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辯中邊論卷中

ABC_IT_K0601_T_002
017_0403_a_01L변중변론(辯中邊論) 중권
017_0403_a_01L辯中邊論卷中
세친보살 지음
현장 한역
한길로 번역
017_0403_a_02L世親菩薩造
大唐三藏法師玄奘奉 詔譯
3. 변진실품(辯眞實品)
017_0403_a_04L辯眞實品第三
이미 그 장애[障]를 말하였는지라, 진실함[眞實]을 설명하여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3_a_05L已辯其障當說眞實頌曰
진실함[眞實]은 열 가지가 있을 뿐이니
근본(根本)과 모양[相]과
뒤바뀜이 없음[無顚倒]과 인과(因果)와
굵고 가늘음[麤細]의 진실함이며
017_0403_a_06L眞實唯有十
謂根本與相
無顚倒因果
及麤細眞實
지극하게 이뤄짐[極成]과
깨끗하게 행하는 바[淨所行]과
받아들임[攝受]과 차별(差別)과
열 가지 교묘함[十善巧]의 진실함이니
다 ≺나≻라는 소견[我見]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017_0403_a_08L極成淨所行
攝受幷差別
十善巧眞實
皆爲除我見
≪논≫ 진실함은 열 가지만이 있는 줄 알아야 하리니, 첫째는 근본의 진실함[根本眞實]이요, 둘째는 모양의 진실함[相眞實]이요, 셋째는 뒤바뀜이 없음의 진실함[無顚倒眞實]이요, 넷째는 인과의 진실함[因果眞實]이요, 다섯째는 굵고 가늘음의 진실함[麤細眞實]이요, 여섯째는 지극하게 이뤄짐의 진실함[極成眞實]이요, 일곱째는 깨끗하게 행하는 바의 진실함[淨所行眞實]이요, 여덟째는 받아들임의 진실함[攝受眞實]이요, 아홉째는 차별의 진실함[差別眞實]이요, 열째는 잘하고 교묘함의 진실함[善巧眞實]이다. 이 또 열 가지는 ≺나≻라는 소견을 제거시키려 하기 위한 것이다.
017_0403_a_09L論曰應知眞實唯有十種一根本眞二相眞實三無顚倒眞實四因果眞實五麤細眞實六極成眞實七淨所行眞實八攝受眞實九差別眞實十善巧眞實此復十種爲欲除遣十我見故
‘열 가지 교묘함’이라고 함은, 첫째는 쌓임의 교묘함[蘊善巧]이요, 둘째는 경계의 교묘함[界善巧]이요, 셋째는 처의 교묘함[處善巧]이요, 넷째는 연기의 교묘함[緣起善巧]이요, 다섯째는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의 교묘함[處非處善巧]이요, 여섯째는 뿌리의 교묘함[根善巧]이요, 일곱째는 세상의 교묘함[世善巧]이요, 여덟째는 진리의 교묘함[諦善巧]이요, 아홉째는 승의 교묘함[乘善巧]이요, 열째는 함이 있고 함이 없는 법의 교묘함[有爲無爲法善巧]이다.
017_0403_a_15L十善巧者一薀善巧二界善三處善巧四緣起善巧五處非處善巧六根善巧七世善巧八諦善巧九乘善巧十有爲無爲法善巧
이 안의 어떤 것이 근본의 진실함이냐 하면, 세 가지 제성품[三自性]이니, 첫째는 변계소집(遍計所執)의 자성(自性)이요, 둘째는 의타기(依他起)의 자성이요, 셋째는 원성실(圓成實)의 자성이다. 이것에 의하여 나머지의 진실함을 세우기 때문이다.
017_0403_a_18L此中云何根本眞實謂三自性一遍計所執自性二依他起自性三圓成實自依此建立餘眞實故
여기서 설명하는 세 가지 제 성품 중에서 어느 이치를 진실함이라고 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3_a_21L於此所說三自性中許何義爲眞實頌曰
017_0403_b_01L세 가지의 제 성품에 있어서
하나만은 언제나 있음이 아님[非有]이고
하나는 있음[有]이면서 진실함이 아니며
하나는 있음[有]ㆍ없음[無]이면서 진실함이다
017_0403_a_22L許於三自性
唯一常非有
一有而不眞
一有無眞實
≪논≫ 곧 이와 같은 세 가지 제 성품 중에서 변계소집성의 모양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닐 뿐이면서도 이 성품 중에서는 진실함이라고 인정되나니, 뒤바뀜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 의지성의 모양은 있는 것이면서 진실함은 아니며, 있을 뿐이요 진실함이 아니면서도 서로 의지성에서는 진실함이라고 인정되나니, 어지러운 성품[亂性]이 있기 때문이다. 원성실성의 모양에서도 역시 있으면서 있는 것이 아니며, 있고 있는 것이 아닐 뿐이면서 이 성품 중에서는 진실함이라고 인정되나니, ≺공≻한 성품[空性]이 있기 때문이다.
017_0403_b_02L論曰卽於如是三自性中遍計所執相常非有唯常非有於此性中許爲眞實無顚倒故依他起相有而不眞唯有非眞於依他起許爲眞實有亂性故圓成實相亦有非有唯有非有於此性中許爲眞實有空性故
무엇이 모양의 진실함[相眞實]이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3_b_08L云何相眞實頌曰
법(法)과 보특가라[數取趣]와
취할 바[所取]와 능히 취하는 것[能取]과
있음과 있음이 아님의 성품 중에는
더 늘음[增益]과 줄어짐[損減]의 소견이 있다
이를 알기 때문에 바꾸지 아니하면
이것을 진실한 모양[眞實相]이라고 한다
017_0403_b_09L於法數取趣
及所取能取
有非有性中
增益損減見
知此故不轉
是名眞實相
≪논≫ 온갖 법[一切法]과 보특가라[補特伽羅]에게는 모든 더 놀음과 줄어짐의 소견이 있는데, 만약 이를 알기 때문에 그것을 곧 바꾸지 아니하면, 이것이 변계소집의 제 성품의 진실한 모양이다. 모든 취할 바와 능히 취하는 것의 법 안에는 모든 더 늘음과 줄어짐의 소견이 있는데, 만약 이를 알기 때문에 그것을 곧 바꾸지 아니하면 이것이 서로 의지성의 제 성품의 진실한 모양이라고 한다.
017_0403_b_11L論曰於一切法補特伽羅所有增益及損減見若知此故彼便不轉是遍計所執自性眞實相於諸所取能取法中所有增益及損減見若知此故彼便不轉是名依他起自性眞實相
있음과 있음이 아닌 것에는 모든 더 늘음과 줄어짐의 소견이 있는데, 만약 이를 알기 때문에 그것을 곧 바꾸지 아니하면, 이것이 원성실성의 제 성품의 진실한 모양이라고 한다. 이것은 근본의 진실한 모양 안에서 뒤바뀜이 없기 때문에 모양의 진실함이라고 한다. 뒤바뀜이 없음의 진실함[無顚倒眞實]이라고 함은 무상함[無常]과 괴로움[苦]과 ≺공≻함[空]과 ≺나≻ 없음[無我]의 성품을 말하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저 항상함[常] 따위의 네 가지 뒤바뀜을 다스리게 된다.
017_0403_b_16L於有非有所有增益及損減見若知此故彼便不轉是名圓成實自性眞實相此於根本眞實相中無顚倒故名相眞實無顚倒眞實者謂無常無我性由此治彼常等四倒
어떻게 이 무상함 따위는 저 근본의 진실함에 의하여 세우는 줄 알아야 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3_b_21L云何應知此無常等依彼根本眞實立耶頌曰
성품 없음[無性]과 나고 없어짐[生滅]과
때 끼고 깨끗함[垢淨]이 셋의 무상함이다
017_0403_b_23L無性與生滅
垢淨三無常
017_0403_c_01L취할 바[所取]와 일 모양[事相]과
어울려 합함[和合]이 괴로움의 세 가지[苦三種]며
≺공≻함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나니
없음[無]과 다름[異]과 제[自]의 성품이다
017_0403_c_01L所取及事相
和合苦三種
空亦有三種
謂無異自性
모양이 없음[無相]과 모양이 다름[異相]과
제 모양[自相]이 셋의 ≺나≻ 없음이며
다음과 같이 네 번의 세 가지는
근본의 진실함에 의지함인 것이다
017_0403_c_02L無相及異相
自相三無我
如次四三種
依根本眞實
≪논≫ 무상함의 세 가지라고 함은, 첫째는 성품 없음의 무상함[無性無常]이니, 변계소집(遍計所執)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항상 함[常]이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나고 없어짐의 무상함[生證無常]이니, 의타기(依他起)를을 말하는 것이어서 일어나서 다함[起盡]이 있기 때문이요, 셋째는 때 끼고 깨끗함의 무상함[垢淨無常]이니, 원성실(圓成實)을 말하는 것이어서 위치가 바뀌고 변하여지기 때문이다.
017_0403_c_04L論曰無常三者一無性無常謂遍計所執此常無故二生滅無常謂依他有起盡故三垢淨無常謂圓成實位轉變故
괴로움의 세 가지라고 함은, 첫째는 취할 바의 괴로움[所取苦]이니, 변계소집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보특가라와 법에 대한 고집의 취할 바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일 모양의 괴로움[事相苦]이니, 의타기를 말하는 것이어서 세 가지 괴로움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어울려 합함의 괴로움[和合苦]이니, 원성실을 말하는 것이어서 괴로운 모양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017_0403_c_08L苦三種者一所取苦謂遍計所執是㭪特伽羅法執所取故事相苦謂依他起三苦相故三和合謂圓成實苦相合故
≺공≻함에 세 가지가 있다고 함은, 첫째는 성품이 없음의 ≺공≻함[無性空]이니, 변계소집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것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치가 없는지라, 이 있는 것이 아님으로 말미암아 ≺공≻이라고 말하게 되기 때문이요, 둘째는 다른 성품의 ≺공≻함[異性空]이니, 의타기를 말하는 것이어서 허망하게 집착한 바와 같이 이렇게 있는 것은 아니로되, 온갖 종류의 성품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요, 셋째는 제 성품의 ≺공≻함[自性空]이니, 원성실을 말하는 것이어서 두 가지 ≺공≻의 나타나는 바를 제 성품으로 삼기 때문이다.
