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전서

경허집(鏡虛集) / [鏡虛和尙集卷之一(漢巖 筆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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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화상집 제1권(鏡虛和尙集卷之一)[漢巖 筆寫本]
경허집 전(鏡虛集 全)

011_0652_a_01L[鏡虛和尙集卷之一(漢巖 筆寫本)]

011_0652_a_02L1)鏡虛集 全 [1]
011_0652_a_03L此鏡虛集者鏡虛門人漢岩親筆單行本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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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_0652_b_23L此單行本與底本編輯體制判異故於此影印
011_0652_b_24L載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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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경허 화상 행장先師鏡虛和尙行狀
『금강경』에 “앞으로 올 후오백세에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 신심이 청정하면 곧 실상實相을 낼 것이니, 응당 알라. 이 사람은 가장 으뜸가는 희유한 공덕을 성취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대혜大慧 스님은 “만약 강항强項한 사람 중에서 간혹 몇 사람이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불법이 어찌 오늘에 이르렀으리오.”327)라고 하였다.
대개 용맹스런 뜻을 일으켜 법의 근원을 사무치는 이가 말법 세상에도 없지 않았으므로 불조가 이런 말씀을 후세에 남겼던 것이고, 또 그만한 사람이 드물어 불조의 혜명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뉘라서 여기에서 장부의 뜻을 갖추고 자기 본성을 사무쳐 깨달아 가장 으뜸가는 공덕을 성취하여 큰 지혜 광명의 뜻을 후오백세의 세상에 널리 펼칠 수 있겠는가? 바로 우리 경허 스님이 그러한 분이다.
스님은, 휘는 성우惺牛이고 초명은 동욱東旭이며, 경허는 그 호이다. 속성은 송씨宋氏이고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부친은, 휘는 두옥斗玉이고 모친은 밀양密陽 박씨朴氏이다. 철종 7년328) 정사년(1857) 4월 24일에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분만한 뒤 사흘 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시킬 때에 비로소 울음을 터트리니, 사람들이 모두 신이한 일이라 하였다.
스님은 일찍 부친을 잃고 아홉 살 때 모친을 따라 상경하여 경기도 광주廣州의 청계사에 들어가 계허桂虛 스님을 은사로 삭발하고 수계하였다. 스님의 형도 공주 마곡사에서 승려가 되었으니, 모두 모친이 삼보에 귀의하여 지성으로 염불하였던 까닭에 두 아들을 출가시킨 것이었다.
스님은 나이가 아직 어릴 때에도 뜻은 마치 거인巨人과 같아서 아무리 곤고困苦한 일을 만나도 지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었다. 늘 땔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 밥을 지어 스승을 섬기느라 열네 살이 될 때까지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한 선비가 청계사에 와서 함께 여름 한철을 보내게 되었다. 그 선비가 절에 와 지내면서 소일거리로 스님을 불러 곁에 앉혀 놓고 『천자문』을 가르쳐 보았더니 배우는 족족 곧바로 외웠다. 또 『통감』·『사략』 등의 책들을 가르쳤더니 하루에 대여섯 장씩 외웠다. 그 선비가 탄식하기를, “이 아이는 참으로 비상한 재주이다. 옛날에 이른바 ‘천리마가 백락伯樂을 못 만나 소금수레를 끈다’329)라는 격이로구나. 훗날 반드시 큰 그릇이 되어 일체중생을 구제할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계허 스님은 환속하면서 스님의 재주와 학문을 성취하지 못함을 애석하게 여겨 추천하는 편지를 써서 스님을 계룡산 동학사 만화萬化 스님에게 보냈다. 만화 스님은 당대에 뛰어난 강백이었다
만화 스님은 영특한 스님을 보고 기뻐하면서 가르쳤는데 몇 달이 안 되어 글을 잘 짓고 경전의 뜻을 새길 줄 알아 일과로 배우는 경소經疏를 한번 보면 곧바로 외웠다. 그리하여 하루 종일 잠자고도 이튿날 논강할 때 글 뜻을 풀이하는 것이 마치 도끼로 장작을 쪼개고강사가 잠이 많음을 꾸짖고는 재주를 시험해 보고자 특별히 『원각경』 중에서 소초疏抄 5, 6장 내지 10여 장을 일과로 정해 주었는데, 스님은 여전히 잠을 자고도 종전처럼 외니, 대중이 모두 미증유한 일이라고 탄복하였다.
이로부터 재명이 높이 드러났고 영남과 호남의 강원들에 두루 가서 공부하니, 학문은 날로 높아지고 견문은 날로 넓어져 유가와 노장의 글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스님은 천성이 소탈하여 겉치레를 꾸미지 않았다. 더운 여름에 경을 볼때 대중들은 모두 가사 장삼을 걸치고 단정히 앉아 땀을 흘리며 고생을 참고 있는데, 스님은 홀로 옷을 벗고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강사인 일우一愚 스님이 그 모습을 보고 문인들에게 “참으로 대승 법기大乘法器이니, 너희들이 미칠 수 없다.”라고 하였다
23세에 스님은 대중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강석을 열어 교의敎義를 강론함에 드넓은 물결처럼 거침없으니, 사방의 학인들이 몰려왔다.
하루는 지난날 계허 스님이 자신을 보살피고 아껴 주었던 정의情義가 생각나서 한번 찾아가 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스님은 대중에게 말한 후 출발하였는데, 가는 도중에 갑자기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스님은 급히 발걸음을 옮겨 어느 집 처마에 들어갔더니, 주인이 내쫓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른 집으로 옮겨 가도 마찬가지였다. 온 동네 수십 집 모두 몹시 다급하게 내쫓으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역질이 크게 창궐하여 걸리는 자는 곧바로 죽는다. 너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라고 하였다.
스님은 문득 이 말을 듣고는 모골이 송연하고 정신이 아득하여 흡사 죽음이 눈앞에 임박하고 목숨이 호흡 사이에 있어 일체 세간의 일들이 모두 덧없는 꿈 저편의 청산인 것만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해 말하기를, “이 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에 구속 받지 않고 조사의 도를 찾아서 삼계를 벗어나리라.”라고 하였다.
발원을 마치고 평소에 읽은 공안들을 미루어 생각해 보니, 교학을 공부한 습성으로 모두 알음알이가 생겨 참구할 여지가 없었다. 오직 영운 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마사도래화驢事未去馬事到來話’331)만은 마치 은산철벽을 마주한 것처럼 도무지 알 수 없기에 곧바로 “이 무슨 도리인고?”라고 참구하였다.
계룡산에 돌아온 뒤 대중을 해산하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 따라 잘 가시게. 나의 지원志願은 여기(講學)에 있지 않네.” 하고는 문을 닫고 단정히 앉아서 전심으로 화두를 참구하였다. 밤에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기도 하고, 시퍼렇게 간 칼을 턱밑에 세우기도 하였다. 이렇게 석 달을 지나자 참구하는 화두가 순일무잡해졌다.
한 사미승이 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는데 속성은 이씨李氏였다. 그의 부친이 다년간 좌선하여 스스로 개오한 곳이 있어 사람들이 그를 이 처사라 불렀다. 그 사미승의 스승이 마침 이 처사의 집에 가서 이 처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처사가 “중이 된 자는 필경 소가 되지요.”라고 하니, 사미승의 스승이 “중이 되어 심지心地를 밝히지 못하고 단지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 그 시은을 갚게 마련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처사가 그 말을 듣고 꾸짖기를, “소위 사문으로서 이처럼 맞지 않은 대답을 한단 말이오?”라고 하였다. 사미승의 스승이 “나는 선지禪旨를 알지 못하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겠소?” 하니, 이 처사가 “어찌하여 소가 되면 콧구멍을 뚫을 곳이 없다고 말하지 않소?”라고 하였다.

011_0653_a_01L先師鏡虛和尙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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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剛經云若當来世後五百歲其有衆生得聞是經信心淸
011_0653_a_03L即生實相當知是人成就第一希有功德大慧和尙云若不
011_0653_a_04L間於强項中打發得幾人佛法豈到今日盖發勇猛志徹
011_0653_a_05L法根源者末法不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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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祖垂如是言又罕有其人慧命難保故有如是言孰能於
011_0653_a_07L具丈夫之志而徹悟自性成就其第一功德而以大智慧
011_0653_a_08L光明義廣大流通於後五百歲後也哉繫我先師鏡虛和尙
011_0653_a_09L是也和尙諱惺牛初名東旭鏡虛其號俗姓宋驪山人
011_0653_a_10L諱斗玉妣密陽朴氏以哲宗八年丁巳四月二十四日生于
011_0653_a_11L全州之子東里分娩後三日不啼及浴身始發兒聲
011_0653_a_12L人皆稱神異焉早喪所怙九歲随慈母上京投廣州淸
011_0653_a_13L溪寺依桂虛師祝發受戒而有兄在公州麻谷寺
011_0653_a_14L得度皆其慈母歸心三寶念佛誠勤故捨二子爲出家也
011_0653_a_15L年尙幼而志若巨人雖遇困苦無疲厭心負薪汲水
011_0653_a_16L化飯供師年至十四不遑學文適有一儒者来同過
011_0653_a_17L而以渠之僑居消遣招坐其傍試授以千字文
011_0653_a_18L學輒誦又敎以通史等書日誦五六紙嘆曰此兒眞
011_0653_a_19L非常才也古所謂千里之驪不遇伯樂困於塩車也他日必成大
011_0653_a_20L救度一切人去矣居無何桂虛師還俗惜其才学而未
011_0653_a_21L馳書薦送於鷄龍山東鶴寺萬化和尙和尙即當世講匠也
011_0653_a_22L見其氣宇英拔喜而提誘不幾月善属文討教意日課
011_0653_a_23L經䟽一覽便誦終日打睡而翌日論問時其消釋文義若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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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미승의 스승이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와서 사미승에게 “너의 부친이 이와 같은 말을 했는데, 나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라고 하니, 사미승이 “지금 조실 스님이 매우 열심히 참선하느라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있으니, 이 이치를 아실 것입니다. 스님께서 가셔서 물어보십시오.”라고 하였다.
그 스승이 흔연히 가서 경허 스님과 수인사를 마치고 이 처사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는데, ‘소가 되면 콧구멍을 뚫을 곳이 없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스님의 눈이 번쩍 뜨이더니, 문득 깨달아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 소식이 눈앞에 활짝 드러났다. 이에 대지大地가 가라앉고 물아物我를 모두 잊어 곧바로 고인古人이 크게 쉰 경지에 이르러 백천 가지 법문과 한량없는 묘의妙義가 당장에 빙소와해氷消瓦解 하듯이 풀렸다. 때는 고종 16년 기묘년(1879) 겨울 11월 보름께였다.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눈에 가득한 흰 눈과 달빛이라 높은 산 흐르는 시냇가 소나무 아래에서 긴긴 밤 맑은 하늘 아래 무슨 할 일이 있으리오. 이는 참으로 “이 도리는 너의 경계가 아니니, 도가 같은 이라야 비로소 안다.”라고 한 경계이다. 스님은 방장실에 한가로이 누워서 남들이 출입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화 강백이 들어왔는데도 역시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다. 만화가 “무슨 까닭에 늘 누워서 일어나지 않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라고 하였다. 만화가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갔다.
이듬해 경진년 봄, 연암산燕巖山 천장암天藏庵에 와서 머물렀으니, 속가의 형인 태허 선사太虛禪師가 모친을 모시고 이 암자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은 ≺오도송≻과 ≺오도가≻가 있는데 증오證悟한 경지를 드러내 밝힌 것이 우뚝 높아 천 길 벼랑 같고, 드넓고 커서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니, 실로 옛 조사의 가풍에 손색이 없다.
그 ≺오도송≻은 다음과 같다.

忽聞人語無鼻孔           홀연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자
頓覺三千是我家           문득 삼천세계가 나임을 깨달았노라.
六月燕巖山下路           유월이라 연암산 아랫길에
野人無事太平歌           농부들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

그 ≺오도가≻에는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으니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구나.(四顧無人, 衣鉢誰傳? 衣鉢誰傳, 四顧無人.)”라는 네 구절을 첫머리에 얹고 끝마무리로 썼으니, 이는 사우師友의 연원이 이미 끊어져 자신의 오도悟道를 인증하고 법을 전해 줄 사람이 없음을 깊이 탄식한 것이다.
스님은 일찍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조종祖宗 문하에서 심법을 전수해 온 것은 근본이 있고 근거가 있으니, 착란해서는 안 된다. 옛날 황벽黃蘗은, 마조馬祖가 할喝한 기연을 백장百丈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 도를 깨달아 백장의 법을 이었고, 흥화興化는, 대각大覺의 방棒 아래에서 임제臨濟가 방을 맞은 소식을 깨달아 임제가 입멸한 뒤에 임제의 법을 이었으며, 우리 동국에서는, 벽계碧溪가 중국에 들어가 총통總統에게 법을 얻고 와서 멀리 구곡龜谷의 법을 이었고, 진묵震黙이, 응화應化한 성인으로서 서산西山이 입멸한 뒤에 서산의 법을 이었다. 그 스승과 제자가 서로 법을 이음이 이처럼 엄밀한 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인증하고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인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오호라! 후대로 내려와 성인의 시대와 멀어짐에 그러한 도는 이미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간혹 본색납자本色衲子가 나와서 살활殺活의 화살로 한 개나 반 개의 성인을 쏘아서 얻는다. 그러므로 은연중에 저 바른 종지를 지키는 것이 마치 어둠 속에 등불을 얻고 숨이 끊어졌다 다시 소생하는 것과 같다.
나는 비록 도는 부족하고 성품은 행검行檢이 없지만 일생 동안 지향한 바는 기필코 이 일착자一着子훗날 나의 제자는 응당 나를 용암 장로龍巖長老에게서 법을 잇도록 하여 도통의 연원을 바로잡고 만화 강백으로서 내가 수업한 스승을 삼도록 하라.”

이제 그 유교遺敎에 따라 법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보면, 스님은 용암 혜언龍巖慧彦(1783~?)을 이었고, 용암 혜언은 금허 법첨錦虛法沾을 이었고, 금허 법첨은 율봉 청고栗峯靑杲를 이었고, 율봉 청고는 청봉 거안靑峯巨岸을 이었고, 청봉 거안은 호암 체정虎巖體淨(1687~1748)을 이었으며, 청허淸虛(1520~1604)는 편양鞭羊(1581~1644)에게 전하고, 편양은 풍담楓潭(1592~1665)에게 전하고, 풍담은 월담月潭(1632~1704)에게 전하고, 월담은 환성煥惺(1664~1729)에게 전하였으니, 스님은 청허에게 12세손이 되고, 환성에게 7세손이 된다.
스님은 호서에 22년 동안 오래 머물렀으니, 서산瑞山의 개심사와 부석사, 홍주洪州의 천장암天藏庵이 모두 스님이 살면서 도를 닦던 곳들이다.기해년 가을, 영남의 가야산 해인사로 옮겨 주석하였으니, 때는 고종 광무光武 3년(1899)이었다. 칙지勅旨가 내려 장경을 인쇄하는 한편 수선사修禪社를 세워서 선객들을 거주하게 했는데, 대중이 모두 스님을 추대하여 종주宗主로 삼았다.
스님은 법좌에 올라 본분 도리를 곧바로 보이며 백념白拈333)의 수단을 써서 살활의 기용機用을 떨치니, 금강왕의 보검이요 사자의 위세라 할 만하였다. 설법을 듣는 이들이 모두 사견이 없어지고 집착이 사라져 씻은 듯 깨끗하기가 마치 뼈를 바꾸고 내장을 씻어내는 것 같았다.
결제 때 법상에 올라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려치고 이르시기를, “삼세제불과 역대 조사와 천하의 선지식 노스님들이 모두 여기에 있도다.” 하고, 또 주장자를 들어서 허공을 한 번 긋고는 이르기를,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와 천하의 선지식 노스님들이 이를 따라갔도다. 대중은 도리어 알겠는가?” 하고는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자, 주장자를 던지고 법상에서 내려왔다.
한 승려가 묻기를, “옛날에 이르기를 ‘모든 거동을 옛길에서 드날려 초연悄然한 기틀에 떨어지지 않는다’334) 하였으니, 어떠한 것이 옛길입니까?”라고 하니, 스님이 답하기를, “옛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평탄한 길이고, 하나는 험준한 길이다. 어떤 것이 험준한 길인가? 가야산 아래 천 갈래 길에 거마車馬가 때때로 마음대로 오고 간다. 어떤 것이 평탄한 길인가? 천 길 깎아지른 벼랑에 오르는 사람 없는데 오직 잔나비만이 거꾸로 나무에 오른다.”라고 하였다.
하안거 해제 때 법좌에 올라 동산洞山이 시중示衆하기를, “초가을 늦여름에 형제들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니, 모쪼록 만 리에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라.”라고 한 것을 들어서 말하기를,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초가을 늦여름에 형제들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니, 길 위에 난 잡초들을 일일이 밟고 가라고 하겠다. 동산의 말과 같은가, 다른가?”라고 하니,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않거늘, 잠시 묵묵히 있다가 말하기를, “대중이 아무도 대답하지 않으니, 내가 스스로 대답하겠다.” 하고 곧바로 법좌에서 내려와 방장실로 돌아갔다.
직절直截하게 법을 들어 보이는 것이 대개 이상과 같았다. 영축산靈鷲山 통도사通度寺, 금정산金井山 범어사梵魚寺, 호남湖南의 화엄사華嚴寺와 송광사松廣寺 등이 모두 스님의 발길이 머물던 곳들이다. 이후로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설치하였고, 발심發心한 납자들도 보고 느껴서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니, 시순時順335) 사이에 부처님의 광명을 맑게 씻고 사람들의 안목을 밝게 틔운 것이 이처럼 성대한 적이 없었다.

011_0653_b_01L薪秉燭講師責其多睡而欲試其才特㝎課於圓覚經
011_0653_b_02L中䟽抄並五六紙乃至十餘紙亦如前睡而誦亦如之衆皆
011_0653_b_03L嘆其未曾有也自此才名高著遍叅嶠湖講院学日進而
011_0653_b_04L聞益博至於儒典莊老莫不精通天性踈闊外無苟餙
011_0653_b_05L炎看經衆皆着衣正坐不勝苦汗獨破脫自若不事形儀
011_0653_b_06L愚講師見之謂門人曰真大乗法器也汝軰不及二十三歲
011_0653_b_07L衆望開講於東鶴寺論教義波爛洋洋四方学者多歸之
011_0653_b_08L一日思其前日桂虛師眷愛之義而欲一訪問於其廬
011_0653_b_09L告衆發行至中路忽風雨暴至急步入一家簷頭
011_0653_b_10L迫逐不受移徃他家而亦然一洞數十家皆逐之甚急而高
011_0653_b_11L聲呵責曰方今此處癘疫大熾染者立死汝何人入於死
011_0653_b_12L和尙忽聞其言毛骨竦然心神恍惚恰似箇大限當
011_0653_b_13L命在呼吸間一切世間都是夢外靑山仍自念言此生寧爲
011_0653_b_14L痴呆漢不爲文字所拘繫叅尋祖道超出三界發願已推念其平
011_0653_b_15L日所讀公案以義学習性皆生知解無叅究分唯靈雲禪
011_0653_b_16L師所示驢事未去馬事到来話解之不得如撞着銀山鉄
011_0653_b_17L即看是甚道理還山後遂散衆曰君等随緣好去
011_0653_b_18L之志願不在此閉門端坐專心究看夜欲將睡引錐刺
011_0653_b_19L或磨刀當頣如是過三箇月所看話頭純一無雜有一沙
011_0653_b_20L彌近侍俗姓李其父坐禪多年自有開悟處人皆號爲李
011_0653_b_21L處士沙彌之師傅者適徃其家與處士談話次處士曰爲僧者
011_0653_b_22L畢竟爲牛其師曰爲僧而未明心地但受信施則必爲
011_0653_b_23L牛而償其施恩處士呵曰所謂沙門而答話如是不諦當乎
011_0653_b_24L我不識禪旨如何答之即是處士曰何不道爲牛則爲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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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1902) 가을, 스님은 범어사 금강암에 주석하고 있었다. 그 고을 동쪽에 있는 마하사에 나한개분불사羅漢改粉佛事336)가 있어 스님을 증명법사로 초청하였다. 스님이 밤이 이슥해서야 절의 동구에 이르렀는데 칠흑처럼 캄캄해 길을 갈 수 없었다. 마하사 주지 스님이 잠깐 앉아서 조는데, 한 노스님이 나타나 이르기를, “큰스님이 오셨으니 속히 나가 영접하라.” 하였다. 주지 스님이 꿈을 깨고 횃불을 들고 동구로 내려가니 과연 스님이 와 있었다. 비로소 나한이 현몽했음을 알고 대중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 대중이 모두 기이한 일이라 놀랐고, 종전에 스님을 훼방하고 믿지 않던 이들이 모두 스님에게 와서 참회하였다.
계묘년(1903) 가을, 범어사에서 해인사로 가다가 도중에 한 절구를 읊었다.

識淺名高世危亂           식견은 얕고 이름은 높고 세상은 위태하니
不知何處可藏身           모르겠구나, 어느 곳에 몸을 숨길 수 있을지.
漁村酒肆豈無處           어촌과 주막에 어찌 그런 곳 없으랴만
但恐匿名名益新           이름 감출수록 더욱 이름이 날까 두렵구나.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니,337) 스님의 뜻이 자신을 숨겨서 남이 알지 못하게 하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듬해 갑진년(1904) 봄에, 스님은 오대산에 들어갔다가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군安邊郡 석왕사에 이르렀다. 마침 석왕사에 오백나한 개분불사가 있어 제방의 대덕스님들이 법회에 와서 함께 증명법사가 되었다. 스님이 단상에 올라 독특한 변재로 설법하니 법회에 모인 대중이 합장하고 희유한 일이라 찬탄하였다. 법회를 회향한 뒤 스님은 종적을 감추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10년 뒤 수월水月 스님이 예산군 정혜선원定慧禪院으로 편지를 보내오기를, “스님이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을 입고 갑산甲山·강계江界 등지를 오가면서 마을 서당에서 학동들을 가리키기도 하고 저잣거리에서 술잔을 들기도 하다가 임자년(1912) 봄, 갑산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 서재에서 입적했다.”라고 하였다. 이에 만공滿空, 혜월慧月 두 사형이 곧바로 그곳으로 가서 널을 모셔다 난덕산蘭德山에서 다비하고 임종 때 쓴 게송을 가지고 돌아왔으니, 바로 스님이 입적한 이듬해 계축년(1913) 7월 25일이었다.
그 동네 부로父老들에게 들으니,
스님이 하루는 울타리 아래 앉아서 학동들이 호미로 풀을 매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누워 일어나지 못하면서 ‘내가 몹시 피곤하다’ 하기에 사람들이 부축하여 방 안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서는 음식을 먹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신음하지도 않고 다리를 뻗고 줄곧 누웠다가 이튿날 동이 틀 무렵에 이르러 문득 일어나 붓을 잡고서,

心月孤圓              마음달이 외로이 둥그니
光呑萬像              그 빛이 만상을 삼키도다.
光境俱亡              빛과 경계가 다 없어지면
復是何物              다시 이 무슨 물건인가.338)

라는 게송을 쓰고 말미에 일원상 ‘○’을 그리고는 붓을 놓고 우협右脇으로 누워 그대로 천화遷化하였으니, 때는 임자년 4월 25일이었다. 우리들이 예를 갖추어 어느 산에 장사지냈다.

라고 하였다.
오호라, 슬프다! 대선지식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실로 만겁토록 만나기 어려운데 우리들은 비록 잠시 친견했으나 오래 모시고 배우지 못했으며, 입적하시는 날에는 옛 도인들이 입적할 때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곁에서 모시고 유지遺旨를 받아 후사를 결정하지 못했으니, 여한이 끝이 있겠는가!

011_0654_a_01L穿鼻孔處其師默然而歸謂沙彌曰汝之嚴父有如
011_0654_a_02L是說話而我都不知其什麽意旨沙彌曰今籌室和尙做禪
011_0654_a_03L甚緊廢寢忘餐當知是理願師傅徃問之其師欣然而
011_0654_a_04L禮畢而坐傳李處士之言到牛無鼻孔處和尙眼目定動
011_0654_a_05L撞發古佛未生前消息豁爾現前大地平沈物我俱忘
011_0654_a_06L到古人大休歇之地百千法門無量妙義當下氷消瓦觧
011_0654_a_07L則高宗十六年己卯冬十一月望間也心外無法滿目雪月
011_0654_a_08L高岑流水長松下永夜淸霄何所爲眞可謂這箇道理非汝
011_0654_a_09L境界同道方知遂高卧方丈不關人之出入萬化講師入見
011_0654_a_10L卧而不起講師曰何故長卧不起對曰無事之人本来如是講師
011_0654_a_11L無言而退翌年庚辰春來住於燕岩山天蔵庵兄太虛禪師
011_0654_a_12L奉慈母在此故也有頌與歌發揮其悟證處嶷嶷然崖岸千尋
011_0654_a_13L蕩蕩然名言俱絶實不讓於古祖師家風矣其頌曰忽聞
011_0654_a_14L人於無鼻孔頓覺三千是我家六月燕岩山下路野人無事
011_0654_a_15L太平歌其歌有四顧無人衣鉢誰傳衣鉢誰傳四顧無人之
011_0654_a_16L四句冠於首結於尾此深嘆其師友淵源已絶無印證相
011_0654_a_17L受處也嘗示衆曰夫祖宗門下心法傳授有本有㨿不可
011_0654_a_18L錯亂昔黃蘗聞百丈擧馬祖喝而悟道嗣百丈興化於大覺棒
011_0654_a_19L悟臨濟喫棒底消息嗣臨濟於滅後我東國碧溪入中國
011_0654_a_20L得法於緫統而來遠嗣龜谷震默以應化聖嗣法於西
011_0654_a_21L山滅后其師資相承嚴密如此者蓋在於以心印心心心即
011_0654_a_22L相印也嗚呼時降聖遠其道已廢然間有本色衲子
011_0654_a_23L興起以殺活箭射得一介半介聖人故隱隱地扶持他正宗
011_0654_a_24L如暗得燈似絶復生余雖道未充而性不檢一生所向

011_0655_b_01L
스님은 정사년에 태어나 임자년에 입적하였으며 9세에 출가하였으니, 향년은 56세이고, 법랍은 48세이다. 수법제자受法弟子 네 사람이 있다. 침운 현주枕雲玄住는 영남 표충사表忠寺에서 법을 펴다가 범어사에서 임종할 때 설법하고 게송을 쓰고 천화하였다. 혜월 혜명慧月慧明과 만공 월면滿空月面 두 선백禪伯은 어릴 때부터 스님을 모셔서 스님의 종지宗旨를 깊이 얻어 각각 한 지방의 스승이 되어서 후학을 제접하여 교화를 크게 펴고 있다. 불민한 나도 일찍이 스님을 찾아뵙고 선지禪旨를 들었는데, 단지 선사先師께서 나를 위해 설파해 주시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하므로 감히 그 법은을 저버리지 못한다.339) 이상이 네 사람이다.
대저 행장이란 사실을 기록하고 허위로 쓰지 않는 법이다. 스님의 오도와 법을 편 인연은 진실로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스님의 풍모와 생활 모습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신장은 크고 고인古人의 풍모를 갖추었으며, 뜻과 기운은 과감하고 음성은 큰 종소리 같았으며, 무애변재를 갖추었으며, 세상의 일체 비방과 칭찬에 동요하지 않음이 산과 같아서 자신이 하고 싶으면 하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어 남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다. 그래서 술과 고기도 마음대로 마시고 먹었으며, 여색에도 구애되지 않은 채 아무런 걸림 없이 유희하여 사람들의 비방을 초래했다. 이는 이통현李通玄340)을 증득하여 자유로이 초탈한 삶을 산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면 때를 만나지 못하여 하열한 사람의 자리에 자신을 숨긴 채 자신을 낮추고 도를 스스로 즐긴 것이 아니겠는가. 홍곡鴻鵠이 아니면 홍곡의 큰 뜻을 알기 어려운 법이니, 크게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작은 절개에 구애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님의 시에서,

酒或放光色復然           술도 혹 방광하고 여색도 그러하니
貪嗔煩惱送驢年           탐진치 번뇌 속에서 나귀의 해를 보내노라.
佛與衆生吾不識           부처와 중생을 나는 알지 못하노니
平生宜作醉狂僧           평생토록 술 취한 중이나 되어야겠다.

라 하였으니, 스님의 일생 삶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안거할 때는, 음식은 겨우 숨이 붙어 있을 정도로 먹었고, 종일토록 문을 닫고 앉아서 말없이 침묵하며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큰 도회지에 나가 교화를 펴기를 권하니, 스님은 말하기를, “내게 서원이 있으니, 발이 경성 땅을 밟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 우뚝하고 꿋꿋한 풍모가 이와 같았다.
천장암에 살 때에는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한 벌 누더기를 갈아입지 않아 모기와 파리가 온몸을 에워쌌고, 이와 서캐가 옷에 가득하여 밤낮으로 물어뜯어 피부가 다 헐었는데도 고요히 움직이지 않은 채 산악처럼 앉아 있었다. 하루는 뱀이 몸에 올라가 어깨와 등을 꿈틀꿈틀 기어갔다. 곁에 있던 사람이 보고 깜짝 놀라 말해 주었으나 태연히 개의치 않으니, 조금 뒤 뱀이 스스로 물러갔다. 마음이 도와 합일한 경지가 아니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한번 앉아서 여러 해를 찰나처럼 보내더니, 하루는 절구 한 수를 읊었다.

世與靑山何者是           속세와 청산 어느 것이 옳은가?
春城無處不開花           봄이 오매 어느 곳이건 꽃이 피는 것을.
傍人若問惺牛事           누가 나의 경지를 묻는다면
石女心中劫外歌           돌계집 마음속 겁외가라 하리라.

그리고는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꺾어서 문 밖에 집어 던지고 훌쩍 산을 나와서 곳곳마다 다니면서 교화를 펴되, 형식이나 규율의 굴레를 벗어났다.

011_0654_b_01L在於此一着子明白而今老矣日後我弟子當以我嗣法於龍
011_0654_b_02L岩長老以整其道統淵源而以萬化講師爲我之受業師
011_0654_b_03L可也今遵遺教而泝法源流則和尙嗣龍岩慧彦彦嗣錦
011_0654_b_04L虛法沾沾嗣栗峰靑果果嗣靑峰巨岸岸嗣虎岩軆淨
011_0654_b_05L而淸虛傳之鞭羊鞭羊傳之楓潭楓潭傳之月潭月潭傳
011_0654_b_06L之喚惺和尙於淸虛爲十一世孫而於喚惺爲七世孫也久住
011_0654_b_07L湖西二十餘年瑞山之開心浮石洪州之天藏皆捿息鍊道處也
011_0654_b_08L亥秋移錫于嶺南伽倻山海印寺時高宗光武三年也
011_0654_b_09L勅旨印經又建修禪社居心學者而衆皆推和尙爲宗主
011_0654_b_10L座舉揚直示本分用白拈手振殺活機可謂金剛寶
011_0654_b_11L獅子全威聞者皆見亡執謝洒然若換骨洗膓矣
011_0654_b_12L結制上堂拈柱杖一下云三世諸佛歷代祖師天下善
011_0654_b_13L知識老和尙總在這裏又一卓劃来云三世諸佛歷代祖師
011_0654_b_14L又一卓劃去三世諸佛歷代祖師天下善知識老和尙總随去也
011_0654_b_15L天下善知識老和尙總随去也大衆還會麽否衆無對
011_0654_b_16L柱杖下座僧問古云動容揚古路不墮悄然機如何是古
011_0654_b_17L古路有二一坦路一險路如何是險路伽倻山下千
011_0654_b_18L岐路車馬時時任徃來如何是坦路千尋絶璧無人到
011_0654_b_19L惟有猢猻倒上來樹解夏上堂擧洞山示衆云秋初夏
011_0654_b_20L兄弟東去西去直須向萬里無寸草處去余則不
011_0654_b_21L秋初夏末兄弟東去西去路上雜草一一踏着始得
011_0654_b_22L與洞山語是同別衆無對良久云衆已無對余自對去便
011_0654_b_23L下座歸方丈其直截提示類皆如此而鷲山之通度
011_0654_b_24L山之梵魚湖南之華嚴松廣皆和尙遊歷處也自后禪
011_0654_b_25L院四方爭設發心衲子亦觀感而雲興時順間洗佛

011_0656_a_01L
때로는 저잣거리를 유유자적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섞여 어울리고 때로는 산속의 솔 그늘 아래 누워 한가로이 풍월을 읊음에 그 초일超逸한 경지를 사람들은 헤아려 알 수 없었으며, 때로 설법할 때는 지극히 온화하고 지극히 자상하여 부사의不思議한 묘지妙旨를 설명하였으니, 선도 철저하고 악도 철저하여 수단修斷으로써 수단할 수 없는 경지341)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스님은 문장과 필법도 모두 뛰어났으니, 참으로 세상에 드문 위대한 인물이었다.
아! 출가한 사람들이 모두 스님과 같이 용맹하게 나아가고 큰 걸음을 걸어서 일대사를 해결하여 법등을 이어 밝힌다면, 신라 구산선문의 융성한 교화와 고려 십육 국사의 법통이 어찌 그 옛날에만 있던 일이리오. 교화를 높이고 법통을 이을 뿐만이 아니라 일체중생의 근본지根本智 광명종자光明種子를 이 오탁五濁 세계 중에서 길이 단절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터이니, 어찌 “깊은 마음으로 진찰塵刹의 중생들을 받드는 것을 이름하여 부처님 은혜를 갚는 것이라 하네.”342)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향을 사르고 깊이 축원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후세의 배우는 사람들이 스님의 법화法化를 배우는 것은 괜찮지만 스님의 행리를 배워서는 안 되니, 사람들이 믿되 이해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을 의지한다는 것은 참되고 바른 묘법을 의지하는 것이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율의律儀와 불률의不律儀343)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의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본받는 것이고,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득실과 시비를 보지 않는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필경에 법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남의 득실과 시비 따위야 말할 게 있겠는가.
그러므로 『원각경』에서는,

말세의 중생으로서 발심 수행하는 이는 응당 일체 바른 지견을 갖춘 사람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형상에 머무르지 않아 비록 진로塵勞의 모습을 나타내지만 그 마음은 항상 청정하고, 잘못한 모습을 보이지만 범행梵行을 찬탄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불률의에 들어가지 않게 한다. 이런 사람을 찾아 만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 그 선지식이 행주좌와 사위의四威儀에 늘 청정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며 갖가지 잘못된 행실을 나타내어 보일지라도 중생들이 그 선지식에 대해 마음에 교만한 생각이 없어야 하고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하였으며, 『금강경』에서는,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를 보지 못한다.
하였으며, 보조 국사는,

무릇 참학하는 사람은 처음 출발할 때 먼저 정인正因344)을 심어야 하니, 오계·십선·사성제·십이인연·육도 등의 법은 모두 정인이 아님을 믿고,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인 줄 믿어서 한 생각도 일어남이 없으면 3아승지겁이 공空하게 된다. 이와 같이 믿는 것이 바로 정인이다.

