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攝大乘論釋卷第十四

ABC_IT_K0590_T_014
016_1240_b_01L
섭대승론석 제14권
016_1240_b_01L攝大乘論釋卷第十四


세친 해석
진제 한역
변상섭 번역
016_1240_b_02L世親菩薩釋
陳天竺三藏眞諦譯


10. 석지차별승상 ②
016_1240_b_04L釋智差別勝相第十之二

【論】이 법신을 섭지하는 부처의 인식현상은 몇 가지가 있다고 알아야 하는가?
【釋】법신을 섭지하는 체를 드러내기 위하여 이 문제를 묻는 것이며, 법신을 섭지하여 증득하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문제를 묻는다.
016_1240_b_05L論曰有幾種佛法應知攝此法身釋曰不爲顯攝法身體故爲此問顯攝法身證得故爲此問
【論】간략하게 설한다면 여섯 가지가 있다.
【釋】만약 자세히 설한다면 헤아릴 수 없는 종류가 있지만 지금은 간략하게 설하기 때문에 여섯 가지를 말하는 데 그친다.
016_1240_b_08L論曰略說有六種釋曰若廣說有無量今略說故止言六種
【論】첫째는 청정한 부류인 인식현상이니,
【釋】부정품을 멸하여 없애고 법신을 증득하니 청정한 인식현상이라고 이름한다. 어떻게 이 청정한 인식현상을 얻는가?
016_1240_b_10L論曰一淸淨類法釋曰滅不淨品盡證得法名爲淸淨法云何得此淸淨法
【論】아리야식의 의지1)를 전변하기2) 때문이며,
【釋】대하여 다스림을 일으킬 때에 본식의 부정품인 한 부분을 떠나서 본식의 정품인 한 부분과 더불어 상응하므로 전의라고 이름한다.
016_1240_b_12L論曰由轉阿黎耶識依故釋曰治起時離本識不淨品一分與本識淨品一分相應名爲轉依
【論】법신을 증득하기 때문이다.
【釋】이 전의로 말미암아 금강도(金剛道) 뒤에 법신을 증득한다. 멸하는 덕(德) 이외의 나머지 모든 덕을 청정한 인식현상이라고 한다. 증득한 부류이기 때문에 청정한 부류의 인식현상이라고 일컫는다.
016_1240_b_15L論曰證得法身故釋曰由此轉依金剛道後證得法身滅德以外其餘諸德名淸淨法是證得類故名淸淨類法
【論】둘째는 과보의 부류인 인식현상[果報類法]이니,
【釋】여래의 인식현상은 과보의 부류이다. 색(色) 등을 보는 지혜를 과보의 인식현상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이 과보인 인식현상을 얻는가?
016_1240_b_18L論曰二果報類法釋曰有如來法是果報類如見色等智名果報法何得此果報法
【論】대상성이 있는 근[有色根]3)의 의지를 전변하기 때문이며,
【釋】대하여 다스림을 일으킬 때에 안 등의 5근의 색식(色識)4)을 멸하는 것을 전의(轉依)라고 이름한다.
016_1240_b_21L論曰由轉有色根依故釋曰對治起時滅眼等五根色識名爲轉依
016_1240_c_01L【論】과보인 수승한 지혜를 증득하기 때문이다.
【釋】이 전의로 말미암아 모든 부처님께서는 과보의 부류인 지혜를 얻는다. 이 지혜는 다섯 가지 차별적 대상[五塵]5) 가운데에서 시방세계의 중생의 5근에 의해 생하여지는 식에 해당한다. 이 지혜는 다섯 가지 차별적 대상 가운데서 일어나기 때문에 과보의 부류라고 말한다. 이 과보의 부류인 인식현상이 증득한 부류이기 때문에 과보의 부류인 인식현상이라고 말한다.
016_1240_c_01L論曰由證得果報勝智故釋曰由此轉依諸佛得果報類智此智於五塵中當十方世界衆生五根所生識此智於五塵中起故名果報類此果報類法是證得類名果報類法
【論】셋째는 머무는 부류의 인식현상[住類法]이니,
【釋】여래께서 두루 모든 인식현상을 증득하므로 머무는 인식현상이라고 이름한다. 어떻게 이 머무는 인식현상을 얻는가?
016_1240_c_06L論曰三住類法釋曰如來遍證得一切法名爲住法云何得此住法
【論】욕계의 차별적 대상[欲塵]을 받아들여 행하는[行]6) 의지를 전변하기 때문이며,
【釋】대하여 다스림을 일으킬 때에 세간에서 욕계의 차별적 대상을 받아들여 행하는 식을 멸하기 때문에 전의라고 한다.
016_1240_c_08L論曰由轉受行欲塵依故釋曰對治起時滅世閒受行欲塵識故名轉依
【論】헤아릴 수 없는 지혜가 머물기 때문이다.
【釋】이 전의로 말미암아 여래는 헤아릴 수 없는 지혜의 머묾을 얻는다. 헤아릴 수 없는 경계를 모두 잊고 상실하지 않는다. 이 지혜는 곧 중생에 있어서 욕계의 차별적 대상을 받아들여 행하는 촉(觸) 가운데 잊고 상실함이 있는 것에 해당한다. 식은 곧 4불호(不護)의 체이다. 이 머무는 부류의 인식현상은 증득한 부류의 인식현상이기 때문에 머무는 부류의 인식현상이라고 한다.
016_1240_c_10L論曰由無量智慧住故釋曰由此轉依如來得無量智住無量境皆不忘失此智卽當受行欲塵觸中有忘失識卽是四不護體此住類法是證得類故名住類法
【論】넷째는 자재하는 부류의 인식현상[自在類法]이니,
【釋】모든 곳에서 수승한 공능에 걸림이 없으므로 자재하는 인식현상이라고 이름한다. 어떻게 이 자재하는 인식현상을 얻는가?
016_1240_c_15L論曰四自在類法釋曰一切處勝能無礙名爲自在法云何得此自在法
【論】여러 가지 업(業) 등을 섭지하여 자재하는 의지를 전변하기 때문이며,
【釋】세간 가운데 여러 가지 업이 있어서 작물을 재배하고 장사를 하든가 혹은 가축을 키워서 재물을 모으는 것과 같이 이러한 여러 가지 사업을 섭지한다. 대하여 다스림을 일으킬 때에 이 업 등의 식을 멸하므로 전의라고 이름한다.
016_1240_c_17L論曰由轉種種業等攝自在依故釋曰於世閒中有種種諸業如耕種商賈等或蓄聚財物攝此種種事業對治起時滅此業等名爲轉依
【論】이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시방세계에서 걸림이 없는 6신통의 지혜가 자재하기 때문이다.
【釋】이 전의로 말미암아 시방세계에서 걸림없는 6신통[六通]의 지혜를 얻는다. 이 자재하는 인식현상은 증득한 부류이기 때문에 자재하는 유(類)의 인식현상이라고 한다.
016_1240_c_21L論曰由此於一切十方世界無㝵六通智自在故釋曰由此轉依於十方世界得無㝵六通此自在法是證得類故名自在類
016_1241_a_01L【論】다섯째는 언설하는 부류의 인식현상이니,
【釋】여래는 함께하지 않음이 있어서 4무애해(無礙解)를 얻어 바른 설법 가운데 수승한 공능을 충분히 갖추므로 언설의 인식현상이라고 일컫는다. 어떻게 이 언설의 인식현상을 얻는가?
016_1241_a_02L論曰五言說類法釋曰如來有不共得四無㝵解於正說中具足勝能名言說法云何得此言說法
【論】모든 언설을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의지를 전변하기 때문이며,
【釋】세간 가운데에 네 가지 언설을 견문각지함이 있다. 6식의 경계에 의하여 의식을 일으켜서 분별한다. 이 분별로 말미암아 네 가지 언설을 생한다. 대하여 다스림을 일으킬 때에 이 언설하는 식을 멸하므로 전의라고 이름한다.
016_1241_a_04L論曰由轉一切見聞覺知言說依故釋曰於世閒中有見聞覺知四種言依六識境起意識分別由此分別生四種言說對治起時滅此言說識名爲轉依
【論】이것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의 마음을 만족하게 채울 수 있는 바른 설법의 지혜가 자재하기 때문이다.
【釋】이 전의로 말미암아 여래는 네 가지 언설 가운데 함께하지 않는 4무애해를 얻어서 중생의 근성에 맞출 수 있다. 뜻대로 인식현상을 설하여 모두에게 과를 얻게 한다. 이 언설의 인식현상은 증득한 부류이기 때문에 언설의 부류의 인식현상이라고 한다.
016_1241_a_09L論曰由此能飽滿一切衆生心正說智自在故釋曰由此轉依如來於四言說中得不共四無㝵解能稱衆生根性如意說法皆令得果此言說法是證得類故名言說類法
【論】여섯째는 뽑아내어 구제하는 부류의 인식현상[拔濟類法]이니,
【釋】모든 부처님께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려는 뜻이며, 곧 대비(大悲)이다. 어떻게 이 뽑아내어 구제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가?
016_1241_a_14L論曰六拔濟類法釋曰諸佛利益安樂衆生意卽是大悲何得此拔濟
【論】모든 재앙과 횡액과 과실을 뽑아내어 구제하려는 뜻의 의지를 전의하기 때문이며,
【釋】세간 가운데서 마치 왕(王) 등에 의해 일으켜지는 재앙과 횡액을 보살이 예전에 선우(善友)의 힘과 자신의 세력과 재물의 힘 등으로 중생의 재앙과 횡액 그리고 과실을 뽑아내어 구제하는 것과 같다. 대하여 다스림을 일으킬 때 이 뽑아내어 구제하는 식을 멸하므로 전의라고 이름한다.
016_1241_a_16L論曰由轉一切災橫過失拔濟意依故釋曰於世閒中如王等所起災橫菩薩昔由善友力自勢力財物力等拔濟衆生災橫過對治起時滅此拔濟識名爲轉依
【論】이 모든 중생의 재앙과 횡액 그리고 과실을 뽑아내어 구제하는 지혜가 자재하기 때문이다.
【釋】이 전의로 말미암아 뜻대로 모든 중생의 재앙과 횡액 그리고 과실을 뽑아내어 구제할 수 있다. 이 뽑아내어 구제하는 법은 증득한 부류이기 때문에 뽑아내어 구제하는 부류의 인식현상이라고 한다.
016_1241_a_20L論曰由此一切衆生災橫過失拔濟智自在故釋曰由此轉依能如意拔濟一切衆生災撗過失此拔濟法是證得類故名拔濟類法
016_1241_b_01L【論】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법신이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부류의 법에 포섭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이 여섯 가지 법 가운데 앞의 네 가지는 스스로를 이익되게 하는 것이고, 뒤의 두 가지는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영원히 이익되고, 둘째는 잠시 이익됨이다. 영원히 이익됨은 진실이고, 잠시 이익됨은 거짓 이름이다. 둘 다 법신을 증득한 부류이기 때문에 섭지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할 것이다.
016_1241_b_01L論曰此六種類法所攝諸佛如來法身應釋曰此六法前四是自利後二是利他利他有二種一永利二暫利永利是眞實暫利是假名竝是法身證得類故言攝法應如此知
【論】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차별이 있다고 말할 수 있기도 하고 차별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釋】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동일한 법신이 되기도 하고, 당연히 다름이 있기도 하다.
016_1241_b_06L論曰諸佛法身爲可說有差別爲無差別釋曰十方諸佛爲同一法身爲當有
【論】의지와 뜻의 작용[意用]과 업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모든 부처님께서는 똑같이 법신으로써 의지를 삼기 때문에 중생에 대하여 이익되고 안락하게 하려는 뜻의 작용 역시 동일하다. 중생 속에서 정각을 드러내 이루고, 내지는 열반에 드는 이 업도 역시 똑같다. 이러한 정의로 말미암아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6_1241_b_09L論曰由依止意用業無異故知無差別釋曰諸佛同以法身爲依止於衆生利益安樂意用亦同衆生中現成正覺乃至般涅槃此業亦同由此義故應知諸佛法身無差
【論】헤아릴 수 없는 정각(正覺) 등의 일로 말미암아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모든 부처님께서 법신에서 이미 정각을 얻고 내지는 이미 열반에 들기도 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바르게 정각을 얻기도 하고, 모든 부처님께서 지금 정각을 얻고 내지는 열반에 들어 있기도 하는 것이 이와 같다. 이것들과 같이 헤아릴 수 없는 일이 있어서 앞과 뒤가 같지 않기 때문에 법신에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016_1241_b_14L論曰由無量正覺等事故應知有差別釋曰有諸佛於法身已得正覺乃至已般涅槃有諸佛正得正有諸佛當得正覺乃至般涅槃亦如此等有無量事前後不同是故應知法身有差別
【論】법신과 같이 수용신(受用身)도 역시 이러하다.
【釋】모든 부처님의 응신은 차별이 없기도 하고 차별이 있기도 하다. 의미는 법신과 같다.
016_1241_b_19L論曰如法身受用身亦爾釋曰諸佛應身無差別有差別義如法身
016_1241_c_01L【論】의지와 업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의 응신은 똑같이 법신을 의지한다. 의지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응신은 차별이 없다. 응신은 화신으로써 업을 삼는다. 모든 부처님의 응신은 모두 화신을 의지로 삼아 화신에서 일어나지 않음이 없다. 업이 같기 때문에 차별이 없다.
016_1241_b_21L論曰由依止業不異故應知無差別釋曰十方諸佛應身同依止法身依止不異故應身無差別應身以化身爲業諸佛應身無不皆爲化身依止起於化身以業同故無有差別
【論】의지의 주체의 차별로 말미암아 차별이 없지 않아서, 헤아릴 수 없는 의지가 전의하기 때문이다.
【釋】헤아릴 수 없는 보살이 도를 닦아 의지를 전의한다. 보살의 수량만큼이나 응신도 이와 같다. 의지에 차별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차별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응신도 역시 이러하다. 따라서 차별이 있다.
016_1241_c_03L論曰不由能依止差別故無差別無量依止轉依故釋曰無量菩薩修道轉依如菩薩數量應身亦爾不由依止無差別說無差別由身各異應身亦爾故有差別
【論】변화신은 수용신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법신에 의거하여서는 차별이 없고, 응신에 의거하여서는 차별이 있다.
016_1241_c_07L論曰變化身應知如受用身釋曰由依法身故無差別由依應身故有差別
【論】이 법신은 몇 가지 공덕과 더불어 상응한다고 알아야 하는가?
가장 청정한 4무량(無量)과 더불어 상응하며, 8해탈(解脫)ㆍ8제입(制入)ㆍ11체입(切入)ㆍ무쟁(無諍)삼마제ㆍ원지(願智)ㆍ4무애해ㆍ6통해(通解)ㆍ32대인상(大人相)ㆍ80소상(小相)ㆍ네 가지 모든 상이 청정함[四種一切相淸淨]ㆍ10력(力)ㆍ4무외(無畏)ㆍ4불호(不護)ㆍ3념처(念處)ㆍ습기를 뽑아 내어 없앰[拔除習氣]ㆍ잊고 상실함이 없는 법[無忘失法]ㆍ대비(大悲)ㆍ18불공법(不共法)ㆍ모든 상이 가장 수승한 지혜[一切相最勝智] 등의 모든 인식현상과 더불어 상응한다.7)
【釋】이 신은 모든 공덕의 인식현상과 더불어 상응하기 때문에 법신이라고 한다. 상응하는 법을 드러내기 위해 이 질문을 한다.
016_1241_c_10L論曰此法身應知與幾種功德相應與最淸淨四無量相應與八解脫八制入十一切入無諍三摩提願智四無㝵解六通慧三十二大人相八十小相四種一切相淸淨十力四無畏四不護三念處拔除習氣無忘失法大悲十八不共法一切相最勝智等諸法相應釋曰此身與諸功德法相應故名法身欲顯相應法故爲此問
【論】이 가운데 게송으로 읊는다.
【釋】게송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다. 첫째는 여래의 공덕을 드러내는 것이고, 둘째는 공덕이 있는 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드러낸다.
016_1241_c_19L論曰此中說偈釋曰偈有兩義一顯如來功德二顯恭敬有功德人

