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_IT_K0982_T_001
- 029_0756_b_01L출요경(出曜經) 제1권
- 029_0756_b_01L出曜經卷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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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진(姚秦) 양주(凉州) 사문 축불념(竺佛念) 한역 - 029_0756_b_02L姚秦涼州沙門竺佛念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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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상품(無常品) ① - 029_0756_b_03L無常品第一之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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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부처님께서는 바라날국(波羅捺國)1)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미래 세상의 중생들은 그 수명이 8만 4천 세가 될 것이다. 그때의 그 중생들은 이 염부리(閻浮利)2) 안에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니, 곡식은 풍성하고 백성들은 번성하여서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를 다 같이 듣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때의 백성들은 여자 나이 5백 세가 되어서야 시집을 갈 것이다.
그때에 상가(蠰佉)라는 왕이 있을 것이니, 7보(寶)를 지니고 법으로써 다스리매 어긋남이 없으리라. 또 그는 우보(羽寶)의 수레를 타고 다니는데, 그 높이가 1천 주(肘)에 너비는 16주로서 온갖 보배와 영락(瓔珞)으로 장엄된 것이다. - 029_0756_b_04L昔佛在波羅捺國。佛告諸比丘:“當來之世,衆生之類壽八萬四千歲。爾時壽八萬四千歲衆生輩,於此閻浮利內,衆生共居一處,穀米豐熟人民熾盛,鷄狗鳴喚共相聞聲。”佛告比丘:“汝等當知,爾時人民,女年五百歲,便外適娶。爾時有王,名曰蠰佉,七寶導從,以法治化無有阿曲。有自然羽寶之車,高千肘廣十六肘,豎立修治衆寶瓔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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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중 가운데서 보시를 하되, 아끼거나 후회하는 마음이 없으며 공덕을 지어서 대중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문(沙門)이나 바라문(婆羅門)이나 도를 얻은 이들이 멀리 가거나, 머무르거나 지나갈 때에는 거처할 곳을 다 제공할 것이며, 그들의 구함이 있으면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중생의 수명이 8만 4천 세가 될 그때에 여래가 세상에 출현할 것이니, 그 명호(名號)는 미륵(彌勒) 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明行成)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세존(佛世尊)이다. 그것은 마치 지금 내가 위없이 바르고 참된 정등각을 이루어 10호(號)를 완전히 갖춘 것과 같을 것이다. 또 그는 항상 무수한 백천 비구들을 보호할 것이니, 그것은 마치 지금 내가 무수한 백천의 비구와 대중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 029_0756_b_14L在大衆中,分檀布施無悋悔心,造立功德爲衆導首,與諸沙門婆羅門諸得道者,遠行住止經過居宿皆悉給施,有所求索無所悋惜。爾時衆生壽八萬四千歲,有如來出世,名曰彌勒,至眞、等正覺、明行成爲、善逝、世閒解、無上士、道法御、天人師,號佛、世尊;如我今日,成無上正眞等正覺,十號具足。常當將護無數百千諸比丘僧;如我今日,將護無數百千諸比丘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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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6_c_01L또 그는 대중을 위해 깊은 법을 널리 설할 것이니, 그 법은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고 이치와 맛이 미묘하며, 청정함을 완전히 갖추어서 범행을 닦게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지금 내가 대중을 위해 깊은 법을 널리 설할 때에 그 법이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고 이치와 맛이 미묘하며 청정함을 완전히 갖추어서 범행을 닦게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서 부처님께서 자세히 말씀하신 것과 같다.) - 029_0756_c_01L與諸大衆,廣說深法上中下善,義味微妙,具足淸淨修於梵行;如我今日,與諸大衆廣說深法上中下善,義味微妙,具足淸淨修於梵行。廣說如彌勒下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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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경낙도(六更樂道)』라는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어떤 중생이 그곳에 태어나면, 눈으로 색을 보아도 좋은 색만을 보고 나쁜 색은 보지 않으며, 사랑스런 것만을 보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보지 않으며, 공경할 만한 것만을 보고 공경할 만하지 않은 것은 보지 않으며, 생각할 만한 것만을 보고 생각할 만하지 않은 것은 보지 않으며, 아름다운 색만을 보고 아름답지 않은 색은 보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중생이 귀로 소리를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몸으로 촉감을 느끼거나 뜻으로 법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도 그러할 것이며, 나아가서는 제석천[天帝]까지도 그러할 것이다.” - 029_0756_c_06L如佛所說,有經名曰六更樂道,若有衆生生其中者,若眼見色,盡見善色不見惡色,見愛不見非愛,見可敬不見非可敬,見可念不見非可念,見美色不見非美色。諸有衆生耳聞聲者,鼻嗅香、舌知味、身知細滑、意知法,乃至天帝亦復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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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비사리(毘舍離)3)의 미후지(獼猴池) 옆에 있는 대강당(大講堂)에 계셨다.
많은 비사리의 소년들은 각기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마땅히 모두 모여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문안을 드려야 한다.’
그 중의 한 소년은 푸른 말을 탔는데 일산[蓋]과 옷도 모두 푸르렀다. 혹 누렇거나 붉거나 흰색의 말을 탄 소년은 그 의복이 다 흰색이었다.
그들은 종을 치고 북을 울리며 흥겨운 가락 속에 앞뒤로 줄을 지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천인[天]들이 뒷동산이나 연못에 놀러 나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이가 있다면, 지금 저 동자들을 보아라. 왜냐 하면, 저들이 입고 있는 법복(法服)이나 타고 있는 수레들은 천인들의 것과 다름이 없으니, 천인들이 입고 있는 옷과 이것과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 029_0756_c_12L爾時世尊遊毘舍離彌猴池水大講堂上,爾時衆多毘舍離諸童子等,各生此念:“我等宜可共相率合至世尊所問訊禮覲。”其中童子,或有乘載靑馬靑蓋被服皆靑,或有乘載靑黃赤白,被服皆白,搥鍾鳴鼓作倡伎樂,前後導從至世尊所。爾時世尊告諸比丘:“汝等當知,若有不見諸天遊觀至後園浴池者,今當觀此諸童子等,所著法服乘載輿輦,與彼諸天亦無差別。所以然者,諸天被服與此無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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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7_a_01L그때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수백천의 중생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는 마땅히 진실로 참된 서원을 세우자. 그래서 다음 생(生)에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나면, 언제나 저런 법복을 입어 영원히 몸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또 미래 세상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면, 그 깊고 심오한 법문을 들어서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나 열반에 들게 하겠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이 마음으로 3유(有)4)에 나기를 구함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아시고, 곧 그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 029_0756_c_23L爾時坐上數百千衆生之類,各作是念:“我等宜可發眞誠誓,使我等後生生天上人中,恒著此法服永已不離,使當來世有佛興出,聞甚深法,永離苦惱入泥洹界。”如來以知衆生心念,求生三有不離苦惱,便與大衆,而說此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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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행은 덧없으니
닳아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은 의지할 수 없으니
변하고 바뀌어 머무르지 않는다. -
029_0757_a_06L所行非常,
爲磨滅法,
不可恃怙,
變易不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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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헤아릴 수 없는 백천의 중생들은 이 한 구절의 게송을 듣고 현재에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려서 모두 도(道)의 과(果)를 얻었다. - 029_0757_a_08L爾時衆生聞此一句偈,不可稱計百千衆生,於現法中漏盡意解,皆得道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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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바라문 네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통을 얻었기 때문에 능히 하늘을 날 수 있어서 신족(神足)이 걸림이 없었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맛난 음식을 구담(瞿曇) 사문께 보시하고는 천상에 나서 복된 곳을 떠나지 않게 되고, 또 어떤 이는 그 법을 듣고 해탈문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하늘 복을 탐하지만 해탈은 원하지 않기 때문에 법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각기 달고 맛있는 석밀(石蜜) 네 개씩을 가지고 가서 한 사람이 먼저 부처님께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그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행은 덧없으니
그는 이 게송을 듣자 곧 손으로 귀를 가렸다. - 029_0757_a_11L昔有婆羅門四人皆得神通,身能飛行神足無㝵。此四梵志自相謂言:“其有人民以餚饌食,施瞿曇沙門者,便得生天不離福堂,有聞法者入解脫門,我等今日意貪天福,不願解脫不須聞法。”是時,四人各執四枚甘美石蜜,一人先至如來所,奉上世尊。如來受已,告彼梵志而說此偈,所行非常;梵志聞已以手掩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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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7_b_01L이어 두 번째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이른바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니라.
그도 이 게송을 듣자 곧 손으로 귀를 가렸다.
이어 세 번째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
그도 이 게송을 듣자 곧 손으로 귀를 가렸다. 이어 네 번째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이 적멸(寂滅)이 즐거움이다.
그도 이 게송을 듣자 손으로 귀를 가렸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부처님을 두고 제각기 떠나 버렸다. - 029_0757_a_20L次第二人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復說此偈,謂興衰法;梵志聞已以手掩耳。次第三人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受已,復說此偈,夫生輒死,梵志聞已以手掩耳。次第四人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受已,復說此偈,此滅爲樂;梵志聞已以手掩耳,各捨之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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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살펴보시고 마땅히 제도받을 수 있음을 아셨다. 그래서 방편으로 몸을 숨기어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들 네 사람은 모두 한곳에 모여 서로 말하였다.
“우리는 구담 사문께 보시하였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앞서 먼저 간 사람에게 물었다.
“석밀을 올릴 때 무슨 말씀이 있었느냐? 또는 법을 듣지 않았느냐?”
“나는 부처님에게서 ‘모든 행은 덧없으니’라고 하신 한 구절의 이치를 들었다. 그 이치를 듣고는 곧 손으로 귀를 가려서 더 듣지 않았다.”
이어 두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부처님께 가서 어떤 말씀을 들었느냐?”
그는 상세히 말하였다.
“내가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바칠 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이른바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니라’라는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그것을 듣고 곧 손으로 귀를 가려서 더 듣지 않았다.” - 029_0757_b_04L如來觀彼心意念,知應得度,便以㩲便隱形不現,四人各聚一處自相謂言:“我等雖施瞿曇沙門,意不決了,瞿曇沙門有何言教?”先問前者:“奉上石蜜得何言教?亦不聞法乎?”對曰:“我從如來聞一句義,所行非常;聞此義已卽以手掩耳亦不承受。”次問第二人:“至如來所得何言教?”其人復自陳說:“吾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與我而說此偈,謂興衰法;吾聞此已以手掩耳亦不承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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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세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부처님께 나아가 어떤 말씀을 들었느냐?”
