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혼원집(混元集) / 混元集卷之一

ABC_BJ_H0285_T_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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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원집 제1권(混元集。 卷之一)
총목차總目次
혼원집 제1권(混元集 卷之一)
축송【서문과 함께】(祝頌【并序】)
애화 서문(愛花序)
하나, 소나무(一松)
둘, 국화(二菊)
셋, 매화(三梅)
동화사 임자 갑계 서문(桐華寺壬子甲禊序)
문계 서문(門禊序)
연수 서문(蓮壽序)
표충사 승련암 연수각기表忠寺勝蓮庵蓮壽閣記
오도막기悟道幕記
파계사 명부전 시왕 개채 단확기把溪寺冥府殿十王改彩丹雘記
연암기鷰巖記
성전암 사잔등기聖殿庵沙盞燈記
풍기 명봉사 내원 서별당 창건 번와기豊基鳴鳳寺內院西別堂創建翻瓦記
성주 수도암 약사전 중수기星州修道庵藥師殿重修記
합천군 해인사 경판전과 요사 개와기(陝川郡海印寺經板殿與寮舍改瓦記)
혼원집 제2권(混元集 卷之二)
금강록金剛錄
[부록] 행장行狀
혼원 화상 유고 후발混元和尙遺稿後跋
축송【서문과 함께】(祝頌【并序】)
고적考績1)의 법은 요순시대(唐虞)2)부터 비롯되었는데, 대개 3년에 한 번 관리를 평가하여 성적이 좋은 사람은 승진시키고 공적이 없는 사람은 내쫓았던 제도이다. 지금 어사대부御史大夫 이만직李萬稙 공公은 백성에게 은택(利澤)을 널리 베풀어, 명성이 세상에 자자하다. 공은 조정에 있으면서 여러 관직을 거치며 훌륭한 임금님을 보좌하였으며, 명령이 내려지면 조서를 받들어서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자세히 살폈다.3)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질 때에는 공정한 마음을 가져 사사로움이 없었다. 인자함은 봄날의 볕과 같고 위엄은 가을의 서리와 같았으니, 이렇듯 형벌과 덕행이 아울러 행하여져서 담당하는 고을이 잘 다스려졌다.
공은 우연히 사문沙門 혜惠를 만나 70민緡4)이나 되는 돈을 시주하여 사찰의 살림을 돕고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그 재주가 있음을 아꼈고, 그 마음이 어디로 향해야 될지 모르는 것을 걱정하여서, 도덕문물道德文物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011_0713_b_02L混元集卷之一

011_0713_b_03L

011_0713_b_04L1)總目次

011_0713_b_05L
卷一

011_0713_b_06L
祝頌并序愛花序一松二菊
011_0713_b_07L三梅桐華寺壬子甲禊序門禊序
011_0713_b_08L蓮壽序表忠寺勝蓮庵蓮壽閣記
011_0713_b_09L道幕記并詩把溪寺冥府殿十王改
011_0713_b_10L彩丹艧記鷰巖記聖殿庵沙盞燈
011_0713_b_11L豊基鳴鳳寺內院西別堂創建翻瓦
011_0713_b_12L星州修道庵藥師殿重修記
011_0713_b_13L川郡海印寺經板殿與寮舍改瓦記

011_0713_b_14L
卷二

011_0713_b_15L
金剛錄

011_0713_b_16L

011_0713_b_17L祝頌并序

011_0713_b_18L
考績之法剏自唐虞蓋三載一選
011_0713_b_19L陟幽明者也今御史大夫李公萬稙
011_0713_b_20L澤施於人聲名昭于世在朝進退百官
011_0713_b_21L而佐明君出令奉綍按驗列邑而曰
011_0713_b_22L可曰否秉公無私仁行如春威行如
011_0713_b_23L刑德并流境內大治矣偶到沙門
011_0713_b_24L以七十緡金助寺供佛而愛其才有
011_0713_b_25L悶其情莫知所向敎之以道德文物

011_0713_c_01L군신부자君臣父子의 의리로써 깨닫게 하였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새로워지게 하였다. 이렇듯 자애롭게 타일러서 백성을 마치 갓난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니, 이것으로 보건대 ‘백성에게 은혜를 베푼 분(澤被生民)’5)이라 할 만함을 알 수 있다. 불가에 대해서도 이와 같았으니, 곤충과 초목까지도 또한 그 교화에 젖어들었다.
이에 스님들은 산에서 축원하고 백성들은 들에서 칭송하여, 산과 들에서 모두 이르기를 “우리 어사대부의 덕행이여. 한 도道의 백성이 이처럼 편안하니, 장차 한 나라에 행한다면 나라 전체가 반석磐石처럼 반듯하게 다스려지고, 나아가 천하를 태산泰山과 같이 안정되게 할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또한 축원하기를 “합하閤下6)께서는, 안탑鴈塔의 공명7)에 있어서는 젊은 나이에 박사博士에 이르렀으며, 대궐(鳳闕)8)의 사업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모두 백수상서白首尙書9)라 부르나니,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히 하는 도(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道)를 이루도록 하소서. 임금님을 보좌함에 문무를 고루 갖춰 장수와 재상의 책임을 수행하고, 나라를 걱정함에 하늘을 떠받치고 해를 받드는 것과 같은 충성을 바쳐서, 우리 임금님께서 요순처럼 성군에 이르게 하소서. 그리고 그 공적을 죽간과 비단에 기록하고, 그 덕성을 관악기와 현악기로 칭송하여서, 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임금님을 잘 도와 조정을 창성하게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한 공덕을 알게 하소서. 금방金榜10)에는 장원급제한 이름이 붙고 괴부槐府11)에서는 재상의 의무를 수행하여서, 인간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장수와 부귀와 많은 아들을 두는 복을 갖도록 하소서. 공로를 칭송하는 날에 베푼 것이 저와 같고 바라는 것이 이와 같으니, 참으로 이른바 ‘가진 것은 적은데 바라는 것은 많다’는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어찌 대부大夫의 뜻이겠습니까. 겨자씨보다도 작은 인연도 밝게 빛나서 부처님의 거울(菱鑑)12)을 피하기 어려우며, 보름달(月輪)이 비록 환하게 비추어도 조각구름(片雲)으로 능히 가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비는 것이 이와 같고 바라는 것이 저와 같다 하여도 어찌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하며, 어찌 축원하는 것이 부끄럽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애화 서문(愛花序)
구름은 용龍을 따르고 바람은 범(虎)을 따르며, 학鶴은 구고九臯13)에 있고 봉황은 오동梧桐나무에 있다.

011_0713_c_01L之說諭之以君臣父子之義使人不覺
011_0713_c_02L有自新之漸諄諄慈愛若保赤子是知
011_0713_c_03L謂澤被生民而及於山門如是而昆虫
011_0713_c_04L草木亦沾其化也僧祝于山民頌於野
011_0713_c_05L山野咸曰吾大夫之德行乎一道民樂
011_0713_c_06L如此將行一國國如磐石措天下於
011_0713_c_07L泰山之安哉抑願閤下鴈塔功名
011_0713_c_08L致靑春愽士鳳闕事業人稱白首尙書
011_0713_c_09L達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道輔主任
011_0713_c_10L出將入相之責憂國效擎天奉日之忠
011_0713_c_11L致吾君於陶唐有虞之聖以竹帛而書
011_0713_c_12L其功用管絃而頌其德使後代知黼黻
011_0713_c_13L昌朝利澤生民之勞金榜掛壯元之名
011_0713_c_14L槐府擅宰相之義具人間壽富貴多男
011_0713_c_15L子之福頌功之日施則如彼冀則如此
011_0713_c_16L儘所謂所持者少所欲者多乎余曰
011_0713_c_17L豈大夫之志歟芥緣孔昭菱鑑難
011_0713_c_18L月輪雖徹片雲能掩然而祈則如
011_0713_c_19L望則如彼何願不遂何祝堪愧

011_0713_c_20L

011_0713_c_21L愛花序

011_0713_c_22L
雲從龍風從虎鶴于九臯凰凰 [2] 于梧
011_0713_c_23L「總目次」三字編者補入目次底本在於序
011_0713_c_24L文之後編者移置於此此上底本有「混元集
011_0713_c_25L目次」編者除之

011_0714_a_01L만물萬物은 각각 알맞은 자리를 가지고 있으니, 만약 그 자리를 잃으면 그대로 끝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오곡五穀이 좋다 한들, 담벼락 밑과 같이 좋지 않은 곳에 떨어지거나, 신발 끝에 채이거나, 소와 말이 밟고 지나간다면, 여름에 무성해지거나 가을에 씨알이 여무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말라 죽을 것이다. 그리고 떡갈나무ㆍ두릅나무ㆍ소나무ㆍ잣나무가 사방 변두리에 홀연히 생겨나서 싹이 트고 자라나며 비와 이슬을 맞아 무성하게 자란다고 한들, 사람들이 밤낮으로 도끼를 가져와 베어 내고 소와 양을 끌고 와서 먹인다면, 그 본성을 따르지 못하고 저절로 시들어 죽을 것이다. 아아! 제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극심한 일이로구나.
내가 하루는 땔나무 파는 시장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언뜻 땔나무를 보니 참꽃(眞花)14) 한 떨기가 나무 묶음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 본성은 아직 남아 있어, 사랑스러운 자태가 아름다운 맥문동(䓺)15)과 같았는데, 아쉽게도 그것은 곧 잿더미 속에 들어갈 것이었다. 곧바로 그것을 골라 뽑아 와서 뜰 앞에 흙을 파고 심었다. 마루에 오를 적에 돌아보면 꽃이 나에게 정이 있는 것 같았고, 나도 역시 차마 그 정을 잊지 못하였다. 내가 듣건대 ‘근원이 없는 물은 길게 흐르지 못하고, 뿌리가 없는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에 물길을 내서 물을 대주고, 흙을 가져다가 돋워 주면 충분히 기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은 산에 비구름이 가득하니 비가 한바탕 와서 그 덕택에 물이 풍족해지면 그나마 살 수 있을 것이나, 만약 먹구름이 흩어지고 밝은 해가 하늘에 솟으면 꽃이 시들어서 떨어질 것이 빤하니, 어찌 기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것을 옮겨 심으면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할지라도, 잿더미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또한 하늘에서 비가 오랫동안 내리면, 그로 인해 말라죽지 않게 되니, 이는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이 정한 이치이지만, 오직 사람만이 이를 알지 못하고 꺾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국화는 은일지사라는 뜻의 꽃말이 있기 때문에 도연명陶淵明16)이 사랑하였고, 연꽃은 군자君子라는 뜻의 꽃말이 있기 때문에 주렴계周濂溪17)가 사랑하였으며, 모란은 번영과 화려함이라는 뜻의 꽃말이 있기 때문에 부귀한 사람들이 사랑하였다. 그런데 너는 어찌 부귀라는 뜻의 꽃말이 있는데, 이와 같이 버림을 당했느냐. 일찍이 부귀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주인이

011_0714_a_01L萬物各得其所若失其所其終也
011_0714_a_02L已矣故雖五穀之美落於作屏卑陋
011_0714_a_03L蹙跼履端牛馬蹂躤不見夏繁秋實
011_0714_a_04L而自爾枯死柞棫松栢忽生於四郊封
011_0714_a_05L其萌芽生長乎雨露滋息乎日夜
011_0714_a_06L而斧斤戕之牛羊牧之不遂其性
011_0714_a_07L自爾剝落失其所者甚也余一日
011_0714_a_08L彷徨乎柴場閃看柴木眞花木一叢
011_0714_a_09L亦與於束木中而其性尙存愛其態美
011_0714_a_10L惜其將入灰燼之中仍爲選捽來
011_0714_a_11L種於庭前圮土昇堂顧視花若有情
011_0714_a_12L余亦不忍忘其情者吾聞無源之水
011_0714_a_13L流不長無根之木其生不久如之何
011_0714_a_14L以可也決水灌之取土培之足以養
011_0714_a_15L之乎或曰今則雲霓滿山霏霏一雨
011_0714_a_16L亦沾其澤惟有尙存若雲陰解散
011_0714_a_17L日當天其藿可知何以養之耶余曰
011_0714_a_18L移此而其生雖不久不猶愈於灰燼耶
011_0714_a_19L且天久雨澤被不枯此無奈天固定之
011_0714_a_20L而惟人無知而取折耶菊有隱逸之名
011_0714_a_21L故陶淵明愛之蓮有君子之名故周
011_0714_a_22L濂溪愛之牧丹有繁華之名故繁華
011_0714_a_23L子愛之而汝何頗有富貴之名而其見
011_0714_a_24L棄若是也曾有生於富貴之家庭主人

011_0714_b_01L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솎아 주고 흙도 덮어 주었다면, 해가 뜰 때는 빛이 나고 바람이 불어올 때는 향기가 났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부귀라는 뜻의 꽃말을 퍼뜨리게 하고, 또한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바른 자리를 얻은 것과 좋은 때를 만났다고 알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때를 만나는 것도 또한 어려운 일이니, 나를 만나고 못 만나는 것도 우연의 일이로다. 너는 나면서 그 바른 자리를 얻지 못하여서 나무꾼 손에 들어갔으나 다행히 나를 만나서 나무꾼이 불 속에 넣는 것을 면했으니, 그 바른 자리는 잃었으나 그 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가야산(伽倻)의 운인雲人18) 수룡水龍이 화주승으로서 인가를 차례로 찾아다녔는데, 수룡은 바로 나의 은사(恩傅)이다. 일찍이 유학遊學을 하며 학문에 한참 힘을 쏟을 때에 절친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하은霞隱 노화상老和尙에게서 그림을 배운 제자인데, 하은 화상은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깊고 오묘하여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도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수룡의 인품은 고상하면서도 넉넉하였으며, 재주와 총명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서, 청출어람이라 할 만한 사람이다. 옛적엔 은사로서 절친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은사로서 형제 사이이므로 친하고도 친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이미 간곡하게 그 사정을 이야기하고서 다과茶果를 드리며 그림을 청했는데, 사양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드디어 송松ㆍ죽菊ㆍ매梅 세 폭의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림 밖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으니 옛적에 소씨蘇氏가 그린 백여 품의 그림 중에 이와 같은 그림이 있었겠는가. 비록 오도자(吳子)19)의 솜씨라 해도 이보다 더할 수 없었다. 이에 세 폭의 그림에 각각 서序와 찬贊을 짓노라.
하나, 소나무(一松)
무릇 하늘의 도가 높고 밝아서 만물을 덮으니 이에 만물이 비로소 열리고, 땅의 덕이 넓고 두터워서 만물을 실으니 이에 만물이 양육된다.20) 하늘이 덮어 주고 땅이 실어 줌에 만물이 그 사이에 있으니, 봄이면 생겨나고 여름이면 자라나며, 가을이면 무르익고 겨울이면 시들어 떨어지면서,

