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智度論初品中欲住六神通釋論第四十三

ABC_IT_K0549_T_028
014_0777_b_01L대지도론 제28권
014_0777_b_01L大智度論初品中欲住六神通釋論第四十三卷二十八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014_0777_b_02L 聖者龍樹造


43. 초품 중 육신통에 머무르고자 하면[欲住六神通]의 뜻 을 풀이함
014_0777_b_03L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經】 보살마하살이 6신통(神通)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77_b_04L【經】
菩薩摩訶薩欲住六神通當學般若波羅蜜
【論】 【문】 찬보살품(讚菩薩品)1) 중에서 “모든 보살은 모두가 5신통(神通)2)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6신통에 머무르고자 한다면”이라고 말씀하는가?
014_0777_b_06L【論】
問曰如「讚菩薩品」中言諸菩薩皆得五神通今何以欲住六神通
【답】 5신통은 바로 보살이 얻는 것이요 지금의 “6신통에 머무르고자 하면”은 바로 부처님께서 얻는 것이다. 설령 보살이 6신통을 얻는다 해도 여래와 같다고 동의하기에는 곤란하다.
014_0777_b_08L答曰五通是菩薩所得今欲住六神通是佛所得菩薩得六神通可如來難
【문】 왕생품(往生品)3) 중에 “보살이 6신통에 머물러서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이른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보살은 모두가 5신통을 얻는다”고 하는가?
014_0777_b_10L問曰「往生品」中說菩薩住六神通至諸佛國云何言菩薩皆得五通
【답】 제6의 번뇌가 다한 누진신통(漏盡神通)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번뇌[漏]와 습기[習]가 모두 다한 것이다. 둘째는 번뇌는 다했으나 습기는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5신통을 얻는다”고 하고 번뇌가 다했기 때문에 “6신통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014_0777_b_12L答曰第六漏盡神通有二種一者漏習俱盡二者漏盡而習不盡習不盡故言皆得五漏盡故言住六神通
【문】 만일 보살이 번뇌가 다했다면 어찌하여 다시 태어나며 어찌하여 생을 받는가[受生]? 온갖 생을 받는 것은 모두가 애욕[愛]이 상속되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쌀이 좋은 농토에서 나온다 하더라도 시기[時]와 윤택함[澤]이 끊어지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성인은 애욕의 껍질[糠]을 이미 벗어버렸기 때문에 비록 유루(有漏)의 업으로 태어날 인연이 있다 하더라도 태어날 수 없어야 한다.
014_0777_b_15L問曰若菩薩漏盡云何復生云何受生一切受生皆由愛相續故有譬如米雖得良田時澤終不能生諸聖人愛糠已脫故雖有有漏業生因緣不應得生
【답】 먼저 이미 “보살이 법위에 들어가면 아비발치의 지위에 머무르며 마지막의 육신을 다하고 법성생신(法性生身)4)을 얻는다”고 말했다. 비록 모든 번뇌가 끊어졌다 하더라도 번뇌의 습기인 인연이 있기 때문에 법성생신을 받되 삼계(三界)에서의 생(生)은 아니다.
014_0777_b_19L答曰先已說菩薩入法位住阿鞞跋致地末後肉身盡得法性生身雖斷諸煩有煩惱習因緣故受法性生身三界生也
【문】 아라한은 번뇌는 이미 다했지만 습기는 아직도 다하지 않았는데 무엇 때문에 태어나지 않는가?
014_0777_b_23L問曰阿羅漢煩惱已盡習亦未盡何以不生
014_0777_c_01L【답】 아라한은 큰 자비가 없어서 본래 온갖 중생을 제도하려는 서원이 없었다. 또 실제(實際)를 증득하고 이미 나고 죽음을 여의었기 때문이다.
014_0777_c_01L答曰阿羅漢無大慈無本誓願度一切衆生又以實際作證已離生死故
또 먼저 이미 두 가지의 번뇌가 다함[漏盡]이 있다고 대답했다. 여기서는 보살이 “누진통(漏盡通)을 얻는다”고 말씀하지도 않았으며 스스로 “6신통을 얻고자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6신통에 대한 뜻은 후품(後品)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위의 보살품(菩薩品)에서도 찬탄했다. 또한 이미 보살의 5신통에 대한 뜻을 설명했다.
014_0777_c_03L復次先已答有二種漏盡此中不說菩薩得漏盡通自言欲得六神通者學般若波羅蜜六神通義如後品中佛所說上「讚菩薩品」亦已說菩薩五神通義
【문】 신통에는 어떠한 차례가 있는가?
問曰神通有何次第
【답】 보살은 5욕(欲)을 여의고 모든 선(禪)을 얻었으며 자비가 있기 때문에 중생을 위하여 신통을 취하면서 모든 희유하고 기특한 일을 나타내어 중생들의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왜냐하면 만일 희유한 일들이 없으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014_0777_c_08L答曰薩離五欲得諸禪有慈悲故爲衆生取神通現諸希有奇特之事令衆生心淸淨何以故若無希有事不能令多衆生得度
보살마하살은 이런 생각을 한 뒤에 마음으로 몸을 허공에다 매어 두고 거칠고 무거운 물질 모양을 소멸시키면서 항상 비고 가벼운 모양[空輕相]을 취한다. 크게 정진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지혜로 헤아리면 마음의 힘으로 몸을 들어 올릴 수 있게 되며 아직 헤아리기 전에도 벌써 스스로 마음의 힘이 커지면서 그 몸을 들어 올릴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뜀뛰기를 배울 때 항상 물질의 거칠거나 무거운 모양[麤重相]을 무너뜨리면서 언제나 가볍고 텅 빈 모양[輕空相]을 닦으면 이때 곧 날게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014_0777_c_12L菩薩摩訶薩作是念已繫心身中虛空滅麤重色相常取空輕相發大欲精進心智慧籌量心力能擧身未籌量已自知心力大能擧其身譬如學趠常壞色麤重相常修輕空相是時便能飛
둘째는 역시 모든 물건을 변화시킨다. 땅을 물이 되게 하고 물을 땅이 되게 하며 바람을 불이 되게 하고 불을 바람이 되게 한다. 이와 같이 모든 요소[大]를 모두 바꾸어지게 하니, 금을 기와나 조약돌이 되게 하고 기와나 조약돌을 금이 되게 하는 등 모든 물건을 각각 변화하게 한다.
014_0777_c_17L二者亦能變化諸物令地作水水作地風作火火作如是諸大皆令轉易令金作瓦礫瓦礫作金如是諸物各能令化
땅이 변하여 물의 모양이 되게 함에는 항상 닦으면서 물을 생각하고 땅의 모양을 기억하지 않으면 이때 땅의 모양은 생각과 같이 곧 물이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 모든 물건을 모두 변화하게 할 수 있다.
014_0777_c_20L變地爲水相常修念水令多不復憶念地相是時地相如念卽作水如是等諸物皆能變化
【문】 만일 그렇다면 일체입(一切入)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014_0777_c_23L問曰若爾與一切入有何等
014_0778_a_01L【답】 일체입은 바로 신통의 첫 길이다. 먼저 이미 일체입과 배사(背捨)와 승처(勝處)에 그 마음이 부드럽게 조복되면 그런 뒤에는 신통에 들어가기가 쉽다.
014_0778_a_01L答曰一切入是神通初道先已一切入背捨勝處柔伏其心然後易入神通
또 일체입 중에서는 하나의 몸만이 스스로 땅이 변하여 물이 되는 것을 보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지만 신통은 곧 그렇지가 않아서 자신이 실제로 물을 봄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역시 실제로 물을 본다.
014_0778_a_03L復次一切入中一身自見地變爲水餘人不見神通則不然自見實是水他人亦見實水
【문】 일체입도 또한 큰 정(定)인데 무엇 때문에 이것이 실제의 물임을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게 할 수 없는 것인가?
014_0778_a_05L問曰一切入亦是大定何以不能令是實水己身人皆見
【답】 일체입은 관하는 처소가 광대하여 다만 온갖 것이 물의 모양이 되게 할 수 있을 뿐 실제로 그것이 물이 되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신통은 온갖 것에 두루 하지 못하나 땅이 바뀌어 물이 되게 하면서 실제로 그것이 물이 되게 하나니, 이 때문에 두 정(定)의 힘은 각각 구별된다.
014_0778_a_07L答曰一切入觀處廣但能令一切是水相而不能令實是水神通不能遍一切而能令地轉爲水便是實水以是故二定力各別
【문】 두 정에 있어서 변화하는 일은 진실인가, 거짓인가? 만일 진실이라면 어떻게 돌이 금이 되고 땅이 물이 되며, 만일 거짓이라면 어떻게 성인이면서 진실하지 않는 일을 행하는 것인가?
014_0778_a_10L問曰二定變化事爲實爲虛若實云何石作金地作水若虛云何聖人而行不實
【답】 모두가 진실이요 거짓됨이 없다. 3독(毒)을 이미 뽑아냈기 때문이다. 온갖 법은 각각 일정한 모양[定相]이 없기 때문에 땅이 바뀌어 혹은 물의 모양이 될 수도 있다. 마치 소(蘇)와 아교[膠]와 밀[蠟]이 이 땅[地]의 종류이나 불을 만나면 녹아 물이 되면서 축축한 모양으로 되는 것과 같으며, 물이 추위를 만나면 얼어 얼음이 되면서 단단한 모양[堅相]으로 되고, 돌의 즙(汁)이 금이 되며, 금이 부서져서 동(銅)이 되거나 도로 돌로 되는 것과도 같다.
014_0778_a_12L皆實聖人無虛也三毒已拔故一切法各各無定相故可轉地或作水相如酥蠟是地類得火則消爲水則成濕相水得寒則結成冰而爲堅相石汁作金金敗爲銅或還爲石
중생도 역시 그와 같아서 악이 선이 될 수도 있고 선이 악이 될 수도 있나니, 이 때문에 온갖 법은 일정한 모양이 없다. 그러므로 신통의 힘으로써 변화하는 것이다. 이는 진실이면서 거짓이 아니니, 만일 본래부터 각각 일정한 모양이 되어 있다면 변화할 수가 없다.
014_0778_a_17L衆生亦如是惡可爲善善可爲惡以是故知一切法無定相故用神通力變化實而不若本各各定相則不可變
셋째는 모든 성현들의 신통은 6진(塵) 가운데서 마음대로 자유로이 좋은 것을 보면 싫은 생각을 낼 수도 있고 추한 것을 보고도 즐겁다는 생각을 낼 수도 있으며 또한 곱거나 추하다는 생각을 여의고 버리는 마음[捨心]을 지을 수도 있다. 이것을 세 가지의 신통이라 하며 이 자재한 신통은 오직 부처님만이 두루 갖출 수 있다.
014_0778_a_20L三者諸賢聖神通於六塵中隨意自在見好能生厭想見醜能生樂想亦能離好醜想行捨心是名三種神通此自在神通唯佛具足
014_0778_b_01L보살이 이러한 신통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국토에 돌아다니게 되면 여러 다른 나라에서 언어도 같지 않고, 그리고 멀리 있으면 미세한 중생들의 음성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천이통(天耳通)을 구하게 되는데 항상 많은 대중들의 소리를 구하여 그 모양을 취하고자 수행하며, 언제나 닦아 익히기 때문에 귀가 색계(色界)의 4대(大)로 만들어진 청정한 물질을 얻게 되는데, 그것을 얻은 뒤에는 곧 거칠고 미세하고 멀고 가까운 하늘과 사람들의 음성을 멀리서도 들을 수 있게 되어 걸리고 막힘이 없어진다.
014_0778_b_01L菩薩得是神通遊諸佛於諸異國語言不同及在遠微細衆生不聞故求天耳通常憶念種種多衆大聲取相修行常修習故耳得色界四大造淸淨色得已便得遠聞於天人音聲麤細遠近通達無㝵
【문】 마치 『선경(禪經)』의 말씀과 같아서 “먼저 천안(天眼)을 얻어 중생들을 보면서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천이통을 구하게 되고, 이미 천안과 천이를 얻은 뒤에는 중생의 몸의 형상과 음성은 보고 알면서도 갖가지 언어와 근심하고 기뻐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에 걸림 없는 지혜[辭無礙智]를 구하게 되며, 단지 그 말만 알 뿐 그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知他心智]를 구하게 된다.
