석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문득 선문에서는 혀를 희롱하지 않은 것이 진실로 까닭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아니하여 자신의 뜻과 견해로 선문에서 천착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는 자가 왕왕 많았다. 은隱 장로34)에 이르러 출중한 재주와 덕을 지닌 바탕으로 학문은 공자孔子와 노자老子를 두루 보았고 지혜는 선교에 통달하여, 교가敎家에 힘쓰는 것은 백암栢庵 스님과 유사하고 선관禪觀에 마음을 둔 것은 각운覺雲 스님에 가까웠다. 곧 살활체용殺活體用의 설이 헤아릴 수 없었고 해석과 술작述作의 책이 수레 가득할 만큼 많았다. 초학자와 청납靑衲(승려)과 황건黃巾(야인野人)의 무리들이 훈도되어 수지 독송하고 교화를 따라 귀의하여 수긍하였으니 누가 기쁘게 우러르며 찬양하지 않겠는가.중부자中孚子35)는 내외의 도학을 일관하고 고금의 서적을 섭렵하였으니 옛사람이 이른바 “명성을 피하지만 명성이 나를 따른다.”고 하는 자이다. 이 때문에 은 장로가 비평한 『선문수경禪門手鏡』을 얻어 보고 그 가운데 뜻이 맞지 않은 것을 추려 변론하여 바르게 하니, 이는 바로 보는 자의 마음의 진위眞僞를 드러내어 어떻게 구하고 물리쳐야 하는가를 나타내 보인 것으로, ‘선문만어’라고 이름 지었다.

010_1087_c_01L禪門謾語序

010_1087_c_02L
禪敎兩宗皆由於世尊而流出也世尊
010_1087_c_03L四十九年之說敎傳於阿難四十九年
010_1087_c_04L之證禪傳於迦葉迦葉禪主而兼於敎
010_1087_c_05L阿難敎主而兼於禪以之竺之四七
010_1087_c_06L之二三東之一愚白草無不各具禪敎
010_1087_c_07L而禪以無說爲眞說敎以有說爲眞說
010_1087_c_08L故荷澤以知之一字爲衆妙之源高峯
010_1087_c_09L以知之一字爲衆禍之門歷代諸尊宿
010_1087_c_10L天下老古錐拳拳䟽解於敎文而頓然
010_1087_c_11L不爲弄舌於禪門之上者良有以也
010_1087_c_12L東方則不爾自意自見穿鑿贅談於禪
010_1087_c_13L門者往往居多而至於隱老以出衆
010_1087_c_14L之才抱德之質學覽孔老知達禪敎
010_1087_c_15L用力敎家彷彿於栢庵留神禪關
010_1087_c_16L幾於覺雲即見殺活軆用之說竸抱斗
010_1087_c_17L䟽釋述作之書動論車載新學初
010_1087_c_18L機之輩靑衲黃巾之徒董炙而受持讀
010_1087_c_19L風靡而歸向點頭孰不欣仰贊揚哉
010_1087_c_20L中孚子內外道學一以貫之古今諸書
010_1087_c_21L囊以括之古所謂逃名而名我隨者也
010_1087_c_22L故得見隱老所評禪門手鏡其中意義
010_1087_c_23L不協者抄出辨正此乃現示其人人見
010_1087_c_24L者之心眞僞斥救之何如也以之名之

010_1088_a_01L나는 일찍이 선사의 문하를 좇아 그 가르침을 얻었다. 그 긴요한 말씀을 보고는 처음엔 현묘함을 알지 못하다가 하루 이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니 안개와 이슬 속을 다닌 듯 난초 밭에 들어간 듯 점차 그 윤택하고 향기로운 미묘한 뜻을 얻을 수 있었다. 또 한 통을 써서 자리 가까이 두고 머리에 서문을 써서 이 책의 유래와 본말을 알게 하였다.
대체로 옛날의 선은 의의擬疑(생각하고 의심함)를 약으로 지해知解(알음알이)를 병으로 여겼으나 오늘날의 선은 지해를 약으로, 의의를 병으로 여기니 이는 누구의 허물인가.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지다.”36)라고 하는 것이 바로 『선문수경』의 지혜이다. “활을 당기기만 하고 쏘지 않아37) 약동躍動하여 중도에 바르게 서면 능력 있는 자는 따른다는 것”은 요어要語38)의 인引이다. 공자의 지知는 『선문수경』의 지요 맹자의 인은 요어의 인이니, 인은 본연의 선禪이요, 지는 천착하는 가르침이다. 인으로 지를 깨뜨리는 것은 그 지를 깨뜨리는 것이요, 그 사람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다. 공자가 중유仲由(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를 깨우치고 맹자가 공손추公孫丑(맹자의 제자)를 깨우친 것도 그러하다.
지와 인은 우리 불가의 선과 교이다. 선교는 서천 28조사 동토 6대 조사로부터 백파와 초의에 이르기까지 사람마다 본래 구족하고 있다. 오직 선은 여러 존숙과 노고추조차도 혀를 묶고 입을 다물어 당기기만 하고 쏘지 않았다. 이제 당기고 쏘아서 표적을 맞추고 받아들이는 것을 둘 다 옳다고 하니 이 누구의 허물인가.
『두륜당시집』 서頭輪堂詩集序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빈부수요貧富壽夭도 마침내 사라지고 없어져 후손에게는 다만 그 조상 되고 후손이 된다는 이름만 알려진다. 문장과 덕업은 천만대에 초연히 홀로 보존되어 천하에 가득 차서 사람들이

010_1088_a_01L曰禪門謾語吾嘗從於禪師之門得其
010_1088_a_02L緖餘者也得見其要語初未知其玄妙
010_1088_a_03L一日二日耳之目之若行霧露
010_1088_a_04L芝蘭漸得其潤香之微旨又書諸一通
010_1088_a_05L以在坐右又序其弁以知此書之自來
010_1088_a_06L本末大抵古之禪以擬疑爲藥以知
010_1088_a_07L解爲病今之禪以知解爲藥以擬疑
010_1088_a_08L爲病是誰之過歟知之爲知之不知
010_1088_a_09L爲不知是知也此乃手鏡之知也
010_1088_a_10L而不發躍如也中道而立能者從之
010_1088_a_11L此乃要語之引也仲氏之知乃手鏡之
010_1088_a_12L孟氏之引乃要語之引引者本然
010_1088_a_13L之禪知者穿鑿之敎以引破知者
010_1088_a_14L其知非破其人孔氏之破仲由亦然
010_1088_a_15L孟氏之破公孫丑亦然知也引也
010_1088_a_16L家之禪也敎也禪敎自四七二三至白
010_1088_a_17L人人本自具足而惟禪諸尊宿老
010_1088_a_18L古錐結舌含枚引而不發今乃引而
010_1088_a_19L發之破之受之兩是雙可是誰之過歟

010_1088_a_20L

010_1088_a_21L頭輪堂詩集序

010_1088_a_22L
人之生世貧富壽夭終畢歸於泯滅凘
010_1088_a_23L而使後孫但傳其爲祖爲孫之名聞
010_1088_a_24L文章德業千萬代超然獨存滿天下

010_1088_b_01L모두 그 문장과 덕업을 추앙하니 하물며 그 자손이겠는가. 목숙穆叔39)이 이른바 “죽어도 불후不朽한 것은 입언立言이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나의 증조사曾祖師의 호는 두륜 또는 명주明晝 장로라고 하시니 곧 무용無用 선사의 직전直傳 제자로 해남 화산방花山坊 석전촌石田村 사람이다. 두륜산으로 출가하여 재명才名과 덕업이 산중에서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호칭한 것이다. 희암希庵 선생이 적성赤城으로 부임할 때에 스님께서 본사 사적비의 윤필潤筆 일로 누차 왕래하니 선생이 시로 송별하였는데 끝 구절에서 말하였다.

此回相送前期濶  이번에 이별하면 훗날의 기약 아득하리니
秋及田園我亦歸  전원에 가을 오면 내 또한 돌아가리라

스님의 시 끝 구절에서 말하였다.

相送桃源洞裡路  도원의 골짜기 길에서 서로 송별하니
使君歸北我南歸  사군은 북으로 나는 남으로 돌아가네

당시에 또 본사의 여러 스님들에게 준 편지에 일렀다. “성性 스님은 애초부터 비문의 일에 공이 적지 않다. 게다가 심사가 간결하고 담담하니 참으로 가상하고 사랑스럽다.” 또 비송에 이르기를 “구슬과 옥이 나란하듯 덕 있는 자에게 이웃이 있도다. 이에 성 스님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일단의 행장이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불자拂子를 들거나 마음을 관하는 여가에 대인군자와 창화한 시나 일을 짓고 공적을 기록한 글이 매우 많았으나, 문자를 여의는 것을 취지로 삼고 주착住着이 없는 것을 생활로 삼았기 때문에 남은 것이 별로 없게 되었다. 문도가 뜻을 어기고 모아서 전하게 되니 선사의 행실에 티를 더하였다. 힘쓰지 않을 것에 힘을 쓰고 할 수 있을 때에 하지 않아서 몇 대를 늦추게 되니 중간에 유실됨이 적지 않았다.
나는 말엽의 후손으로 선인의 금제禁制를 어기기 어려우나, 문자와 장구章句 사이에 뜻을 두어 부지런히 수집하여 겨우 수십 마디를 모아 후손의 안목으로 삼고, 또 권두卷頭에 서문을 실어 이 시의 내력을 알게 한다. 선사의 목소리와 모습은 아득하여 접하기 어려우나 문장과 덕업은 완연히 친히 전수받고 마주 명을 받는 듯하니

010_1088_b_01L皆推仰其文章德業況其子孫乎穆叔
010_1088_b_02L所謂死而不朽者立言是也吾曾祖師
010_1088_b_03L號曰頭輪又曰明晝長老即無用禪師
010_1088_b_04L之直傳也海南花山坊石田村人也
010_1088_b_05L髮於頭輪山才名德業獨步於山中
010_1088_b_06L故號稱也希庵先生補外赤城時
010_1088_b_07L以本寺事蹟碑潤筆事累次往來先生
010_1088_b_08L以詩相送落句曰此回相送前期濶
010_1088_b_09L及田園我亦歸師詩落句曰相送桃源
010_1088_b_10L洞裡路使君歸北我南歸當時又贈本
010_1088_b_11L寺諸僧書曰性師自初有功於碑役不
010_1088_b_12L況其簡淡心事極可嘉愛又碑頌曰
010_1088_b_13L珠騈璧聯其德有隣越有性此乃一
010_1088_b_14L段行裝師竪拂觀心之暇與大人君子
010_1088_b_15L唱和之詩凡諸作事記功之文千言萬
010_1088_b_16L以離文字爲1) [6] 無住着爲生活
010_1088_b_17L故所存無幾門徒亦以違而集傳益玷
010_1088_b_18L於先師之行也用力不用力失爲可爲
010_1088_b_19L於可爲之時常稽至於奕葉中間遺失
010_1088_b_20L亦爲不少不佞末葉之末重違先人之
010_1088_b_21L留意於章句之間勤勤搜集僅得
010_1088_b_22L五六十言以爲後孫之眼目亦序卷頭
010_1088_b_23L以知此詩之來歷焉先師之音容邈焉
010_1088_b_24L難接而文章德業完若親受而面命

010_1088_c_01L“죽어도 불후한 것은 입언이다.”라고 한 말이 이런 경우이다. 또 시대에 덕을 세우고 절에 공덕을 세우며 후세에 말씀을 세우는 이 삼불후三不朽의 진영眞影이 입언 가운데 있으니 크도다.
보제회중 학계안 서普濟會中學禊案序
도를 사람에게 가르치면 스승이라고 하니 스승의 도는 엄중함을 기강으로 삼는다. 지해知解를 스승으로부터 얻는 자를 제자라고 하니, 제자의 도리는 공경하고 순응함을 떳떳함으로 삼는다. 스승을 공경하고 따르는 것은 백천百川이 큰 바다로 흘러가는 것과 같고, 제자에게 엄중한 것은 큰 봉우리가 광야에 우뚝 서 있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공자께서 3천의 제자를 교화하였고 부처님께서는 6만 7천의 사람을 제도하신 것이다. 오늘날의 스승도 옛날의 스승과 같아 오늘날의 공자와 석가모니요, 오늘날의 제자도 옛날의 제자와 같아 오늘날의 안연顔淵과 가섭迦葉으로, 사람은 고금이 있으나 법은 고금이 없는 것이다. 유교와 불교가 대립하나 스승과 제자의 풍격은 같다. 그러나 스승 노릇하고 제자 노릇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 것이다.
이제 보공普公이 구곡동 상원암 앞에 법당法幢을 세우고, 칠구지七具胝 방장문 위에 경방經榜을 게시하였다. 그 당간을 보는 자는 하늘을 날고 땅을 쓸듯 운집하고, 그 방을 들은 자는 발초첨풍撥草瞻風40)하여 시내처럼 밀려드니, 방장이 비록 넓으나 여론은 오히려 좁게 여겼다. 이때에 오고 가는 이가 많아 대낮의 시장과 같았고 저녁에 모이고 아침에 흩어지는 것이 하늘의 별과 같았다. 혹은 서로 함께 도모하고 혹은 가까이 의론하여 말하기를 “자취를 끊어 영원히 이별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름을 남겨 서로 아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니, 말이 끝나자 아동은 춤을 추며 환희하고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찬탄하였다. 이에 네 벗을 부르니(문방사우文房四友) 네 벗이 이르고 두 글자를 쓰니 두 글자가 원만하였다. 사람마다 각각 10문을 내어

010_1088_c_01L而不朽者立言是也且立德於時立功
010_1088_c_02L於寺立言於後此三不朽影在於立
010_1088_c_03L言之中大矣哉

010_1088_c_04L

010_1088_c_05L普濟會中學禊案序

010_1088_c_06L
道向人敎曰師師道以嚴重爲綱解從
010_1088_c_07L師生曰子子道以敬順爲常敬順於師
010_1088_c_08L若百川歸朝大海嚴重於子也
010_1088_c_09L一峯特立廣野是以上大人丘乙己 [8]
010_1088_c_10L三千七十士正徧知明行足度六萬七
010_1088_c_11L千人今之師若古之師今之仲尼牟
010_1088_c_12L今之子如古之子今之顏淵迦葉
010_1088_c_13L人有古今法無古今儒佛角立師子
010_1088_c_14L同風然而師之師子之子難則難
010_1088_c_15L則易于今普公建法幢於九曲洞上院
010_1088_c_16L庵前揭經榜於七俱胝方丈門上見其
010_1088_c_17L幢者騰空括地而雲集聞其榜者
010_1088_c_18L草瞻風而水到方丈雖寬物情猶隘
010_1088_c_19L是時來而去去而來 [9] 日中之市
010_1088_c_20L而會朝而散如天上之星或躡足而
010_1088_c_21L謨謀或附耳而語曰與其絕蹤而永別
010_1088_c_22L不若留名而相知言訖兒童舞手而歡
010_1088_c_23L已而朋友點頭而讚歎於是呼四
010_1088_c_24L四友至題二字二字圓人各出二
010_1088_c_25L「定」疑「宗」{編}

010_1089_a_01L정성을 표하는 본전으로 하고 해마다 각각 5, 6의 이익을 거두어 믿음을 밝히는 이자로 하였다. 범례가 절로 정해졌으나 서문은 여전히 빠졌다.
모임에 훤暄 상인이 있는데 나와 동서의 옛 우의友誼가 있었다. 찾아와서 그 계에 대해 말하고 서문을 지어 주기를 청하였다. 나는 재주가 졸렬하다고 마다하였으나 그는 열정으로 요구하였다. 먼저 스승과 제자의 도리를 서술하고 다음에 그 계약의 일을 서술하니, 일은 비록 세상에 드문 좋은 일이나 문장은 장독 뚜껑으로나 쓸 변변찮은 글이다. 난亂(글의 끝마무리)에 말한다.

海濶魚龍聚     바다 넓으니 어룡이 모이고
山深象虎還     산 깊으니 용상이 돌아온다
船倉一男子     선창에 한 대장부가 있어
普濟萬人間     많은 사람을 제도하는구나
승족보 서僧族譜序
성姓이란 생生이니 이는 조祖와 부父가 상생하는 것을 말하고, 족族이란 속屬이니 그 자子와 손孫이 서로 연속됨을 말한다. 성이라고 이르면 위를 가리키고 족이라고 이르면 아래를 가리킨다. 시조로부터 아래로 백세에 이르기까지 그 방계와 별속別屬으로 각자 지파가 된 것이 수없이 많다. 혹은 나라 안과 외국에 나뉘어 있기도 하고 혹은 높은 벼슬아치나 선비, 서인이 되기도 하며 혹은 도가에 혹은 불가에 들어가기도 한다.
백두산 꼭대기에 둘레가 800리 되는 연못이 있는데 남쪽으로 흘러 압록강이 되고 북쪽으로 흘러 송화강松花江이 되며 동북쪽으로 흘러 소하강蘇下江이 되고 동쪽으로 흘러서는 두만강이 된다. 이와 같이 산과 물이 지리지에 갖추어 기재되어 전해지는 것처럼 성과 족속도 족보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전하는 것이다.
그간 국운이 좋지 않아 인물이 흩어져 족보가 비록 존귀하나 마침내 사라지고 말았도다. 형세가 그러하니 어찌할 것인가. 유나維那 적공寂公이 말하였다. “종문의 운이 불행하여 막중한 세계世系를 요승妖僧의 손에 잃게 되어 받들어 살피지 못한 지가 지금까지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저번에 다행히 천 리 밖에서 보고

010_1089_a_01L五文爲表誠母年各收五六利爲講
010_1089_a_02L信子凡例自定序文猶闕會中有暄
010_1089_a_03L上人者與我有東西舊義來言其契言
010_1089_a_04L請文其序文我以才拙却之彼以情熟
010_1089_a_05L求之先序其師子之道後序其契約之
010_1089_a_06L事雖曠世之好事文乃覆瓿之短文
010_1089_a_07L亂曰海濶魚龍聚山深象虎還船倉一
010_1089_a_08L男子普濟萬人間

010_1089_a_09L

010_1089_a_10L僧族譜序

010_1089_a_11L
傳曰姓者生也以此爲祖父之相生
010_1089_a_12L者屬也而其子孫共相聯屬謂言姓則
010_1089_a_13L在上言族則在下也自始祖下及百
010_1089_a_14L而其旁支別屬各自爲派者其數
010_1089_a_15L不億或在中國外國或爲輔相士庶
010_1089_a_16L或入於道或入於佛者白頭山巓
010_1089_a_17L廻八百里之潭南流爲鴨綠江北流爲
010_1089_a_18L松花江艮流爲蘇下江東流爲豆滿江
010_1089_a_19L若也山水備載地誌而傳之姓族詳載
010_1089_a_20L族譜而傳之其間邦運不淑人物播散
010_1089_a_21L詰譜雖尊且貴焉卒歸於何有之鄕
010_1089_a_22L也奈何維那寂公曰門運不幸莫重
010_1089_a_23L世係見失於妖僧之手未得奉審者
010_1089_a_24L於今數十年矣往者幸得見於千里之

