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文殊師利菩薩問菩提經論卷下

ABC_IT_K0560_T_002
015_0364_b_01L문수사리보살문보리경론(文殊師利菩薩問菩提經論) 하권(下卷)[가야산정경론이라고도 한다]
015_0364_b_01L文殊師利菩薩問菩提經論卷下 一名伽耶山頂經論


천친 지음
보리류지 한역
이미령 번역
015_0364_b_02L天親菩薩造
元魏天竺三藏菩提流支譯




이미 보살공덕세력분을 모두 설하였으니 다음에는 보살행차별분을 설하고자 한다.
015_0364_b_04L論曰已說菩薩功德勢力分次說菩薩行差別分

이때 대중 가운데 정광명주(定光明主)라고 이름하는 어떤 천자가 있었는데,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음을 얻었다. 그때에 정광명주천자가 문수사리법왕자에게 물었다.
“이 모든 보살마하살의 필경(畢竟)의 약도(略道)는 무엇이기에 모든 보살마하살이 이 약도로써 재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천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약도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두 길로써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방편도이고 둘째는 지혜도입니다.
방편이란 선법(善法)의 지혜를 포섭하여 아는 것이고, 지혜란 모든 법의 지혜를 여실하게 아는 것입니다. 또 방편이란 모든 중생지(衆生智)를 관하는 것이고, 지혜란 모든 법의 지혜를 여의는 것입니다. 또 방편이란 모든 법에 상응하는 지혜[法相應智]를 아는 것이고, 지혜란 모든 법에 상응하지 않는 지혜를 아는 것입니다. 또 방편이란 인도지(因道智)를 아는 것이고, 지혜란 인도지를 멸하는 것입니다.
015_0364_b_06L經曰爾時大衆中有天子名定光明不退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定光明主天子問文殊師利法王子何等是諸菩薩摩訶薩畢竟略道諸菩薩摩訶薩以是略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文殊師利答言諸菩薩摩訶薩略道有二種諸菩薩摩訶薩是二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等爲二一者方便道者慧道方便者知攝善法智慧者實知諸法智又方便者觀諸衆生慧者離諸法智又方便者知諸法相智慧者知諸法不相應智又方便觀因道智慧者滅因道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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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의 주인이신 세존께서 친히 대중 가운데 계시는데, 어찌하여 문수사리에게 질문을 하는가? 이것은 모든 보살마하살의 공덕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다. 이것은 어떤 뜻인가? 모든 중생이 보살에게 소홀하거나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므로 그들로 하여금 존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보살마하살의 행차별에는 두 종류의 도(道)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인청정도(因淸淨道)이고 둘째는 공덕청정도(功德淸淨道)이다.
인청정도란 뛰어난 인의 청정함을 나타내 보이고자 함이니, 그 뛰어난 인의 청정함에는 네 종류의 발심(發心)을 설하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이 네 종류인가? 첫째는 조청정도(助淸淨道)를 설함이고, 둘째는 공덕지도(功德智道)를 설함이고, 셋째는 실제증도(實際證道)를 설함이고, 넷째는 여실수행도(如寶修行道)를 설함이다.
015_0364_b_20L論曰法主世尊親在衆中何故乃問文殊師利以爲示現諸菩薩摩訶薩功德故此以何義以諸衆生於菩薩起輕慢心令生尊重恭敬心故菩薩摩訶薩行差別有二種道何等爲二一者因淸淨道二者功德淸淨因淸淨道者以示現勝因淸淨故彼勝因淸淨者以四種發心說何等爲四一者說助淸淨道二者說功德智道三者說實際證道四者說如實修行道
공덕청정도에는 여덟 종류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지혜를 취하여 일체 중생을 교화함이니, 경에서 “또 방편이란 선법지(善法智)를 포섭하는 것을 아는 것이고”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능히 일체중생의 모든 착하지 못한 행을 참는 것이니, 경에서 “지혜란 모든 법의 지혜[法智]를 여실하게 아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모든 백정법(白淨法)을 모으는 것이니, 경에서 “또 방편이란 모든 중생지(衆生智)를 관하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일체 보리분법을 관하는 것이니, 경에서 “지혜란 모든 법의 지혜를 여의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모든 법의 화합하는 모양을 아는 것이니, 경에서 “또 방편이란 모든 법에 상응하는 지혜[法相應智]를 아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섯째는 모든 법의 동일하지 않은 모양을 아는 것이니, 경에서 “지혜란 모든 법에 상응하지 않는 지혜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지혜란 모든 법에 상응하지 않는 지혜를 아는 것이다”라는 것은 갖가지의 소원이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중생을 교화할 수 있음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니, 경에서 “또 방편이란 인도지(因道智)를 관하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덟째는 갖가지 조도(助道)를 모으는 것이니, 경에서 “지혜란 인도지를 멸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미 공덕청정도를 모두 설하였으니 다음에는 인청정도를 설하겠다.