017_0403_c_11L空有三者無性空謂遍計所執此無理趣可說爲有由此非有說爲空故二異性空謂依他起如妄所執不如是有非一切種性全無故三自性空謂圓成實二空所顯爲自性故
≺나≻ 없음의 세 가지라고 함은, 첫째는 모양이 없음의 ≺나≻ 없음[無相無我]이니, 변계소집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 모양은 본래가 없기 때문에 모양이 없다고 하는데 곧 이 모양이 없음을 말하여 ≺나≻없음이라고 함이다. 둘째는 모양이 다름의 ≺나≻ 없음[異相無我]이니, 의타기를 말하는 것이어서 이 모양이 비록 있다 손치더라도 그것이 제 나름대로 분별한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에 모양이 다르다고 하는데 곧 이 모양이 다름을 말하여 ≺나≻없음이라고 함이다. 셋째는 제 모양의 ≺나≻ 없음[自相無我]이니, 원성실을 말하는 것이어서 ≺나≻ 없음의 나타는 바로써 제 모양을 삼는데 곧 이 제 모양을 말하여 ≺나≻ 없음이라고 한다.
017_0403_c_16L無我三者一無相無我謂遍計所執此相本無故名無相卽此無相說爲無我二異相無謂依他起此相雖有而不如彼遍計所執故名異相卽此異相說爲無三自相無我謂圓成實無我所顯以爲自相卽此自相說爲無我
017_0404_a_01L이와 같아서 설명한바 무상함ㆍ괴로움ㆍ≺공≻함ㆍ≺나≻ 없음의 네 가지를 그 차례와 같이 근본의 진실함에 의하여 각각 나누어서 세 가지로 삼았으니, 네 번의 세 가지씩은 앞의 것과 같은 줄 알아야 한다.
017_0403_c_22L如是所說無常無我四種如其次第依根本眞實各分爲三種四各三種如前應知
인과의 진실함[因果眞實]이라고 함은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말하나니, 어찌하여 이것이 근본의 진실함에 의지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4_a_02L因果眞實謂四聖諦云何此依根本眞實頌曰
괴로움의 세 모양[苦三相]은 이미 설명하였고
쌓임[集]에도 또한 세 가지가 있나니
습기(習氣)와 등기(等起)와
모양의 매임을 여의지 못함[未離繫]이다
017_0404_a_03L苦三相已說
集亦有三種
謂習氣等起
及相未離繫
제 성품[自性]과 두 가지의 나지 않음[不生]과
때와 고요함[垢寂]의 둘은 셋의 사라짐[滅]이며
두루 앎[遍知]과 영원히 끊음[永斷]과
증득함[證得]은 세 가지 도의 진리[道諦]이다
017_0404_a_05L自性二不生
垢寂二三滅
遍知及永斷
證得三道諦
≪논≫ 괴로움의 진리[苦諦]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무상함 따위 넷이 저마다 세 가지 모양[三相]이다. 앞에서 이미 설명한 것과 같다.
017_0404_a_06L論曰苦諦有三謂無常等四各三相如前已說
쌓임의 진리[集諦]의 세 가지라고 함은, 첫째는 습기의 쌓임[習氣集]이니, 변계소집의 제 성품 집착[自性集]의 습기요, 둘째는 등기의 쌓임[等起執]이니, 업의 번뇌[業煩惱]요, 셋째는 아직 매임을 여의지 못함의 쌓임[未離繫集]이니, 아직 장애는 여의지 못한 진여(眞如)이다.
017_0404_a_08L集諦三者一習氣集謂遍計所執自性執習氣二等起集謂業煩惱三未離繫集謂未離障眞如
사라짐의 진리[集諦]의 세 가지라고 함은, 첫째는 제성품의 사라짐[自性滅]이니, 제 성품이 나지 않기 때문이요, 둘째는 두 가지 취함의 사라짐[已取滅]이니, 취할 바와 능히 취하는 것의 두 가지가 나지 않기 때문이요, 셋째는 본래 성품의 사라짐[本性減]이니, 때와 고요함의 둘이어서 곧 택멸(擇滅)과 진여이다.
017_0404_a_10L諦三者自性滅謂自性不生故二取滅謂所取能取二不生故性滅謂垢寂二卽擇滅及眞如
도의 진리[道諦]의 세 가지라고 함은, 첫째는 두루 앎의 도[遍知道]요, 둘째는 영원히 끊음의 도[永斷道]요, 셋째는 증득함의 도[證得道]이다. 이 안에서 변계소집성에는 두루 앎이 있을 뿐이다. 의타기성에는 두루 앎과 영원히 끊음이 있으며, 원성실성에는 두루 앎과 증득함이 있는 줄 알지니, 그 때문에 이 세 가지에 의하여 도의 진리를 세운다.
굵고 가늘음의 진실함[麤細眞實]이라고 함은 세속의 진리[世俗諦]와 으뜸가는 진리[勝義諦]이다. 어찌하여 이것이 근본의 진실함에 의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4_a_13L道諦三者一遍知道二永斷道三證得道應知此中於遍計所執唯有遍知依他起有遍知及永斷於圓成實有遍知及證得故依此三建立道諦細眞實謂世俗勝義諦云何此依根本眞實頌曰
알아야 하리니 세속의 진리는
차별하자면 세 가지가 있어서
거짓[假]과 행함[行]과 나타나 앎[顯了]이니
차례대로 세 가지의 근본에 의한다
017_0404_a_19L應知世俗諦
差別有三種
謂假行顯了
如次依本三
으뜸가는 진리에도 세 가지가 있어서
뜻[義]과 얻음[得]과 바른 행[正行]이니
근본의 하나에 의한 변함이 없음[無變]과
뒤바뀜의 없음[無倒]의 둘은 두루 진실[圓實]이다
017_0404_a_21L勝義諦亦三
謂義得正行
依本一無變
無倒二圓實
017_0404_b_01L≪논≫ 세속의 진리에 세 가지가 있다고 함은, 첫째는 거짓의 세속[假世俗]이요, 둘째는 행함의 세속[行世俗]이요, 셋째는 나타나 앎의 세속[顯了世俗]이다. 이 세 가지의 세속은 그 차례대로 세 가지 근본의 진실함에 의하여 세워진다.
017_0404_a_22L論曰世俗諦有三種一假世俗二行世俗三顯了世俗此三世俗如其次依三根本眞實建立
으뜸가는 진리에도 세 가지가 있다고 함은, 첫째는 뜻의 으뜸가는 이치[義勝義]이니, 진여를 말하는 것이어서 뛰어난 지혜[勝智]의 경계를 으뜸가는 이치라고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얻음의 으뜸가는 이치[得勝義]이니, 열반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것은 바로 뛰어난 결과[勝果]이며, 또한 이치의 이익[義益]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바른 행의 으뜸가는 이치[正行勝義]이니, 거룩한 도[聖道]를 말하는 것이어서 뛰어난 법으로써 이치를 삼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으뜸가는 이치는 다만 세 가지 근본[三根本] 중의 원성실에 의하여서만이 세우는 줄 알아야 된다.
017_0404_b_02L勝義諦亦三一義勝義謂眞如勝智之境名勝義故二得勝義謂涅槃此是勝果亦義利故三正行勝義謂聖道以勝法爲義故此三勝義應知但依三根本中圓成實立
이 원성실(圓成實)에는 통틀어서 두 가지가 있나니, 무위(無爲)와 유위(有爲)를 말하는 것이어서 차별을 있기 때문이다. 유위는 통틀어서 진여와 열반에 해당되나니 변하여 달라짐이 없기 때문에 원성실이라고 한다. 유위는 통틀어서 온갖 거룩한 도에 해당되나니, 경계에 대하여 뒤바뀜이 없기 때문에 역시 원성실이라고 한다.
지극하게 이뤄짐의 진실함[極成眞實]에는 요약하여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세간이 지극하게 이뤄짐의 진실한[世間極成眞實]이요, 둘째는 도리가 지극하게 이뤄짐의 진실함[道理極成眞實]이다. 어찌하여 이 두 가지가 저 근본의 진실함에 의하여 세워지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4_b_07L此圓成實摠有二種有爲有差別故無爲摠攝眞如涅無變異故名圓成實有爲摠攝一切聖道於境無倒故亦名圓成實成眞實略有二種一者世閒極成眞二者道理極成眞實云何此二依彼根本眞實立耶頌曰
세간이 지극하게 이뤄짐은 첫째에 의하고
도리가 지극하게 이뤄짐은 셋째에 의한다
017_0404_b_13L世極成依一
理極成依三
≪논≫ 어떤 일이 세간에서 함께 벌려 놓은 것으로서 자주 익히어 따라 드는[隨入] 깨달음의 슬기[覺慧]로 취하게 될 적에 온갖 세간이 똑같이, ‘이 일은 바로 땅이어서 불이 아니며, 빛깔이어서 소리가 아니다’라고 하는 따위로 집착한다면 이것을 세간이 지극하게 이뤄짐의 진실함이라고 한다. 이것은 세 가지 근본의 진실함 중에서 변계소집성에 의해서만이 세워진 것이다. 만약 도리가 있는 이치라면 총명하고 어질고 착하며 머트럽게 생각하는 이가 세 가지 헤아림[三量]과 증득하여 이루는 도리[證成道理]에 의지하여 베풀어 설치하고 세우는 것을 바로 도리가 지극하게 이뤄짐의 진실함이라고 하나니, 이것은 근본의 셋째 진실함에 의하여 세워진다.
