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549_T_020
- 014_0695_c_01L대지도론 제20권
- 014_0695_c_01L大智度論釋初品中三三昧義第三十二卷第二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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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 014_0695_c_02L龍樹菩薩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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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초품 중 세 가지 삼매[三三昧]의 뜻을 풀이함 - 014_0695_c_03L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奉 詔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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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 공삼매1)‧무상(無相)삼매2)‧무작(無作)삼매3)와 4선(禪)‧4무량심(無量心)‧4무색정(無色定)‧8배사(背捨)‧8승처(勝處)‧9차제정(次第定)‧10일체처(一切處)[를 구족해야 하느니라.] -
014_0695_c_04L【經】
“空三昧、無相三昧、無作三昧,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八背捨、八勝處、九次第定、十一切處。”
- 【論】 【문】 무슨 까닭으로 37품에 이어 여덟 가지 법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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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5_c_07L【論】
問曰:何以故次三十七品後,說八種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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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37품은 열반에 나아가는 길이다. 이 길을 행하면 열반의 성에 이르게 된다. 열반의 성에는 세 문이 있으니, 이른바 공ㆍ무상ㆍ무작이다.
이미 길을 말했으니 다음에는 이르른 곳의 문을 말해야 하리라.
4선 등은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는 법이다. - 014_0695_c_08L答曰:三十七品是趣涅槃道,行是道已,得到涅槃城。涅槃城有三門,所謂空、無相、無作。已說道,次應說到處門;四禪等是助開門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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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6_a_01L또한 37품은 높고 묘한 법이니, 욕계의 마음이 산란하면 행자는 어떤 지위와 어떤 방편을 의지하여야 되는가? 곧 색계ㆍ무색계의 여러 선정에 의지해서 4무량심ㆍ8배사ㆍ8승처ㆍ9차제정ㆍ10일체처 가운데 머물러서 마음이 보드랍고 자재하고 마음대로 되는가를 시험해야 한다.
비유하건대 말을 타는 이가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지를 시험한 뒤에야 진중(陣中)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10일체처도 그와 같아서 약간의 푸른 빛을 보고서 일체의 물건을 모두 푸르게 하니, 모든 누런빛, 붉은빛, 흰빛도 모두 이와 같이 한다.
또한 8승처의 반연에 대하여 자재하나니, 처음의 두 배사에서는 몸의 부정함을 관찰하고, 셋째 배사에서는 몸이 도리어 깨끗한 것으로 관찰한다.
4무량심이란, 자(慈)는 중생 모두가 즐겁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비(悲)는 중생 모두가 괴롭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희(喜)는 중생 모두가 기쁘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사(捨)4)는 이러한 세 가지 마음을 버리고 단지 중생들에 대하여 미움도 사랑도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 014_0695_c_12L復次,三十七品是上妙法,欲界心散亂,行者依何地、何方便得?當依色界、無色界諸禪定。於四無量心、八背捨、八勝處、九次第定、十一切處中,試心知得柔軟自在隨意不?譬如御者試馬,曲折隨意,然後入陣。十一切處亦如是,觀取少許靑色,視一切物皆能使靑;一切黃、一切赤、一切白皆如是。復次,於八勝處緣中自在。初、二背捨,觀身不淨;第三背捨,觀身還使淨。四無量心:慈觀衆生皆樂,悲觀衆生皆苦,喜觀衆生皆喜;捨是三心,但觀衆生無有憎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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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두 가지 관법이 있으니, 첫째는 견해를 얻는 관법[得解觀]이요, 둘째는 진실한 관법[實觀]이다.
진실한 관법이라 함은 이 37품이다. 진실한 관법으로는 얻기 어려우므로 차례로 견해를 얻는 관법을 말하는 것이다.
견해를 얻는 관법에서 마음이 유연해져 진실한 관법을 얻기 쉽고, 진실한 관법에 의해서 세 가지 열반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 014_0696_a_02L復次,有二種觀:一者、得解觀,二者、實觀。實觀者,是三十七品。以實觀難得故,次第說得解觀。得解觀中心柔軟,易得實觀,用實觀得入三涅槃門。
- 【문】 무엇이 공열반의 문인가?
- 問曰:何等空涅槃門?
- 【답】 모든 법은 나와 내 것(我所)이 없어서 공하며, 모든 법은 인연의 화합으로 생긴 것이어서 짓는 이[作者]도 없고 받는 이도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공의 문이라 한다.
- 014_0696_a_06L答曰:觀諸法無我、我所空,諸法從因緣和合生,無有作者,無有受者,是名空門。
- 또한 공의 문은 인지품(忍智品)에서 말한 바와 같다.
- 014_0696_a_08L復次,空門,如「忍智品」中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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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것이 없는 줄 안 뒤에 중생들이 어찌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이 집착되겠는가.
수행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 부터 생긴 것이어서 진실한 법이 없고, 오직 모습만 있거늘 중생들이 그 형상을 탐내어 나와 내 것에 집착되는구나. 나는 이제 이 모습에서 실로 얻을 것이 있는가를 관찰하리라.’
자세히 관찰하여도 전혀 얻을 수 없으니, 남자와 여자의 모습, 하나와 다름의 모습 등 이러한 모습을 실로 모두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나와 내 것이 없으므로 공하며, 공하기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없고, 하나도 다름 등의 법도 없건만 나와 내 것 가운데서 이름하여 하나다 다르다 한다. 이런 까닭에 남자ㆍ여자ㆍ하나ㆍ다름의 법을 얻을 수 없다. - 014_0696_a_09L知是無我、我所已,衆生云何於諸法中心著?行者思惟作是念:“諸法從因緣生,無有實法,但有相,而諸衆生取是相,著我、我所。我今當觀是相有實可得不?”審諦觀之,都不可得;若男相、女相、一異相等,是相實皆不可得。何以故?諸法無我、我所故空,空故無男、無女、一異等法,我、我所中名字,是一、是異;以是故,男、女、一、異法實不可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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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6_b_01L또한 4대(大)와 그로 인해 지어진 물질이 허공을 둘러쌌기 때문에 몸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안팎의 입(入)의 인연이 화합해서 의식의 종자[識種]를 내거늘 몸은 이 종자와 화합하므로써 갖가지 일을 하여 말하고 이야기하고 가고 오고 앉고 일어서나니, 허공 가운데 여섯 가지가 화합한 것에다 굳이 남자라 여자라 이름할 뿐이다.
만일 여섯 가지가 남자라 하면 마땅히 여섯 남자가 있어야 하리니, 하나를 여섯이라 할 수 없고, 여섯을 하나라 할 수도 없다.
또한 땅 가운데도 남녀의 모습이 없고, 나아가서는 의식의 종자에도 남녀의 모습이 없다. 만일 개체 가운데에 없다면 화합한 가운데에도 없다. 마치 여섯 마리의 개가 제각기 사자를 낳을 수도 없고 화합해서 사자를 낳을 수도 없는 것과 같으니,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 014_0696_a_18L復次,四大及造色圍虛空故名爲身;是中內外入因緣和合生識種。身得是種和合,作種種事:言語、坐起、去來。於空六種和合中,强名爲男,强名爲女。若六種是男,應有六男,不可以一作六、六作一。亦於地種中無男女相,乃至識種亦無男女相。若各各中無,和合中亦無;如六狗各各不能生師子,和合亦不能生,無性故。
- 【문】 무슨 까닭에 남녀가 없는가?
- 問曰:何以故無男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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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비록 차별이 없지만 신분(身分)은 차별이 있어서 남녀의 차이가 있다. 이 몸은 신분을 여의지 않고, 신분도 몸을 여의지 않는다.
예컨대 신분을 보면 부분이 있는 법[有分法], 즉 몸ㆍ발 등이 있음을 족히 알 수 있나니, 신분은 몸과는 다르지만 몸은 남녀의 모습이 될 것이다. - 014_0696_b_04L雖神無有別,卽身分別有男女之異。是身不得離身分,身分亦不得離身;如見身分足,知有有分法,名爲身。足等身分異身,身卽是男女相。
- 【답】 신(神)은 이미 먼저 파하였고, 몸의 상(相)도 역시 무너졌거니와 이제 다시 설명하리라.
- 014_0696_b_08L答曰:神已先破,身相亦壞,今當重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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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러한 부분 있는 법을 몸이라 한다면 제각기의 부분 안에 갖추어져 있는가, 아니면 신분이 모든 부분 안에 나뉘어져 있는가?
만일 모든 부분 가운데에 갖추어 몸이 있는 것이라면 머리 가운데에도 다리가 있어야 한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머리 가운데 몸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일 몸의 부분이 모든 부분 가운데 나뉘어져 있다면 이 몸은 부분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부분 있음[有分]이란 것은 모든 부분을 따르기 때문이다. - 014_0696_b_09L若有是有分名身,爲各各分中具足有?爲身分分在諸分中?若諸分中具足有身者,頭中應有腳。何以故?頭中具足有身故。若身分分在諸分中,是身與分無有異,有分者隨諸分故。
- 【문】 만일 발 등 몸의 부분이 부분 있음과 다르다면 허물이 되겠지만 지금은 발 등 몸의 부분이 부분 있음, 즉 몸이란 법과 다르지 않다고 하므로 허물이 없을 것이다.
- 014_0696_b_14L問曰:若足等身分與有分異,是有咎;今足等身分與有分身法不異,故無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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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만일 발 등 몸의 부분이 부분 있음과 다르지 않다면 머리가 곧 발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두 가지 경우가 모두 몸이어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몸의 부분은 많고 부분[有分]은 하나인데, 많음이 하나가 될 수 없고, 하나가 많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014_0696_b_16L答曰:若足等身分與有分不異,頭卽是足。何以故?二事是身不異故。又身分多,有分一,不應多作一、一作多。
- 다시 원인이 없어지므로써 결과가 없어지는 것이요, 결과가 없어지므로써 원인이 없어지는 것인데 이제 몸의 부분이 부분 있음과 다르지 않다면 응당 결과가 없어지므로써 원인이 없어지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 014_0696_b_18L復次,因無故果無,非果無故因無。身分與有分不異,應果無故因無。何以故?因果一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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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6_c_01L하나와 다름 가운데서 몸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음은 몸이 없기 때문이거늘 어떻게 남녀의 모습이 있으랴. 만일 남녀가 있다면 이 몸 그대로인가? 아니면 이 몸과는 다른 것인가? 몸에서는 얻을 수 없다. 만일 다른 법에 있다면 다른 법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남녀의 차별이 없거늘 다만 두 세상의 인연이 화합한 곳에 뒤바뀐 마음으로써 남녀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게송이 있다. - 014_0696_b_21L若一、若異中,求身不可得;身無故,何處有男女?若有男女,爲卽是身?爲異身?身則無可得。若在餘法,餘法非色故,無男女之別。但二世因緣和合,以顚倒心故,謂爲男女。如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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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렸다 폈다 하는 곳에 과거와 미래를 세우나
우러러보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실체가 없다.
바람이 식에 의지하므로 작용이 있으나
이 식은 모습이 없어서 잠시도 있지 않다. -
014_0696_c_02L俯仰屈申立去來,
視瞻言語中無實,
風依識故有所作,
是識滅相念念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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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남자와 여자는 나란 마음 있기 때문이니
지혜가 없으므로 허망하게 있다고 여긴다.
뼈마디가 서로 이어진 곳에 가죽이 덮이었고
신체 기관 움직임은 허수아비 같도다. -
014_0696_c_04L彼此男女有我心,
無智慧故妄見有,
骨鎖相連皮肉覆,
機關動作如木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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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는 없으나 겉만 사람 같으니
금을 녹여 물속에 던질 때 같고
들불이 대숲을 태울 때 같아서
인연이 화합하면 소리도 난다. -
014_0696_c_06L內雖無實外似人,
譬如洋金投水中,
亦如野火焚竹林,
因緣合故有聲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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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갖가지 모습은 전에 이미 말했거니와 여기에서 다시 자세히 말하리라. 이것을 모습 없음의 문[無相門]이라 한다. - 014_0696_c_08L如是等諸相,如先所說,此中應廣說,是名無相門。
- 지을 이 없음[無作者]이라 하나니, 이미 모습 없음[無相]과 심지어 짓는 바도 없음[無所作]을 알면 이것을 지음 없는 문[無作門]이라 한다.
- 014_0696_c_10L無作者,旣知無相,都無所作,是名無作門。
- 【문】 세 가지는 지혜로써 공을 관찰하고, 모습 없음을 관찰하고, 지음 없음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 지혜를 어찌하여 삼매라 하는가?
- 014_0696_c_11L問曰:是三種,以智慧觀空、觀無相、觀無作;是智慧,何以故名三昧?
- 【답】 이 세 가지 지혜가 선정에 머무르지 않으면 이는 미친 지혜로서 대개는 삿된 의혹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만일 선정에 머무르면 모든 번뇌를 깨뜨리고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
- 014_0696_c_13L答曰:是三種智慧,若不住定中,則是狂慧,多墮邪疑,無所能作;若住定中,則能破諸煩惱,得諸法實相。
- 또한 다시 이 모든 온갖 세간과 다르고 세간과 서로 맞지 않거니와 모든 성현들이 선정에 머물러 실상을 얻고서 말씀하신 것은 미친 마음의 말씀이 아니다.
- 014_0696_c_16L復次,是道異一切世閒,與世閒相違。諸聖人在定中得實相說,非是狂心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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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다시 모든 선정 가운데 이 세 가지 법이 없으면 삼매라 하지 못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도리어 물러나서 생사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 014_0696_c_18L復次,諸禪定中無此三法,不名爲三昧。何以故?還退失墮生死故。如佛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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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계율을 지키면
비구라 부르고
공을 관하면
선정을 닦는 이라 한다.
일심으로 항상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이는
이를 일러 진실한
도인이라 부른다. -
014_0696_c_20L能持淨戒名比丘,
能觀空名行定人,
一心常懃精進者,
是名眞實行道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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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즐거움 중에서
으뜸가는 것으로는
모든 애욕을 끊고
미친 법을 없애는 일이니
5중(衆)의 몸과
도법(道法)까지 버리면
이를 일러 항상하고 즐거워
열반을 얻었다 한다. -
014_0696_c_22L於諸樂中第一者,
斷諸渴愛滅狂法,
捨五衆身及道法,
是爲常樂得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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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7_a_01L
이런 까닭에 세 가지 해탈문을 부처님께서는 삼매라 하신다. - 014_0697_a_01L以是故,三解脫門佛說名爲三昧。
- 【문】 이제는 무슨 까닭에 해탈문(解脫門)이라 하는가?
- 014_0697_a_02L問曰:今何以故名解脫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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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이 법을 행할 때에 해탈을 얻어서 무여열반(無餘涅槃)5)에 이르게 된다. 이런 까닭에 해탈문이라 한다.
무여열반이야말로 참해탈이어서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반면 유여열반은 그 문호(門戶)가 된다.
