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초엄유고(草广遺稿) / 草广遺稿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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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엄유고 제1권(草广遺稿 卷之一)
총목차總目次
초엄유고 제1권 草广遺稿 卷之一
문文-15편
삼화전三花傳
금원산 삼화선사 신건 상량문金猿山三花禪寺新建上樑文
청운 장로상 찬聽雲長老像讃【有序】
지리산 문수암기智異山文殊庵記
청운 장로에게 올리는 글(上聽雲長老書)
해수관음도찬海水觀音圖賛
토옥 개기문土屋開基文
기우문祈雨文【代作】
영각사 화엄각 개와 모연문靈覺寺華嚴閣改瓦募緣文
불량계 서문(佛糧契序)
가사 모연문袈裟募緣文
보은계 서문(報恩契序)
옥천사 대웅전 상량문玉泉寺大雄殿上樑文
운흥사 극락전 상량문雲興寺極樂殿上樑文
고환 거사 「의책」 발문(古歡居士擬策跋)
초엄유고 제2권 草广遺稿 卷之二
칠언율시七言律詩-26편
용화사를 지나다가 신 향농 선생과 함께 시를 짓다(過龍華寺共申香農有韵)
촉석루 아래 배를 띄우고(泛舟矗石樓下【二首】)
용추암 판상의 시에 차운하다(次龍湫庵板上韵【安義】)
심진동에서 쓰다(尋眞洞率題)
신 향농 선생께서 지난 가을에 이곳을 지나셨지(2수)(申香農前秋過此)
은신암을 다시 방문하여(再訪隱身庵)
기다리는 옷이 오지 않아서(待衣不至)
뜻을 품다(志懷)
≺박오헌이 찾아와서≻ 시에 차운하다(次朴梧軒見訪)
나그네에게 답하다(答遊子【二首】)
안의로 가는 길에 회포를 적어 신 향농 선생께 드리다(安義道中述懷書呈申香農)
백련사를 지나는데 감회가 있어(過白蓮社有感)
옥천의 동암에 제하다(題玉泉東庵)
저문 뒤에 골짜기를 나와서(晩出洞門)
진양의 연못을 지나며(過晋陽蓮塘)
산음의 환아정에 올라서(登山陰換鵞亭)
전씨의 계정에 제하다(題全氏溪亭【西上洞】)
서고사에 제하여(題西高寺)
제봉 장로와 함께 백언양의 산거에 머무르며(同霽峰長老宿白彥陽山居【二首】)
호은 상사를 방문하여 함께 짓다(訪湖隱上士共賦)
한식날에 여러 공들이 방문하여(寒食日諸公見過【二首】)
송호가 봄꿈에 찾아와서(松湖訪春夢)

012_0305_c_02L草广遺稿卷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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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305_c_04L1)總目次

012_0305_c_05L
卷一

012_0305_c_06L
十五篇

012_0305_c_07L
三花傳金猿山…上樑文聽雲長老
012_0305_c_08L像讃智異山文殊庵記上聽雲長老
012_0305_c_09L海水觀音圖賛土屋開基文祈雨
012_0305_c_10L靈覺寺…募緣文佛糧契序
012_0305_c_11L裟募緣文報恩契序玉泉寺大雄殿
012_0305_c_12L上樑文雲興寺極樂殿上樑文古歡
012_0305_c_13L居士擬策跋

012_0305_c_14L
卷二

012_0305_c_15L
七言律詩二十六篇

012_0305_c_16L
過龍華寺…有韵泛舟矗石樓下

012_0305_c_17L龍湫庵板上韵尋眞洞率題申香農
012_0305_c_18L前秋過此
再訪隱身庵待衣不至
012_0305_c_19L志懷次朴梧軒見訪答遊子

012_0305_c_20L義道中述懷書呈申香農過白蓮社有
012_0305_c_21L題玉泉東庵晩出洞門過晋陽
012_0305_c_22L蓮塘登山陰換鵞亭題全氏溪亭
012_0305_c_23L西高寺同齋峰…山居
訪湖隱上士
012_0305_c_24L共賦寒食日諸公見過
松湖訪春夢
012_0305_c_25L目次編者作成補入

012_0306_a_01L계포 도인과 함께(與桂圃道人)
수홍정에 제하다(題垂虹亭)
세병관 아래에서 벗을 보내며 시를 짓다(題詩洗兵舘下送友人)
독어 상인이 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하며 送獨𢈪上人歸山【二首】
오언율시五言律詩-4편
수승대에서 쓰다(書搜勝臺)
손님에게 보여 주다(示客)
비가 내릴 때 감회가 생겨서(雨中有感)
세이암에 제하다(題洗耳庵)
칠언절구七言絶句-8편
신 위당 상서를 모시고(陪申威堂尙書)
위당 상서의 편면과 시를 받고 감회를 써 보내다 威堂尙書贈便面及詩述感郤寄【二首】
길 가던 중에 감회를 적으며(道中述懷)
여산의 여름에 흥이 나서(廬山夏興)
청운 장로가 호남에서 보내온 시에 차운하다(次聽雲長老湖南見寄)
공민왕릉을 지나며(過恭愍王陵【已下三首見大東詩選】)
만월대滿月臺
대흥사의 완월루(大興寺玩月樓)
오언절구五言絶句-1편
무주암에 제하다(題無住庵)
문文
삼화전三花傳
‘삼화三花’라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동상인海東上人’이라 말했는데, 고향과 성씨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어릴 때 산사山寺에 가서 글을 읽었는데, 이를 좋아하여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재주와 생김새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었으나, 다만 그 성품이 고명하여 사람들과 함께 담론을 펼치되 다른 이에게 굽히지 않았다. 혹자는 그것을 병통으로 여겨서 강항령强項令1)과 비교하였다. 또한 책읽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글에 능한 사람을 보면 반드시 그의 좌우에서 따랐다. 또한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문득 발분發憤해서 그의 뒤를 따라가기를 원했다. 부처님의 미묘한 말을 읽는 데 이르면, 비록 그 뜻에 계합契合하지는 못하더라도 기뻐하면서 반드시 통달하고자 했다.
16세 때 출가하여 다음 해에 바닷가의 작은 산에서 남해대사南海大士(관음보살)의 상像에 공양하기를 7일 동안 계속하였는데, 어느 날 남해대사가 삼화三花의 꿈에 나타났다. 손에 큰 연꽃 서너 송이를 가지고 와서 꽃을 한 송이 한 송이 절을 하며 내놓았는데, 꽃마다 각각 세계의 삼라만상을 드러내었고,

012_0306_a_01L與桂圃道人題垂虹亭題詩洗兵舘
012_0306_a_02L下送友人送獨▼(广*吾)上人歸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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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言律詩四篇

012_0306_a_04L
書搜勝臺示客雨中有感題洗耳
012_0306_a_05L

012_0306_a_06L
七言絕句八篇

012_0306_a_07L
陪申威堂尙書威堂…感郤寄
道中
012_0306_a_08L述懷
廬山夏興次聽雲長老湖南
012_0306_a_09L見寄
過恭愍王陵滿月臺大興
012_0306_a_10L寺玩月樓

012_0306_a_11L
五言絕句一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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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無住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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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_0306_a_15L三花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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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花者自謂海東上人不知其爲州里
012_0306_a_17L姓氏兒時讀書山寺因喜而不返
012_0306_a_18L其爲才貌不過人但性高每與人談論
012_0306_a_19L不屈人或病之至以强項令比之
012_0306_a_20L不好讀然見有能文者必左右隨之
012_0306_a_21L又見有勝己者輒發憤要有以追之
012_0306_a_22L至讀佛祖微言雖不能契然喜而必欲
012_0306_a_23L達也十六脫白明年海隅小山供南
012_0306_a_24L海大士像凡七日矣其師夢見三花者
012_0306_a_25L手把大蓮華數朶來禮一花花各現世

012_0306_b_01L삼화는 그때마다 어느 곳인지 꼬박꼬박 고하였다. 이것은 길몽인가 아닌가. 이로부터 평소에 가졌던 생각이 갑자기 변해서 중국의 서책이 아니면 읽지 않았고, 읽으면 또한 골똘히 집중하여 보았다. 마치 세상에 뜻을 둔 듯이 했으며, 심지어 저술을 남겨서 옛사람의 높은 경지에 이르려고 하였다. 그리고 반드시 도道가 있는 사람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고 바로잡았다. 또한 도량이 넓고 막힘이 없는 사람(曠達人)과 함께 강호江湖를 왕래하며 노닐기를 좋아하였는데,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면 정신과 기운이 강개해지고, 또 그가 속에 지닌 것을 막힘없이 토해 내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혹 신발을 거꾸로 신고 그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지리산으로 달려가서 평소의 뜻을 글로 적어 산신山神에게 고하고 맹약을 맺고는 돌아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명산名山이 아니면 나를 머물게 할 곳이 없다.”라고 했다. 이때에 현학관玄鶴舘 선생이라는 분이 삼도의 도원수(三路帥)2)로 있었다. 백성들에게 위엄과 덕망을 베풀어 백성들이 그를 부처로 받들었으며, 선비 가운데 재능은 있지만 바다 한구석에 은둔한 자들도 역시 그를 존경하였다. 삼화는 황매산(黃梅)으로부터 와서 마침 연화봉蓮花峰 아래에서 현학관 선생의 후계자인 소금 공小琴公을 만났다. 그를 위하여 며칠간 함께 머물다가 떠나려고 하였는데, 소금 공이 만류하여 머물렀다. 그와 함께 현학관 선생의 막사에서 선생을 배알하고서, 여러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는데, 기가 위축되거나 뜻이 꺾이지 않았다. 이에 선생이 그를 대단히 아껴서 장막 안으로 출입하게 하고, 한 집안 사람처럼 먹고 마시게 하였다. 또한 깊이 감추었던 책을 아끼지 않고 읽도록 권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 사람이 장차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아 버릴 일을 할 것이다.”라고 했다. 삼화가 비록 아름다운 음악과 여색이 있는 곳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뜻 지키기를 산과 같이 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칭찬하였다.
현학관 선생이 삼화와 함께 시를 논할 때면 왕왕 선禪의 이치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송설松雪 조맹부趙孟頫3)의 시문을 논하게 되었는데, 삼화가 “책상에 향이 가득하다고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현학관 선생이 답하기를 “자성自性 속에 있는 천 불千佛의 광명을 중생이 스스로 가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네.”라고 하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삼화의 정신과 생각이 문득 초연해졌다.
현학관 선생의 수제자인 향농香農 선생은 타고난 자질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 심오한 도를 깨달았고 문장에도 재능이 있었다. 현학관 선생이 삼화를 아끼자, 산과 바다를 그와 함께 유람하였다. 좋은 시구가 있으면 듣고 인정해 주었는데,

012_0306_b_01L界森羅而三花指吿其爲某處是其吉
012_0306_b_02L歟不歟自後志忽然變去非中國書不
012_0306_b_03L讀且汲汲若有志於世而至有著
012_0306_b_04L欲極古人必就有道者正焉又喜
012_0306_b_05L與曠達人游往來於江湖之上而與之
012_0306_b_06L語神氣慷慨吐其所有不止故所至或
012_0306_b_07L有倒屣者焉方二十時走至智異山中
012_0306_b_08L以平日志爲文以吿知山神而結盟
012_0306_b_09L而言於人曰非名山無以留我住矣
012_0306_b_10L時玄鶴舘先生爲三路帥威德百姓
012_0306_b_11L百姓奉之爲佛士之有才而隱於海者
012_0306_b_12L亦得而効之三花自黃梅來適遇公之
012_0306_b_13L嗣小琴公於蓮花峰下爲之留數日且
012_0306_b_14L被小琴公引而與之俱謁公帳下
012_0306_b_15L隨其辨難志氣不縮公甚愛之使之
012_0306_b_16L出入帳中飮食若家人又不惜秘藏
012_0306_b_17L而勸讀焉語人曰此子行將烹佛烹祖
012_0306_b_18L花雖處聲色日久然守志如山人多之
012_0306_b_19L公與花論詩往往叅以禪理至論趙松
012_0306_b_20L雪詩花問如何是滿几香則曰千佛光
012_0306_b_21L明自性中衆生得之爲自有直下花之
012_0306_b_22L神思忽超然公之第一嗣香農先生
012_0306_b_23L天資出人玄悟有文章以花爲大人所
012_0306_b_24L與之遊海山之間有佳句則許之

012_0306_c_01L“누가 가희원에서 걸식하게 하였나, 선불당에 가서 시 짓는 것이 낫겠네.(誰敎乞食歌姬院。 好去題詩選佛堂。)”라는 시구가 그 한 예이다. 삼화는 선생이 예전에 지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곳을 아무리 찾아도 없더니, 어디에선가 갑자기 서너 번의 종소리 들려오네.(一念不生無處覓。 何來驀地數聲鐘。)”라는 시구를 듣고서 홀연히 미혹함을 깨우쳤다.
이윽고 다시 청간 선생靑芉先生을 뵈었다. 선생은 현학관 선생과 도道로써 교유하며 때때로 왕래하던 분이었는데, 평소 사람들에게 보인 언행이 고원하여 사람들이 뭐라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었다. 삼화는 그에게서 몇 마디 말이라도 듣고자 했는데, 담론이 심오한 이치에 미치자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이 마치 꿈속의 말과 같았다. 삼화가 듣고 있자니 무슨 말인지 헷갈리고 답답하여 즉시 이별하고 떠났다. 후에 청간 선생이 지나던 길에 삼화를 찾아와 설랑산방雪浪山房에서 함께 묵었는데, 한밤중(三皷)이 되자 선생이 갑자기 일어났다. 그러더니 삼화를 위해 『금강경』 ‘점심點心’ 한 칙4)을 설법하였는데, 이에 삼화가 돌연 깨달아 서로 계합하였고 정신도 또한 활짝 열리게 되었다.
다음 날 함께 길을 떠나려고 문을 나서서 가려고 할 때에 한 나이 많은 스님(老宿)이 말하길 “날이 추우니, 선생에게 옷가지를 챙겨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청간 선생이 한사코 사양해도 듣지 않았으므로 웃으면서 옷을 받았다. 곧바로 묘음妙音의 소리를 내어 ≺나한송羅漢頌≻5) 한 수만을 읊었고, 번거롭게 여러 말을 늘어 놓지 않았다. 그러나 삼화는 곁에 있다가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솟아났다.
뒤에 다시 행랑 아래를 지나쳐 가다가 손이 가는 대로 뻗어 벽에서 『화엄경』 한 권을 뽑아서 불현듯 한 게송을 보았는데, “온갖 색깔 나타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네.(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라고 적혀 있었다. 이로 인해 접하는 것마다 문득 “기이하도다.”라고 탄식하였다. 이로부터 불교의 이치를 깊이 믿어서 심오한 이치가 담긴 내용을 찾아서 읽다 보니, 앞서 보이지 않던 것이 저절로 보이게 되었으며, 도리어 세상사에 대해서 아무 흥미가 없게 되었다. 혹 세상의 법을 설하는 것을 보더라도 오래지 않아서 곧 지겨움을 느끼게 되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게 되었다.
바랑 하나만을 메고 훌쩍 여산廬山으로 들어가서 삼폭三瀑 옆에서 현학관 선생을 배알하고 그간에 자신이 깨달은 바를 아뢰었다. 그리고 잠시 송계선실松桂禪室에 기거하면서 『유마경維摩經』의 “얻는 바가 없는 경지에 이르며, 법인에서 일어나지 않는다.(逮無所得。 不起法忍。)”6)라는 구절에 이르러, 자기도 모르게 자기를 망각하였다. 그리고 때때로 길에서 현학관 선생을 따라가다가 이치를 깨달아 밝히기도 하였다.
그해 겨울에

