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672_T_001
- 019_0519_b_01L불설일체유섭수인경(佛說一切流攝守因經)
- 019_0519_b_01L佛說一切流攝守因經 容
- 후한(後漢) 안식국(安息國) 삼장 안세고(安世高) 한역
- 019_0519_b_02L後漢安息國三藏安世高,譯
- 이와 같이 들었다.
- 019_0519_b_03L聞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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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류국(拘留國)의 모여서 법을 생각하는 곳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을 부르시자 비구들은 ‘예’ 하고 대답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부처님은 곧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지혜로운 자며, 보는 자인 비구는 번뇌[流]1)를 끊게 되고, 지혜롭지 못한 자와 보지 못하는 자는 번뇌를 끊지 못한다.
무엇이 비구로서 지혜로운 자와 보는 자는 번뇌를 다할 수 있고, 지혜롭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는 번뇌를 다하지 못하는 것인가. 오직 근본을 관찰하는 일과 근본을 관찰하지 못하는 일 때문이다.
근본을 관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欲流]이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욕심은 더욱 생겨서 끝이 없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癡流]가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존재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게 된다. 어리석은 비구와 무식한 세간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을 보지도 않고,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법을 듣지도 않으며, 또한 지혜로운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지도 않고, 또한 지혜로운 사람에게 다라 분별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곧 근본이 아닌 생각을 가지게 되어 아직 생기지 않은 번뇌를 곧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번뇌를 더욱 더하게 하여 끝이 없게 하여 아직 생기지 않은 존재의 번뇌와 어리석음이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존재와 어리석음을 더욱 더하게 하여 끝이 없게 된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함으로써,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곧 생각하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하여야 할 법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을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곧 탐애의 번뇌[愛流]가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나지 않게 되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나지 않는다. - 019_0519_b_04L一時,佛在拘留國留國聚會法議思惟。是時,佛告比丘:“比丘!”應“唯然。”比丘便從佛受敎。佛便說是:“智者見者,比丘!爲得流盡,不智者不見者流不得盡。何等,比丘!智者見者令流得盡,不智不見者流不得盡?但爲本觀非本觀。非本觀者,未有欲便有欲生,已生欲,欲便增生不致;未生有流亦癡流便生,已生有亦癡便增多不致。癡者,比丘!不聞者,世閒人,不見慧者,亦不從慧人聞法,亦不從慧人受敎誡,亦不從慧人分別解,便得非本念。令未生流便生,已生流令增饒不致,未生有亦癡便生,已生有亦癡便增饒不致。以不知不解,如有令不可念法便念,可應念法者便不念。以應念法不念,不應念法者便念,便愛流生,已愛流生便增多不致,未生愛流亦癡流便生,已生愛流亦癡流便增多不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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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19_c_01L법을 들은 비구와 도덕이 있는 제자는 지혜로운 사람을 봄으로써 지혜로운 사람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지혜로운 사람을 좇아 분별하고 이해하여 곧 이와 같이 안다.
‘근본이 아닌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가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생기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더욱 많아져 끝이 없게 된다. 그러나 근본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능히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욕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생기지 않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를 능히 버린다.’
만일 그런 줄을 알면 그는 곧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곧 생각하나니, 생각하지 말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여야 할 법은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는 곧 버리며, 아직 생기지 않은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생긴 탐애의 번뇌와 어리석음의 번뇌는 곧 버리게 된다. - 019_0519_c_01L聞者,比丘!道德弟子,以見慧者,以從慧者受敎誡,亦從慧者分別解,便是如有知。非本念者,未生愛流便生,已生愛流便增多不致,未生愛流亦癡流便生,已生愛流亦癡流便增多不致。本念者,未生愛流不生,已生愛流能捨,未生愛流亦癡流不生,已生愛流亦癡流能捨。若是如有知便所法,不應念便不念,所應念法便念。以不應念法不念,應念法者念,令未生愛流不生,已生愛流便捨解,未生愛流亦癡流不生,已生愛流亦癡流便捨解。
- 또한 어떤 비구는 일곱 가지 번뇌 때문에 번민하고 흥분하며 근심한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비구는 번뇌가 봄으로써 끊어지고[見斷], 거둠으로써 끊어지고[攝斷], 피함으로써 끊어지고[避斷], 씀으로써 끊어지고[更斷], 참음으로써 끊어지고[忍斷], 깨우침으로써 끊어지고[曉斷], 생각함으로써 끊어진다[念斷].
