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智度論釋報應品第二

ABC_IT_K0549_T_035
014_0850_b_01L대지도론 제35권
014_0850_b_01L大智度論釋報應品第二卷三十五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014_0850_b_02L聖者龍樹造
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2. 보응품(報應品)을 풀이함

【경】부처님께서 사리불(舍利弗)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능히 이런 공덕을 짓는다면 이때에 사천왕(四天王)이 모두 크게 기뻐하면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이 네 개의 발우를 보살에게 바쳐 올림은 마치 먼저의 천왕들이 먼저의 부처님께 발우를 바치듯 해야 한다.’고 하느니라.”
014_0850_b_04L【經】佛告舍利弗若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能作是功德是時四天王皆大歡喜意念言我等當以四鉢奉上菩薩如前天王奉先佛鉢
【논】【문】전품(前品)의 말씀으로도 이미 완전한데 이제 무엇 때문에 거듭 말씀하는가?
014_0850_b_08L【論】問曰前品說已具今何以重說
【답】먼저는 비록 반야바라밀을 찬탄했다 하더라도 그 일에 완전하지 못하고 들은 이도 만족함이 없었나니, 이 때문에 다시 말씀하신다.
014_0850_b_09L答曰前雖歎般若波羅蜜事未具足聞者無厭是故復說
또 초품(初品)에서는 다만 반야바라밀의 힘만을 찬탄했을 뿐이나 이제는 수행하는 이가 이런 공덕을 지으면 사천왕 등도 환희하며 발우를 바치겠다 하는 것을 찬탄하는 것이다.
014_0850_b_11L復次初品但讚般若波羅蜜力今讚行者能作是功德四天王等歡喜奉鉢
또 보살은 모든 행과 원[行願]을 갖추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위로하고 권하면서 “이런 과보가 있으면 끝내 헛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014_0850_b_13L復次以菩薩能具諸願行佛安慰勸進言有此果報終不虛也
또 반야바라밀에는 두 가지의 과보가 있나니, 첫째는 부처를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고, 둘째는 비록 아직 성불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세간의 과보를 받음이니, 전륜성왕과 제석천왕과 대범천왕은 삼천세계의 주인이 되어서 세간의 복과 쾌락과 공양 받는 일이 모두 다 갖추어진다. 지금은 세간의 과보로써 중생에게 내보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말씀하신다.
014_0850_b_14L復次般若波羅蜜有二種果一者佛度衆生二者雖未成佛受世閒果報——轉輪聖王梵天王主三千世界世閒福樂供養之事悉皆備足今以世閒果報以示衆生故說是事
또 세간에서는 큰 업[大業]을 이루고자 하면 무너뜨리고 어지럽히는 자가 많지만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속의 마음이 이미 안정되고 바깥일에도 역시 응(應)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등의 인연 때문에 이 품(品)을 말씀하신다.
014_0850_b_19L復次世閒欲成大業多有壞亂者菩薩則不然內心旣定外事亦應如是等因故說此品
【문】보살이 6바라밀을 더욱더 해 나갈 때 모든 하늘과 세간의 사람들은 무슨 인연 때문에 기뻐하는가?
014_0850_b_22L問曰菩薩增益六波羅蜜時諸天世人何因緣故喜
014_0850_c_01L【답】모든 하늘은 모두가 10선(善)과 4선(禪)과 4무량(無量)으로 인하여 이러한 모든 공덕을 낳으며, 모두가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다. 만일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게 되면 모든 하늘의 무리들을 더욱 늘리시고 아수라 종족을 줄어들게 하신다.
014_0850_c_01L答曰天皆因十善四禪四無量故生是諸功德皆由諸佛菩薩故有
만일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시지 않으면 아수라 종족은 많아지고 하늘들은 줄어지게 되나니, 뒤섞인 복을 심어서 청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014_0850_c_03L若佛出世增益諸天衆減損阿修羅種若佛不在世阿修羅種多諸天減少以種雜福不淸淨故
만일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신다면 능히 모든 하늘의 의심의 그물을 끊고 큰 일을 이루신다. 마치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목숨을 마치려 할 때 마음에 두려운 생각을 품으면서 부처님께서 자신을 구제해 주기를 구하며 두루 찾았으나 어디에 계시는지 알지 못했다. 비록 출가한 사람이 산과 못의 조용한 곳에서 공양 받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역시 모두가 그의 의심의 그물을 끊지 못했었다.
014_0850_c_06L若諸佛出世能斷諸天疑能成大事如釋提桓因命欲終時心懷怖畏求佛自救遍不知處雖見出家之人山澤閑處所供養者皆亦不能斷其疑網
그때에 비수갈마천(毘首羯摩天)1)이 석제환인에게 말하기를 “시비왕(尸毘王)의 고행(苦行)이 기특하여서 세간에서는 희유(希有)한 일입니다. 모든 지혜 있는 사람이 말하되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부처님이 되신다 합니다.’”고 했으므로, 석제환인은 말하기를 “그런 일이야말로 이루 다 하기 어렵다. 어찌하여 그런 줄 아느냐 하면, 마치 고기 새끼와 암라나무[菴羅樹]2)의 꽃과 발심한 보살과 같은 이 세 가지의 일은 처음 시작할 때의 원인은 많지만 결과를 이룸은 아주 적기 때문이다. 이제 그를 시험해보리라.”고 했다.
014_0850_c_10L爾時毘首羯磨天白釋提桓因言尸毘王苦行奇特世所希有諸智人言是人不久當得作佛釋提桓因言是事難辦何以知之魚子菴羅樹華發心菩薩是三事因時雖多成果甚少今當試之
그리하여 제석천왕 자신은 매로 변화하고 비수갈마천은 비둘기로 변했다. 이 비둘기가 왕에게 뛰어들자 그 왕은 자신의 살을 베어서 매에게 주었고 급기야는 온몸을 저울 위에 올려놓으면서 그 비둘기의 생명을 대신하였으니, 그때에 땅은 진동하였다. 이때에 석제환인 등은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면서 뭇 하늘의 꽃을 뿌렸고 전에 없던 일이라고 찬탄했나니, 이렇게 결단코 큰 마음을 지니면 성불하기가 오래 걸리지 않는다.
014_0850_c_15L帝釋自化爲鷹毘首羯磨化作鴿鴿投於王王自割身肉乃至擧身上稱以代鴿地爲震動是時釋提桓因等心大歡喜散衆天華歎未曾有如是決定大心成佛不久
또 범부의 사람은 육안(肉眼)이요 지혜가 없고 몸을 괴롭히면서 재물을 구하여 그것으로 생활해 가는데, 이들도 보살이 6바라밀을 더욱 늘려 머지않아 성불하게 된다 함을 들으면 오히려 환희하거늘 하물며 모든 하늘이겠는가.
014_0850_c_20L復次凡夫人肉眼有智慧苦身求財以自生活聞菩薩增益六波羅蜜成佛不久猶尚歡喜況諸天
【문】사천왕천(四天王天)과 삼십삼천(三十三天)에는 아수라의 재난이 있지만 그 위의 모든 하늘들에게는 이러한 우환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기뻐하는 것인가?
014_0850_c_23L問曰四天王天三十三天有阿修羅難上諸天等無有此患何以歡喜
014_0851_a_01L【답】그 위의 모든 하늘에는 비록 아수라의 우환은 없다 하더라도 만일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지 않으면 그 천상에 태어나는 이들이 적어지며 설령 태어난다 해도 5욕(欲)이 미묘하지 못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오로지 부정한 복만을 닦기 때문이니, 색계(色界)의 모든 하늘의 궁전과 광명과 수명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851_a_02L答曰上諸天雖無阿修羅患佛不出世生其天上者少設有生者五欲不妙所以者何但修不淨福故色界諸天宮殿光明壽命亦復如是
또 모든 하늘들 가운데서 지혜가 있는 이는 능히 선미(禪味)와 5욕이 모두 다 무상하고 오직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셔야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을 얻게 할 뿐임을 안다. 이 세간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은 모두가 부처님과 보살로 말미암아 얻으니, 이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014_0851_a_05L復次諸天中有智慧者能知禪味欲悉皆無常唯佛出世能令得常樂涅槃以世閒樂涅槃樂皆由佛菩薩是故歡喜
비유하건대 마치 감미로운 과일나무가 무성하게 흐드러지면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는 것과 같다. 나무로써 갖가지 이익이 있게 되니, 곧 그 그늘의 도움을 받는 이도 있고, 그 꽃을 사용하거나 그 열매를 먹는 이도 있기 때문이다.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불선법(不善法)의 그늘을 여읨으로써 3악도의 괴로움을 막고 인간과 하늘에 부귀와 즐거움의 꽃을 주며, 모든 성현들로 하여금 3승(乘)의 열매를 얻게 하나니, 이 때문에 기뻐한다.
014_0851_a_09L譬如甘美果樹茂盛成人大歡喜以樹有種種利益有庇其蔭者有用其華食其果實菩薩亦如是能以離不善法蔭遮三惡苦熱能與人天富樂之華令諸賢聖得三乘之果是故歡喜
【문】모든 하늘은 공양할 일이 많은데 무엇 때문에 발우를 바치는 것인가?
014_0851_a_14L問曰諸天供養事何以奉鉢
【답】사천왕은 발우를 바치고 그 밖의 하늘들은 공양을 한다. 모든 하늘이 공양하는 데에는 저마다 일정한 법이 있다. 마치 부처님께서 처음 탄생하실 때 석제환인은 하늘의 옷으로 부처님의 몸을 받들고, 대법천왕은 몸소 일산을 붙잡으며, 사천왕은 사방[邊]에서 보호하고 정거천(淨居天)의 하늘들은 보살로 하여금 싫어하는 마음을 내게 하려고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 및 사문(沙門)의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되어 있다.
014_0851_a_15L答曰四天王奉鉢餘天供養諸天供養各有定法如佛初生釋提桓因以天衣奉承佛身梵天王躬自執蓋四天王四邊防護淨居諸天欲令菩薩生厭離心故化作老死人及沙門身
또 출가할 때에는 사천왕은 사자(使者)에게 명하여 말의 발을 받쳐 올리도록 하면서 자신들은 4변에서 보살을 모시고 보호하며, 제석천은 머리칼을 가져다 그의 천상에 있는 성(城)의 동문(東門) 바깥에 머리칼의 탑[髮塔]을 세우고 또 보살의 보배 옷을 가져다 성의 남문(南門) 바깥에 옷의 탑[衣塔]을 세우며 부처님께서 보리수(菩提樹) 아래 이르실 때에는 좋은 풀을 받들어 올린다.
014_0851_a_20L又出家時四天王勅使者捧擧馬足自四邊侍護菩薩天帝釋取髮於其天上城東門外立髮塔又持菩薩寶衣於城南門外立衣塔佛至樹下時奉上好草
014_0851_b_01L집금강(執金剛)보살은 항상 금강을 붙잡고 보살을 호위하며, 범천왕은 부처님께 법륜(法輪)을 굴리기를 청하는 등 이렇게 각기 통상하는 법이 있나니, 이 때문에 사천왕은 발우를 바치는 것이다. 네 개의 발우[四鉢]의 이치에 대해서는 먼저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851_b_01L執金剛菩薩常執金剛衛護菩薩梵天王請佛轉法輪如是等各有常法以是故四天王奉鉢四鉢義如先說
【문】부처님은 하나의 몸인데 무엇 때문에 네 개의 발우를 받으시는 것인가?
014_0851_b_04L問曰一身何以受四鉢
【답】사천왕의 힘은 평등하며 치우쳐 한 사람만을 받들 수는 없다. 또 부처님께서 신력으로 네 개의 발우를 포개어 눌러서 하나가 되는 것을 보게 하면 마음으로 기뻐하고 믿음이 청정해지면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보살이 처음 탄생하실 때부터 이제 성불하기기까지 닦았던 공양의 공덕이 헛되지 않구나.”고 할 것이다.
014_0851_b_05L答曰四王力等可偏受又令見佛神力合四鉢爲心喜信淨作是念我等從菩薩初生至今成佛所修供養功德不虛
【문】사천왕의 수명은 5백 세(歲)이고 보살은 한량없는 아승기겁을 지난 뒤에야 성불하게 된다. 지금의 사천왕은 뒷날의 천이 아닐 터인데 어떻게 기뻐한다는 것인가?
014_0851_b_08L四天王壽命五百歲菩薩過無量阿僧祇劫然後成佛今之四天非是後天何以故喜
【답】동일한 성씨[姓]이기 때문이다. 마치 귀한 성바지의 후손들은 백 세(世)를 이어가는데 아주 멀다고 하여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혹은 때로 수행하는 이는 보살이 6바라밀을 더욱 늘려가는 것을 볼 때에 마음으로 원하기를 “이 보살이 성불할 때에 나는 마땅히 발우를 바쳐야겠다.”고 하나니, 이 때문에 그때에 태어나게 된다.
014_0851_b_11L答曰同一姓故譬如貴姓胤流百世不以遠故爲異或時行者見菩薩增益六波羅蜜時心作是願是菩薩成佛時我當奉鉢是故得生
또 사천왕의 수명은 5백 세인데 인간의 50년이 사천왕천에서는 하루의 낮과 밤이다. 30일이면 한 달이고 열두 달이 1년이므로 이렇게 계산하면 그곳의 수명 5백 세는 인간 세상에서 9백만 년이 된다. 보살로서 이런 공덕을 지은 이면 혹시 성불이 가까워질 때 처음에 태어나는 사천왕은 족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014_0851_b_15L復次四天王壽五百歲人閒五十歲爲四天王處一日一夜亦三十日爲一月十二月爲一歲以此歲壽五百歲爲人閒九百萬歲菩薩能作是功德者或近成佛初生四天王可得値
【문】마치 마하연경(摩訶衍經)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어떤 부처님은 기쁨[喜]을 음식으로 삼으며 취식(揣食)을 잡수시지 않는다. 마치 천왕불(天王佛)같은 분은 의복과 위용이 속인[白衣]과 다름이 없었고 발우로 밥을 잡수지도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사천왕은 반드시 발우를 바쳐야 한다.”고 말씀하는가?
014_0851_b_20L問曰如摩訶衍經中說有佛以喜爲食不食揣食如天王佛衣服儀容與白衣無異不須鉢食何以言四天王定應奉鉢
014_0851_c_01L【답】“반드시”라 함은 발우를 이용하신 분을 위한 말씀이요 이용하지 않는 분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는다. 또 발우를 사용하신 부처님이 많으셨고 사용하지 않은 분은 적으셨다. 이 때문에 많은 분들에 준하여 “반드시”라고 한다.
