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智度論釋曇無竭品第八十九

ABC_IT_K0549_T_100
014_1489_a_01L대지도론 제100권

89. 담무갈품을 풀이함 ②
014_1489_a_01L大智度論釋曇無竭品第八十九卷第一百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014_1489_a_02L龍樹菩薩造
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經】“그때에 살타파륜 보살마하살과 장자의 딸과 그리고 5백의 시녀들은 담무갈 보살마하살에게로 가서 하늘의 만다라 꽃을 뿌리고는 머리 조아려 예배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으며, 담무갈보살은 그들이 다 앉은 것을 보고 나서 살타파륜보살에게 말했느니라.
‘선남자여, 자세히 듣고 받아 지녀라. 이제 그대에게 반야바라밀의 모양[相]을 설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법은 평등하기[等]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평등한 줄 알아야 하고, 모든 법은 여의기[離]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여의는 줄 알아야 하며,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기[不動]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움직이지 않는 줄 알아야 하고, 모든 법은 생각이 없기[無念]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생각이 없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014_1489_a_04L【經】
爾時薩陁波崙菩薩摩訶薩及長者女幷五百侍女到曇無竭菩薩摩訶薩所散天曼陁羅華頭面禮畢退坐一面曇無竭菩薩見其坐已告薩陁波崙菩薩言善男子諦聽諦受今當爲汝說般若波羅蜜相善男子諸法等故當知般若波羅蜜亦等諸法離當知般若波羅蜜亦離諸法不動當知般若波羅蜜亦不動諸法無念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念
014_1489_b_01L모든 법은 두려움이 없기[無畏]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두려움이 없는 줄 알아야 하고, 모든 법은 한 맛[一味]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한 맛인 줄 알아야 하며, 모든 법은 끝이 없기[無邊]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고, 모든 법은 생겨남이 없기[無生]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생겨남이 없는 줄 알아야 하며, 모든 법은 소멸함이 없기[無滅]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소멸함이 없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허공은 끝이 없기[無邊]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고, 큰 바닷물은 끝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며, 수미산은 장엄(莊嚴)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장엄한 줄 알아야 하며, 허공은 분별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분별이 없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014_1489_a_14L諸法無畏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畏法一味故當知般若波羅蜜亦一味諸法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諸法無生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生諸法無滅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滅虛空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大海水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須彌山莊嚴故當知般若波羅蜜亦莊嚴虛空無分別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分別
물질은 끝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고,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이 끝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며, 땅의 요소[地種]가 끝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고, 물의 요소[水種]ㆍ불의 요소[火種]ㆍ바람의 요소[風種]가 끝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며, 허공의 요소[空種]가 끝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끝이 없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014_1489_b_02L色無邊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識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地種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水種火種風種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空種無邊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邊
금강과 같이[如金剛] 평등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평등한 줄 알아야 하고, 모든 법은 분별이 없기[無分別]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분별이 없는 줄 알아야 하며, 모든 법의 성품은 얻을 수 없기[不可得]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얻을 수 없는 줄 알아야 하고, 모든 법은 있는 바 없이 평등하기[無所有等]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있는 바 없이 평등한 줄 알아야 하며, 모든 법은 조작이 없기[無作]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조작이 없는 줄 알아야 하고, 모든 법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불가사의한 줄 알아야 하느니라.’
014_1489_b_08L如金鋼等故當知般若波羅蜜亦等諸法無分別故知般若波羅蜜亦無分別諸法性不可得故當知般若波羅蜜性亦不可諸法無所有等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所有等諸法無作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作諸法不可思議故當知般若波羅蜜亦不可思議
014_1489_c_01L이때에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은 곧 그 자리에서 모든 삼매를 얻었나니, 이른바 제법등(諸法等)삼매와 제법리(諸法離)삼매와 제법무외(諸法無畏)삼매와 제법일미(諸法一味)삼매와 제법무변(諸法無邊)삼매와 제법무생(諸法無生)삼매와 제법무멸(諸法無滅)삼매와 허공무변(虛空無邊)삼매와 대해수무변(大海水無邊)삼매와 수미산장엄(須彌山莊嚴)삼매와 허공무분별(虛空無分別)삼매와 색무변(色無邊)삼매와 수상행식무변(受想行識無邊)삼매와 지종무변(地種無邊)삼매와 수종화종풍종공종무변(水種火種風種空種無邊)삼매와 여금강등(如金剛等)삼매와 제법무분별(諸法無分別)삼매와 제법불가사의(諸法不可思議)삼매가 그것이니, 이와 같은 등으로 6백만의 모든 삼매문(三昧門)을 얻었던 것이니라.”
014_1489_b_15L是時薩陁波崙菩薩摩訶薩卽於座上得諸三昧所謂諸法等三昧諸法離三諸法無畏三昧諸法一味三昧法無邊三昧諸法無生三昧諸法無滅三昧虛空無邊三昧大海水無邊三昧須彌山莊嚴三昧虛空無分別三昧色無邊三昧識無邊三地種無邊三昧水種火種風種種無邊三昧如金鋼等三昧諸法無分別三昧諸法不可思議三昧——如是得六百萬諸三昧門
그때에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3천대천세계 가운데서 모든 비구승에게 둘러 싸여 이런 모양[相]과 이런 모습[像貌] 그리고 이런 이름[名字]으로써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있는 것처럼 살타파륜도 이 6백만의 삼매문을 얻고 동쪽ㆍ남쪽ㆍ서쪽ㆍ북쪽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의 항하의 모래수처럼 많은 3천대천세계에 계신 모든 부처님이 모든 비구들에게 공경히 둘러싸여서 이런 모양ㆍ이런 모습ㆍ이런 이름으로써 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설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된 것도 이와 같았느니라.
살타파륜보살은 그로부터 다문(多聞)과 지혜(智慧)가 불가사의한 것이 마치 큰 바닷물과 같았고, 항상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았으며 부처님이 계신 국토에 태어났으니, 꿈속에서까지도 일찍이 부처님을 뵙지 않은 때가 없었고 온갖 숱한 재난은 남김없이 이미 끊어졌으며, 부처님이 계신 국토에 원하는 대로 가서 태어났느니라.
014_1489_c_03L爾時佛告須菩提如我今於三千大千世界中與諸比丘僧圍繞以是相以是像貌是名字說般若波羅蜜薩陁波崙得是六百萬三昧門見東方南西北方四維上下如恒河沙等三千大千世界中諸佛與諸比丘恭敬圍繞以如是相以是像貌以是名字說是摩訶般若波羅蜜亦如是薩陁波崙菩薩從是已後多聞智慧不可思議如大海水常不離諸佛生於有佛土中乃至夢中未曾不見佛時一切衆難皆悉已在所佛土隨願往生
수보리야, 이 반야바라밀의 인연은 보살마하살의 온갖 공덕을 능히 성취하게 하고 일체종지를 얻게 함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일 6바라밀을 배우고자 하고 모든 부처님의 지혜에 깊이 들고자 하며 일체종지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반야바라밀을 받아지니어 읽고 외우고 바르게 기억하며 사람들을 위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고 또한 경권(經卷)을 서사하여 향과 꽃 내지는 기악으로써 공양하고 존중하고 찬탄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반야바라밀은 바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시방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존중하시기 때문이니라.”
014_1489_c_15L須菩提當知是般若波羅蜜因緣能成就菩薩摩訶薩一切功德得一切種智以是故須菩提諸菩薩摩訶薩若欲學六波羅蜜欲深入諸佛智慧欲得一切種智應受持是般若波羅蜜正憶念爲人說亦書寫經卷供養尊重讚歎香華乃至妓樂何以故般若波羅蜜是過去未來現在十方諸佛母十方諸佛所尊重故
014_1490_a_01L【論】해석한다. 담무갈은 이미 나와서 법좌(法座)가 있는 데로 나아가 자기보다 뛰어난 이가 없는가를 두루 살펴본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이때에 살타파륜보살은 그가 좌정한 것을 알고는 담무갈에게로 나아가 머리를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예를 올리는 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말로 하는 예[口禮]요, 둘째는 무릎을 꿇고 머리는 땅에 대지 않는 예이다. 셋째는 머리를 땅에 대는 예이니, 이것은 최상의 예배이다. 사람의 한 몸에서는 머리가 맨 위가 되고 발이 맨 아래가 되는 것이니, 머리로써 발에 예배하는 것은 공경함이 지극하다는 것이다.
014_1490_a_01L【論】
釋曰曇無竭旣出至法座所遍觀無勝己者於是而坐爾時薩陁波崙菩薩知坐已定到曇無竭所頭面禮足一面坐禮有三種一者口禮二者頭不至地三者頭至地是爲上禮人之一身頭爲最上足爲最下以頭禮足恭敬之至
담무갈은 그가 앉은 것을 본 후 그가 멀리서 와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갖가지로 애쓰고 있는 것은 바로 법을 듣고자 함임을 알았다.
처음 서로가 만났을 적에는 해가 거의 지려는 무렵이었으므로 잠시 동안 법을 들었을 뿐이며, 담무갈은 해가 지자 일어나서 궁중으로 들어갔다.
이제 법을 위하여 7년 동안 간절히 우러르면서 다른 마음을 내지도 않았으며, 그가 나오려 할 즈음에는 몸에서 피를 내어 땅에 뿌렸다. 이에 담무갈은 그가 법을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그의 마음은 물러나지 않고 결정되어 의심도 없어서 교화를 받아 낼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에게 말하기를 “선남자여, 일심으로 자세히 들어라”고 하였다.
014_1490_a_08L曇無竭見其坐已從遠來不惜身命種種勤苦爲欲聞初相見時日垂欲沒少時聞法無竭以日沒故起入宮中今爲法故七歲渴仰不生異心垂欲出時以血灑地知其爲法不惜身命其心不退決定無疑堪受教化是故告言善男一心諦聽
위에서는 모든 부처님께서 오가는 데에 대한 의심을 이미 끊었었고, 여기서는 다만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만을 듣고 싶어 할 뿐이니,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반야바라밀의 모양을 설한 것이다.
반야바라밀의 모양이란, 앞에서 모든 법의 평등한 이치[平等義]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반야바라밀의 힘 때문에 모든 법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모든 법의 성품은, 그 성품이 저절로 평등한 것은 아니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담무갈은 말하기를 “모든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평등하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왜냐하면 원인[因]과 결과[果]가 닮았기 때문이니라. 처음에 모든 법의 평등을 관찰하는 것은 바로 원인이요, 결정된 마음으로 반야바라밀을 얻으면 바로 그것은 결과이다.
014_1490_a_15L上疑諸佛來去已斷但欲聞甚深般若波羅蜜是故爲說般若波羅蜜相般若波羅蜜相先諸法平等義中說或有人言般若波羅蜜力故觀諸法皆平等非諸法性性自平等是故曇無竭言諸法平等故般若波羅蜜平等所以者何因果相似故初觀諸法平等是因決定心得般若波羅蜜是爲果
014_1490_b_01L【문】모든 법은 평등하다고 관찰하는 것이 곧 반야요 반야가 곧 평등이거늘, 무엇 때문에 원인과 결과라 분별하는가?
014_1490_a_23L問曰觀諸法平等卽是般若般若卽是平等何以分別爲因
【답】반야와 모든 법은 비록 하나의 모양[一相]이어서 둘도 없고 구별이 없다고 하더라도, 수행하는 이가 처음에 관찰할 때는 그것이 원인이요, 관찰하여 마치면 결과라 한다. 마치 수다원의 도에서 과위를 얻는 것[得]과 도에 향하는 것[向]과도 같은 것이다.
또 유루(有漏)의 5중(衆)에서와 같아서 원인일 때를 쌓임[集]이라 하고 결과일 때를 괴로움[苦]이라 하나니, 물질 등의 온갖 법이 평등하게 되면 곧 그것이 반야바라밀의 평등이다.