017_0404_b_14L論曰若事世閒共所安立串習隨入覺慧所取一切世閒同執此事是地非火色非聲等是名世閒極成眞實此於根本三眞實中但依遍計所執而立若有理義聰睿賢善能尋思者依止三量證成道理施設建立是名道理極成眞實此依根本三眞實立
017_0404_c_01L깨끗함으로 행하는 바의 진실함[淨所行眞實]에도 요약하여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번뇌장에서 깨끗한 지혜[淨智]로 행할 바 진실함이요, 둘째는 소지장에서 깨끗한 지혜로 행하는 바 진실함이다. 어찌하여 이 두 가지가 저 근본의 진실함에 의하여 세워지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404_b_21L淨所行眞實亦略有二種一煩惱障淨智所行眞實二所知障淨智所行眞實云何此二依彼根本眞實而立頌曰
깨끗함으로 행하는 바에 두 가지 있나니
하나의 원성실에 의하느니라
017_0404_c_02L淨所行有二
依一圓成實
≪논≫ 번뇌장과 소지장의 두 가지 장애에서 깨끗한 지혜로 행하는 바 진실함은 근본의 셋째 진실 중의 원성실에 의해서만이 세워지는 것이요, 다른 두 가지는 이 깨끗한 지혜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017_0404_c_03L論曰煩惱所知二障淨智所行眞實唯依根本三眞實中圓成實立餘二非此淨智境故
어찌하여 모양[相]과 이름[名]과 분별(分別)과 진여(眞如)와 바른 지혜[正智]가 근본의 세 가지 진실함에 소속되어 있는 줄 알아야 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4_c_06L云何應知相名分別眞如正智攝在根本三眞實耶頌曰
이름은 변계소집성이고
모양과 분별을 의타기성이며
진여 및 바른 지혜는
원성실성의 소속이니라
017_0404_c_07L名遍計所執
相分別依他
眞如及正智
圓成實所攝
≪논≫ 모양 등의 다섯 가지 일은 그 알맞은 바에 따라서 근본의 세 가지 진실함에 소속되어 있나니, 이름은 변계소집성에 소속되어 있고 모양과 분별은 의타기성에 소속되어 있으며 원성실성은 진여와 바른 지혜를 포섭하고 있다.
017_0404_c_09L論曰相等五事隨其所應攝在根本三種眞實謂名攝在遍計所執相及分別攝在依他圓成實攝眞如正智
차별의 진실함[差別眞實]에는 요약하여 일곱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해맴의 진실함[流轉眞實]이요, 둘째는 실제 모양의 진실함[實相眞實]이요, 셋째는 오직 의식의 진실함[唯識眞實]이요, 넷째는 안립의 진실함[安立眞實]이요, 다섯째는 삿된 행의 진실함[邪行眞實]이요, 여섯째는 맑고 깨끗함의 진실함[淸淨眞實]이요, 일곱째는 바른 행의 진실함[正行眞實]이다.
017_0404_c_12L差別眞實略有七種一流轉眞實實相眞實三唯識眞實四安立眞實五邪行眞實六淸淨眞實七正行眞
어찌하여 이 일곱 가지 진실함이 세 가지 근본의 진실함에 의하여 세워짐을 알아야 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4_c_16L云何應知此七眞實依三根本眞實立耶頌曰
헤맴과 안립과
삿된 행은 처음과 둘째에 의하고
실제 모양과 오직 의식과 깨끗함과
바른 행은 뒤의 하나에 의한다
017_0404_c_17L流轉與安立
邪行依初二
實相唯識淨
正行依後一
≪논≫ 헤맴 등의 일곱 가지는 그 알맞은 바에 따라서 근본의 세 가지 진실함에 소속되어 있나니, 저 헤맴ㆍ안립, 삿된 행은 근본 중의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의 것에 의한다. 실제 모양ㆍ오직 의식ㆍ맑고 깨끗함, 바른 행은 근본 중의 원성실성에 의하여 세워진다.
교묘함의 진실함[善巧眞實]이라고 함은, 열 가지 ≺나≻라는 소견[我見]을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열 가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017_0404_c_19L論曰流轉等七隨其所應攝在根本三種眞實謂彼流轉安立邪行依根本中遍計所執及依他起實相唯識淸淨正行依根本中圓成實立善巧眞實謂爲對治十我見故說有十種
017_0405_a_01L어찌하여 쌓임[蘊] 따위에서 열 가지 ≺나≻라는 소견을 일으키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5_a_01L云何於薀等起十我見耶頌曰
쌓임 등에 있어서 ≺나≻라는 소견은
하나[一]와 원인[因]과 받는 것[受者]과
짓는 것[作者]과 자재로이 바꿈[自在轉]과
더 위가는 이치[增上義]와 항상 함[常]이며
섞여 더러우며 맑고 깨끗함의 의지[雜染靑淨依]와
관(觀)과 묶고 푸는 것의 성품[縛解者性]에 집착한다
017_0405_a_02L於薀等我見
執一因受者
作者自在轉
增上義及常
雜染淸淨依
觀縛解者性
≪논≫ 쌓임 등의 열 가지 법에서 열 가지 ≺나≻라는 소견을 일으키나니, 첫째는 하나의 성품[一性]에 집착함이요, 둘째는 원인의 성품[因性]에 집착함이요, 셋째는 받는 것의 성품[受者性]에 집착함이요, 넷째는 짓는 것의 성품[作者性]에 집착함이요, 다섯째는 자재로이 바꿈의 성품[自在縛性]에 집착함이요, 여섯째는 더 위가는 이치의 성품[增上義性]에 집착함이요, 일곱째는 항상 함의 성품[常性]에 집착함이요, 여덟째는 더럽고 깨끗함의 의지할 바 성품[染淨所依性]에 집착함이요, 아홉째는 마음 보기하는 것의 성품[觀行者性]에 집착함이요, 열째는 묶고 푸는 것의 성품[縛解者性]에 집착함이다. 이 소견을 제거하기 위하여 열 가지의 교묘함[十善巧]을 닦는다.
017_0405_a_04L論曰於薀等十法起十種我見一執一性二執因性三執受者性四執作者性五執自在轉性六執增上義性七執常性八執染淨所依性九執觀行者性十執縛解者性爲除此見十善巧
어찌하여 열 가지 교묘함의 진실함이 세 가지 근본의 진실함에 의하여 세워지느냐 하면, 쌓임 등의 열 가지는 세 가지 근본의 제 성품 중에 소속되어 있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세 가지 제 성품[三自性] 중에 소속되어 있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5_a_10L云何十種善巧眞實依三根本眞實建立以薀等十無不攝在三種根本自性中故如何攝在三自性頌曰
이 집착할 바[所執]와 분별[分別]과
법의 성품[法性]의 이치가 거기에 있다
017_0405_a_13L此所執分別
法性義在彼
≪논≫ 이 쌓임 등의 열 가지에는 저마다 세 가지 이치가 있다. 빛깔 쌓임[色蘊] 중에 세 가지 이치가 있다 함은, 첫째는 집착할 바 이치의 빛깔[所執義色]이니, 빛깔의 변계소집성이요, 둘째는 분별하는 이치의 빛깔[分別義色]이니, 빛깔의 의타기성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 안의 분별로써 빛깔을 삼기 때문이요, 셋째는 법 성품 이치의 빛깔[法性義色]이니, 빛깔의 원성실성이다.
017_0405_a_14L論曰此薀等十各有三義且色薀中有三義者一所執義色謂色之遍計所執性二分別義色謂色之依他起此中分別以爲色故三法性義色謂色之圓成實性
017_0405_b_01L빛깔 쌓임 안에서 이런 세 가지 이치가 있는 것처럼, 느낌[受] 따위의 네 가지 쌓임에서도, 계(界) 따위의 아홉 가지 법에서도, 저마다 세 가지 이치가 있나니, 알맞음에 따라서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은 쌓임 등은 세 가지 이치의 다름으로 말미암아 저 세 가지 성품 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이 없나니, 그러므로 알아라. 열 가지 교묘함의 진실함은 모두가 근본의 세 가지 진실함에 의하여 세워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열 가지 ≺나≻라는 소견을 다스리려고 하기 위하여 쌓임 등의 교묘함을 닦는다고 함을 설명하기는 하였지마는 아직도 이 쌓임 등의 따로된 이치는 말하지 못하였다.