011_0714_b_01L愛其茲若子而疎其間封其下則日
011_0714_b_02L出呈光風來有香使當世播有富貴之
011_0714_b_03L而亦使後代知其爲得其所遇其
011_0714_b_04L時也然遇亦難矣遇不遇我其遇耶
011_0714_b_05L汝生不得其所而取入於樵蕘手中
011_0714_b_06L以遇我以免槱人入火之地可謂失其
011_0714_b_07L而遇其時者也

011_0714_b_08L
伽倻雲人水龍以化行歷過水龍卽
011_0714_b_09L吾恩傅曾遊學海時親切之人
011_0714_b_10L霞隱老和尙受畵弟子也和尙以繪
011_0714_b_11L畵淵妙名聞當世受業門人不可
011_0714_b_12L指屈而水龍人品高廣才敏出人
011_0714_b_13L靑於藍者也昔以恩傅親切之人
011_0714_b_14L今以恩傅昆弟之間然則此乃親親
011_0714_b_15L者也旣陳款曲茶果進畢請以墨
011_0714_b_16L辭之不得遂寫松菊梅三幅
011_0714_b_17L畫外之活畫昔蘇氏之致畫百餘品
011_0714_b_18L亦有此等畫耶雖吳子之手
011_0714_b_19L無以加也於此三幅各爲序賛

011_0714_b_20L

011_0714_b_21L一松

011_0714_b_22L
夫乾道高明而覆物資始也坤位愽厚
011_0714_b_23L而載物致養也乾坤覆載而間於萬
011_0714_b_24L春以發生夏以長養秋以成熟

011_0714_c_01L네 계절이 번갈아 차례대로 운행한다. 그리고 만물은 그 사이에서 은혜와 위엄을 받아 번성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질이 굳어져서 각기 그 재질을 이룬다. 이는 바로 하늘이 아버지가 되고 땅이 어머니가 되는 것이니, 사사로움이 없는 덕으로 만물과 관계하여 은혜와 위엄이 아울러 베풀어지는 것이다.
봄과 여름이 오고 가면 향기로운 온갖 풀로 인해 즐겁고, 무성한 갖가지 나무로 인해 녹음이 짙어져서, 뭇 초목들이 송백松栢21)과 그 화려함을 다투게 된다. 이러한 때에는 나무하는 아이나 나무꾼들이라도 어찌 소나무와 여느 나무들을 쉽게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느덧 하나의 기운이 빠르게 다하게 되면, 온갖 풀들은 전부 시들고 갖가지 나무들도 메마르게 되어서, 모두 변화하여 본래의 색을 잃게 된다. 그러나 소나무와 잣나무만은 다른 것과는 달리 본래 모습 그대로 있어서, 구름 위로 솟아올라 푸른 얼굴을 내밀고, 천 길보다 높이 솟아 겨울 내내 늘 푸르다. 『한사漢史』22)에 이르기를 “아침에 무성한 풀은 저녁에 시들어 떨어지나, 소나무와 잣나무의 무성함은 한겨울 추위에도 쇠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이는 진실로 그럴 법한 말이로다. 천지의 찬 서리ㆍ단단한 눈ㆍ매서운 바람ㆍ차가운 기운은 지나치게 성대한 것을 덜어 내어 줄이는데, 어찌 소나무와 잣나무에게만 사사로움을 두어서 봐주겠는가. 다만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그 변화를 받되 그 뜻을 변치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킨 사람을 이것에 비유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아, 소나무와 잣나무의 청아하고 높은 절개도 초목과 섞여 있으면 분별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인품으로 말하자면 위로는 임금이 되고 아래로는 신하가 되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리길 마치 머리와 가슴이 손과 발을 움직이는 듯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섬기길 손과 발이 머리와 가슴을 지키는 것처럼 한다. 이와 같이 임금과 신하,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각각 그 맡은 바를 근면하게 행하여서 그 직분을 실추시키지 않아야, 그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믿지 못하고 아랫사람이 윗사람과 가까이하지 않아서 아첨하는 무리를 등용하여 가까이하고 충신을 멀리한다면, 비록 문학과 도덕을 숭상하는 것이 마치 주자(周)ㆍ정자(程)ㆍ장자(張)ㆍ주자(朱)23)와 같고, 최정예의 병사를 쓰는 것이 마치 강태공(子牙)24)이나 소목공(召穆)25)과 같으며, 장막에서 계책을 세우는 것이 마치 장자방(子房)26)이나 제갈공명(孔明)27)과 서로 같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을 등용할 수 없을 것이다.
초야에서 아무 일 없이 늙어 가다가 위급하고 어려운 때에 이르러,

011_0714_c_01L以零落四時錯行代序而物於其間
011_0714_c_02L受恩威而爲華爲衰自然性堅各成其
011_0714_c_03L此乃乾父坤母無私之德關於物
011_0714_c_04L而恩威並施者也春夏之交芬百草以
011_0714_c_05L可悅盛萬木以繁陰與松栢爭榮
011_0714_c_06L此之時蕘兒樵竪豈能辨松與木耶
011_0714_c_07L於焉一氣儵至百草俱衰萬木零落
011_0714_c_08L皆受其變而失色惟松栢傑然特秀
011_0714_c_09L凌雲霄而蒼顏高千尋而晩翠漢史云
011_0714_c_10L早華之草夕而零落松栢之茂隆寒
011_0714_c_11L不衰者良有以也以天地之寒霜堅雪
011_0714_c_12L烈風肅氣夷傷過盛之物而豈有私於
011_0714_c_13L松栢耶惟松栢之受其變而志不變
011_0714_c_14L然則國有死節之人亦有猶於此也歟
011_0714_c_15L以松栢之淸雅高節與草木雜生
011_0714_c_16L則莫知能辨况於人乎以人品言之
011_0714_c_17L則上以爲君下以爲臣上之使下
011_0714_c_18L心腹之運手足下之事上猶手足之衛
011_0714_c_19L心腹君臣上下各勤其任無墮其職
011_0714_c_20L乃安其身若上不信下下不親上
011_0714_c_21L用諂諛遠疎忠賢則雖有崇文道德
011_0714_c_22L如周程張朱用兵最精如子牙召穆
011_0714_c_23L運籌帷幄如子房孔明與人相似
011_0714_c_24L不能用之空老草野至於危難之時

011_0715_a_01L비로소 재주가 있고 없음을 알아주어서, 그를 등용할 만하고 그와 일을 도모할 만하며 그와 함께할 만하여 공을 이룬다면, 어찌 한이 있겠는가. 그런데 대개 시운이라는 것은 항상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니니, 강태공(呂尙)28)이 위수渭水에서 고기를 잡기 전에는 빈궁했고, 한신韓信29)이 회성淮城에서 낚시한 후에 영달했다. 위와 같이 세상에 보기 드문 영웅들은 모두 그 때를 만나 세상에 그 재능을 드러냈다. 현인賢人을 알아보고서 등용을 하게 되는 것은, 마치 날이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큰 절개를 보이는 것과 같다. 다음과 같이 찬하노라.

偃蹇特立     우뚝하게 솟아오른 모습은
活畫天然     천연의 살아 있는 그림 같네
棟樑可作     마룻대나 들보로 쓸 만하니
霜雪愈堅     눈서리에 더더욱 굳세구나
白摧龍虎     흰 빛으로 용과 범을 누르고
黑鎻雲烟     검은 빛은 구름 안개 얽었네
閱歲不變     해가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은
節侔忠賢     충현의 큰 절개를 본받았네
둘, 국화(二菊)
무릇 국화라는 것은, 그 성질이 추위를 견디고 바람을 이겨내며 서리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 맛은 달고 향기로워서 입에 들어가면 세속의 욕심을 잊게 한다. 그 자줏빛 꽃대와 옥빛 꽃봉오리는 죽을지언정 떨어져 날리지 않으니, 봄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것과는 다름이 있다. 이렇듯 여느 꽃과는 달리 특별히 뛰어나니 꽃 중의 은자(花中隱)라 할 만하다. 비록 여느 꽃들과 섞여 있어도 그 절개는 맑고 높아서 스스로 은자가 되니, 마치 사람이 번화한 저잣거리에 있으면서 속세를 초월하여 숨어 있는 것과 같다. 옛날에 소보巢父30)는 영빈頴濱에 숨었고, 개자추(介推)31)는 면산綿山에 숨었으며, 엄자릉(嚴光)32)은 부춘富春에 숨었고, 강태공(呂尙)은 위빈渭濵에 숨었으니, 이는 모두 크고 훌륭한 은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높은 뜻과 큰 절개는 열렬히 더욱 빛나서 숨었으나 더욱 드러나니, 또한 국화가 숨어 있으나 스스로 드러나는 것과 같다.
혹자가 말하기를 “무릇 꽃이 봄에 피는 것은, 만물의 본성상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국화도 역시 꽃인데 봄에 피지 않고 가을에 이르러서야 피니, 어찌 만물의 본성이 지닌 당연한 이치를 거스른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솔개가 위로 날아오르고 물고기가 아래로 잠기는 것은 모두 만물의 타고난 본성을 각기 따른 것입니다. 봄꽃과 가을 국화가 어찌 그 만물의 본성을 따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011_0715_a_01L方知才不才而可用之可謀之可與之
011_0715_a_02L而功成有何恨乎盖時非其時也
011_0715_a_03L呂尙漁於渭水前窮韓信釣於淮城後
011_0715_a_04L如上不世之雄皆遇其時而現
011_0715_a_05L知賢人之見用猶松栢之歲寒然後
011_0715_a_06L大節也賛曰

011_0715_a_07L偃蹇特立活畫天然棟樑可作

011_0715_a_08L霜雪愈堅白摧龍虎黑鎻雲烟

011_0715_a_09L閱歲不變節侔忠賢

011_0715_a_10L

011_0715_a_11L二菊

011_0715_a_12L
蓋菊者其性耐寒凌風傲霜也其味
011_0715_a_13L甘香入唇忘利也其紫蔕玉蘂抵死
011_0715_a_14L不飛有異於春花之早華而夕殘離衆
011_0715_a_15L花而特秀可謂花中隱也雖處衆花
011_0715_a_16L而其節淸高自爾爲隱猶人之處於城
011_0715_a_17L市而大隱者也昔巢父隱於頴濱介推
011_0715_a_18L隱於綿山嚴光隱於富春呂尙隱於渭
011_0715_a_19L此皆隱之大者而其高義大節
011_0715_a_20L烈彌光惟隱而愈現亦猶菊之隱而自
011_0715_a_21L露也或云凡花之發春物性自然之理
011_0715_a_22L菊亦花而春以未發至秋以發
011_0715_a_23L不違物性之理耶鳶飛魚潜皆物性
011_0715_a_24L自然之理也春花秋菊豈非物性耶

011_0715_b_01L혹 근거가 될 만한 예를 든다면, 굴원屈原은 ‘가을 국화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먹네’33)라고 하였고, 도잠陶潜은 ‘가을 국화를 동쪽 울타리에서 캐네’34)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가을 국화라는 말은 들은 적은 있으나 봄에 국화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하니 본성을 따르고 이치를 따르는 것이 유독 국화만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한 송이 국화가 한쪽 구석에 피어 있는데, 앙상한 줄기가 높다랗게 뻗어 있고, 황금빛 꽃봉오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하며, 향기가 사방에 퍼진 듯하다. 비와 이슬의 은택을 빌리지 않아도 해가 바뀌도록 쇠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상서로운 새 한 쌍이 있는데, 한 마리는 꽃 가운데 앉아서 올려다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입에 벌을 물고 날아서 내려온다. 이 두 마리 새는 서로 바라보면서 말은 있어도 소리는 없는 듯하다. 위에서 꽃을 따는데, 벌떼는 그것도 모르고 먹이를 머금고 향기를 탐하며 서로 다투고 있으니,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 경계가 될 만하다. 다음과 같이 찬하노라.

靑莖紫蒂     푸른 줄기와 자줏빛 꽃받침
金盞玉臺     금빛 술잔과 옥빛 잔대 같구나
當春不發     봄이 와도 꽃피우지 않다가
傲霜特開     찬 서리 이겨내고 우뚝 피었네
憐屈子飡     굴원이 먹은 것은 애달프고
宜陶令盃     도잠이 잔을 든 것 마땅하네
愛其節操     그 절개와 지조를 사랑하여
毫上化來     붓끝에서 그대로 표현됐네
셋, 매화(三梅)
하늘이 만물을 냄에 성性을 주고 각기 기질氣質을 내려 주지 않음이 없으니, 가지런할 수 없다. 이로써 사람은 군자君子와 소인小人같이 뛰어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구별이 있고, 나무는 동량으로 쓰일 재목과 구부러진 나무같이 크게 쓰일 재목과 쓰임이 없는 재목의 다름이 있다. 그리고 물은 하해河海와 웅덩이(科坎)같이 깊고 얕음의 구분이 있고, 산은 곤륜崑崘35)과 악령嶽嶺같이 평평하고 높이 솟음의 등급이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서 감히 한 가닥의 어그러짐 없이 각기 그 본분을 지킨다. 그러하기 때문에 사람은 장상將相에 이르고, 나무는 동량棟樑에 이르며, 물은 하해河海에 이르고, 산은 곤륜에 이르며, 꽃은 매화梅花에 이르는 것이다.
비록 꽃에는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의 자연색이 있지만, 모두 하루아침에 활짝 피었다가 갑자기 시들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철심석장鐵心石腸36)과 같은 지조를 우뚝하게 홀로 지니면서 봄소식을 무색하게 하는 것은 오직 매화뿐이다.

