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동계집(東溪集) / 東溪集卷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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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집 제2권(東溪集 卷之二)
서序
종언 상인에게 주는 서(贈宗彥上人序)
아, 우리의 도가 세상에 드러나지 못함이 심하다. 무릇 도가 혼미해진 것은 덕이 없어진 탓이며, 덕이 없어진 것은 사람들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위태로워진 것은 세상이 말살되었기 때문이고, 세상이 말살된 것은 학문의 근원이 막힌 탓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학자들은 어로魚魯를 구분하지 못하며1) 물과 우유를 판별하지 못하고, 겨우 입으로 책을 읽는 데 그칠 뿐이다. 학문이 이야깃거리에 그치는 것이니 마치 바람과 그림자를 잡는 것과 같다. 도는 백 보 떨어진 곳의 모기 소리와 같으니 그림자를 볼 수 없는데 하물며 그 형체를 볼 수 있겠는가. 자신의 짧음을 알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멋대로 지어내고 괴이함을 날조하여 큰 인물이 되고자 이름을 엿보고 이익을 재면서 문도를 모으며, 자신을 치켜세우고 다른 무리를 업신여기는 것을 사업으로 삼으니, 누가 능히 종풍을 떨치고 아득한 시절 현철들의 실마리를 일으키겠는가.
상인으로 말하면 위풍이 있고 초탈하며 기상이 맑고 높으며 지혜와 재주를 아울러 드러내니 가히 우리 문중이 인물을 얻었다 말할 수 있지 않으랴. 연락이 끊긴 지 10년이지만 그때는 자주 만나, 이야기는 민첩했고 공평했으며 그 이치는 간결하고 정성스러웠으니, 옛사람이 말하기를 오하아몽吳下阿蒙2)이 아니로구나라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상인은 절대로 이렇게 평생을 살지 말고 세상이 경박해짐을 알고 도가 찢겨졌음을 알아, 장차 반드시 깊은 산 깊은 숲에 들어가 아름다운 털을 보존하라.3) 무릇 밝지 못한 도로 덕이 없어지고 이미 학문이 무너졌으니,

012_0201_b_02L東溪集卷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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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1_b_04L1) [3]

012_0201_b_05L贈宗彥上人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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斯道之不明於世甚矣夫道之昧也
012_0201_b_07L德之所以喪也德之喪也人之所以殆
012_0201_b_08L人之殆也世之所以抹摋也世之
012_0201_b_09L抹摋也學之源塞矣予觀今之所謂學
012_0201_b_10L不分魚魯不辦水乳而纔通口讀
012_0201_b_11L則已資談柄於學如捕風捉影而道
012_0201_b_12L如隔百步之外而聆蚊蚋之響不得見
012_0201_b_13L其影而况見其形乎不知其己之屈也
012_0201_b_14L不愧于人之笑也搆虛捏恠要做大漢
012_0201_b_15L窺名揣利𧚿緝門徒以矜己慢物爲己
012_0201_b_16L孰能使其宗風振而起之於前賢往
012_0201_b_17L喆千百年之緖餘哉如師風棱脫洒
012_0201_b_18L象淸高智與才並爲表襮則可謂吾
012_0201_b_19L門之將得人歟相聧十年向始謋然
012_0201_b_20L相接其談逕廷而其理簡衷非古人
012_0201_b_21L所謂殆非吳下阿蒙者耶師須勿以此
012_0201_b_22L爲平生而知世澆漓知道滅裂也
012_0201_b_23L入山之深入林之密而務澤其毛
012_0201_b_24L夫欲使不明之道將喪之德已頽

012_0201_c_01L떨쳐 그것을 일으키고 소생시켜 돌아오게 하고 나타내어 드러내고 환하게 밝혀야 한다. 이는 그대와 내가 똑같이 바라는 것이니, 그런 후에야 더불어 뜻을 같이하는 선비가 될 수 있다. 상인은 힘쓰라.
동자 영숙에게 주는 서(贈童子英叔序)
무릇 기북冀北4)의 들판에 있는 말은 스스로 천 리를 달릴 발굽이 있으며, 우문禹門5)의 굴에 사는 물고기는 역시 삼급三級6)을 뛰어오를 비늘이 있다. 바야흐로 말과 물고기가 어렸을 때는 비늘이 단단하지 못하고 발굽이 만들어지지 못했으나, 이미 하늘을 찌르고 바람을 좆는 기골을 지녔다. 발굽이 단단해지고 비늘이 바뀌자 하룻저녁에 바람과 벼락처럼 빨라져 구중의 난간에 올라 높이 두각을 나타냈으니, 능히 허무를 출입하고 은하수로 날아가 대물이 되는 것이다. 백락의 돌아봄을 얻으면 또한 말구유를 벗어나 도시와 산을 지나서 바람과 벼락처럼 달리니 준마가 되는 것이다. 무릇 사람 또한 이와 같으니, 큰 세상을 짊어질 인재로 남다른 기상을 어린 나이에 지니고 있다면 이미 비상한 바탕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고적高適7)은 일곱 살에 고거지사高車之詞를 지었으며, 두보는 아홉 살에 봉황지편鳳凰之篇을 읊고 끝내 만 권의 책8)을 읽어 그 이름을 천고에 드리웠다. 이제 서씨의 아들 영숙英叔 또한 세상에 없는 자질을 갖춘 비범한 인재로서 나에게 와서 글과 시를 주었는데, 놀랄 만한 말이 있어 말과 물고기의 고사로 조언하노니 그대는 힘쓸지어다.
기記
해인사 만월당 불상 중조기海印寺滿月堂佛像重造記

012_0201_c_01L之學振以起之蘇而復之著以炳之
012_0201_c_02L皎而燭之則其胥與子之所欲同也
012_0201_c_03L後方可與爲同志之士也師乎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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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1_c_05L贈童子英叔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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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馬冀北之野者自有千里之蹄魚產
012_0201_c_07L禹門之穴者亦有三級之甲方其馬與
012_0201_c_08L魚之幼也甲未勁而蹄未成也已有凌
012_0201_c_09L雲之氣追風之骨者矣及其蹄之堅也
012_0201_c_10L甲之變也一夕有風雷之便則可以躍
012_0201_c_11L上九重之瀾頭角崢嶸卽能出入虛無
012_0201_c_12L飛騰霄漢而成大物也得伯樂之顧
012_0201_c_13L則亦可以超逸槽櫪歷塊過都凌風騁
012_0201_c_14L而成駿馬也夫人亦如是負曠世
012_0201_c_15L之才蘊出人之氣者其在髫稚已有
012_0201_c_16L非常之資也故高適七歲賦高車之詞
012_0201_c_17L杜甫九歲詠鳳凰之篇終能讀萬卷
012_0201_c_18L之書垂千古之名也今徐氏子英叔
012_0201_c_19L亦有不世之資非凢之材而來從予
012_0201_c_20L受子書又賦詩有驚人之語予以馬
012_0201_c_21L魚之語贈以示之爾其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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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1_c_24L海印寺滿月堂佛像重造記

012_0201_c_25L「序」字前行底本有「文」一字編者除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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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상相이란 모두 허망한 것이니 이것은 전세의 부처가 멸한 탓이다. 성했던 것은 없어지고 없어진 것은 다시 성하게 되는 것이니, 또한 후세의 부처가 흥하게 되는 까닭이다. 흥성함과 사라짐은 특히 세상과 관계 있는 것이지 마음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곧 마음인데 어찌 흥성과 멸망과 관계되지 않음을 알겠는가. 과거와 미래가 정情에는 있으나 도道에는 없으니, 도가 과거·미래와 관계되지 않는 것을 알겠는가. 과거니 미래니 흥성이니 멸망이니 하는 것은 특히 세상과 운수에 관계되는 것일 뿐이니, 어찌 부처에게 손상이 있겠는가. 비록 세상에 이루어짐과 머묾, 손상됨과 공허가 있고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있다 해도 부처는 이미 현세에 있으니, 사람들이 능히 그에게 돌아갈 수 있다. 어찌 일찍이 세상을 좇고 사람을 좇고 전과 후, 흥성과 멸망의 운수를 좇지 않았음을 알겠는가.
아아. 흰 돼지, 흑소의 해에 울유鬱攸9)의 별이 금원에 화를 미쳐 자금紫金10)은 훼손되고, 쌍림雙林11)은 빛을 감추었다. 지금 섭허 대사는 웅천 사람으로 복구를 맹세하였다. 경자 유월부터 임인년까지 3년의 공사를 마친 다음 절에 부처님의 용모가 빛날 수 있게끔 나에게 사건의 시말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두려운 심정으로 장차 그 공렬의 근면함과 물력의 넉넉함을 길이 전하길 바라지만, 글로써 알리는 게 부족하여 부처님의 빛나는 자취로 글을 써서 기記로 삼는다.
보은현 금적산 금수암기報恩縣金積山金水菴記
삼산의 남쪽에 한 언덕이 있으니 금적이라 하며 오른쪽에 구봉이 있으며 왼쪽에 삼년봉이 있다. 이악離岳이 그 뒤에 붙어 있으며 계산이 그 금적산 밑을 넘어선다. 상설象設12)은 하늘이 감춘 곳이며 귀신이 수호하는 곳인데, 은연중 호남의 왼쪽 산천에서 아름다움으로 이름났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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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凢所有相皆是虛妄則此其所以前
012_0202_a_02L佛之滅也成之者毀也毁之者成也
012_0202_a_03L則亦其所以後佛之興也其興與滅
012_0202_a_04L關於世而不關於心則佛則心也
012_0202_a_05L知其未甞關乎興與滅也而後而前
012_0202_a_06L於情而不在於理則亦安知其未甞係
012_0202_a_07L於前且後也歟曰前曰後曰滅曰興
012_0202_a_08L在於世與數而已也則於佛又何傷哉
012_0202_a_09L雖然世有成住1) [4] 人有生老病死
012_0202_a_10L則佛旣現世人能歸之庸詎知其
012_0202_a_11L亦未甞隨其世隨其人隨其前後興滅之
012_0202_a_12L數也哉嗚呼往在龍集白黑之際
012_0202_a_13L攸一星流禍金園紫金月面潛彩雙
012_0202_a_14L今有攝虛大師卽熊川人也誓以
012_0202_a_15L復之自庚子六月至壬寅于三年吿
012_0202_a_16L使金容再煥于祇林屬余以記其事
012_0202_a_17L始末將欲壽於可畏心目其功烈之勤
012_0202_a_18L物力之浩不足待筆而知之是用佛
012_0202_a_19L重光之跡以書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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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2_a_21L報恩縣金積山金水菴記

