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乘入楞伽經卷第二

ABC_IT_K0161_T_002
010_0928_a_01L대승입능가경 제2권
010_0928_a_01L大乘入楞伽經卷第二


대주 우전국 실차난타 한역
김진철 번역
010_0928_a_02L大周于闐國三藏法師實叉難陁奉勅譯


2. 집일체법품 ②
010_0928_a_03L集一切法品第二之二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희를 위하여 심(心)ㆍ의(意)ㆍ의식(意識)ㆍ오법자성상(五法自性相)의 온갖 미묘한 법문을 설해주소서. 이것은 일체 모든 불보살께서 자기 마음의 경계에 들어가서 행하던 바의 상(相)을 떠났으므로 진실한 뜻이라고 하는 모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마음입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여래께서 이 산중의 모든 보살 대중을 위하여 과거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장식(藏識)의 바다 물결과 법신의 경계를 연설하여 주소서.”
010_0928_a_04L爾時大慧菩薩摩訶薩復白佛言唯願爲我說心意識五法自性相衆妙法門此是一切諸佛菩薩入自心境離所行相稱眞實義諸佛教唯願如來爲此山中諸菩薩衆順過去諸佛演說藏識海浪法身境
그때 세존께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인연이 있어서 안식(眼識)이 변화한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자기 마음이 나타난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집착하여 취하기 때문이요, 무시이래로 색(色)의 허망한 습기에 집착함이요, 식(識)의 본성이 이와 같은 까닭이요, 여러 가지 모든 색상(色相:물질)을 즐겨 보는 까닭이다.
010_0928_a_11L爾時世尊告大慧菩薩摩訶薩言有四種因緣眼識轉何等爲四所謂不覺自心現而執取故無始時來取著於色虛妄習氣故識本性如是故樂見種種諸色相故
대혜여, 네 가지 인연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에 폭포수[瀑流水] 같은 전식(轉識:8식)의 물결이 생긴다. 안식과 같이 다른 식도 또한 이와 같다. 일체 모든 근과 미진(微塵)ㆍ털구멍ㆍ눈 등에서 전식이 갑자기 생긴다. 비유하면 거울에 온갖 색상이 나타나는 것과 같고, 혹은 점차 생기기도 하므로 마치 맹렬한 바람이 큰 바다의 물결을 일으키는 것같이 마음의 바다도 또한 그렇다. 경계의 바람이 불어 모든 식의 물결이 일어나 상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한다.
010_0928_a_15L大慧以此四緣阿賴耶識如瀑流水生轉識浪如眼餘亦如是於一切諸根微塵毛孔眼等轉識或頓生譬如明鏡現衆色或漸生猶如猛風吹大海水心海亦爾境界風吹起諸識浪相續不絕
대혜여, 인(因)과 지은 모양[所作相]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업과 생긴 상[生相]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색(色) 등 자성을 깨닫지 못하고 5식(識: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의 몸이 굴러간다.
010_0928_a_20L大慧因所作相非一非異業與生相相繫深縛不能了知色等自性五識身轉
010_0928_b_02L대혜여, 5식과 함께 하거나 혹은 차별과 경계의 모양을 구별하여 인식하므로 의식이 생긴다. 그러나 그 모든 식에 대해서, ‘무리들이 동시에 바뀌어가면서 인이 된다’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식은 자기 마음에 나타나는 경계에서 분별과 집착이 때를 같이하여 일어나므로 차별상이 없이 각각 자기 경계를 알 뿐이다.
010_0928_a_22L大慧與五識俱或因了別差別境相有意識生然彼諸識不作是念我等同時展轉爲因而於自心所現境界分別執著俱時而起無差別相各了自境
대혜여, 모든 수행자는 삼매에 들어가면 습기의 힘이 미세하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아 알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나는 모든 식이 멸하여 삼매에 들었다’고 한다. 실은 식이 멸하여 삼매에 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습기의 종자가 멸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경계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인데 식이 멸하였다고 생각한다.
010_0928_b_06L大慧諸修行者入於三昧以習力微起而不覺知但作是念我滅諸識入於三昧實不滅識而入三昧彼不滅習氣種故但不取諸境名爲識滅
대혜여, 이와 같이 장식의 행상(行相)은 미세하다. 오직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체 2승(乘)이나 외도의 정혜(定慧)의 힘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수행하여 여실히 행하는 자는 지혜의 힘으로 모든 지(地)의 상(相)을 안다. 구의(句義)를 잘 통달하여 끝없는 부처님의 선근을 널리 모으고 허망하게 분별하지 않으며 자기 마음으로 본다는 것을 잘 안다.
010_0928_b_10L大慧如是藏識行相微細唯除諸佛及住地菩薩其餘一切二乘外道定慧之力皆不能知唯有修行如實行者以智慧力了諸地相善達句無邊佛所廣集善根不妄分別自心所見能知之耳
대혜여, 모든 수행인은 숲속 편안한 곳에서 상ㆍ중ㆍ하를 닦아 능히 자기 마음의 분별과 흐름을 보고 삼매의 자재한 힘에 통달하면 모든 부처님께서 관정(灌頂)해 주신다. 그리고 모든 보살에게 둘러싸여 마음ㆍ뜻ㆍ의식이 행하는 경계를 알아 애업(愛業)ㆍ무명ㆍ생사의 대해를 초월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반드시 모든 불보살과 여실히 수행하는 대선지식을 친근하여야 한다.”
010_0928_b_15L大慧諸修行人宴處山林上中下修能見自心分別流得諸三昧自在力通諸佛灌頂菩薩圍繞知心意識所行境界超愛業無明生死大海是故汝等應當親近諸佛菩薩如實修行大善知識
그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으로 설하셨다.
010_0928_b_20L時世尊重說頌言

비유하면 큰 바다 물결은
맹렬한 바람으로 일어나
큰 파도가 깊은 바다를 치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같이
장식(藏識)의 바다 항상 멈추나
경계의 바람이 움직여
갖가지 모든 식의 물결
뛰어올라 바뀌면서 생겨난다.
010_0928_b_21L譬如巨海浪
斯由猛風起
洪波鼓溟壑
無有斷絕時
藏識海常住
境界風所動
種種諸識浪
騰躍而轉生

푸르고 붉은 모든 색
소금과 조개와 젖과 석밀(石蜜)
꽃과 열매와 해와 달의 빛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지도 않느니라.
010_0928_b_24L靑赤等諸色
鹽貝乳石蜜
花果日月光
非異非不異
010_0928_c_02L
뜻 등 일곱 가지 식(識)도
이와 같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바다와 파도가 같듯이
마음도 함께 화합하여 생기느니라.
010_0928_c_02L意等七種識
應知亦如是
如海共波浪
心俱和合生

비유하면 바닷물이 움직여
갖가지 파도가 변하듯이
장식(藏識)도 또한 이와 같이
갖가지 모든 식이 생기느니라.
010_0928_c_04L譬如海水動
種種波浪轉
藏識亦如是
種種諸識生

마음과 뜻과 의식
여러 가지 모양이라 말하나
8식은 다른 모양이 없고
능상(能相)과 소상(所相)도 없느니라.
010_0928_c_05L心意及意識
爲諸相故說
八識無別相
無能相所相

비유하면 바다와 파도같이
이것은 곧 차별이 없다.
모든 식의 마음도 이와 같아서
다른 점 또한 찾을 수 없느니라.
010_0928_c_06L譬如海波浪
是則無差別
諸識心如是
異亦不可得

마음이 업(業)을 쌓아 모으고
뜻도 업을 쌓아 모아서
인식하여 분별하므로 식이라 하고
나타난 경계에 대하여 다섯을 말하느니라.
010_0928_c_08L心能積集業
意能廣積集
了別故名識
對現境說五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010_0928_c_09L爾時大慧菩薩摩訶薩以頌問曰

푸르고 붉은 모든 색상(色像)
중생의 식이 나타나는 것이라면
파도와 같은 갖가지 법은
어떠한지 부처님 설하여 주소서.
010_0928_c_10L靑赤諸色像
衆生識顯現
如浪種種法
云何願佛說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010_0928_c_12L爾時世尊以頌答曰

푸르고 붉은 모든 색상
파도 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
마음이 온갖 모양 일으킨다 말하여
모든 범부를 깨우치느니라.
010_0928_c_13L靑赤諸色像
浪中不可得
言心起衆相
開悟諸凡夫

그러나 그것은 본래 일어남이 없는 것이고
자기 마음에서 취하고 버린 것이며
취하는 자와 취하는 대상도
저 파도와 같으니라.
010_0928_c_15L而彼本無起
自心所取離
能取及所取
與彼波浪同

몸과 재물[資財] 머무는 곳도
생의 식이 나타낸 것이니
이런 까닭으로 이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나
파도와 더불어 차별 없느니라.
010_0928_c_16L身資財安住
衆生識所現
是故見此起
與浪無差別

그때 대혜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010_0928_c_17L爾時大慧復說頌言

큰 바다 파랑의 성품
치고 출렁임 분별되지만
식도 이와 같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깨닫지 못합니까?
010_0928_c_18L大海波浪性
鼓躍可分別
藏識如是起
何故不覺知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010_0928_c_20L爾時世尊以頌答曰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바다와 같고
전식(轉識:7식)은 파도와 같은 것
범부는 지혜가 없으므로
비유로 자세히 연설하셨다.
010_0928_c_21L阿賴耶如海
轉識同波浪
爲凡夫無智
譬喩廣開演

그때 대혜가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010_0928_c_23L爾時大慧復說頌言
010_0929_a_02L
비유하면 햇빛이 솟아나와
위아래 다 비추듯이
부처님도 또한 그렇습니다.
마땅히 어리석은 이 위하여 진실을 설하시어
이미 능히 법 열어 보이셨으니
어찌 진실을 나타내지 않으십니까?
010_0928_c_24L譬如日光出
上下等皆照
世閒燈亦然
應爲愚說實
已能開示法
何不顯眞實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010_0929_a_03L爾時世尊以頌答曰

만약 진실을 말한다면
그들 마음은 진실함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바다의 파도와
거울 속 영상과 꿈이
일시에 나타나는 것같이
마음의 경계도 그러하여
경계가 갖추어지지 아니하므로
차례로 바뀌어 생기느니라.
010_0929_a_04L若說眞實者
彼心無眞實
譬如海波浪
鏡中像及夢
俱時而顯現
心境界亦然
境界不具故
次第而轉生

식은 능히 깨달아 알고
뜻과 의식 그러하며
5식(識)은 나타난 경계를 알지만
일정한 차례가 없느니라.
010_0929_a_07L識以能了知
意復意謂然
五識了現境
無有定次第

