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妙法蓮華經憂波提舍 卷下

ABC_IT_K0563_T_002
015_0418_c_01L묘법연화경우바제사(妙法蓮花經憂波提舍) 하권
015_0418_c_01L妙法蓮華經憂波提舍 卷下
바수반두 지음
후진 북천축 삼장 보리유지, 사문 담림 공역
015_0418_c_02L大乘論師婆藪槃豆釋後魏北天竺三藏菩提留支共沙門曇林等譯
2. 방편품 ②
015_0418_c_04L方便品之餘
이와 같이 이미 묘법의 공덕이 구족함을 말하였고, 다음에는 여래께서 법사공덕(法師功德)의 성취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경에 “무슨 까닭인가?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자재하게 말씀하시는 인을 성취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여래께서는 네 가지 공덕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중생을 제도하실 수 있는 것이다.
015_0418_c_05L如是已說妙法功德具足次說如來法師功德成就應知如經何以故利弗諸佛如來自在說因成就來成就四種功德故能度衆生
어떤 것이 이 네 가지인가? 첫째 주성취(住成就)이니, 경에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갖가지 방편을 성취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갖가지 방편이란 도솔천(兜率天)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셔서, 열반에 드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둘째 교화성취(敎化成就)이니, 경에 “갖가지 지견”이라고 하였다. 갖가지 지견이란 더럽고 청정한 모든 인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셋째 공덕을 필경에 성취함이니, 경에 “갖가지 염관(念觀)”이라고 하였다. 갖가지 염관(念觀)이란 그 법의 성취한 인연을 말함이 법답게 상응하는 까닭이다. 넷째 설법성취[說成就]니, 경에 “갖가지 언사(言辭)”라고 하였다. 갖가지 언사란 네 가지 걸림 없는 지혜로써 어떠어떠한 명자(名字)와 장구(章句)에 의거하여 어떠어떠한 중생을 따라 능히 받아서 말하는 것이다.
015_0418_c_09L何等爲四一者住成就如經舍利弗如來成就種種方便種種方便者謂從兜率天中退沒乃至示現入涅槃故二者敎化成就如經種種知見種知見者示現染淨諸因故三者功德畢竟成就如經種種念觀種種念觀者以說彼法成就因緣如法相應故四者說成就如經種種言辭種種言辭者以四無碍智依何等何等名字章句隨何等何等衆生能受而爲說故
015_0419_a_01L또다시 이러한 뜻도 있다. 갖가지 방편이란 갖가지 방편으로 외도(外道)에게 있는 삿된 법이 이러이러한 갖가지 과실(過失)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고, 갖가지 방편으로 모든 부처님께 있는 정법에 이러이러한 갖가지 공덕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니, 경에 “사리불아, 내가 성불한 뒤로 널리 가르침을 폈으며,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을 인도하여 모든 집착하는 곳에서 해탈을 얻게 하였다”라고 하였다.
015_0418_c_20L又復有義種種方便者種種方便示現外道所有邪法如是如是種種過失故種種方便示現諸佛所有正法如是如是種種功德故如經舍利弗吾從成佛已來廣演言敎無數方便引導衆生於諸著處令得解脫
또 무수한 방편이란 방편으로 모든 선법(善法)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고, 또 방편이란 모든 의혹을 끊는 것이고, 또 방편이란 매우 뛰어난 지혜 가운데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고, 또 방편이란 사섭법(四攝法)에 의거하여 중생들을 섭취(攝取)하여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다. 모든 집착하는 곳이란 그 곳곳에서 집착하는 것이니, 혹은 모든 계(界)에 집착하고, 혹은 모든 지(地)에 집착하고, 혹은 모든 분(分)에 집착하고, 혹은 모든 승(乘)에 집착함이다. 모든 계에 집착함이란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에 집착함을 말함이요, 모든 지에 집착함이란 계(界)에 집착함을 말하는데, 삼매에 의하여 선정(禪定)의 지(地) 즉 초선지(初禪地)로부터 비상비비상지(非想非非想地)를 얻고 멸진정지(滅盡定地) 등도 얻는 것이다.
015_0419_a_04L無數方便者方便令入諸善法故方便者斷諸疑故又方便者令入增上勝智中故又方便者依四攝法攝取衆生令得解脫故諸著處者彼處處著或著諸界或著諸地或著諸分或著諸乘著諸界者謂著欲無色界故著諸地者謂著界故依於三昧取禪定地謂初禪地乃至非想非非想地及取滅盡定地等故
모든 분(分)에 집착한다는 것은 재가(在家)와 출가(出家)의 분(分)에 집착하는 것이다. 재가의 분에 집착한다는 것은 자기와 같은 부류[類]에 집착하여 갖가지 업의 삿된 견해 등을 짓는 까닭이요, 출가의 분에 집착한다는 것은 명예를 구하고[名聞] 이익을 구하여[利養] 갖가지의 깨달음과 번뇌 등에 집착하는 까닭이다. 모든 승에 집착한다는 것은 성문승ㆍ보살승에 집착하는 것이니, 성문승에 집착한다는 것은 즐거이 소승계(小乘戒)를 지녀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 등을 구하는 것이요, 대승에 집착한다는 것은 이익을 구하여 공양과 공경에 집착하고, 분별하여 갖가지 법상(法相)을 관찰하여 불지(佛地)에 도달함에 집착하는 것이다.
015_0419_a_13L著諸分者謂著在家出家分故著在家分者己同類作種種業邪見等故著出家分者著名聞利養種種覺煩惱等故著諸乘者著聲聞乘菩薩乘故著聲聞乘者樂持小乘戒求須陁洹斯陁阿那含阿羅漢等故著大乘者著利養供養恭敬等故著分別觀種種法相乃至佛地故
015_0419_b_01L또 갖가지 지견이란 자신이 불가사의하며 뛰어나고 묘한 경계를 성취하며 모든 성문ㆍ보살과 더불어 함께 하는 까닭이니, 경에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지견과 방편으로 피안에 이르느니라”라고 하였다. 피안에 이른다는 것은 다른 모든 보살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015_0419_a_21L又復種種知見者自身成就不可思議勝妙境界與諸聲聞菩薩等故舍利弗如來知見方便到於彼岸到彼岸者勝餘一切諸菩薩故
또 갖가지 염관(念觀)이라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지견이 넓고 크며, 깊고 멀어서 무장(無障)ㆍ무애(無碍)ㆍ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ㆍ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ㆍ오근(五根)ㆍ오력(五力)ㆍ보리분(菩提分)ㆍ선정ㆍ해탈삼매ㆍ삼마발제를 모두 이미 구족하였느니라”라고 하였다.
015_0419_b_02L又復種種念觀者如經舍利弗如來知見廣大深遠無障無碍無所畏不共法菩提分禪定解脫三昧三摩跋提皆已具足
또 첫째 성취는 교화할 만한 중생이 선지식에 의하여 성취하는 것이요, 둘째 성취는 근기가 성숙한 중생이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요, 셋째 성취는 힘을 가진 이[力家]가 자재하고 청정하게 항복하는 것이요. 넷째 성취에는 다시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 종종성취(種種成就)이니, 경에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끝없는 삼매에 깊이 드시어 온갖 미증유한 법을 성취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둘째 언어성취(言語成就)니, 다섯 가지 미묘한 음성과 언어를 얻어 설법하는 것이다. 경에 “여래께서는 갖가지로 분별하여 공교로이 모든 법을 말씀하시는데 말씀이 부드러워 여러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015_0419_b_06L又第一成就可化衆生依善知識而成就故第二成就根熟衆生令得解脫故第三就力家自在淨降伏故第四成就復有七種一者種種成就如經舍利弗諸佛如來深入無際成就一切未曾有法二者言語成就謂得五種美妙音聲言語說法如經如來能種種分別巧說諸法言辭柔耎悅可衆心
셋째 상성취(相成就)니, 경에 “그만두어라. 사리불아, 다시 말할 것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불법을 담을 만한 그릇이 있는 중생들의 마음은 이미 만족한 까닭이다. 넷째 감성취(堪成就)니, 있는 바 모든 교화할 만한 중생들은 모두 여래께서 성취하신 희유하고 뛰어난 공덕으로 설법하심을 아는 까닭이다. 경에 “사리불아, 부처님께서 성취하신 가장 희유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니라”라고 하였다. 다섯째 무량종성취(無量種成就)이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것이다.
