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菩薩瓔珞經卷第二

ABC_IT_K0385_T_002
012_0520_c_01L보살영락경 제2권
012_0520_c_01L菩薩瓔珞經卷第二一名現在報


축불념 한역
장용서 번역
012_0520_c_02L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4. 용왕욕태자품(龍王慾太子品)
012_0520_c_03L龍王浴太子品第四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이때에 금궤(金机) 앞으로 오르시는데, 안색이 편안하시고 용모도 즐거운 모습을 띠었다. 여러 하늘 사람들이 위에서 꽃을 뿌리며 향을 사르고 하늘의 풍악을 울려서 보살을 즐겁게 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아래에서 좌우로 모시고 있으면서 이구동성으로 소리쳐 하늘과 땅을 진동시켰으며, 80억해의 건달바[乾沓和子]는 종과 경쇠를 치고 노래를 해서 보살을 즐겁게 하였다.
당시 마나사(魔那斯)용왕과 문린(文麟)용왕과 이라발(伊羅鉢)용왕과 아뇩달(阿耨達)용왕 등 84억이 모두 와서 구름처럼 모였다. 이때에 여러 용왕들이 문득 이 게송으로 보살을 찬송하였다.
012_0520_c_04L佛復告族姓子菩薩于時前昇金机顏色安詳顏貌容豫諸天在上散華燒香作天伎樂娛樂菩薩世人在下左右侍衛異口同音聲震天地八十億姟乾沓和子搥鍾磬歌娛樂菩薩時有摩那斯龍王文驎龍王伊羅鉢龍王阿耨達龍王等八十四億皆來雲集時諸龍王便以此偈而讚頌曰

오늘 세간의 더러움을 여의시고
남섬부주에 내려와 태어나셨네.
세속을 따라 어머니 태(胎)에 처하셨으니
목욕으로 세상 티끌을 없애기를 바라나이다.
012_0520_c_12L今日離世垢
降生閻浮利
隨俗處母胎
願浴除世塵

옛적 수없는 겁 동안에
공을 쌓고 뭇 업을 지으셨네.
서원은 이제 벌써 열매 맺어
성체(聖體)를 목욕하길 청하나니 허락하소서.
012_0520_c_14L昔於無數劫
積功造衆業
誓願今已果
願聽沐聖體

84억해의
용이 시방에서 몰려와
각기 높으신 분께 공양하고자
병을 올려 향탕(香湯)을 바치나이다.
012_0520_c_15L八十四億垓
龍從十方來
各欲供養尊
奉甁貢香湯

높으신 분 본래 수없는 겁 동안
중생을 위해 고행하셨으니,
높고 높은 덕은 가없어서
불쌍히 여기사 원을 들어주옵니다.
012_0520_c_16L尊本無數劫
苦行爲衆生
巍巍德無邊
垂愍願聽之

세웅(世雄)을 목마르게 사모한 지 오래이니,
나고 죽는 고통을 싫어한 탓이라네.
이제 어질고 밝음을 보게 되니
해가 허공에 비춘 것 같나이다.
012_0520_c_18L渴仰世雄久
疲厭生死苦
今得睹賢明
如日照虛空

높으신 분 본래 큰 서원 발해서
제도 못한 이를 제도하고자 하네.
최승(最勝)께서는 벌써 해탈하셨으니
해탈 못한 이를 꼭 다시 해탈케 하소서.
012_0520_c_19L尊本發弘誓
欲度未度者
最勝已解脫
當復脫未解

과거의 항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부처님
그리고 미래와 현재의 부처님
그 공훈은 한량이 없는데
세존께서도 오늘 이미 갖추시었네.
012_0520_c_20L過去恒沙佛
及當來現在
功勳不可量
尊今已具足

설령 겁에서 겁에 이르기까지
사람 가운데 높으신 분을 선양하더라도
어찌 반딧불로써
부처님 해와 감히 경쟁하리오.
012_0520_c_22L設從劫至劫
宣暢人中尊
豈以螢火光
敢與佛日競
012_0521_a_01L
허공은 끝까지 궁구할 수 있고
수미산도 측량할 수 있고
바닷물도 다 마를 수 있지만
높으신 덕은 다함이 없어라.
012_0521_a_01L虛空可究竟
須彌可稱量
海水可竭盡
尊德無邊涯

비교하건대, 해와 달의 광명과
마니주와 명월주는
비록 세상의 어두움은 비추겠지만
능히 무명을 없애지는 못하리라.
012_0521_a_02L比方日月光
摩尼明月珠
雖照外闇冥
未能除無明

오늘 비할 자가 없는 분께서
한 털구멍의 광명으로
하늘과 세간을 널리 비추어
음행ㆍ성냄ㆍ어리석음의 번뇌 없애셨네.
012_0521_a_04L今日無等倫
一毛之光明
普照天世閒
除垢婬怒癡

지나간 세상의 여섯 부처님도
남섬부주에 모두 태어나서
우리들의 공양 다 받으시고
향탕으로 높으신 몸 씻으셨네.
012_0521_a_05L過去六如來
盡生閻浮提
盡受我等供
香湯浴尊形

이제 다시 하늘의 스승을 만나니
억 겁 만에 비로소 출현하셨구나.
이제 각각 발아래 큰절하오니
오직 제때에 목욕하길 원하나이다.
012_0521_a_06L今復遭天師
億劫乃出現
今各頂禮足
唯願時沐浴

여러 하늘과 세간의 백성
모두 바른 법 듣고자 하옵니다.
깊은 법의 근본을 연설하시니
삼계의 높은 분께 마땅히 절하오리다.”
012_0521_a_08L諸天世人民
咸欲聽正法
敷演深法本
當禮三界尊

그때에 부처님께서 곧바로 동쪽을 보시는데, 얼굴빛이 평화스럽고 기쁨이 넘치셨다. 그리고는 여러 용왕에게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21_a_09L爾時世尊直視東方顏色和悅與諸龍王而說斯偈

나는 이제 형상(形狀)을 내려
남섬부주에 우뚝 서 걷으며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부류인
끝없는 네 가지 무리를 제도하리라.
012_0521_a_11L吾今以降形
踔步閻浮利
拔濟苦惱類
四等無邊涯

금빛 몸에 밝은 증명 있어서
온갖 모습이 태양의 빛과 같구나.
깨치지 못한 이를 꼭 깨치게 하니
이제 성불이 멀지 않았도다.
012_0521_a_13L金體有明證
衆相如日光
當覺未覺者
今成佛不久

태어남을 살펴보니 무수한 세대 동안
받은 형상이 한 가지가 아니구나.
비록 위ㆍ중간ㆍ아래가 있었지만
이러한 모습은 일찍이 없었도다.
012_0521_a_14L觀生無數世
受形非一類
雖有上中下
未有如是像

유쾌하여라, 굳건한 맹서
뜻을 잡아서 이지러지지 않으니
나타난 것은 과보에 응함이지만
본래 청정하기가 허공과 같아라.
012_0521_a_15L快哉牢固誓
執意不虧損
所現應果報
本淨如虛空

세상에는 세 가지 견고한 법
몸ㆍ목숨ㆍ재물의 보화가 있지마는
이것도 오히려 구경(究竟)은 아니니
처음부터 끝까지 믿을 것이 못되네.
012_0521_a_17L世有三堅法
身命財寶貨
此猶非究竟
終始可恃怙

나는 이제 이 세 가지를 다 버려서
법신은 공하여 형상이 없으며
다함도 없고 생명마저 없어서
자연히 도의 근본 이루노라.
012_0521_a_18L吾今捨此三
法身空無形
無盡無生命
自然成道根

세상 보배에는 위험이 많고
허깨비 같아서 오래 머물지 못하지만
이제 얻은 7보(寶)의 재물은
형체가 없어 다할 수가 없도다.
012_0521_a_19L世寶多嶮危
如幻不久停
今獲七寶財
無形不可窮

중생의 심(心)ㆍ의(意)ㆍ식(識)은
세 가지 번뇌로 덮여졌나니
이제 이미 3명(明)을 얻어서
처음ㆍ중간ㆍ마지막까지 통달하였네.
012_0521_a_21L衆生心意識
三垢所覆蓋
今已獲三明
初中竟通達

세간과 하늘사람 널리 위하여
불사(不死)의 법을 반드시 굴리리라.
법의 바퀴는 대천세계를 덮어서
인자한 마음으로 널리 윤택하게 하리.
012_0521_a_22L普爲世天人
當轉不死法
法輪覆大千
仁慈心普潤
012_0521_b_01L
태어남을 받으면 네 가지 결박 있고
3세(世)의 근심도 여의지 못하지만
이제 얻은 4성제(聖諦)
결박도 없고 다시 물들지도 않는다네.
012_0521_a_23L受生有四縛
不離三世患
今得四誠諦
無縛不復染

슬기로 고통의 진리[苦諦] 보면
지(智)가 없어도 그 지(智) 깨달아
청정한 성품은 더러움 없음 같아서
증득함을 받아 영원히 담박하도다.
012_0521_b_02L慧觀苦聖諦
無智寤其智
淨性如無垢
受證永澹泊

근본의 익힘[習]은 다시 낙(樂)을 일으켜
물들고 집착하고 애착함이 다함없어
저 티끌을 내 마음이 받아들이니
얽히고 맺힘이 마침내 불어만 간다.
012_0521_b_03L本習興更樂
染著愛無盡
彼塵我心受
纏結遂滋甚

나는 이제 본래 청정함을 보아
즐거운 생각, 고통스런 생각 멸해 없애니
담연(澹然)하여 근심ㆍ기쁨 없어져서
나고 죽음과는 영영 이별했노라.
012_0521_b_04L吾今觀本淨
樂想苦想滅
澹然無憂喜
永與生死別

지나간 세상에선 세 가지 행이 있어
어리석은 애착을 내게 한 근원이었지만
벌써 다 없애서 이젠 처하지 않으니
번뇌의 마음 아주 없어졌노라.
012_0521_b_06L過去有三行
生癡愛本原
已盡亦不處
無有塵垢心

현재 64지옥에
이끌려 명실(冥室)의 더미 이르렀지만
영영 버려서 함께하질 않으니
64지옥에 밝음[明]을 얻었네.
012_0521_b_07L現在六十四
牽致冥室聚
永捨不與俱
獲六十四明

미래의 수없는 번뇌가
사람의 마음을 덮어 가리면
법 구름[法雲]을 삼계에 펼쳐서
미치지 못한 곳까지 윤택케 하리.
012_0521_b_08L未來無數塵
覆蔽於人心
法雲布三界
潤澤諸不及

청정한 가르침은 입에 부드럽고
말소리는 애조 띤 난새 같나니
이 행의 속임 없음을 말미암아서
법을 설하매 모자라거나 새는 일이 없도다.
012_0521_b_10L淨教口柔軟
言聲如哀鸞
斯由行無欺
說法無缺漏

중생이 번뇌[陰蓋]에 덮여서
희롱하면서도 부끄럼 없더니
이제 비로소 부끄러움을 얻어
잘난 체하는 마음을 헐어 없앴네.
012_0521_b_11L衆生懷陰蓋
調戲無慚愧
今始得慚愧
壞滅貢高心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셔서
여러 삿된 무리 항복시키시고
법좌에 올라 사자후를 하면서
본행(本行)의 인연을 연설하시네.
012_0521_b_12L佛所出現世
降伏諸邪衆
昇座師子吼
演說本行緣

지나간 세상 여러 부처님 수기하시고
오는 세상, 지금 세상도 마찬가지이니,
5탁(濁)으로 쇠미해가는 세상에
능인(能仁)이란 이름의 부처님 계시네.
012_0521_b_14L過去諸佛記
及未來現在
五濁衰微世
有佛名能仁

이제 내가 스스로를 관찰해 보니
뜻의 성품이 보통과는 달라
명호도 이미 헛되지 않아
아버지는 싯달타라 부르셨도다.
012_0521_b_15L今我自觀察
志性殊於常
名號旣不虛
父稱爲悉達

그 까닭에 대중 속에 있으면서도
평범하게 보아서 두려움 없고
청정한 총지의 지혜를 얻음은
불초한 사람 제도하기 위함일세.
012_0521_b_16L故在於衆中
平視無所畏
得淨摠持慧
爲度不肖人
모든 법의 근본에
일어나고 멸함에 처소가 없고
또한 성패도 없음을 보지 못한다면
고요하게 응당 지혜로 관해야 하리.
012_0521_b_18L不見諸法本
起滅無處所
亦復無成敗
寂然應慧觀

모든 법이 본래 그 머무른 처소가 없음을
널리 분별한다면
고요하고 깨끗해서 돌아갈 데 없나니
이것이 바로 율행(律行)에 응함이라네.
012_0521_b_19L普分別諸法
悉無窠窟處
澹然無歸趣
斯乃應律行

봄[見]도 아니고 봄이 없음[無見]도 아니고
구함도 없고 지키는 바도 없어서
나와 남이 적막하여 공(空)하니
무상(無相)과 무원(無願)도 마찬가지네.
012_0521_b_20L不以見無見
無求無所守
我人寂寞定
無相願亦然

감로의 미묘한 맛을
무릇 실컷 마시고 싶다면
상념을 잊고 온갖 집착 없앨지니
이것이 보살의 지혜에 응함이니라.
012_0521_b_22L夫欲飮無厭
甘露微妙味
忘想除諸著
斯應菩薩慧

사람도 없고 목숨도 없으면
모든 부처님의 곳간을 성취하니,
잘난 체하는 마음 꺾어 부수어
자만(自慢)의 뜻을 일으키지 말라.
012_0521_b_23L無人無壽命
成就諸佛藏
摧碎貢高心
不興自大意
012_0521_c_01L
최상의 지혜는 수(數)에 집착하지 않고
상상(常想)이 있다고 계교도 하지 않으니
중생이 물든 마음 일으키거든
비추어서 청정한 지혜를 알게 하리라.
012_0521_c_01L上智不著數
不計有常想
衆生興染心
照令知淨慧
성현에 약간의 품(品)이 있음은
중생의 근기가 같지 않은 탓이라
지혜로써 미래를 관찰하여
약간의 도마저 다 없애리라.
012_0521_c_03L賢聖若干品
衆生根不同
以慧觀未來
盡無若干道

부처님 법 깊고 깊어
그 지혜 끝이 없도다.
오직 공(空)할 뿐 물듦의 집착 없으니
이것을 일러 법계의 청정이라 하네.
012_0521_c_04L佛法有深要
其慧無邊涯
唯空無染著
是謂法界淨

한 생에서 백 생을 지나
나아가 무수한 겁에 이르기까지
나는 이제 영영 버리고
앞장서서 증득을 취하겠네.
012_0521_c_05L一生經百生
乃至無數劫
我今永以捨
背而前取證

만일 내가 중간에
목숨을 헤아려 법의 성품에 집착하면
항하 모래수의 여러 부처님을 지나쳐도
공무(空無)의 지혜는 밟지 못하리.
012_0521_c_07L設我於中閒
計壽著法性
恒沙諸佛過
不履空無慧

항상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부처님의 경법(經法)을 밝게 밝히면
이로써 스스로 깨쳐서
큰 서원(誓願)을 일으키네.
012_0521_c_08L恒自降伏心
分別文字法
是故自覺寤
建立大弘誓

옛적에 나는 처음 뜻을 발해서
연각승(緣覺乘)을 구하리라 마음먹고서
한가하고 청정하며 사람 없는 곳에서
44억 겁 동안을 지냈고
012_0521_c_09L昔吾初發意
志求緣覺乘
閑淨無人處
四十四億劫
불법과 성스러운 대중이 없는
70겁을 다시 지냈으며
그 뒤에 크게 통한 지혜[大通慧]께서
대승의 자취를 펼침을 만났어라.
012_0521_c_11L無佛法聖衆
其閒七十劫
後遇大通慧
演暢大乘迹

이에 일찍이 들은 적이 없었던
성스러운 지혜의 한량없는 깨침과
사부대중을 자비로 수호함을
이제야 미미하나마 믿고 알았으니,
012_0521_c_12L初聞未曾有
聖慧無量覺
慈悲護四等
爾乃微信解

이때부터는 저절로
공덕의 업을 일으켜 세우고
수없는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19겁을 다시 지냈노라.
012_0521_c_13L自從是已來
興建功德業
供養無數佛
復經十九劫

뒤에 큰 나라의 임금인
비륜황제왕(飛輪皇帝王)이 되어서
7보가 앞을 인도하며 좇아오고
천 명의 자식이 재예(才藝)를 갖추었네.
012_0521_c_15L後爲大國王
飛輪皇帝王
七寶前導從
千子才藝具

청정한 사람으로서
부지런히 범행을 닦는 이
97억해 명의 집착 없는
해탈한 마음으로 공양 올리네.
012_0521_c_16L供養淸淨人
勤修梵行者
九十七億姟
無著解脫心

그리고 나라의 곤궁함과
외로워 갈 곳 없는 이에게 보시하니,
창고에서 진기한 보배를 꺼내어
두루 구제하여 모자람 없게 했도다.
012_0521_c_17L及施國貧窮
孤匱無所歸
庫藏出珍寶
周濟令無乏
다시 수없는 겁 동안에
몸소 청정행을 스스로 닦되
왕위는 버려서 태자에게 맡기고
출가하여 법복을 입었도다.
012_0521_c_19L復於無數劫
躬自修淨行
捨位授太子
出家衣法服

인욕의 성품으로 어질고 온화하며
한가한 생활로 고요히 무념하다보니
차츰차츰 마음이 게을러져서
마치 사람이 연못에 빠진 듯하니,
012_0521_c_20L忍辱性仁和
燕居寂無念
漸漸心疲惓
猶人溺於淵

선근은 점점 미약해져서
마치 열매가 익어 절로 떨어지듯
나고 죽는 고통에 오고 가면서
과보를 받음이 무수히 변했노라.
012_0521_c_21L善根漸漸微
如果熟自落
往來生死苦
受報無數變

뜻은 가로막혀 큰 서원이 없고
나아가 몸의 근심을 면코자 하나
뜻의 업[意業]은 상념의 바람[想風]에 쓸려
우물쭈물하다가 끝내 궁구하지 못했도다.
012_0521_c_23L意局無大誓
趣欲免身患
意業被想風
猶豫不究竟
012_0522_a_01L
이렇게 태어나고 죽어
윤회를 하면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다시 60겁을 더 지나고서야
보영부처님[寶瓔佛]을 만나 뵈었노라.
012_0522_a_01L如是在生死
輪轉不能出
復經六十劫
値遇寶瓔佛