010_1089_b_01L빼앗으려 하였으나 하지 못하고 다만 종이에 옮겨 쓰고 돌아와서 다시 새 족보를 만들고 이로써 순서를 잡았습니다.” 받아서 읽어 보니 시조 근계根溪 스님으로부터 녹적綠績ㆍ안훤安暄ㆍ진한進閑에 이르기까지 9세였다. 그 위는 기재하지 않았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의 환난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요 게다가 저번에 잃었다가 다시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 인에 자리하고 의를 행하며 선에 바탕하고 경을 지녀 말하는 것은 유불을 막론하고 일상에서 처신하여 행할 바이다. 이 네 가지 미덕(仁ㆍ義ㆍ善ㆍ敬)으로 벼리를 삼아, 성에 대해 듣고 종지를 얻은 뛰어난 제자들에게 훈계하고, 또한 일문一門의 복服이 있고 없는 자와 정이 있고 없는 노소老少와 어린 제자들에게 고한다면, 노 공盧公의 오종五宗41)과 소씨蘇氏의 삼봉三峯42)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은 함께 시조의 먼 후손이 되지만 훗날에는 후손들의 방계 조상이 될 것이니 조와 부가 상생하고 자와 손이 연속하는 것이 어찌 선대의 미덕만 되겠는가.
『제서명수』 서諸書名數序
대저 백공百工은 반드시 배워서 능하게 되는데 배워서 능하게 되는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이 글씨이다. 능력이란 하늘에 있으니 하늘을 가히 기필할 수 있겠는가. 지혜롭거나 어리석음을 막론하고 처음엔 널리 볼 수 없다. 나 또한 우물에 앉은 자이니 어찌 하늘의 큼을 논할 수 있겠는가. 외람되게 선사先師의 강석에 참석하여 다시 와서 앉은 지 20년이 되었다. 여러 책 중에서 이름ㆍ숫자ㆍ방위ㆍ과목 등 약간의 조례를 선택하여 ‘제서명수諸書名數’라 이름하고 초학자에게 보인다. 초학자에게 보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재주는 있으나 세勢가 부족한 자도 있고 세는 충분하나 재주가 부족한 자도 있으니, 모두 뜻과 바람은 크지만 역량이 적은 자라, 어찌 널리 보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비록 널리 볼 수는 없으나 이 책을 본다면 보지도 않고 그만두는 것보다는 오히려 낫지 않겠는가.아! 능히 배울 수 있는 자질로

010_1089_b_01L欲奪而未得但移紙而歸重成新
010_1089_b_02L以此序之受而閱之自始祖根溪
010_1089_b_03L至綠績安暄進閑惟九世也其上則不
010_1089_b_04L過桑患必也況伊番之失而得之者
010_1089_b_05L席仁而坐杖義而行枕善而臥
010_1089_b_06L佩敬而言毋論儒釋一家之日用行身
010_1089_b_07L處也以此四美爲宗綱敎訓於性聞得
010_1089_b_08L宗之輩又告於一門有服無服情存
010_1089_b_09L情盡之老少冠童則盧公之五宗蘇氏
010_1089_b_10L三峯可期今日同爲鼻祖之遠孫後日
010_1089_b_11L同爲耳孫之傍祖祖父之相生子孫之
010_1089_b_12L聯屬豈可專美於先代哉

010_1089_b_13L

010_1089_b_14L諸書名數序

010_1089_b_15L
盖百工必學而能學而能中最所難能
010_1089_b_16L者書也能乃在天天可必乎毋論智
010_1089_b_17L初未愽見予亦坐井者也何論天
010_1089_b_18L大也濫叅於先師講榻重來坐二十年
010_1089_b_19L前侍者僧之句也 [10] 擇於諸書中名數位
010_1089_b_20L目若干條例名曰諸書名數以示初學
010_1089_b_21L以示初學者有有才而勢不足者
010_1089_b_22L勢足而才不足者皆志願大而力量少
010_1089_b_23L者也豈至博見之地耶雖不博見
010_1089_b_24L不有 [11] 愈於不見而止者乎有能

010_1089_c_01L배울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자는 하늘을 거만히 여기는 자이니 내 어찌 관여하랴. 이러한 것도 저 눈 높은 이의 분수에는 ‘납월臘月(섣달)의 부채’43)와 같으리라.
서씨 동족계안 서徐氏同族契案序
대저 족속은 멀고 가까움이 있고 묘墓는 선후가 있으나, 시조의 입장에서 보면 족속과 묘는 모두 멀고 또한 먼저인 것이요, 지파支派의 관점에서 보면 족속과 묘는 모두 가깝고 뒤가 되는 것이다. 먼 조상과 그 묘는 많은 자손이 모두 받들어 모시니 말할 것이 없다. 두세 곳에 있는 가까운 묘는 그 시대로 논하면 3, 4대요, 그 촌수로 논한다면 7, 8촌이다. 7, 8촌 이하는 함께 3, 4대의 묘역에서 성묘를 하나, 성묘하는 날에 묘 앞에서 전작奠酌하는 일과 함께 모인 존장 앞에 술잔을 받드는 일이 없이, 다만 만나고 흩어지니 매우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마다 각각 30문을 거두어 벌초계伐草契를 만들어 인명을 나열하고 유사를 정하여 감찰하게 하고, 때를 따라 믿음을 도모하여 성묘할 때에 술잔을 올리고 음식을 갖추도록 하였다. 규약을 어기거나 재물을 범한 자가 있거든 구분口分44)을 모아서 매를 때리게 하였다. 이러한 죄를 짓고도 천지 사이에 선다면 도깨비가 길가에서 야유할 것이고 강보에 있는 아이도 영전에서 입을 비죽거릴 것이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인기 상포계안 서仁基喪布契案序
계契라는 것은 합合이니, 합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계를 만드는 사람이 성명은 각각 다르나 마음은 서로 믿음으로 계합함이니 대소大小 형제를 일컫는 것이다. 둘째는 계를 만드는 물품이 돈이나 곡식으로 비록 다르지만 그 물품은 서로 합해지는 것이니

010_1089_c_01L學之資而溺於不能學之境慢天者
010_1089_c_02L吾何預焉此彼高眼人分上一似
010_1089_c_03L臘月扇

010_1089_c_04L

010_1089_c_05L徐氏同族契案序

010_1089_c_06L
夫族有遠近墓有先後自始祖觀之
010_1089_c_07L族與墓皆遠且先矣自支派觀之
010_1089_c_08L族與墓皆近且後矣遠祖與墓多少
010_1089_c_09L子孫咸皆奉侍專恃不論 [12] 而近墓在
010_1089_c_10L二三處論其代則三四代計其寸則七
010_1089_c_11L八寸也七八寸以下同省墓於三四代
010_1089_c_12L墓域而省墓之日無奠酌於墓前
010_1089_c_13L擧杯於同會尊長前之物惟會而散
010_1089_c_14L無謂故人各出三十文作伐草契
010_1089_c_15L人名定有司互相監察隨時講信
010_1089_c_16L省墓之時致奠與飮具若有違約犯財
010_1089_c_17L集其口分賜其手杖有此罪案
010_1089_c_18L立於天壤之間魍魎之鬼捓揄於路上
010_1089_c_19L襁褓之兒反脣於嬰前盍愧

010_1089_c_20L

010_1089_c_21L仁基喪布契案序

010_1089_c_22L
夫契者合也合有二義一者作契之
010_1089_c_23L姓名各別信心契合大兄小弟之
010_1089_c_24L謂也二者作契之物錢糓雖殊物軆

010_1090_a_01L본전과 이자를 일컫는 것이다.
아아, 부모의 수명은 100년 밖에 다시 100년을 더하더라도 자식의 마음에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기니, 하물며 그 사이에 수요壽夭의 장단이 가지런하지 않아서 아침에 저녁을 도모하지 못하며 저녁에 아침을 보전하지 못함이겠는가. (상중喪中의) 처음과 끝의 절차가 매우 곤궁하고 급박하기 때문에 우리 4, 5인은 마음과 재물을 합쳐서 상포계喪布契를 만들어 뜻밖의 곤궁함을 면하고자 한다.
천지와 부모는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이치는 다르지 않아서 효자의 마음을 천지가 감응하고 천지가 감응하면 부모가 감응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설순雪笋45)과 빙어氷魚46)는 물과 육지에서 감응하였고 매자埋子47)와 각목刻木48)은 흙과 나무가 감응한 것이니 효도가 천지를 감응하는 것이 이에 가상한 것이다. 또한 세존께서는 정반왕淨飯王의 상여를 들었고 목련존자는 청녀靑女의 전도됨을 구해 주었으니49) 내 홀로 그렇지 아니할 것인가. 한 자의 베와 한 관의 동전도 하늘이 이미 알고 땅이 이미 증거하니, 순응하면 복이 있을 것이요 거역하면 화가 있을 것이다. 화복의 사이에 항상 계합의 두 가지 뜻을 돌아보고 처음과 같이 끝을 삼간다면 하필 증자曾子의 『효경孝經』50)을 강론하겠는가. 우리도 또한 그렇게 되리라.
『동시만선』 서東詩漫選序
내문乃文이 말하기를 “독서는 구업口業(입으로 짓는 일)이고 글씨는 손의 솜씨고 시율詩律은 성정性情입니다. 나는 독서하고 글씨 쓰는 여가에 성정을 아울러 배우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고금의 여러 현인들의 시율로써 발분하고 생각하여 지은 것 중 수려한 것들을 선택하여 뽑아서 보여 주며 말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서전西典(불경)에 유영游泳하여 동학東學은 오히려 마음에 두지 않았으니 어찌 입으로 전할 수 있겠는가. 또한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대학大學의 도인데, 스스로 제가할 겨를도 없으면서 다른 학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만을 취하는 잘못된 계책과 같다.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010_1090_a_01L契合本母利子之謂也父母之壽
010_1090_a_02L百年之外更加百年子之心猶有不足
010_1090_a_03L况其間壽短不齊朝不謀夕夕不保朝
010_1090_a_04L初終一節甚可窘迫故惟我四五
010_1090_a_05L心合財合乃作喪布之契以免不
010_1090_a_06L時之窘焉天地與父母名雖異稱
010_1090_a_07L無異轍孝子之心天地感應天地感
010_1090_a_08L即父母感應故雪笋氷魚水陸之
010_1090_a_09L埋子刻木土木之應孝感天地
010_1090_a_10L斯可尙也且世尊羿 [13] 淨飯之輿目連救
010_1090_a_11L靑女之倒吾獨不哉一尺布一貫錢
010_1090_a_12L天已知之地已證之順之有福逆之
010_1090_a_13L有禍禍福之間每顧契合二義愼終
010_1090_a_14L如始則何必講曾子之孝經哉我亦爾
010_1090_a_15L

010_1090_a_16L

010_1090_a_17L東詩漫選序

010_1090_a_18L
乃文曰讀書口業書寫手巧詩律性
010_1090_a_19L吾欲口手之暇兼學性情擇其古
010_1090_a_20L今諸賢詩律之發憤激慮之秀麗者
010_1090_a_21L示之曰予自少游泳於西典東學尙
010_1090_a_22L未措懷安可口傳耶且脩身齊家治國
010_1090_a_23L平天下大學之道而自齊未暇欲學
010_1090_a_24L他術如捨近取遠之失計也然君欲吾

010_1090_b_01L만약 시를 배우고자 한다면 동인東人의 시를 배우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내문이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임금과 신하, 사대부와 서인으로부터 은자와 출가한 자의 풍요風謠와 장구章句에 이르기까지 315수를 모아서 수록하고 종류에 따라 조목을 만들어서 세 편을 이루고 1책으로 합쳐 ‘동시만선東詩漫選’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 가운데에 친히 본 것은 의심할 것이 없지만 전해 들은 것은 제목과 저자의 성명을 잘못 기록한 것이 반드시 많을 것이니 이것은 바로 나의 견문이 좁기 때문이다. 또 존비와 귀천의 구분이 없이 섞어 놓았으나 책을 열고 읽어 본다면 저절로 존비가 구분될 것이다. 아아, 청하는 처음과 허락하는 끝이 모두 괴이하고 기특하니, 여기서 이야기하면서 성정을 배우려고 하는 것은 도리어 입으로 책을 읽고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못할까 걱정이다.
『통감사기』 서通鑑私記序
『통감』51)이라는 책은 본디 음과 해석이 갖추어 있는데 난해한 곳에 이르러서는 구두점 이해도 어렵다. 내가 요옹寥翁 이 선생께 가서 물어보았더니 요옹이 말하였다. “한번 『강목綱目』을 보게.” 내가 말하였다. “『강목』을 얻기 어려운 것은 난해한 구두句讀보다 더합니다.” 요옹이 말하였다. “자네가 보고자 한다면 내가 보내 주리라.” 얼마 후에 집안의 심부름꾼을 시켜 한 질 76권을 3차에 걸쳐 보내 주고 또 말하였다. “쭉 읽어 보는 때에 의심나고 중요한 곳은 초록抄錄하여 잊을 것을 대비하도록 하라.” 내가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함풍咸豊 말부터 동치同治 초까지 보고 초록하여 대략 1권의 책을 만들어 이것을 『통감』의 기준으로 삼았다. 『통감』의 원주原注와 두주頭注와 장하주章下注는 모두 이 『강목』의 큰 글과 주注이다. 비록 초록하는 수고로움은 있었으나 긴요하지 않은 것이 중복 기록된 것은 그 부분을 삭제하고 중복 기록되지 않은 것만 써서 기록한 것도 또한 적지 않다. 『통감』 15권의 목록을 나열하여

010_1090_b_01L若志學學東詩足也文曰然自君臣
010_1090_b_02L士庶至於隱人逃禪之風謠章句雜集
010_1090_b_03L收錄三百一十五首逐類條目乃成三
010_1090_b_04L合爲一册命顏曰東詩漫選其中
010_1090_b_05L親見者無疑而流聞者拈題與述人名
010_1090_b_06L誤筆必多此乃管見井坐之所致也
010_1090_b_07L且不分尊卑貴賤錯互叅差開卷寓目
010_1090_b_08L自分尊卑無妨矣請之之始許之
010_1090_b_09L之終盡是雙恠雙奇得談在此欲學
010_1090_b_10L性情反不如口分句讀手工點畵之爲
010_1090_b_11L愈也

010_1090_b_12L

010_1090_b_13L通鑑私記序

010_1090_b_14L
通鑑一書本具音釋至於斬絕處
010_1090_b_15L解句讀予往問於寥翁李夫子翁曰一
010_1090_b_16L覽綱目曰得綱目之難甚於難解句讀
010_1090_b_17L翁曰汝欲覽我將送矣久之使家伻一
010_1090_b_18L秩七十六卷三次負送且謂曰歷覽次
010_1090_b_19L疑處要處抄錄以備遺忘之具曰諾
010_1090_b_20L咸豐末同治初覽之抄之約幾一卷
010_1090_b_21L以之準鑑鑑之元注及頭注章下注
010_1090_b_22L是目之大文及注也雖有抄出之勞
010_1090_b_23L錄不緊削其重錄者筆於不重錄者而
010_1090_b_24L錄之此亦不少列通鑑十五卷目

010_1090_c_01L본문에 3, 4글자의 수로 표제하고 그 표제 아래에 곧바로 기록하였으니, 『통감』 제1권은 진晉나라 시대가 되고 치세가 된다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제15권 주령酒令이라는 것은 명령을 행하여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인용문의 맥락이 번다하여 한 번 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대의만을 간추려서 ‘평왈評曰’ 자를 두었다. 예컨대 『통감』에서 “궁인宮人과 가까운 시종들을 쓰라.”라고 운운하는 부분에서 “평왈. 궁인이 연淵을 모셔다가 협박하려고 하니 연이 속히 병사를 일으켰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현토懸吐가 한번 잘못되어 계속 풀이를 잘못한 것은 구절을 끊고 토를 달았다. 예컨대 『통감』 제3권에 “내가 유독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을 얻어서 장수를 삼는다면 내 어찌 흉노匈奴를 근심하겠는가.”52)라고 한 부분과 제12권에 “안녹산安祿山에 대하여 범양范陽 절도사 예부 상서 석건후席建侯가 하북 출척사河北黜陟使가 되어 안녹산이 공정하고 정직하다고 칭찬하니 이로 말미암아 안녹산에 대한 총애가 더욱 견고하게 되었다.”라고 한 부분이 이것이다.
또 제왕의 역대와 참칭僭稱한 연대를 붙여서 요옹에게 주니 요옹이 보고 인정하여 잘 보관하기를 부촉하니 말씀대로 보관하였다. 요옹은 나의 유학 선생으로【송정松汀에 거주한다.】 유림의 군자이시다. 나를 아끼는 것이 구공歐公과 혜근惠勤처럼 경중이 없다. 서문은 나의 책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니고 이 선생을 위해서 감히 단다.
수보살계 계안 서受菩薩戒契案序
살피건대 율律에는 5부部가 있으니 첫째는 담무덕曇無德,53) 둘째는 살바다薩婆多,54) 셋째는 가섭유迦葉遺,55) 넷째는 미사색彌沙塞,56) 다섯째는 바차부라婆蹉富羅57)이다. 이 『범망경梵網經』은 곧 5부 중에 제3부이다. 경에는 삼중三重이 있으니 첫째, 노사나盧舍那 부처는 능설能說의 주체가 되고 천의 대大 화석가化釋迦는 듣는 대중이 된다. 둘째, 천의 석가는 능설의 주체가 되고 백억의 소小 화석가는 듣는 대중이 된다. 셋째, 백억의 석가는

010_1090_c_01L本文三四字數直錄其標下如曰鑑第
010_1090_c_02L一卷爲晋爲治也第十五卷酒令者
010_1090_c_03L行令而飮酒也是也引文連脉煩多
010_1090_c_04L一見難通者撮其大義置評曰字
010_1090_c_05L曰用宮人私侍云云評曰宮人侍淵欲
010_1090_c_06L淵速發兵也是也懸吐一誤輾轉
010_1090_c_07L誤訓者折句示吐如曰三卷吾獨不
010_1090_c_08L得廉頗李牧爲將吾豈憂匈奴哉
010_1090_c_09L二卷以安祿山兼范陽節度使禮部尙書
010_1090_c_10L席建候爲河北黜陟使稱祿山公直
010_1090_c_11L由是祿山之寵益固矣是也且附帝王
010_1090_c_12L歷代及僣稱年代呈翁翁見而許之
010_1090_c_13L囑而藏之依而藏之翁岸之儒學夫子
010_1090_c_14L居汀
儒林之君子見愛之因與歐
010_1090_c_15L公惠勤曾無輕重序是爲書爲李夫
010_1090_c_16L而敢序云爾

010_1090_c_17L

010_1090_c_18L受菩薩戒契案序

010_1090_c_19L
詳夫律有五部一曇無德二薩婆多
010_1090_c_20L三迦葉遺四彌沙塞五婆蹉富羅
010_1090_c_21L梵網經即五部中之第三部也經有三
010_1090_c_22L一盧舍那爲能說之主千大化釋
010_1090_c_23L迦爲所聽之衆二千釋迦爲能說之
010_1090_c_24L百億小化釋迦爲所聽之衆三百

010_1091_a_01L능설의 주체가 되고 제 보살은 듣는 대중이 된다.
이 보살계는 『범망경』 112권 61품 중 삼중의 제3이다. 이 경은 삼세의 제불이 이미 설하셨으며 이제 설하시고 장차 설하실 것이며, 보살이 이미 배웠고 이제 배우며 장차 배울 것이다. 석가로부터 보리달마菩提達摩에 이르기까지 서천 28세가 되고 달마로부터 혜능慧能에 이르기까지가 중국의 직전直傳 6세가 된다. 혜능으로부터 석옥石屋에 이르기까지가 중화로부터 방전傍傳 23세가 되고, 석옥으로부터 나에게 이르기까지 동국 16세가 되니 도합 73세이다. 칠차七遮58)의 나머지로 다만 스승의 말을 이해하는 자는 모두 수계受戒할 수 있다.
나와 여러 비구들은 초의 삼장草衣三藏에게 수계하였고 또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읊조려 전하노니 이제 여러 비구들은 또한 다른 비구들에게 전하여, 미래까지 전하여 끊어지지 않게 하면 다만 삼세에 설하고 배울 뿐만 아니라 십세十世에도 설하고 들을 것이다. 계契의 부지런하고 게으름은 내가 논하지 않겠다.
고진불 사맹불량안 서古眞佛四孟佛粮案序
거문고에는 아양峨洋59)의 오묘한 음이 있지만 손가락이 아니면 나타날 수 없고, 퉁소는 봉황의 높은 곡조를 갖추었지만 입술이 아니면 드러나지 않으며, 사람은 현능한 덕성을 품고 있어도 혀가 아니면 말할 수 없다. 이로써 손가락을 대면 음이 나타나고 입술을 불면 소리가 드러나며 혀를 움직이면 말이 되나니 오묘하도다. 거문고와 퉁소와 사람이 본래 순원純元의 본체를 갖추고 있지만 손가락과 입술, 혀의 순환하는 쓰임이 아니면 어찌 훌륭하게 나타낼 수 있겠는가.
두륜산 고진불암古眞佛庵은 산의 요충지요, 스님과 세인이 귀의하는 곳이나, 단나檀那가 시종여일한 믿음이 없고 승가僧伽는 마음에 품은 욕망이 많아서 거의 향화를 올리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010_1091_a_01L億釋迦爲能說之主諸菩薩爲所聽之
010_1091_a_02L此菩薩戒即梵網經一百一十二卷
010_1091_a_03L六十一品中三重之第三也盖此經
010_1091_a_04L世諸佛已說今說當說菩薩已學今學
010_1091_a_05L當學自釋迦至菩提達摩爲西天二
010_1091_a_06L十八世自達摩至慧能爲中國直傳
010_1091_a_07L六世自慧能至石屋爲中華傍傳二
010_1091_a_08L十三世自石屋至不佞爲東國十六
010_1091_a_09L合七十三世也以七遮之餘但解
010_1091_a_10L師語者盡可受其戒焉予與諸比丘
010_1091_a_11L求受於草衣三藏亦爲諸比丘誦傳於
010_1091_a_12L諸比丘今諸比丘又傳於他比丘
010_1091_a_13L之未來其跡不絕非惟三世說學
010_1091_a_14L爲十世說聽也契之勤慢吾所不論

