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尊婆須蜜菩薩所集論卷第二

ABC_IT_K0963_T_002
028_0585_a_01L존바수밀보살소집론 제2권
028_0585_a_01L尊婆須蜜菩薩所集論卷第二仁亮


존바수밀(尊婆須蜜) 지음
승가발징(僧伽跋澄) 등 한역
변각성 번역
028_0585_a_02L尊婆須蜜造
符秦罽賓三藏僧伽跋澄等譯


1. 취건도 ⑤
028_0585_a_04L偈品首聚揵度之五

또 세존께서 “네 가지 일[四事]로 사람들을 포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을 포섭하는 그 내용이 어떤 것인가?
028_0585_a_05L又世尊言四事攝人攝人者其義云
어떤 이는 “중생의 성품이 무너지는 것이 저 웅덩이의 모래와 같나니, 그를 이 네 가지 일로써 번갈아 서로 포섭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내용이 저 모래가 물에 잠긴 바가 되어 각기 서로 붙어 있는 것과 같이 그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중생의 성품이 스스로 무너지므로 이 네 가지 일로써 서로 포섭하여 각각 이루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포섭함이 마치 덮개나 오를 것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을 오르게 하고 껴잡아 주는 것처럼, 그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중생에게 방편이 되는 법을 모으기 때문에 사람을 포섭함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5_a_07L或作是說衆生性壞如彼洿沙以此四事更相共攝故曰其義如彼沙爲水所浸各相粘著亦復如是作是說衆生性自壞以此四事相攝各成辨是故攝人猶如作蓋升升攝諸子此亦如是或作是說集聚法衆生方便故曰攝人
무슨 까닭에서 “함께하는 뜻이 사람을 포섭함이다”라고 말하는가?
028_0585_a_13L以何等故共義謂之攝人
어떤 이는 “함께 계행(戒行)이 있음이다”라고 말했으며, 어떤 이는 “함께 그 경지가 동일함이다”라고 말했으며, 그리고 어떤 이는 “함께 그 소견이 동일함이다. 다시 권하고 돕는 것을 일러 사람을 포섭함이다”라고 말했다.
또 세존께서 “무상(無常)은 곧 무상한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85_a_14L或作是說俱有戒行或作是俱同境界或作是說俱同所見次勸助義謂之攝人又世尊言無常是無常法
어떤 것이 무상이고, 어떤 것이 무상한 법인가?
云何無常云何無常法
어떤 이는 “과거의 행(行)이 무상이고 미래와 현재의 행은 무상한 법이니, 또한 마땅히 법을 구하며 또한 마땅히 차례로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행은 무상이고, 미래의 행은 무상한 법이니, 또한 마땅히 저 법을 가서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85_a_17L作是說過去行無常未來現在行是無常法亦當求法亦當次住或作是過去未來現在行無常未來行是無常法亦當往求彼法
028_0585_b_02L어떤 이는 “과거와 현재의 행은 무상이고, 미래의 생기는 법과 생기지 않는 법은 무상한 법이니, 그것 역시 법과 더불어 상응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모든 행은 또한 무상이고 또한 무상한 법이다. 마찬가지로 여인(如因)은 곧 무상이고 여과(如果)는 곧 무상한 법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5_a_21L或作是說去現在行無常未來生法不生法是無常法彼亦與法相應或作是說切諸行亦是無常亦是無常法如所如因是無常如果是無常法
【문】인(因)도 역시 딴 과(果)에 반연하고 과도 역시 딴 인이 반연하나니, 저것이 어찌 무상과 무상한 법이 아니겠는가?
028_0585_b_04L亦緣餘果果亦緣餘因豈彼不是無常無常法耶
【답】인이 딴 과에 반연하고 과가 딴 인에 반연한다. 여인(如因)은 곧 무상이고, 여과(如果)는 곧 무상한 법이다.
028_0585_b_06L答曰惟因緣餘果果緣餘因如因是無常如果是無常法
【문】지금에 인은 무상이 아니고, 지금에 과는 무상한 법이 아니니, 그러므로 저것이 곧 무상이고 곧 무상한 법이다.
다시 모든 행(行)은 회전하나니 그는 무상이고, 이 법은 곧 무상한 법이다.
028_0585_b_07L如今因非無常如今果非無常法故彼卽無常卽無常法復次諸行迴轉彼無常是法是無常法
또, 세존께서 “온갖 존재의 티와 때[塵垢]는 곧 티와 때의 법이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티와 때라고 말하며, 어떤 것을 티와 때의 법이라고 말하는가?
028_0585_b_10L又世尊言諸有塵垢是塵垢法云何名塵垢云何名塵垢法
어떤 이는 “티와때가 이리저리 서로 반연하는 그것을 티와 때의 법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저 티와 때와 상응하는 법을 티와 때의 법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티와 때가 티와 때에 섞인 그것은 회전하는 법이니, 그를 티와 때의 법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티와 때가 티와 때에 섞이어 거기에서 일으킨 몸의 행위와 입의 행위를 티와 때의 법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5_b_12L或作是說垢展轉相緣是謂塵垢法或作是說彼塵垢相應法謂之塵垢法也或作是說塵垢雜塵垢彼迴轉法是謂塵垢法也或作是說塵垢雜塵垢彼所起身行口行是謂塵垢法
어떤 이는 “온갖 유루행(有漏行)의 티와 때는 곧 티와 때는 곧 티와 때의 법이다. 그의 원인과 같은 것은 티와 때이고, 그의 결과와 같은 것은 티와 때의 법이다”라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중생이 무너지지 않고 5음9陰) 행(行)을 조작해서 뭇 고뇌로 시달림을 당하는 그것을 티와 때의 법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5_b_17L或作是說一切有漏行塵垢是塵垢法如其因是塵垢如其果是塵垢法尊作是說衆生不壞造五陰行衆惱見逼是謂塵垢法
또 세존께서 “그대 비구들이여,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면 마침내 다시 몸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나서 다시 몸을 받는 것과 죽는 것이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028_0585_b_21L又世尊言汝今比丘生老病死終更受形生更受形死有何差別
028_0585_c_02L어떤 이는 “중음(中陰)일 때의 모든 형체 그것이 곧 남[生]이고, 다시 그 중음을 전환하여 태어나는 그것이 곧 남이며, 중음이 무너지는 것을 죽음이라 말하고, 처음 죽을 적에 그 음(陰)이 무너지는 것을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어머니의 포태(胞胎)에서 나오는 것을 남이라 하고, 어머니 태에 처음 들어가는 것을 다시 낳음이라 하며, 형체가 더욱더 자라나는 것을 가는 것[逝]이라 하고, 처음 죽어서 음(陰)이 무너지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고 말했다.
028_0585_b_23L或作是說中陰諸形此是生更轉陰往生此是生中陰壞敗謂之逝初死陰壞敗此是死或作是說出母胞胎此是生始入母胎此是更生形展轉增此是初死陰壞敗此是死
어떤 이는 “난막(卵膜)이 합해 모이매 생기는 그 사실이 어떠한가? 이 모든 감관이 차츰차츰 성숙되어 태어나게 된다. 화생(化生)은 합해 모이되 저 모든 감관이 차츰차츰 성숙되지 아니하는 것이며연생(軟生)은 갑자기 이룩하는 것이다,화생하는 것이란 만일 그가 목숨이 마칠 때에 그 몸이 난막에 합해 모임을 보지 아니하고 죽고서 그 몸을 보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028_0585_c_05L或作是說𩌧合會生此事云何此諸根漸漸熟受生化生合會彼諸根不漸漸熟軟生賴成化生者若彼命終時不見其身卵𩌧合會死已見其身
어떤 이는 “차별이 있지 아니하니, 마땅히 잠깐 사이라고 말해야 한다. 다시 다음으로 가서 태어날 적에 최초로 수음(受陰)이 생기어 음(陰)을 만들고, 벗어남에 머무나니, 벗어나 음을 만드는 것은 태어나는 처소이며 그것을 그 때에 목숨을 마쳤다고 이른다. 벗어남에 머물러 음을 만들고 태어나는 처소에서 음이 다시 옮겨지는 그것을 목숨이 마쳐 끊어짐이라고 말하며, 모든 음이 흩어지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죽음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5_c_09L或作是說無有差當說須臾頃復次趣往生時最初受陰生造陰住超越超越造陰受生處所是謂爾時命終住超越造陰受生處所陰更移轉是謂終命斷絕陰散落是謂死
또 세존께서 “비구들이여, 결(結)이 항상 따라다니나니 그 때에 죽음이 있다. 모두가 죽음이 있나니, 그러므로 수(數)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하실 적에 그 내용은 어떤 것이냐?
028_0585_c_14L又世尊言諸比丘結常隨從彼時有諸有死是故有數說是語時此義云何
어떤 이는 “애욕이 따라다니므로 그가 목숨을 마칠 적에도 습기가 뻗어간다. 그것을 죽어서 온갖 존재[有]를 받는 것이라고 말하나니, 욕애(欲愛)ㆍ욕수(欲受)ㆍ욕음(欲陰)이며, 색애(色愛)ㆍ색수(色受)ㆍ무색애(無色愛)ㆍ무색수(無色受)ㆍ무색음(無色陰) 그것이다. 이미 저 음(陰)을 얻었기에 그것을 수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일 욕계ㆍ색계ㆍ무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니, 그러므로 그것에 수가 있다 말한 것이다”고 말했다.
028_0585_c_17L或作是說愛隨從彼命終時習彼謂死受諸有欲愛欲受欲陰色受無色愛無色受無色陰已得彼陰是謂有數若欲界色無色界曰彼有數
어떤 이는 “사(使)에 얽매인 바와 온갖 사에 얽매여 음(陰)을 받고 온갖 존재를 받나니, 이미 그런 존재를 얻었기에 그를 수(數)가 있다고 말한 것이니, 그러므로 그것에 수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온갖 결에 사를 당하는 그 힘이 강하면 목숨을 마칠 적에 곧 스스로 기억하여 그가 죽는다고 여기나니, 그러므로 그것에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인 수가 있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5_c_21L或作是說使所纏諸使纏受陰受諸有已得此有是謂有數曰彼有數或作是說一切結所使力勝者當命終時便自憶彼謂死曰彼有數
028_0586_a_02L어떤 이는 “부드러운 몸의 인연으로 온갖 때(垢)를 일으키고 때가 몸에 부린 바가 되어 중간쯤 되는 몸이 생기고 몸에 부린 바가 됨에 따라 증가하는 곁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수가 있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몸이 몸에 집착하여 부린 바가 되고 몸이 몸에 집착하여 죽고 몸이 유지하는 원인에서 몸이 생기게 되나니, 그러므로 수가 있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6_a_02L或作是說軟色因緣起諸垢垢色所使中色起緣色所使起增上結故曰有數或作是說著色所使色著色死爲色所持因生故曰有數
어떤 이는 “온갖 애욕에는 그의 욕구가 있으므로 그에 부린 바가 되어 방편으로 찾아 구하여 얻나니 그러므로 수가 있다 말한다”고 말했다.
그와 같이 온갖 것을 필요로 하여 곧 찾아 구하고 이미 그 물건들을 얻고서는 그가 곧 죽나니, 그러므로 그가 문득 지옥에서나 그 밖의 악취(惡趣)에 수가 있게 된다.
028_0586_a_06L或作是說諸欲有所須爲彼所使方便求索已得竟是故有如是諸有所須便求索已得彼物彼便死彼便有數泥黎中若餘惡趣
어떤 이는 “애욕에게 사(使)를 당하여 존재를 조작하고 나고, 늙음, 병듦, 죽음을 받아 지니게 되니 그것에 수가 있는 것이다”고 말햇다.
어떤 이는 “때(垢)에 얽매인 결로 행동을 하게 되어 나쁜 갈래[惡趣]에서 뉘우치는 뜻을 간직하나니 그것에 수가 있다. 만일 죽을 때에 뉘우치지 아니하면 곧 천상에 나게 된다”고 말했다.
028_0586_a_09L或作是說愛所使造有持往生老病彼有數或作是說垢所使結起行持往有悔意惡趣中彼有數若死時不悔便生天上
어떤 이는 “4제(諦)를 펴 연설하심은 세존께서 설법하신 것인데, 만일 비구가 사에 사를 당하면 그것을 죽은 것이라 이르고 습제(習諦)를 나타냄이 되나니, 그것에 수가 있고 괴로움의 진리[苦諦]를 나타냄이 된다. 반대로 이 비구가 사에 사를 당하지 아니하면 곧 죽은 것이 아니고 도의 진리[道諦]를 나타냄이 되나니, 그것에 수가 있고 진제(盡諦)를 나타냄이 된다”고 말했다.
028_0586_a_13L或作是說敷演四諦世尊說法若比丘使所使是謂死爲現習諦彼有數爲現苦諦於是比丘不使所使則不死爲現道諦彼有數爲現盡諦
존자께서는 “5성음(盛陰)은 사가 아니고 무명(無明)만이 애욕이 있는데 그것이 상응하고 5음(陰)이 싸 덮인다. 이미 싸 덮이면 지옥이나 그 밖의 나쁜 갈래인 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028_0586_a_17L尊作是說五盛陰非使無明有愛彼相應五陰纏裹已纏裹則有數泥黎若餘惡趣
일체 애욕의 사인 그것과
부드러운 몸에 스스로 얽매임이다.
만일 다시 그 밖의 애욕 있으면
행제(行諦) 뒤에 다섯이 있으리.
028_0586_a_19L一切諸愛使
軟色自纏裹
若復有餘愛
行諦後有五
또 세존께서 “비구여, 몸이란 과거와 미래에도 무상한 것이거늘, 하물며 또한 현재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 때문에 세존께서 “하물며 다시 현재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는가?
028_0586_a_21L又世尊言於是比丘色無常過去未況復現在以何等故世尊說況復現在
028_0586_b_02L어떤 이는 “과거의 몸은 무너졌고 미래의 몸은 생기지 않았고 현재의 몸은 생겨 무너지지 아니했으니, 그를 무상한 것이라 말한다. 무너지거나 생기거나 생기지 아니함인데, 하물며 다시 생기는 법은 무너짐이 있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하물며 또한 현재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과거와 미래의 몸은 처소가 있지 않고 현재는 처소가 있나니, 그러므로 무상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처소가 없고 무상하거늘 하물며 처소가 없음이랴. 그러므로 ‘하물며 또한 현재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028_0586_a_24L或作是說過去色壞敗未來色未生現在色生不壞彼名無常若壞若生及未生況復生法有壞敗故曰況復現在或作是說過去未來色無處所現在有處所故曰無常如其無處所無常況無處所故曰況復現在
어떤 이는 “과거와 미래의 몸은 무너뜨릴 수가 없고 현재는 무너뜨릴 수 있나니, 그를 무상한 것이라고 말한다. 능히 무너뜨리게 하는 그것도 무너뜨리거늘 하물며 또한 능히 무너짐이랴. 그러므로 ‘하물며 또한 현재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028_0586_b_06L或作是說過去未來色不可壞現在可壞彼名無常能使壞者可壞況復能壞故曰況復現在
어떤 이는 “미래의 몸은 미래에 오래도록 머무르며 과거의 몸은 과거에 오랫동안 머물렀고, 현재의 몸은 현재에 한동안 머무나니, 그러므로 무상한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오랫동안 머물렀다면 응당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거늘 하물며 또한 한동안 머무름이랴. 그러므로 ‘하물며 또한 현재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028_0586_b_09L或作是說未來色未來久遠住過去色過去久遠住現在色現在久遠一時住故曰無常若久遠住者若當久遠住況復一時故曰況復現在
어떤 이는 “목숨이 끝나려고 할 때에 대해 세존께서 짐짓 ‘과거 오랜 옛적에 사람의 수명은 길어서 8만 4천 년이었고, 또한 아승기(阿僧祇) 해를 사는 이가 있었으며, 미래의 오랜 후의 사람들도 또한 응당 수명이 아주 길어서 8만 4천년이 될 것이며, 또한 아승기 해를 사는 이가 있을 것이다. 지금에 수하는 이는 아주 장수하여도 백 년이고 백 년을 벗어나는 이는 매우 적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물며 또한 현재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028_0586_b_13L或作是說壽欲終世尊故說過去久遠人壽命長壽八十四千歲亦有阿僧祇歲者未來久遠人亦當壽極長壽八十四千歲亦有阿僧祇歲如今壽者極壽百歲出百歲者少少故曰況復現在
어떤 이는 “그것은 세존께서 교계(敎戒)하시는 말씀이니, 하물며 또한 중생의 현재 몸이겠는가? 말하자면 그 아소(我所)의 뜻으로써 물들고 집착한다. 과거와 미래에 반드시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더라도 그 중에 음욕의 뜻이 더욱 많고 현재에 무상하기 때문에 ‘하물며 또한 현재이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028_0586_b_18L或作是說此世尊教戒語況復衆生現在言是我所意染著過去未來未必染著於中婬意偏多現無常故曰況復現在
존자께서는 “현재에 잠깐 나타났고 과거와 미래에 항상 머무르지 않고 이리저리 왕래한다”고 말씀하셨다.