014_0851_b_23L答曰定者爲用鉢者故不說不用復次用鉢諸佛多用鉢者少是故以多爲定
【경】“삼십삼천에서부터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모두 환희하며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마땅히 보살을 모시고 공양하여 아수라의 종족은 줄어들고 모든 하늘은 더욱 불어나게 하리라.’고 하며, 삼천대천세계의 사천왕천에서부터 아가니타천(牙迦尼吒天)에 이르기까지도 모두가 크게 환희하며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장차 이 보살에게 법륜을 굴리기를 청하리라.’고 하느니라.
014_0851_c_02L【經】三十三天乃至他化自在天亦皆歡喜意念言我等當給侍供養菩薩減損阿修羅增益諸天衆三千大千世界四天王天乃至阿迦尼咤天皆大歡喜念言我等當請是菩薩轉法輪
【논】해석한다. 이 모든 하늘들은 꽃과 향ㆍ영락ㆍ예배ㆍ공경ㆍ청법(聽法) 및 찬탄 등으로써 공양하면서 역시 생각하기를 “사람이 청정한 복을 닦으면 아수라의 종족이 줄어들고 삼십삼천이 불어나게 되며 우리의 하늘들도 역시 불어날 것이다.”고 한다.
014_0851_c_07L【論】釋曰是諸天等以華香瓔珞禮拜恭敬聽法讚歎等供養亦作是念人修淨福修羅種減增益三十三天我諸天亦得增益
【문】위의 여섯 가지 하늘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삼천대천세계 안의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환희하며 공양한다.” 하시는가?
014_0851_c_11L問曰上六種天已說何以故更說三千大千世界中乃至阿迦尼咤天歡喜供養
【답】먼저는 하나의 수미산 위의 6천(天)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여기서는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하늘을 말씀하신 것이다. 먼저는 다만 욕계(欲界)만을 말씀하셨고 지금 여기서는 욕계와 색계(色界)의 모든 하늘이 부처님께 법륜을 굴리기를 청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위에서는 비록 정거천의 하늘들이 갖가지로 공양하고 권하는 것을 말씀하셨으나 이번에는 법륜 굴리기를 청하는 일이 보다 크기 때문이다.
014_0851_c_13L答曰先說一須彌山上六天此說三千大千世界諸天但說欲界今此說欲界色界諸天請佛轉法輪上雖說淨居諸天種種供養勸助今請轉法輪事大故
【문】3장(藏) 가운데서는 다만 “범천(梵天)만이 법륜 굴리기를 청하다.”라고 말하는데, 이번에는 무엇 때문에 “사천왕과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를 말씀하시는가?
014_0851_c_17L問曰藏中但說梵天請轉法輪今何以說四天王乃至阿迦尼咤天
【답】욕계의 하늘은 가깝기 때문에 먼저 와 있고 색계는 모두를 범(梵)이라 부르므로 만일 범왕이 부처님께 청한다 하면 이미 그 밖의 다른 하늘도 포함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된다. 또 범(梵)은 색계의 첫 문이 되므로 처음을 설명하면 뒤의 것도 또한 설명하는 것이 된다.
014_0851_c_19L答曰欲界天近故前來色界都名爲梵若說梵王請佛已說餘天又梵爲色界初說初故後亦說
014_0852_a_01L또 중생들은 부처님이 계시거나 계시지 않거나 간에 항상 범천을 알고 있고 범천을 세간의 조부(祖父)라고 여기므로 세간 사람들을 위하여 짐짓 범천이라 설명한 것이다. 법륜의 모양[法輪相]에 대해서는 먼저의 설명과 같다.
014_0851_c_22L復次衆生有佛無佛常識梵天以梵天爲世閒祖父爲世人故說梵天輪相如先說
【경】사리불아, 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6바라밀을 더욱 늘려갈 때에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은 저마다 환희하며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이 사람을 위해 사람과 부모ㆍ처자ㆍ친족이 되고 벗이 되어 주어야겠다.’고 하느니라.
014_0852_a_02L【經】舍利弗是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增益六波羅蜜時諸善男子善女人各各歡喜意念言我等當爲是人作父母妻子親族知識
【논】【문】앞에서 이미 “이런 일을 짓는 공덕”을 말씀하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6바라밀을 더욱더 늘린다.”고 말씀하시는가?
014_0852_a_06L【論】問曰前已說能作是功德今何以復說增益六波羅蜜
【답】먼저는 전체의 모양[總相]을 설명하셨고, 이제는 각각의 모양[別相]을 말씀하신다.
答曰先說摠相今說別相
또 먼저 말씀하신 공덕 가운데전품(前品) 중의 공덕이다. 갖가지요 한량이 없어서 듣는 이가 싫증을 냈지만, 이번에는 다만 간략하게 6바라밀만을 설명하면서 모든 공덕을 모두 다 포섭하게 된다.
014_0852_a_08L復次前所說功德中前品中功德也種種無量者厭惓今但略說六波羅蜜則盡攝諸功德
또 하늘을 위하여 모든 공덕을 설명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짐짓 6바라밀의 늘어남을 설명한다. 어찌하여 그런 줄을 아느냐 하면, 마치 뒤에서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을 설명한 것과 같기 때문이니, 이 때문에 알 수 있다.
014_0852_a_11L復次爲天說故能作諸功德爲人說故增益六波羅蜜何以知之如後說善男子善女人以是故知
【문】사천왕에서부터 아가니타천까지는 무엇 때문에 선천(善天)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인간 안의 선남자와 선여인만을 말씀하는가?
014_0852_a_13L四天王天乃至阿迦尼咤天何以不說善天而但人中說善男子善女
【답】하늘들은 모두가 천안(天眼)과 천이(天耳)와 타심지(他心智)가 있어서 보살을 공양할 줄을 알기 때문에 따로 그의 선함[善]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육안(肉眼)으로써 보는지라 아는 것이 없다. 선하다 함은 공양할 줄을 잘 아는 것이요 그런 이가 적기 때문에 따로 선한 이[善者]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한 이는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 혹은 제자인 보살로부터 들으며, 혹은 “장차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기별을 받게 된다. 또는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찬탄하시는 말씀을 듣기 때문에 선을 닦게 되는 것이다.
014_0852_a_16L答曰諸天皆有天眼天耳他心智知供養菩薩故不別說其善人以肉眼見無知善者能知供養以少故別說善者善者從佛聞法或從弟子菩薩或聞受記當作佛又聞佛讚歎其名者故知修善
【문】무엇 때문에 남자와 여자만의 선을 말씀하시고 남녀 이근(二根)과 근이 없는[無根] 이의 선을 말씀하시지 않는가?
014_0852_a_21L問曰何以但說男子女人善不說二根無根者善
014_0852_b_01L【답】근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도를 얻을 수 없는 몸매이니, 이 때문에 말씀하지 않는다. 마치 비니(毘尼) 중에서와 같아서 출가할 수가 없다. 그는 남녀의 특징을 상실한 까닭에 그 마음이 일정하지 않고, 조그마한 인연으로써도 성을 내고 번뇌가 많기 때문에 세상 일에 집착하며, 의심의 그물을 많이 품고 도법(道法)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조그마한 복된 일을 닦는다 하더라도 지혜가 천박해 본래 성품[本性]에 깊이 들어가서 바꾸어질 수 없나니, 이 때문에 말씀하지 않는다.
014_0852_a_22L答曰所謂無得道相是故不說如毘尼中不得出家以其失男女相故其心不定以小因緣故便瞋結使多故於世事多懷疑網不樂道法雖能少修福事智慧淺薄不能深入本性轉是故不說
성문의 법에서는 이렇게 설명하지만 마하연 안에서는 마치 큰 바다가 포용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과 같아서 이 근이 없는 사람도 혹시 선을 닦기는 하나 다만 적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른바 적다 함은 남자 여자 가운데서 이런 사람은 극히 적은 데다 이런 사람으로서 선을 닦는 이도 적다. 비유하건대 마치 피부가 흰 사람이 비록 수염과 머리칼과 점이 검다 하더라도 흑인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014_0852_b_05L聲聞法如是說摩訶衍譬如大海無所不容是無根人或時修善但以少故不說所謂少者男女中是人最少是人修善者少如白人雖復鬚髮黶子黑不名黑人
남녀 이근의 사람은 번뇌가 많고 뒤섞여서 남자의 일을 행하기도 하고 여자의 일을 행하기도 하며 그 마음이 삿되고 굽어서 구제하기가 어렵다. 마치 빽빽하게 들어선 숲에서 나무를 끌어낼 때 굽은 것은 내오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014_0852_b_09L根人結使多雜亦行男事亦行女事其心邪曲難可勉濟譬如稠林曳木曲者難出
또 마치 아수라는 그 마음이 단정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부처님을 의심하면서 부처님은 하늘들만 돕는다고 여기므로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5중(衆)을 말씀하면 “6중이 있는데도 그 한 가지는 말씀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만일 4제(諦)를 말씀하시면 “다섯 가지의 진리가 있는데도 한 가지 진리는 말씀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이 남녀 이근도 역시 이와 같아서 마음이 대부분 삿되고 굽어서 도를 얻을 수 없기에 적합지 못하다. 이 때문에 다만 남자와 여인 가운데 선한 이만을 말씀하신다.
014_0852_b_12L又如阿修羅其心不端故常疑於佛謂佛助天佛爲說五衆有六衆不爲說一若說四諦謂有五不說一事二根人亦如是心多邪曲故不任得道以是故但說男子人中善者
선한 모양[善相]이라 함은 자비로운 마음이 있으면서 능히 거친 욕설을 참는 것이다. 법구매품(法句罵品) 중에서의 설명과 같으니, 능히 거친 욕설을 능히 참는 사람은 바로 인간 안에서 으뜸가는 이로, 마치 좋은 말은 왕이 타기에 알맞은 것과 같다.
014_0852_b_17L善相者有慈悲心能忍惡如『法句ㆍ罵品』中說能忍惡罵人名人中上譬如好良馬可中爲王乘
또 다섯 가지의 삿된 말이나 매질, 때리고 해하고 속박하는 것 등으로 그의 마음을 무너뜨릴 수가 없나니, 이것을 선한 모양이라 한다.
014_0852_b_19L復次以五種邪語及鞭杖打害縛繫等不能毀壞其心是名爲善相
014_0852_c_01L또 세 가지의 업[三業]에 과실이 없고 선한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이의 선한 일을 헐뜯지 않고 자기의 덕을 드러내지 않으며, 뭇 사람들을 따르면서 다른 이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 세간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고, 명예를 구하지도 않으며, 도덕의 즐거움을 믿고 좋아한다. 스스로 업이 청정하고, 중생을 괴롭히지 않으며, 마음으로 진실한 법을 귀히 여기고 세간 일을 가벼이 여긴다. 오직 정직과 신의만을 좋아하면서 다른 이의 속임수를 따르지 않고 온갖 중생에게 즐거움을 얻게 하기 위하여 자기의 즐거움은 버리며, 온갖 중생들이 괴로움을 여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몸으로 그들을 대신하니, 이러한 한량없는 것을 일컬어 선인의 모양[善人相]이라 한다. 이런 모양은 대개가 남자와 여인에게 있기 때문에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이라고 말씀하신다.
014_0852_b_21L復次三業無失樂於善人不毀他善不顯己德隨順衆人不說他過不著世樂不求名譽信樂道德之樂自業淸淨不惱衆生心貴實法輕賤世事唯好直信不隨他誑爲一切衆生得樂故自捨己樂令一切衆生得離苦故身代之如是等無量名爲善人相相多在男故說善男子善女人
【문】선남자와 선여인은 무슨 인연 때문에 이러한 서원을 세우는 것인가?
014_0852_c_06L善男子善女人何因能作是願
【답】선남자와 선여인은 스스로가 박복하고 지혜가 적은 것을 아는지라 보살에게 가까이하면서 제도되기를 바라는 것이니, 비유하건대 마치 물속에 가라앉는 돌이 비록 무겁다 하더라도 배에 의지하여 건너게 되는 것과 같다.
014_0852_c_07L善男子善女人自知福薄智慧尟習近菩薩欲求過度譬如沈石雖依船得度
또 선남자와 선여인은 보살이 한 세상 또는 두 세상만으로 도를 이룰 수도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세상 동안에 생사(生死)를 왕래함을 듣고 곧 생각하기를 “우리는 마땅히 그 분과 인연이 되어야겠다.”고 하는 것이다.
014_0852_c_10L又善男子善女人聞菩薩不從一世二世而得成道無央數世往來生死便作是念我當與爲因
또 보살은 쌓은 복덕이 두텁기 때문에 살고 있는 데마다 중생들이 모두 와서 그 보살을 공경하고 우러르나니, 이익을 입음이 중하기 때문이다. 만일 보살이 수명을 버린 것을 보면 원하기를 “나는 마땅히 보살을 위하여 부모나 처자 권속이 되어야겠다.”고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선인(善人)을 가까이하면 공덕이 더욱 불어나는 줄을 알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뭇 향을 쌓아 모으면 향기가 더욱더 많은 것과 같다.
014_0852_c_13L復次菩薩積德厚故在所生處生皆來敬仰菩薩以蒙利益重故見菩薩捨壽則生是願我當與菩薩作父母妻子眷屬所以者何知習近善人增益功德故譬如積集衆香氣轉多
보살은 전생에 국왕의 태자로 있을 때 염부제 사람들이 빈궁한 것을 보고는 여의주(如意珠)를 구하고자 큰 바다로 들어가서 용왕이 있는 용궁에 이르렀다. 용왕은 태자의 위덕이 수묘(殊妙)한 것을 보고 이내 일어나 맞이했다. 그리고는 그의 앞에 공양하면서 그에게 묻기를 “어떻게 이리 멀리 오셨습니까?”고 했다. 태자는 대답하기를 “나는 염부제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어 여의주를 구하여 그들을 이롭게 하고자 합니다.”고 하자, 용왕은 말하기를 “나의 궁전에 머무르면서 한 달 동안 공양을 받는다면 여의주를 드리겠습니다.”고 했다.
014_0852_c_18L如菩薩先世爲國王太子閻浮提人貧窮欲求如意珠入於大至龍王宮龍見太子威德殊妙起迎逆延前供養而問之言何能遠太子答曰我憐閻浮提衆生故求如意寶珠以饒益之龍言能住我受供一月當以相與
014_0853_a_01L태자는 곧 한 달 동안 머무르면서 용왕을 위하여 다문(多聞)을 찬탄하니 곧 용왕은 여의주를 주었는데, 그 여의주는 1유순(由旬)까지 보배 비를 내릴 수 있었다. 용왕은 말하기를 “태자께서는 몸매가 있으시고 머지않아 부처님이 되실 것이니, 나는 다문 제일의 제자가 되겠습니다.”고 했다.