그는 상세히 말하였다.
“내가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바칠 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라고 하는 게송을 읊으셨다. 나는 그것을 듣고 곧 손으로 귀를 가려서 더 듣지 않았다.”
이어 네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너는 부처님께 나아가 어떤 말씀을 들었느냐?”
“내가 부처님께 나아가 석밀을 바칠 때,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이 적멸이 즐거움이다’라는 게송을 들려 주셨다.”
그들은 각기 그 게송을 말하고는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서 아나함(阿那含)5)의 도를 얻었다. - 029_0757_b_14L次問第三人:“汝至如來所得何言教?”其人復自陳說:“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與我而說此偈,夫生輒死;吾聞此已以手掩耳亦不承受。”次問第四人:“汝至如來所得何言教?”其人對曰:“至如來所貢上石蜜,如來與我而說此偈,此滅爲樂。”四人說此偈已心開意解,得阿那含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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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7_c_01L그때에 그 네 사람은 각기 자기가 도를 깨쳤음을 알고, 지금까지의 자기들의 잘못을 한없이 자책하였다.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 아래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다가 조금 뒤에 다시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이 그 도 안에서 사문이 되는 것을 허락하여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잘 왔다, 비구들이여, 범행을 잘 닦아라.”
그러자 그들의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입고 있던 옷이 변해서 가사가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서 이내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 029_0757_b_22L爾時四人自知各得道證,還自懇責,至如來所,頭面禮足在一面立,須臾退坐,白世尊曰:“唯願如來!聽在道次得爲沙門。”世尊告曰:“善來比丘!快修梵行。”爾時四人頭髮自墮,身所衣服變爲袈裟,尋於佛前得羅漢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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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려고 할 때에 대가섭(大迦葉)과 아나율(阿那律)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나의 가르침을 잘 받들고 부처의 말을 공경하고 섬겨라. 너희 두 비구는 바로 열반에 들지 말고, 먼저 계경(契經)과 계율과 아비담(阿毘曇)6)과 보잡장(寶雜藏)을 집성한 뒤에 열반에 들어라.”
이와 같은 말씀이 있고 나서 사리(舍利) 공양을 열흘 만에 모두 마쳤다.
그들은 함께 모여 이 경전들을 집성하였으며 5백의 아라한들은 모두 다 해탈을 얻었다. 그리하여 빠르고 예민한 근기와 온갖 덕을 갖춘 이들이 모두 한곳에 모여 아난(阿難)을 위해 높은 사자좌(師子座)를 만들고 아난에게 청하여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아난이 자리에 올라앉자, 그들은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에 어느 곳에서 설법하셨습니까?” - 029_0757_c_05L佛臨欲般泥洹時,告大迦葉及阿那律:“汝等比丘當承受我教、敬事佛語,汝等二人莫取滅度,先集契經、戒律、阿毘曇及寶雜藏,然後當取滅度,廣說乃至供養舍利。”盡耶旬竟,便共普會集此諸經,五百羅漢皆得此解脫,捷疾利根衆德備具普集一處,便與阿難敷師子高座,勸請阿難使昇高座。已昇高座便問阿難:“如來最初何處說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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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이 곧 말하였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그러자 5백의 아라한은 모두 승상(繩床)에서 일어나 맨땅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우리는 직접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아난님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소리를 내어 마주 보고 슬피 울었다.
이 때 가섭이 아난에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비로소 깊이 감추어진 법이 드러날 것이오. 항상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고 말해야지, ‘보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난이 이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날(波羅捺)의 선인(仙人)이 살던 녹야원(鹿野苑)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근본이다. 이것은 일찍이 듣지도 못한 것이요, 보지도 못하던 것이다.’”
(자세한 것은 경전과 같다.) - 029_0757_c_14L時阿難便說:“聞如是一時。”說此語已,時五百羅漢皆從繩牀上起,在地長跪:“我等躬自見如來說法,今日乃稱聞如是一時。”普皆擧聲相對悲泣。時,大迦葉卽告阿難曰:“從今日始出法深藏,皆稱聞如是,勿言見也。”佛在波羅捺仙人鹿野苑中,爾時世尊告五比丘:‘此苦原本,本所未聞、本所未見,廣說如經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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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8_a_01L그때에 비구들은 이미 경전을 다 집성하였다.
가섭 존자가 다시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에 어느 곳에서 계율을 말씀하셨습니까?”
아난이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에게서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라열성(羅閱城)7)의 가란타죽원(伽蘭陀竹園)8)에 계셨습니다.
그때에 가란타(迦蘭陀)의 아들 수진나(須陳那)는 집을 떠나 도를 배워서 비구의 경계 안에 있었으나 최초로 계율을 범하여서 제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계율과 같다.)
가섭이 다시 아난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에 어느 곳에서 아비담(阿毘曇)을 말씀하셨습니까?” - 029_0757_c_22L是時,衆人已集契經。是時,尊者迦葉復問阿難:“如來最初何處說戒律?”時阿難報大迦葉:“吾從佛聞如是。一時佛在羅閱城迦蘭陁竹園,時迦蘭陁子名曰須陳那,出家學道在比丘境,最初犯律,至不度法,廣說如戒律。”是時,迦葉復問阿難:“如來最初何處說阿毘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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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난이 대답하였다.
“나는 부처님에게서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비사리(毘舍離)의 미후지(獼猴池) 옆에 있는 보집강당(普集講堂)에 계셨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발기자(拔耆子)의 내력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가지 두려움과 성내고 한탄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고 지옥에도 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아비담과 같다.)
그래서 초저녁에 아비담을 집성하고 새벽에 『출요경』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라. - 029_0758_a_07L阿難曰:“吾從佛聞如是。一時佛在毘舍離獼猴池側普集講堂所。爾時世尊見拔耆子因緣本末,告諸比丘:‘諸無五畏恚恨之心者,便不墮惡趣,亦復不生入地獄中,廣說如阿毘曇。’”初夜集阿毘曇竟,後夜便說出曜,而說此偈:“睡眠覺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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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라’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세존ㆍ등정각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대개 잠자는 이는 수명이 줄어들고 어리석고 미혹하여 마음을 해치기 때문에 도의 결과를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목숨을 마치고는 구제될 수가 없어서 밝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 왜냐 하면, 사람이 깨어 있으면 덕을 닦아 선의 근본을 지어 세울 수 있지만, 잠에 빠져 있으면 이 법을 잃기 때문에 어리석고 미혹하다고 하는 것이다.’ - 029_0758_a_13L何以故說,睡眠覺寤?如世尊等,正覺所說:‘夫睡眠者,損命愚惑,有所傷壞,不成果證,沒命無救,不至明處。所以然者,如人覺寤,便能修德,造立善本,耽著睡眠,便失此法,故謂愚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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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8_b_01L그때에 자리에 앉아 있던 어떤 비구가 말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어떤 중생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온갖 일을 생각하지만 잠자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잠만 자고 깨어 있지 않으면 그가 어떻게 도를 통하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잠을 없애고 항상 깨어 있기를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게송에서 ‘잠에서 깨어나라’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부디 기뻐하며 그 말씀을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뛸 듯이 기쁘고 즐거워서 선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기뻐하며 들은 것을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내 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029_0758_a_18L時座中復有說者:“如佛所言:‘若有衆生,覺寤之中,所念衆事,於睡眠中,澹然無想。”世尊告諸比丘:‘寧睡不覺,此云何通?’是故佛說除去睡眠常念覺寤,如佛說偈,睡眠覺寤,宜歡喜思,言歡者內心踊躍,喜怡歡樂善心生焉,是故稱說宜歡喜思。聽我所說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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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말씀을 듣되, 뜻을 굳게 하고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면, 뜻이 고요하고 틀림이 없어서 능히 그것을 이어 받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출요(出曜)를 찬술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항하의 모래알 같은 과거의 부처님도 모두 이 출요의 이치를 찬탄하셨고, 현재의 부처님도 가장 훌륭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가장 훌륭하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온갖 번뇌를 일으키는 불선법(不善法)을 이기고, 음욕ㆍ분노ㆍ어리석음을 이기며, 모든 생사의 속박을 이기고, 외도(外道)인 니건자(尼乾子) 등의 아흔여섯 종류의 술수(術數)를 이길 뿐만 아니라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나기 때문에 ‘가장 훌륭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연설이 유창하여 막힘이 없고, 여러 천인들과 인간을 위해 널리 펴고 나타내어서 그 이치를 성취시켰기 때문에 ‘출요를 찬술하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연설처럼 유창하여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 029_0758_b_02L專意一心無有亂想,意定無誤堪任承受,是以故說聽我所說撰記出曜。言出曜者,過去恒沙諸佛世尊,皆共讚歎出曜法義,如來世尊亦名最勝。云何爲最勝?勝諸結使不善之法,勝婬怒癡,勝一切生死結縛,勝外道異學尼乾子等九十六種術,於中特出,故曰最勝。演說暢達無有留滯,布現演吐爲諸天人,義味成就,是故說撰記出曜。如世尊所說,演說暢達無有留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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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말씀은
일체에 통달하며
선인(仙人)은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의 한 몸은 남음이 없다. -
029_0758_b_12L如世尊說,
一切通達,
仙人慈哀,
一身無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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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말씀”이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의 연설은 유창하여 막힘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하신 것이다.
“일체에 통달하며”란 무슨 뜻인가?
일체의 지혜를 통달하여 일체를 나타내 보이고 일체를 환히 알며 일체의 이치를 분별하는 것이다. 또한 6신통(神通)을 부리고 위없는 도를 이루었으므로 여래의 신통은 저 아라한이 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제도 중에서 부처님의 제도가 가장 훌륭하고 가장 제일이며 모든 법의 모양을 모두 분별하신다. 그러므로 “일체에 통달하며”라고 하신 것이다. - 029_0758_b_13L如世尊所說者,暢達演說言無留滯,故曰世尊說也。一切通達者,一切智達、一切示現、一切通了、分別一切義。遊六神通成無上道,如來六通亦非羅漢所能及逮,佛爲諸度最勝最上,於諸法相悉能分別,故曰一切通達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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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8_c_01L“선인은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란 무슨 뜻인가?