하였다. 따라서 계율·사성제·십이인연·육도 등의 법도 외려 정인이 아닌데, 하물며 불률의야 말할 나위 있으리오. 그러므로 단지 바른 지견을 갖춘 사람을 찾아서

011_0655_a_01L光明開人眼目未有如此之盛也壬寅秋和尙住梵魚寺
011_0655_a_02L金剛庵邑之東摩訶寺有羅漢改粉佛事而淸和
011_0655_a_03L尙以作證夜暮抵寺洞口路黑難進寺之主僧忽坐睡
011_0655_a_04L老僧告曰大和尙來也急出迎之主僧夢覺執炬下洞口
011_0655_a_05L和尙來矣始知羅漢之現夢告于衆衆皆驚異前有
011_0655_a_06L毁謗不信者皆來懴悔焉癸卯秋自梵魚寺徃海印
011_0655_a_07L中有口號一絶識淺名高世危亂不知何處可藏身
011_0655_a_08L村酒肆豈無處但恐匿名名益新盖詩言志可知其
011_0655_a_09L志在韜晦惟求人不識也翌年甲辰春入五臺歷金剛
011_0655_a_10L到安邊郡釋王寺適有五百羅漢改粉佛事而諸方碩
011_0655_a_11L皆來法會共作叅證和尙臨壇唱獨能之辯一衆
011_0655_a_12L合掌呈希有之嘆回向後潛跡不知所徃矣十年
011_0655_a_13L自水月和尙書信來付於禮山郡定慧禪院即和尙
011_0655_a_14L長髮服儒来徃於甲山江界等地或村齋訓蒙或市
011_0655_a_15L街啣盃壬子春在甲山熊耳坊道下洞書齋入寂云
011_0655_a_16L慧月滿空兩師兄直入其地奉柩就蘭德山闍維得臨
011_0655_a_17L終時書偈而還即和尙入滅後翌年癸丑七月二十五日也
011_0655_a_18L聞諸其洞中父老和尙一日坐籬下看学童鋤草
011_0655_a_19L卧而不起曰予甚困也衆人扶入房內不食不言又不呻
011_0655_a_20L伸脚而卧至翌日藜明忽起坐拈筆書偈曰心月孤
011_0655_a_21L光呑萬像光境俱亡復是何物尾作一圓相○因投筆
011_0655_a_22L右脇而卧奄然遷化時壬子四月二十五日也我等備禮
011_0655_a_23L於某山云嗚呼哀哉大善知識出世實萬劫難遇
011_0655_a_24L吾儕雖暫得親見未能久侍叅学歸寂之日又未得

011_0656_b_01L자기의 청정한 도안道眼을 결택해야지, 망령되게 삿된 믿음을 구하여 자신의 대사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
또 고덕이 이르기를,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345)·수증修證을 논하지 않고 오직 부처님의 지견을 통달하게 할 뿐이다.” 하였으니, 이러한 말들은 정안正眼이 열림을 우선하고, 행리를 논함을 뒤로 한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스님의 법화를 배우는 것은 괜찮지만 스님의 행리를 배워서는 안 된다.”라고 한 것이니, 이는 단지 법을 간택하는 안목을 갖추지 못하고, 먼저 그 무애한 행리만 본받는 자들을 꾸짖는 것이며, 또 유위有爲의 상견相見에 갇혀서 마음의 근원을 통철하지 못하는 자를 경책하는 것이다. 만약 법을 간택하는 바른 안목을 갖추고 마음의 근원을 통철했다면 행리가 자연히 진리에 맞아서 행주좌와 사위의에 항상 청정한 모습을 나타내 보이게 될 터이니, 어찌 겉모습에 현혹되어 미워하고 좋아하며, 나다 남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리오.
경오년(1930) 겨울에 만공滿空 사형이 금강산 유점사 선원의 조실로 있으면서 오대산으로 서찰을 보내어 나에게 선사의 행장을 써 줄 것을 부탁하였다. 나는 본래 문장을 익히지 못했으나 선사의 행장은 감히 짓지 않고 말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그 사적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보이노니, 한편으로는 말법 세상에서 진정한 선지식이 세상에 출현하여 법을 편 부사의不思議한 공덕을 찬탄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사문이 망령되게 집착하여 밖으로 치달려서 헛되이 세월을 보냄으로써 부처님의 교화를 손상하는 잘못을 경계한다. 그리고 선사의 시와 기문 약간 편을 도반 선객들에게 부쳐 보내 초록하고 인쇄하여 세상에 유포되게 하노라.
불기佛紀 2958년 신미년 3월 15일에 문인門人 한암 중원漢巖重遠은 삼가 찬술하다.
[산문散文]
오도가悟道歌
四顧無人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으니
衣鉢誰傳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衣鉢誰傳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四顧無人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구나
春山花笑鳥歌            봄 산에 꽃은 웃고 새는 노래하며
秋夜月白風淸            가을밤에 달은 밝고 바람은 시원해라
正恁麽時              바로 이러한 때에
幾唱無生一曲歌           몇 번이나 무생無生의 한 곡조 노래를 불렀던가
一曲歌無人識            한 곡조 노래를 아는 사람 없으니
時耶命耶且奈何           시절인가 운명인가 어이하리오
山色文殊眼             산 빛은 문수의 눈이요
水聲觀音耳             물소리는 관음의 귀로다
呼牛喚馬是普賢           소를 몰고 말을 모는 이가 보현이요
張三李四本毘盧           장삼이사가 본래 비로자나불일세
名佛祖說              부처와 조사의 말씀이라 하지만
禪敎何殊              참선과 교학이 어찌 다르리오
特地生分別             단지 분별을 일으켰을 뿐이네
石人唱笛              돌사람은 젓대를 불고
木馬打睡              나무말은 졸고 있구나
凡人不識自性            사람들은 자성을 알지 못하고서
謂言聖境非我分           성인의 경계이지 나의 분수 아니라 하니
可憐此人地獄滓           가련하구나 이런 사람들은 지옥의 잔재로다

011_0655_b_01L叅決後事如古道人入滅之時餘恨可旣和尙生於丁
011_0655_b_02L寂於壬子九歲出家壽五十有六臘四十有八有受法第
011_0655_b_03L子四人曰枕雲玄住行道於嶺南表忠寺而臨終在梵魚寺
011_0655_b_04L法書偈而化曰慧月慧明曰滿空月面兩禪伯自妙年
011_0655_b_05L叅侍深得和尙宗旨各爲一方師提接方来其化大行而余雖不敏亦曾參聽玄旨而只重先師不爲我說
011_0655_b_06L故不敢辜負其法恩是爲四也夫行狀者記其實不以
011_0655_b_07L虛也和尙之悟道揚化因緣誠如上言若論其行履
011_0655_b_08L身長貌古志氣果强聲若洪鍾具無碍辯對八風不動
011_0655_b_09L如山行則行止則止不爲人之打之遶故飮啖自由
011_0655_b_10L色不拘曠然遊戱招人疑謗此乃以廣大心証不二門
011_0655_b_11L放自如如李通玄宗道者之類乎抑亦不遇而慷
011_0655_b_12L藏身於下劣之地以卑自牧而以道自樂歟非鴻
011_0655_b_13L難知鴻鵠之志非大悟安能不拘於小節哉和尙詩有
011_0655_b_14L酒或放光色復然貪嗔煩惱送驢年佛與衆生
011_0655_b_15L吾不識平生宜作醉狂僧之句寫出其一生行履也
011_0655_b_16L其安處也食纔接氣掩關終日沈然寡言不喜見
011_0655_b_17L人或勸揚化於大都會則曰吾有誓願足不踏京
011_0655_b_18L城之地其卓越勁挺盖如此住天蔵庵時一領鶉衣
011_0655_b_19L寒暑不改蚊蚋繞身虱兒滿衣晝宵侵囓肌膚
011_0655_b_20L瘡爛寂然不動坐如山嶽一日有蛇上身蟠蜿於肩
011_0655_b_21L傍人驚告叅然無心小焉蛇自引去非與道凝
011_0655_b_22L孰如是哉一坐多年如經刹那一朝有吟一絶曰
011_0655_b_23L世與靑山何者是春城無處不開花傍人若問惺牛
011_0655_b_24L石女聲半刼亦歌遂拗折柱杖擲於門外

011_0657_a_01L回憶我前生事            이내 전생의 일을 돌이켜 생각하니
四生六趣諸險路           사생과 육취 온갖 험한 곳에서
長劫輪廻受苦辛           오랜 겁 동안 윤회하며 신고를 겪었네
今對目前分明            오늘 눈앞에서 자성을 분명히 보니
使人叵耐兮             이내 마음 견딜 수 없구나
幸有宿緣              다행히 숙세의 인연이 있어
人而丈夫              사람이요 장부로 태어나
出家得道              출가하여 도를 얻었으니
四難之中無一闕           사난四難346) 중에서 하나도 부족함이 없어라
有人爲戱言作牛無鼻孔        어떤 사람이 소가 되면 콧구멍 없다 장난으로 말하는데
因於言下              그 말을 듣자마자
悟我本心              나의 본래 마음을 깨달으니
名亦空相亦空            명상名相이 모두 공하여
空虛寂處常光明           공하여 텅 비고 고요한 곳에 늘 광명이 나오네
從此一聞卽千悟           이 말을 한 번 듣고부터 모든 것을 깨달으니
眼前孤明寂光土           눈앞에는 홀로 밝은 적광토寂光土요
頂後神相金剛界           정수리 뒤에는 신령한 금강계로다
四大五陰淸淨身           사대와 오음이 청정한 법신이라
極樂國鑊湯兼寒氷          극락세계는 화탕지옥과 한빙지옥이요
華藏刹劍樹及刀山          화장찰해華藏刹海는 검수지옥과 도산지옥이로다
法性土朽壤糞堆           법성토法性土는 썩은 흙이요 똥무더기이며
大千界螘穴蚊睫           대천사계大千沙界는 개미굴이요 모기 눈썹이라
三身四智虛空及萬像         삼신三身과 사지四智는 허공과 만상萬象이니
觸目本天眞             눈길이 닿는 곳마다 본래 천진하도다
也大奇也大奇            매우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松風寒               솔바람이 서늘하니
四面靑山              사방은 푸른 산이요
秋月明               가을달이 밝으니
一天如水              하늘은 물처럼 맑구나
黃花翠竹              노란 국화와 푸른 대나무
鶯音燕語              꾀꼬리 소리와 제비 소리에
常然大用              늘 진여眞如의 큰 작용이
無處不現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으니
市門天子何須取           천자 자리를 준들 어찌 받으랴
平地上波濤             평지에 파도를 일으키는 격이요
九天玉印眞恠在           대궐의 옥새는 참으로 괴이하니
髑髏裏眼睛             해골 속의 눈동자로다
無量佛祖常現前           한량없는 부처가 늘 눈앞에 나타나니
草木瓦石是             초목과 깨진 기왓장이 그것이요
華嚴法華我常說           『화엄경』과 『법화경』을 내가 늘 설하니
行住坐臥是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동작이 그것이라
無佛無衆生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니
是我非妄言             이는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變地獄作天堂            지옥을 바꾸어 천당을 만드는 것이
摠在我作用             모두 나의 손에 달려 있고
百千法門無量義           백천 가지 법문 한량없는 이치가
恰似夢覺蓮華開           흡사 꿈을 깨고 연꽃이 핀 것 같아라
二邊三際何處覔           이변二邊과 삼제三際를 어디서 찾으랴
十方無外大光明           가없는 시방세계가 큰 광명인 것을
一言而蔽之乎            한마디로 말하면
我爲大法王             내가 대법왕이라
於法摠自在             모든 법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是非好惡焉有罣碍          시비와 호오好惡에 어찌 걸림이 있으랴
無智人聞此言            어리석은 사람이 이 말을 들으면
以我造虛語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여겨서
不信又不遵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겠지만
若有穿耳客             귀가 뚫린 사람이 있다면
諦信卽無疑             바로 믿고 의심하지 않아서
便得安身立命處           곧 안신입명 하는 곳을 얻으리라
奇語塵世人             속세의 사람들에게 이르노니
一失人身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萬劫難逢              만겁에 다시 얻기 어려운데
況且浮命              하물며 이 덧없는 목숨은
朝不謀夕              아침에 저녁을 보장하기 어려우니
盲驢信脚行             눈먼 나귀가 발길 닿는 대로 가서
安危摠不知             편안한지 위태한지 전혀 모르는 꼴이라
彼如是此如是            저 사람도 이러하고 이 사람도 이러하구나
何不來我學無生           어이하여 나에게 와 무생無生을 배워서
作得人天大丈夫           인간과 천상의 대장부가 되지 않는가
吾所以如是勞口再三囑        내가 이처럼 입이 아프게 재삼 당부하는 것은
曾爲浪子偏憐客           예전에 나그네이었기에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는 것일세
嗚呼已矣              아아! 그만이로다
夫衣鉢誰傳             대저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四顧無人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는 것을
四顧無人              사방을 돌아봐도 사람이 없으니
衣鉢誰傳              의발을 누가 전해 줄거나
忽聞人語無鼻孔           홀연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자
頓覺三千是我家           문득 삼천세계가 나임을 깨달았노라
六月鷰巖山下路           유월이라 연암산 아랫길에
野人無事太平歌           농부들이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

011_0656_a_01L然出山随方宣化脫略窠印不存軌則或懶遊城序
011_0656_a_02L混同塵俗或閑卧松亭嘯傲風月其超適之趣人莫
011_0656_a_03L能測有時垂示則極柔和甚精細演不可思議之
011_0656_a_04L妙旨可謂善到底惡到底不可以修断而修断也
011_0656_a_05L章筆法皆過於人真希世偉人也出家之人皆如和
011_0656_a_06L尙勇進濶步而辦明大事燈燈相續則九山隆化十六
011_0656_a_07L継旣豈獨專在於前昔也哉非特隆化継統而已
011_0656_a_08L亦使一切衆生根本智光明種子永不断絶於五濁
011_0656_a_09L界中矣豈非深心奉塵刹名爲報佛恩哉吾所以焚
011_0656_a_10L香深祝者也然後之学者學和尙之法化則可学和尙
011_0656_a_11L之行履則不可人信而不解也又依法者依其真
011_0656_a_12L正妙法也不依人者不依其律儀與不律儀也又依
011_0656_a_13L師而效之也不依者不見其得失是非也学道之人
011_0656_a_14L畢竟法亦能捨况於人之得失是非乎故圓覚經
011_0656_a_15L末世衆生發心修行者當求一切正知見人心不住
011_0656_a_16L雖現塵勞心恒淸淨示有諸過讃嘆梵行
011_0656_a_17L令衆生入不律儀求如是人即得成就阿耨萻提
011_0656_a_18L善知識四威儀中常現淸淨乃至示現種種過惠
011_0656_a_19L衆生於彼心無憍慢不起惡念金剛經云若以色見
011_0656_a_20L以音聲求我是人行邪道不能見如来又普照
011_0656_a_21L國師云夫叅学者發足先植正因信五戒十善四諦
011_0656_a_22L十二因緣六度等法皆非正因信自心是佛一念無生
011_0656_a_23L三祇刼空如是信得及乃是正因然則戒諦緣度等
011_0656_a_24L尙非正因况於不律儀乎故但求正知見人決擇

011_0657_b_01L
자암 거사에게 올린 편지(上慈庵居士書)
천장암이 좋으니 한쪽은 산이요 한쪽은 바다입니다. 비록 이러하지만 구경하는 유람객이 오지 않는 곳일 뿐 아니라 식견이 트인 선비들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식견이 있는 선비들만 찾아오지 않을 뿐 아니라 부처와 조사도 하찮은 존재일 뿐이니, 괴롭고 괴롭습니다. 이 어찌 말할 수 있는 대목이겠습니까.
들은 바로는 병을 앓으신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수행인이 마구니를 항복하는 곳이며 정신을 바짝 차릴 곳이며 몽환夢幻 경계에 유희하는 곳이니, 근심하고 기뻐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물며 병은 마음으로부터 생기고 마음은 아지랑이 같은 것임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경허는 배고프면 배고프다 말하고 추우면 춥다 말할 뿐이요, 그 밖에는 잠이나 잘 뿐 전혀 수행하는 상相이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두세 선객이 있어 산야의 노래를 함께 부르니, 이 다행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듣건대 이곳을 찾아오실 의사가 있다고 하니, 내년까지 기다릴 게 있겠습니까? 겨울 날씨가 몹시 추워 왕래하기 어려우니, 날씨가 화창할 때가 되거든 좋은 인연을 잊지 말고 찾아와 주시기 바랍니다.
법화法話
부처님이 일대장교一代藏敎를 설하시어 오계와 십선법으로 인천에 태어나게 하였고, 고집멸도의 사제법으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하였으며, 무명과 행行 등 십이인연법으로 연각과 벽지불을 증득하게 하였고, 사홍서원과 육바라밀법으로 보살도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권교보살權敎菩薩347)은 아승지겁을 거치면서 사홍서원과 육바라밀을 행하여 과위果位가 십신·십주·십행·십회향을 지났어도 아직 묘도妙道를 알지 못하여 유위법을 보면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고, 무위법을 들으면 알지 못해 망연자실합니다. 그리하여 부처의 지견을 얻으려는 마음은 늘 끊어지지 않지만 번뇌의 습기는 그 뿌리를 다 제거하지 못하여 부처님의 계율과 가르침에 의지하여 늘 억눌러 조복 받으니, 비유하자면 주술을 잘하는 사람이 주술의 힘으로 맹수와 독사를 막아서 독을 품거나 물어뜯지 못하게 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독을 아주 제거하지는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불법 중에는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 마치 한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할 때 만약 참 선지식을 찾아가서 묘도妙道를 깨달으면 곧바로 십지十地의 과위果位에 오르고, 참 선지식을 찾지 않아 묘도를 깨닫지 못하면 끝내 퇴타退墮하고 맙니다. 보조 국사가 “무릇 참학하는 사람은 처음 출발할 때 먼저 정인正因을 심어야 하니, 오계·십선·사제·십이인연·육바라밀 등의 법은 정인이 아님을 믿고,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믿어서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3아승지겁이 공하게 된다. 이와 같이 믿는 것이 바로 정인이다.”라고 한 것이 이를 두고 말한 것입니다.
후세로 내려와 성인의 시대와 멀어지면서 사우師友의 연원淵源이 이미 끊어져 무릇 수행하는 이들은 대개 권교權敎·반교半敎의 설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여

011_0656_b_01L自已淸淨道眼不可以妄求邪信誤着大事也又古德云
011_0656_b_02L貴眼正不貴行履又云我之法門不論禪定觧脫持犯
011_0656_b_03L修證惟達佛之知見此非先開正眼而後論行履耶
011_0656_b_04L故曰学和尙之法化則可学和尙之行履則不可此但
011_0656_b_05L責其未具擇法眼而先效其行履無碍者也又策其局
011_0656_b_06L執於有爲相見不能洞徹心源者也若具擇法正眼而
011_0656_b_07L洞徹心源則行履自然稱真四威儀內常現淸淨
011_0656_b_08L可爲外相之所幻惑起愛憎人我之見也哉庚午冬
011_0656_b_09L滿空師兄在金剛山楡岾寺禪院祖堂寄書於五抬
011_0656_b_10L山中囑余述先師行狀余本不閒於文辭然其於先
011_0656_b_11L師行狀不敢以已之故記其事以示後人一以讃末法中
011_0656_b_12L真善知識出世弘法之難思功德一以警吾軰
011_0656_b_13L之妄執外走而虛度時日以傷損佛化之過失焉
011_0656_b_14L又以禪師之詩咏與記文若干篇付同行諸禪
011_0656_b_15L抄錄印刷行于世

011_0656_b_16L
佛紀二千九百五十八年辛未三月十五日

011_0656_b_17L
門人漢岩重遠謹撰

011_0656_b_18L[散文]
悟道歌

011_0656_b_19L
四顧無人衣鉢誰傳衣鉢誰傳四顧無人春山花
011_0656_b_20L笑鳥歌秋夜月白風淸正恁麽時幾唱無生一曲
011_0656_b_21L一曲歌無人識時耶命耶且奈何山色文殊眼
011_0656_b_22L水聲觀音耳呼牛喚馬是普賢張三李四本毘
011_0656_b_23L名佛祖說禪敎何須特地生分別石人唱笛木馬打睡
011_0656_b_24L凡人不識自性謂言聖境非我分可憐此人地獄滓

011_0658_a_01L익히는 것은 오계와 십선에 그칠 뿐 사제와 십이인연 등의 법조차 수행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발심수행에 나아가는 정인에 있어서이겠습니까. 반半이란 무엇인가? 도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중도에 그친 경우를 말합니다. 권權이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을 잡아끌어서 건져 주는348) 경우를 말합니다.
권교니 반교니 하는 것이, 항상하고 실다우며 원만하고 궁극적인 가르침이 못 된다는 것은 굳이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도 알 것입니다.
수 선사壽禪師는 “대도大道를 구하는 이를 위하여 일승一乘의 묘지妙旨를 설하고, 소행小行을 구하는 이를 위하여 육행六行의 권문權門을 설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육도六度 등의 법도 권교를 면치 못하는데, 하물며 그 나머지 오계·십선·사제·십이인연 등이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방편의 힘으로 염불법을 설하여 중생을 인도하시니, 그 뜻이 매우 오묘하기에 사람들이 모두 알지 못하여 심력만 허비하고 효과는 없습니다. 예컨대 『아미타경』에서 크게 정토의 장엄을 설하고, 심지어 왕생법을 설하면서 하루, 이틀 내지 이레 동안 일심으로 염불하여 일심불란하면 이 사람은 왕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십육관경十六觀經』에서는 관상성취법觀像成就法이 있어 마음을 한 곳에 묶어 두도록 하여 부처님의 형상을 관觀하는 것이 오랫동안 명료하면 삼매를 성취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량수경』에서는 세 부류349)가 왕생함에 모두 먼저 보리심을 일으키라고 설하셨는데, 보리란 무엇인가? 바로 중생의 일상생활 중에 신령하게 아는 성품입니다. 만약 이 신령하게 아는 성품을 개발하여 관상삼매觀像三昧를 성취하거나 일심불란을 성취한다면 어찌 왕생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규봉 선사圭峯禪師는 “염불하여 정토에 나는 경우에도 십육관선十六觀禪350)를 닦아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줄곧 산란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잡고만 있으면 곧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구역新舊譯 경론에 모두 “십지十地 이상의 보살도 보신불報身佛의 정토를 일부만 본다.”라고 하였으니, 미타정토가 어찌 보신불의 정토가 아니리오. 십지 보살도 오히려 완전한 정토를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구박범부具縛凡夫351)가 산란한 마음으로 한갓 부처님의 명호만 외워서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으리오. 만약 산란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명호만 외워도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면, 무엇하러 굳이 고생스레 수행하여 일심불란과 십육삼매十六三昧를 얻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미 부처님 말씀에 어긋났는데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자력은 나무를 심어 배를 만드는 것으로 비유하고, 타력은 배를 빌려 타고서 바다를 건너는 것으로 비유하여 한쪽은 더디고 한쪽은 빠르며, 한쪽은 어렵고 한쪽은 쉬워 공효가 다르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권화勸化352)
만약 하루도 일심불란하고 이틀도 일심불란하다면 굳이 이레까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약 하나의 관觀이 또렷하여 오랫동안 명료하면 십육관十六觀도 모두 또렷하여 오랫동안 명료할 터이니,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도 이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온전한 공부를 참선하는 조사의 문중에 적용하여 수행한다면 누군들 견성성불하지 않겠습니까. 간화문 중에서는 성적등지惺寂等持353)하면 반드시 견성할 수 있다고 하며, 염불문 중에서는 일심불란하면 결정코 극락정토에 왕생한다고 하니, 일심불란이 어찌 성적등지가 아니겠습니까.
만약 일심불란을 타력이라 한다면 성적등지가 어찌 타력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성적등지를 자력이라 한다면 일심불란이 어찌 자력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일심불란과 성적등지는 과연 어느 것이 더디고 어느 것이 빠르며, 어느 것이 어렵고 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십지 이상의 보살도 오히려 정토를 온전히 보지 못하는데, 구박범부로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은 그 공력이 오로지 일심불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일심불란하지 않다면 어떻게 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대저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곧고, 소리가 크면 메아리도 큰 법이니, 착한 마음은 인천에 태어나고, 악한 마음은 지옥에 들어가며, 청정하여 어지럽지 않은 마음으로 깨끗한 불국토에 왕생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형체는 굽은데 그림자는 곧고, 소리는 작은데 메아리는 큰 경우가 어찌 있겠습니까. 뿌리를 북돋우지 않고 가지가 무성하기를 바라며, 터전을 단단히 다지지 않고 누대가 기울지 않기를 바라는 이는 어리석지 않으면 미혹한 사람일 것입니다. 청허淸虛 화상도 자력·타력의 설로 정토왕생을 매우 권면했으나 청허 화상의 글에 산란한 마음으로 정토에 왕생한다는 대목은 보지 못했습니다.
경에 “부처님이 고해에 빠져 헤매는 중생을 보는 것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물과 불 속에 들어가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부처님이 자기 명호를 부르는 이는 구제하고, 자기 명호를 부르지 않는 이는 구제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찌 말이 되겠습니까. 자력은 나무를 심어 배를 만드는 것과 같은 경우이고, 타력은 남의 배를 빌려 타는 것과 같은 경우라는 사소한 비유로 얼마나 많은 수행인의 목숨을 그르쳤습니까. 애석한 일입니다.
근래에 보면 수행인들 중에 진정한 사우師友를 찾아서 도안道眼을 결택하지 못하고,

011_0657_a_01L回憶我前生事四生六趣諸險路長刼輪廻受苦
011_0657_a_02L今對目前分明使人叵耐兮幸有宿緣人而丈夫
011_0657_a_03L家得道四難之中無一闕有人爲戱語作牛無鼻
011_0657_a_04L於言下悟我本心名亦空相亦空空虛寂處常光
011_0657_a_05L從此一聞即千悟眼前孤明寂光土頂後身相金剛
011_0657_a_06L四大五陰淸淨身極樂國鑊湯兼寒氷華蔵
011_0657_a_07L刹劔樹及刀山法性土朽壤糞堆大千界螘穴蚊蜨
011_0657_a_08L身四智虛空及萬像觸目本天眞也大奇也大奇
011_0657_a_09L風寒四面靑山秋月明一天如水黃花翠竹鶯吟
011_0657_a_10L燕語常然大用無處不現市門天子何須取平地上
011_0657_a_11L波濤九天玉印眞恠在髑髏裡眼睛無量佛祖
011_0657_a_12L常現前草木瓦石是華嚴法華我常說行住坐
011_0657_a_13L卧是無佛無衆生是我非妄言変地獄作天堂摠在
011_0657_a_14L我作用百千法門無量義恰似夢覺蓮華開二邊
011_0657_a_15L三際何處覔十方無外大光明一言而蔽之乎我爲大
011_0657_a_16L法王於法摠自在是非好惡焉有罣碍無智人聞此
011_0657_a_17L以我造虛語不信又不遵若有穿耳客諦信即
011_0657_a_18L無疑便得安身立命處寄語塵世人一失人身
011_0657_a_19L刼不復况此浮命朝不謀夕盲驢信脚行安危總
011_0657_a_20L不知彼如是此如是何不來我學無生作得人天大丈
011_0657_a_21L吾所以如是勞口再三囑曾爲浪子偏憐客
011_0657_a_22L嗚呼已矣夫衣鉢誰傳四顧無人四顧無人衣鉢誰傳
011_0657_a_23L聞人語無鼻孔頓覺三千是我家六月燕岩山
011_0657_a_24L下路野人無事太平歌

011_0659_a_01L오로지 타력으로 왕생한다는 설만 믿고 줄곧 부처님 명호만 외워서 부처님이 구제해 주기를 바라다가 공부가 지극한 데 이르면 모두 마구니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마련이니, 나도 보고 들었는데 그 수가 매우 많습니다. 대저 발심수행해서 마구니에게 잘못 떨어지니, 슬픕니다
조사가 “염念이란 생각하여 잊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염불하되 만약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염불은 참된 염불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또 “자기 마음을 반조返照하여 어둡지 않게 하는 것이 바른 수행이다.”라고 하였고, 또 “참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 내가 만약 너를 속인다면 장차 십팔지옥十八地獄에 떨어질 것이고, 네가 만약 나를 믿지 않는다면 세세생생 범과 이리에게 잡아먹힐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와 같은 말들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
달마 대사가 중국 땅에 들어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니 일종식一種食이니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지계니 파계니 승속이니 남녀니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만약 경을 읽는 등 여타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없을 것입니다.
또 “전다라栴多羅354)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牛頭禪師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355) 격이니, 제쳐 두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게다가 계에는 대승계·소승계가 있고, 이계理戒·사계事戒가 있고, 작계作戒·무작계無作戒356)을 발하여 스승에게 듣고 받은 계를 작계라 하고, 법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과거와 미래가 끊어져 마음이 실상實相에 머무는 것을 무작계라 합니다. 그리고 십중바라이十重波羅夷와 사십팔경구四十八輕垢를 사계라 하니, 바로 『범망경』입니다. 탐욕이 곧 대도요, 진嗔·에恚도 마찬가지라, 이와 같은 삼독심 중에 일체의 불성이 갖춰져 있다 하여 제법에 계를 지킴과 범함이 둘이 아닌 것을 이계라고 널리 설하였으니, 곧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입니다.
예컨대 보살계의 서문에서 “대승은 중생을 구제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생각하니, 사상事相에 국집하는 소승과는 같지 않습니다. 예컨대 말리 부인末利夫人은 오직 술을 계로 삼았고,

011_0657_b_01L上慈庵居士書

011_0657_b_02L
天蔵庵好一面山一面海然雖如是非但翫景者不看到
011_0657_b_03L通人達士亦不交涉非但通人達士不交涉佛也祖也猶較
011_0657_b_04L些子苦哉苦哉是豈可言處耶聞道候以病此乃修行人降
011_0657_b_05L伏魔軍處也驚覺精神處也遊戱幻境處也何足以憂之
011_0657_b_06L喜之哉况病從心生心如陽燄者乎鏡虛飢則言飢
011_0657_b_07L則言寒餘外睡而已了無修行相狀而幸有二三禪侶
011_0657_b_08L唱和山歌野曲幸何可盡達又聞有垂訪之意事何待
011_0657_b_09L明年冬候寒嚴徃來難通則幸當風日熙和時不忘好因緣乎

011_0657_b_10L法話 [1]

011_0657_b_11L
佛說一代蔵教以五戒十善法使之生人天以苦集滅度四諦法
011_0657_b_12L使之證阿羅漢果以無明行等十二因緣法使之證緣覺辟支果
011_0657_b_13L以四弘願六波羅蜜法使之行菩薩道而有權教菩薩者
011_0657_b_14L阿僧秪刼行四弘願六波羅蜜位過十信十住十行十廻向
011_0657_b_15L尙未達妙道見有爲則心生希有聽無相則茫然自失
011_0657_b_16L佛知見之心常未間断然煩惱習氣根蒂未除依佛戒
011_0657_b_17L時常捺伏譬如善幻呪者以呪術力禁除猛獸毒
011_0657_b_18L使之不能發毒侵嚙而其害人之毒未能除去且於佛
011_0657_b_19L法中疑根未断如有一物碍滯於胷膈當伊時若能
011_0657_b_20L叅眞善知識悟得妙道則直登十地位未叅未悟者
011_0657_b_21L成退堕普照囯師云夫叅學者発足先植正因信五
011_0657_b_22L戒十善四諦十二因緣六度等法皆非正因信自心是佛
011_0657_b_23L一念無生三秪刼空如此信得及乃是正因者此也時降聖
011_0657_b_24L師友淵源已絕凡叅修行者擧槩迷封滯殼於

011_0659_b_01L선예대왕仙豫大王은 오직 이익과 자비로운 행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계로 삼았으니, 어찌 법계에 억지로 강역疆域을 나누리오.”라고 하였습니다.
『담무참보살계본曇無讖菩薩戒本』에서 “대략 보살계를 잃는 두 가지 경우가 있으니, 첫째는 보살의 서원을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증상악심增上惡心입니다. 증상악심이란 사람과 법이 둘 다 공하다고 함부로 말하는 것과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경우 외에는 이 몸을 버릴지라도 계는 끝내 잃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대승계입니다. 예컨대 “비구가 나무나 돌에 눌렸을 경우, 만약 나무를 꺾거나 흙을 파고서 벗어나와 몸이 죽는 것을 면하면, 이는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소승계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소승계의 조분條分이 어떠하고 대승계의 개차開遮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설령 작계와 사계가 있는 줄 알더라도 무작계와 이계가 있는 줄은 알지 못하고서 한갓 부질없는 껍데기만 숭상하면서 “불계佛戒를 지킨다.”라고 하니, 역시 제쳐 두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달마 대사는 “마음을 관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총섭한다.”라고 하였고, 고덕古德은 “심지心地가 비고 툭 틔어 막힘이 없는 것이 보시이며, 심지가 청정하여 비루함이 없는 것이 지계이며, 심지가 담박하여 시비가 없는 것이 인욕이며, 오묘하고 고요한 이치를 간단없이 비추어 보는 것이 정진이며, 확연하여 고요함도 시끄러움도 없는 것이 선정이며, 사무치게 밝아 똑똑함도 어리석음도 없는 것이 지혜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또 고인이 “한 법도 옳다고 정하지 않으며 한 법도 그르다고 정하지 않나니, 거짓을 배척하고 참됨을 도모하며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는 것은 모두 스스로 자기를 속박하는 것이다. 만약 대도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한 법의 옳음도 보지 않는데, 어찌 한 법의 그름이 있으리오.”라고 하였습니다.
달마 대사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규역規域이라 하며, 대소승의 기본 내용을 규역이라 하며, 생사와 열반을 규역이라 하나니, 범부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성문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보살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내지 부처님의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아야 비로소 규역을 벗어났다고 한다.”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여 지옥에 떨어졌더라도 자기의 법왕을 보면 곧 해탈한다.” 하였고, 또 “깨달음은 한순간에 있으니, 어찌 백발이 되도록 공부할 필요가 있으랴.” 하였습니다. 육조 대사는 “앞 생각(前念)이 미혹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後念)이 깨달으면 부처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인이 “용이 뼈를 바꿈에 그 비늘은 바꾸지 않는 것과 같으니,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됨에 그 얼굴은 바꾸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법문은 가장 존귀하여 백천 가지 삼매와 한량없는 묘의妙義가 그 사람의 한 생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고인이 “이 일승법은 듣고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성불할 종자를 심는 인연을 맺으며,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인천人天의 복을 덮는다.” 하였으니, 하물며 들어서 믿고 배워서 이루는 자야 말할 나위 있으리오. 어찌 수행에 뜻을 둔 이가 이를 버리고 달리 찾으리오.

011_0658_a_01L權半之說而所習者戒善尙未能進修於四諦十二因緣
011_0658_a_02L等法况乎発趣正因乎盖半者何也道未了極止於中
011_0658_a_03L道之謂也權者何也如云嫂溺於水執手引濟之謂也
011_0658_a_04L權半云者未爲常實圓終不待智者而後知也壽禪
011_0658_a_05L師云爲求大道者說一乘妙旨爲求小行者說六行
011_0658_a_06L權門六度等法亦未免爲權况餘戒善諦緣等乎
011_0658_a_07L佛以方便力說念佛法引導衆生其趣甚妙人皆
011_0658_a_08L不達枉用心力而未効如阿彌陀經大說淨土莊嚴
011_0658_a_09L至於說徃生法一日二日乃至七日一心不乱是人徃生十六觀
011_0658_a_10L經有觀像成就法使之繫心一處其觀歷歷長時明了
011_0658_a_11L成就三昧無量壽經三輩徃生皆先說発菩提心
011_0658_a_12L菩薩者何也即衆生日用靈覺之性也若能開發
011_0658_a_13L靈覺之性或能成就觀像三昧或能成就一心不乱其於徃生
011_0658_a_14L何未了故圭峯禪師云至於念佛求生淨土亦修十
011_0658_a_15L六觀禪念佛三昧般舟三昧此不是一向以散乱心執持名
011_0658_a_16L便能超生淨土也新舊譯經論皆云十地已上菩
011_0658_a_17L薩分見報佛淨土彌陀淨土豈非報佛淨土耶
011_0658_a_18L地菩薩尙未許其令見如何具縛凡夫以散乱心
011_0658_a_19L稱名號便能超生若以散心稱號亦能超生何用
011_0658_a_20L苦苦做得一心不乱與十六三昧旣違佛說焉能成功
011_0658_a_21L古有以自力譬種樹作船他力譬借船越海遲速難是
011_0658_a_22L功効有異之說此亦勸化方便然未免辨說淆訛違於
011_0658_a_23L佛教大誤後生此不得不辨本有無根樹子何待於
011_0658_a_24L本有無底船子何待於作徧覆大千普濟人天

011_0660_a_01L
만약 참구하는 수행문修行門을 말한다면, 예컨대 “한 스님이 조주趙州에게 묻기를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자, 조주가 ‘없다’ 하였으니, 꿈틀거리는 생명들은 모두 불성이 있거늘 조주는 어찌하여 없다고 했는가?”라는 화두를, 옷 입고 밥 먹고 대소변을 보고 어른을 시봉하고 아랫사람을 가르치고 책을 보고 손님을 접대할 때 내지 행주좌와의 모든 때에 회광반조하여 거각擧覺하고 거각하며 의심하고 의심하며 관찰하고 관찰하며 연마하고 연마하되, 세간의 잡된 일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돌이켜 없다는 ‘무無’ 자 위에 두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공부를 하여 날이 가고 달이 가면 자연히 계오契悟할 것입니다. 이는 배고픈 사람이 한 숟가락 밥을 먹고 단번에 배가 부를 수 없으며, 글을 배우는 사람이 한 권의 종이에 쓰고 글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견실한 마음을 갖추어 시종 변치 않으면 도를 쉽게 이룰 것입니다.
고인이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한다.” 한 것은 심안心眼이 움직이지 않음을 뜻하고, “닭이 알을 품듯이 한다.” 한 것은 따뜻한 기운이 지속함을 뜻합니다.
화두를 들 때에는 마치 물길을 거슬러 돛단배를 젓는 것과 같아서, 때로는 냉담하여 아무 재미가 없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속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니, 단지 화두만 거각하는 것이 묘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을 모아서 화두를 들되, 너무 급하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으며,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매우 면밀해야 합니다. 숨은 평상시와 같이 쉬고, 음식은 적당히 먹으며, 눈은 정채精彩를 띠고, 등뼈는 꼿꼿이 세워야 합니다.
사람의 한평생은 준마가 틈 사이를 달려 지나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고,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고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급하니, 온갖 계책을 다 써서 고생해도 결국에는 한 무더기 해골이 될 뿐입니다. 이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큼을 생각하여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급급히 서둘러야 합니다. 태어날 때에는 온 곳을 알지 못하고, 죽을 때에는 갈 곳을 알지 못한 채 업식이 아득하고 심기가 어지러워 마치 땔나무에 불이 붙어 마구 타오르듯이 사생육취四生六趣가 가슴속에서 잉태되니, 어찌 두렵지 않으리오. 만약 진정한 참학參學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생사의 업력을 대적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분명하게 생각하면 공부를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에서 열거해 말한 내용들은 모두 불조의 진실한 밝은 가르침이니 감히 한마디 언구도 속이지 않습니다. 지난날 분부한 말씀을 감히 저버릴 수 없어 이제 어리석은 충심으로 이 글을 써서 드립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태한 까닭에 단지 마음속 생각을 말했을 뿐 글을 다듬는 데 힘쓰지는 않았습니다. 할 말은 끝이 없지만 개략은 이상과 같습니다. 등암 장로가 법어를 청하기에 이로써 도호塗糊357)합니다.