012_0202_a_22L
三山之南有一丘曰金積右九峯
012_0202_a_23L三年離岳柎其背鷄山跋其胡象設
012_0202_a_24L天秘鬼撝神呵暗擅湖左山川之美

012_0202_b_01L세상에 아는 이가 드무니, 이곳은 호중壺中13)의 비밀스런 땅이 아닌가. 읍에 사는 이계술李季述은 평소에 산수를 사랑하고 임천에 흥취를 붙이며 노는 사람으로, 무술년 봄에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올라 구경하고 정상에서 아름다운 봉우리와 골짝, 괴석과 한천이 맑고 화려한 것을 보고는 마침내 세상을 벗어날 뜻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처자를 거느리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 초가집 두어 칸을 짓고 금수金水란 편액을 처마에 붙였는데, 분명히 금빛의 단 샘을 얻어 머물게 된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 터는 옛날 진표 율사眞表律師가 지내던 터이다. 대개 세상 사람들이 탐욕과 명예에 갇혀 있음이 마치 아교 그릇에 들어가 헤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지금 이 공李公은 하루아침에 은거하려는 마음을 품고 속세를 벗어남이 마치 새매가 거미줄을 지나치는 것처럼 거침이 없으니, 그는 녹문산에 은거한 방공龐公14)의 무리가 아니겠는가. 가을 지난 무렵 심부름꾼이 나에게 와 기문을 청했으나, 그 땅을 아직 보지 못한 터라 온 사람의 말을 듣고 몇 줄의 글을 지어 돌려보낸다. 공의 이름은 경방經邦이요 호는 월곡月谷이다.
단구사기丹丘舍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15)에 옹달샘을 낀 작은 언덕이 있어 올라 보니 물이 콸콸 흐르다가 그 앞에서 빠르게 합해져 푹 들어간 곳에 작은 못이 생겼다. 위에는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큰 것은 중간에 있고 중간 것은 집 앞에 있으니 뒤를 감싸 안는 기세가 있다. 당당한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왼편으로 심어져 있으며, 여러 갈래로 엉겨 뻗어 간 포도덩굴은 버드나무와 소나무를 타고 올라 농락하며 뒤덮은 것이 완연히 천막을 친 듯하였다. 못 가운데는 세 점의 석상과 세 개의 섬이 있다. 초록 창포 몇 줄기를 점점蔪蔪16)이 못가에 심으니 금붕어 수백 마리가 헤엄치며 못 안에서 놀았다.

012_0202_b_01L而世罕有知者此非所謂壺中之秘地
012_0202_b_02L者耶邑居李公季述者素愛山水寄興
012_0202_b_03L林泉而遊之者也戊戌春輕藜短𢂱
012_0202_b_04L登覽其冡頂見其瑶岑綉谷恠石寒泉
012_0202_b_05L之瀟洒秀麗遂懷脫世之志卽携妻子
012_0202_b_06L而歸隱結茅舍數架以金水扁其簷
012_0202_b_07L想必得金色甘泉以居也其基乃古律
012_0202_b_08L師眞表公之燕居處也盖人之於世
012_0202_b_09L蠒於利欲榮名如入膠盆而不可出也
012_0202_b_10L今李公一朝懷歸隱之心蛻擺塵網
012_0202_b_11L如快鷂之透蛛絲焉此非其龐公之隱
012_0202_b_12L鹿門之流耶越秋遣伻請記于余
012_0202_b_13L未及見其地聽其來人之吿輙綴數行
012_0202_b_14L而贈歸之公名經邦號月谷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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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2_b_16L丹丘𡋛記

012_0202_b_17L
無何有之鄕有小臯挾細泉而昂然爲
012_0202_b_18L𡋛泉流㶁㶁而襟合于𡋛前窪然爲
012_0202_b_19L小池𡋛上有松三株大者居中次者
012_0202_b_20L居前後爲擁衛之勢有柳一條亭亭
012_0202_b_21L而植於左有大葡萄藤數蔓屈曲而攀
012_0202_b_22L上柳及松籠絡覆蔽完成幔▼(巾+冕)爲池
012_0202_b_23L中有三點石象三島也綠蒲數莖
012_0202_b_24L蔪然植于池畔有金鯽數百首鱍鱍

012_0202_c_01L장마가 그치고 처음 날이 개자 여름 경치가 허공을 흐르는데, 나는 송당松堂부터 걸어서 위에 올라가 소매를 걷고 두건을 젖혀 쓰고 바위 위에서 쉬었다. 못을 위아래로 바라보는데, 솔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산 구름이 갑자기 일어나며 산 빛과 구름 그림자가 못 위에 감돌고 물고기와 물을 보면서 가슴이 활짝 열리니, 이에 나는 이미 천연天淵17)의 즐거움을 얻게 되었다. 솔 뿌리를 베고 누우니 갑자기 잠이 오는데 쏴아 부는 솔바람 소리, 졸졸 흐르는 샘물 소리가 꿈을 에워싸는 바람에 의연히 깨어나 못가의 돌로 가서 발을 씻으니, 몸과 정신이 깨끗해지고 기상이 초연해지니 이 또한 신선의 즐거움이다. 이리저리 거닐며 위아래를 바라보니 푸르름이 짙은 것은 산이요, 희디흰 것은 구름이며, 사방에 그늘진 것은 소나무요, 영롱하게 울리는 것은 샘이며, 음기를 불어오는 것은 바람이다. 이 다섯 가지는 서로 주고받으며 실컷 노닐어 보고 듣는 바탕이 되고 또한 호연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니, 나는 이 세 가지의 즐거움을 얻어 즐겼다. 곁에서 상인이 말하길 “아, 이것은 곧 우리 선사 호감이 짓고 판 것인데, 이름이 없으므로 선사에게 이름을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아아, 호감은 곧 우리 법문의 형제이다. 한유韓愈가 말하길 “원빈元賔18)과 사귄 사람을 보면 원빈을 보는 것과 같다.”19)고 말했으니, 이에 내가 상인을 대하는 것이 그와 같으니 마침내 단구로 이름을 짓고 못을 천연이라 하고 글을 지어 기記로 삼는다.
제월헌기霽月軒記
나는 신유년 가을 몇 명의 도반과 더불어 이곳에서 겨울을 지냈는데 절집이 비좁아 마음이 스스로 답답하여

012_0202_c_01L游於池內也當夫宿雨初晴暑景流空
012_0202_c_02L予自松堂步至于𡋛上披襟岸巾憇于
012_0202_c_03L俯瞰于池松風徐來山雲乍起
012_0202_c_04L光雲影頽澹於池面觀魚覷水胷次
012_0202_c_05L蕩然予於是已有天淵之樂者矣枕卧
012_0202_c_06L松根乍引閑眠松聲淅▼(氵+暦)泉響潺湲
012_0202_c_07L來繞夢魂依然而覺就于池石濯足
012_0202_c_08L而登𡋛神骨洒然氣象超忽又有羽
012_0202_c_09L化之樂者矣倘佯散步俯觀仰視
012_0202_c_10L葱蘢而秀者山也皓皚而色者雲也
012_0202_c_11L婆娑而蔭者松也玲瓏而鳴者泉也
012_0202_c_12L䬃陰而吹者風也五者相供爲游衍
012_0202_c_13L視聽之資又有浩然之樂者矣予得此
012_0202_c_14L三般之樂而遊之傍有上人曰此乃
012_0202_c_15L吾先師灝鑒之所築而鑿之者也未有
012_0202_c_16L請師名之予曰嗟乎灝鑒卽吾法
012_0202_c_17L門之昆弟也韓子云見元賔之所
012_0202_c_18L如見元賔吾於此𡋛及上人如之爾
012_0202_c_19L以𡋛丹丘名池曰天淵書之爲文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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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2_c_21L霽月軒記

012_0202_c_22L
予於辛酉秋携若干法侶止於此過一
012_0202_c_23L堂宇狹窄物情有自隘之撓欲以
012_0202_c_24L「毀」疑「壞」{編}

012_0203_a_01L창을 없애고 방장을 터서 한 방으로 만들었다. 다음 해 봄에 수익守益 상인이 그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또 기술자들을 모아 갑자기 머물고 있는 집 서편에 집 한 채를 짓고 집끼리 연결하여 작은 난간을 열어, 나로 하여금 그 앞에 머물 수 있게 하였다. 내가 집에 들어가 난간에 오르면 샘물 소리가 문안으로 들리고 산 빛이 넓게 비치며 맑은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맑게 갠 달이 저절로 이르렀다. 밤에는 누각 위에서 서성이고 진눈깨비 내릴 때는 방 안에 누워 장자의 호접지몽蝴蝶之夢20)을 좇아 흡족해하다가 홀연 잠에서 깨어 일어나 누각에 의지하여 뜬구름 같은 세상을 굽어본즉, 꿈 같기도 하고 환영 같기도 하다. 가슴을 비추는 거울을 얻어 티끌을 없애니 정상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 하늘과 땅뿐이다. 마침 흘러온 샘물 소리는 장광설을 들려주고 산은 맑은 몸체를 드러내니 소나무 아래의 맑은 바람을 생각하고 산 사이에 밝은 달을 즐기는데, 눈과 귀를 빼앗아 거침없이 한 마당을 이루어 끝없이 살아 숨 쉬는 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터는 끝없이 살아 있는 땅이다. 그것은 누가 준 것인가. 그것은 무극진군이다. 나로 하여금 그 사이에 노닐게 한 이는 또한 누구인가. 그것은 수익 상인이다. 이때에 상인이 당호를 청하니 나는 제월霽月로 처마 끝에 제하노니 대개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좋은 경치 중 가장 빼어난 것을 취한 것이다.
지리산 양진암기智異山養眞庵記
무릇 표범은 안개에 숨어 있으며 용은 계곡에 잠겨 있으니 양생하는 바가 반드시 다른 것이다. 옛날 군자들은 방외에서 나막신을 벗은 채 바위와 계곡 사이에 높이 머물렀으며, 자연 속의 사표로서 절개를 지키며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하고 세상과 더불어 사는 것을 잊었다. 비록 천금지자千金之子21)이며 만승의 군주라 하더라도 세력으로 이름과 지위를 이롭게 하고 그 뜻을 빼앗고 취지를 음란하게 할 수는 없다. 옳고 그름과 근심과 즐거움을 가슴속에 넣을 수는 없으며

