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攝大乘論釋論卷第二

ABC_IT_K0593_T_002
017_0008_c_01L
섭대승론석론 제2권
017_0008_c_01L攝大乘論釋論卷第二


세친 지음
수 천축삼장 급다ㆍ행구 등 한역
김묘주 번역
017_0008_c_02L世親菩薩造
隋天竺三藏笈多共行矩等譯


1. 응지의지승상승어 ②
017_0008_c_04L應知依止勝相勝語第一之二

4) 상장(相章)
017_0008_c_05L相章第四
【論】이 식의 양상이 성립함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1) 간략히 말하면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체의 양상[自相]이 성립하고, 둘째는 원인의 양상[因相]이 성립하며, 셋째는 결과의 양상[果相]이 성립한다.
이 중에서 아리야식을 자체의 양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모든 잡염법이 훈습하고서 그것이 생겨나는 원인이 되어 종자를 거두어 지니고 상응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원인의 양상이란, 모든 잡염법과 이 아리야식이 마치 그 모든 종자가 어느 때나 현현하는 데 원인이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결과의 양상이 성립한다는 것은, 이 아리야식은 그 모든 잡염법이 아득한 옛적부터 훈습의 세력에 의해 생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017_0008_c_06L論曰:成立此識相云何可見?略說有三種:一成立自相`二成立因相`三成立果相.於中阿梨耶識爲自相,一切染法熏習已,爲彼生因,攝持種子相應故.於中因相者,是諸染法,此阿梨耶識,如彼一切種子,一切時現起爲因故.於中成立果相者,此阿梨耶識,以彼諸染法,無始已來熏習力得生故.
017_0009_a_01L【釋】이상과 같은 별도의 명칭으로써 아리야식을 설명하였다. 이 별도의 설명 중에서 아직 그 양상을 모르기 때문에 아리야식의 자체의 양상ㆍ원인의 양상ㆍ결과의 양상 등을 말한다.
이 중에서 자체의 양상이란 모든 잡염법의 훈습을 조건[緣]으로 하고, 식이 그것을 일으키는 특수한 작용의 힘[功能勝異]2)이 있음을 말한다. 식의 자체에 이런 작용의 힘이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종자를 거두어 지니고 상응함’은 다음과 같다. 그 모든 잡염법이 훈습하고 나서 그 법이 생겨나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종자를 거두어 지닌다고 말한다. 그 훈습과 그 뛰어난 작용의 힘이 화합하기 때문에 상응한다고 이름한다. 이 자체의 양상은 모든 잡염법이 훈습하고 나서 그것이 생겨나는 원인이 되고, 종자를 거두어 지니며, 식과 상응한다.
모든 잡염법이 훈습하고서 뛰어난 작용의 힘을 얻고 능히 그것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 이것이 아리야식의 원인의 양상이다.
이 중에서 처음 ‘결과의 양상이 성립한다’는 것으로부터 ‘아득한 옛적부터 훈습의 세력 때문에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법이 훈습하고서 이 식이 생겨날 수 있음을 말한다. 아득한 옛적부터 훈습을 거두어 지니기 때문에 결과의 양상이라고 이름한다.
017_0008_c_14L釋曰:以如是等別名說阿梨耶識,於此別說未知其相故,說阿梨耶識自相`因相`果相等.於中自相者,一切染法熏習緣故,識有生彼功能勝異,顯示識體有此功能故.攝持種子相應者,彼一切染法熏習已,卽爲彼法生因,故言攝持種子.彼熏習與彼勝能合,故名相應,卽此自相一切染法熏習已,爲彼得生因.攝持種子相應識,爲諸染法熏習已,得勝功能能,爲彼生因.此是阿梨耶識因相.於中始從成立果相,乃至言無始來,熏習力故得生者,爲諸法熏習已,此識得生,攝持無始熏習,故名果相.

5) 훈습장(熏習章)
017_0009_a_05L熏習章第五
【論】또한 무엇이 훈습인가?3) 이 훈습은 명칭인데, 또한 무엇이 나타나게 되는 것인가?4) 그 법과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함으로써 능히 그 법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 이것은 원인이 되는 의미이다. 마치 호마(胡麻)5)가 꽃의 훈습으로써 호마와 꽃이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함과 같다. 호마에 그 꽃의 향기가 생겨나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능히 향기를 낸다.
또한 마치 탐욕 등을 행하는 훈습과 같다. 탐욕 등이 마음과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여 나중에 탐욕 등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 혹은 마치 많이 듣는 것과 같다. 많이 듣는 훈습은 사색ㆍ들은 것과 마음이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여 그 기록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 훈습을 거두어 지니기 때문에 법을 지닌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라. 아리야식도 이와 같은 도리가 있다.
017_0009_a_06L論曰:復次何者熏習?此熏習名復何所名?與彼法,共生共滅已,能爲彼法生因,此是所因義.譬如胡麻以華熏之,胡麻與華同生同滅,以胡麻中有彼華香生因,故能生香.又如欲等行熏習,欲等與心同生同滅已,後爲欲等生因.又如多聞,有多聞熏習思念所聞,與心同生同滅已,爲彼記錄生因,由攝持熏習故,說名持法者.應知阿梨耶識,有如此道理.
【釋】‘그 법’이란 이전의 잡염법을 말한다.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여 나중에 그것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다시 그 잡염법의 원인 자체가 되는 것이다.
017_0009_a_16L釋曰:彼法者,卽前染法.同生同滅已後,爲彼生因者,謂還與彼染法,爲因體.

6) 불일불이장(不一不異章)
017_0009_a_19L不一不異章第六
【論】또한6) 아리야식 안의 그 잡염법의 종자는 개별적으로 머무는가, 차별이 없는가? 식 안에 머무는 별도의 사물 자체는 없으며, 또한 차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리야식은 이렇게 생기하고, 뛰어난 작용의 힘이 있어서 능히 그 법을 생겨나게 함을 일체종자식이라고 부른다.
017_0009_a_20L論曰:復次阿梨耶識中,彼染法種子,爲分分別住`爲無差別?無別物體於識中住,亦非不異,然阿梨耶識,如此而生,有勝功能,能生彼法,說名一切種子識.
017_0009_b_01L【釋】아리야식 안의 그 잡염법의 종자는 개별적으로 머무는가, 차별이 없는가?7) 만약 그렇다면 무슨 과실이 있는가? 이 모든 종자가 만일 개별적으로 차별이 있다면 아리야식도 역시 마땅히 개별적으로 차별이 있어야 한다. 또한 아리야식의 찰나멸8)의 의미도 성립되지 않는다. 개별적으로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법ㆍ악법이 훈습된 바도 선ㆍ악의 종자의 자체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것은 무기이기9) 때문이다. 만약 별개의 것이 아니면 어떻게 종자가 많다고 말하겠는가?10) 이런 의미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가 모두 과실이 있다. ‘식 안에 머무는 별도의 사물 자체도 없고, 또한 차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일체종자식이라고 이름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개별이 아니고 개별이 아님도 아니다’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과실을 여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생겨난다’는 것은 그 종류와 같이 생겨남을 말한다. ‘그것을 생기게 하는 특수한 작용의 힘이 있다’는 것은 모든 잡염법이 생겨날 때 뛰어난 작용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생기게 하는 뛰어난 작용의 힘이 있기 때문에 일체종자식이라고 이름한다.
여기서 비유가 있다. 마치 보리의 종자가 싹을 내는 데 작용의 힘이 있어서 종자가 됨과 같다. 만약 오래 묵거나 혹은 불에 그슬려서 능력을 손상하면, 보리의 결과를 생기게 하는 작용의 힘이 파괴된다. 보리의 모습은 본래와 같지만 세력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종자가 아니다. 아리야식도 역시 그러하다. 일체법을 생기게 하는 작용의 힘이 있으며, 이 작용의 힘과 상응하기 때문에 일체종자식이라고 한다.
017_0009_b_02L釋曰:阿梨耶識中,彼染法種子爲分分別住`爲無差別耶?若爾,何失?此諸種子,若有分分差別,阿梨耶識,亦應有分分差別.又阿梨耶識,剎那滅義不成,由分分差別故.又善惡法所熏習,卽成善`惡種子體,然此是無記故.若無分分,云何言多?此義不成.是故二俱有過.無別物體於識中住亦非不異,乃至名一切種子識者,於中言非別非不別者,爲離如前所說過失故.如此而生者,謂如其種類而生.生彼有勝能者,生諸染法時,與勝能相應故.亦以生彼有勝能故,說名一切種子識.此中有譬,如麥種子,於生芽有能,得爲種子.若陳久`若火損,能生麥果功能便壞.麥相如本,功力壞故,非復種子.阿梨耶識亦爾,有生一切法功能,由與功能相應故,說名一切種子識.

7) 갱호위인과장(更互爲因果章)
017_0009_b_21L更互爲因果章第七
017_0009_c_01L【論】또한11) 아리야식이 모든 잡염법과 동시에 서로 원인이 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비유하면 밝은 등불의 불꽃과 심지가 생겨나고 타는 것이 동시에 원인이 됨과 같다. 또한 마치 갈대 묶음이 서로 의지하여 동시에 쓰러지지 않음과 같다. 마땅히 알라. 식과 모든 법도 역시 그러해서 서로 원인이 된다. 아리야식이 잡염법의 원인이 되고, 잡염법이 아리야식의 원인이 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다른 인연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017_0009_b_22L論曰:復次阿梨耶識,與諸染法,同時互爲因,云何可見?譬如然燈,焰及炷生,與燒同時爲因.又如蘆束,更互相持,同時不倒故.識與諸法亦爾,更互爲因應知.如成立阿梨耶識,爲染法因,染法爲阿梨耶識因,亦爾,餘因緣不可得故.
【釋】‘또한 아리야식이 모든 잡염법과 동시에 서로 원인이 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비유로써 나타낸다. 비유하면 밝은 등불의 불꽃과 심지가 한 찰나에 동시에 서로 원인이 됨과 같다. 심지를 의지함으로써 불꽃이 생겨나서 심지는 불꽃이 생겨나는 원인이 된다. 곧 그 찰나의 불꽃이 능히 심지를 태우니, 불꽃이 심지가 타는 원인이 된다.
이것은 구유인(俱有因)12)의 의미를 나타낸다. 원인이 현재 머물고 결과가 생겨남을 보기 때문이다. ‘아리야식이 잡염법의 원인이 되고, 잡염법이 아리야식의 원인이 됨도 역시 그러하다’로부터 나아가 ‘다른 인연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까지는 아리야식이 모든 잡염법과 서로 원인이 됨을 나타낸다. 역시 인연을 나타내기 때문이다.13)
017_0009_c_06L釋曰:復次阿梨耶識,與諸染法,同時互爲因.云何可見者?以譬喩顯示.猶如然燈,焰與炷一剎那,同時互爲因.以依炷故,焰得生,卽炷爲焰生因彼剎那,焰能燒炷,卽焰爲炷燒因.此卽顯示俱有因義,由因現住,卽見果生故.從如阿梨耶識,爲染法因,染法爲阿梨耶識因亦爾,乃至餘因緣不可得故者,此言顯示阿梨耶識與諸染法更互爲因,亦卽顯示因緣故,