011_0658_b_01L其道其用未甞欠少秪是眩暈未定昏夢未醒
011_0658_b_02L而已且如因明論有同喩異喩佛性如虛空是同喩
011_0658_b_03L軍林等是異喩不是同喩若配同喩用自家錢財
011_0658_b_04L濟飢困此自力也投望他家門墻以求周給此他力也
011_0658_b_05L如此喩合不違佛理故經云不識衣內明珠流離丐
011_0658_b_06L此也難易遲速不待辨說而自明若能一日一心不
011_0658_b_07L二日亦能一心不難何待七日若一觀歷歷長時明
011_0658_b_08L乃至十六個觀亦歷歷長時明了発菩提心亦不外
011_0658_b_09L乎斯矣若以如此全功施於祖庭叅究門中孰不見性成佛
011_0658_b_10L看話門中說惺寂等持必能見性念佛門中說一心不乱
011_0658_b_11L定徃生一心不乱豈非惺寂等持耶若以一心不乱 [2] 爲他
011_0658_b_12L惺寂等持豈非他力若以惺寂等持 [3] 爲自力一心不乱
011_0658_b_13L豈非自力夫然則一心不乱與惺寂等持果孰遲孰速孰難
011_0658_b_14L孰易乎夫地上菩薩尙未全見以具縛凡夫而能超生者
011_0658_b_15L其功力全恃一心不乱若非一心不乱何能頓超夫形直影
011_0658_b_16L聲大響雄善心生人天惡心入鬼獄以淸淨不乱之
011_0658_b_17L超生淨佛國土此是必然之理也若謂不然豈有形
011_0658_b_18L曲影直聲小響大者乎不栽培根株而欲望枝葉㭗
011_0658_b_19L不堅築基地而欲望臺榭不傾者非愚則惑也淸虛
011_0658_b_20L和尙亦引自力他力說深勸徃生而未見以散心超生
011_0658_b_21L之文也經云佛見衆生沉淪苦海如慈母見赤子之投
011_0658_b_22L入於水火若然則救其稱其名號者不救其不稱名號
011_0658_b_23L是豈成說乎以種樹借船些少譬喩誤却幾個修
011_0658_b_24L行人性命可惜近見修行人未能叅其正直師友決擇

011_0660_b_01L
진흙 소의 울음(泥牛吼)
대저 참선하는 이는 무엇보다 먼저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중대함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인은 “오늘은 비록 살아 있더라도 내일은 보장하기 어렵다.” 하였으니, 단단히 생각하여 조금도 방일하지 말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일체 세간의 일에 조금도 마음을 두지 않아 아무 작위作爲함이 없이 마음이 고요해야만 된다.
만약 마음과 경계가 서로 부딪쳐 마치 불과 섶이 서로 만나는 것과 같은 상태로 세월만 보낸다면 이는 화두를 드는 공부에 방해될 뿐 아니라 캄캄한 무명의 업장이 더욱 증장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일에 무심하고 마음에 일이 없는 것이니, 이렇다면 마음의 지혜가 자연히 맑고 밝아질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마음을 따라 만들어지니, 선하면 천당에 태어나고 악하면 지옥이 나타나고, 사나우면 이리가 되고 어리석으면 지렁이가 되고, 가벼우면 나비가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고인이 “단지 이 한 생각이 어긋남을 말미암아 온갖 형상들이 나타난다.” 하였으니, 마음을 비워 성성하고 순일하여 산란하지도 혼침하지도 않고 텅 비어 툭 틔어 있으면 다시 어느 곳에서 생사를 찾으며, 어느 곳에서 선악을 찾으며, 어느 곳에서 지범持犯을 찾으리오.
이 활발발活潑潑하고 또렷이 밝은 것은 정수리 위로부터 발 아래까지 사무쳐 태어남을 따라 생겨나지도 않고 죽음을 따라 없어지지도 않으며, 부처가 되지도 않고 조사가 되지도 않으며, 크기로는 온 우주를 감싸고 작기로는 가는 티끌 속에 들어가며, 게다가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되며, 크지도 작지도 않고,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 자유자재로 융통하니, 철저히 이와 같을 뿐이요, 다시 조금도 억지로 그렇게 만드는 도리가 아니다.
이 현묘한 문을 참구하는 사람은 늘 반조하여 참구하는 데 힘써서 마음을 씀이 성성하고 정밀하여 간단間斷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참구함이 지극히 간절하여 더 이상 마음을 써서 참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갑자기 마음 길이 문득 끊어져 본명원신本命元辰358) 이는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도리는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무릇 참선하는 사람은 착실하게 이 도리를 알고 법식法式을 반조하여 분명하게 형용하는 것이 거칠지 않고 세심細審하여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써서 수행하여 수행하는 공력이 순숙純熟해지면 실상의 이치가 절로 나타나는 법이다.
태고太古 스님은 “들었다 하면 화살이 바위에 깊이 박히네.화두를 들고 참구하는 이들은 이 말씀들을 지남指南으로 삼아야 한다.
일상생활 중의 만행萬行을 말할 것 같으면 가슴속이 공명空明하여 한 물건도 없어 육근이 텅 빈 자는 이 너그러운 마음이 바로 보시이며, 이 맑고 깨끗한 마음이 바로 지계이며, 이 겸허하고 유연한 마음이 바로 인욕이며, 이 본래 밝음이 항상 드러나 어둡지 않은 것이 바로 정진이며, 이 밝고 고요함이 어지럽지 않은 것이 바로 선정이며, 이 밝고 고요함이 또렷하여 법을 간택하고 공을 관찰하는 것, 본래 스스로 우치愚癡하지 않은 것, 모든 법상法相을 분별하여 동요하지 않은 것 내지 세상 인연에 수순하여 장애가 없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그러므로 달마 대사가 “마음을 관찰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통괄한다.” 하였으니, 단지 뿌리를 배양하는 데 힘쓸 뿐 가지가 무성하지 않음을 걱정할 필요는 없으며, 단지 견성하여 부처가 되는 것만 알 뿐 부처에게 신통 삼매가 없음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대개 참학하는 진정한 도인인 본색납자가 되지 못하여 불법에 있어 진리를 알지 못하고 도안道眼이 확실하지 못하여 모두 갈림길에서 양을 잃는360) 격이라 술 취한 듯 꿈꾸는 듯 일생을 보내니, 슬프다! 동산洞山 스님이 “가사 아래에서 사람 몸을 잃는 것이 고통이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대저 길을 가는 사람이 만약 첫걸음이 바르지 못하면 천 리나 멀리 가도 한갓 헛걸음만 할 뿐이니, 애초에 가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러므로 규봉 선사圭峯禪師는 “분명하게 이치를 깨닫고 응당 수행해야 함을 결단하고 간택한다.”361)라고 하였다. 대저 초가삼간을 짓고자 해도 대패, 먹줄, 도끼, 자귀, 자 등 연장이 없으면 짓지 못하거늘, 하물며 원각圓覺의 대가람을 짓는 사람이 만드는 이치를 따르지 않고 성공할 수 있겠는가? 작은 일을 하고자 할 때에도 잘못되어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하여 그 이치를 생각해 알려 하고, 알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묻고, 그래도 분명히 알지 못하면 다시 다른 지혜로운 사람에게 물어 기어코 잘못되지 않고 성공을 거두고자 한다. 그런데 현묘한 불도에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개 소홀히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자세히 길을 결택하여 공부하는 이는 보지 못하였다. 이와 같아서야 공부를 망치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아, 조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대저 무상無常을 경계하고 대사大事를 깨달아 밝히고자 하는 이들은 급히 스승을 찾지 않으면 어떻게 바른 길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일진화一塵話

011_0659_a_01L道眼全恃他力之說一向誦持佛號望佛接濟者
011_0659_a_02L到功極皆被魔攝余亦見聞證過其數甚多夫欲発心修
011_0659_a_03L而誤落邪魔悲夫祖師云念者憶持不忘也又云念佛
011_0659_a_04L若不念念非眞念又云返照不昧爲正又云守本眞心勝念
011_0659_a_05L十方諸佛我若誑汝當來堕十八地獄汝不信我世世
011_0659_a_06L被虎狼所食如此等說豈是說議者耶達磨大師
011_0659_a_07L入唐土傳演最上乘法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不論
011_0659_a_08L長坐不卧一食卯齋不論禪定解脫不論持戒破戒僧
011_0659_a_09L俗男女見性即成佛若以誦經等餘外法妄爲佛法
011_0659_a_10L殺却無罪過又云栴多羅見性成佛不論作殺生業
011_0659_a_11L縱作業不同他人業拘不能白衣見性成佛不論淫欲
011_0659_a_12L有餘習亦不相訪洪州云善亦是心不可將心還
011_0659_a_13L修於心惡亦是心不可將心還断於心牛頭禪師云心無異心
011_0659_a_14L不断貪淫故善知識牧牛有八十一行自佛行梵行
011_0659_a_15L至有殺者婬酒等行而道眼明白亦無所碍故潙山禪
011_0659_a_16L師云只貴正眼不貴行李處故此法門逈出三乘汎學
011_0659_a_17L實不可思議古有習小乘戒律者皆誹謗禪行
011_0659_a_18L如螗螂捍轍斥鷃笑鵬置之莫論且戒有大小有理與
011_0659_a_19L有作與無作盖初発圓心從師聽受名爲作戒納法居懷
011_0659_a_20L謝徃訖未來心住實相名爲無作戒十重波羅夷四十八
011_0659_a_21L輕垢名爲事戒即梵網經也貪欲即大道嗔恚亦復然
011_0659_a_22L如是三法中具一切佛法廣說諸法持犯無二名爲理戒
011_0659_a_23L即諸法無行經也如菩薩戒序云大乘以濟物利
011_0659_a_24L人爲懷不同小乘局執事相如末利夫人惟酒爲戒仙豫

011_0661_b_01L
이 ‘◯’을 두고 이것이라고 한다면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격이요, 이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머리를 끊고 살고자 하는 격이니, 여기에 이르러 어떻게 생각으로 접근할 수 있겠는가. 고인이 “생각하고자 하나 생각할 수 없어 그 자리를 밟을 때 만 리 하늘에 구름이 없어 늘 드러나 있다.”362)이요,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은 눈에 가득 아름다운 풍광이다.”라고 한 것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앙산仰山 화상은 “깨달음은 없지 않지만 제이두第二頭363)에 떨어짐을 어이하리오.”라고 하였으니, 이는 반쯤만 말한 것이다. 수 산주修山主는 “알면 매우 기특한 일이지만 알지 못해도 인정한다.”라고 하였으며, 대혜大慧 선사는 5백 길 꽃과 버들 우거진 거리요 2천, 3천 곳 풍악 울리는 누각이다.”라고 하였으니, 여기에 누가 주둥이를 댈 수 있겠는가. 주둥이를 댄다면 나에게 주둥이 댄 곳을 도로 가져다 보여 달라. 한 사람이 나와서 이르기를, “그 또한 귀를 막고 요령을 훔치고 몸은 숨겼으나 그림자는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면, 즉시 “네가 어느 곳에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라고 하리라. 일러 보라.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 도리어 맞는 말인가?
또 지금 푸른 벼랑은 깎아지른 듯 솟았고 소나무 삼나무는 푸른빛으로 우거졌으며,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안개와 구름은 피어올랐다 갰다 하고, 온갖 새들은 지저귀며, 들판은 아득히 드넓고 바다에는 파도가 일며, 경물은 어지러이 펼쳐져 사철에 따라 모습이 바뀌니, 이 중에 또한 불법이 있는가?
경에서 “삼계가 오직 마음이다.” 하였고, 또 고인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달빛 비친 물가가 진심眞心을 나타내 보이고, 노란 국화와 푸른 대나무가 묘법妙法을 드러내 밝힌다.” 하였으며, 또 “분명하고 분명한 백초百草364) 위에 분명하고 분명한 조사祖師의 뜻이로다.” 하였으니, 일러 보라. 어느 것이 진심과 묘법을 드러내 밝힌 것이며, 어느 것이 조사의 뜻이며 불법인가? 만약 없다면, 불조佛祖가 어찌 거짓말로 사람을 속였으리오. 이미 사람을 속이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고인이 말하였다.

一不造二不休            일단 일에 손을 댔으면 끝까지 해야 하니365)
一拳拳倒黃鶴樓           한 주먹으로 쳐서 황학루를 거꾸러뜨리고
一蹋蹋飜鸚鵡洲           한 발길로 차서 앵무주를 엎어 버린다.
有意氣時添意氣           의기 있는 곳에 의기를 더 보태고
不風流處也風流           풍류 없는 곳에서 풍류를 즐긴다.

그러나 이 또한 호떡을 눌러 기름을 짜는 격이라 크게 수고로울 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한 승려가 묻기를 “어떤 것이 변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하니, 고덕古德이 “해가 동쪽에서 떠서 밤에 서쪽에서 진다.” 하였다. 또 한 승려가 앞의 질문을 하니, 고덕이 손으로 물이 흘러가는 시늉을 하였다. 그 두 승려가 모두 깨달았다.
일러 보아라.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 또한 단 복숭아와 감은 먹지 않고 산을 돌아다니며 신 배를 따는 격이니, 허물이 적지 않고 낭자狼藉366)가 적지 않도다. 그렇다면 필경 어떻게 해야 분명히 알겠는가. 우선 아래의 주각注脚을 들어 보라.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이르노라.
“조상이 똑똑하지 못하여 앙화가 자손에게 미치도다. 30년 뒤에 잘못 들어 말하지 말라. 쯧쯧.”

011_0659_b_01L大王惟利與慈行利物爲戒曷於法界强分强域曇無
011_0659_b_02L䜟菩薩戒本云畧有二事失菩薩戒一捨菩薩願
011_0659_b_03L二增上惡心增上惡心者妄說人法二空未得謂也除是
011_0659_b_04L二事若捨此身戒終不失如此等是大乘戒也如云
011_0659_b_05L丘爲木石所壓若折木鑿土而如今人不知小戒條
011_0659_b_06L分如何大戒開遮又如何設知有作與事戒又不知有
011_0659_b_07L無作與理戒徒尙浮秕云持佛戒亦置之莫論
011_0659_b_08L磨大師云觀心一法㧾攝諸行古德云心地虛曠
011_0659_b_09L無滯局便是布施心地淸淨無鄙屑便是持戒
011_0659_b_10L地恬淡無是非便是忍辱妙寂之理照無間断便
011_0659_b_11L是精進廓然無靜鬧便是禪定明徹無智愚便
011_0659_b_12L是智慧又古人云不定一法是不定一法非斥忘謀
011_0659_b_13L捨此取彼并是執縛自繩若悟大道之人不見
011_0659_b_14L一法是何有一法非達磨大師云仁義禮智信
011_0659_b_15L爲規域大小乘基情名爲規域生死湼槃名爲
011_0659_b_16L規域不発凡夫心不発聲聞心不発菩薩心乃至不
011_0659_b_17L發佛心始名出規域外又云若人犯罪堕地獄
011_0659_b_18L見己之法王即得解脫又云悟在須臾何煩皓
011_0659_b_19L六祖大師云前念迷衆生後念悟即佛又古
011_0659_b_20L人云如龍換骨不改其鱗凡夫回心作佛不改其
011_0659_b_21L故此法門最尊最貴百千三昧無量妙義
011_0659_b_22L不離當人一念心塵古人云此一乘法聞而不信
011_0659_b_23L結佛種之因學而未成猶盖人天之福况聞而
011_0659_b_24L信學而成者乎豈有志乎修行者捨此他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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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보이다(示衆)
대저 참선이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단지 자기 집 속에서 자기 주인공을 분명히 보아서 외물外物에 뒤섞이지도 않고 생사에 끌려가지도 않아 홀로 우뚝하고 명백하게 드러나고 평안하여 속박된 것도 아니고 해탈한 것도 아니고 번뇌도 아니고 열반도 아니다. 종일 옷을 입어도 한 오라기 실도 몸에 걸친 적이 없고, 종일 밥을 먹어도 한 톨의 쌀도 씹은 적이 없으며, 심지어 화복과 생사가 나뉠 때에도 언제나 이와 같이 한가로워 아무런 일이 없다.
이는 일을 마친 사람이니, 일을 마친 사람의 분상에서는 때로는 부처와 중생, 하늘과 땅을 가지고 하나의 작은 티끌로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도록 내맡겨 두기도 하며, 때로는 모든 것들의 자리를 뒤바꾸기도 하여 일체에 자유자재하니, 이를 부사의대용不思議大用이라 하며, 자재해탈이라 한다. 해탈할 생사도 없고 증득할 열반도 없어서 임운등등任運騰騰하여 인연 따라 걸림 없이 사니, 이것은 진실하고 명백한 하나의 본래면목이 안락하고 쾌활하며 명묘明妙하게 수용受用하여 생사에 오고 가는 것이 마치 문이 열려 사람이 나가는 것과 같아서 천당과 불찰佛刹에 모두 자기 마음대로 가서 더 이상 몽환夢幻 같은 몸과 마음의 괴로움에 속박되는 일이 없다. 이는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지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에 따라 고양이를 그려서367) 이러한 경지를 밟도록 하라. 껄껄!
대답한 법문(答話)
“『선요禪要』에서 ‘어떠한 것이 진실로 참구하고 진실로 깨달은 소식입니까?’ 하니, ‘남쪽 산에 구름이 일고 북쪽 산에 비가 온다’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입니까?”
“비유하면 자벌레가 한 자를 갈 때 한 번 구르는 것과 같다.”
“고인이 ‘어떻게 견성합니까?’ 하자, ‘허공이 말할 때를 기다려라’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이치입니까?”
“내가 귀 먹었을까 걱정하느냐? 도리어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목소리를 더 낮추어라.”
“모르겠습니다.”
이에 당부하기를, “이제부터는 날마다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하여 다시 소리를 높여서 한 번 묻고 소리를 낮추어 한 번 묻고 가만히 서서 들어 보면 절로 한 곳에서 말해 주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011_0660_a_01L若論叅究行門如僧問趙州狗者還有佛性也無
011_0660_a_02L趙州云蠢動含靈皆有佛性趙州因甚道
011_0660_a_03L着衣喫飯屙屎放尿侍奉教導看讀迎
011_0660_a_04L乃至行住坐卧一切時處廻光返照擧來擧去
011_0660_a_05L疑來疑去察而復觀磨而復硏將思量世間
011_0660_a_06L塵勞之心回來抵在無字上如是用功日久月
011_0660_a_07L自然契悟如療飢者一匙食未能頓飽學書者
011_0660_a_08L一卷紙未能成文辨堅實心始終莫異其道易
011_0660_a_09L古人云如猫捕鼠者謂心眼不動也如鷄抱
011_0660_a_10L卵者謂煖氣相續也擧話頭時如逆水張帆
011_0660_a_11L冷淡無滋味或頭熱悶亦不是他家事但提撕
011_0660_a_12L話頭爲妙最是蘊素精神不麁急不惰緩
011_0660_a_13L惺惺寂寂蜜蜜緜緜氣息如常飢飽準平
011_0660_a_14L眼目自好精彩脊樑不妨竪起人生一世如驥
011_0660_a_15L過隙倐如草露危如風燈用盡百計艱辛
011_0660_a_16L到頭一堆枯骨念此無常迅速生死大急急如
011_0660_a_17L救頭燃生不知來處死不知去處而業識茫茫
011_0660_a_18L關紛綸薪火蕩搖四生六趣胎孕于胸中
011_0660_a_19L不可畏哉若未有眞正叅學如何抵敵生死
011_0660_a_20L業力如此分明想得工夫不浪失如上連絡提
011_0660_a_21L皆是佛祖誠實明誨不敢以一言一句相欺
011_0660_a_22L前日之教不敢辜負玆以愚衷然以懶惰所
011_0660_a_23L秪是提說意相不務工硏文字說亦無盡
011_0660_a_24L畧如右藤庵長老講法語以此塗糊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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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 곳과 불조의 안신입명하는 곳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세 번 말해 보라.”
세 번 말하고 나자, “이미 답했다. 알겠는가?”라고 하니,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을 하기 이전은 어떠했는가?”
“모르겠습니다.”
“세 번 말을 마친 뒤에 도리어 하나도 없고, 묻기 이전에 안신입명하는 곳을 갖추고 있다. 비록 이러하나 다시 30년 뒤를 기다려야 한다.”
“고인이 ‘어떤 것이 부처님의 경계인가?’ 하자, ‘허공이 잠에서 깨어 유정有情·무정無情을 다 씹어 삼켜 더 이상 씹어 먹을 게 없어 배가 고파서 사방으로 달려간다’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이치입니까?”
“급히 항마진언을 외라.”
항마진언을 한 번 외니, “만약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면 앙화殃禍가 생긴다.” 하고, 무어라 대답하려 하자, 등긁개368)로 때리며 이르기를, “무슨 소견을 일으키느냐?” 하였다.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 수선사 창건에 대한 기문(陜川郡伽倻山海印寺修禪社創建記)
나는 산수 유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산천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런데 선인仙人이 시해尸解한369) 곳이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인데, 아직 유람하지 못해 마음에 아쉬웠다. 기해년 가을에야 해인사에 와서 장판각을 열람하고 사우寺宇를 둘러보았으며, 홍류동 계곡에서 선인의 자취를 탐방하면서 형해形骸를 잊고 유유자적하였다.
하루는 한 선화자禪和子가 나에게 말하였다.
“지금 천자께서는 성군이시라 지극한 인덕이 넘쳐서 그 은혜가 선림禪林에까지 미쳐 장경을 인쇄하고 당우를 중수하게 하시는 한편 수선사修禪社를 세워 참선하는 사람을 거처하게 하라는 칙명을 내리셨으니, 옛날 성왕들이 나라에 복을 주고 세상을 보우하였던 일을 본받으신 것이다. 이에 화주 범운梵雲이 사내의 스님들과 함께 일신의 고생을 잊고 부지런히 일하여 이해 5월에 시작하여 다섯 달 만에 낙성하였으니, 그 공로를 세운 것이 이토록 위대합니다. 스님은 문장을 짓는 분이니 기문을 지어 이 사실을 후세에 길이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내가 “이런 일은 하지 말라.” 하니, 그 선화자가 말하였다.
“옛날 석가모니가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부촉, 대대로 전수하여 달마에 이르러 중국으로 왔고, 또 석옥石屋에까지 이르렀는데, 우리 동국의 태고太古가 석옥의 법을 전해 받았고, 또 대대로 전수하여 청허淸虛에 이르렀으니, 청허는 석가모니의 63세 법손이 됩니다. 그 시절에는 산림의 납자들만 견성하여 도사導師가 된 게 아니라

011_0660_b_01L泥牛吼

011_0660_b_02L
夫叅禪者第一怕怖着無常迅速生事死
011_0660_b_03L故古人云今日雖存明亦難保緊緊念着
011_0660_b_04L無放逸次於一切世事濶若無些小干意寂然
011_0660_b_05L無爲乃可耳若乃心境相蘯如薪火相交紛紛
011_0660_b_06L汨汨過了歲月此非特有妨於擧話分上而黑
011_0660_b_07L業漸增矣最要的無心於事無事於心則心智
011_0660_b_08L自然淸瑩萬類皆隨心造作善生天堂
011_0660_b_09L現地獄狼惡成豺狼愚蠢作蚯蚓驚忙就蝴
011_0660_b_10L故古人云只因一念差現出萬般形夫虛其心
011_0660_b_11L惺惺粹一不搖不昏曠然虛豁更向何處覔生
011_0660_b_12L何處覔菩提何處覔善惡何處覔持犯
011_0660_b_13L這是活鱍鱍明歷歷底透頂透底不隨生生
011_0660_b_14L不隨滅滅不作佛不作祖大包沙界小入微塵又能
011_0660_b_15L佛能生又非大小非方圓非明暗自在融通徹底恁麽
011_0660_b_16L非小分强做的道理夫叅此玄門者常務返照究之
011_0660_b_17L心惺蜜無間断究之至切至於無用心可究之地
011_0660_b_18L然心路忽絕踏着本命元辰秪這本地風光本自
011_0660_b_19L具足圓陀陀地無欠無剩到恁麽時應耳 [1] 如百
011_0660_b_20L千日月照躍十方應眼 [2] 如醎海風浪聲振須彌
011_0660_b_21L不是强爲也這箇道理秪爲太近所以人自不得體解
011_0660_b_22L凡欲叅玄者着實理會得返照法式分明形容
011_0660_b_23L得細審不鹵莽用意行之行之功熟實相之理
011_0660_b_24L自現太古和尙云才擧箭沒石淸虛和尙云如蚊子

011_0663_a_01L위로 천자로부터 아래로 왕공王公·대인 및 초야의 현인·달사達士들까지도 무생無生의 이치를 사무치게 증득하여 좌탈입망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 공부를 결택決擇하기를, 마치 주린 사람이 밥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하여 그 형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와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법을 보기를 흙덩이처럼 여기고 혜명慧命을 이어가는 것을 보기를 아이 장난처럼 여기며, 심한 경우에는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슬프다! 후세 사람들이 정법안장의 법을 듣고자 하나 누구에게 듣겠습니까? 이런 때에 수선사를 창건한 것은 참으로 화중생련火中生蓮이니, 이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지 않아서는 더욱 안 됩니다.”
내가 “이런 일은 하지 말라.” 하였다. 그 선화자가 말하였다.
“정법안장이란 것은 과거 부처님의 혜명이고, 수선사를 세운 것은 지금 천자의 칙명이니, 만약 시종 한결같이 준수하지 않고 폐지하거나 변혁한다면 이는 신명神明에게 벌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인륜 도의道義에도 죄를 짓는 것이니, 누군들 감히 경계하고 두려워하지 않아 이 일을 하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만약 이 사실을 후세 사람들에게 밝게 보여 주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이 이 수선사가 이토록 엄중한 것임을 어떻게 알고 한결같이 준수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또 감히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스님은 굳이 사양하지 마시고 글을 써 주십시오.”
내가 정색하고 말하였다.
“비루하구나! 그대의 견해여. 그대는 기록이 있는 것이 기록이 있는 것인 줄만 알고, 기록이 없는 것이 기록이 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모르니, 한 사람도 수선修禪하기 전에 십류十類의 중생들이 이미 일시에 견성했다는 것을 어찌 알겠으며, 하나의 공안을 들기도 전에 산하대지와 명암明暗·공색空色으로부터 삼실·대바늘 같은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일체가 이미 일시에 큰 광명을 놓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또 이 수선사의 터를 닦기도 전에 이미 일시에 수선사를 완공했으며, 문설주를 만들 목재를 마련하기도 전에 이미 일시에 그 사실을 상세히 기록했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어찌 종이와 먹으로 굳이 글을 써서 정법안장을 참구하는 수선사에 군더더기 혹을 붙이고 지분脂粉을 바를 필요가 있겠는가?”
그 선화자가 흠칫 놀라 자리를 비켜 앉으며 말하였다.
“스님의 말을 들으니, 도를 조금 알았다370)고 감히 자처하지 못하겠습니다만 감히 묻겠습니다. 정법안장은 무엇입니까?”
“단지 이것이다.”
“이것이란 무엇입니까?”
“가야산 빛이 푸른 하늘에 꽂혔구나.”
양구良久하고 말하였다.
“곧바로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곳곳마다 미친 견해일 뿐이며, 비록 말을 듣자마자 분명히 알았다 하더라도

011_0661_a_01L上鐵牛向下嘴不得處和身透入擧話頭叅究者
011_0661_a_02L當以斯言爲指南若論日月萬行胸次空明無物
011_0661_a_03L六根虛豁地者只這是寬曠的便是布施只這
011_0661_a_04L是淨澄地便是持戒只這是虛柔地便是忍辱只這
011_0661_a_05L是本明常現不昧底便是精進只這是明寂不乱
011_0661_a_06L便是禪定只這是明寂了了擇法觀空底本自無癡
011_0661_a_07L分別諸法相而不動底乃至隨順世緣無障無碍
011_0661_a_08L便是智慧故達磨大師云觀心一法摠攝諸行
011_0661_a_09L但務培養根株莫愁其枝不茂但知見性作佛
011_0661_a_10L愁佛無神通三昧今人多分不得叅學眞正道人
011_0661_a_11L本色衲子於佛法中法理不明道眼不實都是亡羊岐
011_0661_a_12L如醉如夢過了一生悲夫洞山和尙所謂袈裟下
011_0661_a_13L失人身是苦者此也夫行道路者初步不得其正
011_0661_a_14L里之遠徒費功力不如不步之爲喩故圭峰
011_0661_a_15L禪師云決擇分明悟理應修夫欲起三間茅屋
011_0661_a_16L不得準繩斲斫尺量之巧且不成就况造得圓覺
011_0661_a_17L大伽藍者不由其造之之理而成功乎哉欲造乎小
011_0661_a_18L則恐其差錯不成思得其理未者問於人未分
011_0661_a_19L更問於他有智人期不差錯就功而欲造詣者乎玄
011_0661_a_20L妙之道者擧是率爾泛忽未見其仔細決擇用功者
011_0661_a_21L如此而不顚功敗績者幾希矣嗚呼可不戒哉
011_0661_a_22L夫欲戒無常悟明大事者不急尋師將何以得其
011_0661_a_23L正路哉

011_0661_a_24L一塵話

011_0663_b_01L역시 화살은 이미 서천西天을 지나갔다. 이렇다 하면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격이요, 이렇지 않다 하면 머리를 끊고 살고자 하는 격이니 일러 보라. 여기에 이르러 선禪은 도리어 어떻게 참구하겠는가? 억! 오늘 부질없는 말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 형해를 잊는 의취意趣에 방해되는구나.”
선화자가 이 자리에서 한 얘기를 서술하여 수선사 기문으로 삼기를 청하기에 기록하노라.
대한大韓 광무光武 3년 기해년(1899) 9월 하순에 호서 승려 경허는 삼가 쓰노라.
동래군 금정산 범어사 계명암에 선원을 창설한 데 대한 기문(東萊郡金井山梵魚寺鷄鳴庵創設禪社記)
『화엄경』에서 “보살마하살은 크게 자慈·비悲·희喜·사捨371)으로 산하대지를 비추어 보는 것이 마치 장검을 빗겨 든 것과 같다면, 누가 감히 그 앞에 마주 보고 서리오. 이와 같은 근골이 있어야 비로소 성현들 속에 들어가서 자기와 남을 아울러 이롭게 할 수 있다. 법문은 단지 이 한 가닥 길로 갈 뿐이지 별다른 도리는 없다.” 하였으니, 여기가 또 머무는 곳이다.
혼해 장로混海長老가 성월 선백惺月禪伯을 청하여 계명암 주지를 맡게 했는데, 범어사 대중들이 의논하여 이 계명암에 선원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각 방房과 암자에서 38두락의 논을 거두어 수선사에 주었고, 또 혼해·성월·담해湛海·화월華月 등 스님들과 동래부東萊府에 거주하는 이씨李氏 보현화普賢華, 초량草梁에 거주하는 김씨金氏 지명화智明華가 산야에 모연하여 돈 4천여 전錢을 거두어 논 42두락을 사서 선원에 주었고, 또 본사本寺의 토굴에 거주하는 김씨 각심화覺心華가 논 2두락을 헌납하여 선원에 주었다. 이상 도합 82두락은 그 수입을 단연코 수선사의 대중에게만 공양을 대고 달리 쓰지 않는다. 이 규정을 영구히 준수하기로 했다.
본사의 모든 스님들과 속가 단월들의 공덕과 신심은 모두 불가사의한 것이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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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道這箇是頭上安頭若道這箇不是断頭覓活
011_0661_b_02L到這裏却如何湊泊古人云欲思不思踏破時萬里
011_0661_b_03L無雲常現露也是閑言長語又云雖有千尺寒松
011_0661_b_04L無抽條石笋要石笋作甚麽又云空刼已前一壺風
011_0661_b_05L威音那畔滿目烟光者又是贅疣跂駢了也仰山
011_0661_b_06L和尙云悟則不無爭奈爲第二頭道得一半了也修山
011_0661_b_07L主云會得甚奇特不會也相許大慧禪師云四五百
011_0661_b_08L條花柳巷二三千處管絃樓誰能揷嘴得揷嘴了
011_0661_b_09L還我揷嘴處看有人出來云也是塞耳偷鈴蔵身露影
011_0661_b_10L即云爾向甚處得這消息來且道如此下語還諦當也否
011_0661_b_11L且也現今蒼壁峭絶松檜森翠澗水嗚咽烟雲舒卷
011_0661_b_12L百鳥和鳴廣野緜邈大海汹湧景物紛羅四時變態
011_0661_b_13L中亦有佛法也無經云三界惟心又古人云風柯月渚現露
011_0661_b_14L眞心黃花翠竹宣明法妙法又云明明百草頭明明
011_0661_b_15L祖師意且道那個是現明底眞心妙法那個是祖師意
011_0661_b_16L佛法若無也佛祖豈是妄語欺人旣不欺妄又且如
011_0661_b_17L何和會得古人云一不造 [1] 二不休一拳拳倒黃鶴樓
011_0661_b_18L榻榻飜鸚鵡洲有意氣時添意氣不風流處也
011_0661_b_19L風流亦將胡餅壓汁的相似大是勞而無功僧問
011_0661_b_20L如何是不遷變意古德答曰日出東方也落西 [2] 又僧作
011_0661_b_21L前問古德以手作流水勢二僧皆悟去且道悟個
011_0661_b_22L甚麽也是不喫甘桃杮緣山摘醋梨漏逗不少
011_0661_b_23L狼藉不少然則畢竟如何諦當得去且聽下文
011_0661_b_24L注脚噓一噓云祖稱不了殃及子孫三十年後莫

011_0664_a_01L성월 선백이 주지로 있으면서 개도開導하고 권화勸化한 그 공덕이 더욱 크다. 이후로 팔도의 선객 납자들이 이 선원에 들어와 포단蒲團을 펴고 화롯가에 둘러앉아 참선할 터이니, 여기가 또 머무는 곳이다.
이상 세 머무는 곳이 같은가, 다른가? 다르다고 한다면 어찌 같은 적이 있었겠으며, 같다고 한다면 어찌 다른 적이 있었겠는가? 소뿔은 있다 할 필요가 없고, 토끼 뿔은 없다 할 필요가 없다. 일러 보라! 필경 어떠한가?
고인이 “도안道眼이 밝지 못하면 물 한 방울도 소화하기 어렵다.” 하였으니, 이 선원에서 참구하는 이들은 광음은 덧없이 흘러가고 사은四恩372)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광무光武 7년 계묘년(1903) 늦봄 하순에 본사 금강암에 머무는 경허 성우는 삼가 쓰노라.
범어사 금강암에 칠성각을 창건한 데 대한 기문(梵魚寺金剛庵七星閣創建記)
대저 대지의 물건 중에서 견고한 것은 금강이요, 하늘에 빛나는 별 중에서 추요樞要는 북신北辰이다. 추요인 북신의 조화로 인간의 수명과 복을 증장하고, 견고한 금강의 삼매로 세간을 벗어나는 나루터와 다리를 개척하니, 금강암에 북신전北辰殿이 있는 것은 그 관계가 마치 아교와 칠373) 같고, 산봉우리와 이끼 같아서 어느 한쪽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제 탱화를 그려서 오로지 인천의 복전이 되는 독성獨聖으로 삼아 모셔 두었으니, 이 인연이 장차 중생들을 두루 이롭게 하는 것은 마치 항하사처럼 한량없으리라.
본읍本邑 초량草梁에 거주하는 청신녀 만원화滿願華 김씨가 그 아들 배정헌裵正憲을 위하여 칠성각을 창건하고 칠성상을 설치하여 공양을 올렸으니, 의당 그 아들 배정헌의 길경吉慶이 성만成滿할 것임을 알겠으며, 재물을 보시하여 칠성각 완공을 도운 다른 신도들도 어찌 그 발원을 성취하지 못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공양답供養畓을 바치고 일용의 사물四物374)을 장만해 준 것은 그 공덕이 바다처럼 큰데 이 모두가 화주 스님 월송月松의 법력이다.
내가 20년 전에 사불산四佛山의 절들에 노닐면서 금정산이 승지勝地인데 금강암이 그중에서도 요지라는 말을 듣고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구경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미 늙었다. 세상의 영고榮枯를 다 겪은 터라 모든 세념世念이 불 꺼진 재처럼 식었다. 가야산으로부터 납의를 걸치고 이곳으로 찾아왔더니, 마침 월송 대사月松大師가 주지로 있으면서 칠성각 조성을 끝마쳤다. 대사는 본래 속진을 벗어난 선덕禪德이라 자기가 거처하는 방에 녹라헌綠蘿軒이란 편액을 건 것은 송라松蘿의 그윽하고 한적한 정취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대사와 만나 얘기를 마치기도 전에 마음이 서로 맞아서

011_0662_a_01L錯擧

011_0662_a_02L示衆

011_0662_a_03L
夫叅禪者不是特地之事秪是返照自家屋裡
011_0662_a_04L得自家主人公明白不被外物叅雜不爲生死互換
011_0662_a_05L孤逈逈地明日日地平妥妥地非繫縛非解脫非煩
011_0662_a_06L非湼盤終日着衣未曾掛一縷絲終日喫飯
011_0662_a_07L曾齧一粒至於禍福生死之際亦皆如是任運
011_0662_a_08L無事此是了事人於了事人分上有時將佛與衆生
011_0662_a_09L乾坤大地作一微塵用有時任他各住其位有時易
011_0662_a_10L其位用得一切自在是名不思議大用也亦名自在
011_0662_a_11L解脫也無生死可脫無湼盤可證任運騰騰
011_0662_a_12L緣無碍 [1] 是實實明明底一段本來面目安樂
011_0662_a_13L末日摘妙受用徃來生死如門開人出相似天堂佛
011_0662_a_14L摠自隨意更無夢幻身心苦相之可拘繫
011_0662_a_15L是本有之事不是强爲者也請依此畵猫兒
011_0662_a_16L得恁麽田地也呵呵

011_0662_a_17L答話

011_0662_a_18L
擧禪要云如何是實叅實悟底消息云南山
011_0662_a_19L起雲北山下雨是甚麽道理譬如尺蠖虫
011_0662_a_20L一尺之行一轉

011_0662_a_21L
古云如何得見性去待虛空能言時此理如何答
011_0662_a_22L患我重聽麽還會麽不會更低聲着
011_0662_a_23L不會囑云自今以後日日向無人處更高聲
011_0662_a_24L問一着低聲問一着佇立聽之自有一處說破者

011_0664_b_01L형해形骸를 벗어난 취미가 서로 통하였다.
대사가 노고하고 신도들이 불사를 성취한 일에 대하여, 모두들 “그대는 글을 짓는 이니, 기문을 지어 주시오.” 하기에 내가 수락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허전한 것이 있다. 북신은 하늘에서 형상을 이루고 전각을 세워서 형상을 안치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금강삼매란 것은 과연 어떠한 것이며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가? 슬프다! 성인의 시대와 더욱 멀어져 출가한 사람들이 오로지 자기의 일을 체득해 알지 못하여 우리 부처님 금강의 바른 정定이 끊어져 그 명맥이 전해지지 못하니, 내가 금강암의 기문을 지으면서 온갖 감회가 함께 일어난다.
범어사 계명암 창건에 대한 기문(梵魚寺鷄鳴庵創建記)
삼가 살펴보건대 본사의 『사적기』에 “지시계명방知時鷄鳴房 다섯 칸을 동쪽 기슭에 설치했다.” 하였고, 또 세상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에 “닭이 이곳에서 울었고, 암자 동쪽에 닭의 화석과 닭의 발자국이 있다.” 하니, 암자 이름을 계명이라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10년 전 계사년(1893) 3월에 우화 장로雨華長老와 그 제자 혼해 강백混海講伯375)이 금봉 노사金峯老師와 함께 큰 원력을 일으켜 계명암의 옛터에 다섯 칸 정사를 세워 여덟 달 만에 낙성하고 탱화를 그려서 봉안하였다. 그리고 4년 뒤인 병신년(1896)에 또 칠성각 세 칸과 요사채 네 칸을 짓고, 칠성·독성·산신 등의 탱화를 그려서 봉안하였으나 암자의 일이 바빠 지금까지 8년이 지나도록 아직 그 사적을 기록한 글이 없다.
내가 남방을 다니다가 금강암에 머물고 있었는데, 주지인 성월 선백惺月禪伯376)이 나에게 그 사적을 기록해 주길 청하기에 내가 좋다고 하고 다음과 같이 쓴다.
대저 우리의 가풍은 마른 똥막대기377)처럼 덧없는 까닭이요, 우리 부처님의 정법 교화가 사라지고 없어지게 되는 까닭이다.
이 글을 써 내려가서 이 대목에 이르러 감회가 일어 재삼 탄식하노라니, 한 사람이 곁에서 발끈 화를 내며 말하였다.
“마른 똥막대기와 쓸모없는 나무토막은 보망과 운대라 찬탄하고, 장엄한 사찰은 만촉처럼 덧없다고 폄하하니, 어쩌면 말이 이리도 이치에 어긋나는가?”
“그러나 그대의 견해는 좁다. 어찌하여 섭 공葉公의 호오好惡378)가 울었던 승지에 청정한 사우를 세우고, 부처님 탱화를 그려 모시고, 향을 사르고 등불을 밝히고 종과 북을 울리면서 선남자·선여인들이 삼보를 받들어 모시고, 삼보에 공양을 올려 출세간의 참 인연을 지음에 있어서랴. 의당 여러 스님들의 공덕과 단월들의 선근은 항하사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을 터이나, 시종일관 부지런히 노력하여 이 일을 이룬 이는 혼해 강백이다. 그는 무궁한 후세에 길이 은혜를 베풀었을 뿐 아니라 선사先師의 유지를 원만히 성취했으니, 더욱 가상한 일이다.”
이에 그 사람이 기뻐하면서 “선재善哉라 이 말이여!” 하기에 나도 모르는 결에 흥미가 진진하여 붓을 놓고 차를 달여 마시고 다시 게송 한 수를 읊노라.

拈來何事政堪嬴           세상에 무엇인들 쓸모없는 것 있으랴.
不托端宜土椀成           수제비는 질그릇에 담는 게 제격이지.
穿入鷄巖藏一笑           계명암 바위 뚫어서 한 웃음 감추노니
他年天畔化雷聲           훗날 하늘 저편에서 우레 소리 되리라.

대한大韓 광무光武 7년 계묘년(1903) 늦봄 하순에 경허 성우는 삼가 쓰노라.
범어사 수선사 방함록 서문(梵魚寺修禪社芳啣)
대개 몸이 선방에 들어오고 이름이 방함록에 실리는 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그러나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전하여 후인들로 하여금 사모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근기가 미열하고 정법은 흐려졌으니, 정법안장을 보호하여 유통하게 하는 것은, 실로 역량이 있는 형제들의 힘을 의지해야 한다. 하물며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크니, 어찌 그럭저럭 한평생을 헛되이 보낼 수 있으리오.
만약 진실로 참구하고 진실로 깨닫는다면 탐진치 번뇌의 마음이 모두 해탈이요, 갈대꽃, 버들 솜 등 만물마다 진리가 드러나 있으니,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어찌 마칠 수 없으리오.
대저 진정으로 참학하는 이는 범상하고 흐리멍덩하지 않으니, 설사 정식情識의 속박을 벗어나 초연히 청허淸虛하다 해도 정결함이 마음을 수고롭게 함을 면치 못하였으며, 그리고 마음의 빛이 혁연赫然히 빛나서 신령한 근원을 환히 비추었다 하더라도 겨우 반쯤밖에 드러내 보이지 못한 것이다.
고인이 “주장자를 어깨에 메고서 남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 천 봉우리 만 봉우리 속으로 들어간다.”라고 했는데, 설사 이와 같다 하더라도 단지 이렇게 갈 줄만 알고 이렇게 올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 고인이 “진중한 선재善財379)는 어디로 갔는가? 맑은 밤에 바람이 푸른 대숲을 흔드는구나.”라고 했으니, 비록 이와 같으나 어느 곳에서 이 소식을 얻었는가?
슬프다! 사람 몸은 얻기 어렵고 정법을 듣기 어려우니, 몸이 선방에 들어오고 이름이 방함록에 실린 것을 응당 스스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상좌들이여! 대중을 통섭하는 청규는 건화문建化門모든 대중은 부디 준수하고 봉행하여 법화法化를 유통하기 바란다.
대한大韓 광무光武 6년(1902) 10월, 동안거 결제일에 호서湖西 납자 경허 성우는 삼가 쓰노라.
청규淸規
일. 법을 연설하는 종사宗師와 열중悅衆 스님은 그 임무가 가볍지 않으니, 응당 식견과 안목이 높은 이를 가려 뽑아서 그 책임을 맡겨야 한다.
일. 대저 선방은 온 세상의 납자들이 와서 머물면서 도를 닦는 곳이니, 선방을 맡아 일을 보는 주승主僧은 잘 가려 뽑지 않으면 안 된다. 응당 그 자리를 서로 전해 줄 때 십분 잘 살펴야 하고, 함부로 용렬한 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용렬한 자는 주제넘게 그 자리를 맡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일. 결제한 뒤에는 방榜을 받아서는 안 되며, 또 입방入榜한 뒤 중도에 물러 나와서는 안 된다.
일. 패역悖逆하고 난잡한 자나 중병에 걸린 자는 방을 받아서는 안 되니, 법화法化를 손상하고 대중들에게 수고를 끼칠까 염려된다.
일. 총림을 운영하는 데는 사무를 처리하는 규례가 없을 수 없으니, 그 소임을 맡은 스님은 응당 태만하지 말고, 자기의 소임에 각별히 힘써서 대중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일. 진정으로 참학하는 이는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공부에 간단이 없어야 하니,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공부에 간단이 없기 때문에 구경에 생사와 열반의 그물과 조롱에 속박되지 않는다. 선상禪床에서 내려온 뒤에는 시끄럽게 웃고 떠들어 참구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일. 방부를 들인 뒤에 대중을 어지럽혀 화합하지 못하게 하는 이는 세 차례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으면 건추犍椎381)를 쳐서 축출한다.
일. 보청普請382)할 때에 빠져서는 안 되며 뒤처져서도 안 되고 늘 힘을 모아 함께 일을 해야 한다.
일. 술을 마시거나 음행을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깊이 경계하셨으니, 술을 마시거나 음행을 한 사람을 단연코 축출해야 한다. 그리고 의복은 6일이 되기 전에는383) 세탁해서는 안 된다.

