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601_T_001
- 017_0397_a_01L변중변론(辯中邊論) 상권
- 017_0397_a_01L辯中邊論卷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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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친보살(世親菩薩) 지음
현장(玄奘) 한역
한길로 번역 -
017_0397_a_02L世親菩薩造
大唐三藏法師玄奘奉 詔譯
- 1. 변상품(辯相品)
- 017_0397_a_04L辯相品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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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論)을 지으신
선서(善逝)의 체소생(體所生:子)과
우리들을 가르치신 스승께 머리 조아리면서
부지런히 이 뜻[義]을 밝혀야 하겠다(釋論者의 歸敬頌) -
017_0397_a_05L稽首造此論,
善逝體所生,
及教我等師,
當勤顯斯義。
- 이 가운데서는 맨 처음에 논의 체[論體]를 벌려 세우면서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7_a_07L此中最初安立論體。頌曰:
-
다만 모양[相]과 장애[障]와 진실함[眞實]과
모든 다스림을 닦음[修對治]이며
곧 이 닦음의 나누어진 위치[修分位]와
과위를 얻음[得果]과 무상승(無上乘)만이다(總序) -
017_0397_a_08L唯相障眞實,
及修諸對治,
卽此修分位,
得果無上乘。
-
≪논≫ 이 논(論)은 이와 같은 일곱 가지 뜻[七義]만을 설명한다. 첫째는 모양이요, 둘째는 장애요, 셋째는 진실함이요, 넷째는 모든 다스림을 닦음이요, 다섯째는 곧 이 닦음의 나누어진 위치요, 여섯째는 과위를 얻음이요 일곱째는 무상승이다.
이제 이 안에서는 먼저 그 모양[相]을 설명하면서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7_a_10L論曰:此論唯說如是七義,一相、二障、三眞實、四修諸對治、五卽此修分位、六得果、七無上乘。今於此中先辯其相。頌曰:
-
허망한 분별은 있고
이것에 두 가지는 도무지 없으며
이 안에는 ≺공(空)≻이 있을 뿐이요
그것에도 역시 이것만이 있다 -
017_0397_a_14L虛妄分別有,
於此二都無,
此中唯有空,
於彼亦有此。
-
≪논≫ ‘허망한 분별은 있고’라고 함은, 취할 바[所取: 感覺認識이 되는 것]와 능히 취함[能取: 感覺認識을 하는 것]의 분별함이 있음을 말함이요, ‘이것에 두 가지는 도무지 없으며’라고 함은, 곧 이 허망한 분별에 있어서 영원히 취할 바와 능히 취함의 두 가지 성품[二性]이 없음을 말한다.
‘이 안에는 ≺공≻이 있을 뿐이요’라고 함은, 허망한 분별의 안에는 다만 취할 바와 능히 취함을 떠난 ≺공≻한 성품[空性]만이 있음을 말함이요, ‘그것에도 역시 이것만이 있다고 함은, 곧 그 두 가지가 ≺공≻한 성품 안에서도 역시 이 허망한 분별만이 있음을 말한다. - 017_0397_a_16L論曰:虛妄分別有者,謂有所取、能取分別。於此二都無者,謂卽於此虛妄分別,永無所取、能取二性。此中唯有空者,謂虛妄分別中但有離所取及能取空性。於彼亦有此者,謂卽於彼二空性中亦但有此虛妄分別。
-
017_0397_b_01L만약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로 말미암아 자세히 살피어 ≺공≻이 되고, 그 밖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대로 알아서 있는 것이 되는지라, 이와 같이 될 적에는 뒤바뀜이 없어서 ≺공≻의 모양[空相]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
또 다음에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7_a_22L若於此非有由,彼觀爲空;所餘非無故,如實知爲有。若如是者,則能無倒顯示空相。復次頌曰:
-
그러므로 온갖 법은
≺공≻이 아니고 ≺공≻ 아님[不空]도 아니라고 말하나니
있음[有]과 없음[無]과 및 있음[有] 때문에
이는 곧 중도(中道)에 꼭 들어맞는다 -
017_0397_b_03L故說一切法,
非空非不空,
有無及有故,
是則契中道。
- ≪논≫ ‘온갖 법[一切法]’이라고 함은, 모든 유위(有爲: 因緣所生의 事物)와 무위([無爲: 因緣所生이 아닌 것)의 법이니, 허망한 분별을 유위라고 하고, 2취(取)의 ≺공≻한 성품을 무위라고 한다. 앞의 이치에 의하기 때문에 이 온갖 법은 ‘≺공≻이 아니고 ≺공≻ 아님도 아니라’고 말한다. ≺공≻한 성품과 허망한 분별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공≻이 아니라고 한다. 취할 바와 능히 취함의 성품[所取能取性]이 없기 때문에 ≺공≻ 아님이 아니라고 한다.
- 017_0397_b_05L論曰:一切法者,謂諸有爲及無爲法。虛妄分別名有爲,二取空性名無爲。依前理故,說此一切法非空非不空,由有空性虛妄分別故說非空,由無所取能取性故說非不空。
- ‘있음의 때문[有故]’이라고, 함은 ≺공≻한 성품과 허망한 분별이 있기 때문이요, ‘없음의 때문[無故]’이라고 함은, 취할 바와 능히 취함이 두 가지 성품이 없기 때문이요, ‘및 있음 때문에’라고 함은, 허망한 분별의 가운데에 ≺공≻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또 ≺공≻한 성품의 가운데에 허망한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
- 017_0397_b_10L有故者,謂有空性虛妄分別故。無故者,謂無所取能取二性故。及有故者,謂虛妄分別中有空性故,及空性中有虛妄分別故。
-
‘이는 곧 중도도 꼭 들어맞는다’라고 함은, 온갖 법은 한결같이 ≺공≻한 것이 아니고, 또한 한결같이 ≺공≻ 아님도 아니니, 이와 같은 이치야말로 미묘하게 중도에 계합하는 것이다. 또한 『반야경(般若經)』 등의 온갖 법에 ≺공≻한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하는 데에도 들어맞고 따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허망한 분별의 있음의 모양과 없음의 모양을 나타냈는데, 이것의 자기만의 모양[自相]을 이제 설명하여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7_b_14L是則契中道者,謂一切法非一向空亦非一向不空,如是理趣妙契中道,亦善符順般若等經說一切法非空非有。如是已顯虛妄分別有相無相,此自相今當說。頌曰:
-
의식[識]이 나서 변하여
뜻[義]ㆍ유정(有情)ㆍ≺나≻[我]와 알음[了]에 비슷하되
이 대경[境]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대경이 없는지라 의식도 없다 -
017_0397_b_18L識生變似義,
有情我及了,
此境實非有,
境無故識無。
- ≪논≫ ‘변하여 뜻[義]에 비슷하다’고 함은, 빛깔[色] 등, 모든 대경의 성품에 비슷하게 나타남을 말함이다. ‘변하여 유정(有情)에 비슷하다’고 함은, 자기나 다른 이의 몸을 다섯 가지 감관[五根]의 성품에 비슷하게 나타남을 말함이다. ‘변하여 ≺나≻[我]에 비슷하다’고 함은, 물들은 마나스[末那]가 ≺나≻라고 하는 어리석음 따위와 언제나 서로가 응하기 때문이며, ‘변하여 알음과 비슷하다’고 함은, 그 밖의 6식[識]은 아는 모양이 거칠기 때문이다.
- 017_0397_b_20L論曰:變似義者,謂似色等,諸境性現。變似有情者,謂似自他身五根性現。變似我者,謂染末那與我癡等恒相應故。變似了者,謂餘六識,了相麤故。
-
017_0397_c_01L‘이 대경은 실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라고 함은 뜻에 비슷하다 함과 감관[根]에 비슷하다 함과 알음에 비슷하다 함은 참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실로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대경이 없는지라 의식도 없다’라고 함은 취할 바 뜻[所取義] 따위의 네 가지 대경이 없기 때문에 능히 취하는 것의 모든 의식[能取諸識]도 역시 실로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또 다음에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7_c_01L此境實非有者,謂似義似根無行相故,似我似了非眞現故,皆非實有。境無故識無者,謂所取義等四境無故,能取諸識亦非實有。復次頌曰:
-
허망한 분별의 성품은
이 뜻으로 말미암아 실로 있음[實有]도
전혀 없음[全無]도 아님을 이룩하게 되나니
사라져서 해탈(解脫)한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
017_0397_c_05L虛妄分別性,
由此義得成,
非實有全無,
許滅解脫故。
-
≪논≫ ‘허망한 분별은 이 뜻으로 말미암아 실로 있음도 아님을 이룩하게 된다’고 함은, 나타나는바 그대로 생겨서 참으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혀 없음도 아님’이라고 함은, 그 안에서 적으나마 어지러운 의식[亂識]의 생기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이 성품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인정되느냐 하면, 이것이 사라져서 해탈하게 된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과 다르다면 얽매임과 해탈은 모두 없어야 한다. 이와 같은 것은 곧 섞여 더러움[雜染]과 맑고 깨끗함[淸淨]을 부정하여 버리는 실수를 이루리라. - 017_0397_c_07L論曰:虛妄分別由此義故成非實有,如所現起非眞有故;亦非全無,於中少有亂識生故。如何不許此性全無?以許此滅得解脫故。若異此者,繫縛解脫則應皆無,如是便成撥無雜染及淸淨失。
- 이미 허망한 분별의 제만의 모양을 나타냈는지라 여기서는 포섭의 모양[攝相]을 이제 설명하여야겠다. 다만 이와 같은 허망한 분별만이 있어서 곧 갖춘 세 가지의 제 성품[自性]을 포섭하나니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7_c_13L已顯虛妄分別自相,此攝相今當說。但有如是虛妄分別,卽能具攝三種自性。頌曰:
-
오직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의타기성(依他起性)과
원성실성(圓成實性)만은
대경[境]이기 때문이요, 분별(分別)이기 때문이니
두 가지가 ≺공≻하기 때문에 말한다. -
017_0397_c_15L唯所執依他,
及圓成實性,
境故分別故,
及二空故說。
-
≪논≫ 허망한 분별의 대경에 의지하기 때문에 변계소집(遍計所執)의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하며, 허망한 분별의 성품에 의지하기 때문에 의타기(依他起)의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한다. 취할 바와 능히 취하는 것의 ≺공≻함에 의지하기 때문에 원성실(圓成實)의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함이다.
