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十住毘婆沙論卷第十三 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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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주비바사론 제13권


용수 지음
후진 구마라집 한역
번역


26. 비유품 ②

【문】보살이 이 모든 법을 잘 알면 아직 부처님 도를 얻지 못하고선 끝내 물러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를 비유하면 어떤 것인가?

【답】큰 힘을 지닌 길잡이와 같아서
좋은 길의 모양을 잘 알고
이곳이라 저곳이라 함도 잘 알며
바뀌는 길의 마땅한 것도 잘 안다.

양식과 여행할 때 쓸 기구들을
모두 다 미리 갖추게 하고
저 험한 길의 가운데에서
모두들 편안하고 고요할 수 있게 한다.

큰 성읍(城邑)에 이르게 하여
대중을 근심이 없게 할 수 있음은
이 크신 길잡이께서
길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지(地)의 바뀜을 잘 알아서
도를 돕는 법을 완전히 갖추나니
길의 좋고 나쁨과 이곳저곳임을
보살이야말로 잘 안다.

스스로가 생사의 험한 데를 건너고
겸하여 많은 중생들을 인도하여
안온한 처소이며 함이 없음[無爲]의
열반의 성에 이르게 한다.

모두들 나쁜 길에서
뭇 고통을 만나지 않게 함은
보살이 방편의 힘으로
도를 잘 아는 까닭이니라.