【論】중생에 대하여 크게 연민하며[大悲],
모든 결박(結縛)의 의(意)를 떠나지만
중생의 의(意)를 떠나지 않으며,
이익되고 즐거운 의(意)를 얻으므로 엎드려 예경한다.
016_1241_c_21L論曰
於衆生大悲
離諸結縛意
不離衆生意
利樂意頂禮
016_1242_a_01L
【論】중생에 대하여 크게 연민하며
【釋】이 밑의 하나의 게송은 4무량(無量)을 드러낸다. 이 구절은 대비(大悲)를 밝힌다.
016_1241_c_23L論曰於衆生大悲釋曰此下一偈顯四無量此句卽明大悲
【論】모든 결박의 의를 떠나지만
【釋】이 구절은 대자(大慈)를 밝힌다. 더러움에 집착한 의(意)를 떠나고 중생과 더불어 즐겁다.
016_1242_a_02L論曰諸結縛意釋曰此句明大慈離染著意與衆生樂
【論】중생의 의를 떠나지 않으며
【釋】이 구절은 크게 기쁨[大喜]을 밝힌다. 만약 중생이 이미 고통을 떠나서 즐거움을 받는다면 곧 그들에 대하여 항상 환희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016_1242_a_04L論曰不離衆生意釋曰此句明大喜衆生若已離苦受則恒於彼起歡喜心
【論】이익되고 즐거운 의를 얻으므로 엎드려 예경한다.
【釋】이 구절은 크게 버리는 것[大捨]을 밝힌다. 고통을 뽑아버리고 즐거운 의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버리고 항상 이익되고 즐거운 의를 품는다. 또한 원망함과 친근함 등의 상을 버리고 항상 평등하고 이익되며 즐거운 의를 품는다. 이러한 덕으로 말미암아 엎드려 절한다.
또한 모든 결박(結縛)의 의를 버린다는 것은 외도와 2승의 연민하는 마음[悲心]을 떠나는 것을 밝힌다. 외도의 연민하는 마음은 중생을 연하여 일어나므로 결(結)이 되며, 2승의 연민하는 마음은 법을 연하여 일어나므로 박(縛)이 된다. 여래의 대비심(大悲心)은 이 둘을 연하지 아니하고 일어나기 때문에 떠난다고 말한다. 크게 연민함[大悲]이 이미 이러하므로 크게 사랑함[大慈]도 역시 그러하다.
016_1242_a_06L論曰利樂意頂禮釋曰此句明大捨捨不拔苦與樂意常懷利樂意又捨怨親等常懷平等利樂意由有此德是故頂禮復次離諸結縛意者明離外道及二乘悲心外道悲心緣衆生起爲二乘悲心緣法起爲縛如來大悲不緣此二起故言離大悲旣爾慈等亦然
중생의 의를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중생과 인식현상을 연하는 것을 떠났다 하더라도 여래께서는 중생에 대하여 항상 4무량의 의를 떠나지 않는다. 고통이 있는 사람에 대하여는 고통의 의를 뽑아버리는 것을 떠나지 않으며, 즐거움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즐거운 의와 함께하여 떠나지 않는다. 이미 고통을 떠나고 즐거움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는 환희하는 의를 떠나지 않으며, 이러한 중생에 대하여 평등한 의와 이익되고 안락한 의를 떠나지 않는다.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출세간의 이익을 얻게 하므로 이익이라 하고, 세간의 이익을 얻게 하므로 즐거움이라 한다. 4무량은 두 가지 이익을 갖추고 있다.
016_1242_a_14L不離衆生意者雖離衆生及法如來於衆生常不離四無量意有苦者不離拔苦意於無樂者不離與樂意於己離苦受樂者不離歡喜於如此衆生不離平等意利樂意頂禮者令得出世益爲利令得世閒益爲樂四無量具有二益

【論】모든 장애를 해탈하고
세간의 지혜를 항복시킨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應知]에 지혜가 두루 가득하고
마음을 해탈하였으므로 엎드려 절한다.
016_1242_a_20L論曰
解脫一切障
降伏世智者
應知智遍滿
心解脫頂禮
016_1242_b_01L
【論】모든 장애를 해탈하고
【釋】이 하나의 게송은 세 가지 덕을 드러낸다. 이 구절은 8해탈(解脫)을 밝힌다. 8해탈은 두 가지 장애를 없앤다. 첫째는 닦고 익힘의 장애이고, 둘째는 수승한 부류의 장애이다. 8해탈은 두 가지 정의를 갖춘다. 하나는 무류(無流)이고, 둘은 궁극[究竟]이다. 무류이기 때문에 닦고 익히는 것의 장애를 제거하며 견제(見諦) 등의 혹이 궁극이기 때문에 수승한 부류의 장애, 곧 하열한 마음을 제거한다.
016_1242_a_22L論曰解脫一切障釋曰此一偈顯三德此句明八解脫八解脫除二種一修習障二勝類障八解脫具二一是無流二是究竟是無流故除修習障卽見諦等惑是究竟故除勝類障卽下劣心
【論】세간의 지혜를 항복시킨다는 것은
【釋】이 구절은 8제입(制入)을 밝힌다. 무류이면서 궁극이 아닌 것과 궁극이면서 무류가 아닌 것이 8제입에 속하기 때문에 8해탈과는 다르다. 마음으로 경계를 만들 수 있고 경계를 부려서 마음을 따르게 하기 때문에 세간의 지혜를 항복시킨 사람이라고 부르며 곧 부처님이다.
016_1242_b_05L論曰降伏世智者釋曰此句明八制入是無流非究竟是究竟非無流屬八制入故異八解心能制境使境從心故名降伏世智者卽是佛
【論】인식되는 것에 지혜가 두루 가득하다.
【釋】이 구절은 열 가지 일체입(一切入)을 밝힌다. 인식되는 것은 열 가지 경계이다. 지혜는 열 가지 경계를 연하여 모든 곳에 두루하기 때문에 두루 가득하다고 말한다.
016_1242_b_09L論曰應知智遍滿釋曰此句明十一切入應知是十境智緣十境遍一切處故言遍滿
【論】마음이 해탈하므로 엎드려 절한다.
【釋】마음은 이 세 처(處)에서 모두 해탈을 얻는다.
016_1242_b_11L論曰心解脫頂禮釋曰心於此三處皆得解脫

【論】모든 중생에게서 남음 없이
모든 혹을 멸할 수 있으며,
혹을 해치며, 더러움에 물듦이 있는 것(중생)을
항상 연민하므로 엎드려 절한다.
016_1242_b_13L論曰
諸衆生無餘
能滅一切惑
害惑有染污
常憐愍頂禮

【論】모든 중생에게서 남음이 없이 모든 혹을 멸할 수 있다.
【釋】이 게송은 무쟁의 삼마제[無諍三摩提]가 널리 행하여져서 모든 중생의 번뇌를 일으켜 다투지 않는 것을 밝힌다.
016_1242_b_15L論曰諸衆生無餘能滅一切惑釋曰此偈明無諍三摩提凡有所作不起一切衆生煩惱諍
【論】혹을 해치며, 더러움에 물듦이 있는 것을 항상 연민하므로 엎드려 절한다.
【釋】부처님께서는 중생의 혹을 해칠 수 있다. 중생은 더러움에 물듦이 있어서 여래는 연민하는 마음을 항상 일으킨다.
016_1242_b_18L論曰害惑有染污常憐愍頂禮釋曰佛能害衆生惑衆生有染污如來常起憐愍

【論】공용(功用)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장애도 없어서 항상 적정(寂淨)하다.
016_1242_b_21L論曰
無功用無著
無㝵恒寂靜
016_1242_c_01L
【釋】이 반절의 게송은 원지(願智)를 밝힌다. 삼세의 모든 일을 알고자 하므로 원(願)이 되고 여래께서는 모두 증득하여 알 수 있으니 지혜가 된다. 닦아 익혀서 익숙하기 때문에 공용이 없으며, 습기가 다하였기 때문에 집착이 없으며, 이 두 가지 정의로 말미암아 모두 삼세의 경계에 대하여 증득하여 알 수 있다. 양(量)과 같이 알 수 있으므로 장애가 없다.
여래께서는 항상 관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적정하다. 적정하다는 것은 공용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장애가 없음은 집착이 없음을 드러낸다.
016_1242_b_22L釋曰此半偈明願智於三世一切事欲知爲願如來皆能證知爲智修習熟故無功用習氣盡故無著由此二義故皆能證知於三世境如量能知故無㝵如來恒不出觀故寂靜寂靜顯無功用無㝵顯無著

【論】모든 중생의 어려운 문제[難問]를
풀어줄 수 있으므로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2_c_05L論曰
一切衆生難
能釋我頂禮

대상[依:所依]과 인식 주관[能依]에 대해
응하여 말과 지혜를 설한다.
설함에 있어서 장애가 없으므로
설하는 사람에게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2_c_06L於依及能依
應說言及智
於能說無㝵
說者我頂禮

【論】모든 중생의 난문을 풀어줄 수 있으므로 나는 엎드려 절한다.
【釋】이 아래의 한 게송은 4무애해(無礙解)를 밝힌다. 4무애해를 갖춤으로써 중생의 어려운 의문을 풀어줄 수 있다.
016_1242_c_07L論曰一切衆生難能釋我頂禮釋曰此下一偈半明四無㝵解由具四解故能釋衆生難
【論】대상과 인식 주관에 대해 응하여 말과 지혜를 설한다.
【釋】대상은 실체적 대상[義]이며, 인식 주관은 모든 법문이다. 응하여 설한다는 것은 바야흐로 말한다는 것이며, 지혜는 교묘한 변설[巧辯]이다.
016_1242_c_10L論曰於依及能依應說言及智釋曰於依是義能依是諸法門應說言是方言及智是巧辯
【論】설함에 있어서 장애가 없으므로
【釋】이 네 가지 가운데 공능에 장애가 없으므로 남을 위하여 설하는 것도 역시 장애가 없다.
016_1242_c_13L論曰能於說無㝵釋曰於此四中功能無㝵爲他說亦無㝵
【論】설하는 사람에게 나는 엎드려 절한다.
【釋】이미 혹과 애욕을 떠났으므로 설하여지는 것에 더러움이 없다. 설할 수 있는 덕이 있기 때문에 설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016_1242_c_14L論曰說者我頂禮釋曰已離惑愛所說無垢有能說之德故名說者

【論】수명(壽命)과 머묾[住]과 버림[捨]을 섭지하여
변화하고 자성을 고쳐서[改性],
정(定)과 지혜의 자재를 얻은
세존께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2_c_16L論曰
攝壽住及捨
變化及改性
得定智自在
世尊我頂禮
016_1243_a_01L
【釋】이 게송은 통혜(通慧)를 밝힌다. 만약 수명이 다한다면 다시 수(受)를 섭지하여 자라게 할 수 있어서 이에 8만 대겁을 경과하게 되며, 8만 겁에만 그치지 않는다. 많은 겁에 머물고자 하면 역시 뜻대로 머물 수 있고, 버리고자 한다면 역시 뜻대로 버릴 수 있다. 또한 모든 선정 가운데서도 역시 이러한 세 가지 능력을 갖는다. 하나의 신으로부터 나누어 헤아릴 수 없는 신을 나타내므로 변화가 되고, 금(金)과 토(土) 등을 전변하므로 자성을 고치는 것이 된다. 통혜는 모두 선정으로부터 말미암아서 뜻과 같이 장애가 없음을 이루기 때문에 선정과 지혜의 자재를 얻는다고 말한다.
016_1242_c_19L釋曰此偈明通慧若壽命應盡能更攝受令長乃至經八萬大劫等非止八萬劫而已欲住多劫亦如意能住欲捨亦如意能捨又於諸定中亦有此三能從一身中分出無量身爲變轉金土等爲改性通慧皆由定成如意無㝵故言得定智自在

【論】모든 중생은 존귀한 사람을 보고서
믿고 존경하여 수승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이 봄으로써 맑은 마음을 생할 수 있으니,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3_a_03L論曰
諸衆生見尊
信敬謂勝士
由他見能生
淨心我頂禮

【釋】이 하나의 게송은 32대인상(大人相)과 80소상(小相)을 합하여 밝힌다. 중생은 부처님의 대상(大相)과 소상(小相)을 보고서 믿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을 생하여 여래께서는 가장 수승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여래의 대상과 소상은 모두 중생에게 청정한 마음을 생할 수 있다.
016_1243_a_05L釋曰此一偈合明三十二大人相十小相衆生見佛大小相生信心及敬心謂如來是最勝之士如來大小相竝能生衆生淸淨心