014_0853_a_01L太子卽住一爲龍王讚歎多聞龍卽與珠是如意珠能雨一由旬龍言太子有相久作佛我當作多聞第一弟子
이때 태자는 다시 다른 한 용궁에 이르러서 2유순까지 보배 비를 내리게 하는 여의주를 얻었는데 거기에서 두 달 동안 신통의 힘[神通力]을 찬탄했다. 그 용왕은 말하기를 “태자는 머지않아서 부처님이 되실 것이니, 나는 신족(神足) 제일의 제자가 되겠습니다.”고 했다.
014_0853_a_04L子復至一龍宮得珠雨二由旬二月讚歎神通力龍言太子作佛不久當作神足第一弟子
다시 다른 한 용궁에 이르러서 3유순까지 보배 비를 내리게 하는 여의주를 얻었는데 거기에서는 석 달 동안 지혜(智慧)를 찬탄했다. 그 용왕은 말하기를 “태자는 머지않아서 부처님이 되실 것이니, 나는 지혜 제일의 제자가 되겠습니다.”고 했다.
014_0853_a_07L復至一龍宮得雨三由旬三月讚歎智慧龍言子作佛不久我當作智慧第一弟子
모든 용왕들은 여의주를 주면서 말하기를 “당신이 수명을 다하시면 여의주는 도로 돌려 주셔야 합니다.”고 했으므로 보살은 그렇게 할 것을 허락했다. 태자는 여의주를 얻은 뒤에 염부제로 돌아와서는 하나의 여의주로는 음식의 비를 내리고, 하나의 여의주로는 의복의 비를 내렸으며, 하나의 여의주로는 7보(寶)의 비를 내려 중생들을 이익되게 했다.
014_0853_a_09L諸龍與珠已言盡汝壽命珠當還我菩薩許之太子得珠至閻浮提一珠能雨飮食一珠能雨衣服一珠能雨七寶利益衆生
또한 수마제(須摩提)보살 같은 분은 연등불(然燈佛)을 뵙고자 하면서 수라사(須羅娑) 여인으로부터 다섯 송이의 꽃을 사려고 했으나 주지 않았다. 5백의 금전으로 다섯 송이 꽃을 사려 하는데도 여인은 주지 않으면서 그에게 요구하기를 “제가 세상마다 당신의 아내가 되는 것을 허락하시면 꽃을 드리겠습니다.”고 했으므로 보살은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하여 곧 그의 원을 허락했다.
014_0853_a_13L又如須摩提菩薩燃燈佛從須羅娑女買五莖花不肯與之卽以五百金錢得五莖花女猶不與而要之言願我世世常爲君妻當以相與菩薩以供養佛故卽便許
또 묘광(妙光)보살이 있었는데, 어느 장자의 딸이 그 보살의 몸에 28상(相)이 있는 것을 보고서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며 문 아래에 머물고 있었다. 보살이 때마침 도달하자 그 여인은 곧 목에 걸고 있는 유리주(琉璃珠)를 풀어서 보살의 발우 안에 넣으면서 마음으로 서원하기를 “나는 세상마다 이 사람의 부인이 되리라.”고 했다.
014_0853_a_18L又妙光菩薩長者女見其身有二十八相生愛敬心住在門下菩薩旣女卽解頸琉璃珠著菩薩鉢中作是願我當世世爲此人婦
그리고 이 여인은 250겁 동안 모든 공덕을 쌓은 뒤에 희견(喜見)이라는 음녀(婬女)의 동산 안에 있는 연꽃 속에서 태어났다. 희견은 그 아이를 보고 데려다 기르면서 딸로 삼았으며 그의 나이 14세가 되자 여인으로서의 세상 지혜를 다 공부해서 모두 다 갖추지 않음이 없었다.
014_0853_a_21L此女二百五十劫中集諸功德後生喜見婬女園蓮花中喜見養育爲女至年十女工世智皆悉備足
014_0853_b_01L그때에 염부제에는 재주(財主)라는 왕이 있었다. 태자의 이름은 덕주(德主)라 했는데 큰 자비심이 있었다. 그는 이때 성(城)을 나가서 동산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자 모든 음녀들은 인도하면서 덕주를 노래로 찬양하자 태자가 모든 보물의 배와 의복과 음식을 뿌렸으니, 마치 용이 비를 내리면서 두루 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았다.
014_0853_b_01L爾時有閻浮提王名爲財主太子名德主有大悲時出城入園遊觀諸婬女等導引歌讚德主太子散諸寶物衣服飮食譬如龍雨無不周遍
희덕(喜德) 여인은 태자를 보고 스스로 게송을 지어 태자를 찬탄하면서 사랑하는 눈으로 잠시도 깜작이지 않고 그를 바라보며 말하기를 “저는 세간의 일을 모두 다 압니다. 저는 이 몸으로 태자를 받들어 모시겠습니다.”고 했다.
014_0853_b_05L喜德女見太子自造歌偈而讚太子愛眼視之目未曾眴而自發言世閒之事我悉知之以我此身奉給太子
그러자 태자는 묻기를 “당신은 누군가에게 딸려 있는지요? 만일 딸린 데가 있으면 나에게는 적합하지 않습니다.”고 했다.
014_0853_b_08L太子問言汝爲屬誰若有所屬此非我宜
그때 희견 음녀는 태자에게 대답하기를 “나의 딸은 생년월일과 시(時)가 모두 태자와 똑같습니다. 이 딸은 저의 배에서 낳은 것이 아니고 내가 이른 새벽에 동산에 들어갔다가 연꽃 속에 이 여자아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데려다 길러서 딸로 삼은 것입니다. 저 때문에 이 딸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 딸은 64태(態)를 모두 갖추지 않음이 없고 여공(女工)ㆍ기술(技術)ㆍ경서(經書)ㆍ의방(醫方) 등을 모두 다 환히 통달했으며, 항상 부끄러움[慚愧]을 품고 속마음이 충직(忠直)하며 질투가 없고 삿된 음행의 생각이 없습니다. 나의 딸의 복과 위용이 이러하므로 태자는 반드시 그녀를 거두셔야만 하십니다.”고 했다.
014_0853_b_09L爾時喜見婬女答太子言我女生年日月時節皆與太子同此女非我腹生我晨朝入園見蓮花中有此女生我因養育畜以爲女無以我故而輕此女此女六十四能無不悉備女工技術經書醫方皆悉了達常懷慚愧內心忠直無有嫉妒無邪婬想我女德儀如是太子必應納之
덕주 태자는 희덕 여인에게 대답하기를 “누이여,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보살의 도를 닦고 있으니 사랑하거나 아끼는 일이 없습니다. 나라와 재물과 처자와 코끼리ㆍ말이며 7보(寶) 등을 구하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으며, 또 당신이 낳은 아들ㆍ딸이나 그리고 당신의 몸조차도 어떤 사람이 구하기만 하면 그에게 보시할 것이니, 근심하거나 후회하지 마셔야 합니다. 언젠가는 당신을 버리고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서 산중에서 깨끗이 살기도 할 것이니, 당신은 역시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고 했다.
014_0853_b_17L德主太子答語女言我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菩薩道無所愛惜國財妻子象馬七有所求索不逆人意若汝生男女及以汝身有人求者當以施之莫生憂悔或時捨汝出家爲佛弟子淨居山藪汝亦勿愁
014_0853_c_01L그러자, 희덕 여인은 대답하기를 “가령 지옥의 불이 와서 저의 몸을 태워 없앤다 해도 나의 몸은 끝내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음욕이나 희락 때문에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권하고 돕기 위하여 정사(正士)를 받들어 섬기려는 것입니다.”고 했다.
014_0853_b_23L喜德女答言假令地獄火來燒滅我身終亦不悔我亦不爲婬欲戲樂故而以相好我爲勸助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奉事正士
그리고는 또 태자에게 아뢰기를 “나는 어젯밤 꿈에 묘일신 부처님[妙日新佛]께서 도수(道樹) 아래 앉아 계신 것을 보았으니, 함께 가서 부처님을 친견하십시다.”고 했다. 태자는 여인의 단정한 것을 보았고 또 부처님께서 출현하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 두 가지의 인연 때문에 같이 한 수레를 타고 함께 부처님께로 나아갔다.
014_0853_c_03L女又白太子言我昨夜夢見妙日身坐道樹下可往觀之太子見女端又聞佛出以此二因緣故共載一俱詣佛所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니, 태자는 한량없는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었고 여인은 마음과 뜻을 다스리게 되었다. 태자는 그때에 5백의 보배꽃을 부처님께 공양하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했다.
014_0853_c_07L佛爲說法太子得無量陁羅尼門女得調伏心志太子爾以五百寶花供養於佛以求阿耨多羅三藐三菩提
태자는 그의 부왕(父王)에게 아뢰기를 “저는 묘일신부처님을 뵈옵고 아주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고 하자, 부왕은 그 말을 듣고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을 버리어 태자에게 주고는 그의 관속이며 나라 안의 인민들을 데리고 함께 부처님께로 나아갔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니, 왕은 온갖 법의 어둠 없는 등불이라는 다라니[無闇燈陀羅尼]를 얻었다.
014_0853_c_10L太子白父王言得見妙日身佛大得善利父王聞已捨所愛重之物以與太子與其官屬國內人民俱詣佛所佛爲說法王得一切法無闇燈陁羅尼
이때 왕은 생각하기를 ‘속인의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5욕(欲)을 누리면서는 도를 얻을 수 없겠구나.’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한 뒤에 덕주 태자를 세워 왕이 되게 하고는 출가하여 도를 구했다.
014_0853_c_14L時王思惟可以白衣法攝治國土受於五欲而可得道作是思惟已立德主太子爲出家求道
이때 태자는 그 달의 15일에 여섯 가지 보배[六寶]가 와서 응하고 희덕 부인은 변하여 보녀(寶女)가 되었으니, 『불가사의경(不可思議經)』 안의 자세한 설명과 같다.
014_0853_c_17L是時太子於月十五日六寶來應喜德妻變爲寶女如『不可思議經』中廣說如是等因緣
이와 같은 등의 인연 때문에 선남자와 선여인은 세상마다 보살의 부모와 처자며 권속이 되기를 원하는 줄 알 것이다.
014_0853_c_19L故知善男子善女人世世願爲菩薩父母眷屬
014_0854_a_01L【경】이때 사천왕에서부터 아가니타천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크게 환희하며 저마다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방편을 지어서 이 보살로 하여금 음욕을 여의게 하여 처음 발심할 때부터 항상 동진(童眞)이 되게 하고, 색욕(色欲)과는 함께 접촉하지 못하게 하리라. 설령 5욕을 받아도 범천(梵天)에 나는 데에 장애가 되거늘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랴.”고 하느니라. 이 때문에 사리불아, 보살마하살로서 음욕을 끊고 출가한 이는 응당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지만, 음욕을 끊지 못한 자는 그렇지 않느니라.
014_0853_c_21L【經】爾時四天王乃至阿迦尼咤天皆大歡喜各自念言我等當作方便令是菩薩離於婬欲從初發意常作童眞莫使與色欲共會若受五欲障生梵何況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是舍利弗菩薩摩訶薩斷婬欲出家應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非不斷
【논】【문】모든 하늘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서원을 세우는가?
【論】問曰諸天何以作是願
【답】세간 안에서는 5욕이 제일이어서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고, 5욕 중에서도 접촉[觸]이 제일이어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얽어맨다. 마치 사람이 깊은 진창에 빠지면 건져내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모든 하늘은 방편으로써 보살로 하여금 음욕을 멀리 여의게 하는 것이다.
014_0854_a_06L答曰世閒中有五欲第一無不愛樂於五欲中觸爲第一能繫人心如人墮在深泥難可拯濟以是故諸天方便令菩薩遠離婬欲
또 만일 그 밖의 욕락을 받는다면 오히려 지혜는 잃지 않겠지만 이 음욕과 접촉할 때는 몸과 마음이 어리둥절하고 갈피를 잡지 못해서[慌迷] 정신차리지도 못하고 깊이 애착하면서 스스로 빠져 들어간다. 이 때문에 모든 하늘은 보살로 하여금 그것을 여의게 하는 것이다.
014_0854_a_10L復次若受餘欲猶不失智婬欲會時身心慌迷無所省覺著自沒以是故諸天令菩薩離之
【문】어떻게 하면서 여의게 하는가?
014_0854_a_12L云何令離
【답】마치 석가모니보살이 정반왕(淨飯王)의 궁전에 있을 때 성을 나가 구경[遊觀]하려고 하자 정거천(淨居天)의 하늘들이 늙고 병들고 죽은 사람들로 변화해 그의 마음에 싫증이 나게 하고, 또한 밤중에 모든 궁인(宮人)들과 기직(妓直)들은 부정하고 추한 모습을 드러내며 눈물 콧물을 흘리고 똥오줌에 질퍽한 것을 보고 보살로 하여금 더럽다고 싫증을 내게 하며, 때로는 모든 하늘들이 여인으로 하여금 나쁜 마음과 투기로 은덕을 모른 채 거친 말과 속임수를 쓰며 성찰(省察)하는 바가 없게도 한 일과 같다. 보살은 그런 일을 보고 나서 생각하기를 ‘몸은 비록 사람과 비슷하나 그 마음은 싫어할 만하구나.’고 하고 곧 그들을 버리게 했다.
014_0854_a_13L答曰如釋迦文菩薩淨飯王宮欲出城遊觀淨居諸天化爲老死人令其心厭又令夜半見諸宮人妓直惡露不淨涕唾流涎尿塗漫菩薩見已卽便穢厭或時諸天令女人惡心妒忌不識恩德惡口欺誑無所省察菩薩見已卽生念言身雖似人其心可惡卽便捨之
014_0854_b_01L그리고는 보살로 하여금 처음 발심해서부터 언제나 동진(童眞)이 되게 하려고 색욕과는 함께 만나지조차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음욕은 모든 결(結)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차라리 날카로운 칼로써 몸을 베고 자를지언정 여인과는 함께 만나지 말라. 칼로 베면 괴롭기는 하더라도 악취(惡趣)에는 떨어지지 않지만 음욕의 인연은 한량없는 겁 동안 지옥의 고통을 받게 된다. 사람이 5욕을 받으면 범세(梵世)에조차도 나지 못하는데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겠는가.” 하셨다.
014_0854_a_20L欲使菩薩從初發心常作童眞行不與色欲共會何以故婬欲爲諸結之本寧以利刀割截身體不與女人共刀截雖苦不墮惡趣婬欲因緣無量劫數受地獄苦人受五欲尚不生梵世何況阿耨多羅三藐三菩提
혹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보살은 비록 5욕을 받는다하더라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도에는 방해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이 때문에 경에서는 말씀하되 “5욕을 받으면 오히려 범세에조차도 나지 못한다.”고 하신 것이다.