계경(契經)에서 말씀하신 것을 살펴보면, 또 세존께서 “비구는 마땅히 무덤 사이의 5납의(納衣)를 취해야 하나니, 적고 얻기가 쉽고 사람들이 탐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028_0586_b_22L尊作是說現在蹔現過去未來不常住展轉往來按契經句說又世尊言比丘當取塚閒五納衣易得人無貪愛
028_0586_c_02L어찌하여 무덤 사이의 옷은 적으며, 어찌 얻기가 쉬우며, 어찌 탐내지 않는다고 하셨는가?
028_0586_c_02L云何塚閒衣易得何少云何易得云何不貪愛
어떤 이는 “사람들이 그것을 입는 이가 적기 때문에 적다고 말한 것이요, 어디에서나 얻기가 쉬우므로 얻기가 쉽다고 한 것이요, 그것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옷이고, 사람들이 탐내는 이가 없으며, 그 값이 아주 적기 때문에 적다고 한 것이요, 남에게 구할 필요도 없고 또한 그 주인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6_c_03L或作是人著者少故曰少處處易得故曰易得是佛所許人無貪者價數甚少故曰少不從人求亦復無主
또 세존께서 “비구는 도를 행하기가 매우 괴롭고 비구는 구걸하기가 괴롭고 함께 거처하기가 괴롭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도를 행함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구걸함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함께 거처함이라고 하는가?
028_0586_c_06L又世尊言比丘行道甚苦比丘乞求共居苦彼云何行道云何乞求何共居
어떤 이는 “5성음(盛陰)이 곧 도를 행함이요, 몸을 아낌이 곧 구걸함이요, 결사가 곧 함께 거처함이다”고 말했다.
028_0586_c_09L或作是說五盛陰是行道身是乞求結使是共居
존자께서는 “위에서 말씀하신, ‘비구는 도를 행하기가 괴롭고 구걸하기가 괴롭고 함께 거처하기가 괴롭다’고 하신 그것은 중생이 저 나고 죽는 괴로움에 표류하나니 그 때문에 도를 행하기가 괴롭다고 말씀하신 것이요, 세 가지 괴로움[三苦]이 몹시 괴로우니 몸의 괴로움ㆍ지어감[行]의 괴로움ㆍ변역(變易)의 괴로움 그것이요, 남의 향락을 바라는 것도 역시 괴로우니, 그 괴로움이 온갖 것을 구걸함이요, 방편 없는 것이 함께 거처하는 괴로움이다”고 말씀하셨다.
028_0586_c_10L尊作是說向者語比丘行道苦乞求苦共居苦衆生於彼流轉生死苦於此義故說行道苦於三苦甚苦身苦行苦變易悕望他樂亦是苦是苦一切乞求無方便共居苦
처소와 무상함이 법계(法界)에서
온갖 집착과 티와 때를 내고
하물며 또한 현재라고 함이며
5납의(納衣)는 몹시 괴로움이네.
028_0586_c_15L處無常法界
生諸著塵垢
使況復現在
補納衣甚苦
제5 게품을 마친다.
028_0586_c_17L第五偈品竟

1. 취건도 ⑥
028_0586_c_18L尊婆須蜜菩薩所集偈品首聚揵度之六

또 세존게서 “저 게송에서 말한 바와 같이 먹지 못할 것을 그가 먹는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으로 부처님 세존께서는 “먹지 못할 것”이라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는가?
028_0586_c_19L又世尊言如彼偈所說不可食彼食以何等故佛世尊說偈不可食
어떤 이는 “세존께서는 먹는 것 때문에 가신 것이 아니고 다만 저 바라문(婆羅門)을 교화하시려고 함이니, 그러므로 받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028_0586_c_21L或作是說世尊不以食故往但欲教化彼婆羅門是故不受
【문】게송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아닌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먹는 것이 그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먹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것인가?
028_0586_c_23L不以偈故說不可食食非其義故曰不可食
028_0587_a_02L어떤 이는 “저 바라문이 간탐이 많고 질투가 심하므로 그의 음식을 받아 먹게될 경우에는 그가 곧 생각하기를 ‘사문 구담이 먹을 것 때문에 설법한 것이니, 저 시나 게송을 수집하는 이가 돈과 재물 때문에 그를 칭찬하고 찬양함과 같고, 구걸하는 이도 저 유명한 의원이 약초를 찬양하면서 무슨 병이라도 치유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6_c_24L或作是彼婆羅門耕田淨意慳貪嫉妒受彼食彼便作是念沙門瞿曇以食故而說法如採合詩頌以錢財故歎譽乞如彼良醫歎譽藥草無病不療
어떤 이는 “저 바라문에게 신통 변화를 나타내시고자 하여 부처님께서 그에게 세 가지 변화를 나투시어 타이르고 교화하셨다”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두 가지 사실[二事] 때문에 부처님 세존께서 게송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받아 드시지 않은 것이니, 스스로 그 내용을 나타내시며 중생이 교화를 받을 만한 것임을 나타내시려고 그로 하여금 보호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하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87_a_05L作是說欲現神足變化彼婆羅門爲現三變化而教戒之尊作是說二事故佛世尊說偈不受取自現其現衆生應受化故使起護心
또 세존께서 “목책을 끊고 해자를 끊고 문지방에 서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문지방이라는 뜻은 무엇인가?
028_0587_a_09L又世尊言斷柵斷塹而住門閫門閫者義云何
어떤 이는 “그 거만함과 나태한 이에게 저 문지방에 의지하여 ‘내가 만든 것이다’ 함이다”라고 말했다.
바차종(婆嵯種)이 “그와 같은 구담 사문은 그 법화(法化) 안에 가지와 잎ㆍ줄기ㆍ마디ㆍ껍질과 싹 따위는 없고 깨끗하며 견고하여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한 것과 같다.
028_0587_a_11L或作是說於此慢怠依彼門閫吾我所造如婆嵯種說如是瞿曇沙門於法化中無有枝葉莖節皮牙雹淨牢固不可移動
어떤 것을 법화 안에 가지와 잎ㆍ줄기ㆍ마디ㆍ껍질ㆍ싹ㆍ깨끗함이라고 하는가? 그리고 견고하다고 말한 그 뜻은 어떠한가?
028_0587_a_14L云何於法化中枝葉莖節皮牙雹淨言牢固者義云何
어떤 이는 “계율이 법화 안의 가지ㆍ잎ㆍ줄기이고, 이끗[利養]이 껍질이요, 삼매가 깨끗함이요, 해탈이 견고함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7_a_16L或作是說戒於此法化中枝葉莖利養是皮三昧是雹解脫是牢
【문】어떤 것을 법화 안에 계율이 없고 업(業)이 없고 이끗이 없고 삼매가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028_0587_a_18L云何於法化中無有戒無有業無有利養無有三昧
어떤 이는 “계율이 견고함이니, 그러므로 가지ㆍ잎ㆍ줄기가 이끗이요, 이끗이 견고함이요, 껍질은 삼매니, 그 적은 모양을 나타냄이요, 해탈이 견고함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온갖 삿된 소견 있는 것이 이 경 안에 가지ㆍ잎ㆍ줄기ㆍ껍질이니, 그러한 말을 함과 그와 같이 그 뜻을 나타낸 그것은 구담 세존의 법화에 견해가 견고하며 해탈이 견고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87_a_19L或作是說戒牢是故枝葉莖利養利養是牢固雹者三昧現其少相解脫牢固或作是說有諸邪見於此經中枝葉莖皮雹作是說如是現其義此非瞿曇世尊法化見牢固解脫牢固
028_0587_b_02L어떤 이는 “계율이 성취함은 잎과 줄기로써 그 서로 비슷함을 보인 것이요, 삼매가 성취함은 껍질로써 그 서로 비슷함을 보인 것이요, 지혜가 성취함은 해자[塹]로써 보인 것이니, 그와 같은 구담 세존께서 그것 때문에 범행(梵行)을 닦으신 것이 아니요, 그 외의 해탈과 견고한 신통의 덕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7_a_24L或作是說戒成就葉莖現其相類三昧成就雹現其相類智慧成就現其塹如是瞿曇世尊非以是故修梵行餘解脫牢固神通之德也
또 세존께서 “본래 거쳐 지난 것이다”고 게송으로 말씀하였다.
어찌하여 물질과 처소가 서로 같지 않은데, 본래 거쳐 지난 바를 잃어버리고 자비(慈悲)를 일으켰는가?
028_0587_b_05L又世尊偈言本所更歷云何色處不相類失本所更歷起慈悲
어떤 이는 “자연이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위의(威儀)가 자연이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본래 지나신 것으로 인하여 자비를 일으키신 것이며, 스스로 그 숙명(宿命)을 아신 것이며, 어떤 이가 와서 아뢰어 말한 이가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저 사실과 같이 본래의 인연을 말씀하신 것이다”고 말했다.
028_0587_b_07L或作是說自然或作是說威儀自然或作是說以二事故因本所逕歷而起慈悲識宿命或有來告語者或作是說彼事說本因緣也
또 세존께서 긍숙구(矜叔軀) 나무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때에 두 사신이 그 사실대로 가서 나라 임금에게 고하고 다시 길로 되돌아왔다. 저 무엇을 그 사실대로 한 것이라고 하며, 무엇을 길로 되돌아 온 것이라고 하겠는가?
028_0587_b_11L又世尊言居進反叔軀樹喩爾時二使者如其實事往語國主已復道而彼云何如其實事云何復道而還
어떤 이는 “4성제(聖諦)가 그 사실대로 한 것이며, 8성도(聖道)가 곧 길로 되돌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028_0587_b_14L或作是說四賢聖諦如其實事八賢聖道是復道而還
【문】도의 진리 가운데에는 어찌 정한 곳이 있으며, 어찌 별명(別名)이 있는가?
028_0587_b_16L設道諦中云何有定處云何有別名
【답】허위가 없는 이는 벗어나는 긴요함이 길이 된다. 어떤 이는 “그 법과 같이, 그 진실한 말과 같이, 그 아는 바와 같이 하는 것이 길로 되돌아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진리의 도를 보는 것과 같이 진실한 말도 역시 그와 같으며, 사유(思惟)의 도와 같이 길로 되돌아온 것도 역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028_0587_b_17L答曰無虛僞者出要爲道或作是說如其章如其實如其所知復道而還或作是說見諦道實語亦復如是如思惟道道而還亦復如是
존자께서는 “4성제가 그 진실한 말대로이고 8성도가 길로 되돌아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진리인 말로는 모양이 없는 것을 권유하는 말이니, 계경(契經)에서 청정하게 그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경을 고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028_0587_b_21L尊作是說四賢聖諦如其實語八聖道復道而還此諦相語勸無相物契經中淸淨說是語案經說
028_0587_c_02L또 세존께서 “무덤 사이의 5납의(衲衣)를 입음에 다섯 가지 사실이 있으면 법에 합당하지 않나니, 냄새가 남과 색깔이 낡음과 이가 남아 있음과 바라(婆羅)와 야차(夜叉)가 살고 있는 곳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무덤 사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냄새 남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색깔이 낡음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이가 남아 있음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바라와 야차라고 하는가?
028_0587_b_24L又世尊言著塚閒五納衣有五事則不應法色壞饒蝨婆羅夜叉所居處云何塚閒云何臭云何色壞何饒蝨云何婆羅夜叉
【답】입고 죽었거나 죽은 사람을 싸서 덮어둔 침구나 이불 따위가 몸에 있기 때문에 그를 무덤 사이의 옷이라고 한다. 티와 때가 묻어서 빛깔이 나지 않으며, 비록 염색을 해도 색깔이 물들지 않으며, 깨끗하지 못하고 빛깔이 나지 않으며, 비록 염색을 해도 색깔이 물들지 않으며, 깨끗하지 못하고 냄새 나는 곳에서 뜨거운 햇빛에 쪼인 그와 같은 옷은 희망이 있으나 나아가서는 이가 많아서 저곳에 내 놓아 버려두고 천신(天神)도 가지 않으며, 나쁜 귀신만이 가까이하기 때문에 바라(婆羅)와 야차(夜叉)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028_0587_c_05L答曰死所用裹死人若臥若被在身故曰塚閒衣被塵垢污無色陰雖染不成色不淨臭處熱暑暴如此衣有悕望至蟣爲首置彼已天神不往詣惡鬼近故曰婆羅夜叉
또 세존께서 “애욕이 다하면 욕심이 다하고 욕심이 다하면 애욕이 다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애욕과 욕심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어떤 이는 “차이가 있지 않으니, 애욕이 곧 욕심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7_c_10L又世尊言愛盡欲盡欲盡愛盡愛與欲有何差別或作是說無有差別卽是欲
【문】지금 애욕이 다해도 욕심이 다하는 것이 없으니, 마땅히 “욕심이 다하고 욕심이 다하기 때문에 애욕이 다하고 욕심이 다한다”고 말해야 하겠는가?
어떤 이는 “애욕은 적고 욕심은 많다”고 말했다.
028_0587_c_13L今無愛盡欲盡當作是說欲盡欲盡故曰愛盡欲盡或作是說愛少欲多
【문】욕심이 상ㆍ중ㆍ하가 있고, 애욕도 중ㆍ하가 있는가?
어떤 이는 “음식을 생각함이 욕심이니, 저것에 드디어 물들고 집착하면 그것이 곧 애욕이니, 그러므로 애욕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7_c_15L欲有上中下愛有中下或作是說念食爲欲於彼遂染著是愛故曰愛
말한 바와 같이 아플 적에는 탐욕과 애욕이 곧 사라지나니, 이와 같이 저 아픔은 그것을 없애도 되어 서로 어김이 있는가?
어떤 이는 “얻고자 하는 욕심과 얻지 못할 적에 얻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곧 욕심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7_c_17L如所說如痛貪欲愛彼便滅如是彼痛當滅彼有違或作是說得欲未得愛時得便是欲
【문】지금 이미 얻어도 더럽힘이 없고, 얻지 못했어도 욕심이 없는가?
어떤 이는 “좋아하여 취하는 것이 욕심이 되고, 좋아하여 취하지 않음도 욕심이 된다”고 말했다.
028_0587_c_19L已得無有染未得無有欲或作是說愛取爲欲不愛取爲愛
【문】좋아하여 취하여도 욕심이 있지 아니하고, 좋아하여 취하지 아니하여도 애욕이 있지 않는가?
어떤 이는 “의지(意地)는 곧 애욕이요, 여섯 식신(識身)은 곧 욕심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7_c_21L愛取無有不愛取無有愛或作是說意地是六身識是欲
【문】만일 의지가 곧 애욕이라면 저 욕심과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안이 곧 욕심이고, 바깥이 곧 애욕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7_c_23L若意地愛彼欲有何差別或作是說內是欲外是愛
028_0588_a_02L【문】지금 안에도 애욕이 없고, 밖에도 욕심이 없는가?
어떤 이는 “삼가함[敬]이 곧 욕심이고, 그를 조작한 것이 곧 애욕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7_c_24L今內無染外無有欲或作是說敬是造者是愛
【문】말한 바와 같이 “아픔[痛] 중에 곧 욕심이 있고 그를 조작한 것이 곧 애욕이다”라고 한다면 곧 어긋남이 있는가?