【論】따라서 그들의 품류와 음성을 따라
감[往]과 돌이킴[還] 그리고 벗어나 떠남[出離]을 행하며,
네 가지 모든 상의 청정을 깨달아 알아
모든 중생을 바르게 가르치니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3_a_09L論曰
故隨彼類音
行往還出離
證知諸衆生
正教我頂禮

【釋】이 게송은 네 가지 모든 상의 청정이 중생의 형상의 품류와 음사(音辭)를 따라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밝힌다. 그와 같은 중생은 과거에 생을 받아 가게 되고 현재에 생을 받아 오게 되고, 두 시기[世] 가운데서 행하여 3승의 도의 과를 얻어서 벗어나 떠나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모두 이러한 일을 깨달아 알기 때문에 응하여지는 대로 바른 가르침을 설하게 된다. 네 가지 청정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공능이 있다.
016_1243_a_11L釋曰此偈明四種一切相淸淨隨衆生形類及音辭示現如彼衆生過去受生爲往現在受生爲還行於二世之中得三乘道果爲出離佛皆證知此事如所應爲說正教由四淸淨故有此能

【論】방편과 귀의(歸依)와 깨끗함 가운데서
중생을 장애하며
대승에서 벗어나 떠난
마귀를 물리치므로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3_a_17L論曰
方便歸依淨
於中障衆生
於大乘出離
摧魔我頂禮
016_1243_b_01L
【釋】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부터 세간의 첫 번째의 가르침[世第一法]까지를 모두 방편이라고 한다. 고(苦)의 법인(法忍)8) 내지는 두 번째의 과보가 귀의(歸依)가 된다.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믿음을 얻기 때문에 세 번째와 네 번째의 과가 깨끗함이 된다. 욕계 내지는 무색계를 이욕(離欲)해야 하기 때문에 마귀가 그 가운데서 중생을 장애하여 이 도의 과를 얻지 못하게 한다. 만약 대승 가운데서 10지(地)의 행을 닦아서 세 가지 장애를 벗어나 떠나려고 한다면 마귀는 역시 이 가운데서 장애가 될 수 있다. 여래께서는 10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중생을 위하여 많은 마귀를 물리칠 수 있다.
016_1243_a_19L釋曰從出家受戒乃至世第一法悉名方便苦法忍乃至第二果爲歸依以得四不壞信故第三第四果爲淨以離欲欲界乃至無色界故魔於此中能障衆生令不得此道果若大乘中修十地行出離三障魔亦於中能爲障㝵由如來具十力故能爲衆生摧伏衆魔

【論】지혜[智]ㆍ멸(滅)ㆍ벗어나 떠남[出離]과
장애가 되는 일[障事]을 드러내어 설할 수 있으니,
나와 남에게 이익되고
삿됨을 항복시키므로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3_b_04L論曰
智滅及出離
障事能顯說
於自他兩利
降邪我頂禮

【釋】이 게송은 4무외(無畏)를 밝힌다. 지혜[智]는 곧 일체지무외(一切智無畏)이며, 멸(滅)은 곧 유진무외(流盡無畏)이며, 출리(出離)는 곧 설진고도무외(說盡苦道無畏)이며, 장사(障事)는 설장도무외(說障道無畏)이다. 만약 어떤 외도가 부처님을 비난하여 일체지(一切智)가 아니라고 힐난하거나, 혹은 모든 흐름[諸流]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거나, 혹은 여래께서 설하신 고통을 다하는 도가 그것을 닦아도 고통을 떠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하거나, 도를 장애한다는 인식현상을 설하셔도 이러한 장애를 일으키는 것은 도를 얻는 데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래께서는 그 가운데 두려움 없이 삿된 힐난을 항복시킬 수 있다.
016_1243_b_06L釋曰此偈明四無畏智卽一切智無滅卽流盡無畏出離卽說盡苦道無畏障事卽說障道無畏若有外道難佛言非一切智或言諸流未盡言如來說盡苦道修之不能令離苦說障道法起此障不妨得道如來於中無畏能降邪難

【論】제지함 없이 과실이 없고,
더러움과 흐림이 없으니 머묾이 없고,
모든 인식현상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고,
희론(戱論)이 없으니 엎드려 절한다.9)
016_1243_b_13L論曰
無制無過失
無染濁無住
於諸法無動
無戲論頂禮

【釋】이 게송은 4불호(不護)를 밝힌다. 스승의 제지가 없어도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수명(壽命)이 스스로 10악(惡) 등의 과실이 없다. 비단 탐욕과 성냄의 삿된 견해 등의 번뇌만이 없는 것이 아니고, 모든 번뇌가 이미 멸하여 다했다. 모든 인식현상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더러움과 흐림이 없으니 머묾이 없다고 말한다. 뜻을 짓지[作意] 아니하고 모든 인식현상을 알고, 모든 인식현상을 알아서 다시 배운다는 의미가 없고, 분별을 떠나고 지혜가 두루 가득하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다고 말한다. 과실이 이미 제거되었기 때문에 희론이 없다.
016_1243_b_15L釋曰此偈明四不護無師制止身口意命自無十惡等過失非但無貪瞋邪見煩惱一切煩惱皆已滅盡不著諸法故言無染濁無住不作意知諸知諸法無復學義離於分別智慧遍滿故言無動過失已除故無戲論

【論】대중 가운데서 남을 굴복시키고자 설하실 때
두 가지 혹을 멀리 떠나고,
보호하지 않아도 잊고 상실하지 않으며,
대중을 포섭하므로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3_b_21L論曰
於衆伏他說
二惑所遠離
無護無忘失
攝衆我頂禮
016_1243_c_01L
【釋】이 게송은 3념처(念處)를 밝힌다. 만약 어떤 중생이 큰 집회 가운데서 여래의 설법을 듣고 헐뜯고 비방함을 일으켜도 여래께서는 역시 성내지 않고, 만약 믿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래께서는 역시 애착하지 않는다. 만약 헐뜯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래께서는 버리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처(處)에서 항상 크게 연민함[大悲]을 일으켜서 방편의 힘으로써 바른 법을 교묘하게 설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치에 들어가게 하며, 대중 가운데서 이와 같은 중생을 항복시킬 수 있다. 바른 법을 설하기 위하여 성냄과 탐욕의 두 가지 혹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미 성냄과 탐욕이 없으니 곧 무명이 없다는 것을 안다. 지켜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말미암지 않기 때문에 잊고 상실하지 않으며, 큰 염원과 크게 연민함이 항상 스스로 견고하기 때문에 잊고 상실하지 않는다. 이렇게 크게 연민함으로써 대중을 포섭할 수 있다.
016_1243_c_01L釋曰此偈明三念處若有衆生於大集中聞如來說法生毀謗如來亦不若能信受如來亦不愛若無毀無信如來亦不捨於此三處常起大悲以方便力巧說正法令其入理於大衆中能降伏如此衆生爲說正法不起瞋欲二惑旣無瞋欲卽知無無明不由守護心故不忘失大念大悲自堅固故無忘失以此大悲能攝大

【論】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에 있어서
존귀하신 분은 때를 기다려서 지나가지 않으며
짓는 것이 항상 허망하지 않고
미혹이 없으니, 나는 엎드려 절한다.10)
016_1243_c_11L論曰
於利益他事
尊不過待時
所作恒無虛
無迷我頂禮
【釋】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중생은 한 순간에도 이익을 얻어야 한다. 여래께서는 크게 연민함[大悲]의 힘으로써 한 찰나 가운데서도 모두 이익을 얻게 한다. 공허한 과실이 없다는 것은 역시 한 중생도 도를 얻을 때에 가기로 예정된 그곳에 도달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이다. 기다리던 때에 이르러 바야흐로 법(法:敎法)을 설하게 되니, 무릇 행하여지는 것 모두가 때를 당하여 이익을 얻기 때문에 행하여지는 일이 허망함이 없다. 미혹은 무명이다. 무명은 곧 습기의 체이니, 습기가 다함으로 해서 이익이 허망하지 않다.
016_1243_c_13L釋曰十方無量衆生於一剎那中應得利益如來以大悲力於一剎那中悉令得利益無空過者亦無一衆生得道時未至預往其所待時至方爲說法凡有所作皆應時得益故所作無虛迷是無明無明卽習氣體由習氣盡故利益不虛

【論】모든 행하고 머무는 것에 있어서
원만한 지혜의 사(事)가 아닌 것이 없으며,
모든 세상을 두루 아는
실체(實體)이니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3_c_20L論曰
於一切行住
無非圓智事
遍知一切世
實體我頂禮
016_1244_a_01L
【釋】이 게송은 잊고 상실함이 없음을 밝힌다. 이미 생을 받는 것과 아직 생을 받지 못한 것이 행함이 되고, 바르게 생을 받은 것이 머묾이 된다. 중생의 삼세의 일 모두가 원만한 지혜의 경계이기 때문에 삼세를 두루 알 수 있다. 진여가 체가 되기 때문에 실체라고 한다. 체가 참답고 지혜가 원만하기 때문에 잊고 상실함이 없다. 또한 다시 부처님께서는 인(因)의 위계에 있어 10지를 닦음을 행으로 삼고, 부처를 얻는 것을 머묾으로 삼는다. 원만한 지혜는 이러한 스스로의 인과(因果)의 일을 통달한다. 모든 세상을 두루 안다는 것은 중생의 삼세의 일을 통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이러한 해석은 나와 남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꿰뚫어 밝힌다.
016_1243_c_22L釋曰此偈明無忘失已受生及未受生爲行正受生爲住衆生三世事皆是圓智境故能遍知三世眞如爲體故名實體由體實智圓故無忘失次佛在因位修十地爲行得佛爲住圓智能通達此自因果事遍知一切世明能通達衆生三世事此解通明能知自他

【論】밤과 낮의 여섯 시간11) 가운데
모든 중생계를 관하여
크게 연민함과 더불어 상응하여,
이익되고 즐거운 의(意)에 저는 예경합니다.
016_1244_a_07L論曰
日夜六時觀
一切衆生界
與大悲相應
利樂意我禮

【釋】이 게송은 크게 연민함[大悲]을 밝힌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을 관하며, 여섯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물이 짓는 궤범(軌範)을 모방하여 도를 닦음에 나를 이익되게 하고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여섯 시간에 남을 이익되게 하는 행을 닦고, 여섯 시간에 자신을 이익되게 하는 행을 닦는다. 중생계는 곧 중생의 자성이며, 중생의 자성은 같지 않다. 혹은 악으로 인하여 선을 생하고, 혹은 선한 일로 인하여 선을 생하며, 혹은 무섭고 두려운 일로 인하여 선을 생하고, 혹은 환희하는 일로 인하여 선을 생한다. 크게 연민함은 이 자성과 일치시켜 교화하고 제도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 크게 연민함과 상응한다. 근(根)과 욕락도 역시 이러하다.
016_1244_a_09L釋曰此偈明大悲佛常觀衆生而言六時者欲爲物作軌摸示修道有自利利他行以六時修利他行六時修自利行衆生界卽衆生性衆生性不或因惡生善或因善事生善或因怖畏事生善或因歡喜事生善大悲能稱此性化度故皆與大悲相應及欲樂亦爾

【論】행(行)으로 말미암아서이거나, 얻음[得]으로 말미암아서이거나,
지혜로 말미암아서이거나, 사[事]로 말미암아서이거나
모든 것에서 2승에 대하여
비길 수 없으니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4_a_17L論曰
由行及由得
由智及由事
於一切二乘
無等我頂禮

【釋】이 게송은 18불공법(不共法)을 밝힌다. 행은 인이고, 얻음은 과이다. 지혜는 여리여량지(如理如量智)이며, 일은 곧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다. 18불공법은 이 네 가지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승과는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하지 않는다[不共]고 일컫는다.
016_1244_a_19L釋曰此偈明十八不共法行是因得是果智是如理如量智事卽利益衆生事十八不共法不出四義不與二乘等故名不共
016_1244_b_01L
【論】3신(身)으로 말미암아 존귀하신 분은
3덕(德)의 상을 갖추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에 이른다.
모든 법(法:교법)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심을
능히 제거할 수 있으니 나는 엎드려 절한다.
016_1244_a_23L論曰
由三身尊至
具相無上覺
一切法他疑
能除我頂禮

【釋】이 게송은 모든 상의 가장 수승한 지혜를 밝힌다. 3신은 곧 3덕이다. 법신은 끊음의 덕[斷德]이며, 응신은 지혜의 덕[智德]이며, 화신은 은혜의 덕[恩德]이다. 3신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덕상(德相)의 과를 얻기에 이른다. 위없는 깨달음을 얻기 때문에 가장 수승하다. 중생은 모든 가르침 가운데 의심을 생하지만 여래께서는 모두 끊어 없앨 수 있다.
016_1244_b_02L釋曰此偈明一切相最勝智三身卽是三德法身是斷德應身是智德身是恩德由三身故至具三德相果由得無上覺故最勝衆生於一切法中生疑如來悉能爲除斷

【論】계박(繫縛)이 없으니 과실이 없고,
거침과 흐림이 없으니 머묾이 없고,
모든 인식현상에서 흔들림이 없으며,
희론이 없으니 엎드려 절한다.12)
016_1244_b_07L論曰
無繫無過失
無麤濁無住
於諸法無動
無戲論頂禮