012_0306_c_01L誰敎乞食歌姬院好去題詩選佛堂
012_0306_c_02L其一也花因聞先生舊作一句一念
012_0306_c_03L不生無處覓何來驀地數聲鐘忽又開
012_0306_c_04L旣而又見靑芉先生先生爲公道交
012_0306_c_05L時時往來而擧止施爲人無得而名焉
012_0306_c_06L花欲得聞緖餘談及玄理口吧吧
012_0306_c_07L夢中語聽之迷悶花卽別去先生後
012_0306_c_08L又過花於雪浪山房同宿三皷旣作
012_0306_c_09L生忽起爲說周金剛點心一則花斗覺
012_0306_c_10L相契神又豁然明日同行方出門去
012_0306_c_11L見有一老宿謂天寒以衣物施之先生
012_0306_c_12L先生讓不得而笑受之便作妙音聲
012_0306_c_13L爲誦羅漢頌一首而已不煩開論然花
012_0306_c_14L在傍亦不覺欣湧後又經行廊下
012_0306_c_15L手去壁抽華嚴經一卷閃看得一偈
012_0306_c_16L示現一切色各各不相知因有觸忽歎
012_0306_c_17L奇哉自是甚信佛理求其深於理
012_0306_c_18L者讀之前所不見者自然便見卻又
012_0306_c_19L無味於世或見有說世法者不久便
012_0306_c_20L覺支離而不欲聞也蕭然一鉢囊
012_0306_c_21L廬山去拜先生於三瀑之傍以所得者
012_0306_c_22L呈之且寄松桂禪室取閱維摩經
012_0306_c_23L逮無所得不起法忍不覺打失自己
012_0306_c_24L又時從先生於道路得以發明其年冬

012_0307_a_01L호계虎溪의 옛 절에 거처하면서 『원각경』을 읽었다. 어느 날 밤이 한창 깊었을 때 바람과 눈발이 창문으로 들어와 등잔불이 흔들려 콩알만큼 작아졌다. 삼화는 화로를 끼고 잠이 들었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정신을 가다듬고는, 높고 낮은 소리로 경을 읽었다. 「미륵장彌勒章」에 이르러서는 종남산終南山 초당사문草堂沙門 종밀宗密7)의 주석(『大方廣圓覺經大疏』)을 보다가 문득 몸에서 누린내가 나는 것을 깨달았고, 또한 윤회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졌다.
삼화는 깊은 산속이든 도성의 저잣거리든 길을 떠나고 머무는 것에 일정함을 두지 않았다. 혹 길가에서 걸어가다가도 무언가를 읊조리기도 하였으니, 사람들은 그를 두고 미쳤다고 비웃었다. 그는 서쪽으로 유람하여 중국으로 들어가서 도道가 있는 자를 찾으려 하였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방장산(方丈)에 머물러 깊이 들어앉아 나오지 않았으니, 어떻게 삶을 마쳤는지 아무도 모른다. 【삼화가 여산廬山에 머물 때 꿈을 꾸었는데, 대인大人 한 사람이 꿈에 ‘삼화선사三花禪寺’라는 네 글자를 그에게 주었다. 삼화는 그 당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는데, 후에 시우산施愚山8)의 시를 읽다가 그의 시 가운데 소림사少林寺에서 지은 “고목에 핀 세 송이 꽃이 아득한 안개 사이로 보이네.(古樹三花杳靄間。)”라는 시구가 있는 것을 보고서, 이를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스스로 삼화라 칭했다.】
금원산9) 삼화선사 신건 상량문金猿山三花禪寺新建上樑文
불교의 명성(達摩家聲)이 땅에 떨어져 세상에 떨치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어도, 비로자나불의 누각(毘盧樓閣)이 순식간(彈指)에 저절로 개창된 것은 얼마나 많던가. 신령스런 곳(靈境)은 사람을 기다리고 기이한 인연(奇緣)은 도道를 돕네.
나(某)는 세속의 화려한 삶(綺習)을 훌훌 벗어나 불교(玄宗)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결의하고는, 투자投子10)와 동산洞山11)이 홀로 돌아다니고, 풍간豊干과 습득拾得12)이 오로지 풍광風狂13)을 추구한 것처럼, 성시城市의 부자동네(朱門)에서는 인연에 따라 죽과 밥을 구걸하여 먹고, 촌락村落의 가난한 마을(白屋)에서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떠나는 것에 구애됨이 없었으니, 어찌 몇 번 잠잔 곳(三宿)14)이라고 미련이 있어 머물렀겠는가.
반평생 허깨비의 삶을 살다가 두 번의 꿈을 꾸게 되었다. 하나의 꿈에서는 네 글자의 편액이 나타났는데, 후에 우산愚山15)의 책에서 소림사(少室)16)에서 지은 시를 보고 기억해 내었다.【여산廬山에 있을 때 꿈에 위당부자威堂夫子17)가 나타나 ‘삼화선사三花禪寺’라는 네 글자를 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였다. 후에 시우산施愚山의 시詩를 읽다가 시우산이 소림사少林寺에서 지은 “고목에 핀 세 송이 꽃이 아득한 안개 사이에 보이네.(古樹三花杳靄間。)”라는 시구를 발견했으니 아주 기이한 일이다.】 다른 하나의 꿈에서는 서너 봉우리가 짙푸른 것이 흡사 지자 대사(智者)18)가 전한 북봉北峯을 방불케 했다.【꿈에 어떤 사람이 금원산金猿山을 가리키며 나에게 당부하며 말하기를 “너는 절을 세우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지자 대사智者大師가 어렸을 때 꿈에서 신선이 살 법한 신비로운 산을 보았는데, 바다와 접해 있으면서 골짜기가 깊고 매우 아름다웠다. 그 꼭대기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손을 흔들어 부르며 절(蘭若)에 들어가면서 말하기를 “너는 여기에 머물도록 하여라.”라고 하였다. 지자 대사가 후에 천태산(天台) 북봉北峯에 절을 세웠는데, 황홀하기가 꿈속의 절경과 같았으니, 밖의 보호와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이다.】
누가 이곳이 제천諸天19)에서 꽃비가 내리던 곳인 줄 알겠으며, 태고太古에 원숭이가 울던 땅인 줄 알겠는가. 과인 거사瓜印居士는 학을 놓아주었는데 이곳에 와서 학을 찾았고, 향농 도인香農道人20)은 오리(鳬)를 감추고자 이곳에 진鎭을 설치하고 머물렀다.

012_0307_a_01L住虎溪古寺讀圓覺經時夜將半
012_0307_a_02L雪入窓燈火如豆花方擁爐睡忽抖
012_0307_a_03L擻精神高聲讀低聲讀讀至彌勒章
012_0307_a_04L尋草堂密註脚覺得身臊亦信輪回深
012_0307_a_05L山巖城市行止無定或在途中
012_0307_a_06L行且吟人笑以爲狂西遊擬入中原
012_0307_a_07L訪道竟不得便南止方丈深坐不出
012_0307_a_08L莫知所終花住廬山時夢一大人以三花禪寺四
字贈之花不知其爲旨及讀施愚山詩
012_0307_a_09L見少林寺作有古樹三花杳靄
間之句甚奇之自稱三花

012_0307_a_10L

012_0307_a_11L金猿山三花禪寺新建上樑文

012_0307_a_12L
達摩家聲久矣墮地不振毘盧樓閣
012_0307_a_13L幾乎彈指自開靈境待人奇緣助道
012_0307_a_14L某纔脫綺習將契玄宗投子洞山
012_0307_a_15L自來徃豊干拾得原是風狂城市朱
012_0307_a_16L隨緣粥飯村落白屋放迹逍遙
012_0307_a_17L拘制於一移那留戀於三宿半世幻住
012_0307_a_18L再現夢場四字扁題記得愚山卷裡少
012_0307_a_19L在廬山時夢威堂夫子以三花禪寺四字贈之
知其爲旨及讀施愚山詩見少林寺作有古樹
012_0307_a_20L三花杳靄
甚奇之
數笏蒼翠彷彿智者傳中北峯
012_0307_a_21L夢有人指金猿山而囑余曰汝建寺也智者大師
幼時夢見仙山臨海深秀有人自山頂手招接入蘭
012_0307_a_22L若云汝居此大師後建寺天台
北峯怳如夢境多荷外護焉
誰知諸天雨
012_0307_a_23L花之場乃在太古啼猨之地瓜印居士
012_0307_a_24L始放鶴而來尋香農道人欲藏鳬而留

012_0307_b_01L이곳의 물과 바위는 투명하고 깨끗하며, 골짜기와 계곡은 깊고 그윽하다. 여산(匡廬)21)의 나뭇가지 하나로 절이 만들어지듯 사찰이 이루어졌으니 단아하고 정결한 느낌이 들고, 가야산(伽倻) 봉우리가 겹겹이 둘러싸서 마주 대하고 있으니 곱고 아름답다. 수달須達22)이 금을 바닥에 까니 홀연히 범왕궁전梵王宮殿이 세워지고, 대지大智23)가 불자를 세우니(竪拂) 선주禪主의 가풍家風을 장차 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영운靈雲의 복숭아를 보고, 더러는 향엄香嚴의 대나무를 쪼갤 것24)이다.25)
그러나 무자화두無字話頭는 후학을 잘못 인도하여 자칫 스승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해 부처와 조사(佛祖)를 함부로 공격할까 염려되나니, 소와 양들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오리오. 앵무새는 말을 따라 할 수는 있어도, 아직 진리의 근원에 이르지 못하면 피육皮肉 같은 껍데기와 골수骨髓 같은 진리의 핵심을 분변하기도 어려우며, 공안公案을 잘못 인식하면 다만 갈등葛藤과 풍파風波를 만들 뿐이다. 밖으로는 온갖 인연을 그치는 것이 선교善巧 방편이 아니겠는가, 안으로는 정념正念26)을 지키는 것이 또한 신묘한 방편(奇方)의 하나이니, 태전太顚27) 선사는 색色이 곧 공空이라 관觀하였고, 난융嬾融28) 선사는 사람을 보고도 절하지 않았다. 참된 부처(眞佛)는 홀로 걸어가도 저절로 초월한 경지에 오르는(及第) 때가 있고, 옛 성현(古聖)들은 함께 머물러도 고향에 돌아가는 길을 묻지 않으나, 돼지(猪子)는 알지 못하여 영원히 이러한 자취가 없다. 닭과 오리(鷄鴨)가 방식은 다르나 추위를 견디는 것은 같듯이29) 문자文字를 겸하여 통하게 되니, 속되고 어리석은 이들을 권유勸誘하여 깨달음(妙明)30)을 일으키게 한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끝나지 않아서 서로 참례하게 되고, 켜진 등불은 꺼지지 않아서 서로 비추게 된다. 그리하여 법계法界를 널리 포용하면 한 가지의 대나무로도 가람伽藍이 새롭게 생기게 되고, 현풍玄風(禪風)을 크게 떨치면 두 그루 계수나무로 된 절(蘭若)이 영원히 자리하게 될 것이다. 공역工役을 돕기 위해 게송을 다음과 같이 읊는다.

拋梁東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
水如聞唄徹心空  물소리 심중을 뚫는 염불 소리같이 들리네
生憐飛瀑浮雲外  안타깝게도 폭포수는 뜬구름 밖으로 날리니
放下蒲團寫祖宗  포단31)을 아래에 깔고 조종을 본뜨네

拋梁南      들보 남쪽으로 던지니
幽花怪石共禪叅  산속 꽃과 기괴한 바위도 함께 참선하네
啞羊還有靑蓮舌  벙어리 양32)도 도리어 청련33)의 혀가 있으니
鳥毳輕吹亦竗談  새 깃의 살살 부는 바람도 오묘한 말이 되네

拋梁西      들보 서쪽으로 던지니
人在嵩山路不迷  사람은 높이 솟은 산에선 길을 헤매지 않네
一自當年傳祖印  올해로부터 한번 조사의 심인34)을 전하니
如來敎法首空低  여래의 가르침에 머리를 공연히 숙이네

拋梁北      들보 북쪽으로 던지니
列峀嵯峩微雪白  늘어선 우뚝한 산봉우리들 눈이 엷게 덮였네
人在定中尙聞香  사람은 정중35)에서 오히려 향내를 맡으니
忍寒欲宿梅花側  추위를 견디며 매화 옆에 머물고자 하네

拋梁上      들보 위로 던지니
天花寶盖同搖颺  천화36)와 보개37)도 같이 흔들리며 날리네
空嵒晏坐問何人  탁 트인 바위에 앉아 어떤 이인가 물으니
千佛光明猶影響  천 불의 광명이 오히려 그림자이고 메아리이네