- 019_0519_c_13L亦有比丘爲七流,從是惱生、從是熱、從是憂。何等爲七?有,比丘!有流從見斷,有流從攝斷,有流從避斷,有流從更斷,有流從忍斷,有流從曉斷,有流從行念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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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0_a_01L어떤 것이 비구가 번뇌를 봄으로써 끊는 것인가? 이것은 법을 들은 비구와 어리석고 들은 것이 없는 세간 사람으로서, 어진 이를 보지도 못하였고 어진 이로부터 깨침을 받지 못하였고, 또한 어진 이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한 이가 이와 같이 이러한 근본이 아닌 생각을 한다.
‘전생에 내가 있었던가, 전생에 나는 없었던가, 전생에 나는 무엇이던가, 전생에 나는 어떠했던가. 미래세에도 내가 있을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없을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어떠할 것인가, 미래세에는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스스로의 몸에 의심을 일으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사람은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은 반드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따진다.
이러한 근본이 아닌 생각을 함으로써 여섯 곳의 의심이 생겨 갖가지 번뇌가 생기니, 장차 이 몸은 있는가, 장차 이 몸은 없는가 하는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며, 이것이 의심이 되어 스스로 몸을 헤아려 몸이라는 견해를 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심이 생겨 스스로 이 몸은 곧 내 몸이라고 헤아리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몸에 대해서 몸이라는 소견이 생기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몸이 아닌 것을 몸이라고 보고, 이 의심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이 내 몸이라는 헤아림이 생긴다. 그리하여 그의 깨닫고 말하고 짓고 느끼고 행하고 일으키는 모든 곳에서 짓고 행하는 바의 착하고 악한 것은 다 죄를 받나니, 생기지 않는 것과 생기는 것도 또한 모두 그러하다. - 019_0519_c_17L何等,比丘!流從見斷?是聞,比丘!癡,不聞者,世閒人,不見賢者,亦不從賢者解,亦不從賢者解敎誡,令如是非本念:前世我爲有不?前世我爲無有不?前世我爲何等?前世我爲云何?未來世我當有不?未來世我當無有不?未來世我當云何?未來世我云何爲?自身爭疑有何等有?是人從何來?當復往至何許?是要當云何?以如是非本念者,爲六處疑生、異異結生。莊有是身?莊無有是身?是爲疑生,生自計身身見。如是疑生,生自計是身、是我身;爲是疑生身、生身相見,爲是疑生,生非身見是身,爲是疑生,生計是爲是我身。所覺所說、所作所更、所擧所起,彼彼處處,所作所行善惡受罪,止不生亦生亦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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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구는 번뇌를 번뇌하게 하고 의심을 의심하게 하며, 나쁜 의심과 바르지 않은 견해와, 들뜨는 의심과 번뇌의 의심이 서로 달라붙는다. 비구들이여, 무식한 세간 사람은 이로 말미암아 괴로움과 그 원인이 있고 이로 말미암아 남[生]을 존재한다.
그러나 도를 들은 비구와 제자는 이 괴로움의 진실을 알고 그 원인의 진실을 알며 그 멸함의 진실을 알고 그 괴로움을 멸하게 하는 행의 진실을 안다. 이렇게 안 뒤에는 이렇게 보아 곧 세 가지 번뇌의 결박을 다 끊으니, 첫째는 몸에 대한 번뇌요, 둘째는 의심의 번뇌며, 셋째는 행원(行願)의 번뇌다. 이 세 가지 번뇌가 다함으로 말미암아 곧 도(道)를 따라 첫 번째 과보인 수다원과를 얻고 다시는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세상을 건너게 될 것이며, 인간과 천상에 있어서는 7세(世)를 넘지 않고 7세를 지낸 뒤에는 곧 괴로움을 모두 마치게 된다.