이미 허망한 분별의 포섭의 모양을 나타냈는지라, 곧 허망한 분별에 있어서 모양 없는 방편의 모양[無相方便相]에 드는 것을 설명하여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7_c_17L論曰:依止虛妄分別境故,說有遍計所執自性。依止虛妄分別性故,說有依他起自性。依止所取能取空故,說有圓成實自性。已顯虛妄分別攝相,當說卽於虛妄分別入無相方便相。頌曰:
-
017_0398_a_01L의식[識]은 얻는 바가 있는 데에 의지하고
대경[境]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기며
대경은 얻는 바가 없는 데에 의지하고
의식은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긴다 -
017_0397_c_23L依識有所得,
境無所得生,
依境無所得,
識無所得生。
-
≪논≫ 의식만은 얻는 바가 있는 데에 의지하기 때문에 먼저 대경에서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기게 된다. 또 대경에서는 얻는 바가 없는 데에 의지하기 때문에 뒤에 의식에 있어서도 얻는 바가 없으면서 생기게 된다. 이런 방편으로 말미암아 취할 바와 능히 취하는 것의 모양 없음에 들 수 있다.
또 다음에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8_a_02L論曰:依止唯識有所得故,先有於境無所得生;復依於境無所得故,後有於識無所得生。由是方便,得入所取能取無相。復次頌曰:
-
의식의 얻음이 있는 성품[有得性]도
얻는 바가 없음[無所得]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그러므로 두 가지의 얻음이 있음[有得]은
얻음이 없는 성품[無得性]과 평등한 줄 알아라 -
017_0398_a_06L由識有得性,
亦成無所得,
故知二有得,
無得性平等。
-
≪논≫ 의식만이 나는 때에 나타나서 갖가지 허망한 경계에 비슷하기 때문에 얻는 바가 있다[有所得]고 한다. 얻는바 대경은 진실한 성품[實性]이 없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진실한 성품도 이룩할 수가 없다. 얻을 수 있는 의식이 얻는 바가 없기 때문에 취할 바와 능히 취하는 것의 두 가지 얻는 바가 있는 것은 평등하여서 다 함께 얻는 바가 없는 성품[無所得性]을 이룬다.
허망한 분별의 모양이 없는 방편의 모양에 드는 것을 나타내 마쳤는지라, 이 차별(差別)과 다른 문[異門]과의 모양을 이제 설명하여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8_a_08L論曰:唯識生時現似種種虛妄境故,名有所得。以所得境無實性故,能得實性亦不得成。由能得識無所得故,所取能取二有所得,平等俱成無所得性。顯入虛妄分別無相方便相已,此差別異門相今次當說。頌曰:
-
세 가지 세계[三界]의 심(心)과 심소(心所)는
이야말로 허망한 분별인 것이니
대경을 아는 것만을 임자 마음이라고 하고
또한 차별하는 것을 딸린 마음이라 한다. -
017_0398_a_14L三界心心所,
是虛妄分別,
唯了境名心,
亦別名心所。
-
≪논≫ 허망한 분별에 대한 차별의 모양[差別相]이라고 함은, 곧 이는 욕심 세계[欲界]와 형상 세계[色界]와 무형세계[無色界]의 모든 심(心)과 심소(心所)이다. 다른 문의 모양[異門相]이라 함은, 대경의 온 모양[總相]을 아는 것만을 임자 마음[心]이라고 하고, 차별도 아는 것을 느낌[受] 따위의 모든 딸린 마음의 법[心所法]이라고 한다.
이제 다음에는 이것이 생기는 모양[生起相]을 말하여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8_a_16L論曰:虛妄分別差別相者,卽是欲界色無色界諸心心所。異門相者,唯能了境摠相名心,亦了差別名爲受等諸心所法。今次當說此生起相。頌曰:
-
첫째를 곧 연식(緣識)이라고 하고
둘째를 받는 이[受者]라고 하나니
이 가운데서 능히 수용(受用)하고
분별하여 추리함은 딸린 마음이다. -
017_0398_a_20L一則名緣識,
第二名受者,
此中能受用,
分別推心所。
-
017_0398_b_01L≪논≫ ‘인식’이라고 함은, 장식(藏識:阿賴耶識)이니, 이는 다른 의식을 내는 반연이기 때문이다. 장식을 반연으로 하여 생기는 바 전식(轉識:다른 七識)은 수용하는 임자[主]이기 때문에 ‘받는 이’라고 한다. 이 모든 의식 중에 느낌[受]은 능히 수용하고, 생각[想]은 능히 분별하고, 헤아림[思]과 뜻 지음[作意] 따위의 모든 서로 응함의 행[相應行]은 모든 의식을 추리하나니, 이 세 가지는 임자 마음을 돕기 때문에 딸린 마음이라고 한다.
이제 다음에는 여기에 섞여 더러움의 모양[雜染相]을 설명하여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8_a_22L論曰:緣識者,謂藏識,是餘識生緣故。藏識爲緣所生轉識,受用主故名爲受者。此諸識中受能受用、想能分別、思作意等諸相應行能推諸識,此三助心故名心所。今次當說此雜染相。頌曰:
-
가려 막음[覆障]과 안립(安立)과
거느려 인도함[將導]과
포섭함[攝]과 원만함[圓滿]이며,
세 가지 분별[三分別]과 받아 씀[受用]과
끌어 일으킴[引起]과 연달아 맴[連縛]이며 -
017_0398_b_05L覆障及安立,
將導攝圓滿,
三分別受用,
引起幷連縛。
-
앞에 나타남[現前]과 괴로움의 결과[苦果] 때문에
이것만이 세간을 괴롭히나니
셋[三]과 둘[二]과 일곱[七]의 섞여 더러움[雜染]은
허망한 분별로 말미암아서이다 -
017_0398_b_07L現前苦果故,
唯此惱世閒,
三二七雜染,
由虛妄分別。
- ≪논≫ ‘가려 막음 때문에’라고 함은, 무명(無明)이 사실대로의 이치[如實理]를 가려서 참된 소견[眞見]을 막음으로 말미암아서요, ‘안립 때문에’라고 함은, 모든 지어감[諸行]이 근본 의식[本識] 가운데에 업의 훈습[業熏習]을 심었기 때문이요, ‘거느려 인도함 때문에’라고 함은, 잡음[取]이 있는 의식[識]이 모든 유정(有情)을 이끌어서 태어나는 처소로 이르기 때문이다. ‘포섭함 때문에’라고 함은, 이름과 물질[名色]이 유정의 제 몸[自體]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 017_0398_b_08L論曰:覆障故者,謂由無明覆如實理、障眞見故。安立故者,謂由諸行植本識中,業熏習故。將導故者,謂有取識引諸有情至生處故。攝故者,謂名色攝有情自體故。
- ‘원만함 때문에’라고 함은, 여섯 가지 안의 감관[六內處:六處]이 모든 유정들의 몸을 두루 갖추게 하기 때문이다. ‘세 가지 분별 때문에’라고 함은, 닿임[觸]이 감관[根]과 대경[境]과 알음[識]의 세 가지를 분별하여 세 가지 느낌[三受]에 따르기 때문이다. ‘받아 씀 때문에’라고 함은, 느낌의 갈래[受支]가 순탄함[順]과 거스름[違]과 둘이 다 아님[非已:非順非違]의 경계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끌어 일으킴 때문에’라고 함은 욕망[愛]의 힘이 먼저 지은 업에 끌리어 후생 몸[後有]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 017_0398_b_13L圓滿故者,謂六內處令諸有情體具足故。三分別故者,謂觸能分別根境識三,順三受故。受用故者,謂由受支領納順違,非二境故。引起故者,謂由愛力令先業所引後有得起故。
-
‘연달아 맴 때문에’라고 함은, 잡음[取]이 의식으로 하여금 따르는 욕심 따위를 반연하여 연달아 맴의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앞에 나타남 때문에’라고 함은, 존재[有]의 힘이 이미 지은 업으로 하여금 후생 몸의 모든 이숙의 과보[異熟果]를 붙잡아 주어서 앞에 나타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결과 때문에’라고 함은, 태어 남[生]과 늙어 죽음[老死]의 성품에 핍박함이 있고 먼저의 원인을 갚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열두 가지 인연[十二有支]만이 세간을 괴롭혀서 안온하지 않게 한다. - 017_0398_b_18L連縛故者,謂取令識緣順欲等連縛生故。現前故者,謂由有力令已作業所與後有諸異熟果得現前故。苦果故者,謂生老死性有逼迫,酬前因故。唯此所說十二有支,逼惱世閒令不安隱。
-
017_0398_c_01L‘셋의 섞여 더러움[三雜染]이라고 함은, 첫째는 번뇌의 섞여 더러움[煩惱雜染]이니, 무명과 욕망[愛]과 잡음[取]을 말함이요, 둘째는 업의 섞여 더러움[業雜染]이니, 지어감[行]과 존재[有]를 말함이요, 셋째는 나기의 섞여 더러움[生雜染]이니, 그 나머지 갈래이다.