그 마음은 중생들 일체의 생사에 충만하여서 중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마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생각처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을 선인이라고도 하니, 신통의 도를 닦은 이도 선인이라 하고, 온갖 공덕을 완전히 갖춘 이도 선인이라 하며, 오랫동안 선을 닦은 이도 선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선인은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라고 하신 것이다.
“그의 한 몸은 남음이 없다”란 무슨 뜻인가?
몸이란, 4대(大)로 이루어진 것으로 그 근본도 없고 또 끝도 없으며 또 태어남도 없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직접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최후의 경계에 있어서 다시는 태(胎)를 받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 받은 이 몸이 가장 최후니라. 아난이여, 나는 천지의 방위와 경계를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다시 이런 몸을 받더라도 그것은 괴로움의 끝이다.”
그러므로 “그의 한 몸은 남음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 029_0758_b_19L仙人慈哀者,一切充滿生死悕望如父母之想,擁護心慈哀之意,諸佛世尊亦言仙人,修神足道亦名仙人,衆德具足亦名仙人,長夜修善亦名仙人,是以故說仙人慈哀也。一身無餘者,所謂身者,依四大根本更無復有,亦無邊際,亦無出生,如佛存在躬自演說。阿難!當知末後境界,末後無胎末後所受形分如我。阿難!更不復見天地方域,更受此身,此是苦邊,故曰一身無餘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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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든 행은 덧없으니
이른바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다.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
이 적멸(寂滅)이 즐거움이다. -
029_0758_c_06L所行非常,
謂興衰法,
夫生輒死,
此滅爲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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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여러 범지(梵志)들은 자신들의 스승의 법에 따라 두 파로 나뉘었는데, 한 파는 만물은 모두 있는 것이라 하였고, 또 한 파는 만물은 모두 없는 것이라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 ‘있다’고 하는 이들을 분별하여 그 의심을 버리고 미련이 없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모든 행은 덧없으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 029_0758_c_08L昔諸梵志各誦師法,分爲二部,所見萬物皆有,一部自稱萬物皆無。諸言有者,如來分別除去猶豫斷其悕望,便與演說所行非常。諸言有者,自有讚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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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바퀴와 칼로써
중생들을 죽이더라도
언제나 보시를 행할 줄 알면
거기에는 그 어떤 선악도 없다. -
029_0758_c_13L以利輪劍,
殺害衆生,
恒知惠施,
無有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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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죽어도 정신은 변치 않으니
이 몸뚱이 구석구석을
날카로운 칼날이 오고 가더라도
그 목숨만은 해치지 못한다. -
029_0758_c_15L亡形不變,
身體中閒,
利劍來往,
不傷其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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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地)의 요소는 일정하고
풍(風)의 요소는 머무름이 없다.
이들9)도 괴로움과 즐거움을 누리니
목숨의 근본도 또한 그렇다. -
029_0758_c_16L地大恒在,
風界無著,
火受苦樂,
命根亦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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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거침없이 다니며 해치더라도
선악의 과보가 있음을
또한 보지 못하였다. -
029_0758_c_17L正使利劍,
通達來往,
亦不見有,
善惡之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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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 부모를 해치더라도
선악의 과보가 없으니
하물며 그 외의 사람들에게
무슨 과보가 있겠는가. -
029_0758_c_19L設害父母,
無善惡報,
況當餘者,
而有其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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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생각하길, ‘마치 병에 새를 잡아 넣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병을 부수면 새가 곧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중생이 죽더라도 그 목숨은 멀리 날아가 조금도 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삿된 소견을 없애기 위하여 “모든 행은 덧없으니 의지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모든 것은 자꾸 변하여 머무르지 않고 닳아 없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의 목숨은 아침 이슬과 같아서 잠깐 있다가 어느새 없어지므로 “모든 행은 덧없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58_c_20L猶如以甁盛雀,有人打甁,雀便飛逝;傷害衆生,命自遠逝,無所傷損。如來世尊,欲去彼邪見衆生,故曰所行非常不可恃怙,遷轉不住爲磨滅法,命如朝露暫有便滅,故曰所行非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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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9_a_01L만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또 한 파의 사람들은 말하길, “우리 주장이 성취되었다”라고 하며 서로 기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른바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이란 무슨 뜻인가?
대개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 몸이 없으면 상관없지만 몸을 받고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범지들은 다시 생각하길, ‘비록 쇠퇴하여 없어지는 법이라 하더라도 다시 생기지 않으면 우리 주장이 성취된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거듭 그 이치를 말씀하시기를,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수레바퀴처럼 생사에 헤매는 중생들은 모두 5음(陰)10)을 받아서 서로 같은 모양의 몸을 받으니, 그것은 지혜의 눈이라야 관찰하여 분별할 수 있다. - 029_0759_a_02L一部自稱萬物無者,共相慶賀成我等義。如來觀彼心中所念而告之曰:“謂興衰法,夫興衰者,夫盛有衰,合會有離,無身則已,受身有何可避?”梵志復作是念:“設衰耗法更不生者,則成我義。”是故世尊重與說義:“夫生輒死,輪轉不住,諸受陰持共相受入,慧眼觀察乃能分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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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햇빛에 티끌이 흘러 다니면 그것을 셀 수 없는 것처럼, 5음으로 된 몸이 온갖 행의 핍박을 받으며 생과 사를 되풀이하되, 잠깐도 쉬지 않기 때문에 “무릇 났다가 곧 사라지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적멸이 즐거움이다”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번뇌가 다하여 남음이 없기 때문에 욕심을 내거나 집착하는 뜻이 없고 언제나 편안하고 안락하여서 가장 즐거운 것이다. 나고 사라지는 생각이 없이 제일의 이치를 성취하여서 욕심이 없는 즐거움, 무위(無爲)의 즐거움, 번뇌가 없는 즐거움, 번뇌가 다한 즐거움, 모든 것이 사라진 즐거움이기 때문에 “이 적멸이 즐거움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59_a_10L猶如日光塵數流馳難可稱計。”此五盛陰身,衆行所逼流轉生死,無有懈息,故曰夫生輒死。此滅爲樂者,所謂永盡無餘,無欲著意,常息安寧最第一樂,無生滅想成第一義,無欲樂、無爲樂、無漏樂、盡樂、滅樂,故曰此滅爲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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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가.
생각은 항상 불타 오르고
어둠에 깊이 묻혀 있는데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
029_0759_a_16L何喜何笑,
念常熾然,
深蔽幽冥,
而不求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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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9_b_01L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공양을 마치고 해질녘이 되자, 여러 비구들과 임금, 신하, 백성 등의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부처님의 감로법(甘露法)을 들으려 하였다.
그때에 다른 지방의 도사(道士)와 외도의 바라문 일곱 사람이 하얀 머리와 수염에 지팡이를 짚은 채 숨을 몰아 쉬면서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들은 땅에 엎드려 발 아래에 예배한 다음 합장하고 말씀을 드렸다.
“저희들은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거룩한 교화를 엎드려 받들고 있었습니다. 진작 귀의하여야 옳았지만, 도술에 구별이 있어서 이제야 거룩한 모습을 뵙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제자가 되어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자 하나이다.” - 029_0759_a_18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食後日晡,有衆比丘及天帝臣民四輩弟子,欲聽如來說甘露法。有異方道士異學婆羅門七人,頭鬚皓白拄杖呻吟來至佛所,稽首作禮叉手白佛言:“吾等遠人伏承聖化,久應歸命道術有簡,今乃得來覲睹聖顏,願爲弟子得滅衆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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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고 모두 사문으로 만드신 다음 그 일곱 비구들로 하여금 한방에 같이 있게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부처님을 뵙고 도를 닦게 되었지만, 덧없이 변하는 법에 대해서는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 한방에 같이 앉아 세상 일을 생각하며 소곤거리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면서 일의 성패(成敗)와 목숨을 날로 재촉하여 사람과 기약하지 않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를 희롱해 웃으며 자만심으로 나태해져서 덧없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일어나 그 방으로 가셔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도를 닦는 것은 세상을 제도할 무위(無爲)의 도를 구하는 데 있는데, 어찌하여 웃고 떠들기만 하느냐?
모든 중생들은 다섯 가지를 믿는다. 그 다섯이란, 첫째는 젊음을 믿으며, 둘째는 아름다움을 믿고, 셋째는 세력을 믿으며, 넷째는 재주를 믿고, 다섯째는 귀한 종족임을 믿는 것이다. 지금 그대들은 소곤거리기도 하고 크게 웃기도 하였는데, 대체 그대들은 무엇을 믿는가?”
부처님께서는 곧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 029_0759_b_03L佛卽聽受,悉爲沙門,勅七比丘共止一房。然此七人睹見世尊,尋得爲道,不計無常變易之法,共坐房中思惟世事,小語大笑不念成敗,命日促盡不與人期,但共戲笑恣意放逸不念無常。爾時世尊起至房中,而告之曰:“卿等爲道,當求度世無爲之道,何爲大笑?一切衆生自憑五事。何謂爲五?一者恃怙年少,二者恃怙端正,三者恃怙力勢,四者恃怙才器,五者恃怙貴族。卿等七人小語大笑,恃怙何等?”於是世尊卽說頌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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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가.
생각은 항상 불타 오르고
어둠에 깊이 묻혀 있는데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
029_0759_b_14L何喜何笑,
念常熾然,
深蔽幽冥,
而不求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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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가”란 무슨 뜻인가?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일곱 바라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도의 경계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역시 수다원(須陀洹),11) 사다함(斯陀含),12)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도 되지 못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번뇌를 없애지 못하면 의지할 만한 것이 없다’고 가르쳐 주었다. 너희들은 몸을 받아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독사와 같이 있으면서 5음을 이루고 있는데, 어떻게 그러한 가운데서 소곤거리며 크게 웃을 수 있느냐? 부디 그 괴로움은 영원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런데 실없는 웃음으로써 번뇌를 짓는구나. 괴롭도다. 깨닫기 어려운 사람들이 바로 그대들이구나.”