012_0203_a_01L闢房櫳開丈室洞爲一室越明春有守
012_0203_a_02L益上人卽捨己儲且募人倩工而輙
012_0203_a_03L結一窩於所居堂之西連窩而啓小軒
012_0203_a_04L於前俾予處之予入其窩登其軒則泉
012_0203_a_05L聲徹戶山色暎闥淸風徐來霽月自
012_0203_a_06L夙則倘佯於軒上霄則寢臥於窩
012_0203_a_07L使莊生蝴蝶之夢栩栩然忽覺於枕
012_0203_a_08L起而憑軒俯觀浮世則如夢如幻
012_0203_a_09L轉得胷鏡絕㳙埃而頂眼盖乾坤矣
012_0203_a_10L來泉聲呈廣長之舌山色顯淸淨之身
012_0203_a_11L而惟松下之淸風興山間之明月
012_0203_a_12L以寓之耳以得之渾成一場無盡
012_0203_a_13L藏活鱍鱍地也然則此一場無盡藏
012_0203_a_14L活地其誰賜之卽無極眞君乎使予
012_0203_a_15L游於其間者又其誰也卽守益上人乎
012_0203_a_16L於是上人請軒名予以霽月題其眉
012_0203_a_17L盖取上四活景中其最優者爾

012_0203_a_18L

012_0203_a_19L智異山養眞庵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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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豹隱霧龍潛壑者其所養必有異也
012_0203_a_21L古之君子有脫屣方外高栖岩壑之間
012_0203_a_22L抏節烟霞之表枕石漱流與世相忘
012_0203_a_23L雖有千金之子萬乘之君不能以勢利
012_0203_a_24L名位奪其志滛其趣是非憂樂不入

012_0203_b_01L오직 도만이 처음과 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니, 이를 일러 양생하는 바가 다르다 하는 것이다. 지금 내 양생의 스승은 오래도록 삼산의 푸른 바위를 좇아 노닐었으니 지절이 탁월하고 굳세며 세상의 시끄러움을 싫어하여 지리산 화양동의 북쪽 낭떠러지에 소나무 판잣집을 짓고 끝까지 머물 곳으로 삼았는데, 거사인 배 공裵公은 그 일을 돕고 또한 살아갈 도구를 마련해 줘 빠뜨린 것이 없었다. 아, 저 배 공은 진실로 다른 이를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스승의 걱정 없음에 감동하고 배 공의 신의를 아름답게 여겨 몇 마디를 써서 기記로 삼는다.
황악산 금강암기黃岳山金剛庵記
무릇 봉황의 서식처는 천 장 높이의 산이요 여룡의 집은 구중의 못인 것처럼 대개 소양하는 곳에 따라 무릇 태어남이 달라지는 것이니, 그 깃든 곳은 마땅히 높고 험하고 깊고 넓은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옛날 도사들은 모두 시끄러운 세속을 피하여 세상 밖에서 고고하게 지냈으며 한적한 곳으로 흩어졌다. 그리하여 혹은 만 길 높이의 산봉우리에 집을 지었으며, 천백 층이나 되는 바위 사이에 초가를 짓고 한 세상을 굽어보며 사물과 나를 잊은즉, 세상 사람들이 우러르며 생각하는 것이 땅속 벌레가 큰 기러기를 기리는 것과 같다. 처자 거두기를 끊고 이고지고 산에 올라 험한 곳을 평탄한 곳처럼 밟으니, 대체로 경관이 빼어나 오히려 육체의 고통을 잊어버렸으며 오직 경관을 제대로 보지 못할까 두려운 마음뿐이었다. 그러한즉 무릇 도인이 은거하여 수양하는 것 또한 초연하고 탁월하니 분분한 세속의 무리들에게 표상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 금강암은 멀리 금릉군의 북쪽 황악산 정상에 있어 창을 열면 우두성牛斗星22)과 푸른 하늘 사이가 아득하니, 설사 뜬구름과 날아가는 새라 할지라도 모두 그 아래 티끌인 것이다.

012_0203_b_01L于胷次惟以道專其始終也此其所謂
012_0203_b_02L所養者異也今吾養師久從三山碧
012_0203_b_03L巖游志節卓硬厭世喧閙於智異山
012_0203_b_04L華嚴洞之北崖松椽板屋以卜終焉之
012_0203_b_05L有居士裵公助其務且資其什用
012_0203_b_06L之具而無闕焉若裵公者眞所謂樂
012_0203_b_07L人之樂者也余感我師之無閔嘉裵公
012_0203_b_08L之有信書數言而記

012_0203_b_09L

012_0203_b_10L黃岳山金剛庵記

012_0203_b_11L
夫鳳凰之棲在于千丈之岡驪龍之宅
012_0203_b_12L藏乎九重之淵者盖由其所養者有異
012_0203_b_13L於凢產故其栖止宜乎高危而深廣也
012_0203_b_14L是故古之有道之士皆避人間喧卑
012_0203_b_15L高蹈物表冡絕靜散之或置屋于萬仭
012_0203_b_16L峰頭結蒨千百層岩間俯視一世
012_0203_b_17L物相忘則世之人仰望而思之如壤虫
012_0203_b_18L之與鴻鵠焉割妻拏之所養負戴攀躋
012_0203_b_19L履危險如坦夷盖景道之彌高猶忘形
012_0203_b_20L骸之苦惟恐不及也然則凢道人之所
012_0203_b_21L棲養亦超然卓越於紛紛俗流之表者
012_0203_b_22L今玆金剛庵者逈在於金陵郡北黃
012_0203_b_23L岳絕頂之上軒窓開闢縹緲於牛斗層
012_0203_b_24L霄之間使浮雲飛鳥皆芒芴以斯在下

012_0203_c_01L암자의 도인은 집 벽에 의지한즉 나그네의 세상 속 번뇌는 모두 깨끗해지고 밤낮 오로지 불조佛祖23)의 고상한 담론으로 깨달음을 얻으니, 가슴이 쇄락해지고 드넓은 풍광에 마음과 눈이 동요하지 않는다. 일각의 공부일지라도 진겁塵劫24) 속에서 배사倍蓰25)가 되었으며, 암자와 도인은 금강의 경계를 타성일편打成一片26)하게 되어, 이로써 금강으로 이름을 지었으니 요체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즉 도를 닦는 선비라면 빌려주어 머무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머무는 사람 또한 암자에 머물지 말지를 알고 머물러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옳은 것이다. 어느 땐가 지어진 암자가 작년 가을에 여덟 사람에 의해 훼손되었다. 산인인 서보瑞寶·응잠應岑 등은 모두 도를 좋아하는 뛰어난 선비들로 탄식하며 다시 하산할 생각을 갖고 동지와 몇 명의 단월자에게 말하여 옛 터에다 새 집을 지은 것이었으니, 우뚝한 것이 전 건물보다 나았다. 1년이 지난 다음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는데 우연히 산중에 왔다가 올라와 암자를 둘러보고는 즐거워하였다. 이에 사양하지 못하고 기記를 쓴다.
설악산 한계사 가허루기雪岳山寒溪寺架虛樓記
관동에서 오는 나그네가 말하길 “나는 설악산의 승려인데 감히 당신에게 몇 줄의 글을 청하여 가허루의 벽 위에 붙이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가허루가 과연 어디에 있소?”라고 물었더니 “한계사의 누각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무릇 설악산과 한계사가 천 리 밖에 있다고 일찍부터 들었으나, 소위 가허루라는 것은 아직 들은 적이 없소이다.”라고 하였다. 나그네가 말하길 “산의 절은 오래되었으며 절의 누대는 새로 세운 것입니다. 계해년에 산승인 융택融澤과 처일處日 두 상인의 노력으로 세운 것으로

012_0203_c_01L庵之道人臨軒倚壁則客塵煩慮
012_0203_c_02L一切蕩然日夕惟以佛祖高話機用提
012_0203_c_03L其胷襟洒落浩浩風景不動乎心
012_0203_c_04L一刻工夫倍簁 [2] 于塵劫庵與道人
012_0203_c_05L打成一片金剛境界以金剛爲號
012_0203_c_06L在斯乎然則爲養道之士不爲是以畀
012_0203_c_07L居之居之人亦知是庵之居可不可
012_0203_c_08L而居之斯爲善矣庵成於何代而上
012_0203_c_09L年秋爲八人之所毀山人瑞寶應岑等
012_0203_c_10L皆好道勝士也慨然志復下山而吿
012_0203_c_11L同志若干檀士依舊址剏新屋翼然
012_0203_c_12L有勝於前制越一年請以記余偶客
012_0203_c_13L于山中亦爲登覽斯庵而喜之於是乎
012_0203_c_14L不辭書爲記

012_0203_c_15L

012_0203_c_16L雪岳山寒溪寺架虛樓記

012_0203_c_17L
客有自關東而來者曰我乃雪岳山之
012_0203_c_18L僧也敢請子綴數行文以俾貼於所謂
012_0203_c_19L架虛樓之壁上也余曰架虛樓者
012_0203_c_20L在於何曰寒溪寺之樓也曰夫雪岳山
012_0203_c_21L與寒溪寺則雖在千里之外聞之曾也
012_0203_c_22L而所謂架虛樓者未有聞客曰山之
012_0203_c_23L有此寺則古也而寺之有斯樓則新也
012_0203_c_24L歲在癸亥山之僧融澤處日兩上人之