비유하면 재주 있는 화가와
화가의 제자가
그림 그리는 베에 온갖 상을 그리듯
나의 설법도 또한 이와 같다.
010_0929_a_08L譬如工畫師
及畫師弟子
布彩圖衆像
我說亦如是

채색 가운데 문양도 없고
붓의 자취도 없고 또한 바탕[素]도 없으니
중생 기쁘게 하려고
아름답고 빛난 온갖 모양 그리니
말은 변하여 달라지고
진실은 문자를 떠난 것
내가 머무는 진실한 법
모든 수행자 위해 설하느니라.
010_0929_a_10L彩色中無文
非筆亦非素
爲悅衆生故
綺煥成衆像
言說則變異
眞實離文字
我所住實法
爲諸修行說

진실함을 스스로 깨닫는 곳
주체와 객체의 분별 떠나나니
불자 위해 말하고
어리석은 범부에게는 분별하여 연설하느니라.
010_0929_a_12L眞實自證處
能所分別離
此爲佛子說
愚夫別開演

여러 가지 모두 환과 같아
보이는 것은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이 갖가지 설법
일에 따라 달리 설해지며
설할 것이 마땅치 않으면
그에게는 설하지 아니하느니라.
010_0929_a_14L種種皆如幻
所見不可得
如是種種說
隨事而變異
所說非所應
於彼爲非說

비유하면 많은 병든 사람에게
좋은 의원이 병 따라 약 주듯이
여래는 중생 위해
마음 따라 근기[量]에 맞게 설한다.
010_0929_a_16L譬如衆病人
良醫隨授藥
如來爲衆生
隨心應量說

세간에서 의지하고 믿어야 할 것은
깨달은 지혜로 행하는 곳이고
외도의 경계는 아니며 성문도
또한 그러하니라.
010_0929_a_17L世閒依怙者
證智所行處
外道非境界
聲聞亦復然

또한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만약 취하고자 하는 분별 경계가 모두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임을 깨닫고자 한다면 반드시 소란함과 혼침과 수면을 떠나야 한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부지런히 닦고 익혀 일찍이 들었던 외도의 삿된 이론과 2승의 법을 멀리 떠나 자기 마음의 분별의 상(相)을 통달하여야 한다.
010_0929_a_18L復次大慧菩薩摩訶薩若欲了知能取所取分別境界皆是自心之所現當離憒鬧昏滯睡眠初中後夜勤加修習遠離曾聞外道邪論及二乘通達自心分別之相
010_0929_b_02L또한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지혜의 마음이 머무는 상(相)에 머물고 나아가 최상의 바른 지혜[上聖智]의 3상(相)에서 반드시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말하자면 영상이 없는 상[無影像相], 일체 모든 부처님이 원하여 지니는 상[一切諸佛願持相], 스스로 바른 지혜를 깨달아 나아가는 상[自證所趣相]이다.
모든 수행자는 이런 상(相)을 얻고 나서 곧 절름발이와 같은 나귀의 마음의 상[心相]을 버리고 보살의 제8지에 들어가 이 삼상의 수행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010_0929_a_23L復次大慧菩薩摩訶薩住智慧心所住相已於上聖智三相當勤修學者爲三所謂無影像相一切諸佛願持相自證聖智所趣相諸修行者獲此相已卽捨跛驢智慧心相入菩薩第八地於此三相修行不捨
대혜여, 영상(影像)의 모양(相)이 없다는 것은 일체 2승(乘)의 외도상의 관습으로 말미암아 생기(生起)하는 것을 말한다. 일체 제불이 원력으로 지니는 모양이라는 것은 모든 부처님께서 스스로 본래 원력에 가지(加持)되어 생기한 것을 말한다. 스스로 바른 지혜[聖智]를 깨달아 나아가는 모양이란 일체법의 모양을 취하지 않고 환과 같은 모든 삼매를 성취하여 몸이 부처님 경지의 지혜에 나아가기 때문에 생기(生起)하는 것이다.
010_0929_b_06L大慧影像相者謂由慣習一切二乘外道相故而得生起一切諸佛願持相者謂由諸佛自本願力所加持故而得生起自證聖智所趣相者謂由不取一切法相成就如幻諸三昧身趣佛地智故而得生起
대혜여, 이것을 최상의 바른 지혜의 세 가지 모양이라고 한다. 만약 이런 상(相)을 얻으면 곧 스스로가 바른 지혜를 깨달아 행하는 곳에 이르므로 너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한다.”
010_0929_b_12L大慧是名上聖智三種相若得此相卽到自證聖智所行之處汝及諸菩薩摩訶薩應勤修學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모든 보살의 생각하는 마음을 알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직 원하옵나니 백팔 구의 차별이 의지하는 것과 바른 지혜의 자성법문을 설하여 주소서. 일체 여래ㆍ응공ㆍ정등각께서 모든 보살마하살이 자상(自相)ㆍ공상(共相)에 떨어진 것을 위하여 망령되게 헤아리는 성품의 차별화된 의미를 설해 주십시오.
010_0929_b_14L爾時大慧菩薩摩訶薩知諸菩薩心之所念承一切佛威神之力白佛言唯願爲說百八句差別所依聖智事自性法門一切如來正等覺爲諸菩薩摩訶薩墮自共相者說此妄計性差別義門
이 뜻을 알고 나서 곧 능히 2무아관(無我觀:人ㆍ法無我)을 청정히 닦고 모든 지(地)를 밝게 비추어 일체 2승ㆍ외도의 삼매락(三昧樂)을 초월하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여래가 행한 불가사의한 경계를 보고 필경에 오법자성(五法自性)을 버리고 일체 부처님의 법신의 지혜로써 스스로 장엄하게 하시며, 환(幻)과 같은 경계에 들어 일체 세계의 도솔타궁(兜率陀宮) 색구경천(色究竟天)에 머물러 여래의 몸을 이루게 하여 주십시오.”
010_0929_b_20L知此義已則能淨治二無我觀境照明諸地超越一切二乘外道三昧之樂見諸如來不可思議所行境界畢竟捨離五法自性以一切佛法身智慧而自莊嚴入如幻境住一切剎兜率陁宮色究竟天成如來身
010_0929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한 부류의 외도는 모든 법이 인연을 따라 가는 것으로 보고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켜 토끼뿔이 없으므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토끼뿔이 없는 것같이 모든 법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010_0929_c_03L佛言大慧有一類外道見一切法隨因而盡生分別解想兔無角起於無見如兔角無一切諸法悉亦如
또 다른 외도는 대종(大種:四大)ㆍ구나(求那:原質)ㆍ티끌[塵] 등 모든 물질의 모양과 양(量)과 나누어진 위치[分位]가 각각 차별이 있음을 보고 토끼뿔이 없다는 것에 집착하여 소는 뿔이 있다는 생각을 낸다.
010_0929_c_06L復有外道見大種求那塵等諸物形量分位各差別已執兔無角於此而生牛有角想
대혜여, 그들은 두 가지 견해에 떨어져 오직 마음임을 깨닫지 못하고 다만 자기 마음에 분별심을 증장한다.
대혜여, 몸과 살림[資生:의ㆍ식ㆍ주]과 기세간(器世間) 등 일체가 모두 분별에서 나타난 것이다.
010_0929_c_08L大慧彼墮二見不了唯心但於自心增長分別大慧身及資生器世閒等一切皆唯分別所現
대혜여, 반드시 알라. 토끼뿔은 있고 없음을 떠났고 모든 법도 다 그러하니 분별을 하지 말라. 어떻게 토끼뿔이 있고 없음을 떠났는가? 서로가 상대하여 인(因)이 되기 때문이다. 소뿔을 분석하고 나아가 먼지에 이르기까지 그 본체와 모양을 구하지만 끝내 얻을 수 없다. 바른 지혜로 행하면 그런 견해는 멀리 떠난다. 이러한 까닭에 이런 것을 마땅히 분별하지 말 것이다.”
010_0929_c_10L大慧應知兔角離於有無諸法悉然生分別云何兔角離於有無互因待分扸牛角乃至微塵求其體相終不可得聖智所行遠離彼見是故於此不應分別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것이 허망된 견해로써 상(相)을 일으켜 비교하여 헤아리고, 상대하며 관찰하여 허망되게 없다고 헤아림이 아닙니까?”
010_0929_c_15L爾時大慧菩薩摩訶薩復白佛言彼豈不以妄見起相比度觀待妄計無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분별로써 상대(相待)를 일으켜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별을 생인(生因)으로 하는 까닭에 뿔로써 분별하여 의지하는 바가 되고 의지하는 바를 인으로 한다. 다름과 다르지 아니함을 떠나서 상대로 말미암아 토끼뿔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010_0929_c_18L佛言不以分別起相待以言何以故彼以分別爲生因故以角分別爲其所依所依爲因離異不異非由相待顯兔角無
대혜여, 만약 이 분별이 토끼뿔과 다르다면 곧 뿔이 인이 아니요, 만약 다르지 아니하다면 그 뿔로 인하여 일어난다.
010_0929_c_21L大慧若此分別異兔角則非角因若不異者因彼而起
010_0930_a_02L대혜여, 소뿔을 분석하고 나아가 극미(極微:원자)에 이르러 찾아도 얻지 못한다. 뿔이 있다든가 뿔이 없다고 하는 분별은 결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둘이 함께 있지 아니하거늘 누가 누구를 상대하랴.
만약 상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소뿔이 있다고 하는 데 상대하기 때문에 토끼뿔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마땅히 분별이 아니다. 정인(正因)이 아닌 까닭에 유무(有無)를 논하는 자는 유(有)에 집착하고 무(無)에도 집착하는 것이므로 둘 다 성립되지 않는다.
010_0929_c_22L分扸牛角乃至極微求不可得於有角言無角者如是分別決定非理二俱非有誰待於誰若相待不成待於有故言兔角無不應分別不正因故有無論者執有執無二俱不成
대혜여, 또 어떤 외도는 물질의 형상과 허공이 가지런히 나누어짐[分齊]을 보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물질은 허공과 다르다고 말하며 분별을 일으킨다. 대혜여, 허공이 곧 물질[色]이라 물질의 종류[色種]에 따라 들어간다.
010_0930_a_04L大慧復有外道見色形狀虛空分齊而生執著言色異虛空起於分別大慧空是色隨入色種
대혜여, 물질이 이 허공이니 능지(能持)와 소지(所持)를 건립하는 성품[建性] 때문이니라. 물질과 공의 한계[分齊]가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010_0930_a_07L大慧色是虛空持所持建立性故色空分齊應如是
대혜여, 대종(大種)이 생길 때 스스로 모양이 각각 달라 허공에 머물지 않지만 허공에 없는 것도 아니니라. 대혜여, 토끼뿔도 또한 그와 같아 소뿔을 상대적으로 관찰하여 그 뿔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010_0930_a_09L大慧大種生時自相各別不住虛空中非彼無虛空大慧兔角亦爾待牛角言彼角無
대혜여, 소뿔을 분석하여 나아가 먼지에까지 이르고 또 그 먼지를 분석해도 모양은 나타나지 않는데 무엇을 상대하여 없다고 말하는가? 만약 다른 물건을 상대하여도 그것도 또한 이와 같다.
010_0930_a_11L大慧分扸牛角乃至微塵又扸彼塵其相不現彼何所待而言無耶若待餘物彼亦如是
대혜여, 그대는 마땅히 토끼뿔ㆍ소뿔ㆍ허공ㆍ물질의 분별을 멀리 떠나야 한다.
그대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항상 자기 마음이 본 분별의 모양을 관찰하고 일체 국토에서 모든 불자를 위하여 자기 마음이 수행하는 법을 관찰하여 말해 주어야 한다.”
010_0930_a_13L汝應遠離兔角牛角虛空及色所有分別汝及諸菩薩摩訶薩應常觀察自心所見分別之相於一切國土爲諸佛子說觀察自心修行之法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설하셨다.
010_0930_a_17L時世尊卽說頌言

