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대장경

大智度論釋初品中善根供養義第四十六

ABC_IT_K0549_T_030
014_0795_b_01L대지도론 제30권
014_0795_b_01L大智度論釋初品中善根供養義第四十六卷第三十


용수 지음
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
송성수 번역/김형준 개역
014_0795_b_02L 聖者龍樹造


46. 초품 중 선근공양(善根供養)의 뜻을 풀이함
014_0795_b_03L 後秦龜茲國三藏鳩摩羅什譯

【經】 모든 선근 공양으로써 모든 부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면서 뜻대로 성취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95_b_04L 【經】
欲以諸善根供養諸佛恭敬尊重隨意成就者當學般若波羅蜜
【論】 보살이 이미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게 되면 마땅히 공양을 해야 한다. 만일 부처님을 만났으면서도 공양거리가 없다면 심히 기쁘지 않게 된다. 마치 수마제(須摩提)15)[진(秦)나라 말로 묘의(妙意)라 한다.] 보살이 연등부처님[然燈佛]을 뵈올 적에 공양거리가 없었으므로 이리 저리 구하며 돌아다니다가 꽃 파는 여인을 만나 5백전(百錢)의 돈으로 다섯 송이의 푸른 연꽃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한 것과 같다. 또 살타파륜(薩陀波崙)16)보살은 스승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자기 몸의 피와 살을 팔았었다.
014_0795_b_06L【論】
薩旣得不離諸佛當應供養若得値佛而無供具甚爲不悅如須摩提菩秦言妙意見然燈佛無供養具旋求索見賣華女以五百金錢買得五莖靑蓮華以供養佛又薩陁波崙菩薩爲供養師故賣身血肉
이와 같이 보살은 이미 부처님을 뵙게 되면 마음으로 공양하고 싶어지며 만일 공양거리가 없으면 그의 마음은 허전하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서민(庶民)이 임금을 만날 때 예물(禮物)을 지니지 않으면 불경(不敬)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모든 보살은 공양거리를 구하여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다.
014_0795_b_12L如是等菩薩旣得見佛心欲供養若無供具其心有㝵譬如庶民遇見君長不持禮貺則爲不敬是故諸菩薩求供養供養諸佛
부처님은 비록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살의 마음이 허전하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농부가 좋은 밭을 만났으나 종자가 없으면 아무리 공력을 더하려 해도 힘을 쓸 수가 없으므로 마음에 몹시 근심되는 것처럼 보살도 역시 그와 같아서 모든 부처님을 만났으면서도 공양거리가 없으면 설령 다른 물건이 있다 해도 그의 뜻에 맞지도 않고 마음이 곧 허전해지는 것과 같다.
014_0795_b_16L佛雖不須菩薩心得具譬如農夫遇好良田而無種子欲加功無以肆力心大愁憂菩薩亦如是得遇諸佛而無供具設有餘物不稱其意心便有㝵
014_0795_c_01L모든 선근(善根)이라 함은 이른바 선근의 과보(果報)로서 꽃ㆍ향ㆍ영락ㆍ의복ㆍ번기ㆍ일산과 갖가지 진기한 보물 등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간혹 어떤 때는 원인[因]으로써 결과[果]를 말하기도 하기 때문이니, 마치 “한 달 동안에 천 냥(兩)의 돈을 먹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돈은 먹을 수 없는 것이지만 돈으로 인하여 음식을 얻었기 때문에 “돈을 먹었다”고 하는 것이다.
014_0795_b_20L諸善根所謂善根果報華香瓔珞衣服幡蓋種種珍寶等所以者何或時以因說果言一月食千兩金金不可食因金得食故言食金
간혹 어떤 때는 결과로써 원인을 말하기도 한다. 마치 잘 그린 그림을 보면서 “참 손재주가 좋다”고 하는 것과 같다. 손재주는 그림은 아니지만 그림이 잘 그려진 것을 보고 손재주가 좋다고 말하는 것이니, 선근의 과보 역시 그와 같아서 선근의 업의 인연 때문에 공양거리를 얻게 되는 것이므로 선근이라 한다.
014_0795_c_02L或時以果說因如見好畫言是好手手非是畫見畫妙故說言手好善根果報亦如是以善根業因緣故得供養之具名爲善根
【문】 만일 그렇다면 어째서 직접 꽃ㆍ향 등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원인을 말씀하는 것인가?
014_0795_c_05L問曰爾者何不卽說華香等而說其因
【답】 공양거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재물의 공양[財供養]이고, 둘째는 법의 공양[法供養]이다. 만일 다만 꽃ㆍ향 등의 공양이라고만 말하면 법의 공양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선근 공양이라고 하게 되면 재물과 법이 다 함께 포함된 것인 줄 알아야 한다.
014_0795_c_06L供養具有二種一者財供養二者法供養若但說華香等供養則不攝法供養今說善根供養當知則財俱攝
공양(供養)이라 함은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보고 듣고 하면서 마음으로 공경하고 존중하고 영접하고 시봉하고 전송하고 몸을 돌고 예배하고 몸을 구부리고 합장하며 그리고 서 계시면 편안한 데로 앉으시게 하고 음식을 권하고 꽃과 향과 진기한 보배들을 올리며 지계(持戒)와 선정과 지혜와 모든 공덕을 갖가지로 칭찬하며 설법이 있으면 그의 가르침을 믿고 받는 것 등이니, 이와 같이 착한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이 바로 공양이다.
014_0795_c_10L供養若見若聞諸佛功德敬尊重迎逆侍送旋繞 禮拜曲躬合手而住避坐安處勸進飮食華香寶等種種稱讚持戒禪定智慧諸功有所說法信受教誨如是善身意業是爲供養
존중한다 함은 온갖 중생들 가운데서 덕이 그보다 높은 이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존(尊)이라 하고 공경하면서 두려워하는 마음이 부모나 사장(師長)이나 군왕보다도 더 뛰어나며 이익이 중하기 때문에 중(重)이라 한다.
014_0795_c_15L尊重知一切衆生德無過上故言敬畏之心過於父母師長君王利益重故故言
공경한다 함은 겸손하고 두려워하고 어려워하기 때문에 공(恭)이라 하고 그 지혜와 덕을 추앙하기 때문에 경(敬)이라 한다.
찬탄한다 함은 그 공덕을 기리는 것이 찬(讚)이요 그것을 기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또 그것을 칭찬하면서 드날리기 때문에 탄(歎)이라 한다.
014_0795_c_17L謙遜畏難故言推其智德故讚歎美其功德爲讚之不又稱揚之故言
뜻에 따라 성취한다[隨意成就] 함은 꽃을 구하여 공양하려 할 때 생각하는 대로 그 꽃이 손에 닿는 것이다. 혹은 구하여 얻기도 하고 혹은 구하지 않았는데 얻게 되기도 하며 또는 저절로 나오기도 하며, 혹은 변화로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음악의 공양에 이르기까지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795_c_20L隨意成就若須華供養如意卽至或求得或不求而有自然出者或變化生乃至伎樂供養之具悉皆如是
【문】 보살이 만나게 되면 곧 공양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뜻에 따라 구하고 찾는가?
014_0795_c_23L問曰菩薩遇得便以供養何以隨意求索
014_0796_a_01L【답】 복덕은 마음을 좇으므로 애지중지한 것을 가져다 공양하면 복을 얻음이 더욱더 많다. 마치 아육왕(阿育王)이 어렸을 때에 그가 소중히 여기는 흙을 가져다 부처님께 바친 인연으로 염부제의 왕이 되었고 하루 동안에 8만의 탑을 세우게 되는 것과 같다.
014_0796_a_01L答曰福德從心於所愛重持用供養得福增多如阿育王小兒時以所重土持用奉得閻浮提王一日之中起八萬塔
만일 큰 사람이 아무리 많은 흙을 발우에 넣어 준다 하더라도 복은 얻지 못하나니, 소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치우치게 꽃을 귀중하게 여기나니, 그 귀중한 꽃을 가져다 부처님께 공양하면 복을 얻음이 더욱더 많다. 보물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796_a_04L若大人雖以多土投鉢而無所得所重故有人偏貴重華以其所貴供養佛得福增多乃至寶物亦如是
또 때에 따라 알맞게 해야 한다. 만일 추울 때면 섶이나 불이나 윗옷이나 따뜻한 방이나 이불이나 음식으로 공양해야 하고, 더울 때는 얼음물이나 부채나 일산이나 시원한 방이나 얇은 옷이나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해야 하며,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는 직접 공양거리를 가져다 주는 등 이와 같이때에 따라 공양한다. 또 토지로써 마땅한 바에 따르고, 받는 이가 구하는 대로 모두 가져다 공양한다.
014_0796_a_07L復次隨時所宜若寒時應以薪火溫室被褥及以飮食熱時應以冰扇蓋涼室生薄之服上妙之食雨之時就送供具如是等隨時供養又隨土地所宜隨受者所須皆持供
또 뜻에 따라 공양한다 함은, 어떤 보살은 부처님께서 구하는 것이 없음을 알고 또 모든 물건은 거짓이고 마치 환과 같으며, 그 한 모양이 이른바 모양이 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이 국토를 소중히 여김에 따라 인도하려고 공양하기도 한다.
014_0796_a_13L復次隨意供養者有菩薩知佛無所須又知諸物虛誑如幻一相所謂無相爲教化衆生故隨衆生國土所引導故供養
또 어떤 보살은 매우 깊은 선정을 얻고 보살의 신통을 내어 그 신통의 힘으로써 시방의 부처님 앞으로 날아가서 혹 그 부처님 국토에서 하늘꽃을 두루 비처럼 내리기를 원하면 곧 3천의 세계에 가득 차도록 가져다 부처님께 공양하기도 한다. 혹은 하늘의 전단(栴檀)을 비처럼 내리기도 하고 혹은 광명이 산뜻한 진주(眞珠)를 비처럼 내리기도 하며 혹은 7보(寶)를 비처럼 내리기도 한다. 혹은 크기가 수미산만한 여의주(如意珠)를 비처럼 내리기도 하고 혹은 맑고 묘한 음악 소리를 비처럼 내리기도 하며 혹은 수미산만한 몸으로 등불 심지가 되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도 하나니, 이와 같은 것들을 재물의 공양이라 한다.
014_0796_a_16L復有菩薩得甚深禪生菩薩神通以神通力故飛到十方佛前或於佛國若須遍雨天華滿三千世界持供養佛或雨天栴檀或雨眞珠光明鮮發或雨七寶或雨如意珠大如須彌或雨妓樂音聲淸或以身如須彌以爲燈炷供養諸如是等名爲財供養
014_0796_b_01L또 보살은 6바라밀을 행하여 법으로써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도 하고 혹은 어떤 보살은 초지(初地)의 법을 행하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도 하며, 또한 10지(地)의 법을 행하면서 공양하기도 한다. 때로는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고서 자기 자신의 번뇌도 없애고 중생들의 번뇌도 없애 주나니, 이것이 법의 공양이다.
014_0796_a_23L又菩薩行六波羅蜜以法供養諸佛或有菩薩行一地法供養諸佛乃至十地行法供或時菩薩得無生法忍自除煩惱及衆生煩惱是法供養
간혹 보살은 10지에 머물러서 신통의 힘으로써 지옥의 불이 꺼지게 하고, 아귀도(餓鬼道)에서는 모두가 배불리 먹게 하며 축생들은 두려움을 여윌 수 있게 하면서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서 점차로 아유월치(阿惟越致)17)의 지위에 머무르게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의 큰 공덕의 힘 때문에 법의 공양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선근을 성취하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796_b_04L或時菩薩住於十地以神力故令地獄火滅於餓鬼道皆得飽滿令畜生得離恐怖生人漸住阿惟越致地如是等大功德力故名爲法供養以是故說欲得善根成就當學般若波羅蜜
【經】 온갖 중생들이 원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바르는 향ㆍ탈것ㆍ방사ㆍ평상 및 등촉(燈燭) 등을 채워주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96_b_10L【經】
欲滿一切衆生所願衣服臥具塗香車乘房舍牀榻燈燭等當學般若波羅蜜
【論】 【문】 온갖 중생의 원을 만족시키려 함에는 어떤 차례가 있는가?
014_0796_b_12L【論】
問曰有何次第滿一切衆生願
【답】 보살의 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함으로써 한량없는 복덕을 얻고 이 복덕을 가져다 중생을 이익되게 하나니, 이른바 중생의 원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마치 장사꾼의 우두머리가 바다에 들어가서 보물을 캔 뒤에 안온하게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 친척과 아는 이들을 이익되게 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부처님의 바다에 들어가 한량없는 공덕의 보배를 얻고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014_0796_b_13L答曰菩薩業有二種一爲供養諸佛二爲度脫衆生以供養諸佛得無量福德持是福德利益衆生所謂滿衆生願如賈客主入海採寶安隱得出利益所親及知識等菩薩如是入諸佛法海得無量功德之寶利益衆生
014_0796_c_01L마치 소왕(小王)이 대왕(大王)에게 공양하여 기뻐하게 하고는 그가 원하는 직위(職位)와 재물과 비단[財帛]을 주면 그의 본국으로 돌아와서 백성들을 이익되게 하며 도적들을 물리치는 것과 같으니, 보살은 모든 부처님 법왕(法王)에게 공양하기 때문에 기별(記別)을 얻고 한량없는 선근의 값진 보배로써 그지없는 지혜의 힘을 얻은 뒤에 와서 중생으로 들어가 착한 사람에게 공양하고 가난한 이에게는 그들이 구하는 것에 따라 공급하며, 악마의 백성과 삿된 소견을 지닌 외도의 무리들을 모두 다 파괴하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다음에는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014_0796_b_19L如小王供養大王令歡喜與其所願職位財帛還其本利益人物除卻怨賊菩薩供養諸佛法王故得受記別以無量善根珍得無盡智力來入衆生善人供養貧者隨其所須而給與之魔民邪見外道之屬悉皆破壞是爲供養諸佛次滿衆生所願
【문】 보살은 실로 온갖 중생들의 원을 만족시키는가? 만일 중생들의 소원을 모두 다 만족시킨다면 그 밖의 부처님과 보살들은 무엇을 이익되게 하실 것인가? 만일 그 안의 것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온갖 중생들의 원을 만족시키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가?
014_0796_c_03L問曰菩薩實能滿一切衆生願不若悉滿衆生願餘佛菩薩何所利益若不悉滿是中何故說欲滿一切衆生願當學般若波羅蜜
【답】 두 가지의 원이 있다. 첫째는 얻을 수 있는 소원[可得願]이고, 둘째는 얻을 수 없는 소원[不可得願]이다. 얻을 수 없는 소원이라 함은, 어떤 사람이 허공을 헤아리되 그 끝 간 데까지를 다 알려 하고 그리고 때와 방향의 끝을 구하려 하는 것이니, 마치 어린아이가 물속의 달과 거울 속의 형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등의 원은 모두가 얻을 수 없다.
014_0796_c_06L答曰有二種願一者可得願二者可得願不可得願者有人欲籌量虛盡其邊際及求時方邊際如小兒求水中月鏡中像如是等願皆不可
얻을 수 있는 원이라 함은, 나무를 뚫어 불을 구하고 땅을 파서 물을 얻으며, 복을 닦아서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고 아라한과 벽지불의 과위를 얻으며, 나아가 모든 부처님 법왕이 되는 것이니, 이와 같은 것들은 모두 얻을 수 있는 원이라 한다.
014_0796_c_11L可得願者鑽木求火穿地得水福得人天中生及得阿羅漢辟支佛乃至得諸佛法王如是等名皆可得願
다시 얻을 수 있는 원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세간의 것이고, 둘째는 출세간(出世間)의 것이다. 이 안의 것은 세간의 원이기 때문에 중생의 원을 만족시킬 수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 하면, 음식과 평상과 침구에서 등촉 등에 이르기까지 구하는 물건을 모두 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014_0796_c_14L可得願有二種一謂世閒二謂出世閒是中世閒願故滿衆生願何得知以飮食臥具乃至燈燭所須之物皆給與之
【문】 보살은 무엇 때문에 중생들에게 얻기 쉬운 원은 주면서 어려운 것은 주지 않는가?
014_0796_c_17L問曰菩薩何以故與衆生易得願不與難者
【답】 소원에는 하ㆍ중ㆍ상이 있다. 아래의 소원[下願]은 이 세상에서의 즐거운 인연이 이르게 하는 것이고, 중간의 소원[中願]은 뒷세상에서의 즐거운 인연을 주는 것이며, 맨 위의 소원[上願]은 열반의 인연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아래의 소원을 주고, 그 다음에 중간의 소원에 미치며, 그런 뒤에 맨 위의 소원을 주게 된다.
