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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비바사론 제56권 - 025_0965_c_01L阿毘曇毘婆沙論卷第五十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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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연자 지음
오백나한 풀이
부타발마ㆍ 도태 등 한역
박진효 번역 - 025_0965_c_02L迦旃延子造五百羅漢釋北涼天竺沙門浮陁跋摩共道泰等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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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지품 ② - 025_0965_c_03L智揵度修智品第三之二 問曰:若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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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_0966_a_02L【문】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아라한은 고지(苦智)와 집지(集智)를 눈앞에 드러나도록 일으키는가?
【답】이 5음(陰)이 마치 무거운 짐과 같은 과환법임을 관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구사 존자는 “무색계에 태어나면 선(禪)과 선중간(禪中間)의 공덕을 눈앞에 드러나도록 일으킬 수 없는데 색계 중에 태어나면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다.
【문】이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답】여기에서는 멸법지(滅法智)와 도법지(道法智)를 설한 것이다.
색계에 태어나는 경우 이 지(智)를 일으켜서 색계ㆍ무색계의 결(結)을 끊으며, 가령 번뇌가 끊어지고 나면 다시는 이 지를 일으키지 않는다.
【評】 “색계에 태어나서 법지(法智)를 눈앞에 드러나도록 일으킨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지는 저 색계의 대치(對治)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괴상(壞相)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일부분을 일으킨다. 즉 멸법지와 도법지를 말한다. 어떤 경우에는 일부분을 일으키지 않는다. 즉 고법지(苦法智)와 집법지(集法智)를 말한다.
혹은 일으키는 경우가 있고 혹은 일으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직 욕을 떠나지 못한 경우는 일으키고, 이미 욕을 떠난 경우는 일으키지 않는다.
어떤 때에는 일으키고, 어떤 때에는 일으키지 않는다. 이욕도(離欲道)일 때에는 일으키고 나머지 그 밖의 다른 선근일 때에는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앞에서와 같이 말하는 것이 옳다.
【문】모든 결로서 욕계에 매이는 것인 경우, 저 결은 법지단(法智斷)인가?
【답】어떤 결은 욕계에 매이는 것이면서 그 결은 법지단이 아니다. 나아가 자세하게 4구(句)를 짓는다.
【문】어떤 결이 욕계에 매이는 것이면서 그 결은 법지단이 아닌가?
【답】인으로 끊거나[忍斷], 나머지 지로 끊거나[智斷], 부단(不斷)인 모든 결(結)이다.
인이란 4법인(法忍)이고, 나머지 지란 등지(等智)이며, 부단이란 이미 끊은 것이거나 끊는 방편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다.
【문】어떤 결이 법지단이면서 욕계에 매이는 것이 아닌가?
【답】색계에 매이는 것과 무색계에 매이는 것이면서 법지단인 모든 결이다.
법지는 멸법지와 도법지이니, 색계결과 무색계결을 떠난 것이다.
【문】어떤 결이 욕계에 매이는 것이면서 그 결은 법지단인가?
【답】욕계에 매이는 것이면서 법지단인 모든 결이다.
법지는 4법지로, 욕계의 결을 떠난 것이다.
【문】어떤 결이 욕계에 매이는 것도 아니면서 그 결은 법지단도 아닌가?
【답】색계에 매이는 것ㆍ무색계에 매이는 것이면서 인단(忍斷)이고 나머지 지단(智斷)이고 또한 부단(不斷)인 모든 결이다.
인이란 4비인(比忍)이다. 나머지 지단은 등지단(等智斷)이거나 비지단(比智斷)인 경우이다. 부단은 이미 끊은 것이거나 끊는 방편을 일으키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문】색계ㆍ무색계에 매이는 모든 결의 경우, 그 결은 비지단인가?
【답】비지단인 모든 결의 경우, 그 결은 색계ㆍ무색계에 매이는 것이다.
【문】색계ㆍ무색계에 매이는 결이지만 그 결이 비지단이 아닌 경우도 있는가?
【답】모든 결로서 인단이고 또한 나머지 지단이고 또한 부단인 것이다.
인은 4비인(比忍)이고, 나머지 지는 법지ㆍ등지이다. 부단은 이미 끊은 것이나 끊는 방편을 일으키지 않은 것을 말한다.
【문】견고단(見苦斷)인 모든 결의 경우, 그 결은 고지단(苦智斷)인가?
【답】혹은 견고단이지만 그 결은 고지단이 아닌 경우가 있다. 인단인 모든 결을 말한다. 왜냐하면 저 인(忍)이 이 결의 대치이기 때문이다.
혹은 고지단이지만 견고단이 아닌 결이 있다. 수도단(修道斷)이면서 고지단인 모든 결을 말한다. 왜냐하면 고지는 수도소단(修道所斷)인 결의 대치이기 때문이다.
가령 견고소단(見苦所斷)인 결의 경우와 같이 견도소단(見道所斷)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로 설한다.
【문】무애도(無礙道)로 번뇌를 끊는가, 해탈도(解脫道)로 번뇌를 끊는가?
만약 무애도로 번뇌를 끊는다면 사건도에서 “결에 아홉 가지가 있다. 고법지로 끊는 부류에서부터 수도로 끊는 부류까지이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만약 해탈도로 번뇌를 끊는다면 여기에 있는 문장에서 “어떤 결은 견고단이지만 지단이 아니다. 어떤 결은 고지단이지만 견고단이 아니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답】“무애도로 번뇌를 끊고 해탈도로 끊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자세한 것은 사건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법지단(法智斷)인 모든 결의 경우, 법지로 멸을 증득하는가?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어떤 사람은 “무애도로 결을 끊어서 해탈도를 얻고 해탈득(解脫得)을 작증(作證)한다”고 한다. 이것은 외국 법사가 설한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의 주장을 중지시키고 또한 무애도로 결을 끊어서 해탈득을 얻어서 작증하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만약 “무애도로 결을 끊어서 해탈도를 얻고 해탈득을 작증한다”고 말하면 여기에서 “법지단인 모든 결의 경우 비지로 멸을 작증하는가?”라고 설하는 문장과 어긋나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 “가령 멸법지ㆍ도법지로 비상비비상처의 결(結)을 끊는 경우 비지로 멸을 작증한다”라고 대답해야 되는데, 그와 같이 답하지 않은 것은 무애도로 결을 끊고 또한 해탈득을 증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문】법지단인 모든 결의 경우, 저 결은 법지로 멸을 작증하는가?
【답】법지단인 모든 결의 경우, 저 결은 법지로 멸을 작증한다. 결을 끊은 만큼 그에 따라서 그 만큼의 멸을 작증한다.
【문】법지로 멸을 작증하는 결이지만 그 결이 법지단이 아닌 경우도 있는가?
【답】있다. 인단(忍斷)이고 또한 나머지 지단(智斷)인 모든 결이다.
수다원이 세속도로 사나함과로 나아가는 경우, 한 가지 결에서부터 다섯 가지 결까지를 끊는다.
가령 제6무애도가 법지인 경우 이때에 인소단(忍所斷)인 3계의 견도결(見道結)과 욕계의 수도소단(修道所斷)과 등지소단(等智所斷)인 다섯 가지 결을 작증한다. -=-
사다함이 아나함과로 나아가는 경우, 세속도로 두 가지 결을 끊는다.
가령 제9무애도가 법지인 경우, 이때에 인소단인 3계의 견도결과 욕계의 수도소단과 등지소단인 여덟 가지 결을 작증하여 초선의 욕에서부터 무소유처의 욕까지를 떠난다.
가령 비지와 등지로 비상비비상처의 욕을 떠나고 비지로 여덟 가지 결을 끊는 경우, 제9무애도가 법지이면 이때에 인소단인 3계 견도결과 욕계의 수도소단ㆍ등지소단인 결과 일곱 가지 지위[地] 가운데 있는 비지소단ㆍ등지소단인 결과 비상비비상처의 비지소단인 여덟 가지 결을 작증한다.