마음이 본 것(사물)은 없고
오직 마음에 의지하여 일어날 뿐
몸과 재물과 사는 곳은 그림자라
중생의 장식(藏識)에서 나타난 것이니라.
010_0930_a_18L心所見無有
唯依心故起
身資所住影
衆生藏識現

마음과 뜻과 식과
자성과 다섯 가지 법[五種法]과
2무아(無我)의 청정함을
모든 도사(導師)께서 연설하시느니라.
010_0930_a_20L心意及與識
自性五種法
二無我淸淨
諸導師演說

길고 짧음을 같이 상대적으로 관찰하고
번갈아 가면서 서로 생기나니
유(有)로 인하여 무(無)를 이루고
무로 인하여 유를 이루느니라.
010_0930_a_21L長短共觀待
展轉互相生
因有故成無
因無故成有

미진까지 분석하여도
물질의 분별 일어나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 일으킨 것
견해 잘못된 자는 믿지 않느니라.
010_0930_a_22L微塵分扸事
不起色分別
唯心所安立
惡見者不信

외도가 행할 곳 아니고
성문도 또한 그러하니
구세주[救世]의 설하신 바는
스스로 깨달으신 경계이니라.
010_0930_a_24L外道非行處
聲聞亦復然
救世之所說
自證之境界
010_0930_b_02L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자기 마음에 현재의 흐름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께 청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모든 중생이 자기 마음의 현재 흐름을 청정하게 합니까? 점차로 청정하게 되는 것입니까? 단번[頓]에 청정하게 되는 것입니까?”
010_0930_b_02L爾時大慧菩薩摩訶薩爲淨心現流故而請佛言世尊云何淨諸衆生自心現流爲漸次淨爲頓淨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점차로 청정하여지고 단번에는 되지 않는다. 나무 열매가 점점 익고 단번에 익지 않듯이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 모든 중생의 마음의 현재 흐름을 청정하게 하심도 또한 이와 같다. 점점 청정하게 되는 것이지 단번에 청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010_0930_b_05L佛言漸淨非頓如菴羅果漸熟非頓佛如來淨諸衆生自心現流亦復如是漸淨非頓
도공[陶師]이 그릇을 만들 때 점점 이루어지는 것이지 단번에 되지 않듯이,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 모든 중생의 마음의 흐름을 청정하게 하심도 또한 이와 같아 점차로 되는 것이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면 대지에 모든 초목이 날 때 점점 생겨나지 단번에 나지 않는 것과 같다.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 모든 중생의 마음의 흐름을 청정하게 하심도 또한 이와 같아 점차로 되는 것이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010_0930_b_08L如陶師造器漸成非頓諸佛如來淨諸衆生自心現流亦復如是漸而非頓譬如大地生諸草木漸生非頓諸佛如來淨諸衆生自心現流亦復如是漸而非頓
대혜여, 비유하면 사람이 음악과 글과 그림 등 갖가지 기술을 배울 때 점차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듯이 모든 부처님ㆍ여래께서 모든 중생의 현재의 마음의 흐름을 청정하게 하심도 또한 이와 같아 점차로 되는 것이지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다.
010_0930_b_12L大慧譬如人學音樂書畫種種伎術漸成非頓諸佛如來淨諸衆生自心現流亦復如是漸而非頓
비유하면 밝은 거울이 단번에 온갖 형상을 비춰도 분별함이 없듯이 모든 부처님ㆍ여래는 모든 중생의 마음의 현재 흐름을 청정하게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 단번에 일체 모양 없는[無相] 경계를 나타내어 분별함이 없느니라. 해와 달이 일시에 일체 색상(色像)을 두루 비추듯이 모든 부처님ㆍ여래가 모든 중생들 마음의 잘못된 습기[過習]를 청정하게 함도 또한 이와 같아 단번에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ㆍ여래 지혜의 경계를 나타내 보인다.
010_0930_b_15L譬如明鏡頓現衆像而無分別諸佛如來淨諸衆生自心現流亦復如是頓現一切無相境界而無分別如日月輪一時遍照一切色像諸佛如來淨諸衆生自心過習亦復如是頓爲示現不可思議諸佛如來智慧境界
010_0930_c_02L 비유하면 장식(藏識)은 단번에 몸과 살림과 국토와 일체 경계를 나타내듯이 보신불[報佛]도 또한 그러하여 색구경천에서 단번에 일체 중생을 성숙시켜 모든 행을 닦게 한다. 비유하면 법신불이 단번에 보신불과 화신불을 나타내어 광명이 빛나게 비추는 것과 같이 스스로 깨달은 성스러운 경계도 또한 이와 같아 단번에 법상(法相)을 나타내어 밝게 비추어 일체 유ㆍ무의 잘못된 견해를 떠나게 한다.
010_0930_b_21L譬如藏識頓現於身及資生國土一切境界報佛亦爾色究竟天頓能成熟一切衆生令修諸行譬如法佛頓現報佛及以化佛光明照曜自證聖境亦復如是頓現法相而爲照曜令離一切有無惡見
또한 대혜여, 법성에서 흘러나온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이 자기 마음에 나타난 습기로 인연한 모양이요, 망령되게 성품으로 헤아려 집착한 인연의 모양이요, 상에 얽매인 여러 가지 요술 같은 일[幻事]은 모두 자성(自性)이 없다고 설하신다. 모든 중생이 갖가지로 집착하여 이것을 진실이라 하나 모두 얻을 수 없다.
010_0930_c_03L復次大慧法性所流佛說一切法自相共相自心現習氣因相妄計性所執因相更相繫屬種種幻事皆無自而諸衆生種種執著取以爲實不可得
또한 대혜여, 망계자성(妄計自性:변계소집성)은 연기자성(緣起自性:의타기성)을 집착하여 일어난다.
대혜여, 비유하면 요술사가 요술의 힘으로 풀과 나무ㆍ기와ㆍ돌에 의하여 중생의 몇 가지 모습을 요술로 만들어, 보는 이가 여러 가지로 분별하게 하나 모두 진실한 것이 없다. 대혜여, 집착한 경계의 습기의 힘으로 연기의 성품 가운데서 망령되게 헤아린 성품의 갖가지 모양이 나타난다. 이것은 망령되게 헤아린 성품에서 생긴 것이다. 대혜여, 이것을 법성에서 흘러나오는 부처님이 설한 법상(法相)이라 한다.
010_0930_c_08L復次大慧妄計自性執著緣起自性起大慧譬如幻師以幻術力依草木瓦石幻作衆生若干色像其見者種種分別皆無眞實大慧亦如是由取著境界習氣力故於緣起性中有妄計性種種相現是名妄計性生大慧是名法性所流佛說法
대혜여, 법성의 부처님이란 스스로 깨달은 지혜로 행할 바를 세워 일으켜 마음의 자성상(自性相)을 떠난다.
010_0930_c_15L大慧法性佛者建立自證智所行離心自性相
대혜여, 화신불은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ㆍ온(蘊)ㆍ처(處)ㆍ계(界)의 법과 모든 해탈과 모든 식(識)의 행상(行相)을 설하시고 차별을 세워서 외도의 견해와 무색계[無色]의 행을 초월한다.
010_0930_c_16L大慧化佛說施禪定智慧處法及諸解脫諸識行相建立差別越外道見超無色行
또한 대혜여, 법성불(法性佛)은 반연(攀緣)하는 것이 아니다. 일체 인연하는 것[所緣]과 만든 모양[相]과 근본[根]과 양(量) 등의 모양을 모두 다 멀리 떠나서 범부와 2승(乘)과 외도가 아상(我相)을 집착하여 취하는 경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대혜여,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의 수승한 경계의 모양에서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서 자기 마음이 나타내어 분별하여 보는 모양을 반드시 속히 버리고 떠나야 한다.
010_0930_c_18L復次大慧法性佛非所攀緣一切所緣一切所作相根量等相悉皆遠離非凡夫二乘及諸外道執著我相所取境界是故大慧於自證聖智勝境界相當勤修學於自心所現分別見相當速捨離
또한 대혜여, 성문승에는 두 가지 차별상이 있는데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의 빼어난 상[自證聖智殊勝相]과 분별하고 집착하는 자성상[分別執著自性相]이다.
010_0930_c_24L復次大慧聲聞乘有二種差別相所謂自證聖智殊勝相別執著自性相
010_0931_a_02L무엇을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의 빼어난 모양이라 하는가? 말하자면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ㆍ모든 제(諦)의 경계를 밝게 보고 욕심을 떠나 적멸하므로, 온ㆍ계ㆍ처와 자상(自相)이나 공상(共相)이나 밖의 파괴되지 않는 모양을 분명히 깨달아 알아서 마음이 한 경계에 머무는 것이다. 한 경계에 머물고 나서는 선(禪)ㆍ해탈ㆍ삼매ㆍ도과(道果)를 얻고 벗어남을 얻어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의 경계의 즐거움에 머문다. 그리고 아직 습기와 불가사의한 변역의 생사[變易死:迷悟를 벗어난 상태]를 떠나지 못한 것을 성문승의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의 경계상이라 이름한다.
010_0931_a_03L云何自證聖智殊勝謂明見苦無常無我諸諦境界離欲寂滅故於蘊處若自若共外不壞相如實了知故心住一境住一境已獲禪解脫三昧道果而得出離住自證聖智境界樂未離習氣及不思議變易死是名聲聞乘自證聖智境界相
보살마하살은 이 바른 지혜의 경계를 얻었다 할지라도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본원(本願)을 갖는 까닭에 적멸문(寂滅門)과 삼매락(三昧樂)을 깨닫지 않는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의 즐거움에서 반드시 닦고 배우지 않는다.
010_0931_a_10L菩薩摩訶薩雖亦得此聖智境界以憐愍衆生故本願所持故證寂滅門及三昧樂諸菩薩摩訶薩於此自證聖智樂中不應修學
대혜여, 무엇을 분별하여 집착하는 자성상이라 하는가? 이른바 단단함과 습기와 따뜻함과 움직임 그리고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것과 같은 법은 작자(作者)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교리(敎理)에 의하여 자상과 공상을 보고 분별하며 집착하므로 이것을 성문승의 분별집착상(分別執着相)이라고 이름한다. 보살마하살은 이 법을 반드시 알고 인무아(人無我)의 견해를 떠나 법무아(法無我)의 상(相)에 들어가 점점 모든 지(地)에 머물러야 한다.”
010_0931_a_13L大慧云何分別執著自性相所謂知堅靑黃赤白如是等法非作者生然依教理見自共相分別執著是名聲聞乘分別執著相菩薩摩訶薩於此法中應知應捨離人無我見入法無我相漸住諸地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하신 항상하고 부사의한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의 제일의경계[第一義境]는 모든 외도가 말하는 항상하고 불가사의한 작자(作者:조물주)와 같지 않습니까?”
010_0931_a_19L爾時大慧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如來所說常不思議自證聖智第一義境將無同諸外道所說常不思議作者耶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모든 외도의 작자는 항상하고 부사의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외도의 항상하고 불가사의하다는 것은 자상(自相)의 인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미 자상의 인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항상하고 불가사의한 것을 나타내 보이겠느냐.
