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菩薩瓔珞經卷第三

ABC_IT_K0385_T_003
012_0536_a_01L보살영락경 제3권
012_0536_a_01L菩薩瓔珞經卷第三一名現在報


축불념 한역
장용서 번역
012_0536_a_02L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6. 식계품(識界品)
012_0536_a_03L識界品第六

그때 좌석에 이름이 호현(豪賢)이라고 하는 보살이 있었다. 이에 동쪽 16항하 모래 수효의 찰토로부터 이 세계에 이르러서 영락의 묘법(妙法)을 듣고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드러내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들어주신다면 감히 여쭙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족성자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낱낱이 분별해 말하겠노라.”
012_0536_a_04L爾時座上有菩薩名曰豪賢乃從東方十六恒沙剎土來詣此界聽受瓔珞妙法卽從座起偏露右臂長跪叉白佛言唯然世尊若見聽者乃敢陳啓世尊告曰善哉善哉族姓子當與汝一一分別
그때 호현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어떻게 식이 온갖 식의 경계를 가지나이까? 가령 부처님께서는 ‘식(識)은 유위를 따르지 무위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셨으며, 또다시 말씀하시기를 ‘식은 무위를 따르지 유위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셨나이다. 무엇을 이 식이고 저 식이라 하시며 이름하여 식계(識界)라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호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식은 식의 있음[有識]이 아니라 법으로부터 식을 낳느니라.”
012_0536_a_10L爾時豪賢菩薩白佛言世尊云何識持諸識境界如世尊言識從有爲不從無爲又復說言識從無爲不從有爲云何此識彼識名曰識界乎佛告豪賢菩薩曰識非有識從法生識
호현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식은 식의 있음이 아니라 법으로부터 식을 낳는 것이옵나이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식은 항상하는 식이 아니라 법에 따라 식이 있느니라.”
또 여쭈었다.
“어떤 것을 식이라 하시나이까?”
“온갖 식에 두루함이 온갖 법을 앎이니, 이를 식은 항상하는 식이 아니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6_a_15L豪賢白佛言云何識非有識從法生識答曰識非常識法有識又問云何爲識遍一切識知一切法是謂識非常識
또 여쭈었다.
“식에 지혜가 있나이까. 지혜가 없나이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식은 지혜가 있어도 여여(如如)하고, 식은 지혜가 없어도 여여하니라. 온갖 중생의 식은 지혜가 있어서 여여하고, 무학(無學)의 성현들 식은 지혜가 없어도 여여하니라. 족성자야, 이것을 식이 있어도 여여하고 식이 없어도 여여하다고 하느니라.”
012_0536_a_18L又問識有智爲無智耶答曰識有智如如識無智如如一切衆生識有智如如無學賢聖識無智如如是謂族姓子有識如如無識如如
012_0536_b_01L또 물어 여쭈었다.
“무엇이 식이 있는 것이며, 무엇이 식이 없는 것이옵나이까. 무엇이 식이 있어도 여여함이고, 무엇이 식이 없어도 여여함이옵나이까?”
답하여 말씀하셨다.
“식이 있는 지혜와 식이 없는 지혜의 여여함을 능히 다 분별할 수 있으니, 이것을 식계(識界)를 분별한다고 말하느니라.”
호현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여래께옵서 지금 선정의 뜻과 식의 뜻을 말씀하셨지만 더욱 갑절이나 의심이 나나이다.”
012_0536_a_22L又問云何有識云何無識云何有識如如云何無識如如答曰悉能分別有識智無識智如如是謂分別識界豪賢菩薩白佛言來今說定義識義倍生狐疑
부처님께서 호현에게 말씀하셨다.
“똑똑히 듣고 똑똑히 들어라. 그리고 잘 사유하고 생각하여라. 지혜의 식과 비지혜의 식이 있으며, 혹은 법(法)의 식과 비법(非法)의 식이 있느니라.
무엇을 법의 식이고 비법의 식이라 하는가? 가장 으뜸가는 뜻[第一義]에서부터 벽지불까지 이르는 것을 법의 식이라 말하고, 견지(見地)ㆍ박지(薄地)ㆍ성지(性地)ㆍ무애지(無碍地)에서부터 일생보처까지 이르는 것을 법의 식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6_b_04L佛告豪諦聽諦聽善思念之或有智識非智識或有法識非法識云何法識非法識從最第一義至辟支佛是謂法從見地薄地性地無㝵地至一生補處是謂法識
법의 식에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도의 지혜에 나아가는 것이요, 둘째는 전생의 일을 인식하는 것이며, 셋째는 분별 지혜에 나아가는 것이요, 넷째는 공문(空門)에 들어가는 것이요, 다섯째는 마음의 근본을 관(觀)하는 것이니, 이것을 법의 식이 다섯 가지 일을 성취한다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섯 가지 일이 법식을 성취함이 있으니, 무엇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범행(梵行)을 닦아서 3독(毒)에 의지하지 않고, 둘째는 포태(胞胎)에 처하되 생사에 물들지 않고, 셋째는 무상(無相)ㆍ공(空)ㆍ무원(無願)을 행하고, 넷째는 신통을 닦아서 신족(神足)이 걸림이 없고, 다섯째는 깨달음의 뜻[覺意]이 한 모습[一相]이면서 무상임을 세우는 것이니, 이것을 법식(法識)의 청정을 성취함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6_b_09L法識復有五事云何爲五一趣道慧二識宿命三趣分別四入空門五觀心本是謂法識成就五事復有五事成就法識云何爲一修梵行不猗三毒二處胞胎不染生死三行無相空無願法四修神通神足無㝵五立覺意一相無相謂成就法識淸淨
부처님께서 다시 호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법식청정에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인가? 식의 변하지 않음을 배워서 배움의 자취를 사유하고, 배움도 없고 자취도 없어서 법의 취향을 보지 않고, 유(有)의 가르침도 보지 않고 또한 무(無)의 가르침도 보지 않고, 또한 다시 도의 성품과 비도(非道)의 성품을 보지 않고, 도의 뜻을 내는 것과 도의 뜻을 내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것을 법식이 다섯 가지 일을 성취한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6_b_16L佛復告豪賢菩薩法識淸淨復有五云何爲五學識不變思惟學迹學無迹不見法趣不見有教亦不見無教亦復不見道性非道性有生道意不生道意是謂法識成就五事
012_0536_c_01L법식의 정(定)을 관하는 데에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정이 본래의 더러움을 멸하여 처소를 보지 않고, 둘째는 한량없이 공적한 정의 뜻을 염(念)하고, 셋째는 도의 근본을 세워서 도와 만나지 않고, 넷째는 마음이 염(念)을 끊어서 도량에 앉기를 구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복전(福田)을 닦아서 망령된 생각을 없애는 것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일의 법식청정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6_b_21L法識定復有五事云何爲五一定滅本垢不見處所二念無量空寂定意三建道本不與道會四心斷念求坐道場五修福田蠲除妄想是謂五事法識淸淨
무생(無生) 법식에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인가? 식으로 과거를 관(觀)하여 생멸을 일으키지 않으며, 식으로 현재를 관하여 생멸을 보지 않으며, 식으로 미래를 관하여 생멸을 보지 않으며, 식으로 근본과 말단을 관하여 생멸을 보지 않으며, 식으로 여여(如如)한 성품을 관하여 생멸을 보지 않음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일의 법계청정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6_c_02L無生法識復有五事云何爲五識觀過去不起生滅識觀現在不見生滅識觀未來不見生滅識觀本末不見生滅識觀如性不見生滅是謂五事法界淸淨
부처님께서 다시 호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등정각은 다시 마땅히 법식을 닦아 익혀야 한다. 음향의 통함에 열한 가지 행이 있으니, 어떤 것들이 열한 가지인가.
법계에 집착함이 없어서 식의 근본을 보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 신족의 도행(道行)을 갖추느니라.
법계의 식을 깨끗이 닦고자 하거든, 최초의 뜻을 산처럼 하고 담이나 벽처럼 해서 점점 몸의 근본까지 사유하여 몸을 알고 몸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다시 몸을 버리고 나서는 마음을 알고 마음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012_0536_c_06L佛復告豪賢菩如來等正覺復當修習法識音響通有十一行云何爲十一法界無著不見識本於中具足神足道行欲得淨修法界識者初意如山如牆壁漸乃至思惟身本知身離身復捨身已知心離心
다시 마음을 여의고 나서는 공을 알고 공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다시 공을 버리고 나서는 하나의 뜻으로부터 백천(百千)의 뜻에 이르도록 화(化)하지 못한 뜻을 모두 능히 닦느니라. 다시 화법(化法)을 알아서 가진 바가 없으니, 이것을 법식이 신족의 도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무신식(無身識)으로 신식의 행(身識行)을 닦고 혹은 신식으로 무신식의 행을 지어서 신식(身識)과 비신식(非身識)을 식별하니, 이것을 법식이 신족의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6_c_12L復離心已知空離空捨空已還從一意至百千意未化之意盡能修之復知化法而無所有謂法識起神足道以無身識修身識或以身識造無身識行識別身識非身識是謂法識修神足行
둘이 없는 법에서 일체의 모든 법을 분별하여 그 가운데에서 등정각을 이루는데, 생식(生識)을 보지 않고 등정각을 이루어 지나간 세상의 억백천의 수(數)를 다 능히 분별하여 온갖 음(陰)에 들어가 지님으로서 중생 본행의 나아갈 바를 잃지 않으니, 이것을 법식이 신족의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화함이 없는 법은 변하여 바뀜을 보지 못하고 그 가운데에서 식(識)을 지음을 궁진(窮盡)할 수 없으니, 이것을 법식이 신족의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6_c_17L於無二法分別一切諸法於中成等正覺見生識成等正覺過去億百千數悉能分別諸陰入持不失衆生本行所是謂法識修神足行無化之法見變易於中造識不可窮盡是謂法識修神足行
012_0537_a_01L그리하여 정(定)에 들어가 공계(空界)를 분별하고 다시 몸을 스스로 헤아리되 역시 그와 다름없게 하니, 이것을 법식이 신족의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온갖 세계를 관해도 또한 다함을 보지 못하지만, 온갖 세계의 성계(成界)나 불성계(不成界)를 모조리 능히 알아내니, 이것을 법식이 신족의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대저 법계식(法界識)은 5음의 형상[五陰形相]을 이루어서 생멸이 있는데, 5음에 생멸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을 법식이 신족의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6_c_23L於是入定分別空界自計身如彼無異是謂法識修神足觀諸世界亦不見盡一切世界成界不成界悉能了知是謂法識修神足行夫法界識成五陰形有生有滅不見五陰有生滅者是謂法識修神足行
법계는 집착함이 없어서 형상을 보지 않느니라. 지나간 식은 지금이 아니요, 지금의 식은 지나감이 아니라서 현재 인연의 본말을 보지 않으니, 이것을 법식이 신족의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법의 성품이 일으키는 일체 모든 법을 하나하나 분별해서 소굴(巢窟)을 보지 않고, 뜻을 거두어 잡고 상념을 멸해서 또한 지(智)를 낳지 않으니, 이것을 법식이 신족의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아서 일어나고 멸함을 보지 않으며, 다시 나고 멸하는 법을 능히 사유하면 본성은 스스로 그러해서 일상(一相)이 무상이니, 이것을 족성자(族姓子)야, 보살이 닦는 신족의 행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7_a_05L法界無著不見形相過識非今今識非過不見現在因緣本末是謂法識修神足行一一分別法性所起一切諸法不見窠窟攝意滅想亦不生智是謂法識修神足行諸法不生不見起滅復能思惟生滅之法本性自然一相無相是謂族姓子菩薩所修神足之行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집착이 없는 법계에 다시 열 가지 일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문득 3세(世)의 몸의 식상(識想)을 갖추시었는데,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無我行)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세 가지 멸하는 법으로 점차적으로 중생을 교화하는데, 멸함을 보지 않기도 하고, 또한 멸하지 않음을 보지 않기도 하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7_a_12L佛復告族姓子無著法復有十事云何爲十如來至眞正覺出現於世便能具足三世身識是謂法識修無我行漸化衆生以三滅法亦不見滅亦不見不滅是謂法識修無我行
글 뜻을 분별하여 낱낱이 요달해 알고, 다시 권혜(權慧)로써 본래의 업을 나타내 보이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 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네 가지 한량없는 지혜를 분별하고 사유해서 단멸(斷滅)과 항상함이 있는 상념을 보지 않으시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묘한 지혜로 중생을 다 교화하면서 큰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으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7_a_17L分別句義一一了知復以㩲慧示現本業是謂法識修無我行如來至眞等正覺分別思惟四無量慧不見斷滅有常之想是謂法識修無我行復以妙慧悉化衆生捨大慈是謂法識修無我行
012_0537_b_01L중생을 다 관하는데 순숙(淳淑)함이 있고 순숙치 않음이 있어서 부류에 따라 교화하되 그 성품을 버리지 않으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여래 세존께서 권도의 방편을 행하여 중생을 모두 교화하시면서도 교화된 이를 보지 않으시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부처님의 지혜는 한량이 없어서 성패(成敗)를 보지 않으므로 생겨남이 있고 멸함이 있음은 여래의 본래 서원이 아니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7_a_22L盡觀衆生有淳淑有不淳淑隨類而化不捨其性是謂法識修無我行如來世尊行權方便盡化衆生不見化者是謂法識修無我行佛慧無量不見成敗有生有滅非如來本誓是謂法識修無我行
부처님은 일상(一相)이어서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에 물들지 않고 의지함이 없는 행을 닦아서 지진 등정각에 이르렀으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무수(無數) 억천만 겁을 하루로 삼으시고, 하루 동안에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심이 말로 다할 수 없으니, 이것을 법식이 무아행을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7_b_05L如來一相不染過去當來現修無猗行乃逮至眞等正覺是謂法識修無我行如來至眞等正覺無數億千萬劫以爲一日於一日中化度衆生不可稱極是謂法識修無我行
부처님께서 다시 호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 무수 아승기겁 동안 스스로 형상 없는 법식을 수행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부처님의 명호는 홍서무원(弘誓無願)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세존(佛世尊)이라고 호칭하였다. 그 분은 법계의 집착 없는 행을 설하셨다. 대저 법계라 함은 107가지의 일이다. 어떤 것들이 107가지인가?
012_0537_b_10L佛復告豪賢菩薩曰過去無數阿僧祇劫自念修行無形法識有佛名曰弘誓無願如來至眞等正覺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號佛世尊爲說法界無著之夫法界者一百七事云何爲一百七事
공행(空行)을 구하지 않고, 항상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세상 보기를 꿈같이 하고, 스스로 ‘나’를 멸하고, 생식(生識)을 일으키지 않고, 계(界)의 모습을 분명히 밝히고, 망령된 소견을 영원히 끊고, 보시하는 마음[施心]을 거르지 아니하고, 마음이 항상 한결같아 무리 속에서도 어지럽지 않으며, 신식(身識)과 공식(空識)에 약간의 상념도 없으며, 보살은 헤아림을 두되 명호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법을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고 관하여 요달하느니라.
012_0537_b_16L不求空行不念有常觀世如夢自滅吾我生識不起分別界相永斷妄見施心不闕心常一定在衆不亂身識空識無若干想菩薩有數不著名號觀了諸法非一非二
012_0537_c_01L중생이 분노를 일으키면 문득 방편을 설하여 근본 신식의 행을 없애고, 12인연과 4성제(聖諦)의 지혜로 고통의 식이 있는가, 혹은 고통의 식이 없는가 하면서 고통의 근본을 사유하며,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존재하고,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여의고,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색(色)에 집착해도 식을 물들이지 않으며,
012_0537_b_20L衆生起恚便爲方便說除無本身識之行十二因緣四諦聖慧思惟苦本有苦識耶無苦識耶或時有識在眼耳鼻舌身或時有識離眼耳鼻舌身意或時有識著色不染識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색에 집착하지도 않고 식을 물들이지 않는다. 이 식은 미묘하여 퇴전(退轉)하지 않음을 보살은 능히 요달해 아는 바다.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소리에 집착해도 식을 물들이지 않으며,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소리에 집착하지도 않고 식을 물들이지도 않으며, 또한 음향도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청정식(淸淨識)이라 하느니라.
012_0537_c_02L或時有識不著色不染識此識微妙非退轉菩薩所能了知或時有識著聲不染識或時有不著聲不染識亦無音響故名淸淨識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향기에 집착해도 식을 물들이지 않고,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향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식을 물들이지도 않으니, 낱낱이 분별하면 법식을 잃지 않느니라.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맛[味]에 집착해도 식을 물들이지 않으며, 어느 때에는 맛에 집착하지도 않고 식을 물들이지도 않으니, 또한 다시 분별하면 차례를 잃지 않느니라.
012_0537_c_06L或時有識著香不染識或時有不著香不染識一一分別不失法或時有識著味不染識或時有識不著味不染識亦復分別不失次緖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몸의 더 많은 즐거움에 집착해도 식을 물들이지 않고,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몸의 더 많은 즐거움에 집착하지도 않고 식을 물들이지도 않으니, 낱낱이 분별하면 상념의 집착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어느 때에는 식을 두어서 모든 법은 일어나는 것인가, 멸하는 것인가, 유위의 법인가, 무위의 법인가, 정(定)이 있는가, 어지러움[亂]이 있는가를 요달해 안다.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식의 성품을 분별하면서도 물드는 바가 없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7_c_09L或時有識著身更樂不染識或時有不著身更樂不染識一一分別不起想著或時有識了知諸法起者滅者有爲法無爲法有定有亂是謂菩薩摩訶薩分別識性亦無所染
다시 족성자여, 네 가지 한량없는 지혜인 사랑[慈]ㆍ어여삐 여김[悲]ㆍ기쁨[喜]ㆍ보호[護]을 분별하여 일체에 두루 차도록 중생을 구호하되 또한 집착함이 없느니라. 어느 때에 어떤 족성자는 입정(入定)삼매로 하나의 법을 닦아 행하고, 하나의 법을 행한 뒤에는 문득 백천의 총지 법문을 얻었느니라. 마치 메아리와 같고 허깨비와 같아서 차츰차츰 나아가 멸진정의 뜻에 이르기까지 신행(身行)이 청정하여 악의 근본을 짓지 않으며, 마음에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하고 뭇 악을 베풀지 않아서 3세를 잘 알아 속박과 집착을 없애버린다. 이것을 족성자야, 보살의 바른 행은 일으키면서도 일으키지 않음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7_c_14L復次姓子分別四無量慧慈悲喜護遍滿一切救攝衆生亦無所著或時有族姓子入定三昧修行一法已行一法便獲百千摠持法門如響如幻漸漸乃至滅盡定意身行淸淨不造惡本心念慈心不施衆惡解知三世除去縛著族姓子菩薩正行有起不起
012_0538_a_01L다시 다음에 정(定)의 뜻의 법문이 있다. 일체의 모든 법이 와서 중(中)에 들어가면, 몸이 있어도 몸의 상념은 없고, 생각[念]이 있어도 생각의 뜻은 없으며, 하나도 없고 둘도 없어서 또한 다시 식(識)도 없다. 내가 옛적 무수 아승기겁에 처음 법률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이 행에 응했었다. 식법(識法)에 12인연을 짓는 근본이 있으니, 무명이 행을 반연하면서부터 늙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어나고 멸함을 보지 않는다. 이것을 정의 뜻이라고 말하며, 이름하여 다함없다[無盡]고 하느니라.
012_0537_c_21L復次有定意法門一切諸法皆來入中身無身想有念無念意無一無二亦復無識吾昔無數阿僧祇劫初入法律乃應斯行識法有十二造因緣本無明緣行乃至老死不見起滅是謂定意名曰無盡
이미 정의 뜻을 얻었으면 온갖 삼계의 나아갈 바를 다 알고 있다. 혹은 어떤 중생이 항상함의 상념이 있는가, 항상함의 상념이 없는가, 고통의 상념이 있는가, 고통의 상념이 없는가, 선정의 상념이 있는가, 선정의 상념이 없는가를 낱낱이 분별하여 염착(染着)을 일으키지 않느니라.”
012_0538_a_04L已得定意悉知一切三界所趣或有衆生有常想無常想有苦想無苦想有定想無定想一一分別不起染著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37품 도법의 요체를 닦아 행할 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들이 서른일곱인가?
이른바 4의지(意止)는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을 없애서 3독(毒)을 영원히 멸한다.
다시 4의단(意斷)의 법을 반드시 사유하여야 한다. 생각하여 구함을 끊어버려서 과보를 낳지 않으니, 그리하여 곧 4신족행(神足行)을 얻는다. 이미 신족을 얻었다면 시방 여러 부처님의 세계에 나아가서는 스스로 신족을 일컬어 말하지 않아야 않느니라.
012_0538_a_07L佛復告族姓子菩薩摩訶薩當念修行三十七品道法之何謂三十七所謂四意止除婬怒癡永滅三毒復當思惟四意斷法去念求不生果報乃獲四神足行得神足往至十方諸佛世界不自稱說神足
여래의 5근(根)이 법신을 성취하나니, 계의 몸ㆍ정의 몸ㆍ지혜의 몸ㆍ해탈의 몸ㆍ해탈지견의 몸, 이것을 여래의 5분법신(分法身)이라고 말한다. 여래의 신령스런 지혜는 법신을 훼손하지 않느니라.
어떤 것들이 5력인가? 믿음의 힘ㆍ정진의 힘ㆍ염(念)의 힘ㆍ정(定)의 힘ㆍ슬기의 힘이다.
이른바 ‘믿음의 힘’이란 한결같이 무위를 향하면서 삼계에 물들지 않음이니, 바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마군들을 변화시켜 부처로 만든다 해도 이 뜻은 능히 변동시킬 수 없다. 이것을 믿음의 힘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8_a_13L如來五根成就法身戒身慧身解脫身解脫知見身是謂如來五分法身如來神智不毀法身云何爲五力信力精進力念力定力慧力所謂信力者一向無爲不染三正使恒沙諸魔變形作佛不能變動此意是謂信力
012_0538_b_01L어떤 것을 정진의 힘이라 하는가? 이른바 ‘정진의 힘’이란 일찍이 들은 적이 있던 유법법계식(有法法界識)이 한 유순에 있거나 혹은 백천 유순까지 이르더라도, 한 부처님의 경계에 있거나 혹은 백천 부처님의 경계까지 있더라도 믿음을 지키고 계를 세워서 큰 서원을 버리지 않으니, 이것을 정진의 힘이라고 말하느니라.