012_0204_a_01L모某 시승詩僧이 이름을 지었습니다. 무릇 설악은 나라의 명산이며 한계는 산 가운데 절승지라 하는데, 가허루는 한계의 빼어난 누대입니다. 만약 산의 품격을 말한다면 금강이 첫째이고 설악이 그 중간이며 천후가 끄트머리라 하니, 설악은 금강과 천후 두 신선의 산 사이에 위치합니다. 험한 산세와 설색에다 삐죽삐죽 봉우리가 우뚝 동해의 항해沆瀣27) 위로 치솟아 벼슬아치와 의관 차린 선비, 산을 노닐며 물을 감상하는 스님, 세상에서 달아나 선에 몸을 담은 무리, 시인묵객들로 하여금 금강을 거쳐 이곳에 이르게 합니다. 설악을 좇아 온 사람들은 모두 ‘금강이나 설악은 천하의 명산으로 비록 인도의 설산, 중국의 여산일지라도 이에 비길 수 없다.’라고 했거니와, 듣기로 설악의 한계는 유월 한창 더위에도 모골이 서늘하다 합니다. 더군다나 그 누대에 오르면 만 척의 폭포가 바라보이는데, 마치 하늘에서 띠가 드리운 것같이 보입니다. 가벼운 안개와 찬 눈이 창 안으로 휘몰아칠 때는 노니는 사람이 부구浮丘28)를 잡고 서늘한 바람을 거느리고 해와 달을 곁에 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굽어보면 주위가 텅 비어 있고 그 표표함이 세상사를 잊어버린 것 같아서 우화등선하고픈 생각이 문득 가슴에서 일어납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나그네의 말을 듣고 탄복하여 “만약 내가 병들고 쇠약하지 않다면 천 리도 마다하지 않고 잠시나마 틈을 내 돌아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라고 하였다. 만약 크고 작은 것을 챙기는 능력과 역부의 힘과 돈독한 믿음이 있다면 세세히 거론하는 것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을 것이니, 다만 나그네의 말을 적어서 돌아가는 편에 부친다.
양양 땅 천후산 내원암기(襄陽地天吼山內院庵記)
천후산天吼山은 내가 비록 유람해 본 적이 없으나

012_0204_a_01L戮力所建而韻釋某之所號者也夫雪
012_0204_a_02L乃一國之名山寒溪爲山中之勝地
012_0204_a_03L架虛則爲寒溪絕勝之樓也若論山之
012_0204_a_04L品族則金剛爲昆雪岳爲仲天吼爲季
012_0204_a_05L而雪岳乃處於金剛天吼兩仙山之間
012_0204_a_06L嵯峨雪色嵬然秀出於東溟沆瀣之上
012_0204_a_07L使搢紳冠笏之士游山翫水之僧遁世
012_0204_a_08L逃禪之流負筆含墨之儔由金剛而抵
012_0204_a_09L從雪岳而適彼者俱必曰金剛雪
012_0204_a_10L乃天下之名山而雖天竺之雪山
012_0204_a_11L中華之廬岳未足以比而聞雪岳之寒
012_0204_a_12L則雖處六月炎蒸之際毛骨已冷
012_0204_a_13L而况登斯樓望萬仭之瀑如見垂天之
012_0204_a_14L其輕霏寒雪噴洒於軒窓之內使
012_0204_a_15L游之者如揖浮丘御冷風挾日月
012_0204_a_16L寥廓而其飄飄如遺世羽化登仙之志
012_0204_a_17L輒已發於胷次矣余聞客言而歎曰
012_0204_a_18L予者病矣衰矣恨不得一者凌千里而
012_0204_a_19L暫遊於其間也若夫在幹緣之勤役夫
012_0204_a_20L之勞檀信之力不煩細擧而只記客
012_0204_a_21L而附其歸

012_0204_a_22L

012_0204_a_23L襄陽地天吼山內院庵記

012_0204_a_24L
天吼之山予雖未得游覽而往往見之

012_0204_b_01L가끔 사람들의 시화 중에서 보곤 했는데, 천후라 부르는 것은 그 산의 뿌리가 동해에 가까이 있어 큰 바람이 불어와 부딪칠 때는 은산 같은 파도가 솟구쳐 일어나고 그 소리가 마치 우레와 같기 때문이다. 그곳을 노니는 사람은 산의 울림을 하늘이 울부짖는 것으로 여겨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관동은 아름다운 산수가 가장 많은데, 이 산은 매우 수려하고 은밀하며 바위굴이 많아 세상을 피하기에 마땅한 땅이다. 그러므로 한 마리의 벌처럼 돌아다니며 관동의 팔경을 감상한 후에 이 산에 올라 구경한다면 족히 평생의 기이한 볼거리가 될 터인데, 남해의 외진 곳에 떨어져 있어 평소의 뜻을 이루지 못해 한스럽다. 산은 호쾌한 곳이 많지만 내원암 자리가 으뜸이며 그 자리는 산허리를 넘어서는 곳으로 푸른 산과 자줏빛 봉우리가 좌우를 에워싸고 있는데, 만 길의 봉우리가 울창하게 동쪽으로 보이는 것이 달마봉이다. 하늘의 띠 한 줄기가 흰빛으로 남쪽에 걸려 있는 것이 토성 폭포이다. 만약에 그것을 보면 놀라고 소리를 듣는다면 즐거우니, 원근 고저에서 가슴을 씻어 줘 마음이 상쾌해진다. 만일 강엄江淹의 시나 한유韓愈의 문장이 아니라면 능히 만의 하나도 그려 내지 못할 것이다. 무오년에 도휴道休 대사가 동지인 수견守堅 상인과 더불어 이 절을 짓는 인연이 생겼는데, 경신년을 지나 낙성하게 되었다. 7년이 지난 을축년 수견 상인이 도휴 대사를 따라 남쪽으로 떠나, 영남 분성의 감로사로 나를 찾아와 그 산의 아름다움과 내원암 창건의 전말을 말해 주고는 나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산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층암절벽의 골짝 사이를 노닐고 마음껏 산의 진면목을 감상한 것 같았으니, 이것이야말로 몸은 가지 않고 마음이 먼저 유람한 것이 아니겠는가. 원컨대 상인은 내원암으로 돌아가 내가 그곳으로 갈 때를 기다렸다가

012_0204_b_01L於東人詩話之中則所謂天吼者以其
012_0204_b_02L山之根迫在於東海之澨而當乎𢦤
012_0204_b_03L風▼(宀/䂮)然之際海濤如銀山之摧起則其
012_0204_b_04L聲若雷焉遊其山者以爲山鳴與天吼
012_0204_b_05L故名也關東最多佳山水而此山愈爲
012_0204_b_06L秀麗而深邃山多岩窟宜爲避世之地
012_0204_b_07L故欲以一蠟吾屐而遊賞關東八景
012_0204_b_08L後登覽玆山足遂平生之奇觀而僻處
012_0204_b_09L南海之陬恨未甞素志也山之爽嵦多
012_0204_b_10L而內院居其最其盤基跨於山腰則蒼
012_0204_b_11L屏紫釰排繞左右而芙蓉萬丈蔚然
012_0204_b_12L東望者達磨之峰也天紳一條縞然
012_0204_b_13L南掛者土星之瀑也若夫其目之所駭
012_0204_b_14L耳之所喜遠近高低之蕩乎胷而爽乎
012_0204_b_15L心者倘非江淹之筆韓愈之文未能
012_0204_b_16L摸其萬一也歲戊午有道休大師率同
012_0204_b_17L志守堅上人萬緣以剏玆庵越庚申落
012_0204_b_18L成焉越七年乙丑守堅上人隨休大
012_0204_b_19L師南游至嶺國之盆城甘露寺扅余戶
012_0204_b_20L而言其山之絕勝及其剏內院庵之顚末
012_0204_b_21L而請記余慣聞山之名聞其說怳若游
012_0204_b_22L天吼層岩絕壑泉石之間恣賞其山之
012_0204_b_23L面目則此非所謂身未到而神先往遊
012_0204_b_24L者耶願上人歸於內院以竢余之他日

012_0204_c_01L그곳을 유람하는 주인이 되게 해 달라. 이에 기記를 쓰노라.
창녕현 용흥사 낭사 창건기(昌寧縣龍興寺創建廊舍記)
신유년 가을 7월 나는 팔공산으로부터 와서 이곳에서 세 번의 가을을 지내며 그 산세를 살핀즉 뒤는 우뚝 솟고 앞은 낮았으며, 그 지형을 살핀즉 세로는 평탄하고 가로는 높으며 그 집을 보면 안은 좁고 밖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하여 주지인 대덕大德 혜공慧公에게 “무릇 당우를 짓는 것은 그 지형을 살펴서 배치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지금 절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앞쪽에 높이 섬돌을 쌓고 그 위에 긴 회랑을 지어 울타리로 삼아 터가 이리저리 쏠리는 기운을 누른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할 뿐 아니라 머무는 스님들에게 복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혜공이 “그렇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동지인 사士·수守·엄嚴 등 네 사람이 곡식을 모으고 목재를 모았다. 병인년 봄이 되어 사중들을 시켜 큰 섬돌을 쌓았는데, 길이가 200주에 이르렀다. 무진년 봄을 지나서 그 위에 긴 회랑을 세웠고 홍하·채운 등 네 개의 방을 지었으며, 또한 금강·불이 두 개의 문을 세워 그 사이를 동서로 구분한 후에 절의 규모가 크게 갖추어졌다. 그 다음 해를 지나 화주인 설한에게 단청을 하도록 하였다. 신미년에 주지인 엄공이 나에게 기를 청하니 마침내 혜공에게 전해 준 말을 써서 기記로 삼는다.
신어산 백련암기神魚山白蓮庵記
내가 임술년 봄에 이곳을 지나다가 그 봉우리가 빼어나고 골짝이 빙빙 감도는 것을 보았는데, 용이 서려 있고 봉황이 나는 형세 같아 속으로 홀로 기뻐하였다. 이윽고 지팡이를 짚고 나아가 살펴본즉, 두 갈래의 시내가 에둘러 흐르고 천석은 선명한데

012_0204_c_01L遊涉其境而作主人也於是乎記

012_0204_c_02L

012_0204_c_03L昌寧縣龍興寺創建廊舍記

012_0204_c_04L
辛酉秋七月予自八公來留於此
012_0204_c_05L閱三秋就審其山勢則後峻而前卑
012_0204_c_06L察其地形則袤平而延欹視其堂序
012_0204_c_07L則內密而外虛遂以吿住持大德慧公
012_0204_c_08L凢堂宇之制乃察地形而排其序可
012_0204_c_09L而今乃寺則不然予以爲必築大砌
012_0204_c_10L於前創長廊於其上爲藩籬以制基
012_0204_c_11L形傾撓之勢則非獨使人心安集亦將
012_0204_c_12L有居僧之福矣慧公曰遂與同志
012_0204_c_13L士守嚴等四人募其粟鳩其材於丙
012_0204_c_14L寅春領寺衆築大砌長二百肘越戊
012_0204_c_15L辰春建長廊於上作紅霞彩雲等四房
012_0204_c_16L且以金剛不二兩門爲其間分東西
012_0204_c_17L位然後寺貌大成也越明年命化主
012_0204_c_18L雪閑用丹雘又辛未住持嚴公請記
012_0204_c_19L於予遂書前所與慧公之語以爲記