011_0662_b_01L
自己安身立命處佛祖安身立命處同異
011_0662_b_02L說着三說了已答了也會麽不會未問
011_0662_b_03L此問已前是甚麽又道不會三說了後却無一
011_0662_b_04L未問已前俱有安身立命處雖然如是更待
011_0662_b_05L三十年後

011_0662_b_06L
擧古如何是佛境界云虛空星 [1] 眠了喫呑了有
011_0662_b_07L情無情更無可喫物飢走四處此理如何急誦降
011_0662_b_08L麽眞言一遍若少有遲滯禍事出擬議以養
011_0662_b_09L化柄打之云起着甚麽所見

011_0662_b_10L陜川郡伽倻山海印寺修禪社創建記

011_0662_b_11L
余嗜好遊山水者也遊得徧仙人尸解祖師創大伽
011_0662_b_12L幽顯之王以大願力助成大蔵經板者陜州之
011_0662_b_13L伽倻海印也而未得遊爲缺然歲己亥秋訪到閱其經繞其
011_0662_b_14L紅流洞裡探仙人之靈蹤放曠然忘其形骸矣
011_0662_b_15L日有一禪和子謂余曰

011_0662_b_16L
天子聖神至仁洽而惠曁乎禪林印經修宇又勅
011_0662_b_17L建修禪社居心學者倣前聖資福國祐世化士梵
011_0662_b_18L雲與一山雲水服勤勞忘身宰始是歲五月
011_0662_b_19L過五個月而落之其爲樹玄功之偉且大者有若是
011_0662_b_20L者也而師其文者也幸記之以垂示不朽也余曰
011_0662_b_21L爲是也禪和子曰

011_0662_b_22L
釋迦氏以正法眼蔵付囑迦葉傳至達磨來震
011_0662_b_23L又傳至石屋而我東國太古傳得石屋又傳至淸虛
011_0662_b_24L淸虛於釋迦氏爲六十三代孫也當是時也非特山

011_0666_a_01L
일. 조실祖室, 열중悅衆, 선백禪伯, 지전知殿, 지객知客, 원두園頭, 간병看病, 반두飯頭, 정인淨人, 서기書記, 전다煎茶, 채두菜頭, 시두柴頭, 별좌別座, 도감都監, 원주院主, 화주化主.
취은 화상의 행장取隱和尙行狀
내가 호서 지방에서 쓸모없는 몸으로 병을 조섭하면서 게으르게 지내 온 지가 20여 년이었다. 취은 화상取隱和尙의 덕향이 멀리까지 알려졌으나 남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찾아뵙고 마음의 티끌을 씻지 못하였는데 화상이 훌쩍 입적하시고 말았으니, 한스러운 마음이 유독 깊었다.
광무光武 4년 겨울, 운유雲遊할 뜻이 있어 조계산 송광사에 들렀다. 때는 마침 궁음窮陰384)이라 눈보라가 사납게 몰아치기에 선창禪窓 아래 이틀을 묵었다. 자응慈應·금명金明·자성慈城 세 사형제가 나에게 일렀다.
“우리 선사先師이신 취은 화상께서 시순時順385) 사이에 이룬 출세간의 도업은 비록 옛날의 조사에 비길 수는 없지만 근세에는 거의 보고 듣기 어려운 것입니다. 선사의 높은 덕행으로 볼 때 우리 제자들은 의당 행장을 지어서 후세에 길이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행장을 짓지 못한 것은 그럴 겨를이 없어서였습니다. 고명하신 스님께서는 문명이 평소 알려져 있고 선지禪旨도 깊으신데 마침 이곳에 오셨으니, 원컨대 스님의 한마디를 빌어서 우리 선사의 남긴 발자취를 빛내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해 주신다면 우리 선사의 행업行業이 우뚝이 후세에 전해질 뿐만 아니라 저희 제자들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청컨대 스님께서는 문필을 아끼지 말아 주소서.”
내가 재삼 사양했으나 그 청이 더욱 간곡하였다. 삼가 화상의 제자가 적은 기록을 살펴보건대, 화상의 휘는 민욱旻旭이고 법호는 취은이며 속성은 최씨崔氏이고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가경嘉慶 20년 을해년에 처음 경상도 봉화奉化에서 기식寄食하면서 그 이듬해 9월까지 남의 집을 전전하였다. 나이는 어렸으나 어른스럽고 과묵하여 노성老成한 풍도가 있었다.
화상은 14세에 속세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 북쪽에 있는 태백산 각화사覺華寺 태주 장로泰珠長老에게 의탁하여 삭발하고 계를 받고서 세연을 따라 환망幻妄 속에 산 것이 여러 해였으니, 보리도가 세간을 여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깨달았겠는가. 나이 불혹에 이르러 태백산 미륵암에서 초은 장로超隱長老를 찾아가서 옷깃을 여미고 법을 물어서 정안正眼을 결택, 스승과 제자의 도가 계합하여 10년 동안 초은 장로를 시봉하였으니, 응당 현묘한 경지를 얻었을 터이나, 화상은 자신을 숨기는 데 뜻을 둔 터라 사람들이 알 수 없었다.

011_0663_a_01L林衲子見其性而作導師也上自天子下至王公鉅人
011_0663_a_02L施及于草野賢達莫不徹證無生坐脫立亡故叅
011_0663_a_03L尋決擇如飢就食渇赴飮然勢莫得以遏之也
011_0663_a_04L降于今視正法如土塊指續慧命者爲兒戱甚者相目憎
011_0663_a_05L嫉之而至於靡所不至也嗚呼後之人雖欲聞正法眼
011_0663_a_06L蔵之說孰從而聽之乎於斯時也創修禪社也者
011_0663_a_07L爲火中蓮花也此尤不可不以記之而垂示不朽者也余曰
011_0663_a_08L爲是也禪和子曰正法眼蔵者先佛之慧命也建修
011_0663_a_09L禪社者今天子之勅命也若不一遵終始而廢之也
011_0663_a_10L革之也者此非特蒙譴罰於神祗抑亦犯罪逆於彝
011_0663_a_11L倫也孰敢不戒懼而爲是之爲哉雖然若不昭示後人
011_0663_a_12L後之人安能知此社之嚴重也有其若是而一遵之哉
011_0663_a_13L此又不敢不以記之而垂示不朽者也師其無得固止
011_0663_a_14L而可從事之也余正色曰鄙夫子之見解也而子知其
011_0663_a_15L有記之爲有記也而不知其無記之爲有記之爲愈者
011_0663_a_16L安知夫未有一人修禪而十類群生已是一時見性了
011_0663_a_17L未擧一則公案而山河大地明暗空色以至麻線竹
011_0663_a_18L已是一時皆放大光明了也又安知夫未開基也已是
011_0663_a_19L一時成禪社了也未具椳闑棧也已是一時記其事詳
011_0663_a_20L悉了也夫如是則豈可以爲紙墨之而贅疣脂粉於參
011_0663_a_21L正法眼蔵之禪社也哉禪和子悚然避席曰聽師之
011_0663_a_22L未敢自許聞道百也然敢問正法眼蔵是個甚麽
011_0663_a_23L秪這是又問曰云是者是個甚麽伽倻山色揷天
011_0663_a_24L良久云直下言前薦得未免觸途狂見縱繞

011_0666_b_01L
그 후 화상은 나이 68세 때인 계미년에 이르러 반야봉 아래 용수율와龍樹霱窩에서 10년 동안 우거하면서 흙덩이처럼 앉아 온갖 망상이 불 꺼진 재처럼 싸늘히 식고 홀연 돈오한 곳이 있었으니, 고인이 “사람이 물을 마심에 차고 따뜻함을 스스로 안다.”라고 한 것이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청허 선사淸虛禪師가 “차라리 천겁 동안 생사에 윤회할지언정 성인들의 해탈을 사모하지 않는 것은 선가禪家의 눈이요, 남의 시비를 보지 않는 것은 선가의 발이다.” 하였다. 화상은 발심할 때 돈오하리라 기약하여 깨달았고, 깨달은 뒤의 생애는 한 덩이 돌처럼 굳었으니 선가의 눈에 거의 가깝다 하겠으며, 청황보불靑黃黼黻386)과 같은 화려한 장식이나 관현의 악기와 같은 아름다운 음악에는 굳이 귀먹고 눈멀지 않아도 시비가 절로 끊어졌으니 선가의 발을 십분 갖추었다 할 만하다.
화상은 북쪽으로 묘향산에 들어가고 남쪽으로 지리산에 들어가 반평생 행적이 한가로운 구름, 들판의 학과 같았으나 또한 탈쇄脫灑하다고 자처하여 스스로 고상한 척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면에 온축한 도덕은 위대하고 정중하여 굳이 지혜로운 이가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79세 때인 갑오년(1894) 봄에 동리산桐裏山 미타암에 주석하면서 선회禪會를 열어 현풍玄風을 떨쳐 탁월한 행적을 보이면서 노년에 이르러서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고 4년 뒤 정유년(1897)에 열반할 곳을 잡아서 명적난야明寂蘭若에서 편안히 지낸 지 3년째 되던 해 기해년(1899) 정월 7일에 작은 병에 걸려 14일 신시申時에 이르러 입적하였다. 슬프다! 형상이 있는 것은 반드시 공으로 돌아가는 것은 세상에서 면치 못하는 바이지만, 도인이 입적함에 산야山野가 모두 통곡하여 마지않음을 어이하리오!
화상은 입적할 때에 정신이 평안하고 한가로웠으며 평소처럼 단정히 앉아 있었다. 당시 원주 혜운慧雲 상좌가 묻기를, “화상께서 지금 입멸하려 하시니, 사산四山이 핍박해 오는데387) 정혜의 일념이 견고하여 매昧하지 않습니까?” 하니, 화상이 목침을 세우고는 엄연히 앉아서 숨을 거두었다.
구지俱胝 화상이 한 손가락을 세운388) 것이 반드시 옛날의 아름다움을 독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날 밤 3경에 한 줄기 상서로운 빛이 마치 무지개처럼 허공을 가로질렀고, 다비한 뒤 5일이 지나도록 그 빛은 더욱 맑고 오색이 영롱하게 모였다 흩어졌다 했으며, 또 상서로운 구름이 사방에서 모여 서로 엉키고 뒤섞이니, 원근의 승속이 모여서 우러러보며 옛 도인이 입멸할 때와 같다고 경탄하였다.
화상은 가경嘉慶 21년 병자년(1816)에 태어나 대한 광무光武 3년(1899) 기해년에 입적했으니 향년은 84세이고, 14세에 출가하여 계를 받았으니 법랍은 71세이다.

011_0663_b_01L句下精通也是箭過西天恁麽也頭上安頭不恁麽也
011_0663_b_02L斬頭覔活且道到這裡禪却如何叅是日爲閑
011_0663_b_03L話移晷妨却忘形骸之趣味禪和子請次第書着
011_0663_b_04L打葛藤一絡索以爲修禪社記記之

011_0663_b_05L
大韓光武三年己亥九月下澣湖西歸釋鏡虛和尙南識

011_0663_b_06L東萊郡金井山梵魚寺鷄鳴庵創設禪社記

011_0663_b_07L
華嚴經曰菩薩摩訶薩以大慈大悲大喜大捨爲所住
011_0663_b_08L乃至一切法平等爲所住處這裡是住處心聞賁禪
011_0663_b_09L師曰潙山和尙云以思無思之妙返思靈燄之無窮
011_0663_b_10L思盡還源是個什麽這裡脫得去有什麽淨潔
011_0663_b_11L無思底復無淨底直得一絲不掛和自家本體
011_0663_b_12L盧不見恁麽入囂塵逆順教誰嗔喜染着然後打
011_0663_b_13L徹明暗兩頭向不明不暗處看大悲院裏有齋話方知
011_0663_b_14L來由與落處恁麽以一隻眼照破山河大地如倚天長釰
011_0663_b_15L誰敢當頭覷着有如是筋骨方能向列聖叢中入作
011_0663_b_16L而己他兼利法門秪從玆一條路去別無道理這裡又
011_0663_b_17L是住處混海丈老請惺月禪伯住持鷄鳴庵而渾
011_0663_b_18L寺僉議設禪社于此自各房與庵收納畓三十八斗土
011_0663_b_19L于禪社又混海惺月湛海華月諸上士與居本府李氏
011_0663_b_20L普賢華居草梁金氏智明華募緣山野得錢四
011_0663_b_21L千餘金買得畓四十二斗土付于禪社又居本寺土窟
011_0663_b_22L金氏覺心華納畓二斗土付于禪社已上合畓八十二租
011_0663_b_23L断盡供養禪衆不爲他用者也以此永久一遵
011_0663_b_24L盖渾寺僉位與在俗檀那之功行信願俱不可思議

011_0667_a_01L
화상은 초은 의유超隱義宥의 법을 이었고, 초은은 연월 이준淵月以俊의 법을 이었다. 부휴浮休는 벽암碧庵에게 전수하고, 벽암은 취미翠微에게 전수하고, 취미는 백암栢庵에게 전수하고, 백암은 무용無用에게 전수하고, 무용은 영해影海에게 전수하고, 영해는 풍암楓巖에게 전수하고, 풍암은 벽담碧潭에게 전수하고, 벽담은 영월詠月에게 전수하고, 영월은 낙파樂坡에게 전수하였으니, 화상은 부휴에게 12대손이 되고, 태고太古에게 17대손이 된다.
불법의 교화가 점차 쇠잔하여 정법안장이 죄다 사라졌는데, 화상은 정혜를 오로지 닦아서 이 세상에 무너진 불법의 기강을 크게 바로잡았으니, 불 속에 연꽃이 피어난 격(火中生蓮)이라 하겠다. 찬탄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무능하고 용렬하여 세상에 쓸모없는 몸이라 불법 교화에 온갖 폐단이 쏟아져 나오건만, 도덕으로도 구제할 수 없거늘 문장으로 어찌 구제할 수 있으리오. 이로 말미암아 감분感憤하여 문묵文墨을 놓고 지낸 지 여러 해였다. 더구나 염량세태를 겪으면서 문사文辭가 쇠락하여 글 짓는 일 따위에 마음을 쓸 수 없었다. 그렇지만 화상이 세상에 나와 그 도업이 이처럼 탁월하고, 그 제자인 자응·금명·자성 세 사형제가 또 이처럼 간곡히 청하기에 굳이 사양하고 말 수는 없었다. 이에 이상과 같이 대략의 행적을 기록하는 한편 지난날 찾아뵙고 배우지 못한 한의 만분의 일이나마 이 글에 담노라.
대한 광무光武 4년 경자년(1900) 섣달 하순에 호서 승려 경허 성우는 조계산 송광사 차안당에서 향을 사르고 삼가 쓰노라.
서룡 화상의 행장瑞龍和尙行狀
고덕이 “불법이 멸망할까 걱정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나는 도리어 멸망할까 걱정한다. 걱정하지 않는 것도 까닭이 있고 걱정하는 것도 까닭이 있다. 비록 본래 멸망하지 않는 이치가 있으나, 계·정·혜 삼학을 익히고 닦지 않으면, 이른바 멸망하지 않는 것을 반드시 멸망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금 청산 기슭에 고니와 학처럼 늘어서 있는 것들은 모두 부도이고, 사찰의 누각에 비단 화폭에다 그려 놓은 것은 모두 영탱影幀인데, 이것들 모두 반드시 그렇게 할 만하여 부도를 세우고 영탱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행장은 그렇지 않아 행장을 쓸 만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행장을 쓰지 않으니, 삼학의 도를 닦지 않은 자에 대해서는 행장을 써서는 안 된다.
나는 본래 재주는 없고 성품은 게을러 문장을 짓지 않은 지가 오래이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들의 부탁에 끌려 마지못해 글을 짓기도 하였으니,

011_0664_a_01L惺月禪伯爲住持開導勸化其功大焉自後八表禪
011_0664_a_02L入此社開單圍爐這裏又是個住處如上三般住
011_0664_a_03L是同耶是異耶若云異也何曾是同若云同也
011_0664_a_04L曾是異且夫牛角不用有兎角不用無也則且道
011_0664_a_05L竟如何古人云道眼未明滴水難消凡叅究于此社者
011_0664_a_06L當念光陰飄忽四恩重大以慈明圓之刺股歸宗權之
011_0664_a_07L展脚以哭爲則可也

011_0664_a_08L
光武七年癸卯暮春下澣駐劄本寺金剛庵鏡
011_0664_a_09L虛惺牛謹識

011_0664_a_10L梵魚寺金剛庵七星閣創建記

011_0664_a_11L
夫大地之物堅牢爲金剛也周天之耀樞要爲北辰
011_0664_a_12L以北辰樞要之造化增長人間壽福以金剛堅牢
011_0664_a_13L之三昧開拓出世津梁則金剛庵之有北辰殿可謂如
011_0664_a_14L膠漆然如岑苔然不可以闕一而又爲繪像一爲人天
011_0664_a_15L福田之獨聖尊而安之是緣也將得以普利群品
011_0664_a_16L剋伽沙不可量也本邑草梁居淸信女滿願華金
011_0664_a_17L爲其子裵正憲之吉慶成滿而其僉檀那之施
011_0664_a_18L財相成者又豈可以不成就其願耶况乎献供養畓
011_0664_a_19L具日用四物其功德如海而并是化士月松之法力
011_0664_a_20L余二十年前遊四佛山諸刹聞金井山之爲勝區而金
011_0664_a_21L剛庵爲要妙焉將欲一遊而錯落未賞今已老矣
011_0664_a_22L閱盡榮枯百慮灰冷自伽倻山荷衲訪到適月松大師
011_0664_a_23L住持而成造畢焉大師素是出塵禪德扁其軒曰
011_0664_a_24L緣蘿者盖志其松蘿幽閑之趣也面晤未了而心

011_0667_b_01L그렇게 한 것이 적지 않았다. 매양 행장을 지을 때마다 붓을 멈추고 감회에 잠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대저 출가한 사람이 삼학三學을 닦지 않으면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하고, 도업을 이루지 못하면 지을 행장이 없다. 지을 행장이 없는 것은 애석하지 않으나 도업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애석하니, 도업을 이루지 못하면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삼학이 강령이 되어서 불법이 멸망하지 않는 것이 진실로 이와 같거늘 오늘날 사문들은 이 삼학을 닦지 않으니, 개탄할 일이다.
삼가 행록行錄을 살펴보건대 화상은, 속성은 김씨이고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휘諱는 상민詳玟이고 서룡瑞龍은 법호이다. 춘택 공春澤公389)에게 8대손이 된다.
화상은 인종仁宗(청나라 황제) 가경嘉慶 19년 갑술년(1814)에 경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용모가 맑고 인품이 순수하였다. 17세 때 종로를 걸어가다가 벼슬아치가 처형되는 것을 보고 문득 세상의 명리가 우환거리임을 알고 싫어져서 무상을 느끼고 경기도 안성安城 청룡사靑龍寺 영월 장로影月長老에게 의탁하여 삭발하고 계를 받았다.
나이 19세에 이르러 명산을 탐방할 뜻을 가지고 지리산에 들어갔다. 당시 용악 장로龍岳長老가 안국사安國寺에서 강석을 크게 열고 있었기에 스님은 그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여 학문이 점차 진보하였고, 다음으로 용암 화상龍巖和尙에게 참문參問하여 지견이 열렸다.
27세 때에는 기양 성전騎羊聖典 장로에게 입실하여 도명道名이 높아졌다. 성전 장로의 유촉을 받고 벽송암碧松菴에 주석하였고, 암자가 퇴락하자 화상이 중수하여 면모를 일신하였으며, 상주물常住物을 아끼고 사우를 중흥하였다. 그리고 화상은 자기 본분사를 밝히지 못함을 염려하여 칠불암七佛庵에서 몇 해 동안 면벽하였으니, 화상의 높은 식견으로 응당 깊은 선지禪旨를 얻었을 터이나 도가 같은 이가 아니면 알 수 없다.
광서光緖(청나라 德宗의 연호) 16년(1890) 경인년 섣달 27일에 화상은 작은 병을 얻어서 29일에 이르러 열반에 들려고 하였다. 이때 대중이 섣달그믐의 과세불공過歲佛供을 걱정하니, 화상은 “내가 중이 된 지 60년인데 세상을 떠날 때 어찌 삼보의 일에 방해될 수 있겠는가. 걱정하지 말라.” 하였다. 시일을 끌어서 그 이듬해 정월 초이튿날에 이르러 화상이 또 열반에 들고자 할 때 대중이 또 칠성제七星祭390)를 지낼 일을 걱정하니, 화상이 또 전과 같이 말하고 시일을 끌어서 4일 사시에 이르러 대중에게 묻기를, “오늘 가도 방해될 일이 없겠느냐?” 하였다. 대중이 그렇다고 하자 부촉하는 말을 마치고는 대중에게 경을 외고 염불하게 하고 엄연奄然히 열반에 들었다.
경에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그 인품은 옥처럼 맑고 순수하였고, 학식이 넉넉하였으며, 입적할 때 수명을 자유로이 연장하였으니, 수명을 자유로이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력定力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옛날에 삼학을 정밀히 닦아서 도업을 성취한 이일지라도 이보다 더 낫지는 않을 것이다.
그 법맥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회암晦庵은 한암寒庵에게 전수하고, 한암은 추파秋波에게 전수하고, 추파는 경암鏡庵에게 전수하고, 경암은 중암中庵에게 전수하고, 중암은 기양騎羊에게 전수하였으며, 회암은 보광葆光의 법을 잇고, 보광은 모운慕雲의 법을 잇고, 모운은 벽암碧庵의 법을 잇고, 벽암은 부휴浮休의 법을 잇고, 부휴는 부용芙蓉의 법을 이었으니, 화상은 부용에게 11대손이 된다. 향년은 78세요 법랍은 60세이다. 법문法門의 동량이 꺾였으니 총림이 모두 불법의 운수가 비색否塞함을 슬퍼하였다.
내가 광무光武 4년(1900) 겨울에 화전花田(남해의 옛 이름) 용문사龍門寺에 들렀더니, 호은 장로虎隱長老가 화상이 시순時順392) 동안에 도행道行이 탁월했음을 크게 칭찬해 말하면서 나에게 행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도록 행장을 써 주길 청하기에 내가 문장에 능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 그리고 수십 일 뒤 벽송암에 들렀더니, 영운嶺雲·동운東雲 두 고덕이 있었으니, 바로 화상의 제자들이다. 이 두 분이 또 선사先師를 위해 행장을 써 주길 부탁하며 그 청이 더욱 간곡하였다.
내가 회상해 보니 매우 어릴 때 벽송암에서 겨울 한 철을 지낸 적이 있었는데, 당시 화상을 보니 맑고 엄숙한 도기道氣가 충만하여 밖으로 발산하였다. 그러나 나는 당시 나이가 어리고 식견이 적어 법문을 들어 마음의 티끌을 씻지 못했으니, 여한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이제 나이 55세393)을 다 잃었으니, 아, 탄식하는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화상의 도덕에 대해 크게 흠모하는 마음이 있는 데다 두 고덕이 지성으로 청하고 호은 장로가 부탁하신 터라, 굳이 사양할 수 없어 문장이 서툰 것도 헤아리지 않고, 이상과 같이 대략 쓰면서 때때로 붓을 멈추고 감회에 잠기기를 재삼 마지않았다.
덕유산 송계암이 화재로 소실된 뒤 중창하는 불사의 권선문(德裕山松溪庵回祿後成造勸化文)
내가 중춘仲春(음력 2월) 하순, 경덕景德394) 실상사實相寺에서 화재로 소실된 백장암百丈庵을 중창하는 불사에 서문을 썼는데, 지금 또 이 소실된 송계암 복원 불사에 서문을 쓰게 되었다. 내가 남쪽에 온 지 오래라 글을 지은 것이 많은데, 만난 바를 글로 쓴 내용은 한가로운 흥취도 있고 낙척한 심정도 있고, 강개한 감정도 있고 경모하는 마음도 있었으니, 유한幽閑하기도 하고 청심淸深하기도 하며, 우수에 젖기도 하고 곤궁한 형편이기도 하여 그 일은 실로 갖가지이지만 이 두 암자처럼 이토록 참담한 경우는 없었다.

011_0664_b_01L相契焉有相期於形骸之外之趣味也其大師之服勤
011_0664_b_02L勞與檀那之成就佛事也僉曰子文者也幸爲之記
011_0664_b_03L之也余曰然有一忡然於此者夫北辰也在天成像
011_0664_b_04L建閣設像者此也而其金剛三昧者果何物而作何相
011_0664_b_05L嗚呼去聖愈遠出家之人專不軆知自家之
011_0664_b_06L吾佛金剛正定斯絕壽命莫傳余因作金剛
011_0664_b_07L庵記而百感俱發也

011_0664_b_08L梵魚寺鷄鳴庵創建記

011_0664_b_09L
謹案本寺記蹟云知時鷄鳴房五間置之東嶺又俗
011_0664_b_10L傳云鷄鳴于此而見庵東峙有鷄化石與鷄足痕文
011_0664_b_11L庵號鷄鳴志此也前十年癸巳三月雨華丈老與其
011_0664_b_12L嗣混海講伯同金峰老師發大願力於古鷄鳴庵
011_0664_b_13L起五間精舍閱八個月而落之畵之檀幀奉安
011_0664_b_14L四年丙申又起七星閣三間與別寮四間畵七星獨
011_0664_b_15L聖山靈等幀奉安而因庵務倥偬過八年于今
011_0664_b_16L有以文記其事余南遊住金剛庵主本庵惺月禪
011_0664_b_17L請余其事不朽夫吾儕家風拈乾屎片
011_0664_b_18L破木頭活眼打照神釰指揮古佛刹海浩浩寶網
011_0664_b_19L雲坮重重何用苦苦纍甎纍架汗漫丹雘喧聒鍾
011_0664_b_20L以爲能事哉嗚呼此塔寺之所以牢固蛮觸乃吾
011_0664_b_21L佛正法化之所以耗散寢廢也書到此感歎再三或者
011_0664_b_22L在傍怫然曰屎片木頭讀以宝網雲坮琳宮蓮房
011_0664_b_23L以牢固蛮觸何言之乖戾若是耶子之見解
011_0664_b_24L之陋也何以葉公之好惡衆狙之喜怒也秪恨無神

011_0668_b_01L
부처님이 “무상無常의 불길이 세간을 태운다.” 하셨고, 또 “삼계에 편안함이 없는 것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 하셨건만, 사람들이 뉘라서 이에 대해 경계하고 각성하여 거듭 슬퍼하리오. 고덕古德이 “마음에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기 때문에 몸에 생로병사가 있으며, 춘하추동과 성주괴공成住壞空도 이를 말미암아 있다.”라 하였으니, 만약 마음이 실지實地에 머문다면 변천하는 현상을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처럼 가볍게 보아 저절로 변천하지 않을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곤명지昆明池를 파다가 겁회劫灰를 발견했으니,395)에 비길 수 있을 뿐이다. 하물며 미미한 산중의 감실龕室이나 촌락이야 말할 나위 있으리오. 이를 미루어 보면 득실과 흥망 때문에 근심하거나 기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암자는 사적을 고찰할 수 없으나 이 지방 사람들이 전하는 말로는 신라 때 창건했다고 하니, 오래된 고찰이다. 예전에는 문곡文谷·역암櫟庵 등 장로들이 이곳에 주석하여 강경講經할 때 학인들이 방 안에 가득하였었다. 근래에 와서는 운수가 비색否塞하여 근근이 절의 명맥만 이어오다가 마침내 팔인八人396) 보시를 하면 인천人天에 태어난다는 것은 유전儒典과 불전에 그 이치가 환히 드러나 있어 터럭만큼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제 화주化主 스님이 향을 사르고 선행을 좋아하여 크게 보시하는 집안에 널리 권선을 알리는 까닭이 이 때문이거니와 이 일을 떠맡아서 소실된 절을 중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뉘라서 불가하다 하리오.
나른한 산사에서 한가로운 봄꿈이 혼곤하던 차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기지개를 켜고 깨어 보니, 너울너울 날던 것은 나비라 아득한 전생의 일만 같고, 꿈을 깬 것은 몸이라 완연히 환화幻化로다.397)
상포계의 서문(喪布稧序)
내가 기해년(1899) 겨울, 해인사 선원 아래 수다라장修多羅藏(藏經閣)의 향각香閣에 우거하면서 화로를 끼고 앉아서 무릎을 어루만지고 있노라니, 몸이 늙었음은 비 오고 맑은 날씨에서 알 수 있고, 병이 들었음은 춥고 따스한 날씨에서 알 수 있는 법이다. 내 몸은 칠분七分은 사회死灰요 십분十分은 고목이라, 명산에서 약초나 캐면서 숨어 살려던 기약을 거의 저버리게 될까 염려될 뿐이었다.
두정斗正이란 이름의 사미승이 한 책자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저희들이 각자 은사恩師를 위해 상포계를 만들었으니, 스님이 서문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내가 그 뜻을 가상히 여겨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고인이 이르기를,

011_0665_a_01L釰活眼屎片木頭亦能法海無窮况建淸淨法
011_0665_a_02L宇於天鷄勝區繪畵聖像設香燈鳴鍾鼓與諸善男子
011_0665_a_03L善女人奉施三宝供養三宝作出世眞緣耶宜其諸
011_0665_a_04L上士之德海與僉檀那之善根如恒沙不可量而能原始
011_0665_a_05L要終勤勤成辦者混海講伯也非特作惠施無窮
011_0665_a_06L而圓就先傅之志又可尙也或者欣愜而謝曰善哉
011_0665_a_07L說也自不覺趣味津津投筆點茶了更提一偈
011_0665_a_08L拈來何事政堪嬴不托端宜土椀成穿入鷄岩蔵
011_0665_a_09L一笑他年天畔化雷聲

011_0665_a_10L
大韓光武七年癸卯暮春下澣鏡虛惺牛謹識

011_0665_a_11L梵魚寺修禪社芳啣淸規合隨筆

011_0665_a_12L
盖身叅禪社名載禪冊一段因緣然不是傳芳于後
011_0665_a_13L使之有所思處當人根微劣正法澆漓使正法眼蔵
011_0665_a_14L護流通實賴有力量兄弟况無常迅速生死事
011_0665_a_15L豈可因緣空過一生乎若能實叅實悟貪嗔
011_0665_a_16L惱煩心心解脫蒲花柳絮物物現露自他利濟有何
011_0665_a_17L未了乎夫眞正叅學者不是尋常儱侗設得脫盡
011_0665_a_18L情累翛然淸虛未免淨潔勞神且得心光烜爀
011_0665_a_19L達靈根始是半提古云柱杖橫擔不顧人却立千峰萬
011_0665_a_20L峰去設得如是秪知恁麽去不解恁麽來
011_0665_a_21L古云珍重善財何處去淸宵風撼碧琅玕雖然如
011_0665_a_22L甚麽處得遮消息來嗚呼人身難得正法難聞
011_0665_a_23L身叅禪社名載禪冊當自深思乎諸上座攝衆淸規
011_0665_a_24L建化門中不可無者故提說若干此是與大衆商確

011_0669_a_01L‘살아 계시면 예禮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 장사지낸다’398) 하였으니, 슬프다, 어찌 큰 일이 아니겠는가!”
두정 사미가 합장하고 일어나 “금일 이후로는 예를 갖추고 슬퍼하고 살고 죽는 본래면목을 참구하겠으니, 그렇게 하면 아마도 부족한 점이 있다는 탄식이 없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기에, 내가 “응당 이와 같이 해야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속과 겉이 모두 달고,399) 사事와 이理에 모두 유감이 없을 터이니, 어찌 진선盡善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서문을 써서 주고, 상포계의 규례를 물어서 후미에 기록해 두노라.
대한大韓 광무光武 기해년(1899) 섣달 보름에 병승病僧 경허는 유희삼매遊戱三昧400) 중에서 쓰노라.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서문(正法眼蔵序)
규봉圭峯 스님이 이르기를, “불경을 펼침에 대천세계 팔부대중이 나열하고, 선게禪偈로 요약함에 한 부류의 근기에 맞춘다. 대중이 나열한즉 드넓어 의지하기 어렵고, 근기를 맞춘즉 가르침이 분명해 공부하기 쉽다.”401)라고 하였다. 그 가르침이 분명하니 공부하기 쉬운 것들을 동지들과 공유하고자 생각하여, 동행한 염染 수좌에게 주어서 어록 10편 및 『염송拈頌』에 있는 선사들의 직절한 법문들을 써서 5책 한 질로 만들어 도에 들어가는 바른 안목으로 삼노라.

011_0665_b_01L不易常法也幸望一遵奉行流通法化乎

011_0665_b_02L
大韓光武六年陽月結寒日湖西歸衲鏡虛惺牛謹識

011_0665_b_03L淸規

011_0665_b_04L
此禪室旣是英觀王殿下爲祝願堂則凡居此社者
011_0665_b_05L脫却塵累長養道胎上報國恩下濟群品事

011_0665_b_06L
演法宗師悅衆禪和其任不輕當擇其高識遠
011_0665_b_07L鑑者以充其任事

011_0665_b_08L
夫禪社者四海衲子捿身硏道之所其爲主社者
011_0665_b_09L不可不擇當其相傳授時十分詳察不得妄任
011_0665_b_10L昏庸其昏庸者又不得濫求冐進事

011_0665_b_11L
結制後不得受榜又不得入榜後中退事

011_0665_b_12L
悖逆雜乱者或身罹重病者不得受榜恐有
011_0665_b_13L損傷法化致勞渾衆事

011_0665_b_14L
叢林行道不可不有領辨事務規例則其爲所任者禪
011_0665_b_15L當另己所任勿堕緩以安淸衆事

011_0665_b_16L
眞正叅學者無間於動靜以無間於動靜故究竟
011_0665_b_17L不被生死湼盤之所羅籠不得下床後戱笑喧乱
011_0665_b_18L廢叅究事

011_0665_b_19L
付榜之後有違乱淸衆不和者三次曉喩而不從打犍
011_0665_b_20L椎逐出事

011_0665_b_21L
當普請時不得闕目又不得落後而當並力相濟
011_0665_b_22L

011_0665_b_23L
飮酒行淫先佛深戒断當逐出又衣服非六日不得
011_0665_b_24L洗浣事

011_0669_b_01L
이 책의 내용은 비록 편언척어片言隻語라도 절실히 수행을 권면하고 분명히 법을 개진하지 않음이 없으니, 성불로 가는 길이 터럭만 한 장애도 없이 환히 드러나 있다. 만약 이 책을 읽고 완미玩味하여 마음의 근원을 돌이켜 비춰 보아 전일하고 정밀하게 공부한다면, 비록 경전을 보지 않더라도 경전이 이 속에 있을 것이다. 경전이 이 속에 있을 뿐만이 아니라 수행문修行門에서 가르침이 분명하여 실로 의지하기 어려운 경전보다 낫다.
도에 뜻을 둔 이라면 응당 유념하여 이 책을 자세히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전사傳寫 과정에서 오탈誤脫이 많고, 게다가 구두와 토吐가 잘못된 곳들도 있어 독자들이 본의本意를 알지 못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의 하찮은 학식을 헤아리지 않고 상세히 살펴서 수정하였다.
만약 이 책을 전사하는 이가 있다면 응당 십분 유념하여 전사한 뒤에 다시 재삼 교정하여 착오가 없도록 하고, 중생계에 두루 보시하라. 그렇게 하면 광명종자光明種子를 맺고 성불의 정인正因을 잃지 않으리라. 나의 깊은 바람은 여기에 있다.
동리산 태안사 만일회 범종을 시주한 단월의 방함기(桐裏山泰安寺萬日會梵鍾買献檀那芳啣記)
범종이니 법고니 운판이니 목어니 하는 것들은 모두 표상表象이 있고 용도가 있으니, 이것이 절간의 사물四物이다. 그중에서 종이 가장 긴요하여 무릇 상당하여 법문할 때나 대중이 울력할 때나 불공을 올릴 때나 대중공양을 할 때 이것이 없으면 모두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청량한 소리가 중생의 고苦를 쉬게 하고, 『능엄경』의 본성을 가리킴402)으로부터 지옥에 있는 항하사처럼 많은 중생의 고뇌를 쉬게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공용功用은 실로 불가사의하다.
본사에 거주하는 영월 대사暎月大師는 행업이 정련精鍊하고 학식이 심박深博한데, 불법 교화의 운세가 비색否塞하고 중생이 고단함을 생각하여 이 암자에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를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 암자에는 예전부터 종이 없어 허전하였다. 이 때문에 대사가 개연慨然한 생각을 가진 지가 여러 해였다.
완산부完山府에 거주하는 단월檀越 송주상宋柱商이 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청정한 신심을 내어 돈 천여 금金을 내어 범종을 사서 바치고 귀한 아들을 낳기를 발원하였다.
첩첩산중은 울창하고 긴 밤은 침침한데 종소리가 울려 퍼질 때 그 음향이 맑고 시원하여 혼원渾元의 세계가 한 번 열림에 기운이 만물을 생동하니, 그 감응이 통하여 귀한 아들을 틀림없이 낳게 될 것이다. 후인들에게 권화權化하고 훌륭한 일을 한 분의 이름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하여 몇 마디 짧을 글을 적노라.
경자년(1900) 섣달 상순에 호서 승려 경허는 삼가 쓰노라.
화엄사 상원암에 다시 선실을 설치하고 완전한 규례를 정하는 글(華嚴寺上院庵復設禪室定完規文)
대저 선禪은 그 이치가 직절直截하고 고원하여 삼승三乘을 훌쩍 벗어났다. 그러므로 선을 배우는 이가 본지풍광을 깨달아 사무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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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堂悅衆禪伯知殿知客園頭
011_0666_a_02L看病飯頭淨人書記煎茶菜頭
011_0666_a_03L柴頭別佐都監院主化主

011_0666_a_04L取隱和尙行狀

011_0666_a_05L
余廢棄湖西以養病懶二十有餘年矣聞取隱和尙之
011_0666_a_06L德馨遠飄而因南北敻隔未得親扣而滌心塵而和
011_0666_a_07L尙奄然歸寂其用恨特深焉光武四年冬有雲遊志
011_0666_a_08L曹溪之松廣寺時適窮陰雪擁風鳴仍以信宿禪牎
011_0666_a_09L有慈應全明慈城三兄弟謂余曰我先傅取隱和尙之時順間
011_0666_a_10L出世道業雖非古祖師之可肩而於近世也罕有聞見
011_0666_a_11L以先傅之高行爲嗣資者宜其著其行狀而傳後
011_0666_a_12L可也而今尙未焉者未暇焉而况高師之文名素著
011_0666_a_13L澳亦深而適臨于此願借高師之一言以芳我先傅之遺蹟
011_0666_a_14L如是則非特我先傅之行業軒磊不朽而不佞等諸嗣
011_0666_a_15L亦足以無餘憾焉請高師之不吝緖餘可乎余再
011_0666_a_16L三推辞而其請彌勤謹按其嗣足之所錄和尙諱
011_0666_a_17L旻旭法號取隱也俗姓崔氏海州后人也以嘉慶二
011_0666_a_18L十年乙亥始寄宿於慶尙道奉化地而屋簷下過
011_0666_a_19L來者其翌年九月焉幼而壯且默而焉有老成風度
011_0666_a_20L十四歲忽然有出塵之趣北投太白山覺華寺泰
011_0666_a_21L珠長老祝髮受戒隨世緣打幻妄亦有年所豈曾悟
011_0666_a_22L其菩提道法不離世間耶年至不惑叅超隱長老
011_0666_a_23L于太白山彌勒庵攝衣染指決擇正眼師資道契
011_0666_a_24L侍奉十秋應有得其玄奧之境而志在韜晦人莫

011_0670_a_01L옛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니, 그 법이 요묘要妙하기가 이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으리오. 그러므로 달마 대사가 중국 땅에 들어온 이래 우리 동토에 이르러서도 그 법을 얻어 곧바로 불지佛地에 오른 이들이 한량없이 많았다.
그런데 근세에 이르러 그 도가 없어져서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고, 설령 그 도를 공부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애초에 참구하는 방법을 결택하는 데 힘쓰지 않아 마침내 혼침과 도거掉擧(산란한 마음) 속에 빠져서 한평생을 보내고 조금도 그 이치를 엿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행업行業을 하는 이들이나 그들을 외호하는 이들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참선하는 사람을 보면 으레 비탄하니, 슬프다! 구제할 수 없도다.
이 난야는 처음 화엄사를 창건할 때부터 이미 선실禪室이 있었는데, 터가 신령한 승지勝地라 이곳에서 수행하여 도를 얻은 이가 많았다. 그런데 중간에 선방 운영을 그만두고 만 것은 시운이 좋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교화를 주도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광무光武 4년(1900) 늦은 봄에 청하 장로淸霞長老가 이 암자에 와서 주석하면서 선회禪會를 열었으니, 장로의 청정한 도심과 광대한 원력으로 산중의 스님들과 의논하여 결정해 성취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훗날 이 암자의 주지로 오는 이들이 불법을 펴는 일의 중대함과 고인이 이 암자를 창시한 본뜻에 따라 지금 장로처럼 선회를 다시 연 간절한 뜻을 생각하지 않고, 혹 사욕을 따르고, 혹 일시적인 편의에 따라 선실을 폐지하여 선객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이는 부처님 종자를 끊는 사람이요, 반야를 비방하는 사람이다. 인과가 분명하니,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유가 경전에서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나는 그 예禮를 아끼노라.”403) 하였다. 경에서는 “한 생각 맑은 마음이 항하사와 같이 많은 보배 탑을 조성하는 것보다 낫다.” 하였고, 또 “최상승 법문을 듣고 비방하여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이 항하사와 같이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낫다.” 하였으며, 또 고인이 “듣고 믿지 않더라도 오히려 성불할 종자를 심는 것이며,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인천人天의 복을 덮는다.” 하였으니, 일체 도법道法 중에서 반야의 힘이 수승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본다면 참선하는 사람이 비록 혼침과 도거에 빠져서 도를 얻지 못할지라도 도업을 성취한 삼승의 학인보다 낫다. 원컨대 후세에 이 암자의 주지가 된 이는 이 글을 반복해 읽어 보고 선회를 이어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저 불자로서 부처님 교화를 펴는 데 힘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수승한 선회를 폐지한다면 천지신명이 알게 모르게 벌을 내릴 것이니 두렵지 않겠는가. 이와 같이 두려운 일이 있는데도 척연惕然한 마음으로 이 말을 준봉遵奉하지 않는 자는 그만이니, 나도 어찌할 수 없다.
광무 4년 경자년(1900) 섣달 상순에 호서 승려 경허는 삼가 쓰노라.
법계당에게 보이다(示法界堂法語)

011_0666_b_01L得以知焉後年至六十八癸未寓於般若峰下龍樹霱
011_0666_b_02L十年塊坐百慮灰冷忽然有頓悟處古人云如人
011_0666_b_03L飮水冷暖自知者此也淸虛禪師云寧可千刼輪廻
011_0666_b_04L生死不慕諸聖解脫禪家之眼也不見人之是非
011_0666_b_05L家之足也和尙之発心也期以頓悟而悟之而悟後生涯
011_0666_b_06L如頑石一片則其於禪眼有其庶幾焉而靑黃黼
011_0666_b_07L管絃技操不用聾瞽而是非自絕禪家之足也
011_0666_b_08L可謂十分周圓也盖北入香山南入頭流半生行李
011_0666_b_09L如閒雲野鶴而亦不以脫洒爲我所而自高其所蘊
011_0666_b_10L於中者得以偉旺鄭重不待智者而後知也當七十
011_0666_b_11L九年甲午春住錫桐裏之彌陀庵設禪會振玄
011_0666_b_12L卓異其行至老不怠也越四年丁酉欲卜其終
011_0666_b_13L老之所晏居于明寂蘭若之三年己亥正月初七日
011_0666_b_14L微疾至十四日申時入滅嗚呼有相必空世之所不免也
011_0666_b_15L而其奈道人之乘化也山野皆痛悼不已何其臨滅也
011_0666_b_16L神識安閑端坐如平日時有院主慧雲上座問曰和尙今
011_0666_b_17L欲入滅四山相通其定慧一念堅凝不昧乎和尙竪起
011_0666_b_18L枕子而已奄然坐逝俱胝和尙之竪起一指終不以鹵莽歸之而普天寒摶打凍亦是走殺外邊也
011_0666_b_19L和尙竪起一枕也能殺能活有照有用底消息庵主
011_0666_b_20L之對趙州也不必專美於古也其夜三鼓一道瑞光
011_0666_b_21L橫空如虹橋經闍維後過五個月而其光增淨
011_0666_b_22L色散合玲瓏又祥雲四合綸輪間錯遠近緇白瞻慕敬
011_0666_b_23L如古道人入滅時也盖和尙生於嘉慶二十一年丙子
011_0666_b_24L入滅於大韓光武三年己亥壽八十四十四歲出家受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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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洞山 화상이 「자계自誡」에서 일렀다.