어떤 것을 염(念)의 힘으로 삼는가? 이른바 ‘염의 힘’이란 이어진 생각[念]이 앞에 있어서 다른 나머지 상념이 없음이니, 바로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마군들과 그 권속을 시켜서 이 정의 뜻을 가진 이를 헐고자 하더라도 공연히 수고로울 뿐이지 그 뜻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염의 힘을 성취했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8_a_19L云何精進力所謂精進力曾聞有法法界識者或在一由延至百千由延或在一佛境界或百千佛境界守信立戒不捨弘誓謂精進力云何爲念力所謂念力者繼念在前無他餘想正使恒沙諸魔官屬欲來毀此定意者徒自勞苦不獲本願是謂成就念力
어떤 것이 정(定)의 힘인가? 이른바 ‘정의 힘’이란 근(根)을 세우는 높은 지위의 보살마하살이 뜻을 거두고 상념을 버려서 의심을 품지 않음이니, 이것을 정의 힘도 헐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지혜의 힘인가? 이른바 ‘지혜의 힘’이란 한량없는 법계가 불가사의해서 갖가지 지혜와 훌륭한 방편과 법의 근본을 모조리 거두면서도 법계의 지혜 성품의 행을 헐지 않음이니, 이것을 지혜의 힘이 뭇 덕을 갖추었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8_b_03L云何定力謂定力者立根上位菩薩摩訶薩意去想不懷狐疑是謂定力亦不可云何慧力所謂慧力者無量法界不可思議悉攝諸慧善權法本不毀法界慧性之行是謂慧力衆德具足
다시 7각의(覺意)의 법을 반드시 분별하여야 한다.
그리고 온갖 유형과 무형의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바를 깨달아 마쳐서 욕계(欲界)로부터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분별할 수 있고, 분별할 수없는 것은 뜻을 거두어 어지러이 하지 않음이니, 이것을 정(定)의 뜻과 지혜 성품의 여덟 가지 도의 평등이라고 말하느니라.
또한 무섭거나 두려움 없이 공삼매(空三昧)에 들어가서 일행(一行)에 둘이 없어 본말이라 할 수 없으므로 한계가 있든 한계가 없든 생사를 이미 여의어 남은 지혜를 내지 않는다. 이는 일어나고 멸하는 법의 청정함을 알아서 뭇 상념을 내지 않음이니, 이것을 여덟 가지 도가 청정하여 둘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8_b_08L復當分別七覺意法覺了一切有形無形心識所念從欲界至色界無色斯可分別是不可分別攝意不亂是謂定意慧性八道平等亦無恐畏入空三昧一行無二不可本末有限無限已離生死不生餘智知起滅法淨不生衆想是謂八道淸淨無二
다시 예순두 가지의 소견을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항상함이 있다는 상념과 항상함이 없다는 상념, 도가 있다는 상념과 도가 없다는 상념, 지금 세상이 있음과 지금 세상이 없음, 부모가 있다는 상념과 부모가 없다는 상념, 몸에 집착함이 있다는 상념과 몸에 집착함이 없다는 상념이다. 어느 때는 식을 두어서 모든 도(道)의 티 없는 청정을 분별하는데, 애착의 근본 세 곳과 욕심의 근본 다섯 곳과 음행의 일곱 곳을 하나하나 분별하느니라.
012_0538_b_15L當思念六十二見有常想無常想道想無道想有今世無今世有父母想無父母想有著身想無著身想時有識分別諸道淸淨無瑕一一分別三處愛本五處欲本七處婬行
012_0538_c_01L어떤 때에는 행을 두어서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있거나, 혹은 나무 아래ㆍ맨땅ㆍ무덤 사이에 있으면서 나고 드는 숨을 관(觀)하는데, 어떤 때에는 길고 어떤 때에는 짧으며, 어떤 때에는 차고 어떤 때에는 따뜻하다. 모든 법의 생생(生生)과 인연의 함께 모임[因緣共會]을 사유하고 분별해서 뜻이 교란되지 않으니, 이 까닭에 행자(行者)는 나고 드는 숨을 안다. 숨이 긴 것도 또한 알고, 숨이 짧은 것도 또한 알며, 앞의 숨도 앞의 숨이라 알고, 뒤의 숨도 뒤의 숨이라 알면서 차츰차츰 일선(一禪)의 행을 이루지만, 여래가 거룩하게 통달한 선의 뜻과는 똑같지 않다. 네 가지 선(禪)을 수행하여 상지(想知)의 멸함에 들어가야 하나니, 이와 같은 정의 뜻은 3승에 공통으로 있느니라.
012_0538_b_20L時有行在閑靜處若在樹下露地塚觀出入息有時有長有時有短時有寒有時有煖諸法生生因緣共思惟分別意不錯亂所以行者知出入息息長亦知息短亦知前息亦知前息後息亦知後息漸漸乃成一禪之行如來聖達禪意不同修行四禪入想知滅如此定意三乘共有
또다시 여래에게는 위없는 정의 뜻이 있다. 어떤 것을 위없는 정의 뜻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위없는 정’이란 마음에는 위와 가운데와 아래가 있지만, 행하는 사람은 정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고 들고 길고 짧은 숨이 없다. 다만 찰토를 분별하면서 전심(專心)과 한뜻[一意]으로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을 관하는데, 왜냐하면 내가 화한 바이자 내가 화한 바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다시 스스로 사유하기를 ‘설사 내가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 있을지라도 중생을 분별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의당치 않다.
012_0538_c_05L復如來無上定意云何名曰無上定所謂無上定者心有上中下行人入定無復出入長短息惟分別剎土專心一意觀過去未來現在何者是我所化非我所化復自思惟設我在閑靜處不分別衆生者是非我宜
이제 마땅히 무수한 찰토에 가서 스스로 교화하고 남도 교화하여서 나의 소원을 이루겠다’고 하니, 이것을 최초의 정(定)은 훼손할 수 없다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엔, 행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정의 뜻에 들어가서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고통이 있고 즐거움이 있는 것은 모두 몸의 근본을 말미암으니, 이미 이 행을 지났다면 다시 마땅히 선전해서 저 중생으로 하여금 모조리 알게 하리라’고 하니, 이것을 정(定)에 들어서 두 행[二行]을 성취하였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8_c_11L當往至無數剎土自化化彼乃成我是謂初定亦不可毀復次行人初入定意內自思惟有苦有樂皆由身已過此行復當宣傳使彼衆生而悉知之 是謂入定成就二行
그 다음 마음의 법은 있음도 아니요 없음도 아니다. 몸이 있다거나 몸이 없다는 상념으로는 신통을 얻어서 시방을 노닐며 교화하지 못하니, 뜻을 거두어 스스로 단속해서 그 종성(種姓)을 청정히 한다. 이것을 정의 뜻이 법식을 훼손하지 못한다고 말하느니라. 마음ㆍ뜻ㆍ식으로 지관(止觀)을 사유하면 아(我)가 바로 무아(無我)이니, 하물며 중생이 있겠는가. 먼저 공(空)을 스스로 알고서 문득 중생을 신족의 도(道)로써 관하면, 심신(心神)은 가서 교화하지만 몸은 거기에 가지 않느니라.
다시 시방의 여러 부처님 세계에서 이 정의 뜻으로 무수한 백천 중생을 제도하니, 거기에서 다시 열 가지 허공 지혜를 닦는다. 어떤 것들이 열 가지인가?
012_0538_c_16L復次法非有非無無身有身想不得神通遊化十方攝意自撿淨其種姓是謂定意不毀法識有心意識思惟止觀我自無我況有衆生先自知空卻觀衆生以神足道心神往化身不往彼復於十方諸佛剎土以此定意濟度無數百千衆生於彼復修十虛空云何爲十
012_0539_a_01L설한 법의 가르침으로 마군의 궁전을 꺾어 부수고, 도량에 나아가서 한량없는 깨달음을 이루고,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더하고 덜함도 없느니라. 족성자여, 이것을 허공의 지혜를 닦는다고 말하느니라.
다음에 족성자여, 처음에 외도와 다른 학파를 교화하여 그들의 삿된 업을 버리고 바른 소견을 세우게 함으로서 모두 귀의하게 하여 다시는 간탐하고 시기하는 일이 없게 하니, 이것을 허공의 지혜를 닦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39_a_01L所說法教摧卻魔宮趣道場成無量覺心若虛空無有增是謂族姓子修虛空慧復次族姓初化外道異學之類去其邪業使立正見皆使歸趣無復慳嫉是謂修虛空慧
다시 또 세존께서 중생의 무리를 교화하시되 그들의 원하는 바를 따라서 모두 갖추게 하시고, 비록 이 법문을 설하더라도 마음에 집착한 바가 없으니, 이것을 허공의 지혜를 닦는다고 말하느니라.
다시 걸림 없는 지혜의 신통의 도로써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어 온갖 법을 펴서 중생을 교화하되 중생을 보지 않으며 교화도 보지 않으시니, 이것을 허공의 지혜를 닦는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9_a_06L又復世尊化衆生類隨其所願皆令具足雖說此法心無所著謂修虛空慧復以無㝵智神通道至無量世界布現諸法而化衆生見衆生亦不見化是謂修虛空慧
다시 여래의 지혜가 있는데, 그 이름을 회공(懷空)이라고 부른다. 법계를 성취하여 근본성품을 헐지 않고, 마음을 허공처럼 지녀서 염오(染汚)를 내지 않으니, 이것을 허공을 닦는 지혜라고 말하느니라.
여래등정각은 한 몸으로 허공계에 노니시거나, 혹은 무수한 몸으로 노닐거나 다시 멸진열반을 나타내 보이시더라도 하나의 몸에 집착하지 않고, 약간의 상념도 일으키지 않으시며, 또한 다시 멸진열반에도 집착하시지 않으시니, 이것을 허공의 지혜를 닦는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9_a_10L有如來智名曰懷空成就法界不毀本性持心如空不生染污是謂修虛空慧如來等正覺或以一身遊虛空或無數身或復示現滅盡泥洹著一身不起若干想亦復不著盡滅泥洹是謂修虛空慧
모든 부처님께서는 일흔두 가지의 걸림 없는 변재와 열네 가지 설상보(舌相報)로 중생을 교화하여서 지혜가 걸리거나 막히지 않으므로 중생들을 모두 지혜의 밝음[慧明]을 이루게 하시나니, 어떤 것들이 일흔두 가지 걸림 없는 변재인가.
족성자여, 여래께서 처음으로 공덕상(功德相)의 근본을 닦으시면서 큰 서원을 스스로 발하시기를 ‘만일 내가 나중에 한량없는 등정각을 이루면, 태어난 국토의 중생들은 무명이나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의 이름조차 듣지 않게 하여 나의 국토를 허공처럼 청정케 하고, 정거천(淨居天)처럼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알게 하며,
012_0539_a_16L諸佛世尊有七十二無㝵辯才十四舌相報教化衆生智不停滯使衆生類皆成慧明何七十二無㝵辯才於是族姓子來初修功德相本自發弘誓若我後成無量等正覺所生國土衆生之類不聞無明婬怒癡名令我國土淨如虛空如淨居天少欲知足
012_0539_b_01L뜻은 도에 나아가되 중간에 걸림이 없게 할 것이며, 또한 다시 여덟 가지 한가함이 없는 곳에 태어나지 않게 하고, 부귀한 가운데서 살되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게 하며, 낮고 천한 이를 더럽다 하지 않게 하며, 그 가운데서 뜻을 거두어서 보시의 복을 행하게 하리라. 즉 음료[漿]를 구하는 이에겐 음료를 주고, 밥을 구하는 이에겐 밥을 주며, 나라나 재물이나 아내나 자식도 다 보시해 주어서 마음의 보시가 걸림이 없고 어지러운 상념을 내지 않게 하리라.
012_0539_a_23L意趣於道中閒無滯亦復不生八無閑處在於豪貴中不自貢高不鄙畀賤於中攝意行布施福求漿與漿求食與食財妻子盡施與之心施無㝵不生亂
다시 중생에게 완벽히 갖춰진 계를 지니게 하고, 정진의 일심(一心)으로 여섯 가지의 중한 법을 닦게 하리라. 만일 어떤 중생이 백천 가지의 괴로움을 만나면, 문득 나아가서 제도하여 추락으로 성현의 품류를 잃지 않게 하리라’라고 하니, 이것을 여덟 번째 법으로 허공의 지혜를 닦는다고 말하느니라.
여래등정각께서 법륜을 굴리고자 하면, 먼저 등정(等定)에 들어서 몸과 뜻을 스스로 거두어 잡으시고 때가 이른 줄 스스로 아나니, ‘나는 이제 마땅히 중생의 무리들과 함께 위없는 법륜을 굴려야 한다’라고 하여
012_0539_b_05L復教衆生持戒完具精進一心修六重法若有衆生遭百千苦輒能往度不令墜落失賢聖類是謂八法修虛空慧如來等正覺欲轉法輪先入等定自攝身意自知時至吾今宜可與衆生類轉無上法輪
마음이 6신통에 노닐면서 낱낱의 털구멍으로부터 온갖 광명을 놓으신 뒤에 이내 위없는 법륜을 굴리시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서 집착하는 법이 없고, 일상(一相)이 무상이라서 물들어 더럽히는 법도 없다. 설하신 바가 허공과 같아서 말의 자취가 나타나지 않고, 중생에게 더함이 있고 덜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다. 이것을 아홉 번째 법으로 허공의 지혜를 닦는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9_b_10L遊心六通一一毛孔放諸光明然後乃轉無上法輪不起不滅無所著法一相無相無染污法所說如空言迹不現不見衆生有增有減是謂九法修虛空慧
다시 다음에 여래께서는 무생(無生) 법계로부터 등정각을 이루어서 온갖 법을 허깨비 같고 화현(化現)같이 관해서, 도과를 성취한 이를 보지 않고 신통 지혜의 분별을 잃지 않고 여래의 10력에도 또한 염착하지 않으시니, 이것을 열 번째 법으로 허공의 지혜를 닦는다고 말하느니라.”
012_0539_b_14L復次如來從無生法界成等正覺悉觀諸法如幻如化不見成就道果者不失神通慧分別如來十力亦不染著謂十法修虛空慧
이때에 부처님께서 사부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각각 스스로 여래 앞에서 공혜(空慧)의 집착한 바 없는 법을 말하여라.”
그때 공행(空行)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살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동남쪽으로 56항하 모래 수효의 불국토들이 있는데, 그 나라로부터 와서 이 땅에 이르렀다. 그 보살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국토가 청정하여서 법설(法說)과 의설(義說)이 없고, 청정하고 청정하지 않음이 다 허공과 같음을 아나니, 이것을 공혜(空慧)의 집착 없는 법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39_b_18L爾時世尊告四部汝等各各於如來前自說空慧無所著法時有菩薩名曰空行去此東南五十六江河沙諸佛剎土從彼國來至此土叉手白佛言國土淸淨無有法說義說知淨不淨悉如虛空是謂空慧無著之法
012_0539_c_01L무아보살(無我菩薩)이 아뢰었다.
“봄[見]이 없음도 공이 아니고 봄도 또한 공이 아니며, 봄을 보지 않고 또한 봄 없음도 보지 않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법이라고 말하나이다.”
법주(法住)보살이 아뢰었다.
“행의 자취를 세우지 못하였으면 물들고 더러운 식을 내지만, 헤아릴 수없는 겁이 본래 식의 성품이 없나니, 이것을 허공의 집착 없는 법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39_c_01L無我菩薩曰見非空見亦非空不見見亦不見無是謂空慧無著之法法住菩薩曰未立行迹生染污識不可計劫本無識性是謂虛空無著之法
과행(過行)보살이 아뢰었다.
“몸ㆍ입ㆍ뜻에서 여러 가지 악을 짓지 않고, 정(定)으로 상념을 일으키지 않으니, 이것을 공행의 집착 없는 법이라고 말하나이다.”
무행(無行)보살이 아뢰었다.
“법신은 다함이 없어서 의지하여 집착함을 보지 않고, 정(定)의 마음은 한뜻일 뿐이오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39_c_05L過行菩薩於身口意不造衆惡定不起想謂空行無著之法無行菩薩曰法身無盡不見猗著定心一意是謂空慧無著行也
보장(寶藏)보살이 아뢰었다.
“앞과 뒤의 법계의 처소를 보지 않고, 또한 다시 죄와 복, 악의 과보를 보지 않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습고(習苦)보살이 아뢰었다.
“여러 부처님께서는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을 다 알아서 자재한 지혜에 들어가 망령된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시나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39_c_09L寶藏菩薩曰不見前後法界處所亦復不見罪福惡報是謂空慧無著行也習苦菩薩曰諸佛世尊悉知過去當來現在入自在慧不起妄見是謂空慧無著行也
자의(慈意)보살이 아뢰었다.
“나라는 것은 형상이 없으므로 전심(專心)으로 도만을 행하면, 다른 상념은 없고 의지함 없고 집착 없는 법만이 자연히 일어났다 멸하리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보계(寶計)보살이 아뢰었다.
“네 가지 무아행은 집착도 없고 물듦도 없으며, 몸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식상(識想)도 또한 괴로움이라고 이해해야 일어나거나 멸하지 않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39_c_13L慈意菩薩吾我無形專心行道無他異想無猗無著法自然起滅是謂空慧無著行寶計菩薩曰四無我行無著無染有身有苦識想亦苦解不起滅是謂空慧無著行也
선산(善算)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의 수 있음[有數]과 수 없음[無數]을 보지 않으니, 어떤 것이 온갖 법의 수 있음과 수 없음인가. 세속은 수가 있음이요 도(道)는 수가 없음이며, 유위는 수가 있음이고 무위는 수가 없음이니, 수와 수 없음을 보지 않는 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진생(盡生)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은 본래 생겨남이 없어서 또한 생겨나는 것을 보지 않으며, 청정해도 청정한 상념이 없고, 생사도 이미 다해서 영영 멸하여 일어나지 않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39_c_18L善筭菩薩曰不見諸法有數無數云何諸法有數無數俗是有數道是無數有爲有數無爲無數不見數無數者是謂空慧無著行也生菩薩曰諸法無生亦不見生淨無淨生死已盡永滅不起是謂空慧無著行也
012_0540_a_01L범행(梵行)보살이 아뢰었다.
“세 가지 삼매를 익혀서 받을 몸을 염(念)하지 않고, 공을 염하여서 공을 여의지 않으며, 상 없음[無相]을 염해서 상 없음을 여의지 않으며, 원함 없음[無願]을 염해서 원함 없음을 여의지 않으며, 또한 다시 청정한 복 받음을 염하지 않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광상(光相)보살이 아뢰었다.
“3독(毒)이 어둠의 법이 된다고 분별하고, 세 가지 통달이 청정한 법이 된다고 보지 않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40_a_01L梵行菩薩曰習三三昧不念受念空不離空念無相不離無相無願不離無願亦復不念受淸淨福是謂空慧無著行也光相菩薩曰別三毒爲闇冥法不見三達爲淸淨是謂空慧無著行也
소작(所作)보살이 아뢰었다.
“일상(一相)을 보지 않고 무상을 분별하며, 고(苦)도 보지 않고 고를 여읨도 보지 않으며, 고와 고 아닌 것도 없고 또한 짓는 바도 없음이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 말하나이다.”
불수형(不受形)보살이 아뢰었다.
“4대(大)의 근원이 없으므로 또한 경계의 소재를 보지 못하고, 한결같이 무위를 향하면서 세 가지 뜻을 내지 않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 말하나이다.”
012_0540_a_06L所作菩薩曰不見一相分別無相不見苦不見離無苦不苦亦無所作是謂空慧無著行也不受形菩薩曰無四大本亦不見境界所在一向無爲不生三意是謂空慧無著行也
무등(無等)보살이 아뢰었다.
“세상의 고통과 즐거움을 떠나서 여덟 가지 법에 집착하지 않고, 칭찬하고 기림을 보더라도 기쁨으로 여기지 않으며, 설사 헐고 비방함을 보더라도 근심걱정을 품지 않아서 참는 마음이 땅과 같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무구(無垢)보살이 아뢰었다.
“안의 6정(情)이 밖의 6진(塵)을 짓는 것을 보지 않고, 여섯 티끌과 여섯 정이 상대가 됨을 보지 않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40_a_11L無等菩薩曰世苦樂不著八法見有稱譽不以爲設見毀謗不懷憂慼忍心如地謂空慧無著行也無垢菩薩曰不見內六情造外六塵不見六塵與六情爲對是謂空慧無著行也
중관(重觀)보살이 아뢰었다.
“바깥의 색(色)이 안의 식(識)을 일으키지 않고, 식 또한 바깥의 색에 집착하지 않으며, 식은 내가 색이 됨을 알지 못하고, 색은 내가 식이 됨을 알지 못하며, 소리ㆍ향기ㆍ맛과 세활[細滑:觸覺]과 법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법은 내가 식이 됨을 알지 못하고 식은 내가 법이 됨을 알지 못하며, 일체의 모든 법도 각각 서로 알지 못함이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40_a_16L重觀菩薩外色不起內識識亦不著外色不知我爲色色不知我爲識聲香味細滑法亦復如是法不知我爲識不知我爲法一切諸法各不相知謂空慧無著行也
012_0540_b_01L원리(遠離)보살이 아뢰었다.
“5온(薀)에 물듦이 있고 집착함이 있음을 보지 않으니, 까닭인즉 5온의 성품과 여러 가지 법의 성품은 항상 머물러서 변하여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현호(賢護)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의 총지(總持)로 바람[望] 있음과 바람 없음을 보지 않고, 설할 수 있는 법과 설할 수 없는 법을 보지 않으며, 중생을 거느려서 옹호하되 불퇴전(不退轉)을 세우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012_0540_a_21L遠離菩薩曰不見五陰有染有著何以故五陰性諸法常住不變易是謂空慧無著行也賢護菩薩曰諸法摠持不見有望無不見有法可說不可說將護衆生立不退轉是謂空慧無著行也
보래(寶來)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법은 항상 정(定)이라서 약간(若干)의 분별도 없으며, 또한 부처님 법을 분별하지 않아서 보살의 법ㆍ세속의 법과 도의 법ㆍ형상이 있는 법과 형상이 없는 법ㆍ옹호하여 지닐 수 있는 법ㆍ옹호하여 지니지 못할 법도 또한 분별함이 없으니, 이것을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이라고 말하나이다.”
이때에 자리에 있던 무수한 사부대중이 이 공혜의 청정하여 집착 없는 법을 설함을 듣고서 갑절이나 의심을 내어 구경(究竟)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012_0540_b_03L寶來菩薩曰諸法常定無有若干亦不分別佛法菩薩法俗法道法有形法無形法可護持法不可護持法亦無分是謂空慧無著行也爾時座上無數四部衆聞說此法空慧淸淨無著之法倍生狐疑不達究竟
세존께서 곧 그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아시고는, 공혜의 집착 없는 행을 이해하는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함에 응하시어 곧 스스로 몸을 화현(化現)했는데 몸의 높이는 4백 유순이었다. 세존께서 큰 소리를 내시어 시방세계에 고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현재 법을 설하시니, 보살영락을 듣고자 하는 이가 모두 구름처럼 모여들어 사바세계에 나아가고자 하니, 무앙수(無央數)의 화현 보살[化菩薩]들을 보내어서 시방의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 모두 예를 드리자. 지금 능인여래(能仁如來:석가모니불)께서 사바국토에서 보살 영락을 연설하시고 계시니, 우리들은 마땅히 널리 저 나라에 가서 모이도록 하자.”
012_0540_b_09L世尊卽知心中所念應從空慧解緣會未至自化身高四百由延出大音聲告十方世界諸如來至眞等正覺現在說欲聞聽受菩薩瓔珞悉皆雲集詣忍界遣化菩薩無央數衆盡禮十方諸如來至眞等正覺今能仁如來於沙呵剎土演說菩薩瓔珞我等宜可普集彼土
이와 같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집착한 바가 없었다. 이윽고 그 상(像)처럼 위의를 거두어 지니고서 사바세계국토에 나아가시었다. 신심을 세운 보살로서 10주(住)를 얻은 이는 모두 부처님을 뵙자 예배하고 공양 올린 뒤에 각각 차례대로 무서움 없는 자리[無畏座]에 앉았다. 아직 신심을 세우지 못한 사람은 범부 경지라서 아직 천안(天眼)을 얻지 못했고 갖가지 신통도 갖추지 못한 탓에 시방의 부처님을 뵙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범부는 뜻이 작아서 범행(梵行)의 상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012_0540_b_17L如是十方諸如來無所尋如其像攝持威儀詣沙呵剎土立信菩薩得十住者盡見如來禮拜供養各各以次坐無畏座未立信人在凡夫地未得天眼諸通未具亦不見十方如來何以故凡夫意小恐失梵行
012_0540_c_01L어떤 부처님께서는 여기에 자리를 잡으셨지만 몸은 범천에 이르셨고, 어떤 부처님께서는 몸을 변화하여서 1천 찰토, 2천 찰토, 나아가 삼천대천 찰토에 이르기까지 두루 충만하였다. 왜냐하면 중생이 교화를 받으려면 응당 형상을 보여야 했고, 법을 받으려면 응당 귀로 들어서 법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때에 동쪽으로 두 강하의 모래알[江河沙] 수효만큼의 세계를 지나가면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명호를 본정(本淨)이라 하였다. 그 부처님께서 곧 대중과 더불어 게송으로 이 법언(法言)을 말씀하셨다.
012_0540_b_23L或有如來定坐於此身至梵天或有如來變身遍滿一千剎土二千剎土乃至三千大千剎土何以故生受化應見形受法應聽聞受法東方過二江河沙剎土有如來號曰本淨卽與大衆因偈說此法言