014_1490_b_02L答曰般若及諸法雖一無二無別行者初觀時是因觀竟名爲果如須陁洹道得又如有漏五衆因時名集果時名苦色等一切法平等卽是般若波羅蜜平等
【문】마땅히 반야바라밀의 모양을 설해야 되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평등을 설하고 있는가? 평등하지 않은 것[不平等]으로 인하여 평등(平等)이 있고 평등한 것으로 인하여 평등하지 않은 것이 있어서 반야 가운데서도 역시 하나의 모양도 아니요 다른 모양도 아니다. 그런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하나의 모양을 취하려 하는가?
014_1490_b_06L問曰應說般若波羅蜜相今何以說平等因不平故有平等因平故有不平般若中亦不一相亦不異相汝何以故欲取一相
【답】반야바라밀은 매우 깊고 미묘하여서 방편으로써 해설하지 않으면 이해하는 이가 없다. 그 때문에 만일 평등하지 않다고 분별한다면, 곧 모든 번뇌가 생기고 3독(毒)이 더욱 자라게 되나니, 이른바 원수를 미워하고 친한 이를 사랑하며 착한 것을 사랑하고 착하지 못한 것을 미워하는 등이 그것이다.
보살은 이 두 가지가 평등한 가운데에 머물러서 온갖 법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관찰한다. 중생이 평등한 가운데에 머무르면 원수거나 친한 이거나 미워하는 이거나 사랑하는 이거나 간에 모두가 다 평등한 것이니, 복덕의 문이 열리고 모든 나쁜 세계[惡趣]가 닫힌다. 법이 평등한 가운데에 머무르면 온갖 법 가운데서 생각과 분별과 집착하는 마음과 취하는 모양 등이 모두 제거되고 다만 모든 법이 공한 것만을 보게 되나니, 공이 곧 평등인 것이다.
014_1490_b_10L答曰般若波羅蜜甚深微妙不以方便說則無解者是故若分別不等則生諸煩惱三毒增長謂憎怨愛親愛善憎不善菩薩住是二等中觀一切法皆平等住衆生等怨親憎愛皆悉平等開福德門諸惡趣住法等中於一切法中憶想分別著心取相皆除滅但見諸法空空卽是平等
어떤 사람은 이 모든 법이 평등한 공을 얻으면 곧장 보살의 도에 나아가 공에 대하여 희론을 펴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평등을 얻었다 하더라도 희론을 일으키니, ‘만일 도무지 공하다고만 관찰한다면 이와 같은 과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평등한 데에서도 곧 평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진실한 평등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의 평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것은 희론이 아니다. 평등하다거나 평등하지 않다거나 하는 두 가지 치우침을 여읜 것이 곧 반야바라밀의 모양이다.
014_1490_b_18L有人得是諸法平等空直趣菩薩道於空不戲論有人雖得平等而生戲論若觀都空有如是失是人於平等卽是不等是故此中爲眞平等故說般若波羅蜜等非是戲離平等不平等二邊是般若波羅蜜相
014_1490_c_01L【문】평등하다 하면, 반야바라밀의 모양에서 이미 두루 갖추었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여읨[離] 등이 바로 반야바라밀의 모양이다”라고 말하는가?
014_1490_c_01L問曰平等者於般若波羅蜜相已具足何以故更說離等是般若波羅蜜相
【답】경에서는 다만 “모든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반야도 평등하다”고 말했을 뿐인데, 수행하는 이가 이 평등한 모양을 취하여 집착을 낸다. 이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평등한 모양이어서 제 성품을 여읜다”고 말하는 것이니, 물질 등의 모든 법은 제 모양을 여의기 때문이다. 여읨[離]의 뜻에 대해서는 「상무상품(相無相品)」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1490_c_03L答曰經中但說諸法等故般若等行者取是平等相而生著是故般若波羅蜜平等相自性離色等諸法自相離故離義如「相無相品」中
이 모든 법의 평등을 얻고 또 평등하게 여읜 데서 공한 가운데에 편히 머무른다. 공한 가운데서는 움직이지 않나니, 희론으로도 움직일 수 없고 모든 번뇌의 산(山)으로도 움직일 수 없으며 덧없는 때[時]로도 움직일 수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온갖 법에서 실상(實相)을 얻었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 두 가지의 공에 머무르면서 움직이지 않는[不動] 반야바라밀을 얻나니, 이것이 곧 궁극의 경지[究竟]이다. 만일 생각이 있으면, 모양이 있고 집착할 곳이 있게 되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모든 법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도 또한 생각이 없는 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움직임이 없는 모양[無動相]이 곧 반야바라밀이니, 반야바라밀은 모든 모양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014_1490_c_07L得此諸法平等又於平等離安住空中空中則不動——戲論不能動諸煩惱山亦不能動無常時亦不能動所以者何於一切法得實相故菩薩住是二空得不動般若波羅蜜是則究竟若有念卽是有相著處是故說諸法無念故當知般若波羅蜜亦無念動相是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諸相滅故
만일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반야라면, 미혹과 번민이 향해 나아갈 데가 없다. 희론[戲論]를 펴는 이는 대중 가운데에 있으면서 두려운 생각을 내기도 하며, 혹은 열반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역시 두려운 생각을 내기도 하나니, 이 때문에 “두려워함이 없는 모양[無畏相]이 바로 반야바라밀이다”라고 한 것이다.
014_1490_c_15L若不念是般若或迷悶無所趣向有戲論者在大衆中則生怖畏或於涅槃中不了故亦生怖畏是故無怖畏相是般若波羅蜜
014_1491_a_01L이러한 사람은 비록 결정적으로 모든 법의 모양을 취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 성품[法性]에 깊이 들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서 모든 모양에 대해 힐난하는 이가 있어도 마음에 두려워함이 없나니, 모든 법에서 모양이 없는 것[無相]을 얻었기 때문이다.
또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어갈 때에는 온갖 법은 얻을 수 없음을 아나니, 이 가운데서도 또한 두려워함이 없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보살은 온갖 법을 잘 통달했기 때문이다.
또 온갖 법은 한 모양이어서 이른바 성품이 공하다. 이 때문에 반야바라밀은 온갖 법을 따르며, 따라서 역시 성품이 공한 것과 한 맛[一味]이다.
014_1490_c_18L是人雖不決定取諸法相而深入法性故大衆中有難論諸相者心無所畏諸法得無相故又入無生法忍時一切法不可得於是中亦無所畏所以者何是菩薩善通達一切法故復次一切法一相所謂性空是故般若波羅蜜隨一切法故亦性空一味
【문】위에서 이미 모든 법은 평등하다고 설명했으면서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한 맛’을 말하는가?
014_1491_a_02L問曰上已說諸法平等今何以更說一味
【답】공은 때로는 맛[味]이 있기도 하고 때로는 맛이 없기도 하다. 만일 수행하는 이가 모든 소견 때문에 모양을 취하면서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것을 분별하고 헤아리다가 그때에 이 모든 법의 평등한 공을 얻으면, 마음이 크게 기뻐지기 때문에 이것을 맛이라 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덥고 몹시 목이 말랐을 적에 맑고 시원한 물을 얻으면, 견줄 데 없는 참 맛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때에 따라 작용하기 때문에 맛이라 하지만, 진실로 필경공하다면 맛도 맛 아닌 것도 없다.
014_1491_a_03L答曰或時有味或時無味若行者爲諸見取相分別好醜籌量爾時得是諸法平等空心大歡喜故名爲味如人爲熱渴所逼得淸冷水以爲眞味無比隨時用故名味眞實畢竟空則無味不味
또 ‘한 맛[一味]’이라 함은,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반연할 바[所緣]와 관할 바[所觀]가 모두 한 맛이 된다. 공에 대한 지혜의 힘이 크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법도 모두 따라서 공하게 되나니, 비유하건대 마치 석밀(石蜜)을 불에 끓이려 할 때에 비록 다른 물질이 화합한다 하더라도 모두가 석밀로 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큰 바다에는 온갖 하천 물이 그 속에 흘러들어가 모두가 한 맛이 되는 것과 같나니, 이른바 필경 공한 맛이다. 물질 등의 모든 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범부의 마음속은 저마다 다른 데도 반야바라밀의 가운데로 들어가면 모두가 한 맛이 된다.
치우침[邊]을 모양[相]이라 하나니, 있다[有]거나 없다[無]거나 하는 것이다. 물질 등의 모든 법을 실관(實觀)한다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양이 없나니, 모양이 없는 것은 곧 끝이 없는 것[無邊]이다. 이렇게 관찰하고 나면 곧 그것이 끝이 없는 반야바라밀이다.
014_1491_a_09L復次一味者菩薩行般若波羅蜜時所緣所觀皆爲一味智力大故餘法皆隨而爲空譬如煮石蜜欲熟時雖異物和合皆爲石蜜又如大海百川歸之皆爲一味所謂畢竟空味色等諸法亦如是凡夫心中各各別異入般若波羅蜜中皆爲一味邊名爲相若有若無實觀色等諸法非有非無故無相無相卽是無觀是已卽是無邊般若波羅蜜
014_1491_b_01L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치우침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항상하다는 치우침[常邊]과 아주 없다는 치우침[斷邊]이요, 세간에 대한 치우침[世間邊]과 열반에 대한 치우침[涅槃邊]이며, 나쁜 것에 대한 치우침[惡邊]과 착한 것에 대한 치우침[善邊] 등이다”라고 한다. 이 가운데서는 이와 같은 등의 모든 치우친 소견이 없기 때문에 치우침이 없는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치우침을 전제(前際)와 후제(後際)라 한다”고 한다. 세간은 비롯함이 없기 때문에 전제가 없고,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기 때문에 전제가 있으며, 또 다시 나오지도 않기 때문에 후제도 없다. 이와 같은 모든 치우침을 분별하면서 세간에 집착하기 때문에 열반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 때문에 반야바라밀 가운데는 이런 온갖 치우침이 없으며 다만 모든 법의 실상에는 들어가는 것도 없고 나오는 것도 없다는 것만을 들을 뿐이다.
014_1491_a_18L有人言邊有二種常邊斷邊世間涅槃邊惡邊善邊等此中無如是等諸邊故名爲無邊般若波羅蜜有人言邊名前際後際世閒無始故無前際入無餘涅槃故有前際復更出故無後際如是等分別諸邊著世閒故畏涅槃是故般若波羅蜜中無是一切邊但聞諸法實相無入無出
【문】모든 법의 평등과 모든 법의 여읨[離]에는 모두가 치우침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별도로 설명하는가?
014_1491_b_04L問曰諸法平等諸法離皆是無邊何以復別說
【답】어떤 사람은 모든 법의 평등을 알고 모든 법의 여읨도 알고 있으므로 설명해 줄 필요가 없지만, 어떤 사람은 모양을 취하여 이 하나의 맛[一味]에 탐착하기 때문에 치우침이 없는 것을 설명하게 된다.
담무갈은 다만 살타파륜만을 위하여 설하는 것이 아니며 살타파륜도 역시 자신만을 위하여 물은 것이 아니다. 다만 중생들은 갖가지 마음과 갖가지 행동이 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의 모양 가운데서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다.
‘나는 것이 없고[無生] 없어지는 것도 없다[無滅]’고 함은 앞에서 갖가지 인연으로 생멸을 깨뜨리는[破生滅] 가운데서 설명한 것과 같다.
‘허공이 끝이 없다’고 함은 마하연(摩訶衍)의 허공의 비유[虛空譬喩] 가운데서 설면한 것과 같다.
‘큰 바닷물이 끝이 없다’는 것과 ‘수미산의 장엄’에 대해서는 앞에서 아직 설명하지 않았기에 여기에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014_1491_b_05L答曰有人知諸法平等知諸法離則不須說若有人取相是一味故說無邊曇無竭非但爲薩陁波崙故說薩陁波崙亦不但自爲故問但爲衆生有種種心種種行故於般若波羅蜜相中略說無生無滅如先種種因緣破生滅中說虛空無如摩訶衍虛空譬喩中說大海水無邊須彌莊嚴先未說故今當略說
【문】허공은 무위(無爲)이어서 항상 있는 법[常法]이기 때문에 그 끝을 얻는 이가 없으므로 ‘끝이 없다[無邊]’고 할 수 있지만, 큰 바닷물은 4천(天) 가운데에 있고 수미산을 빙 둘러싸고 있어서 유순(由旬)의 수량이 있으므로 사람으로서 건널 수 있는 이도 있거늘, 무엇 때문에 끝이 없다고 말하는가?