015_0419_b_15L三者相成就如經舍利弗不須復說有法器衆生心已滿足故者堪成就所有一切可化衆生皆知如來成就希有勝功德能說法故如經利弗佛所成就第一希有難解之法五者無量種成就說不可盡
015_0419_c_01L경에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법을 설하시고, 모든 부처님 여래는 그 법의 구경의 실상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였다. 실상(實相)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하자면 여래장(如來臧) 법신(法身)의 체는 불변한다는 뜻이다. 여섯째 각체성취(覺體成就)니,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법은 오직 부처님 여래께서 스스로 증득하신 까닭이다. 경에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모든 법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였다. 일곱째 중생의 뜻을 수순하여 수행하는 법을 말씀함을 성취함이니, 그 법이 어떠하며 이와 같다는 등이다. 경에 “사리불아, 오직 부처님 여래만이 능히 모든 법을 말씀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015_0419_b_20L如經利弗唯佛與佛說法諸佛如來能知彼法究竟實相言實相者謂如來藏法身之體不變義故六者覺體成如來所說一切諸法唯佛如來自證得故如經舍利弗唯佛如來知一切法七者隨順衆生意爲說修行法成就彼法何等如是等故如經利弗唯佛如來能說一切法
첫째는 갖가지 법문으로 중생을 섭취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산란하지 않음에 머물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셋째는 취(取)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넷째는 해탈을 얻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그 수행을 성취하여 대치하는 법을 얻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여섯째는 그 수행이 진취하여 성취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일곱째는 수행을 얻어 물러나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이 일곱 가지 법은 모든 중생을 위하여 자신이 지을 바를 잘 성취한 것이다.
015_0419_c_05L第一種種法門攝取衆生故第二令不散亂住故第三令取故第四令得解脫第五令彼修行成就得對治法故第六令彼修行進趣成就故第七令得修行不退失故此七種法爲諸衆生自身所作善成就故
또 교화하여 성취하게 한다는 것은 두 가지 법으로써 그를 성취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 증득한 법을 주는 것이요, 둘째 설법하여 주는 것이다. 첫 번째의 증득한 법을 주어 성취하게 한다는 것은 증득한 법에 의거하여 주는 까닭이요, 두 번째의 설법하여 주어서 성취하게 한다는 것은 설법에 의거하여 말하여 주는 까닭이다. 이 두 가지 법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이 두 가지 법에 의거하여 어떠한 차례가 있어서 수행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곧 앞의 글에서 거듭 설명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19_c_11L又與敎化令成就者與二種法令彼成就何等爲與證法與說法一與證法令成就者謂依證法而授與故二與說法令成就者謂依說法而說與故二種法如向前說依此二法有何次第而得修行卽彼前文重說應知
015_0420_a_01L또 증득하는 법에 다시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어떤 법[何等法]이요, 둘째 무슨 법[云何法]이요, 셋째 무엇과 같은 법[何似法]이요, 넷째 어떤 모양의 법[何相法]이요, 다섯째 어떤 바탕의 법[何體法]이다. 어떤 법[何等法]이란 성문법ㆍ벽지불법과 모든 부처님법을 말함이요. 무슨 법[云何法]이란 갖가지 여러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일으킴을 말함이요, 무엇과 같은 법[何似法]이란 세 가지 문에 의거하여 청정을 얻는 까닭이요, 어떤 모양의 법[何相法]이란 세 가지 뜻이 한 모양의 법인 까닭이다. 어떤 바탕의 법[何體法]이란 두 가지 체(體)가 없는 까닭이다. 두 가지 체가 없다고 하는 것은 한량 없는 승(乘)이 오직 일불승(一佛乘)이요, 이승(二乘)이 없는 까닭이다.
015_0419_c_17L又依證法復有五種一者何等法者云何法三者何似法四者何相法五者何體法故何等法者謂聲聞法辟支佛法諸佛法故云何法者謂起種種諸事說故何似法者依三種門得淸淨故何相法者謂三種義一相法故何體法者無二體故無二體者謂無量乘唯一佛乘無二乘故
또 이러한 뜻도 있다. 어떤 법이란 유위법(有爲法)ㆍ무위법(無爲法) 등이요, 무슨 법이란 인연법과 인연법이 아닌 법 등이요, 무엇과 같은 법이란 상법(常法)과 무상법(無常法) 등이요, 어떤 모양의 법이란 생(生) 등의 세 가지 모양의 법과 불생(不生) 등의 세 가지 모양의 법이요, 어떤 바탕의 법이란 오음(五陰)의 체(體)와 오음이 아닌 체이다. 또 무엇과 같은 법이란 무상법(無常法)ㆍ유위법(有爲法)ㆍ인연법(因緣法)이요, 또 어떤 모양의 법이란 볼 수 있는 상(相) 등의 법이요, 또
015_0420_a_02L又復有義何等法者所謂有爲無爲法等云何法者謂因緣法非因緣法何似法者所謂常法無常法等相法者謂生等三相法不生等三相何體法者謂五陰體非五陰體故又何似法者謂無常法有爲法因緣又何相法者謂可見相等法
어떤 바탕의 법이란 이른바 오음은 능히 취할 수 있고 또 취할 만한 것이니, 오음은 바로 고(苦)와 집(集)의 체(體)인 까닭이다. 또 오음은 곧 도제(道諦)의 체인 까닭이다.
설법에 의거하여 말하면 다시 다른 뜻도 있다. 어떤 법이란 곧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자신(字身) 등이요, 무슨 법이란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에 의거함을 이름이요, 무엇과 같은 법이란 교화할 만한 자를 능히 교화함을 이름이요, 어떤 모양의 법이란 음성에 의거하여 취하는 것이니, 음성에 의거하여 그 법을 취하는 까닭이다. 어떤 바탕의 법이란 가명(假名)의 체요, 법상(法相)의 뜻이다.
015_0420_a_09L又何體法者所謂五陰能取可取以五陰是苦集體故又五陰者是道諦體故復有異義依說法說何等法者所謂字身等故云何法者謂依如來所說法故何似法者謂能敎化可化者故何相法者依音聲取以依音聲取彼法故何體法者謂假名體法相義故
015_0420_b_01L이 이하부터는 세 가지 뜻을 나타내 보임에 의거하여 설명하겠다. (세 가지 뜻은) 첫째 결정(決定)의 뜻이요, 둘째 의심하는 뜻이요, 셋째 어떤 일에 의하여 의심하는 뜻이니, 마땅히 잘 알아야 한다. 결정(決定)의 뜻이란 어떤 성문이 방편으로 깊은 법을 증득하고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내어 성문의 도(道) 가운데에 방편으로 열반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증득법을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나타내 보이니, 경에 “그때 대중 가운데 여러 성문과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 우리들도 그 법을 얻어 열반에 이르렀다”라고 하였다.
015_0420_a_17L自此已下次依示現三種義說一者決定義二者疑義三者依何事疑義應當善知決定義者有聲聞方便得證深法作決定心於聲聞道中得方便涅槃證如是二種證法示現有爲無爲法如經爾時大衆中有諸聲聞漏盡阿羅漢次第乃至亦得此法到於涅
의심하는 뜻이란 성문이나 벽지불들은 알 수 없다고 하기 때문에 의심함을 이른다. 경에 “그런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알 수가 없구나!”라고 하였다. 어떤 일에 의하여 의심하는 뜻이란, 여래께서 성문의 해탈과 나의 해탈이 다르지도 않고 구별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심을 들었기 때문에 의심을 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심을 낸다고 하는 것은 인(因) 가운데 의심을 내는 것이다. 이 일은 어떠하며 이 일은 어떠하다라고 여래께서는 자주 매우 깊은 경계를 말씀하셨는데 앞에서 말씀하신 매우 깊은 경계와 뒤에서 말씀하신 매우 깊은 경계가 같지 않기 때문에 성문들은 이와 같이 의심을 내는 것이다. 경에 “그때 사리불이 사부대중의 마음속의 의심을 알고 …… 게송으로 말하였다”라고 하였다.
015_0420_b_03L言疑義者謂諸聲聞辟支佛等不能得知是故生疑如經而今不知是義所趣依何事疑義者聞如來說聲聞解脫與我解脫不異不別是故生疑謂生疑者生因中疑此事云此事云何此以如來數數爲說甚深境界前說甚深後說甚深不同聲以如是故生疑如經爾時舍利弗知四衆心疑次第乃至而說偈言
이 이하부터는 네 가지 일을 나타내 보임에 의거하여 말하겠다. 첫째 결정심(決定心)이요, 둘째 인수기(因授記)요, 셋째 수기를 취함이요, 넷째 수기를 주는 것이니, 잘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결정심(決定心)인가? 이미 놀라고 두려움을 내는 자로 하여금 놀라 두려워함을 끊게 하여 두 종류의 사람을 이익되게 하므로 여래에게 결정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 놀라고 두려워함[驚怖]에는 다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20_b_11L自此以下次依示現四種事說一者決定心二者因授記三者取授記四者與授記應當善知云何決定心已生驚怖者令斷驚怖以爲利益二種人是故如來有決定心此驚怖者五種應知
첫째 있는 것을 없다고 부인하여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소승의 중생들은 말씀을 들은 그대로를 취하여서 진실이라 여기고 대승은 없다고 비방하며,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여래께서는 아라한과(阿羅漢果)가 구경의 열반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나는 필경 이 같은 열반을 취할 것이다”라고 한다. 이 때문에 아라한은 열반에 들지 못하니, 이와 같은 놀라고 두려워함이다.