허공은 끝없건만
상념이 붙으면 의심이 생기나니
본제의 행[本際行] 이미 다하여서
둘도 없고 같이 짝할 이도 없네.
012_0540_c_05L虛空無邊涯
想著生狐疑
本際行已盡
無二無等侶

허공의 모양 말하고자 하나
본질은 생겨날 조짐[生兆]도 없네.
어째서 허공의 지혜[空慧]를 의심하여
그 속에서 없음[無]을 구하고자 하는가.
012_0540_c_07L欲說虛空相
本質無生兆
何得疑空慧
欲於中求無

나는 이제 부처를 이루어서
있음[有]을 품어도 물드는 바 없고,
번뇌가 다하여 스스로 존귀한 이 되었으니
다시는 일어나고 멸함이 있지 않으리.
012_0540_c_08L吾今雖成佛
懷有無所染
垢盡自致尊
不復有起滅

이미 평등하고 올바른 길에 들었으니
좁고 작은 뜻은 좇지 않아서
나[我]를 헤아려 마음을 냄이 없으니
도를 얻음[得道]은 이 멸함으로부터네.
012_0540_c_09L已入平正路
不從狹小意
計我無生心
得道從是滅

나의 목숨은 겁수(劫數)가 있고
제도할 바 헤아릴 수 없으나
뜻을 끊고 영원히 적멸하면
어찌 남을 제도하는 식(識)이 있으랴.
012_0540_c_11L吾壽有劫數
所度不可量
斷意永滅寂
豈有度人識

영락의 몸을 일곱 번이나 관하니
도의 꽃 색깔[道華色] 변하지 않고
무형(無形)으로 온갖 갈래에 들어가니
이것을 보살의 행이라 하네.
012_0540_c_12L七觀瓔珞身
道華色不變
無形入諸趣
斯謂菩薩行

여래에게 두 가지 업이 있으니
도의 근본[道本]과 뭇 덕[衆德]을 갖춰서
방편으로 허깨비[幻化]의 법 나타내니
일어나고 멸함은 본래 없는 것이라네.
012_0540_c_13L如來有二業
道本衆德具
㩲現幻化法
乃應無起滅

천상과 세간의 중생 무리
형상도 없고 수효도 없으니
어찌 형상 있는 사람이
무색(無色)의 법을 잘 알 수 있으랴.
012_0540_c_15L天世衆生類
無形無有數
何得有形人
善知無色法

부처님은 무진장(無盡藏)이라서
색욕(色欲)으로도 능히 다하질 못하는데
하물며 다시 도를 얻지도 못하고
평등한 슬기를 궁구하려 하는가.
012_0540_c_16L世雄無盡藏
非色欲能盡
況復未得道
欲究平等慧

비록 백천 겁을 지나더라도
일찍이 뜻을 스스로 쉬지 않았건만.
중생은 게으름 있어
중간에 멈추어 뜻을 못 세우네.
012_0540_c_17L雖經百千劫
未曾自息意
衆生有懈怠
中住不建意

대승의 평등한 법을
듣고서 받아들여도 어찌 다할 수 있으랴.
지금 공의 지혜[空慧]를 대강 설했으니
어찌 다시 공에 대해 의심을 내리.
012_0540_c_19L大乘平等法
聽受何可盡
今粗說空慧
何復疑於空
012_0541_a_01L
그때 여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나서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여기서 남쪽으로 18억 항하의 모래알의 수효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엄정(嚴淨)이란 이름의 불국토가 있는데, 부처님 명호는 이구(離垢)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라 하셨다. 열 가지 명호를 갖추시고 몸에 색상을 나타내시니, 더할 나위 없이 높으시고 높으시었다. 대중 가운데 계시면서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0_c_20L爾時如來說此偈已忽然不現南方去此十八億江河沙數彼有佛剎名曰嚴淨佛名離垢如來至眞等正覺十號具足現身色相無極巍巍在大衆中復說頌曰

나는 이제 도(道)를 깨닫고서
공의 평등한 지혜[空平等慧]를 듣고
12겁을 지나
이 정의 뜻[定意]을 얻었노라.
012_0541_a_02L吾本從道有
聞空平等慧
經於十二劫
乃得此定意

과거와 미래의 일 사유하니
6바라밀과 네 가지 평등한 행[四等行]은
모두 공혜(空慧)의 업을 말미암았고
공혜의 업은 치연(熾然)한 모든 법의 근본이었다.
012_0541_a_04L思惟前後來
六度四等行
皆由空慧業
然熾諸法本

뜻을 발함에는 계차(階差)가 있지만
큰 서원엔 차이가 있지 않노라.
지혜로 염(念)을 관함에 집착하지 말지니
사람의 교화에는 약간(若干)의 분별도 없다네.
012_0541_a_05L發意有階差
弘誓不有異
無著慧觀念
化人無若干

가령 내가 노니는 나라에는
묘한 영락으로 장엄 청정해서
훌륭하고 특출한 슬기를 선포해서
이 나라엔 3악도(惡趣)가 없다네.
012_0541_a_06L如我所遊國
嚴淨妙瓔珞
頒宣殊特慧
國無三惡道

오직 공혜의 행만 연설할 뿐
‘있다’, ‘없다’는 곳에 집착하지 않아
나는 이미 무심(無心)으로 행하니
무엇 때문에 ‘있다’를 설하랴.
012_0541_a_08L唯演空慧行
不著有無處
我旣無心行
云何當說有

가령 성품에 형상 없듯이
법계 또한 청정하네.
알고 나면 이미 다하여 멸했나니
따라서 일어나고 멸함이 없다네.
012_0541_a_09L如性無形相
法界亦淸淨
解了已盡滅
是故無起滅

다시 장엄 청정한 찰토 지나서
10억의 여러 찰토에
그곳에도 이 법이 있어
청정한 함이 없는 행[無爲行]일세.
012_0541_a_10L復過嚴淨剎
十億諸剎土
彼乃有此法
淸淨無爲行

말을 설해도 말이 있지 않고
모습 있는 근본[有相本]에 집착하지 않으니,
이렇듯 고요한 정[寂然定]에 응하기에
모든 행(行)에 명호(名號) 없어라.
012_0541_a_12L說言不有言
不著有相本
故應寂然定
行盡無名號

중생의 마음 나아가는 곳
유(類)를 따라 본식(本識)을 일으키지만
나는 영원히 담박(澹泊)하므로
‘있다’, ‘없다’의 행(行) 보지 않네.
012_0541_a_13L衆生心所趣
隨類起本識
如我永澹泊
不見有無行

이 까닭에 무수한 겁 동안
구하는 것 끊고 유(有)에도 집착하지 않아
일어나고 멸하지 않음 구하고자 하여
따라가 얻어서 비로소 성취했노라.
012_0541_a_14L所以無數劫
斷求不著有
欲求不起滅
逮得始成就

이제 비어서 없는[空無] 몸으로써
형상을 따라 나타내니
부처의 지혜 끝없어서
결코 물들지 않네.
012_0541_a_16L今以空無身
現形如所趣
佛慧無邊涯
終不爲所染

자연(自然)의 성품 청정하여
항상함이 있다는 상념 보지 않고
도(道)의 지혜와 뭇 덕을 갖추어
그 명호를 이구(離垢)라고 하니,
012_0541_a_17L自然性淸淨
不見有常想
道慧衆德具
故號名離垢

스스로 도과(道果)를 이루고서부터
허공계를 두루 노닐면서
혹은 천제석(天帝釋)도 되고
대존 범천왕(大尊梵天王)도 되도다.
012_0541_a_18L自從成道果
遍遊虛空界
或作天帝釋
大尊梵天王

형상을 변화한 까닭은
저 있음[有]에 집착한 이를 교화해
모두 무생의 지혜[無生慧]에 나아가서
청정하여 구경에 이르도록 함이었네.
012_0541_a_20L所以變化形
化彼著有者
盡趣無生慧
淸淨至究竟

다시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무수한 성(城)을 거느렸지만,
모두 버리고 가서 도를 배우니
그것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네.
012_0541_a_21L復作轉輪王
統領無數城
捨而行學道
知之非久長