이와 같은 등의 결의 법지로 멸을 작증하는 것이다.
【문】비지단(比智斷)인 모든 결의 경우, 그 결은 비지로 멸을 작증하는가?
【답】비지단인 모든 결은 비지로 멸을 작증한다. 결을 끊은 만큼 그에 따라서 그 만큼의 멸을 작증한다.
【문】비지로 멸을 작증하는 결이지만 그 결이 비지단이 아닌 경우도 있는가?
【답】있다. 인단(忍斷)이고 나머지가 지단인 모든 결의 경우, 비지로 멸을 작증한다. 이 경우 법지나 등지로 욕계욕에서부터 무소유처의 욕까지를 떠난다.
가령 법지로 비상비비상처의 한 가지 결에서부터 여덟 가지 결까지를 끊는 경우, 제9무애도가 비지이면 이때에 3계의 견도소단(見道所斷)과 인소단(忍所斷)인 결과 8지(地)의 법지소단ㆍ등지소단인 결과 법지소단인 비상비비상처의 여덟 가지 결을 작증한다.
【문】고지단인 모든 결의 경우, 그 결은 고지(苦智)로 멸(滅)을 작증하는가?
【답】고지단인 모든 결의 경우, 그 결은 고지로 멸을 작증한다. 결을 끊은 만큼 그에 따라서 그만큼의 멸을 작증한다.
【문】고지로 멸을 작증하는 결이지만 그 결이 고지단이 아닌 경우도 있는가?
【답】있다. 인멸(忍滅)이면서 또한 나머지 지멸(智滅)인 모든 결은 고지로 멸을 작증한다.
수다원이 사다함과로 나아가는 경우 집지ㆍ멸지ㆍ도지ㆍ등지로 한 가지 결에서부터 다섯 가지 결까지를 끊는데, 제6무애도가 고지이면 이때에 3계의 견도소단ㆍ인소단인 결과 욕계의 수도소단ㆍ집지소단ㆍ멸지소단ㆍ도지소단ㆍ등지소단인 다섯 가지 결을 작증한다.
사다함이 아나함과로 나아갈 때 집지ㆍ멸지ㆍ도지ㆍ등지로 두 가지 결을 끊는데, 제9무애도가 고지이면 이때에 3계의 견도소단ㆍ인소단인 결과 욕계의 수도소단ㆍ집지소단ㆍ멸지소단ㆍ도지소단ㆍ등지소단인 결을 작증한다.
집지ㆍ멸지ㆍ도지ㆍ등지로 초선의 욕 내지 무소유처의 욕을 떠나고 집지ㆍ멸지ㆍ도지로 비상비비상처의 한 가지에서부터 여덟 가지 결까지를 끊을 때 제9무애도가 고지이면 이때에 3계의 견도소단ㆍ인소단인 결과 여덟 가지 지위의 수도소단ㆍ집지소단ㆍ멸지소단ㆍ도지소단ㆍ등지소단인 결과 비상비비상처의 수도소단ㆍ집지소단ㆍ멸지소단ㆍ도지소단인 여덟 가지 결을 작증한다.
고지의 경우와 같이 도지에 이르기까지 이와 마찬가지로 설한다.
【문】앞의 문(門)에서 설한 것과 이 문에서 설하는 것은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가령 “무애도(無礙道)로 결득(結得)을 끊고 해탈도(解脫道)로 득을 작증(作證)한다”고 하면 앞의 문은 무애도로 짓는 것이고 이 문은 해탈도로 짓는 것이다.
가령 “무애도로 결득도 끊고 또한 해탈득도 작증하지만, 해탈도로는 오직 해탈득만 작증한다”고 하면 앞의 문은 무애도로 결득을 끊어서 해탈득을 작증하는 것이고 이 문은 해탈도로 해탈득을 작증하는 것을 설한 것이다.
가령 결득을 끊어서 해탈득을 작증하는 경우와 같이 과환을 떠나서 공덕을 익히는 것과 이익이 없는 것을 떠나서 이익이 있는 것을 얻는 것과 비천한 것을 버려서 뛰어나고 오묘한 것을 얻는 것과 염애(染愛)를 떠나서 적정의 즐거움을 얻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또 단(斷)은 앞의 문에서 설한 것이고 무위(無爲)를 얻는 것은 이 문에서 설한 것이다.
또 결을 끊고 작증하는 것은 앞의 문에서 설한 것이고, 먼저 결을 끊고 그 뒤에 작증하는 것은 이 문에서 설한 것이다.
이것이 앞의 문과 지금의 문의 차별이다.
안근(眼根)은 몇 가지 지(智)로 아는가? 나아가 무색계의 수도소단(修道所斷)인 무명사(無明使)는 몇 가지 지로 아는가?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어떤 사람은 “경계(境界)는 없고 오직 지(智)만 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지는 없고 오직 경계만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설하는 사람의 주장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이 논을 지었다.
모든 법에 있어서, 만약 포섭[攝]에 대하여 물으면 계(界)를 사유하여 대답해야 하고, 식(識)에 대해서 물으면 입(入)을 사유하여 대답해야 하고, 만약 사(使)에 대해서 물으면 종(種)을 사유하여 대답해야 하고, 만약 지(智)에 대해서 물으면 진리[諦]를 사유하여 대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은 쉽게 나타낼 수 있다.
여기에서 ‘지에 대해서 물으면 진리를 사유하여 대답해야 한다’고 함을 말해보자.
법에 다섯 가지가 있다. 즉 고제ㆍ집제ㆍ멸제ㆍ도제에 포섭되는 법과, 진리에 포섭되지 않는 법이다.
욕계의 고제ㆍ집제는 상응법(相應法)과 불상응법(不相應法)을 포섭한다. 색계ㆍ무색계의 고제ㆍ집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멸제는 불상응법만 포섭하고 도제는 상응법과 불상응법을 포섭한다. 진리에 포섭되지 않는 법은 불상응법을 포섭한다.
욕계의 고제ㆍ집제에 포섭되는 상응법은 7지(智)로 아는데, 비지ㆍ멸지ㆍ도지는 제외된다. 불상응법은 6지로 아는데 비지ㆍ멸지ㆍ도지ㆍ타심지는 제외된다.
색계의 고제ㆍ집제에 포섭되는 상응법은 7지로 아는데 법지ㆍ멸지ㆍ도지는 제외된다. 불상응법은 6지로 아는데 법지ㆍ멸지ㆍ도지ㆍ타심지는 제외된다.
무색계의 고제ㆍ집제에 포섭되는 상응법과 불상응법은 6지로 아는데 법지ㆍ멸지ㆍ도지ㆍ타심지는 제외된다.
멸제에 포섭되는 법은 6지로 아는데 타심지ㆍ고지ㆍ집지ㆍ도지는 제외된다.
도지에 포섭되는 상응법은 7지로 아는데 고지ㆍ집지ㆍ멸지는 제외된다. 불상응법은 6지로 아는데 고지ㆍ집지ㆍ멸지ㆍ타심지는 제외된다.
제(諦)에 포섭되지 않는 법은 1지로 아는데 등지를 말한다.
【문】무엇 때문에 지라고 하는가?
【답】인식되는 것[所知]을 알기96) 때문에 지(智)라고 한다.
【문】무엇 때문에 인식되는 것이라 하는가?
【답】지(智)로 아는 바가 되기 때문에 인식되는 것이라 하는 것이다.
가령 칭하고[稱] 칭해지는 것[所稱], 헤아리고[量] 헤아려지는 것[所量]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헤아림[量]은 지(智)이고, 헤아려지는 것은 인식대상이다.
이것이 약비바사(略毘婆沙)이다.
나머지 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경본(經本)에서 설한 것과 같다. 가령 “무상상(無常想)을 광대하게 수행하면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ㆍ들뜸[掉]ㆍ교만[慢]ㆍ무명을 끊는다”고 설하였다.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이것은 불경에서 설한 것이다. 불경에서 “무상상을 광대하게 수행하면…(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라고 설하였다.