014_1491_b_13L問曰虛空無爲常法故無得其邊者可言無邊大海水在四天中繞須彌山有由旬數量有人能渡何以言無邊
014_1491_c_01L【답】‘끝이 없다’는 데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진실로 끝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사람으로서는 이를 수 없기 때문에 끝이 없다는 것이다.
바다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건널 수 있는 것이요, 둘째는 수미산을 둘러싼 구보산(九寶山) 속에 있는 것이다. 이것의 너비가 8만 2천 유순이라 세간 사람으로서는 그 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끝이 없다’고 말한다. 마치 작은 바다는 배의 힘으로도 건널 수 있으나, 큰 바닷물은 배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고 오직 신통이 있는 이만이 건널 수 있는 것과 같다. 마치 외도(外道)의 범부는 선정의 배[船]를 내어 타고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의 바다는 건널 수 있지만, 무색계(無色界)의 큰 바다는 깊고 넓어서 건널 수 없는 것과 같나니, 나라는 마음[我心]을 깨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현은 지혜와 선정이라는 날개[翅]의 힘으로 모든 법의 삿된 모양을 깨뜨리고 실상을 얻게 되기 때문에 건널 수 있나니, 이 때문에 큰 바다로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다.
014_1491_b_16L答曰無邊有二種一者實無邊二者人不能到故無邊海亦有二種一者可渡二者繞須彌山在九寶山裏八萬二千由旬世閒人不能得邊言無邊如小海舩力可渡大海水力不可渡唯有神通者能渡如外道凡夫能生禪定舩度欲界色界海色界如大海深廣則不能渡以不能破我心故諸賢聖人智慧禪定翅力破諸法邪相得實相故能度是故說大海譬喩
【문】수미산은 한 가지 빛깔이거늘 무엇 때문에 “장엄한다”고 말하는가?
014_1491_c_04L問曰須彌山一色何以言莊嚴
【답】외서(外書)에서 “수미산은 한 가지 빛깔이어서 순수하게 그것은 황금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육족아비담(六足阿毘曇)에서는 “수미산의 네 둘레는 각각 하나의 보배로 되었고 금ㆍ은ㆍ파리ㆍ유리로 장엄되어 있으며, 모든 새들은 그 가는 방향에 따라 각각 그 빛깔이 같아진다. 난타(難陀)와 바난타(婆難陀) 용왕의 형제가 몸으로 일곱 겹을 둘러싸고 있고 산의 꼭대기에는 33천(天)의 궁전이 있으며, 그 성(城)은 일곱 겹으로 되어 있어서 이름을 희견(喜見)이라 한다. 이것에는 9백 99개의 문이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문마다 곁에는 열여섯 명의 푸른 옷을 입고 있는 힘이 센 귀신들이 있어서 성을 수호한다.
014_1491_c_05L答曰外書說須彌山一色純是黃金六足阿毘曇中說須彌山四邊各以一寶成頗梨琉璃莊嚴諸鳥隨所至方各同其色難陁婆難陁龍王兄弟以身圍繞七帀山頂有三十三天宮其城七重名爲憙見百九十九門一一門邊皆有十六靑衣大力鬼神守護
그 안의 높은 곳에는 전각이 있는데 이름을 최승(最勝)이라 하고, 그 네 둘레에 네 개의 큰 동산이 있는데 4천왕(天王)이 살고 있다. 그 네 둘레에는 산이 있는데 이름은 유건타(游乾陀)라 하고, 각각의 높이는 4만 2천 유순이며 4천왕이 그 위를 다스리고 있다. 네 개의 바닷물 속에는 모든 아수라의 궁전[阿修羅宮]과 모든 용왕(龍王)들의 궁전이 있고, 유건타 등의 아홉의 보배산에는 해와 달과 5성(星)ㆍ28숙(宿)이며 그 밖의 모든 다른 별들이 주위를 에워싸 장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갖가지로 꾸며져서 장엄을 이루고 있으므로 그것을 보는 이는 싫증냄이 없다”고 한다.
014_1491_c_12L城中高處作殿曰最勝四邊有四大園四天王在四有山名遊乾陁各高四萬二千由四天王治其上四大海水諸阿修羅宮及諸龍王宮殿遊乾陁等九寶日月五星二十八宿及諸餘星圍繞莊嚴如是等種種雜飾以爲莊嚴視之無厭
014_1492_a_01L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6바라밀의 과보 때문에 전륜왕(轉輪王)과 범천왕(梵天王)과 제석천왕(帝釋天王)과 정거천왕(淨居天王)과 대자재천(大自在天)들이 된다. 이와 같은 등의 과보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아직 완전하게 갖추지 못했을 때에 이런 과보의 장엄(莊嚴)을 받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을 완전하게 갖추었을 적에는 곧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아비발치(阿毗跋致)의 보살과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도과(道果)의 장엄이 있게 된다.
014_1491_c_19L般若波羅蜜亦如是六波羅蜜果報故作轉輪王釋天王居天王大自在天——如是等果報行般若波羅蜜未具足時受此果報莊嚴般若波羅蜜具足時則有須陁洹果斯陁含果阿那含果阿羅漢果辟支佛道阿毘跋致菩薩諸佛道果莊嚴
마치 수미산의 위아래가 모두 장엄하게 되어 있는 것처럼, 반야바라밀의 장엄도 또한 그러하나니, 아직 완전히 갖추지 못했을 적에는 모든 천왕(天王) 등의 장엄이 있고 완전히 갖춘 뒤에는 모든 도과로 장엄하게 된다.
마치 수미산은 겁초(劫初)에 세워질 때에 네 둘레에서 큰 바람이 불어서 땅에 모인 정미(精味)를 한데 쌓아 수미산을 만들었고, 다시 바람이 불어서 그 산을 견고 하게 하고 보배로 되게 한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온갖 착한 법들 가운데서 제일 견실하고 단단한 것만이 화합한 것을 반야라 하는 것이다.
014_1492_a_02L如須彌山下皆有莊嚴般若波羅蜜莊嚴亦爾未具足時諸天王等莊具足已諸道果莊嚴如須彌山者劫初立時四邊大風吹聚地之精味積爲須彌山更有風吹令堅而成寶若波羅蜜亦如是一切善法中第一堅實牢固和合以爲般若
마치 수미산은 네 둘레에서 부는 큰 바람이나 큰 바닷물의 파도로도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삿된 소견을 지닌 외도(外道)의 희론으로나 모든 악마의 백성들로서는 움직일 수가 없다.
마치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네 개의 동산에 하늘들이 다다르면 갖가지 즐거움을 받듯이, 반야도 또한 이와 같아서 수행하는 이가 반야의 꼭대기에 오르면 4선(禪) 등 모든 선정의 동산에 이르러 갖가지 즐거움을 받게 된다.
014_1492_a_09L如須彌山四邊大風吹大海水波所不能動若波羅蜜亦如是邪見外道戲論及諸魔民所不能動如須彌山頂四園諸天到者受種種樂般若亦如是者能登般若頂到四禪等諸定園中受種種樂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수미산에 여러 가지 새들이 이르면 모두가 동일한 빛깔이 되듯이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모든 법이 그 속에 들어가면 모두가 동일한 모양이 되나니, 이른바 모양 없는[無相] 것이다”라고 한다.
‘마치 허공은 분별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함은, 허공에서는 ‘이것은 안이다, 밖이다. 이것은 멀다, 가깝다. 이것은 길다, 짧다. 이것은 깨끗하다, 깨끗하지 않다’라고 분별함이 없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법이 반야에 들어가면, 역시 안과 밖이라거나 착하고 착하지 않다는 등의 분별이 없다.
014_1492_a_15L復次有人言須彌山衆鳥到者皆同一色般若波羅蜜亦如是諸法入中皆同一相所謂無相如虛空無分別者虛空無分別是內是外是遠是近是長是短是淨是不淨等般若波羅蜜亦如是諸法入般若中亦無內外善不善等分別
014_1492_b_01L‘5중(衆)이 끝이 없다’고 함은, 마치 5중은 언제나 세간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반야바라밀도 또한 이와 같아서 5중을 멀리 여의지도 않나니, 5중의 실상이 곧 반야바라밀이다.
또 마치 형색이 있는 법[色法] 등은 낱낱이 쪼개고 깨뜨려서 작은 티끌이 되게 하면 방소가 없게 되고 방소가 없기 때문에 끝이 없으며, 무색법이어서 형태가 없기 때문에 이것이라거나 저것이라는 것도 없으며, 이것저것이라는 것도 없기 때문에 끝이 없다는 것이다. 반야바라밀도 이와 같아서 온갖 법에 대하여 형색 있는 것을 분별해서 작은 티끌까지 이르고 형색 없는 법을 분별하여 한 생각 동안까지 이른다 해도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이 있는 것을 결정코 보지 못하나니, 이 때문에 “물질이 끝이 없기 때문에 반야도 끝이 없다”고 하니라.
014_1492_a_21L如五衆無邊者五衆常遍滿世間般若波羅蜜亦如是不遠離於五衆五衆實相卽是般若波羅蜜復次如色等法分析破裂乃至微塵則無方無方故無邊無色法無形故無此彼無此彼故無般若波羅蜜亦如是於一切法別色乃至微塵分別無色法乃至一念中不見決定有常是故說色無邊故般若無邊
나아가 허공에 이르기까지의 여섯 가지도 또한 이와 같다. ‘금강과 같이[如金剛] 평등하다’고 함은, 마치 천왕(天王)이 가지고 있는 금강은 미워하는 이도 없고 사랑하는 이도 없어서 사용하는 곳마다 자르고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듯이 모든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 앞에 있는 마음[前心]이라는 이 마음 속 삼매는 온갖 결사(結使)의 번뇌와 뒤바뀜과 그리고 습기(習氣)를 끊어 모두 소멸시키기 때문에 금강과 같다고 한다.
여금강(如金剛)삼매와 상응하는 지혜로는 온갖 법이 모두가 평등하다고 관찰하나니, 반야바라밀이 모든 법을 평등하다고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다. 왜냐 하면, 반야로 먼저 모든 법이 평등하다고 관찰한 연후에 이 삼매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014_1492_b_07L乃至虛空六種亦如是如金鋼等者如天王所執金無憎無愛隨所用處無不摧碎佛一切智前心此心中三昧能斷一切結使煩惱顚倒及習皆滅故名爲如金鋼如金鋼三昧相應智慧觀一切法皆平等般若波羅蜜觀諸法平等亦如是何以故般若先觀諸法平然後得是三昧
‘모든 법은 분별이 없다’고 함은, 세간의 범부들은 번뇌의 힘 때문에 갖가지로 모든 법을 분별하지만, 모든 법의 실상을 얻으면 모두가 파괴되고 변하여 달라지므로 이 때문에 성인은 반야바라밀은 얻음으로써 생각하고 분별하는 모든 법을 따르지 않고 공(空)ㆍ무상(無相)ㆍ무작(無作)의 삼매에 들어가며, 설령 모든 법이 변하여 달라질 때에도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나니, 그것은 먼저부터 모든 법의 모양을 분별하거나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성품은 얻을 수 없다[不可得]’고 함은, 온갖 법은 모두가 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요 인연이 없이 있는 것은 없다. 만일 조그마한 인연으로 생기게 되거나 또 인연으로부터 생긴다 하면, 곧 제 성품[自性]이 없는 것이니, 제 성품이란 본래부터 있고 결정된 진실한 일을 말한다.