014_0854_b_03L或有人言菩薩雖受五欲心不著故不妨於道以是故經言受五欲尚不生梵世
범세는 무시이래의 중생 모두가 그 안에 가 날수 있지만 5욕을 받는 이면 오히려 얻을 수 있는 데인데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겠는가. 본래 얻을 수 없음에도 얻으려 하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마땅히 동진(童眞)이 되어야 한다.
014_0854_b_06L梵世無始衆生皆得生中五欲者尚所應得而不得之何況阿耨多羅三藐三菩提本所不得而欲得之以是故菩薩應作童眞修行梵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범행(梵行)을 수행하면 당연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범행의 보살은 세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속히 보살의 도를 이루게 되지만 만일 음욕을 행한 이면 마치 아교와 칠이 달라붙어 떨어지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그것은 왜냐하면, 몸이 욕락을 받아서 음욕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출가한 이의 법 중에는 음계(婬戒)가 처음에 있으며 또한 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014_0854_b_10L梵行菩薩不著世閒故速成菩薩道若婬欲者譬如膠漆難可得離所以者何身受欲樂婬欲根深是故出家法中婬戒在初又亦爲重
【경】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에게 반드시 부모ㆍ처자와 친족이며 아는 이가 있어야 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보살은 부모ㆍ처자ㆍ친족과 아는 이가 있기도 하고, 어떤 보살은 처음 발심해서부터 음욕을 끊고 동진의 행을 닦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에 이르기까지 색욕을 범하지 않기도 하며, 어떤 보살은 방편의 힘 때문에 5욕을 받은 뒤에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도 하느니라.”
014_0854_b_14L【經】舍利弗白佛言世尊菩薩摩訶薩要當有父母妻子親族知識耶佛告舍利弗或有菩薩有父母妻子親族知識或有菩薩從初發意斷婬欲童眞行乃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不犯色欲或有菩薩方便力故五欲已出家得阿耨多羅三藐三菩
【논】해석한다. 이 세 가지의 보살이란, 첫째는 세간 사람과 같이 5욕을 받다가 뒤에 버리고 출가하여 보리의 도[菩提道]를 얻는 사람이다.
014_0854_b_22L【論】釋曰是三種菩薩初者如世閒人受五欲後捨離出家得菩提道
014_0854_c_01L 둘째는 큰 공덕이 견고하여 처음 발심할 때 음욕을 끊고 또한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기에 이른 사람이니, 이 보살은 혹은 법신(法身)이기도 하고 혹은 육신이기도 하며 혹은 욕망을 여의기도 하고 혹은 아직 욕망을 여의지 않기도 한다.
014_0854_b_23L二者大功德牢固初發心時斷於婬欲至成佛道是菩薩或法身或肉身或離或未離欲
셋째는 청정한 법신 보살로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 6신통(神通)에 머물러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들과 더불어 일을 같이하며 그들을 거두어 주는 이이니, 혹은 전륜성왕이 되기도 하고 혹은 염부제의 왕ㆍ장자ㆍ찰리가 되기도 하여 그들이 필요한 바에 따라 이익되게 한다.
014_0854_c_03L三者淸淨法身菩薩無生法忍住六神通爲敎化衆生故與衆生同事而攝取之或作轉輪聖或作閻浮提王長者剎利隨其所須而利益之
【경】“비유하건대 마치 환술사나 환술사의 제자가 환술의 법을 잘 알므로 환술로써 5욕을 만들어서는 그 안에서 즐기는 것과 같으니라.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은 이 5욕을 실제로 받고 있는 것이더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014_0854_c_07L【經】譬如幻師若幻弟子知幻法幻作五欲於中共相娛樂汝意云何是人於此五欲頗實受不舍利弗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방편의 힘으로써 변화로 5욕을 만들어 그 가운데에서 즐거움을 받느니라. 중생을 성취하는 일도 역시 그와 같으니, 이 보살마하살은 욕망에 물들지 않은 채 갖가지 인연으로 5욕을 헐뜯으면서 ‘욕망은 활활 타는 불이고, 욕망은 더럽고 악하며, 욕망은 헐어부서지며, 욕망은 마치 원수와 같다.’고 여기느니라.
이 때문에 사리불아,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5욕을 받는 줄 알아야 하느니라.”
014_0854_c_10L佛告舍利弗薩摩訶薩以方便力故化作五欲中受樂成就衆生亦復如是是菩薩摩訶薩不染於欲種種因緣毀訾五欲爲熾然欲爲穢惡欲爲毀壞爲如怨是故舍利弗當知菩薩爲衆生故受五欲
【논】【문】세 가지의 보살 중에서 무엇 때문에 유독 한 가지의 보살만을 위하여 비유를 드셨는가?
014_0854_c_16L【論】問曰三種菩薩中何以獨爲一種菩薩作譬喩
【답】첫째는 마치 인간의 법과 같아서 음욕을 끊지 않는 이고, 둘째는 항상 음욕을 끊고 청정한 행을 닦는 이이며, 셋째는 역시 청정한 행을 닦으면서도 음욕을 누리는 일을 나타내는 이이다. 사람들이 분명히 모르기 때문에 비유를 든 것이다.
014_0854_c_17L答曰一者人法不斷婬欲二者常斷婬欲修於淨行三者亦修淨行現受婬欲——以人不了故爲作譬喩
【문】무엇 때문에 꿈이나 허깨비 등으로 비유하지 않으시는가?
014_0854_c_20L問曰何以不以夢化等爲喩
【답】꿈은 5정(情)으로 아는 바가 아니요 마음속으로 기억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사람이 5정으로 보는 것은 변하고 상실하고 무상한지라 알 수 있는 것이다. 허깨비는 비록 5정으로 아는 바라 하더라도 보는 이들이 아주 적다.
014_0854_c_21L答曰夢非五情所知但內心憶想故生人以五情所見變失無可以得解化雖五情所知而見者甚少
014_0855_a_01L부처님은 제도해야 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그런 비유를 들으시니, 환술은 바로 뭇 사람들이 믿는 바라 이 때문에 비유를 드신 것이다. 마치 환술사가 환술로써 뭇 사람 가운데서 희유한 일을 나타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듯이 보살의 환술도 그와 같아서 5신통의 재주로써 중생들 가운데서 변화로 5욕을 만들어 함께 서로 즐기며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것이다.
014_0855_a_01L佛爲度可度衆生幻是衆人所是故爲喩如幻師以幻術故於衆人中現希有事令人歡喜菩薩幻師亦如是以五神通術故於衆生中化作五欲共相娛樂化度衆生
중생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집에 있는[在家] 자와 집을 떠나 출가한 자이다. 출가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성문과 벽지불과 부처님과 모든 출가한 외도의 스승[外道師]을 드러낸다. 재가의 중생은 혹은 출가한 이를 보고 제도되기도 하며, 혹은 재가자와 똑같이 5욕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교화되고 제도되기도 한다.
014_0855_a_05L衆生有二種在家出家爲度出家衆生故作聲聞辟支佛佛及諸出家外道師在家衆生或有見出家者得度或有見在家同受五欲而可化度
보살은 항상 갖가지의 인연으로 5욕을 헐뜯으면서 5욕은 활활 타는 불이라 한다 했는데, 만일 아직 잃지 못했을 때는 3독(毒)의 불이 활활 타고, 만일 그것을 잃었을 때는 무상(無常)의 불이 활활 타는 것이니, 이 두 가지의 불이 타기 때문에 활활 탄다고 하며 도무지 즐거울 때가 없다.
014_0855_a_09L菩薩常以種種因緣毀訾五欲欲爲熾然若未失時三毒火然若其失時無常火然二火然故名爲熾然都無樂時
욕망은 더럽고 악하다 함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아라한 등의 모든 욕망을 여읜 이가 모두 더럽고 천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은 개가 똥을 먹는 것을 보고는 천하게 여기고 가엾이 여기는 것과 같다. 좋은 음식을 얻지 못한지라 저 부정(不淨)한 것을 먹고 있으니, 5욕을 받는 사람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마음속에 욕망을 여읜 즐거움을 얻지 못한지라 색욕의 부정한 데서 쾌락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014_0855_a_12L欲爲穢惡諸佛菩薩阿羅漢等離欲者皆所穢賤譬如人見狗食糞賤而愍之不得好食而噉不淨受欲之人亦復如是不得內心離欲之樂而於色欲不淨求樂
욕망을 헐어 무너뜨린다 함은, 5욕의 인연에 집착한 까닭에 천왕(天王)이나 인간의 왕이나 또는 모든 부귀한 자가 나라를 망치고 몸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니, 이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 없다.
014_0855_a_17L欲爲毀壞五欲因緣故天王人王諸富貴者危身無不由之
욕망은 마치 원수와 같다 함은, 사람의 좋은 이익을 잃게 하는 것은 마치 자객(刺客)이 겉으로는 친하고 착한 척하면서 내심으로는 해를 품는 것과 같다. 5욕도 그와 같아서 착한 마음을 상실하고 사람의 지혜 목숨[壽命]을 빼앗아 버리나니, 5욕이 생기는 것은 바로 뭇 선행을 파괴하고 덕(德)의 업을 부수기 위하여 나오기 때문이다.
014_0855_a_19L欲如怨失人善亦如刺客外如親善內心懷害欲如是喪失善心奪人慧命五欲之正爲破壞衆善毀敗德業故出
014_0855_b_01L또 5욕은 마치 갈고리가 고기를 죽이는 것과 같고, 마치 창이 사슴을 해치는 것 같으며, 마치 등불이 불나방을 태우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욕망은 마치 원수와 같은 줄 아는 것이다. 원수의 해는 한 세상만으로 그치지만 5욕을 집착하는 인연은 3악도(惡道)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세상 동안 모든 고통을 받는 것이다.
014_0855_a_22L知五欲如鉤賊魚如弶害鹿如燈焚是故說欲如怨怨家之害不過一著五欲因緣墮三惡道無量世受諸苦毒
【경】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반야바라밀을 행해야 하는지요?”
014_0855_b_03L【經】舍利弗白佛言菩薩摩訶薩云何應行般若波羅蜜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보살을 보지 못하고, 보살의 이름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하느니라. 내[我]가 반야바라밀을 행함을 보지 못하고 또한 내[我]가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음도 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과 보살이란 이름의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014_0855_b_05L佛告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見菩薩見菩薩字不見般若波羅蜜亦不見我行般若波羅蜜亦不見我不行般若波羅蜜何以故菩薩菩薩字性空
공한 가운데서는 물질[色]이 없고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도 없으며, 물질을 여의고도 공함이 없고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을 여의고도 또한 공함이 없나니, 공이 곧 물질이요 물질이 곧 공이며, 공이 곧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요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이 곧 공이니라.
014_0855_b_09L空中無色無受離色亦無空離受識亦無空空卽是色色卽是空空卽是受識卽是空
왜냐하면 사리불아,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보리라 할 뿐이요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 할 뿐이며, 다만 이름이 있기 때문에 공이라 할 뿐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모든 법의 진실한 성품[實性]은 생함도 없고 멸함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기 때문이니라.
014_0855_b_13L何以故舍利弗但有名字故謂爲菩提但有名字故謂爲菩薩但有名字故謂爲空所以者何諸法實性無生無滅無垢無淨故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행하면서도 역시 생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멸하는 것도 보지 못하며, 더러운 것도 보지 못하고 깨끗한 것도 보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이름이란 곧 인연(因緣)이 화합하여 지어진 법이요 다만 분별하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일에 임시로 이름 붙여 말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온갖 이름을 보지 못하며 보지 못한 까닭에 집착하지 않느니라.”
014_0855_b_16L菩薩摩訶薩如是行亦不見生亦不見滅亦不見亦不見淨何以故名字是因緣和合作法但以分別憶想假名說是故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不見一切名字不見故不著
【논】【문】이 일은 사리불이 위에서 이미 물었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거듭 묻는 것인가?
014_0855_b_21L【論】問曰是事舍利弗上已問今何以重
【답】먼저 부처님께서 “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모든 법을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까닭에 그로 인하여 물은 것이지 자기의 뜻으로 물은 것이 아니다.
014_0855_b_23L答曰先因佛說欲以一切種知一切法當學般若波羅蜜故問非自意
014_0855_c_01L또 이제 사리불은 위에서 갖가지로 반야의 공덕을 찬탄한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반야를 존중한 까닭에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고 묻는 것이니, 마치 병든 사람이 좋은 약을 찬탄하는 말을 듣고는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과 같다.
014_0855_c_02L復次今舍利弗聞上種種讚般若功心歡喜尊重般若故云何應行如病人聞歎良藥便問云何應服
【문】먼저 이미 머무르거나 머무르지 않는 법[住不住法]으로 행하는 단(檀)바라밀을 물을 때에 보시하는 이[施者]와 받는 이[受者]가 재물(財物)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바로 반야를 행하는 것이 된다고 하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행(行)함을 묻는 것인가?
014_0855_c_04L先已問住不住法行檀波羅蜜受者財物不可得故如是等爲行般若今何以復問行
【답】위에서는 통틀어서 모든 바라밀을 물었고, 여기서는 다만 반야만을 묻고 있다. 위에서는 반야를 널리 찬탄함을 주를 삼았고, 여기서는 곧장 반야를 행하는 것만을 묻는 것이다.
014_0855_c_07L答曰上摠問諸波羅蜜此但問般若上廣讚歎般若爲主此直問行般若
또 위에서 비록 반야바라밀을 널리 찬탄했다 하더라도 당시의 모임에서 간절히 우러르며 얻고자 함에서이니, 이 때문에 사리불은 여러 사람들을 위하여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묻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의 공덕은 한량없고 그지없으며 부처님의 지혜도 역시 한량없고 그지없으니, 만일 사리불이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부처님의 찬탄은 끝이 없었을 것이요 만일 사리불이 묻지 않았으면 곧 인연이 없기 때문에 응하지 않고 중지하셨을 것이다.
014_0855_c_09L復次上雖廣歎般若波羅蜜時會渴仰欲得是故舍利弗爲衆人故行般若波羅蜜若波羅蜜功德無量無盡佛智慧亦無量無盡若舍利弗不發問則佛讚歎無窮已若舍利弗不問者則無因緣故則不應止
【문】반야의 공덕은 높고 중하므로 부처님께서 널리 찬탄한다 한들 어찌 안 되겠는가?
014_0855_c_15L問曰般若功德尊重佛廣讚有何不可
【답】반야를 찬탄하고 듣는 이가 기뻐하면서 존중하면 곧 그 복덕이 늘어난다. 만일 반야의 설법을 들으면 곧 그 지혜를 더하게 한다. 복덕의 인연만으로는 부처님의 도를 이룰 수 없고 반드시 지혜를 기다려 이룰 수 있다. 이 때문에 찬탄만을 쓰는 것은 아니니, 사람들은 찬탄함을 듣고는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면서 간절히 우러러 반야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마치 목마른 사람에게 맛있는 물을 널리 찬탄한다 하여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으며 곧 그 물을 주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등의 인연 때문에 사리불은 지금 반야를 행하는 일을 물은 것이다.