014_0796_c_18L答曰願有下下願令致今世樂因緣中願與後世樂因緣上願與涅槃因緣是故先與下願次及中願然後上願
014_0797_a_01L또 중생은 지금의 즐거움에 집착하는 이가 많고, 뒤의 즐거움을 구하는 이는 적으며,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는 이는 더욱더 적다. 만일 많은 것을 말하게 되면 적은 것은 역시 그 안에 포함된다.
또 이 경의 전후에서는 대부분 뒷세상과 열반의 도를 설명했으며, 금생에 이익되는 일은 적게 설명하고 있다.
014_0796_c_21L復次生多著今樂少求後樂涅槃樂者轉復少也若說多者少亦攝之復次經前後多說後世涅槃道少說今世利事
보살의 법에서는 언제나 중생에게 갖가지 이익을 주는 것이요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처음에는 마음으로 다만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大乘)의 법만을 행하게 하려 할 뿐이나 그 교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그 다음에 성문이나 벽지불의 도를 주며, 그것도 할 수 없으면 10선(善)과 4범행(梵行) 등을 주어서 복덕을 닦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중생이 그것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런 중생들을 버려서는 안 되고 이 세상의 이익이나 주어야 되나니, 이른바 음식 등이 그것이다.
014_0797_a_02L菩薩法者常與衆生種種利益不應有捨所以者何初心但欲令諸衆生行大乘法以不堪受化次與聲辟支佛道若復不能當與十善梵行等令修福德若衆生都不樂者是衆生不應遺捨當與今世利益謂飮食等也
또 범부가 비록 사람에게 음식 등을 준다 하더라도 그의 소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이면 모두가 이 세상의 일이나 뒷세상의 일에 대한 인연이 있어서이다. 성문과 벽지불은 비록 인연이 없이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킬지라도 이롭게 하는 것이 매우 적으며, 보살마하살은 단(檀)바라밀을 행한 업의 인연 때문에 국왕이 되기도 하고 혹은 큰 장자(長者)가 되기도 하여 재물이 풍부하고 한량없으면서 사방에서 중생들이 와서 구하면 모두 다 만족시켜 준다.
014_0797_a_08L復次凡夫雖能與人飮食等滿彼願者皆有因緣若今世事若後世事聲聞辟支佛雖無因緣滿衆生願而所益甚少菩薩摩訶薩行檀波羅蜜業因緣故得爲國王或爲大長者財富無量四方衆生若來求盡滿足之
빈두거사(頻頭居士)18) 같은 이는 큰 단월(檀越)이 되어 7보로 된 큰 평상에 앉아서는 금강(金剛)으로 다리를 삼아 하늘의 이불을 펴고 적진주(赤眞珠)로 위에 장막을 치고서 좌우에는 각각 8만 4천씩의 시중을 세워 놓고 모두를 기묘하게 장엄한 뒤에 4대문(大門)을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마음껏 구하는 이들을 위하여 밤낮 여섯 때 동안 북을 울리고 또 광명을 놓았으므로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으로서 북소리를 듣고 광명을 받는 이면 모두 다 오지 않음이 없었다.
014_0797_a_14L如頻頭居士爲大檀越坐七寶大牀金剛爲腳敷以天褥赤眞珠上爲帳幔左右立侍各八萬四千皆莊嚴琦妙開四大門恣所求晝夜六時鳴鼓又放光明十方無量衆生有聞鼓聲光明觸身者無不悉來
이렇게 온 이들이 갖가지의 음식을 얻고자 하면 장자는 그들이 크게 모인 것을 보고 즉시 잠자코 허공을 우러러 쳐다보는데, 이때 공중에서는 갖가지의 온갖 음식들이 비처럼 내리므로 모두는 마음대로 먹게 되었다. 만일 중생들이 스스로 가서 취하지 않으면 좌우에 있던 시중들이 분포되어서 그것을 주었고 충분하게 먹은 뒤에야 그만두었다.
014_0797_a_20L欲得種種飮食者長者見其大集卽時默然仰視虛空於時空中雨種種百味之食隨意皆得若衆生不自取者左右給使分布與之足滿乃止
014_0797_b_01L음식에서처럼 의복과 침구와 보물 등을 구하는 이에게도 모두 역시 그렇게 했으니, 중생들이 바라는 것을 마음껏 충족시킨 연후에야 법을 설하여 4식(食)을 여의고 모두를 아비발치(阿鞞跋致)의 지위에 머무르게 했다. 이와 같은 등의 보살은 신통의 힘으로써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었다.
014_0797_a_23L須飮食衣被臥具寶物等皆亦如是恣衆生所欲已然後說法令離四食皆住阿鞞跋致地如是等菩薩神通力故滿衆生願
【문】 부처님께서 계실 때에는 오히려 굶주림이 있었고 하늘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서 중생들은 곤액을 받았었다. 부처님도 오히려 온갖 중생들의 소원을 다 채워주지 못하셨는데 어떻게 보살이 그 소원들을 채워준다는 것인가?
014_0797_b_04L問曰佛在時衆生尚有飢天不降雨衆生困弊佛猶不能滿一切衆生之願云何菩薩能滿其願
【답】 보살은 10지(地)에 머물러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에 들어가 삼천대천세계에서 때로는 처음에 뜻을 일으켜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아비발치를 나타내기도 한다. 혹은 일생보처(一生補處)로써 도솔천(兜率天) 위에서 모든 하늘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도솔천 위에서 내려와 정반왕(淨飯王)의 궁전에 태어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출가하여 성불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대중 가운데서 법륜(法輪)을 굴리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은 열반에 들어가서 7보의 탑을 일으켜 두루 모든 국토의 중생으로 하여금 사리(舍利)에 공양하게 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때로는 법이 도통 없어져서 다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014_0797_b_06L答曰菩薩住於十地入首楞嚴三昧於三千大千世界或時現初發意六波羅蜜或現阿鞞跋致或現一生補處於兜率天上爲諸天說法或從兜率天上來下生淨飯王宮或現出家成佛或現大衆中轉法輪度無量衆生或現入涅槃起七寶塔遍諸國令衆生供養舍利或時法都滅盡
보살이 이익되게 하는 일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부처님이겠는가. 그리고 부처님의 몸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진신(眞身)이고, 둘째는 화신(化身)이다. 중생이 부처님의 진신을 친견하면 원마다 만족하지 않음은 없다.
014_0797_b_14L菩薩利益如是何況於佛而佛身有二一者眞身二者化身衆生見佛眞無願不滿
부처님의 진신이라 함은, 허공에 두루하고 광명이 시방을 두루 비추며 설법하는 음성 역시 시방의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두루하므로 그 안에 가득 찬 대중은 모두가 함께 법을 듣고 그 설법은 쉬지 않으며 같은 때에 저마다 듣는 것에 따라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
014_0797_b_17L佛眞身者遍於虛空明遍炤十方說法音聲亦遍十方量恒河沙等世界滿中大衆皆共聽說法不息一時之頃各隨所聞而得解悟
겁(劫)이 다하여 마치면 중생은 그가 행한 업의 인연 때문에 큰 비가 끊임없이 쏟아지므로 3대(大)는 제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오직 겁이 다할 때에만 있는 시방의 바람이 일어나 서로가 다시 상대하면서 이 물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과 같다.
014_0797_b_21L如劫盡已衆生行業因緣故大雨澍下閒無斷絕三大所不能制有劫盡十方風起更互相對能持此
014_0797_c_01L이와 같이 법성신(法性身)의 부처님은 설법하는 것이 있지만 10주(住) 보살을 제외한 3승(乘)의 사람은 모두가 지니지 못하게 되며 오직 10주 보살만이 불가사의한 방편의 지혜 힘이 있으므로 모두 듣고 받을 뿐이다.
014_0797_c_01L如是法性身佛有所說法除十住菩薩三乘之人皆不能持惟有十住菩薩不可思議方便智力悉能聽受
중생으로서 그 법신불을 본 이면 3독(毒)이 없게 되고 많은 번뇌와 춥고 덥고 하는 모든 고통이 모두 다 소멸되면서 원마다 만족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마치 여의주(如意珠) 같은 것도 오히려 중생으로 하여금 원하는 대로 모두 얻게 하는데 하물며 부처님이겠는가. 여의주는 온갖 세간의 원을 이루어 주고 부처님은 온갖 출세간의 원을 이루어 주나니, 만일 “부처님은 중생의 소원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말은 옳지 못하다.
014_0797_c_03L衆生其有見法身佛無有三毒及衆煩惱寒熱諸苦一切皆滅無願不滿如如意珠尚令衆生隨願皆得豈況於珠與一切世閒之願佛與一切出世閒願若言佛不能悉滿衆生所願是語不然
또 석가모니부처님은 왕궁에 몸을 받으면서 인간이 받는 법으로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잠을 자는 등이 있고 모든 비방과 늙고 병들고 죽는 일 등을 나타 내시면서도 속마음의 지혜와 신령한 덕은 참 부처님의 바른 깨달음[正覺]과 다름이 없으셨다.
014_0797_c_09L復次釋迦文尼佛王宮受現受人法有寒熱飢渴睡眠受諸誹謗死等內心智慧神德眞佛正無有異也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키려 하여 모두 다 만족되게 하는데도 만족해하지 않는 이는 헤아릴 수 없는 세계로부터 오면서 중생으로서의 옷과 밥에 대한 원은 만족하나 괴로움을 면치 못했으므로 이제는 다만 열반무위(涅槃無爲)의 상락(常樂)으로써만 그들을 이익되게 하나니, 마치 사람이 친한 이를 가엾이 여기어 독이 섞인 맛있는 음식을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세간의 원이란 모든 결사(結使)를 내고, 또 그것을 여읠 때에는 마음에 큰 고통이 생기는 것이므로 요긴하게 여기지 않는다.
014_0797_c_12L欲滿衆生所願悉皆能滿而不滿者以無數世來常滿衆生衣食之願而不免苦今但以涅槃無爲常樂益之如人憐愍所親不與雜毒美食如是世閒願者生諸結使復離時心生大苦是故不以爲要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미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켰는데도 중생들 스스로가 얻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부처님께서 발가락으로 땅을 어루만지자 즉시 국토가 7보로 장엄되었다. 우리의 불국토가 이렇건만 원해(怨害)가 많은 이들이 되면 불국토의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마치 용왕은 평등한 마음으로 비를 내리지만 사람에게는 물이 되고 아귀(餓鬼) 몸 위에서는 모두 숯불이 되는 것과 같다.
014_0797_c_17L復次有人言釋迦牟尼佛已滿衆生所願而衆生自不能得如『毘摩羅詰經』說佛以足指案地卽時國土七寶莊嚴佛國如是爲多怒害者現佛國異如龍王等心降雨在人爲水餓鬼身上皆爲炭火
014_0798_a_01L【문】 만일 모든 중생들의 소원을 다 만족시킬 수 있다 한다면 중생은 끝이 있고, 이들은 모든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을 받는 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중생의 소원을 다 만족시켰기 때문이며, 고통을 여의고 쾌락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014_0797_c_23L問曰若能滿一切衆生願者則衆生有邊無有受諸飢寒苦何以故一切衆生皆滿所願願離苦得樂故
【답】 모든[一切] 중생을 다 만족시킨다고 할 때의 모든[一切]이란 진실로 모든 것은 아니다.
마치 『법구경』에 이러한 게송이 있는 것과 같다.
014_0798_a_03L答曰滿一切名字一切非實一切如『法句』偈說

모든 것은 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폭력의 아픔[杖痛]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없나니
자기를 용서하듯 남에게도 비교하면서
죽이지도 말고 폭력을 휘두르지도 말라.
014_0798_a_04L一切皆懼死
莫不畏杖痛
恕己可爲譬
勿殺勿行杖

비록 “모든[一切] 것은 폭력의 아픔을 두려워한다”고 말하기는 하나, 마치 무색계(無色界)의 중생은 몸이 없기 때문에 폭력의 고통이 없고, 색계(色界)의 중생은 비록 몸이 있기는 하나 역시 폭력의 고통이 없으며, 욕계(欲界)의 중생 또한 폭력의 고통을 받지 않는 이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이란 말은 폭력을 당하게 될 이를 염두에 두면서 ‘모든’이라 한 것일 뿐 진실로 ‘모든’은 아니다.
014_0798_a_06L雖言一切畏杖痛如無色衆生無身則無杖痛色界衆生雖可有身無杖痛欲界衆生亦有不受杖痛一切謂應得杖者說言一切非實一切
그러므로 보살이 ‘모든’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가능한 이에 대한 말이다. 그러나 보살의 마음은 제한이 없으므로 복덕의 과보도 역시 한량이 없건만 단지 중생이 한량없는 아승기겁(劫)에 지은 죄의 두꺼운 장애 때문에 얻지 못할 뿐이다.
014_0798_a_11L以是故菩薩滿一切衆生所願謂應可得者然菩薩心無齊限福德果報亦無有量但衆生無量阿僧祇劫罪厚障故而不能得
마치 사리불의 제자 나빈주(羅頻周)비구와 같다. 그는 계율을 지니고 정진하면서 걸식을 했으나 6일 동안이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므로 7일째가 되어서는 거의 죽을 지경에 다다랐다. 그리하여 같은 도반(道伴)이 걸식하여 가지고 와서 그에게 주었으나 새가 밥을 차고 날아가 버렸다.
014_0798_a_14L如舍利弗弟子羅頻周比丘持戒精進乞食六日而不能得乃至七日命在不久有同道者乞食持與鳥卽持去
이때 사리불이 목건련에게 “당신의 큰 신통력으로 이 밥을 수호해서 그로 하여금 먹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으므로, 즉시 목련은 밥을 가지고 가서 그에게 주었는데 처음 막 밥을 입으로 가져가려고 하자 그만 진흙으로 변해버렸다.
014_0798_a_17L時舍利弗語目揵連汝大神力守護此食令彼得之卽時目連持食往與始欲向口變成爲泥
그리하여 또 사리불이 걸식한 밥을 가져다주자 이번에는 그의 입이 저절로 붙어버렸다. 마지막에 부처님께서 오셔서 밥을 가져다 그에게 주었더니, 부처님의 한량없는 복덕의 인연 때문에 그는 비로소 밥을 먹게 되었다. 이 비구는 다 먹은 뒤에 마음에 기쁨을 내면서 더욱더 믿고 공경하게 되었다.
014_0798_a_20L又舍利弗乞食持與而口自合最後佛來持食與之以佛福德無量因緣故令彼得食是比丘食已心生歡喜倍加信敬
014_0798_b_01L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시되 “유위(有爲)의 법은 모두가 괴로움의 모양[苦相]이다” 하시며, 그를 위하여 4제(諦)를 말씀하시자 바로 그때 그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뜻이 풀리면서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그런데 박복한 중생으로서 죄가 이보다도 더 심한 이도 있나니, 이는 부처님도 구제할 수가 없다.
014_0798_a_23L佛告比丘有爲之法皆是苦相爲說四諦卽時比丘漏盡意解得阿羅漢道有薄福衆生罪甚此者佛不能救
또 중생은 얻을 수 없음을 아시고, 깊이 법성을 통달하셨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이는 제도할 수 있다, 이는 제도할 수 없다”고 기억하거나 분별함이 없으시고 마음이 항상 고요히 사라져서 뜻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나니, 이 때문에 보살이 온갖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키려 하나 그의 죄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은 보살에게는 아무 허물이 없다.
014_0798_b_03L又知衆生不可得故深達法性故諸佛無有憶想分是可度是不可度心常寂滅意無增減以是故菩薩欲滿一切衆生願彼以罪故而不能得菩薩無咎
음식(飮食)이라 함은 간략하게 말하면 거칠거나 미세한 두 가지가 있나니, 떡ㆍ밥 등의 온갖 음식이 그렇다. 경에서는 비록 “4식(食)으로 중생이 오래 머무른다”고 말씀하나 이것은 다만 단식(段食)을 말할 뿐이며 그 밖의 것은 형체가 없으므로 상대에게 줄 수가 없다. 만일 단식을 보시하면 세 가지 밥[三食]을 주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단식으로 인하여 세 가지 밥이 더욱 늘기 때문이다. 마치 경에서 “단월이 밥을 보시하면 받는 이에게 다섯 가지 일의 이익[五事利益]을 준다”고 말한 것과 같다.