만일 비구로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자는 번민과 흥분과 근심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생기는데, 그 번뇌를 몸으로써 끊는다면, 이 번뇌의 번민과 흥분과 근심은 다시는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몸으로써 번뇌를 끊는 것이라 한다. - 019_0520_a_11L是,比丘!結令結、疑令疑,惡疑不正見,跳疑結疑相著,比丘!不聞者世閒人,從是苦習有,從是生致。聞者,比丘!道弟子,是苦如有知,是習如有知,是盡滅如有知,是苦滅行令滅如有知。如是知已,如是見,便三縛結畢盡:一者身結,二者疑結,三者行願結。以是三結盡,便隨道得一,不復墮惡處,當得度世。在人閒天上,不過七世,已更七世便畢苦。若,比丘!不知者、不見者所生流,從惱熱憂令從見者斷,爲是流惱熱憂不復有,是名爲,比丘!從見流斷。
- 019_0520_b_01L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지킴[守]으로써 끊는다고 하는가?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눈으로 색(色)을 보되 안근(眼根)을 거두어 스스로 지키고, 오로관(惡露觀)1)을 행하여 본래 생겨난 곳을 생각한다. 비구가 안근을 거두어 지키지 않으면, 오로관을 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본래 생겨난 번뇌를 생각함으로써 번뇌하고 흥분하며 근심한다. 그러나 안근을 거두어 지킴으로써 멈추어서 오로(惡露)의 근본을 관찰하면 곧 번뇌에 대한 번민이나 흥분, 근심은 없어진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지킴[守]으로써 끊는 것이라고 한다. 귀ㆍ코ㆍ입ㆍ몸ㆍ뜻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 019_0520_b_01L何等爲,比丘!流從守斷?是聞比丘行者,眼見色,攝眼根自守,行惡露觀;念本從所生。比丘!眼根不守攝,行令從惡露觀,從念本所生流惱熱憂,以眼根守攝止,便從惡露見本觀,便所流惱熱憂便不有,是爲,比丘!流從守斷。耳、鼻、口、身、意亦爾。
- 어떤 것이 비구가 번뇌를 피함[避]으로써 끊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응하는 바를 따라 스스로 지켜, 사나운 코끼리를 피하고 사나운 말ㆍ사나운 소ㆍ사나운 개ㆍ사나운 뱀ㆍ깊은 구덩이ㆍ납가새1)ㆍ개울ㆍ위험ㆍ언덕과 못ㆍ산ㆍ편하지 않은 곳ㆍ강ㆍ깊은 시내ㆍ악지식ㆍ나쁜 동무ㆍ나쁜 구호처ㆍ나쁜 장소ㆍ나쁜 곳ㆍ나쁜 침구를 피한다. 어진 이로부터 의심이 생긴다면 비구는 마땅히 이런 것을 피해야 하나니, 위에서 말한 것을 버리지 않으면 생겨난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을 다시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피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 019_0520_b_07L何等爲,比丘!流從避斷?是聞比丘行者,所應從自守,避弊象、避弊馬、避弊牛、避弊狗、避弊虺、避深坑、避蒺蔾、避溪、避危、避陂池、避山、避不安、避河、避深㵎、避惡知識、避惡伴、避惡求、避惡受、避惡處、避惡臥具所臥具。從賢者疑生,如是應,比丘!當避,如是上說不離,所生流惱熱憂已得避,令是流惱熱憂不復有,是名爲,比丘!流從避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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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0_c_01L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씀[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있는 비구 수행자는 옷을 입되 꾸미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지 않음으로써 입으며, 다만 그것은 이 몸에서 모기ㆍ등에ㆍ바람을 막거나 강한 햇볕이나 독(毒)을 물리치기 위하여 입으며, 서로 접촉할 때 어지러운 뜻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이다.