처음의 쌓임의 이치를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5_a_19L如色薀中有此三受等四薀界等九法各有三義應當知如是薀等由三義別無不攝入彼三性中是故當知十善巧眞實皆依根本三眞實而立如是雖說爲欲對治十種我見故修薀等善巧未說此薀等別義且初薀義云何應知?頌曰
하나가 아님[非一]과 묶어 간략해 함[總略義]
나눈 대문[分段]의 이치를 쌓임이라 한다
017_0405_b_03L非一及摠略
分段義名薀
≪논≫ 쌓임의 이치를 요약하면, 세 가지가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첫째는 하나가 아님의 이치[非一義]이니, 계경(契經)에, ‘모든 빛깔 따위로서 과거이거나 미래이거나 현재이거나 안이거나 바깥이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못하거나 낫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간에’라고 하는 말씀과 같다. 둘째는 묶어 간략히 하는 이치[總略義]이니, 계경에, ‘이와 같은 온갖 것을 간략히 하여 한 무더더기로 한다’라고 하는 말씀과 같다. 셋째는 나눈 대문의 이치[分段義]이니, 계경에, ‘빛깔 쌓임 따위라고 말한다’고 하는 말씀과 같은데, 따로따로 빛깔 따위의 모양을 벌려 세우기 때문이다. 이 ‘무더기’의 뜻으로 말미암아 쌓임의 이치가 성립될 수 있고, 도 세간이 ‘무더기’의 이치를 쌓임이라고 이름함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017_0405_b_04L論曰應知薀義略有三種非一義如契經言諸所有色等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劣若勝若遠若近摠略義如契經言如是一切略爲一聚分段義如契經言說名色薀等各別安立色等相由斯聚義薀義得成又見世閒聚義名薀
이미 쌓임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경계[界]의 이치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已說薀義界義云何頌曰
능히 취함[能取]과 취할 바[所取]와
저 취함[取]의 종자(種子)의 이치를 경계라고 한다
017_0405_b_12L能所取彼取
種子義名界
≪논≫ 능히 취하는 종자[能取種子]의 이치라고 함은, 눈[眼] 따위의 여섯 가지 안의 경계[六內界]이다. 취할 바 종자[所取種子]의 이치라고 함은 빛깔[色] 따위의 여섯 가지 바깥 경계[六外界]이다. 저 취함의 종자[取種子]의 이치라고 함은 눈 알음[眼識] 따위의 여섯 가지 알음의 경계[六識界]이다.
017_0405_b_13L論曰能取種子義謂眼等六內界取種子義謂色等六外界彼取種子謂眼識等六識界
이미 경계의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처소[處]의 이치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5_b_16L已說界義處義云何頌曰
능히 받음[能受]과 알 바 대경[所了境]과의
받아쓰는 문[受用門]의 이치를 처소라 한다
017_0405_b_17L能受所了境
用門義名處
≪논≫ 이 중에서 능히 받음이라고 함은 받아쓰는 문의 이치[受用門義]이니, 여섯 가지 안의 처소[六內處]이며, 만약 알 바의 대경이면서 받아쓰는 문의 이치라면 이것은 여섯 가지 바깥 처소[六外處]이다.
017_0405_b_18L論曰此中能受受用門義謂六內處若所了境受用門義是六外處
이미 처소의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연기(緣起)의 이치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5_b_20L已說處義緣起義云何頌曰
연기의 이치는 원인[因]과
결과[果]와 작용[用]에서 더하고 덜함이 없음이다
017_0405_b_21L緣起義於因
果用無增減
017_0405_c_01L≪논≫ 원인과 결과와 작용에 있어서 만약 더 늘음[增益]이 없고 줄어짐[損減]이 없다고 하면, 이것은 연기의 이치라고 알아야 한다. 이 중에서 원인을 더 늘인다고 함은 지어감의 행(行) 등에서 평등하지 않은 원인이 있음을 집착함이다. 원인을 줄인다고 함은 저 원인이 없음을 집착함이며, 결과를 더 늘인다고 함은 ≺나≻를 있게 하는 지어감 등은 무명(無明) 등을 반연으로 하여 날 뿐이라고 집착함이다. 결과를 줄인다고 함은 무명 등에는 지어감 따위의 결과는 없다고 집착함이며, 작용을 더 늘인다고 함은 무명 따위는 지어감 따위를 내는데 있어서 따로 작용이 있다고 함을 집착함이다. 작용을 줄인다고 함은 무명 등은 지어감 따위를 내는 데 있어서 온전히 공능(功能)이 없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더 늘음과 줄어짐의 집착이 없다면 그것은 연기에 있어서의 교묘함인 줄 알아야 한다.
017_0405_b_22L論曰於因用若無增益及無損減是緣起義應知此中增益因者執行等有不平等因損減因者執彼無因增益果者執有我行等緣無明等生損減果者執無明等無行等果增益用者執無明等於生行等有別作用損減用者執無明等於生行等全無功能若無如是三增減執應知彼於緣起善巧
이미 연기의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處非處]의 이치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5_c_08L已說緣起義處非處義云頌曰
사랑스럽지 않음[非愛]과 사랑스러움[愛]과 깨끗함[淨]과
함께 남[俱生]과 훌륭한 임금[勝主]과
얻음[得]과 행함[行]에 자재하지 아니함이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의 이치이다
017_0405_c_09L於非愛愛淨
俱生及勝主
得行不自在
是處非處義
≪논≫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이 이치라고 함은, 요약하여 일곱 가지로 말미암아 자재하지 못함이니, 그의 모양을 알아야 한다.
017_0405_c_11L論曰處非處義略由七種不得自在應知其相
첫째는 사랑스럽지 않는 데에 자재하지 못한다 함은 나쁜 행으로 말미암아서는 비록 애욕이 없다 손치더라도 나쁜 세상[惡趣]에 떨어짐이다. 둘째는 사랑할 만한 데에 자재하지 못한다 함은, 아름다운 행으로 말미암아서는 비록 애욕이 없다 손치더라도 좋은 세상[善趣]에 오름이다. 셋째는 맑고 깨끗한 데에 자재하지 못한다 함은 다섯 가지 덮개[五蘊]를 끊지 못하고 일곱 가지 각지[七覺支]를 닦지 않는지라, 결코 괴로움의 맨 끝[苦邊際]을 지을 수 없음이다. 넷째는 함께 나는 데에 자재하지 못한다 함은, 한 세계에 두 분의 여래와 두 분의 전륜왕(轉輪王)의 똑같은 땡 출현함이 없음이다.
017_0405_c_13L一於非愛不得自在謂由惡行雖無愛欲而墮惡趣二於可愛不得自在謂由妙行雖無愛欲而昇善趣三於淸淨不得自在謂不斷五不修七覺支決定不能作苦邊際四於俱生不得自在謂一世界無二如來二轉輪王俱時出現
017_0406_a_01L 다섯째는 훌륭한 임금에 대하여 자재하지 못한다 함은, 여인으로서는 전륜왕이 되지 못함이다. 여섯째는 증득(證得)하는 데에 자재하지 못한다 함은, 여인은 독각(獨覺)과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하지 못함이다. 일곱째는 나투어 행하는[現行]데에 자재하지 못한다 함은, 진리를 본 이[見諦者]는 반드시 생(生)을 해치는 따위의 일을 나투어 행하지 아니하거니와 모든 범부[異生]들은 다투어 행하게 된다. 다계경(多界經) 안에서 널리 이들을 설명하였으니, 알맞음에 따라서 도리에 계합함과 도리에 계합하지 않음을 환히 알아야 한다.
017_0405_c_19L五於勝主不得自在謂女不作轉輪王等六於證得不得自在謂女不證獨覺無上正等菩提七於現行不得自在謂見諦者必不現行害生等事諸異生類容可現行『多界經』中廣說此等應隨決了是處非處
이와 같이 이미 도리에 계합하고 못함의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뿌리[根]의 이치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406_a_02L如是已說處非處義根義云何頌曰
뿌리는 취함[取]과 머무름[住]과 이어짐[續]과
씀[用]과 두 가지 깨끗함[二淨]에서 더함[增上]이다
017_0406_a_03L根於取住續
用二淨增上
≪논≫ 스물두 가지 뿌리[二十二根]는 여섯 가지 일[六事]에서 더 위가는 이치에 의하여 세워지나니, 대경[境]을 취함에서 눈[眼] 따위의 여섯 가지 감관[六根]은 더 위가는 이치가 있으며, 목숨 뿌리[命根]는 한 기간이 계속 함에서 더 위가는 이치가 있다. 남자, 여자의 두 가지 근[二根]은 가족을 이어감에서 더 위가는 이지가 있으며, 착함과 나쁜 업의 과보를 수용(受用)함에서 즐거움 따위의 다섯 가지 뿌리[五根]의 깨끗함에서 알지 못함[未知] 따위의 뿌리는 더 위가는 이치가 있다.
017_0406_a_04L論曰二十二根依於六事增上義立謂於取境眼等六根有增上義命根於住一期相續有增上義男女二根於續家族有增上義於能受用善惡業果樂等五根有增上義於世閒淨信等五根有增上義於出世淨未知等根有增上義
이미 뿌리의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세상[世]의 이치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6_a_11L已說根義世義云何頌曰
원인[因]ㆍ결과[果]와 이미[已]ㆍ아직[未]의 수용은
바로 세상의 이치인 줄 알아라
017_0406_a_12L因果已未用
是世義應知
≪논≫ 원인ㆍ결과ㆍ이미ㆍ아직은 수용(受用)은 그 알맞음에 따라서 세 세상[三世]의 이치로 구별되나니, 원인과 결과에 있어 다 같이 이미 수용하였다고 하면, 이는 과거(過去)의 이치요, 만약 원인과 결과에 있어 다 같이 아직 수용하지 못했다고 하면, 이는 현재(現在)의 이치이다.
