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攝大乘論釋卷第十一

ABC_IT_K0590_T_011
016_1205_a_01L섭대승론석 제11권
016_1205_a_01L攝大乘論釋卷第十一


세친 해석
진제 한역
변상섭 번역
016_1205_a_02L世親菩薩釋
陳 天竺 三藏眞諦譯


5. 석입인과수차별승상 ②
016_1205_a_04L釋入因果修差別勝相第五之二

5) 수시장(修時章)
016_1205_a_05L修時章第五
【論】얼마만한 시간 동안에 10지를 수행하여 바른 행이 원만함을 얻는가?
【釋】이 10지는 보살의 큰 지[大地]여서 수행의 시기가 2승과 같지 않다. 왜냐 하면 단지 스스로 제도되는 것이 많기만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며, 닦는 방편이 많기 때문이며, 마땅히 도달하는 곳이 가장 높고 멀기 때문이다. 마치 왕이 행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과 같지 않은 것과 같다. 대승과 소승이 수행하는 시간에는 길고 짧음이 있다.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고자 수행의 시간을 묻는다.
016_1205_a_06L論曰於幾時中修習十地正行得圓滿釋曰此十地是菩薩大地修行之時不可同於二乘何以故不唯爲自身所濟度多故所修方便多故所應至處最高遠故譬如王行不可同於貧人故大小乘修行時有長短欲顯此義故問修行時
【論】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혹은 3아승기겁을 수행하여 원만하여지고, 혹은 7아승기겁을, 혹은 33아승기겁을 수행하여야 한다. 다섯 종류의 사람이란 무엇인가?
원행지를 행하는 사람은 1아승기겁에 채워지고, 청정한 의행(意行)을 행하는 사람과 유상행(有相行)을 행하는 사람 그리고 무상행(無相行)을 행하는 사람은 6지 내지 7지에서 두 번째의 아승기겁에 채워지며, 이 뒤로부터 무공용생을 행하는 사람 내지 10지는 세 번째의 아승기겁에 채워진다.
【釋】무엇들이 다섯인가? 첫째는 한 사람이 있으니 원락행의 사람이고, 둘째는 세 사람이 있으니 청정한 의행의 사람과 유상행의 사람과 무상행의 사람이며, 셋째는 한 사람이 있으니 무공용행(無功用行)의 사람이다. 이것을 다섯 사람이라고 한다.
016_1205_a_13L論曰有五種人三阿僧祇劫修行圓滿或七阿僧祇或三十三阿僧祇劫何者爲五人行願行地人滿一阿僧祇劫行淸淨意行人行有相行人行無相行人六地乃至七地滿第二阿僧祇劫此後無功用行人乃至十地滿第三阿僧祇劫釋曰何等爲五一有一謂願樂行人二有三人謂淸淨意行人有相行人無相行人三有一人謂無功用行人是名五人
016_1205_b_01L원락행(願樂行)의 사람은 네 종류가 있으니 10신(信)ㆍ10해(解)ㆍ10행(行)ㆍ10회향(廻向)으로 보살의 성스러운 도를 위한 네 가지 방편이기 때문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수다원도(須陀洹道) 앞에 네 종류의 방편이 있는 것과 같다. 이 네 사람을 원락행지라고 말하며 첫 번째의 아승기겁에서 수행이 원만함을 얻는다.
이 지가 원만하여지더라도 이 관을 행하는 사람은 진여를 아직 증득하지 못하였고 무분별지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청정한 의행을 얻지 못한다. 무분별지가 청정한 의행이다. 또한 오히려 2승의 마음과 같기 때문에 청정한 의행이 아니며, 보살의 물러나지 않는 위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청정한 의행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인 자도 무류심(無流心)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청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무류심의 소연(所緣)의 인식현상의 상(相)은 잊거나 상실하지 않기 때문에, 무류심을 얻는 것을 정정위(正定位)라고 설하는 것이다. 유류심은 잊고 상실하기 때문에, 정정(正定)이란 이름을 얻을 수 없다. 보살도 역시 마찬가지여서 초지에 들어가지 못하면 정정의 이름을 얻지 못한다. 이러한 청정하지 않는 의행의 사람이 만약 진여를 본다면 곧 청정한 의행의 지에 들어간다. 초지에서부터 10지에 이르기까지 똑같이 이 이름을 얻는다.
016_1205_a_23L願樂行人自有四種謂十信十解十行十迴向爲菩薩聖道有四種方便故有四人如須陁洹道前有四種方便此四人名願樂行地於第一阿僧祇劫修行得圓滿此地若已圓滿此觀行人未得淸淨意行以未證眞如未得無分別故無分別智卽是淸淨意行又猶同二乘心故非淸淨意行又未至菩薩不退位故非淸淨意行如世第一人未得無流心說爲不淸淨無流心所緣法相無有忘失故得無流心說爲正定位有流心有忘失故不得受正定名菩薩亦爾未入初地不得正定名此不淸淨意行人若見眞如卽入淸淨意行地從初地至十地同得此名
016_1205_c_01L청정한 의행의 사람은 스스로 네 종류가 있다. 처음의 하나는 통틀어 이름을 세워서 청정한 의행이라 일컫고, 뒤의 셋은 따로 이름을 세워서 유상행(有相行)과 무상행(無相行)과 무공용행(無功用行)이라고 말한다. 이 청정한 의행의 사람을 여섯 번째 지에서부터 그 뒤를 설하여 유상행이라고 일컫는다. 유상행의 사람이 갖는 경계의 상(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분별한 상이고, 둘째는 무분별한 상이고, 셋째는 품류가 궁극인 상이며, 넷째는 사(事)를 성취한 상이다. 유분별한 상은 정(定)의 소연경을 분별하면 비발사나의 경계가 된다.
만약 분별하지 않으면 사마타의 경계가 된다. 이러한 경계를 연하여 사(捨)를 생하는 것이 정(定)의 모습이고, 정의 경계를 연하여 무분별한 진여를 일으키는 것을 무분별한 상이라고 말한다.
품류가 궁극인 상이란 여리여량(如理如量)의 두 가지 닦음이며, 사(事)를 성취한 상이란 보살의 지지들 가운데 전의를 말한다.
016_1205_b_16L淸淨意行人自有四種初一從通立名謂淸淨意行後三從別立名謂有相行無相行無功用行此淸淨意行人從第六地以還說名有相行有相行者境界相有四種一有分別二無分別相三品類究竟相四事成就相有分別相者定所緣境等爲毘鉢舍那境若無分別爲奢摩他緣此境生捨是定相緣定境無分別眞如起名無分別相品類究竟相謂如理如量二修事成就相者菩薩地地中轉依
일곱 번째의 지는 무상행이면서 유공용이다. 여래께서 설하신 12부 법문의 상 내지 12연생의 상을 깊이 사량하였기 때문에 법문의 상을 연하지 않고 곧바로 진여의 맛을 통달한다. 이러한 통달은 공용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지를 설하여 무상행유공용(無相行有功用)이 된다.
청정한 의행과 유상행과 무상행의 세 사람은 두 번째의 아승기겁을 수행하여 원만함을 얻는다. 만약 사람이 8지(地)에 들어가면 무상행은 있으나 무공용은 성취하지 못한다. 8지가 원만하여지면 8지에서 무상행무공용이 이미 이루어진다.
016_1205_c_04L第七地是無相行有功用如來所說十二部法門相乃至十二緣生相熟思量故不緣法門直通達眞如味此通達離功用則不成故說此地爲無相行有功用淨意行有相行無相行三人第二阿僧祇劫修行得圓滿若人入八地無相行無功用未成就若八地圓滿於八地無相行無功用已成
9지와 10지에서는 무상행무공용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세 번째의 아승기겁에서 이 무상무공용이 곧 이루어진다. 마치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1)ㆍ아나함(阿那含)2)의 세 위계를 만들어 세워 다섯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
만약 세 개의 위계를 만들어 세우면 어찌하여 다섯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위계의 차별 때문에 다섯 종류의 사람을 이룬다. 처음의 방편으로부터 수다원에 이르기까지가 첫 번째의 사람이 되고, 가가(家家)3)가 두 번째의 사람이 된다. 사다함(斯陀含)은 세 번째의 사람이 되고, 일종자(一種子)가 네 번째의 사람이 되며, 아나함이 다섯 번째의 사람이 된다.
016_1205_c_12L於九地十地無相行無功用未成滿第三阿僧祇劫此無相無功用乃成譬如須陁洹斯陁含阿那含三位製立爲五若三位云何製立爲五人由位差別故成五人從初方便至須陁洹爲第一人家家爲第二人斯陁含爲第三人一種子爲第四人阿那含爲第五人
016_1206_a_01L보살의 위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초지(初地)가 첫 번째의 위계이고, 2지(地)부터 7지까지가 두 번째의 위계이며, 8지부터 10지까지가 세 번째의 위계가 된다. 역시 만들어 세울 수 있어서 다섯 사람이 된다. 방편으로부터 초지까지가 첫 번째의 사람이고, 2지로부터 4지까지가 두 번째의 사람이며, 오지에서 6지까지가 세 번째의 사람이며, 7지가 네 번째의 사람이며, 8지에서 10지까지가 다섯 번째의 사람이다. 또한 성문승의 위계와 나란히 같은 지로 말미암아 보살의 12지의 순서도 역시 이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문의 성지(性地)와 같이 보살의 첫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와 같고, 성문의 고(苦)와 법인(法忍) 등의 성문의 수정정위(修正定位)의 가행과 같이 보살의 두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와 같다.
016_1205_c_20L菩薩位亦爾初地爲第一位二地至七地爲第二位從第八地至第十地爲第三位亦得製立爲五人從方便至初地爲第一人從二地至四地爲第二人五地至六地爲第三七地爲第四人八地至十地爲第五人復次由等聲聞位地應知菩薩十二地次第亦如此如聲聞性地薩初位亦如此如聲聞修正定位加謂苦法忍等菩薩第二位亦如此
성문이 이미 정정위(正定位)에 들어간 것처럼 보살의 세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와 같다. 성문이 이미 불괴신(不壞信)을 얻어서 성소애계위(聖所愛戒位)에 머물러 상지(上地)의 미혹을 멸하게 되듯이 보살의 네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와 같다. 성문이 계학에 의해 마음에 의거하는 학을 이끌어 섭지하는 것처럼, 보살의 다섯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러하다. 성문이 이미 의혜학위(依慧學位)를 얻는 것처럼 보살의 여섯, 일곱, 여덟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와 같다. 성문이 사량경계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상이 없는 삼마제의 가행인 것처럼, 보살의 아홉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러하다. 성문이 이미 무상정위(無相定位)를 성취하는 것처럼, 보살의 열 번째 위계도 역시 이와 같다. 성문이 이미 무상의 삼마제에서 벗어나서 해탈에 들어가는 위계에 머무는 것처럼, 보살의 열한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러하다. 성문이 모든 상을 갖춘 아라한위(阿羅漢位)에 머무는 것처럼 보살의 열두 번째의 위계도 역시 이와 같다.
016_1206_a_06L如聲聞已入正定位菩薩第三位亦如此如聲聞已得不壞信住聖所愛戒位爲滅上地惑菩薩第四位亦如如聲聞依戒學引攝依心學菩薩第五位亦如此如聲聞已得依慧學菩薩第六第七第八位亦如此聲聞不復思量境界是無相三摩提加行菩薩第九位亦如此如聲聞已成就無相定位菩薩第十位亦如此如聲聞已出無相三摩提住解脫入菩薩第十一位亦如此如聲聞住具相阿羅漢位菩薩第十二位亦如
이 열두 사람이 보살의 5위(位)에 포섭된다. 첫 번째의 위계는 첫 번째와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세 사람을 포섭하고, 두 번째의 위계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의 세 사람을 포섭한다. 세 번째의 위계는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의 두 사람을 포섭하고, 네 번째의 위계는 아홉 번째인 한 사람을 포섭한다. 다섯 번째의 위계는 열 번째와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인 세 사람을 포섭한다. 성문의 5위를 묶는다면 역시 열두 사람을 포섭할 수 있어서 보살의 위계가 포섭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016_1206_a_19L此十二人菩薩五位所攝第一位攝第一第二第三三人第二位攝第四第五第六三人第三位攝第七第八兩人第四位攝第九一人第五位攝第十第十一第十二三人若約聲聞五位亦得攝十二人不異菩薩位攝
016_1206_b_01L【論】또한 다시 어찌하여 7아승기겁을 말하는가?
【釋】그 밖의 다른 부분을 따로 잡아서 드러내기 위하여 또한 다시라고 말한다. 7아승기겁의 시간은 앞의 3아승기겁과 더불어 똑같기도 하고 짧고 긴 것이 있기도 하다. 이것은 3아승기겁과 똑같음을 지닌다. 단지 다른 의미가 있어서 펼쳐서 일곱의 수가 된다. 첫 번째의 대겁아승기는 원행지(願行地)를 건너서 환희지(歡喜地)에 행함을 얻고, 두 번째의 대겁아승기는 환희지로부터 의계학지(依戒學地)와 의심학지(依心學地)를 건너서 소연지(燒然地)에 행함을 얻는다. 세 번째의 대겁아승기는 소연지로부터 의혜학지(依慧學地)를 건너서 원행지에 행함을 얻는다. 또한 하나의 대겁아승기는 무상부정행(無相不定行)이라고 하며, 무상유공용지(無相有功用地)를 건너고, 또 하나의 대겁아승기는 무상정행(無相定行)이라고 하며, 무상무공용기를 건넌다. 또 하나의 대겁아승기는 무상승행(無相勝行)이라고 하며, 무애변지(無礙辯地)를 건너며, 또 하나의 대겁 아승기는 최승주(最勝住)라고 하며, 관정지(灌頂地)를 건넌다.
016_1206_b_01L論曰復次云何七阿僧祇劫釋曰欲顯餘部別執故言復次七阿僧祇劫時與前三阿僧祇劫時爲等爲有短長此執等三阿僧祇劫但有別義開爲七數第一大劫阿僧祇度願行地得行歡喜地第二大劫阿僧祇從歡喜地度依戒學地依心學地得行燒然地第三大劫阿僧祇從燒然地度依慧學地得行遠行地又一大劫阿僧祇名無相不定行度無相有功用地又一大劫阿僧祇名無相定行度無相無功用地又一大劫阿僧祇名無相勝行度無㝵辯地又一大劫阿僧祇名最勝住度灌頂地
016_1206_c_01L아승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아승기겁이라고 하는데, 왜냐 하면 이 겁은 낮, 밤, 반 달, 한 달, 행년(行年), 쌍(雙:二年) 등의 시간으로 셀 수 없기 때문에 아승기겁이라고 한다. 둘째는 겁아승기라고 한다. 왜냐 하면 이 겁 가운데 보살이 수행하는데 만약 겁으로써 헤아리려고 한다면 이 겁도 또한 셀 수 없기 때문에 겁아승기라고 한다. 앞의 아승기로 말미암아서도 겁 가운데서 시간을 셀 수 없고, 뒤의 아승기로 말미암아서도 겁은 또한 셀 수 없다. 약간의 대겁아승기를 경과하여 위없는 보리를 얻으니, 이제 3대겁아승기를 정하여 위없는 보리를 얻으니, 넘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만약 보살이 최상품의 정근을 수행한다면 셀 수 없는 소겁을 뛰어넘을 수 있거나, 혹은 셀 수 없는 대겁을 뛰어넘기도 한다. 오직 대겁아승기만은 뛰어넘을 수 없다. 가죽[皮]ㆍ살[肉]ㆍ마음[心]의 세 가지 번뇌를 한꺼번에 제거하기 때문에 3아승기겁을 세운다.
016_1206_b_15L僧祇有二種一謂阿僧祇劫何以故由此劫日夜半月月時行年雙等時不可數故名阿僧祇劫二謂劫阿僧何以故於此劫中菩薩修行若以劫爲量此劫又不可數故名劫阿僧由前阿僧祇劫中時不可數由後阿僧祇劫又不可數經若干大劫阿僧祇得無上菩提今定三大劫阿僧祇得無上菩提不過不減若菩薩修行最上品正勤能超無數小劫或超無數大劫唯不能超大劫阿僧祇約除皮肉心三煩惱故立三阿僧祇劫
첫 번째의 겁아승기는 보살의 마음이 아직 밝고 영리하지 못하여 방편을 이루지 못하고 정근도 오히려 열등하다. 따라서 실제로 대겁아승기를 지났을 때 마침내 원행지를 건넌다. 이 위계의 공행(功行)은 시간과 더불어 서로 부합한다.
두 번째의 대겁아승기는 만약 공행으로써 시간을 묶는다면 마땅히 아홉의 겁아승기를 경과하여야 한다. 보살이 마음을 밝고 영리하게 써서, 방편이 이미 이루어지고 정근 또한 수승함으로 말미암아 시간은 비록 적지만 얻는 공행은 많다. 공(功)이 8대겁아승기를 뛰어넘어 스물한 번째의 대겁아승기가 경과하는 것을 막는다.
세 번째의 대겁아승기는 만약 공행으로써 시간을 묶는다면 마땅히 21대겁아승기를 경과하여야 한다. 보살의 지혜와 방편과 정근이 가장 수승함으로 말미암아 경과하는 시간은 비록 적지만 공행은 더욱 많아서 공(功)이 20대겁아승기를 뛰어넘어 서른한 번째의 대겁아승기를 경과하는 것을 막는다.