이 세 가지 법은 비록 열반은 아니지만 열반의 원인이기 때문에 열반이라 한다. 세간에도 원인에서 결과를 말할 때도 있고, 결과에서 원인을 말할 때도 있다. - 014_0697_a_03L答曰:行是法時得解脫,到無餘涅槃,以是故名解脫門。無餘涅槃是眞解脫,於身、心苦得脫;有餘涅槃爲作門。此三法雖非涅槃,涅槃因故,名爲涅槃。世閒有因中說果、果中說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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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ㆍ모양 없음ㆍ지음 없음은 정의 성품이요, 이 정과 상응하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의 법과 몸의 업과 입의 업과 여기에서 일어나는 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의 화합은 모두가 삼매라 불린다.
비유하건대 왕이 가면 대신과 들러리[營從]가 반드시 있는 것 같으니, 삼매는 왕과 같고 지혜는 대신과 같으며, 다른 법은 들러리와 같다.
다른 법의 명칭은 말하지는 않았으나 반드시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정의 힘은 홀로 생길 수 없고, 혼자서는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법은 함께 생기고, 함께 머무르고, 함께 일을 이루어서 서로가 이익을 이룬다. - 014_0697_a_08L是空、無相、無作,是定性,是定相應心心數法,隨行身業、口業,此中起心不相應諸行和合,皆名爲三昧。譬如王來,必有大臣、營從;三昧如王,智慧如大臣,餘法如營從。餘法名雖不說,必應有。何以故?定力不獨生,不能獨有所作故。是諸法共生、共住、共滅、共成事,互相利益。
- 이 공의 삼매에는 두 가지 행이 있으니, 첫째는 5수중(受衆)이 같은 모습도 다른 모습도 없는 것이라 관찰하는 까닭에 공이요, 둘째는 나와 내 것이란 법이 얻을 수 없는 것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다.
- 014_0697_a_15L是空三昧二行:一者、觀五受衆一相、異相無故“空”,二者、觀我、我所法不可得故“無我”。
-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味]의 네 가지 행으로 열반에는 갖가지 괴로움이 다한 것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다함[盡]이라 하고, 3독 등 모든 번뇌의 불길이 사라졌으므로 사라짐[滅]이라 하고, 모든 법 가운데서 으뜸이기 때문에 묘함[妙]이라 하고, 세간을 여의었기 때문에 벗어남[出]이라 한다.
- 014_0697_a_18L無相三昧四行:觀涅槃種種苦盡故名爲“盡”,三毒等諸煩惱火滅故名爲“滅”,一切法中第一故名爲“妙”,離世閒故名爲“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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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7_b_01L지음 없는 삼매[無作三昧]의 두 가지 행으로 5중(五衆)이 인연 따라 생겼기 때문에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몸과 마음이 번거롭기 때문에 괴롭다고 관찰하고, 5수음[五受衆]의 네 가지 행이 번뇌와 유루의 업과 화합함으로 인하여 능히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집(集)이라 하고, 여섯 가지 원인으로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인(因)이라 하고, 네 가지 대상[緣]이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연(緣)이라 하고,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연들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생(生)이라 한다.
5불수중(不受衆)을 관찰함에 네 가지 행이 있다.
이 8성도분은 능히 열반에 이르기 때문에 도이고, 뒤바뀌지 않기 때문에 바름[正]이며, 일체의 성인의 가는 곳이기 때문에 자취[迹]이며, 애견(愛見)의 번뇌가 가로막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른다고 한다. - 014_0697_a_21L無作三昧二行:觀五受衆因緣生故“無常”,身心惱故“苦”。觀五受衆因四行:煩惱、有漏業和合能生苦果,故名爲“集”;以六因生苦果,故名爲“因”;四緣生苦果,故名爲“緣”;不多不少等因緣生果,故名爲“生”。觀五不受衆四行:是八聖道分,能到涅槃故“道”;不顚倒故“正”;一切聖人去處故“迹”;愛見煩惱不遮故必“到”。
- 이 세 가지 해탈문은 아홉 지위 가운데 있다. 곧 4선(禪)ㆍ미도지(未到地)ㆍ선중간(禪中間)ㆍ3무색(無色)이 그것으로, 무루의 성품이다.
- 014_0697_b_06L是三解脫門,在九地中:四禪、未到地、禪中閒、三無色,無漏性故。
- 어떤 이는 말하기를 “3해탈문은 오로지 무루이고, 3삼매는 혹은 유루이기도 하고 혹은 무루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삼매와 해탈이라는 두 명칭이 있다”고 한다.
- 014_0697_b_08L或有說者:三解脫門一向無漏;三三昧或有漏或無漏。以是故,三昧、解脫有二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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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말한다면 11지(地)에도 있게 되니, 곧 6지(地)와 3무색(無色)과 욕계와 유정지(有頂地)6)가 그것이다.
만약에 유루라면 얽매여 11지에 있고, 무루라면 얽매이지 않는다. - 014_0697_b_10L如是說者:在十一地,六地、三無色、欲界及有頂地。若有漏者,繫在十一地;無漏者,不繫。
- 희근(喜根)ㆍ낙근(樂根)ㆍ사근(捨根)에 상응하는 초학자는 욕계에 속하고, 성취한 이는 색계와 무색계에 속한다. 이와 같이 성취함과 성취하지 못함, 닦음과 닦지 않음 등은 아비담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 014_0697_b_12L喜根、樂根、捨根相應。初學在欲界中,成就在色、無色界中。如是等成就、不成就,修、不修,如『阿毘曇』中廣說。
- 다시 두 가지의 공한 이치가 있어서 일체법의 공함을 관찰하나니, 이른바 중생의 공함과 법의 공함이다.
- 014_0697_b_15L復次,有二種空義,觀一切法空,所謂衆生空、法空。
- 중생의 공함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법의 공함이란 모든 법의 자상이 공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색과 색의 모습은 공하며, 수ㆍ상ㆍ행ㆍ식과 식의 모습이 공하니라” 하셨다.
- 014_0697_b_17L衆生空,如上說。法空者,諸法自相空。如佛告須菩提:“色,色相空,受、想、行、識,識相空。”
- 【문】 중생이 공하고 법이 공하지 않다면 이는 믿을 수 있겠지만, 법의 자상이 공하다 함은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법의 자상이 공하다면 생도 멸도 없을 것이요, 생멸이 없다면 죄도 복도 없을 것이요, 죄와 복이 없다면 어찌 도를 배울 필요가 있겠는가?
- 014_0697_b_19L問曰:衆生空,法不空,是可信;法自相空,是不可信。何以故?若法自相空,則無生無滅;無生無滅故,無罪無福;無罪無福故,何用學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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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7_c_01L【답】 법의 공함이 있는 까닭에 죄와 복이 있다. 만일 법의 공함이 없다면 죄와 복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법이 실로 자성이 있다면 가히 무너뜨릴 수 없으며, 성품과 모습이 인연을 따라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라면 이것은 만들어진 것[作法]이니, 만일 법성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는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법성이 지을 수 있고, 파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옳지 않다. 성품이란 지어지지 않는 법을 이르는 말이니, 인연을 기다려서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법에는 자성이 있고, 자성이 있다면 곧 날 것이 없으리니, 성품이 먼저부터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남이 없으면 멸함도 없고, 남과 멸함이 없기 때문에 죄와 복도 없고, 죄와 복이 없기 때문에 도를 배울 필요도 없다.
만일 중생에게 참성품이 있다면 능히 해칠 이도 없고 이롭게 할 수도 없나니, 자성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라면 은혜도 의리도 알지 못하고, 업도 과보도 파괴한다. 법의 공함 가운데에는 법이 공하다는 모습도 없거늘 그대는 법의 공함을 얻으려는 마음에 집착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 법공은 부처님들께서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애욕의 매듭을 끊고 삿된 소견을 제해 주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 014_0697_b_22L答曰:有法空故有罪福,若無法空,不應有罪福。何以故?若諸法實有自性,則無可壞。性相不從因緣生,若從因緣生,便是作法;若法性是作法,則可破。若言法性可作可破,是事不然!性名不作法,不待因緣有。諸法自性有,自性有則無生者,性先有故。若無生則無滅,生滅無故無罪福;無罪福故,何用學道?若衆生有眞性者,則無能害、無能利,自性定故。如是等人,則不知恩義,破業果報。法空中亦無法空相,汝得法空,心著故,而生是難。是法空,諸佛以憐愍心,爲斷愛結、除邪見故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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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능히 모든 괴로움을 멸하나니, 이는 모든 성인들의 진실한 수행처이다. 만일 이 법공에 성품이 있다면, 일체법의 공을 말할 때 어떻게 자신마저도 공해질 수 있겠는가.
만일 법공의 성품이 없는 것이라면 그대는 무엇을 힐난하려는가? - 014_0697_c_12L復次,諸法實相能滅諸苦,是諸聖人眞實行處。若是法空有性者,說一切法空時,云何亦自空?若無法空性,汝何所難?
- 이 두 가지 공으로써 모든 법의 공함을 관찰하여 마음이 모든 법을 여읠 수 있고, 세간이 거짓되어 허깨비 같은 줄도 알게 된다.
- 014_0697_c_16L以是二空,能觀諸法空,心得離諸法,知世閒虛誑如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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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공을 관찰하고서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습을 집착한다면 이러한 인연으로 교만 등 번뇌를 일으키고는 말하기를 “나는 능히 모든 법의 실상을 아노라” 한다.
이럴 때에는 무상문(無相門)을 배워야 하나니, 공의 모습을 취하려는 마음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 014_0697_c_17L如是觀空,若取是諸法空相,從是因緣生憍慢等諸結使,言:“我能知諸法實相”,是時應學無相門,以滅取空相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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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8_a_01L만일 무상(無相) 가운데에서 희론을 일으키면 분별하여 지은 바 있기를 원해 이 무상에 집착하게 된다. 이때는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착각했구나. 모든 법은 공하고 모습도 없거늘 어찌하여 모습을 얻고 모습에 집착되어 희론을 하는가. 이럴 때엔 공과 모습 없음을 따라 몸ㆍ입ㆍ뜻으로 짓는 바가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지음 없는 모습을 관찰하여 삼독을 멸하고, 몸ㆍ입ㆍ못의 업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삼계 안에 태어나기를 구하지 않아야 하리라.’
이렇게 생각할 때에 도리어 지음 없는 해탈문에 들어간다. - 014_0697_c_20L若於無相中生戲論,欲分別有所作,著是無相;是時復自思惟:“我爲謬錯,諸法空無相中云何得相、取相作戲論?是時應隨空、無相行,身口意不應有所作,應觀無作相,滅三毒,不應起身口意業,不應求三界中生身。”如是思惟時,還入無作解脫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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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3해탈문은 마하연 가운데서는 동일한 법이건만 수행의 인연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법이 공하다고 관찰함이 공이다. 공 가운데서는 모습을 취할 수 없나니, 이때 공은 모습 없음이라 바뀌어 불린다.
모습 없음에는 어떤 작위(作爲)나 삼계에 태어날 일이 있을 수 없나니, 이때 모습 없음은 작위 없음[無作]이라 바뀌어 불린다. - 014_0698_a_04L是三解脫門,摩訶衍中是一法,以行因緣故,說有三種:觀諸法空是名“空”;於空中不可取相,是時空轉名“無相”;無相中不應有所作爲三界生,是時無相轉名“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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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건대 성에 세 문이 있는데 한 사람이 동시에 세 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들어가려면 한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다.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이 열반의 성인데, 그 성에 공ㆍ모습 없음ㆍ지음 없음이라는 세 개의 문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공의 문으로 들어가서 이 공을 얻거나 모습에 집착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곧장 들어가 일을 마치기 때문에 나머지 두 문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이 공의 문으로 들어가서 모습을 취하여 이 공을 얻으면 이런 사람에게는 문이라 할 수 없고, 트인 길이 도리어 막힌다.
만일 공의 모습을 제하면 이때에 모습 없음의 문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 - 014_0698_a_08L譬如城有三門,一人身不得一時從三門入,若入則從一門。諸法實相是涅槃城,城有三門:空、無相、無作。若人入空門,不得是空,亦不取相,是人直入,事辦故,不須二門。若入是空門,取相得是空,於是人不名爲門,通塗更塞。若除空相,是時從無相門入。
- 만일 모습 없음의 모습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희론을 일으키면 이때에 무상의 모습을 제하고 지음 없음의 문[無作門]으로 들어가게 된다.
- 014_0698_a_15L若於無相相心著、生戲論,是時除取無相相,入無作門。
- 아비담의 이치에서는 이 공의 해탈문은 고제(苦諦)를 반연하고 5중을 포섭한다. 모습 없음의 해탈문은 한 법을 반연하나니, 이른바 수연진(數緣盡)이다. 지음 없음의 해탈문은 세 가지 진리[三諦]를 반연하고 5중을 포섭한다.
- 014_0698_a_17L阿毘曇義中:是空解脫門,緣苦諦攝五衆。無相解脫門,緣一法,所謂數緣盡。無作解脫門,緣三諦攝五衆。
- 마하연의 이치에서는 이 3해탈문은 모든 법의 실상을 반연하며, 이 3해탈문으로써 세간이 곧 열반이라고 관찰한다. 왜냐하면 열반은 공ㆍ모습 없음ㆍ지음 없음이며, 세간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 014_0698_a_19L摩訶衍義中:是三解脫門,緣諸法實相。以是三解脫門,觀世閒卽是涅槃。何以故?涅槃空、無相、無作,世閒亦如是。
- 【문】 경에서는 말하기를 “열반은 한 문이다” 하였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셋이라 하는가?
- 014_0698_a_22L問曰:如經說涅槃一門,今何以說三?
- 【답】 법은 하나지만 이치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먼저 이미 말했다.
- 014_0698_a_23L答曰:先已說,法雖一而義有三。
- 014_0698_b_01L다시 제도해야 할 이에 세 종류가 있으니, 애욕이 많은 이와 사견이 많은 이와 애욕과 사견이 균등한 이이다.
- 014_0698_b_01L復次,應度者有三種:愛多者,見多者,愛見等者。
- 사견이 많은 이에게는 공의 해탈문을 말해 준다. 곧 일체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겨서 자성이 없음을 보게 한다. 자성이 없으므로 공하고, 공하므로 모든 사견이 사라진다.
- 014_0698_b_03L見多者,爲說空解脫門。見一切諸法從因緣生,無有自性,無有自性故空,空故諸見滅。
- 애욕이 많은 이에게는 지음 없음의 해탈문을 말해 준다. 곧 일체법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인연을 따라 생긴다는 것을 보게 한다. 본 뒤에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애욕을 여의고 곧 도에 들어간다.
- 014_0698_b_05L愛多者,爲說無作解脫門。見一切法無常、苦,從因緣生;見已,心厭離愛,卽得入道。
- 애욕과 사견이 균등한 이에게는 모습 없음의 해탈문을 말해 준다. 곧 이러한 남녀 등의 모습이 없다고 듣기 때문에 애욕을 끊고, 같음과 다름 등의 모습이 없다고 듣기 때문에 사견을 끊는다.
