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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7_b_02L동계집 제3권(東溪集 卷之三)기記대곡사 창건 전후 사적기大谷寺創建前後事蹟記내가 일찍이 소년 시절에 안동으로부터 이 절에 당도했을 때 눈썹이 긴 노승 네다섯과 문루門樓 위에서 마주보고 이야기하다가 눈을 들어 잠시 살펴보니, 그 골짝이 고르고 넓었으며 그 터는 네모반듯하였고 전각과 집이 우뚝하고 깨끗하여 그 소쇄함을 느끼고자 했으나, 갈 길이 촉박해 다 보지 못한 채 돌아왔다. 지금 그 일을 생각해 보니 거의 30년 전의 일이라 아득하기가 일장춘몽과 같다. 갑자년 봄에 나에게 법 조카뻘이 되는 탁린琢隣 상인이 금릉金陵의 황악산으로 나를 찾아와서는 소매에서 대곡사의 여러 문서와 창건에 관여한 이들의 기록을 내놓으며 그 사적문을 청하였다. 내가 재주가 졸렬할 뿐만 아니라 근래 병약하여 필묵을 놓은 지가 1년이 넘었지만, 천 리 길을 달려와 다시 청함에 거절하기가 어려워 부득이하게 가져온 기록을 살펴보니, 대곡사는 고려 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지공指空 대사가 창건한 것이었다.지공 대사는 서천의 108대 조사이다. 인도로부터 동쪽으로 총사蔥沙1)의 험준함을 넘고 육로와 해로로 10만 8천 리 바깥을 지나서 중국에 이르렀으니, 때는 원元나라 순종 황제 시절이었다. 순종 황제는 대사의 도덕을 흠모하여 국사로 삼고 대도의 대경수선찰大慶壽禪刹에 머물도록 명하였다. 이때에 우리나라 나옹懶翁 화상이 -
012_0207_b_02L東溪集卷之三
012_0207_b_03L
012_0207_b_04L記
012_0207_b_05L大谷寺創建前後事蹟記
012_0207_b_06L予嘗在少年之日。自花山路。經于是寺。
012_0207_b_07L有庬眉老宿四五輩。對予于門樓之上
012_0207_b_08L接語。移時予暫時寓目。則其洞壑平寬
012_0207_b_09L基址方正。殿閣輪奐。房寮潭濟。雖愛
012_0207_b_10L其瀟洒。仍行忙。未能領略。而歸于今
012_0207_b_11L想之殆。將三十餘年之久。怳若一場夢。
012_0207_b_12L在甲子春。有琢隣上人。於吾爲法姪也。
012_0207_b_13L訪予於金陵之黃岳。袖出大谷寺衆書
012_0207_b_14L及寺之前後創建人之名錄而致之。請
012_0207_b_15L其事跡之文。予非獨才拙。近以衰病
012_0207_b_16L廢文墨久矣。不爲之操筆。越一年。又
012_0207_b_17L以書走千里。再請之勤。遂重違上人之
012_0207_b_18L請。不得已就其來錄而觀之。寺盖麗季
012_0207_b_19L恭愍王師指空大師之所創者也。指空
012_0207_b_20L乃西天一百八代祖師也。以遊化。自西
012_0207_b_21L域。東逾蔥沙之險。梯航歷踏十萬八千
012_0207_b_22L里之外。至于神州。卽元順宗之時也。
012_0207_b_23L順宗皇帝欽師道德。拜爲國師。命住
012_0207_b_24L大都大慶壽禪刹。時我國懶翁和尙。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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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7_c_01L원나라에 가서 도를 구했는데, 지공의 오묘한 뜻을 이어받아 동쪽으로 돌아오는 날에 교화를 펼칠 땅을 구하였으니, 삼산三山과 이수二水 사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대체로 지금의 양주 회암사檜岩寺가 그곳이다. 삼산은 삼각산이고 그 남쪽의 이수는 곧 양화楊花2)와 모진毛津 두 물줄기를 말한다. 그 북쪽은 나옹 화상이 나중에 얻은 땅으로 큰 절을 세우고 싶어, 다시 원나라에 들어가서 지공 대사를 모시고 돌아왔다. 공민왕恭愍王 역시 지공을 왕사로 삼고 나옹에게 회암사를 세우도록 명을 내렸다. 지공 대사는 서천으로 들어가 사위국 나란타사의 격식을 본떠 돌아왔으니 대개 절의 80여 개 방, 큰 복도와 긴 행랑채, 긴 지붕이 확 트여 있어 서로 막힘이 없었다.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요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어서 한 방 안에 있는 것과 같았으며, 네 개의 방이 활짝 통하였다. 절이 크게 지어지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지공은 나옹을 머물도록 하고 주지로 삼았으니, 조사들의 교화를 크게 선양하고 이곳에서 노닐었다. 또한 대곡사를 창건했으니 큰 절이 되었다.무릇 지공은 선문禪門의 산 성인으로, 하늘과 땅을 안목으로 삼았으며 산하를 살과 뼈로 삼고 풍운과 일월을 숨결로 삼았다. 안에서는 사람과 하늘이 존경하는 바가 있었으며, 밖에서는 제왕의 스승이었으니 한때는 사람들이 양나라 때의 달마에 비교하였다. 지리술에 이르러서는 특별히 지공이 한 땅을 택했으니, 이 땅은 지공의 옛 자취가 남은 터여서, 그 산천의 기이함, 신령의 뛰어남은 인간 세상의 사람들이 논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산과 절은 각기 두 가지 이름이 있는데 비봉산飛鳳山 대국사大國寺는 또한 지공 대사가 친히 지명한 것이다. 대개 봉황이 천 길의 산에서 날다가 사람의 덕이 빛나는 것을 보고는 내려온 것인즉, 지공이 대원大元과 고려 두 나라에서 놀았으니 봉황이 덕이 빛나는 것을 보고 내려온 것이 아닌가. -
012_0207_c_01L元求道。承指空之玄旨。東還之日。求
012_0207_c_02L其演化之地。則指點三山二水之間。盖
012_0207_c_03L今之楊州檜岩寺是也。三山以三角之
012_0207_c_04L山。在其南二水。卽楊花毛津兩水。在
012_0207_c_05L其北也。懶翁後得其地。欲建大伽藍。
012_0207_c_06L再入元朝。奉指空大師而來。恭愍亦拜
012_0207_c_07L爲師。命懶翁建檜巖寺。指空大師。旋
012_0207_c_08L入西天。摸畫舍衛國羅蘭陀寺制而還。
012_0207_c_09L盖其寺八十餘房。大廡脩廊。踈敝洞豁。
012_0207_c_10L無相隔碍。東望而西。南觀而北。如坐
012_0207_c_11L一室之內。洞開四戶也。寺大成。衆大
012_0207_c_12L集。指空留懶翁爲其住持。大揚祖化。
012_0207_c_13L遊歷于此。又剏大谷寺。爲大伽藍也。
012_0207_c_14L夫指空以禪門活聖。以天地爲眼目。山
012_0207_c_15L河爲肌骨。以風雲日月爲氣息。入則爲
012_0207_c_16L人天之尊。出則爲帝王之師。一時之人
012_0207_c_17L以梁朝達磨比之。至於地理之術。特指
012_0207_c_18L空之一毛髮耳。此地旣爲指空遺蹤之
012_0207_c_19L處。則其山川之異。地靈之勝。非世人
012_0207_c_20L之所可論者明矣。山之與寺。旣各有
012_0207_c_21L兩名。而飛鳳山大國寺者。槩亦指空之
012_0207_c_22L親所指命者也。盖鳳翔于千仞之岡。覽
012_0207_c_23L人之德輝而降。則指空之來游於大元
012_0207_c_24L高麗兩國。非鳳之覽德輝而降者耶。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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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8_a_01L은밀히 그 뜻을 취하여 이로써 산의 이름을 삼은 것은 필연이다. 또한 이 절을 짓고 나라의 복을 크게 끌어올리고자 한 것도 역시 지공의 진실된 마음이다. 어떤 사람은 태행산太行山 대곡사라 한 것을 두고, 옛날 당나라 사람이 산을 지나다 가리키면서 “중국의 대행산이 언제 날아왔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한 것이 태행산의 유래가 되었다 한다. 대곡이라 하는 것은, 이 산에 넓게 펼쳐진 골짝이 동남쪽으로 벌어져 천백 갈래로 겹치고 구부러져 갈고리 같고 계곡들 입구의 강물 웅덩이가 십 리에 걸쳐 여울을 만들기 때문에 세간에서 태행산 대곡사라 부르는 것이다. 그 절의 제도와 당우의 성대함은 비록 회암사에 미치지 못하나 또한 나라 안에 널리 알려진 절이다.명나라 만력 연간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변을 맞이하여 천 년 된 보찰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고 덩굴은 시들었으며 구름과 샘물의 흐느낌이 그치지 않았다. 을사년에 이르러 행운이 다시 일어나 좋은 인연이 왔으니, 탄우坦祐 대덕과 계은戒訔·경성敬性·계운戒雲 등 여러 선승들이 이 터에 나아가 의논하여 말하길 “아아, 이곳은 옛날 지공 화상이 지은 것인데 처참하게 섬 오랑캐들에 의해 불타 버렸다. 우리가 이를 보고도 차마 버려둘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탄우 스님이 먼저 법당을 짓고 계은·경성·계운 등 세 스님이 기와로 지붕을 덮고 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설선說禪·우화雨花·백수栢樹·취운聚雲 등 네 당과 두월斗月·담월淡月·남월南月·원통圓通 등 네 요사채는 법선·태전·경미·혜린·인규·각심·수경·숭신 스님 등이 차례대로 힘을 기울인 것이다. 서상실西上室과 향로전香爐殿은 보정·태감 스님이 지은 것이며, 오십삼불전五十三佛殿과 시왕전十王殿은 덕잠·희묵 스님이 지은 것이며, 학열·처상 스님은 불상을 만들어 봉안하였으니, 범종각은 우뚝하고 -
012_0208_a_01L取其旨。以名其山者必也。又創玆寺
012_0208_a_02L而欲鴻揚其國祚者。亦指空之誠意乎。
012_0208_a_03L或曰太行山大谷寺者。昔有唐之人。過
012_0208_a_04L山而指之曰。中國大行山。不知何日
012_0208_a_05L飛來乎。此以太行之山。有大谷。而此
012_0208_a_06L山亦開張洞壑。唅呀向巽。爲千重百曲
012_0208_a_07L之鉅。谷谷之口。有江匯瀦。爲十里之
012_0208_a_08L灘故。俗呼爲太行山大谷寺云耳。其寺
012_0208_a_09L之制。堂宇之盛。雖未及檜岩。然亦爲
012_0208_a_10L一國之叢林也。逮萬歷丁壬之變。千年
012_0208_a_11L寶刹。遽作一朝之焦土。烟蘿憔悴。雲泉
012_0208_a_12L嗚咽而已。至乙巳歲。寶運重興。勝緣
012_0208_a_13L再來。有坦祐大德。與戒訔敬性戒雲等
012_0208_a_14L諸禪。就於玆址。相與謀曰。嗟乎。此乃
012_0208_a_15L古之指空和尙所創者。而慘爲島夷之
012_0208_a_16L所燬了。吾等其忍視而等棄之耶。於是
012_0208_a_17L祐公。先構法堂。訔性雲三人。從以瓦
012_0208_a_18L盖之。造佛像以奉安之。其說禪雨花栢
012_0208_a_19L樹聚雲等四堂。斗月淡月南月圓通等
012_0208_a_20L四寮。有法禪太顚敬眉惠璘印圭覺心
012_0208_a_21L秀瓊崇信等。相次而用力者也。西上室
012_0208_a_22L香爐殿。普淨太鑑之所創也。五十三佛
012_0208_a_23L殿十王殿。德岑熙嘿所造。而學悅處祥
012_0208_a_24L造其像而安之。至於泛鍾閣之嵯峨。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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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8_b_01L불이문不二門은 제자리를 찾고 향적전香積殿은 높이 솟았다. 덕우·회옥·의화·도한·영민 등의 스님은 갑신년부터 계해년에 이르기까지 앞뒤로 절을 지은 이들이다. 후불後佛·괘불掛佛·삼장三藏·사오로四五路3) 등의 탱화는 처연·영찬 스님이 맡은 것이다. 각일 스님은 성행당省行堂을 맡았고, 계인 스님은 극락전極樂殿을 맡았으며, 인관 스님은 법당을 개축했고, 지웅 스님은 계장階墻을 만들고, 영옥 스님은 전장田庄을 베풀었으며, 도진 스님은 큰 종을 주조하고, 대징 스님은 금수레를 만들었고, 유철 스님은 큰 북을 만들었고, 도청 스님은 금고禁鼓를 맡았으며, 석매 스님은 경함經凾을 맡았고, 담일·회해 스님은 불기佛器를 맡았고, 경해·인지 스님은 바라鈸鑼를 맡았고, 상주 스님은 대상大象을 맡았으며, 경신은 동해東海4)를 맡았고, 조헌 스님은 큰 시루를 맡았으며, 조은 스님은 운판雲板 등을 담당하였다. 비록 사물이 크고 작고 기물이 정밀하고 거친 차이가 있으나 그 용도로 이르면 모두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니, 이런 물건들이 있은 연후에 절의 모양이 갖추어졌다. 그것은 태산이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는 것과 같은즉 작은 먼지 조각을 사양하지 않으며, 강과 바다가 작은 물줄기조차 가리지 않는즉 바야흐로 골짜기들의 우두머리인 것이다.무릇 절은 군에서 북쪽으로 50리에 있는데 산은 용이 서려 있고 봉황이 날아오르는 기이한 형상이다. 지공의 넓고 두터운 도덕으로 이미 나라의 복을 무궁하게 드날렸으니, 절의 공력이 나라와 깊이 관계되는 것이 아닌가. 지공의 도를 돌아보면 나옹에게 전해지고 나옹은 우리 태조의 스승이 되어 경제를 강론하는 틈에 저 한양 300년의 큰 토대를 상의하여 신성한 자손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서로 이어받아 누리게 한 것이니, 이는 나옹의 공인데 주소周召5)와 비교하더라도 차이가 없다. 그런데 후손에 이르러 불교를 초월楚越6)처럼 여기게 되었으니 그것은 나옹의 공을 크게 저버린 것이다. 회암과 신륵 두 절은 대개 나옹 대사의 절로 -
012_0208_b_01L二門之有序。香積殿之嵬然。德祐懷玉
012_0208_b_02L義和道閑靈敏等。自甲申至癸亥。前後
012_0208_b_03L以建者也。後佛掛佛三藏四五路等幀
012_0208_b_04L處連靈賛之所務也。覺一之省行堂。戒
012_0208_b_05L仁之極樂殿。印寬之改法堂。智雄之造
012_0208_b_06L階墻。靈玉之施田庄。道眞之鑄大鍾。
012_0208_b_07L大澄之造金輦。惟哲之成大鼓。道淸之
012_0208_b_08L禁鼓。碩梅之經凾。淡一懷海之佛器。
012_0208_b_09L敬海印暹之鈸鑼。尙珠之大象。敬信之
012_0208_b_10L東海。祖軒之大甑。道誾之雲板等。雖
012_0208_b_11L物有大小。器殊精粗。至其所用之地。
012_0208_b_12L皆不可以闕者也。有此等物然後。寺樣
012_0208_b_13L方成。其猶太山。不讓土壤。則不辭片
012_0208_b_14L埃之微。河海不擇細流。則方爲衆壑之
012_0208_b_15L宗者也。夫寺在郡北五十里。而山之形
012_0208_b_16L有龍蟠鳳翥之奇。以指空道德之洪庬
012_0208_b_17L旣揚國祚於無窮。則寺刹之功。豈不關
012_0208_b_18L重於國家哉。顧指空以其道。傳之於
012_0208_b_19L懶翁。懶翁爲我太祖之師。講論經濟之
012_0208_b_20L餘。相夫漢陽三百年之丕基。而使聖子
012_0208_b_21L神孫。至于今相承而享之。則其懶翁之
012_0208_b_22L功。直與周召無異。而至于末裔。視釋
012_0208_b_23L氏。如楚越。其於懶翁之功。深有所負
012_0208_b_24L也。而至於檜岩神勒兩寺。皆懶翁之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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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8_c_01L지금은 모두 무너진 채 버려져 조금도 돌보지 않고 있는데, 하물며 이 지공이 노닐던 땅은 어떻겠나. 그런즉 고금에 사라지지 않는 것은 도이며 시종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이다. 아, 천지의 움직임과 멈춤을 보고 만물변화의 추이를 살피면 육기는 변화가 무궁하다. 네 계절로 바뀌는 것은 운수인즉 이치가 비록 하나이지만 사물의 변화에 많은 원인이 있으므로, 성인이 태극을 살피고 우주를 베껴서 오행을 추측하고 팔괘를 그려 주역의 도를 이루었다. 대개 순박함은 흐트러지고 길함과 흉함은 그것을 좇으며 길함·흉함·뉘우침·아낌은 부류에 따르며, 천하에 이르러서는 도가 행해지면 성인이 만물을 번창하게 하며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물러나 은밀하게 감춘다. 저 지공과 나옹은 모두 때를 보고 나타났으며 때를 당하여 돌아갔으니, 어찌 세상의 선악을 가지고 평생 고락에 시달리겠는가. 지금 구차스러운 한 조각의 땅으로 천만세에 신의 자취를 남기고 세상의 변화와 만물의 융성함과 침체함이 구름과 연기같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꿈속의 몽롱함과 같으니, 언제 지공·나옹 같은 무극지인들의 경지에 관계할 수 있을까. 내가 지공·나옹 부자의 풍격을 깊이 사모하는 뜻이 있었는데, 이제 인隣 상인의 청에 따라 절의 고적을 거칠게 썼으며, 또한 두 대사가 저술한 실마리를 서술하여 돌아가는 편에 부친다.비슬산 용흥사 사적기琵瑟山龍興寺事蹟記무릇 천하 사람들은 동국의 산천을 가리키며 천하 최고의 산은 삼신산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여기에는 까닭이 있다. -
012_0208_c_01L舘。而今皆廢棄。不見一毫之俯護。則
012_0208_c_02L况玆指空所遊之地乎。然則古今不亡
012_0208_c_03L者。道也。始終不克者。人也。噫。觀天地
012_0208_c_04L之動息。審萬化之推移。六氣之變化者
012_0208_c_05L無窮。四時之遷改者。數。則理雖有一
012_0208_c_06L貫。物化多端故。聖人觀太極而摹大象
012_0208_c_07L推五行而畫八卦。易道成焉。盖大朴旣
012_0208_c_08L散。休咎從之。吉凶悔吝隨類。以至天
012_0208_c_09L下。有道則聖人與物昌之。無道則退藏
012_0208_c_10L於密。彼指空懶翁。皆1)觀時而來 [7] 。應時
012_0208_c_11L而去。豈以世之臧否。用休戚於其間哉。
012_0208_c_12L今以區區一片之地。留神寄跡於千萬
012_0208_c_13L世。而世之變態。物之隆替。如雲烟之
012_0208_c_14L起滅。夢寐之怳惚。何嘗關於指空懶翁
012_0208_c_15L無極至人大方之境哉。予於指空懶翁
012_0208_c_16L父子之風。深有嚮慕之志。今仍璘 [3] 上人
012_0208_c_17L之請。粗述其寺之古蹟。亦敍二大士作
012_0208_c_18L述之緖業以書之。附便之歸也。
012_0208_c_19L
012_0208_c_20L琵瑟山龍興寺事蹟記
012_0208_c_21L夫天下之人。指東國山川。爲天下最者。
012_0208_c_22L以其爲三神之山。皆在於此故也。故以
012_0208_c_23L「觀時而來」五字。欄外板刻曰「來觀時而」編