014_0798_b_07L略說麤細二種餠飯等百味之食經雖說四食衆生久住而此但說揣餘者無色不可相與若施揣食與三食何以故因揣食故增益三食如『經』所說檀越施食則與受者五事利益
음료[飮]라 함은 통틀어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는 풀과 나무로 만든 술[草木酒]이니, 이른바 포도와 사탕수수 등과 그리고 모든 곡식으로 만든 술이다. 둘째는 풀과 나무로 만든 즙[草木漿]이니, 사탕수수의 즙, 포도의 즙, 석밀의 즙[石蜜漿], 안석류의 즙[安石榴漿], 배와 능금의 즙, 파로사(波盧沙] 과일즙 등과 그리고 모든 곡식에서 짠 즙 등이다. 이러한 것을 합하여 인간 안에서의 음식이라 한다. 그리고 하늘의 음식에는 이른바 수타감로미(修陀甘露味)와 하늘의 과일과 밥 등이며 마두마타바(摩頭摩陀婆)의 즙 등이 있다.
014_0798_b_13L摠說二種一者草木酒所謂蒲桃甘蔗等及諸穀酒二者草木漿甘蔗漿蒲桃漿石蜜漿安石榴漿柰漿波盧沙果漿等及諸穀漿如是和合人中飮食及天飮食所謂修陁甘露味天果食等摩頭摩陁婆漿等
중생들이 각각 먹고 있는 음식이라 함은, 혹은 곡식을 먹는 이들이 있고 혹은 고기를 먹는 이들이 있으며 혹 깨끗한 음식과 깨끗하지 않은 음식을 먹는 이도 있는데, 이들이 와서 모두 배불리 먹게 된다.
014_0798_b_18L衆生各各所食或食穀者或食肉者或食淨者不淨者來皆飽滿
의복(衣服)이라 함은, 의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중생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솜ㆍ비단ㆍ털ㆍ가죽 등이다. 둘째는 혹은 풀과 나무에서 생기는 것이니, 이른바 베ㆍ가는 모직ㆍ나무껍질 등이다. 모든 하늘들의 옷도 있나니, 이 옷에는 날과 씨가 없고 저절로 나무에서 나오며 빛이 나고 가볍고 보드랍다.
014_0798_b_20L衣服衣有二種或從衆生生所謂緜絹皮韋等或從草木生所謂布疊皮等有諸天衣無有經緯自然樹出光色輕軟
014_0798_c_01L침구[臥具]라 함은, 평상ㆍ이부자리ㆍ장막(帳幕)ㆍ베개 등이다.
바르는 향[塗香]이라 함은 두 가지가 있나니, 첫째는 전단나무[旃檀木] 등을 문질러 몸에 바르는 것이요 둘째는 갖가지 향을 찧어서 가루를 만들어 그 몸에다 바르거나 또는 옷에다 쪼이고 땅이나 벽에 바르는 것이다.
탈것[乘]이라 함은 이른바 코끼리ㆍ말ㆍ수레 등이다.
014_0798_c_01L臥具牀榻被褥幃帳塗香有二種一者栴檀木等以塗身二者種種雜香擣以爲末塗其身及熏衣服幷塗地壁謂象車輿等
방사(房舍)라 함은 이른바 흙과 나무와 보물로써 이루어진 누각(樓閣)ㆍ전당(殿堂)ㆍ궁관(宮觀) 등이니, 추위와 더위와 바람과 비, 도적 등속을 막기 위해서다.
등불과 초[燈燭]라 함은 기름[肥膏]ㆍ소유(蘇油)ㆍ옻칠[漆]ㆍ밀[蠟]ㆍ명주(明珠) 등이다.
모든 물건[諸物]이라 함은 온갖 중생들의 필요한 물건들이니, 다 자세히는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요약하여 “모든 물건”이라고 말한 것이다.
014_0798_c_05L房舍所謂土木寶物所成樓閣殿堂宮觀等以障寒熱風雨賊盜之屬燈燭所謂脂膏漆蠟明珠等諸物是一切衆生所須之物不可具說故略言諸物
【문】 여기서는 무엇 때문에 사르는 향[燒香]과 예쁜 꽃[妙華]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
【답】 “모든 물건”이라고 하게 되면 모두가 그 안에 다 포함된다.
014_0798_c_09L此中何以不說燒香妙華等答曰諸物皆已攝之
【문】 그렇다면 간략히 “음식ㆍ의복ㆍ꾸미개[莊嚴具]”의 이 세 가지만을 말해야 된다.
【답】 이 모든 물건들은 바로 필요한 것들이다. 중생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데는 음식이 우선이 되고, 그 다음에는 의복이다. 몸의 때[垢]와 악취 때문에 바르는 향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침구가 되며, 추위와 비에 대비하여 방사가 필요하고, 캄캄한 데서 등불과 초가 필요하게 된다.
014_0798_c_11L問曰若爾者但應略說三種飮食衣服莊嚴之具答曰此諸物是所須要者若慈念衆生飮食爲先次以衣服以身垢臭須以塗香次以臥具寒雨須房舍黑闇須燈燭
【문】 꽃과 향도 역시 악취를 제거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는가?
【답】 꽃은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속이 시들어지며 이익이 적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사르는 향[燒香]은 추울 때에는 필요하지만 더울 때는 고통거리이다. 바르는 향은 추울 때나 더울 때에 다 통용하는데 추울 때에 침수향(沈水香)을 섞고 더울 때에는 전단향(栴檀香)을 섞어서 몸에 바르게 되나니, 이 때문에 다만 바르는 향을 말할 뿐이다.
014_0798_c_16L問曰華香亦能除臭何故不說答曰華非常有亦速萎爛利益少故是故不說燒香者寒則所須熱時爲塗香熱通用寒時雜以沈水熱時雜以栴檀以塗其身是故但說塗香
【문】 만일 단(檀)바라밀을 행하여 한량없는 과보를 얻게 되면 온갖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중생의 원을 만족시키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는가?
014_0798_c_20L若行檀波羅蜜得無量果報能滿一切衆生所願何故言欲滿衆生願當學般若波羅蜜
014_0799_a_01L【답】 먼저 이미 “반야바라밀과 화합하기 때문에 단바라밀이라는 이름을 얻는다”고 설명했는데, 이제 다시 말하겠다.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야 할 것은 하나의 국토나 하나의 염부제를 말한 것이 아니며 모든 시방세계의 6취(趣) 중생의 소원을 다 만족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다만 보시만으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로써 가깝거나 먼 모양을 깨뜨려야 하고, 온갖 중생이라는 모양과 온갖 중생이 아니라는 모양을 깨뜨리면서 모든 장애를 제거하기 위하여 손가락을 튀기는 잠깐 사이에 한량없는 몸으로 변화하여 두루 시방으로 가서 온갖 중생들의 소원을 만족시키는 것이니, 이와 같은 신통의 이익은 반드시 반야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살이 온갖 중생의 원을 만족시키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798_c_23L答曰先已說以般若波羅蜜和合故得名檀波羅蜜今當更說可滿衆生願者非謂一國土一閻浮都欲滿十方世界六趣衆生所願非但布施所能辦故以般若波羅蜜破近遠相破一切衆生相非一切衆生相除諸㝵故彈指之頃化無量身遍至十方能滿一切衆生所願如是神通利益要從般若出生以是故薩欲滿一切衆生願當學般若波羅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의 중생을 단(檀)바라밀 가운데19) 세우고자 하고, 시라(尸羅)ㆍ찬제(羼提)ㆍ비리야(毘梨耶)ㆍ선(禪)ㆍ반야바라밀 가운데 세우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799_a_10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使如恒河沙等世界衆生立於檀波羅蜜立於尸羅羼提毘梨耶般若波羅當學般若波羅蜜
【論】 【문】 이 이치의 차례에는 어떤 인연이 있는가?
014_0799_a_13L【論】
問曰是義次第有何因緣
【답】 이익에는 세 가지의 이익이 있나니, 이 세상의 이익과 뒷세상의 이익과 마지막의 이익[畢竟利]이 그것이다. 다시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나니, 이 세상의 즐거움과 뒷세상의 즐거움과 출세간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앞에서는 이 세상의 이익과 즐거움을 설명했고 여기서는 뒷세상과 세간 밖의 이익과 즐거움을 말했다. 이 때문에 중생들로 하여금 6바라밀에 머무르게 한다.
014_0799_a_14L答曰利有三種今世利世利畢竟利復有三種樂今世後世出世樂前說今世利樂此說後世世利樂以是故令衆生住六波羅蜜
보살은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염려하기를 부모가 자식을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여 그 자비로운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나니, 먼저 음식으로써 그의 몸에 충복시키어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제거하고 그 다음에 의복으로써 그의 몸을 장엄하여 즐거움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보살은 그래도 마음에 부족한지라 다시 생각하기를 “중생은 이미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은 얻었다”고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뒷세상의 즐거움을 얻게 해야겠다”고 한다.
014_0799_a_17L菩薩愍念衆生過於父母念子慈悲之心徹於骨髓先以飮食充足其身除飢渴苦次以衣服莊嚴其身令得受菩薩心不滿足復作是念衆生已得今世樂復更思惟令得後世樂
014_0799_b_01L만일 세간의 6바라밀로써 그를 가르치게 되면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을 얻게 되지만 오랜 뒤에는 도로 생사의 윤회를 받게 될 것이므로 다시 “세간 밖의 6바라밀로써 무위(無爲)의 상락(常樂)을 얻게 하리라”고 한다.
014_0799_a_22L若以世閒六波羅蜜教之則得人天中樂久後還來輪轉生死當復以出世閒六波羅蜜令得無爲常樂
또 먼저 의복과 꽃과 향으로써 그의 몸을 장엄하고 지금은 공덕으로써 그 마음을 장엄하게 한다. 만일 세 가지의 장엄이 있으면 구족되어서 보다 더 지나가는 것이 없으리니, 첫째는 의복과 7보(寶) 등이고, 둘째는 복덕이며, 셋째는 도의 법[道法]이다. 보살이 이 세 가지를 두루 갖추어서 중생을 장엄하려고 하기 때문에 앞에서는 공덕의 과보를 말하고 지금은 공덕의 인연을 설명하는 것이다.
014_0799_b_02L復次先以衣服華香等莊嚴其身今以功德莊嚴其心若有三種莊嚴則爲具足有過者一者衣服七寶等二者福德三者道法菩薩欲具足三種莊嚴衆生故先說功德果報今說功德因緣
또 앞에서는 비록 큰 보시가 있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지은 죄 때문에 모두 얻지 못함을 설명했나니, 마치 『아귀경(餓鬼經)』20)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비록 그 음식이 있다 하더라고 먹을 수가 없고 변하여 숯불이 되기도 하며 깨끗하지 못한 물건이 되어 버린다.
014_0799_b_07L復次前說雖有大施而衆生罪故能悉得如『餓鬼經』說雖與其食而不得噉變成炭火不淨之物
또 보살은 온갖 중생을 버리지 않고 마땅히 방편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밥의 이익을 얻게 해야 하나니, 이 때문에 복된 업을 닦도록 가르치면서 스스로 행하여 스스로 얻게 한다. 그리고 보살은 인연을 잘 알고 있으므로 억지로 가르쳐서 얻게 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차례로 중생들을 가르치면서 6바라밀에 머무르게 한다.
014_0799_b_10L又菩薩不捨一切當作方便令衆生得衣食利是故教修福業自行自得菩薩善知因緣不可强得教令得之以是故次第教衆生住六波羅蜜
【문】 보살의 뜻과 원은 시방의 온갖 중생들로 하여금 6바라밀에 머무르게 하는 것인데 무엇 때문에 다만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의 중생’이라고만 말씀하는가?
014_0799_b_14L問曰菩薩志願令十方一切衆生住六波羅蜜何故但說如恒河沙世界衆生
【답】 법을 듣게 되는 이들이 항하의 모래같이 많은 것을 듣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새로 뜻을 낸[新發意] 보살에게 끝이 없고 한량없어서 많고 많다고 하게 되면 산만해지지만, 만일 큰 보살이라면 항하의 모래같이 많다 해도 수(數)로 여기지 않는다.
014_0799_b_16L答曰爲聽法者聞恒河沙故又於新發意菩薩以無邊無量爲多多則致亂大菩薩不以恒河沙爲數
또 “항하사 같다”고 말하면 이것은 끝이 없고 한량없는 수량이니, 후품(後品) 중에서의 설명과 같다.
또 항하사 같다고 함은 이미 ‘시방의 모든 세계’라고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역시 ‘하나의 항하사 같다’고 말하지는 않나니, 힐난하지 않아야 한다. 이 때문에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수의 세계’라 해도 허물은 없다.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의 뜻은 먼저 설명한 것과 같다.
014_0799_b_19L復次說如恒河沙者是無邊無量數如後品中復次如恒河沙者已說十方諸世此中亦不言一恒河沙不應爲難以是故說如恒河沙世界無咎恒河沙世界義如先說
014_0799_c_01L중생(衆生)이라 함은 5중(衆)과 18계(界)와 12입(入)과 6종(種)과 12인연(因緣) 등의 많은 법 가운데서 가정하여 “이것은 하늘이다. 이것은 사람이다. 이것은 소다. 이것은 말이다”라는 식으로 중생의 이름을 붙인 것들이다.
014_0799_c_01L衆生者於五衆八界十二入六種十二因緣等衆多法中假名衆生是天是人是牛是馬
중생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움직이는 것과 조용한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몸과 입의 업(業)을 내게 되고 조용한 것은 그렇지 못하다. 빛깔이 있는[有色] 중생과 빛깔이 없는[無色] 중생, 발이 없거나 두 발 달린 것, 네발 달린 것, 여러 발이 있는 중생, 세간과 세간 밖의 중생, 큰 것과 작은 것, 현인과 성인과 범부, 사정취(邪定聚)ㆍ정정취(正定聚)ㆍ부정취(不正聚)의 중생이 있다.
014_0799_c_03L衆生有二種動者靜者動者生身靜者不能有色衆生無色衆生二足四足多足衆生世閒出世閒衆生大者小者賢聖凡夫邪定正定不定衆生
또 괴롭고 즐겁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중생, 상ㆍ중ㆍ하의 중생과 배울 것이 있고[學] 배울 것이 없고[無學] 배울 것이 있는 이도 아니고 배울 것이 없는 이도 아닌[非學非無學] 중생, 생각이 있거나[有想] 생각이 없거나[無想]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非有想非無想] 중생,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중생이 있다.
014_0799_c_08L不苦不樂衆生下衆生無學非學非無學衆生無想非有想非無想衆生欲界無色界衆生
욕계의 중생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선근(善根)에서 상ㆍ중ㆍ하가 있기 때문이다. 상은 6욕천(欲天)이고, 중은 인간 세계에서 부귀를 누리는 것이며, 하는 인간 세계에서의 비천한 사람이다. 얼굴들이 같지 않기 때문에 사천하(四天下)가 구별되고 다르다. 착하지 않은 것에도 세 품류가 있다. 상은 지옥이고, 중은 축생이며, 하는 아귀이다.
또 욕계의 중생에는 열 가지가 있으니, 3악도(惡道)와 인간과 여섯의 하늘[六天]이 그것이다.
014_0799_c_11L欲界衆生者有三種以善根有上下故上者六欲天者人中富貴下者人中卑賤以面類不同故四天下別異不善亦有三品上者地獄中者畜生下者餓鬼復次欲界衆生有十種三惡道人及六天
지옥에는 세 가지가 있나니, 열(熱)지옥과 한(寒)지옥과 흑암(黑闇)지옥이 그것이다. 축생에도 세 가지가 있나니, 공중으로 다니는 것[空行]과 육지로 다니는 것[陸行]과 물속에서 다니는 것[水行]이 있으며, 낮에 다니는 것과 밤에 다니는 것과 밤낮으로 모두 다니는 것이 있다. 이와 같은 등의 차별이 있다.
014_0799_c_16L地獄有三種熱地獄寒地獄黑闇地畜生有三種空行陸行水行晝行夜行晝夜行如是等差別
귀신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폐귀(弊鬼)와 아귀(餓鬼)가 그것이다. 폐귀는 하늘[天]들과 같이 즐거움을 받으나 다만 아귀와 같이 살면서 곧 그들의 주인이 된다. 아귀의 배는 마치 산골짜기같이 크면서도 목구멍은 바늘만큼 하며 오직 검은 피부와 힘줄과 뼈의 세 가지가 있을 뿐이며 수 없는 세월동안 음식이라는 이름조차도 듣지 못하는데 하물며 볼 수가 있겠는가.