014_1492_b_15L諸法無分別者間凡夫煩惱力故種種分別諸法諸法實相則皆破壞變異是故聖人得般若波羅蜜不隨憶想分別諸法入空無相無作三昧中若得諸法變異時則不憂愁以先來不分別取諸法相故諸法性不可得者一切法皆從因緣和合生無有無因緣若少因緣而起者若從因緣生則無自性性者名本有決定實事
014_1492_c_01L만일 성품이 인연의 화합한 편에서 생긴다면, 아직 화합하지 않았을 때는 곧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먼저는 없었는데 이제야 인연의 화합으로부터 있게 되었어도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인연으로부터 성품이 생겼다면, 성품은 곧 짓는 법[作法]이다. 성품은 서로 기다리지 않고[不相待] 서로 의지하지 않는 것[不相因]이어서 언제나 홀로 존재한다고 한다. 이와 같아서 유위의 법[有爲法]은 곧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온갖 법의 성품은 얻을 수 없다’고 말하며, 반야바라밀의 성품도 역시 그러하다.
014_1492_c_01L若性從因緣和合邊生當知未和合時則無若先無今從因緣和合有者則知無性從因緣而生性者性卽是作法性名不相待不相因常應獨有如是有爲法則無是故言一切諸法性不可得般若波羅蜜性亦爾
‘모든 법은 있지 않고[無所有] 평등하기 때문이다’고 함은, 모든 법의 성품은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뭇 인연도 또한 얻을 수 없고, 뭇 인연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있지 않아서 있는 바 없는 가운데에 들기 때문에 곧 모두가 평등한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있기[有] 때문에 분별이 있고 없기[無] 때문에 분별이 없나니, 마치 초향(草香)과 전단향(栴檀香)을 사를 때에는 분별이 있지만 다 없어졌을 때에는 분별이 없게 되는 것과 같다.
014_1492_c_07L諸法無所有等故者諸法性不可得故衆因緣亦不可衆因緣亦不可得故皆是無所有無所有中故則皆平等所以者何有分別故無分別如草香栴檀香燒時有分別滅時無分別
‘모든 법은 조작이 없다[無作]’고 함은, 중생도 공하고 법도 공하기 때문에 모두가 조작이 없다는 것이다. 중생으로서 조작하는 일이란 이른바 열 가지 착한 일[十善]과 열 가지 착하지 않는 일[十不善] 등을 말한다.
‘법의 조작[法作]’이라 함은, 이른바 불은 타고 물은 흐르며 바람은 움직이고 의식[識]은 식별하며 지혜는 아는 것이니, 이와 같이 법에는 저마다 제 자신이 지니고 있는 힘이 있다. 중생도 없고 나아가 아는 이[知者]ㆍ보는 이[見者]도 없으며 물질 등과 일체종지까지도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파괴하였다. 중생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조작하는 이[作者]가 없고 법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조작할 바[所作]가 없는데도 다만 범부의 사람이 뒤바뀌고 가려졌기 때문에 ‘나는 짓는 바가 있다’고 말할 뿐이다.
014_1492_c_12L諸法無作衆生空法空故則皆無作衆生所作者所謂十善十不善等法作者謂火然水流風動識能識智能知——如是法各各自有力無衆生乃至無知見者無色等乃至一切種智先已破衆生故無作者破法故無所作但凡夫人顚倒覆故言我有所作
‘모든 법은 불가사의하다[諸法不可思議]’고 함은, 물질 등 온갖 법은 항상 있다거나 무상하다거나, 괴롭다거나 즐겁다거나, 진실하다거나 공하다거나, 나[我]가 있다거나 나가 없다거나, 나고 없어진다거나 나고 없어지지 않는다거나, 고요히 사라진다거나 고요히 사라지지 않는다거나, 여읜다거나 여의지 않는다거나,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등으로 결정할 수도 없고, 갖가지의 문으로 분별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미루어 헤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014_1492_c_19L諸法不可思議者色等一切法不得決定——若常若無常若苦若樂若實若空若無我若生滅若不生滅若寂滅若不寂滅若離若不離若有若無等種種門分別亦如是不可得思議
014_1493_a_01L왜냐하면, 이 법은 모두가 마음속의 생각과 분별에서부터 생기고 또한 결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온갖 법의 진실한 성품은 모두가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에서 벗어나고 이름과 말의 길[言語道]을 초월한 것이니, 앞의 품에서 “온갖 법의 평등은 온갖 성현들도 행할 수 없고 도달할 수도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불가사의하니, 반야바라밀도 또한 그러하여 이 법을 관찰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이때에 살타파륜보살은 바로 그 자리에서 모든 삼매를 얻었다.
014_1493_a_01L以者何是法皆從心中憶想分別生亦不可決定一切法實性皆過心數法出名字語言道如前品說一切諸法平等一切賢聖不能行不能到是故不可思議般若波羅蜜亦爾是法故生是時薩陁波崙卽於坐上得諸三昧
【문】살타파륜은 먼저 이미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을 알았고 지금은 갖은 고행을 다하면서 서서 7년 동안 지내다가 담무갈을 보게 되었는데 어떠한 이익을 얻었는가?
014_1493_a_08L問曰薩陁波崙先已知諸法空相今種種勤苦住立七歲見曇無竭得何等利益
【답】살타파륜은 먼저 모든 부처님을 뵈었고 모든 삼매를 얻었으면서도 반야바라밀을 귀중히 여기면서 탐착하는 모양을 내고 있으므로, 이제 담무갈은 7년 만에 정에서 일어나서 그를 위하여 반야를 설해 주어 그의 탐착하는 마음을 깨뜨려 주었다. 온갖 법의 성품은 본래 공한 것이요 반야바라밀이 있어서 그것을 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말하기를 “모든 법은 평등하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이 평등하고, 모든 법은 모양을 여의었고 나아가 모든 법은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반야도 불가사의하다”라고 한 것이다.
014_1493_a_10L答曰薩陁波崙先見諸佛得諸三昧貴重般若波羅蜜生著相今曇無竭七歲從定起爲說般若破其著心一切法性自空非般若波羅蜜令其空是故說諸法等故般若波羅蜜等諸法離相乃至諸法不可思議故般若不可思議
014_1493_b_01L그 밖의 다른 법을 소홀히 여기거나 반야만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도록 한 것이니, 왜냐하면 반야로 인하여 다시 때가 낀 탐착[垢著]을 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이 비록 필경에는 청정하고 이로운 바가 많다 하더라도, 다시 그 모양을 취하거나 해서 탐착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되니, 마치 불에 달구어진 금이 비록 좋다 하더라도 손으로 쥘 수 없는 것과 같다.
살타파륜은 이러한 교화를 받고서, 반야에 탐착하는 마음을 끊고 제법등(諸法等)의 모든 삼매를 얻었으니, 구절마다 해설하고 있다.
산란한 마음 가운데 다만 지혜만이 있는 것을 삼매라 하지 않는다. 이제 스승으로부터 들은 뒤에는 한 마음으로 사유(思惟)하는 것을 삼매라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흩어지지 않아서 지혜가 변하여 삼매로 되니, 마치 바람 속에서는 등불이 빛을 밝게 비추지 못하다가 고요한 방에서 문을 닫았을 때에야 비로소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
014_1493_a_16L不令輕賤餘法貴重般若何以故不令因般若故更生垢著般若波羅蜜雖畢竟淸淨多所饒益復不可取相而生著如熱金雖好不可手捉薩陁波崙得是教化斷般若中著心卽得諸法等諸三昧句句解說散亂心中但有智慧不名三昧今從師聞已一心思名爲三昧攝心不散智慧變成三如風中燈不能照明在靜室閉門明乃遍照
앞에서는 이미 욕계의 마음으로 마음이 산란했기 때문에 지혜의 힘이 성취되지 못했으나, 지금은 가다듬은 마음[攝心] 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들은 모든 법은 모두 삼매라 하니, 모든 번뇌 등과 악마의 백성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이 마치 물에 찬바람이 불어오지 않아 아직 얼음이 얼지 않았을 때는 견고하지 않다가 얼음이 얼게 되면 밟을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6백만의 삼매문(三昧門)을 얻었고 살타파륜은 담무갈이 설하는 법을 듣게 되었으며 모든 법 가운데 큰 지혜의 광명을 얻었으니, 이른바 갖가지 모든 법의 실상의 문이며 모든 법의 평등이 그것이다. 평등이 바로 지혜이니, 살타파륜의 선정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변하여 삼매가 되었다.
014_1493_b_03L先已欲界心散亂故智慧力未成就今入攝心中所聞諸法皆名三昧能破諸煩惱等及魔人民寒風未至未成爲冰則無堅用成凍冰能有所蹈得如是等六百萬三昧門薩陁波崙得聞曇無竭所說得諸法中大智慧明所謂種種諸法實相門諸法平等——平等是智慧薩陁波崙禪定心中變爲三昧
지금 삼매와 지혜를 말하려는 것은 이 세상과 뒷세상의 과보 때문이니, 이때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말씀하기를 “마치 내가 지금 대중 가운데서 반야를 설하면서 이런 모양[相]ㆍ이런 모습(像貌)ㆍ이런 이름[名字]으로써 반야를 설하고 있는 것처럼 살타파륜이 담무갈로부터 이 삼매를 얻고 이 삼매 가운데서 시방의 부처님께서 대중 가운데서 반야를 설하고 계시는 것을 본 것도 또한 그러했니라.
014_1493_b_11L今欲說三昧智慧今世後世果報故爾時佛告須菩提如我今在大衆中說般以是相以是像貌以是名字說般薩陁波崙從曇無竭得是三昧三昧中見十方佛在大衆中說般若亦如是
수보리야, 살타파륜은 이로부터 뒤에는 법을 깊이 좋아하는 까닭에 모든 경전을 모아서는 널리 독송하고 많이 들었느니라. 마치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모두 다 잘 지니는 것처럼 살타파륜도 이와 같아서 많은 견문(見聞)과 지혜가 불가사의하여 마치 큰 바닷물과 같았으며 곧 이 세상에서 언제나 부처님을 여의지 않았나니, 이와 같은 것들을 이름 하여 이 세상에서의 과보라 하느니라.
014_1493_b_17L須菩提薩陁波崙從是以後深愛樂法故多集諸經廣誦多聞阿難佛所說皆能持薩陁波崙亦如多聞智慧不可思議如大海水於是世常不離佛如是等名爲今世果報
014_1493_c_01L몸을 버린 뒤에는 항상 부처님이 계신 나라에 태어났으며,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수행하기 좋아한 까닭에 꿈속에서까지도 부처님을 뵙는 일을 여의지 않았으며, 지옥 등의 모든 재난은 모두 영원히 끊어졌으며 뜻에 따라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태어났나니, 그는 깊이 반야바라밀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업(業)에 따라 태어나지 않느니라. 살타파륜은 한 부처님의 국토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국토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제도하고 벗어나게 하면서 한량없는 공덕을 쌓고 있나니, 마치 호귀(豪貴) 장자가 한 모임에서 다른 한 모임에 이르고 나아가 지금은 대뢰음(大雷音)부처님 처소에 있으면서 범행(梵行)을 깨끗하게 닦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만일 어떤 이가 반야바라밀을 구하고자 하면, 마땅히 살타파륜 보살마하살이 견고하고 바르며 한 마음이어서 움직일 수 없었던 것과 같이 해야 하느니라”고 하신다.
014_1493_b_22L捨身常生有佛國中好修行念佛三昧故乃至夢中初不離見佛獄等諸難皆已永絕隨意往生諸佛國土以其深入般若波羅蜜集無量功德故不隨業生薩陁波崙從一佛土至一佛土供養諸佛度脫衆生無量功德譬如豪貴長者從一會至一會乃至今在大雷音佛所淨修梵若有欲求般若波羅蜜者當如薩陁波崙菩薩堅正一心不可傾動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의 인연 때문에 온갖 공덕을 성취하는 줄 알아야 한다’고 함은, 모든 보살들로서 반야를 얻는 이는 탐욕ㆍ성냄 등 집에 있는 이[在家]의 허물[罪垢]이나 삿된 의심과 희론 등 출가한 이의 허물을 모두 다 제거시키고 마음이 깨끗하게 되며,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온갖 공덕을 성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체종지를 얻는다’고 함은,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다.