또 밥을 먹되 먹는 일을 즐겨 하거나 살 찌우기 위해서 먹거나 겉모습을 단정하게 하려고 먹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몸을 부지하여 도(道)를 행하기 위해서만 먹어야 하며, 먹음으로써 통증을 없애고 새로운 통증은 다시 일어나지 않으며, 병이 나음으로써 죄를 짓지 않게 하고 힘을 얻어 안온하게 수행할 수 있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또 와구(臥具)나 상과 자리는 꾸미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지 말아야 하며, 다만 그것을 씀으로써 이 몸의 심한 괴로움과 피로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또 필요한 곳에 약을 쓰되 꾸미지 않고 즐겨 하지 않으며 탐하지 않고 장식하려고 쓰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으로써 이 몸을 큰 아픔과 심한 고통과 불쾌한 생각에서 구원하고 풀어 주기 위해 약을 쓸 뿐이며, 만일 비구가 약을 쓰지 않으면 그로 말미암아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이 생겨나지만 그 약을 쓰면 번뇌와 번민과 흥분ㆍ근심이 멈추고 다시는 자라나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씀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 019_0520_b_16L何等爲,比丘!流從用斷?是聞比丘行者,從所用被服,不綺故、不樂故、不貪故、不嚴事故,但爲令是身卻蚊、蚋、風、日曝、含毒相更從,亂意生亦自守,所食不樂故、不貪故、不健故、不端正故,但令是身得住行道故,供養令斷故。痛痒、新痛痒不復起,令從是差不隨罪,得力安隱行,令從所更臥具牀席,不綺故、不樂故、不貪故、不嚴事故、但令從是是身以有用劇苦疲惓令得止,亦令從所樂用、樂所用,不綺故、不樂故、不貪故、不嚴事故,但爲令從是是身以生有痛惱大劇甚痛不可意從斷,令救令解止,若比丘從不用故,生流惱熱憂以從用得止,爲所流惱熱憂不復有,是名爲,諸比丘!流從以更得斷。
-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참음[忍]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들은 것이 많은 비구 수행자는 정진하는 행으로써 나쁜 법을 끊게 하고 청정한 법행(法行)을 받아 담력(膽力)을 더욱 내고, 견고한 정진 방편으로 청정한 법을 버리지 않아서, 방편으로 이 몸의 살과 뼈와 골수와 지방과 가죽이 마르고 부서지더라도, 오직 정진하여 얻어야 할 것을 얻게 하는 것이다. 담력이 있는 이와 뜻이 견고한 이와 방편으로 정진하는 이는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으면 정진을 중도에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방편을 지닌 수행자 비구는 능히 추위ㆍ더위ㆍ주림ㆍ목마름ㆍ모기ㆍ등에ㆍ바람ㆍ뜨거운 태양을 참으며, 비록 형언하지 못할 말을 듣고 상대가 교만한 마음으로 오더라도 능히 참고 능히 쉬어야 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불쾌감과 지독한 아픔도 능히 그대로 참고 지내야 하는데 만일 비구가 참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도 그대로 지내고 이런 수행으로 지낸다면 다시는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이 생겨나지 않고 그치게 될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번뇌를 참음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 019_0520_c_10L何等爲,比丘!流從忍斷?是聞比丘行者,發精進行令斷惡法,受淸淨法行,增發膽力,堅精進方便,不捨淸淨法。方便聽令是身肌肉骨消乾壞幷髓肪皮,但令所應發精進所得,令得膽者、堅者、精進方便者,所求未得精進,不可中止。便行者比丘,能忍寒熱飢渴、蚊蚋風日曝令止含毒,從聞不可語言憍慢意以來,能忍能暇,以生有含毒痛惱、不可意劇痛能過止。若,比丘!從不忍耐所生流熱惱憂,令從過、令從是行,不復流惱熱憂,令得止,是名爲,比丘!流從忍耐斷。
