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十住毘婆沙論卷第十四 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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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주비바사론 제14권


용수 지음
후진 구마라집 한역
번역


28. 분별이지업도품 ②

보살이 이 지위에 머무르게 되면
저절로 나쁜 행을 하지 않으며
깊이 착한 법을 즐기는 까닭에
저절로 착한 도(道)를 행하게 된다.

【문】열 가지 착하지 않은 도(道)는 저절로 짓지 않게 되고 저절로 열 가지 착한 도를 행하게 된다 하니, 이 두 가지 길에서 몇 가지가 몸의 행이고 몇 가지가 입의 행이며, 몇 가지가 뜻의 행인가?

【답】몸과 뜻의 둘에는 세 가지이며
입은 네 가지인데 착한 길 또한 그렇다
간략하게 말하면 곧 이런 것이니
이를 응당 분별하여야겠다.

착하지 못한 몸의 행에 세 가지가 있는데, 이른바 남의 목숨을 빼앗음과 도둑질함과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이다. 착하지 못한 입의 행이 네 가지인데 거짓말ㆍ이간질ㆍ나쁜 말ㆍ어지러운 말[散亂語]이며, 착하지 못한 뜻의 행에 세 가지인데 탐냄ㆍ성냄ㆍ삿된 소견이다.
착한 몸의 행에도 세 가지가 있어서 목숨을 빼앗음과 도둑질함과 삿된 음행을 여의는 것이다. 착한 입의 행에는 네 가지인데 거짓말ㆍ이간질ㆍ나쁜 말ㆍ어지러운 말을 여의는 것이다.
착한 뜻의 행에도 세 가지가 있는데 탐내지 않음과 성내지 않음과 바른 소견이다.
몸ㆍ입ㆍ뜻의 업의 길에 이것은 착하고 착하지 않다 함을 논의하여서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야겠다.
첫째 ‘목숨을 빼앗는 착하지 못한 길’이란, 이른바 어떤 다른 중생을, 이는 중생인 줄 알면서도 짐짓 해치며, 이 해침으로 인하여 곧 목숨을 잃는 것이니, 이 몸의 업을 일으키면 이것을 첫째의 목숨을 빼앗는 착하지 못한 길이라 한다.
이런 일을 여의는 까닭에 목숨 빼앗는 것을 여의는 착한 행이라 한다.
‘도둑질함’이라 함은, 이른바 남에게 속한 물건을, 이 물건이 남에게 속한 것인 줄 알면서도 훔치려는 마음을 내어 손으로 이 물건을 붙잡고 들어서 본래 처소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강제이거나 몰래 훔치거나 간에 이를 나의 물건으로 삼겠다고 하여 내 것이라는 마음을 내면 이를 도둑질이라 한다. 이런 일을 여의면 도둑질을 여의는 착한 행이라 한다.
‘삿된 음행’이라 함은 온갖 여인으로서 부모의 보호를 받고 친족의 보호를 받고 성바지의 보호를 받고 세간법의 보호를 받고 계율법의 보호를 받거나, 남의 아내로서 매를 맞고 괴로움을 당하는 등의 장애가 있는 줄 알고서 이런 일 중에서 음심을 내어 몸의 업을 일으키거나 혹은 자기 소유의 아내와 첩이라도 계율을 받았거나 잉태하였거나 젖먹이가 있거나 제 길이 아니거나 하면 이것은 삿된 음행이라 한다. 이런 일을 멀리 여의면, 착한 몸의 행이라 한다.
‘거짓말’이라 함은 형상을 숨기고 마음을 숨기고 소견을 숨기고 참음을 숨기고 욕심을 숨기고서 이와 같은 형상인 줄 알면서도 다시 딴 말을 하는 것이니, 이것을 거짓말이라 한다. 이런 일을 멀리 여의면, 거짓말을 멀리 여읜 착한 행이라 한다.
‘이간질’이라 함은 다른 이를 따로 떼어 놓으려고 이 일을 그에게 말하고 그 일을 이에게 말하는 것이다. 다른 이와 따로 떼기 위해서 이며, 화합한 이를 따로 떨어지게 하고 따로 떨어진 이는 그대로 즐거이 떨어지게 하며, 떨어짐을 기뻐하고 떨어짐을 좋아하여 하는 이것을 이간질이라 한다. 이와 같은 일을 여의면, 이간질을 멀리 여의는 착한 행이라 한다.
‘나쁜 말’이라 함은 세간의 온갖 나쁜 말, 해로운 말, 괴로운 말, 거친 말, 못된 말 들을 하여 남을 성내게 하는 것이니, 이를 나쁜 말이라 한다. 이 일을 멀리 여의면 나쁜 말을 여읜 착한 행이라 한다.
‘어지러운 말’이라 함은, 때 아닐 적의 말, 이익이 없는 말, 법답지 아니한 말, 처음과 끝이 없는 말, 인연이 없는 말들이니, 이를 어지러운 말이라 한다. 이 일을 멀리 여의면, 어지러운 말을 여읜 착한 행이라 한다.
‘탐낸다’ 함은 남에게 속한 물건으로서 남이 하고자 하는 남의 밭과 둑이며, 남의 재물을 마음에 탐내어 얻으려고 바라는 것이다. 이런 일 중에서 탐내지 않고 시샘하지 않고 얻기를 바라지 않으면, 이를 탐내지 않는 착한 행이라 한다.
‘성낸다’ 함은 다른 중생을 원망하는 마음과 방해하는 마음으로 성을 내면서 생각하기를 ‘어찌 때려서 옭아 죽이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것이니, 이를 성냄이라 한다. 이와 같은 일을 여의면, 성냄이 없는 착한 행이라 한다.
‘삿된 소견’이라 함은 ‘보시할 것이 없다. 은혜의 갚음이란 것이 없다. 착하고 악한 업의 과보가 없다. 지금의 세상이란 것이 없다. 뒤의 세상이란 것이 없다. 부모란 것이 없다. 사문이란 것이 없다. 바라문이란 것이 없다. 이 세상과 뒤의 세상을 알면 환하게 통달하여 자신이 증득할 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를 삿된 소견이라고 한다.
바른 소견은 ‘보시가 있고, 은혜의 과보가 있고, 선과 악의 업보가 있고, 지금의 세상과 뒤의 세상이 있고 세간에는 사문과 바라문이 있으며, 이 세상과 뒤의 세상을 알면 환하게 통달하여 자신이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이것을 바른 소견의 착한 행이라 하며, 이 보살이 이와 같아야 바른 소견의 길에 든다.

착한 길과 착하지 못한 길에
저마다 스무 가지로 분별하게 되며
어디서 일어났는가를 아는 것에도
열두 가지로 분별하게 된다.