【釋】이 게송은 여래의 여섯 가지 청정을 드러낸다. 첫째는 혹장(惑障)의 청정이며, 곧 계박이 없음이다. 혹 등의 세 가지 장애를 멸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는 업장(業障)의 청정이니, 과실이 없음을 말한다. 스물두 가지 업장을 멸하였기 때문이다. 셋째는 보장(報障)의 청정이니, 거침과 흐림이 없음이다. 일곱 가지 생사를 제거하였기 때문이다. 넷째는 이익의 청정이니, 머묾이 없음이다. 생사와 열반에서 가로막는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자재의 청정이니, 모든 법에서 흔들림이 없다. 공용을 말미암지 않고 모든 법에서 뜻대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희론이 없는 청정이니, 언어와 각관사유(覺觀思惟)하는 경계를 지났기 때문이다. 앞의 세 가지는 스스로를 이익되게 하는 것을 밝히고, 뒤의 셋은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을 밝힌다. 견준다[等]고 말하는 것은 곧 이 여섯 가지 청정과 견주는 것이다.
016_1244_b_09L釋曰此偈顯如來六種淸淨一惑障淸淨卽無繫由滅惑等三障故二業障淸淨謂無過失由滅二十二業障三報障淸淨謂無麤濁由除七種生死故四利益淸淨謂無住由於生死涅槃無隔礙故五自在淸淨謂於諸法無動不由功用於一切法如意能現故六無戲論淸淨由過言語覺觀思惟境界故前三明自利後三明利他故言等卽等此六淸淨
【論】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단지 이것들과 같은 공덕하고만 상응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그 밖의 다른 공덕과 상응한다.
【釋】앞에 밝힌 공덕은 대승과 소승에 모두 공통된다. 이미 법신이 이 공덕과 상응한다고 설하였으나, 다시 대승에는 법신과 상응하는 함께하지 않는[不共] 공덕이 있다.
016_1244_b_19L論曰諸佛法身不但恒與如此等功德相復與餘功德相應釋曰前所明功德通大小乘已說法身與此功德相應復有大乘不共功德與法身相
016_1244_c_01L【論】자성과 인(因)과 과(果) 그리고 업과 상응하고, 사(事)와 행(行)의 공덕과 상응한다.
【釋】이 가운데 간략하게 설하여 대승의 여섯 가지 공덕은 법신과 더불어 상응한다. 법신의 자성, 법신의 인, 법신의 과, 법신의 업, 법신과 상응함, 법신을 생하여 일으킴을 말한다.
016_1244_c_01L論曰謂自性因果業相應行事功德相應釋曰此中略說大乘六種功德與法身相應謂法身自性身因法身果法身業法身相應法身生起
【論】따라서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위없는 공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대승과 소승 가운데 다른 것과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위가 없다.
016_1244_c_05L論曰是故應知諸佛法身有無上功德釋曰於大小乘中不與他共故無有上
【論】이 가운데 게송을 읊는다.
【釋】이 여섯 가지 공덕을 드러내기 위하여 게송을 읊는다.
016_1244_c_07L論曰此中說偈釋曰爲顯此六種功德是故說偈

【論】존귀한 분은 진여를 성취하고
모든 지(地)를 닦아 벗어나 떠나고,
다른 사람과 비길 수 없는 위에 이르러서
모든 중생을 해탈시킨다.
016_1244_c_08L論曰
尊成就眞如
修諸地出離
至他無等位
解脫諸衆生

【論】존귀한 분은 진여를 성취하고,
【釋】이 구절은 법신의 자성을 밝힌다. 진여를 성취한다는 것은 더러움이 없는 청정[無垢淸淨]이다. 만약 도(道) 이전과 도 중간에 머문다면 더러움의 쌓임[垢累]이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취한다고 말할 수 없고, 도 이후에 더러움의 쌓임이 다하기 때문에 성취한다고 말한다.
이 진여가 법신의 자성이다.
016_1244_c_11L論曰尊成就眞如釋曰此句明法身自性成就眞如是無垢淸淨若在道前道中垢累未盡未得名成就後垢累已盡故名成就此眞如爲法身自性
【論】모든 지(地)를 닦아 벗어나 떠나고,
【釋】이 구절은 법신의 인을 밝힌다. 인의 위계에 있어서 진여를 닦아 10지의 궁극을 드러낸다. 가죽[皮]과 살[肉]과 마음[心]의 세 가지 장애를 벗어나 떠나는 것은 곧 지혜와 끊음의 두 가지 전의이다. 이 전의로 말미암아 법신을 얻는다.
016_1244_c_16L論曰修諸地出離釋曰此句明法身因在因位修眞如所顯十地究竟出離皮肉心三障卽是智斷二種轉依由此轉依故得法身
【論】남들과 견줄 수 없는 위계에 이르러서,
【釋】이 구절은 법신의 과를 밝힌다. 만약 법신의 과를 증득한다면 곧 정(淨)ㆍ아(我)ㆍ낙(樂)ㆍ상(常)의 네 가지 덕의 과를 얻는다. 깨끗하여 천제(闡提)와 비교할 수 없고, 자성이 있으니 외도와 견줄 수 없으며, 즐거워서 성문과 비길 수 없고, 항상하여 독각과 견줄 수 없다.
016_1244_c_19L論曰至他無等位釋曰此句明法身果若證法身果則得淨我樂常四德果淨不與闡提等我不與外道等樂不與聲聞等常不與獨覺等
016_1245_a_01L【論】모든 중생을 해탈케 한다.
【釋】이 구절은 법신의 업을 밝힌다. 만약 이 과를 얻으면 중생을 해탈시킨다. 해탈에는 네 가지가 있다. 선도(善道)와 3승의 업을 안립하여 범부와 3승의 사람을 해탈시킨다.
016_1244_c_23L論曰解脫諸衆生釋曰此句明法身業若得此果解脫衆生解脫有四謂安立善道及三乘業解脫凡夫及三乘人

【論】다함이 없음 등의 공덕과
서로 응하여 세상에 나타나니,
3륜(輪)에서는 쉽게 볼 수 있으나,
인간과 천상에서는 보기 힘들다.
016_1245_a_04L論曰
無盡等功德
相應現於世
於三輪易見
難見人天等

【論】다함이 없음 등의 공덕과 서로 응하여 세상에 나타나니,
【釋】이 두 구절은 법신의 상응을 밝힌다. 다함이 없음 등은 다섯 가지 공덕이 있어서 법신과 더불어 상응한다. 첫째는 청정하여 수승하고, 둘째는 모든 것이 수승하고, 셋째는 헤아릴 수 없어서 수승하고, 넷째는 생각하기 어려워서 수승하고, 다섯째는 다함이 없어서 수승하다. 초지(初地)에서부터 7지까지는 질투 등에 대하여 다스려져야 할 습기와 더러움을 영원히 멸하여 생하지 않는 것을 의지로 삼기 때문에 모든 덕이 청정하여 수승하며, 법신과 상응한다.
8지(地)에서는 분별이 없고 사이에 결여됨이 없어서 자연히 무류(無流)인 도를 의지로 삼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무류계(無流界)에서의 모든 공덕, 모두가 수승하여 법신과 상응한다.
8지에서는 헤아려 셀 수 없는 삼마제다라니문(三摩提陀羅尼門)의 바다가 헤아릴 수 없는 법지(法智)를 섭지할 수 있음을 의지로 삼기 때문에, 이 바다로부터 생하는 하나하나의 공덕을 모두 헤아릴 수 없으므로 수승하여 법신과 상응한다.
016_1245_a_06L論曰無盡等功德相應現於世釋曰此兩句明法身相應無盡等有五種功德與法身相應一淸淨爲勝二一切爲勝三無量爲勝四難思爲五無盡爲勝從初地至七地嫉妒等所對治習氣垢永滅不生爲依止諸德淸淨爲勝與法身相應於第八地無分別無閒缺自然無流道爲依止故諸佛於無流界諸功德一切爲勝與法身相應於第九地不可數量三摩提陁羅尼門海能攝無量法智爲依止故從此海生一一功德無量爲勝與法身相應
016_1245_b_01L10지에서는 모든 여래가 가지고 있는 비밀한 처(處)가 증지(證智)를 드러냄을 의지로 삼기 때문에, 사유할 수 없음이 수승하여 법신과 상응한다. 다시 이후로 증득한 불지(佛地)의 시기에는 모든 장애를 해탈한 지혜를 의지로 삼기 때문에 모든 공덕이 다함이 없어서 수승하여 법신과 더불어 상응한다.
다함이 없음은 곧 항상 머묾이다. 항상 머무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말한다. 앞의 네 가지 공덕은 비록 모든 지에 있어서 그 차별을 밝히지만 똑같이 과에 이르러 바야흐로 궁극이기 때문에 모두 법신과 상응한다.
016_1245_a_19L於第十地切如來所有秘密處現前證智爲依止故難思爲勝與法身相應次此後證得佛地時解脫一切障智爲依止諸功德無盡爲勝與法身相應盡卽是常住爲顯常住故言現於世前四功德雖約諸地明其差別同至果方究竟故悉與法身相應
【論】3륜에서는 쉽게 보지만, 인간과 천상 등에서는 보기 어렵다.
【釋】이 두 구절은 법신의 생하여 일어남을 밝힌다. 3륜은 곧 3신이다. 3신 가운데서 응신과 화신은 쉽게 보지만 법신은 보기 어렵다. 또한 법신은 깊이 행하는 보살과 모든 부처님께서는 쉽게 보지만 네 종류의 중생은 보기 어렵다. 첫째는 범부이고, 둘째는 성문이며, 셋째는 독각이며, 넷째는 처음으로 수행하는 보살이다.
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여래장은 신견(身見)인 중생 경계에 떨어지지 않고, 전도(顚倒)인 중생 경계를 유희하지 않으며, 공허하고 산란한 보살 경계에 있지 않다. 왜냐 하면 범부인 사람은 대상성[色] 등의 모든 인식현상에서 이와 같은 자성이 없이 아(我)와 아소(我所)의 자성을 집착하여 가지고 있으므로 신견을 멸하여 떠난 곳인 감로계(甘露界)를 즐거이 믿을 수 없으니, 어찌 모든 부처님의 경계인 여래장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
016_1245_b_03L論曰於三輪易見難見人天等釋曰兩句明生起三輪卽是三身於三身中應化二身易見法身難見又法身於深行菩薩及諸佛爲易見於四種衆生爲難見一凡夫二聲聞三獨覺四始修行菩薩如經言如來藏非墮身見衆生境界非遊戲顚倒衆生境非於空散亂菩薩境界何以故夫人於色等諸法無如此性執有我及我所性不能信樂身見滅離處甘露界何況能正覺諸佛境界如來藏
2승의 사람은 항상 머묾에서 가장 수승하게 응하여 닦는 가운데 항상 머묾의 상을 전도하여 닦으며, 항상하지 않는 상을 유희한다. 즐거움과 자성과 깨끗함을 닦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2승의 사람은 전도된 수행으로 말미암아 모든 부처님의 법신의 도를 얻을 수 없다. 그 가운데서 유희하기 때문에 네 가지 덕과 상응하는 법신은 그 경계가 아니다.
처음 수행하는 보살은 여래장의 공의 도리에 혹하여 공해탈문을 즐거이 믿어서, 사물을 없애는 것을 공이라고 생각하여 모든 인식현상은 먼저는 있다가 뒤에 곧 끊고 멸하여 곧 공이라고 한다.
016_1245_b_14L二乘人於常住最勝應修中倒修常住相遊戲無常相修樂我淨亦爾此二乘人由倒修不能得諸佛法身於中遊戲故四德相應法身非其境界始修行菩薩迷如來藏空道理信樂空解脫門計滅有物以爲空諸法先時是有後則斷滅卽是空
016_1245_c_01L또한 어떤 보살은 공한 상을 얻어서 공의 정의를 사택함으로 해서 색 등의 법을 떠나 다른 사물이 있음을 공이라 하고, 나는 지금 수행하여 이 공을 깨닫고 장래에는 반드시 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래장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는 것이 도리가 되기 때문에 산란심이 치우쳐서 집착하는 유(有)ㆍ무(無)의 경계가 아니다.
인간과 천상 등은 곧 앞의 네 가지 중생이다. 법신의 깊고 깊음은 그들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 네 종류의 중생의 혹행이 법신에서 생하여 일어난다. 이 네 가지 일이 있기 때문에 3륜 가운데의 자성신을 인간과 천상은 볼 수 없다.
016_1245_b_21L有諸菩薩由得空相思擇空義謂離色等法有別物爲空我今修行爲證此空當來必應得如來藏非有非無爲理故非散亂心偏執有無境界天等卽前四衆生法身甚深非其境界故生起此四種衆生迷惑行於法有此四事故自性身於三輪中人天能見
【論】또한 다시 여래 법신의 깊고 깊음이 가장 깊고 깊다.
【釋】행하기 어렵고 통달하기 어려우며 얻기 어렵기 때문에 깊고 깊음이 가장 깊고 깊다. 또한 다시 언설하여 요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깊고 깊다고 일컫는다. 의미와 이치가 밑바닥이 없기 때문에 가장 깊고 깊다고 말한다. 또한 글의 의미를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깊고 깊다고 말한다. 품류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가장 깊고 깊다고 일컫는다.
016_1245_c_06L論曰復次如來法身甚深最甚深釋曰以難行難通達難得故甚深最甚深復次言說難了達故稱甚深義理無底故稱最甚深次文義難量故稱甚深品類非一故稱最甚深
【論】이 깊고 깊음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釋】어떤 모습으로써 이 깊고 깊음을 드러낼 수 있으며 보게 할 수 있는가?
016_1245_c_11L論曰此甚深云何可見釋曰以何相能顯此甚深令得可見
【論】이 가운데 게송으로 읊는다.
【釋】대승 가운데서 드러난 것처럼 법신의 깊고 깊음의 정의는 열두 가지가 있다. 이제 게송으로써 이 의미를 설한다.
016_1245_c_12L論曰此中說偈釋曰如大乘中所法身甚深義有十二種今以偈說此義

