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無盡意菩薩經卷第二

ABC_IT_K0071_T_002
007_1016_b_01L무진의보살경 제2권
007_1016_b_01L無盡意菩薩經卷第二

송나라 양주 사문 지엄 보운 공역
정관유 번역
007_1016_b_02L宋涼州沙門智嚴共寶雲譯

그때 사리불이 무진의 보살마하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보살에게 다함없는 법이 또 있습니까?”
007_1016_b_03L爾時舍利弗白無盡意菩薩摩訶薩善男子頗復更有無盡法不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보살이 보시[檀]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 다함없으니,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수행함에 한량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먹을 것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먹을 것을 주어 수명과 변재와 몸을 충만하게 하는 힘과 즐거움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마실 것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마실 것을 주어 목마름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며, 옷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옷을 주어 청정한 몸을 갖추어 부끄러움을 없애게 하기 때문이며, 타고 다닐 수레가 필요한 자에게는 수레를 주어 온갖 안락을 얻고 신통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등불이 필요한 자에게는 등불을 주어 부처님의 눈처럼 청정함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6_b_05L盡意言菩薩修行檀那波羅蜜不可窮盡何以故菩薩摩訶薩行施無所謂湏食與食具足命辯色力樂湏飮與飮離渴愛故湏衣與衣淸淨色除無慚愧故湏乘與乘得一切樂具神通故湏燈與燈具足佛眼淸淨故
음악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음악을 베풀어 주어 천이통(天耳通)의 맑게 트임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향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향을 주어 몸에서 원만하고 미묘한 향이 나게 하기 때문이며, 다리[鬘]1)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다리를 주어 칠각[七覺]의 다라니꽃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바르는 향이나 가루 향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그에 맞게 모두 베풀어 주어 계율ㆍ지혜ㆍ선정을 갖추어 그 몸에 배어들어 바르게 하기 때문이며, 갖가지 맛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그들의 생각대로 베풀어 주어 맛의 모양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6_b_12L湏音樂者施與音樂具足天耳淸徹故湏香與香身出具足微妙香湏鬘與鬘具陁羅尼七覺華故塗香末香悉施與之具戒定慧薰塗身故湏種種味隨意與之味相成就
007_1016_c_02L의지할 데 없는 자에게는 의지할 곳을 베풀어 주어서 중생을 위해 충분히 구호하여 귀의하게 하기 때문이며, 깔자리[敷具]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깔자리를 모두 베풀어 주어서 마침내 번뇌[陰蓋]를 끊어 버리고 범천과 현성과 여러 부처님의 묘한 상좌[床座]를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며, 앉을 자리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자리를 주어서 삼천대천세계를 도량으로 삼아 금강좌(金剛座)의 자리를 다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며, 또 그들이 바라는 것에 따라 모든 것을 베풀어 주어서 보리에 필요한 온갖 것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며, 병에 따라 약을 베풀어 주어서 늙고 죽음이 없게 하여 감로의 법약(法藥)을 다 성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6_b_17L無依止者施與依止能爲衆生足救護爲歸依故湏敷具者悉施與具足究竟斷除蔭蓋成就梵天賢聖諸佛妙牀座故湏座與座具足三千大千世界以爲道場金剛座處悉成就故隨其所湏悉能與之成就菩提諸所湏故隨病施藥得無老死甘露法藥悉成就故
심부름꾼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모두 심부름꾼을 주어서 자재한 지혜를 원만히 갖출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또 금ㆍ은ㆍ유리ㆍ파리(頗梨)ㆍ진주 가패(珂貝)ㆍ벽옥(碧玉)ㆍ산호(珊瑚) 따위의 갖가지 보배로써 베풀어 주는 것은 대인의 32상(相)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갖가지 영락(瓔珞)으로써 베푸는 것은 80종호(種好)를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코끼리ㆍ말ㆍ수레를 베푸는 것은 대승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또 가지고 있는 동산을 보시하는 것은 선지(禪支)를 갖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6_c_04L湏僕使者皆給與之自在智惠得具足故若以金銀琉璃頗梨眞珠珂貝璧玉珊瑚種種諸珍用惠施者具足大人三十二相故以種種瓔珞施者具足八十隨形好若以象馬車乘施者具足大乘故若持園林以布施者具足禪支故
또 거느리고 있는 처자(妻子)를 보시함은 위없는 도법(道法)에 대한 사랑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창고에 있는 곡식과 재물로 보시하는 것은 모든 선법(善法)의 보배 창고를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염부제(閻浮提)나 사천하(四天下)를 그 뜻에 따라 보시하는 것은 법왕(法王)의 국토를 원만히 갖추어 자재함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6_c_10L持妻子以布施者具足無上道法愛若以倉庫穀財施者具足諸善法寶藏故以閻浮提若四天下隨意施具足法王得自在故
모든 오락 도구들을 보시하는 것은 한량없는 법의 즐거움을 갖추어 즐겁게 하기 때문이며, 다리와 발로써 보시하는 것은 법의 발을 갖추어 도량에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며, 손으로써 보시하는 것은 법의 손을 원만히 갖추어서 중생을 어루만져 즐거움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귀와 코를 가지고 보시하는 것은 모든 감관을 원만히 갖추어 다 예리하게 통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6_c_14L以諸樂具持用施者具足無量法樂樂故若持腳足以布施者法足具成進至道場故若以手施具足法手安撫衆生令得樂故若以耳鼻用施與者具足諸根悉通利故
또 눈을 가지고 보시하는 것은 걸림 없는 법안(法眼)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머리를 가지고 보시하는 것은 삼계(三界)에서 가장 훌륭한 모든 지혜를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피와 살을 가지고 보시하는 것은 모든 견고하지 못한 것을 견고하게 하기 때문이며, 수뇌(髓腦)를 가지고 보시하는 것은 금강 같은 몸을 갖추어 무너지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6_c_19L若以眼目持用施者爲欲具足無㝵法眼故若以頭施於三界中具足殊勝一切智慧故若以血肉持用施者諸不堅牢具堅牢故若以髓腦持用施者具金剛身得不壞故
007_1017_a_02L보살은 삿된 생활로 재물을 구해서 보시하지 않고, 중생을 괴롭히거나 다른 사람의 재물을 억지로 구하여 도로 남에게 보시하지 않으니, 겁내는 보시와 부끄러운 보시와 인색한 보시가 없으며, 그 허락해 주는 바대로 하여 덜거나 더함이 없이 보시하고, 사랑하지 않음이 없이 보시하며, 끝까지 언제나 보시하므로 끝내 보시하지 않음이 없으며, 아첨하는 보시와 간사한 보시가 없고, 업보를 의심하여 보시하지 않으며, 삿된 생활에 의한 보시가 없고, 어리석은 보시가 없으며, 믿지 않는 보시가 없고, 알지 못하는 보시가 없습니다.
007_1016_c_23L菩薩不以邪命求財而行布施不逼衆生强求他物轉以施人無恐怖施無羞恥施無慳惜施如其所許無損減施無不愛施畢竟常施無不畢竟無諛諂施無奸詐施不疑業報施無邪命施無愚癡施無不信施無不解施
지치거나 어려워하는 보시가 없고,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보시가 없으며, 선택하는 보시가 없고, 다른 모양의 보시가 없으며, 받을 자를 구하여 보시하지 않고, 받지 못할 중생이 없으므로 계율을 가졌거나 계율을 범하였거나 간에 더하고 덜 하는 보시가 없으며, 받는 자에게 갚기를 바라고서 보시하지 않고, 이름을 구하려고 보시하지 않습니다.
007_1017_a_07L無疲難施無依著施無選擇施無異相施不求受者施無有衆生不堪受者持戒犯戒無增減施於受者所不望報施不求名施
또 보시를 헐뜯거나 칭찬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은 보시도 없으며, 불타는 번뇌의 보시도 없고, 후회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으며, 보시를 자찬하지 않고, 잡되거나 더러운 보시가 없으며, 업보를 바라고서 보시하지 않고, 일정한 곳에 보시함이 없으며, 미워하거나 성내거나 더럽게 여기거나 사랑하는 따위의 보시가 없습니다.