017_0406_a_13L論曰應知因果已未受用隨其所應三世義別謂於因果俱已受用是過去義若於因果俱未受用是未來義若已受用因未已受用果是現在義
이미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진리[諦]의 이치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6_a_17L已說世義諦義云何頌曰
느낌[受]과 느낌의 양식[受資糧]과
저 원인하는 바의 모든 행[所因諸行]과
두 가지 고요히 사라짐[二寂滅]과 다스림[對治]은
이는 진리의 이치인 줄 알아라
017_0406_a_18L受及受資糧
彼所因諸行
二寂滅對治
是諦義應知
017_0406_b_01L≪논≫ 진리라고 함은 곧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인 줄 알아야 한다. 첫째는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苦聖諦]이니, 온갖 느낌과 느낌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어서 계경 중에, ‘온갖 느낌은 모두가 이는 괴로움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느낌의 양식이라고 함은 느낌에 따르는 법[順受法]이다. 둘째는 쌓임의 거룩한 진리[集聖諦]이니, 곧 저 괴로움의 원인하는 바의 모든 행이다. 셋째는 사라짐의 거룩한 진리[滅聖諦]이니, 앞의 두 가지의 마지막의 고요히 사라짐[究竟寂滅]이다. 넷째는 도의 거룩한 진리[道聖諦]인, 괴로움과 쌓임을 다스릴 수 있는 도(道)이다.
017_0406_a_20L論曰應知諦者卽四聖諦一苦聖諦謂一切受及受資糧契經中說諸所有受皆是苦故受資糧者謂順受法二集聖諦謂卽彼苦所因諸行三滅聖諦謂前二種究竟寂滅四道聖諦謂卽若集能對治道
이미 진리의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승(乘)의 이치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6_b_03L已說諦義乘義云何頌曰
공덕(功德)과 허물[過失]과
분별이 없는 지혜[無分別智]로 말미암아
다른 이에 의하거나 스스로가 벗어남[出離]은
이는 승의 이치인 줄 알아야 한다
017_0406_b_04L由功德過失
及無分別智
依他自出離
是乘義應知
≪논≫ 승이라고 함은 곧 삼승(三乘)인 줄 알아야 한다. 이 안에서 알맞은 대로 그 이치를 나타내 보이자면, 만약 다른 이로부터 열반의 공덕과 나고 죽음의 허물을 듣고서 이의 지혜를 일으키며 이 지혜로 말미암아 벗어나게 되는 이라면 이는 성문승(聲聞乘)이다. 다른 이로부터 열반의 공덕이거나 나고 죽음의 허물을 듣지 아니하고서 스스로가 이의 지혜를 일으키며 이 지혜로 말미암아 벗어나게 되는 이라면 이는 독각승(獨覺乘)이다. 만약 거절로 분별이 없는 지혜를 일으키고 이 지혜로 말미암아 벗어나게 되는 이라면 무상승(無上乘)이라고 한다.
017_0406_b_06L論曰應知乘者謂卽三乘此中如應顯示其義若從他聞涅槃功德生死過失而起此智由斯智故得出離者是聲聞乘不從他聞涅槃功德生死過失自起此智由斯智故得出離者是獨覺乘若自然起無分別智由斯智故得出離者名無上乘
이미 승의 이치를 설명하였는지라, 어떤 것이 함이 있고 함이 없는 법[有爲無爲法]의 이치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6_b_13L已說乘義云何有爲無爲法義頌曰
함이 있고 함이 없는 이치라 함은
거짓[假]이거나 원인[因]이거나
모양[相]이거나 고요함[寂靜]이거나
또는 저 살필 바[所觀]의 이치이니라
017_0406_b_14L有爲無爲義
謂若假若因
若相若寂靜
若彼所觀義
≪논≫ 알아야 한다. 이 안의 거짓이라고 함은, 이름[名] 따위를 말하며, 원인이라고 함은, 종자가 소속하는 장식(藏識)이다. 모양이라고 함은, 그릇[器]과 몸[身]과 받아쓰는 도구[受用具]와 전식(轉識)의 소속인 뜻[意]과 취함[取]과 생각함[思惟]이다. 뜻이라고 함은, 언제나 생각하고 헤아리는 성품의 의식[識]이요, 취함이라고 함은, 다섯 가지 알음[五識]이 나타난 대경을 취하기 때문이요, 생각함이라고 함은, 곧 이는 제6뜻 알음[意識]이니, 온갖 대경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거짓이거나 원인이거나 모양이거나 서로 응하는 법[相應法]을 통틀어서 유위라고 한다.
017_0406_b_16L論曰應知此中假謂名等因謂種子所攝藏識相謂器身幷受用具及轉識攝意取思惟意謂恒時思量性識取謂五識取現境故思惟卽是第六意識以能分別一切境故如是若假若因若相及相應法摠名有爲
017_0406_c_01L또는 고요함이라고 함은, 증득한바 사라짐[滅]과 능히 증득할 도(道)이니, 고요하기 때문이다. 저 살필 바의 이치라고 함은 바로 진여(眞如)인데 이것은 고요한 도[寂靜道]의 반연할 바 대경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설명한바 모든 고요함이거나 또는 살필 바의 이치를 통틀어서 무위(無爲)라고 한다.
이 안에서 쌓임[蘊] 따위의 열 가지 이치를 반연하여 일어나는 바른 알음[正知]을 쌓임 등의 교묘함[善巧]이라고 하는 줄 알아야 한다.
017_0406_b_22L若寂靜者謂所證滅及能證道能寂靜故彼所觀義謂卽眞如是寂靜道所緣境故如是所說若諸寂靜若所觀義摠名無爲應知此中緣薀等十義所起正知名薀等善巧
진실함의 묶은 이치[總義]를 요약하면 두 가지가 있나니, 능히 나타냄[能顯]과 나타낼 바[所顯]의 진실함이다. 능히 나타냄의 진실함이라고 함은, 곧 맨 처음의 세 가지 근본이니, 나머지를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타낼 바 진실함이라고 함은, 뒤의 아홉 가지이니, 이는 처음의 근본이 나타내 보일 바이기 때문이다.
017_0406_c_04L眞實摠義略有二種謂卽能顯所顯眞實能顯眞實謂卽最初三種根本能顯餘故所顯眞實謂後九種是初根本所顯示故
나타낼 바 아홉 가지라고 함은, 첫째는 뛰어난 체함을 떠난 데[離增上慢]서 나타나는 진실함이요, 둘째는 뒤바뀜을 다스리는 데[對治顚倒]서 나타나는 진실함이요, 셋째는 성문승으로 벗어나는 데[聲聞乘出離]서 나타나는 진실함이요, 넷째는 무상승으로 벗어나는 데[無上乘出離]서 나타나는 진실함이니, 굵음[麤]은 성숙시키고, 가늘음[細]은 해탈시키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다른 이의 이론을 잘 굴복시키는 데[能伏他論]서 나타나는 진실함이니, 비유의 도리에 의지하여 다른 이를 항복시키기 때문이요, 여섯째는 대승을 환히 나타내는 데[顯了大乘]서 나타나는 진실함이요, 일곱째는 온갖 알 바에 드는 데[入一切種所知]서 나타나는 진실함이요, 여덟째는 허망하지 않는 진여를 나타내는 데[顯不虛妄眞如]서 나타나는 진실함이요, 아홉째는 ≺나≻의 집착하는 일이 온갖 비밀에 속는 데[人我執事一切秘密]서 나타나는 진실함이다.
017_0406_c_08L所顯九者一離增上慢所顯眞實二對治顚倒所顯眞實三聲聞乘出離所顯眞實四無上乘出離所顯眞實由麤能成熟細能解脫故五能伏他論所顯眞實依喩導理降伏他故六顯了大乘所顯眞實七入一切種所知所顯眞實八顯不虛妄眞如所顯眞實九入我執事一切秘密所顯眞實
4. 변수대치품(辯修對治品)
017_0406_c_16L辯修對治品第四
이미 진실함[眞實]을 말하였는지라, 이제 다음에는 모든 다스림 닦음[修諸對治]을 설명하여야겠는데, 곧 온갖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닦는 것이다.
017_0406_c_17L已辯眞實今次當辯修諸對治卽修一切菩提分法
이 안에서는 먼저 4념주(念住) 닦는 것을 설명하여야겠는데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6_c_19L此中先應說修念住頌曰
거칠고 무거움[麤重]과 사랑의 원인[愛因]과
≺나≻라는 일[我事]과 헷갈림 없음[無迷] 때문에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들기 위하여
염주(念住)를 닦는 줄 알아야 한다
017_0406_c_20L以麤重愛因
我事無迷故
爲入四聖諦
修念住應知
017_0407_a_01L≪논≫ 거칠고 무거움은 몸으로 말미암아 환히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을 자세히 살피어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에 드나니, 몸은 거칠고 무거운 모든 행이 있음을 모양으로 삼기 때문이다. 모든 거칠고 무거움은 곧 행고(行苦)의 성품인지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성인은 모두가 괴로운 것임을 자세히 살피며, 모든 샘이 있는 느낌[有漏受]을 말하여 사랑의 원인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것을 자세히 살피어 쌓임의 거룩한 진리에 든다.
017_0406_c_22L論曰麤重由身而得顯了故觀察此入苦聖諦身以有麤重諸行爲相故以諸麤重卽行苦性由此聖觀有漏皆苦諸有漏受說爲愛因故觀察此入集聖諦
마음은 바로 ≺나≻라는 집착[我執]의 의지할 바 반연의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자세히 살피어 사라짐의 거룩한 진리에 드나니, ≺나≻를 끊어 없앰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로 말미암아 여의어지기 때문이다. 법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더럽거나 깨끗함의 법[染淨法]에 대하여 어리석고 헷갈림을 멀리 여의어 도의 거룩한 진리에 드나니, 이 때문에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의 도리에 들기 위하여 맨 처음에 4념주관(念住觀) 닦는 것을 설명한다.