014_0778_b_06L如『禪經』中說先得天眼見衆生而不聞其聲故求天耳通旣得天眼天耳見知衆生身形音聲而不解語言種種憂喜苦樂之辭故求辭無㝵智知其辭而不知其心故求知他心智
그들의 마음을 안 뒤에는 본래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생 일을 아는 숙명통(宿命通)을 구하게 되고, 이미 그들의 내력을 알게 된 뒤에는 그들의 마음의 병을 다스리기 위하여 번뇌가 다한 누진통(漏盡通)을 구하게 되며, 이 5신통을 두루 갖춘 뒤에도 변화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하는 것이 넓지 못하고 삿된 소견을 지닌 이나 큰 복덕이 있는 사람들을 항복 받고 교화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여의신통(如意神通)을 구하게 된다”고 했나니, 이와 같이 차례가 있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먼저 여의신통을 구한다고 하는가?
014_0778_b_11L知其心已未知本所從來故求宿命旣知所來欲治其心病故求漏盡得具足五通已不能變化故所度未廣不能降化邪見大福德人是故求如意神通應如是次第何以故先求如意神通
【답】 중생에게는 거친 이가 많고 미세한 이는 적다. 이 때문에 먼저 여의신통으로써 마음대로 신통을 부리면 거친 이나 미세한 이거나 간에 사람들을 많이 제도할 수 있으므로 먼저 말한 것이다.
014_0778_b_17L答曰衆生麤者多細者是故先以如意神通如意神通能兼麤細度人多故是以先說
014_0778_c_01L또 모든 신통에는 얻는 법이 다르고 세는 법이 다르다. 얻는 법이라 함은 대부분이 먼저 천안을 구하는 것이 얻기 쉽기 때문이다. 수행하는 이는 해와 달과 별과 구슬의 불로써 이러한 등의 광명의 모양을 취하여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잘 닦고 익히기 때문에 낮과 밤이 다름이 없어지고 위와 아래와 앞과 뒤가 꼭 하나같이 밝게 사무치면서 걸림이 없게 된다. 이때에 처음으로 천안의 신통을 얻게 되는데 그 밖의 것도 차례로 먼저의 설명과 같다.
014_0778_b_19L復次神通得法異數法異得法者多先求天眼以易得故行者用日月星宿取是等光明相常懃精進善修習故晝夜無異若上若下若前若後一明徹無所罣㝵是時初得天眼神餘次第得如先說
또 부처님은 자신이 얻은 바와 같은 것을 사람들에게 차례로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초저녁 무렵에 하나의 통(通)과 하나의 명(明)을 얻으셨나니, 이른바 여의통(如意通)과 숙명명(宿命明)이다. 한밤중 무렵에 천이통(天耳通)과 천안명(天眼明)을 얻으셨고, 새벽 무렵에 지타심통(知他心通)과 누진명(漏盡明)을 얻으셨다. 명(明)의 작용을 구하는 공(功)이 중하기 때문에 나중에 두고 말한 것이며, 통과 명을 차례로 얻는 것은 마치 네 가지 사문의 과위[四沙門果]와 같아서 큰 것이 나중에 있는 것이다.
014_0778_c_02L復次佛如所自爲人說次第佛初夜分得一通一所謂如意通宿命明中夜分得天耳通天眼明後夜分得知他心智通漏盡明求明用功重故在後說次第得如四沙門果大者在後
【문】 만일 천안을 얻기 쉽기 때문에 앞에 두었다면 보살은 무엇 때문에 천안을 얻지 않으셨는가?
014_0778_c_07L問曰若天眼易得故在前菩薩何以不先得天眼
【답】 보살은 모든 법에서 쉽고 어려운 것이 없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근기가 둔하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고 쉬움도 있다.
014_0778_c_09L答曰菩薩於諸法皆易無難餘人鈍根故有難有易
또 초저녁 무렵에 악마의 왕이 와서 부처님과 싸우려고 하므로 보살은 신통의 힘으로써 갖가지로 변화하시면서 악마의 병기를 모두 영락(瓔珞)이 되게 하셨고, 악마를 항복 받은 뒤에도 계속 신통을 염(念)하면서 완전히 갖추어지게 하려고 마음을 내기만 하면 이내 들어가면서 얻었으므로 신통을 두루 갖추게 되셨으며, 악마를 항복 받고 나서는 스스로 한 몸을 염하면서 “어떻게 하면 큰 힘을 얻을까” 하고 곧 숙명명(宿命明)을 구하게 되자 저절로 세상세상마다 모두 아셨나니, 복덕을 쌓았기 때문이다.
014_0778_c_10L復次初夜時魔王來欲與佛戰菩薩以神通力種種變化令魔兵器皆爲瓔珞降魔已續念神通欲令具足生心卽入便得具足神通降魔已自念一身云何得大力便求宿命明自知世世積福德力故
한밤중 무렵에는 악마가 곧 돌아갔고 고요해져서 소리가 없었으므로 온갖 것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면서 짐짓 악마들의 소리를 염하자 천이통(天耳通)과 천안명(天眼明)이 생겼으며, 이 천이로써 시방 5도(道)의 중생들의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소리를 들었고 이런 소리를 들은 뒤에 그들의 형상들을 보려고 했으나 가리어져서 보이지 않았으므로 천안을 구하신 것이다.
014_0778_c_16L中夜時魔卽還去寂寞無聲愍一切故念魔衆聲生天耳神通及天眼明用是天耳聞十方五道衆生苦樂聲聞聲已欲見其形而以障蔽不見故求天眼
새벽 무렵에는 중생의 형상을 이미 보았으나 그들의 마음을 알고자 하여 타심지(他心智)를 구하면서 중생들의 마음은 모두가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구하고자 함을 아셨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누진신통(漏盡神通)을 구하셨다. 모든 즐거움 가운데서 번뇌가 다함이 가장 수승한 것이므로 중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얻게 하신 것이다.
014_0778_c_20L後夜時旣見衆生形欲知其心故求他心智知衆生心皆欲離苦求樂是故菩薩求漏盡神通於諸樂中漏盡最勝令衆生得之
014_0779_a_01L【문】 보살은 이미 무생법인을 얻으셨고 세상마다 언제나 과보와 신통을 얻으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스스로 의심하시며, 이미 중생을 보시면서도 그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셨는가?
014_0778_c_23L菩薩已得無生法忍世世常得果報神通今何以自疑旣見衆生而不知其心
【답】 두 가지의 보살이 있다. 첫째는 법성생신(法性生身)의 보살이고, 둘째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인간의 법을 받아 정반왕(淨飯王)의 가문에 태어나고 네 개의 성문(城門)을 나와서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일에 대해 물은 보살이니, 이 보살은 보리수[樹王] 아래 앉아서 6신통을 갖추었다.
014_0779_a_03L答曰有二種菩薩一者法性生身菩薩二者爲度衆生故方便受人法身生淨飯王家出四城門問老死人是菩薩坐樹王下具六神通
또 보살에게는 신통이 먼저부터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으므로 이제 밤의 세 때에 얻으신 것이다. 이 부처님의 신통은 인간의 법을 행하셨기 때문에 스스로 의심했다 해도 허물은 없다.
014_0779_a_06L復次菩薩神通先有而未具足今於三夜所得是佛神通行人法故自疑無咎
【문】 6신통의 차례는 언제나 처음이 천안통(天眼通)이고 나중이 누진통(漏盡通)인데 그렇지 않은 때도 있는가?
014_0779_a_09L問曰六神通次第常初天眼漏盡通亦有不爾時耶
【답】 대부분이 먼저가 천안통이고 나중이 누진의 지혜이기는 하나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수행하여 혹은 신족통(神足通)을 먼저 얻기도 한다.
014_0779_a_10L答曰多先天後漏盡智或時隨所好修或先天或先神足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초선(初禪)에서는 천이(天耳)를 얻기 쉽나니, 각관(覺觀)의 네 가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2선(禪)에서는 천안을 얻기 쉽나니, 안식(眼識)이 없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어 흩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3선에서는 여의통(如意通 )을 얻기 쉽나니, 몸에 쾌락을 느끼지 때문이다. 4선에서는 모든 신통을 다 얻기 쉽나니, 온갖 것이 조용하고 편안한 곳이기 때문이다”고 한다. 숙명통(宿命通) 등의 세 가지 신통에 대한 뜻은 10력(力)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779_a_12L有人言初禪天耳易得有覺觀四心故二禪天眼易得眼識無故心攝不散故三禪如意通易得身受快樂故四禪諸通皆易得一切安隱處故宿命等三神通義十力中說
【經】 온갖 중생들의 뜻이 가는 데[意所趣向]5)를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79_a_17L【經】
欲知一切衆生意所趣向當學般若波羅蜜
【論】 【문】 6신통 가운데서 이미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신통[知他心通]을 말씀하셨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거듭 말씀하시는가?
014_0779_a_18L【論】
問曰六通中已說知他心通今何以重說
【답】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신통의 경계(境界)는 적으니,6) 다만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에 현존하는 중생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心數法]을 알 뿐이며 과거와 미래와 그리고 무색계(無色界)의 중생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은 알지 못한다.
014_0779_a_19L答曰知他心通境界少但知欲界色界現在衆生心心數法不知過去未來及無色界衆生心心數法
014_0779_b_01L범부의 신통은 위의 4선(禪)의 자리에서 얻게 된 신통의 것을 따르는 이외에 사천하(四天下)의 중생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두루 알고, 성문의 신통은 위의 4선의 자리에서 얻게 된 신통의 것을 따르는 이외에 천세계(千世界)의 중생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두루 알며, 벽지불의 신통은 위의 4선의 자리에서 얻게 된 신통의 것을 따르는 이외에 백천세계(百千世界)의 중생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두루 안다.
014_0779_a_22L凡夫通於上四禪地隨所得通處已下遍知四天下衆生心心數法聲聞通於上四禪地隨所得通處已下遍知千世界衆生心心數法辟支佛通於上四禪地隨所得通處已下遍知百千世界衆生心心數法
상지(上地)의 근기가 둔한 이는 하지(下地)의 근기가 영리한 이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알지 못하고 범부는 성문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알지 못하며, 성문은 벽지불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알지 못하고 벽지불은 부처님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알지 못하나니, 이 때문에 “온갖 중생들의 마음이 가는 데를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하신다.
014_0779_b_04L上地鈍根者不能知下地利根者心心數法凡夫不知聲聞心心數法聞不知辟支佛心心數法辟支佛不知佛心心數法以是故說欲知一切衆生心所趣向當學般若波羅蜜
【문】 어떤 지혜로써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알 수 있는가?
014_0779_b_09L以何智能知一切衆生心心數法
【답】 모든 부처님은 막힘이 없는 해탈[無礙解脫]이 있으므로 이 해탈 가운데로 들어가서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아신다. 모든 큰 보살들은 비슷한 막힘이 없는 해탈을 얻어서 역시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알게 되며, 새로 배운[新學] 보살은 이 큰 보살들의 막힘이 없는 해탈과 부처님의 막힘이 없는 해탈을 얻으려고 하면서 이 막힘이 없는 해탈로써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알게 된다.
014_0779_b_10L答曰諸佛有無㝵解脫入是解脫中能知一切衆生心心數法諸大菩薩得相似無㝵解脫亦能知一切衆生心心數法新學菩薩欲得是大菩薩無㝵解脫及佛無㝵解脫以此無㝵解脫知一切衆生心心數法
큰 보살은 부처님의 막힘이 없는 해탈을 얻고자 하나니, 이 때문에 비록 이미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신통을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다시 “온갖 중생들의 마음이 가는 데를 알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014_0779_b_16L大菩薩欲得佛無㝵解脫以是故雖已說他心通更說欲知一切衆生心所趣當學般若波羅蜜
【문】 마음이 가는 데[心所趣向]라 하는데 마음이 가는[去] 것인가, 가지 않는 것인가? 만일 간다면 이것은 곧 마음이 없게 되므로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을 것이요, 만일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알게 되는 것인가? 마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뜻[意]에 의지하여 법을 반연하고 의식(意識)이 뜻을 낸다”고 하셨으니, 만일 가지 않는다면 화합(和合)함도 없을 것이다.