007_1017_a_10L不毀譽施慢非慢施無熱惱施不悔心施不自讚施無雜穢施不望業報施無定處無有瞋怒垢愛等施
와서 구걸하는 자가 있을 때 괴롭게 하거나 해치면서 보시하지 않고, 업신여기거나 쉽게 여겨 보시함이 없으며, 얼굴을 찡그려 가면서 보시하지 않고, 던져주면서 보시하지 않으며, 까닭 없는 보시가 없고, 손수 주지 않는 보시가 없으며, 떳떳하지 않은 보시가 없고, 끊어버리는 보시가 없으며, 질투하거나 교만한 보시가 없습니다.
007_1017_a_13L有來乞者不惱害施無輕易施不䫌面施不撩擲無不故施無手不與施無不常施無斷絕施無嫉慢施
한계를 둔 보시가 없고, 그가 허락하여 주는 것 그대로 사고팔지 않고서 보시하며, 감내하거나 감내하지 않는 보시가 없고, 복 밭 아닌 보시가 없으며, 적은 보시라 해서 깔보지 않고, 많은 보시를 찬탄하지도 않으며, 쇠퇴하여 줄어드는 보시가 없고, 후생(後生)을 구하기 위하여 보시하지 않고, 자재 로이 재보(財寶) 얻기를 구하여 보시하지 않습니다.
007_1017_a_16L無齊限施如其所許不貿易施無有堪仼不堪仼施無非福田施不輕少施不讚多施衰耗施不求後生施不求自在得財寶施
제석천왕과 범천왕과 호세(護世)천왕과 전륜성왕(轉輪聖王)과 같은 모든 과보를 바라고서 보시하지 않으며, 성문과 연각의 승(乘)을 원하여 보시하지 않고, 왕자로서 자재롭게 되기를 바라면서 보시하지 않으며, 한 세상만을 위한 까닭에 보시하지 않고, 만족을 느끼는 보시가 없으며, 일체지(一切智)에 회향하지 않는 보시가 없고, 청정하지 않은 보시가 없으며, 때[時]에 맞지 않는 보시가 없고, 해독을 끼치는 보시가 없으며, 중생을 괴롭게 하는 보시가 없습니다.
007_1017_a_20L不求釋梵護世天王轉輪聖王諸果報施不願聲聞緣覺乘施不求王子得自在施不爲一世故施無厭足施無不迴向一切智施無不淨施無不時施無刀毒施無惱衆生施
007_1017_b_02L보살이 행하는 보시는 지혜로운 이의 업신여김이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적(空寂)함을 관찰하여 보시를 행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공훈(功勳)을 지음이 없이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세 가지 존재[三有]의 모양을 벗어나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장소를 취하지 않고서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해탈과(解脫果)를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습니다.
007_1017_a_24L薩行施不爲智者之所輕笑何以故觀空寂行施是故無盡無作所勳施是故無盡出三有相施是故無盡取處施是故無盡爲解脫果是施無
뭇 마군을 조복하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번뇌와 애욕을 끊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잘 분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보리를 돕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바르게 회향하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도량과 해탈의 과(果)를 장엄하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끝이 없으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파괴됨이 없으므로 다함이 없습니다.
007_1017_b_06L爲伏衆魔是施無盡爲斷結愛施無盡爲增上施是故無盡善分別是故無盡助菩提施是故無盡迴向施是故無盡莊嚴道場解脫果是故無盡是施無邊是故無盡是施無壞是故無盡
또 이 보시는 끊어지지 않으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넓고 크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머묾이 없으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항복시킬 수 없으므로 다함이 없으며, 견줄 것이 없는 보시이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일체종지(一切種智)에 나아가므로 다함이 없으니,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보시를 수행하되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007_1017_b_11L是施不斷是故無盡是施廣大是故無盡是施無住是故無盡是施無伏是故無盡無等等施是故無盡是施進趣一切種智是故無盡舍利弗是名菩薩修行布施而不可盡
그때 사리불이 무진의 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보살마하살이 보시[檀]바라밀을 수행하여 다함이 없음을 기꺼이 말해 주었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이제 보살의 지계[尸]바라밀을 말해 주십시오. 보살이 얻는 다함없는 지계바라밀의 다함없는 뜻은 무엇입니까?”
007_1017_b_16L爾時舍利弗語無盡意言善哉善哉善男子仁已快說菩薩摩訶薩修行檀波羅蜜而不可唯願仁者當說菩薩尸波羅蜜菩薩所得無盡尸羅波羅蜜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계율이 예순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 계율을 청정하게 닦는 것이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그 예순일곱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007_1017_b_20L無盡意舍利弗菩薩戒衆六十七事淸淨修治亦不可盡何等六十七
모든 중생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재물을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부녀(婦女)를 삿된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이요, 모든 중생을 속이는 일이 없는 것이요, 처음부터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자기의 권속에 만족할 줄 알기 때문이요,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거칠고 더러운 것을 참기 때문입니다.
007_1017_b_22L於諸衆生不起惱害於他財物不生竊盜於他婦女中不生邪視於諸衆生無有欺誑初不兩舌於自眷屬知止足無有惡口忍麤獷故
007_1017_c_02L꾸미는 말이 없으니 항상 착하게 말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의 즐거운 일을 탐내거나 질투하지 않기 때문이요, 처음부터 성내거나 미워함이 없으니 나쁜 말을 참기 때문이요, 바른 소견을 가져서 삿되지 않으니 다른 도(道)를 천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007_1017_c_02L無有綺語善說故於他樂事不貪嫉故初無瞋忍惡言故正見不邪賤餘道故
부처님을 깊이 믿으니 마음이 흐리지 않기 때문이요, 법을 믿고 따르니 법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요, 스님들을 믿고 공경하니 성인의 무리를 존경하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이니 부처님을 생각하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이니 참는 성품을 본받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이니 스님들을 높이 공경하기 때문이요, 금하는 계율을 굳게 지키는 것이니 모든 것을 범하지 않고 나아가 조그마한 금계까지도 놓아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1017_c_05L信於佛心不濁故信順於法善得法信敬於僧尊重聖衆故五體投地志念佛故五體投地忍性法故五體投地宗敬僧故堅持禁戒一切無犯乃至小禁不放捨故
모자람이 없는 완전한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다른 승(乘)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요, 뚫어지지 않는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나쁜 곳에 태어남을 여의기 때문이요, 거칠지 않은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모든 번뇌와 섞이지 않기 때문이요, 더럽지 않은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오로지 깨끗한 법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요, 매우 깊은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뜻에 따라 회향하여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요, 찬탄할만한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슬기로운 이도 꾸짖지 않기 때문이요, 순수하고 선한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바르게 생각하여 알기 때문이요, 가책(呵責)하지 않는 계율을 가지는 것이니 모든 계율에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요, 착하고 견고한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감관을 잘 지키기 때문이요, 이름난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부처님께서 생각하시는 바이기 때문이요, 만족할 줄 아는 계율을 가짐이니 만족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요, 욕심이 적은 계율을 가짐이니 탐내고 아낌을 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007_1017_c_10L持不缺戒不依餘乘故持不穿戒離惡處生故持不荒戒不雜諸結故持不污戒專長白法故持是深戒隨意迴向得自在故持讚歎戒智者不呵故持純善戒念知故持不呵戒一切戒不散故善堅戒防護諸根故持名聞戒諸佛所念故持知足戒無不厭故持少欲斷貪惜故
성품이 청정한 계율을 가짐이니 몸과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이요, 아란야(阿蘭若)의 계율을 가짐이니 시끄러움을 여의기 때문이요, 거룩한 씨앗[聖種]의 계율을 가짐이니 다른 뜻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위의(威儀)의 계율을 가짐이니 일체의 선근으로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요, 말한대로 계율을 갖는 것이니 사람이 기뻐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1017_c_18L持性淨戒身心寂滅故持阿蘭若戒離憒鬧故持聖種戒求他意故持威儀戒一切善根得自在故持如說戒人無不歡喜故
사랑하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이니 중생을 옹호하기 때문이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괴로움을 참고 견디기 때문이요, 기뻐하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이니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요, 똑같이 여기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이니 사랑하고 미워함을 여의기 때문입니다.