015_0364_c_09L功德淸淨道者有八種何等爲八一者攝取智教化一切衆生又方便者知攝善法智二者能忍一切衆生諸不善行如經慧者實知諸法智三者集諸白淨法又方便者觀一切衆生智四者觀一切菩提分法如經慧者離諸法智五者知諸法和合相如經又方便知諸法相應智六者知諸法不同相如經慧者知諸法不相應智又慧者知諸法不相應智者以種種願故七者如實知可化衆生如經方便者觀因道智八者集種種助如經慧者滅因道智已說功德淸淨道次說因淸淨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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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방편이란 모든 법의 차별지(差別智)를 아는 것이고, 지혜란 모든 법의 무차별지를 아는 것입니다. 또 방편이란 불국토를 장엄하는 지혜[莊嚴佛土智]이고, 지혜란 불국토를 장엄하되 평등한 무차별지입니다. 또 방편이란 중생의 모든 근행지(根行智)에 들어가는 것이고, 지혜란 중생지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또 방편이란 도량지(道場智)에 이르는 것이고, 지혜란 능히 일체 불보리의 법의 지혜[法智]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015_0364_c_23L經曰又方便者知諸法差別智慧者知諸法無差別智又方便者莊嚴佛智慧者莊嚴佛土平等無差別智又方便者入衆生諸根行智慧者見衆生智又方便者得至道場智慧能證一切佛菩提法智

인청정도에도 여덟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법을 관하는 것이니, 경에서 “또 방편이란 모든 법의 차별지를 아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모든 법의 근본인 온갖 인연을 여의는 것이니, 경에서 “지혜란 모든 법의 무차별지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모든 장애를 떠나는 것이니, 경에서 “또 방편이란 불국토를 장엄하는 지혜”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모든 화합을 끊는 것이니, 경에서 ”지혜란 불국토를 장엄하되 평등한 무차별지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여실지이니, 경에서 “또 방편이란 중생의 모든 근행지(根行智)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섯째는 하나의 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니, 경에서 “지혜란 중생지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일체범부의 허망한 분별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니, 경에서 “또 방편이란 도량지(道場智)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여덟째는 적정계(寂靜界)를 증득함이니, 경에서 “지혜란 능히 일체 불보리의 법의 지혜[法智]를 증득하는 것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365_a_06L論曰因淸淨道亦有八種何等爲八一者觀善不善法如經又方便者諸法差別智二者離諸因緣一切法根本如經慧者知諸法無差別智三者離一切障㝵如經又方便者莊嚴佛土智四者斷一切和合慧者莊嚴佛土平等無差別智五者如實知如經又方便者入衆生諸根行智六者入一法門如經不見衆生智七者如實知一切凡夫虛妄分別如經又方便者得至道場智八者證寂靜界如經慧者能證一切佛菩提法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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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천자여, 이른바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가지의 약도(略道)가 있으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 두 가지 길로써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습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조도(助道)이고, 둘째는 단도(斷道)입니다. 조도란 다섯 바라밀이고, 단도는 반야바라밀입니다.
또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장애가 있는 길이고, 둘째는 장애가 없는 길입니다. 장애가 있는 길은 다섯 바라밀이고, 장애가 없는 길은 반야바라밀입니다.
또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유루도이고, 둘째는 무루도입니다. 유루도는 다섯 바라밀이고, 무루도는 반야바라밀입니다.
또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헤아릴 수 있는 길이고 둘째는 헤아릴 수 없는 길입니다. 헤아릴 수 있는 길은 모습을 취해서 분별하는 것이고, 헤아릴 수 없는 길은 모습을 취해서 분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지도(智道)이고, 둘째는 단도입니다. 지도는 초지(初地)에서 7지(地)까지이고, 단도는 8지에서 10지까지 입니다.”
015_0365_a_19L經曰復次天子謂菩薩摩訶薩復有二種略道諸菩薩摩訶薩以是二道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等爲一者助道二者斷道助道者五波羅蜜斷道者般若波羅蜜復有二種略道何等爲二一者有礙道二者無礙道有㝵道者五波羅蜜無㝵道者般若波羅蜜復有二種略道何等爲一者有漏道二者無漏道有漏道五波羅蜜無漏道者般若波羅蜜復有二種略道何等爲二一者有量二者無量道有量道者取相分別無量道者不取相分別復有二種略何等爲二一者智道二者斷道道者謂從初地乃至七地斷道者從八地乃至十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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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공덕도(功德道)이고 둘째는 지도(智道)이다. 공덕도란 갖가지 선근을 모으는 것이니, 경에서 “조도란 다섯 바라밀”이라고 한 것과 같다. 지도는 일체법에 통달하는 것이니, 경에서 “단도는 반야바라밀입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첫째는 장애가 있는 길이고 둘째는 장애가 없는 길입니다. 장애가 있는 길을 다섯 바라밀이라고 한 것은 삼계에서 행하기 때문이니, 초지(初地) 이전이다. “장애가 없는 길은 반야바라밀입니다”라고 한 것은 삼계를 넘어서서 초지에 들어 지혜를 증득하는 것이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첫째는 유루도이고 둘째는 무루도입니다. 유루도는 다섯 바라밀”이라고 한 것은 세간의 과보를 성취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초지 이전이다. “무루도는 반야바라밀입니다”라고 한 것은 출세간의 과보를 성취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이미 출세간의 지혜를 얻었기 때문이다.