014_0779_b_19L問曰心所趣向心爲去爲不去若去此則無心猶若死人若不去云何能知如佛言依意緣意識生意若不去則無和合
014_0779_c_01L【답】 마음은 가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면서 알게 된다. 마치 반야바라밀에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온갖 법은 오는 모양도 없고 가는 모양도 없는데 어떻게 마음에 오고 감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또 “모든 법이 생길 때에도 어디서 오는 데가 없고 사라질 때에도 가는 데가 없다”고 한다. 만일 오고 감이 있다 한다면 곧 항상하다는 소견[常見]에 떨어지게 된다.
014_0779_b_22L答曰不去不住而能知如『般若波羅蜜』中一切法無來無去相云何言心有來去又言諸法生時無所從來滅時無所去若有來去卽墮常見
모든 법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나니, 이 때문에 다만 안의 6정(情)과 바깥의 6진(塵)이 화합함으로써 6식(識)을 내며 그리고 6수(受)와 6상(想)과 6사(思)를 낼 뿐이다. 이 때문에 마음은 마치 허깨비[幻化]와 같다.
014_0779_c_03L諸法無有定相以是故但以內六情外六塵和合生六識及生六受六想六思是故心如幻化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안다 해도 아는 이[知者]도 없고 보는 이[見者]도 없다. 마치 탄마하연품(歎摩訶衍品)7) 중에서의 말씀과 같아서, 만일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의 성품이 진실로 있고 거짓이 아니라면 부처님도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알지 못할 것이나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의 성품은 진실로 거짓이어서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기 때문에 부처님은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아신다.
014_0779_c_06L能知一切衆生心心數法無有知者無有見者如「歎摩訶衍品」中言若一切衆生心心數法性實有不虛誑者佛不能知一切衆生心心數法以一切衆生心心數法性實虛無來無去故佛知一切衆生心心數法
비유하건대 마치 비구가 탐내어 구하면 공양을 얻지 못하지만 탐내어 구함이 없으면 모자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마음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일 분별하면서 모양을 취하면 진실한 법을 얻지 못하며 진실한 법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통달하여 알지 못하지만 만일 모양을 취하지 않고 분별하는 것도 없으면 진실한 법을 얻게 되고 진실한 법을 얻기 때문에 잘 통달하여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을 걸림이 없이 알게 된다.
014_0779_c_12L譬如比丘貪求者不得供養所貪求則無所乏短心亦如是若分別取相則不得實法不得實法故能通達知一切衆生心心數法若不取相無所分別則得實法得實法故能通達知一切衆生心心數法無所罣㝵
【문】 온갖 중생들의 모든 마음을 모두 다 알 수 있다는 것인가? 만일 모두 다 안다면 중생은 끝이 있을[有邊] 것이다. 만일 다 알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온갖 중생들의 마음이 가는 데를 알고자 한다면”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어떻게 부처님께는 일체종지(一切種智)가 있는 것인가?
014_0779_c_18L問曰一切衆生諸心可得悉知若悉知則衆生有邊若不知何以故說欲知一切衆生心所趣向云何佛有一切種智
014_0780_a_01L【답】 온갖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에 속한 법은 모두 다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경의 말씀과 같아서 온갖 진실한 말 가운데서 부처님이 맨 첫째이기 때문이다. 만일 온갖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되 그 맨 끝까지 얻을 수 없다면 부처님께서 무엇 때문에 “모두 안다”고 말씀하셨겠는가. 또한 일체지(一切智)를 지닌 사람이라고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은 모두가 진실이니 반드시 일체지가 실로 있는 분이라 할 것이다.
014_0779_c_21L答曰一切衆生心心數法可得悉知何以故如經中說切實語中佛最第一若不能悉知一切衆生心得其邊際者佛何以言亦不名一切智人而佛語皆實應實有一切智人
또 중생이 비록 끝이 없다[無邊] 하더라도 일체종지도 역시 끝이 없다. 비유하건대 마치 함(函)이 크면 그 뚜껑도 역시 큰 것과 같다. 만일 지혜에 끝이 있고 중생에게는 끝이 없다면 이런 힐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제 지혜와 중생이 다 같이 끝이 없기 때문에 그대의 힐난은 잘못된 것이다.
014_0780_a_03L復次衆生雖無邊一切種智亦無邊譬如函大蓋亦大若智慧有邊衆生無邊者應有是難今智慧及衆生俱無邊故汝難非也
또 만일 ‘끝이 있다,’ ‘끝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 두 가지는 부처님 법 안에서 바로 치답(置答)이다. 이 열 네 가지의 일은 허망하고 진실이 없으며 이익이 없기 때문에 힐난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014_0780_a_06L復次若言有邊無邊此二於佛法中是置答是十四事虛妄無實無益故不應以爲難
【문】 만일 끝이 있고 끝이 없는 것이 둘 다 진실하지 않다면 부처님은 곳곳에서 “끝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니, 마치 “중생이 어리석음과 애착을 가진 이래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시방도 역시 끝없이 넓다[無邊際]”고 하신 것과 같다.
014_0780_a_09L問曰若有邊無邊二俱不實而佛處處說無邊衆生有癡愛已來無始無邊十方亦無邊際
【답】 중생은 끝이 없고 부처님의 지혜도 끝이 없나니, 이것이 진실이다. 만일 사람이 끝없는 데에 집착하게 되면 모양을 취하면서 쓸모없는 이론을 내세우기 때문에 부처님은 이것이 삿된 소견이라고 하신 것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세간은 항상하고,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이 두 가지는 다 같이 뒤바뀐 생각[顚倒]이어서 14난(難) 가운데에 들어간 것과 같다. 부처님은 대부분 무상하다는 것으로써 중생을 제도하시고, 항상하다는 것은 드물게 쓰셨다. 만일 무상한 데에 집착하면 모양과 쓸모없는 이론을 취하므로, 부처님은 “이것이 삿된 소견이요 허망한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014_0780_a_11L衆生無邊佛智慧無邊是爲實人著無邊取相戲論故佛說是邪見譬如世閒常無常二俱顚倒入十四難中而佛多以無常度衆生少用有若著無常取相戲論佛說是邪見虛妄
만일 무상한 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苦]이며, 괴로움은 곧 나라고 할 것이 없고[無我], 나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은 곧 공(空)하다”라는 것을 알게 되나니, 능히 이와 같이 무상함을 관찰함에 의지하여, 모든 법이 공하다는 것을 깨달아 들게 되므로 이것이 곧 진실이다. 그러므로 무상함을 알아 진실한 이치[眞諦]의 가운데에 들어간다.
014_0780_a_17L若不著無常知無常卽是苦卽是無我無我卽是空能如是依無常觀入諸法空便是實以是故知無常入眞諦中
14난(難) 가운데서는 인연(因緣)을 집착하기 때문에 이것이 삿된 소견[邪見]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무상함을 말하여 끝이 없음[無邊]을 밝히며, 끝이 없기 때문에 중생은 나고 죽음이 길고 오래임을 싫어하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파리국(波梨國)의 40비구가 다 함께 열두 가지의 청정한 행[十二淨行]을 수행하다가 부처님께로 오자 부처님은 그들을 위하여 싫어하는 행[壓行]을 말씀하신 것과 같다.
014_0780_a_20L是實十四難中以著因緣故說是邪見是故說無常以明無邊無邊故衆生生厭生死長久譬如波梨國四十比丘俱行十二淨行來至佛佛爲說厭行
014_0780_b_01L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물으시되 “다섯의 강물, 즉 항하[恒伽]8)람모나(藍牟那)9)와 살라유(薩羅由)10)와 아지라바제(阿脂羅婆提)11)와 마혜(摩醯)12) 등의 그 근원에서부터 큰 바다에 흘러 들어가기까지의 그 중간에 있는 물은 많다고 하겠느냐?”고 하시자, 비구들은 말하기를 “심히 많나이다”고 했다.
014_0780_b_01L佛問比丘五恒河伽藍牟那薩羅由阿脂羅婆提摩醯所來處流入大海其中閒水爲多少比丘言甚多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한 사람이 1겁 동안에 축생이 되어 있으면서 잡혀 죽고, 가죽이 벗겨지고 칼에 찔렸으며 혹 때로는 죄를 범하여 그 손발이 잘리고 그 몸과 머리를 베이는 등의 이런 일을 당할 때에 흘린 피는 이 강물들보다도 더 많느니라. 이와 같이 하면서 끝이 없는 대겁(大劫) 동안에 몸을 받으면서 흘린 피는 이와 헤아릴 수조차 없으며 울면서 흘린 눈물과 어머니의 젖을 먹은 것도 역시 그와 같으니라.
014_0780_b_04L佛言但一人一劫中作畜生時屠割剝刺或時犯罪截其手斬其身首如是等血多於此水是無邊大劫中受身出血不可稱數啼哭流淚及飮母乳亦如是
그리고 1겁 동안에 한 사람이 뼈를 쌓은 것만을 헤아려 보아도 저 비부라산(鞞浮羅山)13)단주(丹注)에서 이르되, 이 산은 천축(天竺)에 있는 산이라 사람들이 항상 보고 믿기 쉽기 때문에 말씀한 것이라고 했다.과 같은 큰 산보다도 더하나니, 이와 같이 한량없는 겁 동안에 나고 죽는 고통을 받았느니라.”
모든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세간을 싫어하면서 바로 그때에 도를 얻었다.
014_0780_b_08L計一劫中一人積骨過於鞞浮羅大山丹注云此山竺以人常見易信故說也如是無量劫中受生死苦諸比丘聞是已厭患世閒卽時得道
또 시방의 중생이 끝이 없다 함을 들었기 때문에 마음에 기쁨을 내면서 살생하지 않는 계율[不殺戒]을 받고 그지없는 복덕을 얻게 되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처음에 뜻을 일으키는 보살을 온갖 중생들은 모두 공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끝없는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고 공덕도 또한 끝이 없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등의 이익이 있는 까닭에 “끝이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온갖 중생들의 마음이 가는 데를 모두 앎은 마치 해가 천하를 비추면서 한꺼번에 두루 밝게 하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014_0780_b_11L復次聞十方衆生無邊故心生歡喜受不殺戒得無邊福德以是因緣故初發意菩薩一切世閒衆生皆應供何以故爲度無邊世界衆生故德亦無邊有如是等益故說無邊是故說悉知一切衆生心所趣向日照天下一時俱至無不遍明
【經】 보살마하살이 온갖 성문과 벽지불의 지혜보다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80_b_18L【經】
菩薩摩訶薩欲勝一切聲聞辟支佛智慧當學般若波羅蜜
【論】 【문】 어떤 것이 성문과 벽지불의 지혜인가?
014_0780_b_20L【論】
問曰何等是聲聞辟支佛智慧
014_0780_c_01L【답】 전체의 모양[總相]14)과 각각의 모양[別相]15)으로써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관하는 것이 성문의 지혜이다. 마치 경에 말씀하기를 “처음에는 모든 법을 분별하는 지혜를 쓰고 나중에는 열반의 지혜를 쓴다”고 한 것과 같나니, 모든 법을 분별하는 지혜는 바로 개별적인 모양이요 열반의 지혜는 바로 전체의 모양이다.
014_0780_b_21L答曰以摠相別相觀諸法實相是聲聞智慧如經中說初以分別諸法智慧後用涅槃智慧分別諸法智慧是別相涅槃智慧是摠相
또한 “이 법으로는 해탈하고 이 법으로는 속박된다. 이것은 유전(流轉)하는 것이고 이것은 돌아오는[來還] 것이다. 이것은 생기는[生] 것이고 이것은 소멸하는[滅] 것이다. 이것은 맛있는[味] 음식이고 이것은 재앙[患]이 온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된 것이고 이것은 차례로 된 것이다. 이것은 이 언덕[比岸]이고 이것은 저 언덕[彼岸]이다. 이것은 세간(世間)이고 이것은 출세간(出世間)이다”고 하는 것을 알고 이러한 두 가지 문의 모든 법을 분별하므로 성문의 지혜라 한다.