007_1017_c_21L持慈心戒護衆生故持悲心戒能忍諸苦持喜心戒不懈怠故持捨心戒愛恚故
007_1018_a_02L스스로 살피는 계율을 가짐이니 잘 분별하기 때문이요, 단점이나 결함을 구하지 않는 계를 가짐이니 다른 이의 마음을 감싸주기 때문이요, 잘 거두는 계를 가짐이니 잘 지키고 보호하기 때문이요, 지혜를 베푸는 계율을 가짐이니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요, 인욕의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에 성냄이나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요, 정진의 계율을 가짐이니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요, 선정의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선지(禪支)를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요, 지혜의 계율을 가짐이니 선근(善根)을 많이 들었어도 싫증냄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1017_c_24L持自省戒心善分別故持不求短缺戒護他心故持善攝戒善守護故持慧施戒教化衆生故持忍辱心無恚㝵故持精進戒不退還故持禪定戒長諸禪支故持智慧戒聞善根無厭足故
다문(多聞)의 계율을 가짐이니 널리 배워서 견고하기 때문이요,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보리를 도와 이루게 하기 때문이요, 악지식을 멀리 여의는 계율을 가짐이니 나쁜 도를 버리고 멀리 여의기 때문이요, 몸을 아끼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변하지 않음이 없다는 생각으로 관찰하기 때문이요, 목숨을 아끼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선근을 부지런히 수행하기 때문이요, 후회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삿된 생활을 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과 행동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초조해 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끝내 청정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8_a_06L持多聞戒博學堅牢故持親近善知識戒助成菩提故持遠離惡知識戒捨遠離惡道故不惜身戒觀無常想故持不惜命戒勤行善根故持不悔戒心淸淨故不邪命戒心行淸淨故持不燋戒竟淸淨故
불타지 않은 계율을 가짐이니 착한 행업(行業)을 닦기 때문이요, 교만이 없는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을 낮추어 교만하지 않기 때문이요, 동요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욕심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요, 높이지 않는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이 평등하고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8_a_12L持不燒戒修善行業故無慢戒心下不憍故持不掉戒遠離諸欲故持不高戒心平直故
부드럽고 조화로운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에 부대낌이 없기 때문이요, 조복된 계율을 가짐이니 괴롭히거나 해침이 없기 때문이요, 적멸(寂滅)한 계율을 가짐이니 마음에 번뇌[垢穢]가 없기 때문이요, 말을 따르는 계율을 가짐이니 말과 같이 행동에 옮기기 때문이요, 중생을 교화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거두어주는 법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요, 바른 법을 옹호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진실 됨을 어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1018_a_14L持柔和心無抵突故持調伏戒無惱害故持寂滅戒心無垢穢故持順語戒說行故持化衆生戒不離攝法故護正法戒不違如實故
원하는 대로 성취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기 때문이요, 부처님을 친근히 하는 계율을 가짐이니 여래의 위없는 계율을 구하기 때문이요, 부처님의 삼매에 들어가는 계율을 가짐이니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예순일곱 가지 청정하게 수지하는 계율의 다함없음’이라고 합니다.
007_1018_a_18L持如願成就於諸衆生心平等故持親近佛戒願求如來無上戒故持入佛三昧戒具足一切諸佛法故舍利是名菩薩六十七事淨持戒而不可盡
사리불이여, 보살은 또 다함없이 청정한 계율 가운데 기대거나 집착함이 없으니, 이른바 나ㆍ너ㆍ중생ㆍ수명(壽命)ㆍ양육(養育)ㆍ장부[士夫]ㆍ물질ㆍ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ㆍ땅ㆍ물ㆍ불ㆍ바람에 대해 그러합니다.
007_1018_a_23L舍利弗菩薩無盡淸淨戒中無有猗著所謂我衆生壽命養育士夫
007_1018_b_02L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눈에 대한 물질의 모양과 귀에 대한 소리와 코에 대한 냄새와 혀에 대한 맛과 몸에 대한 감촉과 뜻에 대한 법 등의 모양이 없고 또 몸과 마음도 없습니다. 이 계율은 정해진 모양이니 한결같이 공통되지 않기 때문이며, 또 이 계율은 나뉘어 다른 모양이니 방편으로 모든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이 계율은 공(空)한 모양이니 모양 없는 제(際)를 얻어 삼계(三界)를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이 계율은 지음이 없으니 생사가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無生忍]이기 때문이며, 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이미 지은 것과 현재 짓는 것과 앞으로 지을 것이 없고 이 청정한 계율은 과거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미래도 오지 않을 것이며 현재도 머물지 않습니다.
007_1018_a_25L淨戒中無眼色相耳聲鼻香舌味意法等相亦無身心是戒定相向不共故是戒分別相方便緣一切法是戒空相得無相際不離三界故是戒不作無生忍故是淨戒中無有已作今作當作是淸淨戒過去不滅未來不來現在不住
사리불이여, 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마음이 깨끗하여 더러운 것이 없고 알음알이가 머무르지 않고 생각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욕계(欲界)에 의지하지 않고 색계(色界)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무색계(無色界)에 머물지 않습니다.
007_1018_b_09L舍利弗是淨戒中心淨無垢識不止住思不親近是淸淨戒不依欲界不近色界不住無色界
이 청정한 계율은 욕심의 티끌을 내버리고 성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무명의 막힘을 없애며, 이 청정한 계율은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 하지도 않고 인연을 거스르지도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나’라는 생각이 있지 않고 ‘내 것’이라는 생각도 버렸고 몸이라는 소견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붙여진 이름[假名]을 취하지 않고 물질의 모양에 머물지 않고 이름과 물질에 섞이지도 않습니다.
007_1018_b_12L是淸淨戒捨離欲塵除瞋恚滅無明障是淸淨戒不斷不常不逆因緣是淸淨戒無有我相捨我所相住身見是淸淨戒不取假名不住色不雜名色
또 이 청정한 계율은 인(因)에 매이지 않고 모든 소견을 일으키지 않고 의심이나 후회에 머물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머물지 않고 선근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불타는 번뇌가 없고 고요하여 모양을 여의며, 이 청정한 계율은 부처될 종자를 끊지 않으니 바른 법을 구하기 때문이며, 법 종자를 끊지 않음은 법의 성품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며, 스님의 종자를 끊지 않음은 함이 없음[無爲]을 닦기 때문입니다.
007_1018_b_16L是淸淨戒不繫於因起諸見不住疑悔是淸淨戒不住貪瞋癡不善根是淸淨戒不惱不熱滅離相是淸淨戒不斷佛種求正法不斷法種不分別法性故不斷僧修無爲故
007_1018_c_03L사리불이여, 청정한 계율을 지닌 자는 계속 이어가서 끊이지 않기 때문에 다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부의 계율은 생(生)을 받는 곳에 있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사람 가운데서 10선(善)을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으며, 욕계 모든 하늘의 복 갚음의 공덕이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색계 모든 하늘의 선정의 한량없는 마음이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무색계 하늘에서 들어가는 모든 선정이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외도와 선인(仙人)의 모든 계율이 신통을 잃어버려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모든 성문과 유학 무학의 계율은 열반에 들어가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고, 벽지불의 계율은 대비심이 없어 다하기 때문에 다함이 있습니다.
007_1018_b_21L舍利弗持淨戒者相續不斷故不盡所以者何凡夫戒者所受生是故有盡人中十善盡故有欲界諸天福報功德盡故有盡界諸天禪無量心盡故有盡無色界天所入諸定盡故有盡外道仙人所有諸戒退失神通盡故有盡一切聲聞學無學戒入涅槃際盡故有盡辟支佛戒無大悲心盡故有盡
사리불이여, 그러나 보살의 청정한 계율은 다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계율 속에서 모든 계율이 나오기 때문이니, 마치 종자가 다함이 없으면 열매도 다함이 없는 것처럼 이 보리의 종자가 다할 수 없는 까닭에 여래의 금계[戒禁]도 다함이 없는 것이며, 그래서 여러 보살들이 가진 모든 계율도 모두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그러므로 이것을 보살이 청정한 계율을 닦아 지녀서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007_1018_c_06L舍利菩薩淨戒皆無有盡何以故於是戒中出一切戒如種無盡果亦無盡是菩提種不可盡故如來戒禁亦無有盡以是故諸大士等所持諸戒不可盡舍利弗是名菩薩修持淨戒而不可盡
그때 사리불이 무진의 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보살의 지계바라밀의 다할 수 없음을 흔쾌히 말씀하셨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이제 보살의 인욕[羼提]바라밀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것을 보살이 짓는 다함없는 인욕바라밀이라고 합니까?”