‘좋은 길의 모양’이라 함은 섶나무와 풀과 물이 많이 있고 도둑과 사자ㆍ이리ㆍ법 등의 나쁜 짐승과 독충의 무리는 없으며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며 험한 산ㆍ도랑ㆍ구덩이ㆍ절벽 사이를 흐르는 시내ㆍ험준하고 좁은 곳, 깊은 덤불 우거진 숲과 후미진 곳 등이 없고 또한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으며 평평하여 곧게 통하고 갈림길이 적으며 넓디넓어서 많이 받아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며 가는 데에 싫증남이 없고 꽃과 열매 따위의 먹을 만한 물건이 많이 있는 등, 이와 같은 등의 일을 좋은 길의 모양이라 하며, 이것과 서로 반대면 험한 길의 모양이라 하게 된다.
‘이곳’이라 함은 사람들이 숙식하며 쉬는 곳이며, ‘저곳’이라 함은 여기서부터 다른 곳으로 이르게 한 데이니, 묵었던 두 곳의 중간을 또한 다른 곳이라고도 한다.
‘바뀌는 길’이라 함은 갈림길이 있어 보이는 길이니, 큰 성에 이르려면 바른 길을 가야하고 그 밖의 것은 버려야 한다.
‘양식’이라 함은 미숫가루와 꿀 덩어리 등 가는 길에 먹을거리이며, ‘큰 힘’이라 함은 큰 세력을 지녀서 재물이 많이 있고 잘 다스리는 법을 아는 것이다.
‘미리 갖춘다’ 함은 음식을 많이 지녀서 모자라게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편안하다’ 함은 도둑 따위의 두려운 일이 없는 것이며, ‘고요하다’ 함은 질병ㆍ고통ㆍ근심거리가 없는 것이다.
‘큰 성’이라 함은 사람들을 많이 받아들이는 곳이니 많은 사람들이 큰 성에 이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길잡이’는 길의 모양을 잘 알므로 자신도 재난이 없을뿐더러 남들도 재난이 없게 하는 것으로 길을 잘 알기 때문이다.
추움ㆍ더움ㆍ배고픔ㆍ목마름ㆍ도둑ㆍ나쁜 짐승ㆍ독충ㆍ험한 산ㆍ더러운 물과 깊은 구덩이 등의 이런 근심거리가 없다. 무슨 까닭인가? 길의 좋고 나쁜 모양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로써 환희지 등의 10지를 비유하게 된다.
마치 사람이 길을 가기만 하고 쉬지 않으면 큰 성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이 이 10지를 행하면 부처님 법에 이르러 열반의 큰 성에 들어갈 수 있다.
마치 좋은 길에는 섶나무와 풀이며 물 등이 많이 있어서 가는 이들에게 모자람이 없는 것과 같다. 풀이란 사람들이 말을 타고 길을 갈 적에 좋은 풀이 많으면 말의 힘이 왕성함과 같은 것인데, 10지도의 공덕도 그와 같아서 진리ㆍ버림ㆍ적멸ㆍ지혜[諦捨滅慧]의 네 가지 공덕[四勝處:四德處]은 모든 공덕을 돕는 까닭에 풀이라 이름한다. 왜냐하면 만약 사람이 진실한 일을 귀하게 여긴다면 진리인 말을 따르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말을 가까이 해야 한다 함은, 진실함을 당하면 이익이 있으므로 진실한 일을 따르기 좋아하여 깊이 거짓말을 미워하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며, 거짓말의 허물을 당하면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등의 인연으로 진리의 훌륭한 공덕을 얻게 되나니, 버림 등의 세 가지 공덕도 이와 같은 줄 알아야 한다.
마치 저 좋은 길에서 여러 코끼리ㆍ말ㆍ소ㆍ당나귀 등이 큰 성까지 이를 수 있으려면 풀이 그 힘을 도와서 이루게 해야 하는 것처럼, 이와 같은 진리ㆍ버림ㆍ지혜ㆍ적멸이라야 부처님 법에 이르러 열반의 큰 성에 들게 할 수 있다.
‘섶나무’라 함은 많이 듣고, 생각하고, 닦음[聞思修]의 지혜로써 큰 지혜의 업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니, 마치 섶나무는 불을 타게 할 수 있고 아주 왕성하게도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듣고, 생각하고, 닦음의 지혜는 큰 지혜를 낼 수 있고 더욱 자라게도 할 수 있음은 마치 불이 태울 수도 있고 익힐 수도 있고 비출 수도 있는 것과 같다. 지혜의 불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를 태우고 모든 착한 뿌리를 성숙시키며,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비추므로 불은 바로 지혜의 섶과 같다고 하나니, 이는 지혜 등의 모든 법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많다’는 것은 흐르는 강과 도랑들이 많이 있으므로 뜻대로 가져다 써서 대중들을 부족함이 없게 한다는 것이며, 샘과 우물과 옷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또 물이 많다는 것은, 만약 사람이 배를 타고 물을 따르면 큰 성에 이르게 되지만 우물과 샘이며 못의 물로서는 그렇게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믿음은 큰 강이며 복덕은 언덕이니라. 마치 강물은 열을 없애고 목마름을 없애며 때를 없애서 세력이 날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선법 중의 믿음도 그러하여 세 가지 독의 열을 없애고 세 가지 나쁜 행의 때를 없애며 3유(有)의 목마름을 없애느니라”라고 하셨으니, 열반인 까닭이다.
선법 중에 세력을 얻음은 마치 저 좋은 길에 여러 가지 뿌리와 약초가 많이 있어서 여행하는 이에게 모자람이 없이 하는 것과 같으니, 10지의 도(道) 역시 그와 같다.
‘뿌리’라 함은 깊은 마음으로 사랑해야 할 것이니, 마치 뿌리가 있는 까닭에 곧 싹ㆍ줄기ㆍ가지ㆍ잎과 여러 가지 열매 등이 나는 것처럼 깊은 마음으로 도를 사랑하면 바른 기억과 큰 서원 등의 모든 공덕이 생기는 것이다.
‘약초’라 함은 모든 바라밀이라는 것이니, 마치 약초가 모든 독을 없앨 수 있는 것처럼 모든 바라밀의 약초가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과 독과 모든 번뇌의 병을 없애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마치 저 좋은 길에서 위바타(韋婆陀)를 잃지 않으면 가는 길이 편안하고 고요한 것과 같다. 위바타는 진(秦)나라에서 무대의(無對義)라고 말하는데, 이는 증거가 되는 문서[符檄]이다. 마치 여행하는 이가 증거가 되는 문서를 잃지 않으면 이르고자 하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과 같다. 10지의 도 역시 그와 같아서 위바타를 잃지 않으면 지나게 되는 모든 지(地)에서 모으는 착한 뿌리는 곧 뜻을 따라 돕고 이룩하며 현재의 착한 뿌리를 더욱 자랄 수 있게 한다. 그는 또 성문의 도ㆍ벽지불의 도ㆍ욕심세계ㆍ형상세계와 모든 하늘 길의 중생을 교화하며 부처님 도에 머무르게 할 수 있으며 악마와 외도가 범하거나 어지럽힐 수가 없나니, 이것을 위바타를 잃지 않는 것이라 한다.
마치 저 좋은 길은 모기와 등에, 독충 따위가 없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근심 걱정과 슬피 우는 소리가 없다. 마치 저 좋은 길에 도둑의 재난이 없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다섯 가지 가림[五蓋]의 모든 악한 도둑들이 없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마을의 도둑이란, 이른바 다섯 가지 가림이니라. 마치 도둑이 먼저 사람의 물건을 빼앗고 뒤에는 목숨을 해치는 것처럼 다섯 가지 가림의 도둑도 그러하여 먼저 착한 뿌리를 빼앗고 뒤에 지혜의 목숨을 끊으면 곧 방일한 데에 떨어지면서 죽게 되느니라.”
마치 길 가운데 사자ㆍ범ㆍ이리 등의 나쁜 짐승들이 없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성냄과 다툼이 없다. 마치 사자 등의 나쁜 짐승이 남을 괴롭히고 해치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성냄 등은 남을 괴롭히기 위하여 나는 것이므로 역시 그와 같다. 마치 나쁜 짐승들이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시는 것처럼, 성내고 원망하는 것 등은 많이 들음의 지혜[聞慧]를, 고기를 먹고 마심은 닦음의 지혜[修慧] 등을, 피를 마시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마치 저 좋은 길은 추위와 더위의 잘못된 폐악이 없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한빙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추위의 잘못된 폐악이 없고, 열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므로 더위의 잘못된 폐악이 없다.
저 좋은 길은 깊은 구덩이 등의 모든 재난이 없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외도 고행 등의 여러 재난이 없다. 이른바 재를 몸에 칠하며, 얼음에 들어가며, 머리카락을 뽑아내며, 하루에 세 번 씻으며, 한 발로 발돋움하며,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이틀에 한 끼를 먹으며, 내지 한 달에 한 끼를 먹고서 잠자코 죽기에 이르며, 언제나 한 팔을 들며, 언제나 인욕하며, 다섯 가지 열로써 몸을 구우며, 가시덤불 위에 누우며, 불에 들어가기도 하고 물에 들어가기도 하며, 스스로가 높은 바위에 몸을 던지며, 깊은 화로 가운데 서며, 소똥으로 몸을 사르며, 곧장 한 방향으로 가면서 여러 환난을 피하지 않으며, 언제나 축축한 옷을 입으며, 물속에 눕는 따위의 몸의 괴로움과 마음의 괴로움으로써 바른 지혜에 이르지 못하는 것들인데, 이와 같은 것이 없는 까닭에 재난이 없다고 한다.
마치 길에 삿된 길이 없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몸과 입과 뜻의 나쁜 업이 없는 까닭에 삿된 길이 없다고 하며, 마치 길에 가시나무가 없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모든 업장의 가시나무가 없는 까닭에 가시나무가 없다고 한다. 가시가 다리를 찌르면 가던 길을 그만 두는 것처럼 업장의 가시가 부처님의 법을 행함과 열반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마치 길이 바르고 곧은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온갖 아첨과 간사함과 속임수가 없는 까닭에 바르고 곧다고 한다. 마치 길에 갈림길이 적은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달리하는 도가 적다. 왜냐하면 대승을 낸 이는 성문과 벽지불의 도를 행함이 적으므로 달리하는 도가 적은 것이다.
혹은 어떤 보살은 2승의 도를 행하기도 하지만 아직 보살의 지에 이르지 못했고 아직 바른 지위에 들지 못한 줄 알아야 하리니, 변두리의 행을 행한 까닭이다. 마치 저 좋은 길은 여러 우거진 숲에 의한 방해가 없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다섯 가지 욕심의 모든 악한 우거진 숲이 없다.
【문】무엇 때문에 ‘다섯 가지 욕심의 우거진 숲이 도무지 없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악한 숲만이 없다’고 하는가?
【답】대승을 내는 이는 복과 덕의 인연이 첫째로 다섯 가지 욕심에 있다. 그러므로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서 ‘악한 것이 없다’고 하였을 뿐이다.
또 깊이 우거진 숲과 같아서 들어가기 어렵고 지나가기 어려워서 모든 어려움과 장애가 많지만, 보살의 다섯 가지 욕심은 곧 그렇지 않아 범부가 다섯 가지 욕심으로 여러 과실과 죄악을 내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러한 까닭에 다만 우거진 숲이 없다고만 말한다.
마치 길이 넓디넓으면 많이 받아들여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많아서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들이 함께 위없는 도의 마음을 낸다 하더라도 서로가 거리끼지 않으며, 이 백천만억 중생과 일체 중생들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똑같이 이 도를 행한다 하더라도 서로가 거리끼지 않는다.
마치 길은 많은 사람이 다니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보살의 도를 행할 적에 모두가 이 도를 행하셨다.
마치 저 좋은 길을 가게 되면 싫증이 안 나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인과의 여러 즐거움이 많다. 이른바 사람과 하늘 안에 많이 태어나서 과보를 받으며, 욕심 여의기를 좋아하는 까닭에 기쁨의 즐거움과 선정의 즐거움과 기쁨이 없는 즐거움[無喜樂]과 현재의 즐거움을 받으며, 이 여러 즐거움을 얻는 까닭에 싫증남이 없다.
마치 길에 꽃과 열매와 뿌리가 많이 있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뿌리와 꽃과 열매가 많다. 뿌리란 세 가지의 착한 뿌리이며, 꽃이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꽃이 그것이다.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일곱 가지 꽃이란 7각의(覺義)가 그것이며, 열매란 네 가지 사문의 결과[四沙門果]가 그것이니라.”
이와 같은 등의 좋은 도의 공덕을 어기는 과실이 없는 까닭에 악을 여읜다고 한다.
마치 길잡이가 길 가운데서 이 중에서는 먹어야 하고 여기서는 묵어야 하며 저기서도 묵어야 함을 아는 것처럼, 보살이 10지를 행하는 것 역시 그러하여 어디서는 묵어야 하고 어디서는 먹어야 함을 안다. ‘묵어야 한다’ 함은 현재 계신 부처님의 처소에 있게 된다는 것이며, ‘먹어야 한다’ 함은 선법을 닦고 익힐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마치 음식은 모든 감관을 이익되게 하고 생명을 도울 수 있는 것처럼, 모든 선법도 그러하여 믿음 등의 모든 뿌리를 더하게 하고 지혜의 목숨을 도와서 이룰 수 있다.
‘다른 곳[異處]에 묵는다’ 함은 저 부처님 처소로부터 딴 부처님 처소에 이르는 것이며, 또 이 부처님의 국토와 저 부처님의 국토인 그 중간도 다른 곳이라 이름한다.
‘길의 바뀜을 잘 안다’ 함은 저 길잡이는 길의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음을 알고서 곧 바꾸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이 도는 성문에 이르고 이 도는 벽지불에 이르고 이 도는 부처님에 이른다 함을 잘 안다. 이렇게 알고 나면 성문의 도와 벽지불의 도를 버리고 다만 부처님에 이르는 도만을 행한다.
마치 저 좋은 길에는 음식이 많이 있는 것처럼, 10지의 도 역시 그러하여 보시와 계율을 지님과 선정 닦음을 많이 행한다.
마치 저 길잡이가 많은 재물로써 법을 잘 다스리고 큰 세력을 지니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재물을 지니고 법을 다스리는 까닭에 큰 세력이 있다. ‘재물’이란 일곱 가지 재물[七財]이니, 이른바 믿음ㆍ계율ㆍ제부끄러움ㆍ남부끄러움ㆍ버림ㆍ들음ㆍ지혜이다. ‘법을 다스린다’ 함은 모든 악마와 여러 사문ㆍ바라문ㆍ외도의 논사(論師)들을 모두 꺾고 굴복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거룩한 세력이라 한다.
마치 저 큰 성에는 도둑ㆍ질병ㆍ갑자기 죽는 것 등의 여러 가지 괴로움이 없는 까닭에 편안하고 고요하다는 것처럼, 열반의 큰 성도 그러하여 여러 악마와 외도의 무리들이며 탐욕ㆍ성냄ㆍ방일함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괴로움과 슬피 우는 일 등이 없는 까닭에 편안하고 고요하다고 한다.
마치 저 큰 성에는 음식이 많은 까닭에 매우 넉넉하다고 하는 것처럼, 열반의 성도 그러하여서 모든 깊은 선정과 해탈과 삼매가 많이 있는 까닭에 매우 넉넉하다고 한다. 마치 저 큰 성은 받아들이는 것이 많은 까닭에 큰 성이라 하는 것처럼, 열반의 성도 그러하여서 중생들을 많이 받는 까닭에 크다고 하나니, 가령 일체 중생이 모든 법을 받지 않는 까닭에 모두가 남음이 없는 열반[無餘涅槃]에 들게 된다 하여도 열반의 성품은 더함도 없고 줄어짐도 없다.
마치 저 길잡이가 많은 대중을 거느리면서도 편안하고 고요하게 좋은 길을 보일 수 있는 까닭에 길잡이라 이름하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중생을 잘 거느려 부처님 법을 보이고 열반을 보이며 나고 죽음의 험한 길로부터 열반에 이르게 되는 까닭에 큰 길잡이라고 한다.
마치 저 길잡이가 길의 모양을 잘 아는 까닭에 자신과 그 밖의 사람이 모두 악한 일이 없는 것처럼, 보살 역시 그러하여 스스로가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모든 번뇌와 모든 악한 고행과 늙고 죽음의 깊은 구덩이를 행하지 않을뿐더러 춥고 더운 지옥과 아귀에도 떨어지지 않는 까닭에 자신도 악한 일을 만나지 않고 따르는 이들도 역시 악한 일을 만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게송 중에서 말하기를, ‘도의 형상을 잘 아는 까닭에 스스로가 악한 일을 만나지 않고 다른 이도 악한 일을 만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27. 약행품(略行品)