028_0588_a_03L如所說痛中欲者所造是愛則有差違
【답】어떤 이는 “얻지 못했던 것을 얻으매 모두가 기뻐하나니 그를 욕심이라 이르고, 이미 얻어 먹으면 그에 탐착하나니 그를 애욕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88_a_04L或作是說未得已得諸生歡喜是謂欲已得食欲諸貪著是謂愛也
존자께서는 “고운 얼굴과 기쁜 얼굴빛은 곧 욕심이요, 오락으로 뜻이 기쁘고 의식이 회전하는 그것을 애욕이라 말한다”고 말씀하셨다.
028_0588_a_06L尊作是說和顏悅色是欲娛樂志悅意迴轉是謂愛
부드러운 생각이 있지 않으면서
이미 얻으면 그에 꼭 집착한다.
의식[意]과 안의 모든 애욕이며
기쁜 얼굴로 오락하는 것이네.
028_0588_a_07L無有柔軟念
已得而染著
意及內諸愛
悅色所娛樂
또 세존께서 “그 있음에 인하여 곧 그가 있고, 그 있음에 인하지 않더라도 있지 않음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하실 적에 그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028_0588_a_09L又世尊言因是有便有是不因是有非爲不有說此語時此義云何
어떤 이는 “현재의 무명(無明)이 모든 행(行)을 내고 과거와 미래를 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8_a_11L或作是說現在無明生諸行生過去未來
【문】현재가 있지 않은 것과 같은가?
028_0588_a_12L猶如此現在無有
어떤 이는 “무명이 나를 의지해 모든 행을 내나니, 의지하지 아니하면 곧 없다.그러므로 이 나를 의지해서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남음이 있는 무명을 다하지 않으매 모든 행이 생기나니 이미 다하여 남음이 없으면 행(行)이 생기지 않는다.그러므로 이 남음이 있는 것을 다하지 아니하여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일체 중구(衆具)가 무명과 행을 내나니, 중구가 없으면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중구를 인하여 있고 없다”고 말했다.
028_0588_a_13L或作是說無明依吾我生諸行不依則無故因依此吾我無有或作是說不盡有餘無明生諸行已盡無餘則不生行故曰此不盡有餘無有或作是說一切衆具生無明行無衆具則不生故曰因此具無有
존자께서는 “스스로 기대고 쳐다보아 뜻[意]이 더하는 것에 의하여 그러한 말을 한 것이나 지금에는 있지 않으므로 괴로움의 진리[苦諦]가 있지 않나니, 마땅히 과거라고 말해야겠는가, 마땅히 미래라고 말해야겠는가, 마땅히 현재라고 말해야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이는 “마땅히 현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과거와 미래에서 괴로움을 느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88_a_19L尊作是說自憑仰依意增益故依此說今非有無有苦諦當言過去耶當言未來耶當言現在耶或作是說當言現在不以過去未來覺苦
028_0588_b_02L【문】과거에는 이미 속박되었고 미래에는 장차 속박될 것이며, 현재에는 혹 속박되지 않음도 있는데, 저것을 괴로움의 진리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다시 5성음(盛陰) 안에서 괴로움의 진리라는 생각을 일으켰고, 무수한 세상에서도 지혜를 펴 연설하기도 했으며, 괴로움의 진리와 익힌 진리[習諦]도 역시 그와 같다.
어떤 이는 “마땅히 현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과거와 미래의 애욕으로써 존재[有]를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88_a_22L過去已縛未來當縛現在或有不欲使彼非苦諦耶復次五盛陰中起苦諦想無數世時敷演智慧苦諦習諦亦復如是或作是說當言現在非以過去未來愛而受有
【문】과거에 이미 마련했고 미래에 장차 마련할 것이니, 현재의 애욕은 온갖 마련이 아닌가? 그것을 익힌 진리[習諦]가 아닌가? 다시 유루행(有漏行) 가운데서 익힌 진리라는 생각을 일으켰고, 무수한 세상에서도 익힌 진리를 펴 연설했으며, 도의 진리[道諦]도 역시 그와 같이 했는가?
028_0588_b_04L過去已未來當辯現在愛非一切辯耶使彼非習諦耶復次有漏行中起習諦想無數世中敷演習諦道諦亦復如是
【답】어떤 이는 “마땅히 현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과거와 미래의 도로써 결을 끊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88_b_08L或作是說當言現在非以過去未來道斷結
【문】과거는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장차 사라질 것이며 현재는 혹 사라지지 않음이 있기도 하는데, 그것을 도의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가? 다시 무루행(無漏行) 가운데서 이미 도의 진리라는 생각을 일으켰으며, 무수한 세상에서도 도의 진리를 펴 연설하였다
028_0588_b_09L過去已滅未來當滅現在或有不滅欲使彼非道諦耶次無漏行中已起道諦想無數世時敷演道諦
게송과 시와 그리고 문지방이며
바차종(婆蹉種)과 긍숙구(矜叔軀)와
무덤 사이의 옷과 및 욕심이며
원인과 진리에 각기 셋이 있다 함이다.
028_0588_b_12L偈詩頌門閾
婆嵯喜矜叔
塚閒衣及欲
因諦各有三
제6 게품을 마친다.
028_0588_b_14L第六偈品竟

1. 취건도 ⑦
028_0588_b_15L尊婆須蜜菩薩所集聚揵度偈品之七

부처님께 5안(眼)이 있음과
세 가지로 난다는 그것이며
함이 있음과 상속한다는 것과
나지 않음과 허공 있음이네.
028_0588_b_16L佛有五眼
及三種生
有爲相實
不生有空
또 세존께서 “비구여, 나는 불안(佛眼)으로써 저 중생의 영리한 근기와 둔한 근기와 교화할 만하여 가르치기 쉽고 모든 티와 때가 적은 이와 듣지 않고 법에서 물러서는 것들을 모두 관찰하기를 마치 이 3안(眼)과 같이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눈이라고 하며, 불안(佛眼)ㆍ육안(肉眼)ㆍ천안(天眼)ㆍ혜안(慧眼)이라고 하는가?
028_0588_b_18L又世尊言比丘我以佛眼觀彼衆生利根鈍根可化易教少諸塵垢不聞退法者猶如此三眼云何眼謂之佛肉眼天眼慧眼
어떤 이는 “여래의 3안(眼)은 마땅히 모두가 불안이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 하면 모두가 여래의 지혜 눈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8_b_22L或作是說如來三眼者當言一切佛眼耶何以故一切是如來智慧眼
028_0588_c_02L【문】지금은 일체 중생을 관찰하지 아니하니, 관찰하는 것은 모두 어두운 곳에 다 두루한 것이다.
존자께서는 “여래의 거룩하신 지혜는 항상 머물러 변하거나 옮기지 않나니 일체 중생의 꿈틀거리는 무리에까지 불안이라 이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88_b_24L如今不觀一切衆諸所觀者幽冥處悉遍尊作是說如來聖智常住不變移一切衆生蠕動之類謂之佛眼
불안을 마땅히 선이라고 말해야 되는가, 무기(無記)라고 말해야 되는가?
028_0588_c_04L佛眼者當言善耶當言無記耶
어떤 이는 “마땅히 선이라고 말해야 하며, 또한 무기이기도 하다. 왜냐 하면 일체 3안(眼)이 곧 불안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마땅히 선이라고 말해야 될 것이니, 착란한 뜻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88_c_05L或作是說當言善亦是無記何以故一切三眼是佛眼尊作是說當言善無有錯亂志
불안을 마땅히 유루라고 말해야 되는가, 마땅히 무루라고 말해야 되는가?
028_0588_c_07L佛眼者言有漏當言無漏耶
어떤 이는 “마땅히 유루라고 말하고 마땅히 무루라고 말하나, 마땅히 무루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 하면 3안이 곧 불안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존자께서는 “마땅히 무루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 하면 유루의 중간에서 유루를 내지 않는 것이 마치 이 여래의 10지(智)와 같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88_c_08L或作是說當言有漏當言無漏當言無漏何以故眼是佛眼尊作是說當言無漏何以不以有漏中閒生有漏猶如此如來十智
어떤 지혜가 곧 불안인가?
何等智是佛眼
어떤 이는 “모든 여래의 10지, 그것은 모두 불안이라고 말해야 한다. 왜냐 하면 모든 여래는 곧 지혜 눈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법지(法智)와 미지지(未知智)는 곧 여래께서 항상 머무는 것이어서 일어나지 않고 옮기지 않고 함께 하지 않는다. 일체 중생의 꿈틀거리는 무리까지 마땅히 불안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마치 이 10력(力)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88_c_12L或作是說如來十智彼一切當言是佛眼也以故一切如來是智慧眼或作是說法智未知智是如來常住不起不移不共一切衆生蠕動之類當言佛眼猶如此十力
어떤 힘[力]이 곧 불안인가?
何等力是佛眼
어떤 이는 “근지(根智)를 마땅히 불안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그것으로써 어떤 중생이 영리한 근기인지, 둔한 근기인지, 중간 근기인지를 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일체 10력을 마땅히 불안이라고 말할 것이니 그것은 여래지(如來智)와 나아가 10력이 아닌 것이 마치 이 온갖 행(行)이 무수한 인연으로 생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88_c_17L或作是說根智者當言佛眼也以此知之或有衆生利根鈍根中根或作是說是一切十力當言佛眼此非如來智乃至十力猶如此諸行無數緣生
무슨 까닭에서 나는[生] 것을 낳음이라고 말하는가?
028_0588_c_21L何等故生者言生
어떤 이는 “난다[生]는 것이 가장 미묘하나니, 비유컨대 여러 가지 것으로 의상을 문들이되 물들이는 자는 곧 사람인 것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88_c_22L或作是說生者最譬如以衆多事染衣裳染者是人
028_0589_a_02L【문】평등하여 걸림 없는 중에 미묘한 것인가, 미묘하지 않은 것인가? 그 내용이 어떠한가? 푸르게 물들인 옷이 있으니, 그러므로 일정하지 않다.
어떤 이는 “비록 그런 인연이 있으나 낳음에 속박되지 않나니, 그러므로 낳는 것은 낳는다”라고 말했다.
028_0588_c_23L等無㝵中是妙是非妙此義云何有染靑衣是故不定或作是說雖有此緣生不縛是故生者生
【문】인연에는 그 낳음이 있어 인연에 속박되어 낳는 바이니, 그러므로 일정하지 않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실로 나지 않음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028_0589_a_03L緣有此生緣所縛生是故不定或作是說無有實不生
【문】처음은 낳음과 저 인연이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는 인연이 아니다.
어떤 이는 “나서 지어감으로 낳은 것이 아니고, 지금 합해 모여 지어감에서 생기나니, 그러므로 합해 모여 지어감에서 생긴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만일 나서 지어감으로 그와 같이 난다면 저 인연으로 방편이 있지 않다. 평등하여 걸림이 없는 가운데 나기와 낳는 바가 인연으로 생김이 아닌즉 어긋남이 있다. 저 인연법이 모든 법을 내나니 인연이 없은즉 나지 않는다. 그와 같이 다르지 않나니, 그러므로 마땅히 이 자연으로 생기는 것과 자연으로 모든 법을 만들어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놓아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그렇지 아니하여 마치 온갖 지어감이 두 나기[二生] 따위로 낳는 것과 같다.
028_0589_a_05L初無有生及彼緣故此非緣或作是說非生行生今合會行生是故合會行生或作是說生行生如是彼緣無有方便等無㝵中生所生非緣生則有差違如彼緣法生諸法無緣則不生如是不異故當捨此然生非自然造起諸法事不然猶如此諸行二生等生
무슨 까닭으로 하나의 나기[一生]라고 말하는가?
어떤 이는 “하나는 나서 지어감이요, 그 밖의 나기도 역시 나기다”라고 마했다.
028_0589_a_12L何以故言一生或作是說一者生行餘生者亦是生
【문】그것 역시 나의 의심이니, 왜냐 하면 하나의 나기가 아닌 그 밖의 지어감도 역시 나기이다.
어떤 이는 “그것에 하나의 원인만 있고 그 밖의 것은 곧 결과이다”라고 마했다.
028_0589_a_14L此亦是我疑何以故者非生餘行亦是生或作是說彼有一因餘者是果
【문】비록 각각 생기는 것이 있으나 이 둘은 두 원인이 아니고, 저것 역시 결과이다.
어떤 이는 “지어감에는 두 나기가 없다”고 말했다.
028_0589_a_16L雖有各各生此二非二因彼亦是果或作是說行無二
【문】이 모든 사실에 불상응행(不相應行)이 많거늘, 어찌 하나의 나기만 하는가?
어떤 이는 “그 둘이 함께 나지 않고 상응한즉 지어감이 난다”고 한다. 다시 그 욕심의 뜻이 생기고 자연으로 생김이 있다.
028_0589_a_18L此衆事不相應行多云何有一或作是說此二俱不生相應則生行復次此有欲意生自然生
무슨 까닭으로 낳는 것을 나기라고 말하며, 그것은 있지 않는 따위의 법인가?
어떤 이는 “낳은 것은 이미 생긴 지어감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것은 나기가 아니고 그 밖의 것은 나기이니, 만일 생기는 데에 생기는 것이 있다면 곧 유전하여 생기는 것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지어감이 스스로 생긴다면 지어감이 이미 스스로 생김이니, 이것은 곧 스스로 생김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9_a_20L以何等故生者言生彼非有等法或作是說者已生行或作是說此非生餘者生乃生若生有生者則有流轉生不絕若行自生行已自生此是自生
028_0589_b_02L저 어찌 생김 없는 것이 생기겠는가? 그러므로 이 내용은 그러하지 아니하여 마치 이 3유위(有爲)가 함이 있는 모양으로서 일어남이 다하매 머물러서 변역함이 없는 것과 같다. 어찌 머무르는 것이 변역이 있겠는가?
어떤 이는 “일어나는 것은 생김이라고 말하며, 다하는 것은 항상 머무름이 없고 늙는 것은 변역하나니, 그를 변역이라 이른다”고 말했다.
028_0589_a_24L彼云何無生者生是故此義不然猶如此三者有爲有爲相起盡住無變易何住者有變易或作是說起者名生盡者無常住老者變易是謂變易
만일 저 늙음에 뛰어남이 있다면, 뛰어남이란 변역함이니, 만일 변역함이 없으면 곧 달라짐도 있지 아니할 것이다.
어떤 이는 “미래는 오랫동안 머무르고 과거와 현재는 곧 변역함이 있나니, 그와 같은 머무름에는 곧 변역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89_b_05L設彼老有勝者勝者變易若無變易則無有異或作是說未來久遠住去現在則有變易如是住便有變易
【문】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거나 간에 변역함에는 달라짐이 있나니, 만일 달라짐이 없다면 곧 변역함이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다시 어느 물건도 머물러서 변역 있는 것이 있지 않으나 뜻[意]은 머물러서 변역함이 있다. 최초의 나고 죽음을 일으킨 것이란, 사라짐과 생기는 자리가 각각 서로 의지하여 몸은 머물러 변하나니, 변하면서 머무름에는 곧 변역함이 있다. 그 사실을 마땅히 평등하다고 말해야겠는가? 마땅히 차츰차츰 평등하다고 말해야겠는가?
어떤 이는 “마땅히 알맞고 평등하게 일시에 함께 일어난다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89_b_08L若起未起變易有勝者設無有勝則無變易復次無有一物住有變易意住有變易起最初生死者滅所生各各相憑身住轉轉移住則有變此事當言等耶當言漸漸等或作是說當言適等一時俱起
【문】일시에 늙어 변역하면 곧 무너짐이 있는가?
어떤 이는 “마땅히 차츰차츰 평등하게 일어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저 머무름에 작용했던 바는 곧 변역함이 있어 차츰 다하게 되고 함께 생기고 차츰차츰 생긴다”고 말했다.