015_0365_b_12L論曰復有二種略道何等爲二一者功德道二者智道功德道者集種種善根如經助道者五波羅蜜智道通達一切法如經斷道者般若波羅蜜又經言復有二種略道何等爲二一者有㝵道二者無㝵道有㝵道者五波羅蜜者以行三界故此初地已前無㝵道者般若波羅蜜者過三界入初地證智故又經言復有二種略道何等爲二一者有漏道者無漏道有漏道者五波羅蜜者成就世閒果故此初地已前無漏道般若波羅蜜者以成就出世閒果此已得出世閒智故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헤아릴 수 있는 길이고 둘째는 헤아릴 수 없는 길입니다. 헤아릴 수 있는 길은 모습을 취하여 분별한 것”이라고 한 것은 인식의 경계를 두루 취하기 때문이다. “헤아릴 수 없는 길은 모습을 취하여 분별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것은 인식의 경계를 넘어서서 두루 취함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 두 종류의 약도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첫째는 지도(智道)이고 둘째는 단도(斷道)입니다. 지도는 초지에서 7지까지”라고 한 것은 유위의 세계를 여실하게 알기 때문이다. “단도는 8지에서 10지까지입니다”라고 한 것은 무위의 세계를 여실하게 알기 때문이다.
015_0365_c_03L又經言復有二種略道何等爲二一者有量道者無量道有量道者取相分別者遍取識境界故無量道者不取相分別者以過識境界不見遍取故又經復有二種略道何等爲二一者智二者斷道智道者謂從初地乃至七地者以如實知有爲界故斷道者謂從八地乃至十地者以如實知無爲界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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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모임 중에 보살마하살이 있었는데, 이름을 용수행지(勇修行智)라고 하였다. 그가 문수사리법왕자에게 물었다.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뜻이고,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지혜입니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선남자여, 뜻은 상응하지 않음이라고 이름하고, 지혜는 상응함이라고 이름한다.”
용수행지보살이 물었다.
“문수사리여, 무엇으로 뜻을 상응하지 않음이라고 이름하며, 무엇으로 지혜를 상응함이라고 이름하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선남자여, 뜻은 무위라고 이름하나니, 그 뜻은 단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는 것이 없으며,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왜냐 하면 변함이 없고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뜻은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는 것이 없고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본래 불성취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는 것이 없으며,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는 뜻이란 것은 옮기지도 않고 더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고,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015_0365_c_12L經曰爾時會中有菩薩摩訶薩名勇修行智問文殊師利法王子言何謂菩薩摩訶薩義何謂菩薩摩訶薩智文殊師利答言善男子義名不相應智名相應勇修行智菩薩言文殊師何謂義名不相應何謂智名相應文殊師利言善男子義名無爲彼義無有一法共相應無有一法不共相何以故以無變無相故義者無有一法共相應無有一法不共相應本不成就義故是故無有一法共相無有一法不共相應義者不移不無有一法共相應無有一法不共相應故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뜻은 상응하지 않음이라고 이름하고, 지혜는 상응함이라고 이름한다”라는 것은 실제로 네 종류가 있음을 나타내 보인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뜻은 무위라고 이름하니 그 뜻은 단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는 것이 없으며,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변함이 없고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모든 덧없는 허물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뜻은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는 것이 없고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자체의 성품에 머물기 때문에 경에서 “본래 불성취의 뜻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으니,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는 것이 없으며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항상 진여법계의 실체로 머무르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뜻이란 옮아가지 않고 더하지 않으며, 하나의 법이라도 함께 상응하지 않고 하나의 법이라도 합께 상응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하나의 법이라도 옮기지 않고 더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법계는 늘어나거나 줄어듦이 없기 때문이다.
015_0366_a_03L論曰經言善男子義名不相應智名相應示現實際有四種又經言男子義名無爲彼義無有一法共相無有一法不共相應何以故以無變無相故以離諸無常過故是故經言義者無有一法共相應無有一法不共相應以自體性住故如經以本不成就義故是故經言無有一法共相應無有一法不共相應常眞如法界實體住故是故經言者不移不益無有一法共相應無有一法不共相應故又無有一法不移不益者以法界不增不減故

선남자여, 지혜(智慧)를 이름하여 도(道)라고 한다. 도는 마음과 함께 상응하는 것이지 상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지혜는 상응이라고 이름하니 상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선남자여, 지혜를 이름하여 단상응(斷相應)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지혜를 이름하여 상응법이라고 하니 상응법이 아닌 것이 아니다.
또한 선남자여, 지혜를 이름하여 5음ㆍ12입ㆍ18계ㆍ12인연과 옳은 곳과 그른 곳을 잘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여, 이런 뜻이기 때문에 지혜를 이름하여 상응이라고 하며 상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015_0366_a_16L經曰善男子智者名道道者心共相非不相應善男子以是義故智名相應非不相應復次善男子智名斷相應是故善男子智名相應法非不相應法復次善男子智名善觀五陰十二入十八界十二因緣是處非處善男子以是義故智名相應非不相應
015_0366_b_01L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지혜를 이름하여 도라고 한다. 도는 마음과 함께 상응하는 것이지 상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 이하부터 다음에는 증법계(證法界)를 설하기 위함이다. 세 종류의 구절에 여섯 종류의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것은 어떤 뜻을 밝히고자 함인가? 어떤 지혜로써 어떻게 증득하며, 어떤 뜻과 어떤 곳에 머물러서 능히 법계를 증득함인가? 어떤 지혜라는 것은 세 종류의 구절에 여섯 종류의 열 가지 법으로 나타내 보인다.