010_1091_a_15L

010_1091_a_16L古眞佛四孟佛粮案序

010_1091_a_17L
琴有峨洋之妙音而非指不發簫具鳳
010_1091_a_18L凰之高調而非脣不生人抱賢能之德
010_1091_a_19L而非舌不言是以按指則音吹脣
010_1091_a_20L則聲掉舌則言妙哉琴簫人本具純
010_1091_a_21L元之軆非指脣舌循環之用何以絕唱
010_1091_a_22L頭輪山古眞佛庵者一山之喉襟
010_1091_a_23L緇白之歸依檀那無始終如一之信
010_1091_a_24L伽有含情未發之欲幾至曠闕香火之

010_1091_b_01L산인山人 춘파春坡와 유찬宥粲이 기쁘게 거처하면서 옛사람의 자취를 밟고 곧고 바르게 옛 철인哲人의 약속을 준수하였다. 가만히 경계의 길을 다스려 약간의 수고로움을 행하고 단월의 집에 구걸하여 약간의 재물을 얻었다. 본래 있던 물품으로 일상생활의 공양을 행하고 새로 얻은 재물로는 사맹월四孟月(1, 4, 7, 10월)을 위해 공양을 행하였다.
자례子禮 스님이 이미 공양을 마치고 종을 울려 향화를 행하는 뜻을 세우고 발원하여 나에게 일을 묻자 내가 착하게 여기고, 나에게 서문을 요청하자 승낙하였다. 평하여 말한다. 재물을 베푸는 군자는 부처님께 수복壽福을 얻고, 시주를 권하는 화사化士는 군자에게 공덕을 이룬다. 단나는 거문고ㆍ퉁소ㆍ사람과 같고 화사는 손가락ㆍ입술ㆍ혀와 같다. 화사가 단문檀門을 이끌고 권면한 후에 단문을 크게 열어 탐욕을 제거하고 법재法財를 구족하면 오늘날의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될 것이요, 미래의 다보여래多寶如來60)가 될 것이다. 이로써 말하자면 권면한 후에 재물을 베풀고 재물을 베푼 후에 공양하는 것은 화사의 공용功用이니 손가락에 견주어 단나의 아래에 붙이고, 재주財主의 공덕의 본체는 거문고에 비견되니 화사의 위에 붙이고, ‘사맹불량안’이라고 명명하여 그 아름다운 이름을 다음에 쓴다.
『진불암지』 서眞佛庵志序
진불암眞佛庵은 대둔사大芚寺 안쪽에 있으니 곧 대둔사의 진불암이다. 진불眞佛은 심불心佛에 대해서 진불이 되는 것이니, 심불은 가불假佛이요 본불本佛은 진불이다. 진불암의 터는 험하면서 그윽하며 암자의 제도는 크게 탁 트이고 윤환輪奐(빛나고 아름다움)하다. 암자의 스님들은 조용하고 적정寂靜하니 진실로 도를 증득하고 깨달음을 찾는 큰 도량이다.
위에는 법당과 노전당爐殿堂이 있어 16응진應眞과 10대 제자를 봉안하였다.

010_1091_b_01L境矣山人春坡宥粲怡然自居踐古
010_1091_b_02L人之踵武較若畫一遵前哲之約束
010_1091_b_03L坐治界道費若干勞行乞檀家得若
010_1091_b_04L干財本所在物爲日用行供新所得
010_1091_b_05L爲四孟行供子禮已供鳴鐘行香
010_1091_b_06L之意立志發願問事於予予曰善
010_1091_b_07L序於予予曰諾評曰施物君子得壽
010_1091_b_08L福於佛勸物化士成功德於君子
010_1091_b_09L檀那琴簫人如化士指脣舌化士引勸
010_1091_b_10L檀門以後檀門大開破除慳貪法財
010_1091_b_11L具足現爲須達長者當作多寶如來
010_1091_b_12L以此言之勸後施財施後設供化士
010_1091_b_13L之功用比之於指而附之於檀那之下
010_1091_b_14L財主之功軆比之於琴而附之於化士
010_1091_b_15L之上命名曰四孟佛粮案列其芳啣于
010_1091_b_16L

010_1091_b_17L

010_1091_b_18L眞佛庵志序

010_1091_b_19L
眞佛庵者在於大芚寺之內即大芚寺
010_1091_b_20L之眞佛庵也眞佛者對心佛而爲眞佛
010_1091_b_21L心佛假佛也本佛眞佛也庵之基
010_1091_b_22L崎嶇而窈窕庵之制宏敞而輪奐
010_1091_b_23L之人咻咶而寂靜眞證道覓佛之大道
010_1091_b_24L場也上有法堂與爐殿堂安十六應眞

010_1091_c_01L전각에는 한 사람의 분수焚修하는 사리闍梨(승려)가 있다. 먼저 세워졌기 때문에 고진불암이라고 한다. 아래에는 법당과 큰방이 있는데, 법당에는 삼세의 여래와 10대 명왕이 모셔져 있고, 방에는 큰 강석講席이 개설되어 벽안碧眼의 고덕高德과 푸른 옷의 납자가 한없이 왕복하는데 뒤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신진불암이라고 하니, 위아래를 합쳐서 진불암이라고 한다.
위아래에 각각 옛 기문이 있으나 해가 오래되어 좀먹고 글자와 줄이 그릇되고 파여서 옛 자취가 참모습을 잃어서 보아도 분명하지 않다. 또 기문과 제영題詠은 각판이 깨지고 떨어져 어지럽게 흩어져서 남은 것이 없다. 무위無爲 사형이 아우인 나에게 수록하기를 원하였다. 내가 형의 부탁에 따라 편집하니 훈지塤篪61)가 창화唱和하고 척령鶺鴒62)이 협동하는 격이었다. 두 권을 집성하여 한 부는 사형이 해남 김미방金米舫의 가숙家塾에 가서 청하여 써서 본 암자에 소장하고, 다른 한 부는 내가 스스로 지니고 옥주沃州 첨찰산尖察山에서 우거寓居하고 있었는데, 상주尙州의 수사秀士 이침산李枕山이 마침 내가 사는 곳으로 방문해 필사하여 스스로 소장하기를 청하였으니 이는 세월이 흘러 없어질까 우려해서이다.
큰절에는 두 사적이 있는데 하나는 『죽미기竹迷記』로 중관자中觀子가 손수 기록한 한 권으로 이미 판각에 들어갔고, 두 번째는 『대둔지大芚志』인데 정약용의 윤필潤筆이다. 『만일암지挽日庵志』도 있는데 정약용이 옛 기록을 따라서 거듭 부연한 것이다. 본 암자에는 원래 이루어진 책자가 없었는데 오늘날 비로소 암지庵志를 지었으니, 바라건대 훗날에도 오늘날을 이어서 이 암지를 인하여 닦아 이룬다면, 비록 어떤 시대라도 선인先人의 기연을 실추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면 후인들이 오늘날을 보는 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옛날을 보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윤자계안 서潤字契案序
계戒라는 것은 금한다는 것이니 장차 그러하기 전에 금하는 것이다. 율律이라는 것은 다스린다는 것이니 사건이 일어난 후에 다스리는 것이다. 여섯 무리의 비구가 죄를 범한 후에

010_1091_c_01L與十大弟子殿有一箇焚修闍梨先建
010_1091_c_02L故曰古眞佛下有法堂與大房堂
010_1091_c_03L三世如來與十大冥王房設大講肆
010_1091_c_04L碧眼高德靑衣衲子往復無際後建
010_1091_c_05L故曰新眞佛上下合名眞佛庵也上下
010_1091_c_06L各有古記年久蠧蝕字行譌泐古跡
010_1091_c_07L失眞目之無明且記文與題詠刻板破
010_1091_c_08L狼藉無餘無爲兄師顧弟收錄
010_1091_c_09L應兄編集塤箎唱和鶺鴒叶同集成
010_1091_c_10L二𢎥 一本阿兄往請于海南金米舫家
010_1091_c_11L書藏本庵一本予自持而僑居於
010_1091_c_12L沃州尖察山尙州秀士李枕山適訪弊
010_1091_c_13L請筆自藏此壑舟滄桑之慮也
010_1091_c_14L寺有二事蹟一曰竹迷記中觀子手記
010_1091_c_15L一卷已入刻二曰大芚志丁洌水閏
010_1091_c_16L挽日庵有志丁冽水因古記而重衍
010_1091_c_17L者也本庵本無成册今者始作庵志
010_1091_c_18L庶幾後來繼今者因此修氣則雖何代
010_1091_c_19L不墜先機矣即後人見今愈於今人見
010_1091_c_20L古哉

010_1091_c_21L

010_1091_c_22L潤字契案序

010_1091_c_23L
戒者禁也禁於將然之前律者治也
010_1091_c_24L治於已然之後六群比丘犯罪之後

010_1092_a_01L250개의 계를 설하여 후인들을 분명히 다스리는 것은 라후라羅睺羅63) 사미가 죄를 범하기 전에 십계를 주어서 후배들을 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오계ㆍ팔계ㆍ십계는 모두 사미계라고 하는데 오계가 근본이 된다. 십계ㆍ사십팔계ㆍ이백오십계는 모두 비구계라고 하는데 십계가 근본이 된다. 펼치면 8만의 계율이요, 합하면 삼업三業(身ㆍ口ㆍ意)이 되니 펼치고 합하는 것은 비록 다르지만 금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이니 이로써 오계는 모든 행실의 으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율을 받고도 범하며 나아가다가 물러나면 그 죄가 그대로 남아 있고, 계율을 받아서 전하고 지녀서 행하면 그 복이 있는 것이다. 내가 윤潤으로써 이름을 준 것은 선근善根을 윤택하게 하여 발현시키고 영원히 너의 무리에게 선을 주어서 제76대를 더욱 번창하게 하려는 뜻이다. 항렬의 다소와 계약의 진위는 내가 논할 겨를이 없다. 미리 막고 이미 그러한 이후에 잘 다스리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이니 행여 소홀히 하지 말지어다.
자설혜자계안 서自說慧字契案序
살殺ㆍ도盜ㆍ음婬ㆍ망妄ㆍ주酒는 석씨의 오계五戒이다.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은 유가의 오상五常이다. 오상과 오계는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다. 무릇 지혜가 있는 자는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지만 애써 입으로 말하는 것은 옛날의 성인과 오늘날의 성인이 받아서 전한 떳떳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나도 또한 하의荷衣 선사에게 받았고 하의 선사는 완호玩虎 조사에게 받았다. 나 또한 너희들에게 전하노니 너희들도 제자들에게 전한다면 억만 년을 전하여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성性이란 것은 계戒요, 정正이라는 것은 정定이요, 혜慧라는 것은 혜惠이니 실제로는 계정혜戒定慧의 삼학을 가리킨다. 성性ㆍ혜慧ㆍ정正 세 글자로 이름을 지은 것은

010_1092_a_01L設二百五十之律明治後人不如羅㬋
010_1092_a_02L羅沙彌犯罪之前授一十之戒防禁後
010_1092_a_03L五戒八戒十戒皆名沙彌之戒
010_1092_a_04L五戒爲本十戒四十八戒二百五十戒
010_1092_a_05L皆名比丘之戒而十戒爲本開之則八
010_1092_a_06L合之則三業開合雖殊禁治惟一
010_1092_a_07L是以五戒爲諸行之首哉然受而犯之
010_1092_a_08L進而退之其罪如在受之而傳持之
010_1092_a_09L而行其福如在吾以潤與名者潤發
010_1092_a_10L善根永錫其類益昌第七十六代之意
010_1092_a_11L行列之多小契約之眞贋吾不暇
010_1092_a_12L禁其將然治其已然吾所望之
010_1092_a_13L勿以忽

010_1092_a_14L

010_1092_a_15L自說慧字契案序

010_1092_a_16L
殺盜婬妄酒釋氏之五戒也仁義禮智
010_1092_a_17L儒家之五常也五常與五戒名異
010_1092_a_18L而義同凡有靈知者不說自知而苦
010_1092_a_19L口宣說者前聖後聖受而傳之之常道
010_1092_a_20L我亦受之於荷衣先師先師受之於
010_1092_a_21L玩虎祖師我亦傳之於汝等汝等亦傳
010_1092_a_22L之於弟子則億萬斯年傳之不絕也
010_1092_a_23L性者戒也正者定也慧者惠也
010_1092_a_24L則戒定慧三學也以性慧正三字作名

010_1092_b_01L너희들이 반드시 삼학으로써 삼한의 사찰에 이름을 날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형은 복엄福嚴이란 이름을 병인년(1866, 고종 3) 겨울에 그 제자에게 주고, 사제는 혜엄慧嚴이란 이름을 정묘년(1867, 고종 4) 겨울에 나의 제자에게 전수하였으니, 이것이 선가에서 말하는 복과 혜를 쌍운雙運하는 진전眞詮이다. 어느 때건 어느 곳이든지 이름을 돌아보고 의를 생각하여 이름을 지어 준 깊은 기연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어찌 부처님 없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근심하며 공자 없는 나라에 태어난 것을 근심할 것인가.
아, 전곡錢穀을 다투는 것은 오랑캐의 풍습이니 만약 이익만을 좋아하는 자가 있다면 벌로 몽둥이 30대를 쳐서 칠불암 아자방亞字房으로 보낼 것이요, 계율만을 좋아하는 자도 30대를 쳐서 통도사通度寺 정자각丁字閣으로 보낼 것이다. 나는 주장자를 들었다. 니聻!
영산전 창건 시주안 서山殿剏建施主案序
대개 들으니 황금을 깔아 땅을 사서 처음 기원정사祇園精舍64)를 지었고, 법을 설하고 하늘에 오르시니 비로소 전단목으로 불상을 만들었다. 섭등葉騰65)은 동쪽으로 들어가서 낙양에서 백마사를 세웠고 달마達摩66)는 서쪽으로부터 와서 숭산에 소림사를 열었다. 아도阿度는 동쪽을 교화하여 8대 가람을 점지하였고 도선道詵은 서쪽으로 가서 3천의 비보처裨補處를 개설하였다. 본조本朝의 시작에 이르러서도 먼저 봉선사와 봉은사 두 절을 기내圻內에 세웠으니 오늘날에 이르도록 새롭다.
우리 해남은 백제 시대에는 색금塞琴이라 이름하였고 신라 시대에는 침명浸溟이라고 불렀다. 나라의 운이 무상하여 읍의 터가 일정하지 않았다. 해문海門의 남쪽, 영수瀛水의 북쪽에 두륜산이 있고 부상扶桑을 등지고 함지咸池를 향하며 대둔사가 있으니 아도가 창건하고 도선이 중수하였다. 산꼭대기에 암자가 있고 산기슭에는 사원이 있다. 사원의 오른쪽은 푸른 산기슭인데 광명전이 있고 전의 오른쪽 옥루玉樓에는 영산당이 있는데 영산당의 선상에는 삼신三身67)의 불탑이 봉안되어 있다. 당의 동서 행랑에는 오관五觀의 승인僧人을 안치하였으니 이것은 해남의 수사

010_1092_b_01L汝等必以三學馳名於三韓寺刹也
010_1092_b_02L阿兄以福嚴與其徒於丙寅冬阿弟以
010_1092_b_03L慧嚴授吾徒於丁卯冬此乃禪家福慧
010_1092_b_04L雙運之眞詮也臨時觸處顧名思義
010_1092_b_05L不負命名之深機則何患乎無佛世出
010_1092_b_06L無孔國生錢穀之爭夷虜之習
010_1092_b_07L好利者罰三十棒即送於七佛亞字房
010_1092_b_08L好戒者罰三十棒即送於通度丁字閣
010_1092_b_09L吾拈一柱杖

010_1092_b_10L

010_1092_b_11L靈山殿剏建施主案序

010_1092_b_12L
盖聞布金買地始作秪桓之園說法升
010_1092_b_13L初造旃檀之像葉騰東入建白馬
010_1092_b_14L於洛陽達摩西來開嵩山之少室
010_1092_b_15L度東化點八大之伽藍道詵西行
010_1092_b_16L三千之裨補至於本朝之初先峙奉先
010_1092_b_17L奉恩兩寺於圻內至今如新者惟我海
010_1092_b_18L名塞琴於百濟稱浸溟於新羅
010_1092_b_19L祚無常邑址不一海門之离瀛水之
010_1092_b_20L有曰輪山扶桑負而咸池面有曰
010_1092_b_21L芚寺阿度剏而道詵修山椒有庵
010_1092_b_22L麓有院院之右翠微有光明殿殿之
010_1092_b_23L右玉樓有靈山堂堂之床安三身之
010_1092_b_24L佛塔堂之序置五觀之僧人此乃海

010_1092_c_01L김광우金匡祐가 부모의 애쓰신 은혜를 갚고 자신의 평안함과 자손의 번창함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이유를 자세하게 밝히는 것은 말이 많아지게 되니 생략한다.
인연의 때가 맞고 감응의 도가 교감하여 계해년 입춘날 불일佛日을 꿈꾸고 갑자년 3월에 금의金衣를 다시 입혔다. 을축년 늦여름에 보련각에서 금선金仙(부처님)을 예배하고, 병인년 7월에 은빛 들보를 정전에 걸었다. 보전이 윤환輪奐(화려하고 빛남)한 것은 송파공松坡公의 기문에 대략 보이고, 금탑의 장엄은 초의 선사의 찬어贊語에 갖추어 기재되어 있다. 등불 빛이 어두움을 깨뜨리고 미경米 68)이 강신하며, 서기가 허공에 모이고 방광放光이 벽에 어리니, 진흙 덩어리와 흙덩어리의 무정물과 모든 움직이고 살아 있는 중생이 부처님과 다름이 없었다. 만 길 쌍봉은 춘훤椿萱(부모님)의 수명과 나란하고 길게 흐르는 구곡은 자손의 성대함과 견줄 만하다. 한바탕 바람이 낮게 불어오니 마장魔障을 영원히 몰아내고, 구름일산이 날아 내려와 분다리화分陀利華를 실중으로 맞이한다. 단나檀那의 기업이 나라와 함께 무궁할 것이요, 불타佛陀의 모습은 겁석劫石과 나란히 영원할 것이다. 이미 일의 자취를 개진하고 이제 명함名銜을 기록한다.
적광전 등촉계안 서寂光殿燈燭契案序
대개 일월은 법계에 두루 비치되 옹기가 가로막힌 곳은 미치지 못한다. 옹기가 가로막힌 곳을 비추어 일월의 밝음에 버금가는 것은 오직 등촉燈燭만이 그러할 수 있다. 등촉은 능히 비추지만 반드시 사람의 힘을 빌려서 비출 수 있는 것이요, 또한 사람마다 모두 능한 것이 아니고, 숙세宿世에 일월등촉의 빛을 갖추어 지혜에 밝은 자만이 능히 비출 수 있는 것이니, 돌이 옥을 품으면 산이 빛나고 물이 구슬을 품으면 냇물이 밝은 것과 같다.
이제 이 영산전靈山殿은 여러 가지를 수용하고 하나하나를 구족하였으나 등촉만은 빠뜨렸다. 승속僧俗이 뜻을 같이하여