010_0931_a_23L佛言大慧非諸外道作者得常不思議所以者何諸外道常不思議自相不成旣因自相不成以何顯示常不思議
010_0931_b_02L대혜여, 외도들이 말하는 항상하고 부사의함이 만약 자상으로 인하여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항상함이 있겠지만 다만 작자(作者)를 원인의 상[因相]으로 하는 까닭에 항상하고 부사의함이 성립하지 않는다.
010_0931_b_03L大慧外道所說常不思議因自相成彼則有常但以作者爲因相故常不思議不成
대혜여, 내가 제일의(第一義)가 항상하고 부사의하다는 것은 제일의의 인상(因相)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유무(有無)를 멀리 떠나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로 행하는 상이 있다. 제일의의 지혜는 그 인(因)이 되기 때문에 인이 있는 것이요, 유무를 떠났기 때문에 작자가 아니다. 허공ㆍ열반ㆍ적멸법과 같기 때문에 항상하고 부사의하다. 이런 까닭으로 내가 항상하고 불가사의하다고 한 것은 외도의 논쟁하는 것과 다르다고 말한 것이다.
010_0931_b_05L大慧我第一義常不思議第一義因相成遠離有無自證聖智所行相故有相第一義智爲其因故有因離有無故非作者虛空涅槃寂滅法故常不思議是故我說常不思議不同外道所有諍論
대혜여, 여기서 항상하고 부사의하다고 설하는 것은 모든 여래가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로 행하는 진리이므로 보살은 반드시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한다.
010_0931_b_10L大慧此常不思議是諸如來自證聖智所行眞理是故菩薩當勤修學
또한 대혜여, 외도가 항상하고 부사의하다 함은 무상(無常)한 다른 모양을 인(因)으로 하여 항상하다는 것이고 자상(自相)을 인으로 하지 않으므로 항상하다는 것이다.
010_0931_b_12L大慧道常不思議以無常異相因故常非自相因力故常
대혜여, 외도의 항상하고 부사의하다 함은 지은 바의 법[所作法]이 있다가 다시 없어지는데도 무상한 것과 비교하여서 항상하다고 아는 것이다. 나도 지은 바의 법이 있다가 없어지면 무상하다고 보나 이로 인하여 항상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010_0931_b_14L大慧外道常不思議以見所作法有已還無常已比知是常我亦見所作法有已還無無常已不因此說爲常
대혜여, 외도는 이와 같은 인상(因相)을 항상 있고 부사의하다고 한다. 그러나 인상은 있는 것이 아니며 토끼 뿔과 같다. 항상하고 부사의하다는 것은 오직 분별일 뿐이며 단지 말만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 인(因)이 토끼뿔과 같아서 스스로의 인상이 없기 때문이다.
010_0931_b_17L大慧道以如是因相成常不思議此因相非有同於兔角故常不思議唯是分但有言說何故彼因同於兔角自因相故
대혜여, 내가 항상 있고 부사의하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깨달음을 인상으로 삼고 밖의 법이 있다가 다시 없어지는 무상을 인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외도는 이와 반대로 항상하고 부사의한 자인(自因)의 모양을 잘 알지 못하고, 항상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로 행하는 모양의 밖에 있으므로 마땅히 말할 바가 되지 못한다.
010_0931_b_21L大慧我常不思議以自證爲因相不以外法有已還無無常爲因外道反此曾不能知常不思議自因之相而恒在於自證聖智所行相外此不應說
010_0931_c_02L또한 대혜여, 모든 성문은 생사와 망상의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열반을 구하나 생사와 열반의 차별상은 모두 망령된 분별로 있는 것이다. 실제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의 모든 근(根)과 경(境)이 멸함을 망령되게 미루어 짐작하여 열반이라 한다. 스스로 지혜의 경계를 깨달아 의지하는 바의 장식(藏識)이 바뀌어 대열반이 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3승이 있다고 말하고 오직 마음뿐 경계는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010_0931_c_02L復次大慧諸聲聞畏生死妄想苦而求涅槃不知生死涅槃差別之相切皆是妄分別有無所有故妄計未來諸根境滅以爲涅槃不知證自智境界轉所依藏識爲大涅槃彼愚癡人說有三乘不說唯心無有境界
대혜여, 그 같은 사람은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자기 마음의 경계는 알지 못하고 마음 밖의 경계를 가지고 항상 생사에 돌고 돌아 끊어지지 않는다.
010_0931_c_08L彼人不知去來現在諸佛所說自心境界取心外境常於生死輪轉不
또한 대혜여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여래께서 일체법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자기 마음에서 보이는 것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며, 유생(有生)과 무생(無生)을 떠났기 때문이다. 토끼ㆍ말 등의 뿔과 같이 어리석은 범부는 망령되게 집착한다. 오직 자기가 깨달은 바른 지혜로 행할 곳은 모든 어리석은 범부의 두 가지 분별하는 경계는 아니다.
010_0931_c_11L復次大慧去來現在諸如來說一切法不生何以故自心所見非有性離有無生故如兔馬等角凡愚妄唯自證聖智所行之處非諸愚夫二分別境
대혜여, 몸과 살림[資生], 기세간(器世間) 등 일체는 다 이 장식(藏識)의 그림자로 소취(所取)와 능취(能取)의 두 가지 모양이 나타난 것이지만, 저 모든 어리석은 범부는 생기고 머물고 멸함의 두 견해 속에 떨어져 그 가운데서 허망되게 유무의 분별을 일으킨다.
대혜여, 그대는 이러한 뜻을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010_0931_c_15L大慧身及資生器世閒等一切皆是藏識影像所取能取二種相現彼諸愚夫墮生住滅二見中故於中妄起有無分別大慧汝於此義當勤修學
또한 대혜여, 다섯 가지 종성(種性)이 있나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말하자면 성문승의 종성ㆍ연각승의 종성ㆍ여래승의 종성ㆍ부정(不定)종성ㆍ무종성(無種性)이다.
010_0931_c_19L復次大慧有五種種性何等爲五聲聞乘種性緣覺乘種性如來乘種不定種性無種性
010_0932_a_02L대혜여, 어떻게 성문승의 종성을 아는가? 말하자면 만약 온ㆍ계ㆍ처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말하는 것을 듣고 알거나 증득하여 온 몸의 털을 세우고 마음에 닦고 익히기를 좋아하지만 연기의 모양[緣起相]을 관찰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반드시 알라. 이는 성문승의 종성이다. 그는 자기 승에서 깨달은 바를 보고 나서 5지(地)와 6지(地)에서 번뇌의 얽매임을 끊으나 번뇌의 습기를 끊지는 못한다. 나아가 부사의한 사(死)에 머물러 바로 사자후로 말하되, 나의 생(生)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梵行)을 이미 이루었으며 지을 것[所作:三業의 所作]을 이미 갖추어서 뒤에 있을 것(몸)을 받지 아니하며 인무아(人無我)를 닦고 익히고 나아가 열반(涅槃)을 얻었다는 생각을 낸다.
010_0931_c_22L大慧云何知是聲聞乘種性謂若聞說於蘊處自相共相若知若證擧身毛豎心樂修於緣起相不樂觀察應知此是聲聞乘種性彼於自乘見所證已於五六地斷煩惱結不斷煩惱習住不思議死正師子吼言我生已盡梵行已所作已辦不受後有修習人無我乃至生於得涅槃覺
대혜여, 또한 이런 중생은 열반의 증득을 구하여 능히 나와 남ㆍ중생ㆍ양자(養者)ㆍ취자(取者)를 깨달아 알고 이것이 열반이라고 말하고, 다시 말하기를 일체법은 작자(作者)로 인하여 있다고 보아 이것이 열반이라고 한다.
010_0932_a_07L大慧復有衆生求證涅槃言能覺知我人衆生養者取者此是涅槃復有說言見一切法因作者有此是涅槃
대혜여, 그들은 해탈이 없으니 능히 법무아(法無我)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성문승과 외도의 종성이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낸다.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 이런 나쁜 견해를 버려야 한다.
010_0932_a_10L大慧彼無解脫以未能見法無我故此是聲聞乘及外道種性於未出中生出離想應勤修習捨此惡見
대혜여, 어떻게 연각승의 종성을 아는가? 말하자면 만약 연각승의 법을 듣고 온몸의 털을 세우고 눈물 흘리며 슬피 울고 심란하고 시끄러운 인연을 떠나 물들어 집착함이 없고, 때로 갖가지 몸을 나타내어 혹은 모으고 혹은 흩어지는 신통변화에 대하여 말함을 듣고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어서 어기거나 거스름이 없으면 반드시 알라. 이는 연각승의 종성이니 그를 위하여 연각승의 법을 설해야 한다.
010_0932_a_13L大慧云何知是緣覺乘種性謂若聞說緣覺乘法擧身毛豎悲泣流淚離憒鬧緣無所染著時聞說現種種身或聚或散神通變其心信受無所違逆當知此是緣覺乘種性應爲其說緣覺乘法
대혜여, 여래승의 종성이 깨닫는 법은 세 가지가 있다. 이른바 자성과 자성이 없는 법[自性無自性法], 몸 안으로 스스로 깨닫는 바른 지혜의 법[內身自證聖智法], 밖의 모든 부처님 세계의 광대한 법[外諸佛刹廣大法]이다.
010_0932_a_18L大慧如來乘種性所證法有三種所謂性無自性法內身自證聖智法外諸佛剎廣大法
대혜여, 만약 이 하나하나의 법과 자기 마음에 나타난 몸과 재물의 건립이 아뢰야식의 부사의한 경계가 일으킨 것이라고 말함을 듣고 놀라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으면 반드시 알라. 이것이 여래승의 종성이다.
010_0932_a_21L大慧若有聞說此一一法及自心所現身財建立阿賴耶識不思議境不驚不怖不畏當知此是如來乘性
대혜여, 부정(不定)의 종성이란 말하자면 그 세 가지 법을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따라서 믿고 알아 순종하여 닦고 배울 것이다.
010_0932_a_24L大慧不定種性者謂聞說彼三種法時隨生信解而順修學
010_0932_b_02L대혜여, 처음 다스리는 지위의 사람[初治地人]을 위하여 종성을 설해 그들이 그림자 없는 지위에 들어가게 하려고 이것을 일으켜 세워 만든 것이다.
010_0932_b_02L爲初治地人而說種性欲令其入無影像地作此建立
대혜여, 그 삼매의 즐거움에 머무는 성문이 만약 능히 스스로 의지하는 식(識)을 깨달아 알아서 법무아(法無我)를 보고 번뇌의 습기를 맑게 하면 필경에는 마땅히 여래의 몸을 얻을 것이다.”
010_0932_b_04L大慧彼住三昧樂聲聞若能證知自所依識見法無我淨煩惱習畢竟當得如來之身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설하셨다.
010_0932_b_06L時世尊卽說頌言