그러므로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029_0759_b_16L何喜何笑者?爾時世尊告七人曰:“汝等七人來在道境,亦復不在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復告比丘:“我先有教,未能盡漏不可有所恃怙,汝等受形未脫結縛,蛇蚖共居成五盛陰,云何於中小語大笑?當念此苦永劫不除,方興戲笑以成塵垢,苦哉難悟,卿等是也。”故曰,何喜何笑,是世尊教勅之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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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59_c_01L“생각은 항상 불타 오르고”란 무슨 뜻인가?
무엇이 불타 오르고 있는가? 덧없음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고, 괴로움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으며, 근심 걱정과 고뇌의 불길이 타 오르고 있다. 또 무엇으로써 불타 오르고 있는 것을 보는가? 애욕, 분노, 어리석음, 교만, 질투, 의심으로 불타 오르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에 “생각은 항상 불타 오르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둠에 깊이 묻혀 있는데”란 무슨 뜻인가?
마치 사람이 밤에 다니면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나면서부터 장님이 되어 하늘 빛과 땅 빛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그런 어둠도 있지만 그것은 말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이른바 큰 어둠이란 무명(無明)으로서, 사람의 온몸을 두루 속박하는데 조금의 빈틈이나 허술함도 없다. 이 큰 어둠은 중생들을 가려서 중생들이 선악의 중요한 근본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시시비비의 속박을 벗어나게 해주는 도(道)와 세속적인 법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며, 역시 선취(善趣)와 악취(惡趣)에서 벗어나는 열반을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어둠에 깊이 묻혀 있는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59_c_01L念常熾然者,云何爲熾然?以無常火而爲熾然,亦以苦火而爲熾然,愁憂苦惱而爲熾然。又以何等而見熾然?愛欲瞋恚愚癡憍慢,嫉妒恚疑所見熾然,故曰念常熾然。深蔽幽冥者,猶人夜行不睹顏色,生盲無目不見玄黃,如此幽冥蓋不足言。所謂大幽冥者,無明纏絡遍人形體無空缺處,是謂大冥覆蔽衆生,不別善惡趣要之本,不別白黑縛解之要道俗之法,亦復不知善趣惡趣出要滅盡,故曰深蔽幽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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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란 무슨 뜻인가?
등불이란, 지혜의 등불이니, 지혜의 등불로써 무엇을 비추는가? 대답한다면, 번뇌의 일어나는 원인과 도로써 그것을 멸하는 법을 알고, 선취와 악취에서 벗어나는 근본을 분별하며, 시시비비의 속박을 벗어나게 해주는 도와 세속적인 법을 분별하고, 역시 선취와 악취에서 벗어나는 열반을 잘 분별하는 것이니, 즉 모든 법을 비추지 않는 곳 없이 두루 밝게 비추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어둠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에,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59_c_13L而不求錠者,云何爲錠?所謂智慧之錠,以智慧錠爲照何等?荅曰:知結所興以道滅之,分別善趣惡趣出要之本,能別白黑縛解之要道俗之法,善能分別善趣惡趣出要滅盡,普曜諸法無不明照,而更捨之乃趣冥道故,曰而不求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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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몸뚱이의 모든 기관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때
해골은 비둘기 빛깔 같으니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 -
029_0759_c_19L諸有形器,
散在諸方,
骨色如鴿,
斯有何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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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0_a_01L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어떤 비구가 날마다 성 밖 넓은 들판의 무덤 샛길에 있는 남의 밭을 밟고 지나다녔다. 밭 주인은 그것을 보고 화가 나서, ‘저 도사는 도는 닦지 않고 날마다 여기를 왔다갔다하는가’라고 생각하고, 그 도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걸사(乞士)길래, 나의 밭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발자국을 내십니까?”
도인은 대답하였다.
“나는 송사(訟事)가 있어서 여기 와서 증인을 찾고 있습니다.” - 029_0759_c_21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有異比丘,日至城外曠野塚閒,路由他田乃得達過,其主見已便興瞋恚:“此何道士日此往來不修道德?”卽問道人:“汝何乞士,在吾田中縱撗往來,乃成人蹤?”道人對曰:“吾有鬪訟來求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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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밭 주인은 전생의 인연에 끌려 제도를 받을 인연이 되었다. 그는 가만히 도인을 쫓아가서 황량한 무덤 사이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보았다. 심하게 부어 오르거나 썩어 문드러진 시체를 날짐승들이 먹다가 다른 곳에 흩어 놓거나, 혹은 먹다가 남기기도 하였고, 또한 비둘기나 구더기 같은 것이 파먹어서 역한 냄새가 나서 가까이할 수 없었으며, 까마귀, 까치, 여우, 개, 독수리, 솔개, 부엉이 따위들도 시체를 파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구가 손을 들고 그에게 말하였다.
“이 짐승들이 모두 나의 증인입니다.”
그는 물었다.
“그 짐승들이 증인이라면, 당신은 지금 비구인데 누구와 송사를 하는 것입니까?”
비구는 대답하였다.
“나는 마음의 병이 되어 온갖 번뇌와 근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해골들을 보면 오로(惡露)13)를 분별하게 됩니다. 곧 내 방으로 돌아가 내 몸을 관찰하면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저 해골들과 다름이 없게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끝간 데 없이 흩어져 하나의 허깨비인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법 따위를 쫓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마음의 근본에 대해 경계합니다. 즉, ‘너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나를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 빠지게 하지 말아라’라고 말입니다. - 029_0760_a_04L時彼田主宿緣鉤連應蒙得度,便逐道人私匿從行,見曠塚閒尸骸狼藉胮脹臭爛,鳥狩食噉散落異處,或有食噉盡不盡者,有似炙鴿蛆虫 ((口*束)) 臭穢難近,烏鵲狐狗老鷲鴟鵂噉死人屍。比丘擧手語彼人曰:“此諸鳥獸是我證人。”其人問曰:“此諸鳥獸可爲證人,汝今比丘與誰共諍?”比丘報曰:“心之爲病多諸漏患,我觀此骸分別惡露,便還房室還自觀身,從頭至足與彼無異,然此心意流馳萬端,追逐幻僞色聲香味細滑之法。我今欲誡心之原本,汝心當知,興起是念,無令將吾入地獄餓鬼之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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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0_b_01L나는 지금 범부로서 모든 속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의 도적은 내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 광야에 와서 마음을 위해, 불결한 오로(惡露)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거듭 마음을 위해 설명하지만, 마음은 경솔하고 사나우며 혼란스러워서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고쳐서 다시는 나쁜 인연을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밭 주인은 이 도인의 말을 듣고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흐느끼고 한숨지었다.
그런데 그 밭 주인은 이미 가섭불(迦葉佛) 때의 만 년 동안에, “이 몸은 더럽다”는 관(觀)을 닦다가 이내 서른여섯 가지 오로의 더러움을 분별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비구와 밭 주인은 그 광야의 두려운 무덤 사이에서 수다원(須陀洹)의 도를 얻었다. - 029_0760_a_17L我今凡夫未脫諸縛,然此心賊不見從命,以是之故日住曠野,爲說惡露不淨之想,復與心說,心爲卒暴亂錯不定,心今當改無造惡緣。”時彼田主聞道人教,以手揮淚哽咽歎言。然彼田主於迦葉佛十千歲中,修不淨想,尋時分別三十六物惡露不淨。爾時比丘及彼田主,卽往曠野大畏塚閒,得須陁洹道。
-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천안(天眼)으로 그 두 사람이 전생의 인연에 의해 도를 증득한 것을 보시고는, 이후의 도를 닦는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고, 미래 세상에 큰 광명을 보이며, 바른 법이 오래도록 전하여 중간에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곧 스스로 찬탄하시며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 029_0760_b_03L爾時世尊天眼淸淨無瑕穢,觀見二人成其果證,因宿本緣,亦欲示現後學之徒,使將來世現其大明,正法久存無能中滅,便自稱慶而說此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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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뚱이의 모든 기관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때
해골은 비둘기 빛깔 같으니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14)
“이 몸뚱이의 모든 기관”이란 무슨 뜻인가?
즉, 손, 발, 다리, 팔, 팔꿈치, 허리, 척추, 장딴지, 넓적다리, 무릎, 봉숭아뼈, 발꿈치, 두개골, 사지의 뼈마디가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몸뚱이의 모든 기관”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60_b_07L諸有形器者,或有手腳臂肘腰髖髀膊、膝踝足跟髑髏支節,各在異處,是故說曰諸有形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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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때”란 무슨 뜻인가?
해골은 나무처럼 의식이 없지만, 본래부터 사람들은 그 몸을 사랑하여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향과 꽃과 연지와 분으로 장엄하고 꾸민다. 그러나 그 몸은 지금 모두 다른 곳에 각각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해골은 비둘기 빛깔 같으니”란 무슨 뜻인가?
본래는 여러 백천억의 중생들이 보고 사랑하여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여러 백천억 중생들이 그것을 보고는 모두 두려워하여 온몸의 터럭이 다 일어선다. 그러므로 “해골은 비둘기 빛깔 같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란 무슨 뜻인가?’
세상에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는 바로 미련한 범부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고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사랑을 받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비루하게 생각하여 부끄러워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즐겨 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추어 숨겨 두며 담아 둔다. - 029_0760_b_11L散在諸方者,猶木無識,本所愛樂不去心懷,莊嚴文飾香花脂粉芬熏其身,今皆散落,各在異處。骨色如鴿者,本所衆生億百千數,而見愛念觀無厭足,如今億百千衆所見薄賤,睹皆怖懅身毛爲豎,是故說曰骨色如鴿。斯謂何樂者,世言有樂則是凡夫愚惑之人,智者所棄,愚人所樂,智者懷愧但有醜陋,愚者翫習甘樂不捨,藏匿懷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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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첫날 밤에
의식이 어머니의 태(胎)에 들어가게 되면
날마다 변하고 변하니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
029_0760_b_20L若如初夜,
識降母胎,
日涉遷變,
逝而不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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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0_c_01L
부처님께서 세 가지 유위(有爲)를 말씀하신 것과 같이 유위의 모양은 흥하고 쇠하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만일 만물이 언제나 한결같이 존재한다면, 시체의 해골은 왜 항상 존재하지 않겠는가? 1백20시간을 하루 낮 하룻밤이라 하는데, 만일 해골이 이 세상에 오래도록 존재한다면 한 사람의 몸이 이 세계에 가득 찰 것이다.”
어떤 사람이 대답하였다.
“중생은 감각기관과 함께 나고 감각기관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므로 해골은 오래 존재하지 못한다.”