011_0715_b_01L抑有可據者屈原飡秋菊之落英陶潜
011_0715_b_02L採秋菊於東籬以此觀之只聞有秋菊
011_0715_b_03L之說而未聞春有菊也然則循性而循
011_0715_b_04L理者惟菊也哉有一菊叢生于一隅
011_0715_b_05L瘦莖高出金苞將綻香聞四隣而不借
011_0715_b_06L雨露之恩終歲不衰也中有祥禽一雙
011_0715_b_07L一則叢中坐仰一則含蜂飛下兩禽相
011_0715_b_08L若有語而無聲上有採花羣蜂不
011_0715_b_09L知含食偸香爭先亦可戒夫貪夫賛曰

011_0715_b_10L靑莖紫蒂金盞玉臺當春不發

011_0715_b_11L傲霜特開憐屈子飡宜陶令盃

011_0715_b_12L愛其節操毫上化來

011_0715_b_13L

011_0715_b_14L三梅

011_0715_b_15L
天之生物也莫不與之以性而氣質之
011_0715_b_16L有不能齊是以人有君子小人賢不
011_0715_b_17L肖之殊木有棟樑屈曲材不材之異
011_0715_b_18L有河海科坎淺深之分山有崑崘嶽嶺
011_0715_b_19L平高之等皆賦於天而莫敢一髮之爽
011_0715_b_20L而各守其分也然則人以至將相木以
011_0715_b_21L至棟樑水以至河海山以至崑崙
011_0715_b_22L以至於梅花也哉雖花有靑黃赤白自
011_0715_b_23L然之色而皆一朝繁華倏爾自落
011_0715_b_24L其鐵心石腸魁然獨存春信無違者

011_0715_c_01L그러므로 군자다운 사람들 또한 뜰에 심는 과실수로 매화를 택했던 것이니, 대개 군자가 매화를 기르는 것도 또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검은 매화나무(墨梅)37) 한 그루를 얻었는데, 그 모습이 예스럽고 기이하면서도 속이 텅 비어 있는 듯하였다. 나무의 무늬는 마치 땅에 서려 있는 용(盤龍)이 꿈틀대면서 올라가 구름을 헤치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것 같아서 보는 사람마다 놀라워했다. 혹 두드려서 소리를 들으면 흡사 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혹 어루만지거나 긁으면 옥이나 얼음과 같이 단단하고 고결한 감촉이 느껴졌다. 생생하여서 병이 없어 보였으니, 바람이나 서리와 같은 어려움을 오랜 세월 견뎠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가지 하나가 높이 뻗어 나왔는데 옥 같은 뺨에 맑은 향을 머금고서 유령庾令38)의 봄을 거듭 되돌리나, 한 모퉁이에 쓸쓸히 떨어져 있어 잡초가 무성한 채로 관리가 되지 않아서 임포林逋39)의 솜씨를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하지만 나도 또한 매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뿌리가 드러난 것은 내가 흙을 돋워 주었고, 축대가 무너진 것은 내가 쌓아서 고쳐 주었으며, 잡초가 무성한 것은 내가 뽑아 주었고, 먼지가 수북이 쌓인 것은 내가 쓸어 주었으니, 어찌 황폐한 채로 둘 수 있겠으며 먼지가 쌓인 채로 둘 수 있겠는가.
손님이 말하기를 “그대가 뿌리를 돋우고 축대를 보수하며 잡초를 제거하고 먼지를 쓸어 준 것은 매화를 기르는 것에 솜씨가 있다고 할 만하지만, 매화를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뿌리를 돋운 것은 나의 도의 근원(道源)을 북돋운 것이며, 무너진 것을 보수한 것은 나의 과실過失을 고친 것이며, 무성한 잡초를 제거한 것은 나의 탐욕을 제거한 것이고, 먼지를 쓸어 버린 것은 내 마음(靈臺)을 비질한 것입니다. 마음은 매화와 같이 견고하고 뜻은 매화와 같이 청결하며 믿음은 매화와 같이 굳건하고 기운은 매화와 같이 건실하니, 어찌 헛되이 매화를 기른 것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손님이 그렇다고 말하며 물러갔다. 다음과 같이 찬하노라.

不借雨露     비와 이슬 아무런 도움 없이
畫幅受出     그림 속에 그대로 담았구나
鐵心石腸     쇠심장과 돌창자의 지조에
氷脈瓊質     얼음의 옥의 바탕 가졌구나
艶態無雙     고운 자태 견줄 것이 없고
淸香第一     청량한 향기는 제일이네
風不飄零     바람에도 시들지 않으니
春光滿室     방 안 가득 봄빛이 비추네
동화사 임자 갑계40) 서문(桐華寺壬子甲禊序)
때는 무인戊寅년(1878) 3월(姑洗)41) 4일, 전前 승통僧統 명 공明公께서 찾아와 말하길

011_0715_c_01L惟梅也是故君子人亦多樹之以爲庭
011_0715_c_02L實焉蓋君子之取養亦有所由也
011_0715_c_03L得墨梅一株其査古怪心虛體紋如盤
011_0715_c_04L龍叙屈披雲上天而視之駭矚或扣
011_0715_c_05L而聆之宛然有聲或撫而爪之玉骨
011_0715_c_06L氷脈生生無病始覺風霜閱歲之久矣
011_0715_c_07L一枝高出玉脥淸香重回庾令之春
011_0715_c_08L荒落一隅蕪而不治恨不遇林逋之手
011_0715_c_09L然吾亦愛梅者也根之露者吾得以培
011_0715_c_10L築之毁者吾得以補之草之蕪者
011_0715_c_11L吾得以除之塵之埋者吾得以掃之
011_0715_c_12L豈可荒蕪乎豈可埋塵乎客曰爾根
011_0715_c_13L培築補草除塵掃可謂工於養而非
011_0715_c_14L其愛也余曰不然培其根培吾道源
011_0715_c_15L補其毁補吾過失除其蕪除吾貪汚
011_0715_c_16L掃其塵掃吾靈臺心堅如梅志潔如
011_0715_c_17L信守如梅氣健如梅豈徒養梅耶
011_0715_c_18L客唯唯而退賛曰

011_0715_c_19L不借雨露畫幅受出鐵心石腸

011_0715_c_20L氷脈瓊質艶態無雙淸香第一

011_0715_c_21L風不飄零春光滿室

011_0715_c_22L

011_0715_c_23L桐華寺壬子甲禊序

011_0715_c_24L
歲戊寅姑洗之月上巳之翌日前僧統

011_0716_a_01L“동화사(桐華)는 교남嶠南42) 70주州에서 가장 으뜸가는 사찰(首刹)입니다. 그래서 사찰에 들어가는 재정(需用)도 다른 절의 배나 됩니다. 이 때문에 사찰과 승려들의 상황이 점차 쇠잔해져서 위기일발의 상황을 맞기도 하였으나, 계속해서 사찰을 유지하고 불법을 보존해 왔던 것은 전적으로 갑계甲稧와 만일회(萬一)의 후원 덕분이었습니다. 지금 임자壬子년(1852)에 태어난 동갑들이 계를 맺어, 경오庚午년(1870)에서 정축丁丑년(1877)까지 기금을 모았는데, 그 사이에 모아서 불린 돈이 거의 천금千金에 이르렀습니다. 그 돈으로 논(漑田)43) 10마지기(斗)44)의 땅을 사서 사찰에 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땅에서 매년마다 곡식이 생산되어, 절의 재정도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계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을 굳게 먹고 애썼는가를 마침내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하니 부디 한마디 말씀으로라도 그들의 공덕(功)을 드러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길 “여러분들의 공덕은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불경(經)에는 ‘분별심(住相)45)이 없는 마음으로 행한 공덕功德이 가장 큰 것이다’라고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여기에 기록하려고 하는 것은 도리어 분별심에 의해 행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도 그 공덕을 세상에 드러내길 원하는 것은 어찌하여 그런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공公이 말하길 “갑계甲稧의 의미는 아주 큰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 중에도 동갑(甲)인 사람들이 있다면, 후대 사람 중에도 동갑인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동갑인 사람들이 서로 계를 맺고 모이는 것은 결국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니, 되돌아오는 동갑의 해는 없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동갑의 해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이 계禊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동갑의 해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계 역시도 사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사찰이 오래도록 융성할 것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계에 참여한 여러 사람의 공덕이 어찌 없어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도저히 이 글에 대한 부탁을 사양할 수 없어서 마침내 그 일의 대략을 서술하고, 계禊를 만드는 데 참여한 여러 사람의 성씨와 이름을 판板에 차례로 기술하여 이 분들의 공덕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문계46) 서문(門禊序)
어느 날 여러 벗(諸益)들이 함께 찾아와 말하기를 “화상和尙께서는 가는 곳마다 배움을 베풀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문도門徒를 많이 배출하였고, 다른 교우들(緖餘)도 훈도薰陶47)하여 그중에 불도를 이룬 자(成人)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모두 스승에게 교육을 받은 제자들로서, 스승의 은혜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잊지 않고자 합니다.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은 그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만약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스승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은 그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려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징표입니다. 달이 있어야 달빛이 있듯

011_0716_a_01L明公進言曰桐華卽嶠南七十州之首
011_0716_a_02L刹也需用之度比他有倍由是而寺
011_0716_a_03L僧之殘敗危如一髮而綿綿支保者
011_0716_a_04L賴於甲稧萬一之助也今契壬子甲
011_0716_a_05L庚午至丁丑其間所殖幾至千金
011_0716_a_06L漑田十斗地而納寺年年出穀需用不
011_0716_a_07L諸人矢心之勤勞終以深知也
011_0716_a_08L而願乞一言以著其功余曰諸人之功
011_0716_a_09L美則美矣經不云乎無住相功德最大
011_0716_a_10L今此有記反爲住相豈其然乎公曰
011_0716_a_11L甲稧之意甚大今人當甲後人亦當甲
011_0716_a_12L甲甲相會終以復始甲不能盡矣
011_0716_a_13L若有盡此禊乃盡甲無盡故禊亦不
011_0716_a_14L能盡此禊不盡而寺之長興推此可
011_0716_a_15L知也如是而諸人之功豈可泯然乎
011_0716_a_16L余辭之不得遂爲略叙列書設禊與諸
011_0716_a_17L人氏名于板上以爲不泯焉

011_0716_a_18L

011_0716_a_19L門禊序

011_0716_a_20L
一日諸益偕進曰和尙到處肆學敎人
011_0716_a_21L不倦濟濟門徒薰陶緖餘其成人者
011_0716_a_22L多矣吾儕在敎育之下將服膺而不忘
011_0716_a_23L爲報師恩其在思感若無思感
011_0716_a_24L何以報也然則思者感報之標也

011_0716_b_01L징표가 있어야 그 그림자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자에게는 그 은혜를 생각할 자취(跡)가 없으니, 스승의 은혜를 생각할 수 있는 징표와 자취를 만들어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징표는 쇠로 만든 것입니까, 돌로 만든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벗들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계契를 맺어 스승님의 은혜를 나타내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마음으로 맺는 계(心契)입니까, 재물로 맺는 계(財契)입니까. 마음으로 맺는 계라면 저도 찬성하지만 재물로 맺는 계라면 저는 찬성하지 못합니다. 재물이란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털이 좋은 여우와 무늬가 아름다운 표범은 바위산 굴에 엎드리고 울창한 산에 웅크리며 삽니다. 배가 주리고 목이 말라도 야금야금 먹이를 먹고 조심스럽게 물을 핥습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되도록 숨어 지내며 사람들이 다니는 강이나 호수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물과 덫의 재앙을 피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어찌 여우와 표범의 잘못이겠습니까. 그 재앙이 되는 것은 그 가죽 때문입니다.48) 그러므로 저는 재물로 맺는 계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벗들이 말하길 “우리 또한 재물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것임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재물로 맺는 계契가 아니라, 의로움(義)으로 맺는 계입니다. 여기서 말한 의로움이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충심(忠)으로 하고, 어버이를 섬기는 것은 효도(孝)로 하며, 다른 사람을 상대할 때는 공손함(恭)으로 하고, 벗을 사귐에는 믿음(信)으로 하며, 스스로 처신할 때는 도리에 순종(順)하고, 마음의 보존은 공평함(平)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禊라는 것은 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장황하게 의견을 내세울 것 없이 의로움과 합치되어서 ‘의계義禊’라고 부르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익을 좇는 물결이 하늘에까지 넘쳐 나는 이때에 재물에 뜻을 두지 않고 의로움에 뜻을 두어서 이름을 ‘의계’라고 한 것은 아마도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징표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연수 서문(蓮壽序)
얼마 전에 건운健運 존사尊師께서 염주를 걸고 석장을 짚으며 친히 우리 절을 찾아 주셔서 서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존사께서는 체구가 건장하고 몸가짐에는 위엄이 있었는데, 다만 제대로 본 것은 아니고 어렴풋이 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존사의 얼굴 생김새를 살펴보니, 마치 거울 속의 형상과 물속의 달에 견줄 정도로 환하게 빛이 났습니다. 하지만 끝내 어렴풋이 처음 본 처지라서 그 진면목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존사의 진면목을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다만 존사의 그 높은 이름을 듣고 항상 만나 볼 때를 바랐었는데, 부처님께서 저의 뜻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날에 아직 만난 적도 없던 옛사람이 ‘마음이 서로 통하면 산과 강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했던 말이 사실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건운 존사의 말씀을 들어 보면 품고 있던 자신의 생각을 다 쏟아내셨고,

011_0716_b_01L月有光有標有影思者無跡欲爲標
011_0716_b_02L跡而不忘也余曰不忘之標金耶石耶
011_0716_b_03L諸益曰結契而標之然則心契
011_0716_b_04L財契乎心契則可矣而財契則未
011_0716_b_05L財者災也夫豊狐文豹伏於巖穴
011_0716_b_06L隱於山林飢渴飮啄俛仰隱約胥疏
011_0716_b_07L於江湖之上而猶不免於罔羅機辟之
011_0716_b_08L豈其有罪哉爲其灾者其皮也
011_0716_b_09L意不欲諸益曰吾亦非不知財者世之
011_0716_b_10L末也而所請者非財契而是義契也
011_0716_b_11L義者事君以忠事親以孝接人以恭
011_0716_b_12L友人以信處己以順存心以平禊者
011_0716_b_13L合也煩不立言合謂之義禊余喜然
011_0716_b_14L利波滔天之時不在財而在義
011_0716_b_15L爲義禊者庶幾感報之標也夫

011_0716_b_16L

011_0716_b_17L蓮壽序

011_0716_b_18L
日健運尊師荷珠飛錫踵門交拜
011_0716_b_19L梧儀容曾所未見而依稀熟視面目
011_0716_b_20L如鏡裏之形水中之月擬之終未的
011_0716_b_21L初見底處矣然則雖未及見眞而只聞
011_0716_b_22L其高名服膺時仰而神會意透於此
011_0716_b_23L日未相見之前人云心以相通山河不
011_0716_b_24L以阻隔始驗斯言也聽其言則盡出