방편으로 교화하여 사람을 제도하시는데
오직 1승뿐이요 두 번째 길은 없었으니
작은 절개의 명성은 듣지도 않으시고
공(空)의 지혜로 번뇌가 다한 분이라네.
012_0522_a_02L權化濟渡人
一乘無二道
不聞小節名
空慧盡漏人
도의 한 모습[一相]과
아주 깊고 순수하고 맑은 행을 펴내시니
비로소 그를 따라 뜻을 발하니
큰 맹서의 마음 막기 어려워라.
012_0522_a_04L敷演道一相
甚深純淑行
始從彼發意
弘誓心難沮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7억의 아승기겁 동안
바른 법을 수호하고 따라서
이제 비로소 스스로 깨치었노라.
012_0522_a_05L從彼至今日
七億阿僧祇
將護順正法
今乃自覺寤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에 보살과 여러 중생ㆍ하늘ㆍ용ㆍ귀신ㆍ8부의 무리와 온갖 시방의 보살이 이 게송 설하심을 찬탄하고서 깊고 묘한 뜻을 받아들였고, 그 자리에서 84해(垓)의 사람이 모두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발하였고, 다시 수없는 중생이 법인(法忍)을 얻었느니라.”
012_0522_a_06L佛復告族姓子爾時菩薩與諸衆生天龍鬼神八部之衆及諸十方神通菩薩歎說此偈受深妙義卽於座上八十四姟人皆發無上正眞道意有無數衆生逮得法忍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중생이 이 하나의 게송을 듣고서 외우거나, 읽어 지니거나, 남을 위하여 해설하거나, 그 뜻을 분별하면, 뭇 마군이 틈을 얻게 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중생은 모두 지나간 세상에서 뭇 행을 갖추었고, 일찍이 다시 무앙수(無央數)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으며, 서원이 순수하고 정숙해서 저마다 원을 발하였기 때문이니라.
012_0522_a_11L佛復告族姓若有衆生聞此一偈諷誦讀持爲人解說分別其義不爲衆魔之所得便何以故斯等衆生皆由過去衆行具曾更供養無央數佛誓願純淑各各發願
‘만일 내가 후생에 일생보처의 보살로부터 바른 설법을 들으면, 곧 저 부처님에게서 탁 트이면서 크게 깨달아 생겨남도 없고 일어나고 멸함도 없는 법을 얻게 되리라. ’어떠한가, 족성자야. 만일 한 사람이 있어, 이 말을 문득 설하여 이에 내가 형상이 없는 법을 알아서 형상을 통해 가르치고 허공의 상(相)을 알아서 실(實)을 통해 가르친다면, 이 사람이 이 뜻을 일으켜 세우겠느냐, 그렇지 못하겠느냐?”
012_0522_a_16L若我後生要從一生補處菩薩聞說正法卽於彼佛坦然大寤得無生無起滅法云何族姓子若有一人便說斯言吾乃知無形之法以形教授虛空之相以實教授此人興建斯寧能不乎
012_0522_b_01L당시 무외대호(無畏大護)보살이 있었다. 이 삼천대천세계를 지나면 부처님 나라가 있는데, 그 이름을 현호(賢豪)라 말하고 부처님의 명호는 보현(普賢)이라 하였다. 무외대호보살은 그 국토로부터 와서 총지를 얻어 불퇴전(不退轉)에 서 있었다. 그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형상 없는 법을 형상을 통해 가르치고, 허공의 모습 없음[虛空無相]을 모습을 통해 가르치시니, 매우 어렵고 몹시 어려워서 끝내 미치지 못하겠나이다. 왜냐하면 허공은 형상이 없어서 능히 물들이거나 더럽힐 수 없거늘, 어찌 형질(形質)이 있는 것을 통해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012_0522_a_21L有無畏大護菩薩過此三千大千世界有佛土名曰賢豪名普賢無畏大護菩薩從彼剎來得摠持立不退轉卽從坐起偏露右肩長跪叉手前白佛言世尊無形之法以形教授虛空無相以相教授難甚難終不可逮所以者何虛空無形無能染污況當欲使有形質乎事不然
부처님께서 무외대호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야, 이것은 오히려 얻을 수 있지만, 일생보처 보살로부터 이 법을 듣고자 함은 끝내 얻을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법은 수(數)가 없는데, 어찌 수가 없는 가운데서 수 있는 법을 행하겠는가? 반연의 대함이 없는 법이 반연의 대함이 있겠는가? 허공의 법에 형질이 있겠는가? 이 일은 그렇지가 않느니라.
012_0522_b_06L佛告無畏大護菩薩族姓子斯猶可獲欲從一生補處菩薩聞此法者終不可得何以故諸法無數當以無數中行有數法乎無緣對法有緣對乎虛空之法有形質乎此事不然
다만 부처님의 큰 자비를 널리 펴기 위하여 중생을 교화하여 굳건함을 세우게 하고, 도의 가르침을 펴서 모든 법을 분별하되, 말이 없고 설함이 없으나, 세상에는 어리석음과 미혹함이 많아서 시비의 마음을 일으키길 ‘이는 새는[漏] 법이냐, 새는 법이 아니냐. 이는 반연하여 대하는 법이냐, 반연하여 대하는 법이 아니냐. 이는 수호해 지닐 수 있느냐, 수호해 지닐 수 없느냐. 이 법은 아(我)가 있느냐, 아(我)가 없느냐. 이는 세속의 법이냐, 열반의 법이냐. 이 법은 물들어 집착한 것이냐, 물들어 집착하지 않은 것이냐. 이 법은 수(數)가 있느냐, 수가 없느냐. 이 법은 단멸하느냐, 단멸하지 않느냐. 이 법은 찌꺼기로 흐리느냐, 이 찌꺼기로 흐리지 않느냐?’라 하고,
012_0522_b_11L但爲如來世尊大慈廣布開化衆生令立牢固敷演道教分別諸法無言無說世多愚惑興是非心斯是漏法是非漏法是緣對法非緣對法是可護持是非護持是法有我是法無我是世俗法是泥洹法是法染著是非染著是法有數是法無數是法斷滅是非斷滅是法滓濁是非滓濁
다시 서로 경계하여 각자 말하길 ‘이것을 익히느냐, 이것을 버리느냐. 이것을 배우느냐, 이것을 그냥 두느냐. 이것은 배우는 법이냐, 배우는 법이 아니냐. 이것이 성문의 법, 벽지불의 법이냐, 성문의 법, 벽지불의 법이 아니냐. 이것이 보살의 법이냐, 보살의 법이 아니냐?’라고 관(觀)하기 때문에 최정각을 이루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습에 집착하는 관(觀)은 제1의 공관(空觀)이 아니기 때문이니, 구함도 없고, 모습도 없고, 또한 지견도 없어야 비로소 공관을 이루느니라.
012_0522_b_18L復自相誡各說是言習是捨是學是置是學法非學法此聲聞法辟支佛非聲聞法非辟支佛法是菩薩法非菩薩法不以此觀成最正覺何以有相著觀非第一空觀無求無相亦無知見乃成空觀
012_0522_c_01L대저 모든 법을 관찰하면 아(我)가 없고 수명도 없으며, 찰토(刹土)를 보지 않으며, 경계를 분별하는데도 의지함이 없고 의지할 대상도 없다. 이것을 법관(法觀)이라고 하나니,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느니라. 이와 같이 관하는 자는 모든 법이 고요하므로 도의 열매도 고요하고, 증득을 받음도 또한 고요하다.
012_0522_c_01L夫觀諸法無我無壽不見剎土分別境界無依無所是爲法觀空無所有如是觀者法亦寂道果亦寂受證亦寂
가령 보살의 공관(空觀)이 이와 같더라도 모든 희망에 대해 문득 뒤바꿈이 없고, 중생을 도와 이롭게 하면서도 대애(大哀)를 발해서 부처님의 법을 일으켜 세우느니라. 하지만 비록 중생을 제도하더라도 중생이란 생각은 없으니, 공관(空觀)의 보살이 어찌 제도함에 제도를 하고 있다고 여기겠는가? 이 일은 그렇지 않다. 만일 보살마하살로서 이 공관(空觀)을 얻은 이는 열 가지 ‘내가 없는 법[無我法]’을 문득 얻어서 구족하나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
012_0522_c_04L假使菩薩空觀如是於諸悕望便無顚倒利衆生而發大哀興建佛法雖度衆生無衆生想空觀菩薩豈見度者事不然若有菩薩摩訶薩得此空觀便獲具足十無我法云何爲十
여기에서 무외야, 보살마하살이 족성자이든 족성녀이든 불법의 대중에게서 깨끗하고 더러움의 차별을 보지 않고, 또한 너와 나의 분별을 일으키지 않고, 이것은 법신(法身)이고 이것은 사욕신(思欲身)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앞서 지나간 세상을 알고 뒤에 오는 세상을 살핀다. 이는 모두가 청정해서 나라는 생각이 없는 것이니, 이를 보살의 공관(空觀)이며 무아(無我)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2_c_09L無畏菩薩摩訶薩若族姓子族姓於佛法衆不見淨穢亦復不起彼此之念此是法身此思欲身前知過去後察未來斯皆淸淨而無我想謂菩薩空觀無我
다시 다음으로 무외야, 보살마하살이 법복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발우를 잡고서 오는 세상ㆍ지나간 세상ㆍ지금 세상의 모든 부처님이 성(城)에 들어가 교화하는 것을 살펴볼 뿐, 큰 부자와 하천한 이를 가려보지 않고, 그 가운데서 나와 나의 두 소견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의 공관이며 무아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2_c_14L復次無畏菩薩摩訶薩法服齊整執持應器觀見當來過去現在諸佛世尊入城教化不見豪貴及下劣者於中不起吾我二見是謂菩薩空觀無我
012_0523_a_01L다시 다음으로 무외야, 보살마하살은 수없는 부처님의 세계와 장엄 청정한 국토가 평탄하고 바른 것을 볼 뿐이지, 오늘날 부처님 국토의 더럽고 추악함은 말하지 않느니라. 또 잡고 있는 뜻이 청정해서 사소한 상념도 없으니, 생각 생각이 일정(一定)하여 식(識)이 흘러서 치달리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보살의 공관이며 무아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무외 보살마하살아, 중생은 물들고 집착해서 몸에 의지해 공(空)을 알고, 보살은 공의 지혜로 3세(世)에 의지함이 없으니, 이것을 보살의 공관이며 무아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무외 보살마하살아, 모든 부처님의 교화는 본래 청정함이 없으며 또한 다른 것도 없나니, 이것을 보살의 공관이며 무아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2_c_18L復次無畏菩薩摩訶薩玄見無數佛剎嚴淨國土坦然平正不說今日佛土穢惡執意淸淨無若干想念念一定識不流馳謂菩薩空觀無我復次無畏菩薩摩訶薩衆生染著猗身解空菩薩空慧三世無猗是謂菩薩空觀無我復次無畏菩薩摩訶薩諸佛世尊教化若本無淸淨亦不有異是謂菩薩空觀無我
부처님께서 무외 보살마하살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족성자의 여인이 바라밀[度無極]의 다함없는 법장(法藏)을 행하고 온갖 보배의 화만(華鬘)으로 스스로를 장엄하게 꾸미는데, 이와 같이 다함이 없으면서도 다함을 보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다하면서도 다하지 않음’을 성취하면, 이것을 보살의 공관이며 무아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3_a_04L佛告無畏菩薩摩訶薩若族姓子女行度無極無盡法藏衆寶華鬘以自嚴飾如是無盡亦不見盡中成就盡不盡者是謂菩薩空觀無
다시 다음으로 무외야, 보살마하살은 여러 부처님의 한량없는 색상(色像)도 본제(本際)의 고요한 법에 들어간다고 마땅히 보아야 한다. 의취(義趣)를 분별하여 색(色)의 본래 없음을 알아서 널리 법계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는데, 색의 모양을 보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 이것을 보살의 공관이며 무아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3_a_08L復次無畏菩薩摩訶薩當觀諸佛色像無量入於本際寂然之法分別義趣解色本無普入法界化導衆生不見色像化衆生者是謂菩薩空觀無我
다시 다음으로 무외야,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와 깊고 오묘한 곳간을 얻어서 네 가지 일에 두려움이 없고, 여덟 가지 결박과 집착을 여의어서 여덟 가지 해탈을 얻고, 법을 비처럼 내려서 윤택하게 하여 늙고 죽음을 없애고, 사자의 우렁찬 소리를 부르짖는 뜻이 금강과 같고, 피차와 중간을 여의어서 물들어 집착함이 없나니, 이것을 보살의 공관이며 무아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3_a_12L復次無畏菩薩摩訶薩得佛聖慧深奧之藏四事無畏離八縛著得八解脫雨法潤澤亦無老死爲師子吼志如金剛離彼此中亦無染著謂菩薩空觀無我
다시 다음으로 무외야, 보살마하살은 차츰 친근히 해서 숙명통을 익혀 무수한 아승기겁을 관찰하여야 한다. 아무 나라의 아무 부처님과 여러 부처님들은 비록 열반을 나타냈지만 멸도(滅度)를 취하지 않았고, 중생의 발자취를 청정하게 하는데 게으름을 품지 않았고, 겁의 수효로써 중생을 싫어하거나 근심으로 여기지 않았고, 또한 다시 열반의 쾌락으로써 멸도를 취하고자 하지 않았고,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적시어 더럽힐 수 없었나니, 이것을 보살의 공관이며 무아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3_a_16L復次無畏菩薩摩訶漸當親近習宿命通觀察無數阿僧祇劫某國某佛諸佛世尊雖現泥洹不取滅度淨衆生迹不懷懈怠以劫數厭患衆生亦復不以泥洹快樂欲取滅度心如虛空不可沾污謂菩薩空觀無我
012_0523_b_01L다시 다음으로 무외야, 보살마하살이 끝없는 지혜로 중생을 구제해서 극히 먼 곳인 항하 모래 밖에 하나하나의 모래가 다 항하의 모래가 되느니라. 이와 같이 계산해서 한 번 돌고는 다시 시작하는데, 이와 같이 팔방(八方)과 상하를 두루 채우고 또한 허공의 한량없는 경계에 노닐면서 중생을 반드시 구제하여 타락시키지 않지만, 스스로 신통지혜의 과보를 칭찬하지 않느니라.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무아법이라고 하느니라.
일생보처로서 태(胎)의 분수가 다한 이는 곧 응해서 행하느니라.”
012_0523_a_22L復次無畏菩薩摩訶薩以無邊涯智拔濟衆生正使極遠在恒沙表一一沙者盡爲恒沙是計筭周而復始如是遍滿八方上亦遊虛空無量境界要濟衆生不令墮落不自稱歎通慧果報是謂菩薩摩訶薩十無我法一生補處胎分盡者乃應是行
이때 자리에 있던 색계(色界)와 욕계(欲界)의 천자(天子) 19해(垓)의 무리가 즉각 정인(頂忍)을 얻었고, 다시 무수한 여러 하늘과 세상 사람들이 공관진신(空觀盡信)의 행을 얻었고, 여러 야차ㆍ용ㆍ귀신은 3존(尊)을 믿고 향하여 삼보에 귀의함을 받았다.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에 보살이 금궤 위에 있었는데, 국왕과 거사ㆍ하늘ㆍ용ㆍ귀신과 시방의 보살들이 각각 공경을 표하면서 보살을 목욕시켜 드리고자 하였느니라.”
당시 이름이 월정(月精)인 보살이 있었는데, 여러 보살 가운데 가장 상수(上首)였다. 그가 위의를 거두어 지니고 법복을 잘 다스린 뒤에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꿇어앉아 합장한 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012_0523_b_06L爾時座上色欲天子十九姟衆卽得頂忍復有無數諸天世人逮得空觀盡信之行諸閱叉龍信向三尊受三自歸佛復告族姓爾時菩薩在金机上國王居士鬼神十方菩薩各各興敬欲浴菩時有菩薩名曰月精於衆菩薩最爲上首攝持威儀法服安詳卽從座起長跪叉手以偈讚曰

존귀하사 이제 걸림 없으신 분
삼계의 티끌에 물들지 않으시고
8해탈의 탕(湯)으로 씻으시니
세상의 물이 어찌 감당하리오.
012_0523_b_14L尊今無㝵形
不染三界塵
洗以八解湯
世水安可堪

마음의 때가 다하니 밝고 맑아서
안과 밖에 걸림이나 막힘이 없어라.
강과 바다와 하천과 샘물의 근원은
이 목욕물로는 오래 청정하지 못하네.
012_0523_b_16L心垢盡淸明
內外無障㝵
江海河泉源
斯浴非久淨

옛날 옛적, 유리(琉璃) 연못
선두(禪頭) 용궁에 계실 때
뜻을 오로지하여 대승을 발해서
애욕의 마군을 기어이 멸하셨나니,
012_0523_b_17L昔在瑠璃池
禪頭龍宮時
專意發大乘
要滅愛欲魔

이제 이미 본원(本願)을 이루어
삼계에 짝할 분이 없도다.
원하노니 무외(無畏)의 평상에 오르셔서
물로 목욕하심이 어떻습니까.
012_0523_b_18L今已果本願
三界無等倫
願昇無畏座
何爲現洗浴

하늘에 태어나기 예순 두 차례
나술(那術)의 겁수(劫數) 동안
하늘은 다섯 가지 음악을 연주해서
복(福)의 음향을 울리니 자연의 과보니라.
012_0523_b_20L生天六十二
那術劫數中
天伎五樂至
福響自然報

법신의 뭇 지혜를 갖춰서
걸림 없는 도를 연설하시고
두루 마치신 뒤에는 이 생(生)을
가유라위성(迦惟羅衛城)에 의탁하셨노라.
012_0523_b_21L法身衆智具
演說無㝵道
周訖託生此
迦惟羅衛城

지금 세상에 있는 세 가지 재앙[三災]을
3명(明)의 과보로 멸해 없애고
세 가지 지혜[三慧]로 세 가지를 요달하여
3요(要)를 이제 갖추셨나니
012_0523_b_22L現世有三災
滅以三明報
三慧通三達
三要今具足
012_0523_c_01L
세 가지 평등으로 3세를 보사
삼계의 유(有)에 물들지 않으시고
3분의 법신을 갖추셨으니
삼계에 높으신 이여 이 절 받으옵소서.
012_0523_c_01L三等觀三世
不染三界有
三分法身具
當禮三界尊

여러 곳에서 와서 모인 중생,
여러 하늘과 수륜귀(須倫鬼)
모두 각자 기뻐하고 날뛰면서
공경해 받들며 공양을 일으키도다.
012_0523_c_02L諸來會衆生
諸天須倫鬼
咸各懷踊躍
敬承興供養

앞과 뒤에서 청묘(淸妙)함을 호위하며
나아가 유리동산에 이르러선
오른쪽으로 연꽃 가지를 잡으니
신(神)을 내려 남섬부주에 나셨도다.
012_0523_c_03L前後衛淸妙
行至瑠璃園
右攀蓮華枝
降神生閻浮

태어나서 땅에 떨어질 적에
청정하기가 자마금(紫磨金) 같고
하늘땅이 여섯 번 반복하여 진동하고
신령스런 감응에 여러 하늘이 이르렀네.
012_0523_c_05L當生墮地時
淨如紫磨金
天地六反動
神感諸天至

지옥의 여러 가지 문초와 형벌은
일시에 모두 쉬어버리고
청정하여 티와 더러움 없음이
물에 집착하지 않는 꽃과 같도다.
012_0523_c_06L地獄諸考掠
一時皆休息
淸淨無瑕穢
如華不著水

시방 여러 부처님 세계의
여래 등정각 부처님들
각각 그 나라에서
사부대중에게 선언하셨나니,
012_0523_c_07L十方諸佛剎
如來等正覺
各各於其國
宣告四部衆

‘오늘 사바세계에
부처님께서 내려와 출현하셨나니,
영원히 3악도에 있는 중생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베푸신다네.’
012_0523_c_09L今日忍世界
世雄降出現
垂愍諸衆生
永在三塗者

맑고 밝은 녹야원에서
올바른 법륜을 굴리시니
오랫동안 굶주린 자를 위해
감로의 법으로 적셔주도다.
012_0523_c_10L當轉正法輪
鹿野淸明園
爲久飢虛者
潤以甘露法

8정도를 존귀한 이 홀로 깨치시고
12인연도 다 궁구하셨으며
다함없는 강과 바다의 보배로
온갖 사람을 배부르게 하셨도다.
012_0523_c_11L八道尊獨寤
究盡十二緣
無盡江海寶
充飽一切人

가령 겁으로부터 겁에 이르기까지
부처님마다 그 덕을 찬탄해도
오히려 능히 다 펼 수 없거늘
하물며 나의 반딧불과 같은 빛이겠는가.
012_0523_c_13L設從劫至劫
佛佛歎其德
猶尚不能宣
況我螢火光

옛날 옛적 무외(無畏)의 세계인
불현(不眴) 국토 안에서
처음에는 말 없는 법 살피다가
남이 없는 지혜는 못 얻었는데,
012_0523_c_14L昔在無畏剎
不眴佛土中
初觀無言法
未得無生慧

무궁한 법을 연설할 수 있는
언교(言敎) 속에서 태어나길 서원하여
오늘 그 시기가 이미 이르렀으니
바라건대 존귀한 법륜을 굴려 주옵소서.
012_0523_c_15L誓生言教中
敷演無窮法
今日期已至
願轉尊法輪