拋梁下      들보 아래로 던지니

012_0307_b_01L水石明淨洞壑深幽匡廬一枝
012_0307_b_02L局而窈窕伽倻萬疊對案而嬋妍
012_0307_b_03L達布金忽起梵王宮殿大智竪拂
012_0307_b_04L見禪主家風休覩靈運 [1] 之桃或擊香嚴
012_0307_b_05L之竹然而無字話恐誤兒孫有爲師妄
012_0307_b_06L打佛祖牛羊何返鸚鵡能言未造眞
012_0307_b_07L難辨皮肉骨髓錯認公案徒作葛
012_0307_b_08L藤風波外息諸緣無乃善巧內守正
012_0307_b_09L亦一奇方太顚之觀色卽空嬾融
012_0307_b_10L之見人不拜眞佛獨步自有及第之時
012_0307_b_11L古聖共居休問歸鄕之路猪子不識
012_0307_b_12L永沒蹤由鷄鴨同寒兼通文字勸誘
012_0307_b_13L愚俗觸發妙明結未了緣而交叅
012_0307_b_14L無盡燈而相暎寛容法界一枝竹之
012_0307_b_15L伽藍新成大振玄風兩株桂之蘭若
012_0307_b_16L永鎭爲助工役而說頌言拋梁東
012_0307_b_17L如聞唄徹心空生憐飛瀑浮雲外放下
012_0307_b_18L蒲團寫祖宗拋梁南幽花怪石共禪叅
012_0307_b_19L啞羊還有靑蓮舌鳥毳輕吹亦竗談
012_0307_b_20L梁西人在嵩山路不迷一自當年傳祖
012_0307_b_21L如來敎法首空低拋梁北列峀嵯
012_0307_b_22L峩微雪白人在定中尙聞香忍寒欲宿
012_0307_b_23L梅花側拋梁上天花寶盖同搖颺
012_0307_b_24L嵒晏坐問何人千佛光明猶影響拋梁

012_0307_c_01L閉門面壁無冬夏  문을 닫고 면벽하며 겨울과 여름도 잊었네
層層積氷月明時  층층이 쌓인 얼음에 달빛이 밝게 빛나는 때는
玉局仙人來駐駕  옥국의 선인38)이 찾아와서 머무는 것일세

부디 들보를 올린 이후에는 두 마리 호랑이(二虎)가 함께하여 호위하고, 온갖 새들(百鳥)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해 주며, 사람ㆍ귀신ㆍ하늘ㆍ용이 현묵玄默39)의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이며, 산천초목山川草木은 소회昭回40)의 빛을 온전히 받기를 엎드려 간절히 바랍니다.
청운 장로상 찬【서문과 함께】(聽雲長老像讃【有序】)
노인老人은 일찍부터 시를 짓는 데 심취하여 시문으로 당대에 이름을 알렸다. 나(復初)와 교유하였을 때 이미 연로하였으나, 시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나는 이 때문에 노인이 지은 시의 근간이 무엇인지를 탐구하였는데, 노인이 이것을 불법佛法에서 얻은 것이 아니면 어떻게 이렇듯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는가. 그리고 시 밖에 만약 불법이 있다면 노인이 어찌 일찍 불법을 폐하지 않았겠는가. 이 생각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시가 불법佛法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아직 불법에 통달하지 못한 것이며, 또한 아직 노인이 도달한 경지를 알지 못한 것이다’라 하겠다. 우리 종문의 깨달음(門風)41)이 이리 높으니, 후학들을 깨우칠 만하도다.
花如夢兮柳魂殘   꿈과 같은 꽃이여 혼을 남긴 버들이여
如留世間兮佳句寒  세간에 머무른 듯 좋은 시구만 쓸쓸히 남았네
字字心兮師表猶存  글자마다 담긴 마음 사표로 남을 만하니
嗟爾後生兮可與尊  아, 그대들 후생이여 우러러 볼만하도다
【“꽃의 여운은 짧은 꿈처럼 붉게 물에 흘러가고, 버들이 남긴 혼은 하얗게 옷을 비추네.”라는 시구는 노인의 가작佳作이다.】

기사(黃蛇)년(1869) 섣달(臘)에 행각승行脚僧 복초復初가 운문사雲門寺 눈 오는 창가 등잔 아래에서 기록하다.
지리산 문수암기智異山文殊庵記
화엄華嚴과 연곡燕谷의 동천洞天42)마다 깊고 빼어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사관寺觀43)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동천의 입구에는 마을이 있는데, 역시 은자隱者가 거처하는 곳이다. 점점 들어갈수록 수목樹木은 하늘과 맞닿아 있고, 호랑이와 표범도 많아서, 약초를 캐는 사람이 아니면 이를 수가 없다.
지금의 문수암文殊庵은 지난 정묘丁卯년(1867)에 세운 것이다. 선비들이

012_0307_c_01L閉門面壁無冬夏層層積氷月明時
012_0307_c_02L玉局仙人來駐駕伏願上梁之後二虎
012_0307_c_03L輿衛百鳥唫將人鬼天龍聽受玄默
012_0307_c_04L之敎山川草木衣被昭回之光

012_0307_c_05L

012_0307_c_06L聽雲長老像讃有序

012_0307_c_07L
老人早癖於著詩以詩知名當世
012_0307_c_08L與復初遊年旣老而興不衰初以是
012_0307_c_09L探老人所得也老人非得之佛法
012_0307_c_10L如是孤詣且詩外如有佛法老人豈
012_0307_c_11L不得廢之早耶此意惟復初知之
012_0307_c_12L詩非佛法者未達佛法亦未知老人
012_0307_c_13L所在也門風甚高可警後學

012_0307_c_14L
花如夢兮柳魂殘如留世間兮佳句寒
012_0307_c_15L字字心兮師表猶存嗟爾後生兮可與
012_0307_c_16L花餘短夢紅流水柳送殘
魂白照衣乃老人佳作

012_0307_c_17L
黃蛇之臘行脚僧復初識于雲門寺
012_0307_c_18L雪窓燈影下

012_0307_c_19L

012_0307_c_20L智異山文殊庵記

012_0307_c_21L
洞天个于華嚴燕谷非不深秀然無寺
012_0307_c_22L觀久矣洞天之口有村然亦隱者居之
012_0307_c_23L漸入則樹木叅天多虎豹非採藥不能
012_0307_c_24L今文殊庵去丁卯年中所建也

012_0308_a_01L옛날부터 문수동文殊洞이라 불렀기 때문에 지금 암자도 역시 문수라 이름 붙인 것이다. 암자를 세운 사람은 지금의 암주庵主이다. 8년 전에 처음 암자의 오른쪽 절벽 아래에 이르러 작은 띠집을 엮어 남해대사南海大士(관음보살)를 공양하기를 300일 동안 행하였다. 꿈에 한 늙은 비구比丘가 나타나 말하기를 “이곳은 문수보살이 머무시는 곳인데, 그대는 어찌 예를 드리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암자를 세우려고 할 때에 또 꿈에서 이르기를 “사미沙彌 몇 명을 맡길 테니, 그대는 그들과 힘을 합치라.”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길 “세 성인聖人이 날 곳이다.”라고 하였다. 암주는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여기고는, 마침내 뒤덮인 덤불을 제거하고 산속의 큰 돌들을 평평하게 골라내어 공사를 마쳤다. 마치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으니, 지난날 꾼 꿈이 결국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었다.
내가 서쪽에서 지리산智異山으로 들어온 후, 기이한 경치가 있다고 들으면 찾아가 보았고, 훌륭한 분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찾아가서 배우려고 했다. 그러던 중 백학봉白鶴峰 아래에서 우연히 송수松叟를 만났다. 이로 인해 그 늙은 선객禪客을 알게 되어 문수암의 한 토굴土窟에서 하안거를 지냈다. 송수는 세상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나 또한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내가 평소에 듣던 내용도 아니기 때문에 내가 따로 묻지도 않았다.
겨울에 용우龍友가 눈을 무릅쓰고 문수암으로부터 귀향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나의 처소에 이르렀다. 용우는 나에게 문수암 주변의 수많은 경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또한 그곳에 도반들이 있다는 말도 해 주었다. 이에 못내 아쉬워 탄식하며 생각하길 ‘용우가 아니었다면 아마 만나지 못했으리라’라고 하였다. 여러 산을 지날 때마다 흥취가 있어 꿈속인 듯 황홀하였으니, 마치 사람이 푸르른 산 중턱의 향긋한 안개 속에서 보낸 듯하였다. 그리고 여러 승려들이 함께 바위에서 좌선하고 있는데,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돌아보니 푸른 절벽은 깎아 놓은 듯 서 있었는데 사다리 없이도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주변에 밥 짓는 연기 같은 것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음 날 길을 떠나 화엄사를 경유하여 암자에 도착하니 암주庵主가 기뻐하였고 청중淸衆44) 또한 기뻐하였다. 무착대無着臺를 바라보니, 아, 지금의 일이 그 얼마나 꿈과 같은가. 나와 용우는 이미 다섯 달을 지냈으니 기이한 인연도 또한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마침내 붓을 놀려 암자의 기문을 다음과 같이 짓노라.
모든 봉우리와 숲과 골짜기가 왼쪽에서부터 앞쪽으로 펼쳐져 깊고 크고 청정하고 웅장한 것은

012_0308_a_01L人舊稱文殊洞故今庵亦稱文殊焉
012_0308_a_02L庵者今庵主也前八年始至庵右壁下
012_0308_a_03L結小茆茨供南海大士爲三百晝夜矣
012_0308_a_04L夢一老比丘來吿曰此是文殊菩薩住
012_0308_a_05L汝盍禮乎方欲建庵時又夢謂曰
012_0308_a_06L可乃囑數沙彌汝曹同力又指點面勢
012_0308_a_07L而語之曰三聖人出庵主心異之
012_0308_a_08L去蔽蒙夷犖确以至竣役如有助者
012_0308_a_09L向夢果非誣人歟余西入智異山
012_0308_a_10L有異境則探之又有可人則欲徃從之
012_0308_a_11L白鶴峰下巧遇松叟1) [1] 禪客因知
012_0308_a_12L夏於文殊土窟然叟不及人境可否故
012_0308_a_13L吾亦不聞吾非素所聞故吾所以不
012_0308_a_14L問者也冬龍友自庵冒雪歸鄕誤至
012_0308_a_15L我所甚道爲境又道其有友於是缺
012_0308_a_16L然歎又作是念非龍友吾幾不遇耳
012_0308_a_17L甚有過山之興夢思怳惚若人有送於
012_0308_a_18L翠微香霧中已而又有數僧與坐岩石
012_0308_a_19L指顧一面蒼壁如削無梯可接然似
012_0308_a_20L有人烟甚是分明明日乃行轉由華
012_0308_a_21L嚴寺至庵庵主喜淸衆亦喜已而望
012_0308_a_22L無着臺何其今日酷肖夢也吾龍
012_0308_a_23L友已跨五朔則奇緣亦有時耶余遂涉
012_0308_a_24L筆而記庵曰諸峰林壑從左向前

012_0308_b_01L모두가 본산本山이요, 밖으로 늘어서 있어 안석에 기대어 부를 수 있을 만큼 쭉 펼쳐져 있는 것은 광양光陽의 백운산(白雲)이요, 가까운 듯 먼 듯 들쑥날쑥 변화하는 것은 곤양昆陽의 금록金麓과 남해南海의 금산錦山이다. ‘을乙’ 자 모양의 긴 강이 문으로 들어와 밝고 맑은 것은 하동河東의 섬진강(蟾津)이요, 그 너머의 바다색은 구름 같기도 하고 하늘 같기도 한데, 날이 맑으면 배가 왕래하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다. 섬돌 아래로 걸어서 내려가면 구례求禮의 오봉五峰이다. 골짜기 입구부터 환하게 비추고, 또 일대 강가의 모래를 빛내니, 포단蒲團에서 좌선하기에 더욱 좋다.
암자 뒤의 벼랑은 2층인데, 위층은 넓어 집을 지을 만하고, 아래층에 비하여 경치가 더욱 아름답다. 내가 한번 그곳에 앉으니 마치 비로누각毘盧樓閣에 들어간 것 같았는데, 겨울에는 반드시 찬바람을 계속해서 맞을 것이고 한여름이 되어야만 시원해서 좋을 장소였다. 위로 올라가면 깎아지른 듯 우뚝 솟은 바위가 있는데, 밖에서 바라보면 병풍 같다. 절벽 틈새에서 물이 나와 모여서 샘물을 이루는데, 그 맛이 달고 양이 풍족하다. 또 가까운 곳에 약초도 많고 부처님 가부좌상도 있다. 사자 같기도 하고 거북이 같기도 하여서 거의 가리키는 대로 이름을 붙일 만한 바위도 있다.
문수보살은 과연 이곳에 머물렀을까? 예부터 문수라 했으니 또한 뜻이 있을 것이다. 나는 팔을 세워 대중에게 보이며 말하길 “다섯 손가락이 어째서 오봉五峯과 같은지 눈이 있는 자는 보라.”라고 하였다. 문수암주의 이름은 섭률攝律이다. 신심이 매우 깊어서 함께 보살행菩薩行을 행할 만하다.
기사년(黃蛇, 1869) 단오(端陽)에 일광 암주一光盦主 계차契此 새김.
청운 장로에게 올리는 글(上聽雲長老書)
근래에 어성於性 사형이 오셔서, 장로님이 보내 주신 귀한 글(珍什)을 삼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마치 세상 밖의 진귀한 향내를 듣는 것 같아서, 너무 기쁘고 즐거워 손뼉을 치고 발을 굴러도 기쁨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 아둔한 일개 후배를 마치 씻기고 닦아내듯이 칭찬하여서 광명光明의 정상頂上으로 이끌어 올려놓으셨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친하고 좋아하는 것에 편승했다는 구업口業의 과실過實이 되어서, 장로님의 인품에 흠이 될 것입니다.