016_1206_c_05L第一劫阿僧祇菩薩心未明利方便未成正勤猶劣是故實經一大劫阿僧祇時度願行地此位功行與時相符第二大劫阿僧祇若以功行約時應經九劫阿僧祇由菩薩心用明利方便已成正勤又勝經時雖少得功行多超八大劫阿僧祇止經第二一大劫阿僧祇第三大劫阿僧祇若以功行約時應經二十一大劫阿僧祇由菩薩智慧方便正勤最勝經時雖少功行彌多功超二十大劫阿僧祇止經第三一大劫阿僧祇
016_1207_a_01L【論】지(地) 이전에 셋이 있고 지 가운데 넷이 있다. 지 이전의 셋이란 첫째는 부정(不定)아승기이고, 둘째는 정(定)아승기이며, 셋째는 수기(授記)아승기이다.
【釋】다시 다른 부분을 간직해둔 것이 있으니 7겁 아승기가 행이 되어 얕고 깊음이 있다. 경계에 진과 속 그리고 제일의(第一義)가 있기 때문이다. 지 이전에 경과하는 3겁 아승기는 이러한 세 가지 경계를 연하므로 세 종류의 행이 있다. 첫째는 첫 번째의 경계에 의해 흰 법과 검은 법이 서로 섞임이 있으므로 적은 부분의 바라밀이라고 한다. 둘째는 두 번째의 경계에 의해 검지도 희지도 않는 법이 흰 법과 더불어 서로 섞임이 있으므로 바라밀이라고 한다. 셋째는 세 번째의 경계에 의해 검지도 희지도 않으며 서로 섞이지도 않은 법이 있으므로 참다운 바라밀이라고 한다.
016_1206_c_17L論曰地前有地中有四地前三者一不定阿僧二定阿僧祇三授記阿僧祇釋曰復有別部執七劫阿僧祇爲行有淺深境有眞俗及第一義故地前經三劫阿僧祇緣此三境有三種行一依第一境有白法與黑法相雜少分波羅蜜二依第二境有非黑白法與白法相雜名波羅蜜三依第三有非黑白無雜法名眞波羅蜜
곧 이 셋을 묶어서 3아승기를 세운다. 첫째는 부정아승기이니 검정과 흰색이 서로 섞여 범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아승기이니 이미 얻은 무류법이 유류법과 서로 섞인다. 이미 얻은 무류법이 결정코 여전히 서로 섞이기 때문에 수기(授記)4)할 수 없다. 셋째는 수기아승기이며 단지 무류법일 따름이며 그 밖의 다른 법과 섞이지 않는다.
단지 무류법이기 때문에 결코 그 밖의 다른 법과 섞이지 않기 때문에 수기할 수 있다. 따라서 지 이전에 3겁 아승기가 경과한다.
016_1207_a_03L約此三立三阿僧祇一不定阿僧祇以黑白相雜與凡夫不異故二定阿僧祇已得無流法與有流法相雜得無流法定猶相雜故未可授記授記阿僧祇但是無流法不雜餘法但無流法故定不雜餘法故可授記故地前經三劫阿僧祇
【論】지 가운데 있는 넷이란 첫째는 실다운 이치[實諦]에 의거하는 아승기이고, 둘째는 사(捨)에 의거하는 아승기이며, 셋째는 적정(寂靜)에 의거하는 아승기이며, 넷째는 지혜에 의거하는 아승기이다.
【釋】초지로부터 3지까지를 실다운 이치에 의거하는 지(地)라고 한다. 초지에서는 발원을 하고, 2지에서는 10선법을 닦고, 3지에서는 모든 선정을 닦아 익힌다. 이 모두가 경계에 의거하기 때문에 실다운 이치에 의거하는 지라고 한다.
4지에서 6지까지는 사(捨)에 의거하는 지라고 한다. 4지는 도의 품류들을 닦고, 5지에서는 4제(諦)를 관하고, 6지에서는 12연생을 관한다. 모두가 도에 의거하여 혹을 버리기 때문에 사(捨)에 의거하는 지라고 말한다.
7지와 8지는 적정에 의거하는 지라고 한다. 7지는 무상유공용이고, 8지는 무상무공용이기 때문에 적정에 의거하는 지라고 말한다.
9지와 10지는 지혜에 의거하는 지라고 한다. 9지에서는 스스로 지혜의 수승함을 얻고, 10지에서는 남에게 지혜의 수승함을 얻게 하기 때문에 지혜에 의거하는 지라고 말한다.
016_1207_a_10L論曰地中有四者一依實諦阿僧祇二依捨阿僧祇三依寂靜阿僧祇四依智慧阿僧祇釋曰初地至三地名依實諦初地發願二地修十善法三地修習諸定竝依境界故名依實諦地地至六地名依捨地四地修道品五地觀四諦六地觀十二緣生竝依道捨惑故名依捨地七地八地名依寂靜地以七地無相有功用八地無相無功用故名依寂靜地九地十地名依智慧地以九地自得解勝十地令他得解勝故名依智慧地
016_1207_b_01L이치[諦]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서제(誓諦)이고, 둘은 행제(行諦)이며, 셋째는 혜제(慧諦)이다. 서제란 처음 마음을 일으킬 때부터 서원[誓]을 세워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행제란 서원대로 수행하여 서원과 서로 상응하여 서원대로 실행하고 역시 실천하는 것이다. 혜제란 이러한 수행이 성취되고 앞의 맹세들을 안립하기 위한 것이다.
방편 가운데 지혜가 행제와 서제를 더불어 상응하여야 지혜가 수승하게 된다. 이 셋은 모두 참으로 전도됨이 없고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에 이치[諦]라고 이름한다. 보살은 예전에 세웠던 서원대로 지금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짓기 때문에 이치에 의거하여 머문다. 보살은 6바라밀의 장애를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사(捨)에 의거하여 머문다.
016_1207_a_22L諦有三種一誓諦二行諦三慧諦誓諦者從初發心立誓爲利益他行諦者如所立誓修行與誓相應如誓實行亦實諦者爲成就此行及安立前誓於方便中智慧與行誓相應智慧爲勝三皆實無倒不相違故名爲諦菩薩如昔所立誓今作衆生利益事故依諦住菩薩能捨六度障故依捨住
보살은 6바라밀과 상응하기 때문에 적정에 의거하여 머문다. 보살은 스스로 6바라밀을 행함으로 말미암아서 남을 이롭게 하는 방편을 바르게 이해하기 때문에 지혜에 의거하여 머문다. 보살은 서원을 세워서 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어기지 않고 반드시 모든 것을 베푼다. 이 서원을 세우는 것으로 말미암아 서원을 깨뜨리지 않기 때문에 진실로 베풀 수 있다. 그 베푼 것을 좇아서 모두 다 환희를 생하기 때문에 진리에 의하여 보시를 행한다. 보살은 재산을 버릴 수 있고 과보를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사(捨)에 의하여 보시를 행한다. 보살은 재물을 받는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고 줄어들어 없어지는 가운데 탐욕ㆍ성냄ㆍ무명ㆍ두려움들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적정에 의거하여 보시를 행한다.
응하는 대로 시의적절하고 참답게 베풀어 앞의 셋 가운데 이것을 쓰는 것이 가장 수승하기 때문에 지혜에 의해 보시를 행한다. 예전에 세운 서원대로 먼저 받은 계율을 어기지 않고 나쁜 계율을 버리고 떠나서 모든 악행이 적정하므로 이 가운데서 지혜가 수승하여지기 때문에 진리들을 의거하여 계율을 행한다.
016_1207_b_07L薩六度功德相應故依寂靜住菩薩由自行六度善解利他方便故依智慧住菩薩立誓不違求者之心必皆施與由立此誓不違誓故實能施與隨其所施悉生歡喜故依諦行施薩能捨財捨果故依捨行施菩薩於財物受者行施及減盡中不生貪瞋無明怖畏故依寂靜行施如應如時如實施與於前三中此用最勝故依智慧行施如昔所立誓不違先所受捨離惡戒一切惡行寂靜此中智慧爲勝故依諦等行戒
016_1207_c_01L예전에 세운 서원대로 남의 과실을 분별하여 성내는 것을 참을 수 있고 버릴 수 있어서 마음이 적정하므로 이 가운데서 지혜가 수승하기 때문에 진리들을 의지하여 인을 행한다. 예전에 세운 서원대로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일으킬 수 있고 근심스럽고 약한 마음을 버리고 떠날 수 있어서 나쁜 법이 적정하므로 이 가운데서 지혜가 수승하여지기 때문에 이치들을 의지하여 정진을 행한다. 예전에 세운 서원대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사수(思修)할 수 있고, 다섯 가지의 덮임[蓋]들을 버리고 떠나 마음이 항상 적정하므로 이 가운데서 지혜가 수승하여지기 때문에 이치들에 의하여 선정을 행한다. 예전에 세운 서원대로 남을 이익되게 하는 방편을 요달하고 방편이 아닌 것에 치우치는 것을 버리고 떠나며, 무명이 그을리고 타서 이미 적정을 얻으므로 모든 지혜를 증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치들에 의거하여 반야를 행한다. 인식경계와 예전의 서원을 따르는 것은 이치에 의거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욕(類欲)과 혹욕(惑欲)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사(捨)에 의거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삿된 업이 영원히 그치는 것은 적정에 의거한다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수각(隨覺)과 통달은 지혜를 의지한다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016_1207_b_19L如昔所立誓能忍能捨分別他過失瞋恚上心寂此中智慧爲勝故依諦等行忍昔所立誓能作利益他事能捨離憂弱心惡法寂靜此中智慧爲勝故依諦等行精進如昔所立誓能思修利益衆生事捨離五蓋等心常寂靜中智慧爲勝故依諦等行定如昔所立誓了達利益他方便捨離偏非方便無明燋熱已得寂靜能證一切智故依諦等行般若隨應知境及昔誓應知是依諦義捨離類欲惑欲應知是依捨義一切邪業永息應知是依寂靜義隨覺及通達應知是依慧義
세 가지 진리에 포섭되는 것은 3실(失)을 피할 수 있으니 이치에 의거한다고 말하고, 세 가지 사(捨)에 포섭되는 것은 3실을 피할 수 있으니 사(捨)에 의거한다고 말한다. 세 가지 적정에 포섭되는 것은 3실을 피할 수 있으니 적정에 의거한다고 말한다. 세 가지 지혜에 포섭되는 것은 3실을 피할 수 있으니 지혜에 의거한다고 말한다. 이치에 의거하는 것은 사와 적정과 지혜에 의지하는 것을 포섭한다. 예전의 서원을 좇아 따르기 때문이며 서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에 의거하는 것은 진리와 적정과 지혜에 의거하는 것을 포섭한다. 대하여 다스려지는 것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며 모든 사의 과보이기 때문이다.
016_1207_c_09L三諦所攝能違三失是名依諦三捨所攝能違三失是名依捨三寂靜所攝能違三失是名依寂靜三慧所攝能違三失是名依智慧依諦攝依捨寂靜慧隨順昔誓故不相違故依捨攝依諦寂靜慧能捨所對治故是一切捨果故
016_1208_a_01L적정에 의거하는 것은 이치와 사(捨)와 지혜에 의거하는 것을 포섭한다. 혹과 업을 그을리고 태워 적정하기 때문이다. 지혜에 의거하는 것은 이치와 사와 적정에 의거하는 것을 포섭한다. 지혜가 우선이 되기 때문이며, 지혜를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6바라밀은 이치에 의거하여 생하여지며 사에 의거하여 포섭되며 적정에 의거하여 키워지며 지혜에 의거하여 깨끗해진다. 왜냐 하면 이치에 의거하는 것은 그것들이 생하는 원인이며, 사에 의거하는 것은 그것들을 포섭하는 원인이며, 적정에 의거하는 것은 그것들을 키우는 원인이며, 지혜에 의거하는 것은 그것들을 깨끗하게 하는 원인이다. 서원은 진실을 표현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진리로써 근거를 삼고 중간에서는 먼저 이미 서원을 세웠으니 남을 위하여 자애(自愛)를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사(捨)로써 근거를 삼는다. 모든 적정은 뒤로 미루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는 적정으로써 근거를 삼는다. 처음과 중간과 나중에는 지혜로써 근거를 삼는다. 만약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만약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기 때문이다.
016_1207_c_16L依寂靜攝依諦捨慧惑及業燋熱寂靜故依慧攝依諦捨寂靜智慧爲先故智慧所隨故是故六波羅蜜依諦所生依捨所攝依寂靜所依智慧所淨何以故依諦是彼生依捨是彼攝因依寂靜是彼長因依慧是彼淨因初以諦爲依誓言眞實故中以捨爲依先已立誓爲他能捨自愛故後以寂靜爲依一切寂靜爲後故初中後以慧爲依若此有彼若此無彼無故
네 가지 근거가 10지와 더불어 서로 포섭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초지로부터 3지까지는 이치에 의거하여 수승하게 된다. 왜냐 하면 이 가운데서는 보살은 단지 닦고 다스려서 진경(眞境)을 관하여 도품(道品)들에 있어서 공행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치에 의거하는 것이 3지를 포섭한다.
4지로부터 6지까지는 사에 의거하여 수승하게 된다. 왜냐 하면 이 가운데서 보살은 진경을 닦고 다스리고 관하여 진경에서 무공용심을 이미 이루어 단지 혹을 대하여 다스리고 도품들을 성취하게 되고, 도품의 관행과 4제의 관행과 12연생의 관행을 닦고 다스림으로 말미암아 모든 혹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에 의거하는 것은 다시 2지(地)를 포섭한다.
016_1208_a_03L四依與十地相攝云何從初地至三地依諦爲勝何以此中菩薩但修治觀眞境於道品等功行未成故依諦攝三地從四地至六地依捨爲勝何以故此中菩薩修治觀眞境已成於眞境無功用心但爲對治惑成就道品等由修治道品觀行四諦觀行十二緣生觀行捨一切惑故依捨又攝二地
7지와 8지는 적정에 의거하여 수승하게 된다. 왜냐 하면 이미 보살도를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혹이 많이 사라지고 많이 굴복하여 다시 마음을 촉할 수 없으며, 이 두 지는 무상과 무공용의 관행을 이미 성취하여 심지(心地)가 미세하게 바뀌어 적정에 편안하게 머물기 때문이다. 적정에 의거하는 것은 또한 2지를 포섭한다.
9지와 10지는 지혜에 의거하여 수승하게 된다. 첫째는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수승함이고, 둘째는 남이 이해하는 것을 수승하게 함이니 모두 다 나를 이익되게 할 수 있고 남을 이익되게 할 수 있어서 이미 적정위를 건너가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많이 행한다.
만약 지혜의 행을 떠난다면 달리 남을 이익되게 하는 방편이 없다. 이 두 지는 지혜를 많이 행하기 때문이다. 지혜에 의거하는 것은 다시 2지를 포섭한다. 이러한 의미를 위해 다른 부분을 간직해서 7아승기가 있다.
016_1208_a_11L七地八地依寂靜爲勝何以故由菩薩道已成就諸惑多滅多伏不復能觸心二地無相及無功用觀行已成就地轉細安住寂靜故依寂靜又攝二九地十地依智慧爲勝一自解勝二令他解勝皆能自利利他己度寂靜位多行利益他事若離智慧行別利他方便由此二地多行智慧故依智慧又攝二地爲此義故別部執有七阿僧祇
016_1208_b_01L【論】또한 어찌하여 다시 33아승기를 말하는가?
【釋】모든 대승의 스승들은 행에 낮음과 중간과 높음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며, 얻지 못한 방편을 얻게 되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며, 이미 얻은 것을 잃지 않는 방편을 드러내고자 하며, 잃지 않는 증상의 방편을 이미 얻음을 드러내고자 하며, 들어가고 머무르며 나오는 세 가지 자재를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에 아승기를 33으로 나눈다.
016_1208_a_21L論曰復次云何三十三阿僧祇釋曰有諸大乘師欲顯行有下中上欲顯爲得未得方便顯已得不失方便欲顯已得不失增上方便欲顯入住出三自在故分阿僧祇爲三十三
【論】방편지 가운데 3아승기가 있으니, 첫째는 신행(信行)의 아승기이고, 둘째는 정진행(精進行)의 아승기이며, 셋째는 취향행(趣向行)의 아승기이다.
【釋】지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방편지이며 둘째는 정지(正地)이다. 정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편 가운데 3아승기가 있다. 이 가운데서 보살은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고 마음으로 발원하며 입으로 서원을 세운다. 여래의 바른 설법을 믿고 여래께서 닦으신 신근을 믿어서 수승하게 된다. 왜냐 하면 증득하지 못한 법을 밝히기 때문이다. 신근을 닦음에 있어서 하나의 아승기를 세우므로 신행이라고 이름한다. 만약 보살이 이미 법(法:교법)을 증득하여 밝히고 신근을 견고하게 한다면 반드시 과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보살의 정진이 수승하게 된다. 왜냐 하면 방편을 얻어 마음을 이미 밝게 깨달아서 즐거움을 아끼지 않고 고통을 싫어하지 않으면서 정진을 닦기 때문이다. 정진을 닦음에 있어서 다시 1아승기를 세워 정진행이라고 한다. 만약 보살이 정진을 성취하여 마음이 청정함을 얻으면 혹장이 이미 없어진다.