007_1018_c_12L爾時舍利弗語無盡意言善哉善哉善男子仁已快說菩薩尸羅波羅蜜而不可盡唯願仁者當說菩薩羼提波羅蜜如諸菩薩所作無盡羼提波羅蜜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또 서른두 가지 일을 갖추어 인욕을 수행하여 또한 다함이 없습니다.
007_1018_c_17L無盡意言舍利弗菩薩具三十二事修行忍辱亦不可盡
그 서른두 가지란, 모든 번뇌를 끊었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해칠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얽매임이 없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괴로움이 없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덮어 가림이 없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성냄이 없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분노하거나 다툼이 없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싸움이 없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모든 미진과 같은 세계에 대하여 마음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자기와 다른 사람을 옹호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알며, 보리심을 따르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입니다.
007_1018_c_18L何等三十二斷諸結故當知是忍不生害故當知是忍無有纏故當知是忍無有惱故當知是忍無覆蔽故當知是忍無有瞋故當知是忍無有忿諍故當知是忍無有鬪訟故當知是忍於諸塵界心不異故當知是忍護自他故當知是忍順菩提心故當知是忍
007_1019_a_02L잘 생각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두 가지의 모양이 없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업보를 알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몸을 장엄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입으로 깨끗한 말을 베풀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마음이 견고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말이 자재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입니다.
007_1018_c_25L思惟故當知是忍無二相故當知是識業報故當知是忍莊嚴身故當知是忍口演淨言故當知是忍淸淨故當知是忍心堅牢故當知是言語自在故當知是忍
기억하거나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마음을 잘 분별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싸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깨끗한 세간의 행을 닦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사람과 하늘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입니다.
007_1019_a_07L不憶想故當知是忍善分別心故當知是忍他心故當知是忍修梵世行故當知是忍受人天報故當知是忍
몸의 모양이 훌륭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미묘한 범음(梵音)을 갖추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모든 허물과 근심을 제거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거칠고 더러운 모든 것들을 끊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모든 불선근(不善根)을 끊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모든 번뇌의 적을 죽이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괴롭히고 해치는 중생을 초월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요,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에 마땅히 이 인욕을 아는 것이니,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서른두 가지 인욕을 수행하여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007_1019_a_10L身相勝故當知是忍具妙梵音故當知是忍除諸過患故當知是忍斷諸荒穢故當知是忍斷一切不善根故當知是殺諸結賊故當知是忍於惱害衆生得超越故當知是忍具足一切佛法故當知是忍舍利弗是名菩薩三十二事修行忍辱而不可盡
사리불이여, 어떤 것을 인욕이라고 하는가?
욕하는 자를 보더라도 잠자코 받아들여 보복하지 않는 것이니 그 음성이 메아리의 모양[響相]과 같음을 잘 알기 때문이며, 꾸짖음을 보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니 몸뚱이의 모양이 그림자의 모양과 같은 줄 잘 알기 때문이며, 성내는 자를 보더라도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니 심법(心法)이 허깨비 모양[幻相]과 같음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007_1019_a_17L舍利弗云何爲忍若見罵者默受不報善知音聲如響相故見有訶責默而受之善知身相如影象相故見有瞋者心不懷恨善知心法如幻相故
분한 일이 있더라도 그 분한 것에 대하여 보복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명예로운 말을 듣더라도 마음에 애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 스스로 훌륭한 체하지 않기 때문이며, 명예롭지 못한 말을 들어도 마음에 거리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 공덕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이요, 영화로움이나 이익을 만나더라도 기뻐하지 않는 것이니 자신을 잘 조복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9_a_21L忿不報忿心淸淨故聞有稱名心不生愛不自高故聞不稱名心不生礙功德具足故若遇榮利不生喜悅善自調故
007_1019_b_02L쇠하거나 닳아 없어지는 일을 당하여도 거리끼지 않는 것이니 마음이 적멸(寂滅)하기 때문이며, 칭찬하는 자를 보아도 마음이 놀라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분별을 잘 하기 때문이며, 헐뜯는 자를 보아도 마음이 위축되지 않는 것이니 그 마음이 넓고 크기 때문이며, 비웃는 자를 보더라도 그 마음이 낮아지지 않는 것이니 편안히 머물기 때문이며, 자랑하는 자를 보아도 그 마음이 높아지지 않는 것이니 기울거나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007_1019_a_24L若遇衰耗不生罣㝵心寂滅故見有稱者心不驚動善知分別故見有毀者心不縮沒其心廣大故見有譏者其心不下善安住故見有譽者其心不高不傾動故
즐거운 일을 당하여도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는 것이니 함이 있는 법[有爲法]은 변하지 않는 모양[常相]이 없음을 관찰하기 때문이며, 괴로운 일을 당하여도 마음으로 괴로워한다거나 싫어하지 않는 것이니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고통을 참고 받는 것이니 위급한 자를 보고는 자신이 그 고통을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007_1019_b_06L若遇樂事心不歡逸觀有爲法無常相故若遇苦事心不疲惱爲衆生故世法不染不依止故忍受諸苦見危逼者以身代故
마디마디 사지가 분해되더라도 이 고통을 참는 것이니 각지(覺支:깨달음의 갈래. 覺分ㆍ苦提分)를 원만히 갖추기 때문이며, 뭇 괴로움이 몸에 가해지더라도 다 참고 받는 것이니 부처님 몸의 모양을 갖추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도 참는 것이니 업력(業力)을 잘 짓기 때문이며, 뜨겁게 타오름을 나타내 보여도 모든 고행을 다 닦는 것이니 외도를 조복하기 때문이며, 그 자리에서 모든 도에 들어가는 것이니 제석과 범천과 세간을 수호하는 여러 천왕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인욕이라고 합니다.
007_1019_b_09L忍節節支解具足覺支故衆苦加身悉能堪具佛身相故忍他過患善作業力示現燒熱修諸苦行伏外道故入諸道出過釋梵護世諸天故是名菩薩之忍辱也
또 끝내 참는다는 것은 서로 다툼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다른 사람이 나를 꾸짖는 것을 보고서 참는다면 이렇게 참는 것은 두 가지 모양을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니며, ‘누가 나를 꾸짖는가’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참는 것은 바로 법 공덕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니며, ‘눈을 꾸짖는가’라고 한다면 이렇게 참는 것은 바로 감관[入]의 모양을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니며, 귀ㆍ코ㆍ혀ㆍ몸이거나 의식을 꾸짖는 것이라 하여도 이렇게 참는 것은 모든 감관[諸入]을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니며, 만약에 꾸짖는 이가 없다고 하여도 이렇게 참는 것은 무아(無我)를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닙니다.
007_1019_b_14L畢竟忍者無有諍何以故若見他罵我能忍者如是忍者是觀二相非畢竟忍若言誰罵我者如是忍辱是法功德非畢竟忍若罵眼耶如是忍者是觀入相非畢竟忍耳鼻舌身若罵意耶如是忍者是觀諸入非畢竟忍若無罵者如是忍辱是觀無我非畢竟忍
임시로 붙인 이름[假名]인 줄 알고서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러한 인욕은 메아리 같은 모양이라고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니며, 저 사람이나 나나 둘 다 덧없다고 여긴다면 이렇게 참는 것은 덧없음을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니며, 저 사람은 전도(顚倒)되었고 나는 전도되지 않았다고 여긴다면 이렇게 참는 것은 높고 낮음을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니며, 저 사람은 부지런히 수행하지 않고 나는 부지런히 수행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참는 것은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닙니다.
007_1019_b_21L若知假名如是忍者是觀嚮相非畢竟忍彼之與我二俱無常如是忍者是觀無常非畢竟忍彼是顚倒我無顚倒如是忍者是觀高下非畢竟忍彼不勤行我是勤行如是忍者是觀勤懈非畢竟忍
007_1019_c_02L또 만약 저 사람은 나쁜 갈래에서 살고 나는 좋은 갈래에서 산다고 여기면서 이렇게 참는다면 이것은 좋고 나쁨을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이 아니며, 나는 무상(無常)한 것은 참아도 유상(有常)한 것은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고(苦)에 대해서는 능히 참지만 모든 쾌락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무아(無我)인 것은 참아도 유아(有我)인 것은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부정한 것은 참지만 청정한 것은 참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와 같이 참는 것은 상대가 있음을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은 아닙니다.