014_0780_c_02L復次知是法爲解是法爲縛是流轉是來還是生是滅是味是患是逆是此岸是彼岸是世閒是出世閒如是等分別二門諸法名爲聲聞智
또 세 가지의 지혜로 5수(受)를 알면서 “이와 같이 모인다. 이와 같이 흩어진다. 이와 같이 벗어난다”고 하고, “이것이 맛있는 것이다. 이것은 재앙이 있다. 이것은 여의어야 한다”고 하며 3해탈문(解脫門)과 상응하는 지혜 등으로써 세 가지 문의 모든 법을 분별한다.
014_0780_c_07L復次三種智慧知五受衆如是集如是散如是出是味是患是離三解脫門相應智如是等分別三門諸法
또 네 가지 지혜로서 4념처(念處)의 지혜와 법지(法智)ㆍ비지(比智)ㆍ타심지(他心智)ㆍ세지(世智)와 고지(苦智)ㆍ집지(集智)ㆍ멸지(滅智)ㆍ도지(道智)와 부정지(不淨智)ㆍ무상지(無常智)ㆍ고지(苦智)ㆍ무아지(無我智)와 법지(法智)ㆍ비지(比智)ㆍ진지(盡智)ㆍ무생지(無生智) 등으로 네 가지의 모든 법을 분별한다.
014_0780_c_09L復次四種智慧四念處智法智比智他心智世智苦智集智滅智道智淨智無常智苦智無我智無常智空智無我智法智比智盡智無生如是等分別四門諸法
또 고법지인(苦法智忍)의 지혜로부터 공공삼매(空空三昧)16)와 무상무상삼매(無相無相三昧)17)와 무작무작삼매(無作無作三昧)18)의 지혜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있는 모든 지혜는 다 이것이 성문에 지혜이다.
014_0780_c_14L復次從苦法智忍慧乃至空空三昧無相無相三昧無作無作三昧智於其中閒所有智慧盡是聲聞智慧
간략히 말하자면, 세간을 싫어하고 열반을 염(念)하며 삼계(三界)를 여의고 모든 번뇌를 끊으면서 맨 위의 법을 얻는 이른바 열반이니, 이것을 성문의 지혜라 한다.
014_0780_c_17L略說厭世閒涅槃離三界斷諸煩惱得最上法謂涅槃是名聲聞智慧
또 반야바라밀의품(般若波羅密議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아서 보살의 지혜의 모양은 성문의 지혜와 동일한 지혜이지만 방편이 없고 큰 서원의 장엄이 없다. 대자대비가 없고 온갖 부처님 법을 구하지 않으며, 일체종지(一切種智)로 온갖 법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늙고 병들고 죽는 것만을 싫어하면서 모든 애욕의 매임을 끓고 곧장 열반으로 나아가니, 이것이 다르다.
014_0780_c_19L復次如「般若波羅蜜義品」中說菩薩智慧相與聲聞智慧是一智慧但無方便無大誓莊嚴無大慈大悲不求一切佛法不求一切種智知一切法但厭老病死斷諸愛繫直趣涅槃爲異
014_0781_a_01L【문】 성문이 그와 같다 하면 벽지불의 지혜는 어떠한가?
014_0781_a_01L問曰聲聞如是辟支佛智慧云何
【답】 성문의 지혜가 곧 벽지불의 지혜이다. 다만 시절(時節)과 영리한 근기(利根)와 복덕(福德)에 차별이 있을 뿐이다.
014_0781_a_02L答曰聲聞智慧卽是辟支佛智慧但時節利根福德有差別
시절이라 함은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시지 않고 또한 부처님의 법도 없는데 사소한 인연으로 출가하여 도를 얻게 되기에 벽지불이라 하는 것이다. 영리한 근기라 함은 법의 모양은 동일하나 다만 지혜로 깊이 들어가서 벽지불의 도만을 얻는 것이며, 복덕이라 함은 몸매[相]가 있어서 하나의 몸매나 두 가지의 몸매 내지는 서른한 가지의 몸매[相]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014_0781_a_03L名佛不在世亦無佛法以少因緣出家得道名辟支佛利根名異法相是但智慧深入得辟支佛道福德有相或一相二相乃至三十一相
만일 먼저의 부처님 법 안에서 성인의 법을 얻었다가 법이 소멸한 뒤에 아라한이 되면 벽지불이라 이름하게 되나 몸에는 몸매가 없다.
014_0781_a_07L先佛法中得聖法法滅後成阿羅漢爲辟支佛身無有相
벽지불로서 제일 빠른 이는 4세(世) 동안 행한 이가 있고 오래 걸리는 이는 백 겁까지도 행하며 성문으로서 빠른 이는 3세(世) 동안이요 오래 걸리는 이는 60 겁 동안이니, 이 이치는 앞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했다.
014_0781_a_09L有辟支佛第一疾者四世行久者乃至百劫行如聲疾者三世久者六十劫此義先已廣說
【문】 마치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사문의 과[沙門果]와 네 가지 성인으로서 수다원(須陀洹) 내지는 아라한이 있고 다섯 가지의 부처님 제자로서 수다원 내지는 벽지불이 있으며 세 가지 보리(菩提)로서 아라한의 보리와 벽지불의 보리와 부처님의 보리가 있다”고 하셨다. 이 과위 중에서나 성인 중에서나 부처님 제자 중에서나 보리 중에서도 모두가 보살은 없는데 어찌하여 “보살은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보다도 수승하다”고 하셨는가?
014_0781_a_12L問曰如佛說有四種沙門果四種聖人須陁洹乃至阿羅漢五種佛子須陁洹乃至辟支佛三種菩提阿羅漢菩提辟支佛菩提佛菩提果中佛子中菩提中皆無菩薩云何菩薩勝一切聲聞辟支佛智慧
【답】 부처님의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성문과 벽지불의 법이고, 둘째는 마하면(摩訶衍)의 법이다. 성문의 법은 작기 때문에 다만 성문의 일만을 칭찬하고 보살의 일을 말하지 않았지만, 마하연은 넓고 크기 때문에 모든 보살마하살의 일을 칭찬했나니, 발심하고 수행하여 10지(地)의 지위에 들며 부처님 세계를 청정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며 부처님의 도를 얻는다.
014_0781_a_17L佛法有二種一者聲聞辟支佛法者摩訶衍法聲聞法小故但讚聲聞不說菩薩事摩訶衍廣大故說諸菩薩摩訶薩事發心修行十地入位淨佛世界成就衆生得佛道
이 법 가운데서 보살은 부처님의 다음이라 부처님께 공양하듯 해야 한다 함을 설명했으며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을 관하면 이것이 복전(福田)이므로 성문과 벽지불보다 수승함도 그와 같다.
014_0781_a_22L此法中說菩薩次佛應如供養佛能如是觀諸法相是爲福田能勝聲聞辟支佛
014_0781_b_01L마하연경(摩訶衍經) 가운데서는 곳곳에서 보살마하살의 지혜는 성문과 벽지불보다도 수승함을 칭찬했나니, 마치 『보정경(寶頂經)』19)에서의 설명과 같다. 전륜성왕에게 천명의 아들에서 하나가 모자라 아직 다 차지 않으면 비록 큰 세력이 있더라도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들은 그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한 전륜성왕의 종자가 태(胎) 안에 있으면서 처음 수태한 지 7일이 되면 모든 하늘들은 귀히 여기고 존중하게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999인은 전륜성왕의 뒤를 이어서 세간 사람들로 하여금 두 세대(二世) 동안 쾌락을 얻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비록 태 안에 있더라도 반드시 전륜성왕의 뒤를 이을 것이므로 공경하게 된다.
014_0781_b_01L如是摩訶衍經中處處讚菩薩摩訶薩智慧勝聲聞辟支佛如『寶頂經』中轉輪聖王少一不滿千子雖有大諸天世人所不貴重有眞轉輪聖王種處在胎中初受七日便爲諸天所貴重所以者何九百九十九人不能嗣轉輪聖王種令世人得二世樂是雖在胎必能紹胄聖王是故恭敬
모든 아라한과 벽지불은 비록 근(根)ㆍ역(力)ㆍ각(覺)ㆍ도(道)ㆍ6신통(神通)과 모든 선(禪) 및 지혜의 힘을 얻고 실제(實際)를 증득하여 중생의 복전(福田)이 되었다 하더라도 시방의 모든 부처님은 귀하게 여기지 않지만, 보살은 비록 모든 결사(結使)와 번뇌와 욕망에 속박되고 3독(毒) 안에 있으면서 처음 위없는 도의 뜻(道意)을 일으키고 아직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모든 부처님께서 귀하게 여긴다.
014_0781_b_09L諸阿羅漢辟支佛雖得根神通諸禪智慧力於實際得證爲衆生福田十方諸佛所不貴重菩薩雖在諸結使煩惱欲縛三毒胎中初發無上道意未能有所作而爲諸佛所貴
그 보살은 점차로 6바라밀을 행하고 방편의 힘을 얻어서 보살의 지위에 들어감은 물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고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며 부처님의 종자(佛種)와 승가의 종자(僧種)를 끊어지지 않게 하고 천상과 세간의 청정한 즐거움의 인연을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014_0781_b_14L以其漸漸當行六波羅蜜得方便力入菩薩位乃至得一切種智度無量衆生不斷佛種法種僧種不斷天上世閒淨樂因緣故
또 마치 가라빈가새(迦羅頻伽鳥)20)가 알 속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해도 내는 소리가 미묘하므로 다른 새들보다 수승한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비록 아직 무명(無明)의 알에서 나오지 못했다 하더라도 설법과 의론하는 음성이 성문이나 벽지불이나 모든 의도들보다 수승하다. 마치 『명망경(明網經)』21)에서의 설명과 같다.
014_0781_b_18L又如迦羅頻伽鳥在㲉中未出發聲微妙勝於餘鳥薩摩訶薩亦如是雖未出無明㲉法議論之音勝於聲聞辟支佛及諸外道如『明網經』中說
014_0781_c_01L 혜명(慧命) 사리불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보살들이 하는 말을 만일 이해하게 되면 크게 공덕을 얻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보살들의 이름을 얻어 들어도 큰 이익을 얻게 되는데 하물며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나무를 심을 때 땅에 의지하지 않고는 뿌리ㆍ줄기ㆍ가지ㆍ잎사귀를 얻거나 그 열매가 열기를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듯이, 모든 보살이 행하는 모양도 그와 같아서 온갖 법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나고 죽는 데에 머물러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있으면서 자유자재하게 지혜의 법을 원하는 대로 말해 주거늘 그 누가 이 큰 지혜로 유회하면서 자유자재하게 원하는 대로 설법하는 것을 듣고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뜻을 일으키지 않는 이가 있겠나이까.”
014_0781_b_22L慧命舍利弗白佛言世尊是諸菩薩所說若能解者大得功德何以故是諸菩薩乃至得聞其名字得大利益何況聞其所說世尊譬如人種樹不依於地而欲得其根莖枝葉成其果實是難可得菩薩行相亦如是不住一切法而現住生死在諸佛世界於中自恣樂說智慧法誰有聞是大智慧遊戲自恣樂說法而不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意者
그때 그 모임 안에 보화(普華)보살22)이 있다가 사리불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기년장로(耆年長老)23)를 모든 제자들 가운데서 지혜가 제일이라 하셨는데 이제 기년장로는 모든 법의 법성(法性)을 얻지 못했는지요? 무엇 때문에 큰 지혜로써 자유자재하게 원하는 대로 법을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014_0781_c_09L爾時會中有普華菩薩語舍利弗佛說耆年於諸弟子中智慧第今耆年於諸法法性不得耶何以不以大智慧自恣樂說法
사리불이 말했다.
“모든 부처님의 제자들은 그의 경계만큼은 말할 수 있습니다.”
보화보살이 다시 물었다.
“법성에 경계가 있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014_0781_c_12L舍利弗言諸佛弟子如其境界則能有說普華菩薩復問法性有境界不舍利弗言無也
보화가 말했다.