014_0799_c_19L鬼有二種弊鬼餓鬼弊鬼如天受樂但與餓鬼同住卽爲其主餓鬼腹如山谷咽如身惟有三事黑皮無數百歲不聞飮食之名何況得見
014_0800_a_01L또 귀신에는 입에서 불을 내뿜는 것이 있는데 날아다니는 나비들이 그 불에다 몸을 던지므로 그것을 음식으로 삼는다. 또한 똥ㆍ눈물ㆍ침ㆍ고름ㆍ피 및 그릇을 씻은 찌꺼기를 먹으며, 혹은 제사 지낸 음식을 먹기도 하고 혹은 아이를 낳은 뒤의 부정(不淨)한 것을 먹기도 하나니, 이러한 등의 여러 가지 아귀가 있다.
014_0799_c_23L復有鬼從口出飛蛾投火以爲飮食有食糞涕唾膿血洗器遺餘或得祭祀或食產生不淨如是等種種餓鬼
6욕천(欲天)이라 함은 4왕천(王天) 등이며 이 여섯 하늘의 중간에 또 다른 하늘들이 있나니, 이른바 지영락천(持瓔珞天)과 희망천(戱忘天)과 심에천(心恚天)과 조족천(鳥足天)과 낙견천(樂見天)이 그것이다. 이 모든 하늘은 모두 여섯의 하늘에 속해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욕계의 중생에게는 마땅히 열한 가지가 있어야 한다. 먼저 5도(道)를 설명했고 이제 아수라도(阿修羅道)를 더했기 때문이다”고 한다.
014_0800_a_03L六欲天四王天等於六天中閒別復有天所謂持瓔珞天戲忘天心恚天鳥足樂見天此諸天等皆六天所攝人言欲界衆生應有十一種先說五今益阿修羅道
【문】 아수라는 곧 5도에 속해야 할 것이다. 이 아수라는 하늘[天]도 아니고 사람[人]도 아니며, 지옥은 고통이 많고 축생과는 형상이 다르므로 귀신의 세계[鬼道]에 속해야 할 것이다.
014_0800_a_08L問曰阿修羅卽爲五道所攝是阿修羅非天非人地獄苦多畜生形異如是應鬼道所攝
【답】 그렇지 않다. 아수라는 힘이 삼십삼천(三十三天)과 똑같다. 왜냐하면 모든 하늘들을 격파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경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아수라에게 격파를 당하면 네 가지 병사들은 모두가 연뿌리의 구멍으로 들어가 숨는다고 한다. 5욕락(欲樂)을 받는 것이 하늘들과 비슷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등의 이러한 위력이 있는데 어떻게 아귀에 속할 수가 있겠는가. 이 때문에 6도가 있어야 한다.
014_0800_a_10L不然阿修羅力與三十三天等以故或爲諸天所破或時能破諸天如經中說釋提桓因爲阿修羅所破四種兵衆入藕根孔以自藏翳受五欲樂與天相似爲佛弟子如是威力何得餓鬼所攝以是故應有六道
또 아수라ㆍ견타라(甄陀羅)21)ㆍ건답바(乾畓婆)22)ㆍ구반다(鳩槃茶)23)ㆍ야차(夜叉)ㆍ나찰(羅刹)ㆍ부타(浮陀)24) 등의 큰 신[大神]들은 바로 하늘과 아수라들의 백성들이어서 즐거움은 누리되 모든 하늘들보다는 적으나 위덕으로 변화를 마음대로 하게 된다.
014_0800_a_16L如阿修羅甄陁羅乾沓婆鳩槃茶夜叉羅剎浮陁等大神是天阿修羅民衆受樂小減諸天威德變化隨意所作
이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의심하면서 말하기를 “이 수라(修羅)는 수라(修羅)진(秦)나라 말로 크다(大)는 뜻이다.가 아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들과 같아서 이 아수라는 수라가 아니므로 아수라도라고 처음에 이름을 붙인 것이니, 그 밖의 것과 모두가 동일한 세계[道]이다.
014_0800_a_20L是故人疑言是修羅非修羅秦言大也說者言是阿修羅非修阿修羅道初得名餘者皆同一道
【문】 경에서는 5도(道)가 있다고 말씀하는데 어떻게 6도라고 하는가?
014_0800_a_22L問曰經說有五道云何言六道
014_0800_b_01L【답】 부처님께서 가신 지 오래되고 법이 전해진 지 5백년 뒤에는 많은 다른 것들이 있어서 부파마다[部部] 동일하지 않았다. 혹은 5도를 말하기도 하고 혹은 6도를 말하기도 한다. 만일 5도를 말하는 이도 부처님의 경에서 글을 끌어다 말했을 것이요 6도를 말하는 이도 부처님의 경에서 글을 끌어다 말했을 것이다. 또 마하연(摩訶衍) 중의 『법화경(法華經)』에는 “6취(趣) 중생이 있다”고 말씀하셨나니, 모든 이치를 자세히 살펴보아도 마땅히 6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014_0800_a_23L答曰佛去久遠經法流傳五百年後多有別異部部不同或言五道或言六道若說五者於佛經迴文說五若說六於佛經迴文說六又摩訶衍中『法華經』說有六趣衆生觀諸義旨應有六道
또 선악을 분별하기 때문에 6도가 있다. 선(善)에는 상ㆍ중ㆍ하가 있기 때문에 세 가지 선도(善道)가 있나니, 하늘ㆍ사람ㆍ아수라가 그것이다. 악(惡)에도 상ㆍ중ㆍ하가 있기 때문이니, 지옥과 축생과 아귀의 도가 그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악에는 세 가지 과보가 있으나 선에는 두 가지 과보가 있게 되어, 이 일에서도 서로 어긋난다. 만일 6도가 있다 한다면 이치에 있어서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014_0800_b_06L復次分別善惡故有六道善有下故有三善道阿修羅有上下故地獄畜生餓鬼道若不爾者惡有三果報而善有二果是事相違若有六道於義不違
【문】 착한 법에도 역시 세 가지 과보가 있나니, 아래는 사람이요 중간에는 하늘이며 맨 위는 열반이다.
014_0800_b_10L問曰善法亦有三果下者爲人中者爲天上者涅槃
【답】 여기서는 열반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중생이 과보로서 머무를 곳만을 분별해야 하나니, 열반의 과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착한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37품(品)으로는 열반에 이르게 하고, 둘째는 뒷세상의 즐거움을 내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만 몸을 받는 착한 법을 말할 뿐이요 열반에 이르는 착한 법은 말하지 않는다.
014_0800_b_12L答曰是中不應說涅槃但應分別衆生果報住處涅槃非報故善法有二種一者三十七品能至涅槃能生後世樂今但說受身善法說至涅槃善法
세간의 선(善)에는 세 가지가 있다. 위 갈래[上分]의 인연 때문에 천도(天道)의 과보가 있고, 중간 갈래[中分]의 인연 때문에 인도(人道)의 과보가 있으며, 아래 갈래[下分]의 인연 때문에 아수라도(阿修羅道)의 과보가 있다.
014_0800_b_16L世閒善有三品上分因緣故天道果報中分因緣故人道果報下分因緣故阿修羅道果報
【문】 그대 자신도 “아수라는 하늘들과 힘이 같고 즐거움을 누림이 하늘들과 같아서 다르지 않다”고 말했는데 어찌하여 이제는 “선의 아래 갈래로서 아수라의 과보를 받는다”고 말하는가?
014_0800_b_18L汝自說阿修羅與天等力受樂與天不異云何今說善下分爲阿修羅果報
014_0800_c_01L【답】 사람 가운데서는 출가하여 계율을 받고 도(道)에 이를 수가 있으나 아수라도에서는 결사(結使)가 마음을 가리워서 도를 얻기가 매우 어렵다. 모든 하늘들은 비록 결사를 따른다 하더라도 마음이 곧고 도를 믿게 되지만, 아수라들은 마음이 삿되고 굽은 일이 많고 때때로 도에 가까이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아수라는 비록 하늘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들은 도에 가까이하기가 어려우므로 사람의 아래에 있다. 마치 용왕과 금시조가 힘이 비록 세고 또한 변화를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축생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아수라의 세계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800_b_21L答曰人中可得出家受戒以至於道阿修羅道結使覆心得道甚難諸天雖隨結使心直信道阿修羅衆心多邪曲不時近道以是故阿修羅雖與天相似以其近道難故故在人如龍王金翅鳥力勢雖大亦能變化故在畜生道中阿修羅道亦如是
【문】 만일 용왕과 금시조가 힘이 비록 세다 하더라도 오히려 축생의 세계에 포섭되어 있으므로 아수라도 역시 아귀의 세계에 포섭되어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6도로 만드는가?
014_0800_c_04L問曰若龍王金翅鳥力勢雖大猶爲畜生道攝阿修羅亦應餓鬼道攝以更作六道
【답】 이 용왕과 금시조는 비록 즐거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몸을 뉘고 다니며 형상이 축생과 동일하기 때문에 축생의 세계에 속한다. 지옥과 아귀는 비록 사람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큰 고통을 받기 때문에 사람의 세계에는 들지 못하며, 아수라는 힘도 세고 형상이 사람과 하늘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따로 여섯째의 세계로 세우는 것이다.
014_0800_c_07L答曰是龍王金翅鳥復受樂傍行形同畜生故畜生道攝地獄餓鬼形雖似人以其大苦故入人道阿修羅力勢旣大形似人別立六道是爲略說欲界衆生無色界衆生如後品中說
여기서는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며 욕계의 중생과 색계ㆍ무색계의 중생에 대해서는 후품(後品) 중에서의 설명과 같다.
014_0800_c_12L立檀波羅蜜者菩薩語諸衆生當行布施貧爲大苦無以貧故作諸惡行墮三惡道作諸惡行墮三惡道則不可救衆生聞已捨慳貪心行檀波羅蜜如後品中廣說
단(檀)바라밀 가운데 세운다 함은, 보살이 모든 중생들에게 말하기를 “보시를 행해야 한다. 가난은 큰 고통이요, 없고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나쁜 행을 짓고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모든 나쁜 행을 짓고 3악도에 떨어지게 되면 구제될 수가 없다”고 하면, 중생들이 들은 뒤에 간탐하는 마음을 버리고 단바라밀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후품(後品) 중에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과 같다.
014_0800_c_17L復次菩薩於衆生前種種因種種譬喩而爲說法毀呰慳貪慳貪者自身所須惜不能用見告求心濁色變卽於現身聲色醜惡後世惡業故受形醜陋先不種布施因緣故今身貧賤慳著財物多求不開諸罪門專造惡事故墮惡道中
또 보살이 중생들의 앞에서 갖가지 인연과 갖가지 비유로써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면서 간탐하는 일을 헐뜯는 것이다. 간탐하는 이는 자기 몸에 필요한 것조차도 아까워서 쓰지 못한다. 구하는 이를 보면 마음이 흐려지고 얼굴빛이 변하면서 곧 몸에 소리나 빛이 추악하게 나타난다. 또 뒷세상의 나쁜 업을 심기 때문에 누추한 형체를 받게 되며, 먼저 보시의 인연을 심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받은 몸은 가난하고 천하다. 또 재물을 아끼고 집착하면서 많이 구하기만 하고 쉬지 않는지라 모든 죄의 문이 열리어 오로지 나쁜 일만을 짓기 때문에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014_0800_c_23L復次生死輪轉利益之業無過布施今世後世隨意便身之事悉從施得施爲善導能開三樂天上人中涅槃之樂所以者何好施之人聲譽流布八方信樂無不愛敬處大衆中無所畏難死時無悔
014_0801_a_01L한편 생사의 윤회에서 이익되는 일로서 보시보다 나은 것은 없다. 이 세상과 뒷세상에서 마음대로 되는 몸의 일은 모두가 보시에서 얻는 것이니, 보시는 좋은 길잡이어서 천상과 인간과 열반의 이 세 가지 즐거움을 열어주게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보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명성이 널리 퍼지므로 8방에서 다 믿고 좋아하며 공경하지 않음이 없고 대중 가운데 있을 때에도 두려움이 없으며 죽을 때에는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014_0801_a_06L其人自念我以財物殖良福田人天中樂涅槃之門我必得之所以者何施破慳結慈念受者滅除瞋惱嫉妒心息恭敬受者則除憍慢決定心施疑網自裂知施果報則除邪見及滅無明如是等諸煩惱則涅槃門開
그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재물을 좋은 복밭에 심었으므로 인간 천상의 즐거움과 열반의 문을 반드시 얻게 되리라. 그것은 왜냐하면, 보시는 간탐하는 번뇌를 깨뜨리고 받는 이를 사랑하며 성을 내는 고뇌를 없애고 질투하는 마음을 쉬게 하기 때문이다. 받는 이를 공경하면 곧 교만심이 없어지고 결정된 마음으로 보시하는지라 의심의 그물이 저절로 찢어지며 보시의 과보를 알므로 곧 삿된 소견이 제거되고 무명(無明)이 소멸된다”고 하나니, 이와 같은 등의 모든 번뇌가 파괴되면서 곧 열반의 문이 열린다.
014_0801_a_12L復次非但開三樂而乃能開無量佛道世尊之處所以者何六波羅蜜是佛道檀爲初門行皆悉隨從
또 비단 세 가지 즐거움만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한량없는 부처님의 도와 세존(世尊)의 처소가 열리게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6바라밀은 바로 부처님의 도이고, 단(檀)은 그의 첫 문이며, 그 밖의 행은 모두가 다 그를 따르기 때문이다.
014_0801_a_15L如是等布施有無量功以是因緣故令衆生立檀波羅蜜檀波羅蜜義如先中說
이와 같이 보시에는 한량없는 공덕이 있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중생들을 단바라밀 가운데 서게 하는 것이다. 단바라밀의 이치는 마치 먼저 단(檀)에서의 설명과 같다.
014_0801_a_17L立尸羅者菩薩於衆生前讚說戒行汝諸衆生當學持戒持戒之德拔三惡趣及人中下賤令得天人尊貴乃至佛道
시라(尸羅) 가운데 세운다 함은, 보살이 중생들 앞에서 계행을 찬양하면서 “그대들 모든 중생은 지계(持戒)를 배워야 한다. 지계의 덕은 3악취(惡趣)와 인간 세계의 하천(下賤)에서 구제해 주고 천상과 인간의 존귀(尊貴)를 얻게 하며 부처님의 도에 이르게까지 한다.
014_0801_a_20L戒爲一切衆生衆樂根本譬如大藏出諸珍戒爲大護能滅衆怖譬如大軍破戒爲莊嚴如著瓔珞戒爲大船度生死巨海
계율은 온갖 중생들의 쾌락의 근본이니 마치 큰 창고에서 모든 값진 보배가 나오는 것과 같다. 계율은 크게 보호하는 이가 되어 많은 두려움을 없애 주나니 마치 큰 군사로 도적을 깨뜨리는 것과 같다. 계율은 장엄이 되므로 마치 영락을 붙이는 것과 같고 계율은 큰 배가 되므로 나고 죽는 큰 바다를 잘 건너게 한다.
014_0801_b_01L戒爲大乘能致重寶涅槃城戒爲良藥能破結病戒爲善知識世世隨逐不相遠離令心安隱譬如穿井已見濕泥喜慶自歡無復憂患
014_0801_b_01L계율은 큰 수레[大乘]이어서 중한 보배를 열반의 성에 이르게 하고 계율은 좋은 약이어서 번뇌의 병을 깨뜨려 주며 계율은 선지식(善知識)이어서 세상마다 따라다니며 멀리 여의지 않고 마음을 안온하게 해 주나니, 비유하건대 마치 우물을 팔 때 물기 있는 진흙을 만나게 되면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다시는 더 근심함이 없는 것과 같다.