보살의 환희지를
이제 이미 간략히 말해 마쳤다.
보살로서 이 안에 머무르게 되면
염부제의 왕(王)이 많이 된다.

언제나 간탐의 때[垢]를 여의고
3보(寶)의 생각을 잃지 않으며
마음으론 언제나 부처되기 원하면서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며 수호한다.

초지를 환희지라 하며, 이미 간략하게 말하여 마쳤다. 모든 부처님의 법은 한량없고 그지없지만 이 지가 근본이 된다. 만약 널리 말한다고 하면 역시 한량없고 그지없나니, 그러므로 간략하게 말한 것이다.
보살이 이 지 중에 머무르게 되면 염부제의 세력 지닌 전륜성왕이 많이 되지만, 전생에 이 지를 닦고 익힌 인연 때문에 보시를 믿고 즐기며 간탐의 때가 없고 항상 3보에 보시하는 까닭에 3보에 관한 생각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부처가 되기를 생각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 수호한다. 이러한 착한 생각을 언제나 마음속에 둔다.

만약 집을 떠나고 싶어 하여
부지런히 애쓰며 힘써 나아가면
수백의 선정을 얻을 수 있고
수백의 부처님을 뵈올 수 있으며

백 개의 세계를 움직일 수도 있고
날아다니는 것도 그와 같으며
만약 광명을 내시고자 하면
백의 세계를 비출 수도 있다.

수백의 종류인 사람들을 교화하여
백 겁 동안이나 오래 살 수 있게 하며
수백 가지 법을 가릴 수 있고
백 가지 몸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백의 보살을 변화로 내어서
권속이 되는 일을 나타내 보여도
영리한 근기면 이 수보다 더하나니
부처님 신통력을 의지한 까닭이다.

이미 초지의 형상[相]을 말하고
결과[果]ㆍ힘[力]ㆍ깨끗이 다스리는 법[淨治法]을 말했으므로
이제는 제2의 무구지(無垢地)를
당연히 다시 말하여야 되겠다.

‘결과’라 함은 수백의 선정을 얻고 수백 부처님을 뵙는 등의 것이며, ‘힘’이라 함은 수백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나머지 게송의 뜻은 먼저 이미 설명하였으므로 그 나머지 게송을 다시 해설하지 않겠으며, 이제는 제2 무구지를 말하여야겠다.
【문】그대는 보살로서 행하는 법을 널리 말하려 하여 초지의 이치도 오히려 많았었는데, 여러 배우는 이들은 점점 더욱 넓어진다면 게으른 마음이 생겨서 읽고 외우지 못할까 두렵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많이 읽고 외지 못할 이들을 위하여 보살이 행하는 모든 법을 간략하게 풀이해야 하리라.

【답】보살로서 지니는 법인
이 법을 모두가 행하여야 하며
온갖 나쁜 일은 버려야 하는
이것이 곧 간략하게 말하는 것이리라.

위의 여러 품(品)에서 말한 것과 같이, 모든 지의 법을 낼 수 있고 더욱 자랄 수 있는 것은 위의 여러 품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만약에 다른 곳에서 말하였다 하여도 으레 나게 하는 것이며, 보살로서 과실과 죄악의 일은 모두 여의어야 하리니, 이를 보살로서 행하여야 할 것을 간략히 말한 것이라 한다.
『법구(法句)』중에서 말한 것과 같이, “모든 나쁜 일은 짓지를 말고, 모든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가 그의 뜻을 깨끗이 함이 이것이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다”라고 하였다.
어느 하나의 법이라도 부처님 도를 포섭한 것이라면 보살은 으레 행하여야 한다. 어떤 것이 하나인가? 이른바 선법 중에 마음을 전일하게 할지언정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방일하지 않은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느니라”라고 하심과 같으니, 다음의 말과 같다.

방일하지 않으면 부처님이 되어
세간에선 같을 이가 없으시나니
만약 방일하지 않을 수 있으면
어느 일인들 이룩하지 못하리오.

다시 두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첫째 방일하지 않음이며, 둘째 지혜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방일하지 않는 것과 지혜야말로
부처님께서 이를 이익의 문이라 하셨나니
방일하지 않으면서도
그 일을 이루지 못한 이를 못 보았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첫째 훌륭한 계율을 배움이며, 둘째 훌륭한 마음을 배움이며, 셋째 훌륭한 지혜를 배움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계율은 으뜸가는 삼매를 내고
삼매는 지혜를 내는 것이며
지혜가 모든 번뇌 흩어버림이
바람이 뜬 구름을 불어버리듯 한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첫째 진리[諦處]이며, 둘째 버림[捨處]이며, 셋째 적멸[滅處]이며, 넷째 지혜[慧處]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진리ㆍ버림ㆍ정(定)이 완전히 갖춰지면
지혜가 날카롭고 깨끗해지나
힘써 나아가 부처님 도 구하면서
이 네 가지의 법을 쌓아야 한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첫째 신근(信根)이며, 둘째 정진근(精進根)이며, 셋째 염근(念根)이며, 넷째 정근(定根)이며, 다섯째 혜근(慧根)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신근과 정진근과
염근ㆍ정근ㆍ혜근이 굳고 단단하여
이 법이 대비(大悲)와 합쳐진다면
끝내 부처님 도에서 물러나지 않으리.

사람이 다섯 가지 감관이 있으면
다섯 가지 경계를 통달함과 같으니
마치 신근 등의 5근을 얻으면
모든 법의 형상을 통달할 수 있음과 같다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이른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 바라밀로서 다음의 말과 같다.

말씀하신 여섯 가지 바라밀은
모든 번뇌를 항복시키나니
언제나 착한 뿌리 더욱 자라게 하여
머지않아 당연히 부처님 되리라.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이른바 일곱 가지 바른 법이다. 믿음ㆍ제부끄러움ㆍ남부끄러움ㆍ들음ㆍ정진ㆍ생각[念]ㆍ지혜로서 다음의 말과 같다.

일곱 가지 바른 법을 얻으려 하면
결정된 정진을 즐겨야 하며
일곱 가지 삿된 법을 없애 버리면
모든 공덕을 알 수 있으리라.

이 사람은 위없는 부처님 보리를
빨리 얻을 수 있을 것이며
나고 죽는 이를 뽑아내어서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 있게 하리라.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이른바 8대인각(大人覺)이다. 욕심을 적게 하려는 생각[少欲覺], 만족할 줄 아는 생각[知足覺]ㆍ멀리 여의려는 생각[遠離覺]ㆍ힘써 나아가려는 생각[精進覺]ㆍ바른 이치를 기억하는 생각[正念覺]ㆍ바른 선정의 생각[正定覺]ㆍ바른 지혜의 생각[正慧覺]ㆍ쓸데없는 말을 여의려는 생각[不戲論覺]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만약 사람이 마음이 결정되면
여덟 가지 대인(大人)의 생각에 머물지니
부처님의 도를 구하기 위하여
모든 나쁜 각관(覺觀)을 없애 버리라.