다시 온갖 지어감을 조작하는 유위상(有爲相)은 다시 지어감을 짓지 않는다. 만일 지어감을 짓는다면 곧 평등한 법칙으로 함께 생김이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일시에 나고 늙고 변역하고 무너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옳지 않다.
028_0589_b_14L一時老變易則有壞敗或作是說當言漸漸等起所作於彼住便有變易漸至盡俱生漸漸生復次作衆行有爲相不造行若得造行者則有等則俱生是故一時生老變易壞敗是故此非
어떤 것을 괴로움의 진리 모양[道諦相]ㆍ익힘의 진리 모양[習諦相]ㆍ없애는 진리의 모양[盡諦相]ㆍ도의 진리 모양[道諦相]이라고 하는가?
어떤 이는 “뭇 괴로움이 괴로움의 진리 모양이며, 변하고 옮기는 것이 익힘의 진리 모양이며, 정지시키는 것이 없애는 진리의 모양이며, 벗어나는 요령이 도의 진리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루려 함이 괴로움의 진리 모양이요, 회전함이 익힘의 진리 모양이요, 전환하여 머무름이 없애는 진리의 모양이요, 능히 돌이켜 돌아옴이 도의 진리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9_b_20L云何爲苦諦相習諦相盡諦相諦相或作是說衆惱苦諦相轉移習諦相休息爲盡諦相出要爲道諦相或作是說成就爲苦諦相迴轉爲習諦相轉住爲盡諦相能迴還爲道諦相
028_0589_c_02L다시 교법은 실제(實諦) 모양이라 한다. 그리고 5음(陰) 무더기에서 구리물[洋銅]과 철환(鐵丸)으로 이와 같은 세 가지 고(苦)를 받아 물들고 집착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함이 뜨거운 철환을 삼키는 것과 같다. 고고(苦苦)ㆍ행고(行苦)ㆍ변역고(變易苦)는 저 불탄 철환이 불에 들어가 불과 다름이 없는 것과 같나니, 그와 같은 것을 마땅히 고고 모양이라고 관찰하여 그 괴로움의 모양인 것으로 알아야 한다.
028_0589_b_24L復次章義作實諦相於五陰聚中洋銅鐵丸受如此三苦染著憂惱如呑熱丸苦苦行苦變易苦如彼燒鐵丸入火與火無異如是當觀苦苦知其惱相
거기에서 괴로움과 애착이 번갈아 행하여 변역하며 나쁜 갈래에 바삐 달려 향하나니, 그것을 동일하게 있다고 말하는데 그것을 익힘의 진리 모양이라고 관찰해야 한다.
지어감의 때[行垢]와 조작과 지어감에 속박되지 않는 것이 고루 있는 그것을 동일하게 있음이 아니라고 이르나니, 없애는 진리의 모양이라고 관찰해야 한다.
계율을 닦고 망상을 정지시켜 지혜가 생기며 상응하는 원인[相應因]이 사라지나니, 그와 같이 수행하는 것을 도의 진리 모양이라고 관찰해야 한다.
028_0589_c_06L於此苦愛轉行變易趣之處奔走馳向是謂等有觀其習諦相行垢造行不縛等有是謂非等當觀盡諦相修戒休息智慧生應因滅如是修行觀道諦相
무슨 이유 때문에 과거의 행(行)이 다시 생기지 않는가?
어떤 이는 “누가 다시 생기는 것을 보는가? 만일 과거의 행을 의심하면 어떤 이가 ‘이미 사라져서 나지 않는다’ 했다”고 말했다.
028_0589_c_10L以何等過去行不復生或作是說誰見更生者若疑過去行或作是說已滅不
【문】현재가 다시 생기는가?
어떤 이는 “만일 상응하지 아니하면 저것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028_0589_c_13L現在復生耶或作是說若不相彼不生也
【문】저 과거가 상응하여 있는 것과 같다. 다시 한 모양은 응당 한 결과를 이룰 것이요, 한 모양이 응당 두 결과를 이루지 않나니, 그러므로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허공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알게 되겠는가?
어떤 이는 “그것은 현실적인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9_c_14L如彼過去相應有復次一相應成一果非一相應成二是故不生云何得知言有虛空作是說此現事
【문】증상만(增上慢)은 공해서 근본이 없다고 이르나 현재의 사실을 알기도 하고, 또한 알지 못하는 것도 있는가?
어떤 이는 “집착함이 없고 생기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028_0589_c_17L謂增上慢空無根本現在事得知亦有不可知或作是無著無生
【문】집착이 있는 것은 생김이기에 곧 저 집착이 없으면 생김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가?
어떤 이는 “만일 허공[空]이 없다면 물건에 한계점이 없을 것이다. 물건에는 한계점이 있나니, 그러므로 허공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89_c_19L有著者生則可知無彼著則無生或作是說設無空者無分齊雖有分齊是故有虛空
【문】꿈속에서 본 온갖 물건은 머무름이 없다. 만일 물건을 수용하면 수용함이 더 수용하게 되므로 그것이 전전하게 된다. 그 전전함은 그러므로 일정하지 않고 또한 끝장이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공이 없다.
028_0589_c_21L中所見一切物盡住若物所容受受增容受彼展轉彼展轉是故不定亦不可究竟是故無虛空
028_0590_a_02L어떤 이는 “세속적인 것 때문에 그를 말한 것뿐이니, 중생을 살타나라말뉴사(薩唾那羅末㖻闍)ㆍ마납바다뉴(摩納婆埵㖻)라고 이름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궁구하여 알 수가 없다. 왜냐 하면 이는 지혜로써 알 바이기 때문이다. 즉 물질이 공(空)과 더불어 서로 상응하지 않고 무형[無色]이 공과 더불어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저 있는 바가 없다는 것[無所有]과 공(空)이라고 말하는 것까지가 모두 세속적인 언어와 수효이다”라고 말했다.
028_0589_c_24L或作是說以世俗故故說此耳如衆生號薩唾那羅未㖻闍摩納婆埵睹過反奴流反作是說不可究知何以故此智所知何以故色與空不相應無色不與空相應於此至彼無所有言空是世俗言數
부처님에게 5안(眼)이 있음과
세 가지로 난다는 그것이며,
세 가지 함이 있는 진리와
나지 않음과 허공 있음이네.
028_0590_a_07L佛有五眼
及三種生
二有爲諦
不生有空
세간(世間)의 여덟 법이 몇 가지 음(陰)과 몇 가지 지(持)와 몇 가지 입(入)을 포섭하는가?
028_0590_a_09L世閒八法攝幾陰幾持幾入
교법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유리(有利)ㆍ무리(無利)ㆍ속리(粟利)ㆍ재리(財利)ㆍ의상리(衣裳利)는 4지(持)와 4입(入)을 포섭하고 색음(色陰)에 해당하는 것이며, 상리(象利)ㆍ마리(馬利)ㆍ남녀리(男女利)는 17지(持)와 11입(入)을 포섭하고, 5음(陰)에서 이미 얻은 소득리(所得利)는 법지(法持)와 법입(法入)을 포섭하는데, 행음(行淫)에 해당하는 것이다. 명칭이 있는 것과 명칭이 없는 것은 성지(聲持)와 성입(聲入)을 포섭하고, 색음(色陰)의 고락은 법지(法持)와 법입(法入)을 포섭하는데, 통음(痛陰:受陰)에 해당된다. 그리고 일체 세간 8법이 18지(持)와 12입(入)과 5음(陰)과 5욕(欲)을 포섭한다.
028_0590_a_10L如章所有利無利粟利財利衣裳利攝四四入色陰所攝象利馬利男女利攝十七持十一入五陰已獲所得利攝法持法入行陰所攝有名稱無名稱譽攝聲持聲入色陰苦樂攝法持法入痛陰所攝一切世閒八法攝十八持十二入五陰
고와 낙을 마땅히 성취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마땅히 성취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낙(樂)을 마땅히 성취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저 인연으로 인하여 욕락이 생긴다”고 말했다.
028_0590_a_17L五欲若苦若樂言成就當言不成就或作是說樂當言成就因彼緣生欲樂
【문】인연으로 고(苦)가 생기는데 고가 성취된다고 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고가 마땅히 성취된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존께서도 또한 “그와 같이 마단제(摩檀提)[바라문 이름]여, 중생의 욕망은 다하지 않는다. 욕망과 괴로움 중에서 오락을 일으켜 즐겁다는 생각으로 온갖 뒤바뀜이 생기나니, 나아가 계경(契經)에서 말했다”고 말씀하셨다.
028_0590_a_19L因緣生苦欲使成就苦耶或作是說苦當言成世尊亦說如是摩檀提婆羅門名衆生欲未盡於欲苦中起娛樂樂相得諸顚倒乃至契經說
028_0590_b_02L【문】지금 욕망이 즐겁다는 생각을 일으킴이 있지 않는가?
뒤바뀜에서 즐겁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어떤 이는 “괴로움도 있지 않고 그 성취됨도 있지 않거늘, 거짓 명칭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이니, 가지가지의 갈래[趣]가 있는데, 혹 어떤 한 갈래에서는 지방과 풍속이 유달라서 그 생각에 괴롭다, 즐겁다는 생각을 내는 것과 같다”과 말했다.
028_0590_a_23L如今無有生欲樂想答曰顚倒起樂想或作是說有苦無有成就樂假號言有苦樂慢如種種趣或有一趣方俗殊異惟生苦樂慢
아비담(阿毘曇)이란, 그 뜻이 무엇인가?
阿毘曇者其義云何
어떤 이는 “계경의 게송에서 모든 법과 내용을 잘 해결하여 그 이치가 깊고 깊기 때문에 아비담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4현성제(賢聖諦) 법을 능히 전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아비담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열반은 이 법을 수행하여 받아 증득하기 때문에 아비담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12인연(因緣)과 12연법(緣法)을 능히 스스로 깨닫기 때문에 아비담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8현성도(賢聖道)로 저 내용을 부연하기 때문에 아비담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028_0590_b_04L作是說契經偈決生諸法義理深邃故曰阿毘曇或作是說四賢聖諦法能專修行故曰阿毘曇或作是說洹是法修行受證故曰阿毘曇或作是說十二因緣十二緣法能自覺寤故曰阿毘曇或作是說八賢聖道敷演彼義故曰阿毘曇
다시 모든 속박과 집착을 해탈하여 영원히 남김 없이 없애고 그 내용에서 모든 법의 원인을 분별하매 명신(名身)과 구신(句身)과 미신(味身)이 있어서 차츰차츰 붙게 되고 차츰차츰 머무르고 차츰차츰 평등하게 상응하기에 이를 아비담이라 말한다.
028_0590_b_11L復次諸縛著解脫永盡無餘於此義中分別諸法因有名身句身味身漸漸著漸漸住漸等相應是謂阿毘曇
온갖 귀신의 형체를 가진 것과 사람의 형체를 가진 것이 사람의 소리를 낸다면 마땅히 사람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마땅히 비인(非人)의 소리라고 말해야 하는가?
028_0590_b_14L諸神形人形而作人聲當言是人當言非人聲
어떤 이는 “그것은 비인의 소리라고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이다. 옛적에 건타월(揵陀越)국의 귀신이 마갈(摩竭)국의 말을 하는 이에게 붙어서 건타월의 음성을 내어 마갈국의 귀신에게 말하기를, ‘건타월국 사람을 잡아서 마갈 국의 음성을 낸다’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그것은 곧 사람의 소리요, 귀신[야차ㆍ나찰]의 음향이 아니니, 그 사람이 음향으로 그 음향이 자기의 음향임을 먼 데서도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0_b_15L作是說當言此非人聲昔見揵陁越國鬼著摩竭國人語作揵陁越聲音語摩竭國鬼捉揵陁越國人作摩竭國音聲或作是說此是人聲非鬼夜叉羅剎音響是人音響遙知聲響此某甲音響
【문】비인이 사람의 형체를 가진 이에게 붙어서 말을 한 것이니, 그러므로 음성이 있는 것인가?
다시 마땅히 그것은 비인의 소리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과거의 사람에게서 보았으며 미래의 사람에게서도 볼 것이며, 또한 방속(方俗)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신이 사람에게 붙어서 말한 것이나 실로 허망한 신(神)이 떠나 말한 바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028_0590_b_21L非人著人形語是故有音聲復次當言此非人聲見過去人見未來人亦見方俗神著人語實無虛神阿鞞扇提離不憶所說
028_0590_c_02L세존께서 또한 “이것은 아구바라천자(阿拘婆羅天子)가 아니요, 아구바라천자가 그런 게송을 말한 것도 아니며, 악마 파순(波旬)이 아구바라천자에게 붙어서 그런 게송을 말한 것이니, 그것은 악마가 한 짓이요 그 천자가 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028_0590_b_24L世尊亦說此非阿拘婆羅天子阿拘婆羅天子說此偈魔天波旬著阿拘婆羅天子說此偈言此魔所說非其天子
무슨 까닭으로 하늘 사람을 귀신이라고 말하는가?
어떤 이는 “천상에 거주하기 때문에 하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니, 물 속에 사는 것들을 수종(水種)이라고 말하며, 산이나 늪에 사는 것들을 산ㆍ늪의 족속이라 말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천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하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니, 그 수레 탄 이를 수레 탄 사람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천상에서 자고 머무는 것을 하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니 성곽에 머무는 사람을 성곽 사람이라 함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90_c_04L以何等故天謂之鬼或作是說居住天上故曰如生水中謂之水種生山澤中謂之山澤種或作是說生至天上故曰如其乘車謂乘車人或作是說宿止天上謂之天如住城郭是城郭人
만일 비구가 받은 의복과 음식을 수용하면서 음욕의 생각ㆍ분노의 생각ㆍ살해하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그 시주는 죄가 있는가? 없는가?
어떤 이는 “그 시주(施主)는 죄가 없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은 죄를 지었으나 자신은 받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0_c_09L若比丘著衣食起欲想瞋恚想起殺害想彼檀越主頗有罪無耶或作是彼檀越無有罪何以故彼人作罪已不受
【문】세존께서 “만일 저 비구가 몸에 의복을 받아 입고 무량념삼매(無量念三昧)에 들어 생각이 전일하여 옮기지 아니하면, 저 시주는 한량없는 선업(善業) 공덕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와 같이 경의 말씀을 서로 어긋나는가?
그는 ‘내가 음욕의 생각을 냈었구나’하는 마음을 두지 않았다.
028_0590_c_13L如世尊言若比丘彼比丘身著衣裳入無量念三昧專志不移彼檀越主得無量善業功德如是契經各相違答曰彼不作是心我作欲
【문】그는 ‘나의 물건을 받고서 무량념삼매에 들어 생각이 전일하여 옮기지 않았구나’하는 그러한 생각을 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 사람에게 음식을 보시하므로 먹고 나서 무량삼매에 들었다거나, 시주의 옷을 입었구나 하는 생각을 내지 않았다.
만일에 시주의 의복과 음식을 받으면 그로 하여금 복을 얻게 한다.
028_0590_c_17L不作是念彼受我物入無量念三昧專志不移彼不作是心施此人食食入無量三昧著檀越衣答曰若著檀越衣食彼使獲福
【문】자신이 우환이 있으매 딴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고 하거나, 그 중간에 부정(不淨)을 생각하여도 죄와 허물이 있지 않다고 하거나, 스스로 부끄러워할 만한 자리에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며, 남에게 부끄러워할 만한 자리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해야 한다고 그러한 말을 하지 말아야 된다. 저 스스로 부끄러워함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을 선(善)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불선(不善)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무기(無記)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마땅히 선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니, 법과 더불어 상응한다”고 말했다.
028_0590_c_20L不應作是說自身有患餘人受疼痛不於中閒思惟不淨有非罪咎應慚不慚羞不羞彼慚愧羞當言善耶當言不善當言無記耶或作是說當言善與法相應
028_0591_a_02L【문】저것은 법과 더불어 상응하지 않는다. 스스로 부끄러워할 만한 자리에서 곧 스스로 부끄러움을 내는 그를 마땅히 법과 더불어 상응한다고 말해야 하는가?
어떤 이는 “불선(不善)을 당해서 뒤바뀐 생각이 있어 그를 좋게 여긴다”고 말했다.