다시 성문(聲聞) 가운데 들어가
도에 미치지 못할까 하여
문득 스승을 따라 배워서
온갖 상념의 집착과 결박 끊었네.
012_0541_a_22L復入聲聞中
現如不及道
輒便從師受
斷諸想著結
012_0541_b_01L
다시 정거천(淨居天)에 이르러
청정을 행하는 근본을 설해
저 하늘의 복[天福]을 여의게 했으니,
이것들도 다함없는 고통이기에.
012_0541_b_01L復到淨居天
說行淸淨本
使離彼天福
此等不盡苦

무색(無色)과 색(色)의 중생은
항상함을 헤아리는 상념을 버리지 않고
교만함과 스스로 방일(放逸)함으로서
모두 도의 문[道門]에 들어가게 했네.
012_0541_b_02L無色色衆生
計常不去想
憍慢自放恣
盡令入道門

본래 등정각(等正覺)은 없고
교화됨도 형상이 없으나
요컨대 생사의 근본을 다하여서
끝내 적멸에 듦을 버리지 않네.
012_0541_b_03L本無等正覺
所化無有形
要盡死生本
終不捨入寂

하물며 이제 너희 사부대중
처음 듣고서 문득 게을러지나니
이 품류는 스스로 기약함이 있는지라
빨리 속성시킬 수는 없어라.
012_0541_b_05L況汝今四部
初聞便懈怠
此類自有期
非速能使成

이때에 여래가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여기서 서쪽으로 백억 항하의 모래 수효의 여러 불국토를 지나면 이름이 수정(水精)란 세계가 있는데, 부처님의 이름은 정존(淨尊)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다. 저 국토의 중생은 한 가지 법만을 받들어 지니므로 6바라밀의 온갖 행과 업의 근본이 없었다. 다시 대중 속에서 이 게송을 설하시었다.
012_0541_b_06L爾時如來說此偈已忽然不現西方去此百億恒沙諸佛剎土剎名水精佛名淨尊如來至眞等正覺十號具彼土衆生奉持一法亦無六度衆行業本復在大衆而說斯頌

여덟 가지 행[八行]에 높고 낮음이 없어서
평탄하게 멸진(滅盡)에 돌아가고,
몸을 버리고 또 몸을 받으니
다만 번뇌의 더러움만 더할 뿐.
012_0541_b_11L八行無高下
亘然歸滅盡
捨身復受身
但益塵勞垢

허공의 둘 없는 법[無二法]은
머묾도 없고 또한 자취도 없어라.
여덟 가지 도의 평등한 지혜는
여러 부처님의 노니시는 곳이로다.
012_0541_b_13L虛空無二法
無住亦無迹
八道平等慧
諸佛所遊處

나는 옛 적에 스스로 행을 세워
법을 굴릴 것을 크게 서원하고
믿음을 체득하여 무(無)로 돌아가
이제는 인중존(人中尊:부처)이 되었노라.
012_0541_b_14L吾昔自建行
弘誓轉於法
體信歸於無
今得人中尊

여러 부처님의 계신 나라는
훌륭한 방편과 법도가 각각 다르니
어느 곳에나 나타나서
중생을 교화코자 하여라.
012_0541_b_15L諸佛所居剎
善權法各異
在在處處現
現欲化群有

즐거움에 얽매이고 집착하면
길이 어두운 집에 처하게 되니,
도(道)는 본래부터 서원이 없고
그런 뒤에 비로소 여읨을 얻네.
012_0541_b_17L更樂所縛著
永處於冥室
道從本無誓
然後乃得離

가령 나의 국토의 사람들은
마음을 거두어 악을 짓지 않고
끝까지 무위(無爲)를 숭상하니
이처럼 스스로 도에 가깝도다.
012_0541_b_18L如我國土人
攝心不造惡
至終崇無爲
如是自近道

음행ㆍ화냄ㆍ어리석음의 때가 적고
또한 크게 은근(慇懃)하지 않아서
율행(律行)에 자연히 들어가기를
꽃이 때에 따라 피듯 하도다.
012_0541_b_19L婬怒癡垢薄
亦不大慇懃
自然入律行
如華隨時敷

도의 뜻 옮겨 움직이지 않고
고락(苦樂)의 마음 영원히 끊어
온갖 찰토를 오고 가면서
공혜를 모조리 닦도다.
012_0541_b_21L道意不移動
苦樂心永斷
往來詣剎土
盡修於空慧

내 이제 이미 한 번 행하면
저 무리들도 다르지 않나니
이제 석가모니에게 듣기 때문에
등혜(等慧)를 닦음을 나타내도다.
012_0541_b_22L我今旣一行
彼衆亦不異
今聞能仁尊
故現修等慧
012_0541_c_01L
구름같이 모인 큰 성현
거룩하여 높고 낮음 없어라.
비록 국토의 다름은 있으나
닦는 바는 똑같은 한 가지 법이로다.
012_0541_b_23L大聖皆雲集
豪尊無高下
雖現國土異
所修同一法

이제 5도(道)의 사람을 살펴보니
무명(無明)의 행(行)에 가려서
나고 죽음에 빠진 채
갈수록 모진 고통만 더할 뿐이어라.
012_0541_c_02L今觀五趣人
無明行所蔽
沒溺於生死
轉增勤勞苦

어째서 스스로 뜻을 세워서
공의 도를 체득하고 믿어
빨리 해탈을 얻지 않는가.
마치 바깥 찰토의 중생처럼.
012_0541_c_03L何不自建意
體信空慧道
速可得解脫
如外剎衆生

여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여기서 북쪽으로 세 항하의 모래알 수효만큼 먼 불국토를 지나면 보조(普照)라는 이름의 찰토가 있는데, 그곳의 부처님의 명호는 기변(機變)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다. 다시 대중 가운데서 게송을 지어 말씀하셨다.
012_0541_c_04L如來說此偈已忽然不現北方去此三恒沙佛土剎名普照佛名機辯如至眞等正覺十號具足復於大衆而作頌曰

여래의 도[如來道]는 한 모습[一相]으로
본래 명색[名色]으로부터 생겨났네.
부지런히 닦아 무수한 겁 지나니
비로소 번뇌와 근심 다하네.
012_0541_c_08L如來道一相
本從名色生
勤苦經無數
乃盡塵勞患

가령 사람이 허공을 건너고자 하여도
건널 수 있는 방법 구하지 못하듯이
다만 공한 법 기억해 바랄 뿐
그로 말미암아 과보 얻음 없도다.
012_0541_c_10L如人欲度空
不求巧方便
但憶望空法
無由而果獲

뜻과 상념[意想]에 얽매어서
사물의 항상하지 않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죽지 않는 세계를 구하고자 하지만
이것 또한 일찍이 얻은 적 없네.
012_0541_c_11L意想之所縛
不計物非常
欲求不死地
此亦未曾得

편히 머무름은 상념을 여의는 방법이니
있음 없음의 경계에 머무르지 않아서
이미 공의 지혜를 밟을 수 있으면
자연히 물들어 집착함이 없으리.
012_0541_c_12L安住所以離
不住有無境
已得履空慧
自然無染著

도는 몸의 근본[身本]으로부터 나와
그런 뒤에 정각을 이루니,
미혹의 심의(心意)는 그릇되어서
마음을 여의고 밖에서 공(空)을 구하네.
012_0541_c_14L道從身本生
然後成正覺
迷惑心意錯
離心外求空

외적인 고통에 비록 이름 있지만
그 식상(識想)을 여의지 않고,
법계의 청정한 도(道)는
곧 청정한 지혜에 응하네.
012_0541_c_15L外苦雖有號
不離其識想
法界淸淨道
乃應淸淨慧

중생은 나고 죽음에 처해 있지만
빠져 헤매며 스스로 구하지 못하니,
뭇 고달픔 여의고자 하거든
먼저 의식(意識)을 반드시 없애야 하네.
012_0541_c_16L衆生處生死
沒溺不自拔
欲得離衆惱
先當去意識

여래가 출현하신 것은
비할 바 없는 법 연설하시어
한 상념도 물들어 더럽힘 없게 하심이니,
무엇 때문에 다시 공(空)에 물들랴.
012_0541_c_18L如來所顯現
暢演無比法
一相無染污
何由復染空

부처님은 세 가지 통달한 지혜로
걸림 있는 형상을 이미 초월하였으니
지금의 염(念)은 본념(本念)이 아니요
중생의 유념(有念)을 반연한 것이로다.
012_0541_c_19L最勝三達智
已過有㝵形
今念非本念
緣衆生有念

온갖 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어서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으니,
소리를 인해 메아리가 있듯이
중생에겐 곧 부처[佛]가 있네.
012_0541_c_20L諸法不思議
非有亦不無
因聲乃有響
衆生乃有佛

교화 받는 중생들아,
항상 몸을 스스로 싫어하고 근심하라.
도는 도 아님[非道]을 능히 멸하니
있다 없다는 것은 참다운 법[眞法]이 아니니라.
012_0541_c_22L受化衆生等
常自厭患身
道能滅非道
無有非眞法
012_0542_a_01L
그때에 여래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여기서 동북쪽으로 92억 항하의 모래 수효의 찰토를 가면 정관(淨觀)이란 이름의 찰토가 있는데, 부처님의 명호는 법관(法觀)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다. 그 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1_c_23L爾時如來說此偈已忽然不現東北方去此九十二億恒沙剎土剎名淨佛名法觀如來至眞等正覺十號具足於此大衆而說頌曰

색(色)은 본래 색이 있지 않고
또한 색의 모습[色相]도 있지 않네.
고통의 법은 본래 일어나고 멸함이 없고
또한 더한 즐거움 낳지도 않네.
012_0542_a_04L色本無有色
亦非有色相
痛法無起滅
亦非生更樂

의식(意識)은 아지랑이와 같고
물거품과 같아서 오래 머무르지 않네.
몸 없는 슬기는 스스로 청정하니,
이것을 일러 평등한 공[平等空]이라고 한다.
012_0542_a_06L意識如野馬
水泡不久停
無身慧自淨
是謂平等空

일관(一觀)과 일의지(一意止)는
청정하고 존귀한 범행이니
내[吾我]가 유상(有想)에 집착하면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 이르지 못하리라.
012_0542_a_07L一觀一意止
淸淨尊梵行
吾我著有想
不至有無境

스스로 깨치고 다시 남도 깨우쳐서
공의 지혜에 통달하게 하는데도,
중생들 스스로 깨닫지 못해
이 때문에 망설임을 품도다.
012_0542_a_08L自覺復覺彼
令達虛空慧
衆生不自覺
是以懷猶豫

성품에 상ㆍ중ㆍ하 있고
선과 악[善惡]은 늘 상대가 있으니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더라도
공무(空無)의 지혜는 얻지 못하리.
012_0542_a_10L性有上中下
善惡常有對
捨惡而行善
不得空無慧

선과 악을 능히 보지 않으면
마음이 정직해서 뒤바뀜 없네.
그대가 곧 공을 믿고 이해하면
청정한 지혜를 따라서 얻으리라.
012_0542_a_11L能不見善惡
心正無顚倒
爾乃信解空
逮得淸淨慧

본래 평등한 뜻을 따르면서
중생의 무리를 보지 않음이
오래오래 되면 스스로 통달해서
위없는 도[無上道]에 감응하리.
012_0542_a_12L本從平等意
不見群萌類
久久乃自達
應於無上道

혜관(慧觀)으로 탐착(貪着)을 끊고
마음을 씻어서 때 없이 청정하며
어진 지혜(仁智)는 공의 지혜와 같나니
그러므로 진인(眞人)의 법이라 이르노라.
012_0542_a_14L慧觀除貪著
洗心淨無垢
仁智如空慧
故謂眞人法

세간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자들은
그 까닭에 허무(虛無)의 도를 연설하나니
선과 악의 상대성을 생각지 않아
형상도 없고 정(情)의 상념도 없어라.
012_0542_a_15L慈愍世閒類
故演虛無道
不念善惡對
無形無情想

내 본래 평등한 뜻을 따라
여래에게 이 법을 받았나니
듣고서 문득 공한 지혜 통달하여
교화를 염(念)하면서 찰토를 청정히 관했네.
012_0542_a_16L我本從等意
如來受斯法
聞輒達空慧
念化淨觀剎

목숨을 아승기겁 동안 받아서
법을 설하여 끝내 교화하고
무수한 사람을 인도하여
이 법계의 근본에 들어갔노라.
012_0542_a_18L受命阿僧祇
說法終教化
導引無數人
入此法界本

세존께서 이 게송을 설하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1억 불토를 가면 극묘(極妙)라는 이름의 찰토가 있는데, 부처님의 이름은 미묘(微妙)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다. 다시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2_a_19L爾時世尊說此偈已忽然不現東南去此一億佛土剎名極妙佛名微妙如來至眞等正覺十號具足復說頌曰

식(識)은 본래 5음[五陰]으로 인해
인연이 공통으로 합하고 모여
무수한 겁을 유전(流轉)하면서
스스로 일어났다 자연히 멸하는데,
012_0542_a_22L識本因五陰
因緣共合會
流轉無數劫
自起自然滅
012_0542_b_01L
어리석고 미혹한 중생들은
나고 죽는 근본을 통달치 못하고
끝내는 포태(胞胎)에 처해서
근심 걱정 여의기를 구하지 않네.
012_0542_b_01L愚惑衆生等
不達生死本
終竟處胞胎
不求離災患

가령 사람이 한 생각[一念] 사이에
순전히 뒤바뀐 소견을 내면
얽매이고 집착함만 더욱 심해지니
어찌 다시 도의 뿌리를 낳겠는가.
012_0542_b_02L如人一念頃
純生顚倒見
縛著遂滋甚
況復生道根

중생의 무리를 생각해 보니
3독(毒)의 뿌리를 애착하고 즐겨하도다.
5개(蓋)가 심신(心神)을 가리어
눈이 없으니 어찌 살피겠는가.
012_0542_b_03L計念衆生類
愛樂三毒本
五蓋翳心神
無眼何有觀

여래는 큰 횃불을 잡아서
티끌 욕심의 근본을 태워 없애시건만
비록 중생들은 다시 혜명(慧明)을 보고도
오히려 돈독치 못한 믿음을 내도다.
012_0542_b_05L如來執大炬
消滅塵欲本
雖復見慧明
猶生不篤信

내가 시방세계를 살펴보니
뜻을 발하여 도를 구하고자
행이 다하면 다시 생(生)을 받아
3악도(惡道)의 괴로움을 다시 받네.
012_0542_b_06L我觀十方世
發意欲求道
行盡復受生
當更三塗惱

네 곳은 본래의 소원이 아니니
네 가지 연못에 스스로 던져서
네 가지 생의 문[四生門] 여의지 못하면
네 가지 도과(道果)를 이루지 못하네.
012_0542_b_07L四處非本願
自投于四淵
不離四生門
不成四道果

어떤 때엔 네 가지 법 여의지만
5성음(盛陰)1) 문득 생기고
증상만(增上慢)에 집착 없으나
방일한 행은 다하지 않네.
012_0542_b_09L有時離四法
便生五盛陰
無著增上慢
不盡放逸行

차츰 무수한 법에 이르러
성행(聖行)의 근원도 보지 않으니,
마치 사람의 뜻이 유탕(遊蕩)하여
마음이 스스로 생각을 막지 못하듯이.
012_0542_b_10L漸至無數法
不睹聖行原
猶人意遊蕩
心不自防慮

여래의 6신통행은
공이 아니면서 공과 다르지 않아서
나고 죽는 근본을 영원히 버리고
곧 평등한 지혜에 응하네.
012_0542_b_11L如來六通行
非空不異空
永去生死本
乃應平等慧

본래 스스로 나고 죽음 없건만
유전하면서 색(色)에 물들어 집착해서
드디어 법계의 색을 이루니,
있음을 멸하고 있음에 집착하지 말라.
012_0542_b_13L本自無生死
流轉染著色
遂成法界色
滅有不著有

도가 있으면 식이 있나니
이 식은 본래 없는 것이 아니로다.
능히 도와 식(識)을 보지 않으면
지혜와 선정의 법에 곧 응하리.
012_0542_b_14L有道則有識
此識非本無
能不見道識
乃應慧定法

도는 식이 더욱 즐김을 따라서
몸을 나타내 수 없이 변화하나니,
스스로 알아서 선정과 지혜 이루면
뭇 모양의 변화에 곧 응하리.
012_0542_b_15L道從識更樂
現身無數變
自知成定慧
乃應衆相變

머묾이 없으매 변역(變易)도 없고
의심과 망설임의 상념 없으면
온갖 번뇌를 항복시켜
평등한 지혜에 곧 응하리.
012_0542_b_17L無住不變易
無疑猶豫想
降伏諸塵勞
乃應平等慧

사람의 행(行)에 세 가지 걸림 있으니,
상념을 말미암아 공을 버리지 않고
뭇 행의 근본을 일으키지 않으면
이 업(業)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012_0542_b_18L人行有三㝵
由想不捨空
未興衆行本
此業無有成

그때에 여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여기서 서남쪽으로 13억 불토를 가면 광승(廣勝)이란 이름의 찰토가 있는데, 부처님의 명호는 묘적(妙迹)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다. 대중 가운데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2_b_19L爾時如來說此偈已忽然不現西南去此十三億佛土剎名廣勝佛名妙迹如來至眞等正覺十號具足在於大衆而說頌曰
012_0542_c_01L
각(覺)이 낳은 이 환법(幻法)은
깊은 법요(法要)에 있지 않으니,
도(道)도 오히려 이름이 없거든
하물며 공에서 말의 자취를 보랴.
012_0542_b_23L覺生是幻法
不在深法要
道尚無名號
況空見言迹

여러 외입(外入)과 내입(內入)은
분별하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니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으면
청정한 지혜에 곧 응하리.
012_0542_c_02L諸外入內入
分別悉無有
無形不可見
乃應淸淨慧

마음이 계욕(計欲)을 여의고
또한 다시 공에 집착하지 않으면
피차에 물들어 집착함이 없어서
최정각(最正覺)을 이루리라.
012_0542_c_03L計欲不從心
亦復不著空
彼此無染著
逮成最正覺

어리석은 미혹으로 밝음을 보지 못하매
계욕(計欲)은 심식(心識)으로부터 일어나
6법(法)이 6진(塵)을 내나니
이로 말미암아 의심의 상념을 일으키도다.
012_0542_c_04L愚惑未睹明
計從心識起
六法生六塵
由是起疑想

식(識)으로 인하여 이 몸을 받아
자연히 4대(大) 이루었네.
5도(道)를 향해 윤회를 하느라고
공의 성품의 법 알지 못하네.
012_0542_c_06L因識受此身
自然成四大
輪轉向五趣
不解空性法