016_1208_b_03L論曰方便地中有三阿僧祇一信行阿僧祇二精進行阿僧祇三趣向行阿僧祇釋曰地有二種一方便地二正地未入正於方便中有三阿僧祇此中菩薩奉事諸佛心發願口立誓信如來正及信如來修信根爲勝何以故證法明故約修信根立一阿僧祇爲信行若菩薩已證法明信根轉堅決定知果必應可得此中菩薩精進爲勝何以故於得方便心已明了惜樂厭苦修精進故約修精進又立一阿僧祇名精進行若菩薩精進成就心得淸淨惑障已除
이러한 가운데 보살의 취향이 수승하게 된다. 왜냐 하면 진여를 관함에 있어서 구하여 얻으려는 마음이 생하여 일어나 서로 이어져서 어기고 버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취향에 있어서 다시 하나의 아승기를 세우니 취향행(趣向行)이라고 일컫는다.
016_1208_b_16L此中菩薩趣向爲勝何以故於眞如觀求得之心生起相續無背捨故約此趣向又立一阿僧祇名趣向行
016_1208_c_01L【論】10지 가운데의 각 지지(地地)에 3아승기가 있으니 들어감과 머무름 그리고 나옴이라고 일컫는다.
【釋】피(皮)번뇌의 장애를 제거하기 위하여 초지에 들어가고, 육(肉)번뇌의 장애를 없애기 위하여 초지에 머무르며, 심(心)번뇌의 장애를 없애기 위하여 초지에서 나온다. 왜냐 하면 각 지지의 보살의 번뇌에 세 가지 품류가 있다. 상품을 피(皮)라고 하며, 중품을 육(肉)이라고 하며, 하품을 심(心)이라고 한다. 상품의 것은 하품의 도에 의해 깨뜨려지며, 중품의 것은 중품의 도에 의해 깨뜨려지며, 하품의 것은 상품의 도에 의해 깨뜨려진다. 열 번째의 지에 이르러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016_1208_b_19L論曰於十地中地地各三阿僧祇謂入住出釋曰爲除皮煩惱障入初地爲除肉煩惱障住初地爲除心煩惱障出初何以故地地菩薩煩惱有三品品名皮中品名肉下品名心上品者下品道所破中品者中品道所破品者上品道所破乃至第十地其義亦爾
이러한 세 가지 품류에 결합하기 때문에 각기 3아승기를 세운다. 따라서 다른 부분을 간직하여 33아승기가 있다. 이러한 33아승기는 앞의 3아승기와 더불어 역시 동등하다. 짧고 길다는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앞에 설명한 것과 같다. 세 가지 아승기겁이 있다는 것을 앞에서 이미 설하여 끝마쳤다. 보살은 이와 같은 겁을 지나서 수행하여 위없는 보리를 얻는다. 보살은 시작함이 없는 생사 가운데서 항상 보시 등의 행을 행하고 항상 세상에 나오신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긴다. 어느 때로부터 수행이 시작되는가? 이러한 의미를 드러내기 위하여 혹은 3아승기를 설하고 혹은 7아승기를 설하고 혹은 33아승기를 설한다.
016_1208_c_04L約此三品故各立三阿僧祇故異部執有三十三阿僧祇此三十三阿僧祇與前三阿僧祇亦等無有短長義如前釋前已說有三種阿僧祇劫竟菩薩經如此劫修行得無上菩提菩薩於無始生死中恒行施等恒奉事出世諸佛從何時修行爲或說三阿僧祇或說七阿僧祇說三十三阿僧祇爲顯此義故
【論】이와 같은 아승기를 수행하여 10지의 정행(正行)이 원만하고 선근력(善根力)과 선원력(善願力)이 있다.
【釋】보살은 두 가지 힘을 가지고 있으니 첫째는 선근력이며, 둘째는 선원력이다. 선근력은 모든 산란에 의해 어그러지지 않을 수 있고, 선원력은 어느 때라도 항상 불보살을 만나서 선지식이 된다.
016_1208_c_12L論曰如此阿僧祇修行十地正行圓滿有善根願力釋曰菩薩有二種一善根力二善願力善根力者切散亂所不能違善願力者於一切時中恒値佛菩薩爲善知識
【論】마음이 견고하게 나아가 증상하며
【釋】선지식을 섬김으로써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생할 때마다, 그리고 현세에 항상 선근을 증장시켜 다시 줄거나 잃지 않는다.
016_1208_c_17L論曰心堅進增上釋曰由事善知識不捨菩提心生生及現世恒增長善根無復減失
【論】세 가지 아승기를 지나 정행이 성취된다고 설한다.
【釋】만약 선근력과 선원력을 갖추어서 마음이 견고하다면 네 가지 정의를 증상한다. 이 때를 아승기의 시작으로 삼는 데에는 모든 스승들이 다르게 설하기 때문에 세 종류가 있다. 이와 같은 아승기의 시간을 지나서 바른 행을 닦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설한다.
016_1208_c_20L論曰三種阿僧祇說正行成就釋曰若具善根力善願力心堅增上四義以此時爲阿僧祇之諸師說不同故有三種經如此阿僧祇時說修正行得成就
016_1209_a_01L6. 석의계학승상(釋依戒學勝相)
016_1209_a_01L攝大乘論釋釋依戒學勝相第六

【論】이와 같이 인과에 들어가는 닦음의 차별을 이미 설명하였다. 계학에 의한 차별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釋】앞에 입인과수차별(入因果修差別) 가운데서 이미 모든 지를 간추려서 수행의 차별을 밝혔지만 보살이 계학에 의해 2승과 더불어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016_1209_a_02L論曰如此已說入因果修差別云何應知依戒學差別釋曰前於入因果修差別中已約諸地明修差別明菩薩依戒學與二乘有差別故云何應知
【論】마땅히 보살지에서 바르게 받는 보살계품 가운데서 설하는 것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釋】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십지경(十地經)』의 것이고, 둘째는 『지지론(地持論)』의 것이다. 『십지경』은 이지품(二地品) 가운데서 바르게 받은 보살계법(菩薩戒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지지론』은 시라(尸羅:지계)바라밀품 가운데서 바르게 받은 보살계법을 자세히 설명한다.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016_1209_a_07L論曰應知如於菩薩地正受菩薩戒品中說釋曰地有二一十地經二地持論十地經於二地品中廣說正受菩薩戒法地持論於尸羅波羅蜜品中廣說正受菩薩戒法應如此知
【論】간략하게 설명한다면 네 가지 차별로 말미암아 보살계에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만약 자세히 설명한다면 계(戒)에는 열한 가지 정의가 있다. 첫째는 이름이고, 두 번째는 이름의 의미이며, 세 번째는 상이고, 네 번째는 원인[因]이며, 다섯 번째는 결과[果]이고, 여섯 번째는 대하여 다스림이며, 일곱 번째는 청정함이고, 여덟 번째는 청정하지 않음이며, 아홉 번째는 얻는 방편이고, 열 번째는 어려움을 일으키는 것이고, 열한 번째는 어려움을 구제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해설에 의하지 않으면 간략한 설명이 된다. 또한 만약 아홉 가지 품류의 차별을 갖추어 밝힌다면 자세한 것이 되고, 만약 네 가지 품류의 차별을 설명한다면 간략한 것이 된다.
016_1209_a_12L論曰若略說由四種差別應知菩薩戒有差別釋曰若廣釋戒有十一種義一名二名義三相四因五果六對治七淸淨八不淸淨九得方便十立難十一救難不依此解名爲略說又若具明九品差別爲廣若說四品差別爲略
【論】네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품류의 차별이며,
【釋】만약 품류로써 이것을 포섭한다면 모든 보살계(菩薩戒)는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016_1209_a_18L論曰何者爲四一品類差別釋曰切菩薩戒若以品類攝之不出三種
【論】둘째는 함께하고 함께하지 않는 배우는 곳의 차별이며,
【釋】자성으로부터의 계율[性戒]5)6) 가운데서는 함께 배우는 곳이라고 일컫고, 정하여 금지된 계율[制戒] 가운데서는 함께 배우지 않는 곳이라고 일컫는다. 이 두 가지에 있어서 보살과 2승 모두 차별이 있다.
016_1209_a_20L論曰二共不共學處差別釋曰性戒中名共學處於制戒中名不共學處此二中菩薩與二乘皆有差別
016_1209_b_01L【論】셋째는 넓고 큼의 차별이며,
【釋】이 계율은 2승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016_1209_a_23L論曰三廣大差別釋曰此戒與二乘一向不同
【論】넷째는 매우 깊음의 차별이다.
【釋】여래께서는 2승 가운데서 설하지 않으셨으므로 역시 2승에 의해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다.
016_1209_b_02L論曰四甚深差別釋曰如來不於二乘中說亦非二乘所行
【論】품류의 차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바르게 지켜야 하는 것을 섭지하는 계율이며,
【釋】이 계율은 비구ㆍ비구니ㆍ식차마니(式叉摩尼)7)ㆍ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라고 하는 재가(在家)와 출가(出家) 2부(部)의 일곱 대중에 의해 지켜지는 계율이다.
016_1209_b_04L論曰品類差別者有三種攝正護戒釋曰謂比丘比丘尼式叉摩尼沙彌沙彌尼優婆塞優婆夷此戒是在家出家二部七衆所持戒
【論】둘째는 선법을 섭지하는 계율이며,
【釋】바르게 지켜야 하는 계율을 받음으로부터 뒤에 큰 보리를 얻게 된다. 보살은 모든 선법, 즉 문ㆍ사ㆍ수혜와 몸ㆍ입ㆍ마음의 선과 10바라밀을 생장시킨다.
016_1209_b_07L論曰二攝善法戒釋曰從受正護後爲得大菩提菩薩生長一切善謂聞思修慧及身口意善乃至十波羅蜜
【論】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섭지하는 계율이다.
【釋】간략하게 설하여 네 가지가 있으며 중생의 근성을 좇아서 중생을 선도와 3승에 안립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네 가지가 있다고 하는 것은 첫째는 4악도(惡道)로부터 빼내어 구제하는 것이고, 둘째는 불신과 의혹으로부터 빼내어 구제하는 것이며, 셋째는 바른 가르침을 싫어하고 배척하는 것으로부터 빼내어 구제하는 것이며, 넷째는 하승(下乘)을 원하고 즐기는 것으로부터 빼내어 구제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이 셋은 2승과 차별이 있는가? 2승에는 단지 바르게 지켜야 하는 것을 섭지하는 계율만이 있고, 나머지 두 가지 계율은 없다. 왜냐 하면 2승은 단지 해탈의 장애를 멸하는 것을 구할 따름이고, 모든 지장(智障)을 멸하는 것은 구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을 제도하기를 구하고 남을 제도하는 것을 구하지 않으므로 불법을 성숙시킬 수 없으며 중생을 성숙시킬 수 없다. 따라서 선법을 섭지하는 계율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섭지하는 계율은 없다.
016_1209_b_11L論曰三攝衆生利益戒釋曰略說有四種謂隨衆生根性立衆生於善道及三乘復有四種拔濟四惡道二拔濟不信及疑惑拔濟憎背正教四拔濟願樂下乘何此三與二乘有差別二乘但有攝正護戒無餘二戒何以故二乘但求滅解脫障不求滅一切智障但求自度不求度他不能成熟佛法及成熟衆生是故無攝善法戒及攝衆生利益戒
【論】이 가운데 바르게 지켜야 하는 것을 섭지하는 계율이 나머지 두 가지 계율의 근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만약 사람이 악을 떠나지 않고서도 선을 생할 수 있고 중생을 이익되게 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곳은 없다. 따라서 바르게 지켜야 하는 계율은 나머지 두 가지 계율의 근거이다.
016_1209_b_21L論曰此中攝正護戒應知是二戒依止釋曰若人不離惡能生善及能利益衆生無有是處故正護戒是餘二戒依止
016_1209_c_01L【論】선법을 섭지하는 계율은 불법을 생하여 일으킬 수 있는 의지이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섭지하는 계율은 중생을 성숙시키는 근거이다.
【釋】선법을 섭지하는 계율은 먼저 문ㆍ사ㆍ수의 세 가지 지혜를 섭지한다. 모든 불법은 이것으로부터 생하여 일어난다. 왜냐 하면 모든 불법은 지혜를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섭지하는 계율은 이른바 4섭(攝)이다. 첫 번째의 섭8)은 자신과 권속으로 하여금 악을 배척하고 선을 향하는 것을 이루게 한다. 두 번째의 섭9)은 발심하지 못한 것을 발심하게 한다. 세 번째의 섭10)은 이미 발심하였으면 성숙하게 한다. 네 번째의 섭11)은 이미 성숙하였으면 해탈하게 한다.
016_1209_c_01L論曰攝善法戒是得佛法生起依止攝衆生利益戒是成熟衆生依止釋曰攝善法戒先攝聞思修三慧一切佛法皆從此生起何以故以一切佛法皆不捨智慧故攝衆生戒所謂四攝初攝令成自眷屬背惡向善第二攝未發心令發心第三攝已發心令成熟第四攝已成熟令解脫
이 세 가지 계율은 무슨 법을 원인으로 삼는가? 3근(根)은 개별적인 원인이 되고, 2근(根)은 공통적인 원인이 된다. 3근이 개별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은 정진근(精進根)이 첫 번째 계율의 원인이 되고, 지근(智根)은 두 번째 계율의 원인이 되며, 정근(定根)은 세 번째 계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2근이 공통적인 원인이 된다는 것은 신(信)과 염(念) 두 근이 공통적으로 세 가지 계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또한 다시 6법(法)이 원인이 된다. 첫째는 선지식에 의해서, 둘째는 바르게 듣는 것[正聞]에 의해서, 셋째는 바르게 사유하는 것[正思]에 의해서, 넷째는 신근(信根)에 의해서, 다섯째는 생사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것에 의해서, 여섯째는 자애로운 마음에 의해서이다.
또한 다시 네 가지 원인이 있으니, 첫째는 남으로부터 바르게 받아 얻으며, 둘째는 청정한 뜻으로부터 얻으며, 셋째는 싫어하고 두려워함을 대하여 다스리는 것으로부터 얻으며, 넷째는 계율을 범하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공경하는 생각[憶念]으로부터 얻는다.
016_1209_c_09L此三種戒以何法爲三根爲別因二根爲通因三根爲別因者精進根爲第一戒因智根爲第二戒因定根爲第三戒因二根爲通因者信念二根通爲三戒因復次六法爲因一依善知識二依正聞依正思四依信根五依厭惡生死依慈心復次有四種因一從他正受二從淸淨意得三從厭怖對治得四從不犯戒起恭敬憶念得
또한 다시 네 가지 원인이 있어서 보살계를 청정하게 할 수 있다. 첫째는 계율을 범하는 원인을 떠날 수 있고, 둘째는 계율을 깨뜨리는 것을 대하여 다스리는 것 즉 염처(念處) 등을 의지하며, 셋째는 적정을 의지한다. 이것은 곧 수승하게 생하는 곳[勝生處]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회향하여 모든 중생이 열반을 얻기 때문이다. 넷째는 근본적인 10선(善)을 갖춤으로써 이루게 된 방편으로 말미암는다. 각관(覺觀)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억념에 섭지되지 않는 것을 따르는 것이 불과를 회향하기 때문이다.
016_1209_c_18L復次有四種因能令菩薩戒淸淨一能離犯戒因二依止破戒對治謂念處等依止寂靜謂不依止勝生處迴向爲一切衆生得涅槃故四由具根本十所成方便所隨非覺觀所損憶念所攝迴向佛果故
016_1210_a_01L이 세 가지 계율은 무슨 법으로써 체를 삼는가? 남의 뜻을 방해하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으며, 바른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업을 일으키는 것이 체가 되며, 취(取)를 버리는 것이 유(類)가 된다.
이 세 가지 계율은 무슨 법으로써 씀[用]을 삼는가? 바르게 지켜야 할 계율은 마음을 편안하게 머물게 할 수 있으며, 선법을 섭지하는 계율은 불법을 성숙시킬 수 있으며, 중생을 섭지하는 계율은 중생을 성숙시킬 수 있다. 모든 보살의 바른 일은 이 세 가지 씀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음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으므로 피곤하고 후회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불법을 성숙시킬 수 있다. 불법을 성숙시키기 때문에 중생을 성숙시킬 수 있다.
016_1210_a_01L此三種戒以何法爲體不起惱害他意生善身口意業爲體離取爲類此三種戒以何法爲正護戒能令心安住攝善法戒能成熟佛法攝衆生戒能成熟衆生切菩薩正事不出此三用由心得安住無有疲悔故能成熟佛法由成熟佛法故能成熟衆生
【論】함께 배우는 곳의 계율이란 보살이 성죄(性罪)12)를 멀리 떠나는 것을 말한다.
【釋】살생 등을 성죄라고 한다. 성죄는 반드시 번뇌로 말미암아서 일어난다. 심지(心地)를 더럽힌 다음에 곧 살생 등의 업을 지으며, 또한 제지되기도 하고 제지되지 않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업을 지으면 모두 다 죄를 이루기 때문에 성죄라고 한다. 또한 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시지 않았거나 나오신 뒤에도 제지되지 않는 죄이다. 만약 사람이 이 죄를 짓는다면 세간에서 왕 등이 이치에 맞게 벌로 다스리므로 외도들도 이 죄를 끊게 된다. 출가법을 세우기 때문에 성죄라고 한다. 성죄 가운데서는 보살도 2승과 똑같이 떠나기 때문에 함께 배우는 곳이라고 말한다.
