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일지암문집(一枝庵文集) / [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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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跋)
『초의시집』에 연천淵泉 홍선생이 서문을 쓰고 나의 족대부族大父인 자하紫霞 선생이 또 나란히 서문을 썼다. 시집 안에 수록된 서로 주고받은 시들을 보면 대부분 이름난 사대부가 많다. 나도 역시 초의와 더불어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초의는 불가佛家에 숨어 살면서 선의 이치(禪理)에 깊이 통달하였으니, 근세의 총림에서 견줄 만한 이가 드물었다. 그러니 초의와 함께 어울리며 기쁜 마음으로 따른 이들이 그를 돌아보는 마음이 어떠하였겠는가?
연천 선생께서 “문장을 깎아내고 다듬어낸 솜씨는 당송唐宋 시인들과 우열을 겨룰 만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초의의 시詩를 인정한 것이고, “시에 담긴 뜻이 맑고 심원하여 쓸데없는 치장은 모두 제거하였다.”고 한 것은 그 뜻志을 인정한 것이다. 또 때로는 “인을 숭상하고 의를 품었으니(戴仁抱義) 마음은 잔잔한 물과 같다(靈臺止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런 말은 우리 주자朱子의 책에서 터득된 말일 것이다”고 한 것은 그의 학문이 유도儒道와 가까움을 인정한 것이다. 연천 선생은 우리 유도의 사표師表가 되시는 분으로서, 그 말씀의 진중함으로써 더욱 초의를 깊이 사랑하셨다.
내가 해도海島에 유배되어 갔을 때에 초의가 험한 바다를 건너 찾아와 주었다. 그때 초의는 내가 서산 진덕수眞德秀 선생이 편집한 『심경心經』을 읽는 것을 보고는, 함께 읽다가 돌아갈 때는 가지고 가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 책을 돌려주면서 거기에다 그가 지은 시집 3책을 함께 주면서 시집 끝에 발문을 써주기를 청하였다.
생각해보면 초의의 시詩와 지志와 학學에 대하여 이미 연천 선생께서 자세하게 논한 말씀이 있으며 자하 선생도 극진히 칭찬하였으니, 내가 다시 무슨 군더더기를 붙이겠는가? 이 경에 마음을 두고 깊이 연구하여 한해가 지난 오늘에 다시 돌려주니, 근래에 터득된 것이 지난날보다 분명 더 클 것이다. 아쉽도다, 연천 선생께서 지금의 이 글을 본다면 또 무어라 칭찬하실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초의시집』의 책머리에 연천 선생의 글로 서문을 붙인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또 그와 함께 어울려 노닐었던 나도 참 다행한 일이다. 내 생각에 초의와 같은 사람은 『주역』에서 말한 “함께 가면서 길을 달리 한다(同歸而殊塗)”는 말을 깊이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다.
신해년 늦가을 평주平州 신관호申觀浩가 발문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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艸衣詩之卷淵泉洪先生弁以序
012_0272_c_04L族大父紫霞先生又聯序之其卷中所
012_0272_c_05L與唱酬者蓋多名士大夫余之得與艸
012_0272_c_06L衣游者亦幸矣艸衣隱於浮屠而深
012_0272_c_07L於禪理近世叢林罕與比者其從遊
012_0272_c_08L之所隨喜者顧其志如何耳淵泉先生
012_0272_c_09L之言曰灑削陶煉出入唐宋是許其
012_0272_c_10L詩也寄意淸遠絕去粉澤是許其志
012_0272_c_11L又曰時有戴仁抱義靈臺止水語
012_0272_c_12L有得於吾朱夫子書者是許其學之近
012_0272_c_13L吾道也先生吾道之師表以其言之重
012_0272_c_14L而尤重愛於艸衣也余方謫居海中
012_0272_c_15L衣抗葦涉險而來見余讀眞西山先生
012_0272_c_16L所輯心經仍與之玩繹及歸請攜去
012_0272_c_17L其翼年始還之且以其所著詩三册
012_0272_c_18L余跋其後余惟其詩也志也學也
012_0272_c_19L淵泉先生論之詳矣紫霞先生亦極稱
012_0272_c_20L夫何更贅若其潛心玩經經年始
012_0272_c_21L則近日所得亦必有大於往日嗟乎
012_0272_c_22L淵泉先生及今見之又未知何以奬之
012_0272_c_23L然則艸衣詩之卷弁之以先生之文
012_0272_c_24L甚幸矣又得與所從游者亦幸矣
012_0272_c_25L以爲如艸衣者深有悟於易所謂同歸
012_0272_c_26L而殊塗者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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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亥季秋平州申觀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