어떻게 세 종류의 구절로 어떤 지혜를 나타내 보인다는 것인가? 지혜를 도라고 이름하니, 도라는 것은 마음과 상응하는 법이요 상응하지 않는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지혜(智慧)를 상응이라고 이름하니 상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또 지혜는 권속과 함께 능히 법계를 증득하니 왜 그런가? 마음이 청정하므로 도가 청정하고 도가 청정하므로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지혜를 이름하여 단상응(斷相應)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남자여, 지혜를 이름하여 상응법이라고 하니 상응법이 아닌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공통의 의지(依止)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지혜를 이름하여 5음ㆍ12입ㆍ18계ㆍ12인연, 옳은 곳과 그른 곳을 잘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남자여, 이런 뜻이기 때문에 지혜를 이름하여 상응이라고 하며 상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가히 알 수 있는 경계를 여실히 알기 때문이다.
이미 세 종류 구절을 모두 설하였으니, 다음에는 여섯 종류의 열 가지 법을 설하겠다. 처음에는 열 가지 지혜를 설한다.
015_0366_b_01L論曰經言善男子智者名道道者心共相應非不相應自此以下次說爲證法界有三種句六種十法此明何義以何等智云何證爲何義何處住能證法界以何等智者以三種句六種十法示現云何三種句示現何等智者謂道道者心相應法非不相應法是故經言善男子以是義故名相應非不相應又智共眷屬證法界何以故以心淸淨故道淸淨以道淸淨故心淸淨故又經言復次善男子智名斷相應是故善男子名相應法非不相應法以遞共依止故又經言復次善男子智名善觀五陰十二入十八界十二因緣是處非處善男子是故智名相應非不相以如實知可知境界故已說三種句次說六種十法初說十種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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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지혜가 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인지(因智)이고, 둘째는 과지(果智)이고, 셋째는 의지(義智)이고, 넷째는 방편지(方便智)이고, 다섯째는 혜지(慧智)이고, 여섯째는 섭지(攝智)이고, 일곱째는 바라밀지(波羅蜜智)이고, 여덟째는 대비지(大悲智)이고, 아홉째는 교화중생지(敎化衆生智)이고, 열째는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는지[不著一切法智]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라고 한다.
015_0366_b_19L經曰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有十種智何等爲十一者因智二者果三者義智四者方便智五者慧智六者攝智七者波羅蜜智八者大悲九者教化衆生智十者不著一切法智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智

경에서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지혜가 있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인지”라고 한 것은 무시이래 세상의 해탈종자(解脫種子)를 잘 알기 때문이다.
“둘째 과지”라는 것은 무시이래의 세상의 갖가지 업보를 여실하게 알기 때문이다. “셋째 의지”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남의 이익을 잘 알기 때문이다. “넷째 방편지”라는 것은 아주 작은 선근을 능히 늘려서 한량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섯째 혜지”라는 것은 능히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법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섭지”라는 것은 법시(法施)와 자생시(資生施:중생을 자량하는 보시)를 거두고 취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바라밀지”라는 것은 갖가지 선근을 잘 알아서 성취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대비지”라는 것은 선근에 의지하여 능히 선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홉째 교화중생지”라는 것은 때와 때 아닌 때를 잘 관찰하기 때문이다. “열째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는 지이다”라는 것은 두 극단을 떠나서 중도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지혜라고 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미 처음의 열 가지 지혜를 모두 설하였으니, 이어서 두 번째 열 가지 발(發)함을 설하고자 한다.
015_0366_c_03L論曰經言諸菩薩摩訶薩有十種智何等爲十一因智者以善知無始世來解脫種子故二果智以如實知無始世來種種業報故三義智知自利利他故四方便智以能增長微少善根令無量故五慧智以能觀察善不善法故六攝智攝取法施資生施故七波羅蜜智以善知成就種種善根故八大悲智以依善根能起善行故九教化衆生智以善觀察時非時故十不著一切諸法智以離二邊修行中道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智已說初十種智次說第二十種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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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발함이 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발함[身發]이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몸의 업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입의 발함[口發]이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입의 업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뜻의 발함[意發]이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뜻의 업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안의 발함[內發]이니, 일체 모든 중생을 허망하게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밖의 발함[外發]이니, 일체중생에 대해 평등하게 행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지혜의 발함[智發]이니, 부처님 지혜의 청정함을 갖추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청정국토의 발함[淸淨國土發]이니, 일체 모든 불국토의 공덕장엄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발함[敎化衆生發]이니, 일체 번뇌의 병에 듣는 약을 알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실발(實發)이니, 정취(定趣)를 성취하기 때문이다. 열째는 무위지만족심발(無爲智滿足心發)이니, 일체 삼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발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015_0366_c_18L經曰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有十種發何等爲十一者身發欲令一切衆生身業淸淨故二者口發欲令一切衆生口業淸淨故三者意發令一切衆生意業淸淨故四者內發以不虛妄分別一切諸衆生故五者外發以於一切衆生平等行故六者智發以具足佛智淸淨故七者淸淨國土發以示一切諸佛國土功德莊嚴故八者教化衆生發以知一切煩惱病藥故九者實發以成就定聚故十者無爲智滿足心發以不著一切三界故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發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발함이 있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발함이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몸의 업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입의 발함이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입의 업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뜻의 발함이니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뜻의 업을 청정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은 몸과 입과 뜻의 모든 악행을 멀리 여의게 하여 큰 정진을 발하게 하기 위함이다.