010_1092_c_01L南秀士金匡祐爲報父母劬勞之恩
010_1092_c_02L己身安閑爲子孫昌寧而作者若夫
010_1092_c_03L細䟽攸由多涉饒舌因緣際會感應
010_1092_c_04L道交夢佛日於癸亥之入春改金衣於
010_1092_c_05L甲子之三月乙丑遯夏禮金仙於寶蓮
010_1092_c_06L丙寅否秋掛銀棟於正殿寶殿輪奐
010_1092_c_07L畧見於松坡公之記文金塔莊嚴備載
010_1092_c_08L於草衣師之贊語燈光破暗米𦺄降神
010_1092_c_09L瑞氣凝虛放光映壁泥團土塊蠢動
010_1092_c_10L含靈與佛無異者所賴萬丈雙峯
010_1092_c_11L椿萱之壽命長流九曲比瓜瓞之盛多
010_1092_c_12L風陣飄低送魔障於劫外雲盖飛下
010_1092_c_13L迎芬華於室中檀那之基業對鰌穴而
010_1092_c_14L無窮佛陀之廟容齊劫石而長在
010_1092_c_15L陳事緖將擧名銜

010_1092_c_16L

010_1092_c_17L寂光殿燈燭契案序

010_1092_c_18L
盖日月徧照於法界而不及於隔壅之
010_1092_c_19L及於隔壅之處而亞於日月之明者
010_1092_c_20L惟燈燭能之燈燭能之必假人而能之
010_1092_c_21L亦非人皆能之宿具於日月燈燭之光
010_1092_c_22L明智慧者能之其猶石蘊玉而山輝
010_1092_c_23L懷珠而川媚哉今此靈山殿種種受用
010_1092_c_24L一一具足其所曠闕者燈燭也緇素

010_1093_a_01L지혜를 발하고 재물을 모아 무진등無盡燈의 기구를 갖추어서 일월이 미치지 못하는 어두운 거리를 비추어 깨뜨리고 자금색紫金色의 광취光聚(부처님의 몸 색깔)를 밝게 드러냈다. 가난한 여인의 등69) 기름과 도적이 화살을 태워 불을 밝힌 일도 시대는 다르지만 뜻은 같았다.
바라건대 자손이 있는 군자는 연루烟樓를 깨뜨려 청전靑氈70)을 승올乘杌(역사)에 전하고 월계수를 높이 잡아 죽백竹帛(역사)에 홀탑笏榻을 드리우라. 염불 염법念法하는 비구들은 이제 발원하고 미래에도 발원하여 정혜를 닦고 보리를 증득하여 원친怨親에 평등하며 자타를 원만하게 성취하라. 위로 결계結界의 유래를 서술하고 아래로는 인仁을 닦는 향기로운 이름을 쓴다.
『불조원류』 서佛祖源流序
원류라는 것은 무엇인가. 원原은 종宗이요 류流는 파派이니 불조의 종파를 일컫는 것이다. 불조의 사적은 밝게 기록되어 있으나 이름은 모두 각각 다르다. 『본행경本行經』ㆍ『성도기成道記』ㆍ『전등록傳燈錄』ㆍ『불조통재佛祖通載』ㆍ『석씨원류釋氏源流』 등의 책은 모두 서축西竺(인도)과 중원中原의 근원은 기재하였으나 우리나라의 흐름은 기재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동방의 『불조원류』를 지은 까닭이다.
전번에 한곳에서 간행하였는데 전문專門만을 힘쓰고 공정함은 애쓰지 않아 말류末流라는 개탄이 컸다. 이 한 권은 서序와 주注를 제거하고 다만 근원과 흐름만을 기록하여 자가自家의 족보로 삼았으니 사람들이 비록 보더라도 전문에 치우쳤다는 비난은 없을 것이다.
이르기를 비바시불毘婆尸佛로부터 석가모니釋迦牟尼에 이르기까지는 부처가 되고 마하가섭摩訶迦葉으로부터 달마達磨에 이르기까지는 서천의 조사祖師가 된다. 혜가慧可71)로부터 급암及庵에 이르기까지 중원의 조사가 되고 석옥石屋으로부터 청허淸虛에 이르기까지는 동국의 조사가 되니 불조라는 한 제목이 이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 청허 이하로는 흐름이 매우 많아서 다 기술할 수가 없다. 우리 자신의 흐름만을 기록하여 소장한 것은 소씨蘇氏의 서序72)에 견준 것이다.

010_1093_a_01L同志發智合財備辦無盡燈之具
010_1093_a_02L破日月不及之昏忂顯發紫磨金色之
010_1093_a_03L光聚貧女之燒油却賊之箭燈異代
010_1093_a_04L同年所祈有子有孫之君子撞破烟樓
010_1093_a_05L傳靑氈於乘杌高攀月桂垂笏榻於竹
010_1093_a_06L念佛念法之比丘今發願當發願
010_1093_a_07L修定慧證菩提怨親平等自他圓成
010_1093_a_08L上序結界之由致下題修仁之芳銜

010_1093_a_09L

010_1093_a_10L佛祖源流序

010_1093_a_11L
源流者宗也派也謂佛祖之
010_1093_a_12L宗派也佛祖事蹟昭昭載錄而名皆
010_1093_a_13L各異也本行經成道記傳燈錄佛祖通
010_1093_a_14L釋氏源流等書皆載於西竺中原之
010_1093_a_15L不載於本方之流此東方佛祖源流
010_1093_a_16L之所以作也間者一處刊行而以專門
010_1093_a_17L爲務不務公正末流之慨歎大矣
010_1093_a_18L一卷拔去序注但錄源派以爲自家之
010_1093_a_19L人雖觀之無專門之誚矣曰自毘
010_1093_a_20L至牟尼爲佛自迦葉至達摩爲西
010_1093_a_21L竺祖自慧可至及庵爲中原祖自石
010_1093_a_22L屋至淸虛爲東國祖佛祖之一題盡
010_1093_a_23L之矣淸虛以下千支萬派不可盡述
010_1093_a_24L自家之流錄之藏之擬於蘇氏之序

010_1093_b_01L권 머리에 서설을 단다.
강진 고성암 중종 시주안 서康津高聲庵中鐘施主案序
주야로 시간을 알려 공부의 더디고 빠름을 일깨우고 재齋나 제사 때에 음악을 연주하여 신도神道의 오르고 내림을 엄정히 한다. 이에 목란원木蘭院의 부끄러움을 일으키고 동안현同安縣의 감응이 있었다. 해가 지고 길이 막힐 때에 먼 하늘의 범방梵坊(절)을 열어 보이고 깊은 숲속과 흐르는 시내 사이 달빛 어린 창에서 나비의 꿈73)을 깨운다. 크게 치면 크게 울리고 작게 치면 작게 울리듯이 많이 베풀면 많은 복을 받고 작게 베풀면 작은 복을 받는다. 우리 고성암은 산이 맑고 높아서 읍의 주맥主脈이다. 교윤敎允 화상이 만덕사萬德寺로부터 와서 거처하여 권선문을 지고 군자의 집에 고하였다. 불법이 성대해지려는지 지운地運이 돌아오려는지 말씀이 바람처럼 치달리자 수많은 집이 감화를 받아 유한한 재물을 모아서 무루無漏의 선근을 산처럼 세웠다. 때마침 파는 곳이 있어 마침내 오는 이를 교화하려는 마음을 일으켰다.
종을 누대에 옮겨 거니 산에 용과 호랑이가 날고 달리며, 소리가 성 위로 울려 퍼지니 읍의 존귀한 자는 자손이 번성한다. 고통에 빠진 외로운 영혼은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받으며, 윤회하는 중생은 어려움을 면하고 복을 얻는다. 단나檀那의 복은 수미산須彌山과 수명이 나란할 것이요, 화사化士의 공은 향수해香水海74)와 흐름을 같이할 것이다. 감히 어리석은 지혜로 수승殊勝한 인연의 자취를 기록하여 보인다.
장성 백양산 청류동 중종 시주안 서長城白羊山淸流洞中鐘施主案序
노령蘆嶺이 가로 뻗친 곳에 장성이 웅장하게 점거하고 있으니 유림儒林의 형국을 얻고 선원仙苑의 터를 열었다. 산신령은 백양을 타고 오고 가며 스님들은 청정 국토를 밟고 출입한다.75) 저 절의 자취를 살펴보니 포옹圃翁76)의 구절에 밝게 기재되었고 이 지령地靈을 돌아보니

010_1093_b_01L序說于卷首

010_1093_b_02L

010_1093_b_03L康津高聲庵中鐘施主案序

010_1093_b_04L
日夜點更警覺工程之遲速齋祭奏樂
010_1093_b_05L嚴整神道之降登爰起木蘭院之慚
010_1093_b_06L有同安縣之感日暮塗阻開示雲霄之
010_1093_b_07L梵坊林深溪流罷除月窓之蝶夢
010_1093_b_08L叩大鳴小叩小鳴之日多施多福小施
010_1093_b_09L小福之時惟我高聲庵山之淸高
010_1093_b_10L之主脉有敎允和尙自萬德來居
010_1093_b_11L彼勸善之文告于君子之宅或佛法欲
010_1093_b_12L或地運將回一言風馳萬戶草偃
010_1093_b_13L鳩聚有限之財賄岳立無漏之善根
010_1093_b_14L有斥賣之處卒發化來之心移掛樓頭
010_1093_b_15L山之龍虎如飛如走聲落城上邑之
010_1093_b_16L尊貴有子有孫沉淪之孤魂離苦受
010_1093_b_17L輪回之衆生免難得福檀氏之福
010_1093_b_18L與須彌而齊壽化士之功等香水而同
010_1093_b_19L敢將愚迷之知記示勝緣之跡

010_1093_b_20L

010_1093_b_21L長城白羊山淸流洞中鐘施主案序

010_1093_b_22L
蘆嶺橫亘長城雄據儒林得局仙苑
010_1093_b_23L開基山靈騎白羊而往反釋子履淨土
010_1093_b_24L而出入瞻彼寺蹟昭載圃翁之句

010_1093_c_01L각로覺老77)의 비문에 자세히 쓰여 있다. 중고 시대 후로 산과 들의 백성들을 교화시킨 이는 환양喚羊 스님이요, 기상이 용상龍象(고승 대덕)을 압도한 분은 백파白坡 스님이었다.
제방이 절을 보수한 공덕을 허여하였으니 암자의 바른 길이요, 많은 무리들이 경을 강설하는 모범을 추존하였으니 거울같이 맑은 연못과 같았다. 도사다천都斯多天78)이 모두 도림桃林에 옮겨 오고 기원정사祇園精舍가 우리나라에 다시 일어났다. 청류암淸流庵에 이르면 여향餘香이 장실에 가득하고 유풍이 숲을 움직이며 부근斧斤79)을 서로 전하고 청전靑氈(구업舊業)을 번갈아 지킨다. 맑은 흐름과 세찬 여울물이 좌우에 비쳐 흐르는 것은 덕송德松이 물외에 높이 초월한 것이요, 꾀꼬리의 노래와 제비의 지저귐이 상하에 울리는 것은 응운應雲이 사원에서 연설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단월檀越이 귀의하고 법재法財가 갖추어져 부종鳧鐘(종)이 높이 걸리고 경퇴鯨槌(종을 치는 망치)로 간간이 울리니 경을 읽는 자와 불자拂子를 드는 이가 때때로 라후라羅睺羅의 종을 연주하고 고통에 빠진 자와 병든 자가 종소리를 듣고 나락奈落80)의 고통을 그친다. 쌍계의 긴 흐름처럼 자손이 면면하여 끊어지지 아니하고 기린봉(麟峯)의 고고함처럼 부모님의 화락함이 무궁하리라. 우선 기문으로 앞에 수승한 인연을 드러내고 뒤에 아름다운 이름을 나열하여 축원한다.
대둔사 무량회 모연 소大芚寺無量會募緣䟽
살피건대 세존께서는 기연을 따라 도를 전수하시고 중생에 응하여 형상을 나타내셨다. 특별히 왕생일문교往生一門敎(정토종)를 여시어 염불삼매에 들게 하셨으니 이제 잠깐의 작은 선을 닦는다면 후대에 만겁의 자량資糧이 되리라.이 때문에 동진의 혜원惠遠 법사가 여산廬山에서 백련사白蓮社를 창설하여 맺으니 신이한 영험을 만세에 공경히 우러렀고, 고려의 징徵 화상이 건봉사乾鳳寺에서 만일회萬日會를 이어 개설하시자 같은 날 수많은 사람이 왕생하였으니, 이는 바로 고해를 건너는 빠른 배요, 윤회를 벗어나는 첩경이다.
우리 본사本寺 회암悔庵과 설허雪虛 두 대사는

010_1093_c_01L此地靈試詳覺老之碑降自中古
010_1093_c_02L動山野者曰羊氣壓龍象者曰白諸方
010_1093_c_03L許其補寺之功德庵裡之道衆海推其
010_1093_c_04L講經之模楷鏡中之潭覩斯多全移桃
010_1093_c_05L秪陀苑重興韓地至於淸流庵
010_1093_c_06L香滿室遺風動林鈯斧相傳靑氈替
010_1093_c_07L淸流激湍影帶左右者德松之高
010_1093_c_08L超物外鶯吟燕語聲徹上下者應雲
010_1093_c_09L之演唱院中用是爲資檀越歸依
010_1093_c_10L財具足鳧鐘高掛鯨槌間舂轉經也
010_1093_c_11L竪拂也時奏睺羅之撞撞沈淪者
010_1093_c_12L病者聽息奈落之楚楚雙溪之長流
010_1093_c_13L瓜瓞之緜緜不絕麟峰之孤高椿萱之
010_1093_c_14L棣棣無窮記表勝緣於先列祝芳名於
010_1093_c_15L

010_1093_c_16L

010_1093_c_17L大芚寺無量會募緣䟽

010_1093_c_18L
原夫世尊隨機授道應物現形特開
010_1093_c_19L往生一門敎入念佛三昧今修片時之
010_1093_c_20L小善後爲萬刼之資糧是以東晉遠法
010_1093_c_21L創結白蓮社於廬山異驗萬歲欽仰
010_1093_c_22L高麗徵和尙繼說 [14] 萬日會於乾鳳同日
010_1093_c_23L千人往生是乃越苦海之迅航出輪廻
010_1093_c_24L之捷徑者也惟我本寺悔庵雪虛兩大

010_1094_a_01L공문空門의 영수요 불법의 표상으로서 시내 북쪽에 무량회를 여시고 무량수불無量壽佛(아미타불)을 니단尼壇(수계하는 계단)의 위에서 염원하였다. 사산四山(생로병사)이 핍박하니 전영奠楹의 꿈81)이 멀지 않고 육문六門(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이 허한虛閑하니 현고懸鼓82)의 기한이 멀지 않았다. 완명玩溟 스님에게 권선문을 미루니 많은 대중들에게 물망이 있는 분이다.
이에 권선문을 지니고 길에 오르니 상서로운 바람이 칠근七斤의 포삼布衫 속으로 불어오고 선신善神이 육환六環의 석장을 보호한다. 효제충신의 집안이 문을 열어 웃으며 맞이하고 자비희사의 사찰이 병을 기울여 보시한다. 수달須達 장자가 옛날에만 있고 오늘날에는 없다고 말하지 말라, 인을 행하는 것이 장자로다. 보살이 예전에는 나타나고 훗날에는 숨었다고 이르지 말라, 자비가 보살이로다.
엎드려 바라오니 어진 군자와 선지식은 “인仁에 당하여 양보하지 말라.”83)는 선근善根을 채택하여 우리의 선을 행하는 가장 즐거운 좋은 터에 심고 인간 세상의 오복五福84)의 여경餘慶을 덜어서 아홉 길 산을 이루는85) 믿음의 공덕을 이룬다면, 먼 훗날 임종할 때에 아미타불을 친견할 것이며, 어질고 착한 자손들이 어릴 때 성상聖上을 알현할 것이로다. 이를 인하여 받들어 축원하노니 왕실의 복산福山이 높게 솟고 제후諸侯의 문에 법해法海가 평안히 흐르기를 바라노라.
서산 대사 영각 다례 모연 소西山大師影閣茶禮募緣疏
생각하니 서산 대사는 관북 땅에 은현隱現하여 산속의 사람에게 생멸을 나타내시고 호남에 의발을 전하여 바닷가 세속에 충의를 권면하였다. 왜구가 침략하자 7년의 풍진을 쓸어 내시니 나라의 은혜가 널리 베풀어져서 세 스님의 조두俎豆(제기祭器)를 진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궁궐을 경영하느라 화천貨泉(재물)이 고갈되니 조정의 명령이 엄하게 내려졌으나 자성粢盛(제삿밥)을 빠뜨리게 되었다.
감영의 명령이 이어 내려와 특별히 수호총섭守護總攝의 직책을 내리고, 관아의 사신이 곧 와서 춘추로 다례를 지내라는 엄명을 높이 나타내었다. 그러나 본래 재물을 축적하지 아니하면 또한 새로 번거롭게 갖추어야 할 것이다.