014_0801_b_05L戒能成就利益諸行譬如父母長育衆子戒爲智梯能入無漏戒能驚怖諸結譬如師子能令群獸懾伏戒爲一切諸德之根出家之要修淨戒者所願隨意譬如如意珠應念時如是等種種讚戒之德令衆生歡發心住尸羅波羅蜜
계율은 모든 행을 성취시키고 이익되게 하는 것이 마치 부모가 여러 아들들을 기르고 자라게 함과 같고 계율은 지혜의 사다리이어서 무루(無漏)에 잘 들게 한다. 계율은 모든 번뇌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이 마치 사자가 많은 짐승을 거느리고 조복되게 함과 같고 계율은 온갖 덕의 근본이어서 출가한 이의 요무(要務)이다. 청정한 계율을 닦는 이는 소원을 뜻대로 이루게 되는 것이 마치 여의주(如意珠)가 생각하는 대로 얻게 됨과 같다”고 한다.
이렇게 갖가지로 계율의 덕을 찬탄함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기뻐하고 마음을 내면서 시라(尸羅)바라밀에 머무르게 한다.
014_0801_b_11L住羼提者衆生前讚歎忍辱忍爲一切出家之力能伏諸惡能於衆中現奇特事忍能守護令施戒不毀忍爲大鎧兵不加忍爲良藥能除惡毒忍爲善於生死險道安隱無患
찬제(羼提)에 머무르게 한다 함은, 중생들 앞에서 인욕(忍辱)을 찬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는 것이다.
“인욕은 온갖 출가한 이들의 힘이 되어서 모든 악(惡)을 조복하고 대중 가운데서 기특한 일을 나타낼 수 있게 하고, 인욕은 수호자로서 보시와 지계로 하여금 헐리지 않게 하며, 인욕은 큰 갑옷이어서 많은 병사들이 해치지 못하게 하고, 인욕은 좋은 약이어서 나쁜 독을 제거시켜 주며, 인욕은 착하고 뛰어난 것이어서 나고 죽는 험한 길을 갈 때 안온하면서 근심이 없게 한다.
014_0801_b_16L忍爲大施貧苦人無極大寶忍爲大舟渡生死此岸到涅槃彼岸忍爲磫𥗫能瑩明諸德若人加惡如豬揩金山益發其明求佛道度衆生之利器爲最妙
인욕은 큰 창고가 되어서 가난하여 고통 받는 사람에게 끝없이 큰 보배를 베풀어 주고, 인욕은 큰 배가 되어서 나고 죽는 이 언덕을 건너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게 하며, 인욕은 숫돌이 되어서 광채를 내면서 모든 덕을 밝힌다. 만일 사람이 악을 가하면 마치 돼지가 금산(金山)을 닦으므로 더욱더 그 광명이 일어남과 같아서 부처님 도를 구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이익되는 그릇이라 인욕은 가장 미묘한 것이 된다.”
014_0801_b_21L行者當作是念我若以瞋報則爲自害又我先世自有是罪得如意要必當償若於此人不受亦害我俱不得免云何起瞋
수행하는 이는 마땅히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만일 성을 내면서 상대방에게 갚으면 나 자신을 해치는 것이 된다. 또 전생에 자신이 이런 죄를 지었으므로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반드시 그 보상을 받아야 한다. 만일 이 사람에게서 받지 않으면 그 밖의 다른 이가 또한 나를 해치리니, 다 같이 면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성을 낸단 말인가.’
014_0801_c_01L復次衆生爲煩惱所牽起諸惡事得自在譬如人爲非人所持而罵辱良醫良醫是時但爲除鬼不嫌其罵行者亦如是衆生加惡向己不嫌其但爲除結
014_0801_c_01L또 중생은 번뇌에 끌려서 모든 나쁜 일을 일으키면서도 자유롭지 못하나니, 마치 사람이 비인(非人)에게 홀려 용한 의사에게 욕설을 퍼부으면 그 의사는 이때 다만 귀신을 없애 줄 뿐 그의 욕설은 미워하지는 않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중생이 자기에게 악을 가하면 그의 성냄을 미워하지 않고 다만 그의 번뇌만을 제거시켜 준다.
014_0801_c_06L復次行忍之人視前罵辱者如父母視嬰孩見其瞋罵益加慈念愛之踰深又復自念彼人加惡於我是業因緣前世自造今當受之若以瞋報更造後苦何時解已若今忍之永得離苦是故不應起瞋
또 인욕을 행하는 사람은 앞에서와 같이 욕설을 퍼붓는 이를 보면 마치 부모가 젖먹이를 보듯 하면서 그가 성을 내어 욕하는 것을 보고는 더욱더 사랑하게 여김이 깊어져야 하며, 또 다시 생각하기를 “저 사람이 나에게 악을 끼치는 것은 바로 업의 인연이어서 전세에 나 자신이 지은 것이니, 이제 당연히 받아야 한다. 만일 성을 내면서 갚으면 다시 뒷날의 고통을 만드는 것이 되는데 언제 풀리게 되겠느냐. 만일 지금 참지 않으면 영영 괴로움을 여의지 못한다”고 하나니, 이 때문에 성을 내지 않아야 한다.
014_0801_c_11L如是種種因緣訶瞋恚生慈悲入衆生忍入衆生忍中已作是念十方諸佛所說法皆無有我亦無我所但諸法和合假名衆生如機關木人雖能動作內無有主身亦如是但皮骨相隨心風轉念念生滅無常空寂有作者無罵者亦無受者本末畢竟空故但顚倒虛誑故凡夫心著
이와 같이 갖가지 인연으로 성을 내는 일을 꾸짖고 자비로운 마음을 내면서 중생인(衆生忍)으로 들어가나니, 중생인에 들어간 뒤에 생각하기를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모두가 나가 없고 내 것[我所]이 없으며, 다만 모든 법이 화합하여 임시로 중생이라고 부를 뿐이다. 마치 나무 사람과 같으니, 비록 동작을 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주인이 없는 것처럼 이 몸도 역시 그와 같아서 다만 피부와 뼈가 서로 지탱하면서 마음의 바람을 따라 움직일 뿐이며, 생각생각마다 나고 없어지면서 무상하고 공하고 고요하며 짓는 이도 없고 욕하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필경공(畢竟空)이기 때문에 다만 뒤바뀌고 거짓일 뿐인데 범부들이 마음에 집착하고 있다”고 한다.
014_0801_c_19L如是思惟已則無衆生無衆生已法無所但因緣和合無有自性如衆生和强名衆生法亦如是卽得法忍是衆生忍法忍故能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何況諸餘利益衆生聞是住羼提波羅蜜
014_0802_a_01L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곧 중생이 없고 중생이 없고 나면 법에 딸린 데도 없으며 다만 인연(因緣)이 화합했을 뿐이므로 자성도 없다. 마치 중생이 화합한 것을 억지로 이름 붙여 중생이라고 하는 것처럼, 법도 역시 그와 같아서 곧 법인(法忍)을 얻게 되며, 이 중생인과 법인을 얻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는데 하물며 그 밖의 이익이겠는가. 중생들은 이런 일을 듣고 나면 찬제바라밀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014_0802_a_02L立毘梨耶者教衆生言汝莫懈怠若能精進諸善功德悉皆易得若懈怠者見木有火而不能得何況餘事是故勸令精進若人隨方便精進無願不得凡得勝法無因緣皆從精進生
비리야(毘梨耶)에 세운다 함은, 중생들을 다음과 같이 가르치는 것이다.
“그대는 게으르지 말라. 만일 잘 정진하면 모든 착한 공덕을 다 얻기 쉽지만 만일 게으르게 되면 나무에 불이 있는 것을 보면서도 얻지 못하는 것과 같은데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는가. 이 때문에 정진하기를 권하는 것이니, 만일 사람이 방편을 따르면서 정진하게 되면 원마다 얻지 못함이 없다. 뛰어난 법을 얻음에도 인연 아닌 것이 없으니, 모두가 정진에서 생기는 것이다.
014_0802_a_07L精進有二相能進生諸善法能除諸惡法有三相欲造事精進作不休
정진에는 두 가지 모양이 있다. 첫째는 모든 착한 법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나쁜 법을 없애는 것이다. 다시 세 가지 모양이 있나니, 첫째는 일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고, 둘째는 힘써 나아가면서 짓는 것이며, 셋째는 쉬지 않는 것이다.
014_0802_a_10L復有四相已生惡法斷之令滅生惡法能令不生未生善法能令發已生善法能令增長如是等名精進相
다시 네 가지 모양이 있나니, 이미 생긴 나쁜 법은 끊어서 소멸시키는 것이요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쁜 법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겨나게 하는 것이요 이미 생긴 착한 법은 더욱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 등을 정진하는 모양이라 한다.
014_0802_a_13L精進故能助成一切善法譬如火得風助其然乃熾又如世閒勇健之人能越山渡海道法精進乃至能得佛道何況餘事衆生聞已皆立精進波羅蜜
이렇게 정진하기 때문에 온갖 착한 법을 돕고 이루나니, 마치 불이 바람의 도움을 얻으면 더욱더 훨훨 타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세간에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이 산을 건너고 바다를 잘 건너는 것처럼, 도의 법에 정진해야 비로소 부처님의 도를 이룰 수 있는데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는가.”
중생들은 이 말을 듣고 나면 모두 정진바라밀을 세우게 된다.
014_0802_a_17L復次菩薩見有未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爲讚歎阿耨多羅三藐三菩提法於一切諸法中最爲第一極爲尊貴能饒益一切令得諸法實相不誑之法有大慈悲具一切金色身相第一微妙三十二相十隨形好無量光明無量戒智慧解脫解脫知見三達無㝵於一切法無㝵解脫得如是者一切衆生中最爲上尊應受一切世閒供養
014_0802_b_01L또 보살이 아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지 못한 이가 있는 것을 보면 그를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찬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모든 법 가운데서 맨 첫째이며 지극히 존귀하다. 온갖 것을 이익되게 하면서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속이지 않는 법을 얻게 하고 큰 자비가 있으면서 온갖 지혜와 금빛 몸매의 제일 미묘한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 한량없는 광명과 한량없는 계율ㆍ선정ㆍ지혜ㆍ해탈ㆍ해탈지견과 3달(達)의 걸림이 없음[無礙]을 갖추며, 온갖 법에서 막힘이 없이 해탈한 이러한 일을 얻은 이면 온갖 중생 중에서 가장 으뜸가고 높으신 이이므로 마땅히 온갖 세간의 공양을 받아야 한다.
014_0802_b_03L若人但心念佛尚得無量無盡福德何況精布施持戒供養承事禮拜者
만일 사람이 다만 마음으로 부처님을 염(念)하기만 해도 오히려 한량없고 그지없는 복덕을 얻게 되는데 하물며 정진하고 보시하고 계율을 지니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예배하는 이이겠는가.”
014_0802_b_05L語衆生言佛事如是汝等當發無上道心懃修精進行如法者得之不難衆生聞是已便發無上道心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이러한 일을 말해 주면서 “그대들은 마땅히 위없는 도의 마음[無上道心]을 일으켜야 한다. 부지런히 닦고 정진하면서 법대로 행하는 이면 그것을 얻음에 어렵지 않다”고 하나니, 중생들이 이런 일을 들은 뒤에는 곧 위없는 도의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014_0802_b_08L若發心者可但空爾而得當行檀波羅蜜行檀波羅蜜次行尸羅波羅蜜羼提波羅禪波羅蜜般若波羅蜜行五波羅則是毘梨耶波羅蜜
만일 마음을 일으킨 이면 다만 공연히 그렇게 얻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므로 마땅히 단(檀)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단바라밀을 행한 다음에는 시라(尸羅)바라밀을 행하고 찬제(羼提)바라밀ㆍ선(禪)바라밀ㆍ반야(般若)바라밀을 행하나니, 이 다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면 이것이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이다.
014_0802_b_12L若不發大乘心者當教辟支佛道若無辟支佛道教行聲聞道若無聲聞道者教令離色受無色定寂滅安樂若無無色定者教令離欲受色界種種禪定樂若無禪者教令修十善道天中受種種樂
만일 대승(大乘)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땅히 벽지불의 도로써 가르쳐야 하고, 만일 벽지불의 도조차 없는 이면 성문의 도를 행하도록 가르치며, 만일 성문의 도조차 없으면 빛깔[色]을 여의고 무색계의 선정[無色定]의 고요히 사라진 안락을 받도록 가르치며, 만일 무색계의 선정조차 없으면 욕망을 여의고 색계(色界) 갖가지 선정의 즐거움을 받도록 가르친다.
014_0802_b_18L莫自懈怠空無所得貧窮下種種懃苦甚爲可患懈怠法者最爲弊惡破壞今世後世利益善道衆生聞已集諸善法懃行精進
그러면서 말해주기를 “스스로 게으르면서 공연히 얻는 것이 없게 하지 마라. 가난하고 하천하면서 갖가지로 애쓰고 고통을 받음은 매우 근심할 만하다. 게으름은 가장 나쁘고 못쓰며 이 세상과 뒷세상의 이익과 착한 길을 파괴하는 것이다”고 하면, 중생들은 듣고 나서 모든 착한 법을 쌓으면서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게 된다.
014_0802_b_21L立禪者薩於衆生前讚歎禪定淸淨樂內樂自在樂離罪樂今世後世樂聖所受梵天王樂遍身受樂深厚妙樂
선(禪)에 세운다 함은, 보살이 중생들 앞에서 선정의 청정한 즐거움[淸淨樂]과 마음의 즐거움[內樂]과 자재한 즐거움[自在樂]과 죄를 여의는 즐거움[難罪樂]과 이 세상과 뒷세상의 즐거움[今世後世樂]과 성인이 누리게 되는 즐거움[聖所受樂]과 범천왕의 즐거움[梵天王樂]과 온몸으로 느끼는 즐거움[遍身受樂]과 깊고 두텁고 묘한 즐거움[深厚妙樂]을 찬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는 것이다.
014_0802_c_01L諸衆生何以著五欲不淨樂與畜生同受諸罪垢樂而捨是妙樂若汝能捨小樂則得大樂汝不見田夫棄少種子後獲大果如人獻王少物而得大報如少鉤餌而得大魚所捨甚少而所獲大多
014_0802_c_01L“그대 모든 중생들은 어찌하여 5욕(欲)의 청정하지 못한 즐거움에 집착하여 짐승들처럼 모든 죄 되고 때가 낀 즐거움을 받으면서 이 묘한 즐거움을 버리는 것인가.
만일 그대들이 이 작은 즐거움을 버린다면 곧 큰 즐거움을 얻게 되리라. 그대들은 농부가 조그마한 종자를 버리고는 뒤에 큰 수확을 얻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마치 사람이 왕에게 조그마한 물건을 바치고 큰 과보를 얻는 것과 같고 마치 적은 낚싯밥으로 큰 고기를 얻는 것과 같나니, 버린 것은 아주 적으면서도 얻는 것은 크고 많은 것이다.
014_0802_c_07L智者亦如是能棄世閒之得甚深禪定快樂旣得此樂反觀欲樂甚爲不淨如從獄出如病疹得更不求藥
지혜로운 이도 역시 그와 같아서, 세간의 즐거움을 버리고 매우 깊은 선정의 쾌락을 받으며 이미 이런 즐거움을 얻으면 도리어 욕락(欲樂)은 심히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관하나니, 마치 감옥에서 나온 것과 같고 마치 병이 나은 뒤에는 다시는 약을 구하지 않는 것과 같다.
014_0802_c_10L復次禪定名實智初門令智慧澄靜能照諸法如燈在密室其明得用若依禪定得四無量背捨勝處神通辯才等諸甚深功德悉皆具得能令瓦石變成如意寶珠何況餘事
또 선정은 진실한 지혜[實智]의 첫 문이라 한다. 지혜가 맑고 고요하면서 모든 법을 비추게 함은 마치 등불이 밀실[密室]에 있으면서 그 광명이 효용을 얻는 것과 같다. 만일 선정에 의지하여 4무량(無量)과 배사(背捨)와 승처(勝處)와 신통(神通)과 변재(辯才) 등 매우 깊은 모든 공덕을 얻어 모두 다 두루 갖추게 되면 기와와 돌을 변화시켜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되게 하는데 하물며 그 밖의 일이겠는가.
014_0802_c_15L隨意所爲無不能作入地如水履水如地手捉日身不燋化爲種種禽獸之身而不受其法
뜻대로 하게 되어 못하는 것이 없나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물과 같이 하고 물을 밟는 것을 땅과 같이 하며 손으로 해와 달을 잡으면서도 몸은 타거나 차지지도 않고 변화로 갖가지 날짐승ㆍ길짐승의 몸이 되면서도 그의 법을 받지 않는다.