‘6바라밀’이라 함은, 초지(初地)로부터 7지(地)까지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8지ㆍ9지ㆍ10지는 바로 부처님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서 일체종지를 얻어 부처님이 되어 온갖 법에서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이니, 모두가 받아 지니며 나아가 꽃과 향과 기악으로써 공양해야만 하는 것이다.
014_1493_c_08L故當知般若波羅蜜因緣故能成就一切功德者諸菩薩等得般若者貪欲瞋恚等在家罪垢邪疑戲論等出家罪垢皆悉除滅得心淸淨心淸淨故得一切功德成就得一切種智者謂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六波羅蜜者從初地乃至七地得無生忍法八地九地十地是深入佛智慧得一切種智成就作佛於一切法得自在皆應受持乃至華香妓樂
수보리는 비록 언제나 공의 행을 좋아하였으나 부처님과 함께 반야를 설하고 또 무쟁(無諍)삼매를 얻었으므로 부촉[囑累]할 수 없었으며, 아난(阿難)은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를 얻었고 또 항상 세존을 그 곁에서 가까이 모시고 있었으므로 자세히 부촉한 것이다.
014_1493_c_18L須菩提雖常樂空行佛共說般若又得無諍三昧故不應囑累阿難得聞持陁羅又常親近世尊故廣囑累

90. 촉루품(囑累品)을 풀이함
014_1493_c_21L大智度論釋囑累品第九十
014_1494_a_01L
【經】그때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처님은 바로 너의 큰 스승[大師]이며, 너는 바로 그 부처님의 제자이더냐?”
아난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바로 저의 큰 스승이시고 수가타(脩伽陁)1)는 바로 저의 큰 스승이시며 저는 바로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014_1493_c_22L【經】
爾時佛告阿難於汝意云何佛是汝大師不汝是佛弟子不阿難言世尊佛是我大師脩伽陁是我大師我是佛弟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러하느니라. 나는 바로 너의 큰 스승이요 너는 곧 나의 제자이니라. 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너는 다하여 마쳤느니라. 아난아, 너는 몸과 입과 뜻의 인자한 업[慈業]으로써 나에게 잘 공양하고 시중들었으며, 항상 나의 뜻과 같아서 어기거나 잘못이 없었느니라.
아난아, 나의 몸은 현재 네가 사랑하고 공경하며 공양하고 시중든 덕으로 마음이 항상 깨끗하여 있지만, 내가 멸도한 뒤에는 이 온갖 사랑하고 공경하며 공양하고 시중드는 일로써 이 반야바라밀을 사랑하고 공경하면서 공양해야 하리니, 두 번 세 번에 이르도록 이 반야바라밀을 너에게 부촉하느니라.
014_1494_a_03L佛言如是如是我是汝大師汝是我弟子若如弟子所應作者已作竟阿難汝用身意慈業供養供給我亦常如我意無有違失阿難我身現在汝愛敬供養供給心常淸我滅度後是一切愛敬供養供給當愛敬供養般若波羅蜜乃至第第三以般若波羅蜜囑累汝
아난아, 너는 잊지도 말고 잃지도 말며 최후에 종자를 끊는 사람이 되지 말지니라. 아난아, 반야바라밀이 세간에 있는 한 그때에는 부처님도 세간에 있으면서 법을 설하고 계시는 줄 알지니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반야바라밀을 써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바르게 기억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널리 연설하며,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꽃ㆍ향ㆍ번기ㆍ일산과 보배 옷이며 등불과 촛불 등의 갖가지로써 공양하면, 이 사람이야말로 부처님을 뵙는 일을 여의지 않고 언제나 법을 듣는 일을 여의지 않으면서 언제나 부처님을 친근히 하는 줄 알지지라.”
014_1494_a_10L阿難汝莫忘莫失莫作最後斷種人阿難隨爾所時般若波羅蜜在世當知爾所時有佛在世說法阿難若有書般若波羅蜜受持正憶念爲人廣恭敬尊重讚歎華香幡蓋寶衣燭種種供養當知是人不離見佛離聞法常親近佛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을 말씀하시고 나니, 미륵(彌勒) 등 모든 보살마하살과 혜명(慧命)수보리(須菩提)ㆍ사리불(舍利弗)ㆍ대목건련(大目揵連)ㆍ마하가섭(摩訶迦葉)ㆍ부루나미다예야니자(富樓那彌多隷耶尼子)2)ㆍ마하구치라(摩訶俱絺羅)ㆍ마하가전연(摩訶迦旃延) 및 아난 등과 온갖 대중들 그리고 온갖 세간의 모든 하늘과 건달바와 아수라 등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모두들 크게 기뻐하였다.
014_1494_a_17L佛說般若波羅蜜彌勒等諸菩薩摩訶薩慧命須菩舍利弗大目犍連摩訶迦葉富樓那彌多隸耶尼子摩訶俱絺羅摩訶迦栴延阿難等幷一切大衆及一切世閒諸天犍闥婆阿修羅等聞佛所說皆大歡喜
014_1494_b_01L【論】【문】부처님은 이미 법애(法愛)를 끊고 나아가 일체종지와 열반에도 집착하지 않으며모양을 취하지도 않으시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갖가지 인연으로 이 법을 부촉하시기를 마치 애착하시는 것과 같이 하셨는가?
014_1494_a_23L【論】
問曰佛已斷法愛乃至一切種智不著不取相今何以種種因緣囑累是法似如愛著
【답】모든 부처님의 큰 자비심은 처음 뜻을 내어서부터 이에 열반의 문에 도달하기까지 언제나 버리거나 여의지 않으며,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금강삼매(金剛三昧)로써 중생들을 위하여 몸을 부수기를 마치 한 톨의 깨나 쌀처럼 하셨거늘, 하물며 이익이 많은 경법(經法)이거늘 부촉(付囑)하지 않으시겠는가.
또 아난은 아직 욕탐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어서 아직 반야바라밀의 세력과 과보에 이익이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 그 때문에 은근하게 “너에게 부촉하노니, 마땅히 잘 받아 지니면서 잊거나 잃지 않아야 하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온갖 법에서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것도 없고 항상 고요히 사라진 모양이면서도 이 반야를 부촉하셨다.
014_1494_b_03L答曰諸佛大慈悲從初發意已來乃至到涅槃門不捨離於娑羅雙樹閒以金鋼三昧爲衆生碎身如麻米何況經法多所饒益而不囑累又阿難是未離欲人未盡知般若波羅蜜力勢果報多所利益是以慇懃囑累汝當好受持無令忘失是故佛雖於一切法無憎愛常寂滅相而囑累是般若
【문】아난은 곧 성문인(聲聞人)이거늘 무엇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부촉하며, 미륵 등의 큰 보살에게 부촉하지 않으셨는가?
014_1494_b_11L問曰阿難是聲聞人何以以般若波羅蜜囑累而不囑累彌勒等大菩薩
【답】어떤 사람은 말하길 “아난은 항상 부처님을 그 곁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필요한 것을 시중들었고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를 얻었으므로 한 번 들은 것은 결코 잊지 않았으며 게다가 그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었다. 또 아는 것이 많고 명문(名聞)이 넓었으므로 4중(衆)이 그를 의지하고 있었으니, 그는 능히 부처님에 이어서 법의 바퀴를 굴릴 제3의 스승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舍利弗)은 수명이 짧아 일찍 멸도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에게 부촉하지 않으셨다.
또 아난은 6신통(神通)과 3명(明)과 두 가지 해탈을 다 같이 증득하신 분이요, 5백 아라한의 스승이어서 이렇게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는 이였기 때문에 그에게 부촉한 것이다”고 한다.
014_1494_b_13L答曰有人阿難常侍佛左右供給所須得聞持陁羅尼一聞常不失旣是佛之從又多知多識名聞廣普四衆所依是能隨佛轉法輪第三師佛知舍利弗壽短早滅度故不囑累又阿難是六神通三明共解脫五百阿羅漢師能如是多所利益是故囑累
014_1494_c_01L미륵 등의 큰 보살들은 부처님이 멸도한 뒤에는 저마다 이리저리 흩어져서 그들이 제도해야 될 중생들이 살고 있는 국토를 가게 되어 있었다. 미륵은 도솔천(兜率天) 위로 돌아가 있게 되고 비마라힐(毗摩羅詰)과 문수사리(文殊師利)도 또한 제도해야 할 중생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또 이러한 모든 보살들은 반야바라밀의 힘을 깊이 알고 있었으므로 애써서 부촉할 필요가 없었지만 아난은 바로 성문인이라 소승의 법을 따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부처님은 은근히 그에게 부촉하신 것이다.
014_1494_b_20L彌勒等諸大菩薩佛滅度後各各分散至隨所應度衆生國土——彌勒還兜率天上毘摩羅鞊文殊師利亦至所應度衆生處佛又以是諸菩薩深知般若波羅蜜力不須苦囑累阿難是聲聞人隨小乘法是故佛慇懃囑累
【문】만일 그렇다면 『법화경(法華經)』이나 그 밖의 모든 방등경(方等經)은 무엇 때문에 애호할 수 있는 왕에게나 모든 보살들에게 부촉하신 것인가?
014_1494_c_03L問曰爾者『法華經』諸餘方等經何以囑累喜王諸菩薩等
【답】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때 부처님은 심히 깊고 믿기 어려운 법을 말씀하고 계셨는데, 그곳에 성문의 사람은 없었다. 또 부처님께서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을 설하실 때와 같아서 5백의 아라한이 비록 부처님 곁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듣지 못했으며, 간혹 들은 것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때문에 보살들에게 부촉하신 것이다”고 한다.
014_1494_c_05L答曰有人言是時說甚深難信之法聲聞人不在又如佛說『不可思議解脫經』五百阿羅漢雖在佛邊而不聞或時得聞而不能是故囑累諸菩薩
【문】또 어떤 법이 그렇게도 깊어서 반야보다 뛰어난 법이기에 『반야경』은 아난에게 부촉하면서 그 밖의 다른 경은 보살에게 부촉하신 것이다.
014_1494_c_09L問曰更有何法甚深勝般若者而以『般若』囑累阿難而餘經囑累菩薩
【답】반야바라밀은 비밀스런 법이 아니다. 그러나 『법화경』 등의 모든 경에서는 “아라한이 수기를 받고 부처님이 된다”는 것 등을 말씀하고 있으며, 큰 보살들이라야 능히 받아 지녀서 이용할 수 있으니, 마치 큰 약사(藥師)라야 능히 독을 약으로 쓸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먼저 말한 것과 같아서, 반야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문과 함께하면서 설하는 반야요, 둘째는 다만 시방에 있는 10지(地)에 머무른 큰 보살들만을 위하여 설하는 반야이니, 9지(地)에 머무른 이도 들을 수 있는 바가 아니거늘, 하물며 새로 뜻을 낸 이겠는가.
또 9지에서 들을 법이 있고 나아가 초지(初地)에서 들을 법이 있어서 저마다 같지 않다. 반야바라밀에는 전체 모양[總相]은 바로 하나이면서도 깊고 얕은 데에 차이가 있나니, 이 때문에 아난에게 부촉한다 해도 허물할 것은 없다.
014_1494_c_11L答曰般若波羅蜜非秘密法而『法華』等諸經說阿羅漢受決作佛大菩薩能受持用譬如大藥師能以毒爲藥復次如先說般若有二種一者共聲聞說二者但爲十方住十地大菩薩說非九住所聞況新發意者復有九地所聞乃至初地所聞各各不同般若波羅蜜摠相是一而深淺有異是故囑累阿難無
【문】「아촉불품(阿閦佛品)」에서도 촉루[囑累]가 보이고 여기에도 또 촉루가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014_1494_c_20L問曰先「見阿閦佛品」中囑累今復囑累有何等異
014_1495_a_01L【답】보살의 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반야바라밀의 도요, 둘째는 방편의 도[方便道]이다.