015_0420_b_17L一者損驚怖謂小乘衆生如所聞聲取以爲實謗無大乘起如是心如來說言阿羅漢果究竟涅槃我畢竟取如是涅槃是故羅漢不入涅槃如是驚怖
015_0420_c_01L둘째 일이 많다고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대승의 중생들이 보살도의 겁수(劫數)가 길고 멂과 갖가지 고행을 듣고는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불도(佛道)는 길고도 멀어 나는 한량없고 끝없는 겁 가운데 보살행을 행하여 오래도록 부지런히 애를 쓰며 노력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놀라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015_0420_b_22L二者多事驚怖謂大乘衆生聞菩薩道劫數長遠種種苦行起如是心道長遠我於無量無邊劫中行菩薩行久受勤苦如是念故生驚怖心是故起取異乘心如是驚怖
이런 까닭으로 다른 승에 빠지는 마음[異乘心]을 일으키니, 이와 같은 놀라고 두려워함이다. 셋째 전도(顚倒)되어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마음으로 아(我)와 아소(我所)와 갖가지 몸이 있다고 분별하여 모든 불선법(不善法)을 보는 이와 같은 놀라고 두려워함이다. 넷째 마음으로 뉘우치는 놀라고 두려워함이니, 대덕 사리불 등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말하기를 “나는 응당 이와 같은 소승의 법을 닦아 증득해서는 안 된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뉘우치고 나서는 마음에 곧 스스로 중지하는 것이다. 곧 이 마음으로 뉘우치는 것을 이름하여 놀라고 두려워함이라 하니, 응당 이 뜻을 알아야 한다.
015_0420_c_04L三者顚倒驚怖謂心分別有我我所種種身見諸不善法如是驚怖
다섯째 속인다고 여기는 놀라고 두려워함이다. 증상만(增上慢)의 성문들이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켜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우리들을 속이시는가’라고 하는 이와 같은 놀라고 두려워함이다.
015_0420_c_06L四者心悔驚怖謂大德舍利弗等起如是心言我不應修證如是小乘之如是悔已心卽自止卽此心悔名爲驚怖此義應知
인수기(因授記)라고 하는 것은 경에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사리불아. 다시 말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이 일을 말한다면 모든 세간의 여러 하늘[天]ㆍ인간[人]들이 다 놀라고 두려워하리라”라고 하였다. 여기 인수기(因授記)에서 모두 놀라고 두려워한다고 하는 것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그 모든 대중들로 하여금 매우 깊고 미묘한 경계를 추구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둘째 그 모든 대중들로 하여금 존중하는 마음을 내어 필경에는 여래의 설법 듣기를 원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015_0420_c_10L五者誑驚怖謂增上慢聲聞之人起如是心云何如來誑於我等如是驚怖
015_0421_a_01L셋째 모든 증상만의 성문인들로 하여금 법좌(法坐)를 버리고 일어나 가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두 번째 청하는 것은 과거의 한량 없는 모든 부처님들께서 중생들을 교화하셨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경에 “여기에 모인 무수한 이들이 ……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 능히 공경하여 믿으오리다”라고 하였다. 세 번째 청하는 것은 현재의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교화함을 나타내 보임이니, 경에 “지금 여기 모임에서 저희들 무리 같은 …… 긴긴 밤에 편안하여 이익이 많으리이다”라고 하였다.
015_0420_c_13L因授記者如經止止舍利弗不須復若說是事一切世閒諸天人等皆生驚怖此因授記皆生驚怖者有三種義一者欲令彼諸大衆推求甚深妙境界故二者欲令彼諸大衆生尊重心畢竟欲聞如來說故
수기를 취한다는 것은 사리불 등이 수기를 얻고자 함이니, 경에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미 세 번이나 청하였으니, 어찌 말하지 아니하랴! 너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다.
015_0420_c_19L三者欲令諸增上慢聲聞之人捨離法座而起去故第二請者示現過去無量諸佛敎化衆生如經是會無數次第至聞佛所說則生敬信第三請者示現今佛敎化衆生如經今此會中如我等比次第乃至長夜安隱多所饒益
수기를 준다고 하는 것에는 여섯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첫째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함이요, 둘째 말함이요, 셋째 어떠한 뜻에 의거함이요, 넷째 머물게 함이요, 다섯째 법에 의거함이요, 여섯째 막는 것이다.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듣게 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이런 미묘한 법은 부처님 여래께서 때가 되어야 말씀하시는 것이니, 마치 우담바라꽃과 같으니라”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다.
015_0421_a_03L取授記者以舍利弗等欲得授記如經佛告舍利弗汝已三請得不說汝今諦聽如是等故
말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내가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와 언어로 여러 가지 법을 연설하였느니라”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다. 갖가지 인연이란 이른바 곧 삼승(三乘)이니, 저 삼승이란 다만 명자(名字)와 장구(章句)의 언설(言說)만이 있을 뿐이요, 참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니 저 참된 뜻은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015_0421_a_05L與授記者六種應知一者未聞令聞二者說三者依何等義四者令住者依法六者遮未聞者令聞如經利弗如是妙法諸佛如來時乃說之如優曇鉢華如是等故
015_0421_b_01L어떠한 뜻에 의거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 세존들은 다만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이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일대사(一大事)라고 하는 것은 네 가지 뜻에 의거하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 위 없는 뜻이니, 오직 여래의 일체지(一切智)를 제하고는 다시는 다른 일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경에 “(부처님 세존께서는)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開] 중생을 청정하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지견이란 여래께서는 능히 증득하여서 저 깊은 뜻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둘째 같다는 뜻이니, 모든 성문ㆍ벽지불과 부처님의 법신이 평등함을 이른다. 경에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보이려는[示] 까닭으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015_0421_a_10L說者如經舍利弗我以無數方便種因緣譬喩言辭演說諸法如是等種種因緣者所謂三乘彼三乘者唯有名字章句言說非有實義以彼實義不可說故
법신이 평등하다는 것은 불성과 법신에는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셋째 알지 못한다는 뜻이니, 모든 성문ㆍ벽지불 등은 그 진실처(眞實處)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기에서 진실처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구경에는 오직 일불승(一佛乘)뿐임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에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 하려는 까닭으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015_0421_a_15L依何等義者如經舍利弗諸佛世尊唯以一大事因緣故出現於世如是等故一大事者依四種義應當善知何等爲四一者無上義唯除如來一切智知更無餘事如經欲開佛知見令衆生知得淸淨故出現於世知見者如來能證以如實知彼深義故二者同義謂諸聲聞辟支佛佛法身平等如經欲示衆生佛知見故出現於世法身平等者佛性法身無差別故三者不知義謂諸聲聞辟支佛等不能知彼眞實處故此言不知眞實處者不知究竟唯一佛乘故欲令衆生悟佛知見故出現於世
넷째 물러서지 아니하는 자리[不退轉地]를 증득하게 함이니, 측량할 수 없는 지혜의 업(業)을 주고자 함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경에 “중생을 부처님의 지견에 들게 하려는[入] 까닭으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또다시 보인다고 하는 것은 여러 보살들 가운데서 의심하는 마음이 있는 자를 위하여 여실히 수행하여 알게 하고자 함이요, 또 깨달아 들어가게 한다는 것은 아직 발심하지 아니한 자를 발심하게 하고, 이미 발심한 자를 법에 들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또다시 깨닫게 한다는 것은 외도 중생들을 깨달음[覺悟]을 내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요, 다시 또 들게 한다는 것은 성문소승과(聲門小乘果)를 얻은 자를 보리에 들게 하고자 하는 까닭이다.
머물게 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여래께서는 다만 일불승 때문에 중생을 위하여 말씀하시느니라”라고 하였다.