011_0716_c_01L끊임없이 이어지는 열변은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으며, 거침없고 호탕한 말은 마치 강둑을 넘어 바다로 흘러드는 도도한 물결 같았습니다. 건운 존사의 시를 살펴보면 불경(貝葉)49)의 모든 책들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 없었고, 유가儒家의 경전과 역사에도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필체에 있어서도 추사秋史 김 상공金相公50)에게 배워 일가를 이루고, 현묘한 경지에 들어갔습니다. 건운 존사의 바랑(行槖)을 살펴보면 금강산(金剛)과 여러 명승지를 순례함에도 자루 하나만을 달랑 동여매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검소하였습니다. 건운 존사의 내력來歷을 살펴보면 존사는 월암月庵 화상和尙의 의발을 전해 받은(傳鉢)51) 고족高足 제자입니다.
월암 화상은 마음으로 불법을 깨달아 불성(性)을 완성하고,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眞宗)을 계승하였으며,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서도 산가지가 방에 가득 찰 정도로 많았습니다(化籌滿室).52) 그리고 화상께서 열반(乘西)53)하시던 저녁에는, 밝은 빛(光明)이 크게 뻗어 나와 밤이 마치 낮처럼 환하게 밝았고, 사리舍利를 남기어서 명승지에 봉안하였습니다. 화상께서 모든 사찰을 두루 깨우쳐 주신 것은 온 세상(八垓)54)이 모두 아는 것입니다.
건운 존사께서는 월암 화상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전해져 온 오묘한 선의 이치(禪理)를 대부분 통달하였으며, 또한 문자에 있어서도 모든 불경의 가르침을 꿰뚫어서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聖敎)을 드높이고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존사께서는 이전 현인들의 가르침을 잇고 다가올 학문의 길을 열어 주었으니, 어두운 길을 밝히는 등불이요 길 잃은 자에게는 나침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공덕이 또한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시詩로써 그 공덕을 표현하고 정情으로써 그 공덕을 말한다면, 건운健運은 존사의 당호堂號이고 연수蓮壽는 그 시호詩號입니다. 건운健運이란 천도天道가 굳세어 쉬지 않고 운행하는 이치를 의미합니다. 명안明眼과 거벽巨擘55) 들이 이미 건운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다 말했으므로 여기에 또 다른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수蓮壽’에 대해서는, 제가 이전에 ‘화엄해華嚴海56)에서 새롭게 캐내 얻은 것이 있다’고 말했듯이 어찌 둔하고 좁은 저의 견문만 가지고서 따로 말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연蓮은 천연 그대로의 청정함을 상징하는 벗으로 그 아름다움은 감상할 만한 것이고, 수壽는 오복五福의 으뜸으로 사람이 반드시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의 아름다움과 오래 사는 것을 얻고자 하는 바람에서 존사께서 호號를 삼았을까 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한 근거는 불경에 있는 ‘연화蓮花’라는 말과 부처님께 있는 ‘무량수無量壽’57) 때문입니다. 연蓮은 진흙에서 자라나나 그 본성은 항상 깨끗하고, 그 꽃이 피자마자 곧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연의 참모습(實相)을 그대로 말한 것입니다. 연의 참모습에는 헛된 거짓도 조금의 사사로운 욕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연을 접하는 것마다 모두 진불眞佛이기 때문에 곧 번뇌를 끊는 과보(無漏果)58)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지天地보다 앞서야 할 때는 그 앞서야 할 것을 앞세우고, 천지天地보다 뒤에 서야 할 때는

011_0716_c_01L機杼而娓娓無前浩浩如決河注海也
011_0716_c_02L觀其詩則貝葉諸書無不瀅徹而於
011_0716_c_03L儒家經史曲暢旁通而至於筆學秋史
011_0716_c_04L金相公而成其家入其妙矣探其行
011_0716_c_05L則金剛勝槩括囊無餘也靠其來
011_0716_c_06L則乃月庵和尙傳鉢高足也和尙心
011_0716_c_07L悟性成繼佛眞宗化籌滿室而乘西
011_0716_c_08L之夕大放光明夜如晝而生舍利
011_0716_c_09L安名勝而通喩諸刹八垓共知也
011_0716_c_10L師親炙薰陶槩達傳來勝妙禪理又透
011_0716_c_11L文字上窠臼闡揚聖敎繼前賢開來
011_0716_c_12L可謂昏衢之明燭迷途之指南
011_0716_c_13L功又何如哉詩以酬之情以言之
011_0716_c_14L健運其堂號也蓮壽其詩號也健運
011_0716_c_15L天道健運行不息之理也而明眼巨擘
011_0716_c_16L已爲盡說則不必疊床而蓮壽旣曰
011_0716_c_17L華嚴海中新得採取云則豈可抱拙而
011_0716_c_18L無言蓮天然淨友其美可賞壽五福
011_0716_c_19L之元人必所欲以若所美欲其所欲
011_0716_c_20L而取以爲號耶曰否吾所取者經有
011_0716_c_21L蓮花佛有無量壽蓮者生於淤泥
011_0716_c_22L其性常淨方花卽果此實相之謂也
011_0716_c_23L實相者無虛僞一毫私欲而觸物皆眞
011_0716_c_24L佛則無漏果成先天地而先其先後天

011_0717_a_01L그 뒤에 둘 것을 뒤에 두니, 이런 연의 참모습을 사모하고 공경하는 마음에서 그 뜻을 취하여 호號로 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연수蓮壽의 뜻은 지금의 글 짓는 사람(詞人)들이 쓰는 국사菊史나 죽사竹史 같은 부류와는 그 의미가 크게 다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연蓮이라는 것은 각각의 연꽃들이 맑고 깨끗하여서 빗방울이 때려도 그 깨끗함이 변치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연잎들도 둥글게 펼쳐 있어서 물이 떨어져도 둥둥 떠 있으니 그 모습이 우뚝 솟아 당당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물에서 자라났으나 물을 떠나 있으니 마치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도 그 지키는 것과 그 행하는 것이 세상 사람보다 뛰어나서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처럼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연蓮이란 바로 연꽃(花)의 실상(實)이니, 연꽃의 형상(花)을 버리고 그 실상(實)을 취한 것입니다. 실상(實)이란 현상(事)에 내재해 있는 이치(理)이니, 그 현상을 버리고 그 이치를 취한 것입니다. 이치(理)는 하늘의 운행 원리(天)요 실상(實)은 우리 믿음의 요체(信)입니다. 이치(理)를 미루어 체득(體)하면 실상(實)과 천도(天)가 화합하고, 이치(理)가 사물과 함께 베풀어지며, 천하의 일에 대해 믿음을 얻게 되어서, 가는 곳마다 공덕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마땅히 무량수無量壽부처님59)을 만나게 되고 연꽃(蓮花)을 밟아서, 함께 자재自在60)의 상태에서 노닐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뜻을 흠모하여 이렇게 미리 존사를 위해 축하를 드립니다.
표충사 승련암 연수각기表忠寺勝蓮庵蓮壽閣記
암자를 ‘연蓮’이라 이름 지은 것은, 그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계환戒環61) 법사法師는 『묘법연화경해(解蓮疏)』에서 말하기를 “연꽃은 꽃이 피자마자 열매를 맺고, 더러운 곳에 터를 잡고 있으나 항상 깨끗함을 유지한다.”라고 하였고, 염계濂溪62) 선생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말하기를 “속은 훤히 통해 있고 겉은 곧으며 어지럽게 덩굴지거나 가지를 뻗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모두 연蓮의 실제 모습을 말한 것이다. 불가(釋)에서 연을 마음에 비유한 것과 유가(儒)에서 연을 군자君子에 비유한 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지금이라도 성문聖門의 군자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면 성인(聖)의 경지를 이룰 수 있고, 불문佛門의 군자도 그 마음을 닦으면 부처(佛)를 이룰 수 있다. 그 이름이 언급되어 널리 퍼지는 것과 연꽃의 향기가 멀어질수록 더욱 맑은 것에 대해 어찌 같은 날에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건운健運 상인上人은 승려가 된 이래로 불심을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래서 포단蒲團63)에 앉아 좌선을 하고 강론에서는 『묘법연화경(蓮經)』을 가르쳤는데, 함께 수행한 자들 가운데 단연코 빼어나서, 우뚝 솟아 돋보이며 깨끗하면서도 꼿꼿하였다.64) 지난 계미癸未년(1883) 봄에 승련암勝蓮庵 서북쪽 모퉁이에 작은 암자(小室)를 지었는데

011_0717_a_01L地而後其後欽羨敬慕取以爲號
011_0717_a_02L蓮壽之意如今詞人之菊史竹史之類
011_0717_a_03L大而遠矣蓮之爲物花花潔淨雨打
011_0717_a_04L而不變葉葉敷圓水灑而不着嵬嵬
011_0717_a_05L軒軒出於水而離於水如人之處於世
011_0717_a_06L而其所守其所行卓卓於人而異於
011_0717_a_07L世也蓮則花之實也去其花而取其實
011_0717_a_08L實者事之理也除其事而摭其理
011_0717_a_09L理者天也實者信也推理而體
011_0717_a_10L實與天合理與物施信於天下事
011_0717_a_11L無往而不可當遇無量壽踏蓮花
011_0717_a_12L同遊自在矣余欽其意而預爲之賀

011_0717_a_13L

011_0717_a_14L表忠寺勝蓮庵蓮壽閣記

011_0717_a_15L
庵以蓮名誌其心也戒環法師解蓮
011_0717_a_16L疏曰方花卽果處染常淨濂溪先生
011_0717_a_17L愛蓮說曰中通外直不蔓不枝皆謂
011_0717_a_18L蓮之實也釋所以喩心也者儒所以比
011_0717_a_19L君子者豈偶然㢤今以聖門君子正
011_0717_a_20L其心則可以成聖佛門君子修其心
011_0717_a_21L則可以作佛名稱普聞與香遠益淸
011_0717_a_22L可同日而語㢤健運上人自被緇以來
011_0717_a_23L期以悟心坐蒲團講蓮經拔乎萃者
011_0717_a_24L亭亭淨植然也去癸未春築小室于勝

011_0717_b_01L아주 산뜻하고 완연하였다. 암자 앞에 세운 깃발(幢)은 한 가닥 터럭처럼 보잘것없고 암자의 크기도 사방 열 개의 홀(十笏)65)을 잇댄 것처럼 작았지만, 지은 것에 법도가 있었고 살펴보아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벽에는 불경의 글(法書)과 뛰어난 그림(名畫) 그리고 대가(大手)의 시부詩賦를 걸어 놓았고, 서가에는 경사經史의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사이의 공간은 낮에는 좌선을 할 만하였고, 밤에는 잠을 잘 만하였다. 암자의 뒤편에는 하나의 정원을 만들어 대나무를 가꾸었고 암자 앞에는 드문드문 몇 그루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와 대나무는 모두 군자의 절개를 나타낸다. 주인主人이 스스로 호號를 연수蓮壽라 했고, 암자 또한 연蓮이라 명명했으니, 스님의 마음을 대개 여기에서 엿볼 수 있다.
아! 그 법사(法傅)께서 창건한 선원禪院은 승련勝蓮을 편액으로 하였고, 그 법제자(法嗣)가 지은 현당玄堂66)은 연수蓮壽를 편액으로 하였다. 승련암과 연수각이 날개를 펴고 날듯이 나란하니, 영원히 존재하고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깊고 한적한 곳에 머무르며 풍물을 감상하니, 스승과 상좌의 마음이 같은 것이다. 세상에서 연蓮을 사랑하는 군자 중 누군들 감탄하지 않겠는가.
그 요청을 받고 그 마음이 애틋하여 이에 이 글을 짓는다.
오도막기悟道幕記
불도佛道란, 그 시작은 화엄華嚴을 설하여 만법萬法을 통섭하여 일심一心을 밝히는 것을 도道로 삼는 것이요, 그 끝은 법화法華를 말하여 삼거三車67)를 모아 일승一乘68)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道로 삼는 것이다. 중간에 흩어지면 천 가지 경經과 만 가지 논論69)이 되나, 이 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가르침의 바다(敎海)에서 언설言說의 파도를 일으키기만 하면 하늘 한가운데 뜬 밝은 달이 물결 가운데 떨어지고 구름은 걷히고 하늘은 맑게 갠다. 이때 삼거를 타고 만법의 동산(萬法苑)을 노닐다가 일심一心을 깨닫게 되고 가장 높은 수레(最上乘)에 올라앉아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닌 최고의 법문(不二法門)70)을 펼쳐서 중생衆生을 무생無生71)의 경지로 제도하니, 이것은 도道를 깨달은 자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구담瞿曇72)은 곧 이 도道를 깨닫기를 원하여 6년 동안 설산(雪嶺)에 머물며 띠 풀 위에 앉아 먹고 자며 생활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움막에 머무르며 도를 깨달은 것이다. 달마達摩 역시 이 도를 전하길 원하여, 9년 동안 숲속의 동굴에서 벽을 향하여 앉아 참선을 하고 짐새의 독을 마시듯(飮鴆)73) 고통 속에서 수행을 하였으니, 이것은 움막에 머무르며 도道를 전한 것이다. 부처와 조사(佛祖)들도 이미 이와 같이 했는데, 부처와 조사들을 배우려는 자들이

011_0717_b_01L蓮庵之西北隅極鮮明矣幢出一毫
011_0717_b_02L方容十笏制之有度觀之無斁揭法
011_0717_b_03L書名畫大手詩賦滿架經史于其間
011_0717_b_04L晝閒可坐夜閒可睡後而一園脩竹
011_0717_b_05L前而數株疎松松竹皆君子節也主人
011_0717_b_06L自號蓮壽庵又命蓮師之心蓋見于
011_0717_b_07L此矣其法傅創禪院眉以勝蓮
011_0717_b_08L法嗣修玄堂目以蓮壽翬飛兩閣
011_0717_b_09L存不朽棲幽覽物師佐同心世之愛
011_0717_b_10L蓮君子孰不歎尙見其請愛其心
011_0717_b_11L之記

011_0717_b_12L

011_0717_b_13L悟道幕記

011_0717_b_14L
佛之道始焉而說華嚴以統萬法明一
011_0717_b_15L心爲道終焉而談法華以會三車歸一
011_0717_b_16L乘爲道中散爲千經萬論而無非爲此
011_0717_b_17L道設也然但作敎海上言說波濤中天
011_0717_b_18L明月落在波心雲捲淸霄乘三車遊
011_0717_b_19L萬法苑悟一心而坐最上乘演終始不
011_0717_b_20L二法門度無生衆生是悟道者之所能
011_0717_b_21L瞿曇卽欲悟此道也六年雪嶺
011_0717_b_22L茆食庥是居幕而悟道也達摩卽欲傳
011_0717_b_23L此道也九歲林窟向壁飮鴆是居幕
011_0717_b_24L而傳道也佛祖旣如是學佛祖者

011_0717_c_01L어찌 움막에 머무르지 않고 도를 깨달을 수 있겠는가.
지금 건운健運 상인上人은 공부방(螢䆫)74)에 머물며 경서를 다 읽고, 사찰(鶴樹)75)에 몸을 두고서 몇 년 동안은 글 짓는(翰墨)76) 곳을 다니며 학문을 정밀하게 갈고 닦아 자유자재로 뜻대로 펼쳤고, 몇 곳에서는 강설講說하는 자리에 나아가 경전을 깊이 연구하여 대중을 가르쳤다. 불법의 깃발을 세워(建幢)77) 『화엄경(華嚴)』과 『법화경(法華)』을 강설하였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게으름이 없었다. 일심은 이미 밝아져서 만법이 저절로 통섭되고, 일승은 이미 돌아가서 삼거가 저절로 모이니, 법문法門의 종장宗匠78)들을 일으켰고 언설言說의 파도를 높이었다. 그리고 다만 그 언설의 파도 속에서 밝은 달을 건져 내서 배에 가득 채우고는 언덕 저편으로 옮기고는, 노래를 부르며 본분本分79)의 집안으로 돌아가 문자文字를 완전히 벗어나서 상두上頭80)에게 도를 전하니, 이것은 틀림없이 만년晩年의 좋은 생애인 것이다.
시원하게 뚫린 높은 곳에 집을 지으니, 한 칸 초가집(茅屋)은 바람이 반 칸이고 달이 반 칸이다. 팔방에는 모두 소나무가 창에 드리워져 있으며, 산이 사면을 둘러싸고, 물도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어떤 때는 책상을 대하고 불경을 보며, 어떤 때는 벽을 바라보고 마음을 관조한다. 경이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경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마음과 경이 섞여서 한 조각(一片)을 이룬다. 그러므로 부처(佛)의 지혜의 생명(慧命)81)을 이었고, 조사(祖)의 올바른 명맥(正脉)을 계승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시작도 이미 이와 같고 끝도 역시 이와 같으니 진실로 훌륭한 일이로다. 이것은 단지 시작은 있지 않음이 없으나 끝이 있는 사람이 드문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만약 시작은 부지런히 하나 끝이 게으르다면 『화엄경(華嚴)』을 강설하는 것은 누구이고 『법화경(法華)』을 풀이하는 것은 누구이겠는가. 이미 교문敎門에서 처음과 끝(始終)을 어기지 않았으니 선문禪門에서도 앞뒤의 걸음을 거의 어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날에 깨달음의 미소(㘞地一笑)82)가 폭죽爆竹 터지듯 나올 것이니, 움막에 머무르는 것이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오도막운