보살은 열 가지의 착하지 못한 길과 열 가지 착한 길 등의 갖가지 따로 된 형상에서 스무 가지로 분별하는 줄 알 것이며, 또 이 스무 가지로 분별하는 것에서 어디서부터 일어났는가 따위의 열두 가지 분별을 잘 알 것이다.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 중에 스무 가지의 분별이 있다. 이른바 다른 목숨을 빼앗는 죄에는 첫째 착하지 않음이며, 둘째 욕심세계의 매임[欲界繫]이며, 셋째 샘이 있음[有漏]이며, 넷째 심수법(心數法)이 아니며, 다섯째 마음과 서로 응한 것이 아니며, 여섯째 마음을 따르는 행이 아니며, 일곱째 혹은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기기도 하고[共心生] 혹은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기지 않기도[不共心生] 한다.
무엇을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긴다’고 하는가? 실제로 중생이 있을 적에 이를 중생인 줄 알면서 몸의 업으로써 그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니, 이를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긴다고 한다.
어떤 것이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가? 만약 사람이 중생을 죽이려고 붙잡아 끌고 가다 때려서 땅에 엎드리게 해 놓았는데 그러한 뒤에 죽였다면, 이는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몸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입으로도 말하지 않으면서 다만 생각만으로 ‘나는 오늘부터 중생을 죽이리라’고 하고서, 이와 같이 하며 딴 목숨을 빼앗는 죄를 바로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또, 다른 목숨을 빼앗는 것에는 잠을 자면서나 깨어나서 늘 쌓아 익히고 더욱 자라게 하면, 역시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여덟째 혹은 빛깔[色]이기도 하고 빛깔이 아니기도 한데, 처음에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긴 살생죄는 바로 빛깔[色]이지만 둘째와 셋째와 넷째의 것은 빛깔이 아니다. 아홉째 혹은 지음[作]이기도 하고 혹은 지음이 아니기도 한데, 빛깔이 있으면 지음이며, 그 밖의 것은 지음이 없다. 열째 혹은 반연[緣]이 있기도 하고 혹은 반연이 없기도 한데, 빛깔은 반연이 있는 것이며, 그 밖의 것은 반연이 없는 것이다.
【문】이 마음은 반연이 있는 것인가, 반연이 없는 것인가?
【답】반연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문】만약 마음이 반연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몸이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 말하지 않을 적에 다만 마음만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오늘부터 중생들을 죽여야겠다’고 한다면, 이러한 죄업을 어떻게 반연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답】만약 살생의 죄가 바로 마음이라 하면 당연히 반연이 있어야 할 것이나, 이제 실제로 살생의 죄는 이 마음이 아니다. 만약 마음이 살생의 죄라면 곧 이는 몸의 업이므로 마음은 진실로 몸의 업이 아니다. 그러므로 살생죄는 반연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살생죄의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몸 안에 있으면서 나는 것만은, 이는 지음이 없는 것이므로 반연이 아니라고 한다.
열한째 이는 업(業)이며, 열둘째 업과 서로 응한 것이 아니며, 열셋째 업을 따르는 행이 아니며, 열넷째 혹은 공동의 업으로 생기기도 하고[共業生] 혹은 불공(不共)의 업으로 생기기도 하나니, 마음과 동시에 생기는 것과 같아서 다름이 없으며 다만 마음과 생각함이 함께 나는 것만은 제외되며 다르다.
열다섯째 전생의 업보가 아니며, 열여섯째 닦을 수 없음이며, 열일곱째 잘 알 수 있음이며, 열여덟째 지혜로 증득할 수 있고 몸으로 증득할 수 없음이며, 열아홉째 끊을 수 있음이며, 스무째 알며 볼 수 있는 것이다.
도둑질의 죄와 삿된 음행의 죄와 거짓말하는 죄 중에서, 다만 첫째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기고 둘째 마음먹은 것과 동시에 결과가 생기지 않으며, 첫째 빛깔이 있고 둘째 빛깔이 없으며, 첫째 지음이 있고 둘째 지음이 없으며, 첫째 반연이 있고 둘째 반연이 없는 그 밖의 것은 살생의 죄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이간질함과 나쁜 말을 하는 것 역시 그와 같다.
산란한 말에는 혹은 착하지 않음[不善]이기도 하고, 혹은 무기(無記)여서 착하지 않은 마음으로부터 나기도 하고 이는 착하지 않음이어서 무기의 마음으로부터 나기도 하고, 이는 무기여서 욕심세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형상세계의 매임[色界繫]이기도 하다.
욕심세계의 매임이라 함은, 욕심세계의 몸과 마음으로써 한다는 것이어서 어지러운 말은 바로 욕심세계의 매임이며, 형상세계의 매임이란 것도 그와 같고, 그 밖의 것은 거짓말 안에서 말한 것과 같다.
탐냄에는 욕심세계의 매임이며, 이는 샘이 있음이며, 심수법이며,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음이며, 마음을 따르는 행이 아니며, 마음과 함께 생김이며, 빛깔이 없음이며, 지음이 없음이며, 반연이 있음이며, 업과 서로 응하지 않음이며, 업을 따르는 행이 아니며, 공동의 업으로 생긴 것이 아니며, 전생의 업보가 아니며, 인과응보가 제외됨이며, 닦을 수 없음이며, 지혜로 증득하고 몸으로 증득할 수 있음이며, 끊을 수 있음이며,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성냄에는, 혹은 마음과 서로 응하기도 하고 혹은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하나니, 감김[纏]에 포섭된 것을 마음과 서로 응한다고 하고 부림[使]에 포섭된 것을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다고 하며,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을 따르지 않는 행 역시 그와 같다.
마음과 함께 생김이며,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나니, 깨달음이 있는[有覺] 중생은 마음과 함께 생기고 깨달음이 없는[無覺] 중생은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아 마치 마음과 서로 응하는 것과 같다.
마음을 따르는 행, 마음과 함께 생김, 업과 서로 응함, 업을 따르는 행, 공동의 업으로 생김 등도 그러하여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은 것과 같다. 마음을 따르는 행이 아님,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음, 업과 서로 응하지 않음, 업을 따르는 행이 아님, 업과 함께 생기지 않는 것 역시 그와 같다. 그 밖의 분별은 탐냄 중에서 말한 것과 같고, 성냄에서와 같이 삿된 소견 역시 그와 같다.
열 가지 착한 길 중에 다른 목숨을 빼앗지 않는 것은 바로 착한 성품이다. 혹은 욕심세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삼계에 매이지 않기도 한다.
욕심세계의 매임이라 함은 욕심세계의 몸으로써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지 않음으로 이를 욕심세계의 매임이라 하고, 삼계에 매이지 않았다 함은 배우는 이와 배울 것 없는 사람이 여덟 가지 거룩한 길에 포섭되어 살생을 여의는 바른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혹은 샘이 있기도 하고 혹은 샘이 없기도 하나니, 욕심세계의 매임은 바로 샘이 있는 것이며, 삼계에 매이지 않으면 이는 샘이 없는 것이다.
심수법이 아니며,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음이며, 마음을 따르는 행이 아니며, 혹은 마음과 함께 생기기도 하고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기도 한다.
무엇이 이 마음과 함께 생기는 것인가? 마치 길 가던 사람이 벌레를 보고서 생각하기를 ‘나는 몸의 업을 멀리 여의어 해치지 않겠다’고 함과 같으니, 이는 목숨 빼앗는 것을 여의는 선행으로서 마음과 함께 생기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살생을 여의는 선행으로서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도 말하지 않으면서 다만 마음만으로 생각하기를 ‘오늘부터 살생하지 않으리라’고 하면, 이를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는 것이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먼저부터 살생을 멀리 여의고서 잠자거나 깨어서나 마음에는 딴 일을 반연하거나 찰나 동안이라도 살생하지 않으므로, 복이 언제나 더욱 자라게 되는 것 역시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는 것이라 한다.
혹은 이는 빛깔이기도 하고 혹은 빛깔이 아니기도 하여, 첫째 이는 빛깔이고 둘째 이는 빛깔이 아니며, 첫째 이는 지음이고 둘째 이는 지음이 아니며, 첫째 반연이 있고 둘째 반연이 없으며, 이는 업이며, 업과 서로 응하지 않음이며, 업을 따르는 행이 아니다.
혹은 공동의 업으로 생기기도 하고 혹은 공동의 업으로 생기지 않기도 하나니, 마음과 함께 생기는 것과 마음과 함께 생기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마음이 생각과 같이 하는 것은 제외되며 다르다.
전생의 업보가 아니며, 인과응보는 제외됨이며, 닦을 수 있음이며, 잘 알 수 있음이며, 몸으로 증득하고 지혜로 증득할 수 있음이며, 혹은 끊을 수도 있고 혹은 끊을 수도 없나니, 샘이 있는 것이면 끊을 수 있고 샘이 없는 것이면 끊을 수 없으며, 알며 볼 수 있는 것도 그와 같다.
도둑질을 여의고, 삿된 음행을 여의고, 거짓말을 여의고, 이간질을 여의며, 나쁜 말을 여의는 것 역시 그와 같다.
어지러운 말을 여읨에는, 혹은 욕심세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형상세계의 매임이기도 하며, 혹은 삼계에 매이지 않기도 하나니, 욕심세계에 매인다 함은 욕심세계의 몸과 마음으로써 어지러운 말을 여의는 것이며, 형상세계의 매임 역시 그러하며, 삼계에 매이지 않는다 함은 살생하지 않는 것 안에서 말한 것과 같다.
혹은 샘이 있기도 하고 혹은 샘이 없기도 하나니, 샘이 있는 것은 매임이요, 샘이 없는 것은 매인 것이 아니다. 그 밖에는 거짓말 여의는 것 안에서 말한 바와 같다.
탐내지 않음은 바로 착한 성품으로서 혹은 욕심세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삼계에 매이지 않기도 하나니, 욕심세계의 매임이란 욕심세계의 범부가 탐내지 않고 성현도 탐내지 않는 착한 행이므로, 이는 욕심세계의 매임이다.
삼계의 매임이 아니라 함은, 모든 성현이 탐내지 않는 샘이 없는 착한 행이다. 이는 혹 샘이 있기도 하고 혹은 샘이 없기도 하나니, 욕심세계의 매임은 샘이 있음이며, 삼계에 매이지 않음은 샘이 없음이다.
이는 심수법이며, 마음과 서로 응함이며, 마음을 따르는 행이며, 마음과 함께 생김이며, 빛깔이 없음이며, 지음이 없음이며, 반연이 있음이며, 업이 아님이며, 업과 서로 응함이며, 업을 따르는 행이며, 공동의 업으로 생김이며, 전생의 업보가 아님이며, 인과응보가 제외됨이며, 닦을 수 있음이며, 잘 알 수 있음이며, 몸으로 증득하고 지혜로 증득할 수 있음이며, 혹은 끊을 수 있기도 하고 혹은 끊을 수 없기도 하나니, 샘이 있는 것은 끊을 수 있고 샘이 없는 것은 끊을 수 없는데, 알며 보는 것도 그와 같다.
성냄을 여의는 것은 착한 성품으로서 혹은 욕심세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형상세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무형세계의 매임이기도 하며, 혹은 삼계에 매이지 않기도 한다.
욕심세계의 매임이라 함은, 욕심세계에서 성을 내지 않는 착한 뿌리이기 때문이며, 그 밖의 두 세계의 것도 그와 같다. 매이지 않는다 함은 나머지 매이지 않는 것이 그것인데, 혹은 샘이 있기도 하고 혹은 샘이 없기도 하다.
삼계에 매인다 함은 샘이 있는 것이니, 그 밖은 샘이 없음이며, 심수법이며, 혹은 마음과 서로 응하기도 하고, 혹은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하다.
얽힘[纒]과 서로 어긋남의 성내지 않는 착한 뿌리는 마음과 서로 응하며, 부림[使]과 서로 어긋남의 성내지 않는 착한 뿌리는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으며,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과 함께 생기는 것 역시 그와 같다.
빛깔이 없고 지음이 없으며, 혹은 반연이 있기도 하고 혹은 반연이 없기도 하나니, 마음과 서로 응하면 이는 반연이 있음이며,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으면 이는 반연이 없는 것이다.
업이 아닌데도 혹은 업과 서로 응하기도 하고 혹은 업과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하며, 혹은 업을 따르는 행이기도 하고, 혹은 업을 따르지 않는 행이기도 하며, 혹은 공동의 업으로 생기기도 하고 혹은 불공(不共)의 업으로 생기기도 하나니, 역시 마음에서 말하는 것과 같아서 업보가 아니다.
인과응보가 제외되고 몸으로 증득하고 지혜로 증득할 수 있으며, 혹은 끊을 수도 있고 혹은 끊을 수가 없기도 하나니, 샘이 있는 것이면 끊을 수 있고 샘이 없는 것이면 끊을 수가 없으며, 알며 보는 것도 그와 같다.
바른 소견은 착한 성품으로서 혹은 욕심세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형상세계의 매임이기도 하며, 혹은 무형세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삼계에 매이지 않기도 한다.
욕심세계의 매임이라 함은, 범부거나 성현이거나 간에 욕심세계의 생각이 바른 소견과 서로 응하는 것이니, 이는 형상세계와 무형세계의 것도 역시 그러하다. 삼계에 매이지 않는다 함은 성현의 샘이 없는 바른 소견이다. 혹은 샘이 있기도 하고 혹은 샘이 없기도 하나니, 삼계에 매이면 샘이 있는 것이며, 매이지 않으면 샘이 없는 것이다.
심수법이며, 마음과 서로 응함이며, 마음을 따르는 행이며, 마음과 함께 생김이며, 빛깔이 없음이며, 지음이 없음이며, 반연이 있음이며, 업이 아니며, 업과 서로 응함이며, 업을 따르는 행이며, 공동의 업으로 생김이며, 전생의 업보가 아님이며, 인과응보가 제외됨이며, 몸을 증득하고 지혜로 증득할 수 있음이며, 혹은 끊을 수도 있고 혹은 끊을 수도 없어 샘이 있는 것이면 끊을 수 있고 샘이 없는 것이면 끊을 수도 없으며,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으니, 이것을 착함 등의 스무 가지의 분별이라 한다.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는가 하는 등의 열두 가지 이론이란, 첫째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느냐, 둘째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냐, 셋째 어떤 원인[因]으로부터 일어나느냐, 넷째 무엇과 함께 원인을 짓느냐, 다섯째 연(緣)은 어떤 것이냐, 여섯째 무엇과 함께 연을 짓느냐, 일곱째 반연하는 것[所緣]은 어떤 것이냐, 여덟째 무엇과 함께 반연을 짓느냐, 아홉째 더욱 향상함은 어떤 것이냐, 열째 무엇과 함께 더욱 향상함을 짓느냐, 열한째 잃는 것은 무엇이냐, 열둘째 살생죄의 결과는 무엇이냐 이다.
무엇으로부터 일어나느냐 하면, 세 가지 착하지 못한 뿌리로부터 일어나고, 또 삿된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며, 또 어떠한 마음을 따르면 중생의 목숨을 빼앗게 될까 하는 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살생의 죄를 지은 편에 있는 모든 법에서부터 이미 일어났고 지금 일어나고 장차 일어나게 된다.
이 인과 연도 역시 그러하다.
반연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중생을 반연하며, 또 어떠한 마음으로 인하면 중생의 마음을 빼앗게 될까 하는 것도 역시 이 마음을 반연한다. 무엇과 함께 반연을 짓느냐 하면, 살생의 죄를 지은 편에 있는 모든 법으로 인하여 이미 일어났고 이제 일어나고 장차 일어나게 되리니, 이 법이 살생의 죄를 반연한다.
잃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지금 세상에서의 악한 이름과 남에게 믿음을 받지 못하는 것 등이다.
결과는 무엇이냐 하면, 지옥ㆍ축생ㆍ아귀ㆍ아수라 등과 그 밖의 나쁜 곳에 떨어져서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더욱 향상함과 무엇과 더욱 향상함을 짓느냐 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일어났느냐 하는 것 중에서 말한 것과 같다.
도둑질ㆍ삿된 음행ㆍ거짓말ㆍ이간질ㆍ나쁜 말ㆍ어지러운 말ㆍ탐냄ㆍ성냄ㆍ삿된 소견도 역시 그러하나, 다만 반연하는 것만이 다르다. 도둑질의 죄에는 소용되는 물건을 반연하고, 삿된 음행에는 중생을 반연하고, 거짓말ㆍ이간질ㆍ나쁜 말ㆍ어지러운 말 등에는 이름[名字]을 반연하고, 탐냄은 소용되는 물건을 반연하고, 성냄은 중생을 반연하며, 삿된 소견은 이름을 반연하나니, 그 밖의 나머지 것은 역시 위와 같다.
살생하지 않는 것은 세 가지 착한 뿌리로부터 일어나며, 또 바른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며, 또 ‘어떠한 마음을 따르면 살생을 여읠까?’ 하는 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 법에 있는 모든 법으로부터 이미 일어났거나 지금 일어났거나 장차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이 인연도 역시 그러하다.
반연하는 것은 중생을 반연하며, 무엇과 함께 반연을 짓느냐 하면 이 살생하지 않는 편에 있는 모든 법으로 인하여 이미 일어나기도 하였고 지금 일어나기도 하고 장차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살생하지 않는 것을 반연한다.
더욱 향상되는 것은, 모든 착한 뿌리가 더욱 향상되고 바른 생각도 더욱 향상되며, ‘어떠한 마음을 따르면 살생하지 않게 될까?’ 하는 이 마음도 더욱 향상된다. 무엇과 함께 더욱 향상함을 짓느냐 하면, 이 살생하지 않는 편에 있는 모든 법에서 이미 일어나기도 하였고 지금 일어나기도 하고 장차 일어나기도 하리라.
이익은 무엇이냐 하면, 살생하게 된 죄와 서로 반대되는 것이니, 이를 이익이라 한다. 결과는 무엇이냐 하면, 살생의 죄와 서로 반대되는 것을 결과라고 한다.
도둑질하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이간질하지 않고, 나쁜 말하지 않고, 어지러운 말 하지 않고, 탐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바른 소견 등의 것도 역시 그와 같다. 다만 반연하는 것이 다르다. 도둑질하지 않는 것에는 소용되는 물건을 반연하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에는 중생을 반연하고, 거짓말하지 않은 것, 이간질하지 않은 것, 나쁜 말하지 않은 것, 어지러운 말 하지 않은 것 등에는 이름을 반연하고, 탐내지 않은 것에는 소용되는 물건을 반연하고, 성내지 않는 것에는 중생을 반연하며, 바른 소견에는 이름을 반연하기도 하고 뜻[義]을 반연하기도 하나니, 샘이 있는 것은 이름을 반연하고 샘이 없는 것은 뜻을 반연한다.
이것이 보살로서 착함 등의 이론과 일어나는 것 등의 열두 가지 이론이다. 열 가지 착한 길을 행하는 것에도 이와 같이 분별하며 알아야 한다.
또, 알아야 한다.