8) 인과별불별장(因果別不別章)
017_0009_c_16L因果別不別章第八
【論】훈습에는 차이도 없고 여러 종류도 없는데, 어떻게 능히 그렇게 차이나고 여러 종류인 모든 법의 짓는 원인이 되는가?14) 비유하면 실로써 갖가지 무늬의 옷을 지음과 같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가 없는데, 만일 염색 그릇에 들어간 뒤에는 옷 위에 수많은 종류의 갖가지 색상이 있게 된다. 아리야식도 역시 이와 같아서 갖가지 훈습으로 훈습된다. 훈습할 때에는 갖가지 차이가 없지만, 결과가 생기는 염색 그릇이 현전할 때에 수많은 종류의 법의 모습이 현현한다.
017_0009_c_17L論曰:云何熏習無異無種種,得爲有異有種種諸法作因?譬如以縷種種結衣,當時無種種可見若入染器已,則有無量種雜色相貌於衣上顯現.阿梨耶識亦爾,爲種種熏習所熏,於熏時無種種異若生果染器現前時,則有無量種種法相貌顯現.
017_0010_a_01L【釋】‘훈습에는 차이도 없고 여러 종류도 없는데, 어떻게 능히 그렇게 차이나고 여러 종류인 모든 법의 짓는 원인이 되는가?’라는 것은 이러한 도리를 비유로써 나타낸 것이다. 마치 옷을 실로써 여러 종류로 짤 때는 여러 가지 모습이 없는데, 염색 그릇에 두면 갖가지 모습이 있게 됨을 보는 것과 같다. 아리야식도 역시 그러하다. 비유하면 옷과 같아서 결과를 생겨나게 함이 염색 그릇과 같기 때문에 결과를 생겨나게 한다고 말한다. ‘염색 그릇에 둔다’는 것은 연(緣)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훈습할 때는 여러 가지가 없지만, 결과의 시기에는 수많은 모습의 원인 자체가 되어 모든 법이 현현함이 옷이 이미 염색된 것과 같다.
017_0010_a_01L釋曰:云何熏習無異無種種,得爲有異有種種作因者,如此道理,卽以譬喩顯示.如衣以縷多種結時,無種種相貌可見若置染器已,則有種種相可見.阿梨耶識亦爾,譬如衣生,果如染器,故名生果.染器置者,緣所攝故.熏習時未有種種,至於果時,則爲無量相貌,因體諸法顯現,如衣已染.

9) 연생장(緣生章)
017_0010_a_09L緣生章第九
【論】이 연생은 대승에서는 미세하고 대단히 심오하다.15) 간략히 말하면 두 종류의 연생이 있으니, 첫째는 자체분의 연생이고, 둘째는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의 연생이다. 이 중에서 아리야식으로 인하여 모든 법이 생기함이 자체분의 연생이다. 갖가지 자체분에 대해서 조건[緣]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12지연생(支緣生)16)이 있다. 이것이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의 연생이다. 이른바 살기 좋은 세계와 괴로운 세계의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음의 갖가지 신체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017_0010_a_10L論曰:此緣生於大乘中,微細最深.略說有二種緣生:一自體分`二愛非愛分.於中由阿梨耶識故,諸法生起,此是自體分緣生,與種種自體分,爲緣故.復有十二支緣生,是愛`非愛分,爲善趣惡趣`可愛不可愛種種身分緣故.
017_0010_b_01L【釋】‘이것은 대승에서는 미세하고 대단히 심오하다’는 것은, 범부의 지혜로는 알기 어렵기 때문에 미세하고, 아라한 등17)도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에 대단히 심오하다고 말한다.
이 중에서 ‘간략히 말하면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은 부문을 안립함이고, ‘자체분’과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의 이 두 가지 연생은 명칭의 해석이다. ‘아리야식으로 인하여’라는 것은 아리야식을 원인으로 삼아서 모든 법이 생겨남을 말한다. 이것을 자체분의 연생이라 이름한다. 갖가지 신분(身分)에 대해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무명 등을 말하면 이것은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의 연생이다. 왜냐하면 갖가지 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신분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017_0010_a_17L釋曰:此於大乘中,微細最深者,於中凡夫智不能知,故微細.阿羅漢等不能測,故最深.於中略說,有二種者,此是立門自體分`愛非愛分,以此二種緣生,名解釋.由阿梨耶識故者,謂阿梨耶識爲因,故諸法得生,此名自體分.謂與種種類身分爲因故.若說無明等,此是愛非愛分.何以故?由爲種種愛非愛身分因故.
【論】만약 아리야식에 대해서 첫 번째 연생에 어리석으면 다음과 같은 이들이 있다. 혹은 자성을 집착하여 원인으로 삼고,18) 혹은 과거에 지은 것을 집착해서 원인으로 삼으며,19) 혹은 자재천의 변화를 집착해서 원인으로 삼고,20) 혹은 자아를 집착해서 원인으로 삼으며,21) 혹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고 집착한다.
또한 만일 두 번째 연생에 어리석으면, 자아를 집착해서 짓는 자와 받는 자로 삼는다. 비유하면 많은 선천적인 맹인들이 일찍이 코끼리를 보지 못했는데, 어떤 이가 코끼리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코끼리의 코를 만져보는 이도 있고, 그 이빨을 만져보는 이도 있으며, 귀를 만져보는 이도 있고, 꼬리를 만져보는 이도 있으며, 다리를 만져보는 이도 있고, 등을 만져보는 이도 있다. 어떤 이가 “코끼리는 어떻게 생겼는가?”라고 질문하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혹은 “코끼리가 보습자루 같다”고 말하고, 혹은 “절구공이 같다”고 말하며, 혹은 “삼태기 같다”고 말하고, 혹은 “절구 같다”고 말하며, 혹은 “비[箒] 같다”고 말하고, 혹은 “석산(石山)22) 같다”고도 한다.
017_0010_b_03L論曰:若於阿梨耶識中,迷第一緣生,或執自性爲因,或執宿作爲因,或執自在天變化爲因,或執我爲因,或執無因緣.復次若迷第二緣生,執我作者受者.譬如衆多生盲丈夫未曾見象,或復有人,以象示之.有觸象鼻者,有觸牙者,有觸耳者,有觸尾者,有觸腳者,有觸脊者.有人問之:象爲何相?或復答言:猶如犂柄,或言如杵,或言如箕,或言如木桶,或言如帚,或言如石山,作如此說.
참으로 이와 같아서 두 가지 연생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명의 선천적인 맹인은 혹은 자성을 집착하고, 혹은 과거에 지은 것을 말하며, 혹은 자재천의 변화를 말하고, 혹은 자아의 지음을 말하며, 혹은 원인이 없다고 말하고, 혹은 짓는 자를 집착하고 혹은 받는 자를 집착한다.23) 아리야식 자체의 양상ㆍ원인의 양상ㆍ결과의 양상 등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코끼리의 자체를 알지 못함과 같다.
아리야식을 간략히 말하면 과보식ㆍ일체종자식은 그 자체의 양상이다. 삼계 중의 모든 신체와 모든 윤회세계를 섭지하기 때문이다.
017_0010_b_14L如是如是,不解二種緣生無明生盲者,或執自性,或說宿作,或說自在變化,或說我作,或說無因,或執作者,或執受者,由不識阿梨耶識體相,及因相果相故,如不識象體.若略說阿梨耶識,卽果報識一切種子識,是其體相,由攝持三界中,一切身一切趣故.
017_0010_c_01L【釋】‘혹은 과거에 지은 원인을 말한다’는 것은 현재 사람의 힘의 원인[士夫力因]24)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선천적인 맹인과 같은 중생을 비유로써 나타낸다. ‘무명의 선천적인 맹인’은 12지연생 중에 최초의 무명을 말한다. 무명에 의하기 때문에 선천적인 맹인이라고 한다.
‘아리야식 자체의 양상ㆍ원인의 양상ㆍ결과의 양상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란 다음과 같다. 앞에서 안립한 바와 같은 아리야식의 자체의 양상을 자체의 양상이라고 이름하고, 안립된 원인의 양상을 원인의 양상이라 부르며, 안립된 결과의 양상을 결과의 양상이라 말한다. 이것을 알지 못함은 무명의 세력 때문이다. 아리야식의 자체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성 등 다섯 가지 원인을 집착해서 모든 법의 원인으로 삼는다.
‘두 번째인 사랑스러움과 사랑스럽지 않음의 연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아를 집착해서 짓는 자와 받는 자로 삼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원인이란 일체법의 훈습이 아리야식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결과란 모든 법이 훈습된 것이기 때문이다.
‘과보식ㆍ일체종자식은 그 자체의 양상’이란, 신체의 성숙을 과보라고 부르고, 일체 종자란 훈습을 종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모든 윤회세계’는 다섯 가지 윤회세계이고, ‘모든 신체’란 여러 윤회세계 가운데 같은 부류나 다른 부류의 갖가지 신체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미 아리야식을 말하여 일체법의 종자로 삼았다. 그 종자의 자체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게송으로 나타낸다.
017_0010_b_21L釋曰:或言宿作因者,由不許有現在士夫力因故.如是等生盲衆生,以譬喩顯示.無明生盲者,謂十二支緣生中,最初無明,由無明故,名爲生盲.不解阿梨耶識體相因相果相故者,如前所立阿梨耶識體相,說名體相,所立因相名因相,所立果相名果相,於此不解.由無明力不解阿梨耶識自體分故,執自性等,五因爲諸法因.由不解第二愛`非愛分故,執我爲作者受者.於中因者,一切法熏習,於阿梨耶識中有故.果者,卽是諸法所熏故,果報識一切種子是.其體相者,由得身成熟,名果報故.一切法種子者,卽是熏習已,名種子故.一切趣者,謂五趣故.一切身者,謂趣趣中,同類不同類種種身故.已說阿梨耶識爲一切法種子,欲明了彼種子體故,以偈顯示.
【論】여기에 게송이 있다.
017_0010_c_16L論曰:此中有偈:

외부와 내부는 두 가지가 명료하지 않네.
세속[世數]과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니
이 일체 종자는
마땅히 알지니 여섯 가지가 있도다.
017_0010_c_17L外內不明二,
世數第一義,
此一切種子,
當知有六種.