【論】부처님께서는 생함이 없음으로써 생함을 삼고,
머묾이 없음으로써 머묾을 삼으며,
공용(功用) 없이 사(事)를 지으며,
네 번째의 식(食)으로 식을 삼는다.
016_1245_c_15L論曰
佛無生爲生
以無住爲住
作事無功用
第四食爲食
016_1246_a_01L
【論】부처님께서는 생함이 없음으로써 생함을 삼으며,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첫 번째로 깊고 깊음을 밝힌다. 이 깊고 깊음 가운데는 다시 네 가지 깊고 깊음이 있다. 첫째는 생함이고, 둘째는 머물지 않음이며, 셋째는 업이며, 넷째는 머묾이다. 이 구절은 생함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생함을 받으나 생함이 없다는 것을 상으로 삼는다. 열 가지 원인으로써 이 정의를 증명한다. 첫째는 무명과 같은 상이 아니기 때문이며, 둘째는 종류가 같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두루 포섭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자재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머묾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버림[捨]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두 가지 상이 없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오직 유사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환화(幻化)의 비유와 같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머묾이 없는 곳[無住處]이 머무는 곳[住處]이 되기 때문이며, 열째는 큰 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016_1245_c_17L論曰佛無生爲生釋曰此下一偈明第一甚深此甚深中復有四種甚一生二不住三業四住此句明生甚深諸佛受生無生爲相有十種因以證此義一與無明不同相故二種種不同故三攝受自在故四於住自在故五於捨自在故六無二相故唯似顯現故八同幻化譬故九無住處爲住處故十能成就大事故
【論】머묾이 없음으로써 머묾을 삼으며,
【釋】이 구절은 머물지 않음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생사와 열반에서 모두 머무는 것이 없다. 역시 열 가지 원인이 있음으로써 이 정의를 증득한다. 첫째는 영원히 떠나는 것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는 멸하여 다하지 않기 때문이며, 셋째는 부처님으로 말미암아 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넷째는 있지 않음이 자성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얻는 것이 없어서 분별이 없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이미 마음을 떠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마음을 얻음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마음의 평등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머물러야 할 원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열째는 머물지 않아야 할 원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016_1246_a_03L論曰以無住爲住釋曰此句明不住甚深諸佛於生死涅槃悉無所住亦有十種因以證此義一非永所離二滅不盡故三由諸佛非有法故四由知非有爲性故五無所得無分別故六由己離心故七由得心故由心平等故九住因不可得故十不住因不可得故
【論】공용 없이 사(事)를 지으며,
【釋】이 구절은 업(業)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역시 열 가지 원인이 있어서 증득하게 된다. 첫째는 모든 장애를 멸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며, 셋째는 사유함 없이 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며, 넷째는 행하는 사람이 마음을 짓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업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있지 않음에 있어서 공용이 없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오랜 원(願)이 빠르고 예리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행하여지는 것을 이미 판별하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행하여야 할 것을 판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열째는 익히고 닦은 모든 법 가운데서 자재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016_1246_a_11L論曰作事無功用釋曰此句明業甚深亦有十因爲證一一切㝵滅故二無依止故三應作無思故四作者不作心故五業非運動故六於非有無功用故七由宿願疾利故八所作已辦故九應作未辦十由熟修一切法中自在故
016_1246_b_01L【論】네 번째의 식(食)13)으로 식(食)14)을 삼는다.
【釋】이 구절은 머묾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역시 열 가지 원인이 있어서 증득하게 된다. 첫째는 네 가지 식[四食]15)을 취하여 쓰지 않고 부처님을 내보이며 식주(食住)16)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둘째는 중생의 선근을 증장시키기 위함이며, 셋째는 모든 사람과 똑같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넷째는 제자들로 하여금 네 가지 명(命)을 연(緣)하는 것을 여법하게 배워 받아들여 쓰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지족행(知足行)을 배우게 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정근의 방편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며, 일곱째는 다른 사람의 선근을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며, 여덟째는 자신이 더러움에 물듦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며, 아홉째는 정법(正法)을 공경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며, 열째는 본래의 원(願)이 생하는 것을 원만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016_1246_a_17L論曰第四食爲食釋曰此句明住甚深亦有十因爲證一示諸佛不資四食以顯自身由食住故二爲長衆生善根故三爲顯同諸人故四欲令弟子如法學受用四種命緣故五欲令他學知足行故六令他起正勤方便故七爲成熟他善根故八欲顯自身無染著故九爲治正法恭敬心故十爲圓滿本願生故
여래께서 이러한 의미로 말미암아 식(食)한다면 네 가지 식[四食]17) 가운데 무슨 식인가? 네 번째의 식이다. 네 가지 식이란 첫째는 청정하지 않은 의지에 머무는 식이다. 즉 단식[段] 등의 네 가지 식은 욕계의 중생의 신(身)을 서로 이어져 머물 수 있게 한다. 욕계의 중생은 두 가지 계박[縛]을 모두 보고 닦기 때문에 의지가 청정하지 않다. 이 의지는 네 가지 식으로 말미암아 머물 수 있기 때문에 청정하지 않은 의지에 머무는 식이라고 일컫는다. 둘째는 깨끗하기도 하고 깨끗하지 않기도 하는 의지에 머무는 식이며, 업식이 세 가지 식을 촉(觸)하는 것을 말한다. 색계와 무색계의 중생의 신이 서로 이어져 머물 수 있게 한다. 이 두 계의 중생은 이미 하계(下界)18)의 혹을 떠났으나, 스스로의 지(地)와 상계의 혹은 아직 떠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의지도 역시 깨끗하기도 하고 깨끗하지 않기도 하다. 이 의지는 세 가지 식으로 말미암아 머물 수 있기 때문에 깨끗하기도 하고 깨끗하지 않기도 하는 의지에 머무는 식이라고 한다.
016_1246_b_03L若如來由此義故食於四食中是何食是第四食食者一非淸淨依止住食謂段等四令欲界衆生身得相續住欲界衆生具見修二縛故依止不淸淨此依止由四食得住故名非淸淨依止住二淨不淨依止住食謂業識觸三令色無色界衆生身得相續住二界衆生已離下界惑未離自地及上界惑故依止亦淨不淨此依止由三食得住故名淨不淨依止住食
016_1246_c_01L셋째는 청정한 의지에 머무는 식이며, 단식 등의 네 가지 식이 성문과 연각의 신을 서로 이어져 머물 수 있게 한다. 2승의 사람은 삼계의 혹을 이미 다하였기 때문에 의지가 청정하다. 이 의지는 네 가지 식으로 말미암아 머물 수 있기 때문에 청정한 의지에 머무는 식이라고 일컫는다.
넷째는 드러낼 수 있는 의지에 머무는 식이다. 단식 등의 네 가지 식은 모든 부처님의 식이다. 왜냐 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식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드러내어 세상에 머물 수 있다. 시주(施主)에게 깨끗한 믿음을 생하여 키우게 되고 선근의 공덕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이 식은 여래의 식의 일을 짓지 않는다.
여래께서 식을 할 때에 모든 하늘이 받아서 중생에게 베풀며, 여래의 뜻에 의해 허락하여지기 때문에 중생은 이 식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부처를 이룰 수 있다.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를 이룰 수 있게 하기 위해 여래께서는 손으로써 식을 촉함을 드러내 보인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의미들이 모두 깊고 깊음이다.
016_1246_b_13L淸淨依止住食謂段等四食令聲聞緣覺身得相續住二乘人三界惑已盡故依止淸淨此依止由四食得住故名淸淨依止住食四能顯依止住段等四食悉是諸佛食何以故佛由此食故顯自身得住於世爲生長施主淨信爲因功德善根故此食不作如來食事如來食時諸天爲受施諸衆生是如來意所許故衆生由此食當得成佛爲令衆生得成佛故如來示現以手觸食如此等義悉是甚深

【論】다름이 없고 역시 헤아릴 수 없으며,
헤아려 셀 수 없지만 하나의 사(事)이다.
가장 견고하면서도 견고하지 않은 업이어서
위가 없으며, 3신과 서로 응한다.
016_1246_c_02L論曰
無異亦無量
無數量一事
最堅不堅業
無上應三身

【論】다름이 없고 역시 헤아릴 수 없으며,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두 번째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이 깊고 깊은 가운데는 다시 세 가지 깊고 깊음이 있다. 첫째는 안립함이고, 둘째는 개수[數]이며, 셋째는 업이다. 이 구절은 안립함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의 법신은 차별이 없기 때문에 다름이 없다. 수없이 법을 의지하여 이 법신을 증득하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다.
016_1246_c_04L論曰無異亦無量釋曰此下一偈明第二甚深此甚深中復有三種甚一安立二數三業此句明安立甚諸佛法身無差別故無異衆多依止法證得此法身故無量
【論】헤아려 셀 수 없지만 하나의 사(事)이다.
【釋】이 구절은 개수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3승의 중생을 헤아려 셀 수 없지만 그 가운데 모든 부처님이 하나의 일[事]이다.
016_1246_c_09L論曰數量一事釋曰此句明數甚深乘衆生無有數量於中諸佛一事
【論】가장 견고하면서도 견고하지 않은 업이어서 위가 없으며, 3신과 서로 응한다.
【釋】이 두 구절은 업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3신이 서로 응함이 있어서 실체가 항상 머물기 때문에 위가 없다고 일컫는다. 응신으로 말미암아 여래의 업(業)이 견고하여 고쳐 바꿀 수 없으니, 진실이기 때문이다. 화신으로 말미암아 여래의 업이 견고하지 않다. 권교[權]19)로 말미암아 방편으로써 2승을 이끌어내어 뒤에 응신으로써 그들에게 보살도(菩薩道)를 닦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016_1246_c_11L論曰最堅不堅業無上應三身釋曰此兩句明業甚深諸佛有三身相應實體常住故稱無上由應身如來業堅固不可改轉以眞實故由化身如來業不堅固由權以方便引出二乘後以應身教彼修菩薩道故

【論】하나의 인식현상[法]도 깨달을 수 있음이 없으며,
모든 것이 깨달음이 아닌 것이 없어서,
한 생각 한 생각 헤아릴 수 없지만
유(有)가 있지 않음이 드러내어진다.
016_1246_c_17L論曰
無一法能覺
一切無不覺
一一念無量
有不有所顯

【論】한 법도 깨달을 수 있음이 없으며,
【釋】이 아래의 하나의 게송은 세 번째의 정각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인식 주관과 인식현상이 없어서 깨닫는 대상이 이미 없기 때문에 깨달을 주체도 역시 없다.
016_1246_c_20L論曰無一法能覺釋曰此下一偈明第三正覺甚深人法二非有所覺旣無故能覺亦無
016_1247_a_01L【論】모든 것이 깨달음이 아닌 것이 없어서,
【釋】모든 부처님은 거짓 이름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아닌 것이 없다. 따라서 깨달음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깨달음이라는 이 인식현상은 무엇인가?
016_1246_c_23L論曰一切無不釋曰諸佛由假名故無非是佛是故無一非覺覺此法云何
【論】한 생각 한 생각 헤아릴 수 없지만
【釋】한 순간 한 순간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의 바른 깨달음인 진여이다. 만약 이러하다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진여와 더불어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 만약 하나라고 한다면 깨달음이 없으며, 만약 다른 것이라면 진여가 없다.
016_1247_a_02L論曰一一念無量釋曰一一剎那無量諸佛正覺眞如若爾諸佛與眞如爲一爲異若一則無覺若異則無眞如
【論】유(有)가 있지 않음이 드러내어진다.
【釋】모든 인식현상을 유(有)가 있지 않음이라고 하니, 즉 모든 인식현상의 공(空)이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인식현상의 공에 의해 드러난다. 따라서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깨닫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
016_1247_a_05L論曰有不有所顯釋曰一切法名有不有謂一切法空諸佛是諸法空所顯是故不可說能覺不可說不覺

【論】탐욕이 없으니 탐욕을 떠남[離欲] 또한 없으며,
탐욕에 의해 벗어나 떠남[出離]을 얻는다.
이미 탐욕과 무욕(無欲)을 알았기 때문에
탐욕의 법여(法如)에 들어간다.
016_1247_a_08L論曰
無欲無離欲
依欲得出離
已知欲無欲
故入欲法如

【論】탐욕이 없으니 탐욕을 떠남 또한 없으며,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네 번째의 탐욕을 떠남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탐욕이 있지 않기 때문에 여래께서는 욕망이 없다. 본래로부터 탐욕이 없기 때문에 역시 탐욕을 떠남도 없다. 탐욕이 있다면 탐욕을 떠남이 있어야 하는데, 탐욕은 이미 없기 때문에 탐욕을 떠남도 없다.
016_1247_a_11L論曰無欲無離欲釋曰此下一偈明第四離欲甚深由欲不有故如來無欲從本無欲故亦無離欲若欲是有可有離欲欲旣本無故無離欲
【論】탐욕에 의해 벗어나 떠남을 얻는다.
【釋】모든 보살은 영원히 마음의 탐욕[上心欲]을 제거하였고, 단지 수면욕(隨眠欲)에 머물기 때문에 모든 보살은 벗어나 떠남을 얻어서 부처를 이룬다. 왜냐 하면 수면욕에는 고통이 머물지 않으므로 곧 2승의 열반과 같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의 탐욕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곧 범부와 다르지 않다. 무상의경(無上依經)에서 설하는 것과 같이 보살은 이런 생각을 짓는다. 모든 혹은 본래 중생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 혹은 단지 객진(客塵)이 스스로의 분별에 의해 일어난 것이니, 나는 이제 공능이 있어서 모든 중생의 객진번뇌를 제거하여 이치에 맞는 바른 가르침을 설할 수 있다.
016_1247_a_15L論曰依欲得出離釋曰由諸菩薩永除上心欲但留隨眠欲故諸菩薩得出離成佛何以故若不留此隨眠欲則同二乘涅槃若不除上心欲與凡夫不異如無上依經說菩薩作是念諸惑本來不入衆生自性淸淨諸惑唯是客塵自分別所起我今有能爲除諸衆生客塵煩惱能說如理正教
016_1247_b_01L이러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하열심을 일으키지 않으며, 보살은 이러한 생각으로 말미암아 중생에 대하여 귀하게 여기고 존경하는 마음을 생한다. 보살은 또한 이러한 생각을 일으키니, 모든 혹은 힘이 없고 공능이 없으며, 왜냐 하면 모든 혹은 진실한 의지가 없다. 단지 허망한 분별이다. 모든 혹은 이치에 맞는 바른 사유에 의해 관하여지면 다시 어그러져 틀림을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와 같고, 이와 같은 관을 지어야 한다. 이러한 관으로 말미암아 모든 혹은 다시 더럽히고 집착함을 일으키지 않는다. 만약 모든 혹이 다시 더럽히고 집착함이 없다면 이것이 최선이며, 더럽히고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애욕의 혹에 더럽히고 집착한다면, 내가 어떻게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계박을 풀고 이치에 맞는 바른 가르침을 설할 수 있겠는가? 이 혹은 생사가 서로 이어지게 할 수 있으며 선근과 서로 응할 수 있으며 중생을 성숙시킬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지금 마땅히 이 혹을 섭지하여 머물러야 한다.
016_1247_b_01L由此念菩薩不起下劣心薩由此念於衆生生貴敬心諸菩薩復作是念諸惑無力無能何以故惑無眞實依止但虛妄分別諸惑理正思惟所觀不更起乖違是故我等應作如此如此觀由此觀諸惑不更生染著若諸惑無復染著是爲最非是染著若我愛惑染著我云何能爲衆生解煩惱繫縛說如理正教此惑能令生死相續與善根相應熟衆生是故我今應攝留此惑
【論】이미 탐욕과 무욕을 알았기 때문에 탐욕의 법여에 들어간다.
【釋】보살은 탐욕이 분별성이기 때문에 탐욕이 있지 않다는 것을 본다. 탐욕의 무상성이 곧 탐욕이라는 인식현상의 진여이다. 보살은 탐욕이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서 이 진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탐욕에서 벗어나 떠남을 얻는다.
016_1247_b_11L論曰已知欲無欲故入欲法如釋曰菩薩見欲是分別性故欲不有欲無相性卽是欲法眞如菩薩知欲不有得入此眞如故於欲得出離