012_0308_b_01L遠淸雄者皆本山也從外羅列據几
012_0308_b_02L可呼者卽光陽之白雲也若近若遠
012_0308_b_03L出沒變化者昆陽之金麓南海之錦山
012_0308_b_04L乙字長江入戶明淨者河東之蟾
012_0308_b_05L津也其外海色若雲若天天晴則舟
012_0308_b_06L徃來可指步下庭除求禮五峰從洞
012_0308_b_07L門照又帶江沙若照蒲團尤好庵背
012_0308_b_08L崕壁兩層初層寛可起屋景物比下層
012_0308_b_09L尤美吾一坐如入毘盧樓閣然冬必受
012_0308_b_10L風不止至盛夏則快耳上則巉岩
012_0308_b_11L望若屛水從下壁隙出合之爲泉
012_0308_b_12L甘又足且比近之地多有藥艸又有
012_0308_b_13L佛跏趺若獅子若龜僅可指名者存
012_0308_b_14L文殊果住否昔稱文殊亦有旨耶
012_0308_b_15L余竪臂示衆曰五指爭如五峯有眼卽
012_0308_b_16L文殊庵主名攝律深有信力可與
012_0308_b_17L作菩薩行

012_0308_b_18L
黃蛇之端陽一光盦主契此識

012_0308_b_19L

012_0308_b_20L上聽雲長老書

012_0308_b_21L
頃於性兄來伏承先屈珍什如聞世外
012_0308_b_22L異香歡抃慶躍曷有其極矧玆鈍暗
012_0308_b_23L之一後生若將澡浴磨拭引置於光明
012_0308_b_24L頂上此必阿好者之口業過實而使長

012_0308_c_01L그러나 또한 넓은 도량에 조금이라도 남과 나를 구별하는 마음(人我)이 있었다면, 미성숙한 후배에게 이와 같이 정중하게 대해 주셨겠습니까.
게다가 지난해에는 보내 주신 귀한 글(瓊章) 약간을 멀리서 받아 보고 감동하여 외우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큰 문장가(大手)와 이름난 사람들(名曹)도 감동하고 찬탄하지 않음이 없고, 겨우 글자나 아는 사람도 글의 뜻과 의도를 떠들썩하게 전할 정도였습니다. 장로님의 은혜가 두루 미치는 곳으로 나아가서 그간 끊기고 약해졌던 가르침을 받기를 희망하였는데, 편지도 미처 보내기 전인 작년 봄에 갑작스레 이 산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남과 영남(湖嶺)이 비록 가로막혀 있을지라도 서신(便梯)45)이 계속 이어져서, 손뼉을 치고 소리를 지르듯 기뻐서 뜻하고 소원하던 바가 다 이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심부름꾼이 이르러 장로님께서 먼저 저에게 소식을 보내 주시니, 부끄럽고 죄송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선가禪家의 입장에서 문자文字란, 가을의 맑은 하늘(秋空)에 아주 작은 구름이 점점이 놓여도, 하늘에는 어떤 지장도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또 비유하면 기러기의 그림자가 물에 비쳐 투영되나, 투영된 그림자가 물에는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 그 사이에 유희遊嬉를 거리낄 필요는 없습니다. 또 후학들과 처음 불교를 접한 사람들(初識)은 고인古人의 공안公案에 의지하지 않고는 본분本分의 콧구멍(鼻孔)46)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끌어서 총림叢林에 가까이하게 해도, 좌선을 해도 선禪을 더욱 어둡게 하고, 움직여도 수레에 치이는 것 같은 화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 불교(吾宗)가 몰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반드시 문자를 보는 안목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후학과 초학자들의 근성根性이 더디고 둔하면 나아갈수록 더욱 퇴보할 뿐이고 결국에는 원하는 곳에 이르지 못하게 되니, 삼가 어디에 이르게 될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당장에 장로님께 나아가 직접 가르침을 받고자 하였으나, 마침 급한 용무가 있어서 행장을 꾸려 남쪽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미처 오랜 숙원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죄송스럽게도 이와 같이 감정이 격한 가운데 두서없이 마구 글을 지어서 말이 되지 않는 엉망인 글이 되었으니, 필경 잘못을 저질러 책망받을 곳이 있을 것입니다. 그저 다행이거니 하고 넘어가지 마시고 아낌없는 수정(郢斤)47)을 받고자 하오니, 어긋나고 잘못된 곳(參差)을 바로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삼가 부디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해수관음도찬海水觀音圖賛
欹岸側島     치솟은 절벽 옆엔 섬이 있고
騰波伏浪     파도는 위아래로 출렁출렁
卽之越絶     나아가면 깎아지른 절벽이요
視之渺茫     바라보면 망망하고 아득하네

012_0308_c_01L老之品藻受庇於此也然亦弘量中
012_0308_c_02L少有人我則如是鄭重於未成之物耶
012_0308_c_03L而况於前年遠承瓊章若干感誦不輟
012_0308_c_04L大手名曹靡不艶歎僅識字者亦喧
012_0308_c_05L傳意欲委進一霑地望懸絕弱翰未
012_0308_c_06L擧前春偶入此山湖嶺雖阻便梯相
012_0308_c_07L若抃聲光自喜必遂志願又復使
012_0308_c_08L先辱下愧悚當如何哉至若文字
012_0308_c_09L之於禪家比如微雲點綴秋空空無留
012_0308_c_10L又如鴈影沉水水無沉影之意
012_0308_c_11L此觀之則自不妨遊嬉於其間且後學
012_0308_c_12L初識不憑古人公案不識本分鼻孔
012_0308_c_13L而挽近叢林擧坐黑㓒禪動被輘轢
012_0308_c_14L不欲見吾宗零替必具文字眼而若下
012_0308_c_15L流根性遲鈍愈進愈退畢竟莫逮
012_0308_c_16L歎何及方欲進蒙點化而適有急務
012_0308_c_17L以治裝南歸故未遂久蘊而又負罪悚
012_0308_c_18L如此六截出自感激中甚不成語
012_0308_c_19L有見欺之誅則莫幸若而亦欲蒙不惜
012_0308_c_20L郢斤正其參差伏惟垂寛焉

012_0308_c_21L

012_0308_c_22L海水觀音圖賛

012_0308_c_23L
欹岸側島騰波伏浪卽之越絕視之
012_0308_c_24L「叟」疑衍字{編}

012_0309_a_01L又當月隱星微   달도 숨고 별빛도 흐린
夜黑如㓒之際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擡頭延目     머리 들고 저 멀리 바라봐도
迷不知方     까마득해 어딘지 알 수 없네
忽然自空     홀연히 공중에서
寂中放百寶圓光  고요히 백보의 원광이 나타나니
未知是眞是化   실재인지 허상인지 알 수 없네
惟展頂禮     다만 정례頂禮48)를 드리고
與拈心香     심향心香49)을 바치네
토옥 개기문土屋開基文
泉神噴白     샘의 신은 하얀 물을 뿜어내고
岳靈回靑     산의 신령 숲의 푸름 돌려주네
終而復始     끝이 오고 나면 처음이 시작되고
地父天成     땅이 시작하면 하늘이 완성하네
屋必有所     집터로 알맞은 곳 필요하여
歷詮奇境     다니며 빼어난 곳 정했더니
其助窈窕     그 주변 산세는 고요하고
其局安靖     그 터의 형국은 안정되네
寒灰在手     차갑게 식은 재를 손에 쥐고
一吁撫古     옛일을 생각하며 탄식하네
志在濫觴     처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力辦運斧     힘써 도끼를 휘두르네
茆蔀三間     띠풀로 만든 세 칸 집이라도
不患風雨     바람과 비를 걱정치 않게 하네
涓玆吉日     이 좋은 날을 택하여서
夷高補窳     울퉁불퉁한 땅 고르고서
敢籲地祗     감히 땅의 신을 부르니
庶格肺腑尙饗   부디 마음속 깊은 정성을 흠향하소서
기우문【대신 지음】(祈雨文【代作】)
유년월일維年月日에 모 마을 대소민大小民 등이 삼가 때에 맞는 음식(時羞)을 준비하여 두어 줄 간절함을 담은 말로 천지신명(天地神祗)께 향을 피우며 다음과 같이 고하옵니다.
사람의 몸(形骸)을 받고 태어나 어찌 잠시라도 소홀함이 있어서야 되겠나이까. 천지신명께서 위로는 밝게 펼쳐져 있고 아래로는 빽빽하게 벌여 있는지라, 무릇 인간의 몸과 마음이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일의 옳고 그름과 진실하고 거짓됨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결과를 받게 됨은 한 치의 오차도 없어서 각자 가볍고 무거운 것을 따를 뿐이니, 인간으로서 어찌 소홀하겠나이까, 인간으로서 어찌 소홀하겠나이까. 그러나 지금 백성들의 인심은 흉흉해져, 갈수록 교활하게 남을 속이고 있습니다. 도에 어긋나면 도리어 이익을 얻고 바르면 반드시 업신여김을 당하며, 약하면 강한 자에게 먹히고 고분고분하면 능욕을 당하옵니다. 이 때문에 재앙에 이르게 되는 것인데, 이와 같은 일이 종종 있사옵니다.
이러한 때에 여름(南訛)50)이 되어 한참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가뭄의 위세가 어쩌면 이리도 가혹합니까. 논(水田)이 벌겋게 타들어 간 것이 이미 열흘을 넘어서,

012_0309_a_01L渺茫又當月隱星微夜黑如㓒之際
012_0309_a_02L擡頭延目迷不知方忽然自空寂中
012_0309_a_03L放百寶圓光未知是眞是化惟展頂禮
012_0309_a_04L與拈心香

012_0309_a_05L

012_0309_a_06L土屋開基文

012_0309_a_07L
泉神噴白岳靈回靑終而復始地父
012_0309_a_08L天成屋必有所歷詮奇境其助窈窕
012_0309_a_09L其局安靖寒灰在手一吁撫古志在
012_0309_a_10L濫觴力辦運斧茆蔀三間不患風雨
012_0309_a_11L涓玆吉日夷高補窳敢籲地祗庶格
012_0309_a_12L肺腑尙饗

012_0309_a_13L

012_0309_a_14L祈雨文代作

012_0309_a_15L
維年月日某洞大小民等謹具時羞
012_0309_a_16L以數行苦語薰吿于天地神祗曰賦是
012_0309_a_17L人之形骸而豈可有忽於造次哉上焉
012_0309_a_18L昭布下焉森列凡人之運軆動念
012_0309_a_19L直情僞有必責之不遺一銖而各自
012_0309_a_20L以輕重從之人而可忽乎人而可忽乎
012_0309_a_21L第今民情日益狡詐謟必得便廉必
012_0309_a_22L見侮弱爲强食順爲逆陵以是有致
012_0309_a_23L災厄種種若此時値南訛移秧在玆
012_0309_a_24L旱魃之威一何酷也水田焦赩已至

012_0309_b_01L속이 타들어 가는 백성이 거리에 넘쳐 납니다. 은하수(雲漢)51)는 하늘에 있으나 가서는 돌아오지 않으니 농사일은 이미 망쳤사옵니다.
이러하니 무엇으로 증상蒸嘗52)의 제를 준비하오며, 무엇으로 세금을 감당하겠습니까. 중생(生靈)이 이 땅에 가득한데 이곳에서 살아 나갈 길이 없사옵니다. 자신이 지은 죄는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진실로 알고 있으나, 만약 중생들을 어루만져 주고 돌봐 주시는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또한 이제부터 분발하여 따르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아향阿香(우레의 대명사)과 병예屏翳(비바람의 신)의 무리로서 천둥을 지휘하게 하옵소서. 풍운風雲을 모아 순식간에 장마가 져서 개천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어 여러 억조창생의 생명을 구제하여 주시옵소서. 부디 두터운 덕을 널리 베푸시옵소서. 적지만 흠향하옵소서(尙饗).53)
영각사 화엄각 개와 모연문靈覺寺華嚴閣改瓦募緣文
어떤 일에 소리ㆍ형태ㆍ향ㆍ맛(聲色臭味)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 일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소리ㆍ형태ㆍ향ㆍ맛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면서, 잠깐 사이에 일을 완성하려고 하는 것은 망령된 일이다. 그러나 비록 소리ㆍ형태ㆍ향ㆍ맛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하여도, 형세가 장차 무너지려고 하는 것에는 영향을 줄 수 없다. 왜냐하면 형세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은 소리ㆍ형태ㆍ향ㆍ맛과 같은 현상의 밖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은 도대체 누가 분연히 행하여 이룬 것이며, 또한 이어서 그 필요한 바를 만족케 했던 것인가.
설파 대사雪坡大師54)는 진실로 『화엄경』에 깊은 조예가 있어 이것을 풀어서 설명한 것이 마치 구름과 비처럼 많았으며, 이어서 『화엄경』의 빠진 부분이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았으며, 이어서 인연에 따라 인쇄본을 만들어 책으로 펴냈다. 그리고 명산名山에 그것을 안치하여 사람과 하늘의 복전으로 삼으며, 또한 후생의 터전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 장소를 정하기도 전에 신명神明과 서로 통하여 꿈에 영각靈覺을 얻어서, 영각이 있는 곳에 『화엄경』 서책을 보관하였으니, 바로 법보法寶55)의 기이함이로다. 또 화엄각을 세울 당시에 토천석莵薦石이 하나 있어 마치 신神이 도움을 준 것 같았으니, 또한 기이하고 기이한 일이다.
대사가 열반에 든 지 백여 년이 흘렀다. 우리 동방 학자들의 강습은 영각이 아니었으면 본래 행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니,

012_0309_b_01L浹旬民燃溢巷雲漢在天往而不返
012_0309_b_02L農務已矣何以備蒸嘗乎何以當賦歛
012_0309_b_03L滿地生靈無以存活於此也固知
012_0309_b_04L自作之難逭倘以撫育之弘恩有貸且
012_0309_b_05L則亦可自今而飜然也願以阿香屏
012_0309_b_06L翳之屬指揮電霆招集風雲斯須傾
012_0309_b_07L水滿溝瀆庶濟億兆厚德漫漫
012_0309_b_08L

012_0309_b_09L

012_0309_b_10L靈覺寺華嚴閣改瓦募緣文

012_0309_b_11L
事有聲色臭味足以動人方能濟之
012_0309_b_12L無聲色臭味足以動人將欲成辦於斯
012_0309_b_13L須之境妄也雖有聲色臭味足以動
012_0309_b_14L人者勢將廢之無害矣而有勢不可
012_0309_b_15L廢者存乎聲色臭味之外其不可廢者
012_0309_b_16L誰能慨然許之又從而飽其所須也
012_0309_b_17L坡大師眞是深於華嚴從而演之
012_0309_b_18L雲如雨又從而正其闕誤又從而隨緣
012_0309_b_19L刊板行且藏之名山以爲人天福
012_0309_b_20L以爲後生地矣而尙未卜矣神明相孚
012_0309_b_21L夢得靈覺以安之靈覺之有是法寶奇
012_0309_b_22L又方其建閣也有一於莵薦石
012_0309_b_23L神助之亦奇又奇矣大師後百餘年
012_0309_b_24L東方學者之講習非靈覺本不行