不求名利不求榮           명리를 구하지도 영화를 구하지도 않고
秪麽隨緣度此生           그럭저럭 인연 따라서 평생을 살아가노라.
三寸氣消誰是主           세 치 혀 기운 사라지면 누가 주인인고.
百年身後漫虛名           몸이 죽은 뒤에 부질없는 허명만 남는 것을.
衣裳破處重重補           옷이 해진 곳은 겹겹이 기워 입고
糧食無時旋旋營           양식이 없으면 그때그때 마련할 뿐
一箇幻躬能幾日           이 덧없는 몸뚱이가 얼마나 오래 간다고
爲他閒事長無明           쓸데없는 일 때문에 무명을 기르리오.

이 몇 마디 말은 또한 출가한 사람들이 날마다 경각警覺하고 때때로 경책하는 도리라, 응당 익숙히 읽고 음미해 왔을 터이다. 무상無常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큼을 늘 생각하여 눈을 떴을 때도 급하고 절실히 공부하고, 눈을 감았을 때에도 급하고 절실히 공부하며, 행주좌와 모든 때 모든 곳에서 급하고 절실히 공부해야 하니, 이와 같이 공부한다면 어느 겨를에 허다한 잡념이 침범해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고덕이 “설령 열반보다 나은 어떤 법이 있더라도 나에게는 꿈과 허깨비 같다.” 하였거늘, 하물며 세간의 허망하고 진실하지 못한 법 따위에 다시 무슨 마음으로 간여하리오. 쌍림雙林 부대사傅大士가 말하였다.

夜夜抱佛眠             밤마다 부처를 안고서 자고
朝朝還共起             아침마다 부처와 함께 일어난다.
起坐鎭相隨             일어나고 앉을 때 늘 따라다니며
語默同居止             말하고 침묵할 때 늘 함께 있어
纖毫不相離             터럭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如身影相似             마치 몸뚱이에 딸린 그림자 같아라.
欲識佛去處             만약 부처가 간 곳을 알고자 한다면
秪這語聲是             바로 지금 말하는 이 소리라 하리라.

이 몇 구절 또한 출가한 사람들이 날마다 조고照顧하고 때때로 참구하는 면목面目이니, 자세히 생각하고 환히 알아야 한다. ‘내 몸뚱이에 감춰져 있는 한량없는 값어치의 보배를 알지 못하여 이 때문에 오랜 겁을 지나도록 부질없이 신고를 겪어 왔는데, 금생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면 어느 생에 다시 견문이 맑아질 수 있으리오’라고 생각하여 불법을 만난 것이 다행스럽다는 마음과 용맹스럽게 정진하겠다는 뜻을 일으켜서 고인의 가르침을 따라 노력하여 수행해야 한다. 참선을 하거나 염불을 하거나 주문을 외거나 내지 육바라밀 법문에 대해서도 절대로 여러 가지 도리로 나누지 말고, 응당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마음의 근원을 비추어 보는 데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요함과 맑음(靜淨)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하니, 맑음이 보리이고 고요함이 열반이다. 그러나 투철히 요득한 뒤에는 어찌 이 두 가지 명칭으로 나누고 열반을 절목節目으로 삼으리오.
그러므로 “마음을 사무치게 비추어 보면 본체가 의지할 데가 없으니, 온몸이 그대로 대도大道와 합한다.” 하였다. 그렇다면 만행萬行은 비록 불자가 평상시 수행할 바이지만 지혜로 자기 본성을 비추어 보는 공부가 없어서는 안 되니, 이른바 “만행을 다 수행하되 오직 무념無念을 으뜸으로 삼는다.”라는 것이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앞의 다섯 바라밀404)
대저 불법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무겁고 큰 돌과 나무를 운반하거나 글과 무술을 배우는 것처럼 실로 마음을 일으키고 힘을 써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경천동지할 특별한 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망상이 본래 없음을 비추어 요달了達하면, 성품의 본체가 밝고 맑으며 안락하고,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어 가볍고 무거움도 없고, 모자라고 남음도 없으며, 가고 옴도 없고, 살고 죽음도 없다. 대개 으레 이와 같을 뿐이니, 깨달은 이는 이와 같고, 미혹한 이는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응당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보임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란 것인들 어찌 있으리오.
대저 공부함에 있어 어찌 허다한 명상名相을 펼쳐 놓은 뒤에 착수한다 하리오. 단지 이것이다.
“감히 묻습니다. 단지 이것이란 무슨 뜻입니까?”
“산하대지와 명암明暗·색공色空이다.”
“이미 명상입니다.”
“네가 무엇을 가지고 명상이라 하느냐?”
“지금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사라져 삶과 죽음이 서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제거하겠습니까?”
“네가 무엇을 가지고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고 하느냐?”
“그렇다면 없습니다.”
“나에게 말을 돌려 다오.”
대저 출가한 사람은 먼저 그 안목을 바로잡아야 하니, 안목이 바르면 누가 감히 불법과 세제世諦의 부질없는 말을 가지고 도리라 하리오. 그렇다고 해서 그저 깎아지른 벼랑처럼 높기만 한 것은 아니니, 푸른 대나무와 노란 국화, 꾀꼬리 노래와 제비 지저귀는 소리이다. “감히 묻습니다. 현재 불성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크게 웃으며 일어나리라.
이 편지는 내용이 얼마 안 되지만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되니, 응당 세밀히 참구하여 기어코 분명히 요달了達해야 한다. 이미 부탁을 받은 터라 잠자코 있을 수만은 없기에 이제 몇 마디 말을 써 주노니, 비록 수만 권의 글을 쓰더라도 기실 강령綱領은 이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디 사소한 글을 보냈다 꾸지람을 하지 말기 바란다. 사족蛇足을 달아 달라고 부탁했기에 사족을 달았노라.
금봉당의 팔첩 병풍에 쓰다(書錦峰堂八帖屛)
萬事無非夢中            만사가 꿈이 아님이 없는데
忽然覺悟              홀연 깨달아
拈柱杖携甁鉢            주장자를 잡고 발우를 들고
深入雲林邃處            구름과 숲 우거진 깊은 산속에 들어가니
百鳥有聲              온갖 새들은 울고
泉石淙琤              맑은 시냇물은 졸졸 흐르는데
千尋老松              천 길 높은 노송에
百縈藤蘿              등라藤蘿가 우거진 곳에
築數間茅屋             몇 칸 초가집을 지어 놓고
同知己友              뜻이 맞는 벗과 함께
有時咏烟霞趣            때로는 연하烟霞의 흥취를 노래하고
有時焚香靜坐            때로는 향을 사르고 고요히 앉았노라니
更無塵事相侵            속진의 일이 침노하지 않아
一心虛靈              마음이 텅 비고 신령하여
萬理昭彰              모든 이치가 밝게 드러난다

011_0667_a_01L臘七十一也和尙嗣超隱義宥超隱嗣淵月以俊而浮
011_0667_a_02L休傳之碧岩碧岩傳之翠薇翠薇傳之栢岩栢岩傳之無
011_0667_a_03L無用傳之影海影海傳之楓岩楓岩傳之碧潭碧潭傳之
011_0667_a_04L詠月詠月傳之樂坡和尙於浮休爲十二代孫也於太古爲
011_0667_a_05L十七世也佛化漸殘正法眼蔵塗地而盡而和尙能專定
011_0667_a_06L大整頽綱於斯世也可謂火中蓮也讃何可盡
011_0667_a_07L以踈慵廢棄無用於世而佛化之爲弊膜者百端俱發
011_0667_a_08L而道德不能濟得文章亦何救焉因此感憤置其文墨
011_0667_a_09L亦有年矣况閱盡炎凉文辭衰落無所用心於章
011_0667_a_10L句等事第因和尙之出世道業卓異其如斯而其嗣
011_0667_a_11L足慈應金明慈城三兄弟之勤請又其如斯不可强止
011_0667_a_12L於是乎槩略如右而寓叙乎其前日未得親扣之恨之
011_0667_a_13L萬一云爾

011_0667_a_14L
大韓光武四年庚子臘月下澣湖西歸釋鏡虛
011_0667_a_15L惺牛梵香謹書于曺溪山松廣寺遮眼堂

011_0667_a_16L瑞龍和尙行狀

011_0667_a_17L
古德云佛法不怕爛却余却怕爛却不怕者有以也
011_0667_a_18L怕者亦有以也雖有本有不爛之理而非戒定慧三學
011_0667_a_19L之熏修則所云不爛者未必期其保護至於不爛
011_0667_a_20L今也靑山之麓鵠鶴相望者皆浮屠也梵樓之
011_0667_a_21L綺紈間錯者皆寫照也寔未必其皆爲之於可爲
011_0667_a_22L之事也而行狀也不然其不可爲之事則不可以爲焉非修
011_0667_a_23L其三學之道者不可以爲狀焉余本才踈性懶不事文
011_0667_a_24L章者有年矣然時則不免爲人所牽著述章句

011_0671_b_01L便是世間第一等人          이것이 곧 세간의 으뜸가는 사람이라
酌中山仙人酒            중산中山 선인405)이 담근 술을 마시고
滿醉了               흠뻑 취하여
乾坤森羅              건곤과 삼라만상을
一印印之              한 무문인無文印으로 찍은 다음에
然後灰頭土面            머리엔 재를 묻히고 얼굴엔 흙을 묻힌 채
遊戱芳草岸頭            방초 우거진 언덕에 노닐면서
一聲笛囉囉哩            날라리 날라리 젓대를 부노라

갑진년(1094) 3월 하순에 호서 승려 경허는 쓰노라.
맑은 마음에 계합하는 법문(契此淸心法門)
대저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젊던 얼굴이 쉬지 않고 변천해 가니, 달리는 말과 같다느니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느니 서쪽으로 지는 햇빛과 같다느니 하는 말들은 무상이 신속함을 말한 것이며, 똥 무더기 같다느니 꿈속 같다느니 원수와 같다느니 독사와 같다느니 하는 말들은 허망하여 좋은 일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는 “나는 말이 없고 싶다.”406)라고 하였는데, 하물며 우리 불법을 배우는 사문이야 말할 나위 있겠는가. 응당 본래 마음을 궁구해서 정밀히 연마하여 명묘明妙해져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백천 가지 삼매와 한량없는 묘의妙義가 구하지 않아도 절로 얻어질 것이니, 모든 불조佛祖가 어찌 특이한 사람이겠는가.
그런데 지금은 성인의 시대와 멀어져 출가한 사람들이 자기의 체제는 알지 못하고 그럭저럭 한가로이 지내다 일생을 보내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 부처님의 정법안장이 매몰되어 밝혀지지 못하고, 오로지 허위와 사악의 습성이 들었으며, 심한 자는 도리어 불법을 비방하니, 슬프다! 말을 할 수조차 없구나.
육조 대사는 “앞 생각이 미혹하면 중생이요, 뒷 생각이 깨달으면 부처다.” 하였고, 위산 선사潙山禪師는 “생각하되 생각함이 없는 묘妙로 신령한 광염光焰의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여,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성性·상相이 항상 머물고 사事·리理가 둘이 아니라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리라.” 하였다. 그 빛을 얻으면 하루아침에 제불과 같아지고, 그 빛을 잃으면 만겁토록 생사를 따르고 말 것이다.
용이 뼈를 바꿀 때 비늘은 바꾸지 않듯이 범부가 마음을 돌이켜 부처가 됨에 그 얼굴은 바꾸지 않는 법이니, 무명의 참 성품이 곧 불성이요, 허깨비처럼 덧없는 이 육신이 곧 법신이다. 이 도리는 너무 가까이 있으니 눈을 뜨면 곧 보고, 눈을 감은 곳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바로 너이다.” 이러한 명백한 가르침들은 이루 다 인용할 수도 없거니와 모두 범부를 고쳐 성인을 만드는 직절直截한 도리이다.
고인들이 이와 같이 노파심으로 고구정녕하고 간절히 말했으니, 이러한 가르침들을 외워서 학습하고 돌이켜 궁구하며 선각들을 두루 찾아가 물어서 분명히 결택決擇하여 도를 깨닫겠다고 생각하여 자세히 탁마한다면, 그 누군들 도를 이룰 수 없으리오. 현우賢愚, 귀천, 노소,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011_0667_b_01L其事也亦不少每臨行狀未甞不停筆有感夫出家之
011_0667_b_02L不修三學則道業不成而道業不成則無行狀可
011_0667_b_03L盖不惜其無行狀可爲惜其道業不成道業不成
011_0667_b_04L則佛之慧命莫得而寄焉其三學之爲綱領而不爛
011_0667_b_05L却佛法也固若是也今之沙門莫之事焉可慨也已
011_0667_b_06L謹按行錄和尙俗姓金貫光山諱詳玟瑞龍其號
011_0667_b_07L春澤公爲曾祖於沙溪先生爲八代孫也以仁宗
011_0667_b_08L嘉慶十九年甲戌生於京城內幼而淸藻粹然十七歲
011_0667_b_09L遊鍾路見官人被刑忽厭世名利之爲患發無常心
011_0667_b_10L投安城靑龍寺影月丈老落髮受具至十九也
011_0667_b_11L訪名山之志入智異山時有龍岳丈老大開講席於
011_0667_b_12L安國寺師攝衣請益其學漸進次叅龍岩和尙
011_0667_b_13L知見淸瑩年二十七入騎羊聖典丈老之室道價高標
011_0667_b_14L其遺囑住錫于碧松庵庵頽圮和尙重修得輪奐焉
011_0667_b_15L護惜常住中興寶坊又慮己事未明數年面壁
011_0667_b_16L于七佛庵以和尙之高識應有得其禪奥而非同
011_0667_b_17L道者不能知也以光緖十六年庚寅臘月二十七日得微
011_0667_b_18L至九日欲入湼槃時衆以過歲供佛爲憂和尙曰
011_0667_b_19L余爲僧六十年而臨遷化豈有防碍於三寶事耶
011_0667_b_20L延至明年初二日又欲湼槃時衆又以祭七星爲憂
011_0667_b_21L和尙又如前言延之至四日巳時問于衆曰今日去
011_0667_b_22L無所防碍乎衆曰付囑訖使時衆諷經念佛
011_0667_b_23L奄然歸化經云以波羅提木叉爲師又云十方諸佛
011_0667_b_24L皆依戒定慧而入湼槃和尙平時守戒孜孜兢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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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었으니, 응당 무슨 일을 해야 하겠는가. 눈이 색色에 끌려가면 아귀가 되고, 귀가 소리를 따르면 아비지옥에 들어간다. 그런데 색과 소리라는 짐주鴆酒407)에 취하고, 수受와 상想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정신이 흐려서 깨닫지 못하고 오늘도 이와 같이 보내고 내일도 이와 같이 보내다가, 납월 30일(죽음)에 이르면 머리가 찢어질 듯 아프고, 오장이 칼로 저미는 듯 아프고, 손발을 잡아 뽑는 것과 같아 마치 끓는 물속에 떨어진 게처럼 발버둥도 칠 수 없고,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거북처럼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정신이 혼미하여 천당에 올라가는지 지옥에 들어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아아 안타까운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도를 깨달은 옛날의 현인들은 임종할 때 앉아서 죽고 서서 죽어 마치 사람이 방문을 열고 밖에 나가는 것처럼 쉬웠다. 계 선사戒禪師는 지팡이에 기댄 채 입적했고, 불인 장로佛印長老는 한 번 웃고 입적했으며, 어떤 이는 밥을 먹다가 수저를 멈추고는 입적했고, 어떤 이는 한쪽 발을 드리운 채 입적했고, 어떤 이는 거꾸로 선 채 입적했고, 어떤 이는 몇 자 높이로 허공에 뜬 채 입적했으니, 이는 모두 자기 본성을 돌이켜 궁구하여 정定과 혜慧를 온전히 갖춘 결과이다.
슬프다! 고인인들 어찌 지금 사람들과 다르리오. 동산洞山 화상이 “가사 아래에서 사람 몸을 잃는 것이 고통이다.” 하였으니, 잠계箴戒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네 번 ‘슬프다’라고 한 데에서 감회와 한이 바다처럼 크고 많건만 누가 알리오. 이 글을 써서 승화 상인承華上人에게 주노라.
경허는 쓰다.
남원 천은사 불량계佛粮契에 대한 서문(南原泉隱寺佛粮契序)
대저 부처란 깨달음이라, 자기 성지性地가 청정하고 명묘明妙함을 깨달아 신통 변화가 무궁무진하고 덕용德用이 항하사처럼 많은 데 이른 분이니, 어떤 사람이 지성으로 기도하면 그 감응은 물에 달이 비치고 골짜기에 메아리가 울리는 것처럼 어김이 없어 중생을 두루 구제하여 마침내 수역壽域·낙토樂土에 이르게 한다.
이 절은 본래 터가 좋기로 이름난 곳으로 불상과 신상神像의 영험이 다른 절과 다르고 보면, 그 자비의 구름과 지혜의 비가 무궁한 후세에 길이 중생들을 적셔 줄 것이다.
본읍本邑에 거주하며 양청兩廳에 근무하는 이들이 큰 원력을 일으켜 각자 약간의 돈을 내어 불량佛粮을 공급하는 계를 설치하여 향을 사르고 공양을 올려 매월 모일마다 기도하여 재액을 없애고 길경吉慶을 맞이하며 자손이 번성하고 부귀가 이어지길 빌었으니, 기도에 불보살이 감응하는 것은 이치이다. 필시 알지 못하는 중에 가피를 받게 될 것임은 지혜로운 이가 아니라도 알리라. 따라서 수역·낙토에 마침내 이를 것임이 틀림없다.
내가 남방에 노닐다가 이 절에 들렀더니, 춘명 장로春溟長老가 내게 서문을 써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이 일을 보고 사모하며 따라 기뻐하여 그 사실을 서술하고 아래에 그 규례를 밝히노라.
대한大韓 광무光武 4년(1900) 중동仲冬(음력 11월) 하순에 호서湖西 납자 경허는 삼가 쓰노라.

011_0668_a_01L精嚴玉立而學識瞻富其入滅也能延促自在其自
011_0668_a_02L在也非定力固不能也雖古之精鍊三學而成就道業
011_0668_a_03L亦不可以過焉溯其法派晦庵傳之寒庵寒庵傳
011_0668_a_04L之秋波秋波傳之鏡巖鏡巖傳之中庵中庵傳之騎羊而晦庵
011_0668_a_05L嗣于葆光葆光嗣于慕雲慕雲嗣于碧岩碧岩嗣于浮
011_0668_a_06L浮休嗣于芙蓉和尙於芙蓉爲十一代孫也而壽七十
011_0668_a_07L臘六十法門棟樑斯摧叢林皆傷其運否
011_0668_a_08L光武四年冬過花田之龍門寺有虎隱丈老盛言
011_0668_a_09L和尙時順間道行卓異託余述行狀而不朽以不閑文辞
011_0668_a_10L辞之其數旬後過碧松庵有嶺雲東雲二高德
011_0668_a_11L和尙之嗣足也又欲爲先師著其行狀其請彌勤
011_0668_a_12L回憶最少年時過寒際於碧松庵時見和尙道氣
011_0668_a_13L淸肅盎然發外因年少寡識未能叅聽法慧以滌
011_0668_a_14L心塵餘恨可旣今年光五十有五髮蒼凉而面皺縮
011_0668_a_15L佛法無所開明二利俱闕可勝言哉其於和尙
011_0668_a_16L道德大有慕悅望愛之心而二高德之勤請與虎
011_0668_a_17L隱丈老之所託又不可以强辞不揣其文辞之拙
011_0668_a_18L槩略如右而其停筆有感時復再三不已也

011_0668_a_19L德裕山松溪庵回祿後成造勸化文

011_0668_a_20L
余仲春下澣於景德實相寺造百丈庵回祿成造
011_0668_a_21L

011_0668_a_22L
今又此松溪庵南來久矣爲文亦多所遇於文者
011_0668_a_23L優興也或落拓也或慷慨也或景慕也幽閑淸
011_0668_a_24L憂愁窮縮也其事固非一二也而其所遇未有

011_0672_b_01L
무이당에게장곡사 보광암의 비구니에게 부쳐 보낸 편지(無二堂長谷寺普光庵比丘尼寄贈)
차별하는 생각이 다하지 못한 것이나 차별하는 생각이 이미 다한 것이나 둘이 아니니, 어째서인가?
사오백 길 꽃과 버들이 우거진 거리요, 이삼천 곳 풍악을 울리는 누각이로다.
일러 보라. 이것이 둘이 아닌가, 둘인가? 알면 매우 멍청한 놈이요, 알지 못하면 도리어 옳다고 인정하리라. 비록 그렇지만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다시 3생 60겁을 참구해야 한다.경허풍류화鏡虛風流話 중에 있다.408)
함께 정혜를 닦아 함께 도솔천에 나서 함께 불과를 이루는 계사를 결성하는 글(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文)
『화엄경』에서 “응당 법계의 성품을 보라.” 하였고, 『법화경』에서 “항상 스스로 적멸한 상相”이라 하였으니, 그 적멸한 상과 법계의 성품이 어찌 중생이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그 성품이 아니겠는가. 『금강경』에서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 하였고, 『열반경』에서 “모든 것이 무상하니, 이는 생멸하는 법이다.”라고 하였으니, 중생의 육신과 세계 및 선악善惡, 부동不動 등의 행업行業이 어찌 그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경의 게송들은 우리 불문에서는 삼척동자와 죽반사미粥飯沙彌409)도 익히 보고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비록 오랫동안 경을 외고 참선과 염불을 한 석덕碩德들도 대개 그 뜻을 조금도 알지 못한 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지나쳐 버리고, 이것이 무슨 도리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는다. 하물며 반조返照하여 그 뜻을 알고 깨달아 수행하는 이가 있겠는가.
슬프다! 이 몸은 물거품처럼 덧없으며 육신은 달리는 말처럼 멈추지 않고 늙어 가니,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잠깐 머물고 바람 앞의 등불처럼 빨리 사라진다. 게다가 몸속에는 온갖 진물과 고름이 들어 있어 아홉 구멍으로는 더러운 물을 흘려내니, 그 추악하고 무상하기가 이와 같이 두렵고 가증스럽다. 그런데도 무명의 짐주鴆酒에 취하고 식경識境410)의 풍파에 흔들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온갖 정신을 다 써서 오랜 겁 동안의 허물을 짓고 있으면서도 끝내 알아차리지 못하니, 슬프다!
우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를 불쌍히 여겨 신통과 지혜의 힘을 써서 삼승교三乘敎의 그물을 펼쳐서 인천人天이란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최후에는 정법안장·열반묘심을 가섭 존자에게 부촉하여 대대로 전수하여 달마 조사에 이르러 중국 땅에 와서 중생을 교화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떨쳤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성불하게 한다.”라고 한 것은 도의 강령을 보여 준 것이요, “밖으로는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는 마음에 헐떡임이 없어야 하니,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다.” 한 것은 도의 직절함을 보여 준 것이요, “마음을 관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수행을 총섭摠攝한다.” 한 것은 도의 본체를 보여 준 것이요,

011_0668_b_01L此二庵之如是慘怛也佛云無常之火燒諸世間又云
011_0668_b_02L界無安猶如火宅人孰能戒悟於此 [1] 有所傷悼古德云
011_0668_b_03L心有生住異滅故身有生老病死春夏秋冬成住壞空
011_0668_b_04L亦由是而有若能心住實地蛇蚹蟬翼之待自不遷變
011_0668_b_05L漢武帝鑿昆明池得刼灰天地亦不免爲火豈有
011_0668_b_06L瓊宮瑤臺金鳳玉龍之足恃乎比之蚌黏蟻蛭焉
011_0668_b_07L乎山龕村落之微乎推此則得失興亡也不可以憂喜
011_0668_b_08L此庵也無蹟可考而土人之傳創於羅代盖古也前有
011_0668_b_09L文谷櫟庵諸丈老執麈演經于斯聽徒盈室挽近
011_0668_b_10L運否其保殘如綫而終入八人天運之準量固如是耶
011_0668_b_11L物極則返將兆於大盛先有其衰之極如是耶于天高
011_0668_b_12L莫之究焉善餘慶福施生人天儒釋之典其理昭彰
011_0668_b_13L間不容髮此主化釋之所以焚香廣吿于樂善大施之門
011_0668_b_14L此也而擔荷成造事之當矣其誰曰不可依依上方
011_0668_b_15L春睡閒夢要圓因剝啄欠伸而寤栩栩者蝶杳入
011_0668_b_16L前塵蘧蘧者身宛是幻化墻角紅杏風落庭心
011_0668_b_17L碧草雨肥時政暮春矣裊裊一柱香半入軟蘿靑
011_0668_b_18L嗚呼天下得失古今興亡也 [2]

011_0668_b_19L喪布稧序

011_0668_b_20L
余己亥之冬寓海印禪社下修多羅蔵之香閣
011_0668_b_21L膝擁爐老驗雨晴病驗寒暄而七分死灰十分枯木
011_0668_b_22L而已慮其幾乎辜負於名山採藥之期也已有沙彌
011_0668_b_23L名斗正持一卷册謂余曰某甲等各爲師傅設喪
011_0668_b_24L稧也願和尙爲之序余嘉其意謂之曰古人云

011_0673_a_01L“넓을 때는 법계를 두루 덮고 좁을 때는 침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한 것은 도의 대용大用을 보여 준 것이요, “세 번 절하고 제자리에 서자 골수를 얻었다고 인가하였다.”411) 한 것은 도의 연원을 보여 준 것이다. 이 밖에 불조의 백천 가지 방편들이 모두 말세의 중생들에게 자상하게 일러 지도해 준 수행의 바른 길이다.
혹자는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서 꽃을 들자 백만 대중은 모두 알지 못하고 오직 가섭 존자 한 사람만이 알아차리고 미소 지었습니다. 말세 중생들이 근기가 하열한 것을 헤아리지 못하고 모두가 조사의 선禪을 참구한다고 하니, 어찌 성공할 리가 있겠습니까?”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설邪說은 일일이 들어서 말할 수도 없다. 이는 본래 지혜의 눈이 없는 데다 명안종사明眼宗師를 찾아가 묻지 않아서 이와 같이 식견이 거칠게 된 것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이 생각해 버리고 자기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기 앞길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도 멀게 할 것이다. 이 물음에 답변해 보겠다.
부처님이 전법하실 때 제자들은 모두 불보살이 응화應化해 다시 태어나신 분들로 가섭·아난과 같은 이들이 무수히 많았으니, 어찌 이 도를 알 수 있는 근기가 없었겠는가. 한 사람에게만 법을 전한 것은 부처님이 입멸한 뒤에 한 사람을 들어서 일대교주一代敎主로 삼았으니, 이는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왕이 없는 것과 같다. 그 밖에 도를 얻은 이들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따라서 서천의 조사들로부터 중국의 성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바국다 존자優婆毱多尊者는 사람을 득도하게 할 때마다 산가지(籌) 하나씩 넣은 것이 30척 넓이의 석실에 가득 찼다고 하며, 마조馬祖 아래에서는 88명의 종사가 나왔다. 그 이후에도 1천5백 명 선지식들이 동시에 도량에 앉아서 마침내 다섯 종파로 나뉘었으니, 한 선지식 아래에서 도를 이룬 이가 많게는 1천1백 명이고, 적어도 열 명을 밑돌지 않았다.
만약 백만 대중은 모두 알지 못하고 가섭 존자만 알고 미소 지었다는 그릇된 소견을 고집하여 말세 사람들이 조사의 선을 참구하는 것은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고 헐뜯는다면, 위에서 말한 종사들이 허다한 사람들을 교화한 것들은 모두 잘못 전수한 것이란 말인가. 아니면 모두 근거 없는 허망한 설을 날조하여 전수한 것이란 말인가.
이러한 사적들은 분명하게 서책에 기록되어 있으니, 속일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말세의 도를 얻은 이는 많은데 영산회상에서는 한 사람에게만 도를 전수했다면 어찌 말세 사람들의 근기가 영산회상 대중들보다 나아서 그러했던 것인가? 이럴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오직 가섭 존자에게만 도를 전수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대의 소견대로라면 오직 가섭 존자 뿐이고 다른 사람은 도를 전수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했던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불행히 가섭 존자 한 사람이 없었다면 정법안장을 전수하지 못하고 말았을 것인가?
또 만약 말세 사람의 깨달은 바가 영산회상에서 부촉한 바에 미치지 못하다고 헐뜯는다면 이는 더욱 옳지 못하다.

011_0669_a_01L生事之以禮 [1] 死葬之以禮又云喪止乎哀而已然而
011_0669_a_02L其能知禮而哀之者寔有幾人而至于近日以空門
011_0669_a_03L事觀之爲嗣佐者於其爲師傅草忽不盡意者何可
011_0669_a_04L勝數而甚者或至於路人吾每於 [2] 此事未甞不見聞嗟嘆
011_0669_a_05L者有年矣夫父母雖生得吾身若非師傅之模而範之
011_0669_a_06L烏能成人乎 [3] 其師之功大矣生而禮之死而哀之
011_0669_a_07L盡意之可也古人云禮之本敬而已非玉帛之末無以
011_0669_a_08L爲用此設稧而相賻儀者實深得乎其古人大中之一
011_0669_a_09L節也可不美哉然有一未盡於此者盖生而來者
011_0669_a_10L是甚麽物作何形段者死而去者又是甚麽物作何形
011_0669_a_11L段者夫其終日禮哀而未曾禮哀終日生死而未曾
011_0669_a_12L生死之本來面目其孰能觀得於生死禮哀之中而不
011_0669_a_13L誤着一生耶故古人云死生亦大矣嗚呼其不大矣
011_0669_a_14L乎哉斗正合掌而起曰從今日以後當究得其能
011_0669_a_15L禮哀能生死之本來面目則其庶無未盡之歎乎
011_0669_a_16L當如是則中邊俱甜事理無憾豈不盡善也哉
011_0669_a_17L於是乎序而贈之且向其稧規開錄于後

011_0669_a_18L
大韓光武三年己亥之臘之望病釋鏡虛書于遊
011_0669_a_19L戱三昧中 [4]

011_0669_a_20L正法眼蔵序

011_0669_a_21L
圭峰師云佛經開張羅大千八部之衆禪偈撮略
011_0669_a_22L就此方一類之機羅衆則莽蕩難依就機則指的易
011_0669_a_23L其指的易用也思與同志共之付同行染禪和書集
011_0669_a_24L語錄十篇及拈頌諸導師直截法門爲一秩五冊以爲

011_0673_b_01L세상에 어찌 천생미륵天生彌勒과 자연석가自然釋迦가 있겠는가. 조사들이 사람들에게 마음을 밝혀 견성하게 했다는 말만 들었지, 말세 사람들이 정혜를 학습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것은 보지 못했으니, 아무리 억지로 따져 보아도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만 법을 전한 것은 부처님이 입멸한 뒤에 한 사람을 들어서 일대교주로 삼았으니, 이는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나라에는 두 왕이 없는 것과 같다. 그 밖에 도를 얻은 이들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니, 만약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이제부터 고쳐라.
세존께서 “법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며, 요의了義에 의지하고 불료의不了義에 의지하지 말라.” 하셨다. 이제 『화엄경』·『법화경』·『능엄경』·『원각경』·『유마경』·『열반경』 등 대승경전과 마명·용수·무착·천친 등의 대승론과 『전등록』·『종경록』·『선문염송』 등 선문의 어록들을 보면, 어느 곳에 말세의 중생이 진정한 도를 참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 대목이 있는가? 허락하지 않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간절한 정성으로 특별히 알아듣게 일러 주고 장려하여 이 도에 들어가지 못할까 오로지 걱정하였다. 이는 우리들이 평소에 늘 말하고 들어온 것이니, 어찌 한마디 말, 한 글자인들 속일 수 있겠는가.
슬프다! 정법은 침체하고 사도邪道는 치성하니, “한잔의 물로 한 수레의 땔나무에 붙은 불을 끄는 격”이라는 탄식이 청허 노사淸虛老師의 교화가 융성하는 때에 있었거늘 오늘날이야 말할 나위 있겠는가.
대저 착한 생각은 인간과 천상을 이루고, 악한 생각은 아귀와 지옥을 나타내는데, 이 조사 문하의 활구법문은 곧바로 고불미생전古佛未生前 소식을 보아서 대적광도량大寂光道塲에 안신입명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삼라만상 모든 사물이 청정한 불국토 아님이 없어 모두 해인삼매海印三昧이다. 근기가 뛰어난 이가 있으면 단번에 이 경지에 뛰어 들어가 중요한 나루를 장악하여 나라를 안정시킬 것이니,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근기가 낮은 이는 이 공부를 단번에 성취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고인이 “죽순은 필경 대나무가 되지만 지금 죽순으로 뗏목을 만들면 사용할 수 있겠는가?” 하였으니, 즉 근기가 하열한 자는 오랫동안 닦아야 필경에 도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대혜大慧 스님은 “일구월심 화두를 들면 자연 축착합착築着闔着412)할 것이다.” 하였으며, 조주趙州 스님은 “너희들이 20년, 30년 동안 총림을 떠나지 않고 진실하게 참구하여 만약 이 도를 알지 못한다면 노승의 머리를 베어 가라.” 하였다. 고인들의 이와 같은 가르침이 어찌 거짓말로 후생들을 유혹한 것이겠는가.
미혹한 이들이 이 이치를 알지 못하여 조사 스님들의 법문을 들으면 성인의 경지라고 미루어 높이고, 단지 유위법有爲法인 사상事相에 힘써서 입으로 경을 외고 손으로 염주를 쥐기도 하고,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여 공덕과 보리를 바라기도 하니, 잘못 되었도다! 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양 무제梁武帝가 불상과 탑을 조성하고 재齋를 베풀고 승려를 득도시키는 등 한량없는 불사를 했는데도,

011_0669_b_01L入道正眼其爲書也雖隻言片語無非切勤勸勉
011_0669_b_02L明指陳其成佛路頭廓朗無纖毫疑翳若於此書
011_0669_b_03L究玩味 [1] 照於心源用功專精雖不用看過蔵教蔵教在
011_0669_b_04L又不啻在也其於行門指的寔有勝於難依者也如有
011_0669_b_05L志於道者應有 [2] 神思察焉然傳寫多誤脫又有錯其
011_0669_b_06L句讀吐語讀者失其本意不揆不才爲之詳定如有傳
011_0669_b_07L寫者當十分用意寫後又再三校正勿誤錯普施於
011_0669_b_08L衆生界中其結光明種子不失成佛之正因深願在玆
011_0669_b_09L

011_0669_b_10L桐裏山泰安寺萬日會梵鍾買献檀那芳啣記

011_0669_b_11L
曰鍾曰皷曰雲板曰木魚皆有表有用此是招提四物
011_0669_b_12L鍾爲最緊焉凡上堂普請焚修齋粥靡此皆不可以
011_0669_b_13L事之况淸凉之息苦楞嚴之指性以至歇了地獄中恒沙
011_0669_b_14L衆生之苦惱者其功用也實不可以思議焉居本寺之有
011_0669_b_15L暎月大師者行業鍊精識學淵廣念佛化之否蹇含生
011_0669_b_16L之伶俜爲設萬日念佛會于此庵而庵舊無鍾如有缺焉
011_0669_b_17L因此慨念有年矣有完山府居檀那宋柱商霑其化
011_0669_b_18L淸淨信出阿堵千餘金買獻梵鍾願生貴子盖乱山
011_0669_b_19L㭗㭗長夜沉沉聲聲呌吼發韻淸暢渾元一闢氣生萬彙
011_0669_b_20L其感應道交得其貴子也必矣勸後傳芳不可以泯
011_0669_b_21L略此數語

011_0669_b_22L
庚子臘月上澣湖西歸釋鏡虛謹識 [1]