010_1094_a_01L空門領袖佛法羽儀開無量會於
010_1094_a_02L溪水之陽念無量壽於尼壇之上四山
010_1094_a_03L逼迫奠楹之夢不遠六門虛閑懸鼓
010_1094_a_04L之期無何推勸軸於玩溟師有物望於
010_1094_a_05L介衆者也於是荷勸登道祥風吹於七
010_1094_a_06L斤衫裡善神護於六環杖頭孝悌忠信
010_1094_a_07L之家開門迎笑慈悲喜捨之寺側缾
010_1094_a_08L捨施莫道須達古有今無富仁是矣
010_1094_a_09L勿謂菩薩前現後隱慈悲是焉伏願仁
010_1094_a_10L君子善知識採彼當仁不讓之善根
010_1094_a_11L我爲善最樂之良土減人間五福之餘
010_1094_a_12L成爲山九仞之信功則千秋萬歲
010_1094_a_13L親見彌陀於臨終之時賢子令孫進謁
010_1094_a_14L聖上於舞象之日因玆奉祝王室之福
010_1094_a_15L山高峙 [15] 門之法海安流

010_1094_a_16L

010_1094_a_17L西山大師影閣茶禮募緣疏

010_1094_a_18L
伏以西山大師隱現關北示生滅於山
010_1094_a_19L衣鉢湖南勸忠義於海俗島狺間
010_1094_a_20L掃七年之風塵國恩普施陳三師
010_1094_a_21L之爼豆經營宮闕罄渴貨泉朝令嚴
010_1094_a_22L粢盛曠闕營旨繼下特授守護摠
010_1094_a_23L攝之欽差官使旋來高揭春秋茶禮之
010_1094_a_24L嚴令非是素畜之物件抑爲新備之冗

010_1094_b_01L이미 4, 5년을 지나며 향화香火를 올렸기 때문에 본사本寺에서도 차호茶戶를 바치려 하고, 또 장래에 백년 천년에도 제사를 받들려 하면 반드시 다른 산에 있는 선원禪院의 힘을 빌려야 한다. 이에 여러 해 동안 경영하여 화락한 화사化士를 택하여 정하였으나 향화할 계책이 없으니 감히 어려운 마음을 고한다.
생각하니 저 유림의 군자들도 오히려 외호外護하거늘 하물며 우리 불문의 수행인이 어찌 안을 돌보지 않을 것인가. 엎드려 바라오니 충의한 군자와 전임 원임院任과 전임 제관祭官과 후손인 선승 대덕과 선善을 즐기는 산야의 백성들은 깊이 열조列朝께서 도타이 우려하시는 것을 생각하여 힘써 진영眞影에 제사 차리는 재물을 도운다면, 높이고 받드는 행사가 여전히 남아 있는지라 불법의 시운이 돌아오는 것을 바랄 수 있으리라. 대략 이유를 갖추어서 삼가 단자를 드린다. 여러 고을과 각 절의 군자와 대덕은 문서 아래에 열거한다.
무안 법천사 가사 및 천등 모연 소(務安法泉寺袈裟及千燈募緣疏)
수달須達 장자가 정사를 건립하자 사원의 명칭이 비로소 시작되었고, 백장百丈 선사가 총림을 개설하자 규율의 의식이 거듭 부연되었다. 이로부터 화연을 권하는 행이 서로 이어지고 단월의 믿음이 더욱 새로워져 집물什物이 원만히 이루어지고 사사四事86)가 구족되었다. 깃발을 날리고 돈을 거니 육법六法87)의 공양이 원만하고 종을 울리고 북을 치니 사물四物의 인연이 이루어졌다.
우리 법천사法泉寺는 부처님이 신령하고 산수가 아름다우나 스님이 쇠잔하고 절이 무너져서 시내가 오열하고 숲도 슬퍼하니 감히 어리석은 말로 훌륭한 군자에게 호소한다. 바라건대 덕이 밝은 군자와 효도를 행하는 신사信士는 크게 유한한 재물을 열어서 잠시 무루無漏의 인연을 심으라. 가사를 갖추어서 영원히 산문의 법계에 두고 등촉을 높이 걸어 암실과 같은 어두운 거리를 비춘다면 금시조金翅鳥88)의 환난도 영원히 소멸될 것이요, 음광飮光(마하가섭)의 빛이 널리 비칠 것이니 수명을 연장하는 경문을 읽지 않아도 장수할 것이요, 야광의 구슬을 차지 않아도 빛날 것이라,

010_1094_b_01L已過四五年行香準輸本寺之茶戶
010_1094_b_02L將來百千歲獻杓必借他山之禪宗
010_1094_b_03L乃經記有年擇定易易之化士香火無
010_1094_b_04L敢告難難之原情思彼儒林君子
010_1094_b_05L尙可外扶況我釋苑行人叵使內顧
010_1094_b_06L伏乞忠義君子曾經院任前行祭官
010_1094_b_07L後裔禪德樂善山野深追列朝軫念之
010_1094_b_08L優渥力助眞儀設奠之遺財則尊崇
010_1094_b_09L之擧尙存時運之回可望畧陳由致
010_1094_b_10L謹呈單子列邑各寺僉君子大德列案下

010_1094_b_11L

010_1094_b_12L務安法泉寺袈裟及千燈募緣疏

010_1094_b_13L
須達建精舍院宇之名初開百丈設叢
010_1094_b_14L規儀之式重衍自玆以還勸化之
010_1094_b_15L行相望檀越之信益新什物圓成
010_1094_b_16L事具足揚幡掛錢六法之供養圓滿
010_1094_b_17L鳴鐘打鼓四物之緣起莎訶惟我法泉
010_1094_b_18L佛聖神靈山明水麗僧殘寺敗㵎咽
010_1094_b_19L林哀敢將愚辭庸訴珎席伏願明德
010_1094_b_20L君子孝行信士大開有限之財賄
010_1094_b_21L種無漏之因緣備辦袈裟永鎭山門之
010_1094_b_22L法界高掛燈燭長明暗室之昏衢
010_1094_b_23L金翅之患永消飮光之色廣照不讀延
010_1094_b_24L命之經而長壽不佩夜光之珠而光明

010_1094_c_01L바로 보시하는 때가 보답을 받는 날일 것이다.
인하여 봉축하노니 삼각산 머리에 요임금의 태양이 밝게 빛나고 사대문 밖에 순임금의 바람이 항상 불기를 바라노라.
여산 미륵사 중수 모연 소礪山彌勒寺重修募緣䟽
적이 생각하니 니룡泥龍(진흙으로 빚은 용)은 비를 일으키지 못하지만 비를 구하려면 모름지기 니룡을 써야 하고 범승凡僧은 복을 증장할 수 없으나 복을 비는 데는 범승을 써야 한다. 이로써 니룡의 이름을 범하고 범승의 복장을 입어 비를 일으키는 계책을 설하고 복을 증장하는 연유를 고한다.
장자長者가 사찰을 건립하니 제천諸天에서 산화散花하였고 초부樵夫가 삿갓을 씌워서 진단震旦(중국)에서 황제를 칭하게 되었으니 이는 경영하여 건립한 공덕이다. 빈녀貧女가 부처님 얼굴을 보수하자 얼굴이 황금빛으로 변하였고 장자가 손가락을 다스리자 손가락에서 등빛이 발산되었으니 이것은 소화塑畵의 공덕이다.
부처님께 꽃을 바쳐서 과위果位를 증득한 것은 위덕 비구威德比丘89)요, 탑을 쓸어서 도를 깨친 것은 파다존자婆多尊者90)이다. 기름을 사서 등을 밝히니 등광불燈光佛이 되었고 화살 등불을 바르게 밝혀서 천안통天眼通을 얻었다. 옛날에 이르기를 “봄에 한 알의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수많은 곡식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이는 바로 인因을 닦아서 과果를 얻는 일착자一着子이다. 우러러 바라오니 명덕 군자明德君子와 대선지식大善知識은 착한 마음을 드리워서 밝게 살필지어다. 인하여 봉축하노니 관산冠山은 빼어남을 다투고 한수漢水는 계속 흐를지어다.
무량회 중수 모연 소無量會重修募緣䟽
적이 생각건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91)ㆍ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92) 두 보살은 곧 아미타불의 좌우에서 보필하는 법신法臣이다. 대세지보살은 염불로써 사람을 응접하고, 관세음보살은 참선으로써 대중을 깨우치니, 염불과 참선은 이치가 다르지 않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선은 높고 염불은 낮다고 하는 것은 둘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010_1094_c_01L乃捨施之時即受報之日也因玆奉祝
010_1094_c_02L三角山頭堯日朗曜 [16] 大門外舜風
010_1094_c_03L長揚

010_1094_c_04L

010_1094_c_05L礪山彌勒寺重修募緣䟽

010_1094_c_06L
切以泥龍不能行雨求雨須用泥龍
010_1094_c_07L凡僧不能長福求福須用凡僧是以
010_1094_c_08L犯泥龍之名荷凡僧之服設行雨之策
010_1094_c_09L告長福之由長者建刹諸天散花
010_1094_c_10L夫覆笠震旦稱帝營建之功也貧女
010_1094_c_11L補面面爲金色長者治指指放燈光
010_1094_c_12L塑畵之功也獻花證果威德比丘
010_1094_c_13L塔得道婆多尊者買燃油燈作燈光
010_1094_c_14L箭燈正明證天眼通古云春種一
010_1094_c_15L粒穀秋收萬顆子此是修因契果之一
010_1094_c_16L着子也仰惟明德君子大善知識垂仁
010_1094_c_17L靑照焉因玆奉祝冠山竸秀漢水爭
010_1094_c_18L

010_1094_c_19L

010_1094_c_20L無量會重修募緣䟽

010_1094_c_21L
切以觀音勢至二菩薩即阿彌陁佛左
010_1094_c_22L右補弼之法臣也勢至以念佛接人
010_1094_c_23L音以叅禪誨衆念佛叅禪無二致今之
010_1094_c_24L人叅禪爲高念佛爲卑者二俱不知也

010_1095_a_01L
이제 이 남암南庵의 무량회는 무량수불을 염원하는 선회禪會이다. 방장이 좁아서 동방東方 사자좌獅子座를 수용하기가 어렵고, 공양구를 갖추기 어려우니 상방上方 향적香積 세계의 밥을 빌려고 한다. 그러나 유마힐의 신통력을 증득하지 못하였으니 사리불舍利佛의 마음만 헛되이 일으켰다.
엎드려 바라오니 밝은 덕의 군자와 선을 쌓는 대인이 유한한 재물을 덜어서 무루의 공덕을 심는다면 부처님의 교화가 사람마다 입혀지고 하늘빛이 집집마다 비출 것이다. 재물을 모으고 공을 쌓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염불 참선하는 것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인하여 축원하노니 사방의 도읍에서 임금님을 축원하고 천하가 태평하며 안팎으로 삼통三統93)하여 팔한八寒과 팔열八熱94)의 지옥이 분쇄되고 아침에 천 번 염불하고 저녁에 천 번 염불하여 오고五苦95)와 오도五道의 원한이 눈처럼 녹기를 바라노라.
일허 거사에게 부치는 편지(寄一虛居士書)
미륵암 앞에서 한마디 말을 나누고 이별했는데 모습이 여전히 눈에 어른거리고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구나. 근일에 부모님 모시고 지내는 생활이 여전하고, 거주하는 것이 별다른 일이 없으며 또 염불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는가. 나는 작년에 너희 두 사람과 헤어지고 금년에는 저 두 아이를 보내고 나서 여전히 서책을 마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부질없이 외로운 등불 아래에 누워서 긴 밤을 지새우니 시름에 겨운 구름만 얼굴을 가로지르고 슬픈 바람만 옷에 불어오니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오호라, 너를 보낸 후에 이전의 공부를 길이 끊고 심성이 갑자기 변하여 문 앞을 지나가도 들어가지 않고 사람을 만나도 말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처신할 바를 두고자 함이었다. 세월이 점차 흐름에 따라서 심정도 점차 바뀌어 가니 이른바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가 스승에게 고하여 마음에 새긴 한을 영원히 깨뜨렸으니 너도 아버지에게 고하여 흉중에 남아 있는 근심을 잊도록 하라. 내가 이 편지를 써서 보낸 후에 다시 처음과 같이 되고 너도 또한 이 편지를 본 후에

010_1095_a_01L今此南庵無量會念無量壽佛之禪會
010_1095_a_02L方丈迫迮難容東方獅子之座
010_1095_a_03L具艱難欲借上方香積之飯然雖如是
010_1095_a_04L未證維摩詰之神通虛起舍利佛之心
010_1095_a_05L伏願明德君子積善大人損有限
010_1095_a_06L之財賄樹無漏之功德則佛化被於人
010_1095_a_07L天光照於家家鳩財僝功非爲己
010_1095_a_08L念佛叅禪是利他因玆奉祝四都華祝
010_1095_a_09L八垓河淸內三統外三統八寒八熱之
010_1095_a_10L獄粉碎朝千念暮千念五苦五道之
010_1095_a_11L寃雪消

010_1095_a_12L

010_1095_a_13L寄一虛居士書

010_1095_a_14L
彌勒庵前一言相送顏猶在眼聲猶
010_1095_a_15L在耳未知近日侍味一如居住有殊
010_1095_a_16L念心不變我去年失爾二人今年送彼
010_1095_a_17L兩兒猶對書册以終天日浪臥孤燈
010_1095_a_18L以達長夜愁雲橫面悲風吹衣情狀
010_1095_a_19L可想嗚呼送爾之後前功永絕心性
010_1095_a_20L頓變過門不入逢人不言者期於必
010_1095_a_21L有所擧措而已矣歲月漸深心情漸改
010_1095_a_22L所謂作心三日者也是故吾告於師
010_1095_a_23L破刻心之恨汝告於父即忘留胸之憂
010_1095_a_24L我乃記送此書以後乃復如初汝且得

010_1095_b_01L다시 처음과 같이 된다면 끊어진 현絃을 다시 잇는 것이요, 이지러진 달이 다시 원만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소한 여러 이야기들은 마주 앉아서 모두 토로하기로 하고 우선 남기고 다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노하에게 답하는 편지(答朴蘆河書)
풍륭風霳(구름과 우레의 신)이 한 번 지나자 추수하는 일이 형편없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그리워하며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눈과 혀가 모두 지쳐 물러나 앉고 싶은 마음이 날마다 있었으나 일에 끌리는 것이 그치지 않으니 한스러움을 어찌하겠습니까. 유자후柳子厚96)가 말하기를 “유자는 예로써 인의仁義를 세우니 예가 없다면 인의가 무너진다.”라고 하였습니다. 불교도 계율로써 정혜定惠를 유지하니 계율을 없애면 정혜를 잃게 됩니다. 이 때문에 인의에서 예를 벗어나면 더불어 유학을 말할 수 없고, 정혜를 닦을 때에 율을 달리한다면 함께 불교를 말할 수 없으니, 이 도리를 아는 자는 오직 선생일 것입니다. 유가의 인의와 불가의 정혜는 이름은 다르나 실제는 같고, 길은 다르지만 귀결처는 같아서, 이로써 유자라고 부르기도 하고 불자라고 일컫기도 하나니, 이 도리를 아는 자는 오직 산승일 것입니다. 산승이 이것으로써 선생에게 알리고 선생이 이것으로써 산승에게 허여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상에 유자는 유학밖에 다른 도리가 없고 불자는 불교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서 항상 빙탄氷炭과 같으니, 비유컨대 쌀 밖에 다시 보리가 없고 육고기 외에 다시 물고기가 없는 것과 같아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산승이 적이 생각건대 유자가 유교를 높이고 불자가 부처를 높이는 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위하는 것과 같고 부인이 지아비를 위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자식이 그 아버지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위하지 않으며, 지어미가 지아비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의 지아비를 위하지 않는다면, 경박한 자가 되어 세상에 서지 못할 것이니 누가 대군자라고 하겠습니까. 때문에 곡식에는 오곡五谷과 구곡九谷97)이 있고 찬에는 오미五味98)와 팔진八珍(여덟 가지 진미)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성인과 상인常人이 있고 도에는 삼가三家(유ㆍ불ㆍ선)와 구류九流99)가 있는 법입니다.

010_1095_b_01L見此書以後乃復如初則可謂絕絃復
010_1095_b_02L缺月重圓者也小小諸說對坐盡
010_1095_b_03L姑留不宣

010_1095_b_04L

010_1095_b_05L答朴蘆河書

010_1095_b_06L
豊霳一過秋事無形此時瞻仰一信
010_1095_b_07L憧憧眼舌俱役退坐之心無日無之
010_1095_b_08L牽制不已恨將奈何柳子厚曰儒以
010_1095_b_09L禮立仁義無之則壞佛以律持定惠
010_1095_b_10L去之則喪是以離禮於仁義者不可與
010_1095_b_11L言儒異律於定惠者不可與言佛
010_1095_b_12L是道者惟先生乎儒之仁義佛之定
010_1095_b_13L名異而實同殊途而共歸以之而
010_1095_b_14L謂儒以之而謂佛達是道者惟山人
010_1095_b_15L山人以此聞於先生者先生以此
010_1095_b_16L許於山人者今之世儒者儒之外
010_1095_b_17L無他道佛者佛之外更無他道每每
010_1095_b_18L氷炭譬如稻之外無麥肉之外無魚
010_1095_b_19L眞可悶哉山人切以爲儒者尊儒佛者
010_1095_b_20L尊佛如子爲父婦爲夫也若子爲其
010_1095_b_21L而不爲他人之父婦爲其夫而不
010_1095_b_22L爲他人之夫則陷爲輕薄者不立於世
010_1095_b_23L誰曰大君子也是故糓有五谷九谷
010_1095_b_24L有五味八珍人有聖人常人導有三家

010_1095_c_01L이들은 모두 펼치면 다多가 되고 합치면 일一이 되니 다와 일이 곧 하나요, 일은 일기一氣의 오묘한 이치이니 다시 무슨 피차 친소親疎를 분별하는 논단論端이 있겠습니까.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 근본 하니 하늘이 어찌 사사로움과 다름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군자는 종일토록 힘쓰며 자강불식自强不息100)하노니, 이것은 바로 선생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 본성을 따르는 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우러러 아룁니다.
원준圓俊이 와서 책과 편지를 받았습니다. 원준이 갈 때에 책과 감사 편지를 드립니다. 날짜는 비록 많이 지났으나 마음은 항상 한결같으니 사랑을 드리워서 잘 받아 주십시오.
청양 수령【정대림】에게 올림(上靑陽倅【丁大林】)
열수洌水(한강)에서 뵌 지 22년이요, 두륜산에서 편지로 예를 올린 지 12년이 되었으니 꽃 피고 잎이 떨어질 때 꿈에서나 당신께 오고 갈 뿐입니다. 이제 여초 율사如初律士가 그쪽으로 출발하므로 반드시 더불어 이야기하리니 나와 얼굴만 바꾸어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국화 피는 뜰과 단풍 물든 바위에 집무하는101) 기력이 계절 따라 더욱 좋으신지요. 아침 구름과 저녁노을 따라 마음만 그대에게 달려갈 뿐입니다.
저는 무진년(1868, 고종 5) 9월 15일에 은사께서 나이가 91세로 입적하시니 추모하는 마음이 갈수록 더하고 깊어집니다. 결복闋服(탈상脫喪)할 날이 다가오니 살아 있는 동안 죄인 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볼 수 없습니다. 차의 품질은 비록 좋지 않으나 네 첩을 봉하여 드리니 다만 옛 우의友義를 표할 뿐입니다. 이름은 초의草衣 선사가 지은 것입니다. 청양성靑陽城 안에서 경운卿雲(상서로운 구름)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갖추지 못합니다.
장연 부사에게 올리다(上長淵府使)
서남쪽 수천 리의 길을 시내와 들을 헤쳐 가는 것은 실로 납승의 본색이 아니니 다만 돌아가는 조각구름을 바라볼 뿐입니다. 중추절을 맞이하여

010_1095_c_01L九流此皆開之爲多合之爲一多一
010_1095_c_02L即一一是一氣之妙理更何有彼此親
010_1095_c_03L踈之分別論端哉道之大源本乎天
010_1095_c_04L天何私乎異乎故君子以終日乾乾
010_1095_c_05L强不息此乃先生日用踐形率性之道
010_1095_c_06L故敢以仰叩圓俊來得册與手札
010_1095_c_07L圓俊去呈册與謝狀日子雖多心縷
010_1095_c_08L恒一垂仁採納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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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_1095_c_10L上靑陽倅丁大

010_1095_c_11L
洌江面拜二十二秋頭輪書禮一十
010_1095_c_12L二春花開葉落夢魂歸去來于今如
010_1095_c_13L初律士登程必學 [17] 共談無異換面而
010_1095_c_14L談也菊庭楓岩撫琴氣力隨序益佳
010_1095_c_15L朝雲夕靄心神爭馳某戊辰九月十五
010_1095_c_16L恩師示趺壽九十一追遠之懷
010_1095_c_17L益增深而闋服屬耳一縷尙存罪不
010_1095_c_18L仰天茶品雖劣四帖封呈但表舊義
010_1095_c_19L名則草衣制靑陽城裡以迎卿雲
010_1095_c_20L