이때에 보살의 심의(心意)가 맑고 깨끗해서 익숙히 보면서 아무 말이 없이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오늘 남들에게 법문을 설한다면, 청정한 불퇴전(不退轉) 경지는 ≺나≻의 성품을 품지 않음을 강론하리라. 모든 법은 자연(自然:스스로 그러함)이며, 생겨난 것도 또한 마찬가지니라. 사람의 근원에 따라 법을 설하겠다. 법의 성품은 스스로 그러해서 변하거나 다름[變異]이 없거늘, 어찌 중생에게 법을 받을 이가 있으랴. 중생은 본래 청정해서 더럽게 물듦을 보지 못하니, 지혜를 세우고 크나큰 서원의 마음을 발해서 중생을 찾아 알아보니 모조리 다 청정하다. 본래 청정한 자연이요, 무아(無我)의 자연이요, 무형(無形)의 자연이요, 인물(人物)의 자연이다.
012_0523_c_17L是時菩薩心意澹然默然熟視亦無言內自思惟如我今日爲人說法講論淸淨不退轉地不懷吾我之性諸法自然生者亦爾隨人根源而爲說法法性自爾無有變易何況衆生有受法者生本淨不見染污建立智慧發弘誓心尋究衆生皆悉淸淨本淨自然無我自無形自然人物自然
012_0524_a_01L어떤 것이 본래 청정한 자연인가. 아득한 옛날 이래로 생사(生死)에 유전하면서도 뜻을 발하여 도를 구하였고 나아가 열반에 이르기까지 본래 스스로 청정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본래 청정한 자연이라 말하느니라.
어떤 것을 무아의 자연이라 하는가. 본래 있다가 지금은 없고, 지금은 있으되 본래는 없으며, 또한 나와 나의 근본은 유(有)에서 생겼다고 말하지 않고, 또한 다시 유(有)가 나로부터 생겼다고 말하지 않으며, 나는 스스로 내가 있지 않음을 모르고 있으며, 스스로 있지 않음을 모르고 있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아의 자연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4_a_01L云何本淨自從久遠已來流轉生死發意求道乃至泥洹本自淸淨斯乃名曰本淨自然云何無我自然本有今無今有本無亦不言我我本生有亦復不言有從我生我不自知無我有不自知有斯乃名曰無我自然
어떤 것이 무형의 자연인가. 형상이 없는 것은 식(識)이고, 신(神)이고, 목숨이다. 이 세 가지 구절의 뜻은 항상 존재하면서 변하지 않는다. 공(空)에 있으면 공이 되고, 형상에 있으면 형상이 되고, 있음[有]에 있으면 있음이 되고, 모습[相]에 있으면 모습이 되고, 모습 없음[無相]에 있으면 모습 없음이 되어서 무형의 식(識)은 공성(空性)으로 저절로 그러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형의 자연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4_a_07L云何無形自然無形者識也神也壽也此三句義常存不變在空爲空在形爲形有爲有在相爲相在無相爲無相形之識空性自然斯乃名曰無形自
어떤 것이 인물의 자연인가. 인물을 찾아 궁구하지만 그 소굴을 볼 수 없고, 의식은 허깨비 같아서 본래의 근원에 도달할 수 없고, 어리석음과 미혹함이 서로 이어받아 아버지를 말하고 어머니를 말하며, 나라ㆍ재산ㆍ처자에게 차츰차츰 온갖 상념을 내고, 3유(有:界)에 물들어 집착한다. 나는 이제 벌써 버려서 영원히 처하지 않는다.
012_0524_a_12L云何人物自然尋究人物不見窠意識幻化不達本源愚惑相承言父言母國財妻子漸生衆想染著三我今已捨永不與處
이 때문에 자연히 공의 지혜를 밝게 통달하니, 공의 지혜가 저절로 그러하므로[自然] 여러 가지 법도 또한 그러하다. 여러 가지 법도 저절로 그러하므로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것도 또한 저절로 그러하다. 일체의 법들은 다만 가짜 명호(名號)일 뿐이니 호칭[號]으로 인하여 이름[名]이 있음도 또한 다시 저절로 그러하다. 저절로 그러함[自然]을 논하여 설하면 문득 논하여 설함이 되나니, 일어나고 멸함이 없는 법, 이것을 이름하여 인물의 자연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24_a_15L以此自然明達空慧空慧自然諸法亦爾諸法自逮正覺者亦復自然一切諸法但假名號因號有名亦復自然論說自然便爲論說無起滅法斯則名曰人物自然
내가 지금 만일 비어 고요한[空寂] 법을 설한다면 중생들은 믿지 않고 의심을 갑절이나 낼 것이고, 설사 내가 다시 형질의 법을 말할지라도 근원을 다할 수 없겠거늘 하물며 멸도이겠느냐. 마땅히 적멸하고 고요해서 성현의 침묵이어야 하느니라.’
012_0524_a_20L吾今若說空寂之法衆生不信倍生疑網設我復說形質之法盡根原況當滅度宜且寂靜賢聖默
012_0524_b_01L당시 천자(天子)가 있었으니 이름은 보영(寶瓔)이다. 성인의 마음을 통달하여 부처의 성품과 똑같이 행하고, 6도(道)를 맑게 꿰뚫어서 한 모습[一相]임을 밝게 깨닫고, 여덟 가지 법을 영영 여의어서 번뇌에 처하지 않고, 법륜을 굴려서 부처님 가르침을 선포함을 감당하며, 네 가지 진리의 성스러운 지혜가 밝아서 더러움을 없앴고,
012_0524_a_23L是時有天子名寶瓔通達聖心同佛性行六通淸徹曉了一相永離八法不處塵勞堪轉法輪頒宣佛教諦聖慧霍然除垢
5분여래법신(分如來法身)을 갖추었고, 여섯 가지 걸림 없는 신통의 도과(道果)에 이르렀으며, 형상과 정신이 함께 노닐어도 저촉해 걸리는 바가 없으며, 7각의를 얻어 스스로 영락(瓔珞)했고, 여덟 가지 도를 갖추어서 갖가지 법들과 함께하지 않으며, 4무외(無畏)를 얻고 힘이 금강 같아서 허물어뜨릴 수 없었으며, 보살과 성현의 침묵을 알아 중생에게 법의 가르침을 펼치지 않았다.
012_0524_b_03L具足五分如來法逮六無㝵神通道果形神俱遊無所觸㝵得七覺意而自瓔珞八道具諸法不共得四無畏力如金剛不可沮壞以知菩薩賢聖默然不與衆生敷演法教
그때 천자 보양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한 채 앞에 나아가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지금 부처 눈[佛眼], 법의 눈[法眼], 슬기 눈[慧眼], 하늘 눈[天眼]으로 중생의 부류를 관찰하는 것은 성현의 법률에 맞지 않으므로 저는 지금 육안으로 시방 항하 모래수의 찰토(刹土)를 관찰해 보니, 응당 증득을 받을 이와 선정을 닦는 이와 혹은 1주(住)에서 10주(住)에 이르는 이가 있으며,
012_0524_b_08L天子寶瓔卽從座起偏露右肩叉手前白佛言世尊我今不以佛眼法眼慧眼天眼觀衆生類應賢聖法律我今乃以肉眼觀見十方恒沙剎土應受證者修禪定者在一住至十住者
다시 선남자(善男子)가 막 성불하고자 해서 불퇴전(不退轉)의 일생보처를 얻어 도량에 나아가 보리수를 장엄하는 이를 봅니다. 이 무리들은 응당 일생보처의 보살로부터 모든 법이 둘이 아닌 평등한 법을 듣고서 도에 뜻을 두고 원(願)을 세우면 모두 다 성취할 것입니다”
이때 보영 천자는 은근히 권청하기를 세 번, 네 번하고 나서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012_0524_b_13L復見善男子臨欲成佛得不退轉一生補處往詣道場莊嚴佛樹者此等之類應從一生補處菩薩聞平等法諸法無二志願于道皆悉成就是時寶瓔天子慇懃勸請乃至三四復以此偈而讚頌曰

금빛 얼굴은 존귀하기 비할 바 없고
얼굴 모습은 백 개 잎사귀의 꽃,
땅에 떨어지면서 스스로 호칭을 부르시니
그 소리 범천소리보다 뛰어나도다.
012_0524_b_18L金顏尊無比
面像百葉華
墮地自稱號
聲踰梵天音

지혜의 못을 건립해서
법을 설하시니 있고 없음 아니로다.
중생에게는 항상 상념 있지만
고요하여 둘[二]을 일으키지 않으시네.
012_0524_b_20L建立智慧淵
說法不有無
衆生有常想
寂然不起二

광명이 시방을 비추시니
모든 어둠에 다 밝음을 보이시니,
만나기 어려운 인간 중의 존귀한 분이므로
지금 거듭 스스로 귀의합니다.
012_0524_b_21L光曜照十方
闇冥悉見明
人中尊難有
今故重自歸

무수한 세대를 고행하면서
자(慈)와 비(悲)가 쌍(雙)으로 있기 어렵고
공훈을 벌써 갖추셨으므로
지금 저는 거듭 스스로 귀의합니다.
012_0524_b_22L苦行無數世
慈悲難有雙
功勳已具足
今我重自歸
012_0524_c_01L
바로 존귀한 발을 찬탄한다면
발뒤꿈치ㆍ무릎ㆍ넓적다리ㆍ뼈ㆍ허리
가죽ㆍ털의 일곱 군데가 평평하고
똑바로 있으니 좌우가 균형 이루네.
012_0524_c_01L正使歎尊足
腨跟膝䏶腰
皮毛七處平
平立左右亭

손과 팔ㆍ손가락ㆍ발가락은 가늘고 섬세하며
손바닥 무늬는 비단 무늬 같고
두려움 없는 넓고 긴 혀는
천 개 잎사귀의 연꽃무늬 같아라.
012_0524_c_02L手臂指纖細
掌文合縵理
無畏廣長舌
千葉蓮花文

머금으신 이[齒]는 꼭 마흔 개
그 빛깔은 마치 흰 눈처럼 하얗고,
법문을 설하실 때면
입술 모습은 구슬의 광명 같아라.
012_0524_c_03L含齒方四十
色如白雪珂
當其說法時
脣像珠火明

여덟 가지 소리는 남녀의 것도 아니고
또한 암수의 소리도 아니니,
시방세계를 감동시켜서
아무리 들어도 싫지 않다네.
012_0524_c_05L八聲非男女
亦非雌雄音
感動十方界
聽聞無厭足

귀 볼 두 군데에 귀고리 있어
마치 공중의 밝은 달과 같고,
눈에는 검고 흰 부분이 뚜렷해
위아래로 다 함께 깜빡이도다.
012_0524_c_06L耳方雙部璫
如空明月珠
眼視白黑分
上下而俱眴

머리털의 빛깔은 감청색이고
육계(肉髻)의 털은 오른쪽으로 돌아
상호(相好)가 끝없어서
잘 보면 금산(金山)과 같아라.
012_0524_c_07L頭髮色紺靑
肉髻毛右旋
相好無邊涯
熟視如金山

온갖 덕으로 영락하신 몸
또한 많은 꽃이 펼친 듯하니
뭇 티끌 없애 버리시고
삼계를 홀로 걸으시는 존귀한 이여.
012_0524_c_09L衆德瓔珞身
亦如衆花敷
消滅衆塵埃
獨步三界尊

이 중생의 무리들이
널리 시방으로부터 모여서
위없는 지극한 길의 요체인
존귀하고 바른 법을 들으려 하나이다.
012_0524_c_10L斯等衆生類
普從十方集
欲聽尊正法
無上至道要

하늘도 사람도 용도 귀신도
사유하고 배우는 법을 목마르게 우러르니
온갖 것들 불쌍히 여기심으로
빨리 법륜을 굴려 주옵소서.
012_0524_c_11L天人龍鬼神
渴仰思聞法
願愍一切故
速爲轉法轉

그때 시방세계의 대범천왕과 84억의 식건천왕(識乾天王)이 가장 으뜸이었는데, 그들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드러내놓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지어 부처님을 다음처럼 찬탄하였다.
012_0524_c_13L爾時十方世界大梵天王八十四億識乾天王最爲第一卽從座起偏露右臂長跪叉手在於佛前以偈歎佛而作頌曰

집착이 없으셔서 뭇 더러움 버리셨고
번뇌는 다하고 욕심의 더러움도 없어서
하나를 행하셔 존귀한 교법에 응하시고
뜻의 공(空)하여 슬기 없음에 노니셨네.
012_0524_c_17L無著捨衆穢
漏盡無欲污
行一應尊教
遊意空無慧

본래 투시타 천궁에 계실 적엔
법을 설함이 사수(駟水)의 흐름 같더니
어째서 지금은 고요하시어
슬기의 밝은 꽃을 피우지 않나이까.
012_0524_c_19L本在兜術天
說法如駛流
云何今寂然
不開慧明華

존귀한 광명은 어둠을 비추시어
3세(世)의 어둠을 없애 버리시고
10력에 더러움 없으시나니
오직 바라노니, 이제 법을 설해 주소서.
012_0524_c_20L尊光照幽冥
蠲除三世闇
十力無沾污
唯願時演法

오늘 시방세계에서
여러 높은 보살들이 모여들어
모두 다 일찍이 굴린 바 없는
법문을 듣고자 하나이다.
012_0524_c_21L今日十方界
諸尊菩薩集
咸欲悉聽聞
未曾所轉法

뜻이 청정하여 무루(無漏)를 행하시니
마치 별 가운데 달과 같으시고
부처님 상원(相願)을 이미 지나쳤으니
오직 바라노니, 이때 법을 설해 주소서.
012_0524_c_23L意淨行無漏
亦如星中月
已過無相願
唯願時說法
012_0525_a_01L
중생은 지금 빠진 채로
나고 죽는 바다에서 유전(流轉)하나이다.
바라노니, 평등의 배로써
저 빠진 이를 건져주소서.
012_0525_a_01L衆生今沒溺
流轉生死海
願以平等舡
救彼沒溺者

기이한 광명은 너무나 높고 우뚝해서
해와 달의 정기를 덮어 가리고
열뇌(熱惱)의 근심을 억제해 막으니
청정하여 뭇 흠[衆瑕]이 없도다.
012_0525_a_02L奇光甚巍巍
覆蔽日月精
抑遏熱惱患
淸淨無衆瑕

존귀한 분 본래 서원을 지으시니
용맹함은 이지러지거나 훼손됨 없고
자비와 평등의 뜻으로
법문 설하시니 더하고 덜함 없어라.
012_0525_a_04L尊本造誓願
勇猛無虧損
慈悲平等意
說法無增減

계는 선(禪)의 적멸로 갖추시고
신족의 힘[神足力]은 두려움 없어
공한 모습의 무서움 없는 법을
바르게 받아서 강계(疆界)에 노니시네.
012_0525_a_05L戒具以禪寂
神足力無畏
空相無畏法
正受遊疆界

본래 6바라밀의 법 행하시어
근심 걱정하는 마음 품지 않으시고,
뜻을 낮추고 공경히 예를 드려서
스승과 어른을 공양해 받들도다.
012_0525_a_06L本行六度法
不懷憂慼心
卑意禮恭敬
供奉師尊長

그러므로 존귀한 육계(肉髻)는
감히 자세히 본 자가 없거늘
어찌 욕망을 베푸는 마음으로
여래의 목[頂]을 보려고 하는가.
012_0525_a_08L故使尊肉髻
無敢熟視者
何況欲施心
觀睹如來頂

시방을 불쌍히 여겨 세상에 출현하사
걸음을 딛으시어 온갖 중생[群萌] 제도하시나니
뭇 사람이 모두 목마르게 우러러 보나니,
오직 법 바퀴 굴리심을 보여주소서.
012_0525_a_09L十力哀出世
降步度群萌
衆人咸渴仰
惟垂轉法輪

그때에 식건범천왕(識乾梵天王)이 이 게송으로 찬탄한 뒤에 일어나서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고는 본래의 자리에 도로 가 앉았다. 이때에 석제환인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드러내고 의복을 정돈한 뒤에 꿇어앉아 합장한 채 세 번 스스로 이름을 일컫기를 “저는 천제석인데 이름은 구익(拘翼)이라고 부릅니다”라고 하면서 보살 앞에 앉아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012_0525_a_10L爾時識乾梵天王以此偈讚已起遶佛三帀還復本座是時釋提洹因卽從座起偏露右臂整衣服長跪叉手三自稱號我是天帝釋名曰拘翼在菩薩前而歎頌曰

말씀 없이 고요함에 응하시고
가르치지 않아도 행이 스스로 갖춰지고,
익히지 않아도 무제(無際)에 응하고
자연히 무위(無爲)에 응하시네.
012_0525_a_15L不語應寂然
不教行自具
不習應無際
自然應無爲

본래 모습 없는 보시[無相施]를 행하셔서
지금 공하여 없는 과보[空無果] 받으셨도다.
마땅히 허공신(虛共神)에게 절해야 하지만
적멸하여서 말자취가 없도다.
012_0525_a_17L本行無相施
今獲空無果
當禮虛空神
寂然無言迹

세상에 계시면서 먼저 깨치어
위태롭고 재앙 있는 사람 편안케 하시고
정견(正見)의 길로 인도해 보이시니
눈멀고 어두운 중생 바른 행 받았도다.
012_0525_a_18L在世先覺寤
安隱危厄人
導示正見路
盲冥受正行

중생들이 미혹한 지 오래되어
감로의 법문 듣고자 하오니
바라노니, 무진장(無盡藏) 여시어
하늘과 세상사람 윤택케 하소서.
012_0525_a_19L衆生迷惑久
欲聞甘露法
願開無盡藏
潤及天世人

자비를 행하여 덕의 근본 닦으시고
훌륭한 방편도 더하고 덜함 없어
함이 없는[無爲] 가르침 널리 펴시어
온갖 사람을 만족케 하소서.
012_0525_a_21L行慈修德本
善權無增減
演布無爲教
充足一切人

세상에 태어나 존귀한 분 만나기 어렵고
바른 법 또한 만나기 어려우니
성현의 모임을 만나고 싶어도
또한 다시 얻을 수 없나이다.
012_0525_a_22L生世尊難遇
正法亦難値
欲遭賢聖會
亦復不可得
012_0525_b_01L
지나간 세상 여러 부처님
여기에서 정각(正覺)을 이루셨나니,
바라건대 존귀한 이여, 이때 이 영화를
탐하는 세상을 굽어 살피소서.
012_0525_a_23L過去諸如來
於此成正覺
願尊時屈神
貪此世榮爲

존귀한 분, 본래 한가하고 청정함 즐겨하셔
함이 없는 도[無爲道]를 사유하시어
본래의 서원 벌써 성취하셨으니
어찌하여 분주한 곳에 계십니까.
012_0525_b_02L尊本樂閑淨
思惟無爲道
已果本誓願
何爲處憒鬧

남섬부주의 다섯 솥의 끓는 물은
끓는 솥의 불길보다 더욱 극열하니
저는 오직 바라노니, 빨리 출가하여
세상의 탐욕과 욕망의 속박 여의게 하옵소서.
012_0525_b_03L閻浮五鼎沸
劇於湯火熾
唯願速出家
離世貪欲縛

제가 지난 세상의 여러 부처님의
등각(等覺) 이루신 것 생각하오니
즉각 보리수[樹王] 밑에 나아가서
아침에 앉으셔서 저녁에 도를 이루셨습니다.
012_0525_b_04L念我過去世
諸佛成等覺
卽詣樹王下
朝坐暮成道

존귀한 분, 이제 만일 제게 의심 있어서
제가 바야흐로 생사를 즐긴다고 여기신다면,
은혜와 애착은 썩은 성(城)과 같나니
이 쾌락을 어찌 탐낼 수 있겠습니까.
012_0525_b_06L尊今如有疑
方欲樂生死
恩愛如朽城
此樂何可貪

세상에는 나고 죽는 근심만 있고
오직 도(道)는 영원히 적멸하기만 하니,
은혜와 애착은 지나가는 번개와 같고
허깨비와 같아서 참되고 바르지 않나이다.
012_0525_b_07L世有生死患
唯道永寂然
恩愛如過電
幻化不眞正

세간은 모두 어둡고 어두워
5온(蘊)으로 덮였나니
오직 바라노니, 슬기의 광명 여시어
널리 비추어 눈을 얻게 하소서.
012_0525_b_08L世閒盡闇冥
五蔽使覆蓋
唯願開慧明
普照令得眼

변화하는 그 형태는 무수하지만
응당 앞의 중생에게 맞게 하시어
그 본래 행원(行願)에 따라
각각 선(禪)의 힘과 행을 충족토록 하소서.
012_0525_b_10L變化形無數
應適前衆生
隨其本行願
各充禪力行

바로 지금 어찌하여 고요하게 되어서
최상의 법륜을 굴리지 않으십니까.
오직 바라노니, 이때 펼쳐 연설하셔서
굶주리고 목마른 이를 배부르게 하소서.
012_0525_b_11L如今何爲靜
不轉上法輪
唯願時敷演
使渴得飽滿

본래 지은 바 복을 생각하오니
정말로 미미하고 적을 뿐이지만
천왕의 지위를 이루면서부터는
거느린 바에 한계가 없나이다.
012_0525_b_12L憶本所造福
蓋亦微少耳
由致天王位
所領無疆畔

온갖 과거에서 여래 등정각(如來等正覺)이신
네 부처님과 한 분의 보처(補處)께
공양을 올리고 모시었는데
이 존귀한 분은 아직 오시지 않으셨네.
012_0525_b_14L供奉諸過去
如來等正覺
四佛一補處
是尊非將來

무수억(無數億) 나술(那術) 동안
나고 죽음에 빠진 지 오래이니,
바라건대, 크나큰 서원의 수레를 몰아서
저 언덕으로 옮겨 제도해 주소서.
012_0525_b_15L無數億那術
沈翳生死久
願執弘誓輿
運濟至彼岸

감로의 싫증 없는 법과
8해탈의 집착 없음과
더러움 없고 물든 티끌 없음을
이제 오직 설해 주길 권청하나이다.
012_0525_b_16L今唯勸請說
甘露無厭法
八解無所著
無污無染塵

존귀한 분, 이제 혹시 선정에 드시면
응당 제도할 나라를 제도 않으셨으니,
바라건대, 집착의 마음이 요지부동인
이들 무리들을 먼저 교화하사이다.
012_0525_b_18L尊今或入定
不度應度國
願先化此類
執心不動者

허공의 성품은 물드는 일 없고
평등하고 탄탄하여 하나뿐이로다.
취(趣)하지 않으면 보게 되질 않나니
오직 바라건대, 의심두지 마소서.
012_0525_b_19L虛空性無染
平等坦然壹
無趣不見得
唯願無有疑

깊고 묘한 무극(無極)의 곳간은
못난이가 지켜 보관할 바가 아니라네.
이제 천상과 인간의 스승을 만났으니,
바라건대, 확 열어서 나타나게 하소서.
012_0525_b_20L深妙無極藏
非劣所守掌
今遇天世師
願開使布現

존귀한 분이 본래 원(願) 바라밀을 발해서
똑같은 날에도 때를 바꾸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잠자코 침묵만 하시면서
스스로만 제도하고 나머지는 제도하지 않으십니까.
012_0525_b_22L尊本發願度
同日不易時
如今何爲默
自濟不度餘
012_0525_c_01L
이때 석제환인이 이 게송을 설해서 부처님을 찬탄한 뒤에 부처님을 세 번이나 돌고 다시 본래의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그때에 이름을 노해(怒害)라고 하는 마왕(魔王)이 여러 마군의 무리를 거느리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한 뒤에 부처님께 여쭈었다.
“오직 원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오랜 동안 의심을 품고 있어서 참다운 도[眞道]를 얻지 못하였나이다. 이제 비할 데 없는 법륜을 설하심을 듣고자 하오니, 오직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드리워서 바른 교법을 펼쳐 주십시오. 저희들은 오래도록 처하여도 법률(法律)에 들어가지 못하였나니, 비록 저마다 마음으로는 공한 지혜를 사모하고 있었으나, 아직 크게 교화하는 가르침의 법을 만나지 못하였나이다.”
그때 마왕이 즉각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여쭈었다.
012_0525_b_23L是時釋提洹因說此偈讚佛已遶佛三帀還復本座爾時魔王名曰怒害將諸魔衆卽從座起頭面禮足前白佛言唯願世尊久抱狐疑不獲眞道今欲聞說無比法輪唯見垂愍演暢正教我等久處不入法律雖各有心慕及空慧猶未遭遇大化訓典爾時魔王卽於佛前以偈頌曰