‘둘의 섞여 더러움[二雜染]이라고 함은 첫째는 원인의 섞여 더러움[因雜染]이니, 번뇌와 업을 말함이요, 둘째는 결과의 섞여 더러움[果雜染]이니, 그 나머지 갈래들이다. - 017_0398_b_23L三雜染者,一煩惱雜染,謂無明愛取;二業雜染,謂行有;三生雜染,謂餘支。二雜染者,一因雜染、謂煩惱業;二果雜染、謂所餘支。
- ‘일곱의 섞여 더러움[七雜染]이라고 함은, 일곱 가지인[七種因]이다. 첫째는 전도인(顚倒因)이니 무명이요, 둘째는 견인인(牽引因)이니 지어감이요, 셋째는 장도인(將導因)이니 의식이요, 넷째는 섭수인(攝受因)이니 이름과 물질ㆍ여섯 가지 감관이요, 다섯째는 수용인(受用因)이니 닿임과 느낌이요, 여섯째는 인기인(引起因)이니 욕망과 잡음과 존재요, 일곱째는 염포인(厭怖因)이니 나기와 늙어 죽음이다. 이 여러 가지 섞여 더러움은 모두가 허망한 분별로 말미암아 생장하게 되지 않음이 없다.
- 017_0398_c_03L七雜染者,謂七種因:一顚倒因,謂無明;二牽引因,謂行;三將導因,謂識;四攝受因,謂名色、六處;五受用因,謂觸、受;六引起因,謂愛、取、有;七厭怖因,謂生、老死。此諸雜染無不皆由虛妄分別而得生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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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그 앞은 통틀어서 허망한 분별에 아홉 가지의 모양[九種相]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첫째는 있음의 모양[有相]이요, 둘째는 없음의 모양[無相]이요, 셋째는 제만의 모양[自相]이요, 넷째는 포섭의 모양[攝相]이요, 다섯째는 모양 없는 방편의 모양에 듦[入無相方便相]이요, 여섯째는 차별의 모양[差別相]이요, 일곱째는 다른 문의 모양[異門相]이요, 여덟째는 생김의 모양[生起相]이며, 아홉째는 섞여 더러움의 모양[雜染相]이다.
이와 같이 이미 허망한 분별을 나타냈는지라 이제 다음에는 알 바의 ≺공≻한 성품[空性]을 설명하여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8_c_09L此前摠顯虛妄分別有九種相:一有相、二無相、三自相、四攝相、五入無相方便相、六差別相、七異門相、八生起相、九雜染相。如是已顯虛妄分別,今次當說所知空性。頌曰:
-
모든 모양[諸相] 및 다른 문[異門]과
뜻[義]과 차별(差別)과 성립(成立)은
두 가지가 ≺공≻한 성품인 줄 알지니
간략히 말하면 이것뿐이기 때문이다 -
017_0398_c_13L諸相及異門,
義差別成立,
應知二空性,
略說唯由此。
-
≪논≫ 그러므로 알라. 취할 바[所取]와 능히 취하는 것[能取]의 ≺공≻한 성품은 이 모양 따위의 다섯 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알 바의 ≺공≻한 성품은 그 모양이 어떤 것이냐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8_c_15L論曰:應知所取能取空性,略說但由此相等五。所知空性其相云何?頌曰:
-
두 가지가 없고[無二]없음이 있기[有無] 때문이요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니며
다름[異]도 아니고 또한 동일함[一]도 아니니
이것을 말하여 ≺공≻한 모양이라고 한다 -
017_0398_c_17L無二有無故,
非有亦非無,
非異亦非一,
是說爲空相。
-
≪논≫ ‘두 가지가 없다’고 함은, 취할 바와 능히 취하는 것이 없음을 말하며, ‘없음이 있다’고 함은, 두 가지 취함[二取]의 없음이 있음을 말한다.
이 ≺공≻은 성품 없음[無性]이 성품이 된다 함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공≻한 모양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느냐 하면, 둘의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무엇을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하느냐 하면, 둘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 이 ≺공≻한 모양은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님’을 나타낸다. - 017_0398_c_19L論曰:無二,謂無所取能取。有無,謂有二取之無。此卽顯空無性爲性,故此空相非有非無。云何非有?無二有故。云何非無?有二無故。此顯空相非有非無。
-
017_0399_a_01L이 ≺공≻은 저 허망한 분별과 다른 것도 아니고 동일한 것도 아니다. 만약 다르다면 법의 성품[法性]은 다른 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바른 이치[正理]에 어긋나나니 괴로움[苦] 따위의 성품과 같으며, 만약 동일하다고 하면 깨끗한 지혜[淨智]의 경계도 아니고 공통된 모양[共相]도 아니어야 하므로 이는 곧 ≺공≻과 허망한 분별[忘相]과는 동일하거나 다르다고 하는 모양을 떠났음을 나타낸다.
알 바 ≺공≻한 성품의 다른 문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7_0399_a_01L此空與彼虛妄分別非異非一,若異應成法性異法。便違正理,如苦等性;若一則應非淨智境亦非共相。此卽顯空與妄分別離一異相。所知空性異門云何?頌曰:
-
≺공≻의 다른 문을 간략히 말하자면
진여(眞如)와 실제(實際)와
모양 없음[無相]과 뛰어난 이치의 성품[勝義性]과
법계(法界) 따위인 줄 알아야 하리라 -
017_0399_a_05L略說空異門,
謂眞如實際,
無相勝義性,
法界等應知。
- ≪논≫ 간략하게 ≺공≻한 성품을 말하면 이런 다른 문이 있다. 어떻게 이 다른 문의 뜻을 알아야 하느냐 하면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7_0399_a_07L論曰:略說空性,有此異門。云何應知此異門義?頌曰:
-
변함이 없음[無變]과 뒤바뀜이 없음[無倒]과
모양의 사라짐[相滅]과
거룩한 지혜의 경계[聖智境]와
모든 거룩한 법의 원인[聖法因]으로 말미암아서이니
다른 문의 뜻은 다음과 같으니라. -
017_0399_a_09L由無變無倒,
相滅聖智境,
及諸聖法因,
異門義如次。
-
≪논≫ 곧 이 안에서 알 바의 ≺공≻한 성품을 말하자면, ‘변함이 없음’이라는 뜻으로 말미암아서 말하되, 진여(眞如)로 삼나니, 참다운 성품은 항상 그대로 이어서 바꾸어짐이 없기 때문이며, ‘뒤바뀜이 없음’이라는 뜻으로 말미암아서 말하되 실제(實際)로 삼나니, 모든 뒤바뀜의 의지[依]와 반연[緣]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양의 사라짐’이라는 뜻으로 말미암아서 말하되 모양 없음[無相]으로 삼나니, 이 안에서는 영원히 온갖 모양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거룩한 지혜의 경계’라는 뜻으로 말미암아서 말하되 뛰어난 이치의 성품[勝義性]으로 삼나니, 이는 가장 뛰어난 지혜로써 행할 바 뜻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법의 원인’이라는 뜻으로 말미암아서 말하되 법계(法界)로 삼나니, 온갖 거룩한 법은 이것을 반연하여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계(界)라고 함은 곧 이는 원인[因]이라는 뜻이니, ≺나≻없음[無我] 따위의 뜻도 이런 이치와 같이 알아야 한다. - 017_0399_a_11L論曰:卽此中說所知空性,由無變義說爲眞如。眞性常如,無轉易故。由無倒義說爲實際,非諸顚倒,依緣事故。由相滅義說爲無相,此中永絕一切相故。由聖智境義說爲勝義性,是最勝智所行義故。由聖法因義說爲法界,以一切聖法緣此生故。此中界者,卽是因義。無我等義如理應知。
- 어떻게 ≺공≻한 성품의 차별을 알아서 하느냐 하면, 게송으로 말하리라.
- 017_0399_a_19L云何應知空性差別?頌曰:
-
이것은 섞여 더러움[雜染]과 맑고 깨끗함[淸淨]이어서
때 있음[有垢]과 때 없음[無垢]으로 말미암아서이니
마치 물 경계[水界]와 온전한 허공[空]처럼
깨끗하므로 인정하여 깨끗함[淨]이라고 한다 -
017_0399_a_20L此雜染淸淨,
由有垢無垢,
如水界全空,
淨故許爲淨。
-
017_0399_b_01L≪논≫ ≺공≻한 성품의 차별은 간략하게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섞여 더러움이요, 둘째는 맑고 깨끗함이다. 이것이 더러움[染]과 깨끗함[淨]을 이룩함은 나누어진 위치[分位]의 구별로 말미암아서이니, 때 있음의 자리[有垢位]를 말하여 섞여 더러움이라고 하고, 때[垢]를 벗어나게 되는 시기를 말하여 맑고 깨끗함이라고 한다. 비록 먼저 섞여 더러웠다가 뒤에 맑고 깨끗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바꿔지고 변하여 무상(無常)한 것으로 되는 허물은 아니다.