016_1210_a_08L論曰共學處戒者是菩薩遠離性罪戒釋曰生等名性罪性罪必由煩惱起染污心地後則作殺等業又有制無制作此業皆悉成罪故名性罪又如來未出世及出世後未制戒若人犯此於世閒中王等如理治罰外道等爲離此罪立出家法故名性罪於性罪中菩薩與二乘同離故名共學處
【論】함께 배우지 않는 곳의 계율이란 보살이 계율로 세워진 제죄(制罪)13)를 멀리 떠나는 것이다.
【釋】땅을 파고 풀을 뽑는 것 등의 제도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보살은 2승과는 달리 멀리 떠난다. 왜냐 하면
016_1210_a_16L論曰不共學處戒者是菩薩遠離制罪所立戒釋曰謂立掘地拔草等菩薩遠離與二乘不同何以故
016_1210_b_01L【論】가 계율 가운데 성문은 이 곳이 죄가 되지만 보살은 죄가 되지 않기도 하고, 혹은 보살은 이 곳이 죄가 되지만 성문은 죄가 되지 않는다.
【釋】여래의 제계(制戒)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성문은 스스로를 제도하기 위하여 계율을 제정하고, 둘째 보살은 스스로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기 위하여 계율을 제정한다. 성문과 보살이 뜻을 세워 계율을 받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따라서 이 두 사람이 지키고 어기는 것에 차이가 있다. 성문이 만약 안거(安居) 중에 돌아다니면 곧 계율을 어기는 것이고, 돌아다니지 않으면 곧 어기지 않는 것처럼, 보살이 여행을 다니다가 중생에게 이익되는 것을 보고 행하지 않으면 곧 계율을 어기는 것이고, 행한다면 곧 어기지 않는 것이다.
016_1210_a_19L論曰此戒中或聲聞是處有罪菩薩於中無罪或菩薩是處有罪聲聞於中無罪釋曰如來制戒有二種意一爲聲聞自度故制戒二爲菩薩自度度他故制戒聲聞菩薩立意受戒亦復如是故此二人持犯有異如聲聞若安居中行則犯戒不行則不犯菩薩見遊行於衆生有利益不行則犯戒行則不犯
【論】보살은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품류를 다스림으로써 계율로 삼고, 성문은 단지 몸과 입만을 다스리는 것으로써 계율로 삼는다.
【釋】계율의 종류는 같지 않다. 보살계는 세 가지 업의 선행을 체로 삼지만 성문의 계율은 몸과 입의 선행을 체로 삼는다.
016_1210_b_05L論曰菩薩有治身口意三品爲戒聲聞但有治身口爲戒釋曰戒類不同菩薩戒以三業善行爲體聲聞戒以身口善行爲體
【論】따라서 보살은 심지(心地)가 죄를 범하는 것이 있지만 성문은 곧 이러한 일이 없다.
【釋】보살이 만약 일곱 가지 각관(覺觀)들을 갖는다면 보살의 심지(心地)의 죄를 일으켜서 보살계를 범한다. 성문은 이와 같지 않다. 보살계의 공통된 상은 어떠한가?
016_1210_b_08L論曰是故菩薩有心地犯罪聲聞則無此事釋曰菩薩若有七種覺觀起菩薩心地罪犯菩薩戒聲聞則不如此菩薩戒通相云何
【論】간략하게 설명한다면 가지고 있는 신ㆍ구ㆍ의업의 일이 중생에게 이익을 생하면 잘못이 없다. 보살은 이 업을 모두 받아 배워서 수행하여야 한다.
【釋】만약 이익이 있으면서 잘못도 있다면 마땅히 행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여인이 보살에게 “당신이 나를 취하시오. 만약 나를 취하지 아니하고 이곳에 있다면 나는 죽고 말 것이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반드시 당신을 죽일 것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보살이 이 말을 따른다면 그는 죽지 않을 것이고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곧 이익이 있다. 그러나 단지 여인을 취하는 것은 곧 잘못을 이루기 때문에 마땅히 행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익도 없고 과실도 없다면 역시 행하지 말아야 한다. 마치 2승은 남을 이익되게 할 수 없지만 역시 잘못도 없는 것과 같다. 이익이 있으면서 잘못이 없다면 곧 이것은 보살계이다. 마땅히 문혜를 일으켜서 받아들임이 되고, 마땅히 사혜를 일으켜서 배우는 것이 되고, 마땅히 수혜를 일으켜서 수행이 된다.
016_1210_b_12L論曰略說所有身口意業事能生衆生利無有過失此業菩薩皆應受學修行釋曰若有利益有過失不應行譬如女人語菩薩言汝取我若汝不取我有是處我應死若我不死必當殺汝菩薩若隨其語彼則不死又不起惡則有利益但取女人則成過失故不應行若無利益無過失亦不應行如二乘不能利他亦無過失有利益無過失卽是菩薩戒應生聞慧爲受應生思慧爲學應生修慧爲修行
016_1210_c_01L【論】이와 같이 함께하고 함께하지 않는 계율의 차별을 알아야 할 것이다.
【釋】이와 같이 보살은 2승과 더불어 성계(性戒) 가운데서도 역시 차별이 있으니 곧 마음에 지니는 것과 마음에 지니지 않는 것이며, 제계(制戒) 가운데서도 역시 차별이 있으니 남에게 이익되고 남에게 이익되지 않음을 말한다. 따라서 보살은 2승의 계율과는 차별이 있다. 보살과 2승의 계율과는 다시 또 차별이 있으니 넓고 큼의 차별을 말한다. 이 넓고 큼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또한 몇 가지 종류가 있는가?
016_1210_b_23L論曰如此應知共不共戒差別釋曰如此菩薩與二乘於性戒中亦有差別卽心所持及非心所持於制戒中亦有差別謂利他不利他故薩與二乘戒有差別菩薩與二乘戒復有差別謂廣大差別此廣大有何義復有幾種
【論】넓고 큼의 차별이란 네 가지 넓고 큼으로 말미암아 네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넓고 큼에는 네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가장 수승하다는 의미로 오로지 남을 위할 뿐 보은과 생사의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또한 이익이 끝없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의미로 말미암아 수승하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길고 멀다는 의미로 3대겁 아승기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원만하다는 의미로 진경과 속경 그리고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의 경계에 의하여 복덕과 지혜를 생하여 모두 갖추기 때문이다. 넷째는 자재의 의미로 대승광(大乘光) 등의 네 가지 삼마제에 의하여 남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갖가지 방편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016_1210_c_07L論曰廣大差別者知有四種由四種廣大故釋曰大有四義一以最勝義專爲他不求報恩及生死果又利益無窮由此二義故名爲勝二長遠義三大劫阿僧祇修行故三以圓滿義依眞俗及利益他事三境生福德智慧具足故以自在義依大乘光等四種三摩提爲利益他能行種種方便故
【論】첫째는 여러 가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배우는 곳의 넓고 큼이다.
【釋】보살이 배우는 곳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여러 가지이고, 둘째는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는 다양함을 드러내고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크다는 것을 드러낸다. 모든 악을 떠나지 않음이 없고 모든 선을 닦지 않음이 없으며 모든 중생을 제도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라고 한다. 이러한 세 가지 계율을 지켜서 시절에 끝이 없고 공용에 남음이 없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한다.
016_1210_c_15L論曰一種種無量學處廣大釋曰菩薩學處有二義一種種二無量種種顯多無量顯大一切惡無不離一切善無不修一切衆生無不度故名種持此三戒時節無際功用無餘稱無量
【論】둘째는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을 섭지할 수 있는 넓고 큼이다.
【釋】6바라밀과 4섭의 원인과 결과에 각각 아홉 가지 품류가 있어서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이라고 일컫는다. 『지지론』에서 설한 것처럼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의 모임이 모두 보살계가 섭지하는 것이다.
016_1210_c_21L論曰二能攝無量福德廣大釋曰六度四攝因果各有九品是名無量福德如地持論說如此無量福德聚悉是菩薩戒攝
016_1211_a_01L【論】셋째는 모든 중생을 포섭하여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려는 의지의 넓고 큼이다.
【釋】중생을 바르게 가르쳐 나쁜 곳을 떠나게 하고, 바른 곳에 안립하게 하는 것이 이익되게 하려는 의지라고 한다. 이 공덕은 미래에 얻어지는 과보이다. 모든 중생을 뜻대로 수용하기를 원하는 것을 안락하게 하려는 의지라고 한다. 또한 대비(大悲)로써 고통을 제거하는 것을 이익되게 하려는 의지라고 하며, 대자(大慈)로써 안락함을 함께하는 것을 안락하게 하려는 의지라고 한다. 또한 모든 출세간의 일을 얻게 하기 때문에 이익되게 하려는 의지라고 하며, 세간의 수승한 일을 얻게 하기 때문에 안락하게 하려는 의지라고 한다. 또한 이렇게 넓고 큼은 4섭으로써 체를 삼는다. 앞의 두 가지가 섭지하는 것이 이익되게 하려는 의지라고 하고, 뒤의 두 가지가 섭지하는 것을 이익되게 하려는 의지라고 한다.
016_1211_a_01L論曰三攝一切衆生利益安樂意廣大釋曰教衆生令離惡處安立善處是名利益意此功德於未來所得果報願一切衆生如意受用是名安樂意又大悲拔苦名利益意大慈與樂名安樂又令得一切出世事名利益意得世閒勝事名安樂意又此廣大以四攝爲體前二攝名安樂意後二攝名利益意
【論】넷째는 위없는 보리의 근거가 넓고 큼이다.
【釋】보살계에 세 가지 품류와 아홉 가지 품류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계율이 여래의 세 가지 수승한 덕과 아홉 가지 수승한 덕을 섭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게 지켜야 할 계율[正護戒]은 여래의 끊는 덕[斷德]의 원인이 되고, 선법을 섭지하는 계율[攝善法戒]은 여래의 지혜의 덕[智德]의 원인이 되며, 중생을 섭지하는 계율은 여래의 은혜의 덕[恩德]의 원인이 된다. 아홉 가지 품류의 계율은 여래의 아홉 가지 덕의 원인이 된다. 이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과보가 넓고 크기 때문에 원인도 넓고 크다. 과보가 넓고 크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넓고 큰 원인으로부터 생한다는 것이니, 33대겁 아승기를 수행한 10바라밀과 10지 등이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얻어지는 것이 넓고 크다는 것이니 모든 지혜와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섭지되는 여래의 수많은[恒河沙數] 공덕을 말한다. 셋째는 이익이 넓고 크다는 것이니 범부와 3승 그리고 생사가 다한 뒤에[窮生死後際] 이르기까지 이익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네 가지 넓고 큰 계율은 아울러 위없는 보리의 근거이다. 단지 보살만이 닦을 수 있고 2승은 모두 이러한 일이 없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일컫는다.
016_1211_a_10L論曰四無上菩提依止廣大釋曰由菩薩戒有三品及九戒能攝如來三種勝德及九種勝德故正護戒爲如來斷德因攝善法戒爲如來智德因攝衆生戒爲如來恩德因九品戒爲如來九德因此如前說由果廣大故因廣大果廣大有三義一從廣大因生謂三十三大劫阿僧祇修行十度十地等爲因二所得廣大謂一切智一切種智所攝來恒伽沙數功德三利益廣大謂利益凡夫及三乘乃至窮生死後際四種廣大戒竝是無上菩提依止菩薩能修二乘悉無此事故稱差別
016_1211_b_01L【論】매우 깊은 차별이란 것은 만약 보살의 이러한 방편이 수승한 지혜로 말미암아 살생 등의 열 가지 일을 행하더라도 더럽혀지는 과실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생하여 위없는 보리의 수승한 과보를 빠르게 얻는 것을 말한다.
【釋】보살이 참고 행하여지는 방편이 수승한 지혜[方便勝智]대로 행할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두 가지 의미를 드러내게 하는 것과 같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은 일, 어떤 사람이 무간업(無間業) 등의 악업을 반드시 짓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면, 보살은 그 마음을 깨달아 알 수 있지만 이러한 악행을 버리게 할 수 있는 다른 방편이 없다. 단지 명(命)을 끊는 것이 방편이 되어 이러한 악을 짓지 않게 할 수 있다. 또한 이 사람이 명을 버리고 반드시 선도에 생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명을 버리지 않고 이러한 업을 결정코 행한다면 극도로 어려운 곳에 떨어져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다. 보살은 이러한 일을 알아서 이미 이와 같이 생각을 일으킨다. 만약 내가 이러한 살생의 업을 생하여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면 내가 그들을 위해서 이러한 고통의 과보를 받고, 그 사람이 현재의 시간에 조금 가벼운 고통을 받고, 미래의 시간에는 영원하게 큰 즐거움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 비유하건대 훌륭한 의사가 병이 있는 사람을 치료하여 먼저 가벼운 고통을 더하여 뒤에 심한 질병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 보살이 행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보살도에는 복덕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더러움에 물든 잘못을 떠난다. 이로 인하여 헤아릴 수 없는 복덕을 생장하기 때문에 빠르게 위없는 보리를 증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방편이 최상으로 깊어지게 되며, 행익(行益)14) 등을 행하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016_1211_a_23L論曰甚深差別者若菩薩由如此方便勝智行殺生等十事無染濁過失生無量福德速得無上菩提勝果釋曰如菩薩能行如所堪行方便勝今顯此二義若菩薩能知如此事有人必應作無閒等惡業菩薩了知其心無別方便可令離此惡行唯有斷命爲方便能使不作此惡又知此人捨命必生善道若不捨命決行此墮劇難處長時受苦菩薩知此事已作如是念若我行此殺業必墮地願我爲彼受此苦報當令彼人於現在世受少輕苦於未來世久受大譬如良醫治有病者先加輕苦後除重疾菩薩所行亦復如是於菩薩道無非福德故離染濁過失因此生長無量福德故能疾證無上菩提此方便最爲甚深行益等行亦復如
016_1211_c_01L【論】또한 다시 변화(變化)15)에 의해 만들어지는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 있으니, 이것이 보살의 매우 깊은 계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앞에서는 실제의 일만을 밝혔고 통혜(通慧)16)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이 밑으로는 통혜를 밝히고 실제의 일은 거론하지 않는다. 보살계에는 세 가지 품류가 있으니 곧 신(身)ㆍ구(口)ㆍ의업(意業)이다. 의업을 제거하면 변화가 없기 때문에 신업과 구업이 있을 때에는 변화에 의해 일어나니 역시 보살계이다. 이 신의 계율과 구의 계율이 혹은 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두려움으로 나타나고 혹은 환희로 나타나기도 한다.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악처를 멀리 떠나게 하고 선처를 안립하게 한다. 이 계율은 사량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우 깊다고 말한다. 본래 몸과 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계율을 이루는가? 계율의 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악을 떠나 선을 생하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이 변화는 보살의 의업으로부터 생하므로 보살은 의업을 계율로 삼기 때문이다.
016_1211_b_19L論曰復次有變化所作身口業應知是菩薩甚深戒釋曰前明實事非顯通慧此下明通慧不論實事菩薩戒有三品卽身口意業除意業以無變化故身口二業有時變化所亦是菩薩戒此身口戒或現爲善或現爲惡或生怖畏或生歡喜皆令衆生遠離惡處安立善處此戒難思量故言甚深非本身口所作云何成以能成就戒事令衆生離惡生善又此變化從菩薩意業生菩薩以意業爲戒故
【論】이 계율로 말미암아 보살은 어느 때는 대왕의 위에 바로 머물러서 혹은 여러 가지로 중생을 협박하고 괴롭히는 것을 드러내어 중생을 계율 가운데 안립하게 하고,
【釋】중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혹은 마땅히 교화를 기뻐하니 마치 구물두화(拘物頭花)17)가 시원한 달로 인하여 꽃이 피는 것과 같고, 혹은 교화를 마땅히 협박하고 괴로워하니 마치 연꽃이 뜨거운 태양으로 인하여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보살도 역시 이러하다. 마치 나라왕과 선재동자처럼 혹은 좋아할 수 있는 일을 드러내 보이거나 혹은 두려워할 일을 드러내 보여서 중생을 선처에 안립한다.
016_1211_c_07L論曰由此戒有時菩薩正居大王位或現種種逼惱衆生爲安立衆生於戒律中釋曰衆生有二種或宜歡喜教化譬如拘物頭花因涼月開敷或宜逼惱教化譬如蓮花因烈日開敷菩薩亦爾如那羅王及善財童子或現可愛事或現可畏事安立衆生於善處
【論】혹은 여러 가지의 본생(本生)18)을 드러내어 남을 핍박하고 괴롭히며, 상대를 핍박하고 괴롭히며 원망함으로 말미암아 남이 서로 사랑하고 이익되며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釋】중생이 인과를 믿지 않는 삿된 견해를 교화하여 바른 믿음을 얻게 하여 악을 떠나고 선을 닦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본생을 변화시켜 드러낸다. 비순타(毘筍陀)왕이 아이를 버리고 바라문과 함께하는 것이 남을 핍박하여 괴롭히는 것과 같다. 이 아이는 변화시켜 만든 것이다. 왜냐 하면 보살은 이 사람을 핍박하여 괴롭히지 않고 저 사람에게 안락함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약장(藥藏)보살이 미희라(眉稀羅)왕에게 비제가(毘提訶)왕과 함께 하도록 하여 서로 핍박하여 괴롭히게 하는 것과 같다. 이것도 역시 변화시켜 만든 것이어서 뒤에 모두 서로 사랑하고 이익되며 마음이 편안해지게 한다. 보살행이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은 무슨 이익이 있는가?