014_0855_c_16L答曰讚歎般若者歡喜尊重則增其福德若聞說般則增其智慧不但以福德因緣故可成佛道要須智慧得成是故不須但讚歎人聞讚歎心已淸淨渴仰欲得般若如爲渴人廣讚歎美飮不解於卽便應與之如是等因緣故舍利弗今問行般若
014_0856_a_01L【문】마치 사람이 눈이 있어야 방향를 보고 나아갈 곳을 안 후에 갈 수 있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먼저 부처님의 도를 생각하고 반야를 알면서 자기의 몸을 본 후에야 행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 무엇 때문에 “보살과 반야를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는가? 만일 보지 못하면 어떻게 행할 수가 있겠는가?
014_0855_c_23L問曰如人有眼見方知所趣處然後能行菩薩亦如是先念佛道知般若見己身然後應行今何以言不見菩薩及般若若不見云何得行
【답】여기서는 항상 못 본다고 말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반야에 들어가 관찰할 때에 보살과 반야바라밀을 보지 못함을 밝힐 뿐이다. 반야바라밀은 중생으로 하여금 진실한 법을 알게 하기 위하여 출현한 것이요 이 보살의 이름이란 뭇 인연이 화합하여 임시로 일컫는 것이니, 마치 후품(後品) 중에서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856_a_04L答曰此中不言常不見但明入般若觀時不見菩薩及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爲令衆生知實法故出此菩薩名字衆緣和合假稱如後品中廣說
반야바라밀의 이름도 역시 그와 같아서 뭇 법이 화합한 까닭에 임시로 이름을 붙여서 반야바라밀이라 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은 비록 이것이 임시로 붙인 이름이라 하더라도 모든 쓸모없는 이론을 파하며,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에 볼 수 없다고 설명하는 것이니, 마치 불은 뭇 인연을 좇아 화합한 것을 임시로 이름을 붙여 불이라 하며 비록 진실함이 없다 하더라도 물건을 태울 수는 있는 것과 같다.
014_0856_a_08L般若波羅蜜名字亦如是法和合故假名爲般若波羅蜜般若波羅蜜雖是假名而能破諸戲論以自性無故說言不可見如火從衆緣和假名爲火雖無實事而能燒物
【문】만일 반야 안에 들어가면 보지 못하고, 나오면 보게 된다면 어느 것을 믿을 수 있는가?
014_0856_a_12L若入般若中不見出則便見何者可信
【답】위에서 “반야는 진실한 법이기 때문에 출현했다.”고 하는 이것은 곧 믿을 수 있나니, 반야바라밀에서 나오면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014_0856_a_14L答曰上言般若爲實法故出則可信出般若波羅蜜不實故不可
【문】만일 반야 안에 들어가면 보지 못하고 나오면 본다고 하면 법은 항상 공한 것은 아니더라도 반야의 힘 때문에 공한 줄 알아야 하리라.
014_0856_a_16L問曰入般若中不見出則見當知非法常空以般若力故空
【답】세속의 법이기 때문에 “수행하는 이가 반야바라밀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지 모든 관(觀)과 쓸모없는 이론이 소멸되기 때문에 나오는 것도 없고 들어가는 것도 없다. 만일 모든 성현이 이름으로써 말하지 않으면 범부를 교화할 수 없게 되니, 말하는 뜻을 취할 뿐 그 말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014_0856_a_17L答曰世俗法故言行言入般若波羅蜜觀戲論滅故無出無入若諸賢聖不以名字說則不得以敎化凡夫當取說意莫著語言
【문】만일 반야 가운데서 모든 법공(法空)을 귀히 여긴다면 여기서는 무엇 때문에 먼저 중생공(衆生空)을 말하면서 나를 파하는가?
014_0856_a_21L問曰若般若中貴一切法空此中何以先說衆生空破我
014_0856_b_01L【답】처음 반야를 듣는 이에게 곧 온갖 법이 공함을 설하지는 못한다. 나는 5정(情)으로 구한다고 해서는 얻을 수 없고 다만 생각하고 분별함으로써만 나라는 생각[我想]을 내어 없는 것인데도 있다고 여길 뿐이다. 또 뜻[意情] 안에는 정해진 인연이 없는데도 다만 생각하고 분별하는 뒤바뀐 인연 때문에 공한 5중(衆) 가운데서 나라는 생각을 낼 뿐이다. 만일 나 없다[無我] 함을 들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물질 등의 모든 법은 현재의 눈으로 보는 바라 만일 처음부터 공하여 없다고 말하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014_0856_a_22L答曰初聞般若不得便說一切法空不可以五情求得但憶想分別生我無而謂有又意情中無有定緣憶想分別顚倒因緣故於空五衆中而生我想若聞無我則易可解色等諸法現眼所見若初言空無則難可
이제 먼저 나를 파하고 그 다음에는 내 것[我所]이라는 법을 파하는 것이니, 나와 내 것의 법을 파하기 때문에 모든 법은 모조리 공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욕망을 여읨을 일컬어 도를 얻는다[得道]고 한다.
또 반야바라밀은 일정한 법이 없기 때문에 나가 반야를 행함을 보지 못하게 된다.
014_0856_b_06L今先破我次破我所法破我我所法故則一切法盡空如是離欲名爲得道復次般若波羅蜜無一定法故
행하지 않는 것도 보지 못한다 함은, 마치 범부는 반야를 얻지 못하므로 행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다. 그러나 보살은 그렇지 않아서 다만 공한 반야를 행할 뿐이므로 “행하지 않는 것도 보지 못한다.”고 한다.
014_0856_b_08L不見我行般若不見不行如凡夫不得般若故名不行菩薩則不然行空般若故說不見不行
또 부처님은 법왕(法王)이시니 그 밖의 다른 보살을 관찰하시면서 그 지혜가 심히 적고 모든 결사(結使)가 뒤섞였으므로 행한다고 하지 않는다. 비유하건대 마치 국왕은 비록 적은 물건을 얻게 된다 하더라도 얻었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을 가르치되 비록 조그마한 행이 있다 하더라도 행한다고 하지 않는다.
014_0856_b_11L復次佛爲法王觀餘菩薩其智甚少雜諸結使不名爲行譬如國王雖得少物不名爲得佛亦如是敎諸菩薩雖有少行不名爲行
또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이는 교만을 내면서 “나에게는 반야바라밀이 있다.”고 하며 이것의 모양을 취하게 되며, 만일 행하지 않는 이면 마음이 스스로 게을러지면서 근심을 품게 되나니, 이 때문에 “나의 행함과 행하지 않음을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014_0856_b_15L復次行般若波羅蜜者生憍慢我有般若波羅蜜取是相不行者心自懈沒而懷憂悴是故言不見我行與不行
또 “나는 반야바라밀을 행함을 보지 못한다.”고 함은 있다는 소견[有見]에 대한 집착을 파하고, “나가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않는 것도 보지 못한다.” 함은 없다는 소견[無見]에 대한 집착을 파한다.
014_0856_b_18L復次不見我行般若波羅蜜破著有見不見我不行般若波羅蜜破著無見
또 “나는 반야바라밀을 행함을 보지 못한다.” 하면 모든 법에 대한 희롱이 중지되고, “나가 행하지 않는 것도 보지 못한다.” 하면 게으른 마음이 중지되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말을 타면서 너무 빠르면 제지하고 느리면 채찍질을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게 된다.
014_0856_b_20L復次不見我行般若波羅蜜者止諸法戲調見我不行者止懈怠心故譬如乘馬疾則制之遲則鞭之如是等分別不行
014_0856_c_01L또 부처님은 스스로 인연을 말씀하셨나니, 이른바 보살과 보살이라는 이름의 성품의 공함[性空]이다. 여기서는 비록 “보살의 이름이 공하다.”고만 말씀했다 하더라도 5중(衆)도 역시 공하다.
014_0856_c_01L復次佛自說因緣所謂菩薩薩字性空是中雖但說菩薩字空而五衆亦空
공한 가운데에는 물질[色]이 없고 물질을 여의고도 역시 공이 없는 것이니, 이 공을 법공(法空)이라 한다. 법공 안에는 한 터럭만큼의 법도 없는데 하물며 거친 물질이겠는가. 공도 역시 물질을 여의지 않는다. 그것은 왜냐하면, 물질을 파하기 위하여 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물질을 여읜다고 말하겠는가.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역시 그와 같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다시 인연을 말씀했기 때문이니, 이른바 “다만 이름만이 있는 것을 일컬어 보리라 하고, 이름만이 있는 것을 일컬어 보살이라 하며, 이름만이 있는 것을 일컬어 공이라 한다.”고 하신 것이다.
014_0856_c_03L空中無色離色亦無空法空法空中乃無一毫法何況麤色亦不離色所以者何破色故有空何言離色識亦如是何以故佛自更說因緣所謂但有名字謂爲菩但有名字謂爲菩薩但有名字謂爲空
【문】먼저 이미 이런 일에 대해서는 말씀하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거듭 말씀하시는가?
問曰先已說此事今何以重說
【답】먼저는 “보살도 보지 못하고 보살이라는 이름도 보지 못하며 반야바라밀도 보지 못한다.” 함을 말씀하셨고, 이번에는 그 인연도 보지 못한다 함을 말씀한 것이다. 이른바 “다만 이름이 있음을 일컬어 보리라 할 뿐이고, 이름이 있음을 일컬어 보살이라 하며, 이름이 있는 것을 일컬어 공이라 한다.”고 하심이 그것이다. 위에서의 보살은 여기에서의 보살의 뜻과 같으며, 보살의 이름에 대해서는 곧 보살(菩薩) 중에서의 설명과 같다.
014_0856_c_09L答曰先說不見菩薩不見菩薩字見般若波羅蜜今說不見因緣所謂但有名謂爲菩提但有名謂爲菩薩有名謂爲空上菩薩此菩薩義同薩字卽如菩薩中說
반야바라밀을 나누면 두 갈래가 되나니, 성취하게 되면 보리(菩提)라 하고 아직 성취하지 못하면 공이라 한다. 나는 모양[生相]은 실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남이 없다[無生]고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먼저 나서 있다가 뒤에 법이 되거나, 먼저 법이 있다가 뒤에 나는 것이거나 또는 나는 것과 법이 같은 때거나 간에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 마치 먼저의 설명과 같다.
014_0856_c_14L般若波羅蜜分爲二分成就者名爲菩提未成就者名爲生相實不可得故名爲無生所以者何若先生後法若先法後生若生法一時皆不可得如先說
나는 것이 없으므로 멸하는 것도 없나니, 만일 법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면 마치 허공과 같은데 어떻게 더러운 것[垢]이 있고 깨끗한 것[淨]이 있겠는가. 비유하건대 마치 허공은 만 년 동안 비가 내린다 해도 축축해지지 않고, 큰 불로 태운다 해도 뜨거워지지 않으며, 연기도 달라붙지 않는 것과 같다. 그것은 왜냐하면, 본래부터 스스로 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014_0856_c_18L無生無滅若法不生不滅如虛空云何有垢有淨譬如虛空萬歲雨亦不濕大火燒不熱煙亦不著所以者何本自無生故
014_0857_a_01L보살은 이와 같이 관찰하면서 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법을 여의고서는 나는 것이 있다거나 멸하는 것이 있다거나 더러운 것이 있다거나 깨끗한 것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스스로 인연을 말씀하시면서 “온갖 법은 모두가 생각하고 분별하여 인연이 화합한 까닭에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말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014_0856_c_22L菩薩能如是觀不見離是不生不滅法有生有滅有垢有淨何以佛自說因緣一切法皆憶想分別因緣和合故强以名說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진실한 이치[實義]이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이름이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온갖 이름을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먼저 간략히 이름을 설명하자면 이른바 보살과 보살의 이름과 반야바라밀과 보리의 이름이다. 지금은 온갖 이름이 모두 볼 수 없다고 말하며, 볼 수 없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014_0857_a_02L不可說者是實義可說者皆是名字菩薩行般若波羅蜜不見一切名字先略說名所謂菩薩菩薩字般若波羅蜜提字今廣說一切名字皆不可見見故不著
“집착하지 않는다.” 함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눈 가운데서 혜안(慧眼)이 으뜸인 것과 같으니, 보살은 혜안으로써 두루 구한다 해도 보지 못하고 나아가 미세한 하나의 법까지도 보지 못하나니, 이 때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014_0857_a_07L不著者不可得故如諸眼慧眼第一菩薩以慧眼遍求不見乃至不見細微一法是故不著
【문】만일 보살이 온갖 법 가운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열반에 들지 않는가?
014_0857_a_09L問曰菩薩一切法中不著何得不入涅槃
【답】이 일은 곳곳에서 이미 설명했으나 지금 여기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大悲心] 때문이고, 시방의 부처님에 대해 생각하기 때문이며, 본래의 서원이 아직 만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진(情進)바라밀의 힘 때문이고, 반야바라밀과 방편의 이 두 가지 일이 화합하기 때문이며, 이른바 무집착에도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 때문에 “보살은 비록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열반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014_0857_a_10L是事處處已說今此中略說大悲心故十方佛念故本願未滿故精進波羅蜜力故般若波羅蜜方便二事和合故所謂不著於不著故如是等種種因緣故說菩薩雖不著諸法不入涅槃

3. 습상응품(習相應品)을 풀이함 ①
014_0857_a_16L大智度論釋習相應品第三之一

【경】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생각하기를 ‘보살은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고 부처님도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 반야바라밀도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고 물질도 다만 이름만이 있을 뿐이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분별도 역시 이름만이 있을 뿐이다.’고 해야 하느니라.
014_0857_a_17L【經】佛告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時應如是思惟菩薩但有字亦但有字般若波羅蜜亦但有字但有字識亦但有字
014_0857_b_01L사리불아, 마치 나[我]가 다만 이름만이 있고 온갖 나는 항상 얻을 수 없듯이 중생(衆生)과 영혼[壽者]과 목숨[命者]과 나는 이[生者]와 양육(養育)과 무리의 수[衆數]와 사람[人]과 짓는 이[作者]와 짓게 하는 이[使作者]와 일어나는 이[起者]와 일어나게 하는 이[使起者]와 받는 이[受者]와 받게 하는 이[使受者]와 아는 이[知者]와 보는 이[見者] 등의 이 모두를 다 얻을 수 없으며 얻을 수 없고 공하기 때문에 다만 이름으로써 말할 뿐이니라.
014_0857_a_21L舍利弗如我但有字一切我常不可得衆生壽者命者生者養育衆數作者使作者起者使起者受者使受者知者見者是一切皆不可得不可得空故但以名字說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러하여서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 나를 보지 못하고 중생을 보지 못하며 나아가 아는 이와 보는 이에 이르기까지를 보지 못하나니, 말한 바의 이름 역시 볼 수 없느니라.”