어떤 사람은 스스로 말하기를
물든 것은 본래 없다고 하나,
몸과 마음이 함께 걸림을 내니
어찌 유(有)와 무(無)의 상념을 통달하랴.
012_0542_c_07L如有一人念
自說染本無
身心俱生㝵
豈達有無想

묘관(妙觀)으로 3세(世)를 비춰
온갖 법을 나타내 보이면서 설하시니,
모든 불체(佛體)의 묘한 교법은
있음도 아니요 또한 없음도 아니로다.
012_0542_c_08L妙觀照三世
示現說諸法
諸佛體妙教
不有亦不無

세간의 고통은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으나
평등의 공(空)은 의지하는 데 없도다.
유무(有無)를 동등하게 관하여 요달하므로
평등한 지혜라고 말하네.
012_0542_c_10L世苦由無明
平等空無猗
觀了等有無
故謂平等慧

때로 유(有)와 무(無)를 인식하면
이것은 여래의 지혜 아니니
피차 물들지 않는 것이
마음의 평등으로 마치 메아리의 응함 같네.
012_0542_c_11L有時識有無
此非如來慧
不染彼此者
心平如響應

여덟 가지 도[八道]는 고(苦)의 근원 다하고
여덟 가지 이해[解]는 마음의 티끌을 씻고
여덟 가지 메아리는 모조리 허공으로 돌아가고
여덟 가지 지혜는 생기(生起)하지 않노라.
012_0542_c_12L八道盡苦原
八解洗心塵
八響悉歸虛
八慧不起生

스스로 여의고 다시 상대[彼]도 여의어
중간에 걸림이 없어서
식(識)의 물들어 집착한 바에 따르나니
이것을 평등한 지혜라고 이르도다.
012_0542_c_14L自離復離彼
中閒無有㝵
隨識所染著
是謂平等慧

사람은 본래 허공에 있는데
물든 식(識)으로 3유(有)의 길이 생겨
번뇌에 스스로 집착하느라
본무제(本無際)에는 들어가지 못하나니.
012_0542_c_15L人本在虛空
染識三有道
唐自著塵勞
不入本無際

본래 처음 뜻을 발함으로부터
공성의 지혜[共性慧]를 덜지 않고
다시 한량없이 지난 뒤에
곧 이 정(定)을 얻었네.
012_0542_c_16L本從初發意
不減空性慧
由復經無量
後乃獲此定

나는 모인 대중의 마음이
식을 여의고 공을 구하고자 함을 아네.
어찌 식을 스스로 염(念)하지 않는가.
안이 공(空)하고 밖도 마찬가지인 것을.
012_0542_c_18L吾解衆會心
離識欲求空
何不自念識
內空外亦然

가령 법마다 상(相)이 없듯이
지혜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니,
정(定)을 염(念)하여 어지러움 제거하면
이것을 평등한 지혜라 하네.
012_0542_c_19L如法法無相
慧見亦復然
念定除去亂
是謂平等慧

이 몸은 모조리 공에 돌아가
영원히 적멸하여 일어나고 멸함 없나니,
여래는 널리 크게 서원하시어
이 중생의 무리를 제도하도다.
012_0542_c_20L此身悉歸空
永寂無起滅
如來普弘誓
濟此群萌類
012_0543_a_01L
그때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여기서 서북쪽으로 54억 강하의 모래 수효의 불국토를 지나가면 유순(柔順)이란 이름의 찰토가 있는데, 부처님의 이름은 중상(衆相)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열 가지 명호를 갖추셨다. 대중의 회상에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2_c_22L爾時世尊說此偈已忽然不現西北去此五十四億江河沙數諸佛國土剎名柔順佛名衆相如來至眞等正十號具足在於衆會而作頌曰

가령 내가 공행(空行)을 관함은
한뜻[一意]로서 높고 낮음이 없고
있다, 없다, 옳다, 그르다 하는 분별된 마음은
모두 생사를 말미암아 일어나니
012_0543_a_03L如我觀空行
一意無高下
有無是非心
皆由生死起

부처님의 깊은 곳간[藏] 구하고자 하거든
온갖 행의 근본을 궁구하여 다하라.
아직 여래의 신령스런 신통과 지혜를
능히 궁구하여 창달한 적이 없다면.
012_0543_a_05L欲求佛深藏
究盡諸行本
未曾能究暢
如來神慧通

가령 어떤 한 선비가
겁으로부터 다시 겁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이 억백천이 되어도
그 수효는 늘거나 줄지 않고,
012_0543_a_06L如有一士夫
從劫復至劫
如是億百千
其數不增減

저 사람이 여러 근(根)을 갖추어
6정(情)이 줄어들지 않으니
여래의 지혜 듣고자 하나
아직은 문득 쉽게 얻지 못하도다.
012_0543_a_07L彼人諸根具
六情不缺減
欲聞如來慧
未便卒果獲

하물며 다시 처음 뜻을 발해서
평등한 지혜에 이르고자 함이랴.
다만 스스로 더욱 손해만 있을지언정
도의 법에는 이익이 없네.
012_0543_a_09L況復初發意
欲至平等慧
但自轉有損
無益於道法

요컨대 큰 자비를 닦아서
방편과 슬기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두려움 없는 서원을 굳건히 하면
그 뒤에 마음을 조복하리.
012_0543_a_10L要修大慈悲
權慧自防衛
堅固無畏誓
然後乃降心

다시 세계에 노닐면서
여러 부처님께 공양코자 하면
지은 공(功)을 일으키지 말고
자연히 성행(聖行)에 응하라.
012_0543_a_11L設復遊世界
欲供養諸佛
不起所造功
自然應聖行

여래 10력(力)의 성인은
온갖 삿된 소견을 조복시키고
‘나의 상념’ 없음을 인내해 알았으니,
이 때문에 부처님이 되셨도다.
012_0543_a_13L如來十力聖
降伏諸邪見
忍知無我想
故得人中尊

법의 머묾과 머물지 않음을 요달해서
공덕의 행을 보지 않고
생(生)을 다해도 다시 받지 않으니
이것이 부처님의 경계이어라.
012_0543_a_14L了法住不住
不見功德行
盡生更不受
是世雄境界

뭇 상호를 이루고자 하거든
여러 선(善)의 근본 끊지 말고
뜻을 멸하고 상념을 일으키지 말지니,
이것을 평등한 지혜라 이르느니라.
012_0543_a_15L欲成衆相好
不斷諸善本
滅意不起想
是謂平等慧

내가 중생의 무리를 관하니
때로 공을 스스로 알지 못해서
그 까닭에 자주 피로하여
길이 적멸한 곳에 들지 못하니,
012_0543_a_17L我觀衆生類
時空不自知
是故數疲勞
不入永寂處

빨리 도과를 행하고자 하거든
뭇 덕으로 몸을 장엄하고
다만 마음 근본 끊기만 염(念)해야지
어째서 의심을 일으키는가.
012_0543_a_18L欲速行道果
衆德莊嚴身
但念斷心本
云何起狐疑

그때에 세존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여기서 위쪽으로 무수한 부처님의 국토를 지나서 중생계(衆生界)가 다한 곳에 회전(廻轉)이란 이름의 찰토가 있는데, 부처님의 이름은 음향(音響)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서 열 가지 명호가 구족하시다. 저 대중 가운데 계시면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3_a_19L爾時世尊說此偈已忽然不現上方去此無數佛土盡衆生界剎名迴轉佛名音響如來至眞等正覺十號具在彼大衆而說頌曰
012_0543_b_01L
허공이라서 형상 없는 식(識)은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이 없고
중생이 있음도 보지 않으니
하물며 법계에 노님이 있으랴.
012_0543_a_23L虛空無形識
不有彼此岸
不見有衆生
況有遊法界

현재 도(道)를 구하는 이는
허공에 노닐면서 허공을 구하니
자기 식(識)이 깨끗지 못한 이는
다시 바깥에서 허공을 구하고 있노라.
012_0543_b_02L現在求道者
遊空求於空
不淨已識者
復求外空爲

뜻으로 성스러운 지혜를 알지 못하는
이런 자들을 불쌍히 여기니,
이 혜관(慧觀)을 사유하면
또한 무상한 도[無常道]를 얻으리.
012_0543_b_03L愍念此等人
意不解聖慧
思惟此慧觀
亦獲無常道

이제 삼계의 몸을 받아
신통한 지혜로 스스로 분별하니
정식(定識)에는 형태의 상념이 없어,
종자를 끊음이 도의 뜻이 되노라.
012_0543_b_04L今受三界身
通慧自分別
定識無形想
種斷爲道意

사람은 스스로 식(識)을 사유하여
4대(大)로 소굴[窠窟]을 삼으니
아무리 바깥 공[外空]에 있지만
4대(大)와 다르지 않네.
012_0543_b_06L人自思惟識
四大爲窠窟
正使在外空
不異於四大

다만 이제 지혜를 얻지 못해
안팎의 정(情)을 요달하지 못하나니
이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어서
세존께선 더욱 책망하지 않도다.
012_0543_b_07L但今未得慧
未了內外情
此等可慈愍
衆祐不尤責

견줄 이 없는 장부[丈夫無等倫:부처]께서는
무상정(無想定)을 행해 초월하셨으니,
이것을 뭇 부처님의 법이라 이르건만
미혹한 이는 스스로 ‘나’를 계교하도다.
012_0543_b_08L丈夫無等倫
行過無想定
是謂諸佛法
迷惑自計我

본래 일어나고 다하는 법 없으니
궁극적으로는 모조리 청정하고,
범행(梵行)도 끝내 청정하여
3세의 염(念)을 내지 않노라.
012_0543_b_10L本無起盡法
究竟悉淸淨
梵行終竟淨
不生三世念

앞의 말은 지금의 말이 아니고
생각 생각[念念]이 스스로 변하고 바뀌니
이로써 증거를 삼을 수 있다면
어째서 삿된 의심을 내는가.
012_0543_b_11L前說非今說
念念自變易
以此可爲證
何故生狐疑

내가 이미 스스로 일컫지 않았던가,
권도의 방편으로 범부가 되었다고.
이 4대(大)를 사유하니
식법(識法)은 무엇으로부터 되었나.
012_0543_b_12L我旣不自稱
權假爲凡人
思惟此四大
識法爲何從

지나간 세상의 법 설하는데
형상 없어서 볼 수도 없고
비록 오는 세상의 식(識)은 있지만
또한 아직 4대(大)를 받지 못했네.
012_0543_b_14L宣說過去法
無形不可見
雖有未來識
亦未受四大

지금 세상은 두 품[二品]으로 만들어
이제 하나하나 설하리니
각각 이 평등한 지혜에 대해
함부로 의심을 품지 말라.
012_0543_b_15L現在爲二品
今爲一一說
各各莫懷疑
於此平等慧

지나간 세상의 식(識)을 분별하니
죽은 자는 지금의 형체 아니지만
이 식은 썩어 없어지지 않았으매
지나간 세상의 식이라 일컫네.
012_0543_b_16L分別過去識
死者非今形
此識不腐敗
爲稱過去識

설사 식이 지금 나타나 머문다면
4대(大)의 인연이 합침이니,
이 식은 항상 변치 않으므로
다시 식의 현재라고 일컫네.
012_0543_b_18L設識今現在
四大因緣合
此識恒不變
復稱識現在

또한 다시 지금의 현재를 버리면
미래는 아직 생지지 않았고
저 식도 또한 지금이 아니니
무엇을 말미암아 3세라 일컬으랴.
012_0543_b_19L且復捨現在
未來未有生
彼識亦非今
何由稱三世

식의 성품은 항상 스스로 머물러 있어
과거ㆍ미래ㆍ현재가 없네.
식의 근본을 구하고자 하지만
소굴(巢窟)은 어디에 있나.
012_0543_b_20L識性恒自住
無去今現在
欲求識根本
窠窟何所在

부처님은 견줄 바 없는 지혜로
식의 ‘본래 없음’을 통달하여
공의 성품으로 담박한 하나뿐이시니
다시는 의심의 상념을 두지 말라.
012_0543_b_22L如來無等智
乃達識本無
空性恬然一
勿復有疑想

등정각을 이루고자 하거든
상념에 물들거나 행에 집착하지 말라.
식의 성품 본래 없다고 밝게 깨달으면
그 까닭에 평등한 지혜라 하느니라.
012_0543_b_23L欲成等正覺
不染想著行
悉知無識性
故號平等慧
012_0543_c_01L
그때에 여래께서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서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여기서 아래로 11항하의 모래알 수효만큼 멀리 가면 무감(無減)이라는 이름의 찰토가 있는데, 부처님의 이름은 보원(普願)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이고, 호(號)는 불세존이시다. 세존께서는 저 회상에 계시면서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3_c_01L爾時如來說此偈已忽然不現下方去此十一恒沙剎名無減佛名普願如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無上士道法御天人師號佛世尊在於彼會而說頌曰

시방의 모든 부처님 모이시니
평등하여 둘이 없도다.
공의 정[空定]을 설하여 다하니
고요하여 행이 있지 않도다.
012_0543_c_06L十方諸佛集
平等無有二
盡說於空定
寂然無有行

중생에게 항상함의 상념이 있어
공(空)은 한정이 있다고 말하나
근본에 통달하면 물들어 더러움이 없나니
이것을 모두 공에 돌아간다고 말하느니라.
012_0543_c_08L衆生有常想
謂爲空有限
達本無染污
是謂悉歸空

베풀지 못하는 마음은 얽매이고 집착해서
본원(本願)의 행(行)을 잃기 때문에
드디어 비방하는 법을 내게 되어서
불법(佛法)의 성스러운 무리가 없다네.
012_0543_c_09L不施心縛著
以失本願行
遂生誹謗業
無佛法聖衆

여래의 계와 덕의 몸은
청정하여 티와 흠이 없어
제도 못한 이를 제도했으니
3세에 관하는 상념이 없도다.
012_0543_c_10L如來戒德身
淸淨無瑕疵
已度未度者
三世無觀想

공식(空識)은 스스로 이름 있어
자연히 생겨나고 자연히 멸하나
이 생(生)은 공식이 아니니
식의 멸함도 또한 그러하도다.
012_0543_c_12L空識自有名
自生自然滅
此生非空識
識滅亦復然

저 근본을 통달하지 못하여서
바삐 헤매면서 식(識)의 모습 구하나
가공(假空)을 이름하여 식(識)이라 했거늘
공과 식이 어찌 차이가 있으랴.
012_0543_c_13L由彼不達本
流馳求識相
假空名爲識
空識豈有異

몸의 모습이 오히려 형상이 없지만
하나를 낳으면 다시 하나가 생겨나니
다만 어리석은 사람을 위해
식을 일으킴이 약간 있을 뿐이로다.
012_0543_c_14L身相猶無形
生一復一生
但爲愚惑人
起識有若干

뭇 지혜가 법체(法體)를 이루고
상호가 스스로 몸을 장엄하지만,
몸이 멸하고 지혜는 공(空)으로 돌아가면
다시 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
012_0543_c_16L衆智成法體
相好自嚴身
身滅智歸空
復可言有識

찾아보니 3세(世)는 없고
식도 없고 4대(大)도 없어서
이에 법계에 노닐 수 있으니
‘있음’ 또한 본래 있지 않음을 알았노라.
012_0543_c_17L推尋無三世
無識無四大
乃得遊法界
知有亦不有

모든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는
권도(權道)로 나타나 늘고 주는 일 없으니
이 때문에 식의 형상이 없어
모든 불찰(佛刹)에 두루 노니시도다.
012_0543_c_18L諸佛無量智
權現無增減
以此無識形
遍遊諸佛剎

이 의심 오래부터 이미 있어서
너만 아니라 나 또한 그러하니
통혜(通慧)가 널리 다 비추면
그게 바로 부처의 식[佛識]에 응함이로다.
012_0543_c_20L此疑久已有
非汝我亦爾
通慧普悉照
爾乃應佛識
012_0544_a_01L
그때 여래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홀연히 보이지 않으셨다.
즉시 대중 모임에 있던 11나술의 중생들이 모두 평등한 공혜의 관(觀)을 얻었고, 다시 한량이 없는 중생인 하늘ㆍ용ㆍ귀신들이 이 법문을 설하심을 듣고서 누구나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의 뜻[無上正眞道意]을 내었다.
012_0543_c_21L爾時如來說此偈已忽然不現卽時在會十一那術諸衆生悉得平等空慧之觀復有無量衆生天龍鬼神說此法皆發無上正眞道意