【論】모든 부처님께서는 5음(陰)을 넘어서서
5음 가운데 머문다.
음과 더불어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며,
음을 버리지 않고 열반에 든다.
016_1247_b_15L論曰
諸佛過五陰
於五陰中住
與陰非一異
不捨陰涅槃

【論】모든 부처님께서는 5음을 넘어서서 5음 가운데 머문다.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다섯 번째의 음을 멸함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미 색 등의 다섯 취음(取陰)을 넘어섰다. 5음을 얻지 아니함으로 해서 음의 법여 가운데 머문다.
016_1247_b_18L論曰諸佛過五陰於五陰中住釋曰此下一偈明第五滅陰甚深佛已過色等五取陰由不得五陰陰法如中住
016_1247_c_01L【論】음과 더불어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며,
【釋】모든 부처님께서는 음의 분별을 이미 버렸다. 의타성은 음과 더불어 하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다. 왜냐 하면 부처님에 의해 머무는 5음의 진여는 분별과 의타의 음인 가법(家法)이기 때문에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의미로 말미암아 비록 하나이면서 다른 것이 아닌 것이 아니다. 진여는 청정한 경계이고, 음은 청정하지 않은 경계이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다.
016_1247_b_22L論曰與陰非一異釋曰諸佛已捨陰分別依他性與陰非一非異何以故佛所住五陰眞如是分別依他陰家法故不異由此義雖一非不異眞如是淸淨境界陰非淸淨境界故非一
【論】음을 버리지 않고 열반에 든다.
【釋】음의 진여와 더불어 영원히 서로 응함으로 말미암아 버리고 떠난다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여래의 반열반은 가장 수승하다.
016_1247_c_04L論曰不捨陰涅釋曰由與陰眞如永相應無捨離義故如來般涅槃最勝

【論】모든 부처님의 일은 서로 섞여서
마치 큰 바다의 물과 같다.
나는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이미 지었고, 현재 짓고 있으며,
마땅히 지어야 한다는 이러한 생각이 없다.
016_1247_c_06L論曰
諸佛事相雜
由如大海水
我已正應作
他事無是思

【論】모든 부처님의 일은 서로 섞여서 마치 큰 바다의 물과 같다.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여섯 번째의 성숙함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의 중생에 대해 공통되고 똑같이 이익되는 일은 마치 흐르는 많은 물이 큰 바다에 들어가서 똑같이 거북과 물고기 등이 받아 쓰게 되듯이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계의 진여에 들어가서 평등하게 이익되는 일을 지어서 중생을 성숙시킨다.
016_1247_c_08L論曰諸佛事相雜由如大海水釋曰此下一偈明第六成熟甚深佛於衆生共同利益事譬如衆流入於大海同爲龜魚等受用如此諸佛共入法界眞如平等作利益事成熟衆生
【論】나는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이미 지었고, 현재 짓고 있으며, 마땅히 지어야 한다는 이러한 생각이 없다.
【釋】내가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이미 지었고, 현재 짓고 있으며, 마땅히 지어야 한다고 하는 작의(作意)와 사량이 삼세 가운데 모두 없다. 비록 작의하지 않아도 이익되는 일은 인식현상에 맞게 이루어질 수 있다. 마치 마니보주와 천고(天鼓)와 같이 작의함이 없어도 짓는 일을 이룬다.
016_1247_c_14L論曰我已正應作他事無是釋曰我已作他利益事正作當於三世中竝無作意思量雖不作利益事如法得成譬如摩尼寶及天鼓無有作意而所作事成

【論】과실로 말미암아 세존께서 현현하지 않는 것이
마치 깨어진 그릇의 달과 같고,
모든 세간에 두루 가득하니,
법광(法光)으로 말미암아 해와 같다.
016_1247_c_18L論曰
由失尊不現
如月於破器
遍滿諸世閒
由法光如日
016_1248_a_01L
【論】과실로 말미암아 세존께서 현현하지 않는 것이 마치 깨어진 그릇의 달과 같고,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일곱 번째로 현현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께서 현현하지 않아도 세간에서는 모든 불신(佛身)이 항상 머문다고 설한다. 만약 신이 항상 머문다면 어찌하여 현현하지 않는가? 마치 깨진 그릇 가운데에 물이 머물 수 없는 것과 같다. 물이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깨진 그릇 가운데 달이 실제로 있어도 현현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은 사마타(奢摩他)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듯이 서로 이어짐이 없고 단지 과실이 서로 이어짐이 있다. 거기에 실제로 모든 부처님께서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현현할 수 없다. 물은 사마타의 부드럽고 미끄러운 성질을 비유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현현하지 않는다고 어찌 부처님께서 없을 수 있겠는가?
016_1247_c_20L論曰由失尊不現如月於破器釋曰此下一偈明第七顯現甚深佛於世閒不顯現而世閒說諸佛身常住若身常住云何不顯現譬如於破器中水不得住由水不住故於破器中實有月不得顯現如此諸衆生無奢摩他軟滑相續但有過失相續於彼實有諸佛亦不顯現水譬奢摩他軟滑性故若佛不顯現可無佛耶
【論】모든 세간에 두루 가득하니, 법광으로 말미암아 해와 같다.
【釋】만약 모든 부처님이 과실이 없는 중생에게 보여진다면 역시 항상 모든 부처님의 바른 일을 짓고, 3승의 12부 경전을 설한다. 마치 광명과 같다는 것은 결정코 모든 보살이 하열한 종류의 중생을 성숙시켜 해탈시키는 등의 모든 이익되는 일을 짓는 것이다. 마치 세간 속의 선천적인 맹인이 비록 대낮의 해의 광명이 항상 비추고 있는 모든 차별적 대상의 형상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눈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016_1248_a_06L論曰遍滿諸世閒由法光如日釋曰若諸佛於非有過失衆生所見亦恒作諸佛正事說三乘十二部經猶如光明定是諸佛應作下種成熟解脫等諸利益事如世閒中生盲人雖不見日日光恒照一切色像爲令有目者得見故

【論】마치 불과 같이 혹은 정각을 얻는 것을 드러내고,
혹은 열반을 얻는 것을 드러내지만
이 두 가지가 실제로 있지 않으니,
모든 부처님께서는 항상 머물기 때문이다.
016_1248_a_13L論曰
或現得正覺
或涅槃如火
此二實不有
諸佛常住故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여덟 번째의 보리와 반열반(般涅槃)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어느 곳에서는 정각을 얻는 것을 드러내고, 어느 곳에서는 반열반을 드러낸다. 마치 불의 자성이 어느 곳에서는 사르고, 어느 곳에서는 멸하는 것과 같다. 모든 부처님도 역시 이러하여, 여래께서는 이미 성숙한 모든 중생에게는 반열반을 드러내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중생에게는 정각을 얻는 것을 드러내니, 그들로 하여금 성숙함과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마치 불의 자성이 종류로 말미암아서는 하나이듯이 법신도 역시 이와 같아서 진여의 자성으로 말미암아 하나이다.
016_1248_a_15L論曰或現得正覺或涅槃如火釋曰此下一偈明第八菩提般涅槃甚深諸佛有處現得正覺有處現般涅槃譬如火性有處然有處滅諸佛亦爾有諸衆生已成熟如來於彼現般涅槃於未成熟現得正覺爲令彼得成熟及解脫故譬如火性由種類是一法身亦爾由眞如性是一
016_1248_b_01L【論】이 두 가지는 실제로 있지 않으니,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머물기 때문이다.
【釋】보리와 열반에 드는 것이 둘이 되어, 단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변이시켜서 그들이 두 가지 체이다라고 말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둘이 있지 않다. 여래의 법신은 항상 머무르므로 앞과 뒤가 없기 때문이다.
016_1248_a_23L論曰此二實不有諸佛常住故釋曰菩提般涅槃爲二但變異他心令他謂二體實不有由如來法身常住無前後故

【論】여래께서는 나쁜 사(事)에 있어서나
인도(人道)와 악도(惡道)에 있어서나
범행(梵行)이 아닌 법에 있어서
제일(第一:勝)의 머묾과 자성[我]에 머문다.
016_1248_b_04L論曰
如來於惡事
人道及惡道
於非梵行法
住第一住我

【釋】이 하나의 게송은 아홉 번째로 머묾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부처님과 여래께서는 가장 수승한 머묾에 머물고, 가장 수승한 자성에 머문다. 모든 부처님께서 머문다면 이 두 곳을 떠나지 않는다. 혹은 가장 수승한 머묾에 머물고, 혹은 가장 수승한 자성에 머문다. 나쁜 사(事)란 모든 선하지 않는 인식현상을 말한다. 여래께서는 선하지 않은 인식현상에서도 항상 가장 수승한 머묾에서 머문다. 가장 수승한 머묾이란 진공(眞空)의 선정이니, 곧 성스러운 머묾이다. 중생이 만약 인도(人道)에 있거나 만약 악도에 있다면 여래께서는 그 중생들을 연하여 머문다. 혹은 네 번째의 선정으로 말미암는다면 곧 천주(天住)이니 가장 수승한 머묾이라고 하며, 혹은 대비(大悲)로 말미암는다면 곧 범주(梵住)이므로 가장 수승한 머묾이라고 한다.
범행(梵行)이 아닌 법에서는 여섯의 차별적 대상[六塵]에 물들고 집착함을 말하므로 이 가운데서 부처님께서는 가장 수승한 자성에 머문다. 가장 수승한 자성이란 곧 법계의 청정이다. 여래께서는 항상 여섯의 차별적 대상이 공하다는 것을 관하여서 체로 삼고 경계로 삼으니 곧 불주(佛住)이다.
016_1248_b_06L釋曰此一偈明第九住甚深諸佛如來住最勝住住最勝我諸佛若住不離此二處或住最勝住或住最勝我惡事謂一切不善法如來於不善法恒住最勝住最勝住謂眞空定卽是聖住衆生若在人道中若在惡道中如來緣彼衆生住或由第四定卽是天住謂最勝住或由大悲卽是梵住謂最勝住於非梵行法謂六塵染著此中佛住最勝我最勝我卽法界淸如來恒觀六塵空爲體爲境卽是佛住

【論】부처님께서 모든 처(處)에 행하시거나,
역시 하나의 처에도 행하지 않으시거나,
모든 생함에서 드러나는 것은
6근(根)의 경계가 아니다.
016_1248_b_18L論曰
佛一切處行
亦不行一處
於一切生現
非六根境界

【論】부처님께서 모든 처(處)에 행하시거나,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열 번째로 자체를 현현함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여래의 후지(後智)는 선과 악과 무기(無記)의 법 가운데 두루 가득하여 항상 행한다.
016_1248_b_20L論曰佛一切處行釋曰此下一偈明第十顯現自體甚深如來後智善惡無記法中遍滿恒行
016_1248_c_01L【論】역시 하나의 처에도 행하지 않으시거나,
【釋】무분별지로 말미암아 지혜를 떠난 경계는 분별할 수 없기 때문에 한 곳에도 행하지 않는다. 또한 다시 화신으로 말미암아 행하지 않는 처(處)가 없다. 법신으로 말미암아 응신이 행하는 곳이 없다.
016_1248_b_23L論曰不行一處釋曰由無分別智離智境界不可分別故無一處行復次由化身無處不行由法身應身無有行
【論】모든 생함에서 드러나는 것은 6근(根)의 경계가 아니다.
【釋】모든 부처님과 여래께서는 화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 가운데서 상을 갖추어 현현하므로 모든 부처님을 화신 내지는 지옥도(地獄道) 등의 중생으로 말미암아서 본다. 그것들에 있어서 생을 받아서 그들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께서는 변화한 자성과 같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그 중생은 비록 본다고 하더라도 요별할 수 없어서 이미 같은 품류라고 말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화신은 지옥 등의 중생의 6근의 경계가 아니다.
016_1248_c_04L論曰於一切生現非六根境界釋曰諸佛如來由化身於一切衆生中顯現具相諸佛由化身乃至地獄道等衆生亦見在彼受生爲化度彼由諸佛不現似變化性彼衆生雖見不能了別謂是已同類故佛化身非地獄等衆生六根境界
【論】모든 혹을 이미 멸하여 굴복시키니
마치 독이 주술(呪術)로써 방해되는 것과 같다.
혹으로 말미암아 혹을 다함에 이르니,
부처님께서는 일체지(一切智)를 증득하신다.
016_1248_c_10L論曰
諸惑已滅伏
如毒呪所害
由惑至惑盡
佛證一切智

【論】모든 혹을 이미 멸하여 굴복시키니 마치 독이 주술로써 방해되는 것과 같다.
【釋】이 밑으로의 하나의 게송은 열한 번째로 혹을 멸함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모든 혹은 견도와 수도의 번뇌를 말한다. 보살지 가운데서 먼저 이미 멸하여 다하였으나 나머지 마음의 번뇌가 비록 다시 멸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지혜의 상념[智念]으로 말미암아 그 공용이 굴복되고 못쓰게 된다. 마치 독이 주술의 힘에 의해 방해되어서 다시 본래의 공능이 없는 것과 같다. 마음의 혹도 역시 이러하다. 지혜의 상념에 의해 지켜져서 다시 두 가지 혹에 물드는 것을 생할 수 없다.
016_1248_c_12L論曰諸惑已滅伏如毒呪所害釋曰此下一偈明第十一滅惑甚深諸惑謂見修煩惱於菩薩地中先已滅盡餘心煩惱雖復未滅由智念所伏廢其功用譬如衆毒呪力所害無復本能心惑亦爾智念所守不能復生二惑染污
【論】혹으로 말미암아 혹을 다함에 이르니 부처님께서는 일체지를 증득한다.
【釋】모든 보살은 수면혹(隨眠惑)에 머물러서 도를 돕는 부분으로 삼으니, 2승과는 다르게 빨리 열반에 든다.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도의 구경을 닦아서, 습기가 멸하여 다하는 것을 얻고 원만한 지혜[圓智]를 증득한다.
016_1248_c_19L論曰由惑至惑盡佛證一切智釋曰諸菩薩留隨眠惑爲助道分不同二乘速般涅槃由此事故修道究竟得習氣滅盡及證圓
016_1249_a_01L
【論】이치[諦]와 혹이 깨달음의 부분[覺分]을 이루고,
생사가 열반이 되어
큰 방편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을 사의(思議)하기 어렵다.
016_1248_c_23L論曰
諦惑成覺分
生死爲涅槃
得成大方便
故佛難思議