불경에서는 비록 이와 같이 설하기는 했지만 자세하게 분별하지는 않았다. 불경이 이 논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자세하게 분별하고자 이 논을 지은 것이다.
【문】만약 불경이 이 논의 근본이라면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경을 설하셨는가?
【답】게으르고 오만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지 않는 자가 교화를 받아서 부지런히 정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또 후유(後有)를 탐하는 제자로 하여금 다시는 후유를 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세존께서 미륵불이 출세할 때를 말씀하시자 비구들이 ‘내가 미륵불이 출세하는 것을 보면 반열반에 들리라’고 원을 일으켰다.
이에 부처님께서 “그대들이 지금 자산(資産)이 있고 필요한 것이 뜻에 알맞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후에 만약 모든 고통의 핍박을 당하게 되면 모든 유(有)에 대하여 원락(願樂)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무상상(無常想)을 광대하게 수행하여 욕애를 끊는 경우, 이 상(想)은 법지ㆍ고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며, 유각유관(有覺有觀)이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각유관지(有覺有觀地)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근(捨根)과 상응한다고 해야 하니, 저 지위에 사근이 있기 때문이다. 무원(無願)과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니, 괴롭다면 원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욕계에 매이는 것을 반연한다고 말해야 하니, 욕계 5음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색애(色愛)를 끊은 경우, 저 상(想)은 비지ㆍ고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유각유관이다. 미지선ㆍ초선에 속해 있는 것은 혹은 무각유관(無覺有觀)이고 중간선에 있는 것은 혹은 무각무관(無覺無觀)이며, 세 가지 선에 있는 것은 혹은 낙근(樂根)과 상응하기도 한다. 제3선에 있는 것은 혹은 희근과 상응한다. 초선ㆍ제2선에 있는 것은 혹은 사근과 상응한다. 미지선ㆍ중간선ㆍ제4선에 있는 것은 무원(無願)과 상응하는데, 이른바 괴로우면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색계에 매이는 것을 반연한다고 말해야 한다. 색계 5음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무색애를 끊는 경우, 이 상은 비지ㆍ고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한다. 또 유각유관이라고 말해야 한다. 미지선ㆍ초선에 있는 것은 혹은 무각유관이다. 선중간(禪中間)에 있는 것은 혹은 무각무관이다. 3선ㆍ3무색정에 있는 것은 혹은 낙근과 상응한다. 제3선에 있는 것은 혹은 희근과 상응한다. 초선과 2선에 있는 것은 어떤 경우 사근과 상응한다.
미지선ㆍ중간선ㆍ제4선ㆍ3무색정에 있는 것은 무원(無願)과 상응하는데, 이른바 괴로우면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무색계에 매이는 것을 반연한다고 말해야 하니, 무색계 4음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들뜸과 교만과 무명을 끊는 경우, 이 상은 법지와 상응하고 고지와 상응하며 비지와 상응한다고 말해야 한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8성도(聖道)가 모두 결을 끊을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무루상(無漏想)만 말씀하셨는가?
【답】세존께서는 이 가운데에서 성도(聖道)를 상(想)으로 이름지어 설하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어떤 경우에는 상이라는 이름으로 도를 설하신다. 자세한 것은 4무량(無量)을 설한 곳에서 말한 경우와 같다.
【문】무상상(無常想)은 일곱 가지 사(使)를 대치한다.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세 가지를 설했는가?
【답】가령 3계(界)에 있는 사는 5종단(種斷)인데 견(見)과 의(疑)는 비록 3계에 속하기는 하지만 5종단이 아니며, 에사(恚使)는 비록 5종단이긴 하지만 3계에 있지 않다.
또 이 사는 3계에 속해 있으며 또한 견도소단과 수도소단인데 견과 의는 비록 3계에 있지만 수도소단이 아니며, 에(恚)는 견도소단과 수도소단이긴 하지만 3계에 속해 있지 않다.
또 이 사는 3계에 속해 있으면서 범부와 성인이 짓는 것인데, 견과 의는 비록 3계에 속해 있지만 성인이 짓는 것이 아니며, 에사는 비록 범부와 성인이 짓는 것이기는 해도 3계에 속해 있지 않다.
【문】무엇 때문에 세 가지는 애사(愛使)라고 설하고 한 가지는 나머지 사(使)라고 설하는가?
【답】나머지 사(使)도 애사와 같이 설해야 하는데 그와 같이 설하지 않은 것은 여기에 나머지 설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여러 가지 설명으로 문장을 장엄하고자 함이니, 갖가지 설명으로 문장을 장엄하면 문장의 의미가 이해하기 쉽다.
또 두 문(門)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또 이 애(愛)는 매우 거칠고[惡] 과환이 많은 것이므로, 이 과환을 거듭 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자세한 것은 앞의 4제(諦)를 설한 곳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문】무상상(無常想)은 견고소단(見苦所斷)인 사를 대치하는데, 무엇 때문에 일체의 욕애사(欲愛使)를 끊는다고 설하는가?…(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답】일체(一切)에 두 가지가 있다. 부분으로서의 일체가 있고 일체로서의 일체가 있다. 여기에서는 부분으로서의 일체를 설한 것이다.
또 여기에서는 성인이 무상상으로 3계의 수도소단인 일체 번뇌를 끊는다고 설한 것이다.
또 그 밖의 다른 경(經)에서 “무상상을 수행하여 널리 펴면 아만(我慢)을 끊을 수 있다”고 설하였다.
【문】무상상은 일곱 가지 만[七慢]을 대치한다. 무엇 때문에 다만 아만을 끊는다고만 설하였는가?
【답】무상상은 아만의 근대치(近對治)이다. 가령 “무상상은 무아상(無我想)을 일으킬 수 있는데, 비구가 무상상이 있고 무아상이 있으면 아만을 끊어서 이 법에서 신속하게 모든 번뇌의 루(漏)를 다할 수 있다”고 설한 경우와 같다.
가령 “비구가 7처선(處善)과 관삼종의(觀三種義)에 있어서 신속하게 이 법에서 누를 다할 수 있다”고 설하였다.
【문】무엇 때문에 이것을 논하는가?
【답】이것은 불경에서 설한 것이다. 불경에서 “비구가 7처선…(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이라고 설하였다.
불경이 이 논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자세하게 분별하기 위해서 이 논을 지은 것이다.
【문】만약 불경이 이 논의 근본이 된다면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 경을 설하셨는가?
【답】학인(學人)은 위의 사문과에 대해서 방편을 일으키지 않는다. 방편을 일으킨다 해도 이해하고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가령 그대들이 견도방편(見道方便)에 들어가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오래지 않아 모든 번뇌를 다할 수 있으리라”고 설하셨다.
또 이미 도를 얻은 사람은 수도소단인 번뇌에 대해서 근심을 하는데 수도소단 번뇌에 대한 대치를 설하고, 도를 잃어버린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도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비유하면 마치 굳센 사람이 원수에 대해서 근심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그대는 굳세거늘 무엇 때문에 원수를 항복시키지 못하는가?”라고 말하듯이 그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여실하게 색의 고를 아는 4지(智)는 이른바 법지ㆍ비지ㆍ등지ㆍ고지이다. 법지는 욕계색(欲界色)을 알고 비지는 색계색(色界色)을 알며, 등지는 일체색(一切色)을 알고 고지는 유루색의 무상ㆍ고ㆍ공ㆍ무아를 안다.
【문】이것은 4선처(善處)인가?
【답】이것은 모두 1제(諦)를 관한 것이니, 고를 관하고 과를 관하는 것이다.
여실하게 색의 집(集)을 아는 4지는 이른바 법지ㆍ비지ㆍ등지ㆍ집지이다. 법지는 욕계집(欲界集)을 알고, 비지는 색계집을 알고, 등지는 일체집(一切集)을 알고, 집지는 유루색의 인(因)ㆍ집(集)ㆍ유(有)ㆍ연(緣)을 안다.