7. 제불권조품(諸佛勸助品)
012_0544_a_02L菩薩瓔珞經諸佛勸助品第七

그때 세존께서 두려움 없는 자리[無畏座]에 스스로 올라앉으시어 설상(舌相)의 광명을 놓아서 삼천대천세계를 널리 비추시고, 시방 무앙수 항하 모래 수효의 불국토 및 시방의 항하 모래 수효의 지옥ㆍ축생ㆍ아귀 나아가 시방 허공까지 다 비추시니, 중생들이 모조리 광명을 보았다.
그때 세존께서 무앙수 억백천의 광명을 놓으시니, 저 중생들은 스스로 서로 이렇게 말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일찍이 이런 미묘한 광명은 보지 못하였다. 또한 별과 해와 달의 천자들도 이런 광명은 있지 않았다. 매우 신기하고 몹시 기특하다. 일찍이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다.”
012_0544_a_03L爾時世尊自昇無畏座放舌相光明普照三千大千世界及照十方無央數恒沙諸佛國土及十方恒沙地獄畜生餓鬼乃至十方虛空衆生悉見光明爾時世尊放無央數億百千光彼彼衆生自相謂言從久遠以來未曾見此微妙光明亦非星辰日月天子有此光明甚奇甚特未曾所聞未曾所見
그때 시방의 여러 나라 중생들은 이러한 생각을 각각 내었다.
‘장차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으실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시방 중생들의 마음속 생각을 즉시 아시고 온갖 광명을 나타내시니 모두가 화불(化佛)이 되었다. 한 분 한 분의 화불은 모두 무앙수의 대중에게 앞뒤로 에워싸인 채 법을 설하고 계셨다. 이른바 설하시는 법이란 형상이 없는 법, 언교(言敎)가 없는 법,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병도 없고 죽음도 없는 법이었다. 뒤에 이 음성을 듣고서 광명은 보지 못하고 형색(形色)을 본 자들은 모두 부처님 설법의 음향, 공혜(空慧), 법혜(法慧), 그리고 집착 없는 마음을 말씀하심을 들었다.
012_0544_a_12L爾時十方諸國衆生各生此念將不有佛出現于世爾時世尊卽知十方衆生心中所念現諸光明皆有化佛一一化佛皆有無央數衆前後圍遶而爲說法所謂說法者形相法無言教法無生無老無病死有後聞此音諸不睹光見形色者皆聞如來說法音響空慧法慧說無著心
012_0544_b_01L그때에 부처님께서 회상에 모인 사부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못 이 설상(舌相) 광명의 불가사의한 법이 시방의 무앙수 항하의 모래 수효와 같이 많은 찰토에 널리 이르러서 한량없는 중생의 무리를 비추고 아울러 온갖 화불(化佛)이 법문을 설하는 것을 보았느냐?”
그때 온갖 신통 있는 보살대사들이 모두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러하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은 모두 보았나이다.”
012_0544_a_20L爾時世尊告諸來會四部衆曰汝等頗見此舌相光明不思議法至十方無央數恒沙剎土悉照無量衆生之類及諸化佛而說法言汝等衆生爲見不乎諸神通菩薩大士皆白佛言唯然世尊我等悉見
욕망에 집착한 중생인 범부들도 다시 스스로 부처님 앞에서 말씀을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들은 광명은 비록 보았사오나 이 광명이 무슨 상서로운 감응(感應)인지는 알지 못하나이다.”
이때 부처님께서 저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의심을 없애고 망상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연수보살(軟首菩薩)에게 문득 말씀하셨다.
012_0544_b_02L諸在凡夫著欲衆生復自陳說前白佛言我等世尊雖見光明不知此光是何瑞應爾時世尊知彼衆生心中所念欲去狐疑不著妄想便告軟首菩薩摩訶薩曰
“여래 지진(如來至眞)은 위없는 등정각을 이루어서 몸은 황금빛으로 둥근 광명이 일곱 자이고, 목소리는 갈비조(羯毘鳥)처럼 부드럽고 흠이 없으며, 뭇 상호로 몸을 장엄하였는데, 모두 지나간 세상 무앙수의 겁 동안 복을 쌓고 착한 일을 행하여 뭇 덕을 갖춘 것으로 말미암아 입의 허물을 범하지 않고 설하신 언교에 늘고 줄어듦이 없었느니라. 그런 까닭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으로 하여금 지금 열네 가지 설상(舌相)의 과보 법을 얻게 하였느니라.
012_0544_b_07L如來至眞成無上等正覺身黃金色圓光七尺聲如羯毘鳥柔軟無瑕衆相嚴身皆由過去無央數積福行善衆德具足不犯口過說言教無有增減故使如來至眞正覺今得十四舌相報法
그 열네 가지는, 첫째 말소리가 지극히 정성스러워서 속임이 없고, 둘째 설하시는 바를 들으면 문득 믿어서 알게 되고, 셋째 입의 행이 근문(根門)을 잃지 않고, 넷째 때를 알아 법을 설하여서 빠뜨림이 없고, 다섯째 스스로 금계를 널리 펼침을 즐기고, 여섯째 명구(名句)가 차례대로 서로 응하고, 일곱째 큰 사랑의 가피(加被)로 보시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여덟째 부처님의 형상(形像)을 보고는 의심을 품지 않고
012_0544_b_12L一者言聲至誠無欺二者所說聞輒信解三者口行不失根門四者知時說法無闕五者自樂演布禁戒六者名句次第相應七者大慈加被不捨施心八者睹佛形像不懷疑滯
아홉째 부처님의 신통을 얻어 스스로 노닐고 유희하며, 열째 법계에 벌써 들어갔어도 부처 지혜를 버리지 않고, 열한째 한량없는 지혜와 다함없는 곳간을 얻고, 열두째 부처님의 뜻은 형상이 없어서 모두 다 들어가게 되고, 열셋째 권도의 지혜가 걸림이 없어서 제도가 있음을 보지 않고, 열넷째 성실한 진리의 지혜에 머물러서 누구나 다 돈독히 믿는 것이니, 이것을 열네 가지 설상(舌相)의 과보라고 이르느니라.
012_0544_b_17L九者得佛神通而自遊戲十者已入法界不捨佛慧十一者獲無量慧無盡之藏十二者佛意無形皆悉得入十三者權慧無㝵不見有度十四者住誠諦慧人皆篤信是謂十四舌相之報
012_0544_c_01L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이 열네 가지 설상의 과보를 얻는 이는 곧 이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서 시방의 모든 불국토에 비출 수 있으니, 모두 지난 옛적의 말에 속임이 없었음을 말미암음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깊은 법을 지니고서 읊고 외는 이는 문득 몸에 싫증냄이 없는 열 가지 과보를 얻으리니,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012_0544_b_22L若有善男善女人得此十四舌相報者便能放此無量光明照諸十方諸佛剎土皆由曩昔言無欺詐佛復告軟首有善男子善女人執持諷誦此深法者便獲身相十無厭報云何爲十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두려움 없는 자리[無畏座]에 오르시자 먼저 평등관(平等觀)으로써 뜻을 거두어 침묵하면서 속으로 스스로 생각하셨다.
‘나는 이제 대중 가운데서 사람 중의 영웅[人中雄]이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았으니 크게 구제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 생각하셨다.
‘중생의 무리는 불가사의하구나. 10신(信)의 경지에서 퇴전(退轉)하고자 하는 이나 혹은 초지(初地)부터 6지(地)까지 이르렀으면서도 퇴전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따로 두어서 성인(聖人)의 반열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음란하고 화내고 어리석어서 마음에 얽히고 집착함이 많은 중생도 역시 따로 두어서 성례(聖例)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4_c_04L如來至眞等正覺昇於無畏座先以平等觀攝意寂默內自思惟吾今在衆爲人中雄今坐此座大有所濟自思惟衆生之類不可思議或在信地欲退轉者或在初地乃至六地欲退轉者宜且別置不在聖例或復衆生婬怒癡心縛著偏多此亦別之不在聖例
혹은 어떤 중생이 그 뜻이 호화스러운 부귀만을 숭상하고 덕의 근본을 짓지 않는다면, 이 역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무명의 마음이 치성하여서 교만한 행을 일으킨다면, 이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마음으로 환법(幻法)을 알아서 여래는 환(幻)으로서 부처가 아니라고 본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4_c_12L或有衆生意崇豪貴不造德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明心盛起憍慢行此亦捨置不在聖或有衆生心解幻法觀見如來此幻非佛此亦捨置不在聖例
혹은 어떤 중생이 세속의 신통을 얻어 부처님의 신통과 덕도 자기와 다름이 없다고 본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체성(體性)이 강하여 여래의 총지(摠持)의 행을 믿지 않으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4_c_16L或有衆生得世俗通觀佛神德與己無異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體性强不信如來摠持之行此亦捨置不在聖例
012_0545_a_01L혹은 어떤 중생이 보시하는 마음이 치우치게 많아서 여래의 보시를 듣고도 나와 무엇이 다른가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순수한 계의 마음[戒心]이 있어도 여래의 계를 듣고서 나와 더불어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마음이 항상 인자하고 잘 참아서 지금 세존의 참음이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4_c_20L或有衆生施心偏多聞如來施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例有衆生純有戒心聞如來戒與我何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心恒慈忍今世尊忍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例
혹은 어떤 중생이 정진을 하면서 세존의 정진이 나와 더불어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마음으로 참선을 즐겨서 세존께서 행하시는 선(禪)이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세간의 변재를 얻어서, 세존의 설하시는 지혜가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5_a_02L或有衆生所爲精進尊精進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或有衆生心樂禪行世尊行禪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得世辯才世尊說慧與我何異亦捨置不在聖例
혹은 어떤 중생이 사랑하는 마음이 치우쳐서 여래께서 설하시는 인자함이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비의(悲意)가 끊임이 없어서 여래가 비(悲)를 행하는 것이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항상 환희를 품고 있으면서 여래의 환희가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5_a_07L或有衆生偏有慈如來說慈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悲意不斷如來行悲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例有衆生恒懷歡喜如來歡喜與我何此亦捨置不在聖例
혹은 어떤 중생이 마음을 항상 놓아버리면서 여래의 놓아버림이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마음으로 항상 공을 염(念)하면서 여래가 공을 행함이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마음으로 멋대로 거래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여래의 무원(無願)이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상념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여래의 무상(無想)이 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한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5_a_12L或有衆生心恒放捨如來放捨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心恒念空來行空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或有衆生心不摸貿如來無願與我何異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不生想著如來無想與我何異亦捨置不在此例
012_0545_b_01L그때 부처님께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이 처해 있는 지취(志趣)도 같지 않고, 온갖 시방의 부처님세계ㆍ욕계ㆍ색계ㆍ무색계의 중생의 심념(心念)이 저마다 달라서 같지 아니하느니라. 가령 어떤 욕계의 중생은 5욕(欲)을 즐기느라고 5음(陰)을 버리지 않으니,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聖例)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은 색(色)을 계교하여 품에 간직하고서도 안으로 욕심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은 무색(無色)을 즐기길 원하는데,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5_a_19L爾時世尊告軟首菩薩衆生所處志趣不同一切十方諸佛世界欲界色界無色界衆生心念各異不同或有欲界衆生娛樂五欲不捨五陰此亦捨置不在聖例有衆生計色存懷內不著欲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願樂無色亦捨置不在聖例
부처님께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의 무리는 심식(心識)이 같지 않아서 행하는 것이 각각 다르다. 왜냐하면 모두가 뒤바뀜으로 인해 갑자기 깨달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내가 오늘 중생의 무리를 살펴보니, 마음의 나아가는 바에 무슨 도(道)를 구하고 싶어 하는지 알겠다. 시방세계의 무수한 찰토에 이르도록 낱낱이 요달해 알아서 그릇되지 않으니, 마치 눈 있는 사부(士夫)가 몸소 자기 손으로 밝은 달의 신령스런 구슬을 잡고서 자세히 살펴 미혹하지 않고 다른 나머지 상념도 없는 것과 같다. 나도 이제 마찬가지라서 중생의 신식본행(神識本行)이 나아가는 바를 분별한다.
012_0545_b_03L佛告軟首菩薩曰衆生之類心識不同所行各異所以然者皆由顚倒卒不可寤如我今日觀衆生類知心所趣願求何道至十方界無數剎土一一了知而不錯謬猶如士夫有目之者躬自手執明月神珠審然不惑無他餘想我今亦爾分別衆生神識本行之所趣也
혹은 어떤 중생이 일념 사이에 한 가지 행과 두 가지 행을 뜻하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일념 가운데 뭇 행을 갖추고 행 또한 무기(無記)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계는 있지만 보시는 없고 보시는 있지만 계가 없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혹은 어떤 중생이 여섯 가지 행을 갖추었거나 여섯 가지 행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것도 또한 버려두고서 성례에 있지 않아야 한다.
012_0545_b_10L或有衆生意一念頃一行二行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一念之中具足衆行行亦無記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有戒無施有施無戒此亦捨置不在聖例或有衆生具足六行不具六行此亦捨置不在聖例
과거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무수한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세 가지 품을 먼저 갖추시고 난 뒤에 법을 설하셨다. 만일 미래의 항하 모래 수효의 온갖 부처님이 법을 설하고자 한다면, 또한 마땅히 이 세 가지 품의 묘한 행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들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중생의 생각[念]을 관하니 생각 생각마다 같지 않고, 둘째는 모든 부처님은 무외(無畏)의 도량을 장엄하시는데, 성문이나 연각은 이 도량을 능히 세울 수 없고, 셋째는 본래 아직 법을 듣지 못했어도 여래가 설해 주면 모조리 공혜(空慧)에 돌아가는 것이니라. 이것을 여래의 세 가지 품의 묘한 행이라고 말하니, 법을 설할 때가 되면 이지러지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게 하여라.”
012_0545_b_16L過去恒沙無數如來至眞等正覺先具三品後乃說法正使將來恒沙諸佛如來欲說法者亦當具此三品妙行何爲三一者觀衆生念念念不同二者諸佛莊嚴無畏道場非聲聞緣覺能建此場三者本未聞法如來與說悉歸空慧是謂如來三品妙行當說法時悉無缺減
012_0545_c_01L그때 연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무엇을 여래의 세 가지 품의 묘한 행이 세운 바가 같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답하여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대의 말한 바와 같다. 내가 이제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낱낱이 설명해 주리라. 어떤 것을 보살의 세 가지 품의 묘한 행이라 말하는가?
012_0545_c_01L爾時軟首菩薩白佛言世尊云何如來三品妙行所建不同爾時世尊報曰如是如是如汝所言今當爲汝一一演說何謂菩薩三品妙行
여래 지진이 처음으로 정의중상삼매(定意衆相三昧)에 들어서 널리 중생을 위하여 한 모임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이처럼 무앙수의 무리가 마음이 똑같이 하나의 식(識)이고 염(念)하는 바도 또한 똑같아서 고(苦)의 뜻을 설함이 나머지 딴 법전이 아님을 들었다면, 이것은 곧 여래의 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니라.
또다시 족성자여. 지나간 세상ㆍ오는 세상ㆍ지금 세상의 부처님들도 저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알아서 먼저 등각(等覺)으로부터 비로소 위없는 바른 법을 이루시지만, 그러면서도 유(有)의 법을 설하여 상념의 집착을 여의지 아니하면, 이것도 또한 성례(聖例)에 있지 않아야 하느니라.
012_0545_c_05L如來至眞初入定意衆相三昧普爲衆生一會說法如此等無央數心同一識所念亦同聞說苦義非餘法典此則得入在如來例又復姓子過去當來今現在佛知彼衆生心中所念先從等覺乃成無上正法然說有法不離想著此亦不應在聖賢例
또다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먼저 열 가지 뜻을 거두어서 어지러운 상념의 행을 없애고, 그런 뒤에 깊고 묘한 법장(法藏)을 연설해서 중생의 무리로 하여금 듣고 있는 언교(言敎)를 빨리 알아 마치게 하여야 한다. 어떤 것들이 열 가지 뜻이 되는가.
여래가 법을 설하고자 할 때에 한결같이 걸림 없이 다 관하니, 즉 중생이 어떠한 법에 응해서 도탈(度脫)을 얻게 될까. 다시 어떤 중생은 뜻에 깊고 얕음이 있는데 무슨 방편을 써야 건져서 구제할까. 혹은 다시 법을 설하매 하나의 행일 뿐 둘이 없는데, 이제 이 중생은 이 법에 응하게 되나 못되나. 한량없는 공식심(空識心)이 염(念)하는 바는 어떠한 법을 좇아야 되는가를 관하고, 그런 뒤에 분신(奮迅)삼매를 안다.
012_0545_c_12L又復如來至眞等正覺先攝十意無亂想行然後乃演深妙法藏使衆生類所聞言教尋得解了云何爲如來欲說法時一向無㝵悉觀衆爲應何法而得度脫有復衆生意有深淺以何方便而得拔濟或復說法一行無二今此衆生爲應此法不觀無量空識心所念爲從何法後得解奮迅三昧
012_0546_a_01L행에 더러움이 없어서 일념 사이에 모든 법을 모조리 갖추고, 법계의 비롯함도 없고 끝남도 없음[無始無終]을 관해서 여러 가지 불사를 행하는 데 또한 걸림이 없다. 한량없는 지혜로써 일체를 널리 윤택하게 하고, 대중의 모임이 이미 정하여지면 신족의 힘으로 그들의 심의(心意)를 비추어 본래의 인연을 모두 알아서 법을 설하게 되니, 이는 바로 성례(聖例)에 있어야 하느니라.
다시 연수야,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무외좌(無畏座)에 오르시면 다시 마땅히 열 가지 다함없는 법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것들이 열 가지 법이 되는가.
012_0545_c_20L行無點污一念之頃諸法悉具悉觀法界無始無終諸佛事亦無罣㝵以無量慧普潤一衆會已定以神足力照彼心意識本緣而爲說法乃在聖例復次如來至眞等正覺昇無畏座復當具足十無盡法云何爲十
모든 부처님의 법장(法藏)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가 없으며, 부처님의 몸도 한량이 없고 법도 또한 한량이 없다.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다시 다함없는 무형의 법해(法海)가 있어서 불사를 위하여 베푸느니라. 다시 다함없이 안식(眼識)으로 거두어들일 수 없음이 있어서 시방의 유형과 무형의 식을 널리 보시느니라.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훌륭한 권도의 방편으로 중생을 건져서 구제하여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고, 일체를 널리 세워서 열 가지 착한 행을 닦느니라.
012_0546_a_03L諸佛法藏不可思議佛身無量法亦無量如來至眞等正覺復有無盡無形法海爲佛事復有無盡非眼識所攝普觀十方有形無形識如來至眞等正覺善權方便拯濟衆生不捨本願普立一切修十善行
다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안으로 항상 한뜻[一意]이면서 밖으로 설법을 나타내시는데, 한 가지 정한 것으로 적멸법에 응하지 않고, 법을 설하는 것으로 바깥의 어지러움을 나타내지 않느니라. 다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법을 설하실 때 감로의 법우(法雨)를 내려서 유정ㆍ무정과 유식(有識)ㆍ무식(無識)에게 널리 두루하여 모두 윤택을 입게 하시느니라.
012_0546_a_09L復次如來至眞等正內常一意外現說法不以一定應寂然法不以說法外現有亂復次至眞等正覺當說法時降甘露法有情無情有識無識普使周遍蒙潤澤
다시 다음으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집에 살면서 색상(色相)의 특수함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 높은 곳에 처한 자의 마음을 항복시켜 스스로 낮추게 하면서 나의 성(姓)이 부귀하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게 하고, 낮은 곳에 처한 자는 여래는 본래 족성(族姓)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하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전생 일을 아는 지혜[宿命智]로써 전생의 일을 아시는 데 다함이 없어 계량할 수 없느니라. 제도하기 어려운 중생은 5도(道)에 태어나서 본래 이 인연을 지었으니, 이제 다시 인연을 갚는 인연으로 깨달음을 얻느니라.
012_0546_a_14L復次如來至眞等正覺居家成就色相殊特正使大衆處在高者伏心自畀不自稱說我姓豪貴畀者不說如來本從出族姓復次如來等正覺以宿命智識前生無極不可計量難度衆生生在五趣本造此今復報緣因緣得寤
012_0546_b_01L 다시 다음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크나큰 서원의 네 가지 평등한 마음을 발해서 능히 시방의 형상이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하루에 부처를 이루어 온갖 상(相)을 갖추고 여실히 원대로 모두 부처의 도를 이루게 하시느니라. 다시 다음에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은 뜻을 견고하게 세워서 본래의 마음을 버리지 않으시느니라. 다시 한량없는 부처님 세계로 하여금 널리 똑같이 하루에 다 멸도(滅度)를 취하게 하는데, 그의 생각[念]대로라서 어기거나 그릇되지 않느니라.
이상을 열 가지 다함없는 여래의 법요(法要)라고 말하나니, 무외좌에 올라 이 법요를 갖추어서 여래의 다함없는 법을 선포해 창달하시니, 또한 아라한이나 벽지불이 능히 전할 바가 아니니라.”
012_0546_a_20L復次如來等正覺發大弘誓四等之心能使十方有形衆生一日成佛衆相具足如實如願皆成佛道復次如來至眞等正覺建意牢固不捨本心復使無量諸佛世界普共一日盡取滅度其所念亦不違錯是謂十無盡如來法要昇無畏座具此法要宣暢如來無窮盡法亦非羅漢辟支佛所能宣傳
이때 부처님께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익혀 행하여서 누구나 믿음의 경지에 서서 보살의 행을 닦으면, 그 복이 많은가 많지 않은가?”
연수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측량할 수 없사오며 비유할 수도 없나이다.”
012_0546_b_06L爾時世尊告軟首菩薩曰云何族姓若有善男子善女人習行空無相皆立信地修菩薩行其福寧爲多軟首菩薩白佛言甚多甚多世尊不可稱量無以爲喩
부처님께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는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無盡藏)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하니,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외는 복(福)은 앞에서 말한 선남자나 선여인의 복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2지(地)에 있으면서 뭇 행을 갖추고 게으름과 하열한 마음을 품지 않고 아울러 다시 앞서 믿음을 세운 것과 같이 공양하길, 시방의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 불국토에서도 모두 이와 같이 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012_0546_b_11L佛告軟首不如善男子善女人執持諷誦十無盡藏其福勝彼善男子女人者上佛復告軟首菩薩云何姓子若有善男子善女人已在二地具足衆行不懷懈怠有下劣心復供養如前立信十方恒沙諸佛國土皆如此類其福寧多不乎
연수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몹시 많고 몹시 많나이다. 가히 측량할 수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을 수행하여 믿음의 경지로부터 2지(地)까지 이르고, 이와 동등한 무리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찼다고 하는 것은 매우 신기하고 매우 기특하여 비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012_0546_b_18L軟首白佛言甚多甚多不可稱計何以故有善男子善女人修行諸法從信地至二地如此等類遍滿十方無量世甚奇甚特不可爲喩
012_0546_c_01L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족성자여,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다함없는 법을 받들어 지녀서 수행함만 못함이니, 그 복은 몹시 많고 몹시 많아서 비유할 수가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을 수행하여 3지(地)를 성취해서 모든 법의 근본을 충분히 성취케 하고, 아울러 앞의 믿음의 경지와 2지와 시방의 항하 모래 수효의 불국토의 모든 이와 같은 무리로 하여금 성취하게 하면,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012_0546_b_22L佛復告族姓故不如此善男子善女人奉持修行十無盡法其福甚多甚多不可爲佛復告軟首菩薩曰若有善男子善女人修行諸法成就三地皆使具足成諸法本幷前信地二地十方恒沙諸佛國土皆如此類其福寧多不
연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몹시 많고 몹시 많나이다. 가히 측량할 수가 없나이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을 받들어 수행해서 믿음의 경지로부터 2지, 3지까지 이르고, 이와 동등한 무리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함은 비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다함없는 법을 받들어 수행하는 것만 못하니, 그 복은 매우 많고 많아서 비유할 수가 없느니라.”
012_0546_c_06L軟首白佛言甚多甚多不可稱計何以故若有善男子善女人奉修諸法從信地至二地三地如此等類遍滿十方無量世界不可以喩佛復告族姓子故不如是善男子善女人持修行十無盡法其福甚多甚多可以喩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을 수행하여 4지를 성취해서 앞서의 믿음의 경지, 2지, 3지로 하여금 충만하게 하여 동등하게 하였다면,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연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함이니, 그 복은 저 선남자나 선여인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012_0546_c_12L佛復告軟首菩薩若有善男善女人修行諸法成就四地皆使具足如上信地二地三地其福寧爲多不軟首白佛言甚多甚多世尊故不如此善男子善女人執持諷誦十無盡藏其福勝彼善男子善女人上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하냐.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진실한 진리를 갖추고 법을 의심하지 않아서 5지의 여래 법인(法印)을 버리지 않고, 아울러 믿음의 경지에서부터 4지까지 행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 찼으면,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연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012_0546_c_18L佛復告軟首菩薩云何族姓子若有善男子善女人具足誠諦不狐疑法不捨五地如來法印及行信地乃至四地遍滿十方無量世界其福寧多不乎軟首白佛言世尊甚多甚
012_0547_a_01L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다함이 없는 법을 받들어 지녀서 수행함만 못함이니, 그 복은 매우 많아서 비유할 수가 없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이걸 버리고 나서,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6지(地)에 있으면서 뭇 행을 갖추어 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을 이미 초월하고 필연적으로 의심치 않는 한편, 믿음의 경지에서 5지까지 행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 찼다고 하면, 어떠한가. 족성자야, 그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012_0546_c_23L佛言故不如此善男子善女人奉持修行十無盡法其福甚多不可以佛復告軟首菩薩復捨此已若有善男子善女人已在六地具足衆行已得越彼空無相願必然不疑幷行信地乃至五地遍滿十方無量世界云何族姓子其福寧爲多不
연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함이니, 그 복이 저것보다 뛰어나느니라.”
부처님이 다시 연수에게 말씀하셨다.
“어떤가, 족성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큰 서원이 굳건하여 7지에서 불퇴전(不退轉)에 머물며 온갖 법을 갖추어서 피아(彼我)가 없고, 믿음의 경지로부터 6지에 이르기까지 뭇 덕이 갖춰지고 온갖 행이 완비되었다면, 어떤가, 족성자야. 그 복이 많겠는가, 많지 않겠는가?”
012_0547_a_06L軟首白佛言甚多甚多佛言故不如此善男善女人執持諷誦十無盡藏其福出彼上佛復告軟首云何族姓子有善男子善女人弘誓堅固在於七地住不退轉具足諸法而無彼我信地乃至六地衆德具足諸行皆備云何族姓子其福寧多不乎
연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함이니, 그 복은 저것보다 뛰어났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7지를 이미 지나서 앞으로 성불로 나아가면서 ‘나는 이제 피차의 상념이 없는 경지에 이미 머물렀다, 나의 자각(自覺)은 필연이라서 의심치 않는다’고 하며, 이와 동등한 무리가 시방에 두루 가득 차서 앞서 믿음의 경지부터 7지에 이르기까지처럼 공양한다면, 그 복이 많겠는가, 많지 않겠는가?”
012_0547_a_13L軟首白佛言甚多甚多世尊佛言故不如是善男子善女人執持諷誦十無盡藏其福出彼上佛復告軟首菩薩若有善男子善女人已過七地進前成佛吾今已住無彼此想如我自覺必然不疑如此等類遍滿十方供養如前從信地乃至七地其福寧爲多不
연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는 것만 못하나니, 그 복은 저것보다 뛰어나느니라.”
012_0547_a_20L首白佛言甚多甚多世尊佛言故不如是善男子善女人執持諷誦十無盡藏其福出彼上
012_0547_b_01L부처님께서 다시 연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이미 생겨남이 없고 일어나거나 멸함도 없는 법[無生無起滅法]을 얻어서 마음이 허공 같아 더럽힐 수가 없고 오직 방편의 지혜로 나무 아래에 나아가는데, 이와 동등한 무리가 처음 믿음의 경지부터 8지에 이르기까지 뭇 행을 갖추고 성불이 머지않아서 삼천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가득 찼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족성자여, 그 복이 많겠는가, 많지 않겠는가?”
012_0547_a_23L佛復告軟首菩薩若有菩薩摩訶薩已得無生無起滅心如虛空不可點污唯須權慧詣樹王下如此等類始從信地乃至八具足衆行成佛不久遍滿三千無量世界云何族姓子其福寧爲多不
연수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왜냐하면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부처의 짝[佛伴]에 머물러서 문득 그 이름을 부처라 하거늘, 하물며 다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서 믿음의 경지로부터 8지에 이르기까지이겠나이까. 그러하니 9지 보살마하살의 일념의 덕만 못하나이다.”
012_0547_b_05L軟首白佛言甚多甚多世尊何以故是善男子善女人已住佛伴便名爲況復十方無量世界從信地乃至八地故不如九地菩薩摩訶薩一念之德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열 가지 무진장을 지녀서 읊고 외면, 오늘날의 나처럼 여래ㆍ지진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를 이루지만, 오히려 열 가지 무진장은 얻지 못하리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으로 열 가지 무진장을 닦아 익히고자 하는 이, 시방의 여래가 일시(一時)에 도를 얻음을 다 아는 이, 같은 때에 열반에 드는 이, 중생의 심식에서 상념의 집착을 다 멸한 이, 앞에 있으면서 부처를 이루고자 하는 이, 중생을 거두어 부처의 마음과 똑같게 하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이 열 가지 무진장을 닦아 익혀야 하느니라.”
그때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 계시면서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7_b_10L佛言若有善男子善女人執持諷誦十無盡藏如我今日成如來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解上士道法御天人師猶尚不得十無盡藏若有善男子善女人欲得修習十無盡藏者盡知十方如來一時得道者同時般泥洹者盡滅衆生心識想著者欲在前成佛者欲攝衆生同如佛心者當修習是十無盡藏爾時釋迦文佛在於大衆而說斯頌