일곱 가지의 착하지 못한 것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써 생기며
네 가지 문으로 분별하나니
업과 중생에 각각 두 가지이다.

이 보살은 일곱 가지의 착하지 못한 업의 길에 탐냄ㆍ성냄ㆍ어리석음으로써 나게 되는 줄 알면서 세상을 분별할 것이며, 또 일곱 가지의 착하지 못한 업 중에서 네 가지의 문으로 분별하는 줄 알아야 한다.
이 죽이는 죄는 혹은 탐냄에서부터 생기기도 하고, 혹은 성냄에서부터 생기기도 하고, 혹은 어리석음에서부터 생기기도 한다. 탐냄에서부터 생긴다 함은, 만약 사람이 중생을 보고서 탐내는 마음을 내어 이 인연으로부터 좋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을 받아쓰며, 혹은 이ㆍ뿔ㆍ털ㆍ가죽ㆍ힘줄ㆍ살ㆍ뼈ㆍ골수 등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 사람은 이러한 탐냄의 마음을 내어 짐짓 다른 목숨을 빼앗는다면 이는 탐냄에서부터 생기는 살생죄라 한다. 만약 사람이 성내는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으면서 중생을 죽인다면, 이는 성냄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한다.
만약 사람이 삿된 소견으로 후 세상의 선악의 업을 모르고서 중생을 죽인다면 이는 어리석음에서부터 생기는 살생죄라고 하며, 혹은 복덕이라 생각하면서 하기도 하고 혹은 시켜서 괴로움을 제도하려 하여 일부러 죽이기도 한다. 마치 서쪽에 있는 안식국(安息國) 등과 같다. 또 복덕의 인연을 지니려고 일부러 죽이면서 이 죽이는 인연으로써 하늘에 나려 함이니, 마치 동천축(東天竺)의 사람이 천사(天寺) 중에서 산 것을 죽이는 것과 같으니, 이 일로써 천상에 나려 한다면 이는 어리석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탐내는 마음 때문에 다른 이의 물건을 가지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뜻을 따라 좋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음을 얻어야겠다’고 하면, 이는 탐냄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성내는 마음으로써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재물을 훔쳐 그를 괴롭히려 한다면, 이는 성냄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삿된 소견으로 과보를 알지 못하고서 남의 물건을 훔치면 이는 어리석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다. 마치 여러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세간의 재물과 보배는 다 나의 물건이다. 나의 힘이 약한 까닭에 모든 소인(小人)들이 그릇된 법으로써 가져다 쓴다. 만약 내가 가진다면 스스로가 그의 물건을 가지는 것이므로 허물과 죄가 없다’ 하면서, 이러한 마음으로 남의 물건을 훔친다면 이것도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여색의 일을 탐내고 집착하는 까닭에 삿된 음행을 하면, 이는 탐냄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한다. 만약 사람이 성을 내어 기뻐하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나의 어머니ㆍ아내ㆍ누이ㆍ딸들을 범하였으니, 나도 곧 음행하는 일로써 그의 어머니ㆍ아내ㆍ누이ㆍ딸들을 더럽히겠다’고 하면, 이는 성냄에서부터 생기는 삿된 음행이라 한다. 만약 사람이 삿된 소견으로 과보를 모르고서 짐짓 범한다면, 이는 어리석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한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람 중에서는 삿된 음행이란 없다. 왜냐하면 여인이란 모두가 남자를 위하여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밖의 소용되는 물건과 같아서 저마다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함께 일을 한다고 하여도 삿된 음행의 죄는 없다’고 하면서 이 마음으로써 음행을 행한다면, 이는 어리석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한다.
도둑질하는 죄에서와 같이 거짓말에서도 그러하나니, 재물을 탐내는 까닭에 거짓말을 하면 이는 탐냄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며, 그를 속여서 괴로움을 얻게 하려 함이라면 이는 성냄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며, 삿된 소견으로 업의 과보를 모르고서 거짓말을 하면 이는 어리석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한다.
이간질ㆍ나쁜 말ㆍ어지러운 말에서도 역시 그러하나니, 세 가지 착하지 못한 길은 곧 이것이 근본이며, 이로부터 분별하여 일곱 가지의 몸ㆍ입 업의 과보가 생긴다.
【문】살생을 여의지 않은 것은 모두가 살생의 죄인가? 만약 살생의 죄라면 모두가 살생을 여의지 않은 것인가?
【답】살생을 여의지 않은 것으로서 곧 이는 살생의 죄이기도 하고, 살생을 여의지 않은 것으로서 살생의 죄가 아니기도 하다.
무엇이 바로 살생을 여의지 않는 것으로서 곧 이는 살생의 죄인가? 만약 중생이 있는데 이것이 중생인 줄 알면서도 짐짓 목숨을 죽여 몸의 업을 일으킨다면, 이는 살생을 여의지 않았고 또한 이는 살생의 죄라고 한다.
무엇이 바로 살생을 여의지 않은 것으로서 살생의 죄가 아닌가 하면, 이 사람은 전번에 살생을 하였다 하더라도 중생이 죽지는 않았거나, 또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 말하지도 않으면서 마음만으로써 ‘나는 오늘부터 중생을 죽이리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살생을 여의지 않은 것으로서 살생의 죄는 아니라고 한다.
이 두 가지 문으로 분별하면 네 가지로 분별이 되나니, 이른바 착함과 착하지 않은 것에 각각 두 가지이다.