수다원[預流]ㆍ사다함[一來]
아나함[不還果]ㆍ아라한(阿羅漢)
이들 모든 성인
그 마음 모두 미혹하여
내가 세운 3승(乘)과
1승(乘)과 승 아님은
어리석은 범부와 지혜 적은 이를 위하여
고요함을 즐기는 모든 성인이 말씀하신 것이니라.
010_0932_b_07L預流一來果
不還阿羅漢
是等諸聖人
其心悉迷惑
我所立三乘
一乘及非乘
爲愚夫少智
樂寂諸聖說

제일의(第一義)의 법문
2취(取:能取ㆍ所取)를 멀리 여의고
경계 없는 데 머물거늘
어찌 3승을 세움이 있겠는가.
010_0932_b_10L第一義法門
遠離於二取
住於無境界
何建立三乘

모든 선정과 4무량(無量)과
무색(無色)의 삼마제(三摩提)
나아가 멸수상정(滅受想定)은
오직 마음뿐 그 외는 얻을 수 없느니라.
010_0932_b_11L諸禪及無量
無色三摩提
乃至滅受想
唯心不可得

또한 대혜여, 이 가운데 일천제(一闡提)는 무슨 까닭에 해탈 가운데서 즐거워함을 내지 않는가.
대혜여, 일체 선근을 버린 까닭이요 시작 없는 때부터 중생을 위하여 서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010_0932_b_13L復次大慧此中一闡提何故於解脫中不生欲樂大慧以捨一切善根故爲無始衆生起願故
무엇을 일체 선근을 버렸다 하는가? 보살장(菩薩藏)을 비방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계경(契經)ㆍ조복(調伏)ㆍ해탈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을 할 때 선근이 모두 끊어져서 열반에 들어가지 못한다.
010_0932_b_16L云何捨一切善謂謗菩薩藏此非隨順契經調伏解脫之說作是語時善根悉斷不入涅槃
무엇을 무시이래의 중생을 위하여 서원을 일으킨다고 하는가? 모든 보살은 본래 서원의 방편으로 일체 중생이 모두 열반에 들어가기를 서원한다. 만약 한 중생이라도 열반에 들지 아니하면 나는 끝내 열반에 들지 아니하리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들도 또한 일천제의 무리에 머문다. 이것이 열반 종성의 모양[涅槃種性相]이 없는 것이다.”
010_0932_b_19L云何爲無始衆生起願謂諸菩薩以本願方便願一切衆生悉入涅槃若一衆生未涅槃者我終不入此亦住一闡提趣此是無涅槃種性相
대혜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가운데는 어떤 이가 필경에 열반에 들어가지 못하옵니까?”
010_0932_b_22L慧菩薩言世尊此中何者畢竟不入涅槃
010_0932_c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저 보살 일천제는 일체법이 본래 열반임을 알아 필경에 열반에 들어가지 아니하나 선근을 버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선근을 버린 일천제도 부처님 위신력으로 어느 때에 선근이 생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일체 중생을 버린 때가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보살 일천제는 열반에 들어가지 않는다.
010_0932_b_24L佛言大慧彼菩薩一闡提知一切法本來涅槃畢竟不入非捨善根何以故捨善根一闡提以佛威力故或時善根生所以者何佛於一切衆生無捨時故是故菩薩一闡提不入涅槃
또한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3자성상(自性相)을 잘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3자성인가? 이른바 망령되게 헤아리는 자성[妄計自性:변계소집성], 연기자성(緣起自性:의타기성), 원성자성(圓成自性:원성실성)이다.
010_0932_c_06L復次大慧菩薩摩訶薩當善知三自性相何者爲三所謂妄計自性緣起自性圓成自性
대혜여, 망계자성은 상(相)으로부터 생긴다. 무엇을 상으로부터 생긴다 하는가? 말하면 연기의 사상(事相)의 종류가 나타남에 의하여 헤아려 집착을 내기 때문이다.
010_0932_c_09L大慧妄計自性從相云何從相生謂彼依緣起事相種類顯現生計著故
대혜여, 저 사상에 헤아려 집착함에 두 가지 망령되게 헤아리는 성품이 생기니 이것은 모든 여래께서 연설하신 바이다. 이른바 이름에 계착하는 모양[名相計着相], 사물의 모양에 계착하는 상[事相計着相]이다.
010_0932_c_11L大慧彼計著事相有二種妄計性生是諸如來之所演名相計著相事相計著相
대혜여, 사계착상(事計着相)이란 내외의 법을 계착함을 말하고, 상(相)계착상이란 내외의 법 가운데에서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계착하나니 이것을 두 가지 망계자성상(妄計自性相)이라고 한다.
010_0932_c_13L大慧事計著相者謂計著內外法相計著相者謂卽彼內外法中計著自共相是名二種妄計自性相
대혜여, 의지하는 바와 반연하는 바에서 일어나나니 이것이 연기성(緣起性)이다.
010_0932_c_16L大慧從所依所緣起是緣起性
어떤 것이 원성자성인가? 명상(名相)과 사상(事相)이 일체 분별을 떠나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로 행하는 진여이다.
대혜여, 이것이 이 원성자성의 여래장심(如來藏心)이다.”
010_0932_c_17L何者圓成自性離名相事相一切分別自證聖智所行眞如大慧此是圓成自性如來藏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爾時世尊卽說頌言

명(名)ㆍ상(相)ㆍ분별은
두 자성상(自性相)이고
정지(正智)와 진여(眞如)는
원성자성상이니라.
010_0932_c_20L名相分別
二自性相
正智眞如
是圓成性

대혜여, 이것을 5법(法)과 자성상(自性相)을 관찰하는 법문이라고 이름하며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로 행하는 경계이다. 너와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한다.
010_0932_c_22L大慧是名觀察五法自性相法門證聖智所行境界汝及諸菩薩摩訶薩當勤修學
010_0933_a_02L또한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두 가지 무아(無我)의 상(相)을 잘 관찰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인무아상(人無我相)과 법무아상(法無我相)이다.
010_0933_a_02L復次大慧菩薩摩訶薩當善觀察二無我相何者爲二所謂人無我相法無我相
대혜여, 어떤 것이 인무아상이냐? 온(蘊)ㆍ계(界)ㆍ처(處)는 나[我]와 내 것[我所]을 떠나고 무지(無知)의 애업(愛業:탐애의 업인)으로 생기하여 안식[眼] 등의 식이 생겨서 색(色) 등을 취하여 집착을 일으킨다.
010_0933_a_04L大慧何者是人無我相處離我我所無知愛業之所生起眼等識生取於色等而生計著
또 자기 마음으로 모은 몸, 기세간(器世間)은 모두 장심(藏心:藏識)이 나타난 것으로 찰나에 상속하고 변하여 허물어지며 멈추지 아니함이 흐르는 강과 같고, 존자 같고, 등의 불꽃과 같고, 빠른 바람 같고, 뜬구름 같고, 성급하게 움직여 안정하지 못함이 원숭이 같고, 깨끗하지 못한 곳을 좋아함이 나는 파리 같으며, 만족을 모름이 맹렬한 불길 같다. 시작 없는 예부터 허망하고 거짓된 습기가 인이 되어 모든[法有] 중생[趣] 가운데 유전하여 쉬지 않고 물 뜨는 도르래 같고, 갖가지 색신(色身)의 위의(威儀)가 나아가고 멈춤이 비유하면 죽은 시체가 주력(呪力)으로 걸어 다니는 것 같고, 또 나무로 만든 사람이 기구로 인연하여 움직이는 것 같다. 만약 능히 여기서 그 모양을 잘 알면 이것을 인무아의 지혜라 한다.
010_0933_a_07L又自心所見身器世閒皆是藏心之所顯現剎那相續變壞不停如河流如種子如燈焰如迅風如浮躁動不安如猿猴樂不淨處如飛不知厭足如猛火無始虛僞習氣爲因諸有趣中流轉不息如汲水輪種種色身威儀進止譬如死屍呪力故行亦如木人因機運動若能於此善知其相是名人無我智
대혜여, 무엇을 법무아의 지혜라 하는가? 온ㆍ계ㆍ처가 망계성(妄計性)임을 알며, 온ㆍ계ㆍ처와 같이 나와 내 것을 떠나 오직 함께 쌓고 모은 애업(愛業)에 묶이어 서로 연기하니 능히 만든 자[作者]가 없다. 온(蘊) 등도 또한 그러하여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을 떠나 허망하게 분별하여 여러 가지 모양이 나타남에 어리석은 범부는 분별하나 모든 성자는 그렇지 않다. 이와 같이 일체 모든 법을 관찰하여 마음ㆍ뜻ㆍ의식ㆍ오법자성(五法自性)을 떠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법무아지혜라고 이름한다.
010_0933_a_15L大慧云何爲法無我智謂知蘊處是妄計性如蘊處離我我所唯共積聚愛業繩縛互爲緣起無能作者蘊等亦爾離自共相虛妄分別種種相現愚夫分別非諸聖者如是觀察一切諸法離心意識五法自性是名菩薩摩訶薩法無我智
이 지혜를 얻고 나서 경계가 없음을 알고 모든 지(地)의 모양을 깨달아 곧 초지(初地)에 들어가 마음에 환희가 생겨 차례로 점점 나아간다. 이에 선혜지(善慧地:九地)와 법운지(法雲地:十地)에 이르러 모든 중생의 짓는 것을 모두 이미 갖추느니라.
010_0933_a_22L得此智已知無境界了諸地相卽入初地心生歡喜次第漸進乃至善慧及以法雲諸有所作皆悉已辦
010_0933_b_02L 이 지에 머물고 나서 큰 보배 연꽃 왕이 온갖 보배로 장엄한 것이 있는데, 그 꽃 위의 보배 궁전에 연화(蓮花)보살이 가서 닦아 환과 같은 법문[幻性法門]을 이룬다. 같이 간 불자가 앞뒤로 에워싸고 일체 부처님 세계에 계시는 여래께서 모두 그 손을 펴서 전륜왕자의 이마에 물을 뿌리는 법[灌頂法]과 같이 그 머리에 관정하면, 불자의 지위[佛子地]를 초월하여 스스로 증득하는 법을 얻어 여래의 자재한 법신을 이룬다.
010_0933_b_02L住是地已有大寶蓮花王衆寶莊嚴於其花上有寶宮殿狀如蓮花菩薩往修幻性法門之所成就而坐其上同行佛子前後圍繞一切佛剎所有如來皆舒其手如轉輪王子灌頂之法而灌其頂超佛子地獲自證法成就如來自在法身
대혜여, 이것을 법무아상을 본다고 한다. 그대와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부지런히 닦고 배워야 한다.”
010_0933_b_08L大慧名見法無我相汝及諸菩薩摩訶薩應勤修學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건립비방상(建立誹謗相)을 설하시어 저와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런 나쁜 견해를 떠나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게 하시고 보리를 얻고 나서 항상 비방하여 단견을 세우는 것을 깨뜨리어 정법을 헐뜯고 비방함이 생기지 않게 하소서.”
010_0933_b_10L爾時大慧菩薩摩訶薩復白佛言願說建立誹謗相令我及諸菩薩摩訶薩離此惡見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得菩提已破建立常誹謗斷見令於正法不生毀謗
부처님께서 그 청을 받고 곧 게송으로 설하셨다.
010_0933_b_15L佛受其請卽說頌言