“넷째는 안의 발함이니”라는 것은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그곳을 배우게 하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일체 모든 중생을 허망하게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밖의 발함이니 일체 중생에 대해 평등하게 행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미움이나 사랑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015_0367_a_09L論曰經言諸菩薩摩訶薩有十種何等爲十一者身發欲令一切衆生身業淸淨故二者口發欲令一切衆生口業淸淨故三者意發欲令一切衆生意業淸淨故以爲遠離身意業一切惡行發大精進故四者內以化一切衆生令學彼處故不虛妄分別一切衆生故者以不著諸法五者外發於一切衆生平等行故以遠離憎愛故
015_0367_b_01L“여섯째는 지혜의 발함이니, 부처님 지혜의 청정함을 갖추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일체 중생을 평등하게 교화하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청정국토의 발함이니, 일체 모든 불국토의 공덕장엄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지혜를 들어서 뒤바뀜 없이 법을 구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발함이니, 일체 번뇌의 병에 듣는 약을 알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일체법에서 자재함을 얻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실발이니, 정취(定趣)를 성취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여실하게 알아 마음이 상응함에 따라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열째는 무위지만족심발이니”라는 것은 실다운 법을 발하기 때문이며, “일체 삼계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마음이 허망한 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 실다우면서도 실답지 않은 마음으로 허망하게 취한 상을 여의기 때문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발함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이미 두 번째의 열 가지 발함을 설하였다. 이어서 세 번째 열 가지 행함을 설하고자 한다.
015_0367_a_19L六者智發以具足佛智淸淨故以平等教化一切衆生故七者淸淨國土發以示一切佛國土功德莊嚴故以聞慧智不顚倒求法故八者教化衆生發以知一切煩惱病藥故以於一切法中自在故九者實發以成就定聚故以如實知心使隨相應說法故十者無爲智滿足心發以發實法故著一切三界故者以心不著虛妄法又實不實心離虛妄取相故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發已說第二十種發次說第三十種行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행이 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바라밀행이고, 둘째는 섭사행(攝事行)이고, 셋째는 혜행(慧行)이고, 넷째는 방편행이고, 다섯째는 대비행이고, 여섯째는 구조혜법행(求助慧法行)이고, 일곱째는 구조지법행(救肋智法行)이고, 여덟째는 마음의 청정행이고, 아홉째는 모든 진리를 관하는 행[觀諸諦行]이고, 열째는 일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모든 일에 탐착하지 않는 행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015_0367_b_08L經曰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有十種行何等爲十一者波羅蜜行者攝事行三者慧行四者方便行者大悲行六者求助慧法行七者求助智法行八者心淸淨行九者觀諸諦行十者於一切愛不愛事不貪著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行
015_0367_c_01L
경에서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행이 있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 바라밀행”이라는 것은 보리법을 도와서 만족하기 때문이다. “둘째 섭사행”이라는 것은 능히 모든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셋째 혜행”이라는 것은 생멸법을 여실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다. “넷째 방편행”이라는 것은 일체법을 여실하게 알기 때문이다. “다섯째 대비행”이라는 것은 마음이 열반을 구하거나 증득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섯째 구조혜법행”이라는 것은 네 가지 두려움 없음을 얻기 때문이다. “일곱째 구조지법행”이라는 것은 일체법을 자연히 얻기 때문이다. “여덟째 마음의 청정행”이라는 것은 일체법에서 의혹이 없기 때문이다. “아홉째 모든 진리를 관하는 행”이라는 것은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열째, 일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모든 일에 탐착하지 않는 행”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미워하거나 좋아함을 멀리 여읜 것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행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미 어떤 지혜인가를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어떻게 증득하는 것인가를 설하겠다. 네 번째의 열한 가지 무진관(無盡觀)을 나타내 보인다.
015_0367_b_16L論曰經言諸菩薩摩訶薩有十種行何等爲十一波羅蜜行以助菩提法滿足故二攝事行以能教化諸衆生故三慧行以如實觀生滅法四方便行以如實知一切法故五大悲行以心不求證涅槃故求助慧法行以爲得四無畏故求助智法行以爲自然得一切法八心淸淨行以於一切法中無疑惑故九觀諸諦行以入第一義諦故十於一切愛不愛事不貪著行如前所說離憎愛故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行已說何等智次說云何證第四十一種無盡觀示現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한 가지 무진관이 있다. 어떤 것이 열한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무진관이며, 둘째는 일[事]의 무진관이고, 셋째는 번뇌의 무진관이고, 넷째는 법의 무진관이고, 다섯째는 애(愛)의 무진관이고, 여섯째는 견(見)의 무진관이고, 일곱째는 조도(助道)의 무진관이고, 여덟째는 취(取)의 무진관이고, 아홉째는 불착(不著)의 무진관이고, 열째는 상응의 무진관이며, 열한째는 도량지성(道場智性)의 무진관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한 가지 무진관이라고 하는 것이다.