012_0208_c_24L者改爲「觀時而來」移置於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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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9_a_01L옛날 진시황의 폭정으로 말미암아 봉래에서 노닐 것을 상상하며 공자 같은 성인도 동해로 떠가기를 원했으니, 세상의 현자나 불초한 사람이나 우리 동방을 신선의 고향으로 여기지 않은 이가 없는즉, 하물며 영남 가운데에 있는 금오산 곁이겠는가. 무릇 영남의 산천은 비록 물줄기 하나, 언덕 하나일지라도 금오산의 빼어난 기운의 나머지가 아닌 것이 없다. 옛날 내가 낙동강 가를 따라 상류를 지나는데 푸른빛이 끝이 없더니, 그곳이 비슬산琵瑟山임을 알았다. 신유년에 나는 비슬산 남쪽의 용흥사龍興寺에 노닐면서, 봉황 같은 산굴과 용 같은 언덕이 단단히 연이어 있고 촘촘하게 끌어안고 있는 샘과 골짝이 맑고 깊은 것을 보았다. 경내의 땅이 넓고 비옥하여 완연히 세상 밖의 이름난 곳으로 두루 돌아갈 생각을 잊었다. 이에 머물러 노닐며 삼백三白7)을 맞았는데 계해년 여름에 절의 여러 스님들이 나에게 “이 절은 지어진 지 오래되었으나 사적의 전말이 기록되지 않았다. 그대는 문필에 종사하니 글을 써 달라.”라고 말하였다. 이에 말하길 “나로 말하면 학문은 이치에 이르지 못하고 글은 나아갈 방향을 모르는데 어찌 그 청에 따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끈질기게 청하는 바람에 뿌리치지 못하고 청을 받아들여 “이 절은 언제 지어졌으며 지은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눈썹이 두터운 노승이 말하길 “듣기로는 신라 때 지어졌으며 고승인 관기觀機가 이 절을 짓고 편액을 용흥이라 했다.”라고 말했다. 그 후에 병화를 여러 번 거치면서 불타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러다가 도인인 각료와 단사인 곽항이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이름을 바꾸어 요항사了恒寺라 했는데, 그 두 사람의 이름을 취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고려 시대였다.우리 조선 만력 연간에 임진란을 맞아서 절은 왜구들에 의해 짓밟히고 화려한 절집은 다시 불타고, 오직 나한전만이 풀섶 아래 파묻힌 채로 황폐하게 홀로 남았다. 갑인년 여름에 이르러 지혜 스님이 그 터를 보고 -
012_0209_a_01L秦皇之暴。想游蓬萊。夫子之聖。思浮
012_0209_a_02L東海。而世之賢。不肖之人。莫不以吾東
012_0209_a_03L爲仙鄕。則况嶺國之近在鰲山之側者
012_0209_a_04L乎。然則凢山川之在嶺國者。雖至一水
012_0209_a_05L一丘。莫非鰲山孕秀之餘者也。昔予由
012_0209_a_06L洛江之上。而過水上。有碧無限者指點
012_0209_a_07L知其爲琵瑟山也。歲辛酉。予游龍興寺
012_0209_a_08L在琵山之陽。卽見鳳岫龍岡。鈎聯擁密
012_0209_a_09L泉壑淸邃。境壤爽沃。宛爲衆外名區
012_0209_a_10L遂樂而忘歸。仍留屣而遽周三白也。在
012_0209_a_11L癸亥夏。寺之諸德。語予曰。玆寺也。創
012_0209_a_12L旣久而未紀寺蹟之顚尾。子其操觚而
012_0209_a_13L洒翰也。曰若予者。學不足以就理。文
012_0209_a_14L不足以知方。烏得以從所諸乎。請德請
012_0209_a_15L益膠辭。不獲已乃徵之曰。盖此寺之創
012_0209_a_16L在何世也。創之人其誰耶。有厖眉老宿
012_0209_a_17L對曰。聞在新羅之世。有高僧觀機。創
012_0209_a_18L是寺。扁曰龍興焉。厥後累經兵火。焚
012_0209_a_19L廢久矣。卽道人覺了與檀士郭恒。重復
012_0209_a_20L改名曰了恒寺。取其二人之名。而名之
012_0209_a_21L乃高麗時也。至我朝萬曆壬辰。爲倭寇
012_0209_a_22L之蹂躪。華堂梵宇。再爲煨燼之場。而
012_0209_a_23L惟羅漢一殿。沒在藤蘿下。頽然獨存。
012_0209_a_24L至甲寅之夏。有僧智惠。見遺址。慨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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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9_b_01L“이것이 요항사의 터가 아닌가.”라며 개탄하더니, 동지를 거느리고 우거진 것을 베어 내고 모래와 자갈을 걷어 내고 계단을 높이 쌓고 바닥을 단단하게 다지니 완연하게 그전과 같아졌다. 마침내 그 곁에다 초가집을 지어 머물렀는데 어느 날 저녁에 어떤 스님이 씨를 뿌리다가 무엇이 호미에 부딪치며 쨍그랑 소리가 들려 파 보니, 바라 한 짝이 있었고 용흥사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획이 분명하여 상고할 수 있었다. 혜공 등이 기뻐 말하길 “지금 산신령이 지신을 시켜 비밀스런 기록을 보여 준 것으로 이는 절을 복원하라는 징표가 아니던가.”라고 하였다. 즉시 용흥으로 그 절의 편액을 고치고 나한전 기둥의 구부러진 곳을 고치고 온전한 기와로 바꾸고 빠진 곳을 기우고 십육나한을 비호하였다. 이때에 혜공이 안선지당安禪之堂을 건립하고 선오 스님에게 권하여 모연의 책임자가 되도록 하였으며, 당이 지어지자 혜공은 스님들을 초청하였는데 편안히 머물다 때를 기다려 오는 일이 거의 20년에 이르렀다.백양의 해에 학순 스님에게 권하여 서상실西上室을 지었는데 지금의 명부전㝠府殿이 그것이다. 사경 스님은 양로당養老堂과 괘월당掛月堂을 지었는데, 지금은 고쳐서 영월료詠月寮가 되었다. 푸른 돼지의 해에는 성오 대사가 대웅전을 지었으며, 신사년에는 신종·선규·계훈·석륜 스님이 승당을 지었으며, 옥령 대덕이 불상을 조성했으며, 선오 스님이 또 나한상과 불전을 중수하였다. 을유년에 홍인 스님이 종각을 지었으며, 기축년에는 신종 스님이 상동실上東室을 조성하였다. 경인년에는 홍연 스님이 금화당金華堂을 지었으며, 신묘년에는 도신 스님이 관음전觀音殿을 지었는데 지금은 편액을 바꾸어 백설료白雪寮라 한다. 정묘년에는 성진 스님이 극락전極樂殿을 지었다. 만월滿月·청운靑雲 두 당은 무오년에 사중이 힘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신유년에는 철심 스님이 향적전香積殿, 나한전의 동사東舍, -
012_0209_b_01L曰。此非了恒寺之基乎。乃卛同志。芟
012_0209_b_02L剔蒙翳。剗去砂礫。則其階砌之崇。磚
012_0209_b_03L礎之堅。宛然如昨。遂就其傍。而結茆
012_0209_b_04L居之。一夕有僧。種菜之際。有物觸鋤
012_0209_b_05L鏗然作聲。乃掘而得波鑼一隻。有刻龍
012_0209_b_06L興寺字。字畵分明可考。惠公等喜曰。
012_0209_b_07L今有山靈。使地媪呈其閟記。此非得復
012_0209_b_08L是寺之徵耶。卽以龍興改其所居扁。就
012_0209_b_09L羅漢殿柱之橈者。改以之正瓦之。缺者
012_0209_b_10L掇以補之。以護十六聖軀也。於是惠公
012_0209_b_11L乃建安禪之堂。勸僧禪悟。爲募緣之主
012_0209_b_12L堂旣成。惠公乃招集緇流。燕晏而居
012_0209_b_13L待時之來者。幾二十年。至白羊之歲。乃
012_0209_b_14L勸僧學淳。創西上室。卽今之㝠府殿是
012_0209_b_15L也。僧思敬建養老堂及掛月堂。今改爲
012_0209_b_16L詠月寮者也。在靑猪之年。有性悟大師
012_0209_b_17L創大雄殿。於辛巳有信宗善圭戒薰碩
012_0209_b_18L倫。建僧堂。有玉玲大德。成佛像。禪悟
012_0209_b_19L又重修羅漢像殿。乙酉弘印。建鍾閣。
012_0209_b_20L己丑信宗。造上東室。庚寅弘衍。創金
012_0209_b_21L華堂。辛卯道信。作觀音殿。今改額白
012_0209_b_22L雪寮者也。至丁卯性眞。建極樂殿。其
012_0209_b_23L滿月靑雲兩堂。則在戊午。寺衆協謀而
012_0209_b_24L建者也。辛酉哲心。造香積殿。其羅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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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09_c_01L극락전의 서헌西軒, 문수文殊·향로香爐의 작은 방을 조성했는데, 오른쪽 당과 요의 앞뒤에 위치한 것이다. 계해년 가을 나는 절 사람들에게 말하길 “이 절의 터는 뒤가 높고 앞이 낮다. 절의 모양 또한 그 형세를 헤아려 짓는 것이 아닌가. 행랑채와 복도가 길지 않아 그 앞을 가로막는 탓에 앞을 볼 수가 없으며 단지 그 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스님이 앞에 담장을 쌓고 그 위에 긴 행랑을 지어 앞에 장막을 두른 것 같다.”라고 하였다. 이때에 주지인 종혜 대덕을 불러서 그 일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무신년에 이르러 장랑長廊 네 채와 불이不二·금강金剛 건물이 지어졌는데, 네 건물이란 영월詠月·홍하紅霞·관세灌世·채운彩雲 등이다. 세간의 도구와 쇠북 등속들을 말하면 선정·수원 스님이 힘을 합해 갖가지를 구비하였으니, 절의 격식이 모자람이 없었다. 이때에 전殿·각閣·당堂·실室이 기러기 같은 처마에 원앙 같은 복도를 갖추어 나는 듯하고 조용했으며, 단청으로 그려 놓은 흰 수레가 환히 빛났다. 등불 빛과 종고 소리가 육시六時8)에 그치지 않았으니, 대체로 강 왼편에서 손꼽는 절이 되었던 것이다.아, 무릇 절이 세워지게 된 데에는 유래가 있는바, 옛날 후한 명제 때 불법이 중국으로 들어왔으니 마등摩騰9)ㆍ법란法蘭10) 두 인도승이 채음蔡愔11)을 따라 낙양에 이르자, 황제가 보고서 크게 기뻐하고 인도의 절같이 세워 주기를 청하여 낙양성 동쪽에 처음으로 백마사가 세워졌다. 아울러 성의 안팎 십여 군데에 절을 지어 승니를 도와 머물게 하였으며, 그 후에도 인도승이 오면 곧 절을 지어 머물게 하였는데 단지 약간의 당사堂社일 뿐이었다. 달마가 양나라에 들어와 선법이 크게 천하에 현양하게 되면서 불교 대중이 집에 먼지처럼 모였으며, 당나라 백장 대지百丈大智12) 선사에 이르러 도가 크게 이루어지고 -
012_0209_c_01L殿之東舍。極樂殿之西軒。文殊香爐些
012_0209_c_02L小之室。在右堂寮之前後而造者。在
012_0209_c_03L癸亥之秋。予語寺衆曰。盖此寺之基址
012_0209_c_04L後高而前低。堂舍之勢。亦未卜其形勢
012_0209_c_05L以制之。無長廊脩廡。掩蔽其前。可謂
012_0209_c_06L不顧其前。但瞻其後者歟。師築長▼(土+切)於
012_0209_c_07L前。建長廊於上。以爲前藩也。於是囑
012_0209_c_08L住持宗惠大德。董其役。至戊辰長廊四
012_0209_c_09L舍。及不二門金剛二成。四舍曰。詠月
012_0209_c_10L紅霞灌世彩雲等舍也。至其什用之具
012_0209_c_11L鍾皷之屬。有禪定守元。同爲僶俛。百
012_0209_c_12L色俱成。寺樣無歉也。於是殿閣堂室
012_0209_c_13L鴻簷鴦廡。翼翼潭潭。施丹雘而用繪素
012_0209_c_14L輪焉奐焉。香燈之明。鍾皷之聲。不絕
012_0209_c_15L於六時。殆爲江左之叢林也。噫。夫叢
012_0209_c_16L林之設。有自來矣。昔在漢明之時。佛
012_0209_c_17L法入中國。則有摩騰法蘭二梵僧。隨蔡
012_0209_c_18L愔而至洛陽。帝見而大悅。請西國寺院
012_0209_c_19L之制。始創白馬寺於洛陽城東。又創寺
012_0209_c_20L於城內外凢十餘所。度僧尼而使居之
012_0209_c_21L厥後有西僧之來游者。輙建寺而留之
012_0209_c_22L但若干堂社而已。至有達摩之入梁也
012_0209_c_23L其禪法大揚於天下。其法衆坋集於屋
012_0209_c_24L宇。至唐世有百丈大智禪師。以爲道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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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0_a_01L대중도 많아졌다. 크고 넓은 집이 아니라면 조사들의 가르침을 현양하고 황제의 복을 축원할 수 없으니 이에 큰 건물을 지어 총림이라 부르고, 법을 만들어 대중을 머물게 하여 향화에 힘쓰고 임금의 장수를 빌고 세상에 부처의 교화를 알리고 백세에 조사의 기풍을 떨치니, 총림을 짓는 것이 어찌 세상의 양민과 더불어 여염閭閻에 머무르며 나그네로 하여금 집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천하 변방의 군신들은 중국의 풍습을 사모하고 또한 총림을 지어 조종을 이어 갔으니, 신라의 일천 개 보비처나 고려의 오백 선찰이 그런 종류이다.아, 무릇 지령地靈의 성함과 쇠퇴함, 사람과 사물의 영화와 쇠퇴, 나라의 흥성과 멸망, 총림의 창건과 쇠락은 모두 세상의 운수에 달려 있으니, 이 절 역시 관기·각료·지혜 등 세 사람을 만났을 때 지어지고 흥성했으며 영화로웠고 성대하였다. 생각해 보면 그때에 나라 역시 창건의 흥함과 영화의 왕성함을 더불어 즐겼으며, 병화의 재앙이 미치면 절과 나라가 같이 쇠퇴해지고 멸망하는 참변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런즉 총림이 지어지고 허물어지는 것이 나라의 흥망과 똑같이 관계되는 것이 아닌가. 어찌 총림만 특별한 것인가. 혹 하나의 사물에 있어서도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으니 나라도 어쩔 수 없이 이것과 매여 있는 것이 아닌가. 지혜·성오 등 여러 스님들이 힘을 다하는 때를 맞이하여 나라는 일기가 순조로웠으며 백성들은 할 일을 즐겼으니, 선함을 좇는 것이 물 흐르는 것 같았으며 세월이 가면서 익어서 한번에 근본이 세워졌다. 대중의 선함이 모여진 까닭에 수백 개의 총림이 경영되어 뭇 사람들이 좋아했으니 마치 자식들이 와서 혜공이 때를 기다림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 생각하는 바가 깊었으며 그 도모하는 바가 원대했다. -
012_0210_a_01L太矣。衆旣盛矣。若非大厦廣宇。無以
012_0210_a_02L揚祖敎。而祝皇祚。於是乃創大棟宇
012_0210_a_03L名曰叢林。制規繩而處其衆。勤香火而
012_0210_a_04L祝聖壽。揚佛化於天下。振祖風於百世。
012_0210_a_05L則叢林之作。豈與世之養民。庶之閭閻
012_0210_a_06L留使客之廨宇。同其槩哉。以故至夫天
012_0210_a_07L下外藩之君臣。慕中華之風。而亦建叢
012_0210_a_08L林以永祖宗。宗社之福。則其新羅之一
012_0210_a_09L千裨補。高麗之五百禪刹。卽其流也。
012_0210_a_10L噫。夫地靈之盛衰。人物之榮悴。國家
012_0210_a_11L之興亡。叢林之創廢。皆關於世數。則
012_0210_a_12L此寺亦當乎觀機覺了智惠等三人之際
012_0210_a_13L創之興之。榮之盛之。想有其時之國家
012_0210_a_14L亦與之創以興之榮以盛之之樂也。及
012_0210_a_15L其兵燹之禍。寺刹與國家。俱不免衰悴
012_0210_a_16L廢亡之慘也。則叢林之創廢。非與國家
012_0210_a_17L之興亡同所關者哉。豈特叢林哉。或至
012_0210_a_18L一事一物。莫不如斯。則當乎國家者
012_0210_a_19L不可不以此係其念也哉。至夫智惠性
012_0210_a_20L悟等諸德。當乎戮力之際。家國安寧
012_0210_a_21L風雨調順。民樂其業。從善如流。歲有
012_0210_a_22L其稔。一役纔擧。衆善畢集故。其營數
012_0210_a_23L百架之叢林。衆人樂之。如子來而神棐
012_0210_a_24L惠公之待時。其所慮也深。所謀也遠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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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0_b_01L관기의 성스러운 자취를 싣고 있는 지지地誌13)에는 “신라 때 관기·도성 두 고승이 있어 같이 포산의 남과 북에 숨어 지냈는데, 십여 리를 떨어져 지냈지만 서로 자주 만났다. 도성이 관기를 부르고 싶으면 산중의 나무들이 모두 남쪽으로 구부러졌으며, 관기가 도성을 부르고 싶으면 나무들이 모두 북쪽으로 누웠다.”라고 했다. 포산은 이 산의 다른 이름인데 어떤 사람이 찬미하기를 “서로 찾아 달빛 밟고 운천을 희롱하니 두 노인의 풍류 몇 백 년 되었나. 골짜기에 가득한 안개와 노을 고목에 어렸는데, 구부렸다 일어서는 찬 그림자 아직도 서로 맞는 듯.”이라고 했는데, 그 신이한 행적은 내가 말할 필요도 없이 세상에서 이미 알고 있다.또한 산을 비슬이라 하고 절을 용흥이라 하는데, 대개 산맥은 금강산과 오대산에서 내려와 낙동강 복판을 가로막고 산줄기에 의지한 채 성주·밀양·현풍·창녕 사이에 위치하였다. 거만한 형세가 마치 비파 같아서 그리 지은 것이다. 산의 기세 또한 북으로부터 남쪽으로 노니는 용과 같이 날아오르다 절의 뒤편에서 멈추고 머리를 높이 쳐들어 절의 주봉이 되었다. 그 정상에는 거석이 있으니 우뚝 솟은 것이 마치 용의 뿔 같은데, 세속에서 관기봉이라 하는 것은 관기가 노닐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기봉으로부터 그 형세가 다시 일어나 굼실거리다 동남쪽 모퉁이로 움직이며 치달려 60리 지점에서 우뚝 솟아 울타리가 되었으니, 창녕현의 주산인 관룡산이다. 비슬산과 관룡산은 창창하게 고을의 남과 북에서 마주하고 있는데, 관룡산의 줄기가 이윽고 일어선 까닭에 용흥을 절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참으로 마땅하다. 무릇 심어진 것은 북돋워 주고 기울어진 것은 엎어 버린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하늘의 도는 그런 것이다. 그 변하지 않는 바를 본다면 바다와 산의 기울어짐과 옮겨짐, 세상의 뒤집어짐 그리고 음양의 쇠퇴와 융성, 고금의 오고 감이 있으니, 그 사이에서 한 점도 관여하는 것이 없고 물아가 모두 끝이 없다. -
012_0210_b_01L其在觀機之聖跡。備在地誌曰。新羅時
012_0210_b_02L有觀機道成二高僧。同隱苞山南北。相
012_0210_b_03L距十餘里。每相過從。成欲致機。則山
012_0210_b_04L中樹木。皆俯南。機欲致成。則樹木皆
012_0210_b_05L北偃云。苞山乃此山之異稱也。有人讃
012_0210_b_06L曰。相過踏月弄雲泉。二老風流幾百年。
012_0210_b_07L滿壑烟霞餘古木。低昂寒影尙如迎。則
012_0210_b_08L其神異之跡。不待予言。而世已知之矣。
012_0210_b_09L且山之爲琵瑟。寺之爲龍興者。盖山之
012_0210_b_10L脉。自金剛五臺而來。枕洛心據嶺腹。
012_0210_b_11L跨星密玄昌四州之間。其勢偃然。若琵
012_0210_b_12L瑟之形故也。山之勢。又自北而南。如
012_0210_b_13L游龍之矯矯。而止寺之後。昂然擧首。爲
012_0210_b_14L寺之主峯。其頂有巨石。屹然而立如龍
012_0210_b_15L角。俗謂之觀機峰。以觀機之所遊處故
012_0210_b_16L也。又自觀機之峯。其勢重起逶迤。震
012_0210_b_17L巽之隅。奔至六十里許。嵬然大藩。爲
012_0210_b_18L昌縣之主者。觀龍山也。則兩山蒼蒼
012_0210_b_19L相對於一邑之南北。以觀龍之脉。旣興
012_0210_b_20L於此故。以龍興名此寺。固其宜矣。若
012_0210_b_21L夫培栽傾覆。固天道之常然。以其不變
012_0210_b_22L者觀之。則海岳之傾遷。人世之飜覆
012_0210_b_23L陰陽之消長。古今之往復。無一點相干
012_0210_b_24L於其間者。而物與我。皆一無窮也。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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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0_c_01L이것은 부처가 말한 청평 세계로 우리나라를 위하고 큰 원각으로 우리 절을 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여러 산령에게 붙여 장차 한 덩어리의 언덕과 골짝, 한 구역의 가람을 돕도록 하여 그에 의지하여 청평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니, 깨달음의 땅은 삼재의 해가 없으며 사겁四劫14) 동안의 침입이 없으므로 천만 년 무궁하기를 기약하며 또한 나아가 그것을 노래한다.