【문】이것은 4선처를 설한 것인가?
【답】이것은 모두 1제를 관한 것이니, 집(集)을 관하고 인(因)을 관한 것이다.
여실하게 색의 멸을 아는 4지는 이른바 법지ㆍ비지ㆍ등지ㆍ멸지이다. 법지는 욕계색멸(欲界色滅)을 알고, 비지는 색계색멸(色界色滅)을 알고, 등지는 일체색멸(一切色滅)을 알고, 멸지는 일체 유루색(有漏色)의 멸(滅)ㆍ지(止)ㆍ묘(妙)ㆍ이(離)를 안다.
【문】이것은 4선처인가?
【답】이것은 모두 1제를 관한 것이니, 멸(滅)을 관하고 마침내 다함[畢竟]을 관한 것이다.
여실하게 색의 멸도를 아는 4지는 이른바 법지ㆍ비지ㆍ등지ㆍ도지이다. 법지는 욕계의 색이 멸하는 도를 알고, 비지는 색계의 색이 멸하는 도를 알고, 등지는 일체의 색이 멸하는 도를 알고, 도지는 도(道)ㆍ정(正)ㆍ적(迹)ㆍ승(乘)을 안다.
【문】이것은 4선처인가?
【답】이것은 모두 1제를 관한 것으로, 도를 관하고 대치를 관한 것이다.
여실하게 색(色)의 미(味)를 아는 4지는 이른바 법지ㆍ비지ㆍ등지ㆍ집지이다.
【문】이것은 4선처인가?
【답】이것은 모두 1제를 관하는 것이니, 집을 관하고, 미를 관하는 것이다.
여실하게 색의 환(患)을 아는 4지는 이른바 법지ㆍ비지ㆍ등지ㆍ고지이다.
【문】이것은 4선처인가?
【답】이것은 1제를 관하는 것이니 고를 관하고 환(患)을 관하는 것이다.
여실하게 색의 여읨[離]을 아는 4지는 이른바 법지ㆍ비지ㆍ멸지ㆍ등지이다.
【문】이것은 4선처인가?
【답】이것은 1제를 관하는 것이니 멸을 관하고 여읨을 관하는 것이다. 가령 색음(色陰)에 7선처(善處)가 있고, 나아가 식음(識陰)에도 7선처가 있다.
【문】만약 그렇다면 35선처가 있고 한량없는 선처가 있게 된다.
【답】이것은 7처법(處法)이다.
가령 색음에 일곱 가지가 있고, 나아가 식음에도 일곱 가지가 있어서 일곱 가지를 넘지 않는다.
가령 경(經)에서 “수다원은 일곱 번의 유(有)를 받는다”고 설하였다. 이것은 7처법으로, 일곱을 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4제를 설한 곳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바사 존자는 “여실하게 색이 고임을 알고, 나아가 여실하게 식이 고임을 알고, 여실하게 색이 집(集)임을 알고, 색이 멸임을 알고, 색이 멸도임을 알고, 색이 미(味)임을 알고, 색이 환(患)임을 알고, 색이 여읨[離]임을 알고, 나아가 식까지를 아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고 말하였다.
가령 이와 같이 설하면 7선처가 있게 된다.
또 간략하게 설하면 7선처가 있으며, 자세하게 설하면 35선처가 있고 한량없는 선처가 있다.
가령 자세한 것과 간략한 경우와 같이 분별하는 것과 분별하지 않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또 이근(利根)인 자를 위한 설하는 경우에는 7선처가 있고, 둔근(鈍根)인 자를 위하여 설하는 경우에는 35선처와 한량없는 선처가 있게 된다.
가령 이근과 둔근의 경우와 같이 인력(因力)ㆍ연력(緣力)ㆍ내지력(內支力)ㆍ외지력(外支力)ㆍ내사유력(內思惟力)ㆍ외문법력(外聞法力)ㆍ듣고 바로 이해하는 힘[聞卽能解力]ㆍ자세하게 분별하는 힘[廣分別力]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또 견도(見道)일 때에는 7선처가 있고, 관찰할 때에는 35선처와 한량없는 선처가 있게 된다.
또 현성이 짓는 때에는 7선처가 있고, 세속에서 짓는 것일 경우에는 35선처와 한량없는 선처가 있게 된다.
또 가령 총상관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7선처가 있고, 별상관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35선처와 한량없는 선처가 있게 된다.
【문】여기에서는 별상관을 설한 것인가, 총상관을 설한 것인가?
만약 별상관을 설한 것이라면, 여기에 있는 문장에서 “신속하게 이 법에서 유루를 다할 수 있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만약 그것이 총상관이라면, 여기에 있는 문장에서 “여실하게 색(色)을 알고 내지 여실하게 식(識)을 안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답】이것은 별상관을 설한 것이다”고 말해야 한다.
【문】만약 그렇다면 가령 “신속하게 이 법에서 유루를 다할 수 있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답】여기에서는 별상관이 총상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하는 것이다. 총상관은 유루를 다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는 총상관을 관한 것이다”고 하였다.
【문】만약 그렇다면 가령 “여실하게 색을 알고, 나아가 여실하게 식을 안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답】이 문장은 “음(陰)이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ㆍ미(味)ㆍ환(患)ㆍ이(離)임을 여실히 안다”고 설해야 한다.
【문】그런데 그와 같이 설하지 않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답】반드시 견도일 때와 같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은 “견도일 때와 같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견도일 때와 다르다”고 말한다.
가령 세존께서 4천왕을 위해서 성어(聖語)로 4제를 설하였는데, 두 하늘은 이해하였으나 두 하늘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세존께서 다시 타비라어(陀毘羅語)로 4제를 설하자 한 하늘이 이해하였다. 한 하늘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다가 세존께서 다시 미리차어(彌離車語)로 4제를 설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해(觀解)할 때에는 별상으로 관하고 입도(入道)할 때에는 총상으로 관한다.
【문】7처선(處善)과 관삼종의(觀三種義)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7처선은 무루(無漏)이고, 관삼종의는 유루(有漏)이다.
【문】만약 그렇다면 가령 여기에서 “여실하게 색을 아는 것은 4지(智)이니. 이른바 법지ㆍ비지ㆍ등지이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답】여기에서는 경계에 대해서 몇 가지 지(智)가 현행하지만 모두가 무루일 필요는 없다.
【문】7처선으로 관삼종의와 함께할 수 있고, 관삼종의로 7처선과 함께할 수 있는가?
【답】어떤 사람은 “할 수 없다. 왜냐하면 7처선은 무루이고 관삼종의는 유루이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7처선은 유루ㆍ무루이고 관삼종의는 유루이다”고 하였다.
【문】만약 그렇다면, 7처선으로 관삼종의와 함께할 수 있고, 관삼종의로 7처선과 함께할 수 있는가?
【답】할 수 있다. 다만 공(功)을 쓰는 것이 많고 짓는 것이 많다.
여실하게 색(色)을 알고 내지 식(識)을 알며, 또는 여실하게 색이 환(患)임을 알고 내지 식이 환임을 아는 것은 음(陰)을 관함을 설한 것이다.
여실하게 색이 집(集)임을 알고 내지 식이 집임을 알고, 또는 여실하게 색이 미(味)임을 알고 내지 식이 미임을 아는 것은 입(入)을 관함을 설한 것이다.
여실하게 색이 멸(滅)임을 알고 내지 여실하게 식이 멸임을 알고, 여실하게 색이 이(離)임을 알고 내지 식이 이임을 아는 것은 계(界)를 관함을 설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일한 모양이지만 단지 공을 사용하는 것이 많고 짓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문】관삼종의(觀三種義)는 앞에 있고 7처선은 뒤에 있는데, 무엇 때문에 세존께서는 먼저 7처선을 설하시고 나중에 관삼종의를 설하셨는가?