이와 같이 하면 오래지 않아서
빨리 위없는 도를 얻으리니
마치 사람이 선행을 하는 이면
반드시 묘한 과보를 얻음과 같으니라.

다시 아홉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이른바 크게 참음[大忍]ㆍ크게 사랑함[大慈]ㆍ크게 가엾이 여김[大悲]ㆍ지혜[慧]ㆍ기억[念]ㆍ굳은 마음[堅心]ㆍ탐내지 않음[不貪]ㆍ성내지 않음[不恚]ㆍ어리석지 않음[不癡]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크게 참음과 크게 사랑함과
크게 가엾이 여김을 완전히 갖추고
또 지혜와 기억과
굳은 마음 중에 능히 머무르며

깊은 마음으로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는
착한 뿌리에 들어갈지니
만약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라면
부처님 도는 곧 손바닥에 있으리라.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어서 부처님 도를 포섭할 수 있나니, 이른바 열 가지 착한 길이다. 스스로가 산 것을 죽이지 않고, 남을 시켜서 죽이지 않고, 죽이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칭찬하지 않고, 죽이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고, 삿된 소견에 이르기까지 역시 그와 같다. 이 복과 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할 것이니, 다음의 말과 같다.

중생을 괴롭히며 해치지 않고
또한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다른 이의 아내를 범하지 않음의
이 세 가지는 몸의 업이다.

거짓말과 이간질을 하지 않고
나쁜 말과 꾸밈말[綺語]을 하지 않으며
탐냄ㆍ성냄ㆍ삿된 소견이 없음의
이 일곱 가지는 입과 뜻의 행이다.

이와 같이 하면 더할 나위없는
부처님 도의 문을 열 수 있나니
만약 부처님이 되려고 하면
이 처음의 문을 행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등의 법을 보살은 내어야 하고, 낸 뒤에는 수호하여야 하고, 수호한 뒤에는 더욱 자라게 해야 하며 한 가지의 착한 일에는 하나에서부터 더욱더 늘리는 것도 알아야 한다.
부처님 도를 구하는 이는 한 가지라도 나쁜 법이면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하리니, 이른바 방일함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다음의 말과 같다.

만약 사람이 나고 죽음의
험하고 나쁜 길을 건널 수가 없으면
이야말로 꾸짖을 만한 것이며
이것은 가장 죄악의 일이다.

부귀함과 즐거움을 좋아하지만
가난하고 천한 집에 태어난지라
착한 뿌리를 심을 수 없고
남을 위하는 종이 되는 것은

모두가 방일한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과보가 이른 것이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저 악독한 것을 빨리 멀리하라.

크게 가엾이 여김과 생멸 없는 지혜에
물러나지 않음을 이루지 못하고서
방일한 일을 행하는 이
이것을 곧 이름하여 죽음이라 한다.

다시 두 가지 허물이 있어서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첫째가 성문의 자리를 탐냄이며, 둘째가 벽지불의 자리를 탐내는 것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만약 성문의 자리와
벽지불의 자리에 떨어진다면
이를 보살의 죽음이라 하고
또한 온갖 것을 잃었다고 한다.

비록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두려움을 내지 않아야 하지만
만약 2승에 떨어진다면
보살은 크게 두려워해야 한다.

비록 지옥에 떨어졌다 하더라도
부처님 도를 영원히 막는 것이 아니지만
만약 2승에 떨어진다면
끝내 부처님 도를 막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되 목숨을 사랑하는 이는
머리 베이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니
이와 같이 부처님이 되려 한다면
2승을 크게 두려워해야 한다.

다시 세 가지의 허물이 있어서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첫째 보살들을 미워함이며, 둘째 보살의 하는 일을 미워함이며, 셋째 매우 깊은 대승경전을 미워함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지혜가 작은 이는 사소한 일로
보살들을 미워하고 성을 내며
또한 보살의 도를 미워하고
대승경전도 미워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큰 지옥에 빠져 있게 되니
두려워하며 크게 놀라고 부르짖는
이 일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다시 네 가지 허물이 있어서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첫째 아첨함이며, 둘째 간사함이며, 셋째 성질이 급함이며, 넷째 자비가 없음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스스로가 보살이라 하면서
그 마음은 아첨과 간사함 많고
성질이 급하여 용서한 바 없으며
자비의 마음을 쓰지 않으면
이는 아비지옥과 가까운 것이요
부처님 도와는 매우 머니 여의어야 한다.

다시 다섯 가지 허물이 있어서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첫째 탐냄, 둘째 성냄, 셋째 수면, 넷째 실없음[調戲], 다섯째 의심이다. 이들 다섯 가지 번뇌가 마음을 덮는다고 하니, 다음의 말과 같다.

만약 사람이 방일한다면
여러 가지 번뇌가 마음을 덮으므로
하늘에 나는 것도 오히려 어렵거든
하물며 과위(果位)를 얻음에 있어서랴.

만약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면
곧 모든 번뇌를 깨뜨릴 수 있나니
만약 번뇌를 깨뜨릴 수 있다면
원(願)을 따라 모두 다 얻게 되리라.

다시 여섯 가지 허물이 있어서 여섯 가지 바라밀과 서로 어긋난 것이니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한다. 첫째 간탐이며, 둘째 계율을 깨뜨림이며, 셋째 성냄이며, 넷째 게으름이며, 다섯째 실없음이며, 여섯째 어리석음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간탐의 때가 끼어 마음을 더럽힘과
계율을 깨뜨리고 게으르며
무지함이 마치 소와 양 같고
성내기 좋아함이 마치 독사 같으며

마음 어지러움이 원숭이 같아서
여러 번뇌를 멀리 여의지 않는다면
하늘에 나는 것도 아주 어렵거든
하물며 부처님의 도를 얻음이겠느냐.

다시 일곱 가지 허물이 있어서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한다. 첫째 많은 사무(事務)를 즐김이며, 둘째 많이 읽고 외우기를 즐김이며, 셋째 잠자기를 좋아함이며, 넷째 말하기를 좋아함이며, 다섯째 이양을 탐냄이며, 여섯째 언제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함이며, 일곱째 도의 마음에 헷갈리고 애욕을 따라 행함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못된 사람[弊人]은 사무하기 즐기고
외도의 경전을 많이 읽기 좋아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잠자기를 즐기고
여럿이 함께 모여 말하기 좋아한다.

비록 부처되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그러면서 이양에 깊숙이 집착하면
이는 은혜와 사랑[恩愛]의 종이 되어
부처님의 도에 미혹하나니
이러한 여러 나쁜 사람은
스스로가 바로 보살이라 말한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어서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첫째 삿된 소견이며, 둘째 삿된 생각이며, 셋째 삿된 말이며, 넷째 삿된 행위이며, 다섯째 삿된 생활이며, 여섯째 삿된 방편이며, 일곱째 삿된 기억이며, 여덟째 삿된 선정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만약 사람이 어리석다면
여덟 가지의 삿된 길을 행하고
삿된 경전의 법들을 배우며
삿된 스승 따르기를 좋아하면서

여덟 가지의 거룩한 길과
깊고 묘한 여러 공덕 멀리 여의며
굳게 깊이 번뇌에 집착하면서
혹은 보리를 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큰 바다를 건너려 하면서
좋고 굳고 단단한 배를 버리고서
돌을 안고 건너려고 함과 같도다.

다시 아홉 가지 법이 있어서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한다. 첫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듣지 않음이며, 둘째 듣고서도 믿지 않음이며, 셋째 혹은 믿기는 하면서도 받지 않음이며, 넷째 혹은 받기는 하면서도 외우고 지니지 않음이며, 다섯째 혹은 외우고 지니기는 하면서도 뜻을 모름이며, 여섯째 혹은 알기는 하면서도 말하지 않음이며, 일곱째 혹은 말하기는 하면서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음이며, 여덟째 혹은 말씀대로 행하기는 하면서도 항상 행할 수가 없음이며, 아홉째 혹은 항상 행할 수는 있으면서도 잘 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음의 말과 같다.

위없는 바르고 진실한 도를
어리석은 사람은 들으려고 않으며
들은 뒤에도 믿을 수가 없고
또 외우거나 지닐 수가 없다.