012_0309_c_01L이는 영각사靈覺寺가 지금까지 지켜지고 보호된 연유이다. 그런데 화엄각의 기와가 큰 바람과 비를 겪은 지 이미 오래되어 깨어지고 삐뚤어져서, 그 피해가 장차 판목에까지 미칠까 염려하여 많은 사람이 걱정한 것이 여러 날이다. 이제는 조금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부터 사방을 종횡으로 다니며 모금을 하는 것은, 그 소리ㆍ형태ㆍ향ㆍ맛이 엄청나게 많은 부분 일상적인 것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병행해야 하는 것에 의문이 없지는 않지만, 화엄각을 부서지게 놓아둘 수 없는 이유를 바로 안다면 반드시 이 일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며, 또한 인연에 따라 완성해 나가면 될 것이다.
불량계 서문(佛糧契序)
『주역(易)』에 이르기를 “구름이 하늘에 오르는 것(雲上于天)이 수需괘니, 군자는 이 모습을 보고서 먹고 마시고 잔치하고 즐긴다.(君子以飮食宴樂)”56)라고 하였다. 음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것으로, 하루라도 결핍돼서는 안 된다. 만약 음식이 하루라도 결핍되면 사람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되고, 하루 이틀을 지내고 엿새나 이레에 이르도록 결핍되면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그러므로 닭이 울면 일어나 종일토록 열심히 일하여 먹을 것을 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맛있는 것을 잔뜩 차려 놓고 먹고 마시는 것을 즐거움의 극치로 여기는 일은 군자가 절대 하지 않는 것이며, 불가(佛氏)에서도 결코 하지 않는 일이다. 석가모니께서는 발우를 들고 성으로 들어가 차례로 돌면서 걸식하는 것을 공덕으로 여겼다. 옛 고승高僧 가운데 혹 곡기를 완전히 끓는 이도 있었지만, 이 또한 불가의 바른 제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음식이라고 하는 것은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에서 모두 필요로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부처님께서는 이미 열반에 드셨으니, 양식이 있어도 무엇 하겠는가. 사람이 아끼는 것 가운데 음식보다 중요한 것이 없는 까닭에 그 아끼는 음식으로 불상에 공덕을 베풀어서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것이다. 부처님이 어찌 음식으로 인해서 주리고 배부르겠으며, 어찌 음식으로 인해 연회를 베풀어 즐기겠는가?
불량계의 계원들은 이로써 법희法喜와 선열禪悅이 참맛이 됨을 알고, 향반香飯이 참된 가르침임을 깨닫기를 바라노라.
가사 모연문袈裟募緣文

012_0309_c_01L是有靈覺寺之守護到今也閣瓦歷大
012_0309_c_02L風雨已久破裂差池患將反版而爲
012_0309_c_03L衆人憂者有日勢不可待刻然自今行
012_0309_c_04L貨之縱橫四方者其聲色臭味有逾恒
012_0309_c_05L等衆矣非無并行之疑然知其不可廢
012_0309_c_06L必以此爲先亦將隨緣而成就之耳

012_0309_c_07L

012_0309_c_08L佛糧契序

012_0309_c_09L
易曰雲上于天需君子以飮食宴樂
012_0309_c_10L食之於人關係甚重不可一日乏若一
012_0309_c_11L日乏人之受困大矣一日二日六七日
012_0309_c_12L若乏危矣故鷄鳴而起終日苟苟謀
012_0309_c_13L口食若豊美以爲宴樂之極君子所以
012_0309_c_14L不少至於佛氏亦不少釋迦所以持鉢
012_0309_c_15L入城次第循乞以爲功德者也古之
012_0309_c_16L高僧或有絕粒非佛制也故當知此
012_0309_c_17L物世出世間所不乏然今佛已滅矣
012_0309_c_18L糧何也人之所愛莫重於飮食故
012_0309_c_19L其所愛者施功於像沾佛之功德
012_0309_c_20L豈以飮食爲飢飽豈以飮食爲宴樂乎
012_0309_c_21L契中人以是知法喜禪悅之爲味且悟
012_0309_c_22L香飯之爲敎矣

012_0309_c_23L

012_0309_c_24L袈裟募緣文

012_0310_a_01L
일찍이 그 사람이 먹는 곡식과 입는 의복을 살펴본 후에 그의 평상시 생활을 헤아릴 수 있다고 했다. 산골짜기 사이에 반드시 땅을 얻게 되면, 도랑(溝洫)을 관리하고, 언덕과 두둑(丘壠)을 돋우며, 농사 때(人時)57)를 잘 헤아려 밭을 갈고(擧趾),58) 토지의 형편에 맞춰 씨를 뿌린다. 봄부터 여름까지 새벽에 별을 이고 집을 나와서 저녁에 달을 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비가 올 때나 햇볕이 내리쬘 때나 김매기 하는 시기를 놓치지 않아서, 항상 지켜보고 돌보는 것을 마치 어린아이(嬰兒)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한다. 그리하여 가을에 수확하는 시기가 되면 벼를 심은 자는 벼를 수확하고, 콩을 심은 자는 콩을 수확한다. 백곡百穀을 구하고자 하는 대로 다 얻지 않음이 없으며, 가족이 여덟 식구(八口)라도 부양하지 못함이 없다.
무릇 제 노동으로 먹고 사는 자가 밭을 버리고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지금 여기에 가사袈裟가 있으니, 이름도 복전의福田衣이다. 등급(品)에 상하上下가 있고, 조條59)에도 많고 적음이 있어, 법도에 따라 자르고 실로 꿰매 만든다. 세속에서 일컫는, 귀하고 천함을 드러내고 추위와 더위를 막아 주는 옷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천왕天王과 일월日月이 이로써 보호해 주고, 여래如來와 보살菩薩도 이로써 수용受用해 준다.
불법이 쇠퇴한 세상(叔世)에 복福을 일으키려는 자가 어리석게 헛된 것에 의지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여유가 있으면 다만 사치스러운 일에 돈을 쓰고 있다. 지금 성읍城邑과 취락聚落에서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멀리 내다보는 자는 반드시 씨를 뿌리고 수확의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보은계 서문(報恩契序)
예전에 나의 선사先師는 칼처럼 날카로운 한마디 말씀을 제자에게 주시곤 하였고, 제자를 키우는 일에 매우 뛰어나셨다. 또 은장식(銀飾) 같은 재물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얻는 것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셨다. 나는 이런 선사를 공경하고 사모했으나, 이런 마음을 깊이 간직하기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지 벌써 5, 6년이 되었다.
금년 봄에 갑자기 선사께서 입적하시게 되자, 인생이 꿈같음을 탄식하게 되었고, 선사의 은혜에 감사하는 정이 뼛속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가고 들어오는 것과 일어서고 앉는 일상생활도 선사를 그리워하는 생각에 안정되지 못하고(皇皇)60) 몸 둘 바를 몰랐다. 다만 선사의 은혜에 보답하기를 원했는데, 관례에 따라 추천追薦61)하는 것을 제외하고 달리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마침내 비통한 마음이 너무 커지게 되어

012_0310_a_01L
嘗觀人之穀服然後爲命者必得田於
012_0310_a_02L山谷之間則理溝洫培丘壠候人時
012_0310_a_03L而擧趾取土宜而播子自春及夏
012_0310_a_04L星而出帶月而歸勿失耘鋤於潦雨赫
012_0310_a_05L曦之中而春 [2] 眷焉如嬰兒之望長也
012_0310_a_06L及其秋穫也下禾者禾下豆者豆
012_0310_a_07L百穀而無不備焉資八口而無不養焉
012_0310_a_08L夫食力者捨田安歸今有袈裟於此
012_0310_a_09L亦名福田衣也品有上下條有衆寡
012_0310_a_10L割截線裁之法非可與世稱表貴賤禦
012_0310_a_11L寒暑者同日語也天王日月以之而衛
012_0310_a_12L如來菩薩以之而受用爲叔世作福
012_0310_a_13L所依地昧昧無識焉有餘勇則徒費
012_0310_a_14L於奢華之風今城邑聚落之間不可無
012_0310_a_15L此行也特其遠見者必下種以待秋穫
012_0310_a_16L之時也

012_0310_a_17L

012_0310_a_18L報恩契序

012_0310_a_19L
始吾先師以一口刀施與小子爲物
012_0310_a_20L甚工且以銀飾雖小不得以易之
012_0310_a_21L以敬愛之深藏不行已五六年今春
012_0310_a_22L奄遭大化歎人生之如夢感恩情之浹
012_0310_a_23L出入坐作皇皇焉無所之第欲圖
012_0310_a_24L依例追薦之外然無所伸矣方出

012_0310_b_01L어떤 고통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에 보월寶月 사형과 얘기를 하게 되었고, 사형도 또한 나와 같은 뜻이 있었다. 나의 생각을 매우 기뻐하여 드디어 계契를 맺게 되었으니,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노라.
옥천사 대웅전 상량문玉泉寺大雄殿上樑文
서쪽의 성인은 온 적도 없고 간 적도 없으며, 남쪽의 선원은 융성함도 있고 쇠락함도 있는데, 한 전각 높이 우뚝 솟아 백신의 호위를 받네.
삼가 생각해 보건대, 부처님(大雄氏)께서 중생을 구제하려고 미진찰토微塵刹土62)에 나타나셨고, 참됨을 지키고자 원각가람圓覺伽藍을 떠나지 않으셨다. 모든 부처님이 해인海印63)의 백천삼매百千三昧를 똑같이 모범으로 삼고, 일념으로 녹야원(鹿苑)에서 49년 동안 설법하셨다.

沾渴回枯     목마름을 축이어도 다시 마르니
常樂我淨     상락아정64)
揔是雲雨     모두 구름과 비처럼 적시어
開迷悟性     미혹함을 열어 주고 법성을 깨달아서
胎卵濕化     태생ㆍ난생ㆍ습생ㆍ화생65)
幾乎金仙     금선金仙66)에 가까워졌네

아, 우리 말운의 중생이 때늦은 탄식을 일으키고, 지극한 공경을 다하여 명궁明宮을 세워 상像 앞에 제사를 지내니, 별이 비추고 하늘이 임하며, 단전丹田에 힘을 써 빛에 감응하니 난처럼 향기롭고 옥처럼 깨끗해지네. 볕ㆍ바람ㆍ비ㆍ추위가 모두 다 순조로우며 풀과 나무의 요사한 정기가 점차 사라지니, 이곳이 바로 이 대웅전이로다.
지나간 것은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니 천간天干의 선갑先甲과 후갑後甲 때 건립과 중건을 하였고, 옛것에 근거하여 지금의 일에 적용하니 연호로 말하면 순치順治 때와 동치同治 때이로다.67) 이미 여러 사람이 같은 생각으로 협력한 데다가 또한 시운의 좋은 때를 얻었도다. 흑색과 백색으로 엮고 이으니 꽃이 한가득 핀 듯하고, 동쪽과 서쪽에서 목재를 해 오니 일꾼들의 힘쓰는 소리 울려 퍼지네. 시일의 길흉은 이름 있는 자를 불러 그 알맞은 때를 묻고, 건물의 모양과 높낮이는 옛날의 형식을 토대로 하여서 본모습을 잃지 않았네. 안개와 노을이 골짜기를 비추니 고운 단청 환하게 빛나고, 신천神天이 제단에 이르니 밝은 달이 다시 비추네. 삼가 몇 글귀를 지어서 상량하는 것을 돕노라.

拋樑東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
海山春色映波宮  산과 바다의 봄빛 파궁을 비추네
神龍護法來朝地  신룡이 호법68)하며 이곳에 찾아오니
鎭日靈風滿碧空  신령한 바람이 푸른 하늘에 가득하네


012_0310_b_01L甚惜者則莫刀若是以放之談及我寶
012_0310_b_02L月兄兄亦有我志者也甚快之遂以
012_0310_b_03L契約以竢有成焉

012_0310_b_04L

012_0310_b_05L玉泉寺大雄殿上樑文

012_0310_b_06L
西方聖人無來而無去南地禪院
012_0310_b_07L盛而有衰一廟崔嵬百神衛護伏惟
012_0310_b_08L大雄氏度生示現於微塵刹土守眞不
012_0310_b_09L離於圓覺伽藍諸佛同規於海印百千
012_0310_b_10L三昧一念轉法於鹿苑四十九年沾渴
012_0310_b_11L回枯常樂我淨揔是雲雨開迷悟性
012_0310_b_12L胎卵濕化幾乎金仙嗟我末運衆生
012_0310_b_13L興何晩之歎致如在之敬建明宮而奠
012_0310_b_14L星照天臨効丹田而感光蘭芳玉
012_0310_b_15L暘風雨寒之咸若草妖木精之漸消
012_0310_b_16L是殿也有往必回撫天干之先甲後甲
012_0310_b_17L援今證古稱年號之順治同治已矣協
012_0310_b_18L衆謀之僉同亦云得運期之良會締緣
012_0310_b_19L於黑白開花滔滔寫材於東西勸力
012_0310_b_20L許許時日吉否詣名家而諏宜軆勢
012_0310_b_21L崇卑蹈舊本而勿失煙霞暎洞玩金
012_0310_b_22L碧之奐新神天赴壇瞻月輪之再照
012_0310_b_23L恭惟覓句乃助荷樑拋樑東海山春
012_0310_b_24L色映波宮神龍護法來朝地鎭日靈風

012_0310_c_01L拋樑南      들보 남쪽으로 던지니
廻溪春水綠於藍  굽이쳐 흐르는 봄물 쪽빛보다 푸르네
瀹茗古來人不見  차를 달이는 옛사람은 보이지 않고
靑烟縷縷滴閒龕  푸른 아지랑이 올올이 한가한 감실에 내려앉네

拋樑西      들보 서쪽으로 던지니
老檜黏天日欲低  오래된 전나무 하늘에 닿을 듯 해는 저물려 하네
誦罷金剛無住相  금강경을 읽고 나니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白雲時復護丹梯  흰 구름은 때마침 일어나 붉은 계단69) 호위하네

拋樑北      들보 북쪽으로 던지니
滿山松桂雲霞色  산에 가득 솔과 계수 구름과 안개 빛이네
明星後夜起徘徊  밝은 별이 떠오른 밤 일어나서 배회하니
一境無涯虛室白  온 경계가 사라져 텅 빈 방만 환하네

拋樑上      들보 위쪽으로 던지니 彩雲明滅聞仙響  채색 구름 나타났다 사라지고 신선의 소리 들리네
春風咫尺廣寒樓  봄바람 지척에서 광한루70)에 불어오니
手折瑶花取次賞  손으로 어여쁜 꽃 꺾어 놓고 감상하네

拋樑下      들보 아래쪽으로 던지니
紫霞門前駐車馬  자하71) 문 앞에 말과 수레 머무르네
可憐新燕汙袈裟  가련타 새로 온 제비가 가사를 더럽히는 동안
高僧幾度坐長夏  고승은 몇 번이나 긴 여름을 지냈던가