【답】만약 이와 같이 설하면 설한 것에 수순하게 되어 의미가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이는 것도 쉽기 때문이다.
또 세존께서 설하시는 것은 문장과 의미가 구족하다. 가령 먼저 관삼종의를 설하면 의미는 구족하게 되지만 문장은 구족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세존의 설법은 문장과 의미가 구족하다.
또 만약 7처선을 먼저 설해야 한다면 7처선을 설하고 관삼종의를 나중에 설해야 한다면 관삼종의를 나중에 설해야 한다.
왜냐하면 관삼종의는 어떤 경우에는 견도(見道)의 처음에 있고, 어떤 경우에는 수도(修道)의 처음에 있는데, 여기에서는 수도의 처음에 있는 것을 설하고 견도의 처음에 있는 것을 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견도와 수도의 경우와 같이 견지(見地)ㆍ수지(修地)ㆍ미지욕지근(未知欲知根)ㆍ지근(知根)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또 관삼종의는 어떤 경우에는 6지성도(地聖道)의 처음에 있고 어떤 경우에는 9지성도의 처음에 있는데, 여기에서는 9지의 처음에 있는 것을 설하였고 6지의 처음에 있는 것을 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사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기에서는 네 가지 지를 설하였다. 즉 수행지(修行地)ㆍ견지(見地)ㆍ수지(修地)ㆍ무학지(無學地)를 말한다. 가령 ‘비구가 7처선과 관삼종의에서’라고 설한 것은 수행지를 설한 것이고, ‘여실하게 색(色)이 고ㆍ집ㆍ멸ㆍ도임을 알고, 나아가 식(識)이 고ㆍ집ㆍ멸ㆍ도임을 안다’고 설한 것은 견지를 말한 것이고, ‘색 내지 식(識)이 미(味)ㆍ이(離)ㆍ환(患)임을 관한다’고 한 것은 수지를 말한 것이고, ‘신속하게 이 법에서 유루를 다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무학지를 말한 것이다.”
【문】만약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견도(見道) 중에서는 4선처를 설하고 수도(修道) 중에서는 3선처를 설하였는가?
【답】견도 중에서는 일찍이 보지 못한 진리를 보고 수도 중에서는 이미 본 진리를 보기 때문이다.
또 견도 중에서는 일찍이 얻지 못했던 성성(聖性)을 얻어서 진리를 관행(觀行)하고, 수도 중에서는 일찍이 얻은 성성을 보아서 진리를 관행하기 때문이다.
【문】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3제(諦)는 중복해서 설하고 도제(道諦)는 한 번 설하였는가?
【답】여기에서는 도제를 자세하게 설하였다. 가령 “여실하게 색이 고(苦)임을 안다”고 설한 경우, 이것은 도제이다.
“여실하게 색이 집ㆍ멸ㆍ도이고 미ㆍ환ㆍ이임을 알고, 나아가 식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다”고 설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도제이다.
또 이런 설명은 이미 진리를 본 사람을 위해서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대들이 여실하게 음(陰)을 관찰할 수 있으면 오래지 않아서 누를 다할 수 있으리라”고 설하였다.
또 3제(諦)는 유변법(有邊法)이다. 가령 “5취음변(取陰邊)ㆍ5취음집변(取陰集邊)ㆍ5취음멸변(取陰滅邊)이다”라고 설한 경우와 같다.
【문】만약 그렇다면 논을 인(因)해서 논을 일으키겠다.
무엇 때문에 3제는 유변(有邊)을 설하면서 도제는 유변을 설하지 않는가?
【답】여기에서 말한 변의 의미는 견도변(見道邊)의 등지를 설한 곳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것과 같다.
또 이미 생긴 고[已生苦]가 있고, 아직 생기지 않은 고[未生苦]가 있고, 이미 생긴 고인[已生苦因]이 있고, 아직 생기지 않은 고인[未生苦因]이 있고, 이미 생긴 고멸[已生苦滅]이 있고, 아직 생기지 않은 고멸[未生苦滅]이 있다.
이미 생긴 고와 아직 생기지 않은 고와 이미 생긴 고인과 아직 생기지 않은 고인과 이미 생긴 고멸과 아직 생기지 않은 고멸을 무엇으로 알고 끊어서 증득할 수 있는가? 이른바 이것은 도제이다.
【문】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지(智)와 인식대상[所知]을 자세하게 분별하셨는가?
【답】도를 잃어버린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얻도록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설하신 것이다.
또 이것은 애행인(愛行人)을 위해서 설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대들은 이 음(陰)의 미(味)와 과환을 관하라. 만약 이 음의 미와 과환을 보면 오래지 않아서 누를 다할 수 있으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문】무엇 때문에 견도 중에서는 먼저 고(苦)를 관하고 그 뒤에 집(集)을 관하는데, 수도 중에서는 먼저 집을 관하고 그 뒤에 고를 관하는가?
【답】수순(隨順)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견도를 수순하는 것이고, 둘째는 말한 것을 수순하는 것이다.
가령 견도를 수순하는 경우 먼저 고를 관하고 그 뒤에 집을 관하며, 말한 것을 수순하는 경우 먼저 집을 관하고 그 뒤에 고를 관한다. 견도를 잇는 것[次第]과 말한 바를 잇는 것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문】색집(色集)과 색미(色味)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색집이라 하고 색미라고 하는 이름의 차별이 있다. 또 색집은 의지(意地)에 있고 색미는 6식신(識身)에 통한다. 또 집은 염오와 불염오이고 미는 염오이다. 또 집은 3계에 속해 있고 미는 욕계에 속해 있다.
【문】음(陰)에는 여러 가지 집이 있는가, 한 가지 집이 있는가?
만약 여러 가지 집이 있다면, 『시설경』에서 “이 애(愛)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고인(苦因)ㆍ고본(苦本)ㆍ고연(苦緣)이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만약 한 가지라면 이 경에서 “희애집(喜愛集)은 색집이고, 촉집은 3음집(陰集)이며, 명색집(名色集)은 식집이다”고 설한 것과 어떻게 의미가 통하는가?
【답】“여러 가지 집이 있는 까닭이 있고, 한 가지 집이 있는 까닭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근인(近因)을 설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집이 있다고 말하고, 원인(遠因)을 설하기 위해서 한 가지 집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령 근인과 원인의 경우와 같이 차신(此身)과 타신(他身)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또 여기에서는 세 가지 집을 설하였다. 첫째는 번뇌집이고, 둘째는 고집이고, 셋째는 업집이다. 희애집(喜愛集)이 색집인 것은 번뇌집을 설한 것이고, 촉집이 3음집인 것은 고집을 설한 것이고, 명색집이 식집인 것은 업집을 설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명색을 업이라고 설하였다.
가령 번뇌집ㆍ고집ㆍ업집의 경우와 같이 번뇌유(煩惱有)ㆍ고유(苦有)ㆍ업유(業有)ㆍ번뇌도(煩惱道)ㆍ고도(苦道)ㆍ업도(業道)ㆍ번뇌(煩惱)ㆍ고업(苦業)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또 여기에서는 3시(時)를 설하였다. 즉 적취시(積聚時)ㆍ수용시(受用時)ㆍ수호시(守護時)를 말한다.
희애집이 색집인 것은 적취시를 설한 것이고, 촉집이 3음집인 것은 수용시를 설한 것이고, 명색집이 식집인 것은 수호시를 설한 것이다.
또 여기에서는 세 때의 유[三時有]를 설하였다. 즉 전시유(前時有)ㆍ중유(中有)ㆍ생유(生有)를 말한다.
희애집이 색집인 것은 전시유를 설한 것이고, 촉집이 3음집인 것은 중유를 설한 것이고, 명색집이 식집인 것은 생유를 설한 것이다.
또 희애집이 색집인 것은 명이 색을 반연한 것을 설한 것이고, 촉집이 3음집인 것은 명이 명을 반연한 것을 설한 것이고, 명색집이 식집인 것은 명색이 명을 반연한 것을 설한 것이다.