착함과 착하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두 가지 업에도
역시 마땅히 알아야 하리니
다시 다르게 분별함이 있다.

몸으로 산 것을 죽이고 도둑질하고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을 제외한 그 밖의 나머지로서 때리며 속박하고 가두고 매질하며 질질 끄는 것 따위로 다만 죽지 않았으면 이러한 착하지 못한 몸의 업은 목숨을 빼앗는 것 등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다.
착한 것 중에서, 영접하고 전송하고 합장하고 예배하고 공경하고 문안하고 씻어 주고 안마하고 보시하는 것 따위의 착한 몸의 업은 살생하지 않는 것 등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다. 뜻의 업 중에서는 탐냄과 성냄과 삿된 소견을 제외한 그 밖의 마음을 지키어 거두지 않는 모든 번뇌 등의 착하지 못한 법과 또 뜻의 업 중에서 탐내지 않음과 성내지 않음과 바른 소견을 제외한 그 밖의 마음을 잘 거둠과 믿음ㆍ계율ㆍ들음ㆍ선정ㆍ버림ㆍ지혜 등의 선법이다.

일곱 가지는 업(業)이면서 또한 업의 길[業道]이며
세 가지는 업의 길이지만 업은 아니다.

산 것을 죽임ㆍ도둑질ㆍ삿된 음행ㆍ거짓말ㆍ이간질ㆍ나쁜 말ㆍ어지러운 말이 일곱 가지인데, 이는 업이면서 곧 업의 길이다. 탐냄ㆍ성냄ㆍ삿된 소견은 이는 업의 길이지만 업이 아니니, 이 세 가지 일은 생각과 서로 응하여야 바로 업이다.
【문】앞의 일곱 가지 일은 무엇 때문에 업이면서 또한 업의 길인가?
【답】이 일곱 가지 일을 익히고 행하면 차츰차츰 불어난 까닭에 지옥ㆍ축생ㆍ아귀에 이르나니, 이 때문에 업의 길이라고 하며, 이 일곱 가지는 지을 수가 있는 까닭에 업이라 한다.
‘세 가지는 바로 업의 길이지만 업은 아니다’라고 함은, 이는 착하지 못한 업의 근본이니, 이 때문에 세 가지는 업의 길이며, 업이 아니라 한다.
착한 것 중에서도 역시 그러하여, 이른바 산 것을 죽임ㆍ도둑질ㆍ삿된 음행ㆍ거짓말ㆍ이간질ㆍ나쁜 말ㆍ어지러운 말을 여의는 것이 역시 업이며 업의 길이다. 그 밖의 세 가지인 탐내지 않음ㆍ성내지 않음ㆍ바른 소견은 업의 길이며, 업이 아니지만 이 세 가지가 생각과 서로 응하면 이는 업이다.
【문】앞의 일곱 가지 일은 무엇 때문에 업이며, 또한 업의 길인가?
【답】언제나 이 일을 닦고 익히는 까닭에 인간과 천상의 좋은 곳에 이를 수 있으므로 도[道]라고 하며, 이 일곱 가지를 지을 수 있는 까닭에 업이라 한다.
【문】그 밖의 세 가지는 무엇 때문에 업의 길이라고만 하고 업이 아닌가?
【답】세 가지인 이것은 모든 착한 업의 근본이니, 모든 착한 업은 그 안에서부터 행한 까닭에 업의 길이며, 업이 아니라고 한다.

계율의 법은 곧 업이며
업은 혹은 계율이고 계율 아니기도 하며
업과 그리고 업의 길에 있어선
네 가지로 나누며 가르게 된다.

몸과 입의 업은 계율이고, 뜻의 업은 이는 업이며 계율이 아니다.
‘업과 업의 길에 있어서 네 가지로 분별한다’ 함은 업이면서 업의 길 아닌 것이 있고, 업의 길이면서 업이 아닌 것이 있고, 업이면서 또한 업의 길인 것이 있고, 업이 아니면서 업의 길 아닌 것이 있다.
업이면서 업의 길 아닌 것이라 함은 세 가지 착하지 못한 몸의 업은 업의 길에 포섭된 것이 아니니, 이른바 주먹질하고 매질하는 것 따위이다.
그리고 세 가지의 착한 몸의 업은 업의 길에 포섭된 것이 아니니, 이른바 영접하고 전송하고 공경하며 예배하는 것 따위이다. 이 두 가지 착함과 착하지 않은 업은 업의 길에 포섭된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역시 업의 길이다. 왜 그런가 하면, 이 두 가지 업이 때로는 착하고 나쁜 곳에 이르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업의 길이라고 하지만 정해지지 않은 까닭에 업의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업의 길이면서 업이 아니라고 함은, 뒤의 세 가지 착하지 못한 것과 세 가지의 착한 것이다. 이는 번뇌의 성질인 까닭에 업이 아니며, 업을 일으킬 수 있는 까닭에 업의 길이라고 한다. 세 가지 착한 것도 이는 착한 뿌리의 성질인 까닭에 업이 아니며 착한 업을 일으킬 수 있는 까닭에 업의 길이라고 한다.
업이면서 또한 업의 길이라 함은, 이른바 산 것을 죽이는 것과 산 것을 죽이지 않는 것 등의 일곱 가지 일이다. 이는 업이 아니면서 업의 길이 아니라 함은, 바로 그 나머지의 법이다.

보살은 초지의 변두리에서
세 가지를 깨끗이 함으로써
열 가지 착한 길에 편히 머무르며
곧 결정된 마음이 생긴다.

보살은 제2지 중에서 분명하게 분별하여 이와 같은 열 가지의 착함과 열 가지의 착하지 못한 길을 알며, 안 뒤에는 세 가지를 깨끗하게 함으로써 열 가지 착한 길에 머무른다. 이른바 스스로가 산 것을 죽이지도 않고 남을 시켜서 죽이지 않으며, 살생의 죄에 마음으로 기뻐하지도 않나니, 바른 소견에 이르기까지 역시 그와 같다.
【문】보살이 초지 중에서 이미 열 가지 착한 길에 머물렀거늘, 이 중에서 무엇 때문에 거듭하여 말하는가?
【답】초지 중에서 열 가지 착한 길에 머무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다만 이 중에서는 차츰차츰 나아지고 더욱 자라나나니, 세 가지를 깨끗하게 하는 까닭이다.
먼저 초지 중에서는 염부제의 왕이 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세 가지를 깨끗하게 행할 수 없는 까닭에, 이 중에서는 세 가지 깨끗함을 말하는 것이다.
보살이 이 2지에 머무르면 이와 같이 모든 업을 분별할 줄 알므로 결정된 마음이 생긴다.

세간에 있는 나쁜 길이란
모두가 열 가지 착하지 못함에서 나고
세간에 있는 착한 길이란
열 가지 착함으로 인하여 난다.

세간에 있는 나쁜 길이라 함은, 이른바 세 가지의 지옥 길인 열지옥(熱地獄)ㆍ냉(冷)지옥ㆍ흑(黑)지옥이며, 세 가지의 축생 길인 물에서 다니는 축생ㆍ육지에서 다니는 축생ㆍ공중에서 다니는 축생이며, 갖가지 귀신 길인 굶주린 귀신ㆍ깨끗하지 못한 것을 먹는 귀신ㆍ불의 입을 가진 귀신ㆍ아수라ㆍ야차 등이 있으며 모두가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을 행하되 상ㆍ중ㆍ하의 인연이 있었던 까닭이다.
세간을 벗어나는 모든 착한 길은 하늘이거나 사람이거나 간에 모두가 열 가지의 착한 길을 가므로 말미암아 나게 된 것이니, 삼계에 포섭되는 것이다. 하늘은 160천이 있고, 사람은 바로 4천하의 사람이다. 이렇게 결정하여 안 뒤에는 생각하기를 ‘나는 자신이 좋은 처소에 태어나고 중생들도 좋은 처소에 태어나게 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스스로가 마땅히
열 가지 착한 길에 머물러야겠으며
또한 그 밖의 중생들로 하여금
곧 이 착한 길에 머무르게 하리라.

‘좋은 곳에 태어나거나 나쁜 곳에 태어나거나 모두가 열 가지의 착함과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에 속한다. 나는 이 세간의 모든 업과 인연의 있고 없음과 일정한 주된 것이 있음을 아나니, 그러므로 나는 먼저 스스로가 열 가지 착한 길을 행하고 그런 뒤에 모든 중생들에게도 열 가지 착한 길에 머무르게 해야겠다’고 한다.
【문】무엇 때문에 반드시 먼저 자신이 열 가지 착한 길에 머무른 뒤에야 다른 이들을 머무르게 하는가?

【답】나쁜 업을 행하는 이는
다른 이를 착하도록 바꾸지 못하나니
자신이 착함을 행하지 않는 까닭에
다른 이가 곧 믿어 받지 않는다.