억백천 겁에
집착 없으신 분이 때가 되자 출현하시니
마치 꽃이 티끌의 물을 여읨과 같으나
마음의 청정함은 그보다 뛰어나도다.
012_0525_c_08L於億百千劫
無著時乃出
如華離塵水
心淨超於彼

겁수(劫數)가 다함없도록
고행을 쌓아 거치면서도
네 가지 큰 서원 버리지 않으시니
금강이라도 막지는 못하리라.
012_0525_c_10L劫數無有窮
經歷積苦行
不捨四弘誓
金剛不可沮

입으로 여덟 가지 걸림 없음 설하시어
천상과 세간에 가득 찼으니
받는 이는 영원히 만족하여
늙고 죽는 근심 다시는 없어라.
012_0525_c_11L口演八無㝵
充滿天世閒
受者永充足
無復老死患

한 생에서 백 생에 이르기까지
명호와 온갖 종성(種性)의
갖가지 근원을 모조리 알아
비할 바 없는 지혜로 교화하시네.
012_0525_c_12L一生至百生
名號諸種姓
悉知諸根原
化以無比慧

10주(住)에서 본제(本際)에 돌아와
물러나 이루었다가 오히려 다시 나아가
가장 훌륭하게 이 어려움을 제도하시니
때로 연설하여 의심을 두지 마소서.
012_0525_c_14L十住還本際
退成猶復進
最勝度此難
時演勿有疑

항하 모래 수효의 지나간 부처님
모두 이 동산 속에 노니면서
위없는 법륜을 굴리시어
제도하신 사람이 한량없나이다.
012_0525_c_15L去佛恒沙數
盡遊此菀閒
轉無上法輪
度人無有量

장차 닥쳐올 세상의
부처님들로 하여금 도과(道果)를 이루게 하여
모두가 반드시 이곳에서
존귀한 법륜을 굴리시게 하소서.
012_0525_c_16L正使當來世
諸佛成道果
皆當於此處
當轉尊法輪

일찍이 듣사오니 여래장(如來藏)은
여래의 비밀스럽고 중요한 슬기로서
이름하여 말하기를 ‘보엄토
보살 영락경’이라 하네.
012_0525_c_18L曾聞如來藏
如來秘要慧
名曰普嚴土
菩薩瓔珞經

오늘이 바로 그때이니
만나기 어려워서 만날 수도 없나니
여러 가지 고액(苦厄)을 빼내어 건져주셔서
이로부터 도의 지혜를 펴주소서.
012_0525_c_19L今日正是時
難遇不可値
拔濟諸苦厄
從是布道慧

혹 어떤 중생의 무리는
처한 몸의 고통을 싫어하고 근심해
미묘한 법을 듣고서
4대(大)의 법을 없애고자 하나이다.
012_0525_c_20L或有衆生類
厭患處身苦
欲聞微妙法
蠲除四大法

다시 도검(道檢)에 들어가서
생멸의 무상을 아는 이는
공하여 없는 도를 듣고서
있는 바 없음을 다 알고자 하나이다.
012_0525_c_22L復有入道撿
知生滅無常
欲聞空無道
悉知無所有

다시 바위굴에 처하여서
스스로 지키면서 다른 상념 없고
몸은 영원한 그릇이 아님을 알아서
집착하는 상념을 일으키지 않나이다.
012_0525_c_23L復有處巖穴
自守無他想
計身非久器
不興想著念
012_0526_a_01L
비록 다시 도의 근원 생각하지만
아직 듣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나니
오직 바라노니, 존귀한 이여, 신을 내리시어
저로 하여금 의심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012_0526_a_01L雖復念道根
未聞不得寤
唯願尊降神
令彼無疑滯

눈은 푸른 연꽃 같아서
밝게 보심에 걸림이 없고,
3세(世)는 고통으로서
티끌에 물들고 더럽혀졌다고 관찰하시네.
012_0526_a_03L眼如靑蓮華
徹視無有㝵
觀察三世苦
塵曀染污者

존귀한 분은 본래부터
여러 부처님께 공양함을 거쳤고
가장 하천한 사람에게도 겸손하여서
지금은 형상 없는 계(髻)를 얻으셨도다.
012_0526_a_04L尊本所經歷
供奉諸世尊
謙畀下下人
今獲無形結

모습에서도 모습에 집착치 않고
온갖 좋은 빛깔을 빌지 않으시니,
그 때문에 온갖 현성(賢聖)들
그 정수리를 능히 볼 수 없어라.
012_0526_a_05L於相不著相
不假衆好色
是故衆賢聖
無能見其頂

눈썹 사이의 청정한 광명이
무수한 나라를 널리 비추자,
광명을 보고 뜨거운 고뇌 없애니
마치 여름에 짙은 그늘 만난 듯하네.
012_0526_a_07L眉閒淸淨光
普照無數土
見光除熱惱
如夏遇重蔭

존귀한 분께서 한 번 사자후를 하면
여러 외도들을 항복시키고
삿된 소견의 숲[邪見林]을 꺾어 부수길
마치 광명이 어두움을 영원히 없애듯 하도다.
012_0526_a_08L尊一師子吼
降伏諸異道
摧碎邪見林
如明永除闇

말씀을 설해도 그 말씀이 망령되지 않아
뜻하는 건 반드시 이루어지나니,
법을 설하면 법의 진제(眞諦)이고
도에 이르면 도의 근원이로다.
012_0526_a_09L說言言不妄
志趣必成辦
說法法眞諦
至道道根原

생각하건대, 존귀한 분 옛적에 여기서
12소중(小中) 겁 동안 계시면서
전전(展轉)하면서도 함께 서로 이어져서
전륜왕의 종자를 끊이지 않게 하셨어라.
012_0526_a_11L億尊昔在此
十二小中劫
展轉共相係
不斷轉輪種

스승을 따르며 높고 밝음 구해서
약간의 지혜를 취하고
체(體)의 무극을 장엄하니
형상이 없어서 이름 지을 수 없네.
012_0526_a_12L追師求高明
釆取若干慧
莊嚴體無極
無形不可名

믿음이 없으면 믿음으로써 세우고
근기의 힘은 이지러짐이 없고
무서움 없어서 피차(彼此)를 여의니,
오직 바라건대, 이때 연설해 주소서.
012_0526_a_13L無信立以信
根力不虧損
無畏離彼此
唯願時演說

삼계에서 존귀함은 다함이 없고
정법으로 일체를 통어(通御)하며,
잘못된 법은 성도를 파괴하나니
‘나’라는 상념을 영원히 없애소서.
012_0526_a_15L三界尊無極
正法御一切
非法壞成道
永除吾我想

여러 사람들은 몸에 탐착하여
습관으로 익혀서 여의지 못하고
세상 고통에 얽매이고 있으니
어찌해야 빠져나올 기약 있으랴.
012_0526_a_16L諸人貪著身
玩習不能離
世苦所纏絡
何由有出期

지혜 광명은 세간을 비추어
탐내고 애착하는 마음 빼어 없애고
자기도 제도하고 다시 남도 제도하니
인간 가운데 가장 있기 어려운 일이어라.
012_0526_a_17L慧明照世閒
拔斷貪愛心
自度復濟彼
人中甚難有

은혜로운 베풂은 ‘나’가 없어서
이미 삼계 밖을 벗어났으니,
한 때[一時], 한뜻[一意]의 생각이
평등하여 남녀가 없다.
012_0526_a_19L惠施無吾我
已超三界表
一時一意念
平等無男女

중생은 뒤바뀐 소견을 품었기로
공하여 없는 지혜[空無慧]에 도달치 못하고,
뜻을 발하여 5욕(欲)에 집착해서
몸에 실제 쓸모가 있다고 계교하도다.
012_0526_a_20L衆生懷倒見
不達空無慧
發意著五欲
計有身實用

이 때문에 5취(趣)에 떨어져
비상한 증득을 보지 못하자,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저 있다 없다는 상념을 없애었노라.
012_0526_a_21L以是墮五趣
不睹非常證
佛現出世閒
滅彼有無想

선(禪)에 들어가 탐욕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의 영화와 사치 영원히 없애서
이 덧없는 형상이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라고 관찰하도다.
012_0526_a_23L入禪不著貪
永除世榮飾
觀此無常形
非有非無者
012_0526_b_01L
큰 사랑으로 중생을 제도함이
광대하고 끝없어서
숙원이 이제 이미 성취되었으니
빨리 일어나 다시 앉으소서.
012_0526_b_01L大慈濟衆生
廣大無邊涯
宿願今已果
速起復坐爲

이 이글이글 타는 사람을 보니
유전(流轉)하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존귀한 분은 고요히 침묵만 할 뿐
말도 없고 설하시는 것도 없나이까.
012_0526_b_02L觀此熾然人
流轉不自覺
如何尊靜默
無言無所說

세상에 다섯 가지 어려움[五難] 있으니
불(佛)ㆍ법(法)ㆍ승(僧)을 뵙지 못함과
믿음을 체(體)로 삼는 중도의 나라에 태어남과
부모를 다섯 가지 일이라고 하네.
012_0526_b_04L世垢有五難
不睹佛法衆
體信中國生
父母爲五事

광명의 빛깔은 빛깔이 없으니
형질ㆍ모양을 볼 수 없어라.
장차 멸진정에 들려 하면
이내 고요하여 음향이 없도다.
012_0526_b_05L光明色無色
不見形質像
將入滅盡定
乃寂無音響

대중이 멀리서 모여드니
가루라와 건달바들인데,
존귀한 분이 장광설(長廣舌)로 무위(無爲)를
싫증내지 않고 연설하심을 듣도다.
012_0526_b_06L大衆遠方集
迦留乾沓和
聽尊演無厭
廣長舌無爲

법이 있음은 불가사의하며
화(化)해도 그 화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본말을 알게 하고자 하나니,
이 또한 일찍이 없던 것이라네.
012_0526_b_08L有法不思議
化不自覺化
欲令知本末
此亦未曾有

보살이 불퇴전(不退轉)이라도
또한 아직 그 법을 얻지 못했거늘
하물며 다시 도의 문[道門]에 향해
근본 요체를 알고자 함이랴.
012_0526_b_09L菩薩不退轉
且未獲其法
況復向道門
而欲知本要

존귀한 분, 이제 네 가지 무리의
지취(志趣)에 약간의 종자 있음을 보시고
다행히 그들을 위해 법을 연설하사
저마다 제도를 입게 하나이다.
012_0526_b_10L尊今觀四輩
志趣若干種
幸爲敷演法
各各蒙得度

중생이 3유(有)에 물들어
속박의 여읨을 구하고자 하나니,
항상하는 상념이든, 항상하는 상념이 아니든
모조리 비춰 멸진을 향하게 하소서.
012_0526_b_12L衆生染三有
欲求去離縛
常想非常想
悉照向滅盡

마군의 귀신 억천(億千) 명이
모두 시방으로부터 와서
불기인(不起忍)을 얻어서 믿으며
행지(行地)에서 물러나지 않나이다.
012_0526_b_13L魔鬼有億千
皆從十方來
得信不起忍
行地不退轉

다시 억천의 대중은
뜻이 저희들을 따르나니
이들 족성자는
견고한 경지에 반드시 이르리라.
012_0526_b_14L復有億千衆
意趣隨我等
斯等族姓子
必至堅固地

다시 무수한 사람이 있는데
행지(行地)에서 유(有)에 집착하지 않고
모조리 공(空)의 무상(無相)을 구해
나아가면서 도량으로 향하나이다.
012_0526_b_16L復有無數人
行地不著有
悉求空無相
進趣向道場

나한(羅漢)은 뜻이 스스로 낮아
품류를 따라 그 세속에 들어가서
설하는 고통이 얕지 않지만
끝내 일체지(一切智)는 없나이다.
012_0526_b_17L羅漢意自鄙
隨類入其俗
所說苦不淺
終無一切智

역시 보살의 인(印)은
저 성도(成道)의 과(果)를 이루었지만,
대승의 행을 품수(稟受)하면
본래 없고 약간도 없네.
012_0526_b_18L亦是菩薩印
印彼成道果
稟受大乘行
本無無若干

존귀한 분 본래 초발심에서
4의지(意止)를 닦아 익히시고
행지에는 높고 낮음이 없으니
오직 도는 지혜로부터 통할 뿐이네.
012_0526_b_20L尊本初發心
修習四意止
行地無高下
唯道從慧通

가령 무앙수(無央數)
항하 모래의 여러 겁수 동안
고행하면서 삿된 생각 않으니
바로 지금 모조리 원(願)을 성취하리.
012_0526_b_21L正使無央數
恒沙諸劫數
苦行不邪念
如今悉果願

미래의 온갖 항하 모래 수의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이,
서로 서로 원을 버리지 않으면
반드시 지금처럼 깨달음에 도달하리.
012_0526_b_22L將來諸恒沙
方欲成佛者
不捨彼此願
必至如今覺
012_0526_c_01L
여래는 크게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겨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스스로를 위하지 않나니,
보시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어서
이 때문에 6바라밀의 지혜를 이루셨도다.
012_0526_c_01L如來大慈愍
捨命不爲己
施等無高下
故成六度慧

과거와 미래와 지금 현재에도
나고 멸함은 본래 무궁하나니,
생겨나는 것은 생겨남 스스로 공했으니
본래의 근원을 알려고 하지 마라.
012_0526_c_02L去來今現在
生滅本無窮
生者生自生
莫知本根原

10행(行)은 사람 몸을 여의고
5행은 법의 왕이 되니,
사유(思惟)로 본원(本原)을 멸하고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큰 법 펼치소서.
012_0526_c_03L十行離人身
五行爲法王
思惟滅本原
慈愍演大法

혹 다시 다른 때에
다니거나 앉거나 누워서도 생각하여
이로 말미암아 총지를 얻어서
네 가지 변재에 강계(疆界)가 없네.
012_0526_c_05L或復於異時
經行坐臥念
斯由得摠持
四辯無疆界

보살이 온갖 것을 불쌍히 여겨서
항상하는 상념이 있다고 셈하지 않고
세상이 비상(非常)에 처함을 생각함으로서
편안하게 영원히 안락함에 이르렀도다.
012_0526_c_06L菩薩愍一切
不計有常想
念世處非常
安隱永至安

신력(神力)과 4무외,
각도(覺道)의 여덟 가지 평등한 행,
여래의 18법(法)을
존귀한 분은 지금 이미 갖추셨도다.
012_0526_c_07L神力四無畏
覺道八等行
如來十八法
尊今已具足

중생은 스스로 생각을 내서
얻음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고 하면서
드디어 스스로 심연(深淵)에 떨어져
해탈문(解脫門)으로 향하지 않도다.
012_0526_c_09L衆生自生念
無獲不可獲
遂自墮深淵
不向解脫門

이때 노해 마왕이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나서 도로 본 위치로 돌아갔다.
그때 도리(忉利)의 여러 하늘이 온갖 하늘 무리를 거느리고 부처님 처소에 가서 땅에 엎드려 발아래 절한 뒤에 한쪽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옛적부터 복업(福業)이 있어서 성스러운 얼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神)을 남섬부주 안에 내려 법륜을 펼쳐서 삼천세계의 왕이 되옵소서.”
그리고 다시 꽃향기 나는 구물두(拘勿頭)꽃ㆍ분타리(分陀利)꽃ㆍ수건제(須乾提)꽃을 여래의 위에 뿌렸다. 이때 여러 하늘이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012_0526_c_10L是時怒害魔王說此偈已繞佛三帀還復本位爾時忉利諸天將諸天衆往至佛所頭面禮足在一面立斯須之頃前白佛言我等於世尊宿有福遭値聖顏降神閻浮利內敷演法王三千世界復以華香拘勿頭華陁利華須乾提華散如來上爾時天復以此偈而讚頌曰

세웅(世雄)이 이제 내려와 걸으시며
이 남섬부주에 왕이 되셨으니,
이미 여덟 가지 한가하지 않은
중생들이 사는 곳에 태어나셨도다.
012_0526_c_18L世雄今降步
王此閻浮提
旣生八不閑
衆生所居處

영원히 여의어서 물들어 집착하지 않고
안으로 생각이나 상념을 내지 않아
숨[息]도 없이 고요히 멸하니
바라노니, 법을 갖추어 연설하소서.
012_0526_c_20L永離不染著
內不生思想
無息寂然滅
願具演說法

높으신 덕은 불가사의하고
공훈도 기록할 수 없지만
뭇 모습으로 몸을 영락하시니
마치 달이 별 가운데 밝은 듯하네.
012_0526_c_21L尊德不思議
功勳不可記
衆相瓔珞身
如月在星明

행이 다하여 근본을 짓지 않고
도량에 단정히 앉아서도
또한 스스로 심식(心識)이 없거늘
어찌 세상의 집착에 물들랴.
012_0526_c_22L行盡不造本
端坐於道場
亦自無心識
豈當染世著
012_0527_a_01L
뭇 행의 근본을 벌써 지났고
덕은 온갖 정(情)에 충만하며
음향은 범천도 지나쳐서
하늘 가운데 하늘에 스스로 돌아가도다.
012_0527_a_01L已過衆行本
德充滿諸情
音響過於梵
自歸天中天

근본의 지음은 네 마군을 말미암고
마군은 나고 죽음을 여의고자 하네.
여덟 가지 평등은 오염되지 않아서
스스로 등륜(等倫) 없음에 돌아간다네.
012_0527_a_02L本造由四魔
魔欲離生死
八等不染污
自歸無等倫

존귀한 분은 이제 한 법에 나아가
열반에서 일어나거나 멸하지 않네.
뜻을 멸하니 뜻이 생겨나지 않고
과보의 증득을 보지 않네.
012_0527_a_03L尊今趣一法
泥洹不起滅
滅意意不生
不見果報證

존귀한 분은 본래 두 가지 행을 닦아
지(止)가 멸하고 관(觀)을 일으키지 않으니
행이 다해도 다함을 보지 않아
세웅(世雄)으로 가장 으뜸이로다.
012_0527_a_05L尊本修二行
止滅不起觀
行盡不見盡
世雄最第一

여래의 세 가지 법의 근본은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으로
열반의 길에 나아가니
이익도 없고 물드는 바도 없네.
012_0527_a_06L如來三法本
空無相無願
進趣泥洹道
無利無所染

원을 세움이 너무나 굳건하여
행을 쌓아도 어기는 바 없어,
집착 없는 행을 염(念)하지도 않고
또한 3유(有)에도 처하지 않네.
012_0527_a_07L立願甚堅固
積行無所違
不念無著行
亦不處三有

신족(神足)에 네 가지 업(業) 있어
인연 따라 그 수명대로 머물러 있고,
행은 끝없음을 지나치니
자인(慈仁)은 가장 으뜸이로다.
012_0527_a_09L神足有四業
隨緣住其壽
行過無邊涯
慈仁最第一

이미 태어나면 5탁(濁)에 처하지만
모여서 합하면 시비가 없네.
참된 사람[眞人]에겐 물든 행 없어
권도(權度)를 행해 중생에게 들어가네.
012_0527_a_10L旣生處五濁
合會無是非
眞人無染行
行權入衆生

평등하게 5근(根), 신혜(信慧),
정진(精進)의 힘을 행하여
물들지 않고 뒤바뀐 소견 버리니
청정하기 가장 으뜸이로다.
012_0527_a_11L平等行五根
信慧精進力
不染去倒見
淸淨爲第一

존귀한 덕은 하늘과 세간을 지나서
여덟 가지 법에 영원히 집착하지 않아
정의 뜻[定意] 어지럽지 않으시니
이 까닭에 가장 훌륭한 분에게 절하나이다.
012_0527_a_13L尊德過天世
永不著八法
定意不錯亂
是故禮最勝

존귀한 분께서 신을 내리셔서
삼천세계를 진동하고
오래도록 잠자는 중생을 깨우쳐
이 3세(世)의 근심 여의게 하네.
012_0527_a_14L當尊下降神
震動三千世
覺久寐衆生
離此三世患