물 경계 등이 객진(客塵)을 벗어나는 것처럼 ≺공≻의 깨끗한 것도 그러하나니, 성품이 바꿔지고 변하는 것은 아니다. - 017_0399_a_22L論曰:空性差別略有二種,一雜染、二淸淨。此成染淨由分位別,謂有垢位說爲雜染,出離垢時說爲淸淨。雖先雜染、後成淸淨,而非轉變成無常失。如水界等出離客塵,空淨亦然,非性轉變。
- 이 ≺공≻의 차별에는 다시 열여섯 가지가 있다. 안의 ≺공≻[內空]이요, 바깥의 ≺공≻[外空]이요, 안팎의 ≺공≻[內外空]이요, 큰 ≺공≻[大空]이요, ≺공≻의 ≺공≻[空空]이요, 뛰어난 이치의 ≺공≻[勝義空]이요, 유위의 ≺공≻[有爲空]이요, 무위의 ≺공≻[無爲空]이요, 마지막의 ≺공≻[畢竟空]이요, 가 없음의 ≺공≻[無際空]이요, 흩어짐이 없음의 ≺공≻[無散空]이요, 본래 성품의 ≺공≻[本性空]이요, 모습의 ≺공≻[相空]이요, 온갖 법의 ≺공≻[一切法空]이요, 성품이 없음의 ≺공≻[無性空]이며, 성품이 없는 제 성품의 ≺공≻[無性自性空]이다.
- 017_0399_b_05L此空差別復有十六,謂內空、外空、內外空、大空、空空、勝義空、有爲空、無爲空、畢竟空、無際空、無散空、本性空、相空、一切法空、無性空、無性自性空。
- 이들의 간략한 뜻을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하면, 게송으로 말한다.
- 此等略義云何應知?頌曰:
-
능히 먹음[能食]과 먹을 바[所食]와
이 의지의 몸[依身]과 머무를 데[所住]와
능히 이것을 봄[能見此]과 그대로의 이치[如理]와
구하는 바 두 가지 깨끗함의 ≺공≻[二淨空]이며 -
017_0399_b_09L能食及所食,
此依身所住,
能見此如理,
所求二淨空。
-
언제나 유정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나고 죽음[生死]을 버리지 않기 위하고
착함[善]의 다함이 없기 위하여
그 때문에 이를 살피어 ≺공≻으로 삼는다 -
017_0399_b_11L爲常益有情,
爲不捨生死,
爲善無窮盡,
故觀此爲空。
-
종성(種性)의 맑고 깨끗함을 위하고
모든 좋은 모습[相好]을 얻기 위하고
모든 부처님 법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그 때문에 보살은 ≺공≻임을 살핀다 -
017_0399_b_12L爲種性淸淨,
爲得諸相好,
爲淨諸佛法,
故菩薩觀空。
-
≪논≫ ‘능히 마음의 ≺공≻’이라 함은, 안의 처소[內處]에 의하여 말하는지라, 곧 이것은 안의 ≺공≻이다. ‘먹을 바 ≺공≻’이라 함은, 바깥 처소[外處]에 의하여 말하는지라, 곧 이것은 바깥의 ≺공≻이다. ‘이 의지의 몸’이라고 함은, 능히 먹음과 먹을 바의 의지하는바 몸인지라, 이 몸이 ≺공≻하기 때문에 안팎의 ≺공≻이라고 한다.
모든 기세간(器世間)을 말하여 ‘머무를 데’라고 하며, 이 모양은 넓기 때문에 크다고 하는데, 머무를 데가 ≺공≻하기 때문에 큰 ≺공≻이라고 한다. - 017_0399_b_13L論曰:能食空者,依內處說,卽是內空。所食空者,依外處說,卽是外空。此依身者,謂能所食所依止身,此身空故,名內外空。諸器世閒說爲所住,此相寬廣故名爲大,所住空故名爲大空。
-
‘능히 이것을 봄’이라고 함은, 지혜가 안의 처소 따위의 ≺공≻함을 볼 수 있으며, ≺공≻의 지혜[空智]도 ≺공≻하기 때문에 ≺공≻의 ≺공≻이라고 한다. ‘그대로의 이치’라고 함은, 뛰어난 이치[勝義]를 말하나니, 곧 사실대로의 행[如實行]이며, 살피는 바 진리는 이것이 바로 ≺공≻하기 때문에 뛰어난 이치의 ≺공≻이라고 한다.
보살의 수행은 두 가지 깨끗함을 얻기 위해서이니, 바로 모든 유위위의 착한 법이다.
이 두 가지는 ≺공≻하기 때문에 유위의 ≺공≻이라고 하고 무위의 ≺공≻이라고 한다. - 017_0399_b_18L能見此者,謂智能見內處等空。空智空故,說名空空。如理者,謂勝義,卽如實行。所觀眞理,此卽空故,名勝義空。菩薩修行爲得二淨,卽諸有爲、無爲善法。此二空故,名有爲空及無爲空。
- 017_0399_c_01L유정들에 대하여 언제나 이로움을 지으려 하면서도 ≺공≻인 줄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마지막의 ≺공≻이라고 한다. 나고 죽음은 길고도 멀어서 처음과 끝이 없는지라 이 ≺공≻임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가없음의 ≺공≻이라고 한다. ≺공≻임을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면 빨리 싫어하며 버리겠지마는 이 나고 죽음을 싫어하며 버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가없는 나고 죽음을 자세히 살피어 ≺공≻으로 삼는다.
- 017_0399_b_23L爲於有情常作饒益,而觀空故,名畢竟空。生死長遠無初後際,觀此空故,名無際空。不觀爲空便速厭捨,爲不厭捨此生死故,觀此無際生死爲空。
- 닦는바 착함이 남음이 없는 열반[無餘依般涅槃]의 지위에 이르러서도 흩어서 버리려 함이 없으면서 ≺공≻임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흩어짐이 없음의 ≺공≻이라고 한다. 모든 성스러운 종성은 제 바탕이 본래 있는 것이요, 익혀서 이루어지는 바가 아님을 말하여 본래 성품이라고 하는데, 보살은 이것을 빨리 맑고 깨끗이 되게 하기 위하면서 ≺공≻임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본래 성품의 ≺공≻이라고 한다.
- 017_0399_c_04L爲所修善至無餘依般涅槃位,亦無散捨而觀空故,名無散空。諸聖種姓自體本有,非習所成,說名本性。菩薩爲此速得淸淨,而觀空故,名本性空。
-
보살은 보살[大士]의 좋은 모습을 얻기 위하면서 ≺공≻임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모습의 ≺공≻이 된다. 보살은 힘[力:十力]과 두려움 없음[無畏:十無畏] 등의 온갖 부처님 법으로 하여금 모두 깨끗할 수 있게 하기 위하면서 이것이 ≺공≻임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온갖 법의 ≺공≻이라고 한다.
이 열 네 가지 ≺공≻[十四空]은 차별에 따라서 벌려 세운 것이요, 이 중에서 어느 것을 말하여 ≺공≻이라고 하느냐 하면,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399_c_08L菩薩爲得大士相好而觀空故,名爲相空。菩薩爲令力無畏等一切佛法皆得淸淨而觀此空,故名一切法空。是十四空,隨別安立。此中何者說名爲空?頌曰:
-
보특가라[補特伽羅]와 법(法)의
실제 성품[實性]은 다 같이 있음[有]이 아니며
이 없는 성품[無性]이 있는 성품[有性]이므로
따로 두 가지 ≺공≻[二空]을 세운다 -
017_0399_c_13L補特伽羅法,
實性俱非有,
此無性有性,
故別立二空。
-
≪논≫ 보특가라와 법과의 실제 성품은 다 같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품이 없음의 ≺공≻이라고 하며, 이 성품이 없음의 ≺공≻은 제 성품이 없는 것이 아니어서 ≺공≻은 성품이 없음을 제 성품으로 삼기 때문에 성품이 없는 제 성품의 ≺공≻이라고 한다.
앞에서 말한 능히 먹음의 ≺공≻[能食空] 등에 있어서 그 ≺공≻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하여 따로 두 가지 ≺공≻을 세우나니, 이는 보특가라와 법과의 더욱 늘음의 고집[增益執]과 ≺공≻의 줄어 없어짐의 고집[損減執]을 막아 그치게 하기 위하여 그 차례대로 뒤의 두 가지 ≺공≻을 세웠다.
이와 같이 이미 ≺공≻한 성품[空性]의 차별을 나타내었다. - 017_0399_c_15L論曰:補特伽羅及法實性俱非有故,名無性空。此無性空非無自性,空以無性爲自性故,名無性自性空。於前所說能食空等,爲顯空相別立二空;此爲遮止補特伽羅法增益執、空損減執,如其次第立後二空。如是已顯空性差別。
- 이것이 성립(成立)하는 뜻은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하면, 게송으로 말한다.