010_1095_c_21L

010_1095_c_22L上長淵府使

010_1095_c_23L
西南數千里之道跋涉川原實非緇衣
010_1095_c_24L本色但瞻歸去片雲而已伏未審仲秋

010_1096_a_01L기체후氣體侯가 백성을 위하여 건강하고 왕성하신지요.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만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은덕으로 생활이 편안하니 기쁜 마음으로 정례頂禮합니다.
표충사表忠祠의 일은 어떻게 처분하셨는지요. 부인의 행차가 출발하였기 때문에 하인 편으로 이와 같이 아룁니다. 돌아오는 인편에 일의 가부를 일일이 회답하여 교시敎示해 주시고 『보장록寶藏錄』도 또한 굳게 봉해서 보내 주시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따로 다른 좋은 도리가 있거든 세세히 기록해 보이시어 성공을 기약하게 하여 주시고 설사 어린 중들이 무지無知하여 망령된 짓을 하더라도 본관本官으로 계실 때와 같이 그들에게 좋은 방략을 가르쳐 주시기를 간절히 엎드려 바랍니다. 삼가 갖추지 못합니다.
단양 정 사군에게 올리다(上丹陽丁使君)
경오년(1870, 고종 7)에 교敎 율사律師가 다녀와서 당신의 편지를 받고 감사하고 기쁜 마음을 가누지 못하였습니다. 또 듣자 하니 네 번 전직하여 단양 부사에 임명됐다고 하니 참으로 뛸 듯이 기뻤고 더욱이 날마다 축원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새로 서늘한 기운이 교외로 불어오는 때에 당신의 건강이 한량없는 수복壽福을 받는지요. 아침 구름과 저녁 안개를 보면서 정축頂祝하고 절을 올립니다.
저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힘은 쇠퇴하고 눈은 어지러워서 선열禪悅의 맛도 없고 간경看經도 더욱 게을러 죄스러움을 견디지 못하니 무엇을 감히 아뢸 것이 있겠습니까. 선사가 입적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몇몇 제자들이 그 사적을 기록하여 훗날에 전하고자 합니다. 저는 일상생활의 소굴에 빠져 능히 몸을 빼지 못하니 천천히 당신의 큰 솜씨를 기다리고자 합니다. 율공律公이 먼저 하고 저희들이 뒤에 하여도 무방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감히 아뢰니 미리 한가로운 날을 지정해 주십시오. 떠나는 인편이 급하여 붓을 잡을 겨를도 없으니 하물며 신표를 나누겠습니까. 만에 하나도 갖추지 못합니다.
신 승지에게 올리는 편지(上申承旨書)

010_1096_a_01L氣軆候爲民康旺仰慕二字掛在靈城
010_1096_a_02L某餘蔭布在缾鉢安堵伏賀頂禮
010_1096_a_03L忠祠之事處分何如內行次發程故
010_1096_a_04L下人便如是仰告回便事之爲否一一
010_1096_a_05L回示寶藏錄亦堅封下送萬望別有他
010_1096_a_06L好道理細細記示期於成功設使小
010_1096_a_07L釋等無知妄作之事敎其方略如在
010_1096_a_08L本官時千萬伏望謹不備

010_1096_a_09L

010_1096_a_10L上丹陽丁使君

010_1096_a_11L
庚午年敎律師往來伏承手凾不承 [18]
010_1096_a_12L而又聞四轉而任丹陽府云喜踴不
010_1096_a_13L啻三百增祝不啻二六伏未審新凉入
010_1096_a_14L氣軆候迎無量意福納阿僧秪壽
010_1096_a_15L朝雲暮烟頂祝膜拜某歲月無停
010_1096_a_16L衰眼花禪悅無味看經尤懶伏不勝
010_1096_a_17L罪案何敢仰白先師入寂已久而二
010_1096_a_18L三子欲記跡而傳後汨於生涯之臼
010_1096_a_19L未能抽身徐待丹陽大手而律公先之
010_1096_a_20L岸等後之無妨故如是仰 [19] [20] 指閒日
010_1096_a_21L去便絃急未能把筆之暇况於分
010_1096_a_22L別信表乎萬不備一

010_1096_a_23L

010_1096_a_24L上申承旨書

010_1096_b_01L
요사이 당신의 건강이 나라를 위하여 태평하시고 백성을 위하여 좋으신지요. 아침 구름과 저녁 종소리에 한없는 정례頂禮를 올립니다. 저는 가사 하나와 발우 하나로 이르는 곳마다 모두 한결같습니다. 연운烟雲이 부르는 곳이면 가만히 앉아서 거절할 수 없어 명命을 들으면 곧 가고 명을 들으면 곧 물러나서 주착住着 없는 회향回向으로써 본분의 파병欛柄(칼자루)을 삼을 뿐이니 나머지는 무엇을 받들어 알릴 것이 있겠습니까.
저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남창南倉의 적소謫所(귀양지)에서 분주히 곧바로 돌아왔습니다. 밤을 타서 돌아왔다가 새벽녘에 출발하느라 직접 뵙고 하직하지 못하고 산을 벗어나게 되었으니 황공한 마음이 안팎으로 가득합니다. 안주한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날마다 미안한 마음뿐인데 저를 사랑해 주시는 은혜가 오래될수록 더욱 깊기만 합니다. 때때로 북풍을 따라 소식을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삼가 갖추지 못합니다.
신 승지에게 올리는 편지(上申承旨書)
한 해의 농사가 흉년이 들어 인편이 끊어져 새해를 축하하는 예와 봄을 맞이하는 축하 인사를 아직까지 하지 못하였으니 황공한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절실합니다. 단비가 윤택하게 내리는 때에 당신의 건강은 청정 원만하신지요. 향을 태워 축원 올립니다.
저는 스승과 상좌上佐 두 사람이 옛 절을 지키며 여러 가지 장애가 없으니 특별히 당신이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러나 대청을 빌리는 늙은이와 밥을 구걸하는 아이들이 문에 가득 차고 길을 메워 조금이라도 성질에 거슬리면 곤욕스러운 말을 하지 않음이 없으니, 화적火賊질을 할까 두려워서 부드러운 말로 대우하고, 내 몫을 주어서 끼니를 거를 때가 대부분이라, 기운은 축 처지고 몸은 힘이 없어 다만 혼만 흩어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연전年前에 보내 주신 역서曆書는 무위無爲 형으로부터 부쳐 왔으니 참으로 감사하고 기뻐서 자주자주 절을 올립니다.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즈음에 당신께 찾아가 절을 올리려고 합니다. 그 전에 생활이 다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삼가 다 갖추어 아뢰지 못합니다.

010_1096_b_01L
伏未審此間氣軆候爲國太平爲民
010_1096_b_02L健羨朝雲暮鐘頂禮無量無邊某一
010_1096_b_03L衣一鉢到處皆如而烟雲所召不可
010_1096_b_04L坐拒聞命即往聞命即退以無住着
010_1096_b_05L回向爲本分欛柄餘何奉聞向於爲
010_1096_b_06L人牽制南倉謫所奔走即回乘昏而
010_1096_b_07L歸來乘曉而發行未能奉謝而出山
010_1096_b_08L惶恐之心弸中溢外棲止以來至於
010_1096_b_09L今日日無安心而見愛之恩愈久愈
010_1096_b_10L時因北風以惠德音焉謹不備

010_1096_b_11L

010_1096_b_12L上申承旨書

010_1096_b_13L
年事凶荒人便隔絕獻歲之禮發春
010_1096_b_14L之賀尙稽至今惶恐之心朝暮之切
010_1096_b_15L伏未審甘澍如膏氣軆候淸淨圓滿
010_1096_b_16L香頂祝某師佐二人株守古寺無諸
010_1096_b_17L障礙特荷盛念所及然而借廳之叟
010_1096_b_18L乞飯之兒塡門塞路小咈其性則困
010_1096_b_19L說無所不至恐其火賊溫言待之
010_1096_b_20L分推之空過之時居多氣若泥絮
010_1096_b_21L同鍾馗但魂不散而已年前下送曆書
010_1096_b_22L自無爲兄處寄來感賀之極僕僕亟拜
010_1096_b_23L麥飯飽食之時進拜於堂下未前
010_1096_b_24L伏祝起居多福謹不備告

010_1096_c_01L
조 판서에게 올리는 편지(上趙判書)
작년 여름에 뵌 후로 마음은 항상 처마 밖에 있었습니다. 한 해도 마침내 바뀌는 이때 또한 당신을 우러러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건강이 더욱 좋으신지요. 저의 작은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자성自性을 보지 못하고 한갓 나이만 더하여 허튼 선객이라는 질책을 이생에서나 훗날에 결코 면할 길이 없으니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어찌하겠습니까.
생각건대 지난여름 나아가 뵐 때에 선면扇面(친자親炙)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 사이에 잊지나 않았는지요. 편언척자片言隻字라도 마음에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 간절히 초심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남쪽으로 영주瀛洲(제주도)에 들어가서 읊은 시와 북쪽으로 봉래산蓬萊山(금강산)에 올라가 지은 시축詩軸은 이미 신 승지申承旨께 바쳤습니다. 추호楸湖를 오가며 지은 게송과 관산冠山을 유람하며 지은 작품들을 이제 당신께 드리니 이 시들을 퇴고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당신께서 돌아오신 날에 부가浮家102) 아래에서 뵙겠습니다. 삼가 아뢰지 못합니다.
철요 스님에게 부치는 편지(寄鐵鷂師書)
여러 해 동안 길이 막혀 잊힌 듯하였는데 두 스님께서 문득 오시니 비록 편지는 없어도 마주 앉아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후로 여러 날 동안 스님의 생활이 때때로 무량한 수복을 누리시며 물이 동쪽으로 흘러들 듯 부처님께 귀의하고 정례하시는지요. 저는 흰머리만 가득하고 눈은 어지러워 책을 치우고 망연히 앉아만 있으며 지팡이 꽂아 놓고 걷기도 게을러져서 화광삼매火光三昧(다비)의 날만 기다릴 뿐입니다.
그대는 엄연한 천축 옛 난야의 주인으로 문담文潭 화상의 자취를 이어, 스승이 돌아가신 때에 진영을 봉안하고 향을 살라 삼남의 법계를 빛내니, 참으로 착한 일입니다. 비록 신물信物이 있다 하더라도 홍모鴻毛와 같아 이루기 어려운 형세이니 바란들 어찌하겠습니까.

010_1096_c_01L上趙判書

010_1096_c_02L
昨夏拜後一心長在簷榮之外歲律
010_1096_c_03L飜改亦復星斗之仰未審新元氣軆
010_1096_c_04L候更加吉祥無任下誠某自性未見
010_1096_c_05L空增年時虛頭禪客之責此生他日
010_1096_c_06L決不圖免慚天愧人之情如何仰惟去
010_1096_c_07L夏進謁之日伏受扇面之敎其間不
010_1096_c_08L置忘域乎片言隻字之得心所願切莫
010_1096_c_09L負初心焉南入瀛洲之吟北登蓬萊之
010_1096_c_10L已獻申承旨足下往反楸湖之偈
010_1096_c_11L遊賞冠山之作今呈閤下以之推敲
010_1096_c_12L泥首望之反駛之日必拜海上浮家之
010_1096_c_13L謹不備伏惟

010_1096_c_14L

010_1096_c_15L寄鐵鷂師書

010_1096_c_16L
積年阻路如在忘域兩師忽至雖無
010_1096_c_17L手札對趺娓娓以後有日法體起居
010_1096_c_18L以時享無量壽福歸命頂禮如水必東
010_1096_c_19L某頭戴白雲眼落紅花閣書憮坐
010_1096_c_20L杖懶步以待火光三昧之日而已儼然
010_1096_c_21L天竺古蘭若之主踵其文潭和尙之後
010_1096_c_22L梁摧山壞人萎兮之如也然而妥影
010_1096_c_23L燒香光暉於三南之法界何善如也
010_1096_c_24L雖有信物鴻毛難致之勢也誦之奈何

010_1097_a_01L이생에서 두 번 만났으나 세 번 만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금신무양석란산金身無恙錫蘭山’의 게송103)을 잘 읊조려 수천 리 밖 동풍同風의 훈계에 부응합니다. 다만 여呂 스님의 말에 있으니 갖추지 못합니다. 밝게 살펴 주십시오.
혼허 스님을 위로하는 편지(慰渾虛師書)
한 해가 다 가도록 소식이 없으니 항상 임천林泉을 향하여 그리워할 뿐입니다. 매우梅雨가 내리는 때에 병도 번뇌도 적으시며 새벽종과 저녁 안개에 부처님께 귀의하고 정례하시는지요. 저는 머리는 둥근 하늘을 이고 발로는 네모진 땅을 밟아 사람 모양만 그대와 같을 뿐이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세계에 20번이나 증감하는 재앙이 있었고 바닷물도 차고 빠지는 조석潮汐이 있거늘 하물며 사람으로서 세상에 나와 생사를 면할 자가 그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전생의 보채報債가 남은 것입니다. 그러니 비록 괴롭다 할지라도 마음의 벗과 천안 대사千眼大士(관세음보살)와 함께 반려가 되어 마음과 입이 상응하여 주야로 함께하십시오. 사면을 받고 나면 산에 들어와 상하일숙桑下一宿104)의 훈계를 따르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묵묵히 생각하는 가운데에 있으니 갖추지 못하고 우선 남겨 둡니다.
허 선달에게 답하는 편지(答許先達書)
자주 편지를 보내오고 자주 답장을 부쳐서 답장이 전해지고 부침浮沈(편지가 전해지지 않음)하는 것은 모두 심부름하는 이의 행동에 달렸는지라 다만 땅을 치며 탄식할 따름입니다. 이번에 두 자제분이 함께 이르러 수찰袖札까지 전해 주니 편지를 받은 기쁨은 한정이 있지만 사람을 만난 기쁨은 끝이 없습니다. 인하여 봄과 여름 사이에 생활과 마음이 강녕하고 왕성하신 것을 알고 축하하며 정축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간경看經을 으뜸가는 선이라 여기고 차를 달이는 것을 수명을 연장하는 약제로 여겨 시내 밖의 일은 뜨거운 찻주발 소리와 같이 여기나니 어떤 티끌과 경계가 환몽과 같은 생활 중에 와서 괴롭히겠습니까. 공복功服105)의 상사喪事는 생각과 꿈에서나 조문할 것이요,

010_1097_a_01L此世二見而三見難矣好誦金身無恙
010_1097_a_02L錫蘭山之頌以副數千里同風之戒焉
010_1097_a_03L只在呂口不具靑照

010_1097_a_04L

010_1097_a_05L慰渾虛師書

010_1097_a_06L
歲色駸駸音信落落每向林泉念誦
010_1097_a_07L而已未審梅雨氣味小病小惱曉鐘
010_1097_a_08L暮烟南無頂禮某頭戴天圓足履地
010_1097_a_09L與人同樣與吾師亦同更何提喩
010_1097_a_10L世界有二十番增減之灾海水有盈縮
010_1097_a_11L之潮汐況人之出世能免者其幾也
010_1097_a_12L此是前債之餘縷也雖曰困苦與心友
010_1097_a_13L及千眼大士爲作伴侶心口相應
010_1097_a_14L夜同事蒙宥入山以從桑下一宿之戒
010_1097_a_15L至可至可在默念中不具姑留

010_1097_a_16L

010_1097_a_17L答許先達書

010_1097_a_18L
來來投書去去謝答答之沉之皆因
010_1097_a_19L在傍人之指揮中事叩地咄咄而已
010_1097_a_20L番兩令並至兼出袖札札喜有常
010_1097_a_21L人喜無極因認春夏起居康旺爲之
010_1097_a_22L贊賀無任頂祝某以看經爲上乘禪
010_1097_a_23L煎茶爲延壽劑溪外之事若熱椀鳴聲
010_1097_a_24L何塵何境來惱於幻夢之中也功服弔

010_1097_b_01L불당佛堂은 폐문한 뒤에나 기약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서서 재촉하여 몇 줄 어지러운 글로 답장 올리니 넓은 마음으로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갖추지 못합니다. 답장 올립니다.
신 참판에게 올리는 편지(上申叅判書)
해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서 문득 20년 세월이 흐르니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달이면 달마다 날이면 날마다 더합니다. 새봄에 당신의 생활과 건강이 수부壽富하고 강녕하신지요. 새벽종과 저녁 등불에 한없이 송축드립니다. 저는 몸은 무양하나 기근이 거듭되어 마을의 형편과 절의 모습이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탄식하는 마음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뢰올 말씀은 마을과 산속의 암자가 이구동성으로 이르기를, 유동鍮洞의 빛이 한 번 남쪽을 비추어 준다면 메마른 물의 물고기가 말라 죽을 것을 면하게 되고 예상翳桑의 아인餓人106)이 덕에 보답하리니, 요컨대 당신의 위엄 있는 모습과 덕 있는 자태를 본 이후에 죽는다면 한이 없을 것입니다. 원하오니 이 백성들의 바람에 부응하여 한번 53고을을 돌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완파玩坡 스님이 길을 지나다 알현하는 편에 삼가 문안 편지 올립니다.
제영각 다례문祭影閣茶禮文
지수智水는 깨끗하고 혜감慧鑑은 밝습니다. 자비를 평등하게 베풀고 충의를 원만하게 이루었습니다. 위험에 임하여 임기응변하였고 적을 헤아려 병력을 움직였습니다. 나아가서 적진을 쓸었고 가만히 앉아서 완악한 수괴를 복종시켰습니다. 공적은 정이鼎彛107)에 새겼고 자성粢盛은 조두俎豆에 채웠습니다. 남쪽은 제향을 거두었으나 북쪽은 예전처럼 받들었습니다. 좋은 시절이 문득 이르니 슬픈 마음이 더욱 넘칩니다. 여러 가지 음식을 극진히 갖추어 전례를 준수하여 지킵니다. 삼가 홍제존자弘濟尊者 사명당泗溟堂 선사와 우세존자佑世尊者 뇌묵당雷黙堂 선사를 좌우에 배식配食합니다. 상향.

『범해선사문집』 제2권 끝

010_1097_b_01L於思夢之中佛堂期於閉門之後雙笻
010_1097_b_02L立促數行荒亂恕諒焉不備狀謝

010_1097_b_03L

010_1097_b_04L上申叅判書

010_1097_b_05L
年矢每催奄過四五春秋星斗之仰
010_1097_b_06L又月矣朝復朝兮伏未審元春令起
010_1097_b_07L居候壽富康寧曉鐘昏燈無量誦祝
010_1097_b_08L某身則無恙而飢饉荐至村形寺容
010_1097_b_09L至於不可說之境伏歎何達就邑村山
010_1097_b_10L異口同音曰鍮洞光影一照南方
010_1097_b_11L則涸魚免脯桑餓報德要觀威容德色
010_1097_b_12L而後死無恨也伏願副此輿情之望
010_1097_b_13L顧五十三州焉玩坡歷路入謁之便
010_1097_b_14L修狀問

010_1097_b_15L

010_1097_b_16L祭影閣茶禮文

010_1097_b_17L
智水澄渟慧鑑昭明慈悲等施忠義
010_1097_b_18L圓成臨危制變料賊應兵行掃狂陣
010_1097_b_19L坐服頑鯨功銘鼎彜粢實爼豆南則
010_1097_b_20L撤享北乃依舊佳節奄及悲懷愈透
010_1097_b_21L庶羞備至典禮遵守謹以弘濟尊者泗
010_1097_b_22L溟堂禪師佑世尊者雷默堂禪師配食
010_1097_b_23L于左右尙饗