- 014_0698_b_07L愛、見等者,爲說無相解脫門。聞是男女等相無故斷愛,一異等相無故斷見。
- 부처님께서는 일시에 두 문을 말씀하시고 혹은 일시에 세 문을 말씀하셨다. 보살은 두루 배워서 일체의 길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세 문을 말해 주신 것이다.
- 014_0698_b_09L佛或一時說二門,或一時說三門。菩薩應遍學,知一切道,故說三門。
- 다시 다른 일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3해탈문의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신 것이다.
- 014_0698_b_11L更欲說餘事故,三解脫門義略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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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禪)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정선(淨禪)이요, 둘째는 무루선(無漏禪)이다.
무엇을 정선이라 하는가? 곧 유루의 선한 5중(衆)이다. 무엇을 무루선이라 하는가? 곧 무루의 5중이니, 이것들은 4선에 포섭된다. - 014_0698_b_12L四禪有二種:一者、淨禪,二者、無漏禪。云何名淨禪?有漏善五衆是。云何名無漏?無漏五衆。是四禪中所攝。
- 몸과 입의 업은 색법(色法)이요, 나머지 비색법은 일체가 볼 수도 없고 대할 수 없다.
- 014_0698_b_15L身、口業是色法,餘殘非色法。一切不可見,無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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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다.
유루라 함은 선한 유루의 5중이요, 무루라 함은 무루의 5중이다. 모두가 유위이다.
유루는 색계에 얽매이고 무루는 얽매이지 않는다. - 014_0698_b_16L或有漏,或無漏:有漏者,善有漏五衆;無漏者,無漏五衆。皆是有爲。有漏者,色界繫;無漏者,不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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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몸ㆍ입의 업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心不相應行]을 포섭하나니, 이는 마음도 아니요, 마음에 속하는 법도 아니요, 마음과 서로 응하는 법도 아니다.
선은 느낌[受衆]과 생각[想衆]과 그리고 서로 응하는 법을 포섭하나니, 이는 마음에 속하는 법이며, 마음과 서로 응하는 법이기도 하다.
선은 마음ㆍ뜻ㆍ의식을 포섭하나니, 마음뿐이다. - 014_0698_b_19L禪攝身業、口業及心不相應諸行,是非心,非心數法,非心相應。禪攝受衆、想衆及相應行衆,是心數法,亦心相應。禪攝心、意、識,但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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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8_c_01L4선(禪)에는 마음은 따르나 느낌에는 서로 응하지 않는 것도 있으며, 혹은 느낌과는 서로 응하나 마음은 따르지 않는 것도 있으며, 흑은 마음을 따르기도 하고 느낌과 서로 응하는 것도 있으며, 혹은 마음을 따르지도 않고 느낌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 것도 있다.
마음은 따르나 느낌과는 서로 응하지 않는다 함은 4선이 몸ㆍ입의 업과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 및 느낌[受]을 포섭한다는 것이다.
느낌과는 서로 응하나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함은 4선이 마음ㆍ뜻ㆍ의식을 포섭함을 말한다.
마음을 따르고 또한 느낌과도 서로 응한다 함은 4선이 생각[想衆] 및 상응하는 지어감[行衆]을 포섭함을 말한다.
마음을 따르지도 않고 느낌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다 함은 4선에 포섭되는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014_0698_b_22L四禪或有隨心行非受相應,或受相應非隨心行,或隨心行亦受相應,或非隨心行非受相應。隨心行非受相應者,四禪攝身業、口業,隨心行心不相應諸行,及受。受相應非隨心行者,四禪攝心意識。隨心行亦受相應者,四禪攝想衆及相應行衆。非隨心行亦非受相應者,除四禪中攝隨心行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
- 모든 행과 생각과 행과 상응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 014_0698_c_08L想、行相應,亦如是。
- 4선ㆍ3선 가운데 2선은 각행(覺行)을 따르지도 않고 또한 관(觀)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다.
- 014_0698_c_09L是四禪中,三禪非隨覺行亦非觀相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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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은 각행을 따르나 관과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관과 서로 응하나 각행을 따르지 않기도 하며, 혹은 각행을 따르면서 또한 관과 서로 응하기도 하며, 혹은 각행을 따르지도 않고 관과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한다.
각행은 따르나 관과 서로 응하지 않는다 함은 초선이 신업ㆍ구업과 각을 따르는 행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 및 관을 포섭함을 말한다.
관과 서로 응하나 각의 행을 따르지는 않는다 함은 각(覺)을 이르는 말이다.
각의 행을 따르기도 하고 관과 서로 응하기도 한다 함은 각과 관이 서로 응하는 모든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다.
각의 행을 따르지도 않고, 관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다 함은 각의 행을 따르는 것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이다. - 014_0698_c_10L初禪,或有隨覺行非觀相應,或觀相應非隨覺行,或有隨覺行亦觀相應,或有非隨覺行非觀相應。隨覺行非觀相應者,初禪攝身業、口業,及隨覺行心不相應諸行,及觀。觀相應非隨覺行者,謂覺。隨覺行亦觀相應者,覺觀相應諸心心數法。非隨覺行亦非觀相應者,除隨覺行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
- 4선에는 모두가 인연이 있고, 또한 인연이 되어 주기도 한다.
- 014_0698_c_18L四禪皆有因緣,亦與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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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9_a_01L4선에서 초선은 차례대로 연(緣)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기도 하며, 혹은 차례대로 연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기도 하며, 혹은 차례대로 연이 되지도 않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기도 한다.
차례대로 연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요, 차례대로 연이 되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준다 함은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요, 차례대로 연이 되지 않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을 제외한 나머지인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으로서 몸과 입의 업, 그리고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이다. - 014_0698_c_19L四禪中:初禪,或次第、非與次第緣,或次第、亦與次第緣,或非次第、亦非與次第緣。次第、非與次第緣者,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次第、亦與次第緣者,過去、現在心心數法。非次第、亦不與次第緣者,除未來世欲生心心數法,餘殘未來世中心心數法,身業、口業及心不相應諸行。
- 제2선과 제3선도 이와 같다.
- 第二、第三禪亦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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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선의 차제연이 되고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 그리고 무상정(無想定)을 이미 낸 것과 내려는 것이다.
차제연이 되고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기로 한다 함은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다.
차례대로 연이 되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을 제외한 나머지 미래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 그리고 다음에 일어날 마음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과 몸ㆍ입의 업들이다. - 014_0699_a_04L第四禪,次第、不與次第緣者,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及無想定若生、若欲生。次第、亦與次第緣者,過去、現在心心數法。非次第、亦非與次第緣者,除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餘殘未來世心心數法;除心次第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及身業、口業。
- 4선에 포섭되는 몸 입의 업, 그리고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은 연이 되어 주지만 연은 되지 않고, 나머지는 연도 되고 연이 되어 주기도 한다.
- 014_0699_a_11L四禪中攝身業、口業及心不相應諸行,與緣、非緣;餘殘,亦緣、亦與緣。
- 이 4선은 증상연(增上緣)이기도 하고 증상연이 되어 주기도 한다.
- 014_0699_a_13L是四禪亦增上緣,亦與增上緣。
- 이러한 일들은 아비담에서 자세히 분별한 것과 같다.
- 014_0699_a_14L如是等,『阿毘曇』分中廣分別。
- 보살이 선의 방편과 선의 모습과 선의 가닥[支]을 얻는 일은 선바라밀에서 이미 자세히 말한 바이다.
- 014_0699_a_15L菩薩得禪方便,及禪相、禪支,禪波羅蜜中已廣說。
- 【문】 이 반야바라밀의 논리에서는 모든 법의 공한 모습만을 말했거늘 보살은 어찌하여 공한 법 가운데서 능히 선정을 일으키는가?
- 014_0699_a_16L問曰:是般若波羅蜜論議中但說諸法相空,菩薩云何於空法中能起禪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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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보살이 5욕(欲)과 5개(蓋)가 모두 인연 따라 생긴 것이어서 자성이 없으며,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는 줄을 안다면, 그것을 버리기가 매우 쉽다.
중생들은 뒤바뀐 인연 때문에 이러한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즐거움에 집착되어 선정 가운데의 깊고도 묘한 즐거움을 여읜다. 보살은 이러한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에 대비심을 일으켜 선정을 닦는다. - 014_0699_a_18L答曰:菩薩知諸五欲及五蓋從因緣生,無自性,空無所有,捨之甚易。衆生顚倒因緣故,著此少弊樂,而離禪中深妙樂。菩薩爲是衆生故,起大悲心,修行禪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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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699_b_01L그는 마음을 대상에 매어 두고 5욕을 여의고 5개를 제거해 커다란 기쁨이 있는 초선에 들어간다.
다시 각관을 멸하고 마음을 거두어 깊은 내면의 청정함에 들어가 미묘한 기쁨을 얻는 제2선에 들어간다.
다시 깊은 기쁨이 집중을 산란시키기에 일체의 기쁨을 여의고 두루 가득한 즐거움을 얻는 제3선에 들어간다.
다시 일체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여의고 일체의 근심과 기쁨 및 들고나는 호흡을 제하여 청정미묘한 무관심[捨]으로 스스로를 장엄하는 제4선에 들어간다. - 014_0699_a_22L繫心緣中,離五欲,除五蓋,入大喜初禪;滅覺觀,攝心深入,內淸淨,得微妙喜,入第二禪;以深喜散定故,離一切喜,得遍滿樂,入第三禪;離一切苦樂,除一切憂喜及出入息,以淸淨微妙捨而自莊嚴,入第四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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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살은 모든 법이 공하여 모습이 없는 줄 알지만 중생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의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법의 공함이 실제로 있다면 이는 공이라 이름하지 못한다. 또한 5욕을 버리고서 선을 얻을 수도 없으니, 버릴 수도 없고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지금 모든 법의 공한 모습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모든 법이 공하다면 어떻게 능히 선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지 말아야 할 것이다. - 014_0699_b_05L是菩薩雖知諸法空無相,以衆生不知故,以禪相教化衆生。若實有諸法空,是不名爲空,亦不應捨五欲而得禪,無捨無得故。今諸法空相亦不可得,不應作是難言:若諸法空,云何能得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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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다시 이 보살은 모습을 취해 애착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사람이 약을 먹는 것과 같으니, 병을 제하기 위함일 뿐 아름다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곧 계를 청정히 하고 지혜를 성취하기 위한 까닭에 선을 행하는 것이다.
보살은 하나하나의 선 가운데에서 대자(大慈)를 행하고 공을 관하면서도 선에 의지하지 않는다. 5욕이 거칠고 거짓되고 뒤바뀐 까닭에 미묘하고 허망하다는 법으로 다스리니, 비유하건대 독으로써 능히 독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 014_0699_b_10L復次,是菩薩不以取相愛著故行禪;如人服藥,欲以除病,不以美也。爲戒淸淨、智慧成就故行禪。菩薩於一一禪中,行大慈觀空,於禪無所依止。以五欲麤誑顚倒故,以細微妙虛妄法治;譬如有毒,能治諸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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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초품 중 사무량(四無量)의 뜻을 풀이함 - 014_0699_b_16L大智度論釋初品中四無量義第三十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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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무량심(無量心)이란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를 말한다. - 014_0699_b_17L四無量心者,慈、悲、喜、捨。
- 자는 중생들을 사랑하고 염려해서 항상 안온하고 즐거운 일을 구하여 요익하게 해 주는 것이요, 비는 중생들이 5도에서 갖가지 몸을 받아서 몸과 마음으로 괴로워함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요, 희는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에서 환희를 얻게 하고자 하는 것이요, 사는 세 가지 마음을 버리고 오직 중생들을 생각하되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다.
- 014_0699_b_18L“慈”名愛念衆生,常求安隱樂事以饒益之;“悲”名愍念衆生受五道中種種身苦、心苦;“喜”名欲令衆生從樂得歡喜;“捨”名捨三種心,但念衆生不憎不愛。
- 014_0699_c_01L자심을 닦는 것은 중생들에 대하여 미워하는 생각을 제하기 위함이요, 비심을 닦는 것은 중생들에 대하여 번거롭다는 생각을 제하기 위함이요, 희심을 닦는 것은 함께 기뻐하지 못함을 제하기 위함이요, 사심을 닦는 것은 중생들에 대하여 사랑도 미움도 제하기 위함이다.
- 014_0699_b_22L修慈心,爲除衆生中瞋覺故;修悲心,爲除衆生中惱覺故;修喜心,爲除不悅樂故;修捨心,爲除衆生中愛憎故。
- 【문】 4선에 이미 4무량심과 나아가서는 10일체처까지 있거늘 이제 어찌하여 따로 논하는가?
- 014_0699_c_02L問曰:四禪中已有四無量心乃至十一切處,今何以故別說?
- 【답】 비록 4선 가운데 모두 있기는 하나 이 법은 따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 공덕을 알지 못한다. 비유하건대 주머니 속의 보물은 꺼내 놓지 않는다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 014_0699_c_04L答曰:雖四禪中皆有是法,若不別說名字則不知其功德;譬如囊中寶物,不開出則人不知。
- 만일 큰 복덕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4무량심을 말해 주고, 색(色)에 근심하고 싫어하기를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것같이 하는 이에게는 4무색정(無色定)을 말해 주고, 대상에 대해 자재로움을 얻어 마음대로 반연할 바를 관찰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8승처(勝處)를 말해 주고, 도에 가로막힘이 있어 통달치 못한 이에게는 8배사(背捨)를 말해 주고, 마음이 유연하지 못하여 선에서 일어나 다음 선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에게는 9차제정(次第定)을 말해 주고, 일체의 대상을 두루 비추어 마음대로 이해[解]를 얻지 못하는 이에게는 10일체처(一切處)를 말해 준다.
- 014_0699_c_06L若欲得大福德者,爲說“四無量心”;患厭色如在牢獄,爲說“四無色定”;於緣中不能得自在、隨意觀所緣,爲說“八勝處”;若有遮道,不得通達,爲說“八背捨”;心不調柔,不能從禪起次第入禪,爲說“九次第定”;不能得一切緣遍照、隨意得解,爲說“十一切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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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시방의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리라 할 때 마음에 속하는 법 가운데 생겨나는 법을 일컬어 자(慈)라 한다. 이 자와 서로 응하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識衆]이 마음에 속하는 법으로 몸의 업ㆍ입의 업 및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을 일으키는데, 이 법과 화합된 것을 모두 자라 부른다.
이름이 자인 까닭에 이 법이 생길 때엔 자로써 우두머리를 삼는다. 그러므로 자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일체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 모두 후세의 업의 인연이지만 오직 생각[思]만이 이름을 얻나니, 업을 짓는 가운데서 생각이 가장 힘이 있기 때문이다. - 014_0699_c_13L若念十方衆生令得樂時,心數法中生法,名爲慈;是慈相應受、想、行、識衆,是法起身業、口業及心不相應諸行,是法和合,皆名爲慈。名爲慈故,是法生,以慈爲主,是故慈得名。譬如一切心心數法雖皆是後世業因緣,而但思得名,於作業中,思最有力故。
- 비ㆍ희ㆍ사 역시 이와 같다.