011_0669_b_23L華嚴寺上院庵復設禪室定完規文

011_0669_b_24L
夫禪者其理直截高遠逈出三乘故學禪者悟徹本地風

011_0674_a_01L달마 대사는 “조금도 공덕이 없다.” 하였다. 또 육조 대사는 “미혹한 이들은 복만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는 것이 바로 도라고 말한다.” 하였고, 영가永嘉 스님은 “상相에 머무는 보시는 천상에 태어나는 복을 짓지만 허공을 우러러 화살을 쏘는 것과 같으니, 힘이 다하면 화살이 도로 떨어져 내생에는 뜻대로 안 되게 되리라.”413) 하였고, 또 규봉 선사圭峯禪師는 “글자를 알고 경을 보아도 원래 증오證悟하지 못하며, 글 뜻을 아무리 잘 알아도 오직 탐진치 사견邪見만 치성하게 할 뿐이다.” 하였고, 또 홍인 대사弘忍大師는 “본래의 참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시방세계의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낫다.” 하였으니, 이와 같은 말들은 모두 정혜定慧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잘못 수행하는 것을 꾸짖은 말이다.
대저 중생이 삼계에 빠져 사는 것이 갓난아이가 물과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참혹하며, 제불이 대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보다 더 간절하다. 그러므로 석가세존은 “모든 중생들을 라후라羅睺羅414)와 똑같이 본다.” 하였다. 그런데도 우리가 단번에 불지佛地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부처님이 자비가 없어서 그러한 것이겠는가. 그렇지 않다.
부처님 회상에서 아나율 존자阿那律尊者는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자다가 부처님의 꾸지람을 받고 이레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애써 정진하여 천안통을 얻었으나 눈이 멀고 말았으며, 아난 존자는 가섭 존자의 꾸지람을 받고 비사리毘舍離에 머물며 홀로 정진하여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곤해진 뒤에 아라한과를 얻었다. 만약 부처님의 신통력이 마치 입을 억지로 벌려 약을 부어 넣어 병을 낫게 하듯이 억지로 중생으로 하여금 도를 얻게 할 수 있다면, 이 두 존자들이 어찌 정진하여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치고 애써 정진하다가 눈이 먼 뒤에 천안통을 얻고 성과聖果를 얻을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빌려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가르침을 빌리지 않아서는 안 되니, 싹이 나고 자랄 때에는 실로 물과 흙의 힘을 빌리고 보배 구슬이 어두운 방에 있을 때 반드시 등잔 불빛을 빌려야 빛나는 것과 같다.
경론經論들 중에 급히 선지식을 찾아가 도업道業을 결택하라는 분명한 가르침이 남아 있다. 비유하자면 절과 도살장 곁에 있는 것은 같은 코끼리인데 선하고 악함이 때에 따라 다르고, 향초와 생선을 싼 종이를 잡은 것은 한 사람인데 비린내와 향기가 때에 따라서 바뀌는 것과 같다.415) 하였고, 고덕古德이 “착한 벗을 받들어 섬기되 신명身命을 아끼지 말라.” 하였으니, 어찌 저처럼 중요시하고 이처럼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내가 지난 기묘년(1879) 겨울, 계룡산 동학사 조실에서 조사선의 활구를 참구하여 홀연 깨달은 곳이 있었다. 그래서 동지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당시 숙질夙疾이 낫지 않았고 심지心志도 하열하여 한가로이 지내면서 어촌과 주막을 돌아다니고 그윽한 시내와 숲 속에서 쉬기도 하면서 유유자적 스스로 모든 것을 잊고 살아왔다. 그 후로 전쟁이 이어져 세상은 어지럽고 위태한지라 몸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어찌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성상星霜이 여러 번 바뀌어 어언 20년이 지났다.
막대한 부처님 은혜를 스스로 생각하여

011_0670_a_01L則與古佛齊肩其法之要妙也孰過於是故達磨大
011_0670_a_02L入唐土以來至于我東土得其道徑登佛地者其數無
011_0670_a_03L至於近世其廢而不傳設有發跡者其數無限至
011_0670_a_04L於近世其道廢而不傳設有發跡者初不無決擇其叅究
011_0670_a_05L意渾沌於昏掉之中過了一生而未能小分覰得其理
011_0670_a_06L凡他行業者或外護者不擇善否例皆非歎嗚呼不可
011_0670_a_07L以救得也此蘭若創始華嚴時早爲禪室其地靈勝
011_0670_a_08L得道者亦多而中間廢絕其業者非特運之否泰也
011_0670_a_09L亦未有主化之人也光武四年暮春淸霞丈老來住
011_0670_a_10L禪會于此以丈老之淸淨道心廣大願力定議於山中僉
011_0670_a_11L員而完就者也而第恐後之住持于此庵者不念佛化之
011_0670_a_12L關重古人創始之本懷今長老復設之勤懇或從其私
011_0670_a_13L或循其便宜廢乎禪室不承接其禪者此是断佛種人
011_0670_a_14L謗般若人因果歷然可不畏哉儒典云爾愛其羊我愛其
011_0670_a_15L經云一念淨心勝造恒沙寶塔又云聞最上乘誹謗
011_0670_a_16L三惡途者勝於供養恒沙佛者又古人云聞而不信尙結佛種
011_0670_a_17L之因學而未成猶盖人天之福以於一切道法般若力爲勝故也
011_0670_a_18L此觀之禪人雖沉綿昏掉而未得意者猶勝於三乘學人
011_0670_a_19L善成就道業者也願諸後之住持斯庵者三復斯文繼揚
011_0670_a_20L禪化可也夫爲佛子而不務行乎佛化檀用其私廢其勝
011_0670_a_21L自有天地神祗之㝠誅顯罰可不懼哉夫有如是之
011_0670_a_22L可懼也而不愓然遵奉者已矣吾末如之何也已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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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四年庚子臘月上澣湖西歸釋鏡虛謹識 [1]

011_0670_a_24L示法界堂法語 [1]

011_0674_b_01L진찰塵刹의 만분의 일이라도 받들고자 하여 주장자를 어깨에 걸치고 합천 해인사로 갔다. 때마침 수선사修禪社 선방을 신축하였기에 선덕禪德들과 함께 동안거를 나면서 황양목선黃楊木禪416)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화롯가에 단란히 모여 앉아서 얘기하다가 고인들이 결사結社하여 도를 닦았던 일에 말이 미치니, 그 자리의 스님들이 모두 잊었던 일이 문득 다시 생각난 듯 원력과 믿음이 물이 용솟음치고 산이 솟아오르는 듯이 일어나 우리가 서로 만난 것이 늦음을 한탄하였다. 즉시 결사동맹結社同盟하기로 의논하고 나를 맹주로 추대하였다. 나는 지난날 막대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했던 때를 생각하여 나의 재주는 용렬하고 행실에 검속檢束이 없고 도는 부족함을 돌아보지 않고서 한마디도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허락하였다.
우리가 동맹한 약속은 무엇인가? 다 함께 정혜를 닦아 함께 도솔천에 나서 세세생생 함께 도반이 되어 구경에 정각正覺을 이루되, 만약 도력을 먼저 성취하는 이가 있으면 맹세코 아직 도력이 부족한 사람을 이끌어서 맹약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같은 생각, 같은 수행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승속, 남녀, 노소, 현우賢愚, 귀천을 따지지 않고, 또한 친소親疏와 이합離合, 원근과 선후를 따지지 않고 모두 입참入參하도록 허락하였다.
그 까닭은 사람마다 모두 한량없는 보배 창고를 갖고 있어 부처님과 다름이 없는데 단지 오랜 겁 동안 좋은 벗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여 삼계를 기어 다니고 사생四生에 빠져 헤매는 것이 연야달다演若達多가 머리를 잃고417)과 낙토樂土에 가고자 함께 발원하는 것이다.
또 고인이 “취향이 다르면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초楚나라 월越나라처럼 아득히 멀고, 도가 서로 맞으면 하늘과 땅처럼 멀어도 함께 있는 것과 같다.” 하였다. 함께 있기 때문에 만상萬象이 비록 펼쳐져 있어도 공성空性이 이지러짐이 없고, 모든 물이 다 같이 흘러가도 바닷물은 더 불어나지 않는 것이니, 부디 용맹한 마음을 일으켜 허망하고 무상한 업행業行을 환히 비추어 알고 적멸세계의 성지性地를 깨달아 닦으며, 견해로 아는 알음알이를 잊고 정법안장·열반묘심을 단번에 증득하기 바라노라. 대저 이와 같다면 누군들 안 된다 하겠으며, 즐기고자 하지 않겠는가.
『인행경因行經』에서 “석가세존이 과거세에 선혜 선인善慧仙人으로 있을 때 연등불燃燈佛 앞에 머리카락을 펼쳐서 딛고 걸어가게 했는데, 그 광경을 보고 따라 기뻐하고 찬탄한 백만 천인天人 대중들이 그때 심은 인연으로 영산회상에 함께 모여서 도를 이루었다.” 하였으며, 『천불인연경千佛因緣經』에서는 “현겁賢劫근고近古에 이르러 혜원慧遠이 여산廬山에서 결사하고 백낙천白樂天이 향산香山에서 결사하고 목우자牧牛子가 팔공산에서 결사한 것도 모두 이러한 뜻으로 한 것이었다.
현장 법사玄奘法師는 “서역 사람들은 모두 도솔천에 왕생하는 행업을 닦는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도솔천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은 욕계 안이라 성기聲氣가 서로 합치하여 행업이 성취되기 쉽기 때문에 대승과 소승의 법사들이 모두 이 도솔천에 왕생하는 법을 인정했던 것이다. 미타정토는 비루한 범부가 수행하여 행업을 성취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신구역新舊譯 경론에서 모두 “십지十地 이상 보살은 분수에 따라 보신불報身佛의 정토를 본다.”라고 하였으니, 어찌 하품下品 중생이 곧바로 미타정토에 왕생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미타정토에 왕생하는 법은 대승에서는 인정하고 소승에서는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현장 법사는 일생 동안 늘 도솔천에 왕생할 행업을 지었고 임종할 때에는 왕생하여 미륵불을 보고자 한다고 발원하고 대중에게 청하여,

南無彌勒如來應正等覺        미륵여래 응정등각彌勒如來應正等覺께 귀의하오니
願與含識速奉慈顔          원컨대 모든 중생들과 함께 속히 자애로운 모습을 뵙고자 하옵니다.
南無彌勒如來所居內衆        미륵여래의 처소에 함께 사는 대중께 귀의하오니
願捨命已必生其中          원컨대 이 목숨을 버리고 반드시 그곳에 왕생하고자 하옵니다.

라는 게송을 외게 하였다. 현장 법사는 법을 아는 훌륭한 스님이니, 필시 자신을 그르치고 남을 속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고금의 기록에서 도솔천에 왕생한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컨대 무착無着·천친天親과 같은 보살들도 모두 도솔천 왕생을 발원하였으니, 지금은 그대로 본받기만 하면 된다.
비록 그렇지만 정토와 도솔천은 수행하는 사람의 잠시 동안의 지원志願에 따라 달라지니, 도솔천에 왕생하는 이가 미타여래를 친견하기를 원치 않겠으며, 정토에 왕생하는 이가 아미타불을 친견하기를 원치 않겠는가.
비유하자면 백벽白璧과 황금은 저마다 참된 보배이고, 봄 난초와 가을 국화는 다 같이 맑은 향기를 풍기는 것과 같으니, 어느 쪽이 낫고 어느 쪽이 못하며, 어느 쪽이 왕생하기 쉽고 어느 쪽이 왕생하기 어려움을 가지고 다투어, 옳으니 그르니 남이 옳다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제 이 계사稧社에 먼저 들어온 사람은 이와 같이 왕생할 발원을 하고, 뒤에 들어온 이들도 마음과 입을 모아서 함께 발원하면, 설령 도력을 성취하지 못한 이가 있더라도 이 발원에 힘입어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여 미륵존불의 위없이 높은 현묘한 음성을 듣고 속히 대각을 증득하고 돌아와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리니, 어찌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도를 닦는 이들은 옛날을 중하게 여기고 지금은 가볍게 여기지 말고, 발원하고 동참하여 좋은 인연을 깊이 심기를 바라노라.
그 나머지 일상생활 중에 할 일들은 경전에 실려 있어 그대로 본받으면 되니, 굳이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다. 고인이 “만행萬行을 다 닦되 오직 무념無念을 가장 으뜸으로 여긴다.” 하였으니, 수행의 요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만행과 무념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아아! 한번 사람 몸을 잃으면 만겁에 다시 얻기 어려우니, 옛날의 영웅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므로 고덕이 자신을 경계한 게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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洞山和尙自誡云不求名利不求榮秪麽隨緣度此生
011_0670_b_02L三寸氣消誰是主百年身後漫虛名衣裳破處重重
011_0670_b_03L粮食無時旋旋營一個幻躬能幾日爲他閒事長無
011_0670_b_04L此幾句語也是出家人之日日警覺時時鞭策的道理
011_0670_b_05L當熟讀而翫味之常念無常迅速生死事大開眼也
011_0670_b_06L如是急切着合眼也如是急切着乃至行住坐卧一切時
011_0670_b_07L一切處如是急切着夫如是則何暇有許多閒雜商量
011_0670_b_08L侵染紛汨乎方寸哉故古德云設有一法過於湼槃於我
011_0670_b_09L如夢幻况世間虛幻不實之法更有甚麽心情與之
011_0670_b_10L打交涉雙林傅大士云夜夜抱佛眠朝朝還共起起坐鎭
011_0670_b_11L相隨語默同居止纖毫不相離如身影相似欲識佛去
011_0670_b_12L秪這語聲是此幾句語也是出家人之日日照顧時時
011_0670_b_13L叅究之面目當審思而曉了之當念不識無盡寶蔵
011_0670_b_14L在我赤肉團上緣此歷刼枉受辛苦今世若差過未知何生
011_0670_b_15L更得見聞證澈乎發慶幸之心勇猛之志即於古人建化
011_0670_b_16L門頭努力行之或叅禪也或念佛也或持呪也乃至六波羅
011_0670_b_17L蜜法門切不得分作多般道理當務以廻光返照照了心源
011_0670_b_18L大要不忘靜淨二字淨是菩提靜是湼槃也然及得徹了
011_0670_b_19L又何嘗以支貳名之以湼槃而爲節目之哉故云照盡軆
011_0670_b_20L無依通身合大道然則夫萬行雖是釋子日用所行
011_0670_b_21L不可無智慧之照了自性所謂萬行備修唯以無念爲
011_0670_b_22L宗者此也前五度之行若無智慧功力譬如失目之人行於
011_0670_b_23L險道豈以其本若此其末若彼哉且也善與惡也菩提與
011_0670_b_24L生死也未嘗有二過去也未來也現在也未嘗有二十方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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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求名利不求榮           명리를 구하지도 영화를 구하지도 않고
秪麽隨緣度此生           그럭저럭 인연 따라서 평생을 살아가노라.
三寸氣消誰是主           세 치 혀 기운 사라지면 누가 주인인고.
百年身後漫虛名           몸이 죽은 뒤에 부질없는 허명만 남는 것을.
衣裳破處重重補           옷이 해진 곳은 겹겹이 기워 입고
糧食無時旋旋營           양식이 없으면 그때그때 마련할 뿐
一箇幻躬能幾日           이 덧없는 몸뚱이가 얼마나 오래 간다고
爲他閒事長無明           쓸데없는 일 때문에 무명을 기르리오.

하였고, 또 고덕이 세상을 탄식한 시에서,

細推今舊事堪愁           고금의 일을 자세히 생각하면 시름겹나니
貴賤同歸一古邱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무덤에 돌아가는 것을.
漢武玉堂塵已沒           한 무제의 옥당419)은 이미 티끌 속에 묻혔고
石崇金谷水空流           석숭의 금곡420)에는 물만 속절없이 흐르누나.
光陰乍曉仍還夕           광음은 흘러 새벽이 왔다 금방 저녁이고
草木纔春卽到秋           초목들은 봄이 왔다가 곧바로 가을일세.
在世若無毫末善           세상에 살 때 터럭만 한 선행이라도 없으면
死將何物答冥侯           죽어서 무엇을 가지고 염라대왕께 대답하리오.

하였다. 또 고덕이 수행을 권면하는 글에서,

숨 한 번 내쉬고 들이쉬지 못하면 곧 다음 생이라. 아무리 처자식들이 안타까워해도 그대를 머물러 둘 수 없고, 비록 골육들이 눈앞에 가득해도 누가 너를 대신해 죽으리오. 길을 재촉해 가서 한 무더기 들불에 태우고, 만 리 먼 길 장송葬送하여 황량한 산에 묻으니, 우거진 풀숲 곁에 돌 비석만 부질없이 남았고, 푸른 백양나무엔 속절없이 지전紙錢만 걸려 있네.421)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릴 때는 속절없이 적적하고, 슬픈 바람이 부는 곳에는 차가운 소리 들린다.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이 되고 말 것이니, 여기에 이르러서 어떻게 각성하지 않으리오.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사람 몸으로서 도를 닦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는 닦기 어렵다.

하였으니, 실로 탄식할 만한 것이다. 응당 이 결사문을 반복해 자세히 읽어 마음속에 새기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정진하고 이 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도록 하라.
심지어 이와 같은 간절한 규계規戒를 보고 듣고도, 마치 신발 위로 발을 긁고 월越나라 살찐 사람이 진秦나라 여윈 사람을 보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422) 조금도 감동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은, 병이 들었는데도 약을 구하지 않고 주렸는데도 밥을 먹지 않는 것과 같으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만약 진실로 이 강령과 연원淵源의 도를 수행하고자 하여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할 마음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부지런히 선지식을 찾아가라.
문장은 서툴고 종이는 다하여 글이 말뜻을 다하지 못한다.
삼가 이 수승한 인연에 의지하여 우러러 황제폐하의 성수가 만세토록 길이 이어지길 축원하며, 다음으로 농사는 풍년이 들고 시절은 화평하여 전란은 영영 사라지고, 정법은 무궁한 후세까지 유통하여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다 같이 묘각을 증득하길 축원하나이다.
결사 비구 성우惺牛 등은 일대교주 석가모니불께 귀의하오며, 당래교주當來敎主 미륵존불께 귀의하오며, 시방 삼세에 두루 상주하는 불법승에 귀의하옵니다. 불쌍히 여겨 가피하시는 힘에 우러러 의지하옵나니, 우리들의 발원이 헛되지 않고 속히 행업을 성취하게 해 주시길 엎드려 축원하옵니다.

011_0671_a_01L一毫端也未嘗有二然其諸法也亦未嘗
011_0671_a_02L是一一二也其孰能名之其名之者果誰乎此却是天庇
011_0671_a_03L山中庵下也夫佛法不是異常也實非起心用力行得
011_0671_a_04L如運載重大木石學習文武又不是大段驚天動地特
011_0671_a_05L地作用也秪是照了妄想本無性體明淨安樂無爲
011_0671_a_06L無輕重無欠剩無去來無生死盖法爾如是不是
011_0671_a_07L悟者得如是迷者却不如是也當恁地做恁地保任
011_0671_a_08L亦何嘗有恁地哉夫用功也豈曰以名相多多排布以後
011_0671_a_09L入手哉只這是敢問只這是意如何答曰山河大地明暗色
011_0671_a_10L早是名相了也爾喚甚麽作名相現今念起
011_0671_a_11L念滅生死相續常何以除却爾喚甚麽作起滅念
011_0671_a_12L恁麽則無去也還我話頭來夫出家人也先正其
011_0671_a_13L眼目若得正也誰敢以佛法世諦之乎之說來去作
011_0671_a_14L道理哉然又不是恁麽壁立懸絕翠竹黃花
011_0671_a_15L吟燕語也敢問現今佛性在何處也惺牛大笑而起
011_0671_a_16L這書未幾般文字不可草草閱遏當細細尋究期於
011_0671_a_17L了得分明旣蒙信託不可以默玆以數語雖書着數
011_0671_a_18L萬卷其實綱領不過於此幸勿以些小見誅囑懸蛇
011_0671_a_19L故懸之 [2]

011_0671_a_20L書錦峰堂八帖屛

011_0671_a_21L
萬事無非夢中忽然覺悟拈柱杖携甁鉢深入
011_0671_a_22L雲林邃處百鳥有聲泉石琮琤千尋老松百縈
011_0671_a_23L藤蘿築數間茅屋同知己友有時咏煙霞趣
011_0671_a_24L時焚香靜坐更無塵事相侵一心虛靈萬理昭彰

011_0676_a_01L
대한大韓 광무光武 3년(1899) 11월 11일, 결사맹주結社盟主 비구 성우는 향 사르고 재배하고 삼가 쓰노라.
정혜계사 규례定慧稧社規例
일. 응당 무상이 신속하고 생사의 일이 큼을 생각하여 부지런히 정혜를 닦아야 할 것이다. 만약 부지런히 정혜를 닦지 않으면서 불과佛果를 얻고자 하는 것은, 뒤로 물러가면서 앞으로 나가고자 하고 남쪽 월越나라로 가고자 하면서 수레는 북쪽으로 모는 것과 같다. 부디 유위有爲의 허망한 법을 집착하여 평생의 일을 그르치지 말라.
일. 정혜를 부지런히 닦아서 행업을 결택한 뒤에 공부를 잘못 하지 않으려면 응당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일. 예로부터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되려면 반드시 행업을 갖추어야 하니, 그런 뒤에 될 수 있다. 정혜를 수행하는 까닭은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여 다 함께 불과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일. 이미 이 계사에 들어온 이들은 정혜 수행을 급선무로 삼아야지 단지 도솔천에 왕생하기만 발원해서는 안 된다. 발원만 있고 수행은 없으면 그 발원은 헛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일. 참으로 정혜를 수행하는 이는 도솔천 왕생을 발원하지 않더라도 이 계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며, 참으로 정혜를 수행하는 이는 극락왕생을 발원하더라도 역시 이 계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일. 본 결사의 뜻은 그 목적이 계사에 동참한 사람끼리 탁마하는 데 있으니, 별다른 사고가 없으면 반드시 한곳에 모여서 공부해야 한다.
일. 분명히 결택하여 정혜를 참으로 수행하는 이라면 한곳에 모이지 않아도 무방하다.
일. 도를 공부한 것이 미숙한지 익숙한지를 막론하고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사람은 굳이 한곳에 와서 모이지 않아도 된다.
일. 뒤늦게 계사에 참여한 사람의 거주지, 성명과 발원 등을 계책에 분명히 기록해야 한다.
일. 이 계의稧誼는 처음 만든 것이라 아직 다른 곳에서 유포하지 않았고, 이제 우선 해인사 선사禪社를 결사소結社所로 삼으니, 거주지와 성명 등을 기록하여 인편으로 결사소로 보내어 결사소에 있는 사람들이 돌려 보면 될 것이고, 굳이 이 일로 번거롭게 왕래할 필요는 없다.

011_0671_b_01L便是世間第一等人酌中山仙人酒滿醉了乾坤森蘿
011_0671_b_02L一印印之然後灰頭土面遊戱芳草岸頭一聲笛
011_0671_b_03L囉囉哩

011_0671_b_04L
靑龍三月下澣湖西歸衲鏡虛書 [1]

011_0671_b_05L契此淸心法門 [1]

011_0671_b_06L
夫人生一世也壯色不停如奔馬如草露如西光
011_0671_b_07L常迅速之謂也似糞聚似夢聚如怨賊如毒蛇
011_0671_b_08L其幻妄無好事也孔子曰予欲無言又云無適也
011_0671_b_09L莫也莊子曰遺其玄珠罔象得之又云天地一指
011_0671_b_10L物一馬况我學佛沙門乎當究其本心硏精明玅
011_0671_b_11L百千三昧無量妙義不求而自得諸佛祖豈異人
011_0671_b_12L而今去聖時遠出家人不識自家軆裁悠悠泛泛
011_0671_b_13L過了一生吾佛正法眼蔵埋沒不明而全以虛僞雅惡習與
011_0671_b_14L成性而甚者返以誹謗嗚呼不可以言之矣六祖大師
011_0671_b_15L前念迷即衆生後念悟則佛潙山禪師曰以思無
011_0671_b_16L思之妙返思靈燄之無窮思盡還源性相常住
011_0671_b_17L事理不二眞佛如如得其光也等諸佛於一朝失其
011_0671_b_18L光也順生死於萬刼如龍換骨不改其鱗凡夫廻心作
011_0671_b_19L不改其面無明實性即佛性幻化空身即法身
011_0671_b_20L個道理秪爲太近開眼便刺着合眼處亦自現成如何
011_0671_b_21L是佛心即是如是等明白指導不可煩引而皆是革凡
011_0671_b_22L成聖之直截道理古人之恁麽叮嚀苦口用心緊切如老
011_0671_b_23L誦習而返究博問先覺以決擇分明悟理爲懷
011_0671_b_24L細琢磨其成道也誰人無分賢愚貴賤老少男女

011_0676_b_01L
일. 계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저마다 용맹한 마음을 일으켜 먼저 도력을 이루고, 아직 도력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제도할 뜻을 가져야지, 다른 사람만 믿고 방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람은 결사에 들어오지 않는 것만 못하다. 혹 속이는 마음을 가지고 결사에 들어온 이가 있다면, 속이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도를 이룰 수 있겠는가. 결사에 들이지 않는 것이 옳다.
일. 마음과 행실이 흉악하여 중죄를 지은 이나 나쁜 질병에 걸린 이는 절대로 결사에 들이지 않아야 하니,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교화를 손상하고 수행에 방해된다.
일. 견해가 같고 행실이 같은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결사에 참여시키지 말아야 한다.
일. 발원하여 동맹한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니, 이 계사에 들어온 사람 중에서 삼악도에 떨어져 사마외도邪魔外道에 흘러 들어간 사람이 있으면 먼저 도력을 이룬 사람이 성심껏 구제하여 동맹을 어기지 않도록 한다. 이를 미루어 말하면 동맹한 사람 사이는, 은혜는 부모를 넘고 우의는 형제보다 낫다. 부모와 형제가 어떻게 죽은 뒤에까지 구제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한마음으로 화합하여 질병이 든 사람을 구제해 주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 주어야지, 길 가는 사람을 보듯 등한히 여겨서는 안 된다.
일. 이미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여래를 친견하려는 발원이 있으면, 응당 세상 사람 중 큰 효심을 가진 사람이 나랏일(王事)로 말미암아 부모 곁을 떠나 타향을 돌아다니면서 고향에 돌아가 부모를 뵙고 싶어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하여 절로 잊히지 않는 것과 같아야 한다. 이와 같으면 염주를 세며 염송하지 않아도 그 생각이 늘 간절할 것이요, 늘 간절할 뿐만 아니라 자연히 생각나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염불이다. 절대로 잡생각을 하면서 염주를 세어 천백 번 염송하지 말라. 기타 예배와 공양에 대한 규례도 응당 이를 미루어 적용해야 하니, 향 한 가닥, 차 한 잔을 올릴 때 및 한 번 밥을 먹고 한 번 예배할 때에도 요컨대 성심으로 해야 하고 번잡하게 많이 해서는 안 된다.
일. 다른 각처에서 결사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있는 곳에서 사람이 많건 적건 처지에 맞게 수행하되, 모쪼록 함께 모여서 수행해야 하지 홀로 산림에 들어가 수행해서는 안 된다. 질병을 앓거나 사망한 사람이 도력을 이루지 못했는데 도반이 사후의 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생전의 공부를 잃어 대사를 그르칠까 염려되니, 결사한 사람끼리 서로 구조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벌의 납의를 걸치고 마음대로 남북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질병이 들고 사망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까 염려된다. 만약 이러한 사람들을 일일이 다 구조하려면 남쪽으로 긴 강을 건너고 북쪽으로 높은 산을 넘으며 길을 가느라 고생하는 일이 매월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는 형편상 할 수 없고, 하나는 공부에 방해가 되고, 하나는 산속에 있는 사람이

011_0672_a_01L有分也嗚呼緇髮染衣當爲何事眼被色牽歸餓
011_0672_a_02L耳隨聲去入阿鼻沈醉聲色鴆酒堕沒受想坑穽
011_0672_a_03L昏不覺今日也如是明日也又如是乃到臘月三十日頭痛
011_0672_a_04L額裂肝腸痛切手脚抽牽懡㦬如落湯螃蠏
011_0672_a_05L忍如生脫龜皮神識昏迷上天入獄揔不曉得嗚呼惜
011_0672_a_06L回億古賢於臨終也坐脫立亡容易如門開人出相似
011_0672_a_07L戒禪師倚杖而化佛印長老嘕然一笑而去或停筋而
011_0672_a_08L垂足而寂倒立而滅去數尺而亡皆以返究自性學全定
011_0672_a_09L慧之致也嗚呼古人豈異於人哉洞山和尙云袈裟下失
011_0672_a_10L人身是苦也可以箴戒如上四個嗚呼也感恨如海
011_0672_a_11L知之書此以贈承華上人鏡虛書 [2]

011_0672_a_12L南原泉隱寺佛粮契序 [1]

011_0672_a_13L
夫佛者覺也能覺悟其性地鍊淨明妙至於神化無
011_0672_a_14L德用恒沙者也若人能至誠祈願其感應也如水
011_0672_a_15L之印月谷之傳聲焉而能普濟含生竟臻壽域樂國
011_0672_a_16L本寺自來有名勝區而佛像神塑之靈異異於
011_0672_a_17L他刹則其慈雲慧雨將霑潤於無窮也居本邑兩
011_0672_a_18L廳諸員發大願心各出若干錢設供佛粮稧添香設
011_0672_a_19L月日禱祝除其災厄迎其吉慶子孫寔繁
011_0672_a_20L貴連緜則感應道交理也必將護蔭祐於㝠㝠之
011_0672_a_21L不待智者而後知也而其壽域樂國竟臻也無惑矣
011_0672_a_22L余南遊過是寺春溟長老請余一言爲弁余景慕
011_0672_a_23L隨喜爲之序其事而開其規例于後 [2]

011_0672_a_24L
大韓光武四年仲冬下澣湖西歸釋鏡虛謹識 [3]

011_0677_a_01L무슨 돈이나 재물이 있어 먼 외지에서 질병이 들고 사망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 만약 구조하지 않는다면 동맹을 어기는 것이라 대중들에게 비방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많고 적고 간에 거주하는 곳에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라. 이 조항은 수행에 크게 관계되니, 기필코 준수해야 한다. 만약 홀로 외딴 곳에서 수행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결사에 들이지 말라.
일. 죽음은 피하기 어려우나 병이 들어 죽으려 하는 사람은 주위의 결사 도반들이 정성껏 간병하면서 무상의 법을 설하고 정혜의 이치를 설하고 도솔천에 왕생하는 발원을 설하여, 사망하는 이로 하여금 정신을 잃지 않고 도력을 잃지 않고 도솔천에 왕생하는 발원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 사망한 곳에서 주위의 결사 도반들이 다 함께 공양을 마련하여 미륵여래와 시방삼보께 축원하되, 지극한 정성을 다할 뿐이고 과도하게 힘을 들여 재齋를 차리지 말라.
일. 사망한 사유와 날짜를 분명히 적어서 믿을 만한 인편을 골라서 즉시 결사소로 보내면 결사소에서 결사 도반들에게 두루 보일 것이요, 오로지 이 일 때문에 먼 거리를 왕래해서는 안 된다. 계회稧會 중에서 이 소식을 들은 사람은 멀리 천 리 밖에 있더라도, 2~3사람이 한 회원이거나 4~6사람이 한 회원이거나 10~20사람이 한 회원이거나 100여 사람이 한 회원이던 모든 회중會中은 동맹한 약속을 생각하여 지성스런 마음을 일으켜 망인亡人을 위해 형편에 따라 얼마간의 공양을 차리고 은근한 정성으로 미륵여래와 시방삼보께 공양을 올려야 한다. 비록 한 회중의 회원이 백여 사람일지라도 각자의 이름을 쓰고, 또 각자 동참하여 무릎을 꿇고 절하며 축원하여 망인으로 하여금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게 하고 난 다음 망인의 영령에 제전祭奠을 올린다. 대상·소상 날에도 이대로 준행해야 한다.
일. 이제 정혜를 수행하기로 결사해 놓고 아울러 도솔천에 왕생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정혜에 힘을 얻지 못한 사람을 위해 베푼 것이다. 힘을 얻은 사람은 마음대로 자재하니, 어찌 원력의 힘을 빌어서 왕래하리오. 그러나 대력보살大力菩薩도 서원이 있는 법이니, 힘을 얻은 사람이라도 원력을 가지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래서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고자 발원하는 것이다.”
이미 도솔천 왕생을 발원한 사람들로 결사해 놓고, 또 어찌하여 정토왕생을 발원한 사람들을 이 결사에 참여하도록 했는가?
“정혜로 결사한 것은 정혜를 수행하기 때문이고, 극락왕생을 발원한 사람도 함께 결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만약 참으로 정혜를 수행한 사람이라면 도솔천과 정토가 다른 곳이라 하여 다른 견해를 내겠는가.”
그렇다면 결사문 중에서 단지 도솔천 왕생만 발원하고 정토왕생은 말하지 않은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011_0672_b_01L無二堂長谷寺普光庵比丘尼寄贈 [1]

011_0672_b_02L
或差別商量未盡或差別商量已盡未是無二何也
011_0672_b_03L四五百條花柳巷二三千處管絃樓且道是無二耶
011_0672_b_04L二耶會得甚痴頑不會却相許縱然到得恁麽田
011_0672_b_05L更須叅三生六十刼始得鏡虛風流話中 [2]

011_0672_b_06L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成佛果稧社文

011_0672_b_07L
華嚴經云應觀法界性法華經云常自寂滅相
011_0672_b_08L寂滅相與法界性也豈非衆生見聞覺知之性地耶
011_0672_b_09L金剛經云凡所有相皆是虛妄湼槃經云諸行無
011_0672_b_10L是生滅法豈非衆生根身器界與善惡不動業
011_0672_b_11L行耶這個經偈吾門中三尺童行粥飯沙彌慣習於
011_0672_b_12L見聞者也而雖許久諷經禪念碩德擧是未能少分
011_0672_b_13L看得而泛然過了曾不思量是何道理而况乎照而明
011_0672_b_14L之悟以修之之有哉我此身虛浮如聚沫壯色不停
011_0672_b_15L如奔馬暫有如草露倐滅如風燈裹百千癕疽流九孔
011_0672_b_16L不淨其醜惡也其無常也有如是之可畏可厭也而沈醉
011_0672_b_17L於無明鴆酒飄鼓於識境風波竊竊然用盡百般精
011_0672_b_18L釀成遠刼愆尤而終不省察悲夫

011_0672_b_19L
釋迦佛愍之憐之用神智方便之力張三教網
011_0672_b_20L [1] 人天魚而末後以正法眼蔵湼槃妙心付囑迦葉
011_0672_b_21L尊者轉轉相授至達摩祖師來唐土化育群生
011_0672_b_22L而玄風大振其曰不立文字直指人心見性成佛者示道
011_0672_b_23L之綱領也其曰外息諸緣內心無喘心如墻壁可以入道
011_0672_b_24L示道之直截也其曰觀心一法摠攝諸行者示道

011_0677_b_01L
“정토에 왕생하기는 어렵고 도솔천에 왕생하기는 쉬우니, 도솔천은 우리와 같은 욕계欲界 안이라 성기聲氣가 합치하기 때문이다.”
다른 권수문勸修文에는 “도솔천에 왕생하기는 어렵고 정토에 왕생하기는 쉽다.” 하였는데 지금 어찌하여 이처럼 말이 상반되는가?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 경론과 고인의 어록을 두루 점검해 보면, 정토 왕생과 도솔천 왕생 어느 쪽이 어렵고 어느 쪽이 쉬우냐를 가지고 한쪽을 찬양했을 뿐만이 아니다. 혹자는 ‘도를 이루는 데는 주력呪力만 한 것이 없다’ 하였고, 혹자는 ‘불법을 배우는 데는 송경誦經만 한 것이 없다’ 하였고, 혹자는 ‘불상과 탑을 조성하며 보시하고 공양하는 공덕이 매우 크다’ 하였으며, 심지어 모든 수행들 중 이것저것을 들고서는 그 법만을 찬탄하였다. 이는 한 가지 법은 옳고 다른 법들은 옳지 않다는 말이 아니니, 단지 당시에 교화를 맡은 사람이 권도權道를 잘 써서 중생을 이롭게 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경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 정해진 법이 없다’423) 하였고, 또 ‘부처님은 망어妄語를 하지 않으나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이 있으면 때로 망어를 한다’ 하였다.”
그렇다면 정토왕생을 발원해야 하는가? 도솔천 왕생을 발원해야 하는가?
“도솔천 왕생을 발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규례에서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사람도 동참하게 한 것은 거짓이다.
“다년간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것을 굳게 지켜 변치 않았기 때문에 허락한 것이니, 지금 도솔천에 왕생하여 도력을 이룬 뒤에 마음대로 정토에 왕생하되, 미륵여래를 친견하여 만에 하나도 잘못될 리 없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정토왕생을 발원한 사람은 곧바로 왕생하지 못할까 염려되니, 만약 곧바로 왕생할 수 있는 이라면 희유한 일이니, 어찌 불가할 리 있겠는가. 나도 그 사람을 뒤따라갈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십분 자세히 살펴야 하니, 최후에 눈빛이 땅에 떨어져 숨을 거둘 때 스스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일. 세상에 살면서 조그만 선업善業이라도 지었으면 이 결사에 동참한 사람들에게 회향하여 함께 불과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일. 단지 결사에 동참한 사람들만 성불하기를 발원하니, 일체중생들에게 회향하는 큰 원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이 결사에 동참한 사람들이 다 같이 성불하기를 발원하는 것은 실로 일체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인이 ‘자신의 결박을 풀지 못하고서 남의 결박을 푸는 경우는 있지 않다’ 하였으니, 만약 이 법을 떠난다면 달리 중생에게 회향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일. 이 결사문은, 권화勸化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각자 한 부씩 가지고 다니면서 결사에 동참하도록 널리 권면해야 한다.