010_1097_b_24L
梵海禪師文集 第二終
  1. 1)신문信文 : 원뜻인 인신문권印信文券의 준말로, 관인이 찍힌 공문서를 일컫는다.
  2. 2)아일다阿逸陁의 용화회龍華會 : 아일다는 ⓢ Ajita, 미륵보살의 자字. 구역은 아일다·아기다阿嗜多, 신역은 아제다阿制多·아시다阿氏多라 음역하고, 번역하여 무능승無能勝이라 한다. 가장 승하다는 뜻. 용화회는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 중생을 제도하는 법회. 미륵보살은 56억 7천만 년 후에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고, 화림원華林園에 모인 대중에게 경을 설하는데, 제1회의 설법에 의하여 아라한을 얻을 이가 96억 명, 제2회의 설법에 의하여 아라한을 얻을 이가 94억 명, 제3회의 설법에 의하여 아라한을 얻을 이가 92억 명이라 한다. 이 미륵의 3회 설법을 용화삼회라 한다.
  3. 3)육위六偉 : 상량시의 첫 구절 ‘아랑위兒郞偉’는 대들보를 올리는 의성어로 우리말의 어영차와 같다. 동서남북과 천지상하의 여섯 방향을 노래하니, 아랑위가 여섯 번 반복된다. 그래서 육위송이라고 한다.
  4. 4)사갈라왕沙竭羅王 : ⓢ Sāgaranāgarāja. 8대용왕大龍王의 하나. 사가라는 큰 바다로, 바다의 용왕이란 말. 불법을 수호하는 이. 『法華經』에 8세 용녀龍女의 성불을 말한 것이 곧 이 용이다.
  5. 5)세 번 축원하네 : 원문 ‘三祝’은 화봉삼축華封三祝의 준말. 요堯임금이 화華라는 지방을 지날 때 봉인封人(국경지기)이 와서 빌기를 “임금께서는 장수하시고 부귀하시고 강녕하소서.”라고 하였다. 『莊子』 「天地」.
  6. 6)자씨慈氏 : 미륵보살의 성으로, 미륵보살을 말한다.
  7. 7)수달다須達多 : ⓢ Sudatta. 석존과 같은 때 사위성에 살던 부호富豪로, 기원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드렸다. 수달다·소달다蘇達多라고 음역하고, 선시善施·선수善授·선온善溫 등이라 번역한다. 또 가난한 이에게 혜시惠施하므로 급고독給孤獨이라고도 한다. 바사닉왕의 주장리主藏吏.
  8. 8)우바국優波毱 : ⓢ Upagupta. 우바국다優婆毱多. 오바급다鄔波笈多·우바굴다優波掘多라 음역하고, 근호近護·대호大護·근장近藏·무상無相이라 번역한다. 불법을 전해 받은 제4조로 아육왕의 스승이다. 마돌라摩突羅국에 출생. 17세에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가서 배우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아육왕을 위하여 우타산으로부터 화씨성에 이르러 설법하고, 왕에게 권하여 부처님의 유적에 8만 4천의 탑을 세웠다고 한다.
  9. 9)색금塞琴은 백제~읍의 호칭이다 : 색금과 침명浸溟 모두 해남의 옛 지명이다.
  10. 10)기성箕星과 미성尾星 : 이십팔수二十八宿 중 동남방에 있는 창룡 칠수蒼龍七宿 중의 별자리.
  11. 11)도현道玄 : 오도현吳道玄(700?~760?). 중국 당나라 때의 화가. 현종에게 그림 재주를 인정받아 궁정 화가가 되었다. 날카롭고 속도감 있으며 억양이 심한 필치로 그렸는데 백묘白描의 벽화 등이 이 경향을 대표한다. 또 나무·들·땅거죽 등의 주름을 그리는 동양화 입체 표현의 한 방법인 준법皴法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인물·금수·대전臺殿·초목 등 모든 면에 걸친 묘법을 일변시켰고, 동양 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12. 12)곤오昆吾 : 처음 기와를 만든 전설상의 인물.
  13. 13)기수祇樹 : 원래는 기원정사가 있는 숲인데 여기에서는 벌목을 할 숲의 뜻으로 쓰인 듯하다.
  14. 14)아축불阿閦佛 : ⓢ Aksobhya-Buddha. 아촉불이라고도 읽는다. 동방의 현재불, 남방 보상불寶相佛, 서방 무량수불無量壽佛, 북방 미묘성불微妙聲佛과 더불어 사방 현재불을 이룬다. 아축비阿閦毘·아추비야阿芻毘耶·아축바阿閦婆 등으로도 음역하며, 무동無動·부동不動·무노불無怒佛 등이라 의역한다. 불교의 붓다(부처)관觀으로서, 역사적 인물인 석가 이외에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무수한 붓다가 있어 각각 설법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阿閦佛國經』에 의하면 아축은 과거 동방의 아비라타阿比羅提 나라의 대일여래大日如來 아래에서 발심發心을 하였다. 어떠한 사물에도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절대로 화내지 않겠다는 무진에無瞋恚의 서원을 하고 그 수행에 따라 동방세계에서 성불成佛하여 아축불이 되었으며, 현재도 설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法華經』의 「化城喩品」에는 대통지승불大通知勝佛의 16왕자 중 제1왕자인 지적智積이 동방세계에서 성불하였다고 쓰여 있다. 또한 『悲華經』에서는 미타彌陀의 전신인 무쟁념왕無諍念王의 왕자 천 명 중 제9왕자가 아축으로서 동방 묘락국妙樂國에서 성불하였다고 한다. 아축불국이란 곧 이 동방세계를 가리킨다. 밀교에서는 그를 금강계金剛界 5불의 하나로서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15. 15)사사四事 : 공양하는 네 가지. ① 의복, 음식, 와구臥具, 탕약湯藥. ② 의복, 음식, 산화散華, 소향燒香. ③ 방사房舍, 음식, 의복, 산화소향散華燒香.
  16. 16)공수반公輸般 :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뛰어난 장인. 일찍이 높은 사다리(雲梯)를 만들어서 송宋의 성을 공략했다고 한다.
  17. 17)삼장三藏 : ⓢ Tripiaka, ⓟ Tipiaka. 불교 전적典籍의 총칭. ① 경장經藏.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문을 모은 부류部類의 전적. ② 율장律藏. 부처님이 제정하신,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말한 전적. ③ 논장論藏. 경에 말한 의리를 밝혀 논술한 전적. 삼장에 능통, 해박한 이를 삼장 법사三藏法師라 한다.
  18. 18)부전頫硂 : 머리를 숙여 아래를 살피는 것.
  19. 19)앙규仰揆 : 우러러 헤아리는 것.
  20. 20)사가謝家의 보수寶樹 : 훌륭한 자손이란 뜻이다. 진晉나라 때 사현謝玄이 숙부인 사안謝安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를 “비유하자면 지초芝草나 난초蘭草 또는 좋은 나무를 집 앞 계단이나 뜰에 심고자 하는 것처럼 그런 귀염을 받는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言語」.
  21. 21)소씨蘇氏의 목가산木假山 : 송나라 소순蘇洵이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목가산을 만들어서 자신과 두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에 견주었다.
  22. 22)진나라 소나무 : 진시황秦始皇은 천하를 통일하고 태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내려오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 큰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그 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한 일이 있다. 좋은 나무라는 뜻이다. 『史記』 「秦始皇本紀」.
  23. 23)촉나라 잣나무 :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사당이 있는 금관성錦官城에 있었던 잣나무. 당나라 두보杜甫가 지은 ≺古柏行≻에 “제갈공명 사당 앞에 잣나무 있어 가지는 청동 같고 뿌리는 바위 같네.(孔明廟前有老柏。 柯如靑銅根如石。)”라고 하였다.
  24. 24)업경業鏡 : 지옥에 있는 거울. 여기에 비추면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업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한다.
  25. 25)오도五道 : 또는 오취五趣. 도道는 중생이 업인業因에 따라 왕래하는 곳. 지옥·아귀·축생·인도·천도.
  26. 26)팔한八寒 : 모진 추위로 고통을 받게 하는 여덟 큰 지옥. 남섬부주의 밑으로 5백 유순 되는 곳, 팔열 지옥의 곁에 있다고 함. ① 알부타頞部陀, 포皰라 번역. 매서운 추위로 몸이 부르트는 지옥, ② 니랄부타尼剌部陀, 포열皰裂이라 번역. 추위로 몸의 부르튼 것이 터지는 지옥, ③ 알찰타頞哳吒, ④ 확확파臛臛婆, ⑤ 호호파虎虎婆, 이 셋은 추위에 못 견디어 내는 소리로 이름한 것, ⑥ 올발라嗢鉢羅, 청련화靑蓮華라 번역. 심한 추위로 몸이 퍼렇게 어혈지며 가죽과 살이 얼어 터져서 푸른 연꽃같이 되는 지옥, ⑦ 발특마鉢特摩, 홍련화紅蓮華라 번역. 살과 가죽이 벌겋게 되며 부르터 붉은 연꽃(홍련화)같이 되는 지옥, ⑧ 마하발특마摩訶鉢特摩, 대홍련화大紅蓮華라 번역. 살과 가죽이 대홍련화같이 되는 지옥.
  27. 27)한나라의 잣나무 : 후한 광무제의 장군이었던 풍이馮異는 논공행상을 할 때면 항상 큰 나무 뒤에 숨어서 대수 장군이라 불렸고 그 나무를 장군수라고 하였다. 다만 이 글의 고사는 어느 것을 인용한 것인지 자세하지 않다.
  28. 28)숭화嵩華에서 축원을 외치니 : 부귀와 장수 등을 누리라고 송축頌祝하는 것을 말한다. 화봉인華封人이 요堯임금에게 수壽와 부富와 다남多男을 기원했던 이야기가 전한다. 『莊子』 「天地」.
  29. 29)근폭芹曝의 정성을 바치니 : 옛날 미나리 맛이 기막히다고 윗사람에게 바쳤다가 조소를 당한 헌근獻芹의 고사와 따뜻한 햇볕을 임금에게 바치면 중상重賞을 받을 것이라며 기뻐했다는 헌폭獻曝의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작은 정성을 말한다. 『列子』 「楊朱」, 『博物志』.
  30. 30)전성前星 : 세자世子를 나타내는 별이다. 진晉나라 천문지天文志에, “심心이란 별자리가 있는데, 중간별(中星)은 천자天子를, 앞별(前星)은 태자太子를, 뒷별(後星)은 서자庶子를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31. 31)칠요七曜 : 해와 달, 그리고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가리킨다.
  32. 32)하택荷澤 : 신회神會(685~760). 당나라 낙양 하택사 스님. 14세에 출가하고 육조 조계曹溪에게서 수년을 있으면서 그 뜻을 잘 받들었다. 뒤에 서경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경룡景龍 때 조계산에 돌아왔다. 육조 대사가 입적한 후 20년간 조계의 돈지頓旨가 침몰되고, 숭악嵩嶽의 점문漸門이 낙양성에 성행하였을 때에 서울에 들어가 742년(천보 4) 남북돈점南北頓漸의 양종兩宗을 정하여 『顯宗記』를 지었다.
  33. 33)고봉高峯 : 원묘原妙(1238~1295). 원나라 스님. 남악 하 제21세 설암 조흠雪岩祖欽의 제자. 성은 서徐씨, 휘는 원묘原妙, 소주蘇州 오강吳江 사람. 15세에 출가하고 18세에 천태교天台敎를 공부하다가 20세에 정자사淨慈寺에 들어가 ‘3년 사한死限’을 세워 단교斷橋 화상에 묻고 북간사北磵寺 설암을 처음으로 참방하였다. 1261년 삼탑사三塔寺에서 깨달아 설암의 법을 이었다. 뒤에 천목산天目山 서봉西峰에 주석하며 선풍을 드날려 수백 명의 제자를 길렀다. 『高峯錄』 1권이 전한다.
  34. 34)은隱 장로 : 『禪文手鏡』의 저자인 백파 긍선白坡亘璇(1767~1852)으로 보인다. 호는 백파白坡이고 본관은 전주이며, 성은 이李씨이다. 12세에 고창 선운사禪雲寺의 시헌 장로詩憲長老에게서 승려가 되고, 용문암龍門庵을 거쳐 영원암靈源庵에 이르러 상언尙彦에게 서래西來의 종지를 배우고, 구암사龜岩寺에서 회정懷情의 법통을 잇고 백양산 운문암雲門庵에서 개당開堂하였다.
  35. 35)중부자中孚子 : 초의 의순草衣意恂(1786~1866)의 자. 순조와 헌종 때 승려로 호는 해옹海翁·해사海師 등이다. 15세에 운흥사雲興寺의 벽봉 민성碧峰敏性을 스승으로 모셨고, 24세에 강진康津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교유했으며, 30세에 서울에 올라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자하紫霞 신위申緯 등과 사귀었는데 이때 많은 시를 지었다. 55세 때 살아 있는 채로 헌종憲宗에게 시호諡號를 받았다. 시서화詩書畫에 뛰어난 삼절三絶이었다. 저서에 『一枝庵詩稿』 등이 있다.
  36. 36)아는 것을~것이 지다 : 공자가 말하기를 “너에게 앎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된 지다.(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하였다. 『論語』 「爲政」.
  37. 37)활을 당기기만~쏘지 않아 : 인이불발引而不發은 활시위를 당기되 쏘지 않는다는 말. 학문을 가르치는 간결한 방법론으로서, 공부하는 방향만을 잡아 주되 세밀하게 알려 주지는 않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을 말한다. 『孟子』 「盡心」 上.
  38. 38)요어要語 : 이 글에서 『禪門謾語』라 하는 『禪門四辯漫語』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39. 39)목숙穆叔 :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대부로서 진晉나라를 방문했는데 진나라의 집정자執政者가 영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물음에 대답하기를 “입덕立德·입공立功·입언立言.”이라고 하였다.
  40. 40)발초첨풍撥草瞻風 : 스승을 찾아서 이리저리 행각하는 일을 말한다.
  41. 41)노 공盧公의 오종五宗 : 노 공은 육조六祖 혜능慧能을 가리킨다. 혜능의 속성이 노씨이다. 오종은 혜능으로부터 배출된 선종 다섯 종파를 말하는 것이니 위앙종潙仰宗·임제종臨濟宗·조동종曺洞宗·운문종雲門宗·법안종法眼宗을 말한다.
  42. 42)소씨蘇氏의 삼봉三峯 : 주 21 참조.
  43. 43)납월臘月의 부채 :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44. 44)구분口分 : 자손이 없이 죽은 관원의 아내, 부모가 모두 죽은 출가 전의 딸이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자손이 없이 죽은 군인의 아내에게 그 등분에 따라 주던 토지를 구분전口分田이라 한다. 여기에서는 다른 뜻인 듯한데 자세하지가 않다.
  45. 45)설순雪笋 : 삼국시대 오吳나라 사람 맹종孟宗은 병이 위중한 어머니가 한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어 하자 대숲에 들어가 슬피 울었는데 죽순이 돋아났다고 한다.
  46. 46)빙어氷魚 : 진晉나라 사람 왕상王祥은 계모 주씨朱氏가 겨울에 생선을 먹고 싶어 하자 옷을 벗고 얼음을 깨고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으려 하였는데 홀연히 얼음이 풀리며 잉어 두 마리가 뛰어올랐다 한다.
  47. 47)매자埋子 : 통일신라 흥덕왕興德王 때 손순孫順이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자신의 아이를 매장하려다 석종石鐘을 얻은 후 왕에게 포상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곽거郭巨의 고사도 있다. 곽거는 후한後漢 때 사람인데, 집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효성이 지극하였다. 노모를 봉양하는데 세 살 난 아들이 어머니의 반찬을 뺏어 먹는다고 하여 아들을 산에 가 묻으려고 땅을 팠는데 땅속에서 황금의 가마솥이 나왔다고 한다.
  48. 48)각목刻木 : 정란丁蘭의 고사. 정란은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 부모를 봉양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부모의 초상과 비슷하게 나무를 깎아서 부모를 섬기듯 하였다. 하루는 이웃 사람 장숙張叔의 아내가 찾아와서 정란의 아내에게 물건을 빌리려고 청하였다. 정란의 아내가 깎은 나무에게 절을 하는 것을 장숙의 아내가 좋지 않게 여기는 듯하여 빌려주지 않았더니, 장숙이 술을 마시고 와서 행패를 부렸고 그러자 깎은 나무가 장대로 변하여 장숙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49. 49)목련존자는 청녀靑女의~구해 주었으니 : 목련존자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해 준 일이다.
  50. 50)『효경孝經』 : 공자孔子가 제자인 증자曾子에게 전한 효도에 관한 논설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편저編著한 것으로, 연대는 미상이다. 천자天子·제후諸侯·대부大夫·사士·서인庶人의 효를 나누어 논술하고 효가 덕德의 근본임을 밝혔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 시대에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설치하였을 때 그 시험 과목의 하나로 쓰인 기록이 있다.
  51. 51)『통감通鑑』 : 『資治通鑑綱目』은 사마광司馬光이 편찬한 『資治通鑑』 294권을 저본으로 남송의 주희가 59권으로 편찬한 강목체 역사서로, 큰 제목으로 강綱을 세우고 세부 항목을 목目으로 구별하여 편찬한 책이다. 조선에서 처음 간행된 『資治通鑑綱目』은 1420년(세종 2)에 간행된 경자자본庚子字本으로, 왕유학王幼學의 「通鑑綱目集覽」과 왕극관汪克寬의 「通鑑綱目考異」를 『資治通鑑綱目』의 해당 부분에 절록·편입하여 간행한 것이다. 이후 최초의 연활자鉛活字인 병진자丙辰字로 강을 인쇄하고 목과 주석은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쇄한 책이 발간되었는데, 이는 1438년(세종 20)에 간행된 사정전 훈의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으로 알려져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52. 52)내가 유독~흉노匈奴를 근심하겠는가 : 한漢나라 문제文帝 14년(B.C. 166)에 낭서장郎署長 풍당馮唐과 흉노의 근심에 대해서 논하다가, 전국시대에 북방을 지켰던 조趙나라의 명장 염파廉頗와 이목李牧이 있으면 흉노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했던 고사이다.
  53. 53)담무덕曇無德 : ⓢ Dharmagupta. 담무국다曇無毱多·담마굴다가曇摩屈多迦·담무덕曇無德·달마급다達磨及多라고도 하며, 번역하여 복법覆法·법장法藏·법경法鏡·법호法護라 한다. B.C. 4세기경의 논사論師라고 전하는 우바국다優婆毱多의 제자로서 율장律藏의 한 학파인 담무덕부曇無德部를 세웠는데 이를 담무덕률曇無德律이라 한다. 내용이 4종으로 나뉘어 있으므로 사분율四分律이라고도 한다.
  54. 54)살바다薩婆多 : 소승 20부의 하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말한다.
  55. 55)가섭유迦葉遺 : ⓢ Kāśyapīya. 가섭유迦葉維·가섭비迦葉毘·가섭파迦葉波라고도 한다. 불멸후 백 년(B.C. 445)경 우바국다의 제자인데, 그 법형제 다섯 사람이 있어 각기 의견을 달리한 까닭에 율장律藏이 5부로 나뉘게 되었다. 가섭유의 부파를 가섭유부라 하며, 번역하여 음광부飮光部라 한다.
  56. 56)미사색彌沙塞 : ⓢ Mahīśāsaka. 율부律部의 이름. 화타化他라 번역. 우바국다의 다섯 제자 중 한 사람. 이 율律의 주인에 의한 부部를 화지부化地部라 하며, 율본律本을 『五分律』이라 한다.
  57. 57)바차부라婆蹉富羅 : 독자부犢子部의 다른 이름. 불멸후 3백 년경에 설일체유부에서 갈라진 학파. 만유萬有를 유위有爲의 3세世와 무위無爲와 불가설不可說의 5장藏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중생에게는 실아實我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불교의 진무아眞無我의 이치에 어긋나므로, 이 학파를 불법 안 외도, 또는 부불법附佛法 외도라 한다.
  58. 58)칠차七遮 : 칠차죄七遮罪. 일곱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①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② 아버지를 죽임, ③ 어머니를 죽임, ④ 화상和上을 죽임, ⑤ 아사리阿闍梨를 죽임, ⑥ 교단의 화합을 깨뜨림, ⑦ 성인聖人을 죽임.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저지르면 계戒를 받지 못하므로 차遮라고 한다.