또 애(愛)로 미래유(未來有)를 구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희애집이 색집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심ㆍ심수법은 촉을 의지해서 활동하고, 촉으로부터 일어나며, 촉력이 있기 때문에 눈앞에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촉집이 3음집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식은 명색을 의지해서 세우고 증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 “명색집이 식집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문】색멸(色滅)과 색리(色離)는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가령 애(愛)로 이 색을 만든 경우 그 애가 멸하면 이것을 색멸이라 한다.
가령 이 색을 반연하여 나머지 모든 애를 일으킨 경우에 그 애를 떠나면 이것을 색리라 한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
【문】무엇 때문에 색멸을 물었는데 애멸(愛滅)로 답하는가?
【답】가령 인(忍)이 끊어지면 과(果)가 끊어지고, 인이 소멸하면 과도 소멸하고, 인을 버리면 과도 버리고, 인을 토하면 과도 토하고, 인을 해치면 과도 해치기 때문이다.
【문】무엇 때문에 이미 생긴 애에 대해서는 멸을 말하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애에 대해서는 떠남을 말하는가?
【답】이미 생긴 애는 아직 생기지 않은 애를 지을 수 없다.
부처님께서 “이미 생긴 애는 없애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애는 일으키지 말고 다만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쇠퇴의 근심거리[衰患]가 있다. 첫째는 이미 받은 것이고, 둘째는 지금 받고 있는 것이고, 셋째는 앞으로 받을 것이다.
이미 받은 것은 받는 것이 끝났고, 지금 받는 것은 참고 받아야 하며, 앞으로 받을 것은 자신의 힘이나 권속의 힘이나 재물의 힘으로 방편을 구하여 떠나기를 구하는데 그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나머지 대답은 잡건도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것과 같다.
가령 색멸과 색리의 경우와 같이 식멸(識滅)ㆍ식리(識離)에 이르기까지도 마찬가지로 설한다.
【문】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애(愛)는 세 번 설하면서 나머지 번뇌업은 설하지 않는가?
【답】애가 중대한 과환이고 끊어서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가령 여기와 『시설경』에서는 멸제(滅諦)를 많이 분별하였다.
【문】무엇 때문에 여기와 『시설경』에서는 멸제를 많이 분별하였는가?
【답】이 멸제가 유위법ㆍ무위법 가운데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
025_0965_c_04L者,何故阿羅漢起苦、集智現在前耶?答曰:欲觀此五陰,猶如重擔過患法故。尊者瞿沙作如是說,生無色界,不能起禪及禪中功德現在前。生色界中則能。此說是何義耶?答曰:此說滅、道法智生色界者,能起此智斷色、無色界結。若煩惱已斷,更不起此智。評曰:不應作是說,生色界,起法智現在前。所以者何?此智非彼界對治故。復次,此是不定壞相。或有起少分,謂滅、道法智。或有不起少分者,謂苦、集法智。或有起者,或不起者;未離欲者起,已離欲者不起。或時起,或時不起;離欲道時起,餘善根時不起。以是事故,如前說者好。諸結欲界繫,彼結法智斷耶?答曰:或結是欲界繫,彼結非法智斷。乃至廣作四句。云何結是欲界繫,彼結非法智斷?答曰:諸結忍斷,亦餘智斷,亦不斷。忍者是四法忍。餘智者,是等智。不斷者,若已斷,若不作方便斷。云何結是法智斷,彼結非是欲界繫?答曰:諸結是色、無色界繫。法智斷法智者,是滅、道法智,離色、無色界結者。云何結是欲界繫,彼結法智斷?答曰:諸結欲界繫。法智斷法智者,是四法智,離欲界結者。云何結非是欲界繫,彼結非是法智斷?答曰:諸結色、無色界繫。彼忍斷,若餘智斷,亦不斷。忍者是四比忍。餘智斷者,若等智斷,若比智斷。不斷者,若已斷,若不作方便斷。諸結色無色界繫,彼結比智斷耶?答曰:諸結比智斷。彼結色、無色界繫。頗有結色、無色界繫,彼結非比智斷耶?答曰:諸結忍斷,亦餘智斷,亦不斷。忍者是四比忍。餘智者,是法智、等智。不斷者,若已斷,若不作方便斷。諸結見苦斷,彼結苦智斷耶?答曰:或結是見苦斷,彼結非苦智斷。諸結忍斷。所以者何?彼忍是此結對治故。或結是苦智斷,彼非見苦斷。諸結是修道斷,彼結苦智斷。所以者何?苦智是修道所斷結對治故。如見苦所斷結,乃至見道所斷結,說亦如是。問曰:爲無㝵道斷煩惱,爲解脫斷耶?若無㝵道斷煩惱者,使揵度所說,云何通?如說,結有九種:苦法智所斷種,乃至修道所斷種。若解脫道斷煩惱者,此文所說云何通?如說,或結是見苦斷,彼非智斷。或結是苦智斷,彼結非見苦斷。答曰:應作是說,無㝵道斷煩惱。非解脫道斷。廣說如使揵度。諸結法智斷,法智滅作證耶?問曰:何故作此論?答曰:或有說,無㝵道斷結,得解脫道,證解脫得。此是外國法師所說,爲止如是說者意,亦明無㝵道斷結,得證解脫得。若當無㝵道斷結,得解脫道,證解脫得者,則違此文。如說,諸結法智斷,比智滅作證耶?亦應作如是答。若以滅、道法智斷非想非非想處結,比智滅作證,而不作是答者,當知無㝵道斷結得,亦得證解脫得。諸結法智斷,彼結法智滅作證邪?答曰:諸結法智斷,彼結法智滅作證。隨斷爾所結,卽證爾所滅。頗結法智滅作證,彼結非法智斷耶?答曰:有。諸結忍斷,亦餘智斷。須陁洹以世俗道,趣斯陁含果。斷一種結乃至五種。若第六無㝵道,是法智者,是時證三界見道結,忍所斷者,及欲界修道等智所斷五種結。斯陁含趣阿那含果,以世俗道斷二種結。若第九無㝵道,是法智者,是時證三界見道結,忍所斷者,及欲界修道等智所斷八種結。離初禪欲,乃至離無所有處欲,若以比智、等智,離非想非非想處欲。以比智斷八種結。第九無㝵道,是法智者,是時證三界見道忍所斷結,及欲界修道等智所斷結。七地中比智、等智所斷結,非想非非想處比智所斷八種結。