“비록 중생이 감각기관과 함께 사라지더라도 감각기관과 함께 생기면, 해골은 오랫동안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 029_0760_b_22L如佛世尊敷演言教有三有爲,有爲之相興衰變易。問曰:“故當萬物恒有常者,死屍骸骨不久存乎?百二十時謂之一日一夜,若當形骸久存世者,一人形體遍滿世界。”答曰:“以其衆生與根共生、與根共滅,以是之故骸不久存。設當衆生與根共滅與根共生者,骸骨便當久存於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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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은 의식과 함께 생기고 의식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므로 해골은 이 세상에 오래 존재하지 못한다.”
“만일 중생이 의식과 함께 사라지더라도 의식과 함께 생기면, 해골은 오랫동안 이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또 물었다.
“만일 중생이 늙어서도 이 세상에 오래 존재할 수 있다면, 처음 태(胎)에서 나올 때부터 머리털은 항상 희지 않았겠는가?”
“이른바 머리털이 희다는 것은 그가 늙었다는 뜻이 아니다.” - 029_0760_c_07L復次與識共生與識共滅,是時形骸不久在世,若當衆生與識共滅,與識共生,爾時形骸久存於世。”問曰:“若當老耄久存世者,人初出胎頭髮恒不白乎?”答曰:“所謂頭髮皓然白者非衰老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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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것은 무슨 뜻인가?”
“그가 몸을 받을 때부터 퇴색의 변화로 말미암아 흰 털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술이나 소(酥)나 마유(麻油)에는 반드시 흐린 찌꺼기가 있는 것처럼 중생이 몸을 받을 때에도 이와 같아서 퇴색의 변화로 말미암아 흰 털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첫날밤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의식이 어머니의 태에 들어가게 되면’이란 무슨 뜻인가?
남자의 의식이나 여자의 의식이 어머니 태에 들어가더라도 그것은 잠깐 동안 의지해 있는 것으로서,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여 백천 가지의 변화를 겪으면서 일고 사라짐이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수레바퀴 도는 것을 헤아릴 수 없는 것과 같아서, 오직 천안(天眼)이라야 볼 수 있는 것이니, 때로 그 의식이 지나가고 돌아오는 것 역시 신비한 주문이나 기술로도 제어할 수 없다. 그래서 지나가거나 스스로 아주 갔다 왔다 하더라도 또한 자취가 없다. 의식이 어머니 태에 있으면서 생기고 사라지기를 그치지 않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또 마치 강물이 동으로 흐르면서 결국은 서쪽을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태 안에 있는 의식도 지나가면 결국은 돌아보지 않으니, 오직 천안을 가진 사람이라야만 태 안의 의식이 오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 029_0760_c_12L此義云何乎?”荅曰:“依彼受形分時,便有衰色之變,有白髮生猶酒酥麻油必有濁滓,受形分時亦復如是,便有衰色白髮生焉。”是故說曰若如初夜。識降母胎者,猶如男識女識降在母胎,據在一時之內,或生或滅,經百千變起滅不息猶如輪轉,不可稱計,唯有天眼乃得見耳。時識過去及還來者,亦非神呪技術能制,去自永逝來亦無迹,識處母胎生滅不停亦復如是,猶河東流,終不西顧,胎識去過終不還反,唯有天眼,見胎識還見胎識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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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1_a_01L
7
새벽에 보던 것도
밤에는 볼 수 없고
어제 보던 것도
오늘은 볼 수 없네. -
029_0761_a_01L晨所睹見,
夜則不現,
昨所瞻者,
今夕則無。
-
나는 지금 젊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으니
젊어서 죽는
남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네. -
029_0761_a_03L我今少壯,
無所恃怙,
少者亦死,
男女無數。
-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아난 존자는 탁발할 때가 되어서 가사를 두르고 발우를 지닌 채 사위성으로 걸식하러 들어갔다. 그는 성문 앞에서 많은 남자들이 흥겹게 노는 것을 보았다. 아난 존자가 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다시 성을 나올 때, 그 광대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어서 여러 사람들이 그를 부둥켜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그때 아난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기이하다. 변괴가 닥치는 것이 어찌 이리도 빠른가? 내가 아침에 걸식하러 성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저 남자는 5락(樂)15)으로 스스로 즐거워서 그 얼굴이 마치 천인과 같더니, 어찌 지금은 저렇게 죽게 되었는가?’
그래서 아난 존자는 사위성을 나와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서 가사를 두르고 손발을 깨끗이 씻은 뒤에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 029_0761_a_04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尊者阿難,到時著衣持鉢入舍衛城分衛,遙見門外有衆男子作倡伎樂而自娛樂。尊者阿難入城乞食訖欲還出城,見此伎人忽已命終,衆人舁擧號哭相向。時尊者阿難便生此念:“奇哉變怪無常對至,何其速乎?我向晨朝入城乞食,見此男子五樂自娛,像如天子,如今受對取無常耶?”時尊者阿難出舍衛城祇洹精舍,收攝衣服淨洗手足,至世尊所,頭面禮足在一面立。
-
029_0761_b_01L그리고 나서 아난은 꿇어앉아 합장하고 앞으로 나아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아침에 가사를 두르고 발우를 지닌 채 사위성으로 걸식하러 들어가다가 어떤 남자가 흥겹게 5욕(欲)을 스스로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되돌아올 때, 그 남자가 갑자기 죽어서 여러 사람들이 그를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에 생각하길, ‘기이하다. 변괴가 닥치는 것이 어찌 이리도 빠른가? 내가 아침에 걸식하러 성 안으로 들어갔을 때, 저 남자는 5락으로 스스로 즐거워서 그 얼굴이 마치 천인과 같더니, 어찌 지금은 저렇게 죽게 되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오늘 본 것은 너무 놀라워 일찍이 보지 못하던 것이었습니다.” - 029_0761_a_16L爾時尊者阿難長跪叉手前白佛言:“唯然世尊!我向晨朝著衣持鉢入城乞食,見有男子作倡伎樂五欲自娛,便入城乞,還出在外,見此男子忽已命終,衆人舁擧號哭相向。時我,世尊!便生此念:‘奇哉變怪無常對至,何期速乎?我向晨朝入城乞食,見此男子五樂自娛,像如天子,如今受對,取無常耶?’我今所見甚爲奇特,未曾所睹。”
-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지금 네가 본 것을 놀랍다고 하는가? 내가 과거에 본 것은 네가 지금 본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것이었다.
나도 옛날, 탁발할 때가 되어 가사를 두르고 발우를 지닌 채 사위성 안으로 걸식하러 들어간 적이 있었다. 아난이여, 그때에 나는 어떤 남자가 기원문(祇洹門) 밖에서 흥겹게 놀며 5욕(欲)을 스스로 즐기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나는 성 안에 들어가 걸식을 마치고 다시 성 밖으로 나왔는데, 그 남자는 조금 전처럼 흥겨워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너보다 더 놀라운 일을 본 것이다.”
그러자 아난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것은 당연한 일인데, 어찌하여 놀랍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목숨은 바람보다 빨라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데, 너는 지금 무엇이 놀랍다고 말하는가?”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이치의 처음과 끝을 관찰하시고는 비구들에게 이 법을 널리 알리고,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큰 광명을 나타내 보이며,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출요(出曜)의 게송을 읊으셨다. - 029_0761_b_02L世尊告曰:“汝今,阿難!有何奇特?我曾所睹乃爲奇特,出過汝今所見者上。我曾昔日到時著衣持鉢,入舍衛城分衛乞食。時我,阿難!見有男子在祇洹門外作倡伎樂五欲自娛,時我入城乞食訖還出城外,見此男子作倡伎樂如本不誤。我見奇特出汝者上。”爾時阿難卽白佛言:“此是常儀,有何奇特?”佛告阿難:“命速於風,逝難制御,汝今方言,有何奇耶?”爾時世尊觀察此義尋究本末,欲使比丘明鑑此法,爲將來衆生現大光明,亦使正法久存於世,爾時世尊便說出曜之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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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보던 것도
밤에는 볼 수 없고
어제 보던 것도
오늘은 볼 수 없네. -
029_0761_b_15L晨所睹見,
夜則不現,
昨所瞻者,
今夕則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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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젊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으니
젊어서 죽는
남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네. -
029_0761_b_17L我今少壯,
無所恃怙,
少者亦死,
男女無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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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보던 것도 밤에는 볼 수 없고”란 무슨 뜻인가?
새벽에 보이던 중생들이 수천백이나 되었지만 날이 저물어서는 그들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많은 중생들이 잘 생각하고 헤아려서 선의 근본을 완전히 갖추고 그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으면,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은 마치 돌을 쪼을 때에 번쩍 일어났다 사라지는 불꽃과 같은 것임을 안다. 그러므로 마땅히 누가 마음을 내어 그것에 탐착하겠는가?
그러나 무지한 범부나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을 내어 목숨에 탐착한다. - 029_0761_b_18L前所睹者夜則不見者,晨朝所見衆生之類數千百衆,暮則不見,諸有衆生思惟挍計善根具足,意不錯亂,則自覺知命如琢石閃現已滅,誰當興意貪著此乎?唯有無聞凡夫愚人,乃興此心,生貪著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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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1_c_01L“어제 보던 것도 오늘은 볼 수 없네”란 무슨 뜻인가?
어제 보던 것도 나아가고 멈추며 또 가고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유념하여 선의 근본을 잘 생각하고 여러 가지 공덕을 심으면, 마음에 용기가 생겨서 스스로 뉘우치며 마음속으로는 ‘즐거워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새벽에 보던 것도 밤에는 볼 수 없고, 어제 보던 것도 오늘은 볼 수 없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지금 젊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으니”란 무슨 뜻인가?