삼가 들보를 올린 뒤에 승려들(玄徒)이 모여들고 선업(白業)이 날로 증장하여서, 수월계水月界에 의거하여 경을 풀이함에 천마天魔72)가 음악을 연주하고, 연화태蓮花胎73)에 들어가 계를 들음에 지지地祗74)가 상서로움을 드리우길 바라노라.
운흥사75) 극락전 상량문雲興寺極樂殿上樑文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76) 볼품없는 터전에서 재난의 흔적(劫灰)77)을 어루만지며 슬픔에 젖었었는데, 이렇듯 상실象室78)과 앙려鴦廬79)의 넓고 좁은 규모와 모양을 온갖 솜씨 다 부려서 정성을 다하니, 사물이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가는 것과 같고, 마치 허공의 꽃이 어지럽게 피고 지는 것과 같도다.
생각하건대, 이 절은 동쪽으로는 명승지에 둘러싸였고, 남쪽으로는 바다를 접한 좋은 사찰이다. 을진방乙辰方80)으로 뻗은 산맥을 따라 저 멀리 지리산의 푸른빛에 인사하고, 갑자甲子81)에 머물러서 천계天啓의 세월을 추억하네. 붉은 용마루는 빗살처럼 빽빽하게 늘어섰고, 푸른 기와는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로 잇닿았네. 발우를 씻고 음식을 나눠 주며 덕업을 닦으니 안개가 모이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며, 경을 펴내어 불사를 일으켜 신령함을 드러내니 바람이 맑아지고 달이 밝아졌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중세에 화재(丙丁)를 만나, 실로 서쪽(兌)과 남서쪽(坤)에서부터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계속해서 쇠락하여 마치 가을에 서리 맞은 나뭇잎과 같게 되었고, 보존된 것이 거의 없어서 해 질 녘 나무꾼 노랫소리에 속절없이 서럽기만 하였네.
근래에 금하 상인錦河上人이라는 분이 행동에는 풍류가 있었고,

012_0310_c_01L滿碧空拋樑南廻溪春水綠於藍
012_0310_c_02L茗古來人不見靑烟縷縷滴閒龕拋樑
012_0310_c_03L西老檜黏天日欲低誦罷金剛無住相
012_0310_c_04L白雲時復護丹梯拋樑北滿山松桂雲
012_0310_c_05L霞色明星後夜起徘徊一境無涯虛室
012_0310_c_06L拋樑上彩雲明滅聞仙響春風咫
012_0310_c_07L尺廣寒樓手折瑶花取次賞拋樑下
012_0310_c_08L紫霞門前駐車馬可憐新燕汙袈裟
012_0310_c_09L僧幾度坐長夏伏願上樑之後玄徒輻
012_0310_c_10L白業日長據水月界而演經天魔
012_0310_c_11L奏樂入蓮花胎而聽戒地祗呈祥

012_0310_c_12L

012_0310_c_13L雲興寺極樂殿上樑文

012_0310_c_14L
燕麥菟葵下中之田撫劫灰而茹悵
012_0310_c_15L象室鴦廬濶狹之制運意匠而罄精
012_0310_c_16L夫物事之忽往忽來如空花之亂起亂
012_0310_c_17L竊惟是寺東屏勝地南海名藍
012_0310_c_18L脈於乙辰遙揖智異之蒼翠卓錫於甲
012_0310_c_19L追憶天啓之光陰朱棟櫛比碧瓦鱗
012_0310_c_20L行水賦食而脩業霧合雲蒸開經
012_0310_c_21L作梵而揚靈風淸月白不幸中世
012_0310_c_22L値丙丁災而掃地實由坤兌維而飛煙
012_0310_c_23L零替相隨猶似秋天之霜葉保存無幾
012_0310_c_24L空歎夕陽之樵歈今者錦河上人體有

012_0311_a_01L마음에는 불사佛事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누런 흙먼지 이는 속세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인연을 모으고 합하였으며, 흰 눈 내린 깊은 산의 암자에 도롱이를 쓰고 올라 도움을 얻기를 청하였다. 이에 기술자들 가운데서도 뛰어난 인재(翹楚)82)들에게 명을 하였으며, 진실로 옛것을 복원하는 가운데 그 근본(權輿)83)을 살피고 헤아렸다. 차를 따른 뒤에도 푸르도록 서늘한 것은 바위산의 몇몇 봉우리요, 구름을 뚫고 툭 튀어나온 것은 용머리 끝의 한 모서리이네. 처음에 아름다운 그 이름84)을 비록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에서 따온 것이라 하지만은, 기이한 경치들을 두루 살펴보니 모두 이 동해의 선경仙境에 비해서는 못하도다. 이에 들보를 옮기게 되어 상량의 노래85)를 올리노라.

拋梁東      들보 동쪽으로 던지니
一溪春草綠濛濛  한 시내의 봄풀들은 푸릇푸릇 하늘하늘
幽人日采黃精去  은자는 낮 동안에 황정86)을 캐어 가고
石路脩林線線通  돌길은 먼 숲으로 실처럼 이어졌네

拋梁南      들보 남쪽으로 던지니
黃梅微雨暎空潭  초여름의 가는 비87)가 빈 연못을 채우네
午窻時有薰風至  한낮 창가에 때때로 훈풍이 불어오는데
眼碧頭陀對兩三  눈이 푸른 두타승88) 두어 명이 마주했네

拋梁西      들보 서쪽으로 던지니
古樹繁華夕陽齊  옛 나무의 풍성한 꽃과 석양이 나란하네
一塔香煙消不盡  탑 하나에 향 연기 사라질 줄 모르는데
近山靑黑遠山低  근처 산은 검푸르고 먼 산은 나직하네

拋梁北      들보 북쪽으로 던지니
雨雪深山情未極  눈 오는 깊은 산의 정회는 끝이 없네
念念彌陀不絶音  생각마다 아미타불 끊임없이 불렀더니
舌端也有靑蓮色  혀끝에서 푸른 연꽃89)의 빛깔이 감도네

拋梁上      들보 위쪽으로 던지니
諸天法皷飛淸響  제천90)에 법고91) 소리 날리듯 맑게 울리네
空山衆石點頭時  텅 빈 산에 많은 돌이 머리를 찧는92) 때에
况復人生除禍瘴  인생의 온갖 재난 제거하는 것쯤이야

拋梁下      들보 아래로 던지니
滿眼叅差一指也  눈 한가득 들쑥날쑥 산들 모두 하나이네93)
可愛山中白髮子  가까이 할 만한 건 산속에 백발의 노인이요
碧天只看微雲惹  파란 하늘에 보이는 건 옅은 구름 이는 것뿐이네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에 해왕海王과 산신山神이 이곳에 나란히 이르고, 문룡文龍과 의호義虎가 서로 이끌어서 찾아오며, 팔도八道를 두루 돌고 밝게 말하길 ‘아마도 석존께서 그들을 교화하시어 바람 불고 파도치듯 빠르고 널리 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며, 한 분(一人)94)을 위하여 술을 올려 장수를 기원하니 나라를 길이 보전하고 갈수록 발전하고 성대해지소서.
고환95) 거사 「의책」 발문(古歡居士擬策跋)
예전에 한 객이 있었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풍구병96)에 걸린 두타(風句病頭陀)’라고 했다. 그는 팔도를 여행하면서

012_0311_a_01L風流志切佛事放跡於黃塵世界
012_0311_a_02L合諸緣擔簦於白雪山庵請得相助
012_0311_a_03L迺命運斤之翹楚允度復古之權輿
012_0311_a_04L茶次而蒼寒巖嶽數笏破雲竇而突兀
012_0311_a_05L屋角一圭肇錫嘉名雖云取適於彌陀
012_0311_a_06L佛土歷詮奇境摠是下風於蓬渤仙區
012_0311_a_07L玆迨脩樑之移宜呈兒郞之頌拋梁東
012_0311_a_08L一溪春草綠濛濛幽人日采黃精去
012_0311_a_09L路脩林線線通拋梁南黃梅微雨暎空
012_0311_a_10L午窻時有薰風至眼碧頭陀對兩三
012_0311_a_11L拋梁西古樹繁華夕陽齊一塔香煙消
012_0311_a_12L不盡近山靑黑遠山低拋梁北雨雪
012_0311_a_13L深山情未極念念彌陀不絕音舌端也
012_0311_a_14L有靑蓮色拋梁上諸天法皷飛淸響
012_0311_a_15L空山衆石點頭時况復人生除禍瘴
012_0311_a_16L梁下滿眼叅差一指也可愛山中白髮
012_0311_a_17L碧天只看微雲惹伏願上樑之後
012_0311_a_18L海王山神比此而至文龍義虎相率
012_0311_a_19L而來匝八域而昭云庶見釋迦敎之
012_0311_a_20L騰波揚爲一人而獻壽永保邦家籙之
012_0311_a_21L月恒日昇

012_0311_a_22L

012_0311_a_23L古歡居士擬策跋

012_0311_a_24L
昔年有一客自稱風句病頭陀遊行域

012_0311_b_01L이름난 산과 절경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찾아갔으며, 높은 곳은 반드시 다 올라가 보고 험한 곳도 끝까지 가 본 뒤에야 그쳤다.
내가 처음 백두산의 지류에서 그를 만나서, 가시 풀을 깔고 앉아 담소를 나누었는데, 낯빛이 매우 기뻐하는 듯했다. 후에 금강산(蓬萊)의 영원동靈源洞97)에서 다시 만나서, 함께 산중에 머무른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머무는 동안 그의 사람됨을 매번 관찰해 보니, 한 가지의 재주도 능한 것이 없었고, 또 무심히 아무 일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때때로 앉아서 조는 것을 좋아했는데, 맞이한 손님이 종종 인사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98) 술을 잘 마셔서 한 말도 마셨지만, 술을 권하지는 않았고 스스로 술자리를 만들지도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시를 주고받는 사이에 차가운 밤경치를 마주하기도 하였으며, 종종 시를 읊는 것이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기억하여 암송하는 시가 어떤 책에 있는 것인지, 혹은 스스로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모두 근래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문은 아니었다. 예전부터 책 상자(巾衍)를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았고, 또한 붓과 벼루를 곁에 두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지은 저술과 다다른 경지를 알 수가 없었다. 매번 팔을 베고 누울 때면 마치 자는 모습처럼 보였지만, 일어날 때는 문득 나지막이 시문을 읊으니 마치 회통한 바가 있는 듯하였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말해 주지도 않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간혹 몇몇 사람이 그가 도道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서 그와 함께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그 주제가 현묘한 이치에 이르면 문득 크게 웃으며 손을 허공에 저을 뿐이었다.
한 승려가 몰래 외운 두 편의 짧은 시를 적어 두었다가 나에게 알려 주었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幾度欲爲僧    몇 번이나 중 되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見僧心復慢    중만 보면 그 생각은 저만치 달아나네
忽瞻常白峰    문득 상백봉99)을 바라보고는
稽首大羅漢    대나한100)께 머리 숙이네101)
欲捉九條龍    아홉 마리 용102)들을 잡아 보려고
行窮八潭趾    여덟 곳의 연못103) 터를 다 둘러보았네
此物已神變    이것들이 신묘하게 변화하여
化作蓬萊水    금강산의 물이 되어 버렸구나104)

이 시가 의심할 여지 없이 그가 지은 것임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매우 놀랍고도 기뻤다.
비록 나와 함께 오래도록 머물렀지만, 시비를 가리거나 논쟁을 벌인 적이 없었다. 다만 내가 매번 젊은 승려들(小徒)과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문득 옆에서 듣고는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명쾌하네.”라고 말하거나, 또는 “훌륭하네.”라고 말했다. 내가 비록 질문할 수는 없었지만, 나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 준 것이리라.
하루아침에 별안간 이별하였는데, 그 이후에 다시는 그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출가한 지 20년(臘)이 되었을 때 그해 가을에 내가 황매산(黃梅)105)에 간 적이 있었는데, 가던 길에 광려산(匡廬)106)을 지나다가 세 갈래 폭포(三瀑) 옆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발을 씻고 머리를 말리다가 그를 보고서 황급히 달려가

012_0311_b_01L聞有名山勝境輒造焉必窮高極
012_0311_b_02L險而止始余遇於白頭之旒班荊而談
012_0311_b_03L色似甚喜後又遇於蓬萊之靈源洞
012_0311_b_04L處山中旣久習覩其爲人無一技能
012_0311_b_05L又治 [3] 然無所營時嘗好瞌睡對客徃徃
012_0311_b_06L不能辭而去能飮酒至斗然非勸酬
012_0311_b_07L不自謀也喜諷詠間値寒宵景徃徃
012_0311_b_08L吟誦達曙然不知所記者何書或自有
012_0311_b_09L著述否皆非近人所習也未嘗以巾衍
012_0311_b_10L自隨又不蓄筆硯故人莫窺其所造所
012_0311_b_11L輒以肱支首而卧若就睡狀起輒
012_0311_b_12L微諷若有所會然不以吿人叩亦不
012_0311_b_13L或疑其有道與之譚及玄理輒大
012_0311_b_14L以手曳空而已有僧竊記所諷二小
012_0311_b_15L以吿余詩曰幾度欲爲僧見僧心
012_0311_b_16L復慢忽瞻常白峰稽首大羅漢欲捉
012_0311_b_17L九條龍行窮八潭趾此物已神變
012_0311_b_18L作蓬萊水余遽驚喜知其爲所作無疑
012_0311_b_19L與余雖久處然無所辨難但余每與小
012_0311_b_20L徒說輒旁聽以手叩膺曰快哉已而
012_0311_b_21L又曰奇哉余雖不能問蓋處余以相契
012_0311_b_22L一朝別去不復知其所在且二十
012_0311_b_23L臘矣是秋余有黃梅之行路經匡廬
012_0311_b_24L忽又遇於三瀑之傍方濯足晞髮遽輟

012_0311_c_01L그의 손을 맞잡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가 나무숲 사이의 작은 초막집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곳이 내가 머무르는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그곳에 가 보니, 소나무로 울타리를 치고 대나무로 집을 지어 산뜻하고 정갈하여 신선이 머무는 곳과 같았다. 그는 나에게 기장으로 만든 밥을 대접해 주었고, 그 아들을 소개해 주었다. 내가 “두타께선 어떻게 이곳에 머물게 되셨는지요?”라고 묻자, “그저 인연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요.”라고 답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어 그와 함께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평소 품었던 생각들을 죄다 말하였다. 대화는 고금古今을 넘나들고 유묵儒墨107)을 왔다 갔다 하면서 흥미진진하여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옛날의 벙어리 두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지은 「의책擬策」을 얻어서 한번 쭉 훑어보고 깊이 궁리하지는 않았지만, 사리가 훤히 밝혀져 있고 문채가 환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게다가 글의 내용이 속세의 법(世法) 전반에 관한 내용을 폭넓게 다루고 있었다. 내가 씩 웃으며 말하길 “두타께서도 결국 이러한 생각에 묶여 버리셨군요.”라고 했다. 그러자 크게 한숨 쉬며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이미 오래전에 지어 놓고 버려두었던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예전의 만남에서는 말없음(無言)으로 뛰어나더니, 오늘의 만남에서는 말(言)로 뛰어난 것을 보니, 나는 흐뭇했다. 묵묵함은 천둥소리와 같고 말은 쉽사리 넘지 못할 장벽과 같으니, 이것이 어찌 두 법이겠는가? 세간을 벗어난 일이나 세상을 경영하는 일이나 또한 이와 같을 뿐이리라. 또 군사 제도를 변혁하고 가구에 부과되는 세금을 균등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 시급한 정무에도 잘 들어맞았을 뿐만 아니라, 현 상황이나 변화에 잘 맞게 대처하였으니, 도道를 들은 자가 아니라면 말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뛰어나구나, 두타여! 그는 참으로 도를 들은 자로다. 그러나 옛날 유마 거사108)께서 세상을 위하여 병에 걸리셨듯이 두타도 이것을 행하였는지 두타도 과연 병이 나셨구나. 비성沸星109)이 뜨던 날 장백 노인長白老人 세옹蛻翁이 짓다.