012_0204_c_20L

012_0204_c_21L神魚山白蓮庵記

012_0204_c_22L
予在壬戌春適過于此見其峰巒秀異
012_0204_c_23L林壑盤紆有龍蟠鳳翥之勢心獨喜之
012_0204_c_24L乃扶藜而就審之則雙澗環流泉石鮮

012_0205_a_01L그 안이 툭 트여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신어산의 한 기슭이 푸른 물을 거슬러 올라 마치 옷깃과 허리띠 같았다. 북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는데, 백 개의 시내가 같이 흘러가다가 모여서 웅덩이가 되었다. 봉우리가 없는 서쪽으로 전각을 지었으니 넓은 바닷물은 백 리 밖 남쪽으로 통하고, 산천은 서로 얽혀 창창하게 우거졌으니 완연히 금구金甌29)와 옥잔처럼 아름다웠다. 이윽고 손뼉을 치면서 감탄하길 “이것은 진실로 호중壺中의 별천지로다.”라고 하였다. 대개 이곳은 인간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사람들이 일찍이 차지한 곳이 아니다. 어찌 지령이 천여 년 동안 나무꾼이나 목동이 오가는 길 사이에 숨겨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굴면서 나를 기다렸다가 오늘 보여 주는가. 이에 흔연히 돌아가 본사의 승통인 탄정과 전 승통인 선문 두 대덕에게 “절의 서쪽 골짝은 기이한 경치로서 절을 지을 만한 지경입니다. 만약 절을 짓는다면 장차 영남 지역에서 중요한 곳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두 노승이 듣고 기뻐하면서 청오靑烏30)를 데리고 가서 가늠한 뒤 그 방위를 분별하였는데, 경좌갑향庚坐甲向31)의 터였다. 이에 절 지을 뜻을 대중에게 말하니 대중이 허락하였다. 이윽고 종민 상인에게 부탁하여 모연의 담당자로 삼게 되었는데 상인 역시 사양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와서 “제가 이 일을 맡기는 하되 시굴거영時屈擧贏32)과 같이 형세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물력을 준비하고 힘을 쓸 것인즉 제가 사중들을 믿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재목입니다. 이 산은 이미 나라에서 벌목을 금하는 곳으로 작은 나무라도 벨 수 없는데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무릇 일을 하려고 하면 하늘이 마땅히 사람들을 넉넉하게 해 주는 것이다. 산령이 천 년 동안 감추어 놓은 땅을 하루아침에 나에게 주었으니 어찌 재목에 인색하겠는가.

012_0205_a_01L中有爽塏而其東則魚山一麓
012_0205_a_02L翠水上爲襟爲帶北則洛江之流
012_0205_a_03L川同歸而匯而瀦無着千峰作殿于
012_0205_a_04L西滄海之潮南通于百里之外山川
012_0205_a_05L相繆鬱乎蒼蒼而宛成金甌玉盞之美
012_0205_a_06L遂抵掌而歎曰此眞所謂壺中別有天
012_0205_a_07L者也盖玆地旣與人世非有絕遠窅窕
012_0205_a_08L之隔而不爲人之所曾占則安知非地
012_0205_a_09L靈閟之於樵蹊牧徑之間於千萬年
012_0205_a_10L靳於人以待予於今日以畀之者耶
012_0205_a_11L欣然歸吿於本寺僧統坦淨及前僧統善
012_0205_a_12L文兩大德而語之曰寺之兊谷有一奇
012_0205_a_13L乃象設之區也若造禪廬亦將爲
012_0205_a_14L嶺國之重地乎二老聞之喜卽携靑烏
012_0205_a_15L就硂而卞其方乃庚坐甲向之基也
012_0205_a_16L以剏蘭若之意諗于衆衆諾之遂囑宗
012_0205_a_17L敏上人爲募緣之主上人亦不辭就吿
012_0205_a_18L于予曰吾之任此事時屈擧贏勢似
012_0205_a_19L難堪然物力之備功勞之課則吾將
012_0205_a_20L恃之於寺衆其最難者材乎玆山旣
012_0205_a_21L爲國家之禁地則雖一尺之材奈無下
012_0205_a_22L手處何予曰夫事之將成者天將有所
012_0205_a_23L裕於人者乎山靈旣以千年秘慳之地
012_0205_a_24L與我於一朝則安有以吝其材耶子茅

012_0205_b_01L그대는 굳게 마음을 갖기를 바라네.”라고 하였다. 또한 “부에 거주하는 배원경 공이 지금 통제사와 친한 사이이니 그대는 가서 일을 도모하라.”라고 했는데 상인은 이 말대로 하였다. 1년이 지나 계해년 봄에 법당이 완성되었으니, 행랑이 에워싸고 다락으로 덮여 있으며, 크고 넓은 것이 강의 오른편에서 으뜸이었다. 학탄 상인 역시 그 봄에 기와를 구웠다. 그해 가을 내가 금릉의 황악산에서 배를 타고 수백 리를 내려와 절이 완성된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민 상인의 손을 잡고 그 노고를 위로하였다. 상인이 “제가 비록 책임을 맡았으나 만약 흠欽 대덕의 노력이 없었다면 절을 짓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길 “무릇 박자를 잘 치면 반드시 그 화음이 이루어지는 것이 맏형이 훈을 불고 둘째형이 지를 분다는 것이니, 지금 상인과 흠 상인은 또한 훈지壎箎33)의 화합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절이 그런대로 지어지고 띠로 지붕을 했는데, 이때에 사중들이 기와를 옮겨 지붕을 얹고 진흙으로 벽을 바르고 창문을 달고 온돌로 방을 덥혔다. 나는 몇 명의 도반들과 쉬면서 겨울을 지내고 다음 해 봄을 맞았다. 그리고 사중에게 청하여 시내를 돋워 고르게 하여 뜰의 경계로 삼고 돌을 쌓고 흙을 돋워 한길의 담장을 만들었으며, 전 호남 총섭이었던 대원 스님은 탱화를 만들고 단청을 하여 아름답게 꾸몄다. 학사인 문학·오심·위총 등은 이를 이어받아 힘을 기울였다. 세간 물건들을 대강 갖추어 모든 계통을 세우게 된 것은 대체로 나懶 상인과 흠 상인이 애쓴 덕분이다. 하루는 내가 흠·민 두 상인에게 말하길 “무릇 천하의 사물은 대개 그 근원이 있는데 내가 애초 이 땅이 눈에 들어온 데는 역시 뜻이 있었다. 아, 내 스승인 벽암碧岩 화상은 나라 안 선문의 대종사로서 그 도로 풍속을 교화하고 인도하는 풍모가 사방에 퍼졌는데,

012_0205_b_01L勵其匪石之志乎且曰府居裵公元卿
012_0205_b_02L爲今統相之椽賓也子其詣以圖之
012_0205_b_03L人從之越一年癸亥春堂成翼以廊宇
012_0205_b_04L蔽以樓楹而宏而曠甲於江之右也
012_0205_b_05L有學坦上人亦於其春陶其瓦也
012_0205_b_06L秋予自金陵之黃岳舟行數百里而來
012_0205_b_07L見堂成而喜之卽握敏上人之手而慰
012_0205_b_08L其勞上人曰吾雖受是任若不有欽
012_0205_b_09L大德之努力則堂必不成矣予曰
012_0205_b_10L善其拍者必有善其和者故伯氏之壎
012_0205_b_11L有仲氏之箎今欽師之於上人亦可謂
012_0205_b_12L壎箎之和者乎然堂堇成以茅蔽之
012_0205_b_13L於是寺衆乃運瓦以盖之取泥以壁之
012_0205_b_14L掩以窓闥溫以房堗予與若干法侶憇
012_0205_b_15L而過其冬至翌年春子又倩寺衆
012_0205_b_16L壘澗平坎以爲庭界筥石輦土以爲
012_0205_b_17L墻仞而有釋前湖南捴攝大元造佛幀
012_0205_b_18L幹丹雘以賁餙之有文學玉心偉聰等
012_0205_b_19L相繼而致力什用之物以備之槩
012_0205_b_20L擧有緖者皆懶欽上人之力也一日予
012_0205_b_21L謂欽敏兩上人曰凡天下事物皆有其
012_0205_b_22L予當初寓目於此地者亦有意存焉
012_0205_b_23L吾先師碧岩和尙乃一國禪門之大
012_0205_b_24L宗師也其道化之風遍於八表獨此

012_0205_c_01L오로지 이 한 구석만이 교화가 미흡하여 내가 일찍이 개탄하였다. 만약 여기에 절이 완성된다면 선사의 초상을 그려서 봉안하여 죽을 때까지 곁에서 시봉하고자 하였다. 이제 다행스럽게도 절이 지어져 내 원이 풀렸는데, 이는 나의 두 상인이 힘써서 된 일이므로 두 상인에게 사례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손을 잡고서 전하기를 “무릇 수년 사이에 우거진 잡초와 나무가 변하여 절집이 우뚝 솟았으니 분명 세월의 운수, 지령의 넉넉함, 사중의 근면함, 두 상인의 노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물의 이치에 따른 운수와 사람에 대한 산천의 기다림 역시 감동되는 바가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 이 땅은 비록 계원雞園34)의 승지인 데다 사라쌍수의 기이함을 갖추었으나, 두 상인이 없었다면 누가 능히 그 당을 짓고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몄겠는가. 사중이 없었다면 누가 그 재물을 내어 그 원력을 펼쳤겠는가. 산령이 없었다면 누가 처음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기이함을 알게 했을 것인가. 그런즉 나와 산령은 말 없이도 마음이 맞은 것이다. 나는 또한 두 상인과 종신토록 이곳에 머물면서 노닐 수 있게 되었으니, 마땅히 산령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에 글을 써 기記로 삼는다.
예천군 태행산 대곡사 중창기醴泉郡太行山大谷寺重創記
무릇 절이란 이어 가는 것이다. 대개 할 일은 서로 이어서 전하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이니, 혹은 정사精舍라 부른다. 영우靈祐35)는 사고寺誥에서 “거칠고 사나운 곳은 머물러서는 안 된다.”라고 했고, 또한 『예문지藝文志』에는 “정련하는 자가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혹은 도량이라 말한다.”라고 하였다. 승조僧肇36)는 말하길 “도를 닦는 장소를 초제招提 혹은 승가람이라 하니 여러 사람들의 농원인 것이다. 농원이라 하는 것은 불제자들을 길러 내는 것이니, 도를 싹 틔우고 거룩함을 열매 맺게 하는 터이다. 무릇 천하의 절 이름에