찰나, 함께함,
그 양상과 따라서 유전함,
결정적임, 조건[緣]을 필요로 함,
또한 자기 결과를 이끌어 내는 것이네.
017_0010_c_19L剎那及俱有,
與彼相隨轉,
決定及待緣,
亦引生自果.

견고함, 무기성, 훈습이 가능함,
능훈과 서로 화합함이네.
이것과 다르면 훈습될 수 없나니
이것을 훈습의 양상으로 삼도다.
017_0010_c_20L堅無記可熏,
與能熏相合,
異此不可熏,
是爲熏習相.

여섯 가지 식에는 서로 화합함이 없고
세 가지 차별로 서로 위배되며
두 찰나의 생각이 함께하지 않네.
다른 생의 예도 마땅히 그러하도다.
017_0010_c_21L六識無相合,
三差別相違,
二念不俱有,
餘生例應爾.

이 외부와 내부의 종자에
생겨남이 있고 이끌어 냄이 있네.
말라 죽음은 이끌어 내는 원인에 의거하니
자체가 나중에 멸하기 때문이네.
017_0010_c_23L此外內種子,
有生及有引,
枯死由引因,
自體後邊滅.
017_0011_a_01L
【釋】‘외부와 내부는 두 가지가 명료하지 않네’ 등의 다섯 개의 게송으로써 나타낸다. 여기서 ‘외부’는 쌀 등을 말하고, ‘내부’는 아리야식이다. ‘명료하지 않다’는 것은 외부 종자가 무기의 의미이기 때문이다.25) ‘두 가지’란 아리야식에 선과 불선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다른 의미가 있으니, 염오와 청정을 두 가지로 삼는다. ‘세속’이란 외부의 법은 다만 세속에서만 종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역시 아리야식의 변이로써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일의제’는 오직 아리야식이 그 모든 법의 종자가 됨을 말한다.
017_0011_a_01L釋曰:以外內不明二等五偈顯之.於中外者,謂穀子等,內謂阿梨耶識.不明者,外種子不可記義故.二者,阿梨耶識,有善`有不善故.復有別義:以染污淸淨爲二.世數者,外法但以世數說爲種子.何以故?亦以阿梨耶識,變異有故.第一義者,唯阿梨耶識,爲彼諸法種子.
이 모든 법의 종자에 여섯 가지가 있다.26) ‘찰나’27)란 이 두 가지 종자는 간격없이 생멸하기 때문이다. 만일 상주하면 종자가 되지 못한다. 어느 때나 본래와 같아서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함께한다’28)는 것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며, 다른 처소도 아닌 것이다. 만일 이런 때에 종자가 있게 되면, 이때 결과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양상과 따라서 유전함’29)이라는 것은, 아리야식이 따라서 전전하여 나아가 다스림의 도가 생겨남을 말한다. 외부의 종자는 나아가 뿌리가 썩지 않고 열매가 익는다. ‘결정적’30)이라는 것은 종자가 결정적이기 때문이고 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체가 생겨남도 각자 스스로 결정적이어서 이 종자가 다시 이 사물을 생겨나게 한다.
‘조건을 필요로 함’31)이라는 것은, 어느 때나 모든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 어느 때에 그 생겨남의 조건을 얻으면 그곳에서 그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결과를 이끌어 낸다’32)는 것은 자신의 종자가 능히 자신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마치 아리야식이 다시 아리야식을 이끌어 내고, 쌀 등이 쌀 등을 이끌어 냄과 같다. 이상과 같은 여섯 가지는 종자가 결과를 생겨나게 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017_0011_a_09L此諸法種子,有六種.剎那者,此二種子無閒生滅故.若常則不得爲種子,以一切時,如本無差別故.俱有者,非過去`非未來`非別處.若此時種子有,卽此時果生故.與彼相隨轉者,阿梨耶識,隨轉乃至對治道生,外種子乃至根未壞及果熟.決定者,以種子決定故,非一切故.一切得生各自決定,若此種子,還此物生.待緣者,非一切時,一切生故.於何處何時,得其生緣,卽彼處彼時生故.亦引生自果者,自種子能引生自果故.如阿梨耶識,還引生阿梨耶識,穀等引生穀等.如是等六種顯種子生果義.
017_0011_b_01L이 훈습의 양상을 이제 마땅히 나타내야 한다.33) ‘견고하다’34)는 것은 견고하기 때문에 훈습이 가능하다. 바람과는 다르다. 움직이는 바람은 훈습을 지닐 수 없기 때문이고, 훈습은 바람을 따라서 1유순(由旬)35)도 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첨파가(瞻波迦)꽃이 훈습된 기름36)의 향기라면 능히 백 유순 밖에서도 따라서 전전한다. ‘무기’37)는 무기의 기운임을 말한다. 마치 마늘은 지독한 냄새 때문에 훈습을 받지 못함과 같다. 향기도 역시 이와 같아서 훈습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무기의 사물이라면 곧 훈습을 받을 수 있다. ‘훈습이 가능하다’38)는 것은 훈습을 받을 만한 사물은 곧 훈습을 받을 수 있고 훈습을 받지 못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ㆍ은ㆍ돌 등은 모두 훈습을 받을 수 없음과 같다. 만약 능히 훈습을 섭지하는 것은 곧 훈습을 받을 수 있다. 옷 등 훈습을 받을 만한 사물을 말한다. ‘능훈과 서로 화합한다’39)는 것은 만일 서로 화합하면 곧 훈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서로 화합하지 못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화합한다’는 것은 간격 없이 함께 생기하기 때문이다. ‘만약 다르면 훈습될 수 없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아리야식과 다른 것을 말한다. 이것과 다른 식은 능히 훈습을 받지 못한다. 아리야식을 떠나서 다른 식은 훈습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017_0011_a_22L熏習相,今當顯示.堅者,由堅故可熏.不如風動,風不能持熏習,由熏習不能隨風轉至一由旬故.若瞻波迦華所熏油,香風隨轉至百由旬外.無記者,謂無記氣.如蒜不可熏,以臭故.香亦如是,不可熏故.若無記物則可熏.可熏者,若可熏物則受熏,非不可熏,如金銀石等竝不可熏.若能攝持熏習者,乃可得熏,謂衣等所應熏物.與能熏相合者,若相合則可熏,非不相合故.相合者,謂無閒共生故.若異不可熏者,異者謂異阿梨耶識,非此異識能受熏,以離阿梨耶識,餘識不可熏故.
아리야식에 찰나 등의 여러 의미를 갖춘다. 찰나에 멸하기 때문이고, 생기식(生起識)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며, 나아가 다스림의 도가 생겨날 때까지 모든 생사 가운데 서로 따라서 전전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선ㆍ악 등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고, 복ㆍ복이 아닌 것ㆍ동요하지 않음의 행40)의 조건을 기다려서 살기 좋은 세계와 괴로운 세계에 대해서 성숙하기 때문이다. 아리야식은 이와 같은 작용의 힘과 상응하기 때문에 훈습을 받는 것이 반드시 성립된다.
모든 생기식은 이런 도리에 화합하지 않는다. ‘여섯 가지 식에는 서로 화합함이 없다’는 것은 모든 식은 움직여서 유전하기 때문이다. ‘세 가지 차별로 서로 위배된다’는 것은 하나하나의 식이 각각 의지처가 다르고, 각각 인식대상이 다르며, 각각 작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다른 의미가 있으니, 모든 식이 각각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017_0011_b_13L以是阿梨耶識中,具剎那等諸義,謂剎那滅故,與生起識俱有故,乃至對治道生所有生死中,相隨轉故,由決定爲善惡等因故,福`非福不動行待緣於善惡趣成熟故.以阿梨識,與如是等,功能相應,故得受熏,應須成立.諸生起識,不合道理.六識無相合者,諸識動轉故.三差別相違者,一一識各各依止生,各各攀緣各各作意.復有別義:謂諸識各別相故.
017_0011_c_01L비유 논사41)는 “전찰나의 생각이 후찰나의 생각에 훈습된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를 부정하기 위해서 논서에서 “두 찰나가 함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 찰나가 함께 일어나는 의미는 없다. 만일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한다면 곧 훈습이 머물 수 있다. 만약 “비록 서로 화합하지 않더라도 생기된 식이 서로 부류로 생기하기 때문에 서로 훈습할 수 있다”고 말하면, 다른 생의 예도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별도의 양상도 역시 마땅히 그렇게 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안근 등 여러 감각기관은 마찬가지로 청정한 물질42)로써 양상을 삼고 있으므로 마땅히 서로 훈습해야 한다. 마땅히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안근의 청정한 물질이 이근의 청정한 물질과 그 부류가 같기 때문에 그 모든 청정한 물질은 마땅히 서로 훈습해야 한다. 비록 청정한 물질이 같은 처소라도 각기 다르므로 서로 훈습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식이 비록 같은 부류라도 어떻게 서로 훈습하겠는가?
017_0011_b_22L譬喩者,說前念得熏後念.爲遮此義故.論云:二剎那不俱,無有二剎那竝起義.若同生同滅,熏習乃得住.若言雖不相合,然所生之識相類而生故,得相熏者,餘生例應爾故.謂諸別相者,亦應得爾,如眼等諸根,同以淨色爲相,應得相熏.應作此說:以眼根淨色,與耳淨色,其類同故,彼諸淨色,應更互相熏.雖淨色是同,處所各別,不言相熏者,識雖同類,何得相熏?
그 말한 바와 같이 두 가지 종자, 이른바 내부와 외부의 종자는 생겨나게 하는 원인과 이끌어 내는 원인이 함께 있다. 이 중에서 외부 종자의 생겨나게 하는 원인은 결과가 성숙할 때까지이고, 내부 종자의 생겨나게 하는 원인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이다.
외부 종자의 이끄는 원인은 성숙하고서 아직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이고, 내부 종자의 이끄는 원인은 죽은 후의 시체이다. 이끄는 원인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 머문다.
만일 이 두 종자에 오직 생겨나게 하는 원인이 있을 뿐이라면, 그 원인을 여의면 곧 마땅히 소멸해야 하고, 오랜 시간 상속해서 머무는 의미가 없다. 만약 “찰나에 전전히 상속하기 때문에 전찰나가 후찰나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면 곧 소멸하는 시기가 없다. 마땅히 알라. 소멸함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끄는 원인이 있게 된다. 이 두 가지 종자의 이끄는 원인은 비유하면 활시위를 당기는 것이 화살이 멀리 이르게 하는 원인이 됨과 같다.
017_0011_c_09L如彼所說二種種子,謂外及內,俱有生因及引因.於中外種子生因者,乃至果熟.內種子生因者,乃至命盡.外種子引因者,熟已未種.內種子引因者,死後屍骸.由引因故多時住.若此二種子,唯有生因,旣離彼因,卽應失滅,無有多時,相續住義.若言剎那傳傳轉故,前剎那爲後剎那因者,則無有滅時以有滅故,當知必有引因.此二種子引因者,譬如引弓,爲箭遠至因.
【論】이 내부 종자는 외부 종자와 같지 않기 때문에 다시 게송을 말한다.
017_0011_c_19L論曰:此內種子,不類外種子,故復說偈:

외부 종자는 훈습이 없어도
내부 종자는 그렇지 않도다.
듣는 것 등이 훈습이 없이도
결과가 생겨남은 도리가 아니네.
017_0011_c_20L外種無熏習,
內種則不然,
聞等無熏習,
果生非道理.

이미 지은 것과 아직 짓지 않은 것으로서
상실과 소득이 서로 위배되는 과실이 있네.
외부 종자는 내부를 반연으로 삼고
내부의 훈습으로써 생겨나네.
017_0011_c_22L已作及未作,
失得相違過,
外種內爲緣,
以內熏故生.
017_0012_a_01L
또한 마땅히 알라. 그 나머지 생기식은 널리 모든 신체와 윤회세계에 대해서 수용하는 자가 된다.
017_0011_c_23L復次其餘生起識,於一切身及趣爲受用者應知.
【釋】여기서 ‘모든 신체와 윤회세계가 수용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그 가운데서 수용하여 생겨나기 때문이다. 수용 중에 있기 때문에 수용하는 자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를 『중변차별론』의 아함(阿含)43)으로써 나타낸다.
017_0012_a_02L釋曰:於中一切身及趣爲受用者者,謂於彼中,受用生故.由於受用中有故,名受用者.此義以『中邊差別』阿含顯示.
【論】『중변차별론』에서 말한 바와 같다.
017_0012_a_05L論曰:如『中邊差別論』說:

첫째는 연식(緣識)44)이라 말하고
둘째는 수용식45)이라 부르네.
모든46) 심리작용이 지니는 바가
이 수용을 요별하네.
017_0012_a_06L第一謂緣識,
第二受用識,
諸心法所扶,
了別此受用.

【釋】이 두 가지 식은 서로 원인ㆍ결과가 된다. ‘아함’이란 『아비달마수다라(阿毘達磨修多羅)』의 게송을 말한다.
017_0012_a_08L釋曰:此二識復有更互爲因果.阿含,謂阿毘達磨修多羅偈說.
【論】이 두 가지 식47)은 역시 서로 조건[緣]이 된다. 『아비달마수다라』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017_0012_a_10L論曰:此二種識,亦更互爲緣,如阿毘達磨修多羅偈說:

모든 법은 식을 의지하여 머물고
식이 법을 의지함도 역시 그러하네.
각각 서로 원인이 되고
역시 항상 서로 결과가 되네.
017_0012_a_12L諸法依識住,
識依法亦爾,
各各互爲因,
亦恒互爲果.

【釋】‘각각 서로 원인이 된다’는 것은 아리야식이 언제나 모든 법이 생겨나는 원인이 됨을 말한다. ‘역시 항상 서로 결과가 된다’는 것은, 만일 아리야식이 원인이 되면 곧 모든 법이 결과가 되고, 모든 법이 원인이 되면 곧 아리야식이 결과가 되는 것이다.
017_0012_a_14L釋曰:各各互爲因者,阿梨耶識於一切時爲諸法生因.亦恒互爲果者,若阿梨耶識爲因,則諸法爲果,諸法爲因,則阿梨耶識爲果.

10) 사연장(四緣章)
017_0012_a_18L四緣章第十
【論】첫 번째 연생에 있어서 모든 법이 식과 서로 인연이 되면, 두 번째 연생에 있어서는 어떤 연이 되는가?48) 이것은 증상연(增上緣)49)이다. 또한 이 여섯 가지 식은 몇 가지 조건[緣]에서 생겨나는가? 이른바 증상연ㆍ연연(緣緣)50)ㆍ차제연(次第緣)51)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연생, 즉 궁생사취(窮生死趣)ㆍ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윤회세계ㆍ수용하는 것은 네 가지 조건을 갖춘다.
017_0012_a_19L論曰:於第一緣生中,諸法與識,更互爲因緣者,於第二緣生中,復是何緣?是增上緣.又此六識,幾緣所生?謂增上緣`緣緣`次第緣.如是等三種緣生,謂窮生死`愛非愛`趣受用等,具有四緣.
017_0012_b_01L【釋】‘이 세 가지 연생인 궁생사취ㆍ사랑스럽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윤회세계ㆍ수용하는 것이 네 가지 조건을 갖춘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연생 중에서 아리야식은 모든 훈습법에게 인연이 된다. 두 번째 연생 중에서 무명 등은 증상연이다. 무명의 매우 높은 세력으로 인하여 행(行)이 이러한 것들을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섯 가지 식을 수용의 연생라고 부른다. 세 가지 연생을 갖추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안식의 증상연은 눈이고, 연연은 빛깔이며, 차제연은 이전의 멸한 식이 연이 되어 차례로 생기하는 식이다. 만일 이전의 식이 수용하는 곳을 버리지 않으면 곧 이후의 식이 생기할 수 없으니, 이식 등 여러 식도 그러하다.
017_0012_b_02L釋曰:此三緣生,窮生死愛`非愛受用具有四緣等者,於第一緣生中,阿梨耶識,與諸熏習法爲因緣.第二緣生中,無明等是增上緣,由無明增上故,行得生如是等.復次六種識說,名受用緣生者,具有三緣生.於中眼識,增上緣者謂眼,緣緣者謂色,次第緣者,謂前滅識緣,次第生識.若前識不捨處,則後識不得生.耳等諸識類爾.