【論】이치와 혹이 깨달음의 부분을 이루고,
【釋】이 밑으로는 열두 번째로 사의할 수 없음의 깊고 깊음을 밝힌다. 혹에 머묾으로 말미암아 혹이 다하는 것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2승의 집제(集諦)가 보살의 깨달음의 부분을 이룬다는 것이다. 2승의 깨달음의 부분이 그 집제를 멸할 수 있다고 한다면 보살은 그 집제로써 마음의 혹을 멸하기 때문에 깨달음의 부분을 이룬다.
016_1249_a_02L論曰諦惑成覺分釋曰此下明第十二不可思議甚深若由留惑故得惑盡者二乘集諦成菩薩覺分如二乘覺分能滅彼集諦菩薩用彼集諦以滅心惑故成覺分
【論】생사가 열반이 되어
【釋】만약 집제가 깨달음의 부분이라면 고제(苦諦)는 곧 열반이다. 왜냐 하면 모든 보살은 생사에 있어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자신과 남의 양쪽의 이익을 일으켜 모두 원만함을 얻는다. 비유하건대 2승이 유여열반에 있으면서, 두 가지 혹에 물들지 않아서 스스로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016_1249_a_07L論曰生死爲涅槃釋曰若集諦是覺分苦諦卽是涅槃何以故諸菩薩在生死不被染污起自他兩利皆得圓滿譬如二乘在有餘涅槃不爲二惑所染污得自利
【論】큰 방편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부처님을 사의하기 어렵다.
【釋】인의 위계에 있어서 큰 방편을 얻는 것을 반야의 대비(大悲)라고 한다. 과의 위계에 있어서 큰 방편을 얻는 것을 3신(身)이라고 한다. 법신은 스스로의 이익의 방편이고, 나머지 두 신은 남을 이익하게 하는 방편이다. 따라서 여래를 사의할 수 없다.
016_1249_a_12L論曰得成大方便故佛難思議釋曰在因位得大方便謂般若大悲在果位得大方便謂三身身是自利方便餘二身是利他方便是故如來不可思議
【論】이러한 의미로 말미암아 열두 가지 깊고 깊음이 생부주업주심심(生不住業住甚深)ㆍ안립수업심심(安立數業甚深)ㆍ정각심심(正覺甚深)ㆍ이욕심심(離欲甚深)ㆍ음멸심심(陰滅甚深)ㆍ성숙심심(成熟甚深)ㆍ현현심심(顯現甚深)ㆍ보리열반현현심심(菩提涅槃顯現甚深)ㆍ주심심(住甚深)ㆍ현현자체심심(顯現自體甚深)ㆍ멸혹심심(滅惑甚深)ㆍ불가사의심심(不可思議甚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釋】부처님께서는 3신이 있다. 모든 보살이 만약 부처님을 억념(憶念)한다면 마땅히 무슨 신과 연하여야 하는가? 마땅히 법신과 연하여야 한다.
016_1249_a_16L論曰由此義故十二種甚深應知謂生不住業住甚深安立數業甚深正覺甚深離欲甚深陰滅甚深成熟甚深顯現甚深菩提般涅槃顯現甚深住甚深顯現自體甚深滅惑甚深不可思議甚深釋曰佛有三身諸菩薩若念佛應緣何身應緣法身
016_1249_b_01L【論】모든 보살은 법신을 연하여 부처님을 억념한다. 이 억념은 몇 가지 상을 연하는가?
【釋】법신에는 헤아릴 수 없는 깊고 깊은 도리가 있다. 만약 법신을 연한다면 몇 가지 상을 연하는가?
016_1249_a_23L論曰諸菩薩緣法身憶念佛此念緣幾相釋曰法身有無量甚深道理若緣法身應緣幾
【論】간략하게 설한다면 모든 보살은 법신에 의하여 부처님에게 일곱 가지 상이 있음을 억념하는 것을 닦아 익힌다.
【釋】이 일곱 가지 상은 법신의 바른 사용이며, 곧 법신의 원만한 덕이다. 이 원만한 덕을 반드시 연하여 부처님을 억념하는 것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에 간략하게 설하여 일곱 가지 상이다. 첫째는 모든 부처님의 원만한 덕은 자신의 마음에 속하니, 6신통이 자재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 덕은 항상 머무니, 진실한 선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가장 과실이 없으니, 습기를 멸하여 다하였기 때문이다. 넷째는 삼가할 것이 없고 어려움도 없으니, 공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큰 법의 즐거움을 받으니, 모든 토(土)가 청정하기 때문이다.
016_1249_b_03L論曰若略說諸菩薩依法身習念佛有七種相釋曰此七相是法身正用卽是法身圓德爲顯念佛須緣此圓德故略說七相一諸佛圓德屬自心由六通自在故二此德常住是眞實善故三最無過失滅習氣盡故四無惓無難無功用故五受大法樂由諸土淸淨故
여섯째는 고통이 없으며 어려움이 없으니, 더러움의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일곱째는 큰 일[事]의 작용[用]20)이 있으니, 평등하게 남에게 이익되기 때문이다. 만약 보살이 이 일곱 가지 원만한 덕을 억념한다면 곧 법신을 통달한다. 반드시 법신에 의거하여 부처님을 억념하는 것을 닦아 익혀야 한다는 것은 모든 관을 행하는 문[觀行門]을 배우는 것이 모두 진여를 연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만약 진여를 연하지 않는다면 곧 관을 행하는 것이 청정하지 않는 것이다.
016_1249_b_10L六無苦無難無染障故七有大事用平等利他故菩薩憶念此七種圓德則能通達法須依法身修習念佛者爲顯學一切觀行門皆緣眞如得成若不緣眞如則觀行不淸淨
【論】무엇 등이 일곱인가?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든 인식현상에 있어서 비길 데 없는 자재에 도달하므로
【釋】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6신통의 경계[六通境]에서 가장 궁극적인 자재를 얻는다. 같은 부류의 사람은 장애가 될 수 없으나, 낮은 부류의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있는 위계 가운데에서나, 마음이 없는 위계 가운데서 항상 폐기되지 않는다. 닦아 익힘이 성숙하여지기 때문에 자재라고 한다. 성문과 독각과 보살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세간에서는 비유할 수 없기 때문에 비길 데 없다고 말한다.
016_1249_b_15L論曰何等爲七一諸佛於一切法至無等自在釋曰三世諸佛於六通境得最極自在同類人不能爲㝵下類人非所能及在有心無心位中恒不廢以修習成熟故故名自在非聲聞獨覺菩薩所得又於世閒無可譬故名無等
【論】이와 같이 부처님을 억념하는 것을 닦아 익힌다.
【釋】이 억념이 법신과 더불어 하나를 이루게 하기 때문에 닦아 익힌다고 말한다.
016_1249_b_21L論曰如此修習念佛釋曰令此念與法身成一故名修習
016_1249_c_01L【論】모든 세계에서 장애가 없고 변제[邊]가 없는 6신통의 지혜를 이르러 얻기 때문이다.
【釋】모든 부처님께서는 6신통[六通]을 성취한다. 시방세계에서는 가로막거나 손상할 수 없고, 제한된 끝이 없다. 2승이 장애가 있고 변제가 있는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여래의 신통의 자재는 비길 데 없다.
016_1249_b_23L論曰於一切世界至得無㝵無邊六通智故釋曰諸佛成就六通於十方世界無能沮損無有限極不同二乘有㝵有邊故如來通慧自在無等
【論】이 가운데 게송으로 읊는다.
【釋】만약 모든 부처님에게 모든 법에 대하여 비길 데 없는 자재가 있다면 어찌하여 모든 중생은 모두 열반에 들지 못하는가? 이러한 힐난을 설명하기 위하여 게송으로 읊는다. 이 게송은 이 원인을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열반에 들지 못한다.
016_1249_c_04L論曰中說偈釋曰若諸佛於一切法有無等自在云何一切衆生不悉般涅爲釋此難是故說偈此偈爲顯此由此因故彼不般涅槃

【論】장애를 당하거나 원인을 갖추지 못한
모든 중생계가
두 가지 정(定) 가운데 머물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자재하지 못한다.
016_1249_c_08L論曰
被障因不具
一切衆生界
住二種定中
諸佛無自在