塊之氣兮 대지의 기운이여
有精英之蘊兮 정영精英이 모여 있도다
泄而布結爲山川之秀兮 흩어졌다 모여 생긴 산천
有湯湯兮 빼어나고도 넓구나
嶾嶾兮 높고 높도다
瞻彼三山兮 저기 보이는 삼산三山이여
屹在我之東兮 우리 동방에 우뚝 솟았도다
維東方山水之秀且麗兮 동방산수東方山水의 빼어남과 화려함이여
爲佛國與仙宮兮 부처 나라와 신선 궁전이 되었도다
况嶺近在鰲山之側兮 더구나 고개 근처 오산鰲山의 곁이라니
惟琵岳逾爲嶺之最兮 비슬산毗瑟山만이 튀어나와 산 중의 최고 되고
跨星洛而據昌密兮 성주 낙동강을 넘어서 창녕·밀양에 웅거했지
鎭舟車之要會兮 배와 수레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穹隆窅窕乎千古 천고의 세월 한적하고 편안했지
積翠葱蘢乎杳靄兮 울창한 푸른 산, 아득한 아지랑이여
爲萬古之仙區兮 만고의 신선 고향일세
洛水洋洋兮 낙동강 물은 넘실대고
苞山藹藹兮 포산苞山은 화기가 서려 있네
丹崖萬丈翠壁千尋兮 만 길의 붉은 벼랑 천 길의 푸른 절벽
有揉岩鶴窟之危兮 험하기가 학굴鶴窟처럼 위태롭네
予得盤桓而不去兮 나는 배회하면서 돌아가지 못한 채
圖岑寂而無爲兮 적막과 무위를 도모한다네
羌弄管而摛山之藻兮 아, 붓을 놀려 산의 아름다움을 짓자니
爲壁玷而山疵兮 절벽을 더럽히고 산에 흠을 냈네
想孫公白傅之賦天台與龍門兮 손공孫公15)과 백부白傅16)의 천태天台·용문龍門 노래 되길 바랐지만
媿夫金聲月韻之辭兮 금성金聲17)과 월운月韻18)의 시 욕되게 했을 뿐이네밀양 재악산 영정사 전후 창건기密陽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밀양은 영남의 이름난 고을인데 그 풍토의 아름다움과 산천의 빼어난 경치 때문이다. 고을에서 동쪽으로 50리 되는 곳에 푸르게 울창한 곳을 재악載岳이라고 하는데, 그 산속에 있는 절을 영정靈井이라 한다. -
012_0210_c_01L釋氏所謂以淸平世界。爲我國土。以大
012_0210_c_02L圓覺。爲我伽藍者也。予將此語。附諸
012_0210_c_03L山靈。將以此一塊之丘壑。一區之伽藍
012_0210_c_04L撝而阿之。轉歸於淸平之界。圓覺之地
012_0210_c_05L而不爲三灾之所害。四劫之所侵。將期
012_0210_c_06L於千萬年之無窮也。又從而爲之歌曰。
012_0210_c_07L大塊之氣兮。有精英之蘊兮。泄而布結
012_0210_c_08L爲山川之秀兮。有湯湯兮。嶾嶾兮。瞻
012_0210_c_09L彼三山兮。屹在我之東兮。維東方山水
012_0210_c_10L之秀且麗兮。爲佛國與仙宮兮。况嶺近
012_0210_c_11L在鰲山之側兮。惟琵岳逾爲嶺之最兮。
012_0210_c_12L跨星洛而據昌密兮。鎭舟車之要會兮。
012_0210_c_13L穹隆窅窕乎千古兮。積翠葱蘢乎杳靄
012_0210_c_14L兮。爲萬古之仙區兮。洛水洋洋兮。苞
012_0210_c_15L山藹藹兮。丹崖萬丈翠壁千尋兮。有揉
012_0210_c_16L岩鶴窟之危兮。予得盤桓而不去兮。圖
012_0210_c_17L岑寂而無爲兮。羌弄管而摛山之藻兮。
012_0210_c_18L爲壁玷而山疵兮。想孫公白傅之賦。天
012_0210_c_19L台與龍門兮。媿夫金聲月韻之辭兮。
012_0210_c_20L
012_0210_c_21L密陽載岳山靈井寺前後創建記
012_0210_c_22L密爲嶺國之名州者。以其有風土之美
012_0210_c_23L山川之勝者故也。州治之東五十里。有
012_0210_c_24L鬱乎蒼蒼者。曰載岳。山之中有寺曰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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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1_a_01L산은 오대와 태백에서 내려와 이리저리 남쪽으로 달려왔으니 몇천 리를 내려와 이곳에서 멈추어 겹겹으로 바위와 봉우리가 되었으며, 구름이 쌓이고 물결이 무너지는 듯 우뚝하게 치솟아 호랑이가 웅크리고 독수리가 깃들어 있는 듯 울타리를 만들고, 봉황이 날아오르듯 용이 서려 있는 듯 갈고리가 연달아 둘러 있는 듯 큰 골짝을 만들었다. 시내들이 모여 들어 하나의 큰물을 이루었고 굽이굽이 몇 차례 건너 이곳으로 들어오니, 소위 물은 윤택하고 구름은 많고 수레가 거의 오지 않는 곳이다. 산의 메마른 땅은 낙엽이 수북하고 대숲을 등지고 구름을 누르면서 시원스럽게 툭 트여 있으니, 남향의 터가 옛날에 이루어진 것이다. 처음 그 터를 점지한 사람은 황발 노선이다. 신라 시대 황발 노선이 서천에서 와 이곳에 은둔하고 있었는데, 어떤 이인이 병에 걸려 그를 찾아와 치료 방법을 구하자 신선이 흐르는 샘물을 가리키며 “이 물을 마시면 그 병이 나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인이 가르쳐 준 대로 하자 효험이 있었 다. 그가 놀라며 감사하면서 “신선께서는 대성이십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가서 향인鄕人들에게 말하니 듣는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다투어 재물을 보시했고 이를 근간으로 절이 세워졌다. 그 샘물을 영정이라 불렀는데, 절의 동쪽 모퉁이의 작은 샘이다. 네 국사가 있을 때에 물이 솟다가 그쳤다. 대중이 늘어나고 사세를 떨친 자취는 사적寺蹟에 갖추어 실렸으므로 이제 번거롭게 말하지 않겠다.임진·정유 난 이후에 혜징 스님이 계셨는데, 호남 사람으로 호남에서부터 영남으로 와서 놀며 구경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마침내 무너진 터를 복원했으니, 우선 금당을 짓고 다음으로 법당을 지었다. 동지·각능·도전 등 16명의 개사開士19)가 혜징 스님의 유지를 이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20여 년간 다투며 힘을 다하여 온갖 것이 갖추어졌으나, 산이 험하고 땅이 깊어 머무는 스님이 드물어졌다. 기축년에 이르러 태수인 황 공이 이 절에 들렀다가 사방을 둘러보고는 여러 스님에게 조언하기를 “이 절은 서남 방향이 비어 있는데 물이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마땅히 긴 회랑을 지어 -
012_0211_a_01L井也。山自五臺太白。透迤南走。幾乎
012_0211_a_02L千里而至于此止。爲重巖疊巚。雲委波
012_0211_a_03L頽。嵬然嶮阻。以虎踞鷲栖。爲藩蘺。鳳
012_0211_a_04L翥龍蟠。鉤連環鎻。爲巨洞壑。澮衆淙
012_0211_a_05L爲一大溪曲。折屢渡而入此。所謂水潤
012_0211_a_06L雲多𥪟輪罕到之地。而山之腊土。落爲
012_0211_a_07L堆隼。負竹林壓雲澗。爲一爽塏。作癸
012_0211_a_08L坐丁向之基。卽古之基也。初占其基者
012_0211_a_09L則黃髮老仙也。在新羅之世。有黃髮之
012_0211_a_10L仙。自西天來。至此遁跡焉。有異人抱
012_0211_a_11L殘疾。來求治。仙指一流泉曰。飮此則爾
012_0211_a_12L疾瘳矣。異人如其敎立效。遂驚謝曰
012_0211_a_13L仙乃大聖也。乃出吿諸鄕人。聞者悅之
012_0211_a_14L競以財施。乃就此建寺宇。以其泉名曰
012_0211_a_15L靈井。卽寺之東隅細泉也。及其在四國
012_0211_a_16L師。相繼而止。衆益盛寺益振之跡。備
012_0211_a_17L載于寺籍。今不煩云。逮丁壬亂後。有
012_0211_a_18L僧惠澄。湖南人也。自湖抵嶺。游翫至
012_0211_a_19L此。遂復廢址。先建金堂。次創法堂。有
012_0211_a_20L同志覺能道全等十六開士。承惠澄之
012_0211_a_21L績。先後爭相戮力於二十年間。百色俱
012_0211_a_22L成。以其重嶮深邃。居僧鮮少。至己丑
012_0211_a_23L有太守黃公。來遊於寺。顧四隅而諭諸
012_0211_a_24L僧曰。爾寺庚兌旣虛。水出其方。宜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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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1_b_01L이로써 그 결함을 덮어야 한다. 그러면 그대들이 생활하는 데 이득이 될 뿐 아니라 흩어졌던 스님들이 모여드는 상서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총섭인 삼학이 곧 회랑을 지었다. 강희 기미년에 문득 화기가 엄습하는 변고가 있어 법당法堂·명부전冥府殿·선당禪堂이 모두 불타 버렸다. 사중들이 상의하여 말하길 “이번 환란은 실로 승사僧舍에서 시작되어 법당으로 번진 것이니 일찍부터 머물렀던 승려들을 행랑으로 옮겨 가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거듭하여 의론하여 말하길 “이전의 법당은 규모가 작아서 산의 형세가 높고 큰 것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탄영·상순 등 33명의 선승에게 명하여 공덕주를 맡고 혹 성조成造를 짓고 혹 단청을 하고 혹 기와를 만들고 혹 땅을 고르고 혹 철물을 다루고 혹 복전을 짓게 했는데, 대중도 일을 같이 했으며 숱한 공장이들이 기술을 보탰다. 경신년에 크게 동우棟宇를 지었는데 웅장하고도 아름다워 낙동강 왼편에서는 첫째였다. 도총섭인 지월 역시 영조인 중추부사 박재흥朴再興을 이끌어 단청의 시주자가 되게 하였다. 다음 해에는 도한·신일·계화·회소·대윤 등이 명부전을 지었다.아아, 시간에는 선후가 있으며 일에는 득실이 있다. 선후는 사람에 해당되고 득실은 운수에 해당된다. 지금 이 절을 본다면 앞서 황발 노선이 있었으며 네 국사에 이르렀다. 혹 신라 시대 혹은 고려 시대에 절이 지어지고 유지되어 왔으며, 후에는 혜징·도전 등이 흥성케 했으니 득실의 운수 역시 그 사이를 따랐다. 또한 탄영 등 33인의 선승들이 옛 규모를 바꾸어 큰 집을 지었다. 비록 큰 환란으로 없어졌으나 크게 지어질 수 있었으니, 이것 역시 그 사이의 운수인 것이다. 나로서 살펴본다면 일찍이 20년 전에 탄영이 나에게 사적을 청하였고 -
012_0211_b_01L長廊。以蔽其缺。則非獨爾等生涯有潤。
012_0211_b_02L必有僧伍坋集之祥云。㧾攝三學。卽建
012_0211_b_03L廊宇焉。康熙己未。輙有鬱攸之變。法
012_0211_b_04L堂及㝠府殿禪堂。盡爲蕩燬了。寺衆相
012_0211_b_05L議曰。今之此患。實由僧舍。逼近於法
012_0211_b_06L堂所致也。卽使曾居之僧。移之於廊舍
012_0211_b_07L也。重與之議曰。前之法堂規制其小。不
012_0211_b_08L稱山形高大之勢。乃命坦英尙淳等。三
012_0211_b_09L十三禪伯。爲功德主。或爲成造。或爲
012_0211_b_10L修莊。或爲盖瓦。或爲地正。或爲鐵物。
012_0211_b_11L或爲複殿。衆役齊施。百工迭手。於
012_0211_b_12L庚申之歲。大建棟宇。其壯麗宏大。甲
012_0211_b_13L於江左。有都㧾攝智月。亦用影助中樞
012_0211_b_14L府使朴公再興。爲丹雘之檀越也。次年
012_0211_b_15L有道閑信日戒和懷佋大允等。建㝠府
012_0211_b_16L殿也。嗚呼。時有先後。事有得失。先後
012_0211_b_17L者。人也。得失者。數也。今以此寺觀之
012_0211_b_18L則先有黃髮老仙。及四國師。或在羅朝
012_0211_b_19L或在麗世。創之守之。後有惠澄道全等。
012_0211_b_20L復之興之。則得失之數。亦隨於其間。又
012_0211_b_21L有坦英等三十三士。變舊制創鉅宇。此
012_0211_b_22L則雖失之於大患。而得之於大成。此亦
012_0211_b_23L數之存焉於其間者也。若夫以予而觀
012_0211_b_24L則嘗在二十年前。有英公。請寺蹟於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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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1_c_01L현재에는 종사가 역시 나에게 기記를 청하였다. 만약 사적문이 빼어난 재주를 지닌 석학의 솜씨로 훌륭하게 지어진 바가 있다면 얻은 것이 있다고 이를 만한데, 나의 쓸모없는 능력, 거친 지식, 비천한 언사, 둔한 글로 짓는다면 잃는 것이 많다고 이를 것이다. 그러한즉 얻고 잃음의 구분은 또한 문장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저 황발 노선과 네 국사의 자취는 누가 좇아서 살필 것인가. 이윽고 산중의 노스님인 쌍운이 노닐며 완상하다가 태백산 정암定庵에 이르렀다가 먼지 쌓인 들보 사이에서 이 절의 고적 한 편을 찾아가지고 와서 그간의 자초지종을 전해 주었다. 무릇 절의 얻음과 잃음, 지어짐과 무너짐의 운수는 비단 오늘만에 해당되지 않으니, 후대 천만세의 무궁한 때까지도 또한 반드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후세 이 글을 보는 사람 또한 혜징·도전·탄영·상순 등 여러 스승의 자취에 대해 감회가 있을 것이니, 옛것을 살리고 끊어진 과업을 잇는 데 힘을 바친다면 나의 이 글이 또한 헛되지 않을 것이다.지리산 백련대기智異山白蓮臺記내가 지리지를 보니 동해의 삼신산을 여섯 마리의 자라가 떠받치고 있는데, 방장산이 그 하나라고 하였다. 산 아래에 13개 주가 있는데 봉성鳳城20)도 그중의 하나이다. 성에서 북쪽으로 10리 되는 계곡에 있는 큰 절을 화엄사華嚴寺라 하는데, 고려 시대 도선道詵 국사가 창건하였다. 절이 임진·정유 변란에 모두 불타 버린 뒤 100여 년이 흘렀으나 그것을 복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숭정 연간 갑술년(1634)에 국일國一 선사21)가 강주康州22)의 쌍계사雙溪寺에서 와서 절터를 보고 애석하게 탄식하면서 “이곳은 고려 시대 도선공이 『화엄경華嚴經』을 강론하던 도량이 아니던가. 도선 대사의 공을 애석해하는 것은 물론 -
012_0211_c_01L今有宗師。亦請記於予。若在記蹟之文。
012_0211_c_02L乃高材碩學大手茂詞之所能者。則可
012_0211_c_03L謂得矣。若予之樗材鹵學淺詞鈍筆之
012_0211_c_04L所事。則可謂失之矣。然則得失之數
012_0211_c_05L亦存於文墨之間者歟。彼黃髮之仙與
012_0211_c_06L四國師之跡。從誰而審之。乃山之古釋
012_0211_c_07L雙運。游翫至大白山定庵。於塵梁間
012_0211_c_08L覘得此寺之古跡一篇而來。傳之所詳
012_0211_c_09L也。至夫寺之得失。成毀之數。非亶今
012_0211_c_10L日。於後之千萬世無窮之間。亦未必不
012_0211_c_11L有者矣。後之覽此文者。亦有感於惠澄
012_0211_c_12L道全坦英尙淳等諸師之跡。而着力於
012_0211_c_13L復古繼絕之業。則予之此文。亦不爲虛
012_0211_c_14L作矣爾。
012_0211_c_15L
012_0211_c_16L智異山白蓮臺記
012_0211_c_17L愚按地誌曰。東海有三神山。爲六鰲之
012_0211_c_18L所戴方丈卽其一也。山下有十三州鳳
012_0211_c_19L城。亦一數也。城之北十里之谷。有大
012_0211_c_20L伽藍曰華嚴。乃高麗國師道詵之所剏
012_0211_c_21L也。而寺爲丁壬之變。盡燒之。自八九
012_0211_c_22L紀來。無人復之。崇禎甲戌。有國一禪
012_0211_c_23L師。自康州之雙溪來。見遺址而慨然曰。
012_0211_c_24L此非麗之詵公講華嚴道場耶。非徒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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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2_a_01L어찌 화엄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않으리오.”라고 하였다. 이에 문도들을 이끌고 『화엄경』이 새겨진 돌 조각들의 나머지를 모으고 전각을 지어 보관하였으며, 허물어진 터를 청소하여 천 년이 지나 없어진 도선의 공로를 이어서 마침내 그 터에 중창을 하니 원근에서 호응하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얼마 뒤 절이 크게 이루어지자 국일 대사가 문인들에게 말하길 “그대들이 모두 부지런히 힘써 겨우 절의 뼈대가 회복되었고 지혜를 닦는 힘이 갖추어졌으니 더욱 힘써라.”라고 하였다. 장로인 미공眉公이 머뭇거리다 나아가 아뢰기를 “제자는 불도에 뜻을 둔 지 오래되었습니다. 원하건대 나아갈 바를 일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대사가 “지금은 말세의 운수로 오탁23)이 다투어 흐르는데 마구니를 복종시켜 부처의 경지에 오르려면 정토업24)을 닦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편안한 곳에 고요히 앉아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멀리 서방정토를 생각하면 이 도가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로가 기뻐하며 물러나 깊이 무상함을 생각하면서 면벽하여 문을 닫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진리를 살피는 데 힘써 좌선하면서 다소간의 진전을 보았다.무술년(1658) 봄에 장로는 마음을 가다듬어 고요히 수행할 장소를 정하려 지팡이에 의지하여 발이 부르트도록 벼랑을 넘고 계곡을 건너 절의 북동쪽 산봉우리까지 올랐다. 골짝과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언덕과 산을 우러러보니 봉우리가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 학이 나는 듯 용이 춤추는 듯하였으며, 서쪽으로부터 굽이져 이어져 와서 멈추어 대臺가 되었다. 대는 가파르게 솟았지만 평평한 터가 되었는데 올라가 살펴보니 해좌사향亥坐巳向25)의 자리였다. 방향에 따라 판별하면 반야봉은 할아버지 산이요, 백운봉은 손자 산이며, 동남쪽으로 잔강潺江26)과 오악鰲岳이 옷깃과 띠처럼 감싸 안고 있었다. 종석은 그 뒤를 어루만지고 비옥한 들이 그 앞에 있으며, 청련대는 위에 있고 극락대는 아래에 있으며, 백련대는 그 가운데에 있어 삼대三臺가 서로 도와 하나의 극락정토를 이루었다. 이에 장로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길 “북천이 나를 기다린 까닭이 이곳을 주기 위해서였구나.”라고 하였다. 동지들을 이끌고 가파르고 높은 곳을 깎고 험하고 위태로운 곳을 끊고, 흙을 져다가 계단을 쌓고 벽돌을 쌓아 우물을 만들고 재목과 곡식을 모아 -
012_0212_a_01L詵功。豈不念華嚴敎哉。卽率徒拾其石
012_0212_a_02L字華嚴爍碎之餘。結閣以藏之。掃其廢
012_0212_a_03L址。繼詵功千載已滅之後。遂重剏其基。
012_0212_a_04L於是遠近響應。如赴約束。居無何寺大
012_0212_a_05L成國一大師吿門人曰。爾等咸勤道力
012_0212_a_06L僅復金田福諦。已足慧力。且勉之。有
012_0212_a_07L長老眉公。逡巡而進曰。弟子留心斯道
012_0212_a_08L者久矣。願垂指歸。大師曰。今玆季運
012_0212_a_09L五濁爭流。攝伏魔寃。超登佛地。莫若
012_0212_a_10L修淨土業。端居燕處。調攝身心。遠想
012_0212_a_11L樂邦。斯道可成也。長老欣然而退。深
012_0212_a_12L念無常。面壁杜門。用習止觀。坐閱多
012_0212_a_13L少蟾蜍。在戊戌春。擬卜頤養之所。乃
012_0212_a_14L策杖蠒足。踰崖越澗。登寺之艮岑。徘
012_0212_a_15L徊嵌巚。睢盱岡蠻。有峯從甲而起。如
012_0212_a_16L鶴之翔。如虬之舞。迤逶西來。止以爲
012_0212_a_17L臺。陡聳而平正。就上銓之。得亥坐巳
012_0212_a_18L向之基。從其辦方。則般若爲祖。白雲
012_0212_a_19L爲孫。潺江鰲岳。回抱衿帶。於丙丁。鍾
012_0212_a_20L石拊其背。沃野當其面。靑蓮在上。極
012_0212_a_21L樂居下。白蓮居中。三臺扶翊。完成一
012_0212_a_22L淨土之界也。於是長老頭點曰。北天之
012_0212_a_23L所以待我與之者也。帥同志軰。鏟嶇嶁