017_0407_a_04L心是我執所依緣事故觀察此入滅聖諦怖我斷滅由斯離故觀察法故於染淨法遠離愚迷入道聖諦是故爲入四聖諦理最初說修四念住觀
이미 4념주 닦는 것을 설명하였는지라, 정단(正斷) 닦는 것을 설명하리니,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7_a_08L已說修念住當說修正斷頌曰
장애[障]와 다스림[治]의 온갖 차별을
이미 두루하게 알았다고 하면
멀리 여읨[遠離]과 닦아 쌓음[修集]을 위하여
네 가지 정단[四正斷]을 부지런히 닦는다
017_0407_a_09L已遍知障治
一切種差別
爲遠離修集
勤修四正斷
≪논≫ 앞에서는 4념주를 닦고 나서 온갖 장애와 다스림의 품류 차별을 두루알았는지라, 이제는 다스릴 바 장애의 법을 멀리 여의기 위하고, 능히 다스림의 도를 닦아 쌓기 위하여 4정단을 부지런히 힘써 닦고 익히나니, 설명하신대로 이미 생긴 나쁘고 착하지 않은 법[已生惡不善法]을 끊게 하기 위한다고 네 가지에 이르기까지 널리 말한다.
017_0407_a_11L論曰前修念住已能遍知一切障治品類差別今爲遠離所治障法及爲修集能對治道於四正斷精勤修習如說已生惡不善法爲令斷故乃至廣說
이미 4정단 닦는 것을 설명하였는지라, 신족(神足) 닦는 것을 설명하리니, 게송으로 말한다.
已說修正斷當說修神足頌曰
감당하는 성품[堪能性]에 의지하여 머무르고
온갖 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다섯 가지 허물[五過失]을 없애버려서
여덟 가지 끊는 행[八斷行]을 부지런히 닦는다
017_0407_a_16L依住堪能性
爲一切事成
滅除五過失
勤修八斷行
≪논≫ 앞에서 닦은 바 여읨[離]과 쌓음[集]의 정진에 의하여 마음은 곧 편안히 머물러서 감당할 수 있는지라, 훌륭한 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네 가지 신족[四神足]을 닦는다. 이것이 모든 하고자 하는 바 훌륭한 일의 원인[所欲勝事因]이기 때문이다. 머무름[住]이라고 함은 마음의 머무름이니, 이것은 바로 사마아디[等持]이다.
그 때문에 4정단에 이어서 4신족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 감당하는 성품은 다섯 가지 허물을 끊어 없애서 여덟 가지 끊는 행을 닦을 수 있다.
017_0407_a_18L論曰依前所修離集精進心便安住有所堪能爲勝事成修四神足是諸所欲勝事因故住謂心住此卽等持次正斷說四神足此堪能性謂能滅除五種過失修八斷行
무엇을 다섯 가지 허물[五種過失]이라고 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7_a_23L何者名爲五種過失頌曰
017_0407_b_01L게으름[懈怠]과 성인 말씀[聖言]을 잊음과
흐리멍덩[惛沈]하고 들뜸[掉擧]과
행을 짓지 않음[不作行]과 행을 지음[作行]이
바로 다섯 가지의 허물인 줄 알아라
017_0407_b_01L懈怠忘聖言
及惛沈掉擧
不作行作行
是五失應知
≪논≫ 이 중에서는 흐리멍덩함과 들뜸을 합쳐서 하나의 허물로 하였는줄 알아야 된다. 흐리멍덩함과 들뜸을 끊어 없애기 위하여 더한 행[加行]을 짓거나 이미 흐리멍덩함과 들뜸을 끊어 없애고서 다시 더한 행을 하는 것도 다 모두가 허물이 되나니, 이 다섯 가지를 없애기 위하여 여덟 가지 끊는 행을 닦는 것이다.
017_0407_b_03L論曰應知此中惛沈掉擧合爲一失若爲除滅惛沈掉擧不作加行或已滅除惛沈掉擧復作加行俱爲過失爲除此五修八斷行
어떻게 저 행상(行相)을 벌려 세우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7_b_07L云何安立彼行相耶頌曰
게으름을 끊어서 없애기 위하여
하고자 함[欲]ㆍ부지런함[勸]ㆍ믿음[信]ㆍ편안함[安]을 닦음이니
곧 의지할 바[所依]와 능히 의지함[能依]과
원인한 바[所因]와 능한 결과[能果]이며
017_0407_b_08L爲斷除懈怠
修欲勤信安
卽所依能依
及所因能果
그 밖의 네 허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억[念]ㆍ지혜[智]ㆍ생각[思]과 버림[捨]을 닦음이니
말씀 기억함과 흐리멍덩하고 들뜸을 깨달음과
조복의 행[伏行]과 없애서 평등하게 흐름[滅燈流]이다
017_0407_b_10L爲除餘四失
修念智思捨
記言覺沈掉
伏行滅等流
≪논≫ 게으름을 없애기 위하여 네 가지 끊는 행[四斷行]을 닦음이니, 첫째는 하고자 함이요, 둘째는 바르게 부지런함[正勤]이요, 셋째는 믿음이요, 넷째는 가쁜함[輕安]이다.
017_0407_b_11L論曰爲滅懈怠修四斷行一欲二正三信四輕安
다음과 같이 의지할 바 따위를 알아야 하리니, 의지할 바라고 함은, 하고자 함이어서 부지런히 함의 의지할 바이기 때문이요, 능히 의지함이라고 함은, 부지런함이어서 하고자 함에 의하여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원인한 바라고 함은, 믿음이 바로 의지할 바이어서 하고자 함이 생기는 가까운 원인이며 만약 그것을 믿어 받는다면, 곧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능한 결과라고 함은, 편안함이 바로 능히 의지함이고 부지런함이 가까이 나는 바 결과인지랄, 부지런히 정진한 이는 훌륭한 선정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017_0407_b_13L如次應知卽所依等所依謂欲勤所依故能依謂勤依欲起故所因謂信是所依欲生起近因若信受彼便希望故能果謂安是能依勤近所生果勤精進者得勝定故
뒤의 네 가지 허물을 다스리기 위하여 수대로 나머지 네 가지 끊는 행을 닦나니, 첫째는 기억이요, 둘째는 바르게 앎[正知]이요, 셋째는 생각이요, 넷째는 평등이다.
017_0407_b_17L爲欲對治後四過失如數修餘四種斷行一念二正知三思四捨
017_0407_c_01L다음과 같이 곧 말씀을 기억하는 따위를 알아야 하리니, 말씀을 기억한다고 함은 기억[念]을 말하는 것이어서 대경을 잊지 아니하고 성인의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흐리멍덩하고 들뜸을 깨닫는다 함은, 곧 바르게 앎을 말하는 것이어서 말씀을 기억함으로 말미암아 흐리멍덩함과 들뜸의 두 가지 허물을 따라 깨닫기 때문이다. 조보의 행이라고 함은, 생각[思]이어서 따르며 흐리멍덩함과 들뜸의 허물을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그 뒤에는 조복하여 제거시키기 위하여 더한 행[加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없애서 평등하게 흐름이라고 함은, 저 흐리멍덩함과 들뜸을 이미 끊어 없앤 뒤에는 마음은 곧 버림[捨]에 머물러서 평등하여지면서 흐르게 되기 때문이다.
017_0407_b_19L如次應知卽記言等記言謂念能不忘境聖言故覺沈掉者謂卽正知由念記言便能隨覺惛沈掉擧二過失故行謂思由能隨覺沈掉失已爲欲伏除發起加行滅等流者謂彼沈掉旣斷滅已心便住捨平等而流
이미 4신족 닦는 것을 설명하였는지라, 5근(根) 닦는 것을 설명하여야겠다. 닦을 바 5근을 어떻게 벌려 세우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7_c_02L已說修神足當說修五根所修五根云何安頌曰
이미 순해탈(順解脫)을 심었지마는
다시 다섯 가지 더함[五增上]을 닦나니
하고자 함[欲]과 행함[行]과 잊지 않음[不忘]과
산란하지 않음[不散亂]과 생각하여 가림[思擇]이다
017_0407_c_04L已種順解脫
復修五增上
謂欲行不忘
不散亂思擇
≪논≫ 4신족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감당하여 냄이 있어서 순해탈분(順解脫分)의 착한 뿌리가 원만해진 뒤에는 다시 다섯 가지의 더함을 닦아야 한다. 첫째는 하고자 함의 더함[欲增上]이요, 둘째는 가행의 더함[加行增上]이요, 셋째는 경계를 잊지 않음의 더함(不散亂增上]이요, 넷째는 산란하지 않음의 더함[不散亂增上]이요, 다섯째는 생각하여 가림의 더함[思擇增上]이니, 이 다섯 가지는 차례대로 곧 믿음[信] 등의 5근이다.
017_0407_c_06L論曰由四神足心有堪能順解脫分善根滿已復應修習五種增上一欲增上二加行增上三不忘境增上不散亂增上五思擇增上此五如次第卽信等五根
이미 5근 닦는 것을 설명하였는지라, 5력(力) 닦는 것을 설명하여야겠다. 무엇이 5력이며, 차례가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7_c_11L已說修五根當說修五力何者五力?次第云何頌曰
곧 장애 없애는 것을 힘[力]이라고 하나니
원인과 결과로 차례를 세운다.
017_0407_c_12L卽損障名力
因果立次第
≪논≫ 앞에서 설명한바 믿음 등의 5근이 훌륭한 세력의 작용이 있음을 다시 말하여 힘이라고 하나니, 믿지 않음[不信]의 장애 따위를 조복하여 없애고, 또한 그것에게 위압과 뒤섞임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다섯 가지 차례는 인과에 의하여 세워지는데, 앞의 원인에 의하여 뒤에 결과를 이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만약 틀림없이 인과가 있음을 믿는다면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게 되며, 부지런히 힘써 나아가고 나면 곧 바른 기억[正念]에 머무른다. 바른 기억에 머무르고 나면 마음이 곧 선정을 얻으며, 마음이 선정을 얻고 나면, 사실대로 알 수가 있다. 이미 사실대로 알았다면 이룩하지 못하는 일이 없나니, 그 때문에 이 차례는 인과에 의하여 세워지게 된다.