015_0367_c_08L經曰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有十一種無盡觀何等爲十一一者身無盡二者事無盡觀三者煩惱無盡觀四者法無盡觀五者愛無盡觀六者見無盡觀七者助道無盡觀八者取無盡觀九者不著無盡觀十者相應無盡觀十一者道場智性無盡觀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一種無盡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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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서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한 가지 무진관이 있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열한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무진관이다”라고 한 것은 성스럽거나 성스럽지 않은 유위ㆍ무위의 몸을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둘째, 일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참답거나 참답지 않은 것을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셋째, 번뇌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깨끗하거나 더러운 법을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넷째, 법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상, 중, 하의 모든 법을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애(愛)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착하거나 착하지 않은 법을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015_0367_c_17L論曰經言諸菩薩摩訶薩有十一種無盡觀何等爲十一一身無盡觀以如實觀聖非聖有爲無爲身故二者事無盡觀以如實觀實不實義故三煩惱無盡觀以如實觀淨染法故法無盡觀以如實觀上下一切諸法故五愛無盡觀以如實觀善不善法故
“여섯째 견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뒤바뀌거나 뒤바뀌지 않은 견해를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조도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갖가지 법문으로 선근을 닦고 모아서 대보리에 회향하는 것을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취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끝없는 중생세계를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아홉째 불착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앞에서 설한 것에 집착하는 뜻이 없기 때문이다. “열째 상응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바른 뜻이거나 바르지 못한 뜻을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열한째 도량지성의 무진관”이라는 것은 중생의 믿음에 따라서 도량에 앉은 모습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한 가지 무진관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미 어떻게 증득하는가를 설하였다. 이어서 어떤 뜻인가를 설하겠다. 다섯 번째의 열 가지 대치법을 나타내 보인다.
015_0368_a_02L六見無盡觀以如實觀顚倒不顚倒見故七助道無盡觀以如實觀種種門修集善根迴向大菩提故八取無盡觀以如實觀無邊衆生界故九者不著無盡觀著義如向所說十相應無盡觀如實觀是義非義故十一道場智性無盡觀以隨衆生信示現坐道場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一種無盡觀已說云何證次說爲何義第五十種對治法示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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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대치법(對治法)이 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아끼고 탐내는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비 내리듯 보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파계심을 대치하는 것이니, 몸과 입과 뜻의 업인 세 가지 법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내는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청정한 대자비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게으른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법을 구할 때에 피로하거나 싫증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선하지 않은 각관심(覺觀心)을 대치하는 것이니, 선정을 얻어서 해탈하여 신통력이 자재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어리석은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결정된 지혜를 도와서 방편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모든 번뇌의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조도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뒤바뀐 길을 대치하는 것이니 참다운 진리의 조도(助道)를 모아서 뒤바뀐 길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자재하지 못한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법의 때이거나 때 아닌 때에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 열째는 ‘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니, 모든 법이 무아임을 관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대치법이라고 한다.
015_0368_a_12L經曰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有十種對治法何等爲十一者對治慳貪心雨布施雨故二者對治破戒心意業三法淸淨故三者對治瞋恚心修行淸淨大慈悲故四者對治懈怠心求諸佛法無疲倦故五者對治不善覺觀心得禪定解脫奮迅自在故六者對治愚癡心生助決定慧方便法故七者對治諸煩惱心生助道法故八者對治顚倒道集實諦助生不顚倒道故九者對治不自在法時非時得自在故十者對治有我相觀諸法無我故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對治法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대치법이 있다”라고 한 것은 10바라밀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단[檀]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아끼고 탐내는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비 내리듯 보시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둘째는 시(尸)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파계심을 대치하는 것이니 몸과 입과 뜻의 업인 세 가지 법이 청정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셋째는 찬제(羼提)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성내는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청정한 대자비를 수행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넷째는 비리야(毘離耶)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게으른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법을 구할 때에 피로하거나 싫증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다섯째는 선(禪)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선(善)하지 않은 각관심(覺觀心)을 대치하는 것이니 선정을 얻어서 해탈하여 신통력이 자재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368_b_03L論曰經言諸菩薩摩訶薩有十種對治法以十波羅蜜淸淨故何等爲一者檀波羅蜜淸淨如經對治慳貪心雨布施雨故二者尸波羅蜜淸如經對治破戒心意業三法淸淨故三者羼提波羅蜜淸淨如經對治瞋恚心修行淸淨大慈悲故者毘離耶波羅蜜淸淨如經對治懈怠心求諸佛法無疲惓故五者禪波羅蜜淸淨如經對治不善覺觀心禪定解脫奮迅自在故
015_0368_c_01L여섯째는 반야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어리석은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결정된 지혜를 도와서 방편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일곱째는 방편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모든 번뇌의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조도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여덟째는 원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뒤바뀐 길을 대치하는 것이니 참다운 진리의 조도(助道)를 모아서 뒤바뀐 길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아홉째는 역(力)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자재하지 못한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니, 법의 때이거나 때 아닌 때에 자재함을 얻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열째는 지(智)바라밀의 청정이니, 경에서 “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니 모든 법이 무아임을 관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대치법이라고 한다”고 한 것과 같다.
이미 어떤 뜻인가를 설하였다. 다음에는 어디에 머무는가를 설하고자 한다. 여섯 번째의 열 가지 적정지(寂靜地)를 나타내 보인다.