“만일 법성에 경계가 없다면 어찌하여 기년장로는 그 경계만큼은 말할 수 있다고 하십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얻는 바를 따라서 말합니다.”
보화가 다시 물었다.
“기년장로여, 한량없는 모양이 법성으로써 깨달음(證)을 삼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014_0781_c_15L若法性無境界云何耆年言其境界則能有說舍利弗言隨所得而說普華又問耆年以無量相法性爲證耶舍利弗言
보화가 말했다.
“이제 어찌하여 얻은 바를 따라서 말씀하신다 하십니까? 마치 얻은 바의 법성이 한량없는 것처럼 설법도 한량이 없어야 합니다. 법성은 한량없으며 한량 있는 모양이 아닙니다.”
사리불이 보화에게 말했다.
“만일 법성이 얻는 모양이 아니라면 당신은 법성을 여의고서 해탈을 얻으셨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법성은 파괴되지 않는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014_0781_c_18L普華言今云何隨所得而說如所得法性無量亦應無量法性無量非量相舍利弗語普華言法性非得相普華言若法性非得相汝離法性得解脫不舍利弗言不也何以故法性不壞相故
014_0782_a_01L보화가 말했다.
“당신이 얻으신 거룩한 지혜도 역시 법성과 같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했다.
“나는 법을 듣고자 하며 말할 때가 아닙니다.”
보화가 말했다.
“온갖 법은 결정되어서 법성 안에 있으면서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있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014_0781_c_23L華言汝所得聖智亦如法性耶舍利弗言我欲聞法非說時也普華言切法定在法性中有聞者說者不利弗言無也
보화가 말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나는 법을 듣고자 하며 말할 때가 아니라 하십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일심으로 말하는 이나 일심으로 듣는 이의 이 두 사람은 얻는 복이 한량없다고 하셨습니다.”
014_0782_a_04L普華言汝何以言我欲聞法非說時舍利弗言佛說二人得福無量一心說者一心聽者
보화가 말했다.
“당신은 멸진정(滅盡定) 안에 들어 있으면서 법을 들을 수 있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했다.
“선남자여, 멸진정 안에서는 법을 듣는 일이 없습니다.”
보화가 말했다.
“당신은 온갖 법이 항상 소멸된 모양(常滅相)임을 믿고 받아들입니까?
사리불이 대답했다.
“그 일은 믿고 있습니다.”
014_0782_a_06L普華言汝入滅盡定中能聽法不舍利弗言善男子滅盡定中無聽法也普華言汝信受一切法常滅相不舍利弗言信是事
보화가 말했다.
“법성은 항상 소멸되어 있는지라 법을 듣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항상 소멸된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당신은 정(定)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도 설법을 하십니까?”
보화가 대답했다.
“어떠한 법도 정의 모양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온갖 범부도 모두가 그것은 선정(禪定)일 것입니다.”
보화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온갖 범부도 모두가 그것은 선정입니다.”
014_0782_a_10L普華言法性常滅無聽法也何以故諸法常滅相故舍利弗言能不起于定而說法不普華言無有法非定相者舍利弗言若爾者今一切凡夫皆是禪定普華言一切凡夫皆是禪定
사리불이 말했다.
“어떠한 선정이기에 온갖 범부도 모두 선정입니까?”
보화가 대답했다.
“법성삼매(法性三昧)를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에 온갖 범부도 모두 그것은 선정입니다.”
014_0782_a_15L舍利弗言以何等禪定一切凡夫皆是普華言以不壞法性三昧故一切凡夫皆是禪定
사리불이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범부와 성인에는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보화가 말했다.
“나도 역시 범부와 성인에 차별이 있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인에게는 소멸하는 법(滅法)이 없고 범부의 사람에게도 역시 생기는 법(生法)이 없기 때문이니, 이 두 가지는 모두가 법성품의 평등한 모양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014_0782_a_17L舍利弗言若爾者凡夫聖人無有差別華言我亦不欲令凡夫聖人有差別何以故諸聖人無有滅法凡夫人亦無生法是二皆不出法性等相
014_0782_b_01L사리불이 말했다.
“선남자여, 어떤 것이 법성의 평등한 모양입니까?”
보화가 대답했다.
“기년장로께서 도를 얻을 때에 알고 본(知見) 바의 바로 그것입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성인의 법이 생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범부의 법이 멸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인의 법은 얻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범부 사람의 법을 보고 아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014_0782_a_21L舍利弗言善男子何等是法性等相答言耆年得道時所知見者是又問生聖法耶不也滅凡夫法耶不也得聖法不也見知凡夫人法耶不也
“기년장로께서는 어떠한 지견(知見)으로 성인의 도를 얻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범부도 이와 같고, 비구가 해탈을 얻은 것도 이와 같으며, 비구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음은 모두 똑같아서 같음에는 구별이 없습니다.”
014_0782_b_02L耆年以何知見故得聖道舍利弗言凡夫人如比丘得解脫如比丘入無餘涅槃如是如一如如無別
보화가 말했다.
“사리불이이여, 그것을 법성의 모양의 같음(如)이요 무너지지 않음의 같음이요 작용 또한 같음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법은 모두가 같은 줄 아셔야 합니다.”
그러자 사리불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비유하건대 마치 큰 불 무더기는 물건마다 모두 태우지 않음이 없듯이 이 모든 상인(上人)들의 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아서 온갖 법은 모두가 법성에 드나이다.”
014_0782_b_05L普華言舍利弗是名法性相如不壞如用是如當知一切法皆如舍利弗白佛言世尊譬如大火聚無物不燒是諸上人所說亦如一切法皆入法性
또 마치 『비마라힐경(毘藦羅詰經)』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사리불 등의 모든 성문들은 저마다 모두 말하기를 “나는 그에게 가서 병문안을 할 수 없다”고 했으며, 각자가 말하기를 “옛날 비마라힐에게 책망을 당했다”고도 했다.
이와 같이 곳곳의 경전 가운데서 “보살의 지혜는 성문이나 벽지불보다도 수승하다”고 하셨다.
014_0782_b_09L又如『毘摩羅詰經』中說舍利弗等諸聲聞皆自說言我不堪任詣彼問疾各各自說昔爲毘摩羅詰所呵如是等處處經中說菩薩智慧勝於聲聞辟支佛
【문】 무슨 인연 때문에 보살의 지혜는 성문이나 벽지불보다도 수승한가?
014_0782_b_13L問曰因緣故菩薩智慧勝聲聞辟支佛
【답】 마치 본생경(本生經)에서의 말씀과 같아서, 보살의 지혜는 한량없는 아승기겁으로부터 뭇 지혜를 합하고 쌓아서 한량없는 겁 동안에 괴로운 일마다 행하지 않음이 없고 어려운 일마다 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법을 구하기 위하여 불에도 나아가고 바위에도 떨어졌으며, 가죽을 벗기는 고통도 받았었다. 그리고 뼈를 내어서 붓을 삼고 피로써는 먹을 삼고 가죽으로써 종이를 삼아 경법을 베끼고 썼다.
014_0782_b_14L如一『本生經』中說菩薩智慧於無量阿僧祇劫已來合集衆智於無量劫中無苦不行無難不爲爲求法故赴火投巖受剝皮苦出骨爲筆以血爲墨以皮爲紙書受經法
이와 같이 법을 위하여 한량없는 고통을 받았으니, 지혜 때문에 세상마다 그의 스승에게 공양하고 대접하기를 마치 부처님처럼 모셨으며, 온갖 모든 경서(經書)를 모두 다 읽고 외우고 해설했으며, 한량없는 아승기겁 동안에 항상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모든 법의 아름답고 추함과 깊고 얕음과 착하고 나쁨과 번뇌 있고[漏] 번뇌 없음과 항상하고 무상함과 있고 없음 등을 찾고 궁구했으며, 생각하고 분별하고 질문을 했다.
014_0782_b_19L如是等爲法故受無量苦以智慧故世世供養其師視之如佛一切所有經書悉皆誦讀解說於無量阿僧祇劫常思惟籌量尋求諸法好醜深淺善不善不漏常不常有無等思惟分別問難
014_0782_c_01L그리고 지혜를 위하여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성문에게 공양하면서 법을 듣고 묻고 믿고 받았으며 바르게 기억하고 법대로 행했나니, 이렇게 지혜의 인연이 완전히 갖추었으니 어떻게 아라한이나 벽지불보다 수승하지 않겠는가?
014_0782_c_01L爲智慧故供養諸佛及菩薩聲聞問難信受正憶念如法行如是智慧因緣具足故云何不勝阿羅漢支佛
또 보살의 지혜는 다섯 가지 바라밀로 돕고 장엄하면서 방편이 있고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자비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삿된 소견에 방해 받지 않는다. 10지(地)에 머무르기 때문에 지혜의 세력이 깊고 크며, 깊고 크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수승하고 큰 인연이 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은 저절로 무너지거니와 아라한과 벽지불에는 이러한 일이 없다. 이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지혜보다 수승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014_0782_c_05L復次菩薩智慧五波羅蜜佐助莊嚴有方便力於一切衆生有慈悲心故不爲邪見所妨住十地中故智慧勢力深大大故勝於聲聞辟支佛以大因小者自壞阿羅漢辟支佛無是事以是故言欲勝聲聞辟支佛智慧學般若波羅蜜
【經】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과 모든 삼매문(三昧門)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82_c_12L【經】
欲得諸陁羅尼門三昧門當學般若波羅蜜
【論】 다라니는 찬보살품(讚菩薩品)에서의 설명과 같다. 문(門)이라 함은 다라니를 얻는 방편이 되는 모든 법이니, 마치 삼삼매(三三昧)를 해탈의 문[解脫門]이라 하는 것과 같다.
014_0782_c_13L【論】
陁羅尼「讚菩薩品」中說得陁羅尼方便諸法是如三三昧名解脫門
무엇이 방편(方便)이냐 하면, 만일 사람이 들었던 것을 모두 지닐 수 있게 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일심으로 기억해서 그 기억을 더욱 자라게 하고 먼저 뜻을 짓되 서로 비슷한 일에 대하여 마음을 매어 두면서 보지 않았던 일을 알게 해야 한다. 마치 주리반타가(周利槃陀迦)24)가 마음을 가죽신을 닦는 물건 속에다 매어 두고서 선정을 생각하여 마음의 때(垢)를 제거시킨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은 것은 처음 배우는 이의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25)라 한다.
014_0782_c_15L何者是方便若人欲得所聞皆持應當一心憶念令念增長先當作意於相似事繫心令知所不見事如周利槃陁迦繫心拭革屣物中令憶禪定除心垢如是名初學聞持陁憐尼
세 번 듣고 기억할 수 있는 마음의 근기면 더욱 영리한 것이고, 두 번 듣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면 한 번 듣고 기억하도록 꼭 붙잡아서 잊지 않게 하니, 이것이 문지다라니의 첫 번째 방편이다.
014_0782_c_20L三聞能得心根轉利再聞能得成者一聞能得得而不忘是爲聞持陁憐尼初方便
014_0783_a_01L혹 때로 보살은 선정에 들어가서 잊지 않는 해탈(不忘解脫)26)을 얻게도 되나니, 잊지 않는 해탈의 힘 때문에 온갖 언어와 설법, 한 글귀와 한 글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잊지 않게 된다. 이것이 두 번째의 방편이다.
014_0782_c_22L或時菩薩入禪定中得不忘解脫忘解脫力故一切語言說法乃至一句一字皆能不忘是爲第二方便
혹은 때로 신주(神呪)의 힘 때문에 문지다라니를 얻기도 하고, 때로는 전생에 행한 업의 인연으로 생(生)을 받으면서 들은 것은 모두 지녀서 잊지 않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것 등을 문지다라니의 문이라 한다.
014_0783_a_02L時神呪力故得聞持陁憐尼或時先世行業因緣受生所聞皆持不忘是等名聞持陁羅尼門
또 보살이 온갖 음성과 언어를 듣고 그 본말(本末)을 분별하면서 그 실상(實相)을 관하면 음성과 언어가 찰나찰나마다 나고 없어짐을 알게 되며 음성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중생들은 기억하여 모양을 취하게 된다.