012_0205_c_01L一隅其化未洽予甞有慨歎若見堂
012_0205_c_02L成於此則欲摹先師之眞以奉安之
012_0205_c_03L侍其側以終吾年今幸成之吾願遂
012_0205_c_04L此吾兩師之力也爲兩師謝之
012_0205_c_05L執手而吿之曰夫不數年間變榛莾之
012_0205_c_06L蓊蔚堂宇之突兀者其必有年代之運
012_0205_c_07L地靈之裕寺衆之勤兩師之勞也
012_0205_c_08L物理之有數山川之待人者亦有所相
012_0205_c_09L感者矣此地雖有雞園之勝鶴樹
012_0205_c_10L之奇非有兩上人孰能締構其堂華廣
012_0205_c_11L廈之壯麗非寺衆孰能捨其財而宣其
012_0205_c_12L非山靈孰能初使我知此地之異也
012_0205_c_13L然則吾與山靈自有默默相契者矣
012_0205_c_14L又與兩上人終得栖遲而倘佯於此
012_0205_c_15L宜乎不負其山靈者善矣卽書爲記

012_0205_c_16L

012_0205_c_17L醴泉郡太行山大谷寺重創記

012_0205_c_18L
夫寺者嗣也盖治事者相續嗣駐於
012_0205_c_19L其內也或名精舍靈祐寺誥曰非麁
012_0205_c_20L暴者所居也又藝文志云良由精練行
012_0205_c_21L者所處也或名道場肇師云修道之
012_0205_c_22L或云招提或名僧伽藍爲衆人之
012_0205_c_23L園圃園圃者生植之所爲佛弟子之生
012_0205_c_24L道芽聖果之所故也且凡天下之寺名

012_0206_a_01L또한 뜻을 붙이는 바가 있으니, 한나라에서는 백마白馬를 절 이름으로 했는데 백마가 경을 싣고 온 공덕 때문이다. 비사毘舍는 산서山鼠37)를 절 이름으로 삼았으니, 산서의 은공에 감응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대곡사大谷寺는 사물의 은공에 감동하여 지어진 이름은 아니지만, 또한 지세로 유명한 곳이다. 원래 그 절터의 기세는 금강산의 한 가지가 남으로 전해져 오대산이 되었으며, 오대산으로부터 태백산이 되었고 태백산의 한 줄기가 청량산이 되었다. 청량산이 굽이굽이 내려와 청송에 이르러 보현산이 되었으며, 보현산에서 맴돌아 서쪽을 지나 이 군에 이르러 이 산이 되었으니, 군에서 북쪽으로 50리의 자미紫微38) 터에 자리 잡았다. 골짝이 벌여 있으며 동남쪽으로 탁 트여 큰 계곡이 되었으니 골짝의 어귀는 강물이 물웅덩이를 이루어 수백 리에 걸쳐 있고, 산하의 기세가 띠처럼 둘러 있은즉 절을 대곡大谷이라 칭한 것이 필경 옳은 것이다. 일명 대국大國이라 부르는 것 역시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상세하지는 않다. 옛날 당나라 사람이 산 밑을 지나다가 산을 가리키며 “이 산의 형세가 중국의 대행산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라고 한 뒤로 근처 사람들 또한 태행산太行山이라 불렀다. 이 산을 일명 비봉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산세를 따라 말한 것이다. 절이 처음 지어진 때는 신라 시대라 하는데 세월이 오래 지나 상고할 수 없게 되었다. 고려 말 공민왕 때에 서천 출신 지공指空 대사 즉 박타존자薄陀尊者로 불리는 분이 중국에 들어와 나옹 대사에게 불법을 전하고, 그 뒤 나옹과 더불어 이곳을 유력하다가 유지를 보고 또한 절을 지었다.
만력 연간에 일어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맞아 절은 왜구들에게 분탕되어 10년 동안 초토의 언덕이 되어 버렸다. 을사년에 이르러 산신각이 재건되고 훌륭한 이들이 다시 돌아왔으니, 탄유坦裕 대덕이 계은戒訔·경성敬性·계운戒雲 등과 더불어 이곳에 와서 서로 의논하여 말하길

012_0206_a_01L亦有所寓意而稱之則漢以白馬名寺
012_0206_a_02L以白馬駄經之功也毘舍以山鼠名
012_0206_a_03L則亦感山鼠之恩故也今玆大谷寺
012_0206_a_04L非是感物之恩功而亦有以地勢而
012_0206_a_05L名者歟原厥宅勢則金剛一肢南轉
012_0206_a_06L爲五臺自五臺爲太白太白之子
012_0206_a_07L淸凉自淸凉逶迤而至靑松爲普賢
012_0206_a_08L自普賢盤旋西歷而至玆郡爲此山去
012_0206_a_09L郡北五十里坐於紫微之鄕開張洞
012_0206_a_10L唅呀向巽爲大谷谷之口江水瀦
012_0206_a_11L匯爲數百里襟帶山河勢則寺之稱
012_0206_a_12L大谷者必以是也一名大國者想亦
012_0206_a_13L有旨而未尙細焉昔者有唐之人
012_0206_a_14L山下而指之曰此山之形宛與中國大
012_0206_a_15L行山無異也鄕人遂亦呼爲太行山也
012_0206_a_16L一名飛鳳山者此用山勢云耳寺之初
012_0206_a_17L則在新羅朝云而歲代甚久不可攻
012_0206_a_18L中至麗季恭愍王朝有西天指空
012_0206_a_19L卽所謂薄陀尊者也至中華付法於懶
012_0206_a_20L後與懶翁遊歷於此見遺址而又
012_0206_a_21L創伽藍至我朝萬歷丁壬之亂寺爲斑
012_0206_a_22L寇所焚蕩而爲十年焦土之丘至乙巳
012_0206_a_23L山靈再造人傑重來有坦裕大德1)
012_0206_a_24L [5] 訔敬性戒雲等就於玆相爲謀曰

012_0206_b_01L“아, 이 절은 옛날 지공 화상이 창건한 것인데 처참하게도 왜구들에게 불태워졌으니, 우리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이때에 탄유 대덕이 곧 법당을 짓고 계은·계운·경성 세 사람이 불상을 조성하고 혹은 개와를 구웠다. 설선·우화·백수·취운 등 네 요사, 두월·담월·남월·원통 등 네 요사가 지어졌으며, 법선·대전·경미·혜련·인규·각심·수경·숭신 등 여러 스님이 앞뒤로 머물면서 힘을 다하였다. 서상실과 향로전과 오십삼불의 전각이 있었는데 보정·태감·학열 등이 힘을 썼으며, 정문과 종각은 사우·회옥·의화·도한 등이 힘을 합하여 지었으며, 시왕·향적 두 전각은 영민·희묵·방택·응관·설매가 지은 것이며, 시왕과 오십삼불 등의 불상은 방택·처상 등이 만들었으며, 부처 뒤 삼장과 사오로四五路39) 탱화는 덕잠·처연이 힘쓴 괘불로 영찬이 완성했으며, 성행당은 각일이 세운 것이다. 아, 옛날 지공 대사가 이 절을 창건하여 세상에 이름이 전해진 지 수백 년이 되었는데, 절이 없어진 후에 지금의 탄유 등 스님들이 지공의 유지를 이어 절을 중건한 것이니, 지금 스님들이 옛날 지공 대사의 그림자를 나누어 세상을 교화한 것이 아닌가. 아아, 성대하도다. 금수레·종·북·경함·불기·금고·바라·집물에 이르기까지 각기 담당하는 이가 있으니, 그 이름은 산중의 여러 암자의 이름과 함께 후록에 갖추어 실었다.
유공산지遊公山誌
내가 호서의 공산부에 대해 들었는데 옛 웅진부에 속한다.

012_0206_b_01L此乃古之指空和尙所創者而慘爲
012_0206_b_02L島夷所燬了吾等其忍視耶於是裕公
012_0206_b_03L卽構法堂訔雲性三人或造佛像
012_0206_b_04L燔盖瓦也其說禪雨花栢樹翠雲四寮
012_0206_b_05L斗月淡月南月圓通四寮有法禪大顚
012_0206_b_06L敬眉惠璘印圭覺心秀瓊崇等諸禪
012_0206_b_07L先後而戮力者也西上室香爐殿五十
012_0206_b_08L三佛殿則普淨太鑑學悅等所着力者
012_0206_b_09L正門鍾閣則思祐懷玉義和道閑
012_0206_b_10L所共幹者也十王香積兩殿則靈敏希
012_0206_b_11L默方澤應觀雪梅之所營也十王五十
012_0206_b_12L三佛等像則方澤處祥等所造也後佛
012_0206_b_13L三藏四五路幀則德岑處璉之所務也
012_0206_b_14L掛佛則靈賛之所成而省行堂則覺
012_0206_b_15L一之所建者也昔者指空創玆寺
012_0206_b_16L傳名於世者數百年而今有坦裕等諸
012_0206_b_17L繼指空而重復於旣廢之後今之
012_0206_b_18L諸德非古之指空之分其影而化於世
012_0206_b_19L者歟嗚呼盛哉及其金輦鍾鼓經凾佛
012_0206_b_20L器禁鼓鈸羅什物各有所幹之人其名
012_0206_b_21L則與山中諸庵之名具載於後錄也