如是等結是法智滅作證。諸結比智斷,彼結比智滅作證耶?答曰:諸結比智斷,比智滅作證。隨斷爾所結,有爾所滅作證。頗結比智滅作證,彼結非比智斷耶?答曰:有。諸結忍斷,亦餘智斷。比智滅作證。若以法智,若以等智,離欲界欲,乃至離無所有處欲。若以法智斷非想非非想處一種結,乃至八種。若第九無㝵,是比智者,是時證三界見道忍所斷結,及八地法智、等智所斷結。法智所斷非想非非想處八種結。諸結苦智斷,彼結苦智滅作證耶?答曰:諸結苦智斷,彼結苦智滅作證。隨斷爾所結,有爾所滅作證。頗結苦智滅作證,彼結非苦智斷耶?答曰:有。諸結忍滅,亦餘智滅。苦智滅作證。須陁洹趣斯陁含果,以集、滅、道智、等智斷一種結,乃至五種。若第六無㝵道,是苦智者,是時證三界見道忍所斷結,及欲界修道集、滅、道智、等智所斷五種結。斯陁含趣阿那含果時,以集、滅道智、等智斷二種結。若第九無㝵,是苦智者,是時,證三界見道忍所斷結,欲界修道集、滅、道智、等智所斷結。以集、滅、道智、等智,離初禪欲,乃至離無所有處欲。以集、滅、道智,斷非想非非想處一種結,乃至八種。若第九無㝵道,是苦智者,是時,證三界見道忍所斷結,八地修道集、滅、道智、等智所斷結。非想非非想處,修道集、滅、道智所斷八種結。如苦智,乃至道智,說亦如是。問曰:前門所說,此門所說,有何差別?答曰:若作是說,無㝵道斷結得,解脫道得作證者,前門是無㝵道所作,此門是解脫道所作。若作是說,無㝵道斷結得,亦證解脫得,解脫道唯證解脫得者,前門是無㝵道斷結得,證解脫得此門說解脫道證解脫得如斷結得、證解脫得,離過患、習功德,去無利、得有利,捨卑賤、得勝妙,離染愛、得寂靜樂,亦如是。復次,斷是前門,得無爲是此門。復次,斷結及作證是前門,先斷結,後作證是此門。前門、此門,是謂差別。眼根幾智知,乃至無色界修道所斷無明使幾智知?問曰:何故作此論?答曰:或有說,無境界,唯有智。或說,無智,唯有境界。爲止如是說者意故,而作此論。諸法,若問攝,應思界而答。若問識,應思入而答。若問使,應思種而答。若問智,應思諦而答。如是諸法易可顯現,此中問智,應思諦而答。法有五種:謂苦、集、滅、道諦所攝,非諦所攝。欲界苦、集諦攝,相應、不相應法,色、無色界苦、集諦亦爾。滅諦唯攝不相應法。道諦攝相應、不相應法。非諦所攝法,攝不相應法。欲界苦、集諦所攝相應法,七智知。除比智、滅智、道智。不相應法,六智知,除比智、滅智、道智、他心智。色界苦,集諦所攝相應法,七智知,除法智、滅智、道智,不相應法,六智知,除法智、滅智、道智、他心智。無色界苦、集諦所攝相應不相應法,六智知,除法智、滅智、道智、他心智。滅諦所攝法,六智知,除他心智、苦智、集智、道智。道諦所攝相應法,七智知,除苦智、集智、滅智。不相應法,六智知,除苦智、集智、滅智、他心智。非諦所攝法,一智知,謂等智。問曰:何故名智?答曰:智所知,故名智。何故名所知?答曰:爲智所知,故名所知。如稱所稱,量所量,亦如是。量是智,所量是所知。此是略毘婆沙。餘門廣說,如經本,如說,修行廣布無常想,斷欲愛,色、無色愛,掉慢、無明。問曰:何故作此論?答曰:此是佛經。佛經說,修行廣布無常想。乃至廣說。佛經雖作是說,而不廣分別。佛經是此論,所爲根本,今欲廣分別故,而作此論。問曰:若佛經是此論所爲根本者,世尊何故說此經耶?答曰:欲令懈慢,不勤精進受化者,勤精進故。復次,爲貪後有弟子,令不更求後有故。世尊說,彌勒佛出世時,有諸比丘,作是願,使我見彌勒佛出,乃般涅槃。佛作是說,汝等今者有資產所須適意故,作如是念。後若爲諸有苦之所逼切者,於諸有中,不生願樂,修行廣布無常想。能斷欲愛者,此想當言與法智、苦智相應。當言有覺有觀。所以者何?在有覺有觀地故。當言與捨根相應,彼地有捨根故。當言與無願相應,謂苦無願。當言緣欲界繫,緣欲界五陰故。斷一切色愛者,彼想當言與比智、苦智相應。或有覺有觀,在未至、初禪者,或無覺有觀,在中閒禪者,或無覺無觀,在三禪者,或樂根相應,在第三禪者,或喜根相應,在初禪、第二禪者,或捨根相應,在未至、中閒、第四禪者,無願相應,謂苦無願。當言緣色界繫,緣色界五陰故。斷一切無色愛者,此想當言與比智、苦智相應。當言或有覺有觀,在未至、初禪者,或無覺有觀,在禪中閒者,或無覺無觀,在三禪、三無色定者,或樂根相應,在第三禪者,或喜根相應,在初禪、二禪者,或捨根相應,在未至、中閒、第四禪、三無色定者,與無願相應,謂苦無願。當言緣無色界繫,緣無色界四陰故。斷一切掉慢無明者,此想當言或法智相應,苦智相應,比智相應。餘廣說如上。問曰:八聖道盡能斷結,何故獨稱無漏想?答曰:世尊此中,聖道以想名說。世尊或說道名想,廣說如四無量處。問曰:無常想是七使對治,此中何故作三說耶?答曰:若使在三界,是五種斷。見疑雖在三界,非五種斷。恚使雖五種斷,不在三界。復次,此使在三界,亦是見道、修道斷,見疑雖在三界,非修道斷。恚雖是見道、修道斷,不在三界。復次此使在三界,是凡夫、聖人所行,見疑雖在三界,非聖人所行。恚使雖是凡夫、聖人所行,非在三界。問曰:何故三說愛使,一說餘使?答曰:餘使應說如愛使,而不說者,當知此說有餘。復次,欲以種種說,莊嚴於文。若以種種說莊嚴於文,義則易解。復次,欲現二門故,乃至廣說。復次,此愛是重惡多衆過患,欲重觀其過患故。廣說如上,四諦處。問曰:無常想是見苦所斷使對治,何故說斷一切欲愛使耶?乃至廣說。答曰:一切有二種:有少分一切,有一切一切。此中說少分一切。復次,此中說聖人,以無常想,斷三界修道所斷一切煩惱。餘經復說,修行廣布無常想,能斷我慢。問曰:無常想是七慢對治,何故但說斷我慢耶?答曰:無常想是我慢近對治。如說,無常想能生無我想,若比丘有無常想、無我想者,能斷我慢,速於此法,得盡諸漏。如說,比丘於七處,善觀三種義,速於此法,得盡有漏。問曰:何故作此論?答曰;此是佛經。佛經說,比丘於七處善,乃至廣說。佛經是此論所爲根本,今欲廣分別故,而作此論。問曰:若佛經是此論所爲根本者,世尊何故說是經耶?答曰:學人於上沙門果,不作方便,設作方便,而不解知。佛作是說,如汝等入見道,方便不放捨者,不久亦當得盡諸漏。復次,已得道者,患於修道所斷煩惱。欲說修道對治,令失道者還得道故。如人猛健,患於怨家,他人語言,汝今猛健,何不降伏怨家?彼亦如是。如實知色,是苦四智:謂法智、比智、等智、苦智。法智知欲界色,比智知色界色,等智知一切色,苦智知有漏色,無常、苦、空、無我。問曰:此則是四善處耶?答曰:此皆觀一諦,觀苦觀果。如實知色,是集四智:謂法智、比智、等智、集智。法智知欲界集,比智知色界集,等智知一切集,集智知有漏色,因集有緣。問曰:此則是四善處耶?答曰:此皆觀一諦,觀集觀因。如實知色滅,是四智:謂法智、比智、等智、滅智。法智知欲界色滅,比智知色界色滅,等智知一切色滅,滅智知一切有漏色,滅止妙離。問曰:此則是四善處耶?答曰:此皆觀一諦,觀滅觀畢竟。如實知色滅道,是四智:謂法智、比智、等智、道智。法智知欲界色滅道,比智知色界色滅道,等智知一切色滅道,道智知一切有漏色滅道正迹乘。問曰:此則是四善處耶?答曰:此皆觀一諦,觀道觀對治。如實知色味。此是四智:謂法智、比智、等智、集智。問曰:此則是四善處耶?答曰:此則觀一諦,觀集觀味。如實知色患,此是四智:謂法智、比智、等智、苦智。