뜻도 모르고 말하지도 않으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도 않고
언제나 잘 행할 수도 없으며
또 생각을 지혜에 둠도 없다.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은
도의 과위를 얻을 수가 없음이
마치 죄가 있는 나쁜 사람은
천상에 날 수가 없음과 같다.

다시 열 가지 허물이 있어서 빨리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이른바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로서 다음의 말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잠깐 동안이라도
못된 5욕(欲)을 탐내고 사랑하여
열 가지 착한 길을 버리며 여의고
열 가지의 착하지 못한 길을 행한다.

하늘들의 안락이 손바닥에 있는데도
또다시 스스로가 버리는 것이
사소한 돈의 이익에 탐을 내어서
큰 보배 광을 버림과 같다.

【문】그대는 위없는 도의 형상을 말할 때에 갖가지 인연으로 꾸짖어서, 헛된 원을 세운 보살이 스스로가 보살이라 하지만 다만 이름뿐인 보살이라고 하였다. 만약 이 세 가지는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떤 법을 성취하여야 진실한 보살이라 이름할 것인가?

【답】비단 헛된 서원을 세우고
스스로가 바로 보살이라 한다 하여
이름만의 보살이라 하지 않으리라.

간략하게 말하건대 서른두 가지 법을
성취할 수가 있는 이라야
비로소 보살이라 이름하리라.

만약 사람이 부처님 도를 구하려 하면서 스스로가 바로 ‘보살이로다’ 하며 헛되이 이름만을 짓고서 공덕과 자비심과 모든 바라밀 등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보살이라 하지 못하리라. 마치 흙으로 쌓은 성을 보석으로 쌓은 성이라고 하는 것과 같아서,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님을 속이며 세간의 중생들까지도 속이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서른두 가지의 미묘한 법을 지니고 또한 서원을 세울 수 있다면, 이를 진실한 보살이라고 하리라. 무엇이 서른두 가지 미묘한 법인가? 첫째 깊은 마음으로 일체 중생을 위하여 모든 안락을 구함이며, 둘째 모든 부처님의 지혜 중에 능히 들어감이며, 셋째 스스로가 부처가 될 만한가, 부처가 될 만하지 못하겠는가를 살펴서 앎이며, 넷째 남을 미워하지 않음이며, 다섯째 도의 마음이 견고함이며, 여섯째 거짓으로 친하며 사랑하는 척하지 않음이며, 일곱째 아직 열반에 들지 않을 때까지는 언제나 중생들을 위하여 친한 벗이 됨이며, 여덟째 친한 이나 소원한 이나 간에 마음을 같이함이며, 아홉째 이미 착한 일을 허락하였으면 마음에서 물러나지 않음이며, 열째 일체 중생에게 크게 사랑함[大慈]을 끊지 않는 것이다.
열한째 일체 중생에게 크게 가엾이 여김을 끊지 않음이며, 열두째 언제나 바른 법을 구하되 마음에 피곤하고 게으름이 없음이며, 열셋째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되 마음에 만족함이 없음이며, 열넷째 많이 듣고서 뜻을 앎이며, 열다섯째 언제나 자기의 허물을 반성함이며, 열여섯째 남의 단점을 헐뜯지 않음이며, 열일곱째 온갖 보고 듣고 하는 일 중에서 언제나 보리의 마음을 닦음이며, 열여덟째 보시하되 갚음을 구하지 않음이며, 열아홉째 계율을 지니되 온갖 날 곳을 구하지 않음이며, 스무째 일체 중생에 대하여 욕을 참고 성내거나 방해함이 없는 것이다.
스물한째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며 온갖 착한 뿌리를 닦아 익힘이며, 스물둘째 무색정(無色定)에 따라 나지 않음이며, 스물셋째 방편으로써 지혜를 포섭하며, 스물넷째 네 가지 거두어 줌의 법[四攝法]으로써 방편을 포섭하며, 스물다섯째 계율을 지니고 계율을 깨뜨리는 것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것이 둘이 없음이며, 스물여섯째 한 마음으로 법을 듣는 것이며, 스물일곱째 한 마음으로 아련야 처소에서 머무름이며, 스물여덟째 세간의 갖가지 여러 일을 즐기지 않음이며, 스물아홉째 소승을 탐내며 집착하지 않음이며, 서른째 대승의 이익을 크게 여김이며, 서른한째 나쁜 벗을 멀리 여읨이며, 서른둘째 착한 벗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보살이 이 서른두 가지 법에 머무르면 일곱 가지 법을 이룰 수 있다. 이른바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이며, 다섯 가지 신통에 유희할 수 있으며, 언제나 지혜를 의지하며, 언제나 선하고 악한 중생을 버리지 않으며, 말한 것은 단호히 확정하며, 말하면 반드시 모두가 사실이며, 온갖 선법을 모으되 마음에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서른두 가지 법이며 일곱 가지 법이니, 보살이 이를 성취하면 진실한 보살이라 이름한다.


28. 분별이지업도품(分別二地業道品)1)

모든 보살이 이미
초지를 완전히 얻고 난 뒤에
제2지를 얻으려 하면
열 가지의 마음[十種心]을 내어야 한다.

모든 보살이 이미 환희의 초지를 얻고서 2지를 얻기 위해서는 열 가지의 마음을 내야 하는 것이니, 이 열 가지 마음으로 인하여 제2지를 얻을 수 있다. 마치 사람이 다락을 오르려 하면 반드시 사다리로 인하여 오르는 것과 같다.
【문】어떤 것이 열 가지 마음으로서 제2지를 얻게 되는 방편인가?

【답】곧은 마음[直心]과 감당하여 낼 만한 마음[堪用心]과
부드럽고 항복받으며 적멸의 마음[寂滅心]이며
참으로 묘하고 뒤섞이지 않고 탐내지 않으며
상쾌하고 큰마음이 바로 열 가지니라.

모든 보살이 이미 초지를 완전히 갖추고서 제2지를 얻으려 하면, 이 열 가지 방편의 마음을 내야 한다. 첫째 곧은 마음, 둘째 감당하여 낼 만한 마음, 셋째 부드러운 마음[柔軟心], 넷째 항복받는 마음[降伏心], 다섯째 적멸의 마음, 여섯째 참되고 미묘한 마음[眞妙心], 일곱째 뒤섞이지 않는 마음[不雜心], 여덟째 탐내지 않는 마음[不貪心], 아홉째 넓고 상쾌한 마음[廣快心], 열째 큰마음[大心]이다.
‘곧은 마음’이라 함은 아첨과 간사함을 여의는 것이니, 아첨과 간사함을 여의는 까닭에 마음이 더욱 더 부드러워진다.
‘부드러움’이라 함은 억세고 거칠고 사납지 않은 것이니, 보살이 이 부드러운 마음을 얻고서 갖가지의 선정을 내며 또한 모든 선법을 닦고 익힌다.
모든 법의 진실한 형상을 자세히 살피면 마음이 곧 감당하여 낼 만하나니, 마음에 감당해 낼 만한 까닭에 항복받는 마음이 생긴다.
‘항복받는 마음’이라 함은 눈 등의 모든 감관을 잘 항복받을 수 있는 것이니, 경전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무엇이 착한 길인가? 이른바 비구가 눈의 감관에서 뜻의 감관에 이르기까지 항복받는 것이니라”고 하셨으니, 여섯 감관을 항복받는 까닭에 항복받는 마음이라 하고, 마음이 이미 항복되고서야 쉽게 적멸의 마음이 생긴다.
‘적멸의 마음’이라 함은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모든 번뇌를 없애는 것이니, 먼저 마음을 항복받은 뒤에야 적멸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모든 선정을 얻으면 이를 적멸의 마음이라 한다”고 하였으며, 경전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사람이 선정의 형상을 잘 알면 그 맛을 탐내지 않나니, 이를 적멸의 마음이라 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적멸의 마음을 얻고 나면 반드시 참되고 미묘한 마음이 생긴다.
‘참되고 미묘한 마음’이라 함은 모든 선정과 신통과 소원하는 일 중에서 뜻대로 이용할 수 있나니, 이를테면 진금이 뜻에 따라 쓰이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이가 이미 곧은 마음에서 참되고 미묘한 마음까지 얻고 나서는, 이 마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즐거이 뒤섞이지 않는 마음을 낸다.
‘뒤섞이지 않는 마음’이라 함은 집에 있는 이거나 집을 떠난 이거나 간에 함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생각하기를 ‘내가 이러한 등의 마음을 얻은 것은 모두가 선정의 힘 때문이니, 이 모든 마음으로써 제2지 등의 한량없는 이익을 얻으리라. 만약 여러 사람들과 같이 섞인다 하면 곧 이 이익을 잃으리라. 왜냐하면 만약 사람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뒤섞여서 행동하면 눈 등의 여섯 감관이 때로는 도리어 모든 착하지 못한 법을 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물들 수 있고 성낼 수 있고 어리석을 수 있는 법을 가까이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모든 감관이 발동하면 번뇌의 불이 타며 번뇌의 불이 타는 까닭에 곧 이 이익을 잃나니, 이러한 허물을 보았으므로 섞이지 않는 마음을 내며, 집에 있는 이거나 집을 떠난 이거나 간에 함께 섞여서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 이 사람이 이런 섞이지 않는 마음을 얻은 뒤에는 다음에 탐내지 않는 마음을 낸다.
‘탐내지 않는 마음’이라 함은 집에 있고 집을 떠난 사람 중의 이른바 부모ㆍ형제ㆍ화상ㆍ스승ㆍ어른 등에게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기를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이거나 집을 떠난 이에게 탐하고 집착을 낸다면 반드시 왔다 갔다 하면서 문안해야 하리니, 어찌 섞이지 않는 마음이 있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모든 선정 등의 이익으로 섞이지 않는 마음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난 이에게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겠다’라고 한다.
【문】보살의 법에는 중생을 버리지 않아야 하고 버리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나니, 조보리(助菩提) 중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보살은 첫째로 힘써 나아가
가지고 있는 방편의 힘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대승 가운데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항하 모래만큼의 많은 중생을
가르쳐서 아라한에 머무르게 하여도
한 사람을 가르쳐서
대승에 머무르게 한 것보다 못하다.