11) 번뇌염장(煩惱染章)
017_0012_b_11L煩惱染章第十一
017_0012_c_01L【論】이와 같이 아리야식의 별도의 명칭과 양상이 성립하였다. 이와 같은 별도의 명칭과 양상이 오직 아리야식에만 있고 생기식은 그렇지 않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만약 성립된 아리야식이 아니면 잡염과 청정이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이른바 번뇌의 잡염ㆍ업의 잡염ㆍ생의 잡염이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세간과 출세간의 청정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52)
어째서 번뇌의 잡염이 성립되지 않는가?53) 여섯 가지 식 중에 번뇌ㆍ수번뇌54)로 훈습된 종자가 모두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안식이 탐욕 등의 번뇌ㆍ수번뇌와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며, 이 안식이 그 훈습이 되어 종자를 이루고 다른 곳은 아니라고 하자. 곧 이 안식이 지나가 버리면 다른 식이 사이에 오므로 훈습도 훈습의 의지처도 모두 있을 수 없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식이 이전에 멸하여 다른 식이 사이에 오므로 탐욕 등이 함께 생겨나는 의미가 없다. 과거이기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다. 마치 이미 지나가 버린 업의 과보가 생겨날 수 없는 것과 같다. 또한 수행이 탐욕과 함께 생겨나는 안식의 훈습은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2_b_12L論曰:如是成立阿梨耶識,別名及相,云何得知如此別名及相,唯說阿梨耶識,不說生起識?若離所成立阿梨耶識,染淨皆不得成,所謂煩惱染`業染`生染竝不成,世出世淨,亦不成.云何煩惱染不成?以六識身中,煩惱及隨煩惱所熏習種子,皆不得成.如眼識與欲等,煩惱`隨煩惱,共生共滅,卽此眼識,爲彼熏成種子非餘.卽此眼識若滅已,餘識閒生,熏習及熏習所依止,皆不可得,以無有故.眼識先滅,餘識閒生,無有與欲俱生義,以過去故不得成.如已謝之業,果報生不成就.又修與欲俱生眼識,所有熏習不成.
그런데 이 훈습은 역시 탐욕 중에 머물지 않는다. 탐욕은 식을 의지하기 때문이고, 또한 견고하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나머지 식에도 머물지 않는다. 모든 식들은 각기 별도의 의지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생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 자체 중에도 머물지 않는다. 자체는 두 가지 식이 함께 생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탐욕 등의 번뇌ㆍ수번뇌가 안식에 훈습함은 성립되지 않는다. 식이 식을 훈습함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안식과 같이 나머지 전식도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 그 양상과 같이 알아야 한다.
017_0012_c_04L此熏習亦不在欲中,以欲依止於識故,又不堅住.亦不在餘識中,以諸識,各別依止故,又不同生滅故.亦不在自體中,以自體無二識,俱生滅故.是故欲等煩惱`隨煩惱,熏習眼識不得成.識熏習識,亦不成,如眼識所餘轉識,亦不成,如其相應知.
【釋】이와 같이 아리야식의 여러 명칭을 설명하고 그 양상을 성립시켰다. 이제 이 두 가지가 아리야식에만 있고 다른 식이 아님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도리로써 나타낸다.
‘가령 안식이 탐욕 등의 번뇌와 함께 생겨나고 함께 멸하며, 이 안식은 그것의 훈습이 되어 종자를 이루고 다른 곳은 아니라고 하자’라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이것’은 안식을 말하고, ‘그것’은 탐욕 등이다. ‘종자를 이룬다’는 것은 원인이 되기 때문이고, ‘다른 곳은 아니다’라는 것은 이식 등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식이 사이에 온다’는 것은 이식 등이 사이에 오는 것이고, ‘훈습’은 탐욕 등의 습기이기 때문이다. ‘훈습의 의지처’는 안식을 말하기 때문이다. ‘탐욕과 함께 생겨난다’는 것은 탐욕 등과 동시에 생기하기 때문이다. ‘과거이기 때문에 원인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이미 지나가 버린 업의 과보가 다시 생겨날 수 없음과 같다. 이것도 역시 이와 같아서 성취될 수 없다.
017_0012_c_10L釋曰:如是已說阿梨耶識衆名及成立其相,今欲成立此二,於阿梨耶識中,非餘識故,以道理顯示.如眼識與欲等煩惱,共生共滅,卽此眼識,爲彼熏成種子非餘者,於中卽此者,謂眼識.彼者,謂貪等.成種子者,謂爲因故.非餘者,謂非耳識等故.餘識所聞者,謂耳識等隔絕等.熏習者,謂貪等習氣故.熏習依止者,謂眼識故.與貪俱生者,謂與貪等同時生起,以過去故,爲因不成.如已謝之業,果報更生,不得成就,此亦如是不可成就.
017_0013_a_01L또한 어떤 비바사 논사는 “과거55)로 하여금 실재로 삼고자 한다”56)고 집착한다. 그러나 그 과거는 다만 명칭만 있을 뿐이고,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일 법이 실재라면 어떻게 과거이겠는가? 따라서 그 집착된 결과는 성립되지 않는다. 훈습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안식은 탐욕과 함께 생기하고 훈습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탐욕과 함께 생기하고, 안식이 스스로 훈습함도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 안식이 훈습을 지녀서 탐욕 등을 일으키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역시 탐욕 중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안식의 훈습이 탐욕 중에 머문다는 것은 의미가 성립되지 않음을 말한다. 왜냐하면 탐욕은 안식을 의지하기 때문이고, 또한 견고하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017_0012_c_22L復有毘婆沙師作此執:欲令過去爲有.然彼過去者,但有名,所目義不可得.何以故?若法是有,云何過去?是故彼執果不成,以無熏習故.又彼眼識與欲俱生熏習不成者,謂卽此與欲俱生.眼識自熏習,尚不得成,以此眼識持熏習生欲等,云何可成?亦不在欲中者,謂眼識熏習,在於欲中,無有成義.何以故?以欲依止眼識故,又不堅住故.
‘역시 나머지 식에도 머물 수 없다’는 것은, 이식 등은 의지처가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의지처가 다르기 때문에 함께 생멸하는 의미가 없다. 안식은 스스로 눈에 의지하고, 이식은 스스로 귀에 의지하며, 나아가 의식은 스스로 의(意)에 의지한다. 각각 다른 곳이므로 다른 식이 다른 식을 훈습함은 성립되지 않는다.
‘역시 자체 중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안식이 그 안식을 훈습할 수 없음을 말하며, 두 가지 안식이 함께 생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가지 식이 동시에 생기하지 않으므로 함께 생겨나지 않고 함께 멸하지 않는다. 이러한 도리로 인하여 안식 중에 탐욕 등의 번뇌ㆍ수번뇌의 훈습이 성립되지 않으며, 나아가 안식이 안식을 훈습함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3_a_08L亦不在餘識中者,謂耳識等由依止別異故.正以依止別異故,則不得有同生滅眼識自依眼`耳識自依耳,如是乃至意識自依止意.以各各別處,別識熏習別識不成.亦不在自體中者,謂眼識不得卽熏彼眼識,無二眼識俱生故.旣無二識同生,則無同生同滅.以如是道理故,眼識中,欲等煩惱`隨煩惱,熏習不成,乃至眼識熏習眼識,亦不得成.
【論】또한 무상천(無想天) 이상의 그러한 지위로부터 이 세간에 떨어져 태어나서 번뇌ㆍ수번뇌에 오염된 최초의 식이 생기할 때, 이것은 종자가 없이 생기해야 한다. 훈습과 의지처가 모두 이미 과거로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013_a_18L論曰:復次從無想天以上彼地退此閒生,煩惱`隨煩惱所染,初識生時,此無種子而生,以熏習及依止竝已過去無有故.
017_0013_b_01L【釋】‘최초’란 가장 먼저 생기된 식을 말한다. ‘종자가 없이 생기한다’는 것은 원인이 없이 생기하기 때문이다. ‘훈습과 의지처’는 심왕과 번뇌의 습기를 말한다.
017_0013_a_22L釋曰:初者,謂最先起識.無種子而生者,謂無因生故.熏習及依止者,謂心及煩惱習氣.
【論】또한 번뇌를 다스리는 식이 생기할 때 세간의 모든 식이 다 멸한다. 만약 아리야식이 없다면 번뇌ㆍ수번뇌의 종자가 다스림의 식 안에 존재함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 다스림의 식은 자체가 해탈이고, 번뇌와 함께 생멸하지 않는다. 만약 이후의 시기에 세간의 식이 생겨나면 탐욕을 여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처와 습기가 오래전에 이미 지나가 버려서, 만일 아리야식이 아니면 마땅히 종자 없이 생겨나야 한다. 그러므로 아리야식을 떠나서는 번뇌ㆍ수번뇌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3_b_02L論曰:復次對治煩惱識生時,一切世閒識皆滅.若無阿梨耶識,煩惱`隨煩惱種子,在對治識中,不成自體,解脫不得,與煩惱同生同滅.若於後時,世閒識生,離欲心不有,彼依止及習氣久已謝滅,若離阿梨耶識,應無種子而生.是故離阿梨耶識,煩惱`隨煩惱,皆不成故.
【釋】‘번뇌를 다스리는 식이 생기할 때 세간의 모든 식이 다 멸한다’는 것은 여섯 가지 식이 다 멸하기 때문이다. ‘번뇌ㆍ수번뇌의 종자가 다스림의 식 안에 존재함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다스림의 식을 원인으로 삼아서 세간의 식을 일으킴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시기’란 출세간의 마음 이후를 말한다.
‘의지처와 훈습’이란, 의지처는 곧 식이고 훈습은 번뇌ㆍ수번뇌에 훈습된 것 등을 말한다. ‘종자가 없다’는 것은 아리야식을 떠나서는 원인 없이 생겨남을 말한다. 여기서 번뇌는 곧 잡염이다. 이런 의미 때문에 번뇌의 잡염은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3_b_10L釋曰:對治煩惱識生時,一切世閒識皆滅者,謂六識皆滅故.煩惱`隨煩惱種子在對治識中不成者,謂以對治識爲因,生世閒識不成故.彼於後時者,謂於出世心後.依止及熏習者,謂依止卽是識,熏習卽是煩惱`隨煩惱所熏習等.無種子者,謂離阿梨耶無因而生.於中煩惱,卽是染污,以是義故,煩惱染不得成.

12) 업염장(業染章)
017_0013_b_19L業染章第十二
【論】어째서 업의 잡염이 성립되지 않는가?57) 만일 아리야식이 없다면 행(行)의 지분이 식의 지분에 조건[緣]이 되는 것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취(取)의 지분이 유(有)의 지분에 조건이 됨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3_b_20L論曰:云何業染不成?行緣識不成,此不有故,取緣有亦不成.
017_0013_c_01L【釋】이제 다시 업의 잡염이 성립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어째서 성립되지 않는가? 행58)의 지분이 식의 지분에 조건이 되는 것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복인 것ㆍ복이 아닌 것ㆍ부동의 행은 생겨나고서 지나가 버린다. 아리야식이 아니면 어느 곳에 훈습을 안립하겠는가? 여섯 가지 식이 훈습을 거두어 지닐 수 없다는 이런 의미는 앞의 번뇌의 잡염 중에서 이미 말하였다.
‘이것이 없기 때문’이란 행의 지분이 식의 지분에 조건이 되는 것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취의 지분이 유의 지분에 조건이 됨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행의 지분에 훈습된 식은 취의 지분의 세력 때문에 훈습하고 원만히 성취 변화되어 유의 지분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업은 잡염이므로 업의 잡염이라고 부른다. 또한 업에 의해서 잡염이 있기 때문에 업의 잡염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만일 아리야식이 존재함을 믿지 않으면 업의 잡염이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3_b_22L釋曰:今復顯業染不成相.云何不成?行緣識不成,故福`非福不動行生已謝滅,離阿梨耶識,何處安置熏習?六識身不能攝持熏習,此義煩惱染污中已說.此不有故者,謂行緣識不成故,取緣有亦不成.何以故?有因緣故.諸行熏識,由取力故熏習成滿,變爲有故.於中業卽染,名爲業染.又由業故有染,名業染.是故業染不成.