015_0421_b_07L四者令證不退轉地示現欲與無量智業故如經欲令衆生入佛知見故出現於世又復示者爲諸菩薩有疑心者令知如實修行故又悟入未發心者令發心故已發心者令入法故又復悟者令外道衆生生覺悟故又復入者令得聲聞小乘果者入菩提故令住者如經舍利弗但以一佛乘故爲衆生說法
015_0421_c_01L법에 의거한다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과거의 여러 부처님들이 한량 없고 수없는 방편과 갖가지 비유와 인연과 염관(念觀)과 방편으로 법을 연설하셨으니, 이 법이 다 일불승을 위한 것이니라”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다. 비유라 말하는 것은 소에 의거한 것으로 우유와 낙(酪)과 생소(生酥)와 숙소(熟酥) 및 제호(醍醐)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오미(五味) 가운데 제호가 제일이다. 소승은 제호만 못하여 우유와 같고, 대승은 제호처럼 가장 최상이다. 이것은 바로 대승의 위 없음을 밝히는 비유요, 모든 성문도 역시 대승의 위 없는 뜻과 같다. 성문도 같다는 것은 바로 이 가운데 모든 부처님 여래의 법신의 성질이 모든 범부나 성문의 사람과 벽지불 등과 같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법신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이 뜻은 모두 비유이니, 인연의 뜻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음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염관(念觀)이라 말하는 것은 소승의 진리[諦] 가운데에서는 인무아(人無我) 등을, 대승의 진리 가운데에서는 진여(眞如)ㆍ실제(實際)ㆍ법계(法界)ㆍ법성(法性) 및 인무아(人無我)ㆍ법무아(法無我) 등의 갖가지 관(觀)을 이른다. 방편이라 말하는 것은 소승 가운데에서는 음(陰 : 五蘊)ㆍ계(界 : 十八界)ㆍ입(入 : 十二入)을 관하여 괴로움을 싫어하여 괴로움을 버리고 해탈을 얻게 하는 것이고, 대승 가운데에서는 모든 바라밀과 사섭법(四攝法)이 자신과 타인을 섭취하여 이익이 되게 하는 대치법(對治法)이다.
015_0421_b_16L依法者如經舍利弗過去諸佛以無量無數方便種種譬喩因緣念觀方便說法是法皆爲一佛乘故如是等言譬喩者如依牛故得有乳熟酥及以醍醐此五味中醍醐第小乘不如其猶如乳大乘爲最如醍醐此喩所明大乘無上諸聲聞等亦同大乘無上義故聲聞同者中示現諸佛如來法身之性同諸凡聲聞之人辟支佛等法身平等無差別故此義皆是譬喩示現因緣之如前所說言念觀者小乘諦中人無我等大乘諦中眞如實際法界及人無我法無我等種種觀故方便者於小乘中觀陰界入厭苦離苦得解脫故於大乘中諸波羅蜜四攝法攝取自身他身利益對治法
막는다[遮]는 것은 경에 “사리불아, 시방세계에는 이승(二乘)도 없거늘 하물며 삼승(三乘)이 있겠느냐?”라 하였으니, 이와 같은 것들이다. 이승이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이승이 얻는 열반은 없고 오직 여래께서 증득하신 대보리(大菩提)ㆍ구경(究竟)ㆍ만족(滿足)ㆍ모든 지혜만을 이름하여 대열반이라 하는 것이다. 모든 성문ㆍ벽지불 등에는 열반법이 있지 않으니 오직 일불승(一佛乘)인 까닭이다.
015_0421_c_11L遮者如經舍利弗十方世界中尚無二乘何況有三如是等故無二乘謂無二乘所得涅槃唯有如來證大菩提究竟滿足一切智慧名大涅非諸聲聞辟支佛等有涅槃法一佛乘故
015_0422_a_01L일불승이라고 함은 네 가지 뜻에 의거하여 말하니, 잘 알아야 한다. 여래께서는 여섯 가지 수기(授記)에 의거하므로 앞에서 어떤 법[何等法]ㆍ무슨 법[云何法]ㆍ무엇과 같은 법[何似法]ㆍ어떤 모양의 법[何相法]ㆍ어떤 바탕의 법[何體法]을 말하여 이와 같이 나타내 보이셨다. 어떤 법이란 일찍이 듣지 못한 법을 말하는 것이요, 무슨 법이란 갖가지 언어[言辭]와 비유로 드러내어 말함이요, 무엇과 같은 법이란 이른바 오직 일대사 인연 때문이요, 어떤 모양의 법이란 중생의 근기를 따라 모든 부처님의 법을 말함이요, 어떤 바탕의 법이란 이른바 오직 일승의 바탕[體]만이 있는 까닭이다. 일승의 바탕이란 이른바 모든 부처님 여래는 평등한 법신으로서 그 모든 성문ㆍ벽지불승(辟支佛乘)은 그 평등한 법신의 바탕이 아니니, 인과(因果)의 행(行)과 관(觀)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015_0421_c_16L一佛乘者依四種義說當善知如來依此六種授記是故前說何等法云何法何似法何相法體法如是示現何等法者謂未曾聞云何法者謂種種言辭譬喩顯說何似法者所謂唯爲一大事故相法者爲隨衆生器說諸佛法故體法者所謂唯有一乘體故一乘體所謂諸佛如來平等法身彼諸聲辟支佛乘非彼平等法身之體因果行觀不同故
이 이하부터는 여래께서 네 가지 의심을 끊기 위해 설법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 의심인가? 첫째 의심은 어느 때 말씀하시는가이고, 둘째 의심은 어떻게 증상만인(增上慢人)인지 아는가이고, 셋째 의심은 어떻게 설법을 감내할 것인가이고, 넷째 의심은 어떻게 여래께서는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015_0422_a_03L自此以下如來說法爲斷四種疑心應知何等四疑疑何時說疑云何知是增上慢人疑云何堪說疑云何如來不成妄語
‘어느 때 말씀하시는가’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는 어느 때에 갖가지 방편으로 설법하시어 이 의심을 끊는가 함이니, 경에 “사리불아, 모든 부처님께서는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나셨으니 이른바 겁이 흐리다는 것이다”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어떻게 증상만인인지 아는가’라는 것은 ‘여래께서 증상만인을 위하여 모든 법을 말씀하시지 아니하시는데 어떻게 그가 증상만인임을 아는가?’라는 이 의심을 끊기 위해서이다. 경에 “만일 비구로서 참으로 아라한을 얻었다면 이 법을 믿지 않고서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015_0422_a_07L何時說者佛如來於何等時起種種方便說法爲斷此疑如經舍利弗諸佛出於五濁惡世所謂劫濁如是等故云何知是增上慢人者如來不爲增上慢人而說諸法云何知彼是增上慢爲斷此疑如經若有比丘實得阿羅漢者若不信是法無有是處如是等故
‘어떻게 설법을 감내할 것인가’라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고는 비방하는 마음을 일으킴이다. ‘여래께서는 이렇게 설법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어찌하여 설법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시는가?’ 하는 이런 의심을 끊기 위함이니, 경에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에 부처님께서 안 계실 적은 제외한다”라고 하였다.
015_0422_a_14L何堪說者從佛聞法而起謗心如來應是不堪說人云何不成不堪說人爲斷此疑如經除佛滅度後現前無如是等故
‘어떻게 여래께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라는 것은 여래께서 앞에서 말씀하신 법이 다르고 현재 말씀하시는 법이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여래께서는 거짓말을 하시지 않는가’라고 하는 이런 의심을 끊기 위함이니, 경에 “사리불아, 너희들은 마땅히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이해하여 받아 지녀라.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하시는 말씀은 허망함이 없고, 다른 승(乘)은 없고 오직 일불승만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015_0422_a_18L云何如來不成妄語者此以如來先說法異今說法異云何如來不成妄語爲斷此疑如經舍利汝等應當一心信解受持佛語佛如來言無虛妄無有餘乘唯一佛
015_0422_b_01L경에 “나아가 어린애들이 장난으로 흙모래로 탑을 세운 이러한 사람들도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루었다.”라고 한 것은 보리심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보살행을 행한다는 것은 지은 선근(善根)이 능히 보리를 증득함이라, 모든 범부와 결정된 성문과 본래 아직 보리심을 내지 아니한 자가 얻을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와 같이 ‘나아가 혹은 머리 한 번 숙여도[小低頭]’라고 한 것도 모두 이러한 뜻이다.
015_0422_a_23L乃至童子戲聚沙爲佛塔如是諸人等皆已成佛道謂發菩提心行菩薩行者所作善根能證菩提非諸凡夫及決定聲聞本來未發菩提心者之所能得如是乃至小低頭等皆亦如是
3. 비유품(譬喩品)
015_0422_b_06L譬喩品第三
【經】 존자 사리불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015_0422_b_07L尊者舍利弗所說偈言
금색 몸에 삼십이상(三十二相)
십력(十力)과 여러 해탈
그 모두 한 가지 법
이런 일을 못 얻었고
015_0422_b_08L金色三十二
十力諸解脫
同共一法中
而不得此事
여든 가지 묘한 상호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이와 같은 공덕들을
나는 모두 잃었구나.