012_0311_c_01L相持喜甚指樹間小茆茨曰是余
012_0311_c_02L所住也余遂造焉松㰚竹屋蕭灑有
012_0311_c_03L仙致具忝 [4] 餉余見子焉余詫曰頭陀
012_0311_c_04L安得有此笑曰聊應緣爾余爲留一宿
012_0311_c_05L與之談徃事討本懷揚控古今出入
012_0311_c_06L儒墨娓娓不猒非復昔日啞頭陀也
012_0311_c_07L因得所著擬策驟閱一過未及深究
012_0311_c_08L然事理暢然詞采曄然蓋又世法中宏
012_0311_c_09L論也余又哂曰頭陀竟爲此念所累也
012_0311_c_10L太息曰有是哉然久已謝遣之矣
012_0311_c_11L是余喜前日之遇以無言爲奇矣而今
012_0311_c_12L日之遇又以言爲奇默如雷霆言如
012_0311_c_13L墻壁豈二法乎出世經世亦猶是耳
012_0311_c_14L且其變軍制均戶賦之論非但切中時
012_0311_c_15L務也運機通變非聞道者則不能道
012_0311_c_16L奇哉頭陀其眞聞道者歟雖然昔
012_0311_c_17L者維摩居士爲世示疾頭陀而爲此乎
012_0311_c_18L則頭陀果病矣夫沸星出日長白老人
012_0311_c_19L蛻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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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강항령强項令 : 강직하여 권력에 굴하지 않는 관리나 현령縣令을 이르는 말로, 후한後漢 때 낙양령洛陽令 동선董宣의 고사에서 생긴 말이다. 그는 광무제光武帝의 손위 누이인 호양 공주湖陽公主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인죄를 저지른 그녀의 종을 끌어내 죽였다. 이에 광무제가 공주에게 머리 숙여 사죄할 것을 명하였으나 그가 따르기를 거부하자, 억지로 그의 머리를 숙이게 했다. 그러나 그는 양손으로 땅을 짚고 끝내 머리를 숙이지 않았고, 이에 광무제는 죽음을 두려워 않는 그의 강직함에 탄복하여, ‘강항령’이라는 명칭과 돈 30만 냥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2. 2)삼도의 도원수(三路帥) : 삼로三路는 삼도三道의 다른 말로, 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수帥’는 군軍의 통수권자를 말한다.
  3. 3)조맹부趙孟頫(1254~1322) : 중국 원대의 관료이자, 서화가. 자는 자앙子昻, 호는 송설도인松雪道人이다. 시문과 서화에 능해 원대의 제일인자로 손꼽힌다.
  4. 4)‘점심點心’ 한 칙 : 중국 당나라 때 『金剛經』에 통달한 덕산德山(782~865) 스님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길에서 떡을 파는 노파를 만났다. 노파가 “스님의 바랑에 무엇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스님이 “『금강경소초金剛經疏抄』가 들어 있소.”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대답을 하면 떡을 공짜로 주겠다고 하였다. 덕산 스님이 자신 있게 좋다고 하자, 노파가 묻기를 “『금강경』에 이르기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겠습니까(點心)?”라고 하자, 스님은 노파의 그 한마디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5. 5)나한송羅漢頌 : 북송北宋 때 문인인 소식蘇軾(1036~1101)이 지은 ≺十八大阿羅漢頌≻을 말한다.
  6. 6)얻는 바가~일어나지 않는다 : 『維摩詰所說經』 「佛國品」에 나오는 구절이다. ‘얻는 바가 없는 경지(無所得)’라는 말은 모든 방편을 구족하게 얻어서 얻었다는 생각조차 없는 경지를 말하며, ‘법인에서 일어나지 않는다(不起法忍)’는 말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달아 거기에 안주하여 마음을 일으키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7. 7)종밀宗密(780~841) : 과주 사람으로 성은 하씨. 27세에 수주 도원 화상의 설법을 듣고 그를 따라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도원의 권유로 정중사 신회의 제자인 남인 선사를 참배하고, 그 후 청량 징관의 좌하에서 화엄교학을 수지하여 화엄 제5조가 되었다. 『禪源諸詮集』을 지어 선과 교의 일치를 주창하였다.
  8. 8)시우산施愚山(1618~1683) : 중국 청나라 초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시윤장施閏章을 말한다. 자는 상백尙白, 호는 확재蠖齋·우산愚山이다. 지방장관으로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시불자施佛子’로 일컬어졌으며, 시인으로서는 송완과 함께 ‘남시북송南施北宋’으로 일컬어졌다. 주요 저서로 『學餘堂詩文集』이 있다.
  9. 9)금원산金猿山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과 북상면 그리고 함양군 안의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옛날 이 산속에 금빛 나는 원숭이가 날뛰므로 한 도사가 바위 속에 가두었다는 전설에 따라 금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산중턱에 있는 그 바위를 금원암 또는 원암猿巖이라고 한다.
  10. 10)투자投子 : 당나라 때의 선사禪師이다. 성은 유劉씨이고, 취미翠微의 법을 이었으며, 서주 회령현 사람이다.
  11. 11)동산洞山 : 당나라 때의 고승高僧인 양개 선사良介禪師이다. 선종禪宗 조동종曹洞宗의 시조로 성은 유씨兪氏이고, 만년에 동산에 살며 명성을 떨쳤으므로 산 이름인 동산이 별호가 되었다.
  12. 12)풍간豊干과 습득拾得 : 풍간은 당나라 때의 승려로,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서 살았다. 더벅머리에 눈썹까지 기르고, 늘 베옷을 입었다. 낮에는 쌀을 빻아 승려에게 공양하고, 밤에는 경방扃房에서 시를 읊었다. 누가 불교의 이치를 물으면 언제나 “형편대로(隨時)”라고 대답할 뿐 다른 말이 없었다. 이 풍간이 주운 아이가 바로 습득拾得 대사이다.
  13. 13)풍광風狂 : 본래는 미친 사람을 이르는 말로, 형식이나 격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풍류를 즐기는 도인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풍간豊干, 한산寒山, 습득拾得은 모두 당대唐代에 대표적인 풍광승들이다.
  14. 14)몇 번 잠잔 곳(三宿) : 삼숙三宿은 잠을 세 번 잔다는 뜻으로, 『四十二章經』의 뽕나무 밑에서 3일 밤을 자면서 도道를 닦은 승려가 그곳을 잊지 못하여 그리움이 생겼다는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 곳에서 3일을 지내면 그곳을 잊지 못하여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로 쓰인다.
  15. 15)우산愚山 : 주 8 참조.
  16. 16)소림사(少室) : 소실少室은 소림사가 있는 중국 숭산의 봉우리 이름이기도 하고, 소림사를 직접 가리키기도 한다.
  17. 17)위당부자威堂夫子 : 조선 후기 무신이자 외교가인 신헌申櫶을 말한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초명은 관호觀浩이다. 자는 국빈國賓, 호는 위당威堂·금당琴堂·우석于石이다. 전형적인 무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당대의 석학이며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김정희金正喜 문하에서 다양한 실사구시적인 학문을 수학하였다. 그리하여 무관이면서도 독특한 학문적 소양을 쌓아 유장儒將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또 개화파 인물들인 강위姜瑋·박규수朴珪壽 등과 폭넓게 교유하여 현실에 밝은 식견을 가질 수가 있었다.
  18. 18)지자智者 : 수隋나라 때 천태종天台宗의 조사祖師이다. 이름은 지의智顗, 자는 덕안德安이고, 속성은 진씨陳氏로, 스승은 남악南岳의 혜사 대사慧思大師이다.
  19. 19)제천諸天 : 모든 하늘을 말한다. 욕계의 육욕천六欲天, 색계의 십팔천十八天, 무색계의 사천四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20. 20)향농 도인香農道人 : 조선 말기의 무신인 신정희申正熙를 말한다.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자는 중원中元이며, 호는 향농香農이다. 판중추부사 신헌申櫶의 아들이다. 정약용丁若鏞의 실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초기 개화론자에 속한다.
  21. 21)광려匡廬 : 은殷·주周의 교체기에 광유匡裕 형제 일곱 명이 초막을 짓고 살았던 여산이라는 뜻으로, 중국의 명산인 여산廬山의 별칭으로 쓰인다. 무주 덕유산德裕山의 별칭이기도 하다.
  22. 22)수달須達 : 인도 사위성舍衛城의 수달 장자須達長者가 석가의 설법을 듣고 매우 경모하여 정사精舍를 세워 주기 위해 기타 태자祇陀太子의 원림園林을 구매하고자 하였다. 기타 태자가 장난삼아 ‘이 땅에 황금을 깔면 팔겠다’고 하였다. 수달 장자가 자기 집의 황금을 코끼리에 싣고 와서 그 땅에 가득 깔자, 기타 태자가 감동하여 자기의 땅을 파는 한편 자기도 자기 숲의 나무를 제공하여, 마침내 기원정사祇園精舍가 건립됐다고 한다.
  23. 23)대지大智 : 당나라 중기의 선승 백장 회해百丈懷海(720~814)를 말한다. 속성俗姓은 왕王씨고, 이름이 회해며, 시호는 대지선사大智禪師이다. 백장산百丈山에 오래 머물러 백장 선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각조覺照 또는 홍종 묘행弘宗妙行이라는 별칭도 있다. 20살 때 서산 혜조西山慧照를 따라 출가했다. 백장산에 향존암鄕尊庵(백장사百丈寺)을 창건하여 선풍을 일으키고, 선종의 규범인 『百丈淸規』를 제정하였다.
  24. 24)향엄香嚴의 대나무를 쪼갤 것 : 향엄 선사가 위산 영우僞山靈祐 선사로부터 “부모가 그대를 낳기 전 그대의 본래 면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때까지 본인이 공부해 온 모든 것을 동원해 답을 내고자 하였으나, 답을 낼 수 없었다. 이에 향엄이 위산 스님에게 그 답을 물었으나, 위산 스님은 그 답을 주지 않았다. 그 답은 위산의 답일 뿐 향엄의 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향엄 스님은 “화병불가충기畵餠不可充飢(그림의 떡은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그간 배웠던 모든 것을 버리고 답을 찾으러 행각에 나선다. 어느 절에 들러 잡초를 뽑다가 깨진 기왓장을 멀리 집어 던졌는데, 그 기와 파편이 대나무에 부딪쳐 깨지는 소리에 홀연 모든 의심이 풀리면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25. 25)영운靈雲의 복숭아를~쪼갤 것이다 : “영운靈雲은 복숭아꽃이 피는 것을 보고 의정이 모두 청정해졌으며, 향엄香嚴은 대나무 쪼개지는 소리를 듣고 기존의 지견을 문득 벗어났다고 한다.(桃華盛開。 靈雲疑情盡淨。 擊竹作響。 香嚴頓忘所知。)”라고 전한다. 『五燈會元』 (X80, 435c).
  26. 26)정념正念 : 팔정도八正道의 하나로, 사량 분별과 삿된 생각을 버리고 항상 대도정법大道正法을 생각하여 수행 정진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27. 27)태전太顚 :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禪僧이다. 석두石頭 화상의 법을 이었고, 조주潮州에서 살았다.
  28. 28)난융嬾融(594~657) : 당나라 때의 선승인 우두 난융牛頭嬾融으로, 우두 법융牛頭法融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하나인 우두선牛頭禪의 종조宗祖이다. 20년간의 묵좌默坐로 깨우침을 얻은 후 좌선을 계속했다.
  29. 29)닭과 오리(鷄鴨)가~것은 같듯이 : 『禪門拈頌』 제1221칙에 선의禪意와 교의敎意의 뜻이 같은지를 묻는 물음에 “닭은 추우면 나무 위로 올라가고, 오리는 추우면 물 아래로 내려간다.(鷄寒上樹。 鴨寒下水。)”라고 답한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같은 추위에 대하는 방식이 다를 뿐 그 뜻은 같다는 것을 말한다.
  30. 30)깨달음(妙明) : 묘명妙明은 생각과 논의가 미칠 수 없이 밝다는 뜻으로, 부처의 신비로운 깨달음을 이르는 말이다.
  31. 31)포단蒲團 : 부들로 둥글게 틀어 만들어서 깔고 앉는 방석方席으로, 승려가 좌선할 때에 쓴다.
  32. 32)벙어리 양(啞羊) :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33. 33)청련靑蓮 : 푸른 연꽃으로, 우발라화라 하기도 한다. 불교에서 연꽃은 극락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데 여기서는 극락세계에서 깨달음의 지혜를 갖고 태어난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34. 34)조사의 심인(祖印) : 조사祖師가 글이나 말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깨달음이나 깨달음에 대한 확실한 인증을 말한다.
  35. 35)정중定中 : 모든 번뇌와 장애를 정화한 가운데 항상 안정되고 청정한 상태에 있는 정중의식을 말한다.
  36. 36)천화天花 : 천상계에 핀다는 영묘한 꽃을 말한다.
  37. 37)보개寶盖 : 보옥寶玉으로 꾸며 놓은 화려한 일산日傘을 말한다.
  38. 38)옥국의 선인(玉局仙人) : 옥국玉局은 본래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 있는 도관道觀의 이름인데, 여기서는 속세와 달리 신선이 머무는 별천지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39. 39)현묵玄默 : 선종禪宗의 현묘玄妙하고 묵묵한 도道를 이르는 말이다.
  40. 40)소회昭回 : 해·달·별 같은 것이 환히 비추어 도는 것을 말한다.
  41. 41)문풍門風 : 한 집안에 전해 오는 범절이나 풍습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불교 선종에서 전해 오는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말한다.
  42. 42)동천洞天 :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를 뜻하는 말로, 경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곳을 말한다.
  43. 43)사관寺觀 : 불교의 사원寺院과 도교의 도관道觀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수행을 위해 머무는 곳이나 의례를 치르기 위해 지은 집. 여기서는 사찰의 의미로 쓰였다.
  44. 44)청중淸衆 : 선원에서 청정하게 수행하는 대중을 이르는 말이다. 대중 스님들을 청정하게 통솔하는 승려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45. 45)서신(便梯) : 편제便梯는 원래 양쪽을 이어 주는 사다리 같은 도구를 의미하나 여기서는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글이나 편지를 가리킨다.
  46. 46)콧구멍(鼻孔) : 인간의 본래 모습으로,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본성本性, 즉 불성佛性을 말한다.
  47. 47)수정(郢斤) : 영근郢斤은 영郢 지역의 도끼질이라는 말로, 다른 사람의 글을 잘 고친다는 뜻으로 쓰인다. 『莊子』 「徐无鬼」에 “영郢 땅 사람이 코끝에 백토白土를 얇게 묻혀 놓고 장석匠石에게 그것을 깎아 내게 하였다. 장석이 도끼를 휘둘러 백토를 다 깎아 내었는데도 코가 전혀 다치지 않았고, 영 땅 사람도 조금의 동요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48. 48)정례頂禮 : 이마를 땅에 대고 가장 공경하는 뜻으로 하는 절을 말한다.