014_0802_c_17L或時變身充滿虛空或時身若微塵或輕如鴻毛或重若太山或時以足指按地天地大動如動草葉如是等神通變化力皆從禪得衆生聞是已立於禪波羅蜜
혹 때로는 몸을 변화시켜 허공에 가득 채우기도 하고 때로는 몸이 작은 티끌같이 되기도 하며 혹은 가볍기가 기러기 털만큼 되기도 하고 혹은 무겁기가 태산(太山)과 같이 되기도 하며 혹 때로는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면 천지가 크게 진동하는 것이 마치 풀잎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등의 신통 변화의 힘은 모두가 선정에서 얻는 것이다.”
중생들은 이러한 일을 듣고 나면 선(禪)바라밀을 세우게 된다.
014_0802_c_22L立般若波羅蜜者菩薩教諸衆生當學智慧智慧者其明第一爲慧眼若無慧眼雖有肉眼猶故是雖云有眼與畜生無異
014_0803_a_01L반야(般若)바라밀을 세운다 함은 보살이 모든 중생들을 가르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는 것이다.
“마땅히 지혜를 배워야 한다. 지혜라 함은 그 총명이 제일이어서 혜안(慧眼)이라 한다. 만일 혜안이 없으면 비록 육안(肉眼)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경이어서 비록 눈이 있다 하더라도 축생과 아무 다를 것이 없다.
014_0803_a_02L若有智慧自別好醜不隨他教若無智慧隨人東西如牛駱駝穿鼻隨人一切有爲法中智慧爲上聖所親愛能破有爲法故
만일 지혜가 있으면 스스로 곱고 추함을 분별하면서 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지만 만일 지혜가 없으면 사람을 따르면서 이리저리 허덕이는 것이 마치 소와 낙타의 코를 꿰어서 사람을 따라 다니게 하는 것과 같다. 온갖 유위의 법 가운데서는 지혜가 으뜸이 되며 성인들이 친하고 사랑하는 바며 유위의 법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014_0803_a_06L如『經』中說於諸寶中智慧寶爲一切利器中慧刀利爲最住智慧山頂無有憂患觀諸苦惱衆生無不悉見
마치 경에서 말씀한 것과 같아서, 모든 보배 가운데서는 지혜의 보배가 맨 첫째이고 온갖 날카로운 기구 가운데서는 지혜의 날카로움이 맨 첫째로서 지혜 산의 꼭대기에 머무르므로 근심 걱정이 없고 모든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관찰하면서도 모두 다 보지 않음이 없다.
014_0803_a_09L智慧刀能斷無始煩惱生死連智慧力故能具六波羅蜜得不可思議無量佛道成一切智何況聲聞辟支佛及世閒勝事是智慧增長淸不可沮壞名爲波羅蜜衆生聞已住般若波羅蜜
지혜의 칼은 끝없는 때로부터의 번뇌와 생사의 연결된 쇠사슬을 끊게 되며 지혜의 칼이기 때문에 6바라밀을 갖추어 불가사의하고 한량없는 부처님의 도를 얻으면서 일체지(一切智)를 이루게 되는데 하물며 성문과 벽지불이나 그리고 세간의 뛰어난 일이겠는가. 이 지혜가 더욱 자라고 청정하면서 무너뜨릴 수 없으므로 바라밀이라 한다.”
중생들은 이런 말을 듣고 나면 반야바라밀에 머무르게 된다.
014_0803_a_14L復次菩薩或時不以口教或現神足光明令衆生住六波羅蜜或現種種餘緣乃至夢中爲作因緣使其覺悟令衆生住六波羅蜜是故經言欲令衆生住六波羅蜜學般若波羅蜜
또 보살이 때로는 입으로써 가르치지 않고 혹은 신족(神足)과 광명을 나타내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6바라밀에 머무르게 하기도 하고, 혹은 그 밖의 갖가지 인연을 나타내기도 하며, 꿈속에서까지도 그들을 위하여 인연을 지으면서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중생들을 6바라밀에 머무르게 하나니, 이 때문에 경에서 “중생으로 하여금 6바라밀에 머무르게 하려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03_a_19L【經】
欲殖一善根於佛福田中至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盡者當學般若波羅蜜
【經】 어느 한 선근(善根)을 부처님의 복전(福田)에 심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기까지 다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03_a_22L【論】
善根三善根無貪善根瞋善根無癡善根一切諸善法皆從三善根生增長如藥樹草木因有根得生成增長以是故名爲諸善根
014_0803_b_01L【論】 선근이라 함은 세 가지의 선근이 있는데 탐욕이 없는[無貪] 선근이요 성냄이 없는[無瞋] 선근이며 어리석음이 없는[無癡] 선근이다. 모든 착한 법은 모두가 세 가지 선근에서 생기며 더욱 자라는 것은 마치 약나무와 초목이 뿌리[根]가 있음으로 인하여 나고 이루어지고 더욱 자라게 되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모든 선근이라 한다.
014_0803_b_02L今言善根善根因緣供養之具謂花香燈明及法供養持戒誦經等因中說果何以故香華不定以善心供養故名爲善根布施非卽是福能破慳貪開善法門善根名爲福鍼導綖縫衣縫非鍼也
지금 선근이라는 말은 선근의 인연으로 공양하는 거리[具]이니, 이른바 꽃과 향과 등불이며 그리고 법으로 공양하고 계율을 지니고 경전을 독송하는 것 등이다. 원인[因]에서 결과[果]를 말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향과 꽃은 일정하지 않지만 착한 마음으로써 공양하기 때문에 선근이라 한다. 보시는 곧 그것이 복은 아니지만 모든 간탐을 파괴하면서 착한 법의 문을 여는 선근이므로 복이라고 할 뿐이다. 마치 바늘이 실을 인도하면서 옷을 깁지만 기워지는 것은 바늘이 아닌 것과 같다.
014_0803_b_08L若華若燈明若禮敬若誦經持戒若禪若智慧等一一供養及法供養於諸佛田中
어느 하나[一]라 함은, 꽃이나 향이나 등불이나 또는 예배 공경하고 경전을 독송하고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고 지혜 등으로써 낱낱이 공양하고 그리고 법으로 공양하면서 모든 부처님의 밭 안에 심는다는 것이다.
014_0803_b_11L佛田十方三世諸佛若佛在世若形像若舍利若但念佛專心堅著
부처님의 밭[佛田]이라 함은 시방과 3세(世)에서의 모든 부처님이니, 그 부처님께서 세간에 계시거나 또는 형상이나 또는 사리(舍利)나 또는 부처님을 염[念佛]하기만 해도 된다. 심는다[殖] 함은 마음을 거기에만 오로지 굳게 쓴다는 것이다.
014_0803_b_13L問曰經言種種福田何以獨言殖於佛田
【문】 경전에서는 “갖가지 복전(福田)”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무엇 때문에 유독 “부처님의 밭에 심는다”고 하는가?
014_0803_b_14L答曰雖有種種福田佛爲第一福田以十力四無所十八不共法如是等無量佛法具是故獨說殖於佛田
【답】 비록 갖가지 복전이 있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으뜸가는 복전이다. 10력(力)과 4무소외(無所畏)와 18불공법(不共法) 등의 한량없는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추고 모시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유독 “부처님의 밭에 심는다”고 한다.
014_0803_b_17L法寶雖爲佛若佛不說法爲無用如雖有好藥若無良醫藥則無用以是故法寶雖上而前說佛寶何況僧寶
법보(法寶)는 비록 부처님의 스승이라 할지라도 만일 부처님께서 그 법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마치 비록 좋은 약이 있다 할지라도 좋은 의사가 없으면 그 약은 소용이 없는 것과 같나니, 이 때문에 법보는 비록 윗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그 앞에 불보(佛寶)를 말씀하고 있는데 하물며 승보(僧寶)이겠는가.
014_0803_b_20L復次佛田能獲無量果報餘者雖言無量而有差降以是故佛田第一不盡諸佛成就無量功德故於中殖福福亦無盡
또 부처님의 밭에서는 한량없는 과보를 얻게 되지만, 그 밖의 것은 비록 “한량이 없다”고 말하더라고 차등이 있나니, 이 때문에 부처님의 밭은 첫째이다. 다하지 않는다[不盡] 함은 모든 부처님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기 때문에 그 안에 복을 심으면 그 복도 또한 다함이 없게 된다.
014_0803_b_23L復次佛功德無量無邊無數無等故殖福者福亦不盡
014_0803_c_01L또 부처님의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고 수 없고 견줄 데가 없기 때문에 복을 심는 이의 그 복도 역시 다하지 않는다.
014_0803_c_02L復次佛爲菩薩時緣一切衆生如衆生無量無邊故亦無盡
또 부처님은 보살로 계실 때 온갖 중생을 반연하셨나니, 마치 중생이 한량없고 끝이 없기 때문에 복도 역시 다함이 없는 것과 같다.
014_0803_c_04L復次佛田淸淨拔愛等諸煩惱穢草淨戒爲平地大慈悲爲良美除諸惡邪鹹土三十七品爲溝港四無所畏四無㝵智等爲垣牆出生三乘涅槃果報殖種於此無上無比田者其福無盡
또 부처님의 밭은 청정하여 애욕 등의 모든 번뇌의 더러운 풀을 뽑아내 버린다. 청청한 계율을 평지(平地)로 삼고, 큰 자비를 아름다운 것으로 삼아 모든 악하고 삿된 소금 흙[醎土]을 제거하며, 37품(品)을 봇도랑[溝淃]으로 삼고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無礙智)를 담장으로 삼아 3승(乘)과 열반의 과보를 생기게 하나니, 이 위없고 견줄 데 없는 밭에 씨를 심는 이는 그 복이 다함이 없을 것이다.
014_0803_c_09L問曰一切有爲法無常相故皆歸於盡福從因緣生何得不盡
【문】 온갖 유위의 법은 무상(無常)한 모양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함[盡]에 돌아가고 복은 인연에서 생기는데 어찌하여 다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014_0803_c_11L答曰亦不言常不盡自言乃至得佛中閒不盡
【답】 역시 “항상 다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처님이 되기까지의 그 중간에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014_0803_c_12L復次一切有爲法雖念念生滅相續不斷果報不失名爲不盡如燈雖焰焰生滅不名脂盡炷滅乃可稱滅福亦如是心種於良田故乃至法盡而亦不盡
또 온갖 유위의 법은 비록 생각생각마다 나고 없어지고 한다하더라고 서로 이어지면서 끊어지지 않고 과보도 잃지 않기 때문에 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치 등불이 불꽃마다 나고 없어지고 한다 하더라도 꺼졌다[滅]고는 말하지 않으며 기름이 다하고 심지가 없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꺼졌다고 하는 것처럼, 복도 역시 그와 같아서 깊은 마음으로 좋은 밭에 심었기 때문에 법이 다하기까지는 역시 다하지 않는다.
014_0803_c_16L復次菩薩知諸法實相如涅槃不盡福德入諸法實相故而亦不盡
또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아나니, 마치 열반이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복덕도 모든 법의 실상에 들기 때문에 역시 다하지 않는 것이다.
014_0803_c_18L問曰若爾者涅槃不盡福德亦應常不盡云何言乃至佛中閒不盡
【문】 만일 그렇다면 열반이 다하지 않으므로 복덕도 역시 항상 다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찌하여 “부처님이 되기까지 그 중간에 다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가?
014_0803_c_20L答曰是福德者以智慧力故令是功德如涅槃畢竟空不生不滅以是故喩如涅槃卽涅槃若是涅槃不應爲喩若是涅云何果報成佛而不盡
【답】 이 복덕은 지혜의 힘 때문에 이 공덕으로 하여금 마치 열반이 필경공(畢竟空)이요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과 같게 하나니, 이 때문에 비유하여 열반과 같다고 하는 것이지 그것이 곧 열반은 아니다. 만일 그것이 열반이라면 비유로 삼지 않아야 한다. 만일 그것이 바로 열반이라면 어떻게 과보로 성불하면서 다하지 않겠는가.
014_0804_a_01L譬如三解脫門無相無作如解脫畢竟空相是空解脫門觀世閒亦畢竟空如解脫無相相是無相解脫門觀世閒亦無相相解脫無作相是無作解脫門觀世閒亦無作相以是故說欲殖一善根於佛福田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而不盡者當學般若波羅蜜
014_0804_a_01L비유하건대 마치 3해탈문(解脫門)이 공(空)이요 모양이 없으며[無相] 조작이 없는[無作] 것과 같다. 마치 해탈과 같은 것은 필경공의 모양이라 이 공의 해탈문으로 세간을 관찰해도 역시 필경공이고, 마치 해탈과 같은 것은 모양이 없는 모양이라 이 모양이 없는 해탈문으로 세간을 관찰해도 역시 조작이 없는 모양이니, 이 때문에 “어느 한 선근을 부처님의 복전에 심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다하지 않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014_0804_a_08L大智度論初品中諸佛稱讚其名釋論第四十七

47. 초품 중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칭찬하다[諸佛稱讚其名]의 뜻을 풀이함
014_0804_a_09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令十方諸佛稱讚其名當學般若波羅蜜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칭찬해 주시기를 원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04_a_11L【論】
菩薩若觀諸法畢竟空內無吾我已破憍慢云何欲令諸佛稱讚其名又菩薩法應供養諸佛云何反求諸佛供養
【論】 【문】 보살이 만일 모든 법이 필경공(畢竟空)임을 관찰하면 안으로는 나가 없고 이미 교만을 깨뜨렸을 터인데 어떻게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그의 이름을 칭찬하게 하려 하는가? 또 보살의 법으로는 마땅히 모든 부처님을 공양해야 되는데 어떻게 도리어 모든 부처님의 공양을 구하는가?
014_0804_a_15L答曰佛法有二門爲第一義門爲世俗法門以世俗門故令諸佛讚歎雖爲諸佛所讚歎而不見我不取衆生相世閒假名故說
【답】 부처님의 법에는 두 가지 문이 있다. 첫째는 제일의문(第一義門)이고, 둘째는 세속법문(世俗法門)이다. 세속의 법으로써 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으로 하여금 찬탄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모든 부처님의 찬탄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를 보지도 않고 중생의 모양을 취하지도 않나니, 세간에서 가정으로 붙인 이름이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한다.
014_0804_a_18L言云何反求佛供養如後品中所讚歎菩薩畢竟阿鞞跋致阿耨多羅三藐三菩提今是菩薩欲得決定知是阿鞞跋致以不以是故求佛讚非求供養
그대는 “어떻게 도리어 부처님의 공양을 구하느냐”고 말하는데, 마치 후품(後品) 중에서 말하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찬탄을 받는 보살은 마침내 아비발치(阿鞞跋致)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 지금 이 보살은 결단코 이 아비발치를 알려고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의 찬탄을 구하는 것이요 공양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014_0804_a_23L復次餘人餘衆生貪欲瞋恚愚癡覆心故不能如實讚歎以故若偏有所愛不見實過但見功若偏有所瞋但見其過不見其德若愚癡多不能如實見其好醜
014_0804_b_01L또 그 밖의 사람과 다른 중생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마음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사실대로 찬탄함을 알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만일 치우치게 탐애하는 것이 많다면 진실한 허물을 보지도 않고 다만 공덕만을 볼 뿐이고, 만일 치우치게 성내는 것이 많다면 다만 그의 허물만을 볼 뿐이요 그의 덕은 보지 않으며, 만일 어리석음이 많다면 사실대로 그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014_0804_b_03L諸天世人雖有智慧三毒薄者亦不能得如實讚猶有謬失無一切智故結使不盡故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은 비록 지혜가 있고 3독(毒)이 얇은 이라 하더라고 역시 사실대로의 칭찬을 얻지도 못하며 오히려 잘못이 있나니, 온갖 지혜가 없기 때문이요 결사(結使)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014_0804_b_06L聲聞辟支佛三毒雖盡亦不能如實讚猶有餘氣未盡又智慧不具足故
성문이나 벽지불은 3독이 비록 다했다 하더라도 사실대로 칭찬할 수도 없나니, 아직도 남은 습기(習氣)가 다하지 못했고 또 지혜가 두루 갖추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014_0804_b_08L唯佛一人三毒及氣永盡就一切智故能如實讚不增不減
오직 부처님 한 사람만이 3독과 습기가 영원히 다하고 일체지를 성취하셨기 때문이며 사실대로 찬탄해도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나니, 이 때문에 수행하는 이는 모든 부처님이 칭찬하는 것을 얻어 그의 진실한 덕을 알고자 하는 것이며 그 밖의 사람은 구하지도 않는다.