- 悲、喜、捨亦如是。
-
이 자는 색계에서는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며, 혹은 끊을 수 있기도 하고 끊을 수 없기도 하다. 근본선 가운데나 선중간에도 있기도 하며, 세 근(根)에 서로 응하되 고근(苦根)과 우근(憂根)은 제외한다.
이러한 일들은 아비담에서 분별하여 말하였다. - 014_0699_c_20L是慈在色界。或有漏,或無漏。或可斷,或不可斷。亦在拫本禪中,亦禪中閒。三根相應,除苦根、憂根。如是等,『阿毘曇』分別說。
- “중생의 모습을 취하기 때문에 유루이며, 모습을 취한 뒤에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에 들어가기 때문에 무루이다.
- 014_0700_a_01L取衆生相故有漏;取相已,入諸法實相故無漏。
- 014_0700_a_01L이런 까닭에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의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자(慈)에 세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중생연(衆生緣)이요, 둘은 법연(法緣)이요, 셋은 무연(無緣)7)이다.”
- 014_0700_a_02L以是故,『無盡意菩薩問』中說慈有三種:一者、衆生緣,二者、法緣,三者、無緣。
- 【문】 이 4무량심은 어떻게 행하는가?
- 014_0700_a_04L問曰:是四無量心云何行?
-
【답】 부처님께서는 곳곳의 경(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가 자에 서로 응하는 마음으로 성냄 없고, 한(恨) 없고, 원망 없고, 번뇌 없으며 광대하고 무량하게 자심을 잘 닦고 이해[解]를 얻어 두루 채운다. 동방세계의 중생에게도 자심으로 이해를 얻어 두루 채우며, 남ㆍ서ㆍ북과 네 간방[四維]ㆍ위아래의 시방세계 중생에게도 비ㆍ희ㆍ사에 상응하는 마음으로 두루 채우기를 이와 같이 한다.” - 014_0700_a_05L答曰:如佛處處經中說:“有比丘以慈相應心,無恚無恨,無怨無惱,廣大無量,善修慈心得解遍滿東方世界衆生、慈心得解遍滿南西北方四維上下十方世界衆生。以悲、喜、捨相應心,亦如是。”
- 자에 서로 응하는 마음이라 했는데, 자는 마음에 속하는 법을 이름하며, 능히 마음속의 시끄러움과 혼탁함을 제하나니, 이른바 성냄ㆍ원망ㆍ인색함ㆍ탐냄 등의 번뇌이다. 마치 물을 정화하는 보배 구슬[浮水珠]을 흐린 물에 담구면 즉시에 물이 맑아지는 것과 같다.
- 014_0700_a_10L慈相應心者,慈名心數法,能除心中憒濁,所謂瞋恨慳貪等煩惱。譬如淨水珠著濁水中,水卽淸。
-
성냄과 한(恨)이 없다 했는데, 먼저 성냄이란 중생들에 대하여 인연이 있건 인연이 없건 화를 내는 것이다. 곧 욕하고 꾸짖고 해치고 위협하려는 것이니, 이를 성냄이라 한다. 그것이 시절을 기다리고 장소를 만나 세력이 생겨서 해코지하려 한다면 이것을 한이라 한다.
자심으로써 이 두 가지 일을 제거하므로 성냄과 한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 014_0700_a_12L無恚恨者,於衆生中,若有因緣、若無因緣而瞋,若欲惡口罵詈、殺害、劫奪,是名瞋;待時節、得處所、有勢力當加害,是名恨。以慈除此二事故,名無瞋恨。
- 원망과 번뇌가 없다 했는데, 한이 곧 원망이다. 처음으로 혐오하는 것을 한이라 하고, 한이 오래 되면 원망이라 하며, 몸과 입의 업으로 해를 가하면 이를 번뇌라 한다.
- 014_0700_a_16L無怨無惱,恨卽是怨,初嫌爲恨,恨久成怨;身口業加害,是名惱。
- 다시 처음 성냄의 번뇌가 생겨나는 것을 성냄이라 하고, 성냄이 늘어나서 따지고 헤아리면서 마음속에 꼭 간직하여 결단치 못하는 것을 한이라고도 하고 원망이라고도 하며, 마음이 이미 결정되어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는 것을 번뇌라 한다.
- 014_0700_a_18L復次,初生瞋結名爲瞋;瞋增長籌量,持著心中未決了,是名恨,亦名怨;若心已定,無所畏忌,是名惱。
-
014_0700_b_01L자심의 힘으로 제해 버려서 이 세 가지 일을 여의면 이것을 일컬어 성냄 없고, 원한 없고, 원망 없고, 번뇌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성냄 없음ㆍ원한 없음ㆍ원망 없음ㆍ번뇌 없음을 가지고 부처님께서는 자심을 찬탄하신 것이다.
일체 중생은 모두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즐거움을 탐착하거니와 성냄은 괴로움의 인연이 되고, 자는 즐거움의 인연이 된다.
중생들이 이 자삼매(慈三昧)를 듣고는 능히 괴로움을 제거하고 즐거움을 주는 까닭에 일심으로 부지런히 정진해 이 삼매를 행하여야 한다.
이런 까닭에 ‘성냄 없고, 원한 없고, 원망 없고, 번뇌 없다’고 하는 것이다. - 014_0700_a_21L以慈心力除、捨、離此三事,是名無瞋無恨、無怨無惱。此無瞋無恨、無怨無惱,佛以是讚歎慈心。一切衆生皆畏於苦,貪著於樂;瞋爲苦因緣,慈是樂因緣。衆生聞是慈三昧能除苦、能與樂故,一心懃精進行是三昧。以是故,無瞋無恨、無怨無惱。
- ‘광대하고 한량없다’고 함은 하나의 큰 마음을 말한다. 분별하면 세 이름이 있다.
- 014_0700_b_04L“廣”、“大”、“無量”者,一大心分別有三名:
- 광(廣)이란 한 방향을 말하고, 대(大)란 높고 멀다는 뜻이며, 한량없음이란 아래쪽 및 나머지 아홉 방위이다.
- 014_0700_b_05L“廣”名一方,“大”名高遠,“無量”名下方及九方。
- 또한 아래는 광이요, 중간은 대요, 위는 한량없음이다.
- 復次,下名“廣”,中名“大”,上名“無量”。
- 또한 사방의 중생심을 반연하는 것을 광이라 하고, 네 간방[四維]의 중생심을 반연하므로 대라 하고, 위와 아래의 중생심을 반연하는 것을 한량없음이라 한다.
- 014_0700_b_07L復次,緣四方衆生心是名“廣”,緣四維衆生心是名“大”,緣上下方衆生心是名“無量”。
- 또한 성내고 한하는 마음을 깨뜨리는 것을 광(廣)이라 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깨뜨리는 것을 대라 하고, 번뇌심을 깨뜨리는 것을 한량없음이라 한다.
- 014_0700_b_10L復次,破瞋恨心是名“廣”,破怨心是名“大”,破惱心是名“無量”。
- 또한 일체의 번뇌심은 소인(小人)들이 행하는 것으로 작은 일을 내기 때문에 소(小)라 하고, 다시 이보다 더 작기 때문에 성냄ㆍ원한ㆍ원망ㆍ번뇌라 하며, 이렇게 작은 가운데서도 작은 것을 깨뜨리는 것을 광대하고 한량없음이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큰 인연은 항상 작은 일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 014_0700_b_11L復次,一切煩惱心,小人所行,生小事故名爲小;復小於此,故名瞋恨、怨、惱。破是小中之小,是名“廣”、“大”、“無量”。所以者何?大因緣常能破小事故。
- 넓은 마음이란 죄를 두려워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음속의 삿됨[惡法]을 제거하는 것이요, 큰 마음이란 복덕의 과보를 믿고 즐기어 나쁜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요, 한량없는 마음이란 열반을 얻기 위하여 나쁜 마음을 제하는 것이다.
- 014_0700_b_15L“廣心”者,畏罪畏墮地獄故,除心中惡法;“大心”者,信樂福德果報故,除惡心;“無量心”者,爲欲得涅槃故,除惡心。
- 또한 수행자는 계행을 깨끗하게 지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넓고, 선정을 구족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크고,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한량이 없다.
- 014_0700_b_18L復次,行者持戒淸淨故,是“心廣”;禪定具足故,是“心大”;智慧成就故,是“心無量”。
- 이러한 자심으로써 도를 얻은 성인을 생각하는 것을 한량없는 마음이라 한다. 한량없음으로써 성인을 분별하고 모든 하늘과 사람의 존귀한 곳을 생각하는 까닭에 큰 마음이라 하고, 나머지 하천한 중생과 3악도를 생각하는 것이 넓은 마음이다.
- 014_0700_b_20L以是慈心,念得道聖人,是名“無量心”,用無量法分別聖人故;念諸天及人尊貴處故,名爲“大心”;念諸餘下賤衆生及三惡道,是名廣心。
- 014_0700_c_01L사랑하는 중생에 대하여 자애로운 생각을 하되 자신에 대해서 보다 넓게 하기 때문에 넓은 마음이라 하고, 인자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맞추기 때문에 큰 마음이라 하고, 인자한 생각으로 원수와 미운 이를 대해 그 공덕이 많기에 한량없는 마음이라 한다.
- 014_0700_c_01L於所愛衆生中,以慈念廣於念已故,名爲“廣心”;以慈念中人,是名“大心”;以慈念怨憎,其功德多故,名“無量心”。
- 또한 좁게 반연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넓다 하고, 작게 반연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크다 하고, 한량이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한량이 없다고 한다.
- 014_0700_c_03L復次,爲狹緣心,故名爲“廣”;爲小緣心,故名爲“大”;爲有量心故,名爲“無量”。
- 이와 같이 이치를 분별한다.
- 014_0700_c_05L如是等分別義。
-
‘잘 닦는다’고 함은 이 자심이 견고해지는 것을 말한다. 처음으로 자심을 얻은 것을 닦는다[修]고 하지는 않는다. 단지 사랑하고 염려하는 중생에 대해서가 아니고, 단지 좋아하는 중생에 대해서가 아니고, 단지 자기에게 이로운 중생에 대해서가 아닌, 곧 어느 치우친[一方] 중생에 대해서가 아닌 것을 일컬어 ‘잘 닦는다’고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행하면 얻는 것이 깊으니, 애락과 애증 및 그 중간 등 세 종류의 중생은 꼭 같아서 다름이 없는 것이다.
시방 5도의 중생을 하나의 자애로운 마음으로 관찰하되 마치 부모ㆍ형제ㆍ자매ㆍ자식ㆍ조카ㆍ친지와 같이 하며, 항상 좋은 일을 구해서 그들로 하여금 이로움과 평온함을 얻게 하고자 한다. 이러한 마음이 시방의 중생에 두루 베풀면, 이와 같은 자심을 중생연(衆生緣)이라 한다. 이는 대체로 범부들의 행하는 경지, 혹은 배울 것이 있는 이로서 아직 누(漏)가 다하지 못한 이에게 속한다. - 014_0700_c_06L“善修”者,是慈心牢固。初得慈心,不名爲修。非但愛念衆生中、非但好衆生中、非但益己衆生中、非但一方衆生中名爲“善修”;久行得深愛樂,愛、憎及中三種衆生,正等無異。十方五道衆生中,以一慈心視之,如父如母,如兄弟、姊妹、子姪、知識,常求好事,欲令得利益安隱。如是心遍滿十方衆生中。如是慈心,名“衆生緣”。多在凡夫人行處,或有學人未漏盡者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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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연(法緣)을 행한다고 했는데, 모든 누가 다한 아라한ㆍ벽지불ㆍ부처님들과 같은 성인들은 나다 남이다 하는 상(相)을 깨뜨렸고, 같다 다르다 하는 상을 멸한 까닭에 오직 인연의 상속을 따라 모든 욕망이 생함을 관찰하며, 그로써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을 생각할 때에 화합된 인연의 상속에 의하여 생겨났기에 오직 공한 것이다.
5중이 곧 중생이니, 이 5중을 인자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이 법의 공함을 알지 못하고 항상 일심으로 쾌락을 얻으려고만 한다. 성인은 그들을 가엾이 여기어 생각에 따라 즐거움을 얻게 하나니, 그것이 세속의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법연이라 한다. - 014_0700_c_15L“法緣“者,諸漏盡阿羅漢、辟支佛、諸佛。是諸聖人破吾我相、滅一異相故,但觀從因緣相續生諸欲。以慈念衆生時,從和合因緣相續生,但空五衆卽是衆生,念是五衆。以慈念衆生不知是法空,而常一心欲得樂;聖人愍之,令隨意得樂,爲世俗法故,名爲“法緣”。
-
014_0701_a_01L무연(無緣)이라 했는데, 이 인자함은 부처님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들의 마음은 유위나 무위의 성품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세상에 의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든 반연이 진실치 않고, 뒤바뀌어 허망한 줄을 아시기 때문에 마음에 반연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이러한 법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다섯 길에 왕래하면서 마음이 모든 법에 집착되어 분별하거나 취하고 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을 아시는 지혜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이를 얻게 하시니, 이를 무연이라 한다. - 014_0700_c_22L“無緣”者,是慈但諸佛有。何以故?諸佛心不住有爲無爲性中,不依止過去世、未來現在世;知諸緣不實、顚倒虛誑故,心無所緣。佛以衆生不知是諸法實相,往來五道,心著諸法,分別取捨;以是諸法實相智慧,令衆生得之,是名“無緣”。
-
비유하건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 줄때 혹은 재물을 주거나 혹은 금은보물을 주거나 혹은 여의주를 주는 것과도 같으니, 중생연ㆍ법연ㆍ무연 역시 이와 같다.
이것이 자심의 뜻을 간략히 설명한 것이다. - 014_0701_a_06L譬如給賜貧人,或與財物,或與金銀寶物,或與如意眞珠;衆生緣、法緣、無緣,亦復如是。是爲略說慈心義。
-
비심(悲心) 역시 이와 같으니,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시방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는 생각하기를 ‘중생들은 가엾기도 하구나. 이런 갖가지 고통을 받게 하지 않으리라’ 한다.
성냄 없고 원망 없고 번뇌 없는 마음에서 시방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다. - 014_0701_a_08L悲心義亦如是:以憐愍心,遍觀十方衆生苦,作是念:“衆生可愍,莫令受是種種苦。”無瞋、無恨、無怨、無惱心,乃至十方亦如是。
- 【문】 세 종류의 중생이 있다. 곧 즐거움을 받는 이로서 모든 하늘과 인간의 일부분이요, 괴로움을 받는 이로서 3악도 및 인간의 일부분이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받는 이로서 5도 가운데 일부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를 행하는 이는 일체 중생이 모두 즐거움을 받는다고 관찰하고, 비를 행하는 이는 일체 중생이 모두 괴로움을 받는다고 관찰하는가?