앞에서의 부촉은 반야바라밀의 본체[體]에 대한 설법을 마치면서 하신 부촉이요, 여기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이 반야의 방편을 얻게 하기 위한 설법을 마치면서 하신 부촉이다. 그러므로 아촉부처님 뒤에 구화구사라(漚和拘捨羅)3)를 설하는 품이 보이는 것이다.
014_1494_c_21L答曰菩薩道有二種一者般若波羅蜜道二者方便道囑累者爲說般若波羅蜜體竟今以說令衆生得是般若方便竟囑累是故「見阿閦佛」後說「漚和拘捨羅品」
반야바라밀에도 비록 방편이 있고 또 방편 가운데에도 반야바라밀이 있기는 하나 어느 곳에 더 많이 포함되었느냐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반야와 방편의 본체는 바로 하나이면서도 그 작용하는 부분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고 있다. 비유하건대 마치 금세공사가 뛰어난 방편으로 금을 가지고 갖가지 다른 물건을 만들면 비록 모두 그것은 금이라 하더라도 저마다 그 이름을 달리하는 것과 같다.
014_1495_a_02L若波羅蜜中雖有方便方便中雖有般若波羅蜜而隨多受名般若與方便體是一以所用小異故別說譬如金師以巧方便故以金作種種異物雖皆是而各異名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의 실상(實相)을 얻은 것이니, 이른바 온갖 법의 성품은 공하고 있는 바가 없어서 고요히 사라진 모양이 그것이다. 곧 멸도하려 해도 방편의 힘 때문에 열반의 증득을 취하지 않으면서 이때에 그는 생각하기를 ‘온갖 법의 성품은 공하므로 열반도 또한 공하다. 나는 지금 보살의 공덕에서 아직 완전히 갖추지 못했으므로 증득을 취하지 않아야 하며, 공덕이 완전히 갖추어지게 되면 그때에 증득을 취해도 좋으리라’고 한다. 이때에 보살은 그 방편의 힘 때문에 두 지위4)를 뛰어넘어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게 되며, 보살의 지위에 머물면서 매우 깊고 미묘하여 문자가 없는 법을 알아서 중생을 인도하는 것이니, 이것을 곧 방편(方便)이라 한다.
014_1495_a_07L菩薩得是般若波羅蜜實所謂一切法性空無所有寂滅相卽欲滅度以方便力故不取涅槃證是時作是念一切法性空涅槃亦空我今於菩薩功德未具足不應取證功德具足乃可取證是時菩薩以方便力過二地入菩薩位住菩薩位中知甚深微妙無文字法引導衆生名方便
다시 방편이 있으니, 보살은 온갖 법은 필경 공하여 그 성품은 있는 바 없는 줄 알면서도 도리어 착한 법을 일으켜 6바라밀을 행하면서 공을 따르지 않게 된다. 만일 의심[疑]이나 삿된 소견[邪見]이나 열반에 드는 것[入涅槃]이나 부처님이 되는 것[作佛] 이 네 가지를 내게 될 적에, 반야로써 이와 같이 분별하여 만일 삿된 소견과 의심은 없애고 열반에 들지 않으면 이것도 곧 방편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반야바라밀은 이롭게 함이 많아서 크고 진기한 보배 더미 속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부처님은 멸도하신 뒤에 많은 원적들이 헐뜯고 무너뜨리려 할 것임을 아시므로 품(品)마다 부촉하신다 해도 오히려 허물이 없겠거늘 하물며 두어 군데서 부촉한 것이랴.
014_1495_a_15L復次有方便——菩薩知一切法畢竟空性無所有而能還起善法六波羅蜜不隨空若能生四種事若邪見若入涅槃若作佛以般若有如是分別若能除邪不入涅槃是爲方便有人言般若波羅蜜多所饒於大珍寶聚中最勝佛知滅度後多有怨賊欲毀壞者品品囑累猶尚無咎何況二處
【문】부촉하신다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은근하고 정중하게 하시는가?
014_1495_a_23L問曰若囑累何以乃爾慇懃鄭重
014_1495_b_01L【답】부처님은 세속의 법에 따라 중생들을 인도하시는 것이 마치 장사꾼의 우두머리가 다른 나라로 멀리 나가려 할 적에, 비록 재보를 그의 아들에게 맡기면서 큰 값어치가 있는 묘한 보물은 유독 은근하게 부촉하는 것과 같나니, 그 아들은 그 묘한 보물의 귀중한 값어치를 아직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장사꾼의 우두머리가 그 보물의 값어치를 잘 아는 사람이므로 은근히 부촉하면 반드시 그것이 귀중한 것임을 알아차리겠지만, 만일 그의 아들이 그 보물의 값어치를 찬탄한다면 그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 것과 같나니, 부처님의 경우도 역시 이와 같다.
014_1495_b_01L答曰佛隨世俗法引導衆生譬如估客主欲遠出他國雖以財寶囑累於子大價妙寶偏獨慇懃以其子未識妙寶價重故餘人以估客主是識寶價人而慇懃囑累必知其貴若聞其子讚說寶價則不信之佛亦如是
또 만일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대중 가운데서 반야를 찬탄하면서 부촉한다면 사람들은 부처님을 비방하되 “자기 자신의 법을 칭찬하고 있구나”라 하고서 의심하며 믿지 않겠지만, 자신의 제자들에게 부촉한다면 싫어 할 이가 없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부처님은 앞의 품[上品] 가운데서 ‘고요히 사라진 모양이요 쓸모없는 다른 논리도 없으니, 그것은 곧 일체지(一切智)이다. 이 안에는 결코 취할 만한 어떠한 법도 없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사람들은 그리 귀히 여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은근히 부촉한다면, 곧 부처님께서는 공한 법에 애착하지도 않지만 온갖 중생들 중에서 반야를 사랑하는 것은 부처님보다 더한 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부처님은 반야의 은혜가 깊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 반야를 귀중히 여겨서 은근히 부촉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라고 한다.
014_1495_b_07L復次若於餘人異衆中讚歎般若囑累人則譏佛自稱讚法而不信自於弟子中囑累則無嫌有人言佛上品中說寂滅相無戲論是一切智是中無有決定法可取人以爲無所可貴今慇懃囑累則知佛不著空法一切衆生中愛念般若無過佛者佛知般若恩深故貴重是般若而慇懃囑累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부처님은 중도(中道)를 나타내시려고 부촉하신 것이다. 앞에서는 모든 법은 공하다고 말씀하셔서 저들의 ‘있다고 하는 치우친 소견[有邊]’을 막으셨고 여기서는 은근히 부촉하시어 곧 ‘없다고 하는 치우친 소견[無邊]’을 깨뜨린 것이니, 이것이 곧 중도이다. 어떤 사람은 ‘부처님은 탐내는 마음으로 이 법에 애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처님은 갖가지 인연으로 반야바라밀의 공한 모양을 말씀한 것이요, 어떤 사람은 ‘부처님은 아주 없다[斷滅]는 가운데에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은근히 부촉하신 것이니, 이와 같다면 곧 두 가지 치우친 소견을 여의게 되는 것이다.
014_1495_b_15L有人言佛欲現中道故囑累先說諸法空以遮有邊今慇懃囑累則破無邊是則中道人謂佛貪心愛著此法佛以種種因緣說般若波羅蜜空相若人謂佛墮斷滅中是故慇懃囑累如是則離二
【문】부처님은 아난이 당신의 제자임을 알고 계시면서도 무엇 때문에 “아난아, 너는 바로 나의 제자이더냐, 내가 바로 너의 스승이더냐”고 물으셨는가?
014_1495_b_21L問曰佛知阿難是弟子何以故問阿難汝是我弟子不我是汝師不
014_1495_c_01L【답】부처님에게는 삿된 제자로서 수나찰다라(須那刹多羅)5) 등이 있었다. 그들은 조그마한 인연으로 제자가 되었는데 부처님에게 활 쏘는 법을 배우려고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자, 이에 배반하고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 수시마(須尸摩, Susīma) 같은 이들은 바로 법을 훔쳐가기 위하여 제자가 되었던 것이니, 이와 같은 이들은 바로 이름만 있는 제자였다.
014_1495_b_22L佛有惡弟子須那剎多羅等有少因緣故作弟子欲於佛所取射法不爲說於是反戒言我非佛弟子如須尸摩爲盜法故作弟子如是等是名字弟子
또 외도 등이 말하기를 “아난은 마지못해서 부처님 곁에 있는 것이다. 아난은 일찍이 외도의 제자로 있으면서 풀 옷[草衣]을 입고 신선이 되려고 했었는데, 지금 부처님은 그의 친족이라 존중해야 되기 때문에 시봉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 때문에 대중 가운데서 아난에게 물으시되 “너는 바로 나의 제자이더냐”고 하여, 그가 만일 “진실한 제자입니다”라고 하면, “마땅히 나의 명에 따라야 한다”고 하시리니, 이 때문에 아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고 일부러 거듭하여 대답한 것이다.
014_1495_c_04L又復外道等謂阿難不得已而在佛邊——阿難曾作外道弟子著草衣求神仙今以佛是其親族尊重故給侍以如是等事故於大衆中問阿難汝是我弟子不若言是眞弟子當隨我勅是故阿難爲欲令人信故重答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법을 너는 모두 다 갖추었느니라”고 하셨다. 제자로서 해야 할 법이란, 이른바 착한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스승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제자에는 마음은 좋으면서도 몸과 입의 업이 합치하지 않는 이가 있고, 제자로서 몸과 입의 업은 좋으면서도 마음이 합치하지 않는 이도 있다. 만일 제자가 착한 마음으로 스승을 매우 좋아한다면, 몸과 입이 서로 합치하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고생을 어렵다고 여기지 않으며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은 버리고 스승의 가르침만을 따르나니, 아난은 이런 일을 모두 다 갖춘 것이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지금 현재 나를 공경하고 있지만 내가 멸도한 뒤에는 반야를 공경함도 역시 이와 같아야 하느니라”고 하셨다.
014_1495_c_10L佛告阿難弟子所應作汝盡具足弟子法者所謂以善身意業供給師有弟子心好口業不稱有弟子身口業好而心不稱弟子以善心深愛樂師口相稱惜身命不難懃勞自捨其心隨師教勅——阿難盡具足此事佛告阿難汝今現在恭敬於我我滅度後恭敬般若亦當如是
【문】반야는 곧 모든 부처님의 스승인데 아난은 무엇 때문에 그 스승을 공경하지 않고 부처님을 공경하는 것인가?
014_1495_c_18L問曰般若是諸佛師而阿難何以不恭敬其師而恭敬佛
【답】아난은 비록 첫 번째 도과[初道]6)는 얻었다 하더라도 번뇌를 아직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의 진실을 아는 것이 부처님만큼 깊이 알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야를 공경하기를 마치 나를 공경하듯 해야 한다”고 하셨다.
014_1495_c_19L答曰阿難雖得初道漏未盡故不深知法如佛所知是故佛告阿難汝恭敬般若如恭敬我
014_1496_a_01L또 중생들은 부처님의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와 큰 광명을 지닌 금빛 몸을 뵙게 되면 거의 모두가 사랑하고 공경하게 된다. 반야바라밀은 미묘하고 매우 깊으면서도 형상과 빛깔이 없으므로 지혜 있는 자만이 알 수 있으나, 부처님 몸의 상호(相好)는 어리석은 이거나 지혜가 있는 이거나 간에 아무리 보아도 싫증내는 일이 없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의 몸으로써 반야에 비유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몸소 악마를 막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멸도한 뒤에도 기꺼이 반야를 수호하라”고 하셨다.
014_1495_c_22L復次衆生見佛三十二相八十隨形好大光明金色身愛敬般若波羅蜜微妙甚深無形智者能知佛身相好智視之無厭足是故佛以身喩般若佛在世能自遮魔是故佛告阿難我滅度好守護般若
【문】한 번 부촉하셨으면 족하거늘 무엇 때문에 세 번에 이르시는가?