017_0407_c_13L論曰卽前所說信等五根有勝勢用復說爲力謂能伏滅不信障等亦不爲彼所陵雜故此五次第依因果立以依前因引後果故謂若決定信有因果爲得此果發勤精進勤精進已便住正念住正念已心則得定心得定已能如實知旣如實知無事不辦故此次第依因果立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순해탈분이 이미 원만해진 뒤에 다시 5근을 닦는 것이라면, 어느 자리가 순결택분(順決擇分)에서 닦고 익히는 5근의 자리[位]이고 5력의 자리가 되는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7_c_21L如前所說順解脫分旣圓滿已復修五根何位修習順決擇分?爲五根位五力位耶頌曰
순결택분의 두 가지와 가지는
5근에 있고 5력에 있다
017_0407_c_23L順決擇二二
在五根五力
017_0408_a_01L≪논≫ 순결택분 중의 난(煖)과 정(頂)의 두 가지는 5근의 자리에 있고, 인(忍)과 세제일법(世第一法)은 5력의 자리에 있다.
017_0408_a_01L論曰順決擇分中暖頂二種在五根世第一法在五力位
이미 5력 닦는 것을 설명하였는지라, 각자(覺支: 七等覺支) 닦는 것을 말하여야겠다. 닦을 바 각지를 어떻게 벌려 세우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하리라.
017_0408_a_03L已說修五當說修覺支所修覺支云何安立頌曰
각지를 요약하면 다섯 가지 있나니
의지할 바[所依]와 제 성품[自性]과
벗어남[出離]과 아울러 이익(利益)이며
그리고 세 가지의 물듦 없는 갈래[三無染支]이다
017_0408_a_05L覺支略有五
謂所依自性
出離幷利益
及三無染支
≪논≫ 이 갈래는 깨달음을 돕기 때문에 각지라고 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각지 자리는 견도위(見道位)에 있다. 널리는 일곱 가지가 있고 간략히는 다섯 갈래가 있다. 첫째는 깨달음의 제 성품 갈래이어서 법을 고름[擇法]이요, 셋째는 깨달음의 벗어남 갈래이어서 힘써 나아감[精進]이요, 넷째는 깨달음의 이익 갈래이어서 기쁨[喜]이요, 다섯째는 깨달음의 물듦 없는 갈래이어서 여기에는 다시 세 가지가 있나니, 편안함[安]과 선정[定]과 버림[捨]이다.
017_0408_a_07L論曰此支助覺故名覺支由此覺支位在見道廣有七種略爲五支一覺所依支謂念二覺自性支謂擇法覺出離支謂精進四覺利益支謂喜五覺無染支此復三種謂安
무엇 때문에 다시 물듦이 없음이 세 가지라고 말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8_a_12L故復說無染爲三頌曰
인연과 의지할 바와
제 성품으로 말미암아 뜻이 차별되나니
그러므로 가뿐함[輕安]과 선정과 버림을
말하여 물듦 없는 갈래라고 한다
017_0408_a_13L由因緣所依
自性義差別
故輕安定捨
說爲無染支
≪논≫ 가쁜함은 바로 물듦 없음의 인연이니, 거칠고 무거움[麤重]이 원인이 되어서 모든 섞여 더러움[雜染]이 생기는지라, 가뿐한 이것이야말로 그것의 가까운 다스림[近對治]이기 때문이다. 의지할 바는 선정이요, 제성품은 곧 버림이니, 그 때문에 이 물듦이 없는 뜻에는 따로 세 가지가 있다.
017_0408_a_15L論曰輕安卽是無染因緣麤重爲因生諸雜染輕安是彼近對治故所依謂定自性卽捨故此無染義別有三
깨달음의 갈래 닦는 것을 설명하였으니, 도의 갈래[道支] 닦는 것을 말하여야겠다. 닦을 바 도의 갈래는 어떻게 벌려 세우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8_a_18L說修覺支已當說修道支所修道支云何安立頌曰
분별(分別)과 가르쳐 보임[誨示]과
다른 이를 믿게 함에 세 가지 있음과
장애 다스림[對治障]에도 세 가지가 있으므로
도의 갈래는 여덟 가지가 된다
017_0408_a_20L分別及誨示
令他信有三
對治障亦三
故道支成八
≪논≫ 수도위(修道位)에서 도의 갈래를 세우기 때문에 이것은 도의 갈래이다. 널리는 여덟 가지이지마는 간략하게는 네 가지이다.
017_0408_a_22L論曰於修道位建立道支故此道支廣八略四
017_0408_b_01L첫째는 분별의 갈래이니, 바른 소견[正見]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것이 비록 이는 세간의 것이라 하더라도 세간을 벗어난 뒤에야 얻게 되는지라, 전도위 중에서 스스로가 증득한 바를 분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른 이를 가르쳐 보이는 갈래이다. 바른 생각[正思惟]과 바른 말[正語]의 일부분이 같이 일어남[等起]을 말하는 것이어서 말을 하여 다른 이를 가르쳐 보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다른 이로 하여금 믿게 하는 갈래이니, 거기에는 세 가지가 있어서 바른 말과 바른 행위[正業]와 바른 생활[正命]이다. 넷째는 장애를 다스리는 갈래에도 세 가지가 있나니, 바른 노력[正精進]과 바른 기억[正念]과 바른 선정[正定]이다.
017_0408_b_01L一分別支謂正見此雖是世閒而出世後得由能分別見道位中自所證故二誨示他支謂正思惟正語一分等起發言誨示他故三令他信支此有三種謂正語正業正命四對治障支亦有三種謂正精進正定
이로 말미암아 도의 갈래가 간략하게는 네 가지이고 널리는 여덟 가지이다. 무슨 일로 뒤의 두 가지는 저마다 나누어져서 세 가지가 되는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8_b_07L由此道支略四廣八何緣後二各分爲三頌曰
소견[見]과 계율[戒]과 멀리 여읨[遠離]을 나타내어
다른 이로 하여금 깊이 믿어 받게 하며
근본과 따름의 미혹[本隨惑] 및
자재의 장애[自在障]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017_0408_b_08L表見戒遠離
令他深信受
對治本隨惑
及自在障故
≪논≫ 바른 말 등의 세 가지는 다음과 같이 자기 소견과 계율과 멀리 여읨을 나타내어 다른 이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이다. 바른 말로 말미암아 논의하고 결단하여 가려서 다른 이로 하여금 자기에게는 뛰어난 지혜가 있다는 것을 믿어 알게 한다. 바른 행위로 말미암아 삿된 행위를 하지 아니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자기에게는 깨끗한 계율이 있다는 것을 믿어 알게 한다. 바른 생활로 말미암아 양이 알맞고 때에 알맞게 법답게 옷과 발우 등의 물건을 빌고 구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자기에게는 훌륭하게 멀리 여읨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바른 노력 등의 세 가지는 다음과 같이 근본 번뇌[本煩惱]와 따른 번뇌[隨煩惱]의 두 가지와 자재의 장애를 다스리게 된다.
017_0408_b_10L論曰正語等三如次表已見戒遠離令他信受謂由正語論議決擇令他信知已有勝慧由正業故不作邪業令他信知已有淨戒由正命故應量應時如法乞求衣鉢等物令他信已有勝遠離正精進等三如次對治本隨二煩惱及自在障
이 다스릴 바에는 요약하여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근본 번뇌이니, 수도위에서 끊을바요, 둘째는 따른 번뇌이니, 흐리멍덩함[惛沈]과 들뜸[掉擧]이요, 셋째는 자재의 장애이니, 이끄는바 훌륭한 품류의 공덕을 장애한다.
017_0408_b_17L此所對治略有三種一根本煩惱謂修所斷二隨煩謂惛沈掉擧三自在障謂障所引勝品功德
이 중에서 바른 노력은 특별히 처음 것을 다스릴 수 있는지라, 그것을 다스리기 위하여 도를 부지런히 닦기 때문이다. 바른 기억은 특별히둘째 것을 다스릴 수 있는지라, 기억을 매어서 그침[止] 따위의 모양 안에 편안히 머물러서 흐리멍덩함과 들뜨는 것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바른 선정은 특별히 셋째 것을 다스릴 수 있는지라, 뛰어난 디야아나[靜慮]에 의하여 빠르게 모든 신통 등의 훌륭한 공덕을 끌어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017_0408_b_20L此中正精進別能對治初爲對治彼勤修道故正念別能對治第二繫念安住止等相中遠離惛沈及掉擧故正定別能對治第三依勝靜慮速能引發諸神通等勝功德故
017_0408_c_01L다스림을 닦는[隨治]차별을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8_c_01L修治差別云何應知頌曰
뒤바뀜 있음에서 뒤바뀜 없음에 따름과
뒤바뀜 없음에서 뒤바뀜 있음이 따름과
뒤바뀜 없음에서 뒤바뀜 없음이 따름의
이것이 다스림을 닦는 것의 차별이다
017_0408_c_02L有倒順無倒
無倒有倒隨
無倒無倒隨
是修治差別
≪논≫ 이 다스림을 닦음에는 간략하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뒤바뀜이 있는 데서 뒤바뀜이 없음에 따름이요, 둘째는 뒤바뀜이 없는 데서 뒤바뀜이 있음에 따름이요, 셋째는 뒤바뀜이 없는 데서 뒤바뀜 없음에 따름이다. 이와 같이 세 가지의 다스림을 닦는 차별을 차례대로 범부[異生]와 배울 것 있는 이[有學]와 배울 것 없는 이[無學]의 자리에 있다.