  49. 49)심향心香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향을 불살라서 부처에게 바치는 깨끗한 마음을 가리킨다.
  50. 50)여름(南訛) : 남와南訛는 여름에 사물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여름 자체를 말한다.
  51. 51)은하수(雲漢) : 운한雲漢은 은하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詩經』에 ≺雲漢≻이라는 시가 있는데, 가뭄을 당해 노심초사하는 임금의 모습을 노래한 시이다.
  52. 52)증상蒸嘗 : 겨울에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인 증제蒸祭와 가을에 올려 지내는 제사인 상제嘗祭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53. 53)흠향하옵소서(尙饗) : 상향尙饗은 제문祭文의 끝에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말로, ‘바라건대 혼백이 내려오셔서 제사음식을 흠향하시라(庶幾來饗)’는 뜻이다.
  54. 54)설파 대사雪坡大師(1707~1791) : 조선 후기 선승인 상언 대사尙彦大師. 해인사에 들어가 『大經抄』를 교정하고, 금강산·두류산·묘향산 등에서 좌선에 힘썼다. 1770년 징광사澄光寺에 불이 나서 『華嚴經』 80권의 판목이 전소되자, 사재를 들여 새로 조판하여 영각사靈覺寺에 장경각을 짓고 그곳에 안치하였다. 저서에 『鉤玄記』가 있다.
  55. 55)법보法寶 : 불교의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 중의 하나로, 불경佛經을 보배에 비유하여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화엄각에 보관되어 있는 『華嚴經』을 말한다.
  56. 56)구름이 하늘에~잔치하고 즐긴다 : 『周易』 수괘需卦의 상사象辭이다. 음식과 관계된 내용에서 흔히 인용하는 말로, 여기서 다루는 글의 소재가 불량佛糧이기 때문에 인용한 말이다.
  57. 57)농사 때(人時) : 인시人時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시기라는 뜻으로, 봄갈이·김매기·가을걷이 따위 일을 하는 바쁜 농사철을 이르는 말이다. 민시民時라고도 한다.
  58. 58)밭을 갈고(擧趾) : 거지擧趾는 발을 들어 쟁기를 밟으며 밭을 가는 것을 말한다.
  59. 59)조條 : 직사각형의 베 조각들을 세로로 나란히 꿰맨 것을 1조라고 한다. 5조를 가로로 나란히 꿰맨 것을 안타회, 7조를 가로로 나란히 꿰맨 것을 울다라승, 9조 내지 25조를 가로로 나란히 꿰맨 것을 승가리라고 한다.
  60. 60)안정되지 못하고(皇皇) : 경황이 없는 모양을 말한다. 『小學』 제4 「稽古篇」에 “안정이 초상 치르기를 잘하여, 부모가 처음 돌아가심에 마음이 급하여 허둥지둥하는 것이 마치 구하여도 얻지 못한 것 같았다.(顔丁善居喪。 始死皇皇焉如有求而弗得。)”라는 내용이 있다.
  61. 61)추천追薦 : 죽은 사람을 위하여 공덕을 베풀고 그 명복을 비는 것을 말한다.
  62. 62)미진찰토微塵刹土 : 작은 먼지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세계를 말한다.
  63. 63)해인海印 : 우주의 모든 만물을 넓은 바다가 그대로 나타내듯이 우주의 일체를 깨달아 아는 부처의 지혜를 말한다.
  64. 64)상락아정常樂我淨 : 열반의 사덕四德을 말한다. 즉 열반의 경지는 생멸의 변천함이 없고(常), 괴로움을 떠나서 무위의 안락함이 있으며(樂), 망집妄執의 아我를 여의고(我), 번뇌의 더러움을 여의어 청정한 것(淨)을 말한다.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오汚에 대칭한 말이다.
  65. 65)태생·난생·습생·화생(胎卵濕化) : 일체 중생이 태어나는 네 가지 유형으로 사생四生을 말한다. 태생은 태를 통해 태어나는 것, 난생은 알로 태어나는 것, 습생은 습지에서 태어나는 것, 화생은 다른 물건에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의 업력에 의하여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66. 66)금선金仙 : 금빛 나는 신선이라는 뜻으로, 불타의 다른 이름이다.
  67. 67)순치동치順治同治 : 순치는 청 세조 때의 연호로 1644년~1661년 사이, 순치 1년은 갑신년(1644)이다. 동치는 청 목종 때의 연호로 1862년~1874년 사이, 동치 3년은 갑자년(1864)이다. 위의 상량문에서 선갑은 순치 연간을 말하며, 이 기간에 옥천사가 중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갑은 동치 연간이고 중창된 옥천사를 다시 중건하였다.
  68. 68)호법護法 :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신룡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이다.
  69. 69)붉은 계단 : 신선 세계를 찾아가는 산길을 말한다.
  70. 70)광한루廣寒樓 : 달 속의 선궁仙宮인 광한궁廣寒宮의 누각이라는 말로, 여기서는 대웅전을 가리킨다.
  71. 71)자하紫霞 : 신선이 사는 곳에 서리는 노을이라는 뜻으로, 신선이 사는 궁전을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는 대웅전을 비유한 말이다.
  72. 72)천마天魔 : 사마四魔의 하나로, 욕계欲界의 꼭대기에 있는 제6천의 주인이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 앉아 수도할 때에 천마가 와서 성도成道를 방해하려 하였으나, 부처님이 선정에 들어 항복받았다고 한다.
  73. 73)연화태蓮花胎 :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은 모두 연꽃 속에서 난다고 하여 연꽃을 모태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74. 74)지지地祗 : 지신地神, 곧 땅의 신령을 이르는 말이다.
  75. 75)운흥사雲興寺 :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 와룡산臥龍山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676년 의상 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임진왜란 때 사명 대사四溟大師가 승병 6천여 명을 이끌고 이곳에서 왜적과 싸웠다고 하며, 이때의 병화로 소실된 것을 1651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76. 76)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燕麥菟葵) : 연맥토규燕麥菟葵, 즉 귀리(燕麥)와 아욱(菟葵)이다. 주로 폐허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의미한다.
  77. 77)재난의 흔적(劫灰) : 겁회劫灰는 세상이 파멸할 때 일어난다고 하는 큰불인 겁화劫火에 의해 타고 남은 재를 말한다. 여기서는 전란으로 인한 화재의 흔적을 말한다.
  78. 78)상실象室 : 코끼리와 같이 큰 집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극락전의 웅장한 본채를 말한다.
  79. 79)앙려鴦廬 : 원앙은 반드시 쌍으로 다니는 것이므로, 곧 가옥 본채의 동서에 위치한 양쪽의 행랑을 가리킨다.
  80. 80)을진방乙辰方 : 동쪽에서 남으로 15도~30도 방향이다.
  81. 81)갑자甲子 : 1864년이다.
  82. 82)뛰어난 인재(翹楚) : 교초翹楚는 여럿 가운데 뛰어남 또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詩經』 「周南」 ≺漢水≻에 “빽빽이 우거진 풀숲에서, 저 가시나무를 베어 내리.(翹翹錯薪。 言刈其楚。)”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83. 83)근본(權輿) : 권여權輿는 저울대와 수레의 받침이라는 뜻으로, 사물의 처음을 이르는 말이다. 저울을 만들려면 저울대부터 만들고 수레를 만들려면 수레 바탕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84. 84)아름다운 그 이름(嘉名) : ‘극락極樂’을 말한다.
  85. 85)상량의 노래(兒郞之頌) : 상량문의 뒤에 붙이는 여섯 수의 시詩를 말한다. ‘아랑위兒郞偉’는 대들보를 올릴 때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어영차’ 하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擬聲語라고 한다.
  86. 86)황정黃精 : 땅의 정기를 받아서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약초의 이름이다.
  87. 87)초여름의 가는 비(黃梅微雨) : 황매우黃梅雨는 보통 매실이 노랗게 익는 늦은 봄이나 초여름에 내리는 비를 말한다.
  88. 88)눈이 푸른 두타승 :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끊고 청정하게 불도를 닦는 수행 또는 그런 수행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앞에 ‘푸른 눈’이라는 것은 푸른 숲에서 청정하게 수행을 하기 때문에 눈에 푸른빛이 어리었다는 뜻이다.
  89. 89)푸른 연꽃(靑蓮) : 불가의 청정무염淸淨無染한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계를 닦아 아무 욕심 없는 청정한 마음을 터득하였음을 말한다.
  90. 90)제천諸天 : 모든 천상계天上界를 뜻한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수양한 경계에 따라 여러 가지의 하늘이 나뉜다고 하는데, 그 모든 하늘을 말한다.
  91. 91)법고法鼓 : 절에서 아침, 저녁 예불 때나 법식을 거행할 때에 치는 큰 북을 말한다.
  92. 92)많은 돌이 머리를 찧는(衆石點頭) : 수행이 깊고 설법을 잘하여 다른 사람을 능히 신복信服시킨다는 뜻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때 도생 법사道生法師가 호구산虎丘山에 들어가서 돌들을 모아 놓고 문도門徒로 삼은 다음 『涅槃經』을 강론하면서 “내가 설법한 것이 부처의 마음과 들어맞는가?” 하니, 돌들이 모두 머리를 끄덕였는데, 열흘 만에 불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93. 93)모두 하나이네(一指也) : 『莊子』 「齊物論」에 “손가락으로써 손가락의 손가락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 손가락 아닌 것으로써 손가락의 손가락 아님을 깨우치는 것만 못하고, 말로써 말의 말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 말 아닌 것으로써 말이 말 아님을 깨우치는 것만 못하다.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이다.(以指喩指之非指。 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以馬喩馬之非馬。 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천지 만물의 사이에 시비진위是非眞僞의 차별을 두지 말고, 모두 상대적으로 보아서 하나로 귀착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94. 94)한 분(一人) : 임금을 말한다. 『書經』 「呂刑」에 “위로 임금 한 사람이 선정을 베풀어 경사가 있게 되면, 아래로 만백성이 그 은택을 받게 되어, 그 편안함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一人有慶。 兆民賴之。 其寧惟永。)”라는 말이 나온다.
  95. 95)고환古歡 :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개화사상가인 강위姜瑋(1820~1884)이다. ‘古歡’은 ‘古懽’과 통한다. 자는 중무仲武·요장堯章, 호는 청추각聽秋閣·고환당古懽堂이다. 민노해와 김정희의 제자이자, 당대 제일의 시인이다. 전국을 떠돌며 방랑했으며, 두 번의 중국 여행으로 실학자에서 개화사상가로 전향했다. 그의 저술로는 『古懽堂東游詩草』, 『古懽堂收艸』, 『古懽堂集』 등이 남아 있다.
  96. 96)풍구병風句病 : 몸에 걸리는 질병이 아니고, 풍류 문사가 시문 짓기를 좋아하는 고질병이라는 뜻의 말이다.
  97. 97)영원동靈源洞 : 금강산 백탑동의 동남쪽 시왕봉과 지장봉(큰지장봉), 백마봉 사이의 골짜기를 말한다. 골짜기 안에 영원암이라는 옛 암자의 터가 있으므로 영원동이라고 부른다. 영원동은 예로부터 금강산에서도 제일 깊숙하고 정갈한 곳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98. 98)때때로 앉아서~못하고 돌아갔다 : 『古懽堂收艸』에는 “손님을 대할 때도 깨지 않아 손님들이 종종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나갔다.(對客不醒。 客往往不能辭而去。)”라고 되어 있다.
  99. 99)상백봉常白峰 : 항상 하얀 봉우리라는 뜻으로, 개마산蓋馬山을 가리킨다. 개마산은 백두산의 옛 이름이다.
  100. 100)대나한大羅漢 : 대아라한大阿羅漢이라고도 한다. 아라한 가운데에서 자리가 가장 높은 자를 말한다.
  101. 101)이 시는 강위의 시문집 『古懽堂收艸』 2권에 실려 있는 ≺개마산을 바라보며(望盖馬山)≻이다.
  102. 102)아홉 마리 용(九條龍) :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말한다. 구룡폭포의 물이 떨어져 이루어진 못을 구룡연九龍淵이라 하는데, 옛날 유점사의 늪에서 53불과 싸운 아홉 마리의 용이 이곳에서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103. 103)여덟 곳의 연못(八潭) : 금강산의 구룡폭포 위쪽에 있는 소沼이다. 8개의 소로 이루어져 있어 팔담이라 한다. 경치가 좋고 물이 맑아 하늘에서 여덟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고 하여 팔담 또는 팔선담이라고도 한다.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104. 104)이 시는 『古懽堂收艸』 2권에 실려 있는 ≺백상인과 함께 구룡연에 이르러(同白上人至九龍淵)≻이다.
  105. 105)황매산(黃梅) :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에 있는 산이다. 아마도 황매산에 있는 황매사黃梅寺에 가던 길로 보인다.
  106. 106)광려산(匡廬) : 경상남도 마산과 함안에 걸쳐 있는 산이다.
  107. 107)유묵儒墨 : 유가儒家와 묵가墨家를 말한다. 조선시대 주류 학문인 유교를 비롯하여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대화를 나누었다는 말이다.
  108. 108)유마 거사維摩居士 : 석가모니와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도운 비야리성毘耶離城의 장자長者인데,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자신도 병이 들었다고 자리에 누운 뒤, 병문안을 온 여러 보살들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설했다고 한다.
  109. 109)비성沸星 : 『佛說長阿含經』에 “부처님께서 어느 때 태어나시고, 어느 때 도를 이루시며, 어느 때 멸도하셨는가? 비성沸星이 나타날 때 태어나셨고, 비성이 나타날 때 출가하셨으며, 비성이 나타날 때 도를 이루셨고, 비성이 나타날 때 멸도하셨다.”라는 구절이 있다.
  1. 1)目次。編者作成補入。
  2. 1)「叟」疑衍字{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