13) 생염장(生染章)
017_0013_c_08L生染章第十三
017_0014_a_01L【論】어째서 태어남의 잡염이 성립되지 않는가?59) 결생(結生)60)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선정이 아닌 지위[不靜地]61)에서 죽어서 중유(中有)62)에 머무는 의(意)가 염오의 의식으로써 결생 상속하면, 이 염오의 의식은 중유 안에서 멸하고 식은 모태에서 가라라(迦羅邏)63)와 화합한다. 만약 오직 의식이 화합해서 생을 받는다면, 화합하여 생을 받고서 이 식에 의지하고 모태 중에서 의식이 전변 생기한다. 그렇다면 모태 중에서 두 가지 의식이 같은 곳에서 함께 생기한다. 그렇게 화합해서 생을 받는 의식은 성립될 수 없다. 의식은 언제나 염오에 의지하기 때문이고, 저 의식의 인식대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설사 이 의식이 적백(赤白)과 화합하고 이 화합된 의식이 일체종자식이라 하더라도, 이 식에 의지해서 생겨나는 다른 식을 일체종자식으로 삼겠는가? 만약 그 화합식이 일체종자식이라면 이것은 곧 아리야식이다. 그대는 스스로 다른 명칭으로써 안립하여 의식을 삼을 뿐이다.
만일 의지하여 생기하는 식이 일체종자식이라면, 그 의지처의 원인의 자체로써 일체종자식을 삼을 수 없다.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 때문에 이 화합식은 의식이 아니고 다만 과보식임이 성취된다. 이것이 일체종자식이기 때문이다.
017_0013_c_09L論曰:云何生染不成?結生不成故.若於不靜地`住中,有意以染污意識結生,此染污意識,於中有中滅,識於母胎中,與迦羅邏和合.若唯是意識,和合受生,和合生已,依止此識,於母胎中,意識轉生,卽是於母胎中,二意識同處竝生.彼和合受生意識,不可成立,爲意識一切時,依止染污故.如意識所緣境,此不可得故.設令此意識,與赤白和合,爲卽此和合意識是一切種子`爲依止此識生餘識爲一切種子?若卽彼和合識是一切種子者,卽是阿梨耶識,汝自安置別名以爲意識.若以依止生識爲一切種子者,不以彼所依因體爲一切種子者,無有道理.以是義故,得成就此和合識非意識,但是果報識,是一切種子故.
【釋】아리야식이 아니면 태어남의 잡염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제 마땅히 이런 의미를 나타내야 한다. ‘결생이 성립되지 않음’은 자기 신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선정이 아닌 지위’는 욕계이고, ‘떨어진다’는 것은 목숨이 다함을 말한다. ‘염오의 의식’은 의식이 번뇌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생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 신체를 섭수하기 때문이다.
이 염오의 의식이 생유(生有)64)를 반연함으로써 중유가 멸한다. ‘화합’65)이란 하나의 양상으로서 편안함과 위태로움을 함께함이다. 이른바 의식이 적백(赤白)66)과 화합하기 때문이다.
017_0014_a_03L釋曰:離阿梨耶識,生染污不成,今當顯示此義.結生不成者,謂得自身不成故.不靜地者,謂欲界.墮者,謂命終.染污意識者,意識與煩惱俱故.受生者,攝取自身故,彼染污意識,攀緣生有故,中有卽滅.和合者,一相同成壞故,謂意識與赤白和合故.
‘화합의 의식에 의지해서 다른 의식을 생겨나게 해서 두 가지 식이 함께 있다’는 것은, 동시에 화합의 의식과 이것을 의지해서 생겨난 다른 의식이 존재함이다. 두 가지 식이 동시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화합의 의식은 의식을 이룰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염오를 의지처로 삼기 때문이다. 그 화합의 의식은 탐욕 등의 번뇌에 염오되고, 염오의(染汚意)를 의지처로 삼고, 생유를 반연하며, 염오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염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을 의지하여 모태에 머무는 식은 염오를 의지처로 삼지 않으니, 과보의 체성이 무기이기 때문이다.
‘저 의식의 인식대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란 다음과 같다. 의식의 인식대상은 얻을 수 있으니, 이른바 모든 법이다. 그런데 이 화합식은 반연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의식이 될 수 없다.
017_0014_a_10L依止和合意識,生餘意識.二識俱有者,謂一時卽有和合意識,及依此所生別意識,二識一時俱有故.又彼和合意識,不可成立爲意識.何以故?一切時,染污爲依止故.彼和合意識,以欲等煩惱染污意爲依止,攀緣生有,是染污故,依止於此故,名染污爲依止.此已住胎識,不以染污爲依止,以報體無記故.如意識所攀緣,此不可得故者,意識攀緣,則可得所謂諸法,此和合識,無有攀緣,是故不可成就此爲意識.
【論】또한 결생하고 나서 감각기관을 거두어 지니는 것도 만일 과보식이 아니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 나머지 모든 식은 각기 의지처가 다르고, 또한 견고하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감각기관이 식67)이 없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4_a_21L論曰:復次結生已攝持色根,若異果報識無可得義,其餘諸識,各別依止,又不堅住故.然諸色根,無識不成.
017_0014_b_01L【釋】‘결생하고 나서’는 이미 신체를 얻음을 말한다. ‘만일 아니면’이란 아리야식이 아님을 말한다. 나머지 여섯 가지 식은 각기 의지처가 다르기 때문이고, 쉽게 전전하기 때문이다. 마치 안식은 오직 반드시 안근을 의지함과 같다. 이처럼 이식 등 나머지 식이 각기 자신의 의지처인 이근 등 감각기관이 있음도 역시 그러하다. 만일 아리야식이 없다면, 이러한 여러 식이 각각 자신의 의지처인 감각기관을 섭지함도 다음과 같이 된다. 이러한 여러 식은 쉽게 전전하기 때문에 어느 때는 존재하지 않아서, 안근 등 여러 감각기관을 섭지하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문드러지고 파괴되어야 한다.
017_0014_b_01L釋曰:結生已者,謂已得身故.若異者,謂捨阿梨耶識已,餘六識各別處故`動轉故,如眼識唯定依止眼,如是耳等餘識,各自依止,耳等色根亦爾.若無阿梨耶識,此諸識各各攝持自依止根者,此等諸識動轉,故有時不在,無攝持眼等諸根,卽應爛壞.
【論】만약 이숙식이 아니면 식과 명색(名色)68)이 서로 의지하는 마치 갈대
묶음이 서로 의지해서 머무는 이런 의미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014_b_08L論曰:識與名色,更互相依,如蘆束相依住,此義不成故.
【釋】이제 이런 의미가 성립되지 않음을 나타내고자 한다. 세존께서 “식은 명색의 조건[緣]이 되고, 명색은 식의 조건이 된다”고 말씀한 바와 같다. 여기서 식이 명(名)의 조건이 됨은 다음과 같다. 명(名)은 여섯 가지 식을 말한다. 곧 명은 물질이 아닌 네 가지 요소[四聚]이다. 색(色)은 곧 가라라이다. 명색이 반연하는 식이란 만일 아리야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명색을 의지하기 때문에 찰나에 전전히 상속해서 단절되지 않는다.
017_0014_b_10L釋曰:今欲顯示此不成義.如世尊說:識爲名色緣,名色爲識緣.於中識爲名緣者,名謂六識身.卽說名非色四聚,色者卽是迦羅邏.名色所緣之識,若無阿梨耶識,何者是耶?由依止名色故,得剎那傳傳相續轉生不斷.
【論】만일 과보식이 아니면 모든 중생의 식식(識食)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 과보식이 아니면 여섯 가지 식 가운데 어느 한 가지 식도 삼계의 중생 속에서 음식작용의 일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017_0014_b_16L論曰:若離果報識,所有衆生識食不成.離此果報識,六識中隨一識,於三界所有衆生中,食事不成故.
017_0014_c_01L【釋】이 말은 식식이 성립되지 않는 의미를 나타낸다. 세존께서 네 가지 음식작용물을 말씀하셨다.69) 첫째는 단식(摶食)70)이고, 둘째는 촉식(觸食)이며, 셋째는 의사식(意思食)이고, 넷째는 식식(識食)이다. 이 가운데 단식은 변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양상으로 한다. 변하여 능히 신체의 이익되는 일을 섭지한다. 촉식은 경계의 양상이다. 마치 빛깔 등의 경계를 오직 보는 것으로써 능히 신체의 이익되는 일을 함과 같다. 의사식은 기억[憶念]을 양상으로 한다. 다만 기억함으로써 신체의 이익되는 일을 한다. 마치 갈증나는 이가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죽지 않음과 같다. 식식은 섭지(攝持)함을 양상으로 한다. 이 섭지로 인하여 신체가 머물 수 있다. 만약 이 식이 없다면 죽은 시체와 같아서 냄새나고 문드러질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식도 역시 음식작용이라고 이름한다. 능히 신체의 이익되는 일을 짓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촉식은 여섯 가지 식이고, 의사식은 기억의 마음이다. 이미 식식을 말했기 때문에 다시 별도의 식이 있음을 안다. 또한 깊은 잠ㆍ무심ㆍ기절함ㆍ멸진정 등과 같은 경우에는 여섯 가지 식은 멸하는데, 다시 무엇이 있어서 신체를 섭지하여 문드러지고 파괴되지 않게 하는가? 만약 아리야식을 여의게 되면 신체는 곧 문드러지고 파괴된다.
017_0014_b_19L釋曰:此言顯示識食不成義.世尊說四種食:一摶`二觸`三意思`四識.摶者,變成爲相,旣變已能作攝持身利益事.觸者,境界相,如色等境界,唯以見等,卽能爲身利益事.意思者,憶念爲相,但以憶念,爲身利益事,如渴者,見水得不死故.識者,攝持爲相,由此攝持故,身得住,若無此識,卽同死屍臭爛,是故應知識亦名食,由能作身利益事故.於中觸食者,六識身,意思者,憶念心,旣說識食故,知更有別識.又如重睡`無心,及悶絕`滅定等,六識身滅爾,更有何者,持身得不爛壞?阿梨耶識,若捨離時,身則爛壞故.
【論】만약 여기서 죽어서 상부의 선정의 지위에 태어나면, 선정이 아닌 지위의 염오 의식으로 인하여 그 생을 맺는다. 이 선정이 아닌 지위의 염오의 마음은 그 지위에서 만일 아리야식이 아니면 종자가 있을 수 없다.
017_0014_c_10L論曰:若從此退已,於上靜地生,以染污不靜意識,結彼生.此不靜染污心,於彼地中,若離阿梨耶識,種子不可得.
【釋】앞에서 선정이 아닌 지위의 결생은 성립되지 않음을 말했다. 선정의 지위에서도 성립되지 않음을 이제 마땅히 나타내야 한다. 이곳은 염오식으로써 그 생을 잇는다. 선정의 지위에서도 선정이 아닌 지위의 염오식으로써 생을 잇는다.
염오란 그 지위의 번뇌에 오염되는 것이다. 그 지위의 번뇌란 선정의 맛을 집착하는 것 등이다. 이 염오는 선정이 아닌 지위에 있으며, 이 사람은 선정이 아닌 지위에서 죽는다. 그런데 죽은 다음에 그 상부 지위의 마음이 어떻게 현전하는가? 이미 현전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생을 잇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마땅히 아리야식이 존재해야 한다. 아득한 옛적부터 그 지위의 훈습이 마음에 있으며, 이 훈습으로 인하여 그 마음이 현전하여 그 생을 잇기 때문이다.