028_0591_a_02L彼不與法相應可慚便慚彼當言法相應或作是說當不善有顚倒想爲好
【문】다시 그를 불선이라고 말할 것이니, 그와 같은 말은 악마의 세계만 더 불어나게 할 뿐이다. 말한 바와 같이, “목숨이 다르고 몸이 다르며 온갖 살고 있는 것이 곧 목숨이다”라고 말하는 그 뜻은 어떠한가?
028_0591_a_04L復次當言不善如是彼說增益魔界如所說命異身異諸所生是命作是說此義云何
【문】사는 것이 곧 목숨인가?
목숨은 사는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목숨은 목숨이 아니다. 목숨이 목숨이 아니기에 딴 목숨과 딴 몸인 이 사실도 그렇지 아니하며, 몸도 또한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만일 사는 것이 곧 목숨이라면, 또 몸은 목숨이 아닐 것이니, 그러므로 몸은 사는 것이 아니다. 몸이 살지 않을 적에 목숨이 다르고 몸이 달라서 몸이 목숨과 더불어 각각 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사는 것은 곧 목숨이요, 몸은 곧 사는 것이니, 그러므로 몸이 곧 목숨이다. 몸이 목숨과 더불어 다르다는 그런 상대적으로 다른 사실이 여기에서는 없다”고 말했다.
028_0591_a_06L生者卽命命非生是故命非命命非命餘命餘身此事不然身亦不得異或作是若生是命者又身非命是故身非身不生時命異身異身與命各各或作是說生者是命身者卽生故身是命身與命異對異無有此
만일 모든 법이 상대로 인하여 생긴다면, 이 법은 마땅히 법과 더불어 상응하여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
어떤 이는 “생긴다고 마땅히 말해야 할 것이니, 일찍이 일시에 불꽃과 광명이 같이 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028_0591_a_12L若諸法因對生者此法當言與法相應生或作是說當言生曾一時見炎光同出
【문】그것은 비유가 되지 않나니, 생각건대 불꽃은 광명이 아니고 광명은 불꽃이 아니다. 만일 그 둘을 함께 보아 취한다면 곧 두 사정[情]이 있는 것이 된다.
어떤 이는 “함께 상응하여 생긴다고 응당 말해야 한다. 만일 홑으로 생긴다면 애초에 불이 없어도 스스로 타게 됨이 마치 저 섶은 있으나 불이 없고 설령 또한 불이 있더라도 다시 섶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니, 그러므로 상응하여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028_0591_a_15L此非譬喩如意炎者非光如光非炎若俱取者則有二情或作是說當言俱相應生若隻生者無初火自然猶如彼有薪然無火設復有然復無薪是故當言相應生
【문】저 처음의 불이 스스로 타서 불이 생길 때를 탄다고 말하며, 만일 불이 붙으면 섶이 없어진다.
어떤 이는 “이는 생긴다고 응당 말해야 한다. 만일 홑으로 생긴다면, 12인연이 곧 순조롭지 않음이 되리니, 저 무명(無明)만 있고 지어감[行]이 없는 것과 같으며, 12무명이 사라질 때에도 거기에 곧 지어감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91_a_19L彼初火自然火當生時謂之然如生無薪或作是說此當言生設彼隻生十二因緣則不順如彼有無明無有行如無明滅時彼便有行
028_0591_b_02L【문】저 12인연은 곧 순조롭지 못함이 있나니, 만일 무명이 있어도 저 지어감이 생기지 않으며 지어감이 생겨도 무명이 있지 않는가?
어떤 이는 “그런 것들이 함께 상응하여 생긴다. 만일 홑으로 생긴다면 상응함에 그 결과가 있지 아니하고 결과에 원인이 있지 않으며, 만일 함께 생긴다면 결과가 있지 아니하며, 만일 결과가 있다면 함께 상응하여 생기는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1_a_23L彼十二因緣則不有順如有無明彼行不行生無有無明或作是說此等俱相應生設隻生者相應無有果果無有因如俱生無有果如有果無有俱相應生
【문】저것이 함께 상응하여 생기므로 저것이 함께 결과가 잇지 아니하고 결과에 원인이 없다. 만일 함께 상응하여 생기면 결과가 생기지 않고 만일 결과가 생기지 아니하면 함께 상응하여 생김이 없는가?
어떤 이는 “함께 상응하여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 만일 홑으로 생긴다면 본래가 또한 홑으로 생길 것이니, 그러므로 본래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 만일 홑으로 생기지 않는다면 또한 다시 함께 상응하여 생기지 않고, 또한 응당 홑으로 생길 것이니, 그러므로 본래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 만일 홑으로 생기지 않는다면 또한 다시 함께 상응하여 생기지 아니하고, 영원히 다시 생기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1_b_05L彼俱相應生彼俱無有果果無有因如俱相應生果不生若果不生無有俱相應生或作是說言俱相應生若隻者本亦當隻生故當言本生若不隻生亦復不俱相應生亦當隻生是故當言本生若不隻生亦復不俱相應生永不復生
【문】대상의 원인에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면 그것은 상응하여 생기고 홑으로 생기며 먼저 또한 홑으로 생길 것이니, 그러므로 근본이 응당 무너질 것이다. 만일 근본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함께 상응하여 생기고 또한 다시 무너지지 아니하리니, 그러므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것인가?
물음에 이미 내가 생겼다고 하면 무너짐이 있나니, 그러므로 본래는 무너지지 않는다.
028_0591_b_11L非境界因有果彼相應生隻生先亦當隻生是故本當壞若本不壞俱相應生亦復不壞是故永不壞已生我有壞是故本不壞
【문】만일 외톨이로 생기지 않는다면 상응해도 또한 생기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영원히 생기지 않고 상응하여 함께 생기는가?
어떤 이는 “상응하여 생긴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먼저 곡식의 종자가 있고 그 후에 그 싹과 움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91_b_15L若隻不生應亦不生是故永不生相應俱生作是說當言相應生先有穀種後有萌牙
【문】중간에 곡식이 다했더라도 만일 종자일 때에는 곧 생김이 있다.
그것은 비유가 되지 않는다. 곡식이 썩어버리면 곧 없다.
어떤 이는 “상응하여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 만일 함께 일어난다면 상응함과 결과가 둘이 함께 일어남이니, 그는 방편으로 과증(果證)을 말함이 아닌 것이 마치 소 뿔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91_b_18L中閒穀子盡若種子時時則有生答曰此非譬喩穀子腐則無作是說當言相應生若俱起相應果二俱起此非方便言果證猶如牛
【문】불꽃과 광명이 함께 있어서 불꽃의 원인으로 광명이 있는 것처럼 그도 역시 그러한가?
물음은 비유가 되지 않는다. 두 불꽃과 광명을 둘 다 함께 얻을 수는 없다.
어떤 이는 “함께 상응하여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 만약 함께 생긴다면 원인과 결과가 곧 똑같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1_b_22L俱有炎光炎因有光此亦當爾此非譬喩二炎光二俱不可得作是說當言俱相應生設俱生者與果則齊等
028_0591_c_02L【문】그 내용은 어떠한가?
만일 마음이 마음으로 인해서라면 저것은 곧 똑같음이 있다.
028_0591_c_02L此義云何答曰若心因心彼則有齊等
【문】‘나’라는 마음이 이미 다하면 함께 상응하여 안에 있겠다.
어떤 이는 “만일 일시에 함께 상응하는 결과의 마음이라면, 저 또한 이리저리 상응하여 일시에 함께 생기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일시에 다하여 상응한다”고 말했다.
028_0591_c_03L我心已盡俱相應在內或作是說若一時俱相應果彼亦展轉相因不一時俱生是故一時盡相應
【문】혹은 ‘나’로써 과거에 함께 상응하여 안에 있기도 하고 혹시 현재이기도 하나니, 그러므로 ‘나’는 과거가 아닌가?
어떤 이는 “상응하여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 만일 상응하여 생김이 있다면 함께 상응하여 안에 있는 것처럼 저기에 없을 것이다. 함께 상응하여 생기는 것은 곧 결과이니 결과 또한 함께 상응하여 안에 있고, 저기에는 상응하여 함께 결과가 있지 않나니, 그러므로 함께 응하여 생긴다”고 말했다.
028_0591_c_06L或以我過去俱相應在內或時現在是故非我過去或作是說當言相應生設有相應生者俱相應在內彼無也俱相應生是果果亦俱相應在內彼無相應俱有果是故俱應生
또 세존께서 “그와 같은 모양과 삿된 생활은 축생과 벌레와 소라에게 주술을 가하는 따위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축생주(畜生呪)라고 하는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
어떤 이는 “뱀과 벌의 독을 축생에게 입히기에 그러므로 축생주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모든 축생의 갈래에 알맞은 주문이며, 또한 그 주문은 사슴ㆍ까마귀ㆍ독수리 따위를 주문으로 잡으며, 코끼리와 용을 주문으로 항복받고 내쫓는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온갖 삿된 생활이 곧 축생주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1_c_11L又世尊言如是相像邪命呪術畜生虫蠡畜生呪者此義云何或作是說蛇虺厲毒唐畜生是故畜生呪或作是說諸畜生趣相應呪亦是呪如鹿烏鷲呪降象出蟠龍或作是說一切邪命是畜呪
다시 축생의 갈래에도 항상 딴 희망이 있는데 이 축생주를 해탈이라는 명칭으로 한 그 내용은 어떠한 것인가?
어떤 이는 “속박과 집착을 해탈하여 깨끗하고 더러움이 없는 해탈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마음이 해탈을 얻기 때문에 해탈이라 말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삼계의 존재[有]를 더욱더 떠나기 때문에 해탈이라 말한다”라고 말했다.
028_0591_c_17L復次畜生之趣常有餘悕望是畜生呪解脫名者是義云何或作是說解脫縛著淨無染污解脫或作是說心得解脫故曰解脫復次增上離三界有故曰解脫
법과 욕심과 아비담(阿毘曇)과
두 귀신과 의상(衣裳)이네.
부끄럼과 목숨과 상응함이며
삿된 생활과 모든 해탈이네.
028_0591_c_21L法欲阿毘
二鬼及衣裳
慚愧命相應
邪命諸解脫
또 세존께서, “느끼는 인연으로 애욕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느끼는 인연으로 애욕이 있다고 하신 것인가?
어떤 이는 “즐겁다는 느낌이 애욕을 일으키나니, 그와 같이 느끼는 인연에서 애욕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91_c_23L又世尊言痛緣有愛云何痛緣有愛或作是說樂痛起愛如是痛緣有愛
028_0592_a_02L【문】어떤 것을 잘못 구하여 애욕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는가?
그가 또한 즐거운 느낌을 구하여 즐거운 느낌을 구함이 있는 그것을 즐거운 느낌을 구함이라고 말했다.
028_0592_a_02L云何非求起愛答曰彼亦求樂痛有樂痛求是謂樂痛求
【문】지금 어찌하여 괴로움의 느낌으로 애착을 구하여 일으키는가?
그것 역시 일으킴이라고 이름하나니, 괴로움의 인연으로 즐거움의 느낌을 일으켜 애욕을 구한다.
또 세존께서 “그가 괴로움인 느낌에 쫓기는 바가 되어 애욕의 생각을 즐긴다”고 말씀하셨다.
028_0592_a_04L今云何苦痛求起愛著答曰彼亦名起苦緣起樂痛求愛又世尊言彼爲苦痛所逼娛樂欲想
【문】어찌하여 지금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느낌을 곧 애욕의 인연이라고 하는가?
028_0592_a_07L云何今不苦不樂痛是愛因緣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느낌은 생각을 쉬면 다시 일어나지 않으며, 스스로 생각 쉰 것을 알면 다시는 또 구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혼자 있는 애욕ㆍ혼자 있지 않는 애욕ㆍ다시 딴 것을 구하는 애욕ㆍ딴 것을 구하지 않는 애욕ㆍ어리석은 애욕, 그것이 5애욕[欲]이다. 저 즐거움의 느낌이 현재에 일어나는 것은 혼자 있지 않는 애욕이요, 일어나지 않음은 딴 것을 구하는 애욕이요, 괴로움의 느낌이 일어남은 딴 것을 구하지 않는 애욕이다. 이미 일어남은 혼자 있는 애욕이요,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느낌은 곧 쉬는 생각이요, 일어나지 않음은 딴 것을 구하는 애욕이요, 이미 일어남은 혼자 있지 않는 애욕이요, 또다시 일어남은 어리석은 애욕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2_a_08L不苦不樂痛息想不復興盛自知息想不復更求或作是說五愛獨處不獨處愛復求他愛不求他愛於彼樂痛現在起不獨處愛未起求他愛苦痛起不求他愛已起獨處不苦不樂痛便休息想未起求他已起不獨處愛復起愚愛
어떤 이는 “괴로움의 느낌이 세 악도(惡道) 위에서 일어나나니, 다시 저 중생은 애욕이 있어 스스로 걱정하고 그 때문에 몸에 스스로 애욕이 있다. 그 때문에 몸을 사랑하고 즐거운 느낌에 반연하는 것은 사람이 짓는 바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느낌은 곧 즐거움의 느낌에 반연하는데 사람으로부터 변정천(遍淨天)에까지 이른다. 여기에 태어난 중생은 여기에서 이미 ‘나’라는 생각에 나아가나니, 그러므로 즐거움의 느낌은 곧 사랑의 연(緣)이다.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느낌은 과실천(果實天)에까지 이르며, 나아가 유상무상천(有想無想天)까지 포함된다. 여기에 태어난 중생은 자기에게 스스로 사랑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느낌은 곧 사랑의 연(緣)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2_a_15L或作是苦痛起三惡道上彼衆生有愛自是故身自有愛以是愛身緣樂痛人所造是故苦痛愛是緣樂痛從人乃至遍淨天生彼衆生於彼已趣我是故樂痛是愛緣不苦不樂痛至果實天乃至攝有想無想天生彼衆生於己自起愛是故不苦不樂痛是愛緣
028_0592_b_02L어떤 이는 “마땅히 상응하여 일어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닿임에 반연하여 사랑을 일으킴은 닿임과 더불어 상응하며 사랑을 느끼어 반연함은 사랑과 더불어 상응한다”고 말했다.
028_0592_a_23L或作是說愛樂報處當知痛是愛緣此法當言相應起當言一一或作是說當說相應起如緣細滑起愛與細滑相應如痛緣愛與愛相
【문】6입(入)으로 하여금 닿임에 반연하려고 하는가? 6입과 더불어 상응하는가?
어떤 이는 “마땅히 상응하여 일어난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 하면 또한 말을 하되, 눈으로 번갈아 느낌[眼更痛]은 눈으로 번갈아 사랑함[眼更愛]이라 한다”고 말했다.
028_0592_b_04L問欲使六入緣細滑耶與六入相或作是說當言相應起何以故作是言說眼更痛眼更愛
【문】눈으로 괴로움을 느낌과 눈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있는데, 그 괴로움의 느낌과 즐거움의 느낌으로 하여금 함께 상응한다고 하는가?
028_0592_b_06L眼更苦眼更樂痛欲使苦痛樂痛與共相
어떤 이는 “마땅히 낱낱이 생긴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 하면 느낌이 사랑에 반연하여 생기고 상응하는 법이 각각 서로 반연함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마땅히 낱낱이 생긴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세존께서도 ‘눈으로 번갈아 느낌이 눈으로 번갈아 사랑함을 반연하여 일으킨다. 그러나 눈으로 번갈아 사랑함은 눈으로 번갈아 느낌을 내는 것에 반연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마땅히 상응하여 생긴다고 말해야 할 것이니, 그 반려가 있어서 낱낱이 애락(愛樂)의 과보를 낸다”고 말했다.
028_0592_b_08L或作是說當言一一生以何故痛緣愛生非相應法各各相緣或作是當言一一生世尊亦說眼更痛緣起眼更愛然不眼更愛緣眼更生痛或作是說當言相應生有伴侶一一生愛樂報
또 세존께서 “바사(婆闍)국 사람들은 남녀가 강제로 서로를 겁탈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이를 딴 남자, 딴 여자라고 하는가?