내가 이제 비록 부처 이룬 것은
옛적에 권하고 도운 과보로 말미암은 것이니
바른 법은 옮길 수 없고
대도는 약간(若干)이 없네.
012_0547_b_19L吾今雖成佛
由昔勸助報
正法不可移
大道無若干

지나간 세상 스스로 생각하니
여러 부처님을 섬기어 공양했고
도법(道法)으로써 권하고 도와주어
형상을 버리고 형상 없음에 이르렀노라.
012_0547_b_21L自念過去世
承事供諸佛
勸助以道法
捨形至無形

다시 무수한 겁에
무진장(無盡藏)은 얻지 못해
뜻을 세워서 상념을 두지 않아
무위의 언덕[無爲岸]에 차츰 이르렀노라.
012_0547_b_22L復於無數劫
不獲無盡藏
建意無有想
漸至無爲岸
012_0547_c_01L
여래 등정각은
세 가지 통달하고 여섯 가지 통한 지혜로
권하고 도와서 뭇 행을 갖추어
이에 무진장을 얻었네.
012_0547_b_23L如來等正覺
三達六通慧
勸助衆行具
乃獲無盡藏

본원(本願)이 이제 과보를 얻으니
그래서 ‘하늘 중의 하늘’이라 이름하고
이 권하고 도운 복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무극존(無極尊)을 이루었노라.
012_0547_c_02L本願今得報
故號天中天
斯由勸助福
自致無極尊

강과 바다도 다하고
산과 강도 무너져 버리고
해와 달도 이지러지고 찰 수 있지만
법장(法藏)은 다함이 없도다.
012_0547_c_03L江海可竭盡
山河亦崩落
日月有虧盈
法藏不可盡

모든 부처님의 권혜(權慧)의 도(道)는
그 힘을 헤아릴 수 없으니,
온갖 중생을 양육하면서
자비와 연민으로 법을 굴리시네.
012_0547_c_04L諸佛權慧道
其力不可思
育養諸衆生
慈愍轉於法

혹은 모태(母胎)에 나타나 있음은
부모를 교화하고자 함이고
다시 전륜왕이 되어서
무수한 국토를 거느렸도다.
012_0547_c_06L或現在母胎
欲化於父母
復作轉輪王
統領無數土

명쾌하다, 이 과보여
이 무진장을 얻었고
수행으로 성불을 얻었으니
변화는 다함이 없구나.
012_0547_c_07L快哉斯果報
獲此無盡藏
修行得成佛
變化無有窮

옛적 무수한 세상에 있으면서
복을 짓고 공덕을 세웠는데
권유와 도움을 제일로 삼으매
더 이상 뛰어난 자가 없었네.
012_0547_c_08L昔在無數世
作福建功德
勸助爲第一
無有出是上

금ㆍ은 등 7보(寶)는
색상(色相)이 비길 데 없나니
모두 권유와 도움을 말미암은 과보이니
다함없는 온갖 법장이로다.
012_0547_c_10L金銀七寶具
色相無有比
皆由勸助報
無盡諸法藏

허공은 있는 바가 없어서
형상과 색(色)의 모습을 지음을 말미암나니
이 법은 너무나 깊고 묘해서
진제(眞諦)는 무너뜨릴 수가 없어라.
012_0547_c_11L虛空無所有
由造形色相
此法甚深妙
眞諦不可毀

그때 석가모니여래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서 다시 선남자와 선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처음 뜻을 발했을 때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온갖 중생을 나와 다르지 않게 하려는 이는 이 열 가지 무진장을 반드시 익혀야 하느니라.”
이때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장차 법을 설해 법륜을 굴리고자 문득 무진장정의(無盡藏定意)에 들어가시어 시방의 항하 모래 수효의 온갖 부처님을 감동시키고, 때에 감응하여 얼굴을 나타내서 동시에 한 음성으로 각기 게송을 말씀하셨다.
012_0547_c_12L爾時釋迦文如來說此偈已復告善男子善女人若有菩薩摩訶薩從初發意乃至成佛令一切衆生如己不異者當習是十無盡藏爾時如來等正覺將欲說法轉於法輪便入無盡藏定意感動十方恒沙諸佛時面見同時一響各說頌曰

현재의 법[現法]은 네 가지 뜻을 여의고
여래는 집착의 행이 없네.
하나를 닦아서 불도(佛道)를 얻고
생각[念]으로 나아가매 게으름 없네.
012_0547_c_19L現法離四義
如來無著行
修一得佛道
念進無有怠

삼향(三向)은 평등의 공(空)으로
그 호칭을 무진장이라 하나니,
열 가지 행의 근본을 버리지 않음을
이것을 일러 여래장(如來藏)이라 하도다.
012_0547_c_21L三向平等空
號曰無盡藏
不捨十行本
是謂如來藏

불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나니
허공처럼 받아들이는 바가 없고
나의 식은 나를 보지 못하나니
이 감응이 무진장이로다.
012_0547_c_22L佛法不思議
如空有所受
我識不見我
是應無盡藏
012_0548_a_01L
부처님의 행은 다함이 있지 않고
연설하신 바도 헤아릴 수 없으며
일체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있는 바 없음[無所有]을 나타내 보이시도다.
012_0547_c_23L佛行非有盡
所演不可量
慈愍一切故
示現無所有

여래이신 모든 부처님의 상(相)은
도를 이루면 차이가 없지만
저 중생의 뜻에 따라서
상(相)에 높고 낮음 있음을 아네.
012_0548_a_02L如來諸佛相
成道無差特
隨彼衆生意
知相有高下

나는 이제 동등함이 없어
중생의 고통을 근심하고 싫어하나니
도로써 뜻을 스스로 거두어 잡아
온갖 외도를 항복시키네.
012_0548_a_03L我今無有等
厭患衆生苦
以道自攝意
降伏諸外道

일체 모든 법의 근본은
연(緣) 없으면 또한 합하지 않고
도는 평등각(平等覺)으로부터
곧 여래의 지혜에 이르네.
012_0548_a_04L一切諸法本
無緣亦不合
道從平等覺
乃逮如來慧

모든 부처님은 불가사의하고
법의 근본도 불가사의하고
연(緣)의 과보도 불가사의하고
분별도 불가사의하네.
012_0548_a_06L諸佛不思議
法本不思議
緣報不思議
分別不思議

내가 머물면서 천겁을 지냈는데
부처와 부처가 스스로 칭찬하나니
능히 법장(法藏)을 다해서
털끝만큼의 손감(損減)도 있지 않았네.
012_0548_a_07L我住經千劫
佛佛自稱歎
未能盡法藏
毫釐有損減

우리들이 벌써 성불하여
공(空)의 법신(法身)을 갖춘 것은
옛적에 무진장을 닦아서
스스로 사람 중에 높은 이[人中尊]가 되었네.
012_0548_a_08L我等已成佛
具足空法身
昔修無盡藏
自致人中尊

욕계는 번뇌가 많지만
욕심을 끊음도 딴 곳에서가 아니니,
욕심에서 욕심을 능히 여읨은
모두 무진장을 말미암음이로다.
012_0548_a_10L欲界多塵勞
斷欲非餘處
於欲能離欲
皆由無盡藏

비록 머물면서도 머묾에 처하지 않고
형상과 색의 모습 또한 없으니,
온갖 집착을 분별하여 설하지만
부처님의 식[佛識]에는 형상 없도다.
012_0548_a_11L雖住不處住
亦無形色相
分別諸識著
佛識無形相

여래는 색상(色相)이 없건만
중생 위해 상(相)을 나타내고
집착도 없고 오염도 없어서
여래의 몸도 또한 공(空)하도다.
012_0548_a_12L如來無色相
爲衆生現相
無著無染污
如來身亦空

바로 지금 등정각(等正覺)이
시방의 세계에 두루 찼으니
본식(本識)은 불가사의해서
무진장을 연설하시네.
012_0548_a_14L遍滿十方界
如今等正覺
本識不可思
演說無盡義

이때 시방의 여러 부처님이 이 게송을 말씀하시고 나자, 여덟 방위[八方]및 위와 아래에서 여섯 번이나 진동이 반복되었다. 그때 자리에 있던 6백 명의 비구들은 본래 아라한에 나아갔었으나, 잠깐 사이에 뜻을 돌려 무진장에 이르렀고, 13억의 중생들도 다함없는 법장을 또한 얻었다.
012_0548_a_15L是時十方諸佛說此偈已八方上下六反震動座上有六百比丘本趣羅尋時迴意逮無盡藏有十三億衆亦得無盡法藏