017_0014_c_14L釋曰:前已說不靜地結生不成,靜地不成,今當顯示.此處以染污識結彼生,若於靜地,亦以染污不靜,結彼生.染污者,以彼地煩惱所染故.彼地煩惱者,謂著定味等,此染污卽在不靜地.此人於不靜地死,旣死已,彼上地心,云何現前?旣不現前,云何得結彼生?是故決定應有阿梨耶識,由有無始時,彼地熏習心在,由此熏習,彼心現前,得結彼生故.
017_0015_a_01L【論】설사 무색계에 태어나더라도 모든 염오와 선의 마음이 만일 일체종자의 과보식이 없으면, 이 염오와 선의 마음은 마땅히 종자와 머무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017_0015_a_01L論曰:設令生無色界,所有染污及善心,若離一切種子果報識,此染污及善心,應無種子及住處故.
【釋】‘무색계에 태어난다’는 것은 색계를 해탈함을 말한다. ‘염오와 선의 마음’은 삼마제(三摩提)의 맛에 애착함이다. ‘종자와 머무는 곳이 없다’는 것은 원인과 의지처가 없음을 말한다.
또한 다른 의미가 있다. 이 두 가지 마음이 만일 종자가 없다면 어떤 원인으로부터 생겨나는가? 만약 머무는 곳이 없다면 어떻게 의지해서 머물겠는가? 그 마음은 아리야식이 섭지함으로써 자신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이 식에 의지한다. 의지처가 있기 때문에 상속해서 머물 수 있다.
017_0015_a_04L釋曰:生無色界者,謂解脫色界.染污及善心者,謂樂三摩提味.無種子及無住處者,謂無因及無依止.更有別義:若無種子,何因而生?若無住處,云何得依止住?彼心爲阿梨耶識攝持故,從自種子生,卽依止此識,由有依止故,得相續住.
【論】만일 그 세계에서 출세간의 마음이 현전하면 나머지 세간의 마음은 멸진하고, 문득 그 세계를 떠나야 한다.
017_0015_a_11L論曰:若卽於彼界中,出世心現前,所餘世閒心滅盡,便應滅離彼趣.
【釋】그 중에서 만약 출세간의 마음이 현전하면, 오직 이 출세간의 마음을 제외한 그 나머지는 모두 세간의 마음이다. 그 여러 세간의 마음이 모두 없기 때문에 문득 그 윤회세계가 단절된다. 그러면 의식적인 노력[功用]에 의하지 않고서 무여열반을 증득한다. 이미 이런 도리는 없기 때문에 아리야식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017_0015_a_13L釋曰:卽於彼中,若出世心現前,唯除此出世心,其餘皆是世閒心,彼諸世閒心,皆不有故,便斷彼趣,卽是不由功用,得無餘涅槃.旣無此理故,離阿梨耶識不成.
【論】만일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71)에 태어나거나 무소유처72)에 의지해서 출세간의 마음이 현전하면 마땅히 두 가지 세계를 여의어야 한다. 이 출세간의 식은 비상비비상처를 의지하지 않고, 역시 무소유처를 의지하지 않는다. 또한 열반을 의지함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5_a_18L論曰:若生非想非非想中,依無所有處,出世閒心現前,卽應捨離二趣.此出世識,不依止非想非非想趣,亦不依止無所有處趣,依止涅槃處亦不成.
017_0015_b_01L【釋】혹은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나거나 어느 때는 무소유처에 의지해서 출세간의 마음이 현전한다. 그곳(무소유처)의 마음은 밝고 예리하기 때문이고 비상비비상처의 마음은 어둡기 때문에 밝고 예리한 마음의 처소에서 출세간의 마음을 수행하여 현전한다. 그런데 그 출세간의 마음이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세계73)를 의지함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이 두 지위는 모두 세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지위에 태어나면 다른 지위의 마음이 현전하므로 두 가지 세계를 의지함은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74) 신체가 유여의(有餘依)이기 때문에75) 이 마음이 열반을 의지처로 삼음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의지처는 성립되지 않는다. 만일 아리야식이 아니면 이 출세간의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겠는가?
017_0015_a_22L釋曰:若於非想非非想處生,有時依無所有處,出世心現前,以彼處心明利故,非想非非想處心鈍故.於明利心處,修出世心現前,彼出世心依止,第一第二趣竝不成,以此二地,皆世閒故.又別地生別地心現前,依止二趣亦不成,由身有餘故.若此心以涅槃爲依止,亦不成.以如是等,三種依止,旣不成,若離阿梨耶識,此出世心,住於何處?
【論】어떤 사람이 선이나 악을 짓고 목숨을 버릴 때, 만약 아리야식이 아니면 혹은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 차례로 신체가 차가워지는 일이 성립되지 않는다.76)
그러므로 만일 일체종자의 과보식이 없으면 태어남의 잡염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
017_0015_b_09L論曰:若人造善造惡,於捨命時,若離阿梨耶識,或上或下次第身冷不得成.是故若離一切種子果報識,生染污亦不成.
【釋】여기서 선이나 악을 지으면 혹은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 신체가 차가워짐이 다르다. 선을 지은 이는 위로 올라가고, 악을 지은 이는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만약 아리야식이 존재하여 섭지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신체가 차가워질 수 있겠는가? 아리야식이 섭지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혹은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 점차 놓아 버리게 되고, 버리는 곳에 따라서 죽은 시체가 되기 때문에 신체가 차가워진다.
017_0015_b_13L釋曰:於中造善造惡,則有從上從下身冷不同,以造善者上昇`爲惡者下墜.是故若不許有阿梨耶識爲攝持者,云何得如此身卽隨冷?由阿梨耶識,爲攝持者故,或上或下,次第放捨,隨所捨處則爲死屍,故得身冷.
攝大乘論釋論卷第二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이하 아리야식의 양상에 관하여 말한다.
  2. 2)범어는 śakti-viśeṣa 또는 śmarthya-viśeṣa이다. śakti, sāmarthya는 작용을 가진 힘ㆍ세력[功能]이고, viśeṣa는 특별[差別]ㆍ승이(勝異)라는 뜻이다. 현장의 역본에는 공능차별(功能差別)로 되어 있다. 종자는 공능차별, 즉 특수한 작용의 힘ㆍ특수한 정신적인 에너지라는 의미이다.
  3. 3)이하 훈습에 관하여 설명한다.
  4. 4)훈습은 능전(能詮)의 언어이고, 이로 인하여 무슨 의미를 나타내는가 하는 그 의의(意義)를 묻는다. 이 역본에는 명칭[名]과 나타나게 되는 것[所名]이 현장의 역본에는 각각 능전(能詮)과 소전(所詮)으로 되어 있다.
  5. 5)검은 깨와 참깨의 총칭이다.
  6. 6)이하 아리야식과 종자의 불일불이성을 논한다.
  7. 7)아리야식과 종자가 동체(同體)인가, 이체(異體)인가를 묻는다.
  8. 8)아리야식 안의 종자의 여섯 가지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 종자는 아리야식에서 고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생기 소멸하면서 지속된다.
  9. 9)종자는 선과 불선의 성질을 띠지만 아리야식은 무기(無記)이다.
  10. 10)종자는 무수히 많이 있지만 아리야식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11. 11)이하 아리야식과 잡염품이 서로 원인ㆍ결과 관계에 있음을 말한다.
  12. 12)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함께 있어서 자타가 서로 인과관계를 이루어 도와주는 것이다.
  13. 13)4연(緣) 중의 인연으로서 직접적인 자기 결과를 원인으로 하고 그 원인을 연(緣)으로 함을 말한다. 이에 능생(能生)의 종자와 능훈(能熏)의 현행(現行) 두 가지가 있다.
  14. 14)이하 원인과 결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개별이면서 개별이 아닌 속성을 띰을 말한다.
  15. 15)이하 연생(緣生)에 관하여 설명한다.
  16. 16)일반적으로 12연기(緣起)ㆍ12인연(因緣)이라고 한다. 현상세계에서 인간이, 특히 인간의 괴로움이 존재하게 되는 방식을 12단계로 설명한다. 즉 무명(無明:진리에 대한 無知)→행(行:무명에 의해 집착된 대상을 실재화하려는 형성작용)→식(識:식별작용ㆍ윤회의 주체)→명색(名色: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6입(入: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의지)→촉(觸:6根과 6境과 6識의 화합)→수(受:감수작용)→애(愛:갈애)→취(取:愛의 대상에 대한 집착)→유(有:생사하는 존재 자체의 형성)→생(生:태어남ㆍ삶)→노사우비뇌고(老死憂悲惱苦:늙고 죽음ㆍ근심ㆍ슬픔ㆍ고뇌 등의 괴로움)이다.
  17. 17)연각(緣覺)의 벽지불(辟支佛)을 가리킨다.
  18. 18)인도의 6파철학(派哲學)의 하나인 상캬(Sāṃkhya)학파의 주장이다. 여기서 자성은 프라크리티(prakṛti)로서, 근본 원질(原質)ㆍ근본 자성ㆍ제1 원인[勝因] 등의 의미이다. 상캬학파에서는 세계를 푸루샤(puruṣa:神我, 순수ㆍ청정한 정신성)와 프라크리티의 2원론(元論)으로 파악하고, 세계를 25원리에 의해 설명한다. 여기서 프라크리티는 라자스(rajas, 動質)ㆍ사트바(sattva, 純質)ㆍ타마스(tamas, 暗質)의 세 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계 만물의 차이는 이 세 요소가 어떤 비율로 결합되고, 그 중의 어떤 요소가 지배적인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한다. 프라크리티의 내적인 평형상태가 깨어져서 23원리 즉, 붓디(buddhi:大, 智)→아만→5유량(唯量:色ㆍ聲ㆍ香ㆍ味ㆍ觸)→5대(大:地ㆍ水ㆍ火ㆍ風ㆍ空)→11근(根:눈ㆍ귀ㆍ코ㆍ혀ㆍ피부ㆍ손ㆍ발ㆍ입ㆍ생식기관ㆍ배설기관ㆍ心根)이 전개된다고 한다.
  19. 19)순세외도(順世外道, Lokāyatika)의 주장이다. 그들은 세간의 모든 원인은 다만 과거에 지은 것만 있을 뿐이고, 현재 노력하는 것은 결과를 초감할 수 없다고 하였다.
  20. 20)자재천(自在天)을 섬기는 외도의 주장이다. 이들은 다만 자재천이라는 하나의 원인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자재천은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에서 3천 계(界)를 주관한다고 한다(혹은 욕계의 제6 천주라고도 한다). 이 신(神)이 세계의 본체 또는 창조의 신으로서, 만물이 자재천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된다고 한다. 이 신이 기뻐하면 중생이 편안하고, 성내면 중생이 괴롭게 된다고 한다. 이 자재천의 인(因)이 자아 등으로 하여금 선악을 일으키고 생사에 윤회하게 하며, 나중에 혐오를 일으켜서 해탈을 구하게 만든다고 한다.
