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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272_c_02L발문(跋)『초의시집』에 연천淵泉 홍선생이 서문을 쓰고 나의 족대부族大父인 자하紫霞 선생이 또 나란히 서문을 썼다. 시집 안에 수록된 서로 주고받은 시들을 보면 대부분 이름난 사대부가 많다. 나도 역시 초의와 더불어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초의는 불가佛家에 숨어 살면서 선의 이치(禪理)에 깊이 통달하였으니, 근세의 총림에서 견줄 만한 이가 드물었다. 그러니 초의와 함께 어울리며 기쁜 마음으로 따른 이들이 그를 돌아보는 마음이 어떠하였겠는가?연천 선생께서 “문장을 깎아내고 다듬어낸 솜씨는 당송唐宋 시인들과 우열을 겨룰 만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초의의 시詩를 인정한 것이고, “시에 담긴 뜻이 맑고 심원하여 쓸데없는 치장은 모두 제거하였다.”고 한 것은 그 뜻志을 인정한 것이다. 또 때로는 “인을 숭상하고 의를 품었으니(戴仁抱義) 마음은 잔잔한 물과 같다(靈臺止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런 말은 우리 주자朱子의 책에서 터득된 말일 것이다”고 한 것은 그의 학문이 유도儒道와 가까움을 인정한 것이다. 연천 선생은 우리 유도의 사표師表가 되시는 분으로서, 그 말씀의 진중함으로써 더욱 초의를 깊이 사랑하셨다.내가 해도海島에 유배되어 갔을 때에 초의가 험한 바다를 건너 찾아와 주었다. 그때 초의는 내가 서산 진덕수眞德秀 선생이 편집한 『심경心經』을 읽는 것을 보고는, 함께 읽다가 돌아갈 때는 가지고 가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 책을 돌려주면서 거기에다 그가 지은 시집 3책을 함께 주면서 시집 끝에 발문을 써주기를 청하였다.생각해보면 초의의 시詩와 지志와 학學에 대하여 이미 연천 선생께서 자세하게 논한 말씀이 있으며 자하 선생도 극진히 칭찬하였으니, 내가 다시 무슨 군더더기를 붙이겠는가? 이 경에 마음을 두고 깊이 연구하여 한해가 지난 오늘에 다시 돌려주니, 근래에 터득된 것이 지난날보다 분명 더 클 것이다. 아쉽도다, 연천 선생께서 지금의 이 글을 본다면 또 무어라 칭찬하실지 모르겠다.그렇기에 『초의시집』의 책머리에 연천 선생의 글로 서문을 붙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또 그와 함께 어울려 노닐었던 나도 참 다행한 일이다. 내 생각에 초의와 같은 사람은 『주역』에서 말한 “함께 가면서 길을 달리 한다(同歸而殊塗)”는 말을 깊이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다.신해년 늦가을 평주平州 신관호申觀浩가 발문을 쓰다. -
012_0272_c_02L[跋]
012_0272_c_03L艸衣詩之卷。淵泉洪先生。弁以序。我
012_0272_c_04L族大父紫霞先生。又聯序之。其卷中所
012_0272_c_05L與唱酬者。蓋多名士大夫。余之得與艸
012_0272_c_06L衣游者。亦幸矣。艸衣隱於浮屠。而深
012_0272_c_07L於禪理。近世叢林。罕與比者。其從遊
012_0272_c_08L之所隨喜者。顧其志如何耳。淵泉先生
012_0272_c_09L之言曰。灑削陶煉。出入唐宋。是許其
012_0272_c_10L詩也。寄意淸遠。絕去粉澤。是許其志
012_0272_c_11L也。又曰時有戴仁抱義。靈臺止水語。若
012_0272_c_12L有得於吾朱夫子書者。是許其學之近
012_0272_c_13L吾道也。先生吾道之師表。以其言之重
012_0272_c_14L而尤重愛於艸衣也。余方謫居海中。艸
012_0272_c_15L衣抗葦涉險而來見。余讀眞西山先生
012_0272_c_16L所輯心經。仍與之玩繹。及歸。請攜去
012_0272_c_17L其翼年始還之。且以其所著詩三册。俾
012_0272_c_18L余跋其後。余惟其詩也。志也。學也。吾
012_0272_c_19L淵泉先生論之詳矣。紫霞先生。亦極稱
012_0272_c_20L之。夫何更贅。若其潛心玩經。經年始
012_0272_c_21L還。則近日所得。亦必有大於往日。嗟乎
012_0272_c_22L淵泉先生。及今見之。又未知何以奬之
012_0272_c_23L也。然則艸衣詩之卷弁之。以先生之文
012_0272_c_24L甚幸矣。又得與所從游者。亦幸矣。余
012_0272_c_25L以爲如艸衣者。深有悟於易所謂同歸
012_0272_c_26L而殊塗者歟。
012_0272_c_27L辛亥季秋。平州申觀浩。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