011_0673_a_01L之本體也其曰寬時遍法界也不容針者示道之大用也
011_0673_a_02L三拜依位印可得髓者示道之淵源也自餘諸佛祖百
011_0673_a_03L千方便皆是諄諄叮嚀指導末葉衆生之修行正路
011_0673_a_04L或者曰靈山會上佛擧拈花百萬大衆皆罔措唯迦
011_0673_a_05L葉尊者一人領解微笑而末葉衆生不能量其機小皆曰
011_0673_a_06L叅尋祖庭是豈有成功之理哉如此邪說不可枚擧此盖
011_0673_a_07L生無慧目又不叅明眼宗匠致得如此鹵莾未足爲恠也
011_0673_a_08L若如是念過不省其非則非特自誤前程亦乃瞎却他人眼
011_0673_a_09L請質之盖當佛傳法之時諸弟子應化重來如迦葉阿難
011_0673_a_10L其數不億豈可無能叅此道之機者哉所以人傳一人者
011_0673_a_11L以佛滅度之後擧一人爲一代教主如天無二日國無二王也
011_0673_a_12L謂其無餘外得道者也故自西天諸祖師至唐土諸聖賢
011_0673_a_13L亦皆如是故如優婆毱多尊者度人之數籌滿三十尺石
011_0673_a_14L馬祖下出八十八人宗師次後一千五百善知識下成道者
011_0673_a_15L者千百少者亦不下十數也若也執認百萬大衆皆罔措唯
011_0673_a_16L迦葉尊者領解微笑之錯見沮毁末葉人之叅尋祖庭
011_0673_a_17L者以爲分外者如上諸導師之所教化許多人也皆是誤着其
011_0673_a_18L傳授者耶抑皆是捏造誕妄無根之說而傳之耶章章然
011_0673_a_19L具在方冊不可以誣也若不然者末葉之得道者多靈山
011_0673_a_20L會之傳付則人人一之豈以末葉之人之機勝於靈山之衆而
011_0673_a_21L然耶萬萬無是理也而唯一傳付於迦葉尊者者是何以耶
011_0673_a_22L將如君所見必唯迦葉尊者一人餘無可傳之人而然耶
011_0673_a_23L如是也設或不幸向使無迦葉尊者一人是正法眼蔵固不
011_0673_a_24L得以傳之而已之耶人若以末葉之所悟不及於靈山所付以 [2]

011_0678_a_01L이 글을 등사할 때 글자를 누락하거나 글귀를 잘못 써서 말뜻이 이치에 맞지 않고 혹 문맥이 끊어져 읽기에 불편하며, 또한 권화에 방해되지 않도록 십분 주의해야 한다.
일. 대저 사람의 목숨은 무상하여 오늘 살아 있어도 내일을 장담하기 어려우니, 이 결사를 창설한 사람들인들 어찌 오래도록 이 세상에 머물 수 있으리오. 삼가 바라건대 후현後賢들은 성심을 다하여 취지를 전하여 이 정혜 결사의 계의稧誼가 없어지지 않고 유구한 후세에 전해져 미혹에 빠진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도록 해야 한다.
일. 이 결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규례와 결사문을 자세히 읽어 보기 바라며, 이 결사에 먼저 들어온 사람은 새로 들어오는 사람을 자세히 가르치고 깨우쳐서 진정한 신심을 일으켜 진정한 도업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요, 절대로 풍기風氣에 따라 이리저리 변환變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일. 이 규례와 결사문은 하안거와 동안거에 함께 공부할 때 또는 평상시에 함께 모여 공부하면서 글을 잘 보고 종지宗旨를 아는 이로 하여금 모인 대중을 위해 자세히 설명하여 처음 발심한 사람과 글을 알지 못하는 도반들을 깨우치고 인도하여 결사의 본뜻을 잊고 전도顚倒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 이 규례와 결사문 중에 설혹 다른 수행에는 맞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단지 이 결사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규례일 뿐이니, 이 결사 밖의 사람은 자기 수행과 어긋난다고 하여 시비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일. 이 규례는 단지 이 결사의 관계자에 대한 규례일 뿐이다. 기타 이런저런 수행들은 서책에 갖춰져 있으니 번다하게 인용할 필요가 없다.
일. 이 규례 외에 다시 상정詳定한 절목이 있으나 이제 막 결사한 날에 적용하기는 불편하기 때문에 우선 기록해 보이지 않고 훗날 이 결사가 성행할 때 다시 재정裁定하기로 한다. 그러나 개인이 마음대로 재정해서는 안 되니, 반드시 맹주 및 사리를 아는 결사 도반과 회의하여 상세히 토론한 뒤에 계책稧冊에 써서 각처에 나누어 주어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
일. 이상의 규례를 저마다 준수할 것이요 방일하고 퇴타退墮하여 자리自利·이타利他를 잃지 않아야 한다.
대각등계 금봉당 상문의 진영범어사 영각 안에 있다.(大覺登階金峰堂尙文之眞梵魚寺影閣內)

011_0673_b_01L沮毁之也此尤不可也世豈有天生彌勒自然釋迦者哉
011_0673_b_02L只聞諸導師之教人明心見性之說未見禁止末葉人之
011_0673_b_03L習學定慧者也則傅會分析皆不能成理也故曰所以人傳一
011_0673_b_04L人者以佛滅度之後擧一人爲一代教主如天無二日國無二
011_0673_b_05L王也非謂其無餘外得道者也若有是見者請從今改
011_0673_b_06L世尊曰依法不依人依了義不依不了義今閱華嚴法華
011_0673_b_07L楞嚴圓覺維摩湼槃等大乘經馬鳴龍樹無着天親等
011_0673_b_08L大乘論傳燈宗鏡拈頌等禪門語錄何處有不許末葉
011_0673_b_09L衆生叅眞正道之文句耶非徒不爲不許特皆曉喩之
011_0673_b_10L提奬之繾綣惻怛惟恐不入於斯道也此是我輩之尋
011_0673_b_11L常說聽者也豈可以一言一字相欺乎嗚呼正法沉微邪道
011_0673_b_12L熾盛持盃水救輿火之歎已有於淸虛老師隆化之日
011_0673_b_13L况乎今日乎哉夫善念成人天惡心形鬼獄而此祖庭之活句
011_0673_b_14L法門即得覰破古佛未生前安身立命於大寂光道場
011_0673_b_15L拈來森羅物物無非淨佛國土皆是海印三昧其有機勝者
011_0673_b_16L一超超入把断要津安邦定國豈有其他哉然若機下者
011_0673_b_17L能頓成故古人云笋畢竟成竹去如今作筏使得麽則機
011_0673_b_18L下者久習畢竟得入故大慧禪師云日久月深自然築
011_0673_b_19L着磕着趙州和尙云汝等三十年二十年不離叢林
011_0673_b_20L實叅究若不會此道截取老僧頭去古人之如斯教詔
011_0673_b_21L是以虛僞之語誘惑後生者哉盖迷者不達此理若見
011_0673_b_22L聞祖宗之說則高推聖境但務事相有爲或口誦經手
011_0673_b_23L執珠或營作梵宇彩塑佛像望功德希菩提誤之哉
011_0673_b_24L遠於道矣故梁武帝造佛起塔設齋度僧作無限佛事

011_0678_b_01L
金峰長老              금봉 장로여!
大願唯深              큰 원력이 깊으셨어라.
扶護梵刹              사찰을 지키고 보호하였으니
供佛其心              부처님께 공양하는 게 그 마음이었네.
依稀淸範              아련한 그 맑은 풍모여
傳神于中              이 진영 속에 정신이 전해지도다.
死生無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니
一亘淸空              한 줄기 맑은 허공과 같아라.
忽悟卽是              문득 깨달으면 바로 이것이라,
物物頭頭              두두물물이 이것 아님이 없으니
靑山日晩              청산에 날이 저무는데
碧海長洲              푸른 바다 긴 물가로다.

문중의 말학 경허 성우는 향을 사르고 삼가 짓다.
동곡당東谷堂 대선사의 진영위와 같다.(東谷堂大禪師之眞同上)
뜻을 얻으면 거리의 쓸데없는 얘기도 늘 정법을 굴리는 것이요, 말에서 잃으면 용궁의 장경도 한바탕 잠꼬대일 뿐이다. 비록 이와 같으나 비단옷을 입는 게 영화로우나 도인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필경 그 뜻은 어떠한가? 원앙새 수놓은 곳은 보여 주어도 되지만 금침을 남에게 주지는 말라. 동곡 장로여, 이咦!424) 다음과 같이 게송을 붙이노라

奉佛護法              부처님을 받들고 불법을 보호하여
維德孔揚              덕화를 크게 떨치었어라.
性相常住              성상性相은 상주불멸하니
萬古神光              만고에 신령한 광휘 빛나도다.
月白川印              밝은 달은 시냇물에 비치고
花發春風              꽃은 봄바람에 피었어라.
一幅寫照              한 폭 진영을
高掛雲堂              전각에 높이 거니
惟卓其道              우뚝한 화상의 도여!
山高水長              산은 높고 물은 길도다.425)

호서 귀납歸納 경허 성우는 향을 사르고 삼가 짓다.
13세 동자인 경석에게 보이다(示慶奭十三歲童子)
身覚均舌知味鼻齅香耳聞聲眼見色意知法法則前後事
이 원상圓相은 성인과 범부가 똑같아서 둘이 없다. 그러나 육처六處성현의 영역에 문을 밀치고 들어갈 수 있다. 마음을 맑게 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 가장 오묘한 방법이다. 일체의 때와 장소에서 이를 찾아서 시종여일하게 공부할 수 있다면 절로 공부를 성취할 수 있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마음의 길이 끊어져야 한다. 총명으로 업력을 대적할 수 없나니, 간혜乾慧427)로 어찌 생사를 벗어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윤회를 벗어나려면 오로지 선정의 힘을 익혀야 하니, 평소에 재물과 여색에 끌려가는 것도 모두 선정의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며, 임종할 때 정신을 잃고 마는 것도 모두 선정의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心月孤圓              마음달이 외로이 둥그니
光呑萬像              그 빛이 만상을 삼키도다.
光境俱亡              빛과 경계가 다 없어지면
復是何物              다시 이 무슨 물건인가.
해인사 수선사 방함인海印寺修禪社芳啣引
방함록을 쓰는 까닭은 후세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다. 후세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무슨 뜻에서인가? 육신은 물거품과 같고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건만 책려하여 부지런히 수행할 줄 아는 이는 누구인가? 법성法性은 본래 공하고 혜일慧日은 길이 밝건만 능히 깨달아 들어가는 이는 또 누구인가?
후세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를 보는 것이 지금 우리가 옛사람을 보는 것과 같으며, 후세 사람이 또 그 후세 사람을 보는 것이 또 후세 사람이 지금 우리를 보는 것과 같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듯이 분명히 알 수 있으리라.
슬프다! 이 수선사修禪社에 거처하는 이들이 거울삼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기해년(1899) 10월 하안거를 시작하는 날 호서 납자 경허 성우는 삼가 쓰노라.
심우송尋牛頌
첫째, 소를 찾다(一尋牛)
本自不失              본래 잃지 않았거늘
何用更尋              무엇하러 다시 찾는고
秪這尋底              바로 이 찾는 놈이
毘盧之師              비로자나불의 스승일세
山靑水綠              청산은 우뚝하고 녹수는 흐르며
鶯吟燕語              꾀꼬리는 울고 제비는 지저귀니
頭頭漏洩              두두물물이 이 소식을 드러내도다
咄                 쯧쯧
둘째, 발자국을 보다(二見跡)
韶光之妙              봄빛의 오묘함은
不在百花爛熳            흐드러지게 핀 온갖 꽃에 있지 않나니
最是橙黃橘綠            무엇보다 유자는 노랗고 귤은 푸르네
好好哥哥              좋구나 좋아라
跡在牛還在             발자국이 있는 데 소가 있느니
無心道易親             무심하면 도에 가까워지기 쉬운 법
好好哥哥              좋구나 좋아라
古廟裏香爐             낡은 사당의 향로요
澄秋野水              맑은 가을 들판의 물이로다

011_0674_a_01L而達磨大師曰少無功德又六祖大師曰迷人修福不修
011_0674_a_02L只言修福便是道又永嘉和尙云住相布施生天福
011_0674_a_03L如仰箭射虛空勢力盡 [3] 箭還墮招得來生不如意又圭峰
011_0674_a_04L禪師云識字看經元不證悟銷文釋義唯熾貪嗔邪見
011_0674_a_05L又弘忍大師云守本眞心勝念十方諸佛如此說話皆責
011_0674_a_06L其不達定慧之本而枉用修行也夫衆生之淪溺三界甚於
011_0674_a_07L赤子之處入水火諸佛之大慈拯濟勝於慈母之愍念駭提
011_0674_a_08L世尊曰等視衆生如羅睺羅然而我等未獲超昇者豈以
011_0674_a_09L佛之無慈悲而然歟非也佛會上阿那律尊者以過睡眠被
011_0674_a_10L佛所呵 [4] 七日精苦不眠得天眼而成盲阿難尊者被迦葉尊
011_0674_a_11L者所呵 [5] 住於毘舍離獨處精進至於身心疲極而後得阿羅
011_0674_a_12L漢果若也佛之通力能强爲之使衆生成道如鉗口注藥而
011_0674_a_13L差病者豈有兩尊者之如是精進疲極精苦成盲而後得天
011_0674_a_14L眼成聖果之弊煩耶然則豈非貴在借其言教自悟自修之
011_0674_a_15L爲可哉故夫欲其自悟自修也不可不借其言教如種之生長
011_0674_a_16L寔賴水土寶在暗室必假燈光諸經論中明垂戒訓以叅
011_0674_a_17L尋知識決擇道業爲急務譬夫傍寺屠者是一象也而善惡
011_0674_a_18L異時執茅紙者是一人也而腥香隨變故古人云賢賢易色
011_0674_a_19L古德云 [6] 事善友不惜身宰豈以其重如彼其輕若此哉
011_0674_a_20L予去己卯冬在鷄龍山東鶴祖堂 [7] 叅祖門活句忽有得意處
011_0674_a_21L有與同志共之之思時夙 [8] 痾未痊心志且劣遂以優遊停蓄
011_0674_a_22L放曠於漁村酒肆憇歇乎 [9] 幽澗邃林適然自忘矣以後干
011_0674_a_23L戈相屬世路紛紜念蔵身之不暇豈有施及於他耶荏苒不
011_0674_a_24L覺星霜累換于今二十年於此矣自念佛恩之莫大而欲

011_0679_b_01L好好哥哥              좋구나 좋아라
셋째, 소를 보다(三見牛)
喝云                억!
得如靈光獨耀            신령한 빛이 홀로 빛나
盖天盖地              하늘을 덮고 땅을 덮더라도
猶是階下漢             오히려 섬돌 아래 서 있는 하인이요
弄精魂脚手             정혼精魂을 희롱하는 수단이니
莫魑魅魍魎好            도깨비 두억시니 짓을 하지 말라
且道 見箇甚麽           일러 보라 이 무엇인고
喝一喝               억!
넷째, 소를 찾다(四得牛)
見得則不無             소를 본 것은 없지 않으나
爭奈爲第二頭            둘째 자리에 떨어짐을 어이하리오
未見得者 令得見          보지 못한 이는 보게 하고
已見得者 却令迷失         이미 본 이는 도로 헤매어 잃게 하며
又却令悟得者永悟得         또 깨달은 이는 길이 깨닫게 하고
迷失者永迷失            헤매어 잃은 이는 길이 헤매어 잃게 하노니
還正當得也未            도리어 소를 찾았는가
以柱杖打卓一下云          주장자를 한 번 내리치고 이르노라

一把柳條收不得           한 줌 버들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하여
和風搭在玉欄干           바람 부는 대로 옥난간에 걸쳐 두노라
다섯째, 소를 치다(五牧牛)
善惡俱是心             선과 악이 모두 마음이라
不可以修斷             수행하여 끊을 수 없나니
是如過蠱毒之鄕           이는 고독蠱毒의 마을을 지날 때
水也不得霑着一滴          물 한 방울도 몸에 묻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是心無異心             이 마음은 다른 마음이 없어
不斷貪淫              탐진치 삼독을 끊지 않으니
是及盡今時             금시428)가 다할 때에 미치면
如死人眼              죽은 사람의 눈과 같다
是俱是險路             이는 모두 험한 길이니
不可以行              가서는 안 된다

且道                일러 보라
如何則是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九九八十一             9×9는 81이요
又椀達邱              또 완달구로다
湧泉四十年 尙有走作        용천은 40년을 수행해도 망상이 일어났고
香林四十年 打成一片        향림은 40년 동안 수행하여 타성일편이 되었네
吁 得易守難            아! 얻기는 쉽고 지키기는 어려우니
且莫得少爲足            작은 것을 얻고 만족하지 말고
須叅知識              모름지기 선지식을 참방하여
鑢鞴多方 始得           갖가지 수단으로 단련을 받아야만 된다
여섯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六騎牛歸家)
六途四生              육도와 사생에
歷劫辛酸              오랜 겁 동안 신고를 겪었건만
何曾一步              어찌 한 걸음인들
移着家鄕              고향을 떠난 적이 있었으랴

呵呵                하하!
笛聲遏雲曲名            젓대 소리 알운곡429)을 연주하니
洞庭湖心靑山脚           동정호 호심湖心이요 청산 발치로다

雖然如是              비록 이와 같지만
敢保老兄猶未歸           노형은 아직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고 감히 보장하노라

會麽                알겠는가
桂琛道底              계침桂琛이 말한 것이로다
일곱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七忘牛存人)
撞眠去               잠이나 자거라
何得恁地狼藉            어찌하여 이렇게 수선을 떠는가
兀然無事坐             홀로 일 없이 앉아 있노라니
春來草自靑             봄이 옴에 풀은 스스로 푸르구나
這箇是癰瘡上添艾灸相似      이것은 종기 위에 쑥뜸을 뜨는 것과 같다

不見道               보지 못했는가
直須靑天              푸른 하늘이라 할지라도
也須喫棒              방망이를 맞아야 한다430)고 한 것을

爲甚如此              왜 이러한고
好作雨時不作雨           비가 와야 할 때에 비가 오지 않고
堪晴天時不晴天           개야 할 때에 개지 않는구나

011_0674_b_01L奉塵刹之萬一橫擔一條楖標試訪到陜川海印時適修
011_0674_b_02L禪精舍新搆與諸禪德同寒際做黃楊木禪一日火爐
011_0674_b_03L邊團欒頭語及於古人之結社辦道則諸公皆如忘忽憶
011_0674_b_04L其志願信力水湧山出恨其會遇之晩也即欲議結社同
011_0674_b_05L推予爲盟主予念及於曩日所懷佛恩之莫大
011_0674_b_06L顧其材之庸陋性之不檢 [10] 道之不充也不施一辞而輒許之
011_0674_b_07L其所以同盟之約何也以同修定慧同生兜率世世同爲道
011_0674_b_08L究竟同成正覺如有道力先成者誓引其未逮不違
011_0674_b_09L所盟者也若有同見同行之人不問僧俗男女老少賢愚
011_0674_b_10L貴賤亦不問親踈離合遠近先後皆許叅入所以然者
011_0674_b_11L人皆有無量宝蔵與佛無殊秪是歷刼不逢善友開示
011_0674_b_12L匐三界奔汨四生不啻如演若之迷頭窮子之離鄕
011_0674_b_13L廻飄梗備受許多艱辛至於一日夜萬生死每一念之
011_0674_b_14L裂心腑不覺短歎長吁豈可例之茶飯不求出離哉
011_0674_b_15L悉如此情事普願同叅 [11] 同臻壽域也樂邦也且也 [12] 古人云
011_0674_b_16L異也覿面楚越道契則霄壤共處以共處也故萬象雖布
011_0674_b_17L性無虧衆水同奔海量不添幸望策發勇猛心照明虛妄
011_0674_b_18L無常之業行悟修寂滅法界之性地忘其見解所知超證正
011_0674_b_19L法眼蔵湼槃妙心也夫如是其誰曰不可也哉不願樂也哉
011_0674_b_20L行經云釋迦世尊於過去世爲善慧仙人布髮於燃燈
011_0674_b_21L隨喜讃歎百萬人天之衆因其種緣同會靈山成道
011_0674_b_22L佛因緣經云賢刼千佛於過去宝燈熖王如來像法之
011_0674_b_23L爲學堂中 [13] 童子聞三宝名禮拜佛像發弘誓願
011_0674_b_24L發阿耨菩提以後共成千佛其他諸佛菩薩之同發願

011_0680_a_01L雖然如是              비록 이와 같지만
是甚麽心行             이것이 무슨 심행心行인가?

噫嘻                허허!
長年不出戶             오랜 세월 문밖을 나오지 못했도다
是何境界              이 무슨 경계인가
莫向這裏屙出去           여기에 똥을 싸지 말아야 할 것이니라
是何境界              이 무슨 경계인가

浮生穿鑿不相關           덧없는 인생에 천착한들 이와 관계없느니라
是何境界              이 무슨 경계인가
不惜兩莖眉毛            두 눈썹을 아끼지 않고431)
爲爾提出              그대를 위해 보여 주겠노라

低頭仰面無藏處           머리를 숙여 보고 얼굴을 치켜들어도 숨을 곳이 없으니
雲在靑天水在甁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도다
여덟째, 사람과 소가 모두 없다(八人牛俱亡)
悉利蘇魯 沒多野 地多野 娑婆訶   시리소로 못다야 지다야 사바하
又摘楊花摘楊花           버들꽃을 잡고 버들꽃을 잡도다

長年修行              오랜 세월 수행해도
到此却是迷茫顚倒          여기에 이르러 도리어 미망하고 전도되면
不直一分錢             한 푼 가치도 없다
會麽                알겠는가?

塞外將軍令             변방에서는 장군의 명령이요
寰中天子勅             천하에는 천자의 칙령이로다
喝一喝               억!
아홉째, 근원에 돌아오다(九返本還源)
鶴脛雖長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斷之則憂              자르면 근심하게 되고
鳧脛雖短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지만
續之則愁              이으면 시름하게 된다

鉢盂不得着柄            발우는 자루를 붙여서는 안 되고
笊籬且宜有漏            조리는 의당 물이 새어야 하는 법
綿州附子幷州鐵           면주는 부자附子요 병주는 쇠라432)
萬物無非本處            만물이 모두 근본 자리 아님이 없으니
好米賤柴              좋은 쌀과 값싼 땔나무가
多足四隣              사방 이웃에 풍족하여라

是箇湖南城下            이는 호남성 아래에서
吹火尖嘴              불어서 불을 피우느라 입술이 뾰족하고
讀書彈舌也             책을 읽느라 혀를 놀리는 것이니
是大愚家風             이는 대우大愚 스님의 가풍이다

更有一句              다시 한 구절이 있으니
付在來日              훗날에 부쳐 두노라
열째, 저잣거리에 들어가 교화를 펴다(十垂手入鄽)
木女之夢 石人之歌         나무 여자의 꿈과 돌사람의 노래도
也是前塵影事            또한 전생의 그림자일 뿐이라
無相之佛難容            형상이 없는 부처도 용납되지 않거늘
毘盧之頂何貴            비로자나불의 정수린들 어찌 귀하리오

遊芳草岸              방초 우거진 언덕에 노닐고
宿蘆花洲              갈대꽃 핀 물가에 묵으며
荷帒遊市              포대를 메고 저잣거리에 노닐고
振鈴入村              요령을 흔들며 마을에 들어간다

寔爲了事漢境界           이는 일대사一大事를 마친 사람의 경계인데
與前日撥草尋牛的時節        지난날 풀숲을 헤치며 소를 찾던 시절과
同耶 不同耶             같은가 다른가

皮下有血底             피부 아래 피가 있는 자라면
幸須着眼 始得           착안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심우송尋牛頌
첫째, 소를 찾다(一尋牛)
可笑尋牛者             가소롭구나 소를 탄 이여
騎牛更覔牛             소를 타고서 다시 소를 찾는구나
斜陽芳草路             석양이 비낀 방초 우거진 길에
那事實悠悠             소 찾는 일 실로 아득하기만 하구나
둘째, 소 발자국을 보다(二見跡)
猿鳥春心慣             원숭이와 새는 봄이 와 즐거워하는데
太登古路愁             옛길을 오르지 못하여 시름겨워라
箇中消息在             이 가운데 소의 소식이 있으니
跡向藪雲幽             발자국이 깊은 숲 속을 향하였네

011_0675_a_01L成道者無經無之至于近古慧遠之社廬山樂天之社
011_0675_a_02L香山牧牛子之社公山者皆以此意者也玄奘法師云西
011_0675_a_03L域之人皆作上生兜率業盖爲同是欲界之內聲氣
011_0675_a_04L相合其行易成故大小乘師皆許此法彌陁淨土恐凡
011_0675_a_05L鄙穢修行難成故如新舊譯經論皆云十地已上菩薩
011_0675_a_06L隨分得見報佛淨土豈容下品凡夫即得徃生所以大
011_0675_a_07L乘許之小乘不許也故法師一生以來常作兜率業
011_0675_a_08L臨命終時發願上生見彌勒佛請大衆同時說偈云
011_0675_a_09L無彌勒如來應正等覺願與含識速奉慈顏南無彌勒
011_0675_a_10L如來所居內衆願捨命已必生其中盖玄奘法師
011_0675_a_11L識法上士必不是自誤賺人况古今傳記上生兜率者
011_0675_a_12L可勝記而如無着與天親菩薩者亦同願上生兜率
011_0675_a_13L今断取法焉雖然如是其淨土與兜率也隨其修行人之暫
011_0675_a_14L時志願有異豈有上生兜率者不願親見彌陀如來
011_0675_a_15L徃生淨土者不願承事彌勒尊佛譬夫白璧黃金
011_0675_a_16L各爲眞宝春蘭秋菊共傳淸香幸勿以優劣難易諍
011_0675_a_17L起是非人我之見也今稧社內先入者有如是上生行願
011_0675_a_18L後叅社者亦同其心口設有道力未成者乘斯願力上生
011_0675_a_19L兜率內院叅聽彌勒尊佛無上玄旨速證大覺還度
011_0675_a_20L衆生豈不暢哉快哉願諸道 [14] 幸勿以重古輕今發願
011_0675_a_21L同叅而深結善緣也其於日用散行具載黃卷可效可
011_0675_a_22L不必條分縷析古人云萬行備修唯以無念爲宗修行
011_0675_a_23L之要定在斯焉幸無至有失於偏倚過不及之地也
011_0675_a_24L一失人身萬刼難復自昔英雄而今安在故古德自誡

011_0680_b_01L
셋째, 소의 온몸이 드러나다(三露現全軆)
曠劫相將地             광겁토록 늘 함께 있었는데
驀然透一區             갑자기 한 곳이 뚫렸구나
曾聞雪山裏             일찍이 듣건대 설산에는
乳香萬年留             소젖의 향기가 만년토록 남았다지433)
넷째, 조복하고 보임하다(四調伏保任)
幾廻成落草             몇 번이나 풀밭에 들어갔던가
鼻索實難投             코뚜레를 꿰어도 길들이기 어려웠네
賴有今日事             다행히 오늘 이 일이 있으니
江山盡我收             강산을 모두 내가 거두었어라
다섯째, 한가롭게 집에 돌아오다434)(五任運歸家)
東西非內外             동쪽 서쪽도 안과 밖도 아니니
任運向家邱             한가롭게 고향집으로 가노라
無孔一枝笛             구멍 없는 젓대를 부노니
聲聲難自由             곡조 속에 자유롭기 어렵도다435)
여섯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六忘牛存人)
風燈泡沫了             바람 앞에 등불과 물거품436)이 다하였으니
何法更堪求             무슨 법을 다시 찾을 게 있으리오
寄語長安道             장안의 길에 이르노니
聲前不得休             소리 앞에 쉬지는 못했다437) 하리라
일곱째, 사람과 소를 모두 잊다(七人牛俱忘)
寂光猶未至             적광토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으니
添得一毛毬             털 공 하나를 더 보태었구나438)
此道無多在             이 도는 별다른 게 없으니
山高水自流             산은 높고 물은 스스로 흐른다
여덟째, 이류異類 속의 일439)(八異類中事)
被毛兼戴角             털을 쓰고 머리엔 뿔을 인 채
燈榻語啾啾             등잔불 비치는 침상에서 지껄이누나
祖師今身外             조사의 지금 육신 밖에서
長年走市頭             오랜 세월 저잣거리를 쏘다니네

011_0675_b_01L頌云不求名利不求榮只麽隨緣度此生三寸氣消誰是主
011_0675_b_02L百年身後漫虛名衣裳破處重重補粮食無時旋
011_0675_b_03L旋營一個幻軀能幾日爲他閒事長無明又古德歎世
011_0675_b_04L詩云細推今舊事堪愁貴賤同歸一古邱漢武玉堂塵
011_0675_b_05L已沒石崇金谷水空流光陰乍曉仍還夕草木才春即
011_0675_b_06L到秋在世若無毫末善死將何物答㝠侯又古德勸修
011_0675_b_07L文云一息不回便是來生縱使妻兒相惜無計留君假饒
011_0675_b_08L骨肉滿前有誰替汝催促付一堆野火断送埋萬里荒山
011_0675_b_09L荒草畔漫留石碑綠楊中空掛紙錢淚雨洒時空寂寂
011_0675_b_10L悲風動處冷颼颼下梢頭難免如斯到這裏怎生不醒
011_0675_b_11L佛言不信何言可信人道不修他道難修實爲可歎惜者哉
011_0675_b_12L應是此稧社文三復披究銘箴心腑精進也如救頭燃
011_0675_b_13L使此生空過也至扣 [15] 若見聞如此切懇規戒而視之尋常
011_0675_b_14L隔靴搔痒越視秦瘠小無觀感興起之心者如病不求
011_0675_b_15L飢不就食吾實末如之何也已矣若有眞實欲行
011_0675_b_16L此綱領淵源之道發上生兜率內院之心者切須勤叅
011_0675_b_17L知識文短智淺 [16] 書不能盡其言意謹此仗此勝緣仰祝
011_0675_b_18L皇帝陛下聖壽萬歲次願歲稔時和烟塵永絕正法
011_0675_b_19L流通於無窮法界含識同證竗覺

011_0675_b_20L
結社比丘惺牛等歸依

011_0675_b_21L
一代教主釋迦牟尼佛歸依

011_0675_b_22L
當來教主彌勒尊佛歸依

011_0675_b_23L
十方三世常遍常住佛法僧仰仗憐愍加被之力使我
011_0675_b_24L等所願勿浪失速成就伏祝

011_0676_a_01L
大韓光武三年十一月十一日結社盟主
011_0676_a_02L比丘惺牛焚香再拜謹識 [17]

011_0676_a_03L定慧稧社規例

011_0676_a_04L
當念無常迅速生死事大勤修定慧若不勤修
011_0676_a_05L定慧而求佛果者如却行求前適越北轅切勿執
011_0676_a_06L着有爲幻法以誤平生事事

011_0676_a_07L
若勤修定慧能決擇行業而後不枉用功應須
011_0676_a_08L叅尋知識事

011_0676_a_09L
自古成佛作菩薩必具行願然後得辨所以行定
011_0676_a_10L願上生兜率內院同成佛果事

011_0676_a_11L
旣叅稧社者以定慧爲急務不可但願上生兜率
011_0676_a_12L有願無行則其願歸虛事

011_0676_a_13L
能眞修定慧者不願生兜率亦許叅社能眞修定
011_0676_a_14L慧者願徃生極樂亦叅社事

011_0676_a_15L
本結社之意要在同社琢磨若無事故必同會一
011_0676_a_16L處做工事

011_0676_a_17L
若決擇分明能於定慧用眞修行者不會一處
011_0676_a_18L亦不妨事

011_0676_a_19L
無論道之生熟勢不可者不必來會事

011_0676_a_20L
追後叅社之者 [1] 居住姓名與發願等事分明記錄
011_0676_a_21L於稧册事

011_0676_a_22L
此稧誼初創未布於他處今且以海印禪社定結社所
011_0676_a_23L則其居住姓名等事乘便記送於結社所輪照於稧
011_0676_a_24L中諸人也不必專爲此事來徃以作煩弊事

011_0676_b_01L
叅稧之人各發勇猛心志其先成道力度其未逮之
011_0676_b_02L人也不可專恃於他人而放逸也若如 [2] 此者不如不入
011_0676_b_03L結社設或欺心而入者 [3] 欺心者何道可辦則不入結
011_0676_b_04L社爲宜事

011_0676_b_05L
心行凶惡者被重罪者惡疾惡瘡者切不許叅入
011_0676_b_06L減損風化有妨行道事

011_0676_b_07L
若非同見同行之人勿許叅社事

011_0676_b_08L
發願同盟此非小事稧中之人若堕三途或流入魔
011_0676_b_09L外者其先成道力之人克意拯濟不違同盟推此而
011_0676_b_10L恩逾父母誼過兄弟其父母與兄弟烏能相救於
011_0676_b_11L身後耶故同心和護救其病者周其貧者勿爲等
011_0676_b_12L閑如路人事

011_0676_b_13L
旣有上生兜率親見彌勒如來之願當如世之有大孝之心
011_0676_b_14L忽因王事違於父母流離他鄕歸覲之心靉靆心目
011_0676_b_15L不能自忘如此則不數珠誦念其念常切又非特常切而自
011_0676_b_16L然憶持不忘也此是眞實念佛也切勿執數珠和雜念
011_0676_b_17L誦千百其他禮拜供養之規亦應推此自設一香一茶至於
011_0676_b_18L一鉢飯一禮拜要在誠心不可多多煩乱事

011_0676_b_19L
隨其稧人之各在諸處或多或少因其處住課要務其同會
011_0676_b_20L不得獨處山林若痛 [4] 苦或死亡者未成道力而無道伴之開
011_0676_b_21L導後路則悉有失其前功自誤大事又不可不自稧中相
011_0676_b_22L扶助矣恐飄然一衲隨意南北則此等病死之人亦不爲不
011_0676_b_23L多也若不廢個個救助則南渡長江北登疊嶂艱辛道路
011_0676_b_24L無月無之一來其勢不及一來有妨勞於做課一來林下之

011_0677_a_01L有何錢財可以救助於遠外病死之人哉若不救助者有違
011_0677_a_02L於同盟又被謗於衆人故隨其多少因其處同做詳此一
011_0677_a_03L有大關事必期於遵守也若有獨處之心者不入結社事

011_0677_a_04L
大限難逃而有致病欲殞者在傍稧伴當用意看病
011_0677_a_05L說無常法爲說定慧理爲說上生兜率願使其亡者不昧
011_0677_a_06L精神不昧道力不昧上生兜率之願事

011_0677_a_07L
死亡之處在傍稧伴辨供禱祝彌勒如來與十方三寶
011_0677_a_08L而止於至誠而已幸勿勞力大其設辦事

011_0677_a_09L
死亡事之與日字當分明書着擇信便即達於結社所
011_0677_a_10L結社所輪照於諸稧伴又不應專爲此事來徃遠程若稧
011_0677_a_11L會中聞此消息者雖遠在千里之外者二三人一會或四五
011_0677_a_12L六人一會或十人二十人一會或百餘人一會等自其會中念同
011_0677_a_13L盟之約發至誠心爲其亡人隨其豊儉爲設多少供養
011_0677_a_14L慇懃供養彌勒如來與十方三寶雖一會百餘人
011_0677_a_15L列各人名字又各同叅跪拜禱祝使亡人上生兜率內院宮
011_0677_a_16L次奠施于亡靈其大小祥日亦遵此事

011_0677_a_17L
問曰今結定慧社而兼上生兜率者何以耶答曰爲其未
011_0677_a_18L得力於定慧者設也其能得力者隨意自在豈有假其
011_0677_a_19L願力而後來徃耶然大力菩薩亦有誓願其得力者
011_0677_a_20L妨有願所以願上生兜率內院也問曰旣以上生兜率爲
011_0677_a_21L同社又何以許其叅入徃生淨土者耶答曰結社乎定慧
011_0677_a_22L以其修定慧而願極樂者亦可以同社故許其叅入若能眞
011_0677_a_23L修定慧者豈有以其兜率與淨土之不同指歸而成異見
011_0677_a_24L問曰然則稧文中只願上生兜率而不言徃生淨土

011_0677_b_01L何以耶答曰生淨土難以業兜率易以其同是欲界
011_0677_b_02L之內而聲氣相合也問曰他勸修文中有言生兜率難
011_0677_b_03L而業淨土易今胡以言之相反有其若是耶答曰此有深
011_0677_b_04L遍檢經論與古人語錄非特淨土與兜率之難易也
011_0677_b_05L以偏讃 [5] 或云成道莫如持呪或云學佛莫如誦經或云
011_0677_b_06L造佛造塔布施供養其功甚大乃至散擧萬行
011_0677_b_07L讃其法此不是謂其一法是可而餘法是不可也只在
011_0677_b_08L當時主化之人之用善權而作利益衆生也故經云
011_0677_b_09L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又云佛不妄語
011_0677_b_10L而有利益衆生事有時用妄語問曰旣然則當願徃
011_0677_b_11L生淨土耶當願上生兜率耶答曰當願乎上生兜
011_0677_b_12L率也問曰此規例中之所許同社淨土者是爲妄也
011_0677_b_13L答曰爲其多年願生淨土堅持 [6] 不移者從以許之也何如
011_0677_b_14L今之上生兜率成其道力而後任運徃生於淨土而親
011_0677_b_15L見彌陀如來之事之萬不失一也只恐願淨土者
011_0677_b_16L得徑徃若能徑徃者希有哉有何不可哉吾亦當從
011_0677_b_17L君接武而徃也雖然幸須十分仔細當最後一念眼光落
011_0677_b_18L地之時莫自悔之事

011_0677_b_19L
在世做少分善業回向於同叅稧人同成佛果事

011_0677_b_20L
問曰只有願於同稧人之成佛者豈不缺漏於回向衆生
011_0677_b_21L之大願耶答曰此同稧人之所以願同成佛果者是其
011_0677_b_22L實欲度一切衆生而爲之也故古人云自未解縛能解他
011_0677_b_23L無有是處若離此法別無回向衆生事

011_0677_b_24L
此結社文其有力能勸化者各持一軸以廣化叅社

011_0678_a_01L其謄寫此文時十分用意不漏落書字倒誤文句使
011_0678_a_02L語義失理或絕其脉絡不得便於閱覽亦有妨於勸
011_0678_a_03L化事

011_0678_a_04L
夫人命無常今日雖存明亦難保其創設稧誼者
011_0678_a_05L能長時住着於斯世耶敬望後賢幸須克意相傳不廢
011_0678_a_06L此結定慧之稧誼傳於久遠廣度迷淪事

011_0678_a_07L
若欲叅社者此規例與稧文也幸須詳覽先入社者
011_0678_a_08L須仔細教悟發眞正信心辦眞正道業也切莫隨風氣
011_0678_a_09L變幻不定事

011_0678_a_10L
此規例與稧社文當熱際與寒際同課之中或常時
011_0678_a_11L同會做課使善於文辞而知宗趣者爲其會衆生
011_0678_a_12L仔細演說開導初發心人與不識文字稧伴使無忘失
011_0678_a_13L顚倒事

011_0678_a_14L
此規例與稧社文之中設有不合於他修行之事此是
011_0678_a_15L祗可規例於叅稧之人者則稧外人之看過者幸勿抵
011_0678_a_16L捂而起是非事

011_0678_a_17L
此規例者只是規例於稧社之關係者也其餘散行
011_0678_a_18L載黃卷不必蔓引以成煩屑事

011_0678_a_19L
此規例之外更有詳定事目而有未便於稧誼初創之
011_0678_a_20L日者故姑不錄示以待日後盛行更爲之裁定也然而
011_0678_a_21L輒不許擅自裁定與盟主與知事理稧伴會議詳
011_0678_a_22L盡而後書於稧册分布施行事

011_0678_a_23L
如上規例各宜遵守勿爲放堕喪失於自利利他事

011_0678_a_24L大覺登階金峰堂尙文之眞梵魚寺影閣內 [1]

011_0678_b_01L
金峰長老大願唯深扶護梵刹供佛其心依稀淸
011_0678_b_02L傳神于中死生無二一亘淸空忽悟即是物物頭頭
011_0678_b_03L靑山日晩碧海長洲
011_0678_b_04L門末鏡虛惺牛焚香謹撰

011_0678_b_05L東谷堂大禪師之眞同上 [1]

011_0678_b_06L
得其旨也街中閑談常轉正法失於言也龍宮寶詮
011_0678_b_07L一場寱語雖然如是衣錦雖榮道人不貴然則
011_0678_b_08L指歸如何任看繡出鴛鴦莫把金針與人東谷長老也
011_0678_b_09L而不妨案雲頭做世諦偈云

011_0678_b_10L奉佛護法維德孔揚性相常住萬古神光月白川
011_0678_b_11L花發風香一幅寫照高掛雲堂唯卓其道山高
011_0678_b_12L水長湖西歸衲鏡虛惺牛焚香謹頌 [2]

011_0678_b_13L示慶奭十三歲童子 [1]

011_0678_b_14L
011_0678_b_15L身覚均
011_0678_b_16L舌知味
011_0678_b_17L鼻齅香
011_0678_b_18L耳聞聲
011_0678_b_19L眼見色
011_0678_b_20L意知法法則前後事
011_0678_b_21L

011_0678_b_22L
這個圓相聖與凡夫一體無異而馳驟汨乱於六處
011_0678_b_23L昧其淨光圓理者凡夫也能聚會精神唯精一不
011_0678_b_24L馳乱者聖人也此圓理是萬化之機關也返照照之

011_0679_a_01L至於功極聖賢閫奧排闥而入淨其心靜其心
011_0679_a_02L一妙方一切時處究之能如終如一自然成功

011_0679_a_03L
參禪湏透祖師關妙悟要窮心路絶聰明不能敵
011_0679_a_04L業力乾慧豈能免生死故欲免輪廻專習定力
011_0679_a_05L平居牽隨財色皆緣未得定力臨終昏迷心性皆因 [2]

011_0679_a_06L
011_0679_a_07L
心月孤圓

011_0679_a_08L光呑萬像

011_0679_a_09L光境俱忘

011_0679_a_10L復是何物

011_0679_a_11L修禪社芳啣引 [1]

011_0679_a_12L
書芳啣所以然者何也示后人也示后人也者何意 [2]
011_0679_a_13L隣泡漚命若風燈 [3] 策勤者誰也法性本空慧日
011_0679_a_14L長明能悟入者又是誰也後之視今猶今之視昔也
011_0679_a_15L之視後又如後之視今也指點得分明矣嗚呼居此社
011_0679_a_16L可以鑑戒也歟 [4]

011_0679_a_17L
己亥之陽月始安居日湖西歸病禿鏡虛惺牛謹識 [5]