  21. 21)바이세시카(Vaiśeṣika, 勝論)학파의 주장이다. 이 학파는 극단적인 실재론적 입장을 취하였다. 유물론적 다원론으로서 세계의 구성을 여섯 가지 범주[六句義], 즉 실체[實]ㆍ속성[德]ㆍ행위[業]ㆍ보편성[同:大有性]ㆍ특수성[異:同異性]ㆍ내재성[和合性]으로 설명하고, 이것들은 식에서 떠나 별도로 상주의 자체[體]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22. 22)능에서 산신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돌이다. 보통 산석이라고 말한다.
  23. 23)상일주재(常一主宰)의 자아가 있어서 모든 것의 작자(作者), 즉 원인이고 또한 그 과보를 받는 자라고 주장함을 말한다.
  24. 24)사람의 공력(功力)을 원인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현장의 역본에는 사용인(士用因)으로 되어 있다.
  25. 25)외부의 종자는 그 성품이 선(善)도 아니고 불선도 아니므로 명료하지 않다고 말한다. 곧 무기(無記)이다.
  26. 26)이하 종자가 종자로서 작용하기 위한 조건ㆍ속성을 여섯 가지로 설명한다[種子六義].
  27. 27)종자는 고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생기 소멸하면서 지속됨을 말한다(刹那義).
  28. 28)종자가 현행하여 심리 인식작용이 이루어지는 순간과 그 결과가 종자로서 훈습되는 순간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짐을 말한다(俱有義).
  29. 29)선종자나 악종자는 한 부류로 상속해서 전후 찰나에 성질이 바뀌거나 단멸되지 않는다(桓隨轉義).
  30. 30)선ㆍ악ㆍ무기를 일으킬 힘이 결정되어 있음을 말한다. 선종자에서 악의 결과가 현행된다거나, 악종자에서 선의 결과가 현행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決定義).
  31. 31)종자는 선ㆍ악 등의 성질이 결정되어 있지만, 그것이 현행되려면 중연(衆緣:作意ㆍ감각기관ㆍ대상 등)과 화합해야 함을 말한다(待緣義).
  32. 32)종자는 오직 자기 결과만을 발생시킴을 말한다(引自果義).
  33. 33)이하 제8식이 종자를 훈습받아 저장하는 소훈처(所熏處)의 역할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네 가지 속성을 말한다.
  34. 34)식의 흐름이 한 부류로[堅] 상속해서[住] 단절되지 않아야 함을 말한다(堅住性).
  35. 35)거리의 단위로서 몇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40리(里)에 해당된다고 한다.
  36. 36)첨파가(瞻波迦)는 범어 campaka의 음역이다. 매우 향기가 좋은 금색화(金色花)로부터 취한 향유(香油)이다.
  37. 37)유루ㆍ무루ㆍ선ㆍ악 등의 모든 종자를 저장하려면 체성(體性)이 무기이어야 함을 의미한다(無記性).
  38. 38)제8식의 체성이 무부무기(無覆無記:진여ㆍ무위법이 아님)이므로 훈습을 받아들이는 작용이 생겨날 수 있음을 말한다(可熏性).
  39. 39)능훈식(能熏識)과 동시동처(同時同處)에서 화합할 수 있는 속성이어야 함을 말한다(和合性).
  40. 40)모든 선정을 닦는 것을 말한다.
  41. 41)경량부를 가리킨다.
  42. 42)승의근(勝義根)을 의미한다.
  43. 43)광의(廣義)의 성교(聖敎)로서 교증(敎證)이다.
  44. 44)아리야식을 가리킨다. 모든 식이 전변 생기하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45. 45)수용식ㆍ수식(受識)이라고 한다. 외부 대상을 수용하는 식, 즉 전식(轉識)이다.
  46. 46)다음의 두 구절은 수용식의 작용을 구별해서 말한다.
  47. 47)근본식인 아리야식과 생기식인 7식(識)을 말한다.
  48. 48)이하 정신과 물질의 모든 현상이 발생함에 있어서 그 연(緣)을 네 가지[四緣]로 설명한다.
  49. 49)증상연은 그것이 생겨나는데 외부로부터 도와주는 힘을 말한다. 이에는 유력(有力) 증상연과 무력(無力) 증상연이 있다. 전자는 다른 법이 생겨나는 데 힘을 주는 조건[緣]이고, 후자는 다른 법이 생기는 것을 장애하지 않는 조건이다.
  50. 50)소연(所緣:마음의 對境)이 마음에 대해 연(緣)이 되어 활동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인식대상[所緣]인 대경(對境)이 있어서 비로소 식이 생기하기 때문에 그 인식대상을 연(緣)으로 삼는다.
  51. 51)등무간연(等無間緣)이라고도 하며, 전찰나의 생각이 사라지면서 다음 찰나의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전찰나의 식이 멸하여 다음 찰나의 식에 그곳을 주지 않으면 식이 생기하지 않기 때문에 전찰나의 식을 등무간연이라 이름한다.
  52. 52)이하 앞에서 말한 이문(異門)과 양상들이 오직 아리야식에만 있고 다른 식에는 없으므로 아리야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성립되지 않음에 관하여 말한다.
  53. 53)이하 아리야식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번뇌의 잡염이 성립되지 않음을 말한다.
  54. 54)근본번뇌(貪ㆍ瞋ㆍ癡ㆍ慢ㆍ疑ㆍ惡見)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유식학에서는 분노[忿]ㆍ원한[恨]ㆍ질투[嫉]ㆍ속임[誑]ㆍ아첨[諂]ㆍ게으름[懈怠]ㆍ혼침[婚沈]ㆍ들뜸[掉擧] 등 20가지를 말한다.
  55. 55)과거로 낙사(落謝)한 법을 가리킨다.
  56. 56)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논사들이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를 주장함을 말한다.
  57. 57)이하 아리야식이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업의 잡염품이 성립되지 않음에 관하여 말한다.
  58. 58)업의 의미이다.
  59. 59)이하 아리야식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태어남의 잡염이 성립되지 않음을 말한다.
  60. 60)윤회하면서 중유(中有)가 없어지고 모태에 다음 생을 위탁함을 말한다.
  61. 61)고요하지 않은 지위란 선정이 아닌 지위, 즉 산지(散地)인 욕계(欲界)를 의미한다. 현장의 역본에는 비등인지(非等引地)로 되어 있다.
  62. 62)중유는 4유(有) 가운데 하나로서 죽은 뒤 다음의 생을 받아 날 때까지의 사이에 있는 존재이다.
  63. 63)범어 kalalaṃ의 음역으로서, 갈라람(羯羅藍)이라고도 한다. 수태(受胎)로부터 1주일 동안의 태아이다. 갈라람은 식(識)과 수정란의 물질적 요소[四大]가 화합한 것이다.
  64. 64)모태에 임신되는 순간의 존재이다. 참고로 말하면 윤회과정을 4유설(有說)로써 설명하기도 한다. 4유(有:生有ㆍ本有ㆍ死有ㆍ中有)는 생명적 존재의 윤회 속에서의 네 가지 존재형태이다. 본유는 모태에 임신되면서부터 출산, 생존하다가 사망할 때까지의 존재이다. 사유는 사망하는 찰나, 4온(蘊:受蘊ㆍ想蘊ㆍ行蘊ㆍ識蘊)만이 신체[色蘊]를 벗어나는 순간의 존재이다. 중유는 사망한 이후부터 업력에 따라 내세에 태어나기 이전까지의 존재이다.
  65. 65)범어는 sammūrcchati로서 결합ㆍ응결(凝結)의 의미이다. 현장은 이를 ‘화합’ 이외에 ‘의탁(依託)’ㆍ‘화합 의탁’으로 번역하였다. 윤회의 주체인 아리야식이 부모의 수정란에 결합해서 응결함을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의 어원인 √saṃmūrch는 ‘응결해서 증대하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 화합은 단순히 기계적ㆍ무기적(無機的)인 결합이 아니라 생리적ㆍ유기적(有機的)으로 결합해서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66. 66)부모의 정혈(精血)을 가리킨다.
  67. 67)아리야식을 가리킨다.
  68. 68)범어는 nāma-rūpa로서 정신적인 것[名]과 물질적인 것[色]이 결합된 상태이다.
  69. 69)유정의 신명(身命)을 유지시키는 네 가지 음식작용물[四食]이다. 첫째, 단식(段食, 團食)은 밥이나 나물처럼 형체가 있는 음식으로서, 이것을 쪼개고 으깨서[分分段段] 먹어 능히 신명을 무너지지 않게 한다. 둘째, 촉식(觸食)에서 촉(觸)은 6식에 상응하는 심소(心所:심리작용)이다. 사랑할 만한 대상에 접촉할 때 희락의 쾌감을 일으켜서 신체를 이롭게 하기 때문에 능히 음식작용물의 뜻이 있게 된다. 셋째, 의사식(意思食 또는 思食)에서 의사는 의식에 상응하는 사(思)의 심소이며, 이 심소가 욕구[欲] 등의 심소를 동반해서 사랑할 만한 대상을 희구해서 심신을 자양(滋養)하기 때문이다. 넷째, 식식(識食)은 앞의 세 가지 음식작용물의 세력에 의해서 증장할 수 있고, 이 식이 모든 감각기관이나 4대(大)를 장양(長養)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70. 70)현장의 역본에는 단식(段食)으로 되어 있다.
  71. 71)무색계의 제4천이다. 이 하늘은 삼계의 최고 위치에 있으므로 유정천(有頂天)이라고도 한다. 이 하늘에 나는 이는 하지(下地)와 같은 거친 표상작용[想]이 없기 때문에 비상(非想) 또는 비유상(非有想)이라 한다. 그러면서도 아직 미세한 표상작용이 있으므로 비비상(非非想) 또는 비무상(非無想)이라고 한다. 비유상(非有想)이므로 외도들은 이곳을 참다운 열반[眞涅槃處]이라 하고, 비무상(非無想)이므로 불교에서는 이곳도 생사윤회의 범주에 넣는다.
  72. 72)무색계의 제3천으로서 제2천인 식무변처(識無邊處)에서 인식대상의 공함을 관하여 무소유의 지혜를 얻고 그 수행한 힘으로 나게 되는 하늘이다.
  73. 73)첫 번째는 비상비비상처를 가리키고, 두 번째는 무소유처를 말한다.
  74. 74)이 마음은 명료하기 때문에 비상비비상처에 의지하지 않고, 이미 무소유처를 여의었기 때문에 무소유처도 역시 이 마음의 의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75. 75)업보의 과체(果體)가 있기 때문이다.
  76. 76)생전에 선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임종할 때 식이 사지 말단에서부터 머리쪽으로 점차 거두어지고, 반대로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머리부터 식어져서 점차 아래로 내려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