015_0368_b_14L六者般若波羅蜜淸淨如經對治愚癡心生助決定慧方便法故七者方便波羅蜜淸如經對治諸煩惱心生助道法故八者願波羅蜜淸淨如經對治顚倒道集實諦助道生不顚倒道故九者力波羅蜜淸淨如經對治不自在心法時非時得自在故十者智波羅蜜淸淨如經對治有我相觀諸法無我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對治法已說爲何義次說何處住第六十種寂靜地示現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의 적정지가 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적정이니 세 가지 몸의 착하지 않은 업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입[口]의 적정이니 네 가지 입의 업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마음의 적정이니 세 가지 뜻의 악행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넷째는 안[內]의 적정이니 제 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외경계의 적정이니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지공덕(智功德)의 적정이니 도(道)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승적정(勝寂靜)이니 성지(聖地)를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미래제의 적정이니 피안의 지혜로 행함을 돕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행한 바 세속의 일의 적정이니 일체 중생을 속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째는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 적정이니 대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적정지라고 하는 것이다.
015_0368_c_02L經曰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有十種寂靜地何等爲十一者身寂靜以離三種身不善業故二者口寂靜以淸淨四種口業故三者心寂靜離三種意惡行故四者內寂靜以不著自身故五者外境界寂靜以不著一切法故六者智功德寂靜以不著道故七者勝寂靜以如實觀聖地故八者未來際寂靜以彼岸慧助行故九者所行世事寂靜以不誑一切衆生故十者不惜身心寂靜以大慈悲心教化一切衆生故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寂靜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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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서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열 가지 적정지가 있다”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몸의 적정이니 세 가지 몸의 착하지 않은 업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입의 적정이니 네 가지 입의 업이 청정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마음의 적정이니 세 가지 뜻의 악행을 여의었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세 가지 계가 잘 청정해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안의 적정이니 제 몸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삿된 아견(我見)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외경계의 적정이니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항상하거나 무상한 법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지공덕의 적정이니 도(道)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물질이 있거나 물질이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일곱째는 승적정이니 성지(聖地)를 여실하게 관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성문이나 벽지불지를 보지 않고 모든 불보살의 성스러운 지위를 여실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다. “여덟째는 미래제(未來際)의 적정이니 피안의 지혜로 행함을 돕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모든 모습에 허망하게 취착하는 것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다.
“아홉째는 행한 바 세속의 일의 적정이니 일체 중생을 속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세속의 진리와 제일의제를 여실하게 알기 때문이다. “열째는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 적정이니 대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중생을 교화함으로써 온갖 처소에 태어나도 피로하거나 싫증내지 않기 때문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열 가지 적정지라고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이미 법계를 증득하는 것을 설하였다. 이 다음부터는 이어서 모든 보살마하살이 수순하여 여실하게 수행하는 뜻을 설하고자 한다.
015_0368_c_15L論曰經言諸菩薩摩訶薩有十種寂靜地何等爲十一者身寂靜以離三種身不善業道故二者口寂靜以淸淨四種口業故三者心寂靜以離三種意惡行故以三種戒善淸淨故四者內寂靜以不著自身故以離邪我見故五者外境界寂靜以不著一切法故以離常無常法故六者智功德寂靜以不著道故以不著有物無物故七者勝寂靜以如實觀聖地故以不見聲聞辟支佛地實觀察諸佛菩薩聖地故八者未來際寂靜以彼岸慧助行故以遠離一切虛妄取相故九者所行世事寂以不誑一切衆生故以如實知世諦第一義諦不顚倒說法故十者不惜身心寂靜以大慈悲心教化一切衆生故以爲教化衆生一切處生不疲倦故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十種寂靜地已說證法界自此已下次說諸菩薩摩訶薩隨順如實修行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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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여실하게 수행하여 보리를 얻지 여실하지 않게 수행하여 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선남자여, 여실하게 수행한다는 것은 설한 바대로 능히 행하는 것이다. 여실하지 않게 수행한다는 것은 단지 말만 있을 뿐 능히 여실하게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또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지(智)를 여실하게 수행하는 도이고, 둘째는 단(斷)을 여실하게 수행하는 도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자신을 조복하는 여실한 수행이고, 둘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여실한 수행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015_0369_a_14L經曰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如實修行得菩提非不如實修行得菩善男子云何名爲諸菩薩摩訶薩如實修行善男子如實修行者如說能行故不如實修行者但有言說不能如實修行故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一者智如實修行道二者斷如實修行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一者調伏自身如實修行二者教化衆生如實修行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공용지(功用智)를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무공용지(無功用智)를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모든 지(地)를 잘 알아서 분별하여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지의 차별 없는 방편을 잘 알아서 분별하여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015_0369_b_05L復次善男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何等爲二一者功用智如實修行二者無功用智如實修行善男子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二一者善知分別諸地如實修行二者善知諸地無差別方便如實修行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모든 지(地)의 허물을 여의고서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지와 지를 굴리는 방편을 잘 알아서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성문ㆍ벽지불지(地)를 능히 설하여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고, 둘째는 불보리의 물러섬 없는 방편을 잘 알아서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