015_0422_b_10L八十種妙好
十八不共法
如是等功德
而我皆已失
【釋】 이 게송은 어떤 뜻을 나타내는가? 존자 사리불이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는 말이다. ‘나는 여러 부처님을 뵙지도 못하였고, 여러 부처님 처소에 가거나 부처님의 설법을 듣지도 못하였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거나 공경하지 않았으며, 중생의 일을 이익되게 한 것도 없으며, 아직 법을 얻지 못하고 물러났다’고 존자 사리불이 이와 같이 자신을 책망하였다. 부처님을 뵙지 못하였다는 것은 모든 부처님 여래 대인(大人)의 상(相)을 보지 못하여 공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015_0422_b_11L釋曰此偈示現何義尊者舍利弗自呵責身言我不見諸佛不往諸佛所及聞佛說法不供養恭敬諸佛無利益衆生事於未得法退尊者舍利弗作如是等呵責自身不見佛者示現不見諸佛如來大人之相不生恭敬供養心故
부처님 처소에 간다는 것은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요, 금색광명을 놓는다는 것은 부처님 자신의 다른 몸을 보여 한량 없는 모든 공덕을 획득한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설법을 듣는다는 것은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요, 힘이란 중생들에게 의심이 있으면 열 가지 힘[十力]에 의거하여 그 의심을 끊어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공양한다는 것은 능히 중생을 교화하는 힘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요,
015_0422_b_18L往佛所者示現敎化衆生力故放金色光明者示現見佛自身異身獲得無量諸功德故聞說法者示現能作一切衆生之利益故力者示現衆生有疑依十種力斷彼疑故供養者示現能敎化衆生力故
015_0422_c_01L18불공법이란 모든 장애를 멀리 여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요, 공경한다는 것은 한량없는 복덕을 내는 여래의 가르침에 의하여 해탈을 얻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실체로서의 아(我)는 존재하지 않고[人無我] 만유는 실다운 체성(體性)이 없으며[法無我] 모든 법은 다 평등한 까닭이다. 이 때문에 존자 사리불은 스스로 자신을 책망하여 말하기를 ‘나는 아직 이와 같은 법을 얻지 못하였고, 아직 얻지 못한 가운데 물러났다’라고 하였다.
015_0422_b_23L十八不共法者示現遠離諸障碍故恭敬示現出生無量福德依如來敎得解脫故以人無我及法無我一切諸法悉皆平等是故尊者舍利弗自呵責身言我未得如是法故於未得中退故
이 이하부터는 일곱 가지 번뇌에 물든 성품을 구족한 중생을 위하여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어 일곱 가지 증상만의 마음을 대치(對治)하는 것이니, 이 뜻을 알아야 한다. 또다시 세 가지의 만(慢)에 물든 사람을 위함이니, 번뇌가 없는 사람은 삼매(三昧), 해탈(解脫), 신견(身見) 등의 만에 물드는데 이들을 대치하기 위하여 세 가지 평등을 말하였으니, 이 뜻을 알아야 한다.[거란본에는 신(身)자 아래에 견(見)자가 있다]
015_0422_c_06L自此以下次爲七種具足煩惱染性衆生說七種喩對治七種增上慢心此義應知又復次爲三種染慢無煩惱人三昧解脫身等染慢對治此故說三種平此義應知身下丹本有見字
어떤 이들이 일곱 가지 번뇌에 물든 성품을 구족한 중생인가? 첫째 세력을 구하는 사람이요, 둘째 성문의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요, 셋째 대승인(大乘人)이요, 넷째 선정을 지닌[有定] 사람이요, 다섯째 선정이 없는[無定] 사람이요, 여섯째 공덕을 모으는 사람이요, 일곱째 공덕을 모으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015_0422_c_12L何者七種具足煩惱染性衆生一者求勢力人二者求聲聞解脫人三者大乘人四者有定人五者無定人者集功德人七者不集功德人
어떤 것이 일곱 가지 증상만의 마음이며, 어떻게 일곱 가지 비유로 대치하는가? 첫째 전도된 생각으로 모든 공덕을 구하는 증상만의 마음이니, 말하자면 세간 가운데에서 모든 번뇌에 물들여져 맹렬히 불타오르며 증상하여 하늘 사람의 뛰어나고 묘한 경계의 유루(有漏)의 과보를 구함이다. 이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화택(火宅)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성문의 한결같이 결정된 증상만의 마음이니,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승(乘)은 여래의 승(乘) 등과 같아 차별이 없다”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전도된 생각을 가짐이니, 이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궁자(窮子)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22_c_16L何等七種增上慢心云何七種譬喩對治一者顚倒求諸功德增上慢心謂世閒中諸煩惱染熾然增上而求天人勝妙境界有漏果報對治此故爲說火宅譬喩應知二者聲聞一向決定增上慢心自言我乘與如來乘等無差別如是倒取對治此故爲說窮子譬喩應知
015_0423_a_01L셋째 대승의 한결같이 결정된 증상만의 마음이니, 이와 같은 뜻을 일으켜 성문ㆍ벽지불승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전도된 생각을 가짐이니, 이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구름과 비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23_a_01L三者大乘一向決定增上慢心起如是意無別聲聞辟支佛乘如是倒取對治此故爲說雲雨譬喩應知
넷째 실로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증상만의 마음이니, 세간의 삼매 삼마발제(三摩跋提)가 있는 것을 가지고 실로 열반은 없는데 열반의 생각을 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전도된 생각을 가짐이니, 이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화성(化城)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23_a_04L四者實無謂有增上慢心以有世閒三昧三摩跋提實無涅槃生涅槃想如是倒取對治此故爲說化城譬喩應知
다섯째 산란한 증상만의 마음이니, 실로 선정이 없고 과거에 비록 대승의 선근이 있었다 할지라도 깨달아 알지 못한다.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승을 구하지 않고 좁고 용렬한 마음 가운데 허망한 알음알이를 내어 제일승(第一乘)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전도된 생각을 대치하기 위하여 계보주(繫寶珠)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23_a_08L五者散亂增上慢心實無有定過去雖有大乘善根而不覺知不覺知故不求大乘狹劣心中生虛妄解謂第一乘如是倒取對治此故爲說繫寶珠譬喩應知
여섯째 실지로 공덕이 있다는 증상만의 마음이니, 대승법을 듣고도 대승이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이와 같이 전도된 생각을 대치하기 위하여 전륜성왕이 스스로 상투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던 구슬을 풀어서 주는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23_a_13L六者實有功德增上慢心聞大乘法取非大乘如是倒取對治此故爲說輪王解自髻中明珠與之譬喩應知
일곱째 실제로 공덕이 없다는 증상만의 마음이니, 제일승(第一乘)에 대해 일찍이 모든 선근의 근본을 닦아 익히지 않고 제일승을 듣고도 마음 가운데 서 받아들여 제일이라 여기지 아니함이다. 이와 같이 전도된 생각을 대치하기 위하여 의사의 비유를 말씀하셨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23_a_16L七者實無功德增上慢心於第一乘不曾修集諸善根本聞第一乘心中不取以爲第一如是倒取對治此故爲說醫師譬喩應知
015_0423_b_01L첫 번째 사람은 세간 가운데의 갖가지 선근과 삼매 공덕을 보여서 방편으로 기쁘게 한 뒤에 대열반에 들게 한다. 두 번째 사람은 삼승(三乘)을 일승(一乘)으로 삼아 대승에 들게 한다. 세 번째 사람은 갖가지 승(乘)과 모든 부처님 여래의 평등한 설법을 알게 하여 모든 중생의 선근(善根) 종자를 따라서 싹이 돋아나게 한다. 네 번째 사람은 방편으로 열반의 성(城)에 들어가게 하니, 열반의 성이란 이른바 모든 선나(禪那)와 삼매의 성(城)으로 그 성을 지난 뒤에 대열반의 성에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다.