014_0783_a_05L復次菩薩聞一切音聲語言分別本末觀其實相知音聲語言念念生滅音聲已滅衆生憶念取相
그리하여 이미 사라진 언어를 기억하고 생각하기를 “이 사람은 나에게 욕설을 했다”고 하면서 성을 내기도 하고 또한 칭찬을 하는 일도 그와 같다. 이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관찰하므로 비록 다시 백천 겁 동안 욕설을 듣는다 하더라도 성을 내지 않으며 또는 백천 겁 동안 칭찬을 받는다 하더라도 역시 기뻐하지도 않나니, 음성의 나고 없어짐을 마치 메아리의 모양과 같이 알게 된다.
014_0783_a_08L念是已滅之語作是念言是人罵我而生瞋恚稱讚亦如是菩薩能如是觀衆生雖復百千劫罵詈不生瞋心若百千劫稱讚亦不歡喜知音聲生滅如響相
또 마치 북 소리를 짓는 이가 없는 것과 같다. 만일 짓는 이가 없다면 이것은 머무르는 곳도 없어서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에 다만 어리석은 범부의 귀를 속일 뿐이다. 이것을 입음성(入音聲)다라니27)라 한다.
014_0783_a_12L又如鼓聲無有作者若無作者是無住處竟空故但誑愚夫之耳是名入音聲陁羅尼
또 다라니에는 42자(字)로써 온갖 언어와 이름과 글자를 포섭하게 된다. 무엇이 42자인가? 곧 아(阿)ㆍ라(羅)ㆍ파(波)ㆍ차(遮)ㆍ나(那) 등이다. 아제(阿提)는 진(秦)나라 말로 처음(初)이요 아뇩파나(阿耨波奈)는 진나라 말로 나지 않는다[不生]는 뜻이다. 다라니를 수행하여 보살이 이 아(阿)의 글자를 들으면 즉시 온갖 법은 처음부터 나지 않는다[初不生]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니, 이와 같이 글자마다 듣는 것에 따라 모두 온갖 법의 실상(實相)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을 자입문(字入門)다라니28)라 한다. 마치 마하연품(摩訶衍品) 중에서 모든 글자의 문[字門]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014_0783_a_15L復次有陁羅尼以是四十二字攝一切語言名字何者是四十二那等阿提秦言初阿耨波奈秦言不生行陁羅尼菩薩聞是阿字卽時入一切法初不生如是等字字隨所聞皆入一切諸法實相中是名字入門陁羅尼如「摩訶衍品」中說諸字門
014_0783_b_01L 또 보살은 이 일체삼세무애명(一切三世無礙明)삼매 등과 같은 모든 삼매를 얻으며, 이 낱낱의 삼매 속에서는 한량없는 아승기의 다라니를 얻는다. 이와 같은 등이 섞어 모인 것을 5백의 다라니문이라 한다. 이것이 보살의 착한 법과 공덕의 창고며 이와 같은 것을 다라니의 문이라 한다.
014_0783_a_22L復次菩薩得是一切三世無㝵明等諸三昧於一一三昧中無量阿僧祇陁羅尼如是等和合名五百陁羅尼門是爲菩薩善法功德藏如是名爲陁羅尼門
모든 삼매의 문[三昧門]이라 함은 삼매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성문의 법 중의 삼매와 마하연의 법 중의 삼매이다. 성문의 법 중의 삼매는 이른바 삼삼매(三三昧)이다.
014_0783_b_03L諸三昧門三昧有二種聲聞法中三昧摩訶衍法中三昧聲聞法中三昧所謂三三昧復次三三昧空空三昧無相無相三昧無作無作三昧復有三三有覺有觀無覺有觀無覺無觀有五支三昧五智三昧等是名諸三
삼삼매는 공공삼매(空空三昧)와 무상무상삼매(無相無相三昧)와 무작무작삼매(無作無作三昧)이다. 다시 삼매가 있나니, 유각유관삼매(有覺有觀三昧)과 무각유관(無覺有觀)과 무각무관(無覺無觀)이다. 다시 5지삼매(支三昧)와 5지삼매(智三昧) 등이 있나니, 이것을 모든 삼매라 한다.
014_0783_b_10L復次一切禪定亦名定亦名三昧四禪亦名禪亦名定亦名三昧除四諸餘定亦名定亦名三昧不名爲十地中定名爲三昧
또 온갖 선정(禪定)을 정(定)이라 하기도 하고 삼매라 하기도 한다. 4선(禪)을 선(禪)이라 하기도 하고 정이라 하기도 하고 삼매라 하기도 하며, 4선을 제외한 그 밖의 모든 정을 또한 정이라 하기도 하고 삼매라 하기도 하나 선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10지(地)의 정을 삼매라고도 한다.
014_0783_b_13L有人言欲界地亦有三昧何以故欲界中有二十二道品故知有三昧若無三昧不應得是深妙功德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욕계 자리[欲界地]에도 역시 삼매가 있다. 왜냐하면 욕계에도 스물두 가지의 도품(道品)이 있기 때문이니, 삼매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삼매가 없다면 이 깊고 묘한 공덕을 얻지 못해야 한다”고 한다.
014_0783_b_16L復次「千問」中亦有是四聖種幾欲界繫幾色界繫幾無色界繫幾不繫
또 천문(千問) 가운데서도 역시 이와 같은 질문이 있다.
“4성종(聖種)에는 몇 가지가 욕계의 매임[欲界繫]이고 몇 가지가 색계의 매임[色界繫]이며, 몇 가지가 무색계의 매임[無色界繫]이고 몇 가지가 매이지 않은[不繫] 것인가?”
014_0783_b_18L答曰一切當分別聖種或欲界繫或色界繫或無色界或不繫四念處四正懃四如意足亦如是
그러자 대답하기를 “온갖 것은 마땅히 4성종으로 분별해야 하나니, 혹은 욕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색계의 매임이기도 하며 혹은 무색계의 매임이기도 하고 혹은 매이지 않기도 한다”고 했다.
4념처(念處)와 4정근(正懃)과 4여의족(如意足)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783_b_21L以是義故當知欲界有三昧若散亂心云何得此上妙法以是故是三昧在十一地中如是等諸三昧阿毘曇中廣分別
이런 이치 때문에 욕계에도 삼매가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만일 마음이 산란하다면 어떻게 이 으뜸가고 묘한 법을 얻겠는가. 그러므로 이 삼매는 11지(地) 중에 있나니, 이와 같은 등의 모든 삼매는 아비담(阿毘曇) 중에서 자세히 분별한다.
014_0783_c_01L摩訶衍三昧者首楞嚴三昧乃至虛空際無所著解脫三昧又如見一切佛三昧乃至切如來解脫修觀師子頻伸
014_0783_c_01L마하연(摩訶衍)의 삼매라 함은, 수릉엄(首楞嚴)삼매로부터 허공제무소착해탈(虛空際無所著解脫) 삼매에 이르기까지이며, 또 견일체불(見一切佛)삼매 내지는 온갖 여래의 해탈(解脫)ㆍ수관(修觀)ㆍ사자빈신(師子頻伸) 등의 삼매가 있다.
014_0783_c_04L無量阿僧祇菩薩三昧如有三昧名無量菩薩得是三昧者能示現一切淸淨身有三昧名威相菩薩得是三昧能奪日月威德
그리고 한량없는 아승기의 보살삼매가 있다. 한량없이 청정하다[無量淨]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청정한 몸을 나투어 보인다. 위엄 있는 모양[威相]이라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해와 달의 위엄 있는 광명도 다 빼앗는다.
014_0783_c_08L有三昧名焰山菩薩得是三昧奪諸釋梵威德有三昧名出塵菩薩得是三昧滅一切大衆三有三昧名無㝵光菩薩得是三昧能照一切佛國
불꽃 산[焰山]이라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모든 제석과 범왕의 위엄 있는 덕도 압도한다. 티끌에서 벗어난다[出塵]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대중의 3독(毒)을 소멸되게 한다. 막힘 없는 광명(無礙光)이라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부처님 국토를 비출 수 있다.
014_0783_c_12L有三昧名不忘一切菩薩得是三昧一切諸佛所說法皆能憶持復爲他人講說佛語有三昧名聲如雷音菩薩得是三昧能以梵聲滿十方佛國
온갖 법을 잊지 않는다[不忘一切法]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모두 다 기억하며 다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강설하게 된다. 음성이 우렛소리와 같다[聲如雷音]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맑은 음성[梵聲]으로 시방의 부처님 국토에 가득 채울 수 있다.
014_0783_c_16L有三昧名能娛樂一切衆生菩薩得是三昧能令一切深心歡喜有三昧名喜見無厭菩薩得是三昧一切衆生見聞喜樂無有厭足有三昧名功德報不可思議一緣中樂菩薩得是三昧成就一切神
온갖 중생을 즐겁게 한다[能娛樂一切衆生]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중생들을 마음속 깊이 기쁘게 할 수 있다. 보기를 좋아하면서 만족할 줄 모른다[喜見無厭]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중생이 보고 듣고 하기를 즐거워하면서 만족해 할 줄을 모른다. 공덕의 과보가 불가사의하여 하나의 인연 안에서 즐긴다[功德報不可思議一綠中樂]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신통을 성취하게 된다.
014_0783_c_22L有三昧名知一切音聲語言菩薩得是三昧能說一切音聲語言於一字中說一切字於一切字中說一字有三昧名集一切福富樂果報若菩薩得是三昧常默然入禪定而能令一切衆生聞佛法衆聞聲聞辟支佛六波羅蜜之聲而是菩薩實無一言
014_0784_a_01L온갖 음성과 언어를 안다[知一切音聲語言]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음성과 언어를 말할 수 있으며 한 글자 가운데서 온갖 글자를 말하고 온갖 글자 가운데서 한 글자를 말하게 된다. 온갖 복과 부와 쾌락의 과보를 쌓는다[集一切福富樂果報]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항상 잠자코 선정에 들어가면서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법을 듣게 하고 대중들은 성문과 벽지불이 닦는 6바라밀의 소리를 듣게 하면서도 이 보살은 실로 한마디의 말도 하는 일이 없다.
014_0784_a_05L有三昧名出高一切陁羅尼王菩薩得是三昧得入無量無邊諸陁羅尼有三昧名一切樂說菩薩得是三昧樂說一切字一切音聲語言譬喩如是等無量力勢三昧
뛰어나고 높은 온갖 다라니의 왕[出高一切陀羅尼王]이라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한량없고 끝이 없는 모든 다라니에 들어가게 된다. 온갖 원하는 대로 말해 준다[一切樂說]는 삼매가 있나니,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온갖 글자와 온갖 음성과 언어와 비유와 인연 등을 그가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하게 말하여 준다. 이와 같은 등의 한량없는 세력을 지닌 삼매가 있다.
014_0784_a_10L問曰是三昧卽是三昧門不答曰三昧卽是三昧門
【문】 이 삼매가 곧 삼매의 문인가?
【답】 삼매 그것이 곡 삼매의 문이다.
014_0784_a_12L問曰若爾者何以不但說三昧而復說三昧門
【문】 만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삼매만을 설명하지 않고 삼매의 문을 말하는가?
014_0784_a_13L答曰佛諸三昧無量無數如虛空無邊菩薩云何盡得薩聞是心則退沒以是故佛說三昧入一門中攝無量三昧如牽衣一擧衣皆得亦如得蜜蜂王餘蜂盡
【답】 부처님의 모든 삼매는 한량없고 마치 허공이 끝이 없는 것과 같으니 보살들이 어떻게 모두 얻겠는가. 보살이 이런 것을 들으면 마음이 곧 물러나고 잠기게 되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은 삼매의 문을 말씀하신다. 하나의 문(門) 안으로 들어가면 한량없는 삼매를 포섭하게 됨은 마치 옷의 한 귀를 끌어당기면 온 옷을 다 얻게 되는 것과 같고 또한 마치 꿀벌의 왕을 잡아 오면 그 밖의 모든 벌들이 모조리 따라오는 것과 같다.