- 014_0701_a_12L問曰:有三種衆生:有受樂,如諸天及人少分;有受苦,如三惡道及人中少分;有受不苦不樂,五道中少分。云何行慈者觀一切衆生皆受樂?行悲者觀一切衆生皆受苦?
-
【답】 수행자는 이 자무량심(慈無量心)을 배우고자 할 때에 먼저 서원을 세우되 “원컨대 중생들로 하여금 갖가지 즐거움을 받게 하리라” 하고는 즐거움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취하여 선정에 드나니, 이 모습이 점점 늘어나면 곧 중생들이 모두 즐거움을 받는 것을 보게 된다.
비유하건대 불을 지필 때 먼저 보드라운 풀이나 마른 쇠똥을 쓰거니와 불의 세력이 더욱 커지면 능히 젖은 큰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다.
자삼매도 그와 같아서 처음에 인자한 서원을 세울 때엔 친척이나 아는 이에게만 미치다가 인자한 마음이 더욱 넓어지면 원수와 친한 이가 동등하게 모두 즐거움을 얻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자의 선정이 늘어나고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 014_0701_a_16L答曰:行者欲學是慈無量心時,先作願:“願諸衆生受種種樂。”取受樂人相,攝心入禪,是相漸漸增廣,卽見衆生皆受樂。譬如鑽火,先以軟草、乾牛屎,火勢轉大,能燒大濕木。慈三昧亦如是,初生慈願時,唯及諸親族、知識;慈心轉廣,怨親同等,皆見得樂,是慈禪定增長成就故。
- 비ㆍ희ㆍ사의 마음 역시 이와 같다.
- 悲、喜、捨心亦如是。
- 014_0701_b_01L【문】 비심에서는 괴로움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취하고, 희심에서는 기쁨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취하거니와 사심(捨心)에서는 어떤 모습을 취하는가?
- 014_0701_b_01L問曰:悲心中取受苦人相,喜心中取受喜人相,捨心中取何等相?
- 【답】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받는 사람의 모습을 취한다. 수행자는 이 마음이 점차 늘어나게 하여 모두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을 받는다고 보게 된다.
- 014_0701_b_03L答曰:取受不苦不樂人相,行者以是心漸漸增廣,盡見一切受不苦不樂。
- 【문】 이 세 가지 마음에는 마땅히 복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심은 중생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게 여기거늘 어떠한 복덕이 있는가?
- 014_0701_b_05L問曰:是三種心中應有福德,是捨心於衆生不苦不樂有何等饒益?
-
【답】 수행자는 생각하기를 ‘일체의 중생은 즐거움을 여읠 때는 괴롭고 괴로울 때에는 그대로가 괴로움이니,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면 곧 안온하다’고 한다. 이것으로 이익을 삼는다.
수행자가 자와 희의 마음을 행하면서 때로는 탐착의 마음이 일어나고, 비심을 행하면서 때로는 근심과 슬픔의 마음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 탐착과 근심으로 마음이 산란해지면 이 버리는 마음으로 들어가 탐착과 근심을 제거한다. 탐착과 근심을 제거하는 까닭에 일컬어 사심이라 한다. - 014_0701_b_07L答曰:行者作是念:“一切衆生離樂時得苦,苦時卽是苦,得不苦不樂則安隱。”以是饒益。行者行慈、喜心,或時貪著心生;行悲心,或時憂愁心生以是貪憂故心亂。入是捨心,除此貪憂,貪憂除故名爲捨心。
- 【문】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버리는 마음의 차별은 잘 알겠다. 그렇지만 인자한 마음은 중생들을 즐겁게 하고, 기뻐함은 중생들을 기쁘게 한다고 하는데, 즐거움과 기쁨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014_0701_b_12L問曰:悲心、捨心,可知有別;慈心令衆生樂,喜心令衆生喜,樂與喜有何等異?
-
【답】 몸으로 좋아하는 것을 즐거움[樂]이라 하고,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기쁨[喜]이라 한다. 다섯 의식과 상응해 좋아하는 것을 즐거움이라 하고 뜻과 상응해 좋아하는 것을 기쁨이라 하며, 5진(塵)8) 가운데 생겨난 좋아하는 느낌을 즐거움이라 하고, 법의 대경[法塵] 가운데 생겨난 좋아하는 느낌을 기쁨이라 한다.
먼저 즐거움을 원해 구하게 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좇도록 하며, 그로 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기쁨을 얻게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가엾이 여겨 먼저 보물을 베풀어 주는 것을 즐거움이라 하고, 나중에 스스로 돈을 벌도록 장사를 하게 해 5욕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을 기쁨이라 한다. - 014_0701_b_14L答曰:身樂名樂,心樂名喜。五識相應樂名樂,意識相應樂名喜。五塵中生樂名樂,法塵中生樂名喜。先求樂,願令衆生得,從樂因令衆生得喜。如人憐愍貧人,先施寶物,是名樂;後教令賣買得受五欲樂,是名喜。
- 또한 욕계의 즐거움을 원해 중생들로 하여금 5욕의 좋은 느낌을 얻게 하는 것을 즐거움이라 하고, 색계의 즐거움을 원해 중생으로 하여금 얻게 하는 것을 기쁨이라 한다.
- 014_0701_b_20L復次,欲界樂願令衆生得,是名樂;色界樂願令衆生得,是名喜。
-
014_0701_c_01L또한 욕계에서의 다섯 의식과 서로 응하는 좋은 느낌과 초선에서의 세 의식과 서로 응하는 좋은 느낌과 3선(禪)에서의 일체의 좋은 느낌을 즐거움이라 하고, 욕계 및 초선의 의식과 서로 응하는 좋은 느낌과 2선(禪)에서의 일체의 좋은 느낌을 기쁨이라 한다.
거칠게 느껴지는 좋은 느낌을 즐거움이라 하고 미세하게 느껴지는 좋은 느낌을 기쁨이라 한다. 원인일 때의 좋은 느낌을 즐거움이라 하고 결과일 때의 좋을 느낌을 기쁨이라 한다. 처음으로 좋은 느낌이 될 때를 즐거움이라 하고, 환희심이 내면에서 일어나 좋아하는 모습이 겉으로 나타나서 노래하고 춤추고 뛰어오르는 것을 기쁨이라 한다.
예컨대 처음으로 약을 먹을 때를 즐거움이라 하고, 약효가 발생하여 온몸에 두루 퍼지는 때를 기쁨이라 하는 것과 같다. - 014_0701_b_22L復次,欲界中五識相應樂、初禪中三識相應樂、三禪中一切樂,是名樂;欲界及初禪意識相應樂、二禪中一切樂,是名喜。麤樂名樂,細樂名喜。因時名樂,果時名喜。初得樂時是名樂;歡心內發,樂相外現,歌儛踊躍,是名喜。譬如初服藥時,是名樂;藥發遍身時,是名喜。
- 【문】 그렇다면 어찌하여 두 마음을 합쳐서 하나의 무량으로 하지 않고, 나누어서 두 법으로 만들었는가?
- 014_0701_c_06L問曰:若爾者,何以不和合二心作一無量,而分別爲二法?
- 【답】 수행자가 처음에는 아직 마음을 잘 거두지 못하고 중생들을 깊이 사랑하지 못하는 까닭에 단지 즐거움만을 주고, 마음을 거두어 중생을 깊이 사랑하는 까닭에 기쁨을 준다. 이런 까닭에 먼저 즐거움을 들고 나중에 기쁨을 드는 것이다.
- 014_0701_c_07L答曰:行者初心未攝,未能深愛衆生故,但與樂;攝心深愛衆生,故與喜。以是故,先樂而後喜。
- 【문】 그렇다면 어찌하여 자 다음에 희를 들지 않는가?
- 014_0701_c_10L問曰:若爾者,何以不慈、喜次第?
-
【답】 자심을 행할 때는 중생을 사랑하기를 마치 어린 애기같이 여겨 즐거움을 주기를 원하며, 자삼매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중생들이 갖가지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중생을 가엾이 여겨 깊은 즐거움을 얻게 한다.
비유하건대 부모가 비록 자식을 항상 사랑하나 자식이 병에 걸려 위급해지면 이때는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는 것과 같다. 보살들도 그와 같아서 비심에 들어가서 중생의 괴로움을 보고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문득 깊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비심이 중간에 있는 것이다. - 014_0701_c_11L答曰:行慈心時,愛衆生如兒子,願與樂。出慈三昧故,見衆生受種種苦,發深愛心憐愍衆生,令得深樂。譬如父母雖常愛子,若得病急,是時愛心轉重;菩薩亦如是,入悲心觀衆生苦,憐愍心生,便與深樂,以是故悲心在中。
- 【문】 만일 이처럼 중생들을 깊이 사랑한다면 무엇 때문에 다시 사심을 행하는가?
- 014_0701_c_17L問曰:若如是深愛衆生,復何以行捨心?
-
014_0702_a_01L【답】 수행자는 이처럼 관찰하되 항상 중생들을 버리지 않고, 오직 이 세 가지 마음을 버린다. 왜냐하면 다른 법에 방해하고 가로막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자심으로써 중생들을 즐겁게 만들고자 하나 즐거움을 얻게 하지 못하고, 비심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여의게 하려 하나 괴로움을 여의게 하지 못하며, 희심을 행할 때에도 역시 중생들로 하여금 큰 기쁨을 얻게 하지 못한다. 곧 이것은 다만 생각일 뿐이요 실제로 법이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중생으로 하여금 실제의 일을 얻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발심하여 부처가 되어야만 하리라. 6바라밀을 행하고 불법을 갖춘다면 중생들로 하여금 이러한 실제의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러한 세 가지 마음을 버리어 이 사심에 드는 것이다. - 014_0701_c_18L答曰:行者如是觀,常不捨衆生,但念捨是三種心。何以故?妨廢餘法故。亦以是慈心欲令衆生樂,而不能令得樂;悲心欲令衆生離苦,亦不能令得離苦;行喜心時,亦不能令衆生得大喜。此但憶想,未有實事;欲令衆生得實事,當發心作佛,行六波羅蜜,具足佛法,令衆生得是實樂。以是故,捨是三心,入是捨心。
- 또한 자ㆍ비ㆍ희의 마음은 사랑이 깊기 때문에 중생을 버리기 어렵지만, 이 사심에 드는 까닭에 쉽게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 014_0702_a_03L復次,如慈、悲、喜心愛深故捨衆生難,入是捨心故易得出離。
- 【문】 보살이 6바라밀을 행하며, 나아가 부처를 이루더라도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단지 이 세 마음은 생각하여 마음 가운데 일어날 뿐 실제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9)
- 014_0702_a_05L問曰:菩薩行六波羅蜜,乃至成佛,亦不能令一切衆生離苦得樂,何以故但言“是三心憶想心生,無有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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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이 보살이 부처를 이룰 때에 비록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지는 못하지만, 다만 보살이 큰 서원을 세우기만 하면 이 큰 서원에 의해 큰 복덕의 과보를 얻고, 큰 과보를 얻는 까닭에 범부들을 크게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문이 이 4무량(無量)을 행함은 스스로를 제어하고 스스로를 이롭게 하기 위한 까닭이니, 역시 중생을 부질없이 생각만 한다. 하지만, 보살들이 이 자심을 행함은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떠나서 즐거움을 얻게 하고, 이 인자한 마음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자신도 복덕을 짓고 남도 복덕을 짓게 하며, 과보를 받을 때엔 혹은 전륜성왕이 되어 그 이롭게 하는 바가 많다.
보살은 때로는 출가하여 선(禪)을 행하며, 중생을 인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선을 닦게 하여 청정한 세계에 태어나 한량없는 마음의 즐거움을 얻게 하기도 한다.
만일 부처를 이룰 때에는 한량없는 아승기10)의 중생들과 더불어 무여열반에 드나니, 빈 마음으로 이익되게 하기를 원하는 것에 비한다면 이는 커다란 이익인 것이다.
나아가서는 사리나 그 밖의 다른 법으로 이롭게 하는 바가 많다. - 014_0702_a_08L答曰:是菩薩作佛時,雖不能令一切衆生得樂,但菩薩發大誓願;從是大願,得大福德果報;得大報故,能大饒益。凡夫、聲聞行是四無量,爲自調自利故,亦但空念衆生。諸菩薩行是慈心,欲令衆生離苦得樂;從此慈心因緣,亦自作福德,亦教他作福德,受果報時,或作轉輪聖王,多所饒益;菩薩或時出家行禪,引導衆生,教令行禪,得生淸淨界,受無量心樂。若作佛時,共無量阿僧祇衆生,入無餘涅槃;比於空心願益,是爲大利!乃至舍利餘法,多所饒益。
- 또한 만일 한 부처님이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시면 다른 부처님은 제도할 바가 없으리라 한다면 이는 미래의 부처님을 없다 하고, 부처의 종자를 끊는 것이 된다. 이러한 허물이 있으므로 한 부처님이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시지 않는다.
- 014_0702_a_20L復次,若一佛盡度一切衆生,餘佛則無所復度,是則無未來佛,爲斷佛種,有如是等過。以是故,一佛不度一切衆生。
- 014_0702_b_01L또한 이 중생들의 성품은 어리석음으로부터 있는 것이어서 실제로 결정된 법이 아니다. 3세와 시방의 부처님들이 중생을 구하여도 실로 얻을 수 없거늘 어찌 일체를 다 제도하겠는가.
- 014_0702_a_23L復次,是衆生性,從癡而有,非實定法;。三世十方諸佛求衆生實不可得,云何盡度一切?
- 【문】 만일 공하여 다 제도하지 못한다면, 적은 수효도 공하기는 마찬가지거늘 어찌하여 조금은 제도한다 하는가?
- 014_0702_b_02L問曰:若空,不可得盡度者;少亦俱空,何以度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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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나는 말하기를 “시방 3세의 부처님이 일체 중생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기에 제도할 바가 없다” 했다. 하지만 그대는 질문하기를 “어찌하여 다 제도하지 못하는가” 하니, 이것이 잘못이다.
그대는 이 허물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 “중생 가운데 많거나 적거나 한 종류가 없거늘 어찌하여 조금만 제도하는가”라고 묻고 있으니, 이는 거듭 허물에 떨어지는 것이다. - 014_0702_b_04L答曰:我言“三世十方佛求一切衆生不可得故無所度”,汝難言“何以不盡度”,是爲墮負處!汝於負處不能自拔,而難言:“無衆生中,多少一種,何以度少”,是爲重墮負處!
- 또한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인 제일의제에는 중생도 없고, 또한 제도한다는 것도 없다. 다만 세속의 법에 의하는 까닭에 제도함이 있다고 할 뿐이거늘 그대는 세속의 법에서 제일의제를 구하니, 이 일은 옳지 못하다. 비유하건대 자갈 틈에서 보석을 찾으나 얻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 014_0702_b_08L復次,諸法實相第一義中,則無衆生,亦無度;但以世俗法故,說言有度。汝於世俗中求第一義,是事不可得;譬如瓦石中求珍寶不可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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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든 부처님의 초발심으로부터 법이 다함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있는 공덕은 모두가 만들어진 것[作法]으로서 한량도 있고, 처음과 마지막도 있다. 따라서 제도할 중생 역시 한량이 있어야 하나니, 인연과보의 한량 있는 법을 좇아 한량없는 중생을 다 제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힘센 장수의 활이 아무리 세력이 크다 해도 거리가 멀면 화살도 반드시 떨어지는 것 같다.