저 무지한 사람이 아는 것도 들은 것도 없이 스스로 힘센 것과 기운이 왕성한 것만을 믿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여서 뒷걱정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는 스스로 말하길, “나는 용모가 단정하고 뛰어나지만 남은 비천하여서 내가 지닌 용모와 재력 그리고 인물의 출중함을 따르지 못한다”고 한다. 스스로 힘이 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혼자 으뜸이어서 상대할 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은 거역하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행하여서 어떤 강한 상대라 할지라도 피하지 않는다. 또 갑자기 닥칠 죽음에 대해서도, 나고 죽는 괴로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젊지만 그것을 믿을 수 없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61_c_01L昨所瞻者今夕則無,如昨所見進止行來,設彼有念思惟善本殖衆功德,心便勇猛能自改悔,內自興發不可樂想,是故說曰,晨所睹見夜則不現,昨所瞻者今夕則無也。我今少壯無所恃怙,如有愚人無所聞知,自怙强壯氣力熾盛,茍得自縱隨其所如不顧後慮。自稱端正顏貌殊特,餘者卑賤非我等友,色力財富出衆人表,旣自盛壯獨步無侶,所願者得無能拒逆,所欲自恣不避豪强,亦復不思無常對至,不睹生死苦惱之患,是故說曰,我今少壯無所恃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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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죽는 남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네”란 무슨 뜻인가?
비록 무수한 남녀와 크고 작은 몸을 받은 이 가운데 혈기가 왕성하고 재물이 많아서 무엇이나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모두 젊었을 때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젊어서 목숨을 바치는 이가 늙은이보다 많기 때문에 다 덧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남에게 짓밟히면서 목숨을 마치는 이들은 전생에 공덕을 닦지 않은 이들이며, 모든 선의 근본에도 의지하지 않던 이들이다. 그래서 이승이나 저승이나 5취(趣)를 돌아다니면서 쉬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젊어서 죽는 남녀의 수를 헤아릴 수 없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61_c_14L少壯亦死男女無數,正使無數衆生之類,男女大小受形分者,氣力殊特財富無數,所欲自恣年皆盛壯,於人世閒壯者命終多於老者皆爲無常,所見蹈藉,然彼終者先在世時不修功德,諸善之本無所恃怙,從今世至後世流馳五趣無有懈息,是故說曰,少者亦死男女無數。
-
8
태(胎) 안에서 죽거나
태어나자마자 이내 죽거나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죽거나
어머니 품에 안겨서도 죽는다. -
029_0761_c_21L在胎自敗,
初出亦殤,
旣生子壞,
孩抱而喪。
-
모든 늙은이나 젊은이
중년의 사람들도
차례대로 죽어 가니
과일이 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
029_0761_c_23L諸老少壯,
及中閒人,
漸漸以次,
如果待熟。
-
029_0762_a_01L
육십천 생(生)이나 육십백 생이나 태 안에서 죽는 것은 전생에 사람들을 해쳤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왕이나, 일억의 재산을 가진 부자나, 도사, 상인, 부모,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을 해친 것을 말한다.
그는 이런 사람들을 해치고 아비(阿鼻)지옥이나 혹은 열(熱)지옥, 대열(大熱)지옥, 제곡(啼哭)지옥, 대제곡(大啼哭)지옥, 등활(等活)지옥, 흑승(黑繩)지옥 등에 들어가고, 그 지옥에서 죄가 끝나면 또 6축(畜)으로 태어나 여러 겁 동안 오가며 맴도는데, 다시 사람의 몸을 받더라도 그 동안에 태 안에서 죽어 그 수명을 다 마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태 안에서 죽거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62_a_01L六十千生六十百生,於生藏壞斯由害人,所謂人者國王一億則害導師商人父母,須陁洹、斯陁含、阿那含、阿羅漢。興心起意害此輩人,或入阿鼻地獄或熱,大熱,啼哭,大啼哭等,活黑繩等,會地獄畢此罪已生六畜中,經歷劫數往來周旋,乃復人身於其中閒在生藏中不卒其命,是故說曰,在胎自敗也。
-
“태어나자마자 이내 죽거나”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처음으로 어머니의 태 문(門)을 나서자마자 이내 죽으며, 어떤 중생은 처음으로 복을 지으려다가 공업(功業)16)을 마치기 전에 태 문에서 일찍 죽는다. 그것은 다 전생에 나쁜 마음을 내어 복을 짓는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자마자 이내 죽거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죽거나”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공업을 베풀고 덕을 세우고자, 여러 절에 과수원과 연못과 다리와 깨끗한 해우소[淸厠]를 만들려고 했다가 그 공업을 이루기도 전에 남의 해침을 당하기도 한다. 그것은 다 전생에 복덕을 지은 사람을 해친 까닭이니, 죽어서는 지옥, 축생, 아귀의 세계에 들어가 오랜 시간을 헤매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이미 태를 떠났더라도 중간에 일찍 죽게 된다. 그러므로 “자식으로 태어났음에도 죽거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62_a_09L初出胎亦壞者,或有衆生始出胎門而命終者,或有衆生,始欲造福功業未果,便於胎門中夭命者,斯由前身興心傷害彼造福人,是故說曰,初出亦殤。旣生子壞者,或有衆生施功立德,在諸塔寺施設園菓浴池橋梁淸廁,功業未就爲人所害,斯由先世害福德人,死入地獄畜生餓鬼,經歷久遠乃還復人,旣生離胎於中逝殤,是故說曰,旣生子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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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2_b_01L“어머니 품에 안겨서도 죽는다”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공업을 베풀고 덕을 세우고자 여러 절에 과수원과 연못과 다리와 깨끗한 해우소를 만들려고 했다가 그 공업을 이루기도 전에 남의 해침을 받아 죽는다. 그것은 다 전생에 나쁜 마음을 내어 복을 지은 사람을 해쳤기 때문이다. 그는 몸이 망가지고 목숨이 다한 뒤에는 지옥에 들어가며, 지옥에서 죄가 끝나면 다시 축생 세계에 나는데, 비록 사람이 되더라도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어린이로서 어머니 품에 안긴 채 명을 마친다. - 029_0762_a_19L孩抱而喪者,或有衆生於塔寺中施功立德,施設園菓浴池橋梁淸廁,功業已就餘功未幾,便爲人所害,斯由前身興心殤害彼造福人,身壞命終入地獄中,於中畢罪生畜生中,雖得爲人未別白黑,便於孩抱,夭其命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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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늙은이나 젊은이
중년의 사람들도
차례대로 죽어 가니
과일이 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
029_0762_b_02L諸老少壯,
及中閒人,
漸漸以次,
如菓待熟。
-
옛날 마성(馬聲) 존자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 029_0762_b_04L昔日尊者馬聲說偈曰:
-
어머니 태 안에서 죽기도 하고
이미 나서 밖에서 죽기도 한다.
젊어서도 죽음을 면치 못하고
늙어서는 그것을 달게 받는다. -
029_0762_b_05L或有在胎喪,
已生在外終,
盛壯不免死,
老耄甘心受。
-
마치 나무에 광화(狂花)가 피어도
열매를 맺는 것은 아주 드문 것처럼
죽음을 잊어버리려고 하나
죽음의 영을 받아 어쩔 줄을 모른다. -
029_0762_b_07L猶樹生狂花,
結實時希有,
志故必欲捨,
伺命召不忍。
-
마치 저 철따라 무성한 과일 나무에 광화(狂花)가 피어나더라도, 바람을 만나면 힘없이 떨어져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주 드물고, 열매를 맺었다고 하더라도 우박을 만나면 이내 떨어진다. 미처 꽃이 피기도 전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꽃이 피었다가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 중에서 열매가 맺힌 다음 익어서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아주 작다.
중생들도 이와 같아서 백천 생(生)을 지나는 동안에 그 몸이 1생(生)이거나 혹은 2생(生)이거나, 태 안에 있거나, 태에서 나왔거나, 젊었거나 늙었거나 병들었거나 간에 모두 이 길을 되돌아가 그 재앙을 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백천 생 동안에 대개는 늙어서 목숨을 마치지만, 1생이나 2생 동안에 젊어서 죽는 이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 029_0762_b_08L猶彼菓樹隨時繁茂,狂花生長遇風凋落結實者尟,或已結實遇雹墮落,或有未花而凋落者,或有已花,而凋落者,其中成實待熟落者,少少耳。此衆生類亦復如是,於百千生其中身,若一若二處胎出胎少壯老疾,悉歸斯道無免此患,於百千生老壽命終若一若二,少壯死者不可稱計,是故說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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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늙은이나 젊은이
중년의 사람들도
차례대로 죽어 가니
과일이 익어 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
029_0762_b_17L諸老少壯,
及中閒人,
漸漸以次,
如菓待熟。
-
9
목숨은 익기를 기다리는 과일처럼
일찍 떨어질까 언제나 두려워한다.
이미 나면 다 괴로움이니
그 누가 죽음을 면하겠는가. -
029_0762_b_18L命如菓待熟,
常恐會零落,
已生皆有苦,
孰能致不死?
-
029_0762_c_01L
옛날 악생명왕(惡生明王)은 수레를 타고 시중들을 데리고 후원으로 나갔다. 많은 과일 나무가 줄을 지어 그 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예(禮)는 익은 과일만을 먹고 절대로 풋것은 먹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때 왕이 정원사에게 명령하였다.
“땅에 떨어진 과일은 내게 올리지 말아라. 만일 이 명령을 어기면 목을 베리라.”
그러자 정원사는 가만히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이 악생명왕은 자비심이 없고 포악무도하여 중생을 함부로 죽인다. 만일 내가 이 명령을 어기면 그 화를 면치 못하여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과수원에는 과일 나무가 많지만, 나무에 달려 있는 과일은 적고 땅에 떨어진 것이 많다. 아무리 나를 책망하더라도 과일이 다시 열릴 리가 없다. 우선 여기서 도망친 다음 출가하여 도를 배우리라.’