【論】장애를 당하거나 원인을 갖추지 못한
【釋】모든 중생이 만약 업 등의 장애가 있다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위계 가운데서 그들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할 수 없다. 통혜(通慧:神通)가 장애를 입기 때문에 자재를 얻지 못하고, 만약 중생에게 열반의 자성이 없다면 원인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 위계 가운데서 그들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할 수 없다. 통혜가 역시 자재함이 없고 열반의 자성이 없다는 것은 생사를 탐착하고 대승을 즐거이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016_1249_c_10L論曰被障因不具釋曰一切衆生若有業等諸障諸佛於此位中不能令彼般涅槃通慧由被障故不得自若衆生無涅槃性名因不具諸佛於此位中不能令彼般涅槃通慧亦無自在無涅槃性謂貪著生死不信樂大乘
016_1250_a_01L【論】모든 중생계가 두 가지 정 가운데 머물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자재하지 못한다.
【釋】중생계가 4대(大)라고 하는 것은 공허한 인식이고, 여섯 가지 계(六界)가 참다운 것이다. 이 여섯 가지 계에 의하여 중생을 거짓 세운다. 중생은 거짓 이름이다. 6도(道)의 차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중생이 만약 두 가지 정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첫 번째는 행하여지는 업의 정이고, 두 번째는 과보의 정[果報定]을 받아 업을 짓는 정이니, 범부에 의해 행하여지는 10악(惡) 등을 말한다. 업은 결정코 4악도(惡道)의 과보를 감응한다. 과보의 정이란 극히 둔한 근기의 미친 중생과 4악도의 과보를 현재 받고 있는 것을 말한다. 여래께서는 이러한 중생에 대하여 역시 자재하지 못한다. 왜냐 하면 바깥과의 연이 없기 때문이다.
016_1249_c_17L論曰一切衆生界住二種定中諸佛無自在釋曰衆生界四大空識六界是實依此六界假立衆生衆生是假名有六道差別故言一切如此衆生若在二種定中一所作業定二受果報定作業定謂凡夫所作十惡等業決定應感四惡道報果報定謂極鈍根顚狂衆生及正受四惡道報如來於此衆生亦無自在何以故以無外緣故
【論】둘째는 여래의 신(身)이 항상 머무니,
【釋】열 가지 원인으로써 법신과 많은 덕이 항상 머무는 것을 함께 증득할 수 있다. 세 가지 원인은 법신을 증득하고 일곱 가지 원인은 나머지 신을 증득한다. 세 가지 원인이 법신을 증득한다는 것은 논에서 설함과 같다.
016_1250_a_03L論曰二如來身常住釋曰以十種因共證法身及衆德常住三因證法身七因證餘三因證法身者如論
【論】진여로 말미암아 빈틈 없이 모든 더러움을 해탈하기 때문이다.
【釋】이것은 세 가지 원인 가운데 하나의 원인이다. 진여는 도(道) 뒤의 진여를 말한다. 빈틈이 없는 자리[無間位]는 곧 부처님의 금강심(金剛心)이다. 최후의 미세한 무명을 멸할 수 있고 생사의 고제(苦諦)와 집제(集諦)가 없기 때문에 모든 더러움을 해탈하였다고 말한다. 이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진여가 항상 머무는 법이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이것으로써 신(身)을 삼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신은 항상 머문다. 이 신이 항상 머물고 이 신에 의지하여 많은 덕이 있기 때문에 많은 덕이 역시 항상 머문다. 이 항상 머무는 것은 진실성으로써 상을 삼는다.
016_1250_a_06L論曰由眞如無閒解脫一切垢故釋曰此卽三因中一因眞如謂道後眞如無閒位卽佛金剛心能滅最後微細無明及無有生死苦集二諦故言解脫一切垢此無垢淸淨眞如是常住法諸佛以此爲身故諸佛身常住由此身常住依此身有衆德故衆德亦常住此常住以眞實性爲相
【論】셋째는 여래께서는 가장 과실이 없으니, 모든 혹장과 지장을 영원히 서로 떠났기 때문이다.
【釋】모든 과실이 있거나 과실이 없는 중생 가운데 여래께서 가장 과실이 없다. 과실의 인연을 이미 멸하여 다하였기 때문에 현재에는 이미 멸하였고 미래에는 생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서로 떠났다고 말한다.
016_1250_a_14L論曰三如來最無失一切惑障及智障永相離故釋曰一切有失無失衆生中如來最無失由過失因緣已滅盡故現在已滅未來不生故言永相離
【論】넷째는 모든 여래의 일은 공용(功用)이 없이 이루어지니,
【釋】뜻을 지음[作意]을 공용이라고 한다. 삼세를 연하여 일어나니, 나는 이미 지었고 현재 짓고 있으며 장차 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작의를 떠난 것을 공용이 없다고 말한다. 단지 본래의 원력으로 말미암아 짓고자 하는 일이 자연히 모두 이루어진다.
016_1250_a_18L論曰一切如來事無功用成釋曰作意名功用緣三世起謂我已作正作當離如此作意名無功用但由本願所欲作事自然皆成
016_1250_b_01L【論】공용을 말미암지 않고 항상 바른 일을 일으켜서 영원히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釋】만약 공용으로 말미암아 바른 일이 있다면 곧 일으키기도 하고 일으키지 않기도 한다. 공용으로 말미암지 않기 때문에 항상 일으킨다. 본래의 원력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버리지 않는다. 중생이 다하지 않기 때문에 본래의 원도 다하지 않는다.
016_1250_a_22L論曰不由功用恒起正事永不捨故釋曰由功用有正事則有起不起以不由功用是故恒起由本願無盡故永不以衆生不盡故本願不盡
【論】다섯째는 여래의 큰 부유함과 즐거움의 위계[富樂位]이다.
【釋】크게 부유함은 바깥의 재물로 말미암고 크게 즐거움은 바른 법으로 말미암는다.
016_1250_b_03L論曰五如來大富樂位釋曰大富由外大樂由正法
【論】모든 불토(佛土)의 가장 미묘하고 청정함이 부유함과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釋】정토(淨土) 가운데는 여덟 가지는 얻을 수 없고, 두 가지는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미묘하고 청정하다. 여덟 가지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첫째는 외도(外道)이고, 둘째는 고통이 있는 중생이며, 셋째는 타고난 집안의 부유함 등의 차별이며, 넷째는 악을 행하는 사람이며, 다섯째는 계율을 깨뜨리는 사람이며, 여섯째는 악도(惡道)이고, 일곱째는 하열한 승(乘)이며, 여덟째는 하열한 뜻과 하열한 행의 보살이다. 두 가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첫째는 가장 상품(上品)의 뜻과 행의 모든 보살이며, 둘째는 모든 여래께서 세상에 현현하는 것이다. 머무는 곳[所住]이 가장 정묘하게 청정함이고, 머무는 주체[能住]가 가장 승묘하게 청정함이다.
016_1250_b_05L論曰一切佛土最微妙淸淨爲富樂故釋曰淨土中有八不可得二可得故名最微妙淸八不可得者一外道二有苦衆生三生姓家富等差別四惡行人五破戒人六惡道七下乘八下意下行諸菩薩二可得者一最上品意行諸菩二諸如來顯現於世所住爲最微淸淨能住爲最妙淸淨
【論】여섯째는 여래께서는 가장 더러움에 집착함[染著]이 없으니,
【釋】상심의 혹이 더러움이며, 수면의 혹이 집착함이다. 또한 혹장(惑障)에 있어서 더러움이고, 지장(智障)이 집착함이다. 또한 번뇌에 두 가지 상이 있다. 첫 번째는 기쁨으로 상을 삼고, 두 번째는 근심으로 상을 삼는다. 탐욕과 교만함과 견해[見] 등은 기쁨으로 상을 삼고, 성냄과 의심과 무명 등은 근심으로 상을 삼는다. 기쁜 상의 혹이 더러움이고, 근심스러운 상의 혹이 집착함이다. 두 가지 혹이 멸하여 다하기 때문에 더러움과 집착함이 없다고 일컫는다.
016_1250_b_13L論曰六如來最無染著釋曰上心惑爲染眠惑爲著又約惑障爲染智障爲著又煩惱有二相一以喜爲相二以憂爲相欲慢見等以喜爲相瞋疑無明等以憂爲相喜相惑爲染憂相惑爲二惑皆滅盡故名無染著
016_1250_c_01L【論】티끌이 허공을 더럽힐 수 없는 것과 같이 세간에 나와 나타내니, 모든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기 때문이다.
【釋】원인을 세우기 때문에 세상에 나온다고 하며, 과보를 이루기 때문에 세상에 나타낸다고 한다. 또한 스스로 이익됨이 원만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온다고 하며, 남을 이익되게 함이 원만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타낸다고 한다. 혹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도 세상에 나타내지 않는다. 마치 이미 도를 이루었으나, 아직 법륜을 굴리지 않는 것과 같다. 만약 법륜을 굴린다면 세간은 바야흐로 부처님이다, 일체지다라고 요별할 수 있다. 세간에 요별되기 때문에 세상에 나타낸다고 말한다. 여래께서는 비록 의복과 음식 등의 네 가지 연을 받아들여 쓰지만 중생의 선근을 생하여 키우기 위한 것이지, 자신을 돕고 이익되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러한 연 가운데 근심과 기쁨을 생하지 않기 때문에 세간의 법에 더렵혀지지 않는다. 공은 있지 않음으로써 체를 삼는다. 체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어떤 사물로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여래께서도 역시 이렇다.
016_1250_b_19L論曰出現世閒非一切世法所染如塵不能染空故釋曰因立故名出世成故名現世又自利圓滿故名出世利他圓滿故名現世或佛出世未現於世如已成道未轉法輪若轉法輪世閒方能了別是佛是一切智世閒所了別故名現世如來雖受用衣食等四緣爲生長衆生善根非爲資益自身於此緣中不生憂喜故不爲世法之所染污空以非有爲體體無㝵故不爲有物所染如來亦爾
【論】일곱째는 여래께서는 세간에서 큰 일의 작용을 가지니,
【釋】여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화신으로써 도를 이루고 내지는 열반에 드는 것을 큰 일이라 하고, 이 신이 짓는 바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작용이라고 한다.
016_1250_c_07L論曰七如來於世閒有大事用釋曰來出世以化身成道乃至般涅槃名大事此身所作衆生利益事名用
【論】위없는 보리와 큰 열반에 드는 것을 나타내 이룸[現成]으로 말미암아 성숙하지 못한 중생을 성숙시키고, 이미 성숙한 중생은 해탈하게 하기 때문이다.
【釋】아직 씨앗을 뿌리지 못하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중생으로 하여금 씨앗을 뿌리게 하고 성숙하게 하기 위하여 보리(菩提)를 나타내 이룬다. 이미 성숙하였으나 해탈하지 못한 중생을 해탈하게 하기 위하여 열반에 드는 것을 나타낸다.
016_1250_c_10L論曰由現成無上菩提及大般涅槃未成熟衆生令成熟已成熟衆生令解脫故釋曰爲未下種及未成熟衆生令下種成熟故現成菩提爲已成熟未解脫衆生令解脫故現般涅
【論】이 가운데 게송으로 읊는다.
【釋】이 가운데 두 개의 게송을 읊어서 일곱 가지 상을 거듭 밝혀 법신의 일곱 가지 원만한 덕을 드러낸다.
016_1250_c_16L論曰此中說偈釋曰此中說二重明七相顯法身七種圓德

【論】여래의 마음을 좇아 따르니,
원만한 덕이 항상하고 상실하지 않는다.
공용이 없이
중생에게 큰 법의 즐거움을 베풀 수 있다.
016_1250_c_17L論曰
隨屬如來心
圓德常無失
無功用能施
衆生大法樂

【論】여래의 마음을 좇아 따르니, 원만한 덕이
【釋】모든 부처님의 원만한 덕이란 6신통 등을 말한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따르지, 바깥의 연(緣)과는 관계가 없다.
016_1250_c_19L論曰隨屬如來心圓德釋曰諸佛圓德謂六通等但屬自心不關外緣
【論】항상하고
【釋】이 원만한 덕은 법신이 항상 머묾에 의거하여 진실한 선을 자성으로 삼기 때문에 많은 덕이 모두 항상하다.
016_1250_c_21L論曰釋曰此圓德由依常住法身眞實善爲性故衆德皆常
016_1251_a_01L【論】상실하지 않는다.
【釋】법신이 모든 장애를 떠남으로 해서 의지의 대상이 상실함이 없기 때문에 의지의 주체가 역시 상실함이 없다.
016_1250_c_23L論曰無失釋曰由法身離一切障所依無失故能依亦無失
【論】공용이 없이
【釋】인을 닦음과 본래의 원이 성숙하여짐으로 해서 행하여지는 불사(佛事)가 모두 자연히 이루어진다. 삼가할 것이 없고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공용이 없다고 말한다.
016_1251_a_02L論曰無功用釋曰由修因及本願成熟所作佛事皆自然成無惓無難故言無功用
【論】중생에게 큰 법의 즐거움을 베풀 수 있다.
【釋】정토의 자재를 얻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대인(大人)은 큰 법을 받을 수 있어서, 스스로 널리 이치에 맞는 행[如理行]을 얻고 남에게도 이치에 맞게 행하게 하기 때문에 법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016_1251_a_04L論曰能施衆生大法樂釋曰由得淨土自在有大人能受大法得弘自如理行令他如理行故名法樂

【論】두루 행하여 장애가 없고,
많은 사람을 평등하고 이익되게 한다.
모든 것은 모든 부처님이라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억념을 연(緣)한다.
016_1251_a_07L論曰
遍行無有㝵
平等利多人
一切一切佛
智人緣此念

【論】두루 행하여 장애가 없고,
【釋】여덟 가지 세간의 법에서 여래의 후지(後智)는 항상 이러한 일을 분별하지만, 이 가운데 근심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두루 행하여 장애가 없다. 장애가 있다면 고통이 있지만, 장애가 없기 때문에 편안하고 즐겁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비록 여섯 가지 차별적 대상을 행(行)하여도21) 언설을 넘어선다. 있다, 없다는 집착을 떠났기 때문이다.
016_1251_a_10L論曰遍行無有㝵釋曰於八世法如來後智恒分別此事於中無憂喜心故遍行無㝵若有㝵則有苦無㝵故安樂諸佛雖行六塵過於言說離有無執故
【論】많은 사람을 평등하고 이익되게 한다.
【釋】범부, 2승, 새로이 행하는 보살 그리고 깊이 행하는 보살을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 여래께서는 평등하고 이익되게 할 수 있으므로 대부행(大富行)ㆍ선도행(善道行)ㆍ안락행(安樂行)ㆍ자리행(自利行)ㆍ이이행(二利行)을 설한다. 이것들이 곧 큰 일이 있는 작용이다.
016_1251_a_15L論曰平等利多人釋曰凡夫二乘新行菩薩及深行菩薩名多人如來能平等利益說大富行善道行安樂行自利行二利行卽是有大事用
【論】모든 것은 모든 부처님이라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억념을 연한다.
【釋】모든 것이란 곧 앞의 일곱 가지 원만한 덕을 가리킴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모든 보살을 말한다. 모든 보살은 이 일곱 가지 상을 연하여 모든 부처님의 법신을 억념한다.
016_1251_a_19L論曰一切一切佛智人緣此念釋曰一切者卽目人謂諸菩薩諸菩薩緣此七相念一切佛法身
攝大乘論釋卷第十四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아리야식이란 본식(本識)을 기능상으로 분류하는 경우에 장식(藏識)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 내재적인 종자들을 내장(內藏)하고 있는 본식의 기능을 분류하여 아리야식이라고 한다.
  2. 2)아리야식[染識]이 부정품법의 종자를 갖춘 식인데, 이것이 전변하여 아마라식(阿摩羅識:淨識)이 된다. 아마라식은 정품의 종자를 갖춘 식이다.
  3. 3)색이란 색음(色陰)을 말하며 앞에서 보았듯이 색음은 곧 색식이라고 한다. 즉 색은 안식에 대한 대상이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여기에서는 대상성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색음을 이미 색식이라고 한다면 이미 대상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진 것을 말하기 때문에 대상이 인식되는 것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성이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대상성이 있는 근(根)이라고 해석해야 옳다. 근에 대상성이 있다는 것은 근이 곧 식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근을 통하여 대상성을 받아들이지만 유분의 훈습[有分熏習]으로 말미암아 식에 대상성이 내재하게 된다.
  4. 4)앞의 주석을 참조한다면 이 의미가 명확해질 것이다. 색식이란 곧 대상성이라고 이해함이 옳다고 생각된다.
  5. 5)6진(塵)을 말하지 아니하고 5진만을 말하는 것은 이미 분별이 없기 때문에 6식(識)이 없으며 6식이 없기 때문에 6진이 없다.
  6. 6)행음(行陰)을 말하고 있다. 앞에 행음의 전의부분 참조.
  7. 7)뒤에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8. 8)범어로는 dharma-kṣānti이다. 인(忍)이라고 하는 것은 4제(諦)를 관하여 선근을 생하는 것을 말하며(『아비달마구사석론』 권16 진제 역, 대정장 31권, p. 271 c 참조), 또한 지혜를 돕는 부류의 것이어서 인에 있어서 지혜에 관한 일을 설할 수 있다고 한다(위의 책 p.265 a 참조).
  9. 9)이 게송은 현장 역에는 누락되어 있다. 그 결과 장미아인은 다음 게송에서 4불호와 3념처를 같이 설하고 있다. 진제 역에서는 이 구절이 4불호를 설명하고 다음 번의 게송이 3념처를 설명한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앞의 책 하권, p.371 참조).
  10. 10)현장 역에서는 다음 번의 게송과 순서가 바뀌어 있다. 따라서 장미아인은 이 게송이 잊고 상실함이 없는 법(무망실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진제 역에서는 다음 번의 게송이 무망실법을 설명하고 이 게송은 습기를 뽑아 없앰[拔除習氣]을 설명한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11. 11)일주야(一晝夜)를 여섯으로 나누어 시간을 정한 것을 말한다.
  12. 12)이 게송은 현장 역에는 누락되어 있다. 앞에 4불호를 설명하는 게송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다.
  13. 13)다음 주석에서 설명하는 4식(食)의 네 번째인 식식(識食)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뒤에 식주(食住)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식주는 네 번째인 드러낼 수 있는 의지에 머무는 식[能顯依止住食]을 말한다.
  14. 14)식(食)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身)과 처(處)를 연관하여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인식 주체를 신(身)이라고 한다면 식은 인식 주체에 받아들여지는 질료(質料)이며, 처는 인식 주체가 인식을 일으키는 정신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식으로 인하여 머물 수 있으므로 처(處)가 형성될 수 있다. 식을 네 가지로 구분하여 첫째 단식(段食)은 욕계의 질료이며, 둘째 촉식(觸食)은 근(根)과 경계와 식(識)이 화합하여 만들어지는 질료이며, 셋째 작의식(作意食)은 심업(心業)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질료이며, 넷째 식식(識食)은 의식에 의해 생하는 질료이다(『아비달마구사석론』 진제 역, 대정장 31권, p. 212 참조).
  15. 15)원래의 4식(食)을 말한다.
  16. 16)범어로는 āhāra-stḥitika로 식이 머무는 양상을 설명한다. 뒷부분에 4식(食)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이 식주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7. 17)이 식은 식주의 식이다.
  18. 18)욕계를 말한다.
  19. 19)실교(實敎)의 반대 개념으로 대승의 가르침에 들어가도록 이끌어주는 방편의 가르침을 말한다.
  20. 20)뒤에 법신의 원덕의 일곱 가지 상을 설명하는 부분 가운데 일곱 번째의 상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도를 이루게 하고 열반에 드는 것이 큰 일이며,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짓는 것이 씀[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1. 21)행음(行陰)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