014_1496_a_05L問曰一囑累則足以至三
【답】부처님은 반야바라밀을 깊이 사랑한 까닭에 세 번 부촉하신 것이다.
014_1496_a_06L答曰佛深愛般若波羅蜜故三囑
【문】만일 그렇게도 깊이 사랑하셨다면, 어찌 세 번만 하셨는가?
問曰若深愛者何限於三
【답】모든 부처님의 통상법에서는 말씀이 세 번을 초과하지 않는다. 만일 세 번을 초과하여 말씀해도 따르지 않게 되면, 집금강(執金剛, Vajrapāņi) 신이 그의 지팡이[杵]7)로 그를 다스린다. 또 집금강신은 만일 세 번을 초과하여 말씀하셨는데도 따르지 않으면, 곧 그는 거역하는 사람이라 여겨서 죽이려고 한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물을 적에 세 번을 더 초과하지 않으신 것이다.
또 만일 한 번만 말하면 아직 느슨하고 세 번을 초과하게 되면 너무도 지나친 것이라 마치 범부로서 탐착하는 이와 같이 된다.
014_1496_a_07L答曰諸佛常法語不過三若過三不從金鋼神則以杵擬之又執金鋼神意若過三不從則是逆人便當殺之故佛問不過三復次若一說猶緩太急似如凡夫貪著者
또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근기가 둔한 이는 세 번까지 말을 해야 비로소 착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아난은 비록 근기는 영리하다 하더라도 마음은 성문(聲聞)을 향하고 있으면서 자기 한 몸만을 제도하려고 하고 있을 뿐이니, 이 때문에 세 번을 말씀하신 것이다.
부촉하는 까닭은 법이 소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는 마땅히 제자를 교화하고 그 제자는 다시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교화하면서 차츰차츰 서로서로 교화하게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마치 하나의 등불에서 다시 그 밖의 다른 등불을 켜면서 그 광명이 갈수록 더 많게 하는 것과 같다.
014_1496_a_12L復次受者心有三種鈍根者至三乃生善心難雖復利根心向聲聞但一身求度是故三告所以囑累者爲不令法滅汝當教化弟子弟子復教餘人轉相教譬如一燈復然餘燈其明轉
‘최후에 종자를 끊는 사람[斷種人]이 되지 말라’고 함은, 세상 사람이 아들이 있으면서 만일 그 후사가 끊어지게 하면 그것을 바로 종자를 끊는다고 하는 것이니,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다.
부처님은 그런 비유로써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의 신상(身上)에서 반야로 하여금 단절되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014_1496_a_18L莫作最後斷種人者世人有子不紹繼則名斷種最爲可恥佛以此喩告阿難汝莫於汝身上令般若斷
【문】앞의 품(品)에서 밝혔듯이, 반야바라밀은 설하여도 또한 늘어나지 않고 설하지 않아도 또한 줄어들지 않아서 마침내는 고요히 사라진 모양이거늘, 지금 무엇 때문에 “단절(斷絶)되게 하지 말라”고 하시는가?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과 같거늘 그 누가 끊어 없앨 수 있단 말인가?
014_1496_a_21L問曰如先品中明般若波羅蜜亦不增不說亦不減畢竟寂滅相何以言莫令斷滅譬如虛空誰能滅
014_1496_b_01L【답】반야바라밀은 비록 고요히 사라져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는 모양으로 마치 허공과 같아서 희론을 펼 수 없지만, 문자와 언어로 반야바라밀의 경권을 서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설하기 위한 것이니, 이 가운데서의 반야는 이 원인[因] 가운데서 그 결과[果]를 말하는 것이다.
014_1496_b_01L答曰般若波羅蜜雖寂滅無生無滅相如虛空不可戲論而文字語言書般若波羅蜜經卷爲他人說是此中般若於此因中而說其果
범부의 사람은 반야바라밀은 미묘하다는 말만 듣고 곧 애착하는 마음을 내어 반야의 모양을 취하면서 모든 법을 분별한다. 이른바 ‘이것은 착하다, 이것은 착하지 못하다. 이것은 세간이다, 이것은 열반이다’라고 하는 등이 그것이다. 분별하기 때문에 이런 법 가운데서 애착하는 마음을 내고, 애착하는 마음 때문에 투쟁하며, 투쟁하기 때문에 모든 죄업(罪業)을 일으키게 되나니, 이와 같은 사람들을 곧 반야바라밀을 소멸하게 하는 이라 한다.
014_1496_b_04L凡人聞般若波羅蜜微妙卽生著心取般若分別諸法所謂是善是不善是世是涅槃等以分別故於是法中生著心著心故鬪諍鬪諍故起諸罪業——如是人名爲滅般若波羅蜜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기를 “너는 반야바라밀의 모습 그대로 하면서 문자나 언어에 집착하여 중생을 교화하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을 곧 소멸하지 않게 한다[不滅]고 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반야가 이 세상에서 얼마간이라도 있는 한, 그 만큼의 시간 동안 부처님도 세간에 머물러 있는 줄 알지니라”고 하시니, 경에서 자세히 말씀한 것과 같다.
014_1496_b_09L佛告阿難汝當如般若波羅蜜相莫著文字語教化衆生是名不滅阿難隨般若在世幾時則知爾許時佛在世如經中廣說
부처님께서 은근히 부촉하실 때에 그 모임에 있던 중생들이 의심하기 때문에 부처님은 부촉하는 인연을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반야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부처님도 그때에 세상에 있느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요, 모든 부처님은 법(法)을 스승으로 삼기 때문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법’이라 함은, 곧 이 반야바라밀이니, 만일 스승이 있고 어머니가 있으면 이익을 잃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그 이익은 본래부터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야가 세상에 있으면 부처님도 역시 세상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014_1496_b_13L佛慇懃囑累在會衆生有疑是故佛說囑累因緣所謂有般若在則爲佛在所以者何般若波羅蜜是諸佛母諸佛以法爲師法者卽是般若波羅蜜若師在母在不名爲失所以者何利本在故是故說若般若在世佛亦在世
014_1496_c_01L또 법보(法寶)는 불보(佛寶)를 여의지 않는다. 보살에게 32상과 80수형호가 있어도 부처님이라 하지 않으며 법보를 얻게 되기 때문에 부처님이라 하나니, 법보가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마치 사람이 부처님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나아가 해탈과 열반을 얻게 되듯이 만일 사람이 반야 가운데서 능히 믿고 행하면 역시 3승(乘)의 법으로써 열반에 드는 것이니, 이 때문에 반야가 세상에 있으면, 마치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는 것과 같아서 법을 설함에는 다름이 없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반야를 듣고는 받아 지니고 서사하여 지니거나 한다면, 이 사람은 언제나 부처님을 뵙는 일을 여의지 않으면서 법을 들으며 모든 부처님을 가까이 하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고 하셨다.
014_1496_b_19L又法寶不離佛寶薩有三十二相八十隨形好不名爲得法寶故名爲佛法寶卽是般若波羅蜜如人從佛得利乃至得解脫涅槃若人於般若中能信行亦以三乘法而入涅槃是故說般若在世佛在世說法無異阿難若有人聽受般若及書持等當知是人不離見佛聞法親近諸佛
【문】어떤 사람이 세 가지 착하지 못한 업[三不善業]을 성취하여 중한 죄를 지었는데도 반야를 듣고 받아써서 지닌다면, 이 사람이 어떻게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으면서 법을 듣고 부처님을 친근히 할 수 있다는 것인가?
014_1496_c_04L問曰有人重罪三不善業成就持般若是人云何當得不離諸佛聞法親近佛不
【답】이런 일에 대해서는 앞의 품(品) 가운데서 이미 대답하였다. 이른바 법을 듣는 이에게는 두 가지의 사람이 있나니, 첫째는 다만 듣기만 하고 믿거나 받아 행하지 않는 이요, 둘째는 듣는 대로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하는 이다.
마치 제자가 스승의 말을 듣지도 않고 믿고 받아 행하지도 않으면, 그를 바로 듣지 않는 이라 하고, 만일 일심으로 들으면서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함으로써 세간을 싫어하고 열반을 좋아하며 소승을 여의고 대승을 좋아하여 이와 같이 듣고 지닌다면, 그를 진정으로 듣는 이라 하는 것과 같다. 읽고 외우는 이도 또한 이와 같다.
014_1496_c_06L答曰是事先品中已答所謂聽法者有二種人一者但聽而不信受行二者而信受奉行如弟子不聽不信受行師語是名不聽若以一心聽聞信受奉行厭世愛涅槃離小乘樂大乘——作如是聽受是名眞聽讀亦如是
바르게 기억하여 부처님의 뜻 그대로를 따르고 있다ㆍ없다 하는 두 가지 치우친 소견을 여의고서 중도(中道)를 행하며, 들은 그대로를 받아 지니고 그 뜻을 이해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해설하며,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꽃과 향 등으로 공양하고 찬탄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미미하고 천박한 데서부터 시작하여 나아가 바르게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연설하게 되면, 그의 마음이 한층 더 두터워지고 공덕은 갈수록 많아지며 견고하여 동요되지 않게 되나니라.
014_1496_c_12L憶念隨如佛意離有無二邊行於中如所聞受持及其義解爲他人解恭敬尊重供養讚歎花香等初始微薄乃至正憶念爲他人說其心轉功德轉多牢固不動
스승의 설법을 듣거나 경권을 보거나간에 꽃과 향 등으로 공양하는 것이다.만일 지혜로운 이로서 반야의 공덕을 알면서 공양하는 이면 복덕이 중하겠지만, 모르는 이가 공양하면 복덕이 미미하고 천박하다. 복덕이 순수하고 두터운 이는 몸을 바꾸면 언제나 부처님 뵙는 일을 여의지 않고 법을 들으면서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게 되지만, 복덕이 미미하고 천박한 이면 몸을 바꾸어도 세 가지 복의 과보를 얻는다고 말할 수는 없고 많은 죄 값을 다 치르고 나서 오래된 뒤에는 그도 역시 반드시 부처님이 된다.
014_1496_c_17L若聞師說見經卷花香等供養——若智者知般若功德供養者福德重不知者供養德微薄福德純厚者轉身不離見佛聞法親近諸佛福德微薄者不言轉身得三福報償衆罪已久後亦必當得佛
014_1497_a_01L이 가운데서 부처님은 통틀어 말씀하시면서 “복덕이 순수하고 두터운 이거나 미미하고 천박한 이거나간에 점차로 모두가 시방의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점점 6바라밀을 두루 갖추어서 모두가 부처님이 되느니라”고 하신다.
부처님은 불안(佛眼)으로써 반야에 이와 같은 큰 이익이 있어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것을 보시므로 은근하게 부촉하신 것이다.
014_1496_c_23L此中佛摠說福德純厚微薄漸皆當見十方佛聞佛所說漸漸具足六波羅蜜皆得作佛佛以佛眼見般若有如是大利益衆生故慇懃囑
【문】이 모든 큰 아라한들은 이미 실제(實際)를 증득하여 다시는 근심이나 기쁨이 없다. 조그마한 기쁨조차도 오히려 없거늘 하물며 큰 기쁨이겠는가?
014_1497_a_04L問曰是諸大阿羅漢已證實際復憂喜小喜尚無何況大歡喜
【답】모든 큰 아라한들은 비록 삼계(三界)의 욕탐을 여의었다 하더라도 아직 온갖 지혜는 얻지 못한 까닭에 매우 깊은 모든 법 가운데서 오히려 의심하며 명확하게 모르다가 이 마하반야바라밀의 분명한 해설 때문에 그 의심이 제거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크게 기뻐한 것이다.