012_0212_a_24L斷嶬險。負土補砌。甃石開井。鳩材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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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2_b_01L세 칸의 절을 지어 아름답게 이루고 장엄하게 꾸몄다. 금빛과 푸른빛이 나는 우물의 색은 찬란하게 빛나 구름 위에 솟은 푸른 절벽에 아득하게 비치어 바라보니 곤륜산의 신선 궁궐과 같았다.3년이 지나 경자년 여름에 나는 대의 오른쪽 선방에 머물었는데, 초암草菴 장로가 나를 찾아와 몇 줄의 글을 청했는데 감히 사양할 수 없었다. 장로가 내게 다가와 조용하고 간절하게 “내가 국일 선사의 깨우침을 받들어 과업을 마무리짓고자 하는데 이제 당신의 글과 말을 받아 내 뜻을 나타내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에 공손한 낯으로 말하길 “그런즉 장로의 신의는 숭상할 만하고 그 뜻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이익이 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으며 도움이 되는 것 역시 세 가지가 있으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먼저 깨달은 사람의 깨우침을 종신토록 가슴에 새겨 후세 사람들에게 그대의 구도를 따르게 하는 것이 이로움의 첫 번째요, 또한 조용한 곳에 나아가 편안하고 고요하게 거처하며 가고 머물고 앉고 누움의 뜻에 따라 도를 행하는 것이 이로움의 두 번째요, 듣는 이로 하여금 믿음을 일으키게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같이 기뻐하게 하고 욕심 많은 이로 하여금 인색함을 후회하게 하고 겁이 많은 이로 하여금 의리를 불러일으키고 난폭한 이로 하여금 인을 좇게 하여, 고루 복되고 선한 곳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이로움의 세 번째입니다.”라고 하였다.이어 높은 산 위에 거처하며 풍진 세상의 사방 툭 터진 누대에서 즐기니 숱한 봉우리들 다 다르고 먼 골짝이 제각각이요, 녹수는 갈라져 흐르고 흰 구름은 가볍게 일어나고 아침의 놀은 난간을 감싸고 석양빛은 창문에 비친다. 꽃들은 서림에 비치고 비는 남악에 내리고 달은 선방 뜰에 가득하고 눈은 차 달이는 부뚜막을 에워쌌다. 아침저녁의 모습과 사철의 풍경은 번갈아 색깔을 지어 내 눈을 어지럽게 사로잡으니, 반조返照27)하여 살피면 환몽과 같을 뿐이다. 선방에서 가부좌하고 앉아 밤낮으로 선정에 들면, 바람이 부딪치며 내는 갖가지 소리, 수많은 갈래로 흐르는 물소리 종소리는 달빛 어린 골짜기로 울리고, 경쇠 소리는 구름을 뚫고 울리고, 물시계 소리 오경을 알리고, 두견이 정오 독경까지 울고, 하늘에는 학들이 무리지어 내는 울음소리 시끄럽게 들리지만 -
012_0212_b_01L粟。構三間蘭若。怳然成。儼然飾。以金
012_0212_b_02L碧井井之色。焃焃之光。縹緲照暎於翠
012_0212_b_03L壁白雲之上。望之若閬風仙闕也。越三
012_0212_b_04L年庚子夏。余栖禪于𡋛右。草菴長老
012_0212_b_05L扣余門。請數行文。以不敢辭。長老搭
012_0212_b_06L余從容而恳曰。吾受國一禪師之諭。而
012_0212_b_07L願果遂。今欲受子文而言吾志耳。余於
012_0212_b_08L是歛容而吿曰。然則長老之信可尙。而
012_0212_b_09L志可嘉矣。然有所利者三。而所裨者亦
012_0212_b_10L三。則不可不言也。其守先覺之箴。終
012_0212_b_11L身銘膺。使後來者。有所爾之徇道之利
012_0212_b_12L一也。且詣閑處。燕結端居。行住坐臥
012_0212_b_13L有所適意行道之利二也。能令聞者發
012_0212_b_14L信。見者隨喜。貪夫悔悋。懦夫興義。暴
012_0212_b_15L夫從仁。均歸福善之域。其濟衆之利三
012_0212_b_16L也。而至居于嵽𡾒之上。游舍風塵之表
012_0212_b_17L軒窓四闢。則千峰異態。萬壑殊狀。綠
012_0212_b_18L水分流。白雲輕起。朝霞繞檻。夕照斜
012_0212_b_19L窓。花暎西林。雨歸南岳。月滿禪庭。雪
012_0212_b_20L擁茶竈。朝暮之狀。四時之景。遆來爲
012_0212_b_21L色。攅眩於目。返照以觀。惟幻焉。跏趺
012_0212_b_22L靜室。入定宵旰。風交萬籟。水激千途。
012_0212_b_23L鍾鳴月壑。磬透雲開。五夜仙漏。一聲
012_0212_b_24L啼䳌。至於午梵。宵鶴群音。咻聒於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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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2_c_01L반조하여 들으니 단지 정적일 뿐이다. 거기에 더해 향을 맡고 맛을 보고 만져 보고 분별하더라도 하나의 고요함뿐이다. 이렇게 한다면 지止에서 관觀이 생기고 관觀에서 환幻이 생기고 환幻에서 적寂이 생기고 적寂에서 정定이 생기니, 정定하게 된 연후에 혜慧가 발하니 정定과 혜慧가 성취되고 지관止觀이 갖추어져 이 한 암자가 원각圓覺28)을 이루는 절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도를 이룰 것인데 무엇을 걱정하는가. 이에 반하여 옛날에는 옥을 버리고 금을 녹이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과 선사鳥窠禪師의 고목 이야기와 무엇이 다르겠나. 반드시 밝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에 써서 기문으로 삼는다.재악산기載岳山記재악載岳이란 이름이 지어진 뜻은 알려져 있지 않다. 무릇 만물은 대개 이름 지은 뜻을 지니고 있은 연후에야 그 이름의 연고가 드러난다. 촉나라의 동산銅山은 동철銅鐵29)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인도의 설산은 돌의 색깔이 대부분 하얗기 때문인데, 비단 산 이름만 이런 것이 아니다. 천하 만물들은 무릇 그 이름이 있으니 혹은 그 기능에서 유래하기도 하고 혹은 그 색에서 유래하기도 하고 혹은 그 모양에서 유래하기도 하고 혹은 그 생산물에서 유래하기도 하니, 황하黃河30)ㆍ흑수黑水31)ㆍ지석砥石32)ㆍ반목蟠木33) 같은 것은 가리켜 주는 바가 없지 않다. 이제 재악이란 이름은 기량·모양·색깔·생산물 중 무엇인가. 마침내 고을의 노인들에게 유래를 물으니 혹은 산의 모양이 수레에 짐을 실은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고, 혹은 신라 왕이 병이 났을 때 이 산의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할 때 수레에 그것을 실었기 때문이라 했으니 이 모양새에서 생겨난 것이다. 혹은 산이 아니라 약초 때문이라 하는데 옛날 산중에 약초가 많았다고 한다.나는 말하길 “모두 맞지 않는다.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하는 것은 소소한 것이고 참된 것이 아니다. 이제 내가 뜻을 모아 생각하여 보면 -
012_0212_c_01L反照以聞。則惟一寂焉。且夫於香於味
012_0212_c_02L於觸於知。惟一靜焉。夫如是。則止能
012_0212_c_03L生觀。觀能生幻。幻能生寂。寂能生靜
012_0212_c_04L靜然後定。定後慧。定慧成就。止觀具
012_0212_c_05L足。則以此一庵。爲圓覺伽藍矣。又何
012_0212_c_06L患乎未幾佛之道之成之哉。反是則古
012_0212_c_07L有捐玉消金之說。鳥窠枯木之談。何其
012_0212_c_08L不同耶。必有辨之者矣。遂書爲記。
012_0212_c_09L
012_0212_c_10L載岳山記
012_0212_c_11L載岳之爲名。未詳其所命之意也。凢物
012_0212_c_12L皆有所命之意然後。著其名故。蜀之銅
012_0212_c_13L山。以其多產銅鐵也。笁之雪山。以其
012_0212_c_14L石色多白。非獨山之如此。至於天下萬
012_0212_c_15L物也。凢有其名者。或因其能。而或因
012_0212_c_16L其色。或因其形。或因其產而名。黃河
012_0212_c_17L黑水砥石蟠木之流。非無所指焉。今載
012_0212_c_18L岳之名。其能耶。形耶。色耶。產耶。遂
012_0212_c_19L以徵諸鄕之耆老。或曰山之形。如車之
012_0212_c_20L載物也。或曰羅王病。運此山之水而服
012_0212_c_21L之。以輿載之。然則此以其形與產耶。
012_0212_c_22L或曰非岳而是藥。以其山中古有多藥
012_0212_c_23L草也。余曰皆非也。其命名之意。瑣細
012_0212_c_24L而不實矣。今余以率意而思之。山之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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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3_a_01L산의 뿌리가 멀리 백두산·풍악산·오대산·태백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와 동해 바다로 흘러가다가 높이 솟아 푸른 산이 되어 청도·밀양·양산·언양의 수백 리를 휘감고 있다. 그 높이는 만 길을 넘어서는데 위로는 동쪽의 별자리를 범하였다. 그 골짝은 매우 깊고 바위산은 풍만하고 아름다워 다른 산과 비교할 수 없다. 계곡물의 장관, 폭포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골짝과 바위에서 생겨났다. 은밀한 사이로 물줄기는 넓게 흐르고 물결은 가득 차 넘쳐 흘러 천만고부터 물이 마르지 않았다. 비록 7년의 가뭄이라도 고갈되지 않으며 콸콸거리고 골짝에서 고을 50리 남쪽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물이 비옥한 논과 윤택한 밭 사이에 끼어들어 몇천만의 사람들이 이에 의지해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밀양 사람들은 모두 이 산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산은 밀양 고을 사람들의 보배가 아니겠는가. 밀양 사람들은 또한 나라의 백성이니 이 산 역시 나라의 보배가 아닌가. 그러므로 밀양 사람과 나라 백성은 모두 이 산을 이름하여 재악이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재약載藥이 병자에게 약을 주는 것이 분명하니 보통 이름이 아니다. 혹은 약초를 캔 세 신선을 말하는데 어찌 한갓 병 치료를 위해서였겠는가. 도리어 장생불로하며 세상의 허물을 벗고 신선에 오르게 하는 약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나는 말하길 “불사약은 비록 세상에서 좋은 약이라고 하지만 어찌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무릇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나는 인자도 지자도 아니다. 다만 산수를 좋아하는 병이 있으니 산이 밝고 물이 고운 것을 보고는 은둔하는 군자가 지낼 만한 곳임을 알게 되었다. 우연하게 들어와 종 바위 아래 초가에 주석하여 수 년간을 거처했으니 산에는 머물 만한 곳이 네 군데이며, 완상할 만한 곳이 네 군데 있다는 것을 알고는 감상하고 즐겼다. 무릇 산은 높고도 풍부하며 골짝은 깊어졌다가 다시 평평해졌으며 -
012_0213_a_01L遠自白頭楓岳五𡋛太白而下。東抵于
012_0213_a_02L海。窮隆積翠。盤絡於淸密梁彥數百里
012_0213_a_03L間。其高則萬丈餘。上侵于箕房之宿。
012_0213_a_04L其洞壑之深邃。岩巒之豊麗。不是與他
012_0213_a_05L山之比。溪澗之壯。泉瀑之美。根於萬
012_0213_a_06L壑千岩。窅窕之間。其源浩浩。其派洋
012_0213_a_07L洋。而自千萬古流而不歇。雖七年之旱
012_0213_a_08L不爲枯涸。溶溶然出於洞。抵府五十里
012_0213_a_09L南入於洛。其間膏沃之田。良潤之畦
012_0213_a_10L不知其幾千萬區人賴以活。則密府之
012_0213_a_11L人。非咸載命於此山者耶。然則此山
012_0213_a_12L非密城一府之人所可寶歟。密人亦國
012_0213_a_13L之民。則此山亦非爲國之寶歟。然則密
012_0213_a_14L人與國人。皆名此山。爲載岳宜矣。載
012_0213_a_15L藥則藥於病者惟宜。非通名也。或曰凢
012_0213_a_16L采藥三神者。豈徒療病之是求哉。乃長
012_0213_a_17L生不老蛻凢登仙之藥耳。余曰不死之
012_0213_a_18L藥。雖徒聽之爲美世。安有不死而長生
012_0213_a_19L者乎。夫智者樂水。仁者樂山。余非仁
012_0213_a_20L智者。有山水之癖。見此山明水麗。知
012_0213_a_21L其有隱君子所可栖也。偶入而駐錫於
012_0213_a_22L鍾岩下草堂。而留居者數年。知山之有
012_0213_a_23L所可居者四。而可賞者四也。感玩而樂
012_0213_a_24L之。夫山高而且豊富。洞邃而還平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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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3_b_01L샘과 돌은 아름답고 밝았으며 수목이 예쁘게 우거졌으니, 족히 양지자養智者가 머물 만한 장소인 것이 첫 번째이다. 물은 넓고 구름은 많아 세상의 티끌이 미칠 수 없고 수레나 말이 허용되거나 어지럽게 신음 소리가 들리는 일이 드물어 족히 양정자養定者가 머물 곳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두 번째이다. 푸른 소나무가 산에 가득하고 붉은 상수리나무가 숲을 이루고 봄에는 나물이 지천이며, 가을에는 요기할 열매들이 있으며 산속에는 오곡이 우거져 있고 숲 사이에는 온갖 시끄러움이 사라지니, 족히 양명자養命者가 머물 만한 것이 세 번째이다. 뒤로는 만 개의 언덕이 울타리 치고 앞으로는 띠 같은 길이 멀어 왕복하는 데 비록 열흘이 걸리기는 하나, 험한 벼랑이 없어 넘어설 만하고 험한 산이 없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지팡이를 날려 나아가고 말을 타고 올 만큼 평탄하니 족히 양신자養身者가 머물 만한 것이 네 번째이다. 또한 굽이굽이 400리 밖으로 3주州 사이에 낀 바위산의 기세가 성하여 막힘이 없다. 용납하여 핍박함이 없으니 군자의 기상과 같다. 천 개의 바위들이 빼어남을 경쟁하고 만 개의 골짝은 흘러감을 다투고 물은 빼어나고 산은 밝아, 능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티끌 마음과 속된 걱정을 홀연히 날려 스스로 가슴이 맑아지고 도기道氣와 선심禪心이 갑자기 마음에 흘러들어 선지식의 모습과 같으니, 이는 칭찬할 만하다. 산들이 네 모퉁이를 두루 감싸 안고 물줄기들은 앞으로 띠같이 둘러 있으며, 산 얼굴이 그 가운데에서 의젓하게 나오는 것이 왕의 형상과 같으니, 이는 완상할 만하다. 샘물은 협곡에서 나와 백성의 밭을 적시고 못 속의 용은 비를 내리고 산령은 구름을 토하니, 비록 가뭄 속이라 하더라도 오래도록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 못이 장자長者의 풍모와 자태 같다. 이것이 완상할 만한 여덟 가지로 모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도의 기운을 도와주는 것이다.내가 일찍이 꿈속에서 어떤 산속에 이르렀는데 서쪽으로 험한 계곡이 있었다. 옥 같은 봉우리, 비단 같은 골짝, 낙석, 위태로운 바위가 그 사이에 켜켜이 드러나 있었으니, 하나의 맑은 계곡물이었다. -
012_0213_b_01L泉石娟明。樹木佳茂。足以爲養智者所
012_0213_b_02L可居一也。水濶雲多。紅塵不到。罕見
012_0213_b_03L其車馬之容。紛咻之態。足以養定者所
012_0213_b_04L可居二也。靑松滿嶺。赤橡堆林。春多
012_0213_b_05L可茹之菜。秋有療飢之果。五穀蕃於山
012_0213_b_06L內。百擾息於林間。足以爲養命者所可
012_0213_b_07L居三也。背有萬嶺之藩。前脩一紳之路。
012_0213_b_08L其爲往復。雖有一臾旬之遠。而無險崖
012_0213_b_09L可越。無險峻可碍。飛笻而進。鞍馬而
012_0213_b_10L來。坦然而平。足以爲養身者所可居四
012_0213_b_11L也。且有逶迤四百里外。磅礡數三州間
012_0213_b_12L其勢豊而不阨。其容雍而不迫。似有君
012_0213_b_13L子之氣象。是可賞也。千岩競秀。萬壑
012_0213_b_14L爭流。水秀山明。能使見之者。塵心俗
012_0213_b_15L慮泯然。自澄于胷。而道氣禪心。頓激
012_0213_b_16L於心。似有善知識之形儀。是可賞也。
012_0213_b_17L衆山周擁於四隅。群水縈帶於一面。山
012_0213_b_18L之面。儼然出御于中。似有王者之狀
012_0213_b_19L是可賞也。泉流出峽。灌漑民田。潭龍
012_0213_b_20L施雨。山靈吐雲。雖於旱天之中。長含
012_0213_b_21L潤物之澤。似有長者之風資。是可賞也。
012_0213_b_22L此八者。皆爲激人心助道氣者也。余嘗
012_0213_b_23L夢至一山中。西有岑嶔之谷。瑤峯綉峽
012_0213_b_24L落石危岩。間露層出。而一道淸溪。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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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3_c_01L그로부터 나와서는 날려서 폭포가 되고 떨어져서는 못을 이루고 평지에서는 시내를 이루고 치달아서 여울이 되었다. 대체로 웅장한 바위와 맑은 물은 스스로 높고 낮고 둥굴고 평평하게 되었으며, 물은 위로 10리 정도를 흘러 아름다운 지경을 만들었다. 거슬러 올라가 그 위에는 때때로 시인들이 손잡고 함께하였으며 승려들이 짝을 이루어 혹은 맑은 물가, 바위 위에서 읊조리고 혹은 푸른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으니, 어른어른한 것이 신선 세계 사람들 같았다. 물의 근원이 다한 곳에 산이 있으니 부용 같은 만 길의 봉우리가 하늘로 들어가고 몸은 산꼭대기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위로는 북두칠성을 어루만지고 동해를 굽어보며 배회하다가 날이 저물어 내려와 골짝을 나왔다. 늘어선 옛 절은 동쪽 벼랑 푸른 물 위에서 가로막는데, 붉은 문에 조각한 난간이 우거진 숲과 긴 대 밖으로 화려하게 비쳤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 깨어났는데 지금 이 산을 보니 일찍이 꿈꾼 것과 방불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 산에 몸으로는 비록 처음 왔으나 생각 속에서는 이미 노닐었던 곳이다. 마침내 기를 지었으니 여러 산의 신령에게 의탁하여 같이 평생을 은거하기로 맹세한다.비명碑銘청주 낙영산 공림사 사적 비명 병서淸州落影山空林寺事蹟碑銘并序대체로 도는 세속을 떠난 것으로써 성인은 중원이나 오랑캐의 구분이 없다. 그러므로 공자·노자 두 성인은 동쪽 땅에 내려오고 중생을 구하는 부처님은 저 서쪽 지역에서 떠올랐으니, 희씨의 주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고금의 천하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마치 일월성신이 동쪽 바다 위에서 합하고 강수·하수·회수·제수가 미려尾閭34)의 못으로 모이는 것과 같다. 공자는 인의를 근본으로 삼고 노자는 도덕을 주된 뜻으로 삼아서 모두 세상 안에서 노닐지만, 불교는 진정 무위로서 -
012_0213_c_01L中而出。或飛而爲瀑。洛而爲潭。平而
012_0213_c_02L成川。走而爲瀨。大抵磐岩娟潔。如礱
012_0213_c_03L如磨。自成高下圓平。而水以流其上。
012_0213_c_04L約十里許。爲佳勝之境也。㳂流而上。
012_0213_c_05L往往有騷人連袂。梵侶成雙。或吟於淸
012_0213_c_06L泉石上。或坐於碧樹陰中。依依若壺中
012_0213_c_07L人物也。至窮源處有峰。如萬丈之芙蓉
012_0213_c_08L斗入於紫虛之內。騰身而上冢頂。上摩
012_0213_c_09L斗杓。俯瞰桑海。徘徊日夕。而下出其
012_0213_c_10L洞。有古寺。排壓於東崖碧澗之上。朱
012_0213_c_11L戶雕闌。燦暎於茂林脩竹之表。然而未
012_0213_c_12L知其某處而覺。今觀此山。殆非彷彿於
012_0213_c_13L曾所夢者耶。然則此山。身雖始到。神
012_0213_c_14L則旣遊之地也。遂作記。以寄諸山靈
012_0213_c_15L擬與約平生歸隱之盟爾。
012_0213_c_16L
012_0213_c_17L碑銘
012_0213_c_18L淸州落影山空林寺事蹟碑銘并序
012_0213_c_19L夫道出離微。聖匪夷夏。是故孔老二聖
012_0213_c_20L降于東土。金僊佛日。昇彼西乾。皆在