016_1211_c_14L論曰或現種種本生由逼惱他及逼惱怨對他相愛利益安心釋曰爲化邪見衆生不信因果令得正信離惡修善化現種種本生如毘荀陁王捨兒與婆羅門是逼惱他此兒是化作以故菩薩無逼惱此人生彼人安樂又如藥藏菩薩令眉絺羅王與毘提訶王互相逼惱此亦是化作後悉令相愛利益安心菩薩行如此事有何利益
016_1212_a_01L【論】다른 사람에게 믿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우선이 되고, 뒤에 3승의 성스러운 도 가운데서 그들의 선근이 성숙되게 한다.
【釋】먼저 보살에 대해 믿음이 일어나게 하여야 뒤에 보살의 가르침대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3승의 선근이 모두 성숙하여질 수 있다.
016_1212_a_01L論曰生他信心爲先後於三乘聖道中令彼善根成熟釋曰先令於菩薩生信後則能如菩薩教修行故三乘善根皆得成熟
【論】이것이 보살의 매우 깊은 계율의 차별이라고 일컫는다.
【釋】이러한 실제의 행과 화신에 의해 행하여지는 계율은 하지에서 행하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2승에서 통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깊은 차별이라고 일컫는다.
016_1212_a_04L論曰是名菩薩甚深戒差別釋曰此實行及化身所行戒非下地所能行二乘所能通達故名甚深差別
【論】이러한 네 가지 차별로 말미암아 보살이 받아 지니는 계율의 차별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남으로부터 얻으므로 받는다고 하고 스스로 청정한 뜻을 얻으므로 지닌다고 한다. 또한 처음으로 얻기 때문에 받는다고 하고 받은 뒤로 이내 성불에 이르기 때문에 지닌다고 한다. 또한 계법(戒法)을 수행하기 때문에 받는다고 하고 문구를 기억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닌다고 한다.
016_1212_a_07L論曰由此四種差別應知是略說菩薩受持戒差別釋曰從他得名受自淸淨意得名持又初得名受受後乃至成佛名持又修行戒法名受念文句名持
【論】또한 다시 이러한 네 가지 차별로 말미암아 다시 차별이 있어서 헤아릴 수 없다. 보살계의 차별은 『비나야구사비불략경(毘那耶瞿沙毘佛略經)』19) 가운데 설한 것과 같다.
【釋】이 네 가지 차별로부터 다시 차별이 있어서 헤아릴 수 없다. 왜냐 하면 단지 품류의 차별 가운데서 바르게 지켜야 하는 계율 하나를 취하여 2승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분별한다면 곧 4만 2천을 이룬다. 만약 이 계율과 나머지 두 계율로써 보살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분별한다면 헤아릴 수 없다. 『비나야구사비불략경』 가운데 보살계를 자세히 설하고 있는데 십만 가지 차별이 있다.
016_1212_a_12L論曰復次由此四種差別更有差別不可數量菩薩戒差如毘那耶瞿沙毘佛略經中說釋曰從此四種差別更有差別不可數量何以故但於品類差別中取正護一戒依二乘教分別則成四萬二若以此戒及餘二戒依菩薩教分別不可數量毘那耶瞿沙毘佛略經中廣說菩薩戒有十萬種差別

7. 석의심학처승상(釋依心學處勝相)
016_1212_a_20L攝大乘論釋釋依心學處勝相第七
016_1212_b_01L
【論】이와 같이 이미 계학에 의한 차별을 설명하였다. 심학에 의한 차별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釋】보살의 계율은 2승의 계율과는 이미 차별이 있다. 계율은 선정의 근거가 되고 선정은 계율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보살의 선정은 2승의 선정과는 역시 차별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016_1212_a_21L論曰如此已說依戒學差別云何應知依心學差別釋曰菩薩戒與二乘戒旣有差別戒爲定依止定依戒得成菩薩定與二乘定亦應有差別云何可知
【論】간략하게 설하여 여섯 가지 차별로 말미암아 알아야 한다.
【釋】만약 자세히 설명한다면 대승의 장(藏)에 세워진 삼마발제(三摩跋提)의 체류의 차별은 5백 가지가 있다. 소승의 청정도론(淸淨道論)에 세워진 삼마발제의 체류의 차별은 67가지가 있다. 이제 간략하게 설명하여 겨우 여섯 가지 차별을 밝히니, 마땅히 이 의미를 알아야 할 것이다.
016_1212_b_03L論曰略說由六種差別應知釋曰若廣說如大乘藏所立三摩跋提體類差別有五百種小乘淸淨道論所立三摩跋提體類差別有六十七種今略說止明六種差別應知此義
【論】무엇이 여섯인가? 첫째는 경계의 차별이고, 둘째는 많은 품류의 차별이며, 셋째는 대하여 다스림의 차별이며, 넷째는 좇아 씀의 차별이며, 다섯째는 좇아 이끄는 차별이고, 여섯째는 사(事)로 말미암은 차별이다. 경계의 차별이란 대승의 인식현상을 연하여 경계가 되어 일어나기 때문이다.
【釋】연하여지는 것에는 세 가지 경계가 있다. 첫째는 모든 진여를 연하는 경계이며, 둘째는 모든 글과 말을 연하는 경계이며, 셋째는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연하는 경계이다. 이 세 가지 경계를 대승의 인식현상이라고 한다. 단지 보살의 선정에 연하여지는 것이고 2승의 선정의 경계는 아니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말한다. 다시 『중변론』에 설한 것처럼 열두 가지 경계가 있다.20)
016_1212_b_08L論曰何者爲六一境差二衆類差別三對治差別四隨用差別五隨引差別六由事差別境差別者由緣大乘法爲境起故釋曰所緣有三境一緣一切眞如境二緣一切文言境三緣一切衆生利益事此三境名大乘法但是菩薩定所非二乘定境故言差別復有十二種境如中邊論說
016_1212_c_01L첫 번째는 성립된 경계로 10바라밀은 진여의 열 가지 공덕에 의해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세울 수 있는 경계이며, 법계의 열 가지 공덕이 10바라밀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지니는 경계이며, 문혜(聞慧)로 연하여진 법문을 말한다. 문혜는 아함(阿含)의 체를 얻을 수 있으며, 곧 문혜를 설하여 지님[持]이 된다. 네 번째는 결정하여 지니는 경계이며, 사혜(思慧)로 연하여지는 여리여량(如理如量)한 경계를 말한다. 사혜는 아함과 도리를 간택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익숙한 지혜 때문에 결정하여 지닌다고 말한다. 다섯 번째는 증득하여 지니는 경계이며, 수혜(修慧)로 연하여지는 것을 말한다. 수혜는 도리와 더불어 하나의 체이기 때문에 증득한다고 말하고, 글과 실체적 대상[義]을 섭지할 수 있기 때문에 지닌다고 말한다. 여섯 번째는 통달의 경계이며 초지에서 보게 되는 진여를 말한다. 일곱 번째는 서로 이어지는 경계이며, 2지(地) 이후의 지에서 연하여지는 진여를 말한다. 이미 통달한 진여가 오로지 흐르기 때문에 서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이렇게 서로 이어짐에 연하여지기 때문에 서로 이어지는 경계라고 말한다.
016_1212_b_16L一所成立境謂十波羅蜜是眞如十種功德所成立故二能成立境謂法界十種功德能成立十波羅蜜故三持境謂聞慧所緣法門聞慧能得阿含體卽說聞慧爲四決定持境謂思慧所緣如理如量境思慧能簡擇阿含及道理是熟慧故名決定持五證持境謂修慧所修慧與道理一體故名證能攝文及義故名爲持六通達境謂初地所見眞如七相續境謂二地以去所緣眞如已通達眞如傳流名相續此相續所緣名相續境
여덟 번째는 수승하게 행하는 경계이며, 상이 없고 공용이 없는 마음에 연하여지므로 곧 8지의 경계이다. 아홉 번째는 지혜를 생하는 경계이며, 9지에 연하여지는 지자재(智自在)의 근거가 되는 진여를 말한다. 4무애해(無礙解)를 얻어 다른 지혜를 생할 수 있고, 여래의 법장을 연하여 스스로 출세간과 세간의 지혜를 생할 수 있다. 열 번째는 수승한 경계로 상상품의 지혜에 연하여지는 것을 말한다. 이 지혜는 다시 그 이상이 없으므로 곧 10지의 경계이다. 이 지혜는 10력(力)으로써 체를 삼는다. 끝없는 지혜가 할 수 있는 것을 힘[力]이라고 한다. 이 지혜를 열 가지 경계에 있어서 설하므로 10력이라고 한다. 이 10력은 보살의 10지와 여래의 아홉 가지 바른 일 그리고 끝없는 화신(化身)을 성취할 수 있다. 열한 번째와 열두 번째의 경계는 일체지와 일체종지(一切種智)에 연하여지는 경계를 말하며 곧 여리여량한 경계이다. 이 열두 가지 경계는 모두 사마타비발사나에 연하여지는 경계이다. 모든 정과 혜에 연하여지는 것은 이 열두 가지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016_1212_c_05L八勝行境謂無相無功用心所緣卽八地境九生智境謂九地所緣智自在依止眞如得四無㝵解能生他智又緣如來法藏能自生世出世智十勝境謂上上品智所緣此智無復有上卽十地境此智以十力爲體無邊智能名力此智約十境說名十力此十力能成就菩薩十地及如來九種正事乃至無邊化十一十二境謂一切智一切種智所緣境卽如理如量境此十二境通爲奢摩他毘鉢舍那所緣一切定慧所緣不出此十二境
【論】많은 품류의 차별이란
【釋】네 가지 삼마제가 있으며 5백 가지 선정의 품류이기 때문에 많은 품류라고 말한다. 소승 가운데서는 그 이름조차 들을 수 없는데 어찌 닦고 익힐 수 있겠는가? 따라서 차별이라고 말한다. 이 네 가지 삼마제는 네 가지 덕의 장애, 곧 네 가지 생사를 깨뜨릴 수 있으며, 네 가지 덕의 과보, 즉 정아락상(淨我樂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네 가지 선정을 세워 네 가지 덕의 도로 삼는다.
016_1212_c_17L論曰衆類差別者釋曰有四三摩提是五百定品類故名衆類於小乘中乃至不聞其名何況能修習故言差別此四種三摩提能破四德障卽四種生死得四德果卽淨我樂常故立此四定爲四德道
016_1213_a_01L【論】대승광삼마제(大乘光三摩提)
【釋】대승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성(性)이고, 둘째는 따름[隨]이며, 셋째는 얻음[得]이다. 성은 곧 3무성이며 따른다는 것은 곧 복덕과 지혜의 행에 섭지되는 10지의 10바라밀이 무성(無性)을 좇아 따른다는 것이다. 얻음이란 곧 얻어지는 네 가지 덕의 과보이다. 이 선정은 이 셋을 연하여 경계가 되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선정을 근거하여 무분별지를 얻는다. 무분별지로 말미암아 진여를 비추며, 부처님의 경계에 이르러 다르지 않기 때문에 빛[光]이라고 한다. 또한 열다섯 가지의 빛이 있으며, 공덕이 바깥의 빛보다 수승하기 때문에 빛이라고 한다. 또한 이 선정은 일천제(一闡提)의 습기(習氣)인 무명의 어둠을 깨뜨릴 수 있다. 이 어둠을 대하여 다스리기 때문에 빛이라고 한다. 이 선정은 진여를 연하여 실재로 있으며 얻기 쉽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기 때문에 대정(大淨)에 대한 방편생사의 장애[方便生死障]인 일천제의 습기를 깨뜨릴 수 있다. 이 장애를 깨뜨리기 때문에 크게 깨끗한 과보를 얻는다.
016_1212_c_23L論曰大乘光三摩提釋曰大乘有三義一性二隨三得卽三無性隨卽福德智慧行所攝地十波羅蜜隨順無性得卽所得四德果此定緣此三爲境故名大乘止此定得無分別智由無分別智照眞如及佛不異故名光又有十五種功德勝於外光故名光又此定能破一闡提習氣無明闇是闇對治故名光此定緣眞如實有易得有無量功德故能破一闡提習氣卽是方便生死障於大淨由破此障故得大淨
【論】복덕(福德)을 모으는 왕삼마제(王三摩提)
【釋】모든 선법에서 오직 반야만을 빼고 나머지 모든 것을 복덕이라고 한다. 이 복덕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범부와 2승 그리고 보살이다. 보살은 이 선정으로 말미암아 네 번째의 복덕에서 생하지 못하였으면 생할 수 있고, 늘리지 못하였으면 늘릴 수 있고, 원만하지 못하였으면 원만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모은다라고 말한다. 생하고 늘리고 원만한 세 곳에서 자재하기 때문에 왕이라고 말한다. 자재로 말미암아 보시 등의 10바라밀을 행할 수 있다. 원만한 보리의 자량인 복덕을 행하기 때문에 대아(大我)에 대한 인연생사의 장애인 외도의 아견(我見)의 습기(習氣)를 깨뜨릴 수 있다. 이러한 장애를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대아의 과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다시 모든 선법은 진여를 근거로 하며, 진여는 모든 선법을 모을 수 있다. 따라서 진여를 복덕을 모으는 것이라고 한다. 이 선정은 진여 가운데서 자재를 얻기 때문에 왕이라고 한다.
016_1213_a_12L論曰集福德王三摩提釋曰切善法唯除般若所餘悉名福德福德有四品謂凡夫二乘菩薩菩薩由此定故於四福德未生能生未長能長未圓能圓故名集於生長圓三處自在故名王由自在故能行施等十度圓滿菩提資糧福德行故能破外道我見習氣卽是因緣生死障於大我由破此障故得大我果復次一切善法依止眞如眞如能集一切善名眞如爲集福德此定於眞如中得自在故名爲王
016_1213_b_01L【論】현호(賢護)삼마제,
【釋】현(賢)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눈앞에 드러내어 안락하게 머물 수 있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공덕을 끌어당겨 섭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앞에 드러내어 안락하게 머문다고 하는 것은 이 선정은 보살신(菩薩身)이 허공의 성품을 버리지 않고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벗어나 떠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안락하게 머물 수 있다. 모든 공덕을 이끌어 섭지한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든 선정을 이끌어 섭지할 수 있다는 것이니, 2승이 듣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선정으로 인하여 헤아릴 수 없는 통혜(通慧)를 일으킨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로 말미암기 때문에 보살은 성문이 두려워하는 습기, 즉 대락(大樂)에 대한 있음이 있는 생사[有有生死]의 장애를 떠날 수 있다. 이 장애를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크게 즐거움의 과보를 얻는다. 이 선정은 진여를 연하여 보살의 체로 삼기 때문에 지(智)를 떠나서는 모든 선정과 통혜를 끌어당길 수 없기 때문에 선정으로써 체를 삼는다.
016_1213_a_23L論曰賢護三摩釋曰賢有二義一能現前安樂二能引攝諸功德現前安樂住者此定能令菩薩身不捨虛空性免離三際故得安樂住引攝諸功德者引攝不可數量諸定非二乘所聞知因此一一定起無量通慧由此二義是故菩薩能離聲聞怖畏習氣卽是有有生死障於大樂由破此障故得大樂果此定緣眞如爲菩薩體故離智能引諸定及通慧故以定爲體
【論】수능가마(首楞伽摩)삼마제
【釋】이 선정은 10지 보살과 부처님에 의해 행하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을 얻는다. 왜냐 하면 십지 보살과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수승한 공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능(首楞)이라고 한다. 일체지(一切智)를 얻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고, 둘째는 자신이 청정한 중생과 견줄 수 없다는 것을 보기 때문에 의심이 없다. 셋째는 항상 관(觀)에 있어서 산란함이 없기 때문에 견실한 공덕이며, 넷째는 깨뜨리기 어려운 무명인 지(地)에 머무는 장애를 깨뜨릴 수 있기 때문에 수승한 능력이 있음이다. 네 가지 덕을 갖춘 사람은 이러한 선정에서 얻을 수 있고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가마(伽摩)라고 일컫는다. 이 선정은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많이 행하여 대상(大常)에 대한 있음이 없는 생사의 장애[無有生死障]인 독각승의 자애(自愛)의 습기를 깨뜨릴 수 있다. 이러한 장애를 깨뜨리기 때문에 크게 항상함의 과보를 얻는다. 이상 여러 가지 말로 모든 선정을 통틀어 거론한다.
016_1213_b_10L論曰首楞伽摩三摩提等釋曰定是十地菩薩及佛所行故得此名何以故十地菩薩及佛有四種勝德故名首楞一無怖畏由得一切智故二無疑於淸淨衆生見自身無等故三堅實功德恒在觀無散亂故四有勝能能破難破無明住地障故具四德人於此定能得能行故稱伽摩定多行他利益事能破獨覺自愛習卽是無有生死障於大常由破此障故得大常果等言通擧諸定
【論】갖가지 삼마제의 품류를 포섭하기 때문이다.
【釋】5백 가지의 선정이므로 갖가지라고 말한다. 모두 네 가지 선정의 품류이므로 모두 네 가지 선정에 포섭된다.