- 此成立義云何應知?頌曰:
-
이것이 만약 섞여 더러움이 없다면
온갖 것은 저절로 해탈되어야 하고
이것이 만약 맑고 깨끗함이 없다면
공용(功用)은 결과가 없어야 하리 -
017_0399_c_22L此若無雜染,
一切應自脫,
此若無淸淨,
功用應無果。
- 017_0400_a_01L≪논≫ 만약 모든 법이 ≺공≻하여 아직 다스림[對治]이 생기지 못하였어도 섞여 더러움을 용납함이 없다면 온갖 유정들은 함에 말미암지 아니하고서 저절로 해탈되어야 한다. 만약 다스림이 이미 생겼어도 역시 맑고 깨끗하지 않다면 해탈하려 하여 부지런히 힘쓴다 하여도 결과는 없어야 한다. 이미 그렇다면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0_a_01L論曰:若諸法空,未生對治無客雜染者,一切有情不由功用應自然解脫。若對治已生亦不淸淨,則應求解脫勤勞無果。旣爾,頌曰:
-
더러움[染]도 아니고 더럽지 않음[不染]도 아니며
깨끗함[淨]도 아니고 깨끗하지 않음[不淨]도 아니어서
마음의 성품[心性]은 본래 깨끗하지마는
객진(客塵)으로 말미암아 더럽게 된다 -
017_0400_a_05L非染非不染,
非淨非不淨,
心性本淨故,
由客塵所染。
- ≪논≫ 어찌하여 더러움도 아니고 더럽지 않음도 아니냐고 하면, 마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깨끗함도 아니고 깨끗하지 않음도 아니냐고 하면, 객진에 더럽힘을 받게 되기 때문이니, 이것이 ≺공≻의 차별을 성립하는 뜻[成立空差別義]이라고 한다.
- 017_0400_a_07L論曰:云何非染非不染?以心性本淨故。云何非淨非不淨?由客塵所染故。是名成立空差別義。
- 이로부터 앞에서 ≺공≻의 뜻은 통틀어 두 가지가 있었으니, 모양[相]과 안립(安立)이다. 모양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나니, 없음[無]과 있음[有]이어서 ≺공≻한 성품의 있음의 모양[有相]은 있는 것도 여의고 없는 것도 여의고, 동일한 것도 여의고 다른 것도 여읜 그것을 그의 모양으로 삼는다. 빌려 세움은 곧 다른 문[異門] 따위인 줄 알아야 한다.
- 017_0400_a_10L此前空義摠有二種,謂相安立。相復有二,謂無及有。空性有相,離有離無、離異離一以爲其相。應知安立卽異門等。
- 2. 변장품(變障品
- 017_0400_a_13L辯障品第二
- 이미 그 모양을 말하였는지라, 장애[障]를 이제 설명하여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0_a_14L已辯其相,障今當說。頌曰:
-
전체 부분[具分]과 한 부분[一分]과
더욱 왕성함[增盛]과 평등함[平等]과
나고 죽음에 있어서 가지거나 버림[取捨]은
두 가지 종성(種性)을 장애한다고 말한다 -
017_0400_a_15L具分及一分,
增盛與平等,
於生死取捨,
說障二種性。
-
017_0400_b_01L≪논≫ 전체 부분의 장애[具分障]인데 모든 보살 종성의 법 안에 있어서 골고루 다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한 부분의 장애[二分障]라고 함은 번뇌장을 말하는데 성문(聲聞) 종성 등의 법을 장애하기 때문이다.
더욱 왕성한 장애[增盛障]라고 함은 곧 저 탐냄 따위의 행[貪等行]이며, 평등한 장애[平等障]라고 함은 곧 저 평등한 부분의 행[等分行]을 말한다.
나고 죽음을 가지거나 버림[取捨生死]이라고 함은, 보살 종성으로서 얻게 되는 머묾이 없는 열반[無住涅槃]을 장애한다면 나고 죽음에 있어서 가지거나 버림이 있는 장애라고 하나니,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장애[五障]는 그 알맞은 바에 따라서 보살과 성문 등의 두 가지 종성을 장애한다고 한다.
다시 다음에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0_a_17L論曰:具分障者,謂煩惱障及所知障,於諸菩薩種性法中具爲障故。一分障者,謂煩惱障,障聲聞等種性法故。增盛障者,謂卽彼貪等行。平等障者,謂卽彼等分行。取捨生死,能障菩薩種性所得無住涅槃,名於生死有取捨障。如是五障隨其所應,說障菩薩及聲聞等二種種性。復次頌曰:
-
아홉 가지 번뇌의 모양[煩惱相]이라 함은
사랑함[愛] 따위의 아홉 가지 번뇌[九結]이니
첫째와 둘째는 싫어함[厭]과 버림[捨]을 장애하고
나머지의 일곱은 참된 소견[眞見]을 장애한다 -
017_0400_b_02L九種煩惱相,
謂愛等九結,
初二障厭捨,
餘七障眞見。
-
말하자면 몸에 대한 소견[身見]과 그의 일[事]과
사라짐[滅]과 도(道)와 보배[寶]와
이양 공경[利養恭敬] 따위와 멀리 여읨[遠離]과의
두루 앎[徧知]을 장애하기 때문이니라 -
017_0400_b_04L謂能障身見,
彼事滅道寶,
利養恭敬等,
遠離遍知故。
-
≪논≫ 번뇌장의 모양에는 간략하게 아홉 가지가 있나니, 사랑함 따위의 번뇌[結]이다. 사랑함의 번뇌[愛結]는 싫어함[厭]을 장애하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순탄한 경계[順境]에 대하여 싫증 내어 여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냄의 번뇌[恚結]는 버림[捨]을 장애하는지라, 이것으로 말미암아 거스르는 경계[遠境]에 대하여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일곱 가지 번뇌[七結]는 참된 소견[眞見]을 장애하나니, 일곱 가지 두루 앎[七徧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장애하기 때문이다. 난 체하는번뇌음[慢結]는 거짓된 몸에 대한 소견[僞身見]의 두루 앎을 장애하나니, 현관(現觀)을 닦을 적에 간단 있게 또는 간단없이 난 체[我慢]함이 일어나므로 이 세력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017_0400_b_05L論曰:煩惱障相略有九種,謂愛等九種結。愛結障厭,由此於順境不能厭離故。恚結障捨,由此於違境不能棄捨故。餘七結障眞見,於七遍知如次障故。謂慢結能障僞身見遍知,修現觀時有閒無閒我慢現起,由此勢力彼不斷故。
-
무명의 번뇌[無明結]는 몸의 소견에 대한 일[事]의 두루 앎을 장애하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저 다섯 가지 쌓임[五取蘊]을 모르기 때문이다. 소견의 번뇌[見結]는 사라짐의 진리[滅諦]의 두루 앎을 장애하는지라, 사트카아야[薩迦耶]와 치우친 소견[邊執見]으로 말미암아 사라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삿된 소견[邪見]으로 말미암아 사라짐을 비방하기 때문이다.
잡음의 맺음[取見]은 도의 진리[道諦]의 두루 앎을 장애하는지라, 다른 법을 취하여 깨끗하다고 하기 때문이다. 의심의 번뇌[疑結]는 3보(寶)의 두루 앎을 장애하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삼보의 공덕을 믿어 받지 않기 때문이며, 시새움의 번뇌[嫉結]는 이끗과 공경 따위의 두루 앎을 장애하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저 이의 과실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낌의 번뇌[慳結]는 멀리 여읨[遠離]의 두루 앎을 장애하는지라, 이로 말미암아 살림을 돕는 도구에 탐내어 집착하기 때문이다. - 017_0400_b_12L無明結能障身見事遍知,由此不知諸取薀故。見結能障滅諦遍知,由薩迦耶及邊執見怖畏滅故,由邪見謗滅故。取結能障道諦遍知,取餘法爲淨故。疑結能障三寶遍知,由此不信受三寶功德故。嫉結能障利養恭敬等遍知,由此不見彼過失故。慳結能障遠離遍知,由此貪著資生具故。
- 다시 다른 장애로서 열 가지 깨끗한 법[淨法]을 장애하는 것이 있나니, 그 모양이 어떤 것이냐 하면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0_b_20L復有別障能障善等十種淨法。其相云何?頌曰:
-
가행이 없음[無加行]과 그릇된 곳[非處]과
이치답지 않음[不如理]과 내지 않음[不生]과
바른 생각[正思惟]을 일으키지 아니함과
양식[資糧]이 아직 원만하지 못함이며 -
017_0400_b_21L無加行非處,
不如理不生,
不起正思惟,
資糧未圓滿。
-
종성(種性)과 착한 벗[善友]을 궐(闕)함과
마음이 극히 고달프고 싫증나는 성품과
바른 행[正行]을 궐함과
비루하고 나쁜 이와 함께 사는 것이며 -
017_0400_b_23L闕種性善友,
心極疲厭性,
及闕於正行,
鄙惡者同居。
-
017_0400_c_01L뒤바뀐 거칠고 무거움[倒麤重]과 셋의 나머지와
반야(般若)가 아직 성숙되지 못함과
본래 성품[本性]의 거칠고 무거움과
게으름[怠惰]과 방일(放逸)과의 성품이며 -
017_0400_c_01L倒麤重三餘,
般若未成熟,
及本性麤重,
懈怠放逸性。
-
존재[有]에 집착함과 재물[資材]에 집착함과
마음 성품의 낮고 열등함과
믿지 않음[不信]과 훌륭한 알음[勝解]없음과
말대로 하면서 뜻을 생각함[如言而思義]이며 -
017_0400_c_02L著有著資財,
及心性下劣,
不信無勝解,
如言而思義。
-
법을 가볍게 하고 명리(名利)를 중히 여김과
유정에게 가엾이 여김이 없음과
들음이 모자람[圚聞]과 들음이 적음[少聞]과
미묘한 선정[妙定]을 닦고 다스리지 않음이다 -
017_0400_c_04L輕法重名利,
於有情無悲,
匱聞及少聞,
不修治妙定。
- ≪논≫ 이와 같은 것을 착함[善] 따위의 법의 장애라고 하는데, 장애를 받는 착함 따위는 그 모양이 어떤 것인가를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0_c_05L論曰:如是名爲善等法障。所障善等其相云何?頌曰:
-
착함[善]과 보리(菩提)와 섭수함[攝受]과
지혜 있음[有慧]과 어지러움[亂]도 장애[障]도 없음과
회향함[廻向]과 두려움[怖]도 아낌[慳]도 아님과
자재함[自在]을 착함 따위라고 이름한다 -
017_0400_c_07L善菩提攝受,
有慧無亂障,
迴向不怖慳,
自在名善等。
- ≪논≫ 이와 같은 착함 따위의 열 가지 깨끗한 법[十種淨法]의 어느 것이 앞에서 설명한 것의 몇 가지씩 장애를 보유하느냐 하면,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0_c_09L論曰:如是善等十種淨法,誰有前說幾種障耶?頌曰:
-
이와 같은 착함 따위의 열 가지 것은
각각 앞의 세 가지씩 장애를 보유한다 -
017_0400_c_11L如是善等十,
各有前三障。
- ≪논≫ 착함에 세 가지 장애가 있나니, 첫째는 가행이 없음[無加行]이요, 둘째는 그릇된 곳의 가행[非處加行]이요, 셋째는 이치답지 않은 가가행加行]이다.