012_0213_c_21L於姬周之一世。並駕于古今之天下。其
012_0213_c_22L猶日月星辰。合於扶桑之上。江河淮濟
012_0213_c_23L匯于尾閭之淵。孔以仁義爲宗。老以道
012_0213_c_24L德爲旨。齊游於六合之內。佛以眞正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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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4_a_01L마음의 도를 밝히고 인의와 도덕을 겸하고 육합六合의 안과 밖에서 노니나니 논하여 변론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도의 넓음은 우주가 만물을 포용하는 것과 같으며, 그 가르침의 광대함은 바다가 온갖 냇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비견된다. 여러 사물을 찾아 취하여 물상을 감싸 안으니 설법을 할 때면 하늘에서 네 가지 꽃이 내려 그 올바른 자리에 들어가서 땅에는 육서六瑞35)가 샘솟았다. 하늘·사람·제석천·범천왕이 그 법륜을 움직이기를 청하였으며 용과 귀신과 마귀는 머리를 숙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순하였으니, 외로운 공자는 저 구구한 인의仁義로서 일곱 개의 포악한 나라 사이에서 늙었으며, 노자는 외로이 남은 『도덕경』을 5천 마디 안에서 세상을 걱정하는 것으로 그쳤을 따름이다.삼가 생각하건대 우리의 각황께서는 재앙이 닥치기 전에 부처의 도를 멀리 계승하여 밝히시고, 사바의 존자가 될 운수에 응하여 대천大千의 주인이 되셨으며 다시 사생四生의 아버지로 돌아가셨으니, 그 성대한 공렬은 어찌 사람의 마음으로 예측할 수 있겠는가. 삼가 그 대중을 교화하는 가르침이 동방에 전해진 것을 생각해 보니 주나라 목왕의 시대에 이미 화인化人이 서방에서 날아와 은밀히 점점 전해졌다. 동한의 명제가 꿈에 금인을 보고 스님인 섭마등을 맞아들여 마침내 중국에 불교가 크게 전해지고, 천하에 퍼져 나가기가 큰물이 평지를 달려가고 맹렬한 바람이 허공에 크게 부는 것과 같았으니, 누가 그 성대한 기세를 길들여 막아 내겠는가. 생각하건대 우리나라는 멀리 하늘의 동쪽에 있지만 다행히 지극한 교화가 미치게 되었으니 그 또한 다행한 일이다. 유불도 삼교가 널리 퍼진 뒤로 마침내 사해의 명산대천과 빼어난 경개를 가진 고을이 모두 아름다운 불교 세계의 동산이 되고 훌륭한 절터가 되어 중국과 오랑캐 원근遠近의 교외까지 포함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이른바 도가 있으면 가는 곳마다 불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지금 낙영산의 공림사는 서원西原36)의 동쪽 80리에 있는 옛 절인데, -
012_0214_a_01L爲。昭著惟心之道。兼仁義道德。而優
012_0214_a_02L游於六合之內外。論以卞之明也。其道
012_0214_a_03L之愽。如大象之包容萬物。其敎之廣
012_0214_a_04L比滄海之呑納百川。撈摝群品。籠羅衆
012_0214_a_05L彙。其說法也。天雨四花。入定也。地湧
012_0214_a_06L六瑞。人天釋梵。請轉其法輪。龍鬼邪
012_0214_a_07L魔。稽首而歸命。則䀌彼以區區仁義。
012_0214_a_08L卒老于七暴國之間。孑孑道德。憤世於
012_0214_a_09L五千言之內而止之而已也。恭惟我覺
012_0214_a_10L皇。遠繼燈明佛之道於塵墨劫之前。應
012_0214_a_11L運娑婆尊。爲大千之主。普作四生之父。
012_0214_a_12L其爲盛烈。豈人情之所能測哉。謹考其
012_0214_a_13L聲敎之東被也。則聿自周穆之世。已有
012_0214_a_14L化人。從西極而飛來。潛爲其漸遹乎。
012_0214_a_15L東漢明帝。夢金人。邀沙門葉騰以來。
012_0214_a_16L遂大被神州。汎濫天下。如洪瀾之走平
012_0214_a_17L陸。猛吹之1)楊 [8] 太虛。其沛然。孰能御以
012_0214_a_18L遏之哉。惟我邦。邈在天地之東2)郵 [9] 。得
012_0214_a_19L忝其至化之中。其亦幸矣。夫自鼎敎之
012_0214_a_20L風*楊。遂使四海名山大川勝槩之鄕。
012_0214_a_21L盡囿於佛界金銀之域。致其金田玉刹
012_0214_a_22L基。布於華夷遠近之郊。此所謂道之所
012_0214_a_23L存。無所往而不可者也。今玆落影山空
012_0214_a_24L林寺者。在於西原府之東八十里。盖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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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4_b_01L그 절과 산의 기이한 자취가 여섯 가지가 있다. 옛날 신라 경문왕 때에 자정慈淨이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그 도와 덕이 사방에까지 전해져 왕이 흠모하고 우러러서 대사를 불러들여 국사로 삼아 벽상삼한삼중대광사壁上三韓三重大匡師로 봉하였으며 마치 원거鶢鶋37)가 노나라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대우하니, 대사는 즉시 사양하고 숨어서 이곳에 초가집을 지었다. 왕이 이를 듣고 사찰을 세워 거처하게 하고 사액을 내려 공림空林이라고 하였다. 그 후 명나라 건문제建文帝 때에 이르러 함허당涵虛堂 득통得通 화상이란 분이 자정 선사의 행적을 사모하여 그 법당과 요사채 등을 다시 짓고 하나같이 새롭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함허 도량이라고 한다. 이것이 그 사찰의 전후에 걸친 기이한 자취 중의 첫 번째가 된다.천순天順 연간에 이르러 우리 세조 대왕께서 선문에 뜻을 두시어 친히 이곳에 행차하시고 특별히 성지를 내리시어 이곳을 보전하고 보호하라고 하셨으니, 그 당시 삼가 받은 문권이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영원히 산문의 중요한 보물이 되고 있다. 사찰이 고금의 임금께서 모두 중요하게 여긴 바가 되었으니 기이한 자취 중의 두 번째가 된다.사찰의 북쪽에 미륵봉彌勒峰이 있는데, 부용이 만 장이나 되게 치솟아 은하수 속으로 들어갔다. 그 꼭대기에 큰 돌이 있고 돌 가운데에 황금빛의 보탑이 있었는데, 그 그림자가 중국의 도읍 낙양 성중에 드리워졌다. 무덕武德 연간에 당나라 고조가 점을 보는 사람에게 점을 치게 하고 곧 사신을 보내 남은 자취를 추적하게 하였다. 그 사신이 봉우리의 정상에 이르러 보니 단지 돌만 보이고 탑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돌의 윗부분을 뚫어 보니 과연 탑이 있었으므로 이에 그 탑을 꺼냈다. 드디어 6장丈이 되는 미륵불상 세 구를 돌 표면에 새겨 안정시키고는 그 산의 이름을 낙영落影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산의 기이한 자취 중의 세 번째가 된다.낙영봉의 북쪽은 깊은 계곡과 험하고 높은 봉우리가 있고 빼어난 물과 돌이 위아래로 10리에 펼쳐 있어 모두 선경이다. 세상에서는 파환波環이라 부른다. 이것이 산의 기이한 자취 중의 네 번째가 된다. -
012_0214_b_01L伽藍也。其寺之異跡。山之奇蹤。有六焉。
012_0214_b_02L昔在新羅景文王朝。有高僧慈淨。道德
012_0214_b_03L餘馨。聞于四遠。王欽而仰之。邀致輦
012_0214_b_04L下。拜爲國師。加封壁上三韓三重大匡
012_0214_b_05L師視之。如鶢鶋之聽魯樂。卽辭而遁
012_0214_b_06L結茆於此。王聞之。爲建寶坊。而俾居
012_0214_b_07L之。賜其額曰空林云。後至明建文之世
012_0214_b_08L有涵虛堂得通和尙。淑慕慈淨之跡。重
012_0214_b_09L創其法堂及諸寮寀之屬。一以新之。人
012_0214_b_10L或稱爲涵虛之道場也。其寺之前後神
012_0214_b_11L聖之異跡一也。至天順中。我世祖大王
012_0214_b_12L俯留睿意於禪門。親運玉趾。特加聖旨
012_0214_b_13L而宛護之。其拜軸。至今存焉。永爲山
012_0214_b_14L門之重寶。其寺之爲古今人主之所共
012_0214_b_15L重之者二也。寺之北。有彌勒峰。芙蓉
012_0214_b_16L萬丈。上入雲漢。其頂有大石。石中有
012_0214_b_17L黃金寶塔。其影落於中國洛陽都中。在
012_0214_b_18L武德中。唐高祖。使望氣者覘之。卽遣
012_0214_b_19L使跟之。使至登峰。則只見石。而不見塔。
012_0214_b_20L鑿其石頂。則果有之。乃拔其塔。遂鎸
012_0214_b_21L丈六彌勒佛像三軀於石面而鎭之。卽
012_0214_b_22L名其山曰落影焉。山之奇者三也。峯之
012_0214_b_23L北洞壑。岩巒秀麗。泉石娟明。上下十
012_0214_b_24L里。皆爲仙境。而世謂之波環。卽山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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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4_c_01L산 남쪽의 법화원은 시원하게 허공으로 치솟았는데 신라의 신승 검단 선사黔丹禪師와 최고운이 『법화경法華經』을 강론했던 자리이다. 그러므로 검단산이 그 서쪽에 있고 고운대는 그 아래에 있다. 또 청화산이 있어 동쪽에서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속리산은 남쪽에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낙영산은 두 명산의 사이에 있으면서 자정·함허·검단·고운 등 네 사람과 나란히 세상에서 고명을 얻었다. 이것이 산의 훌륭한 경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기이한 자취의 다섯 번째이다.임진년과 정유년의 난리 때에는 왜구가 갑자기 들이닥쳤으나 사찰의 신령스럽고 기이한 기운을 두려워하여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불을 놓았다. 그러나 동서의 회랑은 다 타서 재가 되었지만 불전과 스님의 거처는 바람이 바뀌어 불길이 꺼져 모두 재앙을 면하였다. 적들이 화를 내며 활을 어지러이 쏜 뒤에 돌아가니, 그 화살촉의 흔적이 절의 기둥에 완연히 남아 있는 것이 어제 일과 같았다. 이것이 또한 절의 신령스럽고 기이한 자취 중의 여섯 번째가 된다.그러고 보면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모두 자정과 함허가 일찍이 마련한 것이지 난리 후에 사람들이 새로이 지은 것은 아니다. 지금 큰스님 태행太行이 부처님을 모실 계획으로 여러 시주들에게 알리니, 즉각 서오남 등 24명과 성철·일훈·죽간 등의 비구가 같이 부처님께 큰 소원을 빌며 함께 논을 희사하고 부처님께 시주하여 영원히 부처님을 모시는 재원으로 삼았으니, 어찌 적은 보탬이겠는가. 팔도도총섭자헌대부八道都㧾攝資憲大夫를 지낸 제하당霽霞堂 경특瓊特 대사가 노병으로 남한산성에서 사직하고 신유년에 이곳으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어느 날 저녁 체심體心 도인이 말하길 “아, 이 절이 자정·함허 양 성사가 일군 도량인데 일찍이 기문을 지은 것이 없다. 옛날의 기이한 자취에 대해 비록 사람들이 입으로 외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
012_0214_c_01L奇者四也。山之南。有法華院。爽嵦凌
012_0214_c_02L虛。卽羅之神僧黔丹禪師。與崔孤雲講
012_0214_c_03L論蓮經之處也。故黔丹之山在其西。孤
012_0214_c_04L雲之臺在其下也。又有靑華。孕秀於東。
012_0214_c_05L離岳誇䧺於南。而落影處于兩名山之
012_0214_c_06L間。得與慈淨涵虛黔丹孤雲四人。騁高
012_0214_c_07L名於宇宙之內。山之名勝者五也。至萬
012_0214_c_08L歷丁壬之亂。倭寇猝至。畏寺之神異。
012_0214_c_09L不敢突入。以火縱之。惟東西廊宇。爇
012_0214_c_10L爲煨燼。其佛殿僧廬。則風迴火熄。盡免
012_0214_c_11L其烖。賊恕之。以箭亂射而去。其𨮹痕猶
012_0214_c_12L在沙門之柱。而如昨焉。此亦爲寺靈異
012_0214_c_13L之六也。然則今之所存堂宇。皆慈淨涵
012_0214_c_14L虛之曾所經營者。非在亂後之人新所
012_0214_c_15L建者也。今有大德太行。爲供佛之計
012_0214_c_16L以吿諸檀越。則有徐五男等二十四人
012_0214_c_17L與比丘性喆日熏竹簡等。同發鴻願。共
012_0214_c_18L捨畓而施於佛。爲萬世享佛之需。胡爲
012_0214_c_19L小補哉。前八道都㧾攝資憲大夫釋霽
012_0214_c_20L霞堂瓊特大師。以老病辭南漢。歲辛酉
012_0214_c_21L歸隱于此。一夕誘體心道人曰。噫。此
012_0214_c_22L寺乃慈淨涵虛兩聖師之道場。而曾無
012_0214_c_23L所紀之文。古之奇跡。雖有人口之誦。
012_0214_c_24L「楊」通「揚」{編}次同。「郵」疑「陲」{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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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5_a_01L어찌 문인의 손을 빌려 글을 지어서 쇠나 돌에 새김으로써 도모하는 것과 같겠는가. 비석을 세워 옛일을 빛나게 하는 것은 모두 지금 시주들의 공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조계종 장로 조영祖瑛 대덕이 살펴보고 기뻐하여 정묘년에 간단한 편지를 써서 하인을 통해 영남으로 보내서 나에게 뇌문을 청하였다. 나와 조영은 함께 가르침을 받은 복이 있을 뿐 아니라 소년 시절의 교분도 깊었으므로 그의 바람을 거스르기 싫었으나, 졸렬한 글재주로서 감히 붓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그해 겨울 다시 통정대부通政大夫 응민應敏 스님을 보내 글을 재촉하니 마침내 부득이해서 청하는 말에 따라 하는 수 없어 시를 지었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佛氏東邁 불교가 동쪽으로 전래된 것은
閱周秦邦 주周나라와 진秦나라 때의 일이고
爰及漢顯 한漢나라 때에 이르자 더욱 빛나서
海印全彰 해인海印이 온전히 밝혀졌지
濫觴寰宇 천축에서 기원하여
流冾扶桑 동방에 두루 전파되었네
粤有慈淨 이에 자정慈淨 선사 계셔서
法味親嘗 불법을 친히 익히시니
下風問道 고개 숙여 도를 묻는
彼新羅王 저 신라 왕
從其鳥養 어미 새가 그 새끼를 좇아 기르듯이
爲創道場 도량을 창건하였다네
涵虛緝古 함허涵虛가 옛 모습에 따라서
乃殿乃堂 전각과 당을 짓고
世廟親幸 세조 대왕이 친히 행차하시니
山益增光 산은 더욱 빛이 났네
蒼蒼落影 푸르른 낙영산落影山은
影唐洛陽 당唐나라 낙양에 그림자 드리우고
晃曜金塔 금탑은 찬란히 빛나고
胎石而藏 태석胎石은 숨어 있네
溪山明秀 산천은 수려하고
洞壑淸涼 골짝은 맑고 시원하네
中藏寶所 보물을 간직한 곳이요
千古禪房 천 년의 선방禪房일세
而山而寺 산과 절에
六異流芳 여섯 이적 전해 오니
有諸檀信 여러 단월자들이
施以農莊 농장을 시주하니
不怠供佛 공양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求福知方 복을 구함에 예절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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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5_a_01L曷若借辭於文人之手。被之金石。以圖
012_0215_a_02L其固爾。其樹石以賁古事。兼備今諸檀
012_0215_a_03L越之功也。於是曺溪宗長老祖瑛大德
012_0215_a_04L審而喜之。於丁卯春。折簡而走。伻嶺
012_0215_a_05L南來。請誄於子。子於瑛。非獨有同風
012_0215_a_06L之慶。亦深其少年之契。欲不負其所望。
012_0215_a_07L以樗櫟散材拙魯於文不敢爲之搦管。
012_0215_a_08L其冬更遣通政大夫釋應敏。而珿其文。
012_0215_a_09L遂不獲已。就紓其來語。强賦其銘曰。
012_0215_a_10L佛氏東邁。閱周秦邦。
012_0215_a_11L爰及漢顯。海印全彰。
012_0215_a_12L濫觴寰宇。流冾扶桑。
012_0215_a_13L粤有慈淨。法味親嘗。
012_0215_a_14L下風問道。彼新羅王。
012_0215_a_15L從其鳥養。爲創道場。
012_0215_a_16L涵虛緝古。乃殿乃堂。
012_0215_a_17L世廟親幸。山益增光。
012_0215_a_18L蒼蒼落影。影唐洛陽。
012_0215_a_19L晃曜金塔。胎石而藏。
012_0215_a_20L溪山明秀。洞壑淸涼。
012_0215_a_21L中藏寶所。千古禪房。
012_0215_a_22L而山而寺。六異流芳。
012_0215_a_23L有諸檀信。施以農莊。
012_0215_a_24L不怠供佛。求福知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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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5_b_01L跡被豊石 그 행적 비석에 적혀 있어
遠示無疆 오래도록 멀리 전해질 것이고
浮雲擁衛 떠가는 구름도 돌을 보호하니
卓爾凌岡 산 위에 우뚝하다네감로사 사적 비명 병서甘露寺事蹟碑銘并序무릇 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공평하여 천지 사이에 차 있으니, 그것은 탁약橐籥38)이 비어도 구부러지지 않는 것 같아 움직일수록 더 드러나며 퍼내더라도 마르지 않으며 적당하여 부족하지 않다. 옛 성인들이 천하에 이를 전하여 배척하지 않고 만세에 미치도록 하여 멋대로 재단하지 않으면서 넉넉하게 여유가 있는 것이다. 오로지 부처님께서 광대무변한 세계의 성인 중의 성인이 되었으니 하늘 중의 하늘이라 부르는데, 정수리에서는 백 가지 보배의 빛을 비추고 얼굴에는 둥그런 보름달이 열렸으며 금모지후金毛之吼39)를 떨치고 옥룡의 울음을 퍼뜨리고 성품의 바탕에 은혜로운 구름을 깔고 깨달음의 정원에 불법의 벼락을 치니, 일렁거리는 가르침의 물결이 사바에 가득 찼도다. 어찌 삼 척三尺의 부리40)와 오색호五色毫41)의 보잘것없는 글과 창록蒼鹿42)의 오천 언五千言에 비유할 것인가. 아득한 유한劉漢43) 시절에 금신金身44)이 문득 왕의 꿈에 나타난 뒤 백마가 갑자기 신주神州45)로 달렸고 옥축과 상자의 글이 절과 석실에 보관되었으니 하늘이 동쪽 땅의 생령을 꺾어 유절有截46)의 지역에 채워 옮기고 대방가47)에 노닐도록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한나라로부터 위·진·제·양 나라 사이에 그 도는 세월이 갈수록 빛이 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막을 수 없으니, 그 자비와 제도의 공은 끝이 없다. 최후에는 정법안장正法眼藏48)으로서 대구씨大龜氏49)에게 부촉하여 28세에 이르도록 전했으니, 달마 대사가 멀리서 이심전심으로 총령葱嶺50)을 넘고 사막을 건너 양과 위나라 사이에 노닐며 앉은 채로 9년을 보내고 -
012_0215_b_01L跡被豊石。遠示無疆。
012_0215_b_02L浮雲擁衛。卓爾凌岡。
012_0215_b_03L
012_0215_b_04L甘露寺事蹟碑銘并序
012_0215_b_05L夫道至大至公。而塞乎天地之間。其猶
012_0215_b_06L橐籥之虛而不屈。動而愈出。酌焉而不
012_0215_b_07L竭。澍焉而不匱。故聖人。得以施之於
012_0215_b_08L天下。而不爲伐。被之於萬世。而不爲
012_0215_b_09L宰。綽綽然有餘裕者也。惟我覺皇。啓
012_0215_b_10L運大千之上。爲聖中聖。號天中天。頂
012_0215_b_11L放百寶之光。面開滿月之輪。奮金毛之
012_0215_b_12L吼。宣玉龍之吟。布慈雲於性空。震法
012_0215_b_13L雷於覺苑。敎海之波瀾。於是乎瀰漫於
012_0215_b_14L沙界。庸詎以三尺喙五色毫一蒼鹿五
012_0215_b_15L千言而比之哉。逮乎劉漢金身輙入於
012_0215_b_16L御夢。白馬倐驤乎神州。玉軸良凾之文
012_0215_b_17L已縢於蘭𡋛石室。非天之所以衄其東
012_0215_b_18L土生靈。厭洫於有截之域。畀之游於大
012_0215_b_19L方之家者耶。自漢曆于魏晋齊梁之間。
012_0215_b_20L其道愈久而愈光。以至于今。不能遏之。