만약 나쁜 사람이라면 스스로가 착함을 행하지 않아서 다른 이를 착하게 하려 하는 것은 곧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사람 자신이 착한 일을 행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이 그의 말을 믿어 받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게송의 말과 같다.

만약 사람이 스스로 착하지 않으면
다른 이를 착하게 할 수 없으며
만약 스스로가 적멸(寂滅)하지 않으면
다른 이를 적멸하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대는 먼저 스스로가
착한 일과 적멸을 행하여야 하며
그러한 뒤에야 다른 사람 가르쳐서
착한 일과 적멸을 행하게 하라.

보살은 이와 같이 선법을 행하여야 한다.

아비지옥으로부터
이에 유정천(有頂天)에 이르기까지
열 가지 업의 결과와
그 과보 받는 곳을 분별하리라.

이와 같이 바르게 알아야 하나니, 아래로는 아비지옥으로부터 위로는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의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는 착하고 착하지 않은 갖가지 업의 과보를 받는 곳이다.
그 중에서 최상의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을 행하는 까닭에 아비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대자(大炙)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소자(小炙)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대규환(大叫喚)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소규환(小叫喚)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승가타(僧伽陀)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대맥(大陌)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흑승(黑繩)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활(活)지옥에 나며 조금 덜하면 검림(劒林) 등의 조그마한 권속인 지옥에 나게 되나니, 역시 이와 같이 점차로 작게 분별하여야 한다.
중간의 열 가지 착하지 못한 길을 행하면, 축생 중에 나며 역시 점차로 적게 분별하여야 한다. 최하의 착하지 못한 길을 행하면 아귀 가운데에 나게 된다. 이와 같이 총괄적인 형상을 말하였지만 이 중에서도 자세히 분별하며 차별하여야 한다.
여러 아수라와 야차들은 귀신의 길 중에 나고 여러 용왕은 축생 중에서 나지만 받는 쾌락만은 혹은 여러 하늘과도 같다. 이 중생들은 착하지 못한 인연 때문에 나기도 하였으나, 난 뒤에는 착한 업의 과보를 받는다.
최하의 열 가지 착한 길을 행하면, 염부제의 사람 안에 태어나기는 하나 가난하고 천한 집에 있게 된다. 이른바 전다라(旃陀羅)와 변두리 땅의 장인바치이며 소인(小人) 따위이다. 그 보다 나으면 거사의 집에 태어나고, 보다 나으면 바라문의 집에 태어나고, 그 보다 나으면 찰제리의 집에 태어나고, 그 보다 나으면 대신의 집에 태어나고, 그 보다 나으면 국왕의 집에 태어난다.
열 가지의 착한 길에 보다 더 나으면 구타니(瞿陀尼)에 태어나고, 그 보다 나으면 불바제(弗婆提)에 태어나고, 그 보다 나으면 울단월(鬱單越)에 태어나고, 그 보다 나으면 사천왕 처소에 나고, 그 보다 나으면 도리천ㆍ염마천(炎摩天)ㆍ도솔타천ㆍ화락천(化樂天)에 나게 된다.
최상의 열 가지 착한 길을 익히고 행하면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 나게 되나니, 이 중간에서도 가지가지로 작고 큰 차별을 분별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사람 중에서는 작은 왕ㆍ큰 왕ㆍ염부제왕ㆍ전륜성왕과 같다.
사천왕의 처소에는 사천왕이 있고, 도리천 안에는 석제환인(釋帝桓因)이 있고, 염마천 위에는 수염마천왕(須災摩天王)이 있고, 도솔타천 위에는 산도솔타(珊兜率陀)천왕이 있고, 화락천 위에는 선화(善化)천왕이 있고, 타화자재천왕이 있나니, 이보다 그 위이면 반드시 선정의 사유를 행하여야 그 위의 세계에 날 수 있다.
【문】만약 선정의 생각으로써 위에 세계에 날 수 있다고 하면, 무엇 때문에 ‘비유상비무상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열 가지의 착한 길로써 나게 된다’고 말하였는가?
【답】선정을 닦아서 형상세계와 무형세계에 난다 하더라도 반드시 먼저 열 가지 착한 길에 굳건하게 머무르고 그러한 뒤에 선정을 닦을 수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곳은 열 가지 착한 업의 길이 큰 이익이 되는 까닭에 ‘비유상비무상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열 가지 착한 길의 인연 때문에 나게 된다’고 한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먼저 깨끗한 열 가지 착한 길을 행하여 욕심을 여의고서 초선(初禪)의 맨 아래 생각을 닦으면 범중천(梵衆天)에 나게 되며, 초선의 중간 생각을 닦으면 범보천(梵補天)에 나며, 초선의 맨 위의 생각을 닦으면 대범천(大梵天)에 나게 된다.
2선(禪)의 맨 아래의 생각을 닦으면 소광천(少光天)에 나고, 2선의 중간의 생각을 닦으면 무량광천(無量光天)에 나게 되고, 2선의 맨 위의 생각을 닦으면 묘광천(妙光天)에 나게 된다.
3선(禪)의 맨 아래 생각을 닦으면 소정천(少淨天)에 나게 되며, 3선의 중간의 생각을 닦으면 무량정천(無量淨天)에 나게 되며, 3선의 맨 위의 생각을 닦으면 변정천(遍淨天)에 나게 된다.
4선(禪)의 맨 아래 생각을 닦는 까닭에 아나바가천(阿那婆伽天)에 나며, 4선의 중간 생각을 닦는 까닭에 복생천(福生天)에 나며, 4선의 맨 위 생각을 닦는 까닭에 광과천(廣果天)에 나게 된다.
생각 없는 선정[無想定]의 중간 생각을 닦으므로 무상천(無想天)에 나게 되고, 샘[漏]이 없이 4선의 맨 아래 생각을 훈수(勳修)하는 까닭에 불광천(不廣天)에 나게 되고 샘이 없이 4선의 뛰어난 생각을 훈수하는 까닭에 불열천(不熱天)에 나게 되고, 샘이 없이 4선의 뛰어난 생각을 훈수하는 까닭에 희견천(喜見天)에 나게 되고, 샘이 없이 4선의 뛰어난 생각을 훈수하는 까닭에 묘견천(妙見天)에 나게 되고, 샘이 없이 4선의 맨 위 생각을 닦는 까닭에 아가니타천(阿迦膩吒天)에 나게 된다.
허공처정(虛空處定)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닦으므로 공처천(空處天)에 나게 되며, 식처정(識處定)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닦으므로 식처천(識處天)에 나게 되며,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닦으므로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에 나게 되며, 비유상비무상처정(非有想非無想處定)과 서로 응하는 생각을 닦으므로 비유상비무상처천에 나게 되나니, 이것을 나고 죽음의 세간에서 중생들이 가고 오고 하는 곳이라 한다.


29. 분별성문벽지불품(分別聲聞辟支佛品)1)

【문】이 열 가지 착한 업의 길은 다만 인간과 천상에 나게 되는 인연뿐인가? 다시 다른 이익이 있는가?

【답】온갖 성문승과
벽지불승과 대승은
모두가 열 가지의 착한 길로써
큰 이익을 삼게 되느니라.

무릇 나고 죽음의 인연을 벗어나는 것에는 오직 3승인 성문ㆍ벽지불ㆍ대승만이 있는데, 이 3승은 모두가 열 가지 착한 길로써 큰 이익을 삼게 된다. 왜 그러한가? 이 열 가지 착한 길이 수행하는 이에게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고, 벽지불의 자리에도 이르게 할 수 있고, 부처님의 자리에도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이 열 가지의 착한 길은, 어떠한 중생들에게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

【답】다른 이를 따르면서 대비심(大悲心)이 없고
세 가지 세계를 두려워하며
조그마한 부분의 공덕을 즐기고
그 뜻은 매우 열등하고 약하다.

마음은 싫증내어 여의기를 즐기고
언제나 세상은 무상하다 관하며
그리고 온갖 법이 모두가 또한
나[我]가 없다고 아는 것이다.

찰나 동안에 이르기까지
남[生]을 받기를 즐기지 않으며
항상 세간에는 고요하고 편안한
그런 법이 있음을 믿지 아니 한다.

4대[大]를 살피되 독사같이 여기고
쌓임[陰]은 칼을 뽑은 도둑같이 여기며
여섯 감관[入]은 빈 무더기[空聚]같이 여기고
세간의 부자와 안락을 즐기지 아니 한다.

계율 굳게 지니는 것 귀히 여기고
선정을 위하여
언제나 안선(安禪)하기를 즐기며
모든 선법을 닦고 익힌다.

오직 열반만이 첫째가는 구호자(救護者)라
자세히 살피며
언제나 괴로움을 다한 지혜를 구하고
행을 모으며 해탈을 즐긴다.

자기의 이익만을 귀히 여기고
하나하나의 훌륭한 곳에서 오나니
착한 길은 이러한 사람으로 하여금
성문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게 한다.