028_0592_b_13L又世尊言如婆闍淸明國人如彼男女强相劫奪云何他男他女
아내로서 자신이 지키거나 만일 남에게 지킴을 받은 이거나 아래로 음녀의 꽃 꾸미개와 향환(香丸)에 이르기까지 그를 마땅히 딴 여자라고 말해야 한다.
혹은 여자가 출가를 못했거나 혹은 출가를 했거나 기일을 정하여 두고 곧 출가할 여자들을 마땅히 딴 여자라고 말해야 한다.
028_0592_b_15L答曰妻人自守若爲人所守下至婬女華飾香此當言他女或女未出門嫁或復出門嫁有曰期數當出門嫁當言他
성취함이라는 그 뜻은 어떤 것인가?
어떤 이는 “일체법이 공했으니 곧 성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028_0592_b_19L成就者其義云何或作是說一切法空則不成就
【문】말한 바와 같이, “사람이 착한 법을 성취했다”고 한 계경과는 어긋남이 있다.
어떤 이는 “온갖 생기는 바가 곧 성취의 뜻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2_b_20L如所說人成就善此契經有違或作是說諸有所生是成就義
【문】배울 법[學法]과 배울 것 없는 법[無學法]을 그로 하여금 성취하게 하고자 하는가?
어떤 이는 “사라져 없어지지 않는 그것이 곧 성취의 뜻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2_b_22L學法無學法欲使彼成就耶或作是說不滅盡者是成就義
【문】범부인 사람들은 일체법이 그대로 존재하여 애욕을 다 없애지 못했는데, 그로 하여금 성취하게 하고자 하는가?
어떤 이는 “얻은 바가 있다고 하는 그것이 곧 성취의 뜻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2_b_23L凡夫人一切法在未盡欲使彼成就耶或作是說形有所得是成就義
028_0592_c_02L【문】더러움이 없는 사람은 이미 학법(學法)을 얻었는데 그들로 하여금 아라한(阿羅漢)을 얻어 성취하게 하려고 하는 것인가?
어떤 이는 “버리거나 놓음 없는 법이 곧 성취의 뜻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2_c_02L無垢人已得學法欲使彼得阿羅漢成就耶或作是說無棄捨法是成就義
【문】배우는 사람은 무학법(無學法)을 버리거나 놓아버리지 아니하는데 그로 하여금 성취하게 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가 이미 얻은 것은 아니다.
028_0592_c_05L學人不棄捨無學法欲使成就耶答曰彼已不得
【문】그대가 말한 버리거나 놓음 없는 법[無棄捨法]이 곧 성취의 뜻이라고 한 그 내용은 옳지 않은가?
어떤 이는 “만일 함께 얻는다면 그는 곧 성취함이니, 그를 성취라 이른다”고 말했다.
028_0592_c_06L汝所說無棄捨法是成就義是義不然或作是說設俱得者彼則成就是謂成就
또 불상응(不相應)인 중생법(衆生法)은 차츰 걸림과 속박이 있는데, 그가 그를 성취했다고 하자. 그와 같은 사람은 잘 참는 바가 있다. 한열지옥(寒熱地獄)의 중생에게도 다시 겨울과 여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지옥의 고통을 받으매 그가 또한 차고 뜨거움을 받아 저절로 그것에 시달리게 됨이니, 마치 쓴 술에 있는 벌레가 꿀에 있으면 곧 죽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92_c_08L復次不相應衆生法漸漸有㝵縛彼成就猶如此人能有所忍寒熱地獄衆生復有冬夏不或作是說受地獄苦亦受寒熱自然所逼如苦酒中虫在蜜則死
【문】그와 같은 행위가 이루어지매 그 사실은 헛되지 않겠는가?
무슨 까닭인가? 그런 행위 때문에 그 죄와 고통을 받는 것이다.
028_0592_c_13L如是行成此事不虛答曰何以故彼行受此罪苦
【문】그 몸은 고통이 없다. 왜냐 하면 그 지은 인연으로 견디어 참지 못하여 이리저리 고통이 생긴 것이니, 그 인연 때문에 또한 낙이 생기기도 하고 또한 작은 고통이 생기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는 “거기에는 함께 있지 아니하고 몸은 부스럼과 상처 투성이고 1천가지 고통이 생기기도할 것이다.
어떤 이는 “거기에는 함께 있지 아니하고 몸은 부스럼과 상처 투성이고 1천가지 고통이 있어 오뇌하고 통곡하면서 괴로워한다”고 말했다.
028_0592_c_14L彼身無有何以故所作因緣不堪忍展轉生以此因緣亦生樂亦生微苦或作是說彼不俱有身體瘡痍有千苦生惱啼哭苦
【문】그들은 목숨이 다하지 않는가?
업행(業行)과 과보가 미진하기 때문에 죽지 않나니, 마치 중생이 태중에 있는 것과 같다.
028_0592_c_18L彼不命過耶答曰報未盡是故不死如衆生處胎
【문】무슨 까닭으로 지옥ㆍ아귀(餓鬼)ㆍ축생과 하늘 사람들은 스스로 그의 숙명(宿命)을 아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어떤 이는 “그 도리는 저절로 그러한 것이니 그러므로 스스로 그의 숙명을 알고 음입(陰入)을 받나니,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안다”고 말했다.
028_0592_c_19L以何等故泥黎畜生餓鬼及天自識宿命然非人或作是說彼道自爾以是自識宿命受陰入是故彼自識
【문】만일 그들은 이미 태어나게 된다면 어찌하여 딴 것들은 스스로 알지 못하는가?
어떤 이는 “온갖 화생(化生)을 하는 것들은 스스로 알지만 사람은 태 안에 있으니, 그러므로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028_0592_c_22L若彼已得生餘者何以不自識或作是說諸化生者自識人處胎是故不識
028_0593_a_02L【문】만일 화생하는 것들은 스스로 안다면, 그 외의 것들은 모두가 알지 못하는가?
모두가 날 적에는 다 스스로 안다. 그러나 모든 하늘 사람들은 물들고 집착하므로 또한 스스로 알지 못하며, 3악도 가운데에서도 고통이 몸에 절박하면 스스로 아는 것을 망각한다.
028_0592_c_24L設化生自識者餘者一切不自識耶答曰一切生時皆自識諸天染著不自識三惡趣中苦痛切身意忘自
【문】그 말은 틀렸다. 왜냐 하면 또한 화생한 천자(天子)가 이리저리 그 화생한 천자의 지나온 내력을 알려 준다.
또 일체는 가[邊]가 없고 또한 일정한 곳도 없나니, 혹 어떤 중생은 스스로 알기도 하고 스스로 알지 못하기도 하며, 혹은 삼매의 힘으로써 스스로 숙명을 알기도 하며 혹은 그 지혜가 앞에 나타나 있기도 하나니, 그를 “스스로 그 숙명을 안다”고 말해야 마땅하다.
028_0593_a_05L此不相類何以故亦說化生天子展轉告化生天子所從來生復次一切無邊亦無定處或有衆生自識不自識者或以三昧力自識宿命以智現在前彼當言自識宿命
또 세존께서 “만일 이 생각을 하여 부정(不淨)하다고 사유하면 생기지 아니한 욕루(欲漏)가 곧 생기고, 이미 생긴 욕루는 곧 더 증가한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그렇다면 사유하는 이는 욕루가 더 증가하는가?
어떤 이는 “만일 생기지 아니했으면 곧 생기고, 이미 생겼으면 다시 생기지 않고 그 중에 곧 더 증가하여 많아진다”고 말했다.
028_0593_a_09L又世尊言若有作是想思惟不淨生欲漏便生已生欲漏便增設爾思惟者欲漏爲增耶或作是說若未生便生已生不復生於中便增多
【문】전생에 머무르지 아니했는가?
어떤 이는 “저것이 많음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저 아직 생기지 아니한 경계에 그가 최초로 태어나면 그와 같은 것은 생기지 아니한 것이 곧 생김이니, 경계에 분주함과 같아서 그와 같이 더 많아진 것인가?
어떤 이는 “저것이 많은 것이 아니고 다만 적게 있는 것에 의해 곧 증가한 것이 더 많아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한 건의 수행을 얻어 온갖 집착을 끊은 사람은 속박에 상응하지 않고 결사(結使)를 골라낸다.
028_0593_a_13L生不住或作是說彼不爲多復次如未生前境界彼最初生如是未生便如奔走境界如是增多或作是說彼不爲多但依少有中便增是增多復次得一物修行斷諸著人不相應縛選擇結使
애착과 상응하는 행위와
남의 아내 취함을 희망함과
둘 다 함께 숙명을 기억함이며
무루(無漏)에 네 종류 있음이네.
028_0593_a_19L愛著相應行
悕望取他妻
二俱憶宿命
無漏有四種
어떤 것을 가지가지 논리라고 하며, 어떤 것을 축생 논리라고 하는가?
028_0593_a_21L云何種種論云何畜生論
어떤 이는 “가지가지 논리란, 다시 가지가지로 논한 것이니, 그러므로 가지가지 논리라고 하는데, 왕론(王論)과 아래로는 적론(賊論)까지 포함된다. 축생 논리란, 축생에 대한 논문을 지은 것이니, 말한 바와 같고 논한 바와 같고 코끼리를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고 말했다.
028_0593_a_22L或作是說種種論者復種種論是故種種論王論下至賊論畜生論造畜生論所說如論如象廣說
028_0593_b_02L어떤 이는 “인연이 없다는 논리[無因緣論]가 가지가지 논리[種種論]이고, 형식 없다는 논리[無儀論]가 축생 논리다”라고 말했다.
다시 “모든 논리가 단서가 없고 인연이 없고 응하는 바가 없고 처소가 없는 그것을 가지가지 논리라고 이르며, 온갖 논한 바가 축생과 그 외의 것에 의한 것이며 그를 축생 논리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3_b_02L或作是說無因緣論種種論無儀論畜生論復次諸論者無端緖無因緣無所應無有處是謂種種論
가지가지 논리와 축생 논리라고 이른 그것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다시 모든 가지가지 논리와 축생 논리란 가지가지 논리에서 논한 바가 아니고 옛적에 나고 죽음을 겪었던 바이며, 또한 이 축생 논리에서 논한 바는 그를 축생 논리라고 말한다.
028_0593_b_05L諸所論者趣畜生及依是謂畜生論種種論者謂畜生論有何差別如前所說復次諸種種論者及畜生論非種種論諸所論所更歷生死亦是畜生論諸所論謂畜生論
무슨 까닭으로 차례를 넘어서 증득하게 되어 먼저 법희(法喜)를 얻고 난 후에야 부처님과 스님에게 미치게 되는가?
어떤 이는 “먼저 법을 수행할 것이니, 법을 수행하고서 그 미묘한 법으로 인하여 법희(法喜)를 얻고 일체지(一切智)를 찬탄하며 그리고 나서 이 미묘한 법을 연설하고 그렇게 한 후에야 불희(佛喜)를 얻고 거기에 잘 머무나니, 그 법에 머무는 이는 그가 다시 승희(僧喜)를 얻는다고 말했다.
다시 법지인(法智忍)이 고루 생기나니 법희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해야 마땅하다. 저 법희와 같이 그는 불희를 얻으며 말한 바와 같이 무한한 고통에서도 부처님ㆍ법ㆍ스님 그러한 것에서 기쁨을 얻는다.
028_0593_b_10L以何等故等越次取證從法得喜然後佛僧或作是說先修行法修行法已是微妙法得法喜一切智乃說此微妙法然後得佛喜彼善住住此法者彼更得僧喜復次等生法智忍當言法喜不可壞如彼法喜彼得佛喜如所說於苦無恨佛法僧是等得喜
또 세존께서 “만일 비구가 12연기(緣起)를 관찰하면 그는 곧 법을 관찰함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어찌하여 12연기를 관찰하여 실답게 관찰하면 사람이 진리를 보는 것과 같나니 그를 법이라 이른다“고 말했다.
028_0593_b_17L又世尊言若比丘觀十二緣起彼則觀法云何觀十二緣起彼則觀法耶或作是說觀十二緣起亦觀法時不觀人或作是說觀十二緣起如實觀如人見諦此謂之法
다시 12연기를 관찰하여 차례를 넘고 증득을 취하는데, 그는 이미 차례를 넘어 증득하면 곧 현성법(賢聖法)을 보고 12연기를 증득하여 보나니 그는 일체법을 관찰하는가? 만일 법을 관찰한다면 그는 일체 12연기를 관찰하는가?
028_0593_b_22L復次觀十二緣起等越次取證彼已越次取證則見賢聖法證見十二緣起彼一切觀法耶設觀法彼一切觀十二緣起耶
028_0593_c_02L어떤 이는 “12연기를 관찰하매 그는 일체법을 관찰한다. 만일 모든 법을 관찰하면 그는 일체 12연기를 관찰하나니, 12연기를 관찰할 때에 그는 또한 법을 관찰하며, 법을 관찰할 때에 그는 또한 12연기를 관찰한다”고 말했다.
028_0593_c_02L或作是說諸觀十二緣起彼一切觀法也設觀諸法彼一切觀十二緣起觀十二緣起時彼亦觀法觀法時亦觀十二緣起
어떤 이는 “자못 12연기를 관찰하고 법을 관찰하지 않는가? 세간지(世間智)로써 관찰하여 차례를 넘어 증득을 취하지 아니하고서 자못 법만 관찰하고 12연기를 관찰하지 않는가? 공해탈문(空解脫門) 등의 차례를 넘어 증득을 취하고 자못 법과 12연기를 관찰하며, 그 인연으로써 무원해탈문(無願解脫門) 등을 관찰하여 차례를 넘어 증득을 취하며 자못 법을 관찰하지 아니하고 12연기를 관찰하지 않는가? 위의 것을 제외하고 취하는 사실은 그것이 옳다”고 말했다.
028_0593_c_06L或作是說頗觀十二緣起不觀法耶以世間智觀不等越次取證頗觀法不觀十二緣起耶解脫門等越次取證頗觀法及十二緣起以是緣觀無願解脫門等越次取證頗不觀法不觀十二緣除上爾取事則其義也
다시 12연기를 관찰하면 그는 모두 온갖 법을 관찰함이니 그 관찰하는 법이 12연기가 아니거나 모든 방편행(方便行)이 아니겠는가?
028_0593_c_12L復次諸觀十二緣起彼一切觀諸法也頗觀法非十二緣起耶及諸方便行
또 세존께서 “모든 비구여, 나는 세속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속이 나와 더불어 다툰다”고 말씀하셨는데, 어찌하여 세속이 세존과 더불어 다투는가?
028_0593_c_14L又世尊言諸比丘我不與世俗諍與我諍云何世俗與世尊諍
어떤 이는 “세존께서는 세속을 가엾이 여기시니,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세속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시고, 세속은 내가 세존을 수호한다는 그러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3_c_16L或作是世尊慜俗是故世尊不與世俗諍俗無此心我護世尊
어떤 이는 “두 가지 사실 때문에 다툼과 송사가 있나니, 탐욕의 마음을 일으켜 생각에서 그를 떠나려 하지 아니함과 삿된 소견에 묶여 심하게 애욕에 집착한 두 사실, 그것이다. 그와 같은 법을 세존께서는 이미 없애버리시니,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세속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신다. 세속은 그것이 없어지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세속과 다툰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마치 나쁜 말은 바른 길을 따라가지 않는 것처럼 그와 같이 세속은 세존과 더불어 다툰다”고 말했다.
028_0593_c_18L或作是說以二事故有諍訟起貪欲受意不肯離見取纏甚著愛欲如此法世尊以盡是故世尊不與世俗諍世俗未盡故世俗諍或作是說猶如惡馬不隨正路行如是世俗與世尊諍
또 세존께서는 그 정의를 나타내어 차츰 교화하시나니,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세속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신다.
028_0593_c_23L又世尊現其義漸漸教化是故世尊不與世俗諍
028_0594_a_02L무슨 까닭으로 아굴마(阿掘摩)라는 도적이 그 힘을 다하여 세존의 뒤를 쫓았으나 능히 따르지 못했는가?