이때 도리천의 여러 하늘이 이 게송을 설해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난 뒤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에 보살은 속으로 생각하길 ‘이제 이 대중의 모임에는 모조리 다 시방세계에서 널리 모인 6통의 성지[六通聖智], 일생보처의 4등(等)을 갖추고 있다. 모두 다 구름같이 모인 것은 법을 듣고서 불퇴전의 경지를 얻고자 함인데, 이제 내가 차라리 무외법(無畏法)과 뭇 행의 덕의 근본을 잡을 수 있다면, 지나간 세상의 부처님들이 행하신 법칙처럼 그 몸을 영락하리라’하고는, 즉시 평상위에서 자연무성삼매(自然無性三昧)에 들어가 정(定)의 뜻을 분별하여 부처님이 행하신 바를 관하시었다.
012_0527_a_15L爾時忉利諸天說此偈讚佛已繞佛三帀還復本座爾時菩薩內自思惟今此衆會皆悉普會十方世界六通聖智一生補處四等具足皆悉雲集欲得聞法不退轉地今我寧可執無畏法衆行德本瓔珞其身如諸過佛所行法則卽於座上入自然無性三分別定意觀佛所行
012_0527_b_01L‘보살의 영락은 8만 품이 있으며, 그 덕이 특수하여 비유할 수 없다. 보살마하살로서 이 영락 법문을 얻은 이는 문득 능히 한뜻으로 도량에 나아가서 도의 자취에 들어가지 못한 중생을 저 언덕에 능히 이를 수 있게 하리라.’
이때에 세존께서 넓고 긴 혀의 모습[廣長舌相]을 내놓으시고 광명을 삼천대천세계에 널리 비추시면서 사부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와 하늘ㆍ용ㆍ귀신들아,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사유하고 생각하여라. 내가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보살의 모습 없는 영락을 연설하겠노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영락으로 몸을 장엄함을 얻는다면, 문득 어떤 장애도 없음에 능히 나아갈 수 있느니라.”
012_0527_a_23L菩薩瓔珞有八萬品其德殊特無以爲喩菩薩摩訶薩得此纓絡法門者便能一意進趣道場未入道迹衆生能令得至彼爾時世尊出廣長舌相光明普照三千大千世界告四部衆比丘比丘優婆塞優婆夷鬼神 諦聽諦善思念之吾當與汝演說菩薩無相瓔珞若善男子善女人得此瓔珞莊嚴身者便能進趣無所罣㝵