만약 사람이 세력이 적어서
대승을 낼 만하지 못하면
다음에는 마땅히 그를 가르쳐서
벽지불과 성문승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

만약 사람이 벽지불과 성문승에
머무를 만하지 못하면
마땅히 이 중생을 가르쳐서
복의 인연을 행하게 해야 한다.

3승에 머무를 만하지 못하고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언제나 현세의 일로써
따르면서 그를 이롭게 한다.

만약 어떠한 중생들이
보살의 이익을 받지 않으면
이에 마땅히 버리지 말고
큰 자비심을 내어야 한다.

그대는 어떻게 ‘보살은 섞이지 않는 마음을 얻고 탐내지 않는 마음을 낸다’고 말하는가? 만약 보살이 중생을 탐내지 않으면 버리고 떠나게 될 터인데, 어찌 제도할 수 있겠는가?
【답】보살의 도를 따르면서 버리는 마음을 행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버리는 마음으로 인하여 넓고 상쾌한 마음을 내게 되어, 생각하기를 ‘내가 만약 이 여러 가지 시끄러움을 버리면 선정을 얻고 선정으로 인하여 미묘하고 넓고 상쾌한 법을 내게 되리라. 이 법을 얻고 나면 그 뒤에는 곧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이 지금보다 천만 배나 뛰어나리니, 그러므로 중생을 많이 이롭게 하기 위하여 잠시나마 버리는 마음으로 방편으로써 뭇 시끄러움을 버리고 선정과 다섯 가지 신통 등을 얻어서 중생을 이롭게 하리라’고 한다.
보살이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 방편을 짓느냐 하면, 보살은 큰마음을 얻기 위하여 생각하기를 ‘대인(大人)은 큰 이익을 즐기는 까닭에 사소한 이익은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 대인의 법을 구하고 따르면서 닦고 배워야겠다’고 하고서, 이와 같이 부지런히 더 힘써 나아가 큰 이익을 위하여야 할 것이다. 이른바 모든 선정과 신통과 괴로움을 없애는 해탈 등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말은 잘못이다.
【문】초지 중에서 이미 곧은 마음[直心] 등의 법이 있었거늘, 무엇 때문에 다시 ‘보살이 2지를 얻으려면 열 가지 마음을 낸다’고 말하는가?
【답】초지에도 비록 이런 법이 있었기는 하나 아직 깊이 즐거움을 못 얻었고 아직 견고하지 못하였지만, 이 지 중에 있어서는 마음이 항상 기쁘고 즐거우며 더욱 깊고 견고하여 베풀어 쓸 만하다. 그러므로 그대의 힐난은 잘못이다.
【문】만약 즐거움이 깊고 이 법이 견고하면, 어떤 특이한 일을 얻게 되는가?

【답】만약 그 한 때에
즐거움이 깊고 견고한 마음을 얻으면
다시는 공력을 쓰지 아니해도
마치 하인이 늘 따름과 같다.

마치 하인이 한 때에 태어나면 언제나 사람을 좇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서 한 때에 즐거움이 깊고 견고한 마음을 얻고 나면 언제나 따르므로 다시는 공력을 쓰지 않아도 나며, 또 조그마한 인연으로써도 문득 나게 된다. 왜냐하면 뿌리가 깊이 든 까닭에 줄기와 마디가 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만약 보살이 이 열 가지의 마음을 얻으면, 어떠한 결과를 얻는가?

【답】만약 이 여러 가지 마음을 얻으면
바로 제2지에 머무르게 되어
세 종류 때[垢]를 완전히 여의고
악업과 번뇌를 여의게 된다.