028_0594_a_02L以何等故名阿掘摩賊盡其力後逐世尊然不能還
어떤 이는 “세존 앞의 땅은 말리고 뒤는 펴졌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세존의 위신력이 저 아굴마의 몸을 무겁게 하셨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모든 하늘 사람들이 그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신통력의 경지는 이루 생각하거나 의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028_0594_a_03L或作是說世尊前地卷後舒或作是說尊威神使彼身重或作是說諸天使彼身重或作是說神足境界不可思
다시 세존께서 땅 위에 변화로 무형이 되게끔 하셨으므로 육안으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걸음이 빨라 자재롭고 해탈하셨으니, 그와 같이 걸어가실 적에는 사람이 능히 측량하지 못한다.
028_0594_a_07L復次世尊於地上化使無色肉眼所不見是故世尊行疾自在解脫是行時非人能測
나타바라(羅咤婆羅)존자가, “저 작은 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작은 법이라고 하는가?
어떤 이는 “왕의 법으로 재물을 운반하는 따위”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장자(長子)가 되와 섬[升斛]을 보물이라 말하는 따위다”라고 말했다.
028_0594_a_09L如尊者羅咤婆羅彼微法言非法云何爲微法或作是說如王法輸財或作是說如諸長者升斛稱寶
다시 법과 같이 어기기 어려운 것이 심히 작은 짓이니, 만일에 이끗을 탐내어 억지로 “이끗을 희망하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하면서 친하지 않은데 억지로 친하려고 하며, 병이 있다고 가장하여 물건을 구하면 비구가 온갖 일을 도와 주는데, 거짓 병에 필요한 바라고 하여 호마자(胡麻子)를 복용하며 혹은 거짓 미치고 바보인 양 말하며 싫어함 없이 구하기만 하거나 그른 법을 쓰거나 병을 가장하여 모두 이끗을 구하는 그것을 작은 법이라고 말한다.
028_0594_a_12L復次如法難違甚微貪利强言作想悕望利不親强親病求物比丘佐助衆事詐病所須取服胡麻子或詐言狂癡求索無厭足及諸非法現在前者諸病皆求利謂微法
또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이여, 이 8부중(部衆)과 찰제리 무리[刹利衆]ㆍ바라문 무리[婆羅門衆]ㆍ장자 무리[長者衆]ㆍ사문의 무리[沙門衆]ㆍ4대천의무리[四大天衆]ㆍ33천의무리[三十三天衆]ㆍ마군의 무리[魔衆]ㆍ범천의 무리[梵衆]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그 밖의 모든 하늘은 ‘무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028_0594_a_17L又世尊言諸比丘此八部衆剎利衆婆羅門衆長者衆沙門衆四大天衆三十三天衆魔衆梵衆以何等故諸天不言是衆
어떤 이는 “모두가 다 무리인데, 세존께서 다만 이 세간(世間)만 말씀하신 것은 불가사의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그것은 세존께서 권화(勸化)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무리들이 자주자주 모임에 왔었고 그 밖의 모든 하늘들도 세존의 처소에 왔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 무리들을 모두 다 팔부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028_0594_a_21L或作是說一切是衆世尊但說此世閒不可思議或作是是世尊勸化語然此諸衆數數來盡流諸天至世尊所或作是說衆則盡說八
028_0594_b_02L다시 방편으로 모여 모두 여러 일을 성취하나니, 저 무리에는 모두가 그 수효가 있고 다 여러 가지 일을 성취하기 때문에 팔부 무리라 말한 것이다.
028_0594_b_02L復次方便集會皆成衆於彼衆皆有數皆成衆事故曰八部衆
무슨 까닭으로 물건이 가까우면 눈으로 그를 보지 못하고 멀어야만 보게 되는가? 그러나 귀는 곧 그 소리를 듣게 되는가?
어떤 이는 “그것은 견주어 말할 비유가 아니니, 그 경계의 법이 당연히 그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도달하는 바가 없는 것이 곧 눈의 경계이니, 그러므로 귀와 더불어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밝음은 곧 눈의 반려이므로 모든 빛깔을 분명하게 알지만 눈에 가까워지면 실명(失明)하므로 그 경계가 다시 밝아질 수가 없다.
028_0594_b_04L以何等故物近眼不見遠則見然耳則聞聲或作是說此非方喩界法爾或作是說無所到是眼境界是故不與耳同復次明是眼伴曉了諸色近眼失明境界不復得明
가지가지 이론과 환희함과
그를 관찰함과 그가 나를 관찰함이며
다툼 없는데 세속이 스스로 다툼과
팔부 무리와 빛깔 보는 따위이네.
028_0594_b_08L種種論歡喜
觀彼彼觀我
無諍世自諍
八部衆觀色
등제(等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얻으면 결정코 의심이 없으며 무너뜨릴 수가 없는가?
어떤 이는 “그 세속 이치를 얻었기 때문에 등제라 말하며, 세속을 분명하게 알지 못한 것을 제일의제라 말한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명칭을 등제라 하고 그 내용을 설명한 것을 제일의제라 한다”라고 말했다.
028_0594_b_10L得等諦第一義諦定無有疑不可沮或作是說得是世俗義故曰等諦不曉了世俗是謂第一義諦或作是名等諦說義名第一義諦
다시 중생의 마음과 뜻을 분명하게 알므로 그를 등제라 말하고, 마음과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그러한 인연이 있는 것을 제일의제라 말하며, 괴로움의 진리[苦諦], 익힘의 진리[習諦]라고 이름하게 됨을 결정코 의심이 없으며 무너뜨릴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5성음(盛陰)이 곧 괴로움의 진리이고 애욕이 익힘의 진리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4_b_14L復次曉了衆生心意故是等諦有此因緣曉了心意是謂第一義諦得名苦諦習定無有疑不可破壞或作是說五盛陰是苦諦愛習諦
【문】애욕도 역시 음(陰)의 중간인가?
어떤 이는 “5성음이 곧 괴로움의 진리이고, 지어감의 때[行垢]가 곧 익힘의 진리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4_b_18L愛亦是陰或作是說五盛陰是苦諦行垢是習諦
【문】지어감의 때도 또한 음(陰) 중간에 있는가?
어떤 이는 “5성음이 곧 괴로움의 진리이고, 지어감의 때[行垢]가 곧 익힘의 진리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4_b_20L行垢亦在陰中或作是說是苦諦因緣是習諦
【문】결과가 딴 결과에 반연하나니, 딴 결과에 반연하는 그것이 괴로움과 익힘이 아닌가?
괴로움이 곧 익힘이고 익힘이 곧 괴로움이며, 결과와 같은 것이 곧 괴로움이고 인연과 같은 것이 곧 익힘이다.
028_0594_b_21L果緣他果他果此非是苦是習耶答曰苦卽是習卽是苦如果是苦如緣是習
【문】결과와 같은 것이 익힘 아니요, 인연과 같은 것이 괴로움이 아니니, 그러므로 괴로움이 곧 익힘이고 익힘이 곧 괴로움이다.
다시 5음(陰)의 유루(有漏)를 얻게 됨이 괴로움이며 익힘이다.
028_0594_b_23L如果非習如緣非苦是故苦卽是習習卽是苦復次得五陰有漏苦習
028_0594_c_02L【문】괴로움의 진리를 수행할 적에 또한 익힘의 진리를 수행함이 있는가?
익힘의 진리를 닦을 적에 괴로움의 진리를 수행하지 않고 익힘의 진리만을 수행하여 지혜를 얻고 통달하면 결정코 의심이 없고 파괴할 수도 없다.
어떤 이는 “모든 지혜를 얻었는가? 저것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고 낱낱이 분별하는 것이 곧 통달의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4_c_02L修行苦時亦有修行習耶答曰修習時不修行苦唯修行習得智通達無有疑不可破壞或作是說得諸智知彼是智一一分別是通達相
【문】지혜는 딴 것으로 말미암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여기는데 그것이 곧 지혜인가? 통달도 역시 그와 같은가?
어떤 이는 “지혜가 곧 통달인가? 어떤 통달은 지혜로 아는 것이 아니고 사물을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지혜와 같은가? 지혜와 그 밖의 자연이 곧 그 사실이다. 여기에는 일정한 뜻과 얻는 맛이 없나니, 결정코 의심이 없으면 파괴할 수도 없다.
어떤 이는 “얻는 맛이 곧 그 뜻의 맛이니, 모든 법을 맛이라 이른다”고 말했다.
028_0594_c_06L智由他知智彼卽是智耶通達亦復如是或作是說智卽是通達耶或有通達非智知解脫物復次若智耶及餘自然卽是其事此無定義得味定無有疑不可破壞或作是說得味卽是義味諸法是謂味
【문】맛이라고 하는 맛은 그 뜻이 아니거니와 어찌 뜻이 그 맛이 아니겠는가?
어떤 이는 “하나의 뜻 중에는 약간의 맛이 있나니, 그러므로 맛이 다르고 뜻이 다르다”고 말했다.
028_0594_c_12L味非其云何義非其味或作是說一義之中有若干味是故味異義異
【문】하나의 맛 중에는 약간의 뜻이 있나니 뜻은 맛이 아니겠는가?
어떤 이는 “맛이 곧 뜻이다. 혹 뜻이 맛 아니기도 하나니, 맛이 벗어나야 할 물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맛이 곧 뜻이다. 혹은 여기저기에 맛이 있으니 그가 말한 바와 같다. 인연은 일정한 곳이 없고 제 모양만이 상응한다는 모양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원인과 인연도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12연기를 얻는 12연기법은 결정코 의심이 없으며 무너뜨릴 수도 없다.
028_0594_c_14L一味之中有若干義義非味乎或作是說卽是義或義非味味解脫物復次味卽是義或處處有味如彼所說緣無定處自相相應相如上說因與緣如前所說得十二緣起十二緣起法無有疑不可沮壞
어떤 이는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이 12연기는 성품과 같이 법과 법이 항상 머무나니, 12연기법을 자세히 설명한 무명(無明)과 행(行)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4_c_20L或作是說得如契經所說此十二緣起如性法法常住廣說十二緣起法無明行
【문】12연기가 모든 연기법인가?
어떤 이는 “12연기는 원인이고 12연기법은 그 결과다”라고 말했다.
028_0594_c_22L十二緣起諸緣起法或作是說十二緣起因十二緣起法是果
028_0595_a_02L【문】원인은 결과가 아니고 결과는 원인이 아니니, 12연기도 12연기법이 아니겠는가?
어떤 이는 “12연기가 12연기법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4_c_24L因非果果非因十二緣起非十二緣起法耶或作是十二緣起十二緣起法起
【문】일어남 역시 12연기인가?
어떤 이는 “만일 12연기라면 그것이 12연기법인가? 혹 12연기법은 그가 12연기가 아니며 모든 일어남이 공적(空寂)한 법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모든 법이 생길 때도 12연기며, 모든 법이 이미 생긴 것도 12연기다”라고 말했다.
028_0595_a_03L亦是十二緣起或作是說若十二緣是十二緣起法耶或十二緣起法彼非十二緣起諸起空寂法或作是諸法生時是十二緣起諸法已生十二緣起法
【문】그와 같은 것은 뜻이 일정함이 없다. 12연기가 곧 12연기법이다.
어떤 이는 “12연기와 상응하는 결과는 실로 12연기법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이미 생긴 모든 행(行)은 곧 12연기이니, 저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은 연기로 말미암는다”고 말했다.
028_0595_a_08L如是者義無有定二緣起卽是十二緣起法或作是說與十二緣起相應果實是十二緣起或作是說已生諸行是十二緣起彼諸法生由十二緣起
【문】저 생기는 바가 12연기로 말미암지 않는가? 다시 모든 법은 스스로 응당 그러한 것이며, 12연기가 제 모양 맛을 짓지 않는다. 상응하는 법과 미묘한 법이 성취하거나 수결(授決)함이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028_0595_a_12L彼所生不由十二緣起耶復次諸法自應爾二緣起不造自相味相應法微妙法成就授決有何差別
어떤 이는 “평등하다는 말은 실답고 허망함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12연기는 곧 평등한 법이니, 12연기를 성취하는 모양이 곧 수결(授決)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4성제(聖諦)를 말함이 곧 평등한 법이며 4제(諦)에 순종함이 곧 수결법(授決法)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가장 수승한 공덕이 곧 평등한 법이며, 제자(弟子) 공덕을 성취함이 곧 수결법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을 거칠거나 헛되게 아니하는 것이 곧 평등한 법이며, 말에 의심쩍음이 없고 성취함이 곧 수결법이다.
028_0595_a_15L或作是說平等說如實無虛或作是說十二緣起是平等法成就十二緣起相是授決法或作是說說四聖諦是平等法順從四諦是授法決或作是說最勝功德是平等法弟子功德成就是授決法復次語不麤獷是平等法語無狐疑成就是受決法
아버지에게 효도함과 어머니에게 효도함이 어떤 차별이 있는가?
어떤 이는 “어머니에게 은혜로 사랑하고 아버지에게 효도로 봉양하나니, 그러므로 차별이 없다”고 말했다.
028_0595_a_22L慈孝於父慈孝於母有何差別或作是說恩慈於母孝養於父故無差別
028_0595_b_02L평등한 지혜와 괴로움의 진리와
지혜와 뜻과 제 모양 그것과
여기에 12연기법을 말함이
부모에게 사랑과 효도함이네.
028_0595_a_24L等智苦諦
智義自相
緣起十二
慈孝父母
어떤 것이 눈의 인식이며 의식(意識)으로 분별함인가?
어떤 이는 “그러한 인연 때문에 저 경계가 그와 같고, 눈의 인식과 의식으로 분별한다”고 말했다.
028_0595_b_03L云何眼識意識分別或作是說以是因緣彼境界如是眼識意識分別
【문】의식을 무너뜨리지 않는가?
저 눈의 인식 한계에 이르러 의식계(意識界)가 있다. 그러나 그 계(界)는 무너지지 않나니, 그와 같이 저 색입(色入)과 법입(法入)에 이르기까지 무너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눈의 인식과 의식의 분별이 있어서 그가 서로 같은 종류끼리 조작하나니, 그러므로 조작하는 경계가 곧 의식(意識)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5_b_05L不壞意識耶答曰如倒彼眼識界有意識界然界不壞如是倒彼色入法入不壞或作是說有眼識意識分別彼相類造是故造境界是意識
【문】어떻게 같은 종류끼리만 서로 조작하는가? 만일 다시 눈 인식이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그는 곧 분별하지 못하는가? 만일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찌 물질의 같은 종류를 조작함에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떤 이는 “다시 눈 인식을 뜻이 분별함이 아니다. 만일 분별한다면 식입(識入)이 곧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5_b_09L何造相類設更眼識憶不忘失彼卽不分別耶設不憶者云何不憶造色相類或作是說非更眼識意分別當分別識入則壞
【문】경계(境界)가 무너지는가?
경계가 무너진다고 또한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눈의 인식과 의식이 분별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 또한 ‘두 인연 때문에 식(識)이 생기나니 뜻[意]과 인연으로 법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저 눈의 인식과 의식이 분별한다면 곧 모든 받아들임[入]을 증가하게 되며, 의색(意色)과 의성(意聲)도 또한 다시 그와 같다”고 말했다.
028_0595_b_13L境界壞答曰說境界壞或作是說非更眼識意識分別何以故世尊亦說以二緣故生意緣生法設彼更眼識意識分別則增諸入意色意聲亦復如是
【문】모든 받아들임이 많이 있는데, 혹은 하나의 식을 내고 혹은 둘의 식(識)을 낸다. 비록 하나의 물건이 있더라도 의식의 반연하는 모양이 많으매 느껴 인식을 내나니, 그러므로 거기에는 많이 있다.
어떤 이는 “만일 눈의 인식이 푸르다고 확정하면 의식도 역시 푸르다고 확정하나니, 서로 같은 종류인 식이 곧 눈의 인식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5_b_17L多有諸入或生一或生二識雖有一意識緣相多痛生識是故彼有多或作是說若眼識定靑意識亦定靑相類識是眼識
028_0595_c_02L이것은 의식(意識)이고 이것은 눈 인식의 내용이라고 한 것은 어떤 것인가?