5. 법문품(法門品)
012_0527_b_09L菩薩瓔珞經法門品第五

이때에 부처님께서 족성자와 족성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반드시 보살영락의 8만 법문을 설하겠노라. 어떤 것들이 8만인가?
이에 족성자여, 그 이름을 진신(盡信)이라고 하는 영락이 있는 경우가 있다. 여래가 이 법문을 얻으면 고통을 받는 지옥(地獄) 중생의 온갖 근심을 없게 하느니라. 다시 등자(等慈)영락이 있나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저 축생의 형상을 받은 자로 하여금 영원히 상해(傷害)함이 없게 하느니라.
012_0527_b_10L爾時世尊告族姓子族姓女吾今當說菩薩瓔珞八萬法門云何八萬於是族姓子或有瓔珞名曰盡信如來得此法門者令地獄衆生受苦惱者使無衆患復有等慈瓔珞菩薩得此瓔珞者令彼受畜生形者永無傷害
다시 무망(無忘)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아귀의 무리로 하여금 굶주리고 목마른 생각이 영영 없게 하느니라. 다시 청정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미혹한 중생으로 하여금 그 지름길을 알게 하느니라. 다시 철청(徹聽)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들음이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조리 바른 가르침을 듣게 하느니라.
012_0527_b_16L有無忘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餓鬼之類永無飢渴之想復有淸淨瓔珞菩薩得此瓔珞者令迷惑衆生知其道徑復有徹聽瓔珞菩薩得此瓔珞使無聞衆生悉聞正教
012_0527_c_01L다시 자오(自寤)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어리석은 중생으로 하여금 마음이 삿되거나 어지럽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검의(檢意)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중생을 가르쳐서 열 가지 선한 행을 행하게 하느니라. 다시 직신(直信)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삿된 소견의 중생으로 하여금 바른 소견에 편히 처하게 하느니라. 다시 홍서(弘誓)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겁수로써 멀다고 여기지 않느니라. 다시 초월(超越)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게으른 중생으로 하여금 바른 율(律)을 받들어 지니게 하느니라.
012_0527_b_21L復有自寤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愚癡衆生心不邪亂復有撿意瓔珞菩薩得此瓔珞者教誨衆生行十善行復有直信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邪見衆生安處正見復有弘誓瓔珞菩薩得此瓔珞者不以劫數爲遠復有超越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懈怠衆生奉持正律
다시 무애(無恚)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화를 잘 내는 중생으로 하여금 인욕(忍辱)을 닦아 행하게 하느니라. 다시 용맹(勇猛)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게으른 중생으로 하여금 정진을 폐하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일의(一意)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어지러운 뜻을 가진 중생으로 하여금 선정을 이지러지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치연(熾然)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으로 하여금 지혜를 성취케 하느니라.
012_0527_c_06L復有無恚瓔珞菩薩得此瓔珞者令恚害衆生修行忍辱復有勇猛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慢墯衆生精進不廢復有一意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亂意衆生禪定不虧復有熾然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愚癡衆生成就智慧
다시 견고(堅固)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도의 자취를 밟지 못한 이로 하여금 도의 자취를 세우게 하느니라. 다시 다문(多聞)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지혜가 적은 중생으로 하여금 잘 기억하여 잊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위의(威儀)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부끄럼 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알게 하느니라.
012_0527_c_12L復有堅固瓔珞薩得此瓔珞者未履道迹者令立道復有多聞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少智衆生强記不忘復有威儀瓔菩薩得此瓔珞者使無慚愧衆生令知慚愧
012_0528_a_01L다시 악로(惡露)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욕심에 집착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치 못한 것을 알게 하느니라. 다시 쾌락영락(快樂瓔珞)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화내는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끊어서 남음이 없게 하느니라. 다시 보요(普曜)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등분(等分)의 중생으로 하여금 의심을 일으키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형색변화(形色變化)영락이 있으니, 보살로서 이 영락을 얻은 이는 한량없는 형상과 빛깔의 변화를 보고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모두 발하게 하느니라.
012_0527_c_17L復有惡露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著欲衆生令知不淨復有快樂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瞋恚衆生永斷無餘復有普曜瓔珞菩薩得此瓔珞者悉逮慧明永除闇冥有遍普瓔珞菩薩得此瓔珞者使等分衆生不起狐疑復有形色變化瓔菩薩得此瓔珞者睹見無量形色之變皆發無上正眞道意
이것을 족성자여, 이런 영락이 8만 법문까지 이른다고 말하느니라. 보살도 다 궁구할 수 없으며, 나도 이제 간략하게 설해서 그 일을 다 말하지 못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겁으로부터 겁에 이르기까지 백천 겁 동안 보살의 영락행을 다하고자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느니라.”
012_0528_a_02L是謂族姓斯等瓔珞至八萬法門菩薩不可窮盡吾今略說不悉其事若有衆生從劫至劫至百千劫欲盡菩薩瓔珞行者此則不然
당시 무형(無形)이라는 이름의 보살이 있었는데 불퇴전의 경지에 서 있었다.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부처님 앞에서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별해서 일찍이 들은 바 없습니다. 여래의 변화는 다 궁구할 수 없지만, 그래도 능히 영락의 묘한 법을 연설하시었나이다. 여러 보살마하살 가운데 영락의 이름을 잡아 지니고 외우는 이는 모든 부처님의 옹호를 받습니다.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여래가 설하시는 법의 영락을 만나면 문득 여래의 법장(法藏)을 만나게 될 것이옵니다.”
012_0528_a_06L時有菩薩名曰無形立不退轉卽從座起偏露右肩長跪叉手前白佛言甚奇甚特未曾所聞如來變化不可窮盡乃能演說瓔珞妙法諸有菩薩摩訶薩執持諷誦瓔珞名者皆是諸佛之所擁護若有善男子善女人遭遇如來說法瓔珞便爲値遇如來法藏
이때에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마음 한뜻으로 받아 지니고 외우면, 문득 열 가지 걸림 없는 공덕을 얻으리라.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허공장을 얻어 위의에 깊이 들어가고, 들은 것을 잘 기억하여 변재를 잃지 않고, 온갖 생각[念]이 허깨비 같고 화(化)함 같음을 관하여 요달하고, 심해탈(心解脫)에 노닐면서 또한 영원하다고 계교하지 않고,
012_0528_a_13L爾時世尊重告四部衆若有善男子善女人一心一意受持諷誦便得十無㝵功德云何爲十得虛空藏威儀深所聞强記不失辯才觀了諸念如幻如化遊心解脫亦不計常
항상 8법을 여의어서 시끄러운 데 처하지 않고, 듣자마자 기뻐하면서 마음에 두 소견이 없고, 공(空)의 무상을 알아서 또한 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능히 적멸정(寂滅定)의 뜻에 깊이 들어가며, 신족(神足)이 걸림이 없어 빠른 지혜를 얻으며, 법이 스스로 생겨남을 알아서 일어나고 멸함을 보지 않는 것이니라.
이것을 일러 선남자와 선여인이 갖춘 열 가지 걸림 없는 공덕이라고 하느니라.”
012_0528_a_18L恒離八法不處憒鬧聞輒歡悅心無二見空無相亦不著相復能深入寂滅定神足無㝵得捷疾智知法自生不見起滅是謂善男子善女人便能具足十無㝵功德
012_0528_b_01L이때 사리불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드러내고 부처님 앞에서 합장한 채 여쭈었다.
“예,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모든 법은 본래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나이다. 형상 없는 법은 아라한과 벽지불이 미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옵나이다.
012_0528_a_23L爾時舍利弗卽從座起露右臂叉手前白佛言唯然世尊法無形不可睹見無形之法非是羅漢辟支所及
세존이시여, 무엇을 일러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걸림 없는 공덕을 잡아 지녀 외우면 문득 도과(道果)를 이루어 열반문에 들어간다고 하신 것입니까? 걸림 없음과 열반이 어째서 다른 법이겠습니까? 열반은 함이 없는 것이요, 걸림 없음은 집착이 없는 것이옵나이다. 여래는 현재 등정각에 이르셨는데, 어째서 걸림 없는 공덕으로 열반을 설하시나이까? 만일 중생으로 하여금 열 가지 걸림 없는 공덕을 얻게 한다면, 문득 열반을 이미 얻게 되나, 만일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을 이미 얻게 했다면 곧 열반은 열반이 아니게 되나이다.
세존이시여, 어째서 열 가지 걸림 없는 공덕을 얻은 것을 문득 열반이라고 말씀하시나이까?”
012_0528_b_03L云何世尊言善男子女人執持諷誦十無㝵功德便成道果入泥洹門無㝵泥洹豈異法乎洹無爲無㝵無著如來現在逮等正云何以無㝵功德而說泥洹若使衆生得十無㝵功德便爲已得泥洹若使衆生已得泥洹者則爲泥洹非泥洹也云何世尊言得十無㝵功德便是泥洹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물은 바대로 모두가 부처님의 위신(威神)이지 그대의 경계는 아니니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리불아. 열반은 색(色)이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열반은 색이 없느냐?”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012_0528_b_11L佛告舍利弗如汝所問佛威神非汝境界云何舍利弗泥洹色耶對曰非也 云何舍利弗泥洹無色耶對曰非也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열반은 색이면서 색이 없느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열반은 색도 아니고 색 아님도 아니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걸림 없는 모든 법은 항상하기도 하고 항상하지 않기도 하며, 일어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느냐?”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12_0528_b_14L云何舍利弗泥洹色無色耶 對曰非也 云何舍利弗泥洹非色非不色耶對曰非也 云何舍利弗無㝵諸法是常非常有起有滅耶非也世尊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령 걸림 없는 모든 법에서 내지 열반에 이르기까지 색도 아니고 색 없음도 아니고, 색도 아니면서 색 없음도 아니기도 하며, 또한 나고 멸하고 단(斷)하고 착(着)함도 없고, 형상이 없어서 볼 수도 없다고 한다면, 어째서 다시 열반의 이름을 말하느냐?”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열반은 이름이 없고, 안식(眼識)의 경계로 능히 볼 바가 아니나이다.”
012_0528_b_18L佛告舍利弗若使無㝵諸法乃至泥洹非色非無色亦非色亦非無色亦無生滅斷著無形不可云何復言泥洹名乎舍利弗白佛世尊泥洹無名非眼識境界所能見也
012_0528_c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사리불아, 너의 말처럼 안식의 경계로 능히 볼 바가 아니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식(識)은 형상이 있느냐?”
그 물음에 대답하였다.
“그 형상(形相)에 따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말대로 그 형상에 따르면 곧 식이 있느니라. 그렇다면 어째서 다시 안식의 경계가 아니라고 말하느냐?”
012_0528_b_23L佛言如是如是舍利弗如汝所非眼識境界所能見也云何舍利識有形乎對曰隨其形相佛告舍利弗如汝所言隨其形相則有識者何復言非眼識境界耶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유형상(有形相)에 따르면 이는 유위식(有爲識)이요, 무형상(無形相)에 따르면 이는 무위식(無爲識)입니다. 걸림 없음과 열반은 유위의 모습도 아니고 유위식도 아니요, 무위의 모습도 아니고 무위식도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걸림 없음과 열반은 유위의 모습도 아니고 유위식도 아니며, 무위의 모습도 아니고 무위식도 아니니라. 유위는 식이 있고 무위는 식이 없는데, 열반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다시 식과는 다른 것인가?”
012_0528_c_04L舍利弗白佛隨有形相是有爲識隨無形相是無爲識無㝵泥洹非有爲相非有爲非無爲相非無爲識 云何舍利弗無㝵泥洹非有爲相非有爲識非無爲相非無爲識有爲有識無爲無識泥洹非此非彼更異識乎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열반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며, 또한 식과 다르지도 않다. 모습[相]은 곧 모습이 아닌데, 어째서 열반에 따로 이름을 세웠느냐? 가령 열반에 따로 명호(名號)를 세웠다면, 그 형상에 따르는 즉시 식이 생긴다. 만일 열반에 따로 이름을 세우게 하지 않았다면, 무위의 모습에 따라 문득 무위식이 있느니라. 그렇다면 어째서 열반이라 말하느냐? 유위의 모습도 아니고 유위식도 아니요, 무위의 모습도 아니고 무위식도 아니요, 또한 식과 다르지도 않고, 다시 따로 명호를 세우지도 않는데, 지금 어째서 열반이라고 칭하느냐?”
012_0528_c_10L舍利弗白佛言非也世尊佛告舍利弗泥洹非此非彼亦非異識相則非相云何泥洹別立名耶假使泥洹別立名號其形相則有識生若使泥洹不別立名號隨無爲相便有無爲識云何說言泥洹不有爲相不有爲識不無爲相不無爲識亦不異識復非別立名如今云何稱泥洹乎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열반은 열반이옵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째서 열반은 열반이라 하느냐?”
사리불이 여쭈었다.
“열반의 다함과 같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째서 열반의 다함과 같다고 하느냐?”
사리불이 여쭈었다.
“다하면서 다함없음과 같나이다.”
012_0528_c_18L舍利弗白佛世尊泥洹泥洹佛言云何泥洹泥舍利弗言如泥洹盡佛言云何如泥洹盡舍利弗言如盡無盡
012_0529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도다. 사리불아, 네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근본적으로 설한 걸림 없음과 열반은 유위의 모습도 아니고 유위식도 아니요, 무위의 모습도 아니고 무위식도 아니요, 또한 식과 다른 것도 아니요, 모습이 곧 모습 없음이라서 따로 이름을 세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다시 걸림 없음과 열반은 다하면서 다함없음과 같다고 말하느냐?”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경계에서 걸림 없음과 열반을 말한 것이 아니옵니다. 단지 걸림 없음과 열반은 다함이 없으면서 다함없음이 아니옵니다.”
012_0528_c_21L佛言善哉舍利弗如汝所言本說無㝵泥洹非有爲相非有爲識非無爲相非無爲識亦非異識相則無相不別立名云何復言無㝵泥洹如盡無盡舍利弗白佛言世尊非我境界說無㝵泥洹但無㝵泥洹非盡非無盡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에게 비유를 들어 말해 주겠다. 지혜 있는 이는 비유를 통해 스스로 아느니라. 마치 어떤 사내[士夫]가 허공을 향해 쏘아 허공에서 허공을 맞히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옛적에 허공을 거닐려고 하다가 연못에 빠진 적이 있노라. 지금 허공을 보고 문득 쏘아서 원수를 갚았노라. 얼마나 유쾌한가, 나의 소원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이 사람의 뜻[志趣]은 틀림없는 것인가, 아닌가?”
012_0529_a_04L佛告舍利弗吾今與汝引喩智者以譬喩自解猶如士夫仰射虛空於空求空復向人說吾昔遊空自陷于淵今得空便射而報讎何其快哉果我所願云何舍利弗斯人志趣爲審然不乎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가 허공을 쏘아 원수를 갚고자 함은 확실하여 허세가 아닙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리불아, 허공에서 허공을 쏘면 화살이 허공에 가서 붙느냐.”
대답하였다.
“붙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허공에게 원수를 갚느냐?”
사리불이 여쭈었다.
“허공은 모습이 없으니, 갚음이 있는지 갚음이 없는지 보지 못하나이다.”
012_0529_a_10L舍利弗白佛言世尊彼射虛空欲報其怨審然不虛 云何舍利弗空射空箭著空耶對曰不著佛言云何於空報怨舍利弗言虛空無相不見有報無報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느니라. 네가 말한 것처럼 허공은 갚음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걸림 없음과 열반도 또한 마찬가지니라. 유위의 모습에 있으면 유위식이 따르고, 무위의 모습에 있으면 무위식이 따르고, 이 모습에 있지도 않고 저 모습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식의 있음도 아니고 식의 없음도 아니니, 이것을 걸림 없음과 열반은 식의 있음도 아니고 식의 없음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012_0529_a_14L佛言如是如是如汝所言虛空無報佛告舍利弗㝵泥洹亦復如是在有爲相隨有爲在無爲相隨無爲識不在此相不在彼相亦非有識亦非無識是謂無㝵泥洹非有識非無識也
이때에 5백 명 비구는 이 ‘허공의 다함없는 법’을 듣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옷과 발우를 거두어 가지고 길을 건너 떠나갔다. 왜냐하면 이 비구들은 허공에서 허공을 구함으로서 허공의 원수를 갚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음을 계교하여 물들고 집착하면서 허공을 일컬어 허공이 있다고 하였다. 가령 장래에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부처님들이 앞에 서서 법을 설할지라도, 이들 비구는 허공에서 허공에 물들어 결코 해탈하지 못할 것이었다.
012_0529_a_19L有五百比丘聞此虛空無盡之法卽從座起收攝衣鉢涉道而去何以故斯等比於空求空欲報空怨計心染著謂空有空正使將來恒沙諸佛立前說斯等比丘於空染空終不解脫
012_0529_b_01L이때에 자리에 있던 범부로서 믿음을 세워 무학(無學)을 배우는 사람은 아직 고(苦)를 다해 무위계(無爲界)에 이를 수 없었다.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의 위신을 이어받아 사부대중에게 말하였다.
“어떤가, 여러 어진 이[賢者]들이여, 그대들은 이 깊은 법을 분명히 알았는가?”
대중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어진 사리불이여, 번뇌를 영영 끊고 지을 바를 이미 끝냈나이다.”
012_0529_b_01L座上凡夫立信學無學人未能盡苦至無爲界舍利弗承佛威神四部衆云何諸賢汝等審解此深法對曰唯然賢者舍利弗永斷塵勞所作已辦
사리불이 말하였다.
“어떻게 번뇌를 다했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뭇 지혜가 섞이지 않고, 지음[造]도 아니고 짓지 않음도 아닌 까닭에 번뇌[塵勞]를 다했나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옳다, 족성자여, 번뇌의 밭[疇]은 중생의 뿌리이다. 중생 가운데서 위없는 도를 이루고 부처의 복전(福田)에서 일체지(一切智)를 청정하게 하느니라.”
012_0529_b_06L舍利弗言云何盡塵勞耶對曰衆智不雜非造非不造故故盡塵舍利弗言善哉善哉族姓子塵勞之疇是衆生本於衆生中成無上道於如來福田淨一切智
사리불이 말하였다.
“청정함 또한 청정함이 없는데, 어떻게 복전(福田)에서 일체지를 청정하게 하는가?”
대답하여 말했다.
“아직 도과(道果)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일체지에서 그 자취를 청정하게 하지 못하였나이다.”
그리고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보살이 일체지를 청정하게 하는데, 전부 몇 품이나 있나이까?”
012_0529_b_10L舍利弗言亦無淨云何於福田淨一切智對曰未得道果於一切智未淨其迹又問舍利弗菩薩淨一切智凡有幾品
사리불이 말하였다.
“보살이 일체지를 청정하게 하는 데는 세간법에 구애받지 않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세간법에 구애받지 않음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아서 뒤바뀐 소견을 품지 않는 것이니라.”
또 물었다.
“보살의 영락은 어떻게 성취하나이까?”
012_0529_b_13L利弗言菩薩淨一切智不爲世法所又問云何不爲世法所拘舍利弗諸法無著不懷倒見又問菩薩瓔珞云何成就
대답하여 말했다.
“부처님의 도를 잃지 않으면 마지막에 이르러 성취하게 되고 보살의 영락을 잃지 않나니, 족성자여, 이것을 본행으로 말미암아 착한 염원을 잃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선지식을 의지하여 보살의 온갖 행의 영락을 성취하나이까?”
012_0529_b_17L答曰不失佛道至竟成不失菩薩瓔珞是謂族姓子斯由本行不失善願又問云何舍利弗薩摩訶薩云何憑善知識成就菩薩衆行瓔珞
대답하였다.
“온갖 중생에게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선지식이라고 말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떠한 지혜를 써야 온갖 행의 영락을 성취하나이까?”
대답하였다.
“부처의 종자를 끊지 않고, 다시 다른 것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라.”
012_0529_b_21L答曰於一切衆生不惜身是謂菩薩摩訶薩善知識又問何等智成就衆行瓔珞答曰不斷佛更不造新
012_0529_c_01L또 물었다.
“어떻게 모든 여래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해서 부처님 국토를 장엄하나이까?”
대답하였다.
“겁수(劫數)로써 기한을 삼지 말지니, 이를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말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여래의 처소에서 성현의 침묵으로 뭇 상념을 일으키지 않나이까?”
012_0529_c_01L又問云何於諸如來事供養莊嚴佛土答曰不以劫數爲是謂莊嚴佛土又問云何於如來賢聖默然不起衆想
대답하였다.
“차라리 몸과 목숨을 잃을지언정 계율은 훼손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8백의 근문(根門)을 분별하나이까?”
대답하였다.
“마음을 굳게 지녀 계속해서 뜻을 지켜 잃지 않고, 근문(根門)의 충입에 있어서 생각을 쉬어야 하느니라.”
012_0529_c_04L答曰寧失身不缺於戒又問云何分別八百根答曰持心連續不失守意出入息
또 물었다.
“어떻게 여섯 가지 굳건한 법[六堅之法]을 갖추나이까?”
대답하였다.
“실답지 못한 몸과 실답지 못한 목숨을 실다운 몸과 목숨으로 바꾸어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무진장을 갖추나이까?”
012_0529_c_07L又問云何具足六堅之法答曰實之身不實之命易實身命又問何具足無盡藏
대답하였다.
“이미 보살의 무애영락(無礙瓔珞)을 얻으면, 문득 일곱 가지 재물의 다함없음을 갖추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세속의 욕심이 줄어들고, 만족할 줄 알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뭇 지혜에서 서로 어기지 말아야 하니, 이것을 욕심이 적다고 말하느니라.”
012_0529_c_09L答曰已得菩薩無㝵瓔珞便能具足七財無盡又問云何於世少欲知足答曰於諸衆智不相違背是謂少欲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이 한가한 곳에 노닐면서 3유(有:界)에 물들지 않나이까?”
대답하였다.
“삼계를 원하거나 구하지 말라.”
또 물었다.
“어떻게 지혜를 써서 3세(世)의 근심을 없애나이까?”
대답하였다.
“고통의 근본을 다하고 번뇌를 낳지 말라.”
012_0529_c_12L又問云何遊心閑居不染三有 答曰不願求於三界又問云何用智覺三世患答曰盡苦元本不生塵勞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세 가지 고통의 법에 대한 상념이 없겠나이까?”
대답하였다.
“고통과 즐거움을 분별하여 보지 않으면 고통도 없고 즐거움도 없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받으면서도 받는 바가 없게 됩니까?”
대답하였다.
“5음(陰)인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분명히 밝혀라.”
012_0529_c_15L又問云何於三痛法無有想念答曰不見苦樂無苦無樂又問云何菩薩受無所受答曰分別五陰色痛想行識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법의 근본[法本]에 깊이 들어갑니까?”
대답하였다.
“밖으로 6입(入)을 버리고 안으로 6진(塵)을 일으키지 말라.”
또 물었다.
“어떻게 자신을 제도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제도하나이까?”
대답하였다.
“갖가지 도를 분별하면서도 도과(道果)에 물들지 말아야 하느니라.”
012_0529_c_18L又問云何菩薩深入法答曰捨外六入內不造六塵又問云何以度度也答曰分別諸道不染道果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인색함을 버리고 은혜롭게 보시하면서도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대답하였다.
“온갖 중생에 대해 세 가지 걸림이 없어야 하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계를 지키며 훼손하지 않겠나이까?”
대답하였다.
“처음 뜻을 발한 이후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법인(法忍)에 유순하여야 하느니라.”
012_0529_c_21L云何菩薩捨慳惠施不起想著答曰於一切衆生心無三㝵又問何菩薩守戒不缺答曰從初發意乃至成佛不捨道心柔順法忍
012_0530_a_01L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참음을 닦아서 성냄을 일으키지 않나이까?”
대답하였다.
“마음을 조복하고 뜻을 거두어서 공(空)의 형상 없음을 생각하여라.”
또 물었다.
“어떻게 보살이 마음을 써야 정진하면서 게으름을 일으키지 않겠나이까?”
대답하였다.
“분별하고 사유하기를 불 끄듯이 하여라.”
012_0530_a_01L又問何修忍不起恚怒答曰伏心攝意空無形又問云何菩薩用心精進起懈怠答曰分別思惟如救火然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선정의 뜻을 이지러지게 하지 않고 시방에 노닐면서도 심의(心意)가 어긋나지 않나이까?”
대답하였다.
“뜻이 평등해서 둘이 없어야 지혜를 잃지 않느니라.”
또 물었다.
“어떻게 슬기의 눈으로 걸림 없이 널리 비추겠나이까?”
대답하였다.
“일체 모든 법에서 형상을 보지 않느니라.”
012_0530_a_04L云何菩薩禪意不虧遊至十方心意不錯答曰意等無二不失智慧云何慧眼普照無㝵答曰一切諸不見形相
또 물었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자등정(慈等定)에 들어가 중생을 거두면서도 제도함이 있음을 보지 않나이까?”
대답하였다.
“중생 심(心)ㆍ의(意)ㆍ식(識)의 근본을 관(觀)하여 요달해야 하느니라.”
“어째서 보살은 제도 받지 못한 이들을 불쌍히 생각해서 슬프게 우나이까?”
“법상(法想)을 일으켜 높고 낮은 것이 있음을 보지 않기 때문이니라.”
012_0530_a_08L又問云何菩薩入慈等攝取衆生不見有度答曰觀了衆生心意識本 云何菩薩愍念悲泣諸不度者答曰不起法想見有高下
“어떻게 보살은 기쁜 마음을 끊지 않고서 무량정(無量定)에 드나이까?”
또 물었다.
“행의 근본이 스스로 그러해서 나고 멸함을 보지 않느니라.”
“어떻게 보살은 세 가지 삼매를 행하여 열반문에 이르나이까?”
“여래의 여덟 가지 도의 지름길을 버리지 않느니라.”
그때에 사리불이 무수한 방편으로써 여러 모인 이들에게 미묘한 법인 무애영락을 말하였다. 이때 1천2백 명의 비구가 믿는 마음이 견고해져서 불퇴전을 이루었으며, 다시 수없는 천인(天人)들이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의 뜻을 모두 발하였다.
012_0530_a_11L云何菩薩喜心不絕入無量定行本自然不見生滅又問云何菩薩行三三昧至泥洹門答曰不捨如八道徑路爾時舍利弗以無數方便與諸會者說微妙法無㝵瓔珞一千二百比丘信心堅固立不退轉復有無數天皆發無上正眞道意
당시 보살이 있었는데 이름이 무정상(無頂相)이었다. 그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신기하고 아주 특별해서 일찍이 들은 적이 없습니다. 가령 현자(賢者) 사리불이 설한 지혜의 경계는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라서 애착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화내는 온갖 법의 모습을 보지 않습니다.
012_0530_a_19L時有菩薩名無頂相卽從座起前白佛言甚奇未曾所聞如賢者舍利弗說智慧非有非無不見愛憎喜怒諸法之
012_0530_b_01L그런데 제가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께서 도의 가르침을 펼치는 걸 관하여 보니, 혹은 유(有)의 가르침을 설하면서 차츰 무위(無爲)에 이르기도 하며, 혹은 무(無)의 가르침을 설하여서 또한 무위에 이르기도 하며, 혹은 몸의 고통을 설하시어 싫어하고 근심함을 알게 하며, 혹은 식(識)의 상념을 없애서 본제(本際)를 여읨을 알게 하였나이다. 어떻게 해야 보살이 온갖 법에 널리 들어가서 낱낱이 분별하면서도 더하고 덜함을 일으키지 않나이까?
012_0530_a_23L如我觀見十方世界諸佛世尊敷演道教或說有教漸至無爲或說無教亦至無爲或說身苦令知厭患除識想知離本際云何菩薩普入諸一一分別不起增減
이제 들으니, 여래 신상(身相)의 법은 유위는 스스로 그러할 뿐이라서 행을 바꾸지 못하고, 무위는 형상이 없어서 가히 측량할 수 없나이다. 이제 여래 영락의 근본을 듣고자 하오니, 오직 바라건대 해설하여 주옵소서. 유위의 색신은 얼마만큼의 영락이 있어야 스스로 장엄해 꾸미며, 무위의 색신은 얼마만큼의 영락이 있어야 스스로 장엄해 꾸미며, 유위의 무색신은 얼마만큼의 영락이 있어야 스스로 장엄하여 꾸미며, 무위의 무색신은 얼마만큼의 영락이 있어야 스스로 장엄하여 꾸미나이까?”
012_0530_b_04L今聞如來身相之法有爲自爾行不改易無爲無形不可測度今欲聞如來瓔珞之本唯願解說有爲色身有幾瓔珞而自嚴飾無爲色身有幾瓔珞而自嚴飾有爲無色身有幾瓔珞而自嚴飾爲無色身有幾瓔珞而自嚴飾
이때 부처님께서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족성자여. 여래 앞에서 능히 사자후(獅子吼)를 내었으니, 이제 반드시 그대를 위하여 낱낱이 분별해 말하리라.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사유하고 생각하여라.
보살마하살이 처음 뜻을 발할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항상 마땅히 몸ㆍ입ㆍ뜻에 대한 단속을 충분히 갖추고, 6바라밀을 장엄하여 색(色)의 본래 없음을 요달해서 색의 근본을 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색을 장엄하는 여섯 가지 영락법에서 여래의 깊은 곳간의 영락을 얻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 영락법인가?
012_0530_b_10L爾時世尊告無頂相菩薩曰善哉善哉姓子乃能於如來前爲師子吼今當爲汝一一分別諦聽諦聽善思念之菩薩摩訶薩從初發意乃至成佛當具足撿身口意莊嚴六度了色本不見色本於色莊嚴六瓔珞法逮得如來深藏瓔珞云何爲六
선남자나 선여인아, 만일 눈으로 색을 본다면 저 일어난 색을 아나니, 중생의 음행과 성냄과 어리석음도 나아가야 할 때 문득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 문득 물러난다. 눈은 저 색이 아니며 색도 곧 눈이 아니다. 저 색을 없애려고 생각해서 눈의 상념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法淸淨瓔珞)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색의 성품은 자연이고 식(識)도 또한 자연이다. 저 색과 나의 식은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며, 저 속박을 빨리 풀어서 나의 유(有)에 물들지 않으니,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0_b_17L於是善男善女人若眼見色知彼起色衆生婬怒癡應進便進應退便退眼非彼色色非卽眼念除彼色不起眼想謂一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色性自然識亦自然彼色我識不興塵勞速解彼縛不染我有是謂二法淸淨瓔珞
012_0530_c_01L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갖가지 선의 근본은 색의 형상 없음을 분별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근본이 청정하면 색도 또한 청정하나니, 이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색에 집착해서 욕심에 물듦은 색에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색의 성품은 본래 없거늘 하물며 음욕이겠는가. 이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 하느니라.
012_0530_c_01L復次族姓子諸善根本於色無形分別思惟根本淸淨色亦淸淨謂三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著色染非色有欲色性本無況復婬欲謂四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색을 항상하다고 계교하는 것은 눈의 경계가 아니다. 의식의 분별이 문득 망설임을 일으켜서 항상함과 무상함, 나아가 무아(無我)까지 계교한다. 색의 성품은 텅 비고 적멸해서 영원히 일어나고 멸함이 없나니, 이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색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요, 안식(眼識)은 머물면서 받는 것이다. 유색(有色)의 유위와 유색의 무위, 유위의 색과 식은 문득 도의 뿌리를 망가뜨리고, 무위의 색과 식은 과보를 성취한다. 유(有)와 무(無)의 모습을 사유하고 분별하는 것을 여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0_c_05L復次族姓子計色有常非眼境界意識分別便起猶豫計常無常乃至無我色性虛寂永無起滅是謂五法淸淨瓔珞復次族姓色是外入眼識往受有色有爲有色無爲有爲色識便敗道根無爲色識果報成就思惟分別有無相者謂六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스스로 색과 식을 거두는데, 다시 여섯 가지 일[六事]이 있느니라. 어떤 것을 여섯이라 하는가?
족성자야, 식의 모습은 형상이 없어서 만단(萬端)으로 달리면서 흘러간다. 앞에 바깥 티끌이 있으면 문득 번뇌[塵勞]를 내나니, 선이면 선한 식이고 악이면 악한 식이다. 악한 식에는 선이 없고 선한 식에는 악이 없다. 보살이 뜻을 거두어서 선과 악의 식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이라 말하느니라.