小閣深深日上遲  깊은 산속 작은 암자 해는 더디 떠오르고
塵緣斷了入禪時  번거로운 인연 끊고 선에 드는 때로구나
無窮蓮鋪咬餘葉  끊임없이 퍼진 연꽃 서로서로 깨우치고
不老松長說後枝  늙지 않은 큰 소나무 어린 가지 깨우치네
芳躅已還山與宿  아름다운 자취83)는 산에 와서 머물러도
高名難諱世相知  높은 명성 못 피하여 세상 사람 잘도 아네
蒲團講道吾方去  포단에서 도를 강설하고 나는 이제 떠나가니
異日叩門復有誰  다른 날 문 두드리면 다시 누가 있겠는가

011_0717_c_01L得不居幕而悟道也哉今健運上人
011_0717_c_02L罷螢䆫棲身鶴樹幾年翰墨之場
011_0717_c_03L硏而擅幾處講說之席潜究而鳴
011_0717_c_04L幢而說華嚴法華終始不怠一心旣明
011_0717_c_05L萬法自統一乘旣歸三車自會作法
011_0717_c_06L門宗匠尙言說波濤只撈波心明月
011_0717_c_07L滿船移岸咏歸本分家裏透出離文字
011_0717_c_08L消息上頭是晩年好箇生涯構幕爽塏
011_0717_c_09L一間茅屋風半間月半間八面松窻
011_0717_c_10L山四面水四面或對案而看經或面
011_0717_c_11L壁而觀心經不在心外心不在經外
011_0717_c_12L心與經混成一片可謂紹佛慧命
011_0717_c_13L祖正脉始旣如是終亦如是則誠善
011_0717_c_14L只恐靡不有初鮮克有終若始勤
011_0717_c_15L終怠則講華嚴者何人演法華者何人
011_0717_c_16L已不違敎門上始終則庶不違禪門上
011_0717_c_17L前後步矣爆竹他日㘞地一笑矣居幕
011_0717_c_18L豈不偉哉

011_0717_c_19L
011_0717_c_20L
悟道幕韻

011_0717_c_21L小閣深深日上遲塵緣斷了入禪時

011_0717_c_22L無窮蓮鋪咬餘葉不老松長說後枝

011_0717_c_23L芳躅已還山與宿高名難諱世相知

011_0717_c_24L蒲團講道吾方去異日叩門復有誰

011_0718_a_01L
파계사 명부전 시왕 개채 단확기把溪寺冥府殿十王改彩丹雘記
무릇 사람에게는 무언가를 잊지 않으려는 덕德이 있으니, 무언가를 마음에 새기고 잊지 않으려는 자는 장차 그것을 갚으려는 뜻을 갖게 된다. 그래서 죽간과 책(簡册)에 그것을 기록하고 항상 눈을 그것에 두게 되니, 이것은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징표이다. 이런 까닭으로 옛사람은 지난날 유람했던 땅에 정자를 지었고 항상 보이는 곳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니, 모두 이런 뜻이 있는 것이다.
사찰에 명부전冥府殿이 있는데 채색을 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존상尊像의 금박은 날아가고 단확丹雘84)의 채색은 변색되어서 사찰의 사람들이 탄식한 지 오래되었다. 무인戊寅년(1878) 겨울에 주실籌室85) 대운大雲 화상和尙이 사람들을 권면하고 신심을 일으키니, 시주가 시작되고 재물이 모여서 거의 천금千金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성스런 마음(誠心)들이 격동하여 중궁 전하中宮殿下86)께서 특별히 채색彩色을 명하시어, 이에 화사畫士가 와서 채색을 하게 되었다. 대운 화상은 몸으로는 백 가지 일로 수고하고, 마음으로는 천 가지 일을 처리하여, 수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 공사를 마무리 짓게 되었다.
존상(像)은 그물창(罘罳)87) 아래 우뚝하고 단확은 눈에 훤하게 드러나니, 퇴락한 법우法宇가 황홀하게도 홀연히 새것과 같이 되었다. 아! 만약 화상의 원력願力88)이 아니었다면 무엇으로 이것을 시작할 수 있었겠는가. 또 가령 화상의 원력이 있었더라도 여러 사람의 신심과 보시(信施)가 없었더라면 무엇으로 이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권하는 자의 원력과 보시하는 자의 성신誠信(신실한 믿음)은 천년이 흘러도 잊기 어려우나, 기록된 글이 없으면 후세에 지금의 사찰 모습을 보는 자들이 어찌 오늘날의 신실한 공덕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두서너 줄의 글로 간략히 서술하고, 방명芳名89)을 나란히 적어서 후인後人들이 이것을 보게 하노라. 훗날 지금의 모습을 보는 자들은 감동하여 이 일을 잊지 않고, 아마도 여러 사람의 공덕을 기리면서 보답할 것이며, 화상이 그동안에 한 노고도 알게 될 것이다. 때는 기묘(黃兎)(1879) 유두流頭90) 3일 전前이다.
연암기鷰巖記
대체로 사람이란 사물에 속하면서도 사물보다 귀하며, 사물보다 귀하면서도 사물을 주관한다. 천지의 만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그것을 구별하여 각기 그 이름을 부여하고

011_0718_a_01L把溪寺㝠府殿十王改彩丹雘記

011_0718_a_02L
夫人有不忘之德則銘心不忘者將報
011_0718_a_03L之意也記之於簡册常目在玆者
011_0718_a_04L忘之標也是故古人起亭於曾遊之地
011_0718_a_05L立木於常視之前皆此意也庵有冥府
011_0718_a_06L殿繪事已久尊像金飛丹雘彩渝
011_0718_a_07L人喫歎者久矣粤戊寅冬籌室大雲和
011_0718_a_08L勸人發信發化鳩財幾至千金
011_0718_a_09L誠心所激中宮殿下特下彩色仍邀
011_0718_a_10L畫士而繪事和尙身勞百務心運千當
011_0718_a_11L不數月而訖像嵬罘罳眼潑丹雘
011_0718_a_12L廢法宇恍然如新若非和尙之願
011_0718_a_13L何以營之設有和尙之願力且無
011_0718_a_14L諸人之信施則何以成之勸者之願力
011_0718_a_15L施者之誠信難忘於千載之下而無記
011_0718_a_16L示之文則後來視今者何由知今日之
011_0718_a_17L信功耶故略叙數行列書芳名以視
011_0718_a_18L後人之眼後來視今者感以不忘
011_0718_a_19L幾報諸人之功而知其和尙有勞於其
011_0718_a_20L間矣時則黃兎流頭前三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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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718_a_22L鷰巖記

011_0718_a_23L
蓋人者處於物而貴於物也貴於物而
011_0718_a_24L主於物也天地萬物惟人別之各名

011_0718_b_01L책에 기록하여 놓아서 영원히 드러내어 없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름이 없다면 천하 만물은 그것을 드러내기 어렵게 되고, 드러나지 못하면 잊기 쉽게 된다. 그러므로 사마온공(溫公)91)이 말하길 “이름이 없으면 드러낼 수 없다.(非名不著)”라고 하였던 것이니, 옛사람도 역시 기뻐하는 일이 있으면 곧 사물에 이름을 붙여서 잊지 않도록 표시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암巖은 바위(巖)이면 그냥 ‘바위’라고 하면 될 것인데, 굳이 ‘연암鷰巖(제비바위)’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어째서인가? 그것은 바로 그 바위가 적임자를 만나고 그 주인이 바위를 애지중지하여 그 형상과 비슷한 사물을 본떠서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위를 노래한 시(聲詩)가 널리 펴져서 당시 세상에 이름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이 바위가 이곳에 있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바위의 이름은 매우 많은데 이 바위의 이름을 특별히 제비(鷰)라고 하였으니, 그 뜻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제비(燕)라는 동물은 그 크기가 지극히 작아서 그 작은 모습을 보면 그 욕심이 적어진다. 그 자태가 매우 곱고 예뻐서 그 자태를 보면 그 행실이 고결해진다. 그 말소리는 속삭이듯 지저귀어 그 말을 들으면 그 말을 삼가게 된다. 그 행동은 매우 날렵하여 그 행동을 보면 그 일을 힘쓰게 된다. 봄바람 부는 3월에 주인이 가난해도 해마다 찾아오니 가히 신의가 있는 동물이라 할 만하다. 그 신의를 본받아서 처세하면 능히 그 신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로다. 이와 같이 주인이 이 바위에 대해 말해 주니 연암燕巖이라고 한 뜻을 거의 알겠다.
기이하구나, 이 바위여. 팔공산(八公)은 바로 곤륜산(崑崙)으로부터 멀리 뻗어 나온 산줄기(遠岐)이자 다른 산들의 종맥宗脉92)으로, 경중을 따져 보면 여느 산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러한 산에 자리하게 되었고 또한 ‘연암’이라는 아름다운 이름(芳名)도 얻었으니 이 산이 있는 한 이 바위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바위가 없어지지 않는 한, 이름도 또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기록하여 전하는 글이 없다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자의 입을 통해 후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전해지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록하여 후대의 사람에게 전하고, 후대의 사람도 역시 그 후대의 사람에게 전하게 해야 할 것이니, 연암이라는 이름을 어찌 한때에 전하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성전암93) 사잔등94)기聖殿庵沙盞燈記