- 017_0400_c_12L論曰:善有三障,一無加行,二非處加行,三不如理加行。
-
보리에 세 가지 장애가 잇나니, 첫째는 착한 법을 내지 않음[不生善法]이요, 둘째는 바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不起正思惟]이요, 셋째는 양식이 아직 원만하지 아니함[資糧未圓滿]이다.
보리 마음[菩提心]을 내는 것을 섭수함[攝受]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세 가지 장애가 있다. 첫째는 종성을 궐함[闕種性]이요, 둘째는 착한 벗을 궐함[闕善友]이요, 셋째는 마음이 극히 고달프고 싫증나는 성품[心極疲厭]이다. - 017_0400_c_14L菩提有三障,一不生善法,二不起正思惟,三資糧未圓滿。發菩提心名爲攝受,此有三障,一闕種性、二闕善友、三心極疲厭性。
-
‘지혜 있음’이라고 함은, 보살을 말하는데 이 성품을 요달하는 데에 세 가지 장애가 있다. 첫째는 바른 행을 궐함[闕正行]이요, 둘째는 비루한 이와 같이 머무름[鄙者共住]이요, 셋째는 나쁜 이와 같이 머무름[惡者共住]이다. 이 안에서 비루한 이라고 함은, 어리석은 이들이요, 다른 이를 헐고 무너뜨리기 좋아하는 이를 나쁜 이라고 한다.
어지러움이 없음에 세 가지 장애가 있나니, 첫째는 뒤바뀐 거칠고 무거움[顚倒麤重]이요, 둘째는 번뇌 따위의 세 가지 장애 중에서 그 어느 하나의 남아 있는 성품이요, 셋째는 해탈을 성숙시키는 지혜가 아직 성숙되지 못한 성품이다. - 017_0400_c_17L有慧者,謂菩薩,於了此性有三種障,一闕正行、二鄙者共住、三惡者共住。此中鄙者,謂愚癡類,樂毀壞他名爲惡者。無亂有三障,一顚倒麤重、二煩惱等三障中隨一有餘性、三能成熟解脫慧未成熟。
-
017_0401_a_01L장애가 끊어져 없어짐을 장애가 없다[無障]고 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의 장애가 있다. 첫째는 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있는 거칠고 무거움[俱生麤重]이요, 둘째는 게으름의 성품[懈怠性]이요, 셋째는 방일의 성품[放逸性]이다.
회향에 세 가지 장애가 없어서 마음으로 하여금 다른 데로 향하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無上正等菩提]에 향하지 않게 함이다. 첫째는 모든 존재[諸有]에 탐착함이요, 둘째는 재물[資材]에 탐착함이요, 셋째는 마음의 하열(下劣)한 성품이다. - 017_0400_c_23L性障斷滅名無障,此有三障,一俱生麤重、二懈怠性、三放逸性。迴向有三障,令心向餘不向無上正等菩提,一貪著諸有、二貪著資財、三心下劣性。
-
두려워하지 아니함에 세 가지 장애가 있나니, 첫째는 보특가라[補特伽羅]를 믿고 존중하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법에 대하여 훌륭한 알음[勝解]이 없음이요, 셋째는 말대로 하면서 뜻을 생각함[思義]이다.
아끼지 아니함에 세 가지 장애가 있나니, 첫째는 바른 법[正法]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함이요, 둘째는 명예와 이끗과 공경함을 존중히 여김이요, 셋째는 모든 유정에 대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없음이다.
자재함에 세 가지 장애가 있어서 자재로울 수 없게 함이니, 첫째는 들음이 모자라서[匱聞] 모자란 법[匱法]을 받는 업을 생장시키기 때문이요, 둘째는 들음이 적음[少聞]이요, 셋째는 훌륭한 사마아디[三摩地]를 닦거나 다스리지 아니함이다. - 017_0401_a_04L不怖有三障,一不信重補特伽羅、二於法無勝解、三如言而思義。不慳有三障,一不尊重正法、二尊重名譽利養恭敬、三於諸有情心無悲愍。自在有三障令不得自在,一匱聞生長能感匱法業故、二少聞、三不修治勝三摩地。
- 또 다음에 이와 같은 모든 장애는 착함 따위[善等]의 열 가지에 있어서 다른 뜻에 따라 열 가지 능한 작용[能作]이 있나니, 바로 그 뜻에 의하여 이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
- 017_0401_a_10L復次如是諸障於善等十,隨餘義中有十能作,卽依彼義應知此名。
- 열 가지 능한 작용이라고 함은, 첫째는 내서 일으킴에 능한 작용[生起作用]이니, 눈[眼] 따위가 눈 알음[眼識]에 대해서와 같음이다. 둘째는 편안히 머무름에 능한 작용[安往能作]이니, 네 가지 먹기[四食]가 유정들에게 대해서와 같음이다. 셋째는 부지하여 줌에 능한 작용[任持能作]이니, 잘 부지하여 줌이 기세간(器世間)이 유정세간(有情世間)에 대해서와 같음이다. 넷째는 비추어 알게 함에 능한 작용[照了能作]이니, 광명이 모든 빛깔에 대해서와 같음이다. 다섯째는 변하여 무너뜨림에 능한 작용[變壞能作]이니, 불 따위가 익히는 것 따위에 대해서와 같음이다.
- 017_0401_a_12L十能作者:一生起能作,如眼等於眼識等。二安住能作,如四食於有情。三任持能作,謂能任持,如器世閒於有情世閒。四照了能作,如光明於諸色。五變壞能作,如火等於所熟等。
- 여섯째는 나누어 여의게 함에 능한 작용[分離能作]이니, 낫 따위가 베지는 것 따위에 대해서와 같음이다. 일곱째는 바꾸어 변함에 능한 작용[轉變能作]이니, 금공[金師]들이 금 따위를 바꾸어서 가락지와 팔찌를 만드는 것과 같음이다. 여덟째 믿고 알음에 능한 작용[信解能作]이니, 연기 따위가 볼 따위에 대해서와 같음이다. 아홉째는 나타내 알게 함에 능한 작용[顯了能作]이니, 인(因)이 종(宗)에 대해서와 같음이다. 열째는 증득함에 이름의 능한 작용[至得作用]이니, 거룩한 도[聖道] 따위가 열반 등에 대해서와 같은 것이다.
- 017_0401_a_17L六分離能作,如鐮等於所斷等。七轉變能作,如金師等轉變金等成鐶釧等。八信解能作,如煙等於火等。九顯了能作,如因於宗。十至得能作,如聖道等於涅槃等。
- 이와 같은 뜻에 의지하는지라, 게송으로 말한다.