015_0423_a_20L第一人者示世閒中種種善根三昧功德方便令喜然後令入大涅槃故第二人者以三爲一令入大乘故第三人者令知種種乘諸佛如來平等說法隨諸衆生善根種子而生芽故第四人者方便令入涅槃城故涅槃城者所謂諸禪三昧城故過彼城已然後令入大涅槃城故
다섯 번째의 사람은 그 과거에 지닌 선근을 보여서 생각하여 잊지 않게 한 뒤에 삼매에 들게 한다. 여섯 번째 사람은 대승법을 말하니, 이 법문은 십지(十地)의 행(行)을 원만히 하여 여러 부처님 여래께서 비밀히 수기를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사람은 아직 근기가 익지 아니한 사람을 익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타내어서 열반량(涅槃量)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 뜻을 위하여 여래께서는 이 일곱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
015_0423_b_05L第五人者示其過去所有善根令憶念已然後敎令入三昧故六人者說大乘法以此法門同十地行滿諸佛如來密與授記故第七人根未淳熟爲令熟故如是示現得涅槃量爲是義故如來說七種譬喩
어떤 이들이 세 가지 번뇌 없는 사람으로서 세 가지 만(慢)에 물들었는가? 이른바 세 가지 전도된 믿음(을 내는) 이들이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 갖가지 승(乘)이 다르다는 믿음이요, 둘째 세간과 열반이 다르다는 믿음이요, 셋째 그와 나[彼此]의 몸이 다르다는 믿음이다. 이 세 가지 만(慢)에 물든 것을 대치하기 위하여 세 가지 평등을 말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015_0423_b_10L何者三種無煩惱人三種染慢所謂三種顚倒信故何等爲三一者信種種乘異二者信世閒涅槃異三者信彼此身異爲對治此三種染慢故說三種平等應知
어떤 것이 세 가지 평등이며, 어떻게 대치하여야 하는가? 첫째 승(乘)의 평등이다. 성문에게 보리(菩提)의 기별을 주는 것이니, 오직 하나의 대승뿐이요, 이승(二乘)은 없는 까닭이다. 이것이 바로 승(乘)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것이다. 둘째 세간과 열반의 평등이다. 다보여래(多寶如來)께서 열반에 들어가신 것은 세간과 열반이 피차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015_0423_b_15L何者名爲三種平等云何對治一者乘平等謂與聲聞授菩提記唯一大乘無二乘故是乘平等無差別故者世閒涅槃平等以多寶如來入於涅槃世閒涅槃彼此平等無差別故
015_0423_c_01L셋째 몸의 평등이다. 다보여래께서 이미 열반에 드셨으나 다시 몸을 나타내 보이신 것은 자기 몸과 남의 몸이 법신(法身)으로서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세 가지 번뇌 없는 사람의 만(慢)에 물든 마음은 자기 몸과 남의 몸이 지은 차별을 보나니, 피차의 불성과 법신이 모두 다 평등함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말하자면 곧 이 사람은 “나는 이 법을 증득하였다”라고 하고, 또 저 사람은 “나는 이 대치(對治)를 얻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모든 성문에게 수기를 주는 것인 줄 알아야 한다.
015_0423_b_20L三者身平等多寶如來已入涅槃復示現身自身他身法身平等無差別故如是三種無煩惱人染慢之心見彼此身所作差別不知彼此佛性法身悉平等故謂卽此人我證此法故人不得此對治故與諸聲聞授記應知
묻기를 “그 성문들은 실제로 성불하기 때문에 수기를 주는 것인가? 성불하지 못하여도 수기를 주는 것인가? 만약 실제로 성불하는 것이라면 보살이 무엇 때문에 한량 없는 겁 동안 한량 없는 갖가지 공덕을 닦고 익히며, 만약 성불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그에게 허망한 수기를 주는가?”라고 하였다.
015_0423_c_04L問曰彼聲聞等爲實成佛故與授記爲不成佛與授記耶若實成佛菩薩何故於無量劫修集無量種種功德若不成佛云何與之虛妄授記
답하기를 “그 성문들이 수기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결정심(決定心)을 얻었다는 것이지, 성문이 법성여래(法性如來)를 성취하였다고 이르는 것은 아니다. 그 세 가지 평등에 의거하여 일승법을 말하고 부처님의 법신과 성문의 법신이 평등하여 다름이 없기 때문에 수기를 주는 것이지 즉시 수행의 공덕을 구족하였기 때문은 아니다. 이러하므로 보살은 공덕을 구족하였고, 모든 성문인(聲聞人)은 공덕을 아직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015_0423_c_08L答曰彼聲聞等得授記者得決定心非謂聲聞成就法性如來依彼三種平等說一乘法以佛法身聲聞法身平等無異故與授記非卽具足修行功德是故菩薩功德具足諸聲聞人功德未足
수기라고 말하는 것은 여섯 곳에 나타내 보였는데 다섯 곳은 부처님의 수기요, 한 곳은 보살의 수기이다. 여래의 수기란 사리불ㆍ대가섭 등 여러 사람이 잘 아는 큰 아라한들은 명호(名號)가 같지 않으니 별도로 수기를 주신 것이요, 부루나(富樓那) 등 오백인과 천이백인 등은 동일한 명호이니 모두 동시에 수기를 주신 것이요,
015_0423_c_14L言授記者六處示現五是佛記一菩薩記如來記者謂舍利弗大迦葉等衆所知識名號不同故別與記富樓那等五百人千二百等同一名故時與記
아직 배우는 이와 다 배운 이 등은 모두 동일한 명호이며, 또 이들은 여러 사람이 아는 이가 아니기 때문에 함께 수기를 주신 것이다. 여래께서 그 제바달다(提婆達多)에게도 별도로 수기를 주신 것은 여래께서는 원망하거나 미워함이 없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요, 비구니와 모든 천녀(天女)들에게 부처님의 수기를 주신 것은 여인이 재가(在家)이거나 출가이거나 간에 보살행을 닦으면 모두 불과(佛果)를 증득하기 때문에 수기를 주는 것을 나타내 보임이다.
015_0423_c_19L學無學等皆同一號又復非是衆所知識故同與記如來與彼提婆達多授別記者示現如來無怨惡與比丘尼及諸天女授佛記者現女人在家出家修菩薩行皆證佛故與授記
015_0424_a_01L보살의 수기는 아래의 글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나타내 보인 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이 보살은 예배하고 찬탄하며 말하기를 “나는 그대들을 경만하게 생각하지 않나니, 왜냐 하면 그대들은 모두 반드시 성불하기 때문이니라”라고 하였으니, 중생들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015_0424_a_01L菩薩記者如下「不輕菩薩品」中示現應知禮拜讚歎作如是我不輕汝汝等皆當得作佛現衆生皆有佛性故
성문인이 수기를 얻는다고 하는 성문에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 결정(決定) 성문이요, 둘째 증상만(增上慢) 성문이요, 셋째 보리심에서 물러난[退菩提心] 성문이요, 넷째 응화(應化) 성문이다. 두 종류의 성문은 여래께서 수기하시니, 응화 성문과 보리심에서 물러난 성문이다. 결정 성문과 증상만 성문은 근기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여래께서) 수기를 주지 않았다. 보살이 수기를 주는 것은 방편으로 보리심을 내게 하려는 까닭이다.
015_0424_a_04L言聲聞人得授記者聲聞有四種者決定聲聞二者增上慢聲聞三者退菩提心聲聞四者應化聲聞二種聲聞如來授記謂應化者退已還發菩提心者若決定者增上慢者二種聲聞根未熟故不與授記菩薩與授記者方便令發菩提心故
또 어떤 뜻에 의거하여 부처님께서는 삼승을 말씀하시고 이름하여 일승이라 하시는가? 뜻이 같음에 의거하는 까닭에 모든 성문들에게 대보리의 수기를 주시는 것이다. 뜻이 같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법신과 성문의 법신이 피차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까닭이다. 모든 성문ㆍ벽지불 등의 승(乘)이 같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있다고 하면 그 이승(二乘)은 대승이 아니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나의 몸을 여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위 없는[無上] 뜻이다. 모든 성문ㆍ벽지불 등의 이승법 중에서는 이 뜻을 말씀하시지 않았으니, 그것은 참되게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바로 이러한 뜻 때문에 모든 보살들이 보살행을 행함이 허망하지 않은 것이다.
위 없다고 하는 뜻[無上義]은 다른 경문에 위 없다는 뜻을 밝혔으니, 위 없는 뜻에는 간략히 열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015_0424_a_11L又依何義佛說三乘名爲一乘依同義故授諸聲聞大菩提記言同義者以佛法身聲聞法身彼此平等無差別故以諸聲聞辟支佛等乘不同故有差別以彼二乘非大乘故如來說言不離我身是無上義一切聲聞辟支佛等二乘法中不說此義以其不能如實解故以是義故諸菩薩等行菩薩行非爲虛妄無上義者自餘經文明無上義無上義者略有十種義應知何等爲十
015_0424_b_01L첫째 종자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비[雨]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행한 이 보살도는 말하자면 보리심을 발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발한 것이니, 과거에 수행한 선근이 멸하지 아니하여 뒤에 과(果)를 얻는 것이 같은 까닭이다.”둘째 행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대통지승여래(大洞智乘如來)의 본사(本事) 등을 말씀하심이다.