011_0718_b_01L其名而書之於册著百世而不泯
011_0718_b_02L無名天下萬物難以著之也不著則
011_0718_b_03L易忘故溫公曰非名不著古人亦有
011_0718_b_04L卽以名物以示不忘也是巖也
011_0718_b_05L而爲巖可名爲鷰巖何也主得其人
011_0718_b_06L而主人愛之模其相而名之播之聲詩
011_0718_b_07L擅于當世而亦使後代莫不知其此巖
011_0718_b_08L之在此耶巖之名多般而特此巖之爲
011_0718_b_09L其意甚不可知也燕之爲物其形
011_0718_b_10L至微見其微而寡其慾也其態嬋娟
011_0718_b_11L見其態而潔其行也其語嬌𡛥聽其語
011_0718_b_12L而愼其語也其行甚疾見其行而勉其
011_0718_b_13L業也春風三月主人貧亦歸可謂有
011_0718_b_14L信之物也效其信而處世能守其信耶
011_0718_b_15L如此而主人謂此岩爲燕巖之意庶可
011_0718_b_16L知也異哉是巖八公卽崑崙之遠岐
011_0718_b_17L宗脉則其所輕重與山自別得在此山
011_0718_b_18L而又得芳名此山長在此巖不亡
011_0718_b_19L旣不亡名亦不泯然若無記傳之文
011_0718_b_20L恐或長泯於後人不見不聞者之口
011_0718_b_21L記而傳之于後人後人亦使後人傳之
011_0718_b_22L後人燕岩之名豈可一時傳之也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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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718_b_24L聖殿庵沙盞燈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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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산 중에 최고는 곤륜산崑崙山이요, 물 가운데 으뜸은 동해東海이며, 돌 가운데 아름다운 것은 옥玉이요, 비늘이 있는 동물 중 으뜸은 용이며, 단단한 껍질이 있는 것 중에 첫째는 거북이요, 새 중에 가장 큰 것은 붕새(鵬)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모두 그 무리 가운데 뛰어난 것들을 뽑아 모은 것들이다. 이 암자의 주변 환경을 보자면, 그 경계는 앞이 시원스럽게 트여 있고 샘물과 골짜기가 맑고 깊으며, 서쪽으로는 하늘과 접할 정도로 길게 뻗은 낙동강(洛江)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보현산(普賢)이 마주보며 이어져 있다. 앞에는 비슬산(琵瑟)의 최고봉이 있어서 푸른 산기운을 매일 공양하고, 신천新川95)과 금호강(琴湖)이 서로 이어져서 시원하고 힘찬 물줄기가 맑게 흐른다. 이 모든 것이 이 암자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크고 멋진 경관인데, 그 가운데 특별히 뛰어나고 기묘한 것은 바로 대방大房96)의 한편에 자리한 사기등잔(沙盞)이라 할 수 있다. 이 물건은 비록 매우 작고 하찮아 보이나, 기묘하면서 신령스러워서 앞에서 언급한 산과 바다나 거북과 용과 같이 출중한 것들보다 뒤지지 않는 물건이다.
옛날 석가모니부처님(瞿曇氏)97)께서 영취산(鷲山)98)에 머무시며 『법화경(法華)』을 설하셨는데, 눈썹 사이의 흰 터럭(白毫)에서 광명을 발하여서 동방의 만 팔천 국토를 비추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보시布施99)ㆍ지계持戒100) 등 갖가지의 수행을 행하면 널리 광명을 비추어 그를 감싸 주셨으며, 조상造像101)ㆍ영사營寺102) 등 갖가지 선을 행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광명으로 그를 거두어 주셨다. 오늘날 이러한 광명이 바로 등燈에 해당하니, 어떤 전생 때에 선을 행하고 도를 닦은 이가 있으면, 우리의 부처님께서 광명으로 당신을 굳게 지키시니, 이는 내외內外가 서로 통하여 밝은 것과 같다. 그리고 어떤 서원誓願으로 거듭 와서 등을 만들어 놓으면, 우러러보는 자로 하여금 드문 일을 보게 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공덕을 찬탄하게 하니, 혹은 찬탄하며 예배하게 하고 혹은 허물을 뉘우치고 믿음을 일으키게 하려고 그러한 것인가. 어두워 깨달음이 없는 자로 하여금 모두 깨닫게 하여 바른길을 보게 하려고 그러한 것인가. 이 등을 보는 자는 반야般若의 혜명慧命을 더욱 발하여 결국 큰 깨달음의 과보(大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기이하구나! 이 등은 오랫동안 사람을 교화하는 곳에 있었으니, 그 수가 어찌 억만 명뿐이겠는가.
풍기 명봉사 내원 서별당 창건 번와기豊基鳴鳳寺內院西別堂創建翻瓦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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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大於山崑崙宗於水東海美於石玉
011_0718_c_02L魁於鱗龍胄於介龜長於羽鵬如上
011_0718_c_03L之物皆出羣拔萃者也庵之界則境
011_0718_c_04L壤爽塏泉壑淸邃而西有接天之洛江
011_0718_c_05L東連絕對之普賢前有琵瑟最頂靑嵐
011_0718_c_06L之日供暎帶新川琴湖活潑之淸流
011_0718_c_07L此皆覽物者之一大壯觀而其中特出
011_0718_c_08L奇妙者惟大房面燈沙盞也此物雖微
011_0718_c_09L奇妙神明不左於上來山海龜龍出
011_0718_c_10L羣之物也昔瞿曇氏住鷲山而說法
011_0718_c_11L放眉間白毫光明照東方萬八千土
011_0718_c_12L若有人布施持戒種種修行者普以光
011_0718_c_13L明收之至於造像營寺種種行善者
011_0718_c_14L以光明攝之今此是燈有何宿時行善
011_0718_c_15L修行而吾佛欲以光明攝汝而如是內
011_0718_c_16L外通明耶有何誓願而重來作燈使
011_0718_c_17L瞻仰者見希有之事讚難思之功
011_0718_c_18L讃歎禮拜或悔過起信而然耶使冥者
011_0718_c_19L皆明示其正路而然耶見此燈者
011_0718_c_20L發般若慧命終成大果異哉此燈長
011_0718_c_21L在其所化人何啻億萬而已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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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718_c_23L豊基鳴鳳寺內院西別堂創建翻瓦
011_0718_c_2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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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때 용흥사龍興寺 익翼 법사法師가 정토원淨土院을 고쳐 짓고 기문을 지어 말하기를 “이 건물을 지어서 후학에게 길을 열겠노라.”라고 하였다. 대개 불교의 성쇠는 실로 사원의 흥폐에 말미암았으니, 진실로 정성스런 마음에서 우러나온 큰 원력과 염력을 두루 갖춘 자가 아니면 어찌 옛것을 고쳐서 새롭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명봉사(鳳寺)103)의 내원內院은 전대前代에 풍기군의 기묘하고 뛰어난 곳에 자리한 암자로, 소백산에서 남쪽으로 뻗는 산자락에 위치하며, 그 터는 넓게 트이고 깊고 그윽하다. 높게 솟은 범우와 길게 뻗은 누각은 해와 별을 빙빙 둘러쌀 만하고 바람과 비를 내려다볼 만하다. 무성한 나무와 총총하게 서 있는 바위로 큰 골짜기를 이루고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곳은 두 임금에 걸쳐 태실胎室이 봉안된 곳이며 정묘조(正祖)의 보묵寶墨104)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또한 국가를 위해 복을 빌고 천명을 받던 곳인데, 세월이 오래되어 기울고 무너져 다 쓰러진 것이 오래였다.
그리하여 청원靑猿105)(1884) 여름 환명幻溟 법사法師가 가장 뛰어난 교법(最上乘)을 수행하고, 선현의 자취를 이어서 후학에게 길을 열어 줄 뜻을 발하여서, 중수할 계획을 가지고 조趙 상국相國에게 청하였다. 상국도 또한 국가를 위해 복을 빌고 천명을 받던 도를 매우 간절히 믿어서 드디어 그 청을 받아들이고, 조정(物兒)으로부터 얼마쯤의 공사대금을 얻었다. 그리하여 서쪽 편에 조전祖殿106)과 별실別室을 지었는데, 종횡으로 몇 칸을 이루어서 마룻대와 추녀 끝이 서로 맞았다. 그 다음 해 가을에 범운梵雲 화상和尙이 또한 그 옛것을 새롭게 정비하여 완성하였고, 그 다음 해인 병술丙戌년(1886)에 곡루穀樓107)와 동서의 별당別堂을 지었는데, 곡루는 10칸이고 별당은 모두 6칸을 이루어서 마치 날개를 펼친 듯 나란하였다. 그리고 맑고 정갈하며 깊고 그윽하여 이곳에서 선정에 들 만하고, 이곳에 대중을 모이게 할 만하며, 이곳에서 법문을 욀 만하였으니, 거의 우리의 불교가 다시 부흥한 듯하였다.
이미 공사를 다 완성하여서 축하를 하였고, 축하를 하고 나서 마룻대에 글을 남긴다. 환명 대사와 범운 화상은 이 공사를 시작하고 관리를 맡았던 스님(別座)이니, 이처럼 중대한 공사를 감독한 공덕이 바다와 같이 큰 것을 받들어 생각하며 위와 같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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蓋唐時龍興寺翼法師修淨土院記之
011_0719_a_02L者曰誓葺玆宇以開來學蓋斯學之
011_0719_a_03L隆替實有由於寺院之廢興而苟不有
011_0719_a_04L誠心大願念力具足者庸詎能修舊而
011_0719_a_05L新之乎今此鳳寺之內院前代所置豊
011_0719_a_06L之奇勝也卽小白之南來一枝而其地
011_0719_a_07L曠如也奥如也崇宇延閣可以廻環
011_0719_a_08L日星臨瞰風雨茂樹叢石穹成洞谷
011_0719_a_09L蓊爲林麓而且兩朝胎室之所奉也
011_0719_a_10L廟朝寶墨之所藏也抑又爲國家祈福
011_0719_a_11L迓命之地而舊而頽圮漫漶者久矣
011_0719_a_12L靑猿夏有幻溟法師修最上乘發繼
011_0719_a_13L往蹟開後學之意爲措畫請于趙相
011_0719_a_14L相國亦懇懇於爲國家祈福迓命之
011_0719_a_15L遂遂其請而得物兒幾許繦爲祖
011_0719_a_16L殿別室於西偏縱幾楹橫幾楹棟宇
011_0719_a_17L相延其翌年秋梵雲和尙又翻其舊
011_0719_a_18L以完之又其翌年丙戌爲穀樓東西別
011_0719_a_19L樓十架堂俱六架翬如翼如淸灑
011_0719_a_20L幽邃可以入定於斯聚衆於斯誦法
011_0719_a_21L於斯庶幾斯學之復興而旣落而賀
011_0719_a_22L旣賀而書于棟幻溟大師梵雲和尙
011_0719_a_23L始修之別座奉念董役德海云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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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수도암 약사전 중수기星州修道庵藥師殿重修記
때는 무자戊子년(1888) 가을, 나는 청암사(靑巖)의 명진당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벽파碧波 존사尊師께서 계셨는데, 약사전藥師殿의 중수重修에 대한 기록들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시며 말하기를 “이곳은 신라의 옥룡자玉龍子108)께서 점지한 곳이며, 약사전도 또한 같은 시기에 창건한 것이니, 그 오랜 역사를 짐작할 만하나, 언제쯤 지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그 자리 잡은 터를 보자면, 뒤로는 짙푸른 산과 절벽이 수없이 겹쳐 있고 앞으로는 눈앞이 시원하게 트여 있으며 기수(祗樹) 나무109)와 패다라 꽃(貝花)이 피어 있고 흐린 구름(曇雲)과 지혜로운 달(慧月)이 떠 있으니, 진실로 우리나라의 명승지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비와 바람이 날마다 찾아와 침범을 하고, 칼 같은 서리와 화살 같은 별똥이 때를 틈타 번갈아 공격하니, 서까래가 부러지고 기와가 풀어지며 단청이 변색되고 회칠이 벗겨져 거의 쓰러질 지경에 이르러서,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탄식하며 슬퍼하였습니다. 본 고을에 사는 배 공裵公, 함자가 우홍遇鴻이라는 분이 사재를 털어 200꿰미(緡)를 내놓고는 벽허碧虛 상인上人에게 그 공사를 맡겼습니다. 썩은 것은 새롭게 만들고 부러진 것은 고쳐 나가니, 한 달도 되기 전에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바람 같은 자귀(風斤)110)와 달 같은 도끼(月斧)111)가 앞다투어 반수般倕112)의 공을 아뢰었고, 화려하게 채색한 마룻대와 아름답게 조각한 들보는 드디어 윤환侖奐113)의 규모를 이루었으니, 공의 마음에 어찌 다른 바람이 있었겠습니까. 빈도貧徒가 감동하여 잊지 못할 뿐이니, 부디 한마디 말씀을 더하여 기문을 지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답하여 말하길 “그렇다면 그 공덕을 기록할까요? 아니면 그 경치를 기록할까요? 경치라면 그곳을 유람하는 사람들의 눈에 보일 것이고, 공덕이라면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에 있을 것인데, 달리 무엇을 기록한단 말입니까?”라고 하였다. 존사께서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하길 “옛날에 배裵 상국相國이 용흥전龍興殿을 세우고, 지금 배 공이 약사전藥師殿을 지었는데,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공公을 알게 하는 것을 지금의 사람들이 배 상국을 아는 것과 같이 하려고 합니다. 만약 기문을 지어 남기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간절히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길 “때는 비록 다르지만 성은 서로 똑같으니, 전각을 다시 지은 것은 반드시 그저 헛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전의 황폐함이 어찌 저와 같이 심했겠으며, 지금의 융성함이 어찌 이와 같이 신령스럽겠습니까. 이로써 볼 때 일의 공적은 반드시 때로 말미암아 발현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감동한 것만 못하고, 감동한 것은 그것에 보답하는 것만 못하기 마련입니다.

011_0719_b_01L星州修道庵藥師殿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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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在戊子秋余停𪊧 [3] 於靑巖之明眞堂
011_0719_b_03L有碧波尊師持藥師殿重修顚末
011_0719_b_04L以示之曰庵是新羅玉龍子所點而殿
011_0719_b_05L亦同時創則其古可知也已未知幾許
011_0719_b_06L修葺而以基則後以翠壁千重前以
011_0719_b_07L眼界淸爽祗樹貝花曇雲慧月眞鰈
011_0719_b_08L域之勝區也挽近風徒雨師日復侵尋
011_0719_b_09L霜刀星矢乘時交攻椽摧瓦解彩渝堊
011_0719_b_10L幾至顚覆居人咨嗟矣本邑居裵
011_0719_b_11L啣遇鴻捐貲二百緡使碧虛上人
011_0719_b_12L專任之朽者新之摧者補之不月訖
011_0719_b_13L風斤月斧爭奏般倕之功畫棟雕
011_0719_b_14L遂成侖奐之制公之心安有希望
011_0719_b_15L貧徒感而不忘願乞一言以記之
011_0719_b_16L余曰則記功乎記景乎以景則見
011_0719_b_17L於遊人之目以功則在於居者之心
011_0719_b_18L復何爲師瞠然曰昔裵相國建龍興
011_0719_b_19L殿今公修藥師殿使後之知公如今
011_0719_b_20L之知相國非記莫可以是固請
011_0719_b_21L雖殊而姓則相符殿之復殿必不徒
011_0719_b_22L然也前之廢何如彼之甚而今之盛
011_0719_b_23L何若是之神也是知事功必由時而發
011_0719_b_24L然記之不如感之感之不如報之

011_0719_c_01L후세에 머무는 사람이 아침에 빌고 저녁에 점검하여 입에서 입으로 오래도록 전해지면, 공의 공덕이 어찌 사라지겠습니까.”라고 하자, 존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맞는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합천군 해인사 경판전과 요사 개와기(陝川郡海印寺經板殿與寮舍改瓦記)
합천군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는 우리나라(眞國)의 명승지다. 이 사찰은 신라 애장왕哀莊王114) 때 창건되었는데, 세 번의 전쟁을 겪었으나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고려 문종文宗115) 때부터 이곳에 대장경판을 보관하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천여 번의 제사를 지냈다. 비전秘殿116)은 높고 컸으며 화려하게 꾸민 용마루는 물로 씻어낸 듯 이끼가 전혀 끼지 않았고 짐승과 벌레도 침범하지 않았으니, 그렇기 때문에 서울과 지방, 승려와 속인 모두가 우러러 사모하고 찾아와 구경하고자 하는 곳이다. 그리하여 해인사는 이 전각으로 세상에 이름을 드날렸고, 전각은 적임자를 만나 새롭게 지어지게 되었다.
내가 화산華山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청암靑巖으로 옮겨온 다음 해인 무자戊子년(1888) 여름에 사제인 혼경混鏡이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는데, 그 전말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지난 신미辛未년(1871)에 혜봉慧峯 노스님께서 공사의 책임을 지시고 온 힘을 다해 담을 쌓고 단을 쌓았는데, 돌 쌓아 기초를 닦는 일은 이미 마쳤으나 기와를 올리는 공사에 이르러서는 일정이 뒤틀리고 공백이 생겨 이루지 못하여서 잊을 수 없는 한으로 남아 있었다.
겨우 20년 만에 기와가 무너져 내리고 물이 새어 상허相虛 종백宗伯이 경판전(板殿)에서 천 일 동안 기도를 정성스럽게 드린 후, 혜봉 노스님께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감응하여 보고는, 그 비전秘殿이 갈라지고 물이 새는 문제와 경판이 섞여서 구분되어 있지 않은 것을 적잖이 개탄하였다. 이에 신묘한 계책을 내어 죽음을 결심하고서 대중을 깨우쳐 이끌 만한 권선문 하나를 짓고는, 그 일을 서울에 있는 범운梵雲 장로長老에게 맡겼으니, 장로는 바로 사문沙門의 대덕大德117)이었다. 그리고 별도로 화주승(化士)118) 아무개 일곱 명을 뽑았으니, 모두들 선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각기 공사에 필요한 성금을 모아 수천여 금을 충당하기로 했다. 도내에선 천 꿰미(千緡)나 되는 돈을 수금하였고, 시골 고을에선 800여 냥을 모아 와서, 이윽고 공사를 도모할 여건을 갖추어, 무자년(1888) 2월 봄에 공사를 시작했다. 한쪽에선 기와를 구워서 만들었고,

011_0719_c_01L後之居者朝祝暮點口碑相傳則公
011_0719_c_02L之功豈泯焉哉師曰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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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719_c_04L陜川郡海印寺經板殿與寮舍改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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陜郡之伽倻山海印寺眞國之名勝也
011_0719_c_07L寺創於羅朝哀莊王時三歷兵燹而不
011_0719_c_08L板置於麗朝文宗時于今千餘禩
011_0719_c_09L秘殿輪囷雕甍如洗苔蘚不着禽穢
011_0719_c_10L不侵此所以京鄕緇素之願慕欲賞者
011_0719_c_11L然寺依殿而擅名殿得人而復新
011_0719_c_12L自華山受聘移於靑巖之越明年戊子
011_0719_c_13L弟混鏡袖示一楮細其顚末去辛
011_0719_c_14L慧峯老和尙力募仔肩旣垣旣築
011_0719_c_15L石功已訖至於瓦役翻之間之仍作
011_0719_c_16L遺恨矣僅二十稔瓦觧滲漏相虛宗
011_0719_c_17L於板殿千日祈誠後感其和尙之惱
011_0719_c_18L不尠慨其秘殿之罅漏經板陶陰之
011_0719_c_19L不分神謀自決牖衆響應成勸一軸
011_0719_c_20L任之京居梵雲長老長老卽沙門大德
011_0719_c_21L別選化士七人曰某曰某諸公亦有信
011_0719_c_22L樂善之人也各鳩并當五數千餘金
011_0719_c_23L內收錢一千緡鄕化八百餘兩物旣具
011_0719_c_24L事可圖矣始役於戊子春二月一邊鑄