- 019_0521_a_01L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깨우침[曉]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많은 모든 비구들은 이미 욕심을 내고도 살피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며, 깨우치기를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나게 하고, 이미 성을 내고도 말을 듣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면, 깨우침을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나게 하며, 이미 죽이고 속이고 도둑질할 마음을 내고도 말을 듣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면, 깨우침을 버리고 서로 물리쳐 떠난다. 만일 모든 비구가 깨우침을 따르지 않으면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이 생길 것이요, 깨우침을 따른다면, 곧 번민과 번민ㆍ흥분ㆍ근심이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모든 비구가 번뇌를 깨우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 019_0520_c_23L何等爲比丘流從曉斷?是聞,諸比丘!比丘已生欲,令不聽、不過;捨、曉相、卻離;已生瞋恚,不聽、不過;捨、曉相、卻離;已生殺欺盜,不聽,不過,捨,曉相,卻離。若,諸比丘!不從曉,生流惱熱憂,已從曉不生,便所流惱熱憂令無復有,是名爲,諸比丘!流從曉斷。
- 어떤 것을 비구가 번뇌를 행을 더함으로써 끊는 것이라 하는가? 이 들은 것이 많은 모든 비구는 의각(意覺)으로 생각을 더해 나가는 행이 있어 혼자 앉으며 멈추고 들뜸을 떠나고 악을 여의어 법을 굴려야 한다. 분별각(分別覺)도 그러하고 정진각(精進覺)도 그러하며, 희각(喜覺)도 그러하고 의각(猗覺)도 그러하며 정각(定覺) 또한 그러하고 관각각행(觀却覺行) 또한 그러하다. 만일 모든 비구가 생각을 더해 나가는 행을 하지 않으면 번뇌와 번민ㆍ흥분ㆍ근심이 생겨나고 더해 가는 행을 하면 번뇌와 번민 흥분ㆍ근심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을 모든 비구기 번뇌를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는 것이라 한다.
- 019_0521_a_07L何等爲,比丘!流從增行斷?是聞諸比丘意,比丘意覺有增念行,獨坐止卻猗離惡轉法。分別覺亦如是,精進覺亦如是,喜覺亦如是,猗覺亦如是,定覺亦如是,觀卻覺行亦如是,不聽、不過、捨、曉相、卻。若,諸比丘!不行不增所生流惱熱憂已行增,爲所流惱熱憂不復有,是名爲,諸比丘!流從行增斷。
- 만일 모든 비구가 봄으로써 끊어야 할 번뇌를 봄으로써 끊고, 만일 지켜 거둠으로써 끊어야 할 번뇌를 지켜 거둠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因)이 씀으로써 끊을 것이면 씀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참아 지냄으로써 끊을 것이면 참아 지냄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깨우침으로써 끊을 것이면 깨우침으로써 끊고, 만일 번뇌의 인이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을 것이면 더해 나가는 행으로써 끊어 마쳐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모든 비구가 일체 번뇌를 거두어 지키는 인(因)이라 하나니, 그리하면 이미 세간을 따르는 탐애를 부수고 세간을 건너 결박을 풀어서 출요(出要)를 얻어 반드시 괴로움을 떠날 것이다.”
- 019_0521_a_15L若,諸比丘!所流應從見斷,已從見斷;若所流應從守攝斷,已從守攝斷;若流因從避斷,已從避斷;若流因從用斷,已從用斷;若流因從忍過斷,已從忍過斷;若流因從曉斷,已從曉斷;若流因從行增斷,已從行增斷;是名爲,諸比丘!一切流攝守因,已壞惡愛,從世閒逮得度世,捨縛結,得要離苦。”
- 019_0521_b_01L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이 말씀을 들은 비구들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세간을 건너 마침내 도(道)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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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_0521_b_01L佛說是,從是聞比丘,意受喜行,得度世竟得道。
佛說一切流攝守因經
甲辰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1)류(流)는 흘러 나오는 것, 새어 나오는 것이란 뜻으로서 ‘번뇌’인 누(漏)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누(漏)는 āsava, 즉 흐름이 순조롭지 못하고 거스르는 것으로서, 중생이 본래의 진실한 성품에 거스르게 된 것을 의미한다.
- 1)오로관(惡露觀)이란 우리의 몸은 피ㆍ고름ㆍ똥ㆍ오줌ㆍ땀과 같은 더러운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임을 관찰하는 관법으로서, 부정관(不淨觀)을 뜻한다.
- 1)납가새[蒺蔾]는 매우 억센 가시를 품은 식물 이름인데, 납가새 열매 모양으로 무기를 만들어 적의 진로를 막는 것도 납가새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