011_0679_a_18L尋牛頌

011_0679_a_19L一尋牛

011_0679_a_20L
本自不失何用更尋秪這尋底毘盧之師山靑水綠
011_0679_a_21L鶯唫燕語頭頭漏洩

011_0679_a_22L二見跡

011_0679_a_23L
韶光之妙不在百花爛熳最是橙黃橘綠好好哥哥
011_0679_a_24L跡在牛還在無心道易親好好哥哥古廟香爐澄秋

011_0679_b_01L野水好好哥哥

011_0679_b_02L三見牛

011_0679_b_03L
喝云得如靈光獨耀盖天盖地猶是階下漢
011_0679_b_04L精魂脚手莫魑魅魍魎好且道見個甚麽一喝

011_0679_b_05L四得牛

011_0679_b_06L
見得則不無爭奈落第二頭未見得者令得見
011_0679_b_07L見得者却令迷失又却令悟得者永悟得迷失者永
011_0679_b_08L迷失還正當得也未以柱杖打卓一下云一把柳條收
011_0679_b_09L未得和風搭在玉欄干

011_0679_b_10L五牧牛

011_0679_b_11L
善惡俱是心不可以修断是如過蠱毒之鄕水也不
011_0679_b_12L得霑着一滴是心無異心不断貪婬是及盡今時
011_0679_b_13L死人眼是俱是險路不可以行且道如何則是九九八十
011_0679_b_14L又椀達邱湧泉四十年尙有走作香林四十年打成
011_0679_b_15L一片得易守難且莫得少爲足須叅善知識
011_0679_b_16L鞴多方始得

011_0679_b_17L六騎牛歸家

011_0679_b_18L
六途四生歷刼辛酸何曾一步移着家鄕呵呵
011_0679_b_19L聲遏雲曲名洞庭湖心靑山脚雖然如是敢保老
011_0679_b_20L兄猶未歸會麽桂琛道底

011_0679_b_21L七忘牛存人

011_0679_b_22L
[1] 眠去何得恁地狼藉兀然無事坐春來草自靑
011_0679_b_23L這個是癰瘡上添艾灸相似不見道直須靑天也須
011_0679_b_24L喫棒爲甚麽如此好作雨時不作雨堪晴天時不晴天

011_0680_a_01L雖然如是是甚麽心行噫嘻長年不出戶是何境界
011_0680_a_02L莫向這裏屙出去是何境界浮生穿鑿不相關
011_0680_a_03L是何境界不惜兩莖眉毛爲爾提出低頭仰面無
011_0680_a_04L蔵處雲在靑天水在甁

011_0680_a_05L八人牛俱亡

011_0680_a_06L
悉利蘇魯沒多野地多也娑婆訶又摘楊花摘楊
011_0680_a_07L長年修行到此却是迷茫顚倒不直一分錢會麽
011_0680_a_08L塞外將軍令寰中天子勅喝一喝

011_0680_a_09L九返本還源

011_0680_a_10L
鶴脛雖長断之則憂鳧脛雖短續之則愁鉢盂不
011_0680_a_11L得着柄笊籬且宜有漏緜州附子并州鐵萬物無
011_0680_a_12L非本處好米賤柴多足四隣是個湖南城下吹火尖
011_0680_a_13L讀書彈舌也是大愚家風更有一句付在來日

011_0680_a_14L十垂手入鄽

011_0680_a_15L
木女之夢石人之歌也是前塵影事無相之佛難容
011_0680_a_16L毘盧之頂何貴遊芳草岸宿蘆花洲荷帒遊市
011_0680_a_17L振鈴入村寔爲了漢事境界與前日撥草尋牛
011_0680_a_18L的時節同耶不同耶皮下有血底幸須着眼始得

011_0680_a_19L尋牛頌

011_0680_a_20L一尋牛

011_0680_a_21L
可笑尋牛者騎牛更覔牛斜陽芳草路那事
011_0680_a_22L實悠悠

011_0680_a_23L二見跡

011_0680_a_24L
猿鳥春心慣未登古路愁個中消息在跡向藪雲幽

011_0680_b_01L三露現全體

011_0680_b_02L
曠刼相將地驀然透一區曾聞雪山裏乳香萬年留

011_0680_b_03L四調伏保任

011_0680_b_04L
幾廻成落草鼻索實難投賴有今日事江山盡我收

011_0680_b_05L六忘牛存人

011_0680_b_06L
風燈泡沫了何法更堪求寄於長安道聲前不得休

011_0680_b_07L七人牛俱忘

011_0680_b_08L
寂光猶未至添得一毛毬此道無多在山高水自流

011_0680_b_09L八異類中事

011_0680_b_10L
被毛兼戴角燈榻語啾啾祖師今身外長年走市頭

011_0680_b_11L五任運歸家

011_0680_b_12L
東西非內外任運向家邱無孔一枝笛聲聲難自由
  1. 327)만약 강항强項한〜오늘에 이르렀으리오 : 『대혜서장大慧書狀』 「답양교수答楊敎授」에 보인다. 강항强項은 원래 강직하여 권세나 무력에 굽히지 않는 사람으로, 『대혜서장』에서는 세상의 벼슬아치를 뜻하는 말로 썼다. 여기서는 불법 중에 용맹하고 출중한 인물을 뜻하는 말로 썼다.
  2. 328)원문에는 철종 8년으로 되어 있는데 정사년은 철종 7년이므로 고쳤다.
  3. 329)천리마가 백락伯樂을〜소금수레를 끈다 : 뛰어난 사람이 낮은 지위에 머물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한탄한 말이다. 초楚나라 한명汗明이 춘신군春申君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천리마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까? 늙은 천리마가 소금수레를 끌고 태항산太行山을 오르는데, 발굽은 갈라지고 무릎은 꺾이고, 꼬리는 해지고 가죽은 문드러져서 온몸에 땀을 쏟으며 산길에서 온 힘을 다하지만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백락伯樂이 이것을 보고는 수레에서 내려 말을 어루만지며 통곡을 하고 옷을 벗어 걸쳐 주었습니다. 그러자 천리마가 머리를 들고 슬프게 부르짖으니, 그 울음소리가 하늘을 찌르는데, 마치 쇳소리와 같았던 것은 어째서였겠습니까? 백락이 자기를 알아주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
  4. 331)영운 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마사도래화驢事未去馬事到來話’ : 영운 선사는 위산 영우潙山靈祐 문하의 영운 지근靈雲志勤으로 복사꽃을 보고 도를 깨달았다는 고사가 알려져 있다. 영운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라고 물으니, “나귀의 일이 가기도 전에 말의 일이 이르렀다.(驢事未去, 馬事到來.)”라고 대답한 화두이다.
  5. 333)백념白拈 : ‘백白’은 백주白晝, 또는 맨손이란 뜻이다. 백주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남의 물건을 훔쳐내는 뛰어난 적수賊手를 말하는데, 불가에서는 특히 종사가 학인을 제접하여 그의 망상 집착을 흔적 없이 신속하게 소멸시키는 기교에 비유하기도 한다.
  6. 334)모든 거동을~떨어지지 않는다 : 향엄 지한香嚴智閑 선사가 기와 조각을 던져 대나무에 맞아 나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깨달은 뒤에 읊은 게송에 보이는 구절이다. 초연悄然은 적연寂然이니, 눈과 귀로 보고 들음이 끊어진 무심의 경지이다. 고로古路는 진여자성인 본심本心을 뜻한다. 즉 깨닫고 보니, 나의 모든 거동이 그대로 본심의 자리에서 자유자재한 것이라 굳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작용을 끊고 무심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7. 335)시순時順 :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마침 그때에 태어난 것은 선생이 올 때가 된 것이고, 마침 이때에 세상을 떠난 것은 선생이 갈 때가 된 것이다. 자기에게 닥친 시운을 편안히 여기고서 그 도리를 알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슬픔과 기쁨이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라는 말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세상에 와서 머물다 간 사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8. 336)나한개분불사羅漢改粉佛事 : 나한상에 흰 칠을 새로 하는 것이다.
  9. 337)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니 : 『서경』 「순전舜典」의, “시는 뜻을 말한 것이요, 노래는 말을 길게 읊은 것이요, 소리는 길게 읊음에 따른 것이요, 음률은 읊는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詩言志, 歌永言, 聲依永, 律和聲.)”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10. 338)마음달이 외로이~무슨 물건인가 : 이 게송은 당대唐代의 승려 반산 보적盤山寶積의 게송이다.
  11. 339)선사先師께서 나를~저버리지 못한다 : 동산 양개洞山良价가 스승인 운암雲巖이 입적할 때 “스님이 돌아가신 뒤에 누가 ‘스님의 참모습을 그릴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운암이 가만히 있다가 “다만 이것이니라.(只這是)”라고 하였다. 동산이 그 뜻을 알지 못하다가 훗날 시내를 건너다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는 크게 깨달았다. 그 뒤 동산이 운암의 제사를 지낼 때 어느 스님이 “스님은 처음에 남전南泉 스님을 뵙고 발심을 하셨는데, 왜 운암 스님의 제사를 지냅니까?”라고 하니, 동산이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과 불법을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선사께서 나를 위해 설파해 주시지 않은 것을 중히 여길 뿐이다.(我不重先師道德佛法, 祇重他不爲我說破.)”라고 하였다. 그 스님이 “스님은 선사를 위해 제사를 지내니, 도리어 선사를 긍정하십니까?”라고 하니, 동산이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노라.”라고 하였다. “어찌하여 모두 긍정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동산이 “만약 모두 긍정하면 선사를 저버리게 된다.(若全肯, 即孤負先師也.)”라고 하였다. 『서주동산양개선사어록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 여기서는 경허가 북방으로 종적을 감춘 뒤에 한암이 평안도 맹산孟山 우두암牛頭庵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개오하였기 때문에 이 고사를 인용하여 비록 경허에게 인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경허를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12. 340)불이법문不二法門 : 상대의 차별을 초월한 절대 평등의 경지, 대립을 떠난 이치를 나타내는 가르침이다.
  13. 341)선善도 철저하고~없는 경지 : 수단修斷은 『잡아함경』에 나오는 사정단四正斷의 하나로 수행해서 정도正道를 짓고, 그 정도가 점점 자라서 악을 끊어 없애는 것이다. 경허는 선과 악에 모두 철저하여 선악의 경계를 벗어났으므로 바른 도를 닦아서 악을 제거하는 유위有爲의 수행에 머물 수 없는 초일超逸한 경지에 있다는 뜻이다.
  14. 342)깊은 마음으로~것이라 하네 : 『능엄경』에 보인다. 『능엄경』에는 “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으로 되어 있다. 진찰塵刹은 진진찰찰塵塵刹刹의 준말로 온 우주의 수없이 많은 세계를 일컫는 불교 용어이다. 그 주석에 “성과聖果를 얻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불은을 갚는 것과는 상관이 없지만, 이것으로써 보답하지 못하는 은혜에 보답하는 것으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15. 343)율의律儀와 불률의不律儀 : 율의는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이니 규모를 지켜 위의를 엄정하게 하는 율법이고, 불률의는 악률의惡律儀·악계惡戒라고도 하니 서원을 세워 살생 등의 악업을 짓는 것이다.
  16. 344)정인正因 : 물物·심心 제법을 곧바로 내는 원인이며, 왕생 또는 성불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정당한 원인을 말한다.
  17. 345)지범持犯 : 지계持戒와 파계破戒를 뜻한다.
  18. 346)사난四難 : 부처님을 만나 정법正法 듣기 어려운 것을 네 가지로 나눈 것으로, 『법화경』 「방편품」에 나온다. 첫째, 치불난値佛難은 부처님이 계실 때를 만나기 어려움이고, 둘째, 설법난說法難은 기연機緣이 익숙하지 못할 때는 설법하기 어려움이고, 셋째, 문법난聞法難은 교법을 능히 듣기 어려움이고, 넷째, 신수난信受難은 교법을 믿어 받아 지니기 어려움이다.
  19. 347)권교보살權敎菩薩 : 임시로 대승의 가르침에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써 부처님이 설하신 임시 가르침을 행하는 보살을 말한다.
  20. 348)형수가 물에~건져 주는 : 맹자가 “남녀 사이에 서로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으면 손으로 잡아 구원해 주는 것은 권도이다.(男女授受不親, 禮也; 嫂溺援之以手, 權也.)”라고 하였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상」.
  21. 349)세 부류 :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의 업행이 얕은지 깊은지로 상·중·하 세 부류를 나누는 것이다.
  22. 350)반주삼매般舟三昧 : 반주는 범어로 한역하면 불립佛立이 된다. 이 삼매에 들면 부처님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한다.
  23. 351)구박범부具縛凡夫 : 번뇌 망상을 갖고 있어 생사윤회의 속박을 받는 범부이다.
  24. 352)자기 옷~떠돌아다니며 걸식한다 :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五百弟子授記品」에 의주依珠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부자 친구 집에 가서 저녁 대접을 받고는 잠이 들었다. 친구는 가난한 친구를 위해 값비싼 보물을 주머니 속에 넣어 주고 볼일을 보러 나갔다. 잠이 깬 후 가난한 친구는 주머니 속에 보물이 들어 있는 줄도 모른 채 하염없이 떠돌다가 몇 년 후 우연히 둘이 만나게 된다. 예전처럼 가난한 행색을 보고선 깜짝 놀란 친구가 가난한 친구의 주머니를 살펴보니, 자기가 옷 속에 넣어 준 보물이 그대로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주머니 속의 보물처럼 중생들에게 불성이 감추어져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25. 353)성적등지惺寂等持 : 참선할 때 마음에 성성惺惺하게 깨어 있는 상태와 적적寂寂하게 고요한 상태를 함께 유지하는 것이다.
  26. 354)선도 이 마음이니~끊을 수 없다 : 규봉 종밀圭峰宗密(780〜841)이 저술한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도가 그대로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로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로 마음을 끊을 수 없다. 끊지도 않고 닦지도 않고서 아무런 조작 없이 자재한 것을 해탈이라 한다.(道即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不斷不修任運自在, 方名解脫.)”
  27. 355)메추리가 붕새를 비웃는 :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붕이란 새는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아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올라가 구름을 벗어나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진 다음에야 남쪽으로 가고자 도모하여 남쪽으로 간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갈 때 메추리가 그를 쳐다보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저 새는 장차 어디를 가려고 하는가? 나는 뛰어올라 봤자 고작 두어 길도 못 오르고 도로 내려와 쑥대밭 사이에서 빙빙 돌 뿐이지만, 이 또한 잘 날아간 것인데, 저 새는 장차 어디를 가려는 것일까?’라고 했다.(其名爲鵬, 背若泰山, 翼若垂天之雲, 搏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絶雲氣, 負靑天. 然後圖南, 且適南冥也. 斥鷃笑之曰: 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翶翔蓬蒿之間, 此亦飛之至也, 而彼且奚適也.)”라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28. 356)원심圓心 : 완전하고 원만한 열반을 구하는 마음이다.
  29. 357)도호塗糊 : 호도糊塗와 같다. 『대혜서장大慧書狀』 「답양교수答梁敎授」에서 양교수梁敎授란 사람이 법호를 지어 달라고 청하기에 쾌연 거사快然居士란 법호를 준다고 하면서 한 말을 인용한 것으로 좋지 못한 말로 상대방을 오염시킨다는 뜻이다. 즉 법어를 해 주는 것이 상대방의 청정한 법신法身을 오염시키고, 때를 묻히는 셈이 된다는 뜻이다.
  30. 358)눈에 응할 때에는~것과 같으니 : 『대혜서장』 「답영시랑答榮侍郞」에서 “고덕이 증오證悟하고는 곧 말하기를, ‘눈에 응할 때는 천 개의 해와 같아서 만상이 그 모습을 숨길 수 없고, 귀에 응할 때는 빈 골짜기와 같아서 크고 작은 소리가 부족함이 없다’ 하였으니, 이와 같은 일은 달리 찾을 필요도 없고, 남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어 자연히 인연을 응하는 곳에서 활발발하게 나타난다.(古德契證了便解道: ‘應眼時若千日, 萬象不能逃影質; 應耳時若幽谷, 大小音聲無不足.’ 如此等事, 不假他求, 不借他力, 自然向應緣處活鱍鱍地.)”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31. 360)갈림길에서 양을 잃는 : 성어로 다기망양多歧亡羊이라 하며, 『열자』 「설부說符」에 그 고사가 나온다.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양을 잃고 집안사람들을 다 동원하고 양자의 종까지 동원하여 찾으려 하였다. 양자가 묻기를, “한 마리 양을 잃고 찾으러 가는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많은가?” 하니, 그 사람이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찾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양자가 “양을 찾았는가?”라고 물으니, “잃었습니다.” 하였다. 양자가 “어째서 잃었는가?” 하니, 그 사람이 “갈림길 속에 다시 갈림길이 있어 어디로 양이 갔는지 알 수 없기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심도자心都子가 “대도는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고, 학자는 방도方道가 많아 생명을 잃는다.”라고 하였다.
  32. 361)분명하게 이치를~결단하고 간택한다 : 규봉 선사가 저술한 『대방광원각경대소大方廣圓覺經大疏』 상권에 이 경을 설하게 된 열 가지 이유를 나열했는데, 그중에 세 번째 이유로 “분명하게 이치를 깨닫고 응당 수행해야 함을 결단하고 간택한다.”(決擇悟理應修)”가 나온다.
  33. 362)호리병 속 풍월 : 매우 풍광이 아름다운 별천지를 뜻한다. 후한後漢 때 시장에서 약을 파는 호공壺公이란 노인이 자기 점포에 병 하나를 걸어 놓고 있다가 장사를 마치면 늘 그 병 속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는데, 비장방費長房이란 사람이 그것을 보고 호 공에게 청하여 따라 들어가 보니, 호리병 속에는 별천지가 있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권82 하 「방술열전方術列傳」 〈비장방費長房〉.
  34. 363)제이두第二頭 : 제일의제第一義諦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제이의第二義와 같다. 즉 향상向上의 제일의로부터 향하向下의 차별문으로 후퇴하여 여러 가지 방편에 의해 중생의 미망을 깨어 깨달음으로의 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35. 364)백초百草 : 현상계의 모든 사물을 총괄하여 말한 것이다.
  36. 365)일단 일에~해야 하니 : 원문 ‘一不做, 二不休.’는 ‘일단 손을 대고 나면 끝까지 하다, 한번 나쁜 일을 시작한 바에는 끝까지 하다’라는 뜻이다. 『오조법연어록五祖法演語錄』 권상에서 “一不做, 二不休. 不風流處也風流.”라 하였고, 『벽암록碧巖錄』 79칙 본칙평창本則評唱에서 “衲僧家, 一不做, 二不休.”라 하였다.
  37. 366)낭자狼藉 : 이리가 풀을 깔고 자고 난 뒤에 풀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양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허물을 뜻한다.
  38. 367)이 말에 따라 고양이를 그려서 : 법문에 따라 참구함을 비유한 것이다. 『선요禪要』에 화두에 따라 참구하는 것을 비유하여 “당장에 화법畵法에 따라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하여 그리고 그려서 뿔과 얼룩무늬가 있는 곳, 심식의 길이 끊어진 곳, 사람과 법을 모두 잊은 곳에 이르면 붓 끝 아래 산 고양이가 뛰쳐나올 것이다.(直下依樣畵猫去, 畵來畵去, 畵到結角羅紋處, 心識路絶處, 人法俱忘處, 筆端下, 驀然突出箇活猫兒來.)”라고 하였다.
  39. 368)등긁개 : 등긁개를 양화자癢和子라 하니, 양화병養和柄은 등을 긁는 도구인 등긁개의 자루이다.
  40. 369)유명幽明의 두 임금이~대장경판을 조성한 : 고려 현종顯宗 때 만든 초조대장경 판본이 원나라 침입 때 병화로 불탄 뒤 고종高宗 때 임금과 신하가 다시 도감을 세워 16년 만에 대장경판을 완성하였다. 여기서 유명의 두 임금은 고려 현종과 고종을 가리킨다.
  41. 370)도를 조금 알았다(聞道百) : 『장자』 「추수秋水」에 나오는 말이다. 가을에 물이 흘러 내려와 황하에 물이 크게 불어나자 황하의 신인 하백河伯이 황하만큼 크고 훌륭한 곳은 없으리라고 자부하다가 북해에 이르러 보니, 북해는 아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백이 북해의 신 약若에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속어에 ‘백 개의 진리를 듣고서 천하에 자기만 한 자가 없다고 여긴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게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구려.(野語有之曰: ‘聞道百以爲莫己若者’, 我之謂也.)”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여기서는 자기 식견이 얕다는 겸사로 쓰였다.
  42. 371)일척안一隻眼 : 불법에 대해 진실한 정견의 혜안을 갖춘 것을 가리킨다. 이는 범부의 육안이 아니다. 의미상 정문안頂門眼·정안正眼·활안活眼·명안明眼 등과 같다.
  43. 372)귀종 권歸宗權이~울었던 일 : 운거산雲居山 도응 선사道膺禪師의 법손인 귀종 담권歸宗澹權 선사는 아침부터 공부하다가 해가 질 때면 다리를 뻗고 울면서 “오늘도 공연히 지내었고 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라고 한탄하였다.
  44. 373)아교와 칠 : 이 두 가지는 접착성이 강하여 섞으면 분리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고시古詩에 “아교를 옻칠 가운데 던져 놓으면, 뉘라서 이것을 분리시키랴.(以膠投漆中, 誰能別離此.)” 하였고, 교칠은 두 사람 사이의 매우 친밀한 우정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45. 374)사물四物 : 법고·운판·목어·대종을 가리키는 말이다.
  46. 375)혼해 강백混海講伯 : 혼해混海는 법호이고, 법명은 찬윤讚允이다.
  47. 376)성월 선백惺月禪伯(1866〜1943) : 보암 정호寶庵定浩 스님이 은사이다. 성월은 법호이고, 법명은 일전一全이며, 속성은 오씨吳氏이다. 1899년 범어사 금강암, 안양암, 내원암, 계명암, 원효암 등에 선원을 개설하였고, 1904년에는 만하 스님을 모시고 금강계단을 설립하였다. 1909년 담해 스님에 이어 범어사 총섭總攝(지금의 주지에 해당)으로 추대돼 가람을 중건하는 한편 명정학교(지금의 금정중·청룡초)를 설립하였다. 범어사 주지를 세 차례 역임하였다.
  48. 377)만촉蠻觸 : 만蠻과 촉觸이라는 작은 나라가 덧없고 실체가 없는 것을 비유한다. 『장자』 「칙양則陽」에 달팽이의 왼쪽 뿔에는 만씨蠻氏의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는 촉씨觸氏의 나라가 있어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싸워서 죽은 시체가 수만이었다는 얘기에서 온 말이다.
  49. 378)천계天鷄 : 전설에 도도桃都라는 거목 위에 산다는 하늘의 닭이다. 해가 처음 뜰 때 이 닭이 울면 천하의 모든 닭이 뒤따라 울기 시작한다고 한다. 『술이기述異記』 하권. 계명암鷄鳴巖에 천계가 내려와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50. 379)선재善財 : 『대방광불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구도자. 53선지식을 두루 찾아뵙고, 맨 나중에 보현보살을 만나서 십대원十大願을 듣고, 아미타불 국토에 왕생하여 입법계入法界의 지원志願을 채웠다 한다.
  51. 381)건추犍椎 : 범어의 음역으로 성명聲鳴, 즉 소리가 울린다는 뜻인데, 사찰의 목어, 종, 경쇠 등을 가리킨다.
  52. 382)보청普請 : 선원의 수행자가 모두 나와서 일하는 것을 말한다.
  53. 383)6일이 되기 전에는 : 육일은 육재일六齋日을 뜻하며, 8일, 14일, 15일, 23일, 29일, 30일이다. 이날은 몸을 조심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지계持戒하는 날이다.
  54. 384)궁음窮陰 : 음력 10월의 이칭이다. 음력 10월은 음효陰爻가 다 찬 상태로 순음純陰인 곤괘坤卦에 해당하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한 해가 바뀌는 한겨울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55. 385)시순時順 :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마침 그때에 태어난 것은 선생이 올 때가 된 것이고, 마침 이때에 세상을 떠난 것은 선생이 갈 때가 된 것이다. 자기에게 닥친 시운을 편안히 여기고서 그 도리를 알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슬픔과 기쁨이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라는 말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세상에 와서 머물다 간 사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56. 386)청황보불靑黃黼黻 : 의복을 장식하는 화려한 색채와 무늬를 말한다. 순舜임금이 우禹에게 이르기를, “내가 해와 달과 별과 산과 용과 꿩을 무늬로 만들고, 종묘의 술그릇과 물풀과 불과 흰쌀과 보와 불을 수놓아서 다섯 가지 채색을 다섯 가지 빛깔로 물들여 옷을 만들고자 하거든, 그대는 그것을 밝게 만들라.(日月星辰山龍華蟲, 作會, 宗彝藻火粉米黼黻, 絺繡, 以五采彰施于五色, 作服, 汝明.)”라고 하였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익직益稷≻.
  57. 387)사산四山이 핍박해 오는데 : 사산은 생로병사를 비유한 것이다. 『열반경』 27권에서 “사대산四大山이 사방으로부터 와서 사람을 해치려 한다. 사대산은 곧 생로병사이다.”라고 하였다.
  58. 388)암주庵主가 조주趙州 스님에게 대답한 : 조주 스님이 한 암주를 방문하여 “주인 있는가?” 하니, 암주가 주먹을 세우자, 조주 스님이 “물이 얕아 배를 댈 수 없구나.” 하고 떠났다. 또 한 암주를 방문하여 역시 “주인 있는가?” 하고 물으니, 그 암주도 역시 주먹을 세웠다. 그러자 조주 스님은, “놓을 줄도 알고, 빼앗을 줄도 알며, 죽일 줄도 알고, 살릴 줄도 아는구나.” 하고는 절하고 떠났다. 『선문염송』.
  59. 389)사계 선생沙溪先生 : 김장생金長生(1548〜1631)을 가리킨다. 그는,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며,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었고,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학통을 계승하였다.
  60. 390)칠성제七星祭 : 칠성七星에게 올리는 제사로 정월 7일에 지낸다. 집안의 무사태평과 자식들의 장성을 기원하는 제사이다.
  61. 392)시순時順 : 『장자』 「양생주養生主」에 “마침 그때에 태어난 것은 선생이 올 때가 된 것이고, 마침 이때에 세상을 떠난 것은 선생이 갈 때가 된 것이다. 자기에게 닥친 시운을 편안히 여기고서 그 도리를 알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슬픔과 기쁨이 마음속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適來, 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라는 말에서 온 말로, 여기서는 세상에 와서 머물다 간 사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62. 393)두 가지 이익 :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이다.
  63. 394)경덕景德 : 전라남도 남원 운봉읍雲峰邑의 옛 이름이다.
  64. 395)방점蚌黏·의질蟻垤 : ‘점黏’ 자는 미상이다. 오자일 듯하다. 그러나 의질이 개미 둑, 즉 개미가 땅에 불룩하게 지어 놓은 집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 방점은 조개가 모래 속을 파고 들어가 불룩하게 된 것을 가리키는 듯하다.
  65. 396)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 『주역』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66. 397)슬프다! 천하의 득실과 고금의 흥망이 : 이 문구의 다음 내용은 일실逸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만으로는 말이 되지 않으므로, 선학원본에서는 산삭刪削한 것으로 판단된다.
  67. 398)사생死生이 또한 크도다 : 동진東晉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에서 “고인이 이르기를, ‘사생이 또한 크다’ 하였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하였다.
  68. 399)속과 겉이 모두 달고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도를 얻는다면 마치 꿀을 먹는 것과 같아서 속과 가장자리가 모두 달 것이다.(若有人得道, 猶如食蜜, 中邊皆甛.)” 한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진정한 내용과 형식이 다 갖춰진다는 뜻으로 말하였다.
  69. 400)유희삼매遊戱三昧 : 경허가 거처하는 방을 유희삼매실遊戱三昧室로 이름 붙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70. 401)『선원제전집도서』 권상(T48, 399c20).
  71. 402)『능엄경』의 본성을 가리킴 : 『능엄경』 권4에 종소리를 통해 부처님이 아난에게 본성을 찾는 가르침을 보였으니,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때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명하여 종을 한 번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너는 지금 종소리가 들리느냐?” 하니, 아난과 대중들이 “들립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종소리가 없어지자 부처님께서 또 “너는 지금 들리느냐?” 하니, 아난과 대중들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였다.……부처님께서 “너는 어떤 것을 듣는다고 하고, 어떤 것을 듣지 못한다고 하느냐?……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음이 없다고 하는데, 만약 참으로 들음이 없다면 듣는 성품이 이미 없어져서 마른나무와 같을 것이다.……있음을 알고 없음을 아는 것도 그 들리는 대상인 소리가 있었다 없었다 하는 것이지, 어찌 저 듣는 성품이 네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네가 듣는 데 있어서 소리가 생기고 없어짐이, 너의 듣는 성품으로 하여금 있었다 없었다 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72. 403)너는 그 양을~예禮를 아끼노라 :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는 형식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에서 매월 초하루에 양을 잡아 조묘祖廟에 고하는 곡삭告朔이란 예가 있었다. 문공文公 때부터는 조묘에 고하는 예는 없어졌는데 여전히 양만 희생으로 잡으니,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이 이를 그만두게 하고자 하였다. 이에 공자가 “자공아! 너는 그 양을 아끼느냐? 나는 그 예를 아낀다(賜也. 爾愛其羊? 我愛其禮.)”라고 하였다. 『논어』 「팔일八佾」.
  73. 404)천비산 중암은 충청남도 대전군大田郡 산내면山內面 묘각사妙覺寺에 있다.
  74. 405)중산 선인中山仙人 : 전설에 나오는 중산中山에 사는 적희狄希라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그가 천일주를 잘 만들었다. 하루는 유현석劉玄石이라는 사람이 중산의 술집에서 천일주를 사서 마시고 취하였는데, 집안사람들이 그가 죽은 줄로 알고 장사 지냈다가 천 일이 지난 뒤에 술집 주인의 말을 듣고 다시 관을 열어 보니, 그제야 술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박물지博物志』 「잡설雜說 하」.
  75. 406)천지는 하나의~하나의 말이다 : 『장자』 「제물론齊物論」에서 “손가락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닌 것을 비유하는 것은, 손가락이 아닌 것을 가지고 손가락이 손가락 아닌 것을 비유하는 것만 못하고, 말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닌 것을 비유하는 것은, 말이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이 말 아닌 것을 비유하는 것만 못하다. 천지는 하나의 손가락이요, 만물은 하나의 말인 것이다.(以指喩指之非指, 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以馬喩馬之非馬, 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라고 하였다.
  76. 407)짐주鴆酒 : 짐새의 털을 담근 술. 사람을 살해하는 일종의 독약이다.
  77. 408)이 문구는 협주로 처리하였다. 아마 ‘경허풍류화’라고 편집된 글이 있었던 듯하다.
  78. 409)죽반사미粥飯沙彌 : 죽반승粥飯僧과 같은 말로 죽과 밥만 먹을 줄 알지 아무것도 모르는 승려를 뜻한다.
  79. 410)식경識境 : 육식六識과 육경六境의 준말이니 마음과 대상을 뜻한다.
  80. 411)세 번 절하고~얻었다고 인가하였다 : 달마가 혜가慧可를 인가할 때의 이야기이다. 달마가 입적할 때 제자들에게 각자의 경지를 말하게 했는데, 혜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바로 세 번 절하고 제자리로 돌아가 서니, 달마가 “너는 나의 골수를 얻었다.” 하고는 혜가를 인가하였다 한다. 『불조역대통재佛祖歷代通載』.
  81. 412)축착합착築着闔着 : 성을 쌓을 때 쌓아 올리는 돌들이 딱딱 들어맞고 맷돌의 위쪽과 아래쪽이 서로 빈틈없이 들어맞는다는 말로 화두를 참구하다가 본분本分 도리에 계합함을 형용한 말이다.
  82. 413)상相에 머무는~안 되게 되리라 : 당나라 영가 현각永嘉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 보인다.
  83. 414)라후라羅睺羅 : 석가의 아들로 출가하여 석가의 제자가 되었다.
  84. 415)어진 이를~바꾸어서 하라 : 공자의 말로 『논어』 「학이學而」에 보인다.
  85. 416)황양목선黃楊木禪 : 황양목은 좀처럼 자라지 않는 나무로 윤달을 만나면 오히려 줄어든다고 한다. 즉 좀처럼 진보가 없는 선을 형용한 말이다. 여기서는 자기의 참선을 겸사로 말한 것이다.
  86. 417)수역壽域:인수지역仁壽之域의 준말로, 본래 태평성대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도솔천이나 극락정토와 같은 곳을 뜻한다. 인수는 『논어』 「옹야雍也」의 “인자는 장수한다.(仁者壽)”라는 대목에서 온 말이다. 『한서漢書』 22권 「예악지禮樂志」에서 “구례舊禮를 찬술하고 왕제王制를 밝혀서 온 세상의 백성들을 이끌어 인수의 지역에 오르게 하면, 풍속이 어찌 주나라 성왕成王과 강왕康王 때 태평 시절과 같지 않겠으며, 수명이 어찌 은나라 고종高宗 때와 같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87. 419)한 무제漢武帝의 옥당玉堂 :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건장궁建章宮을 세웠는데 그 남쪽에 옥당玉堂이란 궁전이 있었다.
  88. 420)석숭石崇의 금곡金谷 : 석숭은 진晉나라 때 부호로 금곡원金谷園이란 별장을 지어서 빈객들을 모아 놓고 호사스러운 술자리를 열었다고 한다.
  89. 421)푸른 백양나무엔~걸려 있네 : 고대에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고 그 위에 백양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90. 422)월越나라 살찐~않게 여겨 : 『약사略史』 12권에는 원문이 ‘越肥之視秦瘠’으로 되어 있다. 남의 일을 보듯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91. 423)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이름할~법이 없다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에 나오는 구절이다.
  92. 424)구름을 어루만지고~지은들 어떠리 : 구름을 어루만진다는 것은 속세를 떠난 높은 곳에 있음을 뜻한다. 세제世諦는 속제俗諦와 같은 말이다. 『열반경』에서 “출세간의 사람이 아는 것을 제일제第一諦라 하고, 세간의 사람이 아는 것을 세제라 한다.” 하였다. 즉 동곡당이 입적하여 진제眞諦인 진여자성眞如自性으로 돌아가 있는데 진여자성을 여의지 않고 세속에 돌아와 노닐라는 뜻으로 말한 듯하다.
  93. 425)산은 높고 물은 길도다 : 동곡당의 유풍遺風이 산과 강물처럼 유구하리라는 뜻이다. 송宋나라 때 범중엄范仲淹이 목주 자사睦州刺史로 부임하여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고사高士인 엄광嚴光의 사당을 짓고 지은 기문인 「엄선생사당기嚴先生祠堂記」에 “선생의 유풍이여! 산은 높고 물은 길도다.(先生之風, 山高水長.)”라고 한 것을 차용한 것이다.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6권.
  94. 427)간혜乾慧 : 삼승공십지三乘共十地의 하나로, 외범外凡의 위位이다. 장교藏敎의 오정심五停心·별상념처別相念處·총상념처總相念處의 삼현위三賢位에 해당한다. 간혜는 마른 지혜라는 뜻으로, 오정심·별상념처·총상념처의 관觀을 닦아 지혜는 깊으나, 아직도 온전한 진제眞諦 법성法性의 이치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간혜지라 한다.
  95. 428)금시今時 : 세간의 법인 속제俗諦로 범부와 성인, 인과와 공행功行을 뜻한다. 신훈新薰과 같은 말이다. 천동 정각天童正覺의 소참小參에 “우리 불법 중에 진실하게 도달하는 곳은 그야말로 금시가 다하고 공겁空劫을 뛰어넘어야 한다.(吾佛法中, 眞實到處, 直須及盡今時, 全超空劫.)”라고 하였다.
  96. 429)알운곡遏雲曲 : 알운가遏雲歌와 같으니, 맑고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가리킨다. 당나라 나은羅隱의 「춘사春思」에 “촉나라에 따스한 날씨 돌아와 산골에 물결 이니, 위나라 낭자 맑은 소리로 알운가를 부르네.(蜀國暖回溪峽浪, 衛娘淸轉遏雲歌.)”라고 하였다.
  97. 430)푸른 하늘이라~맞아야 한다 : 어떤 스님이 묻기를, “만 리에 한 조각 구름도 없을 때가 어떠합니까?” 하니, 분주 선사汾州禪師가 “푸른 하늘도 방망이를 맞아야 한다.” 하였다. 다시 “허물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선사가 “비가 와야 할 때엔 비가 오지 않고, 개어야 할 때엔 개지 않기 때문이니라.” 하였다.(汾州因僧問: “萬里無片雲時如何?” 師云: “靑天也須喫棒.” 僧云: “未審過在什麽處?” 師云: “堪作雨時不作雨, 好晴天處不晴天.”)
  98. 431)두 눈썹을 아끼지 않고 : 중국에 거짓말을 하면 눈썹이 빠진다는 속어가 있다. 아무리 설법을 잘하더라도 말을 하면 근본 진리와 멀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남을 위하여 설법을 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99. 432)면주는 부자附子요 병주는 쇠라 : 죽암 사규竹庵士珪의 게송에서 “추울 땐 춥고 더울 땐 더움이여, 추위와 더위 없는 곳에서 저절로 다르구나. 면주의 부자와 한주의 생강이요, 칼을 만들려면 모름지기 병주의 쇠라야 하네.(寒時寒熱時熱, 無寒署處天然別. 綿州附子漢州薑, 打刀須是幷州鐵.)”라고 하였다. 면주는 좋은 부자의 산지産地이고, 병주는 좋은 쇠의 산지이다.
  100. 433)설산에는 소젖의~만년토록 남았다지 : 설산은 히말라야 산이다. 이 산에는 비니肥膩란 좋은 풀이 있는데, 흰 소(白牛)가 있어 이 풀만 먹고 최상급의 젖을 생산한다고 한다. 흰 소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비유한 말이다. 영가 현각永嘉玄覺의 『증도가證道歌』에서 “설산의 비니초는 잡된 풀이 없으니 순수한 제호를 내어 내가 항상 받도다.(雪山肥膩更無雜, 純出醍醐我常納.)”라고 하였다.
  101. 434)‘五任運歸家’의 5언 4구는 한암필사본에는 ‘八異類中事’ 다음에 들어가 있지만, 여기서는 순서를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102. 435)곡조 속에 자유롭기 어렵도다 : 젓대 소리는 울려 퍼지는데 아직 소가 완전히 길들어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뜻이다. 지해 철智海喆의 게송에 “발굽과 뿔 분명하여 곳곳마다 다니니 관리할 필요도 통제할 필요도 없네. 곡식을 먹지 않을 줄만 안다면 물과 풀 먹으며 언제나 자유로우리.(蹄角分明觸處周, 不勞管帶不勞收. 但知不犯他苗稼, 水草隨時得自由.)”라고 하였다.
  103. 436)바람 앞에 등불과 물거품 : 무상한 세상사를 비유한 것이다.
  104. 437)소리 앞에 쉬지는 못했다 : 소리 앞이란 아직 말이 나오기 전의 근본 당처當處를 말한다. 즉 아직 근본 당처에 머물러 쉬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백수 본인白水本仁의 상당 법어에 “노승은 항상 소리 앞이나 이야기의 뒤에 남의 집 남녀들을 들뜨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소리는 소리가 아니요, 색은 색이 아니기 때문이니라.(老僧尋常, 不欲向聲前句後, 鼓弄人家男女, 何故? 且聲不是聲, 色不是色.)”라고 하였다.
  105. 438)털 공 하나를 더 보태었구나 : 털 공(毛毬)은 버들솜을 비유한 말이다. 즉 아직 비로자나불의 적광토寂光土에 이르지는 못하여 버들솜이 나는 지상에 있다는 뜻이다. 대혜 종고大慧宗杲의 게송에 “연잎은 둥글둥글하여 둥글기가 거울과 같고, 마름의 모서리는 뾰죽뾰죽하여 뾰죽하기가 송곳과 같네. 바람이 버들솜을 부니 모구가 달리고, 비가 배꽃을 때리니 흰나비가 난다.(荷葉團團團似鏡, 菱角尖尖尖似錐. 風吹柳絮毛毬走, 雨打梨花蛺蝶飛.)” 하였다.
  106. 439)이류異類 속의 일 : 이류異類는 인간 이외의 생류生類를 말하는데, 수행자를 포함한 중생 일반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류 속의 일은 선사가 수행자나 일반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지도 교화에 힘쓰는 것을 말한다.
  1. 1)此鏡虛集者。鏡虛門人漢岩親筆單行本也。
  2. 1)此單行本與底本。編輯體制判異故。於此影印載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