012_0215_b_21L則其慈濟之功。靡有紀極也。在末後。以
012_0215_b_22L正法眼藏。付於大龜氏。其傳至二十八
012_0215_b_23L世。有達麽大師。遠佩祖印。踰葱嶺渡
012_0215_b_24L流沙。而游於梁魏之間。坐1)態 [10] 耳九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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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5_c_01L신광씨神光氏51)를 제자로 삼아 의법衣法을 주었다. 그 가르침이 오종五宗52)에 전해지고 사해를 떨쳐 우리 불가의 기풍이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 것에 못지않았으니, 이를 일컬어 격외의 선문이라 한다.신라의 혜운惠雲 스님이 당나라에 들어가 안주 백조산 지원 선사志圓禪師의 법윤法胤53)이 되었으니, 달마로부터 10세손에 해당된다. 때는 당나라 소종昭宗 천우 17년 정묘였다. 혜운은 곧 백조白兆54)를 하직하고 신라로 돌아왔다. 신라 흥덕 대왕이 선사를 자우 국사慈雨國師로 삼으니, 갑자기 자우 국사가 조양鳥養55)을 생각하고는 석장을 떨치며 남쪽을 향하여 배를 타고 물을 건너 이곳에서 노닐었다. 창주의 위쪽으로 산봉우리들이 푸르게 둘러 있고 골짜기는 평평하고 넓었으니 호중壺中56)의 별세계였다. 선사는 마음이 흡족하여 큰 도량임을 알리고 백조 선사의 종풍을 널리 떨치게 되었으며 큰 법우가 내려 널리 인천의 뛰어난 기틀과 맞닿았으니, 마치 신룡이 큰 구름에 의지하고 바람과 천둥을 타고 용문에 감로를 뿌리며 고래·물고기·자라 등으로 하여금 그 머리가 모두 변하게 하여, 마침내 산을 신어神魚라 하고 절을 감로라 하였다. 선사가 이곳을 죽을 곳으로 여기고는 이곳에서 입적하였으므로 그 부도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뒤에 송나라 이종理宗 가희 원년 정유년에 해안海眼 스님이 자우 선사의 높은 자취를 사모하여 그 절을 중창하여, 무너지고 기울어진 전각과 요사가 새롭게 옛 모양대로 되었다.황명 만력皇明萬曆 중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에 이르러 절이 왜적들에 의해 짓밟혀 온통 빈터가 되었으니 병란의 참상인 것이다. 만력 갑인년에 덕성德性·두인杜仁·각순覺淳·혜언惠彥 등 네 분의 대덕이 그 터가 수풀더미로 변한 것을 보고 마침내 탄식하여 말하길 “이곳은 자우가 남기신 터이다. -
012_0215_c_01L得神光氏。以衣法付之。其傳至於五宗。
012_0215_c_02L大振於四海。使吾佛之風。不啻如華添
012_0215_c_03L錦上。此所謂格外禪門者也。有新羅僧
012_0215_c_04L惠雲入唐。爲安州白兆山志圓禪師之
012_0215_c_05L法胤。於達麽爲十世孫。卽唐昭宗天祐
012_0215_c_06L十七年丁卯也。雲卽辭白兆而東還。新
012_0215_c_07L羅興德大王。拜師爲慈雨國師也。俄而
012_0215_c_08L慈雨。思其鳥養。拂錫而南。乘盃渡水。
012_0215_c_09L游歷于此。卽見山屏環翠於滄州之上。
012_0215_c_10L洞壑平寬。爲壺中之別區。師忻其愜願。
012_0215_c_11L乃闡大道場。廣震白兆之宗風。雨大法
012_0215_c_12L雨。普接人天之峻機者。若神龍之據大
012_0215_c_13L雲。而乘風雷。雨甘露於龍門。使鯤鯨
012_0215_c_14L魚鼈之屬。緫變其頭角故。遂以神魚名
012_0215_c_15L其山。甘露榜其寺。以爲終焉之所仍
012_0215_c_16L入寂于此故。其浮圖至今尙存焉。後至
012_0215_c_17L宋理宗嘉熙元年丁酉。有僧海眼。淑慕
012_0215_c_18L慈雨之高躅。重緝是寺。其隳橈陊圯之
012_0215_c_19L殿宇堂寮。一新舊制焉。逮皇明萬曆丁
012_0215_c_20L壬之亂。寺爲島夷之蹂躪焉。蕩然爲焦
012_0215_c_21L墟。噫。其兵燹之慘也。至萬曆甲寅。有
012_0215_c_22L德性杜仁覺淳惠彥等四大德。見其址
012_0215_c_23L完爾於草莾之中。遂慨歎曰。此其慈
012_0215_c_24L「態」疑「熊」{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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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6_a_01L비록 도란 고금이 따로 없고 흥망이 운수에 달려 있기는 하지만 우리는 복구하는 데 힘을 모을 것인즉 반드시 날개를 쳐서 선을 따라야 한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서로 맹세하고 이로써 다시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과연 승 원준이 그 울림에 응답하여 이에 법당이 지어졌으며, 그 당·요·누각 등은 또한 동지들이 피땀 어린 노력으로 지은 것이다. 숭정 임진년에 이르러 위엄 있던 당우가 전란의 불길에 타 버렸으니, 숲과 산도 빛을 잃고 구름과 시내는 비통함을 머금었다. 천학·혜언 양 대덕이 비통함을 달래 주면서 무리에게 말하길 “앞선 이들의 공덕이 이미 헛된 것이 되어 가슴을 어루만지면 백마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어찌 손바닥을 치며 적오赤烏57)의 상서로운 무리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처문處文·담식曇湜·초영楚英·신매信梅·처호處湖·일청一淸·처열處悅·담혜曇惠·탁균卓均·담성曇性·대언大彥·극신克信·대현大玄 등 열두 명의 개사開士58)들이 상의하고 힘을 합쳤다. 마침내 불전의 장엄함과 절집의 성대함이 후인들을 놀라게 했으니 호연湖演 상인이 구름 뿌리를 자르고 갈아 안치鴈齒59)의 층계를 쌓았다. 의론하는 자가 말하길 “그 전의 절 건물은 동쪽 봉우리에 치우쳐 있었고 서쪽이 비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한 팔을 자른 것과 같으며, 또한 스님이 많고 집이 좁은 것이니 마땅히 서쪽으로 요사를 넓혀 지령을 흡족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성준性俊·문학文學·천학天學·담식曇湜·탁징卓澄 등이 즉시 서쪽을 깎아 명월明月·청풍淸風·대월對月·미타彌陁 등 네 건물과 대장전을 더 넓혔으니, 이에 절은 바야흐로 모양을 갖추었다. 승려 대흡大洽이 사천왕상을 조성하여 문에 안치하였고 날듯이 높은 집이 삐죽삐죽하게 솟아 호수와 강 밖에서도 우뚝하게 빛났으니, 강 건너에서 이를 바라보는 자들이 다투어 가리키며 연화정토蓮花淨土라 하였다.내가 자우·해안의 행적을 얻어 살펴보니 -
012_0216_a_01L雨之遺基也。雖道無古今。興廢有數。
012_0216_a_02L吾等倡以復之。則必有皷翼以從善之
012_0216_a_03L者。遂相與矢心。以重復爲己任。果有
012_0216_a_04L僧元俊。從後響應而至。乃成法堂也。
012_0216_a_05L至其堂寮樓閣之屬。亦有同志之軰所
012_0216_a_06L戮力也。及乎崇禎之壬辰。嵬然堂宇
012_0216_a_07L盡爲劫火之焚燬。亦見林巒失色。雲澗
012_0216_a_08L含悲。有天學惠彥兩大德。愈爲之痛。
012_0216_a_09L謂之衆曰。前人之功。已歸於虛。與其
012_0216_a_10L撫膺而聽白馬之悲嘶。曷若拊掌而觀。
012_0216_a_11L赤烏之祥集。卽與處文曇湜楚英信梅
012_0216_a_12L處湖一淸處悅曇惠卓均曇性大彥克信
012_0216_a_13L大玄等十二開士。協謀致力。遂使佛殿
012_0216_a_14L之壯。僧廬之盛。有竦於後觀。而湖演
012_0216_a_15L上人。斷礱雲根。以築鴈齒之層砌也。
012_0216_a_16L議者又曰。寺之舊制。迫於東岑。虛其
012_0216_a_17L西𡼂。若人之折一臂。而且僧多屋窄。
012_0216_a_18L宜於西增開寮舍。以愜地靈。有性俊文
012_0216_a_19L學天學曇湜卓澄等。卽鏟西𡼂。加拓明
012_0216_a_20L月淸風對月彌陁四舍及大藏殿。於是
012_0216_a_21L寺。方爲具體也。僧大冾造四天王像。
012_0216_a_22L以安於門。使飛薨峻宇叅差。嵬煥於湖
012_0216_a_23L山之外。有隔江而望之者。爭指爲蓮花
012_0216_a_24L淨土也。予取慈雨海眼之蹟而觀之。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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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6_b_01L덕성·혜언이 앞장서고 천학·담식 등 여러 스님들이 뒤를 이어 비록 지금 다시 복구하였으나 절이 오래되었음은 분명하다. 또한 무릇 당나라 때 혜운이 지었고 송나라 때 해안이 중건했으며 명나라 때 덕성 등이 복구하였다. 그 절의 폐함도 당·송·명 3대와 시종始終이 같으니 해안·혜언 등의 공력이 대체로 임진란을 맞아 사라지고 자우의 자취 또한 임진란으로 매몰된 것으로 여겨지며, 천학 등의 공력이 임진란으로 위협받아 또한 없어진 것을 본다. 그러한즉 대개 절은 분성盆城60)의 동쪽에 있는데, 분성은 수로왕의 유허지이며 감로사는 자우 대사가 머물던 옛터이다. 수로는 신성한 자질로 나라를 세운 임금이며, 자우는 용상龍象61) 가운데 표상으로 개산조가 되어 천년의 훗날까지 높은 풍도와 성대한 공렬이 나란히 빛난다. 분성의 기적과 감로사의 신령스러운 향기는 사라지지 않고 이미 국사와 지리지에 씌어 있으니, 남쪽 지역에서 크고 이름난 절이 된 것이 당연하다. 또한 그 건물의 기세를 본즉 뒤로 어산을 의지하고 앞으로는 낙동강을 굽어보는데, 어산의 근원은 두류산에서부터 진주와 함양 등 대여섯 고을 사이를 구불구불 내려와 여기에 이르러 감돌아 후전이 되었다. 낙동강의 원류는 태백을 따라 상성商星 등의 마을 800리 밖으로 거침없이 흐르다 이곳에 흘러들어 웅덩이를 이뤘으니, 앞에서 전금前襟62)을 잡아당기니 그 산하의 아름다움을 누가 더 보태리오. 그러므로 동서의 사대부와 선비들이 이 절을 지날 때는 반드시 손뼉 치면서 “비록 동정호의 금산사와 금릉의 감로사라 할지라도 이곳보다 아름답지 않다.”라고 하였다.전에 삼남의 총섭摠攝이었던 성준性俊 스님은 절이 오래되었으나 볼 만한 사적이 없음을 개탄하면서, 그 전후 사정을 기록하고 -
012_0216_b_01L前之德性惠彥。後之天學曇湜等諸公。
012_0216_b_02L雖在於今而復之。寺之爲古也審矣。且
012_0216_b_03L夫惠雲之創在於唐。海眼之緝在於宋。
012_0216_b_04L德性等復在於明。其與廢者。與唐宋明
012_0216_b_05L三代相終始。而其海眼惠彥等功。皆遇
012_0216_b_06L壬辰而敗。則慈雨之跡。亦想以壬辰而
012_0216_b_07L沒。天學等功。將恐以壬辰。且見其亡
012_0216_b_08L也。然則物之理。天之數。恠且休也。盖
012_0216_b_09L寺在盆城之東𡼂。盆城乃首露之遺墟。
012_0216_b_10L甘露卽慈雨之舊址也。首露以神聖之
012_0216_b_11L資。爲創國之君。慈雨以龍象之表。爲
012_0216_b_12L開山之主。於千載之下。其高風盛烈
012_0216_b_13L炳然相並。以不泯其盆城之奇跡。甘露
012_0216_b_14L之靈芬。已載於國史及輿經。則爲南國
012_0216_b_15L巨鎭名刹者宜矣。且觀其宅勢。則背倚
012_0216_b_16L魚岑。面俯洛流。魚之根。自頭流逶迤。
012_0216_b_17L於晋咸等五六州之間。而抵於此。盤紆
012_0216_b_18L而爲後殿。洛之源。從大白而奔放於商
012_0216_b_19L星等府八百里之外。而注於是。匯瀦而
012_0216_b_20L爲前襟。其山河之美。孰有加於此哉。
012_0216_b_21L故東西搢紳之行。過是寺者。必抵掌曰。
012_0216_b_22L雖洞庭之金山。金陵之甘露。亦不足以
012_0216_b_23L爲多於此也。有前三南㧾攝釋性俊。慨
012_0216_b_24L寺古而無蹟可眎來者。錄其前後。創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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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6_c_01L사람들의 이름과 시기를 복원하였다. 또한 행훈行熏 대덕에게 명하여 돌을 세워 기록하도록 하니 나에게 명을 청하였다. 나는 이를 사양하면서 “명문銘文과 뇌문誄文은 문장이 높은 거장들이 쓰는 것인데 어찌 별 볼일 없는 늙은 중에게 마땅한 일이겠소.”라고 하였으나, 성준 스님의 청이 완강하여 부득이하게 잠깐 만에 서序를 지었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於赫覺皇獨步大方 위대한 부처님 대방大方63) 사이를 홀로 걸으며
顯于西土世周昭王 서쪽 땅에 나타나시니 주소왕周昭王 때라
高揭慧日遠燭東鄕 높이 지혜의 해가 걸리고 멀리 동방에 촛불이 밝혀졌네
慈雲廣布法雨霈滂 자비의 구름 넓게 덮이고 법의 비가 흡족히 내리니
其道甚大如海汪洋 그 도는 지극히 커서 넓은 바다와 같네
渡人彼岸建大法檣 피안에 사람들 건네 줄 법의 돛대 크게 세우고
金身帝夢白馬龍驤 금빛 부처 황제 꿈에 보이고 백마가 용처럼 날아와
聲敎遠達屆于漢邦 부처의 가르침 멀리서 한나라에 이르렀고
曆魏曁晋閱隋而唐 위魏와 진晋을 거쳐 수隋와 당唐에 들어가
道德風楊天下濫觴 도와 덕이 버들에 바람 불듯 천하에 처음 나타나니
洞徹塵劫日月爭光 무한히 깨우치고 일월日月 다투어 빛나네
有孫達摩得法玄綱 달마라는 후손 있어 법을 얻고 진리를 통달하니
高佩祖印一葦游梁 고상한 조사의 인장을 차고 외딴 배로 양梁나라에 가
栖遲小室九載倘佯 작은 방에서 고요히 9년을 머물렀네
一花五葉久而乃昌 한 송이 꽃, 오엽五葉64)이 오래되어 곱게 피니
有彼白兆妙旨承張 저 백조산白兆山 지원志圓 선사의 오묘한 가르침 이어지고
曰子惠雲毓于扶桑 제자인 혜운惠雲 선사 동방에서 와서
就飽禪悅游道康莊 맘껏 선리를 깨닫고 굳건한 도에서 노닐었네
還于日下羅王拜床 일하日下65)로 돌아오니 신라 왕이 상 아래로 절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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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6_c_01L之人名字及歲月。且命行熏大德。而樹
012_0216_c_02L石以其錄。請銘於予。予讓之曰。銘誄
012_0216_c_03L必籍文章鉅公之手。豈縷褐老宿之所
012_0216_c_04L宜也。俊公之請彌堅。不護已。姑爲之
012_0216_c_05L序。乃爲銘曰。
012_0216_c_06L於赫覺皇。獨步大方。
012_0216_c_07L顯于西土。世周昭王。
012_0216_c_08L高揭慧日。遠燭東鄕。
012_0216_c_09L慈雲廣布。法雨霈滂。
012_0216_c_10L其道甚大。如海汪洋。
012_0216_c_11L渡人彼岸。建大法檣。
012_0216_c_12L金身帝夢。白馬龍驤。
012_0216_c_13L聲敎遠達。屆于漢邦。
012_0216_c_14L曆魏曁晋。閱隋而唐。
012_0216_c_15L道德風楊。天下濫觴。
012_0216_c_16L洞徹塵劫。日月爭光。
012_0216_c_17L有孫達摩。得法玄綱。
012_0216_c_18L高佩祖印。一▼(竹/韋)游梁。
012_0216_c_19L栖遲小室。九載倘佯。
012_0216_c_20L一花五葉。久而乃昌。
012_0216_c_21L有彼白兆。妙旨承張。
012_0216_c_22L曰子惠雲。毓于扶桑。
012_0216_c_23L就飽禪悅。游道康莊。
012_0216_c_24L還于日下。羅王拜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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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7_a_01L鳳儀旣擧爲瑞爲祥 위인의 모습 널리 알려지니 경사롭고 상서로웠네
鳥逝南邁創此道場 새와 같이 빠르게 내달려 이 도량을 세웠지
年深院度道存人亡 세월 가며 절의 기틀 다져졌는데 도만 남고 사람 없자
海安踵武緝以重莊 해안海安 스님 뒤를 이어 웅장하게 중창했지
照曜湖山乃殿乃堂 빛나는 강산 속의 전각과 당우들
逮于丁壬斑寇陸梁 임진년·정유년에 이르러 이 땅에서 왜구들 날뛰어
金田被毒賊灰飄揚 절들은 해악을 입어 재 가루만 날렸네
山悲泉咽鶴㤪猱傷 산천은 슬피 흐느끼고 학과 원숭이도 원망하고 근심하는데
德性惠彥換彼卽唐 덕성德性과 혜언惠彥 스님 폐허를 바꿔 넓혔으니
熒熒香火祝釐無疆 향화 올리는 전통 빛나고 복을 비는 일 무궁하리
歲周黑龍劫燼流煌 흑룡 해가 되니 타고 남는 재는 말끔히 걷히고
有學有湜業乃重匡 천학天學과 담식曇湜 스님 중창에 힘을 다했지
有緣斯會衆翼翺翔 이곳에 인연 있어 뭇 새들이 날아드는데
覘勢東岫更添西廂 동쪽의 산세를 살펴 서쪽에 곁집을 붙였네
復舊拓新馳彩雲岡 옛집을 되살리고 새롭게 하여 산기슭을 아름답게 꾸몄네
潭潭梵宇大廡脩廊 맑고 깨끗한 절집, 크고도 긴 원랑들
日暎花磚雲濃粉墻 해는 꽃 벽돌을 비추고 구름 그림자 흰 벽에 어려 있네
原厥宅勢象設寶坊 가운데 건물은 기세를 갖추었고 불상은 보배 집에 있네
若木東秀駕洛西望 동쪽으로 칠곡이 우뚝하고 서쪽으로 멀리 가야가 보이네
皇皇首露來自帝旁 위대한 수로왕이 상제의 곁에서
臨乎民極手握天章 백성의 중도에 임하여 손에는 하늘 문장을 쥐었네
神蹤異跡永世流芳 신비하고 기이한 자취 오래도록 전해지니
魚岳蒼蒼洛水湯湯 신어산神魚山은 푸르고 낙동강은 양양하네
國師之風水遠山長 국사國師의 풍모 물과 산같이 영원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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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7_a_01L鳳儀旣擧。爲瑞爲祥。
012_0217_a_02L鳥逝南邁。創此道場。
012_0217_a_03L年深院度。道存人亡。
012_0217_a_04L海安踵武。緝以重莊。
012_0217_a_05L照曜湖山。乃殿乃堂。
012_0217_a_06L逮于丁壬。斑寇陸梁。
012_0217_a_07L金田被毒。賊灰飄揚。
012_0217_a_08L山悲泉咽。鶴㤪猱傷。
012_0217_a_09L德性惠彥。換彼卽唐。
012_0217_a_10L熒熒香火。祝釐無疆。
012_0217_a_11L歲周黑龍。劫燼流煌。
012_0217_a_12L有學有湜。業乃重匡。
012_0217_a_13L有緣斯會。衆翼翺翔。
012_0217_a_14L覘勢東岫。更添西廂。
012_0217_a_15L復舊拓新。馳彩雲岡。
012_0217_a_16L潭潭梵宇。大廡脩廊。
012_0217_a_17L日暎花磚。雲濃粉墻。
012_0217_a_18L原厥宅勢。象設寶坊。
012_0217_a_19L若木東秀。駕洛西望。
012_0217_a_20L皇皇首露。來自帝旁。
012_0217_a_21L臨乎民極。手握天章。
012_0217_a_22L神蹤異跡。永世流芳。
012_0217_a_23L魚岳蒼蒼。洛水湯湯。
012_0217_a_24L國師之風。水遠山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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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7_b_01L鐫辭載石巋然千霜 돌에 사연을 새겼으니 우뚝하니 천년을 가리라보조국사가 심은 은행나무에 비를 세우다(築普照國師手植銀杏樹碣)적천사는 보조국사가 지은 것이다. 국사는 대송 영종 경원년에 이 절을 지었으나 기록이 없고, 사지에는 오직 손수 이 나무를 심었다는 것만 썼으니 이로써 천만세 자취를 밝히려 하였다. 이것은 세존과 견줄 수 있는 것이니 보리수를 가리켜 성도의 장소를 표시하는 것과 완연히 같은 일이 아닌가. 또한 달마 대사가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요지를 말하는 것과 합치되는 일이 아닌가. 이는 순서에 따른 국사의 자취와 창사의 사건에까지 부합된다. 비치된 사적에 이르기를 “도인인 혜철이 광주에서부터 유력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이 나무를 보고 ‘아, 이 나무는 보조국사가 손수 심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곧 이 말이 사중에게 전해지니 돌이 쌓여 축대가 만들어지고 흙이 모아져 봉토가 이루어졌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한 자의 비석돌을 만들고 나에게 와서 고하니, 내 도인의 정성에 감동되어 명銘을 지었으니 다음과 같다.
