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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28_c_13L동계집 후발東溪集後跋오호, 이것은 나의 스승인 동계공東溪公의 문집이다. 스승이 중생을 버리신 지 이제 17년이 지났다. 스승의 정신은 태허太虛와 함께 노닐었으며, 스승의 도는 후생들에게 크게 남아 있어 진실로 시문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구차스러운 정성이나마 성음과 용모, 손때가 티끌 속에 묻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 대략 유고遺稿를 망라하였는데, 스승은 생전에 저술을 모아 뒷일을 꾀하지 않았으며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것도 매우 적다. 이제 얼마간의 시문을 모으고 판목을 모아 새기는 일을 운사韻士에게 부탁하고 힘을 모아 문도를 도왔으니, 늦은 봄에 시작하여 한여름에 완성하여 판각을 방장산 중에 보관하여 스승의 인연이 깊은 곳으로 삼는다. 이 글을 읽어 보는 사람들은 뒷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아, 스승이 일생 동안 지은 것은 손꼽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인데, 세상에 전하는 것은 백에 하나일 뿐이어서 사람들은 이를 한스럽게 여긴다. -
012_0228_c_13L東溪集後跋
012_0228_c_14L嗚呼。此吾先師東溪公集也。先師之棄
012_0228_c_15L衆生。今已十七年。師之神。與太虛爲
012_0228_c_16L遊。師之道。在後生甚大。固知不待詩
012_0228_c_17L文而傳。然區區之誠。不忍以聲容手澤
012_0228_c_18L埋沒於塵沙。畧有所網羅遺稿。而先師
012_0228_c_19L於平日。不爲收撰詔後之計。其在人口
012_0228_c_20L者。甚菫菫也。今而拾得如干。以卽駸梓
012_0228_c_21L而刪定之功。托之韻士。供役之具。資
012_0228_c_22L之門侶。始於暮春。成於仲夏。因以板刻
012_0228_c_23L藏之方丈山中。爲先師宿緣之地。覽於
012_0228_c_24L斯文者。亦將有感於後矣。噫。師之一
012_0228_c_25L生所著。殆不可屈指計。而所傳於世者。
012_0228_c_26L百未存一。人或以此憾之。然片玉零珠
012_0228_c_27L「徵」疑「微」{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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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29_a_01L그러나 한 조각의 옥과 남은 구슬로도 족히 현포창주玄圃滄洲1)를 감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신출내기로 하여금 현란한 문채로 눈을 부시게 하는가. 나는 잠깐 몇 가지 자료를 근거로 스승의 대략을 기록한다.신묘년 단옷날 문인 익상益祥이 손을 씻고 분향한 뒤 삼가 발跋을 쓰다. -
012_0229_a_01L足以賞玄圃滄洲。豈可令初地人獘眼
012_0229_a_02L於繁文耶。吾姑以數卷帒。志先師大略
012_0229_a_03L云。
012_0229_a_04L辛卯天中日。門人益祥。盥手焚香謹
012_0229_a_05L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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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29_a_07L
- 1)현포창주玄圃滄洲 : 곤륜산 정상에 있다는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여기서는 동계東溪의 시문이 많지 않으나, 그의 시문이 높은 경지에 올라서 있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 1)「徵」疑「微」{編}。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김승호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