또한 겁이 다하여 큰 불이 삼천대천세계를 태울 때 밝게 비추는 광명이 한량없고 오래간다 하여도 반드시 멸하는 것과도 같다.
보살의 성불도 이와 같아서 처음 발의함으로부터 정진의 활을 잡고 지혜의 화살을 써서 깊이 불법 속으로 들어가 큰 불사를 이룩하더라도 마침내 반드시 멸한다.
보살이 일체종지를 얻을 때는 몸에서 광명이 나와 한량없는 세계를 비추고, 낱낱 광명이 변화해 한량없는 몸을 만들어 내며,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다.
열반에 든 뒤에는 8만 4천의 법 무더기와 사리로써 중생들을 교화하되 겁이 다하는 불이 비추기를 오래하면 끝내 멸하는 것이다. - 014_0702_b_12L復次,諸佛從初發心,乃至法盡,於其中閒所有功德,皆是作法,有限有量,有初有後,故所度衆生亦應有量,不應以隨因緣果報有量法盡度無量衆生。如大力士,弓勢雖大,箭遠必墮。亦如劫盡大火燒三千世界,明照無量,雖久必滅。菩薩成佛亦如是,從初發意,執精進弓,用智慧箭,深入佛法,大作佛事,亦必當滅。菩薩得一切種智時,身出光明,照無量世界,一一光明變化作無量身,度十方無量衆生;涅槃後,八萬四千法聚舍利,化度衆生;如劫盡火照,久亦復滅。
- 014_0702_c_01L【문】 그대는 말하기를 “광명이 변화해 한량없는 몸을 만들어 내며,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다” 하면서 지금은 어찌하여 한량 있는 인연 때문에 제도 받을 중생 역시 한량이 있다고 말하는가?
- 014_0702_c_01L問曰:汝自言“光明變化作無量身,度十方無量衆生”,今何以言“有量因緣故,所度亦應有量”?
- 【답】 한량없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
- 答曰:“無量”有二種:
- 첫째는 실제로 한량없음이니, 성인들도 헤아리지 못하는 바이다. 예를 들어 허공ㆍ열반ㆍ중생의 성품이니, 이것들은 헤아릴 수가 없다.
- 014_0702_c_04L一者、實無量,諸聖人所不能量;譬如虛空、涅槃、衆生性,是不可量。
-
둘째는 가히 헤아릴 수는 있는 법이나 오직 힘이 적어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미산ㆍ바닷물의 무게ㆍ빗방울의 많고 적음이니, 이는 부처님들과 보살들은 능히 아시지만 하늘이나 인간 세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부처님들은 능히 아시지만 다만 그대들이 미칠 바가 아니므로 한량없다고 말할 뿐이다. - 014_0702_c_06L二者、有法可量,但力劣者不能量;譬如須彌山、大海水,斤兩、渧數多少,諸佛菩薩能知,諸天世人所不能知。佛度衆生亦如是,諸佛能知,但非汝等所及,故言“無量”。
-
또한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겨나는 까닭에 자성이 없으며, 자성이 없는 까닭에 항상 공하니, 항상 공한 가운데서는 중생을 얻을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014_0702_c_11L復次,諸法因緣和合生故,無有自性,自性無故常空,常空中衆生不可得。如佛說:
-
내가 도량에 앉았을 때
지혜로운 이 볼 수 없었으니
빈주먹으로 어린애를 꼬이듯
모든 중생을 구제하였네. -
014_0702_c_13L我坐道場時,
智慧不可得,
空拳誑小兒,
以度於一切。
-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그대로가 중생의 모습이니
만일 중생의 모습에 집착하면
진실한 도에서 멀어지네. -
014_0702_c_15L諸法之實相,
則是衆生相,
若取衆生相,
則遠離實道。
-
항상 영원히 공한 모습을 생각하면
이 사람은 도를 행하는 것이 아니니
생멸치 않는 법 가운데에서
분별의 모습을 짓는 자이네. -
014_0702_c_16L常念常空相,
是人非行道,
不生滅法中,
而作分別相。
-
분별하거나 기억해 생각하면
이는 마라의 그물이니
움직이지 않고 기대지 않으면
이것이 곧 법인(法印)이어라. -
014_0702_c_17L若分別憶想,
則是魔羅網,
不動不依止,
是則爲法印。
-
【문】 만일 즐거움에 두 부분이 있어 자심과 희심이라면, 비심으로 괴로움을 관찰할 때엔 어찌하여 두 부분으로 나누지 않는가? - 014_0702_c_19L問曰:若樂有二分:慈心、喜心;悲心觀苦,何以不作二分?
-
【문】 즐거움은 일체 중생이 다 같이 애착하고 소중히 여기므로 두 부분으로 나누거니와 이 괴로움은 사랑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 까닭에 두 부분으로 나누지 않는다.
또한 즐거움을 느낄 때엔 마음이 부드럽고 괴로움을 느낄 때엔 마음이 굳어진다. - 014_0702_c_21L答曰:樂是一切衆生所愛重故作二分,是苦不愛不念故不作二分。又受樂時心軟,受苦時心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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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703_a_01L아육왕(阿育王)11)의 동생인 위타수(違陀輸)12)가 7일 동안 염부제의 왕이 되어 최상의 쾌락을 얻어 5욕을 마음껏 누렸다. 7일이 지난 뒤에 아육왕이 물었다.
“염부제의 주인이 되어 마음껏 기쁨을 누렸느냐?”
그가 대답했다.
“나는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였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전다라(旃陀羅)13)가 날마다 요령을 흔들고 고성을 지르면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7일 가운데 이미 며칠이 지났다. 7일이 지난 뒤엔 그대는 반드시 죽으리라.’ 나는 이런 소리를 듣자 비록 염부제의 왕이 되어서 최상의 5욕을 누렸으나 근심과 걱정이 깊어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 014_0703_a_01L如阿育王弟違陁輸,七日作閻浮提王,得上妙自恣五欲。過七日已,阿育王問言:“閻浮提主,受樂歡暢不?”答言:“我不見、不聞、不覺。何以故?旃陁羅日日振鈴高聲唱:‘七日中已爾許日過,過七日已,汝當死!’我聞是聲,雖作閻浮提王,上妙五欲,憂苦深故,不聞、不見。”
-
이런 까닭에 괴로움의 힘은 강하고 즐거움의 힘은 약한 줄 알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온몸에 즐거움을 느끼다가 어느 한곳에 가시를 찔리면 뭇 즐거움을 모두 잃은 채 다만 가시의 아픔만을 느끼나니, 즐거움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야 강해지거니와 괴로움의 힘은 강하기 때문에 한 곳만으로도 족히 밝힐 수 있다. - 014_0703_a_08L以是故知苦力多、樂力弱。若人遍身受樂,得一處鍼刺,衆樂皆失,但覺刺苦。樂力弱故,二分乃强;苦力多故,一處足明。
- 【문】 이러한 4무량심을 행하면 어떤 과보를 받는가?
- 014_0703_a_11L問曰:行是四無量心,得何等果報?
-
【답】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자삼매에 들면 현재에 다섯 가지 공덕을 받느니라.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독약을 먹어도 죽지 않고, 칼날에도 상하지 않고, 결코 횡사하지 않고, 착한 신이 옹호하나니,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했기 때문에 이런 한량없는 복덕을 받느니라. 이러한 유루의 한량없는 마음으로 중생을 반연하기 때문에 청정한 곳에 태어나니, 이른바 색계이니라.” - 014_0703_a_12L答曰:佛說入是慈三昧,現在得五功德:入火不燒,中毒不死,兵刃不傷,終不撗死,善神擁護。以利益無量衆生故,得是無量福德。以是有漏無量心緣衆生故,生淸淨處,所謂色界。
- 【문】 무슨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자의 과보로 범천(梵天)에 태어난다 하셨는가?
- 014_0703_a_17L問曰:何以故佛說慈報生梵天上?
- 【답】 범천은 중생이 존귀하게 여기는 바임을 모두가 듣고,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천축국14)에 머무셨는데, 천축국에는 언제나 바라문이 많았다. 바라문의 법에는 복덕이 다하면 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는데, 만일 중생이 자를 행하면 범천에 태어난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믿고 따라서 자애로운 법을 행했다. 이런 까닭에 자를 행하여 범천에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 014_0703_a_18L答曰:以梵天衆生所尊貴,皆聞皆識故。佛在天竺國,天竺國常多婆羅門,婆羅門法,所有福德盡願生梵天。若衆生聞行慈生梵天,皆多信向行慈法,以是故說行慈生梵天。
- 014_0703_b_01L또한 음욕을 끊은 하늘을 모두 범(梵)이라 하는데, 범이라 말하면 색계를 다 포섭한다. 그러므로 음욕의 법을 끊은 법을 일컬어 범행(梵行)이라 하는 것이다. 음욕 여의는 것 역시 범이니, 만일 범이라 말하면 4선(禪)ㆍ4무색정(無色定)을 포함하게 된다.
- 014_0703_a_22L復次,斷婬欲天皆名爲梵,說梵皆攝色界。以是故斷婬欲法名爲梵行,離欲亦名梵。若說梵,則攝四禪、四無色定。
- 또한 각(覺)과 관(觀)은 여의기 어려운 까닭에 위 경지의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
- 014_0703_b_02L復次,覺觀難滅故,不說上地名。譬如五戒中口律儀,但說一種不妄語,則攝三事。
- 【문】 자에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면, 비ㆍ희ㆍ사에는 어찌하여 공덕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 014_0703_b_05L問曰:慈有五功德,悲、喜、捨何以不說有功德?
- 【답】 위에서 비유했듯이 하나를 말하면 곧 세 가지가 포함되는 것이다. 이 역시 그와 같아서 자를 말하면 이미 비ㆍ희ㆍ사도 이미 말한 것이다.
- 014_0703_b_06L答曰:如上譬喩,說一則攝三事;此亦如是,若說慈,則已說悲、喜、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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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는 곧 진실로 한량없는 것이니, 인자함은 왕과 같고 나머지 세 가지는 따르는 백성과 같다.
그것은 왜냐하면 먼저 자심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고자 하고,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이를 보는 까닭에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고, 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운 마음을 여의어 법의 즐거움을 얻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고, 이 세 가지 일에 미움도 사랑도 없고, 탐냄도 근심도 없으므로 버리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 014_0703_b_08L復次,慈是眞無量,慈爲如王,餘三隨從如人民。所以者何?先以慈心欲令衆生得樂;見有不得樂者,故生悲心;欲令衆生離苦、心得法樂,故生喜心;於三事中,無憎無愛,無貪無憂,故生捨心。
-
또한 자는 즐거움을 중생에게 주는 까닭이다.
『증일아함(增一阿含)』에서는 다섯 가지 공덕이 있는 비심을 설하고, 마하연경15)의 곳곳에서도 그 공덕을 말하고 있다.
『명강보살경(明網菩薩經)』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중생들 사이에서 32종의 비(悲)를 행하며, 차츰 늘어나고 넓어지면 대비(大悲)를 이루느니라. 대비는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들의 공덕의 근본이요, 반야바라밀의 어머니요, 부처님들의 할머니이다. 보살은 대비의 마음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얻고, 반야바라밀을 얻기 때문에 부처를 이루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갖가지로 대비를 찬탄하셨으며, 희ㆍ사의 마음 역시 다른 곳에서 찬탄하셨다. - 014_0703_b_13L復次,慈以樂與衆生故,『增一阿含』中說有五功德。悲心於摩訶衍經處處說其功德,如『明網菩薩經』中說:“菩薩處衆生中,行三十二種悲,漸漸增廣,轉成大悲。”大悲是一切諸佛、菩薩功德之根本,是般若波羅蜜之母,諸佛之祖母。菩薩以大悲心故,得般若波羅蜜,得般若波羅蜜故得作佛。如是等種種讚大悲。喜、捨心,餘處亦有讚。
- 자ㆍ비의 두 가지는 두루 위대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그 공덕을 찬탄하셨으니, 자는 공덕이 있기 어렵기 때문이요, 가엾이 여김은 능히 큰 업을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 014_0703_b_21L慈、悲二事偏大故,佛讚其功德;慈以功德難有故,悲以能成大業故。
- 014_0703_c_01L【문】 부처님께서 4무량의 공덕을 말씀하시기를 “인자한 마음을 잘 닦고 능숙히 닦으면 복이 변정천(遍淨天)16)에 이르고[極],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잘 닦고 능숙히 닦으면 복이 공처(空處)에 이르고, 기뻐하는 마음을 잘 닦고 능숙하게 닦으면 복이 식처(識處)에 이르고, 버리는 마음을 잘 닦고 능숙하게 닦으면 복이 무소유처(無所有處)에 이른다” 하셨거늘 어찌하여 앞에서는 “자의 과보로 범천에 태어난다”고 하셨는가?
- 014_0703_b_23L問曰:佛說:“四無量功德,慈心好修、善修,福極遍淨天;悲心好修、善修,福極虛空處;喜心好修、善修,福極識處;捨心好修、善修,福極無所有處。”云何言“慈果報應生梵天上”?
- 【답】 부처님들의 가르침은 헤아리기 어려우니, 제도해야 할 중생들에 따라 그처럼 말씀하신다.
- 014_0703_c_04L答曰:諸佛法不可思議,隨衆生應度者如是說。
- 자정(慈定)에서 일어나서 제3선으로 회향하기는 쉽다. 또한 비정(悲定)에서 일어나서 허공처(虛空處)로 향하거나, 희정(喜定)에서 일어나서 식처에 들어가거나, 사정(捨定)에서 일어나서 무소유처에 들어가기가 쉽다.
- 014_0703_c_05L復次,從慈定起,迴向第三禪易;從悲定起,向虛空處;從喜定起,入識處;從捨定起,入無所有處易故。
- 또한 자심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기를 원한다면 이 과보로 스스로도 응당 즐거움을 받아야 하는데, 삼계 안에서는 변정천이 가장 즐거우므로 말하기를 “복이 변정천에 이른다” 했다.
- 014_0703_c_08L復次,慈心願令衆生得樂,此果報自應受樂,三界中遍淨最爲樂故,言福極遍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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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심으로써 중생들의 늙고 병들음과 잔인하고 해로운 고행을 하는 자를 보아 이렇게 연민의 마음을 일으킨다.
‘어찌하여야 괴로움을 여의게 할까. 만일 안의 괴로움을 제해 주면 밖의 괴로움이 다시 오고, 만일 밖의 괴로움을 제해 주면 안의 괴로움이 다시 오는구나.’