014_0784_a_18L復次展轉爲門如持戒淸淨一心精進初夜後夜懃修思惟離五欲樂繫心一處行是方便得是三昧是名三昧門
또 차츰차츰 문이 되는 것은 마치 계율을 지님이 청정하고 일심으로 정진하면서 초저녁과 새벽녁에 부지런히 닦고 생각하며 5욕(欲)의 즐거움을 여의고 마음을 한 군데에 매어 두는 이러한 방편을 행하면 이런 삼매를 얻게 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삼매의 문이라 한다.
014_0784_a_21L復次欲界繫三昧是未到地三昧門未到地三昧是初禪門初禪及二禪邊地三昧是二禪三昧門乃至非有想非無想處三昧亦如是
또 욕계계(欲界繫)의 삼매는 바로 미도지(未到地)삼매의 문이요 미도지의 삼매는 바로 초선(初禪)의 문이며, 초선과 2선(禪)의 변두리 자리의 삼매는 바로 2선의 삼매의 문이요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의 삼매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784_b_01L煖法定是頂法三昧門頂法是忍法三昧忍法是世閒第一法三昧門世閒第一法是苦法忍三昧門苦法忍乃至金剛三昧門
014_0784_b_01L난법(煖法)의 정(定)은 바로 정법(頂法) 삼매의 문이요 정법은 바로 인법(忍法) 삼매의 문이며, 인법은 바로 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 삼매의 문이요 세간제일법은 바로 고법인(苦法忍) 삼매의 문이며, 고법인 내지는 금강삼매(金剛三昧)의 문이다.
014_0784_b_05L略說一切三昧有三出相是出相入相名爲門相是三昧體
요약하여 말하면, 온갖 삼매에는 세 가지 모양이 있나니, 들어가고[入] 머무르고[住] 나오는[出] 모양이 그것이다. 나오는 모양과 들어가는 모양을 문이라 하며, 머무르는 모양은 바로 이 삼매의 본체이다. 이와 같은 법이 바로 성문법 중의 삼매의 문이다.
014_0784_b_07L如是等法是聲聞法中三昧門
마하연(摩訶衍)의 법 중의 삼매의 문은 마치 선바라밀의(禪波羅蜜義) 중에서 모든 삼매를 분별하며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784_b_08L摩訶衍法中三昧門禪波羅蜜義諸三昧分別廣說
또 시라(尸羅)바라밀도 바로 삼매의 문이다. 왜냐하면 세 갈래[三支]가 바로 부처님의 도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계율 갈래[戒支]와 선정 갈래[定支]와 지혜 갈래[慧支]이다. 청정한 계율의 갈래는 바로 선정 갈래의 문이어서 이 선정이 생기게 하고 선정의 갈래는 지혜의 갈래를 생기게 한다. 세 가지 갈래는 번뇌를 잘 끊고 열반이 있게 하나니, 이 때문에 시라바라밀과 지혜를 삼매의 가까운 문[近門]이라 하고 그 밖의 세 가지 바라밀은 비록 이 문이라는 뜻이 있기는 하나 먼 문[遠門]이라 한다.
014_0784_b_09L復次羅波羅蜜是三昧門何以故三支是佛道所謂戒支定支慧支淸淨戒支是定支門能生是定定支能生慧支是三支能斷煩惱能與涅槃以是故尸羅波羅蜜及智慧名三昧近門餘三波羅蜜雖是門義名遠門
마치 보시의 인연으로 복덕을 얻고 이 복덕 때문에 소원을 모두 얻게 되며 소원대로 되기 때문에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이 자비로운 마음 때문에 죄를 두려워할 줄 알면서 중생을 생각하며 세간이 공하고 무상함을 관찰하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고 인욕을 행하는 것이니, 인욕도 역시 삼매의 문이다. 정진도 5욕 가운데서 마음을 제어하고 5개(蓋)를 없애며 마음을 가다듬어 산란하지 않으면서 마음이 떠나가면 다 잡아 내닫거나 흩어지지 않게 하나니, 이것도 역시 삼매의 문이다.
014_0784_b_15L如布施因緣得福德福德故所願皆得如所願故心柔軟慈悲心故知畏罪念衆生觀世閒空無常故攝心行忍辱忍辱亦是三昧門精進者於五欲中制心除五蓋攝心不亂心去則攝不令馳散亦是三昧門
또 초지(初地)는 바로 2지(地)의 삼매의 문이다, 이와 같이 하여 차츰차츰 9지에 이르고 이 9지는 바로 10지의 삼매의 문이며 10지는 바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의 삼매의 문이니, 이와 같은 등을 모든 삼매의 문이라 한다.
014_0784_b_21L復次初地是二地三昧門如是展轉乃至九地是十地三昧門十地是無量諸佛三昧門如是等名爲諸三昧門
014_0784_c_01L【문】 다라니의 문과 삼매의 문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만일 같다면 무엇 때문에 거듭하여 설명하며 만일 다르다면 어떠한 뜻이 있는가?
014_0784_c_01L問曰陁羅尼門三昧門爲異若同何以重說若異有何義
【답】 앞에서 이미 삼매의 문과 다라니 문의 차이를 설명했으나 이제 다시 설명하겠다. 삼매는 다만 마음과 상응한 법[心相應法]일 뿐이요 다라니도 역시 마음과 상응하기도 하나 또한 마음과 상응하지 않기도 한다.
014_0784_c_02L答曰先已說三昧門陁羅尼門異,今當更說三昧但是心相應法陁羅尼亦是心相應亦是心不相應
【문】 어떻게 다라니가 마음과 상응하지 않음을 알 수 있는가?
014_0784_c_05L問曰云何知陁羅尼是心不相應
【답】 마치 사람이 문지(聞持)다라니를 얻으면 비록 마음에 성을 낸다 하더라도 역시 상실되지 않고 항상 그 사람을 따라 다니는 것이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하는 것처럼, 이 삼매도 수행하여 오래오래 익히면 뒤에는 다라니를 이루게 되나니, 마치 중생이 오래오래 익히게 되면 그의 성품으로 변해지려는 것과 같다.
014_0784_c_06L答曰人得聞持陁羅尼雖心瞋恚亦不失常隨人行如影隨形是三昧修行習後能成陁羅尼如衆生久習欲便成其性
이 모든 삼매는 모든 법의 실상(實相)의 지혜와 같이 하면서 다라니를 생기게 하나니, 마치 굽지 않은 병을 불에다 잘 구워내면 물에 넣어도 부스러지지 않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강물을 건너게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선정에 지혜가 없으면 역시 굽지 않은 병과 같지만 만일 실상의 지혜를 얻으면 마치 굽지 않은 병을 불에 잘 구워낸 것과 같아서 보살이 두 세상 동안 한량없는 공덕을 지닐 수 있다. 보살은 또한 이로 인하여 제도되어서 부처님까지 될 수 있나니, 이와 같은 등으로 삼매와 다라니는 갖가지로 구별된다.
014_0784_c_10L是諸三昧共諸法實相智慧能生陁羅尼如坏甁得火燒熟,能持水不失亦能令人得度河禪定無智亦如坏甁若得實相智慧如坏甁得火燒成熟能持菩薩二世無量功德,菩薩亦因之而度得至佛如是等,三陁羅尼種種差別
【문】 무엇 때문에 성문의 법에는 이 다라니에 대한 이름이 없고 대승(大乘)에서만 있는가?
014_0784_c_16L問曰聲聞法中何以無是陁羅尼但大乘中有
【답】 작은 법 가운데에 큰 법이 없다는 것을 그대는 물어서는 안 된다. 큰 법 가운데에 작은 것이 없다면 질문할 만하다. 마치 “조그마한 집에 왜 금과 은이 없느냐”고 물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014_0784_c_17L小法中無大汝不應致問大法中無小者則可問如小家無金銀不應問也
014_0785_a_01L또 성문은 크게 부지런히 모든 공덕을 쌓지도 않고 다만 지혜로써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고통을 벗어나려고 할 뿐이니, 이 때문에 성문의 사람은 다 다라니를 이용하여 모든 공덕을 지니지 못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목이마를 때에는 한 움큼의 물만을 얻어도 족하며 병이나 그릇에 물을 가져올 필요가 없지만, 만일 많은 사람들에게 물을 주려면 병이나 독에다 물을 가져와야 하는 것과 같다. 보살은 온갖 중생들을 위하는 까닭에 다라니로써 모든 공덕을 지녀야 한다.
014_0784_c_19L復次聲聞不大殷懃集諸功德但以智慧求脫老病死苦以是故,聲聞人不用陁羅尼持諸功德譬如人渴得一掬水則足不須甁器持水若供大衆人民則須甁甕持水菩薩爲一切衆生故須陁羅尼持諸功德
또 성문의 법 중에서는 대개가 “모든 법은 나고 멸하는 무상(無常)한 모양이다”고 말하기 때문에 모든 논의사(論議師)들은 말하기를 “모든 법은 무상하다. 만일 무상한 모양이라면 다라니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법이 무상한 모양이라면 곧 유지되는 것이 없고 오직 과거에 행한 업의 인연만이 잃지 않게 된다. 이는 마치 미래 세상의 과보가 비록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생기게 되는 것처럼 과거에 행한 인연도 역시 그와 같다”고 한다.
014_0785_a_02L復次聞法中多說諸法生滅無常相故論議師言諸法無常,若無常相則不須陁羅尼何以故諸法無常相則無所持唯過去行業,因緣不失如未來果報雖無,必生過去行因緣亦如是
마하연(摩訶衍)의 법에서는 나고 멸하는 모양은 진실하지 않으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모양도 역시 진실하지 않나니, 모든 관(觀)과 모든 모양(相)도 모두 소멸하는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만일 과거의 법을 지니면 허물이 없나니, 과거의 착한 법과 선근(善根)의 모든 공덕을 지니기 때문에 다라니가 필요하다.
014_0785_a_07L摩訶衍法生滅相不實不生不滅相亦不實,諸觀諸相皆滅是爲實,若持過去法則無咎以持過去善法善根諸功德故須陁羅尼
다라니는 세상마다 항상 따라다니지만 보살의 모든 삼매는 그렇지 않아서 간혹 몸을 바꾸면 상실하게도 된다. 이와 같은 갖가지로 다라니와 모든 삼매를 분별하나니, 이 때문에 “모든 다라니와 모든 삼매의 문을 얻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014_0785_a_11L陁羅尼世世常隨菩薩諸三昧不爾或時易身則失是等種種分別陁羅尼諸三昧以是故言欲得諸陁羅尼諸三昧門當學般若波羅蜜

44. 초품 중 보시의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이 보다 더 뛰어나다(布施隨喜心過上)의 뜻을 풀이함 ①
014_0785_a_15L 大智度論釋布施隨喜心過上第四十四

【經】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보시(布施)할 때, 더불어 기뻐하는[隨喜] 마음으로써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계율을 지닐[持戒] 때에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85_a_16L 【經】
一切求聲聞辟支佛人布施時欲以隨喜心過其上者當學般若波羅蜜一切求聲聞辟支佛人持戒時欲以隨喜心過其上者當學般若波羅蜜
온갖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의 삼매(三昧)와 지혜(智慧)와 해탈(解脫)과 해탈지견(解脫知見)에 대하여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85_a_20L一切求聲聞辟支佛人三昧智慧解脫知見欲以隨喜心過其上者當學般若波羅蜜
014_0785_b_01L【論】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隨喜心]이라 함은 수희품(隨喜品)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또 더불어 기뻐한다 함은 어떤 사람이 공덕을 지을 때에 그것을 보는 이가 마음으로 더불어 기뻐하면서 “참으로 장하다”라고 칭찬하는 것이다. 곧 무상한 세계에서 어리석음의 어두움에 가려져 있으면서 큰 마음[大心]을 넓히며 이러한 복덕을 이룩하는 것이다.