016_1213_b_21L論曰攝種種三摩提品類故釋曰五百定名種種皆是四定品類悉爲四定所攝
016_1213_c_01L【論】대치의 차별이란 모든 법을 연하여 통경(通境)의 지혜가 되기 때문이다.
【釋】무분별지는 모든 유위와 무위 등의 모든 법의 진여를 연하여 꿰뚫어 하나의 경계가 된다. 이 지혜는 경계와 더불어 다시 분별하지 않는다.
016_1213_c_01L論曰對治差別者由緣一切法爲通境智慧釋曰無分別智緣一切有爲無爲等諸法眞如爲一境此智與境無復分別
【論】쐐기로써 쐐기를 빼내는 방편과 같기 때문에
【釋】세간에서 나무를 부러뜨리려고 할 때 먼저 미세한 쐐기를 쓰고 뒤에 거친 쐐기를 쓰는 것과 같다. 관을 행하는 사람이 번뇌를 깨뜨리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먼저 하열한 도를 사용하고 다음에 중급의 도를 쓰고 뒤에 수승한 도를 사용한다.
016_1213_c_04L論曰如以楔出楔方便故釋曰如世閒欲破木先用細楔後用麤楔觀行人破煩惱亦爾先用劣道次用中道用勝道
【論】본식(本識) 가운데서 모든 추중(麤重)의 장애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釋】본식이 서로 이어지는 가운데에 번뇌의 업보인 세 가지 품류의 더러운 종자가 있으니 설하여 습기라고 하며, 네 가지 덕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이 선정으로 말미암아 없애지 못한 것은 없앨 수 있고, 이미 없앤 것은 생하지 않게 하며, 다스려져야 할 것과 다스려서 얻어지는 것을 다스릴 수 있어서 2승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말한다.
016_1213_c_08L論曰於本識中拔出一切麤重障故釋曰本識相續中有煩惱業報三品染濁種子說名習氣能障四德由此定故未滅令滅已滅令不生能對治所對治及對治所得二乘悉不同故言差別
016_1214_a_01L【論】좇아서 사용하는 차별이란 현세에 삼마제의 즐거움에 오래 안주하며 뜻대로 수승한 곳에서 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釋】보살의 여러 가지 방편은 마음을 다스려 성숙하게 한다. 마치 연금술사가 금을 정련하여 진짜가 되게 하듯이 이미 마음을 성숙시키고 다스리므로 좇아서 사용한다고 말한다. 왜냐 하면 이 선정으로 말미암아 보살이 불법을 성숙시키려고 한다면 하나의 경계를 연하여 뜻한 대로 오래 머무름을 얻을 수 있으며, 얻지 못한 것은 얻게 하고 이미 얻은 것은 원만하게 한다. 이미 원만한 것은 물러나지 않게 하여 현재세에 이와 같은 능력이 있다. 미래세에 생을 받게 되는 곳에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많이 행할 수 있으며,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는 것을 만나 바른 법을 듣을 수 있으므로 수승하게 생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보살은 수승하게 생하는 곳에서 취하고 머무르며 버리는 세 가지를 얻어서, 뜻에 따라 움직여 쓸 수 있으며 물러나지 않고 다하지 않을 수 있다. 성문승 가운데는 이와 같은 선정이 없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말한다.
016_1213_c_13L論曰隨用差別者於現世久安住三摩提樂中如意能於勝處受生釋曰菩薩種種方便治心令熟猶如金師鍊金使已熟治心說名隨用何以故由此定故菩薩若欲成熟佛法緣一境意能得久住未得令得已得令滿滿令不退於現在世有如此能於未來世所受生處能多行利益衆生事及値佛出世得聞正法名勝生處此定故菩薩於勝生處得取住捨三能隨意運用無退無盡聲聞乘中無如此定故言差別
【論】좇아 끌어당기는 차별이란 모든 세계에 장애가 없는 통혜를 이끌어 올 수 있는 것이다.
【釋】보살은 대사정(大事定)이 있으니, 모든 사(事)21)와 모든 처(處)에서 장애가 없다. 이끌어 온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끌어 오는 주체이며, 정(定)의 세력이 혹은 사람을 따르고 혹은 경계를 따르며 혹은 수행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만약 영리한 근기의 사람이 무위의 경계를 연한다면 들어가고 머물고 나오는 세 가지 자재를 얻는다. 둘째는 이끌려 오는 것이며, 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사(事)를 말하며, 이 사 가운데서 땅을 움직이고 빛을 비추는 등의 수승한 통혜를 빼앗을 수 없다. 드러내어진 사가 모두 마음과 같으므로, 혹이 장애할 수 없고 업이 저지할 수 없기 때문에 장애가 없는 이끌어 옴이라고 일컫는다. 단지 체만이 있고 작용[用]이 없다. 작용은 사의 차별이다. 단지 보살만이 이러한 정을 가지고 있으며 2승에서 닦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말한다.
016_1214_a_02L論曰隨引差別能引無㝵通慧於一切世界釋曰菩薩有大事定謂於一切事及一切處悉無有㝵引有二義一能引謂定勢力或隨人或隨境或隨修利根人緣無爲境得入住出三種自二所引謂定所成事動地放光等於此事中勝通慧不能奪所現事悉如心惑不能障業不能阻故稱無㝵但有體無用用卽事差別但菩薩有此定非二乘所修故言差別
【論】사(事)의 차별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釋】이와 같은 사로 말미암아 보살의 선정은 2승의 선정과는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라는 것은 무엇인가?
016_1214_a_12L論曰由事差別者釋曰由如此事應知菩薩定與二乘定有差別何者爲事
【論】움직이게 하며,
【釋】뜻대로 시방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
016_1214_a_15L論曰令動釋曰如意能動十方世界
【論】빛을 비추며,
【釋】뜻대로 시방세계를 비출 수 있다.
016_1214_a_16L論曰放光釋曰如意能照十方世界
【論】두루 가득하며,
【釋】광명과 법음과 분신(分身)이 뜻대로 시방세계에 두루 가득할 수 있다.
016_1214_a_17L論曰遍滿釋曰光明法音分身如意能遍滿十方世
【論】드러내 보이며,
【釋】나머지 중생도 보살의 통혜를 이어받아 헤아릴 수 없는 세계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볼 수 있다. 보여지는 것을 따라 뜻대로 모두 본다.
016_1214_a_19L論曰顯示釋曰餘衆生承菩薩通慧能見無量世界及諸佛菩薩隨所應見如意皆睹
【論】움직여 변하며,
【釋】4대(大) 등의 성질을 서로 다르게 고칠 수 있다.
016_1214_a_21L論曰轉變釋曰四大等性互令改異
016_1214_b_01L【論】갔다가 돌아오며,
【釋】한 순간 가운데 헤아릴 수 없는 세계를 갔다 돌아온다. 이 통혜는 스스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같이 빠른 통혜이니, 마음이 연하여지는 것처럼 마땅히 생각도 곧 도달한다. 둘째는 몸으로써의 통혜이니, 마치 나는 새와 같다. 셋째는 다르게 바꾸는 통혜이니, 긴 것을 줄여서 짧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016_1214_a_22L論曰釋曰於一剎那中能往還無量世界此通慧自有三種一心疾通慧如心所緣應念卽至二將身通慧如飛鳥三變異通慧謂縮長爲短
【論】먼 것을 재촉하여 가깝게 만들며,
【釋】먼 것을 가깝게 만들어 다시 사이의 틈이 없다. 이에는 세 가지 일이 있으니 보고 듣고 행함을 말한다.
016_1214_b_03L論曰促遠爲近釋曰使遠成近無復中閒此有三事謂見聞及行
【論】거친 것을 바꾸어 미세한 것을 만들며,
【釋】수없는 세계를 인허(隣虛)22)보다 미세하게 하여 인허 가운데 넣는다. 인허는 본래와 같다.
016_1214_b_05L論曰轉麤爲細釋曰令無數世界細於鄰虛入鄰虛中鄰虛如本
【論】미세한 것을 바꾸어 거친 것을 만들며,
【釋】하나의 원자로 수없는 세계를 둘러싼다. 세계는 본래와 같다.
016_1214_b_07L論曰變細爲麤釋曰令一鄰虛苞無數世界世界如本
【論】모든 색(色)을 몸 속에 들어가게 하며,
【釋】모든 희귀한 것에는 많은 종류의 일이 있지만 모두 몸 속에서 나타낸다.
016_1214_b_09L論曰令一切色皆入身中釋曰一切希有有多種事皆現身中
【論】그들과 비슷한 같은 무리로 큰 집회에 들어가며,
【釋】모든 보살이 도리천으로 가는 것처럼 그들과 똑같은 형태의 복장과 음성으로 큰 집회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화하여 제도한다.
016_1214_b_11L論曰似彼同類入大集中釋曰如諸菩薩往忉利天同彼形飾及以音聲入大集中教化度彼
【論】혹은 드러내고 혹은 감추며,
【釋】없는 가운데서 하나를 드러내고 많은 것을 드러낼 수 있으니 드러냄이 있는 가운데 하나의 상이 아니라 많은 상이 감추어져 있다.
016_1214_b_14L論曰或顯或隱釋曰能於無中現一現多爲顯能於有中無一多相爲隱
【論】여덟 가지 자재를 갖춘다.
【釋】여덟이란 숫자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고, 불세존께서 마왕에게 불도를 수행하게 하여 뒤에 성불할 수 있는 것들과 같은 것을 역시 자재라고 한다.
016_1214_b_16L論曰具八自在釋曰八數如前說又如佛世尊令魔王修行佛道後得成佛等亦名自在
【論】다른 신통력을 굴복시키고 가로막으며,
【釋】보살의 선정의 힘으로 말미암아 다른 통혜가 모두 성취되지 않도록 한다.
016_1214_b_18L論曰伏障他神力釋曰由菩薩定令他通慧皆不成就
【論】혹은 그들에게 말을 잘하는 재주를 주기도 하며,
【釋】만약 사람이 어려운 것들을 묻고 싶으나 말의 뜻이 어눌하다면 보살은 그에게 말을 잘하는 재주를 준다.
016_1214_b_20L論曰或施他辯才釋曰若人欲問難辭情拙菩薩能施其辯才
【論】그리고 생각함을 주기도 하며,
【釋】만약 사람이 삿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숙세의 운명을 자세히 알아서 스스로 인과를 체험하게 한다.
016_1214_b_22L論曰及憶念釋曰若人邪見令識宿命自驗因果
016_1214_c_01L【論】기뻐하고 즐거워하며,
【釋】보살은 혹은 지옥에 들어가거나 혹은 굶주리는 세상에 살거나 혹은 질병이 있는 곳에 있더라도 보살이 받은 기쁨과 즐거움과 같이 이 중생을 평등하게 모두 이와 같게 한다. 혹은 단지 즐거움을 주고 혹은 먼저 선정을 주고 혹은 바르게 법문을 들을 때에 이러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60소겁(小劫)을 지나게 하여도 마치 한 순간과 같다고 말한다.
016_1214_b_23L論曰喜樂釋曰菩薩或入地獄生飢饉世或在有疾處如菩薩所受喜樂令此衆生平等皆爾或但與樂或先與定或正聞法時令由此喜樂經六十小劫謂如剎那頃
【論】혹은 광명을 비추고
【釋】다른 지방의 보살을 이끌어 모두 집회에 오게 한다.
016_1214_c_05L論曰放光明釋曰爲引他方菩薩皆來集會
【論】상을 갖춘 큰 통혜를 끌어당길 수 있으며,
【釋】성문의 성스런 통혜처럼 백한 가지의 일을 일으킬 수 있다. 보살의 통혜가 드러내는 일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다. 또한 미처 설하지 못한 일을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에 먼저 이러한 총괄적인 구절을 나타낸다.
016_1214_c_07L論曰能引具相大通慧釋曰如聲聞聖通慧能作百一事薩通慧所現之事不可稱數復欲顯未說事故先摽此摠句
【論】모든 행하기 어려운 것을 이끌어 바르게 행할 수 있으며,
【釋】다른 일을 성취하는 것은 이미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고, 이 밑으로는 다시 보살이 스스로 행하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선정은 보살의 바른 수행을 이끌어 올 수 있으니 2승이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016_1214_c_10L論曰能引一切難行正行釋曰成就他事已如前說此下更明菩薩自行此定能引菩薩正行非二乘所能行
【論】열 가지 어려운 수행을 섭지하여 바르게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釋】이 열 가지 바른 행은 선정의 종류이기 때문에 선정은 이러한 바른 행을 섭지할 수 있다.
016_1214_c_13L論曰以能攝十種難修正行故釋曰十種正行是定種類故定能攝此正
【論】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스스로 받는 어려운 수행이니, 보리(菩提)의 좋은 서원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釋】다른 사람에 의하여 열 가지 서원을 일으킨다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어려운 행이 아니다. 보살은 스스로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지혜가 있어서 방편을 깨우쳐 구별할 수 있는 것이고, 둘째는 자비로움이 있어서 중생을 도울 수 있으며, 셋째는 정근이 있어서 열 가지 서원을 원만하게 이룰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얻기 어려운 것을 보살은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서원을 세울 수 있다. 또한 스스로를 위하여 좋은 서원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것은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인연이 없다면 단지 남을 위하여 받아들이게 되니 이것이 곧 어려움이 된다.
016_1214_c_16L論曰何者爲十一自受難修受菩提善願故釋曰若依他發十此非難行以未成立故菩薩自有三能一有智慧能了別方便二有慈悲能攝衆生三有正勤能成滿十願此三難得菩薩能得由具此三能故不依他自能發願又若爲自身受善此不爲難若無因緣但爲他受則爲難
016_1215_a_01L【論】둘째는 돌이킬 수 없는 어려운 수행이니, 생사의 많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물러나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釋】시작함이 없는 때로부터 받는 생사의 여덟 가지 고통과 발심한 뒤로 마땅히 오랫동안 받게 되는 여덟 가지 고통이 보살의 자비심을 어그러뜨릴 수 없고, 보살을 보리행(菩提行)에서 물러나게 할 수 없다.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지지론(地指論)』과 같다. 따라서 어려운 수행이다.
016_1215_a_01L論曰二不可迴難修由生死衆苦不令退轉故釋曰無始生死八苦及發心後當受長時八苦能違菩薩慈悲退菩薩菩提行廣說如地持論是故難修
【論】셋째는 등지지 않는 어려운 수행이니, 중생이 악을 짓더라도 한결같이 그를 대하기 때문이다.
【釋】중생은 생사 가운데서 항상 악행을 일으킨다. 보살은 잘못을 보지 아니하고 항상 그를 향하여 선을 행하여 해탈하게 하기 때문에 어려운 수행이다.
016_1215_a_05L論曰三不背難修由衆生作惡一向對彼故釋曰衆生於生死中恒起惡行菩薩不觀過失爲令解脫恒向彼行善故難修
【論】넷째는 눈앞에 드러난 어려운 수행이니, 중생을 원망할 일이 있어 눈앞에 드러나도 모든 이익되는 일을 행하기 때문이다.
【釋】만약 중생이 보살에 대하여 극도로 중대한 악을 짓더라도 보살은 그에 대해 큰 은덕으로 그것에 보답하기 때문에 어려운 수행이다.
016_1215_a_09L論曰四現前難修於有怨衆生現前爲行一切利益事故釋曰若衆生對菩薩作極重惡菩薩對彼以大恩德報之是故難修
【論】다섯째는 더러움이 없는 어려운 수행이니, 보살은 세간에서 살더라도 세속의 법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다.
【釋】보살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생사에 들어간다. 이미 생사에 들어가지만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의해 더러움에 물들어지지 않으니, 사랑하지만 더럽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수행이다.
016_1215_a_12L論曰五無染難修菩薩生於世閒爲世法之所染故釋曰菩薩由愛故入生死入生死已不爲世閒八法之所染污愛而不染是故難修
【論】여섯째는 신락(信樂)의 어려운 수행이니, 도달함이 없는 대승을 행하여 넓고 크고 매우 깊은 의미를 신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釋】도달함이 없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는 생각하기 어려운 가르침이고, 둘째는 행하기 어려운 도이며, 셋째는 얻기 어려운 과보이다. 위덕이 원만하고 넓고 큰 이치가 미세하기 때문이다. 매우 깊은 위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여의(如意)23)이며, 둘째는 청정함이며 셋째는 달리 변하지 않는 이치이니, 곧 3무성(無性)의 이치이다. 모두 낮은 지(地)의 경계가 아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어려운 닦음이다.
016_1215_a_16L論曰六信樂難修行於無底大乘信樂廣大甚深義故釋曰無底有三義一教難思二道難行三果難得威德圓滿故廣大理微細故甚深威德有三種一如意二淸淨三無變異卽三無性理竝非下地境界是故難修
016_1215_b_01L【論】일곱째는 통달의 어려운 수행이니, 인식 주관과 인식현상의 두 가지가 자성이 없음을 통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釋】먼저 10해(解)에서 인식 주관[人]이 자성이 없음을 이미 통달하였고, 이제 초지에서 또 다시 인식현상[法]이 자성이 없음을 통달한다. 이 두 가지 공(空)은 있다, 없다라는 성품을 여의었다. 만약 통달할 수 있다면 이러한 법과 더불어 똑같다. 따라서 어려운 수행이다.