만약 보살이 이 곧은 마음 등의 열 가지 마음을 얻으면 곧 제2 보살의 지에 머무른다고 한다.
첫째 때를 여읨[離垢]이라 함은 지(地)의 이름이며, 둘째 때를 여읨이라 함은 이 지 중에서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의 죄업의 때를 여읨이며, 셋째 때를 여읨이라 함은 탐냄ㆍ성냄 등의 번뇌의 때를 여의는 까닭에 때를 여읨이라 한다.
또 다음에는 때를 여의는 뜻을 말하리라.
016_0766_a_01L十住毘婆沙論卷第十三 資聖者龍樹造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 譯譬喩品之餘問曰菩薩善知是諸法未得佛道不退者其喩云何答曰如大力導師 善知好道相 此處與彼處轉道之所宜 資糧及行具 皆悉令備足於彼險道中 令衆得安隱 得至大城邑能令衆無患 由是大導師 善能知道故善知諸地轉 具足助道法 菩薩善知道好惡此彼處 自度生死險 兼導多衆生令至安隱處 無爲涅槃城 悉令於惡道不遇衆苦患 菩薩方便力 善能知道故好道相者多有薪無有寇賊狼虎及諸惡獸毒虫之屬不寒無有惡山溝坑絕㵎險隘深榛隈障亦無高下平直夷通少於歧寬博多容多人行處行無厭惓有華果可食之物如是等事名爲好道相與此相違名爲惡道相此處名人衆止宿食息之處彼處名從是處至異處若二宿中閒亦名異處轉道名見有歧道至大城者是道應行者應捨資糧名麨蜜摶等道路所食大力名大勢力多有財物善解治法備足名多有飮食無所乏少安名無有賊寇恐怖之事隱名無有疾病衰患大城名多容人衆能令多人衆得至大城導師善解道相自無患難亦令人衆無有患難善諳道故無有寒熱飢渴怨賊惡獸毒虫惡山惡水深坑坎等如是過患何以故知道路好惡相故以此喩歡喜等十如人行路去不休息能至大城薩如是行是十地得至佛法入涅槃大城如彼好道多有薪水等行者無草名如人乘馬路多好草馬力强盛十地道功德亦如是慧四勝處助諸功德故名爲草何以故若人貴於實事樂隨諦語常親近實語者見實有利樂隨實事深惡妄語遠離妄語見妄語過不欲樂聞如是等因緣諦勝處捨等三處亦應如是知如彼好道須諸象驢等得至大城草助成其力如是諦能令至佛入涅槃大城薪名多聞修慧至大智慧業如薪能令火然亦令猛如是聞修慧能生大慧能令增長如火能燒能煮能照智慧火亦如是燒諸煩惱成熟諸善根四聖諦如火是智慧薪是能生智慧等諸法多水名多有諸流河渠隨意取用充足大衆泉井及池不能爾復次多水者如人乘舩隨水至大城井泉陂池水則不能得爾經說信爲大河福德爲岸如河除熱除渴除垢能生勢力善法中信亦如能滅三毒熱除三惡行垢除三有爲涅槃故於善法中得勢力如彼好道多有諸根藥草則行者無乏地道亦如是根名深心所愛如有根故則生芽莖枝葉等及諸果實深心愛道生正憶念大願等諸功德藥草名諸波羅蜜如藥草能滅諸毒諸波羅蜜藥草滅貪癡毒諸煩惱病亦復如如彼好道不失韋婆陁則行道安韋陁秦言無對義是符撽如行者不失符撽#則在所欲至無有障㝵地道亦如是不失韋婆陁則在所過諸所集善根則能隨意助成增長現在善根彼又能教化聲聞道辟支佛欲界色界諸天道衆生令住佛道若魔若外道不能干亂是名不失韋婆陁如彼好道無有蚊蝱毒虫之屬十地道亦如是無有憂愁啼哭之聲如彼好道無有賊難十地道亦如是無有五蓋諸惡賊衆如佛告比丘落賊者所謂五蓋如賊先奪人物乃害命五蓋賊亦如是先奪善根斷慧命則墮放逸而死如道中無師虎狼諸惡獸等十地道亦如是有瞋恚鬪諍如師子等惡獸好惱害瞋恚等爲惱他故生亦復如是惡獸等噉肉飮血瞋恨等食多聞慧飮修慧等血亦復如是如彼好道無有寒熱過惡十地道亦如是不墮寒冰地獄故無有寒過惡不墮熱地獄故無有熱過惡如彼好道無深坑等諸難十地道亦如是無有外道苦行等諸難所謂灰身入冰拔髮日三洗翹一足日一食二日一食乃至一月一食默然至死常擧一臂常行忍辱五熱炙身臥刺蕀上入火入水投高巖深爐中立牛屎燒身直趣一不避諸難常著濕衣裳水中臥等身苦心苦不至正智無如是等故名爲無難如道無邪徑十地道亦如是無身意惡業故名爲無邪徑如道無刺蕀十地道亦如是無諸業障刺蕀故名爲無刺蕀如刺刺腳則廢行路障刺蕀障行佛法入涅槃如道正直十地道亦如是無一切諂曲欺誑故名爲正直如道少歧道十地道亦如少於異道何以故發大乘者少行聲聞辟支佛道是故少於異道或有菩薩行二乘道者當知未到菩薩地未入正位行於邊行故如彼好道無諸叢林妨㝵十住道亦如是無有五欲諸惡叢林問曰何故不言都無五欲叢林但言無惡林耶答曰發大乘者福德因緣有第一五欲是故不得言但無惡耳復次如深叢林難入難過多諸難㝵菩薩五欲則不然不如凡夫於五欲生諸過惡如是故但說無叢如道寬博多容不相妨㝵十住道亦如是多所容受無量百千萬億衆生共發無上道心而不相妨㝵是百千萬億衆生若一切衆生俱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同行此道不相妨如道多人所行十住道亦如是河沙等過去現在諸佛行菩薩道時皆行此道如彼好道行不疲厭十住道亦如是多有因果諸樂所謂多生人天中受果報樂離欲故受歡喜樂禪定樂無喜樂現在樂得是諸樂故無有疲厭如道多有華果根十住道亦如是多根根者三善根七覺華是如經說七華者七覺意果者四沙門果是無如是等違好道功德過故名爲離惡如導師知道中是中應食是應宿彼處亦應宿菩薩行十地亦如是知何處可宿何處可可宿名有諸現在佛處可食名可得修習善法處如食能利益諸根助壽命諸善法亦如是能益信等諸助成慧命異處宿名從彼佛所餘佛所復次此佛國土彼佛國土中亦名異處善知道轉者如彼導師知道不安隱#則轉菩薩亦如是善知是道至聲聞是道至辟支佛是道至如是知已捨聲聞道辟支佛道行至佛道如彼好道多有飮食十住道亦如是多行布施持戒修禪如彼導師以多財物善能治法有大勢力菩薩亦如是有財物治法故有大勢財者七財所謂信治法者一切魔種種沙門婆羅門道論師悉能摧伏是爲威勢如彼大城無有怨賊疫病暴死種種衰惱故名爲安隱涅槃大城亦如是無有諸外道諸流貪欲瞋恚放逸憂悲苦惱啼哭故名爲安隱如彼大城多有飮食故名爲豐饒涅槃城亦如是多有諸深禪定解脫三昧故名爲豐饒如彼大城多所容 受故名爲大城槃城亦如是多受衆生故名爲大令一切衆生不受諸法故皆入無餘涅槃而涅槃性無增無減如彼導師能將多衆安隱示好道故名爲導師薩亦如是善將衆生示佛法示涅槃從生死險道得至涅槃故名爲大導如彼導師善知道相故身及餘人皆無有惡菩薩亦如是自不行貪等諸蓋諸惡苦行老死深坑亦不墮寒熱地獄餓鬼故名爲自不得惡隨從者亦不得惡是故偈中說善知道相故自不得惡餘不得惡略行品第二十七菩薩歡喜地 今已略說竟 菩薩住是中多作閻浮王 常離慳貪垢 不失三寶念心常願作佛 救護諸衆生初地名歡喜已略說竟諸佛法無量無邊是地爲本若廣說亦無量無邊是故言略說菩薩住是地中多作閻浮提勢力轉輪王先世修習是地因緣故信樂布施無慳貪垢常施三寶不失三寶念常念作佛救諸衆生如是等善念常在心中復次若欲得出家 勤心行精進 能得數百定得見數百佛 能動百世界 飛行亦如是若欲放光明 能照百世界 化數百種人能住壽百劫 能擇數百法 能變作百身能化百菩薩 示現爲眷屬 利根過是數依佛神力故 已說初地相 果力淨治法今當復更說 第二無垢地果名得數百定見數百佛等勢力名能化數百衆生餘偈義先已說不復解餘偈今當復說第二無垢地問曰汝欲廣說菩薩所行法初地義尚多諸學者恐轉增廣則懈怠心生不能讀誦是故汝今應爲不能多讀誦者略解菩薩所行諸法答曰菩薩所有法 是法皆應行 一切惡應捨是則名略說如上來諸品所說能生能增長諸地如上諸品中說若於餘處說者應令生菩薩過惡事皆應遠離是名略說菩薩所應行如法句中說諸惡莫作諸善奉行自淨其意是諸佛教有一法攝佛道菩薩應行云何爲一所謂於善法中一心不放逸如佛告阿難我不放逸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說不放逸成佛 世閒無與等 若能不放逸何事而不成復有二法能攝佛道一不放逸二智如說不放逸智慧 佛說是利門 不見不放逸而事不成者復有三法能攝佛道一學勝戒二學勝心三學勝慧如說戒生上三昧 三昧生智慧 智散諸煩惱如風吹浮雲復有四法能攝佛道一諦處二捨處三滅處四慧處如說諦捨定具足 得慧利淸淨 精進求佛道當集此四法復有五法能攝佛道一信根二精進根三念根四定根五慧根如說信根精進根 