8. 여래품(如來品)
012_0548_a_19L菩薩瓔珞經如來品第八
012_0548_b_01L
그때 연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러 족성자(族姓子)들은 어떻게 다함없는 법장(法藏)을 닦아 익혀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함없는 법을 닦고자 한다면, 다섯 가지 고통의 법문을 마땅히 닦아야 하느니라.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고(苦)의 법문인가?
만일 어떤 중생이 시방의 세계를 보아서는 마땅히 고(苦)의 지혜와 고의 식(識)을 들어서 문득 능히 형상을 따라 접하여 제도해야 하니, 이것을 첫째의 법이라 말하느니라.
012_0548_a_20L爾時軟首菩薩白佛言世尊諸族姓子云何修習無盡法藏佛言若有善男子女人欲得修無盡法者當修五苦法門云何爲五苦法門若有衆生見十方界當聞苦慧苦識便能隨形而往接度是謂一法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량없는 세계의 중생들이 생각하는 공(空)하여 있는 바 없음을 보고자하고 공의 고혜(苦慧)를 얻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 뜻을 세워서 물러나지 말아야 하니, 이것을 둘째의 법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여러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는 모두 평등의 뜻을 얻어서 다함없는 자비를 행하니, 얻지 못한 자는 얻고, 제도 받지 못한 이는 제도를 받는다. 이것을 셋째의 법이라 말하느니라.
012_0548_b_03L復次族姓子若有善男子女人欲觀無量世界衆生所念空無所有欲得空苦慧者建此意亦不退轉是謂二法復次姓子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皆得平等意行無盡慈未獲者獲得者得未度者度是謂三法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집에 살면서 성취하고 종성도 마찬가지라면, 모두 괴로움의 지혜를 알아서 마음에 즐거움이 있지 않음이니, 이것을 넷째의 법이라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한량없는 법문과 다함없는 법장의 온갖 지혜가 자재하면, 이것을 다섯째 법의 다함없는 법장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다함없는 법장을 충분히 갖추고자 하면, 다시 다섯 가지 일이 있느니라. 어떤 것들이 다섯 가지 일인가?
012_0548_b_09L復次姓子若有善男子女人居家成就種姓亦爾皆知苦慧心不在樂是謂四復次族姓子若有善男子女人來無量法門無盡法藏衆智自在謂五法無盡法藏復次族姓子若有善男子女人欲得具足無盡法藏者復有五事云何爲五
여러 부처님께서 항상 등정(等定)에 계시면서 어떤 때는 허공관(虛空觀)에 들어가 중생이 성현의 법률에 있음과 성현의 법률에 있지 않음을 분별해서 모조리 편안히 처하게 하여 그 소원을 각각 충족시키시니, 이것을 첫째의 법이라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만일 하늘에 나고자 하거든 마땅히 여러 하늘의 계법을 닦아 행해야 하느니라. 애욕이 있는 하늘도 있고, 애욕이 없는 하늘도 있다. 때로 어느 하늘은 애욕과 즐거움에 집착하기도 하고 애욕과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기도 하니, 능히 두 가지 일을 갖추어서 모조리 물들거나 집착함이 없어야 다함없는 법에 응하느니라.
012_0548_b_16L諸佛世尊常在等定有時入虛空觀分別衆生有在賢聖法律不在賢聖法律悉能安處各充其願是謂一法復次族姓子欲生天便當修行諸天戒法有愛欲無愛欲天或時有天著於愛樂著愛樂能具足二事悉無染著乃應無盡法
012_0548_c_01L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다시 마땅히 네 가지 과보의 행을 갖추어서 문득 신통을 타고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어야 하나니, 어떤 것들이 네 가지 과보의 행인가?
모든 부처님은 항상 고요함에 처해 있는데, 만일 여러 하늘ㆍ용ㆍ귀신ㆍ건달바ㆍ아수라들이 여래에게서 진실을 듣고자 한다면, 물음을 채 발하지도 못한 사이에 여래께서 이미 이 족성자가 장차 물으려는 뜻을 아나니, 이것을 첫째 법의 네 가지 과보의 행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48_b_23L復次族姓子復當具足四果報便乘神通遊無量世界云何四果報行諸佛如來恒處寂寞若有諸天龍神乾沓和阿須倫欲從如來聞眞實者未發問頃如來已知此族姓子當問是義是謂一法四果報行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심의(心意)가 고요하여 법을 듣고자 하지 않으면, 여래께서는 좇아올 수 있을까, 좇아올 수 없을까, 법을 듣고자 할까, 법을 듣고자 하지 않을까를 다 알고 있으니, 이것을 족성자야, 제2의 과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48_c_05L佛復告族姓子若善男子女人心意寂然不欲聞法如來悉知是可從是不可斯欲聞法不欲聞法是謂族姓子第二果報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여래의 인(印)을 얻었으면, 문득 중생의 심의를 능히 인가할 수 있으니, 이것을 제3의 과보라고 말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미 바른 법을 들었지만 마음으로 헤아리는 바도 아니고 생각으로 측량하는 바도 아니어서 모두 평등해서 두 가지 상념이 없게 하니, 이것을 제4의 과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48_c_09L復次族姓子若善男子已得如來印便能印可衆生心意是謂第三果報復次族姓子若善男女人已聞正法非心所度非念所皆使平等無有二想是謂第四果
다시 다음에 족성자야, 4신족의 행을 갖추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네 가지 일의 과보를 생각해야 하느니라. 어떤 것들이 4신족인가?
보살마하살이 처음으로 뜻을 발하면서부터 1지(地), 2지, 나아가 10지에 이르기까지 각각 신족이 있지만 행마다 같지 않느니라. 어떤 보살은 이미 1지에 있으면서 문득 신식(身識)을 얻어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노닐며 다니고, 정(定)의 뜻은 못 얻었지만 중생의 마음을 안다.
012_0548_c_14L復次族姓子欲得具足四神足行亦當念此四事果報云何四神足是菩薩摩訶薩從初發意一地二地乃至十地各有神足行行不同或有菩薩已在一地便得身識遊行十方無量世界未得定意知衆生心
다시 어떤 보살은 이미 1지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색상과 온갖 상호[好]의 갖춤을 얻어서 또다시 시방의 세계를 유람하며 여러 부처님에게 절하며 공양 올리는데, 비록 신통은 얻었으나 아직 중생을 교화해서 부처님 국토를 청정케 하는 일은 능히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다시 어떤 보살마하살은 신통을 이미 얻어서 여러 부처님께 절하며 공양올리고, 문득 법을 설하여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느니라.
012_0548_c_19L復有菩薩旣在一地得佛色相衆好具足亦復遊觀十方世界禮事供養諸佛世尊雖得身通未能堪任教化衆生淨佛國土復有菩薩摩訶薩已得神禮事供養諸佛世尊便能說法教化衆生
012_0549_a_01L다시 어떤 보살마하살은 이미 초지(初地)에 있으면서 부처님 나라를 청정하게 닦지만 제1지의 일은 능히 스스로 알지 못하느니라.
다시 어떤 보살마하살은 큰 서원의 대승의 마음을 갖추지 못한 채 그 가운데에서 망설이는 상념의 집착을 문득 내는데, 이와 같은 무리는 반드시 성문과 연각의 도에 떨어지니라.
다시 어떤 보살마하살은 1지의 청정한 행을 닦아 다스리고, 다시 신통으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널리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두루 알지만, 저 중생을 능히 제도하여 도검(道撿)에 편히 두지는 못하느니라.
012_0549_a_02L復有菩薩摩訶薩已在初地淨修佛國未能自知第一地事復有菩薩摩訶薩未具弘誓大乘之心中便生猶豫想著如此等比必墮聲聞緣覺道中復有菩薩摩訶薩修治一地淸淨之行復以神通廣遊十方無量世界遍知衆生心中所念然未能度彼衆生安處道撿
다시 어떤 보살마하살은 이미 초지(初地)에 있으면서 4신족(神足)을 얻었느니라. 제1의 신족은 그 이름을 고관(苦觀)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 항상 노니면서 온갖 고통을 받는 중생을 무위(無爲)에 처하게 하느니라. 제2의 신족은 그 이름을 음향(音響)이라고 하는데, 이 법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니며, 응당 음향으로부터 제도를 받을 수 있는 중생들은 보살의 설하는 바를 듣고 믿어 이해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012_0549_a_09L復有菩薩摩訶薩已在初地得四神足第一神足名曰苦觀菩薩得此神足者恒遊諸佛世界諸苦衆生得處無爲第二神足名曰音響菩薩得此法者遍遊十方無量世界諸有衆生應從音響而得度者聞菩薩所說無不信解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발의(發意)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며, 중생들이 뜻을 발하여 도에 나아가려고 하면 능히 옹호하여 성취케 하느니라.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감동(感動)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을 관하여 공관(空觀)으로부터 제도를 얻게 하니, 이것을 초지의 보살마하살이 갖추는 4신족의 행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49_a_15L復有神足名曰發意菩薩得此神足者遊十方無量世界諸有衆生發意趣輒能擁護令得成就復有神足名曰感動菩薩得此神足者遍遊十方觀衆生心應從空觀而得度者是謂初地菩薩摩訶薩具足是四神足行
012_0549_b_01L2지 보살에게 다시 네 가지 일[四事]이 있으니, 어떤 것들이 넷이 되는가. 보살이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멸종(滅種:종자를 멸함)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며 중생이 의식으로 생각하는 바를 모두 알아서 범부의 종자를 멸하여 성제(聖諦)의 경계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다시 멸하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 마음속 생각의 선과 악에 대한 상념을 다 관하여 악(惡)의 상념을 능히 멸하고 성제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012_0549_a_21L二地菩薩復有四事云何爲四菩薩有神足名曰滅種得是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盡知衆生意識所念滅凡夫種入聖諦境復有滅神足得此神足遍遊十方無量世界盡觀衆生心中所念有善惡想能滅惡想入於聖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제구(除垢:때를 없앰)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 마음속 생각이 더러움의 욕심으로 얽어맨 마음임을 관해서 능히 범부의 식념(識念)을 없애주고 성제에 들어가게 하느니라. 다시 삼교편(三巧便)이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심식(心識)이 생각하는 바를 모두 알아서 능히 저 뜻을 세우고 세 가지 평등한 법을 건립하느니라. 이상을 보살마하살이 4신족의 법을 얻어서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능히 노닐면서 2지(地)의 행법을 능히 갖추었다고 말하느니라.”
012_0549_b_05L復有神足名曰除垢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觀知衆生心中所念垢欲纏心便能蠲除凡夫識念入於聖諦復有三巧便神足菩薩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觀知衆生心識所念能建彼意立三等法是謂菩薩摩訶薩得此四神足法遊十方無量世界則能具足二地行法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3지에 있으면서 다시 네 가지 영락신족이 있으니, 이 몸을 능히 변화시켜 한량없는 형상을 이루었다가 도로 합쳐서 하나로 만드느니라.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본요(本要)이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널리 보아서 내가 생각하는 바처럼 해서 제도하여 해탈시키느니라. 다시 법행연치(法行然熾)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다 관해서 기쁨과 분노 있는 자와 기쁨과 분노 없는 자를 보면 불타는 법으로써 교화하느니라.
012_0549_b_12L佛復告族姓子菩薩摩訶薩在三地復有四瓔珞神足能變此身成無量形還合爲一云何爲四有本要神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普觀衆生心中所念如我所念而度脫之復有法行然熾神足菩薩得此神足遍遊十方無量世界盡觀衆生心中所念見有喜怒無喜怒者以然熾法而教化之
012_0549_c_01L다시 무형(無形)이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관해서 심식 없음으로 교화하느니라. 다시 삼청정(三淸淨)이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생각을 관하여 알아서 세 가지 법행을 설하여 세 가지 상념을 멸하게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 법행인가. 첫째는 공이요, 둘째는 식(識)이요, 셋째는 나[我]이니라. 이상을 보살마하살이 3지에 있으면서 4신족의 행을 갖춘다고 말하느니라.”
012_0549_b_21L復有無形神足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觀衆生心中所念以無心識而教化之復有三淸淨神足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觀知衆生所念說三法行使滅三想云何爲三法行一者三者是謂菩薩摩訶薩在三地中具足四神足行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4지에 있으면서 다시 이 4신족을 마땅히 갖추어야 하나니, 어떤 것이 4신족인가?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무상(無相)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3색천(色天)으로부터 허공의 끝[虛空際]에 이르기까지 널리 중생으로 하여금 무상법을 얻게 하느니라. 다시 제탐(除貪:탐욕을 없애는)이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모두 관해서 정의(定意)의 법으로 교화하느니라.
012_0549_c_05L佛復告族姓子菩薩摩訶薩住四地復當具此四神足云何爲四復有神足名曰無相菩薩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從三色天至虛空普令衆生得無相法復有除貪神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盡觀衆生心中所念以定意法而教化
다시 전법륜(轉法輪:법륜을 굴리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4무소외 없고 죽지 않는 감로의 법[不死甘露法]을 굴려서 오랫동안 굶주리고 목마른 이에게 충족함을 얻게 하느니라. 다시 등혜(等慧)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모두 관해서 평등한 지혜로 제도하여 해탈시키느니라. 이상을 보살마하살이 4지에 머물러서 4신족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49_c_13L復有轉法輪神足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轉四無畏不死甘露久飢渴者令得充足復有等慧神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盡觀衆生心中所念以平等慧而度脫之是謂菩薩摩訶薩住於四地具足四神足行
012_0550_a_01L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5지에 있으면서 다시 4신족이 있으니, 어떤 것이 4신족인가? 어떤 신족은 그 이름이 무량문(無量門:한량없는 문)인데, 이 한량없는 문을 얻은 보살은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모두 관하여 해탈의 지혜로 제도하여 해탈시키느니라. 다시 행(行)이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생각하는 것을 다 요달해서 즉각 법의 근본을 설하여 법문을 통달하게 하느니라. 다시 수보(受報:갚음을 받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현재 행하는 법의 과보로 제도하여 해탈시키느니라. 이상을 보살이 5지에서 4신족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49_c_19L佛復告族姓子菩薩摩訶薩在五地復有四神足云何爲四有神足名曰無量門菩薩得是無量門者盡觀衆生心中所念以解脫慧而度脫之復有行神足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悉了衆生所念卽說法本通達法門復有受報神足門得是神足者以現行法報而度脫之是謂菩薩在五住地具足是四神足行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6지에 있으면서 다시 4신족행을 마땅히 갖추어야 하니,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어느 신족은 그 이름을 타락(墮落)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모두 관해서 온갖 악의 과보로 마땅히 순숙(純熟)할 이에게는 차츰 법을 설해 주어서 타락하지 않게 하느니라.
012_0550_a_05L佛復告族姓子菩薩在六地中復當具足四神足行云何爲四有神足名曰墮落菩薩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盡觀衆生心中所念諸惡果報應淳淑者漸與說法令使墮落
다시 무근(無根:뿌리 없음)이라는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모두 관해서 그 근본을 캐어 영원히 끊어서 나오지 않게 하느니라.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이구출요(離垢出要:번뇌를 여의어 초월하는 법요)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이는 시방의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모두 관해서 저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에서 벗어나는 도의 요체를 얻게 하느니라.”[범본에는 한 가지 항목이 빠져 있다]
012_0550_a_10L復有無根神足得是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界盡觀衆生心中所念其根本永斷不生復有神足名離垢出要得此神足者遍遊十方無量世盡觀衆生心中所念令彼衆生得出道要不了梵本闕一事
012_0550_b_01L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7지에 있으면 그 이름을 불퇴전법(不退轉法)이라고 하는데, 문득 4신족의 법을 마땅히 갖추어야 하느니라.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어느 신족은 그 이름을 중생신부정(衆生身不淨:중생의 몸이 청정하지 못함)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오로(惡露)의 깨끗하지 못함을 능히 나타내 보여서 무수한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도덕(道德)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능히 바른 도로써 3악도를 버리고 아라한을 얻게 하느니라.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각정(覺正)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믿음의 경지에 서서 물러나지 않게 하느니라. 이상을 보살마하살이 7지에서 신족의 법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50_a_16L佛復告族姓子菩薩摩訶薩以在七名曰不退轉法便當具足四神足云何爲四有神足名曰衆生身不菩薩得此神足者能示現惡露不因此教化無數衆生復有神足名曰道德菩薩得此神足者能以正道捨於三道得阿羅漢復有神足名曰覺正菩薩得此神足者能令衆生皆立信地令不退轉是謂菩薩摩訶薩在七地中具神足法
부처님이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8지에 있으면서 4신족을 갖추는데, 광대무변(廣大無邊)함이 성문이나 벽지불이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니, 어떤 것이 4신족인가? 어느 신족은 본미발도심(本未發道心:근본적으로 도의 마음을 아직 발하지 못함)인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저 중생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믿음의 경지에 서게 하지만, 나머지 행에는 아직 나아가지는 못하게 하느니라.
012_0550_b_03L佛復告族姓子菩薩摩訶薩在八地具足四神足廣大無邊非聲聞辟支佛所能及知云何爲四或有神足本未發道心菩薩得此神足者令彼衆生始立信地餘行未就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무생(無生)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온갖 행에서 나[我]가 없음을 하나하나 관찰하느니라.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탐착(貪着)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여러 부처님의 상호를 탐하여 즐겨하느니라. 다시 진루(盡漏:번뇌가 다함) 신족이 있으니,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능히 한뜻으로 온갖 번뇌의 법[漏法]을 끊게 할 수 있느니라. 이상을 보살마하살이 8지에서 4신족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50_b_08L復有神足名曰無生菩薩得此神足者一一觀察諸行無我復有神足名曰貪著薩得此神足者貪樂諸佛相好復有盡漏神足菩薩得是神足者能使一意斷諸漏法是謂菩薩摩訶薩在八地中具四神足
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9지에 있으면서 문득 4신족의 법을 마땅히 갖추어야 하니, 어떤 것이 네 가지가 되는가. 어느 신족은 그 이름을 중해(衆海)라고 하느니라.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온갖 4사(使)가 나아와서 문을 향하는데, 번뇌가 이미 끊어졌으면 문에 들어감을 얻지만, 번뇌가 끊어지지 못했으면 문에 들어감을 얻지 못하느니라. 이것을 보살이 9지에 있으면서 4신족을 갖춘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012_0550_b_14L佛復告族姓子菩薩在九住中便當具足四神足法云何爲四有神足名曰衆海菩薩得此神足者諸有四使趣來向門穢垢已盡便得入門心垢未盡不得入門是謂菩薩在九地中具四神足
012_0550_c_01L부처님께서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은 10지에 있으면서 4신족을 갖추어야 하니, 어떤 것이 네 가지가 되는가. 어느 신족은 그 이름이 광명(光明)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무수한 부처님 국토에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모조리 관해서 보리수[樹王] 밑에 나아가 결가부좌하며, 이때 큰 서원의 마음을 갖추었느니라.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무량문(無量門)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나아갈 데를 분별하여 모두 1승(乘)으로 나아가느니라.
012_0550_b_20L佛復告族姓子菩薩在十地中具四神足云何爲四有神足名曰光明薩得是神足者遊騰十方無數佛土盡觀衆生心中所念坐樹王下結加趺坐爾乃具足弘誓之心復有神足名曰無量門菩薩得此神足者分別所趣盡趣一乘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일념(一念)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조리 일념에 도를 이루게 하느니라. 다시 신족이 있으니 그 이름을 장엄(莊嚴)이라고 하는데, 이 신족을 얻은 보살은 하루 사이에 모든 부처님 국토를 다 함께 장엄하고 똑같은 명자(名字), 똑같은 때에 함께 도를 이루느니라. 이상을 10주(住) 보살마하살이 4신족의 법을 갖추었다고 말하느니라.”
012_0550_c_04L復有神足名曰一念菩薩得此神足者盡令十方無量衆生一念成道復有神足名曰莊嚴薩得此神足者一日之中盡共莊嚴諸佛剎土同字同時一時成道是謂十住菩薩摩訶薩具四神足法
菩薩瓔珞經卷第三
壬寅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갖추어 말하면 5음성고(陰盛苦) 또는 5성음고(盛陰苦). 중생을 이루어 놓은 5음(陰)이 치성하여서 일어나는 고통. 또 5음이 뭇 괴로움을 담았다고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