수행자는 다시 생각하기를 ‘몸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있으니, 오직 몸이 없어야 괴로움이 없으리라. 허공이 능히 물질[色]을 깨뜨리리라’ 한다. 그러므로 복이 공처에 이른다 하는 것이다. - 014_0703_c_10L悲心觀衆生老、病、殘害苦,行者憐愍心生,云何令得離苦?若爲除內苦,外苦復來;若爲除外苦,內苦復來。行者思惟:有身必有苦;唯有無身,乃得無苦。虛空能破色,是故福極虛空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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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심으로써 중생들에게 마음(心)과 의식[識]의 즐거움을 주고자 한다. 마음과 의식이 즐거움이란, 마음이 몸에서 떠나기를 마치 새가 조롱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허공처의 마음은 비록 몸은 벗어났으나 아직도 마음이 허공에 매여 있거니와 식처(識處)는 한량이 없으니, 일체법 가운데에 모두 마음과 의식이 있어 의식이 자재하고 끝이 없음을 얻게 된다.
이런 까닭에 기뻐함의 복은 식처에 이른다 했다. - 014_0703_c_15L喜心欲與衆生心識樂,心識樂者,心得離身,如鳥出籠;虛空處心,雖得出身,猶繫心虛空;識處無量,於一切法中皆有心識,識得自在無邊,以是故喜福極在識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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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이란 중생에 대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는 것이니, 괴로움과 즐거움을 버리는 까닭에 참된 버림의 상태[捨法]를 얻는다. 이른바 무소유처(無所有處)17)이다.
이런 까닭에 버리는 마음의 복은 무소유처에 이른다 하는 것이다. - 014_0703_c_19L捨心者,捨衆生中苦樂,苦樂捨故,得眞捨法,所謂無所有處;以是故,捨心福極無所有處。
- 이와 같이 4무량은 다만 성인만이 얻는 바로서 범부의 경지는 아니다.
- 014_0703_c_22L如是四無量,但聖人所得,非凡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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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704_a_01L또한 부처님께서는 미래 세상의 제자들이 둔근이기 때문에 분별하여 모든 법에 집착되고 4무량의 모습을 착각하여 “이 4무량심은 중생이 반연이기에 유루일 뿐이요, 다만 욕계만을 반연하므로 무색계에는 없다. 왜냐하면 무색계는 욕계를 반연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할 것을 아신다.
이러한 사람들의 망견을 끊기 위하여 4무량심을 무색계 가운데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으로서는 4무량심이 시방의 중생을 두루 반연하기 때문에 무색계에서도 반연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은 질문 가운데서 말하기를 “자(慈)에 세 종류가 있으니, 중생을 대상으로 삼는 것[衆生緣]과 법을 대상으로 삼는 것[法緣]과 대상이 없는 것[無緣]이다”고 했으며, 어떤 논사는 말하기를 “중생을 대상으로 삼는다 함은 유루요, 대상이 없다 함은 무루요, 법을 대상으로 삼는다 함은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다”고 했다. - 014_0703_c_23L復次,佛知未來世諸弟子鈍根故,分別著諸法,錯說四無量相:“是四無量心,衆生緣故,但是有漏;但緣欲界故,無色界中無。何以故?無色界不緣欲界故。”爲斷如是人妄見故,說四無量心無色界中。佛以四無量心,普緣十方衆生故,亦應緣無色界中。如『無盡意菩薩問』中說:“慈有三種:衆生緣、法緣、無緣。”論者言:“衆生緣是有漏,無緣是無漏,法緣或有漏、或無漏。”
- 이와 같이 갖가지로 4무량심을 간략히 설명했다.
- 014_0704_a_09L如是種種,略說四無量心。
- 4무색정(無色定)이라 함은 허공처(虛空處)ㆍ식처(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이다.
- 014_0704_a_10L四無色定者,虛空處、識處、無所有處、非有想非無想處。
- 이 4무색에 세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유구(有垢)18)요, 둘째는 생득(生得)19)이요, 셋째는 행득(行得)20)이다.
- 014_0704_a_12L是四無色有三種:一者有垢,二者生得,三者行得。
- 유구란, 무색계에 속하는 서른한 가지 번뇌[結] 및 이 번뇌에서 일어나는 마음과 상응하는 행을 포함한다.
- 014_0704_a_13L有垢者,無色中攝三十一結及此結使中起心相應行。
- 생득이란, 이 4무색정을 행한 업보의 인연 때문에 무색계에 태어나서 은몰하지 않는 무기(無記)의 사중(四衆)을 얻게 되는 것이다.
- 014_0704_a_14L生得者,行是四無色定,業報因緣故,生無色界,得不隱沒無記四衆。
-
행득이란, 이 색이 추악하고, 중한 고통이고, 늙고, 병들고, 살해되는 등 갖가지 고뇌의 인연이며, 마치 중병 같고, 종기 같고, 독한 가시 같아 모두가 거짓되고 헛된 표현이니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고 관찰한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일체의 색상(色相)을 초월하고 일체의 유대상(有對相)을 멸하고, 일체의 다른 상[異相]을 생각하지 않아 가없는 허공처에 드는 것이다. - 014_0704_a_16L行得者,觀是色麤惡、重苦、老病、殺害等,種種苦惱因緣;如重病、如癰瘡、如毒刺,皆是虛誑妄語,應當除卻。如是思惟已,過一切色相,滅一切有對相,不念一切異相,入無邊虛空處定。
- 【문】 어찌하여야 능히 이 세 가지 모습을 멸하는가?
- 014_0704_a_21L問曰:云何能滅是三種相?
- 【답】 이 세 가지 모습은 모두가 인연 화합에 의하여 생겨나는 까닭에 자성(自性)이 없고, 자성이 없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거짓되고 실체가 없어서 쉽게 멸할 수 있다.
- 014_0704_a_22L答曰:是三種相皆從因緣和合生故無自性;自性無故,是三種虛誑無實,易可得滅。
-
014_0704_b_01L또한 이 색을 분별하건대 조각조각 깨지고 흩어져서 나중에는 모두 없어진다.
이런 까닭에 뒤에만 없는 듯하나 지금에도 없거늘 중생들이 뒤바뀐 까닭에 화합된 색에 대하여 한 모습이라거나 다른 모습을 취하고, 마음이 색의 모습에 집착한다.
그러니 “나는 지금 어리석은 사람을 따라서 배울 것이 아니라 진실한 일을 구해야 하리라”고 해야 하나니, 진실한 일 가운데는 한 모습이라거나 다른 모습이라 할 것이 없다. - 014_0704_b_01L復次,是色分別分分破散,後皆無,以是故,若後無、今亦無。衆生顚倒故,於和合色中取一相、異相,心著色相;我今不應隨愚人學,當求實事,實事中無是一相、異相。
-
다시 수행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만일 모든 법을 제거해서 여읜다면 이익을 얻음이 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먼저 재물과 처자를 버리고 출가하여 청정하게 계행을 지니면 마음이 평온해져 겁내거나 두려울 것이 없으며, 모든 욕망과 온갖 삿되고 착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기쁨과 즐거움이 생하는 초선(初禪)을 얻으리라. 다시 각(覺)과 관(觀)을 여의고 내적으로 청정해진 까닭에 제2선에서의 커다란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며, 다시 이 기쁨을 여의면 제3선의 경지이니 모든 즐거움 가운데 으뜸이 되리라. 다시 이러한 즐거움을 여의고 생각[念]이 무관심으로 청정해진 제4선을 얻으나, 이러한 4선을 버리고 마땅히 다시 묘한 선정을 얻어야 하리라. 이런 까닭에 이 색의 모습을 초월하고, 대함이 있는 모습을 멸해 다른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 014_0704_b_05L復次,行者作是念:“我若除卻離諸法,得利爲深。我先捨財物、妻子出家,得淸淨持戒,心安隱,不怖不畏。離諸欲、諸惡不善法,離生喜樂得初禪。離覺觀、內淸淨故,得第二禪中大喜樂。離喜在第三禪地,於諸樂中最第一。捨是樂,得念捨淸淨第四禪。今捨是四禪,應更得妙定。”以是故,過是色相,滅有對相,不念異相。
-
부처님께서는 세 종류의 색(色)을 말씀하셨다. 곧 어떤 색은 볼 수도 있고 대할 수도 있고[可見有對], 어떤 색은 볼 수는 없으나 대할 수는 있고[不可見有對], 어떤 색은 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不可見無對].
여기에서 “색상을 초월한다” 함은 볼 수도 있고 대할 수도 있는 색이요, “대할 수 있는 모습을 멸한다” 함은 볼 수는 없으나 대할 수는 있는 색이요, “다른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다” 함은 볼 수도 없고 대할 수도 없는 색이다. - 014_0704_b_14L佛說三種色:“有色可見有對,有色不可見有對,有色不可見無對。”過色相者,是可見有對色;滅有對相者,是不可見有對色;不念異相者,是不可見無對色。
- 또한 다시 눈으로 색의 무너짐을 보기 때문에 색을 초월한다 하고, 귀의 소리ㆍ코의 냄새ㆍ혀의 맛ㆍ몸의 촉감이 무너지기 때문에 대상이 있는 모습을 초월한다 하고, 두 종류의 나머지 색 및 무교색(無敎色)21)에 대해 갖가지로 분별하기 때문에 다른 모습이라 한다.
- 014_0704_b_18L復次,眼見色壞故,名過色;耳聲、鼻香、舌味、身觸壞故,過有對相;於二種餘色及無教色種種分別故,名異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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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관찰해서 색계 가운데 물드는 일을 떠나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를 얻는다.
3무색을 얻는 인연과 방법은 「선바라밀품」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 014_0704_b_21L如是觀離色界中染,得無邊虛空處。得三無色因緣方便,如「禪波羅蜜品」中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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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704_c_01L이 4무색에서 하나는 항상 유루이거니와 나머지 셋은 지금 분별해야 하리라.
허공처는 유루이기도 하고 혹은 무루이기도 하다.
유루라 함은 허공처에 속하는 유루의 4중(衆)이요, 무루라 함은 허공처에 속하는 무루의 4중이니, 식처와 무소유처도 이와 같다.
모두가 다 유위의 선(禪)이다. - 014_0704_b_23L是四無色,一常有漏,三當分別。虛空處,或有漏,或無漏。有漏者,虛空處攝有漏四衆;無漏者,虛空處攝無漏四衆。識處、無所有處亦如是。一切皆有爲。
-
유루의 허공처는 유보(有報)이고 무기(無記)이며, 무루의 허공처는 무보(無報)이다. 식처ㆍ무소유처도 이와 같다.
선(善)한 비유상비무상처는 유보이며, 무기의 비유상비무상처는 무보이다. - 014_0704_c_04L善有漏虛空處是有報,無記及無漏虛空處是無報;識處、無所有處,亦如是。善非有想非無想處是有報,無記非有想非無想處是無報。
- 선한 4무색정은 닦을 수 있는 것이며, 무기의 4무색정은 닦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014_0704_c_08L善四無色定是可修,無記四無色定非可修。
- 숨어 없어진다 함은 때[垢]가 있음이요, 숨어 없어지지 않는다 함은 때가 없음이다.
- 014_0704_c_09L隱沒者是有垢,不隱沒者是無垢。
- 하나가 셋 가운데 있으니, 유루라 함은 있는 것이요, 무루라 함은 있지 않는 것이다.
- 014_0704_c_10L一,有;三中,有漏者是有,無漏者是非有。
- 4무색정에 속하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은 서로 응하는 원인이요,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은 서로 응하는 원인이 아니다.
- 014_0704_c_11L四無色定攝心心數法,是相應因;心不相應諸行,是非相應因。
-
선한 법이면서도 4무색 안의 것이 아닌 것도 있고, 4무색 안의 것이면서도 선법이 아닌 것도 있다.
선한 법이면서 4무색 안의 것인 것도 있고, 선법도 아니고 4무색 안의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선한 법이면서도 4무색이 아니라 함은 일체의 색중(色衆)과 4무색이 포섭하지 못하는 선한 4중(衆) 및 지혜의 연이 다한 것이다.
4무색 가운데 있으면서도 선법이 아니라 함은 무기(無記)의 4무색이다.
선한 법이기도 하고 4무색이기도 하다 함은 선한 4무색이다.
선한 법도 아니고 4무색도 아니라 함은 일체의 선하지 못한 5중과 무기의 색중, 그리고 4무색이 포섭하지 못하는 무기의 4중과 허공 및 지혜의 인연이 다하지 않는 것이다. - 014_0704_c_13L有善法非四無色中,有四無色中非善法,有亦善法亦四無色中,有非善法亦非四無色中。有善法非四無色者,一切善色衆,及四無色不攝四衆,及智緣盡。有四無色中非善法者,無記四無色。有亦善法亦四無色者,善四無色。有非善法亦非四無色者,一切不善五衆,及無記色衆,及四無色不攝無記四衆、虛空及非智緣盡。
- 선하지 않은 법에 서로 포섭되지 않는다.
- 不善法中不相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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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_0705_a_01L무기법이면서도 4무색이 아닌 것도 있고, 4무색이면서도 무기법이 아닌 것도 있으며, 무기법이기도 하고 4무색이기도 한 것이 있으며, 무기법도 아니고 4무색도 아닌 것도 있다.
무기법이면서도 4무색이 아닌 것이라 함은 무기의 색중 및 4무색에 포섭되지 않는 무기의 4중, 허공 및 지혜의 연이 다하지 않은 것이다.
4무색 가운데 있으면서도 무기법이 아니라 함은 선한 4무색이다.
무기이기도 하고 4무색이기도 하다 함은 무기의 4무색이다.
무기의 법도 아니고 4무색도 아니라 함은 선하지 못한 5중과 선한 색중과 무색에 속하지 않는 선한 4중 및 지혜의 연이 다한 것이다. - 014_0704_c_22L有無記法非四無色有,四無色非無記法有,亦無記法亦四無色,有非無記亦非四無色。有無記法非四無色者,無記色衆,及四無色不攝無記四衆、虛空及非智緣盡。有四無色中非無記法者,善四無色。亦無記法亦四無色者,無記四無色。亦非無記法亦非四無色者,不善五衆,善色衆,無色不攝善四衆及智緣盡。
-
혹은 누(漏)이면서 4무색이 아니거나, 혹은 4무색이면서 누가 아니거나, 혹은 누이기도 하고 4무색이거나, 혹은 누도 아니고 4무색도 아니다.
누이면서 4무색이 아니라 함은 한 누와 두 누의 일 부분이다.
4무색이면서 누가 아니라 함은 누에 속하지 않는 4무색이다.
누이기도 하고 4무색이기도 하다 함은 두 누의 일부분이다.
누도 아니요 4무색도 아니라 함은 색중 및 누와 무색에 속하지 않는 4중과 무위의 법이다. - 014_0705_a_08L或漏非四無色,或四無色非漏,或漏亦四無色,或非漏亦非四無色。漏非四無色者,一漏及二漏少分。四無色非漏者,漏不攝四無色。亦漏亦四無色者,二漏少分。非漏非四無色者,色衆及漏無色不攝四衆及無爲法。
-
혹은 유루이면서 4무색이 아니거나, 혹은 4무색이면서 유루가 아니거나, 혹은 유루이면서 4무색이거나, 혹은 유루도 아니고 4무색도 아니기도 하다.