011_0720_a_01L불이문不二門119)ㆍ금강문金剛門120)ㆍ천왕문天王門121) 등으로부터 구광루九光樓ㆍ대웅전大雄殿ㆍ장경각藏經閣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형태의 건물들이 차례차례 만들어져 8월 가을에 완공을 알리니, 계곡물의 물줄기마다 공을 아뢰었고 숲의 나뭇가지마다 빛을 뿜어냈다.
아! 사물이 성하고 쇠퇴하는 것은 바로 사물의 이치로다. 성하고 쇠퇴하는 것은 비록 세상에 드물게 반복되는 일이지만, 일을 할 만한 사람도 또한 세상에 드물다. 이 전각은 후세에도 존재할 것이나, 지금과 비교해 낡아 있을 것이다. 만약 일곱 명이 힘을 합쳐 서로 돕지 않았다면 이 일을 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비록 모든 사람의 도움이 있었더라도 범운 장로가 권선하고 모연하는 믿음이 없었더라면, 어찌 그것을 성취할 수 있었으리요. 설령 장로의 믿음이 있었더라도 상허 종백처럼 처음 일을 도모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어찌 그 일을 시작이나 했겠는가. 그러므로 사람이 없으면 전각도 없고, 전각이 없으면 해인사라는 이름도 알려지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백 개의 하천이 막힘없이 흘러 모인 것이 해海이고, 모든 일이 의심 없이 풀리는 것이 인印이다. 거짓이 없는 인印을 맑고 맑은 바다에 새기면, 온갖 형상이 맑게 비춰 어떠한 사물도 더럽힐 수 없다. 권하는 자와 베푸는 자들이 이룬 정성과 신의의 공덕은 반드시 해인의 바닷속에 맑게 존재할 것이니, 그 인연과 업보를 따라서 털끝만큼의 어긋남도 없을 것이다.
어째서 이것을 기록하게 되었는가. 상허 종백은 바로 혜봉 스님의 법자法子122)이고, 범운 장로도 또한 혜봉 스님의 법질法侄123)이다. 나는 혜봉 스님의 4세 법손法孫으로, 스님을 의지하고 사모하며 항상 존경하였으니 손 놓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미약한 재주를 헤아리지 않고 아래에 성씨를 대략 서술하여 위 내용이 사라지지 않게 하노라.
『혼원집』 제1권