다른 이의 음성을 따르는 이는 다른 이의 말하는 것을 듣고 따르면서 행하므로 스스로 지혜를 낼 수가 없다.
【문】열 가지 착한 길로써 모두 다른 이로부터 듣는 이들을 다 성문이 되게 할 수 있는가?
【답】그렇지 않다. 만약 대비심이 없다면 열 가지 착한 길로서 이 사람을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지만 만약 어떤 보살이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듣는다면 대비심이 있는 까닭에 열 가지 착한 길로써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없다.
【문】모두가 대비심이 없는 이면 열 가지 착한 길로써 다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는가?
【답】그렇지 않다. 삼계를 두려워하는 이라면 열 가지 착한 길로써 이 사람을 성문의 도에 이르게 할 수 있지만 그 밖의 두려워하지 않는 이라면 인간 천상의 좋은 곳에 나게 되나니, 삼계를 즐기는 까닭이다.
【문】모두가 삼계를 두려워하는 이면 열 가지 착한 길로써 모두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다 하자. 만약 그렇다면 보살 역시 삼계를 두려워함은 몸을 위해서이며, 또 중생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행하고 힘써 나아가 열반을 구하나니, 이와 같은 열 가지 착한 길은 역시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되어야 하리라.
【답】일체 삼계를 두려워하는 이라 하여 반드시 모두 성문의 자리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가 떨어지느냐 하면, 조그마한 부분의 공덕을 즐거이 익히며 행하는 이이다. 부처님께서 교화한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서 조그마한 부분을 받아 행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성문의 자리에 떨어진다.
만약 사람이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잘 지니고 두루 지혜를 배운다면, 열 가지 착한 길은 반드시 이 사람을 곧장 부처님의 길에 이르게 하리라.
다른 이로부터 소리를 듣고 삼계를 두려워하며 조그마한 부분의 공덕을 지니는 이런 사람에는 두 가지가 있다. 열 가지 착한 길로써 성문이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이와 벽지불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이이다.
【문】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면 모두가 다른 이로부터 듣고 세 가지 세계를 두려워하며 공덕의 조그마한 부분을 지니면서 열 가지 착한 길로써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할 수 있고 벽지불의 자리에 이르게 하는가?
【답】뜻이 열등하고 연약한 이는 아라한이 되고, 조금 견고한 이는 벽지불이 된다.
【문】열 가지 착한 길이지만 모두 뜻이 열등하고 연약한 이면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가?
【답】그렇지는 않다. 무슨 까닭이냐 하면, 이른바 뜻이 연약하면서 나고 죽음을 싫어하여 여의기를 즐기는 이이며, 다만 뜻이 열등하기만 하면서 싫어하고 여읨이 없는 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문】어떠한 일을 자세히 살펴야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즐기는 줄 알 수 있는가?
【답】함이 있는 법[有爲法]은 무상하고 온갖 법에는 나[我]가 없다고 자세히 살피면, 이는 반드시 싫어하여 여읨을 즐기는 줄 알아야 한다.
【문】이미 싫어하여 여읨을 즐기는 줄 안다면,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함이 있음[有爲]은 무상하고 온갖 법에는 나가 없음을 자세히 살피는데, 이 열 가지의 착한 길로써 어찌하여 이 사람을 성문의 자리에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는가?
【답】이 사람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 여의기를 깊이 싫어하고 여읜 까닭이니, 잠깐 동안일지라도 생(生)을 받기를 좋아하지 않고 세간에는 편안하고 고요한 형상이 있다 함을 믿지 않는다.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마치 적은 똥도 오히려 냄새나고 더러워서 깨끗하지 않거든 하물며 많은 것이겠느냐. 이와 같아서 잠깐 동안 나기를 받는 것도 오히려 괴롭거든 하물며 오랜 동안이겠느냐. 비구들아, 생이 끊어짐을 배워서 다시는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성문들은 이 말씀을 믿어 받은 까닭에 잠깐이라도 나기를 받으려 하지 않으며, 이 사람은 다시 생각하기를 ‘세간은 무상하다. 하는 일과 받은 목숨에는 도무지 편안하고 고요한 모습이 없도다. 죽음이 언제나 사람을 쫓거니, 누가 죽는 시기를 알 수 있겠는가? 죽는 때를 모르는데 어떠한 업의 과보를 받게 될까? 어떠한 마음이 생기게 될까? 이러한 일 중에는 편안하고 고요하지 않으며 믿을 수가 없는 까닭에 빨리 괴로움이 다하는 것을 구하여야겠다’라고 하지만 보살은 곧 그렇지 않다.
항하의 모래만큼 많은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나기를 받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게 되나니, 그러므로 게송 중에서 말하기를 ‘찰나 동안에 이르기까지 생을 받기를 즐기지 않나니, 착한 길은 이러한 사람으로 하여금 성문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게 한다’라고 한다.
【문】이 사람은 어떤 일을 즐거이 닦고 모으기에 생을 받기 좋아하지 않는가?
【답】이 사람은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의 네 가지 원소[四大]를 자세히 살피면서 성내고 원망하기 좋아하고 깨끗하지 못하고 냄새나고 더럽고 은혜를 모르는 까닭에 독사라는 생각을 내며, 빛깔[色]ㆍ느낌[受]ㆍ생각[想]ㆍ지어감[行]ㆍ의식[識]의 다섯 가지 쌓임[五陰]은 지혜의 목숨을 빼앗는 까닭에 도둑이라는 생각을 내며, 눈[眼]ㆍ귀[耳]ㆍ코[鼻]ㆍ혀[舌]ㆍ몸[身]ㆍ뜻[意]은 받아들임[入]과 떨어짐[離]과 언제나 여읨과 움직이지 않음과 변하지 않음과 무너지지 않음을 나[我]가 없고 내 것이 없는 까닭에 빈 무더기라는 생각을 내며, 만약 사람이 세간에서 온갖 태어남을 받은 것과 살림의 즐거운 도구는 무상하고 거짓이어서 잠깐 동안도 머무름이 없는 까닭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온갖 나는 처소에서 편안하고 고요함이 없다는 생각을 내어 열반이라는 한 가지 법만이 구호할 수 있다고 한다. 경전 가운데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비구들아, 세간은 모두가 바로 활활 타는 불이니라. 이른바, 눈도 타고 빛깔도 타고 눈알음[眼識]도 타고 눈의 닿음[眼觸]도 타며, 눈의 닿음의 인연이 생기며 받고 하는 모두가 역시 타느니라.
어떠한 일 때문에 타느냐 하면, 이른바 탐냄의 불과 성냄의 불과 어리석음의 불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근심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불 때문에 활활 타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도 그러하느니라.
온갖 함이 있는 법이 모두 활활 타고 있음을 자세히 살피라. 오직 열반 적멸의 법만이 구호자가 될 수 있느니라’고 하셨으므로, 열반이라는 한 가지 법만을 귀히 여기는 까닭에 온갖 일을 버리고서 좌선을 부지런히 익힌다.