問曰:此則是四善處耶?答曰:此則觀一諦,觀苦觀患。如實知色離,此是四智:謂法智、比智、滅智、等智。問曰:此則是四善處耶?答曰:此則觀一諦,觀滅觀離。如色陰有七善處,乃至識陰亦有七善處。問曰:若然者,則有三十五善處,亦有無量善處。答曰:此是七處法,如色陰有七,乃至識陰亦有七。不過於七。如經說,須陁洹受七有。此是七處法,不過於七。廣說如四諦處。尊者波奢說曰:‘如實知色,是苦,乃至如實知識,是苦。如實知色,是集,知色是滅,知色是滅道,知色是味,知色是患,知色是離乃至知識,亦如是。’若如是說,則有七慈心善,處復次若略說則。有七善處,若廣說則有,三十五善處無。量善,處如廣略分別,不分別亦如;是復次若爲利,根者說則有七善,處若爲鈍。根者說、則有,三十、五善,處無量、善處如,利根鈍根、因力緣力,內支力外支,力內思惟,力外聞法力。聞卽,能解力廣分,別力當;知亦如是,復次如在見道時則有。七如,觀察時則有三,十五無;量善處復次如賢聖所行時則有七。如世,俗所行則有,三十五無量;善處復次若,作摠相觀則有七善處。若作:別相觀則有三十,五無量善處問?曰此中爲說別,相觀爲說摠相觀?耶若,說別相觀,者此文所。說云何通如說,速於此法得盡有漏?若是,摠相觀者,此文所說復云。何通:如說如實,知色乃至。如實:知識答,曰應,作是說是別相觀問,曰若然?者如:說速於此法得,盡有漏云何。通答曰此中說別。相觀能生,摠相觀摠相觀。得盡:有漏復,有說者此中觀摠?相觀,問曰若然,者此文所說云何通如說如實知色乃至如實知識。答曰:此文應如是說,如實知陰是苦集滅道味患離。而不說者,有何意耶?答曰:不必說與見道時同。或有說,與見道時同。或說,與見道時異。如世尊爲四天王,以聖語說四諦,二解,二不解。世尊復以陁毘羅語說四諦,一解,一不解。世尊復以彌離車語說四諦,然後乃解。如是觀解時,以別相;入道時,是摠相。問曰:七處善觀、三種義,有何差別?答曰:七處善,是無漏觀;三種義,是有漏。問曰:若然者,此所說云何通?如說,如實知色,是四智:謂法智、比智、等智,答曰:此中數智行於境界,不必盡是無漏。問曰:能以七處善,同觀三種義;能以觀三種義,同七處善不?答曰:或有說者,不能。所以者何?七處善是無漏觀,三種義是有漏。復有說者,七處善是有漏無漏觀,三種義是有漏。問曰:若然者,能以七處善,同觀三種義;以觀三種義,同七處善不?答曰:能。但多用功,多有所作,如實知色,乃至知識。如實知色患,乃至知識患。是說觀陰。如實知色是集,乃至知識是集。如實知色是味,乃至知識是味。是說觀入。如實知色是滅,乃至知識是滅。如實知色是離,乃至知識是離。是說觀界。可說如是同相。但多用功,多有所作。問曰:觀三種義在前,七處善在後。何故世尊先說七處善,後說觀三種義耶?答曰:若作是說,則所說隨順,義則易解,受者亦易。復次,世尊所說文義具足。若先說觀三種義,義雖具足,文不具足。世尊說法文義具足。復次,若應先說七善處,則說七善處;若應後說觀三種義,則說觀三種義。所以者何?觀三種義,或在見道初,或在修道初。此中說在修道初者,不說在見道初者。如見道、修道,見地、修地,未知欲知根、知根,亦如是。復次,觀三種義,或在六地聖道初,或在九地聖道初。此中說九地初者,不說六地初者。尊者波奢說曰:‘此中說四種地:謂修行地,見地,修地,無學地。’如說,比丘,七處善觀三種義,是說修行地。如實知色,是說苦集滅道,乃至知識,是苦集滅道,是說見地。觀色乃至識是味患離,是說修地。速於此法,得盡有漏,是說無學地。問曰:若然者,何故見道中說四善處,修道中說三善處耶?答曰:見道中未曾見諦而見,修道中已曾見諦而見。復次,見道中未曾得見聖性而得,觀行於諦;修道中已曾得聖性,觀行於諦。問曰:此中何故重說三諦,一說道諦?答曰:此中廣說道諦。如說,如實知色是苦,此是道諦。如實知色是集滅道是味患離,乃至知識,亦如是,是道諦。復次,此所說,爲已見諦人。佛作是說,汝等若能如實觀察陰者,不久當得盡漏。復次,三諦是有邊法。如說,五取陰邊,五取陰集邊,五取陰滅邊。問曰:若然者,因論生論,何故三諦說有邊,道諦不說有邊耶?答曰:此中邊義廣。如說,見道邊等智處。復次,有已生苦,有未生苦。有已生苦因,有未生苦因。有已生苦滅,有未生苦滅。諸已生苦,未生苦。已生苦因,未生苦因。已生苦滅,未生苦滅。誰能知斷證耶?謂是道諦。問曰:世尊何故廣分別智所知耶?答曰:欲令失道者,還知道故,作如是說。復次,此所說爲愛行人。佛作是說,汝等應觀此陰味,及過患。若見此陰味及過患者,不久當得盡漏。問曰:何故見道中,先觀苦,後觀集;修道中,先觀集,後觀苦耶?答曰:隨順有二種:一見道隨順,二所說隨順。如見道隨順,先觀苦,後觀集;如所說隨順,先觀集,後觀苦。見道次第,所說次第,亦如是。問曰:色集、色味有何差別?答曰:名卽差別,是名色集,是名色味。復次,色集是意地,色味通六識身。復次,集是染污、不染污,味是染污。復次,集在三界,味在欲界。問曰:陰爲有多種集,爲有一種集?若有多種集者,施設經說,云何通?如說,此愛是過去、未來、現在,苦因,苦本,苦緣。若一種者,此經云何通?如說,喜愛集是色集,觸集是三陰集,名色集是識集。答曰:應作是說,有所以是多種集,有所以是一種集。爲說近因故,是多種集;爲說遠因故,是一種集。如近因遠因,此身他身,亦如是。復次,此中說三種集:一煩惱集,二苦集,三業集。喜愛集,色集,是說煩惱集。觸集,三陰集,是說苦集。名色集,識集,是說業集。此中說名色,是業。如煩惱集,苦集,業集,煩惱有苦有業有煩惱道苦道業道煩惱苦業。當知亦如是。復次,此中說三時:謂積聚時,受用時,守護時。喜愛集,色集,是說積聚時。觸集,三陰集,是說受用時。名色集,識集,是說守護時。復次,此中說三時有:謂前時有,中有,生有。喜愛集,色集,是說前時有。觸集,三陰集,是說中有。名色集,識集,是說生有。復次,喜愛集,色集,是說名緣色。觸集,三陰集,是說名緣名。名色集,識集,是說名色緣名。復次,愛求未來有,是故,佛作是說,喜愛集,是色集。心心數法,因觸而活,從觸生,以觸力故,能現在前。佛作是說,觸集是三陰集。識因名色立而得增廣。是故佛作是說,名色集,是識集。問曰:色滅,色離有何差別?答曰:若愛造此色,彼愛若滅,是名色滅;若緣此色,生諸餘愛,彼愛若離,是名色離。乃至廣說。問曰:何故問色滅答愛滅耶?答曰:因若斷,果亦斷;因若滅,果亦滅。捨因亦捨果,若吐因亦吐果,若害因亦害果故。問曰:何故已生愛說滅,未生愛說離耶?答曰:已生愛不可作未生愛。佛作是說,但當滅之,未生愛應令不生。但當離。如是有三種衰患:一已受,二今受,三當受。已受者,受竟。今受者,忍受。當受者,或以自力,或眷屬力,或財物力,方便求離。彼亦如是。餘答廣說如雜揵度。如色滅,色離,乃至識滅,識離,說亦如是。問曰:此中何故三說愛,不說餘煩惱業耶?答曰:以愛是重過患,難斷難除故。廣說如上。如此中及施設經,多分別滅諦。問曰:何故此中及施設經多分別滅諦耶?答曰:以此滅,於有爲無爲法中最勝故。
阿毘曇毘婆沙論卷第五十六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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