만일 눈이 증가한 것이면 그것은 곧 인식이요, 만일 의식이 증가한 것이면 그것은 곧 의식이다.
어떤 이는 “만일 눈이 증상(增上)하여 불상응(不相應)하면 푸른 것을 반연하여 인식을 일으키며, 뜻이 증상하여 그가 불상응하면 푸른 것을 반연하여 인식을 일으키나니, 그러므로 상응은 무너지고 결과만은 무너짐이 있지 않다”고 말했다.
028_0595_b_21L此意識此是眼識云何答曰若眼增上者彼是眼識意識增上者彼是意識或作是說眼增上不相應緣靑起識意增上彼不相應緣靑起識是故相應壞果無有壞
【문】만일 저 눈이 증상함과 상응함으로 혹 모든 인식을 일으킨다면 혹 누런 것과 상응함도 무너지고 결과도 무너진다. 그와 같이 눈이 증상함과 상응함과 뜻의 증상함으로 푸른 것이라고 확정하여 인식을 일으키면 상응함이 무너지고 결과도 무너짐이 있는데,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 중생들의 숙명을 아시는가?
어떤 이는 “겁(劫)이 불탈 적에 떠도는 많은 중생들이 과실천(果實天)에 태어나 거기에서 각각 스스로 자기의 본래 숙명을 서로가 고백하여 말하나니, 그러므로 그의 숙명을 아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5_c_03L如彼眼增上及相應或起諸或黃相應壞果壞如是眼增上及相應意增上定靑起識有相應壞有果壞也云何世尊知彼衆生宿命作是說劫燒流轉衆多衆生生果實於彼各各自相告語本宿命以是得知
【문】만약 중생이 거기에 나지 않으면 스스로 숙명을 알지 못하나니, 그로부터서는 거쳐나온 것을 모두 다 알지 못하겠다.
어떤 이는 “중생의 무리들이 일찍이 머물러 있었으면 스스로 저 숙명을 알 것이며, 그 밖의 머물러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관찰하여 곧 아신다”고 말했다.
028_0595_c_09L若衆生不生彼不自識宿命從此已來經歷皆不知或作是說生之類曾止住自識彼宿命餘不止宿者觀察便知
【문】일체가 불공행(不共行)인가?
어떤 이는 “스스로 계교하여 생각하면 곧 아나니, 저 뜻 위에서 이미 말했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부처님의 경지는 불가사의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12연기로 잘 분별하여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스스로 숙명을 아는 지혜로 그의 세력을 안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미묘한 지혜로 그 힘을 얻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5_c_12L一切不共行或作是說自挍計思惟則知彼意上已說或作是說佛境界不可思議或作是十二緣起善分別說或作是說識宿命智知其力勢或作是說微妙智得其力勢
다시 거기에서 모두가 각각 다르므로 여래의 신비로운 지혜가 곧 생기고 아유삼불(阿惟三佛)을 얻나니, 그 때문에 항상 머무른다고 말한다.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난타마타(難陀摩陀) 우바이(優波夷)가 “존자시여, 저희 남편은 죽었사온데 계를 범하고 나쁜 법에 빠졌으므로 아귀(餓鬼)에 태어났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부인이 꿈에 남편을 보니, 그가 ‘나는 아귀에 태어났다’고 말했다.
028_0595_c_17L復次各各別異於彼來神智便生得阿惟三佛故曰常住如所說難陁摩陁優波夷說尊者夫無常犯戒惡法生餓鬼中其婦人夢見夫主云我生餓鬼中
그 어찌하여 아귀에 태어났으며 어찌하여 아귀가 꿈속에서 그러한 말을 하였는가?
어떤 이는 “사람의 형체를 변화로 만든 것이니 본 얼굴을 만들지 않고 그와 같은 모습을 만든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5_c_21L云何餓鬼夢中作是語或作是說化作人形作本象造如是貌
028_0596_a_02L【문】지금에는 어떻게 만드는가?
어떤 이는 “아귀가 꿈속에서 본래의 형체를 만든 것이 아니고 옛적에 지었던 인연이 그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 생각을 짜내어 꿈에 그 형체를 본 것이며, 그 형상을 보았다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수면할 적에는 뜻이 본래 미친 이와 같지 않으므로 그 보는 바가 있는 것이다.
028_0595_c_23L如今云何造作是說餓鬼夢中不作本形昔造因緣有其力勢又盡思想夢轉見形睹形象復次睡眠志不如本狂有所
혹시 나쁜 소리와 음향을 듣는데 모든 법은 정해져 있는가? 저 일체 법이 평등하게 정해졌거나 그릇되게 정해졌는가? 만일 모든 법이 평등하게 정해졌거나 그릇되게 정해졌다면 저 일체 법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028_0596_a_04L或聞惡聲響諸法定有彼一切法等定耶定設諸法等定耶定彼一切法定有耶
어떤 이는 “모든 법이 평등하게 정해졌거나 그릇되게 정해졌다면 저 일체 법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만약 저 법이 정해져 있다면 그는 평등하게 정해졌거나 그릇되게 정해진 것이 아니고 제 모양[自相]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시 모든 법이 평등하게 정해졌거나 그릇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밖의 사람은 응당 평등하게 정해졌거나 그릇되게 정해졌다고 말할 것이다.
028_0596_a_06L或作是說諸法等定耶定彼一切法定有耶頗彼法定有彼非等定耶定自相定有復次當言非諸法等定耶定餘人當言等定耶定
달친(達嚫)이라는 명칭은 어떠한 법들을 말하는가?
어떤 이는 “갚아 베푸는 법을 이름하여 달친이라고 하며, 복된 땅으로 인도하여 이끄는 것이 또한 달친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6_a_09L嚫名者何等法或作是說報施之法名曰達嚫導引福地亦是達嚫
【문】보시한 것으로써 상계(上界)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상계에 태어나는 것은 착한 공덕이다”라고 하셨으니, 그것이 달친의 업(業)인가?
어떤 이는 “보시한 법의 과보가 곧 달친 법이니, 그러므로 단친(檀嚫)법이라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028_0596_a_11L以所施而生上界如所說生上界者善功德報是達嚫業或作是說施法果報是達嚫法故曰說檀嚫法
【문】보시법으로써 결과의 처소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다시 뜻에 좋아하는 바를 할애하여 저 보시 자리를 이룬다. 지금에 공양하는 바의 내용이 곧 단친법이니, 아귀의 단친과 같다.
028_0596_a_14L以施法果處所復次割意所愛成彼施處於今所養義是檀嚫秦言財施餓鬼檀嚫
무슨 까닭으로 부처님 세존을 곧 대법주(大法主)라고 하는가?
028_0596_a_17L以何等故佛世尊是大法
어떤 이는 “왕이 나라를 통솔하여 죄 있는 이를 처벌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세존께서 모든 성문(聲聞)을 위하여 의심의 그물 매듭을 끊어 주시기 때문에 법주(法主)라 말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왕이 나라를 다스리매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이 세존께서는 일체 착한 법을 성취 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법주라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6_a_18L或作是說如王攝統國界誅斷刑如是世尊爲諸聲聞斷疑網結曰法主或作是說如王典國民無不如是世尊一切善法無不成辦曰法主
028_0596_b_02L어떤 이는 “왕이 나라를 맡아 하는 일마다 자재롭고 형벌하거나 매질을 하는 것도 모두 다 자재롭게 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세존께서는 성문(聲聞)들의 법에서 자재로움을 얻어 온갖 나쁜 갈래를 고쳐 주시기 때문에 법주라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빈궁한 사람들에게 의상과 보물을 보시하는 것처럼 그와 같이 세존께서는 재물이 없는 중생에게 칠보로써 보시하시기 때문에 법주라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6_a_22L或作是說如王典國所作自刑罰榜笞皆悉自在如是世尊於聲聞中法得自在療諸惡趣故曰法或作是說如轉輪聖王施貧窮人衣裳寶物如是世尊無財衆生施以七寶故曰法主
어떤 이는 “바른 법의 주인이기 때문에 법주라 말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범상응계경(梵相應契經)에서 말한 바와 같다. ‘내가 깨달은 법을 잘 외우고 생각하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고 거기에 의해 머물러야 한다’하셨다. ‘어떤 것을 여래ㆍ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왕법비구(王法比丘)라고 합니까?’라고 하자, 세존께서 그에 대해 ‘이 계경의 내용 때문에 세존 법주, 16바라문아일(阿逸)과 미륵(彌勒)이 그 둘임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028_0596_b_04L或作是說正法之主故曰法主或作是說如所說梵相應契經我所覺寤法善諷誦念供養承事依彼住如所說云何如來至眞等正覺王法比丘世尊告曰以此契經義故曰世尊法主十六婆羅門阿逸彌勒是其二
세존께 모난[方] 이가 40개가 있는데 각각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어떤 이는 “혹 일체 종호(種好)와 32상(相)을 관찰하여 일체 상호를 모두 다 안 후에야 알 수가 있다”고 말했다.
다시 신수를 잘하는 이는 손바닥의 그릇을 보듯 분별 못하는 것이 없어 방협차(方頰車)인 사자 볼을 관찰하매 모난 이가 40개가 있어 맛마다 분별해 안다고 말했다.
028_0596_b_10L云何得知世尊有方齒四十味味皆別或作是說或觀一切種好三十二相盡知一切相然後得知復次算數者如觀掌器無不分別觀方頰車師子臆知方齒四十味味分別
두 가지 인연으로 나고 죽음에 끼어들고 온갖 행보(行報)를 받는다. 무색계(無色界) 중생은 그러한 인연으로써 욕계(欲界)와 더불어 상응하되 행구(行垢)가 성취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하여 거기에서 죽고 나서는 여기에 태어나는가?
어떤 이는 “과거의 행구로 여기에 와서 태어난다”고 말했다.
028_0596_b_14L二因緣攝生死受諸行報無色界衆生以此因緣與欲界相應不成就行云何彼沒生此閒或作是說過去行垢來生此閒
【문】저와 같이 성취하지 않았는데 어찌 와서 태어났는가?
만일 퇴전할 적에는 문든 성취하게 되나니 아라한이 일체 결을 성취하지 않으나 아라한으로부터 퇴전할 적에는 다시 모든 결을 성취하게 되는 것과 같다.
028_0596_b_18L如彼不成就云何來答曰若退轉時便得成就如阿羅漢不成就一切結從阿羅漢退轉時復得成就諸結
【문】아라한이 어찌하여 모든 결박을 성취하게 되는가?
어떤 이는 “선근(善根) 공덕은 공하더라도 해탈 못하는 일이 있지 않지만 불선근(不善根)은 돌려 보낼 바가 없다”고 말했다.
028_0596_b_21L阿羅漢云何成就諸結或作是說善根功德空無有不解脫不善根無所還
028_0596_c_02L【문】만일 욕계에서 남은 선근이 없어졌다면 무슨 인연으로 저 선근이 없어졌는데, 무슨 까닭으로 다시 선근이 되돌아가는가?
어떤 이는 “욕애(欲愛)가 미진하면 문득 저 세계에 난다”고 말했다.
028_0596_b_23L如欲界中餘善根滅盡以何因緣彼善根滅何等故復還善根或作是說欲愛未盡便生彼界
【문】말씀한 바와 같이 외도ㆍ신선ㆍ이학(異學)이 욕애가 다하면 욕애가 이미 다했다고 말하는가?
028_0596_c_03L如所說外神仙異學欲愛說欲愛已盡
【문】애욕이 미진하면 괴로움을 마땅히 없애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말한 바와 같이 진토(塵土)에 있어 희롱하던 동녀(童女)가 그것을 싫어하여 곧 버리고 갔으나 그 후에도 애욕이 미진하였으므로 곧 없앤다는 명칭이 있다고 하였다. 또 말한 바와 같이 죽을 때에 이르러 곧 없어진다고 함과 같으며, 사람이 ‘나’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떤 이는 “여기저기에 온갖 결박이 있나니 거기에도 또한 욕계결이 있다”고 말했다.
028_0596_c_04L愛未盡苦當言盡如所說在塵土戲童女厭之便棄去後愛未盡便有盡名如所說乃至死便盡如人言有吾我或作是說處處有一切結於彼亦有欲界結
【문】만일 여기저기에 온갖 결이 있다면 세계도 무너짐이 있는가?
마치 이 세계에 무색계의 결이 있으나 세계는 무너짐이 있지 않는 것처럼 그와 같이 저 세계에도 욕계의 결이 있으나 세계는 무너짐이 없다.
어떤 이는 “이 세계에서 차츰차츰 더 증가하면 저 세계에서 차츰차츰 줄어지며, 이 세계에서 친근하게 되면 세계가 곧 그와 합해지게 된다”고 말했다.
028_0596_c_08L若處處有一切結者界有壞敗答曰猶如此閒有無色界結界不有壞如是彼閒有欲界結界不有壞或作是說於此閒漸漸增益彼閒漸漸減如於此閒親近界便與彼合
【문】만일 거기에 가서 욕계의 결을 일으키면 끝남이 되지 않겠는가?
이 세계에 있어서 무색계의 결을 일으키더라도 그가 곧 끝남이 아니듯이 저 세계에서 욕계의 결을 일으키더라도 곧 끝남이 아니다.
028_0596_c_13L設往彼起欲界結不爲終耶答曰如住此閒起無色界結彼則不終也如是彼閒起欲界結則不終也
【문】이 세계에 있어서 무색계의 결을 일으켰더라도 욕계에서 물질[色]이 곧 사라져 없어지지 않고 곧 저 세계에서 끝난다.
028_0596_c_16L住此閒起無色界結欲界中色則不滅盡則於彼閒終也
【문】나는 무색계에도 물질이 있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저 세계에서 욕계의 결을 일으켰더라도 무색계의 물질은 없어지지 않고 거기에서 곧 끝난다. 아라한이 색계에서 몸을 변하여 색계에 머물러 있으면 욕계의 형체는 모두 그대로 있고 제거된 것이 아니다. 그런 형상을 가지고 아나함(阿那含)을 취하려고 하여 유상무상천(有想無想天)에 태어나 불용정(不用定)에 들면 성현의 도가 앞에 나타나니, “거기가 끝난다”고 그러한 말을 하려고 하는가?
028_0596_c_18L我喜言無色界有色是故彼閒起欲界結無色界色不盡彼便終阿羅漢於色界化形往至色界欲界形體都在不除欲使作彼形取阿那生有想無想天入不用定賢聖道現在前欲作是言彼終耶
028_0597_a_02L다시 그는 행음(行陰)에 묶인 바가 되었고, 욕계의 번뇌가 치성하나니, 저 행음에 의하여 아애(我愛)가 영원히 없어지지 못했고 어리석음이 제거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세계에 태어나 몹시 집착하여 떠나지 못하나니, 과거의 수행으로 온갖 일을 끝낸 것이 아니다.
028_0596_c_23L復次彼行陰所纏欲界使熾盛依彼行陰於我愛未永盡愚癡不除是故生此閒甚著不離非過去行而辯衆事
형상에는 두 모습의 행(行)이 있고
4행(行)에도 또한 둘이 있으며
네 가지 무명(無明) 애욕 번뇌와
상응함과 차례가 있는 그것이다.
028_0597_a_03L相有二貌行
四行亦有二
四無明愛使
相應及有弟
이를 첫 게송이라 이른다.
028_0597_a_05L是謂初偈第一品始撮以結揵度
인식과 이 세존의 어머니와
삿된 무더기와 단친(檀嚫)이며
16바라문(婆羅門) 말한 것과
나고 죽음이 인연이라 한 그것이네여기에서 7품을 들어 건도를 종결시켰다.
028_0597_a_06L識是世尊母
邪聚及檀嚫
十六婆羅門
生死是因緣此擧七品終結揵度
존바수밀보살소집론의 첫 번째 취건도를 마친다.
028_0597_a_08L尊婆須蜜菩薩所集揵度初竟
尊婆須蜜論卷第二
甲辰歲高麗國分司大藏都監奉勅彫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