보살과 2승(乘)으로서 닦는바 다스림에 차별의 모양이 있음을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8_c_04L論曰此修對治略有三種一有顚倒順無顚倒二無顚倒有顚倒隨三無顚倒無顚倒隨如是三種修治差別如次在異生有學無學位菩薩二乘所修對治有差別相云何應知頌曰
보살로서 닦아 익히는 바는
반연할 바[所然]와 뜻 지음[作意]과
증득함[證得]의 자못 뛰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때문에 2승과는 차별이 있다
017_0408_c_09L菩薩所修習
由所緣作意
證得殊勝故
與二乘差別
≪논≫ 성문과 독각은 자기의 상속하는 몸[相續身] 따위로써 대경을 삼아서 다스림을 닦지마는 보살은 공통하게 자기와 다른 이의 상속하는 몸 따위로써 대경을 삼아서 다스림을 닦는다. 성문과 독각은 몸 따위의 대경에서 무상하다는 등의 행상(行相)으로써 생각하여 다스림을 닦지마는 만약 모든 보살이라면 몸 따위의 대경에서 얻을 바 없음[無所得]의 행상으로써 생각하여 다스림을 닦는다.
017_0408_c_11L論曰聲聞獨覺以自相續身等爲境而修對治菩薩通以自他相續身等爲境而修對治聲聞獨覺於身等境以無常等行相思惟而修對治若諸菩薩於身等境以無所得行相思惟而修對治
성문과 독각이 염주(念住) 등을 닦는 것은 몸 등이 빨리 매임을 여의게 되기만을 위한 것이지마는 모든 보살이 염주 등을 닦는 것은 몸 등이 빨리 매임을 여의게 되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머뭄이 없는 열반[無住涅槃]만을 증득하기 위해서이니, 보살과 2승이 닦는바 다스림은 이 세 가지 일로 말미암아 차별이 있다.
017_0408_c_17L聲聞獨覺修念住等但爲身等速得離繫若諸菩薩修念住等不爲身等速得離繫但爲證得無住涅槃菩薩與二乘所修對治由此三緣故而有差別
017_0409_a_01L다스림을 닦음의 총괄한 뜻[總義]이라 함은, 깨달음을 여는 것의 닦음[開覺修]과 줄어짐의 닦음[損減修]과 밝게 꾸밈의 닦음[瑩飾修]과 일으켜 울음의 닦음[發上修]과 이웃의 닦음[隣近修]이다. 견도위에 이웃이 되기 때문인 것과 증득하여 듦의 닦음[證入修]과 더욱 훌륭함의 닦음[增勝修]과 처음 자리의 닦음[初位修]과 중간자리의 닦음[中位修]과 뒷 자리의 닦음[後位修]과 위가 있음의 닦음[有上修]과 위 없음의 닦음[無上修]이어서 반연할 바 뜻ㆍ지음ㆍ증득함에 이름[至得]의 자못 뛰어난 것을 말한다.
017_0408_c_21L修對治摠義者謂開覺修損減修飾修發上修鄰近修謂鄰近見道故證入修增勝修初位修中位修後位有上修無上修謂所緣作意至得殊勝
5. 변수분위품(辯修分位品)
017_0409_a_03L辯修分位品第五

이미 다스림 닦는 것을 설명하였는지라, 닦음의 나누어진 위치[修分位]는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9_a_04L已說修對治修分位云何頌曰
설명한 바의 다스림을 닦음에는
나누어진 위치에 열여덟이 있나니
원인[因]과 듦[入]과 행(行)과 결과[果]와
지음[作]과 지음 없음[無作]과 자못 훌륭함[隨勝]이며
017_0409_a_05L所說修對治
分位有十八
謂因入行果
作無作殊勝
위[上]와 위 없음[無上]과 해행[解行]과
들음[入]과 벗어남[出離]과 수기【記】와 말씀[說]과
정수리에 물 부움[灌頂] 및 증득(證得)과
훌륭한 이익[勝利]과 할 일을 이룸[成所作]이다
017_0409_a_07L上無上解行
入出離記說
灌頂及證得
勝利成所作
≪논≫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모든 다스림을 닦는 차별의 나누어진 자리에는 열 여덟 가지가 있다.
017_0409_a_08L論曰如前所說修諸對治差別分位有十八種
첫째는 원인 위치[因位]이니, 종성에 머무는 보특가라요, 둘째는 드는 위치[入位]이니, 이미 마음을 냄이요, 셋째는 행을 더하는 위치[加行位]이니, 마음을 낸 뒤에 아직은 과위의 증득을 얻지 못함이요, 넷째는 결과 위치[果位]이니, 이미 과위를 얻었음이요, 다섯째는 할 일 있는 위치[有所作位]이니, 배울 것 있는 데에 머무름이요, 여섯째는 할 일 없는 위치[無所作位]이니, 배울 것 없는 데에 머무름이요, 일곱째는 자못 훌륭한 위치[殊勝位]이니, 이미 모든 신통 등의 자못 훌륭한 공덕을 성취하였음이요, 여덟째는 위가 있는 위치[有上位]이니, 성【문】따위를 초월하여 이미 보살 자리에 들었음이요, 아홉째는 뒤 없는 위치[無上位]이어서 이미 부처를 이루었음이니, 이로부터 이상은 보다 뛰어난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017_0409_a_10L一因位謂住種性補特伽二入位謂已發心三加行位謂發心已未得果證四果位謂已得果有所作位謂住有學六無所作位住無學七殊勝位謂已成就諸神通等殊勝功德八有上位謂超聲聞等已入菩薩地九無上位謂已成佛此以上無勝位故
열째는 훌륭한 해행위치[勝解行位]이니, 훌륭한 해행지위의 모든 보살이요, 열한째는 증득하여 드는 위치[證入位]이니, 극히 기쁜 자리[極喜地]요, 열둘째는 벗어난 위치[出離位]이니, 다음의 여섯 자리[六地]요, 열셋째는 수기 위치[受記位]이니, 제8지(地)요, 열넷째는 말 잘하는 위치[辯說位]이니, 제9지요, 열다섯째는 정수리에 물 붓는 위치[灌頂位]이니, 제10지요, 열여섯째는 증득한 위치[證得位]이니, 부처님의 법신(法身)이요, 열일곱째는 훌륭한 이익 위치[勝利位]이니, 받아쓰는 몸[受用身]이요, 열여덟째는 할 일을 이루는 위치[成所作位]이니, 변화하는 몸[變化身]을 말한다.
017_0409_a_17L十勝解行位謂勝解行地一切菩薩十一證入位謂極喜地十二出離位謂次六地十三受記位謂第八地十四辯說位謂第九十五灌頂位謂第十地十六證得謂佛法身十七勝利位謂受用身十八成所作位謂變化身
017_0409_b_01L이 모든 나누어진 위치에 차별이 비록 많다 손치더라도 간략하게 말하면 세 가지만이 있는 줄 알아야 하리니, 그 세 가지가 무엇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9_a_23L此諸分位差別雖多應知略說但有三種其三者何頌曰
알아야 하리 법계(法界) 중에는
간략하게 세 가지의 나누어진 위치 있어서
부정함[不淨]과 부정을 깨끗이 함[淨不淨]과
청정함[淸淨]이 그것이니 알맞은 바에 따른다
017_0409_b_02L應知法界中
略有三分位
不淨淨不淨
淸淨隨所應
≪논≫ 참 법계에 대한 위치에는 간략하게 세 가지가 있나니, 그의 알맞은 바에 따라서 앞의 모든 위치를 포섭한다. 첫째는 부정한 위치[不淨位]이니, 원인 위치로부터 행을 더하는 위치까지이다. 둘째는 부정을 깨끗이 하는 위치[淨不淨位]이니, 배울 것 있는 이의 위치[有學位]이다. 셋째는 청정한 위치[淸淨位]이니, 배울 것 없는 이의 위치[無學位]이다.
017_0409_b_04L論曰於眞法界位略有三隨其所應攝前諸位一不淨位謂從因位乃至加行二淨不淨位謂有學位三淸淨謂無學位
어떻게 앞의 모든 위치의 차별에 의하여 보특가라[補特伽羅] 세우는 것을 알아야 하는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017_0409_b_08L云何應知依前諸位差別建立補特伽羅頌曰
앞의 모든 위치 중의
온갖 차별된 모양에 의하여
그의 알맞은 바에 따라서
모든 보특가라를 세우게 된다
017_0409_b_09L依前諸位中
所有差別相
隨所應建立
諸補特伽羅
≪논≫ 앞의 모든 위치의 차별된 모양에 의하여 알맞은 대로 보특가라를 세우나니, ‘이것은 종성에 머무름[住種性]이요, 이것은 이미 마음을 냄[已發心]이다’하는 등으로 알아야 한다.
닦음의 나누어진 위치의 총괄한 뜻[總義]이라고 함은, 감당해 낼 위치[堪能位]인 종성의 위치[種性位]와 일으켜 나아가는 위치[發趣位]인 듦의 위치[入位] 및 행을 더 하는 위치[加行位]와 부정한 위치와 부정을 깨끗이 하는 위치와 청정한 위치와 장엄 있는 위치[有莊嚴位]와 10지(地)에 두루 차기 때문인 두루 찬 위치[遍滿位]와 위 없는 위치[無上位]를 말한다.
017_0409_b_11L論曰應知依前諸位別相如應建立補特伽羅謂此住種性此已發心等修分位摠義者謂堪能位卽種性位發趣位卽入加行位不淨位淨不淨淸淨位有莊嚴位遍滿位謂遍滿十地故無上位
辯中邊論卷中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