012_0530_c_12L復次族姓子自攝色識復有六事云何爲六於是族姓識相無形流馳萬端前有外塵便生塵勞善則善識惡則惡識惡識無善善識無惡菩薩攝意不起善惡識是謂一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안식으로 공(空)을 관찰해서 있는 바가 전혀 없다면, 문득 공의 상념[空想]을 내서 선악의 과보가 없다. 금생(今生) 뒤에 다시 과보를 받음을 보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뜻을 거두어 뒤바뀐 상념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식(識)으로 무아(無我)를 구별해서 어느 때에는 근문(根門)의 깨끗하지 못함을 보고서도 청정함이 있다고 계교하며, 혹은 다시 근문에 깨끗함이 있다고 생각하고도 깨끗하지 않음을 계교하는데, 이 가운데에서 뜻을 거두어 두 가지 상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0_c_17L復次族姓子眼識觀空悉無所有便生空想無善惡報不見今生後復受報於中攝意不起顚倒想者是謂二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識別無我或時有見根門不淨而計有淨或復有念根門有淨而計不淨於中攝意不起二想者是謂三法淸淨瓔珞
012_0531_a_01L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식(識)으로 저 성냄[恚]에 선(善)과 불선(不善)이 있다고 보면서 선은 늘 선이라 말하고 불선 또한 마찬가지이니, 그 가운데서 뜻을 거두어서 인욕을 갖추는 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식(識)으로 중생에게는 선으로 나아가는 자와 선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가 있고, 굳건한 주(住)ㆍ행(行)ㆍ지(地)와 굳건치 못한 주ㆍ행ㆍ지가 있음을 아는데, 그 가운데 뜻을 거두어 마음이 불퇴전인 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a_01L復次族姓子見彼恚有善不善善謂常善不善亦於中攝意具足忍辱者是謂四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識知衆生有趣善者不趣善者有堅住行地不堅住行地於中攝意心不退轉者是謂五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식(識)으로 앞의 색(色)에 도(道)가 있고 속(俗)이 있음을 관찰하지만, 도를 보고도 도인 줄 알지 못하고 속을 보고도 속인 줄 알지 못하는데, 그 가운데서 뜻을 거두어 도와 속을 잘 분별하는 것을 여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이식(耳識)이 상념을 일으키는데, 다시 여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무엇을 여섯이라 하는가?
012_0531_a_07L復次族姓子識觀前色有道有俗見道不知是道見俗不知是俗於中攝意善分別道俗者謂六法淸淨瓔珞耳識趣想復有六云何爲六
족성자여, 귀로 소리를 듣는데 열여덟 가지 변동이 있나니, 혹은 바람 소리나 나무와 산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혹은 때로 새ㆍ짐승ㆍ음악의 소리도 있다. 소리에는 선과 악이 있고, 기록할 것과 기록하지 못할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뜻을 거두어서 이식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a_11L於是族姓子若耳聞聲十八變動或聞風聲樹木山崩或時鳥獸音樂之聲聲有善惡可記不可於中攝意耳識不錯者是謂一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어느 때에 중생이 문득 세속을 통째로 사무치게 들을 수 있어서 혹은 백 유순, 2백 유순에서 무수한 온갖 부처님 국토에까지 이르는데, 마치 맹웅세존(猛雄世尊:부처님)이 도량에 나아가 등정각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과 같다. 이때에 하늘과 땅이 여섯 번 반복해서 진동하는데, 음향을 분별하니 모조리 허공으로 돌아간다. 이 가운데서 뜻을 거두어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a_15L復次族姓子有時衆生便得世俗通徹之聽或百踰旬二百踰復至無數諸佛國土猶如猛雄世尊進趣道場欲成等正覺爾時天地六返震動分別音響悉歸虛空於中攝意不起想著者是謂二法淸淨瓔
012_0531_b_01L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이식이 소리를 들으면 본래 있는 바가 없는데도 문득 온갖 상(想)을 내고 약간의 염(念)을 일으키는데, 그 가운데서 뜻을 거두어 삿된 생각이 없는 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이통(耳通)이 청정해서 그가 받는 형상에 청정함도 있고 탁함도 있음을 알지만, 탁한 것을 보아도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맑은 것을 보아도 도의 마음을 내지 않는다. 이 가운데에서 뜻을 거두어서 상대와 나[彼我]의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a_21L復次族姓子耳識聞聲本無所有便生衆想起若干念於中攝意無邪念者是謂三法淸淨瓔珞復次族姓耳通淸淨知彼受形有淸有濁見濁不起塵勞見淸不生道心於中攝意不起彼我者是謂四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어느 때에 이식(耳識)으로 타방의 다른 찰토(刹土)의 연설을 들었는데, 5분법신(分法身)이 현재 어머니 태에 처했으되 티끌 욕심에 물들지 않았고, 다시 현재 출가하였으되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보리수[樹王] 밑에서 등정각을 이루었다. 이 가운데에서 뜻을 거두어서 도(道)와 속(俗)을 분별하는 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이식으로 시방 국토의 모든 부처님이 굴리시는 허공 법륜을 들어 살피고, 손가락을 튀기는 사이에 한량없는 중생의 무리를 제도하면서도 내가 제도한 바 있다고 스스로 칭하지 않으니, 이 가운데서 뜻을 거두어 교화된 중생을 세지 않는 것을 여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b_03L復次族姓子或時耳識聞他方異剎演說五分法身現處母胎不染塵欲復現出家心不改變在樹王下成等正覺於中攝意分別道俗者是謂五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耳識聽察十方國土諸佛世尊轉虛空法輪彈指之頃拔濟無量衆生之類不自稱說吾有所度於中攝意不計化衆生者謂六法淸淨瓔珞
부처님이 다시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저 이식(耳識)에 의거해 여섯 가지 법을 닦아 행해야 하느니라. 무엇이 그 여섯인가?
족성자여, 권도의 방편을 행하여 본래 지은 바를 기록하고 영락을 닦아 익혀서 차례를 넘지 않으니, 이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행의 무아(無我)에 의지하여 몸의 근본을 헤아리지 않으니,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b_12L佛復告無頂相菩薩曰依彼耳識當修行六法云何爲於是族姓子行權方便記本所造修習瓔珞不越次敍是謂一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猗行無我不計身是謂二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여섯 가지 법을 갖추어서 계의 성품을 헐지 않으니, 이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이식의 현묘한 비침[玄鑑]이 무애를 통달해서 큰 서원과 크게 인자한 마음을 버리지 않으니, 이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이식이 진취적인 행보로 이 법은 선도(善道)인가, 이 법은 악도인가, 이 법은 유위인가, 이 법은 무위인가를 요달해 아는데, 이 가운데에서 분별하여 이식을 그르치게 하지 않으니, 이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b_17L復次族姓子具足六法不毀戒性是謂三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耳識玄鑑通達無不捨弘誓大慈之心是謂四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耳識了知進趣行步斯法善道斯法惡道斯法有爲斯法無爲於中分別耳識不錯者謂五法淸淨瓔珞
012_0531_c_01L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이식으로 온갖 부처님 세계를 분별하여 특수하고 깊고 미묘한 법을 듣고서 낱낱이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니, 이것을 여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마땅히 닦아 행함을 생각하여야 한다. 어떤 것이 여섯인가?
부처님의 색신은 청정하여서 애욕의 몸이 아니니, 몸으로 갖가지 향을 놓아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널리 두루하고, 낱낱의 향기는 모두 한량없는 영락법문을 연설하는데, 중생에 의지하면서도 중생의 상념이 없다. 이 가운데서 비식(鼻識)의 구족함을 성취하니, 이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c_01L復次族姓子耳識分別諸佛世界聽聞殊特深妙之法一一承事諸佛世尊是謂六法淸淨瓔珞復有六法當念修行云何爲六如來世尊色身淸淨非愛欲身身放衆香普遍十方無量世界一一香氣皆演無量瓔珞法門不猗衆生有衆生想於中成就具足鼻識是謂一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부처님의 한량없는 향의 세계는 계덕(戒德)의 향으로써 시방 항하모래 수효의 국토에 널리 두루하니, 그 가운데에서 한량없는 중생을 거두어 취하는데,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다시 비식으로 저 향의 세계를 살핌으로써 응당 3악도로부터 온갖 속박과 집착을 끊어서 비식이 응당 행하는 근본을 잃지 않으니, 이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c_09L復次族姓子如來世尊無量香界以戒德香普周十方恒沙剎於中攝取無量衆生是謂二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復以鼻識察彼香界應從三道斷諸縛著不失鼻識應行之本是謂三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저 비통(鼻通)이 한량없는 심제(審諦)의 교법을 연출함으로 인해서 비식이 청정하여 뭇 행을 충분히 갖추니, 이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비식이 셋이 있으니, 경계의 밖으로부터 안의 식에 들어오는 것과, 선악의 냄새를 맡는 것과, 여덟 가지 도와, 열여섯 가지의성현의 자취를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비식으로 한 생각, 한뜻을 냄새 맡아서 저 중생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을 알아서 낱낱이 한량없는 법문을 펼치니, 이것을 여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c_14L復次族姓子因彼鼻通演出無量審諦之鼻識淸淨衆行具足是謂四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鼻識有三界外入內識嗅善惡香分別八道十六聖迹是謂五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識嗅香一念一意知彼衆生心所念一一演暢無量法門是謂六法淸淨瓔珞
012_0532_a_01L부처님께서 다시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마땅히 여섯 가지 법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부처의 모습은 모습이 없으므로 수호해 지닐 수 없으니, 성도(成道)의 장엄도 스스로 장식하느니라. 어떤 것들이 여섯 가지인가.
족성자여, 부처님이 나무 아래 앉아 한 모습[一相]을 닦아 익혀서 중생의 행실이 차이 없음을 보시고는 도솔천으로부터 신(神)을 어머님 태에 내리셨는데, 비록 속(俗)으로 변하였지만 현성(賢聖)은 잃지 않으셨고, 여래의 금계(禁戒)의 덕향(德香)은 한량없는 세계에 널리 두루하였으니, 이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1_c_22L佛復告無頂相菩薩曰復當具足六法佛相無相不可護持莊嚴成道以自莊飾云何爲六於是族姓坐佛樹下修習一相觀見衆生所行不在從兜術天降神母胎雖現俗變不失賢聖如來禁戒德香普遍無量世界是謂一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비식(鼻識)의 모습을 닦아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널리 알고, 가서 태어나되 형상 받음이 같지 않음을 알고는 다시 신족으로 교화하니,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비식의 분별로 모습 모습마다 싫어함이 없고, 다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를 관찰해서 다 일생 보처보살을 보는데 향기가 시방세계에 두루 가득 찼다. 그 가운데에서 뜻을 거두어 분산시키지 않으니, 이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2_a_05L復次姓子修鼻識相普知十方諸佛世界知所趣生受形不同復以神足而教化之是謂二法淸淨瓔珞復次族姓鼻識分別相相無厭復觀十方無量世界悉見一生補處菩薩香氣遍滿十方世界於中攝意而不分散謂三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처음에 부처님이 나무에 앉아서 속으로 스스로 사유하시길 ‘이제 나의 성불은 필연이라서 의심이 없지만, 어떻게 증험해야 할까? 하늘ㆍ용ㆍ귀신 나아가 시방 여러 부처님으로 하여금 내가 지금 보리수 밑에 앉아있음을 알게 해야겠다’하고는, 곧 모든 털구멍 하나하나에서 온갖 향을 놓아서 시방세계를 다 오게 하여 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호위하고 옹호케 하였다. 이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2_a_12L復次族姓子初坐佛樹內自思惟今吾成佛必然不疑以何證驗令天鬼神乃至十方諸佛世尊知我今坐佛樹下卽放諸毛孔一一衆香令十方界悉來宿衛擁護菩薩至成作佛是謂四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보리수[樹王] 밑에서 이미 등각을 이루고 나시니, 온갖 모습을 갖추셨고 하룻밤 새에 세 가지 밝은 지혜를 이루셨다. 초야(初夜)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지나간 세상의 항하의 모래 수효 같은 부처님들이 여기서 성도(成道)하셨는데, 무슨 법을 먼저 펴셨고 어떻게 교화하셨는가?’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사유하면서 다시 한밤이 되자, ‘옛적의 모든 부처님이 여기서 성도하여서 한량없는 바라밀들을 모두 설하였는데, 나도 이제 응당 모든 부처님의 법과 같이 하리라’고 생각하셨다.
012_0532_a_17L復次族姓子於樹王下已成等覺相具足一夜之中成三明慧初夜自過去恒沙諸佛世尊在此成道布何法云何教化如是思惟復至中古昔諸佛在此成道皆說無量諸度無極我今亦應如諸佛法
012_0532_b_01L그리고는 문득 온갖 향으로 형상이 없는 정의(定意)에 드시었다. 다시 선정에서 일어나시어 또 생각하시길 ‘옛적의 여러 부처님이 비록 이곳에서 성불하시었지만, 누구를 먼저 제도하시고 어떻게 법을 설하시었나?’라고 하였는데, 그때 문득 시방세계의 온갖 뭇 향기를 맡으시니, 각각 응당 제도할 이를 제도하라는 향기가 있었다. 다시 그곳에서 낱낱이 사유하면서 후야(後夜)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물러서지 않으면서 향의 경계를 빠트리지 아니하셨나니, 이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2_a_23L便入衆香無形定意復從定起復更思惟昔諸佛雖於此處成佛先度何人何說法爾時便聞十方世界一切衆各有斯音度應度者復於彼處一一思惟乃至後夜如是不退不闕香是謂五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이미 코의 모습을 얻고 나서 속으로 스스로 사유하시길 ‘세상의 향기는 무상하여 나고 죽는 법을 심는다. 무슨 방편으로 도덕의 향기를 구할까?’라고 하여서, 문득 스스로 선정에 들어가 지혜와 선정의 5분법신을 분별하는데, 식(識)으로 가서 구별하였다. 즉 계(戒)의 향으로 몸을 거두어 잡으시고, 정(定)의 향으로 뜻을 거두어 잡으시고, 혜(慧)의 향으로 혼란함을 거두어 잡으시고, 해혜(解慧)로 뒤바뀐 소견을 거두어 잡으시고, 도지(度知)로 무명을 거두어 잡으셨다. 이것을 여래가 5분 법향으로 그 몸을 영락하셨다고 말하니, 이것이 여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니라.”
012_0532_b_06L復次族姓子已獲鼻相內自思惟世香無常種生死法以何方便求道德之香便自入分別慧定五分法身以識往別香攝身定香攝意慧香攝亂解慧攝倒見度知攝無明是謂如來五分法香瓔珞其身是謂六法淸淨瓔珞
부처님께서 다시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혀의 모습은 온갖 모습[相] 중에서도 묘하다. 언교(言敎)를 연설하면서도 네 가지 허물이 새지 않고, 본래 지은 바의 원으로 설법하여 교화하느니라. 입으로 교화하심이 청정하여 설식(舌識)을 잃지 않으시니, 이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본래 청정함을 닦아서 세 가지 행을 수호하고, 저 중생의 신식(神識)이 나아가는 바를 알아서 문득 법을 설하여 차서(次緖)를 잃지 않고 설식이 청정하니,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2_b_12L佛復告無頂相菩薩曰如來舌相衆相中妙演布言教不漏四過本所造願說法教化口教淸淨不失舌識謂一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本修淸淨守護三行知彼衆生神識所趣輒便說法不失次緖舌識淸淨是謂二法淸淨瓔珞
012_0532_c_01L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비록 입으로 법을 설하지만 가르침이 있고 소리가 있다. 말이란 식(識)으로부터 발해져서 밖에서 문득 교화를 받고, 다시 저 말을 따서 법을 설하게 되니, 그 가운데서 설식의 청정함을 스스로 거두어 잡느니라. 이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혀에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데 모습 모습마다 같지 않다. 하나하나 식(識)으로 화하여 법을 설함이 무궁하면서도 네 가지 변재를 잃지 않고 설식이 청정하고, 나아가 한량없는 항하 모래의 찰토까지도 말은 언어의 쓰임새에 따라 믿음을 받지 않음이 없다. 이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2_b_19L復次族姓子雖口說法有教有響言從識發外輒受化採彼語而爲說法於中自攝舌識淸是謂三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舌有衆相相相不同一一化識說法無窮不失四辯舌識淸淨乃至無量恒沙剎土言從語用無不受信是謂四法淸淨瓔珞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여, 어느 때 어떤 사람이 저 설법을 듣고서 혹은 선(善)하기도 하고, 혹은 불선(不善)하기도 하고, 혹은 삿된 소견[邪見]을 말하기도 하고, 혹은 바른 소견을 말하기도 하면, 오히려 능히 힐난해서 의취(義趣)를 찾아 궁구하고 그 가운데에서 갖추어 혀의 의식을 잃지 않나니, 이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지나간 세상의 여러 부처님이 설하신 언교는 행이 있고 지혜가 있고 취향(趣向)이 있으며, 오는 세상의 여러 부처님도 행이 있고 지혜가 있고 취향이 있으며, 지금 세상의 여러 부처님도 행이 있고 지혜가 있고 취향이 있다. 어떤 것이 지나간 세상의 여러 부처님이 행이 있고 지혜가 있고 취향이 있는 것인가?
012_0532_c_03L復次族姓子或時有人聞彼說法或善或不善或說邪見或說正見復能反詰尋究義趣於中具足不失舌識是謂五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過去諸佛所說言教行有智有趣當來諸佛有行有智有現在諸佛有行有智有趣云何過去諸佛有行有智有趣
족성자야, 지나간 세상의 여래는 집착하는 바 없는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몸이 멸하고 모습[相]이 멸하고 색(色)이 멸하시었다. 어떤 것이 몸이 멸한 것인가? 지나간 세상의 여래는 몸이 항상 머물러 있지 않아서 색신(色身)이 변하고 바뀌기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생생(生生)에 스스로 멸하느니라.
비록 다시 오래오래 멸진(滅盡)하지만 오히려 몸이 있는 걸 이름하여 멸하지 않는다고 하나니, 이 유위의 몸은 무위의 경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래의 몸’이란 5분(分) 법성(法性)으로서 부처가 있든 부처가 없든 항상 일정해서 변하지 않는다. 이것을 몸은 멸하지만 5분의 몸은 멸하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2_c_10L於是族姓子過去如來無所著等正覺身滅相滅色滅云何身滅過去如來身不常住色身變易非一非二生生自滅雖復久久滅盡猶有身名不滅此有爲身不入無爲境如來身者五分法性定不變有佛無佛是謂身滅非五分身滅
이른바 모습이 멸한다는 것은 모습이 있고 색이 있음과 모습은 있지만 색은 없음이니라. 어떤 것이 모습이 있고 색이 있으며, 모습은 있지만 색은 없음인가? 안식의 경계는 바깥의 6입(入)의 근본이니, 이것을 모습이 있고 색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모습은 있지만 색이 없다’는 여러 유위법(有爲法)ㆍ무위법(無爲法)ㆍ정법(定法)ㆍ정하지 않은 법[無定法]이 안식의 경계가 아니니, 이것을 모습은 있지만 색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012_0532_c_17L所謂相滅者有相有色有相無云何有相有色有相無色眼識境界外六入本是謂有相有色也有相無色者諸有爲法無爲法定法無定非眼識境界也是謂有相無色也
012_0533_a_01L이른바 ‘색의 멸함’에 대해서색에 세 가지 품[三品]이 있는데, 형상이 있는 색ㆍ형상이 없는 색ㆍ더 커지는 색이다. 어떤 것이 형상이 있는 색인가? 입으로 뱉는 가르침, 심식(心識)이 지은 행은 앞에 따라 물들어 집착하니, 이것을 형상이 있는 색이라 말하느니라. 어떤 것이 형상이 없는 색인가? 바로 지금 설한 말처럼 선(善)도 있고 악도 있어서 뒤에 과보가 있음을 아는 것은 필연으로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에 처해서 과거와 미래의 행을 짓지만 지금 안식에 보이는 바는 아니니, 이것을 형상 없는 색이라 말하느니라. 어떤 것이 더 커지는 색인가? 색에 다하지 않음이 있고 비색(非色)에 다함이 있으며, 색이 있음도 다하고 색이 없음도 다하니, 이것을 더 커진 색이라 말하느니라.
이와 같이 족성자여, 문득 여섯 가지의 법 청정영락을 갖추느니라.”
012_0532_c_21L所謂色滅者色有三品有形色無形增大色云何有形色口所吐教識造行隨前染著是謂有形色也何無形色如今說言有善有惡知後有報必然不疑今處現在造過去未來行非今眼識所見是謂無形色何增大色色有不盡非色有盡有色亦盡無色亦盡是謂增大色如是姓子便具六法淸淨瓔珞
이때 무정상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여쭈었다.
“어떻게 설식(舌識)의 언교(言敎)가 한량없는 근본 슬기와 선정의 뜻을 펼 수 있습니까? 설식은 식(識)이 아니며 또한 평등하지도 않나이다. 온갖 소리[聲]는 이식의 경계요, 밖의 온갖 색상(色像)은 안식의 경계요, 뭇 향기의 좋고 나쁨은 비식의 경계이온데, 입으로 설하는 말은 소리는 있으되 형상은 없어서 밖의 법은 알지만 스스로는 알지 못하나이다. 어째서 설식은 이식의 모습을 받나이까?”
012_0533_a_07L爾時無頂相菩薩前白佛言云何舌識言教出無量本慧定意舌識非識亦非平一切音響耳識境界外諸色像眼識境界衆香好醜鼻識境界口所說言有聲而無形主知外法而不自知云何舌識受耳識相
부처님께서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냐. 족성자여, 소리가 귀에서 나오느냐, 밖으로부터 오느냐?”
대답하였다.
“밖의 식은 안의 식을 좇지 못하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입으로 언교(言敎)를 내는데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한데, 입을 말미암아 이식이 듣느냐, 입을 말미암지 않고 이식이 듣느냐?”
물음에 대답하였다.
“입을 말미암아 듣기도 하고, 혹은 입을 말미암지 않고 듣나이다.”
012_0533_a_13L佛告無頂相菩薩曰云何族姓子聲從耳出爲從外答曰外識不從內識又問口出言教或大或小由口耳識聞不由口耳識聞答曰或由口聞或不由口聞
또 물으시었다.
“어째서 입을 말미암아 듣고, 입을 말미암지 않고 듣느냐?”
물음에 대답하였다.
“입에서 소리가 나왔으면 이것은 입을 말미암아 들음이요, 땅ㆍ물ㆍ불ㆍ바람ㆍ산하ㆍ돌ㆍ석벽(石壁)의 소리는 입을 말미암지 않고 듣는 것이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것은 식(識)이 된다고 칭할 수 있지만, 땅ㆍ물ㆍ불ㆍ바람은 식이 없다 할 수 있느냐?”
012_0533_a_17L云何由口聞不由口聞答曰口出音響此則由口聞地水火風山河石此不由口聞又問口出音響得稱爲識地水火風可無識乎
물음에 대답하였다.
“땅ㆍ물ㆍ불ㆍ바람은 입의 식이 아니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무엇이 입의 식을 성취하느냐?”
대답하였다.
“4대(大)입니다.”
또 물으시었다.
“입은 4대(大)가 아닌데 어찌 4대(大)라고 말하느냐?”
대답하였다.
“식이 있는 4대(大)이지, 식이 없는 4대(大)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012_0533_a_21L答曰地水火風非口識也又問云何成就口識四大也又問口非四大今言四大答曰有識四大不言無識四大
012_0533_b_01L또 물으시었다.
“어째서 식이 있는 4대(大)를 말하고, 식이 없는 4대(大)는 말하지 않는가?”
대답하였다.
“식이 있는 4대(大)는 입의 식이 해당되며, 식이 없는 4대(大)란 땅ㆍ물ㆍ불ㆍ바람이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식이 있는 4대(大)는 어찌 땅ㆍ물ㆍ불ㆍ바람이 아니겠는가?”
012_0533_b_01L云何言有識四大不言無識四大答曰有識四大口識是也無識四大地水火風也又問有識四大豈非地水火風乎
대답하였다.
“그러하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식이 없는 4대(大)는 어떤 것이냐?”
대답하였다.
“땅이 물을 여의면 식이 없고, 물이 불을 여의면 식이 없고, 바람이 허공(空)을 여의면 식이 없고, 허공이 식을 여의면 식이 없는데, 이것을 4대(大)가 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옵나이다.”
012_0533_b_05L對曰又問無識四大者是耶答曰地離水則無識水離火則無識火離風則無識風離空則無空離識則無識是謂四大無識
또 물으시었다.
“식이 있는 4대(大)가 내는 소리는 땅이냐, 물이냐, 불이냐, 바람이냐, 허공이냐, 식이냐?”
대답하였다.
“모두 합해진 것입니다.”
또 물으시었다.
“4대(大)를 제하면 식은 어디에 존재하게 되느냐?”
대답하였다.
“식은 의지할 바가 없나이다.”
012_0533_b_08L有識四大所出音響地耶水耶風耶空耶識耶答曰普聚又問四大識爲所在答曰識無所猗
또 물으시었다.
“땅ㆍ물ㆍ불ㆍ바람은 똑같은 소리, 똑같은 음향이니, 식을 말하지 않느냐?”
대답하였다.
“식은 짝이 없는 홀로라서 식이 없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식 혼자뿐이면 식이라고 일컬을 수 있느냐?”
대답하였다.
“식이 혼자면 식이 아니나이다.”
012_0533_b_11L又問地水火風同聲同響不說識乎答曰識獨無侶故無識也又問識獨得稱識耶答曰識獨非識
또 물으시었다.
“식이 혼자여서 식이 아니라면, 어떻게 땅ㆍ물ㆍ불ㆍ바람에 의지하는가? 유위(有爲)냐, 무위냐?”
대답하였다.
“그와 같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식이 죽은 태를 여의면 다시 처함이 있느냐?”
대답하였다.
“있나이다.”
012_0533_b_14L又問識獨非識云何依地水火風耶有爲耶無爲耶答曰如是又問識離死胎復有處耶答曰
또 물으시었다.
“무엇이 고통의 근본을 다함인가?”
대답하였다.
“다함없는 식이옵나이다.”
그때 무정상보살이 다시 물었다.
“요소[大]가 식을 성취하나이까. 식이 요소[大]를 성취하나이까?”
답하셨다.
“요소가 식을 성취하느니라?”
또 물었다.
“식이 어디에 의지하나이까?”
답하셨다.
“여러 가지 요소[大]이니라.”
012_0533_b_17L又問何者盡苦本答曰無盡識是也無頂相菩薩復問大成就識成就大答曰大成就識又問所猗耶答曰諸大
또 물었다.
“땅[地]ㆍ물[火]ㆍ불[水]ㆍ바람[風]ㆍ허공[空]이 땅ㆍ물ㆍ불ㆍ바람ㆍ허공을 여의면 식의 소재가 되나이까?”
답하였다.
“식은 소재가 없느니라.”
또 물었다.
“멸진하나이까?”
답하였다.
“아니니라.”
012_0533_b_20L又問地水火風空離地水火風空識爲所在答曰識無所在又問滅盡耶答曰非也
012_0533_c_01L또 물었다.
“멸하지 않나이까?”
답하였다.
“아니니라.”
또 물었다.
“식이 취(趣)도 아니고 취 아님도 아니면, 이 법은 열반이 아닙니까?”
답하시었다.
“아니니라.”
또 물었다.
“식과 열반이 다르나이까?”
답하시었다.
“다르지 않느니라.”
012_0533_b_22L又問滅耶答曰非也又問識非趣非不趣此法非泥洹乎答曰非也又問洹有異乎答曰不異
또 물었다.
“열반에 4대(大)가 있나이까?”
답하시었다.
“열반에 4대(大)는 없느니라.”
또 물었다.
“열반에 식(識)이 있나이까?”
답하시었다.
“열반에 식은 있느니라.”
또 물어 여쭈었다.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식과 열반의 식에 어떤 차별(差別)이 있나이까?”
답하시었다.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식은 돌고[轉], 열반의 식은 돌지 않나니, 이것을 차별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3_c_02L又問有泥洹四大答曰無泥洹四大也又問有泥洹識答曰有泥洹識又問地水火風識及泥洹識有何差別答曰地水火風識轉泥洹識不轉是謂差別
또 물어 여쭈었다.
“땅ㆍ물ㆍ불ㆍ바람이 식을 여읜 것과 열반이 식을 여읜 것에 어떤 차별이 있나이까?”
답하시었다.
“4대(大)는 식을 여의지만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을 여의지 못하고, 열반은 식을 여의고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을 영원히 여의느니라.”
012_0533_c_06L又問水火風離識泥洹離識有何差別四大離識不離過去當來現在洹離識永離過去當來現在
또 물어 여쭈었다.
“4대(大)를 여의는 식과 열반을 여의는 식, 이 식이 4대(大)에 있지 않는 것과 열반에 있지 않는 것이 다시 다르나이까?”
답하시었다.
“아니니라.”
또 물어 여쭈었다.
“4대(大)가 식을 여의는 것과 열반이 식을 여의는 것이 다르지 않나이까?”
답하시었다.
“다르지 않느니라.”
012_0533_c_09L又問四大識離泥洹識此識未在四大在泥洹復有異乎答曰非也又問大離識泥洹離識不異乎答曰不異
또 물어 여쭈었다.
“식은 열반에 처해서 무위법(無爲法)을 이루고, 식은 4대(大)에 처하여 유위법을 이루니 구별되지 않습니까?”
답하시었다.
“구별되지 않느니라.”
또 물어 여쭈었다.
“만일 구별되지 않는다면, 이 유위식과 이 무위식이 어떻게 다르나이까?”
답하시었다.
“유위(有爲)의 식은 4대(大)를 성취하고 무위(無爲)의 식은 4대(大)를 성취하지 않나니, 이런 까닭에 차이가 있느니라.”
012_0533_c_12L又問識處泥洹成無爲法識處四大成有爲法不別耶答曰不別又問使不別云何此有爲識此無爲識何異答曰有爲識成就四大無爲識不成就四大是故有異
이때에 무정상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4대(大)를 여읜 식과 열반을 여읜 식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나이다. 왜냐하면 식이 4대(大)에 있으면 문득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이 있고, 식이 열반에 있으면 문득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이 없나이다. 이 식과 저 식이 다시 차이가 있나이까?”
답하시었다.
“다르지 않느니라.”
012_0533_c_17L爾時無頂相菩薩前白佛言世尊離四大識離泥洹識亦不一亦不二何以故識在四便有過去當來現在識在泥洹便無過去當來現在也此識彼識復有異耶答曰不異
012_0534_a_01L또 물어 여쭈었다.
“무든 까닭으로 4대(大)의 식과 이 열반의 식을 말씀하시었나이까?”
답하시었다.
“이름을 빌려 말했을 뿐이지 진리의 가르침은 아니니라.”
그때 무정상보살은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질문한 바는 4대(大)가 식을 여의어서 과보의 행이 있다는 것인데, 이제 과보의 행이 없음으로써 나에게 갚음이 장차 없다면, 나의 질문이 잘못된 것인가, 나에게 갚음이 잘못된 것인가?’
012_0533_c_22L又問何以故說此四大識此泥洹識答曰假號非誠諦教無頂相菩薩內自思惟我今所問四大離識有果報行今以無果報行報我將無我問非耶報我非乎
부처님께서 저 무정상보살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문득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유위의 4대(大)의 식은 무위의 4대(大)의 식이 아니고, 무위의 4대(大)의 식은 유위의 4대(大)의 식이 아니다. 어떠한가? 4대(大)의 식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또 물으시었다.
“4대(大)의 식도 아니요 열반의 식도 아니라면 무식(無識)이 아니냐?”
012_0534_a_02L爾時世尊知彼無頂相菩薩心中所便告無頂相菩薩曰有爲四大識非無爲四大識無爲四大識非有爲四大識云何四大識非此非彼乎非也又問非四大識非泥洹識無識耶
대답하였다.
“식은 멸하면서도 식은 멸하지 않나이다.”
“어째서 식이 멸하느냐?”
대답하였다.
“나타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나이다.”
“어째서 식은 멸하지 않느냐?”
대답하였다.
“나타나 존재하기 때문이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식이 멸하는 일이 있느냐?”
012_0534_a_08L答曰識滅識不滅 云何識滅答曰非現在 云何識不滅答曰現在又問識有滅耶
대답하였다.
“나타나 존재하면 있습니다.”
또 물으시었다.
“무위의 법[無爲法]은 다시 나타나 존재하는가?”
대답하였다.
“아니옵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유위의 법(有爲法)도 다시 나타나 존재하는가?”
대답하였다.
“아니옵나이다.”
012_0534_a_10L答曰現在又問無爲法復現在耶答曰不也又問有爲法復現在耶答曰不也
또 물으시었다.
“유위와 무위의 모습[有爲無爲相]이 나타남도 아니고 나타나지 않음도 아니면, 무엇에 의지하고 있느냐?”
대답하였다.
“의지할 바 없음에 의지하나이다.”
또 물으시었다.
“좋다. 식은 의지함이 있느냐?”
대답하였다.
“식은 의지함이 없나이다.”
012_0534_a_12L又問有爲無爲非現非無現爲何所依答曰依無所依又問善哉識有依耶答曰無依
또 물으시었다.
“어떻게 식은 유계(有界)에 의지하고 있느냐.”
대답하였다.
“삼계가 있나이다. 신계(身界)ㆍ법계(法界)ㆍ공계(空界)를 삼계라고 이르나이다.”
그때 무정상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여쭈었다.
“염오(染汚)가 있는 식과 염오가 없는 식이 있나니, 어째서 염오 없는 식이 염오의 식을 이루었나이까?”
012_0534_a_15L又問云何識無有依有界耶有三界身界法界空界是謂三界無頂相菩薩前白佛言有染污識無染污識云何無染污識而成染污識
012_0534_b_01L부처님께서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염오의 식이 움직이면 염오 없는 식이 되지만, 염오 없는 식은 염오의 식이 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식의 성품은 항상 머물고 또한 변역(變易)하지 않으며, 생겨나고 멸하고 집착하고 끊음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런 까닭에 움직이는 식은 머무는 식이 되지만 머무는 식은 움직이는 식이 되지 않느니라.”
이때 부처님은 다시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부처를 이루어서 삼계에서 특히 존귀하다. 뭇 상호를 갖추었고, 4무외(無畏)와 18불공법(不共法)의 여러 가지 덕을 널리 갖추었다. 지금 머무는 식은 얻었지만 움직이는 식은 아직 못 얻었다.”
012_0534_a_18L佛告無頂相菩薩曰染污識動爲無染污識無染污識不爲染污識何以故識性常住亦不變易無生滅著斷是故動識爲住識住識不爲動識爾時世尊復告無頂相菩薩吾今成佛三界特尊衆相具足四無所畏八不共法衆德普備今得住識未得動識
무정상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째서 머무는 식은 얻으셨으나 움직이는 식은 얻지 못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른바 움직이는 식은 유위의 법계요 머무는 식은 무위의 법계이니, 무위의 식이 유위의 식을 이루지는 않느니라. 이 까닭으로 움직이는 식은 머무는 식을 이루지만 머무는 식은 움직이는 식을 이루지 않느니라.”
이때 부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정상보살 및 백천의 하늘과 인간들이 모두 무상입주식행(無上立住識行)을 발하였고, 수없는 중생들이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을 모두 발하였다.
그때 무정상보살이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지어 읊었다.
012_0534_b_03L無頂相菩薩前白佛言世尊云何住識不得動識佛言所謂動識有爲法界所謂住識無爲法界非無爲識成有爲識以是故動識成住識非住識成動識是時世尊說此語時無頂相菩薩及百千天人皆發無上立住識行無數衆生皆發無上正眞道意無頂相菩薩卽於佛前而作頌曰