015_0369_b_14L復次善男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何等爲二一者離諸地過如實修二者善知地地轉方便如實修行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二一者能說聲聞辟支佛地如實修行二者善知佛菩提不退轉方便如實修行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
015_0369_c_01L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여실하게 수행하여 보리를 얻지 여실하지 않게 수행하여 보리를 얻는 것이 아니다. 선남자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이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여실하게 수행한다는 것은 설한 바대로 능히 행하는 것이다. 여실하지 않게 수행한다는 것은 단지 말만 있을 뿐 능히 여실하게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것은 말한 바대로 이와 같이 수행하는 것이니 앞서의 말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또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지(智)를 여실하게 수행하는 도이고, 둘째는 단(斷)을 여실하게 수행하는 도이다.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를 여실하게 알고 증득하였지만 그곳을 구경으로 삼아 취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015_0369_c_01L論曰經言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如實修行得菩提非不如實修行得菩提善男子云何名爲諸菩薩摩訶薩如實修行如實修行者如說能行故不如實修行者但有言說不能如實修行故以如所說如是修行以不違先言故又經言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二一者智如實修行道二者斷如實修行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以如實知證聲聞辟支佛智而不取彼處以爲究竟故
015_0370_a_01L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자신을 조복하는 여실한 수행”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미묘한 도를 취하여 여실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중생을 교화하는 여실한 수행”이라는 것은 다른 중생을 교화하여 바른 도에 들어가도록 여실하게 법을 말하기 때문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공용지(功用智)를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은 마음을 내어 보살행을 하는 공용지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무공용지(無功用智)를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보살이 수도(修道) 중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않고 보살행을 하는 무공용행지(無功用行智)이기 때문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369_c_14L又經言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一者調伏自身如實修行以自取妙道如實修行故二者教化衆生如實修行以化餘衆生令入正道如實說法故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又經言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二一者功用智如實修行以作心行菩薩行功用智故二者無功用行智如實修行菩薩於修道中住以無作心行菩薩行無功用行智故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모든 지(地)를 잘 알아서 분별하여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은 지혜와 방편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둘째는 모든 지의 차별 없는 방편을 잘 알아서 분별하여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은 하나의 모습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모든 지(地)의 허물을 여의고서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은 두 극단을 여의기 때문이다. “둘째는 지와 지를 굴리는 방편을 잘 알아서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선한 법을 수행함에 있어서 쉬지 않고 정진하기 때문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370_a_04L經言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二一者善知分別諸地如實修行以善智慧方便故二者善知諸地無差別方便如實修行以入一相故如經善男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又經言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二一者離諸地過如實修行以離二邊二者善知地地轉方便如實修行以修行善法不休息精進故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
또 경에서 말하기를 “또한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성문과 벽지불지를 능히 설하여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은 일체법을 잘 배우기 때문이다. “둘째는 불보리의 물러섬 없는 방편을 잘 알아서 여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은 진여법을 증득하여 여실하게 알고 방편을 수행하는 것이다. 경에서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보살마하살의 두 종류의 여실한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370_a_17L又經言復次善男子諸菩薩摩訶薩復有二種如實修行何等爲二一者能說聲聞辟支佛地如實修行以善學一切法故二者善知佛菩提不退轉方便如實修行證眞如法如實知修行方便故如經善男子是名諸菩薩摩訶薩二種如實修行
015_0370_b_01L 선남자여,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이와 같은 등의 한량없고 가없는 여실한 수행이 있으니,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여실한 수행을 배워야한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여실하게 수행한다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되 곤란함이 없을 것이다.
015_0370_b_01L經曰善男子諸菩薩摩訶薩有如是等無量無邊如實修行諸菩薩摩訶薩應如是學如實修行諸菩薩摩訶薩若能如是如實修行者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以爲難

네 가지의 뛰어난 인(因)을 수행하고, 네 가지 뛰어난 과보와 나머지를 성취하여 여실한 수행을 하기 때문이니, 그 뛰어난 과보란 것은 모든 여래의 지혜로 일념(一念) 속에 3세의 일을 알아서 모두 상응하기 때문이다.
015_0370_b_06L論曰修行四種勝因成就四種勝果及餘如實修行故彼勝果者諸如來於一念中知三世事皆相應故

이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법왕자를 칭찬하시며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구나, 문수사리여, 그대는 지금 모든 보살마하살을 위하여 본업도(本業道)를 능히 잘 설명하였으니,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이해해야 한다.”
015_0370_b_09L經曰爾時佛讚文殊師利法王子言善哉善哉文殊師利汝今善能爲諸菩薩摩訶薩說本業道誠如汝所說

‘장하다’라는 것은 뒤바뀌지 않게 법을 설하였기 때문이니,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을 잘 따랐기 때문이다.
015_0370_b_12L論曰善哉者以不顚倒說法故隨順如來所說法故

이 법을 설할 때에 십천(十千)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문수사리법왕자 등과 일체 세간ㆍ하늘ㆍ인간ㆍ아수라 등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모두가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015_0370_b_14L經曰說是法時十千菩薩得無生法文殊師利法王子等一切世閒天阿修羅等聞佛所說皆大歡喜受奉行

세 가지의 뜻이 있어서 환희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설법하는 자가 청정한 것이니, 모든 법에 있어서 자재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설해진 법이 청정한 것이니, 청정한 법의 본체를 여실하게 증득하여 알기 때문이다. 셋째는 설해진 법으로 얻게 되는 과보가 청정함이니, 깨끗하고 미묘한 경계를 얻기 때문이다. 경에서 “모두가 크게 기뻐하며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라고 한 것과 같다.
015_0370_b_18L論曰有三種義是故歡喜何等爲三一說者淸淨以於諸法得自在故所說法淸淨以如實證知淸淨法體三依所說法得果淸淨以得淨妙境界故如經皆大歡喜信受奉行
文殊師利菩薩問菩提經論卷下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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