몸과 살림[資財] 머무는 곳
모두 오직 마음의 그림자[影像]인 것을
어리석은 이 깨닫지 못하고
비방함을 세워 일으키며
일어난 것도 다만 이 마음뿐
마음 떠나서 얻을 수 없느니라.
010_0933_b_16L身資財所住
皆唯心影像
凡愚不能了
起建立誹謗
所起但是心
離心不可得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다시 설하시려고 대혜에게 말씀하셨다.
“네 가지 없는 것을 세움이 있나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모양이 없는 데 모양을 세움이요, 견해가 없는데 견해를 세움이요, 인이 없는데 원인[因]을 세움이요, 성품이 없는데 성품을 세우니 이것이 넷이다.
010_0933_b_18L爾時世尊欲重說此義告大慧言有四種無有有建立何者爲四所謂無有相建立相無有見建立見無有因建立無有性建立性是爲四
대혜여, 비방이란 모든 나쁜 견해에서 세운 법은 찾아도 얻을 수 없으나 잘 관찰하지 못하고 마침내 비방함이 생긴다. 이것이 세운 비방의 모양이다.
010_0933_b_22L大慧誹謗謂於諸惡見所建立法求不可得不善觀察遂生誹謗此是建立誹謗
010_0933_c_02L대혜여, 무엇을 모양이 없는데 모양을 세운다 하는가? 온ㆍ계ㆍ처에서 자상과 공상은 본래 있는 것이 없는데, 계착함을 내어 이것은 이와 같고 이것은 다르지 않다 하니 이런 분별은 무시이래로 여러 가지 악습이 낳은 것이다. 이것을 모양이 없는데 모양을 세운다고 한다.
010_0933_c_02L大慧云何無有相建立相謂於蘊處自相共相本無所有而生計著此如是此不異而此分別從無始種種惡習所生是名無有相建立相
무엇을 견해가 없이 견해를 세운다 하는가? 온ㆍ계ㆍ처에서 나와 남, 중생 등이 견해를 세우니 이것을 견해가 없이 견해를 세운다고 한다.
010_0933_c_05L何無有見建立見謂於蘊處建立我人衆生等見是名無有見建立見
무엇을 원인 없이 원인을 세운다 하는가? 처음의 식[初識] 전에는 원인이 없어 식이 생기지 않았고 처음 식은 본래 없는데 뒤에 눈, 빛, 밝음, 생각 등이 원인이 되어 환(幻)과 같이 생기며, 생기고 나서 있고, 있는 것이 다시 없어진다. 이것을 원인이 없이 원인을 세운다고 한다.
010_0933_c_07L云何無有因建立因謂初識前無因不生其初識本無後眼色明念等爲因如幻生生已有有還滅是名無有因建立因
무엇을 성품이 없이 성품을 세운다고 하는가? 허공과 열반은 무작(無作)의 성품인데 집착을 일으킴이다.
010_0933_c_11L云何無有性建立性謂於虛空涅槃非數滅無作性執著建立
대혜여, 이것은 성품과 성품 아님을 떠났고, 일체 모든 법도 유무(有無)를 떠나 마치 털 수레바퀴, 토끼, 말들의 뿔과 같다. 이것을 성품이 없는데 성품을 세웠다고 한다.
010_0933_c_12L大慧此離性非性一切諸法離於有猶如毛輪兔馬等角是名無有性建立性
대혜여, 비방을 세움은 모두 어리석은 범부는 오직 마음뿐임을 깨닫지 못하고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키나 모든 성자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반드시 부지런히 관찰하여 이런 견해를 멀리 떠나야 한다.
010_0933_c_15L大慧建立誹謗皆是凡愚不了唯心而生分別非諸聖者是故汝等當勤觀察遠離此見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마음과 뜻ㆍ의식ㆍ오법자성(五法自性)ㆍ2무아(無我)의 상(相)을 잘 알므로 중생을 위하여 여러 가지 몸을 만들어 연기에 의하여 망령되게 헤아리는 성품[妄計性]을 일으키는 것같이, 또한 마니(보배)가 마음 따라 빛을 나타냄과 같이 널리 부처님의 모임에 들어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모든 법은 환(幻)과 같고, 꿈 같고, 그림자 같고, 거울 속의 형상 같고, 물속의 달과 같으므로, 생멸(生滅)과 단(斷)ㆍ상(常)을 멀리 떠나고 성문ㆍ벽지불도에 머물지 않으며, 듣고 나서는 무량백천억 나유타삼매를 성취한다.
010_0933_c_17L大慧菩薩摩訶薩善知心意識五法自性二無我相已爲衆生故作種種身如依緣起起妄計性亦如摩尼隨心現色入佛會聽聞佛說諸法如幻如夢如如鏡中像如水中月遠離生滅及以斷常不住聲聞辟支佛道聞已成就無量百千億那由他三昧
010_0934_a_02L 이 삼매를 얻고 나면 일체 모든 불국토에 두루 돌아다니며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든 천상에 태어나 삼보를 드날리고, 부처님 몸을 나타내 보여 모든 성문과 보살 대중을 위하여 바깥 경계는 모두 오직 마음뿐이라고 설하여 모두 유무(有無) 등에 집착함을 멀리 떠나게 할 것이다.”
010_0933_c_24L得此三昧已遍遊一切諸佛國土供養諸佛生諸天上顯揚三寶示現佛身爲諸聲聞菩薩大衆說外境界皆唯是心悉令遠離有無等執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010_0934_a_05L爾時世尊卽說頌言