012_0206_b_22L

012_0206_b_23L遊公山誌

012_0206_b_24L
余聞湖西之公山府卽古之2) [6] 津府也

012_0206_c_01L그 산천의 형승으로 말하면 금강과 계룡산의 수려함이 시인들로 하여금 족히 멋진 시를 짓게 하고 도를 품게 하여, 깨끗하게 세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을 생각해 보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지 오래되었다. 창룡의 해(1664) 봄에 우연히 유람할 기회를 얻어 고을에서부터 공북루라는 곳에 올랐는데, 금강의 상류에 임해서는 가슴속이 활짝 열렸으며 경물이 호연하여 훌쩍 속된 세상의 생각을 버릴 수 있었으니, 저절로 그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동정호를 제압하고 악양루에 오른 것과 같았다. 꽃봉오리가 원근에 물에 잠긴 듯 보이는 것은 언덕들이요, 높이 치솟아 빛나는 것은 산이요, 넓게 고여 있는 것은 물이다. 아득한 안개 백사장, 창망한 섬, 물가의 조약돌, 짧은 언덕과 긴 모래톱에 지는 해가 반만 남았는데, 가는 비 내리는 중에 사립을 쓰고 낚시하는 것은 사람이요, 오그린 채 조는 것은 백로이다. 장오檣烏40)가 한가롭게 흔들리고 배들이 이어진 곳에 이르니, 어부 노래 오가고 평지와 끊어진 언덕길 사이에서는 목동의 피리 소리 서로 급하다. 나와 객은 누대 위에서 잔을 든 채 조하趙嘏의 장적일성長笛一聲41)의 시구를 읊조렸다. 그 사이의 경치는 비록 천하에 유능한 사관이 있다 할지라도 능히 한 치도 그려 낼 수 없을 것이니, 저녁노을과 쓸쓸한 물새는 왕자王子의 등왕각滕王閣에 의지하게 한 것이 아니며,42) 비 갠 강과 방초는 또한 최호崔顥가 황학루黃鶴樓에서 읊조리게 한 것이 아니겠느냐.43) 그러한즉 비단강의 아름다움과 별이 북극성을 향하는 기이함은 멀리 위제魏帝에게 허물 있는 앵무주鸚鵡洲를 생각나게 한다.44) 이때에 노닒의 흥취가 가시지 않아 바람에 배를 띄워 타고 하류에서 경쾌하게 노를 저어 구름을 넘고 시내를 건너고 계산의 정상에 올라 보니, 산은 깎아지른 듯 솟아 있고 동쪽에도 우뚝, 서쪽에도 우뚝하고 그 사이로 봉우리가 층층히 드러났다. 구름은 펼쳐져 있고

012_0206_c_01L其山川之形勝有錦江雞龍之秀麗
012_0206_c_02L使足詞人發綺藻而懷道者增其瀟洒
012_0206_c_03L出塵之趣也思一涉其間以目寓之
012_0206_c_04L而耳得之者久矣在蒼龍春偶得以遊
012_0206_c_05L自州孰登其所謂拱北樓者翼然
012_0206_c_06L臨於錦江之上胷襟頓豁景物浩然
012_0206_c_07L其飄飄遺世之思自發而不可已也
012_0206_c_08L壓洞庭而登岳陽樓者也瞻睡其遠近
012_0206_c_09L則其浸淪也𡼂峙也嶢然兀者
012_0206_c_10L灝然匯者水也烟沙渺浩島嶼蒼茫
012_0206_c_11L圓磯芳渚短岸長洲斜陽半在微雨
012_0206_c_12L初收簑而釣者而拳眠者鷺也
012_0206_c_13L於檣烏泛泛艦鷁聯聯漁歌互答
012_0206_c_14L笛相催於平坡斷隴之間余與客擧盃
012_0206_c_15L於樓上吟趙嘏長笛一聲之句此間景
012_0206_c_16L雖有天下之良史不能摸其一髮也
012_0206_c_17L落霞孤鶩非王子之倚於滕王閣者耶
012_0206_c_18L睛川芳草亦非崔顥之詠於黃鶴樓者
012_0206_c_19L然則錦水之勝拱北之奇想有過於
012_0206_c_20L帝子鸚鵡之洲者遠矣於是不盡遊賞
012_0206_c_21L之興駕一帆於長風輕揉櫓於下流
012_0206_c_22L凌雲越澗且登其所謂雞山之顚則削
012_0206_c_23L立峭聳東岣西嶁間見層出排雲而
012_0206_c_24L「戒與」疑「與戒」{編}「態」疑「熊」{編}

012_0207_a_01L푸른 산이 어둑어둑했으며 안개 낀 사이로 흰 봉우리가 삐죽삐죽했으니, 따오기가 서 있는 듯 붕새가 날아 오르는 듯하였다. 마치 말이 달리는 듯하고 갑옷을 모아 놓은 듯하고 오두막 같고 움집 같으니, `조용한 골짝이 되어 만 길 낭떠러지요 천 길의 폭포였다. 손선孫仙이 천태天台에 오른 것45)이 아닐까. 아찔한 것이 이태백李太白이 올랐던 검각釰閣46)이 아닌가. 가파르고 험하기로는 한유韓愈가 노닐었던 형산衡山47)이 아닌가. 벌벌 떨며 양지쪽으로 발길을 옮겨 석등을 거쳐 내려오는데, 암자에 노승이 있으니 방주芳洲라 하였다. 그리하여 자리를 빌려 이틀을 묵으며 혹은 현묘한 도를 이야기하고 혹은 시를 품평하였다. 고금의 일을 살펴 이어 갈 것을 생각하고 맺힌 생각을 들추어 깨뜨렸으니 가히 가슴에 막힌 것이라고는 없게 되었다. 다시 방주의 손을 잡고 만 길 위태로운 데까지 올라 티끌 먼지 세상을 내려다보고 태허를 올려다보면서 말하길 “내가 노닌 바를 무릇 세상의 명리에 골몰하여 벼슬로 달려가는 것과 비교하는 것은 백 년의 한가로움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즉 어린 벌레가 멀리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무슨 대수겠는가.”라고 하였다. 글을 지어 기記로 삼는다.