  59. 59)아양峨洋 : 유수곡流水曲은 춘추시대 백아伯牙가 타고 그의 벗 종자기鍾子期가 들었다는 거문고 곡조로, 고산유수곡高山流水曲 또는 아양곡峨洋曲이라고도 한다. 백아가 거문고를 잘 탔는데 종자기는 이것을 잘 알아들었다. 그리하여 백아가 마음속에 ‘높은 산(高山)’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이를 알아듣고 “아, 훌륭하다. 험준하기가 태산과 같다.(善哉。 峨峨兮若泰山。)”라고 하였으며, 백아가 마음속에 ‘흐르는 물(流水)’을 두고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이를 알아듣고 “아, 훌륭하다. 광대히 흐름이 강하와 같다.(善哉。 洋洋兮若江河。)”라고 하였다. 이를 지음知音이라 하여 친구 간에 서로 상대의 포부나 경륜을 알아줌을 비유하게 되었다. 『列子』 「湯問」.
  60. 60)다보여래多寶如來 : ⓢ Prabhūtaratna. 동방 보정세계寶淨世界의 교주敎主. 보살로 있을 때에 “내가 성불하여 멸도한 뒤, 시방세계十方世界에서 『法華經』을 설하는 곳에는 나의 보탑寶塔이 솟아 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라고 서원한 부처님. 석존이 영산靈山에서 『法華經』을 설할 때에도 그 탑이 솟아 나왔다고 하였다.
  61. 61)훈지塤篪 : 질 나팔을 불면 저가 화답하는 것처럼 형제간의 우애가 화락한 것을 말한다. 『詩經』 「大雅」 ≺生民≻.
  62. 62)척령鶺鴒 : 위급한 상황에서의 형제간의 우애를 나타낸다. 『詩經』 「小雅」 ≺鹿鳴≻.
  63. 63)라후라羅睺羅 : ⓢ Rāhula. 번역하여 부장覆障. 석존의 아들. 석존이 태자로 있을 때 출가하여 도를 배우려고 마음을 내었다가, 아들을 낳고는 장애됨을 한탄하여 라후라로 불렀다. 석존이 성도한 뒤에 출가하여 제자가 되었다. 밀행제일密行第一. 사미의 시초.
  64. 64)기원정사祇園精舍 : 또는 기원정사祇洹精舍. 중인도 사위성 남쪽의 기수급고독원에 지은 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설법하고 수도하도록 하기 위하여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기증하였다. 7층의 가람으로 자못 장려하였는데, 당나라 현장玄奘이 그곳을 순례하던 때는 벌써 황폐하였다고 전한다.
  65. 65)섭등葉騰 : ⓢ Kāśyapa-Mātaga. 축섭마등竺葉摩騰·섭마등攝摩騰·마등摩騰이라고도 쓴다. 중인도 사람으로 총명하여 대소승의 경·율에 정통하였다. 서인도에서 『金光明經』을 강설하여 이름을 드날리고, 후한後漢 명제明帝의 사신 채음蔡愔 등의 간청으로 67년(영평 10) 축법란竺法蘭과 함께 중국에 왔다. 『四十二章經』 1권을 번역하였는데, 중국 역경의 시초가 된다. 그 뒤 오래지 않아 낙양洛陽에서 입적하였다.
  66. 66)달마達摩(?~528?) : ⓢ Bodhidharma.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 범어로는 보디다르마이며 보리달마菩提達磨로 음사音寫하는데, 달마는 그 약칭이다.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로, 후에 대승불교의 승려가 되어 선禪에 통달하였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의 낙양에 이르러 동쪽의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理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하였다.
  67. 67)삼신三身 : 부처의 세 가지 몸, 즉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을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설이 있는데, 대체로 법신은 석가釋迦의 본성을 뜻하고, 보신은 석가의 덕업德業을 가리키고, 화신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의 육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68. 68)미경米 : 미상이다.
  69. 69)가난한 여인의 등 : 빈녀일등貧女一燈이라고도 한다. 가난한 여인이 공양하는 등불이 큰 부자가 공양하는 등불보다 훌륭하다는 말로 옛날에 부처님이 아사세왕阿闍世王의 초청을 받아 왕궁에서 설법하고 밤이 되어 기원정사로 돌아가려 할 때에, 왕은 대궐에서 절까지 가는 길에 수만 개의 등불을 켜서 공양하였다. 그때에 한 노파가 자기도 거리에서 구걸하여 얻은 돈 2전을 가지고 기름을 사서 등불 하나를 켜서 공양하였다. 이 한 등불은 왕의 수만 개 등보다 광명이 유달리 밝았고, 새벽이 되어 수만 개의 등은 다 꺼졌으나, 이 한 등만은 더욱 불빛이 빛났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목련에게 “이 노파는 일찍이 80억 부처님께 공양하였으니 30겁 후에는 부처가 되어 ‘수미등광여래須彌燈光如來’라고 하리라.”라고 하신 데서 기원한 말이다.
  70. 70)청전靑氈 : 청전구물靑氈舊物의 준말로, 으뜸가는 선조의 유물이라는 뜻이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의 집에 좀도둑이 들었을 때, 다른 물건을 훔칠 때에는 모르는 체하고 누워 있다가, 탑상榻牀에 올라 손을 대려 하자, “그 청전은 우리 집안의 구물舊物이니 그냥 놔둘 수 없겠는가.”라고 말하여, 도둑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晉書』 「王獻之列傳」.
  71. 71)혜가慧可(487~593) : 중국 선종의 제2조. 이름은 신광神光, 속성은 희姬씨. 낙양 용문의 향산에서 출가했다.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불교와 유교를 배우고, 32세에 향산에 돌아와 8년 동안 좌선하였다. 40세에 숭산 소림사에 보리달마菩提達磨를 찾아가서 눈 속에 앉아 가르침을 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자 왼팔을 끊어 그 굳은 뜻을 보여 마침내 허락을 받고 크게 깨달았다. 552년 제자 승찬僧璨에게 법을 전하고, 업도鄴都에 34년 동안 머물렀다. 뒤에 관성현 광구사에서 『涅槃經』을 강하여 여러 사람들이 깊이 그를 추종하였으나 중 변화辨和의 참소로 인해 수나라 개황 13년 적중간翟仲侃의 혹형으로 107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당 태조가 정종보각대사正宗普覺大師라 시호하였다.
  72. 72)소씨蘇氏의 서序 : 소씨는 소순蘇洵(1009~1066)으로 자는 명윤明允, 호는 노천老泉이다. 소순이 족보에 자신의 직계만을 자세히 적고 방계는 적지 않은 것을 말한다.
  73. 73)나비의 꿈 : 『莊子』 「齊物論」에 “언젠가 장주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나풀나풀 잘 날아다니는 나비의 입장에서 스스로 유쾌하고 만족스럽기만 하였을 뿐 자기가 장주인 것은 알지도 못하였는데, 조금 뒤에 잠을 깨고 보니 엄연히 장주라는 인간이었다. 모를 일이다. 장주의 꿈속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속에 장주가 된 것인가. 하지만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분명히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일러 물의 변화라고 한다.(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라는 유명한 ‘호접몽’의 이야기가 나온다.
  74. 74)향수해香水海 : 향해香海와 동일. 향수의 바다.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내해內海. 여기에는 연화장세계 향수해와 사바세계 향수해의 두 가지가 있다.
  75. 75)산신령은 백양을~밟고 출입한다 : 백양사는 632년(백제 무왕 33) 여환如幻이 창건하여 백암산 백양사라고 했으며, 1034년(덕종 3) 중연中延이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라고 개명했다. 1350년(충정왕 2) 각진 국사가 3창하고, 1574년(선조 7) 환양喚羊이 현재의 백양사라고 개칭했는데 이것은 환양의 『法華經』 독경 소리에 백학봉에 있는 흰 양 떼가 자주 몰려온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한다.
  76. 76)포옹圃翁 : 정몽주鄭夢周(1337~1392). 고려의 문신이자 정치가·유학자이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고려삼은高麗三隱의 한 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과 급제 후 여러 벼슬을 지내고 성균관대사성, 예의판서, 예문관제학 등을 지내며 친명파 신진사대부로 활동하였으나 역성혁명과 고려개혁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온건개혁을 선택하였으며,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가 1392년 개성 선죽교에서 이방원에게 살해되었다. 경상북도 영천永川 출신이며, 이색의 문인이었다. 제자 중 길재는 사림파의 비조가 되었고 권우는 세종대왕의 스승이 되었다. 역성혁명에 반대하다가 이방원에게 살해되었으나 1401년(태종 1) 태종에 의해 영의정에 추증追贈되고 익양부원군益陽府院君에 추봉되었다.
  77. 77)각로覺老 : 고려 때 백양사를 중창했던 각진 국사覺眞國師.
  78. 78)도사다천都斯多天 : ⓢ Tusita-deva. 도솔천兜率天과 동일. 욕계 육천의 하나. 도사다覩史多·투슬다鬪瑟哆·도솔타兜率陀·도술兜術이라고도 쓰며, 상족上足·묘족妙足·희족喜足·지족知足이라 번역한다. 수미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 되는 곳에 있는 천계天界로서 칠보로 된 궁전이 있고 한량없는 하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내·외의 2원院이 있다고 한다. 외원外院은 천중天衆의 욕락처欲樂處이고, 내원內院은 미륵보살의 정토라 한다. 미륵은 여기에 있으면서 설법하여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하늘은 아래에 있는 사왕천·도리천·야마천이 욕정에 잠겨 있고, 위에 있는 화락천·타화자재천이 들뜬 마음이 많은 데 대하여, 잠기지도 들뜨지도 않으면서 오욕락에 만족한 마음을 내므로, 미륵 등의 보처보살이 있다고 한다.
  79. 79)부근斧斤 : 초楚나라 장석匠石이 상대방의 코끝에다 하얀 흙을 얇게 발라 놓고는 자귀를 바람 소리가 나게 휘둘러(運斤成風) 그 흙만 떼어 내고 상대방은 다치지 않게 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로 여기서는 훌륭한 선풍禪風을 뜻한다. 『莊子』 「徐无鬼」.
  80. 80)나락奈落 : ⓢ naraka, nāraka. 날락가捺落迦와 동일. 지옥을 말하는 범명梵名. 또는 나락가那落迦·나라가那羅柯. 번역하여 고구苦具·고기苦器. 또 날락가와 나락가를 구별하여, 날락가를 지옥 및 괴로움을 받는 곳이라 하고, 나락가를 괴로움을 받는 지옥의 죄인이라고도 한다.
  81. 81)전영奠楹의 꿈 : 사람의 죽음을 의미함. 공자가 두 기둥 사이에 앉아 제수를 받는 꿈을 꾸고(夢坐奠於兩楹之間) 얼마 뒤에 죽은 고사가 있다. 『禮記』 「檀弓」 上.
  82. 82)현고懸鼓 : 해가 지는 것. 『觀無量壽經』에 “見日欲沒。 狀如懸皷。”라고 하였다.
  83. 83)인仁에 당하여 양보하지 말라 : 원문은 “子曰。 當仁不讓於師。”로 『論語』 「衛靈公」에 나온다.
  84. 84)오복五福 :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 여기서는 부를 나타낸다. 『書經』 「洪範」.
  85. 85)아홉 길 산을 이루는 : “아홉 길 산을 만드는 데 흙 한 삼태기 때문에 이루지 못한다.(爲山九仞。 功虧一簣。)”라는 말이 있다. 『書經』 「旅獒」.
  86. 86)사사四事 : 주 15 참조.
  87. 87)육법六法 : 복을 구하는 여섯 가지 법. 곧 시주·교계敎誡·참음·법설의설法說義說·중생을 보호함·무상정진無上正眞의 도를 구하는 일이다.
  88. 88)금시조金翅鳥 : ⓢ garuḍa. 가루라迦樓羅·가류라加留羅·계로다揭嚕茶라 음역하고 묘시조妙翅鳥라 의역한다. 인도 신화에 나오는 가공의 대조大鳥. 이상화된 신령스러운 새. 사천하四天下의 대수大樹에 내려 용을 잡아먹고 양 날개를 펴면 336만 리나 된다고 한다. 그 날개는 금색이다. 대승경전에서는 천룡팔부天龍八部의 하나이고, 밀교에서는 범천梵天·대자재천大自在天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이 새의 모습을 빌려 나타난다고 한다.
  89. 89)위덕 비구威德比丘 : 범명梵名은 욱가郁伽(ⓢ ugra). 비사리성 부근의 상촌象村 사람. 언젠가 숲에서 기생과 놀며 술에 크게 취해 있었는데 멀리 세존께서 단정하게 정좌하신 것을 보고 곧 귀의하여 계를 받았다. 부처님 멸도 후에는 모든 재산을 종단에 희사했다.
  90. 90)파다존자婆多尊者 : 미상.
  91. 91)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 Avalokiteśvara. 아박로지저습벌라阿縛盧枳低濕伐邏라 음역하고, 관자재觀自在·광세음光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라 의역한다. 대자대비大慈大悲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보살. 미타삼존의 하나로 아미타불의 왼쪽 보처補處. 관세음이란 ‘세간의 음성을 관하는’이라는 뜻. 관자재라 함은 ‘지혜로 관조하므로 자재한 묘과妙果를 얻은’이라는 뜻. 또 중생에게 온갖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無畏心을 베푼다는 뜻으로 시무외자施無畏者라 하고, 자비를 위주로 한다는 뜻으로 대비성자大悲聖者라 하며, 세상을 구제하므로 구세대사救世大士라고도 한다. 이 보살이 세상을 교화함에는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여러 가지 형체로 나타난다.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 하며, 삼십삼신三十三身이 있다고 한다.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갖춘 불성佛性을 표시하고, 그 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한다는 뜻이고, 그 봉오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고 장차 필 것을 나타낸다. 그 종류로는 육관음(성·천수·마두·십일면·준제·여의륜)이 보통, 그중 성관음聖觀音이 본신이고, 다른 것은 보문시현의 변화신. 그 정토淨土 또는 있는 곳을 보타락가補陀落迦(ⓢ Potalaka)라고 하나, 원래 『華嚴經』에 남인도 마뢰구타국의 보타락가라 한 것이 처음이고, 중국에서는 절강성의 주산도舟山島를 보타락가라 하였다.
  92. 92)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 ⓢ Mahāsthāmaprāpta. 아미타불의 오른편 보처補處. 마하살타마발라발다摩訶薩駄摩鉢羅鉢跢라 음역하고, 대정진大精進·득대세得大勢라 의역한다. 아미타불에겐 자비문과 지혜문이 있는데, 관세음은 자비문을 표하고, 대세지는 지혜문을 표한다. 이 보살의 지혜 광명이 모든 중생에게 비치어 삼도三途를 여의고 위없는 힘을 얻게 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또 발을 디디면 삼천세계와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형상은 정수리에 보배 병을 얹고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으며, 염불하는 수행자를 맞아 갈 때에는 합장하는 것이 통례이다.
  93. 93)삼통三統 : 하夏·은殷·주周 시대의 삼통. 곧 천통天統·지통地統·인통人統을 말한다. 정삭正朔을 말한 것으로 건자지월建子之月(음력 11월)이 천통, 건축지월建丑之月(음력 12월)이 지통, 건인지월建寅之月(음력 1월)이 인통이다. 여기서는 나라가 통일이 되어 동일한 책력을 사용하면서 태평을 누린다는 말이다.
  94. 94)팔열八熱 : 또는 팔대지옥八大地獄. 뜨거운 불길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여덟 가지 큰 지옥. ① 등활지옥等活地獄. 고통을 받아 죽었다가 찬바람이 불어와서 살아나면, 또다시 뜨거운 고통을 받는 지옥, ② 흑승지옥黑繩地獄. 뜨거운 쇠사슬로 몸과 팔다리를 묶어 놓고 큰 톱으로 끊는 지옥, ③ 중합지옥衆合地獄. 여러 가지 고통을 주는 기구가 한꺼번에 닥쳐와서 몸을 핍박하여 해치는 지옥, ④ 규환지옥叫喚地獄. 온갖 모진 고통을 견디다 못해 원망하는 슬픈 고함 소리를 지르게 되는 지옥, ⑤ 대규환지옥大叫喚地獄. 지독한 고통에 못 견디어 통곡을 하는 지옥, ⑥ 초열지옥焦熱地獄. 뜨거운 불길이 몸을 둘러싸서 그 뜨거움을 견디기 어려운 지옥, ⑦ 대초열지옥大焦熱地獄. 뜨거운 고통이 더욱 심한 지옥, ⑧ 무간지옥無間地獄.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하며, 쉴 새 없이 고통을 받는 지옥.
  95. 95)오고五苦 : 다섯 종류의 괴로움. ① 제천고·인도고·축생고·아귀고·지옥고. ② 생고生苦·노고老苦·병고病苦·사고死苦·애별리고愛別離苦. ③ 생고·노고·병고·사고·옥고獄苦. ④ 생로병사고·애별리고·원증회고怨憎會苦·구부득고求不得苦·오음성고五陰盛苦.
  96. 96)유자후柳子厚 : 유종원柳宗元(773~819). 당나라의 문인.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 장안長安 출생. 관직에 있을 때 한유韓愈·유우석劉禹錫 등과 친교를 맺었다. 왕숙문王叔文의 신정新政에 참여하였으나 실패하여 변경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이러한 좌절과 13년간에 걸친 변경에서의 생활이 그의 사상과 문학을 심화시켰다. 고문의 대가로서 한유와 병칭되었다.
  97. 97)오곡五谷과 구곡九谷 : 오곡五穀과 구곡九穀.
  98. 98)오미五味 :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99. 99)구류九流 : 후한後漢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자신의 저서 『漢書』에서 당대의 학파를 아홉 부류로 분류하였다. 유가儒家·도가道家·음양가陰陽家·법가法家·명가名家·묵가墨家·종횡가縱橫家·잡가雜家·농가農家를 말한다.
  100. 100)자강불식自强不息 : 『周易』 「乾卦」 ‘大象傳’에 “하늘의 운행이 쉼이 없으니 군자가 이를 보고 스스로 힘써 쉬지 않는다.(天行乾。 君子以自彊不息。)”라고 하였다.
  101. 101)집무하는 : 원문은 ‘撫琴’. 송宋나라 때 조변趙抃은 촉주 자사蜀州刺史가 되어 부임할 때 말 한 필을 타고 거문고 하나와 학 한 마리만 가지고 가서 고을을 다스리면서 마루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거문고를 어루만진다는 말은 곧 관아에서 집무함을 이르는 말이다. 『宋史』 「趙抃傳」.
  102. 102)부가浮家 : 배나 수상 가옥으로, 은자가 사는 곳이다. 당나라 장지화張志和는 강호江湖에 살면서 자칭 연파조도烟波釣徒라고 하였다. 안진경顔眞卿이 호주 자사湖州刺史로 오자 가서 알현하고 낡은 배를 고쳐 주기를 청하며 부가(떠다니는 집)나 범택汎宅(떠다니는 집)에 살며 물 위를 오고 가며 살고 싶다고 하였다. 『唐書』 「張志和傳」.
  103. 103)‘금신무양석란산金身無恙錫蘭山’의 게송 : 『東師列傳』 「鐵鷂禪伯傳」에 유래가 있다. “추사秋史 김 참판金參判의 시집에 추사가 사문師文(철요)에게 증정한 절구시 한 수가 있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섯 천축국 손바닥 안에 있고 / 팔수와 삼봉을 오고 가네 / 관 밖에 발 드러낸 것으로 조사의 심인 삼지 마시게 / 부처님은 아무 탈 없이 석란산錫蘭山(스리랑카)에 계신다네.(後得見秋史金叅判詩集。 贈師文詩一絶曰。 五天竺在掌中間。 八水三峰徃復還。 莫把示趺傳祖印。 金身無羔錫蘭山。)’” 『東師列傳』(범해 각안 저, 김두재 역, 동국대학교출판부, p.463).
  104. 104)상하일숙桑下一宿 : 상하일숙지연桑下一宿之緣의 준말로 뽕나무 밑에서 하룻밤을 지낸 인연이란 뜻인데, 잠시 동안 머무른다는 뜻이다.
  105. 105)공복功服 : 상례喪禮에서 소공小功 5개월 복服과 대공大功 9개월 복을 아울러 가리키는 말이다.
  106. 106)예상翳桑의 아인餓人 : 예상은 옛 지명인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것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영첩靈輒이 이곳에서 굶주리고 있는 것을 조돈趙盾이 지나다 보고 먹을 것을 주어 구제해 주었고, 그 뒤에 영첩이 진나라 영공靈公의 갑사甲士가 되어 위험에 처한 조돈을 다시 구제해 줌으로써 조돈이 죽음을 모면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 2년.
  107. 107)정이鼎彛 : 정鼎은 솥, 이彛는 오곡을 담는 제기. 항상 종묘에 비치하고 국가에 공적이 있는 사람들의 사적을 새겨 제사를 받든다.
  1. 1)「文二」二字。編者補入。
  2. 1)「擅」疑「檀」{編}。
  3. 1)「定」疑「宗」{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