유루이면서 4무색이 아니라 함은 유루의 색중과 무색에 속하지 않는 유루의 4중이다.
4무색이면서 유루가 아니라 함은 3무색계의 일부분이다.
유루이기도 하고 4무색이기도 하다 함은 1무색 및 3무색의 일부분이다.
유루도 아니고 4무색도 아니라 함은 무루의 색중과 무색에 속하지 않는 무루의 4중 및 3무위이다. - 014_0705_a_14L或有漏非四無色,或四無色非有漏,或有漏亦四無色,或非有漏非四無色。有漏非四無色者,有漏色衆,及無色不攝有漏四衆。四無色非有漏者,三無色少分。亦有漏亦四無色者,一無色及三無色少分。亦非有漏非四無色者,無漏色衆,無色不攝無漏四衆及三無爲。
-
014_0705_b_01L혹은 무루이면서 4무색이 아니거나, 혹은 4무색이면서 무루가 아니거나, 혹은 무루이면서 4무색이거나, 혹은 무루도 아니고 4무색도 아니기도 하다.
무루이면서 4무색이 아니라 함은 무루의 색중과 무색에 속하지 않은 무루의 4중과 3무위이다.
4무색이면서 무루가 아니라 함은 1무색과 3무색의 일부분이다.
무루이기도 하고 4무색이기도 하다는 것은 3무색의 일부분이다.
무루도 아니고 4무색도 아니라 함은 유루의 색중과 무색계에 속하지 않은 유루의 4중이다. - 014_0705_a_21L或無漏非四無色,或四無色非無漏,或無漏亦四無色,或非無漏亦非四無色。無漏非四無色者,無漏色衆,及無色不攝無漏四衆及三無爲。四無色非無漏者,一無色及三無色少分。亦無漏亦四無色者,三無色少分。非無漏非四無色者,有漏色衆,及無色不攝有漏四衆。
-
허공처는 혹은 견제(見諦)에서 끊고, 혹은 사유(思惟)로써 끓고, 혹은 끊지 않는다.
견제에서 끊는다 함은 믿음으로 행하고 법답게 행하는[信行法行] 사람이 견제의 지혜[見諦忍]를 써서 끊는 것이다. 무엇을 끊는가 하면, 곧 28사(使) 및 28사에 상응하는 허공처와 여기에서 일어나는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여러 행들이다.
사유에서 끊는다 함은 견도의 법을 배운 이가 사유(思惟)를 써서 끊는 것이다. 무엇을 끊는가 하면, 곧 사유로써 끊는 3사(使) 및 이에 상응하는 허공처와 여기에서 일어나는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과 무구(無垢) 유루인 허공처이다.
끊지 않는다 함은 무루의 허공처이다. - 014_0705_b_06L虛空處,或見諦斷,或思惟斷,或不斷。見諦斷者,信行、法行人,用見諦忍斷。何者是?二十八使,及二十八使相應虛空處,及此起心不相應諸行。思惟斷者,學見道用思惟斷。何者是?思惟所斷三使,及此相應虛空處,及此起心不相應諸行,及無垢有漏虛空處。不斷者,無漏虛空處。
- 식처와 무소유처 역시 이와 같다.
- 014_0705_b_13L識處、無所有處亦如是。
-
비유상비무상처는 혹은 견제에서 끊고 혹은 사유에서 끊는다.
견제에서 끊는다 함은 믿음으로 행하고 법답게 행하는 사람이 견제의 지혜를 써서 끊는 것이다. 무엇을 끊는가 하면, 곧 28사 및 이에 상응하는 비유상비무상처와 여기에서 일어나는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이다.
사유에서 끊는다 함은 견도를 배운 이가 사유를 써서 끊는 것이다. 무엇을 끊는가 하면, 곧 3사 및 이에 상응하는 비유상비무상처와 여기에서 일어나는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과 무구의 비유상비무상처이다. - 014_0705_b_14L非有想非無想處,或見諦斷、或思惟斷。見諦斷者,信行、法行人,用見諦忍斷。何者是?二十八使,及此相應非有想非無想處,及此起心不相應諸行。思惟斷者,學見道用思惟斷。何者是?思惟所斷三使,及此相應非有想非無想處,及此起心不相應諸行,及無垢非有想非無想處。
- 4무색에 속하는 것으로서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은 마음도 아니고 마음에 속하는 법도 아니고 마음과 서로 응하는 것도 아니다. 느낌[受衆]과 생각[想衆] 및 이와 상응하는 지어감[行衆]이니, 이 마음에 속하는 법은 또한 마음과 서로 응하는 마음ㆍ뜻ㆍ의식ㆍ독심(獨心)이다.
- 014_0705_b_22L四無色中攝心不相應諸行,是非心,非心數法,非心相應。受衆、想衆及此相應行衆,是心數法,亦心相應。心、意、識,獨心。
-
014_0705_c_01L【문】 4무색은 혹은 마음을 따르는 행이면서 느낌과 서로 응하지 않는 것도 있고, 혹은 느낌과 서로 응하면서도 마음을 따르지 않는 것도 있고, 혹은 마음을 따라 행하기도 하면서 느낌과 서로 응하기도 하고, 혹은 마음을 따르는 행이 아니면서 느낌에도 서로 응하지 않는 행도 있다.
마음을 따르는 행이면서도 느낌과 서로 응하지 않는다고 함은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 및 느낌이다.
느낌과 서로 응하면서도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고 함은 마음 그자체이다.
마음을 따르는 행이면서도 느낌과 서로 응한다 함은 생각[想衆] 및 여기에 서로 응하는 지어감[行衆]이다.
마음을 따르는 행이 아니면서도 느낌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다 함은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이다. - 014_0705_c_02L四無色,或有隨心行非受相應,或受相應非隨心行,或隨心行亦受相應,或非隨心行非受相應。隨心行非受相應者,隨心行心不相應諸行及受。受相應不隨心行者,心是。隨心行亦受相應者,想衆及此相應行衆。非隨心行非受相應者,除隨心行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
- 생각[想]과 표상작용[行]에 서로 응함도 이와 같이 설명해야 하리라.
- 014_0705_c_09L想相應、行相應,亦應如是說。
- 허공처는 혹은 신견(身見)의 인으로부터 다시 신견에게 원인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고, 혹은 신견의 원인으로부터 다시 신견에게 원인이 되어 주는 것도 있고, 혹은 신견을 인하지 않은 채 다시 신견에게 원인이 되어주지 않는 것도 있다.
- 014_0705_c_10L虛空處,或從身見因,不還與身見作因;或從身見因,亦還與身見作因;或不從身見因,亦不還與身見作因。
- 신견의 원인으로부터 다시 신견에게 원인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과거ㆍ현재의 괴로움을 보고 끊는 모든 번뇌[使]와 이에 상응하는 허공처를 제외하며, 또한 과거ㆍ현재의 괴로움의 원인을 보고 끊는 모든 치우친 번뇌[邊結] 및 이에 상응하는 허공처를 제외하며, 미래 세상에서의 신견과 상응하는 허공처를 제외하며, 신견과 생ㆍ노ㆍ주ㆍ멸을 제외한 나머지의 때가 있는[有垢] 허공처이다.
- 014_0705_c_13L從身見因、不還與身見作因者,除過去、現在見苦斷諸使及此相應虛空處;亦除過去、現在見集斷諸邊結及此相應虛空處;亦除未來世中身見及相應虛空處,亦除身見生老住滅,餘殘有垢虛空處。
- 신견의 원인으로 부터 다시 신견의 원인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함은 위에서 제거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 014_0705_c_19L從身見因、亦還與身見作因者,上所除者是。
- 신견의 원인을 인하지 않고 다시 신견의 원인이 되어주지도 않는다 함은 때가 없는 허공처이다.
- 014_0705_c_20L亦不從身見因、亦不還與身見作因者,無垢虛空處。
- 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도 역시 이와 같다.
- 014_0705_c_21L識處、無所有處、非有想非無想處亦如是。
- 4무색정은 모두가 인연이 있고 또한 인연이 되어 주기도 한다.
- 014_0705_c_22L四無色定一切有因緣,亦與因緣。
- 014_0706_a_01L허공처에는 혹은 차제연(次第緣)22)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고, 혹은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는 것도 있고, 혹은 차제연이 아니면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다.
- 014_0705_c_23L虛空處,或次第不與次第緣,或次第亦與次第緣,或非次第亦不與次第緣。
-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 세상에 생기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 및 아라한이 과거ㆍ현재에서 최후로 멸도에 들고자 할 때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이다.
- 014_0706_a_02L次第、不與次第緣者,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虛空處,及阿羅漢過去、現在最後滅時心心數虛空處。
-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준다 함은 과거ㆍ현재의 아라한이 마지막 멸도하려 할 때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를 제외한 나머지 과거ㆍ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이다.
- 014_0706_a_05L次第、亦與次第緣者,除過去、現在阿羅漢最後滅時心心數虛空處,餘殘過去、現在心心數法虛空處。
- 차제연이 아니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 세상에 생기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를 제외한 나머지 미래 세상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허공처 및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이다.
- 014_0706_a_08L非次第、亦不與次第緣者,除未來世中欲生心心數虛空處,餘殘未來世中心心數虛空處,及心不相應諸行。
- 식처와 무소유처 역시 이와 같다.
- 識處、無所有處亦如是。
- 비유상비무상처는 혹은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고, 혹은 차체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는 것도 있고, 혹은 차제연도 아니면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 것도 있다.
- 014_0706_a_11L非有想非無想處,或次第不與次第緣,或次第亦與次第緣,或非次第亦不與次第緣。
- 차제연이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 세상에 태어나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 및 아라한이 과거ㆍ현재에 있어서 최후에 멸도하려 할 때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 및 멸수상(滅受想)이 생겼거나 생기려 할 때이다.
- 014_0706_a_14L次第不與次第緣者,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非有想非無想處,及阿羅漢過去、現在最後滅時心心數法非有想非無想處,及滅受想若生若欲生。
- 차제연이면서 차제연이 되어 준다 함은 과거ㆍ현재의 아라한이 최후에 멸도하려 할 때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을 제외한 나머지 과거ㆍ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이다.
- 014_0706_a_18L次第亦與次第緣者,除過去、現在阿羅漢最後滅時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餘殘過去、現在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
- 차제연이 아니면서도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 세상에 생기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를 제외한 나머지 미래 세상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비유상비무상처와 마음의 차제연과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이다.
- 014_0706_a_21L非次第亦非與次第緣者,除未來世中欲生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餘殘未來世中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除心次第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
-
014_0706_b_01L그리고 4무색에 속하는 모든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과 연(緣)과 연연(緣緣)이다.
4무색에는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과 비연(非緣)과 연연을 포함한다. - 014_0706_b_02L四無色中攝諸心心數法,有緣、亦與緣緣;四無色攝心不相應諸行,非緣、與緣緣。
- 4무색은 모두가 증상(增上)이면서 또한 증상연이 되어 준다.
- 四無色皆是增上,亦與增上緣。
- 이렇게 갖가지로 4무색을 분별함은 아비담분(阿毘曇分) 가운데에서 설하는 바와 같으나 여기에서도 자세히 말해야 할 것이다.
- 014_0706_b_05L如是等種種分別四無色,如『阿毘曇』分中說,此中應廣說。
- 【문】 마하연에서의 4무색은 어떠한가?
- 014_0706_b_07L問曰:摩訶衍中四無色云何?
- 【답】 모든 법의 실상(實相)에 맞추어 지혜를 행하는 것이 마하연의 4무색이다.
- 014_0706_b_08L答曰:與諸法實相共智慧行,是摩訶衍中四無色。
- 【문】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실상인가?
- 014_0706_b_09L問曰:何等是諸法實相?
- 【답】 모든 법은 법으로서의 자성이 공한 것이다.
- 答曰:諸法諸法自性空。
- 【문】 색법(色法)은 화합ㆍ분별ㆍ인연 때문에 공하다. 그렇다면 이 무색 가운데 무엇이 공하다는 것인가?
- 014_0706_b_10L問曰:色法和合分別因緣故空,此無色中云何空?
- 【답】 색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거친 일도 능히 공하게 하거늘 하물며 볼 수 없고 대할 수 없고 고락을 느낄 수 없는데 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 014_0706_b_12L答曰:色是眼見、耳聞麤事能令空,何況不可見、無有對、不覺苦樂而不空?
- 또한 색법을 분별하여 미진(微塵)에까지 이르면 모두가 흩어져 빈 것으로 돌아간다. 이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은 해와 달과 시절과 나아가서는 잠깐 사이에 이르기까지 한 생각도 얻을 수 없다.
- 014_0706_b_14L復次,色法分別乃至微塵皆散滅歸空;是心心數法,在日月、時節、須臾頃,乃至一念中不可得。
- 이것이 4무색정의 의의이다.
- 014_0706_b_16L是名四無色定義。
- 이와 같이 갖가지로 4무색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
014_0706_b_17L如是等種種,略說四無色。
大智度論卷第二十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1)범어로는 śūnyatāsamādhi.
- 2)범어로는 ānimittasamādhi.
- 3)범어로는 apraṇihitasamādhi.
- 4)범어로는 upekkhā. 이른바 고락(苦樂)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 5)범어로는 nirupadhiśeṣanīrvaṇa. 앞에서는 무여멸열반(無餘滅涅槃)으로 표현되고 있다.
- 6)범어로는 Akaniṣṭha. ‘정점에 있는 경지’라는 뜻이다. 곧 4선의 마지막에 도달하는 경지를 가리킨다.
- 7)범어로는 anārambaṇa.
- 8)5근의 대상인 색ㆍ성ㆍ향ㆍ미ㆍ촉을 말한다.
- 9)3무량심은 사유의 대상일 뿐, 대상의 처지를 바꿀 수 있는 실행체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 10)범어 asaṃkhyeya의 음역.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 11)범어로는 Aśoka.
- 12)범어로는 Vītaśoka.
- 13)범어로는 caṇḍala. 불가촉천민을 가리킨다.
- 14)인도(印度)를 말한다.
- 15)대승경전 mahāyānasūtra.
- 16)범어로는 śubhakṛtsnāḥ-devaḥ. 색계의 하늘로, 제3선의 경지에 배대되는 하늘이다.
- 17)범어로는 ākiñcanyāyatanaṃ.
- 18)범어로는 samala. 혹은 saha-malena. 티끌을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한다.
- 19)범어로는 utpatti-lābhika.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것을 말한다.
- 20)범어로는 bhāvana-lābhika. 수행에 의해 얻어진 것을 말한다.
- 21)범어로는 avijñapti-rūpa.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 물질적 존재를 말한다. 무작색(無作色)ㆍ무표색(無表色)이라고도 한다.
- 22)범어로는 samantara-pratyaya.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