堂堂國師聖師子兒 당당하신 국사님은 성사聖師의 아들이시니
嗣法延壽道震華夷 연수延壽 연간에 법을 잇고 중국까지 도를 떨쳐
千乘屈節天子卑辭 제후도 굴복시키고 천자도 사양케 했네
重興佛日法海無涯 거듭해서 부처의 가르침 일으키니 법해法海가 끝이 없고
建寺于此樹植于玆 이곳에 절을 짓고 나무를 심어
表忘言旨千載爲奇 말없이 뜻을 드러내니 천년의 기이함일세
有僧惠哲遡仰眞慈 혜철惠哲 스님은 예부터 진실된 자애로 숭앙되었지
以土以石環築其枝 흙과 돌로 둥글게 이곳저곳 쌓고
踵予徵語應以濫吹 전해 준 가르침 따랐으나 응하기엔 부족했네
葱葱嘉木覺樹菩提 무성하게 잘 뻗은 보리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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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7_b_01L鐫辭載石。巋然千霜。
012_0217_b_02L
012_0217_b_03L築普照國師手植銀杏樹碣
012_0217_b_04L磧川寺。乃普照國師之所創也。國師於
012_0217_b_05L大宋寧宗慶元年。創是寺。而不用文字。
012_0217_b_06L以誌其事。惟以手植此樹。以表千萬世
012_0217_b_07L之遺蹤。此可與世尊。指菩提樹。表爲
012_0217_b_08L成道之場。宛同事蹟。亦非契於達麽不
012_0217_b_09L立文字之旨耶。及其國師時順間之跡。
012_0217_b_10L與寺創建之事。備在寺蹟中云。有道人
012_0217_b_11L惠哲。自廣州。遊歷而至。見此樹曰。噫。
012_0217_b_12L樹乃普照手自植者也。卽吿諸寺衆。筥
012_0217_b_13L石以築之。輦土以封之。遂斷尺碣。來
012_0217_b_14L吿于予。予感道人之誠。以爲銘云。
012_0217_b_15L堂堂國師。聖師子兒。
012_0217_b_16L嗣法延壽。道震華夷。
012_0217_b_17L千乘屈節。天子卑辭。
012_0217_b_18L重興佛日。法海無涯。
012_0217_b_19L建寺于此。樹植于玆。
012_0217_b_20L表忘言旨。千載爲奇。
012_0217_b_21L有僧惠哲。遡仰眞慈。
012_0217_b_22L以土以石。環築其枝。
012_0217_b_23L踵予徵語。應以濫吹。
012_0217_b_24L葱葱嘉木。覺樹菩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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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7_c_01L爲祥爲瑞大千陰垂 상서롭게 대천세계에 그늘을 드리웠는데
以諍來目樹此短碑 후인에게 알려 주고파 이 작은 비석 세우네유명 조선국 냉산 도리사 아도 화상 비명 병서(有明朝鮮國冷山桃李寺故阿度和尙碑銘并序)법계에는 크고 원만한 바다가 있는데 밑은 일곱 개의 금강으로 되어 있으며 언덕은 네 개의 열반으로 되어 있고 백천 개의 부당왕찰浮幢王刹66)이 섬을 이루고 하나의 태극이 그 기운을 이루고 끝이 없는 인간계와 천계가 어류가 된다. 일렁이는 겁파劫波와 가득한 항하사 모래가 허공계에 가득하다. 비람풍(嵐風)도 움직일 수 없고 겁화劫火도 태울 수 없으며 재앙의 물이 들이칠 수 없으니, 아득하여 그 끝을 볼 수 없도다. 삼라만상이 그 안에 비추어지니 신룡의 집이며, 숱한 보배를 간직한 곳이로다. 고금의 뭇 성인 가운데 누가 능히 그 근원을 보았겠는가.위의 모든 것은 성해性海를 형용한 것이다.옛날 주周 소왕昭王 때에 한 도사導師가 있었는데 ‘대각’이라 불렸다. 사바 세계에서 대운을 만나 서방의 땅에서 신의 모습으로 내려와 큰 원력을 가지고 바닥이 없는 배를 타고 자비를 상앗대로 삼고 방편을 돛으로 삼아 지혜의 바람을 따라서 마침내 이 바다에 들어왔다. 큰 가르침의 그물을 펼쳐 사람과 하늘의 물고기를 깨워 저 언덕으로 데려다 놓았고, 중천축국의 가운데로 그 물줄기가 거의 천 년간 흐른 것이 총령葱嶺 사막으로 넘쳐 나 한漢나라로 흘러간 뒤, 진晋·위魏·제齊·양梁·수隨·진陳 나라를 거치며 천하를 흡족하게 적시고 물결이 동쪽에 미쳐 마침내 동이를 안고 표주박을 쓰는 무리와 뗏목을 타고서 길을 잃은 무리로 하여금 비로소 망양지탄望洋之歎67)을 터뜨리게 하였다. 그 사이에 곤鯤과 고래가 진노하는 충만(沖融)한 가운데 붕鵬과 물수리가 높이 나는 아득한 바깥으로 유유자적하게 높이 날아 세 층의 풍도風濤를 매어 놓고 -
012_0217_c_01L爲祥爲瑞。大千陰垂。
012_0217_c_02L以諍來目。樹此短碑。
012_0217_c_03L
012_0217_c_04L有明朝鮮國冷山桃李寺故阿度和
012_0217_c_05L尙碑銘并序
012_0217_c_06L夫法界有大圓滿海。以七金剛爲其底。
012_0217_c_07L四湼槃爲其岸。以百千浮幢王爲島嶼。
012_0217_c_08L一太極爲其氣。以無盡人天爲魚蝦。汪
012_0217_c_09L洋劫波。彌滿恒沙。滔滔乎盡虛空界。
012_0217_c_10L嵐風不能動。劫火不能焦。災水不能浸。
012_0217_c_11L淼淼乎不見其涯㵀。萬像森羅。影印其
012_0217_c_12L內。而神龍之爲宅。衆寶之所藏焉。古
012_0217_c_13L今凡聖之流。其孰能窺淵源哉上皆形容
性海也。
012_0217_c_14L昔在周昭之世。有一導師。號曰大覺。
012_0217_c_15L屆大運於娑婆。降神姿於西土。承大願
012_0217_c_16L力。駕無底船。以慈悲爲篙。以方便爲
012_0217_c_17L帆。隨智慧風。遂入此海。張大敎網。摝
012_0217_c_18L人天魚。置於彼岸。而畎其流於中天笁
012_0217_c_19L之中者。幾乎千齡。而濫于葱沙。溢於漢
012_0217_c_20L域。流歷於晋魏齊梁隋陳之間。沛然天
012_0217_c_21L下。波及東隅。遂使抱瓮酌瓢之徒。取
012_0217_c_22L筏迷津之輩。殆興望洋之歎也。而間有
012_0217_c_23L鯤鯨奮振乎冲融之間。鵬鶚翺翔乎浩
012_0217_c_24L渺之表。優游遐擧。繫三級之風濤。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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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8_a_01L백 가지 골짝의 깊은 곳에 이른 이가 곧 아도阿度 화상이다.스님의 법명은 아도이며 속성은 아阿씨요 고구려 사람이다. 아버지 굴마屈摩는 위나라 사람으로 고구려에 사신으로 왔다. 고구려 왕이 집안 여자인 고도령에게 장가가게 하여 아도 화상을 임신하게 되었다. 태어날 저녁이 되자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 차고 상서로운 빛이 집을 관통했다. 태어나면서 신이하여 골격이 남달랐다. 여섯 살이 되자 학문을 구하였으며 겨우 열 살에 벌써 구류九流68)가 좁다고 여겼다. 열여섯 살이 되자 갑자기 어머니를 떠나 바다를 건너 위나라로 들어가 아버지를 뵙고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아버지는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문제文帝가 이를 알고 그를 불러 영준한 자질과 탈속함을 보고는 아비로 하여금 출가시키게 하였으니, 아도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현창玄暢 법사를 뵙도록 시켰다. 현창 법사가 그를 보더니 탄식하면서 “그대는 보살로서 불교를 동쪽으로 흘러가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곧 승방에 들어가기를 허락하고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힌 후 구족계를 주었다. 스님의 지혜로운 말솜씨는 타고났으며 선관禪觀이 쉽게 통하였으니 드넓은 대도에 나아가는 것이 천리마가 평탄한 길을 달리는 것 같았다. 현창 법사가 현기玄機로서 시험해 본즉 화살촉이 서로 부딪는 것 같아 서로 합치하지 않는 데가 없었으니 깊은 뜻을 꿰뚫었다. 현창 법사의 제자가 비록 수만 명이었으나 스님이 상족을 차지하였다. 스님은 이미 현창 법사의 법인을 차게 되었는데 동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였다. 이에 현창 법사가 “동방은 비록 작지만 준걸한 기틀을 가진 이가 점차 늘어나고 있으나 특별히 불교가 들어가지 않았다. 그대는 지금 물줄기를 돌려 해외의 메마른 백성을 무궁하게 적셔 주도록 한다면 그것이 널리 구제하는 공덕이니 어찌 사소한 일인가. 그대는 모름지기 노력하여 단절되지 않게 하라.”라고 하였다.스님은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와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어머니 고씨 또한 기이한 사람으로 스님이 불도를 전해 올 것을 알고 있었는데, 기뻐하면서도 다짐하면서 말하길 “도가 행해지는 것은 때가 있으니 급하게 해서는 안 된다. 3천여 달즉 110년 이후에 -
012_0218_a_01L百谷之奧域者。卽我和尙其人也。師法
012_0218_a_02L諱阿度。俗姓阿氏。句高麗人也。父屈
012_0218_a_03L摩。曺魏人。奉使于句高麗。句麗王以
012_0218_a_04L族女高氏道寧尙之。娠師焉。將誕之
012_0218_a_05L夕。異香滿室。祥光貫屋。生而神異。品
012_0218_a_06L骨非常。而年甫六歲。乃求學。甫十歲。
012_0218_a_07L已有隘九流之志。至十六歲。遽辭母。
012_0218_a_08L航海入魏。謁其父。求出家。父異之。
012_0218_a_09L聞于文帝。帝召見其英姿脫俗。以其
012_0218_a_10L父度之。卽賜阿度之名。使謁玄暢法
012_0218_a_11L師。暢見而歎曰。此菩薩人也。佛敎
012_0218_a_12L東行之漸也。卽容入室。仍削染。輙授
012_0218_a_13L具戒。師慧辯天縱。禪觀易豁。至於大
012_0218_a_14L道之康莊。其造之。如驥騏之走坦途也。
012_0218_a_15L暢以玄機試之。則箭鋒相柱。無不契投。
012_0218_a_16L針之密旨。暢之徒雖數萬。而師居其上
012_0218_a_17L足焉。師旣佩玄暢法印。辭欲東還。暢
012_0218_a_18L曰。東方雖小。俊機稍多。而特佛敎尙
012_0218_a_19L未流入。爾今畎流而去。使海外槁氓。
012_0218_a_20L永得蒙潤於萬世之無窮。則其爲普濟
012_0218_a_21L之功。豈曰淺淺哉。爾須努力。無令斷
012_0218_a_22L絕。師稽首而還。省其母。母高氏。亦異
012_0218_a_23L人也。知師佩道以來。喜而誌之曰。道
012_0218_a_24L之行時乎。不可急。爾後三千餘月卽一
百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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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8_b_01L계림에 성왕이 나타나 불교가 크게 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님은 어머니의 말에 때가 이르지 않음을 알고는 곧 속진에 섞여 살다가 신라 일선군 모례毛禮 장자의 집에 가 머물렀다.이에 앞서 승려인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모례의 집에 이르자 모례가 굴을 만들어 그를 머물러 있게 하여 스님을 돌보아 주었으니 때는 눌지왕 시절이었다. 법흥왕 15년에 왕이 스님의 도예道譽를 듣고 사신을 보내 궁 안으로 맞아들여 예로서 공경하며 불교를 흥성시키려 하였다. 근신近臣 이차돈異次頓은 그 계획을 찬성했으나, 나머지 신하들은 그를 미워하며 은밀히 일을 꾸며 그를 죽였다. 왕이 안타까워하면서 “이차돈이 과인을 찬성하여 죽음을 자초했으니 과인은 이를 통탄스럽게 여기며 이후 이같이 의론하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왕은 스님을 무상사無上師로 삼아 수만 사람을 승려가 되게 하였으며, 뭇 대중의 스승으로 위촉하였다. 바야흐로 겨울철인데 푸른 칡이 여러 덩굴로 뻗어 화상의 굴로 들어갔다. 스님이 덩굴을 따라 이르니 냉산冷山 속에 오색 복숭아, 오얏 나무 두 그루가 눈 속에서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스님이 눈을 치우고 절집을 지었으니 법흥왕이 대단월이 되었으며 스님의 도덕의 감화를 생각하여 ‘도리桃李’로 편액을 삼았다. 절 동쪽에 있는 바위가 상탑床榻과 같아 스님이 그 위에서 크게 무외의 선정에 들어갔다. 혹 비바람이 불고 캄캄한 밤에도 두려운 마음을 가진 적이 없어 사람들이 ‘무외 화상無畏和尙’으로 칭하였다. 왕이 스님이 있는 곳이 멀다고 여겨 성 밖에 대흥륜사大興輪寺를 짓고 머무르기를 청하였다. 진흥왕 때에 이르러 왕이 바야흐로 스님의 교화에 갈증이 나고 더욱 공경함이 두터워져서 제자의 예를 갖추었으며, 또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그치지 않았고 크게 탑묘塔廟를 높이 세웠다.진흥왕 5년 갑자년에 이르러 나라 안에 조서를 내려서 불교를 크게 흥성시킬 방도를 밝히고 마침내 큰 절 일곱 개를 지었으니 -
012_0218_b_01L年
也 雞林有聖王出。大興佛敎也。師禀
012_0218_b_02L母誌。知時未至。卽混跡同塵。至新羅
012_0218_b_03L一善郡毛禮長者家止之。先是有沙門
012_0218_b_04L墨胡子者。自句高麗。至毛禮家。禮爲
012_0218_b_05L作窟室以留之。至是禮。又以此室留。
012_0218_b_06L師而奉之。卽訥祗王時也。至法興王十
012_0218_b_07L五年。王聞師之道譽。遣使迎入掖內。
012_0218_b_08L勤加禮敬。欲興佛敎。近臣異次頓。賛
012_0218_b_09L其計。群臣嫉之。陰以別事構殺之。王
012_0218_b_10L悔之曰。頓以賛寡人計死矣。寡人痛之。
012_0218_b_11L以後如有敢議者斬之。乃拜師爲無上
012_0218_b_12L師。度數萬人爲僧尼。囑爲師之徒衆
012_0218_b_13L也。方冬月有蒼葛數蔓。入師之窟。師
012_0218_b_14L扳蔓而至。冷山中有五色桃李兩株。盛
012_0218_b_15L開花於雪中。師掃雪擬創梵宇。法興王
012_0218_b_16L爲大檀越。以爲師道德之感。以桃李扁
012_0218_b_17L之。寺之東有石。如床榻。師於其上。入
012_0218_b_18L大無畏定。或當風雨晦㝠之夜。未嘗有
012_0218_b_19L怖畏之心。人稱爲無畏和尙也。王以師
012_0218_b_20L居之遠。爲創大興輪寺於城外。請留住
012_0218_b_21L焉。至眞興王朝。王鼎渴師之道化。而
012_0218_b_22L尤加敬重。執摳衣之禮。又度人不止
012_0218_b_23L大崇塔廟。至五年甲子。下詔國中。諭
012_0218_b_24L其大興佛敎之旨。遂創大伽藍七。曰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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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8_c_01L영흥永興·분황芬皇·영묘靈妙·천왕天王·담엄曇嚴·법수法水·법주法住를 말하는 것이다. 이후 온 성내의 사녀士女와 공경대부 등이 각자 큰 원을 세우고 경쟁하듯 집안의 재물을 내놓고 다투어 절을 높이 세웠다. 마침내 3천 비보裨補(사찰)와 500개의 발원처가 교외 언덕과 성안 시장 사이에 바둑알처럼 흩어져 있고 백성들 사는 곳에도 절들이 연이어 있었으니, 동방의 불법은 스님으로부터 시작되어 크게 행해졌다. 어머니 고씨의 말은 이에 이르러 증험이 있었다. 왕은 말년에 머리를 깎고 스스로 법운자法雲子라 하고서 백성을 다스렸다. 스님이 처지가 어렵게 되자 크게 사자후師子吼의 일성을 터뜨리고는 몸을 숨기고 영원히 떠나갔다. 이때에 땅이 솟구치고 산이 흔들리면서 흰빛이 땅을 꿰뚫었으며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천지가 이와 같이 감동을 받았는데 하물며 왕·신하·선비·서민들은 어떠했겠는가. 아아, 해가 깊어지고 사적이 멀어지자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들은 사라졌다.스님의 자취가 내려와 태어나던 날과 중생을 교화하고 적막으로 돌아가게 된 때는 분명하지 않아, 상세히 상고하기 어렵다. 대개 화상은 위魏나라 정시正始69) 연간에 태어나 당나라 정관貞觀70) 연간에 세상을 떴으니 그 시간을 따져 보면 스님의 연세는 280여 세가 된다. 대개 지인은 세상에 내려와 대도를 천만세 오래도록 만들어 전하는 것이니, 어찌 짧은 수명과 범인의 능력이겠는가. 지금 도리사의 여러 석덕들은 2천 년의 제사를 이어오면서 스님의 도덕비를 세우고자 하여 상인 1인을 뽑았는데 그가 발 부르트도록 달려와 나에게 뇌문誄文을 청하였다. 나는 여러 승려들의 스님을 향한 정성을 가상하게 여겨 삼가 동국의 사서와 스님의 행장을 살펴 시종을 엮었으니, 명銘은 이러하다.
廣大刹內性海汪洋 넓고 큰 찰토刹土 안에는 바다 같은 마음 넘실거리고
其岸浮幢其底金剛 언덕은 부당왕찰浮幢王刹이요 그 밑에는 금강金剛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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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8_c_01L興。曰芬皇。曰靈妙。曰天王。曰曇嚴。
012_0218_c_02L曰法水。曰法住。而後傾城士女及卿大
012_0218_c_03L夫等。各發大願。競捐家貲。爭崇佛刹。
012_0218_c_04L遂使三千裨補五百祝釐之所。棊布霧
012_0218_c_05L列於郊原城市之間。而梵宇之簷連於
012_0218_c_06L閭閻之梋。東方佛法之始。自師而大行
012_0218_c_07L焉。高氏之誌。至此乃驗也。王晩歲剃
012_0218_c_08L髮。自號法雲子。以治政焉。師化緣將
012_0218_c_09L卑。作大師子吼一聲。而遂隱身永逝。
012_0218_c_10L于時地湧山搖。白光貫地。大星殞天云。
012_0218_c_11L天地之感如斯。而况君臣士庶乎。嗚呼。
012_0218_c_12L年深事遠。代異人亡及乎。師降跡出胎
012_0218_c_13L之時日。化衆歸寂之歲紀。㛪婀而不可
012_0218_c_14L細考也。盖師生於魏正始之間。滅於唐
012_0218_c_15L貞觀之中。取其間曆數而計之。則師之
012_0218_c_16L春秋。有二百八十餘歲矣。盖至人降世。
012_0218_c_17L以大道創傳於千萬世之悠遠。則豈小
012_0218_c_18L壽凡骨之所能哉。今桃李寺諸德。緬嚮
012_0218_c_19L師於二千年之下。欲樹師道德之碑。乃
012_0218_c_20L選上人一人。繭足而請誄於余。余嘉其
012_0218_c_21L諸德嚮師之恳。謹按東史及師之行狀。
012_0218_c_22L捃編始終。因獻銘曰。
012_0218_c_23L廣大刹內。性海汪洋。
012_0218_c_24L其岸浮幢。其底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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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9_a_01L金波匝匝智月汪汪 겹겹의 금빛 물결 넓고 넓은 지혜의 달
遍滿空界容含十方 두루 허공의 세계에 채우고 시방 세계 담았네
滔滔湛湛不見其傍 넓고도 맑아서 흐릿하지 않고
森羅普現萬像齊彰 펼쳐져 두루 보이고 온갖 형상 뚜렷하네
群靈所宅衆寶所藏 여러 신령들 머물고 보배들 간수했으니
六道四生孰窺其央 육도의 사생四生들 누가 그 속을 보았나
昔有導師其號覺皇 옛적 스승 있어 각황이라 불렀으니
把慈悲篙建方便檣 자비의 상앗대를 쥐고 방편의 돛대를 세웠지
乘智惠風駕無底航 지혜의 바람을 타고 바닥 없는 배에 올라
入此大海大敎網張 큰 바다에 들어가 큰 가르침의 그물 펼치네
摝人天魚置于覺塲 사람·하늘의 물고기를 깨우쳐 깨달음 터에 있게 하고
畎道西流東入漢梁 서쪽에서 흐르던 도의 물길이 동으로 한漢·양梁에 들어갔네
濫觴天下波及海邦 천하에 흘러넘쳐 물결이 동쪽 나라에 이르니
抱甕者歎失津者倀 동이를 안은 자는 탄식하고 길 잃은 자 넘어졌네
流支東陟日照西光 물줄기는 갈라져 동쪽으로 넘고 해는 서쪽에서 빛나고
心田樹德海岸垂芳 마음 밭에는 덕이 자라고 해안에는 향기가 드리웠네
梵偈遐傳法㷎遼煌 범게梵偈71)는 먼 데 전해지고 법의 은혜 멀리 빛나는데
群賢隱顯衆聖低昂 숨었다 드러나는 현자들 오가는 성인들
鯨鼇游泳鵬鶚翺翔 헤엄치는 고래·자라, 하늘 나는 붕새·물수리
粤有大士降跡日鄕 아, 대사가 동방에 강림하여
乘盃渡魏獨駕高浪 배 타고 위魏에 가는 길 홀로 높은 물결에 몸 맡기고
拜父謁帝遂蹈大方 부친에게 절하고 황제를 뵙고는 대가들을 찾았지
首詣玄暢便佩宗綱 먼저 현창玄暢 대사를 찾아 곧 종지를 전해 받고
奄還東土歛跡以藏 갑자기 동국으로 돌아와 자취를 감추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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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9_a_01L金波匝匝。智月汪汪。
012_0219_a_02L遍滿空界。容含十方。
012_0219_a_03L滔滔湛湛。不見其傍。
012_0219_a_04L森羅普現。萬像齊彰。
012_0219_a_05L群靈所宅。衆寶所藏。
012_0219_a_06L六道四生。孰窺其央。
012_0219_a_07L昔有導師。其號覺皇。
012_0219_a_08L把慈悲篙。建方便▼(扌+(墻-土))。
012_0219_a_09L乘智惠風。駕無底航。
012_0219_a_10L入此大海。大敎網張。
012_0219_a_11L摝人天魚。置于覺塲。
012_0219_a_12L畎道西流。東入漢梁。
012_0219_a_13L濫觴天下。波及海邦。
012_0219_a_14L抱甕者歎。失津者倀。
012_0219_a_15L流支東陟。日照西光。
012_0219_a_16L心田樹德。海岸垂芳。
012_0219_a_17L梵偈遐傳。法㷎遼煌。
012_0219_a_18L群賢隱顯。衆聖低昂。
012_0219_a_19L鯨鼇游泳。鵬鶚翺翔。
012_0219_a_20L粤有大士。降跡日鄕。
012_0219_a_21L乘盃渡魏。獨駕高浪。
012_0219_a_22L拜父謁帝。遂蹈大方。
012_0219_a_23L首詣玄暢。便佩宗綱。
012_0219_a_24L奄還東土。歛跡以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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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9_b_01L肇興佛敎爰憑聖王 처음 불교를 일으켜 왕에 의지했으니
屈千乘尊師資道昌 천승千乘 지존을 굴복시키고 대사는 도의 창성을 도왔지
公卿趐佇士庶趨蹌 공경은 나아가 기다리고 사서士庶는 급히 달려오니
廣施法藥宜救膏肓 널리 법약法藥을 내려 의연히 병자를 구했네
慈雲廕庇法雨霈霶 자비의 구름으로 가득 덮고 법우法雨를 억수로 내려
淸凉火宅滴沃焦腸 화택火宅72)의 불을 끄고 마음의 근심을 식혔지
飡法喜食飮甘露漿 법희法喜73)의 밥을 먹고 감로의 장을 마시며
入無畏定晏坐石床 무외無畏74)의 선정에 들고 돌 책상에 앉았네
沈痾忽瘳其有精禳 깊은 병 홀연히 낫게 하는 것은 정성 들인 제사인데
王終剃髮道邁禹湯 끝내 삭발하는 왕의 도는 우탕禹湯75)에 앞서네
締構伽藍乃殿乃堂 절을 지으니 전각과 당우가 늘어서고
雄排川陸羅列城隍 웅장하게 시내와 언덕을 배치하고 성황당을 나열했네
煥然如翼蔚以相望 건물은 날개처럼 빛나며 아름답게 마주보는데
禪流滿室法寶盈箱 선승들은 방 안에 가득하고 법보는 상자에 넘치네
寔效蘇塗珠貝間莊 참으로 소도蘇塗76)를 이어받아 진주들 사이에 장중하고
像鐫琰琓經餙縑緗 불상은 옥으로 새기고 경전은 겸상縑緗77)으로 꾸몄네
福安社稷道構廟廊 복으로 사직을 편안케 하고 도로써 묘당을 지었으니
偉哉功德不可思商 위대하다 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도다
時移代久道存人亡 세월이 오래 되니 도는 남고 사람은 없어졌는데
美矣諸德緬欽千霜 아름답도다, 여러 스님들이여 천년 세월 오래도록 공경하네
恭序睿跡昧而未詳 밝은 자취 쓰려 해도 혼매하여 상세치 못하니
畧紀大槩永貽無彊 간략히 대략만을 기록하여 영원토록 전해질지어다
龜珉卓立地久天長 귀부 위에 우뚝 선 비석 천지와 함께 장구하기를 바라노라 -
012_0219_b_01L肇興佛敎。爰憑聖王。
012_0219_b_02L屈千乘尊。師資道昌。
012_0219_b_03L公卿趐佇。士庶趨蹌。
012_0219_b_04L廣施法藥。宜救膏肓。
012_0219_b_05L慈雲廕庇。法雨霈霶。
012_0219_b_06L淸凉火宅。滴沃焦腸。
012_0219_b_07L飡法喜食。飮甘露漿。
012_0219_b_08L入無畏定。晏坐石床。
012_0219_b_09L沈痾忽瘳。其有精禳。
012_0219_b_10L王終剃髮。道邁禹湯。
012_0219_b_11L締構伽藍。乃殿乃堂。
012_0219_b_12L雄排川陸。羅列城隍。
012_0219_b_13L煥然如翼。蔚以相望。
012_0219_b_14L禪流滿室。法寶盈箱。
012_0219_b_15L寔效蘇塗。珠貝間莊。
012_0219_b_16L像鐫琰琓。經餙縑緗。
012_0219_b_17L福安社稷。道構廟廊。
012_0219_b_18L偉哉功德。不可思商。
012_0219_b_19L時移代久。道存人亡。
012_0219_b_20L美矣諸德。緬欽千霜。
012_0219_b_21L恭序睿跡。昧而未詳。
012_0219_b_22L畧紀大槩。永貽無彊。
012_0219_b_23L龜珉卓立。地久天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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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19_c_01L
- 1)총사蔥沙 : 파미르(Pamir) 고원 지역을 일컫는다. 총령葱嶺이라고도 한다.