014_0804_b_09L是故行者欲得諸佛所讚知其實德不求餘人稱讚
【문】 모든 부처님께서 삼계(三界)에 출현하시면 세간에 집착하지도 않고 나와 내 것도 없으며, 외도나 나쁜 사람을 보실 때에도 큰 보살과 아라한과 동일하게 여기시거늘 어떻게 보살을 찬탄한단 말인가?
014_0804_b_11L問曰若諸佛出於三界不著世閒無有我及我所視於外道惡人大菩薩阿羅漢一等無異云何讚歎菩薩
【답】 부처님은 비록 나도 없고 미워하거나 사랑함도 없으며, 온갖 법에 대하여 마음에 집착함이 없다 하더라도 중생을 가엾이 여기고 큰 자비의 마음으로써 온갖 것을 인도하기 때문에 착한 사람을 분별하면서 칭찬하기도 한다. 또한 악마를 파괴하려는 소원에서 부처님의 찬탄 때문에 한량없는 중생은 그 보살을 좋아하면서 공경하고 공양하므로 뒤에는 모두가 부처님의 도를 성취하나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보살을 찬탄하신다.
014_0804_b_14L答曰佛雖無吾我有憎愛於一切法心無所著憐愍衆以大慈悲心引導一切故分別善人而有所讚亦欲破壞惡魔所願佛讚歎故無量衆生愛樂菩薩恭敬供養後皆成就佛道以是故諸佛讚歎菩薩
【문】 어떻게 찬탄하시는가?
問曰云何讚歎
【답】 마치 부처님은 대중 가운데서 설법하시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심히 깊은 법에 들어가게 하려고 이 보살을 칭찬하시는 것이니, 마치 살타파륜(薩陀波崙) 등과 같다.
014_0804_b_20L答曰如佛於大衆中說法欲令衆生入甚深法是菩薩如薩陁波崙等
014_0804_c_01L또 부처님은 보살을 찬탄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보살은 모든 법의 필경공을 잘 관찰하고 또한 중생들에게 큰 자비심이 있으며, 생인(生忍)을 잘 행하면서도 또한 중생을 보지도 않고 비록 법인(法忍)을 행한다 하더라도 온갖 법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으며, 비록 전생 일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삿된 소견[邪見]에 떨어지지 않고 비록 중생을 관찰하면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치우친 소견[邊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014_0804_b_22L復次佛讚歎菩薩言是菩薩能觀諸法畢竟空能於衆生有大慈悲能行生忍亦不見衆生雖行法忍於一切法而不生雖觀宿命事不墮始見雖觀衆生入無餘涅槃而不墮邊見
비록 열반이 바로 위없는 진실한 법인 줄 안다 하더라도 역시 몸과 입과 뜻의 착한 업(業)을 일으키고 비록 생사 중에서 행한다 하더라도 깊은 마음으로 열반을 좋아하며, 비록 3해탈의 문[解脫門]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열반을 관찰하면서 또한 그 본래의 서원과 착한 행을 끊지도 않나니, 이와 같은 갖가지 기특한 공덕이야말로 매우 있기 어려운 것이니라.”
014_0804_c_04L雖知涅槃是無上實法亦能起身意善業行生死中而深心愛樂涅槃雖住三解脫門觀於涅槃亦不斷本願及善行如是等種種奇特功德甚爲難有
또 만일 보살이 아직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지 못하고 아직 5신통(神通)을 얻지 못했어도 나고 죽는 육신에 큰 자비심이 있으면 중생들을 위하여 안팎으로 귀히 여기고 아끼는 온갖 물건들을 모두 다 베풀어 주나니, 밖으로는 집착하는 아내와 자식과 으뜸가는 5욕과 여의주(如意珠)와 같은 최상의 보배와 안락한 국토 등이며, 안으로는 몸의 살과 피부ㆍ뼈ㆍ피ㆍ머리ㆍ눈ㆍ골수ㆍ뇌ㆍ귀ㆍ코 및 손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등의 보시는 매우 있기 어려운 것이다.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은 그 덕을 찬탄하신다.
014_0804_c_08L若菩薩未得無生忍未得五神通生死肉身有大慈悲心能爲衆生故內外所有所貴惜者悉能施與外謂所著妻子上妙五欲如意珠最上寶樂國土等內謂身體肌肉皮膚如是等施甚爲難有是故諸佛讚歎其德
만일 보살이 법위(法位)에 들어가 신통을 얻었으면 고행(苦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보살은 생신(生身)이요 육안(肉眼)이라 하더라도 뜻과 원이 크고 넓어서 대비(大悲)의 마음이 있고 부처님의 도를 좋아하나니, 이와 같은 일을 행하는 것은 심히 있기 드문 일이다.
014_0804_c_15L若菩薩入法位得神通行苦行不足爲難以是菩薩生身肉眼志願弘曠有大悲心愛樂佛道行如是事甚爲希有
또 만일 보살이 계율을 청정하게 지니면서 두루 갖추고 지계(持戒)와 파계(破戒)를 분별함도 없으며, 온갖 법들이 마침내 나지도 않고[不生] 항상 공[相空]한 데에 대해서는 법인(法忍)으로 정진하면서 쉬지도 않고 그만두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으며, 정진과 게으름이 같은 모양이서서 다르지도 않고 한량없고 끝이 없고 수 없는 겁 동안 부지런히 닦으면서 정진하며,
014_0804_c_18L復次若菩薩持戒淸淨具足無所分別持破戒於一切諸法畢竟不生常空法忍精進不休不息不著不厭精進懈怠一相不異無量無邊無數劫修精進
014_0805_a_01L 매우 깊은 선정을 받아 행하고자 하면서도 의지하는 것이 없으며, 안정함과 산란함이 다르지도 않고 정(定)에서 일어나지 않고도 능히 몸을 변화시켜 시방에 두루 이르러서 설법하여 사람들을 제도하며,
014_0804_c_23L都欲受行甚深禪定無所依亂不異不起於定而能變身無遍至十方說法度人
깊은 지혜를 행하면서 온갖 법의 나지 않고 멸하지 않음[不生不滅]ㆍ나지 않음도 아니고 멸하지 않음도 아님[非不生不滅]ㆍ나지 않는 것도 아니면서 또한 멸하지 않는 것도 아님[非不生亦非不滅]ㆍ나지 않는 것이 아님도 아니고 멸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님[非非不生非非不滅]을 관찰하며, 모든 말이 지나가고 마음이 가는 곳도 없어졌으며 무너뜨릴 수도 없고 깨뜨릴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고 집착할 수도 없으며 모든 거룩한 행과 처소가 청정한 것이 마치 열반과 같고 또한 이런 관(觀)에도 집착하거나 뜻도 역시 침몰하지 않은 채 지혜로써 자기 자신을 이익되게 하나니, 이러한 보살이면 모든 부처님께 찬탄하신다.
014_0805_a_02L行深智慧一切法不生不滅非不生非不滅非不生亦非不滅非非不生非非不滅過諸語言心行處滅不可壞不可破不可受不可著諸聖行處淨如涅槃亦不著是觀意亦不沒能以智慧而自饒益如是菩薩諸佛讚歎
또 보살이 아직 수기(授記)를 얻지 못하고 아직 무생법인도 얻지 못했으며 태어나서 부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성현들을 보지도 못했지만 바른 생각[正思惟] 때문에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관찰하고 비록 실상을 관찰한다 하더라도 마음 또한 집착하지 않으면 이러한 보살을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함께 찬탄하신다.
014_0805_a_08L復次薩未得受記未得無生法忍生不値不見賢聖以正思惟故能觀諸法實相雖觀實相心亦不著如是菩薩十方諸佛皆共讚歎
또 보살이 심히 깊고 한량없고 끝이 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법을 듣고 비록 아직 지혜를 얻지 못하여 미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안정된 마음으로 믿고 좋아하면서 의심하거나 뉘우치지 않으며 만일 악마가 부처님으로 되어 와서 속이면서 그의 뜻을 말해도 뜻에 더하거나 덜함이 없다면, 이러한 보살을 모든 부처님은 칭찬하신다.
014_0805_a_12L復次菩薩聞甚深無量無邊不可思議佛法雖自未智慧未及而能定心信樂不生疑若魔作佛來詭說其意意無增減如是菩薩諸佛所讚
또 모든 보살로서 한때의 발심으로 금방 성불한 이가 있으면 부처님은 곧 칭찬하나니, 크게 정진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彌勒) 등의 모든 보살은 같은 때에 발심했지만 석가모니부처님은 정진의 힘 때문에 9겁(劫)을 초월한 것과 같다.
014_0805_a_16L復次有諸菩薩一時發心中有疾成佛者佛則讚歎有大精進力故如釋迦文尼佛與彌勒等諸菩薩同時發心釋迦文尼佛精進力故超越九劫
014_0805_b_01L또 만일 보살이 보살의 일로써 이른바 10지(地)와 6바라밀과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 등의 한량없는 청정한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추어서 중생을 위하여 오랫동안 생사에 머물러 있으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취하지 않고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면, 이와 같은 보살을 모든 부처님께서는 찬탄하신다.
014_0805_a_20L復次若有菩薩具足菩薩事所謂十地六波羅蜜四無所畏四無㝵智十八不共法等無量淸淨佛法爲衆生故久住生不取阿耨多羅三藐三菩提而廣度衆生如是菩薩諸佛讚歎
어떤 분들이냐 하면, 문수사리(文殊師利)와 비마라힐(毘摩羅詰)과 관세음(觀世音)과 대세지(大勢至)와 변길(遍吉) 등의 보살과 같나니, 이 분들은 보살들의 우두머리로서 삼계(三界)에 출현하여 한량없는 몸으로 변화하면서 생사에 들어가 중생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다.
014_0805_b_02L何者是如文殊師利毘摩羅詰觀世音大勢遍吉等諸菩薩之上首出於三界變化無央數身入於生死教化衆生
이와 같은 회유한 일들은 모두가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에서 생기는 것이니, 이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 그의 이름을 찬탄하게 하려 하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05_b_06L如是希有事皆從甚深般若波羅蜜生以是故說欲得諸佛稱歎其名當學般若波羅蜜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한 번 뜻을 일으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05_b_08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一發意至十方如恒河沙等世界當學般若波羅蜜
【論】 보살은 몸에 신통 변화의 힘을 얻어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몸이 되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일시에 도달할 수 있다.
014_0805_b_11L【論】
菩薩得身通變化力作十方恒河沙等身於十方恒河沙等世界一時能到
【문】 경에서의 설명과 같아서 손가락을 한 번 튀기는 동안에 60번의 생각이 있다. 만일 이 한 생각 동안에 한 방면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이르는 것도 오히려 믿을 수 없는데 하물며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이겠는가. 시간은 짧으나 도달하는 곳이 너무도 많다.
014_0805_b_13L問曰如經說一彈指頃有六十念若一念中能至一方恒河沙等世界尚不可信何況十方恒河沙等世界時少而所到處多
【답】 경에서는 다섯 가지 일의 불가사의를 말씀하셨다. 이른바 중생의 많고 적음ㆍ업의 과보ㆍ좌선(坐禪)한 사람의 힘ㆍ용(龍)의 힘ㆍ모든 부처님의 힘이다. 이 다섯 가지 불가사의 가운데서 부처님의 힘이 가장 불가사의한 것이다.
014_0805_b_16L答曰經說事不可思議所謂衆生多少業果報坐禪人力諸龍力諸佛力於五不可思議中佛力最不可思議
보살은 깊은 선정에 들어가서 불가사의한 신통을 내기 때문에 한 생각 동안에도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도달할 수가 있다. 마치 네 종류의 신통 가운데에서 설명하듯이, 오직 부처님과 보살만이 뜻대로 신속히 두루하는[如意疾遍] 신통이 있다.
014_0805_b_19L菩薩入深禪定生不可思議神通故一念中悉到十方諸佛世界如說四種神通中唯佛菩薩有如意疾遍神通
014_0805_c_01L금시조(金翅鳥)의 새끼가 처음 알에서 나오면 한 수미산에서 한 수미산에 이르게 되는데, 모든 보살도 그와 같아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힘 때문에 모든 번뇌의 무명(無明) 알을 깨뜨리고 즉시 한 생각 동안에 한량없는 몸이 되어서 시방에 두루 이르게 된다.
014_0805_b_22L若金翅鳥子始從㲉出從一須彌至一須彌諸菩薩亦如是以無生忍力故破諸煩惱無明㲉卽時一念中作無量身遍至十方
또 보살은 한량없는 겁 동안에 지었던 죄가 모두 이미 소멸되고 지혜의 힘으로써 온갖 법들을 능히 굴린다. 이른바 작은 것을 큰 것으로 만들 수 있고 큰 것을 작은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천만이나 되는 한량없는 겁(劫)을 하루도 만들 수 있고 또 하루를 천만의 겁으로 만들 수도 있나니, 이 보살은 세간의 주인으로서 하고 싶은 대로 자유자재하거늘 무슨 원인들 만족하지 않겠는가.
014_0805_c_04L復次菩薩一切無量世罪悉已消滅以智慧力故能轉一切諸所謂小能作大大能作小能以千萬無量劫爲一日又能以一日爲千萬劫是菩薩世閒之主所欲自在願不滿
마치 『비마라힐경(毘摩羅詰經)』에서 말한 것과 같아서, 일곱 밤[七夜] 동안을 겁(劫)이 되게 할 수 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보살은 신통력에 의하여 시방의 세계를 신속히 초월할 수 있다.
014_0805_c_09L如『毘摩羅詰經』所說以七夜爲劫壽以是因緣故菩薩乘神通力能速疾超越十方世界
【문】 앞의 다섯 가지 불가사의에는 보살이 없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보살의 불가사의함을 말하는 것인가?
014_0805_c_11L問曰前五不可思議中無有菩薩今何以說菩薩不可思議
【답】 혹 때로는 원인[因] 가운데서 결과[果]를 말하기도 하나니, 마치 “하루에 백 근(斤)의 금을 먹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 금은 먹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은 원인 가운데서 결과를 설명하는 것이다. 혹 때로는 결과 가운데서 원인을 말하기도 하나니, 마치 잘 그린 그림을 보면서 “이것은 좋은 솜씨구나”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결과 가운데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다.
014_0805_c_13L答曰或時因中說果如日食百斤金金不可食因金得食故言食金是爲因中說果或時果中說因如見好畫言是好手是爲果中說因
모든 보살은 역시 그와 같아서, 보살은 원인이 되고 모든 부처님은 결과가 된다. 만일 부처님의 힘의 불가사의를 설명하게 되면 벌써 보살을 말했음을 알 것이니, 이 때문에 “한 번 뜻을 일으켜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05_c_16L諸菩薩亦如是菩薩爲因諸佛爲果若說佛力不可思議當知已說菩薩以是故言欲一發意到十方恒河沙世界者當學般若波羅蜜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한 음성을 내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로 하여금 그 음성을 듣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05_c_20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發一音使十方如恒河沙等世界聞聲當學般若波羅蜜
014_0806_a_01L【論】 보살은 6신통을 얻고 범음성의 몸매[梵聲相]를 더욱 자라게 하여 삼천대천세계를 지나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모든 세계에 이르게 한다.
014_0805_c_23L【論】
菩薩得六神通增長梵聲相過三千大千世界至十方恒河沙等諸世界
【문】 만일 그렇다면 부처님의 음성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답】 보살의 음성은 항하사 같다고 하는 수량이 있지만 부처님의 음성은 이르는 곳에 한계나 수량이 없다. 마치 『밀적경(密跡經)』에서 말한 것과 같아서, 목련(木連)이 부처님의 음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서방(西方)의 맨 끝까지 갔었으나 오히려 부처님의 음성이 들림이 마치 얼굴을 마주보고 말씀하신 것과 같았었다.
014_0806_a_02L問曰若爾者與佛音聲何異答曰菩薩音聲有恒河沙等之佛音聲所到無有限數如『密迹經』中所說目連試佛音聲極至西方聞佛音若如對面
【문】 만일 그렇다면 부처님은 항상 국토의 마을에 계시면서 설법하여 교화하셨는데도 염부제(閻浮提)의 사람들은 부처님 곁으로 가지 못하면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을 어찌하여 아느냐 하면, 먼 지방에서 와서 법을 들으려고 하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014_0806_a_06L問曰若爾者佛常在國土聚落說法教化而閻浮提內人不至佛邊則不得聞何以知之有從遠方來欲聽法者故
【답】 부처님의 음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은밀한 속에서의 음성이고, 둘째는 은밀하지 않은 음성이다. 은밀한 음성에 대해서는 먼저 이미 설명했다. 은밀하지 않은 음성은 부처님 곁으로 가야 비로소 들을 수 있다. 여기에도 또한 두 가지의 제자(弟子)가 있다. 첫째는 세간을 벗어난 성인[出世聖人)이고, 둘째는 세간의 범부이다. 세간을 벗어난 성인은 마치 목련 등과 같아서 미묘하고 비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지만 범부는 그에게 가까이 가야 들을 수 있다.