念定慧堅牢 是法大悲合終不退佛道 如人得五根 能通達五塵如得信等根 能通諸法相復有六法能攝佛道所謂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波羅蜜如說如所說六度 降伏諸煩惱 常增長善根不久當得佛復有七法能攝佛道所謂七正法精進如說欲得七正法 當樂定精進 除去七邪法能知諸功德 是人能疾得 無上佛菩提拔沒生死者 令在安隱處復有八法能攝佛道所謂八大人覺少欲知足遠離精進樂不戲如說若人決定心 住八大人覺 爲求佛道故除諸惡覺觀 如是則不久 疾得無上道如人行善者 必當得妙果復有九法能攝佛道所謂大忍大慈大悲不貪不恚不癡如說具足於大忍 大慈及大悲 又能住於慧念及堅心中 深心入無貪 無恚癡善根若能如是者 佛道則在手復有十法能攝佛道所謂十善道不殺生不教他殺見殺心不稱讚殺心不喜乃至邪見亦如是以是福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如說不惱害衆生 亦不行劫盜 不婬犯他婦是三爲身業 不妄語兩舌 不惡口綺語不貪惱邪見 是七口意行 如是則能開無上佛道門 若欲得佛者 當行是初門如是等法菩薩應生生已應守護護已應增長於一善事從一轉增應當知求佛道者於一惡法應疾遠所謂遠離不放逸如說若人不能度 生死險惡道 是爲可呵責最是罪惡事 雖樂於富樂 而生貧賤家不能種善根 爲人作奴僕 皆由於放逸因緣之所致 是故有智者 疾遠如惡毒若未成大悲 無生忍不退 而行放逸者是則名爲死復有二過應疾遠離一貪聲聞地貪辟支佛地如說若墮聲聞地 及辟支佛地 是名菩薩死亦名一切失 雖墮於地獄 不應生怖畏若墮於二乘 菩薩應大畏 雖墮於地獄不永遮佛道 若墮於二乘 畢竟遮佛道佛說愛命者 斬首則大畏 如是欲作佛二乘應大畏復有三過應疾遠離一憎諸菩薩憎菩薩所行三憎甚深大乘經如說小智以小緣 憎恚諸菩薩 亦憎菩薩道亦憎大乘經 不解故不信 墮在大地獄怖畏大驚喚 是事應遠離復有四過應疾遠離一諂二曲三急四無慈愍如說自言是菩薩 其心多諂曲 急性無所容不行慈愍心 是近阿鼻獄 離佛道甚遠復有五過應疾遠離一貪欲二瞋恚三睡眠四調戲五疑是名五蓋覆心如說若人放逸者 諸蓋則覆心 生天猶尚難何況於得果 若勤行精進 則能裂諸蓋若能裂諸蓋 隨願悉皆得復有六過與六波羅蜜相違應疾遠一慳貪二破戒三瞋恚四懈怠調戲六愚癡如說慳貪垢污心 破戒而懈怠 無知如牛羊好瞋如毒蛇 心亂如獼猴 不遠離諸蓋生天爲甚難 何況得佛道復有七過應疾遠離一樂多事務樂多讀誦三樂睡眠四樂語說五貪利養六常欲令人喜七迷悶於道心隨愛行如說弊人樂事務 樂多誦外經 癡人樂睡眠樂共聚衆語 雖願欲作佛 而深著利養是恩愛奴僕 迷悶於佛道 如是諸惡人自言是菩薩復有八法應疾遠離一邪見二邪思三邪語四邪業五邪命六邪方便七邪念八邪定如說若有人愚癡 行於八邪道 學邪諸經法好隨逐邪師 遠離八聖道 深妙諸功德堅深著煩惱 而或願菩提 如是愚癡人欲度於大海 捨好堅牢舩 抱石欲求渡復有九法應疾遠離一不聞阿耨多羅三藐三菩提二聞已不信三若信不受四若受不誦持五若又誦持不知義趣六若知不說七若說不如說行八若如說行不能常行九若能常行不能善行如說癡人不欲聞 無上正眞道 聞已不能信又不能誦持 不知義不說 不如所說行不能常善行 又無念安慧 如是愚癡人不堪得道果 猶如罪惡人 不得生天上復有十過應疾遠離所謂十不善道如說癡人於少時 貪愛弊五欲 捨離十善道行十不善道 諸天樂在手 而復自捨棄如貪小錢利 而捨大寶藏問曰汝說無上道相時種種因緣罵空發願菩薩自言菩薩但名字菩若是三不名爲菩薩者成就何法名爲眞菩薩答曰非但發空願 自言是菩薩 名字爲菩薩略說能成就 三十二法者 乃名爲菩薩若人發心欲求佛道自言是菩薩受名號不行功德慈悲心諸波羅蜜等是不名爲菩薩如土城名寶城但自誑身亦誑諸佛亦誑世閒衆生若人有三十二妙法亦能發願是名眞實菩薩何等三十二一深心爲一切衆求諸安樂二能入諸佛智中三自審知堪任作佛不作佛四不憎惡他五道心堅固六不假僞結託親愛乃至未入涅槃常爲衆生作親友親疏同心九已許善事心不退轉於一切衆生不斷大慈十一於一切衆生不斷大悲十二常求正法心無疲懈十三勤發精進心無厭足十四多聞而解義十五常省己過十六不譏彼闕十七於一切見聞事中常修菩提心十八施不求報十九持戒求一切生處二十於一切衆生忍辱無瞋㝵二十一能勤精進修習一切善根二十二不隨無色定生二十三方便所攝智慧二十四四攝法所攝方便二十五持戒毀戒慈愍無二十六一心聽法二十七一心阿練處住二十八不樂世閒種種雜事十九不貪著小乘三十見大乘利益爲大三十一遠離惡知識三十二親近善知識菩薩住是三十二法能成七法所謂四無量心能遊戲五神通常依於智常不捨善惡衆生所言決言必皆實集一切善法心無厭足是爲三十二法爲七法菩薩成就此名爲眞實菩薩分別二地業道品第一諸菩薩已得 具足於初地 欲得第二地當生十種心諸菩薩已得歡喜初地爲得二地故生十種心因是十心能得第二地人欲上樓觀要因挮而上問曰何等是十心得第二地方便答曰直心堪用心 軟伏寂滅心 眞妙不雜貪快大心爲十諸菩薩已具足於初地欲得第二地生是十方便心一直心二堪用心柔軟心四降伏心五寂滅心六眞妙心七不雜心八不貪心九廣快心大心直心者離諂曲離諂曲故心轉柔軟柔軟者不剛强麤惡菩薩得是柔軟心生種種禪定亦修習諸善法觀諸法實相心則堪用心堪用故伏心伏心者善能降伏眼等諸根經中說何等是善道所謂比丘降伏眼根乃至意根以降伏六根故名爲伏心心已降伏則易生寂滅心寂滅心者能滅貪欲瞋恚愚癡等諸煩惱先伏心已遮令寂滅復有人言得諸禪定是名寂滅心如經說若人善知禪定相不貪其味是名寂滅心得寂滅心已必生眞妙心眞妙心者於諸禪定神通#所願事中如意得用譬如眞金隨意所用行者旣得直心乃至眞妙心已爲守護是心故樂生不雜不雜心者不與在家出家從事人作是念我得如是等心皆由禪定力故以是諸心當得第二地等無量利益若與衆人雜者則失此利何以若人與衆人雜行則眼等六根時還發諸不善法何以故親近可染可瞋可癡法故諸根發動煩惱火然煩惱火然故則失此利見此等過故生不雜心不應與在家出家者雜行是人得是不雜心已次生不貪心貪心者於在家出家人中所謂父母兄弟和上師長等不生貪著作是念若我於在家出家生貪著者必當來往問訊我則何有不雜心耶是故我欲令諸禪定等利住不雜心者當於在家出家捨貪著心問曰菩薩法不應捨衆生不應生捨心如助菩提中說菩薩初精進 所有方便力 應令諸衆生住於大乘中 若人教恒沙 衆生住羅漢不如教一人 住大乘爲勝 若人少勢力不堪發大乘 次當教令住 辟支聲聞乘若人不堪住 辟支聲聞乘 應教此衆生令行福因緣 不任住三乘 不堪人天樂當以今世事 隨而利益之 若有諸衆生不受菩薩利 於此不應捨 應生大慈悲汝云何言菩薩得不雜心生不貪心若菩薩不貪衆生則爲捨離何能度答曰應隨順菩薩道行捨心何以是人因捨心生廣快心作是念若捨是衆鬧當得禪定因禪定生妙廣快法得是法已其後則能利益衆勝今千萬倍是故爲多利益衆少時捨心㩲捨衆鬧當得禪定五神通等利益衆生菩薩何故作如是方便菩薩爲得大心而作是念人樂大利益故不存小利是故我今當求大人之法隨而修學應如是勤加精進爲大利益所謂諸禪定神通滅苦解脫等是故汝說非也問曰地中已有直心等法何故復說菩薩欲得二地生於十心答曰初地雖有此法未得深樂未有堅固在此地中心常憙樂轉深堅固堪任施用是故汝難非也問曰若深樂堅固此法者得何異事答曰若其一時得 深樂堅固心 更不復用功如使常隨逐如使一時生常隨逐人菩薩如是時得深樂堅固心已卽常隨逐更不須用功而生若以少因緣便生何以根深入故莖節相續問曰若菩薩得是十種心得何等果答曰若得是諸心 正住第二地 具三種離垢惡業及煩惱若菩薩得是直等十心卽名住第二菩薩地一離垢者地名也二離垢者於此地中離十不善道罪業之垢離垢者離貪欲瞋恚等諸煩惱垢故名爲離垢復次離垢義者十住毘婆沙論卷第十三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고려대장경에 의하면, 앞의 목차의 순서와 달리 ‘분별이지업도품제일(分別二地業道品第一)’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