016_1215_a_23L論曰七通達難修能通達人法二無我故釋曰先於十解已通達人無我今於初地又通達法無我此二空離有無性若能通達則與此法同是故難修
【論】여덟째는 수각(隨覺)의 어려운 수행이니,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깊고 깊은 불료의경(不了義經)을 이치에 맞게 판별하기 때문이다.
【釋】여래께서 설하신 바른 법은 요의와 불료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중생이 단지 신근(信根)만이 있고 지근(智根)을 갖지 못하였다면 여래께서는 그 신근을 이루기 위하여 2승의 가르침과 같이 불료의를 지어 설하셨다. 또한 교만한 중생을 굴복시키고자 불료의를 지어 설하셨다. 자세히 설명한다면 십칠지론(十七地論)과 같다. 문ㆍ사ㆍ수혜를 일으키기 위하여 요의경을 설하셨다. 불료의경의 말씀이 비밀(秘密)한 뜻이라고 하더라도 이치에 맞게 판별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수행이다.
016_1215_b_04L論曰八隨覺難修諸佛如來甚深不了義經能如理判釋曰如來所說正法不出了義及不了義若衆生但有信根未有智如來爲成其信根故作不了義說如二乘教又欲伏憍慢衆生故作不了義說廣說如十七地論爲生聞思修慧故說了義經不了義經其言秘能如理判是故難修
【論】아홉째는 떠나지 않고 더렵혀지지도 않는 어려운 수행이니, 생사를 끊지 않으며 생사에 오염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釋】자비(慈悲)로 말미암기 때문에 생사를 끊지 아니하고, 반야로 말미암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아서 생사와 열반에 집착하지 않으며 머무르지 않는다. 따라서 어려운 수행이다.
016_1215_b_12L論曰九不離不染難修不捨生死不爲生死染污故釋曰由慈悲故不捨生死般若故不被染污於生死涅槃無著無住是故難修
016_1215_c_01L【論】열째는 가행의 어려운 수행이니, 모든 부처님과 여래께서는 모든 장애를 해탈한 가운데 머물러서 공용을 짓지 아니하고도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행할 수 있으며, 이에 궁생사후제(窮生死後際)에 이르며,
【釋】3신(身)을 갖추어 드러내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과 여래라고 말한다. 모든 장애란 세 가지 장애와 네 가지 장애와 삼십 가지 장애들을 말한다. 법신은 이미 때가 없는 청정을 얻었기 때문에 모든 장애를 해탈한 가운데 머무른다. 법신은 항상 해탈 가운데 머물러서 생사가 다한 뒤의 시기에 법신에 의하여 응신을 일으킨다. 모든 바른 일에 자연스럽게 항상 흐르니 공용을 짓지 아니하고, 응신에 의지하여 화신을 일으켜서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행한다. 근성에 따라 하열한 선근 종자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한다.
016_1215_b_16L論曰十加行難修諸佛如來於一切障解脫中住不作功用能行一切衆生利益事乃至窮生死後際釋曰具顯三身故言諸佛如來一切障謂三障四障三十障法身已得無垢淸淨是故住於一切障解脫中法身常住解脫中窮生死後際依法身起應身於一切正事自然恒流不作功用依應身起化身行一切衆生利益事隨根性令下善種乃至得解脫
【論】이와 같은 가행을 즐거이 닦기 때문이다.
【釋】얻고 싶어하니 즐거움이 되고, 정근을 일으키는 것이 닦음이 된다. 항상 공경수(恭敬修)를 닦는 것이 가행이 되기 때문에 어려운 수행이다.
016_1215_c_03L論曰樂修如此加行故釋曰欲得爲樂起正勤爲修恒修恭敬修爲加行是故難修
【論】수각(隨覺)의 어려운 수행에서 모든 부처님과 여래께서 설하신 불료의경이란 그 의미가 무엇인가? 보살은 이치를 좇아 깨우치고 살펴야 한다.
【釋】열 가지 어려운 수행 가운데 아홉 개의 의미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거듭 설명하지 않는다. 여덟 번째가 이해하기 어려우니, 보살은 마땅히 좇아 깨우치고 살펴야 한다. 모름지기 다시 그 상을 보여야 한다.
016_1215_c_05L論曰於隨覺難修諸佛如來說不了義經其義云何菩薩應隨理覺察釋曰十難修中九義易解故不重釋第八難解菩薩應隨覺察故須更示其相
【論】경에 말씀하신 것처럼 어찌하여 보살은 한 물건도 훼손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도 베풀지 않는가? 보살이 올바르게 수없이, 헤아릴 수 없이 보시할 수 있으려면 그러하여야 한다. 따라서 시방세계에서 보시행을 닦아 서로 이어져 생하여 일어난다.
【釋】보살은 자애(自愛)를 버리고 모든 중생을 거두어 스스로의 체로 삼으니, 모든 행하는 도와 모든 재물이 중생에 속하기 때문에 재물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며 쓰는 사람도 남이 아니다. 그 물건과 그 씀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만약 이와 같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올바르게 보시를 행할 수 있다. 또한 보살은 자애를 버리고 모든 중생을 거두어 스스로의 체로 되삼으니, 모든 중생이 행하는 보시는 곧 보살이 행하는 보시이기 때문이다. 보살은 기쁜 마음을 좇아 일으키고 헤아릴 수 없는 보시의 복을 얻으니 역시 한 물건도 손실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도 보시하지 않았다. 이를 이름하여 옳게 보시를 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016_1215_c_10L論曰如經言云何菩薩不損一物不施一人若菩薩善能行施無量無數於十方世界修布施行相續生起釋曰菩薩捨自愛攝一切衆生爲自體一切行道一切財物悉屬衆生故財非己有用者非他彼物彼用豈關於我若能如此運心則是善能行施復次菩薩捨自愛攝一切衆生爲自體一切衆生行施卽菩薩行施故菩薩起隨喜心得無量施福是不損一物不施一人名善能行施
016_1216_a_01L【論】어찌하여 보살은 참다운 보시를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는가? 보살이 모든 보시를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그러하다.
【釋】만약 보살이 수지(隨至)24) 등의 여덟 가지 보시를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더라도 뜻은 보살의 정심시(淨心施)를 행하는 것만을 즐거워하기에 이른다. 또한 보살이 세간의 집착하는 3륜시(輪施)를 즐거워하지 않더라도, 집착하지 않은 3륜시를 행하기를 즐거워한다. 또한 다시 집착을 즐거움이라고 한다. 만약 보살이 보시의 원인에 집착하고 혹은 보시의 과보에 집착한다면 보시를 즐거이 행한다고 하고, 만약 보살이 보시를 행함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보시를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016_1215_c_20L論曰云何菩薩樂行布施若菩薩不樂行一切施釋曰若菩薩不樂行隨至等八施義至但樂行菩薩淨心復次若菩薩不樂世閒著三輪施樂行不著三輪施復次著名爲樂菩薩著施因或著施果名樂行施菩薩不著行施名不樂行施
【論】어찌하여 보살은 보시에 대해 믿는 마음[信施心]으로 행하는가? 보살이 모든 부처님과 여래를 믿는 마음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러하다.
【釋】보살은 스스로 보시를 증득함으로 말미암아 보시를 행하며, 남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시를 행하지 않는다. 앞의 믿음25)은 뿌리가 있으므로 믿음을 이루고, 뒤의 믿음26)은 뿌리가 없으므로 믿음을 이루지 않는다.
016_1216_a_04L論曰云何菩薩行信施心若菩薩不行諸佛如來信心釋曰由菩薩自證施故行施不由信他故行施前信有根故成信後信無根故不成信
【論】어떻게 보살은 보시를 일으켜 행하는가? 보살은 보시 가운데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한다.
【釋】만약 보살이 자성으로써 보시를 행할 수 있다면 탐욕과 인색함과 질투하는 것 등의 장애가 없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더라도 보시를 행할 수 있다.
016_1216_a_08L論曰云何菩薩發行布施若菩薩於布施中不策自身釋曰若菩薩自性能行施無有貪悋嫉妒等障非策自身方能行施
【論】보살은 어찌하여 항상 보시를 즐기는가[遊戱]? 보살이 보시할 때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하다.
【釋】보살은 때때로 보시하지 아니하고 한 물건을 좇아서 보시하지 아니한다.
016_1216_a_12L論曰云何菩薩恒遊戲布施若菩薩無布施時釋曰菩薩非時不隨一物施
【論】보살은 어떻게 크게 보시를 행할 수 있겠는가? 만약 보살이 바라(婆羅)27)의 상념을 떠난다면 그러하다.
【釋】바라는 두 가지 의미를 이름하여 가리킨다. 첫째는 곧고 참다움[貞實]을 가리키며, 둘째는 산란함을 가리킨다. 곧고 참다움은 곧 직접적인 말이며, 산란함은 곧 비밀한 말이다. 만약 직접적인 말을 취하여 곧고 참다움을 떠난다면 곧 큰 보시와는 서로 어긋난다. 만약 비밀한 말을 취하여 산란함을 떠난다면 곧 큰 보시와는 서로 부합한다. 삼계의 욕망[欲]을 떠난 뒤에 보시를 행하는 때를 이름하여 큰 보시라고 한다. 왜냐 하면 욕망을 떠난[離欲] 보살이 행하는 보시는 갖추어 속박된 범부가 행하는 보시보다 백천만 배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보시와 선정이 서로 방해한다면 큰 보시라고 말할 수 없다. 서로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크다는 이름을 얻는다.
016_1216_a_14L論曰云何菩薩大能行施若菩薩於施離娑羅想釋曰娑羅名目二義一目貞實二目散亂貞實是直語散亂是密語若取直語離貞實則與大施相違若取密語離散亂則與大施相符若離欲三界後行施時名爲大施何以故離欲菩薩行施具縛凡夫行施百千萬倍所不能及若施定互相妨不名大施由不相妨故得大名
016_1216_b_01L【論】어떻게 보살은 보시에 있어서 청정하다고 하는가? 만약 보살이 탐욕과 인색함을 울파제(鬱波提)28)한다면 그러하다.
【釋】울파제는 두 가지 의미를 가리킨다. 첫째는 생하여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며, 둘째는 뿌리를 뽑아버리고 등지는 것을 가리킨다. 생하여 일으킨다는 것은 직접적인 말이며, 뿌리를 뽑아버리고 등진다는 것은 은밀한 말이다. 만약 직접적인 말을 취하여 탐욕과 인색함을 생하여 일으킨다면 곧 청정한 보시와 서로 어긋난다. 만약 밀어(密語)를 취하여 뿌리를 뽑아 탐욕을 버리고 인색함을 등진다면 곧 청정한 보시와 서로 부합한다.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신견(身見)을 없애는 것이다. 신견은 탐욕과 인색함의 근본이다. 버리고 등진다는 것은 탐욕과 인색함을 제거하는 체이다. 보살은 신견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탐욕과 인색함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보시에 있어서 청정하다.
016_1216_a_23L論曰云何菩薩於施淸淨若菩薩鬱波提貪悋釋白鬱波提名目二義一目生起目拔根棄背生起是直語拔根棄背是密語若取直語生起貪悋則與淸淨施相違若取密語拔根棄貪背悋則與淸淨施相符拔根是除身見見是貪悋根本棄背是除貪悋體菩薩能斷身見滅貪悋故於施淸淨
【論】보살은 어떻게 보시에 머물 수 있는가? 보살이 구경후제(究竟後際)에 머물지 않는다면 그러하다.
【釋】구경후제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보시에는 처음과 중간과 나중이 있는데 가장 뒤의 것으로써 구경후제를 삼는다. 이러한 의미에 의거한다면 보시의 최후의 부분에 머물지 않으면서 어떻게 보시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곧 서로 어긋난다. 둘째는 만약 유여열반을 구경이라고 한다면 무여열반을 구경후제라고 한다. 만약 성문승이 무여열반에 머문다고 한다면 다시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도 없으므로 곧 보시에 머물 수 없다. 보살은 대비(大悲)로 인하여 성문이 무여열반에 머무는 것과 같지 않기 때문에 항상 6바라밀을 일으켜 다함이 없다. 만약 이러한 의미에 의거한다면 보시에 머물 수 있다는 것과 서로 부합한다.
016_1216_b_08L論曰云何菩薩能住於施若菩薩不住究竟後際釋曰究竟後際有二一施有初中後以最後爲究竟後若依此義不住施最後分豈得言能住於施此則相違二若有餘涅槃名究竟無餘涅槃名究竟後際若聲聞住無餘涅槃不更起心無利益衆生事則不能住施菩薩依大悲不同聲聞住無餘涅槃故恒起六度無有窮盡若依此義則與能住施相符
【論】어떻게 보살이 보시에 있어서 자재29)하는가? 만약 보살이 보시에 있어서 자재함30)을 얻지 못한다면 그러하다.
【釋】만약 보살이 보시의 장애가 자재하는 것을 얻지 않는다면, 보살은 보시에 있어서 자재함을 얻는다. 예전에 범부의 지(地) 가운데 있을 때 보고 닦은 2혹(惑)이 없는 도의 대치를 일으키려고 하여 곧 일으키기 때문에 자재함을 얻는다. 이제 성인의 위계에 들어가서 도의 대치를 행하기 때문에 보살은 혹에 대하여 자재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보시에 대하여 자재함을 얻을 수 있다.
016_1216_b_18L論曰云何菩薩於施自在若菩薩於施不得自在釋曰若菩薩不得施障自在菩薩於施則得自在昔在凡夫地中見修二惑無道對治欲起便起故得自在今入聖位爲道對治故菩薩於惑不得自在於施能得自在
016_1216_c_01L【論】어떻게 보시에 있어서 다함이 없는가? 보살이 다함이 없음 가운데에 머물지 않는다면 그러하다.
【釋】무여열반을 다함이 없는 것이라고 이름한다. 보살은 성문이 다함이 없음 가운데 들어가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따라서 보살은 보시에 있어서 다함이 없다.
016_1216_c_01L論曰云何菩薩於施無盡若菩薩不住無盡中釋曰無餘涅槃名爲無菩薩不同聲聞入無盡中無利益他事是故菩薩於施無盡
【論】지금까지 보시에서와 같이 지계 내지는 반야에 대해서도 이치에 맞게 알아야 한다.
【釋】지금까지 보시를 설한 것과 같이 보시에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나머지 바라밀을 설하는 것에도 역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말이 있다. 모두 반드시 이치에 맞게 분별하고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016_1216_c_05L論曰施經於戒乃至般若如理應知釋曰如施經說施有不了義語說餘度亦有不了義語皆須如理分判
【論】다시 경전에 말씀하신 것이 있다. 어째서 보살은 살생을 하는가? 만약 보살이 명(命)이 있는 중생이 서로 이어지는 것을 끊는다면 그럴 수도 있다.
【釋】만약 명이 있다고 한다면 곧 업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만약 업이 있다면 곧 혹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세 가지를 갖춤으로 말미암아 6도(道)의 4생(生)이 서로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다. 만약 보살이 그 근성을 좇아 3승의 성스러운 도를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행하여 이 세 가지 법을 끊게 한다면 무여열반의 과보를 얻어서 서로 이어지지 않으니, 곧 명을 끊는 것이기 때문에 살생이라고 말한다.
016_1216_c_08L論曰復有經言云何菩薩行殺生菩薩有命衆生斷其相續釋曰有命則知有業若有業則知有惑具此三六道四生相續不斷若菩薩隨其根性爲說三乘聖道令彼修行斷此三法得無餘涅槃果不相續是斷命故名殺生
【論】어찌하여 보살은 남에 의해 주어지지 않은 것을 빼앗는가? 만약 보살이 남에 의해 주어지지 않은 중생을 스스로 빼앗는다면 그러할 수도 있다.
【釋】보살은 대비(大悲)로써 모든 중생을 포섭하여 스스로의 권속으로 삼아 생사의 준험한 어려움을 떠나게 한다. 그 부모와 주인 등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에 의해 주어지지 않는 것을 빼앗는다고 말한다.
016_1216_c_15L論曰云何菩薩奪非他所與若菩薩自奪非他所與衆生釋曰菩薩以大悲攝一切衆生爲自眷屬令離生死嶮難非彼父母及人主等所與故名奪非他所與
【論】어찌하여 보살이 삿된 음란함을 행하는가? 만약 보살이 욕망의 대상[欲塵]에 대하여 삿된 의(意) 등을 일으킨다면 그러하다.
【釋】보시의 세 가지 업은 음란한 욕망과는 서로 반대된다. 의(意)는 그것이 허망하여 참되지 않아서 많은 악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입[口]은 역시 이와 같은 말을 하고, 몸[身]은 그 일을 행하지 않으니 역시 서로 반대된다. 이것은 곧 욕망의 대상에 대하여 삿된 뜻 등을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삿된 음란함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16_1216_c_19L論曰云何菩薩行邪婬若菩薩於欲塵起邪意等釋曰菩薩三業與婬欲相反意知其虛妄不實爲衆惡本口亦作如此說身不行其事亦是相卽是於欲塵起邪意等故名行邪
016_1217_a_01L【論】어찌하여 보살이 허망한 말[妄語]을 할 수 있는가? 만약 보살이 허망한 것을 말할 수 있음으로써 허망함이 된다면 그러하다.
【釋】모든 인식현상이 모두 다 허망하므로, 보살은 허망함과 같이 말하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일컫는다.