그는 곧 담을 넘어 도망가 버렸다.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온몸을 땅에 던지고 사문이 되기를 원하였다. - 029_0762_b_20L昔惡生明王嚴駕翼從詣後園遊觀,衆菓樹木行列相當,彼國常禮,菓熟乃食終不噉生。時王有教勅守園者,若有菓蓏墮落地者不應獻上,有犯此制當梟其首。時守園人內自思惟:“此惡生明王暴虐無道,殺害生類無慈愍心,若當我今犯制者,死在旦夕不免其困。然今此園樹菓衆多,在樹旣少墮落者衆,設責我菓更無於出。且自逃走求出家學。卽踰牆出至世尊所,五體投地願爲沙門。
-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는 도를 닦는 사람이 되었으나, 아무 하는 일이 없이 고요히 있으면서 묘한 방편으로써 참선하거나 경전을 외우지도 않았으며, 또 계율이나 아비담(阿毘曇)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도를 행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만 황량한 광야를 거닐다가 12부(部) 경전을 외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 울력에 대해 모르면서 스스로 3사(事)를 빙자하고 뒷 일을 염려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나는 이미 이 몸뚱이의 급한 걱정을 벗어났으니 이제 우선 편히 지내자. 다른 일이나 알아 보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시고는, 온갖 괴로움과 액난에서 그를 제도하여 선법(善法)의 묘당(妙堂)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고자 하셨다. 또한 번뇌의 근본을 뽑고 생사의 광야에서 벗어나 장차 다시는 물러서지 않는 해탈의 길에 들어서게 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출요의 게송을 읊으셨다. - 029_0762_c_08L佛卽然可,得在道次,靜寂無爲,不興巧便坐禪誦經,亦復不習戒律阿毘曇,謂爲行道齊是而已,亦復不惟空閑曠野經行諷誦十二難得懃勞之要,自憑三事不慮後緣,內自喜慶:“我今已脫形急之患,今且自安焉知餘者。”爾時世尊觀其人心,欲使免苦濟衆戹難,欲使安處善法妙堂,欲拔根本離生死原,將入解脫無退轉道。爾時在衆便說此出曜偈曰:
-
목숨은 익기를 기다리는 과일처럼
일찍 떨어질까 언제나 두려워한다.
이미 나면 다 괴로움이니
그 누가 목숨을 면하겠는가. -
029_0762_c_18L命如菓待熟,
常恐會零落,
已生皆有苦,
孰能致不死?
-
그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꾸짖고 부끄러워하여 고요한 곳에서 악로지관(惡露止觀)의 도를 깊이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아라한이 되었다. - 029_0762_c_20L爾時比丘聞佛所說,內自怨責,懷慚愧心,在閑靜處思惟惡露止觀之道,卽於彼處成阿羅漢。
-
029_0763_a_01L
10
비유하면 옹기장이는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것은 반드시 깨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
029_0762_c_23L譬如陶家,
埏埴作器,
一切要壞,
人命亦然。
-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한 옹기장이가 있었는데, 그는 어떤 주문도 물리치지 않고 그릇의 형상을 만들어 내되,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았다.
구살라국(拘薩羅國)17)의 바사닉왕(波斯匿王)18)이 그 옹기장이에게 명령하여 그릇을 만들게 하였다. 그런데 그는 일이 너무 바빠서 마침내 기일에 대지 못하였다. 그래서 바사닉왕은 화가 잔뜩 나서 곁의 신하에게 옹기장이 집에 가서 그릇들을 모두 부숴 버리라고 하였다. - 029_0763_a_02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有一陶師造作瓦器,觸物不卻隨其形狀亦無疑難。時拘薩羅國波斯匿王,勅諸瓦師使造器皿,彼人事猥竟不成辦。時波斯匿王內懷恚怒,勅語傍臣:“至瓦師家毀壞其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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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장이는 생명에 두려움을 느껴 몰래 가시국(迦尸國)19) 국경 근처로 도망쳐서 그곳에서 다시 옹기를 만들며 살았다. 왕은 그가 그곳에서 다시 그릇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또 신하를 그 나라로 보내어서 그가 만든 그릇을 모두 부숴 버리게 하였다.
옹기장이는 다시 구살라국으로 도망쳐 와서 그곳에서 그릇을 만들며 살았다. 그러나 왕은 그가 그릇을 다시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또 신하를 보내어 그릇을 부숴 버리게 하였다. 그래서 옹기장이는 재산을 탕진하고 다시 살아갈 도리가 없어서 헐벗고 굶주리며 지냈다. 또 항상 왕에게 잡혀 죽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는 다시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서 부처님께 나아가 사문이 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그의 수도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나는 이제 액운에서 영원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며, 다시는 왕에게 잡혀 죽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 029_0763_a_08L時彼瓦師懼失命根,竊自逃走至迦尸國界,復於彼土造作瓦器。波斯匿王聞彼造器,復遣臣佐至彼國界,悉使壞破所造瓦器。時彼瓦師復自逃走至拘薩羅國,復於彼土造立瓦器。波斯匿王聞彼造器,復遣臣佐使壞其器。時彼瓦師財產竭盡無復生理,食不充口衣不蓋形,恒懼波斯匿王當取殺之,便復逃走入深山中,往至世尊所求爲道人。時佛默然聽在道次。然彼人內不思惟,謂爲永離困戹之難,不復懼彼爲王所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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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3_b_01L그는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도 도덕을 생각하지 않았고, 경전이나 계율이나 아비담도 공부하지 않았으며, 또 그 이치도 분별하지 못하였고 세상을 제도할 도도 익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참선과 경전을 외우는 것과 대중 울력 등과 같은 3사(事)에 힘쓰지 않고 아예 그만두었으며, ‘도를 행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고, 만용을 부려서 상인(上人)의 법을 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도를 증득하지 못했으면서도 증득하기를 힘쓰지 않고, 과(果)를 얻지 못했으면서도 과를 얻으려 힘쓰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지혜[三達智]로 그 마음을 관찰하시고는 차츰 그를 교화하여서 의심의 그물을 없애 주고자 하셨다.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미 옹기 만드는 일을 그만두었으니, 또한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오직 5음[五盛陰]이 옹기의 형상을 이룬 것이니, 이것이 두려워할 만한 것으로 그 근심만은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옹기가 부서지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ㆍ마귀ㆍ축생의 길에 떨어질 것이다.
5음은 옹기를 본뜬 것이므로 먼저 온갖 공덕의 복된 업을 짓거나 선의 근본을 닦지 않으면 의지할 곳도 없고 또 돌아갈 곳[趣]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지옥ㆍ아귀ㆍ축생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라.”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셔서 처음과 끝을 살피시고는,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을 영원히 여의게 하고, 미래 중생들로 하여금 큰 광명을 보게 하고,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 029_0763_a_20L在閑靜處不思道德,亦不習契經戒律阿毘曇,亦復不分別義理,諸度世道亦復不習,坐禪誦經佐助衆事,永離三事不懃採習,謂爲行道齊是而已,不增翹勇進求上人法,然未得證不懃求證,然未得果不懃求果。如來世尊以三達智觀察其心,以漸化彼無疑網意,便告彼人以免瓦器之功,更不懼喪身之惱,唯有五盛陰爲瓦之形,此爲大畏無免其患。瓦器雖壞,不懼當墮地獄餓鬼畜生之道,五盛陰爲形瓦器,先不造諸功德福業修諸善本,無所恃怙亦無歸趣,恒畏地獄餓鬼畜生。爾時世尊觀察此義尋究本末觀了此義已,欲使諸比丘永離嫌疑,使將來衆生睹其大明正法久存,爾時在衆便說此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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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하면 옹기장이는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것은 반드시 깨어지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
029_0763_b_14L猶如陶家,
埏埴作器,
一切要壞,
人命亦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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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3_c_01L
굽지 않은 것이나 구운 것이나 간에 그릇이란 반드시 깨어져서 끝내는 티끌 더미가 되고 마는 것으로 탐할 만한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5음을 받으니, 그들은 이 날기와 그릇 같은 것들이다. 찰리(刹利)20)거나 바라문이거나 전다라(栴陀羅)21)거나 몸을 받은 사람들은 수명이 길거나 짧거나, 재물이 많거나 적거나, 몸이 단정하거나 누추하거나, 종족이 귀하거나 비천하거나, 얼굴이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지혜롭거나 어리석거나 모두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마땅히 덧없어 변하는 것은 모두 버려서 광야의 무덤 사이에 묻어야 한다.
그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무상함을 깨닫고 죄와 복의 근원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에 대해서도 깨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열반의 행을 따라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 029_0763_b_16L諸有生熟之器要當歸壞,漸成糞聚無可貪者,諸有生類受五盛陰爲坏之器,及剎利、婆羅門、栴陁羅種受形分者,短壽長壽、饒財貧匱、端正醜陋、豪族卑賤、有顏無顏、智慧愚闇,盡歸於死,無常變易皆當捐棄在曠塚閒。時彼比丘聞如來所說教訓之道,知無常之要,達罪福之源,解興衰之變,遵滅度之行,卽於佛前得阿羅漢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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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마치 잉아[綜]를 밀치고
북[杼]을 보내어 베를 짤 때에
차츰 그 날실이 줄어드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
029_0763_c_02L猶如張綜,
以杼投織,
漸盡其縷,
人命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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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고기 그물을 잘 뜨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평소 몹시 게을렀다. 그래서 자주 아들에게 부지런하기를 권하였지만, 그는 대답하였다.
“천천히 하지요. 그렇게 바쁘게 할 것이 무엇 있습니까? 이 일을 마치고 나면 다른 일도 없을 텐데…….”
아버지는 말하였다.
“이 일이 끝나더라도 또 다른 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수십 번씩 말이 오고 갔다. 마침내 아들은 정신이 착란되어 그 아버지 앞에서 간이 터져 죽고 말았다. - 029_0763_c_04L昔日有人善能織罽,兼有一息意常惰懶,數勸語公:“作應舒遲何必速疾?此功適訖後更無作。”父告其子:“此功雖訖更有餘務。”如是語公往來數十,兒神識錯,尋於父前肝裂命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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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들이 죽자, 곧 집안 살림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그는 비록 사문이 되었으나 아들 생각에 마음이 빠져 있어서 그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덕을 생각하거나 참선에 전념하여서 보다 훌륭한 법을 구하지도 않았고, 또 경전이나 계율이나 아비담을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또 좌선을 하거나 경전을 외우거나 대중 울력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마음은 죽은 아들에게만 있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지혜로써 그의 마음이 향하는 곳을 관찰하시고는 처음과 끝을 살피셔서 그 이치를 밝히셨다. 그리고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을 영원히 여의게 하고, 미래의 중생들로 하여금 큰 광명을 보게 하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출요의 게송을 읊으셨다. - 029_0763_c_09L時父見子命根已斷,卽捨居業出家學道,雖爲沙門念子在心不能捨離,亦復不思惟道德專定坐禪求增上法,亦復不思惟契經戒律阿毘曇,亦復不坐禪誦經佐助衆事,唯心存在念彼亡子。爾時世尊以三達智觀察彼人心意所向,尋究本末觀了此義已,欲使諸比丘永離嫌疑,使將來衆生睹其大明正法久存,在於衆中便說出曜之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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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잉아를 밀치고
북을 보내어 베를 짤 때에
차츰 그 날실이 줄어드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
029_0763_c_19L猶如張綜,
以杼投織,
漸盡其縷,
人命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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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4_a_01L
모든 만물은 모두 죽음으로 돌아가기에 덧없이 변하는 것들은 다 버려서 광야의 무덤 사이에 묻어야 한다.