- 依如是義,故說頌言:
-
능한 작용에 열 가지가 있나니
생김[生]과 머무름[住]과 지님[持]과 비춤[照]과
변함[變]과 분리함[分離]과 바꾸어짐[轉變]과
믿고 알음[信解]과 나타냄[顯]과 증득함에 이름[至得]이다 -
017_0401_a_22L能作有十種,
謂生住持照,
變分離轉變,
信解顯至得。
-
017_0401_b_01L알음[識]의 원인과 먹기[食]와 땅[地]과
등불[燈]과 불[火]과 낫[鎌]의 교묘함과
연기[烟]의 원인과 거룩한 도[道] 따위가
알음[識] 등에 있어서 짓는 바와 같으니라 -
017_0401_b_01L如識因食地,
燈火鐮工巧,
煙因聖道等,
於識等所作。
- 착함 따위에 있어서의 장애도 역시 그러한 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내서 일으킴에 장애[生起障]이니, 그 착함[善]에 있어서는 모든 착한 법으로서 내서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편안히 머무름에 장애[安住障]이니, 보리에서는 큰 보리[大菩提]로서 움직알 수 없게 하기 때문이요, 셋째는 부지하여 줌에 장애[任持障]이니, 섭수(攝受)에서는 보리 마음으로써 잘 부지하여 주기 때문이요, 넷째는 비추어 알게 함에 장애[照了障]이니 지혜의 있음에서는 지혜 있는 성품으로써 비추어 앍 하여야 하기 때문이요, 다섯째는 변하여 무너뜨림에 장애[變壞障]이니, 어지러움이 없음에서는 헷갈려 어지러움[迷亂]을 바꾸어 없애는 것을 변하여 무너뜨림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 017_0401_b_02L於善等障,應知亦然。一生起障,謂於其善,以諸善法應生起故。二安住障,謂於菩提,以大菩提不可動故。三任持障,謂於攝受,以菩提心能任持故。四照了障,謂於有慧,以有慧性應照了故。五變壞障,謂於無亂,轉滅迷亂名變壞故。
- 여섯째는 나누어 여의게 함에 장애[分離障]이니, 장애 없음에 있어서는 이 장애에서 얽매임을 여의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바꾸어 변함에 장애[轉變障]이니, 회향(廻向)에서는 보리 마음으로써 모양을 바꾸어 변하게 하기 때문이요, 여덟째는 믿고 알음에 장애[信解障]이니, 두려워하지 아니함에서는 믿고 알음이 없는 이가 두려워함이 있기 때문이요, 아홉째는 나타내 알게 함에 장애[顯了障]이니, 아껴하지 아니함에서는 법에 대하여 아껴함이 없는 이라야 다른 이를 위하여 나타내 알게 하기 때문이요, 열째는 증득한 데 이름에 장애[至得障]이니, 자재함에 있어서는 이것이 바로 자재함을 얻을 수 있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 017_0401_b_09L六分離障,謂於無障,此於障離繫故。七轉變障,謂於迴向,以菩提心轉變相故。八信解障,謂於不怖,無信解者有怖畏故。九現了障,謂於不慳,於法無慳者,爲他顯了故。十至得障,謂於自在此是能得自在相故。
-
장애되는바 열 가지 법의 차례의 뜻[所障十法次第義]이라고 함은, 위없는 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하려 하면 훌륭한 착한 뿌리[善根]을 먼저 내서 일으켜야 하고, 훌륭한 착한 뿌리의 힘에 부지하기 때문에 반드시 위없는 보리에 편안히 머무를 수 있다. 착한 뿌리를 더욱 자라게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큰 보리 마음을 일으켜야 하나니, 이 보리 마음은 보살 성품을 위하여 의지하는 바가 된다. 이와 같은 보살은 이미 큰 보리 마음을 일으켰음과 훌륭한 착한 뿌리 힘을 지니게 됨으로 말미암아 모든 어지러운 뒤바뀜을 끊고 어지러운 뒤바뀜이 없음[無亂倒]을 일으키나니, 견도위(見道位) 중에는 어지러운 뒤바뀜이 없기 때문이다. - 017_0401_b_14L所障十法次第義者,謂有欲證無上菩提,於勝善根先應生起,勝善根力所任持故,必得安住無上菩提。爲令善根得增長故,次應發起大菩提心,此菩提心與菩薩性爲所依止。如是菩薩由已發起大菩提心及勝善根力所持故,斷諸亂倒起無亂倒。由見道中無亂倒故。
- 017_0401_c_01L다음에는 수도위(修道位)에 있어서 온갖 장애를 끊는다. 이미 장애를 끊고 나면 모든 착한 뿌리를 지녀서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에 회향하며, 회향하는 힘에 부지함으로 말미암아 깊고 넓은 법에 대하여 두려워함이 없어진다. 이미 두려움이 없어진지라, 저 법에 있어서 뛰어난 공덕을 보고서 널리 다른 이들을 위하여 펴서 말하고 열어 보일 수 있다.
- 017_0401_b_22L次於修道斷一切障。旣斷障已,持諸善根迴向無上正等菩提。由迴向力所任持故,於深廣法便無怖畏。旣無怖畏,便於彼法見勝功德,能廣爲他宣說開示。
-
보살은 이와 같은 가지가지 공덕의 힘을 지녔기 때문에 빨리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보리를 증득하고 온갖 법에 있어서 모두 자재함을 얻나니, 이것을 착함 따위의 열 가지 뜻의 차례라고 한다.
비록 착함 따위 법이 곧 이는 각분(覺分)과 바라밀다(波羅蜜多)와 모든 자리[諸地]의 공덕이라 손치더라도 모든 것[總]과 따로의 것[別]이 다르나니, 이제 저 보리분(菩提分) 따위의 모든 장애의 차별을 나타내어야겠다.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1_c_03L菩薩如是種種功德力所持故,疾證無上正等菩提,於一切法皆得自在,是名善等十義次第。雖善等法卽是覺分波羅蜜多諸地功德,而摠別異,今應顯彼菩提分等諸障差別。頌曰:
-
각분와 건넘[度]과 자리[地]에서는
따로[別]의 장애가 있는 줄 알지니라 -
017_0401_c_08L於覺分度地,
有別障應知。
- ≪논≫ 다시 깨달음의 갈래와 바라밀다와 모든 자리의 공덕에 있어서는 저마다 따로따로의 장애가 있다. 보리분(菩提分: 覺分)에 따로의 장애가 있다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1_c_09L論曰:復於覺分波羅蜜多諸地功德,各有別障。於菩提分有別障者,頌曰:
-
일에 있어 잘하고 교묘하지 않음과
게으름과 선정에 둘을 줄게 함[定減二]과
심지 아니함과 파리하고 열등한 성품[嬴劣性]과
소견[見]과 거칠고 무거움[麤重]과의 허물이다 -
017_0401_c_11L於事不善巧,
懈怠定減二,
不植羸劣性,
見麤重過失。
- ≪논≫ 4념주(念住)에서는 모든 일[事]에 있어 잘하고 교묘하지 않는 장애[不善巧障]가 있으며, 4정단(正斷)에서는 게으름의 장애[懈怠障]가 있으며, 4신족(神足)에서는 사마아디[三摩地]의 두 가지 일을 줄게 하는 장애[減二事障]가 있다. 첫째는 욕근심관(欲勤心觀)을 원만히 함에 따라서 하나를 줄게 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여덟 가지 끊음의 행[八斷行]을 닦고 익힘에 따라서 하나를 줄게 하기 때문이다.
- 017_0401_c_13L論曰:於四念住有於諸事不善巧障。於四正斷有懈怠障。於四神足有三摩地減二事障,一於圓滿欲勤心觀隨減一故、二於修習八斷行中隨減一故。
- 5근(根)에서는 순해탈분(順解脫分)을 원만하게 하는 훌륭한 착한 뿌리를 심지 아니하는 장애가 있음이요, 5력(力)에서는 파리하고 열등한 성품의 장애가 있나니, 곧 5근이 장애에 뒤섞여짐으로 말미암아 파리하고 열등한 성품이 있음이요, 7등각지(等覺支)에서는 소견에 대한 허물의 장애가 있나니, 이것은 바로 견도위(見道位)에서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요, 여덟 가지 거룩한 도 갈래[八聖道支]에서는 거칠고 무거움에 대한 허물의 장애가 있나니, 이것은 바로 수도위(修道位)에서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다.
- 017_0401_c_18L於五根有不植圓滿順解脫分勝善根障。於五力有羸劣性障,謂卽五根由障所雜有羸劣性。於七等覺支有見過失障,此是見道所顯示故。於八聖道支有麤重過失障,此是修道所顯示故。
- 저 언덕에 이름[到彼岸]에 있어서 따로 장애가 있다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 於到彼岸有別障者,頌曰:
-
017_0402_a_01L부귀(富貴)와 착한 갈래[善趣]
모든 유정들을 버리지 아니함과
허물[失]과 덕(德)에 있어 줄어짐과 불음[減增]과
나아가 들게 함[趣入]과 해탈을 장애함과 -
017_0401_c_23L障富貴善趣,
不捨諸有情,
於失德減增,
令趣入解脫。
-
보시[施] 따위의 모든 선행과
그지없음[無盡]과 끊임없음[無間]과
할 일을 잘 결정함[所作善決定]과
법을 수용하여 성숙케 함을 장애함이다 -
017_0402_a_02L障施等諸善,
無盡亦無閒,
所作善決定,
受用法成熟。
- ≪논≫ 이것은 열 가지 바라밀다[十種波羅蜜多]로서 얻는바 결과의 장애[所得果障]를 설명함으로써 열 가지 바라밀다의 제 성품의 장애[自性之障]를 나타낸다.
- 017_0402_a_03L論曰:此說十種波羅蜜多所得果障,以顯十種波羅蜜多自性之障。
- 보시(布施) 바라밀다에서는 부귀하고 자재함의 장애를 말함이요, 깨끗한 계율[淨戒] 바라밀다에서는 착한 갈래의 장애를 말함이요, 욕을 참는[安忍] 바라밀다에서는 유정을 버리지 않는 것의 장애를 함이요, 힘써 나아가는[精進] 바라밀다에서는 허물을 줄이고 공덕을 불리는 것의 장애를 말함이요, 디야아나[靜慮] 바라밀다에서는 교화할 이로 하여금 법에 나아가 들게 함의 장애를 말함이요, 반야(般若) 바라밀다에서는 해탈의 장애를 말한다.