007_1019_c_04L彼住惡道我住善道如是忍者是觀善惡非畢竟忍我忍無常不忍有常我能忍苦不受諸樂我忍無我不忍有我我忍不淨不忍於淨如是忍者是觀有對非畢竟忍
나는 공(空)에 대해서는 참아도 모든 견(見)에 대해서는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모양 없음[無相]은 참아도 모든 느낌[覺]은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바람이 없는 것은 참아도 바람에 대해서는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조작함이 없는 것은 참아도 조작하는 것은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번뇌가 다한 것은 참아도 번뇌가 있는 것은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착한 것에 대해서는 참아도 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세속을 벗어나는 것은 참아도 세속에 그대로 있는 것은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다툼이 없는 것은 참아도 다툼에 대해서는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번뇌가 없음[無漏]은 참아도 번뇌에 대해서는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백법(白法:청정한 법. 선법)은 참아도 흑법(黑法:삿된 법)은 참지 않는다고 하거나, 나는 적멸(寂滅)은 참아도 생사는 참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와 같이 참는 것은 상대를 관하는 것이지 끝내 참는 것은 아닙니다.
007_1019_c_08L我忍於空不忍諸見我忍無相不忍諸覺我忍無願不忍於願我忍無作不忍於作我忍結盡不忍結在我忍於善不忍不善我忍出世不忍在世我忍無諍不忍於諍我忍無漏不忍於漏我忍白法不忍黑法我忍寂滅不忍生死如是忍者是觀相對非畢竟忍
끝내 참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만약 공적(空寂)에 들어가 모든 견(見)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공(空)에 기대거나 집착하지도 않는다면 이 모든 견해들도 다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이며, 만약 모양 없음[無相]에 들어가 모든 알아차림[覺]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모양 없는 것에 기대거나 집착하지도 않는다면 이 알아차림도 다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입니다.
007_1019_c_15L云何名爲畢竟忍耶若入空寂不與諸見和合不猗著空是諸見等亦復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若入無相不與諸覺和合不猗無相是覺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
또 바람이 없음[無願]에 들어가 바람[願]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바람이 없는 것에 기대지도 않는다면 이 바람도 모두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이며, 만약 조작하는 것이 없음[無作]에 들어가 조작함[作]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조작하는 것이 없음에도 기대지 않는다면 이 조작함도 다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이며, 만약 번뇌가 다함에 들어가 번뇌와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번뇌가 다한 것에 기대지도 않는다면 모든 번뇌가 다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입니다.
007_1019_c_20L若入無願不與願合不猗無願是願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若入無作不與作合不猗無作是作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若入盡結不與結合不猗盡結諸結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
007_1020_a_02L만약 착함에 들어가 착하지 않음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착함에도 기대지 않는다면 착하지 않은 것도 모두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이며, 만약 세속을 벗어남[出世]에 들어가 세속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세속을 벗어남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면 세속에 있는 것도 모두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이며, 만약 다툼이 없는 것에 들어가 다툼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다툼 없는 것에 기대지도 않는다면 이 다툼도 모두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입니다.
007_1020_a_02L若入於善不與不善和合不猗於善不善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忍若入出世不與世合不猗出世在世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若入無諍不與諍合不猗無諍是諍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
만약 번뇌가 없음[無漏]에 들어가 번뇌와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번뇌가 없는 것에 기대지도 않는다면 모든 번뇌가 다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이며, 만약 백법(白法)에 들어가 흑법(黑法)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백법에 기대지도 않는다면 흑법도 다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이며, 만약 적멸에 들어가 생사와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적멸에 기대지 않는다면 생사도 다 공할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이것이 바로 끝내 참는 것입니다.
007_1020_a_10L若入無漏不與漏合不猗無漏諸漏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若入白法不與黑合不猗白法黑法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若入寂滅不與生死和合不猗寂滅生死皆空如是忍者是無二相是畢竟忍
만약에 성품이 스스로 생긴 것도 아니고 다른 것을 따라 생긴 것도 아니고 자타가 화합하여 생긴 것도 아니며 또한 있음과 없음을 벗어나 있어서 파괴할 수 없다면, 파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 것이 끝내 참는 것이며, 지음도 짓지 않음도 없고 의지하여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분별함도 없고 장엄함도 없으며 법을 닦아 다스림도 없고 일어나 나아감도 없어서 끝까지 만들어 내지 않으니 만약 만들어 내는 것이 없다면, 이것이 바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니, 이와 같이 참는 것이 바로 생겨남이 없는 참음[無生忍]이요, 생겨남이 없는 참음이 바로 벗어나지 않는 참음[不出忍]이요, 벗어나지 않는 참음이 바로 끝내 참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이 인욕을 수행하여 인욕의 수기(受記)를 얻으니,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인욕을 수행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007_1020_a_16L若性不自生不從他生和合生亦無有出不可破壞不可壞者是不可盡如是忍者是畢竟忍作非作無所猗著無分別無莊嚴修治法無發進終不造生若無生者是不可盡如是忍者是無生忍無生忍者是不出忍不出忍者是畢竟忍如是菩薩修行是忍得受記忍舍利是名菩薩行忍無盡
이 인욕을 말할 때 모든 대중들이 무진의 보살을 찬탄하여 말하였다.
“선남자여,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이 인욕에 대해 흔쾌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007_1020_a_24L說是忍時切大衆讚無盡意言善男子善哉快說
007_1020_b_02L이렇게 말하고서 곧 갖가지 희유한 꽃을 비처럼 뿌리고 가루 향ㆍ바르는 향, 셀 수 없는 여러 가지 옷과 깃발[幢幡]ㆍ보배ㆍ일산[盖]을 무진의 보살에게 공양하니, 백천 가지 기악이 공중에서 저절로 소리를 내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만약 어떤 중생이 여래의 깊고 깊은 인욕을 얻고자 한다면, 이 말씀을 듣고서 놀라거나 겁내지 말라.”
이때 여러 가지 꽃과 향과 옷과 깃발과 일산이 두루 넘쳐서 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하였다.
007_1020_b_02L是言卽雨種種希有諸華塗香數雜衣幢幡寶蓋以用供養於無盡意百千伎樂於上空中然出聲作如是言若有衆生欲得如來甚深忍者聞作是說不應驚怖諸華香雜衣幡蓋普遍充溢滿此三千大千世界
그때 부처님께서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가 공양한 꽃이나 향 등의 물건을 네 몸으로 그릇을 만들어 그것들을 네 몸에 집어넣어서 가지런히 정돈할 수 있겠느냐?”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신통의 힘으로 곧 몸을 그릇으로 만들겠습니다.”
이때 무진의 보살이 곧 보살의 색신(色神)삼매에 들었는데, 삼매에 들어서는 온갖 공양 꺼리들을 다 배꼽 속에 넣었다. 다 넣었는데도 그 몸의 크기는 예전과 같아서 늘지도 줄지도 않았다.
007_1020_b_09L爾時佛告無盡意言善男子汝所供養華香等物可自求器除去摒擋盡意言唯然世尊我今當以神通之力卽身爲器無盡意卽入菩薩色身三昧入三昧已一切所有供養之悉入臍中身界如故不增不減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대장엄(大莊嚴)이란 보살이 무진의 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여, 지금 드신 삼매의 이름이 무엇이 길래 그대가 삼매에 든 뒤에 모든 공양꺼리를 그 몸속에 다 집어넣어도 몸의 크기는 예전과 같아서 늘거나 줄지 않습니까?”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 삼매의 이름은 일체색신삼매(一切色身三昧)입니다.”
007_1020_b_15L衆中有一菩薩名大莊嚴問無盡善男子所入三昧名爲何等而仁入已諸供養具悉入身中身界如故而不增減無盡意言善男子其三昧者名爲一切色身三昧
대장엄 보살이 말하였다.
“이 삼매에 이것 말고 또 다른 힘이 있습니까?”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이 삼매의 힘은 몸의 경계 안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물질을 다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 몸의 경계는 예전과 같아서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007_1020_b_20L大莊嚴言三昧定頗復更有餘力勢不無盡意是三昧力能令身界悉受三千大千世界所有色相身界如故亦無增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사람과 하늘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선정의 힘을 볼 수 있을까?’
이때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ㆍ하늘 대중들의 생각을 아시고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가 이 선정의 신통력을 나타내 보여 주어라.”