불자는 잘 관찰해 보니
세간은 오직 마음 뿐이라
갖가지 몸 나타내 보이며
하는 일[所作] 장애 없고
신통력 자재하며
모두 다 성취하느니라.
010_0934_a_06L佛子能觀見
世間唯是心
示現種種身
所作無障礙
神通力自在
一切皆成就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원컨대 저희를 위하여 일체법이 공하고 생함이 없고 둘이 없고 자성이 없는 모양을 설하여 주소서. 저와 모든 보살이 이 모양을 깨달아 유무의 분별을 떠나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습니다.”
010_0934_a_08L爾時大慧菩薩摩訶薩復請佛言爲我說一切法空無生無二無自性我及諸菩薩悟此相故離有無分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설한다.
대혜여, 공이란 망령되게 헤아리는 성품의 구절을 뜻한다. 대혜여, 망령되게 헤아린 자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공ㆍ무상ㆍ무이(無二)ㆍ무자성(無自性)을 설한다.
010_0934_a_12L佛言諦聽當爲汝說大慧空者卽是妄計性句義大慧爲執著妄計自性故無生無二無自性
대혜여, 간략히 공(空)의 성품을 말하자면 일곱 가지가 있다. 모양이 공함[相空]ㆍ자기 성품이 공함[自性空]ㆍ행할 것이 없는 공[無行空]ㆍ행하는 공[行空]ㆍ일체법을 말할 수 없는 공[一切法不可說空]ㆍ제일의의 바른 지혜의 큰 공[第一義聖智大空]ㆍ저기에는 저것이 공함[彼彼空]이다.
010_0934_a_15L大慧略說空性有七種相空自性空無行空行空一切法不可說空第一義聖智大空彼彼空
어떤 것이 모양이 공함[相空]인가? 일체법의 자기 모양[自相]과 공통의 모양[共相]이 공하나 번갈아 옮기고 쌓고 모아 서로 상대한 까닭이다. 분석하고 추구하여도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나와 남과 함께 함이 모두 생기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자상과 공상은 생김이 없고 또 머묾도 없다. 이런 까닭으로 일체법의 자상이 공하다고 한다.
010_0934_a_18L云何相空謂一切法自相共相空展轉積聚互相待故分析推求無所有故自他及共皆不生故自共相無生亦無住是故名一切法自相空
어떤 것을 자기 성품이 공하다[自性空] 하는가? 말하자면 일체 법은 자성이 생기지 않으므로 이것을 자성공이라 한다.
010_0934_a_21L云何自性空謂一切法自性不生名自性空
어떤 것을 행할 것이 없는 공[無行空]이라 하는가? 모든 온(蘊)은 본래 열반이라 모든 행[諸行]이 없다. 이것을 행이 없는 공이라 한다.
010_0934_a_23L云何無行空所謂諸蘊本來涅槃無有諸行是名無行空
010_0934_b_02L어떤 것이 행공(行空)인가? 모든 온은 업과 인이 화합하여 일어나 나와 내 것을 떠났다. 이것을 행공이라 한다.
010_0934_a_24L云何行空所謂諸蘊由業及因和合而起離我我所是名行空
어떤 것이 일체법은 말할 수 없는 공인가? 말하자면 일체법을 망령되게 헤아린 자성은 말할 수 없다. 이것을 말할 수 없는 공이라 한다.
010_0934_b_03L云何一切法不可說空謂一切法妄計自性無可言是名不可說空
어떤 것이 제일의의 바른 지혜의 큰 공[第一義聖智大空]인가? 말하자면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를 얻을 때 일체 모든 견해의 잘못된 습기(過習)는 모두 떠난다. 이것을 제일의의 바른 지혜의 큰 공이라 한다.
010_0934_b_05L云何第一義聖智大空謂得自證聖智時一切諸見過習悉離是名第一義聖智大空
어떤 것이 저기에는 저것이 없는 공인가? 말하자면 여기에는 저것이 없다. 이것이 저기에는 저것이 없는 공이라 한다. 비유하면 녹자모 강당[鹿子母堂:녹자모가 지은 강당ㆍ동원정사]에는 코끼리ㆍ말ㆍ소ㆍ양 등이 없으므로 내가 그 강당은 공하다고 말하나 비구 대중이 없는 것은 아님과 같다.
010_0934_b_07L云何彼彼空謂於此無彼是名彼彼空譬如鹿子母堂無象馬牛羊等我說彼堂非無比丘衆
대혜여, 강당은 강당의 자성(自性)이 없다고 말함이 아니요, 비구는 비구의 자성이 없다고 말함이 아니요, 다른 곳에 코끼리ㆍ말ㆍ소ㆍ양이 없다고 말함도 아니다.
010_0934_b_10L大慧非謂堂無堂自非謂比丘無比丘自性非謂餘處無象馬牛羊大慧一切諸法自共相彼彼求不可得是故說名彼彼空名七種空大慧此彼彼空空中最麤汝應遠離
대혜여, 일체 모든 법의 자상ㆍ공상은 저기에는 저것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저기에는 저것이 공하다고 이름한다. 이것이 일곱 가지 공이다.
010_0934_b_15L復次大慧無生者自體不生而非不除住三昧是名無生
대혜여, 이 피피공(彼彼空)은 공 가운데 가장 거칠므로 너는 마땅히 멀리 떠나도록 하여라.
010_0934_b_17L大慧無自性以無生故密意而說
또한 대혜여, 무생(無生)이란 자체가 생기지 아니하되 생기지 아니함도 아니며 삼매에 머묾도 없어야 한다. 이것이 무생이다.
010_0934_b_18L大慧一切法無自性以剎那不住故見後變異故是名無自性
대혜여, 자성이 없다는 것은 무생이기 때문에 비밀한 뜻으로 무자성이라 말함이다. 대혜여, 일체법은 자성이 없고 찰나도 머물지 아니하며 뒤에 변하고 달라짐을 보기 때문에 이것을 자성이 없다고 한다.
010_0934_b_20L云何無二相大慧如光影如長短如黑白皆相待立獨則不
어떤 것이 두 가지 모양이 없는 것인가? 대혜여, 빛과 그림자 같고, 길고 짧음과 같고, 검고 흰 것과 같이 다 상대적으로 성립되어 홀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혜여, 생사 밖에 열반이 있는 것이 아니요 열반 밖에 생사가 있는 것이 아니며 생사와 열반은 서로 어긋나는 모양이 없다. 생사와 열반이 같듯이 일체법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을 두 모양이 없다고 한다.
010_0934_b_22L大慧非於生死外有涅槃非於涅槃外有生死生死涅槃無相違相生死涅槃一切法亦如是是名無二
대혜여, 공ㆍ무생(無生)ㆍ무이(無二)ㆍ무자성상(無自性相)을 너는 마땅히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010_0934_c_02L大慧無生無二無自性相汝當勤學
010_0934_c_02L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爾時世尊重說頌言

내가 항상 공한 법을 설하는 것은
단(斷)과 상(常)을 멀리 떠나게 하도다.
생사는 환과 꿈과 같으나
업은 없어지지 않느니라.
010_0934_c_03L我常說空法
遠離於斷常
生死如幻夢
而業亦不壞

허공과 열반
둘을 멸함도 이와 같으니라.
어리석은 범부 허망하게 분별하나
모든 성인은 유무(有無)를 떠났느니라.
010_0934_c_05L虛空及涅槃
滅二亦如是
愚夫妄分別
諸聖離有無

그때 세존께서 다시 대혜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대혜여, 공ㆍ무생ㆍ무자성ㆍ무이상(無二相)은 다 일체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수다라(修多羅:경) 가운데 들어 있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은 모두 이 뜻이 있다.
010_0934_c_06L爾時世尊復告大慧菩薩摩訶薩言大慧此空無生無自性無二相悉入一切諸佛所說修多羅中佛所說經皆有是義
대혜여, 모든 수다라는 일체 중생의 마음을 따라 설하되 진실은 말 속에 있지 않다. 비유하면 아지랑이는 모든 짐승을 속여 유혹하여 물이라는 생각을 내게 하나 실은 물이 아닌 것과 같다. 많은 경에 설하신 것도 또한 이와 같아 모든 어리석은 범부가 스스로 분별한 것에 따라 환희심을 내게 함이요, 모두 바른 지혜로 깨달은 곳의 진실한 법을 나타내 보인 것이 아니다. 대혜여, 마땅히 뜻에 따르고 말에 집착하지 말라.”
010_0934_c_10L大慧諸修多羅隨順一切衆生心說而非眞實在於言中譬如陽焰誑惑諸獸令生水想而實無水衆經所說亦復如是隨諸愚夫自所分別令生歡喜非皆顯示聖智證處眞實之法大慧應隨順義莫著言說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수다라 가운데 ‘여래장의 본성은 청정하고 항상하다. 끊어지지 않고 변하여 바뀜이 없다. 32상을 갖추고 일체 중생 몸속에 있지만 온ㆍ계ㆍ처의 때 묻은 옷에 얽매어 있고, 탐ㆍ진ㆍ치 등의 망령된 분별의 때에 오염되어 마치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가 때 묻은 옷 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010_0934_c_15L爾時大慧菩薩摩訶薩白佛言世尊修多羅中說如來藏本性淸淨常恒不斷無有變易具三十二相在於一切衆生身中爲蘊處垢衣所纏癡等妄分別垢之所污染如無價寶在垢衣中
외도가 말하기를, ‘나’는 영원한 작자(作者)이며 구나(求那:原質)를 떠나 자재하며 멸함이 없다고 말하니 세존께서 설하신 여래장의 뜻과 외도의 ‘나’는 같지 아니합니까?”
010_0934_c_21L外道說我是常作者於求那自在無滅世尊所說如來藏豈不同於外道我耶
010_0935_a_02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내가 여래장이라 말한 것과 외도가 말한 ‘나’는 같지 않다.
대혜여, 여래ㆍ응ㆍ정등각은 성공(性空)ㆍ실제(實際)ㆍ열반ㆍ불생(不生)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등 모든 구절의 뜻을 가지고 여래장을 설하였다. 어리석은 범부가 무아(無我)의 공포를 떠나도록 하고 분별없고 그림자가 없는 곳의 여래장의 문을 말한 것이다. 미래ㆍ현재의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여기에서 ‘나’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010_0934_c_23L佛言大慧說如來藏不同外道所說之我大慧如來正等覺以性空實際涅槃不生無相無願等諸句義說如來藏爲令愚夫離無我怖說無分別無影像處如來藏門未來現在諸菩薩摩訶薩不應於此執著於我
대혜여, 비유하면 도공이 진흙 및 물과 막대와 수레바퀴와 노끈과 방편(기술)으로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여래도 또한 그와 같아 일체 분별 상을 멀리 떠난 무아의 법과 갖가지 지혜와 선교방편으로 혹은 여래장을 설하고 혹은 무아(無我)라 설하기도 하므로 갖가지 명자(名字)와 차별이 있다.
010_0935_a_06L大慧譬如陶師於泥聚中以人功水杖輪繩方便作種種器如來亦爾於遠離一切分別相無我法中以種種智慧方便善巧或說如來藏或說爲無我種種名字各各差別
대혜여, 내가 여래장이라 설한 것은 ‘나’에 집착한 모든 외도의 무리를 도와서 망령된 견해를 떠나 3해탈(解脫)에 들어가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닫게 하려 함이다. 이런 까닭으로 모든 부처님께서 여래장을 설한 것은 외도가 설한 ‘나’와 같지 않다. 만약 외도의 견해를 떠나고자 하면 반드시 무아인 여래장의 뜻을 알아야 한다.”
010_0935_a_11L大慧我說如來藏爲攝著我諸外道衆令離妄見入三解脫得證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是故諸佛說如來藏不同外道所說之我若欲離於外道見者應知無我如來藏義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설하셨다.
爾時世尊卽說頌曰