- 2)양화楊花 : 조선 시대 삼진三鎭의 하나이다. 서울에서 양천陽川을 지나 강화로 가는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지였다.
- 3)사오로四五路 : 염라대왕이 망자의 집에 파견하는 저승사자인 사직사자四直使者와 오제五帝를 그린 탱화.
- 4)동해東海 : 일종의 다라니판으로, 한 장으로 만들어진 큰 경판을 말한다.
- 5)주소周召 : 주周는 주실周室의 기초를 다지고 예악과 제도를 마런한 주공周公을 말하며, 소召는 주공과 함께 주실을 세운 소공召公을 가리킨다.
- 6)초월楚越 : 초월지간楚越之間. 전국시대 초楚나라와 월越나라 사이처럼 서로 원수같이 지낸다는 뜻. 여기서는 불교를 억압한 역사적 사실을 말한다.
- 7)삼백三白 : 동지 이후 세 번째 돌아오는 술일戌日을 납일臘日이라고 하며, 이날 전에 세 번 눈이 내리는 것을 삼백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전해 납일 때부터 다음 해 납일 때까지 머물렀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 8)육시六時 : 불가佛家에서 1주야를 여섯으로 나눈 시각을 말하는데, 신조晨朝·일중日中·일몰日沒·초야初夜·중야中夜·후야後夜가 그것이다. 이때는 종을 울려서 각 시각을 알렸다.
- 9)마등摩騰 : 가섭마등迦葉摩騰을 말하며 축섭마등竺葉摩騰·섭마등攝摩騰이라고도 한다. 서인도에서 『金光明經』을 강설하여 이름을 떨쳤는데, 중국 후한의 명제明帝가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승려 법란法蘭과 함께 채음蔡愔 등을 인도에 보냈을 때, 중앙아시아 대월지국大月氏國에서 가섭마등을 만났다. 그는 67년 불상과 경전을 백마에 싣고 낙양洛陽에 이르러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중국에 불법을 최초로 전파한 인도승으로 전해지고 있다.
- 10)법란法蘭 : 축법란竺法蘭을 말한다. 중인도 스님으로 67년(후한 영평 10) 가섭마등과 함께 중국의 낙양에 와서 『四十二章經』을 번역하였는데, 이는 중국 역경의 첫 사업이었다. 가섭마등이 죽은 뒤에는 특히 역경에 주력하였으며 『所佛本行經』 등 5부 13권을 번역하였다.
- 11)채음蔡愔 : 중국 후한의 명제明帝가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승려 법란法蘭과 함께 인도에 보낸 인물이다.
- 12)백장 대지百丈大智(749~814) : 법명은 회해懷海. 마조 도일馬祖道一(709~788)의 수제자로 선종禪宗 교단을 독립시키고, 자신의 문하에 훗날 위앙종潙仰宗의 시조가 된 위산 영우潙山靈祐와 황벽 희운黃檗希運을 배출시켰다. 마조 도일 → 백장 회해 → 황벽 희운(780?~850) → 임제 의현臨濟義玄(?~866)으로 이어지는 선맥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 13)지지地誌 : 『新增東國輿地勝覽』 권27 「慶尙道」 ≺玄風縣≻.
- 14)사겁四劫 : 이 세계가 성립하여 파멸에 이르기까지의 네 기간. 지극히 긴 시간을 의미한다.
- 15)손공孫公 : 진晉나라의 손작孫綽을 말한다. 천태산天台山의 절승絶勝을 보고 지은 시가 있다.
- 16)백부白傅 : 만년에 태자소부太子少傅를 지냈던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별칭이다. 그는 말년에 향산에 별장을 짓고 시회를 베풀며 지냈는데, 용문은 향산 근처에 있는 산을 말한다. 『新唐書』 권119 「白居易傳」.
- 17)금성金聲 : 진晉나라 때 문인 손작孫綽이 ≺天台山賦≻를 지어 놓고 자기 친구인 범영기范榮期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시험 삼아 이 부를 땅에 던져 보게나. 의당 금석 소리가 날 것일세.(卿試擲地。 當作金石聲。)”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시문 등이 뛰어남을 비유한다. 여기서 금성은 손작의 시문을 가리킨다.
- 18)월운月韻 : 백거이白居易가 ≺中秋≻, ≺十五夜≻ 등 달을 노래한 시를 많이 지은 것을 비유하고 있다. 여기서는 백거이의 시 작품을 일컫는다.
- 19)개사開士 : 원래는 보살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스님의 뜻으로 쓰였다.
- 20)봉성鳳城 : 구례의 옛 지명.
- 21)국일國一 선사 : 벽암 각성碧巖覺性을 말한다.
- 22)강주康州 : 진주의 옛 이름.
- 23)오탁五濁 : 세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을 말한다. 오재五滓 또는 오혼五渾이라고도 하며, 겁탁劫濁·견탁見濁·번뇌탁煩惱濁·중생탁衆生濁·명탁命濁이 이에 속한다.
- 24)정토업淨土業 : 극락 세계에 태어날 수 있는 청정한 행업.
- 25)해좌사향亥坐巳向 : 해방亥方을 등지고 사방巳方을 바라보고 앉은 자리를 말하는데, 11시 방향을 등지고 앉아 5시 방향을 바라보는 자리라는 뜻이다.
- 26)잔강潺江 : 섬진강의 옛 이름.
- 27)반조返照 : 도가道家의 수련법修鍊法의 하나인 회광반조回光返照를 줄인 말이다
- 28)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한 깨달음. 조금도 결함이 없는 우주의 신령스러운 깨침을 이르는 말이다.
- 29)동철銅鐵 : 동산銅山에서 생산되는 동銅과 철鐵을 말한다. 한漢 문제文帝가 일찍이 촉蜀의 엄도동산嚴道銅山을 영신佞臣인 등통鄧通에게 주어서 돈을 주조하게 한 데서, 동산은 재물이나 재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 30)황하黃河 : 중국 서부에서 동북부로 흐르는 강.
- 31)흑수黑水 : 중국 동북 지역의 흑룡강黑龍江을 말한다.
- 32)지석砥石 : 전설상의 산 이름으로 이곳 요수遼水에서 지석이 생산된다고 한다.
- 33)반목蟠木 : 동해 속에 있다고 전하는 전설 속의 산. 부상扶桑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 34)미려尾閭 : 『莊子』 「秋水」에 나오는 말로, 해저의 큰 구멍을 일컫는다. 바닷물이 이 구멍을 통해 쉴 새 없이 빠져 나간다고 한다.
- 35)육서六瑞 : 법화육서法華六瑞의 준말로, 부처님이 『法華經』의 설법을 시작하기 전에 일어났던 상서로운 일을 말한다. 즉 설법서說法瑞·입정서入定瑞·우화서雨華瑞·지동서地動瑞·중희서衆喜瑞·방광서放光瑞의 여섯 가지가 그것이다. 설법서는 부처님께서 『無量義經』을 설해 마쳤어도 대중이 일어나지 아니함이요, 입정서는 부처님이 무량의 삼매에 드심이며, 우화서는 하늘에서 흰 연꽃, 붉은 연꽃의 꽃비가 내린 일이요, 지동서는 대지가 여섯 가지로 진동한 일이며, 중희서는 대중이 여러 가지 상서를 보고 큰 설법이 있을 것을 짐작하고 기뻐함이요, 방광서는 부처님의 미간 백호眉間白毫에서 광명을 놓아 동방 1만 8천 불국토佛國土를 비춘 것을 일컫는 것이다.
- 36)서원西原 : 통일신라 시대 오소경五小京의 하나. 685년(신문왕 5) 지금의 청주 지방에 서원 소경이라는 이름으로 설치한 행정 구역으로, 경덕왕 때 이름을 고쳤다.
- 37)원거鶢鶋 : 처지에 맞지 않게 과분하게 대접받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원거鶢鶋 새가 바람을 피해서 노魯나라 교외에 날아와 앉자, 임금이 그 새에게 순舜임금의 소악韶樂을 연주하고 고기 요리로 대접했으나 오히려 근심과 슬픔으로 3일 만에 죽고 말았다고 한다. 『莊子』 「至樂」.
- 38)탁약橐籥 : 탁槖은 풀무의 바깥쪽이고, 약籥은 안쪽의 관管으로 움직이면서 바람을 일으킨다. 『道德經』 5장에 “천지의 사이는 풀무와 같아서 비어 있으나 다하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욱 쏟아져 나온다.(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천지와 같은 말로 쓰였다.
- 39)금모지후金毛之吼 :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말이다. 불가에서는 부처의 설법하는 소리를 사자獅子가 토하는 울음소리에 비유한다.
- 40)삼 척의 부리(三尺喙) : 육여경陸餘慶이 모든 일에 있어 말로는 잘하나 판결력이 부족하므로 사람들이 “말할 적에는 부리가 석 자나 길어지고 판결할 적에는 손이 닷 근이나 무겁다.(說事則喙長三尺。 判事則手重五斤。)”라고 조소하였다. 『唐書』 「陸餘慶傳」. 여기서는 말만 잘할 뿐 뛰어난 문장을 지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 41)오색호五色毫 : 오색필五色筆과 같은 말로, 문재文才를 말한다.
- 42)창록蒼鹿 : 『列仙傳』에 의하면, 함곡관령函谷關令 윤희尹喜가 함곡관 위에 자줏빛 서기가 서려 있는 것을 관측했는데, 이윽고 노자老子가 푸른 소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므로 그에게 부탁하여 『道德經』 5천 언言을 받았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푸른 소가 아니라 푸른 사슴을 탄 사람으로 설정하여 『道德經』을 얻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 43)유한劉漢 : 유방劉邦이 세운 한漢나라를 말한다.
- 44)금신金身 : 금으로 만든 불상으로, 금불이라 하기도 한다. 순금純金·금동金銅·도금鍍金으로 제작하므로 금신이라 칭한다.
- 45)신주神州 : 중국을 가리킨다. 전국시대 학자 추연鄒衍이 중국을 신주라고 한 이후 중국의 별칭으로 쓰이게 되었다.
- 46)유절有截 : 『詩經』 “상토께서 열렬하시자 해외의 사방 제후들이 일제히 귀의하였다.(相土烈烈。 海外有截。)”에 보이는 말로, 구주九州·천하天下·해외海外 등을 지칭한다.
- 47)대방가大方家 : 식견識見이 넓고 사리事理에 밝은 사람. 대가大家를 가리킨다. 하백河伯이 자신이 관장하는 하수河水의 물이 불어나 자신만만했으나 북해北海의 물이 끝없이 펼쳐진 것을 보고는 “대방지가大方之家의 비웃음을 사겠다.”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 48)정법안장正法眼藏 : 선문禪門에서 바른 세계를 보는 방법. 즉 깨달음의 진실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는데, 석존이 깨달은 무상의 정법正法을 가리킨다. 청정법안淸淨法眼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불이 삼처전심三處傳心으로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정법안장을 전하였다. 정법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이에게 함장되어 있는 진리의 내용이라는 뜻도 지닌다.
- 49)대구씨大龜氏 : 가섭迦葉을 가리키는데, 마하가섭摩訶迦葉·대음광大飮光으로도 번역한다.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한 분으로 본래는 바라문으로 석존이 성도한 지 3년쯤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는 제자 가운데서도 의식주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두타행頭陀行이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을 받은 상수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이 입멸한 뒤 500 아라한을 데리고 제1 결집第一結集을 하면서 그 우두머리가 되었다. 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을 말할 때에는 그가 초조初祖가 된다.
- 50)총령葱嶺 : 중국 신강성의 산맥으로 파미르 고원을 말한다.
- 51)신광씨神光氏 : 선종의 제2대 조사인 혜가慧可를 가리킨다. 달마達摩 대사가 중국에 최초로 선종을 창시한 이래 그 가르침은 혜가에게 전해진다. 신광은 혜가 대사의 법명으로, 그는 낙양 사람인데 어려서 노장학에 능통하였고 현리 찾기에 정진하다가 달마를 찾아 가르침을 청한 뒤 훗날 제2조사로서 인가를 얻는다.
- 52)오종五宗 : 선종禪宗이 분파된 것을 말한다. 초조初祖 달마達摩로부터 5조 홍인弘仁에 이르러 홍인의 밑에서 북종北宗 신수神秀와 남종南宗 혜능慧能의 두 파로 나뉘어졌다. 북종은 북지北地에 행하여 후세에 분파가 없고, 남종은 남지에서 행하여 오가五家·칠가七家의 구별이 있는데, 오가는 위앙종潙仰宗·임제종臨濟宗·조동종曹洞宗·운문종雲門宗·법안종法眼宗이요, 칠가는 이에 황룡黃龍과 양기楊岐를 더한 것이다.
- 53)법윤法胤 : 불가에서 법통을 계승하는 사람을 말한다.
- 54)백조白兆 : 지원志圓 선사를 가리킨다. 백조는 안주安州에 있는 산 이름이다.
- 55)조양鳥養 : 『莊子』에 바닷새(海鳥) 앞에서 종과 북으로 음악을 아뢰니 새가 걱정하였다는 말이 있다. 새를 새로 대접해야지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은 새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 37 참조.
- 56)호중壺中 : 인간 세상과 구별되는 아름다운 세계를 말한다. 후한後漢의 술사術士 비장방費長房이 선인인 호공壺公의 총애를 얻어 그의 호리병 속으로 들어갔다가 그 안에 별천지別天地가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다는 설화에서 나온 말이다. 『後漢書』 권82하 「方術列傳」 ≺費長房≻.
- 57)적오赤烏 : 길조吉鳥를 가리킨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주紂를 치기 위해 맹진孟津을 건너간 뒤에 불기운이 왕의 막사에 흘러들어 와 붉은 까마귀로 변했는데, 다리가 셋으로 변했으며 또 붉은 까마귀가 단서丹書를 물고 토지신을 제사 지내는 주나라의 사社에 모인 일이 있었다고 한다. 『尙書大傳』 「周書」 ≺泰誓 上≻, 『呂氏春秋』 「有始覽」 ≺應同≻, 『史記』 권4 「周本紀」.
- 58)개사開士 : 주 19 참조.
- 59)안치鴈齒 : 기러기의 행렬이나 이(齒)의 모양과 같이 나란히 이어진 것을 말한다.
- 60)분성盆城 : 현재의 김해를 가리킨다.
- 61)용상龍象 : 고승高僧을 뜻하는 불가의 용어이다.
- 62)전금前襟 : 전금후거前襟後裾에서 나왔다. 형제들이 부모님 슬하에서 함께 자랄 때, 하나가 부모의 앞가슴에 매달려 옷깃을 끌어당기고 다른 하나가 뒤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긴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 63)대방大方 : 주 47 참조.
- 64)오엽五葉 : 다섯 갈래 선종禪宗의 교파를 가리킨다.
- 65)일하日下 : 여기서 해는 임금을 가리킨다. 따라서 일하는 임금이 있는 신라를 말한다.
- 66)부당왕찰浮幢王刹 : 『楞嚴經要解』에 따르면 세계 바깥의 향수해香水海를 통칭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찰토刹土의 뜻으로 쓰였다.
- 67)망양지탄望洋之歎 : 작은 일에 만족해하다가 자기보다 한층 뛰어난 상대를 만나,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함을 탄식한다는 말이다.
- 68)구류九流 : 선진先秦 시대의 아홉 개 학술 유파를 가리킨다. 유가儒家·도가道家·음양가陰陽家·법가法家·명가名家·묵가墨家·종횡가縱橫家·잡가雜家·농가農家가 이에 해당된다.
- 69)정시正始 :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 제왕방齊王芳의 연호.
- 70)정관貞觀 : 당唐나라 태종의 연호.
- 71)범게梵偈 : 불가에서 지어지는 시와 송 따위를 가리킨다.
- 72)화택火宅 : 걱정·근심으로 덮여 있는 이 세상을 비유하는 말이다.
- 73)법희法喜 : 법을 듣고 환희歡喜한 마음을 가리킨다.
- 74)무외無畏 : 무외시無畏施를 가리킨다. 사람들에게 무서움이 없음을 전하는 것으로 부처가 무외의 덕으로 대중들에게 설법을 베푼 데서 나온 말이다.
- 75)우탕禹湯 : 상고 시대의 성군으로 알려진 우禹임금과 탕湯임금을 가리킨다.
- 76)소도蘇塗 : 삼한三韓 시대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특정 장소를 일컫는다.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워 영고鈴鼓를 달았다. 죄인이 달아나 그곳으로 들어가면 잡아가지 못하는 등 불가침의 성스러운 장소였다. 『三國志』 권30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 77)겸상縑緗 : 담황색 비단으로, 책을 포장하는 데 쓰이는데, 전하여 책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 1)「觀時而來」五字。欄外板刻曰「來觀時而」編者改爲「觀時而來」移置於此。
- 1)「楊」通「揚」{編}次同。
- 2)「郵」疑「陲」{編}。
- 1)「態」疑「熊」{編}。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승호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