뭇 상호를 갖추어서
여래의 몸 이루시고
삼계(界)에 집착하지 않으시니
텅 빈[空] 것처럼 나[我]가 없으시네.
012_0534_b_11L衆相具足
成如來身
不著三界
如空無我

마음의 때[心垢] 모두 없애시고
신통이 자재하시지만,
움직이는 식에 미침을 말미암아
머무는 식엔 미치지 못하시네.
012_0534_b_13L已除心垢
神通自在
由逮動識
不逮住識

법계는 비고 공하여
또한 변하며 바뀌지 않으니,
여래는 오래도록 그대로라서
마땅히 머무는 식에 미치셨네.
012_0534_b_14L法界虛空
亦不變易
如來久如
當逮住識

지나간 세상의 부처님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으신데
머무는 식을 얻기 위해서
모조리 움직이시는 식인가.
012_0534_b_15L過去如來
數如恒沙
爲得住識
悉動識乎

제가 지금 의심이 있사와
법계에 통달하지 못하오니
오직 원하오니, 불쌍히 여겨서
망령된 상념을 없게 하소서.
012_0534_b_17L我今有疑
不達法界
唯願垂愍
令無妄想

중생의 뜻[志趣]과
성행(性行)은 똑같지 않아서
묘한 공(空)을 설하심을 듣고도
근원을 캐어 연구하지 않나이다.
012_0534_b_18L衆生志趣
性行不同
聞說妙空
不究根原

허공은 모습이 없어서
행이 한결같고 평등한데
어째서 머무는 식이
곧 청정이라 말할까.
012_0534_b_19L虛空無相
行一平等
云何住識
乃謂淸淨

지금처럼 때가 이르렀으니
마땅히 연설하고 창달할지니,
본제(本際)의 신통과 슬기는
매우 기특하여 드무네.
012_0534_b_21L如今時至
宜爲演暢
本際通慧
甚奇難有

네 가지 무리가 무외(無畏)해서
머무는 식과 움직이는 식,
그 성품을 분별해서
다 들어 알고자 하네.
012_0534_b_22L四輩無畏
咸欲聞知
住識動識
分別其性
012_0534_c_01L
지나간 세상의 부처님도 늘 그러해서
법계는 평등하고,
오는 세상 여러 성현들의
법성(法性)도 또한 그러하리.
012_0534_b_23L過佛常爾
法界平等
當來諸聖
法性亦然

지금의 중생처럼
고요함에 들어가 어지럽지 않다면,
다시 어느 식(識)으로부터
정의 뜻[定意]을 얻으랴.
012_0534_c_02L如今衆生
入寂不亂
復從何識
而獲定意

지금의 이 정의 뜻은
영원히 적멸해서 메아리 없나니,
이것이 머무는 식이 되는가.
이것이 움직이는 식이 되는가.
012_0534_c_03L今此定意
永寂無響
爲是住識
爲是動識

원하나이다. 낱낱이
법계의 근본을 설하여서
얽힌 의심 영영 끊어주시고
망설임을 품지 않게 하소서.
012_0534_c_04L願一一說
法界根本
永除疑結
不懷猶豫

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시 게송으로써 무정상보살에게 답하시었다.
012_0534_c_06L爾時世尊復以此偈報無頂相菩薩曰

지나간 세상의 여러 부처님
신령스런 지혜가 다함없었으니.
몸은 비록 멸도(滅度)를 취했지만
머무는 식은 변하거나 바뀌지 않도다.
012_0534_c_07L過去諸如來
神智無有窮
雖身取滅度
住識不變易

움직이는 식에 두 가지[二品] 있으니
머무는 식과 머물지 않는 식이라네.
설사 무위의 경계에 들어가더라도
두 이름은 보지 못하리.
012_0534_c_09L動識有二品
有住不住識
設入無爲境
不見二名號

여래는 집착한 바 없어
편하고 밝음이 산처럼 부동이고
그 행의 초월이 더불어 견줄 이가 없지만
열등한 이들을 불쌍히 여겨 제도하시네.
012_0534_c_10L如來無所著
安明山不動
行過無與等
愍度下劣者

나라 안의 여러 촌락은
뭇 도움[祐]이 경과하지만,
식(識)이 아니면 이를 말미암지 못하니,
움직이고 머무는 식[動住識]을 의심하게 되네.
012_0534_c_11L國界諸村落
衆祐所經過
非識不由此
爲疑動住識

수없는 겁으로부터
온갖 부처님은 헤아리기 어렵지만,
부처님 식(識)의 움직이는 머묾과
움직이지 않는 머묾을 세고자 하네.
012_0534_c_13L設從無數劫
難計諸如來
欲筭如來識
動住不動住

부처님 지혜는 끝없고
식(識)은 한량없는 법을 두루하며
몸의 상(相)에는 큰 서원 갖추었어도
무상(無相)이라서 볼 수 없어라.
012_0534_c_14L佛慧無邊崖
識周無量法
身相弘誓備
無相不可見

내가 처음 태어난 때에
천지가 환하게 밝아
마음을 잡아서 큰 서원 굳힘은
형상 없는 무위의 식(識)이라네.
012_0534_c_15L當我初生時
天地豁然明
執心弘誓牢
無形無爲識

복과 지혜가 족해서 사람 중의 존자이니
마치 코끼리가 갈고리와 사슬을 여읜 듯
좋은 음악 소리 저절로 그러하게
허공 속에 충만하였노라.
012_0534_c_17L二足人中尊
如象離鉤鎖
自然音樂伎
充滿虛空中

수없는 여러 하늘과 인간
각기 예경(禮敬)을 하고
저마다 몇 마디 게송으로
여래의 덕을 노래하고 찬탄했네.
012_0534_c_18L無數諸天人
各自修禮敬
各以若干頌
歌歎如來德

등정각(等正覺)에 이르자
눈으로 보아도 싫은 것 없어
위없는 법륜을 굴려서
비할 수없는 법 연설했네.
012_0534_c_19L以逮等正覺
目視無厭足
轉無上法輪
演說無比法

온갖 중생의 무리는
존귀한 성현의 가르침 받드나니,
지난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을 세지 않고
부처님[世雄]은 사자와 같아라.
012_0534_c_21L一切衆生類
宗奉尊聖教
不計去來今
世雄如師子

무수한 겁 동안 공을 쌓아서
총지(摠持)의 행 잃지 않으셨고
4무소외(無所畏)으로
뭇 사람을 윤택하게 이익 주셨네.
012_0534_c_22L積功無數劫
不失摠持行
四等無所畏
潤益一切人
012_0535_a_01L
도의 열매[道果]로 스스로 장엄하시고
수명을 나의 수명으로 세지도 않으며
상이 없어서[無相] 응당 정각을 이루니.
마치 허공이 걸림 없는 것과 같네.
012_0534_c_23L道果自莊嚴
不計壽吾我
無相應正覺
如空覆無㝵
오늘 다섯 가지 눈[五眼]을 얻었지만
부주처(不住處)에는 아직 머무르지 못해,
뒤바뀜 없음[不顚倒]을 품고 와서
머묾이 없어서 식(識)을 보지 못하여라.
012_0535_a_02L今日得五眼
未住不處住
懷來無顚倒
無住不見識

여래의 수특(殊特)한 지혜는
무상법(無相法)으로 이루니
행이 다해도 이지러진 바 없으며,
돈도 아니고 세간의 영화도 아니니라.
012_0535_a_03L如來奇特慧
印以無相法
行盡無所缺
無財非世榮

한결같은 행의(行意)이고 한 생각[一念]이라서
보살의 관(觀)은 어지러움 없나니,
움직이는 식은 온갖 식이 묘하므로
머무는 식만이 으뜸은 아니어라.
012_0535_a_04L一行意一念
菩薩觀無亂
動識衆識妙
住識非第一

생각하니, 지나간 세상의 부처님과
바야흐로 오는 세상의 부처님,
그리고 내가 지금 현재 있음은
머묾을 말미암아 증명해 이루지 않았네.
012_0535_a_06L思惟過去佛
及以方當來
如我今現在
不由住識成

여래의 세 가지 통달한 지혜[三達智]는
짝도 없고 또한 동반자도 없으니,
행의 지나감은 멸할 수 없고
식의 소재도 보지 못하네.
012_0535_a_07L如來三達智
無偶亦無伴
行過不可滅
不見識所在

이때 부처님께서 다시 거듭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몸이 없는 몸의 식(識)과 몸이면서 몸이 없는 식, 이 법에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몸으로 들어오는 열여섯 가지 밖의 번뇌를 받더라도 몸의 식을 낱낱이 분별해서 청정한 경지에 이르면, 이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法淸淨瓔珞)이라 말하느니라.
몸 없는 식으로 몸의 식을 일으키더라도 그 가운데 분별함은 모조리 다시 즐겨함을 말미암음이니,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 말하느니라.
012_0535_a_08L爾時世尊復重告菩薩曰無身身識身無身識此法有六云何爲六若有善男子善女人身入十六受外塵垢身識一一分別乃至淨地是謂一法淸淨瓔珞以無身之識以起身識中分別悉由更樂是謂二法淸淨瓔
내가 옛적에 소원이 있었으니, 그 몸의 상호를 닦는 데 행이 백 다섯이 있었다. 그래서 몸의 상호에 다시 백 다섯이 있어서 몸의 상호를 이루었다고 말했으니, 이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지나간 세상 아주 먼 때에 중생은 이미 멸하였다. 그에게 몸을 받으매 유위와 무위, 행의 있음과 행의 없음, 좋음과 추악함, 고통과 즐거움이 있었고, 하나하나 법계와 비법계를 분별해서 이것은 법계의 신식(身識)이고 이것은 법계의 신식이 아니라 하니, 이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5_a_15L吾昔有願修其身相有行百五謂身相復有百五乃成身相是謂三法淸淨瓔珞過去久遠衆生已滅彼受身有爲無爲有行無行若好若有苦有樂一一識別法界非法界此法界身識此非法界身識是謂四法淸淨瓔珞
012_0535_b_01L신식(身識)이 색(色)을 짓는데, 다시 열 가지 일[十事]이 있다. 진신화체(眞身化體)는 또한 단서(端緖)가 없으니, 저 신식(身識)이 취향해도 향할 바 없음을 아니, 이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신식의 근본을 요달하는 데는 세월이 똑같지 않으니, 본래의 몸과 지금의 몸이 변하고 바뀌어서 머물러 있지 않다. 본래 받은 형태가 지금 변하였음을 알지라도 문득 그 가운데에서 능히 신식을 잃지 않나니, 이것을 여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 하느니라.
다시 다음으로 족성자야, 다시 여섯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들이 여섯 가지인가?
012_0535_a_21L身識造色復有十事身化體亦無端緖知彼身識趣無所是謂五法淸淨瓔珞了身識本歲日不同本身今身變易不住知本受形今亦變易便能於中不失身識謂六法淸淨瓔珞復次族姓子復有六事云何爲六
몸의 행이 청정하여 뭇 악한 행을 짓지 않고, 입도 또한 청정하여 삿된 업[邪業]을 말하지 않고, 뜻으로 청정함을 닦아서 뭇 번뇌를 짓지 않으니, 이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허물의 몸은 이미 멸할지라도, 선도 있고 죄도 있으며, 착한 몸과 착한 복은 선의 식(識)을 분별하고 악한 몸과 악한 업은 악의 식을 분별해서 선악의 신식을 하나하나 사유하니,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5_b_04L身行淸淨不爲衆惡口亦淸淨不說邪業意修淸淨不造衆塵是謂一法淸淨瓔珞過身已滅有善有罪善身善福分別善識惡身惡業分別惡識一一思惟善惡身識是謂二法淸淨瓔珞
6신상(身相)의 법은 선을 여의고 악을 여의어서 다시 능히 생각[念]을 일으키어 신식을 버리지 않으며, 또 때로 중생은 몸이 청정하면 청정한 식이 있음을 계교하고, 몸이 청정치 못하면 청정치 못한 식이 있음을 계교하는데, 그 가운데서 청정한 신식과 청정하지 못한 신식을 분별하나니, 이것을 셋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생각건대, 본래 지은 유위의 몸과 무위의 몸,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의 몸을 모조리 능히 분별하여 신식을 잃지 않나니, 이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5_b_09L六身相法離善離惡復能起念不捨身識又時衆生計身淸淨有淸淨識計身不淸淨有不淸淨識於中分別淨身識不淨身是謂三法淸淨瓔珞憶本所造有爲身無爲身過去未來現在身悉能分別不失身識是謂四法淸淨瓔珞
마음에 염(念)하는 법은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니, 똑똑히 기억하고 잊지 않아서 식이 일어나는 바를 아나니, 이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형상이 없는 식의 몸에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 하는가? 물들어 집착함이 있는 몸과 물들어 집착함이 없는 몸, 형상이 있는 몸과 형상이 없는 몸, 식이 있는 몸과 식이 없는 몸, 속(俗)이 있는 몸과 도(道)가 있는 몸, 하나의 몸과 하나가 아닌 몸이니라. 이들 가운데서 모조리 다 분별하나니, 이것을 여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5_b_15L心所念法非一非二强記不忘知識所起是謂五法淸淨瓔珞無形識身復有五事云何爲五有染著身無染著身有形身無形身有識身無識身有俗身有道身有一身有非一身於中悉皆分別是謂六法淸淨瓔珞
012_0535_c_01L부처님께서 무정상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여섯 가지 일이 있나니, 어떤 것들이 여섯이 되는가.
다함이 없는 법신과 다함이 있는 법신에서 있음[有]과 없음[無]을 분별하여 법식(法識)이 청정하나니, 이것을 첫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무위의 법성에는 그 행에 더하고 덜함이 없으니, 법에 선이 있음을 알고 법에 선이 없음을 알며, 생겨나는 법이 있음을 알고 멸하는 법이 있음을 알며, 법의 식을 깨달아서 법의 성품을 잃지 않나니, 이것을 둘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5_b_21L佛告無頂相菩薩復有六事云何爲六盡法身有盡法身分別有無法識淸是謂一法淸淨瓔珞無爲法性行無增減知法有善知法無善知有生法知有滅法曉了法識不失法性謂二法淸淨瓔珞諸本小第三法
항상 머물러 있는 몸, 항상 머물지 않는 몸, 법이 항상 머물러 있지 않아서 항상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고, 여러 가지 법이 항상 머물러 있어서 또한 항상 머물러 있음을 알고, 여러 가지 법의 머무는 식과 머묾이 없는 식을 사유하니, 이것을 넷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여러 가지 법이 고요하니 여러 가지 법의 색(色)도 마찬가지로 고요하다. 유위의 비식(非識)으로 유위의 식을 알고, 무위의 비식으로 무위의 식을 알아서 법계를 잃지 않음을 사유하나니, 이것을 다섯째의 법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법신은 수가 없고 형상이 없어서 볼 수가 없으니, 눈의 경계로 거두어 잡을 바가 아니다. 처음 뜻을 발하면서부터 두 상념을 일으키지 않은 채 여러 가지 법을 분별하여 법신을 잃지 않나니, 이것을 여섯 째 법의 청정영락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5_c_04L有常住身無常住身法不常住知不常住諸法常住亦知常住思惟諸法住識無住識是謂四法淸淨瓔珞諸法寂然諸法色亦復寂然有爲非識知有爲識無爲非識知無爲識思惟不失法界是謂五法淸淨瓔珞法身無數無形不可見非眼界所攝從初發意不起二想分別諸法不失法身是謂六法淸淨瓔珞
菩薩瓔珞經卷第二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