015_0424_a_22L一者示現種子無上故說雨譬喩汝等所行是菩薩道謂發菩提心退已還發者前所修行善根不滅同後得果故二者示現行無上故說大通智勝如來本事等
셋째 증장하는 힘[增長力]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대상(隊商)의 우두머리 비유를 말씀하심이다. 넷째 이해시킴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보배구슬을 달아줌의 비유를 말씀하심이다. 다섯째 청정국토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다보여래탑(多寶如來塔)을 나타내 보임이다. 여섯째 설법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상투 속의 밝은 구슬을 풀어주는 비유를 말씀하심이다. 일곱째 중생 교화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땅 속에 한량 없는 보살마하살 등이 솟아 나옴이다.
015_0424_b_03L三者示現增長力無上故說商主譬四者示現令解無上故說繫寶珠譬喩五者示現淸淨國土無上故現多寶如來塔六者示現說無上故說解髻中明珠譬喩七者示現敎化衆生無上故地中踊出無量菩薩摩訶薩等
여덟째 대보리를 이룸이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세 가지 부처의 보리(菩提)를 나타내 보인다. 첫째 응화불(應化佛)의 보리를 나타내 보임이니, 응하여 보는 바를 따라 나타내 보임이다. 경에서 모두 “여래는 석씨 왕성을 나와 가야성(伽耶城) 가까운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둘째 보불(報佛)의 보리를 나타내 보임이니, 십지(十地)의 행을 만족히 하여 항상한 열반을 증득함이다. 경에 “선남자들아, 내가 실로 성불한 지는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이다”라고 하였다.
015_0424_b_10L八者示現成大菩提無上故示現三種佛菩提故一者示現應佛菩提隨所應見而爲示現如經皆謂如來出釋氏宮去伽耶城不遠坐於道場得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二者示現報佛菩提十地行滿足得常涅槃證故如經善男子我實成佛已來無量無邊百千萬億那由他劫
셋째 법불(法佛)의 보리를 나타내 보임이니, 말하자면 여래장(如來臧)의 성품은 청정하고 열반도 항상 청량(靑凉)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에 “여래는 삼계(三界)의 모습을 참답게 아시고 보시어 …… 삼계(三界)를 삼계 같지 않게 본다”라고 하였다. 삼계의 모습이란 말하자면 중생계가 곧 열반계이니, 중생계를 여의지 않고 여래장이 있는 것이다.
015_0424_b_17L三者示現法佛菩提謂如來藏性淨涅槃常恒淸涼不變等義如經來如實知見三界之相次第乃至不如三界見於三界三界相者謂衆生界卽涅槃界不離衆生界有如來藏故
015_0424_c_01L나고 죽음에 물러나거나 나옴이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항상 청량하여 변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또 세상에 있거나 멸도함도 없다는 것은 말하자면 여래장(如來藏) 진여(眞如)의 체(體)는 중생계에 즉(卽)하지도 않고 중생계를 여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진실도 아니고 허망함도 아니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는 것은 말하자면 네 가지 모양을 여읜 것이다. 네 가지 모양이 있다는 것은 이것은 바로 무상(無常)하다는 뜻이다. 삼계를 삼계같지 않게 본다는 것은 말하자면 부처님 여래께서는 진여의 법신을 능히 보고 능히 증득하지만 범부는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경에 “여래는 밝게 보아 그릇됨이 없느니라”라고 하였다.
015_0424_b_23L無有生死若退若出謂常恒淸涼不變義故亦無在世及滅度謂如來藏眞如之體不卽衆生界離衆生界故非實非虛非如非異謂離四種相有四種相者是無常故不如三界見於三界謂佛如來能見能證眞如法身凡夫不見故是故經言如來明見無有錯謬
나는 본래 보살도를 행하였으나 지금까지도 오히려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본원(本願) 때문이니, 중생계가 아직 다하지 아니하여 서원이 구경에 이르지 아니한 까닭이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보리가 아직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이룬 수명이 다시 위에서 말한 수의 배나 된다고 하는 것은 이 글은 여래의 수명은 항상 하지만 선하고 공교로운 방편으로 많은 수를 들어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니, 가장 많은 수보다 더욱 많아 헤아려 알 수 없다.
015_0424_c_07L我本行菩薩道今猶未滿以本願故衆生界未盡願非究竟故言未滿非謂菩提不滿足也所成壽命復倍上數此文示現如來命常善巧方便顯多數故過上數量不可數知
나의 정토(淨土)는 헐리지 않으나 중생들은 불에 타서 없어짐을 본다는 것은 보불여래(報佛如來)의 진실한 정토는 제일의제(第一義諦)에 포섭되는 까닭이다. 아홉째 열반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의사의 비유를 말씀하심이다. 열째 뛰어나고 미묘한 힘의 위 없음을 나타내 보임이니, 나머지 경문에 나타내 보인 것을 알아야 한다.
015_0424_c_12L我淨土不毀而衆見燒盡報佛如來眞實淨土第一義諦之所攝故九者示現涅槃無上故說醫師譬喩十者示現勝妙力無上故自餘經文示現應知
015_0425_a_01L다보여래탑이 모든 불국토의 청정을 나타내 보인다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의 실상 경계 가운데 갖가지 모든 보배를 사이에 꾸며 장엄하여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니, 나타내 보임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 탑이요, 둘째 양(量)이요, 셋째 간략함[略]이요, 넷째 머물러 가짐[住持]이요, 다섯째 한량 없는 부처님을 나타내 보임이요, 여섯째 더러움을 여읨이요, 일곱째 다보(多寶)요, 여덟째 동일한 탑에 앉음이다. 탑이란 여래의 사리가 머물러 있음을 나타내 보임이요, 양이란 방편으로 모든 불국토의 청정하고 장엄함을 나타내 보임이니, 이것은 출세간(出世間)의 청정이며 번뇌가 없는[無漏] 선근에서 생긴 것이지 이 세간의 유루(有漏) 선근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
015_0424_c_16L寶如來塔示現一切佛土淸淨者現諸佛實相境界中種種諸寶間錯莊嚴故示現有八一者塔二者量者略四者住持五者示現無量佛者離穢七者多寶八者同一塔坐示現如來舍利住持故量者方便示現一切佛土淸淨莊嚴是出世閒淸淨無漏善根所生非是世閒有漏善根之所生也
간략하다[略]는 것은 다보불의 몸 일체에 모든 부처님의 참된 법신을 섭취하는 까닭이다. 머물러 가진다[住持]는 것은 모든 부처님 여래 법신의 자재력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한량 없는 부처님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피차가 지은 모든 업이 차별이 없음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더러움을 멀리 여읜다는 것은 모든 불국토의 평등하고 청정함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다보란 모든 불국토가 같은 실상의 성품임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요, 동일한 탑에 앉는다는 것은 변화한 부처님[化佛], 변화하지 아니한 부처님[非化佛], 법신불[法佛], 보신불[報佛] 등이 모두 큰 일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015_0425_a_02L略者示現多寶佛身一體攝取一切諸佛眞法身故住持示現諸佛如來法身自在力故現無量佛者示現彼此所作諸業無差別故遠離穢者示現一切諸佛國土平等淸淨故多寶者示現一切諸佛國土同實性故同一塔坐者示現化佛非化佛法佛報佛等皆爲成大事故
이 이하부터는 법력(法力)과 지니는 힘[持力]과 수행력(修行力)을 나타내 보임을 알아야 한다. 법력이란 다섯 가지 문으로 나타내 보이니, 첫째 증득의 문이요, 둘째 믿음의 문이요, 셋째 공양의 문이요, 넷째 설법을 듣는 문이요, 다섯째 읽고 외우고 수지하고 말하는 문이다.