동계집 제2권

012_0207_a_01L靑黯黯也帶霧而白齒齒也其鵠立也
012_0207_a_02L鵬褰也如馬之躍如甲之簇似廪也
012_0207_a_03L窖也者窅窕而爲洞壑硿砯而爲
012_0207_a_04L溪澗丹崖萬丈瀑道千尋豈孫仙之
012_0207_a_05L上天台者耶何其危哉非大白之登釰
012_0207_a_06L閣者耶嶄兮嶻兮非韓子之遊衡岳者
012_0207_a_07L惴惴然轉其陽由石磴而得一菴
012_0207_a_08L有老宿曰芳洲也因借榻而信宿焉
012_0207_a_09L或談玄語道或討月評雲搜今攬古
012_0207_a_10L以▼(处/月)繼膏披破覊思眞可謂胷中無滯
012_0207_a_11L碍者也更携芳洲登萬仞之危俯塵
012_0207_a_12L傲太虛而語之曰以吾之所遊
012_0207_a_13L夫世之役名利奔科官不知百年之閑
012_0207_a_14L則豈特壤虫之於㝠鴻哉書以爲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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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溪集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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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어로魚魯를 구분하지 못하며 : 어魚 자와 노魯 자를 분간하지도 못할 정도로 무식하다는 뜻이다.
  2. 2)오하아몽吳下阿蒙 : 옛날 오吳나라에서 무식하게 날뛰던 시절의 여몽呂蒙을 지칭하는 것으로, 어느새 지략을 갖춘 훌륭한 무장으로 성장한 것에 감탄하면서 쓰는 말이다. 다시 말해 삼국시대 오나라 장수 여몽에게 손권孫權이 학문을 하여 깨우치라고 하자 그 말에 발분되어 여몽이 독실하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 뒤 노숙魯肅이 주유周瑜를 대신하여 도독都督이 되어 여몽을 방문했다가 여몽의 학문이 크게 진전을 이룬 것을 보고 그의 등을 치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무략武略만 아는 줄 알았다가 박학하고 영준한 것을 보니 더 이상 오하아몽이 아니다.”라고 한 데서 연유한 성어이다. 『三國志』 권54 「吳書」 ≺呂蒙傳≻ 주注.
  3. 3)아름다운 털을 보존하라 : 유향劉向의 『列女傳』 「陶答子妻」에 나오는 말이다. 도陶나라 답자答子의 아내가 능력이 없으면서도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남편에게 충고하던 중, “남산에 사는 표범이 안개비 속에서 7일을 굶어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까닭은 그 털을 아껴 좋은 무늬를 유지하기 위함이다.(南山有玄豹。 霧雨七日。 而不下食者。 何也。 欲以澤其毛。 而成文章也。)”라고 하였다.
  4. 4)기북冀北 : 준마駿馬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한유韓愈는 「送溫處士赴河陽軍序」에 “백락이 기북의 들판을 한번 지나가자 말들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伯樂一過冀北之野。 而馬群遂空。)”라 하였다.
  5. 5)우문禹門 : 옛날 우왕禹王이 치수 사업으로 상류의 용문산 맹진의 폭포를 3단으로 끊어서 강물이 들지 못하도록 했는데, 하류에 사는 물고기가 3단의 폭포를 일시에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이를 우문삼급禹門三級이라 한다.
  6. 6)삼급三級 : 물고기가 용이 되려면 용문龍門에 있는 세 층계(三級)를 뛰어올라야 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7. 7)고적高適(707~765) : 당唐나라 시인이다. 그는 칠언고시에 능했으며 시인인 잠삼岑參과 함께 고잠高岑으로 불린다. 시의 기절氣節을 숭상하였으며, 일찍이 간의대부諫議大夫·회남 절도사淮南節度使 등을 거쳐 발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졌다. 『新唐書』 권143 「高適列傳」.
  8. 8)만 권의 책(萬卷之書) : 두보杜甫의 시구 중에 “글은 만 권의 책을 독파하였고, 붓을 잡으면 귀신이 돕는 듯하였도다.(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라고 표현한 시구가 있는데, 자신의 문재를 밝힌 것이다. 『杜少陵詩集』 권1 ≺奉贈韋左丞丈≻.
  9. 9)울유鬱攸 : 화기火氣, 즉 화마火魔를 가리킨다.
  10. 10)자금紫金 : 적동赤銅과 황금을 배합한 것과 같은 진귀한 광물이다. 여기서는 불상을 말한다.
  11. 11)쌍림雙林 :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사라쌍수가 있는 숲. 여기서는 가야산을 가리킨다.
  12. 12)상설象設 : 왕릉王陵 등에 마련된 여러 가지 석물石物 따위를 말하며, 여기서는 절을 뜻한다.
  13. 13)호중壺中 : 호중천壺中天을 줄인 말. 후한後漢 시대 술사術士였던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에서 약을 파는 호공壺公을 따라 그의 호리병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안에 일월日月이 있었으며, 별천지別天地가 펼쳐져 있더라는 고사가 전한다. 여기서는 별천지를 가리킨다.
  14. 14)방공龐公 : 후한後漢 시대 방덕공龐德公을 가리킨다. 그를 방공 또는 방거사龐居士라 일컫기도 한다. 후한 양양 사람으로 현산峴山 남쪽에 살면서 세상에 나아가지 않았다. 형주 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초빙하고자 했으나, 응하지 않고 건안建安 중에 가솔을 모두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後漢書』 권83 「逸民列傳」 ≺龐公≻.
  15. 15)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세계. 현실의 제약을 벗어난 무위자연의 이상향을 가리킨다.
  16. 16)점점蔪蔪 : 무성하다는 뜻이다. 혹은 점점漸漸으로 쓰기도 한다. 기자箕子가 주周나라에 가서 멸망한 은殷나라의 옛 도읍터에 벼와 보리가 무성함을 보고 비탄한 심정에서 “맥수가 점점함이여. 벼와 기장이 성하네.(麥秀漸漸兮。 禾黍油油。)”라는 ≺麥秀歌≻를 지었다 한다. 『史記』 권38 「宋微子世家」.
  17. 17)천연天淵 : 『詩經』 「大雅」 ≺旱麓篇≻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에 “소리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도다.(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시구가 보이는데, 소리개와 물고기가 자득自得하는 모양, 혹은 임금의 덕화德化가 잘 미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결국 천연은 상하上下 모두 분명하고 모든 현상이 도에 부합되는 것을 일컫는다.
  18. 18)원빈元賔 : 당唐나라 문인 한유韓愈의 벗이었던 이관李觀의 자字이다. 그는 이전 문인들의 글을 답습하지 않았으며, 한유와 겨룰 만큼 출중한 재주를 갖추었는데 29세에 타향에서 요절하자 한유가 묘지墓誌를 지어 애도하였다. 『舊唐書』 권190 하.
  19. 19)원빈元賔과 사귄~것과 같다 : 한유韓愈가 지은 「答李秀才書」에 “원빈이 죽은 뒤 그의 글이 더욱 귀중해졌으며, 원빈을 생각해도 볼 수 없으니 원빈이 사귀던 사람을 보면 원빈을 보는 것과 같다.(元賓旣沒。 其文益可貴重。 思元賓而不見。 見元賓之所與者。 則如元賓焉。)”라는 대목이 보인다. 『古文眞寶後集』.
  20. 20)호접지몽蝴蝶之夢 : 호접蝴蝶은 『莊子』의 「齊物論」에 나온다. 장자가 꿈속에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꿈속에 장자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물화物化의 비유를 그렇게 표현하였다. 대체로 현실인지 꿈인지 혼동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21. 21)천금지자千金之子 : 귀한 집의 자식을 뜻하는데, 한문제漢文帝가 말을 타고 험한 언덕을 치달리려 하자, 원앙袁盎이 “귀한 집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는 법이다.(千金之子。 坐不垂堂。)”라고 하면서 만류하였던 고사에서 연유한 말이다. 『史記』 권101 「袁盎晁錯列傳」.
  22. 22)우두성牛斗星 :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합해 부르는 말.
  23. 23)불조佛祖 : 석존釋尊과 종파宗派의 개창조開創祖를 말한다.
  24. 24)진겁塵劫 : 진세겁난塵世劫難의 준말로, 인간 세상에서의 위협과 어려움을 말한다.
  25. 25)배사倍蓰 : 배倍는 두 배, 사蓰는 다섯 배를 가리킨다.
  26. 26)타성일편打成一片 : 피아彼我·주객主客·선악善惡·호오好惡 등 상대적이고 대립된 관념을 깨고 차별 없는 세계로의 조화를 일컫는다.
  27. 27)항해沆瀣 : 야간의 수기水氣가 엉긴 맑은 이슬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구름, 운무를 말한다.
  28. 28)부구浮丘 : 고대 전설상의 신선인 부구공浮丘公을 가리킨다. 곽박郭璞의 ≺游仙詩≻에 “왼손으로는 부구의 소매를 당기고, 오른손으로는 홍애의 어깨를 친다.(左相浮丘袖。 右拍洪崖肩。)”라는 대목이 보이는데, 신선과 나란히 장생불로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29. 29)금구金甌 : 금으로 만든 사발을 가리키는데, 흠이 없이 견고하다는 뜻에서 강토疆土를 가리킨다. 양梁 무제武帝가 무덕각武德閣에 이르러 혼잣말로 “나의 국토는 오히려 금구와 같아 하나의 상처도 흠도 없다.”고 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梁書』 권38 「朱異列傳」.
  30. 30)청오靑烏 : 풍수술風水術에 밝았던 전설상의 술사術士인 청오자靑烏子를 말한다. 풍수가風水家나 풍수서風水書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여기서는 풍수가를 지칭한다.
  31. 31)경좌갑향庚坐甲向 : 좌坐는 묘를 쓸 때 시신屍身의 머리 쪽, 즉 묘의 뒤쪽이고, 향은 시신의 발끝 쪽, 즉 묘의 앞쪽이다. 경좌갑향은 경방이 좌이고 갑방이 향이라는 뜻인데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향해 있다는 말이다.
  32. 32)시굴거영時屈擧贏 : 어려운 상황인데도 사치스럽게 일을 벌인다는 뜻이다. 『史記』 권45 「韓世家」에 “지난해에 진秦나라에 의양宜陽을 빼앗기고 금년에는 가뭄이 들었는데, 소후昭侯가 이러한 시기에 백성을 구휼하는 것을 급하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더욱 사치하니, 이것이 시굴거영이다.”라는 대목이 보인다.
  33. 33)훈지壎箎 : 형제 혹은 친구 사이의 화목과 조화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으로, 『詩經』 「小雅」 ≺何人斯≻의 “맏형은 훈을 불고 둘째형은 지를 분다.(伯氏吹壎。 仲氏吹篪。)”라고 하였다.
  34. 34)계원雞園 : 인도印度에 있는 절 이름인데, 무우왕無憂王이 세운 것이다.
  35. 35)영우靈祐 : 위산潙山 선사(771~853)의 법명이다. 속성은 조趙씨이며 복건성福建省 장경長慶 출신이다. 15세에 출가하여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용흥사龍興寺에서 경·율을 배우고, 백장 회해百丈懷海의 문하에 들어가 법을 이었다. 위산은 그가 주석한 대위산大潙山을 가리킨다. 제자로는 앙산 혜적仰山慧寂·향엄 지한香嚴智閑·왕경초王敬初 등이 있으며, 저술로 『潙山警策』·『潭州潙山靈祐禪師語錄』이 전한다.
  36. 36)승조僧肇(383~414) : 중국 장안 출신의 스님으로 구마라집鳩摩羅什 문하 사철四哲의 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노장老莊의 학을 좋아하여 심요心要라 주장, 뒤에 지겸支謙이 번역한 『維摩經』을 읽고 나서 불교에 귀의하였다. 구마라집을 스승으로 섬기어 역경 사업에 종사하였는데, 교리에 관한 한 구마라집 문하에서 으뜸이었다. 진晋나라 의희義熙 10년, 장안에서 나이 31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는 『般若無知論』·『涅槃無名論』·『寶藏論』 등이 전한다.
  37. 37)산서山鼠 : 가란타迦蘭陀, 가란태가迦蘭駄迦, 가란타리가迦蘭陀夷迦라고도 하는데, 왕사성의 한 부자를 말한다. 그는 처음에는 외도를 신봉하다가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여 죽원을 바쳐 반바사라왕이 이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하였다.
  38. 38)자미紫微 : 제왕이 있는 궁궐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절을 말한다.
  39. 39)사오로四五路 : 염라대왕이 망자의 집에 파견하는 저승사자인 사직사자四直使者와 오제五帝를 그린 탱화.
  40. 40)장오檣烏 : 돛 위에 매단 까마귀 모양의 풍향계風向計를 말한다.
  41. 41)조하趙嘏의 장적일성長笛一聲 : 조하는 당唐나라 시인 조희일趙希逸을 말한다. 여기서 장적일성은 조하의 시에 보이는 “별 몇 개 남았는데 기러기는 변방을 지나고 긴 피리 한 소리에 사람은 누대에 기댔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대목을 가리킨다.
  42. 42)저녁노을과 쓸쓸한~것이 아니며 : 왕자王子는 당나라 왕발王勃를 가리키며, 등왕각滕王閣은 「滕王閣序」를 말하는데, 그중에 “저녁노을은 쓸쓸한 물새와 나란히 떠 있고, 가을 강물은 가없는 하늘과 한 빛을 이루었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대목이 있다.
  43. 43)비 갠~것이 아니겠느냐 : 당唐나라 시인 최호가 황학루黃鶴樓에 올라서 지은 시에 “비 갠 강에 한양의 나무 역력하다.(晴川歷歷漢陽樹。)”라는 구절이 있다.
  44. 44)위제魏帝에게 허물~생각나게 한다 : 후한後漢의 이형禰衡은 오만하여 조조에게 밉보였다가 끝내 황조黃祖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앵무주鸚鵡洲는 바로 이형이 묻힌 곳을 말한다. 「滄波詩誥」.
  45. 45)손선孫仙이 천태天台에 오른 것: 동진東晉 시대 시인 손작孫綽이 천태산天台山에 오른 것을 말한다. 그의 〈遊天台山賦〉에 보면 “아, 기묘하게 솟은 천태산이여. 분명 신명이 도와서 일으켜 세웠겠지.(嗟。 台嶽之所奇挺。 寔神明之所扶持。)”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권11.
  46. 46)이태백李太白이 올랐던 검각釰閣 : 검각은 검각산釰閣山을 말한다. 이백李白의 〈蜀道難〉에 “검각이 험난하게 우뚝하게 버티고 있으니, 한 사나이가 관문을 지키면 1만 명이 와도 열지 못하리.(劍閣崢嶸崔嵬。 一夫當關。 萬夫莫開。)”라는 시구가 있다. 『李太白集』 권2.
  47. 47)한유韓愈가 노닐었던 형산衡山 : 당唐나라 시인 한유가 형산에 올라간 것을 말한다.
  1. 1)「序」字前行。底本有「文」一字。編者除之。
  2. 1)「毀」疑「壞」{編}。
  3. 1)「戒與」疑「與戒」{編}。
  4. 2)「態」疑「熊」{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