【문】만약 온갖 함이 있는 법이 모두 활활 타고 있음을 살피고서 열반의 적멸만이 구호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면, 열 가지 착한 길은 모두가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가?
【답】그렇지 않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은 선정을 위해서이므로 이 계율을 귀중히 여겨 결정된 마음을 지니면서 깨뜨리지 않으며, 온갖 일들을 버리고 좌선만을 즐기면서 괴로움이 다하는 지혜를 구하여 항상 부지런히 해탈의 인연을 닦고 익히나니, 전생 중에서 혹은 하나의 훌륭한 데[勝處]서부터 왔기도 하고 둘의 훌륭한 데서부터 왔을 것이므로, 열 가지 착한 길은 이 사람을 성문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왜냐하면 지닌 계율이 깨끗하면 마음이 후회하지 않으며, 마음이 후회하지지 않는 까닭에 기쁨을 얻으며, 기쁨을 얻는 까닭에 몸이 가뿐해지며, 몸이 가뿐해지는 까닭에 마음이 쾌락해지며, 마음이 쾌락해지는 까닭에 마음을 거두어 안정을 얻으며, 마음을 거두어 안정을 얻은 까닭에 여실하게 지혜가 나며, 여실하게 지혜가 나는 까닭에 싫어함이 생기고 싫어함으로부터 여읨이 생기며, 여읨으로부터 해탈을 얻기 때문이다.
하나 또는 둘의 훌륭한 데서부터 왔다 함은, 마치 존자 라후라(羅睺羅)가 진리의 훌륭한 데[諦勝處]서부터 온 것과 같고, 마치 존자 시왈라(施曰羅)가 버림[捨]의 훌륭한 데서부터 온 것과 같고, 마치 존자 이발다(離跋多)가 적멸(寂滅)의 훌륭한 데서부터 온 것과 같고, 마치 존자 사리불이 지혜[慧]의 훌륭한 데서부터 온 것과 같다.
혹은 진리ㆍ버림의 두 가지 훌륭한 데서부터 오기도 하며, 혹은 진리ㆍ적멸의 두 가지 훌륭한 데서부터 오기도 하며, 혹은 진리ㆍ지혜의 두 가지 훌륭한 데서부터 오기도 하며, 혹은 버림ㆍ적멸의 두 가지 훌륭한 데서부터 오기도 하며, 혹은 버림ㆍ지혜의 두 가지 훌륭한 데서부터 오기도 하며, 혹은 적멸ㆍ지혜의 두 가지 훌륭한 데서부터 오기도 하나니, 이러한 열 가지 착한 길은 성문의 자리에 이를 수 있게 된다.
016_0772_c_01L十住毘婆沙論卷第十四 資聖者龍樹造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 譯分別二地業道品之餘菩薩住此地 自然不行惡 深樂善法故自然行善道問曰十不善道自然不作自然行善道此二種道幾是身行幾是口行幾是意行答曰身意二三種 口四善亦爾 略說則如是此應當分別不善身行有三種所謂奪他命劫盜邪婬不善口行四種妄語兩舌惡口散亂語不善意行三種貪取瞋惱善身行亦有三種離奪命劫盜善口行亦四種離妄語兩舌惡口散亂語善意行有三種不貪取不瞋正見意業道是善不善應須論議令人得解初奪命不善道者謂有他衆生知是衆生故行惱害是惱害則失壽命起此身業是名初奪命不善道離此事故名爲離奪命善行劫盜者所謂屬他之物知是物屬他生劫盜心手捉此物擧離此處若劫若盜計是我物生我所心是名劫盜行離此事者名爲離劫盜善行邪婬者所有女人若爲父母所護族所護爲姓所護世法所護戒法所若他人婦知有鞭杖惱害等障㝵此事中生貪欲心起於身業或於自所有妻妾若受戒若懷妊若乳兒非道是名邪婬遠離此事名爲善身妄語者覆相覆心覆見覆忍覆欲知如是相而更異說是名妄語遠離此事名爲遠離妄語善行兩舌者離別他以此事向彼說以彼事向此爲離別他故和合者令別離別離者則隨順樂爲別離憙別離好別離是名兩舌離如此事名爲遠離兩舌善行惡口者世閒所有惡語害語麤語弊語令他瞋惱是名惡口離此事名爲離惡口善行散亂語者非時語無利益語非法語無本末語無因緣語是名散亂語遠離此事爲離散亂善行貪取者屬他之物所欲他田塢他財物心貪取願欲得於此事中不貪不妒不願欲得是名不貪善行瞋惱者於他衆生瞋恨心心發瞋恚作是念何不打縛殺害是名瞋惱離如此事名爲無瞋惱善邪見者言無布施無有恩報善惡業無果報無今世無後世無父母無沙無婆羅門能知此世後世了了通自身作證是名邪見正見者爲有施者#有恩報有善惡業報有今世後世閒有沙門婆羅門知此世後世了了通達自身作證是名正見善行是菩薩如是入正見道善道不善道 各二十分別 知何處起等十二種分別菩薩於十不善道十善道等種種別知二十種分別又於是二十種分善知從何處起等十二種分別此十不善道中有二十種分別所謂不離奪他命罪一是不善二欲界繫三有漏四非心數法五心不相應不隨心行七或共心生或不共心生何等共心生實有衆生知是衆生身業故奪其命是名共心生云何名不共心生若人欲殺衆生捉持牽挽撲著地已然後能死是名不共心生又身不動口不言但生心我從今日當作殺衆生者如是奪他命罪是名不共心生又是不離奪他命者若睡若覺常積習增長亦名不共心生或色或非色初共心生殺罪是色第二殺罪第三第四非是色九或作非作有色是作餘者無作十或有緣或無緣色是有緣餘者是無緣問曰是心爲有緣爲無緣答曰非有緣問曰若心非有緣身不動口不言時但心生我從今日當作殺衆生者如是罪業云何名爲非緣答曰若殺罪是心則應有緣今實殺罪非是心若心是殺罪卽是身業而心實非身業是故殺生罪不名有緣但殺生罪共心身中生以是無作故言非緣十一是十二非業相應十三不隨業行四或共業生或不共業生如共心生無異但除心與思共生爲異十五非先世業報十六不可修十七應善知十八應以慧證不以身證十九可斷十可知見不離劫盜罪不離邪婬罪不離妄語罪中但一共心生二不共心一有色二無色一作二無作一有二無緣餘如殺中說不離兩舌離惡口亦如是不離散亂語或不善或無記從不善心生是不善從無記心生是無記或欲界繫或色界繫界繫者以欲界身心散亂語是欲界色界繫亦如是餘如妄語中說取欲界繫是有漏心數法非心相應非隨心行心共生無色無作有緣業相應非隨業行非共業生非先世業除因報非可修應善知應以慧證身證可斷可見知瞋惱或心相應心不相應纏所攝名心相應使所攝名心不相應隨心行不隨心行亦如共心生不共心生有覺衆生與心共生無覺衆生不與心共生如心相隨心行共心生業相應隨業行業生亦如是如心不相應不隨心行不共心生業不相應不隨業行不與業共生亦如是餘分別如貪取中說如瞋惱邪見亦如是十善道中離奪他是善性或欲界繫或不繫三界欲界繫者以欲界身離奪他命是欲界繫三界繫者學無學人八聖道所攝離殺生正業是或有漏或無漏欲界繫是有非三界繫是無漏非心數法非心相應非隨心行或共心生或不共心何等是共心生如行人見虫而作是念我當身業遠離不傷害是名離奪命善行共心生何等是離殺生善不共心生有人身不動口不言但心從今日不殺生是名不共心生有人先遠離殺生若睡若覺心緣餘於念念中不殺生福常得增長亦不共心生或是色或非色一是色二非色一是作二非作一有緣二無緣是業業相應不隨業行或共業生或不共業如共心生不共心生除心與思爲異非先業報除因報可修可善知可以身慧證或可斷或不可斷有漏則可斷無漏不可斷可知見亦如是離劫盜邪婬離妄語離兩舌離惡口亦如是離散亂語或欲界繫或色界繫或不繫三界欲界繫者以欲界身心離散亂語色界繫亦如是不繫三界者不殺中說或有漏或無漏有漏者無漏者不繫餘如離妄語中說不貪取者是善性或欲界繫或非繫三界欲界繫者欲界凡夫不貪取及賢聖不貪取善行是欲界繫非三界繫者諸賢聖不貪取無漏善行是或有漏或無漏欲界繫是有漏不繫三界是無漏是心數法心相應隨心行共心無色無作有緣非業業相應隨業行共業生非先業報除因報可修可善可以身證慧證或可斷或不可斷有漏可斷無漏不可斷知見亦如是離瞋惱是善性或欲界繫或色界繫或無色界繫或不繫三界欲界繫者欲界不瞋惱善根餘二界亦如是繫者餘不繫是或有漏或無漏繫三界者是有漏餘是無漏心數法心相應或心不相應與纏相違不瞋善根與心相應與使相違不瞋善根與心不相應隨心行共心生亦如是無色無作或有緣或無緣心相應是有緣心不相應是無緣非業或與業相應或不與業相應或隨業行或不隨業行或共業生或不共業生亦如心說非業報除因報可以身證慧證可斷或不可斷有漏可斷無漏不可可知見亦如是正見是善性或欲界繫或色界繫或無色界繫或非三界繫欲界繫者若凡夫若賢聖欲界念相應正見是無色界亦如是繫三界者賢聖無漏正見或有漏無漏三界繫是有漏不繫是無漏數法心相應隨心行共心生無色無有緣非業業相應隨業行共業生非先業報除因報可以身證慧證可斷或不可斷有漏可斷無漏不可可見可知亦如是是名善等二十種分別從何起等十二論者一從何二起誰三從何因起四與誰作因五何緣六與誰作緣七何所緣八與誰作緣九何增上十與誰作增上一何失十二何果殺罪從何起者三不善根起又從邪念起又隨以何奪衆生命從是心起起誰者從殺罪邊所有諸法已生今生當生是因緣亦如是何所緣者緣衆生又因何心#奪衆生命亦緣此心與誰作緣者因殺罪邊所有諸法若已生若今生若當生是法緣於殺生罪何失者世惡名人所不信等何果者墮地獄畜生餓鬼阿修羅等及餘惡處受苦惱報增上與誰增上者如從何處起中說劫盜邪婬妄語兩舌惡口散亂貪取邪見亦如是但所緣有劫盜罪緣所用物邪婬緣衆生兩舌惡口散亂語緣於名字貪取緣所用物瞋惱緣衆生邪見緣名字餘殘亦如上不殺生從三善根起從正念起又隨以何心離殺生從是心起起誰者從是法所有諸法若已若今生若當生是因緣亦如是緣者緣於衆生與誰作緣者因是不殺生邊所有諸法若已生若今生當生緣於不殺生增上者諸善根增正念亦增上隨以何心不殺生是心亦增上與誰作增上者於是不殺生邊所有諸法若已生若今生若當何利益者與殺罪相違是名爲利果者與殺生相違名爲果不劫盜邪婬妄語兩舌惡口散亂語不貪正見亦如是但所緣有異不劫盜緣所用物不邪婬緣衆生不妄語兩舌不惡口不散亂語緣名字不貪取緣所用物不瞋惱緣衆生正見或緣名字或緣義有漏緣於名字無漏緣於義是菩薩於善等論及起等十二論行十善道應如是分別知又知七種不善處 以貪瞋癡生 