014_1497_a_05L答曰諸大阿羅漢雖離三界欲未得一切智慧故於諸甚深法中猶疑不了摩訶般若波羅蜜中了了解說斷除其疑是故大歡喜
또 이 여러 큰 제자들은 이미 실제(實際)를 증득한 이들이니, 실제란 곧 공하고 모양이 없고 한량없으며 분별할 것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 고요히 사라진 법[寂滅法]으로써 갖가지 이름과 언어와 비유를 분별하며 널리 말씀하면서도 또한 법 성품[法性]을 깨뜨리지 않고 또 세간과도 서로 어기지 않았나니, 모든 아라한들은 이 법 가운데서 깨달았기 때문에 크게 기뻐하였다.
014_1497_a_09L復次此諸大弟子已證實際實際者卽是空無相無量無所分別佛以此寂滅法種種分別名字語言譬喩廣說亦不壞法性不與世閒相違諸阿羅漢是法中證故大歡喜
부처님은 이 공하고 모양이 없고 한량없으면서 고요히 사라진 법을 말씀하셨으나, 그 밖의 다른 대중들은 모두가 아직 번뇌는 다하지 못했으면서도 믿음의 힘이 깊었기 때문에 역시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이 법은 우리들의 나고 죽는 괴로움을 다하게 해주면서 부처님 도를 얻게 하는구나”라고 하였나니, 이와 같은 한량없는 인연 때문에 대중들은 모두가 기뻐한 것이다.
014_1497_a_14L佛善說是空無相無量滅法諸餘大衆未悉漏盡信力深故亦大歡喜此法能盡我等生死苦令得佛道如是等無量因緣故大衆皆歡喜
【문】만일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이 반야바라밀을 부촉하셨다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아난은 대가섭(大迦葉)과 함께 3장(藏)을 결집(結集)할 때 그 가운데서는 어찌하여 설하지 않았는가?
014_1497_a_18L問曰若佛囑累阿難是般若波羅蜜佛般涅槃後阿難共大迦葉結集三藏此中何以不說
【답】마하연(摩訶衍)은 매우 깊고 믿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행하기도 어렵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실 때에도 여러 비구들은 마하연을 들으면, 믿지도 않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리에서 떠나갔거늘, 하물며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이겠는가. 그러므로 설하지 않은 것이다.
014_1497_a_20L答曰摩訶衍甚深難信難解難行佛在世時諸比丘聞摩訶衍不信不解故從坐而去何況佛般涅槃後以是故不說
014_1497_b_01L또 3장에는 정히 30만의 게송[偈]이 있고 아울러 960만의 말씀[言]으로 되어있지만, 마하연은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없이 무한하다. 마치 이 가운데서의 「반야바라밀품(般若波羅密品)』에도 2만 2천의 게송이 있고 「대반야품(大般若品)」에는 10만의 게송이 있는 것과 같다.
모든 용왕과 아수라왕과 여러 천상의 궁중에는 천억만의 게송 등이 있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모든 하늘과 용과 신은 수명이 길고 의식의 기억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간 사람들은 수명이 짧고 의식의 기억하는 힘이 미약하여 이 작은 「반야바라밀품」조차도 오히려 읽을 수 없거늘 하물며 그보다 더 많은 것이겠는가.
014_1497_a_23L復次三藏正有三十萬偈幷爲九百六十萬言摩訶衍甚多無量無限如此中「般若波羅蜜品」有二萬二千偈「大般若品」有十萬偈諸龍王阿修羅王諸天宮中有千億萬偈等所以者何此諸天神壽命長久識念力强故今此世人壽命短促識念力薄「小般若波羅蜜品」尚不能讀何況多者
그 밖의 다른 큰 보살들이 아는 바의 반야바라밀도 분량이 없고 한계도 없다. 왜냐 하면, 부처님은 비단 한 몸만으로 말씀한 것이 아니요 한량없는 세상 동안에 혹은 수없는 몸으로 변화하셨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그 하신 말씀이 한량없다.
014_1497_b_08L餘大菩薩所知般若波羅蜜無量無何以故佛非但一身所說無量世中或變化作無數身是故所說無量
또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에는 10만의 게송이 있고 『제불본기경(諸佛本起經)』ㆍ『보운경(寶雲經)』ㆍ『대운경(大雲經)』ㆍ『법운경(法雲經)』등에도 각각 10만씩의 게송이 있으며, 『법화경(法華經)』ㆍ『화수경(華手經)』ㆍ『대비경(大悲經)』ㆍ『방편경(方便經)』ㆍ『용왕문경(龍王門經)』ㆍ『아수라왕문경(阿修羅王問經)』 등의 여러 큰 경전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마치 큰 바다 속의 보물과 같거늘, 어떻게 3장 가운데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작은 물건은 큰 데에 들어가지만 큰 물건은 작은 데에 들어갈 수가 없다. 만일 묻고 싶거든 ‘소승은 어찌하여 마하연 가운데에 있지 않는가’라고 해야 한다. 마하연은 소승(小乘)의 법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그대는 그렇게 묻지 말아야 한다.
014_1497_b_11L有『不可思議解脫經』十萬偈『諸佛本起經』『寶雲經』『大雲經』『法雲經』各各十萬偈『法華經』『華手經』『大悲經』『方便經』『龍王問經』『阿修羅王問經』等諸大經無量無邊如大海中寶云何可入三藏中小物應在大中大物不得入小若欲問小乘何以不在摩訶衍中摩訶衍能兼小乘法故是故不應如汝所問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마하가섭 같은 이는 모든 비구들을 데리고 기사굴산(耆闍崛山) 가운데서 3장을 결집하고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문수사리와 미륵 등의 모든 큰 보살들도 역시 아난과 함께 이 마하연을 결집하였다”고 한다.
014_1497_b_19L復次有人言如摩訶迦葉將諸比丘在耆闍崛山中集三藏佛滅度後殊尸利彌勒諸大菩薩亦將阿難集是摩訶衍
014_1497_c_01L또 아난은 중생들이 뜻하는 업(業)의 크고 작은 것을 헤아려 알았으니, 그 때문에 성문들 가운데서 마하연을 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설했었다면, 어수선하고 산란하여 하던 일도 이루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처님 법은 모두가 한 가지요 한 맛이니, 이른바 괴로움이 다하면 해탈하는 맛[苦盡解脫味]이다. 이 해탈하는 맛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맛이요, 또 하나는 온갖 중생들을 아울러 위하는 맛이다. 비록 다 같이 하나의 해탈문을 구한다 하더라도 자기만 이롭게 하는 것과 남까지 이롭게 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나니, 이 때문에 대승ㆍ소승의 차별이 있게 된다. 이 두 가지 사람들을 위하여 부처님 입으로 말씀하신 법을 문자와 언어 두 가지로 나눈 것이니, 3장은 곧 성문의 법이요 마하연은 곧 대승의 법이다.
014_1497_b_23L又阿難知籌量衆生志業大小是故不於聲聞人中說摩訶衍說則錯亂無所成辦佛法皆是一種一味所謂苦盡解脫味此解脫味有二種一者但自爲身二者兼爲一切衆生雖俱求一解脫門而有自利人之異是故有大小乘差別爲是二種人故佛口所說以文字語言分爲二種三藏是聲聞法摩訶衍是大乘
또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3장이라는 이름이 없었고 다만 수다라(修多羅)를 지니는 비구와, 비니(毘尼)를 지니는 비구와, 마다라가(摩多羅迦)8)를 지니는 비구가 있었을 뿐이었다.
‘수다라’란 이 4아함(阿含) 중의 경명(經名)이요 마하연(摩訶衍) 중의 경명이다. 수다라는 두 가지로 분류되나니, 첫째는 4아함 중의 수다라요, 둘째는 마하연의 경을 일컬어 대수다라(大修多羅)라 한다. 두 가지 분류에 들어가면서 대승이기도 하고 또한 소승이기도 한 2백 50계(戒)가 있나니, 이와 같은 것 등을 수다라라 한다.
‘비니(毘尼)’란 비구가 죄를 지으면 부처님께서 계(戒)를 결성하여, “마땅히 이것은 행해야 한다. 마땅히 이것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일을 하면 이런 죄를 얻는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간략하게 말하자면 80부(部)가 있다.
014_1497_c_09L復次佛在世時無有三藏名但有持修多羅比丘持毘尼比丘持摩多羅迦比丘修多羅者是四『阿鋡』中經摩訶衍中經名修多羅有二分四阿含中修多羅二者摩訶衍經名爲大修多羅入二分亦大乘亦小二百五十戒如是等名爲修多毘尼名比丘作罪佛結戒應行是不應行是作是事得是罪略說有八十
또한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첫째는 마투라국(摩偸羅國)의 비니여서 아파타나(阿波陀那)와 본생(本生)을 포함하여 80부가 있으며, 둘째는 계빈국(罽賓國)의 비니여서 본생과 아파타나를 제하고 다만 요긴한 대목만을 추려서 10부로 만든 것이니, 80부 비바사(毘婆沙)의 해석이 있다.
이 때문에 『마하반야바라밀경』 등은 수다라 가운데에 있으되, 경이 크고 일이 특이한 것으로 보아 따로 설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집성한 3장 가운데에는 들어 있지 않다.
014_1497_c_18L亦有二分一者摩偸羅國毘尼阿波陁那本生有八十部二者罽賓國毘泥除卻本生阿波陁那但取要用作十部有八十部毘婆沙解釋是故知『摩訶般若波羅蜜經』等在修多羅經中以經大事異故別說是故不在集三藏中
014_1498_a_01L구마라기바(鳩摩羅耆婆, Kumārajīva) 법사는 진(秦)나라 홍시(弘始) 3년(401) 신축(辛丑) 12월 20일에 장안(長安)에 이르렀고, 4년(402) 여름에 소요원(逍遙園)에 있는 서문각(西門閣)에서 요천왕(姚天王)을 위하여 이 석론(釋論)을 펴내기 시작하여 7년(405) 12월 27일에야 끝마쳤다.
그 동안에도 겸하여 경본(經本)ㆍ선경(禪經)ㆍ계율(戒律)ㆍ백론(百論)ㆍ선법요해(禪法要解) 등을 역출한 것이 50만의 말씀에 달하고, 이 석론과 합치면 1백 50만의 말씀이나 되었다.
014_1498_a_01L究摩羅耆婆法師以秦弘始三年歲在辛丑十二月二十日至長安四年夏於逍遙園中西門閤上爲姚天王出此釋論七年十二月二十七日乃訖其中兼出經本禪經戒律百論禪法要向五十萬言幷此釋論一百五十萬言
초품(初品)을 논하면서 34권을 한 품[一品]으로 해석하되 그것은 경본(經本)의 전부에 걸쳐 논하였으며, 2품(品) 이하는 법사가 요약하여 그 요긴한 대목만을 취하여 그 글의 뜻을 풀이하고 있다. 그 광대한 해석을 다 갖추어 싣지 못하고 이 100권만을 엮었으니, 만일 하나도 빼지 않고 다 펴냈다면 아마 이의 10배가 되리라.
014_1498_a_09L論初品三十四卷釋一品是全論具本二品已下法師略之取其足以開釋文意而已不復備其廣釋得此百卷若盡出之將十倍於此
大智度論卷第一百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어로는 Sugata. 부처님을 가리키는 말로, ‘번뇌를 끊고 마지막 목적지에 훌륭히 도달한 분’이라는 의미이다. 선서(善逝)라고도 한다.
  2. 2)범어로는 Pūrṇa-Maitrāyanīputra. 혹은 부루나미제례야니자경(富樓那彌帝隷耶尼子)라고도 하며, 만원자(滿願子), 만자자(滿慈子) 등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3. 3)범어로는 upāya-kauśalya. 선교방편(善巧方便)을 말한다.
  4. 4)곧, 성문ㆍ연각의 두 지위를 말한다.
  5. 5)범어로는 Sunakaṣatra. 선숙(善宿)이라 하기도 한다.
  6. 6)성문의 4과 중 첫 번째인 예류과(預流果, śrota āpatti-phala)를 얻은 것을 말한다.
  7. 7)금강저(金剛杵, vajrayudha)를 말한다.
  8. 8)범어 mātṛkā의 음사어로, 아비담장(阿毘曇藏, Abhidharma-piṭaka)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