014_0857_b_03L菩薩摩訶薩亦如是行般若波羅蜜不見我不見衆生乃至不見知者見者所說名字亦不可見
【논】【문】제이품(第二品) 끝에서 이미 공을 말씀하셨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거듭 말씀하는가?
014_0857_b_05L【論】問曰第二品末已說空今何以重說
【답】위에서는 대부분 법공(法空)을 말씀하셨고 이제는 법공과 중생공(衆生空)을 함께 말씀하시는 것이다. 수행하는 이는 바깥 법은 모조리 공하여 아무것도 없다고 관하면서도 ‘공을 아는 자는 공하지 않다.’고 여기나니, 이 때문에 다시 말씀하는 것이다. 관하는 이[觀者]도 역시 공하니, 이것이 바로 중생공이다.
014_0857_b_06L答曰上多說法空今雜說法空衆生行者觀外法盡空無所有而謂能知空者不空是故復說觀者亦空衆生空
성문의 법 가운데에서는 대개 온갖 부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모든 법 안에는 나가 없음을 안다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의 5백 년을 두 갈래로 나누면, 법공을 믿은 이도 있지만 중생공을 믿는 이도 있었다. 곧 “5중(衆) 이것은 결단코 존재하는 법이니, 다만 5중을 받는 자가 공할 뿐이다.”고 말하므로 이 때문에 부처님은 중생공을 말씀하면서 법공에 더하신 것이다.
014_0857_b_10L聲聞法中多說一切佛弟子皆知諸法中無我佛滅後五百歲分爲二有信法空有但信衆生空五衆是定有法但受五衆者空以是故佛說衆生空以況法空
또 나의 공함은 알기 쉽고 법의 공함은 보기가 어렵다. 그것은 왜냐하면, 나는 5정(情)으로 구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신견(身見)의 힘으로써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나를 삼을 뿐이다. 법의 공함은 빛깔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소리는 귀로 들을 수가 있나니, 이 때문에 그의 공함은 알기가 어렵다. 이 두 가지의 일은 반야바라밀 가운데서는 모두가 공하나니, 마치 18공(空)의 이치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다.
014_0857_b_14L復次我空易知法空難見所以者何我以五情求之不可得但以身見力故憶想分別爲法空者色可眼見聲可耳聞是故難知其空是二事般若波羅蜜中皆十八空義中說
【문】나에게 있어서 아는 것과 보는 것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동일한 일인가, 저마다 다른 일인가?
014_0857_b_19L問曰如我乃至知者見者爲是一事爲各各異
【답】모두 이것은 동일한 나[我]이며 다만 일에 따라서 다를 뿐이다. 5중(衆) 가운데서 나[我]와 내 것[我所]이라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나라 하고, 5중이 화합한 가운데서 나기 때문에 중생(衆生)이라 하며, 목숨[命根]을 성취하기 때문에 영혼[壽者]과 생명[命者]이라 하고, 능히 뭇 일을 일으킴이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것과 같으므로 나는 이[生者]라 한다.
014_0857_b_20L答曰皆是一我但以隨事爲異於五衆中我所心起故名爲五衆和合中生故名爲衆生命根成就故名爲命者能起衆事如父生子名爲
014_0857_c_01L젖을 먹고 옷을 입고 밥을 먹는 인연으로 자라게 되므로 이것을 양육(養育)이라 하고,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 등의 모든 법의 인연은 셀 수 있는 무리의 법[衆法]으로서 무리의 수[衆數]라 하며, 사람의 법을 행하기 때문에 사람[人]이라 하고, 손과 발로 짓는 바가 있음을 일컬어 짓는 이[作者]라 하며, 힘으로 다른 이를 부리기 때문에 짓게 하는 이[使作者]라 한다.
014_0857_c_02L乳哺食因緣得長是名養育十二入十八界等諸法因緣是衆法有數故名衆數行人法故名爲手足能有所作名爲作者力能役他使作者能造後世罪福業故能起者
뒷세상의 죄와 복의 업을 짓기 때문에 일어나는 이[能起者]라 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뒷세상의 죄와 복의 업을 일어나게 하므로 일어나게 하는 이[使起者]라 하며, 후생 몸이 죄와 복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받는 이[受者]라 하고, 다른 이로 하여금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게 하므로 이것을 받게 하는 이[使受者]라 하며, 눈으로 빛깔을 보므로 보는 이[見者]라 하고, 5식(識)으로 알므로 아는 이[知者]라 한다.
014_0857_c_07L令他起後世罪福業故使起者後身受罪福果報故受者他受苦樂是名使受者目睹色名爲五識知名爲知者
또 눈으로써 빛깔을 보되 다섯 가지 삿된 소견[邪見]으로써 5중(衆)을 관하며, 세간과 출세간의 바른 소견으로써 모든 법을 관찰하므로 이것을 보는 이라 한다. 이른바 눈으로써 다섯 가지를 삿되게 보고 세간을 바르게 보며 무루(無漏)로 보는 이것을 보는 이라 하며, 그 밖의 네 가지 감관[四根]으로 아는 바와 의식(意識)으로 아는 바를 통틀어 아는 이라 한다.
014_0857_c_10L復次用眼見以五邪見觀五衆用世閒出世閒正見觀諸法是名見者所謂眼根邪見世閒正見無漏見是名見者四根所知及意識所知通名爲知者
이와 같은 모든 법은 모두가 신(神)을 말하는데 이 신은 시방과 3세(世)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구한다 해도 얻을 수 없으며 다만 생각하고 분별하면서 억지로 그의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모든 법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두가 공하여 진실이 없으니, 다만 임시로 그의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014_0857_c_14L是諸法皆說是此神十方三世諸佛及諸賢聖求之不可得但憶想分强爲其名諸法亦如是皆空無實但假爲其名
【문】이 신(神)에는 다만 열여섯 가지 이름이 있을 뿐인가, 다시 그 밖에도 다른 이름이 있는가?
014_0857_c_18L問曰是神但有十六名更有餘名
【답】간략하게 말하면 열여섯 가지이지만 자세하게 말하면 한량이 없다. 그 일에 따라 이름이 일어남이 마치 관리의 호칭이 그 기술의 능함과 지혜의 공력에 따라 차별이 있는 것과 같다.
출가하여 도를 얻게 하는 갖가지의 이름들은 모두가 인연화합으로 생기기 때문에 자성(自性)이 없고, 자성이 없기 때문에 마침내 공[畢竟空]하다. 남[生]이 공하기 때문에 법도 공하고 법이 공하기 때문에 나는 일[生] 역시 공하다.
014_0857_c_19L答曰略說則十六廣說則無量隨事起名如官號差別工能智巧出家得道種種諸名皆是因緣和合生故無自性無自性故畢竟空生空故法空法空故生亦空
014_0858_a_01L【경】보살마하살이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그 지혜가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지나게 되니, 불가득공(不可得空)에 의하기 때문이니라. 그것은 왜냐하면, 이 보살마하살은 모든 이름과 법의 이름과 집착하는 곳도 역시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014_0857_c_23L【經】薩摩訶薩作如是行般若波羅蜜除佛智慧過一切聲聞辟支佛上不可得空故所以者何是菩薩摩訶薩諸名字法名字所著處亦不可得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능히 이와 같이 행해 반야바라밀을 행하느니라. 비유하건대 마치 염부제(閻浮提)에 가득 찬 대ㆍ삼ㆍ벼ㆍ갈대의 수만큼의 비구들이 있고, 그 지혜가 모두 사리불이나 목건련과 같다 하여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지혜에 비교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ㆍ백천분의 일 내지는 산수(算數)의 비유(譬喩)로써는 미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지혜에 의지해 온갖 중생을 제도하고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니라.”
014_0858_a_05L舍利弗菩薩摩訶薩能如是行行般若波羅蜜譬如滿閻浮提竹諸比丘其數如是智慧如舍利目連等欲比菩薩行般若波羅蜜智慧百分不及一千分百千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何以故菩薩摩訶薩用智慧度脫一切衆生故
【논】해석한다. 두 가지의 인연이 있기 때문에 보살의 지혜는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 첫째는 공(空)으로써 온갖 법을 알되 공도 또한 이 공함을 보지 않으며 공은 공하지 않은[不空] 것과 평등하고 동일하여 다르지 않은 것이고, 둘째는 이러한 지혜로써 온갖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014_0858_a_11L【論】釋曰有二因緣故菩薩智慧勝聲聞辟支一者以空知一切法空亦不見是空以不空等一不異二者以此智爲欲度脫一切衆生令得涅槃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는 다만 모든 법이 공함을 관찰할 뿐이요 세간과 열반이 하나임을 관찰하지 못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감옥을 탈출할 때 어떤 이는 다만 담장을 뚫고 자기 자신만이 탈출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감옥을 부수고 쇠고랑을 끊고서 자신도 탈출하고 아울러 다른 사람들도 구제하는 이가 있는 것과 같다.
014_0858_a_15L聲聞辟支佛智慧但觀諸法空不能觀世涅槃爲一譬如人出獄有但穿牆而出自脫身者有破獄壞鎖旣自脫兼濟衆人者
또 보살의 지혜는 두 가지의 법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뛰어나나니, 첫째는 대비(大悲)요, 둘째는 반야바라밀이다. 다시 두 가지의 법이 있나니, 첫째는 반주삼매(般舟三昧)요, 둘째는 방편이다. 다시 두 가지의 법이 있나니, 첫째는 항상 선정(禪定)에 머무르는 것이고, 둘째는 법성(法性)을 통달하는 것이다.
014_0858_a_19L復次菩薩智慧入二法中故勝一者大悲二者般若波羅復有二法一者般舟三昧二者方便復有二法一者常住禪定二者能通達法性
014_0858_b_01L다시 두 가지의 법이 있나니, 첫째는 온갖 중생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것이요 둘째는 스스로 온갖 즐거움을 버리는 것이다. 다시 두 가지의 법이 있나니, 첫째는 인자한 마음으로 원한도 없고 성냄도 없는 것이요 둘째는 모든 부처님의 공덕까지도 마음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의 공덕으로 지혜를 장엄하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
014_0858_a_23L復有二法一者能代一切衆生受苦二者自捨一切樂復有二法一者慈心無怨無恚二者乃至諸佛功德心亦不著如是等種種功德莊嚴智慧故勝聲聞辟支佛
【문】모든 근기가 둔한 이에게는 비유를 삼아야 하지만 사리불은 지혜와 근기가 영리한 분인데 무엇 때문에 비유를 삼으시는가?
014_0858_b_04L問曰諸鈍根者可以爲喩舍利弗智慧利根何以爲喩
【답】꼭 근기가 둔한 이에게만 비유를 삼는 것은 아니다. 비유는 논의(論議)를 장엄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5정(情)이 보는 바로써 의식(意識)을 깨우쳐 주면서 그로 하여금 깨칠 수 있게 하는 것이니, 마치 누각을 오를 때 사다리를 만나면 오르기가 쉬운 것과 같다.
014_0858_b_06L答曰不必以鈍根爲譬譬喩爲莊嚴論議令人信著故以五情所見以喩意識令其得悟譬如登樓得梯則易上
또 온갖 중생은 세간의 즐거움에 집착하고 있는지라 길과 열반을 얻는 일을 들어도 믿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나니, 이 때문에 눈으로 보는 일로써 보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쓴 약은 먹기가 매우 어렵지만 거기에 꿀을 타면 먹기가 쉬운 것과 같다.
또 사리불은 성문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지만 모든 부처님과 보살에다 비하면 아직 나타낼 만한 것이 없다.
014_0858_b_09L復次一切衆生著世閒樂聞道得涅槃則不信不樂是故以眼見事喩所不見譬如苦藥服之甚難假之以蜜服之則易復次利弗於聲聞中智慧第一比諸佛菩薩未有現焉
염부제라 했는데, 염부(閻浮)3)는 나무의 이름이며, 그 숲은 무성한데 이 나무는 숲 속에서 가장 크다. 제(提)4)는 대륙[洲]을 말하는데 이 대륙 위에 이 나무 숲이 있고 이 숲 속에 강이 있으며, 그 밑바닥은 금모래가 깔려 있어서 염부단금(閻浮檀金)이라 부른다. 염부나무 때문에 염부주(閻浮洲)라 부르며, 이 대륙에는 5백의 작은 섬[小洲]들이 빙 둘러 있는데 통틀어서 염부제라 한다.
014_0858_b_14L如閻浮提閻浮樹名其林茂盛此樹於林中最大名爲此洲上有此樹林林中有河底有金沙名爲閻浮檀金以閻浮樹故名爲閻浮洲此洲有五百小洲圍繞通名閻浮提
【문】제자들이 아주 많은데 무엇 때문에 “사리불과 목건련 등이 염부제 안에 가득 찬 대ㆍ삼ㆍ벼ㆍ갈대와 같다.”고 하시는가?
014_0858_b_19L問曰諸弟子甚多何以故說舍利弗目揵連等滿閻浮提中如竹
014_0858_c_01L【답】온갖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지혜로써 으뜸가는 이가 사리불이고, 신족(神足)으로 으뜸가는 이가 목건련이다. 이 두 사람은 불법 안에서도 위대하고 외도의 법안에서도 위대하다. 그러나 부루나(富樓那)ㆍ가치나(迦郗那)ㆍ아나율(阿那律) 등은 비록 불법 중에서는 위대하다 하더라도 외도의 법 가운데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014_0858_b_21L答曰一切佛弟子中智慧第一者舍利弗神足第一者目揵連此二人於佛法中大於外法中亦大富樓迦郗那阿那律等於佛法中雖大於外法中不如
또 이 두 사람은 항상 대중에 있으면서 부처님을 도와 교화를 드날리고 모든 외도들을 파하지만 부루나 등의 비구에게는 이러한 공덕이 없나니, 이 때문에 말씀하지 않는다.
014_0858_c_02L又此二人常在大衆助佛揚化破諸外道富樓那等比丘無是功德是故不說
또 만일 사리불을 말하면 곧 온갖 지혜 있는 사람들을 다 포함하게 되고 만일 목건련을 말하면 곧 온갖 선정 닦는 사람들을 다 포함하게 된다.
014_0858_c_04L復次若說舍利弗則攝一切智慧人若說目揵連則攝一切禪定人
비유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어떤 일을 빌려서 비유를 삼고, 둘째는 실제의 일로써 비유를 삼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는 빌려서 삼은 비유[假喩]라 하겠는데 다른 물건으로써 비유를 삼지 않는 까닭은 이 네 가지 물건[四物]이 무더기로 수북하게 나서 빽빽이 들어서고 종류도 많기 때문이다.