그때에 그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는 무상함을 깨닫고, 죄와 복의 근원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며, 흥했다가 쇠퇴하는 법에 대해서도 깨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열반의 행을 따라 부처님 앞에서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 029_0763_c_21L一切萬物皆當歸死,無常變易皆當捐棄在於曠野塚閒。時彼比丘聞如來所說教訓之道,知無常之要,達罪福之原,解興衰之變,遵滅度之行,卽於佛前得阿羅漢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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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치 사형수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에
죽음의 길로 향하게 되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
029_0764_a_03L猶如死囚,
將詣都市,
動向死道,
人命如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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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어느 때 구살라국의 바사닉왕이 전옥(典獄)에게 명령하였다.
“도적질한 자들은 모두 죄를 물어 형장으로 끌고 가서 죽여라.”
그러자 대중 가운데 있던 한 도적이 그곳을 빠져 나와 거짓으로 법복(法服)을 입고 사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나는 이제 액운에서 영원히 벗어났다’고 생각하고는 왕에게 잡혀 죽을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도덕을 생각하지 않고 경전과 계율과 아비담도 공부하지 않았으며, 또 그 이치도 분별하지 못하였고, 세상을 제도할 도(道)도 익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참선과 경전을 외우는 것과 대중 울력 등과 같은 3사(事)에 힘쓰지 않고 아예 그만두었으며, ‘도를 행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고, 만용을 부려 상인(上人)의 법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서도 증득하기를 힘쓰지 않았고, 과(果)를 얻지 못했으면서도 과를 얻으려 힘쓰지 않았다. - 029_0764_a_05L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時拘薩羅國波斯匿王勅典獄者,諸有盜賊罪應入律詣市殺之,時有一賊在大衆中逃竊得脫,外假法服私爲沙門。然彼人內不思惟,謂爲永離困厄之難,不復懼彼爲王所害,在閑靜處不思道德,亦不習契經戒律阿毘曇,亦復不分別義理諸度世道,亦復不習坐禪誦經佐助衆事,永離三事不懃採習,謂爲行道齊是而已,不增翹勇進求上人法,然未得證不懃求證,然未得果不懃求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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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4_b_01L부처님께서는 세 가지의 지혜로 그 마음을 관찰하시고는 차츰 그를 교화하여 의심의 그물을 없애 주고자 하셨다. 그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사느냐, 죽느냐는 도적의 재난은 면하였으나 아직 남은 것이 있다. 즉, 5음으로 된 몸이 5취(趣)를 떠돌아서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번뇌의 해침을 받아서 장차 아귀나 축생의 길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시고는 처음과 끝을 살피셨다. 그래서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을 멀리 여의게 하고, 미래 중생들로 하여금 큰 광명을 보게 하며,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 029_0764_a_17L如來世尊以三達智觀察其心,以漸化彼無疑網意,便告彼人以免生死賊寇之難故有餘怨,五盛陰身輪轉五趣無有解已,爲諸結使所見殘害,便當墮於餓鬼畜生之道。爾時世尊觀察此義尋究本末,欲使諸比丘永離嫌疑,使將來衆生睹其大明正法久存,於大衆前便說此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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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사형수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에
죽음의 길로 향하게 되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다. -
029_0764_b_02L猶如死囚,
將詣都市,
動向死地,
人命亦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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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그 비구는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깊이 생각하고 헤아려 마음속 깊이 스스로를 꾸짖고는, ‘만물은 모두 덧없는 것이어서 한번 난 것은 오래 존재하지 못하고 모두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흥했다가 쇠퇴하는 변화는 오랜 옛날부터 있어 온 것으로서 바로 지금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여 아라한의 도를 이루었다. - 029_0764_b_04L時彼比丘在閑靜處,思惟挍計內自懇責,解知萬物皆悉無常,生不久存盡歸於滅,興衰之變斯來久矣,非適今也,卽於佛前悔責自改,成阿羅漢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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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차게 흐르는 저 강물이
한번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러하니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
029_0764_b_08L如河駛流,
往而不反,
人命如是,
逝者不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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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많은 사람들이 강 기슭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면서 강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해쳤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그 끝이 없었다. 혹 부모나 처자나 아들이나 딸 가운데 물에 빠져 죽은 이가 한량이 없었다. 그 중에서 살아 남은 이는 만분의 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 깊은 물 속에서 살아 남은 한 사람이 부처님께 나아가 사문이 되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허락하시고 도인들의 끝자리에 있게 하셨다. 그러나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이제 액운에서 영원히 벗어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시는 물에 빠져 죽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도 도덕을 생각하지 않고 경전이나 계율이나 아비담도 익히지 않았으며, 세상을 제도할 도(道)도 익히지 않았다. 그리고는 참선과 경전을 외우는 것과 대중 울력 등과 같은 3사(事)에 힘쓰지 않고 아예 그만두었으며, ‘도를 행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이다’라고 생각하고 만용을 부려 상인(上人)의 법을 구하려 하지도 않았다. 아직 증득하지 못했으면서 증득하기를 힘쓰지도 않았고, 과(果)를 얻지 못했으면서 과를 얻으려고 힘쓰지도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의 지혜로 그 마음을 관찰하시고는 차츰 그를 교화하여 의심의 그물을 없애 주고자 하셨다. - 029_0764_b_10L昔有衆人在江水側坐,而觀看瞻水成敗傷害人民無復齊限,或有父母妻子男女墮水死者亦無有量,其中得解脫者萬中有一。於深水得解脫者,往至佛所求爲沙門。佛便然可,聽在道末。內不思惟,謂爲永離困厄之難,不復懼彼爲水所溺,在閑靜處不思道德,亦不習契經戒律阿毘曇,亦復不分別義理諸度世要,亦復不習坐禪誦經佐助衆事,永離三事不懃採習,謂爲行道齊是而已,不增翹勇進求上人法,然未得證不懃求證,然未得果不懃求果。如來世尊以三達智觀察其心,以漸化彼無疑網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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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_0764_c_01L그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물에 빠져 죽는 재난은 면하였지만22) 아직도 남은 것이 있다. 즉, 5음으로 된 몸이 5취(趣)를 떠돌아서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번뇌의 해침을 받아서 장차 아귀나 축생의 길에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 이치를 관찰하시고는 처음과 끝을 살피셨다. 그래서 비구들로 하여금 의심을 멀리 여의게 하고, 미래 중생들로 하여금 큰 광명을 보게 하며,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2권에 있음)을 읊으셨다. -
029_0764_c_01L便告彼人以免生死賊寇之難,故有餘怨五盛陰身,輪轉五趣無有解已,爲諸結使所見殘害,便當墮於餓鬼畜生之道。爾時世尊觀察此義尋究本末,欲使諸比丘永離嫌疑,使將來衆生睹其大明正法久存,於大衆前便說此偈:
出曜經卷第一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 1)1)부처님의 초전법륜지(初轉法輪地)인 bārāṇasī의 음사이다.
- 2)2)염부찰(閻浮刹:jambudvīpa) 혹은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인들은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세계를 4주(州)로 나누어서 자신들이 있는 곳을 염부제(閻浮提)라고 불렀는데, 후에는 인간 세계를 가리키게 되었다.
- 3)3)중인도에 있는 vaiśālī의 음사이다. 비야리(毘耶離)라고도 번역한다.
- 4)4)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를 뜻하는 삼계(三界)와 동일어이다.
- 5)5)불환(不還), 불래(不來)를 뜻하는 anāgāmin의 음사로서, 번뇌를 끊어서 다시는 미혹된 세계로 돌아오지 않는다.
- 6)6)각각 경(經)ㆍ율(律)ㆍ논(論)의 삼장(三藏)을 뜻한다.
- 7)7)마가다국(magadha)의 수도인 왕사성(王舍城, rājagṛha)을 가리킨다.
- 8)8)죽림정사(竹林精舍, karaṇḍa veṇuvana)를 가리킨다.
- 9)9)고려대장경에는 화(火)로 되어 있지만, 대구가 되는 구절이므로 요소를 뜻하는 대(大)를 취하여 번역하였다.
- 10)10)5온(蘊)인 skandha와 동의어이다.
- 11)11)입류(入流), 역류(逆流), 예류(預流)를 뜻하는 srota āpanna의 음사로서, 성문(聲聞)의 수행의 네 계위(階位) 가운데 초과(初果)를 가리킨다.
- 12)12)일래(一來)를 뜻하는 sakṛd-āgāmin의 음사로서, 성문(聲聞)의 수행의 네 계위(階位) 가운데 두 번째 과(果)를 가리킨다. 오직 한 번 더 생을 받되, 종국에는 미혹을 완전히 끊어서 다시는 생을 받지 않는다.
- 13)13)사람의 몸에 있는 불결한 진액(津液)이다.
- 14)고려대장경 원문에는 없으나, 번역자가 내용편의상 게송을 넣었다.
- 15)15)출가(出家)의 즐거움, 멀리 떠난 즐거움, 적정(寂靜)의 즐거움, 보리(菩提)의 즐거움, 열반의 즐거움이라는 다섯 가지 즐거움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탐욕의 마음을 일으키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境)을 뜻하는 5욕(欲)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 16)16)공들여 얻는 업적인 공덕업적(功德業績)의 줄임말이다.
- 17)17)고대 인도의 16국(國)의 하나로서 사위(舍衛)라고도 한다.
- 18)18)파리명(巴梨名)으로는 pasenadi이고, 범명(梵名)으로는 prasenajit이다.
- 19)19)고대 인도의 16국의 하나이며, 구살라국의 북쪽에 있는 나라이다.
- 20)20)인도 사성(四姓)계급의 하나로서 왕족인 kṣatriya의 음사이다.
- 21)21)사성계급에 속하지 않은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인 caṇḍāla의 음사이다.
- 22)22)고려대장경에는 “이면생사적구지난(以免生死賊寇之難)”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이전 문맥을 반복하여 내려오다가 생긴 착오로 보이므로, 여기서는 이 문맥에 맞게 고쳐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