014_0785_a_23L【論】
隨喜心者如「隨喜品」中說復次隨喜名有人作功德者心隨歡喜讚言善哉在無常世界爲癡闇所蔽能弘大心建此福德
비유하건대 마치 갖가지 묘한 향을 한 사람이 팔고 한 사람은 살 때에 그 곁에 있던 사람도 그 향기를 맡지만 그 향에는 손상도 없고 그 두 사람 누구에게도 잃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이 보시를 하고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받을 때에 곁에 있던 사람이 더불어 기뻐하면 그 공덕은 다 같이 얻으면서도 그 두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모양을 더불어 기뻐한다[隨喜]고 한다. 이 때문에 보살은 다만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2승을 구하는 그 사람보다 더 뛰어나게 된다. 그러니 하물며 자기 자신이 행하는 것이랴.
014_0785_b_03L譬如種種妙香一人賣一人買傍人在邊亦得香氣於香無損二主無失如是有人行施,有人受者有人在邊隨喜,功德俱得二主不失如是相名爲隨喜以是故,菩薩但以隨喜心於求二乘人上何況自行
【문】 보살은 어찌하여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만으로써 저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더 뛰어나는가?
014_0785_b_09L問曰菩薩云何能以隨喜心過聲聞辟支佛人以財布施上
【답】 성문이나 벽지불이 이 보시를 행할 때 보살이 그 곁에서 그것을 보고 일심으로 더불어 기뻐하면서 “참으로 장하다”고 칭찬하고는 이렇게 더불어 기뻐하는 복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廻向)하는 것이니, 그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며 그 때문에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공덕으로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이 행하는 보시보다 더 뛰어나게 되는 것이다.
014_0785_b_11L答曰聲聞辟支佛行是布施菩薩於傍見之一心念隨喜善哉以此隨喜福德迴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爲度一切衆生故,以此爲得無量佛法故以二種功德求聲聞辟支佛人所行布施上
또 모든 법의 실상의 지혜인 마음으로써 더불어 기뻐하기 때문에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의 보시보다도 더 뛰어나다.
014_0785_b_16L復次以諸法實相智慧心隨喜故過求聲辟支佛人布施上
또 보살은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복덕과 과보를 내어 회향하며 3세(世)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므로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이의 보시보다도 더 뛰어나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이 조그마한 물건을 국왕에게 바치면 아주 많은 대가를 얻는 것과 같다. 또 소라[貝]를 불 때 기운은 아주 적게 썼는데도 그 소리는 심히 큰 것과 같다.
014_0785_b_18L復次菩薩以隨喜心生福德果報迴向供養三世十方諸佛過聲聞辟支佛布施上譬如人以少物獻上國王得報甚多又如吹貝,用氣甚少其音甚大
014_0785_c_01L또 보살은 더불어 기뻐하는 공덕으로써 한량없는 그 밖의 공덕을 한데 합치므로 법이 소멸할 때까지도 다하지 않나니, 비유하건대 마치 조그마한 물을 큰 바다 속에 넣어 두면 겁(劫)이 다해야 비로소 다하는 것과 같다. 지계ㆍ삼매ㆍ지혜ㆍ해탈 및 해탈지견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785_b_22L復次菩薩以隨喜功德,和合無量諸餘功德至法滅亦不盡譬如少水置大海中窮劫乃盡持戒三昧智慧解脫解脫知見亦如是
【문】 모든 부처님의 다음이 보살이고 보살의 다음이 성문과 벽지불이라면 이제 “보살이 성문이나 벽지불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보시보다 뛰어나다”는 등의 말씀은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인가?
014_0785_c_03L問曰若諸佛次第有菩薩菩薩次第有聲聞辟支佛今言菩薩欲過求聲聞辟支佛人布施等,有何奇特
【답】 성문이나 벽지물의 보시와 지계 등의 복덕은 보살의 공덕에 비교되지 못한다. 다만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만으로도 보다 수승한데 하물며 보살 자신이 공덕을 행함이겠는가.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은 몸으로 힘써 공덕을 지으므로 피로가 겹치지만 보살은 잠자코 더불어 기뻐하는 지혜의 힘과 복덕으로도 그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014_0785_c_06L答曰不以聲聞辟支佛布施戒等福德比菩薩功德,但以隨喜心能勝何況菩薩自行功德求聲聞支佛人懃身作功德疲勞菩薩默然隨喜,智慧福德過其上
비유하건대 마치 장인(匠人)은 다만 지혜로써 가르쳐 주고 가면 연장을 든 이들이 종일토록 괴롭게 일을 하나 정작 공(功)을 헤아리면서 상(賞)을 받을 때는 장인이 그들의 세 곱을 더 받는 것과 같다. 또 군대로 적을 정벌할 때 싸우는 이들은 죽음을 무릅썼는데도 그 공은 장수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다.
014_0785_c_10L譬如工匠,但以智心指授而去執斤斧者疲苦終計功受賞匠者三倍又如征伐,鬪者冒死主將受功
【문】 만일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 때문에 보시하고 지계하는 이들보다 수승하다면 무엇 때문에 다만 보살이 더불어 기뻐하는 것만이 수승하다 하는가?
014_0785_c_13L問言若隨喜心故勝於布施持戒者何以但說菩薩隨喜勝
【답】 범부의 사람은 번뇌로 마음이 가리어지고 나[我]를 아직 끊지 못하여 세간의 즐거움에 집착하고 있으니 어떻게 성문이나 벽지불을 구하는 이보다도 수승하다 하겠는가? 성문이나 벽지불로서 영리한 이는 비록 둔한 이들보다는 수승하다 하더라도 다 같은 성문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것이다.
014_0785_c_15L答曰凡夫人煩惱覆心吾我未著世閒樂云何能勝求聲聞辟支佛者聲聞辟支佛利雖勝鈍同在聲聞地故不說
【문】 성문이나 벽지불이 지닌 공덕의 법은 심히 많은데 무엇 때문에 여섯 가지 일[六事]만을 설명하는가?
014_0785_c_18L問曰聲聞辟支佛功德法甚多何以故但說六事
【답】 이 여섯 가지의 일 가운데서는 모든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다 포섭한다. 만일 보시에 대하여 말해 본다면, 이미 믿고 듣는[信聞] 등의 공덕에서 설명했었다. 왜냐하면 먼저 들은 뒤에 잘 믿고, 믿은 뒤에는 보시하기 때문이다. 이 보시에는 재물 보시[財施]와 법 보시[法施]의 두 가지가 있다.
014_0785_c_19L答曰此六事法中攝一切聲聞辟支佛法若說布已說信聞等功德何以故先聞已能信信已布施是施有二種財施
014_0786_a_01L 지계(持戒)에서는 세 가지 계율을 포섭하나니, 율의계(律儀戒)와 선계(禪戒)와 무루계(無漏戒)이다. 선정[定]에서는 모든 선정과 해탈과 삼매 등을 포섭하며, 지혜[慧]에서는 들어서 얻는 모든 지혜[聞慧]와 생각해서 얻는 지혜[思慧]와 수행하여 얻는 지혜[修慧]를 포섭한다.
014_0785_c_23L持戒攝三種戒律儀戒禪戒無漏定攝諸禪解脫三昧等慧攝諸聞慧思慧修慧
해탈(解脫)에서는 두 가지 해탈을 포섭하나니, 유위(有爲)의 해탈과 무위(無爲)의 해탈이다. 해탈지견(解脫知見)에서는 진지(盡智)를 포섭하나니, 스스로 번뇌가 이미 다했음을 알고 삼계(三界)에서 해탈을 얻고는 그 가운데서 똑똑히 알고 보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조도법(助道法)과 성도법(聖道法)은 이미 설명했다.
014_0786_a_02L解脫攝二種解脫爲解脫無爲解脫解脫知見攝盡智,自知漏已盡於三界得解脫於是中了了知見是中助道法,聖道法已說
또 만일 열반을 향하지 않는 공덕이면 이 안에는 “그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나니, 그 공덕은 얇기 때문이다.
014_0786_a_05L復次若不向涅槃功德是中不說,以其功德薄故
【문】 뛰어나다[勝] 함은 세력으로 서로가 빼앗는 것이다. 지금 보살은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다투지도 않는데 어찌하여 뛰어나다고 하는가?
014_0786_a_07L問曰勝名力勢相今菩薩不與聲聞辟支佛競云何言勝
【답】 뛰어나다 함은 다만 하나의 일 가운데서도 지혜와 방편의 힘 때문에 복을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일 뿐이다. 비유하건대 마치 사람은 한 송이의 꽃 안에 다만 빛깔과 향기만을 취할 뿐인데 벌은 맛만을 취하면서 꿀을 만드는 것과도 같다. 또 마치 물을 담을 그릇이 크면 많이 얻고 그릇이 작으면 적게 얻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은 등의 비유로써 알 수가 있다.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이 깊고 날카로우며 지혜와 상응하는지라 성문이나 벽지불이 하는 보시 등의 모든 공덕보다 뛰어난 것이다.
014_0786_a_09L答曰勝名但於一事中以智慧方便心力故得福多譬如人於一華中但取色香蜂但取味以成蜜亦如取水,器大者得多器小得少如是等喩可知,以隨喜心深利智慧相應聲聞辟支佛布施等諸功德
이 여섯 가지의 법에서, 첫 번째의 보시는 단바라밀(檀波羅蜜)의 이치 중에서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분별하는 데서의 설명과 같고, 지계는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의 이치 중에서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분별하는 데에서의 설명과 같으며, 삼매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은 염불(念佛)의 이치 중에서 성문과 벽지불의 법을 분별하는 데서의 설명과 같다.
014_0786_a_14L是六法,初布施檀波羅蜜義中分別聲聞辟支佛法說持戒,如「尸羅波羅蜜義品」中分別聲聞辟支佛法說三昧解脫解脫知見念佛義中分別聲聞辟支佛法說
大智度論卷第二十八
辛丑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범어로는 Bodhisattvastutiparivarta.
  2. 2)누진통(漏盡通)을 제외한 5신통을 말한다. 곧 원하는 곳에 몸을 드러내는 신족통(神足通, ṛddhi-prātihārya)ㆍ미래를 보는 천안통(天眼通, divya-cakṣus )ㆍ범부가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천이통(天耳通, divya-śrotra-abhijñā)ㆍ남의 마음을 읽는 타심통(他心通, parijaya-jñāna)ㆍ나와 남의 과거를 읽는 숙명통(宿命通, purvenivāsa-jñāna)이다.
  3. 3)범어로는 Upapadaparivarta.
  4. 4)범어로는 dharmadhātuja kāya. 곧 ‘법의 성품으로 태어난 몸’을 말한다.
  5. 5)범어로는 sarvasattvacittacaritavispandita.
  6. 6)경계란 영역(領域, gocara)을 의미한다. 곧 타심통으로는 무색계 중생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협소하다고 한다.
  7. 7)범어로는 Mahāyānastutiparivarta.
  8. 8)범어로는 Gaṅga. 갠지스강을 말한다.
  9. 9)범어로는 Yamunā.
  10. 10)범어로는 Sarayu.
  11. 11)범어로는 Aciravatī.
  12. 12)범어로는 Mahī.
  13. 13)범어로는 Vaipulya.
  14. 14)범어로는 sarvadharma-lakṣaṇa.
  15. 15)범어로는 svasāmānya-lakṣaṇa. 사물에 존재하는 각각의 모습[相]을 말한다.
  16. 16)범어로는 śūnyatāśūnyatāsamādhi.
  17. 17)범어로는 ānimittānimittāsamādhi.
  18. 18)범어로는 apraṇihitāpraṇihitasamādhi.
  19. 19)범어로는 Ratnakūṭasūtra.
  20. 20)범어 kalaviṅka 의 음사어. 히말라야 산중에 사는 새. 혹은 극락정토에 사는 새라고도 한다. 가릉빈가(迦陵頻迦)라고 음사하기도 한다.
  21. 21)범어로는 Jālinīprabhasūtra.
  22. 22)범어로는 Samantapuṣpa.
  23. 23)범어로는 prajñāvatām agryaḥ. 곧 사리불을 가리킨다.
  24. 24)범어 Cūḍapanthaka의 음역어.
  25. 25)범어로는 Śrutadharadhāraṇī.
  26. 26)범어로는 asaṃpramoṣavimokṣa.
  27. 27)범어로는 Ghoṣapraveśadhāraṇī.
  28. 28)범어로는 Akṣarapraveśadhārāṇ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