014_0806_a_09L答曰佛音聲有二種一爲密中音聲二爲不密音聲密音聲先已說不密音聲至佛邊乃聞是亦有二種弟子一爲出世聖人二爲世閒凡夫出世聖人如目揵連等能聞微密音聲凡夫人隨其所近乃聞
또 모든 보살은 정위(正位)에 들게 되어서 나고 죽고 하는 몸을 여의고 법성의 진실한 형체를 얻으면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의 몸과 두루 비추는 광명을 볼 수 있고 또한 모든 부처님의 60종의 극히 먼 한량없는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모든 큰 보살이 비록 아직 부처님과 같이 음성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음성 가운데서 그 분한을 널리 얻는다.
014_0806_a_15L復次諸菩薩得入正位生死身得法性眞形能見十方無量佛身及遍炤光明亦能得聞諸佛六十種極遠無量音聲諸大菩薩雖未具足如佛音聲於佛音聲中普得其
014_0806_b_01L이 부처님과 보살의 음성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전생에 좋은 음성의 인연을 심었기 때문에 목구멍 속에 미묘한 4대(大)를 얻어서 갖가지 묘하고 아름답고 멀고 가까운 음성을 낼 수 있나니, 이른바 1리(里)ㆍ2리ㆍ3리ㆍ10리ㆍ100리로부터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음성이 두루 차는 것이고, 둘째는 신통의 힘 때문에 목구멍의 4대에서 소리를 내면 삼천대천세계와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두루 차는 것이며, 셋째는 부처님의 음성은 언제나 시방의 허공에 두루 차는 것이다.
014_0806_a_20L是佛菩薩音聲有三種一者先世種善音聲因緣故咽喉中得微妙四能出種種妙好遠近音聲所謂一二里三里十里百里千里乃至三千大千世界音聲遍滿二者神通力咽喉四大出聲遍滿三千大千世及十方恒河沙世界三者佛音聲常能遍滿十方虛空
【문】 만일 부처님의 음성이 항상 두루 찼다면 지금 중생들은 어찌하여 항상 들을 수 없는 것인가?
014_0806_b_04L問曰若佛音聲常能遍滿今衆生何以不得常聞
【답】 중생은 한량없는 겁으로부터 지었던 악업에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듣지 못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우레와 번개와 벼락을 칠 때에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지만 우렛소리에는 줄어듦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아서 항상 중생을 위한 설법이 마치 용이 우렛소리를 떨치는 것과 같지만 중생들은 죄 때문에 스스로 듣지 못하고 있다.
014_0806_b_05L衆生無量劫以來所作惡業覆故不聞譬如雷電霹靂聾者不聞聲無減佛亦如是常爲衆生說法龍震大雷聲衆生罪故自不得聞
마치 지금의 세상 사람으로서 정진하고 계율을 지닌 이가 염불삼매(念佛三昧)에서 마음이 정(定)을 얻을 때에는 죄의 때가 막히지 않아서 곧 부처님을 뵈올 수 있고 법의 음성을 맑고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것과 같다.
014_0806_b_09L今世人精進持戒者於念佛三昧心得定時罪垢不障卽得見佛聞佛說法音聲淸了
보살은 세 가지 음성 가운데서 두 가지를 얻고자 하나 이 두 가지 음성은 심히 어렵고 회유하기 때문이요 마치 업과(業果)의 음성과 같아서 저절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이 하나의 음성으로써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로 하여금 그 음성을 듣게 하고자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014_0806_b_12L菩薩於三種音聲中欲得二種是二種音聲甚難希有故業果音聲自然可得故以是故說薩摩訶薩欲以一音使十方恒河沙等世界聞聲者當學般若波羅蜜
【經】 다시 사리불아, 보살마하살이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 한다면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느니라.
014_0806_b_16L【經】
復次舍利弗菩薩摩訶薩欲使諸佛世界不斷者當學般若波羅蜜
【論】 부처님의 세계가 끊어지지 않게 한다 함은, 보살이 나라마다 서로가 차례로 모든 중생들을 발심하게 하여 부처님이 되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014_0806_b_18L【論】
佛世界不斷菩薩欲令國國相次皆使衆生發心作佛
【문】 차례라 함은 한 나라씩 앞뒤로 차례대로 한다는 것인가, 시방의 세계가 차례대로 그렇게 한다는 것인가? 만일 한 나라씩 차례대로 한다면 대비(大悲)로 두루 온갖 중생들을 덮는데 어찌하여 다른 나라들에는 미치지 않으며, 만일 시방의 온갖 세계가 차례대로 다 한다면 그 밖의 부처님과 보살은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014_0806_b_20L問曰次第爲一國前後相次爲十方世界次第若一國相次者大悲普覆一切衆生何以不及餘國若十方一切世界次第者餘佛菩薩何所利益
014_0806_c_01L【답】 보살의 마음과 원은 온갖 세계로 하여금 모두 다 부처님이 되게 하려 함으로 그 큰 마음은 넓고도 멀어서 제한이 없나니, 이 마음으로써 모든 지혜와 한량없는 복덕과 신통력을 쌓기 때문이다. 또 중생으로서 부처님이 될 인연을 심는 이가 있다면 이 보살은 모두 다 성취되게 할 것이고, 만일 온갖 세계가 모두 부처님이 될 인연을 심는 이가 되면 다른 부처님과 보살은 이익이 있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일만은 그렇지가 못하다.
014_0806_c_01L答曰菩薩心願欲令一切世界皆悉作佛大心曠遠無有齊限以是心集諸智慧無量福德神通力故又隨衆生種作佛因緣是菩薩皆悉令作若一切世界皆種作佛因緣者餘佛菩薩不應有益但是事不然
또 시방의 세계는 한량없고 끝이 없으므로 한 보살이 모든 세계를 두루 다 부처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지는 못하며 모든 그 밖의 다른 보살들도 저마다 인연에 따라 모두 그 분한이 있을 것이다. 자비가 크기 때문에 서원 또한 한량없고 이익되게 하는 마음도 제한이 없으며 중생의 종류도 한량없기 때문에 한 부처님이나 한 보살만이 모두 제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014_0806_c_07L復次十方世界無量無不應一菩薩盡得遍諸世界令佛種不斷諸餘菩薩各隨因緣皆有其以慈悲大故願亦無量利益之心無有齊限衆生種無量故非一佛一菩薩所可盡度
【문】 만일 일에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원을 세우는가?
014_0806_c_12L問曰若事不稱心故作願耶
【답】 마음의 원이 넓고 크고 청정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마치 자삼매(慈三昧)를 행할 때 비록 중생들로 하여금 고통을 여의게는 하지 못하더라도 다만 자기 마음만이라도 넓고 크고 청정하게 하면서 이익되는 원을 이루고자 하는 것 같다.
014_0806_c_13L答曰欲令心願曠大淸淨如行慈三昧雖不能令衆生離苦但自欲令心曠大淸淨成利益願故
그리고 또 모든 부처님과 큰 보살의 힘은 모두가 온갖 중생을 다 제도할 수 있는데도 중생들이 복연(福緣)을 아직 쌓지 못하고 아직 지혜가 없으며 인연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제도될 수 없는 것과 같고, 또 마치 큰 바다의 물을 온갖 중생들이 다 가져다 써도 물은 다하지 않을 것인데도 다만 중생들이 가져다 쓰지 못하는 것 같으며, 또 마치 아귀 중생은 자기 죄의 인연으로 물을 볼 수도 없고 설령 보게 된다 해도 곧 바짝 말라버리며 혹은 녹인 구리의 물이 되기도 하고 혹은 피고름으로 되는 것과 같다.
014_0806_c_15L諸佛大菩薩力皆能度一切衆生而衆生福緣未集未有智慧因緣不會故而不得度如大海水一切衆生取用不窮竭但衆生不能得用如餓鬼衆生自罪因緣不得見水設得見之時乾竭或爲洋銅或成膿血
014_0807_a_01L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아서 큰 자비와 지혜가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모두 중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데도 중생들의 죄와 업의 인연 때문에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며 설령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해도 마치 다른 사람처럼 다름이 없다고 여기면서 혹은 성을 내기도 하고 혹은 비방을 하기도 하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부처님의 위엄 있는 몸매와 신력을 보지 못하며 비록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아무 이익이 없다.
014_0806_c_21L佛亦如有大慈悲智慧無量無邊悉能滿足衆生而衆生罪業因緣故而不値設得値佛如餘人無異或生瞋恚或起誹謗以是因緣故不見佛威相神力雖得値佛而無利益
또 두 가지 인(因)과 두 가지 연(緣)으로 바른 소견을 일으키나니, 이른바 안의 인[內因]과 바깥의 연[外緣]이다. 부처님은 바깥의 인연을 두루 갖추어서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의 한량없는 광명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갖가지 신통력과 갖가지 음성으로 뜻대로 설법하며 온갖 의혹을 끊어 주신다.
014_0807_a_03L復次二因二緣發於正見所謂內因外緣佛外因緣具足有三十二相八十隨形好無量光明莊嚴其身種種神力種種音聲隨意說法斷一切疑
다만 중생의 안의 인연이 갖추어 있지 못하고 전생에 부처님을 친견할 선근도 심지 못했으며 그리고 믿고 공경하지도 않고 정진하거나 계율을 지니지도 못했으며 근기가 둔하여 몹시 두꺼운 데다 세간의 욕락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니, 이 때문에 이익이 없는 것이요 부처님의 허물은 아니다.
014_0807_a_07L但衆生內因緣不具足先不種見佛善根而不信敬不精進持戒鈍根深厚著於世以是故無有利益非爲佛咎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신령한 그릇과 날카로운 작용을 모두 다 갖추어 계신다. 비유하건대 마치 나왔을 때 눈이 있는 이는 보지만 소경이면 볼 수 없으며 설령 눈이 있다 해도 해가 없으면 볼 수 없을 것이므로 해에는 허물이 없는 것처럼 부처님의 광명도 역시 그와 같다.
014_0807_a_10L佛化度衆生神器利用悉皆備足譬如日有目則睹盲者不見設使有目而無日者則無所睹是故日無咎也明亦如是
【문】 어떻게 하면 부처님 세계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인가?
014_0807_a_14L問曰云何佛世界因緣不
【답】 보살은 중생들 가운데서 갖가지 인연으로 부처님의 도를 찬탄하면서 중생들로 하여금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일으키고 차츰 6바라밀을 행하게 한 연후에 모든 세계에서 저마다 부처님이 되게 한다. 또 한 나라씩 차례로 부처님이 되게 하거나 혹은 다른 나라에서 각자 부처님이 되게 함으로 이것을 부처님의 나라를 끊어지지 않게 한다고 한다.
014_0807_a_15L答曰菩薩於衆生中種種因緣讚歎佛道令衆生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漸漸行六波羅蜜然後於諸世界各各作佛若於一國次第作佛或於異國各自作佛是名不斷佛國
또 보살은 빠르게 지혜를 구족하게 쌓아서 부처님이 되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열반에 들려 할 때에는 보살에게 수기(授記)를 하면서 “내가 멸도한 뒤에는 그대가 이어서 부처님이 되리라”고 하나니, 차츰차츰 모두가 다 이렇게 하면서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만일 부처님께서 보살에게 수기하지 않는다면 부처님 나라는 끊어지게 된다. 비유하건대 마치 왕이 태자를 세워서 차츰차츰 이렇게 이어가면 국운(國運)이 끊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014_0807_a_19L復次菩薩疾集智慧具足作佛度無量衆欲入涅槃時爲菩薩受記我滅度汝次作佛展轉皆悉如是令不斷若佛不記菩薩者則斷佛國譬如王立太子展轉如是國祚不斷
014_0807_b_01L【문】 무엇 때문에 부처님이 계신 세계를 귀히 여기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나라를 천하게 여기는가?
014_0807_b_01L問曰何以貴有佛世界賤無佛國
【답】 이런 일은 질문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은 바로 시방세계를 장엄하신 주인이신데 하물며 하나의 나라이겠는가. 만일 부처님이 계신 나라를 여의면 비록 인간과 천상의 즐거움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부처님의 은혜의 힘으로 이르게 된 것을 모르게 됨으로 축생과 다를 것이 없다.
014_0807_b_02L答曰事不應致問佛是莊嚴十方世界主何況一國若離有佛國者雖受人天而不知是佛恩力之所致與畜生無異
만일 온갖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지 않으셨다면 3승(乘)과 열반의 도가 없고 항상 삼계(三界)의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을 테지만, 만일 세간에 부처님이 계시면 중생은 삼계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014_0807_b_06L若一切諸佛不出世者則無三乘涅槃之道常閉在三界獄永無出若世有佛衆生得出三界牢獄
비유하건대 마치 두 나라 사이에 해가 없는 곳이면 이 안의 중생들은 어두운 속에서 태어나고 어두운 속에서 죽게 되는데 만일 부처님께서 출현할 때에 광명을 잠깐 비추어 주면, 저마다 서로가 보고 그제야 해와 달을 보았다 하며 빛을 받은 중생이 저곳은 큰 복을 지녔다 하면서 “우리들은 죄가 있어서 이렇다”고 하는 것과 같다.
014_0807_b_08L如二國之閒無日之處是中衆生從冥中生從冥中死若佛生時光明暫各各相見乃見日月所炤衆生彼爲大福我等有罪
때로는 부처님은 광명으로써 모든 부처님 나라를 두루 비추시는데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나라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생각하기를 “우리들은 캄캄한 데에 있는데 저곳에는 큰 광명이 있구나”고 할 것이다.
014_0807_b_12L如是或時佛以光明遍炤諸佛國有佛國衆生見佛光明則大歡喜念言我等黑闇彼爲大明
또 부처님이 계신 나라의 중생들은 죄와 복이 있음을 알므로 사람들은 3귀(歸)와 5계(界)와 8제(齊), 그리고 출가와 5중(衆) 등과 갖가지 매우 깊은 선정ㆍ지혜ㆍ4사문과(沙門果)ㆍ유여열반(有餘涅槃) 및 무여열반(無餘涅槃) 등의 이러한 갖가지 착한 법을 받을 것이니, 이런 인연 때문에 부처님의 나라를 귀히 여긴다.
014_0807_b_15L復次有佛之國衆生知有罪福人受三歸五戒八齋及出家五衆等種種甚深禪定智慧四沙門果有餘無餘涅槃等如是種種善法以是因緣故佛國爲貴
014_0807_c_01L부처님의 나라 중생들은 비록 부처님을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경법(經法)을 만나게 되면 선근을 닦고 계율을 지니며 보시하고 예배 공경하는 등 열반의 인연을 심게 되고 축생까지도 모두가 복덕의 인연을 심게 되지만, 만일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나라면 하늘과 사람에 이르기까지 선근을 닦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보살은 원을 세워서 부처님의 세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 한다.
014_0807_b_19L若佛國衆生雖不見値遇經法修善持戒布施禮敬等種涅槃因緣乃至畜生皆能種福德因緣若無佛之國乃至天人不能修以是故菩薩生願欲使佛世界不斷
大智度論卷第三十
庚子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 15)범어로는 Sumati.
  2. 16)범어로는 Sādaprarudita. 의역해서 상제(常涕)라고도 한다.
  3. 17)범어로는 Avaivarti. ‘불퇴전(不退轉)’을 의미한다. 아비발치(阿鞞跋致)라고 음역하기도 한다.
  4. 18)범어로는 Bindu.
  5. 19)해당하는 범어는 dānapāramitayāṃ, 곧 처격(Loc.)이다.
  6. 20)범어로는 Pretasūtra.
  7. 21)범어 Kiṃnara의 음역어. 반인반수의 뿔 달린 귀신이다. 긴나라(緊那羅)ㆍ견다라(甄陀羅)를 말한다.
  8. 22)범어 gandharva의 음역어. 건달바(犍闥婆)를 말한다..
  9. 23)범어 kumbhāṇḍa의 음역어.
  10. 24)범어 bhūta의 음역어.