014_0858_c_06L譬喩有二種一者假以爲二者實事爲喩今此名爲假喩以不以餘物爲喩者以此四物叢生稠緻種類又多故
사리불과 목건련 등의 비구들이 염부제를 가득 차고 이러한 모든 아라한의 지혜를 한데에 모아 합친다 해도 보살의 지혜에는 미치지 못하니, 백분의 일이나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는 것이다.
014_0858_c_09L舍利弗目連等比丘滿閻浮提如是諸阿羅漢智慧和合不及菩薩智慧百分之一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문】다만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다고만 말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백분의 일ㆍ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는가?
014_0858_c_12L問曰何以不但說算數譬喩所不能及而說百分千分不及一
【답】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극단적인 말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중한 죄가 있을 때 먼저 때리고 묶어서 모진 고통을 준 연후에야 죽이는 것과 같다. 성문의 법 중에서는 언제나 “16에서 그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으로 비유를 삼고 대승의 법 중에서는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는 바이다.”라고 한다.
014_0858_c_14L答曰算數譬喩所不能及是其極語譬如人有重罪先以打縛楚毒然後乃殺如聲聞法中常以六不及一爲喩大乘法中則以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경】사리불아, 염부제 안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이들도 그만두고,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이들도 다시 그만두고,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 찬 사리불과 목건련 같은 이들의 지혜로써도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의 지혜에 비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ㆍ백천분의 일 내지는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칠 수 없는 바이니라.
014_0858_c_18L【經】舍利弗置閻浮提滿中如舍利弗目連等若滿三千大千世界如舍利弗目連等復置是若滿十方如恒河沙等世界如舍利弗目連等智慧欲比菩薩行般若波羅蜜智慧百分不及一千分百千分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014_0859_a_01L【논】해석한다. 이 이치는 위의 염부제에서와 같으며 다만 많은 수로써 함이 다를 뿐이다.
014_0859_a_01L【論】釋曰義同上閻浮提但以多爲異
【문】사리불과 목건련 등이 비록 많다 하더라도 지혜에는 다름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많은 수로써 비유를 삼는가?
014_0859_a_02L問曰利弗目連等雖多智慧無異何以以多爲喩
【답】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적으면 힘이 없고 많으면 힘이 있나니, 마치 물이 적으면 그 힘도 적은 것과 같다.”고 한다. 또 마치 아주 뛰어나게 센 사람을 적은 사람들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지만, 대군(大軍)이 공격하여 굴복시키는 것과 같다.
014_0859_a_04L答曰有人謂少無力多則有譬如水少其力亦少又如絕健之少衆力寡不能制之大軍攻之則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한 분의 사리불은 지혜가 적어 보살에게 미치지 못하나 많으면 혹 미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비록 많다 하더라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셨나니, 그러므로 많은 것으로 비유를 삼았다.
014_0859_a_07L有人謂一舍利弗智慧少則不及菩薩多或能及佛言雖多不及故以多爲喩
마치 온갖 풀과 나무의 힘은 불보다 못하고 온갖 모든 광명도 그 세력이 해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시방세계의 모든 산은 하나의 금강주(金剛珠)보다 못한 것과 같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살의 지혜는 바로 모든 부처님 법의 근본이요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014_0859_a_09L如一切草木力不如火一切諸明勢不及日亦如十方世界諸山不如一金剛珠所以者何菩薩智慧是一切諸佛法本能令一切衆生離苦得樂
마치 가릉비가(迦陵毘伽)의 새끼와도 같으니, 비록 아직 껍질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도 그 음성이 뭇 새보다 뛰어나거늘 하물며 껍질에서 나온 뒤이겠는가. 보살의 지혜도 그와 같아서 아직 무명(無明)의 껍질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 그러니 하물며 성불한 뒤이겠는가.
014_0859_a_13L如迦陵毘伽鳥子雖未出㲉其音勝於衆鳥何況出㲉菩薩智慧亦如是雖未出無明㲉勝一切聲聞辟支佛何況成佛
또 마치 전륜성왕의 태자가 아직 복조(福祚)와 위덕을 성취하지 못했어도 온갖 모든 왕보다 뛰어나거늘 하물며 전륜성왕이 된 뒤이겠는가.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아직 성불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 한량없는 지혜와 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 그러니 하물며 성불하신 뒤이겠는가.
014_0859_a_16L又如轉輪聖王太雖未成就福祚威德勝於一切諸何況作轉輪聖王菩薩亦如是未成佛無量阿僧祇劫集無量智慧福德故勝於聲聞辟支佛何況成佛
【경】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하루 동안 지혜를 닦아도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느니라.
014_0859_a_20L【經】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一日修智慧出過一切聲聞支佛上
【논】【문】먼저 이미 “부처님을 제외하고 그 지혜는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지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또 거듭 말씀하시는가?
014_0859_a_23L【論】問曰先已說除佛智慧過一切聲聞辟支佛上今何以復重說
014_0859_b_01L【답】거듭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위에서는 전체의 모양[總相]으로 말씀하셨고 여기서는 각각의 모양[別相]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먼저는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은 보살의 지혜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이번에는 다만 하루 동안의 지혜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히실 뿐이다. 그러니 하물며 천만 년 동안이겠는가.
014_0859_b_01L非重說也上摠相說今別相說一切聲聞辟支佛不及菩薩智慧今但明不及一日智慧何況千萬歲
【경】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성문이 지닌 지혜는 수다원ㆍ사다함ㆍ아나함ㆍ아라한 및 벽지불의 지혜와 부처님의 지혜 등 이 모든 뭇 지혜와는 차별이 없고 서로 어긋나지도 않으며, 나는 것이 없으면서[無生] 성품이 공[性空]합니다. 만일 법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무생이고 성품이 공하다면 이 법에는 차별이 없는데 어떻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하루 동안 닦은 지혜도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 하시는지요?”
014_0859_b_04L【經】舍利弗白佛言世尊聲聞所有智慧——若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支佛智慧佛智慧是諸衆智無有差不相違背無生性空若法不相違無生性空是法無有別異云何世尊言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一日修智慧出過聲聞辟支佛上
【논】【문】위에서 부처님은 이미 “보살마하살이 닦은 지혜는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고 하셨는데 이제 사리불은 무엇 때문에 묻는 것인가?
014_0859_b_11L【論】問曰上佛已說菩薩摩訶薩修智慧出過聲聞辟支佛上今舍利弗何以故問
【답】지혜의 세력으로 능히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묻지 않고 이번에는 다만 부처님과 제자의 지혜만을 물었을 뿐이다.
체성(體性)의 법 안에는 차별이 없다 함은, 모든 성현의 지혜는 모두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의 지혜이고, 모두가 4제(諦)와 37품(品)의 지혜이며, 모두가 삼계(三界)에서 벗어나 3해탈문(解脫門)에 들어가서 3승(乘)의 과보를 이루는 지혜이다. 이 때문에 차별이 없다고 한다.
014_0859_b_13L答曰不問智慧勢力能度衆生今但問佛及六子智慧體性法中無有差別者以諸賢聖智慧皆是諸法實相皆是四諦及三十七品慧皆是出三界入三脫門成三乘果慧以是故說無有差別
014_0859_c_01L또 마치 수다원이 무루의 지혜[無漏智]로써 결(結)을 없애고 과위를 얻듯이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다. 마치 수다원이 유위해탈(有爲解脫)과 무위해탈(無爲解脫)의 두 가지 해탈의 과위를 이용하듯이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다. 그리고 부처님처럼 열반에 드는 일도 수다원은 극히 더디어도 일곱 세상[七世] 동안을 넘지 않는다. 모두 일[事]을 같이하고 연(緣)을 같이하며, 행(行)을 같이하고 과보(果報)를 같이하나니, 이 때문에 서로 어긋남이 없다고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나지도 않고[不生] 성품이 공하기 때문이다.
014_0859_b_19L復次如須陁洹以無漏智滅結得果乃至佛亦如是如須陁洹用二種解脫果有爲解脫無爲解乃至佛亦如是如佛入涅槃須陁洹極遲不過七世皆同事同緣同行同果報以是故言無相違背所以者不生性空故
【문】무명을 깨뜨리고 모든 착한 법을 쌓기 때문에 지혜가 생긴다. 이 지혜는 마음과 상응하고 마음과 함께 생기며 마음을 따라 행해지는데 여기서는 어찌하여 “지혜는 나는 것이 없고 성품이 공하여 차별이 없다.”고 하는가?
014_0859_c_02L問曰破無明集諸善法故生智慧是智慧心相應心共生隨心行是中云何說智慧無生性空無有別異
【답】지혜는 사라짐의 진리[滅諦]를 반연하므로 이것이 나지 않는 것이요 인연과 화합하기 때문에 자성이 없나니, 이것을 성품이 공하다고 한다. 분별한 바가 없이 지혜는 인연 따라 이름을 얻는다. 마치 눈이 빛깔[色]을 반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므로 안식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색식(色識)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지혜가 비록 인연과 화합하여 법을 짓는다 하더라도 나는 것이 없고[無生] 성품이 공함을 반연하기 때문에 나는 것이 없고 성품이 공하다고 하는 것이다.
014_0859_c_05L答曰智慧緣滅諦是不生因緣和合故無有自性是名性空所分別智慧隨緣得名如眼緣色生眼識或名眼識或名色識智慧雖因緣和合作法以緣無生性空故名爲無生性空
【문】모든 성현의 지혜는 모두가 4제를 반연하여 생기는데 무엇 때문에 단지 사라짐의 진리만을 말하는가?
014_0859_c_10L問曰諸賢聖智慧皆緣四諦生何以但說滅諦
【답】4제 가운데 사라짐의 진리가 으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이 세 가지의 진리는 모두가 사라짐의 진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천자(天子)를 청하면 그 신하들과 함께 식사를 했어도 역시 천자에게 공양했다고 하는 것과 같다.
014_0859_c_11L答曰四諦中滅諦爲上所以者何是三諦皆屬滅諦譬如人請天子倂食群臣亦名供養天子
또 사라짐의 진리 때문에 나는 것이 없음[無生]을 말하고, 세 가지의 진리 때문에 성품이 공함[性空]을 말하게 된다.
014_0859_c_14L復次滅諦故說無生三諦故性空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모든 지혜의 성품은 저절로 불생(不生)이어서 성품이 저절로 공하다. 그것은 왜냐하면, 온갖 법은 모두가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자성(自性)이 없고, 자성이 없기 때문에 나지 않는다.”고 한다.
014_0859_c_15L復次有人言是諸智慧性自然不生性自空所以者何一切法皆因緣和合故無自性無自性故不生
【문】만일 그렇다면, 지혜와 어리석음에는 차별이 없을 것이다.
014_0859_c_17L若爾者智慧愚癡無有別異
【답】마치 모든 법이 법성(法性) 안으로 들어가면 차별이 없는 것과 같고, 마치 불은 저마다 같지 않으면서도 꺼지는 모양은 다르지 않은 것과 같다. 비유하건대 마치 여러 하천에서 흐르는 온갖 물은 저마다 빛깔이 다르고 맛도 다르지만 큰 바다로 들어가면 똑같이 동일한 맛과 동일한 이름이 되는 것과 같다.
014_0859_c_18L答曰諸法如入法性中無有別異如火各各不同而滅相無異譬如衆川萬流各各異色異味入於大海同爲一味一名
014_0860_a_01L그와 같아서, 어리석음과 지혜는 반야바라밀 가운데 들어가면 모두가 동일한 맛이어서 차별이 없다. 마치 다섯 가지 색깔이 수미산을 가까이하면 스스로 그의 색깔을 잃으면서 모두가 동일한 금빛이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안팎의 모든 법은 보살마하살의 안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동일한 맛이 된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의 모양은 마침내 청정하기 때문이다.
014_0859_c_22L如是愚癡智慧入於般若波羅蜜中皆同一味無有差別如五色近須彌山自失其色皆同金色如是內外諸法入般若波羅蜜中皆爲一味何以故般若波羅蜜相畢竟淸淨故
또 어리석음의 실상(實相)이 곧 지혜이니, 만일 분별하면서 이 지혜에 집착하면 곧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이와 같은데 어리석음과 지혜는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처음 부처님의 법에 들어가면 어리석기도 하고 지혜롭기도 하나 뒤로 옮겨갈수록 어리석음과 지혜에는 다름이 없다. 이 때문에 이 모든 여러 지혜는 차별이 없고 서로 어긋나지도 않으며, 나지도 않고 성품이 공한 까닭에 허물이 없다.
014_0860_a_03L復次愚癡實相卽是智慧若分別著此智慧卽是愚癡如是愚癡智慧有何別異初入佛法是癡是慧轉後深慧無異以是故是諸衆智無有別異不相違背不生性空故無咎
【경】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며 하루 동안 지혜를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도혜를 행해 온갖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온갖 법을 알고 온갖 중생을 제도해야 한다.’고 하나니,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겠느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014_0860_a_08L【經】佛告舍利弗於汝意云何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一日修智慧心念行道慧益一切衆生當以一切種智知一切法度一切衆生諸聲聞辟支佛智慧爲有是事不舍利弗言不也世尊
【논】해석한다. 네 가지의 이론이 있나니, 첫째는 필정론(必定論)이고, 둘째는 분별론(分別論)이며, 셋째는 반문론(反問論)이고, 넷째는 치론(置論)이다.
014_0860_a_14L【論】釋曰有四種論一者必定論分別論三者反問論四者置論
필정론이라 함은, 마치 “중생 가운데서는 세존이 으뜸이시고, 온갖 법 가운데는 나가 없으며, 세간은 즐거울 수가 없고 열반은 안온하면서 적멸(寂滅)이며, 업의 인연은 상실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은 것들을 필정론이라 한다.
014_0860_a_15L定論如衆生中世尊爲第一一切法中無我世閒不可樂涅槃爲安隱寂滅業因緣不失如是等名爲必定
분별론(分別論)이라 함은, 마치 무외(無畏) 태자가 부처님께 여쭙기를 “부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다른 사람들이 성을 내지 않겠나이까?”고 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런 일은 분별하여 대답해야 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태자가 말하기를 “모든 니건자(尼健子)들은 똑똑히 아나이다.”고 한 것과 같다.
부처님은 간혹 가엾이 여기시는 까닭에 중생을 죄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시지만 중생은 성을 낸다. 그러나 그 중생들은 뒤에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014_0860_a_19L分別論如無畏太子問佛佛能說是語令他人瞋不佛言是事當分別答太子言諸尼健子輩了矣佛或時無憐愍心故出衆生於罪中而衆生瞋然衆生後當得利
014_0860_b_01L그때 무외의 아들이 그의 무릎 위에 앉자 부처님은 무외에게 물으시되 “너의 아들이 혹시 기와나 돌이나 풀이나 나무를 입 안에 머금는다 하면 너는 삼키도록 그대로 두겠느냐?”고 하시자, 대답하기를 “그대로 두지 않겠나이다. 먼저 토해 내게 하고 만일 토하려 하지 않으면 왼손으로 귀를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입에다 쑤셔 넣어서 비록 피가 나온다 해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고 했다.