007_1020_b_24L爾時衆中或有人天作是思惟可得見是定力不爾時佛知一切大衆人天所念告無盡意善男子汝可示現是定神力
007_1020_c_02L이때 무진의 보살마하살은 이 삼매에 통달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일체 대중과 시방의 여래와 큰 보살들과 부처님과 성스러운 스님들을 다 그의 몸속에 넣을 수 있었으니, 그 몸이 마치 온갖 보물로 장엄한 세계가 모든 보살마하살이 지닌 갖가지 장엄한 일을 다 받아들인 것과 같았다.
이때 대중들은 모두 자기 몸이 무진의 보살 몸속에 있는 것을 보았으며, 무진의 보살이 이렇게 큰 신통을 나타내 보이고 나자 대중들은 각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007_1020_c_04L無盡意菩薩摩訶於是三昧久已通達是故能以切大衆十方如來大菩薩等佛及聖僧悉內身中爾時其身猶如大寶莊嚴世界受諸菩薩摩訶薩等所有種種莊嚴之事是時大衆悉自見形在無盡意菩薩身內時無盡意示現如是大神通已是時大衆各還如本
이때 대장엄 보살마하살이 무진의 보살에게 물었다.
“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와 같은 삼매의 신통한 변화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것을 다 내 몸 속에 넣더라도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신통쯤이겠습니까?”
007_1020_c_11L大莊嚴菩薩摩訶薩問無盡意善男我從昔來未曾見聞如是三昧神通變化無盡意言善男子假使三千大千世界一切所有悉在我身猶無增減況於此耶
이 무진의 보살의 인욕을 말하여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낼 때, 76나유타의 하늘과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고, 만2천의 보살마하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007_1020_c_16L說是無盡意忍辱現大神變時七十六那由他天及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萬二千菩薩摩訶薩得無生法忍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이 인욕을 수행하여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사리불이 무진의 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미 보살의 인욕바라밀의 다함없음을 명쾌하게 말하였으니, 그대가 다시 보살의 정진[毘梨耶]바라밀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살이 얻는 다함없는 정진바라밀이란 어떤 것입니까?”
007_1020_c_19L舍利弗是名菩薩修行忍辱而不可盡爾時舍利弗語無盡意言善哉善哉善男子汝已快說菩薩羼提波羅蜜而不可盡唯願仁者當說菩薩毘梨耶波羅蜜如諸菩薩所得無盡毘梨耶波羅蜜
007_1021_a_02L무진의 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여덟 가지 일을 원만히 갖추어 수행하고 정진해서 다함이 없으니, 그 여덟 가지란, 큰 장엄을 내되 다함이 없음이요, 용맹정진을 쌓고 모으되 다함이 없음이요, 모든 착함을 수행하되 다함이 없음이요, 중생을 교화하되 다함이 없음이요, 수도(修道)를 돕는 공덕이 다함없음이요, 최상의 지혜를 돕되 다함이 없음이요, 위없는 슬기를 돕되 다함이 없음이요, 불법을 모으고 돕되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007_1020_c_25L無盡意言舍利弗薩具足八事修行精進而不可盡等八發大莊嚴而無有盡積集勇進而不可盡修行諸善而不可盡教化衆生而不可盡助道功德而不可盡無上智而不可盡助無上慧而不可集助佛法而不可盡
어떤 것이 보살의 다함없는 장엄이냐 하면, 모든 나고 죽음에 마음이 지치거나 게으르지 않아서 어느 겁수(劫數) 동안 마땅히 불도를 성취하겠다고 계산하지 않으므로 약간의 겁 동안은 장엄을 짓기도 하고 약간의 겁 동안은 장엄을 짓지 않기도 해서, 보살이 장엄하면서 지나는 겁수는 헤아릴 수 없으니, 예를 들면 오늘부터 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하루 낮, 하룻밤으로 삼고, 이와 같은 30일을 한 달로 삼으며, 열두 달을 한 해로 삼아서, 이 백천만 년 동안에 한결같이 도 닦을 마음을 내어 한결같이 부처님을 봅니다.
007_1021_a_08L云何菩薩莊嚴無盡於諸生死心不疲惓不計劫數當成佛道若干劫在而作莊嚴干劫在不作莊嚴菩薩莊嚴所經劫數不可稱計如從今日至生死本爲一日一夜如是三十日爲一月十二月爲一歲於是百千萬歲一發道心一見如來
이와 같이 발심하여 보게 되는 부처님들은 항하의 모래 수와 같으며, 그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바야흐로 모든 중생의 심행(心行)을 알고,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의 심행을 알고서도 오히려 물러서지 않으니, 이것을 게으르지 않는 장엄, 다함이 없는 장엄이라고 합니다.
007_1021_a_15L如是發心所見諸佛如恒沙於爾所佛邊方得知一衆生心行是遍知一切衆生心之所行猶不退是則名曰不懈莊嚴無盡莊嚴
이와 같이 부처님을 보고 발심하여 다른 중생의 마음이 행하는 바를 아는 때를 지나면서 항상 보시바라밀과 지계바라밀과 인욕바라밀과 정진바라밀과 선정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닦아 원만히 갖추고, 보리를 돕는 모든 법을 닦으며, 상호[三十二相八十種好]와 열 가지 힘[十力]과 네 가지 두려움 없는 법[四無畏法]과 부처님 외엔 누구도 같지 않은 열여덟 가지 법[十八不共法]을 갖추어 닦고, 그 외에 일체 모든 불법을 갖추어 닦기 때문에 이것을 게으르지 않은 장엄, 다함이 없는 장엄이라고 합니다.
007_1021_a_18L於如是見佛發心知他衆生心所行常修具足檀波羅蜜尸波羅蜜提波羅蜜毘梨耶波羅蜜禪波羅蜜般若波羅蜜修集一切助菩提法修相好十力無畏不共之法具修一切諸佛法故是名不懈莊嚴無盡莊
만약 어떤 보살이 이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보살은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을 알아야하니, 이것을 보살의 다함없는 장엄이라고 합니다.
007_1021_a_25L若有菩薩聞作是說不驚不怖不當知是菩薩不懈精進是名菩薩莊嚴無盡
007_1021_b_02L어떤 것이 보살의 다함없는 용맹정진이냐 하면, 만약 삼천대천세계가 타오르는 불길로 가득 차있더라도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이 불을 뚫고 지나가며, 법을 듣고 중생을 교화하여 중생들을 선법(善法)에 편히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도 또한 이와 같이 불을 뚫고 지나갈 것이니, 이것을 보살의 다함없는 용맹정진이라고 합니다.
007_1021_b_04L云何菩薩勇進無盡若三千大千世界滿中盛火爲見佛故當從是火中而過若爲聞法教化衆安止衆生於善法故亦應如是從火中過是名菩薩勇進無盡
무슨 인연으로 용맹정진이라고 하는가 하면, 항상 다른 사람을 위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을 고요하게 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을 조복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의 번뇌를 다 없애기 때문이며, 항상 게으르거나 자만하지 않고 굳건히 물러나지 않아서 마음이 대비(大悲) 가운데 편안히 머물러 언제나 부지런히 정진함은 중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용맹정진이라고 합니다.
007_1021_b_08L何因緣名曰勇進常爲他故爲靜他故調伏他故爲滅盡他故常不懈慢堅牢不退心善安止於大悲中常勤精進而爲衆生故名勇進
보살은 다닐 때 걸음걸음 마음을 모으되 다 보리를 향함은 항상 중생을 관찰하여 교화하려 하기 때문이며, 비록 이렇게 관찰하더라도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니, 이것을 보살의 다함없는 용맹정진이라고 합니다.