- 017_0402_a_05L謂於布施波羅蜜多說富貴自在障;於淨戒波羅蜜多說善趣障;於安忍波羅蜜多說不捨有情障;於精進波羅蜜多說減過失增功德障;於靜慮波羅蜜多說令所化趣入法障;於般若波羅蜜多說解脫障。
- 방편의 교묘한[方便善巧] 바라밀다에서는 보시 따위 선행의 다함이 없음의 장애를 말하나니, 이로 말미암아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여 보시 따위의 선행으로 하여금 다함이 없게 하기 때문이다. 소원[願] 바라밀다에서는 온갖 생(生) 동안에 선행이 끊임없이 바꾸어짐의 장애이니, 크게 소원하는 힘의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착한 법이 생(生)에 따르기 때문이다. 힘[力] 바라밀다에서는 할 일을 잘 결정하게 됨의 장애를 말하나니, 생각하여 선택하는 힘[思擇力]과 닦아 익히는 힘으로 말미암아 그 장애를 조복할 수 있고 그것에게 굴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智] 바라밀다에서는 자기와 다른 이가 법을 수용하여 성숙시킴의 장애를 말하나니, 말을 들은 대로 하면서 뜻을 깨닫지 않기 때문이다.
- 017_0402_a_11L於方便善巧波羅蜜多說施等善無窮盡障,由此迴向無上菩提,令施等善無窮盡故;於願波羅蜜多說一切生中善無閒轉障,由大願力攝受能順善法生故;於力波羅蜜多說所作善得決定障,由思擇力及修習力能伏彼障,非彼伏故;於智波羅蜜多說自他受用法成熟障,不如聞言而覺義故。
- 10지(地)의 공덕에 있어서 따로 장애가 있다 함을 게송으로 말한다.
- 017_0402_a_19L於地功德有別障者,頌曰:
-
두루한 행[徧行]과 가장 훌륭함[最勝]과
훌륭한 종류[勝流]와 포섭함이 없음[無攝]과
서로 잇달아서 차별이 없음[相續無差別]과
섞여 더러움[雜染]도 맑고 깨끗함[淸淨]도 없음이며 -
017_0402_a_20L遍行與最勝,
勝流及無攝,
相續無差別,
無雜染淸淨。
-
가지가지 법의 차별이 없음[種種法無別]과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不增不減]과
아울러 분별함이 없는 따위의
네 가지 자재함의 의지[四自在依]의 이치이니라 -
017_0402_a_22L種種法無別,
及不增不減,
幷無分別等,
四自在依義。
-
이 열 가지 법계[十法界]에서는
물들지 아니하는 무명[無染無明] 이것이
10지의 공덕을 장애함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열 가지 장애[十障]라고 하느니라 -
017_0402_a_23L於斯十法界,
有不染無明,
障十地功德,
故說爲十障。
- 017_0402_b_01L≪논≫ 두루한 행[徧行] 등의 열 가지 법계 중에는 물들지 않는 무지[不染無知]가 10지(地)의 공덕을 장애함이 있나니, 다음과 같이 세운 것이 10지의 장애가 된다.
- 017_0402_b_01L論曰:於遍行等十法界中有不染無知障,十地功德如次建立爲十地障。
-
초지(初地) 안의 증득하는바 법계[所證法界]를 두루한 행의 이치[徧行義]라고 한다. 이를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다른 이의 평등한 법의 성품을 증득하게 된다.
제2지 안의 증득하는바 법계를 가장 훌륭함의 이치[最勝義]라고 한다. 이를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생각하기를, ‘이 때문에 나는 이제 같이 벗어나는 온갖 행상(行相)에 대하여 두루 닦고 다스려야 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부지런히 닦아서 서로 응하게 벗어남[勤修相應出離]이 된다. - 017_0402_b_03L謂初地中所證法界名遍行義,由通達此,證得自他平等法性。第二地中所證法界名最勝義,由通達此,作是思惟:是故我今於同出離一切行相應遍修治,是爲勤修相應出離。
-
제3지 안의 증득하는바 법계를 훌륭한 종류의 이치[勝流義]라고 한다. 이를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듣게 되는 법은 이것이야말로 깨끗한 법계[淨法界]의 가장 훌륭함의 같은 종류[最勝等流]인 줄 알며, 이 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설령 수량이 3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만큼 많은 불구덩이가 있다 하여도 몸을 던져 가며 취하면서도 어렵다고 여기지 않게 된다.
제4지 안의 증득하는바 법계를 포섭함이 없음의 이치[無攝義]라고 한다. 이를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법의 사량[法愛]까지도 모두가 바꾸어 없어지게 된다. - 017_0402_b_08L第三地中所證法界名勝流義,由通達此,知所聞法是淨法界最勝等流,爲求此法,設有火坑量等三千大千世界,投身而取不以爲難。第四地中所證法界名無攝義,由通達此,乃至法愛亦皆轉滅。
-
제5지 안의 증득하는바 법계를 서로 잇달아서 차별이 없음이 이치[相續無差別義]라고 한다. 이를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열 가지의 평등함에 나아가려는 깨끗한 마음[意樂平等淨心]을 얻게 된다.
제6지 안의 증득하는바 법계를 섞어 더러움도 없고 맑고 깨끗함도 없는 이치[無雜染無淸淨義]라고 한다. 이를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인연의 일어나는 법[緣起法]의 더러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는 것을 알게 된다. - 017_0402_b_14L第五地中所證法界名爲相續無差別義,由通達此,得十意樂平等淨心。第六地中所證法界名無雜染無淸淨義,由通達此,知緣起法無染無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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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지 안의 증득하는바 법계를 가지가지 법의 차별이 없음의 이치[種種法無差別義]라고 한다. 이를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법의 모양 없음[無相]을 알며 계경(契經) 등의 갖가지 법 모양 안에 빠지지 않게 된다.
제8지 안의 증득하는바 법계를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의 이치[不增不減義]라고 한다. 이를 통달함으로 말미암아 생멸없는 법의 지혜[無生法忍]를 원만하게 증득하며, 모든 맑고 깨끗함과 섞여 더러움과의 법안에서 한 가지 법도 늘거나 줄지를 아니한다. - 017_0402_b_18L第七地中所證法界名種種法無差別義,由通達此,知法無相,不行契經等種種法相中。第八地中所證法界名不增不減義,由通達此,圓滿證得無生法忍,於諸淸淨雜染法中不見一法有增有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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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402_c_01L네 가지 자재함이 있나니, 첫째는 분별함이 없음이 자재함[無分別自在]이요, 둘째는 깨끗한 국토가 자재한[淨土自在]이요, 셋째는 지혜가 자재함[智自在]이요, 넷째는 업이 자재함[業自在]이다. 법계는 이 네 가지의 의지할 바[所依]가 되는지라, 네 가지 자재함의 의지할 바 이지[四自在所依止義]라고 한다.
제8지 안에서는 처음과 두 번째의 자재가 의지하는 이치를 통달하며, 제9지 안에서도 역시 지혜가 자재함의 이치에 통달한다. 걸림이 없는 알음[無碍解]을 원만하게 증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10지 안에서는 또 업이 자재함의 이치에도 통달하나니, 하고 싶어 함에 따라서 가지가지로 유정들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일을 변화로 짓게 되기 때문이다. - 017_0402_b_23L有四自在:一無分別自在、二淨土自在、三智自在、四業自在。法界爲此四種所依,名四自在所依止義。第八地中唯能通達初二自在所依止義。第九地中亦能通達智自在所依義,圓滿證得無㝵解故。第十地中復能通達業自在所依義,隨欲化作種種利樂有情事故。
- 다시 간략하게 게송으로 말한다.
- 復略頌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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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든 번뇌장(煩惱障)과
모든 소지장(所知障)을 설명하였나니
이 두 가지가 다하였기 때문에
온갖 장애[一切障]는 해탈되었다 하리라 -
017_0402_c_08L已說諸煩惱,
及諸所知障,
許此二盡故,
一切障解脫。
- ≪논≫ 이 두 가지는 온갖 장애를 포섭하였기 때문에 이것이 다하였을 적에는 온갖 것은 해탈된다고 하리라.
- 017_0402_c_10L論曰:由此二種攝一切障故,許此盡時一切障解脫。
- 앞의 장애의 온 뜻[總義]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첫째는 넓고 큼의 장애[廣大障]이니, 전체 부분의 장애[具分障]를 말함이요, 둘째는 좁고 작음의 장애[狹小障]이니, 일 부분의 장애[一分障]를 말함이요, 셋째는 가행의 장애[加行障]이니, 더욱 왕성함의 장애[增盛障]를 말함이요, 넷째는 증득함에 이름의 장애[至得障]이니, 평등의 장애[平等障]를 말함이요, 다섯째는 아주 훌륭함의 장애[隨勝障]이니, 나고 죽음을 취하거나 버림의 장애[取捨生死障]를 말함이요, 여섯째는 바른 가가행[正加行障]이니, 아홉 가지 번뇌의 장애[九煩惱障]를 말함이요, 일곱째는 원인의 장애[因障]이니, 착함 따위의 열 가지 능한 작용에 대한 장애[十能作障]를 말함이요, 여덟째는 진실함에 듦의 장애[入眞實障]이니, 각분의 장애[覺分障]를 말함이요, 아홉째는 위없는 깨끗함의 장애[無上淨障]를 말함이요, 열째는 이의 차별에 나아감의 장애[差別趣障]이니, 십지의 장애[十地障]를 말함이요, 열한째는 포섭의 장애[攝障]이니, 요약하면 두 가지 장애[二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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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_0402_c_12L前障摠義有十一種:一廣大障,謂具分障。二狹小障,謂一分障。三加行障,謂增盛障。四至得障,謂平等障。五殊勝障,謂取捨生死障。六正加行障,謂九煩惱障。七因障,謂於善等十能作障。八入眞實障,謂覺分障。九無上淨障,謂到彼岸障。十此差別趣障,謂十地障。十一攝障,謂略二障。
辯中邊論卷上
癸卯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