사부(士夫) 상속하는 온(蘊)과
온갖 인연과 미진(微塵)
승자재(勝自在:대자천 외도)가 만든 것
이것은 다만 마음의 분별일 뿐이네.
010_0935_a_16L士夫相續蘊
衆緣及微塵
勝自在作者
此但心分別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미래 일체 중생을 널리 관찰하고 다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저희를 위하여 자세히 수행법을 말씀하여 주소서. 모든 보살마하살과 같이 큰 수행을 이루오리다.”
010_0935_a_18L爾時大慧菩薩普觀未來一切衆生復請佛言願爲我說具修行法如諸菩薩摩訶薩成大修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수행법을 갖추어야 큰 수행을 이루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말하자면 자기 마음에 나타난 것을 관찰하는 것이요, 나고 머물고 없어진다는 견해를 멀리 떠남이요, 밖의 법은 성품이 없음[無性]을 잘 아는 것이요, 오로지 스스로 깨달은 바른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만약 모든 보살이 이 네 가지 법을 이루면 곧 대수행자라는 이름을 얻을 것이다.
010_0935_a_21L佛言大慧薩摩訶薩具四種法成大修行何者爲四觀察自心所現故遠離生住滅見故善知外法無性故專求自證聖智故若諸菩薩成此四法則得名爲大修行者
010_0935_b_02L대혜여, 무엇을 자기 마음에 나타남을 관찰한다 하는가? 말하자면 삼계(三界)는 오직 자기 마음뿐임을 관찰하여 나와 내 것을 떠나고 동작함도 없고 가고 옴도 없으며 무시이래로 집착한 잘못된 습기에 훈습되어 삼계의 갖가지 색깔ㆍ행동ㆍ이름ㆍ말에 얽매어 몸, 살림[資] 머무는 곳을 분별하여 따라 들어가 나타낸 것이다.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자기 마음이 나타낸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010_0935_b_03L大慧云何觀察自心所謂觀三界唯是自心離我我所動作無來去無始執著過習所熏界種種色行名言繫縛身資所住分別隨入之所顯現菩薩摩訶薩如是觀察自心所現
대혜여, 무엇을 나고 머물고 없어진다는 견해를 떠남이라 하는가? 이른바 일체법은 환과 꿈에서 생긴 것 같아 나와 남이 모두 다 생기지 아니하건만 자기 마음의 헤아림에 따라 나타난 것이므로 밖의 사물은 없다고 본다. 모든 식(識)은 일어나지 않고 또 모든 인연은 쌓임이 없다고 보며, 분별하는 인연으로 삼계가 일어난다고 관찰한다.
010_0935_b_08L大慧云何得離生住滅見所謂觀一切法如幻夢生自他及俱皆不生故隨自心量之所現故見外物無有故見諸識不起故及衆緣無積故分別因緣起三界故
이와 같이 관찰할 때 안과 밖, 일체 모든 법을 모두 얻을 수 없으며 실체와 진실이 없음을 안다. 생긴다는 견해를 멀리 떠나 환과 같은 성품을 깨달으면 곧 그때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제8지에 머물러 마음ㆍ뜻ㆍ의식ㆍ오법자성(五法自性)ㆍ2무아(無我)의 경계를 깨닫고 의지하는 곳을 바꾸어 의생신(意生身:육신이 아닌 化身)을 얻는다.”
010_0935_b_12L如是觀時若內若外一切諸法皆不可得知無體實遠離生見證如幻性卽時逮得無生法忍住第八地了心五法自性二無我境轉所依止獲意生身
대혜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의생신이라 이름합니까?”
010_0935_b_17L大慧言世尊以何因緣名意生身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의생신이란 비유하면 뜻이 움직임에 빠르고 막힘이 없는 것과 같으므로 의생신이라 한다.
010_0935_b_18L佛言大慧意生身者譬如意去速疾無㝵名意生身
010_0935_c_02L대혜여, 비유하면 마음과 뜻은 한량없는 백천 유순 밖에서 먼저 보았던 갖가지 모든 사물을 기억하여 생각이 이어져 빠르게 그곳에 나아가므로 몸과 산과 강, 돌, 석벽이 능히 막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의생신도 또한 이와 같아 여환삼매[如幻]의 힘[力]으로 신통[通] 자재의 모든 상(相)을 장엄하고 본래 중생을 성취시키려는 서원을 기억하는 까닭에 마치 뜻이 가듯이 일체 모든 성인 대중 가운데 태어난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생(生)ㆍ주(住)ㆍ멸(滅)의 견해를 멀리 떠난다고 한다.
010_0935_b_19L大慧譬如心意於無量百千由旬之外憶先所見種種諸物念念相續疾詣於彼非是其身及山河石壁所能爲㝵意生身者亦復如是如幻三昧力通自在諸相莊憶本成就衆生願故猶如意去生於一切諸聖衆中是名菩薩摩訶薩得遠離於生住滅見
대혜여, 무엇을 밖의 법은 성품이 없음을 관찰한다 하느냐? 일체법은 아지랑이 같고, 꿈의 경계 같고, 털 수레바퀴 같으나 무시이래로 희론과 갖가지 집착과 허망한 악습(惡習)이 그 원인이 된다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일체법을 관찰할 때 스스로 깨닫는 바른 지혜를 구할 수 있다.
010_0935_c_03L大慧云何觀察外法無性謂觀察一切法如陽焰夢境如毛輪無始戲論種種執著妄惡習爲其因故如是觀察一切法卽是專求自證聖智
대혜여, 이것을 보살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며 큰 수행을 이루었다 한다. 너는 마땅히 이와 같이 부지런히 더 닦고 배워야 한다.”
010_0935_c_07L大慧是名菩薩具四種法成大修行汝應如是勤加修學
그때 대혜보살마하살이 다시 부처님께 청하여 말하였다.
“원하옵건대 일체법의 인연의 모양을 말씀하시어 저와 모든 보살마하살이 그 뜻을 깨달아 통달하여 유무(有無)의 견해를 떠나고 모든 법이 점점 생기고 한 번에 생겨난다고 허망되게 집착하지 않게 해주소서.”
010_0935_c_09L爾時大慧菩薩摩訶薩復請佛言說一切法因緣相令我及諸菩薩摩訶薩了達其義離有無見不妄執諸法漸生頓生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혜여, 일체법이 인연에서 생김에 두 가지가 있으니, 안과 밖이다. 밖이란 말하자면 진흙덩이ㆍ물ㆍ막대기ㆍ수레바퀴ㆍ노끈ㆍ사람 공(功)의 인연이 화합하여 병(甁)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진흙 병 풀로 만든 자리 종자 싹ㆍ타락[酪]ㆍ생소[蘇] 같은 것이다. 밖의 인연이 앞뒤로 옮겨져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안[內]이란 말하자면 무명(無明)과 애업(愛業) 등에서 온ㆍ계ㆍ처의 법이 생기므로 이것을 안으로 인연하여 일어난다고 한다. 이것은 다만 어리석은 범부가 분별하는 것이다.
010_0935_c_13L佛言大慧一切法因緣生有二種謂內及外外者謂以泥團杖輪人功等緣和合成甁如泥縷疊草席種牙酪蘇悉亦如是外緣前後轉生內者謂無明愛業等生蘊處法是爲內緣起此但愚夫之所分別
대혜여, 인(因)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이른바 당유인(當有因)ㆍ상속인(相屬因)ㆍ상인(相因)ㆍ능작인(能作因)ㆍ현료인(顯了因)ㆍ관대인(觀待因)이다.
010_0935_c_19L大慧因有六種當有因相屬因相因能作因顯了因觀待因
대혜여, 마땅히 있는 인이란 안과 밖의 법이 인(因)을 만들어 과(果)가 생김을 말한다.
상속하는 인이란 안과 밖의 법이 연(緣)을 만들어 과ㆍ인ㆍ온(蘊)ㆍ종자 등이 생김을 말한다.
서로 인연한다는 것은 사이 없는 상[無關相]을 만들어 상속하여 과(果)를 생(生)함을 말한다.
010_0935_c_20L大慧當有因者謂內外法作因生果相屬因者謂內外法作緣生果蘊種子等相因者作無閒相生相續果
010_0936_a_02L능히 만드는 인이라는 것은 인(因)을 증가시켜 과(果)를 생성하는 것이 전륜왕과 같은 것이다.밝게 나타내는 인이라는 것은 분별하여 발생하는 것에 경계의 모양[境相]을 나타내는 것이 등불이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상대하여 보는 인이란 멸할 때 상속이 끊어져서 허망한 생각이 없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010_0935_c_23L作因者謂作增上而生於果如轉輪顯了因者謂分別生能顯境相燈照物觀待因者謂滅時相續斷妄想生
대혜여, 이것은 어리석은 범부가 스스로 분별하는 것이요 점차로 생긴 것도 아니요 또한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대혜여, 만약 갑자기 생겼다면 만드는 자와 만들어진 것이 차별이 없어 그 원인을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까닭이다. 만약 점차로 생겼다면 그 체상(體相)을 찾아도 또한 얻지 못하므로 자식이 생겨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버지라 부르리오. 모든 것을 헤아려 분별하는 사람[計度人]이 말하는 인연과 소연연(所緣緣)1)과 무간연(無間緣)2)ㆍ증상연(增上緣)3) 등으로써 능생(能生)과 소생(所生)이 서로 소속되어 얽혀 차례로 생긴다는 것은 이치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은 모두 망정(妄情)으로 집착한 상(相)인 까닭이다.
010_0936_a_04L大慧此是愚夫自所分別漸次生亦非頓生何以故大慧若頓生者則作與所作無有差別求其因相不可得故若漸生者求其體相亦不可得如未生子云何名父諸計度人言以因緣所緣緣無閒緣增上緣所生能生互相繫屬次第生者不得成皆是妄情執著相故
대혜여, 점차로 생김과 단번에 생김이 모두 생김이 아니다. 다만 마음에 몸과 살림[資] 등이 나타난 까닭으로 밖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이 모두 성품이 없기 때문에 오직 식이 스스로 분별하여 견해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010_0936_a_11L大慧次與頓皆悉不生但有心現身資等外自共相皆無性故惟除識起自分別見
대혜여, 그러므로 반드시 인연이 만드는 화합의 모양 가운데서 점차로 생김과 단번에 생긴다는 견해를 떠나야 한다.”
010_0936_a_14L大慧是故應離因緣所作和合相中漸頓生見
그때 세존께서 거듭 게송으로 설하셨다.
爾時世尊重說頌言

일체법은 무생(無生)이니
또한 멸함도 없어
저 모든 인연 가운데
생멸상(生滅相)을 분별하느니라.
010_0936_a_15L一切法無生
亦復無有滅
於彼諸緣中
分別生滅相

모든 인연의 모임을 막지 않으면
이와 같이 멸하여 다시 생기니
다만 어리석은 범부들이
망정(妄情)에 집착함을 멈추도록 함이니라.
010_0936_a_17L非遮諸緣會
如是滅復生
但止於凡愚
妄情之所著

인연 가운데 법의 유(有)ㆍ무(無)는
이것 다 생김이 없는 것
습기와 미혹이 마음을 굴리면
여기에서 삼계[三有]가 나타나도다.
010_0936_a_18L緣中法有無
是悉無有生
習氣迷轉心
從是三有現

본래 생김이 없고
또한 멸함도 없느니라.
일체 유위(有爲)를 관찰하면
비유하건대 허공의 꽃과 같아
능히 취하고 취할 것을 떠났건만
모든 것은 미혹하여 보이느니라.
010_0936_a_19L本來無有生
亦復無有滅
觀一切有爲
譬如虛空花
離能取所取
一切迷惑見

능히 생함도 생긴 것도 없고
또 다시 인연도 없건만
다만 세속 따르는 까닭에
생멸이 있다 말하노라.
010_0936_a_21L無能生所生
亦復無因緣
但隨世俗故
而說有生滅
大乘入楞伽經卷第二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연(緣)은 원인, 소연(所緣)은 심식(心識)의 대상을 말한다.
  2. 2)앞의 마음이 멸하고 뒤의 마음을 일으키는 작용을 말한다.
  3. 3)다른 법을 일으키는 데 강한 힘이 되는 것, 논밭이 곡식에 힘이 되는 것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