及四門分別業衆生各二是菩薩知七不善業道以貪癡生而分別於世又知七種不善業中四門分別是殺罪或從貪生或從瞋生或從癡生從貪生者若人見衆生貪著心從是因緣受用好色或須齒髓等是人生如是貪心故奪他命是名從貪生殺罪若人瞋心不喜殺衆生是名從瞋生若人邪見不知後世善惡業衆生是名從癡生殺罪或以爲福德或欲使度苦故而殺如西方安息國等復有取福德因緣故#殺以是殺業因緣故欲得生天如東天竺人於天寺中殺生以此事故欲生天上是名從癡生復有人以貪心故取他物是念以我當隨意得好色是名從貪生復有人以瞋心不喜彼人劫盜財物欲令其惱是名從瞋生復有人邪見不知果報劫盜他物名從癡生如諸婆羅門說世閒財寶皆是我物我力弱故諸小人等以非法取用若我取者自取其物無有過以如是心劫盜他物者是亦從癡若人貪著色因緣故而邪婬是名從貪生若人瞋不喜作是念是人犯我母女等我亦還以婬事彼母女等是名從瞋生邪婬若人邪見不知果報而故犯者是名從癡生如有人言人中無有邪婬以故女人皆爲男子故生如餘所用如有所須若與從事無邪婬罪是心作婬欲者是名從癡生如劫盜妄語亦如是爲貪財故妄語是名從貪生爲欲誑彼令得苦惱是名從瞋生邪見不知業果報故妄語是名從癡生兩舌惡口散亂語亦如是不善道則是根本從是分別生七種口業果問曰不離殺生皆是殺生罪不若殺生罪皆是不離殺生耶答曰有不離殺生卽是殺生罪有不離殺生非殺生罪何等是不離殺生卽是殺生罪若有衆生知是衆生故殺奪命起身業是名不離殺生亦是殺生罪何等是不離殺生非殺生罪此人先雖作殺因緣而衆生不死身不動口不說但心念我從今日殺衆生是名不離殺生非殺生罪二門分別爲四種分別所謂善不善各二種不但善不善 身心二種業 亦復應當知更有餘分別除身殺生劫盜邪婬餘殘打縛閉繫鞭杖牽挽等但不死而已如是不善身業非奪命等所攝善中迎逆合掌禮拜恭敬問訊洗浴按摩布施等身業非不殺生等所攝意業中除貪瞋惱邪見餘所有不守攝心諸結使等不善法又意業中除不貪取不瞋正見餘善守攝心信戒聞定捨慧等善法七業亦業道 三業道非業殺生劫盜邪婬妄語兩舌惡口散亂語七是業卽業道貪取瞋惱邪見業道非業此三事相應思是業問曰前七事何故亦是業亦是業道答曰習行是七事轉增故至地獄畜生以是故名爲業道是七能作故三是業道非業者是不善業根本以是故名三業道非業善中亦如是所謂離殺生劫盜邪婬妄語兩舌散亂語亦業亦業道餘三不貪不瞋惱正見是業道非業此三相應思是業問曰前七事何故是業業道答曰常修習此事故能至人好處名爲道是七能作故名爲業餘三何故但業道非業耶答曰是諸善業根本諸善業從中行故爲業道非業復次戒法卽是業 業或戒非戒 業及於業道有四種分別口業是戒意業是業非戒業及於業道四種分別者有業非業道有業道非業有業亦是業道有非業非業業非業道者三種不善身業業道所不攝所謂手拳鞭杖等及三種善身業業道所不攝所謂迎逆敬禮等是二善不善業非業道所攝或有人言亦是業道何以故是二業或時至善惡處故名爲業道以不定故不說業道業道非業者後三不善及三善是煩惱性故非業能起業故名爲業三善是善根性故非業能起善業名爲業道亦業亦業道者所謂殺不殺生等七事是非業非業道者餘法是復次菩薩初地邊 以三種淸淨 安住十善道則生決定心是菩薩於第二地中了了分別知如是十善十不善道知已以三種淸淨住十善道所謂自不殺生不教他殺於殺生罪心不喜悅乃至正見亦如問曰菩薩初地中已住十善道中何故重說答曰初地中非不住十善道但此中轉勝增長以三種淸淨先初住中雖作閻浮提王不能行此三種淸淨是故此中說三種淸淨菩薩住是二地知如是分別諸業決定心世所有惡道 皆十不善生 世所有善道因於十善生世閒所有惡道者所謂三種地獄道熱地獄冷地獄黑地獄三種畜生道水行畜生陸行畜生空行畜生種種鬼道有飢餓鬼者食不淨鬼者火口阿修羅夜叉等皆由行十不善道有上下因緣故出世閒所有善道若天若人皆由行十善道生三界所攝天有二十八人者四天下人是是決定知已作是念我欲自生善處亦令衆生生於善處是故我自應 住於十善道 亦令餘衆生卽住此善道若生善處若生惡處皆屬十善十不善我知是世閒諸業因緣有無有定主是故我應先自行十善道然後令諸衆生亦住十善道問曰何以故要先自住十善道後乃令他住耶答曰行於惡業者 令他善不易 自不行善故他則不信受若惡人自不行善欲令他行善者爲甚難何以故是人自不行善他人不信受其語如偈說若人自不善 不能令他善 若自不寂滅不能令他寂 以是故汝當 先自行善寂然後教他人 令行善寂滅是菩薩當如是行善法從阿鼻地獄 乃至於有頂 分別十業果及其受報處當如是正知下從阿鼻地獄上至非有想非無想處皆是善不善種種業受果報處於中習行上十不善道故生阿鼻地獄小減生大炙地獄小減生小炙地獄小減生大叫喚地獄減生小叫喚地獄小減生僧伽陁地小減生大陌地獄小減生黑繩地小減生活地獄小減生劍林等小眷屬地獄中亦應如是轉小分別中十不善道生畜生中畜生中亦應轉少分別行下不善道生餓鬼中如是摠相說是中應廣分別差別有諸阿修羅夜叉生鬼道中有諸龍王生畜生中所受快樂或與諸天同是諸衆生以不善因緣故生生已受善業果行最下十善道生閻浮提人中貧窮下賤家所謂栴陁羅邊地工巧小人等轉勝生居士家轉勝生婆羅門家轉勝生剎利家轉勝生大臣家轉勝生國王家於十善道轉復勝者生瞿陁尼轉勝生弗婆提轉勝生鬱單越轉勝生四天王處轉勝生忉利炎摩天兜率陁天化樂天習行上十善道生他化自在天於是中亦應種種分別小大差別如人中小王閻浮提王轉輪聖王四天王處四天王忉利天中有釋提桓因炎摩天上有須炎摩天王兜率陁天上珊兜率陁天王化樂天上有善化天他化自在天上有他化自在天王過是以上要行禪定思得生上界若以禪定思得生上界者何以故說乃至非有想非無想處皆以十善道故得生答曰雖修禪定生色界色界要當先堅住十善道然後得修禪定以是故彼處以十善業道爲大利益以是故說乃至非有想非無想皆以十善道因緣故得生所以者先行淸淨十善道離欲修初禪下得生梵衆天修初禪中思生梵輔修初禪上思故得生大梵天修二禪下思生少光天修二禪中思得生無量光天修二禪上思得生妙光天修三禪下思得生小淨天修三禪中思故得生無量淨天修三禪上思生遍淨天修四禪下思故生阿那婆伽天修四禪中思故生福生天修四禪上思故生廣果天修無想定中思生無想天以無漏熏修四禪下思故生不廣天以無漏熏修四禪勝思故生不熱天以無漏熏修四禪勝思故生喜見天以無漏熏修四禪勝思故生妙見天以無漏熏修四禪最上思生阿迦膩咤天修虛空處定相應得生空處天修識處定相應思生識處天修無所有處定相應思得生無所有處天修非有想非無想處定相應思得生非有想非無想處天是名生死世閒衆生往來之處分別聲聞辟支佛品第二問曰是十善業道但是生人天因緣更有餘利益耶答曰所有聲聞乘 辟支佛大乘 皆以十善道而爲大利益凡出生死因緣唯有三乘聲聞辟支大乘是三乘皆以十善道爲大利何以故是十善道能令行者至聲聞地亦能令至辟支佛地亦能令人至於佛地問曰是十善道能令何等衆生至聲聞地答曰隨他無大悲 畏怖於三界 樂少功德分其志甚劣弱 心樂於厭離 常觀世無常及知一切法 皆亦無有我 乃至一念頃不樂於受生 常不信世閒 而有安隱法觀大如毒蛇 陰如拔刃賊 六入如空聚不樂世富樂 貴於堅持戒 而爲禪定故常樂於安禪 修習諸善法 唯觀於涅槃第一救護者 常求盡苦慧 樂集行解脫但貴於自利 一一勝處來 善道令是人能至聲聞地隨他音聲者聞他所說隨順而行能自生智慧問曰十善道能令一切從他聞者皆作聲聞耶答曰不爾無大悲心十善道能令此人至聲聞若有菩薩從諸佛聞法以有大悲心故十善道不能令至聲聞地問曰一切無大悲心者#十善道皆能令至聲聞地耶答曰不然怖畏三界者十善道能令此人至聲聞道餘不怖畏者令生人天善處以樂三界故問曰一切怖畏三界者十善道皆能令至聲聞地若爾者菩薩亦怖畏三界爲身故復爲衆生勤行精進求於涅槃如是十善道亦應令至聲聞地答曰不必一切怖畏三界者盡墮聲聞地何等爲墮樂習行功德少分者於佛所教化六波羅蜜中受行少分如是之人墮聲聞地若人能取諸佛功德遍學智慧十善道必令此人徑至佛隨他聞聲怖畏三界取功德少分是人有二種十善道能令至聲聞地至辟支佛地者問曰是人云何俱從他聞怖畏三界取功德少分十善道能令至聲聞地至辟支佛地答曰劣弱者作阿羅漢小堅固者作辟支問曰十善道令一切志劣弱者聲聞地答曰不然何以故所謂志弱樂厭離生死者非但志劣無厭離者問曰觀何事得知樂厭離心答曰有爲法無常一切法無我當知是必樂於厭離問曰已知樂厭離菩薩亦如是觀有爲無常一切法無我是十善道何得不令此人墮聲聞地耶是人深厭離離大悲故乃至一念不樂受生不信世閒有安隱相經中佛告諸比丘譬如少糞尚臭穢不淨何況多也如是一念中受生尚何況多也諸比丘當學斷生莫令更受聲聞人信受是語故乃至一念不樂受生是人復作是念世閒無於所作事及受命都無安隱相常逐人誰能知死時節不知死時受何業果報爲生何心如是事中安隱故不可信故當疾求盡苦菩薩則不爾於恒河沙無量阿僧祇劫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度諸衆生是故偈中說乃至一念頃不樂於受生善道令是人能至聲聞地問曰是人樂修集何事故不樂受生答曰是人觀地風四大憙生瞋恨故不淨臭穢不知恩故生毒蛇想識五陰能奪智慧命故生怨賊入離常離不動不壞無我無我所故生空聚想人於世閒一切受生及資生樂具無常虛誑無須臾住故不生喜悅心是之人於一切生處生無安隱想涅槃一法能爲救護如經中說諸比世閒皆是熾然所謂眼然色然識然眼觸然及眼觸因緣生受皆亦是然以何事故所謂貪欲火瞋恚火愚癡火生老病死憂悲苦惱火之所熾然亦如是觀一切有爲法皆是熾然唯涅槃寂滅法能爲救貴涅槃一法故捨一切事勤習坐問曰若觀一切有爲法皆是熾然唯涅槃寂滅能爲救護者十善道皆令至聲聞地耶答曰不然佛所結戒爲禪定故貴重此戒有決定心而不毀犯捨一切事但樂坐禪求盡苦智常勤修習解脫因緣於先世中或從一勝處二勝處來者十善道能令此人至聲聞地何以故持戒淸淨心不悔心不悔故得歡喜得歡喜故身輕軟身輕軟故心快樂心快樂故攝心得定攝心得定故生如實智慧生如實智慧故卽生厭從厭生離離得解脫若一若二勝處來者如尊者羅睺羅從諦勝處來如尊者施曰從捨勝處來如尊者離跋多從寂滅勝處來如尊者舍利弗從慧勝處或從諦捨二勝處來或從諦寂滅二勝處來或從諦慧二勝處來或從捨寂滅二勝處來或從捨慧二勝處來或從寂滅慧二勝處來如是十善道能令至聲聞地十住毘婆沙論卷第十四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彫造
  1. 1)고려대장경에 의하면, 앞의 목차의 순서와 달리 ‘분별성문벽지불품제이(分別聲聞辟支佛品第二)’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