007_1021_b_12L菩薩行時步御心悉向菩提常觀衆生爲化度雖作是觀不起煩惱是名菩薩勇進無盡
어떤 것을 보살의 닦아 익힘이 다함없다고 하는가 하면, 일어나는 모든 착한 마음이 항상 보리를 원하므로 이것을 보살의 닦아 익힘이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근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여 애초부터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1021_b_15L云何菩薩修習無盡如所發起一切善心常願菩提是名菩薩修集無盡何以故以諸善根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初無盡故
사리불이여,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한 방울의 빗물이 큰 바다 속에 떨어질 때 그 한 방울의 물이 비록 적기는 하지만 끝내 없어지지는 않는 것처럼 보살이 선근을 보리에 회향하길 원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007_1021_b_18L舍利弗譬如天雨一渧之水墮大海中其渧雖微終無滅盡菩薩善根願向菩提亦復如是無有滅盡
선근을 닦아 모은다는 것은 이른바 바른 회향으로 선근을 닦아 모으며, 중생을 옹호하기 위해서 선근을 닦아 모으며, 중생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따르기 위해서 선근을 닦아 모으며, 일체지(一切智)를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선근을 닦아 모으는 것이니, 이것을 보살의 닦아 모음이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007_1021_b_21L修集善根者謂正迴向修集善根爲護衆生修集善根爲隨衆生諸所湏故修集善根爲欲成就一切智故修集善根是名菩薩修集無盡
007_1021_c_02L어떤 것을 보살의 교화가 다함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중생의 성품은 헤아릴 수 없으므로 보살은 그것을 마땅히 헤아리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하루 동안에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중생을 교화한다고 말하여 이렇게 계산할 수 있는 숫자로부터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고 칭량할 수도 없는 겁수에 이르기까지 중생을 교화한다면, 비록 이와 같이 교화된 중생의 수를 칭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다 하더라도 중생의 부분에 있어는 백분ㆍ천분ㆍ백 천만분에서 나아가 산수(算數)의 비유로써 알 수 있는 중생에 이르기까지 아직 교화되지 않았으니, 왜냐하면 이 중생의 성품이 한량없고 그지없고 칭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007_1021_b_25L云何菩薩教化無盡衆生之性不可稱計菩薩於中不應稱計若言一日教化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如是計數乃至無量不可思議不可稱劫教化衆生者雖作如是教化衆生不可稱計不可思議衆生分猶未是教化百分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知衆生何以是衆生性無量無邊不可稱計可思議
만약 보살이 이런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보살은 정진을 부지런히 닦는 이라고 알 것이니, 이것을 보살의 교화가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007_1021_c_11L若菩薩聞作是說不驚不怖不畏當知是菩薩勤修精進是名菩薩教化無盡
어떤 것을 보살의 도를 돕는[助道] 공덕이 다함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보살이 닦은 도를 돕는 공덕이 한량없고 그지없으므로 보살이 그것에 대해 마땅히 제한하거나 헤아리지 않는 것입니다.
007_1021_c_13L云何菩薩助道無盡薩所修助道功德無量無邊菩薩於中不應限量
왜냐하면 모든 중생이 가지고 있는 과거 미래 현재의 공덕과 성문ㆍ연각이 가지고 있는 공덕은 부처님에게 있어서는 비로소 한 털구멍의 공덕을 성취한 것에 불과하니, 이와 같이 하나하나의 털구멍이 가지고 있는 공덕으로부터 모든 털구멍의 공덕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아 성취하여야 비로소 여래의 한 수형호(隨形好:相好)를 성취하며, 이와 같이 하나하나의 수형호로부터 나아가 모든 수형호의 공덕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아 성취하여야 여래의 한 모양[相]을 성취하며, 이러한 하나하나의 모양으로부터 나아가 서른 가지의 모양을 모으고 이 서른 가지 모양의 백 배 공덕으로 비로소 여래의 눈썹 사이에 있는 흰터럭의 모양을 이루고, 나아가 이 흰터럭 모양의 백 천 공덕을 배로 닦아 모아야 비로소 여래의 볼 수 없는 정수리 모양을 이루니, 이것을 보살의 조도 공덕이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007_1021_c_15L何以故一切衆生所有功德若過去未來現在及聲聞緣覺所有功德於佛世尊始是成就一毛孔功德如是一一毛孔所有功德至一切毛孔功德聚集成就始成如來一隨形好如是一一隨形好等至一切隨形好功德聚集成就如是成就如來一相如是一一相至三十聚集是三十相百倍功德始成如來眉閒毫相乃至修集倍是毫相百千功德始成如來無見頂相是名菩薩助道功德無盡
007_1022_a_02L어떤 것을 보살의 지혜를 도움[助智]이 다함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보살이 닦은 지혜를 도움은 한량없고 그지없으므로 보살은 그것에 대해 마땅히 수를 제한하지 않으니, 만약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중생이 한 가지 신행(信行)으로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이러한 신행을 하나의 법행(法行)으로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算數)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a_02L云何菩薩助智無菩薩所修助智無量無邊菩薩於中不應限數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如一信行所成就智如是信行比一法行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
만약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이 모두 법행을 성취하더라도 한 팔인(八忍)2)을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 천분 백 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a_09L若三千大千世界衆生悉爲法行比一八人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팔인의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한 수다원(須陀洹)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a_11L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爲八人智比一湏陁洹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수다원의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한 사다함(斯陀含)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 천분ㆍ백 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a_14L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爲湏陁洹比一斯陁含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사다함의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한 아나함(阿那含)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a_17L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爲斯陁含智比一阿那含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아나함의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한 아라한(阿羅漢)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a_21L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爲阿那含智比一阿羅漢所成就智分千分百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007_1022_b_02L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아라한의 지혜를 성취하였더라도 한 연각(緣覺)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a_24L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爲阿羅漢智比一緣覺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연각의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한 백 겁 동안에 보살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b_04L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成緣覺智比一百劫菩薩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백 겁 동안 보살이 성취한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인욕을 얻은 한 보살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b_08L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爲百劫菩薩所成就智比一得忍菩薩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分百千萬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인욕을 얻은 보살이 성취한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물러남이 없는 한 보살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b_11L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爲得忍菩薩所成就智比一得不退菩薩所成就百分千分百千分百千萬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만약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중생이 모두 물러나지 않는 보살의 지혜를 성취한다하더라도 한 생을 지난 뒤 반드시 부처님 지위에 오를 한 보살이 성취한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b_15L若三千大千世界所有衆生悉得不退菩薩智比一補處菩薩所成就智百分千分百千萬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만약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계의 중생이 모두 한 생을 지난 뒤 반드시 부처님 지위에 오를 보살이 성취한 지혜와 같게 되더라도 한 여래의 시처비처지력(是處非處智力:진리와 진리 아닌 것을 아는 힘)의 지혜와 비교한다면 백분ㆍ천분ㆍ백천분ㆍ백천만분에서 나아가 어떤 산수의 비유로도 미칠 수 없습니다.
007_1022_b_18L若無量無邊世界衆生悉如補處所成就智比一如來是處非處智百分千分百千分百千萬分乃至譬喩算數所不能
통틀어서 말하면 여래의 열 가지 힘과 네 가지 두려움 없음과 열여덟 가지 다른 중생과 같지 않은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 만약 보살이 이런 말을 듣고서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보살은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인 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지혜를 도움[助智]이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007_1022_b_22L摠說如來諸力無畏不共之法復如是若菩薩聞作是說不驚不怖不畏當知是菩薩勤行精進是名菩薩助智無盡
007_1022_c_02L또 어떤 것을 보살의 지혜를 도움[助慧]이 다함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모든 중생이 소유한 심행(心行)은 다할 수 없으므로 보살은 그 가운데서 마땅히 숫자를 헤아리지 않으니,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중생이 소유한 심행을 만약 어떤 사람이 한 생각 가운데서 이러한 삼세 중생이 소유한 심행을 갖추고, 이와 같이 생각 생각마다 모두 이러한 갖가지 심행을 갖추어서, 마치 한 사람의 마음 가운데 갖추어진 심행과 같이 일체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모든 중생도 다 이와 같은 것입니다.
007_1022_b_25L云何菩薩助慧無盡切衆生所有心行不可窮盡菩薩於中不應計數過去未來現在衆生所有心行若有人於一念中具如是等三世衆生所有心行如是念念皆亦如是具諸心行如一人心中所具心一切無量無邊衆生皆亦如是
만약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중생이 소유한 탐욕과 음심(婬心)과 성냄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를 어떤 사람이 한 생각 중에 이러한 삼세 중생의 모든 번뇌를 갖추고, 이와 같이 생각 생각마다 모두 또 이러한 온갖 한량없고 그지없는 번뇌를 갖춘다면, 한 사람의 마음 가운데 갖추어진 온갖 번뇌와 같이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도 모두 또한 이와 같습니다.