011_0720_a_01L自不二金剛天王諸門九光樓大雄
011_0720_a_02L殿藏經閣各樣諸寮次第以成吿功
011_0720_a_03L於秋八月澗流奏功林梢呈光
011_0720_a_04L之盛衰卽物之理也盛衰雖間世
011_0720_a_05L亦間世斯殿之存于來後比今可點
011_0720_a_06L若不賴七人同助之力事難終成雖有
011_0720_a_07L諸人之助若無梵雲長老勸募之信
011_0720_a_08L以成之設有長老之信如無倡謀之人
011_0720_a_09L抑何以營之耶故知非人無殿非殿
011_0720_a_10L無以著海印之名也會百川以無滯者
011_0720_a_11L海也決萬事以無疑者印也以無僞
011_0720_a_12L之印印於澄淸之海則萬相虛照
011_0720_a_13L不得累矣勸者施者誠信之功必有
011_0720_a_14L瀅然於海印海中而隨其緣業毫無差
011_0720_a_15L疇詎記爲宗伯卽和尙之法子
011_0720_a_16L老亦和尙之法侄也余於和尙爲四世
011_0720_a_17L法孫則寓慕存誠不可含糊故不揆
011_0720_a_18L微才略叙氏名于左以爲不泯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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混元集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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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고적考績 : 관리의 성적을 상고하여 좋지 않은 자는 물리치고, 우수한 자는 올려서 쓰는 것을 말한다.
  2. 2)요순시대(唐虞) : 당우唐虞는 중국 고대의 임금인 도당씨陶唐氏 요堯임금과 유우씨有虞氏 순舜임금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중국 역사에서 이상적인 태평 시대로 꼽힌다.
  3. 3)여러 고을을~자세히 살폈다 : 『承政院日記』에 따르면, “고종 15년 무인戊寅(1878, 광서 4)에 경상좌도 암행어사로 활동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암행어사 이만직을 기리기 위해 1878년에 세운 송덕비가 있다. 이 글도 송덕비를 세울 당시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4. 4)민緡 : 돈꿰미라고 하는데, 1민은 1천 문文에 해당한다.
  5. 5)백성에게 은혜를 베푼 분(澤被生民) : 『荀子』 13장 「臣道」에 “공덕은 천지의 운행과 함께하고, 은택은 백성에게 입혀졌네.(功參天地。 澤被生民。)”라는 말이 있다.
  6. 6)합하閤下 : 원래는 정1품 벼슬아치를 높이어 이르는 말인데, 보통 존귀한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된다.
  7. 7)안탑공명鴈塔功名 : 당나라 과거의 진사 시험에서 새로 급제한 이들은 항상 곡강曲江의 연회를 마친 뒤 장안 남쪽 자은사慈恩寺에 가서 대안탑大雁塔에 자기의 이름을 기록해 놓은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8. 8)대궐(鳳闕) : 봉궐鳳闕은 중국 한漢나라 때 지붕 위에 구리로 만든 봉황을 안치했던 일에서 생긴 말로, 궁궐의 문 또는 궁궐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9. 9)상서尙書 : 원래는 고려시대 상서성의 정3품 관직으로, 여기서는 관리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10. 10)금방金榜 : 과거 시험에서 급제한 사람의 이름을 쓴 방을 말한다.
  11. 11)괴부槐府 : 조선 시대의 최고 행정기관인 의정부議政府를 지칭하는 말이다.
  12. 12)부처님의 거울(菱鑑) : 능감菱鑑은 뒷면에 마름꽃이 새겨진 고대의 구리거울을 말한다. 여기서는 부처님의 감식안鑑識眼을 뜻한다.
  13. 13)구고九臯 : 깊은 연못을 말한다.
  14. 14)참꽃(眞花) : 보통 진달래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어떤 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15. 15)맥문동 :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연한 자주색 꽃이 핀다. 주변에 조경용으로 많이 심겨 관상용으로 쓰인다.
  16. 16)도연명陶淵明(365~427) : 중국 동진 때 시인으로, 이름은 잠潛,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연명은 자字이다. 405년에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이 되었으나, 80여 일 뒤에 ≺歸去來辭≻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하였다.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으며, 당나라 이후 육조六朝 최고의 시인이라 불린다.
  17. 17)주렴계周濂溪(1017~1073) : 중국 북송의 유학자인 주돈이周敦頥로, 자는 무숙茂叔, 호는 염계濂溪이다. 당대唐代 경전 주석의 경향에서 벗어나 불교와 도교의 이치를 응용한 유교 철학을 창시하였으며, 성리학의 도덕론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 18)운인雲人 : 탁발을 하며 다니는 승려를 이르는 말로, 운수승雲水僧 혹은 탁발승托鉢僧이라고 한다. 구름 가듯 물 흐르듯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하는 승려를 말한다.
  19. 19)오도자(吳子) : 중국 당나라 때의 화가 오도현吳道玄을 말한다. 도자道子는 자字이다. 오도현은 현종玄宗 때 사람으로, 당대唐代 제일의 화가였으며, 특히 불화佛畫와 산수화에 뛰어나 화성畵聖이라 불렸다.
  20. 20)하늘의 도가~만물이 양육된다 : 『中庸章句』 제26장에 성인을 천지에 빗대어 “땅처럼 넓고 두터워서 만물을 실어 주고, 하늘처럼 높고 밝아서 만물을 덮어 준다.(博厚所以載物也。 高明所以覆物也。)”라는 말이 있다.
  21. 21)송백松栢 : 소나무와 잣나무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사계절 늘 푸른 상록수를 말한다. 『論語』 「子罕」 편에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라는 구절이 있다.
  22. 22)『한사漢史』 : 한漢나라의 역사로,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史記』를 말한다.
  23. 23)주자(周)·정자(程)·장자(張)·주자(朱) : 송나라 때 유학자인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와 정이程頤·장재張載·주희朱熹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 출신 지역의 이름을 따서 염락관민濂洛關閩이라고도 한다.
  24. 24)강태공(子牙) : 중국 주周나라 초엽의 재상인 강태공姜太公의 이름은 상尙이며, 자는 자아子牙이고, 봉성封姓을 따라 여상呂尙(B.C. 1156~1017년)이라고 하였다. 무왕武王을 보좌하여 상나라의 주紂 임금을 정벌하고 주나라를 건립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제齊나라의 개국군주開國君主가 되었다. 병가兵家의 시조로 받들어진다.
  25. 25)소목공(召穆) : 중국 주나라 때 정치가인 소호召虎로, 소백호召伯虎라고도 한다. 서주西周 사람으로, 이름은 호虎이고, 소召에 봉해졌다. 주나라 선왕宣王을 도와 정무를 맡아 보았으며, 이때 회이淮夷가 복종하지 않자 출병하여 평정하였다. 시호가 목穆이라 소목공召穆公으로도 불린다.
  26. 26)장자방(子房) : 한나라 고조 유방의 책사策士인 장량張良(?~B.C. 186). 자는 자방子房, 시호는 문성공文成公이다. 진승陳勝·오광吳廣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후일 항우項羽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회합’에서는 뛰어난 기지로 유방을 위기에서 구하였다. 선견지명이 있는 책사로서, 소하蕭何와 함께 책략에 뛰어나 한나라 창업에 힘썼다. 그 공으로 유후留侯에 책봉되었다.
  27. 27)제갈공명諸葛孔明(181~234) :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인 제갈량諸葛亮.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 유비를 도와 오吳나라와 연합하여 조조의 위나라 군사를 대파하고, 파촉巴蜀을 얻어 촉한을 세웠다.
  28. 28)강태공(呂尙) : 주 24 참조. 중국 주나라 때 재상인 강태공을 말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늙어서 위수渭水에서 낚시를 하다가 주나라 문왕文王을 만났는데, 문왕은 여상과 대화를 나눈 후 그의 비범한 재주에 탄복하여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29. 29)한신韓信(?~B.C. 196) : 중국 전한前漢의 무신으로, 한나라 고조를 도와 조趙·위魏·연燕·제齊나라를 멸망시키고 항우를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는 회음현淮陰縣(강소성江蘇省)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 매우 가난하여 끼니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가, 유방을 만나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장수가 되었다.
  30. 30)소보巢父 : 중국 고대의 은자隱者로, 속세를 떠나서 산의 나무 위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요임금이 그에게 천하를 맡기고자 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기산箕山 영수潁水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31. 31)개자추(介推) : 중국 춘추시대의 은사隱士이다. 진나라 문공이 망명생활을 할 때 그를 모셨는데, 후에 문공이 왕위에 올랐으나 개자추를 등용하지 않았다.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자, 면산綿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문공이 그를 하산시키기 위해서 산불을 놓았으나 하산하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 그를 기리기 위해 한식寒食이 생겨났다.
  32. 32)엄자릉(嚴光) : 중국 후한 광무제光武帝의 친구로 함께 수학했다. 그는 벼슬을 내려도 응하지 않았으며, 부춘산富春山 아래 은거하면서 동강桐江에서 낚시질하며 은거하였다.
  33. 33)가을 국화~주워서 먹네 :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던 굴원의 시에 “아침에는 모란의 이슬방울 받아 마시고, 저녁에는 가을 국화 떨어진 꽃잎 주워서 먹네.(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라는 구절이 있다.
  34. 34)가을 국화를~울타리에서 캐네 : 중국 동진東晉 때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동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구절이 있다.
  35. 35)곤륜崑崘 : 중국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산 이름으로, 가장 영험이 강한 신선들의 땅이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이 산의 위치는 중국 북서쪽 끝에 있다고 전하는데, 실제 존재하는 산맥과는 상관이 없다. 모든 중국인들의 뿌리인 황하의 원류가 이 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였다. 이 산의 정상은 북극성과 마주보고 있다고 한다.
  36. 36)철심석장鐵心石腸 : ‘쇠 같은 마음에 돌 같은 창자’라는 뜻으로, 지조가 견고하여 외부의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37. 37)매화나무(墨梅) : 묵매墨梅는 일반적으로는 수묵으로 그린 매화 그림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검은 빛을 띠는 매화를 뜻한다. 의서에 따르면, “매화를 고련자苦楝子 나무와 접목하면 검은 매화가 되고, 사철나무와 접목하면 먹을 뿜은 듯하게 되는데, 이를 묵매라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글은 그 매화나무를 그린 그림을 설명하고 찬讚한 것이다.
  38. 38)유령庾令 : 어떤 인물인지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유우석劉禹錫의 ≺武昌老人說笛歌≻라는 작품에 “일흔이 넘은 무창노인, 유령의 안부 편지를 쥐고 왔네.(武昌老人七十餘。 手把庾令相問書。)”라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39. 39)임포林逋(967~1028) : 중국 북송 때 시인으로, 자는 군부軍復, 시호는 화정和靖이다. 서호西湖 고산孤山에서 20년 동안 은거했는데, 매화와 학을 무척이나 사랑하여 매화 300그루를 심고 학 두 마리를 기르며 풍류를 즐겼다.
  40. 40)갑계甲禊 : 보통 사찰에서 동갑인 승려들이 맺은 계이다. 하지만 운영상 계원을 동갑으로 제한하지 않고 폭넓게 계원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41. 41)3월(姑洗) : 고선姑洗은 동양 음악의 12율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음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12율을 1년 12달에 각각 배속시켰는데, 첫 음인 황종黃鍾을 양陽의 기운이 처음 생기는 동짓달에 배속시켰기 때문에 고선은 음력 3월에 해당한다.
  42. 42)교남嶠南 : 조령鳥嶺 남쪽의 경상도, 즉 영남嶺南을 말한다.
  43. 43)논(漑田) : 개전漑田은 물을 대고 파종한 논밭으로, 벼농사를 짓는 논을 말한다.
  44. 44)마지기(斗) : 두斗는 논밭 넓이의 단위로, 두락斗落이라 하며, 보통 ‘마지기’라고도 한다. 한 말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면적인데, 평지와 산지 또는 토지의 비옥도 등에 따라서 그 면적이 다르다. 보통 논의 경우에는 200평, 밭은 300평을 한 두락이라고 한다.
  45. 45)분별심(住相) : 주상住相은 상相에 머무른다는 뜻으로, 무엇인가를 구분하고 나누는 분별심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분별이 없는 마음으로 어떤 중생에게 보시를 하면 그 공덕은 세상 모든 중생에게 보시한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이나, 분별심으로 어떤 중생에게 보시를 하면 그 중생에게 보시한 것만 공덕으로 쌓인다고 여긴다.
  46. 46)문계門禊 : 같은 스승을 모시는 제자들이 만든 계를 말한다.
  47. 47)훈도薰陶 : 덕德으로써 사람의 품성이나 도덕 따위를 가르치고 길러 선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48. 48)그 재앙이~가죽 때문입니다 : 『莊子』 「山木」 편에는 “무릇 털이 좋은 여우와 무늬가 아름다운 표범이 산림山林에 숨어 살고 바위산 굴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조용히 살고자 하는 것이고, 낮에는 가만히 있고 밤에 움직이는 것은 경계하는 것이며, 비록 굶주리고 갈증을 느껴도 숨어서 궁핍하게 지내고, 오히려 사람이 자주 다니는 강가에서 멀리 떨어져 먹이를 구하는 것은 안전하고 편안히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물과 덫의 재앙을 피하지 못하는 것은 누구의 잘못이겠는가. 바로 그 가죽이 재앙이 되는 것이다.(夫豐狐文豹。 棲於山林。 伏於巖穴。 靜也。 夜行晝居。 戒也。 雖饑渴隱約。 猶且胥疏於江河之上而求食焉。 定也。 然且不免於網羅機辟之患。 是何罪之有哉。 其皮爲之災也。)”라는 내용이 있다.
  49. 49)불경(貝葉) : 옛날 종이를 대신하던 다라수多羅樹 나뭇잎에 불경을 써 둔 것이 많아서 불경을 패엽이라고도 한다.
  50. 50)김 상공金相公 : 조선 후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를 가리킨다.
  51. 51)의발을 전해 받은(傳鉢) : 전발傳鉢은 스승으로부터 식사할 때 쓰는 그릇(鉢)을 물려받았다는 말로,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후계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52. 52)중생을 교화함에~정도로 많았습니다(化籌滿室) : 제4대 조사인 우바국다 존자의 옛일을 인용하여 말한 것이다. 우바국다 존자는 한 사람을 교화할 때마다 산가지를 석실石室에 넣었는데, 교화한 사람이 많아 그 석실이 가득 찼다고 한다.
  53. 53)열반(乘西) : 승서乘西는 서방정토에 오른다는 뜻으로 열반에 든 것을 가리킨다.
  54. 54)온 세상(八垓) : 팔해八垓는 팔방八方, 즉 동·서·남·북과 동북·동남·서북·서남의 끝. 온 세상을 의미한다.
  55. 55)명안明眼과 거벽巨擘 : 명안은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을 말하고, 거벽은 학식이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56. 56)화엄해華嚴海 : 불법佛法의 광대무변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華嚴經』을 주요 경전으로 하는 화엄종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말이다.
  57. 57)무량수無量壽 : 다함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형상이 있는 육신은 생로병사의 과정이 있으므로 그 수명이 한정이 있으나, 형상이 없는 마음을 깨치면 불생불멸하고 영원무궁하므로 무량수라 한다.
  58. 58)번뇌를 끊는 과보(無漏果) : 무루과無漏果는 번뇌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지혜로써 수행하여 이르게 된 깨달음의 과보를 말한다.
  59. 59)무량수無量壽부처님 : 주 57 참조. 서방정토에 있다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큰 원을 품었다고 하며, 이 부처를 염하면 죽어서 극락세계에 간다고 한다.
  60. 60)자재自在 : 일상의 삶 그대로가 부처님의 도리에 합일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물러감에 아무런 장애가 없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걸리고 막힘이 없이 통달한 것을 의미한다.
  61. 61)계환戒環 : 송나라 때의 승려로 『妙法蓮華經解』 20권을 편찬하였다.
  62. 62)염계濂溪 : 주 17 참조. 송나라 때 학자인 주돈이周敦頤를 말한다. 북송시대 유학자로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다. 염계는 그의 호이다.
  63. 63)포단蒲團 : 부들로 둥글게 만든 방석으로, 승려가 좌선할 때 쓴다.
  64. 64)우뚝 솟아~깨끗하면서도 꼿꼿하였다(亭亭淨植) : 주렴계의 「愛蓮說」에서 연蓮에 대해 표현한 구절 중에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고,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다.(香遠益淸。 亭亭淨植。)”라는 말이 있다.
  65. 65)열 개의 홀(十笏) : 홀은 신하들이 임금 앞에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고 있는 작은 판을 말하는데, 십 홀은 그 홀을 열 개 정도 잇댄 크기를 말한다. 여기서는 아주 작은 크기를 말한다.
  66. 66)현당玄堂 : 보통 무덤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깊고 오묘한 집이라는 뜻으로, 승려가 불도를 수행하는 암자를 가리킨다.
  67. 67)삼거三車 : 『法華經』 「譬喩品」에서 말하는 양거羊車·녹거鹿車·우거牛車의 세 수레를 말하는데, 양거는 성문승聲聞乘에, 녹거는 연각승緣覺乘에, 우거는 보살승菩薩乘에 각각 비유한 말이다.
  68. 68)일승一乘 : 중생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가르침을 말한다.
  69. 69)천 가지~가지 논論 : 경은 부처님이 직접 가르친 것을 기록한 것이고, 논은 그 경을 해석한 것이다.
  70. 70)시작과 끝이~최고의 법문(不二法門) : 불이법문不二法門은 상대의 차별을 초월한 절대평등의 경지를 가리키는 말로, 대립을 초월한 훌륭한 이치를 나타내는 가르침을 말한다.
  71. 71)무생無生 : 나고 없어짐을 초월한 열반의 경지를 말한다.
  72. 72)구담瞿曇 : 석가의 속성俗姓으로, 깨달음을 얻기 전의 부처님을 가리킨다.
  73. 73)짐새의 독을 마시듯(飮鴆) : 짐새는 깃에 독이 있는 새로, 그 독을 마시면 죽는다고 한다. 따라서 그 독을 마시듯 목숨을 내놓고 고행을 했다는 뜻이다.
  74. 74)공부방(螢䆫) : 형창螢䆫은 ‘반딧불이 비치는 창가’라는 뜻으로, 학문을 닦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75. 75)사찰(鶴樹) : 학수鶴樹는 석가모니가 입멸한 장소에 서 있었던 나무 이름으로, 사찰 경내에 있는 나무나 사찰을 가리킨다. 사라쌍수沙羅雙樹 혹은 사라수娑羅樹라고도 한다.
  76. 76)글 짓는(翰墨) : 한묵翰墨은 문한文翰과 필묵筆墨이라는 뜻으로, 글을 짓거나 쓰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77. 77)불법의 깃발을 세워(建幢) : 건당建幢은 비구계를 받은 후 오랜 기간 수행하여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승려가 스승의 법맥을 이어받고 법호法號를 받는 일을 말한다.
  78. 78)종장宗匠 : 경전에 밝고 글을 잘 짓는 사람을 말한다.
  79. 79)본분本分 : 태어나면서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인간의 본래 모습으로, 미혹함이나 깨달음에 관계없는 절대적 경지를 말한다.
  80. 80)상두上頭 :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81. 81)지혜의 생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로, 불성佛性을 지속하기 위한 지혜 혹은 그 수행을 하는 수행승을 이르는 말이다.
  82. 82)깨달음의 미소(㘞地一笑) : 화지일소㘞地一笑는 진리를 궁구하다가 깨쳤을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미소를 말한다.
  83. 83)아름다운 자취(芳躅) : 방촉芳躅은 옛사람이 남긴 훌륭한 행적을 말한다.
  84. 84)단확丹雘 : 단청丹靑으로 청색·적색·황색·백색·흑색 등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건축물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85. 85)주실籌室 : 불법佛法의 수행이 철저하고 교리에 통달하며 선리禪理에 밝아 덕망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86. 86)중궁 전하中宮殿下 : 왕후王后를 높여 일컫는 말이다.
  87. 87)그물창(罘罳) : 부시罘罳는 옛날 궁전의 처마 또는 창 위에 새 같은 것들이 날아들지 못하도록 치던 철망을 말한다.
  88. 88)원력願力 : 부처님에게 빌어 목적하는 바를 이루려는 염력念力을 말한다.
  89. 89)방명芳名 : 남의 이름을 높이는 말로, 칭찬을 듣는 좋은 이름을 가리킨다.
  90. 90)유두流頭 : 우리나라 고유 명절의 하나로, 음력 유월 보름날을 일컫는 말이다.
  91. 91)사마온공(溫公) : 중국 북송北宋 때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을 말한다. 사후 태사온국공太師溫國公을 추증追贈했기 때문에 사마온국공司馬溫國公, 또는 사마온공司馬溫公, 혹은 온공溫公이라고도 한다.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인 『資治通鑑』의 편자이다.
  92. 92)종맥宗脉 : 모든 맥脈이 합쳐지는 곳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수많은 산줄기가 갈라져 나오는 중심이 되는 산을 이른다.
  93. 93)성전암聖殿庵 :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암자이다.
  94. 94)사잔등沙盞燈 : 불등佛燈의 하나로, 사기로 만든 잔에 심지를 꽂아 만든 등불을 말한다.
  95. 95)신천新川 : 대구광역시 달성군 용계동 가창교 남쪽 사방산四方山에서 신천의 지류인 용계천을 합류하여 북구 침산동 침산교 부근에서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대구 중심 하천이다.
  96. 96)대방大房 : 절의 큰방이라는 뜻으로, 모든 승려가 한데 모여 밥을 먹는 큰 방을 말한다.
  97. 97)석가모니부처님(瞿曇氏) : 구담瞿曇은 ⓢ Gautama의 음역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성씨이다.
  98. 98)영취산(鷲山) : 영취산靈鷲山 혹은 영산靈山으로 의역되는데, 불타가 설법한 장소로 유명하다.
  99. 99)보시布施 : 대승불교의 실천수행 방법 가운데 하나로, 베풀어 주는 일을 말한다.
  100. 100)지계持戒 : 계율을 잘 지켜 범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101. 101)조상造像 : 불상佛像을 조성하는 일을 말한다.
  102. 102)영사營寺 : 사찰을 창건하거나 보수하는 일을 말한다.
  103. 103)명봉사(鳳寺) : 명봉사鳴鳳寺는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소백산 자락에 있는 사찰, 신라 말 875년에 두운杜雲이 창건하였다. 1662년 화재로 전소된 뒤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668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신익信益 등이 중창하였고, 1807년 행선幸善이 중수하였다.
  104. 104)보묵寶墨 : 보배로운 먹이라는 말로, 보배가 될 만한 좋은 글씨나 그림을 이르는 말이다.
  105. 105)청원靑猿 : 육십갑자六十甲子 중 갑신甲申을 다르게 부르는 말이다.
  106. 106)조전祖殿 : 조사祖師들의 영정을 모신 사찰의 건물을 말한다. 조사당祖師堂이라고도 한다.
  107. 107)곡루穀樓 : 곡물을 저장하고 보관하는 창고를 말한다.
  108. 108)옥룡자玉龍子 :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인 도선道詵(827~898)으로, 옥룡자는 그의 호이다. 그는 혜철惠徹에게서 ‘무설설무법법無說說無法法’을 배웠다. 그의 음양지리설과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은 조선에 이르기까지 민족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道詵秘記』 등이 있다.
  109. 109)기수(祇樹) 나무 : 기수는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의 약칭이다. 원래 바사닉왕波斯匿王의 태자 기타祇陀가 소유한 원림園林이었으나,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그 땅을 사서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지어 석가모니께 바치고 태자는 그 수목을 바쳤으므로,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하여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10. 110)바람 같은 자귀(風斤) : 풍근風斤은 뛰어난 장인이나 그 솜씨를 이르는 말이다. 『莊子』 「徐無鬼」에 “춘추전국시대 때 초楚나라 장석匠石이 상대방의 코끝에다 하얀 흙을 얇게 발라 놓고는 도끼를 바람 소리가 나게 휘둘러(運斤成風) 그 흙만 떼어 내고 상대방은 다치지 않게 했다.”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111. 111)달 같은 도끼(月斧) : 월부月斧는 달을 다듬어서 만들었다는 신비한 도끼로, 여기서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장인匠人과 그 도구를 이르는 말이다.
  112. 112)반수般倕 : 뛰어난 장인을 이르는 말로, 춘추시대 노魯나라 때 뛰어난 건축가인 공수반公輸般과 순舜임금 때 뛰어난 장인인 수倕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113. 113)윤환侖奐 : 규모가 크고 아름답다는 뜻으로, 건물이 낙성된 것을 축하할 때 쓰는 표현이다. 보통 윤환輪奐이라고 한다. 『禮記』 「檀弓 下」에 따르면, 진晉나라 헌문자憲文子가 저택을 신축하여 준공하자 대부들이 가서 축하하였는데, 이때 장로張老가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아름답도다. 제사 때에도 여기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상사 때에도 여기에서 곡읍을 하고, 연회 때에도 여기에서 국빈과 종족을 모아 즐기리로다.(美哉輪焉。 美哉奐焉。 歌於斯。 哭於斯。 聚國族於斯。)”라고 하니, 헌문자가 장로의 말을 되풀이하며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자, 군자들이 축사와 답사를 모두 잘했다고 칭찬한 고사가 전한다.
  114. 114)애장왕哀莊王(788~809) : 신라 40대 임금으로, 재위 기간은 800년~809년이다. 이름은 청명淸明이고, 39대 소성왕昭聖王의 맏아들이다.
  115. 115)문종文宗(1019~1083) : 고려 11대 임금으로, 이름은 휘徽, 자는 촉유燭幽이다. 재위 기간은 1046년~1083년이다.
  116. 116)비전秘殿 : ‘비밀스런 전각’이라는 뜻으로, 궁전이나 사찰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건물을 말한다. 여기서는 해인사의 경판전經板殿을 가리키는 말이다.
  117. 117)대덕大德 : 지혜와 덕망이 높은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118. 118)화주승(化士) : 화사化士는 화주化主와 같은 말로, 인가에 나다니면서 염불이나 설법을 하고 시주하는 물건을 얻어 절의 살림을 돕는 승려를 말한다.
  119. 119)불이문不二門 : 사찰로 들어가는 3문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으로, 둘이 아닌 경지에 도달해야만 부처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120. 120)금강문金剛門 : 사찰 입구의 일주문 다음에 있는 문으로,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한다. 흔히 인왕상이라 불리는 두 명의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어 인왕문이라고도 한다.
  121. 121)천왕문天王門 : 절의 입구에 있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문을 말한다.
  122. 122)법자法子 : 스승의 가르침이나 법맥을 이어받은 제자로, 법제자法弟子라고도 한다.
  123. 123)법질法侄 : 사제師弟의 법제자를 말한다.
  1. 1)「總目次」三字。編者補入。目次。底本在於序文之後。編者移置於此。此上。底本有「混元集目次」編者除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