014_0860_a_23L爾時無畏之子坐其膝上佛問無畏汝子或時呑諸瓦石草木汝聽咽不答言不聽敎令吐若不肯吐左手捉耳右手摘縱令血出亦不置之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그 아이를 가엾게 여기지 않는 것이더냐?”고 하시자, 대답하기를 “그 아이를 몹시 가엾게 여기는 까닭에 그 아이를 위하여 기와나 돌을 꺼내려는 것이오니, 비록 그때는 아프다 하더라도 뒤에는 편안해질 것입니다.”고 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나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일 중생이 중한 죄를 지으려 하면 착하게 가르치고 그래도 따르지 않으면 듣기 싫은 말로써 타이르게 되나니, 비록 성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뒤에는 안온함을 얻느니라.”고 하셨다.
014_0860_b_04L佛言汝不愍之耶答言愍之深故爲出瓦石雖當時痛後得安隱佛言我亦如是若衆生欲作重罪善敎不從以苦言諌之雖起瞋恚後得安隱
또 다섯의 비구가 부처님께 “즐거움을 받으면서 도(道)를 얻나이까?” 하고 묻자, 부처님은 말씀하시되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괴로움을 받으면서 죄를 얻기도 하고, 어떤 이는 괴로움을 받으면서 즐거움을 얻기도 하며, 어떤 이는 즐거움을 받으면서 죄를 얻기도 하고, 어떤 이는 즐거움을 받으면서 복을 얻기도 하느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것 등을 분별론이라 한다.
014_0860_b_08L又如五比丘問受樂得道耶佛言不必定有受苦得罪受苦得樂有受樂得罪受樂得如是等名爲分別論
반문론(反問論)이라 함은 도리어 묻는 바로써 그에게 대답하는 이론이다. 마치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한 것과 같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물질[色]은 항상한 것이더냐, 무상한 것이더냐?”
비구가 대답했다.
“무상한 것입니다.”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이더냐?”
“괴로운 것입니다.”
014_0860_b_11L反問論以所問答之如佛告比丘於汝意云是色常耶無常耶比丘言無常無常是苦不答言
“만일 법이 바로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법을 들은 성스런 제자들은 이런 법에 집착하면서 ‘이 법 이것은 나요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하겠느냐?”
그러자 대답하기를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했다.
014_0860_b_14L若法是無常聞法聖弟子著是法是法是我我所答曰不也世尊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시되 “지금으로부터 존재하는 물질이 과거거나 미래거나 현재거나 안이거나 밖이거나 곱거나 추하거나 간에 이 물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도 이 물질의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바르고 진실한 지혜로써 알아야 하느니라. 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분별[識]에서도 그와 같이 할지니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것들을 반문론이라 한다.
014_0860_b_16L佛告比丘今已後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若內若外若好若醜是色非我所我非此色所如是應以正實智慧知識亦如是如是等名反問論
치론(置論)5)이라 함은, 마치 14난(難)과 같이 “세간은 항상한가, 세간은 무상한가, 세간은 끝이 있는가, 세간은 끝이 없는가”라고 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을 치론이라 한다.
014_0860_b_20L置論如十四難世閒有常世閒無世閒有邊世閒無邊如是等是名置論
지금은 부처님께서는 반문론(反問論)으로써 사리불에게 대답하는 것이다. 사리불의 지혜는 일에 대하여 아직 깨치지 못한지라 부처님께서 일의 실마리[事端]를 되물으면서 그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014_0860_b_23L今佛以反問論答舍利弗舍利弗智於事未悟佛反問事端其得解
014_0860_c_01L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지혜를 일컬어 도혜(道慧)라 하나니, 후품(後品) 중에서의 설명과 같다. 살바야(薩婆若)의 지혜는 바로 성문과 벽지불의 일이고, 일체종지(一切種智)의 지혜는 바로 모든 부처님의 일이며, 도종(道種)의 지혜6)는 바로 보살의 일이다.
014_0860_c_02L菩薩度衆生智慧名爲道慧如後品中說薩婆若慧是聲聞辟支佛一切種智慧是諸佛事道種慧是菩薩事
또 8성도분(聖道分)은 진실한 도이어서 중생으로 하여금 갖가지의 인연으로 도에 머물게 하므로 이것을 도혜라 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도 가운데에 머무르게 하나니, 이것은 성문의 종성[種]과 벽지불의 종성과 부처님의 종성을 이익되게 한다.
014_0860_c_05L復次八聖道分爲實道令衆生種種因緣入道是名道慧令衆生住於道中是爲利益聲聞種辟支佛佛種
또 온갖 지혜는 얻지 못하는 바가 없으므로 이것을 일체종(一切種)이라 한다. 유위(有爲)거나 무위(無爲)거나 간에 일체종지(一切種智)로써 알며, 부처님의 도를 얻은 뒤에는 마땅히 온갖 중생을 제도하고 온갖 중생을 이익되게 하나니, 혹은 대승(大乘)으로써 혹은 성문승(聲聞乘)으로써 혹은 벽지불승(辟支佛乘)으로써 하기도 한다.
014_0860_c_08L又復一切智慧無所不得一切種若有爲若無爲用一切種智知得佛道已應度一切衆生利益一切衆生或大乘或聲聞乘或辟支佛乘
만일 3승(乘)의 도에 들지 못하면 복덕을 닦아 천상과 인간 안의 부귀와 쾌락을 받도록 가르치고, 만일 복덕도 닦지 못한다면 지금의 세상에서 이익되는 일인 의복과 음식과 침구 등으로 하게하며, 만일 그것도 하지 못한다면 자비로운 마음으로 이익되게 해야 하나니, 이것을 일컬어 온갖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014_0860_c_12L若不入三乘道敎修福德受天上人中富樂若不能修福以今世利益之事——衣臥具等若復不得當以慈悲心利益是名度一切衆生
【문】만일 부처님은 온갖 성문과 벽지불이 중생을 위할 수 없음을 아신다면 무엇 때문에 물으시는 것인가?
014_0860_c_15L問曰若佛知一切聲聞辟支佛不能爲衆何以故問
【답】부처님의 뜻은 이와 같으니, 곧 사리불로 하여금 자기의 입으로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은 보살보다 못하다.”고 말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처님께서 물으신 것이다.
사리불은 말하기를 “없나이다, 세존이시여”라고 했는데, 그것은 왜냐하면, 성문이나 벽지불은 비록 인자한 마음은 있다 하더라도 본래 발심이 온갖 중생을 제도하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또한 선근(善根)을 돌이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이 하루 동안 지혜를 닦아도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014_0860_c_17L答曰佛意如是欲令舍利弗口自說諸聲聞辟支佛不如菩薩是故佛問舍利弗言不也世尊所以者何聲聞辟支佛雖有慈心本不發心願度一切衆生亦不迴善根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以是故菩薩一日修智慧過聲聞辟支佛上
014_0861_a_01L【경】“사리불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에게는 ‘우리들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온갖 중생을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얻게 해야겠다.’고 하는 이런 생각이 행여 있겠느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014_0860_c_23L【經】舍利弗於汝意云何諸聲聞辟支佛頗有是我等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度一切衆生令得無餘涅槃舍利弗言不也世尊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런 인연 때문에 알아야 하느니라.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는 보살마하살의 지혜에 비한다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나아가 산수와 비유로써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014_0861_a_04L佛告舍利弗以是因緣故當知諸聲聞辟支佛智慧欲比菩薩摩訶薩智慧百分不及一乃至算數譬喩所不能及
【논】【문】위에서 이미 사리불에게 반문하면서 일이 이미 결정되었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다시 묻는 것인가?
014_0861_a_07L【論】問曰上已反問舍利弗事已定今何以復問
【답】사리불이 수다원(須陀洹)도 똑같이 해탈을 얻기 때문에 모든 부처ㆍ보살과 평등하게 보려고 하므로 부처님은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털구멍과 허공을 평등하게 보려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부처님은 거듭 그 일을 물으시는 것이다.
014_0861_a_08L答曰舍利弗欲以須陁洹同得解脫故諸佛菩薩等而佛不聽譬如有人欲以毛孔之空與虛空等以是故佛重質其事
또 비록 동일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치의 문은 저마다 다르다. 앞에서 지혜를 말씀하심은 온갖 중생을 위해서요 여기에서는 “우리들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온갖 중생으로 하여금 무여열반을 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니, 무여열반에 대한 뜻은 먼저의 설명에서와 같다.
014_0861_a_12L復次雖同一事義門各異智慧爲一切衆生故今言頗有是我等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一切衆生得無餘涅槃無餘涅槃如先說
또 하나의 성문이나 벽지불조차도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하물며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이겠는가.
014_0861_a_16L復次一聲聞辟支佛尚不作是念何況一切聲聞辟支佛
【경】사리불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에게는 ‘우리는 6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을 성취시키고 세계를 장엄하며 부처님의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4무애지(無礙智)와 18불공법(不共法)을 갖추어서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을 얻게 하겠다.’고 하는 이런 생각이 행여 있겠느냐?”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014_0861_a_17L【經】舍利弗於汝意云何諸聲聞辟支佛頗有是我行六波羅蜜成就衆生莊嚴世具佛十力四無所畏四無碍智八不共法度脫無量阿僧祇衆生令得涅槃舍利弗言不也世尊
014_0861_b_01L【논】해석한다. 먼저는 간략히 말해 “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야겠다.”고 하는 것이고, 이번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인연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 이른바 6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가 그것이다. 6바라밀의 뜻은 먼저의 설명과 같고, 중생을 교화하면서 부처님의 세계를 청정하게 한다는 일은 뒤에 설명하겠으며, 그 밖의 10력(力) 등에 대해서는 먼저의 설명에서와 같다.
014_0861_a_22L【論】釋曰先略說我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今廣說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因緣所謂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六波羅蜜如先說敎化衆生佛世界後當說十力如先說
【경】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능히 생각하기를 ‘나는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을 [구족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서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고 열반을 얻게 하리라.’고 하느니라.
014_0861_b_04L【經】佛告舍利弗菩薩摩訶薩能作是念我當行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度脫無量阿僧祇衆生令得涅槃
하지만, 마치 개똥벌레는 ‘나의 힘으로 능히 하나의 염부제를 두루 비추어서 크게 밝히겠다.’고 하는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하듯이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도 역시 그와 같아서 ‘우리들은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을 [구족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며 열반을 얻게 하리라’고 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느니라.”
014_0861_b_08L譬如螢火虫不作是念我力能照一閻浮提普令大諸阿羅漢辟支佛亦如是不作是我等行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度脫無量阿僧祇衆生令得涅槃
【논】해석한다.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사리불과 목련이 한 보살보다 못한 까닭은 마치 개똥벌레가 비록 많아서 저마다 반딧불을 비춘다 하더라도 햇빛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014_0861_b_13L【論】釋曰所以十方恒河沙舍利弗目連不如一菩薩者譬如螢火虫雖衆多各有所照不及於日
개똥벌레도 역시 “나의 광명으로 능히 한 염부제를 비추겠다.”고 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듯이, 모든 성문과 벽지불도 “나의 지혜로 능히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을 비추겠다.”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또 마치 반딧불은 밤에는 조금 비추다가도 해가 나오면 보이지 않듯이, 모든 성문과 벽지불도 역시 그와 같아서 아직 큰 보살이 없을 때에는 사자처럼 외치면서 설법하고 교화하다가도 보살이 나오게 되면 하던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014_0861_b_16L螢火虫亦不作是念我光明能照一閻浮提諸聲聞支佛不作是念我智慧能照無量無邊衆生如螢火虫夜能有所照日出則不能諸聲聞辟支佛亦如是未有大菩薩時能師子吼說法敎化有菩薩出不能有所作
014_0861_c_01L【경】사리불아, 비유하건대 마치 해가 나왔을 때에는 광명이 염부제를 두루 비추어서 그 광명을 받지 않는 이가 없듯이,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6바라밀을 행하고, 나아가 18불공법을 [구족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한량없는 아승기의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을 얻게 하느니라.
014_0861_b_22L【經】舍利弗譬如日出光明遍照閻浮提無不蒙明者薩摩訶薩亦如是行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度脫無量阿僧祇衆生令得涅槃
【논】해석한다. 마치 일천자(日天子)가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7보(寶)의 궁전과 함께 사천하(四天下)를 돌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항상 쉬지 않으면서 중생을 위하여 모든 냉기ㆍ습기를 제거하고 모든 어두운 데를 비추며 저마다 그의 처소를 얻게 하듯이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처음 발심해서부터 항상 6바라밀 내지는 18불공법까지를 행하면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게으르거나 쉬는 일이 없으며, 불선(不善)의 냉기를 없애고 5욕(欲)의 진창을 마르게 하며, 어리석음과 무명을 깨뜨리고 착한 업을 닦도록 가르치고 인도하면서 저마다 그의 처소를 얻게 한다.
014_0861_c_03L【論】釋曰如日天子憐愍衆生故與七寶宮殿俱繞四天下從初至終常不懈爲衆生除諸冷濕照諸闇冥令各得所菩薩亦如是從初發心常行六波羅蜜乃至十八不共法爲度衆生無有懈息除不善冷乾竭五欲泥愚癡無明敎導修善業令各得所
또 해의 광명이 두루 비추되 미워함도 없고 사랑함도 없으면서 그 높고 낮은 데와 깊고 얕은 데를 따라 모두 비춘다.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세간에 출현하여 5신통에 머물러 허공에 처하면서 지혜의 불을 놓아 모든 죄복의 업과 모든 과보를 환히 비추어 준다.
014_0861_c_10L日明普照無憎無愛隨其高下深淺悉照菩薩亦如是出於世閒住五神處於虛空放智慧光照明諸罪福業及諸果報
보살이 지혜의 광명으로써 중생의 삿된 소견과 쓸모없는 이론을 없애는 것은 마치 아침 이슬이 해를 보면 이내 사라지는 것과 같다.
014_0861_c_14L菩薩以智慧光明滅衆生邪見戲論譬如朝露見日則消
大智度論卷第三十五釋第二品訖第三品上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어로는 Viśvakarman.
  2. 2)암라(菴羅, āmra)는 암마라(菴摩羅)의 줄임말이다.
  3. 3)범어 Jambhu의 음역어. 대나무를 말한다.
  4. 4)범어로는 dvīpa.
  5. 5)범어로는 sthāpanīya. 곧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말한다.
  6. 6)이 도종지(道種智)는 대지도론에서 설해지는 지혜로, 일체의 실천을 배워 중생을 구하는 보살의 지혜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