007_1022_c_08L過去未來現在衆生所有貪婬瞋恚愚癡及諸煩惱若有一人於一念中具如是等三世衆生所有煩惱如是念念皆亦如是具諸煩惱無量無邊如一人心中所具諸結一切無量無邊衆生皆亦如是
보살은 그 가운데서 지혜의 광명을 내되 한 생각의 지혜 광명에는 아무런 티끌이나 가림이 없어서 과거ㆍ미래ㆍ현재 중생의 번뇌와 마음이 반연하는 모든 경계와 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모양을 남김없이 다 비추니, 이 보살은 모든 중생이 삼세(三世)에 서로 응하는 번뇌를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007_1022_c_14L菩薩於中生慧光一念慧光無諸塵翳悉照過去未來現在衆生煩惱諸心所緣境界生住滅相無有遺餘是菩薩於諸衆生世相應諸煩惱等無不盡知
사리불이여, 마치 허공이 덮어주지 않는 곳이 없는 것처럼 보살의 지혜 광명도 그와 같아서 비추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만약 보살이 이런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보살은 정진을 부지런히 행하는 사람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니, 이것을 보살의 지혜를 도움이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007_1022_c_18L舍利弗譬如虛空無所不覆菩薩慧光亦復如是無所不照若菩薩聞作是說不驚不怖不畏當知是菩薩勤行精進是名菩薩助慧無盡
007_1023_a_02L어떤 것을 보살이 불법을 도움을 닦아서 모음이 다함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보살이 행하는 불법을 도움을 닦는 일은 한량없고 그지없으므로 보살은 그 가운데에서 마땅히 양(量)을 제한하지 않으니,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도량에 앉을 때까지 그 중간에 6바라밀을 수행하여 원만히 갖추고 모든 조도법(助道法)을 수행하여 원만히 갖춥니다. 이와 같이 발심하여 수행한 모든 선근(善根)은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으며 모두 불법을 도우니, 이것을 보살이 불법을 돕는 수행을 하여 다함이 없다고 하며, 보살이 여덟 가지 일로 수행 정진하여 다함이 없다고 합니다.
007_1022_c_22L云何菩薩修集助佛法無盡菩薩所行修助佛法無量無若菩薩於中不應限量從初發心至坐道場於其中閒修行具足六波羅蜜修行具足諸助道法如是一切發心修行一切善根不可稱計悉助佛法是名菩薩修助佛法而無有盡是名菩薩八事修行精進無盡
또한 사리불이여, 보살의 정진도 다함이 없습니다. 몸의 선업(善業)이거나 입의 선업이거나 뜻의 선업이거나 항상 부지런히 하여 게으르지 않으니, 왜냐하면 보살이 정진하는 일은 언제나 몸과 입과 뜻과 서로 응하며, 비록 몸과 입으로 정진하더라도 모두 마음에서 연유하니, 마음이 증상(增上)이 됩니다.
007_1023_a_06L復次舍利弗菩薩精進亦不可盡若身善若口善業若意善業常勤不懈以故菩薩所作精進常與身口意相應雖身口精進皆由於心心爲增上
어떤 것을 보살의 마음 정진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른바 마음의 시작과 마음의 끝이니, 마음의 시작이란 처음으로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보리의 마음이 적멸(寂滅)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모든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나와 남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모든 중생을 거두어주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모든 법을 갖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생사를 싫어하지 않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삼계가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가진 것을 버리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깔봄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1023_a_10L云何菩薩心精進耶所謂心始心終云何心始初發心故云何心終菩提心寂滅故云何心始於諸衆生起大悲故云何心終無我人故云何心始攝衆生故云何心終不取諸法故何心始不厭生死故云何心終無三界故云何心始捨所有故云何心終無所輕故
마음의 시작이란 계를 받아 지니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계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인욕을 수행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성냄과 싸움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모든 선(善)을 일으켜 수행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홀로 섞이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선정을 닦아 모으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많이 들어도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잘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007_1023_a_18L云何心始受持戒故云何心終不持戒故云何心始修行忍故云何心終無忿諍故云何心始發行諸善故云何心終獨不雜故云何心修集定故云何心終心淸淨故何心始多聞無厭故云何心終善思惟故
007_1023_b_02L마음의 시작이란 이치를 닦아 익혀 질문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법에는 말함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지혜를 구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희론(戱論)을 끊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네 가지 범행(梵行)을 닦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참된 지혜를 버리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다섯 가지 신통을 갖추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번뇌가 다함을 갖추기 때문입니다.
007_1023_a_24L云何心始習問義故云何心終法無言說故云何心始求智慧故何心終斷戲論故云何心始修四梵行故云何心終捨眞智故云何心始具五通故云何心終具漏盡故
마음의 시작이란 마음이 머무는 곳[念處]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생각에 사유(思惟)가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바르게 힘씀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선(善)과 불선(不善)을 통합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여의분(如意分)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과보 얻음을 갖추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모든 감관[根]의 방편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모든 감관의 법을 관찰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모든 힘을 모으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지혜가 결코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보리 돕는 법[助菩提分]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모든 배움의 방편을 잘 알아서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007_1023_b_05L云何心始發念處故云何心終念無思惟云何心始發正勤故云何心終善不善故云何心始發如意分故何心終具報得故云何心始發諸根方便故云何心終觀諸根法故云何心始集諸力故云何心終智不壞故云何心始發助菩提分故云何心終善知分別諸學方便故
마음의 시작이란 도는 돕는 법을 구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나아감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적멸을 구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마음이 영원히 적멸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지혜를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법을 잘 알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인(因)을 대략적으로 알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인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007_1023_b_13L云何心始求助道法故云何心終無進趣故何心始求寂滅故云何心終心永寂滅故云何心始發起慧故云何心終知法故云何心始覺知因故云何心善知因故
마음의 시작이란 다른 이로부터 듣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모든 법에 대해 방일(放逸)함이 없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장엄한 꾸밈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몸의 성품을 알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입을 장엄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성스럽게 침묵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삼해탈(三解脫:空ㆍ無相ㆍ無願解脫)을 행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조작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_1023_b_18L云何心始從他聞故何心終於諸法中無放逸故云何心發嚴飾故云何心終知身性故何心始莊嚴口故云何心終聖默然云何心始行三脫故云何心終所作故
007_1023_c_02L마음의 시작이란 네 마구니[四魔:陰魔ㆍ煩惱魔ㆍ死魔ㆍ天子魔]를 조복하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번뇌와 습기를 버리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방편을 알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지혜에 통달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발심(發心)을 잘 알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제도(濟度)를 잘 알기 때문이며, 마음의 시작이란 세간의 습속을 알기 때문이고 마음의 끝이란 참된 이치를 알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의 마음 정진이라고 합니다.
007_1023_b_23L云何心始降四魔故云何心捨結習故云何心始知方便故何心終了於慧故云何心始善知發云何心終善知度故云何心始世俗故云何心終善知眞諦故是名菩薩心精進也
이 마음은 정진을 원만히 갖추어 다함이 없으므로 처음과 끝을 말하나, 보살은 이와 같이 조작하는 모양을 원만히 갖추되 마음은 언제나 조작하는 업에 머물지 않으니, 이것은 보살이 모든 업의 모양에 대해 알고서 일부러 조작하기 때문입니다.
007_1023_c_05L是心具足精進無盡故說始終菩薩具足如是作相而心未常住於作業是菩薩於諸業相知而故作
왜 보살은 알면서 일부러 조작하는가 하면, 모든 선근(善根)을 위하기 때문이니, 모든 중생을 위해 대비를 닦기 때문에 함이 있음[有爲]을 여의지 않으며, 모든 부처님의 참되고 묘한 지혜를 행하기 때문에 생사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정진바라밀이 다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007_1023_c_08L云何菩薩知而故作爲諸善根爲諸衆生修大悲故不離有爲爲一切佛眞妙智故不墮生死是名菩薩摩訶薩毘梨耶波羅蜜而不可盡
이 법을 연설할 때 칠십 나유타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고, 3만 2천의 보살마하살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007_1023_c_11L是法時七十那由他諸天及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三萬二千菩薩摩訶薩得無生法忍
無盡意菩薩經卷第二
己亥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머리를 꾸미는 장식.
  2. 2)원문에는 八人으로 되어 있으니, 人은 忍이다. 忍은 忍可의 뜻이며 智가 생기는 因으로, 見道位에 들어가서 생기는 智의 앞자리 이며, 그 理法을 확실히 인정하고 안 無漏心을 말한다. 팔인은 苦法忍, 苦類忍, 集法忍, 集類忍, 滅法忍, 滅類忍, 道法忍, 道類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