015_0425_a_10L自此已下示現法力持力行力應知法力者五門示現一者證門二者信三者供養門四者聞法門五者讀誦持說門
「미륵보살품(彌勒菩薩品)」에서는 네 가지 문(門)으로 나타내 보이고, 「상정진보살품(常精進菩薩品)」 중에서는 한 가지 문(門)으로 나타내 보인다. 「미륵보살품」에서의 네 가지 문이란, 첫째 증득의 문이니, 경에 “내가 여래의 수명이 길고 원대하다고 말할 때에 육백팔십만억 나유타 항하의 모래같은 중생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015_0425_a_14L「彌勒菩薩品」中示現四門「常精進菩薩品」中示現一門「彌勒菩薩品」中四法門者一是證門如經我說是如來壽命長遠時六百八十萬億那由他恒河沙等衆生得無生法忍
015_0425_b_01L 여기에서 무생법인이라 말하는 것은 이른바 초지(初地)에서 증득한 지혜임을 알아야 한다. 팔생(八生) 내지 일생(一生) 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는 것은 초지에서 보리의 법을 증득한 것을 말함이니, 팔생 내지 일생이란 모든 범부가 결정코 능히 초지를 증득하는 것이다.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라서 팔생, 더 나아가 일생 만에 모두 초지를 증득하는 까닭이다. 여기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말하는 것은 삼계의 분단(分段) 생사를 여의고 분수에 따라 능히 진여의 법성(法性)을 보는 것을 이름하여 보리를 얻었다고 함이요,
015_0425_a_19L此言無生法忍者所謂初地證智應知生乃至一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謂證初地菩提法故八生一生謂諸凡夫決定能證初地故隨力隨分八生乃至一生皆證初地故言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以離三界分段生死隨分能見眞如法性名得菩提
구경의 만족한 여래의 방편 열반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믿음의 문이니, 경에 “다시 팔세계(八世界)의 티끌 수같은 중생들도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일으켰느니라”라고 하였다. 셋째 공양의 문이니, 경에 “이 모든 보살마하살이 큰 법의 이익을 얻었을 때 허공 중에서 만다라 꽃비가 내림이라”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넷째 설법을 듣는 문이니, 수희품(隨喜品)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5_0425_b_04L非謂究竟滿足如來方便涅槃也二是信門如經復有八世界微塵數衆生皆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供養門如經是諸菩薩摩訶薩得大法利時於虛空中雨曼陁羅華如是等聞法門如「隨喜品」所說應知
「상정진보살품」 가운데 한 가지 문이란 말하자면 읽고 외우거나 해설하고 옮겨 쓰면 육근(六根)의 청정을 얻음이니, 경에 “만일 선남자ㆍ선여인이 『법화경』을 받아 지녀 읽고 외우거나 해설하고 옮겨 쓰면 이런 사람은 팔백 눈[眼]의 공덕을 얻으며 …… 일천이백 뜻[意]의 공덕을 얻으리라”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육근 청정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모든 범부가 이 경(經)의 힘 때문에 뛰어난 근(根)의 작용을 얻음을 말하는 것으로 아직 초지 보살의 바른 단계[位]에는 들지 못했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니,
015_0425_b_11L「常精進菩薩品」中一法門者謂讀誦解說書寫等得六根淸淨如經若善男子善女人受持『法華經』若讀若誦若解說若書寫是人當得八百眼功次第乃至得千二百意功德得六根淸淨者謂諸凡夫以經力故得勝根用未入初地菩薩正位此義應知
015_0425_c_01L경에 “부모 소생의 청정한 육안(六眼)으로 삼천대천세계를 본다”라고 한 이와 같은 것들이다. 또 육근이 청정하다는 것은 하나하나의 근(根) 가운데 색(色)을 보고 소리[聲]를 듣고 향기[香]를 구별하고 맛[味]을 분별하고 촉감(觸)을 느끼고 법(法)을 아는 모든 근의 작용을 모두 다 구족하였다는 것이니, 이 뜻을 알아야 한다.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을 향기를 맡고 능히 앎이니, 경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좋은 궁전에서 오욕락(五欲樂)을 즐겨 유희하는 때의 냄새며 …… 설법함이라”라고 하였다. 향기를 맡고 안다는 것은 바로 앎의 경계이니, 비근(鼻根)을 가지고 아는 것이다.
015_0425_b_19L如經以父母所生淸淨肉眼見于三千大千世界如是等故又六根淸淨者於一一根中悉能具足見色聞聲辦香別味覺觸知法諸根互用此義應知眼所見者聞香能知如經釋提桓因在勝殿上五欲娛樂乃至說法聞香知者此是知境以鼻根知故
지니는 힘[持力]이란 세 가지 법문으로 나타내 보이니, 지니는 힘은 「법사품(法師品)」ㆍ「안락행품(安樂行品)」 등에서 법력에 대해 널리 말씀하신 것과 같다. 경에서 “마음이 결정되면 지혜의 물이 필시 가까움을 알아야 한다”라고 한 것은 이 경을 받아 지니면 불성의 물[佛性水]을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까닭이다.
015_0425_c_03L持力者有三法門示現持力如「法師品」「安樂行品」等廣說法力如經應其心決定知水必近受持此經得佛性水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故
수행의 힘[修行力]은 다섯 가지 문(門)으로 나타내 보이니, 첫째 설법의 힘이요, 둘째 고행을 행하는 힘이요, 셋째 중생의 모든 어려움을 보호하는 힘이요, 넷째 공덕의 뛰어난 힘이요, 다섯째 법을 수호하는 힘이다.
설법의 힘에는 세 가지 법문이 있으니, 「신력품(神力品)」에서 나타내 보인다. 첫째 넓고 긴 혀를 내시어 생각하여 잊지 않게 하는 것이요, 둘째 큰 기침을 하시고 게송을 말씀하시어 듣게 하는 것이요, 소리를 듣게 하여서 여실하게 수행하여 방일하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다. 셋째 손가락을 튕기어 중생을 깨닫게 하고 수행자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고행을 행하는 힘이란 「약왕보살품(藥王菩薩品)」에서 나타내 보이고 있다.
015_0425_c_06L修行力者五門示現一者說力二者行苦行力三者護衆生諸難力四者功德勝力五者護法力說力者有三法門「神力品」示現一者出廣長舌令憶念故二者謂謦欬聲說偈令聞故令聞聲已如實修行不放逸故三者彈指覺悟衆生令修行者得覺悟故行苦行力者「藥王菩薩品」示現
또 고행을 행하는 힘은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에서도 나타내 보이니, 중생을 교화하는 까닭이다. 중생의 모든 어려움을 보호하는 힘이란 「관세자재보살품(觀世自在菩薩品)」ㆍ「다라니품(陀羅尼品)」에서 나타내 보이고 있다. 공덕의 뛰어난 힘이란 「묘장엄왕품(妙莊嚴王品)」에서 나타내 보이니, 두 어린 아들에게 과거세 공덕의 선근에 의지하여 이와 같은 힘이 있다고 하였다. 법을 수호하는 힘이란 「보현보살품(普賢菩薩品)」과 그 다음 품에 나타내 보인다.
015_0425_c_14L又行苦行力者「妙音菩薩品」示現敎化衆生故護衆生諸難力者「觀世自在菩薩品」「陁羅尼品」示現功德勝力「妙莊嚴王品」示現二童子依過去世功德善根有如是力故護法力者「普賢菩薩品」及後品示現
015_0426_a_01L또 관세자재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는 것이 어떤 사람이 육십이억 항하의 모래 같은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받아 지니는 복덕과 똑같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째는 믿음의 힘이요, 둘째는 필경에는 알기 때문이다. 믿음의 힘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나의 몸이 저 관자재보살과 같아 다름이 없다는 것을 필경에는 믿게 되는 까닭이요,
015_0425_c_20L又言受持觀世自在菩薩名號若人受持六十二億恒河沙等諸佛名號福德有二種義一者信力故者畢竟知故信力者有二種一者我身如彼觀世自在無異畢竟信故
둘째 관자재보살에 대해 공경심을 내어 그의 공덕과 같이 나도 역시 이와 같이 필경에는 얻게 되는 까닭이다. 필경 안다는 것은 능히 결정코 법계(法界)를 아는 까닭이다. 법계라고 하는 것은 법성을 이름이니, 그 법성이란 모든 불보살의 평등 법신을 이름한다. 평등신(平等身)이란 진여의 법신이니, 초지(初地) 보살이여야만 증득하여 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육십이억 항하의 모래같은 모든 부처님의 이름을 받아 지니는 것과 능히 관세자재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는 것이 얻는 공덕에는 차별이 없다.
015_0426_a_02L者謂於彼生恭敬心如彼功德我亦如是畢竟得故畢竟知者謂能決定知法界故言法界者名爲法性彼法性名爲一切諸佛菩薩平等法身等身者眞如法身初地菩薩乃能證是故受持六十二億恒河沙等諸佛名號有能受持觀世自在菩薩名所得功德無差別
제일 「서품」은 일곱 가지 공덕의 성취를 나타내 보였고, 제이 「방편품」은 다섯 부분으로 둘을 깨뜨려서 하나를 밝힘[破二明一]을 나타내 보였고, 나머지 품은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으니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015_0426_a_10L第一「序品」示現七種功德成就第二「方便品」有五分示現破二明一餘品如向處分易解
妙法蓮華經憂波提舍 卷下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