016_1217_a_02L論曰云何菩薩能說妄語若菩薩是妄能說爲妄釋曰一切法皆是虛妄菩薩如虛妄而說故名能說妄語
【論】어찌하여 보살은 이간(離間)하는 말[兩舌]을 행하는가? 만약 보살이 항상 가장 궁극적인 공적한 곳에 머문다면 그러하다.
【釋】이간하는 말은 저 사람과 이 사람을 서로 화합하지 못하게 한다. 보살은 공을 생각하고 공을 말하였는데, 나와 남에게 이것과 저것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면 어떻게 화합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두 가지 말을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016_1217_a_05L論曰云何菩薩行兩舌若菩薩恒住最極空寂處釋曰兩舌令彼此不和菩薩思空說空令自他不見此彼何況和合故名行兩舌
【論】어찌하여 보살이 파류사(波留師)31)에 머물 수 있는가? 만약 보살이 알려진 피안(彼岸)에 머문다면 그러하다.
【釋】직접적인 말에 의거한다면 파류사는 악구(惡口)를 이름하여 가리킨다. 악구에 머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친근해질 수 없다. 보살이 머무는 알려진 피안이란 곧 3무성의 이치이다. 역시 중생에 의하여 친근해질 수 없다. 이러한 이치로써 범부와 2승에 의해 행하여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악구에 머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만약 비밀한 말에 의거한다면 파류사는 피안에 머무는 것을 이름하여 가리킨다. 즉 비밀한 말로써 직접적인 말을 드러낸다.
016_1217_a_08L論曰云何菩薩能住波留師若菩薩住所知彼岸釋曰若依直語波留名目惡口住惡口人不爲他所親菩薩住所知彼岸卽三無性理不爲衆生所親近以此理非凡夫二乘所行處故故名能住惡口又若依密語波留師名目彼岸住卽以密語顯於直語
【論】어찌하여 보살은 서로 응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만약 보살이 모든 법을 나누어 깨뜨려서 종류에 따라 해석할 수 있다면 그러하다.
【釋】보살은 모든 인식현상을 나누어 깨뜨릴 수 있으니 근(根)과 경(境)과 식(識) 모두 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정코 없다는 것도 아니고, 역시 결정코 있는 것도 아니다. 있다, 없다를 모두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서로 응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016_1217_a_16L論曰云何菩薩能說不相應語若菩薩能分破諸法隨類解釋曰菩薩能分破諸法謂根塵識皆無所有此無所有非定是無非定有有無悉不可得故名能說不相應語
016_1217_b_01L【論】어찌하여 보살은 아비디하루(阿毘持訶婁)32)를 행하는가? 만약 보살이 거듭거듭 스스로 위없는 모든 선정을 얻게 한다면 그러하다.
【釋】만약 직접적인 말에 의거한다면 아비디하루는 탐욕을 이름하여 가리킨다. 탐욕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바깥의 차별적 대상[外塵]을 애착하고 즐기지만 보살은 항상 스스로 가장 수승한 선정을 얻게 하는 것을 즐긴다. 따라서 탐욕을 행한다고 말한다. 또한 비밀한 말에 의거한다면 아비디하루는 거듭거듭 선정을 얻는 것을 이름하여 가리킨다. 곧 비밀한 말로써 직접적인 말을 드러낸다.
016_1217_a_21L論曰云何菩薩行阿毘持訶婁若菩薩數數令自身得無上諸釋曰若依直語阿毘持訶婁名目貪欲行貪欲者必愛樂外塵菩薩恒樂令自身得最勝定故名行貪欲又若依密語阿毘持訶婁名目數數得定卽以密語顯於直語
【論】어찌하여 보살은 미워하고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는가? 만약 보살이 스스로와 남의 심지(心地)에서 모든 혹을 해칠 수 있다면 그러하다.
【釋】성내는 것은 미워하고, 해치려는 것으로써 상을 삼는다. 보살이 짓는 뜻은 자신과 남의 모든 번뇌를 끊고자 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016_1217_b_04L論曰何菩薩起憎害心若菩薩於自他心地能害諸惑釋曰瞋恚以憎害爲菩薩作意欲斷自他一切煩惱故名起憎害心
【論】어찌하여 보살은 삿된 견해를 일으키는가? 만약 보살이 모든 곳에서 두루 행하는 삿된 성질을 이치에 맞게 관찰한다면 그러하다.
【釋】대승에서는 분별이 있는 것을 삿된 성질로 삼는다. 분별성이 의타성에서 두루 행하는 것이 곧 삿된 성질이다. 만약 분별을 떠난다면 인식 주관[人]과 인식현상[法]이 공한 진실한 성질이라고 말한다. 소승은 신견으로써 삿된 성질을 삼는다. 이러한 신견으로 인하여 모든 혹을 생하기 때문에 만약 신견을 떠나면 모든 삿된 집착도 모두 일어날 수 없어서 인식 주관이 공한 진실한 성질을 얻는다. 보살은 이러한 삿된 성질을 이치에 맞게 관찰하여 그것이 삿된 것임을 보기 때문에 삿된 견해를 일으킨다고 일컫는다.
016_1217_b_08L論曰云何菩薩起邪若菩薩一切處遍行邪性如理觀釋曰大乘以有分別爲邪性別性遍行於依他性卽是邪性若離分別名人法空眞性小乘以身見爲邪性因此身見生諸惑故若離身見一切邪執皆不得起得人空眞性薩能如理觀察此邪性見其是邪故名起邪見
【論】다시 부처님의 인식현상[法]33)이 매우 깊다는 경전의 말씀이 있다.
【釋】먼저 6바라밀을 밝히고 다음에 10악(惡)을 드러낸다. 이 밑으로는 도와 도의 과보를 밝히기 때문에 매우 깊다고 말한다.
016_1217_b_16L論曰復有經言佛法甚釋曰初明六度次顯十惡此下明道及道果故言甚深
【論】무엇이 매우 깊음인가? 이 논서 가운데서 스스로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을 자세히 분별한다. 법신이 항상 머물기 때문에 항상 머문다는 것이 성품이 된다.
【釋】모든 부처님의 법은 법신에 의거한다. 법신으로써 우두머리를 삼기 때문에 법신이 항상 머무는 것을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의 성품으로 삼는다.34)
016_1217_b_18L論曰何者甚深此論中自廣分別一切佛法住爲性由法身常住故釋曰諸佛法身常住一切佛法皆依法身以法身爲上首故法身常住爲一切佛法
016_1217_c_01L【論】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모든 것을 끊음으로써 성품을 삼는다.35) 모든 장애가 끊어져 다하기 때문이다.
【釋】하나하나의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모두 혹장(惑障)과 지장(智障)이 없기 때문에 장애가 끊어져 다함으로써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의 성품이라고 한다. 현재의 번뇌가 사라짐으로써 끊음이 되고 미래의 번뇌가 생하지 않음으로써 다함이 된다. 곧 다하고 생하지 않는 지혜이다.
016_1217_b_23L論曰一切佛法皆斷爲性由一切障皆斷盡故釋曰一一佛法悉無惑障及智障故障斷盡爲一切佛法性現在煩惱滅爲斷未來煩惱不生爲卽是盡無生智
【論】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생하여 일어나는 것을 성품으로 삼는다. 화신이 항상 생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釋】자비로 말미암아 본래의 서원이 화신을 생하여 일으켜서 서로 이어져 다함이 없기 때문에 화신이 생하여 일어나는 것을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의 성품이라고 한다.
016_1217_c_04L論曰一切佛法生起爲性由化身恒生起故釋曰由慈悲本願生起化身相續無盡故化身生起爲一切佛法性
【論】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얻을 수 있음을 성품으로 삼는다. 중생의 팔만 사천의 번뇌를 함께 대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釋】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얻는 것이 없음을 성품으로 삼는다. 이것이 바른 설명이다. 3무성으로 말미암아 있다, 없다를 정하여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얻음이 없는 것을 성품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역시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만약 부처님의 인식현상을 떠난다면 대치되는 혹을 깨우쳐 분별할 수 없고 대치하는 도를 안립하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016_1217_c_07L論曰切佛法能得爲性能得共對治衆生八萬四千煩惱行故釋曰一切佛法以無所得爲性此是正說由三無性不可定說有無故雖以無得爲性亦有能得義若離佛法不能得了別所對治惑不能得安立能對治道故
【論】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탐욕이 있는 것으로써 성품을 삼는다. 탐욕이 있는 중생을 사랑하고 포섭하여 스스로의 체를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성냄이 있는 것을 성품으로 삼으며,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어리석음이 있는 것으로써 성품을 삼는다.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범부의 인식현상으로써 성품을 삼는다.36)
【釋】이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보살은 모든 탐욕이 있는 중생을 포섭하여 스스로의 체로 삼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모두 스스로의 체를 의거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비(大悲)를 사랑으로 삼는데, 사랑은 곧 탐욕이다. 보살은 대비로써 모든 중생을 포섭하고 대비에 의하여 복덕과 지혜의 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성냄과 어리석음 그리고 범부의 인식현상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016_1217_c_13L論曰一切佛法有欲爲性有欲衆生愛攝令成自體故一切佛法有瞋爲一切佛法有癡爲性一切佛法凡夫法爲性釋曰此有二義一菩薩攝一切有欲衆生爲自體一切佛法皆依自體故二大悲爲愛愛卽是欲菩薩以大悲攝一切衆生依大悲生福德智慧行故瞋癡及凡夫法亦爾
016_1218_a_01L【論】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더러운 집착이 없는 것으로써 성품을 삼는다. 진여를 성취하여 모든 장애가 더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釋】도(道) 뒤의 진여가 모든 장애를 끊어 다하는 것이 무구청정이기 때문에 성취라고 말한다. 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이러한 진여로써 체성이 되기 때문에 모든 장애에 더럽혀질 수 없다.
016_1217_c_21L論曰一切佛法無染著爲性成就眞一切障不能染故釋曰道後眞如斷一切障盡是無垢淸淨故名成一切障所不能染一切佛法以此眞如爲體性故
【論】모든 부처님의 인식현상은 물들고 집착할 수 없어서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더라도 세간의 인식현상에 물들여지지 않는다.
【釋】앞에서 진여의 경계를 밝혔고 이것은 진여의 지혜를 밝힌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은 진여의 지혜로써 체를 삼으니 곧 응신이다. 이 체는 진여에 의해 드러나는 유식이며, 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근과 차별적 대상이 아니며, 탐욕과 성냄 등의 혹에 의해 물들고 집착하여지는 여덟 가지 세간의 법과 세간의 법에 의해 일으켜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것들을 대하여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닦아서 무분별지를 성취하는 것을 얻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고 말한다.
016_1218_a_03L論曰一切佛法不可染著諸佛出現於世非世法所能染故釋曰前明眞如境此明眞如諸佛菩薩以眞如智爲體卽是應此體是唯識眞如所顯非根塵分別所起非八種世法及世法所起瞋等惑所能染著何以故是彼對治修得無分別智成就名諸佛出現於世
【論】따라서 부처님의 법이 매우 깊다고 말한다.
【釋】이 말은 앞의 뜻을 끝맺어 사유하기 어렵고 생하기 어려우며 얻기 어려움을 보인다. 세 가지 의미를 갖추었기 때문에 매우 깊다.
016_1218_a_11L論曰是故說佛法甚深釋曰此語結前意示難思難行難得具三義故甚深
016_1218_b_01L【論】바라밀을 수행하기 위해서, 중생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불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모든 부처님의 법을 이끌어 섭지하기 위하여 보살삼마제의 업의 차별을 알아야 한다.
【釋】이 논서 가운데 보살삼마제를 밝혔지만 사(事)의 차별은 달리 설하지 않고 단지 업의 차별을 꿰뚫어 설하였다. 모든 보살이 닦는 선정에는 총체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이 있다. 총체적인 것에는 이 네 가지가 있고, 개별적인 것에는 5백 가지가 있다. 이 네 가지는 모든 선정의 공통된 업이다. 왜냐 하면 모든 보살은 이미 선정을 닦아 얻었으며 이 선정에 의거하여 10바라밀을 수행하며 이 선정에 의거하여 중생을 성숙하게 한다. 어떻게 중생을 성숙하게 하는가? 이 선정에 의거하여 통혜를 일으켜 이끌어서 정정위(正定位)에 들어가게 한다. 또한 이 선정의 힘에 의거하여 불토를 청정하게 한다. 왜냐 하면 마음의 자재로 말미암아 뜻과 같이 금보(金寶) 등의 정토를 이룰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선정에 의거하여 현재에 안락하게 머물 수 있어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이끌어 섭지하여 성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네 가지 사(事)가 모든 선정을 꿰뚫는 차별의 업이다.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016_1218_a_13L論曰爲修行波羅爲成熟衆生爲淸淨佛土爲引攝一切佛法故菩薩三摩提業差別應釋曰此論中明菩薩三摩提別說事差別但通說業差別諸菩薩修定有摠有別摠有此四別有五百此四是諸定通業何以故諸菩薩修得定已依此定修行十度依此定成熟衆生云何成熟衆生依此定起通引令入正定位又依此定力淸淨佛土何以故由心自在如意能成金寶等淨土故又依此定得現在安樂能引攝成熟一切佛法故此四事是一切定通差別業應如此知
攝大乘論釋卷第十一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sakṛd-āgāmin의 음사. 일래(一來)라고 한역한다. 소승불교에서 성자의 위계를 넷으로 나누어 세운 4과(果) 중의 두 번째 위계.
  2. 2)anāgāmin의 음사. 불환(不還) 또는 불래라고 한역한다. 사과 중의 세 번째 위계.
  3. 3)범어로는 kulaṃkula이다. 소승의 18유학(有學)의 하나로 욕계에서 삼품 또는 사품의 미혹을 끊은 사람으로 일래의 성자를 말한다.
  4. 4)범어로는 vyākaraṇa이며 미래세의 증과(證果)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말한다. 즉 수행자가 미래에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5. 5)성죄(性罪)를 멀리 떠나는 계율을 말하며, 성죄는 뒤에 설명한다.
  6. 6)제죄(制罪:현장 역에는 차죄(遮罪)로 번역)를 멀리 떠나는 계율. 제죄는 뒤에 설명한다.
  7. 7)śikṣamāṇā의 음사. 비구니가 되는 대계(大戒)를 받을 준비의 수행을 하고 있는 사미니를 말한다.
  8. 8)보시섭(布施攝)을 말한다.
  9. 9)애어섭(愛語攝)을 말한다.
  10. 10)이행섭(利行攝)을 말한다.
  11. 11)동사섭(同事攝)을 말한다.
  12. 12)범어로는 prakṛti-sāvadya이며, 번뇌로부터 일어나는 죄를 말한다.
  13. 13)범어로는 pratikṣepaṇa-sāvadya이다. 제도적으로 죄라고 간주되는 죄를 말한다.
  14. 14)『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서는 좌선을 행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나, 이익되는 것(수행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행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15. 15)nairmāṇika로 불가사의한 힘이 무언가에 이끌려서 나오는 마음. 즉 같은 물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듯이 사유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힘, 예를 들어 원력이나 번뇌 등에 의해 변형되는 마음의 작용양상을 말한다. 또는 신통에 의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16. 16)abhijñā로 6신통을 근본으로 하는 지혜를 말한다. 또는 pratisaṃvid로 4무애혜를 가리키기도 한다.
  17. 17)kumuda의 음사. 황련화(黃蓮花)로 번역한다.
  18. 18)범어로는 jātaka로 ‘~로 야기되다, ~를 타고나다’의 의미이다. 석존의 전생담(前生譚) 또는 부처님의 전생에 있었던 보살행 등을 말한다.
  19. 19)범어로는 vinaya-ghoṣ a-vaipulya-sūtra이나, 현존하지 않는다.
  20. 20)『중변분별론』 진제 역, 대정장 31권, p. 463 b 참조.
  21. 21)vastu. 정지(正智)의 작용을 말한다.
  22. 22)paramāṇu로 극미(極微)라고도 한다.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 원자(原子).
  23. 23)뜻과 같다는 뜻으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무분별지의 이명(異名)이다.
  24. 24)수지시(隨至施). 자신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따라 보시하는 것을 말한다.
  25. 25)보시에 대해 믿는 마음.
  26. 26)모든 부처님과 여래를 믿는 마음.
  27. 27)sāra의 음사(音寫). 어떤 물질의 핵, 견실함 등의 의미.
  28. 28)utpādita의 음사. 일으킨다는 의미.
  29. 29)범어로는 adhipati이며, 증상하여 다스린다는 의미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30. 30)범어로는 vaśitā이며, 자재(自在)로 번역한다. 의미상으로 보시에 있어서 일체의 장애가 자재하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31. 31)pāruṣya의 음사(音寫)로 악구(惡口)라고 한역한다. 악구는 남에게 험한 말을 하는 것을 말하나, 여기에서는 비밀한 의미를 취한다.
  32. 32)abhidhyā의 음사로 탐욕(貪欲)이라고 한역한다.
  33. 33)불법(佛法)은 많은 경우에 부처님의 가르침 또는 교법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나, 여기에서는 부처님의 인식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 같다.
  34. 34)여기에서 앞의 주석의 내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35. 35)여기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한다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맞지 않는다. 인식현상이 공(空)함을 근거로 하여 법계가 드러나며, 법계를 증득함으로써 법신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모든 것을 끊는 것으로써 부처님의 인식현상의 성품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36. 36)여기에서도 법(法)을 가르침으로 번역한다면 모두 성립할 수 없는 내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